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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난감? 어린 어른들의 예술작품/ 프라모델 동호회 ‘쉼표 둘의 이상한 나라’

    “다 큰 어른이 장난감 로봇을 가지고 논다고요? 천만의 말씀!이건 기술과 예술의 복합체입니다.” 로봇 애니메이션 시리즈나 탱크·장갑차·군인 등이 활약하는 밀리터리 애니메이션 시리즈에 등장하는 주인공 모델 ‘건담’이나 ‘마크로스’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프라 모델을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아이같이 순수한 ‘키덜트' 나만의 플라스틱 모델(프라 모델)을 추구하는 프라 모델 동호회 ‘쉼표 둘의 이상한 나라’(cafe.daum.net/zone4kidult) 회원들을 만났다.회원들이 각각 가지고 온 프라 모델을 보는 순간,할말을 잃었다.장난감 로봇 몇개 만들었으려니 했는데…,예술이라는 그들의 말이 옳았다. “우리는 키덜트(Kidult)예요.” “네? 그게 무슨 뜻이지요.”“아이같은 감성과 취향을 지녔다는 뜻의 ‘키드(Kid)’와 어른이라는 의미의 ‘어덜트(Adult)’의 합성어지요.” 이들이 만들어 낸 ‘장난감 로봇’이나 ‘캐릭터 인형’을 보고 이런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어른답지 않게 장난감 로봇을 가지고 논다는 말은 잘못이에요.우리는단순히 모델을 조립하는 게 아니라 나만의 것으로 새롭게 재탄생시키는 사람들이지요.” 이들은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색을 칠하고 개조를 한다.색을 칠할 때는 치열한 전투를 마치고 온 듯 몸체 곳곳에 부서지고 벗겨진 전흔(戰痕)을 만들기도 하고,오래된 것인 듯 녹이 슨 모습을 연출하기도 한다.로봇의 눈에서 빛을 뿜듯 전구를 설치한 것도 있다. “한번 만들어보면 그 매력에서 빠져나올 수 없죠.진짜 로봇처럼 부품 하나하나가 섬세한 ‘이놈들’(프라 모델)을 만드는 과정에서 느끼는 보람이나 개성을 살려 도색을 하고난 뒤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것을 갖게 된 만족감이란….”채수동(27·인터파크구스닥)씨가 말하는 프라 모델 예찬이다. ●마니아 위한 100만원짜리도 있어요 모델 하나 가격은 몇천원대에서 100만원에 육박하는 것까지 천차만별이다.정교한 모델은 하루 2시간씩 꼬박 투자해도 조립,도색 등을 거쳐 완성작을 내놓는 데 두달정도 걸린다.가격도 싸지 않고 완성하기까지 오랜 기간이 걸리는 어려운 작업이지만 프라 모델의 마력에 점점 더 끌린다고. 대학 입학과 함께 친구와 본격적으로 이 세계에 뛰어든 김성우(24)씨는 “입문한 지 4∼5년이 됐는데도 싫증나기는커녕 자꾸 빠져든다.미완성작까지 30개 정도 갖고 있는데 새로운 모델이 보이면 또 사고 싶고….지금 엄청난 자제력으로 버티고 있다.”며 머쓱한 듯 웃는다. 동호회에서 진정한 고수로 인정받고 있는 동호회장 모종훈(29·건축업)씨가 가지고 있는 모델은 수십여개에 이른다.그나마 나름대로 처분해 이 정도가 남은 것이라니 도대체 시간과 돈을 얼마나 투자했다는 말인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모델만도 수십개는 되는 것 같더라고요.물 좀 마실까 냉장고를 열었는데 그곳에도 모델이 가득.이거 사는 데만도 차 두대 값이 나갔을 걸요.” 동호회 2년차 회원 정부건(28·인테리어)씨의 ‘고수 방문기’다. ●조카들한테서 보호하느라 진땀 빼죠 이들의 가장 큰 적은 ‘조카’와 ‘이성 친구’라고.신기하다고 만지고,달라고 조르는 바람에 애써 만든 모델은 이들 손에서 바스러지고,이들 품으로 사라진다.조카나 이성 친구가 집에 오는 날에는 전쟁을 방불케 하는 ‘모델 사수하기’가 벌어진다. “그깟 장난감 하나 주는 게 뭐 대수냐고 말하죠.하나 만드는 데 얼마만큼의 정성과 시간이 투자되는지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즐거운 취미생활에 아쉬운 점 하나.대부분의 모델이 일본산이라는 것이다.건담,마크로스,파이브스타 스토리 등 인기 만점인 모델들은 모두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이 만들어낸 캐릭터다. “우리나라의 기술이 부족한 것은 아닙니다.캐릭터산업 발달이 미흡한 것이지요.로봇 태권 브이가 나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지요.그날엔 아마 온·오프라인 매장이 문전성시를 이룰걸요.”(모종훈 회장) 최여경기자 kid@ ■‘건담' 다음카페만 300곳 무엇보다 멋진 플라스틱 모델을 만들고 싶지만 어려워 보여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요? 어린시절 동네 문방구에서 몇백원짜리 장난감 로봇을 사서 조립해 본 경험은 있죠.그럼 됐습니다.나만의 예술작품을 만드는 데 도전할 기본 자질을 갖추고 있는 거니까요. ●사포·칼·도료 등이 기본 준비물 프라모델은 크게 ‘인젝션 키트(Injection Kit)’와 ‘개라지 키트(Garage Kit)’로 나뉜다.대량생산이 가능한 것을 인젝션,소량 생산방식을 채택한 것을 개라지라고 했지만 요즘은 모델의 관절 움직임에 따라 가능한 것을 인젝션,불가능한 것은 개라지라고 한다. 준비도구는 표면을 매끈하게 자르고 다듬기 위한 사포(砂布),칼,니퍼 등 절삭용품,에폭시나 폴리에스테르 등 퍼티용품(틈 등을 메워주는 것),도색을 위한 도료,에어브러시,콤프레서 등이다.완벽하게 준비하려면 수십만원이 들어간다. ●완성까지 최소 한달 걸려 중성세제를 푼 미지근한 물에 부품을 붙여놓은 러너(틀)를 담가 코팅막을 제거한다.도색을 쉽게 하기 위해서다.부품을 러너에서 떼어내 칼과 사포로 자르고 다듬은 뒤 조립한다.부품과 부품을 맞댄 면에 작은 틈이나 구멍이 있으면 퍼티용품으로 메운다.메운 곳이 굳으면 사포로 다듬고 분리한 뒤 먼지를 제거하기 위해 물에 씻는다.색상 컨셉트를 정하고 부분부분 도색한다.도료가 마르면 조립하고 글씨를 써넣거나 스티커를 붙이는 등 각종 장식을 한다. 이 과정은 짧으면 한달,길면 수개월이 걸린다. ●쇼핑몰 등서도 제품 구입 가능 통신이나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에는 보통 시내에 있는 프라 모델 전문 매장을 중심으로 모이고 정보를 얻었다.요즘은 인터넷사이트 다음(daum.net)에서 플라스틱 모델의 한 종류인 ‘건담’으로만 검색해도 300개에 이르는 동호회를 찾을 정도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 많아졌다. 오프라인 매장은 동네 문구점이나 대학가 전문 완구점,서울 동대문 신평화시장 근처 완구거리,테크노마트·명동 아바타 등 쇼핑몰,아카데미사 매장 등이 있다.온라인 매장은 플라매니아(plamania.co.kr),건담숍(gundamshop.co.kr),즐프라(zlpla.com) 등이 대표적이다. 최여경기자
  • ‘이중간첩’ 내일 개봉

    ‘이중간첩’ 내일 개봉

    ‘흥행메이커’ 한석규의 컴백으로 기대를 모아온 영화 ‘이중간첩’(감독 김현정·제작 쿠앤필름)이 23일 개봉한다.체코의 프라하,포르투갈의 리스본을 오가며 남북 이데올로기에 희생된 한 인간의 참상을 신랄하게 그린 영화는 ‘쉬리’‘공동경비구역 JSA’에 이어 분단소재물의 계보에 서는 휴먼드라마.세간의 기대는 지난 20일 서울극장에서 열린 첫 시사회장에서부터 역력히 읽혔다.안성기 정우성 박중훈 등 톱스타들이 이례적으로 대거 걸음했다.●역시 한석규…한석규 영화! 제작단계에서부터 영화는 아예 ‘한석규의 컴백작’으로 통했다.개봉시점으로 따져보면 ‘텔미썸딩’(1998년) 이후 4년만의 출연작.누가 뭐래도 영화의 최대 흥행포인트가 그에게 쏠릴 수밖에 없다. 극중 역할은 남과 북 어디에도 둥지를 틀 수 없는 비운의 혁명전사.김일성광장 사열대를 도도하게 행진하는 조선인민군 전사에서부터 목숨을 내놓고 사는 남파 이중간첩,남북 모두에게 쫓겨 이국땅에서 숨어사는 막노동자….“역시,한석규”란 소리가 나올 만큼 그의 연기는 소름끼치게 사실적이고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과시한다. ●분단의 비극과 폭력의 현대사 냉전의 서슬이 시퍼런 1980년.북한 인민군 소좌 림병호(한석규)가 베를린 ‘체크포인트 찰리’를 목숨걸고 넘어오는 장면으로 시작한 영화는 연신 가쁜 숨을 몰아쉬게 만든다.위장귀순 혐의로 ‘안가’의 취조실에 끌려간 그가 발가벗겨진 채 갖은 고문을 당하는 묘사만으로도 영화가 얼마만큼 엄중한 시각을 견지할지 감 잡힌다. 그로부터 3년.사상검증을 거쳐 안기부 요원이 된 병호는 남한내 고정간첩과 접촉하며 감쪽같이 이중간첩의 임무를 수행한다.‘쉬리’가 그랬듯 이 영화도 관객에게 주요 캐릭터들의 정체를 미리 밝힌 뒤 인물들간의 갈등과 음모를 전지적 관점으로 감상하게 했다.해서,병호를 구심점으로 엮이는 여러 인물들의 캐릭터가 영화를 끌어가는 큼지막한 동인(動因)이다.아버지로부터 간첩신분을 세습해 라디오 PD로 위장하고 사는 윤수미(고소영),수미의 정신적 지주인 고정간첩 총책 송경만(송재호),병호를 교묘히 이용하는 안기부 상사 백승철(천호진) 등. 영화는 안기부 깊숙이 침투해 들어가며 불안에 노출된 병호와 그를 압박하는 백승철 사이의 심리전,연민에서 시작해 조금씩 감정이 무르익는 병호와 수미의 관계변화를 번갈아 조명하며 화면을 채운다.병호의 갈등에 결정적인 골을 파놓는 건 수미의 사랑.병호의 앞날을 걱정한 수미가 북의 지령을 전달해주지 않아 북에 마저 버림받은 병호는 백승철에게 정체가 탄로날 즈음 제3국으로의 탈출에 생사를 건다. ●‘쉬리’의 멜로,‘…JSA’의 유머도 없이?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날 듯한 한석규의 이중간첩 연기는 영화의 주제의식에 무게를 싣는 데 주효했다.그러나 몇몇 대목에서 허점이 잡힌다. 무엇보다 아쉬운 건,지나치게 건조한 시각으로 일관한 나머지 극적 반전이나 쉼표를 찍어줄 자잘한 감상포인트가 거의 전무하다는 점.밀실의 고문,평범한 유학생이 정보기관의 술수로 꼼짝없이 간첩으로 내몰리는 상황 등 주요설정들은 암울한 80년대의 모자이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쉬리’의 멜로,‘…JSA’의 유머 장치,둘 모두를 철저히 배제한 영화에서 요모조모드라마를 뜯어보는 재미는 기대하기 어렵다. 순제작비 47억원.오프닝 부분의 베를린 체크포인트 찰리 탈출장면은 프라하 세트장에서,브라질로 탈출한 주인공이 비극적 최후를 맞는 엔딩은 리스본에서 각각 원정촬영했다.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으로 단편 ‘고수부지의 개자식들’ 등을 연출한 김현정 감독의 장편 데뷔작.상영시간 2시간 3분. 황수정기자 sjh@kdaily.com ◆ 4년만에 컴백 한석규 “저도 오늘 처음 영화를 봤습니다.소감이라면…한마디로 아쉽죠.사실 늘 그렇긴 했어요.‘쉬리’때도,‘8월의 크리스마스’때도 그랬듯이 제 연기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오랜만에 하는 작품이라 솔직히 긴장도 더 많이 됐고요.” 지난 20일 ‘이중간첩’의 시사회장에 나타난 한석규(39)는 적잖이 긴장해 있었다.“세간의 기대치가 오를대로 올라 더욱 부담스럽다.”는 그는 “연기를 하는 것보다 안하는 게,대사도 하는 것보다 안하는 게 더 어려운 법”이라며 공백에 대한 부담감을 에둘러 밝혔다. 연예계 데뷔 12년째인 그에게 ‘이중간첩’은 9번째 영화.시나리오를 처음 받아본 게 지난해 3월이니 개봉까지 근 1년을 공들인 셈이다.남으로 위장귀순한 간첩 역할에 푹 빠져 살다 ‘현실’로 돌아온 지금,흥행과 완성도에 대한 부담이며 아쉬움이 없을 리 없다. “위장간첩이라는 비밀이 조금씩 벗겨질 때 미묘한 심리변화를 표정으로 연기하는 게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유머나 멜로요소가 좀더 가미돼 영화의 긴장을 풀어줬으면 좋았겠다 싶기도 합니다.하지만 관객을 몰입시켜 이중간첩의 비극적 삶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건조하게 묘사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확고부동의 톱스타에게 최근의 한국영화들은 어떤 무게로 다가갈까.“한국영화는 개봉하는 족족 거의 다 본다.”는 그는 “물론 우리 영화시장이 커진 건 기쁘지만,완성도 높은 장르영화가 드물다는 점이 아쉽다.”며 성우 출신답게 또박또박한 말투로 견해를 밝혔다. 시나리오를 까탈스럽게 고르기로 악명(?)높은 그에게 슬며시 다음 작품 소식을 물었다.“아직은 계획이 없습니다.1년에 5편을 찍을지,5년에 1편을 찍을지는저도 모릅니다.빠른 시일내 새 작품을 찍고 싶고,그때는 밝은 이야기에 밝은 캐릭터였으면 좋겠습니다.” 욕심도 많고 그만큼 자기애(自己愛)도 큰 배우다.‘한석규’라는 이름 석자의 힘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연기자로 영원히 남고 싶단다.지향하는 연기관은 어떤 걸까.대답이 선문답같다.“의식하는 무의식의 연기,그게 배우로서의 지향점입니다.” 황수정기자
  • [대한광장] ‘보완재’인간과 ‘대체재’인간

