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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굄돌] 미모사와 아이

    지난 여름 방학이 끝날 무렵 막내 아이와 함께 식물원에 갔다.식물들을 조사해서 방학숙제로 내야 했기 때문이다.식물원에는 기억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식물들이 있었으나,아이의 호기심은 좀더 특이한 희귀 식물에 모아졌다.항아리 모양의 잎사귀 안쪽으로 곤충을 빠지게 하여 잡아먹는 통발이나,활짝 펼쳐진 잎사귀에 곤충이 앉으면 잎사귀를 닫아 곤충을 잡아먹는 파리지옥풀 등이다.아이는 그 식물들에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 내 설명을 더디고 서투른 글씨로 수첩에 적어갔다.열심히 적어가는 아이의 모습이 기특해서인지 식물원을 관리하는 아저씨가 한 뼘도 안되는 크기의 작은 미모사를 아이에게 선물로 주었다. 나는 예전에 선물로 받은 난을 제대로 키우지 못한 채 장인댁에 보냈다.다른 식물들에 비해 세심한 정성이 필요하다는 난에게 애정을 쏟지 못하여 잎이누렇게 타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바쁘고 삭막한 생활 탓이리라.난을 떠나보내며,언젠가 읽었던 법정 스님의 ‘무소유’가 생각났다. 법정 스님은 그 책에서 난에 집착한 일화를 소개한다.다른 사람으로부터 난을 선물받는다.난에 대해 정성을 쏟고 키웠으나 절을 오래 떠나 있는 동안그 난이 행여 죽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집착하게 된다.그래서 그 난을 다른사람한테 주고나니 집착이 사라지게 된다. 도를 닦은 스님도 난을 타인에게 줄 때에 비로소 집착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것이다.스님은 집착으로부터 해방되었지만,난을 선물받은 타인은 집착에 얽매이지 않겠는가.이 세상 사람들 중에 누가 과연 소유와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으랴. 그런데 막내 아이가 미모사를 대하는 것을 보면,미모사를 소유하거나 집착한다고는 도무지 생각되지 않는다.미모사는 손가락으로 건드리거나 진동을 전하면 잎을 닫고 잎꼭지를 아래쪽으로 구부리는 특징이 있다.8살짜리 아이의순수한 동심을 묶어둘 수 밖에 없다.미모사는 아침이면 햇빛을 듬뿍 받아 잎을 활짝 펴고 밤에는 잎을 닫는다.아이도 아침이면 일어나고 밤이면 잠든다. 아이는 이 식물이 자기와 똑같다고 생각한다. 이제 미모사는 아이에게 하나의 세계이고 생명의 신비고 신앙이다.그러나 아무래도 이세계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을 것같다.절대로 소유욕이 없어야하고 순진무구한 동심을 가진 자만이 이 세계와 교감하고 대화하며 그 안에들어갈 수 있으리라. 홍창수 극작가
  • 일타스님 법문서 2권 출간

    지난해 11월 하와이에서 입적한 일타(日陀)스님의 법문서 2권이 출간됐다. ‘오계이야기’와 ‘불자의 마음가짐과 수행법’이다.두 법문서는 모두 불자들이 지켜야 할 계(戒)와 마음·몸가짐,그리고 처신에 대해 설파한 내용이담겨있다.법문형식이지만 다양한 일화와 스님의 경험담을 섞어 일반불자들도어렵지 않게 읽어볼 수 있는 것들이다. ‘오계이야기’가 계에 얽힌 이야기들이라면 ‘불자의 마음가짐과 수행법’은 불자들의 살아가는 방식과 해탈을 위한 양식을 재미있게 풀어나가는 법문.이 가운데 ‘오계이야기’는 불자들의 공부는 계율을 올바로 지키는 것으로부터 시작됨을 거듭 강조한다.비구·비구니,사미·사미니 등 사부대중이 모두 지켜야 하는 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淫) 망어(妄語)등 4계에 불음주(不飮酒)계를 더해 이와 관련된 일화를 통해 각 계율의 시작과 지키는 방법,그리고 이를 어겼을때의 대가를 설하고 있다. ‘불자의 마음가짐과 수행법’ 역시 다양한 비유와 일화를 소개하면서 스님 나름대로 해석한 법을 설파하고 있다.비록삶이 고통스럽지만 원망하지 않아야 함을 강조하면서 자연스럽게 인연에 순응하는 법,그럼으로 인해 무소유를 알고 만족하게 되는 이치를 설득력있게 깨우친다.또 행복과 해탈을 막는5가지 장애인 오개장을 비롯해 염불·참선·간경·주력 등 4대 수행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 ‘화엄경’ 중심사상 국내 첫 번역판

    화엄경(華嚴經)은 한국 불교의 사상적 뿌리다.해인사와 범어사,부석사,불국사 등 주요 사찰들이 화엄사상에 의해 세워졌고 불교의식문의 대부분도 여기서 따왔다. 부처님 깨달음의 깊고 오묘한 경지를 여실히 표현한 ‘화엄경’이 불교 경전가운데 으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도서출판 하늘북이 최근 펴낸 ‘꽃으로 장엄한 부처님 바다(華嚴玄海)’(華嚴祖師지음 古鏡 번역)는 화엄의 깊은 뜻을 이해시키려고 남긴 수많은 저술가운데 가장 중심적 화엄5조의 주요저술을 선택,국내에서 처음으로 번역했다.화엄법계현경(華嚴法界玄鏡) 화엄일승십현문(華嚴一乘十玄門) 화엄경지귀(華嚴經旨歸) 화엄경의해백문(華嚴經義海百門) 화엄약책(華嚴略策) 삼성원융관(三聖圓融觀) 화엄요해(華嚴要解)등 7개의 소책으로 나뉘어져 있다.각 책마다 두순(杜順) 지엄(智儼) 법장(法藏) 청량(淸凉)등 화엄 대종장들의 글을풀어써 화엄의 묘미를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화엄법계현경’은 두순선사가 화엄경의 뜻을 관행적 입장으로 실천적 체계·논리화했으며 ‘화엄일승십현문’은 이를 교리적 입장에서 조직화했다. ‘화엄경지귀’와 ‘화엄경의해백문’은 법장스님이 화엄경의 대강과 근본뜻을 10가지의 문으로 나누고,하나의 문을 다시 10가지로 나눠 화엄경의 독특한 의미와 법수 등을 규정했다. 또 ‘화엄약책’은 화엄경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내용을 42가지로 나눠 문답형식으로 꾸몄고 ‘삼성원융관’은 화엄경의 실천문인 관법에 대해 썼다.‘화엄요해’는 화엄경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설명했다. 고경스님은 “은사스님께서 화엄의 세계와 선의 세계를 합치한 사상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그것이 바로 ‘부처님의 세계’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면서 “화엄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 [99 종교계 결산] 종교화합 성과없이 발걸음만 분주

