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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측 불참속 2차회담/전민련ㆍ해외동포대표/3차회담 평양서 열기로

    ◎범민족대회 실무회담 이른바 「범민족대회」를 준비하기 위한 제2차 실무회담이 북한측대표의 불참으로 「전민련」 및 「해외동포대표」들만 참석한 가운데 27일 상오10시 서울 도봉구 수유동 크리스천 아카데미하우스 4층 한천실에서 열렸다. 이날 하오8시30분까지 10시간동안 계속된 회담에서 양측은 본회담 개최장소는 판문점에서 한다는 당초방침을 재확인했으며 대회기간은 8월13일부터 17일까지 5일동안으로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대회참가규모에 대해서는 남북한과 해외동포 3자의 참가단 숫자가 1천명을 넘지않도록 했다. 양측은 또 제3차 예비실무회담을 다음달 6일 평양에서 열기로 하고 판문점을 통해 입북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양측 대표사이에 논란이 벌어진 참가단체 범위에 대해서는 당초 발표된대로 7ㆍ4남북공동성명정신에 입각,과거의 전력에 관계없이 통일운동에 동반할 수 있는 단체로 했다. 참가희망단체는 단체내부의 민주적 절차에 따라 결정한 회의록을 제출하는 단체로 제한했다. 이는 자유총연맹 등 우익 58개 단체가 참가를신청해옴에 따라 이들 단체가 스스로 참가를 결정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위한 것이라고 양측은 밝혔다. 참가를 희망하는 개인은 전민련의 소속단체가운데 「서울민협」 등 12개 지역단체와 「기독교사회운동연합」 등 8개 사회단체의 추천을 받도록 했다. 한편 대회추진본부측은 이날 상오 북측대표들이 판문점에 나온다고 하자 이들을 맞이 하기위해 이창복 지선스님 박영모 강희남씨 등 15명의 환영단을 임진각으로 보내 북측대표들을 기다렸다. 그러나 하오1시50분쯤 판문점에서 북한측이 『남한정부가 성의를 보이지 않아 더이상 협상에 응할 수 없다』는 성명을 내고 철수했다는 통일원측의 전화통지를 받자 하오3시40분쯤 모두 아카데미하우스로 돌아갔다.
  • 「범민족대회」 예비회담이 무산되기까지

    ◎“제의… 수용… 거부”… 입씨름 8시간/모두 7차례 접촉… 생트집 일관/정부­전민련 합의한 장소마저 끝내 거절 26일 하오 3시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범민족대회 2차 예비회담은 북한대표단이 판문점 북측 지역인 판문각에 도착하기는 했으나 회담장소 및 숙소문제와 전민련의 동행안내 등에 관해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을 제시하는 바람에 이날 하오 4시까지 무려 8시간동안 모두 6차례의 연락관 및 간이접촉과 1차례의 직통전화 연결에도 불구하고 우리측과 타협점을 찾지 못해 끝내 무산. ▷판문점◁ ○…남북 쌍방은 이날 상오 7시30분쯤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 회의실에서 연락관 2명씩이 참석한 1차 실무접촉을 갖고 ▲북측 참가자들의 숙소(회담장 포함)는 인터콘티넨탈호텔로 하고 ▲북측 참가자들은 우리측 정부가 제공한 차량을 이용하며 각 차량에는 우리측 안내관 1명씩이 동승하고 ▲편의제공및 신변안전보장문제와 관련된 일체의 사항은 정부대표인 국토통일원과 협의하며 ▲서울 체류일정은 북측과 전민련측이 협의해 결정한다는 등 8개항에합의. ○…예비회담 북측 대표들은 이날 상오 9시 판문점을 통과할 예정이었으나 평양의 폭우로 헬기가 이륙치 못해 상오 8시쯤 승용차편으로 출발,낮 12시쯤 판문점 북측 지역에 도착. 그러나 북측 대표들은 헬기로 개성 근처 황주에서 내린 것으로 알려져 이날 예비회담에 임하는 북한측 태도를 예고. ○…북한측은 상오 9시50분쯤 간이접촉을 갖고 『정부는 편의제공만 하고 전민련측이 안내를 하기 바란다』며 1차 실무접촉의 합의사항을 번복한 뒤 두차례의 추가 간이접촉에서도 똑같은 주장만을 되풀이. 쌍방은 이어 상오 11시쯤 2차 연락관접촉을 가졌으나 『전민련이 아카데미하우스로 회담장소와 숙소를 정했다고 했는데 어떻게 된거냐』며 전민련의 안내와 전민련이 정한 숙소를 고집하는 북측과 『연형묵정무원총리가 우리측 강영훈총리에게 신변안전보장을 요구한 만큼 신변안전을 위해 정부가 안내하겠다』는 우리측 정부입장이 팽팽히 맞서 10여분 만에 결렬. 이어 낮 12시25분쯤 가진 3차 연락관접촉에서 북측 전금철대표의 승용차에 전민련 상임고문이 동승할 것과 이해학 전민련 조통위원장등 전민련 대표 3명이 군사분계선까지 자신들을 영접하러 나올 것을 새로이 요구. 이에대해 통일원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북한측이 저렇게 트집을 잡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오늘 예비회담은 못 열리는 게 아니냐』는 예비회담무산론이 조심스럽게 대두. 정부는 3차 실무접촉의 북한측 요구를 수용,이를 북측에 전달했으나 북한측은 12시50분쯤 가진 실무접촉에서 우리측 정부와 전민련간 숙소문제에 대한 입장이 다른 점을 들어 전민련측이 안내할 것과 숙소문제에 대한 해결이 되지 않으면 예비회담에 참가할 수 없다고 주장. ○…전민련측은 하오 2시10분쯤 우리 정부측과 승용차 동승및 군사분계선 환영문제와 관련,오해가 생겨 기자회견을 갖고 판문점에서 철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으나 취재기자들의 입회하에 정부측과 회의를 가진 결과 이 문제는 해명돼 철수발표를 철회하기도. 정부측은 전민련이 하오 3시50분쯤 『모든 문제는 정부측에 일임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함에 따라 회담 상설 연락사무소간전화를 통해 『모든 문제가 전민련과 정부측간 해결되었으니 부당한 입장을 더이상 고집할 것이 아니라 서울 실무회담에 참가할 의사가 있다면 하오 5시까지 분명한 답을 해주기 바란다』는 전화통지문을 북측에 전달. 그러나 북측은 전민련 안내와 숙소문제에 대한 우리측 입장이 바뀌지 않았다면 전화통지문을 받을 수 없다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결국 이날 예비회담은 무산. ○…우리측은 이날 하오 4시쯤 모두 6차례에 걸친 연락관접촉 이후 첫 전화접촉을 통해 북한대표단 파견문제에 대한 북측의 거부의사를 확인했으나 북측은 『전민련이 직접 안내하고 숙소도 전민련이 정한 곳이 아니면 갈 수 없다』는 입장만 밝힌 채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어 대표단 파견 의사가 없음을 표시. ▷아카데미하우스◁ ○…회담장소문제로 혼선을 빚고 있는 가운데 아카데미하우스측은 이날 북측 대표와 수행기자 15명이 투숙할 3층 객실 5개를 마련한 데 이어 이날 하오 해외동포 대표 6명이 도착하자 3층 객실 5개를 추가로 배정,아카데미하우스측은 이날 세미나 참석차 예약해놓은 KS콘크리트협회 회원들의 양해를 얻어 이들이 예약한 객실 5개를 양보받아 해외동포 대표용으로 할당. ○…범민족대회추진본부 6인 실무대표 가운데 1인인 신창균의장을 포함한 지선스님ㆍ문정현신부ㆍ임수경양의 어머니 김정은여사 등 추진본부 집행부 10여명은 이날 하오 10시쯤 해외동포 대표들이 묵고 있는 크리스찬 아카데미하우스에 도착,회담이 결렬된 경위등을 설명했다. 지선스님은 『임진각과 판문점에 나가 있는 영접단과의 연락수단인 전화통화 사정이 낮 12시쯤부터 악화돼 돌아가는 상황을 제대로 알 수 없었다』며 『이에따라 회담준비등에 차질이 생긴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해외동포추진본부 은호기 미주대표등 해외동포 대표 6명은 북한측 대표가 되돌아감에 따라 이날 하오 9시 본관 1층 양식뷔페식당에서 임시집행부와 함께 만찬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이들이 밤늦게까지 임진각에서 돌아오지 않자 학생등 1백여명과 함께 간단한 행사를 가졌다. 권형택추진위원이 사회를 맡은 환영행사는 「우리 함께 가자 이 길을」이라는 노래를 시작으로 전민련 박영모공동의장의 환영사,은대표의 인사 등의 순으로 진행. 은대표는 이 자리에서 『북한대표들이 회담에 참석하지 않아 안타깝다』면서 『그러나 대회성사를 위해 예정대로 일정을 마치고 8ㆍ15 이전까지 판문점에서 3자가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범민족대회추진본부는 26일 밤 북한측이 내일 상오 9시 판문점으로 다시 나오겠다고 밝혔다는 소문이 나돌자 회담무산으로 허탈해 하던 분위기속에 회담재개 가능성에 기대를 걸기도. 추진본부는 회담이 재개될 경우에 대비,이날 하오 11시30분쯤부터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임시집행위원회를 열어 27일 이후의 회담일정등 구체적인 준비상황을 논의했다. □시간대별 협상 요약 △7시30분:1차 접촉 8개항 합의 △9시50분:북측,「전민련 편의」 요구 △10시30분:「우리측 안내」 수용 제의 △11시35분:숙소 아카데미를 요구 △12시25분:전민련 차량 동승 요구 △12시50분:분계선 전민련 마중 요구 △16시00분:북측,전통문 접수 거부
  • 대학수석졸업 20대처녀 취직못해 비관자살

