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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왕실의궤, 오늘 日중의원 본회의 가결땐 새달 귀환

    일본이 조선왕실의궤 등 1205책의 조선 도서를 한국에 반환하는 내용의 한·일도서협정이 27일 일본 중의원 외무위원회를 통과했다. 중의원 외무위는 일본 정부가 제출한 한·일도서협정 비준안을 심의한 뒤 표결을 통해 다수 찬성으로 가결해 28일 열릴 중의원 본회의로 넘겼다. 표결에서 제1야당인 자민당은 당론으로 반대했지만 민주당과 공명당, 사민당 등의 소속 의원들은 찬성했다. 마쓰모토 다케아키 외무상은 외무위원회에서 “한국도서의 인도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구축에 도움이 되고 양국 문화교류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본회의 통과하면 사실상 비준종료 28일 중의원 본회의에서 한·일도서협정이 가결되면 사실상 비준이 종료된다. 다음 달 초에 열릴 참의원 외무·방위 위원회와 13일 열릴 본회의를 통과해야 일본 의회의 비준 절차가 끝나지만 조약의 경우 중의원 가결 우선 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참의원에서 반대해도 협정이 발효된다. 한·일도서협정 같은 조약은 중의원이 비준하면 ‘여소야대’인 참의원이 부결하더라도 일본 헌법 61조의 중의원 우선 원칙에 따라 비준된 것으로 간주한다. 참의원이 심의를 하지 않아도 30일 후 자동 발효된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이르면 이명박 대통령이 한·중·일 정상회의를 위해 도쿄를 방문하는 다음 달 21~22일이나 늦어도 6월 안에 우리 정부에 도서를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조선왕실의궤 환수위원회 혜문 사무총장은 일본 중의원 제2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약탈 문화재를 다시 찾아오게 된 것이 무척 기쁘다.”며 “조선왕실의궤가 반환되면 정부가 대대적인 환영행사를 벌이는 것은 물론 이들을 국보로 지정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李대통령 방일 맞춰 상반기내 귀환 혜문 스님은 “조선왕실의궤 이외에도 불법성을 입증할 수 있는 몇 가지 문화재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할 것인지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간 나오토 총리는 지난해 8월 10일 한일병합 100년 담화에서 “일본의 통치기간 조선총독부를 경유해 반출돼 일본 정부가 보관하고 있는 조선왕실의궤 등 한반도에서 유래한 귀중한 도서를 한국민의 기대에 부응해 가까운 시일에 인도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한국과 일본 정부는 지난해 11월 아시아·태평양정상회의(APEC)가 열린 요코하마에서 한·일도서협정을 맺었고, 일본 정부는 지난해 12월 임시국회에서 국회 비준을 추진했으나 무산되자 이번 정기국회로 넘겼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조선왕실의궤 새달 돌아오나

    조선왕실의궤 새달 돌아오나

    일본 궁내청에 소장된 조선왕실의궤 81종 167권을 포함한 일제 약탈 도서 1205권의 국내 반환과 관련해 불교계가 대대적인 환영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6일 불교계에 따르면 약탈 도서 반환 일정이 확정되는 즉시 일본 도쿄에서 한·일 양국의 각계 인사들이 참석하는 ‘환국 기념 축하 연회’ 개최를 시작으로 서울 광화문과 홍릉(고종과 명성황후 합장릉), 강원도 월정사 오대산 사고 등지에서 환국 환영 행사를 잇따라 열 예정이다. 불교계가 이처럼 환영 행사를 서두르는 것은 최근 일본 국회에서의 비준 절차가 급물살을 타고 있어서다. 약탈 도서는 지난해 11월 이명박 대통령과 간 나오토 일본 총리 간에 체결된 반환 협정에 따라 반환키로 돼 있었지만 야당인 자민당이 정기국회에서 협정 비준을 거부한 데다 동일본 대지진 발생으로 반환 일정이 지연돼 왔다. 불교계는 그동안 강경하게 ‘반환 반대’ 입장을 지켜온 자민당의 입장이 유연해졌고 다음 달 15일 일본 외무대신의 방한에 이은 20∼22일 이명박 대통령의 방일이 맞물려 있어 조기 반환을 낙관하는 눈치다. 일본 국회는 지난 18·22일 두 차례에 걸친 중의원(하원) 외무위원회 심사에 이어 27일 외무위 표결, 28일 본회의 표결을 진행할 예정이다. 중의원 의원 30명 중 여당인 민주당이 과반 이상인 20명을 차지하는 만큼 중의원 비준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게 불교계의 관측이다. 지난 22일 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 운영위원장인 법상 스님, 사무처장인 혜문 스님과 함께 일본 중의원 외무위 심사를 참관한 이상근 실행위원장은 “반환에 찬성하는 민주당 의원이 20명이고 자민당을 뺀 다른 야당도 긍정적이거나 조건부 찬성 의사를 보여 협정 비준 통과를 확신한다.”고 밝혔다. 다음 달 10일 열릴 상원 격인 참의원 국가안보위원회와 11일 본회의 통과도 의원 구성상 큰 문제가 안 된다는 게 환수위 측의 전망이다. 환수위 측 전망대로라면 약탈 도서는 참의원 비준 통과 후 양국의 외교·행정 절차를 걸쳐 다음 달 말이나 6월 초쯤 반환될 예정이다. 불교계가 국내외에서 반환 환영 행사를 열기로 계획한 것도 그 무렵과 맞물려 있다. 불교계 일각에선 “이명박 대통령이 방일 후 귀국길에 상징적으로 의궤 한권쯤을 갖고 오지 않겠느냐.”는 기대도 번지고 있다. 불교계의 앞선 기대와 달리 일본 국회의 상황은 섣불리 장담할 수 없다는 관측도 있다. 지난 22일 중의원 외무위 심사 때 일부 자민당 의원이 독도 영유권과 반환 조건 등을 문제 삼았다는 전언이 있는 것을 보면 여전히 자민당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여기에 여당인 민주당과 다른 야당 의원들의 이탈이 있을 경우 향후 일정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빠질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불교계를 포함한 국민의 기대가 또다시 실망으로 바뀔 것인지는 결국 28일 중의원 본회의 결과를 보고 판단해야 할 것 같다.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정부의 문화재 인식 변화 진정성 지켜볼 것”

    “정부의 문화재 인식 변화 진정성 지켜볼 것”

    “자비의 종교인 불교 사찰에서 오가는 이를 막고 통제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문제는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부·여당 측의 인식 변화가 어느 정도 감지되고 있음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26일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밝히고 최근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정부·여당의 문화재에 대한 인식 변화의 진정성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 문화재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불교문화재는 비단 불교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의 소중한 유산입니다. 정부·여당이 적극적으로 관리·유지·보수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 책임을 지지 못한다면 차라리 문화재를 해체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자승 스님은 이날 템플스테이 예산 파문 후 정부·여당 인사의 조계종 사찰 출입을 봉쇄했던 종전 입장에선 현격히 유연해진 모습을 보이면서도 “여전히 문화재를 홀대하는 정부·여당 인사들과는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래서 일단 다음달 10일 석가탄신일 봉축 법요식엔 정부·여당 인사를 초청하지 않고 모든 의식에도 참여시키지 않을 방침이다.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지금&여기] 2011년 봄날 ‘메멘토 모리’/박록삼 문화부 기자

