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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무문관/손성진 논설고문

    혼자 있는 시간에 “왜 사는가”라는 엉뚱한 의문에 문득 빠져들 때가 있다. 득도한 스님이 명답을 갖고 있을지 모르지만 스스로는 마땅한 답을 찾기가 어렵다. 뭔가 목표를 이루려고? 인생을 즐기려고? 그냥 태어나 있으니까? 출가하려는 이들도 대개는 “삶의 의미가 무엇일까”라는 원초적 고민에 빠져 힘든 길로 들어간다. 불가에 입문해도 깨달음의 길은 멀기만 하다. 자물쇠를 채운 독방에서 1000일 참선을 하는 극한의 ‘무문관’ 수행을 하는 까닭이다. 범생에게는 두렵기만 한 고행은 나를 불살라서라도 깨달음을 얻겠다는 마지막 선택이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더위와 추위, 병마, 무엇보다 고독을 견디며 한계와 싸워 이겨도 길은 멀기만 했다. 중도에 포기하고 떠나기도 하고, 암에 걸리기도 하고…. 하찮은 중생은 의문에 빠지는 것에 만족해야 할 것인가. 서담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라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내가 어디서 왔는지,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그것도 모르고 살다가 죽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을 알고자 힘들다 해도 그 길을 선택하고 가는 겁니다.” 오늘 다시 우문(愚問)을 던져 본다.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다. sonsj@seoul.co.kr
  • ‘나눔의 집’ 폭로 한 달…“새 운영진 후원금 유용, 현재 진행형”

    ‘나눔의 집’ 폭로 한 달…“새 운영진 후원금 유용, 현재 진행형”

    신임 사무국장, 토지 등기 수수료 전용 월주 스님 건보료·허위 급여도 반납해 지출에 문제없다면 왜 반환 조치했나 제보 이후 할머니들 자유롭게 활동 중 올 들어 병원비도 후원금으로 첫 사용 나눔의 집에 대한 철저한 관리 필요해지난달 19일 경기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 일부 직원이 후원금 유용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인권침해 등 나눔의 집을 둘러싼 여러 문제점을 공론화한 지 약 한 달이 지났다. 용기를 내 제보에 나선 직원들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공익제보 직원을 대표하는 김대월(35) 나눔의 집 역사관 학예실장은 17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새로 채용된 시설 사무국장이 지난달 14일 안신권 전 소장 명의의 토지를 나눔의 집 법인 명의로 옮기는 과정에서 발생한 법무사 수수료 약 80만원을 할머니들을 위해 써야 하는 후원금에서 지출해 전날 광주시청으로부터 행정처분을 받았다”며 “후원금 유용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라고 지적했다. 법인은 시설 운영의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후원금을 법인 이사진이 개인적으로 유용한 적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김 실장은 “월주 스님(법인 대표이사) 건강보험료 730만~740만원이 후원금에서 지출됐다. 출근 내역이 전혀 없는 스님에게 후원자들이 낸 돈으로 급여 약 5300만원을 줬다”면서 “이런 지출에 문제가 없다면 왜 광주시청·경기도 점검 후에 반환 조치를 한 것이냐”고 반문했다. 김 실장은 관리·감독기관의 문제점도 비판했다. 그는 “처음 법인 정관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한 양로시설’이 사업 종류로 등록돼 있었지만, 나중에 이 사업이 정관에서 빠졌다. 이런 정관 변경을 알고도 승인해 준 곳이 바로 광주시청과 경기도”라며 “광주시청은 3년 전에도 나눔의 집에 법인과 시설 후원금 계좌를 분리 운영해야 한다고 권고했는데, 올해 4월 시설 지도점검을 나와 ‘이렇게 회계 분리가 안 돼 있는 곳은 처음 본다’는 반응을 보였다.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직원들의 공익제보 덕에 나눔의 집에도 서서히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김 실장은 “지금은 할머니들이 산책하고 싶을 때 산책하고, 운동도 시켜 드리고 있다”면서 “올해 들어 할머니 병원비도 후원금으로 처음 내 봤다. 그전까지 시설 운영진이 하지 않았던 일들”이라고 말했다. 김 실장은 나눔의 집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의 관심과 철저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할머니들의 통장에 매달 간병비 등을 지급한다고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할머니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노력해야 할 국가가 책무를 다하지 않은 점을 반성하고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나눔의 집’ 공론화 한 달…공익제보 직원들 “갈 길 멀다” 호소

    ‘나눔의 집’ 공론화 한 달…공익제보 직원들 “갈 길 멀다” 호소

    지난해 7월 내부서 문제 제기했지만상황 바뀌지 않아 민원 제기·공론화 지난달 19일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 일부 직원들(공익제보 직원들)이 후원금 유용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인권침해 등 나눔의 집을 둘러싼 여러 문제점을 공론화한 이후 한 달 가량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것이 공익제보 직원들의 호소다. 이들은 “현 법인(대한불교조계종 나눔의 집) 이사들이 나눔의 집 시설 운영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공익제보 직원들을 대표하는 김대월(35) 나눔의 집 역사관 학예실장은 17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새로 채용된 시설 사무국장이 지난달 14일 안신권 전 소장 명의의 토지를 나눔의 집 법인 명의로 가등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법무사 수수료 약 80만원을 할머니들을 위해 써야 하는 후원금에서 지출해 전날 광주시청으로부터 행정처분을 받았다”면서 “후원금 유용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라고 말했다. 앞서 공익제보 직원들은 지난해 7월 법인 이사진에게 후원금 유용, 시설 운영진 비리 의혹, 할머니 인권침해 등 나눔의 집을 둘러싼 여러 문제들을 알리고 해결을 요청했다. 하지만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올해 3월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제기했다. 그 후로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서 공익제보 직원들은 결국 언론에 제보를 했다. 나눔의 집 법인은 시설 운영상의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후원금을 법인 이사진이 개인적으로 유용한 적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김 실장은 “월주 스님(법인 대표이사) 건강보험료 730만~740만원이 후원금에서 사용됐고, 출근 내역도 없는 스님에게 급여 약 5300만원이 후원금에서 지출됐다”면서 “이런 지출에 문제가 없다면 왜 광주시청·경기도 점검 후에 반환 조치를 했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김 실장은 관리·감독기관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그는 “처음 법인 정관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한 양로시설’이 사업 종류로 등록돼 있었지만 나중에 이 사업이 정관에서 빠졌다. 이런 정관 변경을 알고도 승인해준 곳이 바로 광주시청과 경기도”라면서 “광주시청은 3년 전에도 나눔의 집에 법인과 시설 후원금 계좌를 분리 운영해야 한다고 권고하고도 올해 4월 시설 지도점검을 나와서 ‘이렇게 회계 분리가 안 돼 있는 곳은 처음 본다’는 반응을 보였다.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나눔의 집 문제, 관리·감독 부실도 원인 김 실장은 “지금은 할머니들이 산책하고 싶을 때 산책하고, 운동도 시켜드리고 있다”면서 “올해 처음으로 할머니 병원비도 후원금으로 처음 내봤다. 그전까지 시설 운영진은 할머니들의 외출을 막아왔고, 할머니 입원·치료비가 정부에서 매년 지원하는 의료비로도 부족한 경우에는 할머니 개인 비용으로 지출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새로 채용된 시설 운영진(사무국장·법인과장)은 이 사태에 책임이 있는 현 법인 이사회 쪽 사람들”이라면서 “지난 6일 할머니랑 산책을 하는데 갑자기 법인과장이 무단으로 영상 촬영을 했다. 이런 식으로 할머니와 공익제보 직원들을 감시하고 괴롭히고 있다”고 밝혔다. 김 실장은 또 ”법인 이사진들은 할머니들의 건강 문제에 관심이 없다“면서 “2018년 여름에 있었던 일로, 법인 이사 중 한 명이 시설을 방문해 할머니들 이름을 부르며 반말을 했다. 반면 할머니들은 법인 이사진이 용돈을 주면 고개를 숙이며 ‘고맙습니다’라고 존댓말을 했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고 토로했다. 김 실장은 나눔의 집 문제를 해결하려면 “현 법인 이사들이 나눔의 집 시설 운영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관심과 철저한 관리·감독도 강조했다. 그는 “할머니들의 통장에 매달 간병비 등을 지급한다고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할머니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노력해야 할 국가가 책무를 다하지 않은 점을 반성하고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기후 위기의 지구를 살리자”… 불교 단체·사찰 50곳 뭉쳤다

    매월 행동의 날 정하고 기후학교 개설 위기에 처한 지구를 살리기 위한 불교계 연합체인 ‘불교기후행동’이 공식 출범했다. 불교기후행동은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문화공연장에서 발족식을 열고 기후 변화 대응 운동에 나설 것을 선포했다. 지난해 9월 불교환경연대 등의 제안으로 시작된 불교기후행동은 지금까지 50여 불교계 단체와 사찰이 참여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전국 조직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매월 불교기후행동의 날을 제정하고 서울과 광주, 울산, 전주 등지에 불교기후학교를 개설할 예정이다. 환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기후학교에서는 일상에서 기후행동을 적극적으로 실천할 지도자를 양성해 생활 실천을 통한 생태사회 전환의 초석을 다지게 된다. 이 밖에 사찰 순환에너지 전환을 비롯해 각 종단 기후위기 예산 책정, 불교계 기후행동 확대, 2050 탄소제로 계획 수립, 기후위기 대응법 제정 등을 전개할 방침이다. 상임대표 미광 스님은 발족식에서 “학자들은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아래로 제한하기 위해 남은 시간이 불과 10여년이라고 진단하고 있다”며 “이제라도 전 불자들이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하나하나 챙겨서 환경 파괴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웃 종교단체도 불교기후행동 출범을 축하하며 힘을 보탰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강우일 주교는 “인류가 성장과 개발의 우상을 좇은 결과 공동의 집 지구 생태계가 위기에 놓였다”며 “불교기후행동이 우리 사회의 변화를 위한 많은 행동을 할 것이라 기대하며 가톨릭기후행동도 적극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이진형 목사, 천도교 한울연대 이미애 상임대표도 불교기후행동과 함께 연대해 나갈 것을 약속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취중생] “도장 찾았다”…그 뒤로 할머니 전재산이 빠져나갔다

