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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최고 서구식 세계지도 ‘만국전도’ 등 도난 문화재 불법유통 업자들 덜미

    국내 최고 서구식 세계지도 ‘만국전도’ 등 도난 문화재 불법유통 업자들 덜미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서구식 세계지도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만국전도’와 양녕대군의 친필 목판 등 도난당해 행방이 묘연했던 국가지정문화재 123점을 입수해 처분하려던 업자들이 덜미를 잡혔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골동품 업자이니 A(50)씨와 B(70)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29일 밝혔다. A씨는 1994년쯤 동대문구 휘경동 소재 함양 박씨 문중에서 도난당했던 보물 제1008호 ‘만국전도’(萬國全圖)와 1800년대 간행된 고서적 116책을 지난해 8월 입수한 뒤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 벽지 안쪽과 주거지에 숨긴 혐의를 받고 있다. ‘만국전도’는 조선 중기 문신인 박정설(1612~?)이 외국인 선교사가 편찬한 한문판 휴대용 세계지리서 ‘직방외기’(職方外紀)를 1661년 확대해 필사·채색한 서양식 세계지도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만국전도는 현재까지 확인된 국내 제작 서구식 세계지도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이다. 이 지도에는 아시아뿐만 아니라 아메리카·아프리카 등 주요 대륙과 바다의 모습이 오늘날 세계지도와 흡사하게 묘사돼 있다. 만국전도와 함께 도난된 고서적은 을미사변 당시 의병장으로 활동한 나암 박주대(1836~1912) 등 함양 박씨 가문의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는 자료라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B씨는 2008년 10월 전남 담양의 양녕대군 후손 문중에서 도난당한 ‘숭례문’ 목판 2점과 ‘후적벽부’ 4점을 2013년쯤 취득한 뒤 자신의 비닐하우스에 보관한 혐의를 받고 있다. 숭례문 목판 2점은 조선 제3대 왕 태종(1367~1422)의 장자 양녕대군(1394~1462)의 친필이 담긴 목판으로 전해지며, 국보 제1호 숭례문의 현판에 쓰인 ‘崇禮門’을 새긴 것이다. 후적벽부 목판 4점은 양녕대군이 중국 송나라 시인 소동파의 시 ‘후적벽부’를 초서체(흘림체)로 쓴 것을 19세기 후대 사람들이 목판에 기록한 것으로, 목판 말미에 제작 계기와 시기 등이 함께 새겨진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A씨와 B씨가 도난 문화재를 유통하려 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문화재청 사범단속반과 공조해 수사에 들어갔다.경찰 조사에서 A씨는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B씨는 2015년 사망한 C씨한테서 각각 1400만원, 500만원씩을 주고 도난 문화재를 사들였으며, 장물인 줄 몰랐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두 사람 모두 오랫동안 골동품 매매업을 해왔고, 도난 문화재 정보는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공시되기 때문에 장물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면서도 처분하려고 숨겨 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경찰은 두 사람을 상대로 문화재 취득 경위와 여죄 등을 조사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삶과 죽음 교차했던 서소문역사공원 다음달 8년만에 전면 개방

    삶과 죽음 교차했던 서소문역사공원 다음달 8년만에 전면 개방

    조선 시대 중죄인을 처형하는 형장이었던 서울 서소문근린공원이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해 8년 만에 시민들에게 활짝 품을 내준다. 서울시는 오는 6월 1일부터 중구 칠패로 서소문역사공원을 전면 개방한다고 24일 밝혔다.지하 4층~지상 1층, 연면적 4만 6000㎡ 규모의 공원은 지상엔 역사공원과 다양한 시민 편의 시설, 지하엔 역사박물관, 하늘광장, 주차장 등을 갖췄다. 공원 일대는 조선 시대엔 서소문 밖 저자거리로 국가 형장으로 쓰였다. 조선 후기 때 여러 종교인, 개혁 사상가들이 이 곳에서 희생됐다. 17세기에는 한양의 주요 시장인 칠패시장이 자리하며 상업 중심지로도 활기를 띠었고 일제 강점기에도 수산청과시장이 자리했다. 근린공원으로 변신한 건 1973년이었다. 김태명 서울시 관광정책과장은 “서소문근린공원은 이처럼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역사적 의미가 큰 공간이었으나 그 의미를 살리지 못한 채 단순한 공원으로 머물러 왔다. 이후 서울시가 일대를 역사유적지 관광자원으로 만들기 위해 2011년부터 공원 조성 작업에 나서며 8년만에 개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공원의 지상에 들어서면 탁 트인 광장을 중심으로 1984년 세워진 순교자 현양탑과 편의시설이 자리해 있다. 인근 주민, 직장인,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한다. 수목 45종 7000여주와 화초류 33종 9만 5000본을 심어 수려한 녹지 공간을 꾸몄다.지하에는 사상과 종교의 자유를 위해 희생당한 이들을 기리는 기념전당(하늘광장)을 비롯해 서소문 관련 전시물을 모은 역사박물관, 편의시설, 교육 및 사무공간, 주차장 등이 들어섰다. 지상 공원은 중구청이 관리하고, 그 외 시설 운영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유지재단이 맡는다. 서소문역사공원은 지난해 교황청이 선포한 ‘천주교 서울 순례길’ 코스 가운데 하나다. 박원순 시장은 “이 일대는 조선시대부터 일제 강점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이야기와 역사를 품은 장소임에도 그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다”며 “이번에 재탄생된 서소문역사공원은 정동·덕수궁·숭례문·남대문시장·서울로7017 등 인근의 역사문화자원과 함께 국내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오는 25일 오전 10시 열릴 개관식에는 박원순 서울시장, 문희상 국회의장,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서양호 중구청장, 염수정 추기경 등 200여명이 참석해 공원과 박물관 시설을 둘러본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조현민, 부주의로 추돌사고…“음주운전 아니며 과실 인정”

    조현민, 부주의로 추돌사고…“음주운전 아니며 과실 인정”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운전 중 부주의로 앞차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조씨는 21일 오전 11시 43분쯤 자신의 파란색 테슬라 승용차를 몰고 서울 시청교차로에서 숭례문 쪽으로 향하다 앞서가던 흰색 쏘나타 승용차를 추돌했다. 이 사고로 조씨와 피해자의 승용차가 파손됐다. 두 운전자는 가벼운 상처를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에 따르면 조씨는 덕수궁 대한문 앞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속도를 줄이지 않다가 멈춰선 앞차에 부딪혔다고 진술했다. 사고 당시 다른 동승자는 없었다. 경찰은 조씨의 부주의로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조씨와 피해자 진술, 차량 블랙박스 등을 토대로 조사하고 있다. 사고 직후 음주 여부를 측정한 결과, 조씨가 술을 마시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 관계자는 “조씨가 본인 실수였음을 순순히 인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조씨는 1800여만원 상당의 반지와 팔찌를 밀수입한 혐의를 받았으나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또 지난해 3월에는 회의 중 물컵을 던져 검찰 수사를 받았지만, 이 역시 무혐의·공소권 없음으로 결론 났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달랑 205원 50전에 낙찰돼 사라진 돈의문…그 애환과 마주하다