    [지금&여기] 2011년 봄날 ‘메멘토 모리’/박록삼 문화부 기자

    늘 그렇다. 봄은 잔인하다. 1960년 4월의 봄이 그랬고, 1980년 서울·광주 등 도처의 봄이 그랬다. 1991년 봄날도 마찬가지였다. 모란이 지듯 자고 일어나면 젊은이들이 제 목숨을 바닥에 뚝뚝 내려놓았다. 많은 서러운 죽음이 있었고, 잔혹한 죽임이 있었다. 쉬 지워내기 어려울 만치 혹독했다. 시대의 봄날뿐 아니라 개인에게도 그러했다. 최근 자서전 ‘스님은 사춘기’를 펴낸 봉은사 전 주지 명진 스님도 여섯살에 여읜 어머니와 네살 터울 동생의 군대 사고사 기억이 공교롭게도 모두 어느 봄날의 것임을 고백한다. 올해 봄도 어느 시절의 봄날 못지않게 잔인하다. 모든 장애와 우려, 반발을 무릅쓰고 속도전을 펼치는 4대강 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계속 죽어 나가고 있다. 지난 18일 금강6공구에서 ‘굴착기사 김씨’가 25t 덤프트럭에 깔려 숨졌다. 저녁 7시 야간작업 중이었다. 이틀 앞서서는 낙단보 공사현장에서 인부 하씨와 김씨가 콘크리트가 무너져 숨졌다. 역시 전날 야간공사 때 부은 콘크리트가 채 마르지 않은 곳에서 일하다 빚어진 사고였다. 4대강과 함께 묻혀 버린 19명 중 11명이 올해 봄날을 전후해서 떠났다. 삼성전자에서 하루 10~15시간씩 일하며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20대 젊은이는 회사 측의 사과 한마디를 받으려고 지난 15일까지 무려 97일 동안 냉동고에 누워 있어야 했다. 우리의 봄날을 더욱 우울하게 만든 카이스트 학생 4명, 교수 1명의 죽음은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다시 명진 스님의 책 얘기다. 그는 돌이켜보니 죽음의 기억이야말로 자신의 출가와 공부, 수행을 지탱시켜준 힘이자 불보살(佛菩薩)이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살아남은 자가 죽음으로부터 배운 소중한 가르침이다. 방사능이 한반도로 오네 마네 하며 막연한 공포가 감도는 올해 봄날에도 키 낮은 제비꽃은 보랏빛 움을 틔웠고, 연분홍 앵두꽃, 벚꽃은 속절없이 제 멋을 뽐내며 난분분히 휘날리고 있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 또 다른 겸손한 생명을 틔우기 위해서는. youngtan@seoul.co.kr
  • [열린세상] 일본 대지진은 신의 징벌인가?/김진 울산대 철학 교수

    [열린세상] 일본 대지진은 신의 징벌인가?/김진 울산대 철학 교수

    3·11 대지진으로 일본 열도의 침몰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다. 도호쿠(東北) 지방 부근 해저에서 발생한 진도 9.0의 강진과 대형 쓰나미는 수만명의 인명피해와 후쿠시마 원전폭발이라는 초대형 사고를 불러왔다. 이러한 대재앙에 대해 조용기 목사는 ‘하나님의 경고’로, 그리고 이시하라 도쿄 시장은 ‘천벌’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세인의 빈축을 샀다. 미국의 예언가 에드가 케이시는 최면상태에서 LA, 샌프란시스코, 뉴욕이 초토화되는 것을 보았으며, 일본의 대부분도 물속에 가라앉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소련 공산주의의 몰락과 중국의 민주화를 예언한 바 있다. 16세기 조선 명종 때의 풍수사상가인 남사고 선생이나 19세기 조선 헌종 때의 예언가인 송하노인도 일본 침몰을 거론한 바 있다. 특히 1983년 자신의 임종을 예고했던 탄허 스님은 일본의 3분의2 이상이 바다로 침몰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인들도 이런 사실을 인정한다는 점이다. 히구치 신지 감독이 2006년에 발표한 영화 ‘일본침몰’은 바로 그 같은 일본국민의 잠재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스루가만에서 진도 10 이상의 대지진이 발생한 후 도쿄, 규슈 등 일본 전역에서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 나라 전체가 초토화되어 가라앉는다는 내용이다. 지금 그 영화의 내용은 일본인들에게 현실로 다가왔다. 대형 자연재해는 도덕적 타락에 대한 신의 징벌일까? 이 물음은 1755년에 발생한 리스본 대지진에서도 핫이슈였다. 리스본 대지진은 가톨릭의 모든 성인을 기념하는 대축제인 만성절의 오전 미사 중에 발생했다. 당시 교회에서는 전염병이나 대형 자연재해를 신의 징벌로 인식했으며, 대다수의 교회 지도자들은 죄악에 물든 리스본이 신의 심판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25만명의 리스본 인구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였으므로, 2만~3만명의 사망자를 낸 대지진은 동시에 가톨릭에 대한 심판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칸트와 볼테르를 비롯한 계몽주의자들은 다소 의견의 차이가 있었지만, 신의 징벌이 아닌 단순한 자연 현상으로 보았다. 그럼에도 논란은 계속되었다. 칸트조차도 말년의 저술 ‘만물의 종말’에서 자연재해와 같은 종말적 사건을 불의에 대한 징벌로 생각할 수 있다고 말을 바꿨다. 지난 500년 동안 수십 차례에 걸쳐 침략을 당한 우리 국민들로서는 일본 대지진 ‘징벌론’을 연상하는 것이 자연스러울지 모르겠다. 그런데 국민들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불편한 과거를 초월한 일본 돕기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심지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할머니들까지 동참했다. 우리 국민들의 반응에 미국과 유럽의 언론들조차 의아해할 정도였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속셈은 전혀 달랐다. 그들은 대재앙 속에서도 독도를 자국 영토로 수록한 교과서 검정을 단행했다. 구로다 가쓰히로 산케이신문 서울지부장은 한국이 지진 참사를 당한 일본에 독도를 내어주는 것이 좋겠다는 망언까지 했다. 자국 영토가 침몰하는 그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독도를 탐하는 후안무치야말로 일본을 대표하는 언론 지성인의 모습인 것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일본론’이라는 글에서 이토 진사이(伊藤仁齋), 오규 소라이(荻生 일본 정치인들이 3·11 대지진을 자신들의 부당행위에 대한 신의 징벌로 인식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필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본다.
  • 초기불경 ‘니까야’ 4부 세계 첫 완역

