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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텔미 썸딩’내일 개봉

    도심의 한 할인매장 엘리베이터 안.사람들이 한 순간에 공포의 도가니에 빠져든다.검은 비닐봉지에 가득 담긴 무언가가 터지면서 바닥에는 피가 흥건히 괴고 잘려진 몸체는 제멋대로 나뒹군다.이어 엽기적인 토막살인사건이 잇따라 일어난다.하지만 사건을 맡은 조형사(한석규)는 희생자들의 신원조차 파악하지 못한다.이야기의 전기를 마련하는 주인공은 박물관 유물복원실에서일하는 조형사의 애인 수연(심은하).그는 공교롭게도 세 사람의 희생자 모두의 연인이었음이 드러나면서 사건의 열쇠로 떠오른다.조형사는 사건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 수연의 닫혀진 마음을 조금씩 열어나간다.영화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수연은 결국 조형사를 따돌린 채 프랑스행 비행기에 오른다. 장윤현 감독(33)이 2년만에 내놓은 ‘텔 미 썸딩’(13일 개봉)은 선혈낭자,사지절단 등 섬뜩한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이른바 하드고어(hard-gore) 스릴러다.감성 멜로영화 ‘접속’으로 주가를 올린 장감독으로서는 일종의 장르적 모험을 감행한 셈이다.국내에서 스릴러는 아직 비주류장르.뿐만 아니라잔혹하기 짝이 없는 하드고어 영상에는 여전히 정서적 거부감이 강하기 때문이다. ‘텔 미…’는 ‘양들의 침묵’이나 ‘세븐’처럼 엽기적인 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다.그러나 ‘텔 미…’는 이들 두 영화와는 차원을 달리 한다. ‘세븐’이 ‘7대죄악 게임’을 통해 악에 물든 현대사회의 병리적 징후를고발한 영화라면,‘양들의 침묵’은 페미니즘적인 성격이 강한 영화다.이에비해 ‘텔 미…’에는 분명한 영화적 지향점이나 메시지가 없다.뚜렷한 이유나 동기 없이 살인행각을 일삼는 그야말로 ‘묻지마 영화’다.관객은 도무지 동이 닿지 않는 이야기에 대리만족이나 해야 할 판이다.이 영화가 당초에의도한대로 관계 단절속에 사는 현대인의 심리적 공황을 그려내기 위해서는보다 촘촘한 시나리오가 필요했다. ‘텔 미…’는 전통 추리소설에서처럼 사건을 정돈하고 배열하는 대신 관객을 미궁속으로 빠뜨린다.그러나 ‘텔 미…’가 깔아놓은 핏빛 미로는 정교하지 못하고 비약이 심해 독해에 적잖은 부담을 안겨준다.‘텔 미…’가 벌이는지적게임은 논리가 궁하다.내면의 꿈틀거림이 드러나지 않는 주인공의 평면적인 연기 또한 스릴러의 긴박감을 해친다.비극의 중심에서 불과 얼음의이미지를 함께 보여줘야할 심은하는 새치름한 무표정 연기로 일관한다.또 한석규의 변함없이 낮은 톤의 목소리 연기는 강력계 형사 보다는 차라리 백면서생이 더 어울린다. 영화가 반드시 수신교과서일 필요는 없다.‘텔 미…’는 세상을 향해 어줍잖은 설교를 퍼붓거나 도식적인 권선징악을 내세우지 않는다.영화 제목대로‘뭔가 말해주길’ 기대하지만 사건의 핵심인 수연은 끝내 정체를 드러내지않는다.크레딧 타이틀이 오르고나서야 비로소 범인에 대한 추리는 끝난다.‘텔 미…’에서는 악이 선을 이기고 어둠이 빛을 덮는다.감독이 추구하는 폭력의 미학 혹은 잔혹함의 미학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김종면기자 jm
  • ‘작가적 연출자’ 박종원감독 ‘송어’ 주말 개봉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아도 머리를 치받아 자살해버린다는 얼음물고기 송어. 6일 개봉되는 박종원 감독(42)의 새 영화 ‘송어’는 바로 이러한 송어의 결곡한 속성과 인간의 구질구질한 생명력을 대비시킨 ‘심리 스릴러’다.송어의 결벽에 비하면 거짓과 위선을 일삼으며 구명도생(苟命徒生)하는 인간의몰골이란 얼마나 같잖은 것인가.‘송어’가 겨냥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내면에 태연하게 똬리를 틀고 있는 악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다. 영화는 산골에서 송어 양식장을 하며 살아가는 독신남 창현(황인성)에게 다섯명의 도시 손님이 찾아오면서 시작된다.친구인 민수(설경구)·정화(강수연)부부,병관(김세동)·영숙(이항나)부부,그리고 정화의 여동생 세화(이은주). 이들은 모처럼만의 재회를 즐기지만 각각 다른 욕망의 ‘오감도’를 그려나가고,일행 사이엔 어느새 묘한 불안감이 감돈다.옛 애인사이인 창현과 정화는 아직도 연애감정의 흔적이 남아 있음을 확인하고,세화는 창현에게 접근해 삼각관계의 한 축이 된다.그런가하면 순박한 산골소년 태주(김인권)는 세화를 몰래 사랑하고,육욕에 눈먼 영숙은 낯선 사냥꾼에 몸을 맡긴다.흔히 볼수 있는 통속극의 구도다. ‘송어’는 이처럼 그리 새롭지 않은 삽화적 사건들을 나열하고 설명하기에 바쁘다.이렇다할 극적 반전과 긴박감이 없는 만큼 전반적으로 나른하다.모든 크고 작은 일들은 예측가능한 범주안에 놓여 있거나 우연에 기댄다.동어반복 혹은 과잉묘사의 혐의도 짙다.한 예로 태주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악다구니 장면에서는 절제의 미덕이 필요했다.또 사냥꾼들은 왜 막무가내로 거칠게만 그려져야 하는지 최소한 심리적 동기라도 암시했어야 하지않을까.영화는 구멍난 타이어로 강원도에서 서울까지 가고 총상을 입은 병관이 치료도 받지 않고 기적처럼 낫는 데 대해서도 아무런 설명 없이 어물쩍넘어간다.세부묘사는 영화의 큰 틀을 짓는 것 만큼이나 중요하다.리얼리티에 관한한 ‘송어’는 설 땅이 없다. ‘송어’가 강렬한 잔상을 남기지 못하는 데는 등장인물에 대한 성격묘사가 모호한 것도 한 몫 한다.주인공격인 창현은 비루한 세상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살아가는 송어 같은 인물이다.하지만 그는 은자로서의 어떠한 관조적 태도도 반어적 냉소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무색무취한 무룡태 정도로 그려질 뿐이다.배우들의 연기 또한 지나치게 표피적이다.강수연과 황인성의 평면연기는 작품속에 녹아들지 못하고,설경구와 김세동의 연극조 과장연기는 스크린에 어울리지 않는다. ‘송어’에는 엽사(獵師)라는 한자말이 일상어로 등장한다.사냥꾼을 높여부르는 말이 엽사일진대,영화의 주인공들이 사냥꾼 때문에 봉변을 당하면서도 스스로 존대를 붙이는 것은 무슨 경우인가.감독은 영상과 아울러 언어를다루는 종합예술가임을 명심해야 한다. 박종원 감독은 지난 10년동안 ‘구로아리랑’(89년)·‘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92년)·‘영원한 제국’(95년)등 단 3편으로 대표적인 중견감독 반열에 오른 ‘행운아’다.‘작가적 연출자’란 평도 따르는 그에게 과작은 오히려 힘이 될 수 있다.그러나 4년만에나온 ‘송어’는 작품의 완결성면에서 수준 이하다.감독의 감각에는 이미 청태가 낀듯 더이상 새로운 것이 없다.‘송어’에 대해서는 그나마 건강한 주제의식에서 위안을 찾아야 할 것 같다. 김종면기자 jmkim@
  • 주간 드라마 편성 키포인트 정착

