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스님
    2026-03-04
    검색기록 지우기
  • 우롱차
    2026-03-04
    검색기록 지우기
  • 유진
    2026-03-04
    검색기록 지우기
  • 신안
    2026-03-04
    검색기록 지우기
  • 채상병
    2026-03-0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175
  • 새종정 누가 되나/조계종 18일 중앙종회… 관심 집중

    ◎65세·승랍 40년이상 돼야 자격/월산·월하·서용·석주스님 거론 『마음의 새벽을 여는 원초적 언어로 중생을 깨우쳐줄 큰스님은 누구일까』 성철큰스님의 장례절차가 모두 마무리되면서 스님의 「큰 자리」를 메워줄 차기 조계종 종정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특히 오는 18일에는 「성철종정이후」 종단문제 전반을 다룰 첫 조계종 중앙종회가 예정돼 있어 『49재 중에는 차기 종정문제가 논의되지 않을것』이라는 부인에도 불구하고 어떤 형태로든 차기 종정문제에 관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조계종 종정은 종헌상 「종통을 계승하는 최고의 권위와 지위를 가진다」(19조)고 돼있으며 사실상 한국불교 전체의 정신적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다.자격은 ▲65세 이상의 비구 ▲승랍 40년 이상 ▲대종사(불교 최고 법계)등으로 돼있으며 원로회의(정족수 21명·현재 13명)의 재적과반수 추대로 선출되고 임기는 10년,중임할수 있게 돼있다. 현재 차기 종정후보로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 원로스님은 5명 정도.불국사 조실 월산스님(81)을 비롯,통도사 방장 월하스님(78),백양사 조실 서옹스님(81),칠보사 조실 석주스님(84),원로회의 의장 서암스님(75)등이다. 지난 91년 성철종정과 종정경쟁에 나섰던 월산스님은 막강한 불국사의 힘과 한번도 종정을 내지못한 월자문중의 기대를 바탕으로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70년대초 총무원장에 선출됐으나 취임을 마다하고 산중에 은거했던 것으로 유명한 그는 원만한 인품과 수려한 풍모가 강점으로 꼽힌다.그러나 현총무원장 의현스님과의 불편한 관계로 순탄치 않으리라는 전망이다. 또 91년 당시 성철­월산 간의 「종정직 경쟁」이 자칫 「불교내분」으로 비쳐질것을 우려한 문도들에 의해 제3의 후보로 천거됐던 월하스님의 경우도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선승 가운데 한분으로 강직하면서도 자상한 인품으로 종도들의 신망이 두텁다. 지난 1974년 5대종정을 지낸바 있는 서옹스님은 상징적 역할이 아닌 친정체제를 구축하려다 당시 총무원장인 경산스님과의 알력으로 종단 양분을 초래한 과거 때문에,총무원장을 지낸 서암스님은 「세부족」등으로 다소 불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한편 역시 총무원장을 지낸바 있는 석주스님은 덕숭문중의 적통으로 총무원장 의현스님과의 관계도 원만한 것으로 알려져 새로운 변수의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종단 일각에서는 성철종정 입적후 모인 전국 선원 수좌들이 『이제 종정은 우리의 손으로 선출하자』고 강력한 의사를 표시했으며 내년 7월말로 임기가 끝나는 의현총무원장의 거취문제,그리고 종헌·종법의 개정문제등과 맞물려 전연 새로운 원로가 추대되거나 또는 다시 장기간의 종정 공석상태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 골사리·육사리·발사리… 전신서 고루 나와/성철종정 사리 수습

    ○…장의집행위원장 일타스님은 사리 수습결과를 발표하면서 『사리 수의 다과는 큰스님들에게 있어서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하고 『활애스님·인파스님등을 비롯,법력이 높으셨던 스님들이 사리를 남기지 않은 예도 많다』고 설명했다.일타스님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자신도 『혹시 안나오면 어쩌나…』하는 걱정을 했었다고 인간적인 심경을 토로하기도. 그는 사리는 뼈에서 나오는 골사리,살에서 나오는 육사리,머리카락에서 나오는 발사리가 있는데 큰스님의 사리는 전신에서 골고루 나왔다고 밝힌 뒤,일반인들의 사리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경계하듯 『만일 성철스님이 사리 수를 놓고 이 법석을 떠는 것을 아신다면 크게 꾸짖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상오10시부터 시작된 습골의식은 조계종 원로스님,해인사 문도스님들과 전국에서 모인 수좌스님등 2백여 스님들이 다비장을 둘러싼 가운데 법구의 머리부분,상체부분,중간부분,하체부분등의 뼈를 수습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장의위원장인 총무원장 의현스님,해인사 율주인 일타스님,해인총림부방장 혜암스님,법제자 법전스님,맏상좌 천제스님등 5명의 원로스님은 다비장 비닐막안으로 들어가 3배후 수습을 시작했다. ○…수습된 법구의 뼈와 재는 먼저 한지에 싼다음 머리부분과 상체부분은 흰색 보자기 2개에 싸여졌으며 하체부분은 4개의 연두색 보자기에 싸여졌다.이 보자기들은 잿빛 도자기에,나머지 재는 작은 항아리 3개와 큰 항아리 2개·양동이 2개에 담겨졌다.
  • 오색의 사리 사파 밝히고…/성철종정

    ◎1차38과 수습… 1백여과 더 나올듯/12월22일까지 해인사안치 일반에 공개 【해인사=나윤도·남윤호기자】 한국 불교의 태고봉 성철스님이 남긴 사리는 12일 하오 1차 수습한 결과 38과로 밝혀졌다. 조계종종단장장의위원회측은 이날 이같이 발표하고 앞으로 뼈에 박힌 사리와 재에 묻힌 사리들을 모두 분류하면 1백여과이상이 더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장의위원회측은 사리의 수에 대한 최종발표는 분류가 완전히 끝나는 14일 상오에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사리 수는 지난 83년 12월 입적한 구산스님(전 송광사 방장)의 53과보다 훨신 많은 것으로 국내 최고의 기록이다. 장의위원회는 또『큰스님의 사리가 자주색·검정색·흰색·갈색등 5색 영롱한 색상을 띠고 있었으며 크기도 녹두알에서 좁쌀알 크기까지 다양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수습된 사리 38과는 보경당에서 볼록렌즈로 덮인 유기그릇에 담겨져 대기중인 스님들과 법당 앞에 장사진을 이룬 1천여명의 불자들에게 공개됐다. 장의위원회는 큰스님의 사리를 49재가 끝나는 오는 12월22일까지 보경당 불좌대 아래에 깐 빨간 융단위에 안치,매일 상오8시부터 하오6시까지 불자들에게 참배를 허용키로 했다. 49재이후에는 특별 제작한 사리장치에 정식으로 봉안한 뒤 사리탑인 부도를 세워 영구보존할 계획이다. 사리분류를 지휘한 장의집행위원장 일타스님은 『사리가 머리와 상체·하체부분서 골고루 나왔으며 녹두알만한 것 3∼4개를 비롯해 다양한 크기의 것들이 뼈속에 알록달록 점점이 박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당초 오늘중으로 뼈를 갈(쇄골)예정이었으나 뼈속에 박혀 있는 사리의 수가 많아 사리를 모두 수습한 뒤 쇄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 “한평생 많은 사람 속였으니…”(박갑천 칼럼)

