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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둑들이 훔쳐온 불상…“일본이 합법 취득한 증거 있느냐”

    도둑들이 훔쳐온 불상…“일본이 합법 취득한 증거 있느냐”

    10년 전 한국 도둑들이 일본 쓰시마 간논지(觀音寺)에서 훔쳐온 고려 금동관음보살좌상 소유권을 놓고 벌이는 15일 항소심에 간논지 주지가 출석했다. 1심 재판부는 “불상에 ‘고려국 서주(서산)’ 기록은 있으나 이전기록이 없다”며 고려 때 이를 제작한 것으로 전해진 충남 서산 부석사의 손을 들어줬었다.대전고법 민사1부(부장 박선준)가 이날 연 항소심 재판에 출석한 간논지 다나카 세스료 주지는 “부석사의 소유권을 입증할 것이 부족하다. 일본·한국민법 시효에 따라 소유권은 간논지에 있다”며 “이 불상은 1953년 종교법인으로 관음사가 설립된 이후 분명히 우리가 소유해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관음사가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소중히 지켜왔다”면서 “이 불상은 간논지 뿐 아니라 쓰시마현 나가사키의 재산”이라고 덧붙였다. 다나카 주지는 또 “10년 전 절도단이 불상을 훔쳐 불법적으로 한국에 흘러들어갔을 때 헤아릴 수 없이 슬펐다”면서 “그 세월에 불상 반환을 바라는 간논지 임원 2명이 세상을 떠났다. 하루 속히 우리에게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호소했다. 이날 재판은 일본어 통역사가 배치돼 동시통역으로 진행됐다. 부석사 측은 “간논지에서 1527년쯤 이 불상을 적법하게 취득했다고 주장하는데, 그 어떤 증거도 없다. 간논지 측에는 있느냐”고 따져물었고, 간논지 측은 “일본으로 돌아가서 찾아보겠다”고 답변했다. 사건은 김모(당시 69)씨 등 한국 문화재절도단이 2012년 10월 일본으로 건너가 간논지에서 이 금동불상을 훔쳐오면서 한·일 간 외교마찰로 비화됐다. 불상은 높이 50.5㎝, 무게 38.6㎏으로 1330년 부석사에서 제작됐으나 고려 말이나 조선 초 ‘왜구’의 약탈로 일본에 건너간 것으로 추정된다. 부석사는 2016년 4월 소유권을 주장하며 우리 정부를 상대로 소송했고, 이듬해 1월 승소했다. 국내 초유의 국외문화재 소송인 재판에서 김씨 등 절도단은 “일본이 약탈해간 문화재를 가져왔으니 우린 애국자다”고 주장했다. 현재 이 불상은 재판이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압수돼 국립문화재연구소 유물수장고에 보관 중이다. 부석사 원우 스님은 이날 재판 직후 취재진과 만나 “간논지 측에서 출석했으니 이제는 소유권 분쟁이 일단락이 될 것”이라고 했다. 또 일본 취재진 수십명이 몰려와 재판을 참관하고 재판이 끝난 뒤 다나카 주지를 인터뷰하는 등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다음 항소심 재판은 8월 17일 오후 2시에 열린다.
  • 우리나라에서 처음 불교가 도래한 곳 영광 불갑사(佛甲寺)를 가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불교가 도래한 곳 영광 불갑사(佛甲寺)를 가다

    애초에, 무엇이든지 처음과 시작은 당연히 있기 마련이다. 사실 여행지를 다녀본다든지, 의미있다는 장소를 가 보면 앞다투어, 제각각 무언가 자신만의 ‘처음’과 '시작'에 대한 이야기를 방문객들에게 전하려고 애쓴다. 말 그대로 장소와 어울리는 ‘역사 스토리텔링’이 하나쯤은 번듯하니 있어야만 여행지나 방문지로서의 의미를 뽐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몇몇 여행지는 동네 어린애들이 들어도 '선을 세게 넘었다' 싶을 정도의 억지 이야기를 전하는 경우도 있고, 도저히 장소와는 하등 관계없는 전설이나 신화를 만들다시피 한 곳들도 많다. 그런데 반대인 경우도 있기 마련. 널리 알려져야 하고, 알려질 수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으레 와봄직한 이야기를 지니고 있음에도 전혀 이름 내지 않는 곳도 있다. 우리나라 불교가 제일 처음 도래한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전라남도 영광의 불갑사(佛甲寺)로 가 보자. 불갑사(佛甲寺)를 방문하면 제일 놀라운 점은 말 그대로 바닷가 ‘절’답다는 것이다. 조용하고 아스라히 밝은 느낌의 바닷바람 머금은 불갑사 절간의 공기 내음은 영호남 내륙 지방 첩첩산중 소나무 송진 향 가득 묻어나오는 엄숙한 그 무언가와는 사뭇 다르다. 한 마디로 절 전체를 둘러싼 명도나 채도가 밝고 맑고 느긋하고 굴비처럼 짭조름(?)하니 눈에 사찰의 풍광들이 딱딱 감긴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 절이 만들어지게 된 스토리 하나는 짱짱 화려하다. 물론 불갑사를 두고 백제 침류왕 원년(384)에 인도승 마라난타가 세웠다는 설과 무왕 때 행은 스님이 세웠다는 설이 있지만 여하튼 이 절이 분명 오래된 절이라는 점은 어쨌든 분명하다. 이런한 이야기들만으로도 불갑사 건립을 둘러싼 스토리텔링은 충분히 단단해 질 수가 있다. 이런 까닭에 불갑사에 대해 좀 어려운 말을 섞어 부르자면 ‘호남(湖南) 명찰(名刹)이자 유서(由緖)깊은 고찰(古刹)’이라는 표현을 대놓고 마구 마구 써도 전혀 거리낌이 없을 정도로 불갑사의 오랜 시간은 켠켠히 쌓여 있다.그래도 이 불갑사는 행은 스님 설화보다는 삼국 시대 백제시기 불교를 처음 이 땅에 가져왔다는 인도스님인 마라난타존자(摩羅難陀尊者)가 남중국 동진(南中國 東晋)을 거쳐 백제 침류왕 1 년에 영광땅 법성포로 들어와 모악산에 최초로 사찰을 창건했다는 전설이 좀 더 강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부처 불(佛), 첫째 갑(甲), 절 사(寺)’라는 한자어처럼 백제에 불교가 들어와서 처음 세워진 사찰이라고 불리고 싶은 곳, 불갑사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에게 '굴비'로만 각인된 이 지역의 포구인 법성포(法聲浦) 역시 내막을 알고 보면 이 곳의 내력 역시 다부지게 다져져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원래 백제시대 옛 지명은 아무포(阿無浦)로, 고려시대에는 부용포(芙蓉浦)로 불리우다 성인(聖人)이 법(法)을 가지고 들어온 포구란 뜻을 좇아 법성포(法聲浦)로 불리게 된 것이다.법성포(法聲浦) 굴비를 한 두름을 손에 쥐면서도 이 포구의 거룩한 계보 하나는 알고 가자. 여하튼 지금은 이 법성포 불갑사는 영광 지역 최고의 관광지가 되어 있어 옛 '영광'을 다시금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남도 여행에서 넉넉하니 넓직하니 이렇듯 규모을 제대로 가지고 있는 사찰 관광단지는 그리 많지는 않다. 비록 이 불갑사가 백제시대부터 고려말과 조선 훼불기, 6.25 동란을 거쳐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는 동안 절의 규모와 모양새가 크고 작고 높고 낮음이 있었더라도 여전히 '불갑사'라는 절간 이름 하나는 꽉 잡고 온 고집은 인정할 만하고 볼 만하다. 꽃무릇 가득한 9월의 불갑사도 아름답지만 곧 초여름 매미 울음 불 뿜기 시작할 뜨거운 바다 기운 감도는 불갑사도 여전히 불갑사답다.   <영광 불갑사에 대한 방문 10문답>  1. 방문 추천 정도는? - ★★★(★ 5개 만점) 2. 누구와 함께?  - 휴식의 공간, 느긋함의 공간, 슬로우 슬로우 슬로우의 의미를 찾는 곳  3. 가는 방법은?  - 주소 : 전라남도 영광군 불갑면 불갑사로 450 전화 : 010-8631-1080/061-352-8097 - 템플 스테이 공간으로도 유명하다.  4. 불갑사의 특징은?  - 바쁘지 않은 곳이다. 천천히 생각을 할 수 있는 느긋한 공간.  5. 방문 전 유의 사항은?  - 생각보다 불갑사 도립공원의 규모가 크다. 시간을 좀 더 내어 반나절 이상 천천히 쉬어 갈 생각으로 오는 것이 좋다.  6. 불갑사에서 꼭 볼 곳은?  - 은근히 볼만한 것들이 많다. 보물로는 영광 불갑사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불복장 전적이 있으며 여기에 더해 천연기념물 제112호인 영광 불갑사 참식나무 자생북한지도 볼 수 있다.  7. 토박이들로부터 확인한 추천 먹거리는?  - 영광 지역은 의외로 먹거리가 풍부한 곳이다. 법성포구 쪽으로 나가면 영광 굴비 거리의 굴비 한 정식이 유명하다. 다랑가지 식당, 법성토우 식당, 강화 식당 등이 이름난 곳이지만 대체적으로 음식 수준은 엇비슷하다.  8. 주변에 더 가 볼만한 곳은? - 낙조가 아름답다. 법성포에서 해안가로 좀 더 다가가면 영광 노을 전시관이 있는 해안가 도로를 오후 늦게 나가 보는 것도 좋다. 모자, 선글라스 필수.  9. 불갑사의 홈페이지 주소는?  - http://kb1.templestay.com/index.asp?t_id=bulgapsa11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전라남도 영광 지역은 의외로 남도의 맛과 멋이 잘 숨어 있다. 번화하고 번잡한 곳을 떠나 서해 낙조와 더불어 조용하고 느긋한 여행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쉬어 간다는 표현이 적확한 곳이다. 
  • “빛도 그림자 받쳐 줘야 빛나요”… ‘무소유’ 렌즈 속 스님의 인생샷