    달랑 205원 50전에 낙찰돼 사라진 돈의문…그 애환과 마주하다

    대한민국 근현대 100년의 기억 보관소, 서울미래유산 현장을 찾아가는 ‘2019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가 2일 올해로 네 번째 시즌을 시작한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는 지난달 27일 제1회 돈의문 안과 밖을 시작으로 오는 12월 21일까지 모두 35회에 걸쳐 매주 말 서울 곳곳을 샅샅이 누빌 예정이다. 올해는 지역별 유형유산 탐방 횟수를 줄이고 문학과 영화, 대중가요 등 서울의 내밀한 과거를 품은 무형유산의 비중을 넓힌 게 특징이다. 시와 소설은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정비석의 ‘자유부인’, 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 박완서의 ‘나목’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체취가 묻은 작품 현장으로 떠난다. 이만희의 ‘귀로’, 유현목의 ‘수학여행’ 등의 영화와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 은방울자매의 ‘마포종점’ 같은 대중가요도 탐방의 대상이다.분야별 전문성을 갖춘 서울도시문화지도사 출신 베테랑 해설자 18명이 돌아가면서 해설을 맡는다. 답사는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여 동안 진행된다. 7월 27일부터 8월 24일까지 5회는 무더위를 피해 야간 투어를 한다. 국내 도보답사 프로그램 중 최초로 도입한 오디오가이드 시스템을 이용, 품격 있는 탐방 환경을 제공한다. 참가 신청은 서울미래유산(futureheritage.seoul.go.kr)의 참여하기 코너에서 답사 신청을 하면 된다. 매주 월요일 40명을 선착순 무료로 모집한다. 참가자가 투고한 견문기는 서울신문 매주 목요일자에 게재한 뒤 소정의 원고료를 지급한다.2019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회 ‘돈의문의 안과 밖’이 지난달 27일 광화문과 순화동 일대에서 산뜻하게 돛을 올렸다. 새로 지은 새문안교회 앞에서 모인 참가자 40여명은 구세군회관 생명의 말씀사~경희궁~돈의문박물관마을~4·19혁명기념도서관~임시정부 서울 연통부지~소덕문 터~평안교회로 이어지는 코스를 두 시간여 동안 탐방했다.우리가 보통 서대문이라고 부르는 문의 원래 이름은 돈의문(敦義門)이다. 돈의문은 애환이 많은 문이다. 4개의 대문 중 가장 늦게 지어졌고, 제일 먼저 헐렸으며, 유일하게 제자리에 돌아오지 못했다. 서대문구에는 서대문이 없다. 돈의문은 중구에 속하기 때문이다. 돈의문의 비극은 풍수학자 최양선이 경복궁 좌우 팔에 해당하는 창의문과 돈의문의 사람 통행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을 태종이 받아들여 문을 폐쇄하면서 비롯됐다. 대신에 지금의 사직터널 부근에 새로 지은 문이 서전문(西箭門)이다. 세종 때 도성을 고쳐 쌓으면서 서전문을 막고 경교(지금의 강북삼성병원) 앞에 세 번째 문을 설치했다. 돈의문이 가장 늦게 지어진 까닭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문이라면서 신문(新門)이라고 적고, 새문이라고 읽었다. 지명에 ‘새문안길’이나 ‘신문로’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가끔 ‘막힐 색(塞)’ 자를 써서 ‘색문’ 또는 ‘새문’이라는 기록도 나온다. 조선 개국공신 이숙번의 집이 돈의문 앞에 있어서 번잡함을 막으려고 문을 폐쇄했다는 야사에서 나왔다. 성문을 막은 집이라는 ‘색문가’(塞門家)라는 표현이 색문 또는 새문이라는 속칭으로 변했다는 얘기다. 1614년 이수광이 쓴 최초의 백과사전 ‘지봉유설’에 보면 “팔문(八門)의 정남은 숭례라 하며 속칭 남대문이라 부르고, 정북은 숙청이라 부르고, 정동은 흥인이라 하며 속칭 동대문이라 부르고, 정서는 돈의라 하며 속칭으로 신문(新門)이라 부르고, 동북은 혜화라 하며 속칭은 동소문이라 부르고, 서북은 창의라 하고, 동남은 광희라 하며 속칭으로 남소문이라 하고, 서남은 소덕이라 하며 속칭 서소문이라 부른다. 또 수구문이 있어 이 양문(소덕문과 광희문)으로 장사 지낼 사람이 나간다”고 썼다. 그렇다면 서대문이라는 명칭은 언제, 어떻게 생겼을까.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시기에 발간된 독립신문이나 대한매일신보 등 신문기사에도 이 일대를 지칭할 때 새문의 안쪽은 ‘새문 안’, 새문의 바깥은 ‘새문 밖’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미뤄 일제강점기 이후 서대문이라는 명칭이 정착됐다고 볼 수 있다. 1928년 마쓰다코가 지은 ‘조선만록’(조선총독부 간)에 “돈의문을 조선인은 신문, 내지인은 서대문이라 부른다”고 설명한 대목이 유력한 근거다. 돈의문은 왜 사라졌을까. 1915년 3월 7일자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낙찰된 새문 목재만 205원, 입찰자 10명 가운데 경성 염덕기가 205원 50전에 낙찰…”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경매에 부쳐진 돈의문은 나무 값만 받고 헐렸다. 명목상 이유는 성곽도시 서울의 간선도로망 정비를 통해 공간 구조 재편을 꾀한 경성시구개수(京城市區改修) 공사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1915년 9월에 열릴 예정인 조선물산공진회라는 박람회 개최를 성공시키고, 경복궁 안에 조선총독부를 신축해 식민통치를 굳히려는 속셈이었다. 경성시구개수 공사의 29개 노선 중 15번째 노선이 경희궁~서대문~독립문 노선이었다. 서울 서부 외곽의 주요 간선인 독립문에서 도심을 연결하는 전찻길을 넓히고 직선화할 목적이었다. 당시 서대문경찰서장이 ‘서대문의 존치를 바라는 조선인들의 여론’을 보고했지만 총독부는 철거를 강행했다. 문을 그대로 두고 도로를 내는 것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였다. 돈의문과 문을 에워싼 성곽은 1915년 6월 시야에서 사라졌다. 숭례문과 흥인지문은 임진왜란 때 왜군 선봉장 가토 기요마사와 고니시 유키나가가 각각 입성한 개선문이라는 이유로 살아남았다. 돈의문은 중국 사신이 드나들었다는 괘씸죄 탓에 멸문지화(滅門之禍)를 입었는지도 모를 일이다.돈의문 밖은 1876년 조선과 일본 간 강화도조약이 체결된 뒤 개항장인 인천 제물포에서 양화진을 거쳐 서울로 들어오는 제일 관문으로 부각됐다. 1882년 미국과 한미수호통상조약을 맺은 이후 입국한 서양인 대부분이 이 길을 택했다. 돈의문에서 지척인 정동에 서구 열강의 공사관이 들어선 것도 편리한 교통 때문이다. 1899년 정동과 이어지는 서대문정거장~청량리 간 전차가 놓였고, 서대문정거장 옆에 서양식 스테이션 호텔(정거장호텔)이 들어서 외국인 선교사와 외교관, 상인들이 새문 밖으로 몰려들었다. 1900년 한강철교가 놓인 뒤에는 서대문정거장에 서울 최초의 기차역이 들어서면서 서울을 찾는 외국인은 정동과 새문안에 집결하다시피 했다. 새문 안은 서울의 기점이자 종점이었고, 새문 밖 경기감영 앞은 도성 밖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였다. 돈의문 안팎은 중국 가는 의주로에 이어 두 번째 황금시대를 맞았다.돈의문은 살아나지 못했다. 2009년 서울시는 2013년 완공을 목표로 복원 계획을 발표했지만 원형 복원의 어려움과 예산 문제에 부딪혔다. 종로~신촌~마포 간 교통 흐름을 해결하고 원래의 자리에 복원하려면 지하차도를 건설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당시 지하차도 건설 비용은 1300억원 정도였지만 공사 기간에 우회도로를 마련하기 어려웠다. 복원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돈의문 대신 돈의문박물관마을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독립운동가의 집, 돈의문구락부 같은 16개 동의 전시관과 한지공예 등 9개 동의 체험관, 드라마갤러리 등 9개 동의 마을창작소가 시민들을 맞는다. 서울미래유산관도 있다. 옛 새문안 동네에 있던 집 63채 중 40채를 활용했다. 1년 내내 전시와 공연, 마켓이 열리는 참여형 공간이다. 구릉과 골목, 계단이 공생하는 이 마을은 돈의문도, 서대문도 아닌 새문안 마을이다. 마치 흘러간 시간의 섬처럼 갖가지 추억을 간직한 채 인왕산과 안산의 품에 깃들여 있다. 돈의문이 존재하지 않는 덕분에 돈의문 안과 밖은 구분이 사라졌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선호 연구위원
  • 노트르담 화마 이긴 프랑스의 힘...매뉴얼·훈련·기부 ‘삼위일체’

    노트르담 화마 이긴 프랑스의 힘...매뉴얼·훈련·기부 ‘삼위일체’