    세상이 어지럽다.정치판을 들여다봐도,노동계를 둘러봐도평안해 보이는 구석이 없다.너나없이 모두 여유가 없어 보인다.자기 중심의 사고만 넘치는 것 같다. ‘어느날 문득'이라는 말은 대체로 회한으로 가득찬 깨달음이나 뒤늦은 안타까움을 동반한다.어느날 문득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다 이미 가버리고 없는 아버지의 실체를 깨닫기도하며, 어느날 문득 낯설게 다가오는 중년의 내 모습에 가만히 한숨짓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자아'를 만나고 있다는 또다른 표현인지도 모른다.성장을 정지해야 중요한 마디가 생겨나는 대나무처럼 ‘나를 들여다 보는' 시간은 늘 쉼표와 함께 한다. 인간에게 절대고독이 필요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그러나심심할 겨를이 없는, 더 정확히 말해서 심심한 것을 조금도참지 못하는 현대인에게 ‘절대고독'이란 사어(死語)에 다름아니다. 사람들은 ‘힘을 제압하는 것은 속도'라는 말을 증명하려는것처럼 뛰듯이 걷고 빠른 동작으로 핸드폰을 두드린다. 보지 않더라도 TV나 컴퓨터를 켜놓고 있어야 마음의 안정을얻는다. 성취하고 전진하지 않는 삶이란 애초부터 고려대상이 아니다.적지 않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라는 조증무드의 진단에고개를 끄덕인다.이런 상황에서 ‘절대고독'이란 죽어버린말을 생생하게 뜻풀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어느 철학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고독이란 묻고 답하는 자신과 자신,즉 자신이 자신에게 묻고 답하는 것이다.그렇다면 절대고독이란 ‘자아'를 가장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가끔 유체이탈을 경험했다는 사람의 얘기를 듣는다.그들의경험담에 의하면 육체에서 영혼이 빠져 나와 자신의 주검을물끄러미 바라보는 나,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지인들의 모습을 보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고 한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 경험담의 진위여부를 떠나 ‘절대고독'과 마주하는 한 인간의 영혼을 느끼곤 한다.이승과 이별하는 자의목이 메이는 슬픔,익숙한 모든 것에 다가설 수 없는 안타까움, 철저하게 홀로일 수밖에 없다는 쓸쓸함…. 그 과정에서자신의 부모형제, 배우자 그리고 아이들에게까지 적용되는비정하리만큼 무심한 객관화.저 사람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있었던 것일까. 그렇다.때로 인간은 본능적인 연대의식조차 끊은 연후에야진아(眞我)와 마주할 수 있는 것이다. 작은 살점 하나 남기지 않고 살을 발라내어 뼈만 남기는 숙수(熟手)처럼 그렇게완전히 발가벗겨진 자신의 모습과 마주한 적이 있는가. 그렇게 되려고 의식적인 노력을 한 적이 있는가. 한 화가는 진짜배기 예술가란 남의 도움없이 모든 것을 홀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잘 짜여진 팀워크를 강조하는 예술이란 애초에 인간이 홀로 되었을 때 뿜어져 나오는가장 원초적이고 강렬한 예술혼을 부정하는 것에 다름아니므로 고갱이가 아니라는 것이다.좀 과격한 예술관이긴 하지만 정신과 의사의 입장에서는 동의못할 바도 없다. ‘대체재'와 ‘보완재'라는 경제학 용어가 있다.주제넘게 설명을 덧붙이자면 이런 얘기다.만년필이 없을 때는 볼펜으로대체하면 된다.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만년필과 볼펜은 대체재의 관계다.그러나 만년필에 잉크가 없으면,다시 말해 서로 보완해 주지 않으면 그 각자는 아무런의미를 갖지 못한다.그래서 만년필과 잉크는 보완재의 관계다. 사람들이 모여살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는 ‘보완재'의 미덕이 유난히 강조된다.사회적 관점에서 보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사람은 ‘보완재적 인간'일 것이다.그러나 개인적인차원에서만 보자면 ‘대체재적인 인간'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절대고독을 마주할 수 있는 사람만이 대체재적인 인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어느날 문득' 자신의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았을 때 절대고독의 순간들이 적지 않게 떠오를 수 있었으면 한다. 그 누구보다 우선내 자신부터…. 정혜신 신경정신과 의사
  • [공무원 Life & Culture] 국사편찬위 박한남 연구관

    “승정원일기는 우리에게도 오래 전부터 기록문화가 중시됐음을 보여주는 소중한 역사기록물입니다.승정원일기를데이터베이스화함으로써 귀중한 사료의 활용가치를 높이고,우리의 높은 역사·문화콘텐츠 수준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게 됩니다.” 경기도 과천에 있는 국사편찬위원회 연구편찬실 편사연구관 박한남(朴漢男) 박사(44·4급)는 요즘 사학자로서 공무원의 길을 택하기를 참 잘했다고 스스로에게 자주 말하곤한다.현존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역사기록물이자,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현장에서 쓰여진 통치기록물인승정원일기의 전산화 작업이 국고지원으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보 제303호로 지난 6월 유네스코가 세계기록유산으로지정한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는 조선시대 왕명을 출납하던 승정원이 매일 작성한 기록물.조선 개국 초부터 작성됐으나 일부가 화재와 전쟁 등으로 소실돼 현재는 1623년(인조 1년) 3월∼1910년(순종 4년) 8월까지 288년간의 기록이 남아 있다.분량은 총 3,245책,2억4,250만자로 총 888책,5,400만자로구성된 조선왕조실록의 5배에 달한다. 상당한 정도의 한문해독 능력을 갖춘 사람이 매일 8시간씩 읽는다고 가정했을때 전체를 읽는데 26년이 걸릴 만큼방대한 사료다. 승정원일기 정보화사업은 총 100억원을 투입,올해부터 2010년까지 10년간 승정원일기 전문을 디지털화하는 작업이다.한문으로 된 고전을 한글세대와 외국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쉼표·마침표·가운뎃점·의문부호 등 문장부호를 표시하고,초서체인 원전을 알기 쉬운 해서체로 바꾸며,사건별로 핵심내용을 인터넷으로 서비스하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은 태조 원년부터 철종 14년까지 472년간의역사기록물인데 비해 승정원일기는 조선후기 288년간의 기록에 그치고 있지만 왕실 의례와 정치·경제·외교 등 주요 정책결정과정,관리들의 출퇴근 및 인사이동,매일의 날씨,별자리 등 천문기록도 담겨 있는 승정원일기의 사료적가치는 실록의 그것과 비교할 바 아니라고 박 박사는 강조했다. 박 박사는 “실록은 선왕 사후에 설치된 실록청에서 작성하기 때문에 곡필의 가능성을 안고 있지만 승정원일기는왕의 최측근에서 왕실의 모든 일들을 기록한 것이어서 사실성과 객관성이 실록과 비교할 수 없다”면서 “디지털사업이 완료되면 조선후기 역사뿐 아니라 인문학·천문학 등 인접학문의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박사는 “한문코드도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초서로쓰인 것을 영인본과 대조하며 해석하는 어려운 작업이지만 마치 그 시대 왕궁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생생함과 사료로서의 매력 때문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작업하게 된다”며 밝게 웃었다. 함혜리기자 lotus@
  • 시인 황동규·소설가 한수산 산문집 출간

    그들의 글에는 번거로운 일상에서 건져올린 사유의 불꽃들이 촘촘히 박혀 있다.세상살이가 속되고 허망할수록 그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생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려는 여유가 녹아 있다.세상을 관조하되 동화되지 않고 인생을 향유하되허비하지 않는 견인불발의 철학이 담겼다.황동규(63) 그리고 한수산(55).시와 소설로 각각 일가를 이룬 이들이 자신의 본령에서 한 발 벗어나 산문집을 펴냈다.황동규는 문학동네에서 ‘젖은 손으로 돌아보라’와 ‘시가 태어나는 자리’를,한수산은 ‘내 삶을 떨리게 하는 것들’(해냄)과 ‘꿈꾸는 일에는 늦음이 없다’(이레)를 내놓았다. 언어와 힘겹게 싸워야 하는 시인의 숙명은 산문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황동규의 말대로 “산문은 느슨한 시가아니다.”거기엔 시 이상의 조밀함이 있다.‘젖은 손으로돌아보라’에 나오는 글들은 시인의 표현을 빌리면 “가볍고 떫고 맑은 맛”이 난다.그것은 세상의 무거움을 충분히짊어진 가벼움이며,세상과 쉽사리 몸을 섞지 않겠다는 결의가 담긴 떫음이요,세상의 탁함을 받아들여 오랜기간 걸러냄으로써 얻어진 맑음이다.길섶에 핀 달개비꽃에서도 삶의 경이를 발견하는 시인의 감성이 그대로 묻어나는 글들이다. ‘시가 태어나는 자리’는 데뷔작인 ‘시월’에서부터 ‘브롱스 가는 길’에 이르기까지 황동규 시사(詩史)의 분수령을 이루는 작품들을 다룬 시적 자서전이다.시와 삶의 동거현장을 엿볼 수 있다.그렇다고 단순한 자작시 해설서는아니다.‘극서정시’이론을 체계화한 바 있는 시인의 시에대한 생각들을 정리한 시론집이자 삶에 대한 성찰이 깃든에세이집이다. 한수산은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우리에게 다가오는가.그의 이전 산문집 ‘단순하게 조금 느리게’가 앞으로만 내달리는 현대인들에게 하나의 ‘쉼표’를 찍어 줬다면,‘내 삶을 떨리게 하는 것들’은 일상에 매몰돼 덤덤하게 살아가는이들에게 ‘떨림’이라는 소중한 순간을 안겨준다.작가는“우리의 삶을 흔들어 놓는 것은 큰 사건이 아니라 아주 작은 떨림”이라고 강조한다.떨림의 순간을 갖지 못하는 삶,도무지 감동할 줄 모르는 삶이란 얼마나 공허한 것인가.본문에는 서양화가 오수환의 그림이 곁들여 있어 넉넉한 ‘문풍지의 여유’를 더해준다. “아들아.북아프리카 사막의 한가운데서 이 글을 쓴다.별빛이 물든 손으로….”‘꿈꾸는 일에는 늦음이 없다’는 이렇게 시작한다.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쓴 삶과 문명에 대한 성찰의 기록이다.사막에서 길을 가르쳐주는 것은 햇빛과 별뿐.낮에는 햇빛이 만들어내는 그림자에 따라 동서남북을 분간하고 밤에는 별자리로 그것을 안다.그러나 도시의 젊은이들은 햇빛과 별을 느낄 수 없기에 길을 잃고 방황한다.작가는 “사막에도 길이 있는데 정작 잘 닦여진 아스팔트에는 길이 없다”고 말한다.“삶은 시간이라는 사막을 가는 것”이란 결론에 이른 작가는 당부한다.“아침을사는 사람이 되어 다오.그렇게 언제나 새롭게 시작하는 나날을 살아다오.이 세상 모든 일에 때늦음은 없다는 사실을기억해 다오.”(‘아침을 사는 사람이 되어라’) 작가는 때로 하느님의 장기판 같은 밤하늘의 별자리를 바라 보며 별들의 삶에 훈수를 두는가 하면 사막 양치기의 인생을 꿈꾸기도 한다. 사막에 새겨진 모래 무늬결처럼 아름다운 꿈이다.사막이라는 절대의 폐허 앞에서 작가가 발견한 삶의 통로는 다름아닌 ‘꿈’,바로 그것이다. 김종면기자 jmkim@
  • 석탄일 특집프로 ‘풍성’