    【대구=최암기자】 경북대학 지질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손정아양(24ㆍ대구시 수성구 수성4가 1190)이 취직을 못한 것을 비관,극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찰에 따르면 손양은 지난22일 낮12시쯤 충북 보은군 속리산 법주사에서 극약을 먹고 신음중인 것을 스님이 발견,인근 병원으로 옮겨 응급처치를 받게한후 소식을 듣고 달려온 가족들에 의해 대구파티마병원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아 왔으나 26일 상오10쯤 숨졌다는 것이다. 숨진 손양은 지난88년 경북대 지질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후 경주에 있는 모사설학원에서 강사로 일한적이 있으나 이후 취직이 되지 않자 이를 몹시 비관해 왔다는 것이다.
  • “그리운 혈육 만나려나”… 설레는 실향민

    ◎“남북왕래”선언… 온국민이 “대환영”/이북5도청등 문의전화 “빗발”/“북서 거부”소식에 다소 실망도 노태우대통령이 남북자유왕래를 허용하는 「민족대교류기간」을 선포한 20일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날 대통령의 담화내용이 온국민의 염원인 통일의 길을 앞당기는 획기적인 조치라고 환영하며 북한측의 반응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국민들은 북한측이 노대통령의 제의를 받아들여 이번 광복절때 남북교류가 이뤄지면 그것을 계기로 교류의 폭을 더욱 넓힐 수 있고 나아가 통일의 길을 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이날 하오 북한측이 거부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실망하는 모습들이었다. 특히 이북5도민회 등 북녘에 가족과 친지를 두고온 실향민들은 『이번에야말로 남북왕래가 실현돼야 할 것』이라면서 북한측이 노대통령의 제의를 받아들일 것을 간절히 바랐다. 이날 이북5도청사무국과 1천만이산가족재회추진회에는 방북신청절차 및 필요한 서류ㆍ준비사항 등을 묻는 실향민들의 성급한 전화가 빗발쳤다. 일부 시민들은 그러나 북한측의 폐쇄정책 등으로 미루어 이번 조치가 기대대로 실현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정부의 구체적이고도 강력한 후속조치를 기다렸다. 정부의 시책에 늘 비판적이던 「전민련」과 「전대협」 등 재야 및 학생운동단체에서까지 이날 노대통령의 담화를 『통일의 실현을 위한 전진적인 조치』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그러나 『남북간의 실질적인 교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문익환목사ㆍ임수경양 등을 석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재야단체들은 이번 담화에 따라 다음달 13일부터 15일까지 판문점에서 열 계획인 이른바 「범민족대회」에 대한 정부의 불허방침이 사실상 철회된 것으로 보고 『이 대회를 실현하기위해 곧 정부여당ㆍ평민당 등과 구체적인 실무접촉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각계의 소리/“민족화합기반 구축의 대결단/경제협력등 실질방안 따라야/거부 예상했지만 기대 못버려” ▲전경련=대통령의 선언은 남북한 인적왕래를 특정기간 개방함으로써 민족화해의 기반을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민족통일을 위한 신뢰와 전망을 밝게 해 이를 촉진하려는 결단으로 환영한다. ▲조동영씨(67ㆍ1천만 이산가족재회 추진위원회 사무총장)=51년 1ㆍ4후퇴때 혼자 월남했다. 북에는 부모님이 계시는데 꿈속에 자주 나타나는 것을 보면 살아계실 지도 모르겠다. 이번 방문이 성사돼 한명이라도 많은 실향민들이 고향에 갈수 있게되길 바란다. ▲조영황변호사=노대통령의 이번 조치는 독일통일 등 국제적 정세에 맞춰 한반도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획기적인 조회로 크게 환영한다. 앞으로 남북간의 경제협력이나 상호방문 등 점진적이고도 실제적인 교류방안을 모색하는 등 제도적인 뒷받침이 따라야 할 것이다. ▲어수영교수(51ㆍ이화여대 정치외교학)=이번 담화는 7ㆍ7선언보다 진일보한 조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조치에 대해 북한측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 의문이지만 인도적 입장에서 북한이 이를 수용,판문점을 통한 자유왕래가 실현된다면 통일로가는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다. ▲신신묵목사(한강중앙교회담임)=북한이 우리 제의를 받아들여 판문점을 열면 그들이 평양에 세웠다는 봉수대교회에서 예배를 올리고 싶다. 그렇게 되길 기도하겠으며 몇 안되는 북한성도들도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기 바란다. ▲박현성스님(서울도선사주지)=우리 불교계는 지금까지 여러 채널을 통해 여러가지 방법의 교류를 모색해 왔다. 이번 특별담화로 명절때만이라도 남북합동법회가 열리고 더 나아가서 북한불교유적을 복원하는데 참여할 수 있길 희망한다. ▲김성재씨(66ㆍ황해도중앙도민회 사무국장)=지난 47년 황해도 장연에서 월남한 뒤 한시도 북에 계신 부모님을 잊어본 적이 없다. 이번 선언이 현시화돼 모든 실향민의 소원이 이루어졌으면 했으나 예상대로 북측이 거부하고 나와 실망스럽다.
  • 조계종 총무원장 서의현 스님 유임