    [취중생] “도장 찾았다”…그 뒤로 할머니 전재산이 빠져나갔다

    [편집자주]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는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취중생’(취재 중 생긴 일)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사건팀 기자들의 생생한 뒷이야기를 담아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나눔의 집’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보금자리임을 내세우며 할머니들을 안전하고 전문적으로 돌보는 전문요양시설이라 광고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공익제보한 직원들 일동) 경기 광주시 퇴촌면에 있는 나눔의 집 시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생활하는, 법령상 노인주거복지시설입니다. 그동안 나눔의 집 시설과 이 시설을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 ‘대한불교조계종 나눔의 집’(나눔의 집 법인)은 할머니들을 위해 사용하겠다며 막대한 후원금을 모집했습니다. 나눔의 집 법인에 지난해 모인 후원금만 약 26억원입니다. 매달 2억원 정도의 후원금이 들어온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국민들이 할머니들을 위해 써 달라고 기부한 후원금이지만, 나눔의 집 법인과 시설이 후원금을 할머니들을 위해 쓰지 않은 사실이 직원들의 공익제보를 시작으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출근 내역도 존재하지 않는 스님의 급여로 5300만원이 후원금에서 지급됐고, 자산취득비로 사용할 수 없는 후원금 6억원이 토지 취득비로 쓰였습니다. 시설의 후원금 관리는 부실했습니다. 후원자에게 후원금 수입 및 사용 내역을 통보하지 않았고, 후원금 수입·사용 결과서를 법인·시설 홈페이지에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나눔의 집 시설 홈페이지 ‘공지사항’ 게시판에 올라온 연도별 후원금 사용 내역을 봐도 각 지출 항목별로 후원금이 구체적으로 어디에 얼만큼 사용됐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또 나눔의 집 시설은 할머니들의 생신축하금, 추가 부식비, 명절위로비 등으로 사용돼야 할 보조금을 상하수도요금으로 지출했습니다. 지난해 기준으로 보조금 전체 예산 약 3억원 중 0.3%의 비율에 불과한 할머니들의 위로금마저 할머니들에게 모두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법인 운영도 문제입니다. 후원금 모집 계좌 총 19개 중 6개가 개인 계좌였습니다. 나눔의 집 법인은 또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을 운영하면서 입장료 등의 수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무관청인 광주시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역사관 입장료·판매 수입만 약 7643만원입니다. 사회복지법인과 같은 비영리법인은 법인의 설립 목적에 반하지 않는 정도의 사업을 위한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필요한 범위 안에서 수익사업을 할 수 있습니다. 수익사업을 통해 거둬들인 돈은 그 수익사업에 재투자해야 하는데요. 그런데 이런 수익사업을 주무관청에 알리지 않으면 그 수익사업으로 거둬들인 돈이 어디에 사용됐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할머니들 기부약정서 위조 정황 이게 끝이 아닙니다. 지금부터는 나눔의 집 시설 운영진이 할머니들의 기부약정서를 위조한 정황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서울신문 취재 결과 경찰은 현재 이 기부약정서 위조 정황에 대해 내사(수사개시 전 단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17일 김대월 나눔의 집 역사관 학예실장은 전직 사무국장 책상 서랍에서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서류를 발견합니다. 전직 사무국장은 후원금을 횡령한 정황이 발견된 지난해 10월부터 시설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김 실장이 발견한 문서는 고 김화선(2012년 6월 별세·86) 할머니와 고 배춘희(2014년 6월 별세·91) 할머니 이름으로 작성된 기부약정서였습니다. 시설에서 20년 가까이 할머니들을 간호한 원종선 간호사조차 그 문서의 존재를 몰랐습니다. 이 중 김 할머니의 약정서를 보겠습니다. 작성 날짜는 2011년 10월 1일로 적혀 있습니다. 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약 8개월 전입니다. 할머니의 자필 서명 없이 도장만 찍혀 있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김화선은 2011년 10월 1일부로 가지고 있는 전재산(예금통장, 적금통장, 현금, 생활용품, 기타)을 나눔의 집에서 추진하는 김화선 인권센터 건립 기금과 추모관 건립 기금으로 전액 기부합니다.’ 하지만 김 할머니는 생전에 나눔의 집 시설에 전재산을 기부하겠다는 말을 하거나 그런 의사를 표시한 적이 없다는 것이 공익제보 직원들의 설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할머니 개인 통장에 있던 돈 약 6046만원이 ‘국제평화인권센터’라는 이름으로 개설된 통장 계좌에 2012년 6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입금됐습니다. 이 통장은 전직 사무국장이 관리했습니다. 그리고 전직 사무국장은 세상을 떠난 할머니들의 개인 통장과 개인 도장을 시설 사무실 내 자신의 책상 서랍에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약정서가 발견된 바로 그 서랍입니다. 공익제보 직원들은 김 할머니 건강이 좋지 못해 이런 기부를 결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김 할머니 건강상황 일지를 보면, 김 할머니는 전부터 고혈압, 당뇨, 천식, 관절염, 근육통 등의 여러 질환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 할머니는 2010년 치매 진단을 받습니다. 김 할머니의 2011년 6월과 9월 병원 일반진단서를 보면 병명 기입란에 ‘알츠하이머형의 노년성 치매’라고 적혀 있습니다. 약정서가 작성된 2011년 10월 1일 전의 일입니다. 당시 할머니는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이 어렵고 인지기능이 저하된 상태였다고 합니다. “밤에 자고 일어나시면 ‘밤에 남자 둘이 창문 넘어 들어와서 내 옷을 다 훔쳐갔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반혼수상태일 때도 있으셨고. 그리고 기본적으로 식사를 잘 못 드셨어요. 입으로 식사를 못 하셔서 비위관(L-tube·코를 통해 식도를 거쳐 위 속으로 삽입하는 유연한 고무 또는 플라스틱 관)을 삽입해서 음식을 드셨고…. 돌아가시기 전에 약 1년 6개월 동안은 비위관을 사용하며 생활하셨어요. 침상에 누워서 지내셨고. 워낙 몸이 약하셨기 때문에 병원에 갈 일도 많았고, 중환자실이랑 응급실을 오가며 입원 치료를 많이 받으셨죠. 전반적으로 인지기능과 신체기능이 많이 떨어진 상태셨어요.” (원종선 간호사)경찰 ‘약정서 위조’ 내사 진행 중 김 할머니는 지병으로 병원에 입원 중이던 2012년 6월 13일 오후 8시 25분쯤 별세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10시쯤 전직 사무국장이 당시 병원에서 할머니 장례 준비를 하고 있던 원 간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할머니 도장 가지고 빨리 (나눔의 집 시설) 사무실로 와달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원 간호사는 연락을 받고 나눔의 집 시설로 향했습니다. 사무용 책상 서랍에 있는 막도장을 꺼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막도장은 여성가족부에서 할머니들에게 지원하는 간병비를 신청할 때 사용하는, 즉 할머니 개인 도장이 아니라 간병비 신청 서류에 사용하는 도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원 간호사가 나눔의 집 시설로 가는 중에 전직 사무국장이 다시 전화를 걸어 ‘할머니 도장 찾았으니까 다시 병원에 돌아가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9일 뒤인 2012년 6월 22일 김 할머니 이름으로 ‘국제평화인권센터’ 통장에 5937만 8279원이 입금됩니다. 약 한 달 뒤인 2012년 7월 20일에는 김 할머니 이름으로 108만 7950원이 입금됩니다. 합하면 약 6046만원입니다. 공익제보 직원들은 김 할머니뿐만 아니라 배 할머니의 기부약정서도 위조됐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직원들은 “배 할머니의 약정서가 작성된 2014년 4월 10일은 할머니가 119를 불러 요양병원에 입원한 날”이라면서 “할머니가 기부약정서를 작성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밝혔습니다. 약정서 위조 정황과 관련해 직원들이 따로 수사기관에 고발한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진상을 확인할 가치가 있는 사안으로 판단하고 현재 이 사건 내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최근 원 간호사와 김대월 학예실장에게 할머니들 이름으로 작성된 기부약정서를 발견한 시점과 약정서 작성 시점 당시 할머니들의 건강 상태 등을 묻는 등 약정서 위조 정황과 관련한 기초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경찰 내사 처리규칙에 따르면 경찰은 내사 과정에서 범죄혐의가 있다고 판단될 때에는 내사를 종결하고 수사를 개시해야 합니다.나눔의 집 법인 ‘책임 회피’ 비판 김 실장은 지난 1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나눔의 집을 할머니와 국민 품으로 되돌려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습니다. 김 실장은 이 글을 통해 평소 나눔의 집 법인 이사진과 시설 운영진이 할머니들의 건강과 생활복지 증진, 복리후생 등에 관심이 없었고, 후원금을 할머니들을 위해 사용하기보다는 수십억원의 토지를 구매하거나 법인 이사장 자서전 구입 비용 등으로 지출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지난 3월부터 국민신문고 민원 등을 통해 나눔의 집 법인·시설 운영상의 문제점을 알리자 나눔의 집 법인이 시설 직원 2명을 새로 채용해 나눔의 집 시설 회계를 관리한 전직 사무국장 사무실 책상을 가져갔다고 합니다. 김 실장은 또 “지난 3월 10일부터 직원들이 국무총리실, 여성가족부, 경기도, 경기 광주시 등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이에 대한 공무원들의 반응은 대체로 서류상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면서 “직원들은 구체적인 증거와 관련 서류를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공무원들은 그 자료들은 가져가지도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현재 드러난 문제점들은 나눔의 집 법인이 단순히 시설장 교체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지난 2일 이사회를 열어 정관과 운영규정을 개정하기로 했지만 어떻게 개정할 것인지에 대해 법인 이사회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습니다. 현재 법인 정관에 할머니들의 건강 유지와 복시 사업과 관련한 내용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법인 이사회 책임입니다. 그리고 시설로부터 사업 보고 및 세입·세출 보고를 받는 법인 이사회가 그동안 나눔의 집 시설에 할머니들의 신체·정신건강 유지를 위한 프로그램이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습니다. ‘법인 이사회가 꼬리 자르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최근 나눔의 집에 후원한 시민들이 나눔의 집 법인을 상대로 후원금을 반환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할 만큼 국민들이 느낀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제라도 나눔의 집 시설이 정말로 할머니들을 위한 생활시설로 운영될 수 있도록 관심과 비판이 동시에 필요할 때입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나 한열이 에미예요… 이소선 어머니, 종철이 아버지 들리세요?”