    은행잎 새순이 돋았는지,라일락 꽃잎이 어느새 떨어지는지 모른 채 숨가쁜 나날들이다.그저 앞만 보고 달려가다보니 정작 소중한 것들은 스쳐가 버리는 건 아닌지….하루쯤속도를 늦추고 인생의 쉼표를 찍는다면 어떨까.그 날이 바로 무념무상의 깨달음을 가르친 부처님 오신 날이면 더 제격이겠다. 1일 석가탄신일을 맞아 공중파 방송들이 이 날의 뜻을 기리는 다양한 특집프로들을 내놓았다. KBS는 ‘미국스님 무량의 선(禪)수행기’를 30일 오후11시35분 방송한다.예일대학 재학중 우연히 숭산스님의 법문을 듣고 불가에 입문한 무량스님(미국명 에릭 버럴·41)이주인공.무량은 한국에서 5년간 수행을 마친 뒤 미국으로돌아가 LA인근 산속에 전통 사찰을 짓고 있다.절터는 2년간 미국 전역을 돌아다닌 끝에 풍수지리에 따라 찾아낸 명당자리다.낮에는 한국에서 날아온 도편수들과 일꾼처럼 일하고,밤에는 참선하는 스님으로 동분서주하면서 깨달음을찾아 나선 무량의 모습은 많은 의미를 던진다. EBS는 가장 많은 볼거리를 마련했다.특별 대담 ‘천 강에비친 달’(1일 오후10시)에서는 판화가 황남채와 실상사주지 도법 스님의 이야기를 통해 깨달음의 참뜻과 한국 사회에서 불교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풀어본다. 천강에 비친 달은 월인천강(月印千江)을 직역한 말.부처의 가르침이 세상에 널리 퍼진다는 의미와 함께,달이 물에비치듯 나와 남의 모습이 서로 영향을 미친다는 2가지 뜻을 내포한다. 특집다큐 ‘티벳을 가다-바람과 생명의 땅’(1일 낮12시)은 오랜 세월동안 불교의 관습 속에 살아온 티베트인들에게 불어온 현대화의 거센 바람 속에서도 나름의 방식으로변화에 적응하는 티베트인들의 문화와 자연풍광을 만나본다. 이밖에 64년 발표된 신영균 김지미 주연의 영화 ‘석가모니’(1일 오후8시)도 방송된다.석가모니의 탄생부터 구도의 고통,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길을 따라간다. SBS ‘휴먼 TV 아름다운 세상’(1일 오후7시10분)은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간 ‘미운 7살’ 악동 5명을 담은 ‘동자승,30일간의 출가’를 방송한다.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조계사에서는 5∼7세 어린이를 삭발해 30일동안 출가시키는행사를 한 것.엄마와 잠시만 떨어져도 눈물을 흘리는 마마보이 청파스님,언제나 울고만 있는 청북스님,그들을보살펴주는 청공스님 등이 30일 후에 어떤 모습으로 바뀔까.이들의 천진난만한 얼굴 속에 숨어있는 부처를 만나본다. 허윤주기자 rara@
  • 인터넷산업 ‘쉼표 없는 성장’

    지난해 인터넷산업 종사자 1명이 5억3,200만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1,86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인터넷 산업 규모측정을 위해 처음으로 실시했다.면접조사를 원칙으로 하고,전화·팩스 조사로 보완했다. 지난해 인터넷 산업규모는 39조8,500억원에 이른 것으로 조사됐다.고용인원이 7만5,000명이므로 1인당 매출액이 5억3,200만원꼴이다. 지난해 인터넷 산업규모는 정보통신산업의 생산액으로 추정되는 132조8,000억원의 30%에 이른다.국내 광공업,도·소매업,서비스업 매출액의 4.4%에 해당된다.올해 인터넷 산업규모는 전년대비 41% 늘어난 56조원으로 예상된다.고용규모는8만6,000명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인터넷산업규모를 부문별로 보면 하드웨어,소프트웨어,네트워크 서비스 등 기반산업이 28조1,407억원으로 전체의 70% 수준이다.지원산업은 3조8,266억원이었으며 이 가운데 기술지원분야가 98%를 차지했다. 한편 미국 텍사스대 전자상거래 연구소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미국의 지난해 인터넷산업 매출액은 99년 대비 58% 증가로 한국과 비슷하다. 박대출기자 dcpark@
  • [김삼웅 칼럼] 늦가을, 존재의 근원을 찾는다

    깊어가는 가을의 끝자락에서 흐르는 세월의 소리를 듣는다.새천년의장엄한 일출을 축복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캘린더는 두장만 남기고 오늘 상달의 마지막날이다. “아아,쉬임없이 흐름으로써 우리를 고문하는/ 잔인한 세월이여/ 너를 죽여 모든 생활을 얻은들/ 모든 생활을 죽여 너를 얻은들/ 또 무엇하리.” 양정자 시인의 ‘가장 쓸쓸한 일’의 전문이다. 일순의 쉼표도 없이 흐르는 세월 앞에 자유로울 수 있는 존재는 아무것도 없다.유난히 아름답다는 올 단풍도 하나둘 본자리로 돌아가고나무들은 겨울채비를 서두른다. 흔히 추수가 끝난 가을은 초목의 잎이 시드는 조락의 계절로 불리지만 생명의 원리에서 볼 때 조락은 복귀의 과정이다.낙엽귀근(落葉歸根)이란 말에서도 ‘생명복귀’의 원리를 읽는다.가을이 없다면 생물은 한없이 자랄 것이고 이것은 조화를 위한 절도를 넘어선다.천지는이렇게 조화와 절도를 부여받았다. 요즘 TV드라마로 부활한 조선시대의 저항적 학자 허균에게도 가을의교외는 풍성했다. “가을이 무르익어 즐거운 들판/ 기쁨의 소리가 원근에서 들리네/ 집집마다 흰 막걸리를 기울이고/ 곳곳에서 누른 벼를베고 있구나.” 신라의 승려 혜심(慧諶)은 ‘회향일(回向日)’에서가을의 번뇌와 망상의 식멸(息滅)을 말했다.“나부끼며 지는 잎은 숲에 떨어지고/ 쓸쓸히 날아가는 기러기는 새벽소리 보낸다/ 여기서 보고 듣고도 깨닫지 못한다면/ 부처님 마음 저버림이 얼마이랴.” 가을에 거둘 것이 없는 사람은 일하지 않은 결과이다.가을에 너울거리는 은빛 억새꽃을 보고도 사념(思念)이 없다면 심신이 산성화된 사람이다. 가람 이병기는 빼어난 가을시조를 남겼다.“들마다 늦은 가을 찬바람이 움직이네/ 벼이삭 수수이삭 으슬으슬 속삭이고/ 밭머리 해그림자도 바쁜듯이 가누나/ 무 배추 밭머리에 바구니 던져 두고// 젖먹는 어린아이 안고 앉은 어미 마음/ 늦가을 저문 날에도 바쁜 줄을 모르네.” 세월 앞에 파괴되지 않는 진실이란 무엇일까.인간의 타고난 사악함과 바닥과 천장을 모르는 탐욕은 순환하는 계절의 질서를 지켜보면서도 진실을 익히지 못한다. 조용우는 ‘양파’란 시에서탐욕을 뒤짚어 쓴 인간의 속살을 벗긴다.“껍질을 벗긴다// 탐욕의 껍질/ 위선의 껍질/ 독선의 껍질// 한꺼풀 한 꺼풀을 벗기니/ 그 속에 숨어 있는 작고 하얀 속살/ 껍질까지도 용납하고 품어 준 진실의 속살/ 여태껏 나를 버티게 해준 것이/ 이 작은 진실이었구나/ 한 꺼풀씩 껍질을 다 벗긴 뒤에/ 그 속에 아무것도 없었다면/ 나는 그만 흙속에서 썩고 말았을 게다.” 2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인도 전역을 걸어다니며 지주들을 만나고,가난한 이웃들에게 땅을 내주도록 설득하여,스코틀랜드만한 거대한토지를 헌납받은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 사회개혁가인 비노바 바베의평전이 이제야 번역되어 가을을 앓는 영혼들에게 위안을 준다.브라만계급 출신이면서도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분뇨 치우는 일을 맡았던그는 말한다.“어린아이의 배를 고프게 하시는 분은 그 어미의 가슴에 젖을 채워주시기도 한다.그분은 자신의 일을 완성되지 않은 채로그냥 두시지 않는다.”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란 ‘전설’의 시절에 쓴 안재홍의 ‘독서개진론’은 지금도 유효성을 갖는다.“황국 단풍이 어느덧 무르녹아 달밝고 서리 찬 밤 울어 예는 기러기도 오늘 내일에 볼 것이다.독서하기에 좋은 계절이다.하늘 높고 바람 급한 적에 호마가 소리쳐 장부의 팔이 부르르 떨치면서 넌지시 만리의 뜻을 품는 것은 가을의 감정이다.” 조선후기 철학자 이덕무의 글은 늦가을 국향(菊香)의 맛이다.“티끌 세상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더라도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책 읽을 여유를 가진 사람은 군자이다.” 버릴 줄 아는 사람만이 채운다.탐욕과 증오와 당파심을 털고 거리의 나무들처럼 겨울채비를 서두르자.새봄의 신록을 기약하면서,그리고뿌리로 돌아가는 잎새에서 존재의 근원을 생각하면서. “우수수 가을 바람 갈대잎 쓸쓸타 마라/ 이 한밤 잠못든다 흰머리외롭다 마라/ 천지에 한가닥 맑은 뜻을 우리만이 안다네.”(이은상,벽노기)김삼웅 주필.
  • 우수 중단편 13편 모음집 ‘올해의 문제소설’

