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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성훈, 그는 왜 일본서 ‘마왕’이 됐나

    추성훈, 그는 왜 일본서 ‘마왕’이 됐나

    일본인들은 왜 격투기 스타 추성훈(일본명·아키야마 요시히로)에게 환호 대신 야유를 보낼까.스포츠 스타에 대한 질시일까,아니면 민족적 편견의 발로일까. 추성훈이 일본에서 관중들의 야유를 받으며 ‘마왕’ 이미지를 구축하게 된 데에는 사쿠라바 카즈시(40)·미사키 카즈오(31)와 치른 2번의 경기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재일동포 4세인 추성훈은 2001년 일본으로 귀화,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때 남자 유도 81㎏급에 일본 대표로 출전,우리나라의 안동진(경남도청)을 꺾고 금메달을 땄다. 그후 종합격투기 선수로 변신한 그는 2004년 마지막 날 열린 K-1 다이너마이트 대회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복서인 ‘화이트 버팔로’ 프랑소와 보타(40)를 꺾으며 화려하게 데뷔전을 장식했다. 추성훈은 승세를 이어 2006년 10월 K-1 히어로즈 라이트헤비급 그랑프리 결승전에서는 ‘타격 몬스터’ 멜빈 마누프(32·네덜란드)를 암바 기술로 꺾고 드디어 챔피언에 등극하는 영예를 누렸다.이 경기를 계기로 추성훈은 “실력에 맞는 타이틀을 차지했다.”는 평과 함께 일본 내에서도 뜨거운 인기를 구가했다. 그리고 이어진 운명의 ‘사쿠라바 카즈시 전’. 2006년 12월 31일 추성훈은 ‘K-1 다이너마이트 대회’에서 사쿠라바 카즈시와 대결을 벌였다.사쿠라바는 ‘그레이시 가문’ 등 해외 격투기 스타를 차례로 꺾으며 일본 격투기계의 자존심을 지킨 인물로,일본인들은 그를 ‘격투 영웅’이라고 칭송하며 환호를 멈추지 않았다. 사실은 추성훈이 일본을 대표하는 그런 선수와 맞붙었다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의 (일본에서)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기는 했다.더구나 이 경기에서 추성훈은 사쿠라바에 무차별적인 난타를 퍼부으며 1라운드 5분37초 만에 TKO승을 거뒀다.비록 전성기가 지났다고는 하지만 일본인들이 눈앞에서 ‘영웅’이 쓰러지는 모습은 현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임을 추측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더 큰 문제는 경기 후에 벌어졌다.사쿠라바측에서 “추성훈이 몸에 크림을 발라 미끄러워 경기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며 의혹을 제기했고,그 결과 경기가 무효처리됨과 동시에 추성훈은 무기한 출장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이로 인해 추성훈은 엄청난 야유와 비난에 시달려야만 했다.언론은 거침없이 추성훈을 파렴치한 선수로 몰아갔다.추성훈이 “규정을 몰라 저지른 실수였다.”고 해명했지만 이미 일본인들에게 추성훈은 ‘악마’로 각인되고 있었다.여기에는 일본 특유의 배타적 국민의식도 작용했다.그들의 눈에 추성훈은 여전히 ‘조센징’일 뿐이었다.얼마든지 짓밟고 짓이겨도 별 문제가 없는…. 이후 2007년 10월 28일 K-1 히어로즈 서울대회에서 추성훈은 한국계 데니스 강(32)을 꺾으며 재기에 성공했으나 그해 12월 31일 ‘프라이드FC-야렌노카!오미소카’에서 미사키 카즈오에게 킥에 이은 파운딩을 허용해 1라운드 1분46초를 남기고 레프리 스톱으로 패했다.(이 경기에 대해 22일 실행위원회는 미사키의 킥이 반칙이었기 때문에 무효 판정을 내렸다.) 경기 직후 마이크를 잡은 미사키는 추성훈을 향해 “많은 사람과 아이들을 배신했다.”는 등 운동 선수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인신모독성 훈계를 했다.마치 어른이 잘못을 저지른 아이를 꾸짖듯. 이후 일본내에서 추성훈의 ‘악역 이미지’는 더욱 굳어지게 됐다.일종의 여론조작이자 이지메였다. 실제로 한 일본 언론은 추성훈과 미사키의 대결을 ‘권선징악극’으로 묘사하며 선(善)의 편인 미사키가 악(惡)의 편인 추성훈을 물리쳤다고 보도하기도 했다.그런가 하면 일본의 격투기 잡지 ‘카미프로’는 표지에 내세운 추성훈의 얼굴에 눈동자를 빨갛게 칠해 악마로 그리고는 그를 ‘마왕’이라고 지칭했다. 이런 일련의 사태 속에서 일본인들은 그가 패션모델인 야노 시호와 교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춰 또다시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다.한번 먹이를 물면 숨통이 끊어질 때까지 놓지 않는 일본인들의 야만성이 추성훈의 사생활을 지나칠 리가 없었다. 추성훈에 대한 일본인들의 이런 감정은 지난 21일 열린 ‘K-1 드림5’ 시바타 카츠요리와의 대결에서도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 모습 그대로였다.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은 입장하는 추성훈에게 우레(?)와 같은 야유를 보내며 반감을 표시했다. 이같은 추성훈의 ‘악역’ 이미지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시바타를 꺾은 추성훈은 일본의 또 다른 격투 영웅인 ‘고독한 천재’ 타무라 키요시(39)와 맞붙고 싶다고 밝힌 것.그동안 타무라는 줄기차게 ‘추성훈 크림 사건’ 등을 거론하며 비난하는 등 스포츠 스타의 격에 어울리지 않는 비난을 계속해 왔고,견디다 못한 추성훈이 격투기 선수 답게 경기장에서 승부를 가리자고 도전 의지를 밝혔다. 문제의 타무라는 1997년 링스 초대 무차별급 챔피언에 오르며 전성기를 구가했었고,그의 스승 격이었던 다카다 노부히코(46)의 은퇴 경기에서 다카다를 꺾으며 국내에도 널리 알려졌었다. 이렇듯 타무라는 일본을 상징하는 강자로,그가 제안을 수용한다면 또 한번 추성훈은 ‘마왕’으로 경기를 치러야할 것으로 보인다. ‘마왕’이란 캐릭터는 일장기와 태극기를 동시에 품고 활동하는 그에겐 평생 짊어지고 가야할 숙명일지도 모른다.문제를 이성으로 보려하지 않고 집단의식에 매몰된 시각으로만 보려는 일본인들 속에서 지금 추성훈은 힘겹고 고독한 길을 걷고 있다.그런 그가 목을 곧추 세우고 당당하게 일본인 상대를 제압하는 한 일본인들의 질시와 비난은 멈추지 않을 지도 모른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서울역 환승시간 짧아진다

    서울역 환승시간 짧아진다

    서울역 앞에 ‘대중교통 환승공원’(조감도)이 생기는 등 주변 환승·보행 환경이 대폭 개선된다. 서울시는 내년 4월까지 서울역 앞에 대규모 환승센터와 녹지공원을 결합한 국내 최대 규모의 환승공원을 만들기로 했다고 20일 밝혔다. 이에 따라 서울역에서 버스나 열차, 지하철 등 다른 대중교통으로 갈아타는 데 걸리던 환승시간이 12분에서 3분으로 크게 줄어드는 등 서울역을 이용하기가 훨씬 편리해질 전망이다. 시는 서울역 주변에 흩어져 있는 10개 버스정류소를 서울역 앞 환승센터로 모으기로 했다. 이를 위해 모두 87개 노선에 시간당 700여대의 버스가 이용할 수 있는 4개의 대규모 버스승강장을 만들 예정이다. 또 서울역과 대우빌딩 사이에는 횡단보도를 설치해 보행 환경을 개선하고 환승센터의 구조물을 최소화해 친환경 소규모 공원도 만들기로 했다. 의자와 쉼터 등을 갖춘 녹지공간으로 만남의 장소나 시민들 쉼터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밖에 국내 최초로 도로 중앙의 지상 버스승강장에서 지하철 역사로 연결되는 환승 통로도 만든다. 폭 6m, 길이 37m의 환승 통로는 에스컬레이터를 갖춰 지하철이나 열차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서울역 앞에 정차해 있는 택시가 다른 차량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도록 옛 서울역사 앞 도로를 늘려, 정차 공간을 추가로 확보하고 버스 목적지별로 서울역 주변의 버스 교통체계도 바꾸기로 했다. 마국준 도로교통시설 담당관은 “한국철도공사, 서울지방경찰청 등 관계 기관과 1년간의 협의를 거쳐 이번 환승공원을 만들게 됐다.”면서 “이제 서울역은 하루 20만명 이상의 시민이 편리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 중심지’로 새롭게 태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특파원 칼럼] 베이징의 한국 오페라/이지운 베이징 특파원