    “나 한열이 에미예요… 이소선 어머니, 종철이 아버지 들리세요?”

    배은심 여사, 서른세 번째 보내는 편지 낭독 민주화 유공자 19명에 훈장·포장·표창 처음 文, 현직 대통령 중 ‘남영동 분실’ 처음 방문 509호 욕조 보며 “철저한 고립감, 무너뜨려” “이소선 어머니, 종철이 아버지, 제 얘기 들리세요? 나 한열이 에미예요. 30년 가까이 늘 함께 다니며 싸우던 우리 유가협 식구들인데, 어머니는 전태일이 옆에 가 계시고, 종철 아버지도 아들하고 같이 있어서 나 혼자 오늘 이렇게 훈장을 받습니다.” 10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 예정지(옛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열린 6·10 민주항쟁 33주년 기념식에서 ‘서른세 번째 6월 10일에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는 내내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명예회장) 여사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이날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은 12명 중 유일한 생존자인 배 여사로선 1987년 8월 이후 핏줄보다 가깝게 지냈지만, 먼저 떠나 보낸 유가협 식구들이 떠올랐을 터. 배 여사는 “다시는 이 나라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삶을 희생하고, 고통을 받는 가족들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1987년 6·10항쟁은 한국 민주주의의 전환점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16년 만에 부활했고 헌법이 개정되면서 제도적 민주주의의 토대가 마련됐다. 6월 항쟁의 집단 기억이 없었다면 2016~17년 촛불혁명도 어려웠다. 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고 박정기씨)와 이 열사의 어머니, 1970년 전태열 열사 분신 뒤 유가협을 설립해 초대회장을 지낸 고 이소선 여사 등에게 정부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하고 역사적 평가를 한 것도 같은 이유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고 문익환 목사 등 8명이 개별적으로 사후 추서 형태로 훈장을 받았지만, 국민훈장 모란장 12명을 비롯해 민주화 유공자 19명에게 훈장·포장·표창이 주어진 것은 처음이다.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으로 숨진 옛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이곳에서 고초를 겪었던 지선 스님의 설명을 들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문 대통령은 당시 물고문이 이뤄졌던 욕조를 보며 “이 자체가 처음부터 공포감이 딱 오는 거죠. 물고문이 예정돼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니까요. 철저하게 고립감 속에서 무너뜨려 버리는 거죠”라며 안타까워했다. 문 대통령은 부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 열사 영정에 작은 꽃묶음을 헌화한 뒤 묵념했다. 문 대통령이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 참석한 것은 2017년 서울광장에서 열린 30주년 행사에 이어 두 번째다. 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열린 기념식에 현직 대통령이 참석하고, 악명 높은 509호를 찾은 것은 처음이다. 대통령이 6·10 항쟁 기념식에 참석한 것은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2007년 20주년 기념식 때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처음이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나 한열이 에미에요… 이소선 어머니, 종철이 아버지 들리세요?”

    “나 한열이 에미에요… 이소선 어머니, 종철이 아버지 들리세요?”

    文, 현직 대통령 첫 박종철 열사 숨진 ‘남영동 509호’ 헌화 509호 욕조보며 “철저한 고립감 속에서 무너뜨려 버린 것”“이소선 어머니, 종철이 아버지, 제 얘기 들리세요? 나 한열이 애미예요. 30년 가까이 늘 함께 다니며 싸우던 우리 유가협 식구들인데, 어머니는 전태일이 옆에 가 계시고, 종철 아버지도 아들하고 같이 있어서 나 혼자 오늘 이렇게 훈장을 받습니다.” 10일 서울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 예정지(옛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열린 6·10 민주항쟁 33주년 기념식에서 ‘서른세 번째 6월10일에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는 내내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전국민족민주 유가족협의회 명예회장)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은 12명 중 유일한 생존자인 배 여사로선 1987년 8월 이후 농성장과 파업현장, 그리고 창신동의 한울삶(‘한울타리의 삶’이라는 의미인 유가협 사무실 겸 주거시설)에서 핏줄보다 가깝게 지냈지만, 하나 둘 먼저 떠나보낸 유가협 식구들이 떠올랐을 터. 배 여사는 “유가협 외에 오늘 훈장을 받는 다른 수여자님들 모두 험한 세상에서 자신을 희생하고 정말 훈장을 받아 마땅하신 분들이고, 그런 분들과 함께 감히 훈장을 받아도 되는 건가 싶다”면서 “종철이 아버지, 아버지도 이런 나를 보고 ‘한열이 엄마 거기서 뭐하고 있어요’라고 하실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시는 이 나라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삶을 희생하고, 고통을 받는 가족들이 생기지 않는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자리에 섰다. 따뜻한 마음으로 어머니, 아버지 지켜봐 달라”라고 덧붙였다. 1987년 6·10항쟁은 한국 민주주의의 터닝포인트로, 대통령 직선제가 16년 만에 부활했고 헌법이 개정되면서 제도적 민주주의의 토대가 마련됐다. 6월 항쟁의 집단 기억이 없었다면 2016~17년 촛불혁명도 어려웠다. 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고 박정기 씨)와 이 열사의 어머니, 1970년 전태열 열사의 분신 뒤 유가협을 설립해 초대회장을 지낸 고 이소선 여사 등에게 정부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하고 역사적 평가를 한 것도 같은 이유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고 문익환 목사 등 8명이 개별적으로 사후 추서 형태로 훈장을 받았지만, 국민훈장 모란장 12명을 비롯해 민주화 유공자 19명에게 훈장·포장·표창이 주어진 것은 처음이다. 기념식이 끝난 뒤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으로 숨진 옛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이곳에서 고초를 겪었던 지선 스님의 설명을 들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문 대통령은 당시 물고문이 이뤄졌던 욕조를 보며 “이 자체가 처음부터 공포감이 딱 오는 거죠. 물고문이 예정되어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니까요. 철저하게 고립감 속에서 무너뜨려 버리는 거죠”라며 안타까워 했다. 문 대통령은 김정숙 여사와 함께 박 열사 영정에 작은 꽃묶음을 헌화한 뒤 묵념했다. 문 대통령이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 참석한 것은 2017년 서울광장에서 열린 30주년 행사에 이어 두 번째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영화 ‘남영동 1985(정지영 감독)’ ‘1987(장준환 감독)’ 등 으로도 알려졌지만, 고 김근태 민청련 의장 등 전두환 정권에 맞섰던 재야인사와 학생 등이 전기고문을 비롯해 죽음을 넘나드는 고문을 당한 곳으로 악명높다. 현직 대통령이 6·10 항쟁 기념식에 참석한 것은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2007년 20주년 기념식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처음이었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은 재임 중 참석하지 않았다. 독재정권 시절 잘못된 공권력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현직 경찰청장(민갑룡)이 최초로 참석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나눔의 집, 호텔식 요양원 바꾸려한다” 청와대 국민청원

