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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박·비박 심리적 分黨… 정진석 ‘더 큰 위기 막자’ 일단 수습

    친박·비박 심리적 分黨… 정진석 ‘더 큰 위기 막자’ 일단 수습

    새누리당이 계파 내분으로 4·13 총선 참패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은 가운데 정진석 원내대표의 승부수에 당의 운명이 갈린 모습이다. 정 원내대표는 당이 더 큰 위기로 빠져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일단 수습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정 원내대표로서는 당 개혁의 필요성을 계속 절감하면서도 친박(친박근혜)계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당의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았다. 지난 17일 상임전국위·전국위 무산으로 비상대책위원회·혁신위원회가 좌초되면서 친박계와 비박(비박근혜)계는 사실상 ‘심리적 분당(分黨)’ 국면을 맞았다. 양 계파는 18일 사태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며 공방을 벌였지만 ‘혁신’ 키워드는 온데간데없이 실종됐다. 그러나 당을 수습하고 양쪽의 연결고리 역할을 할 정 원내대표의 수습 행보에 당 안팎의 시선이 집중됐다. 정 원내대표는 이날 5·18 민주화운동 36주년 기념식 참석에 앞서 “나는 새누리당의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계파 인선에 대해서도 “계파 개념을 두고 인선한 적 없다. 나는 당에서 혼자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기념식 참석 후 KTX로 상경하던 중 돌연 지역구가 있는 충남 공주역에 내려 정국 구상에 들어갔다. 정 원내대표는 부친 정석모 전 내무부 장관 묘소에 혼자 들러 심경을 정리했다. 정 원내대표는 공주시 신관동 사무실을 찾아온 기자들과 만나 당무 복귀에 대해 “생각을 더 가다듬어야 한다. 정리가 안 돼서 드릴 말씀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그는 이날 오후 사무실에서 나간 뒤 공주 시내 모처에서 김연광 비서실장 등 측근들과 식사를 하며 내홍 수습 방안과 당무 복귀 여부 등 대책을 숙의한 뒤 밤늦게 집으로 돌아갔다. 정 원내대표 측 관계자는 “내일 오후 서울로 돌아갈 예정”이라면서 “19일 계파를 대표하는 분들과 통화하고 비대위원 (인선) 관련해서도 의견을 들을 텐데 이미 들어간 사람들을 뺄 수는 없지 않겠느냐”며 고민 지점을 드러냈다. 자신을 지원한 친박계로부터 비토당한 정 원내대표는 당 수습·혁신을 위한 장고에 들어간 모양새다. 정 원내대표 측은 공주에서 친박계와의 물밑 조율을 시도하며 출구 전략을 모색했다. 정 원내대표는 양 계파 사이에서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친박계는 정 원내대표에 대해 “사실상 강을 건넜다”며 압박했다. 비박계가 전면 포진한 비대위 인선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든지 원내대표직을 걸라는 신호였다. 비대위 체제를 조기에 끝내고 친박계의 당권 탈환을 위한 조기 전당대회론도 불붙었다. 재선 김태흠 의원은 “정 원내대표가 마음대로 일을 벌였다가 안 된 만큼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며 “사과하고 비대위 인선을 백지상태에서 다시 시작하거나, 원내대표직을 사퇴하거나 둘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특히 친박계는 비박계를 향해 “나갈 테면 나가라”며 등 떠밀고 있다. 김 의원은 “분당 상황이 올 수도 있다”며 “‘절이 싫으면 스님이 떠난다’는 말처럼 당을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비박계는 “친박 패권주의가 혁신의 발목을 잡았다”고 비난하며 정 원내대표 체제에 힘을 실었다. 친박계를 추가한 비대위 재인선 혹은 정 원내대표 사퇴 카드엔 모두 부정적이다. ‘친박계와 더이상 같이 갈 수 없다’는 분위기도 지배적이다. 비대위원에 지명됐던 김영우 의원은 “(친박계에서) 조기 전대론, 분당론이 분출하고 있지만 당선자 총회를 열어 총의를 모으고 정 원내대표에게 힘을 실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혁신위원장을 사퇴한 김용태 의원은 페이스북에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라는 성경 시편 구절을 올렸다. 서울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공주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YS 킹메이커’ 김재순 전 국회의장 별세

    ‘YS 킹메이커’ 김재순 전 국회의장 별세

    김영삼 집권 뒤 ‘토사구팽’ 말 남겨 화제샘터 창간 등 문화·교양 사업에 족적 김재순 전 국회의장이 17일 오후 경기 하남시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93세. 평양 태생의 김 전 의장은 평안남도 평양공립상업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54년 민주당 선전차장·국제문제연구소 총무로 정계에 입문했고, 1960년 제5대 민의원으로 선출됐다. 외무부와 재무부 정무차관도 역임했다. 1963년부터 1973년까지 강원 철원·화천·양구에서 공화당 소속으로 6~8대 의원을 지냈다. 당시 공화당 원내부총무와 대변인, 원내총무 등의 당직을 차례로 맡았다. 국회직으로는 상공위원장과 재경위원장을 맡아 활약했다. 이후 유신 시절인 1973년 유신정우회 소속으로 9대 의원을 역임한 뒤 1988년 13대 총선에서 민정당 소속으로 강원 철원·화천에 출마해 당선됐다. ‘여소야대’ 정국이었던 13대 국회에서 전반기(1988~1990년) 국회의장을 역임하며 정치 인생의 꽃을 피웠다. 14대 총선에서도 승리를 거두면서 7선 의원 고지에 올랐다. 김 전 의장은 1990년 3당 합당 이후 민주자유당 고문을 맡아 ‘김영삼(YS) 대통령’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1992년 대선때 YS의 찬조 연설자로 나서 YS를 중국을 통일하고 한나라를 세운 유방에 비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YS가 집권 뒤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를 추진하자 김 전 의장도 부정축재 의혹에 휩싸여 의원직을 내려놓았다. 김 전 의장은 당시 “토사구팽(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이라는 말을 남겨 화제가 됐다. 이후 정치권과 거리를 둔 김 전 의장은 2002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상임고문을 맡아 당시 대선 후보였던 이회창 전 총재를 도왔다. 김 전 의장은 정치뿐만 아니라 문화 분야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1970년 교양지 ‘샘터’를 창간한 데 이어 1976년 월간 ‘엄마랑 아기랑’을 발행했다. 1985년에는 파랑새어린이극장 대표를 지냈다. 특히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교양지’를 표방한 ‘샘터’는 법정스님, 이해인 수녀, 소설가 최인호 등의 글을 장기간 연재해 큰 인기를 끌었다. 김 전 의장은 최근까지도 샘터의 고문으로 일했다. 콜롬비아 상·하원적십자대훈장, 페루 앙드레레이아스 공로훈장, 태국 최고백상대훈장, 무궁화대훈장 등을 받았고 2006년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으로 선정됐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용자씨와 아들 성진, 성린, 성봉, 성구 씨 등 4남.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김성호 기자의 종교만화경 28] 천주교 여성 사제

    [김성호 기자의 종교만화경 28] 천주교 여성 사제

     차별 없는 평등은 모든 종교들이 한결같이 존중하고 높이 사는 큰 가치중 하나이다. 종교에서 내세우는 평등이란 신분의 귀천과 지위의 고하는 물론 남녀의 높낮이 없는 동등의 존귀함을 말한다. 불교에서 가림이 없다는 무차(無遮)나 기독교에서 모든 이가 다 사제라는 ‘만민사제’는 모두 가리지 않는 무차별의 으뜸 개념일 것이다. 오히려 나보다 못한 이들에 대한 배려와 베품의 강조일 것이다.그런데 막상 현실 종교 안에서 그 차별 없는 동등의 가치는 무시되기 일쑤이다. 여전히 거개의 종교에서 최고 의결권을 행사하는 자리에 있는 여성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흔히 종교계의 남녀 차별을 말할 때 여성 스님인 비구니가 지켜야 하는 여덟 가지 공경 법인 팔경법(八敬法)이 들먹거려진다. 그중에서도 여덟번째 항목은 차별의 으뜸으로 여겨지곤 한다. ‘비구니가 비록 1백 년을 큰 계를 지녔어도 큰 계를 받은 새 비구 아래 앉아 공경하고 예배할 것이다’ 불교의 수행과 공동체적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두고두고 차별의 적폐로 통하는 대목이라 여겨진다.  천주교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른바 사제(司祭) 위상을 둘러싼 논쟁의 부분이다. 잘 알려졌듯이 사제의 출발은 예수 부활을 증거하는 12사도에 있다. 12사도를 시작으로 이어져 내려온 천주교 사제는 모든 전례와 신행을 주도하고 의사 결정을 좌우하는 순명(順命)의 꼭지점이랄 수 있다. 그런데 가톨릭사상 여성 꼭지점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여전히 전 세계 가톨릭을 통틀어 전무하다.  ‘보편의 종교’인 가톨릭에 그 남녀 차별의 철폐 조짐이 일고 있다. 그 변화의 싹은 다름아닌 프란치스코 교황의 ‘여성 부제’ 허용 방안 검토에서 보인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2일 각국 수도원 대표들이 참석한 알현 행사에서 “여성에게도 부제직을 수여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위원회를 창설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가톨릭 수장이 공개적으로 천명한 견해인 만큼 어떤 식으로든 후속 절차가 있을 것이란게 천주교계의 공동된 관측이다.  천주교에서 부제는 사제를 보좌하는 위상을 갖는다. 유아 세례며 혼배 미사, 미사 강독 처럼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는 권한과 역할이 주어지는 직책이다. 그러나, 사제처럼 성체 성사나 고백 성사를 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교황청 발터 카스퍼(독일) 추기경의 귀띔은 이제 변화의 요구와 시대적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천주교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여성이 교회 조직 내에서 좀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는 수 년에 걸친 요구가 있었다” 실제로 바티칸내 가장 진보적 성직자로 꼽히는 카스퍼 추기경은 교황의 발언 직후 이탈리아 일간지 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성 부제 허용 문제에 대해 격론이 진행될 것으로 생각한다” 여성 부제가 최종 허용되기까지의 절차와 과정이 쉽지 않을 것이란 예고인 셈이다. 심지어 카스퍼 추기경은 “교회 양분”의 우려까지 입에 올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 직후부터 가톨릭의 유례없는 전향적 발언과 행동으로 관심을 끌어왔다. 남녀 차별도 그 예외는 아니었다. 교회 공동체 속 여성 역할의 강조는 여러 번 언론을 통해 소개됐고 지난 부활절 직전의 성 목요일 세족식에선 사상 처음으로 여성을 참여시키기까지 했다. 관행을 깬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관행 깨기는 이 땅에서도 적지않은 파장을 부를 것으로 보인다. 교황청의 온건, 진보 성향의 논쟁이 한국천주교에서도 재현될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한국 천주교에서도 공동체속 여성 역할에 대한 인정과 위상 강화를 향한 요구의 목소리는 그냥 넘길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실제로 최근 만난 천주교 한국가톨릭여성연구원의 한 여성 교수는 이렇게 힘주어 말한 바 있다. “초기 그리스도교회에서 예수님은 늘 여성 제자들과 함께 활동했어요. 베드로와 바오로 같은 사도들도 여성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요. 여성 사제의 탄생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교회에서 여성의 역할과 참여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성들도 가톨릭 신자로서의 자부심과 자존감을 갖고 교회 기구로부터 참여 요청을 받을 경우 주저 없이 나서야 합니다” 김성호 선임기자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당신의 책]

