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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종교연합 창설 준비기구 설립

    내년 6월 세계종교연합(UR:United Religions) 출범에 앞서 우리나라에도 세계종교연합 창설준비기구(URI:United Religions Initiative)가 만들어진다. 불교계의 진월스님을 비롯,최혜영 가톨릭대 교수,박광수 원광대 교수,김성기 성균관대 교수,장우주 크리스찬아카데미 간사 등 각 종교계 인사 50여명은 15일 오후3시 서울 동국대 상록원에서 URI한국지부 창립총회를 개최한다. 종교인들의 국제연합(UN)격인 UR을 만들자는 움직임은 UN 창설 50주년인 199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됐다.윌리엄 스윙 성공회 주교를 비롯한 종교인들은 21세기 세계평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세계 종교인들을 하나로 엮는 상설 협의기구의 창설이 필수적이라는데 의견을 모으고 URI를 출범시켰다. URI는 지금까지 여러차례 세계회의와 지역회의를 통해 UR 출범을 준비해 왔으며 지난해 UR헌장을 기초,6월20∼25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릴 제4차 세계대회에서 이를 확정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URI는 새 천년기를 맞는 12월 31일부터 내년 1월 2일까지 일시적이나마 지구전체에모든 전쟁과 폭력이 사라지도록 촉구하는 ‘평화건설(Peace Building)’운동도 펼칠 계획이다. 96년부터 한국대표로 URI에 참여해오고 있는 진월스님은 “최근 코소보사태나 인도네시아 분쟁에서 보듯이 종교간 갈등 해소가 인류평화의 열쇠”라며“UR는 피라밋 식이나 수평적인 구조가 아니라 각 종교와 신앙 전통의 특성을 존중하면서도 대화와 연대로 공동선(共同善)을 모색하는 원형적(圓形的)기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찬기자
  • 조계종 혜암(慧菴)종정추대 법요식

    대한불교 조계종 제10대 종정 혜암(慧菴)스님의 종정추대 법요식이 11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대웅전에서 1,500여명의 신도와 관계자가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고산(고山)총무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위대한 선지식인 혜암 대종사를 종정으로 모신 무량복덕을 소중히 간직하고 자비의 대중화를 실천하자”고 당부했다.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신낙균(申樂均) 문화부 장관이 대독한 축하메시지를 통해 “우리 불교는 이제 안정 속에 원융화합을 이루고 나라와 민족의 앞날을 위해 더욱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종정에 추대된 혜암스님은 “삼라만상이 부처 아님이 없고 모든 일이 도 아님이 없음이라/ 깊은 산골짜기 흐르는 물은 법을 설하고 산봉우리 석불은 빙긋이 웃네”라는 법어를 내렸다.
  • [화제의책]『시인과농부…』/돈연 지음-『남편인줄…』/도완녀 지음

    강원도 정선군 가목리에서 메주가 익어가는 향기와 첼로의 선율 속에 농사를 짓고 있는 스님 출신 농부와 첼리스트 아내가 동시에 책을 냈다.남편은‘시인과 농부,그리고 스님’을,부인은 ‘남편인줄 알았더니 남편이 아니더라’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출간했다.해냄 각권 7,000원. 25년간의 승려생활을 끝낸뒤 농부라는 직업을 선택한 돈연씨(53)는 그동안 농사경험에서 터득한 기다림의 미학을 전해준다.첼리스트인 부인 도완녀씨(45)는 도시를 떠나강원도 산골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동화같은 삶의 이야기를 정감있게 들려주고 있다. 도완녀씨는 서울대음대와 독일 뤼벡국립음악대학에서 첼로를 공부했다.지난93년 돈연 스님과 결혼한 후 세 명의 아이들과 살아가고 있다. 이창순 기자
  • 종군위안부 할머니 54년만에 귀국…부친 묘소 찾아 통곡

    “아버님 영전에 54년만에 큰 절을 올립니다”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7일 경북 포항시 기계면 구지리 산기슭에서는 한 노파의 통곡소리가 메아리쳤다. 22살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에 의해 종군위안부로 끌려가 이국땅을 떠돌다 54년만에 지난 2일 고향을 찾은 지돌이 할머니(76). 꿈에 그리던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 천신만고 끝에 고국땅을 밟았으나 잡초가 무성한 묘소만 말없이 딸을 맞았다.통곡으로 토해내는 어버이 그리움은마침 어버이날을 앞둔 터여서 주변 사람들을 더욱 숙연하게 했다. 그리움에 사무쳐서일까.지 할머니는 묘소앞에서 내내 통곡만 할 뿐 말이 없었다. 이날 지 할머니의 성묘길에 동행한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 혜진스님과50여명의 마을주민들도 눈물만 훔칠뿐 ‘광포한 역사의 희생자’에게 전할위로의 말을 찾지 못했다. 지난 45년 2월 일제에 의해 만주전선으로 끌려가 위안부로 일하던 지 할머니는 해방후에도 귀국을 포기,현지 중국인과 결혼해 살다 ‘나눔의 집’혜진스님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귀국하게 됐다.1남1녀를 두고 현재헤이룽장성(黑龍江省)에서 아들과 함께 생활해 오고 있다. 포항 이동구기자 yidonggu@
  • 국립국악관현악단 오늘부터 ‘효를 위한 음악회’

    5월은 가정의 달이다.가정의 중요함과 아울러 부모님 은혜에 대해 생각케하는 행사들이 곳곳에서 열린다. 우리 전통속에 배어 있는 효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국립국악관현악단은오는 30일과 5월1일 ‘효를 위한 음악회-부모은중송(父母恩重誦)’을 국립극장 대극장 무대에 올린다. 이번 공연은 1부 ‘창작찬불가’와 2부 ‘부모은중송’으로 진행된다. ‘창작찬불가’는 국악관현악단 단장인 박범훈이 작곡한 것을 처음으로 선보인다.국악에 바탕을 두면서도 대중적인 요소들이 많아 누구나 쉽게 따라부르고 감상할 수 있다. 2부 ‘부모은중송’은 부처님의 효에 대한 가르침을 적은 ‘부모은중경’에 나오는 대목을 광덕스님이 노래로 만든 것으로,1996년 국립극장에서 초연됐다.당시 수백명의 입석관객을 기록할 정도로 성황리에 진행됐다. 이번 음악회는 판소리 명창 안숙선과 마당극 배우 김성녀.경기민요 김영임,도신스님(불교가요가수)과 500여명의 합창단이 나와 잊혀져가는 효의 의미를 다시금 일깨우는 무대가 될 것이다.30일 오후 7시30분,5월1일 오후 4시.(02)2274-1173. 강선임기자 sunnyk@
  • 여성수도자 북한어린이돕기 ‘합창’

