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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곁에 두고도 찾지 못한… 이 가을 더 쓸쓸한 ‘민주화의 기억’

    곁에 두고도 찾지 못한… 이 가을 더 쓸쓸한 ‘민주화의 기억’

    4·19민주묘지를 찾은 건 지난 3일 아침이다. 추석 연휴의 중간이자 개천절이기도 하다. 대학에 다니는 딸아이가 아침 식탁에서 불쑥 4·19가 뭐냐고 물었다. 순간 많이 당황했다. 4·19라? 그러고 보니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국사 교과서나 언론에서 배운 게 전부다. 4·19는 내가 태어나기 전 일이다. 나도 경험하지 못한 4·19를 지금의 딸아이 세대에게 얘기하려 하니 말문이 막힌다. 내가 4·19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본 것은 시인 김광규의 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한몫했다. 누구나 한 번쯤 읊조렸던 기억이 있겠다. 4·19에 대한 시대적 상실감, 좌절감,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회한이 담겨 있다. 혁명은 치열했지만 무척 짧았다. 시는 한마디로 절망의 노래다. 4·19를 연상케 하는 최고의 시로 꼽힌다. 실제로 시인은 서울대 문리대 1학년 당시 4·19 시위에 참가했다. 이 시를 가만히 읽노라면 1980년대 군사독재에 맞서 매캐한 최루가스 속에서 깨진 보도블록을 던지던 스물 몇 살의 청춘들이 떠오른다. 그 속의 젊은 나도 보인다. 80년 민주항쟁은 4·19가 일어난 지 20년 뒤 나의 세대의 일이다. 중장년 세대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서울신문과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이 함께하는 ‘2020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19번째 여정은 ‘4·19민주묘지’였다. 코로나19로 한반도 전체가 신음하고 있지만 그래도 하늘은 더없이 높고 햇살은 투명했다. 코로나 덕분에 좋아진 가을 하늘은 명징한 하이페츠의 바이올린 연주를 닮았다. 서울 북단에 위치한 4·19민주묘지는 굳게 닫혀 있었다. 말은 코로나 방역이지만 보수단체의 집회 금지에 구색을 맞추기 위한 치졸한 조치라고 누군가 비판한다. 넓은 묘지에는 평소에도 찾는 이가 없는데 폐쇄한 것은 혹시 반민주적인 행태가 아닐까? 민주주의를 위해 피를 뿌린 4·19묘역이 반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현실에 망연자실해진다. 헛걸음친 것이다. 4·19묘지는 한 시절 학교 다닐 때 몇 번 들락거렸다. 젊은 날 마라톤으로 4·19묘지를 찾았던 기억도 있다. 순례객 저마다 이곳을 찾은 사연이 있을 법하다. 결국 참가자들은 굳게 닫힌 공원 입구에 있는 커다란 돌덩이 기념조각물 앞에서 해설자의 얘기를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4·19를 피상적인 역사적 사실 정도로 이해하고 있을 뿐 정작 그 시절의 상황은 체감하고 있지 못한다. 그래서 그럴까? 거리의 소음 속에 목청을 높이는 해설자의 열띤 얘기가 가을 하늘로만 울려 퍼질 뿐 순례객들의 귀에 쏙쏙 들어오지 않는다. 굳게 닫힌 철문, 담을 넘고 들어가 볼 수도 없고 참가자들은 아쉬움 속에 인근 솔밭으로 발걸음을 옮긴다.우이동 솔밭공원은 서울의 북단 강북구 우이동에 있다. 자생하는 소나무 숲을 구청에서 사들여 조성했다고 한다. 서울에서 소나무 군락지로는 유일한 곳이다. 100년생 소나무 1000여 그루가 위용을 자랑한다. ‘우이’(牛耳)라는 이름은 삼각산의 봉우리가 마치 소의 귀처럼 생긴 것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우이동은 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계곡을 따라 마을이 이어졌는데 육당 최남선이 만년을 지낸 고택(소원)도 이곳에 있었고 신라 말기 도선 대사가 창건했다는 도선사도 지근거리에 있다. 우이동 솔밭의 매력은 수많은 낙락장송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데 있다. 3만 4955㎡쯤 된다. 원래는 사유지였다. 부동산 붐이 이곳까지 이어져 아파트 부지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숲을 보고 주민들이 보존 운동을 벌였다.결국 1997년 지자체가 매입해 2004년에 공원으로 개장했다. 야산에서 봐오던 거대한 소나무 군락이 주택가 한복판에 느닷없이 형성돼 있어 처음 본 사람들이 신기해한다. 그러나 솔밭공원은 ‘키치문화’의 결정판이다. 근심 없이 자란 소나무 군락까지는 입이 딱 벌어지지만 딱 그뿐이다. 갖가지 편의시설과 군데군데 넘치는 운동기구, 꽃과 나무 이름을 알리는 표지석까지 공원은 복잡하다 못해 어지러울 정도로 산만하다. 게다가 울룩불룩 자갈을 깔아 지압길을 만들었고 인라인스케이트나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시설까지 있다. 그저 나무벤치 몇 개만 눈에 띄지 않게 두었으면 좋으련만 100년 거대한 소나무를 보기에 민망할 정도다. 솔밭공원 건너쪽에는 우이천이 흐른다. 북한산에서 내려오는 물은 개천 바닥 모래가 보일 정도로 맑고 깨끗하다. 여기저기 동네 주민들이 맨발로 우이천 모랫바닥을 걷고 있다. 솔밭 앞에 시냇물이 흐르는 격이다. 존 바에즈의 ‘더 리버 인 더 파인’(the river in the pine)을 떠올리면 지나친 비약일까? 우이천을 나란히 하며 덕성여자대학이 자리잡고 있다. 캠퍼스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대학이다. 서울 도심 종로구 운니동에 있던 캠퍼스가 1970년대 후반 이쪽으로 이전했다고 한다.캠퍼스에는 당대 최고의 건축가이던 김수근의 작품이 여럿 위치한다. 그러나 캠퍼스는 폐쇄됐다. 역시 코로다19다. 캠퍼스에는 빨간 벽돌집이 유난히 많다. 낮은 담장 너머로 김수근이 설계한 몇몇 건물을 스쳐 지나가며 본다. 높은 고층 콘크리트 건물은 없다. 모두가 높지 않은 붉은 벽돌이다. 1972년 설계된 자연과학대학 역시 붉은 벽돌집이다. 건물 앞 광장은 비엔나 숲으로 명명됐다. 단풍나무 묘목원의 유래를 훼손하지 않고 숲으로 남겨 놓은 건축가의 배려가 돋보이는 장소다. 직접 가보지 않은 사람도 여러 드라마와 광고 배경으로 인해 단번에 익숙하다. 드라마 ‘도깨비’의 배경이 된 중앙도서관도 1984년 설계작이다. 에코 캠퍼스의 결정판이다. 이 건물들은 김수근의 캠퍼스 시리즈로 10여년에 걸친 시차를 잘 보여 준다. 1979년 건축협회상을 수상하고 2013년에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교문 바깥에서 훔쳐본 안쪽 캠퍼스에는 잔디가 노랗게 익어 간다. 잊을 수 없는 얼굴들이 문득 떠오른다. 무정한 세월 속에 그 짧았던 젊음도 갔다. 갑자기 코끝이 찡해진다. 인적이 없는 텅 빈 캠퍼스에 가을 햇살이 나른하게 쏟아진다.서울의 끝자락에 위치한 강북구 우이동, 도봉구 쌍문동 일대는 사연이 많은 동네다. 비운의 왕 연산군의 묘소도 있다. 벽초 홍명희, 김수영, 송진우, 김병로, 정인보, 함석헌 등 근현대사의 굵직한 인물들이 이곳에서 똬리를 틀고 살았거나 한동안 머물렀다. 4·19를 얘기할 때 늘 언급되는 김수영의 시비도 인근 도봉산 국립공원에 있다. 역시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도봉구는 2017년 문학예술교육특구로 지정됐는데 서울미래유산 9곳과 문화역사 관광벨트가 한몫했다. 연전에 화제가 된 드라마 ‘응답하라 1988’도 이 일대가 무대다. 그만큼 도시물을 덜 먹었다는 의미가 된다. 아담한 빨간 벽돌 주택과 소나무가 뻗어 자라는 담장 낮은 집들이 눈에 띈다. 80년대 풍경이다.사실 서울에 살면서도 이곳을 찾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은 강남에 비해 홀대받고 있지만, 한때는 서울의 관문격으로 당대의 인물들이 이곳에 자리했던 요지다. 간송 전형필도 일제강점기 이곳에서 살았다. 근대 전통 가옥인 간송 옛집에는 일제강점기 때 민족문화유산의 수호자였던 간송의 자취가 잘 남아 있다. 100년이 된 전통 한옥으로 건축적 가치도 커서 문화재로 지정됐다. 도봉구에서 2013년부터 2015년까지 2년에 걸쳐 보수 공사를 완료했으며, 2015년 9월 11일 개관식을 한 뒤 일반에 공개돼 운영되고 있다. 4·19묘지를 시작으로 우이동, 쌍문동을 찾는 나의 발길은 다시 솔밭공원을 끝으로 끝났다. 솔밭 구석에 조그만 화강암 노래비가 서 있다. 인근에 살았던 윤극영의 동요 ‘반달’이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얼마 만의 동요인가. 온 나라가 미친 듯이 트로트 열풍에 빠져 있는 가운데 동요 한 자락을 발견했다. 득템이다. 사실 한국의 대중가요는 미학적으로 파산한 지 오래다. 어린아이까지 나와 ‘이 풍진 세상을…’을 부르는 지금의 세태에 동요는 설 곳이 없다. 동요가 아이들에게까지 버림받는 천박한 세상이 2020년 한국이다. 반달 노래비를 뒤로하고 가만히 걷는다. 아득한 초딩 시절 불렀던 노래가 오늘 서서히 천둥처럼 가슴을 때린다. ‘은하수를 건너서 구름 나라로/구름 나라 지나선 어디로 가나/멀리서 반짝반짝 비치이는 건/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 가을이 깊어 간다. 길가 핏빛 칸나가 시든 줄기에 매달려 ‘초추의 양광’에 젖어 있다. 이제 가을은 점차 깊어 가고 사람들은 더욱 외로워질 것이다. 나도 반달처럼 길을 찾아야겠다. 글 김동률 서강대 교수 해설 박정아 서울도시문화지도사 사진 김학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 ■ 다음 일정제20회 영등포의 추억 ●출발 일시 10월 10일(토) 오전 10시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집콕’ 지칠땐 호젓한 힐링 여행…경남 숨은 관광지 18선

    ‘집콕’ 지칠땐 호젓한 힐링 여행…경남 숨은 관광지 18선

    ‘경남에서 안전하게 비대면 가을 여행을 즐기세요’ 경남도는 비대면으로 안전한 가을 힐링 여행을 즐기기에 좋은 야외 숨은 관광명소 18곳을 시·군 추천을 받아 선정했다고 30일 밝혔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안전한 여행을 위한 비대면 관광지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잘 알려지지 않은 야외 관광지를 소개해 가을을 맞아 유명 관광지로 관광객이 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도는 이번에 선정한 가을 비대면 야외 관광지 18곳은 가을을 주제로 다른 관광객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자연에서 휴식을 할 수 있는 힐링관광지를 위주로 골랐다고 밝혔다. 기존 유명 단풍명소를 제외하고 개별·소규모·가족단위 방문 관광지를 중심으로 시·군 추천을 받아 선정했다. ●내 마음을 연주하는 아름다운 꿈길, 창원시 ‘진해 드림로드’각기 색다른 4개의 길로 이루어져 있는 진해 드림로드를 걷다보면 산·바다·하늘이 어우러진 자연의 3중주를 감상할 수 있다. 해군테마공원, 목재문화체험장 등 군데군데 다채로운 체험공간도 조성돼 있어 가족 나들이로 장소로 알맞다. ●도심 속 일상의 쉼표, ‘통영생태숲’ 편백나무 등 산림이 내뿜는 청정한 공기와 전망대마다 펼쳐지는 통영항의 아름다운 풍경이 방문객들의 지친 몸과 마음에 위로를 준다. 미리 예약하면 숲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며 생태숲을 탐방할 수 있다. ●자연과 역사가 함께하는 힐링 여행 사천시 ‘사천읍성’. 정유재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사천읍성은 다양한 꽃나무들이 식재돼 있어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조용한 오솔길과 편백숲 사이를 지나는 김해 ‘백두산 누리길’ 황톳길과 소나무, 편백나무 군락지가 연결돼 산림욕을 즐길 수 있는 최상의 숲속 힐링 코스다. 백두산 정상(해발 364m) 전망대에 서면 김해평야와 서낙동강이 한눈에 보인다. ●억새길에서 힐링트래킹을 즐기는 밀양 ‘사자평 고원습지’케이블카를 타고 재약산에 올라 825만여㎡(250만여평)에 이르는 억새 군락지 사자평과 국내최대 고산습지 ‘산들늪’을 지나는 고산 힐링 트래킹을 하다보면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리는 상쾌함이 느껴진다. ●숲소리 들으며 힐링하는 거제 ‘숲소리공원’ 올 3월에 문을 연 숲소리공원은 동·식물을 모두 만날 수 있는 도심속 휴식 공원이다. 동물체험장에서 양과 토끼에게 먹이주기 체험을 할 수 있고 편백나무 산책로 주변에 설치된 의자와 평상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쉬어갈 수 있다.●도심 속 힐링 공원 양산 ‘황산공원’ 도심 속에서 신선한 낙동강 바람과 함께 캠핑을 하고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기에 좋은 공원이다. 체육시설들이 잘 갖추어져 있고 낙동강 생태 탐방선, 미니기차 등의 즐길거리가 있다. ●숲속 힐링 의령 ‘한우산 드라이브 길’ 잘 정비된 한적한 숲속 길을 따라 차를 타고 한우산(해발 836m)에 오르면 아름다운 단풍과 억새 등 시원한 자연경관이 눈앞에 펼쳐진다. 차를 타고 산을 오르는 동안 아름다운 자연 경치를 볼 수 있다. ●여항산 자락, 유유자적 산책길 함안 ‘봉성저수지 둘레길’ 봉황이 머무는 성을 뜻하는 봉성저수지를 따라 걸으며 휴식 하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 둑길과 숲속으로 이어지는 총 2.9km 탐방로는 숨은 보석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산책명소다. ●화왕산의 가을을 담고 있는 창녕 ‘관룡사’ 관룡사는 화왕산 자락에 위치한 1400년 역사를 가진 고찰이다. 구룡산 단풍과 노란 은행나무 고목이 한폭의 산수화처럼 방문객을 맞이한다. 관룡사에서 480m쯤 떨어져 있는 산중턱 큰 바위로 이루어진 자연 전망대 위에 통일신라시대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바위 불상인 용선대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295호)이 위치해 있다. ●가을경치와 쉼표 고성 ‘옥천사’ 옥천사는 대웅전 뒤 맑은 물이 나오는 샘이 있어 옥천사라 불리게 됐다. 아름다운 단풍과 고즈넉한 산세를 볼 수 있는 가을 경치가 빼어난 곳으로 꼽힌다. ●보물섬 남해 ‘바래길7코스-화전별곡길’ 이국적인 독일마을 광장을 지나 화천변을 따라 양떼목장으로 이어지는 화전별곡길은 아름다운 풍경이 끝없이 이어지는 산책길이다. 양떼목장을 지나 내산저수지 옆 바람흔적미술관을 들리면 예술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다. ●자연과 여행자가 소통하는 공간 하동 ‘회남재 숲길’ 악양골 최참판댁~청학선사~청학동 삼성궁으로 이어지는 740고지 회남재 숲길 10km 구간을 걸으면서 숲속의 맑은 공기와 자연숲 향기를 마음껏 들이킬 수 있다. 가을에는 파란 하늘과 붉은 단풍에 취한다. ●산청의 메이플 로드 ‘밤머리재’ 산청군 금서면과 삼장면을 이어주는 고갯길로 구름의 놀이터라 불린다. 길 양쪽으로 서있는 적단풍이 물감으로 색칠한 풍경화 처럼 아름답다. ●가을을 품은 산청·합천 ‘황매산 억새’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황매산은 사계절마다 색이 변하는 도화지 같은 산이다. 특히 가을이면 은빛 물결의 억새풀이 파도처럼 일렁이며 장관을 연출한다. 억새로 물든 평원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쌓을 수 있다. ●거창 ‘감악산’ 감악산은 거창읍 전경과 합천댐을 시원하게 볼 수 있는 조망을 자랑하는 곳이다. 등산로인 물맞이길을 따라 올라가면 중턱에서 은행나무가 아름다운 신라시대 사찰 연수사를 만난다. 야경이 아름다운 산 정상에서 쏟아지는 별을 관찰하는 재미도 좋다. ●노란 추억을 만드는 거창 ‘의동마을 은행나무길’ 의동마을 은행나무 길은 마을 입구에서 100m쯤 이어진다. 늦가을이면 은행잎들이 떨어져 노란 양탄자를 연출한다. ●여유를 가지는 시간 합천 ‘홍류동 계곡’ 홍류동은 가을 아름다운 단풍이 흐르는 계곡 물에 붉게 비춰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깊고 조용한 홍류동 계곡 전체가 단풍색으로 물든 가을 풍경이 눈부시다. 경남지역 비대면(언택트) 힐링 여행지 18곳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경남관광길잡이 누리집과 경남도 관광 누리소통망(SNS)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재철 경남도 관광진흥과장은 “추석 명절을 맞아 경남도는 주요 관광지 방역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연희동 주택가에서의 처절한 전투…아름다운 서울의 평화를 선사하다

