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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의 조형예술 龍으로 읽다] 경복궁 근정문 상량문 /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세계의 조형예술 龍으로 읽다] 경복궁 근정문 상량문 /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용이 무량한 물을 상징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작품은 경복궁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 모든 것이 갖는 상징적 의미를 알기는 어려우니 쉬운 것부터 살펴보자. 숭례문에 화재가 일어났을 때 목조건물의 구조상 화마(火魔)가 얼마나 가공할 재난을 낳는지 모두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숭례문은 도성(都城)의 문에 불과하다. 흥선 대원군이 이제 조선 역사상 처음으로 황제의 나라가 되었으므로 그에 걸맞은 국력을 회복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임진왜란 때 전소한 경복궁을 중건했을 때 가장 두려웠던 것도 화마였다. 경복궁은 1865~1867년 전국의 소나무를 물색하여 전체 7225칸의 대규모로 다시 지은 정궁(正宮)이므로 화재를 방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했다. 우선 광화문 앞에 마주 배치한 해치 조각도 몸에 무량보주가 새겨 있어서 물을 응축시킨 모양을 상징하는 보주(寶珠)의 집적임을 알 수 있다. 정전(正殿)인 근정전의 정문인 근정문(勤政門)을 보수할 때 상량문과 함께 나온 세 가지 화마 방지책이 있었으니 첫째는 용 그림이요, 둘째는 물 수(水)라는 글자요, 셋째는 모서리마다 ‘水’ 자를 새기고 그 부분만 도금한 육각형 은판이다. 이 세 가지는 무엇을 상징할까, 왜 상량문에 넣었을까? 첫째, 용이란 강력한 물을 상징한다. 용 그림을 채색 분석해 보면 고구려 벽화에서처럼 양 어깨 부분에서 불꽃 모양이 뻗쳐 올라간다. 불꽃 모양 같지만 불꽃이 아니라 용을 탄생시키는 생명 생성의 근원인 영기문이다. 용과 용의 입에서 생긴 보주의 가치는 같다. 하나의 큰 보주이지만 용처럼 무량한 보주, 즉 무한한 바다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둘째, 물을 뜻하는 ‘水’라는 글자는 자세히 보면 용(龍)이라고 쓴 작은 글자 1000개를 모아 ‘水’라는 글자를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확대해 보는 순간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용이라는 존재가 바로 무량한 물이라는 상징을 이처럼 직설적으로 표현한 예를 보지 못했다. 용을 ‘상상의 동물’이라 인식하고 있으면 그 오랜 선입관 때문에 용이 무량한 물이라는 고차원의 상징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다. 셋째, 육각형 은판의 귀마다 새겨진 ‘水’ 자는 중요하므로 금색으로 칠했다. 육각형을 잇대어 놓은 문양은 으레 귀갑문(甲文)이라 부른다. 그러나 육각형은 물의 구조다. 그래서 필자는 육각수문(六角水文)이라 부르고 있다. 물이 얼어서 생긴 눈은 공통적으로 육각형의 모양을 띤다. 육각수문을 연접하면 모서리가 셋이 모여 묘(淼)라는 글자를 이룬다. 이 글자는 바다같이 넓은 물을 가리킨다. 나무가 셋 모이면 삼(森)이란 글자가 돼 숲을 이루는 것과 같은 이치다.이처럼 세 가지 물을 상징하는 전혀 다른 표현 방법으로 부적 같은 것을 만들어 상량문과 함께 봉안한 뜻을 헤아려 보면 옛 장인들이 얼마나 화마를 두려워했는지 알 수 있다. 목조로 지은 궁궐은 화마에는 속수무책이었다. 21세기 세계 굴지의 대도시라는 서울의 소방차를 모두 동원해도 숭례문 화재를 진압하지 못했다. 하물며 한 건물이 타면 모든 전각에 번져 삽시간에 잿더미가 되는 경복궁은 말해 무엇하랴. 그래서 당시 화마를 미리 막는 것은 여러 가지 상징적 방법밖에 없었다.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 [인사]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 기록서비스부장 정윤기△서울시 재무국장 전출 박재민△개인정보보호위원회 사무국장 장수완△울산시 기획조정실장 최장혁 ■해양수산부 △수출가공진흥과장 김종실△국립수산과학원 대외협력과장 조성대 ■전북도 ◇국장급△전북발전연구원 파견 이지영△국방대 안보과정 장기교육 김인태 ■한국주택금융공사 ◇1급 승진△주택보증부장 서영대△홍보실장 차경만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본부 공학단장 송정일 ■KB금융지주 ◇부장△재무기획 이재근△HR 윤여운△전략기획 이창권△리스크관리 정영삼△홍보 최인석△디지털금융 박종욱△정보보호 배진호◇실장△비서 성채현◇이사회△사무국장 직무대행 박영세 ■국민은행 ◇승진 <수석부장>△여의도법인영업 김종대△여의도영업 윤설희<수석지점장>△가락동 강신주△강동구청역 김용식△강릉 박상준△경안 김평희△고현 손해락△광화문 임필규△길동 이창길△대구 강석곤△대덕특구 안동학△대림동 허제량△마포역 박지수△명학 지운용△무교 조순옥△미금역 김병윤△본리동 신순봉△부평 권두현△삼성센터기업금융 김수영△서대문 김종란△서소문 최종근△성남하이테크밸리 서강오△세종로 황상호△송파 이경렬△수내역 고인호△시흥 윤사현△신림남부 최대진△신림본동 정공훈△신림서 김경택△신촌 김기영△아현동 이상무△압구정서 신석우△야탑역 전갑수△양재남 이우열△양평동 오기홍△여의도 양재영△역삼동 양정순△오산운암 김성문△온천동 최종근△용인 박형식△유성 임채능△응암오거리 김용현△이수역 강영호△이천 전영미△인덕원 박종각△일산 박린삼△장위동 최상집△장한평역 정동락△주엽역 이진기△진주 정희식△철산역 구자정△충무로역 김정권△평촌범계 박정운△포항남 윤영호△하안동 엄완용<수석센터장>△가산디지털종합금융 양용현△강남역종합금융 이계성△광산종합금융 박희숙△구로동종합금융 허진△시화공단종합금융 신병철△영등포하이테크종합금융 문원희△이촌PB 문용술△종로중앙종합금융 최봉문△창원종합금융 백충렬<부장>△구조화금융 전광식△수신IT 홍성우△자금 이승종△정보보호 최형철△총무 최석문△IT운영 이건우△IT혁신 이지애△WM상품 범진철<수석심사역>△기업여신심사부 김현민 오세관<해외지점장>△홍콩법인 노재구△하얼빈 연규희△글로벌사업부 조사역 금경화<지점장>△가경남 명현식△가능동 서대철△가산라이온스밸리 전홍철△가산테크노타운 유인상△가장동 최성규△강화 김민수△검단산업단지 김용운△검단 사혜난△고잔 손일권△고촌 노진호△곡선동 정명재△광교테크노밸리 김민호△광주금호 유남근△광화문역 이학묵△구로디지털 김회섭△구미역 강소향△김천 김시범△김포양촌 조문건△김포통진 이재운△김해율하 박준△남원 이순석△내손동 김민철△내외동 송정섭△노원역 박인선△논산 한상엽△능곡 김기용△대구메트로팔레스 엄성용△대구용산 정한대△대림3동 정돈△대명동 최일식△대봉동 마성권△대전은행동 박민수△도곡중앙 박옥자△동삼동 안병수△동탄하늘빛 박오규△동판교 김두성△두암동 양일권△두정역 박면규△디지털밸리 박찬용△마산역 이봉중△마석 오익현△망포역 박종수△모라 김광진△무진로 정금연△문흥동 안기종△미남 신현제△박달동 홍영구△반여동 손정곤△반포역 이양구△발산동 김일중△병점 황시연△복현동 이돈형△봉천역 김미경△부개동 박용진△부곡동 김지관△부여 정연수△부천서 류현숙△부천위브더스테이트 김정도△북한산시티 김하수△분당중앙 윤상옥△분평동 이명수△불당동 이문식△삼방동 고재흥△삼송 최태용△상봉역 장민자△상주 배정호△서래 권성기△서시화 이침우△서창 최규석△성수동 조종경△성수역 이강석△세종첫마을 진익철△송강 박상권△수안동 김명준△수원시청역 심언호△수원역 정연숙△수지동천 나영석△수지신봉 송낙성△순천 정현석△숭례문 신용순△숭실대역 장연수△시흥능곡 박경도△신길서 김연규△신도봉 황기성△신매탄 김태영△신장 황병웅△신정중앙 남일환△신포동 박승민△신해운대 손호근△쌍용서 고덕종△아시아선수촌 김을희△안동옥동 권혁기△안양벤처밸리 박창수△안중 김정광△압구정중앙 강화구△양산동 진기섭△양산 김성국△양정동 박우락△양평역 이광식△엄궁동 이장원△여의도리버타워 손계향△여천남 박기례△역삼서 김영기△예산 김성운△오산원동 김갑수△오천 김시영△오포 이준성△옥천 오만진△용인보라 최병혁△용인흥덕 이종△우면동 유강현△운정남 윤정식△울산병영 류연목△울산북 윤정근△유성도안 강신철△율량동 김정훈△은평뉴타운 김성환△음성 김규영△의왕역 백은숙△인제 김갑순△인천남동 김철균△인천논현 김용필△인천원당 윤지홍△일산가좌 배천열△일산식사 신순호△잠실나루역 신상천△잠실엘스 박현숙△전곡 김대규△전포동 우현용△정관신도시 정천화△정평동 박용권△진영 박시덕△진접금곡 황기수△창우동 사재상△천호역 오시현△철원 이수연△칠곡 권영대△탄방역 최주경△통영죽림 이훈섭△파주북시티 박대준△판교테크노밸리 신용훈△팔용동 이상기△풍무동 강미정△하남풍산 박동수△호계남 황의구△호평 한규성△홍성 이병문△화서동 이승복△화성남양 김동호△황금네거리 신동영<센터장>△송도PB 이송복△일산PB 김영신<지점 개설준비위원장>△구미4공단 최종민<종합금융센터 리테일지점장>△구월동 김형상△부산 박기환△서초동 이택연△의정부중앙 이점수△창원 문진곤 ■기업은행 ◇부행장 승진△카드사업본부/신탁연금본부 서형근◇부행장급 전보△IB본부 김영규△마케팅본부 시석중△기업고객본부 장주성◇지역본부장 승진△강동·강원 배용덕△남중 정재섭△경서 방군섭△부산 이영희△대구·경북 배동화◇지역본부장급 전보△경동 김성태△부산·울산 장세홍
  • [기고] 전통의 수호자 ‘문화재 복원사’/신하순 서울대 동양화과 부교수