    “빛도 그림자 받쳐 줘야 빛나요”… ‘무소유’ 렌즈 속 스님의 인생샷

    “빛은 그림자가 받쳐 줘야 빛나는 겁니다. 우리 인생도 이와 똑같습니다.” 법정 스님은 생전에 애쓰지 않아도 만날 인연은 만나고, 만나지 못할 인연은 애를 써도 못 만난다는 ‘시절 인연’ 이야기를 종종 했다. 시절 인연은 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만은 아니다. 사람과 물건이 적절한 때를 만나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 것도 다 시절 인연이다. 어느 날 법정 스님은 자신이 쓰던 필름카메라를 맏상좌인 덕조 스님에게 건넸다고 한다. 불쑥 찾아온 인연은 덕조 스님과 잘 맞았고, 그 인연으로 그는 여전히 사진을 잘 찍고 있다. 지난달에는 그동안 불교방송 ‘아침을 여는 덕조 스님의 향기 소리’에 보냈던 문자들과 틈틈이 찍었던 사진을 모아 ‘다시 여행을 시작하는 그대에게’(김영사)를 출간했다. 7년 만에 나온 두 번째 책으로 첫 책에는 없는 드론 사진까지 들어가 눈길을 끈다. 최근 전남 순천 송광사의 산내 암자 불일암에서 만난 덕조 스님은 “카메라를 받은 지 30년도 넘었다”고 회상했다. 평소 다양한 예술을 즐겼던 법정 스님은 사진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예술을 즐기는 데 필요한 물건마저 ‘무소유’를 실천했고, 그 덕에 카메라가 덕조 스님에게 오게 됐다. 덕조 스님이 꺼낸 카메라에는 법정 스님이 글씨를 써서 붙인 스티커가 남아 원래 주인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었다. 왜 줬는지는 따로 묻지 않았지만 은사에게 카메라를 받은 제자는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늘 뭔가를 기록으로 남기는 법정 스님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기록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다. 법정 스님은 사진 찍히는 것을 불편해했지만 덕조 스님이 찍는 것은 의식하지 않았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여겼다고 한다. 가까이서 오래 찍다 보니 미공개 사진도 여럿이다. 아직은 시절 인연이 닿지 못했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공개할 계획이다. 이번에 낸 책에는 송광사와 불일암의 사계를 비롯해 여행길에서 찍은 사진이 들어갔다. 덕조 스님은 “책은 내가 혼자 보는 게 아니라 결국 독자들이 보는 것”이라며 “내가 좋다고 느끼는 사진과 편집자가 좋아하는 사진이 다를 수 있어 사진 선택은 전적으로 편집자에게 맡겼다”고 설명했다. 무아(無我)가 된 저자가 욕심을 내려놓은 사이에 선택된 사진들은 문장 못지않게 읽는 이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사진을 수행의 방편으로 삼는 사진승(僧)은 결코 아니라지만 덕조 스님은 2005년 제1회 템플스테이 사진전 금상 수상자이며, 2016년 인도 남부의 수행 공동체 오로빌에서 ‘송광사의 사계’를 주제로 사진전을 열었을 정도로 솜씨가 남다르다. 장르마다 쓰는 렌즈도 다양하고, 포토샵도 다룰 줄 안다. 찍은 사진이 워낙 많다 보니 외장하드도 따로 있다. 입체적으로 보고 싶은 마음에 드론까지 장만해 가끔 띄운다. 책의 맨 마지막 페이지에 눈 온 송광사를 드론으로 담은 사진이 들어갈 수 있던 이유다. 덕조 스님은 찰나의 순간에 충실해야 하고, 빛과 그림자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한 사진을 인생에 빗댔다. 책에 ‘현재에 충실하라’라는 메시지를 강조한 그는 “꽃이 피려면 씨앗을 심었을 때 필 수 있는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하는 것처럼 사진도 준비를 다 하고 있다가 찰나에 딱 조건이 맞아야 완벽한 사진이 된다”면서 “전체가 다 밝다고 해서 좋은 사진인 것은 아니다. 빛은 풍족함이고, 그림자는 삶의 과정이고 고통인데 그것이 뒷받침되지 않는 빛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조화로운 인생을 당부했다.  
  • 배우 한규원, 스님 됐다

