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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글날도 둘로 갈렸다… 광화문 “조국 퇴진”, 여의도 “조국 지지”

    한글날도 둘로 갈렸다… 광화문 “조국 퇴진”, 여의도 “조국 지지”

    광화문선 보수 주도 대규모 2차 집회 황교안·나경원 경축식 안 가고 ‘합류’ 여의도 집회선 “검찰 개혁하라” 외침한글날인 9일 조국 법무부 장관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보수 성향 단체들의 주도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한글날 경축식 대신 광화문 집회에 합류하는 등 한국당 의원들도 개별 참석했다.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운동본부’를 중심으로 한 보수 성향 시민단체들은 이날 광화문광장과 세종로 일대에서 ‘대한민국바로세우기 2차 국민대회’를 개최했다. 조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는 개천절(3일)에 이어 두 번째다. 낮 12시 공식 행사가 시작되자 광화문광장부터 숭례문 앞까지 약 1.7㎞ 구간이 인파로 가득 찼다. 참가자들은 ‘조국 퇴진 검찰 독립’, ‘문재인 하야’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었다. 주최 측은 “오늘 1000만명이 모였다. ‘좌빨’들보다 다섯 배 밀집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 3일 집회에서는 300만~500만명이 모였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폭력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84개 중대 5000여명의 병력을 집회 현장 주변에 배치했다. 단상에 오른 투쟁본부 총괄대표 전광훈 목사는 “대한민국이 사느냐, 죽느냐의 각오로 모였다”며 “이승만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한미동맹, 기독교를 기본으로 나라를 세웠지만, 좌파가 해체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진태 한국당 의원은 “오늘 이렇게 모인 것을 10월 항쟁이라고 부르자”면서 “우리의 경쟁 상대는 서초동 촛불집회가 아니다.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예배 형식으로 진행된 집회에서는 각 지역 목사들이 단상에 올라 정부와 조 장관을 거칠게 비판했다. 서울대 재학생과 졸업생으로 구성된 ‘서울대 광화문집회 추진위원회’는 청계광장에서 별도의 집회를 열었다.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조 장관이 가족 비리 의혹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전에서 온 이모(61)씨는 “조 장관의 뻔뻔함에 분통이 터져 왔다. 사태가 이렇게 커졌으니 하루빨리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원(64)씨는 “조 장관을 보호하려는 청와대와 여당의 행태가 잘못됐다”며 “조 장관의 거취를 분명히 한 뒤 비리가 없는 새 장관이 검찰개혁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모(34)씨는 “3일 집회를 TV로 보고 놀라서 직접 왔다”며 “나처럼 (집회와) 뜻을 같이하는 젊은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집회를 마친 뒤 오후 3시부터 청와대 사랑채 앞까지 행진했다. 한편 서울 여의도에서는 조 장관을 지지하는 집회가 열렸다. 인터넷 커뮤니티 ‘루리웹’ 회원들은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 인근에서 열린 ‘우리가 조국이다’ 문화제에서 “조국 무죄”, “검찰개혁” 등의 구호를 외쳤다. 주최 측은 3000여명이 모였다고 주장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한글날도 둘로 갈렸다…광화문 “조국 퇴진”, 여의도 “조국 지지”

    한글날도 둘로 갈렸다…광화문 “조국 퇴진”, 여의도 “조국 지지”

    광화문선 보수 주도 대규모 2차 집회황교안·나경원 경축식 안 가고 ‘합류’ 여의도 집회선 “검찰 개혁하라” 외침한글날인 9일 조국 법무부 장관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보수 성향 단체들의 주도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한글날 경축식 대신 광화문 집회에 합류하는 등 한국당 의원들도 개별 참석했다.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운동본부’를 중심으로 한 보수 성향 시민단체들은 이날 광화문광장과 세종로 일대에서 ‘대한민국바로세우기 2차 국민대회’를 개최했다. 조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는 개천절(3일)에 이어 두 번째다. 낮 12시 공식 행사가 시작되자 광화문광장부터 숭례문 앞까지 약 1.7㎞ 구간이 인파로 가득 찼다. 참가자들은 ‘조국 퇴진 검찰 독립’, ‘문재인 하야’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었다. 주최 측은 “오늘 1000만명이 모였다. ‘좌빨’들보다 다섯 배 밀집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 3일 집회에서는 300만~500만명이 모였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폭력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84개 중대 5000여명의 병력을 집회 현장 주변에 배치했다. 단상에 오른 투쟁본부 총괄대표 전광훈 목사는 “대한민국이 사느냐, 죽느냐의 각오로 모였다”며 “이승만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한미동맹, 기독교를 기본으로 나라를 세웠지만, 좌파가 해체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진태 한국당 의원은 “오늘 이렇게 모인 것을 10월 항쟁이라고 부르자”면서 “우리의 경쟁 상대는 서초동 촛불집회가 아니다.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예배 형식으로 진행된 집회에서는 각 지역 목사들이 단상에 올라 정부와 조 장관을 거칠게 비판했다. 서울대 재학생과 졸업생으로 구성된 ‘서울대 광화문집회 추진위원회’는 청계광장에서 별도의 집회를 열었다.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조 장관이 가족 비리 의혹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전에서 온 이모(61)씨는 “조 장관의 뻔뻔함에 분통이 터져 왔다. 사태가 이렇게 커졌으니 하루빨리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원(64)씨는 “조 장관을 보호하려는 청와대와 여당의 행태가 잘못됐다”며 “조 장관의 거취를 분명히 한 뒤 비리가 없는 새 장관이 검찰개혁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모(34)씨는 “3일 집회를 TV로 보고 놀라서 직접 왔다”며 “나처럼 (집회와) 뜻을 같이하는 젊은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집회를 마친 뒤 오후 3시부터 청와대 사랑채 앞까지 행진했다. 한편 서울 여의도에서는 조 장관을 지지하는 집회가 열렸다. 인터넷 커뮤니티 ‘루리웹’ 회원들은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 인근에서 열린 ‘우리가 조국이다’ 문화제에서 “조국 무죄”, “검찰개혁” 등의 구호를 외쳤다. 주최 측은 3000여명이 모였다고 주장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나경원 “한 줌도 안 되는 조국 비호세력 기 눌렀다”

    나경원 “한 줌도 안 되는 조국 비호세력 기 눌렀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4일 광화문 집회와 관련해 “서초동 200만 선동을 판판이 깨부수고 한 줌도 안되는 조국 비호 세력의 기를 눌렀다”고 말했다. 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문재인 정권 실정 및 조국 심판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전날 집회에 대해 “광화문 앞에서 시작해 대한문 앞을 넘어 숭례문에 이르기까지 서울 도심은 그야말로 상식과 정의의 물결이었다”고 자평했다. 나 원내대표는 “서초동 범법자 비호 집회 이후 여당이 무엇이라고 이야기했나. 가당치도 않은 200만명 운운하며 민심을 왜곡했다”며 “그런데 이제 와서 적고 많음은 본질이 아니라고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은 퇴진 집회가 있으면 직접 나온다고 하더니 정작 청와대는 공포의 충격 속에 빠졌고,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국민 명예훼손을 한다”며 “뭐 눈에는 뭐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생각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민심이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조국 파면을 넘어 정권 퇴진으로 옮겨붙고 있다”며 “이것은 지난 1987년 넥타이 부대를 연상케 하는 정의와 합리를 향한 평범한 시민들의 외침”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와중에도 정권찬양 방송들과 언론들은 먹칠 보도로 집회를 깎아내리기 급급하다”며 “서울 상공에서 찍은 사진을 한 장이라도 본다면 어제 집회의 역사적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 원내대표는 조국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 대한 검찰 조사와 관련해 “왜 정 교수를 긴급체포하지 않고 귀가시켜 공범들과 말맞출 시간을 주나”라며 “한 명의 피의자 때문에 5000만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수사 당시 조 장관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을 인용해 비꼰 것이다. 그는 “검찰은 정 교수 ‘황제소환’도 모자라 ‘황제조퇴’까지 시켜주는 파격적 예우를 했다”며 “이것이 마지막 예우여야 한다. 정 교수에 대한 영장청구가 늦어지는 것은 증거인멸의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검찰은 눈치 보지 말고 정 교수뿐만 아니라 이 모든 게이트의 정점인 조국 전 민정수석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 원내대표는 또 외교부 직원이 의전 실수를 이유로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보도와 관련해서는 “청와대의 트러블 메이커”라며 “문 대통령은 김현종 2차장을 경질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사설] ‘두 쪽 난 민심’ 광장의 세 대결만이 능사가 아니다