    [기고] 전통의 수호자 ‘문화재 복원사’/신하순 서울대 동양화과 부교수

    지난해에는 우리나라 문화재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참 많이 오갔다. 숭례문 복원부터 석굴암, 첨성대 등 많은 문화재 보존 실태에 대한 따끔한 지적도 있었고 해외 선진국들의 문화재 복원 현황에 대한 공유가 이어지면서 전통이란 무엇인지, 문화재 복원의 지향점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한 이슈들이 여럿 있었다. 유럽 대다수 국가의 문화재 복원 기관에서는 아이들에게 윤리와 역사, 철학 등을 함께 가르치며 ‘왜 문화재를 복원하는가’에 대해 끊임없는 고민을 던진다. 문화재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효율성과 진정성을 모두 놓치지 않도록 도와준다. 기능을 전수하고 원형 그대로 복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시대의 ‘문화와 정서’를 복원하고 담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전통은 박물관에 가만히 앉아 있는 박제품이 아니라 현대인들에게 유의미한 가치를 전달하며 일상 속에서 함께 숨 쉬어야 비로소 생명력을 가진다. 문화재를 통해 조상들의 사회 분위기, 생활모습 등을 체감하며 우리의 민족성을 되찾고, 문화적 수준을 높일 수 있다. 따라서 전통을 학술적으로 이해하기보다 오감으로 경험하고 옛것과 새것의 조화를 이루는 일이 더욱 유의미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통 문화재에 대한 우리들의 관심과 애정이 보다 절실하다. 우리나라에서 문화재 복원사가 전문 직종으로 자리 잡은 지 십 년도 채 되지 않았다. 여전히 문화재수리기술자, 문화재수리기능자 정도로 불리며 문화재 복원에 대한 시선이 올바로 정립되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미술품의 복원은 대형 건축물의 복원보다 국민들의 인식이 낮은 편이다. 그러나 미술품은 상태가 굉장히 예민하고 섬세하기 때문에 훼손되고 방치되면 작품으로서의 미적 가치가 떨어져 존재 가치마저 위협받는다. 병에 걸린 사람이 의사로부터 치료를 받듯 손상된 미술품은 문화재 복원사의 손을 거쳐 건강하게 회복된다. 이렇게 가치 있는 직업을 청소년들에게 전하고자 꿈다락 토요문화학교의 청소년 문화예술 진로탐색 프로그램으로 ‘문화재복원사, 전통의 수호자’를 기획했다. 전통을 계승·발전시켜 나가는 일의 가치를 전하고 그 의미를 직접 실현해 나가는 경험의 장을 열어 주고자 한 것이다. 세 기수에 걸쳐 참여한 많은 청소년들은 각자 전통 회화 유물을 한 점씩 모사하면서 그림에 담긴 이야기는 무엇인지,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역사·문화적 의미는 무엇인지 충분히 알고 우리의 전통과 문화재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했다. 미술 분야의 한 직업으로서 문화재 복원사의 역할, 가치에 대한 재인식과 사명감을 높였다. 진지한 자세로 옛것을 마주하는 청소년들을 보면서 문화재 복원과 전통미술에 대한 가치가 미래 세대에게 전해지기 위해서는 문화재 복원에서 최고의 전문기관과 전문가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청소년들이 문화재 복원에 대한 가치를 깨닫고 우리의 전통과 문화재에 대한 자긍심을 키우기를 바란다. 전통 미술과 현 세대를 잇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장이 마련돼 문화적 맥락을 형성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 천천히, 깊이, 함께… 읽기 노하우와 기쁨 나누는 시간

    천천히, 깊이, 함께… 읽기 노하우와 기쁨 나누는 시간

    천천히 깊게 읽고 여러 사람과 같은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오늘날 읽기의 세계적인 트렌드다. KBS 1TV 기획특집 ‘독(讀)해야 산다’에서는 이러한 읽기의 트렌드를 통해 책과 신문을 읽는 다양한 방법과 기술을 알려준다. 개그맨 남희석, ‘TV 책을 보다’의 아나운서 김솔희, 문학평론가 허희, 개그맨 고명환,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윤대현, 배우 안미나, 읽기로 교육하는 경희여중 국어 교사 강용철 등 ‘독’하기로 유명한 이들이 모여 자신만의 읽기 노하우와 읽기의 즐거움을 들려준다. 고명환은 생사의 고비를 겪은 뒤 시간을 지배하는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해 책 읽기를 생활화하기 시작했다. 그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토론하며 함께 읽기를 실천하고 있는 학습 공동체 ‘숭례문 학당’의 사례를 모은 책 ‘이젠, 함께 읽기다’를 소개한다. 안미나는 책 읽기는 연기자가 캐릭터에 몰입하고 표현해 나가는 과정과 흡사하다고 말한다. 그녀가 소개하는 ‘단단한 독서’는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독서법의 고전으로 꼽힌다. 저자 에밀 파게가 책을 읽을 때 첫 번째로 꼽는 기술은 ‘느리게 읽기’다. 문학적 정취에 빠지게 하는 인왕산 자락의 고즈넉한 한옥도서관, 삼청공원 산길 끝에서 만나는 숲속도서관 등 문화의 중심으로 거듭나고 있는 도서관도 소개한다. 독서를 새로운 기업 문화로 이끄는 사람들과 과학, 수학, 지리, 문학 등 주요 과목 수업에서 신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충남 예산의 삽교고등학교 아이들 등 ‘독’하게 사는 사람들도 나온다. 29일 밤 11시 55분 방영된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정기홍의 시시콜콜] ‘크리스마스실’의 연말

    [정기홍의 시시콜콜] ‘크리스마스실’의 연말

    대한결핵협회가 세밑에 바빠 보인다. ‘크리스마스실’을 파는 계절이래서가 아니다. 정부가 지난달 결핵예방법을 개정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내년부터 크리스마스실의 판매 협조를 못 하게 된다. 발등의 불이다. 지금까지 결핵퇴치기금 마련이란 공익성을 담보로 초중고교에서 판매량의 절반 이상을, 공공기관에서 30% 정도를 사 주었다. 발행 80여년 역사상 가장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 같다. 우리나라 크리스마스실은 1932년 캐나다 선교 의사였던 셔우드 홀이 처음 만들었는데, 발행 과정에서 지금과 비슷한 곡절을 겪었다. 본래 거북선 문양을 넣었으나 조선총독부가 반대해 숭례문으로 바뀌어 발행됐다. 결핵을 망국병으로 여겼던 때에는 주가를 꽤나 높였다. 공개 판매 행사에 대통령이 참여하는 것은 예사였다. 하지만 근래에 판매가 급격히 줄면서 2011년 50여억원, 2013년 39억원에 머물고 있다. 올해도 줄어들기는 마찬가지다. 한 장에 2전이던 것이 300원에 팔리는 세월의 간극만큼 풍상도 많이 겪었다. 반면 결핵 환자는 증가세에 있다. 2004년 이후 지난해를 빼곤 줄곧 늘었다. 해마다 3만명 이상의 환자가 새로 발생하고, 발생과 유병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서 가장 높다. ‘빈자(貧者)의 병’이거나 ‘후진국 병’으로 여기던 결핵이 우리 주위에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마을에 결핵(폐병) 환자가 생기면 유령집 보듯해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사망률은 매우 높았다. 1933년 12월 신문에 “작년 같은 해에 조선에서 발생된 전염병자의 총수가 일만륙천 팔백여인(人)에, 그 희생자도 삼천백여인에 달하게 되었는데…”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감염 자체를 쉬쉬했던 병이다. 영특하지만 몸이 허한 학생이 걸리는 경우가 많아 천재병으로도 불렸다. 결핵 퇴치의 중요성은 발병 수치로만 따질 건 아니다. 지금도 집단 생활을 하는 중고등학생이 많이 걸린다. 예방이 그만큼 중요하다. 결핵 퇴치 사업이 경시돼선 안 된다는 뜻이다. 판매 위축은 결핵에 대한 관심이 작아지고 연하장 등 우편물 이용이 줄면서 기왕에 예견됐던 사안이다. 실용성이 적다는 취약점도 있었다. 결핵협회의 대안 고민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모른다. 모바일용 유료 이모티콘을 만들자는 제안도 나온다. 청소년 금연 등과 같은 공익 마케팅도 접목하겠다고 했다. 루게릭병 환자를 돕기 위해 얼음물을 뒤집어쓰고 기부 릴레이를 하는 ‘아이스버킷 챌린지’도 하찮게 출발한 이벤트였다. hong@seoul.co.kr
  • [문화재 복원-伊에서 길을 찾다] (상)피렌체 국립복원연구소