    [특파원 칼럼] 베이징의 한국 오페라/이지운 베이징 특파원

    최근 한국의 오페라, 뮤지컬, 연극이 잇따라 베이징 무대에 올려졌다. 올림픽 문화행사의 하나로 마련된 ‘한국 공연예술주간’에서다. 국립오페라단의 ‘천생연분’, 서울예술단의 ‘왕의 우인, 공길’, 극단 골목길의 ‘청춘예찬’과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보이첵’, 극단 물리의 ‘레이디 맥베스’ 등이 공연됐다. 우선 오페라 ‘천생연분´에 2명의 중국 친구를 초대했다.20대 후반의 배우 A씨와 40대 초반의 TV감독 B씨였다. 각각 중국의 최고 기관인 중앙희극학원과 중앙영화학원을 졸업하고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들이다.A씨를 초청한 데는 사연이 있었다. 일전에 그의 연극 공연을 관람한 뒤 몇몇이 모여 품평회를 마련했는데, 굳이 소감을 묻기에 “속도감과 긴장감이 다소 떨어지는 게 흠이었다.”는 요지로 평가를 했다. 재미있고 신선한 코미디극이었지만,2시간30분간 휴식 없이 이어진 연극이 관객의 집중력을 끝까지 잡아두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얘기도 했다. 공연에 관한 세계적인 흐름에 관해서도 대화를 나눈 기억이 있다. 다행히 오페라 ‘천생연분´은 A씨에게 대단히 좋은 교재가 됐다. 공연이 끝나고 그는 “당시 어떤 의미에서 속도·긴장감을 지적했는지 확인했다.”고 했다. 과거 미술을 전공했던 B감독은 ‘색’에 상당한 감동을 받은 듯했다. 조명은 자극적이기 쉬운 중국 무대에서와는 분명한 차이를 느끼게 하며, 색조와 공간감을 풍부하게 했다. 그는 잘 조절된 완급으로 입체감 있게 움직인 무대 세트에도 깊은 인상을 받았다.“칸칸이 나눈 무대로 동양의 ‘방(房)’을 잘 표현하는 등 아이디어가 돋보였다.”고 평했다. 이같은 평가가 ‘빈 말’이 아니었음은 뒤이은 뮤지컬 ‘왕의 우인, 공길’에서 입증됐다. 함께할 지인이 있으면 같이 와도 좋다고 했더니 둘 다 4∼5명을 데려가도 되겠느냐는 연락이 왔다. 표 사정으로 각 1명으로 제한되자 A씨는 희극학원의 과거 스승을 모시고 왔고,B감독은 자신의 카메라 스태프와 동행했다. 사실 ‘왕의 우인, 공길’에는 다소 걱정이 앞섰다. 역사적 배경과 조선시대 민중 문화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이 이해가 가능할까, 오페라보다 훨씬 복잡하고 길며 빠르게 움직이는 자막이 극에 몰두하기 어렵게 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다행히 이들은 영화 ‘왕의 남자’를 보았거나 대강의 구성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동양인으로서의 동질감이 극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감각을 보충해주는 듯했다.A씨는 “개인적으로는 영화에서의 스토리 전개가 더 마음에 든다.”면서도 마지막 합창 장면에 감탄했다. 그러면서 그날 중국 현대 뮤지컬의 원조 격이라는 자신의 또 다른 노교수를 함께 모시지 못한 데 무척 아쉬워했다. 긴 대화를 나누지 못했지만,“‘마이크’를 비롯한 훌륭한 음향시설이 돋보였다.”는 희극학원 교수의 평가도 상당히 압축적이었다. 종합예술로서 무대 공연에서의 ‘디테일’은 엄청난 차이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사소한 차이로 보일지언정, 흉내내기란 제조업에서 후발업체가 선두업체의 핵심기술 따라잡기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공연장마다 더 많은 중국인이 자리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는 요즘, 중국의 주요 TV채널이 중국 순회 공연 중인 북한의 가극 ‘꽃파는 처녀’에 대한 1시간짜리 특집 프로그램을 반복해서 내보내고 있음을 알게 됐다. 박영대 주중 한국문화원장은 “적어도 수천만명의 중국인이 TV 특집 프로그램을 통해 꽃파는 처녀를 인지했으며, 잠재적 관람객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공연예술계가 이제부터 중국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뚜렷해지는 순간이다. 이지운 베이징 특파원 jj@seoul.co.kr
  • [스포츠 라운지] 배구국가대표팀 1호 전력분석관 박순우

    [스포츠 라운지] 배구국가대표팀 1호 전력분석관 박순우

    “참, 도대체 이런 토스에까지 블로킹이 따라붙으면 어떻게 빼야 되냐.”,“형, 저 장면을 좀 더 돌려보죠.” 지난달 29일 국제배구연맹(FIVB) 월드리그 쿠바와 원정 2차전 경기를 몇 시간 앞두고 쿠바 아바나의 한 호텔 숙소에서 국가대표팀 세터 최태웅(32)은 박순우(26) 전력분석관의 방을 찾아 전날 경기 동영상을 다시 한 번 꼼꼼하게 돌려봤다.1차전 대패의 원인을 다시 한 번 분석한 뒤 이날 경기에 대비하고자 함이었다. 이 동영상은 박 분석관이 전날 모든 경기 장면을 동영상으로 녹화한 뒤 경기가 끝난 이후 밤잠을 물리고 상황별, 패턴별, 선수별, 공격루트별 분석을 위해 이미 여러 차례 돌려본 것. 이 덕분이었을까. 비록 전날에 이어 또다시 패했지만 최태웅 등 선수들의 몸놀림은 한층 달라졌고, 경기 내용 또한 쿠바 선수들과 대등하게 가져가며 한국 배구의 잠재 가능성을 확인시켰다. 박 분석관은 대표팀의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살림꾼이다. 원정경기에 나설 땐 노트북 컴퓨터 2대, 카메라 2대, 각종 장비 등을 갖추다보면 가방 3∼4개가 훌쩍 넘어가기 일쑤다. 또한 훈련할 때면 볼보이 역할에, 코트 땀 닦는 일등 허드렛일은 모두 그의 몫이다. ●성균관대 배구선수 출신 그는 잘 알고 있다. 몇몇 선수를 빼면 자신보다 나이들도 많다. 또한 자신도 한때는 잘 나가는 세터(구미 현일중·고, 성균관대)였지만 대표팀에 모인 선수들보다 ‘배구 경력’이 떨어진다. 성대 졸업 후 삼성화재에 지명을 받았지만 군에 입대한 뒤 한계를 절감, 국가대표의 꿈을 접고 분석관을 택했다. 전력분석관도 지난해 10월 시작, 일천해 외국대표팀 전력분석관처럼 ‘또다른 지도자’ 위상 역시 아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꿈이 있다. 그는 국가대표팀 1호 전력분석관이다. 또한 몇 명 되지 않는 이들과 함께 ‘국내 전력분석관 1세대’를 이루고 있다. 박 분석관은 “1세대로서 한국이 데이터 배구를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다.”면서 “이를 위해 한국에 많은 전력분석관이 나와야 하고, 전력분석의 방식이 더욱 구체적이고 정교해야 하며 주변 사람들과 끊임없이 공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체계적인 양성프로그램 전형 만들터” 그가 직접 배우면서 겪었던, 또 겪고 있는 설움을 더 이상 반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체계적인 전력분석관 양성 교육 프로그램의 전형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다. 그의 배움에는 한계도, 제약도, 국경도 없다. 박 분석관은 “한참동안 독학을 하다가 내가 똑바른 길로 가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도 많았다.”면서 “외국팀과 경기할 때면 상대팀 전력분석관을 찾아가 전력 분석의 노하우와 배구를 보는 눈, 감각 등에 대해 꼬치꼬치 물어보며 배우곤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탈리아나 일본 등 데이터 배구가 뛰어난 팀은 전력 분석관들의 능력도 탁월했다. 그는 자존심도, 대표팀 전력분석관의 명예도 잠시 접고 기꺼이 배웠다. 박 분석관은 “외국 전력분석관들이 생각보다 잘 가르쳐준다.”면서 “전력 분석에 정식 교재가 있는 것도 아닌 만큼 스승도 따로 없으니 끊임없이 배움을 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야 할 길은 멀다. 가까운 일본은 공식적으로 100개 정도의 국제적 전력 분석 프로그램이 쓰여지고 있다. 이는 실업팀은 물론 웬만한 고등학교, 대학교에까지 보급됐음을 의미한다. 비슷하게 신체적 한계를 안고 있음에도 올림픽에 가고 좋은 성적을 꾸준히 내는 팀과 그렇지 못하는 팀 사이에는 이처럼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절감했다고 한다. “선수로서 국가대표는 못했지만 전력 분석에서만큼은 당당한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서 한국 배구를 발전시키는 데 한몫을 해내고 싶습니다.” ‘또다른 인생’을 힘차게 열어가는 박 분석관의 꿈은 분명하고, 의지는 확고하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박순우 프로필 ●생년월일 1982년 4월 6일 ●출신학교 경북 현일중-현일고-성균관대 ●선수시절 포지션 세터 ●주요경력 2000년 종별선수권대회·송원배전국대회 등 준우승, 2005년 8월 군입대, 2007년 10월 국가대표 전력분석관
  • [책꽂이]

    ●여우소녀(노라 옥자 켈러 지음, 이선주 옮김, 솔 펴냄) 독일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하와이에서 자란 한국계 미국인 저자의 두번째 장편소설. 첫 작품 ‘종군위안부’와 마찬가지로 여성의 시각에서 전쟁의 비극을 조명했다.1960∼70년대 한국의 미군 기지촌에서 자란 두 소녀의 성장이야기.2002년 발표된 이후 영어로 쓰인 전세계 여성작가들의 작품을 대상으로 시상하는 영국 문학상 ‘오렌지상’의 최종후보로도 올랐었다. 원제는 Fox Girl.9500원.●책 읽어주는 여자(레몽 장 지음, 김화영 옮김, 세계사 펴냄) 1990년 처음 소개된 뒤 이번에 번역을 새롭게 해 재출간했다. 책을 읽는 사람과 그것을 듣는 사람, 책 속의 이야기와 책 밖의 현실을 아우르면서 독서 행위의 특별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불문학자 김화영씨가 스승인 저자를 위해 꼼꼼하게 재수정했다. 말미에는 프랑스 문학에 관한 사제간의 대화도 실려 있다.1만 1000원.●무중력증후군(윤고은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제1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달이 여러 개로 분화한다는 엉뚱하고 대담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달이 6개까지 분화하는 과정과 함께 지구에서 일어나는 소동을 그리고 있다. 심사위원들로부터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군중의 소외감을 은유와 농담으로 표현하며 소외의 무거움은 가볍게, 상처의 잔혹함은 경쾌하게 그려나간다.”는 평을 받았다.1만원.●꿈이었을까(김용희 엮음, 생각의나무 펴냄) 젊은 문학평론가 김용희가 50편의 시를 가려 뽑아 자신만의 섬세한 해설을 덧붙였다. 신달자, 천양희, 안도현, 황학주, 김선우, 정호승, 김경주 등 지금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주요 시인들의 작품이 고루 포함돼 있다.‘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등 다섯 계절로 나눠 그에 해당하는 시를 소개하고, 여러가지 해석의 스펙트럼 중 하나를 골라 감상을 써내려 갔다.1만 1000원.
  • [한국의 토종] (9) 미호종개