    개천절인 어제 자유한국당과 우리공화당 등 야당은 물론 보수를 표방한 10여개의 시민단체와 전국기독교총연합회 등 종교단체들이 조국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며 서울 도심의 곳곳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집회 참가자들은 숭례문에서 서울역까지 세종대로 300m 왕복 10개 차로를 대부분 채웠다. 이들은 “조국 구속, 문재인 퇴진” 등의 구호를 외쳤다. 자유한국당은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문재인 정권의 헌정 유린 중단과 위선자 조국 파면 촉구 광화문 규탄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집회를 진행한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는 “서초동 (검찰개혁) 집회에서 참석 인원을 과장하는데, 저희는 실제로 200만명이 왔다”고 주장했다. 전국기독교총연합회는 서울광장 서편에서 전국기독교연합 기도대회를 연 뒤 정부 규탄 집회에 참석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집회 후 청와대 앞까지 행진했다. 고려대·연세대·단국대ㆍ부산대 등 여러 대학 학생들이 꾸린 ‘전국 대학생 연합 촛불집회 집행부’는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촛불 집회를 열었다. 총동원령을 내린 황교안 대표는 이날 “(조국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한 게 제정신인가”라며 격렬히 비난했다. 서초동에서는 ‘검찰 개혁하라’하고, 광화문에서는 ‘검찰 힘내라’며 국민들이 거리에서 자신의 요구를 목청껏 외치는 현 상황을 정상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대화와 타협 대신 조롱과 야유가 판치고, 반쪽 진실만 앞세우는 포스트트루스(탈진실) 사회가 과연 건강할 수 있는가. 선동 정치, 아집과 불통의 정치가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를 이끌 원동력이 될 수는 없다. 여야 모두 입맛에 따라 ‘국민의 뜻’이라고 주장할 뿐이지 반쪽 난 민심에 대한 깊은 성찰과 반성은 찾아볼 수 없다. 내년 4월 제21대 총선을 염두에 두고 진영 간의 세 결집을 노리며 국민을 동원한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시민들의 자발적 의사 표현은 보수든, 진보든 존중받아야 한다. 1인 시위는 무시하고, 100만 대형 집회의 목소리는 경청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국민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수용의 대상이다. 여야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정치 무능에 대한 반성 없이 세 대결을 조장하는 양상은 위험천만하다. 국민이 진영으로 쪼개지면 포퓰리즘이 세력을 얻게 되고, 더 나아가 전체주의로 흐를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은 정치인들이 격앙된 이념과 갈등을 내려놓고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 줘야 할 때다. 문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는 서로 머리를 맞대고 대화와 타협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 이번엔 보수의 광장… “文정권 심판, 조국 구속”

    이번엔 보수의 광장… “文정권 심판, 조국 구속”

    한국당 등 야당·보수단체들 집회 주도 靑진출 막히자 각목 휘두르다 46명 연행 대학생들 “曺 사퇴하라” 촛불집회도조국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범보수단체의 대규모 연합 집회가 개천절인 3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렸다. 집회 참가자들은 조 장관의 사퇴를 넘어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하며 정권 규탄 구호도 외쳤다. 조 장관 일가를 수사 중인 검찰을 규탄하는 집회가 5일 예정돼 있어 진영 간 세 대결 양상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날 자유한국당과 우리공화당 등 야당과 보수단체들은 광화문부터 시청역까지 왕복 12차선 도로를 메우고 조 장관 반대 집회를 열었다. 서울역 앞 연세재단 세브란스빌딩부터 숭례문 앞 도로 역시 참석자로 가득 찼다. 이날 집회에는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본부(투쟁본부), 전국기독교총연합회, 일파만파애국자연합(일파만파) 등 보수단체 수십곳과 일반 시민들도 참가해 “지키자 자유 대한민국, 살리자 자유 대한민국”, “문 정권 심판, 조국 구속” 등의 구호를 외쳤다. 한국당은 이날 전체 참가 인원이 300만명 이상이라고 주장했다. 지난달 28일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검찰 규탄 집회 때 주최 측이 주장했던 참여 인원(200만명)을 뛰어넘었다는 것이다. 경찰은 공식 추산 인원을 밝히지 않았다. 이날 집회는 조 장관 반대를 넘어 정권에 대한 분노 성격이 강했다. 충북 청주에서 왔다는 이모(50·여)씨는 “2년 동안 문재인 정권에 실망을 많이 했다”며 “온통 거짓말만 해서 이제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고 집회 참여 이유를 밝혔다. 아내, 아이 2명과 함께 집회에 온 황모(32)씨는 “부모로서 조 장관에게 가장 화나는 건 자식 특혜 의혹이다. 아이들 세대를 위해 참여했다”면서 “문 정부 이후 인건비 상승 등으로 경제가 파탄 난 걸 체감하면서 더 반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서는 혼란도 벌어졌다. 한국당 측이 집회를 주도하며 계속 발언을 이어 가자 투쟁본부 측이 “황교안 대표 발언이 아니라면 한국당은 그만하라”, “집회를 그만두라”고 항의하기도 했다. 본 집회가 마무리된 오후 4시부터 시위대 일부는 청와대로 행진한 뒤 밤늦게까지 청와대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며 크고 작은 충돌을 빚기도 했다. 앞서 청와대행을 시도하다가 경찰 저지선에 가로막히자 각목을 휘두르는 등 폭력을 행사했던 탈북모자 추모 비대위원회 일부 회원 등을 포함해 46명이 혜화경찰서 등으로 연행됐다. 대학생들 역시 이날 촛불집회를 열고 조 장관 사퇴를 촉구했다. 고려대, 연세대, 단국대, 부산대생 등으로 꾸려진 ‘전국 대학생 연합 촛불집회 집행부’는 이날 저녁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촛불집회를 개최했다. 이들은 발광다이오드(LED) 형태의 인공 촛불과 “평등과 공정을 외치더니 결과의 정의는 어디 갔느냐” 등이 적힌 팻말을 들고 조 장관을 비판했다. 서울대 촛불집회 주최 측은 대학로 대신 광화문 집회에 참여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한국당 “서초동 200만이면 우리는 2000만” 광화문 총집결

    한국당 “서초동 200만이면 우리는 2000만” 광화문 총집결

    조국 법무부 장관 파면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개천절인 3일 서울 도심에서 열렸다. 이날 광화문에서 서울시청을 지나 서울역까지 왕복 10차선 도로를 가득 메운 인파는 한목소리로 ‘조국 파면’을 외쳤다. 자유한국당은 집회 참석 인원을 300만명 이상으로 추정했고, 문재인하야 범국민투쟁본부는 200만명 이상이 참석했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광화문 집회 이후 최대 인파가 몰린 것으로 보인다. 오는 5일 서초동에서는 2차 ‘검찰 개혁 촛불집회’가 열릴 예정이어서 ‘검찰 개혁’과 ‘조국 파면’을 둘러싼 갈등은 더욱 확산할 전망이다. 한국당은 이날 오후 광화문 광장에서 ‘문재인 정권 헌정유린 중단과 위선자 조국 파면 촉구 광화문 규탄대회’를 열었다. 집회에는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와 소속 의원, 각 지역 당원, 일반 시민 등이 대거 참여했다. 황 대표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 국정을 파탄 내고 안보도 무너뜨리고 있다. 대통령이 제정신인지 의심스럽다”며 “(조국을) 반드시 끌어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 원내대표는 “단군 이래 최악의 정권”이라며 “지난번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시위하는 것을 보셨느냐. 그들이 200만이면 우린 오늘 2000만이 왔겠다”라고 말했다. ‘조국 파면’을 주장하며 19일간 이어온 단식투쟁을 이날 중단한 이학재 의원은 “문재인 정권을 퇴진시켜야 한다”며 “문재인을 둘러싸고 있는 쓰레기 같은 패거리들을 쓸어버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한국당 집회 참가자들은 ‘지키자 자유 대한민국’, ‘문 정권 심판 조국 구속’이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조국을 구속하라’, ‘조국은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외쳤으며 일부는 태극기를 흔들기도 했다. 같은 시간 교보빌딩 앞에서는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이 총괄 대표, 이재오 전 특임장관이 총괄 본부장을 맡은 문재인하야 범국민투쟁본부가 ‘문재인 하야 광화문 100만 투쟁대회’를 열었다.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는 이 집회에 참석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박 전 대통령의 실수도 있었지만, 보수우파 진영 내의 분열이 결정적 원인이었다”며 “이제는 우리가 탄핵을 사이에 두고 손가락질하고, 비방할 시간도, 그럴 겨를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대통령 문재인을 파면한다’며 자체적으로 작성한 ‘국민탄핵 결정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결정문에서 “문 대통령이 헌법 3조와 내란죄(형법 87조), 외환유치죄(형법 92조), 여적죄(형법 93조)를 각각 위반해 국헌을 문란하게 했고, 베네수엘라 좌파독재를 추종하고 반자유시장 정책으로 민생파탄죄, 좌파 우선과 분할 통치로 국민분열죄를 범했다”고 말했다. 또 “문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며 사회주의 개헌을 시도했고, 국가기관을 겁박해 조국 일가의 불의와 불법에 대한 검찰 수사를 방해했으며, 다중의 위력 동원을 교사해 협박을 자행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는 정권이 아니라 조직폭력 집단 같은 행태를 저지르고 있다”며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니라 좌파집단의 우두머리다. 그래서 대통령으로 인정하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우리공화당은 낮 12시 30분부터 숭례문 앞에서 ‘문재인 퇴진 태극기 집회’를, 전국기독교총연합회는 정오부터 서울광장 서편에서 전국기독교연합 기도대회를 열었다. 동화면세점 앞에서는 일파만파애국자연합(일파만파)이 집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로 광화문 남쪽광장부터 서울역 4번 출구 앞까지 세종대로 2.1㎞ 구간 10차선 도로의 차량 운행이 전면 통제됐으며 대부분 구간이 집회 참가자들로 가득 찼다. 또 종각역에서 세종대로 사거리까지 8차로도 차량이 통제됐고 다수가 종각역에서 내려 광화문 사거리 쪽으로 이동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야당·보수단체 ‘조국 사퇴’ 대규모 집회…광화문~서울역 가득 차