    [문화재 복원-伊에서 길을 찾다] (상)피렌체 국립복원연구소

    로마제국이 자리했던 이탈리아는 역사와 예술, 건축의 나라다. 엄청난 문화유산을 지닌 문화재 보존·복원의 강국이기도 하다. 전 국토가 거대한 문화재나 다름없는 이곳이 지닌 가장 큰 강점은 기술 못잖게 건강한 보존 철학에 있다. 2000년 넘은 폐허에까지 넉넉히 품을 내주는 이탈리아를 찾아 그 의식과 실천 과정을 엿봤다. 우리에게 ‘문화재’란 개념이 등장한 건 불과 반세기 안팎. ‘숭례문 사태’를 겪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지 고민해 본다. “돌과 나무, 쇠를 다듬는 진일보한 기술이 있는데 굳이 수백년 전 전통 기술에 집착한 이유를 알 수 없어요. 전통 기법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온 이탈리아에서도 그토록 전통 안료나 기법에 매달리진 않죠. 보여주기식 ‘쇼’에 그쳤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분야에서 일하는 장인이라면 단지 기술적 차원이 아니라 정치적 압력에 견디는 강건한 복원 철학과 윤리부터 갖춰야 합니다.” 지난 7일 이탈리아 피렌체 포르테자 다 바소의 국립복원연구소(OPD). 30년 가까운 목재 복원 경력을 지닌 페테르 스티베르크(60) 교수는 한국의 ‘숭례문 사태’에 날 선 일침을 가했다. 그는 숭례문 사태는 근현대 이탈리아에서 흔히 접했던 정치적 복원의 전형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스티베르크 교수는 “문화재 복원에도 늘 실험가 정신과 혁신이 강조된다. 상황에 따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는데, 숭례문 복원만큼은 어리석은 결정을 내렸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2년이란 턱없이 짧은 준비 기간과 3년간의 복원도 마찬가지다. 단 한 점의 옛 미술품이라도 통상 수십년 걸려 복원하는 이곳 관례상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판단이란 것이다. 이어 무솔리니의 파시즘 정권을 비롯해 피렌체, 베네치아 등 도시국가의 색채가 여전히 강한 지역의 시장들이 정권을 잡자마자 벌였던 업적 홍보용 문화재 복원 사업들을 예로 들었다. “국가가 경직될수록 이런 성향이 강해지는데, 나름의 장인 정신과 복원 원칙이 없다면 쉽게 휘둘리고 만다”고 거듭 강조했다.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비롯해 세계 곳곳의 다양한 목조 문화재를 손질해 온 그의 옆에는 조각가 도나텔로의 유작인 ‘막달라 마리아’가 자리하고 있었 다. 야윈 얼굴, 깡마른 팔과 다리로 말라 비틀어진 이 나무껍질 같은 목조각은 피렌체 두오모 박물관에 산 조반니 세례당의 ‘천국의 문’과 함께 나란히 전시됐던 작품이다. 최근 복원을 위해 이곳을 찾았다. 목조 건물의 단청이 떨어지듯 표면이 벗겨져 나간 이 목조각을 두고 그는 “원형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창의적으로 복원한다”고 말했다. 스티베르크가 몸담은 OPD는 1588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이 설립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재 복원기관이다. 이탈리아 통일 이전부터 회화류와 목조각 복원 분야에서 이름을 떨쳤다. 지금도 유럽에서 가장 큰 복원 연구소 중 하나다. 이곳에선 회화·석재·청동·유리·귀금속 등 11개 분야로 나뉘어 60여명의 인력이 전문성을 뽐낸다. 피렌체 아카데미아미술관에 전시된 다비드상의 복원도 OPD가 담당했다. 지금도 연구실 곳곳에선 레오나드로 다빈치의 미완성작인 유화 ‘동방 박사의 경배’, 현대미술의 아이콘인 잭슨 폴록의 100억원대 회화, 조르조 바사리의 회화 작품들이 현대기술과 전문가들의 손끝을 타고 새 생명을 얻고 있다. 크리스티나 임프로타 석재 부문 교수는 “1966년 11월 아르노강 대홍수는 OPD가 세계적 명성을 얻는 계기가 됐다”면서 “당시 피렌체를 덮친 기름과 진흙, 오물 등이 역사적 미술품 대다수를 오염시켰으나 세계 곳곳에서 전문가들을 끌어모아 되돌려 놨다”고 증언했다. 스페인 내전 당시 산산조각 났던 산 조반니 디 우베라 성당의 미켈란젤로 조각상도 다른 기관들이 복원을 포기했지만, 이곳에선 성공했다고 강조했다. 이 조각상은 내년 초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이곳의 강점은 끊임없는 교육과 혁신이다. 매년 5명가량의 학부생을 선발해 5년 과정으로 가르친다. 지금도 학생들은 볼로냐 페트로냐성당 복원 현장에 상주하며 실습을 이어가고 있다. 연구소 관계자는 “화학, 물리 등 각 분야 전문가를 모아 항생제를 활용한 벽화의 곰팡이 제거 등 창의적 복원 방식을 쏟아낸다”며 “이렇게 한 건의 작업을 마칠 때마다 책으로 펴내 모든 이들과 공유한다”고 말했다. 글 사진 피렌체(이탈리아)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기고] 시민과 함께하는 문화유산의 미래/장영석 재단법인 아름지기 사무국장

    [기고] 시민과 함께하는 문화유산의 미래/장영석 재단법인 아름지기 사무국장

    K팝, K드라마, 한스타일 등 우리 문화가 소위 한류라는 이름으로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2000년대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우리 문화의 국제 경쟁력 상승은 경제성장, 민주화, 전문가들의 노력 등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그 시작이 국가 주도의 정책이 아니라 민간 주도의 대중문화 발전이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즐기고 기뻐하고 열정을 쏟을 만한 것이라야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우리 문화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문화유산은 어떠한가. 숭례문 화재 이후 사회적으로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 문화재는 여전히 국가 주도의 관리 대상으로 인식되는 수준이다. 1962년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은 일제강점기와 6·25 이후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그나마 남아 있는 문화재를 보호하고 관리하는 장치가 되어 주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현재는 가장 기본적인 보호를 법률로 보장할 뿐 우리 문화유산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내 집 주변의 문화재가 자랑거리가 아닌 규제 및 재산권 침해의 원인으로 여겨진다면 숭례문 화재에 슬퍼하고 궁궐을 바라보며 자랑스러워하는 말들도 그저 공허할 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서울시가 새롭게 구상하고 있는 ‘미래유산’의 개념은 매우 의미 있는 실험이다. 시민들이 직접 우리 주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과거와 현재의 것들로부터 바로 우리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만한 것을 찾아보자는 취지이다. 서울의 이야기를 담은 대중가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해장국집, 86년간 3대를 이어온 이발소 등 현재의 서울시민이 공유할 수 있는 집단적 기억 또는 감성을 다룬다. 일부 전문가가 아니라 시민들이 그 대상을 적극적으로 발굴, 선택하고 전문가는 시민이 선택한 가치를 어떻게 하면 올바르게 구현해 이어갈 수 있는지 해법을 모색한다. 그리고 민과 관이 힘을 합해 다양한 방식의 실천을 모색하는 개방적인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시민들은 문화유산을 지키고 가꾸는 진정한 주체가 될 수 있으며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쏟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시가 시도하는 ‘미래유산’이 그저 또 하나의 규제나 정치적 행위가 아니라 시민들이 참여해 스스로의 역사와 문화를 만들어 가는 즐거운 축제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신당5동-강원 홍천 “서로 교류합시다”

    신당5동-강원 홍천 “서로 교류합시다”

    중구 신당5동이 강원 홍천군 굴업리마을과 자매결연을 위한 사전교류를 진행하고 있다고 30일 밝혔다. 사전 답사, 지역 자료 등을 상호 교환하고 연내 마무리짓기로 했다. 구는 주민자치를 활성화하고 도시·농촌 교류를 통한 이해와 발전을 위해 교류활동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현재 15개 동 가운데 11곳이 농촌마을과 교류를 펼치고 있다. 신당동은 경기 파주시 산머루마을과 지난해 5월 자매결연을 맺고 친환경 농수산물 직거래, 산머루 수확 일손을 도왔다. 이에 보답하듯 산머루마을 주민 50여명은 같은 해 7월 찾아와 주민들과 가례헌 공연을 관람하고 숭례문·한옥마을 등 역사문화 투어에 참여했다. 회현동은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축제를 벤치마킹해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축제로 자리 잡은 은행마을축제를 이어가고 있다. 김삿갓면 주민들은 매년 축제에 참석해 우애를 다진다. 약수동의 경우 주민과 학생들이 금강모치마을에서 포도따기, 고구마캐키 등 농촌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와인 생산과정 견학, 난계 국악촌·국악박물관 등을 다녀왔다. 최창식 구청장은 “도시와 농촌이 윈윈할 수 있도록 자매결연을 모든 동에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숭례문 ‘엉터리 단청장’에 속은 문화재청