    세상살이를 좀 야박하게 표현해 본다면 속고 속이는 관계의 연속이라고 할수도 있을 것이다.살아간다는 것 자체부터가 그렇다.대중가요 노래말마따나 『설마에 속아서…』사는게 인생살이 아니던가.설마 내가 이렇게 죽는건 아니겠지,내일엔 감당못할 행운이 찾아들겠지 하고 설마를 믿어보다가 속은채 이승을 하직해 가는게 인생이다. 이승의 삶을 표현하는 생존경쟁이라는 말속에 벌써 속고 속이는 관계는 섭새겨진다.하지만 속고 속이는 관계는 반드시 악의의 경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선의의 경우 또한 적지않다.노모에게 충격이 갈까봐 아들의 암선고 받은 사실을 숨기는 일이나 아내가 실망할까 저어하여 직장에서의 불이익을 덮어버리는 남편의 마음…등등이 그것이다.『거짓말도 잘하면 오려논 닷마지기보다 낫다』『거짓말이 외삼촌보다 낫다』는 속담도 그래서 나온다. 대체로 마음이 착할수록 남에게 잘 속는다.「맹자」(맹자:만장장구상)의 『군자를 그럴싸한 방법으로 속일수 있다』(군자가기이기방)는 구절에서 보이는 자산의 경우도 그것이다. 어떤사람이 정나라재상 자산에게 산물고기를 바친다.마음씨 착한 자산은 차마 잡아먹지 못하고 정원을 관리하는 교인을 불러 연못에다 기르라 이른다.고기를 가져간 교인은 삶아먹은 다음 이렇게 보고했다.『처음 연못에 넣었을 때는 빌빌거리더니 이내 꼬리치며 깊은데로 들어가 버렸습니다』.그말을 믿은 자산은 『고기가 저 있을 곳을 얻었구나』하면서 기뻐한다.명재상으로 지모가 깊었던 자산도 교인의 속임에 넘어간 것이다.그를 본 교인은 자신에게 속은 자산을 비웃고 있다. 그글은 그러나 그다음이 중요하다.그와같이 군자를 속일수는 있어도 『…그 도리가 아닌 것으로는 속이기가 어려운 것이다』(난망이비기도)고 잇고 있기 때문이다.군자는 부정한 방법으로 이익을 얻는 일이나 억지로 권세를 얻는일등 도리에 어긋나는 감언이설에는 속지 않는다는 뜻이다.군자아닌 소인들이 속고 속이면서 세상을 시끄럽게 만드는 일은 바로 이경우들이 아니던가. 높고 깊은 법력 남기고 입적한 성철 큰스님의 열반송은 『한평생 무수한 사람들을 속였으니(생평기광 남녀군)…』로 시작되어 주목을 끌게 한다.그가 티끌세상 사람들처럼 남을 속여야 할일이 무엇이었겠는가.그렇다 할때 모자란 깨달음과 능력으로 광대무변한 진리를 이야기했다는데 대한 겸사로나 해석해야 하는 것 아닐지 모르겠다.다만 오늘도 속고 속이며 사는 중생들은 아픈 마음으로 새겨 들어야 할 대목 아닌가 한다.
  • 사리/수행의 결정체… 불자엔 경배대상/성철종정 얼마나 나올까 관심

    ◎모양·크기 다양… 의학계선 결석일종 추정/경봉스님은 안나와… 법력척도와는 무관 성철큰스님의 다비식이 거의 끝나감에 따라 큰스님이 과연 얼마만큼의 사리를 남겼을까에 불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리가 스님들의 법력을 나타내는 척도는 아니지만 사리신앙을 떠받들고 있는 일반 불자들에게는 고승이 열반하게되면 사리의 유무와 그 양에 가장 큰 관심을 갖게 마련이다. 참된 수행과 금욕의 결과로 생겨나는 것으로 알려진 구슬모양의 사리는 마음의 열매라는 뜻에서 「심실」이라고도 부른다.그러나 모양이나 빛깔,크기등이 다양하며 또 꼭 스님에게서만 나오는 것도 아니고 재가불자들에게서 나온 예도 있어 일정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모양은 원래 부처님의 좌선모양을 닮는다고 하나 대개 구슬모양을 하고 있으며 빛깔은 자주빛,진주빛,우유빛,자색,비취색등 가지각색이다.크기 또한 호두만한 크기에서부터 콩알·팥알·녹두알·좁쌀알크기등 다섯단계로 구분된다.또 입적한 후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생존시에 나오는 경우도 있다. 수도의 결정체로서 경배의 대상인 사리가운데 우리나라에는 양산 통도사와 오대산 상원사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봉안돼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사리의 정체에 대해 일부 의학자들은 사리를 몸속에 있는 결석의 일종일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그러나 실제 사리를 구할 수 없어 규명되지는 않은 상태다. 한편 근세들어 가장 많은 사리가 나온 스님은 83년12월 입적한 구산스님(송광사)으로 모두 53과를 남겼다.다음은 66년10월 입적한 효봉스님이 34과,지난해 2월 입적한 자운스님이 19과,탄하스님 13과,학명스님 10과,청담스님 8과,동산스님 3과등으로 알려져있다.그러나 일제때 33인의 한분이었던 용성스님은 생존시에 1과가 나왔으며 경봉스님은 나오지 않았다. 사리는 기골과정에서 줍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뼈속에 들어있거나 뼈마디에 붙어있어 일단 습골후 가려내게된다.따라서 이번 성철 큰스님 경우에도 일단 습골한후 해인사 보경당으로 옮겨 문도 스님들이 자세히 점검,사리를 가려내게 된다. 이렇게 가려내진 사리는 친견법회를 가진뒤 보경당에 그대로 보관,49재때까지 일반신도들이 참배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 다비 지연… 오늘상오 사리 수습/성철 큰스님 장례위

