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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신문 보도 그후] 숭례문복원 목공사 한 달여 만에 재개

    문화재청은 9일 목수들 노임 문제로 한 달째 중단된 숭례문 복원 목공사를 10일부터 재개한다고 밝혔다. 시공사인 명헌건설㈜과 실제 복원을 맡은 신응수 대목장이 기존 계약대로 공사를 재개하기로한데 따른 것이다. 신 대목장은 이날 전화통화에서 “목공사 노임이 명헌건설과 애초 계약했던 3억 8500만원보다 이미 지난해 12월 초에 1억원 이상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4월까지 공사할 경우 더 늘어날 텐데 추가되는 노임을 받지 않더라도 일을 진행하겠다.”면서 “숭례문 목공사 전체를 기부하겠다고 서울신문에 밝힌 마당에 더 이상 목수들의 노임을 가지고 계속 갈등한다면 서로 상처만 입게 돼 이 같은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신 대목장은 “다만 이후에 들어오는 나무들은 통나무가 아니라 제재목으로 들어오는 방향으로 명헌건설과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 대목장은 8일 오후 3~6시 3시간 동안 최종덕 문화재청 문화재보존국장과 면담하고서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최 국장도 “공정이 한 달여간 중단된 상태였지만 문화재청과 공사 관계자들은 국민의 관심사인 숭례문 복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현 시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이같이 결정했다.”고 말했다. 최 국장은 숭례문 복구 목공사가 당초 예정한 대로 4월 말 완료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숭례문 복구는 크게 성곽 복원과 문루 복구공사로 구성되며 이 중 문루 복구는 목공사, 기와공사, 단청공사로 진행된다. 현재 목공사는 1층 조립과 2층 목재 가공을 70%가량 완료한 상황에서 지난달 8일 이후 중단된 상태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불탄 숭례문 복구에 나와 목수들 ‘품’ 기부”

    “불탄 숭례문 복구에 나와 목수들 ‘품’ 기부”

    신응수(70·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대목장은 6일 자신이 목공사를 맡고 있는 숭례문 복구 공사 중단과 관련해 “불탄 숭례문을 복구하는 데 내 품은 물론 내 목수들의 품까지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신 대목장은 이날 서울 종로구 창성동 자신의 ㈜한국전통건축 사무실에서 서울신문 기자와 단독 인터뷰를 갖고 “나와 내 목수들이 돈 몇 푼 더 받으려고 문화재청과 싸우고 있는 것처럼 국민에게 비치는 것이 안타깝다.”면서 “평생 목수 일로 먹고살았는데 내 목수들의 품값은 내가 떠맡을 수 있다.”고 밝혔다. 신 대목장은 “숭례문 복구 공사비가 약 170억원인데 목수의 품값은 2~4%에 불과하다.”면서 “명헌건설이 설계 변경을 이유로 품값을 줄이겠다면 아예 내가 품값을 다 떠맡고 목공사를 국가에 기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신 대목장은 2009년 말 복구 공사에 참여할 당시 자신의 품값은 받지 않겠다고 문화재청에 낸 제안서에서 밝힌 바 있다. 신 대목장은 목수들의 노임 산정 논란과 관련해 “문화재청에서 내 목수들이 전통도구와 방식에 낯설고 숙련되지 않아서 노임이 늘어났다고 지적한 것은 사실과 다르다.”면서 “통나무를 도끼로 다듬어서 목재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품이 더 든 것”이라고 반박했다. 신 대목장은 “1962년 정부가 작성한 목수들의 품셈으로는 150년 전 경복궁 중건 방식과 같은 지금의 숭례문 복구 공사 품값을 도저히 맞출 수 없다.”고 지적했다. 문화재청은 명헌건설과 167억 8500만원(목재비 포함 목공사 부문 15억 7800만원)에 시공사로 계약했고, 명헌건설은 신 대목장을 직원으로 영입한 뒤 신 대목장에게 목공사 부문을 13억 2300만원에 맡겼다. 명헌건설은 설계 변경을 이유로 목공사 비용을 10억원으로 낮췄으며, 5억 4000만원이던 목수들의 품값도 3억 8500만원으로 축소한다고 지난해 12월 초 통보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계약엔 손질된 각재 쓰기로 돼 있어…원목 손으로 다듬으면 노임 더 들어”

    “계약엔 손질된 각재 쓰기로 돼 있어…원목 손으로 다듬으면 노임 더 들어”

    “170억원에 달하는 숭례문을 복구하는 국보 일을 하면서 나와 목수들이 돈 몇 푼 더 받으려고 문화재청하고 싸우는 것처럼 비치면 국민들이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차라리 이미 받은 노임 3억 8000만원을 돌려주고, 목공사를 국가에 기증하겠습니다.” 신응수(70·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대목장은 숭례문 복구 공사 중단 보도가 나간 6일 오후 기자와 단독으로 만나 그동안 답답했던 속을 털어놨다. 신 대목장과의 인터뷰는 서울 종로구 창성동 신 대목장의 ㈜한국전통건축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숭례문 목공사가 중단된 이유는. -지난달 1일 목수 노임 1억 6000만원이 연체됐다는 공문을 보냈다. 4월까지 목공사를 다 마치면 2억 3000만원의 노임이 더 들게 되는데 이에 대한 대책도 요구했다. 목수 노임에 대한 명헌건설과의 계약이 당초 5억 4000만원이었다. 답신은 그달 19일에 왔는데, 설계가 변경됐기 때문에 전체 노임은 3억 8000만원이라고 했다. 만약 시공사 측 주장대로 하면 노임은 벌써 1억원이 초과된 상태다. 연체된 노임을 지급할 수 없는 상황이라 일을 더 못 하게 됐다. →문화재청 보도 자료를 보면 명헌건설과 신응수 대목장의 계약이 13억 2300만원이라고 돼 있던데. -그것은 목재를 포함한 가격이다. 문화재청에서 명헌건설에 공사를 맡길 때 목공사의 당초 계약은 약 13억원이었지만 설계가 변경돼 10억원으로 줄어들었다. 10억원 중 목재 가격이 6억 8000만원이고, 노임은 3억 8500만원에 불과했다. 167억 8500만원짜리 복구 공사에서 목수들 노임 3억 8500만원 때문에 공사가 중단됐다는 것은 기가 막힌 일이다. →그렇다면 노임은 예정보다 왜 더 늘어났나. -1962년 숭례문 증수 공사가 있었는데 나도 20살 언저리에 그 공사에 참여했다. 그때 적용한 품셈표가 지금도 적용되고 있다. 50년 전에는 각재를 켜 가지고 온 1차 가공 목재를 목수들이 손으로 파고 깎고 했다. 서까래 대자귀질도 했다. 이번 숭례문 목공사는 가공이 안 된 통나무에 도끼질을 해서 나무를 다듬는 방식이다. 지금 숭례문 복구 방식은 150년 전 경복궁 복원(1865~1868) 때의 방식과 같다. 통나무 다듬기부터 시작하니 하루에 해야 할 일이 3일이나 더 걸리는 것이다. →명헌건설과의 계약은 어떻게 돼 있나. -명헌건설과의 계약에서도 나무가 손질된 각재로 들어온다고 돼 있다. 그러데 원목이 들어왔다. 폐쇄회로(CC)TV로 진짜 도끼질을 하는지 다 감시당했다. 나무 다듬을 때 전동기계 안 쓰고 일일이 손으로 다듬으면 앞으로 목수 노임이 2억 3000만원이 더 들어간다. 즉 목수 노임이 모두 7억원으로 불어나는 것이다. 물론 손으로 하면 정성이 들어가고 좋다. 그러나 통나무 다듬기까지 원시적으로 할 필요가 있나. 도끼질하고 나무 다듬는 것을 숭례문 현장에서 하면서 시민들에게 보여 준 것도 아니라서 안타깝다. →문화재청에서는 목수들이 자귀질도 못하고, 숙련이 안 됐다고 하더라. -숙달된 목수는 자귀질도 금방 배운다. 3일이면 배운다. 통나무 깎는 것부터 시작해서 해야 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해결책이 뭔가. -문화재청이나 명헌건설이 목수의 노임을 지불할 수 없다고 계속 주장한다면 내가 3억 8500만원을 내놓겠다. 나는 처음부터 도편수는 무료 봉사하겠다고 했고 실제로 무료 봉사 중이다. 또한 문화재청에서 명헌건설 직원이 되라고 해서 직원이 됐지만 단 한 푼의 월급도 받은 적이 없다. 나도 돈 쌓아 두고 살지는 않지만 목수로 평생을 먹고살고 자식들 교육까지 다 시켰으니 우리 목수들하고 목공사 부문을 기부하고 싶다. 나중에 불탄 숭례문 목공사를 신응수와 목수들이 기증했다고 한다면 나도 보람이 있지 않겠나. 글 사진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신응수 대목장은 1942년 충북 청원 출신으로 1991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대목장 보유자로 지정됐다. 경복궁, 숭례문, 불국사, 수원성 등을 복원했다. 대목장 혹은 도편수는 고건축의 으뜸이 되는 궁궐, 사찰, 성곽 건축의 목공사 책임자를 뜻한다. 신 대목장은 이번 숭례문 복원에 목수 20여명을 이끌고 있다.
  • [김문이 만난사람] 숭례문 복원 중요무형 문화재 홍창원 단청장

