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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인의 라이벌 경쟁 한국 문학사의 밑거름”

    “문학인의 라이벌 경쟁 한국 문학사의 밑거름”

    문학평론가 김윤식(77) 서울대 명예교수가 ‘문학사의 라이벌 의식’(그린비)을 펴냈다. 계간지 ‘문학과 문학’에 발표했던 글 22편 가운데 5편을 골라 실었다. 김 교수는 ‘문학 라이벌’ 간의 치열한 드잡이가 한국문학사를 풍요롭게 일군 밑거름이 됐음을 보여준다. 1966년 창간된 계간지 ‘창작과 비평’과 4년 뒤 나온 ‘문학과 지성’이 대표적인 예다. ‘68문학’ ‘산문시대’를 주도한 김현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주간을 맡은 ‘창작과 비평’이 나오자 이를 두려움과 부러움으로 지켜보며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인물이었다. ‘너희가 세계문학을 아느냐’는 ‘창작과 비평’의 외침에 김현은 ‘너희가 한국문학을 아느냐’고 맞받아쳤다. 김윤식은 “세계문학에 대한 지식이나 이해의 수준은 백낙청이 당대 어느 지식인보다 우위에 있었지만 한국문학에 대한 인식은 초라했고, 김현은 이런 약점을 주시하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결국 김현은 1970년 ‘문학과 지성’으로 맞섰고 이런 쟁탈전으로 한국 문학사는 비로소 균형을 이룰 수 있었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김 교수는 또 라이벌이었던 김현에 대한 ‘때늦은 변명’과 ‘찬사’를 동시에 늘어놓는다. 그는 김현이 집중적으로 비판의 화살을 쏜 과녁이 자신이었다고 시인한다. 김현은 그의 글쓰기를 가리켜 “그의 늘리기는 수수께끼의 놀라움이 없기 때문에 진부하고 지겹다”고 매몰차게 몰아붙였다. 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던 김 교수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김현의 비판을 통해 비로소 속으로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었던 나의 참모습을 투명체로 이해할 수 있었다”고 토로한다. 그러면서 그는 김현의 열정적인 독서력에 탄복하며 “가히 문학대통령인 셈”이라고 추어올리는가 하면, 김현이 자신의 궤적을 집요하게 추적해 온 것은 ‘사랑’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서라벌예대 동급생인 라이벌 박상륭과 이문구는 스승인 김동리를 꼭짓점으로 하는 ‘샴쌍둥이’와도 같았다. 저자는 “서로 악종이라 부를 만큼 단짝이었던 두 수제자가 좀 더 악종이 되고자 전력을 기울였다. 그것은 스승 김동리를 초월하는 것이었다”고 짚어낸다. 박상륭은 ‘칠조어론’ 등을 통해 스승의 ‘자기 동네식 샤머니즘’을 ‘샤머니즘의 세계화’로, 이문구는 ‘관촌수필’을 통해 스승의 ‘지방성 샤머니즘’을 ‘지방성으로 더욱 특권화하기’로 나아갔다. 결국 스승을 배신하면서 스승을 빛낸 결과를 빚어냈다는 것이다. 이 밖에 국문학자 양주동과 조윤제, 시인 김수영과 평론가 이어령 간의 라이벌 의식도 다뤘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방랑식객’ 자연요리연구가 임지호

    [김문이 만난사람] ‘방랑식객’ 자연요리연구가 임지호

    여름의 끝자락, 그 언덕에 섰다. 눈앞에는 마지막 뜨거운 정열을 품은 푸른 산들이 여전히 힘차게 펼쳐진다. 서울 도심을 벗어났다. 강가에 이르자 바람은 벌써 선선해진다. 가을이 성큼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강물이 어느 지점에선가 서로 만나듯 계절의 교차 또한 역동적이되 소리없이 움직인다. 그렇게 자동차로 40여분,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의 한 숲속에 도착했다. 새들이 조잘거리며 낯선 손님을 맞이한다. ‘산당’(山堂)이라는 아주 작은 간판이 나무 사이로 살짝 눈에 들어온다. ‘방랑식객’과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다.‘산당’은 그의 아호이자 방랑식객이 머물면서 찾아오는 손님들을 정성껏 음식으로 맞이하는 공간이다. 마당 앞에는 크고 작은 장독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얼핏 봐도 지극한 정성의 세월이 켜켜이 담겨진 장독대임을 알 수 있다. 이리저리 구경하고 있을 때 방랑식객이 바람처럼 나타났다. 그러고는 슬쩍 미소를 짓는다. ‘방랑식객’으로 유명한 자연요리연구가 임지호(58)씨. 지난달 28일 오후 산당의 뒤뜰에 있는 평상에서 방랑식객과 마주 앉았다. 수양버들처럼 길게 늘어진 나뭇가지가 그늘을 만들어 시원했다. 옆에는 작은 연못이 있다. 그 물에 기대어 창포들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린다. 숨쉬는 자연의 놀이터였다. 산당 주변 공간에 대해 물었다. 6600㎡(2000평) 정도이며 15년 전에 임대했다고 한다. 요즘에는 어떤 일로 바쁘냐고 했더니 “요리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별로 달라질 것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림? 한 번 더 물었다. 어떤 그림일까. 다음 달에 미국 뉴욕 첼시 갤러리에서 전시회가 있다고 했다. 해외 개인전은 세 번째이고 뉴욕 전시는 올 2월에 이어 두 번째라고 했다. 알고 보니 10년 전 싱가포르에서 첫 개인전을 가진 이후 지금까지 개인전만 7차례나 했다. 이 정도면 중견급 화가? 어쨌거나 방랑식객으로 알려진 그가 언제부터 그림에 심취했을까. “스승도 없고 같이 공부하는 동료도 없으니 제게 단체전이란 없습니다. 음식이나 그림이 별로 다를 게 없지요. 음식으로 보면 음식이고 그림으로 보면 그림인 것입니다. 그저 자연이고 자유입니다. 자연에 맡겨 발효된 이상적인 상태를 갖고 행하는 자유로움이라고나 할까요.”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는 이렇다. 리콴유 총리 재임 시절 만찬 요리 담당으로 싱가포르에 갔을 때 밤거리를 밝힌 ‘루미나리에’에서 발산하는 빛을 보고 문득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충동에 사로잡혀 드로잉을 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시작을 열어젖히듯 세상에서 궁금한 것을 그렸다. 또한 치유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있으면 죄다 그렸다. 나뭇잎은 자유로웠고 편하게 흐드러져 있음을 알게 됐고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희로애락을 그렸다. 최근에는 그런 완성품만 35점이나 된다. 뉴욕 전시는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제목은 ‘미국의 미래’이다. 구상은 이미 다 돼 있고 현지에서 직접 그린다. 배운 사람은 배운 틀로 가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어느 대학, 누구의 제자를 따지지만 미국은 결과를 중요시 여긴다는 말도 곁들인다. 그는 자신의 자유분방한 철학을 계속 읊조린다. “육체란 시공의 한계가 있지만 영혼은 그런 한계가 없습니다. 영혼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공간이 캔버스이며 영혼의 쉼터입니다.” 얘기가 조금 무르익었다. 방랑식객은 절에서 대중공양, 노인들을 위한 밥보시를 많이 했다.그래서 문득 선문답이나 해볼까 하는 생각에 시비(?)를 걸었다. “요새는 화가인가요, 요리사인가요?” “요리사입니다.” “그림이 있으니 요리 예술가라고 표현해도 됩니까?” “접시에 올려 놓으면 음식예술이고 캔버스에 올려 놓으면 그림 예술입니다.” “행복하신지요?” “피아노를 배운 적이 없는데 요새 가끔 그냥 칩니다. 그게 저만의 창작이지요. 악보도 없습니다. 행복하고 더 행복합니다. 숨쉬고 있는 것처럼 감사합니다. 행복은 자기가 디자인하는 대로 되는 것입니다.” “시인이신가요?” “일부러 시를 쓸 일은 없지요. 음식에는 스토리가 있습니다. 저기(평상 옆 작은 연못) 보세요. 물박하, 창포, 각자의 DNA가 있지만 땅의 소식을 하늘에 똑같이 전하고 있잖아요. 땅은 어머니의 살이요 모든 것을 포용합니다. 뿌리는 땅에 있고 머리는 하늘로 향해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어떤가요?” 잠시 침묵이 흐른다. 다시 물었다. “음식에는 어떤 철학이 있습니까?” “복잡할 거 없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자연과 자유이지요.” 방랑식객은 잠시 담배를 피워 물었다. “선생님이 진정 추구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굳이 장르별로 나눈다 해도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은 다 똑같습니다. 제 스스로가 자연이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제안하는 것입니다. 작가는 그런 생각으로 작품을 하겠지만 보는 시각은 다를 것입니다. 그림이나 음식은 영혼의 쉼터입니다.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철학을 먹는 것이지요, 민족의 철학 말입니다.” “자연요리연구가이신데 어떤 음식을 좋아합니까?” “아무거나 즐겨 먹지요. 주어진 대로 맛있게….” 이어 민족철학으로 넘어간다. “우리 민족은 창의력이 매우 뛰어납니다. 개성이 독특하지요. 서슴없이 비난하는가 하면 또 칭찬도 많이 하잖아요. 음식을 먹을 때도 우리 민족의 철학을 먹는다고 생각해야 돼요. 우리가 맛있게 먹고 사는 것은 조상님들이 희생하신 결과거든요.” 잠시 장독대 얘기를 한다. 장독대는 반찬의 중요한 창고이고 손수 담근 된장, 고추장, 간장, 매실 장아찌까지 맛의 뿌리는 민족에 있단다. 잘 익고 있는지 자주 들여다본다. 그때마다 자연에 대한 고마움도 있지만 이 땅을 딛고 살면서 자신들의 희생으로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식재료를 골라줬던 조상들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을 되새긴다. 지금이야 옻을 먹으면 옻이 오르고 버섯색이 고우면 독이 있다고 알고 있지만 조상들은 그것을 먹고 심하게 고생하거나 심지어 목숨까지 잃지 않았느냐고 말한다. 때문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요리를 만들고 또 먹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음식은 심장의 울림이고 손의 기운이 담겨진 정성이라고 했다. 가을철에는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물었다. “버섯 종류를 즐겁게 먹으면 됩니다. 싸리버섯은 우리 몸의 혈관과 비슷하고, 송이버섯은 정력제이고, 표고버섯은 검은 빛 도는 갈색을 골라야 합니다. 잘 말린 표고버섯은 비타민D가 풍부하지요. 능이버섯은 강력한 소화제이고 표고버섯은 향기가 기가 막힙니다. 어떤 음식 재료도 다 향기가 있습니다. 사람도 각자 모양이 다르게 살아가듯이 식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땅에 뿌리 내린 풀과 나무들은 모양과 성질, 맛, 향기가 전부 다르지만 하늘로 땅의 소식을 전하는 것은 똑같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수많은 풀들이 이름 없이 살아도, 각자의 DNA가 있어도 자기 죽음에 대해 원한을 품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스로 선택해서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란다. 자연에 순종하고 따르는 자세가 인간보다 훨씬 낫지 않으냐는 뜻으로 해석된다. “새싹은 인간으로 치면 어린아이들입니다. 독기가 없지요. (잠시 주위를 둘러본다)여기저기 나무들 보세요. 섹스 없어도 서로 마주 보고 사랑하고 후손을 번식시킵니다. 인간은 진화를 멈췄어요. 자연의 진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200년 후면 인간은 멸종할 수도 있습니다. 자연은 진화하는데 인간의 저항력은 약해지고, 바이러스의 변종이 생겨나고 그러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결과는 우리가 만든 재앙이며 욕망으로 가득 찬 인간들은 진화하는 자연 앞에서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이지요.”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2년 뒤에 강원도 화천에 힐링요리, 미술전시 등을 할 수 있는 자연요리학교가 세워진다고 했다. 외국인 학생을 많이 받아들여 우리 민족의 음식철학을 다른 나라에 알릴 수 있도록 하겠단다. 한식의 세계화라는 차원이 아니라 비록 나라는 다르더라도 음식끼리 서로 친구가 되자는 점을 가르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앞으로 우리 민족이 빚어낸 음식의 전설을 잘 담아내는 일을 할 것이라고 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받는 밥상은 어머니의 품입니다. 그 밥상은 참으로 따뜻합니다. 그런 전설, 그런 뿌리 깊은 철학을 버리지 않고 계속 나아갈 것입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임지호씨는 11살 때부터 전국 돌며 요리 배워… 2006년 ‘경기 으뜸이’ 선정 1955년 안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한의사였다. 그의 생모는 결혼 전 아버지를 사랑한 처자였다. 생모는 그를 임신한 채 다른 집으로 시집을 갔다. 나중에 이런 사실이 알려져 독자를 잃을까 봐 아버지가 아이(임지호)를 데려와 키웠다. 11세 때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밀항하려고 부산과 목포, 제주 등을 다니며 춥고 배고픈 시절을 보냈다. 요리를 배운 것도 이때였다. 시골 중국집 주방장에서 유명 호텔까지 두루 섭렵했다. 전국 각지를 다니며 자연의 요리를 연구했다. 해외에서도 그의 명성이 높아 2003년 유엔 한국음식 축제, 2004년 미 캘리포니아 사찰음식 퍼포먼스, 2005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음식 시연회, 아르헨티나 수교 기념 한국 음식전, 베네수엘라 수교 40주년 한국 음식전 등에 참가했다. 미국의 대표적 고급 요리 잡지인 ‘푸드아트’의 커버스토리와 표지모델이 되기도 했다. 2006년 외교통상부 장관 표창을 받았으며 ‘경기 으뜸이’로 선정됐다. 현재는 경기 양평에서 ‘산당’이라는 한정식 전문 식당을 운영하면서 자연요리를 연구하고 있다.
  • [서울광장] 리더십 갈등과 해소, ‘마지막 4중주’의 경우/서동철 논설위원