    99년 종교계는 유난히 많은 갈등·분규와 사건들로 얼룩져 심한 몸살을 앓았다.기독교계는 각종 비리사건에 연루된 신자들로 인해 여론의 질타를 받았고 불교계는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종권을 둘러싼 폭력사태와 소송 등으로수난을 겪어야만 했다.또 교계지도자들끼리 자주 만나 종교화합의 행보가 많았지만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가톨릭과 세계루터교연맹이 500년간 반목 대립해오다 화해하고 정교회와 가톨릭,이슬람과 가톨릭 등 종교간 대화 움직임이활발했던 세계적인 흐름과는 대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각 종단은 새 천년을 앞두고 자성과 연합에 대한목소리를 높여 종교간 화합과 사회개혁에 앞장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개신교는 무엇보다 숙원인 교회일치에 대한 만족할만한 성과를 보지 못한게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대한예수교장로회의 통합과 합동이 공동기도·교환예배 등을 벌였지만 결국 연합이 유보됐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대화노력도 뚜렷한 결실을 보지 못했다. 각종 비리사건에 개신교 신자들이관련된 것은 큰 흠집으로 남았다.옷로비파문 당사자들은 모두 개신교 신자였으며 국회증언도 거짓으로 밝혀져 명예가 크게 손상됐다.대형교회와 개신교계의 문제점이 끊임없이 거론됐고 이에대한 개선방안을 놓고 논쟁과 자성이 이어졌다. 만민중앙교회 신도들의 MBC 방송국 점거로 인한 방송중단 사태,신앙때문에수술을 거부한 신애양 논란,종말론 추종 신도들의 집단가출도 모두 사회의주목을 끈 사건들이었다.단군상 훼손에 따른 우상숭배 논쟁과 예장통합의 선거부정 시비도 개신교계를 떠들썩하게 했다.그나마 대한성서공회의 1,000만달러 수출탑 수상,대한성공회의 정신지체장애인 근로공동체 우리마을 준공은 훈훈한 뒷 이야기거리였다. 천주교는 지난 한해동안 4개 교구장·부교구장이 새로 부임,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청주 부산 인천 군종교구가 새 교구장을 맞았고 주교회의 의장도정진석 대주교에서 마산교구장 박정일 주교로 바뀌었다.지난달 한국사목연구소는 ‘한국천주교회사 대희년 심포지엄’을 통해 천주교회의 반민족 행위에 대해 반성하는 자리를 마련해 주목받았다.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25주년과국가보안법 폐지투쟁,순교자 현양탑 건립도 나름대로 의미있는 일들이었다. 불교계는 장자 종단인 조계종이 지난해에 이어 폭력사태를 재연하며 홍역을 치렀다.고산 총무원장 체제는 각종 발전계획을 발표하며 종단의 위상높이기를 시도했으나 지난해 분규이후 징계자 사면·복권 등 내부갈등을 해결하지못해 중도퇴진했다.서울민사지방법원이 고산 총무원장직 부존재 판결을 내린 뒤 정화개혁회의가 추천한 도견스님을 직무대행으로 지정하면서 싸움이 다시 시작돼 결국 총무원측과 정화개혁회의측은 도심에서 난투극까지 벌였다. 분규는 정대스님의 제30대 총무원장 선출로 사태를 수습해나가고 있는 분위기다.불교서적이 베스트셀러 상위를 휩쓰는 등 불교서적 붐이 일어난 것은종단분규와는 퍽이나 대조적인 현상. 북한과의 교류는 비교적 활발했던 편이다.진각종 성초 통리원장이 종단 대표로는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했고 민족화합불교추진위원회 지선 상임추진위원장과 명진 집행위원장이 조선불교도연맹관계자와 지속적인 교류에 합의했다.허문도씨의 독주로 인한 불교텔레비전(btn) 파행운영,조계종 혜암 종정취임,광덕스님과 일타스님 입적,대행스님의 독일 초청법회,태고종 안덕암 종정 취임,천태종 삼광사 30주년 기념법회 등도 특기할만한 것으로 꼽힌다. 이밖에 원불교의 한국불교종단협의회 가입논의가 무산됐고 대순진리회가 여주 본부도장 점거사태로 인해 양분위기에 빠졌으며 유교계도 재단과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김성호기자 kimus@
  • ‘내 생애의 바닷가에서’ 펴낸 사제시인 이정우

    경북 경산시 자인면은 신라의 고승 원효와 그 아들로 대(大)학자인 설총이태어난 곳이라고 한다.자인(慈仁)이란 고을 이름부터 원효의 자비(慈悲)와설총의 인(仁) 사상에서 한글자씩 따와 지었다는 얘기가 전한다. ‘삼국유사’를 쓴 일연이 불지촌(佛地村)이라고 부를 만큼 불교와 인연이깊은 자인.그 마을 끝자락 계정숲 언덕에는 결코 뽐내지 않는 표정으로 자그마한 천주교회가 하나 앉아 있다. 위대한 불교사상가를 낳은 땅에 대한 경의의 표시일까.사제관에 들어서면 중광스님이 그린 동자승(童子僧)이 먼저 환한 얼굴로 객(客)을 맞는다. 그러나 막상 사제관의 주인은 “이 먼 데까지 뭐하러 왔느냐”고 기자를 나무랐다.이정우 신부(53),그는 최근 ‘내 생애의 바닷가에서’(문학수첩)라는일곱번째 시집을 내놓은 시인이기도 하다. 그의 집무실에는 10대들처럼 요란스럽지는 않지만,외국연예인들의 사진을 담은 자그마한 액자가 여기저기 놓여 있다.소피 마르소와 제임스 딘,찰리 채플린….그러나 눈길을 붙잡는 것은 경주에 갔을 때 샀다는 달마그림이다. 달마는 또 어디로 갔을까./그는 이 세상 어느 마을에 살며/오늘은 누굴 만나러 나들이라도 갔을까./초여름 저녁바람을 쐬러,나는/아픈 다리로 동구 밖을 나서면서/“달마,달마”라고 불러본다.…(달마 1)그는 지난 6월 ‘현대문학’의 청탁으로 달마연작을 썼고,새 시집에도 실었다.왜 가톨릭 사제가 선(禪)불교의 시조인 달마를 이렇게 애타게 찾아다니는 것일까. 그는 “달마는 특정인물이 아니라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빈데로 가서 있는그런 태도를 말하는 것”이라면서 “내가 지금 세상속에 무더기로 휩쓸려가면서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혼란스런 세상을 비껴서서 바라보아야겠다고 달마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렇지않아도 그는 요즘 달마처럼 산다.자신이 태어난 자인의 작은 성당을자원한 것도 대구 봉덕성당을 지을 때 다리뼈가 삭는 줄도 모르고 무리를 한탓도 있지만,‘빈곳’에 비껴서 있고 싶어서 였다고 한다.그래서 달마연작에서도 자신이 종종 달마가 된다. 달마가 승용차의 시동을 걸고/온천목욕을 하러간다./낡은 차 안의 카스테레오에서/돈 크라이 아르헨티나가 들려온다.…달마가 점심을 먹으러 간다./홍두깨 국시집에서/손으로 잘빚은 콩국수 한 그릇을 먹고,/선풍기 바람을 쐬며/김치두루마리 만두를 안주로 해서/동동주 한사발을 마신다.(달마 6)이런 ‘달마같은 신부’를 따르는 신자들이 한밤중에 찾아와 옷자락을 잡아끌면,그 또한 고스톱도 같이 치고,노래방에 가 ‘카츄샤’나 ‘번지없는 주막’을 함께 부른다.그는 “신부라고 꼭 기도만 하거나 신앙적이어야 하는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한 뒤 “요즘 신자들은 소탈하게 같이 어울려주는 사람을 원한다”면서 “어쨌든 신부 성격에 신자들도 따라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경북대 국문과를 졸업하던 해 대구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된 뒤 서울로 올라가 합동통신에서 기자생활을 하다 뒤늦게 신학교에 들어갔다.그는자신에게서 ‘신부냄새’가 별로 나지않는 것도 이런 사회경험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 곳에서 사제로서는 물론 시인으로서도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한다.97년 부임하자 건물은 폐허에 가까웠고,그는 성당을 되살리기 위해 대구에서 시화전을 열었다.그림과 시집을 팔아 1억 3,000만원이라는 거금을 모을 수 있었고,교구에서 일부를 지원받아 오늘의 아담한 성당을 일구었다.그는 “시가 돈이 되는 것을 경험한 시인이 그렇게 많겠느냐”면서 ‘시인이된 것이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달마처럼 웃었다. 경산 서동철기자 dcsuh@
  • “나를 알고 참 나를 완성하라”