    월·화는 정장,수·목은 캐주얼풍. 공중파 방송 주중 드라마에 이같은 편성전략이 만연하고 있다.월·화요일에는 중장년층을 위한 정통문법 드라마를 앉히고 수·목요일에는 젊은층을 겨냥한 미니시리즈로 가볍게 가져가는 게 추세로 굳어지고 있는 것. 이런 작전으로 선제공격을 감행,톡톡히 재미를 본 곳이 SBS.지난해 11월9일부터 올 7월5일까지 ‘은실이’가 월화 마운드를 굳건히 지키는 전후,수목에서 ‘미스터 Q’‘토마토’‘해피투게더’‘퀸’등의 미니시리즈가 잇단 안타를 뿜어냈다. 월화의 SF 스릴러‘고스트’,수목의 신파조 ‘청춘의 덫’같은 예외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SBS는 대체로 위의 공식을 견지,올 가을까지 특히 수목에서 안방의 시선을 독식하는 기염을 토했다. 같은 기간 MBC는 월화에 감각적 미니,수목에 어른용 연속극을 넣었다가 신통치 않은 성과를 거뒀다.월화의 시대극 ‘왕초’,연속극 성향이 강한 ‘마지막 전쟁’,수목의 미니시리즈풍 ‘해바라기’등이 선전했을 뿐이다. 그러다가 최근 SBS에 대한 맞불작전으로 장르를 맞바꾸고부터 시청률이 뜨기시작하는 ‘대목’을 맞고 있다. 월화드라마 ‘국희’가 시청률 40%대를,수목 미니 ‘안녕 내사랑’이 35%대를 넘나들며 정상권을 싹쓸이하고 있는 것. 월화드라마-수목미니의 공식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새로운 업무가 시작돼체감 피로가 어느때보다 높은 주초에는 대부분 중장년층으로 구성된 직장인의 피로감을 달래주고 기분이 좀 가벼워지는 수목에는 젊은애들을 위한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편성전략이 나올 정도이니 드라마 시청률 전쟁이 얼마나 치열한지를역설적으로 엿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성카드란 부차적인 요소일뿐 승부수는 누가 뭐래도 드라마의 흡인력 자체라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손정숙기자
  • 인도네시아의 앞날은

    40여년 만에 처음으로 민주적인 절차로 대통령을 뽑았지만 인도네시아의 앞날은 극히 험난하다.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온 메가와티여사의 낙선은 국민들 사이에 광범위한 불만과 저항을 불러일으켜 향후 정국의 가장 큰 불안요인으로 떠올랐다.지난 97년 5월 수하르토 대통령의 18년 독재를 몰락시킨 데 이어 새로운민주주의 대장정에 들어서려는 인도네시아 민중의 여망은 실현 한발 앞에서좌절되고 말았다. 세계적인 관심 속에 치러진 이날 선거는 겉모양새는 야(野)-야(野)대결구도.그러나 집권 골카르당과 이슬람세력은 결정적인 마지막 순간에 반(反)메가와티 공동 전선구축에 성공,대세를 뒤집었다. 투표 직전까지 후보 지명과 사퇴가 잇따라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메카와티쪽으로 기울던 승세는 새벽 급작스레 후보로 등록한 군소정당인 월성당(CSP)의 우스릴 마헨드라 당수가 투표시작 직전 “와히드에 표를 몰아주자”며 전격 사퇴하면서 반전됐다.각종 여론조사에서 50% 이상을 얻어가며 강력한 대통령후보로 부상한 메가와티 진영에는 긴장과 당혹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후보조차 못낸 집권당이 약체 후보인 와히드를 밀기로 했다는 설은 투표에들어가기 직전 일부 골카르당 의원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골카르의 와히드 선택은 일단 메가와티로 대변되는 민중민주 세력으로 권력을 넘겨주지는 않겠다는 결정에서 나온 차선책이라 할 수 있다. 가장 큰 변수였던 위란토장군과 군부 역시 기득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골카르 및 수하르토의 가족들과 친한 와히드 지지쪽으로 막판 결심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따라서 대통령제하에서 권력기반이 극히 허약한 대통령의 등장으로 인도네시아는 정국혼란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일차적으로 골카르 지지자들과 지분 나누기 정쟁이 벌어질 것이 분명하다.여기다 메가와티의 낙선에분노한 시위가 격화될 경우 군부의 개입 가능성 또한 상존한다. 와히드 후보는 수하르토 통치 18년을 무너뜨린 인도네시아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메가와티여사와 집권 골카르 후보 사이에 선택된 ‘과도기대통령’의 운명을 처음부터 타고난 셈이다.김수정기자 crystal@ * 와히드 당선자는 누구 인도네시아 새대통령으로 선출된 압둘 라흐만 와히드(59) 국민각성당(PKB)당수는 지난 6월 총선에서 당을 인도네시아 제3당으로 도약시킨 인물. ‘구스 두르’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3,000만명의 회원을 지닌 인도네시아 최대의 회교조직 ‘나흐들라툴 울라마(NU)’를 이끌고 있으며민주개혁과 함께 종교 및 민족적 관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때문에 이슬람적 이상을 정책에 반영하려고 애쓰는 한편 동시에 기독교도및 소수 중국계의 인권옹호에도 앞장서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메가와티 민주투쟁당(PDIP) 당수와는 친밀한 친구 내지 조언자로 친분을 유지해온 반면 국민협의회(MPR) 의장이자 이슬람계의 또다른 지도자인 아미엔라이스와는 첨예한 라이벌 사이로 알려져 있다. 이번 대선 레이스에서는 지지자들로부터 중간다리 역할 또는 ‘킹 메이커’로서만 비춰졌지만 막판 뒤집기에 성공,인도네시아 4번째 대통령에 오르게됐다. 그가 본격적으로 부각된 것은 98년 수하르토 전 대통령이 사임한 이후부터. 수하르토에 이어 대권을 물려받은 하비비 대통령이 여전히 실정으로 인도네시아 정국을 불안으로 내몰자 민주개혁 운동의 새로운 인사로서 급부상,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그는 과거 뇌졸중으로 인한 시력장애 후유증을 겪고있는 등 건강에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경옥기자 ok@*재확인된 군부위세 와히드 대통령정부의 앞날을 점치는 데 가장 큰 변수는 여전히 군부다.군의 지지를 받아서 대통령이 됐고 앞으로 군의 지지를 받아야 제대로 국정을 이끌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와히드의 당선은 국민협의회(MPR) 내 군부의원들의 지지와 친군부성향의 골카르당 의원들의 절대적인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집권여당의 대통령후보에서 도중하차한 B J 하비비대통령은 위란토 군참모총장 겸 국방장관을 부통령후보로 지명했으나 위란토가 이를 거부했다.역시집권당 후보가 됐다 취소된 악바르 탄중 골카르당 당수 역시 위란토를 후보로 지명했다. 이들이 위란토에게 매달린 이유는 간단하다.위란토장군과 군부의 지지 없이는 당선도 어렵다고 보았기 때문이다.위란토는 정치적 야심을 좀처럼 내비치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힘의 향배를 저울질하다 막판 와히드의 킹 메이커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인도네시아는 헌법에 군의 정치적 권한행사를 보장한 특이한 나라다.국정최고기관인 국민협의회(MPR) 700명 가운데 38석이 군부대표 몫이다.이들은 임기 5년 동안 군복차림으로 당당하게 국정을 논한다.현재 군의 총병력수는 육해공군과 경찰군을 합쳐 50여만명. 수하르토 통치 32년을 떠받쳐온 것도 군부였고 지난해 5월 수하르토 하야뒤 하비비 정권을 지탱해준 것도 군부였다.따라서 위란토가 하비비의 부통령후보 제의를 거절했을 때 하비비의 정치적 운명은 끝난 것이었다. 위란토장군은 군부 내에서 일단 개혁파로 불린다.64년 육사를 수석졸업한엘리트고 89∼93년 수하르토의 부관을 지내며 승승장구,참모총장에 올랐다. 대중기반도 없는 제3당 후보가 당선됐기 때문에 앞으로 인도네시아 정국에서군부와 위란토장군의 입김은 더 위세를 부릴 게 분명하다. 이기동기자 ye
  • 印尼 大選 이모저모