    종교간의 울타리를 넘어 북녘 어린이를 돕자는 여성수도자들의 합창이 울려퍼진다.불교 비구니와 천주교 수녀,원불교 정녀(貞女)들로 이루어진 삼소회(三笑會)는 오는 5월 8일 오후 3시,7시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북녘어린이돕기 삼소음악회’를 연다. ‘은혜·사랑·자비’란 주제 아래 펼쳐질 제1부에서는 120여명의 합창단이 ‘목숨들 꽃처럼 어울려’라는 삼소회 노래를 시작으로 ‘예불가’ ‘사은님,사은님’ ‘아베마리아’등을 들려주고 이해인 수녀가 자작시 ‘새롭게하나되는 기쁨으로’를 낭송한다. 2부에서는 범패 예능보유자 동회스님(자인사)의 무대,수녀로 구성된 ‘사랑의 이삭줄기’의 대중가요 및 팝송공연,정녀들의 국악 한마당,삼소회 중창단의 동요 메들리,정을스님의 독창 등이 펼쳐지고 남성 수도자들의 찬조출연도 곁들여진다. 삼소회가 이처럼 대규모 공연을 벌이는 것은 88년 10월 3일 호암아트홀에서 서울장애자올림픽의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마련한데 이어 이번이 두번째.그뒤 각 종교인이 참석하는 연합행사에 초청돼 찬송가,찬불가,원불교 성가를번갈아 불렀다. 원불교와 천주교,불교의 여성 수도자들이 모임을 결성한 것은 88년 3월쯤. 서점에서 우연히 만난 6명이 ‘원(圓)·천(天)·불(佛)’이란 이름으로 등산 및 대화모임을 가져오다가 장애인올림픽 기금마련 공연을 계기로 삼소회로개명했다. 삼소회 회원은 대부분 출가한지 20년이 넘는 중견들로 소임이 무거워 좀처럼 틈내기 어렵지만 매달 셋째주 화요일에 정기모임을 갖고 봄가을로 정기총회를 연다.또 수시로 봉사활동에 나서는데 지난 91년엔 합동시화전을 열어뇌성마비 장애자들과 제3세계 굶주린 어린이를 도왔고 96년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를 위한 위령제를 열기도 했다. 박찬기자
  • 「엘리자베스 英여왕 訪韓」안동방문등 사흘째 행보

    방한 3일째를 맞은 21일 엘리자베스 여왕은 안동 나들이에 나섰다. 하회 마을 방문 ‘세기의 진객’을 맞은 하회마을은 이른 아침부터 초만원이었다.여왕이 도착한 오전 11시15분 무렵 3,000여명의 인파가 충효당 주변을 메웠다. 여왕은 충효당 앞뜰에서 20년생 구상나무를 기념식수했다.이어 내당으로 안내돼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선생 종손·종부의 안내를 받았다.충효당 내당에서 김치와 고추장을 담그는 모습을 세심하게 지켜본 여왕은 신을 벗고방안으로 들어갔다.여왕이 해외나들이 도중 공개적으로 신을 벗은 것은 처음있는 일로 알려졌다. 하회마을은 주민들도 형형색색의 한복을 착용해 ‘전통 양반의 고장’임을실감케 했다.특히 손에 양국의 국기를 들고 여왕방문을 환영,안동은 태극기와 유니언 잭의 물결을 이뤘다. 여왕은 충효당에서 50여m 떨어진 담연재로 가면서 농부들이 소를 몰고 쟁기로 밭을 가는 이국적인 모습에 신기한 듯 멈춰서서 정동호 안동시장에게질문을 던지기도 했다.안동시는 여왕이 지나간 길을 ‘퀸로드’로 지정해 관광명소화하기로 했다. 담연재 생일상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날 73번째 생일을 맞아 담연재에서 ‘푸짐한 전통 한식 생일상’을 받았다.서애 선생의 후손 유선우(63·아르떼기획 회장)씨의 본가로 47칸에 이르는 정통 사대부집이다.유씨의 아들인 유명TV탤런트 유시원씨도 생일축하에 동참했다.생일상에는 떡 사과 배 밀감 다과 은행 곶감 밤 다식 약과 청과 등을 층층으로 쌓았다.특히 궁중에서 임금님에게만 올리던 문어오림과 매화나무로 만든 꽃나무떡이 눈길을 끌었다.안동소주 기능보유자이며 인간문화재 12호인 전통음식연구회장 조옥화(78)씨는“꽃나무떡은 평생 세 번째 만드는 것으로 12명이 사흘을 꼬박 새며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여왕은 유기잔에 담은 맑은 빛의 청주로 축배를 들었다.이의근 경북지사는왕가의 상징인 불사조 장식 화관을,유선우씨는 “장수하시라”는 덕담과 함께 복주머니를 선물.이에 앞서 여왕은 하회별신굿탈놀이를 관람하는 도중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시했다. 농산물 시장 방문 여왕은 낮 12시20분 안동 농산물도매시장에도착,농산물과 경매 광경을 둘러봤다. 여왕은 사과 선별 작업과 딸기 참외 단감 등 인근지역에서 출하된 농산물경매 장면을 지켜본 뒤 이경락 부시장으로부터 사과 등 우리 과일을 선물로받았다. 봉정사 방문 이어 여왕은 안동시 서후면의 봉정사를 찾아 100여명의 신도등으로부터 환대를 받았다. 여왕은 고려시대에 건축된 극락전 앞 돌탑에 돌멩이 하나를 올려놓고 “돌탑을 쌓았으니 복을 많이 받겠다”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문인 주지스님으로부터 ‘일념만년거’(一念萬年去·좋은 생각 한번이 만년을 간다)라는 글의족자를 선물로 받았다.여왕은 방명록에 ‘조용한 산사 봉정사에서 한국의 봄을 맞다’는 글귀 아래 영어로 ‘엘리자베스’라고 서명하고 산사를 떠났다. KBS 음악회 참석 여왕 내외는 저녁에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 내외와 함께서울 여의도 KBS에서 ‘한·영 친선음악회’를 참관했다. 주한영국대사관·영국문화원·KBS가 공동주최한 음악회에서는 1시간15분 동안 국립국악원의 궁중무용 ‘가인접목단’,KBS교향악단의 ‘대관행진곡’,영국 출신 소프라노 레슬리 개럿이 부르는 ‘빛나는 태양’‘달의 노래’ 등이 무대를 장식했다.양국의 우의를 다지는 차원에서 두 나라 국가도 연주됐다. 특히 개럿과 KBS어린이합창단이 여왕의 73회 생일을 축하하는 뜻에서 부른‘해피 버스데이 투유’를 참석자 모두가 합창하는 끝부분이 행사의 하이라이트였다. 구본영기자·안동 김상화기자 kby7@
  • 국민화합종교예술인협회 새달 9일 임진각 국평제