    [김문이 만난사람] 숭례문 복원 중요무형 문화재 홍창원 단청장

    단청(丹靑)이 없는 목조건물을 어디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고궁이나 고즈넉한 사찰 경내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건축물 안팎에 그려진 단청 문양이다. 건물의 벽면이나 천장 등에도 어김없이 곱고 화려한 단청 문양으로 장식돼 있어 발길을 멈추게 한다. 단청은 삼국시대 벽화고분에서 나타나듯 우리나라 회화 미술사의 2000여년 궤적을 오롯이 그려오고 있다. 현대에 와서는 만봉(1910~2006) 스님이 1972년에 처음으로 중요무형문화재 48호로 지정되면서 그 연구와 명맥을 이었다. 스님은 생전 “단청이라 함은 청색, 적색, 황색, 백색, 흑색의 오방색을 기본으로 여러 가지 색상을 만들어 궁전, 불전 등에 다양한 문양과 인물, 산수, 화조, 산수 등으로 장엄하는 것이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올해 연말이면 숭례문 복원 공사가 완료된다. 현재 성곽복원이 마무리됐으며 봄부터는 문루 복원과 기와 잇기가 시작된다. 그 다음에는 건축물의 화룡점정이자 마지막 화장단계인 단청작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단청작업에는 내로라하는 단청 기술자 30여명이 참여한다. 이들을 진두지휘하는 사람을 가리켜 단청화사(丹靑?師)라고 한다. 중요무형문화재 48호인 홍창원(57) 단청장은 바로 숭례문 단청복원의 화사(?師) 역할을 맡고 있다. 그는 조선시대 명 화승인 예운스님의 맥을 이은 만봉스님의 수제자로 그동안 창경궁, 창덕궁, 경복궁, 덕수궁 등 4대 궁궐은 물론이고 봉정사 극락전·대웅전 등 전국 각 지역의 고찰과 문화재 건축물의 단청작업을 해오고 있다. ●고려 단청은 화려… 조선은 검소한 문양 지난 3일 오후 경기도 퇴촌에 위치한 한국단청연구소를 찾았다. 때마침 함박눈이 내려 주위가 온통 하얗게 변해 있어서 그런지 그가 평소 그렸던 각종 단청 작품들이 아름답고 화려하게 빛났다. 연구소 벽에 걸린 대형 ‘경복궁 근정전 천장 용그림’이 금빛 찬란하게 눈부시도록 다가온다. 용그림에 대해 궁금해하자 “1998년에 모사했으며 이런 모사 작품들을 모아 벽연회라는 이름으로 제자들과 함께 2년에 한 번씩 전시회를 갖고 있다.”고 대답했다. 근래에 들어서는 2009년 12월 ‘숭례문 단청문양 모사전’을 서울메트로미술관에서 가졌다고 한다. 특히 이 전시 때는 숭례문 화재 직후이기도 했지만 1800년대 후반의 숭례문 단청을 비롯해 1954년, 1963년, 1973년, 1988년 등 변화된 단청 모습을 연도별로 상세히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숭례문은 원래 중층의 다포(多包)건물로 아래·위층이 모두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공포조작(拱包造作)에 있어서 조선 초기의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진기록으로 볼 때 1890년대 이후 광복 이전까지 재단청된 흔적은 찾아볼 수 없으며 한국 전쟁 이후 피해 상태를 조사하고 수리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1961~1963년 숭례문 문루 전체의 해체복원 공사가 이루어졌으며 1973년과 1988년에 재단청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렇듯 숭례문 단청은 19세기 말 이후 여섯 차례 단청공사가 진행되면서 각기 다른 양식의 단청으로 시공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매번 단청을 다르게 시공할 수밖에 없었던 세부적인 상황과 내용은 자세히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숭례문 단청에 대한 설명이 계속 이어진다. 문양 형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고 했다. 19세기의 단청과 1954년의 단청은 조선 후기 단청의 맥을 같이하고 있으며 1963년의 단청은 조선 초기 단청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또 1973년부터 1988년까지의 단청의 경우 문양 형식은 조선 초기 양식이지만 수법이나 색상은 조선 중·후기의 단청 양식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숭례문 복원 조선초기 양식으로 재현해낼 것” 그는 이번 숭례문 복원공사 때 1963년의 단청, 그러니까 숭례문이 세워진 조선초기의 양식을 복원하겠다고 역설했다. 하여 조선 초기 단청이 남아 있는 강진 무위사 극락전과 예산 수덕사 내부단청, 안동 봉정사 대웅전, 창경궁 명정전, 그리고 1937년 임천 선생이 조사한 수덕사 단청조사 보고서에 수록된 여러 자료 등을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토대로 조선 초기 당시의 단청자료에 대한 샘플링 작업을 모두 마무리했으며 오는 5월부터 제자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복원작업에 들어간다. 작업기간은 5~6개월 정도 소요될 것으로 내다봤다. 화학안료를 쓰면 기간이 짧아지지만 숭례문의 경우 화학안료 대신 천연안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천연안료는 돌가루를 정제해 색깔을 낸 것으로 고운 심성으로 정성껏 입혀야 색깔이 아름답고 오래도록 남는다고 말했다. “고려시대의 단청은 화려한 반면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유교사상의 영향을 받아 청색과 녹색 위주의 검소한 문양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1966년의 ‘남대문 수리보고서’에 수록된 복원 모사도의 컬러도판은 옛 안료색상인 삼복, 이청, 대청 등의 색상을 사용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저런 자료를 모두 참고해 되도록 조선 초기 원래의 단청을 재현해 낼 생각입니다.” ●건물 장식뿐 아니라 목재수명 연장 기능 지녀 국보 1호 복구작업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쏠려 있는 데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는 숭례문 단청을 멋지게 입히기 위해 틈틈이 숭례문 복원현장을 찾아 나름대로 단청의 그림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또 숭례문 복구작업과 관련해 장인들 회의가 있을 때에도 매번 참석하고 있다. 이런 그에게 어떻게 해야 단청을 배울 수 있는지 물었다. “우선 소질이 있어야 하며 그 다음 불굴의 인내력이 뒤따라야 하고 뭐니뭐니 해도 심성이 고와야 한다.”고 웃는다. 그러면서 최소 1년에서 3년 정도는 열심히 배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단청이 갖는 상징적 의미는 음양오행설이다. 단청에 사용된 반복 문양은 화재와 잡귀를 막아주는 의미를 담고 있다.”면서 “건물을 장식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풍화나 뒤틀림을 방지하는 등 목재의 수명을 연장해 주는 역할도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 신촌에서 태어난 그는 불심이 깊었던 할머니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15살 때 중학진학을 포기하고 단청에 입문했다. 당시 집과 가까운 봉원사에서 만봉스님을 만난 것이 인연이 됐다. 처음에는 만봉스님이 그리는 단청을 지켜보면서 어깨너머로 배웠다. 그러다가 취미가 붙었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단청을 공부하면서 점점 실력을 쌓았다. 이런 모습을 본 만봉스님은 그를 기특하게 여겨 기꺼이 제자로 삼았다. 이후 서울 보문사 일주문 단청을 시작으로 만봉스님과 함께 전국을 돌며 일했다. 1981년 만봉스님의 전수장학생으로 선정된 데 이어 일취월장해 1986년에는 이수자가 됐다. 이때부터 창경궁 문정전, 경복궁 경회루·강녕전·교태전, 덕수궁 중화전, 경복궁 근정전 등을 도맡아 일을 하면서 명성을 얻었으며 2009년 2월 만봉스님의 뒤를 이어 중요무형문화재 48호 단청장이 됐다. 그는 30여명의 제자를 두었는데 부인과 딸도 여기에 속해 있다. 특히 딸 홍보라씨는 아버지의 전수장학생으로 숭례문 복원 단청에도 함께 참여하고 있다. ●“수천년 이어온 겨레의 얼과 예술 명맥 이어야지” 1990년부터 한국단청연구소를 운영 중인 그는 숭례문 복구작업이 끝나면 전통 단청 보전과 후진양성에 더욱 매진할 계획이다. 42년 동안 단청인생을 살아오면서 우리의 단청이 세계 최고의 수준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며 또 이 같은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란다. 그는 일본에서 가끔 초청을 받기도 하는데 이때마다 우리의 단청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열정을 보인다. 연구소 안에는 경복궁 근정문 적심(1850년 이전), 창덕궁 희정당 연목(1906년), 봉정사 대웅전 보머리(1604년) 등 각종 단청문양이 그려진 400여점의 고목들이 진열돼 있어 그가 평소에 얼마만큼 자료수집에 열중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이런 자료들을 모아 나중에 ‘단청 박물관’을 지어 전시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아울러 올해 말에는 ‘경회루 단청 문양 모사전’을 가질 계획이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우리 겨레의 삶과 예술의 혼이 담겨 있는 단청은 수천년 이전부터 사물에 아름다운 색상과 무늬를 붓끝에 담아 이어 왔다. 대한민국 최고의 단청장이었던 만봉스님의 화맥을 끊임없이 전수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홍창원 단청장은… 1955년 서울 신촌에서 태어났다. 15살 때인 1970년 중요무형문화재 48호(단청) 만봉스님 문하생으로 입문했다. 1970년 동대문 탑골승방 일주문과 세검정 창의문 단청에 참여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부여 무량사(1971), 신촌 봉원사 대웅전(1972), 영화사 삼성각(1973), 부산 동래산성(1974년), 강릉 경포대(1978) 등의 단청에 참여했다. 1981년에는 만봉스님 전수장학생에 선정됐고 문화재수리 단청기술자로 등록한 데 이어 1986년 만봉스님 이수자로 선정됐다. 이후 광희문(1990), 창덕궁 구선원전(1992), 경복궁 강녕전·교태전·경성전·연생전(1994) 단청을 비롯해 덕수궁(2001), 창덕궁(2002), 경복궁 근정전(2003) 등의 단청 작업을 했다. 일본 나카지마 육각당과 일본 쇼고 무량수사 등의 단청 작업에도 참여했다. 2009년 만봉스님의 뒤를 이어 무형문화재 48호 단청장이 됐다. 이 밖에 동방불교대학 불교미술과 교수(1991~2005), 전통건축미술학교 단청강사(1991~1999), 불교방송국 단청강사(1997~2001) 등을 맡기도 했다. 현대미술대전 현대미술상(1993) 등 다수의 수상경력과 제1회 벽연회 단청소품전(1998) 등 10여 차례 초대전과 단체전을 가졌다.
  • 숭례문 복구 한달째 중단…시공사·목수간 임금 마찰