    “나눔의 집, 호텔식 요양원 바꾸려한다” 청와대 국민청원

    최근 후원금 유용은 물론 인권 침해 논란까지 제기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시설 ‘나눔의 집’을 피해자 할머니들과 국민 품으로 돌려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Temp/78Qvhn)이 올라왔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나눔의 집은 1992년 조계종에서 설립한 사회복지법인이다. 이사진의 3분의 2가 조계종 승적을 가진 스님들이며, 운영진도 모두 불교계와 직·간접적으로 관련 있는 인물들이다. 나눔의 집에는 현재 5명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생활하고 있다. 김대월 나눔의 집 역사관 학예실장 등 직원 7명은 내부 고발을 통해 ‘나눔의 집 운영진이 막대한 후원금을 할머니들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현금과 부동산으로 적립해 노인요양사업에 사용하려 한다’고 주장하며 운영진을 경찰에 고발했다. 또 할머니들에게 필요한 병원 치료를 제때 하지 않고, 생필품 구입 등을 할머니들의 개인 비용으로 지출하게 하는 등 인권침해 사례도 폭로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러한 진정 내용의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달 조사를 벌였다. “나들이 건의하자 ‘할머니 버릇 나쁘게 만든다’ 핀잔” 김대월 학예실장이 올린 국민청원에 따르면 나눔의 집은 현금 자산만 72억원이 쌓여 있는데도 20년간 할머니를 돌보는 간호사가 단 1명이었다. 4명의 요양보호사에게 지출되는 비용도 후원금이 아닌 여성가족부에서 할머니들에게 지원하는 간병비로 채용하고 있다. 직원들이 할머니들의 외식과 나들이 운동치료를 제안했지만 모두 거절당했으며 “나눔의 집이 무슨 돈이 있어서 그런 것을 하냐”라는 핀잔과 질책이 돌아왔다고 김대월 학예실장은 주장했다. 심지어 “오늘 할머니가 외출하면 내일은 안 나가고 싶겠냐? 할머니 버릇을 나쁘게 만들고 있다”는 등의 발언도 있었다는 게 청원자의 폭로였다. 할머니들을 제대로 돌보자는 직원들의 건의에 운영진이 직원 해고를 검토하고, 이사진은 해당 직원을 고소하겠다고 윽박질렀다고도 했다. 일부 이사는 후원금을 아껴 땅을 사라고 지시했다고 당당한 듯이 밝혔다고도 전했다. ‘할머니 이제 더 안 들어오니 호텔식 요양원 짓겠다’ 김대월 학예실장은 나눔의 집 이사진이 지난해 기준 약 20억원이 넘는 후원금을 받았지만 정관 어디에도 목적사업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생활을 위한 사업’이 명기돼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2020년 정관 변경을 통해 무료양로시설의 운영에서 ‘무료’를 삭제해 앞으로는 ‘호텔식 유료’ 양로시설로 운영하겠다며 정관 변경 신청을 해 놓은 상황이라고 폭로했다.또 이사진이 ▲할머니에게 쓰기로 한 돈을 절약해서 안 쓴 건 잘한 일이다 ▲위안부 할머니는 이제 더 들어올 사람이 없으니 후원금을 아껴 호텔식 요양원을 지어야 한다 ▲후원금을 정기예금으로 돌려 이자 수익을 늘려라 등의 인식을 여러 번 드러냈다고 밝혔다. 김대월 학예실장은 피해 할머니들이 살아 있을 때 호텔식 요양원을 지어 잘 모실 수 없는 건지, 왜 할머니들이 다 돌아가시고 나면 할머니에게 쓰라고 받은 후원금으로 호텔식 요양원을 지으려고 하는지, 할머니들에게 돈을 쓰지 않은 것이 칭찬받을 일인지, 할머니에게 후원금을 어떻게 사용할지가 아닌 어째서 후원금을 사용하지 않은 것에 대해 외부의 시선이 어떨지 논의하는 건지 물었다. 또 공식석상인 이사회에서 상임이사가 이러한 의견을 내고 운영진에게 지시까지 했는데 그것이 ‘개인 의견’으로 치부될 수 있는지도 물었다. “할머니한테 안 쓴 후원금, 출근 않는 스님들에게 ‘펑펑’” 김대월 학예실장은 후원금으로 상근하지도 않는 스님의 급여가 1억원 넘게 지출되고, 출근 한번 한 적 없는 스님의 급여가 5300여만원 지출됐다고 주장했다. 또 이사장 스님의 개인부담 보험료와 자서전 구입 비용이 수년간 후원금에서 지출됐다고도 했다. 후원금으로 요양보호사나 간호사는 채용하지 않으면서 수십억원이 넘는 토지는 구매했다고 지적했다. 나눔의 집에서 벌어진 건축 상당수가 수의계약으로 이뤄졌다는 사실도 폭로했다. 심지어 할머니들은 월 10만원을 받는 대신 후원금에 일체 관여하지 않는다는 약정서에 지장을 찍어야 했다는 것이다. 또 본인들이 원하는 나들이 한번 제대로 못하면서 나눔의 집 법인이 주최하는 행사에는 꼬박꼬박 나가야 했다고 했다. 관계부처 공무원, 제보 수차례 무시…오히려 제보자 압박 김대월 학예실장은 이러한 행태의 책임이 나눔의 집 운영진과 이사진에게만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두해도 아닌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관련 부처가 손을 놓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문제의 정관 변경 역시 관련 부처의 승인을 받은 것이며 지난 3월 직원들이 국무총리실, 여성가족부, 경기도, 광주시 등에 민원을 냈지만 공무원들은 대체로 서류상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었다고 청원 게시자는 전했다. 직원들이 구체적인 증거와 서류를 제출했는데도 공무원들은 그 자료를 가져가지 않았다고도 했다. 심지어 조사를 나온 공무원은 후원금이 이렇게 많이 들어오는데 직원들 급여가 적어서 이런 제보를 하는 것 같다며 직원들의 급여를 올려주라는 말까지 했다고 했다.오히려 민원을 제기한 직원의 신상을 캐묻고, 비위 사실을 감싸며 민원을 제기한 직원을 향해 “감사를 진행하겠다”며 압박하기도 했다. 김대월 학예실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관계 부처에 ▲나눔의 집의 후원금 모집 및 사용에 대해 철저히 수사할 것 ▲정관 변경에 대해 철저히 감독해 줄 것을 호소했다. 또 ▲관할 지자체인 광주시와 경기도, 수사기관이 제보 내용의 입증 책임을 제보자에게 모두 떠넘기고 있는 상황 ▲나눔의 집 이사회가 모든 책임을 운영진 2명에게 떠넘기고 있는 상황 ▲관련 공무원의 직무에 대한 면밀한 조사 등에 대해 면밀히 조사해 줄 것을 촉구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한양 심장에 모인 백년점포… 열한 개 골목 따라 시간여행

    한양 심장에 모인 백년점포… 열한 개 골목 따라 시간여행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20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가 다음달 4일 돛을 올립니다. 코로나19 후유증으로 예년보다 3개월가량 늦어졌습니다. 불가피하게 답사 횟수를 20회로 줄였고 참가자 수도 20명 이내로 제한합니다. 이에 앞서 서울신문 지면 투어로 갈증을 풀어 드립니다. 1회 인사동(4일), 2회 대학로(10일), 3회 여의도(17일), 4회 동대문(24일), 5회 성수동(7월 1일) 등 5개 지역을 찾아갑니다. 이들 지역의 유·무형 서울미래유산을 집중 탐구하고 ‘장소인문학’의 비밀을 풀어 줄 것입니다. 장태동, 최석호, 권기봉씨 등 서울역사 여행가들이 해설자와 집필자로 새롭게 나섭니다. 김동률 서강대 교수, 이소영 동화작가, 함혜리 문화칼럼니스트, 서동철 문화재위원, 손성진 서울신문 논설고문 등 역대급 필진을 초빙해 투어의 격을 높였습니다. 답사투어는 다음달 4일부터 11월 4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에 진행하고 예약은 투어 전주에 서울미래유산(futureheritage.seoul.go.kr) 홈페이지에 하면 됩니다. 관련 기사는 매주 수요일 서울신문 지면에 게재됩니다.●700m 거리에 예술가들의 자취·혼 가득 “여덟 사람이 앉아 있다/두 사람은 시인이고/두 사람은 화가다/한 사람은 조각가고/한 사람은 무용가/저쪽 구석에 앉은 두 사람은 작가라는데 /무슨 작가인지 알 바가 아니다/시인은 기타를 치고/화가는 손뼉을 치고” 이생진(1929~) 시인의 시집 ‘인사동’(우리글·2006년)에 수록된 ‘시인과 화가1’이다. 2000년 겨울부터 2005년 겨울까지 쓴 65편의 시에 인사동의 민낯을 담았다. 인사동 곳곳에는 예술혼이 잠겨 있다. 예술가의 자취가 묻어 있다. 이들이 보고 듣고 즐긴 것들이 서울미래유산이 돼 보석처럼 점점이 박혀 있다. 고 천상병 시인의 부인 목순옥씨가 인사동에서 운영한 카페 ‘귀천’은 서울미래유산이다. “귀천에 목 여사는 없고/걸레스님만 걸려 있다/천 시인은 목 여사와 나란히 앉은 사진틀에서/생진아, 너 아직 스무 살이제이 한다/내가 쉰한 살 때 하던 소리다/지금은/내가 먼저 하늘에 왔데이 하고 웃는다/천 시인은 나보다 한 살 아래인데/먼저 하늘에 왔다고 자랑한다” 목씨 사후 조카 목영선씨가 2호점을 내 명맥을 잇고 있다. 오래된 서점 통문관도 서울미래유산이다. 이생진 시인의 시에 등장한다. “통문관 앞을 지나는데/노란 은행잎 속에서 이겸노 옹이 바스락거린다/그의 생애가 인사동이다” 인사동의 중앙통인 인사동길에 있는 통문관은 1934년에 문을 열었다. 출입문은 대개 닫혀 있다. 창에 붙은 서화 틈새로 기웃거려 보지만 천장까지 쌓은 책 때문에 안을 들여다보기 어렵다. 통문관 주인 이종운씨는 이겸노씨의 손자다. ‘월인석보’, ‘청구영언’ 같은 보물급 전적을 비롯해 수많은 고서를 발굴·수집한 할아버지에게서 천자문을 배웠다. 수많은 자료 중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기관지로 발행한 항일투쟁지 ‘상해독립신문’ 창간호 등 170부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할아버지께서 여든여덟 살이 되셨을 때 ‘통문관책방비화’라는 책을 냈는데 나도 그 나이쯤 책을 내고 싶다”고 말했다.●조선의 근대가 태동한 문화·정치 일번지 인사동에서 가장 오래된 필방 구하산방은 ‘첩첩산중 신선들의 집’이라는 뜻이다. 역시 서울미래유산이다. 1913년에 문을 열어 3대째 이어 온 필방에는 종이, 먹, 붓, 물감 등 2000종이 넘는 서화 재료가 가득하다. 필방에는 그림을 공부하는 학생에서부터 전국의 화가들이 몰린다. 홍수희 대표는 “우리 집 모르면 작가가 아니지”라고 말한다. 본래 일본 상인이 개업한 가게였으나 우당 홍기대 선생이 1935년에 점원으로 들어가 광복 이후에 인수했다. 3대인 홍수희 대표는 2대 홍문희씨의 동생이다. 서울미래유산 수도약국은 광복 직후인 1946년 8월 15일 임명용씨가 개업했다. 약국에서 심부름하다 약종상 면허를 취득했으니 적수공권으로 자수성가한 약업계 1세대다. 세간에 “수도약국에는 없는 약이 없다”라는 말이 나돌았다. 지금은 모두 추억이 됐지만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약을 사기 위해 장사진을 이룬 적도 있었다. 약국을 가업으로 이어받은 약사는 셋째 아들 임준석씨다. 종로구 인사동 194 하나로빌딩 1층에는 서울미래유산 서울중심점 표지석이 말없이 서 있다. 1896년 한양의 중심 지점을 나타내기 위해 고종이 세웠다. 101년 전 3·1운동의 주역인 민족대표 33인은 태화빌딩과 하나로빌딩 사이 주차장 자리인 태화관 별유천지 6호실에서 독립선언을 했다. 서울이 10배 이상 확장되면서 옛 서울의 남쪽 경계였던 남산이 서울의 중심부가 됐다. 흘러간 옛 중심점이다. 이 밖에 인사동 일대의 서울미래유산은 조선중앙일보 옛 사옥, 보신각 지하철 수준점, 낙원악기상가, 허리우드극장, 이문설렁탕, 낙원떡집, 유진식당, 빈대떡전문 열차집 등이 있다. 인사동은 서울의 근대가 태동한 곳이다. 서울의 첫 대학로였고, 서울의 첫 정치 일번지였으며, 서울의 예술과 음식문화가 잉태된 곳이다. 서울의 미래유산 집결지대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다.●일제강점기 몰락한 왕족 고미술품 팔아 인사동은 서울에서 가장 고풍스런 거리이자 미술품과 골동품의 향기가 진동하는 공간이다. 서울에서 가장 한국적인 거리여서 외국인 친구나 오랜만에 고국을 찾은 교포나 외국인 관광객에게 한국을 알릴 수 있는 장소이다. 서울의 명소이자 예술가들의 혼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골동품과 도자기, 고서 등 한국의 전통 상품이 거래되는 상징적인 동네이면서도 ‘중국산 짝퉁’이 소비되는 자본주의의 경연장이기도 하다. 인사동길은 종로구 인사동 63번지에서 관훈동 136번지로 이어진다. 삼청동~관훈동~인사동~청계천 광통교까지 흐르는 개천을 복개하면서 생긴 신작로다. 북쪽으로는 관훈동, 동쪽으로는 낙원동, 남쪽으로는 종로2가 적선동 그리고 서쪽으로는 공평동과 접하는 700여m의 길이다. 일반적으로 인사동이라고 하면 골동품, 화랑, 표구, 필방, 전통 공예품, 전통찻집, 전통음식점 등이 모여 있는 인사동 인접 지역을 통칭한다. 안국역이나 종로3가역에서 들어오는 두 갈래 통로로 이뤄진 인사동의 몸통 인사동길은 모두 11개의 실핏줄 같은 골목을 통해 이웃 동네와 연결돼 있다. 인사동의 역사는 조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계사 바로 옆 터에는 화가를 양성하고 선발하던 도화서가 있었다. 도화서에는 전국의 화원 지망생이 몰려들었고 지필묵을 파는 가게들이 생겼다. 인사동에 처음 고미술품 시장이 형성된 것은 일제강점기였다. 이때부터 인사동은 ‘한국 전통 문화재 유출의 현장’이 됐다. 몰락한 왕족과 양반들이 고미술품을 일본인에게 내다 판 시기다. 해방 이후에는 일본인 대신 미군과 유럽인들로 고객이 바뀌었다. 1970~80년대부터 인사동에 화랑·표구사 등의 상가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화랑이 들어섰다. 필방이 속속 진을 쳤다. “인사동에 와서도 인사동을 찾지 못하는 것은/동서남북에 서 있어도/동서남북이 보이지 않기 때문/그렇게 찾기 어려운 인사동이/동은 낙원동으로 빠지고/서는 공평동으로/남은 종로2가에서/북은 관훈동으로 사라지니/인사동이 인사동에 있을 리가 없다…” 이생진 시인은 시집 ‘인사동’에 인사동의 역사와 상처를 기록하고자 했다. 그리고 “시혼이 상혼에게 혼을 빼앗긴 지 오래되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미 14년 전의 일이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 [글로벌 In&Out] 다문화사회, ‘단군신화’ 등 역사 교육이 중요하다/알파고 시나씨 아시아엔 편집장