    불교 조계종 중앙종회는 22일 상오 제26대 총무원장으로 현 총무원장 서의현스님을 선출했다. 이날 종회에서 서의현스님은 출석의원 71명(재적 73명) 가운데 과반수가 넘는 42표를 득표,경합에 나선 유월탄스님을 13표차로 누르고 이겼다. 한편 중앙종회의장에는 서정대스님,부의장에 조학능스님과 방지하스님 등 현 의장단이 만장일치로 선출되었다.
  • 평민ㆍ민주ㆍ재야통합 추진/김대중총재/3자공동선언등 새달 구상 발표

    평민당은 민주당이 정식 창당됨에 따라 야권통합을 새로이 모색한다는 목표아래 그동안 벌여왔던 평민ㆍ민주 양당간의 통합협상을 지양하고 민주당ㆍ재야를 포함하는 3자 통합방안을 적극 추진키로 방침을 굳힌 것으로 19일 알려졌다. 평민당은 민주당ㆍ재야와의 3자 통합을 모색키 위한 방안의 일환으로 ▲3자의 공동통합선언 ▲신당창당준비위및 조직강화특위구성 ▲당선 가능성을 중심으로 한 조직책 선정 등 3단계 통합방안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대중총재는 지난 18일 국회총재실로 총재당선 인사차 예방한 이기택 민주당총재를 만난 자리에서 3자통합을 위한 기본원칙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으며 이날 저녁에는 한승헌변호사ㆍ오충일목사ㆍ이문영교수ㆍ진관스님ㆍ이우정씨 등 재야인사 20여명을 서울시내 S음식점으로 초청,지난 16일의 여야 총재회담 결과를 설명한 자리에서 야권통합의 기본원칙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평민당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와관련,『개헌선이 넘는 거대여당에 맞서기 위해서는 야권통합에 이르는 지름길을 택할 수밖에 없으며 그 지름길은 평민ㆍ민주ㆍ재야와의 3자통합을 이루는 일』이라면서 『평민당의 야권통합방향은 3자통합으로 굳어졌으며 다만 구체적인 통합방안을 놓고 여러가지 방법들이 검토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총재는 앞으로 광범위하게 재야측의 인사들과 접촉을 갖고 야권통합방안 구상에 대한 입장을 정리한 뒤 이번 임시국회의 대정부 질의가 끝나는 이달말이나 오는 7월초 3자 통합을 골간으로 하는 야권통합에 관한 구체적인 복안을 밝힐 예정이다.
  • 수효재단 전 이사장 성훈 스님

    수효재단 전 이사장 성훈스님(50)이 16일 상오2시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3가 1의38 수효사에서 입적했다. 발인은 20일 상오10시 수효사에서,다비는 같은 날 하오1시 봉선사에서 문도장으로 거행된다. 연락처 313­3037.
  • “용서하되 잊지는 말자”/5ㆍ18민주화운동 10주에 부쳐/조오현

    ◎“원을 원으로 풀순 없다” 법구경 되새겨야 5ㆍ18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지도 벌써 10년이 됐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의 세월,그러나 광주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은채 마치 악성종양처럼 우리 사회의 내부를 불신과 증오로 채워가고 있다. 광주문제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더 시간을 기다려야 하겠지만 그 아픔이 10년이 지나고도 치유되지 않았다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동안 광주문제를 정리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6공화국 출범이후 국회는 그동안 망월동에 묻어두었던 광주문제를 꺼내 진실을 밝히고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한 활동을 벌였다. 국민들을 모두 TV수상기 앞에 매달리게 했던 청문회를 통해 가려졌던 진실이 조금이나마 밝혀진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었다. 또 5공시절에는 광주문제를 단순히 「광주사태」로 부르고 희생자들도 「폭도」라고 매도했던 것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의미를 규정하고 「폭도」가 「희생영령」이란 말로 바뀐 것도 변화라면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우리의 역사가 그만큼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표면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광주가 내장하고 있는 본질적인 몇가지 문제는 미결로 남아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그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 것이며 민주화를 어떻게 이루어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광주문제는 일부 정치군인의 권력장악에 맞서 긴 군부통치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민주화를 실현시키기 위해 일어난 민주항쟁이었다. 수많은 희생자를 내면서 목이 터져라 외쳤던 구호도 민주주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부는 무력으로 이를 진압했고 선량한 시민과 학생은 폭도로 매도되었다. 처참한 살육전이 우발적인 것이었는지 계획적인 것이었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어찌되었건 이로 인해 광주는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도시가 되고 말았다. 5월18일만되면 시내 전체가 죽은 사람을 위해 촛불을 밝히고 통곡하는 도시는 광주밖에 없다. 우리가 적어도 같은 하늘 밑에 사는 형제라면 광주의 이러한 아픔을 어떻게든 풀어주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진작 매듭을 풀고상처를 아물게 해야할,정치적으로 책임있는 사람들은 「광주의 아픔」을 미끼로 추악한 정치흥정만 계속하고 있는듯한 느낌이다. 보상문제만 해도 그렇다. 정부여당의 경우 광주문제에 보상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마치 무슨 항복문서에 도장찍는 일인 것처럼 주저주저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애써 광주문제의 본질과 진상이 밝혀지는 것을 원하지도 않을 뿐더러 무조건 덮어두자는 식이다. 광주문제를 빌미로 명분상 흠을 잡히지 않겠다는 속셈이다. 야당이라고 해서 이 문제 해결에 여당보다 적극적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야당은 광주문제를 끝까지 물고 늘어져 6공화국의 입장을 난처하게 함으로써 정치적으로 우위에 서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좀 심하게 말하면 정치인들은 아무도 광주문제를 마무리짓고자 하는 의지가 없어보인다. 말로는 과거를 청산하고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고 떠들면서도 청산방법이 당리당략에 어긋날듯 싶으면 여지없이 생트집을 잡고 돌아앉고 만다. 슬픔은 나눌수록 작아지고 기쁨은 나눌수록 커진다고 했다. 그러나 누구도 광주의슬픔을 진정으로 나누려고 하지 않고 사람의 목숨값을 무슨 물건값 흥정하듯이 밀고 당기기를 계속하면서 그 언저리에서 자기 이익만 챙기려고 할 뿐이다. 저간의 형편이 이러하고 보면 광주문제가 10년이 지나도록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작태는 죽은 사람들의 원혼을 달래지 않고 유가족들과 슬픔을 나누지 않는다는 단순히 도덕적인 이유로만 비난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더욱 큰 문제는 그로 인해 높아진 불신의 벽과 삭여지지 않는 분노의 감정이다. 광주에 가본 사람은 느끼겠지만 광주문제가 10년째 공산의 메아리마냥 울리기만 하고 실체가 잡히지 않자 이제는 분노를 넘어 증오감으로 치닫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또다시 어떤 비극적 사태로 발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광주사람들은 차마 입밖에 이런 말을 내뱉지 않고 있지만 해도 너무 한다는 불만이 낙진처럼 누적되고 있다. 일을 자꾸 어렵게만 만들어가서는 안된다. 광주의 슬픔이 아무리 크다고해도 10년을 거기에 매달려 역사의수레바퀴를 헛돌게 해서는 곤란하다. 수많은 사람이 광주항쟁때 쓰러져간 것은 길을 잘못 든 민주주의의 수레를 바로 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스스로 역사의 제단앞에 공양물이 되었다. 진흙에 빠진 수레를 건져 올리기 위해 돌이 되고 다리가 되었다. 지금 살아남은 사람이 할 일은 그 돌을 딛고 일어나 그 다리를 밟고 민주사회라는 피안에 도착하는 일이다. 그것이 죽은 사람의 죽음을 욕되지 않게 하는 길이요. 우리 모두가 사는 길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언제까지나 광주의 비극을 흥정만 한다면 광주의 역사적 의미인 민주화가 오히려 광주라는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게 된다. 당장 우리가 서둘러 해야할 일은 우선 광주의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용서하고 청산하는 길밖에 없다. 개인적 감정으로야 도저히 용납할 수 없고 용서가 안될 수도 있다. 장승같은 자식 잃고 기둥같은 형제를 잃은 사람에게 용서하라고 말하는 것은 무례한 요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용서하지 않는다고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오는 것도 아니고 용서와 관용이 아니면 문제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없는 것을. 부처님은 「법구경」에서 우리들 중생에게 이렇게 가르친바 있다. 『원망은 원망으로 갚아지지 않는다. 원망은 또다른 원망을 낳기 때문이다. 원망은 용서함으로써만 갚을 수 있다』 어려운 때,마음이 상하는 때일수록 우리는 성인의 말씀을 삶의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 그분들의 가르침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슬기가 담겨 있다. 광주문제도 마찬가지다. 용서하고 관용하는 것만이 참으로 이기는 길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과거를 잊자는 얘기는 아니다. 역사란 과거의 아픔과 경험을 바탕으로 전진하는 것이라면 간디의 말처럼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아야 한다. 그리하여 다시는 10년전 광주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한다. 중음으로 맴도는 광주의 원혼들도 그래야 하루속히 정토왕생 이고득락하게 될 것이다. □약력 스님ㆍ전불교신문 주필 1968년 문단데뷔 신흥사주지 역임
  • 요시다ㆍ구보타ㆍ후지오…/이재근 논설위원(서울칼럼)

