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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전자, ‘정전 사고’ 기흥 반도체공장 S라인 이례적 공개

    삼성전자, ‘정전 사고’ 기흥 반도체공장 S라인 이례적 공개

    “3분기(7∼9월) 실적으로 보여주겠다.”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 사장의 얘기다. 황 사장은 정전으로 멈춰섰던 경기 용인시 기흥공장 K2지역의 비(非)메모리 생산라인(S라인)을 6일 국내외 언론에 공개한 뒤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삼성이 S라인을 외부에 공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조기 정상화’ 주장에 쏠리는 의심어린 시선을 차단하고, 자신감에 찬 모습을 보임으로써 사고 후유증을 최소화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황 사장 “나 자신도 당황” 황 사장은 “예상치 못한 사고로 나 자신도 당황스럽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이어 “많은 분들이 정전사태 수습 이후의 여파를 걱정하는데 실적으로 보여주겠다.”면서 “마음 같아서는 (정전 사고가 난)8월 실적도 보여주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3분기 실적으로 말하겠다.”고 했다. 그 실적은 “기대를 뛰어넘는 수준이 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황 사장은 정전 사고 이전부터 ‘3분기 깜짝 실적’을 예고해 왔다. 다시 말해 정전이라는 초유의 악재에도 불구하고 3분기 깜짝 실적 달성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는 주장이다. 황 사장은 “사고 직후에는 해외 거래선들의 문의가 쇄도했으나 지금은 조기 정상화 노력에 감사한다는 답신을 보내오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사고 직후 노키아·델 등 대형 거래처에 일일이 e메일을 보냈다. 일각에서는 그간의 실적 부진과 이번 정전 사고로 향후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고 있으나 황 사장은 여전히 당당했다.“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겠다.”는 그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생산차질분 이달내 만회”vs“영업이익 최대 2000억원 감소” 윤종용 부회장이 이날 휴가를 떠나기에 앞서 공언한 대로 삼성전자는 S라인을 국내 신문·방송사와 외신 기자 50명에게 전격 공개했다. 정전이 났던 K2지역의 6개 라인 가운데 가장 먼저 복구된 곳이기도 하다. 재가동 이틀째를 맞은 이곳에서는 정전 당시의 급박했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맨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노란 손잡이가 달린 검정색 보관함. 각각의 보관함에 웨이퍼(동그란 와플 모양의 얇은 판)가 25장씩 들어있다. 이 웨이퍼 한 장에서 수백개의 반도체칩이 만들어진다. 검정 보관함은 자동화 벨트를 따라 쉼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보관함이 멈춰선 설비 앞에는 노란불과 파란불이 깜박였다. 노란불은 웨이퍼가 공정에 들어가기 위해 대기 중, 파란불은 공정에 들어가 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의미다. 정전 당시에는 이 불이 전부 빨간색이었다. 간간이 흰색 방진복을 입은 작업자들이 눈에 띄었다. 최창식 비메모리 제조센터장(부사장)은 “정전 당시 이동 중이거나 대기 중인 웨이퍼들은 모두 살릴 수 있다.”며 “정전으로 인한 생산 차질분은 이달 안에 만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삼성은 정전 피해액 400억원을 산출하면서 웨이퍼 폐기 물량을 전체의 5%로 산정했다. 최 사장은 그러나 구체적인 만회 방법은 밝히지 않았다.24시간 가동되는 반도체 생산라인은 자동차 라인과 달리 특·잔업의 의미가 없어 생산성(수율)을 올리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 박현 푸르덴셜증권 애널리스트는 “(사고 이전 수준의)수율 회복에만도 최소 3주가 걸리는 만큼 최대 2000억원의 3분기 영업이익 감소가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이선태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1차 피해규모는 500억원으로 추산되지만 생산효율 하락에 따른 추가 손실이 불가피해 보인다.”면서 “정전 사고로 전 세계 3분기 낸드플래시 웨이퍼 생산량 296만장 가운데 1.1%인 3만장 안팎의 공급량 감소가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남은 과제 정확한 사고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책 마련이 핵심이다. 현재 내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여러 전담팀이 사고원인을 정밀조사 중이다. 이 결과가 나와야 재발 방지책의 내용도 달라진다는 게 삼성측의 설명이다. 기흥공장 전체 필요 전력의 평균 30% 수준인 무정전 전원공급장치(UPS) 용량은 현재로서는 늘릴 계획이 없다. 삼성측은 “병원으로 치면 수술실만 비상가동하는 셈”이라며 “일반병동 가동 전력까지 평상시에 대비해 놓는 것은 공장안에 발전소를 짓지 않는 이상 비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기흥(용인)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We랑 외국어랑 놀자-영어] Do you have any vacation plan this summer?

    A:Why don’t we take a break for a moment? (잠깐 쉬는 게 어때요?) B:That sounds good.Do you have any vacation plan this summer? (좋은 생각입니다. 이번 여름휴가계획 있어요?) A:Well,I have no idea yet.What about you? (글쎄요. 아직 모르겠네요. 당신은 있어요?) B:My family will go to Jeju Island for four days and three nights. (가족하고 3박4일 동안 제주도에 가려고 해요.) A:Wow,that sounds great.I miss blue ocean water and smell of the sea. (야, 좋은 생각이군요. 파란 바다와 바다냄새가 그립네요.) B:I am really looking forward to the vacation. (이번 휴가를 학수고대하고 있답니다.) ▶ take a break:잠시 쉬다.Break는 휴식, 쉼을 뜻하는 명사 ▶ four days and three nights:3박 4일 우리말과 어순이 다른 점에 유의하자. 우리말과 같은 어순으로 three nights and four days라고 하는 경우도 많지만, 원래 어순은 잠자는 숙박의 nights가 먼저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I spent three days and two nights in L.A.(로스앤젤레스에서 2박3일을 보냈습니다.) ▶ look forward to∼ing:∼을 고대/기대하다, 여기서 to는 전치사이기 때문에 바로 다음에 명사에 해당하는 어구가 사용되어야 하기 때문에, 동사를 붙이는 경우에는 ∼ing 형태로 한다는 점에 유의하자.I look forward to hearing from you.(당신의 소식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박명수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 교수
  • [CEO칼럼] ‘우리시대의 탱크’ 두 영웅이 아름답다/신상훈 신한은행장

    [CEO칼럼] ‘우리시대의 탱크’ 두 영웅이 아름답다/신상훈 신한은행장

    최근 나는 두 명의 아름다운 영웅들을 한꺼번에 접하는 행운을 가졌다. 첫번째 주인공은 ‘산악인 엄홍길’씨다. 지난 6월4일 새벽에 귀국한 뒤 인사차 들른 ‘2007년 한국 로체샤르 로체 남벽 원정대’ 속에 작은 거인, 그가 있었다. 엄홍길 대장을 비롯한 대원들의 검게 탄 얼굴이 반가웠고 까칠한 손끝을 통해 전해지는 산사나이들의 감촉이 너무나 정겨웠다. 내가 엄 대장을 제대로 알게 된 것은 지난 2005년에 있었던 ‘휴먼원정대’ 뉴스를 통해서다.2004년 에베레스트 등반에서 사고를 당해 당시 8750m의 설벽에 매달려 있던 동료의 시신을 77일간의 사투 끝에 수습하고 목놓아 울부짖던 엄대장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올 봄, 통합 1주년을 맞은 신한은행은 산악인들의 쉼 없는 도전정신과 끝없는 개척정신을 공유하고자 원정대를 후원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3월8일 열린 발대식 분위기는 실로 비장했다. 앞서 세차례 실패한 난공불락의 봉우리였기에 등정기간 내내 1만 3000여명의 임직원들은 등정 성공을 한결 같이 염원했다. 그런 만큼 25시간의 사투 끝에 이룬 세계 최초의 히말라야 16좌 완등 소식은 가뭄에 단비처럼 참으로 달콤했다.‘도대체 무엇이 167㎝의 이 작은 사나이로 하여금 그 극한 상황을 이겨내게 했을까?’ 궁금하여 물어보았을 때 그의 미소는 부드러웠으나 대답은 참으로 단호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상황에서도 반드시 이루겠다는 꿈과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의지 때문에 가능했습니다.”,“우리 한국인에게는 해내고야 말겠다는 근성과 끈기가 있지 않습니까?”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한없는 겸손함, 치열한 승부근성과 솔선수범의 리더십 등 생사를 넘나들며 터득한 지고지순의 가치에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장마와 무더위에 지친 국민들에게 청량제 역할을 해준 사람이 있다면 바로 ‘최경주 선수’가 아닐까 싶다. 그는 지난 9일, 신기의 벙커샷으로 미국 무대에 진출한 후 여섯번째 우승을 일궈내며 세계 골프팬들을 매료시켰다. 하지만 그가 정녕 아름다운 것은 단지 빛나는 승리 때문만은 아니다. 국내 1위에 안주하지 않고 세계무대로 홀연히 나아갔듯 그는 늘 더 높은 곳을 향해 온몸을 던지는 도전정신의 소유자였다. 밥을 굶고 날을 새우더라도 하루의 목표연습량만은 반드시 달성하고야마는 끝없는 노력의 화신이기도 하다. 그는 “뒤를 돌아 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렸다. 여러가지 난관이 내 앞을 막았지만 매일매일 내 자신을 믿었다.”고 말한다. 이처럼 최선수가 높이 치켜 올린 우승 트로피는 불굴의 도전정신과 끝없는 노력이 만들어낸 산물이었다. 흔히 사람들은 좌절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이들에게 “무모하다.”거나 “미쳤다.”고 말한다. 엄홍길과 최경주! 어찌 보면 그들은 미쳤기에 아름다운지 모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와 심각한 청년실업!우리는 큰 난관에 봉착했을 때 너무 쉽게 삶을 포기하고 꿈을 잃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나약해지기 쉬운 세상 사람들에게, 엄홍길과 최경주는 힘주어 말한다.“극한 상황에서도 꿈과 자신감을 잊지 말고 뚝심있게 한발 한발 걷다 보면 언제나 새 길은 열립니다.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오!” 우리시대의 진정한 탱크, 엄홍길과 최경주! 그들이 아름답다. 신상훈 신한은행장
  • [땅끝마을에서 한양까지 다시 걷는 옛길] (2) 강진 성전~영암 영보