    배우 한규원, 스님 됐다

    배우 한규원이 스님으로 변신했다. 한규원 소속사 제이알 이엔티 측은 9일 방송을 앞두고 한규원은 법복을 입고 스님으로 변신한 모습을 공개했다. 한규원은 8일 첫방송 된 ‘인사이더’에 일명 스님으로 불리지만 속세와 도박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엄익수’ 역으로 강렬하게 첫 등장했다. 실제 스님과 같이 완전히 삭발한 모습이 시선을 집중시켰다. ‘인사이더’는 잠입 수사 중 나락으로 떨어진 사법연수생 김요한(강하늘)이 빼앗긴 운명의 패를 거머쥐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액션 서스펜스. 욕망이 뒤엉킨 게임판 위에서 펼쳐지는 치밀한 두뇌 싸움과 고도의 심리전, 화끈한 액션까지 자신을 파멸로 이끈 세상과 한 판 승부를 벌이는 한 남자의 지독하리만치 처절한 복수가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한규원이 분한 일명 스님 엄익수는 과거 꽁지빚 때문에 한 쪽 손을 잃고도 노름판을 떠나지 못한 인물. 빚 때문에 숨어 지내던 엄익수는 비리 검사들의 약점을 잡기 위해 움직이던 김요한과 뜻밖의 사건으로 얽히게 된다.첫 회에서 사찰을 개조한 하우스 도박장, 의수에 법복 차림으로 첫 등장한 한규원은 비밀수사를 위해 잠입한 김요한과 승부를 벌이게 된다. 승부를 조작한 한규원과 김우상(윤병희)의 사기행각은 결국 김요한에게 간파당하고 이 때 광역수사대가 들이닥친다. 이 사건으로 먼저 수감된 한규원은 이후 성주교도소에 온 요한과 다시 마주치며 교도소까지 이어진 그들의 악연을 궁금하게 했다. 연극 무대를 통해 쌓아올린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손 꼭 잡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자’를 통해 브라운관에 첫 등장한 한규원은 이후 ‘손 더 게스트’ ‘자백’ ‘루카-더 비기닝’ ‘박성실 씨의 사차 산업혁명’ ‘킹덤 : 아신전’ 영화 ‘비스트’ ‘인질’까지 거침없는 활약을 이어왔다. 삶과 죽음에 대한 묵직한 메시지로 진한 여운을 남긴 ‘한 사람만’에서는 시한부 아내 세연(강예원)보다 자신이 먼저였던 이기적인 남편 오영찬으로 섬세한 열연을 펼쳤다. 출연작마다 다양한 캐릭터를 선보여온 한규원이 ‘인사이더에서 삭발까지 감행하며 선보일 강렬한 변신에 귀추가 주목된다.
  • 도난 불교문화재 25점, 30년 만에 집으로

    도난 불교문화재 25점, 30년 만에 집으로

    1989~1994년 사이 도난됐던 불교문화재 7건 25점이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마쳤다. 대한불교 조계종은 8일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환수고불식을 치렀다. 지난 4월 29일부터 불교박물관 환지본처(還至本處·본래의 자리로 돌아감) 특별전에 전시됐던 성보들은 오는 12일 전시가 끝나면 20~22일 사이에 사찰로 돌아간다. 이번에 돌아간 성보들은 2016년 4월 문경 김룡사 사천왕도에 대한 수사를 계기로 환수가 시작됐다. 이후 대법원까지 가는 기나긴 소송에서 조계종이 승소했고, 지난해 12월 소유권을 최종 회복하면서 이번에 돌아가게 됐다. 도난불교문화재피해사찰협의회 회장인 법륜 스님은 떨리는 목소리로 “1993년에 팔성사 부처님이 도난된 후 한시도 편할 날이 없었다”면서 “2016년에 총무원으로부터 환지본처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한량없이 눈물을 흘렸다”는 말로 그간의 마음고생을 털어놨다. 법륜 스님은 “피해사찰협의회가 미력하게나마 힘을 보탤 수 있었다. 환지본처를 위해 함께 노력해주신 스님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조계종은 이번에 환수된 성보의 역사적, 예술적 가치를 조명해 문화재 지정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조계종 관계자는 “앞으로도 도난 불교문화유산이 원 사찰로 돌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막걸리 한 잔 앞에 두고 그리워한다오, 떠나간 당신을[연극리뷰]

    막걸리 한 잔 앞에 두고 그리워한다오, 떠나간 당신을[연극리뷰]

    ‘당신은 누굴 기다리나요.’ 연극 ‘돌아온다’는 무대와 객석을 가르는 막이 없다. 관객석에 앉는 순간 경기도 외곽의 허름하지만 특별한 식당으로 초대된다. 소환 방식은 막걸리처럼 투박하지만 정겹다. 식당의 이름은 ‘돌아온다’. 식당을 알고 찾아온 사람이든 모르고 찾아온 사람이든 모두 벽에 걸려 있는 손글씨 액자에 시선이 멈춘다. ‘여기서 막걸리를 마시면 그리운 사람이 돌아옵니다.’ 글귀는 일종의 주문이자 부적이다. “마음이 있겠지요. 풀지 못한 마음, 곪고 곪아서 맺힌 마음, 그 마음이 오래 여기 남아 있는 거겠지요”라는 극중 스님의 말처럼 글귀에는 그리운 사람이 돌아오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깃들어 있다. 그래서 식당을 찾은 이들은 기꺼이 양은그릇에 막걸리를 채운다. 군대 간 아들을 기다리는 교사, 집 나간 필리핀 아내가 돌아오길 바라는 남자, 출가 이후 연락이 끊긴 어머니를 찾는 스님, 기다리는 대상을 숨긴 채 매일 막걸리를 마시는 욕쟁이 할머니, 이미 생을 다하고 구천을 떠돌며 서로의 존재를 찾는 귀신 부부까지. 식당을 찾는 사람은 제각각이지만 그리움에 묶인 존재라는 점에서 모두 같다. 엇갈린 시간은 그리움을 낳는다. 서로가 원했던 시간이 조금 달랐을 뿐인데 운명은 얄궂게도 서로를 갈라놓는다. 그사이 그리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도, 가슴 한구석에 콕 박혀 버리기도 한다. 식당 한편에 그리운 이를 생각하며 남긴 사진들, 10월에 내리는 때 이른 눈발, 미각과 후각을 자극하는 막걸리, 청각을 자극하는 풍경 소리, 바람 소리까지 모두 그리움을 배가하는 소재들이다. 작품은 돌아옴으로 끝을 봉합하지 않는다.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운명과 인생, 그리고 이룰 수 없는 어떤 근원적 그리움을 담으려 했다”는 선욱현 작가의 말처럼 그리운 대상을 목놓아 불러도 닿을 듯 말 듯 엇갈리고, 얼싸안고 살로 마주해야 할 존재가 뼛가루가 돼 돌아오기도 한다. 심지어 평생을 기다린 존재를 만났지만 곧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만든다. 다만 작품은 보여 줄 뿐이다. 식당에 앉아 막걸리를 앞에 두고 그리움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수 있음을, 어떤 이에게는 그리움이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는 것을 말이다. 2015년 초연 당시 제36회 서울연극제 우수상, 연출상 등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던 작품은 서울 예술의전당 연극 육성 프로그램 ‘창작키움프로젝트’를 만나 업그레이드됐다. 김수로, 박정철, 홍은희, 이아현, 최영준 등 드라마와 영화에서 자주 접한 배우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도 반갑다.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오는 5일까지.
  • 성철 스님 깎고 사라진 조각가 토굴에 숨어 아로새긴 ‘불국토’

    성철 스님 깎고 사라진 조각가 토굴에 숨어 아로새긴 ‘불국토’