    바이러스가 지나간 자리(메르스 사태 인터뷰 기획팀·지승호 지음, 시대의창 펴냄) 지난해 5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한가운데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져 내린 의료 시스템을 목도했던 의료인들의 증언과 고백을 담았다. 5월 20일 첫 환자가 나온 후 확진자만 186명(사망자 38명), 격리됐다 해제된 사람은 1만 6752명으로 집계됐다. 왜 한국에서 메르스 감염병이 확산됐는지, 무엇이 바뀌어야만 제2의 메르스 사태를 예방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던 의료인 10명이 응급실과 개인병원, 종합병원, 공공병원 의료진의 입을 빌려 실상을 전한다. 356쪽. 1만 6800원. 조선이 버린 천재들(이덕일 지음, 옥당 펴냄) 조선의 시대 질서와 이념에 도전한 인물 22명의 일대기를 들여다본 책이다. 주자 이론이 진리였던 시대에 주자와 다르게 경전을 해석한 윤휴, 이단이라는 낙인이 찍힐 위험을 무릅쓰고 양명학자임을 당당히 밝힌 정제두, 인조에게 인조반정은 쿠데타라고 꾸짖은 유몽인, 소중화사상 속에 오랑캐의 역사로 인식된 발해사를 우리의 역사로 인식하는 파격을 행한 유득공 등이 소개된다. 대다수가 유배지를 전전하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신념을 버리지 않은 이들을 저자는 역사적 선각자이자 시대를 앞서간 천재로 조명한다. 300쪽. 1만 5000원. 소음으로 둘러싸인 세상에서의 침묵(틱낫한 지음, 류재춘 옮김, 프런티어 펴냄) 왜 보지도 않는 텔레비전을 켜 두는가? 왜 대화가 끊어지는 짧은 순간의 침묵조차 견디지 못하는가? 이 시대의 정신적 멘토 틱낫한 스님은 우리 삶에서 침묵이 갖는 가치와 의미에 관해 이야기한다. 침묵은 내면의 소음을 잠재우고 고요해지는 마음을 말한다. 침묵 속에서 호흡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내면은 고요함으로 가득 차고 이 ‘깨어 있는 마음’은 우리에게 있는 강력한 힘이다. 침묵의 힘에 대한 원리적 설명뿐 아니라 내적 힘을 기르기 위해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수행법도 담겨 있다. 236쪽. 1만 4000원. 아랍 오스만 제국에서 아랍 혁명까지(유진 로건 지음, 이은정 옮김, 까치 펴냄) 우리에게 아랍은 테러와 전쟁, 종교 맹신 등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저자가 전해주는 아랍 세계는 그것이 우리의 편견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아랍 지역이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된 1516년부터 2011년 아랍 혁명까지를 다루며 방대한 지역의 풍부한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담았다. 저자는 정치인과 문인, 지식인,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빌려 그 시대 아랍인의 눈으로 본 당시 이야기를 균형 있게 전한다. 이 책은 아랍의 현재와 그 현재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알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는 아랍 역사에 대한 입문서다. 784쪽. 3만원. 박스오피스 경제학(김윤지 지음, 어크로스 펴냄) 1000만 관객 영화가 줄줄이 등장하고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하는 한류 상품들이 탄생하는 ‘콘텐츠의 시대’. 그러나 여전히 문화산업은 감과 운으로 흥행을 점치는 분야로 치부된다. 이 책은 문화산업만의 블랙박스 비밀을 숫자와 데이터로 분석한 경제학자들의 분투를 담았다. 경제학자인 저자는 다양한 현상의 핵심을 파고들고, 최신 계량경제학의 사례를 다채롭게 소개한다. 저자가 이끌어 가는 문화경제학의 세계를 탐험하다 보면 흥하고 망하는 콘텐츠의 비밀과 복잡다단한 대중의 속마음, 그리고 문화산업을 움직이는 스마트한 전략들을 엿볼 수 있다. 312쪽. 1만 5000원.
  • 굴곡진 佛道 끝에 만나는 자비

    굴곡진 佛道 끝에 만나는 자비

    그리 너른 숲은 아닙니다. 작정하고 찾을 만큼 빼어나지도 않습니다. 외려 볼품없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겁니다. 경북 의성의 법계도림 이야기입니다. 신라시대의 고승 의상이 남긴 법계도를 토대로 만든 미로 숲입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날 만한 좁은 미로가 말하려는 건 세상을 사는 이치입니다. 늘 되뇌면서도 번번이 실천하지 못했던 그런 이치들 말입니다. 미로 숲 위는 고운사입니다. 시대와 반목했던 ‘비운의 천재’ 최치원의 흔적이 여태 남아 있는 절집입니다. 와가들이 밀집한 사촌마을도 예서 멀지 않지요. 의성엔 이처럼 느릿느릿 걸으며 기웃댈 만한 풍경들이 꽤 많습니다. 법계도림은 의상(625~702)이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화엄일승법계도(華巖一乘法界圖, 이하 법계도)를 토대로 만든 숲이다. 화엄사상의 요체를 210개의 글자를 이용해 간결한 시로 축약한 뒤 이를 54개 굽이(角)의 사각형 미로로 만들었다. 쉽게 말해 국내 화엄종의 개조(開祖)로 추앙받는 의상의 화엄세계를 현실 속에 구현한 숲이 바로 법계도림이다. ●의상이 설계한 법계도… 여래의 一音 나타내 법계도는 ‘법’(法) 자에서 시작해 ‘불’(佛) 자에서 끝난다. 한데 의상은 왜 이 같은 미로 형태의 그림시를 그렸을까. 그는 자신이 남긴 몇 가지 책을 통해 자문자답했는데, 이를 요약하면 이렇다. 글이 하나의 길을 이룬 건 여래의 일음(一音)을 표시하기 위한 것이다. 굴곡진 까닭은 가르침을 받을 중생의 능력과 욕망이 같지 않기 때문이고, 시작과 끝이 있는 건 수행에 원인과 결과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사면사각의 형태를 띤 것은 자비를 발현하고 불도(佛道)에 드는 방법을 사섭사무량(四攝四無量)으로 표현한 것이다. 법계도림을 설계한 이는 고운사 주지인 호성 스님이다. 그는 법계도림을 활용해 살아 있는 목탑을 만들려 했다. 법계도림의 중심부에 큰 은행나무를 하나 세우고 주변에 키 작은 단풍나무들을 심어 놓으면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자연스레 탑 형태의 숲이 될 것이란 계산에서였다. 법계도림에 들어서면 머리를 숙여야 하는 일이 잦다. 단풍나무가 옆으로 가지를 펼쳐 놓았기 때문이다. 찾는 이 드문 탓에 거미줄이 얼굴에 달라붙는 일도 흔하다. 이처럼 걷기에 불편하다 보니 개선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현재의 나무는 죄다 뽑고 내년쯤 다른 나무를 심을 예정이란다. 향나무처럼 위로 곧추 자라 길을 쉽게 낼 수 있는 수종이 대체재로 꼽힌다. 한데 불현듯 딴생각이 든다. 이처럼 좁고 불편한 길은 절집에서만 볼 수 있는 것 아닐까. 잘 정돈된 미로는 놀이공원에서도 쉽게 마주할 수 있다. 길이 다소 불편한들 무엇이 문제일까. 이를 하심(下心)을 종용하는 심모원려라 볼 수는 없을까. 작은 티끌 안에도 우주가 들어 있다고 했다. 좁고 불편한 길을 성찰의 자세로 돌아보는 게 외려 법계도의 본질에 더 가까운 것 아닐까 싶다. 어쨌든 계획대로라면 붉고 푸른 단풍나무가 노란 민들레꽃과 어우러진 소박한 길은 내년 이후엔 볼 수 없다. ●신라 문장가 최치원의 흔적 남은 ‘고운사’ 법계도림 위는 고운사다. 신라의 문장가 고운(孤雲) 최치원의 호를 딴 절집이다. 60여 말사를 거느린 큰 절집이지만 여느 곳과 달리 주차료나 입장료 한 푼 받지 않는다. 무엇보다 진입로가 인상적이다. 금강송과 굴참나무 등이 어우러진 숲길이 1㎞쯤 이어진다. 이를 ‘천년숲길’이라 부른다. 천천히 걸어도 20분이면 족할 길은 그러나 심연으로 들어가는 소로처럼 깊다. 늙은 나무들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엔 천년간 봉인된 고운의 체취가 서린 듯하다. 천년숲길을 나와 일주문, 사천왕문 등을 거푸 지나면 가운루(駕雲樓)에 닿는다. 최치원이 건축에 힘을 보탰다는 건축물로, 고운사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문화재 중 하나다. 최치원이 원래 지었던 이름은 가허루(駕虛樓)다. 멍에를 쓰듯, 평생 불성(虛)을 짊어지고(駕) 가라는 뜻이란다. 이를 현재의 현판으로 바꿔 쓴 이는 고려 공민왕이다. 사랑하던 노국공주가 죽자 실의에 빠진 공민왕이 전국을 유람하다 고운사에 들러 어필을 남겼다고 한다. 고운사에는 유교와 도교의 색채가 많이 남아 있다. 우화루 뒤편의 ‘만세문’은 솟을대문 모양이다. 절집 건물치고는 독특한 형태다. 만세문 뒤는 연수전이다. 조선 왕실 계보를 적은 어첩을 봉안하던 건물이다. 안내판은 ‘불교를 억누르고 유교를 떠받들던 시대에 사찰 안에 이렇듯 왕실과 관련되는 건물이 지어졌다는 사실이 이채롭다’고 적고 있다. 식당 건물엔 호랑이 벽화가 보관돼 있다. 어느 방향에서 보든 호랑이 눈과 마주하게 된다는 벽화다. 제아무리 날고 긴다 한들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가르침을 담지 않았을까 싶다. ●‘경북팔승일경’… 빙계계곡의 웅숭깊은 풍경 고운사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사촌가로숲(천연기념물 제405호)이 있다. 1390년께 기와집들이 숲을 이루던 사촌마을 주변에 조성된 비보림(풍수지리설에 따라 마을의 기가 약한 곳에 조성한 숲)이다. 현지 주민들은 흔히 ‘가리쑤’라 부른다. 바람을 가리는 ‘쑤’(숲)란 뜻이다. 한실천 제방을 따라 800m 정도 이어져 있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밀집돼 있어 찬찬히 둘러보기 좋다. 가로숲 안쪽의 사촌마을에선 1582년 지은 만취당(보물 1825호) 등의 고택과 만날 수 있다. 의성 남쪽의 빙계계곡은 오래전부터 의성에서 가장 빼어난 경승지로 꼽혔던 곳이다. 계곡에 들면 ‘경북팔승일경’(慶北八勝一景)이라는 표지판을 흔히 본다. 경북의 여덟 가지 빼어난 경치 가운데 첫째가는 곳이란 뜻이다. 자신감과 도도함이 글자 곳곳에서 느껴진다. 누가 언제 어떤 근거로 이런 도저한 표현을 썼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거무튀튀한 절벽이 2㎞가량 돌아가며 만든 풍경만큼은 제법 웅숭깊다. 빙계계곡의 자랑거리는 대략 세 가지다. 세종실록지리지에도 나온다는 얼음 구멍 빙혈(氷穴, 천연기념물 제527호)과 풍혈(風穴), 그리고 빙산사지 오층석탑(보물 제327호)이다. 셋 모두 계곡 왼쪽 마을에 몰려 있다. 얼음동굴에 들면 서늘한 기운이 뒷목을 스친다. 실제로 한여름에도 고드름이 열린다고 한다. 빙혈 바로 위의 풍혈에서도 에어컨 같은 바람이 나온다. ‘삼복더위에 얼음이 얼고, 엄동설한에 따뜻한 김이 솟는다’더니, 그리 과장 섞인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빙산사지 오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 말기에서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석탑이다.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국보 제77호)을 본뜬 것으로 알려졌는데, 빙계계곡 등 주변 풍경과 어우러지면서 자태가 한결 돋보인다. 인근의 금성산 고분군도 둘러보는 게 좋겠다. 조문국(召文國)의 경덕왕릉 등 고분 몇 기가 남아 있다. 조문국은 신라보다 앞선 기원전 1세기 무렵, 지금의 금성면을 중심으로 융성했던 고대 부족국가다. 왕릉 주변으로 산책로가 나 있다. 고분군 끝자락의 조문국 박물관에서 조문국의 모든 것을 엿볼 수 있다. 초여름의 명물로 꼽히는 금성산 고분군 앞 작약꽃밭은 5월 말~6월께 만개한다. 글 사진 의성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54) →가는 길:고운사는 안동과 경계인 의성 동북쪽에 있다.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가려면 중앙고속도로 남안동 나들목으로 나와 의성 방면 5번 국도로 갈아탄 뒤 망호교차로에서 좌회전해 점곡 방면 79번 지방도로 갈아타고 8㎞쯤 가면 된다. 사촌마을과 사촌가로숲, 의성 소계당 등 볼만한 풍경들이 지척에 널렸다. 천천히 둘러보면서 남쪽 방향으로 내려가길 권한다. 빙계계곡은 의성의 동남쪽 끝에 있다. 조문국의 흔적이 남은 금성산 고분군, 조문국 박물관, 산수유 마을 등을 묶어 돌아보는 게 좋다. 여느 여행지와 달리 고운사, 조문국 박물관 등 관광지들이 죄다 무료다. 입장료 걱정 없이 다녀도 좋겠다. →맛집:의성 하면 마늘 먹인 소가 대표 먹거리다. 군청 인근 의성마늘목장(830-6283)과 안계면의 마늘목장한우타운(862-8592) 등이 이름났다. 탑산약수온천이 있는 봉양면에도 의성마늘소먹거리타운이 조성돼 있다. 의성마늘이야기(834-8843)는 마늘로 맛을 낸 백반, 묵은지찜 등을 내는 집이다. 의성읍내에 있다. →잘 곳:군청에서 운영하는 금봉산 자연휴양림(833-0123)이 깨끗하다. 금성면 산운마을의 운초당, 의성소우당, 점곡면 사촌마을의 초해고택, 후산정사, 안동김씨 종택 등에서 한옥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의성군청 문화관광과 830-6549.
  • 4대 종단 ‘재난구호 연대’ 닻 올렸다