    【해인사=나윤도·남윤호기자】 10일 하오 2시30분 해인사 근처 연화대에서 다비에 들어간 성철 큰스님의 법구는 11일 상오 불이 꺼진후 습골,사리가 공개될 예정이었으나 불길이 사그러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계속 타올라 장례위원회측은 예정보다 하루 늦은 12일 상오 10시쯤 사리를 수습,정오에 이를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다비식이 이처럼 지연된 것은 밤새 비가 내려 장작에 물기가 배어 마르면서 서서히 타오른 때문.
  • 신도들,“뒷산서 방광 보였다”/성철 큰스님 다비 해인사 표정

    ◎누더기옷·노트 등 20점 공개 ○…이날 다비장에서 철야를 하고 내려온 스님과 보살들은 10일밤 큰스님이 거처하던 백련암 뒤편의 불면대 능선에서 둥글게 하얀 빛이 피어오르는 방광현상을 보았다며 큰스님이 다시 오시는 상서로운 서기라고 한마디씩. 특히 원택스님등 상좌스님들은 『큰 스님께서는 색신을 가리고 현미와 콩·솔잎등 담박한 식생활과 8년여의 장좌불와로 수행해 왔으므로 사리도 남다를것』이라고 귀띔. ○…해인사측은 11일 성철 큰스님이 입적한 퇴설당(퇴설당)과 스님의 생전 유품 20여점을 공개. 유품가운데는 스님의 수계첩과 안거증등 최초로 공개되는 것과 육필로 쓰인 노트등이 있어 많은 관심을 모았다. 퇴설당 큰방의 한쪽 벽에 걸린 스님이 평생을 입었다는 누더기는 전체가 천조각으로 기워져 마치 조각보같았다.또 30년을 갖고 있었다는 지팡이(석장)·20년 쓴 삿갓·검정고무신·덧버선·양말 등이 진열됐다. 또다른 한편에는 스님이 50여년전 범어사 차상명주지로부터 비구계와 보살계를 받은 수계첩과 승려증·안거증과 1950년 통영군에서 발부받은 도민증 등 스님이 갖고 있던 각종 증명과 스님의 육필노트및 편지지·안경과 안경집등도 공개됐다. 유품중에는 휴지로 쓰기 위해 채곡채곡 쌓아놓은 일력뭉치가 있어 평소 스님의 검소한 생활을 말해주었다. ○…대적광전 동쪽에 위치한퇴설당은 대지 1백평 건평 25평의 작은 집으로 1901년 중건됐다. 이곳에는 염화실이라는 현판이 또하나 걸려 있었으며 왼편에는 스님이 평소에 산책다닐때 사용하던 출입문인 등기문이 7∼8계단 위에 덩그러히 놓여 있었다. 스님이 24세때 머리를 기른 상태에서 처음 해인사에 와서 걸터앉았던 툇마루가 그대로 있어 마치 큰스님이 금방이라도 기침을 하고 오를 것같은 분위기를 주기도 했다. 안내를 맡은 무관스님은 「퇴설당」이란 이름은 발자국이 없는 산중의 눈 쌓인 모습을 말하는 것으로 세상 번뇌망상이 없어진 상태라는 뜻이 있으며 공부를 많이 한 스님들이 모여있는 곳이라는 뜻도 있다고 설명했다.
  • 페리호희생자 진혼제/격포앞 해상서… 2천명 참석

    【부안=조승용기자】 서해훼리호 침몰사고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영가진혼천도제가 11일 하오 전북 부안군 변산면 격포앞 해상에서 열렸다.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김제 금산사 주최로 열린 이날 진혼제에는 유가족 5백여명과 스님,관계 공무원 등 2천여명이 참석했다. 금산사 주지 월주스님(55)은 진혼법어를 통해 『이번 희생자들의 죽음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살아있는 우리 주위의 수많은 문제점들을 깨우쳐 준 것』이라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참석자들은 이어 완도카페리 5호 등 2대의 여객선을 타고 사고해역에 도착해 선상진혼제를 지냈다. 한편 이에앞서 서해훼리참사 유가족배상대책위원회(위원장 박경국·39)는 이날 상오 변산해수욕장에서 유가족총회를 열고 정부에 배상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유가족들은 ▲희생자 원혼을 위로하기 위한 위령탑 건립 ▲연안여객선의 현대화 등 5개항을 정부에 촉구했다.
  • 장엄한 다비불길… 큰법 남기고/성철스님 떠나시던날

    ◎해인사에 애도인파 15만/오늘 상오 사리 수습 【해인사=임시취재반】 『가고 오고 머무르심이 없는 그곳에 열반의 종소리가 울려옵니다』 한국 불교의 태고봉 성철큰스님의 가시는 길은 하늘마저 가을비를 촉촉히 뿌려 큰스님의 큰 법과 큰 덕을 아쉬워했다. 성철큰스님의 조계종 종단장이 거행된 10일 상오 경남 합천군 가야산 해인사 일대에는 3천여 스님과 15만여명의 신도들이 인산인해를 이룬 가운데 상오 11시 영결식에 이어 하오 2시20분 다비식으로 나뉘어 엄숙하게 진행됐다. ▷영결식◁ 이날 영결식은 「석가모니불」 독경이 은은하게 울리는 가운데 상오8시 퇴설당에서 큰스님의 법구를 식장으로 운구하면서 시작,상오11시 전국 1천2백여 조계종 본·말사에서 일제히 다섯번씩 종을 울림과 동시에 개식됐다. 삼귀의와 영결법요에 이어 해인사 율주 일타스님의 큰스님 행장소개 순으로 진행된 영결식은 영결사·추도사·조사·헌화 및 분향 등 2시간동안 계속됐다. 이날 조사는 박종하중앙종회의장과 김종필 민자당대표·이기택 민주당대표·이민섭문화체육부장관·권익현 국회정각회 회장·조기현 전국신도회장 등이 맡아 고인의 덕을 기렸다. 이어서 불교연합합창단이 추모가 「성철 큰스님 열반하시니」를 합창하는 동안 헌화 및 분향이 이어졌으며 혜암해인총림부방장의 문중대표 인사를 끝으로 인로왕번을 앞세운 장의행렬이 다비식장으로 향했다. ▷다비식◁ 영결식장에서 3㎞ 떨어진 연화대에서 거행된 다비식은 하오2시30분 큰스님 법구가 다비대에 안치되자 장례위원장 의현스님과 법전스님등 문도스님 대표들이 거화 및 하화의식을 거쳐 불을 붙이며 시작됐다. 다비장에는 비가 오는데도 5만여 신도들이 주위 산등성에 빽빽이 들어앉아 큰스님의 마지막 열반모습을 지켜봤다. 다비식은 밤새 진행되어 11일 상오까지 계속될 예정이며 수습된 사리는 49재 후 대적광전에 임시 안치했다가 부도를 만들어 영구보존케 된다. 이날 행사에는 박관용 대통령비서실장·박찬종 신정당대표 등 정계인사 50여명과 타종단 대표,페드리스 스리랑카대사 등 주한 외교사절도 참석했다. □해인사=임시취재반 ▲문화부=나윤도기자 ▲전국부=남윤호기자 ▲사진부=유재림·황경근기자
  • 유일한 혈육 불필스님 첫 모습… 영결­다비식은 불참