    ●사자산 끝자락 놀라운 불교 조각 미술관, 강대철 조각 토굴 놀라운 공간을 전남 장흥에서 만났다. 사자산 끝자락에 불국토를 꿈꾸는 조각 토굴이라니, 과장 좀 보태 갈매기가 물고 날아간 복권을 되찾은 기분이었다. 토굴의 이름은 없다. 아직 완공되지 않았으니 당연하다. 다만 토굴을 만든 이가 펴낸 책 제목이 ‘조각 토굴’이었으니 이를 따르는 게 순리일 듯하다.먼저 조각 토굴의 개요부터. 1650m²(약 500평) 정도의 월암마을 산자락을 파서 만든 일종의 조각 미술관이다. 중정처럼 꾸민 원형의 홀을 중심으로 일곱 개의 토굴이 방사형으로 뻗어 있다. 그중에는 지하로 파 들어간 것도 있다. 각 토굴 안엔 순결한 황토벽을 깎아 불교 철학을 새겼다. 불교 교리를 아는 이들에겐 더욱 신묘한 공간으로 여겨질 법하다. 주인공은 강대철(75) 조각가다. 1978년 중앙미술대전에서 ‘생명질’로 대상을 받으며 혜성처럼 등장한 그는 이후 ‘K 씨 농장의 호박’ 등으로 조각계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그러다 2005년 성철 스님 동상 작업을 끝으로 미술계를 떠났고, 세인의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 공간이 세상에 알려진 경위가 흥미롭다. 17년 은둔 생활을 했던 유명 조각가의 근황이었기에 더욱 그렇다. 게다가 종교적으로 민감한 부분도 있어 그가 천착해 온 시간들에 대한 설명은 반드시 필요하다. 애초 조각 토굴을 발견한 이는 문화일보의 박모 기자다. 2019년 더없이 놀라운 공간에서, 홀연히 사라진 유명 조각가를 만난 그는 곧바로 지면에 게재하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강 작가가 미완성이라며 완곡하게 만류했기 때문이었다. 이듬해 다시 장흥 토굴을 방문했지만 이번엔 수해로 작품 일부가 피해를 입어 기사로 쓸 수 없었다. 그러다 지난 3월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이 한 일간지에 쓴 기고를 통해 토굴의 존재가 드러났다. 이후 강 작가가 쓴 책이 발간되고, 몇몇 매체가 토굴 이야기를 전하면서 이제 수면 위로 솟아오른 모양새다.가장 충격적인 작품은 토굴에 들자마자 만나는 중앙홀의 ‘예수부처’다. 벽면에 오른손으로 수인(手印)을 한 예수의 상반신을, 예수의 시선이 머무는 바닥엔 석관에 누운 부처를 각각 조각했다. 2000년 동안 메시아로서의 예수는 없었다는 걸 상기시키고 ‘깨달은 자’ 부처로서의 예수는 단단한 석관에 매장돼 있다는 것을 표현한 작품이다. 매우 민감하게 해석될 수 있어 강 작가의 설명을 그대로 옮긴다. “이 시대에, 역사의 기득권자들에 의해 조율되고 왜곡된 예수가 아니라 부처로서의 예수, 하나님의 메신저로서의 예수 본래 모습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메시지를 제 주변 기독 신앙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거대한 나무뿌리 형상들이 석관을 에워싸고 있는 것은 2000년 동안 인류의 무지가 부처로서의 예수를 가둬 놓고 있었음을 상징합니다.” 첫 번째 굴은 오온(五蘊·존재를 구성하는 5개의 집합)을 모티브로, 생명의 근원인 뿌리 위에 뇌, 해골 등을 조각했다. ‘나’의 실체를 찾는 실마리라는 의미다. 두 번째 굴엔 바위, 잡석 등이 많았다. 곡괭이와 삽만으로는 조각할 수 없어 3m 정도만 파고 불상을 들였다. 반대로 세 번째 굴은 흙이 너무 부드럽고 점력이 약해 명상을 할 수 있는 공간 정도만 조성했다. 네 번째 굴은 다양한 퇴적층이 독특했다. 강 작가는 다채로운 문양을 가진 흙벽에 백골들을 새겼다. 삶의 무상함을 느껴 보라는 것이다. 다섯 번째 굴엔 도마뱀과 연꽃, 반가사유상 등 인상적인 작품이 많다. 입구에 모든 동물 가운데 가장 화를 잘 내고 다투기를 좋아한다는 도마뱀을, 굴 끝엔 깊은 명상에 잠긴 반가사유상을 배치했다.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라는 취지일 테다. 여섯 번째 굴은 지하로 20m쯤 파 내려갔다. 육신이 뒤틀린 고행상을 세우고 뒤로 작은 굴을 여섯 개 더 팠다. 육바라밀(열반에 이르는 여섯 가지 덕목)을 상징하는 굴이다. 각 굴은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 등 여섯 가지 주제로 명상할 수 있게 조성했다. 일곱 번째 굴은 앞 토굴의 내용을 간략하게 총체적으로 설명하는 공간으로 꾸몄다. 연기(緣起·모든 형상의 생성과 소멸의 법칙)로 이뤄진 삶을 상징하는 열두 마디의 수레바퀴를 조각한 것이 전부다. 모든 굴엔 감실 형태의 작은 굴을 만들어 촛불을 켤 수 있게 했다. 일부 주민의 도움을 받은 곳도 있지만 대부분 작업은 혼자서 했다. 작업 자체를 기도와 성찰의 방편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첫 삽질을 시작한 지 햇수로 7년. 앞으로도 한두 해 정도는 더 작업을 해야 한다. 전체로 10년 가까이 공을 들이는 셈이다. 이 공간이 미술관이 될지, 명상 센터가 될지는 미지수다. 분명한 건 일반에 공개되기까지 좀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애초 그는 이 토굴을 자신만의 수행 공간으로 삼으려 했다. 기사에 토굴의 정확한 위치를 적지 않은 건 그런 이유에서다. 조각 토굴을 마무리 지은 뒤에도 일정 기간은 인연 닿는 이들과의 수행 공간으로만 활용할 계획이다. 강 작가는 “다만 불성을 존중하고 깨달을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방문을 막지 않겠다”고 말했다.
  • 불교계도 “추기경 서임 축하” 유흥식 대주교에 축전

    불교계도 “추기경 서임 축하” 유흥식 대주교에 축전

    유흥식 대주교의 추기경 서임 소식에 불교계도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31일 “한국 천주교 역사에 있어 또 하나의 축복인 유흥식 대주교님의 추기경 서임을 한국의 모든 불자들과 함께 축하드린다”고 했다. 원행 스님은 “이미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으로서 전 세계의 성직자들과 신도들의 신망을 받아오신 만큼 앞으로도 보다 적극적인 교회의 사회적 역할을 통해 종교 간의 화합과 인류평화를 성취해주실 것을 기대한다”면서 “추기경님의 앞날에 큰 복덕과 건강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드린다”고 바랐다. 유 대주교는 지난 29일 추기경에 서임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인 추기경으로는 역대 네 번째로, 서울대교구장이 아닌 주교가 추기경에 서임된 것은 처음이다. 천주교를 비롯해 각계에서 축하가 이어진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도 유 대주교와 통화를 통해 축하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 대주교는 “크로아티아에서 업무를 보던 중 교황청으로부터 추기경 서임 연락을 예고 없이 받았다”면서 “순교자의 피로 일군 한국 천주교와 대한민국의 위상 덕분”이라고 말했다.
  • 울진 산불로 하루아침에 폐허된 사찰… 스님은 망연자실

    울진 산불로 하루아침에 폐허된 사찰… 스님은 망연자실

    경북 울진군 읍남리에 위치한 보광사의 스님과 사찰 관계자들이 29일 산불로 폐허가 된 사찰 경내를 돌아보고 있다. 울진 산불은 지난 28일 낮 12시 6분쯤 근남면 행곡리 야산에서 일어나 강풍을 타고 주변 산과 마을로 번졌다. 주불이 진화된 29일 현재 산불 영향구역은 145㏊에 이른다.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으나 보광사 대웅전을 비롯해 자동차정비소 등 6곳의 시설물 9개 동이 탔다. 울진 연합뉴스
  • 산불로 하루아침에 폐허된 사찰… 망연자실한 스님