    개신교, 불교, 천주교, 원불교 등 4대 종단이 긴급한 재난 현장에서 효율적인 구호 활동을 함께 펼칠 수 있는 연합단체를 출범시켰다. 한국교회봉사단(이사장 손인웅 목사)과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회장 정성환),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복지재단(상임이사 보경), 원불교 봉공회(대표회장 오예원)는 ‘종교계자원봉사협의회’(종봉협)를 창립, 최근 서울시청에서 공식 출범식을 했다. 초대회장으로는 개신교의 손인웅 목사가 추대됐다. 4대 종단은 그동안 세월호 사고 수습 및 유족 지원을 비롯해 전국자원봉사콘퍼런스, 한국자원봉사협의회를 통해 여러 현장에서 함께해 왔다. 종봉협은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희생자를 포함한 사회 구성원들의 아픔을 보듬는 데 협력했던 종교계 자원봉사단체들이 자원봉사 가치의 확산과 재난 현장 공동 협력을 통한 효율적 구호 활동을 위해 만들었다. 이들은 재난 현장에서 자원봉사기관의 네트워크, 민관 협력과의 연대 필요성 등을 체감하고 지난해 3월부터 협의체 설립을 위해 회의를 거듭한 끝에 종봉협 탄생을 이끌어 냈다. 앞으로 종단별 자원봉사기관 간 네트워크와 정보 공유를 비롯해 자원봉사자 통합 교육, 재난 현장 공동 협력, 대정부 정책 제안 차원에서 협력할 방침이다. 출범식이 끝난 뒤 종봉협은 한국자원봉사센터협회와 업무협약식을 가졌다. 재난 이재민 구호 및 현장 지원 활동과 종교계 자원봉사자의 재난 대응 교육 프로그램 진행 협력 등을 내용으로 대한적십자사와 재난 대응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출범식에 참석한 보경 스님은 “종교계가 힘을 합쳐 자원봉사 활동에 임한다면 변화는 더욱 커질 것”이라며 “종봉협 출범이 진정한 의미의 자원봉사 가치 확산과 재난 현장에서의 공동 협력체를 만들어 가는 소중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조계종 ‘만남 템플스테이’ 실시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은 오는 28일 오후 2시~29일 오전 10시 경기 고양 흥국사에서 미혼 남녀 대상의 ‘만남 템플스테이’를 실시한다. 건강한 결혼관 및 가족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해 마련됐으며 특강과 연꽃등 만들기, 탑돌이, 서로를 알아가는 ‘티타임’, 108배 및 단주 만들기, 스님과의 차담 프로그램 등으로 진행된다. 참가 희망자는 조계종 복지재단(02-6334-2213)이나 흥국사 홈페이지(www.heungguksa.or.kr)에서 접수하면 된다.
  • 그리스도교 고전·불교 경전 한글로 쉽게… 깨달음 주다

    그리스도교 고전·불교 경전 한글로 쉽게… 깨달음 주다

    어렵기로 소문난 그리스도교 고전과 불교 경전이 나란히 우리말로 번역 출간됐다. 주교황청 대사(2003~2007년)를 지낸 성염 전 서강대 교수가 펴낸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과 조계종 국제선원장 대해 스님의 화엄경 번역본이 그것이다. 화엄경과 그리스도교 최고 고전인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을 각각 종교계의 소문난 실력자들이 우리말로 알기 쉽게 풀어냈다. ‘고백록’은 초대 그리스도교회의 대표 사상가이자 철학자, 성인인 아우구스티누스(354~430)가 43세에 남긴 일종의 자서전. 인간론·시간관·성경해석론을 응축해 아우구스티누스 저서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책이자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그리스도교 고전이다. 심미적 문체로 이름이 높아 루소의 ‘고백록’, 톨스토이의 ‘고백록’과 함께 세계 3대 고백록으로 꼽히기도 한다. 성 전 교수의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라틴어 원문을 중역을 거치지 않고 한국어로 직접 옮긴 첫 번역본이다. 국내에선 10여종이 영어·스페인어판을 토대로 번역됐지만 라틴어 원전을 옮기기는 처음이다. 성 전 교수는 한국인 최초로 1986년 로마 교황립 살레시안대에서 라틴문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인물이다. 한국외대, 서강대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교황청 한국대사를 지냈으며 아우구스티누스의 핵심 사상을 담은 ‘삼위일체론’, ‘신국론’과 ‘그리스도교 교양’, ‘참된 종교’ 등을 번역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1500년 전 인물이지만 여전히 현대적 의미가 크다”는 성 전 교수는 지금도 유효한 ‘고백록’의 의미를 ‘진리에의 열정’이라고 못박았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서를 번역하는 자체가 의미 있고 원문 번역의 시대적 필요성 때문에 착수했단다. 성 전 교수는 “아우구스티누스는 1500년 전 ‘정의 없는 국가는 강도떼’라고 발언할 만큼 사회 교리의 토대를 마련했다”면서 “‘인간이란 그 자체가 실로 위대한 심연’이라며 고백록을 시작한 그는 인간이란 사랑이라는 결론으로 나아간다”고 설명했다. “인간의 본질은 사랑이며, 개인이든 인류 집단이든 사회적 사랑을 하면 구원받고 사사로운 사랑으로는 멸망한다는 경고는 철학적 탐구를 통해야 가능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아직도 읽히는 이유이지요.” 부처의 불가사의한 깨달음 경지를 기술한 화엄경은 불교 경전의 최고봉으로도 불린다. 내용이 깊고 어려운 데다 분량도 방대하다. 그래서 불가에선 ‘화엄경은 쉬운데 화엄학은 어렵다’는 말이 전해진다. 대해 스님은 이번에 한역(漢譯) 화엄경 80권본을 우리말로 완역해 전 60권으로 출간했다. 누구나 읽기 쉽도록 여백을 충분히 두고 경전 내용을 단락별로 나눠 편집한 게 특징이다. 화엄경 완역은 탄허·월운·무비 스님이 작업했지만 모두 절판됐다. 화엄경은 우주의 삼라만상은 독립적으로 존재하거나 생겨나는 일이 없이 서로의 원인이 되어 상호 의존적이며 일체가 곧 하나인 관계임을 알려 준다. 그래서 대해 스님은 그 화엄경을 ‘인간사용설명서’라면서 “인간 본질에 대한 설명서인 화엄경을 읽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바로 알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처음에 돈을 모으기 어려워도 조금씩 모으다 보면 쌓이듯이 화엄경도 반복해 읽다 보면 결코 어려운 게 아니다”라고 귀띔한다. 특히 “화엄경은 부처님께서 인간의 근원적 해결을 위해 찾아들어간 사라지지 않는 본질에 대한 이야기다. 현상은 변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며 “사람들이 현상 중심으로 살기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고 전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석가탄신일 앞두고 조계사 방문

