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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대통령 유엔연설문 전문

    ◎유엔 정상회의 정례화… 새 국제질서 창출을 존경하는 각국 정상,의장,사무총장,그리고 각국 대표 여러분. 지금 이 숭고한 전당에는 인류의 앞날에 대한 세계인의 소망과 기대가 넘치고 있습니다.나는 먼저 반세기전 두차례의 대전이 몰고온 절망과 좌절을 딛고 미래를 향한 희망과 용기로 유엔을 창설한 선각자들을 기리고자 합니다. 「보다 나은 세계」를 향한 그들의 이상은 이미 세계를 크게 바꾸었고 오늘의 우리 모두에게 계승되고 있습니다.냉전적 대립과 끊임없는 분쟁속에서도 인류가 이만큼 평화를 누릴 수 있었던 데에는 유엔의 공헌이 컸습니다.유엔은 또한 많은 신생국가들의 경제·사회개발을 지원하여 번영의 확산에도 이바지하였습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평화유지와 인권신장,질병퇴치와 아동보호를 위해 헌신하는 유엔의 깃발이 모든 대륙 위에서 휘날리고 있습니다.이와같이 유엔은 지난 반세기 인류역사의 진전에 눈부신 기여를 해왔습니다. 나는 이 자리를 빌려 유엔헌장의 구현에 앞장서 온 모든 분들에게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그러나우리의 기대가 모두 충족된 것은 아닙니다. 유엔창설자들이 구상했던 집단안보는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대량살상무기의 확산,환경오염과 절대빈곤,테러와 범죄의 국제화등 심각한 문제들이 남아 있습니다.이러한 난제들은 인류가 공동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의장,세계는 격변하고 있습니다.정보화와 세계화의 새물결위에 국제질서가 바뀌고 있을 뿐 아니라 문명사적인 변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한 지역의 문제는 곧 세계의 문제로 직결되는 「세계공동체의 시대」가 오고 있는 것입니다.이러한 대변혁의 시대에 유엔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우리는 고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유엔 이외의 다른 대안을 생각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유엔이야말로 세계적 차원의 문제를 다룰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정통성있는 「다자협력의 장」이기 때문입니다.우리가 국제협력의 문을 닫고 저마다 민족지상주의와 국가이기주의를 추구한다면 이 지구촌의 장래는 실로 암담할 것입니다.유엔만이 21세기 세계공동체 시대를이끄는 중심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신념입니다. 의장,「변화와 개혁」은 역사발전의 원리입니다.변화는 성장의 수단이며 개혁은 발전의 양식입니다.이제 문명사적인 변혁에 창조적으로 적응하면서 새로운 국제질서를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유엔의 「변화와 개혁」은 필수적입니다.그런 점에서 나는 유엔의 개혁을 위한 일련의 논의들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환영하면서 이에 관한 나의 견해를 밝힙니다. 첫째,유엔은 보다 효율화되고 민주화되어야 하며 안보리는 그 대표성이 강화되어야 합니다.특히 나는 유엔을 오랫동안 마비시켜온 거부권을 더이상 확대하지 말자는 많은 회원국들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둘째,유엔의 분쟁예방 기능이 강화되어야 합니다.나는 사무총장의 「평화를 위한 과제」가 적기에 제출되었으며 이에 많은 제안들이 채택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셋째,유엔은 경제·사회·환경등의 개발요구에 더욱 적극적으로 부응해야 합니다.참다운 세계평화와 안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경제·사회적인 갈등을 반드시 해소해야만 합니다. 넷째,유엔은 이제 인간을 우선하고 가정을 중시하는 활동을 적극화해야 합니다. 지난 3월의 유엔 사회개발 정상회의가 제시한 「인간안보」와 「가정존중」은 21세기를 이끄는 가치가 될 것입니다. 다섯째,유엔의 기능강화에 따른 예산의 부담과 운영에 관한 새로운 방안이 모색되어야 합니다.나는 유엔의 「변화와 개혁」은 빠를수록 좋다고 믿습니다.이를 위해 「유엔개혁을 위한 특별총회」를 개최할 것을 제의하는 바입니다. 의장,한국의 지난 반세기는 유엔의 이상이 구현되어온 역사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한국은 1948년 유엔 결의에 의해 정부를 수립했습니다.한국이 1950년 공산주의 침략을 받았을 때 유엔의 집단안보 결의에 힘입어 자유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전후 복구과정에서도 유엔은 우리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출발한 한국이 오늘날 세계 11번째의 경제규모와 참다운 민주주의를 누리는 나라로 도약한 것은 유엔의 이상이 거둔 위대한 결실입니다.이제 한국은 유엔활동에 가장 적극적인 회원국이 되고 있습니다.우리는 이미 서부사하라·그루지아·앙골라등지에서 유엔평화유지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앞으로 유엔평화유지 활동에 필요한 각종 장비를 보관하는 PKO 장비저장소 유치를 검토할 것입니다. 한국은 유엔의 개발과 환경분야등에 관련된 각종 사업에 적극 참여할 것이며 그 자발적 기여금을 늘려 나갈 것입니다.한국은 세계아동의 질병퇴치에 기여하기 위해 유엔개발계획과의 협조아래 한국내에 국제백신연구소(International Vaccine institute)를 설립중에 있습니다. 한국은 아울러 개발도상국들과 개발경험을 공유하기 위하여 관련 지원사업을 더욱 확대할 계획입니다.우리는 특히 올해 아시아그룹의 지원을 얻어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선출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유엔에 대해 언제나 깊은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는 한국 국민들은 유엔이 새로운 반세기를 여는데 기꺼이 선도적인 역할을 할 것입니다.나는 멀지 않은 장래에 한반도가 반드시 민주주의 방식에 의해 통일될 것으로 확신합니다.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의 축복이 내리는 날 유엔의 이상은 마침내 위대한 승리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나는 여러분께서 한반도 평화통일의 굳건한 협력자가 되어주기를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각국 정상,의장,사무총장,그리고 각국 대표 여러분.나는 이번 유엔 특별정상회의가 세계사에 빛나는 이정표로 기록되기를 충심으로 소망합니다.우리의 반세기전의 선각자들이 그러했듯이 세계인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 이 회의를 마련했습니다. 우리에게는 21세기를 온 인류가 공존공영하는 참다운 세계공동체 시대로 만들자는 염원이 있습니다.앞으로 유엔이 성공적인 새출발을 하기 위하여는 회원국들의 「정치적 의지」와 「참여」가 필수적입니다.이를 위해서는 나는 무엇보다 세계 정상들간의 연대와 협력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나는 앞으로 5년마다 유엔정상회의를 정례화하고 그 첫번째 회의를 2000년에 개최할 것을 정중히 제의합니다.이제,우리는 유엔의 새로운 반세기를 향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이 발걸음이 참다운 세계공동체를 창조하는 「새로운 유엔」의 초석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감사합니다.