    전통기법으로 국보 1호 숭례문 단청 복구 공사를 하겠다던 장인이 몰래 화학안료와 화학접착제를 쓴 사실이 드러났다. 심지어 3억 9000여만원의 인건비를 빼돌리기도 했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전통기법을 이용해 숭례문 단청 복구 공사를 하겠다고 계약한 뒤 화학안료·접착제를 사용하고 인건비를 줄여 부당이득을 챙긴 홍모(58) 전 숭례문 복구공사 단청장과 제자 한모(48)씨 등 6명을 사기 및 업무상 배임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28일 밝혔다. 경찰은 또 관리 감독을 소홀히 한 문화재청 공무원 최모(55)씨 등 5명은 직무유기 혐의로, 공사 과정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감리사 이모(50)씨 등 2명은 업무상 배임 혐의로 입건했다. 중요무형문화재 보호자인 홍씨는 2012년 8~12월 숭례문 단청 복구 공사를 진행하면서 계약 내용과 달리 화학안료와 접착제를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초 그는 돌가루와 조갯가루 등을 이용한 전통방식 복원에 자신 있다고 밝혔지만 공사가 시작되자 어려움을 겪었다. 색이 잘 발현되지 않았고 날씨가 추워지면서 아교가 엉겨붙었다. 홍씨는 이를 숨기려고 화학안료를 전통안료와 2대8 비율로 섞고 화학접착제도 1대3 비율로 물에 섞어 사용했다. 날림으로 작업한 단청은 공사가 끝난 후 3개월 만에 벗겨졌다. 재시공에 필요한 비용은 11억원으로 예상된다. 앞서 2009년 12월 홍씨는 ‘전통기법만을 이용해 단청을 입힐 수 있다’고 문화재청을 속여 숭례문 복구공사의 단청장으로 선임됐다. 하지만 홍씨가 전통기법으로 단청을 복구한 경험은 1970년대 스승이 맡은 금정산성 복원 공사에 잠시 참여했던 것이 전부였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산성(하)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산성(하)

    북한산성은 신라, 고구려, 백제, 고려, 조선 등 5개 나라의 역사가 공존하는 곳이다. 북한산성의 역사는 기원전 1세기 무렵 한성백제가 수도 방위를 목적으로 토성을 쌓으면서 비롯됐다. 132년 백제 개루왕이 산성을 쌓아 북진의 기치를 높이 올렸으나, 475년 고구려 장수왕이 점령하여 남진의 발판으로 삼았고, 551년 신라 진흥왕이 차지하여 통일의 기틀을 다졌다. 1387년 고려 우왕이 중흥산성을 쌓았다. 한강을 차지하는 나라가 한반도의 패권을 장악한 것이 우리 전쟁사이다. 한반도의 목구멍(咽喉)에 해당하는 이 지역을 차지하려는 각축의 역사를 웅변하는 것이 북한산 비봉의 진흥왕 순수비이다. ‘순수’(巡狩)란 천자가 제후의 봉지(封地)를 직접 순회하면서 현지의 통치상황을 보고받는 의례이며 순행(巡行)이란 용어가 일반적이다. 순수비란 순수를 기념해 세운 비석인데, 진흥왕 순수비의 비문 속에 나타나는 ‘순수관경’(巡狩管境)이란 구절에서 따왔다. 진흥왕은 가야 병합, 한강 유역 확보, 함경도 해안지방 진출 등 왕성한 대외정복사업을 기념하고자 4곳의 비석을 세웠다. 서울 종로구 구기동 산 3번지 북한산 비봉 정상이 순수비가 서 있던 자리이다. 큰 비석이 있다고 해서 비봉(碑峰)이라는 지명이 유래했다. 순수비는 함경남도 마운령비와 황초령비, 경상남도 창녕비와 더불어 진흥왕 재위 말인 568년부터 576년 사이에 세워졌다. 1972년 옮겨질 때까지 최소 1400년 동안 한강과 서울시내를 내려다보며 풍상을 겪었다. 이 비석의 정체는 건립 1200여 년 후인 1816년에야 밝혀졌다. 추사 김정희였다. 추사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 실학자로 서예가, 화가로 널리 알려졌지만 실은 우리나라 금석학의 개조(開祖)였다. 실용학문을 연구하라는 스승 박제가와 박지원의 가르침을 좇아 금석학과 문자학, 음운학, 지리학, 천문학 등을 두루 연구했다. 그때까지 이 비석은 ‘고려 태조 비’ ‘도선국사 비’ ‘무학대사 비’ 등으로 잘못 알려졌었다. 황초령비와 북한산비의 비문을 고증한 ‘진흥이비고’(眞興二碑攷)에서 추사는 “신라 진흥왕 순수비는 지금 경도(한양)의 북쪽으로 20리쯤 되는 북한산 승가사 곁의 비봉 위에 있다. 길이는 6척 2촌 3푼(154cm)이고 너비는 3척(71cm)이며 두께는 7촌(16cm )이다. 비문은 모두 12행인데 글자가 모호하여 매 행 몇 자씩을 분별할 수 없다.…이 비문에 연월(年月)이 마멸되어 어느 해에 세워졌는지 모르겠다.…그래서 마침내 이 비를 진흥왕의 고비(古碑)로 단정하고 보니, 1200년이 지난 고적이 일조에 크게 밝혀져서 무학의 비(無學之碑)라고 하는 황당무계한 설이 변파(辨破)되었다”라고 적었다. 북한산비는 1200년 만에 주인을 찾았다. 추사는 비석 왼쪽 측면에 ‘두 번 와서 비의 글을 읽었다’라는 내용의 글을 손수 새겼다. 순수비는 1934년 국보 제3호로 지정됐다. 1400년 역사에다 추사의 글씨까지 더해지니 ‘국보 중의 국보’가 아닐 수 없다. 이를 국보 1호가 아니라 3호로 정한 일제의 간사함에 치가 떨린다. 문화적 열등감의 발호였으리라. 숭례문이 2008년 소실되고서 국보 1호 재지정 논란이 일 때마다 ‘국보의 번호는 관리번호일 뿐 가치의 순서와는 무관하다’고 변명하는 우리 문화재 당국의 순진함도 못마땅하기는 매한가지다. 추사는 비석을 발견했을 때 덮개돌이 아래에 떨어져 있었다고 적었지만 사라졌고, 한국전쟁 때 총알 세례를 받아 탄흔이 선연하다. 언제인지 모르게 몸돌 위쪽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비스듬하게 잘렸고, 오른쪽 아래 귀퉁이는 뭉텅 떨어져 나갔다. 1972년 일단 경복궁 근정전 회랑에 옮겨 보존하다가 1986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다. 2006년 10월 그 자리에 복제비를 세웠다. 한양도성과 북한산성, 탕춘대성 그리고 남한산성과 강화성이 서울을 지키는 대표적인 성곽이다. 우리나라에는 3000개에 이르는 산성이 있고, 2000년의 역사를 가진 기원전의 고대 도시 서울주변엔 숱한 성곽의 유허가 존재하지만, 규모나 형태면에서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들 성곽이 서울을 제대로 지켰나’라는 질문에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북한산성은 왜 쌓았을까. 한양도성의 북쪽 외곽 방어막인 북한산성과 탕춘대성은 단 한번도 서울을 사수하지 못했다. 서울을 남쪽에서 보호하는 남한산성이나 강화성과 달리 외적의 침입 때마다 무용지물이었다. 한양도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추풍낙엽으로 무너졌고, 두 번의 반정(중종과 인조) 과 이괄의 난 때도 맥없이 뚫렸다. 한국전쟁 때 창동~미아리 전선을 형성했지만 서울사수의 최후 방어선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권력자는 북쪽 외곽 방어선 축조에 집착했다. 고려의 영향이 컸다. 거란족과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태조 왕건의 관을 옮겨둔 오래된 피란처였고, 1232년 몽골 군과 격전을 치렀으며, 최영 장군의 전공이 있다는 점에서 경복궁의 뒤를 지키는 산성의 필요성을 느꼈다. 성을 지키려면 곡성(曲城)과 돈대(墩臺) 그리고 해자(垓子)가 필요하다. 한양도성은 방어용 성이 아니었다. 임진, 병자 양란에서 경험하였듯이 군사적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도성은 넓고 커서 지키기 어렵다고 여겼다. 도성의 축조가 당초에 성을 지킬 계책에서 나온 것이 아니므로 원래 견고하지 못하였다. 지금 만일 개축한다면 몰라도 수축만 하게 한다면 나을 것이 없을 듯하다”라는 숙종의 고변이 비변사등록에 남아있다. 조선 왕들에게 성곽은 국가 권위와 통치의 표상이었다. 외적을 방어하는 국력의 표현이기에 앞서 내부의 적대세력을 물리치는 대내용이었다. 숙종은 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 등 3군문에서 구역을 나눠 성을 쌓게 했다. 축조공사는 불과 6개월 만에 끝났다. 북한산성의 넓이는 49만㎡로 한양도성의 14만㎡보다 3배 이상 넓다. 왕이 집무를 볼 수 있도록 1만㎡에 124칸의 행궁을 지었다. 2만 6000섬의 군량미를 확보하고, 저수지 26개와 우물 99개를 팠다. 인수봉~백운대~만경대~용암봉~시단봉~보현봉~문수봉~나한봉~용혈봉~미륵봉(의상봉)~원효봉~영취봉 같은 험한 봉우리를 이어 구축한 포곡식 산성이다. 숙종은 몸소 시단봉 동장대에 올라 9.73km에 이르는 산성의 위용을 만끽했다. 그러나 이때 지은 성곽과 행궁은 1915년 대홍수 때 대부분 떠내려갔다. 이중환은 ‘택리지‘ 팔도총론 경기편에서 도성과 산성에 관해 여러 차례 의견을 피력했다. “비록 산세를 따라 성을 쌓은 것이나 정동방과 서남쪽이 낮고 허하다. 또 성 위에 작은 담을 쌓지 않았고, 해자도 파지 않았다. 그래서 임진년과 병자년의 두 난리 때 모두 지켜내지 못했다”라고 한양도성의 가치를 깎아내렸다. 북한산성에 대해서도 “숙종 때 조정에서 도성을 고쳐 쌓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동쪽이 너무 낮아서 만약에 강을 막아 그 물을 성에다 댄다면 성 안 백성은 모두 물고기 신세’라는 말이 있어 그 논의는 중지되고 말았다”라고 언급했다. 숙종 재위 기간 내내 이어진 산성 축조 논쟁을 지적한 말이다. 북한산성 축조가 처음 논의된 1675년부터 완공된 1711년까지 무려 36년을 끈 북한산성 축조논쟁을 비꼰 것이다. “도성을 버리고 북한산성으로 가는 것이 과연 옳은 전략인가” “북한산성을 성공적으로 방어할 수 있겠는가” “북한산성은 험준하여 지키기는 좋지만 도성민을 수용하기는 좁지 않은가” “물자와 인력이 부족하니 강화성이나 남한산성 둘 중 하나는 포기하는 게 옳다” 등의 온갖 논의가 난무했다. 찬반의 논리는 단순했다. 찬성론자들은 유사시 왕이 피할 곳이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한다는 논리였고, 반대론자들은 병자호란 때 청과 맺은 정축조약의 ‘성곽을 수축할 수 없다’라는 조항을 위배해선 안 된다면서 맞섰다. 숙종이 북한산성을 짓기로 용단을 내린 것은 1710년 청으로부터 날라온 한 장의 외교문서가 결정적이었다. ‘왜구의 노략질이 심하니 연해 지방의 방어에 유의하라’는 문서가 성곽수축 금지조항을 해제한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반대논리를 잃자 축성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청화자 이중환은 비판적이다. “도성에서 서쪽으로 5리를 가면 사현(무악재)이 되고, 그 고개를 넘으면 녹번현이 있다. 당나라 장수가 여기를 지나면서 ‘한 사람이 관문을 막으면 만 사람이라도 열 수 없겠다’하였다고 한다. 또 서쪽으로 40리를 가면 벽제령인데 임진년 왜란 때 이여송이 패한 곳이다. 고개 두 곳과 벽제령은 모두 관문을 설치할 만한 곳이다. …천연적인 험한 곳을 버리는 것이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벽제령에서 남쪽으로 40리를 가면 임진나루터이다.…아주 험하게 되어 있으니 참으로 지킬 만한 곳이다”라고 대안까지 제시했다. 소용도 없는 도성과 산성을 짓는다고 백성을 달달 볶거나 세금을 축내지 말고 지킬 만한 곳을 찾아서 지키라는 주장이었다. 천 번 만 번 지당한 말씀이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국감 스타] “숭례문 엉터리 복구업체 처벌만 받고 영업”