    [땅끝마을에서 한양까지 다시 걷는 옛길] (2) 강진 성전~영암 영보

    조선시대의 법전인 ‘경국대전’에는 10리마다 원(院)을 두고 30리마다 역(驛)을 세웠다고 기록돼 있다. 사람이 4㎞쯤 걷고 난 뒤 쉬고, 한참을 달린 말에게 먹이를 먹여야 했던 거리이다. 석제원은 호남대로의 시발점인 전남 강진 포구와 해남 땅끝에서 출발한 관리·군사·상인들이 꼭 거쳐야 했던 쉼터였다. 석제원은 지금의 강진군 성전면 월평리 원기마을 일대이다. ●석제원이 원터였음을 알리는 암석비문 ‘방치´ 원기(院基)란 마을 이름에서도 옛 ‘원 터’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곳은 해남과 강진 방면에서 북쪽으로 향하는 길이 만나는 교통 요충지이다. 또 30여리(10여㎞)쯤 북쪽으론 월출산 고갯길이 위치해 하룻밤을 묵는 쉼터로서 손색이 없는 자리이다. 이 마을에 들어서자 예전 사람들로 북적였던 기대와 달리 한적할 뿐이다.10여년 전 들어선 성화대학 정문엔 이곳이 원터였음을 짐작할 만한 2m 길이의 암석비문이 방치돼 있다. 이 비문엔 ‘순상 이희명 선진활인 영세 불망비’(순찰사 이희명이 굶주린 사람에게 식량을 도와줘 감사하다)란 문구가 한자로 새겨져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에 세워진 송덕비로 보인다. 이 마을 이장 정일성(65)씨는 “이 비문은 월평리 161-1 ‘동승관’ 중화요리집 뒤뜰에 세워졌던 것으로, 최근 건물 신축 때 지금 장소로 옮겨졌다.”며 “마을회의 등을 거쳐 이 비문의 보전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곳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성전 터미널과 신천리 오일 재래시장이 있다. 시장에 들어서자 폐허가 된 상점과 썰렁한 골목길만 눈에 띈다.30여년 동안 방앗간을 운영하고 있는 정인엽(55·여)씨는 “한때 시장 골목이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난전이 열렸고, 우시장엔 영암·해남·강진 등지에서 소를 끌고 몰려오는 사람들로 붐볐다.”고 말했다. 우시장이 없어진 20여년 전부터 시장은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고 전한다. ●탑동마을엔 보물 298호 ‘월남사지 3층석탑´ 다산 정약용도 1801년(순조 1년) 강진으로 유배될 당시 석제원이 자리했던 성전을 거쳤다. 그는 강진 유배생활 도중 ‘탐진촌요’ 20수의 하나인 ‘석제원’이란 시조를 남겼다.‘북쪽은 길이 여섯갈래, 끝내는 서로가 헤어지던 이별길, 문앞에 버들은 한풀이로 잎이 졌고, 서리에 꺾어져 가지조차 드물다.’는 이별의 슬픔을 내용으로 담고 있다. 향토사학자 양광식(61)씨는 “이 시로 보아 당시 석제원이 이별과 만남의 장소로 이용될 만큼 교통의 중심지였다.”고 말했다. 옛길은 성전에서 국도 13호선을 따라 영암쪽으로 이어진다. 신작로를 따라 10㎞쯤 가다 보면 월출산이 눈앞에 펼쳐진다. 월출산 남쪽 기슭인 성전면 월하리엔 천년 고찰 무위사가 세월의 무게를 간직한 채 고요 속에 묻혀 있다. 이 사찰은 617년(신라 진평왕 39년) 원효(元曉)가 관음사(觀音寺)로 창건했다. 그 뒤 중수와 개칭이 반복됐으며, 경내엔 보물 제507호인 선각대사편광탑비(先覺大師遍光塔碑)가 있다. 무위사를 뒤로하고 월출산 방향으로 향하면 ㈜태평양이 조성한 거대한 녹차밭이 눈에 들어오고, 그 밑자락엔 월남마을이 자리를 한다. 마을 곳곳엔 절터와 고탑(古塔)들이 산재한다. 최근 퇴직한 조선대 이효복(61) 교수가 탯자리인 이곳에 조상들이 살던 집을 개조해 ‘월남 정사’를 짓고 자연과 벗삼고 있다. 이 교수는 “녹차와 황칠나무를 이용해 고유차를 개발하고, 올해 처음으로 자연에 바치는 다신제(茶神際)를 올렸다.”며 “이 고을은 예부터 산이 좋고 물이 맑아 절이 많이 있었다.”고 말했다. 인근 탑동마을에는 보물 제298호로 지정된 ‘월남사지 3층석탑’이 자리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고려 진각국사 혜심(1178∼1234년)이 ‘월남사’를 창건했다고 기록돼 있으나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지고 터만 남았다. ●풀치재 너머 월출산 사자봉·매바위 보여 성전∼월남마을 13번 국도를 따라 이어지던 옛길은 강진과 영암의 경계를 이루는 ‘풀치재’ 바로 밑 신월마을에서 뚜렷이 갈라진다. 지금의 신작로는 일제 때 개통된 도로를 없애고 최근 터널을 뚫어 새로 건설됐다. 선인들이 가파른 고갯마루에 올라 땀을 식혔던 자리는 온데간데없고 터널을 넘나드는 차량만 분주하다. 옛길은 신월마을 입구에서 월출산 자락인 야트막한 ‘누릿재’로 향한다. 이 길은 초입부터 숲이 우거지고, 일부는 농경지로 변해 전체의 모습은 헤아리기 힘들다. 그러나 사람과 우마가 다닐 정도의 소롯길 모습은 남아 있다. 신월마을 주민 전근순(82)씨는 “40여년 전에는 농한기에 짠 가마니를 팔기 위해 이 고갯길을 넘어 영암읍장에 다녔다.”며 “당시엔 소를 끌고 가거나 봇짐을 짊어진 나그네들이 쉼없이 오가는 주요 통로였다.”고 회상했다. 이 고개를 넘으면 영암읍 개산리 내동으로 빠진다. 고개 너머 왼쪽엔 월출산의 기암인 사자봉과 매바위 등을 볼 수 있고 천황사로 가는 길목의 ‘구절폭포’도 만날 수 있다. 누릿재가 해발 230m인 데 비해 이곳과 이웃한 국도 13호선 풀치재는 180m로 50m가량 낮다. 일제가 누릿재에 신작로를 내지 않고 풀치재를 택한 것은 해남 쪽보다는 장흥과 강진 병영에 비중을 더 뒀던 것으로 보인다. 향토사학자 김정호씨는 “풀치재는 강진 작천·병영, 장흥 쪽에서 영암으로 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로 누릿재보다는 이용도가 높다.”며 “일제가 효율적인 수탈을 위해 ‘누릿재 옛길’을 버리고 우회 도로격인 지금의 신작로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풀치재를 넘으면 영암의 영보역으로 향하는 길목에 다다른다. 강진·영암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숙소 많았던 석제원 동학도 수만명 머물러” 강진은 예부터 포구가 발달해 제주 등 섬을 오가는 교통 통로였다. 왜구들의 침입도 잦아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그만큼 군사와 관리·정치인·상인들이 강진∼한양 옛길을 왕래한 흔적이 많다. 호남대로로 이어지는 통로 가운데 성전면 석제원은 중요한 자리였다. 원(院)을 중심으로 주막과 민간인이 머무는 숙소와 장터 등이 생겨나고 장사꾼들도 모여들었다.1894년 전국 각지의 동학도 수만명이 마지막 남은 인근 병영성을 공격하기 위해 몰려와 숙식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월출산 쪽으로 2㎞쯤 지나면 신풍마을이다. 이 마을은 무위사로 이어지는 입구로서 ‘두여원’이 있었다. 무위사를 드나들던 관원이나 나그네들의 쉼터였다. 이곳보다 북쪽인 월남마을 월남사지 주변에 ‘월남역’이 위치한 것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돼 있다. 그러나 대동여지도 등에는 관련 기록이 없어 한때 역으로 사용되다가 원(院)으로 격하되지 않았느냐는 추측을 낳는다. 해남 별진역∼석제원이 20리이고, 석제원∼월남마을은 10리인 만큼 역(驛)이 들어설 만한 거리이기 때문이다. 강진∼영암 옛길은 지금의 국도 13호선 방향 말고도 여러 접근로가 있었다. 제주에서 강진읍 남포항으로 들어온 관리나 나그네들은 강진읍 통로역(성요셉여고 자리)∼작천·병영성(진원역)∼풀치재 코스를 이용하기도 했다. 강진군 관내에 산재한 10여개의 역과 원은 당시 장흥 벽사역의 관할을 받았다. 고갯길마다 세워진 주막이나 간이 숙소 등의 흔적은 현재로선 찾기가 어려워 아쉽다. 양광식 강진군 문화재연구소장
  • [김미라 교수의 부모들을 위한 교육특강](10) 자녀 창의성 높이기