    [서울광장] 리더십 갈등과 해소, ‘마지막 4중주’의 경우/서동철 논설위원

    서양 클래식 음악은 베토벤과 슈베르트에서 시작해 베토벤과 슈베르트에서 끝난다는 말을 오래전부터 들었다. 베토벤의 ‘운명’이나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 같은 것들이 워낙 불후의 명곡이어서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가 했다. 그런데 그동안 이런저런 작곡가의 음악을 들어봤지만, 조금씩 나이를 먹어갈수록 신기하게도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음악을 더욱 즐기게 된다. 물론 지금도 ‘운명’이나 ‘미완성’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면 볼륨을 한껏 높인다. 하지만 다시 베토벤과 슈베르트를 찾는 이유는, 겉보기에는 조촐하지만 내용은 결코 조촐하지 않은 만년의 작품 몇 개 때문인 것 같다. 흔히 후기(late)라는 수식어가 붙는 베토벤의 현악4중주와 피아노 소나타 몇 개가 여기에 해당한다. 31세에 세상을 떠났으니 ‘만년’이라는 표현 자체가 어울리지 않지만, 어쨌든 슈베르트가 죽기 직전 남긴 피아노 소나타 몇 개가 또한 그렇다. 며칠 전 ‘마지막 4중주’라는 미국 영화를 봤다. 벌써부터 봐야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미적거리다 극장에서 곧 내릴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서야 찾아간 것이다. ‘마지막 4중주’는 이를 국내로 들여오며 다듬어 붙인 제목으로, 원제가 ‘A late quartet’이니 느낌은 조금 달랐다. 사람에 초점을 맞춘 마지막 4중주가 아니라 특정 작품 한 곡을 부각시킨 제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음악이 바로 베토벤의 후기 작품인 현악4중주곡 14번이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진 직후의 느낌은 한마디로 ‘베토벤의 후기 현악4중주곡이 주는 즐거움을 세상 사람들과 공유하겠다고 온갖 이야기를 꾸며댔군!’이었다. 짐작한 대로, 메가폰을 잡은 야론 질버맨 감독이 특별히 좋아하는 곡이라고 했다. 극중 연주 단체의 이름을 ‘푸가 현악4중주단’(The fugue string quartet)으로 지은 것도 이 곡의 1악장이 오래된 음악 구조의 한 형태인 푸가로 만들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관람객들은 엔딩 크레디트가 한없이 내려가는 동안에도 대부분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했는데, 스피커에서는 여전히 현악4중주 14번이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클래식 음악에 특별한 관심이 없어도 왜 서양음악이 베토벤에서 시작하고 끝난다고 하는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질버맨 감독이 처음부터 의도했을지도 모를 ‘세뇌’의 결과이다. 영화의 큰 줄거리는 4중주단 멤버 중 세 사람의 스승이기도 한 노장 첼리스트가 파킨슨병에 걸리는 바람에 은퇴 연주회를 갖고 새로운 멤버를 영입해 새출발한다는 것이니 밋밋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파국이 불가피해 보이는 몇 개의 갈등 구조를 만들어 화해를 상징하는 마지막 연주회를 더욱 감동적으로 만들겠다고 의도했던 것 같다. 갈등은 서로 얽히고 설켜 있는데, 누군가 ‘고상한 막장 드라마’라고 이 영화를 평한 것을 보면 분위기는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관람객을 불안하게 만드는 최대의 갈등은 제2 바이올린 주자의 제1 바이올린 주자에 대한 도전이다. 오랫동안 리더의 영예를 누렸으니, 그 역할을 좀 바꾸어 보자는 것이다. 두 남자의 알력은 음악적 갈등은커녕 인간적 갈등이라고도 할 수 없는 동물적인 갈등이다. 음악가라는 특성을 지워 버리면 현악4중주단은 네 사람에 불과한 소집단이다. 우리들도 예외 없이 이런 작은 사회에서 부대끼고 산다. 푸가 4중주단의 갈등은 해소되지만,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을 친절하게 보여주지는 않는다. ‘동물적’인 ‘막장’ 갈등이었다는 점에서 해피엔딩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갈등 해소의 과정을 재구성하는 것은 관람객의 몫이다. 개인적으로는 푸가 4중주단의 리더가 결국에는 포용력을 발휘했고, 도전자는 리더의 실력을 인정한 결과가 아닐까 한다. 세상의 모든 리더십 갈등, 역시 이것이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믿는다. dcsuh@seoul.co.kr
  • 진도-해海 그리고 서화가무書畵歌舞