    ‘2000 올해의 문제소설’(신원문화사)이 나왔다. 제목과는 달리 지난해에 발표된 작품을 모은 것이나 전국 각 대학에서 한국 현대소설을 전공하는 300여 명의 대학교수들이 골라뽑은 13편의 ‘알짜’중·단편집이다.올 우리 단편소설의 흐름과 관련해서 시사해주는 바 많다. 그러나 우리 독자들은 어떤 변화의 기미를 감지하기 앞서 단편소설이란 오래된 이야기 방식의 쇠할 기미없는 젊은 힘에 더 감동받는다.독자들은 부러갈 필요가 없는 햇볕 덜 드는 곳으로 덜컥 끌려갔다가 혼자서는 끝내 몰랐을 별과 가까운 어떤 곳에서 살며시 놓여나는 듯한 감각을 맛보곤 한다. 구효서의 ‘포천에는 시지프스가 산다’는 상식 선에서 분명 불행한 귀먹고말못하는 농아자의 희한한 ‘낙천(樂天)’을 이야기하고 있다.어려서는 남한테 죽어라 구박만 받았고 나이들어 자리잡을만 하니까 아내가 식물인간이 되고마는 불행한 삶에서도 주인공 농아자는 웃음과 낙천적 낯을 잃지 않는다. 덜 떨어진 탓도 아니고 별스런 깨달음의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며 착한 심성만으로도설명할 수 없다.독자들은 여기 이 불행과 낙천 사이의 천길 간극을 메우고 있는 것으로 짐작되는 삶에 대한 허무의식의 서늘한 그늘에 몸을떤다.그런데 작가의 솜씨 덕에 이 그늘이 가끔 따스하게 여겨진다. 하창수의 ‘서른 개의 문을 지나온 사람’도 불행에 관한 이야기이다.한 사람이 목소리를 잃어버리는데 값싼 동정에 기대거나 넋나간 듯 몸부림치지 않고 자신을 조용히 바라보는 용기를 가지고 사회와 단절해간다.가라앉고 가라앉아 자살 시도의 최저점에 가까와졌을 때 사람과 ‘소통’한다.어떤 사람과 무슨 마음을 나눴기에 여전히 목소리 잃은 주인공은 자신에게 장미꽃을 살수 있을까.불행의 심연 속으로 가라앉을 때나 되솟아오를 때나 여일하게 차분한 작가가 듬직해 보인다. 한강의 ‘해질녘에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도 삶의 어두운 터널 통과하기다.어른의 불행은 뒤로 물러서고 대신 어린 소녀의 황량하고 가난한 처지가 아이의 시선으로 그려지고 있다.아이는 아빠와 함께 삭막한 여관에 머물고 있는데 아이 아버지는 의처증에 못견뎌 도망간 아이 엄마를 복수심에 불타 찾고 있다.아이의 처지와 아빠의 상황은 갈수록 막막해져 결국 출구없는 묘혈속으로 끌려들어 가는 순간 터널 끝의 빛이 쏟아진다.아이는 꽃밭 아닌 황량한 들판을 가로질러야 하지만 아이의 걸음걸이는 산문보다는 시에 더 가깝다. 권현숙의 ‘열린 문’은 육체,죽음,섹스가 뭉뚱그러진 이야기로 우리가 눈을 돌린 다음에도 1분은 더 사물을 들여다 보고 있는 작가들의 강인한 눈길이 손에 잡힐 듯 하다.이인성의 ‘무덤가의 열일곱 살-철들 무렵2’는 성장소설로 쉼표를 날선 낫처럼 휘두르면서 과거로의 길을 내고 있다.공선옥의‘홀로어멈’은 어려운 환경에 짜부라들지 않는 여주인공의 가식없는 폭소가들리는 듯 하다. 김이소 ‘외출’ 김만옥 ‘그 모퉁이의 한 그루 나무’ 신장현 ‘과자먹는시간’ 등은 이야기 방식에 남다른 신경을 쓰고 있다.이밖에 이인화 ‘초원을 걷는 남자’ 윤흥길 ‘묘지근처-때와 곳2’ 박범신 ‘그해 가장 길었던하루-들길1’ 구인환 ‘기벌포의 전설’이 수록되어 있다.특히 이 작품집은작품마다 교수들의 독해 도움 해설이 실려 있다. 김재영기자 kjykjy@
  • 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19회)

    ■배우·연출가 김명곤 ‘광대와 투사’ 연극·영화배우이자 연출가인 김명곤(47)을 따라다니는 두가지 이미지다.좀더 정확히 짚어보자면 거친 시대상황 때문에 ‘영원한 광대’가 꿈인 그의이름앞에 ‘투사’라는 꾸밈말이 붙었다고 봐야 한다. 72년 우연히 연극반(서울사대)에 들렀다가 ‘대타 배우’로 나서면서 연극과 인연을 맺었다.교내공연이 불허돼 이화여대 옆 가톨릭회관에서 ‘선우교수댁’(김국태 작·연출)을 띄우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경찰이 들이닥쳐 셔터를 내린 것이다. “연극과의 첫 경험이 ‘금지’였습니다.이후 당국과 주류 연극계의 곱지않은 시선과 맞서는 아웃사이드 인생이 이어진거죠” 애초 그에게 연극반은 투쟁이나 이념의 공간이 아니었다.좋은 선배가 있었기에 발길이 잦았고 그곳에 술과 토론이 있어 좋았던 것이다.무엇보다 잘 곳이 없고 끼니 떼우는 게 힘들던 그에겐 라면을 먹을 수 있었고 잠자리를 해결해 주었던 ‘천국’이었다. 공연이 허공으로 날아가는 걸 보면서 ‘왜’라는 의문이 들었다.여기서 그의 삶은 큰 전환점을 맞는다.한번 고개를 든 의문은 교사극단 ‘상황’시절증폭된다.‘아벨만 이야기’(이근삼 작·연출)와 ‘뻐꾹 뻐 뻐꾹’ 공연을이어가던 중 79년 남민전 사건으로 극단이 와해된다.함께 활동하던 이재오(현재 한나라당 의원)등이 연루되면서 ‘빨갱이 극단’으로 둔갑한 것이다.‘왜’라는 관념이 질곡과의 싸움으로,광대가 투사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예술이 정치에 종속되어서는 안된다’는 신념은 내면으로 가라앉았다.그 자리에 이어지는 탄압에 대한 공연으로서의 대항이 싹을 틔웠다.김지하 황석영 임진택 채희완 김민기 등과 ‘놀이패 한두레’를 이끌어 갔다.연우무대패들과도 어울렸던 이 시기를 이렇게 말한다. “노동극 ‘밤하늘의 별처럼’을 연출했는데 역시 공연 허가가 나지 않더군요.평소 가까이 지내던 사람 30여명을 몰래 불러 수색 근처 야산에서 공연하기도 했지요.연우무대 시절엔 ‘나의 살던 고향은’(임진택 연출)을 공연하는데 한 대학생이 삐라를 뿌려 공연이 6개월 중지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장산곶매’(80년 이상우 연출)‘장사의 꿈’(81년 황석영 작·임진택 연출) ‘민달팽이’(82년 김명곤 작·연출) ‘멈춰선 저 상여는 상주도없다더냐’(82년 김민기 연출) ‘나눔굿’(85년 이애주 안무) 등 주옥같은작품으로 연기 인생을 꽃피웠다.특히 ‘장사의 꿈’에선 10여명의 배역을 혼자 소화해 화제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민중문화운동의 초창기였고 제가 젊고 도전적이던 때라 사회개혁과 우리것 찾기에 대한 열정을 맘껏 터뜨릴 수 있었습니다.대학생이나 노동자를 대상으로 연극과 민요도 가르쳤습니다.물론 공연도 병행했지요.대본 심사가 워낙 엄격해서 ‘통과용 따로 공연용 따로’ 만들어야 했던,그야말로 연극 1편만드는 게 투쟁이라는 심정으로 뛰어다녔습니다” 숨가쁜 발길은 문화운동으로서 연극운동의 방법론을 놓고 치열한 논쟁을 목도하면서 ‘제3의 길’로 돌아선다.86년 극단 아리랑을 창단하고 소극장 한마당을 세워 이론보다는 ‘연극 현장’을 열었다. “예술이냐 사회운동이냐는 이분법적인 논쟁보다 중도적 입장을 택하고 싶었습니다.무엇보다 무대가 좋았구요.이 시절 장산곶매가 만든 영화 ‘파업전야’를 상영하자 ‘닭장차’가 집결하기도 했습니다.결국 극장은 영업정지,극단은 등록취소의 운명을 맞았죠.물론 법정투쟁 끝에 승소했죠” 87년 민주화 열기로 직접적인 금지가 완화되었다.하지만 김명곤에겐 또 다른 ‘금지’가 가로놓여 있었다.연극계 내부의 보수적인 인식과 ‘고리타분한’ 잣대가 그것.91년 서울연극제에 참가하기로 예정됐던 ‘격정만리’(김명곤 작)에 당시 연극협회 원로들이 ‘친북’의 올가미를 씌웠다. “‘격정만리’는 한 연극배우의 일제시대에서 6.25전쟁까지의 삶을 다룬작품이었죠.그런데 극중극 형태로 삽입한 친일 배우의 삶이 ‘연극계의 치부를 건드렸다’고 신경이 곤두선 거죠.물론 대외적인 참가불허 이유는 월북배우의 삶을 다루었다고 해서 ‘빨갱이 연극’이라는 거였죠” 연극협회와의 이 갈등을 토론을 제의해 ‘연극논쟁’을 전개함으로써 해결했다. 김명곤은 이분법적 사고를 싫어한다.‘투사’보다 ‘광대’를 더 좋아하는것도 여기서 비롯한다.쉼표없는 ‘광대살이’의여정에서 무대극과 마당극의 논란을 거부한 것이나 영화냐 연극이냐를 둘러싼 ‘한우물 지조론’에 관심이 없는 것도 같은 연유에서다.그저 그가 지향하는 예술적 목표를 이루면 족한 것이다. “내용 면에선 인간의 원초적 문제를 시대상황과 공감대를 이뤄내면서 그것을 담는 그릇인 형식은 다양하고 유연성을 담보해야 합니다.이를 위해서 끊임없는 자기발전과 새로운 시도를 찾아가야 합니다” 지난 90년 펴낸 수필집 ‘꿈꾸는 퉁소쟁이’(고려원)에서 김명곤은 시대상황에 몰두한 나머지 예술로서의 본질적 주제를 소홀히 했다는 자성을 토로한 적이 있다. “어릴적 내성적이고 늘 혼자 놀곤해서 ‘방안퉁소’라는 별명이 붙었는데70∼80년대의 격변기를 겪으면서 민중과 반독재 투쟁을 향한 ‘바깥퉁소’로 바뀌었다.그런데 처음엔 사람들이 즐겁게 듣더니 언제부턴가 ‘바깥퉁소’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방안퉁소’에 소홀한 탓이다”안팎 퉁소의 통일을 꿈꾸는 그는 ‘천상 광대’이다.이 길에 남겨진 두가지 과제를들려주면서 ‘과천 마당극잔치 비상대책위원회’모임으로 향했다. “내용면에서 간섭과 금지는 간접적이고 최소화 되었지만 관 주도 문화행정이 주는 제도적 구속은 아직 남아있습니다.그리고 더 무서운 ‘금지’는 타성에 젖어가는 저의 모습이죠.그놈은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고 나태해져,열정이 사위어 가는 추한 얼굴로 변해가고 있습니다”■그의 길▒52년 전주 출생.▒71년 서울사대 독어교육과 입학 ▒77년 ‘뿌리깊은 나무’기자 ▒78년 배화여고 교사 ▒79년 ‘밤하늘의 별처럼’출연·연출 ▒82∼83년 영화 ‘일송정 푸른 솔은’‘바보선언’‘과부춤’ 등 출연 ▒ 86년 극단 아리랑 창단 이후 ‘갑오세 가보세’‘점아 점아 콩점아’‘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등 작·연출 ▒93년 영화 ‘서편제’각색·출연 이후 영화 ‘태백산맥’‘영원한 제국’등 출연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현대연극상 최우수작품상·연출상 수상 ▒ 97년 전국마당극협의회 의장. 李鍾壽 vielee@
  • 포르투갈 첫 노벨문학상 작가 사라마구 작품세계