    연희동 주택가에서의 처절한 전투…아름다운 서울의 평화를 선사하다

    2005년에 출간한 장편소설 ‘신들의 황혼’을 쓸 때 나는 ‘연희고지 전투’ 장면에서 가장 가슴이 아팠다. 주인공은 겨우 스무 살이었다. 6·25 전쟁이 시작되고 사흘 만에 빼앗긴 서울을 탈환하기 위해 연합군이 감행한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된 한국 해병대원. 불과 한 달 전에 입대한 학도병이었지만 그는 어느덧 죽음에 무감각해져 있었다. 오로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본능만이 남아 있었다. 포성과 화염에 휩싸인 인천항에서 상륙주정의 문이 열리자 무조건 앞을 향해 뛸 때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많은 인민군이 남쪽으로 내려간 상태에서 항공 폭격과 함포 사격을 퍼부은 뒤였으므로 인천에 상륙한 병사들에게 다가온 것은 전투가 아니라 시체 썩는 냄새였다. 적들이 버리고 간 각종 중화기 사이에서 뒹구는 인민군의 시체들, 불타버린 시체들…. 후퇴하는 적군과 산발적인 전투를 벌이면서 도달한 행주 나루에는 허옇게 불어터진 시체들이 물에 떠다니고 있었다. 그들이 오기 직전에 서울 진격의 교두보 확보를 위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증거였다. 수륙양용 장갑차를 타고 건너면서 내려다본 한강에는 인민군과 미군과 국군의 시체가 뒤엉켜 있었다.그러나 서울 서쪽 안산의 줄기인 연희고지 근처에 이르자 상황이 달라졌다. 눈앞의 104고지에는 인민군이 기관총과 박격포로 무장하고 있었다. 고지 앞을 흐르는 하천과 구릉은 적에게만 유리한 지형지물이었다. 게다가 나머지 땅은 엄폐물 하나 없이 트여 있는 개활지였다. 그의 소총 부대는 그 모든 것을 헤치며 나아가야 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훈련장이기도 했던 연희 104고지는 천연 요새이자 적의 최후 방어선이었으므로 서울 탈환을 위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교전의 회오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스무 살 청년은 정신없이 총을 쏘기 시작했다. 동료들의 몸에서 피가 솟구쳐 오르고 곳곳에서 비명이 들려와도 무조건 나아가야 했다. 한국 해병 제1대대는 26명만이 생존했으나 104고지를 탈환함으로써 서울 수복 전투의 승기를 잡았다.바로 그곳, 연희 104고지 전적지를 찾았다. 지난 26일 서울신문과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이 함께하는 ‘2020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의 18번째 여정 ‘104고지와 안산’에서였다. 서울 수복 70주년 기념일을 이틀 앞둔 주말, 하늘은 높고 햇살은 투명했다. 6·25 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서울 수복을 이룬 것에 대해 우리는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1950년 9월 15일과 28일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서대문구 연희동, 이 평화로운 주택가가 바로 그 시기의 격전지였다. ‘연희104고지앞(구 성산회관)’이라는 이름의 버스 정류장에 내리면 눈앞에 보이는 대형 건물(구 성산회관, 현 지오영) 뒤의 낮은 산이 104고지다. 그곳으로 안내하는 표지판이 없어서 지도를 살펴 가며 주택가의 오르막길을 올라가니 작은 공원이 나타났다. 1982년에 세워진 ‘해병대104고지전적비’가 그곳의 주인공으로 높게 서 있다. 그러나 1958년에 처음 설치했다는 자연석 비석을 찾을 길 없어 둘러보니 전적비 맞은편 아래로 뒷모습의 윗부분만 조금 보였다. 그쪽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있으나 표지판이 없었다. 지금은 ‘궁동 공원’으로 바뀐 104고지 정상이 아닌 산자락에 전적비가 설치된 까닭은 바로 이 비석 때문이었을 터인데, 전쟁의 상처가 가시지 않은 1950년대에 비문을 새겼던 역사적인 바윗돌로 이끄는 표지판이 없는 게 아쉬웠다. 연희 104고지 전적지는 서울미래유산이자 현충시설이다. 70년 전에 이곳에서 스러져간 수많은 젊음을 기리며 우리는 전적비 앞에서 묵념했다. 인민군은 최후까지 진지를 사수하기 위해 어린 병사들의 발목과 기관총을 쇠사슬로 묶어놓고 끝까지 저항하게 했다. 하지만 서울을 탈환하려는 아군의 의지는 그보다 강했다. 아군 전사자 178명, 인민군 사살자 1750명의 치열한 전투였다. 한미 해병이 안산 일대의 주요한 봉우리들을 모두 점령한 것은 9월 25일에 이르러서였다. 그리고 마침내 9월 27일, 한국 해병대 청년들이 중앙청에 걸려 있던 인공기를 내리고 태극기를 게양했다. 전적비 옆에 있는 ‘해병대 수도 서울 탈환 작전’ 안내판에는 그 사진이 중앙에 가장 크게 게시돼 있다. 사진과 지도가 어우러진 설명문을 읽으며 6·25 전쟁을 이야기하다가 우리는 잠시 서울 시내를 내려다봤다. 안내판에는 ‘104고지 탈환 후 서울 시내를 바라보는 해병대’ 사진이 있는데 그 사진 속의 서울은 포연에 휩싸인 폐허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서울은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104고지의 총성이 시작된 지 1주일 뒤 수도탈환기념식에 개선부대로 참석한 해병대 청년들처럼.우리는 연희동 주택가를 지나고 연세대 캠퍼스를 거쳐 안산 자락을 넘어 서대문 쪽으로 코스를 잡았다. 연세대는 당시 6일 동안 엄청난 포격전이 벌어진 격전지였다. 6·25 발발 직후에 인민군 사령부가 들어섰고 서울 수복 후에는 미군이, 1·4 후퇴 때는 중공군이 각각 진지를 구축해 전란 내내 군인들이 주둔했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학생들의 자유와 교정의 평화가 가득하다. 1922년에 세워진 핀슨관 앞에서 우리는 잠시 숨을 고르며 멈춰 섰다. 연희전문학교 시절 남학생 기숙사였고 지금은 윤동주 기념관으로 쓰는 국가지정 문화재 건물이다. 윤동주 시인은 1938년과 1940년에 각각 이곳에 머물렀는데, 하숙집터로 알려진 종로구 누상동에서 등교할 때는 안산 자락을 넘어다니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우리는 캠퍼스 북쪽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온실을 지나자 안산으로 올라갈 수 있는 쪽문이 나타났다.안산은 자락길이 잘 갖춰져 있지만, 그 길로 진입하기까지는 등산로의 숲길을 헤치며 가야 한다. 서울 수복을 위해 한미 해병대가 진격했던 길, 일제강점기의 윤동주 시인이 하숙집을 오갔던 길, 그 길을 가늠해 보면서 흙길을 밟아 오르다가 숨이 차오를 무렵 안산 자락길을 만났다. 휠체어와 유모차도 다닐 수 있게 조성한 순환형 무장애 숲길답게 주말을 맞은 시민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양한 종류의 숲과 여러 방향의 조망을 즐기며 걸을 수 있는 안산 자락길은 총 7㎞로 이어져 있다. 평탄한 데크 길을 걷다가 우리가 걸어온 연희동 쪽을 내려다보면서 앞선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자유와 평화라는 유산을 되새겨 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미래의 세대에게 어떤 유산을 물려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다. 자락길에 만발한 꽃무릇의 진홍색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올 무렵, 우리는 서대문형무소 쪽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의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들과 독재정권 시절의 민주화 운동가들이 갇혀서 고통당했던 서대문형무소의 담벼락을 따라 걷는 동안, 우리의 현재는 앞선 세대가 물려준 선물 같은 유산이라는 생각이 거듭 들었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김광섭의 시 ‘독방 62호실의 겨울’과 심훈의 ‘그날이 오면’을 떠올리면서, 우리가 받은 이 선물을 미래에 어떻게 물려줄 수 있을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동안 독립공원을 지나 독립문 사거리에 이르렀다.독립문 건너편에 자리잡은 영천시장도 서울미래유산이다. 1960년대에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재래시장으로 전쟁의 폐허를 딛고 자유 민주주의 사회를 발전시켜 나간 서민들의 생활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현장이다. 서울의 대표적인 골목형 전통시장인 영천시장을 통과하면 나타나는 석교교회도 서울미래유산이다. 조금 빠듯했던 일정을 따라 마지막 목적지인 석교교회에 이르자 1916년에 건립된 고딕 양식의 적벽돌 건물이 그 자체만으로도 대견하고 의미 있게 여겨졌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쟁의 폭격에도 무너지지 않고 모든 것을 지켜본 교회. 저 안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사연들로 기도했을까. 이것은 유형의 유산이지만 무형의 유산이기도 하다. 오늘 둘러본 모든 것들이 그랬다. 외형상 문화적 인공물에 해당하는 유산이라도 거기에는 문화적 행위와 이야기가 담겨 있고 물리적 배경이 존재한다.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유산은 어쩌면 유형과 무형으로 나눌 수 없는 우리의 삶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하루하루를 성실히 의미 있게 살아가다 보면 유·무형의 유산은 저절로 쌓여갈 것이다. 미래 세대에게 전할 100년 후의 보물을 둘러보는 서울미래유산 투어. 치열했던 전쟁의 결과로 얻은 자유와 평화의 길을 걸었던 여정의 마지막에서 맑디 맑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연희고지 전투를 끝낸 뒤 피아의 구분 없는 시체더미 속에서 허탈한 마음으로 밤을 맞이했을 때, 동쪽 하늘로 한가위의 둥근 달이 떠올랐다고 했던가. 올해도 그 달은 어김없이 떠올라 우리를 비춰 줄 것이다. 100년 후의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다. 글·해설 고은주 소설가사진 김학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 ■다음 일정 제19회 4·19민주묘지 ●출발 일시 10월 3일(토) 오전 10시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연희동 주택가에서의 처절한 전투…아름다운 서울의 평화를 선사하다