    [국감 스타] “숭례문 엉터리 복구업체 처벌만 받고 영업”

    “숭례문 복원 5개월 만에 단청이 벗겨졌는데 감사원의 제재조치 통보에도 불구하고 시공·감리업체는 솜방망이 처벌만 받고 지금도 아무 문제 없이 수리복원 사업을 수주하고 있다. 문화재청이 관리·감독을 이렇게 소홀히 하는데 대형사고를 방지할 수 있겠나.” 10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문화재청에 대한 국정감사장. 국보 제1호 숭례문 수리 복원에 참여했던 업체들에 대해 강력한 제재 필요성을 역설하는 새정치민주연합 윤관석 의원의 예리한 지적이 터져 나왔다. 윤 의원이 “업체들을 의심하지 않는 문화재청의 태도가 문제”라고 꼬집자 나선화 문화재청장은 “(업체들에 대한) 처벌 규정을 강화하고 다시 검토에 들어가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윤 의원에 따르면 복원에 참여했던 시공업체는 지난 8월 12일부터 15일간, 감리업체는 지난 7월 25일부터 한 달 동안의 영업정지 처분만 받았다. 두 업체는 부실공사에 대한 경찰수사가 시작된 지난해 10월 이후 각각 5건, 3건의 문화재 복원 공사를 추가로 수주하기도 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문화 In&Out] 문화재 ‘정통복원’ 강박관념

    [문화 In&Out] 문화재 ‘정통복원’ 강박관념

    도리아 양식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 육중한 자태를 뽐내는 이 건축물은 로마와 터키의 지배를 받던 시절 조금씩 모양이 바뀌었고 급기야 1687년 베니스군과 오스만 튀르크군의 교전으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파괴됐다. 하지만 1900년대 초 강철빔과 시멘트까지 동원돼 이뤄진 ‘수복’(修復) 덕분에 오늘날 세계 곳곳의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전파됐던 폴란드의 바르샤바 수복도 상상력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어느 정도 제대로 복원됐는지 학자들 간 의견이 분분하지만 아크로폴리스와 마찬가지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목록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노트르담 대성당 등을 복원한 프랑스의 전설적 건축가 비올레 르뒤크(1814~1879년)는 수복을 보호·수리·재건보다 한 단계 상위 개념으로 규정했다. 복원 자체가 지금 이뤄지는 행위이기에, (상상력을 동원해)어떤 시대에도 존재하지 않았을 건물로 되돌리는 행위라고 봤다. 이 같은 개방성 덕분에 유럽의 문화재 관리는 비교적 수월하게 이뤄져 왔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정적들을 격퇴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이탈리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아치’(315년)는 앞선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시대에 세워졌던 각각의 기념물들에서 장식 부분을 떼어오거나 개조해 완성했다. 심지어 전투장면을 묘사한 석조 부조는 그대로인 채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머리가 그대로 콘스탄티누스의 머리로 교체되기도 했다. 1990년대 후반까지 복구 공사가 이어졌는데 학자들 사이에선 얼마나 많은 재료가 재사용됐는지 의견이 분분할 정도다. 로마의 메디치가 저택(1459년)과 베드로 대성당(1626년)도 여러 고대예술품을 재활용했다. 콜로세움의 경우 19세기 이뤄진 복원에선 처음부터 경제적 이유로 석재 대신 벽돌을 사용했다. 이후 원래의 석조 부분과 복원된 부분을 구분 짓기 위해 벽돌이 그대로 활용돼 왔다. 고전주의와 후기 고딕양식이 뒤섞인 영국의 웨스트민스터사원을 비롯해 유럽의 여러 옛 건물과 담장들이 다양한 시대 양식을 품은 이유다. 지난해 숭례문 부실 복원으로 불거진 논란은 최근 첨성대의 부실 보존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면에는 무조건 옛 모습을 완벽히 되살려야 한다는 ‘정통 복원’에 대한 강박관념이 자리한 듯 보인다. ‘단일민족’의 역사성을 지켜야 한다는 자존심이 배경이다. 과학의 발달은 다양한 DNA 검사로 단일민족 신화에 대한 허상을 낱낱이 밝혀내고 있다. 또 옛 모습 그대로 문화재를 복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퍼포먼스에 불과했던 숭례문의 전통방식 복원이란 결과를 낳았다. 최병하 문화재위원회 건축분과 전문위원은 “유럽에서도 과거 민족주의가 강성했던 시절 문화재 복구가 활기를 띠었다”고 설명했다.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차분한 마음가짐으로 우리 삶의 모습을 투영한 문화재 수복은 한국에서 불가능한 것일까. “건축(문화재)도 (당시) 문화에 의해 지배받는다”는 미국의 문화인류학자인 클리퍼드 거츠의 말을 되새겨 보자.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新 국토기행] 성곽따라 뚜벅뚜벅… 이야기보따리 재잘재잘

