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광장] 성철 큰스님 6주기
지금 가야산은 노랗고 붉게 한창 물들어가고 있습니다.지난 21일은 성철 큰스님의 열반을 추모하는 칠일칠야 8만4,000배 참회법회가 시작되는 입재날이었습니다.벌써 가신지 여섯 해가 되었습니다.어려운 종단 사정에 몸빼기가쉽지 않아서 고민고민하며 망설이다가 “그래도 기도 입재날인데…” 결심하고는 밤늦게 해인사 백련암에 도착했습니다.고요한 산사,연등을 밝힌 야경,미리내가 밝게 흐르는 밤하늘을 쳐다보면서 만감이 교차하였습니다.
지난 12일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에서는 불교자주권과 법통수호를 위한 사부대중 궐기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1만6,000여명이 넘는 스님과 신도들이 전국각지에서 모여, 최근에 조계종에 내린 법원의 판결에 대해서 불교도들의 입장을 천명하는 자리였습니다.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한다”는 것은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입니다.그런데 우리 불교도들은왜 그렇게 모였겠습니까? ‘법’이란 단어 속에는 성문화된 법조문과 선배 판사들이 정립해 놓은 판례도 포함될 것입니다.과연 법관의 양심이이러한 판례를 뒤집을 만큼 긴급한 판단이 요구되는 사건이었는지,‘맑은 하늘에서 날벼락’맞은 심정으로모였던 것입니다.뜨거운 열기 속에서 대회를 치르고,너무 많은 사람이 모였기에 시민들에게 불편을 초래할까봐 평화적 시위행사도 없애고 조용히 마쳤습니다.그 민주적인 대회 모습에 “아! 불교도 이제 이렇게 성숙했구나!”자부심을 느꼈습니다.
해질 무렵 여기저기서 전화가 오기 시작하는데,“TV 뉴스에 오늘 잘 치른사부대중 궐기대회는 단 1초도 나오지 않고 조계사 앞거리에서 있었던 폭력사태만 비추니 이것이 어찌된 일이냐?”는 문의와 항의전화였습니다.더욱이KBS2에서는 그날 저녁 8시 뉴스에 지나간 시절의 폭력장면들까지 모아서 10분 가량 넘게 방영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아연실색했습니다.
오전에 일어난 폭력사태에 대해 분명히 알았더라면 그날 모인 대중에게 알리고 충분히 사과하였을 것입니다.그런데 많은 스님과 대중이 모여서 불교의자주권과 법통 수호를 외치던 그 우렁찬 목소리는 어디로 숨겨버리고 폭력이 전부인 양 보도되는 현실 앞에서 착잡한 심경을 가눌 길이 없었습니다.다음날 접한 일간지마다 사회면에 폭력장면들이 대서특필되고 궐기대회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어느 언론에서도 조계종이 처한 현실을 바로 꿰뚫어보고 이해와 동정을 가지려는 태도는 볼 수 없고,우리들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폭력에만 초점을 맞추니 불교가 언론에 이렇게 대접받아도 되는가 하는 데에 생각이 미쳐울화가 치밀었습니다.
또 법관의 판단으로 인해 조계종이 이렇게 혼란스러워진 데 대해서 법관의진정한 반성이나 유감의 표시없이,판사 개인에게 행한 협박전화나 꽃 배달사건을 조계종이 행한 양식없는 행동이라고 매도하는 언론의 태도를 보면서언제 이렇게 불교가 사회적으로 푸대접받게 되었나 한심스러웠습니다.
그런 행동을 비호해서가 아니라,한 판사의 권위와 위엄도 그렇게 언론에서보호받는데 2,000만 불자라고 공칭하는 조계종은 그 판사 한 사람보다도 대접을 받지 못하니 이래서야 되겠는가? 이런 상념들에 잠겨서 가야산의 밤을지새려니 “서울에서 싸우는 중들은 쳐다보지도 마라.산에서 수행하는 우리들은 옳은 편도 들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해라” 하시던 큰스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졸지에 ‘싸우는 서울 중’이 되어버려서 6주기를 맞는 큰스님에게 너무나 죄송스럽기만 합니다.멀리만 바라보이던 종단의 일이 발등의 불로떨어지고 보니 그 암담한 심경은 어디다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묵묵히 정진하시는 산중의 대다수 대중스님들을 위해서도 폭력세력들이 자숙하여 사태가 하루빨리 수습되어야 하겠습니다.또한 이번 재판부의 판결은옥에 티를 가지고 옥을 깨뜨린 처사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이번 폭력 사태에 대해서 국민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거듭 사과드립니다.그리고 많은애정과 이해심으로 조계종단이 하루빨리 안정되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圓 澤 조계종 총무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