    연희동 주택가에서의 처절한 전투…아름다운 서울의 평화를 선사하다

    2005년에 출간한 장편소설 ‘신들의 황혼’을 쓸 때 나는 ‘연희고지 전투’ 장면에서 가장 가슴이 아팠다. 주인공은 겨우 스무 살이었다. 6·25 전쟁이 시작되고 사흘 만에 빼앗긴 서울을 탈환하기 위해 연합군이 감행한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된 한국 해병대원. 불과 한 달 전에 입대한 학도병이었지만 그는 어느덧 죽음에 무감각해져 있었다. 오로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본능만이 남아 있었다. 포성과 화염에 휩싸인 인천항에서 상륙주정의 문이 열리자 무조건 앞을 향해 뛸 때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많은 인민군이 남쪽으로 내려간 상태에서 항공 폭격과 함포 사격을 퍼부은 뒤였으므로 인천에 상륙한 병사들에게 다가온 것은 전투가 아니라 시체 썩는 냄새였다. 적들이 버리고 간 각종 중화기 사이에서 뒹구는 인민군의 시체들, 불타버린 시체들…. 후퇴하는 적군과 산발적인 전투를 벌이면서 도달한 행주 나루에는 허옇게 불어터진 시체들이 물에 떠다니고 있었다. 그들이 오기 직전에 서울 진격의 교두보 확보를 위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증거였다. 수륙양용 장갑차를 타고 건너면서 내려다본 한강에는 인민군과 미군과 국군의 시체가 뒤엉켜 있었다.그러나 서울 서쪽 안산의 줄기인 연희고지 근처에 이르자 상황이 달라졌다. 눈앞의 104고지에는 인민군이 기관총과 박격포로 무장하고 있었다. 고지 앞을 흐르는 하천과 구릉은 적에게만 유리한 지형지물이었다. 게다가 나머지 땅은 엄폐물 하나 없이 트여 있는 개활지였다. 그의 소총 부대는 그 모든 것을 헤치며 나아가야 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훈련장이기도 했던 연희 104고지는 천연 요새이자 적의 최후 방어선이었으므로 서울 탈환을 위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교전의 회오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스무 살 청년은 정신없이 총을 쏘기 시작했다. 동료들의 몸에서 피가 솟구쳐 오르고 곳곳에서 비명이 들려와도 무조건 나아가야 했다. 한국 해병 제1대대는 26명만이 생존했으나 104고지를 탈환함으로써 서울 수복 전투의 승기를 잡았다. 바로 그곳, 연희 104고지 전적지를 찾았다. 지난 26일 서울신문과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이 함께하는 ‘2020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의 18번째 여정 ‘104고지와 안산’에서였다. 서울 수복 70주년 기념일을 이틀 앞둔 주말, 하늘은 높고 햇살은 투명했다. 6·25 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서울 수복을 이룬 것에 대해 우리는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1950년 9월 15일과 28일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서대문구 연희동, 이 평화로운 주택가가 바로 그 시기의 격전지였다. ‘연희104고지앞(구 성산회관)’이라는 이름의 버스 정류장에 내리면 눈앞에 보이는 대형 건물(구 성산회관, 현 지오영) 뒤의 낮은 산이 104고지다. 그곳으로 안내하는 표지판이 없어서 지도를 살펴 가며 주택가의 오르막길을 올라가니 작은 공원이 나타났다. 1982년에 세워진 ‘해병대104고지전적비’가 그곳의 주인공으로 높게 서 있다. 그러나 1958년에 처음 설치했다는 자연석 비석을 찾을 길 없어 둘러보니 전적비 맞은편 아래로 뒷모습의 윗부분만 조금 보였다. 그쪽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있으나 표지판이 없었다. 지금은 ‘궁동 공원’으로 바뀐 104고지 정상이 아닌 산자락에 전적비가 설치된 까닭은 바로 이 비석 때문이었을 터인데, 전쟁의 상처가 가시지 않은 1950년대에 비문을 새겼던 역사적인 바윗돌로 이끄는 표지판이 없는 게 아쉬웠다. 연희 104고지 전적지는 서울미래유산이자 현충시설이다. 70년 전에 이곳에서 스러져간 수많은 젊음을 기리며 우리는 전적비 앞에서 묵념했다. 인민군은 최후까지 진지를 사수하기 위해 어린 병사들의 발목과 기관총을 쇠사슬로 묶어놓고 끝까지 저항하게 했다. 하지만 서울을 탈환하려는 아군의 의지는 그보다 강했다. 아군 전사자 178명, 인민군 사살자 1750명의 치열한 전투였다. 한미 해병이 안산 일대의 주요한 봉우리들을 모두 점령한 것은 9월 25일에 이르러서였다. 그리고 마침내 9월 27일, 한국 해병대 청년들이 중앙청에 걸려 있던 인공기를 내리고 태극기를 게양했다. 전적비 옆에 있는 ‘해병대 수도 서울 탈환 작전’ 안내판에는 그 사진이 중앙에 가장 크게 게시돼 있다. 사진과 지도가 어우러진 설명문을 읽으며 6·25 전쟁을 이야기하다가 우리는 잠시 서울 시내를 내려다봤다. 안내판에는 ‘104고지 탈환 후 서울 시내를 바라보는 해병대’ 사진이 있는데 그 사진 속의 서울은 포연에 휩싸인 폐허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서울은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104고지의 총성이 시작된 지 1주일 뒤 수도탈환기념식에 개선부대로 참석한 해병대 청년들처럼.우리는 연희동 주택가를 지나고 연세대 캠퍼스를 거쳐 안산 자락을 넘어 서대문 쪽으로 코스를 잡았다. 연세대는 당시 6일 동안 엄청난 포격전이 벌어진 격전지였다. 6·25 발발 직후에 인민군 사령부가 들어섰고 서울 수복 후에는 미군이, 1·4 후퇴 때는 중공군이 각각 진지를 구축해 전란 내내 군인들이 주둔했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학생들의 자유와 교정의 평화가 가득하다. 1922년에 세워진 핀슨관 앞에서 우리는 잠시 숨을 고르며 멈춰 섰다. 연희전문학교 시절 남학생 기숙사였고 지금은 윤동주 기념관으로 쓰는 국가지정 문화재 건물이다. 윤동주 시인은 1938년과 1940년에 각각 이곳에 머물렀는데, 하숙집터로 알려진 종로구 누상동에서 등교할 때는 안산 자락을 넘어다니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우리는 캠퍼스 북쪽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온실을 지나자 안산으로 올라갈 수 있는 쪽문이 나타났다.안산은 자락길이 잘 갖춰져 있지만, 그 길로 진입하기까지는 등산로의 숲길을 헤치며 가야 한다. 서울 수복을 위해 한미 해병대가 진격했던 길, 일제강점기의 윤동주 시인이 하숙집을 오갔던 길, 그 길을 가늠해 보면서 흙길을 밟아 오르다가 숨이 차오를 무렵 안산 자락길을 만났다. 휠체어와 유모차도 다닐 수 있게 조성한 순환형 무장애 숲길답게 주말을 맞은 시민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양한 종류의 숲과 여러 방향의 조망을 즐기며 걸을 수 있는 안산 자락길은 총 7㎞로 이어져 있다. 평탄한 데크 길을 걷다가 우리가 걸어온 연희동 쪽을 내려다보면서 앞선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자유와 평화라는 유산을 되새겨 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미래의 세대에게 어떤 유산을 물려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다. 자락길에 만발한 꽃무릇의 진홍색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올 무렵, 우리는 서대문형무소 쪽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의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들과 독재정권 시절의 민주화 운동가들이 갇혀서 고통당했던 서대문형무소의 담벼락을 따라 걷는 동안, 우리의 현재는 앞선 세대가 물려준 선물 같은 유산이라는 생각이 거듭 들었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김광섭의 시 ‘독방 62호실의 겨울’과 심훈의 ‘그날이 오면’을 떠올리면서, 우리가 받은 이 선물을 미래에 어떻게 물려줄 수 있을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동안 독립공원을 지나 독립문 사거리에 이르렀다.독립문 건너편에 자리잡은 영천시장도 서울미래유산이다. 1960년대에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재래시장으로 전쟁의 폐허를 딛고 자유 민주주의 사회를 발전시켜 나간 서민들의 생활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현장이다. 서울의 대표적인 골목형 전통시장인 영천시장을 통과하면 나타나는 석교교회도 서울미래유산이다. 조금 빠듯했던 일정을 따라 마지막 목적지인 석교교회에 이르자 1916년에 건립된 고딕 양식의 적벽돌 건물이 그 자체만으로도 대견하고 의미 있게 여겨졌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쟁의 폭격에도 무너지지 않고 모든 것을 지켜본 교회. 저 안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사연들로 기도했을까. 이것은 유형의 유산이지만 무형의 유산이기도 하다. 오늘 둘러본 모든 것들이 그랬다. 외형상 문화적 인공물에 해당하는 유산이라도 거기에는 문화적 행위와 이야기가 담겨 있고 물리적 배경이 존재한다.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유산은 어쩌면 유형과 무형으로 나눌 수 없는 우리의 삶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하루하루를 성실히 의미 있게 살아가다 보면 유·무형의 유산은 저절로 쌓여갈 것이다. 미래 세대에게 전할 100년 후의 보물을 둘러보는 서울미래유산 투어. 치열했던 전쟁의 결과로 얻은 자유와 평화의 길을 걸었던 여정의 마지막에서 맑디 맑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연희고지 전투를 끝낸 뒤 피아의 구분 없는 시체더미 속에서 허탈한 마음으로 밤을 맞이했을 때, 동쪽 하늘로 한가위의 둥근 달이 떠올랐다고 했던가. 올해도 그 달은 어김없이 떠올라 우리를 비춰 줄 것이다. 100년 후의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다. 글·해설 고은주 소설가사진 김학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 ■다음 일정 제19회 4·19민주묘지 ●출발 일시 10월 3일(토) 오전 10시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백제 왕성에 들어선 아파트숲… ‘문화재·주민 공존’ 새 역사를 품다

    백제 왕성에 들어선 아파트숲… ‘문화재·주민 공존’ 새 역사를 품다

    서울 강동구 천호동 일대가 갖는 지정학적 중요성을 상징하는 것이 ‘광진교’다. 광진교는 일제강점기인 1934년 완공됐는데, 1917년 지어진 한강인도교에 이어 한강의 두 번째 다리다. 1934년 오늘날과 같은 철골 구조의 트러스교로 대체된 한강인도교가 경인선 철도 부설에 따라 새로운 산업축을 연결했다면, 광진교는 전통적인 남북축을 잇는 ‘1번 고속도로’상에 놓였다. 조선 시대에는 임진나루를 건너는 것이 한양과 의주를 잇는 큰길이었다. 조선의 건국과 한양 천도에 따라 신설된 루트로 빠르지만 배를 타야 한다. 그러니 사람 위주의 통행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임진강 도하 지점은 호로하로 불리던 연천 장남과 파주 적성 사이였다. 호리병처럼 강폭이 좁아지고 수심도 얕아 배를 타지 않고도 우마차가 건널 수 있다. 조선시대에도 남북을 오가는 물류의 가장 중요한 통로는 이 호로하길이었다. 북쪽에서 호로하를 건넌 사람과 화물은 감악산을 넘어 양주 고을과 오늘날의 의정부, 상계동 일대를 거쳐 한강변 광진에 닿는다. 이후 강을 건너 남쪽으로 내려가거나 수운을 이용해 한강을 거슬러 오르거나 한강 하구로 나갔다. 부여족의 한 갈래인 온조도 남하하면서 당연히 호로하와 광진을 건넜고, 그렇게 BC 18년 한강 남쪽에 새로운 나라 백제의 수도를 건설했다. 이것이 바로 ‘풍납토성’이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경제적 가치가 뛰어난 호로하와 광진은 당연히 군사적으로도 중요했다. 풍납토성의 백제는 건국 이후 공주로 천도하기까지 줄곧 강 건너 아차산의 고구려 세력으로부터 위협을 받았을 것이다. 임진강의 상황도 다르지 않아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확보한 이후 호로하를 사이에 두고 신라는 남쪽에 칠중성, 고구려는 북쪽에 호로고루를 쌓아 대치했다.서울신문과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이 함께하는 ‘2020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7회 ‘풍납동 전설’은 천호동과 풍납토성을 찾았다. 광진의 역사를 제대로 둘러보고 나면 백제왕성으로 각광받는 풍납토성의 존재에도 오늘날 천호동이 ‘신흥 상업지구’로, ‘서울 강동의 중심’ 정도의 이미지로만 비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진다. 답사단이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천호동의 동명대장간이다. 1930년대 후반 문을 열어 지금까지 3대에 걸쳐 이어지고 있는 전통 대장간이다. 주변에 3곳의 대장간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지만, 지금은 동명대장간만 남았다고 한다. 천호동과 강동구는 물론 주변의 강남구·서초구·송파구를 통틀어도 이제 전통 대장간은 이곳뿐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2006년부터 대장간 일을 하고 있다는 젊은 대장장이 강태봉씨가 답사단을 맞았다. 주변 풍경이 기막히다. 대장간이 들어 있는 작은 건물은 울긋불긋한 색채가 바랜 러브호텔로 둘러싸여 있다. 옆 건물 2층에는 ‘천호1·3동 뉴타운 지정 추진위원회’ 간판이 붙어 있다. 길 건너에는 ‘조합원 및 세입자 이주 개시’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나부낀다. 한강 남쪽 마지막 대장간의 목숨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하지만 답사단 몇몇이 호미며 부엌칼을 사들고 즐거워하는 모습에서는 희망도 보게 된다. 기계로 만든 물건보다는 사람의 손이 간 물건에 훨씬 더 높은 값을 쳐 주는 시대가 아닌가. 없어도 되는 물건도 아니고 부엌일이며 텃밭 가꾸기의 필수품이다. 동명대장간의 경쟁력은 모든 것이 비인간화돼 가는 미래로 갈수록 더욱 퇴색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장간에서 진황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가면 천호시장 사거리에서 구천면길과 만난다. 구천면은 천호동이 경기 광주군에 속해 있던 시절의 땅이름이다. 구천면길은 천호구 사거리를 지나 광진교로 이어진다. 오늘날에는 뒷골목처럼 초라해 보이지만, 한때는 서울에서 경기 광주와 이천, 충청북도 충주와 새재 너머 영남 지역을 잇는 큰길이었다. 동명대장간을 비롯해 3곳의 대장간도 이 큰길 주변에 모여 있었다.천호동 사거리에서 대각선으로 건널목을 두 번 건너면 풍납토성이다. 광진교에서 이어지는 곳이 천호동 구사거리가 됐으니 1974년 세워진 천호대교로 가는 이곳은 천호동 신사거리라고 해야 하나. 이렇게 강동구를 벗어나 송파구에 들어선다. 풍납토성의 북동쪽 성벽이 가까워지면서 서양식 풍차 상징물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고 보니 바람개비도 여기저기서 돌아간다. 풍납이라는 땅이름은 이 동네가 바람드리 마을로 불린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이 ‘바람드리’는 ‘배암드리’가 와전된 것으로 해석돼 풍납토성이 왕성이 아닌 방어성으로 인식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풍납 혹은 바람드리는 어떤 노래가사처럼 ‘바람이 머무는 곳’이라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억측’을 해 본다. 높게 쌓은 토성 내부는 당연히 성 바깥쪽보다는 바람의 강도가 약하지 않았을까 싶다. 겨울에 매섭게 몰아치는 북서풍이라면 더했을 것이다.풍차가 있는 곳에서 토성의 북쪽 성벽을 따라가면 왼쪽에 ‘풍납리토성 사적비’가 보인다. 풍납동 일대가 경기 광주군 구천면에 속했던 1963년 세운 것이다. 풍납동은 같은 해 서울시에 편입돼 성동구 풍납동이 됐고, 1975년에는 강남구, 1979년 강동구, 1988년 송파구가 됐다. 사적비 앞에는 광진교와 나란히 1976년 세워진 천호대교가 지난다. 광진교가 너무 낡은 데다 왕복 2차로에 불과한 만큼 교통 수요를 감당치 못해 대안이 필요했다. 천호대교가 서울미래유산인 반면 광진교가 아무런 타이틀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은 1994년 옛 다리를 철거하고 새로 지었기 때문이다. 옛 광진교가 남았다면 당연히 근대문화유산으로 등재됐을 것이다. 이제 풍납토성 내부로 들어간다. 토성은 나지막한 흙 언덕의 모습이다. 아이들이 뛰어놀기에 딱 좋은 지금의 모습으로는 방어용 성벽이라고 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한성백제 시대에는 당연히 달랐다. 한성백제박물관에는 2011년 발굴된 풍납토성 성벽의 일부가 그대로 옮겨져 전시되고 있는데, 아랫변이 43m, 윗변이 13m, 높이는 11m에 이른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토성의 윗부분이 깎여 나가기도 했지만, 토성 아랫부분에도 상당한 두께의 퇴적이 이루어졌다. 풍납토성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 조선고적 제27호로, 해방 이후인 1963년에는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11호로 지정됐다. 문제는 조선고적 시절부터 풍납토성 전체가 아니라 성벽만 문화재로 지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런 규제가 없었던 토성 내부 지역에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인구 5만명의 작은 도시가 되기에 이르렀다. ‘백제의 방어성’일 때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백제의 왕성’으로 사실상 공인되면서 토성 내부의 보존이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답사단이 찾은 풍납토성 역사문화공원은 보존과 개발을 둘러싼 갈등의 현장이기도 했다. 공원 터에는 경당연립이 있었다. 1999년부터 이듬해까지 이 자리에 아파트를 짓기 위한 구제 발굴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 200기가 넘는 한성백제 주거지와 저장공을 비롯해 왕성이 아니라면 존재하기 어려운 유구와 유물이 다수 출토됐다. 지금 공원에는 당시 드러난 대형 신전 터의 일부가 재현돼 있다. 발굴조사가 연장되고 아파트 신축이 늦어지자 주민 대표의 유적 파괴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이 사건이 오히려 유적 보존의 촉매가 됐다는 것은 매우 역설적이다. 풍납토성 내부 지역 곳곳에 삼표레미콘 풍납공장의 조속한 이전을 촉구하는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는 것은 인상적이었다. 토성의 서쪽 성벽 일부를 깔고 앉아 있는 삼표레미콘은 서울시와 송파구의 이전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소송을 내기도 했다. 레미콘 공장이 주거지에는 어울리지 않는 먼지 산업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내용의 플래카드는 토성 내부 주민 사이에도 싫든 좋든 재산권보다는 문화재가 우선일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됐다는 인식이 어느 정도는 자리 잡은 증거로 받아들여도 좋지 않을까 싶었다. 답사단은 토성 동벽을 따라 걷는 동안 풍납토성을 백제 왕성으로 격상시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이형구 선문대 석좌교수로부터 간단한 설명을 전화로 들을 수 있었다. 이 교수는 1997년 1월 토성 내부의 현대아파트 터파기 공사장에 들어가 백제 토기를 찾아냈고, 당시 문화재관리국의 긴급 발굴로 이어져 오늘날의 풍납토성이 있게 만든 주인공이다. 이 교수는 풍납토성을 찾은 답사단에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시민들의 관심이 유적을 보존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답사는 서울아산병원이 바라보이는 풍납토성 동남쪽의 전망대에서 마무리됐다. 토성 내부 지역의 보존 정책은 당초 전면 보존에서 일부 구역은 정부가 매입해 보존하고 나머지 구역에서는 주민들이 그대로 살아가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서울시는 지난해부터 도시재생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문화재와 지역 주민이 상생하는 역사문화 중심 도시로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내부 지역에는 벌써부터 이런 분위기가 좋아 찾아드는 사람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역사도시 품격을 기본적으로 갖춘 풍납동이다. 제대로만 추진한다면 풍납토성 내부 지역이 서울에서 가장 살기 좋은 마을로 발돋움하는 것은 시간문제가 아닐까 기대한다. 글 서동철 문화재위원회 위원 사진 김학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 해설 임정화 서울도시문화지도사 ■ 다음 일정 제18회 104고지와 안산 ●출발 일시 : 9월 26일(토) 오전 10시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 (사)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숲, 쉼