    ◎우화형식 빌려 현실 폭로/신문기자 출신… 시·희곡 등 여러 장르 섭렵/‘돌 뗏목’ ‘밤’ 등 대표작… 소외계층 입장 대변/단락 없애고 쉼표·마침표만 사용 문체 독특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작가인 주세 사라마구는 토마스 베른하르트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사이의 교차로에 위치한 작가로,마술적 리얼리즘(magical realism)의 살아있는 교과서 같은 작품을 쓰고 있다.그의 작품은 우화의 형식을 빌리고 있는 것이 특징.출세작인 ‘돌뗏목’‘발타사르와 블리문다’‘리카르도 레이스가 죽던 해’‘예수 그리스도 찬가’ 등은 바로 그런 유의 작품들이다.사라마구는 1947년 ‘죄악의 땅’으로 문단에 나왔다.그후 20년 가까이 침묵을 지키다 66년 ‘가능한 시’라는 시집을 내며 문학활동을 재개했다.문학을 다시 시작하기 전 사라마구는 번역자,신문기자,자유기고가 등 여러 직업들을 거쳤다.그때 ‘세아라 노바’에 문학비평을 쓰면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그러나 1966년 이후 그는 시 이외에 수필,희곡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작품을 쏟아냈다.그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1980년 ‘바닥에서 일어서서’란 소설을 발표하면서 부터다. 사라마구는 “80년대 초 포르투갈 문학은 시나 다른 장르의 문학이 아니라 소설이 주를 이루는 문학이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실제 80년대로 접어들자 포르투갈 문학계에서는 수많은 소설이 발표됐다.그 역시 문학성 높은 작품들을 잇따라 발표하며 포르투갈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서도 인정받는 작가가 됐다. 그의 문학세계에서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자신만의 독특한 문체를 추구하는 혁신적 문학정신이다.그는 문장부호로서 단지 쉼표와 마침표만 사용할뿐 아니라 직접·간접화법을 구분하지도 않는다.때문에 그의 텍스트는 일반 소설과는 다른 방식으로 읽어야 한다.독자들에게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외국어대 송필환 교수(포르투칼어과)는 “사라마구 문체의 특징은 한마디로 ‘언어의 부주의성’ 즉 부주의한 일상적 대화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80년대 사라마구는 주로 포르투갈의 소시민이나 소외계층에 관한 소설을 썼다.이를 통해 그는 유럽과 이베리아반도에 예속돼 있는 포르투갈의 모순을 일깨워준다. 그의 소설 ‘돌뗏목’은 그 좋은 예다. 이베리아 반도가 초자연적인 이유로 인해 유럽대륙에서 떨어져 나와 대서양으로 떠내려간다는 것이 이 작품의 줄거리.사라마구는 여기서 포르투갈이 EC(유럽공동체)에 가입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이는 포르투갈 정부당국과 정치인들 특히 권력정치의 주역들에 대한 문제제기로,일종의 서사적 문학제안이라 할만하다. 사라마구의 작품은 여러 나라 말로 번역돼 있다.그는 또한 숱한 문학상을 받았다.대표적인 작품으로는 1979년 포르투갈 비평가협회가 뽑은 올해의 희곡상을 받은 ‘밤’,1980년 리스본시 문학상을 받은 ‘바닥에서 일어서서’,1982년 포르투갈 펜클럽상과 리스본시 문학상을 받은 ‘수도원 비망록’,등을 들 수 있다.최근에 발표한 소설로는 ‘모든 이름들’(97년)이 있다. ◎주세 사라마구 연보 △22년 리스본 근교 아지냐가 마을에서 출생 △47년 ‘죄악의 땅’이란 소설로 등단 △66년 시집 ‘가능한 시’ △70년 시집 ‘아마도 행복인가’ △75년 시집 ‘1993년’ △77년 ‘회화와 서예에 관한 매뉴얼’ △79년 희곡 ‘밤’ △80년 희곡 ‘이 책으로 무엇을 할까요’·소설 ‘바닥에서 일어서서’ △82년 ‘발타사르와 블리문다’‘수도원 비망록’ △84년 ‘리카르토 레이스가 죽던 해’ △86년 ‘돌뗏목’ △87년 희곡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두번째 삶’ △89년 ‘리스본 포위의 역사’ △91년 ‘예수그리스도 복음’ △95년 ‘무지에 관한 에세이’ ◎나라별 역대 수상자/프랑스 12명으로 최다/미국·영국·스웨덴 등 순 아시아권 작가 4명뿐 1901년 프랑스 시인 쉴리 프뤼돔이 첫 수상한 이래 98년 포르투갈의 주제 사라마구까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사람은 모두 95명.1차대전과 2차대전중 모두 일곱해를 제외하고는 수상자를 냈으며,2인 공동수상이 네번 있었다. 가장 많은 수상자를 낸 국가는 프랑스로 12명이고,다음은 미국이 10명,영국과 스웨덴이 7명,이탈리아와 독일이 6명씩을 차지해 이른바 노벨문학상 대국으로 꼽히고 있다. 다음으로는 스페인이 5명,폴란드·아일랜드·구소련이 4명,덴마크·노르웨이가 3명,일본·그리스·칠레·스위스 등이 2명을 차지했다.그밖에 1명씩 배출한 국가는 16개국으로 모두 32개국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아시아권에서는 일본 2명(94년 오에 겐자부로,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인도 1명(13년 라빈드라나드 타고르),이스라엘 1명(66년 요세프 아그논)을 배출했을 뿐 여전히 노벨문학상 불모지대로 남아 있다. 한편 이 상은 장 폴 사르트르(64년),윈스턴 처칠(53년),버트런트 러셀(50년),앙리 베르그송(27년)과 같은 비문학인에게도 수여된 바 있으나 70년대이후 들어서는 순수 문학인들로 국한되고 있다.
  • 韓勝憲 감사원장,서울신문 특별회견

    ◎“소외층 ‘복지그늘’ 없게 집중 감사”/경제난 극복 지원·부정 사전예방 온힘/일부 공직사회 개혁대상… 정화 불가피 韓勝憲 감사원장은 2일 하오 서울신문 安秉峻 정치부장과 특별회견을 가졌다. 韓원장은 회견을 통해 올해말까지의 감사 방향을 설명하는 한편,퇴임후의 거취 등 본인의 신상에 대해서도 비교적 상세하게 밝혔다. ­우선 감사원 개원 50주년을 축하합니다. ▲반세기 동안 감사원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고,반성도 하게 됩니다. 기왕의 업적을 발전시켜 보다 나은 감사원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새로 구성한 부정방지대책위원회에 개혁적인 인사를 대거 인선했습니다. 특별한 임무를 부여할 생각입니까. ▲개혁지향적인 목소리를 수렴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제2,제3의 감사원이 감사원 속에 있도록 만들겠습니다. ­연말까지 감사의 중점을 어디에 두실 생각입니까. ▲경제난 극복을 지원하는 감사에 주력할 것입니다. 또 사후적발 보다는 사전예방 차원의 감사가 될 것입니다. ­감사가 경제난 극복을 지원할 수 있습니까. ▲불필요한 규제를 완화하거나 철폐하면 민간 경제활동을 활성화시킬 수 있습니다. 또 공기업의 체질을 개선하면 민간기업에도 영향이 미칩니다. 큰 공기업에 매달린 협력업체만 해도 수없이 많습니다. ○공직기강 검찰은 경고성 ­공직기강 감찰은 더 없습니까. ▲모든 감사가 공직기강과 관계된 것이겠죠. 공직기강이란 이름을 내걸고 하는 감사는 경고성 효과를 얻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직자를 개혁의 주체라고 보십니까,대상이라고 보십니까. ▲그런 식으로 일도양단할 수는 없겠죠. 공직사회는 우리나라를 지탱하는 큰 조직입니다. 다만 아직 일부는 개혁의 대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국민의 수임자라는 입장을 망각하고 소홀히 하는 공직자도 있습니다. 현실을 직시하도록 정화시키고 정리해야 합니다. ­국방부의 방위력 개선 사업에 대한 감사결과가 마무리 단계인데 군수비리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납니까. ▲방위력 개선사업은 국방예산의 3분의 1을 차지합니다. 군사기밀이어서 비밀로 차단돼 왔지만 제한적으로라도 투명성이 제고되어야 합니다. 군 당국의 개선노력도 보입니다만 감사원의 눈으로 볼 때 시정해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비리가 적발된 군 고위 관계자가 있습니까. ▲아직은 없습니다. 효율성과 경제성,투명성에 초점을 뒀지 개인비리에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닙니다. ○포철 표적감사설에 개탄 ­포철 등 민영화 대상인 공기업을 감사하는 이유는 뭡니까. ▲오히려 민영화가 예정된 공기업일수록 감사가 필요합니다. 민영화를 앞두고 직원들이 ‘민영화되면 나는 어찌될 지 모르니 대충 지내자’고 해이해질 수 있습니다. 경영상태를 건전하게 만들어서 민영화해야 제 값을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또 민영화라는 것이 길거리에서 과일 파는 것과 달라 1년이 걸릴 수도 있고 2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포철내에서는 표적 감사가 아닌가라는 의혹도 나옵니다. ▲포철은 지난 95년이후 한번도 감사를 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3년 동안이나 감사를 하지 않고 넘어간데 대해 질책을 해야지요. 특정인과 연결시켜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은 개탄스러운 일입니다. ­소외계층 지원실태를 감사하겠다고 밝혔는데,특별한 연유가 있습니까. ▲그동안 소외계층에 대한 복지정책을 소홀히 한 경향이 있습니다. 그늘이 있다면 감사력을 집중해 어려움을 알아내고 개선책을 찾아야죠. ­지난 여름 휴가 때 소록도를 방문했다는데,관련이 있습니까. ▲그동안 한번도 찾아보지 못한 것이 아쉬워 수행원 없이 혼자 가본 겁니다. 소록도를 둘러보기는 했지만 그 곳 주민들의 삶을 깊이 보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정부 업무가 갈수록 복잡해지고 전문화되어 갑니다. 현재 감사원의 전문성을 어느 정도라고 평가하십니까. ▲감사원은 정부보다 한발짝 앞설만큼 전문성을 높여야 합니다. 감사요원 650명 가운데 석사이상 학위 소지자가 160명에 달합니다. 또 변호사,공인회계사,세무사,감정평가사,기술사 등 다양한 분야의 자격소지자도 129명이나 됩니다. 특별히 전문성이 강조되는 분야에는 외부 전문가를 계약직으로 채용하거나 자문을 구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전문성의 결여로 판단을 그르친 적은 없다고 자부합니다. ­외환위기 특감의 결과에 대해서도 만족하십니까. ▲감사,수사,재판에서 만족이라는 말을 쓰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한 감사였습니다. 머리카락 한 올만큼의 정치적 의도도 없었습니다. ­감사원의 정보화,전산화 수준은 어느 정도로 평가합니까. ▲국가회계업무 전산화 시스템을 개발해뒀습니다. 3,600개 감사대상기관으로부터 계산서와 지출내역을 매달 전산디스켓으로 제출받아 한국은행 지출자료와 대조하고 있습니다. 또 국가감사활동정보시스템(NAIS)을 구축해 특정기관에 대한 감사의 중복,편중을 시정하고 있습니다. 99년9월을 목표로 감사종합정보화사업도 추진중입니다. ○외부전문가 계약직 채용 ­韓원장 본인의 컴퓨터 실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아직 서툽니다. DOS 시절부터 배우기는 했는데…. 지난번 외국인투자 저해 요인을 감사하는 과정에서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가 인터넷 홈페이지에 몇년전 통계를 게재하는 등 자료관리를 소홀히 한 점을 발견하기는 했죠. ­공직자나 국민들과의 직접 대화를 위해 E­mail 주소를 공개할 용의는 없습니까. ▲글쎄…,gsw190@nownuri.net로 보내면 됩니다. ­공직자의 예금계좌 추적권과 재산등록 심사권을 갖기 위한 감사원법 개정은 어느 정도 진척이 있습니까. ▲무리하게 추진하기보다는 순리적으로 진행할 것입니다. 정기국회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요. ­이번 정기국회에서 감사원법 개정을 목표로 하십니까. ▲그런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원장의 정년문제도 걸려 있는데요. ▲대법관,헌법재판관보다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의 임기가 5년 더 깁니다. 감사원의 경우도 같이 봐야겠죠. 감사위원의 정년은 65세를 유지하되 장(長)은 경험이 풍부한 분을 앉히기 위해 정년을 늘릴 필요가 있습니다. ­韓원장께서는 정년이 연장되어도 65세가 되는 내년에 그만 두시겠다고 밝혔는데,임명권자가 계속 감사원을 맡도록 요청하면 어떡할 것인지요. ▲가상적인 얘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저도 할 일이 좀 남아서 나가야겠습니다. ­할 일이란 무엇입니까. ▲저술을 좀 하려 합니다. 지난 30년간의 법조인 경력을 통해 얻은 경험을 정리하려 합니다.‘정치재판실록’이나 ‘정치재판사’가 되겠죠. 자료를 중심으로 객관적으로 엮어서 당대나 후학들이 공부하는 데 필요가 됐으면 합니다. 그것이 저에게 주어진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퇴임후 정치재판사 저술 ­유머가 풍부하신데 웃음에 대한 책을 낼 생각은 없으십니까. ▲저는 가난하게 자라서 유모(乳母)가 없는데도 자꾸 유모(유머)가 있다고 하는군요. 제가 살아온 시대가 평탄치 못했습니다. 우스개라도 즐기면서 각박한 시대를 이겨나가야 했습니다. 주스 한 잔을 마시고 갈증을 해소하듯이 말입니다. 경망스럽지 않은 범위 내에서 웃음을 즐기고 사는 것이 좋습니다. 엄숙일변도의 삶은 여백이 없는 그림이나 쉼표가 없는 음악과 같습니다. ­감사 활동의 몇 %나 공개하고 있습니까. ▲수치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중요한 사건은 모두 발표하고 있습니다. 양이 많아 일일이 공개하는 것은 곤란하지만 감출 의도는 없습니다. 또 국가 기밀 등으로 발표할 수 없는 사안도 있게 마련입니다. ­金大中 대통령과 韓원장의 각별한 관계 때문에 감사원의 독립성이 훼손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金대통령과의 관계는 과대포장된 감이 있습니다. 당신께서 쓰셨으니까 힘을 실어주시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절친한 사이니까 독립성을 해친다는 것은 틀린 얘깁니다. 친해서 곤란하다면 전혀 모르는 사람을 쓰겠습니까. 아니면 야당인사를 쓰겠습니까. ­서울신문의 행정뉴스면을 어떻게 보십니까. ▲획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무원 뿐만 아니라 행정에 의해서 이익을 보는 국민에게도 서비스가 되는 것 아닌가요. 사실 우리 언론이 사건위주로 보도하는 듯한 아쉬움을 갖고 있습니다. 행정분야의 뉴스를 통해 국민들이 규범에 익숙해지고,제도와 시책도 숙지하는 것이 복지주의 사회의 요구이기도 합니다. ­끝으로 공직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주십시오.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신입니다. 자신에 대해 부끄럽지 않게 직무를 수행하기 바랍니다. 감독과 적발이 두려워서가 아니라,공직자로서 자책감을 느끼지 않고 부끄럽지 않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책무를 다하시기 바랍니다. ◎韓 감사원장 회견 소감/치밀한 준비·적확한 표현서 참법조인 모습이… 韓勝憲 감사원장은 스스로의 말과 글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韓원장은 서울신문과의 단독회견을 통해 내년 정년퇴임 이후의 거취를 처음으로 밝혔다. 감사원법이 개정돼 65세인 정년이 연장되더라도 “이미 퇴임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韓원장은 정치재판사의 기록을 자신에게 부여된 숙제라고 말했다. 공직자보다는 법조인을 천직으로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현재 감사원에 대한 장악력과 운영 방향에 대해서도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회견에 대비해 각 실·국에서 준비해온 두툼한 자료가 놓여 있었지만 韓원장은 좀처럼 활용하지 않았다. 감사원의 전산화 계획과 관련한 수치를 인용하는 정도였다. 韓원장은 감사원에 대한 세간의 비판이나 의혹에 대해서도 일일이 반론을 제기했다. 의례적인 차원의 ‘겸허한 수용’같은 것은 따라붙지 않았다. 韓원장은 2일 하오 2시30분부터 4시까지 진행된회견시간 내내 보다 적확하면서도 쉬운 용어와 표현을 사용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따금씩 곁들여진 韓원장 특유의 유머는 감사라는 주제 때문에 딱딱해질 수 있는 회견을 한결 부드럽게 만들어줬다. 감사원측은 인터뷰 기사에 韓원장이 사용한 용어와 표현이 그대로 반영되기를 희망했다.
  • 훈민정음 영인본으로 복원