    숭례문 복구 한달째 중단…시공사·목수간 임금 마찰

    숭례문 복구공사가 지난해 12월 초부터 중단된 것으로 5일 확인됐다. 이에 따라 오는 12월 준공 일정에 차질이 우려된다. 공사 중단은 목공사 비용 인상을 요구하는 목수와 더 올려 줄 수 없다는 시공사 간 다툼에서 비롯됐으나 관리·감독을 해야 할 문화재청이 이를 한 달 가까이 방치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문화재청은 지금까지 시공사 측에 공문을 두 차례 보내는 데 그치는 등 형식적인 조치만 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화재청은 이날 “지난달 8일부터 목수들의 임금 단가 문제로 숭례문 복구공사 가운데 목공사가 중단됐다.”면서 “그러나 협의를 통해 이달 중에 목공사가 재개되면 당초 계획대로 4월까지 목공사를 끝낼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 달 가까이 늦춰진 공사가 이달 안으로 재개되더라도 4월 목공사 완료, 12월 준공이라는 복구 일정을 맞출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문화재청과 숭례문 복구공사 시공사인 명헌건설㈜ 간에 계약된 총 복구비용은 167억 8500만원이다. 목공사 비용은 15억 7800만원이 책정됐으며 명헌건설은 신응수 대목장 측과 13억 2300만원에 목공사를 계약해 공사를 진행해 왔다. 신 대목장 측은 애초 명헌건설과 계약한 공사비용에서 25~33% 정도를 추가로 더 책정해 달라는 입장이라고 문화재청은 밝혔다. 최종덕 문화재보존국장은 “이번에 제기된 목공사 임금 단가 문제는 최근 20여 년 동안 장인들이 공공연하게 써온 전동 공구를 못 쓰게 하고, 대패 등 낯선 전통도구를 사용한 전통기법으로 숭례문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인건비 등이 많이 늘어나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숭례문 복구공사는 성곽 복원과 문루 복구공사로 나뉜다. 문루 복구는 목공사가 끝난 뒤 기와공사를 하고 마지막으로 단청을 입히게 된다. 문화재청이 밝힌 복구 공사의 공정률은 70%다. 최 국장은 “목수들이 전통기법을 쓰겠다고 각서까지 작성했지만, 막상 복구공사에 들어가자 자귀질(자귀로 나무를 깎는 일)과 같은 전통 기법을 사용할 수 있는 목수가 한 사람밖에 없어 서로 배워 가며 공사를 진행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리고, 품도 많이 들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화재청은 “명헌건설과 목공사를 총괄하는 신응수 대목장 사이에 원만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율을 시도하고 있으나 돈 문제가 개입돼 있어 어려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단청 입는 佛와인