    야당·보수단체 ‘조국 사퇴’ 대규모 집회…광화문~서울역 가득 차

    개천절인 3일 자유한국당과 우리공화당 등 야당과 보수단체들이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를 촉구하며 일제히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우리공화당은 낮 12시 30분부터 숭례문 앞에서 ‘문재인 퇴진 태극기 집회’를 열고 있다. 집회 참가자들은 숭례문에서 서울역까지 세종대로 300m 왕복 10개 차로를 대부분 채웠다. 이들은 “조국 구속, 문재인 퇴진” 구호를 외쳤다. 우리공화당 측은 “20만명이 참가했다”고 주장했다. 자유한국당도 오후 1시부터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문재인 정권의 헌정 유린 중단과 위선자 조국 파면 촉구 광화문 규탄대회’를 개최했다. 같은 시간 교보빌딩 앞에서는 문재인하야 범국민투쟁본부(투쟁본부)가 ‘문재인 하야 광화문 100만 투쟁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투쟁본부는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이 총괄 대표, 이재오 전 특임장관이 총괄 본부장을 맡고 있다. 범국민투쟁본부 관계자는 “서초동 (검찰개혁) 집회에서 참석 인원을 과장하는데, 우리는 실제로 200만명이 왔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오후 1시부터 도심에서 벌어지는 모든 집회가 투쟁본부 집회로 통일돼야 한다며 자유한국당에 행사 종료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전국기독교총연합회는 이날 정오부터 서울광장 서편에서 전국기독교연합 기도대회를 열었다. 이들 단체는 오후 1시 50분쯤 행사를 마무리하면서 정부 규탄 집회에 참석할 것을 권고해 참석자들이 대거 정치 집회로 이동했다.이밖에 일파만파애국자연합(일파만파)은 동화면세점 앞에서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오후 2시 현재 광화문 남쪽광장부터 서울역 4번 출구 앞까지 세종대로 2.1㎞ 구간 10차선 도로의 차량 운행이 전면 통제됐으며, 대부분 구간이 시위 참가자 등으로 가득 차 있다.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집회 후 청와대 앞까지 행진할 계획이다. 경찰은 이날 집회 장소가 서울역과 광화문, 서울광장 등으로 흩어져 있어 90개 중대 5400여명을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숭례문·독도 거꾸로 볼까

    숭례문·독도 거꾸로 볼까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설립 50주년을 맞아 야외 문화유산을 거대한 카메라로 거꾸로 보고 그림을 그려 보는 ‘역사가 있는 풍경’을 11월 29일까지 숭례문과 울릉도·독도, 광화문 광장과 경복궁 일대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피사체를 거꾸로 보여 주는 가로 6m, 세로 3m ‘옵스큐라’(사진기의 원형)를 통해 우리 문화유산을 이색적으로 느껴 보는 참여형 행사다. 이번 전시는 대한민국의 대표 문화재인 숭례문(9월 25일~10월 4일)을 비롯해 울릉도·독도(10월 17~27일), 광화문 광장(11월 6~16일), 경복궁(11월 18~29일)으로 장소를 옮겨 가며 차례로 열린다. 울릉도 전시에서는 독도가 육안으로 가장 잘 보이는 안용복기념관 마당에 옵스큐라를 설치할 예정이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한옥·한복·한글은 종로 상징어… 전통문화 계승은 나의 소명”

    “한옥·한복·한글은 종로 상징어… 전통문화 계승은 나의 소명”