    [김미라 교수의 부모들을 위한 교육특강](10) 자녀 창의성 높이기

    ‘양초, 압정, 그리고 성냥이 가득 들어 있는 성냥갑이 있습니다. 이 물건들을 사용해 촛농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불이 붙은 양초를 문에 고정시켜보세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 미국에서 전화번호를 찾기 위해 114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가전도구 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해당 AS센터에 전화를 걸면 곧바로 전화 상담원이 유창한 영어로 응대해 옵니다. 실시간으로 영어를 사용하는 상담원이 전화를 받기 때문에 전화를 건 사람들은 상담원이 어디에 있는지 어느 나라 사람인지 거의 신경쓰지 않지만 미국 어딘가에 있는 미국사람일 것으로 암묵적 추정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콜센터의 전화 상담원들은 제3국에서 전화를 받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21세기 들어 세계는 인터넷과 컴퓨터의 발달에 힘입어 정보교류라는 측면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거의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생긴 여러 가지 양상 가운데 하나가 단순반복의 지식노동은 컴퓨터를 사용하여 해결하거나, 임금이 낮은 지역의 일거리로 바뀌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래학자들은 컴퓨터나 제3국으로 일거리가 전달되고 남은 빈자리는 창의성을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창의성 교육이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교육일 텐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고 다양한 연구 결과가 실제 창의성 증진에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앞에서 제시한 ‘양초, 압정, 그리고 성냥갑’ 문제는 인지심리학자 던켈이 만든 것으로 창의성을 알아보거나 증진시키기 위해 사용하곤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문제를 어려워합니다. 해답을 찾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상자는 물건을 담는 데 사용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입니다. 답은 그림과 같습니다. 상자를 받침대로 사용한다는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발산적 사고나 발상의 전환 등의 다양한 창의 기법을 학습해야 합니다. 즉 인지적 측면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높은 수준의 창의성은 단순히 인지적 측면의 사고훈련만으로는 얻기 어렵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크게 세 가지 요소, 지·정·의로 구성돼 있다고 봅니다. 마음은 지(知)·정(情)·의(義)가 함께 작동해야만 제대로 기능하기 때문에 ‘지’적인 측면만 강조하는 창의성 교육은 적합한 교육이 되지 못합니다.‘정’측면이 함께 해서 학습장면이 즐겁고 유쾌한 정서가 가득 차도록 해야 하며,‘의’ 부분에서는 학습동기에 대한 교육이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학습동기가 확립되면 지적 호기심이 충만하게 돼 기존문제에 새로운 해결책을 찾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게 될 것입니다. 그 과정 속에서 창의성과 창의적 산물이라는 부산물이 나타나게 됩니다. 미시건대의 심리학자 프레드릭슨은 위의 양초 실험에 영향을 미치는 변인(變因)을 알아보기 위해 학생들에게 문제를 제시하기 전에 사탕을 주거나, 좋아하는 만화책을 읽게 하거나, 유쾌하고 긍정적인 단어를 큰 소리로 읽게 했습니다.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창의성 문제를 해결하도록 지시받은 집단에 비해 정서적으로 즐거운 상태의 집단에서 더 많은 해답이 나왔습니다. 창의성이라는 지적 요인과 즐거움이라는 정서 요인이 함께 했을 때 창의성이 보다 더 쉽게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나 케큘러의 벤젠고리 등은 학습동기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르키메데스나 케큘러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해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잠시 쉬고 있는 도중에 갑자기 아하! 하면서 해결방법이 떠올랐습니다. 여기서 ‘잠시 쉬고’ 있는 동안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렇게 쉬고 있는 동안을 ‘부화기’(incubation period)라고 부릅니다. 마치 달걀이 병아리가 되려면 암탉이 21일 동안 알을 품고 있어야만 하듯 생각도 품고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해결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벽에 부딪친 상황에서 잠시 그 문제를 내려놓고 쉬는 상태가 필요합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학습동기, 즉 열망이 있는 사람의 머리 속에서는 생각하지 않고 있어도 머리 속에서 정보들끼리 화학작용이 일어나고, 그 산물이 문제 해결의 단서로 작용합니다. 역사 이래 목욕하다 물이 넘치는 것을 경험한 사람은 아르키메데스뿐만이 아닐 겁니다. 질량과 밀도에 대해 고민한 아르키메데스만이 그 답을 알아본 것입니다. 케큘러는 저녁 늦게 마차를 타고 조는 도중에 벤젠고리를 찾아냈지요. 그 후로 학자들이 늦은 저녁시간에 마차를 타고 도시를 배회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는 우스운 후일담이 있습니다만 달걀이 없는 부화는 아무리 노력해도 병아리가 될 수가 없지요. ‘머리 속에서 그냥 영감이 떠올랐다’ 는 표현은 창의성 분야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창의성은 사고 훈련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마음의 구성 요소와 환경 요인, 특히 ‘쉼’이라고 요인이 적절하게 조합되었을 때 가능합니다. 아이들에게 촛불 문제를 내고 해답을 금방 찾지 못해도 곧바로 답을 알려주지 말고 ‘너는 해 낼 수 있다.’라는 격려와 함께 하루 정도 내버려 둬보십시오! 다양한 해법이 나올 것입니다.
  • 입시공화국의 종말/김덕영 지음

    3월엔 ‘3불정책’으로 뜨겁더니 6월엔 대학 내신등급 적용문제로 뜨겁다. 한국사회는 교육문제로 늘 뜨겁다.‘세상만사’에 무관심한 사람도 교육문제, 좀더 정확하게 말해 입시정책에 대해서만큼은 입에 거품을 문다. ‘입시 공화국의 종말’(김덕영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입시 공화국은 종말을 고해야 한다.’는 의미이자 ‘입시 공화국은 결국 종말에 이르고 만다.’는 주장이다. 독일 카셀대학에서 사회학을 강의하는 지은이는 한국 교육이 ‘인재 이데올로기’에서 탈출해야 한다고 말한다. 개인을 ‘인재’‘인적자원’으로 파악하는 한 학생들은 국가와 민족의 발전을 위해 ‘쉼 없이 뛰는 조그만 선수들’일 뿐이다. 학교가 ‘감시와 처벌’의 온상이란 푸코적 진단도,‘명문대 출신’으로 정의되는 한국 엘리트의 허약함에 대한 야유도 새삼스럽진 않다. 그러나 ‘조승희=오답’ ‘하인즈 워드=정답’이란 정의가 학벌주의와 민족주의로 오염된 교육의 필연적 결과란 지적은 가슴 아프다. 저자는 해법을 제시하는데도 우물거리지 않는다. 서울대를 ‘대학 중의 대학’이 아닌 ‘다양한 대학 중 하나’로 위상을 재정립할 것, 고등학생 평가는 고등학교에 맡길 것, 객관식 시험을 폐지하고 토론과 논술로 대체할 것.1만 2000원.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단양군 영춘면 온달산성

    단양군 영춘면 온달산성

    1400년 전 충북 단양군은 고구려와 백제, 그리고 신라가 팽팽히 맞서 세력다툼을 벌였던 곳. 특히 영춘면은 경상도와 강원도를 이어주는 베틀재의 초입이어서 늘 상인들로 붐볐다. 방랑시인 김삿갓이 마지막으로 걸음한 곳도 이 고개였다고 전해진다. 그만큼 영춘은 경상도에서 충청도나 강원도로 넘어오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전설이 깃든 온달산성은 소백산과 남한강이 서로 희롱하는 영춘면 하2리 성산 자락에 요새처럼 자리잡고 있다. 길이 683m, 폭 3∼4m의 반월형 석성. 삼국시대에 한강을 차지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고구려와 신라 사이에 영유권을 둘러싸고 전투가 치열했으며 성안에서 삼국시대 유물이 출토되기도 했다. 작은 산성이지만 사면이 깎아지른 산봉우리를 에둘러 돌아간 모습이 마치 머리에 수건 질끈 동여맨 투사를 보는 듯하다.SBS 역사드라마 ‘연개소문’ 오픈세트장을 지나 등산길로 접어들었다. 경사가 급해 여간 힘들지 않다. 입에서 단내가 폴폴 날 때쯤 사모정(思慕亭)에 도착했다. 전사한 온달장군의 관이 땅에서 꼼짝달싹하지 않아 평강공주가 달려와 눈물로 달래자 그제서야 땅에서 떨어졌다는 전설이 서린 곳이다. 하지만 후세의 인심이 이렇게 각박할 수 있을까. 모양만 정자일 뿐 콘크리트에 색깔만 입혀놓은 현대식 건축물이다. 운동화를 풀고 쉼을 청했지만, 도무지 차기만 할 뿐, 시원한 맛이라고는 없다. 건축관계자들의 천려일실을 탓하며 다시 고행길로 들어섰다. 아마 군장 둘러멘 병사들은 성에 이르기 전에 지쳐 전의마저 상실했을 게다. 원시림에 들어온 것처럼 시원한 기운이 느껴질 무렵, 정상 마루에서 황토빛 석벽이 위용을 드러냈다. 삼국시대의 성 가운데 원형이 가장 잘 보존돼 있다는 온달산성은 촘촘하게 돌을 끼워 맞춘 석성(石城)이다. 얇은 점판암을 겹쳐 쌓아 정밀하고 튼튼하다. 성곽을 따라 천천히 한바퀴 돌아보았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강렬한 풀냄새가 원초적 본능을 일깨웠다. 옛 고구려 병사들의 함성과 함께 성에 갇힌 채 농성하는 듯하다. 온달산성은 국내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산성으로 손꼽힌다. 성곽 자체는 보잘것없지만, 주변 풍광만큼은 정말 일품이다. 아래로는 배수의 진을 친 듯 남한강이 돌아나가고, 뒤편으로는 천태종의 대가람 구인사로 향하는 구봉팔문(九峰八門)이 물결을 이룬다. 그리 높지 않은 산임에도 구름은 어김없이 쉬었다 간다. 야생화는 또 얼마나 많은가. 들국화를 비롯해 중나리, 엉겅퀴 등이 무시로 피어 있다. 구름이 몰려와 꽃들의 자태를 살짝 숨길 때면 선경이 따로 없다. 온달산성의 실체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많다. 온달장군이 누이동생과 함께 하루만에 지었다는 전설도 있지만, 신라의 성인지, 고구려의 성인지조차 불확실하다. 온달장군이 전사한 지역에 관해 서울 광진구의 아차산이라는 설도 있다. 아무렴 어떤가. 남한강 푸른 물굽이가 천년세월을 변함없이 감돌아 흐르는 이 산성에서 온달장군과 평강공주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글 사진 단양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이것만은 꼭 챙기세요!!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북단양나들목→단양읍→고수대교→좌회전→59번 국도→군간교→우회전→영춘교→구인사 방면으로 좌회전→온달관광지 (043)423-8820. 단양군청 문화관광과 420-3544. #맛집 단양읍내 돌집식당(422-2842)은 ‘더마나곤드레솥밥’으로 유명한 집. 더덕과 양념한 단양 육쪽마늘위에 돼지고기 수육을 얹어 먹는 ‘삼합’이 일미다. 함께 나오는 곤드레나물 솥밥은 간장, 혹은 양념 된장에 비벼먹는다.2인 이상 1인분 1만 2000원.
  • ‘황혼의 뮤지컬’ 무대 오르다