    “노트르담 대성당의 구조와 특성은 반복 훈련 덕분에 평소에 잘 숙지하고 있었어요. 종탑의 나선형 계단을 수천 번 오르내리면서 훈련해 왔습니다. 막 출동해보니 현장에서는 성당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로 인산 인해를 이뤘지만 우리는 준비가 돼 있었지요.” 프랑스 파리 소방대(BSPP) 소속의 2년차 여성 소방대원인 미리암 추진스키(27)는 18일(현지시간) 일간 르 파리지앵 등 프랑스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15일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당시 긴박했던 상황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노트르담 성당 지붕 가운데 우뚝하게 솟은 96m 첨탑은 화재 발생 1시간여 만에 화염의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지만 추진스키를 비롯한 파리 소방대의 발 빠른 초기 대처 덕분에 성당 전체의 붕괴라는 재앙은 피할 수 있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무엇보다 프랑스 소방대원들이 화재 대응 매뉴얼에 따라 철저하게 반복적으로 훈련을 해왔고 개별 문화재별로 화재 매뉴얼이 있었다는 사실은 재난에서도 더욱 강한 ‘문화강국’ 프랑스를 만든 원동력이 됐다. 프랑스 문화와 역사에 대한 프랑스 국민의 자부심과 애정은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화재 현장에서 사투를 벌였던 소방대원 500명을 이날 파리 엘리제궁에 초청해 고마움을 표시했다. 시민들은 소방서에 초콜릿과 꽃을 보내는 등 소방 대원들이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닮은 듯 다른 2008년 숭례문과 2019년 노트르담 화재 무엇보다 한국인에게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모습은 11년전인 2008년 2월 10일 밤에 일어난 ‘국보 1호’ 숭례문(崇禮門·남대문) 화재를 떠올리게한다. 한국인들은 수도 서울 한 복판에 우뚝 서 있던 국보 1호가 불길에 휩싸인 모습을 보면서 상실감과 슬픔을 느껴야 했다. 숭례문과 노트르담 대성당은 한국과 프랑스 수도 중심부에 위치한 대표 문화재다. 숭례문은 건축 시기를 명확히 아는 서울 시내 목조 현존 건축물 가운데 가장 오래됐으며 조선 태조 7년(1398)에 완성한 뒤 세종과 세조 때에 보수 공사를 했다. 돌을 쌓아 조성한 석축(石築) 위에 무지개 모양 홍예를 만들고, 그 위에 정면 5칸·측면 2칸인 누각을 올렸다. 파리 시테섬 동쪽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은 유럽 고딕 양식 건축을 보여주는 전형으로 꼽힌다. 1163년 공사를 시작해 1345년 축성식을 열었고, 나폴레옹 황제 대관식과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 장례식 등 프랑스 역사의 주요 사건이 펼쳐진 무대다. 빅토르 위고가 발표한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 무대로도 유명하고, 지금도 하루 평균 관광객 3만 명이 찾는 관광 명소다. 숭례문 화재는 70세 남성이 토지 보상금에 대한 불만으로 홧깃에 일부러 불을 지른 방화였으나,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는 첨탑 보수 작업 과정에서 벌어진 실화로 추정된다. 화재 원인은 다르지만 공교롭게도 상층부에서 불이 시작됐다는 사실은 유사하다. 숭례문 방화범은 2층 문루에 불을 질렀고,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는 공사를 위해 첨탑 주변에 촘촘하게 설치한 가설물인 비계와 성당 내부 목재를 중심으로 불이 났다. 프랑스 당국은 성당 지붕 쪽에 설치된 비계의 전기회로에 이상이 없었는지를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으며 전기 합선과 같은 과부하로 발화했을 가능성을 집중 조사하고 있다. 숭례문과 노트르담 대성당은 모두 지붕을 잃었다는 점과 다행히 전소를 피했다는 점도 유사하다. 숭례문은 화재가 발생한 다음 날까지 불길이 잡히지 않자 지붕을 해체하기로 결정했고, 오전 2시쯤 누각이 무너져 내렸다. 노트르담 대성당도 화염 속에서 화재 1시간 만에 나무와 납으로 만든 첨탑이 사라졌다. 숭례문은 5년 3개월간 전통 방식에 가깝게 진행한 복구공사 끝에 2013년 5월 새로운 모습을 선보였으며, 노트르담 대성당 복원 기간은 아직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비상 매뉴얼과 소방 당국의 적확한 판단력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로 첨탑과 전체 지붕의 3분의 2 가량이 무너졌지만 두 개의 종탑과 스테인드글라스 장미창, 가시면류관, 루이 9세가 입었던 튜닉 등 주요 유물들은 무사했다. 이는 사전에 갖춰진 매뉴얼과 훈련, 그리고 소방관, 문화재 직원, 사제를 넘어 드론과 로봇까지 동원된 총력전을 펼친 덕분이다. 프랑스는 유물 보호를 위해 번호를 매겨 화재 발생시 외부 반출 우선순위를 정해놓는 비상 매뉴얼도 갖추고 있다. 이번 화재에서 대부분의 중요한 유물들이 안전하게 보호된 것도 바로 이런 매뉴얼을 바탕으로 한 훈련이 빛을 발한 결과다. 화재가 발생한 직후 문화재 관리 부처와 파리시 문화재담당자 100여 명이 곧바로 현장에 출동해 소방당국과 함께 문화재를 최대한 보호하기 위한 논의를 거듭하며 진화작업을 벌였다. 프랑스 당국은 지난해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두 차례 대규모 훈련도 실시했다. 이 훈련은 유물과 성화 등 예술작품을 구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화재에 투입된 소방관 500명 중 100명을 예술작품을 구하는데 배치한 것과 화재 당시 소방관들이 외부에서 헬기나 외부 호스로 끄지 않고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내부로 진입해 문화재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 역시 이같은 훈련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이번 화재 때는 무게 13t의 종이 무너져 내리면 성당 전체가 붕괴할 수도 있었다. 소방관들은 첨탑은 포기하고 종탑의 나무 지지대가 무너지지 않도록 사력을 다했고 이는 올바른 판단이었음이 드러났다. ●복원 기부금 1조원 돌파한 프랑스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직후 성당복원을 위한 프랑스와 전 세계 억만장자들의 기부금 행렬이 줄을 이어 하루 반만에 8억 8000만 유로(약 1조 1240억원)를 기록했다. 이는 프랑스 정부가 문화재 관리를 위해 한해 편성하는 예산(3억 2000만유로)의 2배 이상이다. 2008년 숭례문 화재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국민 성금으로 숭례문을 복원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강제 모금을 국민 성금으로 포장하고 정부의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시킨다는 질타가 이어졌다는 사실은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얼마나 큰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프랑스 대기업들의 거액 기부를 놓고 프랑스 좌파 진영에서는 대기업들이 세액 공제 혜택을 받아 정부 세수가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지만 자발적으로 노트르담 대성당 복원기금을 쾌척한 프랑스 대기업 회장들과 비교하면 한국의 현실은 초라하다. 이는 프랑스 정부가 기부금을 내는 개인에게 최대 66%까지 세금 감면 혜택을 주고 한국의 경우 받을 수 있는 세금감면 최대 공제율이 30%라는 차이가 있지만 문화재를 대하는 의식 자체의 차이라는 지적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숭례문·노트르담 대성당…화마가 삼킨 인류의 문화유산은?

    숭례문·노트르담 대성당…화마가 삼킨 인류의 문화유산은?