    [한국의 토종] (9) 미호종개

    “아저씨, 혹시 이렇게 미꾸라지처럼 생긴 물고기가 잡히면 그냥 놓아주세요. 이름이 미호종개인데, 세계적으로도 희귀종인 우리나라 토종 물고기예요.” 지난 4일 오후 대전 도심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갑천 하류. 고교생 대여섯명이 곳곳에서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들에게 다가가 천연기념물 454호 미호종개의 사진을 보여주며 부탁하고 있다. 이날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갑천을 찾은 이 학생들은 미호종개 지킴이를 자처하는 ‘SEW 가디언팀’의 회원들이다. 글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SEW 가디언팀은 대전지역 고교생 10여명으로 구성됐다. 지난해 초 미호종개가 멸종 위기에 처했다는 뉴스를 접한 뒤 자발적으로 뭉쳤다. 비록 학생들이지만 미호종개를 지키겠다는 정성은 어른 못지 않다. 나눔장터에서 미호종개 티셔츠를 제작, 판매해 얻은 수익금으로 홍보 스티커와 피켓, 플래카드 등을 제작해 시민들에게 꾸준히 미호종개를 알려왔다. ●대전지역 고교생들 지킴이 자처 이런 노력이 조금씩 호응을 얻으면서 지난해 9월에는 환경부의 ‘생물자원보전 청소년홍보대사’로 위촉됐다. 팀장인 이황제(18·대전 중앙고 3년)군은 “수험생이라서 시간을 많이 내지는 못하지만, 온라인 등을 이용하면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희귀종인 미호종개를 널리 알릴 수 있다.”고 말한다. 미호종개가 이 땅의 ‘깃대종’으로서 지니는 상징적 의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바로 그 학명(學名)이다.‘익수키미아 초이(Iksookimia choi)’.1984년 미호종개를 신종으로 처음 학계에 보고한 김익수(66) 전 전북대 교수와 김 교수의 스승이자 전설적인 물고기 박사 최기철(작고) 전 서울대 교수의 이름을 딴 것이다. 국내 민물고기 215종 가운데 이렇게 한국사람의 이름을 붙인 것은 미호종개가 유일하다. 다른 민물고기들에는 대부분 라틴어 학명이 붙었다. ●현재 금강 지류 3곳에서만 발견 현재 우리나라에서 미호종개를 찾아볼 수 있는 곳은 금강 지류인 미호천(충북 청원), 백곡천(충북 진천), 갑천(대전) 등 셋뿐이다. 미호종개라는 이름도 김 교수가 처음 미호종개를 발견한 미호천에서 따왔다. 1980년대에만 하더라도 금강 지류 곳곳에서 미호종개를 쉽게 볼 수 있었지만,90년대 들어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에 93년에는 보호종으로 지정됐고,2005년에는 멸종위기 1급종으로 지정됐다. 미호종개의 개체 수가 줄어들어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된 원인은 무분별한 개발 등으로 서식지가 파괴됐기 때문이다.0.6㎜ 이하의 고운 모래 속에 몸을 숨기고 사는 미호종개는 작은 환경변화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미호종개가 멸종 위기에 처하자 학계에서는 개체 수를 늘리고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방인철(45) 순천향대 해양생명공학과 교수는 환경부의 의뢰로 올해로 3년째 미호종개 증식사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에는 대량 증식에 성공해 2차례에 걸쳐 4000여마리를 충북 음성군 초평천 상류에 방류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방 교수는 그러나 증식하는 것만으로는 미호종개를 되살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미호종개 서식지인 백곡천 상류에 가보면 아직도 공사현장이 즐비하다.”면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체계적인 보호조치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토종 민물고기인 미호종개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지만 특별한 보호조치는 없었다.”면서 “단일종에 대한 보호지정보다 서식지 자체를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등 현실적인 보존 조치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 ‘7번 전설’ 떠나려는 호날두ㆍ돌아오려는 칸토나

    ‘7번 전설’ 떠나려는 호날두ㆍ돌아오려는 칸토나

    최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상징적 등번호인 7번과 관련된 두 사람의 엇갈린 행보가 눈길을 끌고 있다. 현재 맨유의 등번호 7번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3)가 사용하고 있다. 모든 등번호가 그만의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맨유에게 7번은 매우 특별한 등번호다. 보비 찰튼, 조지 베스트, 브라이언 롭슨, 에릭 칸토나, 데이비드 베컴으로 이어지는 황금의 7번 라인은 맨유의 전설이자 자랑이기 때문이다. 떠나려는 No.7 호날두 그러나 최근 호날두는 이러한 맨유의 자랑인 7번을 아무런 미련 없이 떠나려 하고 있다. 이번여름 이적시장의 시작을 알린 호날두의 레알 마드리드(이하 레알) 이적 관련 소식은 현재까지도 그 끝을 보이지 않고 있다. 호날두 본인이 이미 레알행을 공식적으로 표명한 가운데 맨유가 그를 놓아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호날두는 유로2008이 끝난 뒤 곧바로 여름휴가를 떠났고 그 뒤로 맨유 수뇌부와의 접촉을 피하고 있는 상태다. 게다가 스승인 알렉스 퍼거슨 감독(67)의 면담 요청까지 단번에 거절하며 레알행에 보다 더 무게를 싣고 상태다. 그러나 최근엔 호날두가 맨유에 잔류할 것이라는 보도가 주를 이루고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발목 수술을 단행해 시즌 초반 결장이 불가피해지자 호날두가 맨유에 잔류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어찌됐건 레알 이적설 이후 호날두의 태도는 이미 맨유 팬들의 인내심을 실험하는 단계를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다른 선수도 아닌 맨유의 에이스이자 7번의 주인공인 호날두가 이 같은 태도를 보이자 현지 팬들의 반응은 점차 싸늘해지고 있다. 돌아오려는 No.7 칸토나 현재의 7번이 떠나려하자 과거의 7번이 올드 트래포트(Old Trafford)로 돌아오려 하고 있다. 90년대 맨유의 ‘킹’이었던 칸토나가 코치로서 맨유에 복귀하려는 것. 최근 맨유는 카를로스 케이로스 코치가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 제의를 받음에 따라 그를 대신에 맨유의 7번 전설 중 한명인 칸토나를 코치자리에 임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칸토나 역시 지난 6월 영국 ‘데일리 스타’와의 인터뷰에서 “언젠가는 맨유에서 감독직을 수행하고 싶다. 그것은 나의 꿈이기도 하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최근엔 그의 측근이 “칸토나는 늘 코치로서 맨유에 복귀하고 싶어 했다.”며 그의 맨유행을 암시하기도 했다. 생각보다 그의 꿈은 빨리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영국언론 대부분이 칸토나의 맨유행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으며 그의 합류가 맨유에게 큰 힘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맨유에게 한 시대 두 명의 7번은 존재하지 않았다. 보비 찰튼이 떠나자 조지 베스트가 나타났고 에릭 칸토나가 떠나자 데이비드 베컴이, 그가 또 다시 떠나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나타난 맨유이다. 과연, 이번에도 호날두가 떠나며 칸토나가 복귀하게 될지, 아니면 한 시대를 풍미한 그리고 풍미하고 있는 두 명의 전설이 만나게 될지 벌써부터 그들의 행보가 궁금해진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유럽축구통신원 안경남 soccerview.ahn@gmail.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데스크시각] 소통의 시대를 위하여/김종면 문화부장

    [데스크시각] 소통의 시대를 위하여/김종면 문화부장

    “국익과 더불어 우리의 자존을 위해서다.‘노무현 죽이기’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자학으로부터의 쾌감’에 종지부를 찍고 모두 다 의젓한 성인으로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언제까지 어린애들처럼 징징대면서 노무현을 씹고 조롱하고 야유해야 하겠는가.” ‘노무현 죽이기’의 저자인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그 속편격인 ‘노무현 살리기’에서 수구언론과 우파성향 엘리트들을 겨낭해 이렇게 일갈한 적이 있다. 그의 어법을 빌려 노무현의 자리에 이명박을 대입시키면 어떤 논의가 가능할까. 국익과 자존을 위해 촛불 끄기 국민각성 운동이라도 벌여야 할까. 아니면 쇠고기 협상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웠으니 떼어내고 다시 달 때까지 ‘이명박 때리기’를 계속해야 할까. 어느 쪽이든 일면의 진실이 있으니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부가 뒤늦게나마 오만과 독선의 ‘먹통정치’를 뉘우치고 소통의 정치, 상생의 문화를 강조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겪는 혼란의 가장 큰 원인은 이 대통령 스스로 인정했듯 국민과의 소통부재다. 국민의 건강과 직결된 쇠고기 협상을 어떻게 벼락치듯 해치울 생각을 했을까. 그야말로 협상아마추어리즘의 결정판이다. 그로 인해 대통령으로서도 피멍이 들도록 처절한 시련을 겪었으니 국민과의 소통의 중요성은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다. 문제는 어떻게 소통이 우리 사회의 단층을 허물고 자기치유의 미덕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느냐 하는 것이다. 논자들은 소통의 달인을 따라 배우라고들 한다.‘위대한 커뮤니케이터’ 레이건, 노변정담으로 유명한 루스벨트, 만백성을 두루 어루만지는 배려와 소통의 정치를 편 정조대왕에 이르기까지.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해 생각해 볼 인물이 미국 31대 대통령 허버트 후버다. 사실 후버 하면 기껏해야 후버 댐이나 후버 모라토리엄 정도 떠오르는 ‘별 볼일 없는’ 대통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초드는 것은 그가 당대 최고의 ‘라디오 대통령’으로 명성을 떨쳤기 때문이다. 후버는 재임중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라디오를 정기적으로 이용했다. 굳이 라디오가 아니어도 좋다. 이 대통령도 공영방송을 이용해 한달에 한번이라도 국민과의 소통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그것은 대통령의 필수 자질인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곧 미디어 해독능력을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국민과의 소통과 짝을 이뤄야 할 것이 역사와의 소통이다. 국민과 불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역사와의 대화가 필요하다. 오늘의 ‘촛불 쓰나미’를 몰고온 것도 따지고 보면 최고지도자로서 시대의 흐름을 꿰뚫는 역사적 통찰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역사의식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실용도 개혁도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최고지도자로서 어찌하면 그에 걸맞은 역사적 안목을 갖출 수 있을까.‘성학집요´니 ‘정관정요´니 하는 제왕학 교본이라도 외워야 할까. 조선의 왕들이 경연(經筵)에 나아가 경서를 공부했듯 이 대통령은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이 대통령에게 지금 진정으로 필요한 건 국민과 함께하는 ‘대통령의 길’을 일러줄 정신적 스승이다. 이제 대통령도 대통령 아닌 사람도 ‘촛불의 멍에’를 뒤로하고 평상심을 되찾아야 한다. 장수가 잡념이 많으면 검(劍)을 뺄 기회를 놓치는 법. 이 대통령은 가슴에 ‘소통’이란 두 글자만 새기고 다시 한번 가로 뛰고 세로 뛰어야 한다. 무너진 권위를 바로 세우고 새 출발 해야 한다. 국민은 여전히 주눅든 포퓰리스트보다 당당한 현장승부사 이명박을 원한다. 만신창이가 된 ‘이명박 브랜드’ 중에 아직 쓸 만한 게 있다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살려나가야 한다. 강한 개혁 대통령이 정답이다. 모호크족 인디언은 말한다.“눈물에 젖은 눈으로는 미래를 내다볼 수 없다.” 맑은 눈으로 차분히 미래를 응시할 때다. 김종면 문화부장
  • 아관파천 당시 조선과 현재 한국 위기 닮은꼴