    부처님이 직접 한 말씀을 고스란히 담은 경전인 파알리어 경장 중 가장 긴 말씀들을 엮은 ‘디가니까야’가 한글로 완역됐다. 전재성 한국빠알리성전협회장이 2년 6개월간의 작업 끝에 세상에 내놓은 역저. 원고지 1만매 분량, 신국판 1560쪽에 무려 2931개의 주석을 단, 방대한 복원 번역본이다. ‘디가니까야’는 장아함경으로 알려진 초기불교 경전. 초기경전은 보통 출가자 생활규범을 담은 율과, 붓다의 가르침을 담은 경, 경의 해석과 설명을 모은 논의 삼장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디가니까야’는 다섯 부분의 경 가운데 길이가 긴 말씀을 모아 ‘길게 설하신 경’으로 널리 통한다. 한국 불교계에선 2006년 각묵 스님의 3권짜리 한역본에 이어 두 번째 한역본을 맞게 된 셈이다. 전 회장은 이번 ‘디가니까야’ 한역에 따라 ‘쌍윳따니까야’(2002년), ‘맛지마니까야’(2003년), ‘앙굿따라니까야’(2008년)를 포함해 4부 니까야를 세계 최초로 모두 완역한 인물로 기록됐다. ‘디가니까야’는 부처님 열반 직후 제자들이 모여 부처님 생전의 말씀을 모은 이른바 1차결집 이래 전승돼 온 대표 초기경전. 한역본 대승경전과 달리 부처님 말씀의 가감 없는 진수를 그대로 알 수 있는 경전으로 인정받는다. 우주와 인간, 삶과 역사, 윤회에 대한 거대 담론을 담고 있고 무엇보다 바른 마음챙김(正念)을 진정한 도의 핵심으로 가르치며 마음과 지혜의 해탈을 완성한 부처님의 아라한 경지를 볼 수 있는 언어들이 돋보인다. 이번 ‘디가니까야’는 붓다고사의 정통주석서 수망갈라빌리시니에 바탕해 풀어낸 설법 모음집이란 게 특징. 다른 경들에서 소개됐던 잘못된 견해 62가지를 정교하게 분석한 것을 비롯해 고행주의자의 삶, 신통의 기적, 과거칠불의 사회적 지위·이름·주요제자 생애까지 상세히 묘사해 놓았다. 불교의 핵심인 연기와 1에서 10까지 불교의 법수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돋보인다.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완전한 열반의 큰 경’. 부처님이 마지막 생애에 한 일과 말씀, 사건들이 놀랄 만큼 사실적으로 전해진다. 그야말로 “모든 형성된 것들은 부서지고 마는 것이니,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라.”는 마지막 유훈의 형성과정을 속속들이 살펴볼 수 있다. 특히 가섭이 부처님의 법을 이어받았다고 흔히 알려진 삼처전심 중 ‘곽시쌍부’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비롯해 일반 통설의 허구를 파헤친 점이 흥미롭다.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조계사 문 열렸다” 與 불자회 의원 4개월만에 법회

    “조계사 문 열렸다” 與 불자회 의원 4개월만에 법회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굳게 닫혔던 조계사 문이 4개월여 만에 활짝 열렸다. 19일 오전 한나라당 불자회 소속 의원 20여명이 ‘전통문화수호 및 사회갈등 해소를 위한 상생과 화해 다짐법회’를 가지면서다. 국내 최대 종단인 조계종도 정부·여당에 대한 출입금지령을 완화했다. 이로써 지난해 말 템플스테이 예산 삭감 등으로 갈등의 골이 깊어졌던 한나라당과 불교계의 관계가 해빙단계에 접어드는 모양새다. 김무성 원내대표와 한나라당 불자회장 이인기 의원, 국회 불자모임인 정각회 회장 최병국 의원, 조윤선·김학송·서병수·장윤석·정태근 의원 등 소속 의원들은 대웅전에서 참회의 108배를 한 뒤 법문을 들었다. 법회를 주도한 도법 스님은 “정부·여당이 우리의 전통문화를 지키는 일을 마치 특정 종교를 지원하고 혜택을 주는 것처럼 여기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짓”이라면서 “정부·여당과 조계종단 모두가 자성과 쇄신을 통해 오직 국민을 부처님처럼 섬기고 국민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지난달 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무릎을 꿇고 통성기도를 한 것에 대해서 “그 대상이 국민들을 위한 것이었다면 국민들로부터 냉소와 비난을 받을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라면서 여전히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한나라당 불자회 총무인 조문환 의원은 발원문을 통해 “불자회는 정부·여당과 불교계 간의 상생화합과 소통을 위한 가교역할에 소홀했던 점을 참회하며 앞으로는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법회에 앞서 한나라당 출입 허가에 반발해 침묵시위를 하던 대한불교청년회장이 의원들을 막아서면서 김학송 의원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옛 모자·신발, 우리 민족 삶 엿보다

    옛 모자·신발, 우리 민족 삶 엿보다

    진정한 패셔니스타의 완성은 모자, 신발 등 작은 액세서리로 이뤄진다. 굳이 멋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짚신에 국화 그리기’, ‘개구멍에 망건 치기’ 등 속담들만 봐도 모자와 신발은 백성들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집에서는 정자관 또는 사방관을 쓰고 있다가 궁에 들어설 때는 사모를 챙겨 썼다. 눈이 펑펑 내리거나 비가 오면 가죽신에 털벙거지 또는 갓 위에 기름종이로 만든 갈모를 얹었다. 아이들은 앙증맞은 조바위로 귀여움을 뽐냈고, 스님들은 소나무 뿌리에 붙은 송라로 만든 승립으로 한껏 멋을 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20일부터 ‘머리에서 발끝까지’라는 주제로 모자, 신발 특별전을 연다. 오는 6월 13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전시는 남녀노소 또는 시대를 가리지 않고 오랜 세월에 걸쳐 우리의 전통 문화로 남겨진 ‘패션 장신구’들이 벌이는 한마당 잔치다. 조선 후기 지름 70㎝가 넘는 커다란 갓을 쓰던 시절부터 시작해 근대화의 상징과 같은 중절모를 거쳐 삐딱히 눌러쓰던 교련 모자까지 아울렀다. 또한 비단 위에 구름 무늬를 새긴 운혜, 당혜와 사슴 가죽으로 만든 녹비혜, 백목화 등의 명품 신발부터 비올 때 신는 나막신, 민초들이 신던 미투리, 산간지방의 겨울나기 필수품 설피, 저승길 발품 팔던 종이로 만든 지혜(紙鞋), 검정고무신 등까지 다채롭게 갖췄다. 양반들이 쓰던 갓의 시대적 변천사도 재미있다. 17세기 지름 72.3㎝에 모정(帽頂·갓모자) 19.5㎝의 넓은 갓은 64.5×19㎝로 점차 줄어들며 갓끈 등으로 멋을 부리던 것이 대원군 시절의 의관 개정을 즈음해 25×10.7㎝로 확 줄어든다. 1920년대 엘리자베스 키스와 1950년대 폴 자클레의 판화를 통해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갓, 방갓, 남바위 등 모자를 쓴 모습이 다양하게 펼쳐져 있다. 이와 함께 입자장 박창영, 화혜장 황해봉, 화관 족두리 박성호 등 중요무형문화재 장인들의 시연도 눈길을 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자승 스님, 승적위조 무혐의”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의 승적부 위조 의혹에 대해 다시 한번 무혐의로 결론 났다.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 김창)는 승적부 위조,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고발된 자승 스님을 혐의 없음 처분했다고 17일 밝혔다. 자승 스님은 2009년 총무원장 후보로 등록하면서 승적부를 위·변조하고, 수계일과 학력을 허위로 기재해 공정한 선거관리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지난해 9월 고발됐다. 검찰은 자승 스님의 승적부 사본이나 다른 후보자의 이력서 등을 추가 확보해 의혹을 재검토한 결과 이력서는 특별한 양식 없이 후보자가 임의로 필요한 내용을 기재하고, 수계일은 종단의 적법절차에 따라 정정된 점 등이 인정돼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앞서 서울고검 형사부(부장 김경수 검사장)는 자승 스님에 대한 무혐의 처분과 관련, 고발인이 제기한 항고를 받아들여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으로 돌려보냈다. 김승훈기자 hunnam@seoul.co.kr
  • 아름다운 간이역 마을 구경오세요