    성철큰스님이 속가에 남긴 유일한 혈육인 불필스님(51·사진)이 10일 상오8시 성철스님의 법구가 안치된 퇴설당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자그마한 키에 동그란 얼굴과 두툼한 귀가 성철스님의 생전 모습을 연상케 하는 불필스님은 지난 7일동안 성철스님의 법구를 밤낮없이 지켜온 탓인지 초췌한 안색이었다. 불필스님은 그러나 영결식과 다비식에는 불참. 영결식 등에 참석할 경우 매스컴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게 돼 큰스님의 인간적 측면이 강조될 것을 우려,주변에서 참석을 말렸다는 것이다. 불필스님은 해인사 암자인 금강굴 뒷산에서 먼발치로 다비식 등을 지켜봤다고 관계자들이 전했다. 불필스님은 그동안 금강굴에서 기거하며 큰스님의 수발을 들어왔다. 불필스님은 성철종정이 출가하기 1년전인 1931년에 얻은 딸로 속가의 이름은 「수경」.20세 나던 해에 세속을 떠나 인홍스님으로부터 계를 받았다.불필스님이 아버지 성철스님을 처음으로 만난 것은 지난72년.「필요없다」는 뜻의 법명을 가진 불필스님은 이전에도 여러차례 아버지를 만나고자했으나 거절당하기도 했다.
  • 무심무욕의 세계/김정란 시인·상지대교수(굄돌)

    성철 종정의 입적을 둘러싸고 매스컴이 연일 법석을 피우고 있다.이 시대의 선승이니,큰 스님이니,생불이니 등등.알듯 모를듯한 그의 가르침도 도하 일간지에 대서특필되어 스님이 이 법석을 좋아하실지 어떠실지 나는 잘 모르겠다.나는 그 어른에 대해서도,불교에 대해서도 아는 바 전혀 없으나,매스컴이 전하는 그분의 됨됨이나 가르침의 성격으로 미루어 짐작컨대,이 야단법석이 특히 칭찬들을 일은 못되지 싶다.그의 업적에 대한 기사를 읽은날,내 눈앞에는 하나의 이미지가 떠 올랐다.전면에는 가늘게 비가 내리고 후면에는 뽀얗게 안개가 끼어있다.거렁뱅이 늙은 수도승 하나가 긴 막대기를 들고 휘적휘적 걸어간다.까까머리 젊은 중이 쫄쫄 뒤따라가며 시님,시니임,시이이님,하고 목메어 부른다.늙은 중은 들큰도 하지않고 썩썩 앞으로만 걸어간다.젊은 중이 학학 가까스로 그를 따라 잡는다.시님,우리들은 어쩝니까요,시님,가르쳐 주십시오,어쩌해야 도에 이를 수 있습니까.늙은 수도승은 가래침을 칵 땅바닥에 뱉고 막대기로 땅바닥을 탕탕두들긴 뒤 『아침 먹었느냐』고 묻는다.젊은 중이 대답한다.예,시님.늙은중이 안개속으로 썩 내달으며 『그럼 가서 똥누고 오너라』고 대답한다.윙윙 그의 목소리가 허공에 울린다.그이 모습은 더이상 보이지 않는다.그리곤 요요한 적막. 까까머리 젊은 중은 망연히 안개 앞에 서서 이슬비를 맞고 서 있다. 그는 우리 꼴이다.우리는 세간에서,세상사에 질척질척 젖으면서,다만 지혜에 목이 멜뿐이다.그러나 우리안에 불심의 소질은 숨겨져 고요히 타고 있으니,혹 알것인가,한 선승이 이른 저 가벼운 무심무욕의 경지에 우리도 언젠가 이르게 될지.그때까지 다만 발심하리라.있는 힘을 다해 존재의 불을 후후 풍구질하리라.그것은 지금 자아의 조잡함에 덜미를 잡혀 살둥죽을둥 신통치 않으나,때가 이르매 산불처럼 치솟아 오르고,또 때가 이르매 동녘 햇살처럼 투명하며 고요해지리라.나는 그것을 믿는다.아니면 이 오욕의 생을 어떻게 버텨 낼 수 있는가.
  • 독경·오열속 운구…장의행렬 3㎞/소나기 쏟아지자 “하늘도 우는듯”