    국민화합종교예술인협회(회장 김도현)가 주최하는 ‘99 종교예술인 국평제’가 5월9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경기 파주군 임진각 망배단 및 광장에서 열린다. 종교·예술인 및 일반인,청소년 3,000여명이 참가할 이번 행사는 국민화합과 평화통일을 위한 종교인 합동기원대회를 비롯,예술인들이 직접 현장에서창작하는 기원 한마당,전통굿과 풍물제,청소년 통일 및 환경백일장과 휘호대회 등이 펼쳐지며 무형문화재 50호 범패 이수자인 한동희스님의 범패공연도곁들여진다. 박찬기자
  • 종교계 북한에 비료보내기 동참

    대한적십자사의 북한동포 돕기 비료지원사업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종교인들도 북한 동포를 돕기 위한 비료 모으기운동에 나섰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는 최근 ‘한가정 한 포대 비료 보내기운동’에 적극 참여할 것을 당부하는 목회서신을 정철범회장 및 김동완총무와 7개 가입교단 대표 명의로 전국의 교회에 발송했다.KNCC 대표들은 목회서신에서 “척박해진 북녘 땅에 우리의 비료가 뿌려질 경우 5배(옥수수)의 수확을 올릴수 있다”며 “5월 23일까지 정성을 모아 올 가을에는 북한농민의 추수하는기쁨이 다섯배,열배가 넘치도록 하자”고 당부했다. KNCC측은 교단별로 비료 20㎏들이 한 포대(6천원)에 해당하는 헌금을 접수해 한국기독교 북한동포후원연합회 이름으로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중앙위원회로 지정 기탁할 예정이다. 민족화합불교추진위원회(총재 고산 조계종 총무원장)도 오는 6월까지 ‘1불자 1포,1사찰 1t 비료보내기운동’을 펼치기로 했다.고산스님은 발원문을 통해 “죽어가는 형제를 살리고 우리민족의 숙원인 평화와 통일을 이룩하는데이처럼 값진 보살행이 어디 있겠느냐”며 비료보내기 운동에 적극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불추위는 전국 주요사찰에서 ‘비료보내기운동을 위한 특별법회’를 개최하기로 하고 조계종을 비롯,각 종단과 협의중이며,불자들이 모은 비료는 조선불교도연맹중앙위원회로 지정 기탁된다. 박찬기자
  • [정직한 역사 되찾기](32)춘원 이광수