    석가탄신일 앞두고 조계사 방문

    서울 종로구 조계사를 방문한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12일 종계종 총무원장인 자승 스님을 예방하기 앞서 대웅전에서 삼배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새누리당 류지영 의원, 정 원내대표, 김정재 원내대변인.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씨줄날줄] 점심 경매/임창용 논설위원

    [씨줄날줄] 점심 경매/임창용 논설위원

    처음 만나는 누군가와 점심을 함께 한다는 것은 한 끼 해결 이상의 의미가 있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그 의미의 스펙트럼은 넓고 다양할 게다. 식사 내내 미지근한 맹물을 마시는 기분일 수도 있다. 운이 좋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파트너의 매력에 빠져들 수도 있다. 평생을 좌우할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면 돈으로 가치를 따지기 어려운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그래서 작고한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소크라테스와 점심을 함께 할 수 있다면 애플의 모든 기술을 주겠다”고까지 하지 않았을까. 잡스는 소크라테스의 끝없는 질문 방식을 경영에 적용해 애플을 세계 최고의 혁신 기업으로 일궈 냈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인간의 이런 심리(특히 부자가 되고 싶은 심리)를 이용해 2000년부터 매년 6월 ‘버핏과의 점심’을 경매에 부쳤다. 물론 장삿속은 아니다. 미국 자선기관인 글라이드재단이 주관하는 행사다. 경매에서 나온 자선기금은 저소득층 지원에 사용된다. 차별화된 투자로 엄청난 부를 일군 버핏의 투자 노하우 한마디를 들으려고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섰다. 지난해엔 중국 온라인 게임업체 다롄 제우스 엔터테인먼트가 26억원을 베팅해 점심 한 끼의 기회를 잡았다. 그 전 해에는 앤디 추아라는 싱가포르 남성이 22억원을 내고 티켓을 따냈다. 낙찰 최고가(약 40억원) 기록은 2012년 나왔다. 버핏과의 식사 시간은 최소 3시간이다. 대화 주제는 다음 투자 대상이 뭔지에 대한 것만 빼고는 모두 가능하다. 애플의 최고경영자 팀 쿡이 경매에 부친 점심 티켓이 지난주 6억원에 낙찰됐다고 한다. 이 돈은 케네디인권그룹 후원에 쓰인다. 팀 쿡과의 점심 경매 행사는 이번이 네 번째다. 2013년 첫 경매에서 약 7억원, 2014년 3억 8000만원, 지난해 2억 2000만원에 낙찰됐다. 금액이 점점 낮아지면서 애플의 기우는 사세가 반영된 것 아니냐는 뒷이야기가 무성했지만, 이번에 크게 올라 우려를 불식하게 됐다. 국내에선 수년 전 하나HSBC생명이 1000명의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함께 점심 먹으며 재테크 상담을 하고 싶은 사람’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그 결과 워런 버핏이 1위로 뽑혔고, 2위는 의사이면서 투자 관련 베스트셀러 작가인 박경철씨가 차지했었다. 3위는 장하성 펀드로 유명한 장하성 고려대 교수였다. 박경철씨나 장 교수와의 점심 경매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국내에서도 유명인과의 점심 경매 사례는 있다. 지난해 미술품 경매사인 K옥션이 ‘혜민 스님과 함께하는 힐링 만찬과 멘토링’을 경매에 부쳤다. 낙찰 금액 1000만원은 식사비만 빼고 전액 저소득층 어린이들을 위해 쓰였다. 유명인의 점심 경매는 ‘고도화된’ 재능 기부다. 재능이나 인격에 값을 매긴다는 부정적 시각도 있지만, 기부라는 큰 틀에서 용인될 만하다. 다양한 형태의 점심 경매가 열리기를 기대해 본다. 임창용 논설위원 sdragon@seoul.co.kr
  • [서울포토] 베트남에서 온 스님

    [서울포토] 베트남에서 온 스님

    불기 2560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8일 조계사 앞길에서 열린 연등회 전통문화마당 축제에서 아시아 각국의 불교 문화를 엿볼 수 있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베트남 스님과 신자들이 베트남 불교 의식을 진행하고 있다. 강성남 선임기자 snk@seoul.co.kr
  • “부처님오신날, 공동체 화합 기원”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 봉축사

    “부처님오신날, 공동체 화합 기원”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 봉축사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불기(佛紀) 2560년 부처님오신날(5월 14일)을 맞아 “서로에게 희망의 길벗이 되어 어려움을 이겨내고 통합의 길을 걸어가기를 기원한다”는 내용의 봉축사를 6일 발표했다. 자승 스님은 “그동안 우리는 문명의 이기가 가져다준 육신의 편안함과 물질의 과도한 소비를 풍요라고 생각해왔다”면서 “물질의 풍요에 머물지 않고 마음의 풍요, 공동체의 풍요로 나아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자승 스님은 특히 “불법(佛法)은 세상 속에서 구현돼야 가치가 있다”며 “절망은 희망으로, 갈등은 화합으로, 불신은 믿음으로 만들어가는 밝은 공동체를 염원한다”고 덧붙였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옛것과 현대가 함께 숨 쉬네, 울산 너른 품에서

    옛것과 현대가 함께 숨 쉬네, 울산 너른 품에서

    울산 하면 각종 공업단지와 조선소 등의 산업 시설을 퍼뜩 떠올리기 마련이다. 물론 울산 쪽만 보면 그렇다. 한데 울산시의 70%를 차지하는 울주는 조금 다르다. 예부터 이어져 오던 독 짓는 방식을 여태 고수하는 옹기마을이 있고, 비구니 스님들의 오래된 도량에선 청아한 풍경 소리가 울려 나온다. 반구대 암각화 등 그보다 더 오래된 선인들의 흔적도 만날 수 있다. 말쑥한 현대와 푸석거리는 옛것이 함께 숨을 쉰다고 할까. ‘숨을 쉬는 그릇’ 옹기. 우리의 독특한 음식 저장 용기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이야 김치냉장고 등 현대 기술에 밀리는 기색이 역력하지만, 몇 가지 불편함만 해결된다면 사실 냉장고 대신 선택하고 싶은 것이 옹기다. 표면의 구멍을 통해 ‘숨을 쉬는’ 옹기 특유의 장점은 현대 기술이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것이니 말이다. 옹기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얼추 보름 이상 시간이 걸린다. 좋은 재료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물레와 흙을 다루는 옹기장이의 정교한 손기술이 필수적이다. 표면을 다듬는 것에만 ‘아씨부채질’과 ‘두번부채질’ 등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후 전통 가마에서 1200도가 넘는 뜨거운 불에 9일 밤낮을 구운 뒤 4일 동안 식힌다. 요즘엔 고온의 불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 굽는 과정이 예전보다 꽤 단축됐다. 바로 이 과정에서 옹기의 생명이라 할 공기구멍, 이른바 ‘기공’이 표면에 만들어진다. 깨끗한 공기는 들여보내고, 빗물 등의 침투는 막는다. 김치 등의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불순물이나 소금쩍(소금기가 허옇게 엉긴 것) 등은 숨구멍을 통해 옹기 밖으로 배출시킨다. 어디 최첨단 원단으로 만든 아웃도어 의류의 기능이 이만 할까. 우리 선조들은 이미 1000년 전에 이 같은 기술을 실생활에 적용시키고 있었던 셈이다. 외고산 옹기마을이 처음 형성된 건 50여년 전이다. 1950년대 후반 경북 영덕에서 옹기공장을 운영하던 고 허덕만 장인이 한국전쟁 이후 이 지역으로 옮겨 오면서 옹기마을의 역사가 시작됐다. 운도 따랐다. 이웃한 부산에 피란민이 몰려들면서 옹기 수요가 급증했다. 원료 확보가 쉽고 유통은 원활했으니 마을이 불길처럼 흥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이후 외고산 옹기마을은 한국 옹기시장의 50%를 책임지는 최대 공급처로 발돋움했다. 그런데 왜 하필 울주였을까. 허덕만 장인의 제자인 배영화 장인은 “따뜻한 기온과 옹기의 재료가 되는 흙, 땔감으로 쓸 나무가 풍족한 것” 등을 요인으로 꼽았다. 옹기는 기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흙반죽으로 모양을 만들 때 기온이 영상 3도 아래로 내려가면 형태가 깨진다. 서울 경기 등 겨울이 길고 혹독한 곳에선 겨우내 작업장을 멈출 수밖에 없다. 울주는 다르다. 겨울에도 영하권으로 내려가는 날이 많지 않다. 게다가 운송수단이 발달하면서 옹기 제작의 원료인 흙이나 땔감으로 쓸 나무에 대한 걱정도 사라졌다. 사실 오래전엔 ‘옹기마을’이란 것이 없었다. 땔나무와 흙이 소진되면 다른 곳을 찾아 이동해야 했다. 그게 옹기장이들의 숙명이었다. 이젠 달라졌다. ‘명성’을 좇아 흙과 땔감이 몰려드니 말이다. 요즘도 7명의 외고산 옹기장인들은 전통 방식으로 옹기를 만든다. 숙련된 이라도 오랜 시간 땀을 쏟아야 하는 고된 작업이다. 그 과정을 옹기마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어른 키를 훌쩍 넘기는 옹기부터 작은 장식용 옹기까지, 그야말로 옹기의 모든 것과 마주할 수 있다. 그 덕에 마을 전체가 거대한 장독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마을 뒤엔 옹기박물관이 들어섰다. 국내 최대 규모의 옹기 등 전국의 재래식 옹기와 세계 각국의 옹기를 만날 수 있다. 8일까지 마을 곳곳에서 ‘울산옹기축제’도 열린다. 옹기 제작 과정에 참여하거나 직접 옹기를 만드는 등 다양한 체험 위주로 진행된다. 울주까지 와서 간월재(900m)를 둘러보지 않을 수 없다. 간월재는 이른바 ‘영남알프스’의 하나다. 신불산(1159m)과 간월산(1068m)의 능선이 내려와 만난 자리다. 원래 억새 명소로 명자깨나 날리는 곳인데, 진달래 피는 봄 풍경도 제법 빼어나다. 특히 기온차가 큰 간절기엔 구름이 파도치듯 언양 읍내를 휘감아 도는 장관과 종종 마주할 수 있다. 간월재는 우리나라에도 빙하기가 있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곳이다. 마지막 빙하기였던 신생대 홍적세(12만 5000년 전) 동안 간월산과 신불산을 덮고 있던 빙하가 무게를 견디지 못해 거대한 돌들과 함께 산 아래로 이동했고, 그 과정에서 ‘V’자 형태의 급경사의 계곡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빙하와 함께 내려온 큰 바위들은 미아석(표이석), 이른바 ‘집 잃은 돌’을 남긴다. 신불산과 간월산에서 작천정에 이르는 동안 유난히 자갈더미와 미아석이 많은 건 이 때문이다. 간월재 아래로 내려오면 곧 석남사다. 비구니 도량으로 이름 높은 절집이다. 일주문에서 절집까지는 숲길이 펼쳐져 있다. 숲은 깊다. 굴참나무, 소나무 등 노거수들이 우거졌다. 거리는 700m 정도. 늙은 나무들 사이를 자박자박 걷다보면 산소 알갱이가 피부에 와닿는 느낌이 든다. 대웅전 앞의 3층 석탑이 웅장하다. 임진왜란 때 무너진 대석탑 자리에 1973년 스리랑카에서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셔 오면서 개축한 것이다. 강선당 뒤로 난 작은 길을 따라 올라가면 부도가 나온다. 예서 가람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가지산을 짓쳐올라가는 신록과 절집 지붕의 진회색 기와들이 그럴싸하게 어우러진다. 이제 바다를 둘러볼 차례다. 방어진항 끝자락의 슬도(瑟島)를 찾아간다. 모래가 굳은 사암으로 형성된 작은 섬이다. 원래 무인도였으나 최근 도로가 놓이면서 뭍이 됐다. 슬도라는 이름의 유래가 재밌다. 섬 주변 바위마다 작은 구멍들이 나 있는데, 이 위로 파도가 칠 때면 촤르륵 촤르륵~ 거문고 뜯는 소리가 난다 해서 이름 지어졌다. 이를 슬도명파(瑟島鳴波)라 부른다. 슬도는 최근까지도 옛 풍경이 많이 남아 있던 곳이다. 거대 도시의 외곽 치고 뜻밖에 소박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투박한 돌을 쌓아 만든 예전 방파제며, 슬도 뒤편 성끝마을 언덕 위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이 그랬다. 마을 앞바다는 현대미포조선소의 거대한 선박들로 막혀 있지만, 되레 그 탓에 더 안온한 느낌을 받곤 했다. 도로가 놓인 뒤로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조형물이 들어서고, 낡은 집들은 깔끔한 건물로 빠르게 대체되는 중이다. 깔끔하고 번듯해졌지만, 그게 나은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낚시를 즐기는 이라면 낚싯대 한 대 챙겨 가시길. 방파제 뒤에 놓인 데크 위에서 바람 한 점 맞지 않고 편안하게 낚시를 즐길 수 있다. 글 사진 울산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 (지역번호 052) → 가는 길: 울주와 울산으로 나눠 돌아보는 게 효율적이다. 울주 쪽 간월재는 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 나들목으로 나와 울산 방면 24번 국도로 갈아탄 뒤 금곡교차로에서 우회전, 아불삼거리에서 우회전, 이어 배내사거리에서 좌회전해 파래소 유스호스텔 앞까지 가면 된다. 석남사와 반구대 암각화, 천전리 각석 등을 돌아보는 것으로 동선을 짠다. 석남사 264-8900. 외고산옹기마을은 부산울산고속도로 청량나들목으로 나와 14번 국도를 따라가면 된다. 간월재와 서생포왜성, 간절곶 등의 명소를 함께 돌아본다. 울산옹기박물관 229-7961. 슬도와 방어진, 대왕암공원, 장생포고래박물관 등은 울산 동쪽에 있다. → 맛집:간월재가 있는 언양은 불고기로 이름났다. 언양 읍내 외곽에 맛집들이 몰려 있다. 다만 유명한 만큼 지갑 털릴 각오는 해야 한다. 공중파 방송에 자주 이름을 올렸다는 한 식당의 경우 3인분 이상만 팔기도 한다. 울산 쪽도 비슷하다. 국내 소득수준이 가장 높은 축에 속하는 지역이어선지 음식값이 녹록지 않다. 슬도의 한 식당의 경우 회와 각종 코스 요리를 포함해 1인 3만 5000원이다. 2인 이상만 판매하니 7만원이 기본인 셈이다. → 잘 곳: 석남사, 등억리 온천단지 등에 깔끔한 숙소가 많다. 가격도 ‘착한’ 편이다. 어린이가 포함된 가족 단위 여행객은 간월재 입구의 펜션을 찾는 게 좋겠다. 주중 5만~7만원 선이다.
  •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봄의 전령’ 검은등뻐꾸기는 어떻게 우나?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봄의 전령’ 검은등뻐꾸기는 어떻게 우나?