    사명대사에게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가 여쭈되 『조선에 보물이 있습니까』하니 스님이 『보물은 일본에 있을 뿐 조선에는 없다』고 대답했다. 다시 『그것이 무슨 뜻입니까』고 묻자 『지금 조선에서는 당신의 목을 베기만 하면 천금의 상을 받게 되므로 당신의 머리가 곧 보물인 것이다』라는 호통이 나왔다. 가토는 간담이 서늘했다. 조선 선조 27년(1594년)4월에 사명스님이 울산 서생포에서 왜장가토를 만났을 때 얘기다. 허균이 지은 자통홍제존자사명송운대사 석장비명으로 전해 온다. 이승만은 생래적으로 반일주의자였다. 1952년말 한일회담이 교착상태에 들자 도쿄의 미군당국은 중재를 해줄양으로 이승만을 도쿄에 초대했다. 당시 일본총리는 노회하기로 소문난 요시다 시게루(길전무)였다. 먼저 미국대사 머피가 마련한 오찬에 요시다가 불참하는 결례를 저질렀다. 이어 다음날 미군사령관 클라크가 초대한 만찬에서 두 노인은 냉랭한 표정으로 만난다. 요시다가 묻고 노대통령은 대답했다. 『듣건대 산자수명한 한국엔 아직도 호랑이가 많다던데요』,『한국엔 이제 호랑이가 없소』『그럴리가…. 예로부터 백두산 호랑이가 유명하지 않습니까』『당신들 일본사람이 마구 잡아 가죽까지 벗겨간 터에 이제 호랑이는 씨가 말랐소』 한일간에 가로놓인 넓은 강과 깊게 드리운 그늘의 연원이 역사적으로 대개 이러하다. 요시다가 이어 한일간 지난날에 언급,『우리의 군국주의자들에게 책임이 있습니다』고 하자 드디어 이승만의 참았던 분노가 폭발했다. 『귀하는 군국주의자들에 책임을 돌리지만 그런말은 아직도 한국을 지배하려는 일본의 야망과 그 시도를 의심하는 한국인들에게 확신을 줄지 모른다』고 쏘아붙인 것이다. 요시다는 대답대신 묘한 미소를 지었을 뿐이다. 한일관계는 예나 지금이나 모순과 갈등으로 가득차 있다. 증오와 불신감 또한 뿌리깊다. 양쪽의 여론조사는 언제나 서로를 「가장 싫어하는 국가군」속의 첫째로 꼽고 있다. 최근에도 일본인에 대한 한국인들의 첫 인상은 「간사하다」로 나타났고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의 대표적인 느낌은 「감정적」이라고 지적됐다. 40년의 강점과 식민수탈을 단 한마디 「불행했던 과거」라는 표현으로 호도하고 「유감」을 표할지언정 결코 시인 사과는 하지 않는 그들이다. 그런 일본은 요즘 안팎으로 눈부신 변신을 거듭하는 소련을 배울 필요가 있다. 소련은 얼마전 지난 1940년의 카틴숲 학살사건이 당시 그들 내무인민위원국(NKVD)의 주도아래 저질러진 범죄라고 시인하고 폴란드 정부에 사과하는 곰의 재주를 부렸다. 43년 소련을 침공한 나치독일이 스몰렌스크 동쪽 카틴 숲속에서 4천3백구의 유해를 찾아냈을 때 소련은 시침을 뗐었고 지금까지 그랬다. 소련이 과거의 전쟁적 범죄를 시인하고 사과하는데 50년이 걸린 것이다. 그것은 역사의 도도한 흐름이며 사실은 영원히 사실이라는 진리를 일깨워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지난 37년 중국군이 완강하게 버티던 남경시를 함락시킨 일본군은 부녀자 겁탈과 약탈은 물론 닥치는 대로 학살한 양민이 30만을 넘는다. 한국에서의 경우도 그러하다. 태평양전쟁기간중 39년부터 45년까지 6년동안 일본 등지에 노무자로 끌려간 한국인은 1백37만명,국내에서의 강제노역4백50만,군인 군속 소위 여자정신대 등으로 연행된 37만 등 모두 6백만명이 일제에 의해 동원되거나 학살됐다. 「불행했던 과거」에 대한 「유감」표명만으로는 절대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일본당국은 연전에 교육용으로 일본역사상 10명의 「위인」을 선정한 바 있다. 그중 근대편에는 길전송음ㆍ서향륭성ㆍ이등박문 등 조선침략의 원흉들이 망라됐다. 군국주의 잔재에 젖어 있는 일본 지도층의 의식의 단면을 드러내 주는 것이다. 오래전에 「일본의 한국병합」이라는 책을 쓴 야마베 겐타로(산변건태랑)는 이들 소위 근대화주역들의 행적을 분석한 뒤 『일본의 내셔널리즘은 시대에 따라 그 형태는 다르지만 본질은 언제나 정한론이었다』고 갈파했다. 바로 그것이다. 53년 한일회담 당시 일본대표였던 구보타(구보전관일랑)는 『한일평화조약이 체결되기전에 한국이 독립한 것은 국제법 위반이다』라고 흥분하더니 끝내는 한술 더 떠 조선통치를 「시혜」라고까지 망발을 해 한일관계사에 이른바 「구보타 망언」을 남긴다. 『이등박문의 길을 따라 우리는 한국에 뿌리를 심어야 한다』고 말한 자는 요시다였고 마지막 수석대표였던 다카스기(고삼진일)는 『일본이 한국을 20년은 더 지배했더라면…』하고 아쉬워했다. 30년후인 86년 당시 문부상이던 후지오(등미정행)는 『식민지지배니 하고 떠들어 대지만 일본은 좋은 일을 하지 않았는가』고 근성을 드러냈다. 섬나라 지도층의 한국에 대한 착시와 오만이 이와 같다. 지금도 일본 도처에는 그때보다 더 많은 요시다,구보타,다카스기,후지오들이 버티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이 일본에 임한 기본자세는 정신적이며 도덕적이었다. 「정신적 화해」였기도 하다. 반면 일본은 법적ㆍ실무적이었고 경제동물적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지금 막강한 부와 힘을 갖고 있다. NTT(일본전신전화) 한 회사의 주를 팔면 서독의 전 회사주식을 살 수 있고 도쿄를 처분한다면 그 돈으로는 미국 하나반을 살 수 있다. 미국의 핵우산을 빌려 쓰고 풍요를 구가하는 그 사회에 「대동아전쟁긍정론」이 대두된 지는 오래다. 급기야는 군국일본과 일왕찬미의 상징이었던 일장기와기미가요의 사용이 공식화되기에 이르렀다. 패전후엔 그토록 믿었던 힘을 버리고 조심조심 부지런하기 30년만에 졸부가 된 그들이 이제 다시금 축적된 힘에 대한 자신과 오만을 갖고 그것을 활용하고 싶어한다. 그러한 그들이 과거에 저지른 전쟁범죄와 관련된 피해보상문제와 재일동포문제에 있어서는 그렇게 간교하고 이중적이고 인색할 수가 없다. 그래가지고는 한일에 가로놓인 강과 그늘은 영원히 걷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일은 그들의 앞날을 위해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이총 원혼 “4백년만의 환국”/어제 일 교토서 김해공항에