    시인이자 영문학자였던 송욱(宋稶) 전 서울대 교수(80년 작고)는 생전에 ‘사상계’에 기고한 ‘한국 지식인의 역사적 현실’이란 글에서 춘원 이광수의 편린 하나를 남긴 바 있다.문학소년이던 중학생 시절 그는 친구와 함께당대의 대문호이자 우상이었던 춘원 이광수를 만나볼 요량으로 춘원의 부인(허영숙)이 경영하던 산부인과병원으로 찾아갔다.간호사의 안내로 병원의 긴복도를 지나 온돌방에 다다르자 춘원이 그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들은황송해하며 춘원에게 큰 절을 올리고 일어설 무렵 라디오에서 일본어 방송이 흘러나왔다.그러자 춘원이 “이 방송은 이세대신궁(伊勢大神宮)에서 올리는 ○○제(祭)의 실황 중계방송이죠”라며 자못 경건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춘원은 일본군국주의 종교의식에 방송을 통해서 참가하고 있는 것이었다.의외의 장면을 목도하고 춘원에 대해 실망을 느낀 두 사람은 이내 그와 작별하였다.두 사람의 등 뒤에 대고 춘원은 “이제부터는 작품을 일어로도 쓸 수 있고 우리말로도 쓸 수 있어야죠”라고 권했다.이후로 그는 춘원의 글을 많이읽지 않았다고 적었다.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1892∼1950,창씨명 香山光郞).역사속에서 우리는 그를 어찌 볼 것인가?그의 당대에서부터 사후 반세기가 된 지금까지도 그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려 왔다.문학적 업적을 강조한 ‘대문호’라는 평가가 있는 반면 민족반역자 ‘친일파’라는 평가도 있다. 지난 92년 그의 탄생 100주기를 맞아 유족·추종자들이 기념행사를 하면서작성한 한 자료에 의하면,그를 연구한 석·박사 학위논문이 40여편이나 됐다.그런데 그 논문의 주제는 전부 문학분야였다.그의 일제하 친일행적을 연구한 논문은 단 한 편도 없었다.이래놓고 그의 진면목을 탐구했다고 할 수는없다. 이처럼 그에 대한 그동안의 연구는 생애 전반을 아우르기 보다는 문학분야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면이 없지 않다.그에 대한 평가가 균형을 잃은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춘원처럼 ‘시대의 인물’로 활동한 자는 그가 활동할 당시의 시대상황과 당시 민중들이 그를 어떤 인물로 인식했느냐 하는 점을 중시해야 한다.춘원이 문인인것은 분명하다.그러나 일제강점기 조선민중의 눈에 비친 그의 모습은 ‘2·8독립선언’의 작성자이자 샹하이 시절 임정 기관지 ‘독립신문’을 만든 ‘민족지사’로서의 면모가 더 강했다고 할 수 있다. 춘원의 변절에 대해 민중들이 안타까와 하고 분노해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춘원을 문인으로만 평가하는 것은 마치 박정희(朴正熙) 전대통령을 군인,만해 한용운(韓龍雲)선생을 스님으로만 평가하는 것과 다름 없다.춘원에대한 평가는 이래서 시각교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민족지사’의 거울에 비춰본 춘원은 어떤 모습인가.한마디로 형체를 알아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일그러진 모습이다.그의 일생을 통해 정신사를 관통하고 있는 ‘친일’의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 춘원은 1892년 평안남도 정주에서 과거에 실패한 후 술로 세월을 보내던 이종원(李種元)의 장남으로 태어났다.아명은 보경(寶鏡).5세 때 한글과 천자문을 깨우치고 8세 때 동양고전을 두루 섭렵할 정도로 총명한 그였지만 10세때 콜레라에 걸린 양친이 사망, 천애 고아가 되었다. 그러던중 14세 때 천도교 유학생으로 일본 메이지(明治)학원에 입학하면서처음 신세계를 접하게 됐다.아직 인격적으로 미성숙한데다 별다른 학문적 기초나 바탕이 없는 상황에서 그는 제국주의라는 물결이 넘실대는 일본이라는거대한 ‘바다’에 내던져지게 됐다.그의 비극은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주체의식을 키우지 못한데서 비롯한 것인지도 모른다. 한편 도일 초기부터 문학에 심취한 그는 메이지학원 동창회보 ‘백금학보’(1909.12.15,제19호)에 일본어로 된 단편소설 ‘사랑인가’(원제 ‘愛か’)를 발표하였다.조선인 소년이 일본인 소년을 신격화하여 연모하는,일종의 동성애를 내용으로 하는 이 소설은 내용보다는 발표시점이 문제다.그가 이 소설을 탈고한 날짜(1909.11.18)는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伊藤博文)를 처단한지 23일째 되는 날이었다.동양천지를 뒤흔드는 의거가 조선인 손에서 일어난 그 무렵 그는 하숙방에서 일본어로 소설을 쓰고 있었다. 1917년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무정(無情)’을 발표한 후 ‘전조선여성의 연인’ 소리를 듣던 그는 본처와 이혼한 후 허영숙(許英肅)과 애정의 도피행각을 벌였으며 1919년 2월 도쿄 유학중 ‘2·8독립선언’을 작성,일약 민족지사의 반열에 이름이 오르내렸다. 그러나 그가 작성한 ‘선언’을 자세히 뜯어보면 “…합병 이래 일본의 조선통치정책을 보건대 합병시의 선언에 반(反)하여 오족(吾族)의 행복과 이익을 무시하고…오족에게 참정권,집회·결사의 자유,언론·출판의 자유를 불허하며…”라며 일제가 ‘합병’당시에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문제삼고있는데 이는 강도가 한 약속을 믿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해 그는 상하이 임시정부로 건너가 2년 남짓 활동하다가 애인 허영숙의권유로 ‘독립신문’ 편집을 그만두고 사랑을 찾아 조선으로 돌아왔다.월탄박종화(朴鍾和)는 그의 ‘일기’에서 춘원의 귀순(歸順)은 총독부의 신변보장을 조건으로 허영숙이 설득한 결과이며 이 일로 허영숙의 첫 애인 진학문(秦學文)은 홧김(?)에 일본여자와 결혼해버렸다고 쓴 바 있다. 귀국(1921.3)도중 춘원은 선양(瀋陽)에서 체포돼서울로 호송됐으나 별다른 조사나 재판 없이 곧 석방되었고 두달 뒤 5월에는 허영숙과 결혼하였다.다시 9월에는 사이토(齋藤實)총독을 면담하는 등 그는 그때부터 이미 당국의비호를 받고 있었다.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이듬해 5월 그는 잡지 ‘개벽’에 일제의 반독립 논리를 민족논리로 위장한 ‘민족개조론’을 발표하였다. 그의 동아일보 입사는 그 이듬해 23년이었는데 여기서 그는 월 300엔이라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보수를 받았다.24년 그는 동아일보에 다시 ‘민족적 경륜’이라는 대일 타협노선의 논설을 발표,어용적 민족개량·자치노선으로 기울기 시작했다.위의 두 글에서 그는 조선이 쇠퇴한 이유는 민족성이 타락했기 때문이라며 민족성 개조를 주장하였는데 이는 제국주의 국가들이 자기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하면서 약소국의 침략·지배를 정당화한 것을 배낀 것이었다. 중일전쟁 발발 1개월전인 37년 6월 그는 소위 ‘수양동우회사건’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으나 이내 병보석으로 풀려났다.이 단체 역시 발족 당시부터 총독부와 사전협의하에 조직된 단체이고 보면 독립운동단체라고 할 것도 없다.경기도 경찰부장 지바(千葉)는 “민족본능인지하수(독립사상)가 지표(地表)로 분출했을 때는 극격히 막지말고,버려두지도 말고,자연의 유력(流力)을 이용해서 바다로 흘러가도록 ‘도랑을 설치’하라”고 하였다.친일파연구가 고 임종국(林鍾國)은 “이 ‘도랑’이 바로‘민족개조론’이요,수양동우회요,‘민족적 경륜’이었다”고 분석했다. 한편 중일전쟁 이후 춘원은 전시협력을 위주로 보다 행동적인 친일대열에가담하게 된다.39년 중국에 출정한 일본군 위문단(북지황군위문작가단)결성식의 사회를 맡은 것이 그 신호탄이었다.이해 10월 결성된 조선문인협회 결성식에서 그는 회장에 추대되었다. 이듬해 2월 11일 ‘창씨개명령’이 선포되자 그는 그 다음날로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라는 모범적인(?) 창씨개명을 내놓으면서 일반인들의 동참을 호소하였다.그리고는 외쳤다.“…나는 지금에 와서 이런 신념을 가진다.즉 조선인은 전연 조선인인 것을 잊어야 한다고.아주 피와 살과 뼈가 일본인이 되어버려야 한다고.이 속에 진정으로 조선인의 영생의 길이 있다고…”.(‘매일신보’,1940.9.4) 심지어는 “조선놈의 이마빡을 바늘로 찔러서 일본인 피가 나올만큼 조선인은 일본인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이런 그를 두고 단국대 김원모(金源模)교수는 “민족을 보전하기 위해 표면적으로 친일을 했을 뿐,그의 심저(心底)에는 독립정신이 살아 있었다”고 변호하고 있는데 공감하기 힘들다. 해방직후 춘원은 향리에 칩거하며 ‘나의 고백’ ‘돌베개’ 등을 쓴 바 있다.그는 인조(仁祖)가 병자호란 때 끌려갔다가 돌아온 조선여인들을 홍제원(弘濟院)에서 목욕시킨 후 정조문제를 거론치 못하도록 한 예를 들어 친일파문제도 이처럼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반민특위에 체포돼 마포형무소에수감돼 있던 그는 재산보전을 위해 허영숙과 위장이혼하는 교활함까지 드러냈다.일관된 친일과 타협으로 일제강점기를 산 춘원.그는 공사를 막론하고역사와 민족 앞에 단 한번도 진실한 적이 없다.
  • 재야, ‘DJ개혁완성’ 힘싣기