    혜암(慧菴) 조계종 종정은 20일 불기(佛紀) 2544년(2000년) 신년법어를 발표했다. 혜암 종정은 “미래는 오지 않고 과거는 가지 않으며 현재는 머무르지 않으니 삼세(三世)는 텅 비어 미묘하다”면서 “이 도리를 알 수 있다면 해와 달이 새롭고 하늘과 땅이 특별하여 전쟁ㆍ질병ㆍ흉년ㆍ환경파괴ㆍ생사윤회 등천만 가지의 재앙이 하나도 없게 된다”고 갈파했다. 혜암 스님은 이어 “새해 새날을 맞이한 사람은 누구인가”고 묻고 “내가누구인가를 알고 참 나를 완성하라”고 당부했다. 그는 또 “일체 만물은 일심동체의 한 뿌리이기에 이쪽을 해치면 저쪽은 따라서 손해를 보며 저쪽을도우면 이쪽도 따라서 이익을 받는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새해를 맞이하여 허망한 나를 버리고 원수를 도와주며 남의 고통을 대신 받으면 지상낙원이 된다”고 설파했다. 김성호기자 kimus@
  • [대한광장] 새천년 해돋이

    산사(山寺)로 출가한 뒤 언제부터인가 계절의 변화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봄이면 꽃이 되고 새가 울고,여름이면 녹음이 짙어지고 매미소리 귀따갑고,가을이면 산 가득히 단풍이 붉게 물들고,겨울이면 앙상한 가지가 등을 더욱 시리게 하지만 눈이라도 내리는 날이면 소나무에 수북이 쌓인 눈을보는 것만으로도 또 하나의 감격입니다.이런 계절의 변화는 누구나 다 느끼고 누구나 다 아는 일일 것입니다. 성철스님께 누가 “스님! 하루 생활을 어떻게 보내십니까?”하고 물으면 “쳐다보니 흰구름이요 건너다보니 푸른 산이다”라고 답하곤 하셨습니다.‘무소유(無所有)’와 ‘재미없음으로 재미’로 알고 살아가는 스님들에게는 어쩌면 당연하고도 당연한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계절의 변화에 해와 달이 끼여들면 천문학적인 변화가 됩니다.하지절과 동지절을 전후해서 해가 뜨고 지는 곳이 달라집니다.겨울에는해가 남쪽으로 내려가고 여름에는 북쪽으로 올라와 뜨고 지는 곳이 달라집니다.계절에 따라 달도 뜨고 지는 지점이 달라집니다.글을 쓰려니 기억이 착각을 일으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해가 남쪽으로 내려가면 달은 더욱 북쪽에서지는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겨울날,새벽 예불하러 나와서 백련암 신선대 위 소나무 사이에 걸쳐 있는보름달의 모습을 보노라면 또 다른 산사의 감흥을 불러일으키곤 했습니다.도시에 살 때는 해가 계절변화에 따라 어느 곳으로 옮겨다니는지 실감하고 살지 못했는데 산사에 살면서 해돋이와 달맞이가 계절 따라 옮겨다니며 나타내는 아름다움을 비로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계절에 따라 밤하늘에 떠오르는 북두칠성도 동쪽으로 서쪽으로 옮겨다니고 여름에는 사라져 보이지 않다가 겨울이면 찾아오는 오리온좌 등 밤하늘의 변화도 참으로 무쌍합니다. 산사에 오래 살다 보면 이렇게 들녘의 계절변화뿐만 아니라 밤하늘의 계절변화도 저절로 알아차리게 됩니다.제가 원시인 수준에서 계절의 변화와 밤하늘의 변화를 타령하는 것은,올해는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모습이,‘밀레니엄’이라 하여 새천년 맞이 행사가 어느 해보다 유난스러운 것 같기때문입니다. ‘밀레니엄’행사는 예수그리스도를 신앙하는 서구 기독교 국가에서 맞이하는 큰 축하행사로 알고 있습니다.특히 영국이나 프랑스,독일 등 서구 기독교 국가에서는 몇년 동안 ‘밀레니엄 맞이’를 준비해 왔고,그 완성되어 가는모습을 TV뉴스에서 접하고 “과연 대단하구나!”라고 감탄하였습니다.우리나라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천년 맞이’ 행사가 언론을 요란하게 장식하고 있습니다. 몇 해 전부터 ‘정동진에서 새해 해돋이’ 행사가 열리기 시작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새해의 햇살을 감격스럽게 맞이하는 모습을 TV에서 보는 것도 익숙해졌습니다.그것이 유행이 되어서인지 ‘새 천년 해돋이’ 행사가 동해안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준비되고 있는 광경들을 언론에서 대대적으로보도하고 있습니다. 새 천년 새해에 떠오르는 해가 새 천년이라 해서 더욱 커질 리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새 천년 새해 해돋이’라 해서 언론으로 보면 온나라가 떠들썩한 것 같습니다.기독교국가에서 문화적으로 내실있게 맞이하는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인 것 같습니다. 새해는 단기 4333년이 되는 해입니다.그런데 지금 시골학교에서는 모셔놓은 단군상의 목이 잘리고,마을에 세워놓은 장승이 미신이라 하여 누군가에 의해 불태워졌다는 기사도 읽은 적이 있습니다.유감스럽게도 동양 어느 나라에서도 우리만큼 ‘새천년 맞이’에 들떠 있는 나라는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서구문화가 우리의 전통문화를 압도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다시 한번 우리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고 하지 않습니까.새해에는 날마다 좋은 날이 되어서 풍성한 한 해가 되었으면합니다. 圓 澤 조계종 총무부장
  • MBC 다큐 ‘20세기, 한국의 인물들’ 방송

    흘러간 시대를 정리하고 결산하는 데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당대를 대표하는 인물을 꼽아보는 것만큼 대중의 관심을 끌 만한 것도 드물다. MBC가 20∼22일 밤11시 밀레니엄 특집 다큐멘터리 3부작으로 방송할 ‘20세기,한국의 인물들’편은 새 천년 목전에서 한국 현대사를 대표할 만한 인물들을 총정리하면서 20세기 마지막 장을 덮는 기획. 이 프로는 ‘지도자와 혁명가들’(20일)‘여성’(21일)‘영웅과 우상’(22일)등 3분야에서 각각 20명을 선정,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역사와 사회전반에미친 그들의 영향력과 인물 면면을 소개한다. 인물 선정위원으로는 권근술 전 한겨레신문사장,변형윤 전 서울대 경제학과교수,전성철변호사,장명수 한국일보사장,여성운동가 오한숙희씨,박명진 서울대 신문학과교수,영화기획자 심재명씨 등과 MBC PD 및 일간지 기자,여기에 6,000여명의 네티즌이 참여해 교차선정으로 공정성 높이기를 시도했다. ‘지도자와 혁명가들’로는 김구 박정희 김대중 이병철 정주영 김일성 이승만 전태일 장준하 김수환 전두환 문익환 김영삼박헌영 여운형 김우중 박노해 김종필 안창호 유일한 조봉암 등의 순서로 선정됐다. ‘여성’편에서는 박경리 이태영 정경화 장명수 최승희 나혜석 권인숙 김활란 박순천 김옥길 장영신 이효재 박완서 최은희 구성애 임수경 천경자 육영수 전혜린 윤심덕 공옥진 등이 소개된다. 또 ‘영웅과 우상’에는 손기정 서태지 박찬호 조용필 박세리 백남준 황영조 차범근 김민기 안중근 이미자 정명훈 신성일 최진실 성철스님 김지하 안성기 김지미 유관순 이문열 조치훈 등이 올랐다. 손정숙기자 jssohn@
  • 99출판업계 불황속 ‘다품종 소량’으로 승부