    진도-해海 그리고 서화가무書畵歌舞

    진도에선 알게 된다. 왜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왜 소리꾼이 창을 하고, 왜 시인이 시를 쓰는지를. 씹어도 삼켜도 내려가지 않는 응어리를 진도 사람들은 ‘예술’이라 했다. 바다도 울고 칼도 울고 해海 용산역에서 KTX로 3시간을 달려 목포에 내렸다. 호남선의 시작과 끝을 찍는 목포역은 개청 100주년을 알리는 현수막을 내걸고 있었다. 1913년 태어난 목포역은 일제강점기와 산업화를 겪으며 1세기를 무던히 견뎌냈다. 목포에서 다리 하나만 넘으면 진도다. 진도대교를 넘는 순간, 바다가 흐느껴 울었다. 생명줄을 잡고 있는 존재만이 운다. 그래서 진도대교가 길게 누워 있는 ‘울돌목’은 그냥 바다가 아니다. 좁고 깊은 골짜기를 낀 울돌목의 파도는 제 존재를 증명하고자 부지런히 온몸을 비틀고 꼬았다. 바다의 연주에 맞춰 칼의 노래가 들렸다. 충무공 이순신이 울돌목을 굽어봤다. 순우리말 울돌목을 한자로 대치하면 ‘명량鳴梁’이 된다. 살아서 꿈틀거리는 명량을 이용해 이순신은 왜구의 배 330척을 물리쳤다. 그가 거느린 배는 고작 13척뿐이었다. 영웅담은 과대 포장되기 마련이지만, 이순신의 이야기에선 왠지 모를 진정성이 느껴졌다. 허깨비를 좇는 정치에 죽을 뻔하고, 백의종군하던 중 모친상을 당하고, 전쟁 도중 아들을 잃었다. 그건 할리우드 영화 속에 나오는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아들이자 아버지로 피눈물을 흘린 인간의 이야기였다. 매년 울돌목에선 명량대첩일인 음력 9월16일을 기점으로 ‘명량대첩축제’가 열린다. 올해 9월27일부터 9월29일까지 울돌목에선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의 마음으로 싸운 이순신을 만날 수 있다. 진도의 바다는 우는 것도 모자라 시커먼 제 속을 드러냈다. 검게 타들어 간 진도의 가슴은 고군면 회동리와 의신면 모도리를 잇는 바닷길이다. 길이 2.8km, 폭 40m의 이 길을 멀리서 바라보면 푸른 바다 위에 갈색 뱀이 구불구불 기어가는 것만 같다. 뱀의 비늘이 알록달록해 보이는 건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 때문이다. 진도군은 ‘신비의 바닷길 축제’를 35번이나 치렀다. 지난 4월 나흘간 개최된 올해 축제에는 무려 51만명이 다녀갔다. 매년 4~5월경 잠깐 열렸다가 닫히는 ‘찰나의 길’인지라 여름에 찾은 바닷길은 행방불명이었다. 바닷길을 지켜본 동상 두 개가 ‘기적을 믿어라’고 했다. 목격자는 멀리서 바닷길을 지켜보는 피에르 랑디 동상과 다른 하나는 축제 현장을 지키고 선 뽕할머니 동상이다. 1975년 주한 프랑스 대사였던 피에르 랑디는 진도의 바닷길을 보고서 ‘모세의 기적’이라 프랑스에 전했고, 그 덕분에 프랑스 신문에 진도가 소개될 수 있었다. 피에르 랑디는 실존 인물이지만 뽕할머니는 전설 속 인물이다. 호랑이가 득실거리는 빈 마을에 혼자 남겨진 뽕할머니가 이웃 섬으로 도망간 가족을 그리워하자 용왕이 ‘길’을 내주었다는 전설은 신비의 바닷길의 모태가 됐다. 신비의 바닷길┃주소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신비의 바닷길 74 홈페이지 miraclesea.jindo.go.k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풍경 앞에선 붓이 춤춘다 서화書畵 진도의 바다 옆에는 늘 논이 따라다녔다. 바다 너머 논, 논 너머 바다…. 물과 흙이 진도 사람을 빚어냈을 것이다. 진도에선 보이는 대로 툭 찍어내는 사진이 아니라 뭉툭한 연필로 쓱쓱 그리고 고운 물감으로 덧칠한 풍경화가 갖고 싶었다. 사물 하나 제대로 스케치하지 못하는 아둔한 손을 원망했다. 재주 없는 외지인의 마음이 이러한데, 진도에 살았던 사람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진도의 미술관은 진도 출신의 작가와 진도의 풍경이 담긴 그림 위주로 전시를 꾸리고 있었다. 서예가 장전 하남호 선생이 사비를 들여 만든 남진미술관은 아늑하고 소담했다. 미술관 정원에는 색이 고운 토기와 조각품이 가득 메워져 있고 별관에는 분청사기, 백자, 청자 등이 높은 몸값을 자랑하고 있었다. 미술관 본관으로 들어가면 책에서 봤던 역사 속 인물들이 걸어 다닌다. 이름만으로 무게가 느껴지는 추사 김정희와 한호 한석봉의 글씨를 알현하고, 대원군 이하응의 박력이 느껴지는 글씨도 볼 수 있다. 율곡 이이, 우암 송시열, 무정 정만조, 고균 김옥균, 계정 민영환 등의 작품도 미술관 곳곳에 촘촘하게 박혀 있다. 미술관의 벽면 한쪽을 크게 메운 그림으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렸다. 다산 정약용의 ‘홍매도’다. 다산의 유배지는 진도가 아니라 강진이건만 정약용이 그린 매화 그림은 진도에까지 진한 향을 내뿜고 있었다. 진도의 그림을 제대로 알기 위해선 조선시대 남화의 대가로 불리는 소치 허련의 흔적을 밟아야 한다. 운림산방은 진도 출신의 허련이 여생의 끝자락을 보내던 화실이다. 이곳을 지키는 건 연꽃이 동동 떠 있는 호수와 의젓한 소나무, 하늘거리는 배롱나무 등이다. 운림산방은 배우 배용준과 전도연 주연의 영화인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허련은 평생 한 스승를 우러러봤다. 허련의 재능을 알아보고 키워 준 추사 김정희 말이다. 추사는 중국 원나라의 4대 화가로 손꼽힌 ‘대치’ 황공망과 견줄 정도로 그림을 잘 그린다 하여 제자의 호를 ‘소치’라 지어 주었다. 소치 허련이 운림산방에 기거하게 된 결정적 계기도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추사의 죽음 때문이었다. 허련은 스승을 만나러 제주도까지 찾아가곤 했다는데, 스승을 향한 사랑은 운림산방에서도 느껴진다. 심지어 운림산방은 뜻밖의 선물을 내어 놓았다. 추사 김정희의 대표작인 세한도를 본 것이다. 메마른 소나무와 잣나무가 마주 보고 꼿꼿하게 선 세한도에는 ‘장무상망長毋相忘’이라는 글씨가 숨어 있었다. ‘서로 오래 잊지 말자’는 이 말은 귀양살이 중이던 추사가 중국에서 책을 구해 보내준 제자 이상적에게 띄우는 감사의 인사다. ‘예술 혼’은 세월의 바람 앞에서도 쉽게 꺼지지 않는다. 소치 허련에 이어 미산 허형, 남농 허건, 임인 허림, 임전 허문, 허진 등 소치의 집안은 5대에 걸쳐 화가를 배출했다. 호수 오른편에 보이는 소치 기념관에선 소치 집안의 가계도를 그림으로 만날 수 있다. 피는 같을지언정, 각자 그려낸 그림의 느낌은 천차만별이었다. 한집안에서 태어난 작가들의 그림을 한자리에서 비교해 보는 재미는 꽤 쏠쏠하다. 남진미술관┃주소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하미길 39 문의 061-543-0777 운림산방┃주소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운림산방로 315 문의 061-543-0088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진도 Q&A Q. 막걸리와 파전을 파는 갤러리가 있다? 그림을 전시하고 커피와 케이크를 파는 갤러리형 카페는 봤어도 그림을 전시하며 막걸리와 파전을 파는 곳은 생전 처음 봤다. 진도니까 가능한 일이다. 우초 박병락 선생이 운영하는 ‘작은 갤러리’는 그의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이자 음식점이다. 이곳의 대표 메뉴는 수제비와 파전. 진도의 바다를 표류하던 각종 해산물이 수제비와 파전에 들어 있다. 노란 색감이 퍼지는 막걸리도 진도의 특산품인 ‘울금’으로 만들어져 독특하다. 울금은 생강과 식물로 울금의 주성분인 커큐민은 카레의 주원료가 된다. 우초 선생의 그림은 진도스럽다. 진한 먹으로 그려낸 작품에선 검정빛 개펄이 살아 있다. 소나무 너머의 바다, 갯벌의 변화, 낙조 등 작품의 주제는 진도를 비켜가지 않는다. 작은 갤러리┃주소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죽림리 300 문의 061-544-0071 Q. 진도개? 진돗개? ‘진도개’는 진도를 알리는 일등공신이다. 1993년 5살짜리 진도개 백구가 대전으로 팔려갔으나 주인을 잊지 못하고 7개월간 팔백리길을 달려 옛 주인에게 돌아갔다는 얘기가 알려졌기 때문이다. 진도개 테마파크에서는 똑똑한 진도개의 공연을 볼 수 있다. 총을 맞고 쓰러지는 명연기부터 조련사의 어깨 위에 올라가는 고난이도 묘기도 부린다. 여기서 잠깐! 진돗개와 진도개 중 어느 것이 맞을까? 사이시옷 맞춤법을 따르자면 ‘진돗개’가 맞지만 진도 사람들은 진돗개를 ‘진도개’라 부른다. 1963년 진도개가 천연기념물 제53호로 지정될 당시 진돗개가 아니라 진도개로 등재됐기 때문이란다. 진도개라는 단어에는 ‘진도개’를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는 진도 군민의 자부심이 배어 있는 셈이다. 진도개 테마파크┃주소 전남 진도군 진도읍 동외리 홈페이지 dog.jindo.go.kr Q. 홍주는 섞어야 맛있다? 진도의 특산품은 헤아리기 어렵다. 꼬들꼬들하고 튼실한 돌미역, 불로장생의 명약으로 불리는 구기자, 한겨울에도 잘 자라는 대파 등…. 수많은 특산품을 비집고 진도 토속주인 ‘홍주’가 무형문화재 26호로 지정됐다. ‘지초’라는 약초를 가미해 색을 낸 홍주는 이름 그대로 새빨갛다. 도수가 무려 40도를 웃돌기 때문에 주당이 아니라면 그냥 마시기 쉽지 않다. 맥주잔에 맥주를 70% 가량 채운 뒤 홍주를 약간 부으면 마치 맥주 위에 해가 뜬 것 같은 ‘일출주’가 된다. 맥주가 든 맥주잔 안에 홍주가 든 소주잔을 넣으면 ‘일몰주’. 또한 투명한 사이다와 홍주를 섞으면 접점 부분이 분홍빛으로 바뀌어 상당히 곱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핏방울 터트리듯 노래하더라 가무歌舞 “진도 앞에선 서화가무를 자랑하지 마시오”라는 충고는 허풍이 아니었다. 예술이라는 향수를 얼마나 뿌린 것인지, 나중에는 예술이라는 말만 들어도 특유의 진도 내음이 풍겨 왔다. 아리랑마을 관광지 내 아리랑체험관에서 아리랑은 물론이고 사물놀이, 진도씻김굿 등을 간접 체험했다. ‘지잉’ 징이 울면 바람이 불고, ‘둥둥’ 북이 울면 구름이 따라왔다. ‘꾕꾕’ 꾕과리가 소리치면 천둥이 밀려왔고, ‘덩기덕’ 장구가 움직이면 비가 쏟아졌다. 논밭을 일궈 살기 위해 그들은 악기를 쳤다. 자연을 ‘적’이 아닌 ‘동지’로 만드는 우리 민족의 지혜다. 진도군 지산면 인지리에서 전승된 ‘남도 들노래’는 아예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남도 들노래 하면 지산면 인지리의 조공례 할머니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소리에 미친 조공례 할머니의 윗입술은 “노래하지 말라”는 남편의 돌팔매에 찢겼다. 책 <곽재구의 포구기행>에서 곽 시인은 입술이 찢기던 순간을 “그날 흘린 피가 꼭 매화꽃잎처럼 송이송이 서럽고 고왔는디”라 묘사한다. 윗입술이 찢기고도 ‘핏방울 터트리듯’ 노래한 그녀는 남도들노래 창 기능 보유자중요무형문화재 51호가 됐다. 농사지으랴, 밥하랴, 아이 키우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진도의 부녀자들은 때론 손에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았다. 남도들노래와 함께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강강술래의 탄생기다. 이곳저곳 정처 없이 진도를 염탐하다 보니, 해日와 이별할 시간이 오고 있었다. 해와 만나고 헤어지는 건, 먹고 자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상이 아니던가. 그러나 진도에선 해조차 특별했다. 심청이가 인당수에 몸을 던지듯 진도의 해는 애잔하게 바다의 품에 안긴다. 떠나가는 해를 보려 세방낙조 전망대로 달렸다. 일몰까지 시간이 꽤 남았다. 공백기를 달래 준 건 진도군립민속예술단의 공연이었다. 중중모리 가락이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는 관람객의 몸 사위를 따라 흘렀다. “고초장, 된장, 간장, 뗏장, 아이고 아니로구나. 초장화, 초장화, 초장화, 장화초, 장화초 아이고 이것도 아니로구나….” <흥부가> 중 화초장 대목. 부자가 된 동생 흥부에게서 ‘화초장’을 빼앗아 온 놀부가 화초장을 ‘고초장’이라고 했다가 ‘초장화’라고도 했다가 정신없이 소리 질렀다. 흥부가가 끝나기 무섭게 북을 맨 세 사람이 등장했다. 양손에 북채를 쥐고 북을 장구처럼 양쪽으로 치는 ‘진도북놀이’는 잔가락이 많기로 유명하다. 두 손에 북채를 들고 빙글빙글 도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심장도 북의 장단에 맞춰 쿵쿵 정신없이 뛰기 시작했다. 쩌렁쩌렁 울리던 소리가 자취를 감출 무렵, 해가 서서히 움직이는 게 보였다. 숨을 멎을 듯 말듯 해가 어느 순간 바다에 스며들었다. 아리랑마을 관광지┃주소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아리랑길 95-5 문의 061-544-8839 세방낙조┃주소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세방낙조로 문의 061-544-0151 글·사진 구명주 기자 취재협조 진도군청 www.jindo.go.kr 한국관광공사www.visitkorea.or.kr
  • 지리산 끝자락 기운 센 땅, 경남 산청을 가다