    지난 1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 대형 화재가 발생해 첨탑과 지붕의 3분의 2가 소실됐다. 화마에 휩싸인 문화유산을 지켜보며 프랑스는 물론 전 세계인이 애통함을 드러냈다. 지난해 9월에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국립박물관이 화마로 큰 상처를 입었다.1818년 지어져 200년 역사를 자랑하던 이 박물관은 남미에서 가장 큰 자연사 박물관이었다. 그러나 하룻밤의 화재로 유물 2000만 점과 동물 수집물 표본 650만 점, 식물 50만 종의 90% 정도가 소실됐다. 이 가운데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1만1500년 전에 살았던 여성의 두개골을 복원한 ‘루지아’도 포함됐다.2008년 2월에는 대한민국 국보 1호인 숭례문이 불에 탔다. 조선이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면서 세운 도성 정문이자 남대문인 숭례문은 건축 시기를 명확히 아는 서울 시내 목조 현존 건축물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 70세 남성이 홧김에 저지른 방화에 숭례문은 지붕이 소실됐으며 누각은 무너져내렸다. 그나마 전소를 피해 5년 3개월간의 복구공사 끝에 2013년 5월 새로운 모습을 선보였다.90년대에는 ‘라 페니체 오페라 하우스’, ‘리세우 대극장’, ‘윈저성’, ‘보스니아 국립도서관’이 화재로 훼손됐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1792년 개관한 라 페니체 오페라 하우스는 거의 완벽한 음향으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오페라 하우스였지만 1996년 화재가 발생해 2004년이 되어서야 재개관했다. 1847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지어진 오페라 하우스인 리세우 대극장은 1994년 화재로 완전히 불에 타 1999년 복원이 끝났다. 1992년에는 11세기에 지어진 영국 런던의 윈저성에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불길은 250명의 소방관이 15시간 동안 진화한 끝에 잡혔으며 5년간의 복구 작업을 거쳐 1997년 일반에 공개됐다.13세기에 지어진 ‘메스 생 테티엔 성당’은 프랑스 북동부의 국경 도시 메스에 있는 유서 깊은 성당이다. 20세기까지 크고 작은 공사가 계속되었던 이 성당은 1877년 5월 당시 독일 황제였던 빌헬름 2세가 방문했던 날 화재가 발생했다. 1849년 F.보이만스의 소장품을 바탕으로 설립된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보이만스 반 뵈닝겐 미술관’은 1864년 2월 지하에서 발생한 화재로 많은 작품이 소실됐다. 당시 작품이 보관돼 있던 창고의 열쇠를 분실해 피해가 더 컸다. 이 미술관은 1958년 반 뵈닝겐의 소장품을 추가하여 다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1666년 9월 2일에는 런던 대화재(Great Fire of London)가 발생했다. 빵 공장에서 시작된 불은 소방담당자의 무책임한 초기 대응으로 런던 시내까지 번지면서 5일간 87채의 교회와 1만3000채의 집이 불에 탔다. 인구 8만 명 중 7만여 명이 집을 잃고 노숙자가 되었다. 윈스턴 처칠의 장례식,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결혼식이 거행된 장소로 유명한 세인트폴 대성당도 이때 불에 탔다. 이후 35년을 투자해 둥근 돔이 있던 당시 모습 그대로 재건됐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숭례문 떠오르게 한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문화재청 긴급점검

    숭례문 떠오르게 한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문화재청 긴급점검

    프랑스 파리를 상징하는 건축물인 노트르담 대성당이 15일 저녁(현지시간) 화재로 불길에 휩싸였다. 성당 첨탑에서부터 솟구친 불길은 첨탑과 지붕을 무너뜨렸고, 내부 유물들의 소실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앙드레 피노 노트르담 대성당의 대변인은 목재 구조물 중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성당은 빅토르 위고가 발표한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 무대로도 유명하고, 하루 평균 관광객 3만 명이 찾는 관광 명소다. 한국 역시 2008년 2월 10일 서울의 상징이자 대한민국 국보 1호인 숭례문이 불에 탄 아픔이 있는 만큼 문화재청도 깊은 유감을 표하고 국내 문화재 안전상황을 긴급 점검한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원인과 진화 상황을 주시하는 한편 직접 관리하는 고궁과 종묘, 조선왕릉, 현충사에서 소방시설 점검과 현장 관리를 진행한다. 숭례문 화재는 70세 남성이 2층 문루에 불을 지른 방화였고,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는 첨탑 보수 작업 과정에서 벌어진 실화로 추정되고 있다. 화재 원인은 다르지만, 상층부에서 불이 시작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공사를 위해 첨탑 주변에 설치한 비계와 성당 내부 목재를 중심으로 불이 났다. 파리 시민들은 대성당이 화마에 휩싸인 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두 건축물 모두 화재로 지붕을 잃었지만 다행히 전소는 피했다. 숭례문은 화재가 발생한 다음 날까지 불길이 잡히지 않아 지붕을 해체하기로 결정했고, 오전 2시 누각이 무너져 내렸다. 노트르담 대성당도 화염 속에서 화재 1시간 만에 나무와 납으로 만든 첨탑이 사라졌다. 숭례문은 5년 3개월간 복구 끝에 2013년 5월 새로운 모습을 갖추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최악은 피했다. 노트르담 대성당을 재건하겠다”고 밝혔지만 복원 기간은 아직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숭례문 복구에 단장으로 참여한 최종덕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를 접한 순간 안타깝고 슬프기 짝이 없었다. 공사 과정에서 실수로 불이 났는지, 아니면 관광객이 지나치게 많이 방문하는 오버투어리즘 영향으로 화재가 발생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사진들]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구조는 건져 마크롱 대통령 재건 약속

    [사진들]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구조는 건져 마크롱 대통령 재건 약속

    연간 1400만명이 찾는 860년 역사를 자랑하는 노트르담 대성당이 화재 발생 5시간 만에 큰 불길을 잡았다. 중앙 첨탑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지만 그나마 다행으로 구조물은 지킨 것으로 알려졌다. 파리 시민과 프랑스 국민에게 한국인의 숭례문 이상의 의미를 지닌 노트르담 대성당의 화재 현장 사진을 모아봤다.1163년 공사를 시작해 1345년 축성식을 연 노트르담 대성당은 프랑스 고딕 양식 건축물의 대표작으로, 빅토르 위고가 1831년 쓴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의 무대이기도 하다. 1804년 12월 2일에는 교황 비오 7세가 참석한 가운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대관식이 열렸고,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 열리는 등 중세부터 근대, 현대까지 프랑스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우리의 일부가 불탔다”고 했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15일 오후 11시 30분(현지시간) 긴급 발표를 통해 “최악은 피했다”면서 “노트르담 대성당을 재건하겠다”고 약속했다. 화재 원인은 아직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지만 방화나 테러 가능성은 배제되고 일단 첨탑 리노베이션(개보수) 작업과 관련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로랑 뉘네 프랑스 내무차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화재 원인이 무엇인지 단정하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AP 통신을 비롯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파리 소방당국은 이번 화재가 잠정적으로 리노베이션 작업과 연관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그동안 600만 유로(78억원 상당)를 들여 첨탑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에마뉘엘 그레그와르 파리 부시장도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첨탑에서 불이 시작됐다고 언급한 것으로 언론들은 보도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중구에 딱 걸린 40억원대 ‘짝퉁’

    중구에 딱 걸린 40억원대 ‘짝퉁’

    서울 중구는 일명 ‘짝퉁’으로 불리는 위조상품 판매 일당을 적발했다고 9일 밝혔다. 이들의 비밀창고도 압수수색해 샤넬, 루이비통, 에르메스 등 해외 명품 브랜드 위조상품 7100여점을 압수했다. 정품가로 환산하면 40억원에 달하는 물량이다. 중구는 명동과 남대문시장 일대에서 일본인 관광객만 골라 접근한 뒤 자신들의 비밀창고로 안내해 짝퉁 상품을 팔던 50대 A씨 등 3명을 최근 형사입건하고 조사를 진행 중이다. 비밀창고는 숭례문 부근의 한 건물에 있었는데 6층에 2곳, 7층에 1곳 등 3곳이 일반 업체처럼 운영되고 있었다. 특별사법경찰권을 갖고 있는 중구 짝퉁 단속 전담팀은 2014년부터 명동, 남대문시장, 동대문패션타운을 주요 거점으로 짝퉁 판매, 라벨 갈이(원산지 표시 위반) 등을 집중 단속하고 있다. 구 전담팀은 이번 건을 적발하기 위해 3개월간 잠복수사를 펼쳤다. 구는 조사를 마치는 대로 피의자와 압수품을 검찰에 송치한다. 현행 상표법에서는 위조 상품을 유통·판매하는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숭례문 수리 참여한 김창대씨 제와장 보유자 인정 예고

    숭례문 수리 참여한 김창대씨 제와장 보유자 인정 예고

    문화재청은 국가무형문화재 제91호 제와장(製瓦匠) 전수교육조교 김창대(47)씨를 보유자로 인정 예고했다고 1일 밝혔다. 김씨는 2013년 별세한 제와장 보유자 한형준 문하에서 기와 만드는 기술을 전수받아 20여년간 제와장 보존과 전승에 힘썼다. 2009년 전수교육조교가 된 이후 국보 제1호 숭례문과 보물 제1763호 창덕궁 부용정 등 각종 문화재 수리에 참여했다. 1988년 8월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제와장은 건축물 침수와 부식을 막고 외관을 치장하는 다양한 기와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기능 또는 사람을 뜻한다. 제와장 보유자는 흙을 재취해 일정한 크기로 재단한 뒤 형태를 잡고 구워서 기와를 제작하는 과정을 수행하기 위해 노동력과 높은 숙련도를 갖춰야 한다. 문화재청은 제와장 보유자 인정 예고 과정에서 1년여간 제와장에 대한 이해도, 교수 능력, 심층 기량 평가를 진행한 뒤 김씨를 후보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예고 기간 30일 동안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김씨의 보유자 인정 여부를 결정한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지구를 살리는 소등 1시간