    단청 입는 佛와인

    정통 프랑스 와인이 한국 전통 색상인 단청(丹靑)을 입는다. 19일 국순당에 따르면 자사가 수입, 판매하는 프랑스 보르도 와인 ‘그랑드 포르테 뒤 쉬드’가 단청의 오방색을 적용한 새로운 라벨을 입는다. 이 와인은 2008년 화재로 소실된 숭례문이 라벨에 들어가 있어 일명 ‘숭례문(또는 남대문) 와인’으로 불리며 지난해 국내에서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프랑스 보르도에 있는 와이너리 샤토 갸호의 프랑스와 게즈 사장은 수년 전 한국 방문 중 인상 깊게 봤던 숭례문이 전소됐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 이를 회상하기 위해 ‘숭례문 와인’을 생산했다. 파리의 유명 한국 식당에서 판매되며 현지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던 이 와인은 국순당 직원의 눈에 띄어 국내에 들어오게 됐다. 게즈 사장은 국순당과 연을 맺은 후 와인 1병이 팔릴 때마다 500원을 문화재 복원 및 보호기금에 기부하기로 결정해 또 한번 감동을 줬다. 새로운 숭례문 와인은 캡실과 라벨 하단에 각 빈티지별로 오방색의 붉은색, 감색, 검은색, 노란색, 흰색을 적용했으며 라벨의 숭례문 그림과 어우러져 한국적인 분위기를 더욱 높였다. 2007년산은 붉은색, 2008년산 감색, 2009년산은 검은색, 2010년산은 노란색, 2011년산은 흰색을 입었다. 국순당 측은 “라벨에 한국 고유의 색깔을 입히고 싶다.”는 게즈 사장의 바람에 따라 오방색을 권했으며 디자인은 물론 라벨 제작은 전부 프랑스 현지에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숭례문이 소실된 2008년 빈티지의 경우 의미가 남다른 해인 만큼 최고 품질의 포도가 사용됐고 2008년을 기억하기 위해 2008병만 한정 생산했다. 한국에서는 1번에서 1008까지의 와인이 판매되며 1009번부터 2008번은 런던, 파리, 도쿄에서 판매될 예정이다. ‘그랑드 포르테 뒤 쉬드’는 갈비, 불고기 등 간장 양념을 기본으로 해 숙성시키는 한국 요리에 맞게 설계된 와인으로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레드 와인 품종인 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를 브랜딩해 만들었다. 국내에서는 지금까지 8000병 정도가 팔려 나갔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길섶에서] 남대문시장/최용규 논설위원

    봄에 갔을 때만 해도 달랐다. 재래시장이 죽었다고 하지만 남문안장은 그래도 인파로 바글바글했다. 썩어도 준치라고 했는데 600년 역사를 지닌 시장이 그렇게 쉽게 죽을 리 없지. 상자로 가린 숭례문을 곁눈질하며 장터로 들어선다. 왼쪽 첫 집에 눈길이 간다. 크리스마스 용품 천지다. 아! 연말이구나. 책상 앞에서 코 박고 있을 때, 달력에 ‘11월-NOVEMBER’ 아무 생각없이 스칠 때와 전혀 다른 감흥이다. 그런데 쓸쓸하다. 징글벨 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한데 찾는 사람이 없다. 무슨 절간도 아니고…. 남대문, 아니 ‘숭례문시장’ 갈치조림 골목. 여기도 마찬가지, 손님이 없다. 밥(손님)보다 고추장(상인)이 많다. 좁은 식당에 손이 없다 보니 더 휑하다. 필사적으로 손님을 끄는 아줌마의 호객행위가 안쓰럽다. 마치 1990년대 초 순화동 골목을 연상시킨다. 불황의 골이 깊다. 4000, 5000원이 무서워 도시락을 싸오는 상인들이 늘었다 한다. 훈풍은 언제 불까. 중국 사람, 일본 사람이 몰려 와야 풀릴까. 시장 가야겠다. 자칫하다간 그들이 얼어 죽겠다. 최용규 논설위원 ykchoi@seoul.co.kr
  • 신한은행, 숭례문 지킴이 등 문화재 보호활동 확대

    신한은행, 숭례문 지킴이 등 문화재 보호활동 확대

    신한은행은 국보 1호 숭례문 지킴이로 활약하고 있다. 서울 중구 남대문로에 있는 신한은행 본점은 2008년 2월 방화로 소실돼 복원 중인 숭례문과 마주 보고 있다. 이런 인연으로 신한은행은 지난 8월 문화재청과 ‘숭례문 복구 지원 후원약정’을 맺었다. 지난달에는 충남 부여의 한국전통문화학교에서 ‘숭례문 전통기와가마 화입식’을 열었다. 숭례문 복원을 위한 전통기와 제작을 위한 전통기와가마 3기, 제와막, 백와관 등의 시설을 구축한 것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화입식이란 가마에 처음 불을 넣는 일을 축하하는 의식이다. 신한은행은 가마제작에 들어간 비용 전액(4억원)을 후원하고 문화재청은 전통기와가마 원형복원 연구 등을 맡았다. 이번에 복원된 가마는 숭례문의 성공적인 복원과 전통문화를 공부하는 한국전통문화학교 학생들, 국내외 연수생들의 교육에 활용될 것이라고 신한은행 측은 설명했다. 신한은행은 그동안 숭례문 지킴이로서 매주 토·일요일에 숭례문 복구현장에서 공개관람 안내 등 자원봉사를 계속해 왔다. 숭례문 조명설치 비용 8억원도 후원하는 등 문화재를 아끼고 보호하는 사회적 기업을 추구하고 있다. 기부활동 외에도 전국 문화재 보호활동 등 임직원들의 봉사활동을 확대할 계획이다. 서진원 신한은행장은 “순수 전통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국보 1호 숭례문의 성공적인 복구를 기원하며 우리 문화재의 가치를 널리 퍼뜨려 국민의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일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묵호항’ 뱃사람들 애환 오롯이 내 마음속 등대가 되어…