    90년대 초부터 이어져 왔던 ‘출판업계의 불황’은 올해도 지속돼 왔다.IMF의 터널을 벗어나 대형 서점을 중심으로 판매량은 다소 늘었지만 지방이나소형 서점은 독자 감소로 침체를 벗어나지 못했다. 따라서 올해는 출판계를 이끄는 책,즉 ‘밀리언 셀러’가 없었고,다만 세기말적인 분위기를 반영하는 성담론 및 명상 관련 책들이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또 ‘사이버 서점’도 급부상해 눈길을 끌었다. ‘대박’서적이 나오지 않으면서 출판계는 ‘다품종 소량’ 출간형태로 시장을 공략했다.이른바 100만부 판매시대에서 30만부 정도면 최고의 베스트셀러 대열에 끼는 상황을 반영한 것.5,000부를 손익 분기점을 잡던 초판부수를3,000부로 내려잡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내 여류작가 소설과 실용서의 강세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이어졌다.‘기차는 7시에 떠나네’(문학과지성사)의 신경숙씨를 비롯해 은희경 공지영등 여류소설가의 부상도 돋보였다.또 경제·경영 및 컴퓨터 외국어서적 등도꾸준한 신장세를 보였다. 영진출판사의 ‘할 수 있다’ 컴퓨터 시리즈는 출간 이후 최근 200만부를 넘어서는 등 IMF 하에서도 폭발적인 신장세를 보였다. 하반기 들어서는 현각스님의 ‘만행’(열림원),김수환 추기경의 ‘우리가서로 사랑한다는 것’(사람과사람) 등 종교 책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또장애인의 밝은삶을 그린 오토다케 히로타의 ‘오체불만족’(창해)은 전국서점연합회 잠정집계에서 판매량 1위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학·인문서적을 발간해 오던 대형 출판사들이 앞다퉈 유아·청소년용 도서시장에 뛰어든 것도 특징.김영사의 ‘앗 이렇게 재미있는’ 시리즈와 사계절의 ‘1318’ 시리즈는 청소년 계층을 파고들어 성공한 예이다.사회평론 윤철호 사장은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도 국내 소설의 강세와 고급 독자층을겨냥한 인문과학서적의 약진도 두드러졌다”고 진단했다. 인터넷 사이버서점의 부상은 새로운 현상이었다.교보문고와 종로서적 등의‘인터넷 서점’은 올 들어 매출액이 매장 판매의 10%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을 보였다.하지만 사이버서점은 아직까지 통신판매라는 특성상 많은 인건비,우송료,높은 카드 수수료,출혈 경쟁 등으로 고객 확보에 어려움이 큰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인터넷과 서점을 접목해 지난 11일 동작구 신대방동에 개점한‘골드북’은 국내 최초로 서점 프랜차이즈 및 현금결제 방식을 채택,새로운모델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출판계는 또 연초부터 ‘출판진흥법’ 제정에 골몰했다.‘출판진흥법 제정안’은 각종 규제차원의 출판관련 법체계를 정비,출판·인쇄발전 및 진흥을위한 단일법률로 일원화하게 된다.출판문화학회는 이와 관련,출판진흥재단설립을 위해 2003년까지 230억원의 기금을 조성할 것과 도서정가제 유지 등을 골자로 한 법안을 만들어 현재 문화관광부에 제출한 상태다. 정기홍기자 hong@
  • 정찬주 창작집 ‘김룡사에서 나비를 보다’

    김룡사(金龍寺)는 경북 문경의 운달산 자락에 있는 고찰(古刹)이다.흔히 ‘금룡사’로 부르는 것은 김(金)씨 성을 가진 이가 기도끝에 아들을 얻은 뒤용(龍)이라 이름했다는 이 절의 내력을 모르는 탓이리라.수행의 명당이라는소가 누워있는 형상으로,성철 큰스님이 용맹정진한 곳이기도 하다. 정찬주는 그 성철스님을 소재로 한 장편 ‘산은 산,물은 물’과 산문집 ‘길 끝나는 길에 암자가 있다’로 알려진 작가다.그래서 책을 읽은 사람들로 부터 “실제로 출가한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고 한다. 그는 “그런 경험이 없는 것은 물론 그럴 용기도 없는 소설가일 뿐”이라고답한다.그러면서도 “나의 글 곳곳에 잿빛 중(僧)물이 들어 있는 모양”이라면서 싫지않은 표정을 짓는다. 그가 창작집 ‘김룡사에서 나비를 보다’(해들누리)를 냈다.여기엔 중편 ‘김룡사…’와 ‘월인천강지곡’ 등 두개의 중편과 단편 ‘포옹’이 실렸다. ‘김룡사…’는 부도가 확정된 중소기업 사장이 어릴 적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찾았던 산사를 찾는 것으로 시작한다.그 절은 주인공이 젖먹이였을 때 가족과의 인연을 끊고 출가한 아버지가 수행하고 있다.그곳에서 가을 한철 날아드는 잠자리떼의 날갯짓과 지친 날개를 접고 잠시 부처님의 이마에 내려앉아 쉬고 있는 나비를 통해 자신이 헛꿈에 취해 살아 왔음을 깨닫는다. 작가는 “삶이 힘겨운 이들과 아픔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 쓴 것”이라고 말한다.우리는 진실로 무엇에 지독하게 아파해 보지 않고 헛꿈에 취해 살고 있는데,가열찬 번뇌로 구속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해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그려내려 했다는 것이다. ‘김룡사…’가 절을 무대로 하고는 있지만 일주문 밖의 세상사에 초점을 맞추었다면,‘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은 속세를 떠난 두 수행자의 얘기다.진리를 탐구하는 상구보리(上求菩提)를 통해 성불(成佛)하겠다는 운수승(雲水僧)과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끄는 하화중생(下化衆生)으로 성불하겠다는사판승(事判僧)의 갈등을 다룬다. 이야기는 시주를 받아 천불탑을 지은 뒤 인도에서 진신사리를 가져다 봉안코자하는 사판승 지웅과,그것을 “깨침을 핑계삼아 신도들의 시주금을 잡아먹는 짓”으로 보는 운수승 법상의 사상적 대립으로 풀어간다.그러나 눈에 보이는 길을 가는 지웅과 보이지 않는 길을 가는 법상이 서로 다른 길을 가기에 겉돌고 부딪치지만,그 길은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정찬주는 ‘중물’이 들기는 했지만,자신이 결코 ‘불교작가’는 아니라고말한다.요즘 몇몇 젊은 작가들이 불교적 소재로 돌파구를 찾으려 하고 있다면,자신은 처음부터 불교를 문학적 바탕으로 했다는 점이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그런 만큼 자신의 문학이 불교적 뿌리를 두되,외연을 넓혀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는 다음 작품으로 일본 법륭사의 구세관음(求世觀音)을 다룬 장편을 구상하고 있다.일본사람들은 성덕태자의 등신불이라고 주장하지만,‘성예초’라는 고서는 일본에 불교를 전해준 백제 성왕의 상이라고 기록하고 있다.그는 이 작품을 위해 두 차례나 일본을 다녀왔다.역시 불교를 모티브로 하지만,역사와 문화가 주제가 될 것이라고 한다.그의 말처럼 외연을 넓히는 작업인셈이다. 서동철기자 dcsuh@
  • 박삼중스님 후원회 염주 사기판매혐의 내사