    일본이 을미사변을 일으켜 명성황후를 살해하고 친일내각을 세운 데 위기감을 느낀 고종이 1896년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한 아관파천(俄館播遷)은 나라의 체면을 구긴 수치스러운 사건이었다. 그러나 위기관리 측면에서 보면 고종의 피신 결정을 잘못된 선택이라고 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경복궁을 탈출함으로써 생명의 위협, 왕권 고사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친일 내각을 붕괴시키고 친미·친러 내각을 발족시킴으로써 일시적이나마 왕권을 되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위기관리의 관점에서 본 고종시대의 리더십’(오인환 지음, 열린책들 펴냄)은 19세기 후반의 조선을 외부 침략 세력과 내부로부터 붕괴 위기를 동시에 맞아 대응해야 하는 전형적인 내우외환의 위기를 맞은 시기로 본다. 한국일보 주필을 거쳐 공보처 장관을 지낸 지은이는 이같은 총체적 위기가 결국 국망(國亡)으로 이어진 것이 사실이지만, 당시 위기에 대응해 갔던 과정의 의미까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데 초점을 맞춘다. 지은이는 고종 시대가 ‘한국 현대사의 뿌리’라고 믿는다. 조선 왕조는 상하이 임시 정부를 거쳐 대한민국으로 국가의 법통이 이어졌다. 게다가 일제의 식민 통치라는 단절기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민족주의와 민족성이 여전히 승계되고 있으며, 심지어는 대내 위기의 패턴까지도 닮은꼴을 반복하는 것이 전통처럼 되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특히 오늘날의 한반도는 고종 당시의 상황과 유사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주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지정학적으로 볼 때 고종 당시는 현재의 대한민국이 겪어야 할 위기의 원형을 여러 형태로 보여주는 역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은이는 역사에서 교훈을 구하고자 한다면 자기 나라보다 나은 스승이 없고, 핏줄을 이어받은 선조의 시행착오보다 효율적인 반면교사가 어디에 있겠느냐고 반문한다.21세기 한국이 위기에 보다 유연하고 신축적으로 대응하려면 고종의 경험을 철저하게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 책은 그런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지은이는 언론인 출신답게 심층 취재 방식을 원용해 위기를 불러온 사건의 배경, 원인과 근인, 관련 국과의 상관관계 등을 입체적으로 살핀다.2만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첼시행 데쿠, 램퍼드를 대체할 수 있을까?

    첼시행 데쿠, 램퍼드를 대체할 수 있을까?

    첼시가 포르투갈의 미드필더 데쿠(31ㆍ포르투갈)를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영국 BBC방송은 30일(이하 현지시간) 첼시가 계약기간 2년에 800만 파운드(한화 약 160억원)를 지급하고 데쿠를 영입했다고 보도했다. 바르셀로나를 떠날 것이 확실시 됐던 데쿠는 이번 여름시장 내내 첼시와 연결되어 왔었다. 그의 영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최근 선임된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데쿠는 포르투갈 대표팀에서 자신의 재능을 인정해준 스승의 러브콜을 거절할 수 없었고 새로운 도전을 결심하게 됐다. 첼시의 데쿠 영입은 인터밀란으로의 이적이 유력한 프랭크 램퍼드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다. 물론 램퍼드가 떠나더라도 첼시에는 미하엘 발락, 마이클 에시엔, 존 오비 미켈, 클로드 마케렐레 등 유럽 정상급 미드필더가 즐비하다. 그러나 신임 스콜라리 감독은 새로운 첼시를 건설하기 위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선수 영입을 원했고 데쿠를 그 중심에 두려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데쿠가 스탬포드 브릿지 팬들에게 램퍼드를 잊게 해 줄 수 있을까? 램퍼드는 첼시가 낳은 세계적인 미드필더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존 테리를 제외한다면 첼시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기도 하다. 2001년 웨스트햄을 떠나 첼시에 입단한 램퍼드는 이후 첼시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트레이드 마크인 강력한 중거리 슈팅을 바탕으로 미드필더임에도 득점력이 탁월했던 그는 ‘미들라이커’(미드필더와 스트라이커의 합성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켰다. 사실 최근 첼시의 주 득점원인 디디에 드록바가 일취월장하기 이전에 블루즈(첼시의 애칭) 내 득점랭킹 1위는 램퍼드였다. 이는 기록에서도 잘 나타난다. 2007-08시즌까지 총 366경기에 출전해 110골을 달성한 램퍼드는 역대 8번째로 100골을 돌파한 첼시 선수이다. * 바비 탬블링(202골), 케리 딕슨(193골), 피터 오스굳(150골), 로이 벤틀레(150골), 지미 그리브스(132골), 조지 밀스(12골), 조지 힐스돈(107) 등 7명이 첼시 유니폼을 입고 100골 이상을 터트렸다. 좀 더 과장해서 얘기한다면 21세기 들어 첼시의 공격을 혼자서 이끌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물론 데쿠가 램퍼드보다 실력과 기록 면에서 못하다는 것은 아니다. 데쿠 역시 FC포르투와 바르셀로나에서 수많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램퍼드에겐 없는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2차례나 달성했다. 또한 램퍼드 만큼의 득점력은 갖추지 못했지만 ‘그라운드의 아티스트’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볼 컨트롤과 키핑력 그리고 넓은 시야와 날카로운 패싱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때문에 FC포르투 시절에는 포르투갈 언론으로부터 ‘수퍼 데쿠’라 불렸던 그다. 그러나 첼시에 입단한 데쿠에게 당장 램퍼드와 같은 활약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램퍼드 역시 마찬가지겠지만 최근 체력적으로 하향세를 보이던 데쿠였다. 기술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포르투갈과 스페인 리그와는 달리 피지컬적인 측면이 강조되는 프리미어리그에서 데쿠의 활동 반경은 이전보다 작아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기존의 첼시 선수들과의 호흡도 넘어야 할 산이다. 램퍼드가 발락과의 공존에 있어 드러냈던 문제점은 데쿠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공산이 크다. 물론 램퍼드에 비해 데쿠가 좀 더 보조적인 역할 수행에 적합한 선수이긴 하나 그럴 경우 데쿠의 재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없다. 물론, 부정적인 측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첼시 감독이 주제 무리뉴나 아브람 그랜트가 아닌 스콜라리란 점과 히카르두 카르발료, 파울로 페헤이라 그리고 새로 영입한 조세 보싱와 등 같은 포르투갈 선수들이 많다는 점은 데쿠에게 긍정적인 측면이다. 과연, ‘우승 제조기’ 데쿠가 FC포르투와 바르셀로나에 이어 첼시에게 유럽 챔피언의 자리를 선물하며 스탬포드 브릿지의 팬들로 하여금 램퍼드를 잊게 할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유럽축구통신원 안경남 soccerview.ahn@gmail.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요미우리 하라-와타나베 회장의 불편한 동거

    요미우리 하라-와타나베 회장의 불편한 동거

    요미우리는 작년시즌 리그 우승을 하고도 주니치와의 클라이맥스에서 패배해 결국 일본시리즈 진출이 물거품이 됐는데, 당시 와타나베 쓰네오 구단 회장의 분노는 익히 알다시피 진노를 넘어서 광기에 가까운 것이었다. 요미우리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그룹과 야구단의 관계가 이상하리만치 독특한 구단이다. 다른 구단이 현장과 프론트 그리고 구단 고위층을 삼권 분리해 가며 각자의 위치에서 야구단을 운영하는데 반해, 요미우리는 프론트의 입김, 더 정확히 말해 구단 고위층의 말한마디에 따라 현장의 수장인 감독입지까지 좌지우지할 정도로 간섭이 심한 구단이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이 바로 와타나베 쓰네오 요미우리 신문 회장이다. 와타나베는 일본정계의 막후 실력자로 항간에서는 ‘밤의 대통령’이라고 불리는데 2007년에 자민당의 후쿠다와 민주당의 오자와의 밀실야합을 추진했을 정도다. 이런 그를 두고 요미우리는 일본우익의 정신적 지주라는 말이 떠돌고 있다. 요미우리의 매시즌 목표는 우승이다. 물론 다른팀들이라고 우승에 대한 목표가 없지는 않겠지만 요미우리는 우승 이외의 성적은 실패한 시즌으로 규정해버릴 만큼 우승지상주의를 외치며 지금까지 달려왔다. 지금의 하라 타츠노리 감독은 요미우리에서만 두번째 감독을 맡고 있다. 그의 스승이자 요미우리 종신감독인 나가시마 시게오가 2001년을 끝으로 물러난 후 감독직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하라 감독은 감독 첫해(2002년)에 우승을 차지한 후 이듬해인 2003년 리그 3위의 성적을 거두자 가차 없이 경질됐다. 후임으로 호리우치 쓰네오를 감독직에 올렸는데 당시 와타나베 회장과 하라감독의 불화설이 끊이지 않았다. 2004년부터 팀의 지휘봉을 잡은 호리우치 감독은 첫해 3위 그리고 다음해 5위의 참담한 성적을 남긴채 경질됐는데 아이러니 한건 요미우리 구단이 2005년에 다시 하라 감독을 사령탑에 복귀시켰다는 것이다. 와타나베 회장은 일일히 구단운영에 간섭하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하라는 코치들과 선수들을 믿는 스타일이며 선수의 개성을 그 누구보다 인정해주는 감독인데 작년시즌 이승엽이 부진할때 앞장서서 그를 옹호한것은 이러한 스타일을 엿볼수 있는 대목이다. 2003년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후 다시 요미우리 감독으로 복귀할수 있었던 것은 와타나베 회장의 입김보다는 전통을 더 중요시 하는 구단 역사때문이란 설이 유력하다. 요미우리는 1936년 창단 당시 후지모토 사다요시부터 지금의 하라까지 요미우리 출신 이외의 감독이 단 한명도 없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호리우치 감독이 물러나고 하라감독이 다시 감독으로 복귀할수 있었던 것은 당시 감독을 맡을만한 요미우리 출신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하라를 다시 중용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하라감독은 잘 알고 있다. 올시즌 우승하지 못하면 그역시 앞날을 장담하지 못한다. 얼마전 와타나베 회장은 앞으로 하라감독이 5-6년정도 감독을 하고 그 이후에는 현재 요미우리의 1번타자인 다카하시 요시노부가 ‘대통’을 잇기 바란다는 발언을 했다. 전통을 중요시하며 또한 우익의 대표적인 그의 성향답게 명문 도쿄 게이오 대학출신의 다카하시야말로 차기 요미우리 감독감으로 안성맞춤이란 판단에서 나온 발언으로 보인다. 지금 현장에 버젓이 감독이 있는데 차기 감독 운운하는 것은 일반적 정서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요미우리이기에 아니 더 정확히 와타나베이기에 할수 있는 발언이다. 지금 요미우리의 5연패는 시즌 초반이기는 하지만 분명 문제가 심각해 보인다. 그리고 더욱 심각한것은 하라감독의 입지다. 올시즌 요미우리의 선수단 연봉만 해도 550억원에 이를 정도며 작년시즌 다승왕(세스 그레이싱어) 타점왕(알렉스 라미레즈) 그리고 160km에 육박하는 공을 뿌리는 마무리 크룬까지 영입한 상태에서 우승이 아닌 다른 순위표는 감독의 경질만 예상된다. 이승엽도 이제는 하라 감독의 보은에 보답을 해야할 차례다. 하라 감독이 이승엽을 좋아하는 이유는 하라가 현역시절 이승엽과 비슷한 플레이를 했기 때문이다.요미우리 한팀에서만 선수생활을 한 하라감독은 1983년 타점왕과 MVP를 수상했을 정도로 정교함과 장타력을 동시에 겸비한 선수였다. 통산 382의 홈런을 쳤던 하라감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승밖에 없다. 그 중심에서 활약을 해주어야 할 선수가 바로 이승엽인 것이다. 만약 요미우리가 올시즌 우승을 하지 못한다면 현재 순혈 출신중 감독을 맡을만한 인물이 없다. 하지만 요미우리 OB 출신들이 그동안 고집했던 순혈주의 전통을 끊고 호시노(현 일본대표팀 감독)감독을 사령탑에 올릴수도 있다는 항간의 소문도 결코 무시할수 없는 입장이다. 지난 1일 대 주니치전에서 요미우리 에이스인 우에하라 고지를 등판시키고도 팀이 패배하자 “다시는 경기를 보러 오지 않겠다” 라고 한 와타나베의 진노가 하라감독의 입지를 더욱 좁게 하고 있다. 요미우리 순혈주의 감독감이 없는 사정상 호시노가 내년시즌 요미우리 감독을 할 가능성은 와타나베의 결정에 따라 달라진다. 와타나베 회장과 하라 감독의 불편한 관계 청산은 오직 성적밖에 없다. 팀의 4번타자인 이승엽의 분발이 더욱 절실한 현재의 요미우리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일본프로야구통신원 윤석구 rock7304@hanamil.net@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29일 ‘박봉술제’ 무대서는 송순섭 명창