    지구를 살리는 소등 1시간

    세계자연기금(WWF)이 주최한 캠페인 ‘지구의 시간’(어스아워)의 일환으로 30일 오후 8시 30분(현지시간)부터 한 시간 동안 서울 숭례문 등 전 세계 188개국의 랜드마크 1만 8000여곳의 조명이 일제히 꺼졌다. WWF는 지구온난화를 초래하는 온실가스를 감축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2007년부터 매년 3월 넷째주 토요일에 어스아워 캠페인을 실시해 왔다. 위부터 깊은 어둠에 잠긴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영국 런던의 의회, 러시아 모스크바의 성 바실리 대성당,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 파리·런던·모스크바·리우데자네이루 AFP·AP·EPA 연합뉴스
  • “노인의 ‘노화된 뇌’ vs 미성년자의 ‘미성숙한 뇌’ 형사책임 다르다”

    “노인의 ‘노화된 뇌’ vs 미성년자의 ‘미성숙한 뇌’ 형사책임 다르다”

    우리나라 법은 14세 미만의 미성년자에겐 형사책임능력을 묻지 않는다. 아직 성숙하지 못해 사물변별능력과 의사결정능력이 성인에 미치지 못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반대로 노화로 인해 뇌 기능이 약화된 노인에게는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형사적으로 미성년자의 ‘미성숙한 뇌’와 노인의 ‘노화된 뇌’의 차이는 무엇일까? 4일 법무부에 따르면 김봉수 전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연구한 ‘노령화 등으로 인한 뇌기능 및 신체활동능력 저하에 따른 범죄현황과 형사·행정적 대응 방안’에는 이 같은 논의가 담겨 있다.대검찰청의 범죄분석 자료를 살펴보면 2017년 기준 전체 범죄자 가운데 30대·40대 범죄자는 2011년 이후 꾸준히 감소하지만, 50대·60대 비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나아가 노인 흉악범죄는 2011년 5.2%에서 2016년 12.5%로, 노인 폭력범죄는 동시기 6.2%에서 11.2%로 증가했다. 고령운전자의 교통사고도 2014년 2만 275건에서 2016년 3만 5702건으로 급증했고, 사고 원인의 60% 이상이 고령운전자의 ‘주의력 저하’인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범죄가 늘어나는 이유로 김 교수는 우선 노인들의 ‘분노와 원한’을 가장 주요하게 꼽았다. 김 교수는 지난 2008년 발생한 숭례문 방화사건을 예시로 들면서 노년기에 두드러진 심리적 불안정과 사회적 고립이 범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노인부양부담에 따른 사회적 갈등과 가족기능 약화, 경제적 빈곤 등 사회환경적 요인도 노인범죄 증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도 밝혔다. 특히 생산가능인구가 부양해야 할 노인인구의 비율을 나타내는 노인부양지수는 2000년 10.1%에서 2007년 13.8%로 증가했고, 2020년에는 21.7%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노인범죄가 형사책임대상에서 면제될 수 있을까. 우리나라 현행법은 형사미성년자와 심신장애인, 그리고 농아자에 대한 형사책임능력을 면제하고 있다. 특히 형사미성년자에 대한 책임능력을 묻지 않는 이유로 김 교수는 ▲14세 미만의 미성년자는 위법한 행위를 비난하기에 필요한 정도 내지 책임을 물을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하지 않았고 ▲형사미성년자를 교육 내지 보호의 대상으로 보겠단는 국가의지의 표명으로 형법 제9조를 이해해야 하고 ▲개인적 발육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14세 미만의 형사책임능력을 부정하는 것은 입법 당시의 추세와 명확성 확보를 위한 입법자의 결단으로 봐야 한다고 꼽았다. 그러면서 이 모든 이유들의 공통점은 ‘미성년자를 성인수준의 정신적·지적 능력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노인은 미성년자와 다르게 봐야 한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노인범죄에 대한 형사책임을 면제해야 한다는 측에선 노인의 ‘노화된 뇌’와 형사미성년자의 ‘미성숙한 뇌’가 기능적으로 유사하기 때문에 범죄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취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김 교수는 유사성만을 가지고 형사책임능력을 면제해주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말한다. 범죄는 뇌의 물리적 능력이 아니라 인격체인 인간에게 사회가 부여하는 규범적 능력이기 때문이다. 또한 생물학적 기반이 유사하더라도 심라학적 요소, 즉 사물변별능력과 의사결정능력 면에선 미성년자보다 월등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다. 다만 양형판단에 있어서는 ‘고령’이라는 점이 감형 사유가 될 수는 있다고 봤다. 현행 형법 및 법원조직법에 규정된 양형조건에도 피고인의 나이는 행위자 관련 요소에 포함돼 있다. 나아가 형사책임을 면제하진 않더라도, 형사절차 및 형집행 단계에선 배려와 차별화된 취급이 필요하다며 노인부 법원, 노년원, 노인교도소 등 노인전담 조직을 갖추고, 노인에 대한 재사회화 및 보호관찰제도 등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추억의 장소, 남산 분수 광장에 ‘한양도성 유적박물관’ 들어선다

    추억의 장소, 남산 분수 광장에 ‘한양도성 유적박물관’ 들어선다

    서울 남산 회현자락에 ‘한양도성 현장 유적박물관’이 들어선다.서울시는 이달 박물관 건립에 첫 삽을 떠 2020년 2월 개관한다고 17일 밝혔다. 시는 지난 2013~2015년까지 2년간의 발굴 작업에서 드러난 한양도성(사적 제10호) 성곽 유구 두 곳과 일제 강점기에 조성된 조선신궁 배전 터, 근대 시설물인 분수대 등을 원형 그대로 보존해 현장 박물관(4만 3630㎡)으로 꾸민다. 서정협 서울시 문화본부장은 “한양도성 현장 유적박물관은 한양 도성의 축성 기술과 발굴, 보존 과정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라며 “조선시대부터 일제 강점기, 근현대까지 남산 회현 자락에 쌓여온 600년 역사의 흔적을 한 자리에서 조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의미를 짚었다.숭례문에서 남산 정상으로 연결되는 한양도성 남산 회현 자락은 조선 태조 때부터 지어진 한양도성이 자리해 있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성을 훼손하고 1910년엔 한양공원, 1925년엔 조선신궁을 각각 지었다. 1969년엔 동·식물원과 분수 광장이 세워졌는데 2006년 철거 전까지 남산 나들이를 온 시민들이 즐겨찾던 ‘추억의 장소’였다. 시는 당초 일제 강점기 때 남산 지형을 훼손하고 세운 조선신궁, 동식물원 등으로 한양도성의 흔적이 거의 사라졌을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지하에 매몰됐던 성곽 유적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지난 2015년 문화재 전문가들과의 논의 끝에 옛 터의 형태를 오롯이 살린 박물관으로 조성하기로 결정했다. 시 관계자는 “유적을 온전히 보호하면서도 남산 경관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유구 보호시설은 외벽 없이 기둥과 반투명 재질의 지붕으로만 설치하고 남산 식생에 맞는 조경으로 꾸밀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달리는 버스 속 영상 끊김 없고 LTE보다 화질 선명