  • 한·가 첨단산업기술 협력기반 구축/양국 정상회담의 성과

    ◎5개협정 체결… 농업·학술교류 확대될듯/유엔서 중견국가 위상강화 공조 굳건히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에서 열린 한·캐나다 정상회담은 합의가 안될 게 없는 듯한 분위기속에 진행됐다.10개항으로 정리된 회담 결과는 실질적인 내용이 많았으며 협력분야도 정치외교·경제통상·문화학술·인적 교류 등 폭이 넓었다. 한국과 캐나다가 가까워지는 속도가 피부로 느껴지는 이유는 최근 양국의 이해관계가 너무 일치하기 때문이다. 크레티앵 총리는 지난 93년 집권이래 미국 일변도의 국가경제구조를 탈피하는 것을 제1의 목표로 삼고 있다.남한의 1백배에 이르는 세계 제2위의 광대한 영토와 자원을 갖고 있으면서도 미국 한나라와의 무역이 전체의 75%에 달하는 등 대미의존도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는 것이 캐나다의 현실이다.때문에 한국·중국·일본 등 아시아권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김영삼대통령의 세계화전략 추진으로 활기차게 뻗어나가고 있는 가운데 캐나다를 가장 좋은 동반자의 하나로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올해 양국간 교역량과 인적교류가 지난해에 비해 각각 60%,1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는 사실에서도 두나라의 관계 발전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두 정상은 2000년까지 양국간 1백억달러 교역달성을 목표로 정했다. 김대통령과 크레티앵 총리는 93년 11월 시애틀의 APEC회의에서 만나 「특별동반자관계」구축에 합의했다.이번 오타와 정상회담에서는 한걸음 더나가 「포괄적 특별동반자관계」로 진입하자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경제적 이익만 함께 하자는 차원에서 벗어나 「모든 분야에서 의논하고 상의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선언한 것이다. 우리와 캐나다는 총 경제규모가 비슷하다.두나라는 유엔 기구개편 등 국제문제에 있어 목소리를 높이려는 「중견국가」(Middle Power)의 선두에 나서려는 야심을 갖고 있다.우리와 캐나다,호주,싱가포르 네나라가 「G­7」과 비슷한 「G­4」를 결성하자는 구상도 나오고 있다. 정상회담의 성과중 산업기술협력협정을 체결한 것도 주목된다.양국간 산업기술협력위원회를 설치,정보통신과 환경·생명공학·에너지·생산기술·화학·신소재 등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협력을 본격화하자는 구상이다.김대통령의 오타와 방문을 계기로 한·캐나다 민간기업간 11개 협력 약정이 맺어졌고 생산기술연구원 등 관련연구기관 사이의 업무협력 약정도 4개가 체결됐다. 산업협정과 함께 농업협력양해각서,취업관광프로그램 양해각서,국립공원관리협력 양해각서,사회보장협정체결 의향서 등 5개의 협정이 한꺼번에 맺어진 것도 양국간 「포괄적 특별동반자관계」를 제도화하는데 큰 도움을 주리라 예상된다. 한·캐나다 정상간의 깊은 이해가 바탕에 깔려 있으므로 북한핵문제와 유엔,APEC 등 지역및 국제정치문제에 있어 양국간의 공조 확립은 어려움이 없는 상황이다. 남은 과제는 양국간 심화되는 관계를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것이다. ◎김 대통령 만찬답사 요지 한세기전 귀국에서 온 선교사로부터 시작된 양국 국민간의 우정은 한국 국민이 시련의 역사를 거쳐오는 동안 더욱 굳건해졌습니다.6·25전쟁 때 2만6천여명의 캐나다 젊은이들이 한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웠으며 그중 5백16명의 장병이 고귀한 생명을 바쳤습니다. 양국간의 우의는 이처럼 오랜 유대와 숭고한 희생위에서 깊어져 왔습니다.2년전 총리 각하와 함께 우리 두나라 관계를 「특별한 동반자 관계」로 발전시키기로 합의한 이래 양국간 교류와 협력은 빠르게 확대되고 있습니다. 두나라는 이제 중요한 교역대상국이 되었으며 여러 분야에 걸친 협력의 강화로 서로가 서로에게 더욱 소중한 동반자가 되고 있습니다.아시아·태평양지역이 하나의 공동체로 나아감에 따라 캐나다와 한국간의 협력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캐나다와 한국은 상호보완적 산업구조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어 양국간의 협력전망은 매우 밝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번에 양국 정부간에 체결될 제반협정을 바탕으로 양국간의 교역이 더욱 확대되고 산업과 기술분야에서 실질적인 협력이 본격화되기를 기대합니다.특히 정보통신,우주항공,환경등 첨단분야에서 양국간에 활발한 교류와 협력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교육문화,관광,안보분야에서도 우리 두나라가 교류와협력을 확대시켜 나감으로써 동반자 관계의 기초를 튼튼히 다져 나가야 할 것입니다.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는 7만여명의 한국 교민은 양국간의 우호협력을 증진시키는데 훌륭한 가교역할을 할 것으로 믿습니다.
  • 서울신문·LG전자 공동주최 문화행사 5일 개막

    ◎충주 우륵문화재­「임경업 장군 출진행렬」 지현/공주 백제문화제­백제사 다룬 「백마강…」 공연/진주 개천예술제­진주성서 「김시민 목사행차」 서울신문사와 LG전자가 공동주최하는 「95 향토문화축제」의 하반기 행사가 10월 5일 상오 충북 충주의 우륵문화제를 시작으로 11일 충남 공주의 백제문화제,27일 경남 진주의 개천문화제순으로 화려하게 펼쳐진다. 올해로 6회를 맞는 서울신문의 향토문화축제는 우리의 전통 축제를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키고 지역문화를 활성화 하기 위해 지난 90년부터 실시해오고 있다. 한국방송공사의 후원으로 해를 거듭할수록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받고있는 이 축제는 전국 각지역 향토문화제의 대표적인 행사로 자리잡았다. 올해 축제는 광복 50년과 세계화·지방화 시대 원년을 맞아 전지역 주민들이 화합과 동참으로 흥겨운 축제 한마당으로 발전시킨다는 목표 아래 가·무·악이 한데 어우러지는 역동적인 무대를 꾸미는데 중점을 두고있다. 올해 축제는 특히 각 지역의 역사적 문화적 특성과 고유성을살린 축제로 발전시키기위해 민속 놀이와 지역 민요를 접목,내용을 충실히 하고 문화예술인,향토사가,지역문화 담당자들과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축제의 완성도를 높였다. 상반기 축제인 진해군항제와 진도 영등제 남원춘향제는 지난 4월 성황리에 행사를 마쳤다. 지역 주민들에게 흥겨운 축제의 장을 마련하게 될 이번 행사의 내용을 살펴본다. ▷충주 우륵문화제◁ 신라의 악사 우륵을 기리는 우륵문화제는 5일 상오 충주 공설운동장에서 열린다. 올해 행사는 「임경업장군 출진행렬」로 조선시대 인조때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때 친명반청을 표방하며 전장에 나서는 임경업장군의 장열한 모습을 행렬로 재현한다.임장군을 모시는 청신 과정인 영신굿으로 서막을 열고 택견시범과 취타·화관무등으로 군사들의 사기를 돋우는 위안잔치가 벌어진다.말을 선두로 영정을 앞세우고 입장한 2백m의 출진행렬이 공설운동장에서 시작,시청과 중앙공원까지 3㎞구간에서 펼쳐진다. ▷공주 백제문화제◁ 11일 하오 공주 문예회관에서 백제사를 다룬축제극 「백마강 달밤에」가 공연된다. 극단 목화가 오태석연출로 공연할 「백마강 달밤에」는 충청도의 한마을에서 벌이고있는 대동제를 형상화한 작품. 삼국시대부터 황산벌에서 죽은 백제 병사들을 제사 지내주고 위로하여 마을의 수호를 비는 대동제를 주재하는 늙은 무당과 수양딸의 이야기이다. ▷진주 개천예술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진주의 개천예술제는 27일 상오 진주성 행사장에서 「김시민 목사행차」로 시작된다. 임진왜란때 죽음으로써 성을 지킨 김시민목사와 애국선현들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기리고 진주의 역사적 이미지를 강조하기위해 마련됐다. 김목사를 중심으로 민·관·군이 한덩어리가 되어 왜적을 물리친 사실을 행렬화한다. 진주 검무 및 진주 오광대,쾌지나칭칭나네 등 민요와 민속놀이가 펼쳐지며 죽음으로 나라를 지킨 투철한 애국정신을 살린다. 농악대,사물놀이,군사,의병 등 4백여명이 출연한다.