    ○…조계종 성철종정의 영결식과 다비식이 열린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해인사에는 10여만명의 인파가 몰려 인산인해를 이뤘다. 상오8시쯤 4만명,9시쯤 7만명,영결식이 시작된 11시쯤에는 10만명 등 시간이 지날수록 조문객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교통정체로 도로에 묶인 추모객까지 더하면 15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88고속도로 야로인터체인지에서 가야면소재지·해인사에 이르는 도로는 상오8시쯤부터 극심한 교통체증을 빚었으며 상오10시쯤에는 완전 마비됐다. 이같은 체증현상은 88고속도로에 그대로 이어져 상오8시부터 11시까지 두시간동안 대구∼야로IC,야로IC∼남원까지 해인사로 들어오는 88고속도로 양방향이 모두 정체현상을 빚었다. 이때문에 도로에 묶여있던 김종필민자당대표,이기택민주당대표등 정계인사들은 해인사 승려들과 경찰의 선도로 겨우 영결식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었으며 승찬스님(송광사 방장)등 원로스님 상당수가 영결식 참석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 것. 일부 신도들은 야로면·가야면에서부터 차에서내려 6∼8㎞ 거리를 걸어서 오르기도. 조계종 원로스님인 명선스님(흥국사 주지)은 『지난 60년대 통합종단 출범이후 불교행사에 이처럼 많은 대중이 모이기는 처음』이라며 성철스님의 입적을 애도해 몰려든 엄청난 인파에 크게 놀라워하는 모습. ○…이날 해인사에서는 새벽녘에 그믐달이 보여 날이 맑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상오9시쯤부터 빗방울이 뿌리다 영결식이 시작되자 소낙비처럼 비가 쏟아진뒤 영결식이 끝난 하오1시쯤 비가 그쳤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도와 승려들은 비를 그대로 맞아가며 전혀 자리를 뜨지않고 독경과 합장배례를 계속. ○…이날 장의행렬은 인로왕번·태극기·불교기·3백여개의 만장을 앞세우고 흰색과 황색으로 꾸며진 장의차가 뒤를 따랐으며 장의차뒤를 「일심시불」·「옴마니파드메 훔」등 선구와 진언등을 쓴 1천여장의 만장과 2천여명의 승려,3만여명의 신도들이 줄을 이었다. 영결식장에서 다비장까지 3㎞의 길가에는 신도 5만여명이 장의행렬을 지켜보며 합장을 드렸고 2만여명의 신도들은 다비장까지 행렬을 따라 올라가다비장에는 5만여명의 인파로 발디딜 틈조차 없었다. ○…다비식이 거행된 연화대 다비장은 영결식이 열리는 동안 미리와서 자리를 잡고 있던 2만여명외에 장의행렬과 함께 밀어닥친 3만여인파등 모두 5만여명이 몰려 큰 혼잡을 빚었다. 한편 현장정리에 나선 합천경찰서측은 시내 교통편을 잡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전경버스 5대를 제공,3백여명의 조문객을 대구까지 태워줘 큰 박수를 받았다. 이날 동원됐던 경찰관 4백여명은 조문객들이 타고간 버스가 밤10시쯤 되돌아오자 그때서야 철수.
  • 성철스님 오늘 영결식…해인사 표정/분향행렬 5만…다비장 준비 완료

    ◎상오 8시 운구… 전국사찰 5번 타종/조사 신청자 쇄도… 여야대표도 포함 성철 큰스님의 다비식을 하루 앞둔 9일 해인사에는 은은한 독경 속에 5만여명의 분향객 행렬이 계속되는 가운데 영결식장과 다비장 준비가 완료됐다. ○…이날 하오 종단장준비위원회(위원장 일타스님)는 전체회의를 열고 10일 거행될 장의일정을 확정. 영결식은 상오8시.퇴설당에 안치된 큰 스님의 법구가 구광루 앞에 마련된 영결식장으로 이운되면서 시작된다.퇴설당 바깥문까지는 법전·원택등 20여명의 문도들이 이운하고 영결식단 뒤의 운구차량까지는 20여명의 전국 수좌들이 이운한다. ○…당초 대적광전 앞에 설치하려다 구광루 앞으로 옮긴 영결식단에는 「시적」(고요한 것을 보였다)글씨와 함께 좌우로 큰 스님의 열반송을 적어 참배객들에게 귀감이 되도록 배려. 영결식은 상오11시 조계종 전국 본·말사가 동시에 5번 타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영결사는 서의현총무원장,추도사는 송서암원로회의의장,문중대표인사는 혜암해인총림부방장이 각각 맡는다.조사는 원래 박종하중앙종회의장과 정부대표로 이민섭문화체육부장관 등 2명이 하기로 돼 있었으나 신청자가 쇄도,김종필 민자당대표·이기택 민주당대표·권익현국회정각회회장·조기현전국신도회회장 등의 조사가 추가로 포함됐다. ○…이날 식장에서 불려질 조가 「성철 큰스님 열반하시니」는 스님 입적후 일타스님이 바로 작시한 것을 해인사 포교국장 시명스님이 영감을 떠올려 곡을 붙인 것으로 제자들의 애틋한 사사곡으로 유명. 또 큰스님의 꽃영정과 법구를 운구할 꽃영구차도 비구니 스님들이 정성스레 색색 국화를 꽂아 만든 것.꽃영구차는 꽃지붕에 만자,연꽃등이 둘레에 수놓여진 장엄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꽃을 꽂는데만도 5시간이상 걸렸다고. ○…다비장이 마련된 연화대는 7∼8명의 인부가 나흘동안의 작업으로 완공했다. 지름 5m정도의 원형으로 된 다비대는 모두 5평의 참나무를 쌓아 만들어졌으며 가운데는 철구조물을 놓아 관을 올려놓고 태우도록 돼있다.참나무 둘레에는 열의 확산을 막기위해 짚단으로 두르고 다비대 전체를 모두 8필의 흰 광목으로 뒤덮고광목 위에는 연꽃을 꽂아 마치 전체가 하나의 큰 연꽃처럼 보이도록 했다. ○…이날 조문객 중에는 민자당의 강경식의원과 조중훈한진그룹회장,전민중당대표 장기표씨와 사무총장 이재오씨가 포함돼 있었다. ○…한편 불교방송(BBS)은 상오 11시부터 하오 3시까지 이날 거행될 다비식과 영결식의 전과정을 생중계한다.또 KBS 1라디오에서는 다비식과 영결식의 모든 절차를 녹음해 그중 하이라이트만을 모아 11일 하오 3시30분부터 20분간 「라디오 전국연결」시간에 방송할 예정.
  • 내일 성철 큰스님 영결식·다비식… 어떻게 치러지나