    사형수의 아버지로 불리며 권희로(權禧老·71)씨 석방에 큰 힘을 보탰던 부산 자비사 박삼중 스님 후원회가 염주를 사기판매한 혐의로 경찰의 내사를받고 있다. 부산 금정경찰서는 7일 이 후원회가 지난 6월부터 지금까지 삼중 스님의 법회에 참가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플라스틱 염주를 게르마늄 염주로 속여 판매한 혐의를 잡고 내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부산 이기철기자 chuli@
  • 불교 인터넷TV 국내 첫 개국

    국내 최초의 불교 인터넷 텔레비전 BIT(Buddhis Internet TV)가 지난 1일부터 본격적인 방송에 나섰다. 인터넷을 통한 한국문화와 불교포교를 목표로 삼고 있는 BIT는 불교 TV(btn)출신 PD 엔지니어들이 지난 8월부터 준비해왔다.종교계의 인터넷 방송은 개신교계의 경우 C3TV 등 3곳,가톨릭 쪽은 평화방송이 운영하는 방송 한 곳이있다. BIT는 지난달 인도 다람살라에서 현지촬영한 달라이 라마 인터뷰를 1시간짜리 특집으로 올린데 이어 사이버 대웅전을 설치해놓고 예불과 천수경 반야심경 등 오디오 서비스도 내보낸다.이와함께 봉선사 회주 월운스님,진각종 종학연구실장 혜정정사,진각종 총무부장 회정정사의 동영상 설법을 비롯해 사이버 법당에 연등을 달 수 있는 코너도 마련됐다.앞으로 청소년 대상의 포교를 위한 ‘뮤직갤러리’를 비롯해 불교의 화두를 주제로 한 ‘선만화’,불교문화를 테마별로 엮는 주간 다큐멘터리 ‘한국의 불교문화’도 서비스할 계획이다. BIT의 임동민 대표(책임프로듀서)는 “불교계 전체로 볼때 인터넷에 대한이해가 미흡하지만 청소년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불교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높이기 위해 방송을 시작했다”면서 “특정 교단이나 사찰 등의 영향을 배제하기 위해 철저하게 재가불자들의 도움과 투자로 유지해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 [외언내언] 아름다운 布施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한 사람이 탈출했다.분노한 나치 수용소장은 그 탈출자 대신 유대인 10명을 무작위로 뽑아 아사형(餓死刑)에 처하기로 했다.재수없게 뽑힌 사람중 한 명이 불쌍한 마누라와 가엾은 아이들 때문에 자신은죽을 수 없다며 울음을 터뜨렸다.그때 마르고 여윈 한 사내가 수용소장 앞으로 걸어 나가 “저 사람 대신 내가 죽겠소.나는 아내와 아이들이 없으니까”하고 말했다. 이렇게 남을 대신해 수용소 지하 아사감방에 끌려가 죽은 사내의 이름은 막시밀리안 콜베.폴란드인 가톨릭 신부다.처음엔 그를 비웃던 간수들도 죽기직전까지 아사감방에 함께 수감된 사람들을 위로하며 기도하는 그의 담담한시선을 나중엔 마주 쳐다보지 못했다.나치가 패망하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사람이 콜베 신부 이야기를 책으로 써 내면서 그의 “고귀한 희생이 바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었다”고 회상했다.콜베 신부는 영국 성공회의 본산 웨스트민스터 성당이 지난 97년 종파를 초월해 전 세계적으로 뽑은 ‘20세기의성인-순교자’ 10명에 포함됐다. 콜베 신부의이야기에 버금갈 만한 감동을 주는 아름다운 자기희생이 최근우리나라에서도 있었다.전북 남원 승련사의 용봉 스님(29)이 기독교 신자인신부전증 환자에게 신장을 기증했고 신장 기증을 받은 환자의 남편은 자신의 신장을 또 다른 환자에게 기증하는 릴레이 장기이식 수술이 지난 17일 이루어졌다. 타인의 생명의 불씨를 살리기 위한 이 릴레이 장기이식은 불신과 증오와 이기심이 만연한 사회에 사랑의 불씨를 점화시킨 생명의 보시(布施)인 셈이다. 이런 생명 나누기 릴레이가 있기에 세상은 그래도 살 만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이 생명 나누기 릴레이가 세간의 주목을 받는 것은 장기 기증자가 스님이었고 그 장기를 이식받은 환자가 기독교 신자이기 때문인 듯싶다.우리사회에 종교간의 벽이 그만큼 높다는 이야기다.초등학교에 세워진 단군상이신앙의 대상인가 아닌가 시비가 붙어 목이 잘려 나가고,불교 사찰에 타종교광신도의 소행으로 보이는 의문의 방화가 잇따르는 현실을 반영하는 반응이다. 그러나 용봉 스님은 “모든 만물의 이치가 인연을 따라 서로 돕고 사는 것인데 하물며 생명을 살리는 데 종교의 벽이 있어서야 되겠느냐”고 말했다한다.어리석은 중생을 질타하는 일갈(一喝)로 들린다.유태교와 가톨릭 사이의 벽도 높지만 콜베 신부는 예수의 사랑을 실천했고 용봉 스님은 불교와 기독교의 벽을 넘어 부처의 자비를 실천했다.두 종교인이 실천한 숭고한 자기희생을 모든 사람이 그대로 따라하기는 어렵겠지만 ‘옷 로비’ 사건이 보여주는 것 같은 이기적이고 추악한 종교인의 모습은 더이상 나타나지 않았으면좋겠다. [任英淑 논설위원 ysi@]
  • 우리 춤사위로 푼 ‘노틀담의 꼽추’

    이광수 소설 ‘꿈’,스페인 시인 가르시아 로르카의 ‘피의 결혼’‘예르마’등을 춤으로 풀어낸 김복희 한양대교수가 이번에는 ‘노틀담의 꼽추’를번안해 무대에 올린다.김복희무용단이 12월 4∼6일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선보이는 현대무용 ‘천형,그 생명의 수레’가 그것. 무용에서는 무대가 15세기 말 파리에서 근대화이전의 한국 농촌사회로 바뀐다.고결한 마음을 가졌지만 추악한 외모에 불구인 콰지모도는 낡은 절의 종치기 스님으로,아름답고 순결한 집시소녀 에스메랄다는 남사당패의 유일한여자인 애기 어름산이로 탈바꿈한다. 천형(天刑)을 안고 태어난데다 스님이라는 신분 탓에 그는 현실에서 애기 어름산이와 사랑을 나눌 수 없다.그렇기에 무대에서는 꿈과 현실세계가 교차한다.꿈에서 둘의 사랑은 이루어지지만 현실에서 애기 어름산이는 남사당 공연 허가를 얻느라 지역유지에게 몸을 바쳐야 하고,결국은 잇따른 죽음으로 모두 파멸을 맞는다. 남사당패가 등장하기 때문에 꼭두각시놀음,줄타기 같은 남사당의 재주가 춤으로 재창조된다.그렇다고 떠들썩한 재주부리기 한마당이 되지는 않는다.‘간단한 선’‘간결한 표현’으로 남사당패의 아픔을 승화한다는 게 안무자인 김복희교수의 생각이다. 아울러 “세계적으로 널리 사랑받는 줄거리에 불교의 윤회설 등 한국적 정서와 춤사위를 담아내고 싶었다”고 김교수는 밝혔다.손관중 한양대교수가 스님 역을,서은정 대전대교수가 꿈속의 애기 어름산이 역을 맡아 춤춘다.현실의 애기 어름산이는 단원인 이정연·박은성이 번갈아연기한다. 지난 71년 창단이래 김복희무용단은 프랑스 이탈리아 이집트 태국 일본 미국 멕시코 과테말라 등 세계 곳곳을 누비며 활발한 해외공연을 해왔다.세계무대를 노려 ‘노틀담의 꼽추’이야기를 빌려쓴 안무자의 야심은 곧 국내팬들에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공연 시각은 4·5일 오후5시,6일 오후7시30분.(02)2290-1332. 이용원기자 ywyi@
  • 동화 ‘잠깨는 산’