    지리산 끝자락 기운 센 땅, 경남 산청을 가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시원해졌습니다. 가을의 문턱에 접어든 거지요. 한데 여름 내내 지독한 폭염에 시달렸던 몸은 쉬 회복되지 않는 듯합니다. 거센 자연에 시달린 몸, 자연에서 좋은 기운 받아 치유하는 건 어떨까요. 경남 산청으로 갑니다. 지리산에 기댄 마을마다 1000여종의 약초가 자란다는 한방의 땅이지요. 생초, 차황 등 마을 이름에서조차 약초 향 물씬 풍기니 산청에서라면 몸과 마음이 절로 가붓해질 듯합니다. 산청은 ‘동의보감의 고향’쯤으로 여겨진다. 지은이 허준(1539~1615)이 산청을 다녀갔다는 기록 한 줄 없는데도 그렇다. 이는 미암일기 등 허준의 행적을 다룬 여러 문집이나 전설 등에 따른 추정일 뿐이다. 허준에 대한 기록은 그가 33세 되던 1571년에야 비로소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가 종 4품의 내의원 첨정에 중용된 때다. 서른셋 이전의 허준은 뭘 하며 지냈을까. 그의 일생이 드라마틱하게 그려지는 것도 바로 이 기간이 베일에 쌓여 있기 때문이다. 동의보감박물관의 김요한 학예연구사는 “집안에 아들이 없어 실질적인 적자 노릇을 하던 허준은 아버지가 정실부인을 들여 아들을 낳는 바람에 또다시 서자의 지위로 떨어지는 등 이 기간 곡절 많은 삶을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고 했다. 질풍노도의 젊은이가 이 같은 상황에서 집 밖의 세계를 동경하는 건 당연한 노릇일 터. 김 학예사는 허준이 이 기간 약재상으로 전국을 떠돌았을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허준이 1000여종의 약초가 자란다는 지리산, 특히 산청 지역을 여러 차례 돌아봤을 거란 추정도 가능해진다. 요즘 말로 허준의 ‘전공’이 침이 아닌 약초학이었던 것도 이를 방증한다. 훗날 어의에까지 오른 허준은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동의보감을 세상에 내놓는다. 그게 꼬박 400년 전인 1613년의 일이었다. 산청세계전통의약엑스포(이하 산청엑스포, www.tramedi-expo.or.kr)가 9월 6일~10월 20일 열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동의보감 초쇄 간행 400주년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동시에 기념하는 자리다. 행사장은 지리산 끝자락 산청군 금서면 동의보감촌·한방의료클러스터 일대다. 허준이 약초를 찾아 발품 팔고 그의 스승 유의태가 의술을 펼쳤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산청 최대의 국제 행사를 앞두고 최구식 집행위원장이 최근 장문의 문자메시지를 보내 왔다. 요약하면 “산청엑스포 현장이 생애 통틀어 최고의 근무 환경”이란 거다. 공기 청량하고 물 맑은 곳이라면 산청 말고도 나라 안에 즐비하다. 한데 뭐가 그리 다른가. 이 대목에서 등장하는 게 ‘기’(氣)다. 이른바 ‘명당’의 자리가 선사하는 기운이 남다르다는 거다. 이영복 문화관광해설사는 산청엑스포장을 “기의 보고”라고 했다. 지리산 천왕봉과 왕등재를 지나 온 정기가 왕산(王山·923m)을 거쳐 엑스포장으로 모인다는 것이다. 왕산은 필봉산과 함께 엑스포장의 뒤편을 떠받치고 있는 산이다. 기가 센 곳엔 이를 수렴할 암자나 탑 등이 들어서게 마련이다. 산청엑스포장엔 건축물 대신 돌을 세웠다. 왕산 자락을 따라 위에서부터 석경(石鏡)과 귀감석(鑑石), 복석(福石)을 배치했다. 석경은 중심부에 봉황 형태의 무늬가 새겨진 돌 거울이다. 다리 굽혀 품에 안으면 맑은 기운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핵심 포인트는 석경의 윗부분이다. 기가 특히 센 곳이어서 반드시 이마를 대고 있어야 한단다. 귀감석은 동의전 뒤편에 있다.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 등이 ‘기 받는 바위’로 입소문을 내면서 세간에 널리 알려졌다. 원래는 차황면 신촌마을에 있던 신석(神石)이었다. 이 해설사는 주민들이 국가적인 행사의 성공을 위해 선뜻 산청엑스포 측에 제공했다고 귀띔했다. 거북이 등껍질 형태의 귀감석은 ‘기의 최강자’다. 특히 가운데 ‘황기’라고 쓰인 부분이 핵심이다. 장삼이사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기의 흐름이 없는 건 아닐 터. 사지 쭉 뻗어 물 샐 틈 없이 거석과 밀착하는 게 한껏 기를 받는 지름길이다. 복석은 엑스포장 끝자락에 있다. 전각 안에 있는 데다 형태도 밋밋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탑돌이 하듯 돌 주위를 돌면 복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산청엑스포 행사장은 주제관과 동의보감관, 약초생태관, 힐링타운, 기체험관, 세계관, 약선문화관, 산업관 등 8개 전시관으로 구성된다. 한의학 체험, 약초 구매 등 전통 의학과 관련된 모든 체험을 한곳에서 할 수 있다고 보면 틀림없다. 인도 등 5개 전통 의약 강국의 의료 체험 등 독특한 콘텐츠도 마련됐다. 왕산 자락에서 찾아야 할 곳이 또 있다. 구형왕릉이다. 신라에 패망한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仇衡王·521~532)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공식 기록이 없어 이름 앞에 전(傳) 자를 붙이기도 한다. 무덤 형태가 특이하다. 돌무더기를 7단으로 쌓아 올렸다. 왕릉 옆엔 증손자 김유신이 시묘살이 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구형왕릉 못 미처 ‘유의태 샘’도 찾을 만하다. 왕산의 정기가 서렸다는 샘물이다. 유의태가 환자를 치료할 때 이 약수를 사용했다고 한다. ‘풍경의 명당’ 하나 덧붙이자. 산청의 산하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곳, 정취암(淨趣庵)이다. 개창 시기가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고찰이다. 지리산과 황매산 등 산청의 명산에 오르려면 땀깨나 쏟아야 하는 것에 견줘 정취암까지는 차로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절집은 신등면 대성산 자락에 터를 잡았다. 절집까지 오르는 길이 빼어나다. 이리저리 휘휘 돌 때마다 산청의 산과 들녘이 번갈아 자태를 뽐낸다. 산 중턱에 걸터앉은 절집의 자태도 예사롭지 않다. 호사가들 입에 오르내렸던 ‘절벽 위에 핀 연꽃’ 그대로다. 절집 뜨락까지 왔다면 5분만 더 투자하시라. 응진전 뒤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더욱 빼어난 풍경과 마주한다. 비 갠 오후, 산자락을 딛고 오르려던 조각구름 하나가 힘에 부쳐 절집 위에 머문다. 아찔하게 선 너럭바위 위로는 돌탑 하나가 서 있고 그 너머로 지리산과 산청의 들녘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남사예담촌도 빼놓을 수 없는 풍경의 아이콘이다. 어깨 높이로 쌓인 흙담이 마을 전체를 둘러싼 곳이다. 한 민간단체에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1호로 지정하기도 했다. 마을에 들면 약 400년 된 이씨 고가 등 고색창연한 옛집들이 객을 반긴다. 이씨 고가는 남사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다. 옛집 앞엔 X자 모양으로 굽은 회화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마을의 상징 같은 나무다. 수령은 300년을 헤아린다. 원래 화기(火氣)를 막으려 심었는데 미군 폭격으로 마을이 불바다가 됐을 때도 이씨 고가는 멀쩡하게 남아 ‘효험’을 입증했다고 한다. 담장길을 따라 마을 안쪽의 수백년 묵은 매화나무 등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글 사진 산청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지역번호 055) →가는 길 대전통영고속도로에서 산청으로 내려서는 나들목은 모두 3개다. 국제조각공원 등을 둘러보려면 생초 나들목, 동의보감촌이나 구형왕릉, 정취암 등을 먼저 보려면 산청 나들목이 빠르다. 남사예담촌, 남명 조식 유적지 등은 단성 나들목에서 가깝다. →맛집 약초와 버섯골식당(973-4479)은 약초버섯전골로 이름났다. 흑돼지와 누렁이(973-8289), 민물고기찜을 내는 물레방아식당(972-8290)도 소문난 맛집. 읍내 바다양푼이동태탕(972-3030)은 오가는 길에 부담 없이 들를 만한 집이다. 시원한 동태탕과 찜이 별미다. →잘 곳 지리산힐링타운은 ‘기’가 모인다는 왕산 끝자락에 있다. 산청엑스포장 안에 있어 축제를 둘러보기도 수월하다. 고즈넉한 분위기를 원한다면 남사예담촌의 고택 민박이 좋겠다. 경호강변의 산청한방리조트펜션(972-9989)도 깔끔하다.
  • ‘마지막 4중주’ 조용한 흥행 돌풍 왜