    ‘묵호항’ 뱃사람들 애환 오롯이 내 마음속 등대가 되어…

    잎을 모두 떨군 나무가 시나브로 야위어 갈 쯤, 바다는 짙푸른 감청으로 물들기 시작합니다. 푸르다 못해 검게 일렁이는 바다와 마주한 포구는 추운 계절에 찾아야 제격입니다. 찬바람 부는 선창가와 잔뜩 움츠린 채 종종걸음으로 오가는 어민들의 뒷모습이 어딘가 포구의 쓸쓸한 이미지와 닮았기 때문이지요. 강원 동해시 묵호항을 다녀왔습니다. 한때 동해안 제일의 어업전진기지였다가 이제는 이름으로만 남은 포구지요. 세상에서 묵호는 가뭇없이 사라졌지만, ‘묵호 빌딩 언덕’이라 불렸던 판자촌엔 아직도 옛 향기 오롯합니다. 어여쁜 어달리와 묵호등대 등 둘러볼 곳도 제법 많고요. ●조붓한 고샅길 수놓은 담장 벽화 묵호항 뒤편 가파른 언덕. 작가 심상대가 소설 ‘묵호를 아는가’에서 “불이 켜지면 빌딩숲 같다.”고 표현했던 묵호동 언덕이다. 예전 외항선원들이 묵호항에 입항할 때면 두 번 놀랐단다. 항구 맞은편 묵호 언덕의 휘황찬란한 불빛에 놀랐고, 이튿날 아침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빌딩 숲 자리에 게딱지처럼 다닥다닥 들어찬 판잣집들의 몰골을 보며 또 놀랐다. 이 모두 묵호가 ‘잘나가던’ 시절의 이야기다. 묵호동은 인근 어달리와 대진리를 합친 행정 구역명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지금도 ‘묵호진동’이라 부른다. 영화를 누렸던 옛 묵호진(津)의 기억이 아련한 때문일 터다. 이제 옛 묵호는 없다. 1980년, 옛 명주군 묵호읍은 삼척군 북평읍과 합쳐져 동해시가 됐다. 그 이후 동해안 제1의 무역항이자 어업전진기지였던, 그리고 한때 금강산 관광선의 출항지였던 묵호는 이제 동해시의 한 동(洞)으로만 남아 있다. 갯바람에 밀려 묵호 언덕에 정착한 사람들이 그 위로 조붓한 길을 냈다. 논골마을이다. 밤이면 오징어배의 불빛으로 유월의 꽃밭처럼 현란하다고 했던 묵호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달동네다. 여느 바닷가 마을이 그렇듯, 붉고 푸른 지붕들이 낮은 담장 위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비좁은 골목길은 집을 에둘러 아슬아슬하게 언덕을 타고 오른다. 그 사이로 묵호등대가 들어섰다. 요즘에야 많은 사람들이 재미삼아 그 길을 오르지만, 고샅길에 박힌 속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건 묵호 사람들뿐이지 싶다. 후줄근했던 논골마을은 몇 해 전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논골담길’ 프로젝트에 따라 고샅길 담벼락마다 다양한 내용의 벽화가 그려졌다. 스케치는 미대생 출신들로 구성된 ‘공공미술 공동체 마주보기’ 회원들이, 채색은 60~70대의 마을 노인들이 맡았다. 담벼락 벽화가 그려진 시골마을을 찾는 게 뭐 그리 대수일까 싶지만, 논골마을 벽화는 확실히 남다르다. 단순히 낡은 집을 그림으로 가린 게 아니라, 한평생 바다와 함께한 마을 사람들의 신산한 삶의 이야기를 연작시처럼 그림 속에 듬뿍 녹여 냈다. 논골마을 둘러보기는 묵호항 어판장 맞은편 논골3길에서 시작된다. 묵호등대까지 차로 오른 뒤, 되짚어 걸어 내려오는 편한 방법도 있지만, 그보다는 고샅길 초입부터 차곡차곡 밟아 올라야 제격이다. 골목길은 뭉툭하다. 닳고 닳았다. 오랫동안 수많은 주민들이 한숨 쉬며 짚고 오른 흔적이다. 맨 먼저 이방인을 맞는 건 ‘논골갤러리’다. 빈집에 크고 작은 그림들을 그려 넣었다. 밤바다에 촘촘히 불을 밝히고 있는 오징어잡이 배와 불덩이처럼 솟아오르는 태양, 그리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생각나는 ‘묵호벅스’까지. 하지만 어쩌랴. 그림의 뒤편에서 풍겨오는 날카로운 쇠락의 흔적마저 가리진 못하는 것을. ●“마누라 없인 살아도 장화 없인 못 산다” 논골갤러리를 지나면 담벼락에 널린 오징어 그림이 눈길을 끈다. 1980년대만 해도 묵호의 열 가구 중 세 가구는 오징어를 말리는 일을 주업으로 삼았다. 남자들은 오징어잡이 배를 탔고, 아낙들은 밤새 오징어 배를 갈랐다. 아이들은 오징어를 입에 문 채 골목길을 뛰어다녔다. 마을엔 늘 오징어 냄새가 가득했고, 항구는 밤낮없이 흥청거렸다. 그림은 바로 그 시절에 대한 회상이다. 장화가 잔뜩 그려진 벽화도 그 기억의 연장이다. 제목이 재밌다. ‘마누라 없인 살아도 장화 없인 못 산다’라나. 묵호가 잘나가던 시절엔 물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 고샅길 바닥에 물이 마를 날이 없었단다. 그래서 장화는 묵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생필품이었던 것. 수많은 사람들이 신고 다녔던 장화가 담벼락 가득 그려졌다. 이처럼 벽화 하나하나에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기지 않은 것이 없다. 오래된 골목길을 걷다 문득문득 가슴 뭉클해지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묵호동은 사실 그리 높은 언덕이 아니다. 해발 67m에 불과하다. 하지만 가슴이 느끼는 마을의 높이는 결코 낮지 않다. 골목 구석구석 숨어 있는 벽화들을 감상하며 언덕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마을 꼭대기다. ‘묵호동 종점’이란 띠 두른 전봇대가 박혀 있고, 그 위로 묵호등대가 우뚝 솟아 있다. 바다의 수호천사를 상징하는 ‘천사날개 포토존’과 불꽃을 형상화한 조각 작품, 육당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 시구가 새겨진 소공원 등 볼거리가 제법 많다. 등대 안의 나선형 계단을 오르면 전망대다. 눈앞에 검푸른 바다가 시원스레 펼쳐진다. 묵호(墨湖)에 담긴 뜻이 예서 보면 확연해진다. 너른 바다는 가슴 속 앙금을 말끔히 씻어낸다. 상처받은 이에겐 한 잔 소주 같은, 바닷가가 고향인 이들에겐 어머니 젖가슴 같은, 그런 바다다. ●작고 예쁜 어달리 해변… 조각 작품같은 기암괴석 볼만 언덕을 에두른 고샅길은 버스 종점 앞 매점에서 다시 게구석길, 덕장길 등으로 구불구불 흩어진다. 어달리 쪽으로 내려가는 길도 있다. 방법은 두 가지. 등대 오른쪽은 묵호 수변공원에서 시작된 ‘등대오름길’을 되짚어 내려가는 길이다. 바다 쪽으로 트인 이 길에도 아름다운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등대 왼쪽은 출렁다리 방향이다. 예전 TV드라마 ‘찬란한 유산’에서 이승기와 한효주가 입맞추는 장면을 찍었다 해서 유명해진 곳이다. 큰길로 내려 서서 왼편으로 돌면 왜구를 물리쳤다는 호국 문어상과 만난다. 그 옆의 거무튀튀한 바위는 까막바위다. 서울 숭례문에서 정확히 동쪽 방향에 있다는 바위다. 현지 어민들은 이 바위에 경외감 비슷한 감정을 갖고 있다. 까막바위 굴에 문어의 영혼이 산다고 해서 해녀들도 다가가지 않는다고. 까막바위에서 모퉁이를 돌면 느닷없이 예쁜 마을이 튀어나온다. 어달리다. 모래해변의 길이가 300m, 폭이 20~30m에 불과한 조그만 바닷가 마을이다. 여느 동해안 해수욕장과 달리 경사가 완만한 데다, 모래가 곱고, 수심 1m를 넘지 않는 해변이 바닷가 쪽으로 이어져 있어 가족단위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다. 특히 낚시 포인트로 명성이 자자해 평일에도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넘친다. 기왕 예까지 온 터에 동해 제1경 추암해변을 찾지 않을 수 없다. 조선시대 재상 한명회가 추암해변의 절경에 탄복해 ‘미인의 걸음걸이’를 뜻하는 능파대라 이름지었다고 전해진다. 촛대바위와 능파대 주위로 파도와 비바람에 깎인 기암괴석이 조각 작품처럼 늘어서 있어 ‘작은 해금강’이라 불린다. 묵호등대에서 삼척 방향으로 해안도로를 따라 20여분 달리면 나온다. ■여행수첩(지역번호 033)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영동고속도로→강릉분기점→동해고속도로→망상 나들목→묵호 방향→묵호항 순으로 간다. 논골담길은 선어판매센터에서 북쪽으로 300여m 가면 나온다. 묵호등대로 곧장 가려면 일출로에서 논골3길 방면으로 좌회전한 뒤 묵호동주민센터를 끼고 우회전해 곧장 가면 된다. ▲맛집 묵호항은 오징어와 가자미 등의 물회가 유명하다. 가자미 물회의 경우 묵호항 선어판매센터 앞 횟집들에서 1만 5000원이면 맛볼 수 있다. 까막바위 인근 ‘오부자횟집’(533-2676)은 냄비 물회 전문점. 횟집으로는 부흥횟집(531-5209)이 유명하다. ▲잘 곳 묵호항 인근 동해관광호텔(533-6035)과 꿈의궁전모텔(532-9996)은 바닷가에 붙어 있다. 침대에 누워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 묵호등대 바로 아래에도 펜션이 있다. 글 사진 동해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천장에 작은 구멍 내면 화재확산 방지 복원 중인 숭례문에도 고려할만 하다”

    “천장에 작은 구멍 내면 화재확산 방지 복원 중인 숭례문에도 고려할만 하다”