    ‘황혼의 뮤지컬’ 무대 오르다

    ‘지공(지하철 공짜) 세대의 열정, 드디어 막을 올리다.’노인 창작뮤지컬 ‘심청-영원히 늙지 않는 청년의 마음’의 첫 공연을 하루 앞둔 19일 중구 신당동 충무아트홀 소극장. 어르신 배우들은 쉼없이 소리를 내질렀다.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었다. 그리고 너무 좋아했다.“세상이 아름답게 보였다.”는 김천혜자(63) 할머니의 한마디는 지난 과정의 소중함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어르신들은 황혼의 열정이 젊음의 혈기 못지않음을 온 몸으로 보여줬다. ●1막-몸과 마음이 따로 놀다 지난달 2일 ‘뮤지컬 실버파워’의 공개 오디션 이후 어르신들은 ‘이팔청춘’으로 되돌아갔다. 뮤지컬 연습은 어릴 적 동무와 함께했던 놀이와 같았다. 노래, 안무, 의상, 소품 등 뮤지컬에 필요한 모든 부문에 직접 참여했다. 음악에 조예가 깊은 이윤영(76) 할아버지는 실버 뮤지컬파워의 주제곡을 작사·작곡까지 했을 정도다. 충무아트홀 장미실은 한달 보름 동안 어르신들의 열정과 긴장, 행복으로 가득찼다고 한다. 어르신들의 연습 과정을 지켜본 한송이 어린이문화예술학교 팀장은 “다들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면서 “어르신들끼리 알아서 반장도 뽑고, 간식도 서로 챙겨 나눠먹으면서 친해지는 모습이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세월은 어쩔 수 없다고 했던가. 간혹 몸이 따르지 않아 웃음꽃이 피기도 했다. 이윤영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에피소드 한토막.“연출 선생님이 기초 교육을 할 때 시범 삼아서 잔걸음으로 뜀박질을 했지. 근데 이를 따라하던 할머니들이 넘어진 거야. 그 모습이 얼마나 재미있던지… 박장대소를 했습니다.” 그럼에도 몸을 사리지 않은 어르신들이 적지 않았다. 이애우(72) 할머니는 투석까지 받아가며 연습에 참여하는 악바리 기질을 보였다. 공연 관계자들은 이런 어르신들 때문에 수시로 “제발 좀 쉬세요.”라고 했다고 한다. ●2막-이 나이에도 떨립니다 공연을 하루 앞둬서 그런지 긴장하는 어르신들이 많았다. 무대의 동선 연습이 한창이었지만 어색한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쑥스러우시죠.” 연출자 김소정씨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정인남(69) 할머니는 “연습할 때는 잘 했는데 막상 무대에 서니 잘 안되네. 딴 사람이 된 것 같아.”라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볼 사람이 많아서 공연 티켓을 30장이나 챙겼는데 공연 도중에 망신당하면 안 되는데….”라고 말했다. 이윤영 할아버지도 “공연 때문에 잠을 설친다.”고 토로했다. ●3막-한여름 밤의 꿈인가 처음에는 배역을 놓고 신경전도 있었지만 실버 뮤지컬에서 삶의 활기를 찾았다는 어르신들. 조선희(62) 할머니는 “성취감 때문인지 집에서도 흥얼흥얼하는 내 모습을 본다.”면서 “또래들이 너무 부러워한다.”고 행복해했다. 그러나 공연이 끝나면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쓸쓸함을 비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실버 뮤지컬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랐다.“공연 전 두근거리는 마음 때문에 밤에 잠을 설쳤는데 공연이 끝나면 허탈해서 잠을 더 설칠 것 같아.” 이윤영 할아버지의 혼잣 말이 애잔하게 들린다. 한편 노인 창작뮤지컬 ‘심청’은 20일 오후 1시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랙에서 공연된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배드민턴 男 단식 이현일 “다시 집에 온 기분… 올림픽 올인”

    배드민턴 男 단식 이현일 “다시 집에 온 기분… 올림픽 올인”

    “다시 집에 돌아온 느낌입니다. 낯설지 않을까 했는데 제자리를 찾은 듯 편안하네요.” 올 초 태극마크를 반납했던 배드민턴 남자 단식의 간판 이현일(27·김천시청)이 약 4개월 만에 다시 대표팀에 돌아왔다. 지난해 1월 전영오픈에서 한국 셔틀콕 사상 처음으로 준우승을 차지했던 그는 떠날 때도, 돌아올 때도 고민을 거듭했다. 지난 13일 태릉선수촌에서 구슬땀을 쏟고 있던 이현일은 “무료해지고 감이 무뎌졌었다.”고 대표 은퇴 선언 당시를 돌이켰다. 고교 2년이던 1997년 국가대표로 뽑힌 뒤 군사 훈련을 받았을 때를 제외하곤 10년 동안 쉼 없이 달려온 이현일이다.1년에 국내외 대회를 합쳐 15∼20개가 넘는 대회에 나섰다. 그는 “대회 출전이 점점 일과성 일이 되며 긴장감과 열정이 사그라지는 것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대표팀을 떠나있는 동안 정말 원 없이 쉬었다는 그는 자신이 설 곳이 어디인가를 곰곰이 되새겼고, 한 가지 미련이 가슴 속 깊게 남아 있음을 깨달았다. 바로 올림픽 무대였다. “2004년 아테네 때는 기대도 많았고 정말 준비도 많이 했는데 성적이 좋지 않아 실망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평생 후회하지 않기 위해 다시 이를 악물자고 결심했습니다.” 기량은 세계 정상급이지만 근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던 그에게서 이젠 ‘독기’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왼쪽 귀에서 반짝이는 귀고리는 이현일이 한때 ‘신세대 스타’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이제 대표팀 맏형으로 성숙한 자세를 드러내기도 했다. 개인 성적도 성적이지만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돼야 하고, 또 팀 내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몫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4년 2월 셋째 주 첸훙(중국)을 밀어내고 한국 배드민턴 사상 처음으로 남자 단식 세계 랭킹 1위에 올랐으나 현재 32위까지 떨어진 상태. 내년 4월까지 16위 내에 진입해야 올림픽 본선에 나설 수 있다. 아직 몸 상태가 60∼70% 정도라는 이현일은 새달 초 태국오픈을 시작으로 포인트 사냥에 나선다. 이현일은 “작은 산 하나를 넘으면 그보다 높은 산이 저를 기다리고 있어 라켓을 놓을 수 없었죠. 이제 올림픽이라는 산 정상을 향해 다시 한 번 달려가겠습니다.”라며 각오를 다졌다. 글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목포서 뱃길로 233㎞…서해 끝 ‘가거도’

    목포서 뱃길로 233㎞…서해 끝 ‘가거도’

    가히 사람이 살 만한 곳이라 했다. 우리나라 최서남단에 떠 있는 섬, 가거도(可居島). 일제강점기때는 ‘소흑산도’라 불렸다. 지금은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리’라는 어엿한 행정구역명을 갖고 있다. # 시원한 곳 따뜻한 곳 목포에서 직선거리로 145㎞, 뱃길로는 233㎞ 떨어져 있는 절해의 고도. 쾌속선으로 내쳐 달려도 4시간 30분은 족히 걸린다. 가거도항 선착장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성벽처럼 둘러쳐진 방파제다. 국내 항만공사 사상 최장기간인 28년 만에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공사비만도 1325억원. 쌓으면 부숴버리는 파도, 바람과 사투를 벌이며 세운 대역사의 현장이다. 가거도에는 여름에 시원한 마을과 겨울이 따뜻한 마을이 있다.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당연지사. 그래서 민가는 물론, 학교와 상점, 숙박업소 등이 가거 1구에 밀집돼 있다. 망추개와 콩돌해변, 달뜬목 등 둘러볼 곳도 적지 않다. 하지만 아름답기로는 역시 여름이 시원한 가거 2,3구가 한 수 위. 국내에서 해가 가장 늦게 지는 성견여를 향해 헤엄쳐 가는 악어 모습의 가거 2구 풍경은 단연 압권이다. 분지형태의 섬등반도위로 황로, 백로가 염소들과 희롱하고, 섬 중턱의 폐교너머로 솟은 기암절벽에는 파도가 쉼없이 제 몸을 부순다. 찬탄을 금치 못할 절경이다. # 가거도 최고의 전망대 하늘별장 일주 도로는 없지만, 섬 구석구석을 돌아볼 수 있는 등산로는 잘 개발돼 있다. 특히 2구에서 등대로 향하는 트레킹 코스는 반드시 가봐야 할 곳. 물새들의 천국 구굴도와 성건여 등 가거도의 비경들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는 코스다.1구쪽에서는 망추개와 달뜬목 등을 연결하는 등산로를 개발하고 있다. 섬 전체를 조망하기 위해서는 독실산(639m)에 올라야 한다. 산세가 우람해 오를수록 웅장한 느낌을 준다. 독실산 정상의 ‘하늘 별장’은 경찰 레이더 기지의 별칭이다.2005년 9월부터 일반에 개방하고 있다. 맑은 날엔 제주도까지 관측되는 최고의 전망 포인트. # 사람만 사나? 물고기도 산다 사람이 살 만하다면 물고기들에게도 마찬가지일 터. 가거도에서 정서쪽으로 43㎞ 떨어진 ‘가거초’일대는 그야말로 황금어장을 이룬다. 물속에 숨겨져 모습은 드러나지 않지만, 가거도의 3배에 달하는 규모다. 이맘때면 농어·돌돔, 여름과 가을엔 부시리, 겨울에는 감성돔 등 고급 어종들이 찾아든다.‘열기’라고도 불리는 불볼락은 무시로 잡힌다. 그래서 해마다 1만여명에 달하는 낚시꾼들이 가거도를 찾는다.1만 5000원에 낚싯대를 대여해 주는 곳도 생겨났다. # 선상관광도 해볼만 홍도 못지않다는 가거도 해안풍경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역시 배를 타야한다. 가거항 선착장에서 회룡산과 장군바위 사이를 빠져 나가면 곧바로 기암괴석들이 줄을 선다. 군대 연병장에서 사열이라도 받는 듯하다. 녹섬, 돛단바위, 섬등반도, 납덕여, 망부석(모녀바위), 검은여(손가락바위), 개린여, 칼바위, 빈주암, 남문 등 작은 절벽과 기암괴석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어선이나 낚싯배를 빌려타는데 1인당 2만∼3만원 정도 받는다.6∼10명 내외의 인원이모이면 출항한다. 글 사진 가거도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만재도&가거도 이것만은 꼭 챙기세요!! # 가는 길 목포항 여객터미널에서 매일 아침 8시에 출항한다. 가거도까지 어른 4만 6550원, 어린이 2만 3300원. 만재도는 어른 4만 3050원, 어린이 2만 1550원. 여름철 성수기(7월 15일 예정)에는 10%의 특송료가 부과된다. 목포로 올 때는 여객터미널 이용료 1500원이 면제. 동양고속 www.ihongdo.co.kr(061)243-2111∼4. 남해고속 namhaegosok.co.kr(061)244-9915∼6. 만재도까지 곧장 가는 관광선도 있다. 최규환 만재도 이장(011-1774-8654)이 연결해 준다. 목포와 진도에서 각각 출발한다. # 잠잘 곳 가거도는 가거 1구에 숙박업소들이 몰려 있다. 방당 민박 2만 5000원, 여관 3만원선. 여름철 성수기엔 가격이 다소 오른다. 만재도 ‘만재콘도’는 총 4실 규모.4인기준 8만원.1인추가 1만원. 단체가 묵을 수 있는 노인회관도 개방할 예정. 가격미정. 낚시인들을 상대로 5가구에서 민박을 운영한다. # 먹거리 대부분 식당에서 회와 해산물을 주로 판다. 모두 자연산이라는 것이 강점.㎏당 1만∼2만원선. 가거항입구 둥구횟집(010-2929-4989) 등이 유명하다. 목포시 옥암동 ‘인동주마을’은 ‘인동주’와 홍어삼합, 꽃게장 백반으로 유명한 곳.4명이 먹을 수 있는 한상차림에 3만원. 홍어삼합은 무료로 추가.(061)284-4068. # 알아둘 만한 전화번호 신안군청(tour.sinan.go.kr) 문화관광과 (061)240-8360∼5. 흑산면사무소 가거도출장소 246-5400. 흑산면사무소 275-9300. 남성낚시 246-4070,(011)9415-0117. 경진낚시 246-4534,(010)4662-4534.
  • 목포 남서쪽 105㎞ 조그만 섬 ‘만재도’