    민주화 투쟁에서 정권교체에 이르기가지 金大中대통령의 우군이었던 정통재야인사들이 1년여 관망 끝에 “뭔가 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가고 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종로5가권 개신교,불교계,전국연합 등 국민의 정부출범후 침묵을 지키던 정통 재야가 徐相穆사태 등 일련의 사태를 지켜 보면서 국민의 정부 개혁이 기로에 처해 있다고 판단란 것이다. 이들은 “지난 1년동안 인권법 등 국민의 정부의 개혁의지에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았다”고 전제,소수정권의 한계를 알기 때문에 이해해주자는 정도의기류였으나 최근에는 “관망만 하고 있을 일이 아니라는 기류가 흐르고 있다”고 재야의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달 24일 발족한 국민정치연구회(이사장 李在禎성공회대총장)도 따지고보면 이들 정통 재야를 모태로 태어난 제도권 정치 직접 참여를 희망하는 사람들이다.이에 비해 재야 원로들인 이들은 기득권을 무기로 개혁을 가로막는 세력을 향해 목소리를 냄으로써 국민의 정부 개혁을 돕겠다는 생각을 갖고있다. 이들의 조심스런 기지개는 “지금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개혁은 수포로 돌아갈 것”이라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된다.이들 가운데는 일부는 DJ개혁의 주체를 대폭 보강하거나 틀을 아예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전 NCC총무 金觀錫목사는 호흡을 고르는 중이다.추이를 좀더 지켜본 뒤 목소리를 낼 기회를 갖겠다며 정국을 예의주시하고 있음을 밝혔다.金목사는 “구조적인 모순을 과감하게 개혁해 나가야 한다”면서 “반작용이 생기겠지만 타협하는 것보다 낫다”고 강조했다. 知詵스님 역시 ‘오리지널 비지파’답게 “金대통령에게는 전국 각지의 침묵하는 비판적 지지세력이 개혁의 보루가 돼 줄 것”임을 강조했다. 李昌馥 민주개혁 국민연합 공동상임대표는 “기회가 되면 DJ 개혁정책을 적극 돕겠다”며 보다 적극적인 자세다.그런가 하면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金勝勳신부는 “JP와의 공조 하에서 개혁은 기대난”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더욱 재야가 DJ 개혁에 원군이 돼야 함을 강조했다. 柳敏 姜東亨
  • [인터뷰] 장편소설 ‘엔트런스’ 출간 제원스님

    “출가승이 쓴 소설이라는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지 말고 작품으로만 봐주시기 바랍니다” 최근 장산(張山)이란 필명으로 장편소설 ‘엔트런스’(비해피 펴냄)를 펴낸 제원(濟願·53)스님.조계종 사회부장과 기획실장,청평사 주지 등을 지낸 스님은 소설의 메시지가 불교적 세계관과 맞닿아 있지만 포교활동 차원에서 쓴 것은 아니라며 단순히 작품으로만 보아달라고 말한다. ‘엔트런스’는 현직승려가 쓴 소설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기도 하지만 배경과 소재때문에 더욱 흥미를 끈다.무대는 환락의 상징인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도박장.‘블랙 잭’에서 돈을 잃지않는 비결과 40대의 주인공이 수행승이던 시절 해외로 만행(萬行)을 다니며 겪은 이야기를 곁들여 가며 라스베이거스의 진면목도 엿보여 준다. “도박이란 따는 방법보다 먼저 잃지않는 법을 알면 저절로 딸 기회가 오지요.그런데 돈을 따겠다는 마음에 집착하는 순간 평상심이 무너져 잃게 돼버립니다.세상만사가 모두 한가지 이치로 통하지요” ‘엔트런스’는 만 20세를 맞는 청년이 세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40대도박의 고수를 라스베이거스에서 만나 생의 입구,즉 ‘엔트런스’를 배운다는 것이 줄거리.40대 주인공은 환속한 스님의 도반(道伴)으로 함께 만행을다녔던 인물이라고. 70년 관응(觀應)스님을 은사로 직지사에서 사미계를 받은 제원스님은 미국에서 18년간 지내면서 워싱턴 법주사 주지와 방송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했다.현재 길음종합사회복지관장과 유니세프불교인클럽 회장을 맡고 있다.에세이집 ‘바람이 수면을 스칠 때’ ‘이제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등이 있다. 朴燦
  • 불교문화 千年의 유산 한자리에

    불교문화의 전모를 보여줄 ‘99 한국불교예술대전’이 15일부터 6월 3일까지 경주 문화엑스포 행사장에서 열린다. 한국불교종단협의회가 경주 문화엑스포행사의 하나로 마련하는 이 행사는 1,600여년동안 우리 민족과 함께 해온 한국불교가 그동안 이룩해온 문화예술적 성취를 한데 모으는 자리.20세기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불교문화의 지난날을 총정리함으로써 ‘문화의 시대’인 21세기에 이를 발전적으로 계승시킨다는 뜻에서 마련하는 것이다. 불교예술대전은 크게 전시와 영상,공연 의식 학술 등 행사로 나뉘어 열린다.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온 이후 중요사실을 보여주는 한국불교역사전과 영산재 바라춤 승무 등을 불교의식을 카메라에 담은 불교의식사진전,팔만대장경과 불당의 탁본과 모형을 전시하는 불교유물전시전,보물 및 유물전 등이마련된다. 또 불교미술협회,문화재보전수리기능인협회,전통문화재조각회 소속작가들의 작품전,스님들의 의상 및 각종 불구(佛具)전시와 함께 ‘산사의 하루’등불교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며 승무·바라춤공연과 손오공캐릭터 쇼도 펼친다.이밖에 참가자들이 참선이나 다도,연꽃 만들기,불화 그리기,팔만대장경 판각,불상조각,달마도그리기,선무도(禪武道)등을 직접 해볼수 있는 자리도 마련된다. 종단협의회의 김석오과장은 “항상 우리주위에 있지만 잘 모르고 지내온 불교예술의 우수성을 다시 일깨워주기 위해 이 행사를 마련했다”며 “불교예술대전의 성과를 발판으로 내년에는 세계불교 엑스포를 개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朴燦 parkchan@
  • [특별기고]벼락신의 고뇌