    [자카르타 AFP AP 연합] 20일 대통령 후보의 잇딴 사퇴와철회끝에 실시된 인도네시아 대통령 선거는 혼미속을 헤매는 인도네시아 정국의 결정판이었다.선거직후에는 군부가 심상찮게 움직이고 패배한 민주투쟁당(PDIP)의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후보의 결과승복 발언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지지자들은 결과에 불만을 품고 거리로 뛰쳐나오면서 유혈충돌의 우려마저 높아지고 있다. 부유층들은 인도네시아를 떠나기에 바빴고 호텔 상가마다 폭동에 대비,바리케이드를 설치하는등 일촉즉발의 위기감마저 감돌았다. ?대통령 선거는 예정 시간을 수 차례 변경한 끝에 이날 10시30분 국민협의회(MPR)의사당의 본회의장에서 시작.아미엔 라이스 MPR의장의 개회 선언에이어 메가와티 후보와 국민각성당의 압둘라흐만 와히드후보가 지명 수락을발표한 뒤 의원들은 사회자의 호명에 따라 한 명씩 나와 단상 옆에 마련된투표소에서 투표. ?선거관리위원회는 참석 의원 690여명의 기명 투표가 오후 1시쯤 별다른 소란없이 끝난 뒤 곧바로 개표 준비에 돌입.흰색 체크무늬 투피스차림의 메가와티 후보는 본회의장 앞에 마련된 후보석에 앉아 담담한 표정을 지었으나투표 결과를 의식한 듯 긴장된 모습이 역력. 메가와티 후보는 자신이 당선되지않으면 선거는 무효라고 주장했던 종전의태도와는 달리 개표직후 선거 결과에 승복한다고 말했다. ?이에앞서 집권 골카르당은 B.J.하비비 대통령 후보의 전격 사퇴이후 악바르 탄중 당의장을 새 후보 지명했다가 철회하는 등 선거전부터 자중지란의낌새가 역력.골카르당은 하비비 대통령이 이날 0시30분(이하 현지시간)새벽MPR 국정보고가 부결된 후 전격 사퇴하자 6시간여뒤인 아침 7시쯤 당수인 악바르 탄중을 새 대통령 후보로 지명. 또 골카르당의 부통령직 제의를 거부했던 위란토 국방장관 겸 군참모총장을 부통령으로 영입한다고 발표.그러나 이날 상오 10시 선거시작 직전 탄중의 후보지명을 철회하는등 갈팡질팡. 이어 골카르당은 다른 회교 정당들과 제4의 후보로 유스릴 이흐자 마헨드라 월성당(月星黨)당수를 성급히 추대했으나 그가 다시 후보 수락을 거부하는 촌극까지 연출 ?한편 하비비 대통령은 사임 기자회견에서 퇴임 후 계획에 대한 질문에 인도네시아에머물 것이라면서 “인권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활동하는 비정부단체를 세울 계획”이라고 표명. ?선거 전날인 19일 밤부터 자카르타 시내에는 여야 정당 후보 지지자들간의 대충돌을 예고하는 조짐들이 속출.호텔 인도네시아와 만다린 오리엔탈 등시내 중심가의 대형호텔 입구에는 모두 바리케이드를 치고 유리문들을 두꺼운 합판으로 막는 작업에 부산한 모습.사히드자야 호텔 역시 철제 바리케이躍? 가설.일부 아파트들은 시위대들의 투석에 대비 1,2층 창문에 합판을 설치. ?자카르타의 상업지역으로 화교상점들이 밀집한 글로독은 지난해 6월 폭동당시의 악몽이 재현될 것을 우려,대부분 상점들이 철시.관공서,기업들도 문을 닫았으며 화교 상인들은 미 달러화 매입에 혈안. ?이날 오전 11시30분쯤 수도 자카르타 중심가인 호텔 인도네시아 분수대 앞에서는 폭탄이 터져 3명이 부상. 수 일전부터 메가와티 후보를 지지하는 학생 수 천여명이 하비비 대통령과 위란토 군총사령관의 퇴진 시위를 벌여 온곳으로 경찰은 분수대 앞에 세워진 화분 속에서 폭발음이 들린 것으로 보아화분내에 폭탄이 숨겨져 있었던 것으로 추정.
  • [굄돌] 앗,나의 실수

    “어? 이거 숙모가 아니라 고모가 맞는 거 아니야?” 제책소에서 막 배달된 신간을 훑어보던 한 직원의 말이다.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아니,또?’.aunt가 문맥상 ‘고모’여야 하는데 ‘숙모’로 번역된 채 제책돼 나온 것이다.이 경우는 다행히 숙모가 책의 앞과 뒷부분에만 나오는 바람에 책 전체를 없애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실수가 어디 그뿐이랴.“사장님,‘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그림동화책 제목)가 페이지 순서가 뒤바뀐 채 서점에 배포되었습니다.그 중의 상당수는 이미 독자 손에 들어갔고요.” ‘아니,또?’.10쇄가 넘게 아무 문제없이 만들어왔던 책이 갑자기 접지 과정에서 실수가 생긴 것이다.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과정마다 있을 수 있는 실수를 20년 가까이 경험해온나로서는 한 권의 책이 표지를 입고 나올 때까지 가슴을 졸이지 않을 수 없다.막 나온 신간을 훑어볼 때면 스릴과 서스펜스로 가득 찬 영화를 보듯 가슴이 두근거린다. 실수는 출판사 내부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다.출판은 대부분의 제작을 외주로 처리하기 때문에출력·인쇄·제책 과정에서 생기는 실수 등 경우수를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다.제작처의 수많은 사람들이 책의 특징을 출판사와 함께 인식하고 바짝 긴장해 정성을 쏟을 때 비로소 흠없는 한 권의 책이탄생할 수 있다.마치 한 송이 꽃이 보이지 않는 뿌리 위에서 활짝 피어나듯. 따라서 어떤 사람이 책을 잘 만드느냐 못 만드느냐 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실수를 미리 알고 얼마나 잘 예방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또한 설령 실수를 범했다하더라도 그 실수를 수정 가능한 단계에서 발견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독자 손에 들어갈 때까지 몰랐던 게 뒤늦게 발견된 뒤의 참담함이란. 누군가 나에게 물은 적이 있다.“일 하면서 제일 괴로울 때가 언제냐고”. 이렇게 대답한 기억이 난다.“사람들의 실수로 독자들의 손길을 느껴보지도못한 채 ‘사산(死産)’된 책을 바라볼 때,그리고 실수를 안은 채 독자의 손에 들어가 구박받는 책을 보았을 때라고”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
  • [데스크시각] 재경부를 위한 변명