    목포 남서쪽 105㎞ 조그만 섬 ‘만재도’

    바다는 세상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게다. 꼭꼭 숨겨두고 자기만 바라보고 싶었던 게다. 목포에서 남서쪽으로 105㎞ 떨어진 외로운 섬 만재도(晩才島).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작고 앙증맞은, 여자아이 같은 섬이다. #고요함 속에 아름다움이 숨쉬는 곳 만재도는 ‘먼데섬’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우리나라 섬 가운데 접근하기가 가장 어려운 섬 중 하나다. 무려 5시간여나 걸린다. 흑산도와 홍도 등을 에둘러 돌아간 쾌속선이 맨 마지막에 닿는 곳이기 때문이다. 해안선의 길이는 5.5㎞.45가구 100여명의 주민들이 변변한 밭뙈기 하나없이 바다만 바라보며 살아간다. 뭍에서 접근하기가 어려운 만큼 고요하기 이를 데 없다. 자동차는 물론 오토바이도, 경운기도 없다. 간간이 들려오는 어선 엔진소리를 제외하면 온통 자연의 소리뿐이다. 만재도에서 가장 먼저 외지인의 넋을 빼는 것은 ‘앞짝지’해수욕장. 앞산 밑 ‘건너짝지’, 마을 남쪽 벼랑아래 ‘달피미짝지’ 등 세 곳의 몽돌해수욕장 중 대장격이다. 둥그런 반원을 그리며 돌아나가는 모양새가 어찌나 정연한지, 반월도(半月刀)를 보는 듯 하다. 차르르∼. 몽돌사이로 빠져나가는 파도 소리가 꼭 여자아이의 웃음소리를 닮았다. 해안가에서 먹이를 잡던 흰날개해오라기가 발자국 소리에 놀라 옥빛 바다위로 줄행랑을 친다. 뭍에서 사는 잿빛의 해오라기와는 달리 하얀 날개를 가진 녀석이다. 앞짝지 해변에서 볼 때 왼쪽은 앞산, 오른쪽은 큰산, 멀리 뒤쪽은 물세이산(물살이 센 산)이다. 먼저 만만해 보이는 앞산으로 향했다. 오랜 세월 파도에 깎인 바위들이 절경을 그려내고 있다. 고저장단을 맞추며 서 있는 것이, 마치 파도소리에 맞춰 춤사위를 펼치는 듯하다. 무릎까지 자라난 풀숲을 헤치고 조금 더 오르면 전혀 다른 풍경이 눈을 의심케 한다. 왼쪽은 현란한 자태를 뽐내는 암석해변, 오른쪽은 단순하면서도 고고한 몽돌해변으로 나뉘어지는 것. 두 개의 반월도가 시퍼런 날을 맞대고 선 형국이다. 섬에서 가장 높은 곳은 큰산(176m)이다. 할아버지 당산과 등대를 차례로 지나면 곧바로 까마득한 낭떠러지. 이 절벽 아래 만재도가 자랑하는 주상절리대가 있다. 직사각형의 바위를 차곡차곡 포개 놓은 듯하다. #언제나 평온한 쉼터 뭍과 유리된 탓에 믿기 어려운 얘기들도 전해져 온다. 뱃길이 끊기는 경우가 많아 자유당 말기에 병역기피자들이 숨어들기도 했고, 세금받으러 간 목포세무서 직원은 두 달 가까이 갇히는 바람에 집에서 젯상받는 처지가 되기도 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것도 전쟁이 끝난 후에야 알았다고 한다. 예로부터 황금어장으로도 소문나 있었다. 조기가 겨울을 나고, 전갱이·다랑어·농어 등 고급어종들이 회유하는 길목이어서 연중 어로가 가능했다. 해녀들이 마을 앞 공동어장에 자맥질 한번 하면 전복 등 해산물이 광주리에 가득찼다. 재물이 가득차 있다 해서 ‘만재도(滿財島)’라 불렸던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요즘도 물고기가 많이 나기는 하지만 예전만은 못하다. 최규환 이장은 “한 때 ‘돈 섬’이라 안혔소. 그란디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전갱이가 몇십년 전부터 딱 끊기면서 궁벽한 섬이 되부렀지라. 요즘엔 주민 3분의2가 기초생활 수급자요.”라며 땅이 꺼져라 한숨만 내쉬었다. 5월1일부터 목포에서 쾌속선이 매일 운항하면서 주민들은 관광지로서 예전의 영화를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폐교가 된 흑산초등학교 만재분교를 콘도로 리모델링하고,‘쇠끝너머(마을너머)’에는 지하수를 담수해 하루 100t가량 생산할 수 있는 취수원도 마련해 놓았다. 부녀회에서는 외지인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간단한 생필품을 구비한 편의점도 열 계획이다. 여유로운 쉼이 있어 좋은 곳. 이제 뭍과의 거리는 적잖이 좁혀졌다. 주민들의 삶도 점차 나아질게다. 하지만 지금의 평온한 모습만은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글 사진 만재도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목장길 따라 野~好~~

    목장길 따라 野~好~~

    이맘때의 세상을 색으로 표현하자면 파랑과 초록 아닐까. 하늘과 바다의 파랑, 그리고 산과 들의 푸른색 말이다. 들풀이 제 빛깔을 자랑하는 계절이다. 싱그러운 초록빛의 들풀이 넓게 펼쳐진 초원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사계절에 걸쳐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혜택은 무궁하지만 그 혜택이 가장 풍성하고 아름답게 빛나는 때가 5월. 그래서 계절의 여왕이다. 넓은 초원지대와 짙푸른 녹음이 있는 강원도 평창의 대관령 일대로 초록여행을 떠난다. #푸른 초원에 넋을 잃다 굽이치는 연봉(連峯)들 사이로 물결처럼 펼쳐진 푸른 초원. 그 위엔 얼룩빼기 젖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여기 캔버스가 있다. 지우개로 젖소들을 지운 다음, 그 자리에 아름다운 수녀와 귀여운 어린 아이들이 ‘도레미 송’을 부르는 모습을 그려 넣어보자. 그대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한 장면이 된다. 지금 이곳은 대관령 삼양목장. 해발 850∼1470m의 고원에 자리잡고 있는 동양 최대 규모의 목장이다. 넓이만도 600만평. 서울 여의도의 7.5배에 달한다. 남녘은 이미 여름으로 들어섰지만, 하늘 아래 첫 동네 대관령 목장엔 아직도 봄이 한창이다.8월 한여름에도 평균기온이 20℃에 머무를 만큼 서늘한 곳. 주차장 오른쪽 길은 동해전망대, 왼쪽은 황병산으로 향하는 코스다. 드라마 가을동화의 ‘은서·준서나무’를 지나 오른쪽 차량길을 따라 급경사를 오르면 길 양옆으로 드넓은 초지가 시작된다. 하늘과 맞닿은 푸른 초원이 끝간데 없이 펼쳐져 있다. 경이로울 만큼 아름다운 풍경. 카메라만 갖다대면 어디든 ‘그림’이다. 그래서 일년 내내 150여편에 달하는 영화와 드라마,CF 등의 촬영이 이어진다. 예전과 달리 이처럼 아름다운 초지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연애소설 나무’에서 중동(해발 1100m)을 거쳐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촬영지를 지나면 동해전망대(해발 1140m)다. 맑은 날이면 멀리 동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황병산 방향 트레킹 코스는 단풍나무길이라 불리는 자연탐방길이다. 드라마 ‘가을동화’의 은서·준서 별장을 지나면서 울창한 원시림과 마주한다. 산새 우는 소리를 들으며 5㎞쯤 오르다 보면 삼정호에 이른다. 남한강의 발원지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산천어, 열목어, 수달, 원앙 등 다양한 동물들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이기도 하다. #이국적인 풍력발전기 바람이 거세기로 치자면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곳이 대관령이다. 바람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국내 최대규모의 풍력발전단지가 들어서 있다. 현재 설치된 풍력발전기는 모두 53기.5만가구가 한해 동안 쓸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해낸다. 완만한 구릉을 따라 200m 간격으로 줄지어 늘어선 풍력발전기가 이국적이다. 높이 40m, 날개 반지름은 25m에 이른다. 동해의 세찬 바람을 맞으며 쉼 없이 돌아간다. 이곳 삼양목장을 포함한 대관령 일대를 영화 ‘반지의 제왕’ 촬영지인 뉴질랜드 밀포드 트랙처럼 조성하겠다는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 사람이 생활하는 데 가장 쾌적한 고도라는 700m지대에 생태순응형 관광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관광공사와 삼양축산, 그리고 현대산업개발 등은 올 초 양해각서를 체결한 바 있다. 글 대관령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이곳·이것만은 꼭 챙기세요 #여행정보 삼양목장(www.samyangranch.co.kr)은 오전 9시∼오후 6시까지 문을 연다. 오후 4시30분부터는 입장을 제한한다. 소 방목은 오후 4시까지. 입장료는 어른 7000원, 어린이 5000원, 유치원생은 무료. 목장 내에서는 무료로 운행하는 셔틀버스 외 차량통행이 금지된다. 셔틀버스는 평일 20분, 주말엔 7∼8분 간격. #숙박시설 용평리조트(www.yongpyong.co.kr)는 타워콘도 1박에 사우나, 수영장, 곤돌라 중 택일할 수 있는 ‘休그린PKG’상품을 내놨다.2인기준 8만 4000원.27일에는 발왕산 정상에서 ‘용평 산나물체험’행사가 열린다. 점심은 산나물BBQ.2만 3000원. 스키 슬로프를 타고 내려오는 ‘마운틴 코스터’가 새로 설치됐다. 어른 8000원, 어린이 6000원.1588-0009.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 횡계나들목→횡계방향→횡계 시내 로터리→좌회전→의야지 마을회관→직진→대관령목장/한일목장 삼거리→왼쪽길 대관령삼양목장
  • 박지성 수술후 첫 기자회견 “커플링 끼고 싶어요”