    달리는 버스 속 영상 끊김 없고 LTE보다 화질 선명

    화면표시장치 머리에 쓰고 서비스 구동 실제 모델이 연기한 VR 게임도 고화질 스마트폰 버전 단말 설치 용량 223MB 나머지 데이터 5G망 실시간 스트리밍 “3월 출시 게임은 100여편으로 이뤄져”끊김 없는 초고화질 영상으로 진짜 현실 같은 가상현실(VR)을 구현하고, 단말에 최소 용량만 다운로드하면 수십 기가바이트(GB) 짜리 게임도 스트리밍(인터넷 실시간 재생)만으로 즐길 수 있는 세상이 이르면 오는 3월부터 실현된다. 16일 서울 광화문 KT 본사 앞에서 열린 KT ‘5G 버스’ 체험행사를 통해 직접 직접 타 본 5G 버스는 이런 세상을 조금 일찍 맛보기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5G 버스는 3월부터 선보일 VR 서비스와 게임 등을 차 안에 있는 단말로 사용해 볼 수 있도록 꾸며졌다. KT가 지난해 초 평창동계올림픽 현장에서 운행한 5G 버스가 자율주행 등 커넥티드카 기술 시연에 중점을 뒀다면, 이번 5G 버스는 핵심 서비스와 콘텐츠에 초점을 두고 있다. 차량 위 환풍구 쪽엔 실제 5G 모바일 핫스폿이 설치돼 있다. 이는 버스 운행 구간에 배치된 5G 기지국에서 신호를 받아 와이파이로 변환한다. 이날 광화문에서 탑승한 5G 버스는 서울역, 숭례문을 거쳐 다시 광화문까지 운행했다. 차 창엔 반투명 디스플레이가 설치돼 있었다. KT의 VR 영상 콘텐츠가 표시되다가 화면이 꺼져 있을 땐 창 밖 풍경이 내다보였다. 가장 먼저 체험해 본 것은 ‘기가드라이브TV’다. KT가 시판 중인 VR 상품으로 머리에 쓰는 화면표시장치(HMD)와 콘텐츠 요금제가 결합한 형태다. 버스에서 좌석 옆에 걸려 있던 HMD를 쓰자마자 앞서 LTE 환경에서 체험해 본 서비스보다 화질이 좋다는 게 느껴졌다. LTE 환경에선 화면이 끊어지지 않게 하려고 부득이 화질을 낮췄는데 5G 환경에선 그럴 필요가 없다. 3월 출시를 앞두고 있는 VR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러브레볼루션’을 구동해 봤다. 실제 모델이 연기를 하며 촬영한 VR 게임 화면이 실제 같았다고 할 순 없었지만, 고화질 영화·드라마 수준으로 구현됐고, 달리는 버스 안에서도 거의 끊김이 없이 부드럽게 재생됐다. 특히 이 게임 스마트폰 버전은 단말에 설치된 용량이 223MB밖에 되지 않았다. 게임 구동을 위한 최소한의 파일만 기기에 설치하고 나머지 데이터는 클라우드에서 5G망으로 실시간 스트리밍한다. KT 관계자는 “게임 진행 중 나오는 영상 용량이 편당 1GB인데, 3월 정식 출시되는 게임은 100여편으로 이뤄져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아직 상용 5G 단말이 나오지 않은 만큼 시연에 쓰인 기기들과 와이파이 칩셋도 속도가 초당 최대 1기가비트(Gbps) 안팎에 머무르는 LTE용이었다. 버스 내 단말의 인터넷 속도를 패스트닷컴(fast.com)으로 측정해 보니 그럼에도 130Mbps를 넘나들었다. 앞서 LTE 환경에서 기자의 스마트폰으로 재 본 속도는 57Mbps였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기고] 지켜보고 있다/김현모 문화재청 차장

    [기고] 지켜보고 있다/김현모 문화재청 차장

    영화를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범행이 끝난 후 도망치는 범인과 현장에 도착한 경찰이 아슬아슬하게 엇갈리는 장면. ‘조금만 빨랐더라면….’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손에 땀을 쥔다. 만약 경찰이 미리 알고 도착해 있었다면 어땠을까. 범인이 범행을 저지르기 전에 현장에 있는 사물이 위험을 감지해 일찌감치 경찰에 경고를 보냈다면.문화재는 특성상 인적이 드문 곳에 있는 경우가 많다. 산속에 있는 사찰, 들판에 홀로 서 있는 석탑들은 도난이나 화재 피해에 취약하다. 문화재에 방화, 도굴, 훼손을 목적으로 범인이 침범했다고 가정해 보자. 현재는 문화재에 이상이 감지되면 인근에 있는 인력이 투입돼 초기에 대응하는 구조다.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다. 과거 문화재 사고의 범인은 홍수, 지진 등 자연재해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점점 사람에 의한 훼손으로 확대되고 있다. 숭례문 화재, 첨성대 무단 침입, 언양읍성 낙서 등을 돌이켜 볼 때 인재는 돌발적으로 일어난다. 범죄의 시기와 장소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보다 빠르고 안전한 보호 시스템이 필요한 실정이다. 문화재청은 최근 사물인터넷(IOT) 도입에 시동을 걸었다. 사물인터넷이라는 것이 생소하겠지만, 이미 일상에 서서히 들어오고 있는 신기술이다. 냉장고에 떨어진 식재료를 인터넷이 알아서 장바구니에 넣어 두거나 온라인으로 주문을 넣고, 에어컨이 사람을 쫓아다니며 바람을 보내 주는 등으로 말이다. 이 시스템을 문화재에 도입하면 문화재를 보호할 수 있는 길이 획기적으로 열린다. 침범하는 인기척을 센서가 감지하고, 문화재가 옮겨지면 위치를 쫓아가며 추적한다. 열이나 가스가 발생하면 경보를 울려 사람을 부르는 등 다방면에서 똑똑하게 문화재를 감시할 수 있다. 특히 사물인터넷은 문화재에 접근하는 것이 바람인지, 동물인지, 아니면 사람인지 정밀하게 선별해 출동 오류를 막고, 침범·이탈 등 모든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사고를 차단한다. 사람을 거치지 않고도 관계 기관과 자동적으로 공유되고, 전문인력을 바로 투입할 수 있다. 현재 문화재청은 보령 성주사지, 논산 명재고택, 거창 농신리 석조여래입상에 사물인터넷을 도입하고 있는데, 내년에는 더 많은 문화재에 이 기술을 적용할 계획이다. 문화재 사고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것이 목표다. 그래서 눈쌓인 산속 석탑, 인적 끊긴 들판에 내걸린 종, 한밤중 도심 건물 속에 홀로 남겨진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들을 24시간 지켜보게 할 것이다.
  • 새 여권과 차량 번호판 확정…전통미·세련미 물씬

    새 여권과 차량 번호판 확정…전통미·세련미 물씬

    문화체육관광부가 21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도종환 장관 주재로 ‘제2차 공공디자인위원회’를 열어 차세대 전자여권과 승용차 번호판 디자인을 확정했다. 차세대 전자여권은 남색(일반여권) 표지로, 전통미를 살리고 미래적인 느낌이 나도록 태극문양을 양각으로 새겼다. 속지는 문화재 그림을 배경으로 넣었다. 기존 여권은 6개 원안에 들어간 당초와 작은 삼태극 문양 아래 숭례문과 다보탑이 번갈아 가며 찍혀 있다. 새 여권에는 선사시대 대표 유물인 화순 대곡리 청동기(팔주령),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빗살무늬토기 등을 비롯해 신라 부부총 금귀걸이·금관총 금관, 백제 무령왕 금제관식·금동대향로, 통일신라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과 다보탑, 고려·조선시대 공예예술품인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분청사기 물고기 무늬 편병 등 시대별로 다양한 무늬를 넣는다. 훈민정음 언해본, 천상열차분야지도, 거북선, 맹호도, 김홍도 풍속도 화첩(춤추는 아이) 등도 담겼다. 새 승용차 번호판은 반사필름 재질에 왼편에 청색의 태극문양과 위변조 방지 홀로그램을 넣는다. 번호는 현행 서체를 유지하되 맨 앞자리에 숫자 한자리가 추가된다. 새 번호판은 2019년 9월부터, 차세대 전자여권은 2020년부터 발급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녹색 여권, 2020년부터 남색으로 바뀐다