    [新 국토기행] 성곽따라 뚜벅뚜벅… 이야기보따리 재잘재잘

    ●화성 & 화성행궁 도심 한복판에 있는 팔달산을 중심으로 5.7㎞에 걸쳐 있는 화성은 조선시대 성곽 문화의 백미로 꼽힌다. 성문, 누대 등 건축양식이 동양 성곽의 웅대함과 서양 성의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모두 겸비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화기에 대한 공격과 방어에 대처할 수 있는 시설도 갖춰 우리나라에서 가장 과학적인 설계로 축성된 성곽이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수원시는 시민과 관광객들을 위해 성곽을 잇는 둘레길을 조성했다. 제주에 ‘올레길‘이 있다면 수원에는 ‘화성성곽둘레길’이 있는 셈이다. 코스는 서남암문(화양루)~서장대~화서문(서문)~장안문(북문)~화홍문~방화수류정~동장대(연무대)~창룡문(동문)~봉돈~동남각루를 잇는다. 성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2~3시간 정도이며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길이 험하지 않아 노약자들도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이 가운데 화성의 북쪽 문인 장안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성문으로 문루의 높이가 13.5m, 너비가 9m에 달한다. 국보 1호인 서울 숭례문보다도 크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는 동안 크게 훼손됐으나 1975년부터 5년간 복원했다. 또 눈여겨볼 만한 것은 7개의 아치형 수문을 거느린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이다. 화홍문은 7칸의 홍예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마루 형식 문루를 세운 것이다. 연못을 끼고 있는 방화수류정 주변은 경치가 아름다워 수원 8경 중 하나로 꼽힌다. 팔달구 행궁동에 있는 ‘화성행궁’은 정조가 융릉을 참배할 때 머물던 임시 처소로, 우리나라 행궁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아름다운 행궁으로 꼽힌다. 정조의 모친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이 열리기도 했다. 일제가 훼손한 것을 화성 축성 당시 행궁을 비롯한 건축물 모습과 특징까지 모두 기록해 놓은 화성성역의궤를 토대로 주요 건물 482칸을 복원했다. TV 드라마 ‘대장금’과 영화 ‘왕의 남자’ 등이 촬영되는 등 영화 촬영 장소로도 각광받고 있다. 이곳 신풍루에서는 ‘무예 24기’ 공연을 볼 수 있다. 무예 24기는 조선 정조시대 때 지상무예 18가지와 마상무예 6가지를 합해 만든 24가지 무예로, 무예 교과서인 ‘무예도보통지’에 실려 훈련도감, 장용영 등 중앙 군영을 비롯해 전국 군영에서 사용됐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크고 활달한 동작으로 단호하고 강인한 힘을 발산하는 게 무예 24기의 특징이다. 매주 일요일 2시 장용영의 수위 의식도 열린다. 정조대왕의 친위 부대였던 장용영 군사들의 화성행궁 수위 및 훈련을 보여주는 의식이다. 토요일에는 궁중무용, 무등돌이, 전통 줄타기 등의 상설 공연도 펼쳐진다. 장용영 수위 의식과 연계해 진행되는 정조대왕 거둥은 정조의 능행차를 축소한 것으로 매월 둘째, 넷째 주 일요일에 시연된다. ●공방거리 화성행궁에서 팔달문으로 이어지는 길이 400m 구도로는 5년 전부터 공예작가들이 모여들어 자연스럽게 공방거리가 형성됐다. 규방공예와 한지, 서각, 칠보, 가죽 등의 공예공방과 갤러리 30여개가 자리 잡고 있다. 주말에는 거리 판매대가 설치되고 공예 체험 행사와 벼룩시장, 다양한 먹을거리 판매 행사 등이 마련돼 화성행궁을 찾는 관광객들의 코스로 자리잡았다. 신상옥 감독의 1961년 작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실제 촬영 장소였던 한옥, 수원 최고의 헌책방 등 골목마다 이야기를 간직한 보물이 숨어 있다. ●광교 호수공원 광교신도시 내 원천저수지와 신대저수지 주변을 가꿔 조성한 광교호수공원도 새 명소로 떠올랐다. 호수공원의 전체 면적은 202만 5418㎡로 일산 호수공원(103만 4000㎡)보다 2배가량 크다. 광교 호수공원은 위락시설과 숙박시설이 난립하던 기존 저수지를 도심 속 힐링공간으로 새롭게 변모시켰다. 특히 저녁이면 호수와 광교신도시가 어우러진 야경이 장관을 이룬다. 광교호수공원은 올해 최고의 경관으로 뽑혔다. 국토교통부가 주최한 ‘2014 대한민국 경관대상’에서 전국 50여개의 경관 우수작 가운데 종합 1위로 선정됐다. ●광교산 광교산(해발 582m)은 빼어난 경관은 아니지만 부드럽고 완만한 산세에 등산코스가 다양해 하루 5만여명의 등산객이 찾는 등 인기가 높다. 경기대 정문 또는 반딧불이 화장실 앞을 시작으로 형제봉~시루봉~통신대~지지대 13㎞에 이르는 코스 등 10개의 코스가 있다. 광교산에 눈이 쌓인 모습을 일컫는 ‘광교적설’은 수원 8경 중 제1경으로 꼽힌다. 광교산에서 3㎞ 떨어진 곳에 화성행궁이 있는데 고려 궁터와 백제 온조왕의 숙소인 백제행전도 광교산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20~21일 남산골 한옥마을서 ‘국제 걷기대회’

    서울 중구는 20~21일 남산골 한옥마을 일대에서 ‘제12회 서울국제걷기대회’를 연다고 18일 밝혔다. 구가 후원하고 한국체육진흥회와 한국걷기연맹이 주최한다. 이번 대회는 5㎞, 8㎞, 10㎞, 25㎞ 구간으로 나눠 진행된다. 모두 남산골 한옥마을을 출발해 해당 각 구간을 거쳐 다시 한옥마을로 돌아오는 코스다. 국립국장, 옛 안기부, 남산타워, 남산도서관, 숭례문, 청계천, 동대문시장 등을 돌아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첫날 열리는 8㎞ 달빛걷기 코스는 오후 6시 출발한다. 다음날 오전 9시 50분에는 25㎞, 오전 10시에는 10㎞, 5㎞ 코스 출발을 알린다. 완주자에겐 한국걷기연맹에서 완보증을 준다. 완보 후에는 다양한 축하 한마당 행사를 즐길 수 있다. 참가를 원하는 시민은 한국체육진흥회 홈페이지나 한옥마을 현장에서 신청하면 된다. 참가비는 1만원이다. 고등학생 이하는 무료다. 완보한 학생들은 자원봉사활동 인증서를 발급받을 수 있다. 참가비 가운데 1000원은 결식아동 돕기에 쓰인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숭례문·원전에 불량 불꽃감지기

    숭례문·경복궁과 고리·영광 원자력발전소 등 주요 시설에 불량 불꽃감지기 2만여대를 납품한 업체가 경찰에 적발됐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2006년부터 올해까지 국가 주요 시설 등에 불량 불꽃감지기 2만 3000여대를 제조해 납품한 K사 대표 김모(60)씨 등 2명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고 2일 밝혔다. 부사장 강모(54)씨 등 회사 임직원 5명은 불구속 입건했다. 김씨 등은 2006년 경기 성남에 소방방재 업체인 K사를 설립해 190억여원의 불량 불꽃감지기를 판매해 왔다. 불꽃감지기는 화재 발생 시 적외선·자외선 등의 파장을 센서로 식별해 내는 기기다. 이들은 생산 제품을 검사받을 때 리모컨으로 출력 전원을 24V에서 12V로 낮춰 화재가 아닌 빛 등에 반응하지 않는지를 점검하는 ‘부작동 시험’을 통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불량 불꽃감지기는 국회의사당과 숭례문, 고리·영광 원전 등 전국의 국가 주요 시설 2500여곳에 설치됐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세월호 눈물 뒤 분열만 남았다

    무더위가 다시 기승을 부린 29일 낮 서울 광화문광장의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는 천막이 즐비했다.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단식농성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곳으로부터 숭례문 방면으로 200여m 떨어진 서울시의회 앞에도 이날 단식농성 천막이 들어섰다. 청와대 인근 부암동에도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는 시위대가 며칠째 진을 치고 있다. 온 국민을 비탄에 빠트린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36일이나 지난 지금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의 풍경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정치권은 합창하듯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다짐했었다. 여야가 따로 없었고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었다. 하지만 300여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 간 참사로부터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했음을 국민들은 지금 광화문광장에서 목도하고 있다. 국가적 참사에 대한 책임을 축소하기에만 급급한 여당과, 참사를 선거에 이용하다가 이제 와서 슬그머니 발을 빼려 하는 야당에 유가족들은 분노와 절규를 쏟아내고 있다. 정치권은 유가족으로부터 신뢰를 잃고 호통을 듣는 처지로 전락했다. 여야 간 협상은 ‘폐업’하고 유가족이 야당과 여당을 차례로 만나 협상하는 진풍경은 대한민국 정치사의 전무후무한 치욕으로 기록될 만하다. 유가족이 검찰을 못 믿어 수사·기소권을 요구하는데도 검찰이 뼛속 깊이 반성한다는 얘기는 없고 온갖 낯뜨거운 추문만 들리는 것 역시 국민을 좌절케 한다. 대통령부터 국무총리, 장관에 이르기까지 줄줄이 눈물을 흘리며 ‘국가 개조’를 약속했던 것도 지금은 허상처럼 보인다. 세월호 참사 후속 대책으로 신설하기로 한 ‘국가안전처’의 명칭을 ‘국민안전처’로 바꾸기로 했다는 지난 28일 정부·여당의 발표는 국민을 허탈하게 한다. 참사 이후 4개월을 소비한 끝에 내놓은 방안이란 게 고작 기관 이름 한 글자를 바꾸기로 했다는 얘기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꿔 놓고도 참사를 당한 교훈은 원래부터 새기지 않은 모양이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정치권이 세월호 참사를 유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혁신이나 안전 등 국민 모두를 아우르는 공공의 문제로 만들지 못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현실에서 기댈 리더십을 찾지 못한 국민들은 400여년 전 명량(鳴梁)에서 나라를 구한 영웅에게 의지해 좌절감을 달래고 있다. 천막들을 내려다보는 장군의 동상을 올려다보는 것마저 죄스러운 오늘이다. 김상연 기자 carlos@seoul.co.kr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센트레빌 아스테리움 서울’, 파격할인 및 계약금 정액제 실시