    “우리나라 목조건축에 대한 소방시설을 대부분 해놨다고 하더라도 진정한 관리자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낙산사 전소(2005년), 창경궁 문정전 화재에 이어 수원 화성 서장대 전소(2006년), 숭례문 화재 사건(2008년) 등등. 요즘 산과 들에는 낙엽이 많이 쌓이고 있다. 행락객들도 많아지고 있다. 날씨는 점점 건조해진다. 깊은 산사 주변의 문화재는 목조건축이 대부분이라 어느 때보다 화재위험에 노출돼 있다. 동절기 화재예방, 그리고 화재방지시스템 등을 ‘똑 부러지게’ 점검해야 할 시기다. 목조건축 전문가로 잘 알려진 현고스님(전 송광사 주지)을 지난달 27일 송광사에서 만났다. 스님은 송광사 건물 64개동 가운데 3개동만 빼놓고 모두 개·신축을 맡아했다. 또 김천 현암사, 울진 불영사, 제주 번화사, 광주 신관사, 화순 운주사의 대웅전·요사채 등 지금까지 스님의 손을 거쳐간 목조건축물이 180여채나 된다. ‘불사(佛事)의 귀재’라는 별명을 얻은 이유다. 먼저 목조건축에 대한 화재 대비는 어떻게 해야 하는게 가장 좋은지를 물었다. “우선 불의 성질을 잘 알아야 합니다. 목조건물인 경우 마루에서 붙은 불은 순식간에 천장 쪽으로 올라갑니다. 마치 기다란 헝겊에 불이 붙었을 때처럼 말입니다. 숭례문 화재만 하더라도 불이 붙어 천장으로 곧바로 올라갔는데 천장이 꽉 막혀 있었지요. 그러자 불은 압력에 의해 옆으로 확 퍼졌습니다. 그런데 이때 밖에서 물을 마구 뿌려대 오히려 산소만 공급해 주는 역할을 했지요. 부채질을 한 셈이지요. 진압을 할 수 없는 상황이 금방 벌어진 것입니다. 만약 이때 천장에 구멍이 있다면 불은 구멍 속으로 자동적으로 확 빨려 올라갑니다. 구멍이 바로 굴뚝 역할을 해주는 셈이지요. 목조건축을 지을 때 기둥이 있는 천장에 작은 구멍을 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바로 화재가 발생해도 더 이상 확산이 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복원 중인 숭례문에도 화재방지를 위해 한번쯤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물론 원형성 유지와 불가피한 변형 등을 놓고 논란이 있겠지만 미관상 처리만 잘되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나라 목조건축과 관련, 화재발생에 대한 여러 가지 단계적 실험을 거쳐 적립된 매뉴얼이 거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스프링클러 같은 시스템으로 100%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은 오산이지요. 화재는 0.1%의 오차도 허용해서도 안 됩니다. 또한 수막설비같은 것은 동절기에 작동이 안될 수도 있거든요. 소화탄과 소화기의 사정거리는 어떠한지 등의 단계적 대응시스템을 꼼꼼히 살필 때가 됐습니다.” 이어 그는 “전통 사찰의 경우 대부분 문화재가 있기 마련인데 전문적인 관리 시스템과 매뉴얼이 전혀 없다.”고 재차 강조한다. 시설이나 장비 등을 작동하는지 몰라 시간을 보내다가 노후화된 뒤 교체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때문에 “영국의 의사들처럼 종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유급자를 두어 지역 할당제를 도입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제안한다. 사찰인 경우 각 교구본사별로 두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부연한다. “제 손을 거쳐간 목조건축물들은 대부분 칸과 칸 사이에 격벽을 쳐서 불이 붙어도 옆 칸으로 못 건너가도록 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목조건물들은 10분 안에 진화하지 못하면 실패로 돌아갈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전소되고 만다는 뜻이지요.” 스님은 전남 완도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다가 중도에 그만두고 1971년 송광사에서 구산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이후 1994년부터 4년동안 송광사 주지를 했고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 불교문화사업단장, 총무원장 권한대행 등을 거쳤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불교대중화를 위해 ‘템플스테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와 관련, 그는 “유럽과 미국의 석학과 지성들이 병풍 쳐놓고 자기 명상을 할 정도로 한국불교가 세계화됐다.”고 말했다. 현재 광주광역시에 있는 원각사 회주로 있으면서 불교 요양원 시설 확충에도 앞장서고 있다. 불사계획을 묻자 “우리의 전통 고건축 기법으로 한 400평 규모의 최대 목조건물을 구상중에 있다.”고 말했다. 글 사진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 숭의여대 디자인 발표회

    숭의여대 디자인계열은 ‘지속 가능한 에너지 사랑-중구’라는 주제로 30일까지 캡스톤 디자인 발표회를 연다. 평화시장, 숭례문 수입상가, 중구시설관리공단, 관내 어린이집을 비롯한 중구 소상공인 및 기관·단체와의 기술제휴를 통해 현장 수요에 적합한 기업·브랜드 이미지, 패키지 디자인, 패션상품 디자인 등을 선보인다. 이 발표회는 디자인 나눔 프로젝트의 하나로 마련됐다.
  • 숭례문 기와 가마 11일 첫 불 붙인다

    숭례문 기와 가마 11일 첫 불 붙인다

    숭례문 복원에 쓰일 기와를 굽는 가마에 11일 첫 불이 붙는다. 복원에 필요한 기와는 모두 2만 2463장. 복원 공사 도중 깨질 수 있는 양까지 합쳐 약 3만장의 기와를 내년 3월까지 충남 부여 한국전통문화학교에서 생산하게 된다. ●전통 기법으로 조선 기와 만드는 유일한 장인 기와 작업을 진두지휘하는 이는 한형준(82) 제와장(製瓦匠). 한 제와장은 중요무형문화재 제91호로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전통적인 제와 시설과 기법으로 조선 기와를 만드는 장인이다. 기와 만드는 흙을 차지게 밟는 일을 열다섯 살부터 시작한 그는 직업병으로 말미암은 관절염 때문에 왼쪽 다리가 불편하다. 하지만 지팡이를 짚고 다지면서도 전통 방식으로 숭례문을 복원하는 일에 혼신의 정열을 불태우고 있다. 한 제와장이 운영하던 전남 장흥군의 작업실에서 하루에 최대 생산 가능한 기와의 수는 40여장이었다. 이에 부여 문화학교에 신한은행 후원으로 전통 기와 가마 3기를 새로 만들었다. 가마 한곳에 들어가는 기와의 수는 모두 850장. 한꺼번에 2550장을 구울 수 있는 셈이다. 기와는 가마에서만 일주일가량 보낸다. 마르는 것까지 끝나 완성되려면 총 3주가 걸린다. ●유약 쓰지 않고 장작불에 논흙 구워 숭례문 기와는 가스불이 아니라 장작을 때는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장작은 부여 산판에서 공급받고, 기와를 만드는 데 쓰는 흙도 부여의 논흙을 쓴다. 부여 지역에서는 백제와 고려시대의 기와 가마터가 현재까지 10기 이상 발굴될 정도로 흙의 품질이 좋다. 기와는 옹기나 도자기와 달리 어떤 유약도 쓰지 않는다. 3분의1 정도 모래가 섞인 진흙, 즉 논에서 나는 흙을 굽기만 할 뿐이다. 특히 조선 기와 특유의 은은하면서도 고운 회색은 장작불의 연기로 만들어낸다. “숭례문에 기와 올리는 날이 내 인생 최고의 날”이라고 항상 강조했던 한 제와장은 전수 조교들과 함께 만족스러운 색깔과 강도, 소리를 갖춘 기와를 만들기 위해 직접 장작불을 땔 예정이다. 한때 전통 기와는 공장에서 생산되는 것보다 강도가 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숭례문 복구에 쓰일 기와 선정을 위한 한국전통문화학교의 실험 결과 전통 기와가 동파에 강하고 흡수율도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구멍 뚫린 문화재 감정