    ◎법체 삭발·착관의식 거쳐 화장/조계종 각사찰 일제히 타종,영결식 시작/해인사서 2㎞ 떨어진 연화대서 다비식/분소후 유골 분쇄·산골의식거쳐 사리 스습 퇴옹 성철스님의 입적 엿새째를 맞아 하루 앞으로 다가온 영결식과 다비식이 어떻게 치러질까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조계종 종단장으로 치러지는 큰스님의 다비식은 지난 71년 청담스님의 다비식에 이어 20여년만에 치러지는 것으로 단순한 장례식의 차원을 떠나 1천6백년 한국불교의 전통의식을 되살린다는 측면에서 불교계 뿐아니라 민속학계 역사학계 등에서의 관심도 크다. 다비란 불교의 장례의식으로 범어 쟈피타(Jhapita)를 음역한 말로 분소 또는 연소 등으로 의역되며 본래부터 시체를 화장하는 일을 뜻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불교에서의 통상적인 다비식은 의식집인 석문의범에 규정된 대로 행해지고 있다.성철스님의 다비식은 10일 상오11시 대적광전 앞에서의 영결식에 이어 하오2시 2㎞ 떨어진 연화대에서 거행된다. 영결식 전에 가장 먼저 치르는 의식은 삭발의식.법체가 모셔진 퇴설당에서삭발에 이어서 세수와 선족을 하는 목욕의식,옷을 갈아입히고 관을 씌우는 착관의식이 진행된다.이같은 절차가 끝나면 죽은 이의 영혼을 정좌시키는 정좌의식으로 정좌편과 안좌게를 염불하며,영혼에게 음식을 베푸는 시식의식을 행한다.입관한 뒤에는 기관이라는 발인의식을 거쳐 관을 영결식장으로 옮긴다. 퇴설당 1백여m 아래 있는 대적광전 앞에 마련된 영결식장에는 높이 4m 길이 12m의 연단이 만들어졌다.영결식은 이날 상오 11시를 기해 전국의 조계종 각 사찰과 암자 1만여 곳에서 일제히 다섯번씩 타종하면서 시작돼,서의현 총무원장의 영결사,송서암 원로회의 의장의 추도사,혜암 해인총림 부방장의 문중대표 인사등의 순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영결식이 끝나면 해인사에서 2㎞ 떨어진 연화대로 옮겨져 다비식을 치르게 된다.다비장에 이르기에 앞서 노제를 지내며 다비장에 이르러서는 고통을 떠나서 열반에 들게 되어 영생을 얻음을 뜻하는 거화및 하화의식을 행한다.떡갈나무의 불이 시신에 옮겨 붙으면 죽은 이의 영혼을 저 세상으로 보내는 봉송의식을 행하고,또 영혼이 새로운 몸을 받아 새로운 옷을 갈아입을 것을 바라는 창의의식을 치른다. 화장이 끝나고 나면 남은 유골을 수습하여 분쇄하고 흩어버리는 기골·습골·쇄골·산골의식을 행한다.이때 환귀본토진언을 외면서 영혼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을 발원한다.사리의 수습도 이때 이뤄진다. 다비식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사리 수습이다.참된 수행의 결과로 생겨나는 구슬모양의 유골인 사리는 황금색의 분말에서부터 진주와 같은 구슬형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부처님의 사리를 진신사리라고 하고 불경은 법사리,고승의 사리는 승사리라고 부른다.진신사리와 법사리는 불탑 속에 봉안되는데 비해 승사리는 불탑과는 다른 형태인 부지에 봉안된다. 기록에 따르면 가장 많은 사리는 부처님 진신사리로 8곡4두에 달했다.이는 불법의 너른 전파를 위해 당시 인근 8개국에 분배,봉안되었으며 우리나라에도 현장법사가 1백50입,의정이 3백립등을 들여와 널리 퍼져있다. 성철스님의 스승으로 그를 득도의 길로 인도했던 동산스님은 65년 입적후 2과의 사리가 나온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또 스승이었던 용성스님도 2­3과의 사리를 남겼으며 빛깔이 찬란하고 영롱했던 것으로 유명하다.성철스님도 훌륭한 사리를 남길 것으로 기대된다.
  • 내일 다비식… 연단 국화로 꾸며/성철 큰스님 열반 해인사 표정

    ◎2만명 참배… 전전대통령도 조문 성철종정 입적 닷새째인 8일 해인사에는 지난 이틀동안 궂었던 하늘이 활짝 열리면서 전두환 전대통령을 비롯한 조문객들로 크게 붐볐다. 해인사측은 10일로 예정된 영결식과 다비식을 이틀 앞두고 다비에 쓰일 떡갈나무를 쌓는 등 종단장준비에 바삐 움직였다. ○…해인사는 종단장 준비에 크게 분주한 모습.구광루앞 광장에 마련된 높이 4m·길이 12m의 영결식장 연단 중앙에 종정의 영정을 설치하고 황색과 흰색 국화로 연단을 꾸미는 한편 「전불심등 부종수교 조계종정 성철대종사 각령」(부처님의 법을 전하고 선종과 교종을 함께 일으키신 조계종종정 성철대종사의 깨치신 영혼이여)이라고 쓰여진 위패를 모셨다.다비식이 있을 연화대 주변에서는 10여명의 스님들이 다비식에 쓸 나무를 자르고 장작을 패느라 분주. 만장신청이 크게 늘어나자 해인사측은 청화당외에 관음전 심검당에서 만장접수를 받고 이날까지 선구·큰스님의 법문 등을 적은 1천여장의 만장을 준비. ○…해인사 일주문에서 본사까지 2㎞의 산길은 전국에서 몰려든 신도와 승려들로 가득 메워졌으며 분향소가 있는 궁현당에는 참배를 하려는 신도들이 20∼30m씩 줄을 서 대기하는 모습.해인사측은 이날 신도들을 위해 사찰내 방송시설을 통해 성철스님의 육성으로 녹음된 법문을 방송했으며 신도들은 참배차례를 기다리며 연신 합장배례.일부 신도들은 법체가 모셔진 퇴설당 앞에 몰려가 눈물을 흘리며 종정의 입적을 애도.이날 하룻동안 조문한 신도는 2만여명으로 집계됐는데 특히 서울·부산·광주·대구 등 대도시에서 사찰단위로 온 대규모 조문객이 대부분을 차지. ○…이날 상오 9시30분쯤 전두환 전대통령이 측근들과 함께 분향소를 찾아 참배했으며 미얀마연방 원로원 바딴다카마우따종정이 조전을 보내오는 등 국내외에서 20여통의 조전이 쇄도.
  • 성철스님 입적 해인사 표정/“다비식에 만장 1천개” 준비 부산