    아름다운 간이역 마을 구경오세요

    1930년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함으로써 누리꾼들로부터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으로 선정된 경북 군위군 산성면 화본역 일대가 관광상품으로 부활한다. 군위군은 16일 화본역 인근의 옛 산성중학교를 리모델링해 1960, 70년대의 생활상 등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한 추억의 학교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를 개관한다. 추억의 학교에는 40~50여년 전의 시골학교 교실을 비롯해 이발소, 사진관, 소리사, 만화방, 문방구, 구멍가게, 연탄가게 등이 그대로 재현됐다. 부모와 자녀가 도자기 체험 등을 할 수 있는 체험장도 함께 마련됐다. 군은 또 이날 오후 2시 화본마을을 ‘그림이 있는 삼국유사’ ‘추억을 간직한 마을’로 특화시키기 위해 마련한 ‘삼국유사 벽화 그리기’ 공모전 시상식도 연다. 공모전에는 사전 공모를 거쳐 선정된 전국 22개팀이 참가해 현재 마을의 주택 및 담장 벽면 22곳에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이야기 소재를 독창적인 그림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공모전은 일연 스님이 화본마을 인근 고로면 화북리 천년고찰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집필한 곳인 점이 감안됐다. 상금은 최우수작 200만원 등 총 650만원. 3시부터는 추억의 학교에서 한국시인협회가 주관하는 ‘찾아가는 시 축제’ 행사가 마련된다. 박수현·김언정·허윤정 등 시인 9명의 시낭송에 이어 음악공연, 시를 사랑하는 마을 지정패 및 서명 시집 전달 순으로 진행된다. 이곳에는 이근청 시인협회장을 비롯한 시인 50여명과 주민, 관광객 등 2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시인협회는 지난해부터 전국 곳곳을 찾아다니며 시 낭송회를 갖는 ‘길 위의 시인들’이라는 행사를 갖고 있으며, 올들어서는 이번 행사가 처음이다. 장욱 군위군수는 “기차와 멀어진 화본역이 관광객을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각종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면서 “옛 정취와 낭만, 추억이 어우러진 화본역을 관광 명품 간이역으로 만들 작정”이라고 말했다. 군위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김수환·법정 영화 무료시사회

    고(故)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두편이 오는 19~20일 서울 견지동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잇따라 상영된다. 종교에 관계없이 누구나 무료로 볼 수 있다. 영화배급사 마운틴픽쳐스는 15일 김 추기경의 선종 2주기를 기념한 전기 다큐멘터리 ‘바보야’의 특별시사회를 19일 오후 7시 조계사 마당에서 연다고 밝혔다. 강성옥 감독이 연출한 ‘바보야’는 영화배우 안성기가 내레이션을 맡았다. 정식 개봉은 21일.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27) 공주 마곡사 ‘김구 향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27) 공주 마곡사 ‘김구 향나무’