    산불로 하루아침에 폐허된 사찰… 망연자실한 스님

    경북 울진군 읍남리에 위치한 보광사의 스님과 사찰 관계자들이 29일 산불로 폐허가 된 사찰 경내를 돌아보고 있다. 울진 산불은 지난 28일 낮 12시 6분쯤 근남면 행곡리 야산에서 일어나 강풍을 타고 주변 산과 마을로 번졌다. 주불이 진화된 29일 현재 산불 영향구역은 145㏊에 이른다.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으나 보광사 대웅전을 비롯해 자동차정비소 등 6곳의 시설물 9개 동이 탔다. 울진 연합뉴스
  • 60대 남성 “팔만대장경 불 지르겠다” 협박 전화에 탐방 중단

    60대 남성 “팔만대장경 불 지르겠다” 협박 전화에 탐방 중단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팔만대장경 관람이 한 남성의 협박 전화로 중단됐다. 해인사는 27일 “60대로 추정되는 남성이 지난 25일과 26일 이틀에 걸쳐 문화재청에 ‘팔만대장경을 불 질러 없애 버리겠다’고 협박 전화를 걸어옴에 따라 팔만대장경 사전예약 탐방제를 잠정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문화재청이 60대로 추정되는 남성의 협박전화를 받은 사실을 해인사에 전달했고, 해인사는 장난 전화인지 실제 의도를 갖고 있는 행동인지 밝혀질 때까지 탐방을 잠시 멈추기로 했다. 해인사 승우 스님은 27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문화재청을 통해서 연락을 받았다. 스님들이 많이 놀란 상황”이라며 “지난해 개방하고 이런 일은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승우 스님은 “팔만대장경 탐방을 위해 내부로 들어오시는 분들은 물품을 걷어서 물품 보관함에 따로 보관한다. 하지만 일반 관광객들은 소지품 검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팔만대장경 탐방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회차별로 25명씩(5명은 대기) 예약받는다. 협박 전화로 인해 사전에 해인사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이 확정됐던 700명(대기자 포함)은 문제가 해결된 후에 순차적으로 관람할 수 있게 됐다. 평소에도 문화재 보호를 위해 해인사는 스님들이 야간에 순찰을 하고, 문화재지킴이들이 경비를 선다. 당분간 협박 전화의 진위가 파악될 때까지 경비를 더 강화하기로 했다. 승우 스님은 “당분간 경비를 강화해 경찰이랑 방화할 수 있는 곳에서 감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재 합천군 경찰서에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팔만대장경은 고려시대 외세의 침입을 물리치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만들어져 불교계의 호국애민(護國愛民) 정신을 대표하는 유물로 꼽힌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됐고,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해인사는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에게 해인사 팔만대장경 문화체험을 통해 위로와 치유를 제공해 드리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된 해인사가 팔만대장경 사전예약탐방제가 조기에 재시행되도록 국민여러분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이해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 개방된 청와대 속, 경주 불상은 아직도 갇혀 있다

    개방된 청와대 속, 경주 불상은 아직도 갇혀 있다

    청와대가 전면 개방되면서 이른바 ‘청와대 불상’인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보물 제1977호) 반환운동이 재점화됐다. 이 불상은 110년 전 일제강점기 때 경북 경주에서 서울로 불법 반출된 것으로 여러 차례 반환운동이 벌어졌지만 아직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경주문화재제자리찾기운동본부는 25일 대통령 집무실에 청와대 불상 반환 청원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박임관 운동본부 운영위원장은 이날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청와대를 국민에게 개방해 돌려준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고 상식과 정의로 국정을 바로잡겠다고 했으니 청와대 불상도 당연히 본래 있던 경주로 옮기는 게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불상의 경주 반환 요구는 2017년 서울의 문화재제자리찾기운동본부 혜문 스님이 청와대에 진정서를 보내면서 촉발됐다. 경주문화재제자리찾기운동본부는 2017~2019년 줄곧 불상의 조속한 반환을 청와대와 문화재청에 촉구했다. 2019년 1월엔 경주시·경주시의회·운동본부가 청와대 불상의 경주 반환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국회·청와대·문화체육관광부·행정안전부·문화재청 등에 전달했다. 당시 이들은 “청와대 불상이 나라를 빼앗긴 시대에 천년고도 경주를 떠난 지 100년이 지났다”며 “역사 적폐를 청산하고 불상을 제자리로 모실 수 있도록 청원한다”고 했다. 이런 노력에도 청와대는 “불상 이운(移運) 문제는 종교계와 관련 전문가 등의 다양한 의견 수렴과 종합적 검토가 필요한 사항이다. 시간을 두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결정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을 뿐 실제 불상 반환에 협조하지 않았다. 청와대 불상은 9세기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석불좌상으로, 현존하는 통일신라 석불 중 머리와 몸체를 완전하게 갖춘 뛰어난 조각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 불상은 1912년 데라우치 마사타케 조선총독이 경주 고다이라 료조 자택에서 본 뒤 이듬해 서울 남산 총독관저로 옮겨졌다. 1930년대 청와대 위치에 새 총독관저를 지으며 다시 이전됐다. 1974년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가 2018년 4월 보물로 승격됐다.
  • ‘청와대 불상’, 이번엔 고향 경주로 반환될까…청와대 개방으로 여론 다시 커져

    ‘청와대 불상’, 이번엔 고향 경주로 반환될까…청와대 개방으로 여론 다시 커져

    최근 청와대 전면 개방에 이어 이른바 ‘청와대 불상’(보물 제1977호,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의 반환운동이 재점화됐다. 청와대 개방으로 110년 전 일제강점기 때 경북 경주에서 불법 반출돼 서울로 옮겨진 불상이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는 여론이 다시 커지고 있다. 경주문화재제자리찾기운동본부는 25일 대통령 집무실에 청와대 불상 반환 청원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박임관 운동본부 운영위원장은 “청와대를 국민에게 개방해 돌려준 윤석열 정부가 새로 출범했고 상식과 정의로 국정을 바로 잡겠다고 했으니 청와대 불상도 당연히 본래 있던 경주로 옮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청와대 불상의 경주 반환 요구는 2017년 서울의 문화재제자리찾기운동본부 혜문 스님이 청와대에 진정서를 보내면서 촉발됐다. 경주문화재제자리찾기시민운동본부는 2017~2019년 줄곧 불상의 조속한 반환을 청와대와 문화재청에 촉구했다. 2019년 1월엔 경주시·경주시의회·시민운동본부는 청와대 불상의 경주 반환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국회·청와대·문화체육부·행정안전부·문화재청 등에 전달했다. 당시 이들은 “청와대 불상이 나라를 빼앗긴 시대에 천년고도 경주를 떠난 지 100년이 지났다”며 “역사 적폐를 청산하고 불상을 제자리로 모실 수 있도록 청원한다”고 밝혔다. 이런 노력에도 청와대는 “불상 이운(移運) 문제는 종교계와 관련 전문가 등의 다양한 의견 수렴과 종합적 검토가 필요한 사항이다. 시간을 두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결정될 수 있도록 하겠다”라는 입장을 밝혔을 뿐 실제 불상 반환에 협조하지 않았다. 청와대 불상은 9세기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석불좌상으로, 현존하는 통일신라 석불 중 머리와 몸체를 완전하게 갖춘 뛰어난 조각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 불상은 1912년 데라우치 마사타케 조선총독이 경주 고다이라 료조 자택에서 본 뒤 이듬해 서울 남산 총독관저로 옮겨졌다. 1930년대 청와대 위치에 새 총독관저를 지으며 다시 이전됐다. 1974년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가 2018년 4월 보물로 승격된 바 있다. 일제강점기 때 문헌인 ‘신라사적고’에 1913년 불상을 경주 도지리 이거사(移車寺) 터에서 총독부로 옮겼다는 기록이 있다.
  • 툭하면 40도↑… 부처님도 못 견디는 인도 폭염