    지금 우리 경제가 금융시장의 불안조짐으로 또 한번 위기를 맞지 않느냐는우려가 팽배해 있다.‘11월 금융대란설’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또 대우처리의 지연과 투신사 문제로 야기된 금융시장 혼란의 책임에 대해서도 경제부처 간의 정책혼선과 경제팀의 팀웍부재가 종종 거론된다.그때마다경제부처의 맏형 격인 재정경제부는 단골로,도매금으로 매도를 당하고 있다. 재경부는 그동안 국제통화기금(IMF)체제를 불러일으킨 환란(換亂)의 주범으로 지목을 받아왔다.돌이켜 보면 재경부관료들은 시쳇말로 ‘엄청나게 깨지면서’ 여기까지 왔다.과거 모피아(MOFIA,옛 재무부의 영문 이니셜인 MOF와MAFIA의 합성어)로 불리면서 화려했던 시절에 비하면 절로 장탄식이 나올 법도 하다. 우리는 이쯤해서 IMF체제 이후 할말이 있어도 못해온 재경부에 변명할 기회를 주는 것이 옳을 듯 싶다.시야를 넓혀서 진정한 문제점을 짚어보고 대안을모색해야 할 차례라는 얘기다. 옛 경제기획원과 재정경제원은 장관이 부총리를 겸임,다른 부처들을 효과적으로 통솔했었다.지금 재경부는 수석 경제부처이면서도 다른 부처에 대해 효과적인 통제수단이 없다.구조적으로 맏형의 위상을 상실한 것이다. 말못할 고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경제운용상 현 금융감독위원장이나 공정거래위원장,기획예산처장관등 다른 부처장관들은 나름대로 권한이 막강하고 개성들도 강하다.이들을 견제하고 업무를 총괄할 아무런 제도적 장치가없다. 재경부는 과거 예산 금융 세제라는 ‘경제 3권(權)’을 한손에 넣고 영화를 누리다가 IMF체제로 최후를 맞은 꼴이다.그들이 선후배 간에 서로 끝까지봐주는 모피아식 유대관계에 푹 빠졌던 것은 잘못이다.미세한 문제이지만 현 강봉균(康奉均)장관이 기획원 출신들을 중용한 반면 재무부출신들을 홀대,금융정책을 실기(失機)했다는 일각의 주장이 맞다손 치자.모든 것을 양보하더라도 현 재경부는 ‘머리카락 잘린 삼손’의 모습과 흡사하다.불행하게도현재대로라면 재경부는 앞으로도 비난받을 소지는 많지만 잘했다는 평가를받기가 어렵게 돼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경제부처들을 이끌고 추스리려면 재경부장관에게 맏형의 권위를 인정하고 동생들을 다스릴 수단을 줘야 한다.다스리는 과정에서당근을 던져주든,채찍을 휘두르든 그것은 뭔가 확실한 수단을 재경부장관에게 준 다음 그가 알아서 할 일이다. 그러고도 일사불란한 경제팀 운영이 안되거나 효율적인 정책집행을 못한다면 임명권자는 그때가서 인사권을 행사하면 될 것이다. 정부조직법을 고쳐서 재경부장관을 부총리로 보(補)하든지,특단의 조치를통해 경제총수로서의 권한을 확보해 주지 않는다면 다음 재경부장관도 맏형으로서의 구실을 하지 못하고 경제정책은 구심점이 없이 현재처럼 겉돌 공산이 매우 크다. 그럼에도 경제팀의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현재 기능이 대폭 축소된 재경부의 존재의의를 원점부터 따져보는등 경제행정조직의 개편방안을 신중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 경제가 IMF체제의 극복에 어느 정도 성공한 것은 사실이다.여기에는어쨌든 경제관료들의 역할이 컸다.그렇다면 그들에게 비난과 질책보다는 애정어린 박수와 격려를 한번 보내보자.경제정책의 수립과 집행이 재경부를중심으로 이뤄지는 데다,재경부에 여전히 우리 경제를 맡길 수 밖에 없는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있는 까닭이다. 정종석 경제과학팀장elton@
  • 한국 名감독 6인 집중조명

    케이블 예술·영화TV(채널 37)‘영화노트’에서는 우리 영화감독들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한국의 영화작가 6인’을 22일부터 내달 11일까지 밤12시에방송한다. 출판과 영상에 걸쳐 한국 영화감독들을 작가론 입장에서 다뤄보는 적지않은자리들이 있어왔지만 이번 기획은 충무로의 허리를 만든 60∼70년대 작가들에 포커스를 맞췄다. 22일 테이프를 끊는 이명세가 연배로는 시리즈의 마지노선격.대표적인 스타일리스트로 지목돼온 그의 작품세계를 ‘현실로부터 이탈하는 몽환성’으로요약,이 테마가 집약적으로 나타난 최근의 흥행작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집중 분석한다. 28일은 장르적으로는 스릴러와 멜로의 혼용,정서적으로는 중산층에 대한 뒤얽힌 애증 등으로 요약되는 한국 컬트의 기수 김기영편. 29일엔 월북작가로 유명한 신상옥을 문예영화,코미디,멜로,사극,스펙타클 등을 자유자재로 넘나든 장인주의 관점에서 조명하고 11월4일은 시대정신을 극명하게 직조해낸 ‘오발탄’으로 이름을 새긴 유현목 편을 마련한다. 11월5일의 하길종 편에선 75년작‘바보들의 행진’을 통해 청년문화를 유포한 그의 세계를 전위적인 ‘화분’‘수절’등 앞선 뿌리에서부터 더듬어본다.마지막날인 11일엔 가장 대중적인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불의 딸’‘서편제’ 등을 감상할수 있다.
  • [새 영화]’당신의 다리사이’

    새로운 천년의 길목에 서 있는 지금,사람들은 악마주의니 종말론이니 하는여러 세기말 증후군을 이야기한다.또 한편에선 섹스중독증이라할 만큼 치명적인 성(性)으로 치닫는다.16일 개봉하는 스페인 영화 ‘당신의 다리사이’는 바로 이러한 성중독증의 음습한 세계를 다룬 섹스 스릴러다. 섹스 스릴러 하면 먼저 떠오르는 영화가 ‘원초적 본능’.‘원초적 본능’이 엽기적인 연쇄살인을 추적해가는 기둥 줄거리 속에 섹스 코드가 짙게 깔려 있는 영화라면,‘당신의 다리사이’는 섹스중독에서 오는 성적 불완전성과 정서적 불안감,금지된 관계의 긴장을 살리기 위해 스릴러 기법을 사용한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섹스중독증 치료 모임에서 만난 시나리오 작가 하비에르(하비에르바뎀)와 유부녀 미란다(빅토리아 아브릴)간의 욕망의 상관관계에 초점을 맞춘다.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는가.두 사람은 갖은 성적 상상력과 행위의극단까지 나아간다.연출은 ‘보카 보카’로 국내에 알려진 스페인의 중견 감독 마누엘 고메즈 페레이라.그는 “우리의 의식 속에서 정상과 과도함의 경계는 어디인가”라고 묻고 있을 뿐,섹스중독에 대한 가치판단은 내리지 않는다.죄의식을 느끼면서도 또다시 성적 악순환에 빠져드는 섹스중독증이 병이냐 아니냐는 여전히 논란거리다.정신과 의사들은 우리나라에도 5%정도의 섹스중독 인구가 있다고 말한다.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가 알코올 중독자들에게 뼈아픈 일침을 안겨주었듯이,‘당신의 다리사이’ 또한 이들 섹스중독자들에게는 하나의 반면교사가 될 법하다. [김종면기자]
  • 영화계에도 ‘퓨전 물결’‘텔미썸딩’ ‘송어’등 곧 개봉