    ‘마지막 4중주’ 조용한 흥행 돌풍 왜

    예술영화 ‘마지막 4중주’가 조용한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미드나잇 인 파리’나 ‘색, 계’처럼 대형 배급사를 통하지 않고 수십 개 극장에서 소규모로 개봉한 영화 중에서는 역대 최고 성적이다.26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마지막 4중주’는 지난 23~25일 주말 관객 4662명을 동원하며 8만 2084명을 끌어 모았다. 지난 24일에는 8만 535명을 기록하며 개봉 31일 만에 8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는 8만 345명을 모으며 지난해 예술영화 중 최대 화제작에 오른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아무르’를 뛰어넘는 기록이다. ‘마지막 4중주’는 개봉 4일 만에 1만, 9일 만에 2만, 18일 만에 5만 관객을 돌파해 40개 미만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 중 ‘워낭소리’ 이후 가장 빠른 흥행 기록을 세웠다. 흥행 요인으로는 무엇보다 중·장년층을 겨냥한 작품의 내용이 꼽힌다. 영화는 결성 25주년 기념 공연을 앞둔 현악 4중주단 ‘푸가’의 첼리스트 피터가 파킨슨병 진단을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피터가 단원들에게 마지막 공연을 제안하면서 스승과 제자, 부부, 친구 등으로 엮인 네 사람의 속마음이 드러난다. 여름 시장을 겨냥한 블록버스터 영화의 볼거리는 없지만 인간 관계에 대한 성찰이 돋보인다는 평을 받는다. 영화를 수입한 티캐스트 관계자는 “이 정도 흥행은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30~40대 관객이 많지만 50대 이상 중·장년층도 적지 않다. 영화의 내용에 대한 입소문이 퍼진 게 가장 큰 흥행 요인”이라고 말했다. 영화계에서는 영화를 수입·배급하고 있는 ‘씨네큐브 효과’가 크다는 말도 나온다. 티캐스트가 운영하는 씨네큐브는 ‘아무르’와 틸다 스윈튼 주연의 ‘케빈에 대하여’(4만 6193명), ‘우리는 사랑일까’(6만 6746명) 등을 자체 개봉하며 예술 영화 시장에서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 영화 수입사 관계자는 “40~50대 주부 등 씨네큐브 관객층의 충성도는 매우 높다. 예술영화 시장에서는 CGV의 무비꼴라쥬나 롯데시네마의 아르떼 같은 예술영화 상영관보다 훨씬 영향력이 크다”면서 “‘마지막 4중주’는 ‘씨네큐브 효과’가 극대화된 작품”이라고 말했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전통가무악 거장 심정순 탄생 140주년 기념 행사

    전통가무악 거장 심정순 탄생 140주년 기념 행사

    전통가무악의 거장 심정순(1873~1937) 선생의 탄생 14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잇따라 열린다. 충남 서산 출생인 심정순의 집안은 근현대 5대에 걸쳐 8명의 명인을 배출한 국악 명문가로 내포제(內浦制) 전통가무악의 중심 축을 이뤘다. 심정순 탄생 140주년 기념회와 국내 유일의 춤자료관 연낙재는 ‘내포제 전통가무악의 재발견’이라는 주제 아래 오는 27일부터 12월까지 서울과 서산에서 무용·국악 공연, 영상 감상회, 학술 세미나, 자료집 발간 등의 다채로운 행사를 마련했다. 특히 오는 27일 서산 서산시문화회관과 다음 달 8일 서울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리는 두 차례의 공연에는 중요무형문화재 등 국악 예인들이 총출동한다. 이애주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의 ‘태평무’, 김매자 창무예술원 이사장의 ‘살풀이춤’, 국수호 디딤무용단 예술감독의 ‘가사호접’ 등 전통춤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안숙선 명창은 판소리 춘향가 가운데 천자뒤풀이를 들려준다. 서울 공연에서는 심정순의 조카인 심상건을 사사한 가야금 명인 황병기가 특별 출연해 스승에 대한 회고담을 들려준다. 다음 달 6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강당에서는 학술 세미나 ‘근현대 전통예인 심정순가(家)의 공연예술사적 업적 재조명’이 열린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두려워 말고 매일 실패하라, 그리고 매일 도전하라”

    “두려워 말고 매일 실패하라, 그리고 매일 도전하라”

    “끈질기게 노력하라.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자신의 길을 추구하라.” 2006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로저 콘버그(미 스탠퍼드대 교수) 건국대 초빙 석학교수가 대학문을 나서는 이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콘버그 교수는 22일 건국대에서 열린 2013학년도 후기 학위수여식 축사에서 “우선 사랑하는 직업이나 일을 찾고, 목표를 높이 세우라”고 말했다. 인생의 중반에 성취할 수 있는 보통의 목표가 아니라 최고의 높은 목표를 세우고,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굳게 믿으라고 조언했다. 이 과정에서 겪을 실패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는 게 연설의 핵심이었다. 콘버그 교수는 특히 실패로 점철됐던 자신의 대학원생 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1000여 청중들의 공감을 이끌어 냈다. 그는 “대학원생 시절 스승님께서 정말 중요한 충고를 해줬다. ‘너는 매일 실패해야 한다. 두려워하지 말고 매일 실패하라’는 조언이었다”면서 “스승의 충고에 따라 매 실험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도했다”고 말했다. 3년 넘게 실패를 거듭한 끝에 인간의 모든 유전자 발현이 대부분 조절되는 생물·의학적 과정인 전사(轉寫) 과정에 관여하는 단백질을 밝혀내고 전사 관련 단백질 집합체의 구조를 원자 단위까지 규명해 노벨화학상을 받았다는 이야기에 박수가 쏟아졌다. 한편 이날 건국대 학위수여식에서는 서울캠퍼스와 글로컬(GLOCAL)캠퍼스 박사 105명, 석사 658명, 학사 1492명 등 모두 2255명이 학위를 받았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문화마당] 무슨 책을 읽을까?/김재원 KBS 아나운서

    [문화마당] 무슨 책을 읽을까?/김재원 KBS 아나운서

    고2 아들아이가 요즘 묵언수행 중이다. 입을 닫았다. 통 말이 없다. 방학이 끝나가지만 이름만 방학일 뿐 여전히 학교를 오고 가는 그 아이가 아빠는 물론 엄마에게도 입을 닫은 지 벌써 몇 개월째다. 이러다 말겠지 싶었지만 요즘은 심지어 후기인상파다. 얼굴은 우울하고 입은 닫고 사이버 인간처럼 움직인다. 그동안 제법 조잘대던 아이라 더 마음이 쓰인다. 주변 얘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청소년들이 집에서 말을 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들은 왜 입을 닫았을까? 중학교 2학년들에게 ‘중2병’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그들이 가장 무섭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그 나이 또래의 생각은 종잡을 수 없다. 남보다 우월하다거나 열등하다는 착각에 빠져 있단다. 방송이나 강연에서 만나는 청중 가운데 가장 두려운 존재가 그 또래들이다.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고 어떻게 반응할지 예상할 수가 없다. KBS 한국어연구팀장으로 일하면서 가끔 중·고등학교에 언어폭력 예방 강의를 나간다. 누군가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그들의 언어세계는 이미 언어폭력으로 얼룩져 있다. 은어와 속어는 물론이고 욕설조차 일상어로 자리 잡은 경우가 다반사여서 어른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들의 속마음은 과연 무엇일까? 청소년의 언어폭력은 사회적 분출구가 없는 아이들에게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불투명한 미래와 답답한 부모, 꽉 막힌 스승과의 불통으로 막히고 눌린 아이들의 불만이 오로지 뚫린 입으로 비집고 나온다. 이제 아이들에게 소통수단은 언어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부족한 아이들은 더 이상 놀이로도, 운동으로도 소통할 수 없다. 결국 욕설과 은어로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TV에서, 인터넷에서 어른들에게 배운 것이다. 이제 어른의 대화를 고스란히 따라하고 있을 뿐이다. 어른들이 석고대죄해야 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마음을 모르고 있다. 청소년들이 집에서 부모와 대화를 하지 않는 것도, 강사들에게 불편한 청중이 된 것도, 그들 사이에 폭력적 언어가 만연한 것도 어쩌면 그들의 마음을 읽어주는 누군가가 없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부모도, 선생님도, 친구도 자신의 마음을 읽어주지 않는다. 그저 막막한 공부와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걱정과 염려가 전부이다. 그들의 마음을 읽어줄 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세상에 입과 귀를 닫았다. 누가 이 아이의 마음을 읽어줄까? 일부 지방자치단체 도서관에서 ‘휴먼라이브러리’라는 사람 책 읽기 운동을 하는 모양이다. 각 분야 전문가나 유명 저자들이 독자들과 직접 만나 대화하고 질문하며 사람 책을 읽는 프로그램이다. 나도 방송을 진행하면서 매일 ‘사람 책’을 만난다.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인생역사를 듣고 삶이 주는 교훈을 새긴다. 사람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 이제 종이활자 책만 읽지 말고, 유명인사의 사람 책만 읽지 말고 가까운 사람들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하자. 아들도, 딸도, 어머니도, 아버지도, 친구도, 선생님도, 제자도 자신의 마음을 읽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의 마음을 책 삼아 읽어 보자. 나는 요즘 묵언수행 중인 아들의 입을 열려고 굳이 애쓰지 않는다. 그 시기에는 입을 열지 않도록 유전자가 형성되어 있는데 억지로 열 필요가 있을까? 그저 기다리면서 그 아이의 마음 책을 읽어 보련다.
  • [광복 68돌…역사 부정하는 日] 9개국선 ‘위안부 기림’ 열리고 아베는 ‘쇼인신사’에 무릎 꿇고

    [광복 68돌…역사 부정하는 日] 9개국선 ‘위안부 기림’ 열리고 아베는 ‘쇼인신사’에 무릎 꿇고

    15일이면 한국이 일제 식민 통치로부터 벗어나 해방을 맞이한 지 68년째가 된다. 그러나 반세기를 훌쩍 넘은 지금도 한·일 간 간극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14일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9개국 17개 도시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을 잊지 말자는 취지로 지정된 ‘제1회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행사가 열렸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메이지유신의 정신적 스승이자 제국주의 침략의 이론가였던 요시다 쇼인(1830~1859)을 기리는 ‘쇼인신사’에 참배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14일 정오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서 제1회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기념 세계연대행동 및 제1087회 정기 수요집회를 개최했다. 정대협은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위안부 피해를 공개 증언했던 1991년 8월 14일을 기념해 올해부터 14일을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로 제정했다. 이날 세계연대행동은 한국과 일본, 타이완, 캐나다, 미국, 독일 등 9개국 17개 도시에서 진행됐다. 전 세계에서 일본의 반성을 촉구하는 가운데 아베 총리는 13일 오후 휴가를 보내고 있는 야마구치현에 있는 쇼인신사에 참배했다고 일본 매체들이 보도했다. 이 신사가 기리는 요시다 쇼인은 정한론과 대동아공영론 등을 주창하며 조선 식민지화를 포함한 일본의 제국주의 정책에 이론을 제공한 인물이다. 아베 총리는 야스쿠니신사에는 ‘자민당 총재 아베 신조’ 명의로 예물인 ‘다마구시(玉串·물푸레나무 가지에 흰 종이를 단 것)료’를 사비로 낼 것이라고 NHK가 보도했다. 주변국의 입장을 배려해 직접 참배는 삼가고 내각 총리대신 명의가 아닌 자민당 총재 명의로 공물료를 내는 대리 참배의 형식을 띠었지만 한국 등 주변국의 반발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이와 관련, 중국 환구망(環球網)은 중국의 첫 항공모함인 랴오닝(遼寧)함이 일본의 패전일인 15일에 맞춰 보하이(渤海)만 북부 해역 4곳에서 해상 군사훈련을 실시한다고 전했다. 환구망은 랴오닝함이 함재기 훈련을 위한 출항일을 일본의 패전일인 15일로 잡은 것에 ‘깊은 뜻’이 담겨 있을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일본 패전일에 맞춰 대대적인 항공모함 훈련과 실탄 훈련을 실시해 우경화의 길을 걷는 일본에 무력시위를 하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야스쿠니신사 앞 항의 성명 발표를 위해 일본을 방문한 민주당 이용득 최고위원과 이종걸, 이상민, 문병호 의원 일행은 하네다공항에서 3시간 가까이 입국 목적을 추궁받은 뒤 어렵사리 일본에 입국했다. 민주당 의원과 보좌관 등 6명은 이날 오후 5시 반쯤 하네다공항에 도착했지만 일본 당국이 입국 심사를 이례적으로 까다롭게 진행하면서 2시간 반가량 공항에 발이 묶였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기고] 지재권 법·제도적 장치 마련돼야 창조경제 빛나/김태진 지적재산권 전문 변호사