    며칠 전부터 숲에서 검은등뻐꾸기가 아름답게 우짖는다. 아름다운 새소리를 들으면, 어찌 저런 소리가 살과 피로 이루어진 성대에서 나올 수 있을까, 참으로 감탄을 금치 못하는 경우가 있다. ​저 공룡의 후예인 새들은 종류도 다양하거니와 그 지저귀는 소리 또한 얼마나 다채로운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그래서 어떤 작곡가는 "새들의 소리를 들어라. 그들은 거장이다" 하며 영감을 얻기 위해 평생 새소리 채집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한다. ​새 종류​만큼이나 많은 새소리이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귀를 기울이게 되는 이색적인 새소리의 하나가 검은등뻐꾸기 소리가 아닐까 싶다. 봄철 산에서 자주 듣게 되는 이 희한한 새소리는 언제나 변함없이 '오 호 호 호~' 네 음절이다. 앞의 세 음절은 음정이 같고, 마지막 음절은 뚝 떨어진다. 음계로 치면 미 미 미 도쯤 된다. ​이 새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얼마나 새이름이 알고 싶었는지, 나중엔 유명 조류학자에게 전화를 하기도 했지만, 새소리를 녹음해 오라는 말에 포기하고 말았다. ​ ​내게 이 새의 이름을 가르쳐준 이는 새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로, 묻자마자 대뜸 "검은등뻐꾸기죠. 뻐꾸기보다 등 빛깔이 어두워 그런 이름이 붙었죠. 새소리가 워낙 특이해서 흉내 소리만 들어도 금방 알 텐데 이상하군요" 하면서 새소리를 흡사하게 흉내내 보는 것이었다. "오 호 호 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새는 뻐꾸기의 한 종으로, 생김새도 뻐꾸기와 비슷하다. 다만, ​눈의 테두리가 다른 뻐꾸기류에 비해 뚜렷하지 않다. 날개의 길이는 21cm 정도이며, 배의 검은색 가로줄이 굵고, 머리와 가슴은 회색, 등과 꼬리는 어두운 회갈색을 띠고 있다. 꼬리 끝부분에 검은 띠가 있고 끝이 희다. ​​인도,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지에서 겨울을 난 후 봄이면 한국, 중국 등으로 북상하는 철새이다. 그래서 영어 이름이 인디언 쿠쿠라고 한다. 그 사람들은 이 새소리를 '보 코 타 코(bo-ko-ta-ko)'라고 듣는다. 중국에서는 이 새를 사성두견(四聲杜鵑)이라 한다. ​주로 큰 교목(喬木)으로 이루어진 높은 산의 숲에서 살며, 곤충과 유충을 잡아먹는 검은등뻐꾸기는 여느 뻐꾸기처럼 다른 새 둥지에 알을 낳아 위탁하여 부화시키는 탁란을 한다. ​ ​그런데 이 검은등뻐꾸기의 모습은 좀처럼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다. 그저 울음소리만 들려주며 존재를 확인시킬 뿐이다. 높은 산 높은 나뭇가지에만 앉는 이 새는 그만큼 수줍음이 많다는 뜻이다. 필자 역시 가지에 앉은 먼 모습과 나는 모습만 보았지, 제대로 관찰한 적은 없다. 만약 당신이 산을 오르다가 나뭇가지에 앉은 검은등뻐꾸기를 본다면 큰 횡재를 한 셈으로 쳐야 한다. ​흔히 소쩍새나 뻐꾸기처럼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고 하지만, 이 검은등뻐꾸기에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개 저 듣고 싶은 대로 듣는데, '첫차 타고 막차 타고' '혼자 살꼬 둘이 살꼬' '작작 먹어 그만 먹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또 스님의 귀엔 '머리 깎고 빡빡 깎고'로 들린다고도 하지만, 가장 유명한 '해석'은 '홀딱벗고 홀딱벗고'란다. 어쩌면 '야하게'도 들리는 이 해석에는 다음과 같은 '야한' 설화가 따라붙는다. 끈질긴 인간 애욕이 새소리에까지 투영되었다고나 할까. ​ 옛날 옛적 한 젊은 스님이 절에 기도하러 올라온 자태 고운 한 과부에게 그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스님은 번뇌를 벗어버리기 위해 주문을 외며 스스로를 다그쳤다. 사랑도 홀딱 벗고, 번뇌도 홀딱 벗고, 미련도 홀딱 벗고…. 하지만 한번 일어난 정념은 가라앉지 않았고, 스님은 끝내 마음의 병을 얻어 세상을 뜨고 말았다. 스님은 나중에 검은등뻐꾸기로 환생하여 후생들에게 나를 거울삼아 더욱 용맹정진하라고 목이 쉬도록 '홀딱 벗고' 하며 울어댄다는 설화이다. ​이 설화에 기대어 동자승 그림을 잘 그리는 원성 스님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기도 했다. ​홀딱 벗고마음을 가다듬어라. 홀딱 벗고 아상도 던져 버리고. 홀딱 벗고 망상도 지워 버리고 홀딱 벗고 욕심도, 성냄도, 어리석음도...홀딱 벗고 정신차려라.(중략) 아득한 옛적부터 들려오는 소리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들려오는 소리 강당으로 향하는 길목에 어김없이 들리는 소리 온종일 가슴 한켠 메아리치는 홀딱벗고새 소리(후략) ​예로부터 이 검은등뻐꾸기 울면 보리가 여물어 거둘 때가 되었음을 알았다고 한다. 늘 배가 고팠던 민초들에겐 지긋지긋한 보릿고개를 넘었음을 알리는 기쁜 소리이기도 했다. 그래서 검은등뻐꾸기는 보리새라고도 불렸다. ​오 호 호 호~ 오 호 호 호~ 비 오는 봄날, 뒷산 숲에서 검은등뻐꾸기가 진종일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 개성미 넘치는 새 역시 개체수가 많이 줄어들어 오늘날에는 관심종에 오를 만큼 보기 힘든 새가 되었다. 이들이 제대로 살 수 있게끔 지구를 지키는 것이 인류의 의무이자 책임이 아닐까?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山寺가 깨우쳐 준 가족의 소중함