    내가 어렸을 적 어른들에게 들은 얘기가 있다.어느 날 하늘에 계신 옥황상제께서 벼락신에게 말하기를 인간계에 내려가 천하를 두루 살펴서 제일 쓸모없는 인간을 벼락으로 잡아오라고 명하였다고 한다.명을 받은 벼락신이 인간계에 내려와 샅샅이 살펴서 이 나라에 누가 제일 몹쓸 자인가를 골라내는데참으로 난관이 아닐 수 없더란다. 나라의 관리라는 사람들을 살펴본즉,이들은 아주 못된 인간들인데 지금 국가에 중대한 일이 있어 벼락을 쳐서 죽일 수도 없고,식솔을 많이 거느린 부자집 양반 하나를 발견해서 보니 그 또한 아주 못된 사람인데 그를 죽이면그 많은 식솔과 자식들의 생계가 위태로워 죽이질 못했단다.다시 살피다가난폭한 군왕 하나를 살펴 보니 여지없이 죽일 자이로되 이 역시 그 나라의선량한 백성을 생각해서 죽일 수 없었더란다. 그래서 이리저리 아무리 살펴봐도 모두가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 벼락을 칠수가 없는 사람만 만나기 때문에 매우 안타까운 입장이 되었다고 한다.시간은 없고 하여 벼락신은 더욱 열심히 몹쓸 인간 한 사람을 찾아내려고 애쓰던 차 어느 시골 마을 변두리에서 따로 살고 있는 선비 한 분을 발견했다.그런데 이 선비는 학문이 높고 청빈하게 살아 제법 주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사는 터였다. 하지만 벼락신이 자세히 살펴보니 이 선비가 하는 일없이 허구한 날 불평불만으로 세상의 타락상과 정부의 욕만하고 사는 것이었다.왕이 무엇을 잘못하고,정부관리가 그렇고,교육이 잘못되고,관아 군수와 육조 아전들의 횡포와비리가 그렇고,양반토호와 상놈들의 타락상 등 온갖 세상의 잘못됨만 꾸짖고욕만 하면서 아무도 없이 혼자 사는 신세였다. 그 선비는 도무지 가정의 양육과 생산적인 일은 어떤 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벼락신이 생각하기를 군자는 항심항산(恒心恒産)이라 했거늘 어찌 저러고도 이 나라 백성이라고 할 것이며 소위 다른 백성보다 더 배웠다는 선비랄 수가 있단 말인가.내가 바로 이 자를 데려가야지 하고 벼락을 쳤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사회에서 귀담아들을 부분이 있는 선조들의 얘기다. 나라와 이 사회가 어찌되든 상관없이 자기 야망성취만을 위해 매진하면서모든 잘못은 남의 탓으로 돌리고 사는 사람들,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고 놀면서 세상 비판만 하고 지내는 사람들,나라 국민으로서,한 시민으로서 옳은 일이든 그른 일이든 참여도 하지 않은채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다니는 사람들,사회와 국가의 개혁과 발전에 동참하지 않으면서 의롭고 바른 일,전체의 이익에 복무하는 사람이나 단체에 침묵하고 악의 세력의 잘못들을 묵인하며 정부 잘못만 지적하는 사람들,좋은 세상 만들면 덕을 보고 살 터인데 그 같은일을 하는 사람이나 단체를 도와주면서 건설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언짢고탐탁스럽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더욱이 지역감정으로 정치장사 해먹고 사는 사람들,자기 허물은 모르고 남의 허물만 떠들고 자기들이 저지른 엄청난과오를 숨기는 사람들,벼락신이 이들을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 하지만 정치권이,정부여당이 잘 해야 벼락맞을 사람들이 줄어든다.절망과좌절을 안고 시름없이 사는 사람들이 줄어든다.개혁 주체세력도,개혁 원칙도 없으면서 현 정권은 개혁정부 간판을 건지 1년이 지났지만 잘된 일이 없다. 총체적으로 본질과 현상을 동시에 개혁하려는 성과가 없는 바탕 위에 제2 건국운동·재벌 구조조정·국민연금 확대실시·한일어업협정·정치개혁·노사정·국가보안법개정·실업자문제·한글한자병용문제 등등 어느 한가지도 제대로 된 것이 없다. 지금은 기왕 실기(失期)했으니 더디 가도 좋으니 새롭고 젊고 참신한 개혁적 인사들을 기용하고 과거 3∼6공까지 나라 망쳐먹는데 경륜이 쌓인 인사들은 배제했으면 좋겠다.더욱이 YS정권도 하지 않았던 5∼6공 군사독재 세력과 연대가 있을 법이나 한 일인가.전라·경상도 사람 모두 웃을 일이다.새 친구(기득권) 사귀려 말고 옛 친구(개혁 신진세력) 버리지 말라는 속담을 명심해야 할 일이다. [知 詵 백양사 스님]
  • 오부치총리 訪韓 이모저모