    문화재 감정위원들이 허위 근무실적을 제출하는 방식으로 수당을 챙겨온 탓에 문화재의 국외 반출을 막아야 하는 감정 업무에 구멍이 뚫린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이 17일 공개한 문화재청 기관운영 감사 결과에 따르면 감정위원 13명은 786일의 허위 근무실적을 제출, 총 6941만원의 부당 수당을 챙겼다. 또 이들이 근무하지 않은 기간에 항공기와 선박 499편이 그대로 출항해 감정 업무에 공백이 생겼다. 예컨대 속초항·양양공항·고성남북출입사무소 비상근 감정위원 A씨는 2007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감정수당을 받은 875일 중 387일은 근무를 하지 않았는데도 허위로 근무실적을 제출해 3455만원을 부당하게 수령했다. B씨는 고성군에 지방별정직 7급 공무원으로 채용된 뒤에도 겸직 허가를 받지 않고 감정위원으로 활동, 이중 수입을 챙겼다. 감사원은 이들로부터 감정수당을 회수하는 한편 A씨와 B씨를 사기 혐의로 고발하고 공무원 겸직금지 의무를 위반한 B씨에 대해서는 징계를 요구했다. 특히 골동품으로 수출 신고된 165건 중 단 한건도 비문화재 확인서를 구비하지 않고 통관되는 등 화물 운송을 통한 문화재 국외반출 방지 시스템도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 결과 반출 금지 대상으로 조선시대에 제작된 목재반닫이 한 점과 허가를 받아야 반출할 수 있는 나전칠경대(조선 후기 제작) 한 점이 국외로 무단 반출됐다. 이와 함께 국보 1호인 숭례문이 방화로 소실된 지 3년 6개월이 지났지만 방재 시스템 구축 사업이 문화재의 유형별 특성과 방재설비의 특성을 무시한 채 주먹구구식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경주 기림사 대적광전(보물 833호)과 독락당(보물 413호) 등 목조문화재의 경우 열감지기만으로는 화재 발생을 초기에 감지하기 어려운데도 경주시가 열감지기 설치를 승인, 화재 발생 시 초동 진화를 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문화재 유형별 방재설비 설치 기준이 없어 화재감지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감사원은 문화재 수리업자 또는 매장문화재 발굴 업체 대표자나 상근 임직원인 경우 등에는 문화재 위원에서 해촉하도록 돼 있는데 해촉·제척 사유에 해당하는 8명을 그대로 위원으로 둬 문화재위원회 심의의 공정성을 의심받게 했다고 지적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사설] 불에 탄 국보1호, 폭우에 훼손된 보물1호

    우리 문화재가 악마의 발톱에 노출된 채 몸살을 앓고 있다. 불과 3년 전 국보 1호 숭례문(남대문)이 방화로 잿더미가 되는 참사를 겪고도 문화재 관리는 여전히 부실한 상태다. 이번엔 보물 1호인 서울 흥인지문(동대문) 문루의 지붕 일부가 폭우로 떨어져 나가는 일이 벌어졌다. 104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라고 그렇게 아우성을 쳤으면 당연히 그에 대비하는 ‘보물지키기’ 작전이라도 펼쳤어야 했다. 그러나 최소한의 문화재 보호의식도 찾아보기 힘들다. 관할 종로구청은 사고가 언제 일어났는지조차 몰랐다. 심지어 시민의 신고를 접수하고도 나흘이나 지나서야 보수작업에 들어갔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는 것이다. 아무리 문외한이라도 한번 망가진 문화재는 원형 회복이 쉽지 않다는 것쯤은 알 것이다. 선제적인 보호대책은 고사하고 ‘응급환자’처럼 다뤄야 할 문화재 훼손 사건을 며칠씩이나 방치하다니 나사가 빠져도 한참 빠졌다. 엄중히 문책해 다시는 이 같은 문화재 수난사태가 없도록 해야 한다. 이번에 훼손된 것은 용마루와 연결되는 내림마루 부분으로, 용마루의 삼화토가 제대로 배합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실공사라는 것이다. 또 폭우가 내리면 붕괴될 위험이 있다는 경고음도 들린다. 보수작업에 앞서 정밀진단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문화재 보호·관리에 대한 인식을 가다듬는 일이 중요하다. 전국적으로 수난을 겪고 있는 문화재는 한둘이 아니다. 선사시대 유적인 반구대 암각화(국보 285호)는 46년째 침수로 날로 훼손돼 가고 있다. 2015년까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본목록에 등재하겠다고 큰소리 칠 때가 아니다. 보다 내실 있는 문화재 대책이 아쉽다. 문화재는 문화재청 전문가나 담당 구청 공무원이 대신 지켜주는 게 아니다. 이번 흥인지문 훼손 사실이 시민의 제보로 드러났듯 진정한 문화재지킴이는 바로 깨어 있는 국민 각자임을 명심해야 한다.
  • [지자체에 제동걸린 SSM] 서울 중구, 전통상권 500m이내 입점 제한

    서울 중구 전통상권 주변 500m 이내에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진입이 제한된다. 중구는 남대문시장과 평화시장, 서울중앙시장 등 24곳을 전통상업보존구역으로 지정해 공시했다고 24일 밝혔다. 이에 따라 전통시장과 상가 경계로부터 500m 이내에는 대규모 점포(매장면적 3000㎡ 이상)나 준대규모 점포(3000㎡ 이하 중 대형회사 또는 계열사 직영 점포)의 입점이 원칙적으로 제한된다. 입점하려면 전통시장과 상생할 사업계획서를 낸 뒤 해당 지역과 협의를 해야 한다. 구는 대형 및 중소 유통기업 대표, 소비자 대표, 상공회의소 관계자 등 11명의 위원으로 하는 ‘유통업상생발전협의회’를 구성해 전통상업보존구를 지정했다. 지정된 곳은 남대문시장과 숭례문상가 등 남대문 권역, 평화·남평화·제일평화·광희·청평화시장 등 동대문패션타운 권역이다. 오장동 중부시장과 주교동 방산종합시장, 신당동 약수시장, 소동지하도상가, 명동역지하도쇼핑센터 등도 포함됐다. 협의회에서는 유통업 간 상생발전 방향 협의, 유통분쟁 조정, 전통상업보존구역 지정에 대한 사항 등을 논의한다. 최창식 구청장은 “전통상업보존구역 지정은 전통시장과 영세상권을 보호하기 위한 초석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 소상공인과 중소유통업체가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18일 TV 하이라이트]

    ●과학카페(KBS1 밤 11시 40분) 환경오염 문제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가 지속되면 100년 후에는 지구의 평균 온도가 6도 상승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렇게 되면 대멸종도 피할 수 없게 된다. 지구와 인류를 구하기 위한 실천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지구와 더불어 공존하는 법을 익힌 지구인들을 만나 본다. ●스파이 명월(KBS2 밤 9시 55분) 명월은 한류 스타 강우와 결혼하라는 지령을 받고 난감한 상황에 처한다. 이 명령에 류는 희복과 함께 임무를 수행할 또 다른 요원 옥순을 투입하고, 옥순은 여성성이 결여된 명월의 교관이 된다. 하지만 마음먹은 대로 강우가 잘 유혹되지 않자 명월은 조바심 난다. 한편 강우는 도깨비라는 사람을 찾기 위해 희복의 흥신소를 찾아간다. ●MBC네트워크 특선(MBC 오후 2시 55분) 평균 수명 100세 시대를 앞두고 있다. 은퇴자들은 말 그대로 이팔청춘의 건강한 노인들이다. 잠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 등을 빼더라도 은퇴 뒤 하루에 약 11시간 정도가 남는다. 11시간에 365일을 곱해 20년이면 약 8만 시간이 된다. 단지 나이가 들었다고 직장 밖으로 내몰린 이들. 이들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무사 백동수(SBS 밤 9시 55분) 동수는 연무장 밖으로 나와 마당 앞에서 대포 시신을 발견한다. 장미와 미소가 대포 주검 앞에서 울고 있다. 멍한 표정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동수와 쳐다보는 여운. 대포 시신 앞에 서 있던 동수는 풀썩 무릎을 꿇고 굵은 눈물을 뚝뚝 흙바닥에 떨어뜨리는데…. 한편 지선은 힘겹게 눈을 뜨고 몸을 추스른다. ●직업의 세계-일인자(EBS 밤 10시 40분) ‘숭례문에 기와 올리는 날이 내 인생 최고의 날’이라고 말하는 제와장 한형준. 70년 외길인생, 여든네 살의 노구에도 흙과 불로 조선의 맥을 잇고 있다. 슬레이트 지붕과 시멘트 기와가 흔한 지금도 직접 흙을 발로 밟아 반죽하고, 전통 가마에 기와를 구워낸다. 중요무형문화재 91호 제와장 한형준을 만나 본다. ●경찰 25시(OBS 밤 11시) 경기 일산의 한 휴대전화 매장에서 여직원의 고가 핸드백을 비롯해 귀중품들이 사라졌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폐쇄회로(CC) TV를 확인한 결과 용의자는 손님으로 위장하여 직원의 눈길을 피해 범행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용의자가 범행을 저지르는 데 걸린 시간은 단 2분. 과연, 형사들은 이 용의자를 검거할 수 있을까.
  • 새단장 서울 남산 소월길 준공