    ‘역사·문화 숨쉬는 현대화된 도시’ 중점 전통가옥 복원은 종로만의 도시재생법 무계원·윤동주문학관·상촌재 등 대표적 청운문학도서관 한옥공모전 대상 영예 한복 입기 활성화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제4회 한복축제 21~22일 대학로서 개최 셔틀버스 추진 등 고질적 교통문제 해소 전통문화·현대적인 발전 위해 항상 최선한복, 한옥, 한식, 한글, 한지. 김영종 서울 종로구청장은 종로가 600년 고도(古都)라는 점에 착안해 역사·문화를 보존하면서도 현대화된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고 늘 강조한다.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면서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자부심을 주고 나아가 역사와 문화가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지론이다. 한복, 한옥, 한식, 한글, 한지를 중심으로 하는 역사 문화 콘텐츠 보호에 초점을 맞춰 온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종로 익선동에 1910년대 지어진 근대 한옥으로 출발해 1970~80년대 3대 요정 중 하나로 이름을 날린 오진암을 2014년 3월 종로가 이축, 복원해 개관한 무계원에서 지난 3일 그를 만났다. 무계원이란 무계정사의 분위기를 옮겨 온 정원이란 의미로 종로구가 붙인 이름이다. -이곳 무계원은 어떤 곳인가. “조선 말기 서화가 이병직의 집이었다가 서울시 등록음식점 1호인 오진암으로 사용됐고 2000년 들어서는 호텔 건립으로 사라질 뻔했던 곳이다. 종로구는 안평대군의 숨결이 깃든 무계정사지 인근에 부지를 확보하고 오진암 철거 자재가 팔린 강원 인제 등으로 직접 찾아가 자재를 되찾아왔다. 숭례문 복원에 참여했던 건축기술자들이 기와, 서까래, 기둥 등 큰 자재는 물론 창호와 같은 부수 자재까지 옮겨와 오진암을 복원해 2014년 3월 개관했다. 각종 행사 등이 가능한 도심 속 전통문화 체험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전통 가옥 복원은 역사 문화 도시인 종로만의 도시재생법이다.”-무계원 이외에도 2010년 민선 5기 취임 이후 서촌(청운효자동과 사직동 일대)에 복원한 역사·문화 건축이 많은데. “종로는 서촌이 역사 인물 생가터가 모여 있는 것은 물론 국내 문학·예술의 거장들이 창작 활동의 무대로 삼아 온 근현대 유적이 풍부한 곳이란 점에 착안해 한옥 보존뿐 아니라 문화·역사 콘텐츠 보존을 중심으로 재정비 사업을 펼쳤다. 무계원과 함께 버려진 물탱크를 원형 그대로 활용해 지은 옥인동 윤동주문학관이 대표적이다. 옥인동은 윤동주가 하숙했던 곳인데 문학관을 만들면서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하늘, 바람, 별 그리고 민족을 드러낼 수 있도록 펌프장 안에서도 별을 볼 수 있게 설계했다. 구립 박노수미술관, 상촌재 또한 가볼 만하다. 2012년 옥인아파트를 철거하고 인왕산 자락의 수성동 계곡을 겸재 정선의 그림(장동팔경첩 중 수성동 회화)처럼 복원할 때는 풀 한 포기 심는 것도 전통방식을 고집했다. 인왕산 인근에 한옥으로 된 청운문학도서관을 지어 2015 대한민국 한옥공모전에서 대상을 받는 등 공공건물의 한옥 시대를 열기도 했다.”-서촌 이외에 북촌, 이화동, 익선동 등도 명소화했는데. “지역의 특성을 파악하고 짚어냈다. 지역에 매력 있는 장소가 한 곳만 들어서도 사람들이 찾아오고 주변에 좋은 영향을 미쳐서 전체를 활성화한다. ‘작은 것부터 천천히 그러나 제대로’라는 표어가 나온 것은 이런 철학에서다.”-한복 입기는 어떤 식으로 제창했는지. “종로2가 보신각 주변은 원래 한복 원단 판매상들이 밀집된 곳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없어졌다. 그만큼 우리 옷을 안 입는다는 얘기다. 안타깝다. 2010년 민선 5기 출범 직후 한복을 입자고 했다. 설과 추석 명절 구의 크고 작은 행사 때 간부들과 직원들부터 한복 입기를 실천했다. 2013년부터는 매월 둘째 주 화요일 열리는 간부회의에 참석자 60여명 전원이 한복을 입는다. 더불어 시민들의 한복 입기 활성화를 위해 한복을 입고 식당을 방문하면 음식값을 할인해 주는 한복음식점 프로그램도 개발해 운영 중이다. 집에서 잠자는 오래된 한복도 개량해 주면서 체험까지 할 수 있는 ‘곱다, 한복체험관’도 만들었다. 한복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한복을 입고 정숙관광 등 봉사활동을 한다. 그러다 보니 매년 9월 종로한복축제까지 개최하게 됐다.”-올해 한복축제는 어떻게 이뤄지나. “올해로 4회째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문화관광 육성 축제로 지정돼 대표 관광콘텐츠로 인정받았다. 올해는 오는 21~22일 ‘우리 옷 한복 바로 알고 바로 입으면 더욱 곱습니다’를 주제로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개최한다. 지난해는 한복 대토론회를 개최해 무분별하게 생산되는 퓨전 한복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전통 한복에 대해 생각해 보는 장을 마련했다. 이번에는 한복을 바로 알고 바르게 입고 함께 즐길 수 있는 잔치 한마당을 축제의 장을 빌려 제시하려고 한다. 한복을 사랑하는 사람 누구나 참여 가능한 한복뽐내기대회, 성균관 유생들이 임금에게 상소를 올리는 유소문화를 계승해 재현한 ‘2019 고하노라’,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지휘자 금난새 선생님을 비롯한 연주 단원 모두가 한복을 입고 함께하는 한복음악회, 종로한복축제의 메인 피날레 공연인 강강술래 등을 준비했다.” -남은 기간 풀어야 할 과제를 꼽는다면. “종로에는 연간 950만명의 외래 관광객이 방문하는데 관광객 수용 한계 국면에 도달했다. 관광 성수기인 봄·가을에 종로구를 지나다 보면 경복궁을 비롯해 청와대, 인사동 등에 불법 주차된 관광버스들을 볼 수 있다. 주말 하루 약 2000대의 관광버스가 집중된다. 지금까지의 관광패턴은 관광버스에서 관광객이 하차하고 일정 시간 경과 후 승차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관광버스는 도심 외곽에 주차하고 셔틀버스로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 셔틀버스 운영은 자연스럽게 도보여행 방식을 유도해 지역 상권의 매출을 증대시키고 고질적인 교통 문제도 해소할 수 있다.” -3선 연임 제한에 걸려 더이상 출마가 어렵지만 큰 의미에서 정치적 포부나 진로가 궁금한데. “구청장 3선은 영광이다. 공직을 탐내지 않는다. 다만 구청장 임기를 잘 마치고 다시 봉사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종로가 전통문화 계승 및 현대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역할을 하고 싶다.” 진행 주현진 부장 jhj@seoul.co.kr정리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그가 걸어온 길 서울시 공무원→건축사→3선 연임 구청장건축인 역량 돋보인 도시비우기 사업 호평 서울시 공무원에서 건축사로 변신한 뒤 2010년 민선 5기 종로구청장에 당선돼 3선 연임 중인 건축 전문가 출신이다. 부지런하고 디테일에 강하며 항상 최선을 추구한다. 전남 곡성에서 농사짓는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73년 광주 조선대 공업전문학교(고등학교 3년과 2년제 전문대 포함)를 졸업한 뒤 서울시 공무원시험에 합격해 군복무 기간을 제외하고 8년여간 건축직 공무원으로 일했다. 1983년 건축사 자격을 취득하면서 이듬해 서울시에 사표를 내고 나왔다. 총 26년 4개월 동안 건축사로 일하며 백화점, 공동주택, 종합병원 등을 설계했고 2012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올해의 건축문화인상을 받았을 만큼 건축인 최고의 반열에 올랐다. 35세 늦깎이로 서울산업대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했고 재산평가액이 시가 100억원을 넘을 만큼 건축일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성공했다. 건축사로 일하면서 정치인의 꿈을 버린 적은 없다. 젊어서는 먹고살기 어려워 엄두를 못 냈으나 건축으로 돈을 번 뒤 생활 터전인 종로에서 구청장 선거에 도전했다. 김대중 정부로 정권교체가 이뤄진 1998년 민주당에 입당했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종로 지역 국회의원 선거를 돕기도 했다. 선거에서는 경선을 포함해 총 여섯 번 나와 세 번 이겼다. 청결과 정리정돈을 중시한다. 종로의 대표 사업인 도시비우기는 그의 성격과 건축인으로서의 식견을 반영한다는 평을 듣는다. 신호등, 표지판, 안내판, 전봇대, 배전함과 같은 시설물은 거리를 복잡하게 만들고 보행을 방해한다며 철거하는 도시비우기 사업을 2013년 시작한 뒤 지금까지 2만여 건을 정비했다.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도로 물청소, 옥상청소 등 건강도시 사업은 전국으로 전파되는 등 호응을 얻었다. ▲1953년 전남 곡성 출생 ▲조선대병설공업전문학교(1973), 서울산업대 건축공학과(1990),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환경설계학 석사 수료(1993), 한양대 대학원 행정학 박사(2010) ▲서울시공무원 7급 근무(1973~1984) ▲건축사 자격 취득(1983) ▲김영종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2001~2010) ▲세계문화유산도시협의회 회장(2012~2014) ▲지속가능발전지방정부협의회 회장(2018~현재) ▲대한민국건강도시협의회 의장(2019~) ▲민선 5·6·7기 종로구청장(2010~) ▲부인 김영자씨와의 사이에 1녀
  • 74주년 광복절 다크 투어리즘 명소 선정

    74주년 광복절 다크 투어리즘 명소 선정

    서울관광재단이 제74주년 광복절을 맞아 서울에 남겨진 당시 흔적들을 찾아가는 ‘다크 투어리즘’ 명소를 선정해 소개했다. ‘남산 국치의 길’은 조선을 통치하기 위해 남산 자락에 들어선 시설들을 따라간다. ‘한국통감관저 터’, ‘노기신사 터’ 등이 이 구간에 있다. ‘경제 침탈의 길’은 보신각 남쪽 광교에서 숭례문을 지나 서울역까지 이르는 구간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은행을 비롯해 수많은 은행이 밀집했던 금융 지역의 흔적을 살핀다. ‘고종의 길’은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한 이른바 ‘아관파천’ 당시 통과했던 길을 복원한 것이다. 전체 길이가 불과 120m로 천천히 걸어도 10분이 되지 않는 짧은 코스다. 덕수궁 중명전, 정동전망대 등과 함께 둘러보면 좋다. 서울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역사박물관’은 서울역사박물관을 비롯해 경교장, 돈의문 박물관, 경희궁, 한양도성박물관, 청계천박물관 등 다수의 분관으로 구성돼 있다.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은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수감됐던 서대문형무소를 복원해 조성한 곳이다. 1907년 경성감옥으로 시작한 서대문형무소에서 고초를 겪은 독립투사만 4만여명이라 전한다. 5000여장의 당시 수형 기록표 등을 전시해 놨다. ‘망우리공원’은 독립투사와 유명 예술인 등이 묻힌 곳이다. 예전엔 공동묘지였으나 최근 역사문화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안창호, 한용운, 이중섭, 박인환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인물들의 묘지가 있다. 유관순 열사 합장비도 세웠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김기중 기자의 책 골라주는 남자] 내가 알았던, 또 몰랐던 나무에 관한 이야기들

    [김기중 기자의 책 골라주는 남자] 내가 알았던, 또 몰랐던 나무에 관한 이야기들

    문화부로 책이 오면 등받이가 없는 작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봉투를 뜯고 책을 펼쳐 봅니다. 예전 문화부에 있던 선배가 집에서 가져온 겁니다. 앉을 곳이 있다는 건 다행이지만, 낮고 작아 다소 불편합니다. 마침 아들 침대를 만들다 남은 나무가 좀 있어서 꺼내 들었습니다. 스프러스 계열 구조재인 ‘투바이포’라는 나무로, 아주 튼튼하고 묵직합니다. 뚝딱뚝딱 잘라 의자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주말 동안 나무를 만지며 상쾌한 땀도 흘렸습니다. 목공에 빠져 있는 터라 최근 나무에 관한 책 2권을 재밌게 읽었습니다. 40여년 동안 목재상이자 컨설턴트로 일했던 김민식씨의 ‘나무의 시간’(b.read브레드)은 그동안 알고 있던 나무에 관한 지식을 넓혀 줍니다. ‘붉은 소나무’로만 알았던 ‘홍송’이 잣나무라는 사실, 크리스마스 캐럴의 ‘소나무야, 소나무야’는 ‘전나무야, 전나무야’로 불러야 맞다는 내용이 새롭습니다. 우리 조상이 그토록 귀하게 여긴 소나무가 지구상에 가장 흔한 나무이며, 습기에 약해 쉽게 썩는다는 부분에도 눈길이 갑니다. 우리 조상은 절이나 집을 지을 때 수분 함유율을 뜻하는 ‘함수율’을 최소로 낮추고자 소나무를 수십년 동안 자연 건조했는데, 그런 걸 잘 모른 채 무작정 쓰다 보니 숭례문 복원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날카롭게 지적하기도 합니다. 40년 동안 전 세계를 누비며 나무를 거래한 이의 방대하고 깊은 경험을 고스란히 볼 수 있습니다.영국의 고고학자로 수많은 유적지를 누비던 맥스 애덤스의 ‘나무의 모험’(웅진지식하우스)은 나무에 관한 역사책입니다. 태초의 인간이 개암나무 열매로 허기를 달랬고, 참나무를 쪼개 집을 짓고 배를 만들어 미지의 세계로 거침없이 나아간 과정을 설명합니다. 저자는 나무야말로 인간에게 물질적 풍요와 지혜를 선사한 원천이라고 생각하고 16만㎡ 삼림지를 사들여 숲에 살며 책을 썼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그저 목공용으로 쓰던 나무가 좀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장맛비가 그쳐 갑니다.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책을 읽고 싶은 날입니다. gjkim@seoul.co.kr
  • 청요릿집·반도호텔… 종전 뒤라 믿기엔 화려한 ‘서울의 휴일’ 걷다