    [글로벌 In&Out] 다문화사회, ‘단군신화’ 등 역사 교육이 중요하다/알파고 시나씨 아시아엔 편집장

    역사는 참 신기한 현상이다. 역사는 학문의 영역이고, 때로는 수많은 사상이나 이데올로기의 기둥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부는 역사를 낭만적으로 접근하고 정치적 이념이나 종교적 교리를 뒷받침하는 도구로 활용하려고 한다. 나 같은 사람들은 교훈을 얻으려고 역사에 접근하고 현재를 이해하는 도구로 쓴다. 역사는 인류의 제일 큰 사회적 실험실이다. 그 실험실에서 얻은 결과를 감정이나 정체성, 신념에서 벗어나 분석하면 많은 가르침을 얻는다. 이렇게 긴 서론을 쓰는 이유는 역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아서다. 한국 TV에 자주 출연한 한 외국인과 대화하다가 ‘단군신화’에서 멈추게 됐다. 그 외국인 친구가 단군신화의 내용을 모른다는 것을 알아챘다. 친구는 모른다고 시인했다. 나는 너무나 놀랐다. 한국어도 그렇게 잘하고, 한국에서 그렇게 오래 살았는데 어떻게 단군신화를 모를 수 있나 싶어서 물어봤다. “어학당 다닐 때도 안 배웠어? 나는 단군신화를 충남대 정치외교학과에서 배운 거 아니야. 난 어학당에서 배웠어. 4급 때는 가르치던데? 넌 6급 졸업한 거 아니었어?” “응, 4급이나 5급 때 그런 거 배운 적이 없어. 우리 교과서가 다른가 봐.” 이 친구가 진짜로 단군신화를 하나도 모른다는 것을 확인하고 난 후에 바로 설명했다. 일단은 단군신화를 요약했다. 환인과 환웅 이야기를 하고, 다음에 곰과 호랑이 이야기를 하면서 단군의 탄생을 서술하고, 아사달에서 건국됐다고 하는 고조선의 배경을 알려 줬다. 물론 그 친구의 질문은 멈추지 않았다. “이 이야기가 어디에 쓰여 있어?” “단군에 대한 언급은 ‘삼국유사’, ‘제왕운기’, ‘세종실록’ 그리고 ‘동국통감 외기’ 같은 문서에 있는데, 단군신화가 제일 이쁘게 나온 대표적인 문서는 일연 스님이 집필한 삼국유사야.” 그다음 대화는 왜 일연 스님이 갑자기 삼국유사를 집필했는지로 넘어갔다. 왜냐하면 외국인 관점에서는 당시에 유력한 종교의 스님이 불교적 교리와 어긋난 이야기들을 가지고 책을 냈다는 것 자체가 흥미진진하다. 그러다 보니까 대화의 주제가 몽골 제국의 한반도 침략 및 고려시대가 돼 버렸다. 몽골 지배하에서 지식인들이 종교보다는 민족적인 감정이 강해져서 삼국유사 같은 책이 나오게 됐다. 신기한 것은 삼국유사가 몽골 침략이 끝나고 나서 살짝 잊혀졌다가 조선시대 말에 다시 한번 크게 관심받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조선시대 말에는 주권이 다시 위협받는 상황에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단군신화를 바탕으로 그 당시에 탄생한 신흥 종교 대종교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홍익대학교, 단국대학교 그리고 경희대학교의 성립 배경을 이야기했다. 다음에 개천절이 국경일로 지정된 역사적 흐름을 말해 주니까 그 친구의 눈이 좀 커졌다. 단군신화 하나로 한국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됐다는 그런 눈빛이었다. 물론 나는 단군신화에 속 이야기를 믿지는 않는다. 무슨 곰이 40일 동안 동굴에서 쑥과 마늘을 먹고 참았다고 여성으로 변신해서 한국 여성의 조상이 됐겠는가. 오히려 개인적으로 그 동굴에서 여성으로 변신한 동물은 곰이 아니라 호랑이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단군신화가 성경이나 불경 같은 신성한 종교적인 문서는 아니지만, 한국의 공동체를 하나의 국민으로 묶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만큼 한국과 인연을 맺은 외국인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결론은 한국에서 살려고 결심한 외국인은 한국어만큼 한국인을 구성하는 정신적인 요소인 역사나 신화 등을 알아야 한국 사회를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각 대학의 어학당이나 한국어 교육을 하는 장소들에서 언어 교육 속에 한국의 신화와 역사를 녹여서 교육해야 한다.
  • “헬조선이 웬 말? 한국만 한 나라는 없다” 한국인보다 더 ‘찐’ 한국인