    숲, 쉼

    이른바 ‘7말8초’다. 절정의 휴가철이지만 유명 피서지에서조차 떠들썩한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코로나19에 사상 최장 기간의 역대급 장마가 겹친 탓이다.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에 숲만큼 좋은 곳이 있을까. 일상의 고단함을 다독여 줄 ‘힐링의 숲’을 꼽아봤다.①걷고 사색하고 치유하다-가평 잣향기푸른숲 경기도잣향기푸른숲은 153㏊ 면적에 수령 80년이 넘는 잣나무 약 5만 2000그루가 자라는 곳이다. 축령산과 서리산 중턱에 걸쳐 있다. 출렁다리와 데크로드를 아우르는 산책길, 사방댐으로 이어지는 ‘하늘호수길’ 등 다양한 숲 탐방로를 갖추고 있다. 탐방로 어디를 걸어도 하늘 높이 솟은 잣나무를 볼 수 있다. 명상과 기체조를 포함한 산림 치유, 숲 해설 프로그램 등은 무료로 진행되고 목공 체험만 재료비를 별도로 받는다. 잣향기푸른숲은 한국관광공사와 지역관광공사가 선정한 ‘비대면(언택트) 관광지 100선’에도 이름을 올렸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월요일은 쉰다. 조종천과 이어지는 호젓한 녹수계곡, 옛 가평역에서 뮤직 빌리지로 변신한 음악역1939(실내 입장 일부 제한) 등 주변 여행지도 함께 둘러보면 좋다.②100년 된 솔숲 힘-강릉 국립대관령치유의숲 국립대관령치유의숲은 1920년대 조성한 금강소나무 숲이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울창한 숲에는 성격과 난이도가 다른 8개의 숲길이 조성돼 있다. 편안하고 쉬운 코스인 ‘솔향기치유숲길’과 목재 데크가 깔린 ‘치유데크로드’, 최고 난도를 자랑하는 ‘도전숲길’까지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시원하게 뻗은 소나무 사이를 산책하고, 울창한 숲이 내주는 그늘에서 쉬는 것만으로도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산림치유지도사가 함께하는 맞춤형 산림치유 프로그램도 인기다. 9월 말까지는 토요일 밤마다 시원한 숲의 소리와 향기를 오감으로 느껴 보는 프로그램 ‘대관령숲, 별이 빛나는 밤에’(체험비 1만원, 예약 필수)가 진행된다. 아울러 국내 1호 자연휴양림인 대관령자연휴양림과 도보 여행길로 인기 높은 대관령옛길이 지척에 있다. 강문해변, 순긋해변, 사천해변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기 관광지를 비롯해 동해안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꼽히는 헌화로, 복합 문화공간 하슬라아트월드도 함께 둘러보면 좋다.③꽃·나비와 숲속 힐링 타임-국립제천치유의숲 금수산 자락에 자리잡은 국립제천치유의숲은 올해 본격적으로 손님맞이를 시작한 곳이다. 숲하모니, 치유힐링숲테라피, 한방힐링숲테라피 등 산림 치유 프로그램들은 매일 단체손님이 있을 정도로 인기다. 프로그램은 참여 대상과 인원에 따라 다르게 구성된다. 건강 측정, 티 테라피, 산림공예 등을 체험하는 숲하모니는 별도 예약이 필요 없지만, 나머지 프로그램들은 방문 일주일 전 홈페이지나 전화를 통한 예약이 필수다. 숲길은 치유 프로그램 없이 그냥 걸어도 좋은 길이다. 마가목과 음나무 등 약초가 자라는 약초원, 건강치유숲길과 숲내음치유숲길, 음이온치유숲길 등은 일년 내내 무료로 개방한다. 주변에 볼거리도 많다. 제천산야초마을에서 약초 체험을 하거나 ‘내륙의 바다’ 청풍호에서 유람선이나 케이블카를 탈 수 있다. 신라 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정방사에 오르면 절벽 아래 들어앉은 아담한 산사와 청풍호가 어우러진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④반려견과 힐링-영양 검마산휴양림·자작나무숲 영양은 아시아 최초로 국제밤하늘보호공원에 선정될 만큼 아름다운 밤하늘과 힐링 숲이 자랑이다. 금강소나무가 빽빽한 검마산자연휴양림에선 피톤치드 삼림욕의 진수를 체험할 수 있다. 이 휴양림의 또 다른 매력은 책 읽는 숲이라는 점이다. 숲속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숲 어디서나 읽을 수 있다. 반려견 동반이 가능한 휴양림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반려견과 함께 숙박이 가능한 휴양관과 캠핑 사이트, 그리고 야외 반려견 놀이터가 마련돼 있다. 검마산 자락에 자리한 또 다른 힐링 숲은 영양자작나무숲이다. 1993년에 인공 조림한 31㏊ 규모의 자작나무숲이 어느새 어엿한 청년 숲으로 자랐다. 사륜구동 차량이 아닌 경우, 숲 입구까지 약 3.2㎞를 걸어야 한다. 물론 그마저 푸른 나무와 청정한 계곡물 소리가 여행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장수포천변의 영양반딧불이천문대에 가면 별과 함께 반딧불이를 만날 수 있다. 조선시대 민간 정원인 서석지, 산해리 오층모전석탑(국보 187호) 등은 영양의 멋과 아름다움을 간직한 역사 명소다.⑤문씨 가문 지켜온 400년 숲-부산 기장 아홉산숲 기장군 철마면에는 걸으며 힐링하기 좋은 아홉산숲과 부산치유의숲이 있다. 아홉산숲이 울창한 숲이라면, 부산치유의숲은 시야가 탁 트이고 눈이 편안해지는 숲이다. 남평 문씨 가문이 400년 가까이 가꾸고 지켜온 아홉산숲은 맹종죽을 대표로 금강소나무, 삼나무, 편백 등 다양한 나무 군락이 있는 ‘모둠 숲’이다. 걷는 내내 탄성이 쏟아진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더 킹: 영원의 군주’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많은 여행자가 찾는다. 아홉산숲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부산치유의숲은 갖가지 산림 치유 프로그램으로 몸과 마음을 다스리기 좋은 곳이다. ‘힐링로드’부터 산등성이를 따라 이어지는 에코 트레킹 코스 ‘솔바람길’과 ‘큰바위길’까지 색다르게 즐길 수 있다. 고산 윤선도가 즐겨 찾았다는 황학대, 드라마 촬영지로 사랑받는 죽성드림세트장, 죽성리 해송(부산기념물 50호) 등 주변 볼거리도 풍성하다. 글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사진 한국관광공사 제공
  • 양천구, 비대면 숲 해설 프로그램 운영

    양천구, 비대면 숲 해설 프로그램 운영

    서울 양천구는 코로나19로 지친 구민들을 위해 비대면 숲 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13일 밝혔다. 장기화되는 코로나19로 기존에 숲 해설가와 함께 사람들이 모여 숲 길을 걷는 것으로 진행되던 프로그램이 중단되자 새롭게 구민들과 만나는 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비대면 숲 해설’이란 스스로 숲을 체험하고 나무를 관찰할 수 있도록 설계된 프로그램이다. 동영상을 보며 나무이름표를 따라 수종을 관찰하며 산책을 하고, 숲 속 다양한 생물이야기를 들으며 직접 숲에 가지 않더라도 현장의 느낌을 생생하게 느끼며 스스로 숲을 알아가는 형식으로 운영된다. 숲 해설 프로그램은 카카오톡 채널 ‘양천숲으로 간 사람들’과 유튜브 채널 ‘숲생태문화협동조합’에서 동영상 등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용왕산(양화초 입구), 신정산(장수초·신남초·신기초 입구), 안양천 생태공원(오목교~신정교) 등 5개의 숲·산책코스의 나무이름표에 설치된 QR코드를 스캔하면 해당나무의 유래와 특성 등을 해설하는 동영상을 볼 수 있어 무심코 지나쳤던 나무들에 대하여 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김수영 양천구청장은 “장기화되는 코로나로 휴가 계획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시점에 이러한 비대면 숲 해설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되었다”며 “온라인 숲 거닐기로 잠시나마 자연을 느끼는 시간을 가지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세상을 잊는 곳, 쉼이 있는 곳, 神들의 그 숲