    29일 ‘박봉술제’ 무대서는 송순섭 명창

    “저녁 일곱시부터 ‘흥보가’를 부르기 시작하여 밤 열한시 반이 되었으니 조금 있으면 새해가 밝을 참인데 한 사람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박수를 칩디다. 말로는 도저히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재미 때문에 말려도 자꾸 완창에 나서는 것 같소.” 송순섭 명창이 국립극장의 완창판소리 무대에 다시 오른다.29일 오후 3시부터 달오름극장에서 박봉술제 ‘적벽가’를 부른다. 드물게 동편제 소리를 고수한 그는 송흥록-송광록-송우룡-송만갑-박봉술로 이어지는 이른바 송판 ‘적벽가’의 독보적인 존재이다. 송 명창은 2006년 12월31일 국립극장의 제야 완창판소리에서 ‘흥보가’를 부르기에 앞서 “나이가 칠십이니 다시 완창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1936년생으로 올해 72세지만, 호적에는 1939년생으로 올라 있다. 주변에서는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송 명창의 마지막 판소리 완창’이라고 이날 무대에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웬걸, 그는 한밤중의 소리판에서 오히려 ‘엔돌핀’이 솟구치는 것을 느끼며 “이 좋은 소리, 앞으로 더 오래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스승 박봉술 명창 이어 송판 ‘적벽가´ 독보적 존재 송 명창은 2000년 풍을 맞았다. 남성적인 ‘적벽가’가 장기로 알려진 소리꾼이 ‘흥보가’를 한번 불러봤더니 청중들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박수바람에 미쳐서 돌아가다 보니’ 그해에만 완창이 5차례였다. 그는 결국 11월16일 쓰러졌다. 그럼에도 자신의 표현대로 ‘덜렁덜렁한’ 오른 팔과 다리로 약속한 두 개의 공연을 마치고 나서야 입원했다. 그러는 사이 문화재청에서 한 통의 공문을 받았다. 중요무형문화재가 되려면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2001년 5월31일 ‘적벽가’를 완창하여 예능보유자에 올랐다. 가족과 제자들이 모두 죽을 것이라고 말렸지만, 그는 오히려 ‘적벽가’를 부르며 ‘이제는 살았구나.’하고 희열을 느꼈다고 한다. ●2000년 풍 맞고도 그해 완창무대 5차례 올라 전남 고흥 출신인 그는 광주에서 공옥진 명인의 아버지 공대일 선생, 성창순 명창의 아버지 성원복 선생, 김명환 명고수에게 소리를 배울 때 “박봉술의 소리가 중후한 소리라는 것을 세상사람들은 모른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에 새겼다. 그는 이후 부산에 살던 박 명창을 찾아가 그곳에 눌러앉았고, 스승이 서울에 자리잡자 다시 밤기차로 오가며 배웠다. 그는 지금도 박 명창에게 ‘적벽가’뿐 아니라 ‘흥보가’와 ‘수궁가’까지 세 바탕을 물려받았다는 데 무한한 자부심을 느끼는 듯했다. 송 명창은 순천에 세워진 동편제판소리전수관에 박봉술 명창의 무덤을 이장하는 한편 동편제판소리보존회를 만들어 송만갑 명창의 자서전을 펴내고 명맥이 끊어졌던 ‘순천대사습’을 되살리는 데도 힘쓰고 있다.2006년부터는 광주시립국극단장도 맡고 있다. 송 명창은 요즘 하루에도 서너 시간씩 소리 연습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제부터의 완창은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하늘이 주시는 기회라는 것이다. 그는 “기운이 딸리는 것은 걱정이 아닌데 가사를 잊어버리거나, 아니리를 하면서 말더듬이가 될까 걱정”이라며 웃었다. 북은 박근영과 정항자. 전석 2만원.(02)2280-4115∼6.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투자의 神’ 버핏, 그에겐 돈·삶의 철학이 있다

    50여년 전. 단돈 100달러를 밑천삼아 주식투자를 시작해 세계 최고 갑부로 등극한 이름. 하루도 빠짐없이 지구촌 경제뉴스를 장식하는 ‘살아있는 투자의 신(神)’ 워렌 버핏(77)이다. 그의 일생이 두 권의 평전으로 묶여 나왔다. 버핏을 곁에서 오래 지켜본 미국의 비즈니스 전문 리포터가 쓴 ‘워렌 버핏 평전’(앤드루 킬패트릭 지음, 안진환·김기준 옮김, 윌북 펴냄)에는 금세기 최고 투자귀재에 관한 모든 정보가 다 들어있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주로서 주주총회에도 참석하는 저자인 덕분에 버핏의 실체를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꿰뚫는 작업에는 신뢰가 더해진다. ●1권 ‘인물´편엔 개인사 두루 그려 투자에 관심없는 독자에게도 책의 효용은 있다.1권 ‘인물’편은 지구촌에서 가장 돈많은 투자가로서가 아닌, 그의 인간적인 면모에 주목했다. 출생에서부터 성장과정 등의 개인사를 소개함은 물론이고, 그의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의 역사와 지인들 이야기까지 두루 포괄했다. 지난 2006년 전 재산의 85%를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고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했던 범상찮은 삶의 철학을 한눈에 파악해볼 수가 있다. 투자자 독자라면 버핏의 투자현장에서 건져올린 실질적 에피소드들이 주로 등장하는 2권 ‘투자’편에 귀가 먼저 솔깃해질 것이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연례보고서와 버핏의 각종 기고문과 강연자료들을 일람할 수 있다. 버핏의 투자철학을 엿볼 수 있는 인터뷰와 투자 역정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1930년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버핏이 골수 공화당 하원의원 하워드 호먼 버핏의 아들로 태어난 시점에서부터 책은 운을 뗀다. 경제 대공황의 위력이 가시지 않은 유년시절, 그는 집안이 운영해온 식품점 ‘버핏 앤드 선’에서 시간제 아르바이트로 가게청소와 식료품 배달을 했다. 아들이 성직자가 되기를 바랐던 아버지가 세상을 뜬 1963년, 버핏은 부친의 소장품 말고는 물려받은 게 없었다. 어느 인터뷰에서 “주식시장이 폭락하던 1929년 가을, 나는 어머니 뱃속에 있었다. 그해는 모든 것이 시작된 해였다.”고 자신의 출생배경을 해석했을 만큼 버핏의 투자 감수성은 다분히 천부적이었다. 그가 “살아계시는 동안 내겐 언제나 ‘올해의 여성’이었다.”고 회고한 어머니 이야기까지 소개하며 책은 투자귀재의 인생여정을 연대기 순으로 차분히 따라간다. 그는 새벽시장에서 신문배달을 하며 스스로 돈을 번다는 기쁨에 충만한 10대 소년이기도 했으며, 하버드대에서 입학을 거부당하고 절망하는 청년이기도 했다.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에서 투자의 스승 벤저민 그레이엄을 만나 야망을 불태우는 젊은이, 월스트리트의 생리에 환멸을 느끼고 낙향해 투자조합을 만들어 동네 의사들을 쫓아다니는 열혈 투자가, 빌 게이츠와 브리지 게임을 하며 우정을 나누는 거물 기업가였다. 버핏 인생의 구비구비에 놓인 일화들을 현재적 가치를 부여하며 일대기로 재구성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한 책이다. 주변 인물들의 얘기와 인터뷰 등을 중간중간 동원해 ‘자연인 버핏’의 꾸밈없는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투자 관심있는 독자라면 2권 ‘투자´편 볼 것 지금도 버핏은 자주 25달러짜리 스테이크로 점심을 해결한다. 오마하의 60만달러짜리 오래된 저택에서 붙박이로 살아온 지 50년째. 엄청난 재산을 자신의 이름이 아닌 빌 게이츠 재단에 맡기며 기부문화의 새 전범을 제시한 ‘현인’ 투자가에게 삶의 진정한 가치는 어디에 놓인 것일까. 투자의 살아있는 전설이 남긴 재기넘치는 어록들도 간추려 담았다. “인수할 기업의 기준을 정하는 것은 아내를 고르는 것과 흡사합니다. 우리는 아내가 가졌으면 하는 자질들을 신중하게 정합니다. 그러다가 누군가를 만나 결혼을 하지요.”(1986년 정기주총) “우리는 활발히 투자하는 기관들에 ‘투자자’라는 이름을 부여하는 것이 하룻밤의 쾌락을 수없이 반복하는 사람을 로맨틱하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믿습니다.”(1991년 연례보고서) 각권 2만 5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출가·수행 뒷얘기 책으로 펴낸 비구니 광우