    “헬조선이 웬 말? 한국만 한 나라는 없다” 한국인보다 더 ‘찐’ 한국인

    한국 사람보다 한국말을 잘하는 외국인이라는 세간의 평가는 틀리지 않았다. 선불교에 빠져 ‘무일푼 한국행’을 택했다는 독일인은 한국의 구불구불 산길이 너무 좋다고 했다. 20년을 한국에서 지낸 그는 녹색이든 파란색이든 대충 ‘파란색’이라고 부르던, 넉넉히 음식을 마련해 낯선 외국인도 정으로 나누어 먹이던 소싯적 한국을 그리워했다. 한국만 한 나라 없다고, 헬조선이 웬 말이냐며 청춘 시절 자신의 ‘노오력’(노력의 강조형)을 언급할 때는 외국인답지 않은 ‘꼰대스러움’(?)에 웃음을 짓게 했다. 반면 교육 문제·댓글문화·서울집중화·고령화·상대적 박탈감 심화 등 한국의 민감한 사회문제를 지적할 때는 짧게 끊어 치는 특유의 저돌적인 화법이 인상적이었다. 최근 방송인으로 유명세를 얻고 있는 안톤 숄츠(48) 기자를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서울신문 편집국 회의실에서 1시간가량 만났다.-기자, 프로듀서, 여행작가 등 호칭이 여러 가지다. 직업이 뭔가. “프리랜서 기자다. 2001년부터 잡지용 여행기사를 쓰고 사진도 찍었다. 인도, 네덜란드, 태국 등 10개국에 6개 국어로 기사를 제공했다. 하지만 사진의 디지털화로 수입이 줄어 영역을 넓혔다. 2002년부터 한일월드컵 등 행사가 많아져 프로듀서를 겸했다. 해외 방송국의 한국 취재를 돕고 직접 촬영도 했다. 또 2007년부터 2018년까지 ARD(독일 공영방송)의 특파원들과 일하는 프로듀서였다. 2003년부터 7년간 조선대에서 독일어교육과 전임강사도 했다.”(KBS의 저널리즘 토크쇼J, tvN의 외계통신 등 TV 시사프로그램에서도 활약했다) -언제 한국에 왔나. “1994년이다. 독일에서 열여섯 살 때부터 태권도를 배웠는데 한국 ‘사부님’이 동양철학, 선불교, 참선 등도 가르쳐주며 정신수양을 강조하셨다. 한국의 옛 문화에 관심이 많아졌는데 어느 날 도장에 왔던 한국 스님이 선불교에 관심이 많으니 제대로 배우려면 한국에 오라고 했다. 당시는 군 복무 대신 18개월간 사회복무를 할 때여서 이듬해인 스물두 살 때 한국에 왔다. 참고로 태권도는 1단이다. 한국은 군 복무만 하면 1단이라지만 독일에서는 5년은 해야 1단을 딴다.” -한국에 와서 스님을 만났나. “한국에 도착해서 바로 스님과 금수산(충북 제천)에 갔다. 돈은 없었지만 산 수행이 너무 좋았다. 밤늦게까지 겨울 산을 돌아다니다 길을 잃고 추위에 떨다가 소위 ‘도사’(산속 수행자)의 작은 텐트에서 함께 자기도 했다. 출신이나 이름도 안 묻고 음식을 나누어 주고, 재워 주는 한국 문화가 좋았다. 독일도 정이 많지만 이방인한테까지 그렇지는 않다. 지금은 그런 한국 문화가 사라져 가는 듯해 아쉽다. 이후에 한국 불교를 해외에 알리는 데 큰 공헌을 한 숭산 스님의 제자가 됐다. 1년간 일본 사찰에서 수행도 했다.” -요즘에도 산을 자주 찾나. “등산도 하지만 오토바이 타는 것도 좋아한다. 아름다운 산길을 한 시간가량 구불구불 달려서 지리산에 자주 간다. 거제도나 강원 지역은 정말 아름답다. 천국이다. 한국에서 가 보지 않은 곳은 거의 없을 거다. 다만 오토바이가 고속도로를 못 달리는 법은 아마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인보다 한국말을 잘하는 외국인이라는 평이 있다. “한국에서 20년쯤 살았다(웃음). 말하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 한국에 처음 온 1994년에는 지금처럼 영어가 보편적이지 않았다. 한국어 습득은 생계의 문제이기도 했다. 외국 친구가 아닌 스님과 지낸 것도 도움이 됐다. 외국 커뮤니티보다 빨리 한국 사회로 들어가는 게 언어 습득에 유리한 것 같다.” -좋아하는 한국어가 있나. “단어는 정서를 담는다는데 한국말 중에는 정확하지 않은 단어 표현이 외려 매력적인 경우가 있다. 파란색이 그렇다. 블루(blue)나 그린(green)을 다 의미할 수 있다. ‘거시기’라는 단어도 좋다. 순간 뭔지 생각나지 않을 때 쓰면 신기하게도 듣는 사람이 알아듣는다.” -왜 주거지로 광주를 택했나. “조선대에 근무하면서 2004년 광주에 정착했다. 서울을 좋아하지만 막히는 교통과 비싼 집값이 싫었다. 인생을 도로에서 버리는 느낌을 자주 받았고, 당시에 알아봤던 서울의 30평 아파트 가격은 7억원이나 했다. 수도권에 살 생각도 했는데 한 시간 이상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보다 서울에 일이 있을 때 광주에서 KTX를 타는 게 낫겠다 싶었다. 광주는 서울과 다른 분위기이지만 살기 편한 도시이고 자연도 너무 좋다. KTX나 SRT로 서울까지 한 시간 30분 걸린다. 아침 식사 후 KTX를 타고 노트북으로 일을 하며 서울에 왔다가 저녁 식사는 다시 광주 집에서 할 수 있다.” -광주에 아늑한 집도 지었더라. “2012년에 땅을 샀고 돈 좀 더 모으고 2016년에 지었다. 만족한다. 한국은 분권이 필요하다. ‘서울 집착’은 한국의 강점이 아니라 약점이다. 독일의 아디다스는 헤르초게나우라흐라는 인구 2만 3000명 정도의 작은 곳에 있고 기업용 소트프웨어 업체인 SAP도 인구 1000명이 안 되는 라인란트팔츠주 발도르프에 있다. 인구 150만명 정도인 광주에서 시작했던 금호 등은 서울로 이사갔다. 분권을 못 하면 삶의 질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 -지방분권 외에 한국과 독일의 차이점을 꼽는다면. “교육이 독일과 크게 다르다. 한국의 교육 수준은 높지만 핵심이 잘못됐다. 독일은 교육을 잘 받으려고 시험을 본다. 한국은 시험을 잘 보려고 교육을 받는다. 시험은 도구인데 한국에서는 시험이 목적이다. 요리를 하는데 재료가 아니라 프라이팬을 돌리는 기술에 집착한다. 한국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는다. 자신처럼 고생할까 봐 애를 안 낳는다는 한국 사람들도 있다. 독일에서는 학원이 뭔지도 몰랐다. 독일에서 초등학생에게 밤 10시까지 학원에 다니게 하면 주위에서 정신상태를 확인하려고 할 거다. 독일 초등학생들은 오후 1시면 학교를 마치고 논다. 노는 게 창의성을 키운다.” -스펙이 없으면 직장을 구하기 힘든 게 한국의 현실이다. “독일에서는 구직자를 찾을 때 사람을 보는데 한국은 학벌, 부모의 직업, 토플점수 같은 숫자를 본다. 독일에서는 아무도 토익점수를 묻지 않는다. 나도 토익, 토플을 한 번도 안 봤지만 큰 기업에서 통역 일을 했다. 독일에서는 시험문제가 아니라 인생의 문제를 잘 풀 사람을 원한다. 그러니 창의성과 실질적 경험을 중시한다. 독일에서 왜 노벨상 수상자가 많이 나오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데 결국 ‘좋은 교육’ 때문이다.” -한국인 중에는 살기 힘든 나라에 산다고 여기는 이들이 꽤 많다. “7포시대, 흙수저 등의 단어도 알고 60%가 한국에서 떠나고 싶다는 설문 조사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중 하나다. 새벽 2시에 밖에 마음대로 나간다. 배가 고파서, 집이 없어서, 약을 못 먹어 죽는 사람이 거의 없다. 내 고향인 독일 함부르크 시내를 걷다 보면 돈을 달라며 접근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누구나 의료제도의 혜택을 받고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요즘 한국에 열심히 해도 어차피 안 된다며 자포자기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열심히 하면 무조건 잘된다는 법칙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처음에 한국에 왔던 90년대는 어땠나. “당시는 일본도 넘어설 거라며 자신감이 대단했다. 요즘은 그 자신감이 없다. 독일에서는 50%가 월셋집에 산다. 수입차나 집이 없는 게 무조건 가난한 건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90년대에 상대적으로 내 집 마련이 쉬웠다는데 그렇지 않았다. 나도 돈 없이 서울에 도착해 3평 남짓 크기의 하숙방을 다른 사람과 함께 썼다. 겨울이면 식사값을 아끼려고 1000원으로 붕어빵 5개를 사 먹었다. 당시 한국인들은 고생하면서도 정이 있었다. ‘밥 먹었냐’는 흔한 인사말에 그런 마음이 있었다. 요즘 청년들은 한국의 좋은 점보다 안 좋은 점에 집착하는 건 아닌가 싶다. 일부는 해외에 나가면 해결될 것처럼 생각하던데 외려 힘들 수 있다.”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 아니겠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문화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이 더 커지는 것 같다. 맛있는 음식, 값비싼 소유물, 럭셔리 여행 등 대부분 자신의 인생 중 최고의 10%를 보여 주는데, 그것을 기준으로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 같다. 실제 인생보다 멋지게 보이고 칭찬받고 싶은 것 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는 가짜가 많다. 댓글도 그렇다. ‘자기 의견’과 ‘잘못된 의견’이라는 두 가지만 존재하는 것 같다. 오른쪽과 왼쪽 사이에 틈은 너무 큰데 아무것도 없다. 내 의견과 다르다고 틀린 의견은 아니다.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게 민주주의다. 토론문화가 필요하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할머니 영양실조로 병원 입원까지…나눔의 집, 관리 대상으로만 대했다”

    “할머니 영양실조로 병원 입원까지…나눔의 집, 관리 대상으로만 대했다”

    매운 음식 못먹는다 말했지만 묵살 ‘식사시간 즐겁다’ 말한 할머니 없어 물 새고 장판 벗겨진 방에 방치 ‘학대’ 운영진이 할머니 찾아간 걸 본 적 없어 운영 문제점 제기했다가 해고 통보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거주하는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에서 5년간 일한 일본인이 “할머니들이 영양실조로 병원에 입원하고 물이 새는 생활관에서 지냈다”고 밝혔다. 2006년 4월부터 2011년 3월까지 나눔의 집 역사관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한 무라야마 잇페이(40)는 1일 서울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나눔의 집 시설이 할머니 치료와 돌봄에 소홀했던 일들을 털어놨다. 나눔의 집을 떠난 무라야마는 현재 일본에 거주 중이다. 무라야마는 “이옥선(93) 할머니가 2009년과 2010년 영양실조로 병원에 입원하신 적이 있고, 다른 할머니들도 밥을 잘 못 드시는 일이 많았다”면서 “이 할머니가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다고 늘 말했지만 나눔의 집 시설이 할머니 각 개인의 희망 사항을 반영해 음식을 만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자 증언대회 참석차 미국, 일본 등을 방문할 때 오히려 음식을 더 잘 드시는 모습을 자주 봤다”고 덧붙였다. 무라야마는 또 “나눔의 집은 노인 복지시설임에도 식단표가 없었다”면서 “조리사가 남은 반찬의 양을 보고 아침에 마트에 가서 식재료를 사는 방식으로 식단이 결정됐다. ‘식사 시간이 즐겁다’고 말씀하신 할머니는 한 분도 없었다”고 말했다. 주거 환경도 열악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2010년 10월 보일러 고장으로 생활관 내 할머니들 방에 물이 쏟아지는 일이 있었다. 당시 ‘수요집회’를 다녀온 박옥선(96) 할머니는 일주일 동안 장판이 벗겨진 방, 즉 콘크리트 바닥이 그대로 노출된 방에서 지냈다”며 “박 할머니는 당시 침대 말고는 아무것도 없던 방 안에서 불안한 얼굴로 혼자 계셨다. 그런 방에 할머니를 지내게 하는 것이 학대로 보였다”고 밝혔다. 그는 “생활관은 비가 오면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일이 빈번했다”면서 “그렇다 보니 배춘희(2014년 별세·91) 할머니는 다리가 아파도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면 무섭다’며 계단(할머니들 방은 1층, 식당은 2층에 위치)으로 오르내리셨다”고 전했다. 무라야마는 시설 운영진이 평소 할머니들을 자주 만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생활관에서 무슨 문제가 생기거나 할머니가 직원들을 부를 때도 당시 안신권 소장과 김정숙 사무국장은 계속 사무실에만 있었다”며 “운영진이 할머니 방으로 찾아가 이야기하는 걸 보지 못했다. 할머니들을 관리 대상으로만 대했다”고 지적했다. 무라야마는 2010년쯤부터 시설의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고, 운영진과의 갈등이 심해졌다고 했다. 그는 결국 2010년 12월 해고 통보를 받았고, 이듬해 3월 나눔의 집을 떠났다. 그동안 나눔의 집 문제가 공론화되지 못한 이유에 대해 무라야마는 “조계종(나눔의 집 법인 이사회) 스님들이 할머니들의 생활 복지를 운영진한테만 맡겨 버리고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나눔의 집 운영진, 할머니들 관리 대상으로만 대했다”