    녹색 여권, 2020년부터 남색으로 바뀐다

    기존 녹색이었던 여권 표지가 2020년부터 남색(사진)으로 바뀐다. 1988년 이후 32년 만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제2차 공공디자인위원회를 열어 2020년부터 발급하는 차세대 전자여권 디자인을 결정했다고 21일 밝혔다. 새 여권 표지색은 녹색에서 남색(일반여권)으로 바뀐다. 현재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전 세계 78개국이 여권 색상으로 청색 계열을 쓴다. 관용여권은 진회색, 외교관여권은 적색이다. ‘국장(國章)’ 크기와 위치도 달라진다. 현행 여권은 정중앙에 금박 국장이 크게 박힌 모양이지만, 새 여권은 크기를 줄여 왼편 상단에 배치한다. 현재 여권번호 가운데에 영문 대문자를 포함하는 식으로 여권번호 체계도 변경된다. 예컨대 ‘M12345678’이었다면 ‘M123A4567’로 바뀌는 식이다. 주민등록번호는 삭제한다. 월(月) 표기방법도 영문에서 한글과 영문 병행 표기한다. 종이재질의 표지는 폴리카보네이트(PC) 재질로 바뀐다. 레이저 기술 등을 이용해 보안성을 강화했다. 속지도 바뀐다. 기존 여권은 6개 원 안에 들어간 당초와 작은 삼태극 문양 아래 숭례문과 다보탑이 번갈아 가며 찍혀 있지만, 새 여권은 24쪽마다 각기 다른 우리 문화재를 배경 문양으로 넣었다. 차세대 전자여권은 2020년부터 발급한다. 현행 여권은 유효기간 만료 시까지 사용할 수 있다. 다만, 희망하는 경우 유효기간 만료 전이라도 차세대 여권으로 교체할 수 있다. 여권 디자인은 2007년 문체부와 외교부가 공동으로 주관한 ‘여권디자인 공모전’ 당선작 김수정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 안을 응용한 것으로, 지난 10월 선호도 조사를 거쳐 결정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토요일 여의도 ‘민중대회’ 서울역 ‘태극기집회’로 교통 혼잡

    토요일 여의도 ‘민중대회’ 서울역 ‘태극기집회’로 교통 혼잡

    토요일인 12월 1일 서울 여의도와 서울역 일대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려 교통이 매우 혼잡할 전망이다. 30일 서울지방경찰청에 따르면 1일 정오부터 오후 7시까지 여의도 일대에서 민중공동행동이 ‘2018 민중대회’를 연다. 오후 3시 국회 앞에서 열리는 민중대회 참석 예상 인원은 1만여명이다. 민중공동행동은 의사당대로(산업은행~현대캐피탈) 양방향 전 차로에서 집회를 열고 국회대로로 행진할 예정이다. 비슷한 시각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운동본부는 서울역에서 ‘태극기집회’를 열고 숭례문, 광화문광장을 거쳐 세종문화회관까지 행진한다. 집회 신고 인원은 4000여명이다. 집회와 행진이 이뤄지는 구간에서 상황에 따라 노선버스와 일반 차량이 통제될 수 있다. 의사당대로·국회대로·종로·세종로·을지로·율곡로 등 서울 주요 도로에서 노선버스가 우회하거나 극심한 교통 혼잡이 예상된다. 경찰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부득이하게 차량을 운행할 때에는 정체 구간을 우회해달라고 당부했다. 집회·행진 시간대 자세한 교통상황은 서울지방경찰청 교통정보 안내 전화(☎02-700-5000), 교통정보센터 홈페이지(www.spatic.go.kr), 스마트폰 앱 ‘서울교통상황’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서울시는 집회·행진 구간을 통과하는 버스 노선을 임시 조정할 예정이다. 버스 노선은 서울시 다산콜센터(☎120)에 문의하면 된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5만 고시생의 성지는 ‘인생 고시생’ 안식처 됐네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5만 고시생의 성지는 ‘인생 고시생’ 안식처 됐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30회 신림동(대학촌과 고시촌) 편이 지난 24일 관악구 신림동 일대에서 진행됐다. 이날 오전 10시 30분 서울대학교 정문을 출발한 참석자들은 서울대 관악캠퍼스 안 예술관(서울미래유산)과 규장각을 둘러본 뒤 캠퍼스를 빠져나와 첫눈이 제법 소담스레 쌓인 관악산 둘레길을 따라 걸었다. 또 서울미래유산이지만 지난해 폐차된 콜럼버스 스넥카와 폐가 일보 직전의 조각가 전뢰진 가옥에서 서울미래유산의 지속가능한 미래에 대해 생각을 나눴다.고시촌과 녹두거리, 지난해 조성한 민주열사 박종철 거리, 임대료를 견디지 못해 자리를 옮긴 사회과학 전문서점 ‘그날이 오면’에서 투어를 마무리했다. 1981년 이후로 가장 많은 양의 첫눈이 펑펑 쏟아진 날, 지하철 서울대입구역에서 서울대 정문까지 버스가 끊기는 바람에 출발 시간이 30분 지연됐다.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가 시작된 이래 첫 ‘천재지변’이 발생했지만 참가자들은 불평 없이 미끄러운 고갯길을 걸어서 올라왔다. 그리고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첫눈을 즐겼다. 관악산은 어떤 장소의 역사를 갖고 있을까. 서울을 정치·지리학적으로 설명할 때 역사도심은 한양도성이 에워싸는 내사산(內四山·백악산-인왕산-남산-낙산) 안쪽을 가리킨다. 도성 안에 내수(청계천)가 흐르고 외수(한강)가 도성 밖을 감싸고 있다. 도성 바깥의 북쪽 삼각산(해발 836m), 서쪽 덕양산(125m), 남쪽 관악산(629m), 동쪽 용마산(348m)을 외사산(外四山)이라고 부른다. 외사산은 내사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성저십리(성 밖 십리)와 외사산 영역은 다르다. 성 밖 십리의 북쪽은 비봉~정릉동, 동쪽은 미아리~용답동, 남쪽은 한강변, 서쪽은 역촌동~모래내를 이른다. 도성 밖 십리는 서울의 통치 영역인 반면 외사산은 경기도에 속했다. 한강 이북의 성 밖 십리와 외사산의 영역은 겹치는 곳이 많지만 한강 이남은 소외됐다. 서울에 식자재를 공급하는 생산기지이자 문화적으로 서울권에 속하는 강남지역은 관악산 안쪽에 있으면서도 서울에 속하지 않았다. 서울의 풍수개념에서 삼각산은 백두산의 정기를 이어받은 조상산(祖上山)이요, 지리산에서부터 뻗어 오른 관악산은 임금이 아침마다 알현하는 조산(朝山)이었다. 서울의 남과 북을 잇는 축선(軸線)은 삼각산과 관악산 선상에 있다. 광화문네거리에서 보면 서울의 주산 백악산과 경복궁이 직선 라인에 있지 않은 걸 알 수 있다. 서울의 남북 간 축선은 삼각산~백악산~경복궁~숭례문~관악산으로 그어졌기 때문이다. 관악산 정상은 마치 큰 바위기둥을 세워 놓은 듯했다. ‘갓 모습의 산’이란 뜻의 ‘갓뫼’라고 부르고, 관악(冠岳)이라고 썼다. ‘벼슬 산’이라는 이름도 쓰였다. 조선 개국 초 무학대사는 관악산이 화산(火山)이고, 목멱산(남산)은 목산(木山)이어서 관악산 화기가 목멱산 나무를 불쏘시개 삼아 도시를 태운다고 예언했다. 정도전을 중심으로 한 신진사대부들은 관악산의 화기를 막고자 남대문(숭례문) 편액을 세로로 세워 부적을 삼았고, 남대문 앞에 남지(南池)라는 큰 연못을 파서 방화수를 채웠다. 불이 길을 따라 올라오지 못하도록 직선도로(세종대로)를 닦지 않고, 숭례문에서 지금의 남대문로를 따라 보신각까지 둘러간 뒤 운종가(종로)에서 꺾여 육조대로(광화문광장)에 이르도록 정(丁)자형 길을 닦았다. 그것도 모자라 지금의 광화문네거리에는 황토마루라는 낮은 언덕을 쌓아 관악산의 불길이 대궐에 미치지 못하게 막았다. 불을 먹고 산다는 상상 속 동물 해치 두 마리에게 광화문 앞을 지키게 했다. 모두 5겹의 방화장치를 할 정도로 관악산 화기를 두려워했다. 관악산 기슭 지금의 신림동, 봉천동과 금천구 시흥동 일대는 신라와 고려시대에는 금주, 조선시대엔 금천이라고 불렸다. 고려 강감찬 장군의 5대조 강여청이 터를 잡았으며, 부친 강궁진은 고려 창업과 후삼국 통일에 공을 세워 삼한벽상공신에 책봉됐다. 장군이 태어난 관악구 낙성대동 218의 14번지 생가 앞마당에 탄생기념 삼층석탑을 세울 정도의 떵떵거리는 호족이었다. 신림동(新林洞)이라는 지명은 경기도 시흥군 동면 신림리에서 비롯됐다. 서울대 캠퍼스 안 자하연이라는 연못은 의성 김씨가 모여 사는 자하동이라는 집성촌에서 따온 이름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야영장 등 군사시설로 썼고, 1963년 서울에 편입되면서 해방촌, 청계천, 이촌동, 대방동 등지에서 쫓겨난 판자촌 주민을 수용하는 철거민 정착촌을 형성했다. 1970년대까지 도시빈민의 무허가 건물이 난립하는 기반시설 부재의 우범지대였다. ‘돼지막’이라는 절간 분위기의 하숙방 몇 채가 고시촌의 원조이다. 1969년 서울대를 ‘한강 이남 수원 이북’으로 옮기는 관악캠퍼스 건립계획이 확정됐다. 태릉, 신갈 일대, 과천, 안양 등이 후보지 물망에 오른 끝에 관악컨트리클럽이 있던 골프장 용지가 낙점된 것이다. 일부에선 “서울대 종합화는 구실이고, 데모 막으려고 한곳에 모아놓은 것”이라는 말이 떠돌았다. 1975년 2월 28일 동숭동에서 관악산 중턱으로 옮긴 서울대의 시위와 저항정신은 1980~1990년대 민주화운동의 열풍으로 타올랐다. ‘관악산의 화염이 나라를 태울 것’이라던 무학대사의 예언이 들어맞은 셈이다. 서울대 정문과 신림동 일대를 중심으로 동맹휴업, 수업거부, 시위, 이념서클활동이 들불처럼 번졌다. 시인 김지하는 ‘숨죽여 흐느끼며/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타는 목마름으로/타는 목마름으로/민주주의여 만세’라고 노래했다.학사주점 ‘녹두집’을 중심으로 학생들이 이용하는 주점, 인쇄소, 당구장, 서점, 사진관, 슈퍼 등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오늘날 유흥가로 바뀐 녹두거리다. 독재정권에 저항하던 젊은 지성의 의식화 공간이요, 은신처였으며, 화염병 제조 공장지대였다. 1987년 1월 14일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문 끝에 숨진 박종철의 하숙집이 있던 골목이었다. 1980년대 말 고시학원이 등장하고, 사법고시를 통해 법조인을 대거 선발하던 1990년대가 되자 전국의 고시생이 신림동으로 모여들면서 신림동 고시촌은 전성기를 맞이했다. 녹두거리는 ‘녹두 베가스’로 불렸다. 녹두거리의 인문사회과학서점들은 서울대 학내 시위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 1980~1990년대 ‘그날이 오면’, ‘전야’, ‘열린글방’ 등은 녹두거리의 서점 트로이카로 꼽힌다. 주민의 절반 이상이 고시생이었고, 전국에서 몰려든 고시생 5만명이 북적거리던 호시절이었다. 흔히 신림동이라고 불리던 신림9동은 2013년 행정명이 바뀌면서 대학동이 됐다. 고시촌은 2008년 로스쿨 도입을 꼭짓점으로 절반 이하로 줄었다. 고시생들은 떠나기 시작했고, 고시 특수 때 신축한 고시원과 원룸의 공실률은 40%를 넘어섰다. 수많은 서점, 헌책방, 복사집, 고시식당, PC방이 문을 닫았다. 그러나 관악구는 여전히 서울에서 1인 가구 비율이 가장 높은 동네다. 10집 중 3집 이상이 1인 가구다. 서울 전역의 고시원 6곳 중 1곳이 관악구에 있다. 고시생들이 떠난 자리에 공무원시험이나 국가고시 준비생, 외국인 유학생이나 취업자, 새내기 직장인, 일용직 노동자, 기초생활대상자들이 스며들었다. 집값이 싸고, 물가가 저렴하고, ‘혼밥 혼술’ 시설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창문이 없고, 발조차 뻗을 수 없는 1평짜리 고시원은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취약계층의 안식처로 풍속도가 변했다. 2018년 신림동 고시촌은 등껍데기가 없는 달팽이처럼 일정한 주거지가 없는 ‘민달팽이족’들이 잠시 머무는 밀실이다. 소설가 박민규는 단편 ‘갑을고시원 체류기’에서 “누구에게나 인생은 하나의 고시와 같은 것이 아닐까…인간은-누구나 밀실에서 살아간다. 그것은 고시를 패스하는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이다”고 고시촌 시대의 아픔과 자기성찰을 얘기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문희일 연구위원 ●다음 일정 :후암동 (문화주택단지의 어제와 오늘) ●일시: 12월 1일(토) 오전 10시~낮 12시 30분 ●집결장소 : 지하철 1호선 서울역 5번 출구 연세재단 세브란스빌딩 앞 ●신청·안내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 (http://futureheritage.seoul.go.kr)
  • “법원 위상 이 정도일 줄이야… 판사도 피습 대상 되는 것 아니냐”