    ◎전국서 조문객 1만… 숙박업소 붐벼/신도 1백20여명이 부를 조가 작곡 ○조전 잇따라 쇄도 ○…성철종정의 입적 3일째인 6일 경남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에는 겨울을 재촉하는 늦가을 비에도 아랑곳없이 전국 각지에서 승려·신도등 1만여명의 조문객이 몰려들었고 각계에서 보낸 조화·조전도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성철스님의 분향소가 마련된 궁현당 앞마당에는 스님의 열반이후 3일동안 각계에서 보낸 1백여개의 대형조화가 진열됐으며 최규하전대통령·이만섭국회의장·이회창감사원장·한완상부총리등 1백여통의 조전이 쇄도. 특히 휴일인 7일에는 2만여명의 신도들이 몰려들 것으로 보여 성철대종사 원적이후 가장 많은 조문행렬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 일부 신도들은 『성철스님은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이래 신라 원효대사이후 가장 큰 스님으로 꼽혀왔다』며 종정의 다비식에 과연 몇과의 사리가 나올 것인지에 대해 벌써부터 큰 관심을 보이기도. 법체가 모셔진 퇴설당에는 목탁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리는 가운데 원택스님 등 측근 수좌스님들이비통한 표정으로 법구를 지켰고 방송사 등의 끈질긴 요청으로 성철스님과 관련된 일화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일부 스님들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서도 성철스님이 생전에 즐겨 다니던 해인사 본사에서 백련암에 이르는 1.5㎞의 오솔길을 거닐면서 성철스님의 생전모습을 그리기도. ○연화대 주변 청소 ○…해인사측은 성철스님의 종단장 준비를 위해 대적광전 앞에 높이 4m,길이 12m의 연단 마련에 열중했고 다비식이 이뤄질 연화대 주변에는 많은 스님들이 잡초를 제거하고 운구 행렬이 쉽게 오를수 있도록 길을 넓히고 있다. 또 범종각 뒤쪽 청화당에서는 글씨를 잘쓰는 스님들이 각계에서 요청해 온 만장을 쓰느라 분주.이날 하룻동안 2백여장의 만장을 이미 준비했고 종단장이 있을 10일까지 1천여장의 만장을 준비할 예정. ○…성철종정의 열반으로 해인사 주변 숙박업소와 음식점들도 큰 호황을 누리고 있다.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해인사관광호텔 등 이 일대 10여개 숙박업소의 방이 오는 10일까지 이미 예약된 상태 ○…종단장 장의위원회는 『높고도 높으심은 수미산이요/깊고도 깊으심은 향수해로다/가고 오고 머무심이 없는 그곳에/열반의 종소리가 울려옵니다/……』라는 내용으로된 일타스님의 시에 시명스님이 곡을 붙여 해인사법보합창단·부산불교연합합창단 등 1백20여명의 신도들이 영결식장에서 부를 예정.
  • 돈오돈수의 선교 실천궁행/「성철불교」의 실체 어디에

    ◎30년간 모은 11권 법어는 우중을 매료/정치 등 현실참여 멀리… 깨우침으로 일관 범접할 수 없는 수행정진과 숱한 일화를 남기고 4일 입적한 성철스님은 선교를 겸비한 고승으로 더욱 큰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특히 실천궁행하는 수도생활을 바탕으로 이룩한 그의 교학은 이른바 「성철불교」라고 불릴 정도로 한국불교에 고유의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태고 보우스님을 조계종 종조로 하고 돈오돈수의 깨달음을 따르며 현실참여보다는 자기수행에 더욱 비중을 두는 성철불교의 요체는 그의 30년 설법을 모아 지난해 전11권을 완간한 법어집에 잘 나타나 있다.이들 법어집은 성철큰스님의 문도들로 이뤄진 백련선서간행회(회장 원택스님)가 현대인들에게 올바른 선을 이해시키기 위해 87년부터 새롭게 펴낸것.1집은 「백일법문」상·하,「돈오입도요문론 강설」「신심명·증도가 강설」「영원한 자유」「자기를 바로 봅시다」등 7권,2집은 「돈황본 육조단경」「선문정로」「본지풍광」「한국불교의 법맥」등 4권이다. ○보조종조론 뒤엎어 종조문제는 그의 최초 저서인 「한국불교의 법맥」에서 제기됐다.해인사 초대 방장에 취임,백련암에 주석한지 8년만인 1976년에 출간된 이 책에서 성철스님은 종조가 보조 지눌스님이라는 종래의 설을 뒤엎고 태고 보우스님임을 분명히 밝혔다.동란후인 1954년 불교 정화의 깃발이 오르고 한국불교가 비구,대처로 갈라져 사활을 건 분규를 일으키기 전까지는 종조가 보우스님이라는데 이견이 없었으나 열세에 몰린 비구측이 단독으로 종단을 구성해 나오면서 갑자기 보조종조론을 들고 나왔다는 것이다. 그후 조계종은 비구와 대처의 분리,통합,재분리등 과정을 겪으면서 그때마다 종조가 바뀌는 웃지못할 사태를 빚어왔다.따라서 이 책은 조계종의 올바른 법맥을 옛기록과 종지에 따라 확연히 밝힘으로써 종조논쟁에 종지부를 찍기 위한 것이었다. 깨달음문제는 종정에 추대된 1981년에 출간된,견성이 성불임을 강조한 참선의 이론적 지침서인 두번째 저서 「선문정로」에서 다뤘다.깨달음에 이르는 바른 길을 밝힌 이 책에서 그는 『한꺼번에 깨우치고 나면 더이상의 닦음은 필요 없다』는 「돈오돈수」를 주장했다.이는 『닦음에 의하여 점진적으로 깨우침에 이른다』는 보조의 「돈오참수」사상과 정면충돌을 가져왔다. ○돈오참수사상과 대치 「돈오」는 거울에 사물이 한꺼번에 비치듯 깨달음이 일시에 온다는 뜻이고,「참수」란 끓는 물에 밥이 익듯이 점차적으로 깨달음에 이른다는 뜻. 90년에는 돈오점수설을 이어받은 송광사의 보조사상연구원(원장 법정스님)이 「불교사상에 있어서의 깨달음과 닦음」 주제의 국제불교학술회의를 개최,성철스님에 대해 집중포화를 퍼붓는등 감정싸움으로 비화될뻔 하기도 했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한 10·27법란으로 뒤늦게 종정에 오른 성철스님은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와 타종교의 활발한 현실참여에도 불구하고 『종교인은 종교의 등불을 밝히는 것이 본분이며 정치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말하기 시작한다면 얼마못가 자기모순에 빠지고 만다』면서 시종여일 현실참여를 멀리한 수도승의 외길을 고집해왔다. 그의 법어집중 「백일법문」은 68년 해인사 방장으로 추대된후 1백일 동안 설한 법문을 모은 책.중도사상에 입각,원시불교사상으로부터 중관·유식·천태·화엄사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상의 요점을 설명하고 있다. 선종의 정통종지를 밝힌 「선문정로」와 실제 수행의 결과를 설한 「본지풍광」은 성철스님이 이를 펴낸후 비로소 『부처님께 밥값을 했다』고 말할 정도로 애착을 가진 법어집이다. 또한 「영원한 자유」와 「자기를 바로 봅시다」는 일반인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는 법어집으로 전자는 영원한 자유를 누리는 삶에 대해 대학생과 사부대중에게 설한 법문과 함께 윤회법문을 포함하고 있다.후자는 그가 수행시절 후학들을 위해 써 놓았던 말씀과 해인총림 방장,조계종 종정등을 지내며 내린 부처님오신날 법어와 신년사등을 모은 것.다른 법어집과는 달리 일반인도 쉽게 접할수 있도록 돼있다. 이같은 11권의 법어집을 비롯,선불교의 핵심중에서 성철스님이 일반에게 필요한 구절을 골라낸것을 한글로 번역한 37권의 「선림고경총서」등은 성철불교를 이해하는 길잡이가 될것이다.
  • 딸·상좌스님들 참여속 장엄한 입관식/성철스님 입적 해인사 표정