    ◎세종대왕 탄신 600돌·세계기록유산등록 기념/고문헌 비교 분석/발간 당시 원형 재현 심혈/한글우수성 널리 알릴 귀중한 계기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훈민정음(訓民正音)이 영인본으로 복원됐다. 한글학회와 문화관광부는 지난해의 세종대왕 탄신 600주년과 ‘훈민정음’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 등록을 기념해 ‘훈민정음’영인본을 최근 펴냈다. 도서출판 해성사. 이번 ‘훈민정음’은 15세기 세종대왕이 창제·반포한 한글의 원형을 복원하는 데 중점을 뒀다. ‘훈민정음’원본은 국보 제70호로 현재 간송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원본을 영인할 경우 원상이 손상될 우려가 있다. 그런 점을 감안,조선어학회(한글학회 전신)에서 1946년에 펴낸 ‘훈민정음’최초본을 토대로 영인작업을 벌였다. ‘세종실록’‘월인석보’등 ‘훈민정음’관련 고문헌들도 비교·분석해 1446년 발간 당시의 원형을 최대한 재현했다. 이번 영인작업은 특히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훈민정음’의 오류부분을 수정·보완한 점에서 커다란 의의를 지닌다. 쉼표 역할을 하는 권점(圈點)을 오른쪽에서 가운데로 옮겼고,성조(聲調)표시 권점을 첨삭했으며,일부 자구를 수정했다. 또 고색(古色)처리를 하지 않았으며 표지 문양은 서지학자 등의 견해에 따라 15세기 궁중에서 일상적으로 썼던 완자문(卍字紋)을 사용했다. 지질은 고문서 영인 때 주로 쓰이는 한지를 사용했으며 서명(書名)쪽수가 적힌 판심(版心)을 원형대로 복원했다. 간송미술관의 소장본은 중국이나 일본식인 ‘4침(針)안정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훈민정음’은 우리의 전통적인 제책방식에 따라 실로 다섯번 꿰매는 ‘5침 안정방식’으로 복원됐다. 지금까지 발견된 ‘훈민정음’의 이본(異本)은 모두 5종. ‘세종실록’에 실려 있는 순 한문체의 ‘훈민정음’과 ‘월인석보’첫째 권의 책머리에 부록돼 있는 ‘세종어제 훈민정음’,박승빈이 간수한 단행 판각본 ‘훈민정음’,최근 경북 안동군 이씨 집에서 발견된 전형필본 ‘훈민정음’,서강대학에서 간수하고 있는 ‘월인석보’에 실린 ‘세종어제 훈민정음’등이 그것이다. ‘훈민정음’영인본 발간은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귀중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735­3576.
  • 환란수사 40일만에 일단락/姜慶植·金仁浩씨 사법처리 안팎

    ◎외환위기 전개·대처과정 잘못 구체 규명/起亞사태 정·관계 배후 못밝힌건 아쉬움 姜慶植 전 경제부총리와 金仁浩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18일 사법처리됨으로써 한달 넘게 끌어 온 검찰의 金泳三 정부 경제실정 수사가사실상 일단락됐다. 정책 결정의 잘못보다는 비리 성격이 강한 개인휴대통신(PCS) 사업자 선정과 종금사 인허가 비리 수사도 ‘쉼표’가 찍힌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 4월11일 감사원의 고발에 따라 시작된 검찰의 수사는 ‘목표를 정해놓은 수사’라는 지적도 없지 않았지만 외환 위기의 전개 및 대처 과정의 사실 관계를 구체적으로 밝혀내고 고의성이 있는 정책 잘못을 처음으로 형사처벌했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검찰은 특히 환란(換亂)의 주범격인 姜慶植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기아 채권은행단에 압력 행사 ▲외환시장 개입·불개입 지시 반복 ▲사전 경고무시 ▲특혜 대출 압력 ▲비망록 변조 등의 사실을 밝혀냈다. 金 전 수석에 대해서도 감사원 고발 외에 ▲지난 해 말 해태그룹 채권은행단에 대한 부당한 대출압력 행사 ▲해태 타이거즈 등 계열사 인수 종용 등직권남용 사실을 추가로 확인했다. 金善弘 전 기아그룹 회장을 횡령 등 구속한 것도 사실상 환란을 부채질한 책임을 물은 것이라는 점에서 검찰의 강한 의지를 보여 준 것이다. 그러나 金泳三 전 대통령의 서면답변 파문으로 林昌烈 전 부총리의 ‘공동 책임론’이 부각되자 서둘러 면죄부를 준 것이나 기아사태 정·관계 배후의혹을 밝혀내지 못한 채 사실상 수사를 종결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장기과제로 넘어간 PCS 사업자 선정 및 종금사 인허가 비리 수사도 경제여파와 지방선거 영향 등 수사 외적 변수를 감안하면 휴화산이 된 셈이다. 검찰은 지금까지 PCS 사업 선정업체인 한솔PCS와 LG텔레콤에 대한 수사에서 李錫采 전 정보통신부장관이 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단서를 포착했으나 본인의 귀국 거부와 계좌추적 어려움으로 혐의 사실을 확인하지는 못했다.다만 PCS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전직 고위 공직자와 종금사로부터 금품 로비를 받은 구 재경원 간부,일부 정치인 등 10여명은 姜 전부총리가 기소되는시점을 전후해 추가 사법처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출국금지와 압수수색 남발 등 검찰의 구태의연한 수사 방식도 도마 위에 올랐다.소환자를 밤샘 조사해온 관행은 한솔제지 李明喆 상무이사의 자해소동으로까지 이어지고 말았다. 당사자들이 검찰 수사에 순순히 승복하지 않는 상황을 감안할 때 앞으로 법정에서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 음악평론가 韓相宇(이세기의 인물탐구:169)