    세상을 잊는 곳, 쉼이 있는 곳, 神들의 그 숲

    강원 원주에 ‘신들의 숲’이 있다고 했다. 일 년에 단 두 차례 제를 올리는 날에만 인간의 발걸음을 허락한다는 숲 성황림(城隍林)이다. 평소 문을 굳게 닫아 걸었던 성황림이 앞으로는 매주 토요일마다 일반에 개방된다. 원주시가 마련한 ‘신과 함께하는 숲속 여행(성황림)’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그 덕에 원주 사람들조차 쉽게 볼 수 없었던 성황림을 이제 누구나 쉽게 만날 수 있게 됐다.중앙고속도로 신림나들목을 나서면 신림(神林)면이다. 이름처럼 ‘신이 깃든 숲’이라는 뜻이다. 일대 주민들은 ‘성황림’ 때문에 이 같은 지명이 유래했다고 믿고 있다. 성황림은 신림면 성남리에 있다. 통일신라 말기에 원주의 중심지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후고구려를 건국한 궁예의 군사가 영월로 진출한 길목도 이곳이었다고 전해진다. ●토종 식물의 보고… 매주 토요일 일반 공개 먼저 성황림의 전체적인 모습부터 살피자. 숲은 전체가 천연기념물(93호)이다. ‘신들의 숲’이라서라기보다 토종 식물의 보고라서다. 다른 지역에선 흔한 외래종들을 희한하게도 성황림 영역에서는 찾기 힘들다. 전체 면적은 5만 4000여㎡. 1만 6000평이 조금 넘는다. 이 숲은 오래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일제강점기인 1940년에도 ‘조선보물고적 명승 천연기념물’이었다. 우리가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건 그 이후인 1962년이다. 숲은 포장도로를 경계로 서낭당 주변의 평지 숲과 서낭당 서쪽의 산지 숲으로 구분된다. 숲속 여행 프로그램은 서낭당이 있는 평지 숲에서 진행된다. 서쪽 숲은 여전히 금단의 영역이다. 오래전엔 두 숲이 하나였다. 서낭당 앞으로 난 길로 마을 주민과 우마차가 오갔다. 그러다 숲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서낭당 뒤로 새 통행로를 냈다. 그 탓에 숲이 두 개로 나뉘게 됐다. 숲해설가를 겸하고 있는 고계환 이장은 이 점을 아쉬워하고 있다. 우회도로를 냈어야지 숲 가운데를 잘라 길을 낸 게 적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름 역시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남은 성황림보다 예전부터 불려 오던 순우리말 이름인 당숲이나, 서낭숲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종전까지 성황림은 일 년에 두 번 공개됐다. 주민들은 매년 음력 4월 8일 초파일과 9월 9일(올해 10월 25일) 중양절에 제를 올린다. 이날 외지인의 출입이 허용됐다. 잠긴 문을 열면 곧바로 깊은 숲이 펼쳐진다. 선입견 탓일까. 다른 숲에 견줘 적막감의 무게가 한층 무겁게 느껴진다. 사실 성황림에 발을 들이기 전부터 다소 거리낌이 있었다. 일 년에 두 번 허락된 숲을 매주 들어간다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일까 걱정이 앞섰다. 한데 고 이장이 전하는 내용은 달랐다. 그의 말을 요약하면 서낭신은 사람의 발걸음을 제한하는 권위적인 신이 아니며, 오히려 사람 곁에 있는 신이란 거다. 숲을 이루는 토종 식물을 보호하겠다고 사람들의 발걸음을 막았던 거지 서낭신이 막은 건 아니란 얘기다. 학계에서 보는 성황림의 주인은 토속 식물이다. 복자기, 귀룽나무 등 50여종의 나무와 파드득나물 등 100여종의 초본류가 자라고 있다. 반면 주민들 입장에선 나무들이 숲의 주인이다. 신목(神木)이 있기 때문에 숲도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초본식물이 무성해지면 나무 밑동에 이끼가 생기는 등 나무의 생장에 지장을 받게 된다. 예전처럼 사람들이 주변 땅을 밟게 해야 오히려 나무의 건강에 좋다는 것이다.●서낭당 옻샘·30m 신목 전나무에 경외감 금단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서낭당 주변으로 금줄이 쳐져 있다. 예전엔 통행을 막는 금줄이었지만 요즘은 소원지를 다는 줄로 쓰인다. 금줄은 오른쪽으로 꼬는 일반 새끼줄과 달리 왼쪽으로 꼰다. 오른쪽으로 꼰 새끼는 악귀가 풀 수도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서낭당 뒤로는 작은 개울이 흐른다. 숲에 생명을 불어넣는 개울이다. 주민들은 옻샘이라 부른다. 발원지 주변에 옻나무가 많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다. 숲 인근에서 발원한 옻샘은 성황림을 적신 뒤 곧바로 남한강 지류인 주포천에 합류한다. 그러니까 오로지 성황림을 위해 존재하는 개울인 셈이다. 신의 영역인 서낭당 주변에서 침엽수는 단 한 그루, 신목이라 불리는 전나무다. 이 숲에서 전나무의 지위는 독보적이다. 서낭당 왼쪽의 엄나무에도 금줄이 쳐져 있지만 신목의 권위에는 이르지 못한다. 성황림을 방문한 이들은 대개 서낭당 건물에 경외감을 갖는다. 하지만 서낭당은 말 그대로 신목의 신위를 모시고, 신목에 제사를 지내는 장소에 불과하다. 전나무의 높이는 얼추 30m에 달한다. 가슴 높이 둥치의 지름은 1.2m로 어른 서너 명이 팔을 뻗어야 겨우 맞닿을 수 있을 만큼 굵다. 학계에선 단군신화에서 환웅이 타고 내려왔다는 신단수(神壇樹)의 원형을 이 나무에서 엿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성황림 전체가 숭배의 대상이 된 것도 이 나무가 있기 때문이다. 서낭당 앞에 시립하듯 선 나무들은 대부분 복자기나무다. 가을이면 잎이 단풍보다 붉게 물든다는 나무. 가을에 이 숲을 찾으면 얼마나 황홀한 풍경이 펼쳐질까. 서낭당에서 10여m 떨어진 곳에 솔숲이 있다. 서낭당 일대가 신의 영역이라면 솔숲은 인간의 영역이다. 단옷날 등 특별한 날에 주민들이 음식을 나눠 먹고 함께 어울려 놀던 장소다.●용소막성당·정원형 미술관 가볼만 성황림 주변에 가볼 만한 데가 몇 곳 있다. 용암리 용소막 성당은 횡성의 풍수원성당과 원주(원동)성당에 이어 강원도에서 세 번째로 건립된 성당이다. 1915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중건됐다. 성당 뒤편에 ‘십자가의 길’이 조성돼 있다. 울창한 솔숲에서 산책을 즐길 수 있다.지정면의 간현관광지는 원주를 대표하는 유원시설이다. 소금산 출렁다리가 랜드마크다. 섬강 100m 상공에 길이 200m 규모로 설치돼 하늘 위를 걷는 듯한 스릴을 느낄 수 있다. 출렁다리 옆으로 하늘바람길이 조성돼 있다. 간현계곡의 절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폐역인 간현역과 레일바이크 등 볼거리와 놀거리도 많다. 이웃한 흥법사지는 신라시대의 절터다. 진공대사 탑비(보물 463호)와 흥법사지 삼층석탑(보물 제464호) 등이 남아 있다.뮤지엄 산은 산 정상에 조성된 정원형 미술관이다. 지난해 방탄소년단의 리더 RM이 미술 관람을 위해 방문하면서 한층 유명해졌다. 뮤지엄 산을 설계한 이는 일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다. 빛, 물, 바람을 재료로 쓴다는 그의 건축 철학이 건물 곳곳에 오롯이 담겨 있다. 지난해 개관한 명상관도 안도 다다오의 작품이다. 반구형의 독특한 건물 안에서 다양한 명상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백남준의 ‘위성나무’ 등 미술 문외한도 알 만한 이들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글 사진 원주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오크밸리 리조트가 원주시와 함께 ‘신들의 숲 패키지’를 운용하고 있다. 오크밸리 숙박(1박)과 성황림 숲 체험이 포함됐다. 소원지 만들기 체험, 숲속 명상 등의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명상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곳은 성황림에서도 ‘인간의 영역’으로 간주되는 솔숲이다. 예전 주민들은 단옷날 이 솔숲을 찾아 그네를 타거나 기마전 등의 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패키지는 2인 기준 16만 4000원이다.
  • 창원 도심에 국내 최대규모 선인장 온실 갖춘 수목원 개원

    창원 도심에 국내 최대규모 선인장 온실 갖춘 수목원 개원

    경남 창원시 도심에 국내 최대 규모 선인장 온실 등을 갖춘 수목원이 문을 열었다. 창원시는 3일 의창구 삼동동에 조성한 창원수목원이 완공돼 이날 개원식을 갖고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고 밝혔다.창원수목원은 식물유전자원 보존과 국가 식물종 다양성 확보를 위해 80억원을 들여 창원 도심 숲속에 10.4㏊ 규모로 조성됐다. 2010년 1월부터 공사를 시작해 11년 만에 모두 완공됐다. 창원수목원은 증식·재배시설, 관리시설, 전시시설, 미로정원·동요의숲·교과서식물원 등 14개의 주제원, 벽천분수·연못·쉼터를 비롯한 조경시설 등으로 구성돼 있다. 식물자원 1205종 23만본을 심어 지난 3월 공립수목원으로 등록됐다. 특히 선인장 온실은 1480㎡로 전국 최대 규모이며 387종 6621본의 선인장과 열대식물을 관람할 수 있다.관리연구동과 전시동, 재배시설을 갖추고, 주 관람로에 이팝나무 특화길도 조성돼 있다. 이날 개원식에는 허성무 창원시장을 비롯해 김지수 경남도의회 의장, 김장하 시의회 부의장을 비롯한 시의원, 시민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허성무 시장은 “숲해설, 식물체험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자연탐구학습장 및 휴식공간으로 활용하며, 식물유전자원 수집·증식·연구를 통한 학술적 기능을 강화해 창원수목원의 위상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코로나19 사태에 탐방 프로그램도 ‘비대면’

    코로나19 사태에 탐방 프로그램도 ‘비대면’

    코로나19 사태 속에 현장 방문 부담이 커지면서 탐방 프로그램도 ‘비대면’(언택트)이 확산되고 있다.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공단은 코로나19로 공원 방문이 어려워진 국민들을 위해 집에서 간접 체험할 수 있는 비대면 콘텐츠를 25일부터 누리집(www.knps.or.kr)을 통해 제공한다. 유명 캠핑가와 함께하는 국립공원 야영장 체험 및 답사(트레킹) 영상을 유튜브로 볼 수 있고 실시간 공원 영상과 국립공원 자연해설·가상현실(VR), 명품마을 등을 현장 방문없이도 만나볼 수 있다. 매년 공모전에서 입상한 작품을 담은 갤러리와 국립공원의 각종 정보와 소식을 종합한 소식지도 제공한다. 산림청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는 41개소(희리산 제외)을 지난 13일부터 일부 개방했지만 접촉을 최소화하고 있다. 개방 시설은 10인실 미만 숲속의 집과 연립동(휴양관 제외)이다. 야영시설은 거리두기를 고려해 50%로 줄이고 다중이용시설은 폐쇄했다. 산림청 산하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언택트 경북관광지 23선’에 선정됐다. ‘언택트 23선’은 경북도가 23개 시·군 관광지 중 생활 방역 지침을 준수하면서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백두대간수목원은 206㏊(62만평) 규모로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관람을 즐길 수 있다. 3145종의 다양한 식물과 식물분류원·암석원 등 33개 전시원과 숲길을 거닐며 자연을 느낄 수 있다. 입장객 마스크 착용 의무화와 철저한 방역·소독을 통해 쾌적한 관람환경 조성을 만전을 기하고 있다. 한편 환경부 산하 국립생태원은 자생식물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한 ‘산들바람길 자생식물 이야기’를 충남 서천 국립생태원 야외공간에서 26일부터 오는 7월 12일까지 개최한다. 생태원 개원 이후 지속적으로 조성한 여러 길을 하나로 연결한 야외 전시공간을 일주할 수 있는 ‘산들바람길’과 한반도 기후대별 산림식생을 재현한 ‘한반도숲’에서 봄을 대표하는 137여종의 자생식물을 선보인다. 울릉도에서 자생하는 큰두루미꽃과 섬바디 등을 비롯해 고산에서 자생하는 요강나물·구름체꽃·병품쌈 등을 만날 수 있다. 또 잎이 넓게 퍼지는 모습이 처녀들의 치마폭을 닮은 처녀치마와 열매의 모양이 부채를 닮은 미선나무 등 관람객의 이해와 흥미를 돕기 위한 식물 해설판도 설치했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에이치스토리컨설팅, ㈜에이치스토리로 상호 변경 및 CI 개편

    ㈜에이치스토리컨설팅, ㈜에이치스토리로 상호 변경 및 CI 개편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짜임새 있는 스토리텔링과 차별화된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역사·문화 콘텐츠 기업인 ㈜에이치스토리컨설팅이 ㈜에이치스토리로 상호를 변경하고 CI를 개편했다.에이치스토리는 ‘보다 이로운 문화’라는 슬로건을 걸고 인문학을 중심으로 역사, 철학, 문학, 신화 등에 숨겨진 핵심 이야기를 소재 삼아 정확하면서 유머러스하게 전달하겠다는 포부를 전했다. 에이치스토리(H Story)의 핵심 키워드는 ‘Humanity·Heritage·Humor’로 사람, 관계, 역사, 유머, 유쾌함, 환영, 사다리, 문, 연결 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인간의 삶을 보다 이롭게 하는 것들은 관계 속에서의 ‘함께·협력·협동’이라고 강조하는 에이치스토리는 새롭게 개편한 CI에 기업의 가치를 반영해 디자인했다고 전했다. 에이치스토리는 시간과 공간, 너와 나로 잘 맞물려 보다 이로운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을 새로운 CI의 ‘톱니바퀴’로 형상화했다. 에이치스토리의 새로운 CI 속 톱니바퀴를 이루는 기본 요소 톱니는 ‘사람’을 상징하는 것으로, 톱니가 잘 맞물려 바퀴가 세상 앞으로 나아가는 방향성을 유선형으로 형상화해 나타냈다. 더불어 H의 글자 형태는 ‘나와 나’를 의미하는 ‘I-I’로 표현했으며, 두 사람이 서로 손을 맞잡고 즐겁게 춤추는 모습을 운동감 있게 나타내 역동성과 진취적인 이미지를 더했다. 또한 에이치스토리의 새로운 CI는 빨강, 초록, 검정, 하양의 색상을 사용해 에이치스토리만의 색깔을 전달한다. 빨강은 강렬한 열정과 관계의 중심에서 최선을 다하는 내재적 힘을 표현하며, 초록은 나무들이 한데 어우러지고 서로 적당한 거리 안에서 태양 빛을 누릴 수 있도록 양보하는 숲 생태계의 자연 원리를 표현한다. 검정과 하양은 본질의 바탕을 이루어 내 다른 색상을 더욱 빛나게 하는 색상으로 안정감을 지닌 조력자를 표현하고자 했다. 한편 에이치스토리는 에듀테인먼트 브랜드인 ‘쏭내관의 재미있는 史교육현장’을 운영하며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휴머니즘과 유머를 사람들에게 재미있고 유익하게 전달하고 있다. 에이치스토리는 체험학습의 운영과 해설사 양성, 파견, 콘텐츠 개발 등의 교육사업을 비롯해 역사 유적지를 여행하고 답사하는 관광사업, 유적지 공간을 운영하고 행사 대행을 하는 등 문화기획사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역사 문화 콘텐츠기업이다. 더불어 에이치스토리는 전문 인문학 콘텐츠 기획사로서 수원문화재단, 경기관광공사 등의 사업파트너로서 안정적인 사업수행능력을 인정받아 왔으며, 다양한 지역의 인문자원을 활용한 콘텐츠를 개발해 문화 관광 활성화로 지역 경제 활력에도 이바지하고 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에이치스토리의 차별화된 콘텐츠와 사업 활동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강원 관광지 코로나19 빚장 풀고 속속 활동 재개