    “빨리 커플링을 끼고 싶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다 부상 수술 뒤 국내에서 재활 치료 중인 박지성(26·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여자친구를 갖고 싶다는 여느 청년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그는 “김남일 선수가 커플 반지를 낀 것을 보고 부러웠다.”면서 “나도 빨리 좋은 상대를 만나 커플링을 낄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하며 미소를 짓는 여유까지 보였다. 박지성은 22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강남파이낸스센터 30층 나이키코리아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 청바지에 빨강 반소매 티셔츠를 걸친 채 목발을 짚고 나타났다. 박지성의 공식 기자회견은 수술 이후 처음이다. 박지성은 “국내 선수들이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실력”이라며 “실력만 있다면 적응하는 데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프리미어리그는 공·수 전환이 빠르고 체격조건이 좋은 선수들이 포진해 거칠다는 특성이 있지만, 몇 개월 적응하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고, 자기만의 무기를 가지고 온다면 누구라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지성은 “그럼 자신의 무기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특기가 없다는 게 특기”라고 웃으며 말한 뒤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듯이 공간을 잘 이용한다는 것, 그리고 많이 또 쉼없이 움직일 수 있다는 능력이 내가 가진 장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지성은 지난달 28일 미국 콜로라도에서 무릎 연골 수술을 받은 뒤 18일 귀국, 수원 집에서 기초적인 스트레칭과 마사지 등으로 부상 회복에 전념하고 있다. 박지성은 “솔직하게 재활훈련은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훈련 중 하나”라며 재활의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그라운드 복귀 시점에 대해선 “언론 보도처럼 1년이 걸리진 않을 것”이라며 “구단과 긴밀히 협의해 8월 재검사 후 복귀 시기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즌을 마친 소감에 대해 “부상으로 몇 경기 뛰지 않아 전체적으로는 안 좋았던 시즌이지만 경기에 나섰을 때는 지난 시즌보다 나은 모습을 보여줘 만족한다.”면서 “팀이 좋은 성적을 거뒀고, 내가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 데 만족한다.”고 말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골은 2월11일 찰턴전의 헤딩골을, 인상적인 경기는 2골을 넣었던 3월17일 볼턴전을 꼽았다.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영원한 젊은 그대’ 김수철 데뷔 30년 올 첫 단독 콘서트

    ‘영원한 젊은 그대’ 김수철 데뷔 30년 올 첫 단독 콘서트

    가요계의 ‘작은 거인’으로 불리는 김수철(50). 그가 데뷔 30주년을 맞아 처음으로 단독 콘서트를 연다. 공연명은 ‘영원한 젊은 그대’. 해마다 20∼30회 공연을 벌였지만, 자신만의 콘서트는 이번이 처음이란다. 그는 “어느덧 가요계, 특히 록 음악계에서 또래를 찾아볼 수 없는 나이가 됐다.”며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는 성격은 아니지만, 그동안 쉼없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해왔으니 나처럼 행복한 사람도 드물 것”이라고 말했다. 데뷔 30주년이 행복한가 보다. 지난 1977년 그룹 ‘퀘스천’으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이듬해 록밴드 ‘작은 거인’을 이끌고 전국대학축제 경연대회에 참가해 ‘일곱색깔 무지개’로 그룹부문 대상을 수상하면서 널리 이름을 알렸다. 자신의 상반신보다 족히 커 보이는 기타를 떡주무르듯 하며 무대 위를 깡충깡충 뛰어다니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로선 대단한 파격이었고, 그만큼 화제도 만발했다. 자신이 출연한 TV프로그램을 함께 보던 선친이 “뉘집 자식인지 부모속 꽤나 썩이겠다.”고 했을 정도란다. 1984년은 온통 그의 해였다. 솔로 음반 ‘못다핀 꽃 한송이’로 모두 16개의 상을 휩쓸었다. 특히 3분30초만에 작곡했다는 ‘젊은 그대’는 ‘국민 응원가’로 지금도 여전히 애창되고 있다. 그는 영화 ‘고래사냥’에 ‘병태’역으로 출연, 연기력을 뽐내기도 했다. 요즘 들어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이 씁쓸할 법도 하건만, 그는 되레 큰소리다. “세월은 흘러야 하는 거고, 올라갔으면 내려와야 하는 거예요. 젊은이들이 내 얼굴은 몰라도 만화영화 ‘날아라 슈퍼보드’ 주제가 ‘치키치키 차카차카초’를 부른 사람이라면 다 알아요. 이만하면 됐잖아요?” 국악과 김수철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이다.1980년 영화 ‘탈’에 출연하며 국악에 관심을 갖게 된 이래 그는 27년 동안 ‘우리 소리’를 찾는 작업을 벌여왔다. “국악 녹음작업은 가요음반 2∼3배에 달하는 제작비가 들어요. 실패할 위험도 많죠.88년 발표한 1집 국악앨범의 경우 달랑 575장 팔렸어요. 제작사에서는 팔다 남은 음반을 녹여 재활용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는 여전히 빈털터리다. 돈이 좀 생기면 국악 음반제작에 쏟아부었다. “1집 국악앨범 실패 후 돈이 덜 들 것 같아-실제론 더 들었지만-원맨밴드를 시도했어요. 이때 나온 노래가 ‘정신차려’였죠. 한 방송사 프로그램에서 보건체조 자세로 춤을 췄는데, 이게 대박이 난 거예요. 국악앨범 때문에 진 빚을 이 노래 하나로 다 갚았죠.” 국악만이 아니다. 그는 TV 드라마음악과 영화음악, 다큐멘터리음악, 뮤지컬, 어린이음악, 국가행사음악 등으로 활동영역을 넓혔다.‘작은 거인’이란 단어의 ‘원조’다운 행보이다. “요즘도 모자를 눌러 쓰고 홍익대 앞에 가서 후배 록밴드의 공연을 보곤 해요. 기타를 메는 것이 힘에 부치긴 하지만, 이제껏 단 하루도 기타 연주를 멈춘 적이 없어요. 동서양 사람들에게 꿈을 주는 음악을 만드는 것, 그게 작은 거인의 꿈입니다.” 오는 6월13일 오후 8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리는 공연에서 김수철은 자신의 히트곡들은 물론, 김덕수와의 기타 산조 협연 등 국악도 ‘맛보기’로 들려줄 계획이다. 한대수, 해바라기, 나무자전거 등이 게스트로 참가한다.5만 5000∼13만 2000원.(02)784-8255.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거리 미술관 속으로] (29) 다동 한외빌딩 ‘비약하는 오대양’

    [거리 미술관 속으로] (29) 다동 한외빌딩 ‘비약하는 오대양’

    ‘서울 도심에서 파도를 감상하다.’ 중구 다동 한외빌딩에는 은빛 파도가 물결친다. 원로 조각가 이승택(75)씨의 ‘비약하는 오대양’덕분이다. 거대한 스테인리스 5개가 숫사슴의 뿔처럼 날카롭게 솟아 있다. 높이가 족히 5m는 넘어 보인다. 날카로움은 삼각형이 뿜어내는 향기다. 작품의 기둥이 삼각뿔인데다 세워진 모양도 직삼각형이다. 너무 선명한 스테인리스가 날이 선 느낌을 더한다.2∼3m 떨어진 곳에서도 얼굴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다. 이 날카로운 스테인리스 작품이 파도의 물결이라고? “성난 파도를 상상해보라. 거세게 몰아치는 파도를….” 작가의 설명을 듣고보니 일렁이는 파도가 눈에 보이는 듯도 하다. 여름철 바닷가에서 느긋하게 즐기는 물결이 아니라, 영화에서 숨죽이며 지켜보던 폭풍우 말이다. 아하, 실험미술의 선구자다운 표현력이구나. 작가는 지난 50년간 쉼 없는 실험정신을 보여줬다. 그리고 고희가 훌쩍 넘은 오늘날에도 현장에서 자유정신을 표현한다. 작가의 ‘끼’가 처음 발동한 것은 스물네 살 때.1956년 제2회 국전에서 그는 1개 조각대 위에 2개의 작품을 올려놓으려다 출품을 저지당했다. 이후 원색유리, 각목, 로프, 플라스틱 같은 이색 소재를 활용했고 강이나 산같은 자연물로 매체를 확산했다. 1969년 그는 마침내 바람을 조각했다. 대성리 들판에 혹은 인천 바닷가에 흩날리는 붉은 천 자락을 설치해 바람을 표현했다. 서슬퍼렇던 60,70년대에는 10m,20m 공간에 머리카락을 배열한 설치작업 ‘군의 삭발령’(1967)으로 갑갑한 시대를 비웃은 화려한 전력도 있다. 80년대에 스테인리스로 파도를 표현하는 것은 그에게는 파격도 아니었는지 모른다. 작가는 “조형미술 작품은 현대적인 건물과 수십년간 어울리도록 제작해야 한다. 미래를 내다본 앞선 작품만이 오랫동안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그의 유일한 조형미술이다. 그는 21세기를 상상하며 ‘비약하는 오대양’을 제작했다고 했다. 경쟁이 치열한 세계화(오대양)시대에 도약을 꿈꾸는 대한민국을 표현했다. 또 삭막한 도심에 파도라는 자연을 선물하고자 했다. 하루살이 샐러리맨에게 ‘내일을 꿈꾸라.’라고 속삭이고 싶었던 것일까.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현대·기아차 ‘글로벌 생산체제’ 결실