    [기고] 지재권 법·제도적 장치 마련돼야 창조경제 빛나/김태진 지적재산권 전문 변호사

    정보기술(IT) 업계의 ‘구루’(스승)로 평가받는 스티브 잡스 애플 공동창업주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변했을까. 아이폰과 아이패드 같은 기기들이 미국이 아닌 한국을 대표하는 수출품이 됐을까. 한국에서 지적재산권 관련 소송 업무를 하면서 느낀 경험을 토대로 말하자면 무일푼으로 아이디어 하나로 자수성가할 수 있는 ‘스티브 잡스’라는 브랜드는 한국에서 나오기 어려울 것 같다. 대학을 1년도 안 다니고 중퇴했으니 좋은 직장에 취직해 경험을 쌓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뛰어난 아이디어와 기술을 갖고 회사를 차리려 해도 투자자들은 분명 잡스에게 연대 보증을 요구했을 것이다. 어렵사리 제품을 개발해도 곧바로 대기업이 이를 똑같이 베껴 시장을 빼앗았을 것이다. 그가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해도 검찰과 법원, 공정거래위원회는 미적지근한 태도로 시간만 끌었을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잡스는 중도에 파산해 사업을 접었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에서는 최근 야후가 소설네트워크서비스(SNS) ‘텀블러’를,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을 각각 우리 돈으로 1조원을 주고 사들였다. 왜 이들은 직원 몇 십명에 불과한 구멍가게 회사를 막대한 돈을 주고 사들였을까. 미국에서 로스쿨을 다니며 깨달았던 점은 미국이 그 어느 나라보다도 남의 사업을 베끼거나 부당 경쟁을 통해 신규 사업에 타격을 주는 대기업 행태를 철저히 감독한다는 것이었다. 작은 회사라고 우습게 보고 괴롭히려 했다간 자칫 자신이 망할 수도 있다. 개인의 아이디어를 철저하게 지켜 주려는 미국 당국의 의지 덕분에 지금도 미국 실리콘밸리에는 최고의 창의력을 가진 인재들이 전 세계에서 모여들고 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대기업들이 해당 회사들을 헐값에 인수하려 했을 것이다. 인수를 거부하면 회사의 핵심 인력을 빼내 무너뜨리려 했을 수도 있다. 검찰과 공정위, 법원 등의 미온적인 태도를 보며 기술을 탈취당한 벤처기업들이 망한 뒤에야 법 집행을 하려는 것 같다고 느낀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경제민주화와 창조경제가 국가적 이슈인 지금도 대한민국에서 볼 수 있는 슬픈 현실이다. 금융당국이 박근혜 정부의 모토인 ‘창조경제’의 핵심이라며 기술금융을 독려하지만 한국에는 아직 기술 평가 인력 자체가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창조경제는 대통령의 선언과 제도 도입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기업의 태도와 당국의 자세 등 무형의 인프라들까지 모두 정비돼야 빛을 발할 수 있다.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현 정부 임기 내에 성과를 내려는 강박증을 버려야 한다.
  • 사격 김기현·태권도 이학성 소피아농아인올림픽 금메달

    한국이 2013소피아 농아인올림픽에서 사흘째 금메달 행진을 이어갔다. 사격 대표팀의 기대주 김기현(20·창원시청)이 28일(현지시간) 불가리아 소피아의 지오 밀레브 슈팅 레인지에서 열린 대회 남자 10m 공기권총에서 결선 합계 670.3점을 얻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5년 멜버른 대회와 2009년 타이베이 대회에서 2연속 2관왕(10m 공기권총과 50m 자유권총)에 오른 김태영(23·대구백화점)은 667.0점으로 은메달에 그쳤다. 또 전날 러시아의 벽을 넘지 못하고 은메달 두 개에 만족해야 했던 태권도에서도 첫 금메달이 나왔다. 이학성(19)이 남자 80㎏급 결승에서 올렉실 세도프(우크라이나)를 9-7로 꺾고 금메달을 땄다. 이학성은 지난해 전국농아인체육대회와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잇따라 금메달을 목에 거는 등 국내에는 적수가 없는 선수. 타이베이 대회 남자 80㎏급에서 우승한 임대호(37)는 준결승에서 알렉산더 바카로프(러시아)에게 져 동메달에 그쳤다. 여자 67㎏급의 김진희(24)는 태권도 대표팀에 세 번째 은메달을 안겼다. ‘박태환의 스승’ 노민상 감독이 이끄는 수영 대표팀의 김건오(24)는 남자 자유형 50m 준결승에서 24초 76을 기록하며 4위로 29일 결선에 진출, 대회 2연패를 겨냥한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부고] 원로 서예가 원중식씨

    [부고] 원로 서예가 원중식씨

    원로 서예가 남전(南田) 원중식씨가 27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72세. 1960~1976년 검여(劍如) 유희강 선생을 사사한 고인은 스승이 뇌출혈로 쓰러지자 수족이 되어 보필하고 그의 작품을 집대성했다. 고인은 도연명을 흠모해 20여년의 공직 생활을 접고 강원도 화진포에 정착해 서예에 정진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한국전각학회 회장과 경동대 석좌교수 겸 문화원장, 국제서법예술연합 한국본부 자문위원, 예술의전당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후학 양성에도 힘써 시계연서회(柴溪硏書會)를 결성해 매년 전시회를 열고 꿈나무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2008년 제1회 일중서예대상을 수상했다. 유족은 부인 강석인씨와 유정, 유련씨 등 1남 1녀.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30일 오전 10시 30분. (02)2072-2011.
  • 건반위의 별들, 스승 위한 멜로디 빛낸다

    건반위의 별들, 스승 위한 멜로디 빛낸다

    “‘빗방울 전주곡’ 어떠세요? 제가 따라갈게요. 선생님 먼저 치세요.” 여든을 훌쩍 넘긴 노스승과 이순(耳順)을 앞둔 제자가 나란히 피아노 앞에 앉았다. 건반을 힘있게 두드리는 사제의 호흡이 전날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척척 맞아들어갔다. 두 사람의 시계는 순간 47년 전으로 돌아간 듯했다. 피아노를 막 알아가던 열 살 소년과 그에게 열정을 불어넣어준 30대 후반의 젊은 교수로 말이다. 스승에게 소년은 야단칠 일이 없는 영민한 제자였다. 소년에게 스승은 감히 따라갈 수 없는 거대한 산이었다. 1966~1968년 서울 약수동에서 앞뒤 집에 살며 사제의 인연을 맺었던 두 사람은 어느덧 1·2세대 대표 피아니스트로 한국 피아노 역사를 떠받치고 있다. ‘피아노의 대부’ 정진우(85) 서울대 명예교수와 김영호(57) 연세대 피아노과 교수다. 정 교수는 ‘정진우 사단’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제자들을 몰고 다닌다. 신수정 전 서울대 음대 학장, 이대욱 한양대 교수, 강충모 줄리아드음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문익주 서울대 교수 등이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제자들의 선생님 사랑은 극진하다. 스승의 회갑·고희·팔순 음악회를 일일이 다 챙겼다. 매년 1월 8일 정 교수의 생일에는 어김없이 생신축하 겸 신년회 자리가 벌어진다. 그런 제자들이 이번에도 스승을 위해 뭉쳤다. 새달 17~24일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여는 제2회 ‘피스(평화) 앤 피아노 페스티벌’에서 정진우 교수를 위한 ‘오마주 콘서트’를 마련한 것. 피아니스트 15명 등 20여명의 연주자들이 차례로 무대에 오른다. 정 교수에게 소감을 묻자 “미안하다”는 뜻밖의 답변이 돌아왔다. “고맙고 미안하죠. 다들 대학 교수들이고 바쁜 사람들인데 일부러 이런 행사까지 열어주니 미안할 따름이죠.” 스승의 무안함을 제자가 지우려 나섰다. “전원이 너무나 흔쾌히 응했는 걸요.”(김 교수) 오마주 콘서트에서는 정 교수의 인생 역정도 사진과 영상으로 펼쳐진다. 본디 그는 의학도였다. 아버지의 뜻이었다. 1949년 경성의학전문학교(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6·25전쟁이 터지자 군의관으로 참전한 그는 1951년 중공군이 포위한 강원도 성지봉 전투에서 겨우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동상으로 썩어버린 두 발을 결국 잃고 말았다. 발등까지 잘라낸 그는 절망을 딛고 1952년 전쟁 통에 부산에서 첫 독주회를 열었다. 언론은 그런 그에게 ‘비운의 삶을 딛고 일어선 의지의 피아니스트’라는 헤드라인을 붙여줬다. “‘아버지 하라는 대로 해서 발을 다쳤으니 이젠 정말 나 하고 싶은 거 하겠다’ 해서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갔어요. 그런데 졸업이 한 달이나 남았는데 당시 현제명 서울대 음대 학장이 빈까지 쫓아왔어요. 음대 교수를 맡아달라는 거예요. 공항에 도착하니 음대 교수들이 다 마중을 나왔더라고.”(웃음) 그렇게 그는 피아노계의 큰 스승으로 후배 피아니스트들의 밑거름이 됐다. 반주에 그쳤던 피아노의 역할도 실내악 연주, 레퍼토리의 다양화 등으로 어엿한 악기로 자리매김시켰다. 그는 요즘도 제자들의 연주회가 있으면 지방까지 쫓아다닌다. 반세기를 건너 세계 무대에서 놀랍도록 성장한 국내 피아니스트들에게 ‘정진우’라는 이름 석자의 의미는 무엇일까. 김 교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제자마다 추억이 다 다르겠죠.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이렇게 모든 제자가 존경하는 선생님이 다시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전문] 2580보도에 대한 이찌고야 안홍성씨 입장