    툭하면 40도↑… 부처님도 못 견디는 인도 폭염

    인도의 낮기온이 툭하면 40도 이상 치솟으며 혹독한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원래도 무더운 날씨에 지구온난화 여파까지 겹치다 보니 인도를 불교의 고향으로 만든 부처님도, 인도가 마음의 고향인 스님들도 쉽게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더웠다. 인도는 최근 혹서기를 맞아 곳곳에서 피해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인도 기상청은 델리 지역의 기온이 50도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고, 심각한 탈수에 추락하는 새들도 나와 큰 이슈가 됐다. 인도 현지의 동물보호단체들은 수백 마리의 새를 구조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그나마도 일부는 탈수와 합병증으로 폐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나무가 있는 인도 비하르주 부다가야에 지어진 한국 전통 사찰 분황사(芬皇寺)도 이러한 인도 날씨에 큰 영향을 받았다. 대한불교 조계종이 22일 준공한 분황사는 한국의 전통 양식이긴 하지만 목재가 아닌 콘크리트와 청동 등을 사용해 사찰을 지었다. 무덥고 습한 날씨에 목재가 못 견디는 탓이다.분황사 대웅보전에 안치된 불상은 청동으로 제작됐다. 제작을 맡은 여진불교 조각원 이재윤(46) 팀장은 “이런 기후에서는 나무에 금을 입혀도 갈라지고 틀어진다”면서 “처음에는 목불로 할까 논의가 있었는데, 목재가 장시간 버틸 수 없을 거라고 판단해 청동으로 제작했다”고 밝혔다. 나무로 제작해 보수가 필요할 경우 한국에서 보수팀이 매번 왔다갔다할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그야말로 부처님도 못 견디는 폭염이다. 준공식에 하루 앞서 불상을 안치하느라 안간힘을 쓴 스님들은 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려야 했다. 불상의 무게가 350㎏에 달하다 보니 성인 남성 여럿이 달려 들어도 옮기기 쉽지 않았던 탓이다. (관련 기사 : 44도 폭염에 땀 뻘뻘… 350㎏ 부처님 맞은 인도 분황사)현장 공사를 총괄한 박철수(67)씨는 날씨 때문에 분황사를 콘크리트로 짓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더울 때는 일을 못한다. 인도 사람들도 막 쓰러질 정도였다”면서 “나무로 지으면 인도 특유의 날씨와 벌레들이 나무를 오래 못 가게 해서 콘크리트로 지었다”고 밝혔다. 1년 반 정도에 걸친 준공 과정에서도 더위로 어려움을 겪은 분황사는 준공식 당일에도 오전부터 무더운 날씨에 많은 이를 괴롭혔다.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69) 스님이 연설할 때는 비서 역할을 하는 스님이 노란 우산을 들고 무더위로부터 원행 스님을 지켰다.분황사 건립을 계기로 방문한 바라나시의 사르나트(녹야원·붓다가 최초로 설법한 곳)와 보리수나무가 있는 마하보디 사원 역시 덥기는 마찬가지였다. 태양을 피하고 싶어서 아무리 달려봐도 인도의 태양은 어디에서나 강렬했다. 불교 성지 곳곳에 나무 그늘이 있었지만 음지의 공기까지 더운 인도 더위를 피하기는 역부족이었다.그러나 이런 혹독한 무더위에도 스님들과 불자들은 성지순례를 한다는 기쁨, 인도 성지에 한국 사찰이 들어선다는 기쁨으로 무더위에 굴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스님들은 부처님을 향한 마음으로 무더운 날씨에도 가사 장삼을 다 갖춰 입고 탑돌이를 하고 예불을 드리는 등 정성을 다했다. 인도의 무더위는 위협적이었지만 인도 성지에 지어진 한국 사찰이 잘되기를 바라는 스님들의 마음은 더 뜨거웠다.
  • 40도 폭염·코로나 견딘 불사 3년… 韓불교, 성지에 ‘흰 연꽃’ 피웠다

    40도 폭염·코로나 견딘 불사 3년… 韓불교, 성지에 ‘흰 연꽃’ 피웠다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나무가 있어 불교계 4대 성지로 꼽히는 인도 비하르주 부다가야에 한국 전통 양식 사찰인 분황사(芬皇寺)가 준공됐다. 대한불교 조계종 관계자를 비롯해 많은 불자가 사찰 이름인 분황(흰 연꽃)처럼 이곳에서 가피(부처님의 자비를 중생에게 베풀어 주는 것)가 피어나길 기대했다. 조계종은 지난 21일 분황사 대웅보전 앞에서 분황사의 개소를 알렸다. 총무원장 원행 스님을 비롯한 종단 스님들과 국내 불자 150여명에 장재복 주인도 한국대사, 비하르주 정부 관계자, 세계불교도연맹 사무총장 담마삐야 반떼 스님, 현지 승려 등까지 모두 500여명이 참석해 준공을 축하했다.분황사는 원행 스님, 현지 사업을 총괄한 붓다팔라 스님, 50억원을 희사한 설매·연취 보살 등 수많은 인연이 얽히고설켜 만들어졌다. 원행 스님은 3년 전 부다가야를 함께 방문한 7대 종교 지도자들이 각 나라가 앞다퉈 200여개 사찰을 지은 부다가야에 한국 전통 사찰이 없어 의아해하는 것을 보고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발원을 했다. 붓다팔라 스님 또한 25년 전 경남 양산 통도사에서 수행할 때부터 불교의 발원지인 인도에 한국 사찰을 건립하려는 꿈을 갖고 있었다. 불가능해 보였던 꿈은 설매·연취 보살의 희사로 탄력이 붙었다. 두 보살은 40여년 전 부산에서 인연을 맺고 불자 인생을 함께한 사이다. 설매 보살이 불교신문을 읽다가 부다가야 내 한국 사찰 건립을 포함한 ‘백만원력 결집불사’ 관련 기사를 보게 됐고, 곧바로 연취 보살에게 제안해 거액을 내놓게 됐다. 설매 보살은 과거 케냐에 여학생 기숙사를 지을 때 인연을 맺었던 스님을 통해 원행 스님에게 인도에 한국 전통 사찰을 건립하자고 제안하게 됐다. 요구 조건은 두 가지. 이름을 분황사로 할 것과 분황사 앞에 쌍사자 석등을 세우는 것이었다. 준공식을 함께한 설매 보살은 “한국 불교는 실천에 문제가 있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실천하면 다 된다”고 강조했다. 과거부터 몽골과 케냐 등에 학교와 기숙사를 세웠던 설매·연취 보살의 실천력은 보시 정신을 통해 여러 사람을 이롭게 할 것을 강조해 온 원행 스님과 만나 부다가야에서 흰 연꽃을 피우게 됐다. 40도를 가볍게 넘는 무더운 날씨와 코로나19의 위협, 오락가락하는 인도 정부의 정책은 분황사 건립에 큰 장애가 됐지만 관계자들이 한마음으로 뭉쳐 사고 없이 완공에 이르렀다. 분황사 건립을 총괄한 도편수 박철수씨는 “여기에서 살이 15㎏ 빠졌다. 지난해엔 몸이 아파서 유서를 써 놓기도 했다”면서 “한 번도 틀어지지 않고, 누구도 다치지 않고 지을 수 있게 돼 감사하다”며 웃었다. 인연과 실천의 힘으로 만들어진 분황사는 전 세계에 한국 불교를 알리는 거점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원행 스님은 준공식 치사에서 “분황사는 순례자를 위한 안식처이자 수행자를 위한 더없는 아란야(阿蘭若·수행처)가 될 것”이라며 “한국 불교가 세계와 함께하는 전당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분황사 준공식과 함께 보건소 착공식도 열렸다. 백천문화재단이 3억원을 기부했고, 전국비구니회에서 운영을 지원할 예정이다. 붓다팔라 스님은 “인도에 여성 전문 병원이 없다. 여성과 어린이를 돌볼 수 있는 병원으로 특화시키고 싶다”면서 “무료로 운영하는 방법 등을 통해 하층민을 위한 의료센터로 활용할 방안을 찾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 “BTS, 인도 오면 비틀즈급으로 도약” 인도 현지 한국 스님의 초대