  • 지방행사 현장/경기­화성 화산 독지리서 「3·1운동 봉화」 올려

    ◎제주­법정사 승려들 「항일 만세대행진」 재현/부산­마안산 정상서 3·1운동 기념탑 기공식 광복 50주년을 기념하는 문화 및 예술행사가 15일 전국 곳곳에서 다채롭게 마련됐다. 지역 주민들은 「광복 50주년 통일로 미래로」라는 주제로 행사들을 지켜보며 광복의 감격과 의미를 되새겼다.많은 주민이 자녀들과 함께 길놀이나 전시장,예술·문화공연을 관람하며 「나라 사랑」의 마음을 되새겼다. ○…제주에서는 상오8시 서귀포시 중문동에서 법정사 승려들의 항일운동 만세 대행진이 걸궁팀과 사물놀이패의 길놀이를 시작으로 6시간에 걸쳐 재현됐다.중문 청년회의소가 주관했으며,1천여명이 참가했다. 북제주군 구좌읍 세화리 공유수면 매립지에서는 제주 해녀항쟁 만세 대행진이 펼쳐졌고 제주도 문예회관 대극장에서는 영화인협회 제주지부가 아리랑 영화제를 마련해 도민화합과 통일의지를 일깨웠다. 하오에는 제주시 탑동 제주해변 공연장에서 제주 시립교향악단과 시립합창단,끌리오합창단과 남녕고 합창단이 공동으로 광복 50주년 기념 「연합 음악제」를 마련해 광복절을 경축했다. ○…경기도 화성에서는 하오7시 우정면 화산리 봉화산과,이 곳에서 20여㎞ 떨어진 송산면 독지리 봉화산 등 두 곳에서 3·1운동을 알리는 당시의 봉화 올리기 행사를 재현했다. 가로·세로 1.5m,높이 2m의 봉화대에 불이 지펴지자 7백여명의 주민은 일제히 「대한 독립만세」를 외치며 그날의 감격을 만끽했다. 수원의 경기도 문화술회관에서는 고 전동례 할머니의 체험을 토대로 일제에 저항한 제암리 주민의 비극적인 참상을 그린 창작 무용극 「제암리 아침」이 공연돼 선열들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일깨웠다. ○…명장동 마안산 정상에서는 3·1운동을 주도한 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3·1운동 부산 기념탑」 건립 기공식이 열렸다. 또 부산에서 항일운동을 주도한 백산 안희제 선생을 기리는 백산 독립기념관이 중구 대창동 옛 백산상회 자리에 문을 열었다.전시실 지하 1층에 백산선생이 사용했던 벼루·청동화로·가방·친필 서한 등 유품 12종 55점을 전시해 놓았다. ○…경남에서는 상오10시50분부터 진주시칠암동 경남도 문화예술회관에서 한국예총 경남도지회 주관으로 광복 50주년을 축하하는 종합연극 「지킴이」가 1시간40분 동안 무대에 올려졌다. 무용과 연극·민요 병창·풍물패·합창·태껸 등 여러 장르의 예술을 한데 묶어 5막12장으로 구성한 이 극은 일제의 억압과 설움을 꿋꿋한 민족정신으로 극복한다는 내용이다. 극이 끝나자 배우·풍물패·합창단 등 1백30여명의 출연진 모두가 오색 방울이 날리는 무대로 나와 관람객들과 함께 「아리랑」과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했다. ○…대전시가 광복 50주년을 기념하고 새로운 대전 역사 창조를 위해 지난 6일부터 시민회관에 마련한 「광복과 대전 발전 사진전」에는 마지막 날인 이날도 1천5백여명이 몰렸다. 일제 때부터 21세기 청사진까지 주제별로 시대상황을 담은 사진 2백여점이 전시됐다.
  • 조국 독립투쟁 선조 발자취에 숙연/해외유공자 후손 독립기념관 방문

    ◎이동휘 선생 손녀 조부상 보고 감격/임정요인 밀랍상 앞서 기념사진도 광복 50주년을 이틀 앞둔 13일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관장 최창규)에는 정부의 초청으로 미국·일본·프랑스등 해외 15개국에서 사는 독립유공자 유족및 관련인사 2백47명이 찾아와 조상들의 숭고한 독립운동을 기렸다. 이들은 일제의 억압과 수탈속에서 목숨을 바쳐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워온 조상의 발자취에 가슴 벅차했다. ○…올해 독립운동 대통령장을 받는 임정요인 이동휘 선생의 손녀인 리류드밀라 다위브나(한국명 선희·62·카자흐스탄)씨는 제6전시관에 밀랍으로 빚어놓은 임정요인 가운데 할아버지의 상을 보고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지난 88년 돌아가신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독립운동사를 쓰면서 항상 고국을 찾고싶어 했다』며 『조국을 위해 몸바친 할아버지의 발자취가 서린 독립기념관을 보니 도저히 발길이 돌아서질 않는다』고 아쉬워했다. 그녀는 한국출신 남편 강아파나시 미하일로비치(65)씨나 자신을 알아본 관람객들과 함께 할아버지상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서도 계속 눈물을 닦아내며 감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모습. ○…올해 독립운동 독립장을 받는 송종익 선생의 아들 송위리(71·미국)씨는 『고난에 찬 선대들의 독립의지가 어린 독립기념관을 둘러보니 부친의 숭고한 정신이 자랑스럽다』며 『독립운동가의 후손답게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고 말했다. ○…1906년 「뉴욕헤럴드」신문에 을사조약의 무효를 주장하는 기사를 게재하며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몸바쳐온 헐버트(한국명 홀법)씨의 장손 리처드헐버트(Richard K.Hulbert·67·미국 뉴욕)씨는 지난 73년 아버지와 함께 한국을 찾은지 4번째 방문이지만 독립기념관은 처음이라며 「제2의 조국」을 찾은듯 흥분. 그는 『한국의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쳐 힘써오고 사랑하다 묻힌 할아버지가 무척 자랑스럽다』며 『할아버지가 그토록 사랑한 한국을 위해 조금이나마 힘이 되는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들 해외독립유공자 유족들은 삼삼오오 모여 다니며 관내 7개 전시관을 돌며 선조들의 독립운동을 이야기하고 사진을 찍는 한편 일부는 집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관련 팸플릿 등을 모았다.
  • 애국지사 유물전/통일염원 조각전/예술의전당 광복50주년 특별기획전

    ◎유묵전­애국·항일정신 깃든 선인 101명의 필묵 전시/조각전­통일 주제 중진 작품·공모전 수상작 모아 광복 50주년을 맞아 예술의 전당은 통일에 대한 열망을 조각작품으로 담아낸 「통일염원의 조각전」과 일제시대 항일운동을 펼친 애국지사들의 유묵을 모은 「애국지사 유묵전」 등 두개의 특별기획전을 개최한다. 한가람미술관에서 3일부터 20일까지 열리는 「통일염원의 조각전」은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에서만 가능한 전시회이다. 중견·중진작가 25명과 공모전을 통해 선발된 40세미만의 젊은 작가 25명이 「통일염원」이라는 주제로 제작한 작품 50점이 선보인다. 전시작품 전체가 「통일」이라는 테마를 놓고 작가들의 창조적인 에너지가 잘 소화되고 있으며 재질이나 양식에 있어서도 흥미있게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전시회는 이름으로 듣는 것처럼 무겁거나 경직된 전시회가 아니며 주제와는 별도로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한 작품이 많다. 특히 공모부문에서 대상을 받은 수상작품이 눈길을 끈다. 대상을 받은 이민수의 「백두사람 한라사람」은 백두산의 기상을 인체의 형상을 빌려 웅장하고 힘있게 처리,통일염원의 의지를 표현했으며 우수상을 받은 차주만의 「가을날의 열망」은 넘고싶은 분단의 열망과 넘을 수 없는 현실의 갈등을 상징적으로 잘 풀어냈다. 중견·중진작가로는 강관욱 강대철 김인겸 박충흠 심정수 전수천 최만린 최병상 강희덕 고정수 김광우 김찬식 박석원 심문섭 이승택 이종각 최종태등이 출품한다. 서예관에서는 10일부터 9월10일까지 한달간 「애국지사 유묵전」이 열린다.단발령과 민비시해로 촉발된 을미의병(1895년)에서 해방때까지 민족자존과 독립을 위해 힘쓴 선열들이 남긴 필묵을 통해 숭고한 애국·항일정신과 역경과 고뇌로 점철된 삶의 체취를 생생히 접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다.지금까지 광복회 등 관련단체에서 기념행사로 일부 공개되긴 했으나 이처럼 한 주제아래 대대적으로 공개되기는 처음이다. 좌·우익,무정부주의 등 이념이나 계파를 초월해 사건 전개순으로 1백1명의 유묵 1백17점을 전시한다. 기우만 김복한 등 의병장,남궁억 장지연 등애국계몽운동가,을사조약과 경술국치때 순절한 민영환 이만도,오세창 한용운 등 3·1운동지도자,여준 이범석 등 해외독립군,안중근 윤봉길 등 의열투쟁으로 생을 마감한 열사들의 유묵이 공개된다.또 김구 신규식 안창호 이승만 등 임시정부 요인, 나철 윤동주 등 종교인과 문인,여운형 홍명희 등 사회주의 운동가들이 망라됐다.
