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유혹’ 일본멜로 두편
멜로영화 한편쯤 보고싶은 가을.‘공식’이 빤히 읽히는 할리우드산에 질린 관객들이라면 색다른 감상포인트를 가진 일본산 멜로 2편에 눈을 돌려보자.간절히 원하면 그리운 사람이 살아돌아온다는 설정에서 출발한 팬터지 ‘환생’(31일 개봉)과,인기감독 기타노 다케시의 ‘돌스’(Dolls·24일 개봉).사랑의 참의미를 느리되 사려깊은 시선으로 되돌아 본 작품들이다.
31일 개봉 팬터지 ‘환생'
누군가의 간절한 그리움 때문에 다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영혼.그러나 이승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단 3주만 허락된 ‘시한부 환생’.
올해 초 일본에서 개봉해 전국 관객 300만명을 끌어모은 화제작 ‘환생’의 중심 소재다.‘믿거나 말거나’식의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가 무슨 수로 그렇게 큰 울림을 만들어냈을까.평범한 일상을 배경으로 그것도 죽음과 사랑이라는 진부한 소재를 끌어들였음에도 극의 감성지수를 높여가는 것은 독특한 시나리오의 힘이다.30년 전 행방불명된 소년이 어느날 갑자기 살아돌아오자 후생성 직원인 헤이타(구사나기 쓰요시)는 진상조사차 고향마을을 찾는다.짝사랑해온 여자친구 아오이(다케우치 유코)를 오랜만에 만났지만,사고로 죽은 옛 애인 슈스케를 여전히 잊지 못하는 그녀를 지켜보며 연민인지 질투인지 모를 묘한 감정에 사로잡힌다.남녀주인공이 끌어가는 멜로의 큰 틀에다 주변 캐릭터들을 이리저리 요령껏 끼워넣음으로써 영화는 감동의 폭을 넓혀간다.
‘왕따’로 자살한 남학생,사춘기 때 죽은 소년,임신한 아내를 남겨두고 죽은 남자,아이를 낳다 죽은 여자 등이 누군가의 간절한 바람으로 환생한다.영화는 이들의 다양한 이야기로 살을 붙인 덕분에 단순한 멜로를 뛰어넘어 광의(廣義)의 사랑이야기로 주제를 확장했다.
평범한 멜로물이 아니라고 끝까지 자기목소리를 내는 영화다.지면에 차마 밝힐 수 없는,가슴 저린 막판반전이 기다린다.주인공 구사나기 쓰요시는 일본의 인기그룹 ‘스마프(SMAP)’의 멤버다.시오타 아키히코 감독.
기타노 다케시 감독 첫 멜로 ‘돌스'
동네 슈퍼마켓 주인아저씨 같은 순박함 속에 어떻게 칼날 같은 영화적 감성을 꼭꼭 숨기고 있을지,한번쯤팬들을 고민하게 만드는 일본의 중견감독 겸 배우 기타노 다케시.‘돌스’는 ‘소나티네’‘하나비’‘키즈리턴’ 등 강렬한 화면과 메시지를 던져온 그가 처음 연출한 멜로영화다.하지만 달콤한 러브스토리를 기대하진 말아야겠다.감독이 어렵사리 꺼낸 사랑이야기는 그리 편치만은 않다.등장인물들이 풍요로운 연애감정을 누리는 게 아니라 하나같이 사랑에 지독히 상처받은 영혼들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멜로물과는 달리 극의 구도가 우선 독특하다.집안의 반대로 결혼하지 못한 채 정신병자처럼 떠도는 젊은 남녀,죽음에 임박한 늙은 야쿠자와 그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중년 여인,인기절정에 실명한 여가수와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자신의 눈을 서슴없이 자해한 청년.
안온한 상식을 뛰어넘어 치명적이고도 헌신적인 사랑을 나누는 세 남녀커플이 돌아가며 이야기를 엮어간다.엄연히 다른 사연들인데도,스크린 밖에서 보면 마치 한 필의 피륙처럼 감쪽같이 경계를 지워가는 극 전개가 매우 요령있다.열도의 사계를 배경으로 도테라(솜누비 일본 전통의상),분라쿠(文樂·전통인형극) 등이 주요소재로 쓰였다.그래서일까.순간순간 처연한 사랑이야기를 담은 한 편의 분라쿠를 보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황수정기자 sj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