    나무를 심는 데에는 까닭이 있다. 대개는 미래의 가치를 내다보며 나무를 심는다. 나무를 심은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 나무의 물리적·정신적 혜택을 얻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빠르게 자라는 속성수(速成樹)도 최소한 한 세대는 넘겨야 사람의 소용에 닿을 만큼 자라게 마련이다. 열매나 목재를 쓰기 위한 실용적 이유가 아니라, 오래도록 기념해야 할 일이 있을 때에도 사람들은 나무를 심었다. 사람보다 더 오래 살아남아 사람의 뜻을 널리 전해 달라는 마음이 담긴 것이다. 옛날에만 그랬던 건 아니다. 여전히 삶의 중요한 고비 때 사람들은 나무를 심는다. 이른바 기념식수다. ●광복 직후 마곡사에 찾아와 손수 심어 민족의 미래를 위해 평생을 바친 백범 김구 선생도 채 이루지 못한 민족의 염원을 담아 나무를 심었다. 조국 해방을 위해 이역 타향을 떠돌던 그는 일제가 물러간 뒤 고국에 돌아와 충남 공주 마곡사를 찾았다. 마곡사는 선생이 명성황후 시해사건 후, 일본군 장교를 살해하고 수감됐던 인천 감옥에서 탈옥해 숨어들었던 곳이다. 선생은 마곡사에서 원종이라는 법명으로 승려 생활을 했다. 광복 직후 마곡사를 찾았을 때의 느낌을 선생은 ‘백범일지’에 “48년 전에 중이 되어 굴갓 쓰고 염주 걸고 바랑 지고 출입하던 길로 좌우를 살펴보며 천천히 들어가니, 의구한 산천은 나를 반겨 주는 듯하다.”라고 썼다. 하룻밤을 마곡사에서 묵은 선생은 이튿날 아침 “영원히 잊지 않는다는 기념으로 무궁화 한 그루와 향나무 한 그루를 심고 마곡사를 떠났다.”(‘백범일지’ 하권에서) 1946년의 일이다. 27년 만에 조국에 돌아온 선생은 고향인 황해도 해주 땅을 찾지 못하는 아쉬움을 안고 ‘38선 이남 지방 순회’를 시작했다. 사형수로, 장기수로 두 차례 수감되었던 인천에 이어 찾아온 곳이 바로 마곡사였다. 그만큼 마곡사는 선생에게 의미가 깊은 곳이었다. 선생은 ‘영원히 잊지 않는다.’는 뜻으로 나무를 심었다고 했다. 조국 해방을 위해 싸워 온 그가 ‘영원히 잊지 않는다.’고 한 그것은 민족의 무궁한 번영과 평화가 아닌 다른 무엇일 수 없다. 그가 심은 한 그루의 무궁화는 지금 찾아볼 수 없다. 수명을 다하고 스러진 게다. 그러나 향나무 한 그루는 마곡사 대광보전과 응진전 사이의 양지바른 자리에서 도담도담 자라고 있다. 향나무를 처음 심은 1946년에는 이미 서너 해를 넘긴 묘목이었을 테니, 이 향나무의 나이는 올해로 65세를 조금 넘긴 셈이다. ●백범 명상길에서 체험 프로그램까지 개발 사람의 뜻을 향기에 실어 하늘 멀리까지 전한다는 향나무에 선생은 우리 모두가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할 민족 번영의 뜻을 담았다. 1000년을 사는 향나무라는 걸 감안하면, 아직 어린 향나무이지만 바라보는 느낌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일본과의 관계가 여전히 불편하기만 한 이즈음이어서 더 그렇다. 나이에 맞춤하게 나무는 경내의 여느 큰 나무에 비해 싱싱하다. 겨우 사람 키를 조금 넘은 2.5m 정도밖에 안 되는 아담한 크기이지만, 김구 선생의 손길을 닮아서인지 줄기는 옹골찬 기세로 뻗어 올랐다. 1m가 조금 넘는 곳까지 곧게 솟아오른 뒤, 나무는 사방으로 널찍이 가지를 펼치며 늘 푸른 잎을 돋아냈다. 70년이 채 안 되는 세월이지만, 이 어린 나무에게도 아픔이 없었던 건 아니다. 자리도 옮겼다. 선생이 처음 나무를 심은 자리는 마곡사 천왕문을 지나 큰법당으로 들어서기 위해 극락교를 건너 마주치는 범종각 맞은편이었다. “물이 많은 자리여서인지, 나무의 상태가 그리 안 좋았어요. 해마다 영양 주사를 놓으면서 보호해야 했지요. 그러다가 4년 전에 이 향나무를 더 잘 살리기 위해 좋은 자리를 골라 옮겼어요. 마침 김구 선생께서 우리 절에서 ‘원종’이라는 법명의 승려로 계실 때 머무르시던 요사채 옆이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던 거죠.” 남태규(43) 종무실장의 이야기다. 나무에만 정성을 들인 건 아니지 싶다. 2009년 가을부터 주석하는 주지 원혜 스님은 특히 승려로서 혹은 민족 지도자로서의 김구 선생이 남긴 자취를 살려 내고 민족혼을 고양하기 위해 적잖은 기획 행사를 진행했다. “우리 절에서 승려이셨던 김구 선생의 정신과 혼을 되살리는 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죠. 이태 전 가을부터 원혜 스님께서 백범 기념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셨어요.” 마곡사 주변의 산책로에 ‘백범 명상길’이라고 이름 붙여 ‘충청의 올레길’로 널리 알리는 한편 백범 선생이 삭발례를 치르던 냇가 바위 주변에 알림판과 전망대를 설치하기도 했다. 올해에도 몇 가지 백범 관련 체험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뜻으로 살아남아 ‘춘마곡 추갑사’라 했다. 공주시 동남쪽의 계룡산 갑사가 가을에 아름다운 절이라면, 북서쪽의 마곡사는 봄볕 따스할 때에 더 좋다는 표현이다. 아직 마곡사의 봄은 무르익지 않았다. 봄이 더 깊어지면 마곡사 경내에는 하얀 목련이 줄지어 꽃을 피워 올릴 것이고, 법당 주위로는 벚나무·박태기나무·철쭉 등 온갖 꽃들이 화려하게 솟아오를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마곡사를 품어 안은 태화산 부근의 신록은 더 싱그러워질 것이다. 우리 강산에 찾아오는 봄의 아름다움을 더 오래 더 소중하게 지켜내야 하는 건 우리 모두의 의무일 뿐 아니라 60여년 전 백범 김구 선생이 ‘영원히 잊지 않겠다.’며 한 그루의 나무를 심은 뜻이기도 하다. 백범, 그는 갔지만 그가 심은 향나무 한 그루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 자리를 지키며 당당하게 살아남을 것이다. 어린 나무 앞에 이리 오래 서서 눈을 맞추는 건 그래서 1000년 향나무를 바라보는 어떤 일보다 뜻깊을 수밖에 없다. 마침 지난 13일은 일제에 빼앗긴 주권을 되찾기 위해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운 날이었다. 나무 앞에 서서 가만히 어제의 각오를 되새겨 본다. 글 사진 공주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충남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567. 당진~상주 고속도로 마곡사 나들목을 이용하면 빠르게 갈 수 있다. 마곡사 나들목에서 1㎞를 채 못 간 곳에 사곡교차로가 있다. 우회전해 300m 가서 좌회전한다. 유구천을 건너 7㎞ 가면 마곡사 주차장이 나온다. 여기에서 1㎞ 남짓한 오솔길을 걸어가면 마곡사다. 나무는 조사전 앞에 있다.
  • 조각가 조인구 ‘내 안의 달마’ 展 해운대 갤러리 ‘미고’ 16일까지

    조각가 조인구 ‘내 안의 달마’ 展 해운대 갤러리 ‘미고’ 16일까지

    달마 스님 조각으로 유명한 조각가 조인구(51)씨의 ‘내 안의 달마’ 조각전이 오는 16일까지 부산 해운대의 갤러리 ‘미고’에서 열린다. 조씨는 “돌 속에서 자신을 찾고 돌 속에서 진리를 깨닫기 위해 작업했다.”고 밝혔다. 부산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문의 갤러리 미고 (051)731-3444.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이해인 수녀 신작 출간] 사랑하는 知人 떠나 보낸 아픔 절절히