    “BTS, 인도 오면 비틀즈급으로 도약” 인도 현지 한국 스님의 초대

    “BTS가 자신들의 콘텐츠에 명상문화를 결합한다면 비틀즈급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겁니다.” 인도 비하르주 부다가야에 분황사 건립을 주도한 붓다팔라 스님이 방탄소년단(BTS)을 인도로 초대했다. 붓다팔라 스님은 20일 분황사에서 취재진과 만나 “문화의 꽃이라는 명상 문화를 한국인이 주도할 수 있다면 화룡점정이 될 것”이라며 BTS가 비틀즈처럼 인도의 문화를 만나기를 소망했다. 비틀즈의 음악 세계에서 인도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조지 해리슨이 ‘Norwegian Wood(This Bird Has Flown)’에서 팝 음악 사상 최초로 인도 악기인 시타르를 연주했고, 이를 계기로 비틀즈는 인도 음악을 파고드는 한편 영적 구도에 관심을 갖고 수많은 명곡을 탄생시켰다. 붓다팔라 스님이 비틀즈를 언급한 이유다. 분황사는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곳인 부다가야에 한국 전통식으로 세운 사찰이다. 대한불교 조계종에서 ‘백만원력 결집불사’의 일환으로 추진했고, 2020년 말부터 짓기 시작해 1년 반 정도에 걸쳐 완공했다. 붓다팔라 스님은 인도 현지법인 물라상가의 대표로서 조계종과 협력해 분황사 건립을 이끌었다. 그는 “한국에 불교가 전해진 지 2000년 정도 되는데 우리는 인도로부터 불교를 도입해 소비를 해왔지 인도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은혜를 갚은 적이 없다”면서 “그게 늘 마음에 걸렸는데 3년 전에 원행 스님이 이곳에 오셔서 한국 사찰이 없으니까 보리수 아래서 발원을 하신 게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마음을 제대로 먹었지만 실천에 옮기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법인을 만들고 인도 정부와 협조하고 허가를 이끌어내기까지 진행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법이 자주 바뀌는 인도의 문화는 특히 어려움이 컸다. 붓다팔라 스님은 “다 허가 난다고 하고 업무협약을 맺고 한국에 보고하고 왔는데 다시 돌아오니 허가가 안 나는 지역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난감했다”면서 “주지사가 참석한 행사에서 ‘이게 안 되면 너희가 손해이지 우리가 손해 볼 것은 없다. 안 된다고 하면 그대로 보고하겠다’고 했더니 도장을 찍어줬다”고 돌이켰다. 분황사는 부처의 깨달음을 기념해 세운 마하보디 대탑에서 직선거리로 400m 정도 떨어져 있다. 분황사 대웅전은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대웅전보다 규모는 작지만 대신 현지에서 교육 사업과 보건 사업이 함께 이뤄지는 것이 특징이다. 붓다팔라 스님은 “여기는 한국의 순례객이나 수행자들이 여기 와서 머물면서 수행하고 성지순례하는 공간으로 쓰이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라며 “두 번째는 인도의 불교 중앙연수원처럼 쓰고, 세 번째는 명상의 오리지널 기술과 이론을 복원하는 곳으로 쓰려고 한다”고 밝혔다. 인도는 불교의 발원지이나 불교의 명맥이 끊겨 명상의 기술과 이론도 끊긴 상황으로, 한국은 미얀마와 더불어 붓다의 명상이 잘 보존된 나라로 꼽힌다. 명상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만큼 인도에서도 분황사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이 붓다팔라 스님의 설명이다.붓다팔라 스님은 “지금은 보건소로 출발하지만 무료 의과대학으로까지 갔으면 한다”는 소망도 밝혔다. 그는 “스님들이 할 일은 허공에 대고 떠드는 것”이라며 “돈이 아니라 꿈을 가지고 허공에 떠들다 보면 인연이 맺어지고, 모여서 개량하게 된다”고 웃었다. 내년이면 수교 50주년을 맞는 인도와 한국의 가교 역할을 하는 핵심 장소가 될 수 있는 만큼 붓다팔라 스님의 기대감은 남달랐다. 인도를 포함해 전 세계를 홀린 BTS가 인도에 와주기를 바라는 마음 역시 그가 꿈을 가지고 하는 말이었다. 붓다팔라 스님은 “인도에 BTS팬들이 많다”면서 “인도인들이 가장 자부심 있는 명상을 BTS의 콘텐츠에 결합하면 비틀즈를 능가할 수 있다고 본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 ‘원장 스님 더우실라’… 폭염 속 준공식 마친 인도 분황사

    ‘원장 스님 더우실라’… 폭염 속 준공식 마친 인도 분황사

    불교계 4대 성지인 인도 바하르주 부다가야에서 전통 한국식 사찰 분황사의 준공식이 21일 열렸다. 이날 총무원장 원행 스님을 비롯해 한국에서 스님들과 종단 관계자들, 불자들까지 150여명과 장재복 주인도 한국대사 등 현지 내빈까지 포함해 500명 정도가 준공식에 참석해 분황사의 준공을 축하했다.현지 기온이 연일 40도가 넘어가는 폭염 속에서도 참석자들은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부다가야에 처음으로 한국 사찰이 들어선 것을 축하했다. 일대에 200개가 넘는 사찰이 있지만 전통 한옥식으로 지어진 사찰은 분황사가 최초다.이날 행사에서는 원행 스님, 분황사에서 현지를 관리하는 붓다팔라 스님을 비롯해 종단 관계자들과 장재복 주인도 한국대사 등 연설이 이어졌다. 장 대사는 초기에 한국어와 영어로 같이 연설을 하다 영어로만 연설을 이어가 스님들 사이에서 ‘왜 한국말은 안 하느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분황사 준공을 위해 힘을 보탠 관계자들에게 표창패를 수상하는 시상식도 열렸다. 현장 공사를 이끈 박철수씨를 비롯해 많은 이가 표창패를 받았다.행사 막바지엔 꽃바구니를 나눠주며 인도식으로 축하할 준비를 마쳤다. 연설과 시상 등 준비된 행사를 마친 후 주요 참가자들은 현판 공개식을 위해 분황사 지붕 아래 모였다. 안내에 따라 줄을 잡아당기자 분황사 대웅보전 현판이 드러났다. 참가자들은 꽃을 뿌리며 축하했다.이후 헌화행사까지 마친 후 보건소 착공식도 이뤄졌다. 인도 현지인들을 위한 보건소는 백천문화재단의 기부로 지어지게 됐다.분황사 주변은 어린이들이 외부 손님일 쫓아 뛰어다니며 구걸할 정도로 가난한 마을이다. 마을 주민들은 분황사 주변을 둘러싼 벽에 서서 무심한 표정으로 지켜보며 분황사 준공식을 함께 했다.분황사는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것을 기념해 세운 마하보디 사원에서 직선거리로 400m 정도 떨어져 있다. 조계종은 현지에서 토지를 추가로 확보해 마하보디 사원까지 직선으로 이을 계획이다.
  • 44도 폭염에 땀 뻘뻘… 350㎏ 부처님 맞은 인도 분황사