  • 역사·화합·미래 주제 국민축제로/8월을 수놓을 광복 50돌 행사

    ◎역사의 장­총독부 건물철거… 민족정기 고양/화합의 장­한민족축전 열어 남북통일 기원/미래의 장­무궁화호 발사기념 등 11개 행사 8월은 50주년을 맞는 광복절이 들어있는 달.연중 계속되는 각종 기념행사 가운데 가장 비중있고 규모가 큰 행사들이 대부분 8월에 펼쳐진다.정부부처 행사 22개,산하단체 행사 19개,민간단체 행사 16개,지방자치단체 행사 27개 등 모두 84개의 행사가 「역사의 장」「화합의 장」「미래의 장」이라는 3개의 주제로 나뉘어 열린다.정부는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고 민족번영과 통일을 향해 새롭게 출발하는 전기를 마련한다는 의도에서 올해 초부터 추진해 오던 기념행사를 8월에 집중 개최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역사의 장」은 민족정기를 고양하는 사업으로 ▲일제 잔재인 옛 조선총독부건물 철거 및 대지미술전 ▲이준열사기념관과 중경임시정부청사등 독립운동 사적지 복원 ▲독립유공자 1천4백여명에 대한 대대적 발굴 포상 ▲국내외 독립운동 사적지 순례등 25개 사업이 포함되어 있다.민족의 화합과 통일을 염원하는 「화합의 장」에는 ▲여의도 고수부지 레이저영상쇼 ▲광복 길놀이 ▲95 세계 한민족축전 ▲통일 한마음 행사등 20개 사업이 들어 있다.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미래의 장」 사업으로는 ▲세계를 빛낸 한국음악인 대향연 ▲종합학술행사 ▲무궁화통신위성 발사 기념행사 ▲지구촌 우주소년 큰잔치등 11개가 있다.이밖에 지방에서 개최되는 주요 행사로는 서울시의 조국을 빛낸 해외동포 초청행사와 경기도의 창작무용극 「제암리의 아침」 공연등 23개가 있다. 정부는 기념행사가 광복이전 세대에게는 광복의 벅찬 감격을 되새기게 하고 광복이후 세대에게는 광복의 의미를 느낄 수 있는 현장체험의 기회가 되도록 기획했다.독립유공자와 그 유족들의 숭고한 희생에 대해 다시 한번 옷깃을 여미는 자리가 될 수 있도록 준비했다.또 민간과 정부가 주관하는 행사를 전국에서 어우러지는 국민축제로 승화시키고 해외동포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해 민족단결의 계기를 마련한다는 목표 아래 행사를 추진해 왔다.옥내 행사에서 벗어나 광화문 앞과 국내외 독립운동 사적지,독립기념관 등 개방적이고 상징적인 장소를 활용함으로써 광복의 의미를 한층 되살아날 수 있도록 배려했다. 8월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광복절 당일 각계 대표와 일반 시민 각각 2만5천여명씩 모두 5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옛 조선총독부건물 앞 광장에서 열리는 중앙경축식.「광복 50년,통일로 미래로」라는 주제 아래 상오9시부터 10시까지 식전행사,10시55분까지 본행사,10시55분부터 11시10분까지 식후행사로 나뉘어 2시간10분 동안 진행된다. 민족사를 재조명하고 광복의 환희를 재현하는 식전행사는 5백여명의 북을 멘 바라꾼과 횃불수 및 60여명의 전통군악대가 펼치는 「새아침의 소리」,옛 조선총독부건물 중앙돔 철거행사인 「어둠 거두기」,국립국악관현악단과 국립·서울시립·경기도립 무용단의 고전 및 현대무용 「다시 찾은 빛」,광복 50주년 기수단을 비롯해 각 시·군·구 기수단과 경찰 및 3군 군악대등 약 1천5백여명이 광복 길놀이 꽃차 및 장식차와 함께 벌이는 「한울림」행렬로 구성된다. 통일과 세계를 향한 민족의 결의를 다짐하는 본행사는 국민의례,광복회장의 기념사,서울시립교향악단의 연주 속에 세계를 빛낸 한국음악인 7명과 서울시립교향악단·연합합창단이 부르는 축가 「동방의 빛」,독립유공자 포상,경축사,광복절 노래제창,경축비행의 순으로 진행된다. 통일과 미래의 희망을 염원하는 식후행사는 해방둥이들이 광복절 노래를 합창하는 가운데 통일성화 봉송단이 통과하며 4백여명의 현대무용단·서울시립가무단·국민학생들의 무용 「통일로 미래로」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중앙경축식 행사장은 모든 국민의 출입이 허용되며 참가자들에게는 광복 50주년 공식 휘장 또는 태극무늬로 도안된 모자·부채·음료 등이 제공된다. 정부는 행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3가지 종류의 포스터 6만부를 만들고 눈에 잘 띄는 곳에 홍보조형물을 설치했다.안중근 의사의 얼굴이 새겨진 1만원짜리 은화와 김구 선생의 초상을 담은 5천원짜리 니켈화 각각 7만개를 제작했다.기념우표 3백만장,소형 시트 60만장,우표책 1만부를 만들고 5천원권 공중전화카드 30만장과 기념담배 5천만갑을 발매했다.
  • 한국화가 산정 서세옥(이세기의 인물탐구:79)

    ◎스스럼없이 화필 휘젓는 큰 예인/작품마다 영혼이 움직이듯 팽팽한 긴장감/화려한 채색 거부… 발묵·석묵법 자재로이/77년 「한국현대회화 유럽전」때 “동양문화의 진수” 보여 산정의 성북동 무송재는 지금 녹음이 한창이다.큰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벌써 그 짙푸른 녹색으로 인해 집안은 유현한 산곡과도 같다.안채로 통하는 디딤돌 외에 새파란 이끼가 휘덮인 마당은 모든 것이 푸른 가운데 허공에 우러른 첨단에마저 서슬 푸른 냉기가 감돈다.「일편연홍난입문,한조각의 붉은 빛도 문안에 들어올 수 없다」는 산정의 말대로 영롱산관 죽리관 수죽원하관 창하헌 등 그의 당호들은 집안에 넘치는 푸른색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화실 창앞에 쭉쭉 뻗어 있는 청청하고 곧고 차가운 대나무며 지금 막 피기 시작한 보랏빛 추국에 이르기까지 추호의 시든 빛을 보이지 않는 영롱한 환경은 서울 한복판이건만 실로 아득한 선경인 듯 감탄스럽기만하다.여기에 손님을 접대하는 응접실과 한옥중의 한채에 온통 중국고서적이 산적해 있어 그의 방대한 독서량이 얼마만한것인가를 미루어볼 수 있다. 그는 성북동 전에는 노송으로 우거진 월곡동에 살다가 대학때의 스승인 근원 김용준을 그리워하여 지금부터 20여년전 스승의 노시산방이 있는 이곳에 한옥을 지어 이사했다. ○회화예술 변혁 앞장 산정은 널리 알려지다시피 서시문화를 두루 갖추고 상식에 안주하려는 회화예술에 변혁과 개혁의 화업을 이뤄낸 동양화 대가다.초기에는 범속과 권위와 형식에 대한 강렬한 저항정신을 앞세워 「고루협애가 없는 방종자일한 표현」으로 개혁의지의 향방을 모색하다가 차츰 「감각의 해방을 원점으 로 되돌린 절제화면」을 이룩하면서 남보다 일찍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평론가 이경성씨는 그의 첫번째 전시 팸플릿에서 그와 같은 유사성을 「명대의 서위나 청초의 석도」에 비유하고 오광수 역시 「수묵화를 감필묘법으로 구사한다는 차원에서 남송의 양해나 선화파의 목계의 화격」에 닿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비해 정병관씨는 「모든 진실한 작품은 침착하다」는 칸딘스키의 말을 인용하여 『산정의 작품은 무한을 생각케 하는활짝 트인 화면공간속에서 「숭고한 형이상학적인 회화」를 구축하고 있다』고 결론짓는다.과연 그리지 않으면서 그리는 상태,말하지 않으면서 말하는 듯하고 표현하지 않으면서 표현하려는 자기모순을 함축한 그의 작품은 「그 형식과 내용면에서 영혼이 움직이는 듯한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89년 개인전에서 선보인 「군무」「사람들」시리즈는 「붓으로 그렸다기보다는 붓을 던졌다는 표현이 더욱 옳다」는 정병관씨의 평에 많은 사람이 공감한 바 있다.즉 「붓의 전진하는 속도감과 상하로 누르고 떼는 강약의 압력은 낭만적인 금선의 무쌍한 변화」와도 같으며 「발묵과 석묵법의 자재로운 움직임」은 바로 산정 그림의 즉흥성과 필연성이기 때문이다.따라서 산정은 「스스럼없이 필력을 구사할 줄 아는 이 시대 재능이 뛰어난 예인」으로서 「흉중의 고고특절한 품성 없이는 문자향과 서권기를 지니지 못한다」는 추사의 지론을 실천시킨 화가의 한 사람이 되었다. ○20세때 뒤늦게 입문 그가 화단에 등단한 것은 아직 대학재학중이던 20세였으나 뒤늦게 45세되던 해 서울 첫 개인전을 열 때까지만 해도 그의 그림에는 일정한 채색과 반추상의 형태가 깃들여 있었다.