    [이해인 수녀 신작 출간] 사랑하는 知人 떠나 보낸 아픔 절절히

    “당신은 고향의 당산나무입니다. 내 생전에 당산나무가 시드는 꼴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꼭 당신의 배웅을 받으며 이 세상을 떠나고 싶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나보다는 오래 살아 주십시오. 주여, 제 욕심을 불쌍히 여기소서.” 소설가 고(故) 박완서씨가 지난해 4월 이해인(66) 수녀가 있는 부산의 수녀원에 이틀간 머물고 가며 남긴 편지다. 고인이 느꼈던 것처럼 이해인 수녀의 시는 대한민국 국민의 마음 속에 당산나무와 같은 지주다. 2008년 여름 암 투병을 시작하면서 ‘치유와 희망의 메신저’가 된 이해인 수녀가 더욱 섬세하고 깊어진 마음결을 드러낸 산문집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샘터 펴냄)를 냈다. 산문집으로는 2006년 ‘풀꽃 단상’ 이후 5년여 만이다. 암 투병과 동시에 피천득 작가, 고(故) 김수환 추기경, 김점선 화가, 장영희 교수, 법정 스님, 이태석 신부, 박완서 작가 등 사랑하는 지인들을 잇달아 떠나보낸 아픔의 시간이 절절히 담겨 있다. 2008년 서울 성모병원에서 옆방에 같이 입원하게 된 김수환 추기경은 이해인 수녀에게 “수녀도 그럼 항암이라는 걸 하나?”라고 담담히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항암만 합니까, 방사선도 하는데.”라고 대답했던 이해인 수녀는 주님을 위해서 고통을 참으라는 추기경의 말씀을 예상했지만, 김 추기경은 연민의 눈빛을 담아 “그래? 대단하다, 수녀.”라고 한마디 위로를 남겼다고 한다. 몸이 너무 아플 때는 문병 오는 사람들의 끊임없는 기도에도 거부감이 들었던 수녀는 추기경의 인간적인 위로에 눈물이 핑 돌았다고 썼다. 덕이 깊은 사람일수록 인간적인 말을 하는 것을 깨닫고 힘든 치료를 하는 사람에게 “대단하세요, 정말!” 하며 추기경의 표현을 흉내 내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꽃이 지고 나면’에는 그동안 신문, 잡지에 썼던 산문과 기도 일기, 수도원 일기 등이 판화 작가 황규백의 따뜻한 그림과 함께 담겼다. 책을 읽노라면 하늘의 구름과 같고 바다처럼 느껴졌던 수녀의 의외의 명랑함과 유머감각에 “수녀님, 너무 귀여우세요!”란 감탄사가 절로 나오면서 그의 투병 생활에 진심 어린 마음을 담은 응원을 보내게 된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암자서 맺은 스님과 처녀 러브 스토리

    암자서 맺은 스님과 처녀 러브 스토리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어느 미남 승려와 폐결핵 환자 아가씨와의 청순한 러브 스토리. 원효(元曉) 대선사가 요석공주와 동침하여 파계한 끝에 설총(薛聰)을 낳았다는 천년 전의 로맨스처럼 지현(知玄)스님의 로맨스는 물씬한 감동마저 준다. 지금은 환속하여 부산(釜山)에서 알뜰하게 살고 있다는 그들의 파계 장소 전남(全南) 여천(麗川)군 돌산도(突山島) 향일암(向日庵)에 얽힌 얘기-.  전남(全南) 여수(麗水)시에서 배를 타고 1시간쯤 가면 돌산(突山)섬이 나온다. 여천(麗川)군 돌산(突山)면 율촌(栗村)리에서 1km쯤 북쪽에 금오산(金鰲山)이 있고 산에는 흔들바위란 게 있다. 집채만큼 큰 바윗덩이가 사람이 밀면 흔들거린다는 기묘한 바위다. 이 흔들바위 밑에 까치집처럼 앙증맞은 향일암(向日庵)이란 암자가 있다. 하지만 이 암자의 유래는 거창하다. 신라 선덕(善德)여왕 13년(사기 639년)에 원효(元曉)대사가 창건했고 1592년 임진왜란 때는 이 곳을 본거지로 승군(僧軍)이 활약했다는 곳. 그 건 그렇고 이 일대 경치가 장관이다. 울창한 낙락장송의 솔바람 소리, 온갖 기묘한 모양의 바위, 그리고 남해바다의 장쾌한 파도가 기막힌 절경이다.  1957년이면 17년전. 키가 헌칠하고 미목수려한 스님 한분이 순천(順天) 송광사(松廣寺)로부터 향일암(向日庵)으로 왔다. 당시 나이 27살, 법명은 지현(知玄), 속명은 박영식(가명), 호는 호월(湖月).  경남 남해(南海)가 고향인 지현(知玄)스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살에 출가, 전국 유명 사찰을 돌아다니며 10년을 목표로 수도하다가 마지막 3년을 채우기 위해 향일암(向日庵)을 찾은 것이다. 지현(知玄)스님은 절 주변을 알뜰하게 손질한 뒤 백팔염주에 사바세계 번뇌를 실어 깊은 사념의 경지를 거닐었다.  그동안 폐사처럼 버려져 있던 향일암(向日庵)에는 이로부터 여신도들이 몰려들었다. 낭랑한 목소리에 곡식 위의 제비같은 탈속(脫俗)의 지현(知玄)스님, 게다가 인물 좋고 경치마저 절경이어서 그는 인기스님이 된 것이다.  세월은 흘러 59년 봄이 되었다. 향일암(向日庵)에서 1km 떨어진 해변가 율촌(栗村)마을에 양장 차림의 미인 아가씨가 찾아들었다. 광주(光州)에 산다는 박애희(朴愛姬)양(23·가명). 폐결핵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요양차 이모가 사는 율촌(栗村)에 왔다는 그녀는 발그레한 볼의 홍보가 요정처럼 기막히게 예쁜 미인.  아열대성 식물인 동백·산죽(山竹)·비화(飛花)가 온 섬을 뒤덮고 바위 틈에 도사린 석란(石蘭)의 향기는 십리 안팎을 뒤덮어 6순 환갑이라 해도 마음 설렐 판이었다.  박(朴)양의 병은 이런 절묘한 풍경의 탓(때문)이었는지 눈에 띄게 회복되었고, 차츰 힘이 생겨 산책 코스를 넓혀갔다.  그때 그녀의 눈에 띈 남성이 바로 지현(知玄)스님. 부처님 앞에 정좌하여 청아한 목소리로 독경하는 근엄한 모습을 취한듯 응시했다.  이로부터 그녀는 2개월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향일암(向日庵)을 찾았다. 그녀의 시선은 날이 갈수록 뜨거워졌고 지현(知玄)스님의 얼굴을 보지 않으면 잠이 들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스님은 장승. 눈길 한번 주는 법이 없었다.  가을이 되었다. 사무친 가슴 속의 사연이 맺히고 맺혀 이번엔 폐결핵이 아닌 상사병에 몸부림하다가 농약을 마셔 버렸다. 위급한 그녀를 두고 이모 되는 여인은 조카의 애절한 소원을 풀어주기 위해 지현(知玄)스님에게 달려가『그 애를 구해 달라』고 애원했다.  스님은 그 요청을 거부하고『나의 손길보다는 당장 해독시키게 녹두물이나 먹이시오』했다. 이모는 되돌아와 녹두를 갈아 먹였다. 의사 없는 갯마을에서 꼼짝없이 죽어야 했던 그녀는 신통하게도 살아났다.  59년이 저물고 새해 음력 1월14일 새벽 4시. 지현(知玄)스님은 화엄경(華嚴經)을 독경하며 새벽의 경내를 산책하고 있었다. 그때 느닷없이 뒷산에서 비통한 여인의 통곡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스님은 뒷산으로 달려갔다. 박(朴)양이 흔들바위에 맨발로 서서 바다를 향해 투신하려는 찰나였다.  혼비백산한 지현(知玄)스님. 자기로 인해 원한을 품고 죽을 여자를 생각하니 제 정신이 아니었다. 그는『아가씨 소원은 뭐요? 다 들어 주겠으니 제발 뛰어내리지만 말라』고 애원했다.  그녀의 소원이란 불을 보듯이 뻔한 것.『스님과 함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다. 망설이고 더듬거릴 나위가 없었다.『알겠으니 제발 그곳에서 내려와 달라』고 간청했다. 그 소리를 듣자 박(朴)양은 바위 위에서 실신하고 말았다.  스님은 그녀를 구출해 냈다. 암자에 누이자 비로소 정신을 차린 그녀는 스님의 품안에 안겨 몸부림치며 울었다. 난생 처음으로 싱싱한 여인의 체취와 풍만한 마찰감에 스님도 얼이 빠져 버렸다.  29년동안 막혀 있던 정열이 용솟음 치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10년 수도를 1년도 못남기고 거센 폭포수 속의 물거품이 되었다. 이날 새벽부터 지현(知玄)스님의 낭랑한 독경소리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로부터 6년의 세월이 지난 65년 여름. 대구(大邱) D사에서 참회의 수도에 전념하던 지현(知玄)스님은 어떤 모녀의 방문을 받았다.  『이 애가 스님의 딸입니다』면서 모녀는 6살 귀여운 아기를 내보였다. 스님은 가가대소, 『그렇습니다. 내 아이입니다』면서 즉시 승복을 벗고 딸을 한가슴 가득 안았다. 그는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 뒤로 스님 부부는 딸 하나에 아들 하나를 더 얻어 1남2녀를 두었다.  지난 71년 5월. 향일암(向日庵)을 중창할때 속인 지현(知玄)부부는 찬조금 5만원을 보냈다.  그들은 현재 부산 영도구 봉래동에서 미곡상을 경영하며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살고 있으나 찾아간 기자에게 사진찍기를 거부-.  그러나 한 여인의 억센 사랑의 집념으로 10년 수도승의 마음을 움직인「흔들바위」는 오늘도 의연하다. <麗水=金德鉉 기자> [선데이서울 73년 7월15일 제6권 28호 통권 제248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8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당시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 조계사, 정부·여당 출입금지 팻말 치웠지만…