    문화 전 분야에 퓨전(fusion)현상이 확산되고 있다.퓨전은 일반적으로 ‘퓨전 재즈’를 일컫는 말.하지만 지금은 문학·미술·음악·요리에 이르기까지 ‘장르의 구분 없이 융합되는 현상’ 자체를 폭넓게 퓨전이라고 부른다.퓨전은 이제 20세기말 문화의 특징을 설명해 주는 핵심어가 된 것이다. 이러한 퓨전현상이 한국영화에도 뚜렷해지고 있다.‘은행나무 침대’는 멜로와 판타지를 혼합한 영화이며,‘조용한 가족’은 코미디와 공포를 섞은 영화로 ‘코믹잔혹극’이란 신조어를 낳았다.또 ‘링’은 미스터리와 공포 요소를 강조하면서 ‘퓨전 미스터리 공포영화’란 광고를 내걸기도 했다.특히올 하반기의 경우 한국영화에서의 퓨전현상은 스릴러와 멜로의 혼합 양상을띠고 있어 색다른 느낌을 준다.11월 13일 개봉될 장윤현 감독의 ’텔미 썸딩’,12월초 개봉예정인 정지우 감독의 ‘해피 엔드’,올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작인 박종원 감독의 ‘송어’ 등이 그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텔미 썸딩’은 한 여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엽기적인 연쇄살인 사건을다룬영화.스릴러와 함께 하드 고어(hard-gore)를 내세우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진한 선지피라는 뜻의 하드 고어는 사지절단이나 두부손상,장기파열 등을 그대로 보여주는 자극성 강한 공포영화의 한 요소다.그러나 하드 고어를 시각적 양식으로 채택한 이 영화는 ‘공포’보다는 스릴러 장르의 특징적 정서인 ‘전율’을 강조한다.여기에 남녀 주인공(한석규·심은하)의 멜로가 가세한다.이는 영화 ‘쉬리’가 외형상 분단소재와 액션·첩보 스타일을 내세우고 이야기의 힘은 멜로에서 취했던 것과 비슷한 전략이다.영화 ‘접속’으로 주가를 높인 장윤현 감독은 “멜로와 스릴러는 흔히 상반되는 장르로간주되지만 집단보다는 개인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은 같다”며 “‘텔미 썸딩’을 통해 사회적인 범죄 안에 놓여 있는 개인의 갈등을 다루고자 했다”고 밝힌다. ‘텔미 썸딩’이 전형적인 범죄 스릴러 장르의 형식을 따르면서 멜로 요소를 가미한 영화라면,‘해피 엔드’는 전형적인 멜로 소재를 스릴러 양식으로 풀어낸 영화라는 점에서 구분된다.‘해피 엔드’는불륜에 빠진 여자(전도연)와 그녀를 사랑하는 정부(주진모),그리고 실직한 남편(최민식) 사이의 애정과 집착,살의를 섬세하고 솔직하게 그린 일종의 치정극이다.그러나 이 영화는 삼각 치정이라는 소재를 낭만적이거나 감상적으로 포장하는 기존의 멜로영화적 기법을 따르지 않는다.대신 등장인물의 불안하고 혼란스런 심리를따라 팽팽한 긴장 속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스릴러적인 구성인 셈이다.이러한 영화적 틀을 통해 감독은 의지할 만한 가치관이 부재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불안 심리를 그린다. ‘송어’는 박종원 감독이 ‘영원한 제국’ 이후 4년만에 내놓은 야심작.산 속의 송어양식장이라는 고립된 공간을 배경으로 인간의 추악한 본성과 위선을 까발린다.스트레스를 받으면 자살을 한다는 송어의 투명한 삶이 망각의언덕에 기대 구차한 목숨을 이어가는 인간의 그것과 대비된다.이 영화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탄탄한 드라마와 ‘영원한 제국’의 스릴러가공존한다.박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제작과 감독을 한 첫 작품이다. 전통적 흥행 장르인 멜로와,혼란과 불안이라는 세기말 정서를 적절히 반영해주는 스릴러 장르의 만남.이같은 시도의 퓨전영화들이 주력 장르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종면기자 jmkim@
  • [김삼웅 칼럼] 율곡의 개혁론과 지식인

    흔히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고 한다.한국사에서 개혁이 거의 성공하지 못한 데서도 그 어려움은 입증된다.조선왕조나 대한제국에서 몇차례 시도된 개혁이 성공했다면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조선시대 대표적 개혁론자는 율곡(栗谷)이다.그는 선조에게 올린 ‘성학집요’(聖學輯要)에서 역사의 변천과 시무(始務)를 창업기·수성기·경장기로나누면서 시대의 상황판단과 대응책을 제시했다.이것은 토인비가 ‘역사의연구’에서 문명의 발생·성장·쇠퇴·소멸 4단계를 제시한 것과 비슷하다. 율곡은 “시무는 어느 때나 한결같지 않고 각각 마땅한 것이 있으니,요약하면 창업한다는 것과 부조(父祖)의 업을 지키는 것과 개혁한다는 것 세 가지뿐”이라 전제하고 “창업의 도는 요·순·탕·무의 덕으로 개혁할 세태를당하여야 하되 천리(天理)와 인사에 순응하지 않으면 아니되기 때문에 이는더 논의할 것도 없다”고 주장한다. 개혁과 관련해서는 “개혁한다는 것은 나라가 극성하면 나라가 미약해지고법이 오래되면 폐가 생기고 마음이 안일에 젖으면 고루한 것이 인습이 되고백가지 제도가 해이해지면 나날이 어긋나서 나라를 다스릴 수 없기 때문에현명한 임금과 현철한 신하가 개연히 일어나 근본을 붙들어 혼탁한 것을 다시 일으키고 묵은 인습을 깨끗이 씻어 숙폐를 개혁해야 한다”고 밝혔다. 율곡은 특히 수성과 개혁의 시점을 제대로 살필 것을 제시한다.“마땅히 부조의 업을 지키기만 해야 할 때인데 개혁에 힘을 쓴다면,이것은 병도 없는데 약을 먹는 것과 같아서 도리어 병을 얻게 되고 마땅히 개혁해야 할 때인데준수에 힘을 쓴다면 이것은 병에 걸렸는데 약을 물리치는 것과 같아 누워서죽음을 기다리는 격이다”라고 지적한다. 일천한 건국사에서 격동과 혼란이 거듭되는 동안 창업·수성기가 지나고 경장기로 접어들었다.시기별로 보면 이승만·박정희 정부의 창업기,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부가 수성기라면 김대중 정부는 경장기라 할 수 있다. 율곡의 주장대로 ‘마땅히 개혁해야’할 때에 준수에 힘을 쓴다면 어찌될까.DJ정부가 개혁의 구호아래 추진한 금융·기업·공공·노동부문 등 4대개혁과재벌개혁을 제외한 정치·교육·언론개혁 등 산적한 개혁과제가 소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개혁은 ‘합법’의 울타리 안에서 추진하기 때문에 쉽지가 않다.시간이 걸리고 설득과 동참의 과정에서 잡음과 저항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혁명적 방법은 ‘쇠뿔을 고치려다 소를 죽이게’된다. 더디더라도 개혁의 방법밖에는 달리 경장의 길이 없다.조선왕조는 율곡과다산(茶山) 등의 개혁론을 수용하지 못해 국가위기로 이어지고 대한제국도동학의 폐정개혁이나 갑오경장 등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해 나라를 송두리째일제에 빼앗겼다.“해가 묵어서 재목이 썩어 무너지려고 하는데 대목(大木)을 만나지 못하면 개수할 수 없기 때문에 집주인은 천리길이라도 멀다하지않고 가서 대목을 구하겠습니까.아니면 대목을 얻지 못한다는 핑계로 앉아서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겠습니까?” 율곡의 질문이다. 개혁의 ‘대목’은 지식인이어야 한다.관료나 정치인은 이해관계나 정파의식 그리고 기득권 때문에 변화와 개혁에 적극적이기 어렵다.이해·정파·기득권에서 초월하는 위치의 지식인들이 ‘대목’의 역할을 해야 한다. 독일 철학자 게오르크 짐멜은 지식인(철학자)의 종류를 ①만물의 심장 고동을 들을 수 있는 사람 ②인간의 심장만을 들을 수 있는 사람 ③개념의 심장고동만을 듣는 사람 ④책의 심장 고동밖에 듣지 못하는 사람으로 분류했다. 우리 지식인들이 ‘역사의 심장 고동’을 듣는 지식인으로서 경장과 개혁의 전도사가 돼야 한다.“교수들은 보장된 교수직을 타고 앉아 ‘시체해부’에 매달려 있거나,외국철학의 특파원 노릇을 하거나,끼리끼리 모여 ‘학회놀이’로 어깨를 부풀리면서 우리 사회의 이방인처럼 살아가”(김광수 교수)서는 안된다.조선왕조나 대한제국시대 지식인들도 그러다가 국난과 국망기를 맞게 됐다. 4·19나 6월항쟁 같은 혁명기에 지식인이 앞장섰듯이 경장과 개혁과 변화의 시대에도 개혁의 바른 방향을 설정하고 여론을 형성하고 반개혁을 설득하면서 참여해야 한다.그리하여 영광스러운 새 천년을 설계했으면 한다./주필
  • 金대통령, 신진인사 영입 내년초 거대신당 출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신당에 좋은 인물이 많이 모이고 있고 자민련내에서도 통합 논의가 상당히 진전되고 있다”고 전하고 “연말까지는 국민회의와의 통합 문제를 매듭지어 내년초에는 국민이 ‘저만하면 됐다’는 거대신당을 만들어 국민의 신임을 얻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7일 오후 방영된 i-TV(인천방송)와의 회견에서 “여권은 어떤방법이든지 대동단결하고 새로운 인사를 영입,안정이 되어야 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같은 언급은 국민회의가 추진하고 있는 신당에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형식의 합당방침을 시사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김대통령은 또 정치개혁과 관련,“이번 정기국회내에 반드시 정치개혁입법을 완성할 것”이라면서 “특히 지역적으로 갈려있는 우리의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전국정당이 반드시 필요하며,이를 위해선 여,야 모두 전국적으로 고르게 국회의원들을 낼 수 있는 제도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치인들이 부정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16대 총선에서는 선거공영제를 철저히 실시하고 돈 선거에 대해선 몇 사람이 자격을 상실하는 한이 있더라도 철저히 다스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재벌개혁에 대한 질문에 “재벌기업들도 이제는 재벌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따로 따로 분산해 운영,경쟁력 있는 기업은 남고 그렇지 않은기업은 퇴출돼야 한다”면서 “대우그룹 문제는 연내에 매듭을 짓겠다”고답변했다.또 “전 정권에서는 기아자동차 문제를 3개월 끌다가 외환위기를맞았지만,현 정부는 기아의 10배쯤 되는 대우그룹을 안정적으로 신속하게 정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대통령은 “나는 북한도 우리의 포용정책을 이해하고 있으며 한발짝 한발짝 변화가 올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내 임기중에 통일은 안되더라도 남북간 냉전을 끝내고 북한을 부산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유롭게 다니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대통령은 대북경협에 대한 질문에 대해,“금강산 관광으로 2억달러가 북한에 들어갔다”며 “특히 많은 사람이 북한을 왕래하면서 그중 일부가 북한에 비공식적으로 여러가지 기부하는 것도정부는 다 이해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한가위 극장가 공포·스릴러물 강세