    강원 관광지 코로나19 빚장 풀고 속속 활동 재개

    강원도내 관광지들이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임시 휴장했던 빚장을 풀고 속속 문을 열고 있다. 강원도는 8일 춘천시를 비롯해 홍천군, 화천군 등 지자체들이 임시 휴장했던 관광지들이 문을 열고 관광객 맞이에 나섰다고 밝혔다. 춘천시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된 것을 계기로 관광시설 운영을 순차적으로 재개하고 문화관광해설사들도 활동에 들어갔다. 지역 대표 관광지인 소양강스카이워크와 막국수 체험박물관, 옛 김유정역과 백양리역은 이미 지난 6일 개장 했고, 문화관광해설사 14명도 활동에 들어갔다. 외국인 관광택시와 시티투어버스는 11일, 낭만누리관광안내소는 12일부터 운영을 재개한다. 춘천 애니메이션박물관은 관람객 밀집을 피하기 위해 시간당 80명(사전예약 60명, 현장발권 20명)으로 입장 인원을 제한해 운영에 들어간다. 접경(평화)지 화천군은 외출 장병을 위해 작은 영화관 3곳을 예약제로 운영한다. 화천박물관과 월남파병용사 만남의 장, 한국수달연구센터, 파로호 안보전시관 등 관람 시설은 단체관람 과 교육행사는 제한하지만 개별 방문은 가능하다. 홍천군도 홍천생명건강과학관을 9일부터 재개관 한다. 마스크 미착용자와 37.5도 이상 발열자는 과학관 입장을 통제하고 영상관은 평소 20명에서 10명으로 관람 인원을 제한해 문을 연다. 강원도산림과학연구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휴관했던 집다리골자연휴양림과 강원숲체험장 숙박시설을 16일부터 부분개방 한다. 다만 위험도를 고려해 10인 미만 숙박시설로 이용을 제한하고 숲 해설 및 체험프로그램은 20인 이내로 운영할 계획이다. 심진규 산림과학연구원장은 “코로나19로 지친 몸과 마음을 자연휴양림에서 치유할 수 있도록 철저히 방역하고 청결을 유지하겠다”면서 “이용자들도 개인 위생수칙과 행동요령을 잘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춘천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자연·역사·예술이 ‘하나로’… 글로벌 관광명소 안양예술공원

    자연·역사·예술이 ‘하나로’… 글로벌 관광명소 안양예술공원

    안양예술공원(옛 안양유원지)은 천혜의 자연환경과 역사, 문화예술이 한데 어우러진 거대한 숲속 미술관이다. 경기 안양시 만안구 안양2동 일원에 조성된 예술공원은 1970년대 중반까지 국민 관광지였다. 1977년 대홍수로 황폐화된 쓰라린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안양시는 2005년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를 통해 예술공원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했다. 2009년부터 공원 내 신라시대 사찰인 중초사지, ‘안양’ 지명의 유래가 된 안양사지를 발굴 복원했다. 여기에 안양박물관, 김중업건축박물관을 조성, 역사 문화 콘텐츠를 강화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꾸몄다. 최근에는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등 4차산업 첨단기술까지 더해져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발돋움하고 있다.안양 8경 중 하나인 예술공원은 삼성산(해발 481m)을 중심으로 관악산(632m), 비봉산(295m)에 둘러싸인 아늑한 공간으로 쾌적한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맑은 물이 굽어 흐르는 계곡을 중심으로 역사와 문화, 예술을 품은 휴식과 사색의 공간이기도 하다. 비교적 완만한 천변 도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수려한 산세가 눈앞에 펼쳐진다. 울창한 숲 사이로 등산로가 잘돼 있어 산책하기에 좋다. 발길 닿는 곳마다 전통 사찰과 문화재가 풍부하다. 삼막사, 염불사, 망월암, 안양사 등 오랜 역사를 지닌 사찰이 곳곳에 있어 다양한 불교문화를 접할 수 있다. 이창윤 안양시 문화관광과장은 “문화체험과 함께 식도락은 여행의 참맛 중 하나”라며 “등산로를 따라 발달한 오랜 맛집과 전망 좋은 카페는 또 다른 매력”이라고 말했다. ●환경훼손·대홍수 극복한 휴식·사색의 공간 공원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부터 천연 수영장인 안양풀로 불렸다. 관악산 여러 골짜기 중 수량이 풍부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했다. 당시 교통도 편리해 가족 단위 피서지로 주목받았다. 1960년대 말까지 여름 휴가철이면 유원지 입구에 임시 간이역을 운영할 정도였다. 매시간 기차가 정차했으며 하루 평균 4만명이 몰렸다. 계곡에는 임간문고와 안양우체국 임시출장소를 설치, 운영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그러나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 훼손에 자연재해까지 덮치면서 폐허화됐다. 이 과장은 “안양시의 오랜 노력 끝에 과거의 아픔을 극복하고 이젠 새로운 모습을 드러냈다”고 말했다. 안양예술공원은 국내 하나뿐인 공공예술 중심 테마파크다. 2005년부터 트리엔날레 APAP를 개최해 다양한 신개념의 예술 작품을 선보이며 공원의 가치와 품위를 높이고 있다. 공원 곳곳에는 APAP에 참여한 세계적인 국내외 작가들이 창조한 독특하고 의미 있는 작품이 즐비하다. 작가들은 안양을 살펴보고 지역 정체성을 담아 작품을 제작한다. 작품 범주도 거리조형물과 야외조각에 한정하지 않는다. 사운드, 비디오, 사진, 퍼포먼스, 공연 등 다양한 예술 분야를 망라한다. 15년 동안 여섯 번 APAP가 열리는 동안 예술공원에는 60여점의 독특하고 거대한 작품들이 설치돼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숲속을 산책하며 보물찾기하듯 작품을 둘러볼 수 있다. 이 과장은 “오직 안양예술공원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문화예술로의 여행”이라며 “안양의 정체성이 담긴 공공예술 작품을 통해 현대미술의 세계적인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공간”이라고 말했다. 주요 작품으로 모더니즘 건축의 20세기 마지막 거장인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루 시자 비에이라가 설계한 ‘안양파빌리온’, 삼성산의 등고선을 연장해 산의 높이를 확장한 작품 ‘전망대’, 기독교 순례자의 길을 상징하는 미로와 불교의 백팔번뇌를 결합한 작품 ‘거울미로’ 등이 대표적이다.안양예술공원은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다. 안양박물관이 자리한 공장 부지는 신라시대 사찰인 중초사가 있던 곳으로 당간지주와 삼층석탑이 현존한다. 당간지주 명문에 중초사였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기록이 남아 있다. 확실한 조성 연대를 밝힌 당간지주로는 국내에서 유일하다. 2009년 중초사지를 발굴 조사하던 중 출토된 ‘안양사´ 명문이 새겨진 기왓조각은 역사적 의미가 크다. ‘극락’을 의미하는 ‘안양’이란 지명의 어원은 바로 서기 900년 고려 태조 왕건이 창건한 사찰로 알려진 ‘안양사’에서 비롯됐다. 칠층전탑 흔적까지 발굴돼 그동안 기록으로만 존재하던 실체가 드러났다. ●‘안양’ 지명 유래한 안양사 실체 오롯이 안양시는 중초사와 안양사 터를 발굴 보존하고 동시에 안양박물관을 조성했다. 이 과장은 “특히 안양이란 지명이 유래한 안양사지 경내에 있어 도시의 정체성까지 오롯이 담아냈다”고 했다.또 중초사지에서 삼성천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국내 하나뿐인 석수동 ‘마애종’을 만난다. 넓은 바위 면에 새긴 종은 신라 말기 또는 고려 초에 조성한 작품으로 추정된다. 조각 기법이 섬세하고 사실적이어서 범종 연구에 중요 자료가 된다. 서충인 안양예술공원팀장은 “예술공원은 경기도 대표 관광지 20곳에 선정됐다”며 “이에 걸맞게 안양박물관을 비롯해 5곳에 QR 코드를 부착해 4개 국어로 작품 해설을 지원한다”고 말했다. 한국 근현대 건축의 흐름과 경향을 살펴볼 수 있는 김중업건축박물관도 특별하다. 안양시가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매입한 공장 부지에서 안양사 절터가 발굴되면서 공장 건물 2개 동을 철거하고 4개 동을 개조해 전시관으로 꾸몄다. 한국을 대표하는 근현대 건축가인 김중업이 설계한 건축물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는다.●근현대 건축 흐름 체험 ‘김중업 건축박물관’ 1950년대 말 산업화 과정 이전의 공장 건축물임에도 건물 곳곳에 조형미가 가미됐다. 당시로는 매우 독특한 형태로 예술적 감각이 돋보인다. 특히 ‘김중업관’은 박물관의 대표적인 건물로, 5개의 기둥과 들보를 벽면 밖으로 돌출시켜 내력벽의 기능을 부여했다. 르코르뷔지에의 현대 건축 5원칙 중 ‘자유로운 입면과 평면’을 구현한 김중업의 초기 대표작이다. 전시실에는 그의 대표적 건축물을 축소 제작한 모형과 설계도면, 자필 메모, 생전 영상 등 100여점의 자료가 있다. 안양시는 예술성이 강한 공공예술에 대중적인 예술 콘텐츠를 더하기 위해 새로운 사업을 추진한다. 석수동 만안각 부지 1만 3202㎡를 매입, 공공예술센터와 창업 공간, 어린이 전시놀이 복합공간인 체험미술관(크레옹하우스)을 조성할 계획이다. 예술공원의 랜드마크로 전시와 교육, 지원 기능을 포함한 공원에서 제공하는 모든 콘텐츠를 관리 운영한다. 유소년을 대상으로 지역 작가, 미술학과 대학생이 함께하는 ‘아트파크데이’ 행사도 준비하고 있다. 순환형 도로 체계를 구축해 ‘차 없는 도로’를 운영, 세계적인 관광 명소에 걸맞은 도보 환경을 조성할 계획이다. 최대호 안양시장은 “예술공원의 공공예술 작품 등 주요 관광자원을 기반으로 가상·증강현실 콘텐츠 개발을 완료하고 조만간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라며 “신개념의 공공예술과 역사 문화 콘텐츠로 새롭게 태어난 안양예술공원은 손색없는 세계적 관광 명소”라고 말했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흥미진진 견문기] 빽빽한 아파트숲 헤치니 파릇한 스타숲이

    [흥미진진 견문기] 빽빽한 아파트숲 헤치니 파릇한 스타숲이

    한티역에서 만난 미래유산 투어팀은 이지현 해설사에게서 대치동 학원가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투어를 시작했다. 한티역 주변은 대치동에서도 학원들이 유난히 더 많이 모여 있는 뜨거운 사교육 현장이다. 대치동이라는 테두리 안에 많은 학원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영어학원이나 수학학원들이 많이 분포하고 있는 게 특징이다. 한티역에서 도곡역 쪽으로 걸어갔다. 큰 고개라는 이름처럼 언덕을 걸어 올라 고층 아파트 틈새에 있는 작은 공원에 들렀다. 주변이 온통 아파트로 둘러싸여 있고 상가 건물도 별로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김밥집은 다른 지역에 비해 아주 많다고 한다. 아이들이 식사에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서 그런 것 같았다. 방송에서 봤던 밤늦은 시간 학원이 끝나고 귀가하는 아이들, 학원과 학원을 오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늘벗공원으로 가는 길에는 메타세쿼이아가 줄지어 있어서 도심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어린이 놀이터와 정자, 농구장이 있는 널찍한 공원으로 들어섰다. 공원 한쪽에 스타숲이 조성돼 있었는데 작은 화단들 앞에는 팻말이 하나씩 세워져 있었다. ‘이 숲은 EXO의 백현 팬들이 그의 생일을 기념하여 만든 백현숲입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통해 이곳을 스타숲이라고 이름 붙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산불이 난 지역의 숲 조성사업을 하는 사회적기업이 맡아서 운영한다고 했다. 양재천 옆 산책로를 걸으며 앞쪽을 바라보니 파란 하늘에 높다란 고층 건물만 보였다. 양재천은 여러 개의 지자체를 거쳐 흐른다고 한다. 영동4교 구간에는 논에다가 만든 썰매장도 있고 작은 습지도 조성돼 있었다. 영동4교 다리 기둥에는 예쁜 그림들도 그려져 있고 주변 산책로도 걷기 좋게 조성돼 있었다. 일행은 양재천 징검다리를 건너 버스를 타고 구룡마을 입구로 이동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아파트를 재건축하는 공사현장과 새로 지은 아파트들이 즐비했다. 그리고 사거리 길 건너편에는 갖가지 현수막이 걸려 있는 구룡마을이 있었다. 들어가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새로 지은 아파트들과 무허가 천막촌의 모습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공존하고 있었다. 전혜경 책마루 독서교육연구회원
  • 산림레포츠 저변 확대…15일 피노키오휴양림서 산악자전거 대행진