    ◎‘올곧은 비평’ 음악계 정의의 사제/방송·강연 통해 고전음악 정신 전하는데 전력/음악만 생각하고 음악속에 살아가는 ‘노신사’ 누군가 음악평론가 韓相宇를 향해 ‘신비로운 음악의 세계를 이어주는 다리’라고 했다.그의 해박한 음악지식은 단순히 평론가의 차원이 아니라 몸속에서 음악이 넘쳐서 흘러나오는 식이다.그가 음악을 감상하는 태도는 한음한음을 주의깊게 들으면서 악보의 쉼표와 점하나까지도 놓치지 않는 실력이다. ○논리정연한 이론가 음악을 통해 정신적 위로와 감동을 맛보기 위해서는 옷깃을 여미고 기도하듯이 콘체르토와 심포니에 접근해 나간다.거짓이 없는 순결한 마음을 지키면서도 예술가의 고뇌나 센티멘탈리즘대신 이론가답게 논리정연하고 글귀마다에 번뜩이는 경구가 도사린다. 악곡뿐만 아니라 그 곡에 관련된 예술가 자신의 삶과 죽음,연주에 얽힌 작은 에피소드 하나까지도 철저하게 궁구(窮究)하여 절중(節中)을 기하는 주의다. 그러나 미소망상(微小妄想)이 없고 자신을 포장하거나 과장하지 않는다.원로 박용구씨의 말대로 ‘어떤 경우에도 결백하고 청담(淸淡)한 인품을 지닌 신사가 한상우’인 것이다. 이른바 ‘작곡가나 작품명을 줄줄이 외우고 디스크 진열을 자랑삼는 것’은 천열(賤劣)하다고 지적하고 전통을 중시하지만 완강하게 자기고집만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자연스럽게 자유하는 마음가짐이 그의 인간됨이며 옳지 못한 일을 지적할 때도 날카로운 송곳을 드러내기보다 상대방의 실수를 부드러운 유머와 재치로 감싼다. 그의 생활방식도 음악을 대하는 진지함과 상통한다.집안은 조선왕조 후기에 총융사(總戎使) 어영대장 공조판서를 지내고 갑신정변때 나이 사십에 순절한 충숙공(忠肅公) 韓圭稷이 그의 증조부이고 포대장 장위사(壯衛使) 찬정(贊政)을 지낸 韓圭卨이 작은 증조부,부친은 충북 제천중을 설립하고 제2대국회의원을 지낸 韓弼洙씨다.그러나 부친은 ‘계파’를 따지는 것을 지극히 자제하여 ‘앞으로의 삶이 더 중요한만큼 과거에 집착하지 말라’고 자녀들에게 일러왔다.‘과거집착에서 벗어난 해방감’과 ‘자유로움 속에서 떳떳한 자세’는 바로 부친이물려준 가르침 덕분이다. ○세계적 명반 대량 소장 부친은 37년 서울을 등지고 조부로부터 물려받은 땅이 있는 제천으로 낙향했고 그는 다음해 그곳에서 태어났다.형제는 4남2녀중 막내,다섯살을 전후해서 유성기옆에서 붙어살다시피 하면서 교회나 동네모임에서 하모니카 독주,한때는 부친이 광산에 손대는 바람에 모진 파란을 겪기도 했으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언제나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강한 생활력’을 터득할 수 있었다.노래부르기를 좋아하고 세계명곡집을 비롯한 갖가지 음악책과 음악사전문학작품집에 몰두하여 음악이론을 향한 탄탄한 지식을 쌓아왔다. 그가 방송에서 음악해설을 시작한 것은 문화방송제작위원으로 있던 72년부터다.그때도 방송 첫머리에서 ‘안녕하세요’라든가 ‘오늘 날씨가 좋다’는 식의 형식적인 멘트를 하지않았다.‘물론 안녕하니까 나의 방송을 듣고있다’는 생각에서 청취자를 음악의 숲으로 인도해주었고 이런 결곡한 매너가 ‘나의 음악실’을 14년이상 장기프로로 성공시킨 비결일 것이다.음악평에 손댄지도 30년이가깝다.서대문구 대신동 그의 집 음악실에는 낡은 유성기에서 레이저 디스크등 최신 오디오시스템을 고루 설치하여 그는 새벽에 일어나서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쓰고 저녁에는 음악회에 간다. 그의 음악평중에서 지난 75년,한 일간지에 시리즈로 실었던 ‘해방 30주년을 맞아 살펴본 현실과 그 반성’은 음악계의 병폐를 신랄하게 비판한 일대사건으로 기록된다. ‘음악계 이대로 좋은가’제하로 ‘연주회는 돈많은 자랑이거나 교수진급을 위한 것,교향악단은 연주회보다 개인레슨같은 부업에만 치중하고 교수는 특기자 입학을 미끼로 한 밑천 잡자는 식,오페라는 나눠먹기 배역에다 해외유학생들은 귀국하자마자 대학전강부터 따고나서 자리를 고수하기에만 급급하다’고 꼬집었다.이어서 ‘작곡도 탈낭만(脫浪漫) 탈정서(脫情緖)운동으로 지나치게 난해하고 애매모호할뿐 아니라 음악성이 결여되어있고 평론가 자신도 색종이를 오려붙이듯이 미사여구나 동원해서 주문식 잡문이나 쓴다’고 몰아붙였다. 이로 인해 음악계는 발칵 뒤집혔으나 평론계의 원로 유한철씨는 ‘한국음악계의 발전을 위해 긍정적인 관점에서 시정해야 할 점을 끌어내어 격려한 사항은 바람직하다’고 공감해 주었다.최근에도 그는 ‘신인발굴의 허구성’이란 글에서 ‘교향악단들이 예술적 양심으로 되돌아가 청소년연주회에 최선을 다하는 모범을 보이라’고 전제하고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청소년협연자를 내세우는 연주를 하지말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음악 조기영재교육 장려 그는 대학강단과 서울예고에 몸담고 있는 동안 비평활동과 음악의 조기영재교육을 장려하고 방송과 강연을 통해 차원높은 고전음악 정신을 전하는데 전력해온 공로자다.가족은 핵물리학을 전공한 辛承愛 교수(이화여대)와의 사이에 남매,그들 부부는 ‘인간으로서 또는 전문직을 가진 사회인으로서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민주적인 가정’으로 소문나 있다.좋아하는 음악가는 브람스와 슈베르트,카루소가 1910년대 취입한 SP를 LP화시킨 RCA 50주년기념판과 빈필하모닉 150주년 기념음반등 세계적 명반들을 소장하고 있다. 지난 70년대부터 살고있는 그의 집마당에는요즘 살구나무 감나무등 유실수와 회양목 향나무등 수목이 우거지고 집안은 봄꽃들이 만개하여 꽃향기가 범람한다.‘부자는 부(富)로 괴롭고 빈자는 빈(貧)으로 괴롭다지만 나는 부하지도 빈하지도 않으니 괴로울 이유가 없다’는 그는 때마침 취미와 전공과 직업이 모두 ‘음악’이기 때문에 ‘음악만 생각하고 음악속에서 살고있는,참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에 틀림없다.물질의 허욕에서 벗어나 오로지 음악계의 ‘정의의 사제’ 로서 그는 오늘도 자신을 위한 보보행진(步步行進)을 멈추지 않는다. □연보 ▲1938년 충북 제천출생 ▲1958년 제천고 졸업 ▲1962년 서울대 음대 작곡과졸업 ▲1962­69년 무학·경기중교사 ▲1969­84년 문화방송제작위원 ▲1980­86년 문화공보부 자문위원 1980­93년 국립극장 자문위원 ▲1987년 대한민국음악제 집행위원 ▲1984년 단국대대학원 졸업 ▲1982­85년 公倫 영화심의위원, 아세아청소년음악연맹 한국지부회장 ▲1985­88년 公倫 음악심의위원 ▲1984­96년 서울예고 음악과장▲1987­89년 서울올림픽 문화예술 자문위원, 국제음악제 운영위원 ▲1989­93년 한국음악협회부이사장 ▲1990년 문화부 기획위원 ▲1991년 남북문화예술교류정책자문 ▲1996년 KBS교향악단 자문위원 ▲1996­97년 월간음악춘추편집인 ▲1997­현재 KBSFM음악회 실황중계진행자,성균관대 출강 한국음악협회이사,세계청소년음악연맹 한국위원회이사, 예술의 전당이사, 한국페스티벌앙상블이사 ‘선율,온 영혼의 불꽃’ ‘삶과 죽음의 음악’(청한출판사) ‘북한음악의 실상과 허상’(신원문화사) ‘한국오페라 50년사’등 출간 예술평론가상(80년) 국음악상(94년)
  • 문단에 「90년대 문학」 극복 움직임

    ◎“사적 퇴행적 신배로 사회와 괴리”/대표적 작가 신경숙·윤대녕씨 잇단 비판의 글/“공적영역과 맥락 없으면 「향수의식」 수준일 뿐” 신경숙(34)과 윤대녕(35)은 90년대 들어 문학에 관심있는 이들의 입에 가장 자주 오르내린 이름이었다.두사람은 이념과 사회라는 큰 문제를 좇다 기진맥진해진 80년대 문단의 끄트머리에서 피어나 어느날 문득 90년대의 가장 뚜렷한 징후로 떠올랐다.존재내면의 떨림을 털어놓은 이들의 나지막한 목소리는 먹물 한점이 세숫물에 번지듯 문단전체로 퍼져나갔다. 거대서사가 아닌 사소한 내면을 보여주고 굵직한 주제의식보다는 섬세한 문체를 앞세워 90년대 문단의 대표작가가 된 신경숙과 윤대녕에 대해 평론가들이 문학계간지를 통해 잇단 비판의 글들을 쏟아놓았다.이상경씨의 「〈말해질 수 없는 것들〉을 넘어서」(「소설과 사상」봄호),임옥희씨의 「성의 〈새로운〉발견과 〈새로운〉소설」(「포에티카」창간호·3월발간)은 신경숙 소설에 문제제기하고 있고 구모룡씨의 「사로잡힌 자의 비극적 감성」(「소설과 사상」봄호),이남호씨의 「은어는 없다」(「세계의 문학」봄호)는 윤대녕 작품세계를 겨냥한다.신씨와 윤씨에 대한 비판적 평문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두사람이 한꺼번에 집중포화 대상이 된 점에서 이 글들은 작가개인을 논하는 단순작가론을 넘어선다.그보다 「90년대 문단」의 대표적 기호가 돼버린 신씨와 윤씨를 비판함으로써 궁극적으로 「90년대」를 극복하려는 새로운 의식의 움직임으로 읽힌다. 새로운 의식이 두사람에게 공통으로 제기하는 문제는 이들의 작품이 너무 사적(사적)이고 퇴행적(퇴항적) 신비에 가득차 사회와의 연관을 잃고 있다는 점. 이상경씨는 소멸해가는 미세한 기미,〈말해질 수 없는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어눌한 말더듬기,잦은 쉼표,말줄임표 등을 즐겨 써서 신씨가 〈자신만의 고유한 문체〉〈개성적인 스타일〉을 확립하긴 했지만 〈(형식이) 내면의 심화를 동반하지 못〉한채 〈존재의 고독감이 (본질이 아닌)피상적인 것에 〉머물렀다고 비판한다.최근의 작품에서 문학고유의 「낯설게 하기」를 〈귀기나 환상으로 대체하려〉는 경향도 우려한다. 임옥희씨는 신씨의 장편 「외딴방」에서 〈기만과 위선으로 가득 차 있더라도 가족이 해체되서는 안 된다(는)… 여성들의 자기 희생과 체념의 미학〉을 읽어내면서 〈신경숙의 감수성은 어찌할 수 없는 인어공주의 감수성이다.…신경숙은 가부장제의 빈집이나마 수리,보수하는데 어느 정도 공모하고 있다〉고 단언한다. 이남호씨는 〈고전적인 문장구사 능력이 90년대의 도시적 감수성과 잘 결합〉된 윤대녕의 문체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정체성 상실을 다루는 그의 방식이 언어만 현란할 뿐 현실도피적이고 〈존재의 시원,성소,신성과 비의,영원회귀 등 알 수 없는 공간으로 정체성이 결핍된 영혼들을 현혹한다〉는 점을 경계한다.〈너무 쉽게 성소나 시원을 찾아 현실을 떠나버리면 안되며,말도 안되는 지하모임을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진지한 현실탐구를 요청한다. 윤대녕에 대한 구모룡씨의 다음과 같은 조심스런 비판은 문단의 90년대 징후 전체에 대한 반성으로 읽힌다.〈…소설은 공적 영역과의 맥락을 지녀야 한다.…윤대녕의 경우 사적 글쓰기가 왜 문제가 되는가.그것은 그가 일체의 공적 통로에 대해 회의하고 있기 때문이다.…(현실과의 맥락을 지니지 않을때)근대성 비판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일부가 보이는 향수의식의 수준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이다.
  • 백민석씨 장편 「내가 사랑한 캔디」