    “나눔의 집 운영진, 할머니들 관리 대상으로만 대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거주하는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에서 약 5년 동안 일한 일본인이 “할머니들이 영양실조로 병원에 입원하고 물이 새는 생활관에서 지냈다”고 말했다. 2006년 4월부터 2011년 3월까지 나눔의 집 역사관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한 무라야마 잇페이(40)씨는 1일 서울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나눔의 집 시설이 할머니 치료와 돌봄에 소홀했던 일들을 털어놨다. 나눔의 집을 떠난 무라야마씨는 현재 일본에 거주 중이다. 무라야마씨는 “이옥선(93) 할머니가 2009년과 2010년 영양실조로 병원에 입원하신 적이 있고, 다른 할머니들도 밥을 잘 못 드시는 일이 많았다”면서 “이 할머니가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다고 늘 말을 했지만 나눔의 집 시설이 할머니 각 개인의 희망사항을 반영해 음식을 만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자 증언대회 참석차 미국, 일본 등을 방문할 때 오히려 음식을 더 잘 드시는 모습을 자주 봤다”고 덧붙였다. 무라야마씨는 또 “나눔의 집은 노인 복지시설임에도 식단표가 없었다”면서 “조리사가 남은 반찬의 양을 보고 아침에 마트에 가서 식재료를 사는 방식으로 식단이 결정됐다. ‘식사 시간이 즐겁다’고 말씀하신 할머니는 한 분도 없었다”고 말했다.주거 환경도 열악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2010년 10월 보일러 고장으로 생활관 내 할머니들 방에 물이 쏟아지는 일이 있었다. 당시 ‘수요집회’를 다녀온 박옥선(96) 할머니는 일주일 동안 장판이 벗겨진 방, 즉 콘크리트 바닥이 그대로 노출된 방에서 지냈다”면서 “박 할머니는 당시 침대 말고는 아무것도 없던 방 안에서 불안한 얼굴로 혼자 계셨다. 그런 방에 할머니를 지내게 하는 것이 학대로 보였다”고 밝혔다. 그는 “생활관은 비가 오면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일이 빈번했다”면서 “그러다 보니 배춘희 할머니(2014년 별세·91)는 다리가 아파도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면 무섭다’며 계단(할머니들 방은 1층, 식당은 2층에 위치)으로 오르내리셨다”고 전했다. 무라야마씨는 시설 운영진이 평소 할머니들을 자주 만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생활관에서 무슨 문제가 생기거나 할머니가 직원들을 부를 때도 당시 안신권 소장과 김정숙 사무국장은 계속 사무실에만 있었다”면서 “운영진들이 할머니 방을 찾아가 이야기하는 걸 보지 못했다. 할머니들을 관리 대상으로만 대했다”고 지적했다. 무라야마씨는 2010년쯤부터 시설의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고, 운영진과의 갈등이 심해졌다고 했다. 그는 결국 2010년 12월 해고 통보를 받았고, 이듬해 3월 나눔의 집을 떠났다. 그동안 나눔의 집 문제가 공론화되지 못한 이유에 대해 무라야마씨는 “조계종 스님들(나눔의 집 법인 이사회)이 할머니들의 생활 복지를 운영진한테만 맡겨버리고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한달 연기끝 열린 부처님오신날에 문 대통령은

    한달 연기끝 열린 부처님오신날에 문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은 30일(윤 4월 8일) 불기2564(2020)년 부처님오신날 법요식을 맞아 “큰 원력과 공덕으로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온 전국 사찰의 스님들과 불자들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봉행된 법요식에서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대독한 축사를 통해 “불기 2564년 부처님오신날 봉축 법요식을 축하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불교는 ‘선행의 근본은 자비심이며, 자비심이 곧 부처다’라는 가르침을 실천해왔다”며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국난에 맞서 일어섰고, 이웃의 아픔과 고통을 나누어 짊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도 불교계는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가장 앞서 헌신하며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일상에서 실천하고 있다”며 “법회와 행사 대신 기부와 나눔으로 어려운 이웃을 보듬고, 오직 국민들이 평안해지기만을 발원해 천년을 이어온 무형문화재 연등회를 취소하는 어려운 결정을 내려주셨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오늘 불교 최대 명절인 부처님오신날 봉축 법요식은 지난 한 달, 전국 사찰의 ‘코로나19 극복과 치유를 위한 기도’ 끝에 거행되는 것”이라며 “기도를 통해 닦은 선근공덕을 회향해 자비로운 마음이 꽃피는 세상을 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문 대통령은 “사홍서원 중 첫 번째는 괴로움에 빠진 모든 이웃을 수렁에서 건져 올려 살리는 일”이라며 “지금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 역시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자비의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아프고 힘든 이들을 보듬고, 모두가 행복한 새로운 일상을 위해 불교계가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줄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불기 2564년 부처님오신날 봉축 법요식을 다시 한번 축하드리며,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의 빛이 온 세상에 가득하길 기원한다”라며 “여러분 모두 성불하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날 법요식은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을 찬탄하는 의식과 더불어 한 달 동안 진행한 코로나19사태 극복과 치유를 위한 기도를 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앞서 불교계는 코로나19 위기 상황에 국민과 함께 아픔을 치유하고 극복하고자 법요식을 부처님오신날인 4월30일에서 5월30일로 한 달 미뤘다. 대신 전국 사찰에서는 코로나19 극복과 치유를 위한 기도 입재를 시작으로 한 달 동안 기도정진을 해왔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먼지 털어내는 부처님… 봉축법요식맞이 대청소

    먼지 털어내는 부처님… 봉축법요식맞이 대청소

    코로나19 확산으로 오는 30일로 연기된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을 앞두고 27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에서 한 스님이 불상에 쌓인 먼지를 털어 내고 있다. 이날 조계사는 봉축법요식을 치르기 위해 대청소를 실시했다.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 이용수 할머니 8년 전 출마 말린 윤미향 “다른 할머니들 싫어해”

    이용수 할머니 8년 전 출마 말린 윤미향 “다른 할머니들 싫어해”

    이 할머니 “국회 가서 일본 사죄·배상 받아오겠다”윤 당선자 “국회 안 가도 해결 가능” 끝까지 말려윤미향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자가 8년 전 19대 국회의원 비례대표에 출마하려 한 이용수(92) 할머니를 만류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 할머니는 당사자로서 국회에 들어가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받아오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당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현 정의기억연대) 상임대표였던 윤 당선자는 국회에 가지 않아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취지로 이 할머니를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27일 CBS노컷뉴스는 지난 2012년 3월 8일 이 할머니와 윤 당선자의 통화내용이 담긴 녹취록 내용을 공개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당시 윤 당선자는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출마를 준비하는 이 할머니에게 “국회의원을 안 해도 (위안부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라며 다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그의 총선 출마를 싫어한다는 취지로 말했다.이에 대해 이 할머니는 “다른 할머니들이 뭐하는 데 기분 나빠하느냐”며 “국회의원이 되면 월급은 다 좋은 일에 (기부)하겠다. 걱정되면 ‘할머니 건강이 걱정된다’고만 하면 된다”고 반박했다. 두 사람의 통화는 이 할머니가 국회의원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열기 직전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할머니는 그날 민주통합당 대구시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도저히 죽을 수 없다”면서 “국회의원이 되면 일왕의 사죄와 배상을 반드시 받아오겠다”고 밝혔다. 당시 기자회견에는 일제피해자인권특위위원장인 최봉태 변호사, 최용상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회장,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 30여명이 참여해 이 할머니의 출마 선언을 지지했다.이 할머니는 미래통합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에도 출마를 타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새누리당 측에 아는 사람을 통해 의사를 전달했지만 연락을 받지 못했다”며 “아는 스님 추천도 있고 해서 민주통합당을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할머니는 같은 달 20일 발표된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후보 40명에 들지 못했다. 윤 당선자는 8년 전 이 할머니가 국회에 들어가려 했던 것과 같은 이유로 총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번에는 이 할머니가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고 가야 한다”며 윤 당선자를 말렸다. 이 할머니는 지난 25일 기자회견에서도 “그 사람(윤 당선자)은 자기 맘대로 했으니 (국회의원) 사퇴를 하든지 말든지 그건 제가 할 얘기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서울포토]불상 청소하는 스님들

    [서울포토]불상 청소하는 스님들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코로나19로 5월 30일로 연기)을 3일 앞둔 27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에서 승려 및 불자들이 불상을 청소하고 있다. 2020.5.27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 스님의 행복·신학의 사과… ‘함께의 미학’을 펼쳐보다