    출가·수행 뒷얘기 책으로 펴낸 비구니 광우

    ‘최초의 비구니 강원 졸업생’‘4년제 정규대학을 마친 최초의 비구니’‘종단 사상 첫 명사(明師)품계를 받은 비구니’…. 1958년 서울 삼선동에 정각사를 세워 50년간 그곳에 주석하며 포교와 수행에 매진해온 비구니 광우(光雨·83) 스님. 그의 이력을 들여다보면 각종 ‘최초’의 수식어가 진진하다. 종단에서 비구니의 위상이 일천하던 시절 출가해 ‘나 한몸부터 제대로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흐트러지지 않는 수행 본분을 지켜온 한국 비구니계의 산증인. 출가 70년(내년), 포교 50년을 계기로 출가부터 지금까지의 고된 세월을 돌아본 구술 회고록 ‘부처님 법대로 살아라’(조계종출판사) 출간에 맞춰 17일 정각사를 찾은 기자들에게 노 스님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들려주는 설법보다 보여주는 설법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어요. 부처님 법대로 살자면 바른 믿음과 바른 수행, 즉 정신(正信) 정행(正行)이 으뜸 덕목이겠지요.” 속가의 아버지는 다름아닌 궁내부 주사를 지내다 출가한 혜공 큰 스님. 속가의 어머니 역시 광우 스님과 함께 출가한 명성 스님이니 무남 독녀인 스님 자신을 비롯해 온 식구가 부처님 제자인 셈이다. ●아버지·어머니도 모두 출가 “원래 사범학교에 진학해 선생이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초등학교 시절 공부를 너무 못해 학교에서 원서조차 써주지 않더군요. 공부를 더하고 싶어 아버지 큰 스님이 계시던 남장사에 들렀다가 발심, 직지사에서 출가했지요.” 학교 공부는 거의 꼴찌였는데 웬만한 불경과 염불은 한 번만 들어도 쏙쏙 머리에 박혔다고 하니 어쩔 수 없는 스님이다. “아버지 큰 스님은 마음이 활짝 열린 분이셨어요.1930년대에 남장사에 비구니 강원을 처음 만들었으니 우리 역사상 최초의 비구니 강원이지요.” 스님은 그렇게 비구니론 처음으로 아버지 큰 스님이 세운 남장사 강원에서 공부를 했던 것이다. ●일제때 정신대 징집 피해 혼인한 비구니도 “강원공부를 하던 때는 일제 정신대에 끌려갈 것을 우려한 비구니들이 환속하거나 스승들이 나서 비구니 제자들의 혼인을 시킬 만큼 상황이 어려웠어요. 저만 남아 공부를 계속했지요.” 6·25전쟁 중 1952년 부산 피란시절 동국대 불교학과에 입학, 비구니 최초의 정규대학생이란 기록도 남겼다. 나중에 서울로 와 졸업 때까지 상고머리와 군복으로 몸을 가려 남장한 채 어렵게 학업을 계속했다고 한다. ‘한국불교를 세계불교의 텃밭으로 가꾼다.’는 뜻을 세워 단층 개인집을 사들여 포교당으로 세운게 정각사. 전국을 통틀어 변변한 포교당이라곤 손꼽을 정도인 시절이었으니 법회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게 당연했다. “주말이면 어린이, 중·고교생, 대학생은 물론 각계각층의 유명 인사들의 발길이 이어졌어요.19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말까지 이름만 대면 대뜸 알 수 있는 유명인사들도 숱하게 정각사의 법회를 거쳐갔지요.”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미산 스님을 비롯해 젊은 스님들의 유학 비용을 줄곧 댄 것도 불교계에선 유명하다. 아버지 큰 스님의 영향 때문일까, 특히 비구니의 처우와 실력 기르기에 일찍부터 관심이 많았다. 지금 전국비구니회장을 맡고 있는 명성 스님과 함께 비구니모임인 우담바라회 결성을 주도해 결국 2004년 서울 서초동에 비구니회관 건립을 이끌어낸 주인공. 전국비구니회의 2대 회장을 지냈고 지난해에는 승랍 40년 이상의 비구니에게 주는 ‘명사(明師)’법계를 비구니사상 처음으로 받았다. 50년 전의 가구며 용기들을 바꾸지 않은 채 그대로 써 제자들에게 ‘구두쇠’ 소리를 듣기도 한다. 국내는 물론 해외 어디를 가도 예불을 절대 거르지 않는다. 심지어 병원에 입원해서도 예불만큼은 꼭 해야 할 원칙이다. 그런 서릿발 같은 용맹심과 원칙 때문일까, 제자들의 법명에도 꼭 ‘정(正)’자를 쓴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멀찌감치 앉았던 상좌 정목 스님이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귀띔을 한다.“상좌(제자)들이 서울시내 모 호텔에서 스님과 인연 있는 인사 200여명을 초청하는 출판기념회 날짜까지 잡았는데 스님이 ‘무어 대수롭다고 출판기념회를 해 더럽히려 드느냐.’고 호통을 치시는 바람에 야단만 맞고 취소했어요. 스님 생전에 출·재가자들이 함께 모일 마지막 자리로 생각했는데….” 글 사진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동물복제사업 ‘사제 대결’

    동물복제사업 ‘사제 대결’

    복제견 ‘스너피’로 대표되는 서울대의 개 복제 특허 사업권이 바이오기업 알앤엘바이오에 이전됐다. 알앤엘바이오는 특수견 복제시장에 본격적으로 도전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최근 애완견 복제시장에 출사표를 올린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측과 특허권 분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알앤엘바이오는 서울대의 개 복제 기술을 이용해 수의과 이병천 교수팀과 공동으로 냄새로 암 환자 여부를 가려낼 수 있는 일본산 암 탐지견 ‘마린’ 4마리를 복제했다고 16일 밝혔다. 이번 복제 프로젝트는 일본 줄기세포기업인 ‘심스’사의 의뢰를 받아 이뤄졌으며, 서울대 의대 법의학 교실의 검증 결과 유전자는 물론 미토콘드리아까지 일치하는 100% 복제견으로 판명됐다. 복제된 개 마린은 일본 복지견육성협회에서 교육을 받은 ‘리트리버’ 종으로 암 환자의 입냄새와 입김 등의 차이를 감지해 정상인과 암환자를 구별해낼 수 있다. 알앤엘바이오측은 “올 1월 일본에서 마린의 체세포를 채취해 복제 작업을 진행한 결과 지난달 대리모견이 4마리를 출산했다.”면서 “복제견을 여러 마리 동시에 출산시킨 것은 이번이 세계 최초”라고 밝혔다. 알앤엘바이오 라정찬 대표는 “암 탐지견 ‘마린’은 탁월한 탐지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자궁축농증으로 자궁수술을 받아 더 이상 새끼를 낳을 수 없는 상태였다.”면서 “마약탐지견에 이어 암 탐지견 복제가 가능해지면서, 다양한 특성을 가진 특수목적견을 이용한 상업화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알앤엘바이오는 사업화를 위해 개 복제에 대한 원천기술을 서울대로부터 독점 기술이전 받기로 했으며 서울대가 보유한 개 복제 특허에 대해 국내외 전용실시권을 확보했다. 알앤엘바이오가 본격적으로 개 복제 사업을 추진하면 지난달 황우석 전 교수와 손잡고 애완견 복제에 성공한 미 바이오아트사와 특허권을 둘러싼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황 전 교수와 바이오아트사는 복제양 돌리의 특허권을 관리하는 미국 스타팅라이선스사에서 상용권을 사들인 뒤 복제사업을 진행했으며, 스타팅라이선스사는 최근 서울대측에 개 복제 사업화를 진행하면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바 있다. 라 대표는 “스타팅라이선스사가 보유한 양복제 특허기술로는 개 복제가 성공할 수 없다.”면서 “원천특허 침해 주장이 옳지 않다는 판단이 선 만큼, 소송을 제기하면 정면돌파하겠다.”고 밝혔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박기철의 플레이볼] 영원한 야구기자 이종남 선배를 추모하며

    “야구 기록이란 나비와 같아서 살아서 날아다닐 때는 아름답지만 죽으면 핀에 꽂힌 박제일 따름이다.” 1982년 겨울 어느 날, 서울 정동의 소줏집에서 고(故) 이종남 기자가 필자에게 해준 말이다. 당시 필자 신분은 백수. 정확하게는 졸업식을 치르지 않은 대학 4학년이었다. 가까운 사람들도 필자가 그해 10월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낸 사표가 정식 수리됐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필자는 그해 3월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KBO 운영부 직원으로 입사했다가 한국시리즈가 끝나면서 사직서를 제출했고 우여곡절 끝에 수리됐다. 대신 다음해부터 계약직인 공식기록원으로 일하기로 약속을 받았다. 당시 이종남 선배의 뜻은 아무리 기록이 많아도 기자가 그것을 알아주고 써주지 않으면 박제일 따름이니 언론계로 들어와 기록을 활용하는 야구 기자가 되란 것이었다. 요즘 비정규직 차별이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고 있지만 당시에도 정규직을 버리고 비정규직을 택하자 미친놈 소리를 수없이 들어야 했다. 하지만 필자는 아무런 생각 없이 유니폼을 입지는 않지만 경기에 직접 관여하는 일을 하고 싶어 이 일을 택했다. 필자의 뜻을 이해한 이종남 선배는 더 이상 강권하지 않았다.이후 약 10년간 필자는 서투른 기록원 생활을 이어갔고 이 선배는 스포츠서울의 창간 멤버로 날카로운 필봉을 휘둘렀고 왕성하게 야구 서적의 저술과 번역에 힘썼다. 그동안 필자에겐 술친구이자 바둑친구였고 유일하게 폭력(?)을 써가면서까지 쓴소리를 아끼지 않은 스승이었다. 이 선배는 데스크를 거쳐 편집국장, 이사 등 관리직으로 승진했고 필자도 사무직으로 복귀하면서 만남도 줄어들었다. 지방을 다닐 때는 매일 얼굴을 보다시피 했는데 같은 서울에 근무하자 한 달에 두세 번 보게 됐다. 스포츠 전문지가 늘어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고 IMF 사태, 인터넷의 등장은 신문 경영에 극심한 압박을 줘 때맞춰 관리직으로 승진한 선배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로 돌아왔다. 현장 기자이자 저술가로는 물 만난 고기처럼 펄펄 뛰었으나 경영자로선 지독히 운이 없었다. 하지만 항상 후배를 만나면 미소와 격려를 잃지 않으려 애썼다. 폐암 말기 선고를 받고도 필자에게 “암 걸린 건 난데, 왜 네가 더 얼굴이 안 좋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지난 4일 2주기를 맞아 선배의 마지막 작품인 야구발전연구원 임원들과 함께 묘소를 찾았다. 기독교식 추도를 끝낸 뒤 형수는 우리끼리 추모를 하라며 자리를 피해 주셨다. 우리끼리 추모란 절한 뒤 무덤에 술 뿌리고 묘비에 담배를 피워 올려놓는 것이다. 폐암으로 눈감은 이에게 잔인한 짓이라 눈 흘길지도 모르지만 죽어서 또 걸릴 일은 없으니 마음 놓고 피우라는 심정이었다. 그해 겨울 필자의 대답은 이랬다.“박제면 어때요. 예쁘잖아요. 연구하기에도 좋고.”‘스포츠투아이’ 전무이사 cobb76@gmail.com
  • [주말탐방] ‘홍의의 천사’ 중앙 119구조대