    44도 폭염에 땀 뻘뻘… 350㎏ 부처님 맞은 인도 분황사

    한낮 기온이 44도까지 치솟은 20일 인도 비하르주 부다가야에서 아침부터 스님들의 머리 위로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대한불교 조계종이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부다가야에 지은 한국식 전통사찰 ‘분황사’에 석가모니상을 앉히는 일이 만만치 않았던 탓이다. 이날 끙끙대며 옮긴 금동불상의 무게는 350㎏에 달했다. 21일 분황사 준공식을 앞두고 분황사에서 복장의식과 점안법회가 열렸다. 복장의식은 불상 내부에 사리, 보화, 경전 등의 복장을 넣는 행사로 사찰의 역사를 알리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최근에도 복장을 통해 사찰의 연대기가 새로 고쳐지는 경우가 있을 정도다. 복장의식을 마치고 조계종 스님들과 관계자들은 불상을 받침대인 연좌대 위에 맞추느라 힘을 모았다. 어떤 스님은 불상을, 다른 스님은 불상을 감싼 연보라색 천을 잡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한참을 씨름한 후에야 불상과 연좌대의 합이 맞았고, 성형수술을 막 마친 사람처럼 천으로 둘둘 감긴 불상도 비로소 천을 풀었다. 땀을 뻘뻘 흘렸던 스님들도 힘겹게 짊어졌던 무게를 내려놓고 환히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이날 공개된 불상은 한국에서 제작돼 인도로 건너갔다. 높이는 195㎝ 정도다. 나무로 제작하려던 것을 현지 날씨를 고려해 청동으로 제작했다. 종단에서 조사 및 자문을 거쳤고, 제작 기간은 1년 정도 걸렸다. 요즘 시대에 제작된 만큼 분황사 불상은 머리 크기를 줄여 신체 밸런스를 맞췄다. 제작을 담당했던 여진불교 조각원 이재윤(46) 팀장은 “조선시대 머리가 크고 몸이 왜소한 걸 따라가기보다는 밸런스는 현대적인 풍을 따랐다”면서도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은 전통을 충분히 따랐다”고 설명했다. 청동불상에 최종적으로 금을 입혀 금동불상이 됐다.불상을 정돈하는 작업이 끝난 후 점안법회가 열렸다. 점안의식은 새롭게 조성된 불상에 일련의 의식을 통해 생명력을 불어 넣어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수막으로 불상을 가린 채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을 비롯해 현지 순례에 참석한 스님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행사 도중 현수막이 걷혔고, 본존불과 양쪽으로 아난존자와 가섭존자 불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부다가야 분황사가 지어질 수 있도록 50억원을 기부한 설매·연취 보살은 발원문을 낭독하며 행사의 의미를 더했다. 두 보살은 “만행의 길에서 만 가지 깨달음을 얻게 하시고 길에서 만난 이들이 무량한 자비의 은혜를 입게 하소서”라며 “언제나 자비광명 나투시어 중생의 영원한 귀의처가 되게 하소서”라고 기원했다. 점안의식까지 마친 조계종은 21일 준공식을 열고 정식 개소를 알린다. 분황사는 향후 불자들의 성지 순례를 돕는 기관인 동시에 전 세계에 한국 불교를 널리 알리는 거점으로서 역할을 할 예정이다.
  • 원행 스님 “불자, 성지 순례 해야 합니다”

    원행 스님 “불자, 성지 순례 해야 합니다”

    “불자로서 여러 가지 수행을 해야 하지만 특히 만행(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깨달음을 얻는 행위), 성지 순례를 해야 합니다.” 지난 18일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 바라나시에 위치한 사르나트를 찾은 원행 스님이 불자들에게 성지 순례를 강조했다. 사르나트는 불교계 4대 성지로, 깨달음을 얻은 붓다가 최초로 설법한 곳이다. 녹야원(鹿野園·사슴공원)이란 이름으로도 불린다. 이번 방문은 조계종에서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부다가야에 한국식 사찰을 지은 것을 계기로 이뤄졌다.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을 비롯해 스님과 신도를 합쳐 150여명으로 구성된 순례단은 부다가야 방문에 앞서 사르나트에 들렀다. 40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도 순례단은 경건한 자세로 붓다의 가르침을 되새겼다. 원행 스님은 “종단에서 공식적으로 대표를 구성해서 부처님 초전법륜지인 사르나트를 참배하는 것은 처음”이라며 “영광스러운 자리에 함께해 주신 사부대중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이어 “부처님께서 ‘열반경’에서 성지를 순례하면 삼악도(악인이 죽어서 가는 세계인 지옥·아귀·축생)를 면한다고 했다”면서 “사부대중이 초전법륜 기념탑 앞에서 예불한 것은 굉장한 의미가 있다. 모두 행복하고 건강하고 성불하시라”고 당부했다. 원행 스님의 법문 이후 순례단은 ‘석가모니불’을 반복해서 부르며 다메크 스투파 주위를 도는 탑돌이를 했다. 이날 순례단의 방문에 현지 언론에서도 원행 스님을 인터뷰하며 남다른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원행 스님은 “부다가야에 조계종 이름으로 분황사를 준공하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인도와 한국의 관계가 더욱 친밀해져 국제평화에 기여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르나트 방문에 앞서 순례단은 사르나트 박물관에서 아소카 석주(기원전 3세기 아소카왕이 불법(佛法)을 널리 알리고자 세운 기둥)와 초전법륜상 등의 불교 유물을 관람했다. 원행 스님은 환대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압둘 아리프 사르나트 박물관장에게 비천상과 필함 등을 선물했다.
  • ‘K사찰’이 불교 본산 인도에

    ‘K사찰’이 불교 본산 인도에

    불교의 창시자 붓다(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곳으로 알려진 인도 부다가야에 한국 전통 양식의 사찰이 처음 문을 연다. 대한불교조계종은 오는 21일 인도 북동부 비하르주 부다가야에서 분황사(芬皇寺) 대웅보전 준공식을 봉행한다고 17일 밝혔다. 준공식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 종회의장 정문 스님, 해외교구장 정우 스님, 전국비구니회장 본각 스님 등 종단 주요 소임자, 불자 등 국내 150여명과 현지인을 포함해 500명 정도가 참석한다. 분황사 경내에는 단층으로 지어진 대웅보전 외에도 2층짜리 수행관과 현지 주민을 위한 보건소가 들어설 예정이다. 분황사는 불교 4대 성지 중 하나인 마하보디대탑에서 400m 정도 떨어진 곳에 지어졌다. 마하보디대탑은 붓다가 출가를 결심하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보리수가 자리한 곳으로 불교 대표 순례지다. 인근에는 각국 양식으로 지어진 중국, 일본, 부탄, 몽골 등의 사찰이 몰려 있는데 전통 한옥 양식으로 세운 사찰은 분황사가 처음이다. 분황사 건립은 조계종 역점 사업인 ‘백만원력 결집불사’의 첫 성과다. 2019년 두 여성 불자인 설매·연취보살이 50억원을 희사한 것을 시작으로, 통도사 청하문도회가 30억원 규모의 현지 부지 약 6600㎡(2000평)를 기증했다. 전체 부지의 절반가량이다. 2020년엔 백천문화재단이 보건소 건립 기금으로 3억원을 냈고 한국 불자들도 십시일반 힘을 모았다. 분황사는 신라 선덕여왕이 창건한 사찰에서 이름을 땄다. 원효 대사가 ‘화엄경소’ 등을 썼고 솔거가 그린 ‘관음보살상’이 있던 곳이다. 조계종 관계자는 “한국 불교의 세계화와 전통문화를 알리는 공간이자, 순례자를 위한 참배 공간, 지역민과 함께하는 복합시설로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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