    [전문] 2580보도에 대한 이찌고야 안홍성씨 입장

    딸기찹쌀떡으로 ‘갑을 논란’을 빚은 ‘이찌고야’ 대표 안홍성씨가 29일 MBC 2580 보도와 관련해 반박글을 온라인 카페에 올려 진실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딸기찹쌀떡 논란은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김민수씨의 방송 출연으로 인해 촉발됐다. 김씨는 “딸기찹쌀떡 기술을 일본에서 배웠고 공동창업했지만 투자금도 받지 못하고 거리로 내몰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안씨는 ‘딸기찹쌀떡의 눈물’ 방송에 대해 장문의 글을 통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아래는 안씨의 주장을 담은 카페 글 전문. 안홍성입니다. 어제 시사메거진 2580 을 보았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어제 방송은 김민수씨와의 그 동안의 첨예한 논쟁거리에서 좀 빗나간 방송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찌된 이유인지 그 동안은 간절히 “살려달라”는 호소의 내용 즉, “갑의 횡포-대기업 강탈”을 주된 내용으로 “강자가 약자를 짓밝는 이야기”로 감정 호소가 주된 내용이었는데, 어제 방송은 왜 그런지 “일본에서 배워왔다”가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사실 김민수씨와 “갑론을박”식 내용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 말장난 인 것 같구요, 사실과 무관함으로 진짜 사실에 입각해 그대로의 사실만 적구 싶습니다. 김민수씨가 출연한 생활의 달인 프로그램을 보면 김민수씨는 일본에 10번 넘게 다녀왔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저는 30번 넘게 다녀왔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 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김민수씨가 스승이라 부르는 그 장인에게 언제 찾아가서, 무엇을, 어떻게, 얼마간 배우고 실제로 큰 가르침을 받았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민수씨가 찾아가 스승님께 배웠다고 하는 그 날은 2013년 4월 말 또는 5월 초 경으로 기억합니다. 김민수씨가 일본을 간 이유는 저와 장사를 논의 하던 중에 영업 준비물인 빙수기계 구입이 목적이었습니다. 제가 일본 오사카의 “에비스야” 라는 7년 정도 거래한 주방 기물 거래처에 빙수 기계를 주문해 놓고 김민수씨에게 픽업해 오라고 보낸 일본 출장이었습니다. 물론 모든 준비과정은 제가 해놓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왕 간 김에 일본의 딸기모찌 상점도 잘 견학하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김민수씨의 출장경비, 모든 여행 비용는 제가 50%, 김민수 본인이 50% 부담하였습니다. 그런데 일본을 다녀와서 일본에서 모찌 할아버지께 무언가걸 배워왔다고 하더군요, 저는 잘됐다고 하며 무엇인가 했더니 냉동 모찌에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그 건 별것도 아닌데 하며 한귀로 듣고 넘어갔습니다. 이 내용이 어제 2580에 방송된 일본 스승님을 만나 가르침을 받게 된 그 날의 경위이자 내용입니다.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저의 심부름으로 일본 가서 빙수기를 가져오라 한 것인데, 방송에서는 스승님께 엄청난 큰 가르침을 받고 왔다고 하니 정말 희한합니다. 그리고 짧은 2박 3일 동안 다녀왔는데 방송에서 묘사된 얼마나 큰 가르침을 받았는지도 궁금하구요. 제가 보기에는 어제 방송된 내용 중 가르침의 정확한 내용은 없습니다. 노트에 몇자 적어온 내용이라면 가르침이라 할 수 없습니다. 기술도 배우고 익히고 그 제조법과 다양한 관련 지식들을 시간을 가지고 배워야 하는데 그럴러면 최소한 아무리 단기 속성이라도 상식적으로 최소 한두달은 걸리지 않을까요? 김민수씨는 어제 방송 중에 제가 인터뷰한 내용 중 김민수씨 출입국 사실을 확인해 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김민수씨는 평생 5~6번 정도입니다. 그리고 그 일본행이 모두 그 스승님께 가르침을 받으러 갔을까요? 이 건 김민수씨에게 직접 여러분이 묻고 그 명확한 답변을 요청해 보십시오. 제 말이 맞는지 김민수씨 말이 맞는지 확인해 주십시오. 그리고 김민수씨는 일본어를 전혀 못합니다. 적어도 기본적 회화 정도는 해야 의사소통이 되지 않겠어요? 그리고 진정한 배움이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그 스승 분이 재일교포이긴 하지만 충분히 한국어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2박3일, 3박4일 정도의 여행 중에 얼마나 큰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그 분도 바쁘신 분이고, 장사도 해야되는데, 또한 김민수는 가는날, 오는날 빼면 하루 또는 이틀입니다. 단순히 듣고, 보고, 사진 찍어 오는 수준입니다. 그게 엄청난 비법이며 제품의 모든 걸 배웠다고 말하며 큰 가르침이라면 아이들이 웃습니다. 그럼 아무나 누구나 일본 몇 번 다녀오면 “비법 달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누구도 그 정도는 조금만 노력하면(책을 보거나, 인터넷을 찾아봐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딸기 찹쌀떡도 완성된 모습은 간단해 보여도 그 만드는 방법은 복잡하고 미묘합니다. 원재료 문제, 제조법 문제, 판매와 보관의 문제, 원가의 문제, 도구와 장비의 문제 등 다 만들어진 모습과는 달리 그 과정은 복잡하고 다양합니다. 모든 일이 다 그렀습니다. 이러한 복잡한 일련의 과정을 하루, 이틀만에 배울 수 있을까요? 그 건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분의 30년간의 노하우를 단 하루, 이틀만에 가르쳐 준다는 것도 어불성설입니다. 그럼 김민수씨는 무엇을 배우고 왔을까요? 추측컨대 단순 지식 정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수박 겉핡기” 정도의 단편지식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부터 열가지 모든 걸 전수받아 배워 온 것처럼 포장하고 미화하면 사실 관계에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그 다음은 여러분의 판단에 맞기겠습니다. 사실 김민수씨는 지금 여러분이 아시는 내용과는 크게 다른 사람입니다. 아주 많이 다른 사랍입니다. 앞으로 점차 아시게 될 것이며 본 사건의 발단, 구체적 정황과 상황, 사실 관계를 앞으로 자세히 설명 드리겠습니다. 방송에서 기자님이 말하지 못하고 밝히지 못한 이야기를 하나하나 밝혀드리겠습니다. 물론 저는 2580 사전 방송 인터뷰에서 모두 말씀드렸지만 편집 과정에서 그 내용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방송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이번 기회에 차분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김민수씨의 대표적인 거짓된 주장으로 이번 사건의 핵심 키워드인 1) 시작배경? 2) 달인이냐 아니냐? 3) 최초 개발자냐? 4) 계약서 내용은? 5) 대기업은? 6) 조폭,건달,회장은? 7) 상표권은? 8) 거래처는? 9) 쫒겨났나? 10) 투자금은? 11) 스승님은? 12) 앞으로는? 등등입니다. 이 내용을 중심으로 앞으로 진심으로 여러분께 소상하게 설명드리겠습니다. 아무쪼록 이번일의 양쪽입장을 잘 보시고 신중하게 판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안홍성 올림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모래밭을 5년 동안 걷고 또 걸었다 고독한 여행을 통한 인생의 깨달음

    산이 있어 오른다는 이들이 있다. 비슷한 이치로 돌과 모래밖에 없는 불모의 땅인데도,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막을 찾아간다는 이도 있다. 책은 독일 출신의 탐험가가 분별없다고 생각될 수 있는 단독 사막여행을 통해 얻은 인생의 깨달음과 감동의 기록을 적은 에세이다. 저자는 이제껏 서른 번의 탐사를 하면서 모두 5년의 시간을 사막에서 걷거나 낙타를 타며 보냈다. “영혼이 걸음을 멈추는 속도”로 거의 2만㎞를 전진했다. 그렇게 다가간 사막은 시간이 흐를수록 멋진 인생의 스승이자 ‘영혼의 고향’이 됐다. 25개의 사막을 찾아가는 동안 시시때때로 “하늘 높이 뛰어오를 듯 기쁜 삶의 감정”과 “자유롭게 움직이는 재미”를 만끽했고, 대자연과 조우하면서 “아주 작은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 “외로움과 순결함이 교차하는 풍경”을 걸으며 자신의 삶에 새로운 의미를 주게 될 가능성까지 덤으로 얻었다. 책엔 아프리카의 모로코 등에 걸쳐 있는 사하라, 중국의 고비 등 8개의 사막이 등장한다. 겨울 사막은 뼛속까지 시리다. 몸이 얼어 제대로 걷기조차 힘들다. 여름 사막은 불구덩이다. 투루판 분지의 경우 60도까지 치솟기도 한다. 모래는 75도까지 달궈진다. 그런데도 저자는 주로 여름철에 사막을 찾았다. 걷는 시간은 오전 5~10시, 오후 6~10시 사이다. 낮 동안엔 텐트 그늘에서 모든 활동을 멈추고 쉬어야 한다. 가장 좋은 때는 밤이다. 그는 “어둠 속에서 별들이 수많은 예술 작품을 쏟아낼 때 하늘을 올려보고 방향을 찾아가는 게 너무 좋다”고 했다. 위험요소도 많다. 사막뿔독사, 전갈 등 맹독을 지닌 동물들이 모래 위를 활주하고, 배낭 속 음식물 냄새에 눈이 뒤집힌 들개들이 이빨을 드러내며 위협하기도 한다. 영혼을 위협하는 위험한 환영, 신기루는 늘 죽음의 길로 유혹한다. 하지만 그 무엇으로도 사막이 주는 절대 고요와 장엄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가릴 수는 없었다. 우리에겐 더없이 척박한 땅이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사막은 ‘알라의 정원’이었다. 또 어떤 이들에겐 인간이 삼라만상의 진정한 존재와 가치를 인식하도록 하기 위해 신이 ‘모든 불필요한 것들을 없애버린 땅’이기도 했다. 제목이 유효하다. 당신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사막은 필요하다. 저자의 당부처럼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공허한 광야와 사막이 있고, 우리는 언젠가 그 사막과 민낯으로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백지영, 유성은 비주얼디렉터로 근황 알려 “스승-제자 짝 잘 맞네”

    백지영, 유성은 비주얼디렉터로 근황 알려 “스승-제자 짝 잘 맞네”