    청요릿집·반도호텔… 종전 뒤라 믿기엔 화려한 ‘서울의 휴일’ 걷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0회 서울의 영화2(이용민 감독의 서울의 휴일)’ 편이 지난달 29일 중구 정동과 남대문시장 일대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서대문역 5번 출구 앞에 집결한 참가자 40여명은 영화의 흔적이 남아 있는 정동과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서 옛 정취를 만끽했다. ‘차이나타운이 없는 대도시’ 서울에서 차이나타운 역할을 하는 한성교회에서 시작한 투어는 1세대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프란치스코 정동수도원으로 향했지만 때마침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 중이어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 의장행렬과 조우한 참석자들은 한참 동안 덕수궁 돌담길을 함께 행진했다. 이어 정동극장~세실극장~시청 광장~환구단~상동교회~남대문시장 안 은호식당을 거쳐 숭례문 앞에서 일정을 마무리했다. 해설을 맡은 김은선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영화 미리보기는 물론 알찬 사진과 자료를 제공해 호응을 얻었다.근대의 산물 영화는 그 시대의 거울이다. 소설이나 그림, 음악에서는 느낄 수 없는 리얼리티를 선사한다. 1956년에 제작된 이용민 감독의 ‘서울의 휴일’은 1930~1950년대 서울이라는 도시공간과 서울 사람의 삶을 돌이켜 보게 하는 대표적 한국 고전영화 6편 중 1편에 꼽힌다. 나머지 5편은 양주남의 ‘미몽-죽음의 자장가’(1936년), 최인규의 ‘집 없는 천사’(1941년), 이병일의 ‘반도의 봄’(1941년), 한형모의 ‘운명의 손’(1954년), 한형모의 ‘자유부인’(1956년) 등이다. 흡사 로마를 무대로 공주와 신문기자의 로맨스를 엮은 1954년 작 ‘로마의 휴일’의 서울판처럼 여겨진다. 시나리오를 쓴 미국 작가 돌턴 트럼보는 처음에 ‘공주와 평민’이라고 제목을 달았다가 나중에 바꿔 공전의 히트를 쳤다. 우리에게 낯설기만 한 1950년대 서울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한 편의 다큐멘터리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남대문, 중앙청(옛 조선총독부), 청계천변, 파고다공원(탑골공원), 독립문, 정동길, 덕수궁, 황궁우가 보이는 옛 조선호텔과 반도호텔(롯데호텔), 옥인동 옛 송석원 터에 세워진 친일파 윤덕영의 아방궁 벽수산장도 배경으로 나온다. 자료적 가치가 높아 2016년 서울미래유산 무형유산으로 선정됐다.영화는 1950년대 서울 상류층의 꿈같은 일상을 과장되게 보여 준다. 새로 생긴 신신백화점(SC제일은행 본점)에서 쇼핑하고, 장안 제일의 청요릿집 아서원(소공동)에서 점심 먹고, 한강에서 보트와 수상스키를 타고, 덕수궁 잔디밭에서 술판을 벌이고, 서울에서 가장 높은 반도호텔을 바라보며 맥주를 마신다. 사건에 휘말린 신문기자와 산부인과 여의사 부부의 주말 일정이 중심이다. 서울 명소 보여 주기에 치중했다. 한국전쟁 종전 3년 후의 서울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문화주택, 클래식 음악과 영화 감상, 쇼핑, 야외 음악회, 한강 뱃놀이, 맥주내기 미니골프 등 극소수 상류층의 소비생활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필름 속 궤도전차와 빈티지 자동차, 고가의 전축이나 뻐꾸기시계, 다이얼식 전화기 같은 소품도 눈을 즐겁게 한다.하나의 스토리라인이 아니다. 옆집에 사는 사장과 젊은 부인, 그리고 앞집에 사는 가난한 옥이네 가족에게 벌어진 사건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보여 준다. 남대문 야바위꾼의 꾐에 빠져 혼전 임신한 옥이는 하얀 고무신에 검정치마 차림의 전형적인 우리네 누이의 모습이다. 휴일을 보내는 기자들의 세계와 신문사 풍경도 곁들였다. 신문사 편집국장 역으로 인기 시사만화가 코주부 김용환 화백이 우정 출연한 장면도 눈에 띈다. 한강대교와 철교가 보이는 한강백사장에서 ‘오 솔레미오’를 부르거나, 호텔에서 “축배를 들 때 왜 잔을 부딪치는 줄 아십니까? 미각을 자극하는 맛과, 시각을 만족시키는 황금빛 액체, 촉각을 만족시키는 술잔의 시원한 감촉, 후각을 만족시키는 야릇한 향기, 다만 한 가지 모자라는 청각을 위해 하는 게 건배”라는 명대사도 나온다. 영화가 제작된 1956년 서울의 실상은 어땠을까. 손정목의 ‘서울도시계획이야기’는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이 끝나고 휴전협정이 조인됐을 당시 서울의 풍경을 이렇게 요약했다. “서울시가지는 사대문 안이었다. 동대문을 나가면 신설동까지 큰길가에는 집이 들어차 있었지만 그 밖은 논과 밭이었다. 신설동 남쪽에는 경마장이 있었으나 인가는 별로 없었다. 신당동에는 집이 들어서 있었지만 지금의 금호동, 옥수동 일대는 산이었다. 왕십리에도 큰길을 따라 양쪽에는 집이 연이어 있었지만 지금 한양대학교가 있는 일대에는 주택보다 미나리꽝이 더 많았다. 성동교도 나무다리였고, 그 동쪽에는 논과 밭뿐이었다. 서울의 남쪽, 한강대교까지는 양쪽에 시가지가 형성돼 있었지만 동빙고동, 서빙고동의 인구는 각각 1000명 안팎이었다. 원효로 1~4가에도 큰길가가 아니면 논과 밭이 더 많았다. 노량진, 상도동, 대방동, 영등포에도 시가지가 연결되지 않았다. 서쪽으로 나가면 겨우 신촌까지였고, 마포 전차종점을 100미터만 벗어나면 동쪽은 벌거숭이 산이었다. 서교동, 합정동, 망원동은 한 개로 묶여 하나의 행정동을 형성하고 있었다. 서울의 동북쪽은 미아리고개가 끝이었고, 서북쪽은 독립문, 현저동이 끝이었다.”서울은 한국전쟁이 할퀴고 지나간 만신창이 모습 그대로였다. 전쟁 전 20만채에 가깝던 집 가운데 6만채 정도가 불타거나 파괴돼 사람이 살 곳이 부족했다. 도로, 교량, 상수도 등 도시기반시설은 처참하게 뭉개졌다. 서울 도심부에는 지금의 롯데호텔 자리에 있던 지상 8층의 반도호텔이 최고층 건물이었고, 옆에는 조선호텔이 있었다. 그리고 신세계백화점과 그 뒤의 제일은행(SC제일은행) 충무로지점, 맞은편의 한국은행(한국은행 화폐박물관) 건물이 서울의 대표적 건축물이었다. 1950년대 서울 도심부의 건축물 평균 층고는 2층에도 미치지 못했다. 종로네거리와 남대문로 양쪽의 평균 건물 높이가 3~5층이었고, 충무로·명동·을지로는 2~3층 남짓했다. 1955년 종로네거리 현재의 SC제일은행 본점 자리에 신신백화점이 신축됐는데, 당시 유행하던 루버를 전면에 돌린 산뜻한 건물이었지만 2층에 불과했다. 1957년 광화문네거리에 3층짜리 국제극장(동화면세점)이 들어서고, 무교동 모퉁이에 5층짜리 개풍빌딩이, 1958년 남대문에 7층짜리 그랜드호텔이 세워졌다.1940년대부터 1965년까지 서울은 잠자는 도시였다. 재개발은 요원했다. 모든 게 군수물자로 사용됐기에 건축자재를 구할 수 없었다. 수명이 30년에 불과한 목조건물들이 낡고 병든 상태로 근근이 버티고 있었다. 종로구 신문로, 청운동, 효자동 일대의 총독부 관사촌이나 중구 장충동과 신당동, 용산구 후암동 일대의 일본식 문화주택 지역이 부자동네였다. 청계천을 사이에 둔 양쪽 제방, 세운상가가 들어선 소개도로, 남산 어귀, 사직공원 뒤 인왕산 입구와 서쪽, 금화산 일대와 현저동, 해방촌과 보광동, 금호동, 옥수동, 동소문동, 창신동 등에 13만채에 가까운 무허가 불량주택과 판잣집이 빽빽했다. 1950년대의 어느 일요일 하루 동안 서울에서 벌어진 얘기를 다루는 ‘서울의 휴일’은 한국전쟁 종전 직후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화려하고 활기찬 서울의 모습을 필름에 담았다. 당시는 휴식과 위안 그리고 도피처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절이었다. 영화는 암울하고 참담했던 기억을 잠시나마 잊게 해 주는 진통제였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제11회 성수동 붉은 벽돌 마을 ■일시 및 집결장소:7월6일(토) 오전 10시, 뚝섬역 1번 출구(역 안) ■신청(무료):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흥미진진 견문기] 서울광장 터 만들며 고종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흥미진진 견문기] 서울광장 터 만들며 고종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토요일 아침 서대문역에 도착했다. 미리 보내준 영화 ‘서울의 휴일’을 봤는데 좀 어색하고 어설펐다. 그런데 출발할 때 김은선 해설사가 영화의 처음 부분을 시연해 줬는데, 그때 갑자기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영화 속에 나온 거리와 건물을 보며 걸으니 시공간을 오가는 묘한 재미가 있었다. ‘서울의 휴일’에서 덕수궁길은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탄 검은색 세단이 달려간 길이었다. 6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지지 않은 덕수궁 돌담길이 신기하기만 했다. 일행은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길 때 사용한 ‘고종의 길’ 반대편으로 걸었다. 이 길은 2년 전까지만 해도 영국대사관에 의해 막혀 있던 길이었다. 덕수궁길이 59년 만에 온전히 이어졌다. 미래유산인 세실극장이 우리를 반겼다. 지금은 서울시가 인수해 장기 임대를 주는 형식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시의 ‘문화재생’ 정책 덕분에 건축가 김중업의 작품으로 공연과 민주화의 역사를 간직한 세실극장을 계속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서울광장에 들어섰더니 비는 오지 않았지만 광장 안의 잔디는 촉촉했다. 잘 다듬어진 잔디밭을 걸으니 발에 닿는 감촉이 발걸음을 흥겹게 했다. 그동안 수많은 일이 있었던 서울광장의 터를 조성한 사람은 고종 황제라고 한다. 비운의 황제는 이 터를 조성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분의 혜안 덕분에 민주화의 상징이 된 이곳에서 지금 흥겹게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하자 황제의 사랑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서울미래유산인 서울광장을 지나 황궁우를 만났다. 환구단 자리엔 조선호텔이 들어서 있었다. 영화 속에서 남편인 송 기자를 기다리는 아내 남희원이 맥주를 마시는데 그 장면에서 황궁우가 살짝 보인다. 조선호텔을 지나 상동교회에서 길을 건너 남대문시장을 통과하니 숭례문이 우리를 반겼다. 숭례문이 보이는 곳에서 해설사는 영화의 마지막 스토리를 들려줬다. 흥미롭고 귀중한 시간이었다. 박정아 교육학 박사·숭실대 초빙교수
  • 국가무형문화재 ‘제와장’ 보유자로 김창대 씨 인정