그러나 산정 자신은 「분명히 말해두지만 나는 메마른 구각이나 비좁은 질곡은 싫다」고 천명했고 이후 채색이 없는 검정색의 선묘형상들은 그 기호적인 성격과 힘과 자발성을 채색의 경우보다 한층 강하게 나타내게 되었다. 그는 우리 화단에서 그가 원했든 원치 않았든 언제나 커다란 구심점을 긋고 그 한가운데 서 있었다.오늘날 수많은 미술대전에서 동양화가 구상·비구상으로 나눠지게 된 것도 단순히 이 작가의 작용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화단에서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후 산정은 유럽쪽에 눈을 돌려 수많은 해외전에서 한국회화의 독자성을 인정받았다.그중 77년 9개월에 걸친 「한국 현대회화 유럽전」에서는 현지 신문들이 「서세옥의 추상적인 묵화들은 동양화라 일컬어지는 한국 전통미술의 현대적 전모를 집약함으로써 서양인에게 동양문화의 진미를 보여주었다」(르피가로 78년6월28일자)고 쓰기도했다. ○올 11월 개인전 열어 그는 어릴 때부터 수많은 고서화가 있는 집안환경에서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리며 자라났다.독립운동을 하던 부친 서장환(석련)공은 세 아들중 일총한 산정을 특히 총애하여 「성동」이란 아호를 내려주었으나 대학시절 영운(김용진) 춘곡(고희동) 소전(소전 손재형)등 그의 스승들이 「세옥」의 옥자와 관련된 「옥출곤강(금과 옥돌은 산에서 캔다)」이란 의미의 「산정」을 지어주었다. 지난해 서울대 정년퇴임후 산정은 무송재 녹음속에 파묻혀 그의 전생애가 그렇게 일관해왔듯이 자유하는 예술가로서의 절제와 생략과 탈속의 묘를 구체화하는 시기일 것이다. 그의 테마는 여전히 인간에 집착한다.세월도 서릿발 같은 그의 의지를 피해가는지 언제나 만년청년 같은 그는 「적진에 뛰어들어 호랑이나 사자를 사로잡듯」 우주의 올바른 기운을 수백호 화면속에 역동적으로 되살려내고 있다. 요즘은 오는 11월로 잡힌 개인전과 그가 발족한 한·중미술협회의 요청으로 그동안 써온 한시를 친필서예로 꾸미는 「산정문집」 출간준비에여념이 없다.그중 연전에 중국 양자강을 둘러보며 지었다는 「단현」이 눈에 띈다. 「비지양현회 농현감금심 고산류수곡 적막실지음 석현호불기 천재거무회 수주아양곡 공류일금대(이땅의 두 현인이 만나 거문고로 서로 마음을 느끼니 이는 고산곡과 유수곡이라,지음이 없으니 적막하구나.옛 현인 불러도 일어나지 않고 천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니 누가 고산 유수곡을 연주할 것인가,속절없이 거문고 튕기던 언덕만 남았구나)」이는 중국 춘추시대의 거문고 명인이던 백아가 그의 거문고소리를 좋아하던 종자기가 죽자 거문고 현을 끊어버린 일화를 그린 시로 그들이 거문고를 타던 양자강가에 서자 이런 시를 읊게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3∼4년전까지만해도 송죽 우거진 뜰에서 산정은 가까운 이들을 모아 거문고며 가야금연주를 즐기곤 했다.그러나 명고수 김명환씨가 4년전 작고하고 단골손님이던 언론인 예용해씨마저 지난해 타계하자 화가는 혼자 남아 그때의 감흥을 한편의 시와 한점 획(화)으로 남기게 됐나보다. 이제 산정댁의 대나무가 그 놀라운 푸른빛을 뻗치고 소나무향이 온산을 뒤덮어도 이 풍치를 음미할 만한 유장한 현금은 울려지지 않는다.단지 우거진 나뭇닢이 단 한 잎도 시든 기색 없이 싱싱한 생명력을 지니는 것처럼 시들 줄 모르는 산정의 붓끝은 그 탁발한 금선의 선율로 「청청속의 노주」를 결국 성취하게 될 것이다. □연보 ▲19 29년 대구생 ▲49년 제1회 국전서 「꽃장수」로 국무총리상 수상 ▲50년 서울대 미대 졸업 ▲54년 제3회 국전서 「휘월의 장」으로 문교부장관상 수상 ▲54∼95년 서울대 미대 교수 ▲59년 묵림회 창립대표위원 ▲61∼82년 국전 심사위원·운영위원 ▲62년이후 상파울루비엔날레 칸국제회화제 이탈리아회화제 인도트리엔날레 도쿄비엔날레 파리현대미전 등 출품 ▲64년 국제조형예술(IAA) 한국위원회위원장,신인예술상 심사위원장 ▲64∼88년 한국미협이사장·회장 ▲66∼71년 유럽·남북미 34개국 여행,한국현대미술 프랑스순회전 ▲70년 국전 초대작가상,한국미술대상전 심사위원 ▲73년 예총부회장 ▲74년 서세옥전(현대화랑초대전) ▲77∼78년 한국현대 동양화유럽순회전,스웨덴 폴란드 독일 프랑스 ▲79년 서세옥전(도쿄 우에다화랑 초대) ▲82∼85년 서울대 미대학장 ▲83년 서세옥전(뉴욕 퍼시픽아시아박물관초대),전국미대협의회회장 ▲85년 서세옥특별전(뉴욕 바로카레지미술관 초대) ▲89년 서세옥전(현대화랑 초대),뤼턴오브 마르코폴로전(프랑스 파리) ▲90년 한국작가전(중국 북경),한·중미술협회 결성 ▲91년 한·중미술대전(중국 북경)이후 서울·남경·상해 등지서 교류전시 그외 한국회화대전및 아세아현대미술전 한국미술상황전 LA87미술전 조선일보미술관개관기념 현대작가초대전 서울올림픽아트 국제현대미술전 등 다수 출품,국민훈장석류장 서울시문화상 한·중미술협회회장,미협고문
  • 21세기 아·태시대 향한 협력­평화·번영의 동반자

    ◎김대통령 미 상·하양원 합동회의 연설­전문 위대한 미국국민을 대표하는 이 숭고한 민주주의의 전당에서 연설하는 영예를 주신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나는 고향을 찾아 옛 친구를 만난 듯한 따뜻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스물다섯의 나이로 국회의원이 된 이래 40년 가까운 의정생활을 통해 의회는 어느 덧 나의 「고향」이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또한 나의 고난에 찬 기나긴 민주화투쟁을 한결같이 성원해주신 의원 여러분에게 평소 깊은 감사와 함께 동지의식을 지녀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은 오직 피와 땀과 눈물로 오늘의 한국을 이루기까지 언제나 든든한 벗이 되어 온 미국 국민에게 뜨거운 우정을 느끼고 있습니다.나아가 온 인류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새로운 세기를 향해 우리 두 나라의 두터운 유대관계를 더욱 성숙시켜 나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빈국서 부국으로 1945년 2차대전의 종전은 우리 민족에게 해방과 독립이라는 축복을 안겨주었습니다.그러나 그것도 잠시,우리는 민족분단이라는 역사적 비운을 다시 맞게 되었으며 5년후 동족상잔이라는 참극으로 이어졌습니다. 한국인은 식민통치의 잔재와 빈곤의 유산,그리고 전쟁의 폐허와 공산주의의 위협 속에 나라를 세워야 했습니다.우리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번영을 향한 의지,단지 그것만으로 지난 40여년을 줄기차게 달려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최빈국으로 출발했던 한국은 이제 경제규모에 있어 세계 열한번째의 나라로 뛰어올랐습니다.그러나 우리 국민이 이룩한 것중에 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민주주의를 활짝 꽃피운 것입니다. 한반도의 분단과 남북간의 군사적 대치는 한국의 민주주의에 두텁고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여기에서도,한국 국민은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향한 끈질긴 투쟁끝에 마침내 문민민주주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우리는 지난 2년여동안 과감한 「변화와 개혁」을 통해 군사독재시대의 적폐를 청산하고 참다운 민주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또한 지난해부터 우리는 「세계화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지구공동체의 번영에 크게 기여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매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아무것도 없는 맨주먹으로 일어나 짧은 기간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모두 이룩하고 이제 세계로,미래로 나아가는 한국의 이야기입니다. ○참전용사에 감사 한국의 성공은 무엇보다도 평화가 가져온 결실입니다.