    “법원 위상 이 정도일 줄이야… 판사도 피습 대상 되는 것 아니냐”

    사법농단과 무관한 70대 민사소송 불만 법관 탄핵·수평 리더십 비판 속 초유 사태 판사들 “고통스러운 심정”개탄 속 우려 경호 허점 드러나…경찰 인력 증원·강화사법부 수장인 김명수 대법원장 차량을 습격한 1인 시위자는 사법농단과 무관한 개인 소송과 관련해 시위를 벌여 온 것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초유의 대법원장 차량 습격이 감행된 배경을 최근 실추된 사법 신뢰와 연결 짓는 해석이 많다. 법관 탄핵 논쟁 국면에서 김 대법원장의 수평적 리더십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차량 습격이 벌어지자 사법부 권위 실추를 개탄하는 반응도 나왔다. 27일 대법원 정문에서 김 대법원장 출근 차량에 화염병을 던진 남모(74)씨는 지난 석 달 동안 대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해 왔다. 돼지 농장 운영자인 남씨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직원이 2013년 위법하게 친환경 인증 갱신 불가 판정을 내려 손해를 입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1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2년에 걸친 1·2·3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지난 8월 시작된 3심(상고심)은 지난 16일 심리불속행 기각됐다. 심리불속행 기각은 법률심인 상고심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사건에 대해 심리 없이 사건을 기각하는 판결을 이른다. 재판 결과에 불만을 품고 판사를 공격한 예는 과거에도 있었다. 2007년 1월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가 학교를 상대로 낸 재임용 불복 항소심에서 패소하자, 재판장인 박홍우 당시 고법 부장판사에게 석궁을 쏴 부상을 입힌 이른바 ‘석궁 테러’가 대표적이다. 2010년엔 보수 시민단체 회원들이 후보매수 혐의로 기소된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에게 벌금형을 선고한 김형두 당시 지법 부장판사(현 고법 부장판사) 아파트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곽 전 교육감에게 징역형을 선고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김 부장판사 아파트에 계란을 던졌다. 2010년 1월 보수 시민단체는 대법원장 공관 근처에서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 출근 차량에 계란을 던졌다. 이들은 당시 무죄 선고된 ‘PD수첩 광우병 보도 명예훼손 사건’ 판결을 비난했다. 앞서 2008년 2월 채종기씨는 재판에서 패소한 뒤 분풀이를 국보 1호인 ‘숭례문’에 했다. 토지 보상액을 놓고 건설사와 갈등을 겪던 채씨는 건설사를 상대로 낸 재판에서 패소했다. 숭례문을 태운 죄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던 채씨는 지난 2월 만기 출소했다. 이 같은 선례에도 불구하고 45명의 보안관리대 경찰력이 배치된 국가주요시설인 대법원에서, 경호를 받으며 출근하던 대법원장 차량이 습격 대상이 된 것은 초유의 사태로 꼽힌다. 특히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에 대한 검찰 수사에 연루 법관 탄핵 논쟁이 제기된 와중에 대법원장 차량 습격이 발발하면서 법원 구성원들은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판사들 사이에선 “법원의 위상이 이 정도로 떨어졌는지 고통스러운 심정”이라거나 “판사들 역시 피습 대상이 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번졌다. 대법원장 경호의 허점도 지적됐다. 대법원장은 차량 이동을 할 때 1대의 경호차량과 함께 이동하지만, 신호통제 등은 이뤄지지 않는다. 대법원장 차량이 청사 정문을 지날 때 남씨는 너무나 쉽게 차량에 접근했다. 경찰은 앞으로 대법원과 대법원장 공관 주변 경력을 증원하고, 대법원장 등 경호대상 요인에 대한 경호·순찰 활동을 강화하기로 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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