    ‘센트레빌 아스테리움 서울’, 파격할인 및 계약금 정액제 실시

    ‘센트레빌 아스테리움 서울’은 주거•상업•업무•문화를 모두 포함하는 도심의 복합도시(MXD: Mixed Use Development)라는 측면에서 볼 때 국내 최초의 도심복합단지다. 도심복합단지는 주거지에 업무시설이 가까이 있고, 상업•문화공간이 한데 어우러져 있어 수준 높은 생활을 누릴 수 있는 단지를 말한다. 이에 센트레빌 아스테리움 서울은 교통•비즈니스•문화•쇼핑이 한꺼번에 어우러지는 서울 도심의 복합 단지로 끊임 없는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센트레빌 아스테리움 서울은 최근 최대 41%의 할인율을 내세우며 부동산 큰손들의 구미를 당기고 있다. 서울시 최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아파트 가격과 비슷한 수준으로 입주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서울역 12번 출구에 위치한 센트레빌 아스테리움 서울은 지하 9층에서 지상 35층까지 총 278가구 규모다. 동부건설이 야심 차게 준비한 이 주상복합단지는 넓은 조망을 자랑한다. 동쪽으로는 남산공원, 남쪽으로는 용산 가족 공원이 자리하고 있어 조망권이 우수하다. 서울의 중심부에 위치한 만큼 주변 편의시설도 다양하게 배치돼 있다. 세종문화회관, 숭례문, 전쟁기념관 등의 문화시설과 롯데백화점, 신세계백화점, 남대문 시장, 롯데마트 등의 다양한 편의 시설도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교통여건도 뛰어나다. 단지와 바로 연결돼 있는 지하철 1, 4호선뿐만 아니라 KTX•공항철도(AREX)도 지나고 있어 대중교통 이용에 편리하다.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등의 교통망도 더 추가될 예정이다. 이렇게 문화•편의 시설과 교통 인프라를 빠짐없이 갖추고 있는 센트레빌 아스테리움 서울은 파격할인과 동시에 계약금 3천만원 정액제도 실시한다. 계약 즉시 입주를 할 수 있으며, 사전 예약 방문 시 상담이 가능하다. 영화예매권 증정 이벤트도 함께 진행 중이다. 문의: 02-775-0088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광화문 시복식]교황 광화문 미사 준비로 15일 교통통제…세월호 유족(유가족) 시복식 참석 예정

    [광화문 시복식]교황 광화문 미사 준비로 15일 교통통제…세월호 유족(유가족) 시복식 참석 예정

    ‘광화문 시복식’ ‘교황 광화문 미사’ ‘15일 교통통제’ ‘교황 세월호 유족’ 광화문 시복식 및 교황 광화문 미사 준비로 15일 교통통제가 이뤄질 전망이다. 교황 세월호 유족 위로에 이어 세월호 유족들이 광화문 시복식에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교황 프란치스코 방한 이틀째인 15일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의 시복식을 하루 앞두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교통통제가 본격화되고 있다. 15일 경찰에 따르면 광화문광장 북쪽에 시복식 제단과 시설물이 설치됨에 따라 이날 정오부터 정부중앙청사 사거리→경복궁사거리 전 차로가 통제된다. 경찰은 이 방향으로 차량이 갈 수 있도록 가변차로를 운용하고 유턴도 가급적 허용할 방침이지만 시설물 설치 상황에 따라 상황은 유동적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날 오전부터 시복 미사 행사장을 감싸는 높이 90㎝의 방호벽 설치 작업이 시작됨에 따라 광화문 삼거리↔세종대로 사거리 상위 2개 차로, 시청→세종대로 사거리 상위 2개 차로가 통제된다. 이날 오후 7시부터는 광장 주변 도로도 단계적으로 통제될 전망이다. 오후 7시에 광화문 삼거리↔세종대로 사거리, 중앙청사 사거리↔경복궁 사거리 차로가 막히고 오후 8시에는 중앙지하차도가 봉쇄된다. 오후 9시에는 세종대로 사거리↔시청 앞, 시청 삼거리→대한문 구간이 통제되고 오후 11시에는 오피시아빌딩 앞↔종로구청 입구 구간이 막힌다. 시복식 당일인 16일 오전 2시부터는 경복궁역에서 안국동, 종로1가, 광교, 을지로1가, 한국은행, 숭례문, 염천교, 경찰청앞, 서대문역, 구세군회관을 돌아 다시 경복궁역을 잇는 구간의 교통이 통제된다. 시복 미사에 참석하려면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 통제 구간 바깥까지 와서 입구까지 걸어가야 한다. 한편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족 600여 명이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천주교 교황방한위원회 허영엽 대변인은 14일 소공동 롯데호텔 프레스센터에서 연 브리핑에서 “전날 세월호 유족 측에서 600명이 시복식에 참석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허 대변인은 이어 “이미 (시복식의) 자리 배치가 끝났지만 신도들이 불편을 감수하고 조금씩 좁혀서 앉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날 공항에 내린 프란치스코 교황은 환영단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다 세월호 가족을 소개받자 왼손을 가슴에 얹고 슬픈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 가슴이 아프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넸다. 세월호 유가족 시복식 참석에 네티즌들은 “세월호 유가족 시복식 참석, 이들에게 큰 위로가 될 것”, “세월호 유가족 시복식 참석, 상당히 기대된다”, “세월호 유가족 시복식 참석, 뭔가 가슴이 뭉클하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10) 지명(중)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10) 지명(중)