    최근 나온 ‘잠깨는 산’은 아이들에게 여러가지를 느끼게 해준다.동승(童僧)의 이야기나 월남전 참전용사로 고엽제후유증을 앓는 아저씨의 이야기는아이들의 영감을 일깨워준다. 책 제목이기도 한 ‘잠 깨는 산’은 산속 절에 사는 아기스님과 화가의 이야기.지루한 일상에 지친 아기스님은 어느날 화가를 따라 서울로 가겠다고불쑥 말을 꺼낸다.어릴 때 어머니를 잃고 정에 굶주리며 살아왔던 화가는 아기 스님이 남같지않다.그러나 막상 떠날 날이 되자 아기 스님은 망설인다.“숲속의 다람쥐와 토끼,가재 등 겨울잠을 자고 일어나면 내가 아무런 인사도없이 떠나버린 것을 알면 섭섭해할 것 같아서…”라는 게 이유. ‘우리 동네 김상사’는 월남참전용사의 입을 빌어 전쟁의 참상을 전해준다. 또 아이들에게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해준다. 초등학교 5,6학년을 위한 책.문공사 6,000원. [허남주기자]
  • 두 종교인의 진솔한 ‘삶의 나침반’

    “참된 사랑은 요구하는 것입니다.그러나 사랑의 아름다움은 사랑의 이름으로 하는 요구에 있습니다.사랑의 이름으로 스스로에게 요구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교황 요한 바오로2세)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불교경전 숫타니파타중에서) 최근 출간된 교황 요한 바오로2세의 어록집 ‘사랑은 하늘이 준 선물’(예문)과 법정 스님이 번역한 불교 최초의 경전 ‘숫타니파타’(이레)는 체험에서 터득한 종교의 진리를 진솔하게 전해,종교 서적이라기보다 삶의 교훈서로눈길을 끈다. ‘사랑은 하늘이 준 선물’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목서한 연설 기도저서 강론중 대표적인 것을 추려 엮은 책이라면 ‘숫타니파타’는 부처가 생전에 제자들에게 설한 가르침을 1149수의 시로 담아 인간이 가야 할 길과 해탈에 이르는 길을 쉽게 전하는 번역서다. ‘사랑은…’에는 무엇보다도 인간정신에 대한 교황의 신념과 관심이 짙게배어 있다.“우리가 자비를 행하는 순간 자비를 받는 사람들로부터 자비를입는다는 것을 깊이 확신해야만 진정으로 자비로운 사랑의 행위가 됩니다”“고통받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 아닙니다.그들은 고통을 겪음으로써 모든 이의 구원에 이바지합니다”“부부야말로 인간적인 조건 안에서변함없는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감동적이면서 때로는 고통스럽기도 한표징입니다” 그런가 하면 민주주의 체제나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지적한 말도 보인다.“민주주의가 도덕성을 해체하거나 비도덕성을 치유하는 만병통치약으로 생각될 정도까지 우상화되어서는 안됩니다”“진보의 영역에 있어서 사회는 분명히 여성들의 재능에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공허한 조언이 아니라 감성과 영감이 묻어나는 말들이다. 숫타니파타는 난해한 불교용어나 철학적인 개념 대신 단순하고 쉬운 단어들을 사용해 쉽게 풀어낸 것이 특징.“사실은 성자도 아니면서 성자라고 자칭하는 사람은 전 우주의 도둑이요 가장 천한 사람이요”“논쟁을 좋아하고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하는 수행자는 눈뜬 사람의 설법을 알아듣지 못한다”“사람이 태어날때는 그입안에 도끼를 가지고 나온다.어리석은 자는 욕설을 함으로써 그 도끼로 자신을 찍고 만다” 숫타니파타는 법정 스님이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경전이다.그는 경전중한 구절을 오두막 한쪽 벽에 붙여놓고 눈에 들어올 때마다 외우곤 한다는 것.그의 말처럼 찬찬히 들여다볼 삶의 지침들이 풍성하다. 김성호기자 kimus@
  • ‘춘향’ ‘심청’ 춤으로 만난다

    춘향전과 심청전,우리의 고전 두 작품이 춤으로 거듭난다.춘향은 서양춤인발레로,심청은 한국 창작무용으로서. 광주에서 활동하는 박금자발레단은 창작발레 ‘춘향’을 26∼28일 광주문예회관 대극장 무대에 올린다.각 오후7시(062)230-7400. 춘향전은 영화·드라마·뮤지컬 등 온갖 장르에서 재창작이 시도된 대표적인 사랑이야기.장편발레로 만들어진 것은,지난 86년 임성남 안무로 국립발레단이 공연한 ‘춘향의 사랑’에 이어 두번째다. 이번에 처음 공연하는 ‘춘향’은 2막4장으로 구성됐다.1막에서는 춘향과 이도령의 만남과 사랑(1장),그리고 변사또 부임과 옥중의 춘향(2장)을 풀어나간다.2막은 춘향의 갈등과 암행어사 출도(1장)에 이은 춘향-이도령의 결혼(2장)으로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광주시립무용단 주역 및 솔리스트 출신인 신민경 김정미 공병태 김유미 이수희 등이 무대에 서며 특히 26일에는 국립발레단 주역무용수인 이원국이 이도령으로 객원출연한다. 안무는 박금자 조선대교수와 문영 국민대교수 모녀가 함께 했다.우리 역사·고전을 소재로‘심청전’‘장희빈’‘우수영의 원무’(이순신 일대기)등 창작발레를 꾸준히 발표해온 박교수는 “21세기 문화시대를 앞두고 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문화상품으로 만들겠다”고 의욕을 밝혔다. ‘우리 고전의 발레화’라는 의미말고도 지방발레단이 만들어낸 대형무대라는 점에서 무용계는 창작발레 ‘춘향’에 큰 관심을 쏟고 있다. 심청전을 소재로 한 ‘우리 아버지-심청 99’는 춤·타래무용단 10주년 기념공연으로 무대에 오른다.12월 1일 오후7시,2일 오후 4시·7시 문예회관 대극장(02)2272-2153∼4. 판소리 ‘심청가’에서 필요한 부분을 발췌해 여섯마당으로 재구성했다.심청의 효심을 또한번 강조하기 보다는,눈을 뜬 심봉사가 과연 진정으로 마음의눈을 연 것인가 라는 질문에 촛점을 맞추었다. 황성 맹인잔치에서 심청을 만나 눈을 뜬 심봉사는 딸을 팔아먹었다는 죄책감에 잔치자리를 뒤로 하고 길을 떠난다.이때 나타난 스님에게서 시련의 의미를 깨닫는 심봉사 모습을 보며 이 시대에 효는 무엇인지를 다같이 생각해 보자는 게 안무 의도다. 무용단 예술감독인 김말애 경희대교수가 안무를 맡았으며 심청으로 출연한다.심봉사로는 조흥동 한국무용협회 이사장이 나선다. 이용원기자 ywyi@
  • [대한광장] 하찮은 볏짚들이 들려주는 속삭임