    현대·기아차 ‘글로벌 생산체제’ 결실

    |질리나(슬로바키아) 안미현특파원|체코·폴란드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소도시 질리나의 한적한 외곽에 기아차 공장이 있었다. 붉은색 지붕이 인상적인 초현대식 단층 건물이 멀리서도 금방 눈에 띈다. 터키(현대차 유럽1공장)·체코(현대차 유럽2공장)를 잇는 ‘현대·기아차 유럽벨트’의 허리 역할을 하게 될 핵심 중추기지다. ●MK 대만족…즉석에서 OK사인 정몽구(MK) 현대·기아차 그룹 회장은 24일 기아차 슬로바키아 공장 준공식이 끝난 뒤 뒷얘기를 들려줬다. 정 회장은 지난해 10월에도 이 공장을 찾았었다. 완공 직전에 최종 점검을 하는 자리였다. 공장 라인을 둘러본 그는 “아주 효율성 있게 잘 지었다.”며 단박에 합격점을 내렸다. 이 공장에서 생산하는 ‘씨드’가 공식 준공식을 갖기도 전에 판매에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다. 여기에는 미국 앨라배마 공장의 시행착오가 많은 교훈이 됐다고 한다. 앨라배마 공장 때와 달리 웬만한 설비를 모두 반조립 형태로 들여와 공정과 비용을 크게 줄였다. ●임금은 한국의 10분의1, 생산성은 비슷 공장 안으로 들어서니 2400여명의 근로자와 350대의 자동화 로봇이 분주히 일하고 있다. 얀 팔리가 생산관리담당 차장은 “시간당 60대씩 하루 750대를 생산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국내 공장 못지않은 높은 생산성이다. 하루 평균 가동률은 82%. 라인에서 쉼 없이 쏟아지는 씨드는 올 1월부터 3월까지 1만 2000대가 팔렸다. 배인규 슬로바키아공장 대표이사는 “유럽 사람들이 좋아하는 실용적 해치백 스타일(마티즈처럼 뒷유리와 트렁크가 붙어 있는 형태)인 데다 디자인이 세련되고 가격이 합리적이어서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씨드 1.6은 1만 6150유로(약 2035만원)로 시장 1위인 폴크스바겐 골프(1만 8835유로)보다 338만원가량 싸다. 여세를 몰아 매달 1만대씩 올해 총 10만 5000대를 팔 계획이다. 다음달 중순에는 스포티지급 소형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도 투입한다. ●슬로바키아·체코공장이 갖는 6가지 의미 첫째, 자동차 생산의 신흥 메카로 떠오른 중부유럽에 생산거점을 마련, 글로벌 메이커들과 동일 경쟁선에 서게 됐다는 점이다. 체코(도요타·스코다), 슬로바키아(푸조, 폴크스바겐), 헝가리(아우디·스즈키) 등에는 선진 메이커들이 이미 진출해 있다. 저렴한 인건비와 물류비 절감 등을 토대로 현대·기아차도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슬로바키아공장의 임금 수준은 연간 600만원 안팎. 기아차 광주공장의 10분의1 수준이다. 소비자의 수요 변화도 발빠르게 읽을 수 있다. 둘째, 유럽인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준중형급(C클래스) 시장에 깃발을 꽂았다는 점이다. 준중형차 시장(491만대)은 유럽 전체 승용차 시장의 3분의1(31.7%)을 차지할 정도로 경쟁이 아주 치열하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각각 i30과 씨드를 앞세워 이 시장을 공략한다. 여기서 성공하면 브랜드 파워가 눈에 띄게 신장돼 다른 차종의 자연스러운 판매 증가를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승합차(라비타·스타렉스) 위주인 터키 공장의 한계도 보완할 수 있다. 셋째,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유럽연합(EU)에 가입돼 있어 두 나라는 물론 다른 EU국으로 수출할 때 수출관세 10%를 물지 않아도 된다.JC 리벤스 기아차 유럽법인 부사장은 “유럽 원자재값이 한국보다 17%가량 비싸지만 관세와 운송비(5∼7%) 절약 효과를 감안하면 (한국보다 유럽공장이) 원가 경쟁력이 있다.”고 밝혔다. 넷째, 시너지 효과의 극대화다. 기아차 슬로바키아 공장은 현대차 체코 공장에 엔진을, 현대차 체코 공장은 기아차 슬로바키아 공장에 변속기(미션)를 상호 교차공급한다. 다섯째, 통상 마찰을 피할 수 있다.EU는 역내(域內) 산업 보호정책에 따라 수입차의 시장 점유율이 4∼5%를 넘어서면 각종 제재를 가한다. 현대·기아차의 2010년 유럽내 시장점유율 목표가 5.3%인 만큼 통상 마찰을 피하려면 현지 생산이 필수적이다. 여섯째, 미국·중국·인도·터키에 이어 글로벌 생산체제의 대륙별 완결점을 찍었다. ●부품업체도 동반진출… 시너지효과 기대 현대모비스·동희산업·평화정공·한라공조·동일고무 등 11개 부품업체가 이미 현지에 진출해 있다. 직원 수만 총 6300여명이다.3개사의 추가 진출이 확정돼 동반 진출 부품업체 수는 총 14개로 불어날 전망이다. 동일파텍(동일고무 계열사) 송영환 상무는 “체코 공장과 슬로바키아 공장이 가까워 부품의 적시 공급이 가능하다.”며 시너지 효과를 자신했다. hyun@seoul.co.kr
  • 요트 마니아 물을 만났다

    요트 마니아 물을 만났다

    울산의 젖줄인 태화강 하구에 요트학교가 들어섰다. 울산항과 물살을 맞댄 태화강 하구는 수상 스포츠의 제반 조건을 갖춘 천혜의 장소다. 울산시 요트협회 이정우 부회장은 “잔잔한 파도와 계절에 따라 강 줄기를 쉼없이 오르내리는 바람은 요트와 윈드서핑을 즐기기에 그만”이라고 말했다. 지난 8일 울산요트협회가 남구 여천동 태화강 하류에서 개최한 시범강습에 참가한 요트동호인들은 “드디어 물을 만났다.”고 입을 모았다. 요트 애호가인 이창우(42·현대중공업 요트회 총무)씨는 “바람이 좋기로 소문난 태화강에서 큰 파도도 없이 속도감을 즐길 수 있어 요트를 배우기에는 최적의 조건”이라고 말했다. 울산의 요트동호인들은 이번에 문을 연 태화강 상설 요트학교에 대해 “울산 해양레저스포츠계의 판도를 바꿔놓을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요트학교를 운영하게 될 울산시요트협회 이정호 회장은 “요트학교를 시작으로 울산의 상징 태화강을 해양레저문화 보급의 요람으로 거듭나게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울산해양수산청과 울산시도 상설 요트학교 지원에 나섰다. 상반기 중 1400여평의 부두 부지에 요트 전용센터를 건립한다. 태화강 상설 요트학교는 체험반과 초급·중급·속성 과정 등을 개설해 14일부터 강습에 들어간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영국요트협회 지도자 자격을 이수한 오종열(더 위네이브 대표) 강사가 교육을 맡는다. 문의 울산시요트협회(052-273-2009)와 인터넷 홈페이지(www.winave.co.kr). 글 울산 왕상관기자 kwang@seoul.co.kr
  • 꼭 햇볕을 다시 찾아야죠