    산림레포츠 저변 확대…15일 피노키오휴양림서 산악자전거 대행진

    산림청 15일 강원 원주 피노키오자연휴양림 일원에서 ‘2019년 전국 산악자전거 대행진’을 개최한다.산악자전거에 대한 국민적 관심 및 참여를 높이고 산림레포츠 저변 확대를 위해 열리는 대행진은 한국산악자전거연맹이 주최·주관하고 산림청이 후원한다. 대회에는 국내 산악자전거 동호인 및 일반인, 청소년 등 500여명이 참여한다. 산악자전거 코스와 산림복지시설 등을 탐방하는 비경쟁 랠리 방식으로, 참가자들의 안전을 고려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패달을 밟는다. 피노키오 자연휴양림을 출발해 88번 지방도를 지나 황둔리에 위치한 산악자전거 도로를 거쳐 돌아오는 21㎞ 코스다. 지역특산물 판매, 장작패기 체험, 목공예 체험, 숲해설 등 다양한 행사도 함께 열린다. 이미라 산림복지국장은 “계절적 특색을 살려 겨울 숲길을 달리고 산악자전거 라이딩의 즐거움도 만끽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산악자전거가 대표적인 산림레포츠로 정착되도록 활성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필구야, 겨울방학에도 야구만 하는겨? 아줌마, 초딩도 체험·힐링 필요하거든요

    필구야, 겨울방학에도 야구만 하는겨? 아줌마, 초딩도 체험·힐링 필요하거든요

    긴 겨울방학이 시작되면 가정마다 온 가족이 떠날 수 있는 여행지를 찾게 마련이다. 교육과 체험 프로그램이 갖춰졌고, 힐링까지 할 수 있는 곳이라면 더 좋을 터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겨울 시즌 ‘숨은 관광지’를 소개했다. 전국 1576곳의 추천 명소 가운데 총 6곳이 선정됐다. 모두 개장한지 채 2년이 되지 않은 따끈한 ‘신상 관광지’다. 글 손원천 선임기자 angler@seoul.co.kr사진 한국관광공사 제공1. 금단의 땅으로 내딛는 첫걸음…서울 용산공원갤러리 지난해 11월 개관한 용산공원갤러리는 용산기지와 한강대로를 사이에 둔 캠프킴 부지에 있다. 미군위문협회(USO)가 사용하던 건물을 전시와 체험 공간으로 꾸몄다. 일본군이 조선육군창고로 쓰던 단층 건물에 1978년 미군이 증축한 2층 건물을 연결해 ‘ㄱ 자’ 형태를 하고 있다. 눈길을 끄는 전시물은 용산기지의 변화를 보여 주는 다양한 지도다. 용산기지 일대는 조선시대부터 물류의 중심이자 전략 요충지였다. 임오군란을 빌미로 우리 땅에 들어온 일본군은 이곳에 자신들의 야욕을 실현할 병참기지를 건설했다. 용산의 외국군 주둔은 그렇게 시작됐다. 용산기지는 한국전쟁을 겪으며 미군에게 넘어갔고, 이후 66년이 흘렀다. 용산기지 반환에 앞서 일반에 개방한 용산공원갤러리는 약 110년 동안 굳게 닫혀 있던 금단의 땅으로 내딛는 첫걸음이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7시, 관람료는 없다. 일·월요일과 공휴일은 휴관이다.2. 붉은 파빌리온과 목성…강원 영월 젊은달와이파크 젊은달와이파크는 올 6월 주천면에 개관한 복합 문화 공간이다. 강릉의 하슬라아트월드를 만든 최옥영 작가가 옛 술샘박물관을 리모델링해 조성했다. 공간은 11개 영역으로 구성된다. 붉은파빌리온, 바람의길 등 거대한 조형물이 공간적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최 작가의 ‘붉은 대나무’가 맞이하는 진입로가 대표적이다. 하늘을 찌를 듯한 붉은색 금속 파이프는 젊은달와이파크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다. 통로이자 작품인 거대한 나무 돔 ‘목성’(木星), 화려한 색채의 경험을 선사하는 붉은파빌리온과 바람의길 등 어디나 포토 존이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 휴관일은 월요일이다. 입장료는 어른·청소년 1만 5000원, 어린이(36개월~12세) 1만원이다. 특별관 관람권(5000원)을 추가로 구입하면 붉은파빌리온Ⅱ의 ‘스파이더 웹 플레이 스페이스’를 놀이시설처럼 즐길 수 있다.3. 카멜레온 매력의 문화 공간…충남 서천 장항도시탐험역 장항도시탐험역은 장항역을 리모델링한 복합 문화 공간이다. 보는 각도와 빛의 양에 따라 다른 색으로 보이는 외관 덕분에 올 5월 개관 때부터 눈길을 끌었다. 장항역은 1930년대 초에 열차 운행을 시작했다. 2008년 여객열차 운행이 중단되고 2017년까지 화물역으로만 운영됐다. 장항도시탐험역에서 먼저 돌아볼 곳은 ‘장항이야기뮤지엄’이다. 장항역과 장항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엿볼 수 있다. 계단을 타고 오르면 장항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도시탐험전망대’가 기다린다. 2층의 ‘도시탐험카페’는 주민과 여행자가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다. 1층에는 놀이와 체험이 가능한 ‘어린이시공간’이 있어 가족 단위 방문자가 적지 않다. 무료로 빌려주는 자전거도 잊지 말자.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 돌다 보면 레트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장항의 매력에 푹 빠진다. 이용 시간은 오전 11시~오후 8시(토요일 오후 9시, 월요일 휴무), 입장과 주차는 무료다.4. 예술·자연 깃든 힐링 공간… 전북 남원 김병종미술관과 아담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과 아담원은 ‘춘향의 고장’ 남원에 예술, 전원 풍경의 아름다움을 더했다. 김병종미술관은 남원 출신 김병종 작가의 대표작을 기증받아 지난해 3월 개관했다. 자연을 감상하고 마음을 치유하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입구에 북카페 ‘화첩기행’이 있고, 3개 갤러리를 갖췄다. 남원 지역 미술 작가전 ‘남원 미술, 요즘’이 내년 1월 27일까지 열린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 입장과 주차는 무료다. 아담원은 정원과 카페가 어우러진 공간이다. 카페 통유리 너머로 잔디 정원과 지리산이 펼쳐진다. 산책로 ‘아담길’이 죽연지까지 이어지며, 사색을 돕는 야외 테이블이 마련됐다. 겨울철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5시이고, 월·화요일은 쉰다. 입장료(음료 한 잔 포함)는 어른 8000원, 청소년 5000원, 미취학 어린이는 무료다.5. 금강소나무 향기 품은 안식처…경북 울진 금강송에코리움 지난 7월에 문을 연 금강송에코리움은 금강소나무를 테마로 한 체류형 산림 휴양시설이다. 금강송테마전시관과 금강송치유센터, 찜질방, 유르트(유목민이 사용하는 천막), 숙박이 가능한 수련동 등을 갖췄다. 금강송테마전시관에는 금강소나무에 대한 이해를 돕는 각종 전시물이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코너는 가상현실 체험기. 헬기를 타고 산불을 진화하는 과정을 게임처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숙박시설인 수련동의 방에 들어서면 알싸한 솔향이 콧속으로 스며든다. 솔향비누 만들기, 뱅쇼 만들기, 해설사와 함께 금강송숲체험길 걷기 등 숲 치유 프로그램이 있다. 찜질방과 스파에서 느긋한 시간을 보내도 된다. ‘리;버스(Re;Birth) 스테이’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평일 8만원, 주말(금·토요일) 10만원에 금강송에코리움의 모든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숙박과 식사 포함).6. 자연 보러 갔다가 재밌는 미술과의 만남…부산현대미술관 1300리 길고 긴 여정을 마치는 낙동강 끝자락에 ‘새가 많고 물이 맑은 섬’ 을숙도가 있다. 생태계의 보고로 유명하지만 이제는 미술 작품을 만나러 오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여행자들이 찾는 곳은 부산현대미술관이다. 생태계의 보고에 세워진 만큼 자연과 생태를 주제로 한 전시를 주요하게 다룬다. 개관 당시 ‘수직 정원의 거장’ 패트릭 블랑의 작품으로 조성한 건물 외관이 큰 이목을 끌었다. 현재 전시 중인 설치 작품 ‘레인 룸’도 입소문을 타고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레인 룸’은 젖지 않고 빗속을 걸어 보는 관객 체험형 작품으로, 미술 작품을 보는 데서 즐기는 것으로 바꿔 준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월요일, 1월 1일 휴관)이며, 금·토요일은 오후 9시까지 연장한다. 관람료는 무료(기획전 등 일부는 유료).
  • 민족민주 영령의 성지… 산 자에겐 치열한 정치공간

    민족민주 영령의 성지… 산 자에겐 치열한 정치공간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32차 국립서울현충원’ 편이 지난달 30일 동작구 상도동과 동작동 일대에서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참석자 40여명은 이날 오전 10시 지하철 7호선 상도역 4번 출구를 출발했다. 구립 김영삼도서관을 거쳐 김영삼 전 대통령 가옥에 방문했다. 김영삼 기념도서관은 내년 3월쯤 개관할 예정이어서 외관을 살펴보고 경과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현대정치사에 ‘상도동’이라는 뚜렷한 족적을 남긴 김 전 대통령 가옥 응접실에서 차를 대접받으며 김상학 비서관으로부터 목숨을 건 23일간의 단식투쟁과 연금생활 등 ‘그때 그 시절’ 이야기를 듣고 눈에 익은 사진과 기념품, 휘호, 단풍나무를 즐겼다. 가옥에는 손명순(92) 여사가 기거하고 있다.서달산 명물로 떠오른 숲속도서관 가는 길은 11월의 마지막 단풍으로 불타고 있었다. 현충원에서 호국지장사(옛 화장사)~박정희~김대중~임시정부 및 애국지사 묘역 순으로 둘러봤다.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 앞에 화환이 즐비했는데 마침 전날이 고 육영수 여사의 94번째 생일이었다고 한다. 상도동에서 이동하는 시간이 길다 보니 현충원에 머무는 시간이 짧아 다들 아쉬워했다. 묘역 곳곳에 깃든 숱한 사연들이 저마다 앞다퉈 얘기를 속삭이는 듯했다. 이날의 서울미래유산은 김 전 대통령 가옥과 국립서울현충원이었다. 해설을 맡은 엄태호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원은 이야기가 있는 현충원의 만추 속으로 참가자들을 안내했다.동작은 서울과 과천을 연결하는 한강 남쪽의 중요 나루였다. 사람과 물자가 드나들던 동작진(銅雀津)이자 병선 6척이 주둔하던 군사기지 동작진(銅雀鎭)이기도 했다. 우리말로는 동재기나루라고 불렀다. 1954년 이곳에 국군묘지가 세워졌다. 풍수지리상 장군대좌형의 명당이므로 군인과 인연이 있는 땅이다. 본래 동작이란 무덤을 장식한 구리봉황을 뜻하므로 땅 이름과 땅 주인이 서로 들어맞았다. 삼국지의 영웅 조조의 성이자 무덤이던 동작대에서 딴 동작이라는 지명이 조선 한양의 한강변 나루터 마을에 붙고 그곳이 현대 서울의 동작구와 동작동이라는 지명으로 이어졌다가 결국 국립묘지가 들어섰기 때문이다.국군묘지에서 1965년 동작동 국립묘지로 승격됐다가 1996년부터 국립현충원이 됐다. 국립묘지라는 명칭은 그대로 사용하되 묘역 관리기관의 명칭만 바꿨다. 2006년 국립대전현충원 등과 구별하기 위해 국립서울현충원이 됐다. 144만㎡의 부지에 무명용사 11만여위를 비롯해 모두 17만 9000여기의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잠들어 있다. 신라를 통일한 문무대왕이 “아! 산천은 변천되고 세대는 바뀌기 마련이다. 저 오왕 합려의 북산 무덤에 색칠한 금오리가 남아 있지 않고, 위왕 조조 서릉의 망지는 동작이라는 명칭만 남았을 뿐이다…”라며 “내가 죽으면 동해바다에 장사 지내라”고 유언했다. 이 세상 영웅과 화려한 무덤이 다 사라지고 결국 ‘동작’이라는 이름만 남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조의 무덤에 구리로 만든 거대한 새를 세운 동작대에서 이름을 이어받은 동작구와 동작동에 국군묘지와 국립묘지가 세워지고 독립지사와 임정요인, 전직 대통령 등을 모신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장소인문학에서 말하는 땅의 내력이다.조선시대 한강이 오늘의 철도와 고속도로를 합친 물류의 중심지 역할을 할 때 왼쪽 서빙고나루, 오른쪽 노량나루의 중앙에 놓인 동작나루는 남대문을 나서서 용산 청파역을 거쳐 경기도 과천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김정호는 ‘대동여지도’ 중 ‘경조오부도’에 이 길을 과천로라고 이름 붙였다. 청파역에서 노량나루를 건너면 시흥으로 향했다. 동작진을 건너 과천으로 가거나 노량진을 건너 시흥으로 가는 두 길은 수원에서 만나 삼남(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지방으로 이어졌다. 1899년 노량진~제물포 간 경인선과 1900년 노량진~용산 간 제1한강교(한강대교)가 놓이면서 동작진은 노량진에 밀렸다. 조선시대 가리기 힘들었던 두 나루의 우열은 근대기 들어 노량진이 앞섰다. 그 덕분에 비어 있던 동작진에 국립묘지가 깃들 수 있었다.옛 동작나루를 그린 실경산수화 2점이 전한다. 겸재 정선(1676~1759)의 ‘동작진’과 장시흥(1714~1789)의 ‘동작촌’이다. 동작진이 나루터를 포함한 마을 전체를 그렸다면 동작촌은 동작나루의 솟은 암산과 나루에서 사당, 과천으로 이어지는 길가에 즐비한 기와집을 클로즈업했다. 정선이 1744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동작진’은 오늘의 현충원을 중심에 두고 멀리 관악산과 청계산을 배경 삼았다. 동작나루 일대 한강을 동작강이라고 불렀다. 권문세가의 별서(별장)가 자리잡았다. 인조반정의 공신 이귀가 세운 창회정이 정선의 그림에 엿보인다. 광해군 때의 권신 박승종의 별서 퇴우정이 이름을 바꾼 것으로 짐작된다. 인조의 동생 능봉군이나 남용익, 이세필, 윤두수 등 문신의 별서도 상지동에 있었다. 조선시대 현충원 일대를 상지동이라고 했다. 현충원의 터줏대감 호국지장사는 신라 고찰 화장사다. 삼성동 대부분이 봉은사 땅이었듯 현충원 대부분이 화장사 소유였다. 선조의 조모 창빈 안씨 묘도 널찍하게 자리를 잡았다.동작나루에는 시인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다산 정약용은 31세 때 ‘동작나루에서 진주로 가시는 부친을 송별하며’란 제목의 시를 남겼다. “나루터에 저 멀리 떠나가는 배/모래밭에 말 세우고 바라본다네…”로 시작하는 효심 어린 시를 썼다. 그러나 이 시를 쓴 해 부친이 진주에서 숨졌으니 마지막 이별 인사가 된 셈이다.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도 동작나루 풍경을 그린 ‘동작진’이라는 시가 전한다. 동작나루는 정치의 공간이기도 했다. 숙종 때 남인의 영수 윤휴는 왕의 부름을 받자 “신의 애초의 뜻은 전하가 계시는 궁전의 뜰에 나아가 하직하려는 것이었습니다…”라면서 동작나루의 숙소에 3달을 머물며 출사 거부의 사직상소를 올렸다. ‘정치 쇼’였다. 그러나 1680년 경신환국으로 세상이 바뀌고, 남인이 제거되면서 윤휴는 죄인이 돼 국문을 당한 뒤 사약을 받았다. 동작나루에서 여유작작하며 석 달을 버티다 동작강을 건넌 뒤 한 달 만에 저세상 사람이 된 것이다. 국립서울현충원은 민족민주영령들의 성지이자 국가 정통성의 뿌리다. 죽은 자의 공간이지만 산 사람들을 위한 정치공간이기도 하다. 혁명이나 변환의 시기나 행사 때마다 주요 인사들이 얼굴을 내미는 정치무대이기 때문이다. 246만명의 전사자와 전범자를 합사한 일본 야스쿠니신사가 국립묘지로 성지화되면서 참배 여부를 놓고 나라 안팎에서 논란이 빚어지는 까닭이기도 하다. 조조의 무덤 동작대에서 전래된 동작나루의 전설이 동작동 국립묘지로 이어진 것은 거부할 수 없는 땅의 숙명이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제33회 양천고성 ■집결 장소:12월 7일(토) 오전 10시 양천향교역 2번 출구 ■신청(무료):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부산시 열린행사장, ‘시민명소’로 각광.