한반도의 평화가 지켜지지 않았다면 한국 국민은 오늘의 자유도,번영도 결코 누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평화는 대가 없이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많은 미국의 젊은이들이 피를 흘렸습니다. 내일은 우리 모두가 이 의사당 맞은편 포토맥강변에서 한국전의 영웅들을 다시 만나는 뜻깊은 날입니다.6·25전쟁의 휴전 42주년이 되는 이날을 맞아 제막될 한국전 참전기념비는 우리에게 언제나 평화의 소중함을 웅변해줄 것입니다. 나는 이 자리에서 우리 국민을 대신하여 한국의 전선에서 고귀한 젊음을 바친 영령들을 추모하고 모든 참전용사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당시 약관 19세의 나이로 참전하신 찰스 랑겔의원을 비롯한 스물여덟분의 의원들께도 경의를표합니다. 아울러 지난 40여년간 한국의 전선을 지켜온 모든 미군장병과 그 가족에게 한국 국민의 사의를 전합니다. 반세기전까지만 해도 태평양 너머 멀리 느껴졌던 우리 두 나라는 이제 가장 가까운 벗이 되었습니다.일방적인 도움을 주고 받던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도움을 주고 받으며 자유와 번영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성숙한 동반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 두 나라가 함께 키워온 평화의 유대는 값진 열매를 맺었습니다.한국의 성공은 한·미 양국 국민의 공동승리입니다. 아시아·태평양시대의 막은 이미 올랐습니다.한·미 두 나라는 더욱 강력한 결속으로 본격적인 아·태시대를 열어나가야 합니다.아·태지역이 역동적 성장을 거듭하여 세계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르게 된 것은 미국이 장기간 이 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유지해왔기 때문입니다. ○아·태 미 역할 긴요 아·태시대가 활짝 꽃피기 위해서는 미국이 앞으로도 이 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역할을 계속해야 합니다.특히 동북아의 중심에 위치한 한반도의 평화보장은 이 지역 전체의 안정에관건이 되고 있습니다. 한반도는 아직도 1백50만의 중무장한 병력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지구상의 마지막 냉전지대입니다.주한미군은 지난 40여년간 한반도에서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해왔습니다. 한반도의 평화는 물론 아·태지역 전체의 안정을 위해 주한미군은 필수불가결한 존재입니다.북한의 핵문제를 둘러싸고 고조되었던 긴장은 한반도가 얼마나 불안정한 지역인가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핵문제와 관련하여 미·북간에 이뤄진 콸라룸푸르합의를 지지하는 바입니다.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한·미간의 공동보조는 북한의 핵개발 의혹이 분명히 풀릴 때까지 강력하게 유지되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미·북 제네바합의가 충실히 이행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한반도의 평화는 그 실질적 당사자인 남북간의 대화와 협력에 의해서만 정착될 수 있습니다.대화 없이는 그 어느 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나는 클린턴대통령과 미국 의회가 그동안 남북대화의 핵심적인 중요성을 강조해온 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광복 50주년이자 분단 50주년인 올해를 남북관계에 새로운 장을 여는 역사적인 해로 만들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남과 북이 평화공존과 화해협력을 통해 점진적으로 하나의 민족공동체를 형성해 나감으로써 궁극적으로 1민족 1국가를 만들자는 것이 한국의 통일정책입니다.이에는 북한의 안정이 필수적이며 이에 따라 우리는 남과 북이 함께 번영하는 「민족공동발전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북한 경수로 건설비용의 대부분을 부담하면서 한국형 원자로를 제공하고 그 중심적 역할을 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뜻에서입니다.같은 취지에서 남북경제협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우리는 또 순수한 동포애적 차원에서 북한의 어려운 식량사정을 덜어주기 위해 북한에 쌀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통일로 가는 길이 비록 멀고 험하더라도 우리는 인내심을 가지고 쉼없이 전진해갈 것입니다.한반도가 다시 하나가 되는 그날,동북아에는 진정한 평화와 번영이 올 것입니다.분단된 한국보다통일된 한국이 인류와 세계에 더욱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균형통상 급선무 아시아·태평양지역 전체의 번영을 위해서는 이 지역에 자유무역과 개방주의가 뿌리내리게 해야 합니다.2차대전후 미국의 지도력 아래 자유세계에서 이뤄져온 자유무역은 빈곤과 공산주의를 퇴치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한국 역시 자유무역으로부터 많은 혜택을 입었습니다.나는 아·태지역의 모든 나라가 자유무역의 수혜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바로 이런 이유에서 나는 클린턴대통령과 더불어 APEC의 발전을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한국정부는 또한 WTO 규범에 따른 다자간 협력도 적극 지지하고 있습니다.미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며 한국도 이제 미국의 여섯번째 시장으로 성장했습니다.지난해 양국간 교역은 4백억달러를 넘어섰고 금년에는 5백억달러 수준에 달할 것입니다. 한·미간의 무역은 대체로 균형을 이루어왔으나 최근에 이르러 한국의 대미 적자폭이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세계화정책을 통해 경제를 비롯한 사회 각 부문의 개방과 자율화를 적극 추진해왔습니다. 우리는 나아가 OECD 가입을 통하여 선진국 수준의 개방화시책을 본격적으로 펴나갈 것입니다.한국은 개발도상국으로서는 가장 빠른 속도로 문을 열어왔습니다.앞으로도 한국은 지속적인 자율과 개방정책을 통해 아·태지역의 번영을 촉진하는 미국의 강력한 동반자가 될 것입니다. ○국제적 책임 확대 우리 앞에는 21세기의 신세계가 펼쳐지고 있습니다.미국의 역할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한국도 국제사회에서의 역할과 책임을 확대해나갈 것입니다.우리의 발전경험을 살려 개도국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범세계적 문제의 해결을 위한 국제적 노력에도 적극 동참할 계획입니다. 한국 국민은 한·미양국이 「21세기 아·태시대를 향한 협력」아래 역사의 수레바퀴를 함께 전진시켜나가려는 희망에 차 있습니다.통일한국을 이루어 미국국민과 함께 「평화와 번영의 동반자」로서 세계와 인류에 더욱 크게 기여하자는 의지로 충만해 있습니다. 이것이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전하고자 하는 한국 국민의 메시지입니다.그것은 이 신대륙에 위대한 나라를 세운 미국의 정신에도 합치할 것입니다. 우리,어깨를 나란히 하여 앞으로 나아갑시다.그리하여 인류에게 무한한 희망과 가능성을 안겨줄 새로운 세기,새로운 세계를 함께 열어 나갑시다.모든 것은 유한하나 평화와 번영을 향한 인류의 열망은 영원할 것입니다.