    꼭 햇볕을 다시 찾아야죠

    월드컵의 열풍이 막 지나간 3년 전, 고교 동창에게 전화가 왔다. 학창 시절 둘이 학교에서 사고란 사고는 모두 도맡아 치고 다녔다고 할 만큼 절친한 사이였기에 가슴이 뛰었다. 바로 그날 약속을 잡아 우리는 13년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간 것처럼 당시 별명을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만끽했다. 그동안 서로 살아온 얘기도 나누고 또 학창시절 추억도 되살렸는데 자리를 파할 무렵 친구 얼굴이 매우 굳어졌다. 말 못 할 고민이 있다는 사실을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친구한테 무슨 일이기에 그렇게 우거지상이냐고 했더니, 요즘 회사가 너무 안 돌아가서 죽겠다고 끙끙거렸다. 제대로 말도 못 하고 계속 안주도 없이 소주만 들이키는 녀석이 너무도 쓸쓸해 보여 혹시 내가 도울 방법이 없냐고 물었다. 친구는 그 말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내 손을 꽉 잡더니, 안 그래도 꼭 부탁할 일이 있었다며 보증을 서달라고 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심지어 부모 자식 간에도 보증은 서주기 힘든 현실이지만 술이 머리끝까지 올라 있던 터라 남자는 의리라며 사내자식이 뭔 그깟 일로 눈물까지 흘리냐고 큰소리를 쳤다. 뒤돌아서서 후회했지만 만약 내가 그렇게 어려운데 녀석이 모른 체하면 얼마나 섭섭하겠냐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내가 총각도 아니고 이미 가정을 꾸린 몸인데 이런 일을 혼자 결정하기는 곤란했다. 그래서 우회적으로 보증 얘기를 꺼내자 아내는 펄쩍 뛰었다. 자신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돈을 빌려주는 게 낫지 보증은 절대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만약 자기 몰래 보증을 섰다가는 당장 이혼할 줄 알라고 말하는 아내를 보면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생각을 고쳐먹고 차일피일 만남을 미루자 친구가 달려와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마음이 무너졌고, 바로 그날 우리 집을 담보로 친구에게 돈을 빌려 주었다. 친구는 평생 이 은혜를 잊지 않겠다며 곧 해결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이 녀석과의 마지막이었다. 학창 시절 친구와의 우정을 제일 소중하게 여겼던 녀석이라 나에게 어떤 불이익도 주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친구는 은행에서 4억을 받자마자 이미 정리된 회사를 내팽개치고 자기 가족까지 나 몰라라 하고 내연의 여자와 외국으로 사라졌다. 친구와 갑자기 연락이 닿지 않아 불안했지만 회의 때문에 전화를 못 받는 거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나 이자 납부가 나에게 떠넘겨지고 계속 소식을 알 수 없어 불안했다. 그래서 회사로 찾아갔더니 이미 오래 전에 문을 닫았다고 하는 게 아닌가. 곧장 친구네 집으로 갔지만 가족들 모두 친정으로 떠났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이 연이어 내 가슴을 찔렀다. 나는 동태처럼 바짝 얼어붙은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힐끗힐끗 쳐다보고 개가 짖어도 몸을 일으켜 세울 수가 없었다. 남의 집 대문을 막지 말라는 주인의 손에 이끌려 그 자리를 벗어났지만 전신주에 등을 기댄 채 밤을 꼬박 샜다. 아내에게 쉼 없이 전화가 걸려왔지만 차마 아내의 목소리를 들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숨을 쉬면 쉴수록 목이 더 막혀오는 게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동료들이 몇 번씩 불러도 듣지 못했고 계속 죽고 싶은 마음만 들어 엉뚱한 층에 올라갔다 내려오길 반복했다. 퇴근을 했는데 아내가 왜 아무 연락도 없이 집에 안 들어왔냐고 걱정을 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아내는 무슨 일이냐고 계속 물었지만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은행 직원의 전화로 아내도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내는 한마디 말도 없이 불 꺼진 방을 홀로 멍하게 지켰다. 돌아가신 장인어른의 유산과 은행 빚으로 겨우 마련한 우리 집을 불과 1년 만에 다시 뺏겨야 한다는 사실에 아내는 넋을 놓고 울기만 했다. 당장 사라지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치며 대성통곡을 하는 그녀에게 나는 큰 죄인이었다. 다른 건 우리 손으로 다시 하면 된다지만 돌아가신 아버님의 마지막 사랑을 어찌할 거냐고 항변하는데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울기만 했다. 우리 형편에 4억은 하늘보다 높은 산이라 결국 정든 집에서 내쫓겼다. 하지만 우리의 불행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경매 하루 전 아내가 아무 말 없이 홀연히 사라졌다. 동네 인근을 샅샅이 뒤져도 보이질 않았다. 두 시간쯤 후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아내가 음독자살을 시도했으니 빨리 병원으로 오라는 경찰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 달려갔더니 정말 아내가 있었다. 다음 날 저녁에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아내는 이미 정신적으로 폐인이 되어 있었다. 우리 집이 남의 손에 넘어가는 건 절대 눈 뜨고 볼 수 없다며 그냥 놔두지 왜 다시 살렸냐고, 아내는 링거병을 깨고 그 파편으로 팔뚝을 내리그으며 2차 자살을 시도했다. 결국 아내는 사지가 모두 묶인 채 강제 입원이 됐고 퇴원 후에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다. 몸은 완치되었지만 정신은 더욱 추락했다. 우울증에 걸린 아내를 아이한테 맡기고 출근을 한다는 게 어불성설이었다. 하지만 나마저 집에 있으면 우리 생활이 완전히 끝장날 것 같아 회사에 나갔다. 그러나 하루에도 몇 번씩 울면서 전화를 거는 딸의 다급한 목소리에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사람부터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아내의 입원비와 남은 빚을 정리하기 위해 사표를 썼다. 꽤 많아 보이던 퇴직금을 모두 쏟아부었는데도 빚은 남아 있었고 생활비와 아내 병원비 때문에 잠시도 쉴 수가 없었다. 어차피 정상적인 사회생활은 글렀고 또 아내와 아이도 보살펴야 했기 때문에 시간대별로 나눠서 일을 했다. 새벽엔 도시락 배달차를 운전하며 배달 일을 했고, 아이를 유치원에 보낸 뒤엔 전기배선 공장에 나가 건설현장을 따라다니며 일했다. 두 가지 일을 해도 아내의 입원비와 생활비 대기가 벅찼다. 그래서 형의 도움으로 얻은 중고 1톤 트럭을 개조해 붕어빵과 떡볶이 장사에 나섰다. 장사를 마치고 나면 새벽 2시, 세 시간 정도 눈을 붙인 뒤 곧장 도시락 공장으로 달려갔다. 하루에 너덧 시간 밖에 자지 못하고 매일 육체노동에 시달리다 보니 하루쯤 쉬고 싶은 마음도 들었고 자포자기하고픈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병원에 있는 아내와 엄마의 도움 없이 혼자 모든 걸 해내는 딸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죽어라 고생했는데도 이자와 병원비를 내고 나면 손에 남는 게 거의 없었다. 유치원에서 하는 연극에 출연하는 딸의 모습을 보러 가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못했다. 딸에겐 멀어서 못 갔다고 변명했지만 마음만 먹었다면 갈 수 있었는데 일당 5만 원 때문에 포기했다. 세상 모든 게 암울했고, 또 마음속으로 수천 번도 더 넘게 자살하고 싶을 만큼 힘들었지만 눈물 흘릴 시간도 내겐 사치였다. 그러나 항상 어둠만 들진 않았다. 아무리 긴 터널도 때가 되면 밝은 태양을 만나듯 우리에게도 기쁜 일이 하나 있었다. 1년이 지나도록 차도를 보이지 않던 아내가 작년 2월 초에 다시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제 발로 병원 문을 나서서 집으로 돌아온 아내를 본 순간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비로소 우리 집은 사람 사는 모습을 띠었다. 지금도 아내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지만 그래도 한자리에 우리 가족이 다시 모였다는 것이 행복하다. 강력한 태풍이 우리 집을 휩쓸고 지나간 지 벌써 3년, 친구는 여전히 소식이 없고 가족들도 친구를 포기한 지 오래이다. 가끔씩 친구가 혜성같이 나타나서 나한테 가져간 돈을 돌려주는 꿈을 꾸기도 하지만 말 그대로 개꿈에 불과하다. 아직도 아내는 완치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씩 예전 모습을 되찾고 있다. 얼마 전부터는 사회생활도 다시 시작했다. 힘을 모으면 우리 집에 머문 먹구름이 빨리 사라지지 않겠냐며 월 70만 원을 받으며 대형 할인점의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아내…‘…. 지난 일은 이제 가슴에 묻고 우리의 행복을 되찾을 일만 생각하자는 아내가 고마워 눈물을 펑펑 흘렸다. 아직도 우리의 불행은 그치지 않았지만 이제 내리막길은 끝난 것 같다. 다 내려왔으니 이제는 다시 올라갈 일만 남았다. 흩어지지 않고, 깨지지 않고, 한자리에 모인 우리의 행복을 다시는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2006) ‘이승욱‘_ 작은 트럭에서 어묵을 팔고 도시락 배달을 하며 사랑스런 아내와 딸아이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한 번의 실수로 소중한 모든 것을 잃을 뻔했지만 가족들에게 밝은 웃음을 돌려줘야 한다는 마음으로 이를 이겨냈습니다. 그는 “이 세상 최고의 보물은 가족의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희망예보 <오늘은 맑음>
  • 故 최양업 신부 ‘땀의 기적’ 인정받을까

    故 최양업 신부 ‘땀의 기적’ 인정받을까

    ‘최양업 신부의 기적 사례를 찾습니다.’ 천주교계가 한국 천주교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1821∼1861) 신부를 성인 반열에 올리기 위해 총력을 모으고 있다. 최 신부의 사제서품일(1849년 4월15일)을 기념해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위원장 박정일 주교)가 신도들을 대상으로 최 신부의 기적을 증거할 사례와 자료찾기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담화문을 발표한 데 이어 각 교구에서는 일제히 미사 강론과 주보를 통해 최 신부의 시복시성(諡福諡聖)을 강조하고 있다. 최양업 신부는 김대건 신부에 이어 두번째로 중국 상하이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돌아와 12년 동안 박해를 피해 전국을 순회하며 전교에 나서다 과로로 목숨을 잃은 인물. 천주교에서는 순교한 김대건 신부를 ‘피의 증거자’로 부르는 반면 최양업 신부는 쉼없이 전교활동을 폈다 하여 ‘땀의 증거자’로 기리고 있다. 최근 천주교가 최 신부의 시복시성과 관련해 각별한 힘을 모으는 것은 다른 시복시성 대상자들이 모두 박해를 당해 순교한 인물인 데 비해 최 신부는 유독 순교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복시성이란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천주교의 가장 큰 영예인 성인품을 받는 것을 말하는데 복자에 오르는 시복에 이어 성인 반열에 드는 시성이 이루어지게 된다. 한국에선 지난 1984년 순교자 103위가 시성되어 성인 반열에 올랐다. 한국 천주교는 이 103위에 앞서 신유박해(1801년) 등 초기에 박해를 당해 순교한 인물들이 시성에서 빠졌다는 지적이 많자 10여년 전부터 새로 순교자 124위의 시복시성을 추진해 왔다. 이미 국내 재판 절차를 모두 마쳐 로마 교황청에 시복시성을 위한 자료를 제출해 놓고 있다. ‘기적 심사’가 면제되는 다른 순교자의 경우와 달리 최양업 신부는 순교자가 아니기 때문에 시복시성에 기적을 입증할 자료와 증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주교회의를 축으로 천주교계가 힘을 쏟는 것도 바로 이 기적의 사례를 모으기 위한 것. 로마 교황청 시성성은 시복 바로 전 단계로 최 신부의 출생지와 활동지, 선종지와 무덤 소재지 등을 방문, 조사하게 되는데 이때 ‘기적 심사’가 함께 이루어진다. 즉 최 신부의 기도를 통해 불치병을 고치는 등의 기적과 같은 은혜를 입었다는 전구(轉求)를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 박정일(80) 주교는 “100년간 2만명의 순교자를 낸 한국의 천주교인들이 복자·성인 대우를 받는 것은 당연하고 기쁜 일”이라면서 “특히 순교자가 아닌 ‘땀의 증거자’ 최양업 신부가 복자·성인 품에 오른다면 한국의 사제와 신도 모두에게 큰 귀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27일 TV 하이라이트]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40분) 치명적인 독성을 띠고 있는 독극물인 비소. 방글라데시 서벵갈 지역은 인구의 4분의1인 3500만명이 비소에 오염됐다. 빙하에서 녹은 깨끗한 물이 방글라데시로 흘러오다가 자연적으로 생긴 비소에 오염된 것. 수인성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전국 500만개 우물을 파보니 지하수도 이미 오염된 상태다.   ●다큐10‘우주 전쟁-지구 밖으로’(EBS 오후 9시50분) 냉전이 심화되면서 코롤료프는 미국까지 5t짜리 탄두를 운반할 수 있는 로켓을 만들라는 지시를 받는다. 결국 R7 로켓을 완성, 발사에 성공한다. 그리고 이 로켓을 이용해 사상 첫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 발사에도 성공한다.1953년부터 1958년까지의 사건을 다룬다.   ●사랑하는 사람아(SBS 오후 9시55분) 상민은 서영에게 사랑한다며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테니 결혼하자고 말한다. 그러자 서영은 눈물을 흘리며 한 남자를 만나 12년을 하루처럼 자기보다 더 그를 사랑해왔다며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그러자 상민은 조급하게 다가가지 않을 테니 천천히 잊으라고 한다.   ●내 곁에 있어(MBC 오전 7시50분) 선희는 애인도 잃고, 아버지도 잃은 은주를 간호사로 맞기로 한 용기에게 잘해 주라고 한다. 첫 출근한 은주는 동건의 소개로 용기와 정자와 인사를 나눈다. 용기를 통해 정자가 할머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은주. 너무나도 가까운 곳에 엄마와 할머니가 잘 살고 있다는 사실에 어이없어한다.   ●아줌마가 간다(KBS2 오전 9시) 오님은 우찬과의 이별을 준비하며 바닷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오님과 연락이 닿지 않자 금화는 태준의 집을 찾아가고 그곳에서 효주의 아이가 우찬의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오님의 이별 통보를 받은 우찬은 오님을 찾고, 우찬과 오님이 함께 있다는 사실에 분노한 효주는 사랑이를 데려가는데….   ●생로병사의 비밀(KBS1 오후 10시) 1분에 70∼80번씩 일생 동안 쉼 없이 일하는 장기인 심장. 심부전은 심장의 기능이 떨어져 온몸에 혈액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상태로, 생명에 즉각적인 위협을 가하는 위험한 병증이다. 모든 심장병과 심혈관 질환은 심부전의 원인이다. 완치의 길은 오직 심장이식뿐. 심부전의 실태와 증상을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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