    오부치총리는 20일과 21일 고려대 강연과 해인사 방문을 통해 역대 일본총리 방한과의 차별화를 시도,주목을 끌었다.일본으로서는 다소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민족사학’과 ‘호국사찰’에 대한 그의 과감한 접근은 아키히토(明仁)일황의 방한에 앞서 ‘정지작업’ 차원이 아닌가 풀이된다. 오부치총리는 21일 오후 2박3일의 방한일정을 마치고 서울공항에서 간단한환송행사후 도쿄로 떠났다. ▒해인사 방문 오부치총리는 21일 오전 10시30분 경남 합천 해인사에 도착,일주문을 거쳐 경내 대적광전을 참배한 뒤 팔만대장경판고를 돌아봤다.오부치총리는 청화당(淸和堂)에서 ‘구명불견암(求明不見暗)’이란 기념휘호를써 해인사에 전달했다.송월스님은 답례로 ‘일주무영수(一株無影樹)’로 시작되는 서산대사의 ‘오도송(悟道頌)’을 적어 건넸다.오부치총리는 오후 1시 해인사를 떠났다. ▒고려대 강연 이에 앞서 20일 오후 열린 오부치총리의 고려대 강연은 학생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큰 불상사 없이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오부치총리는 강연 20분 전인 오후 2시10분 경호당국의 삼엄한 보호 아래 검은색 리무진을 타고 고려대 정문을 통과했다.고대생 150여명이 ‘과거사 청산’과 ‘어업협정 즉각 파기’를 주장하며 교문 진입 저지와 대강당 시위를시도했으나 실패하자 정문 앞에서 1시간 가량 연좌시위를 벌였다.오부치총리는 “안녕하십니까.소개받은 오부치입니다”라고 유창한 한국말로 인사를 해 600여 청중의 박수갈채를 받았다.오부치총리는 고려대와 연대,와세다와 게이오대 등 네 학교간의 교류시합을 제안하기도 했다.오부치총리는 강연후 金炳琯이사장과 金貞培총장으로부터 고려청자 1점과 여초 김응현선생의 ‘천하위공(天下爲公)’이란 대형서품을 선물받았다.
  • [특별기고]봄맞이 들길에서

    봄빛이 완연한 시골 들판길을 걸었다.야산의 수목들이 생기를 얻어 불그죽죽하고 시냇가 초목들에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다.왕버드나무 가지끝 여린 부분을 꺾어서 피리를 만들려 했다.그러나 아직 때가 일러 잘 되질 않았다.다만 나무와 손에서 나는 풋풋한 냄새가 몹시도 좋았다.그도 그럴 것이 병원에서 10일 이상 머물다 퇴원한 몸이라서 코끝이 예민해졌기 때문이다. 이때 느껴지는 소박한 생각이 하나 있었다.나무는 왜 일평생 푸르고 향기로운 한가지 냄새로 일관되게 사는 것일까? 일평생 존재하는 것들에게 이익만주는 나무들은 한결같이 싱싱한 냄새로 모두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몸에서는 왜 풋풋하고 싱싱한 향기가 나질않고 누추한 잡냄새만 일평생 풍기는 것일까? 보통사람들은 그래도 사람끼리의 냄새니까 그렇다 치고,냄새중에도 지식인 썩는 냄새가 제일 고약하다고 한다.나는 승려로서의 일생을 어떻게 살아왔으면 속인도 아닌데 봄내음은 그만 두고라도 잡냄새만 나는 것일까.계율도 지키지 못해 청정하지 못했고 현실참여라는 명분아래 최루탄까지 오랜 세월 먹고 살았으니 오죽 하겠는가. 나는 30여년전 군대생활 할 때 유격훈련을 받다가 잘못돼 위장수술을 받은적이 있다.그런데,수술했던 그 부위가 헐어서 그대로 두면 위암이 된다는 종합진찰 판정을 받은 것은 지난달 중순이다.세속에 어릴 적 친구가 병원에 인연이 깊어 나에게 종합진찰 받기를 권했다.나의 지난 세월도 어려웠지만 본사주지 4년동안 너무 고생한 것 같았고 지난해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선거 중에 속을 많이 썩혔을 것이니 꼭 한번 종합진단을 받아보라는 권고를 여러 차례 해왔다. 지난 2월25일 수술 받기까지 며칠동안 상당한 망설임이 있었다.자연건강을하는 분들은 수술하지 말라고 권했고,수술을 하려면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가야 한다고 모두가 성화였다.나 자신도 우리나라 병원은 오진이 많다는데‘그까짓 내시경 조직검사 한번으로 어떻게 초기위암이라고 몸에 칼을 댄단말인가’ 하는 잡념들이 나를 갈등하도록 했다. 그러나 고마운 친구의 권유를 받아들여 용기있게 생사에 집착없이 지방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경과가 좋아 10일만에 퇴원했다.세상사에 있어서 우리사회의 온갖 병폐도 나의 병처럼 조기발견이 아니라 너무 늦은 부분도 많으니까서둘러 개혁이라는 대수술을 받았으면 한다.지금 때가 늦었다.온갖 유혹과방해를 과감히 물리치고 지도자가 과감한 결단으로 우리 사회 도처에 만연돼 있는 암적 병폐를 개혁하는 것이다.그래서 암의 부위 뿐만 아니라 온갖 잡된 것 다 배출시켜 버리고 병없이 깨끗한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특히 가진 자와 아는 자들이 먼저 앞장서야 한다.그리고 자신들이 사회의암적 존재인지,아니면 나무와 같이 향기로운 존재인지 진단을 받아보라고 권하고 싶다.왜냐하면 어느 사회에든 기득권층이 변해야 개혁과 발전이 있고이런 사회와 국가는 혁명이 필요없게 되는 것이다. 얼마전 신문에서 고학력자일수록 정치의식은 높지만 남녀차별이 심하고,학연,지연(역)에 연연함이 더 높게 나타났다는 기사를 보았다.우리나라는 지금 대전환기에 서 있다.나를 위한 전체가 아닌 전체속에서의 나의 역할을 찾아야 할 때이다.각자가 의식에 혁명적인 전환으로 자기를 개조해 개혁의 주체가 될 때 우리사회는 건강해질 것이다. 이제 나는 더욱 청정하게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들판 길을 걷는다.우리 모두가 나무처럼 살자.우리 모두가 봄이 되자.희망 가득한 봄빛이 되자.더욱 더 이 땅의 모든 합병증을 스스로 치유하고 그래서 새롭게 시작하는 봄기운이 되자.존재하는 것들이 모두 함께 상생하는 봄날이 되자. 지선 백양사 스님
  • 조계종 새달 종합정보망 ‘달마넷’ 서비스