    추석 극장가는 전통적으로 액션영화가 강세였다.하지만 올해는 공포·스릴러물이 주목받고 있다.브루스 윌리스가 액션스타 이미지를 벗고 지적인 의사로 변신한 ‘식스 센스’(The Sixth Sense,감독 M.나이트 샤말란)·첨단 SFX(특수효과)로 중무장한 ‘더 헌팅’(감독 얀 드봉)·용의자와 수사관의 위험한 사랑을 다룬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감독 존 맥티어넌)가 화제의 영화다. ‘식스 센스’는 여덟살짜리 소년 콜(헤일리 조엘 오스먼트)과 이 소년을 치료하는 아동심리학자 맬콤 크로우(브루스 윌리스)의 상담을 통해 밝혀지는죽음의 비밀을 다룬 작품.원제목 육감은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의 오감이 아닌 영적인 제6의 감각을 뜻한다.영화 ‘오멘’류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공포가 압권이다.‘식스 센스’는 개봉(18일)첫 주말 이틀간 8만5,000명의관객을 동원,올 추석 최고의 흥행을 예고하고 있다. ‘더 헌팅’은 셜리 잭슨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유령이 나온다는 대저택에 불면증 환자 3명과 이들을 대상으로 인간의 공포감을 연구하려는 심리학자가 보내는 하룻밤 이야기다.영화의 무대는 할리우드의 첨단 기술로 만든 유령의 집 ‘힐 하우스’.드라큘라 백작의 트란실바니아성을 연상케 하는고딕식 건물이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낸다.미국 인디영화계 최고의 배우로 꼽히는 릴리 테일러와 ‘인트랩먼트’의 캐서린 제타 존스,‘스타워즈’의 리암 니슨 등이 연기호흡을 맞췄다.‘식스 센스’가 사이코 스릴러라면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는 로맨틱 스릴러다.억만장자가 재미로 모네의 그림을 훔쳤다가 보험수사관과 사랑에 빠진다는 줄거리.68년 스티브 맥퀸과 페이 더너웨이가 출연한 원작을 리메이크했다.배우 겸 영화제작자 피어스 브로스넌이도둑 토마스 크라운으로,‘리셀 웨폰 3·4’의 르네 루소가 수사관 캐서린배닝으로 나온다. 김종면기자 jmkim@
  • 태백 모터스포츠타운 건립

    스릴과 박진감이 넘치는 모터스포츠 종합타운이 강원 태백시에 건립된다. 태백시는 9일 태백시 구문소동 축산단지 일대 시유지 14만여평을 빠른 시일 내에 모터스포츠단지로 변경,한국모터사이클 연맹(KMF) 측에 매각하기로 했다. KMF와 한길그룹은 이 자리에 사업비 1,860억원을 들여 오는 2002년까지 모터스포츠 경주장과 종합타운을 건설하기로 했다. 사업은 시가 용도를 변경하면 탄광지역 종합개발에 따른 민자유치사업자 지정을 받아 부지를 매입,본격 추진하게 된다. 모터스포츠타운은 사이클자동차와 오토바이 경주 외에 관광객들이 즐길 수있도록 모터놀이시설과 수상오토바이 등 오토피아와 호텔 스포츠시설을 갖춘 리조트 교통교육센터 국제회의실로 구분돼 단계적으로 건립된다. 지난해 이미 5회에 걸쳐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펼쳐 지역주민과 관광객들에게 각광을 받은 모터스포츠 경주대회는 앞으로 종합타운이 완공되면 더욱 인기를 끌 것으로 보인다. 태백시 관계자는 “모터스포츠타운이 건립되면 정선의 카지노와 함께 탄광지역 경제를 회생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태백 조한종기자 hancho@
  • 한원영씨 8·15광복이후 신문소설연구서 펴내

    신문소설의 재미는 혀끝으로 핥아서 얻어지는 가볍고 얕은 맛에 있고,문예지소설은 어금니로 씹어서 얻어지는 무겁고 깊은 맛에 있다고들 한다.부정하는 사람도 많지만 다양한 층을 독자로 하는 특성상 얼마간의 통속성을 인정하는 데서 나온 말들일 것이다.최근 나온 한원영의 ‘한국현대 신문연재소설연구’(국학자료원)를 읽고 있노라면 이런 얘기들을 어느 정도는 공감할 수있게 된다.이 책은 8·15 광복 이후 신문소설을 다룬 본격 연구서지만,여기서 언급한 신문소설사(史)의 에피소드들도 그냥 지나쳐버리기에는 아깝다. 현존하는 중앙일간지로 해방 이후 처음 소설을 연재한 것은 대한매일의 전신인 서울신문이다.46년 5월15·16일 이틀 동안 안회남의 ‘봄(紅桃花이야기)’을 나눠 실었다. 신문소설사에서 가장 큰 스캔들을 남긴 것도 54년 정비석의 ‘자유부인’을 실은 서울신문이다.전후의 방종과 퇴폐상을 묘사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대학교수를 모독했다”는 황산덕 서울대교수와의 공개 설전으로 장안의 화제를 모았다.‘자유부인’논쟁은 또산업경제신문이 4월1일자에 사회면톱으로 “황교수와 정씨가 다방에서 격투를 벌여 정씨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만우절 특집’기사를 싣는 해프닝으로 이어졌다. 62∼63년 조선일보에 연재된 박영준의 ‘결혼학교’는 주인공을 영화계의스타 네사람으로 모델을 삼았다.문정숙과 신성일(현재 이름은 姜申星一)·엄앵란·김향이가 그들이었다. 홍성유의 데뷔작으로 58년 한국일보에 연재된 ‘비극은 없다’도 삽화를 맡은 우경희 화백이 여주인공의 얼굴을 인기배우인 김지미를 모델로 삼아 화제가 됐다. 손창섭은 68년 동아일보에 ‘인간공장’을 연재키로 하고 초고까지 만들었으나,허겁지겁 ‘길’을 대신 내보내야 했다.‘인간공장’에서 중학교 입시제도가 가져다주는 폐단을 그리려고 했으나 연재에 들어가기 직전 중학입시제도가 폐지됐기 때문이다. 박용구가 63∼65년 경향신문에 연재한 ‘계룡산’은 연약한 여인들을 색욕의 제물로 삼는 사이비 교주 이야기가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검찰에입건되는 등 처음으로 외설시비를 불러일으켰다.중앙일보는 95년 정신과의사 김정일의 메디컬 사이코 스릴러 ‘미로찾기’를 싣는 실험을 하기도 했다. 가장 오래 연재된 신문소설은 69∼77년 조선일보에 실린 월탄 박종화의 ‘세종대왕’으로 2,456회다.이어 황석영의 ‘장길산’이 74∼84년에 걸쳐 한국일보에 2,092회를 실어 뒤를 잇는다.월탄은 54∼57년 ‘임진왜란’을 서울신문과 조선일보에 동시에 연재하는 기록도 남겼다. 물론 신문소설의 개념을 이렇듯 사소한 에피소드만으로 파악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한국문단에서 신문은 아직까지도 소설,특히 장편소설의 가장 중요한 발표창구다.신문을 통해 발표되어 문학사에 길이남을 작품들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게다가 종합일간지의 경우 최근에는 통속화 경향도전반적으로 개선되고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서동철기자 dcsuh@
  • 현상과 전망 21세기 미술(3회)