  • 독 프랑크푸르트 현대 미술관(세계의 명작/걸작건축 감상:20)

    ◎디자인된 “3차원적 공간”/전시관 내부는 절묘한 「여백의 미」 연출/건물·미술품이 완벽한 하나의 작품으로/거장들의 개인전시 공간은 각각 다른 형태로 프랑크푸르트 현대 미술관 20세기초 새로운 건축 형태를 추구하는 대전환의 바람은 독일을 중심으로 세차게 일어났다.2차 대전 후 어려운 경제적 여건과 시간적 제약 조건 속에서조차도 독일의 폐허되었던 도시들은 근대 건축의 철학을 깊이 담고 있는 건축물들로 복구되어,지금은 살아있는 건축 박물관역할을 하고 있다.이러한 근대 건축운동의 신기원을 열어간 독일인들은 현재까지도 세계 유명건축가들을 초대하는 건축전과 공모전을 수시로 열어 간과할 수 없는 현대 유명 건축작품들을 지속적으로 건축하고 있어 발길이 끊이지 않는 건축기행의 명소가 되고 있다. 독일인들의 건축에 대한 높은 예술적 인식은 19 70년대 말부터 시작된 각 도시들의 미술관 신축 및 증축계획으로 또다시 세계 건축인들의 관심을 모았다.이중에서도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 건축된 10여개에 달하는 소규모 미술관과 박물관은 제각기 독특한 소장품과 함께 창의적인 건축형태를 지니고 있어 전시관 박람도시를 연상케한다. ○“하나의 예술품” 승화 여기서 소개하는 프랑크푸르트 현대 미술관은 입면 형태와 공간적 조형성을 통하여 미술관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으로 승화되어 강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어 미술관 건축의 새로운 시도를 제창하고 있는 건축물이다. 이 미술관은 프랑크푸르트 시내 중심지역의 보행자전용 상가 지역인 자일,이 도시의 상징인 파올 교회,로마 지배 당시부터 시청사로 사용해온 뢰머 등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이렇게 시민들의 접근이 쉬운 곳에 위치하고 있는 점은 현대미술이 일상 생활과 매우 친근하게 자리하고 있음을 한 눈에 알게 한다.원래는 2차 세계 대전 중 파괴된 곳에 식당이 있던 자리로 시에서 처음에 음악 박물관을 계획하였던 곳이었다.그 당시 현대미술관은 지금의 건축 박물관 자리에 함께 할 계획이었으나 현대 미술품을 전시하기에 부적합한 대지 조건이었기 때문에 현재의 위치에 독립된 미술관이 건립되기까지는 프랑크푸르트시의 12년에 걸친 노력이 있었다고 한다. 이렇듯 오랜 기간의 계획 끝에 건축된 현대 미술관은 종래의 틀에 박힌 설계개념에서 탈피하여 건축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미술관으로 탄생되었다.외관은 브라우 바흐 거리,베르리너 거리,돔 거리가 만드는 뾰족한 삼각형의 대지 형태를 그대로 쌓아 올리고있어 「케이크조각」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삼거리에 면한 세방향의 외관은 서로 다르게 처리되고 장식이 강조된 포스트모던 양식을 추구하고 있다.도심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건축물이기에 형태창출의 제약을 받고 있는 외적조건은 금속조각품과 건축을 접목시켜 건축의 조형성을 통해 「현대」미술관임을 외부에 강하게 전달하고 있다.이러한 건축 형태적 제스처는 현대의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든 사회를 현대 미술이 복합적인 언어로 구성하여 표출해 내고 있듯이 단순하지 않은 「현대성」을 지닌 미술품들을 수용하고 있는 건축물임을 자인하며 표현의 절제를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듯하다. ○공간 조형물도 작품 그런가하면 전시관으로서는 실험적인 내부공간을 창출하고 있기 때문에 건축인들의 각별한 주목을 받고 있다.일반적으로 미술관은 「전시공간을 제공하는 장소」로서 전시된 미술품이 가장 돋보일 수 있도록 배경 공간으로 설계된다.그러나 프랑크푸르트 미술관은 이러한 종전의 미술관 건축의 기본개념에 도전하고 있다.건축물 자체가 거닐 수 있는 조형 예술로 작품화되어 공간 속에 미술품들을 전시함과 동시에 디자인된 3차원적 공간도 함께 전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비대칭적이면서도 관람자의 흐름을 강하게 유도하고 있는 내부공간은 천장·벽·바닥·계단 등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걸어다닐 수 있는 조각품으로 승화되어 공간 조형물로 관람되지 않을 수 없도록 시선을 유도하고 있다.특히 중앙홀은 상층이 개방되어 단지 동선의 연결을 위한 기능 뿐만 아니라 관람자들의 움직임과 함께 다각도에서 조망될 수 있게 하여 공간조형물로 작품화되고 있다.원래 전시공간으로 계획되어 있지 않았던 중앙홀에 전시가 계획되었을 때 건축가와 전시책임자가 지면을 통해 논쟁을 벌일 정도로 순수 건축공간 자체에 대해 설계자는 강한 자부심을 표명하고 있다. 동시에 전시관 내부는 전시품들의 적절한 연결과 적절한 공백이 절묘한 공간 기교로 연출되고 있어 그 속에서는 공간 조형의 빈틈없는 감상과 함께 숨가쁜 관람의 무드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요셉 보이스·앤디 와홀·백남준 등등 세계의 현대미술 거장들의 개인 전시공간이 제각기 다른 형태로 제공되고 있는 점은 이 미술관의 건축적 가치를 극에 달하게 한다.현대의 조각품은 전통조각품과는 달리 지지하고 있는 받침대를 넘어서고 있고,회화는 고립시키고 있는 액자를 불필요하게 하고,환경 설치물은 그것을 담고 있는 공간과 특별한 관계를 요구한다.이러한 현대미술의 특성들을 살려 개개인의 작품특성에 따라 전시실의 크기나 높이가 다르고 전시 방법이나 조명이 작품마다 다르게 처리되고 있다.이것은 마치 건축 공간과 더불어 작품이 완성되고 있는 듯한 느낌까지도 들게할 정도다.따라서 이곳에서는 건축이 전시품의 배경이 되기도 할 뿐만 아니라,전시품들과 대화를 가지고 상호 더욱돋보이게 강화해 주는 예술적 건축 공간만이 존재한다. ○건축가 홀라인 설계 제공된 건축공간이 없이는 전시된 미술품도,예술가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시품과 건축이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는 프랑크푸르트 미술관이 창작되기까지는 건축가의 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가 배경이 되고 있다.1985년 국제 현상공모로 당선된 이 건축작품은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건축가 한스 홀라인에 의해 설계되었다.그는 순수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았으며,이곳에 상설 전시될 작가들과 설계이전부터 개인적인 접촉을 통해 오랜 기간을 두고 작품전시에 대한 논의를 거친 후에야 건축 공간에 대한 아이디어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렇듯 설계진행 과정에서부터 전시될 작품과 작가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 건축과 미술품이 완벽한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된 프랑크푸르트 현대 미술관을 대하면 창조된 건축공간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한편으로는 문화적 용도이든,주거용도이든,용도가 무엇이든지 간에 수용위주로 졸속이계획되고 있는 우리의 경박스런 건축문화에 견주어 보면 이 미술관이 지니는 건축공간 자체의 숭고한 질적 가치에 대해 곱씹어 보지 않을 수 없다.
  • 「새로쓰는 한국현대사」 속의 두거인 재조명

    ◎이승만·김구의 우정과 갈등/황해도출신 한살산… 상해 임정활동 공통점/해방후 우남은 「군정」·백범은 「협상」을 추구 조선왕조 끝시기로부터 오늘날 남북대립시기에 이르기까지 많은 정치지도자들이 배출됐다.그 가운데 우남 이승만과 백범 김구는 앞자리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우남은 18 75년에,백범은 18 76년에 태어났다.모두 황해도 출신으로 사실상 동년배지만 백범은 우남을 평생동안 형님으로 모셨다.어려서 한학을 공부한 우남은 성장하면서 서양문물에 눈을 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하버드대학,프린스턴대학 등에서 국제정치와 국제법을 전공했다.그리고 일찍 기독교 정신문화를 받아 들였다.이와는 달리 토착적 성장의 길을 걸은 백범은 서당 글공부가 교육의 전부였다.또 토착종교 동학에 가담해 왜병과 싸우는 등 민족적 정열을 불살랐다. 두사람은 1919년 3·1운동 직후 시차를 두고 상해 임시정부를 통해 연결고리를 맺는다.우남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으로,백범은 마지막 주석으로 선출되어 독립운동 일선에 나섰던 것이다.그러나우남과 백범은 임정과의 연결에서 질적 차이를 드러냈다.백범은 임정을 떠나지 않은 채 그 간판을 해방의 시점까지 지킨데 비해 우남은 미국을 무대로 외교 선전 측면의 독립운동을 벌였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그들은 해방된 조국에 환국해서는 독립정부 수립운동에 앞장 섰다.1945년 12월 모스크바에서 「한반도 문제에 관한 미·소·영·중 4개국 외무장관 합의 의정서」가 발표되었을 때는 손을 맞잡고 싸웠다.그러나 두 지도자 사이에는 차츰 노선의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다.우남은 강력한 반소·반공론에 입각해 남한의 단선·단정노선을 제기하고 나섰다.이 노선에 반대한 백범은 이데올로기보다 민족을 앞세웠다. 1947년에 공식화된 미국과 소련 사이의 냉전은 미국으로 하여금 우남이 주장해온 단선·단정론을 지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그리하여 미국의 주도아래 국제연합은 19 48년 5월10일 남한에서 총선거를 실시해 대한민국을 건국시키는 일을 서두르게 됐다.남한의 단선·단정은 분단체제의 고착은 물론 동족상잔의 비극을 불러 일으키게될 것이라고 비판한 백범은 남북협상을 추진했다.백범은 김규식과 함께 1948년 평양 남북정치지도자 연석회의에 참석한다.그러나 북한은 곧 세워질 공산정권의 합법성을 쌓는데 두 애국지도자의 충정을 이용했을 뿐이다. 5·10총선거에 따라 대한민국 제헌국회가 성립됐다. 국회의장에 선출된 우남은 헌법에 의해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초대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5·10총선을 거부했던 백범은 자신이 이끌던 한국독립당을 중심으로 통일운동을 벌였다. 백범의 통일운동은 고귀했으나 외로웠다.결국 1949년 6월26일 육군대위 안두희의 흉탄에 쓰러지고 말았다.통일된 독립국가 수립을 꿈꾸던 그의 숭고한 사상은 오늘날 까지도 우리의 지표가 되고 있다. 우남은 건국 초기에 험난한 길을 걸었다.특히 1950년6월25일 북한의 전면 남침을 맞아 미국과 국제연합 지원아래 싸워서 국가를 수호했다.대한민국의 건국과 수호는 확실히 그의 큰 업적이라 할 수 있다.그러나 사사오입개헌과 1960년 3·15부정선거는 그에게 오명을 안겨 주었다.그는 전 국민을 분노시킨 4·19혁명에 의해 하야할 수 밖에 없었다. 돌이켜 종합해 생각해 보건대 백범 두분 모두 우리 배달겨레에게 소중하게 기억된다. 우남은 건국과 국가수호라는 업적을 남겼으며 백범은 분단상황에서 민족의 통일을 잊지 않게 하는 정신적 자산을 남겼다.두분은 훌륭한 저술가이기도 했다. 우남의 「독립정신」과 「일본내막기」는 그의 뛰어난 국제정치 안목을 보여 주고 백범의 「백범일지」는 그가 민족의 자유와 자존을 얼마나 존중했는지 말해 준다.