    11월이 깊어가고 있다.해가 지는 강화를 찾아나선다.석양에 서고 싶은 반조(返照)의 마음 때문이다.반조는 저무는 해가 자신이 걸어온 동쪽을 마지막으로 비춰본다는 뜻이다. 지난 봄 비가 내리던 48번 국도 주변의 들판에는 이미 알곡을 세상에 바친까칠한 빛깔의 볏짚들이 평화롭게 누워 있었다.마음이 반가웠다.착근을 하느라 바람에 여린 잎을 떨며 찰랑이는 물바닥에 쓰러질 듯 애처롭던 어린 모들이 저들이다.6월에 벼포기가 굵어지고 향기로운 이삭을 피우던 그들은 햇살을 받고 물을 빨아올리며 쉼없이 알을 키워왔다.우리에게 가장 커다란 보시를 준 생명을 찾아보자면,인간의 노동을 돕고 자신의 고기를 바치던 소(牛)와 들에서 자신들의 업을 치르고 우리에게 양식을 가져다주는 저 벼들일 것이다.그러나 도시인들은 경쟁 속에서 바쁘게 살아가기에 그들의 아름다운 생애와 노고를 생각해볼 겨를이 없다. 색이 검어져가는 볏짚의 빛깔에는 위안이 있다.몸은 위안을 받을 뿐 아니라 즐거운 마음이 샘솟는다.이것은 금세기의 마지막 가을에 얻은 뜻밖의 수확이다.수많은 사람들이 이 지상에서 헌신한다지만 어떤 위인보다 저 볏짚들의 보시가 눈물겹다.거룩하다 할 저들의 생애를 생각하면 인간의 끔찍한 역사와 욕망을 잠시 잊을 수가 있다.잔인한 인간의 역사보다 마치 벼의 거룩한생애를 그리려는 작가처럼. “나는 엄살꾼이다.볏단들을 보게나.저들은 얼마나 힘들었겠나.홍수와 불볕을 이겨내고 알곡을 사람들에게 바치고 흙으로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무엇인가를 저 벼들에게서 배우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그것들은 모두 말씀이기에 소유할 수가 없다.누가 저 들녘을 가져갈 수가 있겠는가.진정한 배움은 알곡에도 있지만 누워 있는 볏짚들의 모습에도 있다. 자신을 되돌아보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다.그 무엇들이 질서있게 찾아오고말없이 돌아가는 들에서 ‘빈자일등’의 안타까움이 느껴지지만,그들에게 해줄 것이 아무 것도 없다.그야말로 빈손이다.성인들은 마음이 가난한 자들을도와줄 때 말씀으로 행하였다.진리의 법 이외의 어떤 재화를 나누어 주었다면 그렇게 서로가 사랑하고 아프게 오래 기억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농부의 마음이 느껴진다.25세기 전의 일화가 있다.자로가 삼태기를 메고 가는 노인을 만나,“영감께선 공자 선생님을 보셨습니까”하고 묻자,노인이 “손발을 움직여 일하지 않고,오곡의 구별도 할 줄 모르니 누구를 선생님이라고 하겠는가”라고 대답한다.자로가 노인의 아들에게 벼슬하지 않는 것은 의로운 일이 될수 없다고 가르치지만 되레 은둔한 노인이 흥미로워진다. 나는 1999년 11월,농업을 끝낸 서울 교외의 강화에서 중얼인다. “침묵으로 어머니와 아이들에게 밥을 떠먹여주는 생명이 저 벼들이다.그러니 벼들이야말로 사람들의 어머니다. 저들을 믿지 않으면 무엇을 믿을 것인가” 새 천년에 대한 기대와 의문보다 나는 저 겨울 건너편 봄비 속에서 착근할내년의 어린 모들이 기다려진다.찬 논물에서 힘차게 울어댈 풀빛 개구리들의 겨울잠도 궁금하다.눈얼음 속에서 볏짚들은 자신들의 씨앗을 기다릴 것이다.짐짓 일을 꾸미지 않는 산사의 스님과 한 곳에서 평생을 바치는 상수리나무를 생각하면,참삶이란 어떤 것인가 하는 의문은다시 생각해봐도 쉬운 문제가 아니다.무릇 저 짚풀들의 무언의 속삭임을 새겨들을 뿐이다. “서두르지 말게.제발 천천히 걸어감세.무엇이 그리 바쁜가.바쁘게 걸으면자네도 어렵고 옆 사람도 다칠 것이네.너나없이 일과 사람에 치여 살아가는것 같네그려.좀 느끼며 천천히 사세” 금세기와 송별하는 사람들은 산의 눈구름 같은 감회에 젖어 있을 것이다.우리는 곧 20세기의 과거인이 된다.오늘 누산과 통진을 지나 강화로 가면서,40여일도 채 남지않은 세기의 일몰 속에서 작은 음성을 들은 셈이다.그것은 놀랍게도 별 것이 아닌 일개 볏짚들의 속삭임이었다.깊이 생각할수록 천천히걸어야 한다는 말은 나에게는 적어도 속깊은 당부의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고형렬 시인]
  • [김삼웅 칼럼] 이 나라가 뉘 나라인데