    ◎임란때 우리양민 코·귀 12만6천개 베어가/법회등 행사뒤 오늘 부산 동명불원에 안치 4백년 통한의 12만6천여 귀무덤(이총) 원혼이 24일 일본으로부터 고국의 품에 돌아와 영원한 안식을 취하게 됐다. 귀무덤호국영령환국봉안위원단은 23일 하오6시 김해공항을 통해 4백여년만에 조국의 품에 안긴 영령들을 위해 김해공항에서 환국환영법회를 가진데 이어 이들을 꽃차에 모셔 부산시내를 지나 부산시 남구 용당동 동명불원에 안치했다. 우리측 봉환위원단은 이에 앞서 지난22일 일본 교토 귀무덤에서 이들의 원혼을 달래는 지장기도를 밤새워 한데 이어 스님들의 범패와 소복단장한 불음합창단의 찬불가 등으로 이어진 엄숙한 봉송의식을 가졌다. 위원단은 봉안장소를 제주도로 하려 했으나 부산으로 정한 것은 임진왜란때(1592년4월) 왜군이 부산에 그 침략의 첫발을 디뎠고 양민의 귀 12만6천여 혼을 배에 싣고 떠난 곳도 부산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귀무덤은 교토의 풍신수길 전승기념관앞에 초라한 비석과 함께 버려두었던 것을 지난 82년 박삼중스님이 안본형무소 교화사업차 이곳에 갔다가 발견,한일이총영혼환국봉송위원회를 결성하면서 우선 영혼만이라도 환국시키게 된 것이다. 귀무덤은 임진왜란때 왜군들의 전공을 평가하는 자료로 삼기위해 풍신수길의 명령에 따라 우리병사들뿐 아니라 양민들의 귀와 코까지 잘라 일본으로 가져가 묻었던 무덤. 풍신수길이 죽자 그동안 그의 무덤앞에 전리품으로 초라한 비석하나만 세워 방치해 두었다. 이번 영령의 환국에는 고 이방자여사와 친동생인 이본덕언이 일본측위원회 명예회장으로 선임된 가운데 8만여 신사가 후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환국은 일본의 조선침략과 만행을 일본인 스스로가 인정하고 이를 참회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하겠다.
  • 북한과 불교 교류 추진/미주 거주 승려 연합회

    미국 거주 한국승려들의 모임인 북미불교사암연합회가 북한 불교와의 교류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시귀국한 북미불교사암연합회장 표도철스님에 의해 밝혀진 북한 불교와의 교류추진내용은 ▲묘향산과 금강산 사찰에서의 조국통일기원정진기도 ▲미주지역 불교도의 북한 방문 ▲남북불교 합동법회등으로 되어있다.
  • 가짜「만병통치약」26억대 시판/“AIDSㆍ암 낫는다”과대 광고

    ◎건강식품 팔아 최고 10배 폭리/무허가 제조업자 7명 구속 서울지검 특수2부 김성준검사는 13일 골드통상대표 유영춘씨(37)와 녹야원대표 정낙현씨(30) 등 무허가 식품 제조 및 판매업자 7명을 약사법 및 식품위생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또 한미건강식품대표 정동기씨(47) 등 8명을 같은 혐의로 입건했다. 정씨는 지난해 6월부터 미국에서 표고버섯 추출물로 만든 건강식품 「램」을 한병에 1만5천원씩 들여다 간염과 AIDS 각종암 당뇨병 고혈압 폐질환 노이로제 등에 특효가 있는 의약품인것처럼 과대선전,한병에 16만원씩 모두 21억원어치를 팔아 10배이상의 폭리를 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정씨는 지난 88년 4월부터 전북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의 녹야원공장에서 소금 대나무 황토 송진을 10대 1대 0.1대 0.1의 비율로 섞은 「개암죽염」 9백37t을 만들어 『개암사주지 효산스님이 만든 것으로 위염 위궤양 중풍 암 등에 특효가 있다』고 속여 1억5천만원 어치를 팔았다는 것이다. 이들과 함께 구속된 진식품 서울지사장 최능우씨(50)는 지난해 3월부터 건강식품 제조허가를 받지 않고 삼지구엽초라는 풀 등으로 「음양곽」을 만들어 고혈압과 성불능 노망 중풍 등에 특효가 있는 의약품인 것처럼 선전책자를 돌리며 5천만원 어치를 팔았다. 고려종합식품 전무 곽영식씨(49)도 지난해 4월부터 상어의 불포화지방산 등으로 만든 「스쿠알롄」이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간질환 신경통 성인병 고혈압 저혈압 빈혈 등에 효과가 있는 의약품이라고 광고를 내 1억6천만원어치를 팔아온 혐의를 받고 있다. 또한 한국코우쉘 대표 김천섭씨(31)는 지난해 1월초순부터 꽃가루 유당 포도당 구연산 토코페롤을 섞어 무허가 건강식품인 「송학화분」을 만든뒤 전립선ㆍ간장ㆍ정력ㆍ위장ㆍ변비 등에 효과가 있는 약이라고 속여 6천만원어치를 팔아왔다 이밖에 한국봉산공익사 서울지사장 박태춘씨(36)는 무허가 건강식품인 「바이킹A」를 간장병과 위장병 간경화에 특효가 있다고 속여 4천만원어치를 팔았으며 한국자연건강연구소 대표 박충회씨(45)도 무허가 건강식품인 「알로에센스」가 위장병 등 난치병에 효과가 있다는 과대광고를 통해 3천만원어치를 팔았다는 것이다.
  • 봄날,회심곡을 들으며/송정숙 논설위원(서울칼럼)