    조계사, 정부·여당 출입금지 팻말 치웠지만…

    ‘산문’(山門) 앞의 정부와 여당 인사 출입금지 팻말이 사라졌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은 지난 29일 서울 견지동 조계사 경내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앞에 설치된 ‘출입금지’ 팻말을 치웠다고 30일 밝혔다. 지난해 12월 한나라당이 템플 스테이(사찰 체험) 예산 삭감안 등을 강행 처리하자 조계종은 정부, 여당과의 접촉을 거부하며 전국 25교구 본사 등 모든 사찰에 일제히 출입금지 팻말과 현수막을 내걸었다. 조계종 측은 “총무원장 스님의 지시로 팻말을 철거했다.”면서 “그러나 정부와 여당 인사들의 출입 금지 조치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설명했다. 팻말 철거를 정부와의 화해 모드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조계종 측은 “자성과 쇄신 5대 결사라는 더 큰 틀의 방향을 잡은 데 따른 후속조치”라고 덧붙였다. 앞서 28일 혜총 포교원장은 청와대를 찾아가 청불회 회원들과 법회를 가졌다. 같은날 경북 의성 고운사에서 열린 전국 25개 교구본사주지협의회에서는 일부 참석자들이 “본사를 운영하다 보면 정부(인사) 등과 접촉하지 않을 수 없는데, 종단 지침 때문에 애로가 많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불교계 시민단체인 교단자정센터는 “노선 전환으로 볼 수 있는 이러한 행동들은 사부대중들에게 혼란과 오해를 줄 수 있다.”면서 “총무원이 초심으로 돌아가 자주 선언과 5대 결사의 핵심을 다시 쥐고 절치부심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군위 ‘삼국유사 테마’ 도시로

    군위 ‘삼국유사 테마’ 도시로

    인구 2만여명의 초미니 자치단체인 경북 군위군이 역사·문화·관광 중심 도시 도약을 위한 날개를 활짝 펼쳤다. 시대별 역사·문화 콘텐츠를 관광산업과 연계하는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나선 것이다. 군은 올해부터 2016년까지 국비 641억원 등 총 1374억원을 투입해 의흥면 이지리 일대 143만㎡ 터에 ‘삼국유사 가온누리(세상의 중심)’를 조성할 방침이라고 29일 밝혔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단군시대~고려시대까지의 신화, 문학, 설화, 놀이, 장소 등 다양한 콘텐츠와 문화사업을 접목한 문화관광단지로 조성한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컨셉트는 크게 세 가지. ▲삼국유사의 영혼을 담은 ‘으뜸누리’ ▲삼국유사의 즐거움을 향유하는 ‘얼쑤누리’ ▲삼국유사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아름누리’ 등 3개 공간이다. ‘으뜸누리’에는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모든 고대국가의 역사를 감상할 수 있는 삼국유사 역사체험관 및 이야기 학교가 들어선다. 놀이마당, 수경공원, 먹거리촌이 들어설 ‘얼쑤누리’에서는 삼국유사 문학관 및 콘텐츠 마당놀이, 관람객 휴양놀이, 야외 카페 등 먹거리와 즐길거리를 만끽할 수 있다. ‘아름누리’에는 삼국유사 콘텐츠센터와 국제교류관, 문화 콘텐츠 창작 마을 등이 들어선다. 군은 또 올해부터 2017년까지 일연(1206∼1289) 스님이 삼국유사를 집필한 곳인 인각사(고로면 화북리) 복원에도 나선다. 사업비는 113억원. 천년고찰 인각사는 신라 선덕왕 12년(643)에 원효가 창건했으나 이후 사찰 내 상당수 건축물이 훼손 또는 소실됐다. 군은 극락전과 명부전, 요사채, 시주문, 일각문 등을 복원할 계획이다. 2013년까지 82억원을 들여 군위읍 서부리 옛 군청사 및 군수 관사 부지에 ‘군위 역사문화 테마공원’을 조성, 조선시대 역사·문화를 재현한다. 아울러 80여년 전의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해 네티즌들로부터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으로 선정된 중앙선 화본 역사(驛舍·산성면 화본리), 관사 2개동 복원 및 정비 사업도 벌인다. 군은 또 내년부터 3년간 국비 92억원 등 132억원으로 군위읍 용대리 김수환 추기경의 옛 생가 일원에 ‘사랑과 나눔’ 공원도 조성한다. 군위 용대리는 김 추기경이 다섯살 때 부모를 따라 선산에서 군위로 이주해 군위초교 5학년을 마칠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장욱 군수는 “군위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역사와 문화가 깃든 곳”이라며 “이러한 사업을 통해 민족의 역사·문화를 재조명하고 교육의 장으로 활용함은 물론 관광산업과도 연계하겠다.”고 말했다. 군위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2년만에 靑서 울려퍼진 목탁소리