    국가무형문화재 ‘제와장’ 보유자로 김창대 씨 인정

    제와장 전수교육조교인 김창대(사진) 씨가 국가무형문화재 제91호 ‘제와장(製瓦匠)’ 보유자가 됐다. 제와장은 건축물 침수·부식 방지, 치장 효과를 갖는 다양한 기와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기능 또는 사람을 의미한다. 문화재청은 제와장 전 보유자인 한형준 문하에서 제와 기능을 전수받아 20여년 동안 제와장의 보존·전승에 힘쓴 김창대 씨를 제와장 보유자로 인정한다고 28일 밝혔다. 김씨는 2009년 전수교육조교로 선정된 이래 국보 제1호 숭례문, 보물 제1763호 창덕궁 부용정 등 각종 문화재 수리에 참여했다. 1988년 8월 중요무형문화재 제91호로 지정된 제와장은 흙 채취, 다무락(담벼락) 작업, 기와성형, 기와소성 등을 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노동력이 필요하고, 굴 형태로 축조한 전통 가마인 ‘등요’ 지식까지 있어야 해 높은 숙련도가 필요한 종목으로 손꼽힌다. 문화재청 측은 “제와장 인정 조사에서 종목에 대한 이해도, 교수능력, 심층기량 평가 등 기와제작 전체 공정 서면·현장 조사를 약 1년여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기고] 문화재 범죄와 대책/강신태 전 문화재청 문화재사범단속반장

    [기고] 문화재 범죄와 대책/강신태 전 문화재청 문화재사범단속반장

    문화재는 과거를 보는 거울인 만큼 소중하게 보관했다가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하지만, 어느 시대에나 이를 노리는 문화재 도굴과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숙명이 있다. 최근 문화재청은 국가문화재인 보물 제1008호 만국전도를 포함해 양녕대군 친필 숭례문 목판 등 123점을 문화재 도난사범으로부터 회수했고, 며칠 전에는 40여년간 개인의 집에 있다가 일본에 반출될 뻔한 신안선 청자 수십점을 회수했다. 문화재 보호나 복원만큼 도난 문화재를 제자리에 찾아 놓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 업무를 담당하는 문화재사범단속반 인원은 1972년 설치 이후 지금까지 단 2명뿐이다. 문화재사범단속반은 전국에서 발생하는 문화재 도난, 도굴, 해외 밀반출, 불법거래 등 문화재보호법 위반사항에 대한 단속업무를 중점적으로 처리한다. 이외에도 홍보, 교육, 각종 요구자료 작성, 통계관리 등 일반 행정업무까지 병행한다. 2명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문화재 범죄는 일반 범죄와 달리 전문적 특수 범죄로 분류된다. 문화재 도난, 도굴, 해외 밀반출의 경우 장기간 은닉한 후 절취와 밀거래 등으로 은밀하게 유통되는 특성이 있다. 사건 처리가 오래 걸리고 고도의 수사역량과 노하우가 요구되는 등 전문 수사인력의 확보가 절실하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문화재사범단속반에서는 검경 등의 수사기관과 수사기법을 공유하거나 공조수사를 실시하며 도난방지 대책으로 문화재전담수사관을 교육하는 등 다양하게 노력하고 있으나 최근 한계점이 드러나고 있다. 또한 문화재 불법거래 행위는 더이상 특정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국가의 협력이 필요한 사안이 되었고, 인터폴(국제형사기구)을 통한 국제 공조 수사의 중요성이 날로 대두된다. 현 상황에서 소중한 문화재를 회수하고 보존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전문 수사 인력의 보강 문제는 시급하게 해결돼야 한다. 문화재청은 수도권·전라권·경상권 등 권역별로 전담수사관을 배치해 체계적인 수사를 기하고 도난문화재 회수율을 향상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문화재의 보존·관리와 도난 문화재의 회수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의 문화재에 대한 관심과 인식 전환일 것이다.
  • 켜켜이 쌓인 시간의 길, 골목골목 낭만을 거닐다