    山寺가 깨우쳐 준 가족의 소중함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전국 산사에서 특별한 템플스테이가 잇따라 마련돼 눈길을 끈다. 5일 한국불교문화사업단에 따르면 이달 중 열리는 템플스테이는 자연 속에서 가족과 함께 참여해 평소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면서 돈독한 가족애를 다질 수 있는 것들이 주종을 이룬다. 김천 직지사는 7~8일 바쁜 일상을 떠나 심신의 안정을 찾는 ‘마음등불 템플스테이’를 연다. 직지사에서 직접 개발한 ‘마음등불’ 동영상을 보고 스님과의 대화를 통해 우울감에서 벗어나 열린 마음으로 나가는 방법을 찾는다. 직지사 측은 “그동안 참가한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부모와의 대화 단절을 가장 안타까워했고, 숨겨 뒀던 마음을 스님과의 대화를 통해 꺼내 보이며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갔다”면서 “가족의 행복한 추억을 만들고자 하는 이들에게 참여를 추천한다”고 전했다. 부산 홍법사는 14일까지 일정으로 참가자들이 원하는 1박2일을 택할 수 있는 ‘어버이와 함께하는 특별한 템플스테이’를 진행 중이다.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가운데 ‘소원 염주 만들기’는 가족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는다. 염주 알들에 ‘나’ 자신과 부모에게 감사하는 마음, 미안했던 일들에 용서를 구하는 마음을 실어 108개의 염주 알을 꿰어 볼 수 있다. ‘연꽃컵등 만들기’에서는 가족이 모여 컵등을 만든 뒤 불단에 올려두고 부처님이 돼 보는 시간을 갖는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13~14일 1박2일, 또는 2박3일 단위의 다채로운 템플스테이도 이어질 예정이다. 서울 금선사, 인제 백담사, 인천 연등국제선원, 구례 천은사, 경주 골굴사에서는 연등행렬, 봉축법요식, 108배, 연등 만들기 등을 체험할 수 있다. 특히 보은 법주사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부처님오신날 연등 행렬에 직접 참여해 볼 수 있는 템플스테이를 열 계획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느낌, 극락(極樂)같은…길상사(吉祥寺)

    느낌, 극락(極樂)같은…길상사(吉祥寺)

    “내가 우둔해서 그런가--- 운장산 가는 길엔 절도 많더군. 이런 절도 구경하고 저런 절도 구경하면서 온갖 불상들을 봤었네만.. 부처님 마음은 못 보았네.” 극작가 이강백(69)의 희곡 중 ‘느낌, 극락 같은’에 나오는 주인공 ‘서연’의 대사다. 작품은 불상의 ‘형태’를 중시하는 ‘동연’, 이와 반대로 상(相)에 집착하지 않고 부처의 마음을 드러내고픈 ‘서연’의 갈등이 주요한 맥락을 이루고 있다. 만약 ‘서연’이 실존 인물이었다면 성북동에 위치한 길상사(吉祥寺)를 둘러보고 어떤 느낌을 지닐까? 과연 부처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절이라고 하지 않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길상사의 주불전은 석가모니를 본존불로 모시는 대웅전(大雄殿)이 아니라 중생들의 자비와 깨달음을 추구하는 아미타불의 ‘극락전(極樂殿)’이기도 하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323에 위치한 길상사(吉祥寺). 7000여 평에 이르는 넓은 대지, 연건평 3000평과 지상건물 40여동이 1996년 5월 20일에 조계종 송광사 분원으로 등기이전 되었다. 1997년 12월 14일에 개원법회를 열면서 지금의 길상사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이 개원법회에 천주교의 김수환 추기경이 참석하면서 더더욱 사찰의 이름값을 높이기도 하였다. 원래 3공화국을 대표하는 요정정치의 대명사였던 대원각(大宛閣)이라는 ‘술집’이, 중생을 맑고 밝은 곳으로 교화하는 청정도량인 길상사라는 절집으로 갈음한 것이다. 길상사는 과연 유명세만큼이나 숱한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오고 가는 절집이기도 하다. 남로당의 당수였던 박헌영(1900~1955), 이제는 월북시인이 아닌 재북시인이 된 백석(1912~1996), ‘자야(子夜)’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길상사의 공덕주인 길상화(吉祥華) 김영한(1916∼1999), 그리고 길상사의 회주 법정스님(1932~2010), 박헌영의 유일한 남한 생육인 원경스님, 그리고 기생 김소산 등등 실로 한국 근현대사 이면의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런 인물들의 삶이 빚어내는 이야기는 뒤로 한 채 여행지로서, 도심의 선원으로서의 길상사를 방문해보자. 막상 길상사에 들어서면, 눈치 빠른 여행객은 입구부터 이 절집이 심상치 않음을 알 수가 있다. 대개의 선종불교 사찰에는 입구에 문(門)만 따로 있는 일주문(一柱門), 혹은 산문(山門)이 있다. 일주문 밖을 속계, 일주문 안을 진계라고 구분 짓는데 오직 일심으로 부처에 귀의한다는 결심을 갖도록 하는 문이다. 그러나 길상사는 애당초에 ‘술집’이었으니 그윽한 맞배지붕으로 만든 본 모양새의 일주문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들어가는 입구가 경복궁 근정전에서나 볼 수 있는 팔작지붕이 하늘높이 솟구쳐 있다. 원래 팔작(八作)지붕이란 물론 절에서도 쓰이지만, 속가(俗家)에서는 권력을 지닌 고관대작들이 드나드는 문의 모양새로 많이 쓰인다. 이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는 권력의 상징이 길상사의 일주문으로 쓰이니 벌써부터 이 절집의 곡절이 심상치 않다. 여기에 내처 길상사에는 여느 절이나 있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모신 천왕문조차도 없다. 팔작지붕 일주문을 지나 불과 30여 미터 오르막을 오르면 관세음보살상이 있다. ‘관세음보살상’을 보자마자 대개의 사람들은 뜬금없이 천주교의 ‘마리아상’을 떠올릴 것이다. 맞는 짐작이다. 이 관세음보살상은 독실한 카톨릭 신앙을 지닌 원로 조각가 최종태 작가의 작품으로 2000년 4월에 조성된 관음상이다. 조각을 자세히 살펴보면 여섯 개의 봉우리가 올라 온 관을 쓰고 왼손에는 진리의 맑은 물을 상징하는 정병(淨甁)이 있고, 오른손에는 중생들의 모든 고뇌를 어루만지는 시무외(施無畏)를 드러내고 있다. 조각을 보는 순간 여느 관음불상의 기본 형태가 아님을 알 수가 있다. 마리아의 형상으로 부처의 마음을 드러내고자 했던 작가의 깊은 고뇌를 짐작할 수가 있다. 최종태 작가는 종교의 형태를 넘어 믿음의 본질인 구원의 모습을 드러내고자 했기에 굳이 겉모습에 얽매이지 않았던 것이다. ‘구원(久遠)의 모상’이라는 그만의 독특한 구도적인 예술 철학이 오히려 우리에게 부처의 원형, 관음의 원형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준다. 관음상을 뒤로 한 채 길상사의 주불전인 극락전으로 다가가본다. 분명 ‘대웅전’이 아니라 ‘극락전’인 것이다. 이 극락전이 길상사의 모양새를 정확히 규정해준다. 과거 요정으로서 대원각의 주연회장이었던 본채가 이제는 아미타부처님을 모신 성스러운 법당이 되었다. 아미타부처님은 대승불교에서 서방정토 극락세계, 즉 저세상에 머물면서 불법을 설한다는 부처다. 길상사를 조성한 법정이 지닌 중생구제의 뜻을 그대로 드러내어주는 본채의 본존불로서는 제격인 셈이다. 수십 년 세월동안 주지육림의 흥성거림속에서 여인의 분내와 부패한 권력의 오취가 스며든 나무 기둥의 껍질을 일일이 벗기면서 법정은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진다. 또한 서방정토의 아미타부처님은 현세에서 못이룬 ‘자야’와 ‘백석’의 사랑을 다시금 이어주었으리라. 또다시 극락전의 왼편 길을 걸어 올라가면 바로 선방과 길상선원, 그리고 법정의 진영을 모신 ‘진영각(眞影閣)’이 소담하게 자리 잡고 있다. 법정은 입적하기 하루 전 날에야, 처음으로 자신이 만든 길상사에서 하룻밤을 보내었다. 그의 유언은 바로 “내 이름으로 번거롭게 부질없는 검은 의식을 행하지 말고, 사리를 찾으려고도 하지 말며, 관과 수의를 마련하지 말고, 편리하고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곳에서 지체 없이 평소의 승복을 입은 상태로 다비하여 주기 바란다”였다. 그는 사찰에 돈이 넘치면 불성은 깨어진다 하여 늘 풍요로움을 경계하였다. 이에 관한 한 가지 일화는 국수에 대한 것이었다. 국수는 흔히 승소면(僧笑麵:스님을 웃게 만드는 면)이라고 해서 불가에 입문한 스님들에게는 별식 중의 별식이었을 터. 법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먹는 방법이 극단의 절제였다. ‘맹물국수’, 말 그대로 삶은 소면을 시냇물만을 담은 그릇에 두서너 번 휘휘 가락지어 한 움큼 건져내어 먹는 것을 좋아했다. 법정의 성품이 이렇듯 간장 한 방울 들어갈 틈도 없이 담백하였다. 이러하니 평생을 뭇 남정네 마음을 번철 위 부침개 뒤집는 것보다 쉽게 바꿀 수 있었던 김영한씨도, 겨우 10년이 지나서야 저어하는 법정의 마음을 돌려 대원각을 시주로 바칠 수가 있었다. <사진6. 김영한 님의 사당과 공덕비. 그녀의 마음을 어찌 일반인이 가늠이나 할 수 있을까? > 법정 스님의 진영을 모신 진영각을 뒤로 하고 출입문으로 내려오면 바로 오른편에 계곡이 있고, 작은 시냇물이 흐른다. 이 시내를 건너면 길상사 창건 공덕주 김영한의 사당이 있다. 김영한의 일생에 관하여서는 이견들이 분분하다. 하지만, 그녀가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1916년 종로구 관철동에서 태어나 1932년에 기생이 되기 위하여 조선 권번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1936년 가을, 함경남도 함흥에서 시인 백석을 만나 ‘자야(子夜)’라는 애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물론 그녀는 자신이 백석의 여러 ‘자야’들 중의 하나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고 백석이 가장 사랑하는 ‘자야’는 바로 통영 출신의 ‘란(蘭)’이라는 여성임도 이미 짐작하였다. 1938년 백석이 ‘란’과의 실연으로 인해 상처를 받았을 때 찾았던 사람이 바로 ‘김영한’이었다. 이때 김영한은 ‘ 그대의 아내가 누구이든지 간에 평생 사랑하리라 굳게 결심하였다’라고 술회하였다. 이 만남을 끝으로 두 번 다시 백석을 만나지 못하였고, 그녀는 화수분같은 대원각의 안주인으로 거부가 된다. 하지만, 후일 당시 값어치로 1000억원이 넘은 대원각을 법정에게 시주할 때 그녀의 말 한마디는 지금 살펴보아도 놀라울 따름이다. “백천억도 백석시인의 시 한 줄만 못하다’라고 했던 것이다. 이후 그녀가 영가(靈駕)의 세계에 들어서고 한 달 뒤 놀라운 일이 또 일어나게 된다. 1999년 12월 KAIST에 발신자가 김영한이라고 적힌 한 통의 편지가 전해진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130억 가량의 부동산 전부를 ‘국가과학기술 영재 양성’에 힘써달라는 부탁이었다. 이 정도 크기의 그릇을 지니었으니 대원각을 시주할 당시 주변의 뜨악스러운 눈길과 의혹 따위야 이미 그녀의 삶의 깊이에서는 눈길조차 줄 필요가 없을 정도의 하찮음이었으리라. 사당 앞 공덕비에는 간단한. 그녀의 약력이 있다. 하지만 작은 돌조각에는 조선 말 몰락했던 양반가 출신으로, 기생이 되어버린 한 여인의 품격을 결코 다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 외에도 길상사를 찬찬히 둘러보면 설법전, 지장전, 범종각, 길상선원, 적묵당, 청향당, 길상보탑, 정랑(화장실), 청향당 등 작은 요사(寮舍)채들이 있어 도심선원으로서 그 역할을 제대로 해주고 있다. 또한 서울 도심 한 가운데 있어 지친 마음을 추스르기에 아주 좋은 공간이 될 수가 있으며 템플스테이, 경전강독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있어 편안히 다가서기에도 좋은 공간임은 분명하다. < 길상사(吉祥寺)에 대한 사소한 여행 일문일답> 1. 꼭 가봐야 할 곳인가?- 마음에 평화로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굳이 불교신자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홈페이지 주소 : http://kilsangsa.info/ 2. 누구와 함께- 가능하면 혼자. 3. 교통편?- 한성대입구역 6번출구에서 마을버스 성북02번을 타고 길상사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됨. 아니면 천천히 걸어올라오면 큰 길입구에서 약 20분 정도 소요됨. 걷는 것을 추천. 표지판이 잘 되어 있음. 4. 인근 편의시설, 주차장?- 기본적으로 종교시설이다. 짧은 반바지나 치마 등은 삼가길 바람. 주차시설 있음. 5. 유명세에 비하여 실제 모습은?- 더 유명해져서 관광지가 될까 두럽다. 6. 친절도?- 관광지가 아닌 절이다. 신도들끼리 조심하고 서로 친절해야 한다. 7. 전문성은?- 김영한, 백석, 법정스님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는 알고 가면 좋다. 8. 관람시간은? - 종교시설이다. 관람하는 곳이 아니다. 9. 감탄하는 점?- 이 엄청난 땅과 건물을 무상으로 시주하신 김영한의 인품과 봄이면 흐드러지는 꽃무릇들. 길상사 창건 이면에 있는 거대한 한국 근현대사의 비화와 이에 얽힌 숱한 인물들의 드라마틱한 삶. 10. 아쉬운 점?- 없다. 11. 운영진에게 한마디?- 감히 무슨 말을 하리오. 12. 여행 전 기대감과 후기?- 이미 김영한과 백석, 그리고 법정의 스토리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절을 둘러보면 감동이 배가 될 수 있다. 천천히 둘러보길 바란다. 한 때 우리나라 최고의 요정자리이다 보니 정원의 구성이나 경치는 서울의 여느 공간과 비견할 수 없다. 13. 추천하고픈 사람?- 당신. 14. 비추하고픈 사람?- 비추하면 안 된다. 15. 먹거리 정보- 종교시설이다. 큰 길에 나오면 식당이 많다. 16. 쇼핑매력도- 쇼핑할 돈으로 시주를 하시길. 17. 숙박편의성- 도심 종교시설이다. 18. 인근 관광지 매력도-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다. 이왕 길상사에 온 길이라면 넉넉히 시간을 두고 오면 좋다. 이 주변에 선잠단지, 성락원, 한국가구박물관, 정법사, 우리옛돌박물관, 삼청각, 북정마을, 심우장 등이 있는 데, 이중 한국가구박물관은 생각보다 규모가 있고 볼거리가 풍부하다. 그리고 길상사 여행 꿀팁을 한 가지 드리자면, 길상사 올라가는 길에 ‘누브티스 넥타이 박물관’이 있다. 대개의 사람들은 들어가기가 주저하는 곳이지만 실상은 마음껏 들어가서 커피 한 잔을 먹어도 되는 곳이다. 물론 유료이지만 이 근처에 이만한 커피숍은 찾기가 힘들다. 간단한 식사도 판매한다. 19. 꼭 해봐야 할 것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길상사에 가 보는 것을 권유함. 20. 총평- 길상사(吉祥寺)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약간의 공부가 필요한 장소이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이슈&이슈] 국립 한국문학관 유치 나선 대구시