    「…어머님전 살을 빌고,아버님전 뼈를 받고 일곱 칠성님전 명을 받고 제석님전에 복을 빌어 석달만에 피를 모으고 여섯달만에 육신이 생겨 열달 십삭을 고이 지내 이내 육신탄생을 하니…」 봄기운이 습기처럼 배어오는 3월 초순의 어느 하오에 KBS FM이 내보내는 회심곡을 들었다. 회심곡은 들을 때마다 좋다. 특히 김영임의 창으로 듣는 회심곡은 유난히 좋다. 심장이 저려오는 듯한 통증이 불효의 회한을 아릿아릿하게 자극한다. 그 독특한 감성에 휩싸여 한곡을 다 듣고나면 통곡을 하고 난뒤처럼 개운해진다. 노래의 골자는 부모은중경이지만 그안에 인생의 허무함이 절절이 담겨있고 허망한 삶 가운데서도 무엇을 지키고 어떻게 살아감이 마땅한지를 굽이굽이 사설로 읊어낸다. 「…인간이 장차 백살을 다 산다해도 병든 날과 잠든 날이며 걱정근심다 제하면 단 사십을 못사는 인생,한번 아차 죽어지면 싹이 나느냐 움이 나느냐…명사십리 해당화는…동삼석달 죽었다가 명년삼월 봄이 오면 다시 피련마는 우리인생 한번가면 어느 시절 다시오나,세상만사 생각하면 묘창해지일요이라…」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아주아주 가끔 대문간에 서서 시주를 동냥하기 위해 회심곡을 부르는 스님이 있었다. 그런 스님이 올라치면 내어머니께서는 종그라기에 시주드릴 쌀을 퍼 드신채 대문안쪽에 서서 그냥 듣고만 계셨다. 얼른 대문을 열고 쌀을 주어 보내지 않고 하염없이 서서 꽹과리소리 섞인 중의 사설을 듣고만 계시는 어머니가 이상해서 뭐라고 말을 걸면 손가락을 세워 입을 가리며 「쉬잇」하는 눈짓으로 나무라시던 어머니. 그분이 그때 그토록 하염없이 들으시던 노래가 회심곡이라는 것과 그 노래의 구구절절에 담긴 말을,그 무렵의 그분 나이만큼 되어서야 비로서 이해하게 되었다. 덕담으로 시작하여 서리서리 넘친 회한을 풀어가다가 적덕을 당부하며 끝내는,창으로 부르는 회심곡을 FM라디오로 우연히 만나면 횡재라도 한것처럼 반갑다. 최종민교수의 잔잔하고 실속있는 해설이 곁들인 KBS FM의 국악시간에 만나면 특별히 더 기쁜마음이 든다. 그럴때면 대문기둥에 기대어 서셔서 떠돌이 탁발승이 들려주던 회심곡에 넋을 뺏기곤 하시던 어머니의 자태와 내음이 어김없이 코끝에 되살아난다. 그 영원처럼 깊은 정서가,그다지 오래 잊혀졌다가 되살아나 생생하게 전해 온다는 일이 신기하다. 그러고보면,스스로 회임을 하고 출산을 하고,가슴에 아이를 품은채 외경과 희열을 교감하는 수유기를 경험한 뒤에사 비로소 회심곡에 귀가 틔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 노래를 들을때마다 심장이 저릿해오는 한편으로 유선에 아릿아릿한 통증이 전해오는 것도 번번이 경험하는 일이다. 이 통증은 산모시절 젖으로 아기를 키울때 체험한 기억의 잔재다. 집에 두고나온 아이가 불현듯 생각나면 조건반사로 유선은 부풀고 바늘로 찌르는듯한 통증이 온몸을 진저리치게 한다. 그러는 순간에 돌아나온 젖은 흥건하게 앞섶을 적신다. 모체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동안에도,아기가 배고플 시간이 되면 유선은 제가 먼저 돌아서 통증으로 신호를 보낸다. 『젖먹일 시간인데 어미가 무얼 하느냐!』고 호령하는 듯한 신호. 모유를 말할때 사람들은,인공의 조제유는 따를수 없는 「성분」을 운위하지만,수유하는 모자가 함께 지니는 정서는,그까짓 무기질의 「성분」만으로 평가할수 없는 무궁한 것을 내포하고 있다. 아기의 배고픔을,바늘로 찌르는 고통으로 함께하는 모체는,젖을 먹으며 눈맞추어주는 아기의 눈망울에서 신의 축복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사랑과 행복을 보상받는다. 그 죄없고 덞지않은 눈망울에서 생애에 오직 한번밖에 없을 듯한 구원의 실체를 경험한다. 아직은 인간의 말보다 신의 어휘를 더많이 기억하고 있을 듯한 아기와,어머니의 잠재능력은 그들만의 의사소통을 하고 그들만의 내음을 새겨둘지도 모른다. 엄마의 젖가슴에 코를 대고 익혀 두었던 내음이 자란뒤의 아이에게서 예술도 되고 철학도 잉태할 것이다. 먹물빛 장삼에 바라를 메고 고깔쓴 스님이 들려주는 회심곡을 대문기둥에 가려서서 다소곳이 듣고 계시던 어머니의 기억은 행주치마의 푸새냄새를 동반한다. 쉬기 직전의 숭늉냄새같은 푸새냄새를,새하얀 어머니의 행주치마는 늘 풍기고 있었다. 비디오아트를 창시한 한국인 백남준은 그의 예술의 원천을,『음력섣달 그믐밤의 애꾸무당』에서 비롯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그의 예술혼이 괴기서린 애꾸무당을 찾아갈때,그를 인도하는 것은 그의 어머니가 풍기던 소복의 푸새내음이었다고도 말했다. 시가와 친가로 이어진 수삼년의 상복의무가 오랜 세월의 소복으로 강요되었던 어머니의 치마폭에 기대어 푸닥거리 굿구경에 취해 잠들곤 하던 어린시절,푸새냄새는 그에게 배어졌고,천재가 자극받을 때마다 되살아났을 것이다. 고통과 희열로 거듭나는 모체의 길을 통과하고서야 어머니의 회심곡을 깨닫게 된 우매함이 부끄럽지만 그래도 그 깨달음이 다행하고 고맙다. 젊은이들이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나 한것처럼 어른을 우습게 여기고,그 지나온 세월을 능멸할때,회심곡 한곡은 위안이 된다. 멀쩡하고 깨끗하게 생긴 젊은이가 폭력이니 마약이니 하는 죄의 길에서 방황하다가 오랏줄에 묶여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것을 보노라면 서럽고 애닯은 마음에 회심곡이라도 한곡들으며 마음을 달래고 싶어진다. 단조롭고 지루하고 쟁쟁쟁 울리는 꽹과리의 금속성이 노래라기에는너무 무미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가을에 들으면 무상함을 달래주고 봄에 들으면 따스함을 전해준다. 꽃샘의 한기가 섶을 파고드는 봄날 해질녘에 반가운 내객처럼 찾아왔던 회심곡 한가락에서 우리가 지녀온 슬기를 확인한다.
  • 「합당 규탄대회」무산/경찰,원천봉쇄/도심서 가두시위

    「전민련」 등 재야운동권 단체가 주최한 「민자당 1당 독재분쇄 및 민중기본권 쟁취를 위한 국민대회」가 주말인 24일 하오 서울을 비롯,안양 성남 수원 군산 목포 등 10개 지역에서 산발적으로 기도됐으나 경찰의 원천봉쇄로 모두 무산됐다. 이들 단체들은 25일에도 부산 등 6개 도시에서 집회를 열 계획이며 경찰은 원천봉쇄할 방침이다. 이날 하오5시 대회가 열릴 예정이던 명동성당이 경찰에 의해 봉쇄되자 평민당의 문동환ㆍ이해찬의원과 「전노협」의 김영대부위원장ㆍ지선스님 등 50여명은 하오4시30분쯤 중구 정동 세실극장앞에 모여 30여분동안 약식집회를 가졌다. 이에앞서 「서총련」소속 대학생 1천5백여명은 이날 하오3시쯤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에서 집회를 갖고 종로5가 쪽으로 나가려다 이를 막는 경찰에 화염병 7백여개를 던지며 1시간동안 격렬한 시위를 벌인뒤 명동일대까지 진출,가두시위를 벌였다.
  • 동국대 총장서리 신국주 교수 승인/문교부