    ◎전국의 고승등 1만명 조문… 등산객도 참배/김대통령등 각계 조화 가득… 외국인도 발길 ○고승의 입적 실감 ○…조계종 성철스님이 열반한 경남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는 5일 전국에서 몰려든 승려·신도 등 1만여명의 조문객들로 장사진.평소 울긋불긋한 등산복 차림의 관광객들이 들끓었던 해인사에는 이날 회색과 검은색차림의 신도들이 열반에 든 종정을 참배하기 위해 경내를 분주히 드나들었으며 무거운 적막이 경내를 내리눌러 고승의 입적을 실감. 통도사 방장 월하큰스님이 이날 하오 조문을 하는 등 전국의 고승대덕이 찾아왔으며 송광사 국제선원 소속 외국인 승려 10여명 등도 조문. ○제자가 조문객 맞아 ○…분향실이 마련된 궁현당에는 해인사 주지인 법전스님 등 문중제자 10여명이 조문객들을 맞았다. 궁현당에는 김영삼대통령·노태우 전대통령·김종필민자당대표·이기택민주당대표·허경만국회부의장·김재순 전국회의장·김명윤한국불교총연합회장 등 정·관계인사와 성철스님 생전에 친분을 가졌던 재계인사들이 보낸 50여개의 대형조화가가득히 진열됐으며 오자 주한인도대사와 패드리스 주한스리랑카대사등이 조전을 보내왔다. ○장의위 1백여명 ○…해인사에서는 이날 상오 원로원·종단·문중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고 전날의 산중회의에서 결정한 7일장을 추인.영결식은 오는 10일 하오 2시 대적광전 앞광장에서 갖고 다비식은 2㎞ 떨어진 가야산 연화대에서 조계종 종단장으로 갖기로 결정.또 장례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서옹종정·서암큰스님 등 20여명의 원로스님을 고문으로 추대하고 서의현총무원장을 장의위원장,석주스님을 호상으로 하는 등의 1백여명으로 장의추진위원회를 구성. ○외부인 출입통제 ○…법체가 모셔진 퇴설당에는 성철스님의 상좌와 원로스님 20여명이 영전을 지키고 있으며 외부인들의 출입을 통제. 성철스님의 입관식은 이날 밤 스님이 속세에서 낳은 딸 불필스님과 원택스님 등 상좌스님들만이 참여한 가운데 엄숙히 이뤄졌다. 입관식은 성철스님의 법체에 조계종 대종사복을 입히는 등 지난 60년대 통합종단 출범이후 처음으로 장엄한 의식으로 치러졌다.
  • 성철종정 입적 조전/김 대통령

    김영삼대통령은 5일 높은 수양과 차원높은 법어로 우리나라 정신계의 큰 산이었던 대한 불교조계종 성철종정의 입적에 깊은 애도를 표시하고 조전을 보냈다고 청와대가 발표했다. 다음은 조전 내용이다. 『우리나라 불교계의 정신적 지주이신 성철 큰스님의 입적에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 전국사찰 스님·신도 분향행렬/성철스님 입적하던 날 이모저모

    ◎해인사 1백8번 타조에 다비식은 10일/“팔만대장경 이송 때문에 열반” 소문도 한국불교의 큰별인 성철스님의 입적 소식이 전해진 4일 합천 해인사와 서울 조계사등 전국의 사찰에는 스님들과 신도들이 찾아와 큰스님의 뜻을 기리며 분향했다. ○“이제 가야할때 됐다” ○…이날 아침 성철종정의 열반소식이 범종각에서 1백8번 타종으로 해인사 경내에 전해지자 분향소가 차려진 궁현당에는 해인사 각 암자의 스님과 인근 지역의 신도들이 찾아와 분향했으며 이 소식을 접한 5백여 등산객들도 분향. 스님의 입적을 지켜본 원택스님(총무)은 올가을 들어서 큰스님이 『이제 가야할 때가 됐다』고 말해왔으며 이날 아침 조용히 눈을 감았다고 전언. ○…상오10시 긴급산중회의에서 장례절차가 7일장으로 결정되자 대표스님들과 상좌스님들은 슬픔을 삭이기도 전에 다비식 준비등에 바쁜 모습. 영결식은 10일 상오11시 대적광전 앞에서,다비식은 하오1시 영결식장에서 2㎞ 떨어진 가야산 연화대에 마련된 다비장에서 개최키로 결정.다비식은 참나무장작으로 쌓아올린 제단의 빈공간에 스님의 법구를 모신후 아미타불 불공이 독경되는 가운데 진행되며 보통 10시간에서 12시간이 걸린다. ○“성물 소홀히 취급” ○…성철스님의 입적이 공교롭게도 6백년간 해인사 장경각에 보관돼있던 팔만대장경이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관계로 3일 처음으로 해인사를 벗어난뒤 발생,팔만대장경의 이송과 스님의 열반을 연관시키는 소문이 무성. 이날 몰려든 일부 신도들은 『성물을 너무 소홀히 취급했다』『해인사 경내를 벗어난 것이 잘못』이라며 아쉬움을 표시. ◎김수환추기경 조전 ○…한편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은 성철스님의 입적소식을 해인사로부터 공식적으로 통보받은 이날 상오10시 서의현총무원장이 총무원 전체비상회의를 소집,유범각 사회국장을 실무대표로 위촉하고 전국 24개 교구본사 주지에게 분향소 설치를 지시.또 조계사 대웅전 내에도 자체분향소를 설치,분향객을 받는등 본격적인 종단차원의 장례준비에 착수. 한편 김수환추기경은 이날 하오 성철스님의 입적을 애도하는 조전을 해인사로 보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