    국내 최대 불교 종단인 대한불교 조계종이 28일 청와대에서 법회를 열었다. 여권과의 대화단절을 선언한 불교계가 청와대에서 법회를 가지면서 여권과 불교계가 관계개선의 발판을 마련한 게 아니냐는 전망도 제기된다. 조계종 포교원장인 혜총 스님은 청와대 불자들의 모임인 청불회(회장 홍상표 홍보수석)의 요청으로 이날 낮 청와대에서 춘계법회를 가졌다. 조계종이 청와대에서 법회를 한 것은 2009년 3월 현각 스님이 청와대 일반 직원들을 대상으로 법회를 연 이후 2년 만이다. 법회에는 홍 수석을 비롯해 박인주 사회통합수석과 청불회 부회장인 이성권 시민사회비서관, 김영수 연설기록비서관, 임재현 정책홍보비서관 등 130여명이 참석했다. 법회에서는 혜총 스님의 즉석 제안에 따라 천안함 희생장병과 일본 대지진 희생자들을 위한 묵념도 이뤄졌다. 혜총 스님은 법문에서 “괴로움을 없애고 즐거움을 줘야 하는 분들이 공무원”이라면서 “맡은 바 자기 자리에서 벌이 꿀을 구하듯 좌우 둘러보지 않고 꿀만 따오는 공무원이 되고 백성이 되면, 이는 말할 것도 없는 불국정토가 된다.”고 강조했다. 앞서 홍상표 홍보수석은 인사말을 통해 “문제라는 것도 크게 생각하고 근본에서 살피면 모두 찻잔 안에 작은 흔들림이고 푸른 하늘을 떠가는 잠깐의 구름”이라면서 “청불회도 앞으로 불교와 정부 간 소통의 장을 넓히는 데 할 수 있는 모든 역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경찰의 딸 ‘恨맺힌 죽음’ 경찰의 눈물로 달래줬다

    경찰의 딸 ‘恨맺힌 죽음’ 경찰의 눈물로 달래줬다

    지난 17일 경기 하남 남한산성 인근 야산. 수사관들이 30㎝가량 땅을 파내자 마침내 한 여인의 하얀 무릎이 드러났다. 현직 해양경찰관의 딸인 박지선(25·가명)씨였다. 억울한 한(恨) 때문인지, 산기슭의 싸늘한 기온 때문인지 20여일이 지났지만 시체는 조금도 부패되지 않은 상태였다. 담당 형사들은 지선씨 어머니의 말을 떠올렸다. 한 스님이 “추운 곳에 묻혀 있으니 어서 꺼내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밤마다 지선이가 찾아와 ‘사과하라’며 우짖는 바람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던 살인범의 모습이 겹쳐졌다. 살인범이 검거된 16일은 마침 지선씨의 스물다섯 번째 생일이었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형사들은 혀를 찼다. 하얀 피부와 큰 눈, 날씬한 체격. 같은 경찰의 딸인 지선씨의 고운 모습에 범인을 직접 체포한 이홍섭(44) 동대문서 강력3팀장도, 팀원들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의 딸처럼 가슴이 아려와서였다. 살인범과 지선씨의 악연이 시작된 것은 1년전 겨울. 미용실을 운영하던 지선씨가 가게에 쓸 기름을 나르려고 오토바이를 구입하면서 시작됐다. 강도·강간 등 전과 3범인 살인범 김진수(33·가명)는 당시 오토바이 판매점 사장이었다. 타지생활에 외로웠던 지선씨는 6개월동안 쫓아다니는 김의 집요한 구애에 마음을 열었다. 그러나 경제적 문제 등으로 싸움이 잦아진 가운데 김은 지선씨를 목졸라 살해했다. 전과자인 김은 사후 처리도, 도주도 능숙했다. 시체가 발견되지 않으면 무죄로 풀려나기 쉽다는 것도, 어떻게 하면 추적을 따돌리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시체를 여행가방에 넣은 뒤 동네 4곳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를 피해 암매장했다. 지난 2일 지선씨의 가게 건물에 살던 고모가 일주일간이나 보이지 않는 조카를 이상하게 여겨 신고하자 김은 곧 도주했다. 시체를 옮긴 차량 내부를 깨끗이 청소한 뒤 주차장에 뒀고, 휴대전화도 버렸다. 은행계좌에서 돈을 찾지도 않고, 컴퓨터도 쓰지 않았다. 가족, 친지들과의 연락도 끊었다. 말 그대로 ‘아날로그식’ 으로 숨어다니며 경찰의 추적을 피했다. 친구에게 도피자금을 부탁한 뒤 몇 차례나 장소를 옮기는 치밀함도 보였다. 그러다 지방으로 도주하기 직전, 김의 지인들을 철저하게 조사하며 잠복한 경찰에 마침내 꼬리가 잡혔다. 그러나 체포된 뒤에도 김은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 그 순간, 경찰의 지혜가 빛을 발했다. 경찰은 김이 CCTV를 피해 도주했다는 것을 알고, 김이 알지 못한 장소에 가려져 있던 CCTV 테이프를 내밀었다. 물론 촬영 후 닷새가 지나 화면은 저장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이 팀장은 태연히 “가방을 가지고 도망가던 네 모습이 여기 다 있다.”며 호통을 쳤다. 김은 흔들렸고, 범행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암매장 장소를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뻘인 고기현 반장이 나섰다. 고 반장은 김을 다독이며 눈물로 호소했다. “지선이 이제 좋은 데 보내 주자. 얼마나 춥고 외롭겠니? 잘 묻어 주자.” 결국 김이 장소를 말했다. 외진 산기슭인 탓에 김이 정확한 위치를 헷갈려 경찰들은 딱딱하게 언 땅을 이곳, 저곳 손이 부르트도록 수십 차례 파내야 했다. 그렇게 경찰들의 눈물과 피땀 어린 발품 끝에 지선씨는 한을 풀게 됐다. 그러나 같은 경찰의 딸을 잃은 형사들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 팀장은 자신에게 온 지선씨 아버지의 문자메시지를 말없이 보여줬다. “도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리 애, 가슴에 묻어야 하는데 죄스러워서 하늘을 볼 수가 없네요.”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인사]

    ■방송통신위원회 △국제협력관 김용수◇과장급 파견△미래기획위원회 김재영△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김승모 ■지식경제부 ◇일반 고위공무원 승진 △전남체신청장 김성진△방산물자교육지원센터 정동창◇부이사관 승진△감사담당관 이준태△기획재정〃 박진규△에너지절약정책과장 권오정△지식경제부 유정열 ■여성가족부 ◇과장급 전보 △인권보호점검팀장 백영란 ■충북도 ◇4급 △바이오밸리추진단 바이오산업과장 이성수 ■인천경제자유구역청 △투자유치본부장 조나연 ■동국대 <서울캠퍼스>△불교학술원장(동국역경원장 겸임) 인환스님△문화학술〃 황종연△사업개발본부장 위태량 ■KB투자증권 ◇신임 발령 △감사 안병찬 ■CBS △보도국장 김진오△광주방송본부장 박옥배 ■중앙일보 △온라인편집국 취재데스크 김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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