    켜켜이 쌓인 시간의 길, 골목골목 낭만을 거닐다

    부침의 세월 겪은 전주성 풍남문 위용 형형색색 이국적 향기 품은 전동성당 비밀처럼 뻗어 있는 경기전 대나무숲 한복 맵시 부린 관광객 노니는 태조로 오독대 누각 아래 시원한 휴식은 덤전북 전주는 한 해 1100만명 넘는 관광객이 다녀가는 국내 최고의 여행지다. 여행을 좋아한다는 사람 중에서 안 가본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도시지만, 방문객은 해마다 늘고 있다. 보고 또 봐도 좋은 우리 옛것의 전통 위에 전주 토박이 문화가 세월따라 하나둘 쌓이고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는 새것이 어우러지면서 지금의 전주를 꽃피우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구도심의 한옥마을부터 새 옷을 입은 팔복예술공장까지 전주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시간을 천천히 걸었다. 전주 여행의 시작점은 조선시대 전주부성의 남문인 풍남문(보물 제308호)이다. 이곳에서 오목대까지 이어지는 550m가량의 큰길을 중심으로 한옥마을이 뻗어 있다. 전주는 전라도 전체뿐 아니라 제주도까지 관장하던 전라감영 소재지였다. 전라감영을 중심으로 한 옛 전주를 둘러싼 성곽에는 동서남북 네 개의 출입문이 있었는데 지금은 풍남문만 남아 옛 위상을 알려주듯 우뚝 서 있다. 풍남은 풍패의 남쪽이라는 뜻이다. 풍패는 중국 한나라 고조 유방의 고향으로 조선왕조도 자신의 발원지인 전주를 그곳에 빗대 풍패지향으로 부르기도 했다. 국내의 많은 문화재들이 그렇듯 풍남문도 세월의 부침을 겪었다. 선조 30년 정유재란 때 모두 파괴됐다가 영조 때 다시 지어졌다. 1767년 큰 화재로 소실된 것을 이듬해에 재건했고 풍남문이라는 이름이 그때 붙었다. 세월이 지나며 다시 크게 훼손됐다가 40년 전 보수공사를 통해 제 모습을 찾았다. 서울의 숭례문처럼 주변을 에워싼 도로 가운데 섬처럼 덩그러니 남았지만 위용을 잃지 않은 모습에서 옛 전주성의 풍채를 상상해 본다.풍남문을 지나 한옥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전주한옥마을만의 독특한 풍경이 펼쳐진다.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전동성당이다. 한국 최초의 천주교 순교자인 윤지충과 권상연이 1791년 신해박해 때 이곳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10년 뒤 신유박해 때도 전라도 천주교의 지도자급 인물들이 숱하게 처형됐다. 윤지충·권상연 순교 100주년이 되던 해 프랑스 선교사 보두네 신부가 이곳에 교회 터를 마련했고 공사를 시작한 지 23년 만인 1931년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이 완공됐다. 둥근 지붕 아래 오랜 세월이 묻은 회색 벽돌과 붉은 벽돌이 조화를 이루면서 한옥마을에서 가장 이색적인 정취를 자아낸다. 소박한 내부에는 화려하기보단 단아한 느낌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온 빛이 은은하게 퍼진다.미사객과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전동성당은 금요일 밤이면 색다른 모습으로 치장한다. 지난달 10일부터 시작한 미디어파사드 공연 ‘빛의 성당’이 오는 21일까지 7주간 열리고 있다. 천지창조, 순교자들의 숭고함, 평화의 메시지를 주제로 한 신비로운 빛의 마술이 성당 위에 흩뿌려진다. 전동성당 맞은편 경기전은 한옥마을의 중심 문화재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초상화)을 모신 건물이 경기전이다. 주변으로 전주 이씨 시조인 이한과 그 부인의 위패를 모신 조경묘, 실록을 보관하던 전주사고, 어진 봉안 600주년을 맞아 2010년 지어진 어진박물관 등이 함께 있다. 경기전 한편의 작은 대나무숲은 놓치지 말아야 할 포토존이다. 잔바람에도 귓속말을 속삭이듯 바스스 떠는 대나무가 비밀처럼 난 문 위로 머리를 맞대고 뻗어 있다. 경기전을 빠져나와 한복을 차려 입은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태조로를 따라 걷는다. 갖가지 길거리 음식이 즐비한 골목마다 한복을 차려 입은 관광객들이 북적인다. 서양 왕실의 드레스처럼 한껏 부풀어 오른 치마와 그 위에 금실, 레이스 등 화려한 장식을 덧댄 한복이 가장 많이 보인다.진짜 옛 멋을 잃고 상업화된 거리, 우리의 전통 한복과는 거리가 먼 국적 불명의 옷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전주한옥마을에서의 한때를 즐기러 온 사람들에게는 그것 그대로 소중한 추억이 된다. 1920년대 모던걸, 모던보이 스타일의 의상이나 1970년대 교복도 인기다. 어우동 차림으로 멋을 낸 중년의 친구들이 매순간을 사진에 담고, 어린 남학생들이 한복 치마를 입고 살포시 화장까지 한 얼굴로 유쾌하게 거리를 활보한다. 가장 한국적인 공간으로 알려진 곳이지만 전통이라는 굴레에 갇혀 있기보다 일상을 잠시 벗어나 저마다의 소소한 축제를 만끽하려는 사람들이 모여 생동감 넘치는 공간으로 색을 입힌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섬세한 감수성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 볼 수 있는 최명희문학관을 둘러본다. 전통한지원과 부채박물관에서 전통문화를 살펴보고 작은 갤러리들에 하나씩 발걸음을 멈춘다.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다 오목대 가는 길에 이른다. 오독대는 평지인 한옥마을 동쪽 나지막한 언덕 위에 지어진 누각이다. 나무 데크 계단을 따라 오르다 보면 한옥마을이 내려다보이는 풍경과 마주한다. 오목대까지 오르면 더 멋진 경치가 나올 것 같지만 나무에 둘러싸여 있어 전망이 없는 것이 아쉽다. 다만 신발을 벗고 누각 위에 앉아 그늘 아래 시원한 바람을 마주할 수 있어 좋다. 글 사진 전주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강희정의 아시아의 美] 꽃보다 라오스, 탑보다 지폐

    [강희정의 아시아의 美] 꽃보다 라오스, 탑보다 지폐

    특정한 미술이 한 나라나 도시를 대표하는 일은 흔하다. 에펠탑이 파리를, 자유의 여신상이 뉴욕을 상징하는 것처럼 미술은 종종 나라나 국가를 상징한다. 숭례문이나 남산타워가 서울의 얼굴처럼 여겨지는 것도 비슷하다. 이들은 단순히 상품화된 관광 명소 이상의 의미가 있다.한국인이 보는 숭례문과 외국인이 보는 숭례문은 다를 것이다. 숭례문 화재 때를 생각해 보면 된다. 한국인에게 숭례문과 같은 역할을 하는 건축물이 라오스에서는 탓루앙이다. 탓루앙은 라오스 사람들이 가장 신성한 곳으로 여기는 사원이며, 라오스 민족주의의 상징이기도 하다. 1991년 제정된 국장(國章) 중앙에 탓루앙이 자리한다. 라오스의 지폐에도 배경처럼 탓루앙이 그려져 있다. 마치 라오스 국민을 항상 같은 자리에서 지키는 든든한 형이자 아버지 같은 모습이다.탓루앙은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의 한가운데에 자리한다. 가까이에 라오스 독립기념탑 파투사이가 있다. ‘위대한 탑’이라는 뜻의 탓루앙은 중앙의 황금색 탑 높이가 45m로 우뚝해 멀리서도 잘 보인다. 3층으로 이뤄진 기단 위에 좁고 높은 탑이 세워졌고, 그와 비슷하게 생긴 30기의 작은 탑들이 주위를 둘러싼 모습이다. 기단부에는 탑을 빙 둘러 가며 석가모니의 생애와 불교 교리가 표현돼 있다. 사람들이 탑 둘레를 돌면서 불교를 이해하도록 만든 것이다. 탑의 정상부에만 진짜 금을 입혔고 그 아래에는 금칠을 했다. 같은 황금색이기는 해도 탓루앙은 동남아시아 인근 나라의 탑과 모양이 다르다. 인도 스투파의 영향을 받은 미얀마나 태국의 탑들은 대부분 상부가 바가지를 뒤집어 놓은 것처럼 둥글다. 하지만 탓루앙은 폭이 좁아서 유럽식 첨탑처럼 보인다. 오늘날 탓루앙의 자리에는 기원전 3세기에 인도 아쇼카왕의 불교 포교단이 가져온 석가모니의 가슴뼈를 안치하기 위해 세운 탑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라오스에 불교가 아주 오래전에 전래됐다고 주장하기 위해 만든 전설일 것이다. 전설은 증명할 수 없기에 전설이다. 13세기에 크메르 사원이 있었다는 이야기부터는 역사적 사실로 보인다. 이보다 더 신뢰할 만한 탓루앙의 기원은 세타티랏 왕이 라오스 북부 루앙프라방에서 중부 비엔티안으로 수도를 옮기고 1566년 사원을 건립했다는 전승이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호빗 판 베조프는 1641년에 쓴 기록에서 “(탑의) 꼭대기가 1000파운드가량 되는 금잎으로 덮여 있다”고 했다. 그는 탓루앙에서 당시 이 지역을 다스린 란상 왕국의 수린야 봉사 왕에게 후한 대접을 받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라오스는 쇠락했고, 1828년 태국의 침략으로 ‘위대한 탑’은 허물어지고 말았다. 탓루앙은 라오스를 식민지로 삼은 프랑스에 의해 재건됐다. 복원의 근거는 당시 인도차이나 일대를 탐험했던 루이 들라포르트의 그림이었다. 그러나 1940~41년 태국과의 전쟁 때 공습으로 또다시 파손됐다가 복원된 현재의 탓루앙은 사실상 20세기의 건축이다. 라오스 민족주의가 자신들의 건축이 아니라 식민 지배자 프랑스의 손으로 복원된 탓루앙을 통해 상징된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어쩌면 한 나라를 대표하는 미술, 혹은 문화재의 가치는 그 외적인 형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의 가치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기억과 그 끝없는 전승에 있는 것이 아닐까.
  • ‘무지갯빛으로 물든 서울 광장···’,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 개최