    [주말탐방] ‘홍의의 천사’ 중앙 119구조대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나는 것은?’ 1970년대 말 TV를 통해 방영된 만화를 기억하는 30∼40대라면 ‘짱가’로,2004년 상영된 영화를 떠올리는 20대라면 ‘홍반장’으로 답하기 쉽다. 하지만 현실에서 정답은 ‘중앙119구조대’이다. 구조대원들은 대형 참사 현장에 어김없이 나타나 해결사 노릇을 톡톡히 한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이들이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이 없어야 좋지만 일단 출동하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다. 남양주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1995년 창설 2012회 출동 4719명 구조 경기 남양주시 별내면에 위치한 중앙119구조대. 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 등 잇단 대형 참사를 계기로 1995년 12월 창설됐다. 이어 구조대는 1999년 청소년수련원 씨랜드 화재,2000년 고성 산불,2002년 4월 부산 중국민항기 추락,2003년 2월 대구지하철 화재,2005년 12월 호남 폭설,2006년 7월 강원 집중호우, 지난달 보령 바닷물 범람 등 굵직한 사고 현장을 누벼 왔다. 창설 이후 지난달 말까지 2012회 출동해 모두 4719명을 구조한 ‘홍의의 천사들’이다. 특히 구조대원들은 헬기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칠 수 있는 시속 100노트(185㎞)의 하강기류인 ‘산악파’가 언제 불어올지 몰라도 조난자 구조를 위해 깊은 산속에서 후진이나 제자리 비행을 서슴지 않는다. 또 깎아지른 듯한 암벽을 거침없이 오르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건물더미 안으로 몸을 비집고 들어간다. 불어난 계곡물이나 거친 파도는 인명 구조를 위한 ‘통과 의례’쯤으로 여긴다. ●기동·기술·장비·항공·현장·행정팀으로 구성 윤여철 기장은 “대형·특수 사고에 투입되는 만큼 등골이 오싹하고, 몸이 땀에 흥건하게 젖을 정도로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하지만 구조자가 무사하면 씻은 듯 사라지는 위협”이라고 말했다. 구조대는 김영석 대장을 비롯, 헬기 조종사·정비사 12명, 구조대원 78명 등 모두 91명이다. 이창학·김근백 소방위, 공병홍 소방장 등 3명은 구조대 창설 이후 지금까지 근무하는 터줏대감이자, 대한민국 사건·사고 역사의 산증인이다. 이 소방위는 “자부심과 보람이라는 매력이 한번 들어오면 나갈 수 없게 만든다.”며 미소지었다. 구조대원들은 ▲긴급기동 ▲기술지원 ▲첨단장비 ▲항공 ▲현장지원 ▲행정지원 등 6개팀으로 짜여 있다. 이 중 긴급기동팀은 사고현장에서 인명구조 등 궂은 일을 도맡는 구조대의 ‘마당쇠’다. 기술지원팀은 각종 구조기술을 개발하고, 첨단장비팀은 1000억원어치에 육박하는 320여종 3500여점의 구조장비의 관리·운영을 책임진 구조대의 ‘싱크탱크’이다. 또 위험천만한 야간사고를 전담하다시피 하는 항공팀은 ‘관객없는 곡예비행단’이다. 현장지휘팀은 사고현장에서 각 팀들이 톱니바퀴처럼 움직일 수 있도록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 행정지원팀은 필요한 장비와 예산을 확보하고 대원들을 관리하는 ‘안방마님’ 역할을 한다. 정헌권 운항실장은 “눈빛만 봐도 통하는 마누라보다 가까운 사이”라면서 “(아내가)이 말 한 거 알면 혼날 텐데….”라며 웃었다. 구조대원들은 숱한 사고 현장을 누비지만,1997년 훈련 도중 사망한 고 김경순 소방위를 제외하고는 다행히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재칠 소방장은 “일을 하다 보면 요령이라는 유혹도 생기는데, 나의 실수가 동료들의 몰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가능한 한 원칙대로 하려고 한다.”면서 “특별한 징크스는 없고, 만들지도 않는다.”고 강조했다. 철저한 자기관리는 소방공무원들이 정기적으로 받는 체력검사에서 여실히 증명된다. 구조대원들은 체력검사 1∼5등급 중 모두 1등급이다.50m 달리기의 경우 7초 이내,1200m 달리기는 5분 이내, 팔굽혀펴기 1분에 40회 이상, 윗몸일으키기 1분에 50회 이상 등을 기록하는 것. ●70%가 특수부대 출신 눈빛만 봐도 통해 전체 대원 중 여성 2명을 제외할 경우 군면제자가 한 명도 없다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특전사·UDT·SSU·해병대 등 특수부대 출신이 전체의 70%인 60여명. 때문에 상당수 구조대원들은 취미 활동으로 스카이다이빙이나 스쿠버다이빙 등을 즐긴다. 또 이재칠 소방장은 철인3종경기 국제심판, 김용배 소방교는 축구 국제심판 자격을 갖고 있다. 조인재 소방령은 마라톤에서 ‘서브 스리’(풀코스 3시간 이내 완주) 기록 보유자이다. 최종춘 소방장은 “구조자들이 당시 상황을 기억하기 싫은 건지는 몰라도 고맙다는 표현에 인색하다.”면서 “서운할 때도 있지만, 개인이 아닌 119구조대라는 조직의 역할로 봐주시는 것 같아 만족한다.”고 말했다. ■ 대형참사 현장엔 그들이 있었다 해외원정 10차례… 국제 구조대 주력으로 지난달 중국 쓰촨성 지진 현장에서 활동한 국제구조대 중 중앙119구조대가 ‘일등공신’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지진 발생 나흘 만인 지난달 16일 현지로 급파된 41명의 구조대원들은 일주일간 시체 27구를 발굴·인양했다. 비슷한 기간 61명이 파견된 일본구조대가 시체 16구,55명이 출동한 싱가포르구조대는 시체 5구,16명으로 구성된 러시아구조대가 생존자 1명을 각각 찾아 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장 빼어난 활약을 보였다. 대형 참사 현장에서 국제구조대로 참여하려면 유엔 국제탐색구조자문단(UN INSARAG)에 등록돼야 하며, 우리나라는 1999년 가입했다. 구조대는 지금까지 9차례의 해외 구조 원정을 다녀 왔으며, 지난해 기준 31개국 45개 국제구조대의 ‘주력 부대’ 역할을 톡톡히 했다. 지난 5일에는 미얀마 사이클론 피해 현장으로 10번째 원정길을 떠났다. 때문에 해외 활동으로 거둬 들인 외교적 성과도 적지 않다. 예컨대 2001년 타이완 카오슝 지진 당시 구조대가 어린이를 구출한 사실이 현지 언론을 통해 대서특필됐다.1992년 한·중 수교를 계기로 국교 단절 뒤 악화됐던 한국·타이완 관계는 이를 계기로 항공 운항을 재개하기 위한 협의에 나서는 등 화해 무드가 조성됐다. 구조대는 또 외국 구조대원들을 대상으로 무료 특수교육도 실시, 교육생들에게 ‘스승의 나라’라는 입지도 굳히고 있다. 올 들어서만 벌써 몽골·베트남 등 7개국에서 거쳐 갔다. 스리랑카·아제르바이잔·말레이시아·아랍에미리트연합 등도 교육을 기다리고 있다. ■ 나도 한번 구조대원 돼 볼까 무료 안전체험… 年5000여명 참여 중앙119구조대가 운영하는 일반인 대상 ‘119 안전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자신·가족·이웃 등의 든든한 ‘행복 지킴이’가 될 수 있다. 참가자들은 각종 재해·재난·안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대처요령과 응급처치법, 극기훈련 등을 구조대원들이 활용하는 훈련시설에서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유치원생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대상자에 적합한 맞춤형 프로그램이 제공되며, 기간도 1∼5일로 다양하다. 현재 연간 5000여명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참가 신청은 인터넷 홈페이지(www.rescue.go.kr)나 전화(031-570-2017)로 할 수 있다. 참가비용은 무료다. 김영석 중앙119구조대장은 “올해의 경우 프로그램 참가 예약이 이미 다 찼을 정도로 인기가 높아 내년을 기약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한정된 예산과 인력 탓에 제한적으로 교육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게 아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 ‘계급장 없는 동료’ 인명구조견 하나·백두·강풍 3마리… 인간 후각의 1만배 중앙119구조대원들은 인명구조견을 ‘계급장 없는 동료’로 부른다. 구조대에는 5년 가까이 구조 활동을 펼친 베테랑급 ‘하나’,2년여의 훈련 과정을 마치고 구조대에 투입된 신참내기 ‘백두’와 ‘강풍’ 등 모두 3마리의 인명구조견이 있다. 인명구조견은 인간에 비해 1만배 이상 발달된 후각으로 인해 실종자 수색·구조 현장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2002년에는 구조장비로 공식 등록되기도 했다. 지난달 중국 쓰촨성 지진 현장에서도 일주일 동안 백두·강풍이 찾아낸 시신만 12구. 인명구조견은 사람을 위해 그들의 삶을 철저히 포기한다. 구조대원들이 맞교대로 근무하는 것과 달리, 인명구조견들은 연중무휴 24시간 출동 대기다.6·25전쟁 당시 학도병들처럼 이름만 있을 뿐, 계급은 없다. 핸들러(주인) 외에는 함부로 따르지 않을 정도로 우직하다. 또 하루에 한끼만 줘도 불평·불만이 없고, 해꼬지를 해도 절대 물지 않는다. 번식 능력도 사람을 구하기 위해 빼앗겼다. 인명구조견이라는 지위를 내놓을 때까지 주어지는 보상은 사람들의 쓰다듬과 고무공이 전부다.‘개팔자가 상팔자’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다. 이창학 소방위는 “사람의 육안이나 첨단 장비로도 탐지가 불가능한 매몰 지역 등에서 수색·구조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엄격하게 관리할 수밖에 없다.”면서 “스트레스가 많은 탓에 일반견에 비해 수명이 짧고, 인명구조견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간도 2∼8살 정도”라고 설명했다.
  • 20세기 초 日 미술에 스며든 고대 한국