    사이버공간에서도 사찰순례를 하고 스님들의 법문을 들을 수 있게 된다. 불교 조계종이 데이콤 후원과 이현데이타시스템의 제작지원으로 추진하는불교종합정보망 ‘달마넷’을 접속하면 사찰을 찾지 않아도 직접 경내를 둘러보고 법당에서 예불을 올리는 것과 똑같은 가상현실을 체험할 수 있다.또지난 93년 입적한 성철스님은 물론 고승들의 법문을 동영상과 함께 들을 수있고 사이버 스님이 친절하게 신행 상담도 해준다. 지난해 12월부터 달마넷 인터넷 시범서비스를 실시해온 조계종은 지난 2월데이콤 및 이현데이타시스템과 달마넷 제작계약을 체결한데 이어 최근 서울견지동 조계종 총무원 청사에서 달마넷추진본부 발족식을 가졌다. 만성 본부장(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을 비롯 조계종 총무원및 포교원,그리고 데이콤과 이현데이타씨스템의 관계자들로 구성된 달마넷추진본부는 4월22일 1차로 공개서비스를 개시하며 올해안으로 500여 사찰의 인터넷 홈페이지와 200여 불교기관및 단체의 홈페이지,불교경전,역대조사 어록,불교사전및불교용품 쇼핑몰,사이버불교교양대학,불교 인물사전,전세계 불교 홈페이지검색엔진 등을 갖출 예정이다. 지난해초 중앙종무기관 종무행정 전산화를 완료한 조계종은 이날 고산 조계종 총무원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불교정보화추진위원회 발족식도 함께 열고범종단 차원에서 정보화사업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발족식에서 고산 총무원장은 “2,500여년전 부처님께선 삼라만상이 너나없이 하나의 그물,즉 인드라망으로 엮여 있음을 갈파하셨다”면서 “정보화사회에서는 시간이나 공간의 제약으로 인한 일체의 차별과 갈등이 사라지고 원융무애한 불교정신이 실현되는 만큼 불교종합정보망구축은 부처님의 전법 사명을 충실히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달마넷 홈페이지 주소는 http:///www.dharmanet.net이다.
  • “불상에서 한달째 땀”

    돌로 만든 불상에서 한달째 땀이 흘러나와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내고 있다.지난해 11월부터 광주시 동구 금남로 전일빌딩 3층에서 전시중인 티벳 불교미술품 전시작의 하나인 미륵좌상이 화제의 주인공이다. 이마에서 허벅지까지 지난달 12일부터 증기가 서린 듯 물방울이 송글송글맺혔다. 불자들은 “오랜만에 부처님들이 햇빛을 보게 된 것을 기뻐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는다.티벳에서 온 초펠스님은 “티벳에서는 부처님이 땀을흘릴 경우 대단한 길조로 여긴다”고 말했다.
  • 금강산 長安寺 연내 복원

    신계사,장안사,유점사 등 소실돼 옛터만 남아 있는 금강산일대 사찰의 연내 복원이 추진된다. 현대는 10일 국내 불교계의 금강산일대 사찰복원 요청을 북한측에 전달했으며 북한이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우선 금강산 관광코스 중 구룡폭포 가는 길에 위치한 신계사를 우선적으로 복원한다는 방침이다.신라시대의 고찰인 신계사는 1951년 폭격으로 불에 타 3층 석탑과 돌기둥,주춧돌만 남아있다. 조국평화통일불교협의회(회장 法陀스님)를 비롯한 불교계는 지난해부터 금강산일대 사찰복원을 추진해 왔다.
  •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재건축 계획

    조계종의 제1교구 본사이자 종단행정의 총본산인 서울 종로구 견지동의 조계사가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한다.조계종 총무원은 조계사를 수행및 기도처로서의 분위기와 현대적 포교와 행정기능을 갖춘 도량으로 만든다는 방침아래 조계종 총무원 건물과 조계사 대웅전 신축에 대한 활발한 논의를 거듭하고 있다.조계종은 현재의 총무원 청사가 너무 낡고 파손이 심하게 돼있는데다 거듭된 폭력점거사태로 분규의 상징처럼 돼있어 이를 허물고 다시 짓는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종단관계자들은 물론 일반불자들도 조계사가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한국불교의 얼굴인만큼 공간 재배치와 함께 대대적인 보수및 조경작업을 실시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조계사 대웅전이 전통적인 사찰 전각의 형태가 아니라 타종교의 전각을 옮겨온 것이라는 지적도 끊임없이 제기돼왔으며 ‘총무원 청사가 대웅전보다높기때문에 분규가 잦다’는 속설까지 등장,환골탈태가 불가피한 실정이다. 조계사는 1895년 고종황제가 승려들의 도성 출입금지를 해제한 뒤 이회광이 지금의 수송공원 자리에 세운 각황사에서 비롯된다.이후 조선불교 선교양종은 31본산 주지회의의 결의로 1937년 각황사를 허물고 바로 옆 현재의 위치에 총본산으로 태고사를 세웠으며 1954년 조계종 정화불사를 계기로 조계사로 이름을 바꾸었다.대웅전 건물은 차경석이 창종한 보천교의 십일전 건물을 옮겨온 것으로 팔작지붕에 정면 7칸,측면 4칸의 다포식 건물이다.총무원 청사는 고산 총무원장이 조계사 주지로 있던 75년 3층 높이로 지었으며 후임주지인 월탄스님이 5층으로 올렸다. 조계사 경내 재배치작업및 총무원 청사 신축계획은 전 송원장 시절인 97년에 이미 세워졌으며 30억원의 기금도 마련돼 있다.계획안에 따르면 현재의대웅전을 뒤편의 교육원 자리(우정국 옆)로 옮기고 대웅전 자리와 포교원 건물 사이에 새 총무원 청사를 포함한 종합불교회관을 짓도록 했다. 그러나 고산 총무원장은 조계사 대웅전은 그대로 둔 채 교육원 자리에 지상 3층,지하 2층 규모로 새로운 청사를 짓는 반면 장기적으로 대웅전 앞쪽의건물매입을 완료해 고층건물로 종합불교회관을 건립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지난달 9일 ‘종단 안정과 개혁을 위한 범불교연대회의’가 마련한 조계사 발전방향 공청회에서 유정길 한국불교환경교육원 사무국장은 “조계사는 불교의 귄위를 상징하는 곳이면서도 시민이 함께 공유하는 열린 마당이 되어야 한다”며 불자와 전문가,시민이 함께 참여해 만드는 종합적인 마스터 플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관태 포교원 연구과장도 “1,600년 한국불교의 역사를 대변하는 조계사는 21세기 미래지향적 불교상을 웅변하는 모습으로 새롭게 정비돼야 한다”면서 “종도들의 중지를 모아 전통사찰의 풍미를 살린 전각과 기능성을 함께갖춘 현대적 빌딩을 신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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