    두 시골 선비가 현의 성문 앞에 와서‘신명정(申明亭)’의 ‘신(申)’자를보았다.한 사람이 말했다.“유(由)자다”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갑(甲)자다”그러자 옆 사람 하나가 말했다.“자네는 머리 하나를 더 달았고, 저 이는 다리 하나를 더 달았다.보아 하니 역시 전(田)자다.” 부분만을 보고 자기만이 옳다고 고집 부리는 것을 풍자한 ‘정선아소(精選雅笑)’에 나온 이야기다.우리 국정조사와 청문회 꼴이다. 뭇 동물이 근심과 절망감에서 회의를 마치고 퇴장하려는 순간에 가장자리에서 아주 명랑한 어조로 “저는 아무 걱정이 없어요”라는 목소리가 들렸다.모두들 놀라 돌아보니 하루살이였다.내일이면 지구의 종말이라는 소식에 대책회의가 열린 마당에서 일어난 소극으로 요즘 학생들 사이에 나도는 ‘썰렁한’이야기다.‘내일’을 모르는 우리 하루살이 정치인들을 풍자한다. 옛날 제나라 환공이 들에 유람을 나갔는데,망한 나라의 옛 성터인 곽국(郭國)의 폐허를 보고 촌부에게 물었다.“이곳은 곽국의 폐허입니다”환공이 말했다.“곽국의 성이 어찌하여 폐허가 되었는가?”촌부가 말했다.“곽국은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했기 때문입니다”환공이 물었다.“선을 좋아하고악을 미워하는 것은 잘한 일인데, 그것 때문에 폐허가 되었다니 무슨 말인가?”촌부가 답했다.“선을 좋아했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했고,악을 미워했으나 제거하지 못했습니다.그런 까닭에 폐허가 된 것입니다.” ‘신서(新書):잡사’의 ‘곽국의 성터(郭國之墟)’에 나온 고 사다. “선을 좋아했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했고, 악을 미워했으나 제거하지 못했다”는 대목이 정곡을 찌른다. 바다에 오적(烏賊)이라는 고기가 있다. 이놈은 먹물을 뿜고는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고 사는데,남이 자기를 볼까 걱정하여 먹물을 뿜어 자기를 숨겼다. 바닷새가 이를 보고는 이상하게 여기다 그 안에 고기가 숨어 있음을 알아 채고는 고기를 잡아 냈다.아, 아! 헛되이 몸을 숨겨 안전을 구할 줄 알았지만, 흔적을 없애 의심받지 않게 할줄은 몰랐던 고로 들키고 말았다. 오적어설(烏賊魚說)’에 나오는 우화다.옷사건,파업유도사건,정형근의원 폭로사건,서경원 전의원 고문사건,DJ 1만달러 수수 조작사건 등을 지켜보면서‘인간 오적 물고기’들을 생각한다. 하루살이에게 얼음이야기를 하지말고, 우물 안 개구리에게 산불 이야기를하지말라 했다.‘갈대구멍으로 하늘을 보는 자 (葦管窺天)’와는 더불어 담론하지 말라 일렀다.옛 선사(禪師)의 게송(偈頌) 한 토막. 不知明日之鷄 但知今日之卵 내일의 닭을 모르고 오늘 달걀만 아는가. 솔개가 참새를 쫓자 참새가 스님 소매 속으로 들어갔다.그러자 스님은 손으로 참새를 쥐고 말했다.“아미타불, 내 오늘 고기 한덩어리 먹게 되었구나. ”참새는 눈을 감고 꼼짝하지 않았다. 스님은 참새가 죽은 줄 알고 손을 폈고 참새는 즉시 날라갔다.그러자 스님은 말했다.“아미타불,내 오늘 너를 방생했노라.” 간지와 교활과 언어의 유희를 통해 양비론을 펴는 이성(理性)의 약탈자들,소잡아 먹는 권력에는 침묵·방조하고 계란 깨뜨리는 권력에는 이성을 잃은지식인들의 양면성을 고발하는 우화다. 어떤 사람이 큰 기러기가 하늘에서 나는 것을 보고 활을 당겨 쏘려고 하다가 말했다.“잡으면 삶아 먹어야지” 그 아우가 다투어 말했다.“고기는 삶아 먹는 것이 마땅하나 날아다니는 기러기는 구워먹는 것이 마땅해요”형제는 다툼을 그치지 않다가 고을 수령을 찾아가서 판정을 청했다.수령 왈 “기러기를 반으로 갈라 각각 굽고 삶으라”고 했다. 잠시후 기러기를 찾으니 이미 하늘 높이 멀리 날아갔다. 〔'응해록(應諧錄)'〕 여야의 진흙밭싸움,특검의 내분,정치인들의 ‘아니면 말고’식의 끝없는 폭로, 표류하는 국회,‘기러기’는 저만치 날아가는 데 끝모르는 쟁론으로 20세기를 보내는가.“이 나라가 뉘 나라인데.” 주필
  • [대한광장] 낙엽을 밟으며

    처음 산사로 출가해 봄을 맞게 되었을 때였습니다.이름 모를 새도 지저귀고,소쩍새울음도 들리기 시작하는데 앙상한 나뭇가지는 움틀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이상하다? 다른 곳에서는 벌써 잎이 파릇파릇한데 이 산 속의 나무들은 왜 이렇게 싹이 나지않지?나무들이 모두 죽었나”하고 생각하였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성철스님께서 마당에 나오셔서 산책을 하고 계셨습니다.가까이 다가가,“스님! 나무들이 아직도 새싹이 나지않으니 다 죽었나봅니다”하고 말씀드리니,스님께서 한참 저를 빤히 쳐다보다가,“세상에 너같이 똑똑한 놈 처음 본다”하시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니 나뭇잎들의 움트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아하! 스님 말씀처럼 내가 똑똑하기는 참 똑똑한 모양이다” 중얼대며 무안해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그렇게 산사의 봄은 늦게 오는 것이었습니다.처음에는 잘 몰랐는데,초록은 한가지 색이지만 나무마다 돋아나는 새싹들은 제각각 색깔을 띱니다.봄마다 다투는 초록색의 잔치는 단풍 못지않은 장관임을 알게 된 것도 10여년 산 속에 살면서였습니다.푸른 나뭇잎이 여름의녹음을 지나 가을단풍이 드는 모습도 우리가 느끼듯 제각각이어서 산사의 아름다움을 더해줍니다. 단풍 가운데서 제일 먼저 빨갛게 물이 드는 나무는 잎이 넓은 옻나무입니다.산에서는 ‘물구리’라고 해서 가느다란 잡목을 베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데 그 가운데 옻나무가 있어 옻이 올라 고생했던 행자시절이 있는데,옻나무가그리 곱게 물드는 줄 알고 참 신기해 했습니다. 가을마다 단풍이 곱게 물들지만 똑같은 단풍이 아닙니다.어느해는 정말 곱게 물들어 그 해는 스님들이 ‘금색단풍’이라 이름붙이고,어느 해는 칙칙하게 물들어 영 시원치 않은 해도 있는데 그 해는 ‘똥색단풍’이라고 이름붙입니다.도시사람들은 단풍드는 산을 찾아와 좋아하지만 단풍이 금색인지 똥색인지 잘 구별하지 못합니다.그렇지만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단풍이 잘들었는지 못들었는지 알아채기도 합니다. 서울살이를 하면서 처음 가을을 맞이했습니다.아무런 가을정취도 없을 것같은 서울생활 속에서도 뜻밖에 가을정취를 느낄 수 있어 감격스러웠습니다.경복궁을 거쳐 청와대 주변을 거닐며 금빛으로 물든 은행잎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학생들이 우루루 몰려가서 서로 고운 잎들을 주으려는 모습을 바라보노라니 마음이 말할 수 없이 정겨워졌습니다. 그러나 저에겐 이 가을이 마냥 아름다운 가을일 수만은 없습니다.‘다시 산중으로 돌아가며’라는 귀거래사를 남기시고 고산 전 총무원장 스님께서 산사로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당신과는 관계없는 법적 하자로 총무원장선거를 다시 하게 되었는데,스님은 불교 자주권과 법통수호를 위해선 경선이 아닌추대형식이어야 한다는 생각이셨습니다.대다수 종도들도 그렇게 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그러나 선거가 공고되자 스님을 단독후보로 모시자는 소리는어디론가 쑥 들어가버리고 말았습니다.“자존심도 지키지 못하는 종단에 남아 내가 무슨 일을 하겠나!”하는 심정으로 돌아가신 듯 싶습니다.모셨던 사람으로서 죄송스러운 마음뿐이었습니다. 저는 해인사 산중에서만 살아서 선거가 무엇인지도잘 몰랐습니다.어른스님들이 결정하면 저희들은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던 것입니다.서울에 살면서 3번째 선거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종단의 지도자를 모시는 방법이 꼭 이래야만 될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선거판이 벌어지고 반가웠던 스님들끼리 서먹한 사이가 돼 또 어떻게 정다워지지 하는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그러나 이제 종단도 좋은 지도자를 모셨으니 국민들에게 신뢰받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올해는 비가 잦아 가야산 단풍도 시원치 않다고 합니다.전국의 단풍도 예년같지는 않다고 합니다.내년에는 날씨가 순조로워 좋은 단풍이 들 것을 기대해 봅니다. [圓澤 조계종 총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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