    [이슈&이슈] 국립 한국문학관 유치 나선 대구시

    “국립 한국문학관은 반드시 대구에 와야 합니다.” 대구시와 지역 문학계가 국립 한국문학관 유치를 위해 발벗고 나섰다. 한국문학관은 우리 문학과 문학인에 관한 자료를 수집·관리·보존·조사하는 박물관이다. 2019년까지 국비 446억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상반기 공모, 건립 부지를 결정할 계획이다. 1일 대구시에 따르면 한국문학관 건립은 사업의 규모를 떠나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는 게 문학계의 시각이다. 국가 차원에서 근현대 문학 100년 역사를 집대성하고, 이를 통합관리하는 전초 기지를 마련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다 창작의 요람으로서의 역할도 병행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한국문학관이 건립되면 한국문학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산실이 된다. 대구시와 지역 문학계가 3가지 이유를 들어 한국문학관의 대구 유치 당위성을 내세우고 있다. 먼저 대구는 문학의 발생지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로 인정받는 김시습의 금오신화 산실이 대구 인근인 경주의 금오산이다. 또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완성한 것도 경북 군위의 인각사에서였다. 이상화, 이육사, 현진건 등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항일저항 문인들이 나고 활동한 곳이 대구이기도 하다. 전국 최초로 죽순시인구락부가 1945년 10월 대구에 설립됐다. ‘아동’, ‘죽순’, ‘새싹’ 등 잡지가 1946년 4~6월 잇따라 대구에서 창간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시비인 이상화 시비가 1948년 3월 대구 달성공원에 세워졌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종군문학이 대구에서 꽃피웠다. 박목월·박두진·조지훈 등의 문인들이 이때 대구에서 활동했다. 이상화와 고월 이장희의 이름을 딴 상고예술학원이 1952년 대구 남산동 교남학교(옛 대륜중·고)에 문을 열었다. 최초의 전문예술교육기관인 이 학원에는 조지훈·구상·김동리·김동진·이은상·이효상·정비석 등 기라성 같은 예술인들이 활동했다. 두 번째는 문화시설의 분산배치이다. 국내 문화시설의 40%가 수도권에 몰려 있는 등 편중현상이 심하다. 대구는 서울을 제외하면 문인이 가장 많은 도시인데도 불구하고 박물관을 제외하고는 국립문화시설이 없는 실정이다. 문화시설 기반은 대구의 경우 17개 광역시·도 중 13위에 그치고 있다. 여기에다 훌륭한 입지가 마련되어 있고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점도 한국문학관 대구 유치의 근거로 제시된다. 대구시는 현재 두류공원 일대에 문학관을 건립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이곳에 한국문학관이 들어서면 대구문화예술회관, 코오롱야외음악당, CT공연플렉스파크, 출판산업지원센터 등과 연계해 관광 명소로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 인근에 대구 예술의전당 건립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곳 이외에도 대구 북구 산격동 옛 경북도청 부지 등이 한국문학관이 들어설 장소로 거론되고 있다. 이와 함께 대구는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서 2시간 이내, 전국 어느 곳에서 출발하더라도 3, 4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도시다. ●문학관 연계 ‘민족시인 거리’ 추진 이 같은 이유를 들어 권영진 대구시장까지 한국문학관 유치 대열에 합류했다. 권 시장은 지난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 대구방문 때 박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진에게 한국문학관 대구 건립을 건의했다. 권 시장은 또 한국문학관이 유치되면 기존 중구 향촌동에 있는 대구문학관과 이상화 고택, 이육사 고택 등으로 이어지는 ‘민족시인거리’를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거리가 조성되면 사이사이에 대구가 배출한 문인들을 알리는 다양한 시설도 구비한다는 방침이다. 대구 문인들도 한국문학관 대구 유치에 힘을 모으고 있다. 대구문인협회는 지난 3월 말부터 2·28기념공원 등 도심에서 국립문학관 대구 유치 100만명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온·오프라인을 통해 서명에 참여한 사람이 수만명에 이를 정도로 시민들의 반응도 뜨겁다. 지난달 1일에는 지역문인, 예술인, 교수, 언론인, 정치인 등으로 ‘국립 한국문학관 대구유치위원회’를 구성했다. 4·13 총선을 앞두고는 국회의원 출마자를 대상으로 선거공약 채택을 건의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당선자는 한국문학관이 대구에 유치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을 선거 기간 중 발표하기도 했다. ●유치위 출범·포럼 열고 당위성 알려 지난달 21일에는 대구문학관에서 대구유치위원회 출범식을 가졌다. 추진위 공동위원장은 이상희 전 내무부 장관과 신상철 전 대구시교육감이 맡았다. 상임위원장은 장호병 대구문인협회장, 류형우 대구예술인총연합회장, 김주한 경북문인협회장, 이병국 경북예술인총연합회회장이, 대외협력위원장에는 이상규 경북대 교수가 각각 선임됐다. 추진위 전체 인원은 1200여명이고, 고문단·자문단이 100명씩 포함됐다. 추진위는 출범식에서 대구유치선언문을 발표했다. 선언문에서 “대구는 고대문학은 물론 근현대문학의 산실 중 한 곳이다”면서 “국토균형발전과 문화균형 면에서 대구에 반드시 한국문학관이 건립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동위원장을 맡은 이상희 전 장관은 “근현대 문학사는 역사적으로나 차지하는 비중으로 볼 때 대구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전국 어디서나 접근성이 우수한 대구가 한국문학관 건립의 최적지”라고 밝혔다. 다음날인 22일에는 대구문화예술회관 달구벌홀에서 한국문학관 대구 유치를 위한 포럼이 개최됐다. 김용락 민족문학작가회의 대구지회장, 오동욱 대구경북연구원 박사 등이 토론 및 발제자로 나섰다. 포럼에서 발제자들은 대구가 한국문학의 발원지이자 근현대문학의 요람임을 역사자료를 바탕으로 강조했다. 또 후보지 선정에 타 지역민들의 접근 용이성과 국가균형발전 차원 등이 고려돼야 한다고 밝혔다. 추진위 집행부들은 조만간 문체부를 방문한다. 장관 등을 만나 대구 유치의 당위성을 설명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경북을 비롯한 영호남지역 문화단체들과의 연대를 강화, 적극적인 협조도 구하기로 했다. 진광식 대구시 문화예술정책과장은 “한국문학관이 대구에 건립된다면 한국문학제와 세계문학제 등 국가차원의 사업 지원도 가능할 것”이라며 “이러한 점에서 한국문학관 대구 유치가 단순히 한 도시를 위한 사업이 아니라 대한민국 문학사업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자치단체장 25시] 1340억 삼국유사 테마파크 조성… 활기찬 강소도시 꿈꾼다