    문교부는 20일 동국대 신국주교수(65ㆍ정외과)의 총장서리임명을 승인하고 동국학원 이사장에 오록원스님(68ㆍ본명 인갑)의 선임을 승인했다.
  • 동국대 총장선출 진통/재단ㆍ교수들,후보 따로 뽑아

    ◎이지관 대행 사퇴 동국대는 16일 이지관총장 직무대행이 사의를 나타냄에 따라 긴급재단이사회를 열어 오인갑스님(53)을 신임이사장으로,신국주교수(65ㆍ정외과)를 제12대 총장직무대행으로 각각 선출했다. 이에앞서 이 학교 교수 2백38명은 이날 하오2시쯤 재단측과는 별도로 임시총회를 열고 총장서리후보에 민병천교수(58ㆍ정외과)와 이창배교수(65ㆍ영문과)를 뽑아 재단이사회에 추천했다. 이에따라 동국대는 곧 재단이사회를 다시 열어 「교수회」에서 뽑은 두 총장서리 후보와 신직무대행 등을 놓고 차기 총장서리를 뽑을 것으로 알려졌다.
  • 재미승려 평양파견 북한 불교인 초청차

    한국불교종단협의회(회장 서의현)는 오는 8일 미국 LA관음사 한국문화도서관장 신법타스님을 북한에 파견키로 했다. 2일 협의회에 따르면 이같은 조치는 속리산 법주사 청동미륵대불 준공법회에 북한불교도 대표를 초청하기 위한 것으로 국토통일원으로부터 북한주민접촉승인을 받아 시행하는 것이다. 법타스님은 북한에 들어가 조선불교도연맹측에 남한의 초청의사를 전달하고 이달안에 실무접촉을 위한 예비회담을 판문점등에서 갖자고 제의하게 된다.
  • 「3당통합」소식에 놀라움과 기대

    ◎기습적 「정치혁명」을 보는 시민들 표정/“이제는 「소모적 정쟁」 더 없어야”/지역감정 심화ㆍ일당독주 우려도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이 내각책임제를 전제로 통합창당을 선언한 22일 국민들은 정계구도의 대변혁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앞으로 정국의 추이에 관심을 모았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날 하오7시 3당통합 발표문을 듣고 이번 정계개편으로 그동안 소모적으로 운영됐던 여소야대의 4당체제가 보다 안정적이고 능률적인 양당체제를 구축,정치사회의 안정과 국가발전에 기여해 주기를 바랐다. 국민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정치인들이 개인적인 이해나 당리당략을 떠나 대승적 차원에서 국리민복에 힘써줄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새로 탄생할 거대 신당의 독주나 야당의 극한 투쟁 및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라고 경계했다. ▲김동현변호사=현재의 4당구조가 「5공청산」을 비롯한 반민주악법개폐 등 여러가지 현안을 원만히 처리하는데 한계점을 드러냄에 따라 도출된 당연한 귀결로 보인다. 보수대연합에서 국민들이 우려하는 점은 보수대연합에 의한 일당독재로 소외계층의 요구가 묵살되고 반민주악법 등이 그대로 묻혀버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지역간의 갈등이 극단적으로 치달을 우려가 있다. 따라서 야당이 이같은 극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김대중 평민당총재가 대아적인 견지에서 2선으로 물러나야 할 것이다. ▲김경오씨(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뭐가뭔지 어리벙벙한 느낌이다. 그러나 국제정세의 격동과 통일이라는 큰 과제를 앞두고 국내정치의 정비는 피할 수 없는 과제라고 생각했던 만큼 이번 정계개편을 통해 정치와 경제가 안정을 이룰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 이로인해 농성과 시위 등 불필요한 집단행동도 사라지길 기대해 본다. ▲조대현씨(아동문학가)=그동안의 파행적 정치운영형태에 비추어 무엇인가 변화가 오기를 기대한 것은 사실이나 특정지역의 소외감을 가중시킬까 걱정이다. 이왕 정국구도의 변혁이 대세로 확정된 이상 국민들도 역사의 전환이라는 관점에서 신중히 처신해야겠고 정치주역들은 혼란의 극소화를 위해 속히 신당의 구상을 선명히 밝혀주길 바란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든 국민의 뜻을 묻는 절차를 거쳐 주기 바란다. ▲김정규스님(40ㆍ법보신문주필)=우리나라 40년 헌정사를 통해 가장 놀라운 정치적 사건이 바로 이번 여야의 통합이라 할 수 있다. 물론 3당의 통합은 오늘의 정치구도를 변혁적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다. 그러나 지역간의 갈등과 계파간의 이해관계를 극복해야 된다는 난제를 안고있다. 진실로 정재양민의 큰 정치가 펼쳐지길 기대하는 마음이다. ▲황문호씨(38ㆍ잠실병원 원장)=정파싸움을 지양하고 국민의 복지와 정치민주화를 위해 합당하는 것이라면 일단 환영한다. 그러나 표면상 명분만 그럴듯하게 내걸고 일부 정치인들의 사소한 이익을 위해 뭉쳤다면 국민의 지탄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한상진교수(서울대 사회학과)=선거에 의해 국민이 만들어준 지금의 4당구도를 정치인들의 의사만으로 깰 수 있느냐는 시각도 있지만 정치성향을 같이하는 정치인들이 이합집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정계개편이 긍정적이냐부정적이냐 하는 것은 개편방향이 국민들이 요구하는 민주화의 빠른 진전과 사회변혁을 가능케 하는가의 문제라고 볼때 이번의 보수대연합은 오히려 장애요소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광우교수(전남대ㆍ정치학)=민의를 무시한 정계개편이다. 야당에 의한 통합이 되지않고 여당 중심으로 통합된 것은 재야 정치세력의 결집을 불러 정치의 양극화에 따른 혼란만 가중될 것이다. ▲박상근군(22ㆍ경희대총학생회 부회장ㆍ영문과 4년)=한마디로 국민적 합의가 전제되지 않은 복마전의 산물이다. 정치권에서 나타나고 있는 반민주와 민주와의 대결을 보수ㆍ혁신의 구도로 왜곡시키려는 술수라고 생각한다. 최근의 정계기류로 미루어 어떤 방식이든 개편이 있으리라 예상했지만 선명야당임을 자처했던 민주당이 공화ㆍ민정당과 밀착했다는데 경악을 금치 못한다.
  • 보물급 문화재 3억대 훔쳐/미인도ㆍ옥대등/스님 낀 일당 4명 영장

    서울 강동경찰서는 18일 충남 서산시 관음사 주지 윤병탁스님(48)과 이 절의 전 주지아들 임관재씨(28),장물아비 최병환씨(48ㆍ상업ㆍ서산시 동문동 968) 등 4명을 문화재보호법 위반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임씨는 지난해 11월22일 상오11시쯤 전남 해남군 해남읍 고산 윤선도유적관리소의 자물쇠를 뜯고 들어가 진열대 유리상자 안에 있던 조선조 정조때 화가 윤두선의 가로49㎝ 세로117㎝짜리 「미인도」(시가 1억원상당)를 훔치고 같은해 12월13일 경북 상주군 사벌면 충의사유적관리소에서 보물 669호로 지정된 임진왜란때의 의병장 정기룡장군의 옥대 1점(시가 2억원상당)을 훔친뒤 화랑주인 황씨에게 1천3백만원을 받고 「미인도」를 팔아넘긴 혐의를 받고 있다. 또 관음사 주지 윤씨는 지난해 8월 임씨의 부탁을 받고 전남ㆍ경북 등지를 돌아다니며 보물이 있는 곳을 확인시켜 주고 임씨가 훔친 옥대를 넘겨받아 선금 50만원을 받고 최씨에게 넘긴 혐의이다. 경찰은 윤씨로부터 옥대를 사들인 최씨가 인사동 고미술상인들에게 옥대를 팔려고 한다는 제보를 받고 추적끝에 17일 서산시 프린스호텔 308호실에서 윤씨를 검거하고 서울 강남구 삼성동 진원다방에서 윤씨를 기다리던 임씨를 붙잡았다.
  • 정치,그리고 「건달」론/이재근 논설위원(서울칼럼)