    서울시는 남산 소월길 도로와 보도 3.4㎞를 보행자 편의 위주로 개선해 1일 준공했다고 밝혔다. 남산 소월길은 남산 남쪽 기슭에 있는 숭례문에서 한남동에 이르는 도로로 수목이 우거져 경관이 아름답고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그동안 보도 폭이 1m 내외로 좁아 보행자들에게 불편을 줬던 구간의 폭을 2.5~3m로 넓히고, 주변 경관을 살필 수 있는 3개의 데크와 띠 녹지 4곳을 설치해 쾌적한 보행 여건을 조성했다. 특히 용산구 후암동 후암초등학교 주변에 설치돼 도시 미관을 해치던 기존 방음벽과 담장을 철거하고 친환경적인 방음 녹지와 방음둑을 설치해 남산 길의 독특한 멋을 살리고 방음 효과도 높였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서울 성곽 ‘육교식·형상화 방식’ 연결

    서울 성곽 ‘육교식·형상화 방식’ 연결

    조선 태조 이성계가 축조한 뒤 일제강점기 등을 거치며 파손된 서울성곽이 복원을 통해 2014년 하나로 연결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도 추진된다.<서울신문 STV 4월 22일 방송·서울신문 4월 25일자 11면> 서울시는 서울성곽 18.627㎞ 중 도로나 주택으로 끊긴 5.127㎞ 구간에 대해 육교식 성곽이나 방향표시 지형물 등을 설치하는 ‘형상화 방식’으로 연결하기로 했다고 18일 밝혔다. 광희문과 장충체육관 일대 등 36곳은 도로 바닥에 옛 성곽 터를 따라 화강석을 깔고 감속 구간으로 지정해 자동차들이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서소문~사직단, 혜화동, 흥인지문~장충동 등 주택가가 조성돼 성곽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곳은 성곽 터를 따라 바닥에 2m 간격으로 ‘서울 성곽 탐방로’라고 새겨진 성곽 모형의 주물 바닥 표지판을 만들어 보행자들이 다음 성곽으로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했다. 서울시는 성곽이 복원되면 인왕산과 백악산이 있는 창의문~숙정문~성북동 구간은 ‘생태전망코스’로 운영하고, 덕수궁과 구 러시아공사관 등이 있는 숭례문(조감도)~소의문~돈의문 구간은 ‘근대역사코스’로 운영할 예정이다. 또 숭례문~남산 N타워~장충동은 ‘남산 가족코스’로 운영하고 서울성곽 8경을 지정해 ‘서울8경코스’도 만들 방침이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서울성곽’ 2014년 복원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서울성곽’ 2014년 복원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현대식 건물과 도로 때문에 끊어진 조선시대 ‘서울성곽’의 단절 구간이 2014년까지 복원을 통해 하나로 이어진다. 이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도 추진된다. 서울시는 문화재청과의 협의를 거쳐 올해 안에 서울성곽 단절 구간에 대한 복원 설계를 끝낸 뒤 내년부터 공사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24일 밝혔다. ●1975년부터 사업시작 총길이 18.6㎞의 서울성곽 중 건물과 도로 탓에 끊긴 구간은 모두 45곳(약 5㎞)으로, 이 가운데 9곳(1㎞)은 구름다리 등 ‘상부형상화’를 통해 복원한다. 서울시는 복원할 수 없는 사유지 등 36곳(4㎞)에는 주물로 된 보도블록에 성곽의 형상을 표시하기로 했다. 상부 형상화가 이뤄지는 곳은 도로 탓에 성곽과 단절된 혜화문과 숭례문, 흥인지문 주변 등 아홉 군데다. 성벽 모형의 구름다리를 만들어 아래로는 차량이 다니고 위로는 시민들이 걸어다닐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또 사유지 등으로 성곽이 단절된 구간은 옛 성곽 터를 따라 바닥에 성곽 모형의 주물을 심어서 바닥 표지판을 따라 보행자들이 다음 성곽으로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하기로 했다. 안승일 서울시 문화관광국장은 “서울 성곽의 복원은 정부가 1975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사업으로 복원이 마무리되면 서울성곽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앞서 오세훈 시장은 2009년 9월 유네스코의 자문기관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관계자를 만나 조선왕조 수도의 기틀이 된 한양(서울)의 성곽을 체계적으로 발굴, 정비해 세계인에게 알리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역사적 가치 되살리는 계기 되길” 성곽 복원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도 크다. 서울성곽 남산 구간에서 만난 주부 김형주(63)씨는 “서울성곽도 남한산성처럼 하나로 이어져 시민들이 걸으면서 성곽 전체를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버스기사 이명숙(48)씨는 “남대문과 동대문이 하나의 성곽으로 이어지면 만리장성 못지않은 관광자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곽길 안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시민단체인 서울KYC(한국청년연합) 하준태 사무처장은 “서울성곽은 일제강점기에 도로 개설과 관사 건축 등을 거치면서 평지에 있는 성곽이 철거되고, 이후 서울 도심이 확장되면서 여러 곳이 단절됐다.”면서 “단순히 성곽을 잇는 것만이 아니라 현대적 의미에 맞게 성곽의 역사적 가치를 살리는 복원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서울 도심 ‘3색 화살표’ 신호등 도입

    서울 도심 ‘3색 화살표’ 신호등 도입

    서울 광화문 등 주요 교차로에 기존 4색 신호등을 화살표 모양의 3색 신호등으로 바꿔 20일부터 시범운영한다. 서울경찰청은 ‘내자동 교차로∼서울 광화문 삼거리∼동십자각 교차로 구간’과 ‘광화문 삼거리∼세종로 사거리∼서울시청 앞∼숭례문 교차로 구간’ 등 모두 11개 교차로에 화살표 3색등을 설치해 운영한다고 18일 밝혔다. 새 신호등은 왼쪽부터 ‘빨간색-노란색-녹색 좌회전-녹색 직진’ 순서로 배치된 기존 신호등과 달리, ‘빨간색-노란색-녹색’의 3색등이 직진 차로와 좌회전 차로에 각각 설치된다. 직진일 때 좌회전 차로의 신호등에는 빨간색 화살표가, 좌회전할 때는 직진 차로의 신호등에 빨간색 동그라미가 표시된다. 화살표 3색 신호동이 시범 도입되는 교차로에는 ‘적색 화살표 좌회전 금지’라는 보조 표지를 달아 운전자의 혼란을 최소화할 계획이다. 경찰은 “신호 운영체계를 국제 표준과 일치시키고 방향, 차로별로 신호를 줘 운전자 혼란을 줄이려고 새 신호등을 설치했다.”면서 “‘적색 화살표 좌회전 금지’라는 보조 표지를 달아 시행 초기의 혼란을 최소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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