    ◎90년대 학번/그들의 지향없는 ‘공허’/어느 고3생의 대학시절까지의 기록/욕망과 허기로 살아가는 신세대의 저항 백민석씨의 두번째 장편소설 「내가 사랑한 캔디」가 김영사에서 나왔다. 우리나라에 그런 작가가 있느냐며 고개를 갸웃거릴 이들도 많겠지만 알만한 사람은 모두 백씨를 장래 문단의 재목감으로 꼽는다.지난해 8월 펴낸 첫 장편 「헤이,우리 소풍 간다」(문학과지성사)는 소설은 아무튼 인문적이어야 한다는 전통적 관념에 신물이 난 「언더그라운드」 문인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감각으로 다가섰다. 지난해 「문학과사회」 여름호에 발표한 원고지 200장짜리 동명 중편을 350장 더 늘린 「…캔디」는 첫 장편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80년대초 철거와 폭력이 난무한 빈민촌에서 자란 젊은이들의 살풍경한 의식을 보여줬던 「헤이…」의 독한 쓰라림에 비해 90년대 학번의 지향없는 공허감을 그린 「…캔디」의 어투는 경쾌하기까지 하다.문장을 뚝뚝 분질러놓아 읽기에 고통을 주던 잦은 쉼표도 사라졌다. 소설은 고3부터 대학시절까지 한 청년의성장기록.그중 「캔디」와의 연애담이 기둥 줄거리를 이룬다.동명 만화의 주인공과는 달리 남자인 캔디는 고교시절 「나」의 동성연애자.하지만 대학에 들어가 여자친구가 생기면서 갑자기 남성다움을 과시하더니 첫사랑의 기억을 부인해 버린다. 이같은 중심에 작가는 무궁무진한 상상력으로 첨단적이면서도 아기자기한 세세한 묘사를 입힌다.세상 모든 과일들을 조합,끝없는 메뉴를 제공하는 백화점 청과물식당 「U.F.O」는 무한히 증식하는 자본주의의 욕망을 닮았고 이한열,김귀정 등의 영정으로 벽을 덮은 카페 「지리산」은 어느새 살은 내리고 액자로 요약된 90년대 학생운동의 몰골로 읽힌다. 현대사회의 이런저런 체제에 버티던 이들도 하나둘 쓴웃음속에 사라져간다.캔디는 나를 지워버리고,제도권 교육에 항의,사표를 던진 고릴라 선생은 추레한 환자가 돼 병실을 찾은 학생들을 쑥스럽게 맞는다.뭐라 말할 수 없이 얄팍해진 삶을 프로그레시브 록그룹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싸구려 인생,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다투는 이유이다』라고 노래한다.주인공은이 모든 것을 가로질러갈 방법으로 「총잡이」를 꿈꾸지만 탈주범 지강헌은 실패했고 기말리포트로 내기로 한 총잡이 소재의 소설은 작심에 그친다.열한시에 정지한채 고여버린 시간처럼 항의조차 무력해진 요즘 청춘들의 초상을 작가는 이전세대와 완전히 구분되는 새로운 소설공간에다 그려보고 있다. 사이버문화에 에워싸인 세대의 정황을 말한 작품은 많지만 그 문명을 백씨처럼 아예 「살아버린」 작가는 거의 없었다.한없이 증식하는 욕망과 결코 채워지지 않는 허기사이에 끼인 신세대를 백씨는 가장 현대적인 어투로 그려내고 있다.민음사 편집부의 장은수씨는 『백씨는 자연에 대한 기억자체가 없이 태생부터 인공문명에 근원을 둔데다 이런 정황에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첫번째 세대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라면서 『바로 이처럼 현대의 아이이기 때문에 또한 언젠가는 현대문명에 가장 효과적인 소설적 저항을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했다.〈손정숙 기자〉
  • 주2회 공판선언에 변호인 “당혹”/공판 이모저모

    ◎재판부 변호인단 신문서 준비부족 질책/전씨 자신에 유리한 내용도 틀릴땐 정정 20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12·12 및 5·18사건의 8차 공판에서는 재판일정을 둘러싼 공방이 치열했다.재판부가 첫 야간재판을 강행하겠다고 하자 변호인단은 신문거부와 퇴정으로 맞섰고 재판부는 주 2회 재판을 선언했다. ○…하오 8시45분 속행된 첫 야간 공판은 시작하자마자 전상석·이양우·석진강 변호사 등 변호인단이 『더 이상 신문을 진행할 수 없다』며 재판을 거부함으로써 20여분만에 폐정. 전·석 변호사 등이 『피고인은 물론 변호인들도 모두 고령으로 더 이상 재판을 할 수 없음에도 무리해서 재판을 진행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퇴정. 이어 노태우·유학성·황영시·허삼수·박준병·최세창 피고인 등의 변호인들도 모두 신문을 거부. ○…변호인단은 황영시 피고인의 경우 구속되기 전 직장암 수술을 받았으며,유학성 피고인은 교도소에서 한 때 심장발작을 일으켜 졸도하는 등 고령인 일부 피고인들의 건강이 나빠졌으므로 야간재판을 받을 수없다고 주장. 그러나 『신문을 재개하라』는 재판장의 독려가 이어지자 이변호사는 『못 하겠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제 나이가 65세인데 이젠 체력의 한계가 왔다』고 덧붙였다. ○…변호인단은 공판이 파행으로 끝난 직후 법원 밖에서 모임을 갖고 변호인단이 연서명을 내 오는 23일의 재판연기를 신청하기로 했다.한 변호인은 『영미법 계통의 나라에서는 재판이 난관에 봉착하면 판사가 검사와 변호인을 판사실로 따로 불러 의견을 조정한다』며 『재판장이 일방적으로 주도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주장. ○…변호인단이 신문을 거부한 뒤 김영일 재판장이 『다음 공판 기일은 3일 뒤인 23일 상오 10시』라며 주 2회 재판을 선언하자 법정이 순간 놀라움으로 술렁.특히 변호인단은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이라는 듯 씁쓸한 모습. ○…김영일 재판장은 『야간재판은 재판을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것이며 구속기한에 맞추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며 『변호인의 반대신문에 군더더기가 많아 절반밖에 진행하지 못한 채 결국 논쟁으로 끝나 유감』이라며 폐정. 이에 앞서 검찰은 『변호인단의 지연의도가 분명해졌다』며 『구속기간 운운하는 것은 재판을 몇년씩 끌어 정치재판화하자는 것』이라고 주장. ○…이양우 변호사는 반대신문에 들어가기 전 『반란수괴죄는 법정형이 사형밖에 없으므로 법정에서 유서를 쓴다는 심정으로 신문할 것』이라며 비장한 각오를 피력.또 『신문이 중복되고 길어지더라도 재판부는 이를 감안,이해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함으로써 재판일정을 계산한 전략으로 풀이됐다. ○…재판부는 전두환·노태우 피고인을 뺀 나머지 피고인들에 대한 신문서가 준비되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재판장이 누구에게 먼저 물을지도 모르는데 왜 준비하지 않았느냐』고 변호인단을 질책.이에 변호인단이 『피고인 순서대로 하는 것 아니냐』며 반발,한때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변호인단은 항변 과정에서 『제 말을 들어보십시오』라며 재판장의 말을 끊는가 하면 손가락으로 재판부를 가리키는 등 지나친 행동으로 재판부를 자극. ○…전 피고인은 변호인으로부터 자신에게 유리한 내용의 질문을받고도 사실관계가 틀릴 경우 정정하는 등 여유.박 전 대통령의 시해 직후 육본 벙커에 김재규와 정승화 전 육참총장 단 둘만 있었느냐는 질문에 『한두 사람 더 있었던 것 같다』고 정정. 이어 정씨가 김씨를 보안사 안가에 정중히 모시라는 지시를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정중히」라는 말은 안 했고 「일단 안가에 모시라」라고 했다』고 부연. ○…박준병 피고인은 검찰조서에 쉼표 하나를 추가하기 위해 재판부에 조서 정정요청을 한 것으로 밝혀져 꼼꼼한 성격을 반영.그는 쉼표 하나를 넣어야만 전후 문맥에 대한 해석이 쉬워진다며 12·12사건의 검찰 직접신문이 끝난 지난 3차 공판 때 정정을 요청했다고.〈박은호·강충식 기자〉
  • 선관위 전산시스템 “말썽”

    ◎초보적인 후보등록 현황도 집계못해/직원들 업무 파악안돼 개표때 큰 걱정 선관위의 전산시스템이 벌써부터 문제를 일으켜 걱정이다.선관위의 「후보자등록 관리시스템」은 후보자등록 첫날인 11일 가장 초보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 집계에서부터 말썽을 일으켰다. 기자실에 설치된 모니터 화면에는 「남」과 「여」가 뒤바뀌어 나타나는가 하면,한 후보자의 생년월일이라도 「○○년○월○일」과 ○○년,○월,○일」식으로 쉼표를 찍고 안찍고에 따라 서로 다른 사람으로 컴퓨터가 인식한다.똑같은 사람에 대한 자료가 두번 출력되는 것이다.그래서 선관위는 주민등록번호만 같으면 이같은 착오가 발생하지 않도록 뒤늦은 조치를 취하는 중이다.이 때문에 각 시·도 선관위로부터 중앙선관위로 자료를 전송하는 작업은 일시 중단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다.선관위의 전산시스템은 후보자등록 현황과 학력별·직업별·성별·연령별 집계밖에 하지 못한다.기껏 최고령·최연소 후보자를 가려내는 기능이 거기에 보태져 있다.그것도 전국적인 집계는 불가능하다.이번 선거는 단순히 지방단위의 선거로 인식해 프로그램 개발때 전국을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후보자등록 시스템」은 H전자가 지난해 4월 중앙선관위로부터 1억1천1백만원에 용역을 받아 개발한 것이다.시스템은 지난 2월에야 비로소 완성됐다.시험가동기간이라고 해봐야 고작 3개월을 갓 넘는다.시스템 운용이 안정을 찾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인 1년에 턱없이 모자란다.준비기간이 짧은데서 모든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각 시·도마다 전산직 1명씩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1월 중순에서 2월 초순 사이에 발령받은 사람들이다.업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선관위 관계자의 솔직한 고백이다. 선관위의 전산시스템이 빠른 시일안에 정상궤도에 오르지 못한다면 오는 27일 개표때는 정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경우에 따라서는 선거의 공명성에 대한 시비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관위는 13일부터 내무부·현대전자·한국통신과 공동으로 개표시스템 설치에 들어간다.17일까지 설치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과연 5일만에 시스템이 완벽하게 구축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이 작업과 병행해 구·시·군별로 2∼3명씩 배치된 개표전산직원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지만 그 교육 역시 며칠만에 소기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선관위는 이번 선거에 대비해 20억원어치의 컴퓨터장비를 리스(lease)해 설치했다.또 H전자로부터 네트워크설비와 국산 주전산기등 20억원정도를 지원받았다.
  • 문화가 달리는 도로/이종철 국립민속박물관장(굄돌)

    하루의 고되고 축복된 일에 쉼표를 표시할 퇴근길 저녁의 버스 차창으로 보이는 자가용 행렬은 참으로 아름답다.진종일 열심히 일하며 생각하고 귀가하는 가장과 가족원은 따뜻한 가정의 식탁에서 하루의 피로를 녹일 것이다. 가정은 누구나 돌아가고픈 육체의 안식처요 영혼의 쉼터이다.가능하면 빨리 돌아가서 손발을 씻고 가족이 오손도손 모여 이야기도 하고 뉴스도 연속극도 볼 것을 생각하니 모두들 마음이 바쁜 것은 당연하다.그러나 바쁘다고 해서 야바위꾼들 마냥 난폭운전으로 끼어 들기를 하거나 다른차에게 심한 혐오감을 주는 운전행태 등은 아무래도 꼴 사나운 모습이다. 공적으로 바쁘지도 않은데 경광등 껌벅거리고 달리는 사이비경찰차,병원차,언론차,남의 생명을 담보하여 차선침범,음주운전을 일삼는 주당 전용차,폭주족의 최첨단을 달리는 거리의 불량배 오토바이,선팅한 차창밖으로 담배꽁초 버리는 운전자와 앞좌석에 맨발을 올려놓은 주인을 실은 얼빠진 외제차,바쁜 출퇴근 시간에 산보,물깃기,에어로빅노선을 달리는 주부들,비좁은 골목길과 한개차선을 완전차폐벽으로 만든 공사차,좁은 골목 소방도로에 점유가건물을 지은 지역 유지들 등등 참으로 대한민국의 교통문화는 아수라장이다. 도로는 문명의 이기인 자동차만 빨리 달리게 만든 공공시설물은 아니다.도로위에는 항상 건전한 시민의식과 윤리규범,도덕이라는 최소한의 가치문화가 혈맥처럼 순환되어야 한다.야만인이 움직이는 흉기의 자동차가 아닌 교양있는 인간이 순행하는 문명의 꽃으로서 문화의 차가 달려야 세상이 살 맛이 난다. 이제 정부와 경찰과 도로탓만 하지말고 시민스스로가 거리의 명소를 만들고 교통도덕을 지키는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어야 할 때이다.이 모든 문제가 경찰과 행정력으로는 한계가 있다.건전한 문화시민으로서 긍지,도덕,예의규범을 지키는 문화적 자존심만이 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 한동안 소시민의 찬사를 받다가 흐지부지된 출퇴근 버스전용차선에 얌체동물처럼 함부로 끼어드는 위반차량이 늘고있다.경찰의 명예를 걸고 서민의 공적인 부도덕 중후군을 중벌로 다스리자.그 야만적 행동이 뿌리 뽑히고수도시민으로서 문화화 될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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