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제재’ 강화땐 표현자유 침해?
성기노출 사고를 일으킨 MBC ‘음악캠프’와 시어머니 뺨을 때린 장면을 연출한 KBS ‘올드 미스 다이어리’에 대한 방송위원회의 제재가 지난 11일 결정됐다.
시청자에 대한 사과, 방영금지, 책임자 징계 등 3가지가 혼합된, 현행 법 내에서는 최고 수위의 제재였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솜방망이 징계’라는 비판이 수그러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인지 국회에서도 방송법을 개정해서라도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벌금을 물린다든지, 생방송 대신 딜레이(Delay)방송을 한다든지 하는 방안들이다. 그러나 이 방안들이 정말 효과적일까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또 효과를 떠나 ‘혹시라도 사고칠 지 모른다.’는 이유로 족쇄를 하나 둘씩 늘리는 것 자체가 언론자유에 위배된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파문으로 장사 잘한 건 외려 신문들이다?
조중동은 이번 파문이 터지자 퇴폐문화에 대해 기획기사를 다뤘다. 이 기사들은 성기노출 사건을 계기로 밤의 문화를 다뤄보겠다고 작성된 기사들이다. 그런데 정작 성기노출 사건을 일으킨 홍대문화, 인디문화를 제대로 다루지는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오히려 선정적인 주제가 생기면 이를 비판하는 기사를 선정적인 톤으로 다루는 악습을 반복했다는 것. 연예정보프로그램이나 스포츠신문을 비판할 때면 근엄한 목소리로 쓰던 방식이다. 이번 파문을 두고도 “그냥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는 일을 각 신문들이 1면에 대대적으로 내주면서 더 확대됐다.”는 말이 나온다. 여기에는 ‘조중동 vs 방송´ 이라는 대립구도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전체적인 맥락을 봐달라”
일선 PD들 반응은 싸늘하다. 변명이나 책임 회피로 비쳐질까봐 차마 드러내놓고 말을 못할 뿐이다. 한 PD는 이번 사태를 둘러싼 신문 보도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며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이영애 대사,“너나 잘 하세요.”를 인용할 정도다. 다른 PD는 “한번 불안해지면 나이 지긋한 트로트 가수들까지 생방송 중에 벗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라고 꼬집었다.
우선 전체 맥락이 무시됐다는 점이 불만이다. 올드 미스 다이어리 경우 프로그램의 취지에 공감하는 시청자 의견도 많다. 연결된 스토리 전체를 보지 않고 한두개 신으로만 매도해서는 안 된다는 반론이다. 또 음악캠프의 경우 ‘어쩔 수 없는 생방송 중 사고’라는 점을 강조했다. 한 PD는 “비행기 조종사는 새가 날고 난기류가 불면 매뉴얼대로 하지만, 이번 사건은 UFO가 나타난 꼴”이라고 항변했다. 특히 그동안 가요순위 프로그램이 지나치게 10대 위주로 상업적으로 구성됐다는 비판을 받아들여 마련한 무대라는 점을 모두 외면했다는 사실을 아쉬워했다.
●딜레이방송? “방송의 ABC도 모르는 것”
재발방지책으로 논의되고 있는 딜레이방송에도 부정적이다. 딜레이 방송은 생방송이되 촬영화면을 곧바로 내보내는 게 아니라 몇초간의 시차를 두고 내보내겠다는 것. 그러나 방송사들이 내보내고 있는 프로그램 가운데 생방송은 얼마나 될까. 또 그 가운데 ‘음악캠프’처럼 사고를 칠 만한 프로그램은 몇개나 될까.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딜레이방송을 한다고 해도 실제 적용하는 프로그램은 방송사마다 1∼2개가 고작일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아예 10년에 한번 날까 말까한 사고가 이번에 났으니 10년 뒤쯤 도입해도 충분하다는 비아냥까지 있다. 정호식 PD연합회장은 더 근본적으로 딜레이 방송은 “방송의 참맛을 죽이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정 회장은 “생생한 화면과 소리를 전달해주는 게 방송인데 사고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막는 것은 방송의 ABC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과징금 부과? “어이 없다”
중대 위반 사항이 발생했을 경우 과징금을 매기겠다는 방송위의 복안도 그리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아무래도 사례로 인용되고 있는 것은 슈퍼볼 공연에서 발생한 자넷 잭슨의 가슴노출 사고. 국내 언론에도 이번 사건과 비교돼 자주 오르내렸던 이 사건은 방송사에 5억원의 벌금을 물리고 딜레이방송이 도입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정작 미국 내에서 이 조치는 언론의 자유를 규정한 미국 수정헌법1조에 위반된다는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이 같은 결정을 내린 FCC(방송통신위원회)가 부시 정권 아래 보수 기독교적 가치를 내세우고 있었다는 점까지 함께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대목에 대해서 개정 신문법·언론중재법에 대해 ‘재갈을 물리려든다.’고 그토록 비난하던 자칭 ‘비판언론’들은 침묵하고 있다. 동시에 ‘6억원’이라는 액수에 대해서도 평가가 다르다. 슈퍼볼 경기의 경우 시청자만 3억명이고 미국의 GNP 규모까지 고려해보면 ‘6억원씩이나’가 아니라 ‘그럼에도 6억원’이라 봐야 한다는 해석이다.
●MBC도 형사고발 취소해야
MBC도 책임회피로 일관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사고를 친 카우치 멤버들을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발한 것 자체가 책임회피라는 것. 문화연대 김완씨는 “개인 출연자에게 법적인, 그것도 형사법적인 책임을 묻는 것은 결코 올바르지 않는 행동”이라면서 “이번 건이라 그렇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사안이 생기면 그 때마다 출연자들은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할 것이냐.”고 지적했다.
책임있는 지상파 방송사라면 사회적으로 논란이 생기는 사안에 대해 여러가지 관점에서 의미를 분석하는 게 맞지,‘처벌해주세요.’라고 냉큼 사법기관으로 일러주는 식으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문화연대는 카우치 멤버들에 대한 형사고발 취하운동을 벌여나가는 한편, 이번 사태를 빌미로 한 홍대 인근 단속도 저지키로 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