    [자치단체장 25시] 1340억 삼국유사 테마파크 조성… 활기찬 강소도시 꿈꾼다

    김영만(64) 경북 군위군수는 세 번의 도전 끝에 군수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새누리당 텃밭에서 유일하게 무소속으로 출마해 새누리당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하는 ‘혁명’에 성공했다. ●도전정신 무장 지방정치 23년 한우물 고등학교 졸업 후 선친이 군위읍에서 운영하는 대한통운 대리점과 건재상 일을 돕던 그는 1991년 경북도의원 선거 출마를 선언하며 지방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줄곧 한우물을 판 지 23년 만에 ‘고을 원님’(?)의 꿈을 실현했다. 특유의 뚝심과 불도저식 도전정신이 밑거름이 됐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백척간두’에 놓인 지역의 절박한 상황을 타개하는 게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군위는 대구 근교에 있는 농업지역으로 인구가 2만 3000여명에 불과해 전국 꼴찌 수준이다. 재정자립도 역시 10% 미만으로 최하위권이다. 자치 기반이 뿌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유명 관광지나 농특산물 등 변변하게 내세울 것조차 하나 없다. 전국에서 알아주는 사람이 많을 리 만무하다. ‘군위’ 하면 ‘구미’로 착각할 정도다. 좁은 지역에서 선거가 잦은 탓에 민심 또한 분열돼 있다. 갈수록 악화일로였다. 이에 김 군수는 지역 살리기를 위해 몸을 던지고 나섰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동분서주하고 있다. 군정의 최우선 과제인 돈과 사람을 끌어오기 위해서다. 민생 현장도 적극 챙겨 둘째가라면 서러운 그다. 타고난 부지런함과 강인한 체력, ‘불가능은 없다’는 좌우명으로 무장했다. 지난 19일 김 군수와 온종일 함께했다. 오전 8시 20분 군수실에 운전기사 복장을 한 40여명이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들었다. 대구에서 개인택시 영업을 하는 군위향우회원이자 군위투어 홍보요원들이다. 호방한 성격인 김 군수는 이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지역 홍보와 관련한 다양한 의견을 교환했다. 중간 중간 메모도 했다. 이어 군위투어 체험에 나서는 이들과 함께 현관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배웅했다. 9시 30분쯤 주요사업 현장으로 향했다. 우선 군위읍 용대리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 공원 조성 사업’ 현장을 찾았다. 관계자로부터 공사 추진 현황을 보고받고는 사업부지 일부(5500여㎡) 수용 업무에 철저함을 기해 줄 것을 당부했다. 민원 최소화 때문이었다. 현장을 구석구석 챙기는 꼼꼼함도 보였다. 김 추기경이 어릴 적 가족들과 함께 살았던 곳에 조성 중인 나눔공원은 연말까지 국비 등 총 121억원이 투입된다. 추모전시관과 청소년수련원 등을 갖춘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김 군수와 천주교 대구대교구청은 이 사업의 성공을 위해 의기투합했다. ●농가 수출길·판로 개척 연구 권유 다음은 차량으로 10여분 거리의 군위읍 내량1리 유럽산 토마토 재배 비닐하우스 농장이었다. 전날 밤 강풍으로 대규모 시설하우스 농가가 밤새 걱정됐기 때문이다. 농장 앞에서 군수를 반갑게 맞은 주인 이재무(65)씨가 “피해가 없다”고 하자 이내 안심했다. 김 군수가 최근 작황과 소득 정도를 묻자 이씨는 월 매출이 8000만원 정도로 좋은 편이라고 답했다. 그는 이씨에게 안정적인 판로 확보 및 소득 증대를 위해 수출길을 열고 가공품을 만드는 방안을 연구해 보라고 권유하고는 자리를 떴다. 재선 도의원 시절 농수산위원장직을 지냈던 김 군수의 농업지식은 웬만한 전문가 뺨칠 정도다. 관용차는 부계면 팔공산을 향해 내달렸다. 30분 정도 걸려 도착한 곳은 부계면 남산리 삼국유사 마중오름공원 조성 사업 현장이었다. 연말 완공 예정인 칠곡 동명~군위 부계를 잇는 팔공산터널 개통을 앞두고 관문(關門) 설치 등 주요 사업에 대한 최종 결정이 이뤄지는 날이라 군수가 빠져서는 안 되는 자리였다. 이어 사과값 폭락으로 어려움을 겪는 인근 동산1리 과수농가를 찾아 걱정을 함께하고 격려한 뒤 수행한 군 간부에게 사과 팔아주기 운동을 적극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점심은 부계면사무소 앞마당에서 짜장밥으로 간단히 해결했다. 지역 적십자봉사회원들이 노인 300여명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자리였다. 20여분 만에 식사와 환담까지 끝낸 그는 다시 움직였다. 해발 1100m가 넘는 부계면 동산리 팔공산 정상의 하늘정원과 원효 구도의 길 조성 사업 현장을 방문했다. 그동안 군사시설에 가로막혀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됐던 곳을 관광자원화하는 곳이다. 고불고불한 산길을 힘들게 내려온 차는 잠시 뒤 지역 최대 국책사업이 추진 중인 의흥면 이지리 삼국유사 가온누리사업 현장에 도착했다. 오후 3시쯤이었다. 먼저 관계자들을 격려한 뒤 안전사고 예방을 빈틈없이 해 줄 것을 강조했다. 이 사업은 일연 스님이 군위에서 삼국유사를 완성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2019년까지 총 1340억원을 투입해 삼국유사 테마파크를 조성하는 것이다. 현재 공정률은 28% 정도다. 김 군수는 오후 4시 30분쯤 집무실에 도착해 김관용 경북도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년도 경북도의 지역발전특별회계에 통합정수장 설치와 팔공산 산림테마파크 조성 등 군위지역 현안 사업비를 최대한 반영해 줄 것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10분간에 걸친 김 지사와 김 군수의 통화는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이들은 30여년 전부터 호형호제하는 사이다. ●이스라엘식 창조적 지혜로 미래 개척 통화가 끝나자 결재와 회의가 이어졌고 오후 7시에는 군위여성회관에서 열린 삼국유사 컬처텔러 양성 과정 개강식에 참석해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1시간 뒤 한국생활개선회 풍물단 교육장인 농업기술센터 대강당을 찾아 단원들과 함께 어울렸다. 새벽 4시 군위읍 시가지 순찰로 시작된 그의 일과는 밤 10시 무렵 비로소 끝났다. 50대 중반의 기자는 파김치가 됐지만 그는 여전히 즐거운 표정에 생기를 보였다. 김 군수는 돌아서려는 기자를 붙잡고 “일부에서는 ‘군위의 미래가 없다’고 말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면서 “우리 군민들은 12척의 배로 나라를 구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강소국(强小國)인 이스라엘에서 창조적 지혜와 불굴의 용기를 배워 희망찬 내일을 준비해 가고 있다”고 힘줘 말했다. 군위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경북도·中 안후이성 이어준 지장 스님

    경북도·中 안후이성 이어준 지장 스님

    경북도는 26일 중국 안후이(安徽)성과 관광교류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신라 왕자 출신으로 중국에서 중생을 구제하는 ‘지장왕보살’로 추앙받는 지장(696~794·김교각) 스님을 관광상품화해 두 도시 간 교류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서다. 두 지역에는 지장 스님 관련 유적들이 남아 있다. 안후이성 성도인 허페이(合肥) 한 호텔에서 열린 협약식에는 전화식 경북도 문화체육국장과 완이쉐(萬以學) 안후이성 관광국장, 이진락 경북도의원, 이상욱 경주부시장, 여행사와 불교학회 관계자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주요 협약 내용은 관광홍보사무소 상호 설치 및 김교각 다큐멘터리 공동 제작 등이다. 이어 두 도시는 ‘중국에서의 김교각 발자취’ 소개와 김교각 전용 상품 프레젠테이션(PT) 및 경북관광 홍보 영상 상영, 경북 대표 음식 소개 등 관광홍보 설명회도 가졌다. 안후이성은 인구 6000여만명의 동부내륙도시로, 중국 4대 불교 성지 중 한 곳으로 유명하다. 완 국장은 “안후이성에는 지장보살이 99살에 입적한 것을 기념한 높이 99m짜리 동상과 그의 등신불 등 관련한 많은 문화유적이 있다“면서 “이번 협약으로 두 도시가 관광 교류 활성화를 위해 많은 사업을 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전 국장은 “안후이성 구화산에서 불법을 설교했던 지장보살의 화신인 지장 스님의 중국 관광상품화로 기존 신라 최치원 역사탐방 상품과 연계돼 내륙지방 중국 관광객 유치 공략이 더욱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글 사진 허페이시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경북도, 중국 안후이성 관광 교류 협약

    경북도는 26일 중국 안후이(安徽)성과 관광교류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신라 왕자 출신으로 중국에서 중생을 구제하는 ‘지장왕보살’로 추앙받는 지장(696~794·김교각) 스님을 관광상품화해 두 도시 간 교류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서다. 두 지역에는 지장 스님 관련 유적들이 남아 있다. 안후이성 성도인 허페이(合肥) 한 호텔에서 열린 협약식에는 전화식 경북도 문화체육국장과 완이쉐(萬以學) 안후이성 관광국장, 이진락 경북도의원, 이상욱 경주부시장, 여행사와 불교학회 관계자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주요 협약 내용은 관광홍보사무소 상호 설치 및 김교각 다큐멘터리 공동 제작 등이다. 이어 두 도시는 ‘중국에서의 김교각 발자취’ 소개와 김교각 전용 상품 프레젠테이션(PT) 및 경북관광 홍보 영상 상영, 경북 대표 음식 소개 등 관광홍보 설명회도 가졌다. 이와 함께 두 도시 간 B2B(기업 대 기업) 관광교역전과 한·중기업인 교류회도 열렸다. 안후이성은 인구 6000여만명의 동부내륙도시로, 중국 4대 불교 성지 중 한 곳으로 유명하다. 완 국장은 “안후이성에는 지장보살이 99살에 입적한 것을 기념한 높이 99m짜리 동상과 그의 등신불 등 관련한 많은 문화유적이 있다“면서 “이번 협약으로 두 도시가 관광 교류 활성화를 위해 많은 사업을 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전 국장은 “안후이성 구화산에서 불법을 설교했던 지장보살의 화신인 지장 스님의 중국 관광상품화로 기존 신라 최치원 역사탐방 상품과 연계돼 내륙지방 중국 관광객(유커) 유치 공략이 더욱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허페이시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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