    가수 백지영이 자신의 제자 유성은의 비주얼디렉터로 나서며 근황을 전했다. 백지영은 케이블채널 엠넷 ‘보이스코리아’에서 유성은의 잠재력을 발견해 스승과 제자로 함께 짝을 맞춰 준우승까지 올려놨다. 백지영은 당시의 인연을 이어오다 최근 앨범을 발표한 유성은의 활동을 전폭적으로 돕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4일 유성은의 공식 SNS에는 “유성은 첫 데뷔앨범 ‘비 오케이’(Be OK) 비주얼 디렉터로 참여하신 백지영 코치님과 성은양. 훈훈하네요”라는 글과 함께 백지영과 유성은이 함께 찍은 사진이 올라왔다. 백지영은 이번 유성은의 데뷔앨범 비주얼 디렉터로 참여해 기획 단계부터 헤어, 메이크업, 안무, 스타일링 등 앨범 제작에 전반적으로 참여했다. 또 유성은이 부른 ‘이대로 멈춰’ 녹음실 동영상과 함께 응원의 메시지를 남기는 등 홍보에도 적극적이었다. 한편 유성은은 지난 15일 발매한 데뷔앨범 ‘비 오케이’의 타이틀곡 ‘비 오케이’로 엠넷닷컴과 소리바다에서 주간차트(7월 2주차) 1위를 차지했다. 백지영 유성은 근황을 접한 네티즌들은 “백지영 유성은, 스승-제자 간 짝 잘 맞네”, “백지영 유성은, 건강한 모습 보니 좋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송혜교 ‘동양미의 극치’

    송혜교 ‘동양미의 극치’

    무인 엽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일대종사’에서 송혜교가 압도적인 동양미를 뽐내 네티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일대종사 제작사는 24일 영화의 스토리를 담은 비주얼 스틸컷을 공개했다. 오픈된 사진은 총 10장. 이 가운데 송혜교는 단 한 장의 스틸컷으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어딘가 응시하는 모습을 통해 고뇌에 빠진 엽문(양조위) 부인의 모습을 연출했다. 특히 깔끔하게 빗어올린 정갈한 헤어와 베이지색 치파오로 신비한 매력을 발산했다. 영화 일대종사는 예술의 경지에 오른 무인 엽문과 그를 사랑한 두 여인 장영성(송혜교)과 궁이(장쯔이)의 이야기를 담았다. 올해 베를린영화제와 중국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돼 작품성을 인정 받았다. 국내에서는 다음달 22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엽문은 액션스타 리샤오룽(이소룡)의 스승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 광진구에 첨단 버스정류소 만든다

    서울 광진구에 첨단 버스정류소 만든다

    서울 광진구는 다음 달 말 지하철 2호선 강변역 버스환승센터에 현금인출기와 휴대전화 충전기, 음료수 자판기뿐 아니라 자동심장충격기(AED)를 갖춘 첨단 버스정류장(조감도)을 설치한다고 22일 밝혔다. 강변역 버스환승센터는 동서울터미널, 복합쇼핑몰인 테크노마트 등 지역 명소가 밀집해 있다. 버스 36개 노선이 이곳을 거쳐 간다. 하루 유동인구 20여만명과 환승객 12여만명이 이용하는 대규모 대중교통 환승센터다. 구는 지난해 2월부터 다목적 기능을 갖춘 버스승강장의 디자인과 기본설계 등에 나섰고 드디어 이달 말 공사를 시작하게 됐다. 또 예산절감을 위해 민간자본을 유치했다. 따라서 민간기업이 버스승강장 설치 뒤 기부하고 계약 기간인 2022년까지 9년간 유지 관리를 맡게 된다. 설치 장소는 강변역 버스환승센터 중 구의공원 앞에 있는 D정류소 중간지점으로 가로 10m, 세로 3.3m, 높이 2.7m, 넓이 34㎡의 규모인 개방형 공간으로 설치된다. 승강장에는 버스정보안내시스템(BIS) 등 각종 편의시설과 응급의료시설, 발광다이오드(LED) 구정홍보전광판 등이 설치된다. 특히 승차대 위쪽에는 친환경 에너지인 태양광 전기 시스템을 설치해 야간 조명 시설을 대체 에너지로 활용한다. 정성채 교통행정과장은 “시범 설치·운영 효과를 분석해 문제점 등을 보완하고 설치 지역을 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전주全州 부채 이야기- 초여름, 바람이 분다

    전주全州 부채 이야기- 초여름, 바람이 분다

    음력 5월5일, 단오端午다. 부채를 선물하던 풍속은 어디에서 왔을까? 1,000년 역사의 자존심을 간직한 가장 한국적인 고장. 바람을 일깨우는 자리, 전주에서 답을 찾았다. 전주 부채, 바람을 다스리다 전주의 수많은 자랑거리 중 부채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예부터 전주 부채는 전국 최고로 평가받았다. 질 좋은 한지와 곧고 단단한 대나무, 전주 사람들의 예술적 감각이 더해져 조선시대 임금에게 진상될 만큼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지금도 담양과 전주 일대의 대나무와 한지 산지를 중심으로 명맥을 잇는 장인들의 작품이 여전히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역사를 살펴보면 지금의 전라남·북도와 제주도를 관할했던 조선시대 전라감영에는 선자청이라는 부채를 제작 관리하는 관청이 있었다. 전라감영에 선자청을 두었던 것은 부채가 전주의 특산물로 단오 날 임금에게 올리는 진상품이었기 때문이다. ‘단오 선물은 부채, 동지 선물은 책력’이라는 속담에서 알 수 있듯 당시에는 단오가 가까워질 무렵에는 부채를 선물하고 동지가 가까워 오면 책력을 선물하는 풍속이 있었다. 이런 풍속은 조선말까지 이어져 해마다 공조에서 단오 부채를 만들어 진상하면 임금은 그것을 신하들에게 나누어주었는데, 전주 부채는 그중 가장 으뜸으로 쳤다. 이후 일제강점기, 단오 부채를 공납하는 제도가 없어지면서 선자청에서 일하며 부채를 만들던 경공장과 선자청에 납품하던 외공장의 장인들은 지금의 전주 중앙동에 터를 잡게 된다. 중앙동에는 부채를 도매로 전국에 공급하는 중간 상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광복과 함께 외곽지역인 가재미골과 안골 등으로 장인들이 터를 옮겨 전주 부채는 장인들의 손끝에서 이어져 왔고 지금은 조충익, 김동식, 방화선 선자장이 전라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맥을 이어가고 있다. 느림의 미학을 일깨우는 선자장 부채의 ‘부’는 손으로 부쳐서 바람을 일으킨다는 뜻이고, ‘채’는 가는 대나무 또는 도구를 의미한다. 즉, 손으로 부쳐서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라는 뜻이다. 한자로는 ‘선자扇子’라고 하고 선자, 즉 부채를 만드는 장인을 ‘선자장扇子匠’이라 한다. 예부터 부채에 사용하는 대나무와 한지는 모두 음의 기운을 갖고 있다고 해서 선비들은 부채를 ‘첩’이라 부르며 애지중지하고, 선비들은 의관을 갖추고 합죽선을 들고서야 외출을 했다. 또 서민 여성들은 평평하고 둥근 형태의 단선을 사용했는데, 부들이나 왕골 같은 재료를 사용해 방석 대신 깔고 앉기도 하고 햇빛을 가리거나 불을 일으키고 곡식을 거르는 데도 사용했다. 부채는 크게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접선’과 자루가 달린 ‘단선’으로 나뉜다. 그 가운데 ‘방구부채’, ‘둥근부채’라고도 불리는 단선은 모양이나 용도에 따라 대표적인 태극선을 비롯해 공작선, 대륜선, 선녀선, 파초선, 학우선, 오엽선, 듸림선 등 다양하게 나뉜다. 단선은 부챗살이 손잡이 중심에서부터 방사형으로 퍼져나가는 모습 때문에 아침 햇살이 천지 만물을 일깨우는 형상을 지녔다고 표현되기도 한다. 또 부챗살이 자루 부분에 모아지기 때문에 윗부분은 얇고 자루 박는 부분은 튼튼해야 한다.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던 시절 시원한 바람을 불러오던 옛 부채에 비해 현대의 부채는 예술적인 면이 강조되고 있다. 해서 단선은 단조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부챗살을 구부려 미적 감각을 창출하기도 한다. 부채 하나를 만들기까지는 온갖 정성과 숙련된 손길이 필요하다. 다른 부채에 비해 공간의 면 분할과 강한 색상대비가 돋보이는 태극선의 경우 2년 이상 묵은 왕대나무를 겨울에 베어내 1mm 두께로 부챗살을 만들고, 이에 고급비단인 양단을 붙여 응달에서 말린다. 그리고 각종 모양으로 끝을 오려내 한지로 테두리를 치고, 소나무 재질로 손잡이를 끼우는 등 일곱 단계의 공정을 거쳐야 비로소 완성된다. 전주에서는 예술성 뛰어난 선자장들의 작품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특히 한옥마을 안에 자리한 전주 부채 문화관을 둘러보면 인위적인 바람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부채의 아름다움과, 느리고 비우는 철학의 가치를 일깨워 준다. 글·사진 travie writer 이세미 취재협조 한국관광협회중앙회 02-757-7485 전주 부채에 바쳐 온 외길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10호 방화선 선자장 전주 소리문화의 전당 국제회의장 1층은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10호 선자장 방화선 선생의 작업실이자 대중들과의 소통공간이다. 40년 외길로 전통 부채를 제작해 온 방화선 장인은 부친이자 스승인 고故 방춘근 선생(대한민국 명장, 전라북도 무형문화재)으로부터 유년시절부터 단선기술을 익혀 가업을 계승했다. 방화선 장인의 작업은 전통의 멋을 충실히 재현하되 현대에 맞게 재조명해 격조 높고 고졸한 자태가 일품으로 평가받는다. 중국산이 밀려드는 중에 전통의 맥을 이어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최고의 재료로 더 다양한 부채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 방화선 장인의 소망이다. 방화선 선생의 태극선은 전래방법으로 수작업에 의존해 전통 한지로 만들어 고유한 빛깔과 질감이 뛰어나다. 방화선 장인에게 부챗살은 곧 자신의 뼈다. 그 뼈 위로 햇볕과 세월, 바람과 슬픔, 절망과 희망이 어우러져 부채로 탄생된다고 말한다. 방화선 선자장은 특히 올해 전주한옥마을 전통창작예술공간에 입주작가로 선정되면서 작품창작활동과 함께 1년간 기획전시와 아카데미운영, 부채 제작시연 등 대중들과 보다 다양한 소통을 다지고 있다. 이로써 전주를 찾는 관광객들과 시민들은 단선 부채의 단순함에 깃든 미학과 실용적 가치를 보다 가깝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부채 체험은 부채공예연구실과 창작예술공간 두 곳에서 모두 가능하니 사전에 문의하면 된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방화선 부채공예연구실┃주소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1가 1-1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국제회의장 1층 문의 063-277-7947 방화선 창작예술공간 | 주소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3가 51-5 체험문의 010-6608-1790 선자장 방화선 쇼케이스 전시 | 5월24일부터 3개월간. 서울시청 앞 플라자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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