    조계종 종정 성철 큰스님은 참 재미있는 분이다. 그런 표현이 결례가 된다면 자미롭다거나 그냥 친근감을 갖게 되는 분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이다. 우선 그분의 상호부터가 그러하다. 우리같은 속중의 눈으로 보는 그분의 상호는 부처님쪽보다는 나한상에 가깝다. 그래서 보다 친밀감을 갖게 하고 깊은 산속에 은거하며 속세에는 미동도 않는 높은 뜻이 돋보이는지 모른다. 그 성철스님이 문하스님들을 「건달」로 몰아붙이며 야단을 친 일이 있다. 작년 그가 주석하는 해인사의 하안거 해제 때 법문을 통해 『해인사에 건달이 제일 많다』며 『중이면 중값을 해라』고 호통을 친 것이다. 그는 『중들은 공부를 안하고 신도들은 속아서 큰스님인줄 알고 시주를 많이 한다』고 불교계 현실을 꼬집기도 했다. 그는 기실 중들만을 건달로 몰아붙인 것이 아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건달로 본 것이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건달이란 일정한 주소나 직업도 없이 관계없는 일에 잘 덤벼들고 풍을 치며 돌아다닌다는 뜻의 사전적 의미가 아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건달이란 팔부중의 하나­수미산 남쪽의 금강굴에 살며 제석천의 아악을 맡아보는 신,이른바 건달파를 가리킨다.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향만 사르며 공중으로 날아다닌다. 또 서역에서는 배우를 일컫는 말도 된다. 「건달」 풀이가 길어졌는지 모르지만 지난날 한때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란 자기와 무관한 일에 잘 덤비고 풍을 치며 휘젓고 다니는 사람들,이를테면 건달들이나 하는 일로 돼 있었다. 사실이 그런 적도 있었다. 허황된 꿈과 자기도취 속에서 무위도식하며 온통 「민중」이요 「대중」만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정치를 한다고 판을 꾸몄다. 그러니까 그들이 일궈내는 정치 또는 정치판은 「건달들의 놀이터」일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 당시 한 유수한 정치인이 정치는 백수건달들이나 하는 것으로 스스로 비하했다. 자유당 때에 이어 공화당 정치를 주름잡던 성곤 김성곤의 이른바 「백수건달론」이 그것이었다. 해방 직후 우후죽순처럼 생성 소멸했던 숱한 정당ㆍ사회단체ㆍ정당인ㆍ정치인들 그리고 자유당 때 집권당을 감싸고 위성처럼 기생하던 많은 정당ㆍ단체들과 사람들이 결국 건달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그 시절 다른 말로 표현해 정치 브로커라고도 했다. 올바른 정치가 없고 사회가 혼란했을 때는 모리배나 정상배,심지어는 뒷골목의 주먹들마저 정치 브로커를 겸업했거나 아니면 민중을 들고나온 본격 정치꾼들에게 고용되어 건달놀이를 일삼았다. 그러나 사실에 있어 정당이나 정파ㆍ사회단체의 난립은 정치의 빈곤을 뜻하는 것이고 정객의 과잉은 정치의 부재와 결여를 말해주는 것이다. 지난해 섣달 그믐날 자정이 넘도록 텔레비전 화면을 응시하며 왜 성철스님의 「건달중」 호통이 상기됐으며,왜 우리의 정치와 정치판을 들여다보며 성곡의 건달 정치론이 뇌리를 스쳤는지 오늘 생각해 확실치는 않다. 그러나 지난 일을 청산하자고 이뤄낸 정치의 장을 국민의 한사람으로 물끄러미 지켜보면서 적잖은 충격과 당혹감을 느낀 것만은 분명하다. 청산하자는 마당에 왜 모든 것이 불안하고 불확실하게 보였던가를,다시는 그것을 거론치 말자며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사태 또한 쉽게 넘길 일이 아닌 것이다. 좀더 따지고 보자면 그날의 정치희극 아니 정치비극은 이미 약속된 사항을 이행하지 못하는 뭇정치인들의 무능력과 무책임과 건달적 사고방식에서 이미 잉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청산은 일찍이 국민적 합의였고 정치인들의 실천사항이었다. 그것을 실행하는데 힘이 부쳐 저들끼리는 포기하고 1노3김이라는 「결단회담」까지 가지고 가게 한 사람들은 정확히 말해 건달론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전직 대통령의 국회출석 증언 자체가 아무리 우리 현실정치의 통과의례 일 수밖에 없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호위하는 쪽과 마당에 팽개치려는 쪽의 충돌과 해프닝,그로 인한 정회소동은 그처럼 힘들게 마련된 새 출발의 통과의례를 무참한 의식으로 만들어버렸다. 정치인들은 증인이 국회를 모독한다고 분개했으나 그들 스스로도 국회를 모독하고 있었다. 지나간 일을 왜 또다시 들먹이는가를 따지는 일은 이 문제에 관한한 무의미하다. 다시는 이런 말을 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 정치 또는 정치판에서 다시는 그런 희비극 같은 장면이 연출되지 않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말은 바로 해보자는 얘기다. 전직 대통령의 국회출석 증언 같은 국가적 망신이요 국민적 수치요 개인적인 치욕에 속하는 일은 역사에서 단 한번으로 끝내야 한다는 충정에서이다. 올해에는 그동안 군소정치인들이 그토록 주장하던 대망의 지방자치제가 실시된다. 그와 때를 같이 했음인지 정계개편론도 이미 슬슬 제기되기 시작했다. 아직은 자신의 개인적인 구상으로만 간직해야 할 채 익지 않은 양당제로의 개편론을 드러냈다가 그 즉시로 집권당 대표위원직을 떠난 경우도 있고 조금 낯선 연합공천론도 공개적으로 띄워졌다. 공당의 총재에 의해 내각책임제 개헌론이 제기됐었고 그 무슨 말빠른 생각이냐는 반론도 나왔다. 「정치」와 「건달」이 연결됐던 우리 정치의 과거는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어느 한 기간의 과거청산도 역시 역사에 묻히려 하고 있다. 그것을 기점으로 우리의 정치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진정한 보혁논쟁으로 새로 태어나고,당리당략과 사리사욕을 벗어나 이념에 기초한 그러한 정치로 재편돼야 할 것이다. 지금으로서 그 재편은 이르지도 늦지도 않다. 오는 봄의 지방선거,그 이듬해의 총선거,다시 그 이듬해의 대통령 선거 등 정치적 행사가 줄이어 있다. 그 기간이 앞으로 3년이며 3년이란 그리 짧지도 길지도 않은 세월인 것이다. 우리 정치인들이 성철스님이 중들을 야단치듯이 국민들로부터 『정치판에 건달들이 제일 많다』거나 『정치인은 정치인 값을 해야 한다』는 질책을 더이상 받지 않기 바란다. 그리고 이것을 새해의 덕담으로 받아주길 바란다. 소망스런 우리 정치의 건달파들이여 다시 한번 힘을 내서 해봐야 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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