    부산시 열린행사장, ‘시민명소’로 각광.

    부산시 열린행사장과 숲속체험도서관을 찾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12일 부산시에 따르면 숲속체험도서관은 부산 남천동 시장 관사안에 지난 7월 조성됐다. 시는 공무원시험 출제 장소였던 집현전을 시정 철학에 맞춰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1층은 터치월체험실,놀이체험실,숲속야외체험실,2층은 열린도서관,다목적체험실,미디어실,계단쉼터 등으로 조성됐다. 숲속체험도서관은 지난 10월 말 방문객이 2000명을 넘어서면서 개관 이후 6000명이 방문했으며,어린이를 대상으로 운영하는 유아숲 체험프로그램도 인기다. 수영구는 숲체험 해설사를 배치해 열린행사장 내 수목과 다양한 곤충에 관해 해설을 해주고 있다. 또 해송,철쭉 등 78종 2만8560그루 수목이 있는 열린행사장은 자연학습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1998년 시장공관으로 사용되다 2012년 부산시열린행사장으로 개방됐다. 시는 기존 시설물을 리모델링하면서 편의시설을 확충하고 잔디정원,후문산책로,등산로 진입로 등을 추가로 개방했다. 지난해 1만8000명이던 일반 방문객 수가 올해 10월 2만4000명을 넘어섰고, 연말까지 예상 방문객을 고려하면 전년 대비 50%가량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본관 1층 행사장은 필리핀 외교부 차관을 비롯한 아세안 6개국 고위인사를 초청해 협력방안을 논의하는 등 민선 7기 이후 최근까지 외교와 글로벌비즈니스 관련 행사가 18차례 열리는 등 도시외교와 글로벌비즈니스의 장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황수언 시총무과장은 “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 등 각종 국제행사 때 열린행사장을 활용하고 시민 관심도가 높은 전시행사를 유치하는 등 역할을 넓혀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전쟁의 비극·고단한 삶…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는 ‘恨 많은 고개’

    전쟁의 비극·고단한 삶…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는 ‘恨 많은 고개’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8차 서울의 대중가요3(단장의 미아리고개)’ 편이 지난 2일 강북구 미아동과 성북구 길음동·돈암동 일대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참석자 40여명은 이날 오전 10시 우이신설선 솔샘역 1번 출구에 집결했다. ‘미아리’라는 지명을 낳은 신라의 고찰 미아사~송천동성당~옛 미아리공동묘지~옛 미아리 유해업소를 거쳐 미아리고개예술극장에서 반야월 작사, 이재호 작곡, 이해연 노래의 1950년대 명곡 ‘단장의 미아리고개’ 노래비를 만났다. 최근 송가인이라는 트로트 가수의 등장으로 사람들의 입에 다시 오른 구성진 노랫가락의 위력을 새삼 느꼈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미아리 점성촌이 마지막 코스였다.돈암동에서 길음동으로 넘어가는 미아리고개에는 절절한 슬픔이 뱄다. 너무 가팔라서 넘나들기 고달팠고, 병자호란과 한국전쟁의 서울 침공로였으며, 공동묘지가 있던 시절엔 상여길, 조문길이었다. 한국전쟁 때 인민군에 끌려가던 가족을 향해 울부짖던 비극의 장소이기도 했다. 지금 그 ‘창자를 끊는’ 미아리고개에는 미아리하늘고개다리와 노래비 그리고 미아리고개예술극장이 무심하게 서 있을 뿐이다. 이날 해설을 맡은 강영진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늘 스쳐 지나가기만 하던 미아리의 애사를 두 발로 직접 느낄 수 있도록 안내했다.서울 동북부의 관문 미아리의 역사는 2002년 서울시 시범 뉴타운 지정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개발의 속도와 규모는 전광석화 같았다. 10여년 만에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된 미아리의 잔상은 오간 데 없고 거대한 아파트 숲이 하늘을 가린 채 즐비하다. 1894년 갑오개혁 때 미아리의 행정구역은 한성부 동부 숭신방 동소문외계 미아리였다. 동소문 밖 성저십리(성 밖 십리)에 속했다.‘조선성시도’와 ‘한양도’ 등 옛 지도에는 오랑캐 적(狄), 넘을 유(踰), 고개 현(峴)자를 써서 적유현이라고 적었다. 한양에서 강원도나 함경도를 오가는 길손은 동소문(혜화문)~적유현~수유현~양주 길을 지나다녔다. 사람들은 이를 쉽게 병자호란 때 되놈(청나라군)이 넘어온 되너미고개라고 말하고, 이를 한자로 돈암현이라고 옮겼다. 또 길음동이라는 지명은 ‘기리묵골’ 또는 ‘기레미골’이라는 우리말 지명을 한자로 바꾼 것이다. 미아리고개 북쪽 정릉천 골짜기의 물소리가 맑고 고와서 길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다. 비가 오면 땅이 질퍽해 ‘질음골’이라고도 불렸다. 1792년 광릉으로 행차하던 정조는 미아리고개에 이르자 말에서 내려 잠시 머문 뒤 ‘야차제만장봉’이라는 시를 남겼다. 이때 이곳의 지명이 미아리(美阿里)라고 적혀 있어서 현재의 미아리(彌阿里)와는 한자가 다름을 알 수 있다. 길음1동의 옛 돌산(신안아파트)은 건축용 석재를 채취하던 채석장으로, 나머지 지역은 왕실의 매장 터로 쓰였다. 1911년 경성부 지도에 미선리, 미하리라고 표기됐으나 1930년대에 인쇄된 경성부 관내도에 비로소 미아리(彌阿里)라는 표기가 정착됐다. 청량사에서 청량리가 유래했듯 원효대사가 세운 불당골(미아7동)에 있던 미아사가 미아리라는 지명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전차 종점이 있던 돈암동은 시내, 고개 너머 미아리는 시골로 인식했다. 이후 경기 고양군 숭인면 미아리(1914년)에서 성북구 미아리(1949년)로 변경되면서 미아1·2·3동과 길음동, 인수동, 송천동, 삼양동 등 우리 귀에 낯익은 이름이 생겼다. 인수동은 삼각산(북한산) 인수봉, 삼양동은 삼각산 아래 양지바른 동네라는 뜻이다. 송천동은 샘이 솟는 소나무 숲 마을이었다. 1973년 도봉구에 속했다가 1975년 다시 성북구로 회복됐다. 1995년 강북구가 분구되면서 길음동은 성북구, 미아동은 강북구로 갈라졌다.장소인문학에서 말하는 미아리의 정체성은 일제강점기 1930년에 완공된 공동묘지 조성으로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미아리 공동묘지는 1912년에 만들어진 19개 공동묘지 중 한국인 전용 공동묘지였다. 1937년에 모두 1만 6000기의 무덤이 있었다. 주택난과 매장지 부족으로 1933년 망우리, 1958년 파주 용미리, 벽제로 각각 이전했다. 이상, 이육사, 유관순, 한용운, 최학송, 나석주, 이중섭 등이 묻혔다가 망우리 등으로 이장됐다. 또 도시빈민들의 이주로 정릉천변과 공동묘지 주변에 토막촌과 무허가주택촌이 형성됐다. 미아리는 한국전쟁 당시 국군과 인민군의 격전지였다. 전쟁이 끝난 뒤 북으로 끌려가던 북송인사 때문에 ‘한 많은 미아리고개’ 별칭이 붙었다. 1958년 미아리공동묘지가 벽제와 망우리로 이장하면서 이재민들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길음동의 대표적 공영주택 백호주택은 1962년 입주 신청을 받았는데 당시 분양가구가 100호였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호당 50평 안팎의 대지에 12평짜리 벽돌기와집을 지었다. 당첨자는 땅값을 내고 건축비 14만 2500원은 25년 분할 상환했다. 미아리는 인수로, 삼양로, 미아로 등 세 가닥 큰 길이 주축을 이룬다. 정릉천 물길인 인수로는 정릉천에서 길음동 돌산에 이르는 도로명이다. 인수로 좌우에는 거대한 무허가 간이주택이 천변동네를 형성했다. 본래 좌우제방을 도로로 이용하다 세 번에 걸쳐 복개돼 도로가 됐다. 뉴타운개발 후 길음시장과 역세권을 제외하고 아파트가 들어섰다. 1960년대 후반 청계천 복개와 종로3가의 집창촌 ‘종삼’이 철거되면서 하월곡동 88 정릉천변 일대로 이주, ‘미아리 텍사스’라는 오명이 따라붙었다. 2000년대 길음 재개발로 대부분 헐려 나갔다. 삼양로는 길음역4거리에서 수유동 쪽 길이다. 1962년 미아초등학교 앞쪽에 백호주택이 들어선 뒤 위쪽을 잇는 도로가 생겼다. 수유동에서 미아리고개를 넘어가는 미아사거리는 본래 미아삼거리였다. 장위동으로 나가는 길이 확장되고 입체교차로가 들어서면서 사거리가 됐다. 백화점과 할인마트, 극장 등이 들어와 길음동과 미아동, 삼양동 일대 상권의 중심지가 됐다. 1997년 미아리 텍사스가 정비되고, 1999년 내부순환도로 완공, 2002년 길음뉴타운 지정으로 이 일대는 옛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개벽했다. 미아로, 미아리고개, 미아리하늘다리, 미아사거리 등 미아리가 붙은 지명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준다는 이유로 지명을 바꾸려던 한때의 시도가 무색하다.가슴 저미는 노랫말로 듣는 이들의 심금을 울린 ‘단장의 미아리고개’는 우리나라 대중 가요사에 한 획을 그었다. 작사자 반야월은 가요 사상 가장 많은 작사, 가장 많은 히트곡, 가장 많은 노래비를 남긴 인물이다. 작사가 반야월은 작곡가 박시춘, 가수 이난영과 함께 ‘한국 가요계의 3대 보물’로 꼽혔다. 한국전쟁 발발 당시 반야월은 미아리고개 너머에 살았다. 혼자 피란을 떠난 부인이 5살짜리 어린 딸을 등에 업고 미아리고개를 넘다 숨진 딸을 길섶에 묻은 비극적인 가족사를 노랫말로 만들었다. 미아리는 문학작품의 단골 소재였다. 미아리 사람들의 생활사가 서민의 삶을 대변했다. 소설가 김소진의 대표작 ‘장석조네 사람들’에서 “한 지붕 아래 아홉 개의 방이 한 일자로 늘어서 있어 사람들이 기차집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장석조네 집터는 옆의 행길보다 석 자 정도는 높게 다져져 있었다”라는 대목은 1970년대 돌산 아래 ‘열차주택’을 묘사한 장면이다. 소설가 조정래의 장편소설 ‘한강3’에서도 미아리 무허가 판자촌과 구불구불한 비탈길이 나온다. 신경림의 시 ‘길음시장’과 박완서 소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서는 미아리의 불법 매장 풍경이 그려졌다. 1986~1994년 방영된 인기 TV 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에도 열차주택 풍경이 등장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제29차 효창공원 ■집결 장소: 11월 9일(토) 오전 10시 효창공원역 1번 출구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가을 소확행…강남 ‘양재천 단풍축제’로

    서울 강남구는 오는 30일부터 내달 3일까지 도곡2동주민센터와 양재천 밀미리교 일대에서 ‘제4회 가을로(路) 양재천 단풍축제’를 개최한다고 29일 밝혔다. ‘가을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제로, 가을연가(공연), 추풍명월(경관), 단풍시장(플리마켓·장터), 천고마비(먹거리장터), 가을학당(체험), 특별행사(도슨트 투어) 6개로 꾸려진다. 축제 기간 밀미리교 위는 꽃길로 단장되고, 아래 양재천변은 핑크뮬리 향기로 가득 찬다. 밀미리교와 영동3교 사이 산책로엔 야간 조명길이 조성된다. 밀미리교에선 가을밤 별빛 속을 걷는 이미지를 미디어파사드로 형상화하는 ‘강남 가을 별빛 아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다리 입구 공연무대에선 댄스, 재즈, 올드팝 등 다양한 공연이 펼쳐진다. 숲 해설가 설명을 들으며 양재천 길을 걷는 ‘양재천 도슨트 투어’ 프로그램이 올해 첫선을 보인다. 영동3교~영동4교~밀미리교~영동3교의 1.5km 코스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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