    과학기술과 통신의 발달은 새로운 매체의 예술을 가능하게 한다.과거에는상상도 하지 못했던 매체들이 실제로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사진이 예술의 커다란 영역을 차지하고 있으며,백남준은 비디오를 어엿한 예술의 한 장르로 확립시켰다.컴퓨터의 생활화는 웹 디자인과 컴퓨터 아트의발전을 가져왔으며,레이저와 프로젝터 등 첨단과학기술 또한 예술의 새로운장르에 응용되고 있다. 이들 각 매체는 독특한 메시지를 전달한다.이렇게 최신 첨단장비를 활용,관람객의 작동에 의해 선택되고 조절되는 인터액티브 아트(Interactive Art),그리고 가상의 현실을 느끼게 하는 빛과 이미지와 소리가 결합된 예술을 멀티미디어 아트라고 한다. 이처럼 기존의 미술 개념과는 구분되는 새로운 멀티미디어 아트만을 다루는 곳이 있다.독일의 칼스루에에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미디어 센터 ZKM이 그 대표적인 예다.이곳은 88년 칼스루에시(市)로부터 750억원의 지원을 받아 97년 10월 개관됐다.1차세계대전때의 무기공장을 개조해 만든,예술과 기술이결합된이 첨단 미디어 센터는 미디어 미술관과 미디어 도서관,미디어 극장,연구소 등으로 이뤄져 있다.여기에 첨단을 걷는 실험적인 작품들이 관람객들과의 조응속에 작동되며 전시돼 있다.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체험하게 하는 신기한 곳이다. 호주출신으로 현재 칼스루에에서 작업하고 있는 제프리 쇼의 ‘문자의 도시(The Legible City)’는 스릴과 긴장을 느끼게 하는 가상현실 작품이다.첨단 컴퓨터 심상(心象)방법을 응용한 이 작품은 원래 지난 88년 조종간에 의해상호 작동되는 철골구조 그래픽이 그 원형이었다.누구든 ‘문자의 도시’의자전거 페달을 밟으면 가까이 다가오는 건물처럼 느껴지는 3차원의 문자 숲을 질주하게 된다.인터액티브 혹은 멀티미디어 아트의 묘미는 바로 이러한신비한 가상현실의 느낌을 경험하게 한다는 데 있다. 이외에 소머러와 미뇽뇨의 만지면 자라나는 식물들,스코트의 신체의 여러기관을 이용한 작품,가이슬러의 단순히 반복되는 외침 등의 작품이 전시돼있으며,음악·건축·영상·컴퓨터 등이 최첨단 장비와 기술과 결합돼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창조하고 있다. 멀티미디어 아트는 이미 국제적인 여러 행사와 주요 미술관의 전시에 중요한 표현 매체로 인정받고 있다.미국 보스톤의 MIT에는 미디어 랩이,오스트리아 북부 린츠에는 AEC가,일본에는 일본 최대의 통신회사 NTT에 의해 동경에설립된 ICC가,교토에는 ATR이 실험적인 작가들에게 고가의 첨단장비와 기술을 제공,예술가들이 무한한 창의력을 발휘하도록 지원해주고 있다. 실제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와 개념에 대한 탐구는 새로운 ‘미래형’ 예술의 가능성을 열어준다.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한 예술은 새로운 세기의 문화의 상징으로,전세계를 네트워크로 구성하는 또다른 예술형태를 창조해내고 있다.
  • [기고] 재벌의 금융지배 대책

    지난달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재벌의 제2금융권 지배강화를 우려,재벌개혁 차원에서 이를 개혁하겠다고 천명했다. 7월10일자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한국 특집’에서 오만한 재벌들을 가장잘 다스릴 수 있는 세력은 김 대통령과 그의 관료가 아니라 바로 한국의 자본시장이라고 주장했다.시장에 맡겨 경제적 이익을 추구케만 한다면 대출 기관과 투자자는 조만간 재벌 규모를 축소시킨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시장은 절대로 그런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며,오히려 정반대를 결과한다.왜냐하면 시장세력이 자유롭게 작용할 때 반드시 우승열패,즉 강자만 살아남게 한다는 것이 자본주의 200년의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이다.우리나라 금융 현실을 보더라도 97년 3월에 비해 99년 3월 현재 5대 그룹의 제2금융권 자산 규모가 22.5%에서 34.7%로,수신 규모는 4.8%에서 13.4%로,전체 금융권 자산 비중은 8.1%에서 14.6%로 커진 것이 이를 증명한다.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재벌의 제2금융권 지배를 막기 위해 공정위,금감위,금감원을 총동원하여 다음과 같은 3단계 조처를 취하기로 했다고 한다. 1단계 조처는 계열사 부당지원 행위를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이는 적절한조처지만 시행에 어려움이 예상된다.즉 고의적 부당지원인지,이윤추구 행위의 우발적 결과인지 명확히 구별하기 어렵다. 2단계 조처인 일반주식형 펀드에 대한 규제강화는 원칙적으로 옳지 않다.시장경제와 민주주의원리를 관철하려면 정부는 규제자 기능을 필요최소한으로줄이고 심판기능,즉 공사(公私) 대소(大小)의 모든 경제주체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공정한 행위준칙 마련에 더 역점을 두어야 한다.단 이 경우 거대기업에 불리하고 중소기업에 다소 유리한 규칙을 마련한다는 것은 마치 스포츠에서 약자에게 핸디캡을 주는 것처럼 결코 불공정한 것이 아니다.물론 핸디캡크기는 공정해야 한다. 3단계로 소유·경영을 분리해 5대 그룹이 금융기관 운영에서 손떼게 한다는 것은 원칙적으로는 옳다.그러나 원리적으로 소유·경영이 모든 거대기업에서 분리된다면 재벌정책으로서 소유·경영분리 강제는 필요없어진다.정부는원론적 처방에 더욱 충실해야 한다. 소유·경영분리에는 규제를 통한 직접통제보다는 제도,특히 소득·상속 등세제를 통한 간접통제적 촉진책이 더 유효하다.세제·세정만 엄정하다면 다음과 같은 추세에 비춰 소유·경영분리는 자연히 실현될 수 있다. 한국경제의 빠른 성장,한국 사회의 빠른 변모를 감안하면 1세대 이내,빠르면 10∼20년 안에 우리도 지식사회화할 수 있다.지식사회가 되면 소유는 더이상 경영을 위한 토대가 못되고 지식이 그 토대가 된다.그렇다면 포드가 40년대에 쓰라린 경험을 했고 하버드대학 갈브레이스 교수가 60년대에 예견했던 대로 앞으로 초거대기업일수록 경영=결정권 행사는 소유 아닌 지식,갈브레이스 교수가 말하는 기술집단으로 옮겨간다. 문어발식 경영도 상속 과정에서 자동 해결된다.한국재벌 실례를 보더라도장자 이외의 상속인은 문어발 중 하나만 가지고 독립한다.창업 1세경영에서3세경영까지만가도 문어발식 소유는 없어지고 한치 건너 두치라고 창업 1세때의 돈독한 관계,강력한 응집력은 약화된다. 결국 한국 재벌문제는 이코노미스트지 주장과는달리 시장이 아니라 시간이무리없이 해결해준다.정책당국은 시간 단축에 역점을 두어야지 경제 외적 강제를 해서는 안된다.당장 은행자본과 산업자본을 분리하여 금융시장에서 재벌을 추방하면 은행자본은 영세화하여 그렇지 않아도 취약한 한국금융산업은국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게 된다.지금은 폐혜만 막도록 최대한의 공정하고 엄격한 행위준칙 마련 및 그 어김없는 집행에 역점을 두고 규제는 최소화해야 한다. [林 鍾 哲 서울대 명예교수·경제학]
  • 부천영화제 내일 개막