    20세기 초 日 미술에 스며든 고대 한국

    20세기 초반 일본에서는 유럽의 르네상스처럼 고대 문화를 되살리고자 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르네상스가 모범으로 삼은 고대가 그리스·로마라면, 일본이 본받고자 설정한 고대는 아스카(飛鳥·538∼710)와 나라(奈良·710∼798) 시대였다고 한다. 그런데 아스카와 나라 시대는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교섭이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했던 시기인 만큼 이 시기 일본 미술에서는 당연히 한국의 모습이 겹쳐 보일 수 밖에 없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아관 테마전-일본 미술의 복고풍’은 일본의 미술에서 보이는 한국 문화의 모습을 확인시켜 주는 자리이다. 중앙박물관이 갖고 있는 16세기 이후의 일본 미술품 30점이 출품되었는데, 아무래도 ‘복고풍’이 커다란 흐름을 이루던 20세기 초반의 근대 미술 작품들이 가장 눈길을 끈다. 요시무라 다다오(1898∼1952)의 ‘쇼토쿠 태자’(1936)는 일본의 불교를 중흥시킨 쇼토쿠 태자(성덕태자·573∼621)와 부인 아치바나 오이라쓰메를 그렸다. 그림 속 쇼토쿠 태자의 앞에는 그의 스승인 고구려 승려 혜자(?∼623)의 이름이 새겨진 까치모양의 향로가 그려졌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보이는 모티브가 사용된 의상을 입은 다치바나가 무궁화를 들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선승혜 학예연구사는 “무궁화는 최치원이 신라를 근화지향(槿花之鄕)이라고 했을 만큼 우리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지만, 한국과 일본을 통털어 다른 작품에서는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 꽃”이라면서 “화가가 1930년대 당시 한국을 상징하던 무궁화를 소재로 삼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고토 세이이치(1893∼1984)가 조각한 ‘훈염(薰染)’의 상체는 흔히 에밀레종이라고 불리는 성덕대왕신종의 비천상과 판박이 같다. 가만히 보면 연꽃 대좌도 삼국시대 금동불입상의 그것과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에 살지 않는 호랑이는 아스카시대에 고분벽화의 사신도(四神圖)로 일본에 수용된 이후 채색 도자기에서도 인기있는 소재였다. 호랑이는 이번에 출품된 17세기 말 가키에몬 양식과 구타니 양식의 접시에도 등장한다. 호랑이는 수출용 도자기에도 중요한 문양으로 그려져 유럽까지 전파되었다. 이밖에 전시회에서는 김명국의 달마그림을 연상시키는 일본 선화의 선구자 후가이 에쿤(1568∼1654)의 ‘달마도’, 안견 화풍을 모사한 것으로 알려진 가노 단유(1602∼1674)의 ‘소상팔경도’, 조희룡과 구별되는 나카바야시 지케이(1816∼1867)의 ‘매화서옥도’도 볼 수 있다. 선승혜 학예사는 “그동안 일본실 테마전이 에도시대의 풍속화인 우키요에 등 우리가 잘 모르는 일본 미술의 모습을 살폈다면 이번에는 한국과 관련이 있는 것을 모았다.”면서 “앞으로 일본 미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전시실을 꾸며 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선 학예사는 13일 오후 4시부터 현장에서 특별 전시 설명회도 갖는다. 지난달 27일 개막한 전시회는 오는 11월2일까지 계속된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양성지는 아첨꾼 아닌 주체적 실학자”

    “양성지는 아첨꾼 아닌 주체적 실학자”

    규장각은 조선 정조가 즉위한 1776년 개혁정치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고자 세웠지만, 단초는 300년 이상이나 앞선 세조 9년(1463)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규장각 설치를 건의한 사람은 눌재(訥齋) 양성지(梁誠之·1415∼1482)였는데, 정조는 규장각을 출범시키면서 그의 아이디어가 바탕이 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한영우 이화여대 이화학술원 석좌교수가 내놓은 ‘양성지-조선 수성기 제갈량’(지식산업사 펴냄)은 눌재를 다룬 최초의 본격적인 평전이다.1992년부터 4년 동안 서울대 규장각 관장을 지낸 한 교수는 “눌재를 되돌아보게 된 것은 정조의 정신적 스승의 하나가 그였다는 사실이 늘 머릿속을 맴돌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양성지는 눌재라는 아호처럼 더듬거리는 말투에, 집현전 직제학으로 있으면서 동료들이 사육신이나 생육신으로 단종 복위운동에 가담할 때 세조의 총신(寵臣)으로 자리잡아 훗날 사림으로부터 좋은 평판을 듣지 못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어눌함을 극복하고자 항상 글로 뜻을 드러내어 ‘아는 것이 있으면 말하지 않고는 못배긴다.(知無不言·지무불언)’는 평을 들을 만큼 자신을 끊임없이 독려한 인물이다. 세조와는 시정개혁과 국방정책의 적극적인 조언자이자 이론가로 각별한 관계를 유지한 인물이기도 했다. 눌재를 제갈량에 비유한 것도 세조이다. 한 교수는 “1970년대 초 ‘눌재집’을 읽고 그 애국적이고 주체적인 경륜에 놀랐던 충격이 지금도 생생하다.”면서 “조선 선비들은 주체성이 없고 중국을 지나치게 숭상한 사대주의자들이었다고 단정한 것은 나뿐 아니라 당시 학계의 일반적인 분위기였으나 ‘눌재집’은 나의 선입견을 여지없이 깨뜨렸다.”고 털어놓았다. 한 교수는 눌재를 ‘주체성 있는 실학적 성리학자’로 규정한다. 그는 “눌재의 상소문 대부분은 관념적인 주장보다 병학, 지리, 역사, 문학 등 각 분야의 실용적인 정책 제안을 담고 있다.”면서 “눌재가 추구한 ‘유용지학(有用之學)’,‘경제실용(經濟實用)’의 학문은 18세기 이후 실학의 학문적 토양이 되었다.”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눌재 사상의 기본 목표는 ‘자주독립된 부강한 왕조국가의 건설’이었다.”면서 “그는 단군을 전조선왕(前朝鮮王)이라는 역사적 실재인물로 파악하고, 중국과 우리는 제가끔 하늘의 일방(一方)을 차지하여 별개의 건곤(乾坤·구역)을 이루는 나라라고 우리 역사의 독립성을 확신했다.”고 설명했다. 눌재는 특히 조선은 강토가 본래 요동을 포함한 ‘만리지국(萬里之國)’으로 우리 땅을 수복해야 한다는 신념에서 군사력의 강화는 물론 명나라 세력이 이 지역으로 뻗어오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세조의 지나친 부국강병 정책은 지방세력의 희생을 강요하는 부작용을 낳았고, 이런 점 때문에 성종 이후 지방에서 올라온 신진 사람이 눌재를 ‘오직 임금에게 아첨하고 재물을 탐한 노인’으로 보는 근본 원인이 되었던 것으로 한 교수는 분석한다. 한 교수는 “눌재가 300년 만에 망각의 늪에서 빠져나와 위대한 실학자로 부활한 것은 사림 정치가 부작용을 낳으면서 왜란과 호란을 불러오고, 다시금 강력한 지도력과 실용정치를 요구하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라면서 “명분보다 실리를 중요시하고, 왕권강화를 옹호하는 실학이 일어난 이유가 여기에 있었고, 그 선구자로 양성지가 주목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환경운동은 지구살리기 아닌 인류살리기”

    “지금까지 환경운동가들은 ‘지구를 살리자.’고 주장해 왔지만 이제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지금부터는 인간문명을 살리기 위한 전쟁에 나서야 합니다.” ●“2020년까지 탄소 배출량 80% 줄여야” ‘환경운동의 위대한 스승’으로 불리는 레스터 브라운(74) 미국 지구정책연구소장은 9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7층 레이첼 카슨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202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80%를 줄여야 한다는 우리의 주장은 단순한 제언이 아니라, 그렇게 해야만 하는 과제”라며 “이 목표를 이루지 못한다면 인류는 멸망의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포스트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로 평가한 브라운 소장은 오늘날 널리 쓰이는 ‘지속가능한 발전’의 개념을 30년전에 처음으로 주창했다. 월드워치연구소를 설립한 뒤 26년간 소장직을 맡아 매년 ‘지구환경보고서’ 발간을 주도했으며,50여권 이상의 책을 집필했다.‘에코 이코노미’,‘맬서스를 넘어서’,‘식량대란’ 등 저서들은 전세계 40여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된 스테디셀러다. 브라운 소장은 최근 기존 에너지 위주의 경제를 유지하는 ‘플랜A’를 대체·재활용 에너지 위주의 ‘플랜B’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책 ‘플랜B 3.0’을 펴내고 전세계를 돌면서 강연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현재의 에너지 효율성을 극대화시키고, 대규모로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일으키며 전세계적으로 숲을 가꾸는 것이 플랜B 경제를 이룰 수 있는 대원칙”이라며 “각 국가들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가.’라는 지금까지의 고민 대신 ‘어떻게 하면 탄소를 빨리 줄여야 하는가.’라는 고민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린랜드와 히말라야의 만년설이 모두 녹아서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나기 이전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플랜A 고집하면 인류 문명 종말로” 브라운 소장은 “정부가 곡물가나 유가를 해결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 나라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으며, 플랜A를 고집하면 이같은 국가들은 점차 늘어나 결국 인류 문명의 종말로 이어질 것”이라며 “조금씩 생활을 변화시키는 수준보다는 전시체제와 같은 방식으로 세계 경제시스템이 변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세계 전구를 모두 소형형광등으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에너지 12%가 절감된다는 사실은 시스템의 변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이는 2400개의 화력발전소 중 705개의 필요성이 없어지고, 그만큼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브라운 소장은 10일 기후변화 시민포럼에서 강연을 가진 뒤 한승수 국무총리와 오세훈 서울시장, 안상수 인천시장 등과 한국의 환경정책에 관해 의견을 나눌 예정이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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