    ●창지개명은 단군 이래 최악의 민족정기 말살 사건 서울의 지명은 다중(多重)적이다. 대부분 지명은 여러 개의 이름을 갖고 있다. 모든 지명에는 그렇게 부르게 된 명명(命名) 동기가 있는 데 이를 지명의 유래라고 한다면 서울의 지명은 2000년 동안 성쇠와 풍상을 겪으면서 여러 개의 이름을 가지게 됐다고 할 수 있다. 엄청난 생성과 소멸 과정을 거친 적자생존의 산물이다. 서울의 지명은 산이나 물, 고개, 풍수, 바위, 들, 땅 모양, 인물, 식물, 역사적 사실을 나타내는 정겨운 토박이 이름이 주를 이뤘다. 훈민정음 창제(1446년) 이전까지 비록 우리 글이 없었지만 한자(漢字)를 빌려 이두(吏)로 적었기에 소리 체계는 살아 있었다. 더욱이 수도라는 지역적 특성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역사가 깊숙이 배어 있다. 예컨대 사간동, 내수동 같은 관아 지명이나 동소문동 같은 성문 지명을 비롯하여 왕십리나 답십리 같은 전설 지명, 압구정동 같은 누정 지명과 정릉동, 효창동 같은 능원 지명이 그것이다. 우리나라 지명의 역사에는 두 가지 경천동지할 사건이 있다. 신라 경덕왕(757년) 때 모든 지명을 일률적으로 한자로 바꾸면서 가해진 변형이 첫 번째다. 그러나 두 번째 사건인 일제의 창지개명(創地改名) 앞에서는 조족지혈이다. 일제는 조선 사람 이름을 일본 이름으로 바꾸고(창씨개명), 땅이름도 제멋대로 바꿨다. 단군 이래 최악의 사건이라 할만하다. 서울의 지명에는 이 모든 영욕이 담겨 있다. 서울은 조선 개국 이후 한성부(한성)가 공식 명칭이었지만 한양 또는 서울이라는 지명이 더 널리 쓰였다. 뿐만 아니라 도성, 수선(首善), 도읍, 경조(京兆), 경도(京都), 사대문 안 등 다양한 별칭으로 불렸다. 오늘의 서울을 있게 했고, 서울에서 가장 중요한 산인 삼각산과 백악산은 북한산, 북악산이라는 이명(異名)을 갖고 있다. 남산과 청계천의 본명도 목멱산과 개천이지만 잊혀진 이름이다. 남산은 목멱산이라는 옛 이름보다 오히려 정겨운 것이 사실이다. 인위적인 지명의 전이(轉移)가 아니어서 그렇다. 역사학자 안재홍은 목멱(木覓)은 남산의 우리말인 ‘마뫼’의 이두 표기라고 풀었다. 우리말 마뫼의 ‘마’는 앞이고 ‘뫼’는 산이므로 남산의 남(南)자는 ‘남녘 남’ 자가 아니라 ‘앞 남’자이며 결국 남산은 앞산이라는 것이다. 당시만 해도 남산은 주산(主山)인 백악산의 앞산이요, 왕이 사는 경복궁의 앞 산이었다. 지금은 서울이 확장되면서 강북과 강남의 가운데에 자리잡은 중앙산(中央山)이 됐지만…. 그러나 청계천 개명은 사정이 다르다. 옛 이름인 개천(開川)보다 청계천이 더 청결한 느낌을 주긴 하지만 역사성이 훼손됐기 때문이다. 청계천은 백악산과 인왕산 사이의 골짜기였다. 개천의 발원지로 ‘청풍계천’(?風溪川)이 본명인데 청계천이라고 줄여 불렀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개천의 상류가 청계천인 셈이다. 1916년 6월 24일자 매일신보에 청계천이라는 지명이 처음 등장했다. ‘청계천변 시찰’이라는 기사에서 “개천, 일명 청계천…”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10년이 흐른 1927년 조선총독부가 ‘조선하천령’을 제정하면서 청계천이라고 바꿔 버렸다. 조선 500년 동안 한양도성의 명당수이자 하수구였던 개천이라는 이름은 이렇게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사람들은 숭례문, 흥인지문, 숙정문, 돈의문처럼 조선 개국의 설계자 삼봉 정도전이 명명한 사대문의 정식 명칭을 두고 남대문, 동대문, 북대문, 서대문이라고 즐겨 불렀다. 광희문, 혜화문, 창의문, 소덕문 등 사소문 또한 수구문(시구문), 동소문, 자하문(북소문), 서소문이라는 별칭을 주로 썼다. 인위적인 엄숙한 지명보다 방향이나 쓰임새 위주로 호칭하기를 즐겼다. 한강도 지금은 하나의 이름으로 통칭되지만 조선시대에는 동호, 경강, 노들강, 용산강, 서강, 조강 등 지역별로 세분해서 불렀다. 그중에서 3개의 강이 주를 이뤘다. 경강은 지금의 한남대교~노량진 구간, 용산강은 노량진~마포, 서강은 마포~양화진 구간을 각각 지칭했다. 학자에 따라서는 5강, 8강, 12강까지 세분했으니 우리 지명의 다중성은 일일이 예로 다 들 수 없을 정도다. ●역사는 지명에 의해 기록되지만 지명은 역사를 창조하기도 지명의 다중성은 어디에서 연유됐을까. 역사의 곡절 때문이다. 역사는 지명에 의해 기록되지만, 지명이 역사를 창조하기도 한다. 지명학(Toponymy)의 어원이 그리스어 토포스(Topos·장소)에서 비롯된 것처럼 지명은 땅의 기원과 의미, 변천사를 단순화해 보여주는 척도다. 지명이 곧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자료가 남아 있지 않을수록 역사 연구에서 지명 의존도는 높다. 지명이 복잡하다면 그만큼 역사가 고단했다고 볼 수 있다. 지명이 여럿이라고 해서 반드시 역사의 고단함만을 나타내지는 않는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성명학(姓名學)에 빗대 보면 사물에는 하나의 이름만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에게는 태어나면서 주어지는 명(名)이 있다. 성년이 되면 자(字)를 가지며 사람에 따라 호(號)를 가진다. 죽은 뒤 시호(諡號)를 받는 사람도 있다. 왕은 사후 묘호(廟號)와 능호(號)를 가진다. 성명학에서 어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고 자나 호를 부르도록 한 것은 이름을 귀히 여기는 존명 사상 때문이다. 왕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을 국휘(國諱)라고 하고, 존속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을 피휘(避諱)라고 했다. 자와 호가 없는 일반인들도 이름이 함부로 불리는 것을 꺼렸기에 ‘안동댁’ 같은 택호(宅號)를 두어 누구나 부를 수 있도록 했다. 사람의 이름이 여럿이듯 땅의 이름인 지명도 여럿일 수 있다는 것이 우리네 사고방식이었다. 사람이나 사물에 별칭이 따로 있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겼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지명 왜곡은 차원이 다르다. 민족의 역사와 정기를 말살하고자 획책했다. 1914년 조선총독부는 전국의 군을 317개에서 220개로, 면은 4322개에서 2518개로 축소하는 어마어마한 행정개편을 단행했다. ‘전국 방방곡곡(坊坊曲曲)’을 이루던 우리의 마을 방(坊)을 폐지했다. 서울은 186개의 동(洞)-정(町)-통(通)-정목(丁目)으로 정리했다. 조선인들이 많이 살던 북촌은 동으로, 일본인이 모여 살던 남촌은 정으로 이름 붙였다. 일제강점기 최고의 번화가 본정통(충무로), 황금정(을지로), 명치정(명동)이 이때 생겼다. 뿐만 아니라 일본 황태자가 서울에 와서 머문 것을 기념한다면서 ‘황공하게도 다녀가셨다’는 의미의 어성정(御成町·남대문)이라는 지명을 붙였고, 술집과 찻집이 많던 다동을 일본식 다옥정(茶屋町·다동)이라고 개악했다. 일본군 육군대장의 이름을 따서 장곡천정(長谷川町·소공동)이라고 명명하거나, 일본 정신을 상징하는 ‘대화’를 넣어 대화정(大和町·남산)이라고 하는 등 얼토당토않은 이름을 부지기수로 붙였다. 22년간 지속된 동-정-통-정목 제도는 1936년 경기도 고양군, 시흥군, 김포군 지역이 서울(경성)로 편입되면서 모조리 정-통으로 통일됐다. 서울의 면적은 4배가 늘었고 186개의 동-정-통이 259개의 정-통이 됐다. 종로구, 중구, 용산구, 동대문구, 성동구, 서대문구, 영등포구, 마포구 등 8개 행정구가 생겼다. 원동이 원서정, 동세교리가 동교정, 아현북리가 북아현정, 홍제내리와 홍제외리가 홍제정, 한지면 신촌리가 응봉정, 수철리가 금호정, 두모리가 옥수정, 동막상리가 용강정, 동막하리가 대흥정, 여율리가 여의도정으로 각각 변경됐다. 역사와 문화가 깃든 우리 지명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의 절정이다. 무악재에서 발원해 남대문을 거쳐 원효로를 따라 한강으로 흐르는 만초천을 그들이 내세우는 ‘욱일승천기’에서 ‘해돋을 욱’(旭) 자를 따 욱천이라고 마음대로 바꿨고, 흑석동 일대에 고급 주택을 지어 분양한 일본인 업자가 붙인 주택단지 명수대를 지명화했으며, 노들섬을 중지도라고 명명했다. 조선시대 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 이름이 표기된 단 두 개의 길 이름도 퇴출당했다. 육조대로(광화문광장)와 운종가(종로)라는 양대 지명의 소멸이다. 육조가는 의정부와 육조가 자리한 관청거리였고, 운종가는 사람이 구름처럼 모이던 시장거리였었다. 일제는 유서 깊은 지명을 역사와 지도에서 지워 버렸다. 개천을 청계천으로 개명하거나, 인왕산(仁王山)의 한자를 엉뚱하게 인왕산(仁旺山)이라고 고친 것도 역사 말살의 속셈이었다. 해방 후 육조대로와 운종가를 왕조의 유물로 생각해 원상 회복시키지 않은 것은 후회막급이다. 삼각산이나 백악산이라는 정기가 깃든 아름다운 이름도 되돌리지 않았다. 태평로를 닦느라 고갯마루가 사라진 세종로 네거리 황토마루(황토현)의 이름도 청사에 남겼어야 했다. 우리의 조급함이 문제였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국보급 문화재 10점 중 4점 보존상태 최하 등급

    석굴암(국보 제24호), 첨성대(국보 제31호), 해인사 대장경판(국보 제52호) 등 주요 문화재들이 구조적 안전성과 보존환경 등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 중점 관리된다. 문화재청은 7일 국보와 보물 등의 국가 및 지방지정문화재, 등록문화재를 포함한 7393건의 문화재를 특별점검한 결과 이 가운데 22.8%인 1683건이 구조적 결함이나 즉각적인 보수정비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특히 야외에 노출된 석탑 등 석조문화재는 1601건 중 642건(40.1%)이 풍화와 생물오염 등에 따른 훼손 위험도가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점검대상 국보급 문화재 85건 가운데는 무려 31건(36.5%)이 최하인 D~E등급으로 분류됐다. 석굴암과 첨성대 등은 국립문화재연구소의 구조모니터링이 진행 중이지만, 붕괴 우려가 높은 예산 수덕사 대웅전(국보 제49호) 등은 해체 보수 등의 구체적인 대안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 문화재청은 전체 점검 대상 중 구조적 결함 등으로 정기 점검이 필요한 문화재 183건, 보수정비가 필요한 문화재 1413건, 즉시 수리조치가 요구되는 문화재를 87건으로 꼽았다. 이번 특별점검은 지난해 12월부터 올 5월까지 야외에 노출돼 훼손 위험성이 큰 국가지정문화재, 시·도지정문화재, 등록문화재와 유물 다량 소장처 47곳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한편 문화재청은 이날 ‘숭례문 복구 계획’의 발표를 취소한 채 별도의 자료 없이 간단히 언급해 빈축을 샀다. 문화재청은 감사원으로부터 지적받은 숭례문 단청 박락에 따른 재시공과 기와 교체 여부, 조선 중후기 바닥면으로의 지반 복구 등을 문화재위원회 등의 향후 논의를 거쳐 진행할 것이라며 단계별로 필요에 따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강경환 문화재청 보존국장은 “복구 과정이 5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연구소장은 “숭례문 복구 계획 발표는 이달 말 시작되는 국정감사를 의식해 갑작스럽게 취소된 것으로 안다”고 지적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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