    ‘무지갯빛으로 물든 서울 광장···’,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 개최

    1일 오후 국내 최대 성소수자 문화축제인 서울퀴어문화축제가 20회째를 맞이해 서울광장에서 성대히 열렸다. 퀴어축제의 하이라이트인 퀴어퍼레이드는 오후 4시부터 서울광장을 출발해 을지로 입구, 종각, 광화문 광장을 돌며 행진했다. 서울퀴어문화축제는 행사 초기엔 성 소수자들의 문화축제로 한정된 ‘그들만의 리그‘였다. 하지만 해가 지날 수록 성소수자들에 대한 국민 인식이 많이 개선돼, 보다 조직적이고 활발한 축제의 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날도 성소수자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령대의 일반 시민들도 축제를 응원하기 위해 시민광장을 찾았다. 퀴어축제의 상징인 무지개색을 이용한 화장과 옷차림을 한 시민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광장 곳곳에는 성소수자 인식개선을 촉구하는 여러 기관과 단체 부스 74개가 설치됐다. 국내 인권단체와 대학 성소수자 동아리, 캐나다 등 주요국 대사관이 참여했다. 또한 구글코리아를 포함해 여러 기업들과 정의당, 녹색당 등 정당들도 부스를 꾸렸다. 강문민서 국가인권위원회 혐오차별대응기획단장 “각자가 가진 성적지향과 성정체성이 다르지만 그 다름이 무지개를 이루는 것처럼 각자의 빛깔을 지닌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캠페인의 일환으로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퀴어축제 참가자들은 부스 체험도 하고 사진도 찍으며 비록 제한된 공간이지만 축제를 마음껏 즐기는 모습이었다. 이날 축제에 참여한 시민 민서영씨는 “모두가 평등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성소수자들을 포함한 모든 소수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힘껏 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독교를 제외한 불교계, 천주교 관계자들도 참여해 성소수자들의 성평등권을 지지했다. 조계종 시경 스님은 “이곳에 스님이 있어 이상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거 같다“며 ”우리 사회는 소외받고 불이익 받는 사람들이 많은 데 성소수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차별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뜻을 전하고 싶었다”고 참여 의미를 밝혔다. 하지만 도로 하나를 두고 반대편에서는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맞불집회도 어김없이 열렸다. 대한문 광장과 서울시의회 앞에서는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동성애 퀴어축제 반대 국민대회‘가 진행됐다. 퀴어문화축제를 반대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이수연씨는 “동성애는 분명 다수의 문화는 아니다. 그 속엔 어두운 부분들이 엄연히 존재하는 데 그런 것들은 얘기하지 않고 너무 아름답게 미화하고 포장만 하고 있다”며 “학부모의 입장에서 이건 정말 아니다 싶어 나오게 됐다”고 했다. 집회 참석자들은 ‘성평등 NO, 양성평등 YES’ 등이 적힌 팻말과 플래카드를 들고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등 구호를 외쳤다. 이날 오후 3시부터 대한문과 세종로사거리, 주한미국대사관, 세종문화회관, 숭례문 등을 거치는 퀴어퍼레이드에 맞서 러플퍼레이드를 진행하기도 했다. 경찰 또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대규모 경력을 투입했고 이날 큰 불상사도 발생하지 않았다. 글 박홍규, 김민지 기자 gophk@seoul.co.kr 영상 손진호, 박홍규, 문성호, 김민지 기자 nasturu@seoul.co.kr
  • 오늘 서울광장서 퀴어축제 열린다…인근에선 반대 집회도

    오늘 서울광장서 퀴어축제 열린다…인근에선 반대 집회도

    1일 오후 서울 도심에서 퀴어 축제·퍼레이드와 이를 반대하는 집회가 비슷한 시간대에 열린다.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는 이날 오후 2시쯤 서울광장에서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를 개최한다. 오후 5시부터는 서울광장을 출발해 을지로 입구, 종각, 시청 등을 돌며 행진한다. 한편 오후 1시부터는 지하철 2호선 시청역 인근에서 퀴어축제 반대위원회가 맞불 집회를 연다. 이후 오후 3시부터 대한문에서 출발해 숭례문을 돌며 행진한다. 집회 참가인원은 퀴어축제에 2만명, 퀴어 반대 집회에 7000명가량이 모일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대규모 경력을 투입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계획이다. 또 서울역과 대한문에서는 보수단체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규탄하는 집회를 연다. 석방운동본부는 오후 1시쯤 서울역 광장에서 집회를 연 뒤 숭례문과 광화문까지 행진한다. 다른 보수단체들은 대한문, 동화면세점, 교보빌딩 앞에서 각각 집회를 연다. 오후 3시에는 민주노총이 대학로에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을 조건 없이 비준하라고 촉구하는 집회를 연다. 민주노총은 대학로에서 집회를 마친 뒤 종각으로 행진한다. 이 자리에는 5000여명이 모일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은 이날 서울 도심에서 열리는 대규모 집회 및 행진과 관련해 약 120개 부대를 투입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각각의 행사 시간과 일부 행진 동선이 겹치기도 해 대규모 경력을 투입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퀴어축제 관련 행사가 열리는 시청 앞과 서울광장 주변에는 안전펜스를 설치하고, 기독교 단체 등 반대 집회 참가자들과 충돌이 없도록 할 방침이다. 이날은 종로·세종대로·남대문로·사직로·자하문로 등 도심 대부분의 주요 도로가 통제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라진 보물 지도·숭례문 목판, 식당·비닐하우스 창고서 찾았다

    사라진 보물 지도·숭례문 목판, 식당·비닐하우스 창고서 찾았다

    서울경찰청·문화재청, 장물업자 2명 검거 도난당한 ‘조선 最古 세계지도’ 등 회수 목판, 세종 큰형 양녕대군 친필로 알려져 국내에서 제작된 서구식 세계지도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만국전도’(萬國全圖)가 도난된 지 20여년 만에 돌아왔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문화재청 사범단속반과 함께 1993~1994년께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소재 함양박씨 문중에서 도난당한 보물 제1008호 ‘만국전도’와 1800년대 간행된 함양박씨 문중 소유의 고서적 116책을 본인이 운영하는 식당에 숨긴 혐의(문화재보호법 위반)로 A(50)씨를 검거하고 해당 유물을 지난해 회수했다고 29일 밝혔다. 문화재 범죄는 사실상 공소시효가 없다는 점을 재확인시킨 성과다. 문화재보호법 관련 범죄의 공소시효는 10년이지만 지난 2007년 장물인 줄 모르고 구입해도 처벌된다는 이른바 ‘선의취득 배제 조항’이 신설되면서 공소시효가 연장됐다. 경찰은 또 2008년 전남 담양 몽한각(夢漢閣)에서 사라진 전(傳) 양녕대군 친필 ‘숭례문 목판’ 2점과 ‘후적벽부(後赤壁賦) 목판’ 4점 등 총 6점을 2013년께 불법 취득해 자신의 비닐하우스 창고에 숨긴 B(70)씨도 같은 혐의로 입건했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모르는 사람에게, B씨는 사망한 사람에게 각각 도난 문화재를 사들였으며 장물인 줄 몰랐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A씨와 B씨는 각각 고미술품과 골동품 매매업을 오랫동안 해 온 까닭에 문화재에 대한 식견이 높다”면서 “장물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면서도 추후 경매업자를 통해 처분하려고 숨겨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가로 133㎝, 세로 71.5㎝ 크기의 ‘만국전도’는 보물 제1008호로 지정된 ‘함양박씨 정랑공파 문중 전적’(7종 46점) 중 일부다. 조선 중기 문신인 박정설(1612~?)이 1661년에 채색·필사한 세계 지도로, 국내에 현존하는 서양식 세계지도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됐다고 알려졌다. 이탈리아 선교사 알레니(1582~1649)가 1623년 편찬한 한문판 휴대용 세계지리서인 ‘직방외기’(職方外紀)에 실린 만국전도를 확대해 필사했다. 함양박씨 문중 고서적은 18세기 퇴계 학맥을 계승한 유학자로 평가받는 소산 이광정 문집과 의병장으로 활약한 나암 박주대가 쓴 친필본으로 구성돼 있다.이번에 회수한 숭례문 목판은 조선 태종의 맏아들이자 세종의 큰형인 양녕대군의 친필이 담긴 목판으로 알려졌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국보 제1호 숭례문 현판의 큰 글씨를 판각한 현존하는 유일한 목판본이라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크다”고 평가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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