    ‘사랑 환상 모험’을 주제로 내건 부천판타스틱영화제가 16∼24일 부천일대에서 열린다. 장편 56편 단편 39편등 모두 29개국의 102편이 부천시민회관,부천시청,복사골문화센터 등에서 상영된다.상영영화는 대부분 SF 공포 스릴러 등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개막작은 컴퓨터게임을 소재로 한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엑시스텐즈’.크로넨버그 감독은 ‘플라이’ ‘비디오드롬’등을 만들었고 올해 프랑스 칸영화제 심사위원장을 지낸 거장이다. 경쟁부문인 부천초이스에는 히치콕 스타일의 스릴러인 ‘당신의 다리사이’,올해 칸영화제 청년상 수상작인 ‘블레어 위치’,‘라쇼몽’에서 착안한 미스터리 ‘베이비’,저예산SF ‘큐브’,스티븐 킹 원작의 SF호러 ‘프로즌’,‘에일리언’과 ‘X파일’을 합친 듯한 ‘프로제니’,미래를 다룬 판타지 ‘슬립워커’,공포스런 버스투어를 그린 ‘시암선셋’등 8개 작품이 올랐다. 비경쟁부문은 ‘월드판타스틱시네마’ ‘판타스틱단편걸작선’ ‘한국영화특별전’ ‘뉴질랜드판타스틱회고전’ 등 4개부문으로 나뉘어 있다.‘월드…’부문에는 ‘택시드라이버’의 작가 폴 슈레이더가 연출한 ‘어플릭션’과일본판 ‘여고괴담’인 ‘하나토’ 등 27편이 선을 보인다.‘한국영화…’부문에는 ‘간첩 리철진’ ‘노랑머리’ 등 9편이 올랐다. 폐막일인 24일까지 매일 낮 12시30분쯤 서울시청앞 대한매일 앞에서 무료셔틀버스가 한차례 운행한다.입장료는 5,000원이며 영화가 끝난 뒤 이어지는 록밴드 공연인 시네락나이트의 참가비는 1만원이다.인터넷(www.ticketlink. co.kr)에서 예매할 수 있다.(02)539-0303박재범기자
  • 매주 수요일은 페미니즘 영화 보는날

    연말까지 매주 수요일 저녁 서울 종로구 혜화동 혜화여고 맞은편 카페 ‘파라문의 정원’을 찾아가면 갖가지 페미니즘 영화를 보고 토론을 나눌 수 있다. 해마다 여성영화제를 개최하는 여성문화예술기획이 마련한 ‘수요 시네마’가 열리는 것.이 행사가 처음 시작된 지난 7일 오후 7시30분 이 곳에는 많은관객들이 몰렸다. 첫 상영작은 샐리 포터 감독의 79년작 ‘스릴러’.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을 페미니스트적 시각에서 재조명했다. 다음 작품은 14일 ‘침묵에 대한 의문’.마를렌 고리스 감독의 82년 작으로 3명의 여성이 한 남성을 살해한 이유를 캔다.또 21일에는 제인 캠피온의 ‘피아노’가,28일에는 샹탈 액커맨의 ‘나,너,그,그녀’가 상영된다.‘피아노’는 한 불구여성이 자기를 확인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으며 ‘나…’는 일상생활 속의 어긋나는 남녀관계를 담았다.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는 자정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 영화 3편을 심야상영한다.상영작은 참석자들이 다시 보고 싶어하는 영화나 최신작 중에서 고른다.아울러 매주 목요일 오후 7시30분에는 사진강좌도 열리는데 오는 22일의 첫모임에서는 ‘사진의 현대적 의미와 이미지론’이 주제이다. 이들 행사에는 대학의 사진학 강사인 박영숙씨,비디오 아티스트 윤동경씨,대학로 소극장 ‘오늘 한강 마녀’의 안미라 극장장,중앙대 영화학 강사인김선아씨 등이 참여한다. 행사를 기획한 안미라씨는 “페미니즘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연말까지 다양한영화를 상영할 것”이라면서 “남녀 성차별 철폐의 논리를 넘어서 페미니즘적인 배려와 수용의 논리를 펼치고자 행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영화 관람료나 행사 참여료는 없다.(02)3476-0662박재범기자
  • 佛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 ‘아버지들의 아버지’

    올해 서른 여덟 살의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그가 이끄는 이야기의 탐험길을 따라 우리는 개미들의 세계와 만났고(‘개미’‘개미혁명’),영혼의 세계를 넘나드는 환상 체험을 하기도 했다(‘타나토트’).‘개미혁명’에서 한국인 주인공 ‘지웅’을 등장시켜 우리에게 더욱 친숙한 그가 이번엔인류 진화의 수수께끼를 과학 스릴러 형식으로 밝혀 관심을 모은다.열린책들에서 펴낸 베르베르의 98년 소설 ‘아버지들의 아버지’(이세욱 옮김·전2권)가 바로 그 작품이다. 진화론이 주창된 이래 고생물학자들은 현생인류와 원인(猿人)을 연결하는이른바 ‘미싱 링크(missing link)’ 즉 ‘빠진 고리’를 발견하기 위해 애써왔다.미싱 링크는 진화상의 어느 한 단계에 존재한 것으로 추정될 뿐 실제로는 화석이 발견되지 않은 생물종(生物種) 일반을 가리키는 말.보통 현생인류와 그 조상 사이의 중간단계의 존재를 가리킨다.‘아버지들의 아버지’는이 미싱 링크를 이야기 전개의 중요한 매개로 삼는다. 19세기 후반에는 다윈의 이론을 잘못 해석해 인류가 원숭이로부터 직접 진화했다는 오해가 적지 않았다.진화론을 증명하기 위해선 원숭이와 인간 사이를 연결하는 중간 단계를 규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런 ‘강박관념’은 호모 에렉투스나 심지어 남아프리카의 호이호이족까지 미싱 링크라는 주장을낳게 했다.에오안트로푸스 도소니라는 학명까지 얻었던 ‘필트다운인(Piltdown man)’ 같은 사기사건도 그런 배경에서 일어난 것이다. 작가는 지금부터 370만년 전 우리의 가장 직접적인 조상에 해당하는 미싱링크의 일상을 특유의 상상력을 동원해 그린다.하루하루가 치열한 생존투쟁이던 그 ‘최초의 인간’의 일상,머릿속 어딘가에 이미 초월적인 사고의 싹이 트기 시작하던 그 경이로운 순간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최초의 인간’에 관해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한 고생물학자의 돌연한 변사,살인사건을 축으로 휘몰아치듯 진행되는 인류의 조상에 대한 추적과 반전을 거듭하는 수사,마침내 밝혀지는 진실….추리소설적인 설정이 눈길을 끄는 이 작품이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은 진화한 존재가 아니라,진화하고 있는 존재다’라는 것이다.이 유쾌한 아이러니를 통해서만 비로소 ‘아버지들의 아버지’의 수수께끼는 하나의 의미 있는 통찰로 다가온다. 베르베르는 그의 대표작 ‘개미’를 쓰기 위헤 20년 동안 개미의 세계를 탐구했으며 120번에 가까운 개작을 거듭했다.‘아버지들의 아버지’ 또한 수많은 인류학자,고생물학자,과학자들과의 인터뷰와 아프리카 현장조사를 토대로 씌어졌다.베르베르 소설의 특징은 영화적 구성을 취하고 있으며,만화적인감각이 돋보인다는 점.‘스타 워즈’ 세대에 속하는 그는 고등학교 시절 실제로 ‘만화신문’을 발행한 적이 있으며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자인 미국작가 필립 K.딕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다.그는 올해 안에 단편영화도한 편 만들 계획이다. 김종면기자 jm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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