    스님의 행복·신학의 사과… ‘함께의 미학’을 펼쳐보다

    코로나19 여파로 조용한 신행을 이어 가는 종교계에 예사롭지 않은 인연과 울림을 전하는 책 두 권이 나란히 출간돼 화제가 되고 있다. 고우 스님의 법문집 ‘태백산 선지식의 영원한 행복’(어의운하)과 서울기독대 손원영 교수의 재판 기록인 `연꽃 십자가´(모시는사람들)다. `태백산 선지식의 영원한 행복´이 승속(僧俗)의 속 깊은 인연 법문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면 `연꽃 십자가´는 종교 평화를 향한 신학자의 험난한 여정과 종교계의 동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계종 대표 선승으로 통하는 고우 스님은 1968년 도반들과 함께 경북 문경 봉암사 선원을 재건해 조계종 종립선원의 기틀을 다진 `제2 봉암사 결사´의 주역이다. 지난해 입적한 봉암사 수좌 적명 스님과 함께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를 지낸 뒤 지금은 봉화 금봉암에 주석하고 있다. `태백산 선지식의 영원한 행복´은 20년간 고우 스님의 제자로 가르침을 받아 온 박희승 불교인재원 교수가 스님의 참선 법문을 꼼꼼하게 기록한 책이다. 박 교수는 조계종 총무원에서 근무할 무렵 종단 분규에 회의를 느끼던 중 한 스님의 소개로 고우 스님을 찾아가 제자로 살아왔다. 최근 부쩍 건강이 나빠진 은사 스님의 법문을 더 늦기 전에 널리 알려야겠다는 보은의 각오로 책을 냈다. 요즘 불교계에선 보기 드문 속 깊은 인연집인 셈이다. 책은 30년에 걸친 고우 스님의 법문을 정성스레 정리했다. 부처의 존재며 수행 과정, 깨달음에서 시작해 선불교의 등장, 간화선 발달, 역대 조사(祖師) 가르침과 참선법을 거쳐 일상에서 얻을 수 있는 화두 참선 효능까지 차근차근 설명한다. 법문집을 관통하는 핵심은 중도(中道)와 연기다. 중도란 이분법적 사고에서 탈피해 대립의 양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심지어 가운데에도 집착하지 않음을 말한다. 책에서 고우 스님은 “중도와 연기를 알면 너와 내가 둘이 아님을 알게 된다”며 양극단에 치우친 어떤 것에도 일관되게 반대한다. 참선을 하더라도 깨닫지 못하면 결국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은 부처와 중생이라는 양극단의 사고나 다름없다. 비록 깨닫지 못하더라도 수행에는 그만큼의 이익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 중도와 연기는 진보와 보수, 노사, 남녀, 남북, 갑을처럼 요즘 우리 사회에 흔한 대립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스님은 서로 대립하는 존재가 아니라 의지하는 관계임을 알아야 갈등과 다툼이 없어진다고 거듭 강조한다. 박 교수는 “고우 스님은 대중에게 법문하실 때 늘 깨달음이나 해탈보다는 영원한 행복을 찾을 것을 강조하신다”며 “우리가 권력이나 지위, 재산에서 얻는 행복은 세속적이고 일시적인 것이라 조건에 따라 변하지만 각자 마음속에 중도를 깨치면 영원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하고 있다.‘연꽃 십자가’는 2016년 1월 김천 개운사 불당을 훼손한 개신교 신자를 대신해 사과하고 복구 비용을 모금했다가 서울기독대에서 파면당한 손원영 교수의 투쟁 기록이다. 불당 복구 비용 모금이 우상 숭배로 몰려 파면된 손 교수는 종교 간 평화의 상징으로 크게 주목받았다. 손 교수의 부당 해고 사실이 알려지면서 개신교는 물론 불교·천주교 등 종교계와 학계, 시민단체 대표들이 ‘손원영교수불법파면시민대책위원회’(시민대책위)를 구성해 지원에 나서기도 했다. 손 교수는 최종 승소 판결에 이어 지난 4월 학교 측 이사회로부터 복직 통보를 받았지만 학교 측 일부 구성원과 보수 개신교계의 강력한 반대에 막혀 여전히 학교로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책은 종교 간 평화와 화해에 치중했던 손 교수의 설교문을 비롯해 해직을 둘러싼 학교 측과의 공방 과정, 손 교수 변호에 나선 이들의 목소리를 정리해 놓았다. 일반 시민들의 성명서와 탄원서, 한국 사회에서 종교 평화를 추구하는 것의 의미와 함께 종교와 폭력의 본질을 다룬 글까지 다양한 내용을 담았다. 박경양(평화의교회 담임목사) 시민대책위 상임대표는 “특히 이웃 종교에 배타적이고 종교 갈등을 조장하는 이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 책을 출판했다”며 “손 교수의 지난했던 투쟁의 기록을 ‘연꽃 십자가´라는 제목을 달아 또렷하게 기록해 둔다”고 밝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곧 결혼식 시작합니다…화면 앞으로 모이세요

    곧 결혼식 시작합니다…화면 앞으로 모이세요

    결혼 중계에 화상회의 시스템 도입 하객들 집으로 미리 음식 배달시켜 예식부터 피로연까지 즐길 수 있어 해외 거주자도 장례식 생중계 참석 인터넷으로 부의금·조화 보내 조문일본 사이타마현에 사는 야마자키 유키(34)는 지난 9일 코로나19 긴급사태 발령 속에도 도쿄 중심가에서 동갑내기 여자친구와 결혼식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코로나19 절정기를 피해 오는 11월쯤으로 미룰까도 생각했던 예식을 원래대로 치를 수 있었던 것은 시부야구의 유명 결혼식장 ‘하라주쿠 도고기념관’이 이달부터 온라인 서비스 ‘도고 라이브 웨딩’을 시작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도고기념관은 올 4~5월에 잡혀 있던 100건 이상의 예약이 전부 취소되자 자구책으로 원격 서비스를 개발했다. 실제 예식장에는 신랑·신부와 부모 등 최대 9명까지만 참석하도록 하고 그 밖의 하객들은 스마트폰이나 PC를 활용한 화상회의 소프트웨어 ‘줌’(ZOOM)으로 연결했다. 예식의 전체 과정은 온라인으로 생중계됐고 신랑·신부는 모니터를 통해 하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온라인 하객들은 도고기념관 측이 각자의 집으로 미리 배달한 음식을 먹으며 피로연도 온라인으로 함께했다. 도고기념관 관계자는 “당초 다음달로 예약했던 커플 중 절반 정도가 결혼식을 연기하지 않고 라이브 웨딩을 통해 예정대로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24일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이후 일본에서 화상 생중계를 통해 진행되는 결혼식과 장례식이 늘고 있다. 재택근무 등으로 활용도가 높아진 화상회의 소프트웨어 시스템이 여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달 5일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의 한 장례식장에서는 ‘통야’(유족과 친척 등이 밤새워 시신을 지키는 일본의 장례 풍습)가 생중계로 진행됐다. 코로나19 때문에 발이 묶인 도쿄 등 타지역 친지들을 위한 것이었다. 승려가 고인을 위해 독경하는 모습이 밤새 스마트폰 등을 통해 라이브로 전달됐다. 이날 독경을 한 승려 마쓰자키 지카이는 “코로나19 때문에 장례식에 직접 오지 못하게 된 것을 애석해하는 사람이 놀랄 만큼 많았다”며 “그런 분들을 위해 라이브 중계는 좋은 대안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 예식은 아무래도 결혼보다는 장례 쪽에서 빈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결혼식과 달리 장례식은 연기가 불가능할 뿐 아니라 고인과 마지막으로 작별하는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을 때의 상심과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군마현 마에바시의 예식 전문 기업 메모리드는 지난달부터 도쿄도, 사이타마현을 포함한 3개 지역을 대상으로 ‘장례 웹토털 서비스’를 시작했다. 직원이 장례식장 내부를 찍어 동영상 전문 사이트 ‘유튜브’에 실시간으로 올리면 현장에 오지 못한 사람들이 스마트폰이나 PC로 조문을 하는 식이다. 녹화 시청은 물론이고 인터넷을 통해 부의금과 조화를 보내는 것도 가능하다. 회사 측은 “서비스 개시 이후 50건 이상 이용됐다”며 “그중에는 도쿄에서 열린 장례식을 (코로나19 때문에 일본 입국길이 막힌) 고인의 미국 거주 아들에게 생중계로 전달한 사례도 있었다”고 전했다. 도쿄에 있는 상조업체 라이프엔딩테크놀로지도 지난달 하순 ‘스마스님’이란 서비스를 개시했다. 온라인 조문을 원하는 사람들이 줌이나 ‘스카이프’, ‘라인’ 등 화상회의 시스템을 통해 화면에 나오면 스님들이 실시간으로 독경을 해 준다. 회사 관계자는 “예약분까지 포함해 50건 정도의 이용 계약이 이뤄졌다”며 “이런 방식을 통해서라도 유족들에게 마음의 위안을 제공하고 싶다”고 밝혔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종교지도자협의회, 보건복지부 방문

    종교지도자협의회, 보건복지부 방문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종지협)가 21일 오후 보건복지부를 방문해 코로나19 사태 해결을 위한 종교계의 참여와 협력의 뜻을 전달했다. 종지협 공동대표 의장인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 천주교 김희중 대주교, 원불교 오도철 교정원장, 유교 손진우 성균관장, 천도교 송범두 교령 등이 자리했다. 이 자리에서 원행스님은 “박능후 장관 이하 모든 직원들, 질병관리본부 그리고 많은 의료진들에게 종교계를 대표해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코로나19가 하루빨리 종식돼 모든 국민이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어 “각 종교별로 코로나 대응에 집중하느라 이제야 찾아뵙게 됐다”며 거듭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에 박 장관은 “이번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국민은 물론 종교계를 비롯한 사회 각계각층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가 있었다”고 화답하고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해온 성과가 헛되지 않도록 앞으로도 종교계의 성숙한 의식과 협조를 통해 생활 속 거리두기와 방역에 적극 동참해 주시실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이 자리에서 “사스, 메르스 등 많은 감염병을 겪어봤지만 코로나19는 굉장히 다른 감염병으로 큰 도전이자 위기”라면서 “하지만 이 위기를 온 국민이 힘을 합쳐 극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부심을 느꼈다”고 피력했다. 정 본부장은 “종교 지도자들께서 많은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는 정신적 지주가 되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넘어야 할 산이 많겠지만 방역 당국도 최선을 다해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겠다”고 덧붙였다. 종지협은 환담 직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추진하는 의료진 응원 캠페인 ‘덕분에 챌린지’ 기념촬영을 했다. 앞서 종지협은 코로나 19 극복을 위한 성금 2000만원을 전국재해구호협회에 전달했다. 세종 박찬구 선임기자 c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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