  • 구조대·자원봉사자에 격려를(사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이후 대책본부 합동구조반의 사력을 다한 구조활동과 민간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 봉사활동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사고직후부터 참사현장에서 인명구조활동과 콘크리트 잔해 제거작업을 벌이고 있는 구조반은 사고발생 13일째를 맞으며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작업을 강행하고 있는 중이다. 파리·모기떼가 들끓고 악취가 진동하는 현장은 남아있는 건물 일부도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다.게다가 9일부터 쏟아진 장마 폭우는 붕괴 구조물 및 잔여건물 제거작업을 한층 어렵게 하고 있다.이런 악조건 속에서 합동구조반은 밤낮없이 작업을 계속해온 것이다.한 사람의 생존자라도 더 구출하겠다는 그들의 열의에 찬 집념덕분에 환경미화원 24명에 이어 매몰 11일째인 최명석군도 극적으로 구출할 수 있었으리라고 본다.합동구조반의 헌신적 노력의 개가다.우리 국민들은 그들 구조원의 헌신적 노고에도 깊이 감사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번 참사의 수습과정에서 보여준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참여는 폐허더미에 피어난 꽃송이처럼 아름답고 고귀한 것이었다.비보에 접한 국민들이 실의에 빠지고 실종자 가족들이 망연자실해 있을 때 자원봉사자들은 부상자·사망자의 명단확인에서 안내와 구조작업에 이르기까지 사랑의 봉사활동에 나섰다.특히 초기 구조활동에서 자원봉사자들의 활약상은 국민을 감동시킬 정도로 헌신적이었고 큰 몫을 차지했다. 삼풍 경영진처럼 많은 사람들이 돈이면 전부라고 믿고 있는 각박한 이 시대에 이들이 아무런 보답없이 보여준 숭고한 인간애와 헌신적 이웃사랑은 참으로 얼마나 값진 것인가.이기주의에 찌든 우리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안겨주는 청량제구실을 하기에 충분했다.현장의 자원봉사자들은 헌신적 봉사를 통해 국민들에게 생명의 존엄성과 인간사랑의 정화를 가르쳐 주었다.그 지고지순한 정신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구조대와 자원봉사자들에게 치하와 격려를 보낸다.
  • 국민 열광시킨 인간의지의 승리(사설)

    그것은 한마디로 기적이요 인간승리의 대 드라마였다.9일 아침 삼풍백화점의 무너져내린 콘크리트 더미속에서 극적으로 구출된 최명석씨의 생환모습은 비오는 휴일 아침의 온 국민을 감동시키고 환호케 했다.절망과 좌절속에도 희망은 있음을 보여준 모처럼만의 희소식이요,청량제가 아닐 수 없다. 매몰된지 11일째,정확히 2백30시간동안 무너져내린 콘크리트 잔해속 좁고 캄캄한 공간속에 갇혀 삶을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지의 위대한 승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허기와 죽음의 공포속에서도 빗물을 마셔가며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 그 처절한 사투야말로 생명의 존엄성을 선포한 장엄한 쾌거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번 구출과정에서 우리는 10일동안 죽음과 직면해 있던 스물한살의 앳된 대학생이 그토록 침착하고 담대하게 행동한데 대해 깊은 감명을 받았다.응급실에서 또렷또렷한 말씨로 매몰상황을 설명하는 최씨를 통해 우리는 젊은이의 강인한 체력과 진정한 용기를 보는 듯했다.최씨의 기적적인 생환은 엄청난 참사로 실의에 빠져있던 온 국민들에게용기와 희망을 안겨주기까지 한 것이다. 최씨 부모의 눈물겨운 구조활동도 우리를 감동시킨다.자식의 실종이라는 엄청난 슬픔앞에서도 그들은 의연한 자세로 사고이후 줄곧 자원봉사자로서 구조활동에 나서왔다.이 또한 절박한 상황에서도 남을 돕는다는 고귀한 인간정신의 발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참사 현장에서 피어나고 있는 숭고한 인간애의 참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최씨의 극적인 구조로 사고대책본부는 건물잔해 제거작업을 중단하고 생존자구출작업 위주로 방향을 전환했다고 한다.거의 절망적이었던 생존자가 나타났으므로 이제 다른 생존자의 가능성도 높아졌기 때문이다.시신발굴에서 구조작업으로 바꾼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온국민의 염원을 담은 구조작업이 한없는 인내심을 가지고 차근차근 정성스럽게 계속되기를 바란다.그리고 더 많은 생존자가 구출되기를 우리는 다시한번 간절히 기대해본다.
  • 극단 유 창단공연 「문제적 인간 연산」

    ◎연산의 「모성상실 갈등」에 초점/힘 넘치는 연기·독특한 무대장치 돋보여/관념적 대사·지나친 희화화로 의미 반감 극단 유(대표 유인촌)가 창단작품으로 동숭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중인 「문제적 인간 연산」(이윤택 작·연출)은 조선조의 폭군 연산군의 삶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한 정통 역사극이란 점에서 눈길을 끈다. 즉위 3년까지만 해도 선정을 베풀었지만 1504년 생모 폐비 윤씨가 성종의 후궁 정씨·엄씨의 모함으로 내쫓겨 사사되었다는 사실을 알고서부터 포악무도한 광기의 인물로 변했다는 연산.「문제적 인간 연산」은 바로 이 지점을 출발로 잡는다. 막이 오르면 제주가 무덤속 주인공을 부르는 초혼의식이 거행된다.이어 대밭에서 들려오는 폐비 윤씨의 구음이 주문처럼 깔리고,어머니의 환상에 시달리는 연산(유인촌)은 악몽중에 침상에서 굴러 떨어진다.『또 꿈을 꾸셨소?』 연산을 보듬고 자장가를 불러주는 장녹수(이혜영). 도입부가 암시하고 있듯 이 작품은 연산­녹수의 사랑타령에 치우쳤던 기존 궁중드라마에서와는 달리 모성상실 컴플렉스에 시달리는 자연인 연산의 내면갈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폭군으로서 보다는 「혁명아」로 다뤄 있는 측면도 강하다. 이승과 저승을 수시로 넘나드는 무대형식이나 자유자재로 펼쳐지는 우리 전통 춤과 소리,격렬한 움직임의 신체연기 등에서는 이윤택 연출 특유의 강렬한 힘과 「우리 몸짓,우리 가락」에 대한 애착이 읽혀진다.고대 희랍극의 코러스가 극을 이끌어가듯 세사람의 내시들(정규수 김학철 정동숙)로 하여금 이야기를 풀어가도록 한 대목도 신선하다. 「문제적 인간 연산」은 정통연극으로서는 파격적인 2시간 40분의 대작이다.오페라공연처럼 중간 휴식시간도 있다.그러나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의 관념적인 대사가 주종을 이루는 늘어지기 쉬운 역사극임을 감안할때 적잖은 연극적 가지치기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연산이 보여주는 고뇌의 정점에서조차 심심찮게 튀어나오는 극중 내시들의 지나친 희화적 언동은 연산에게서 어떤 비극적 숭고미를 기대했던 관객들을 실망시킨다.남용의 문제를 낳고 있는 「적」이라는 관형격 접미사를제목에 사용한 것도 우리말의 품위와 효용성을 해친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준다.이 작품은 30일까지 월∼목 하오8시 금∼일 하오 4시·8시 공연된다.
  • 감각적 대사… 화려한 영상/X세대 취향 트렌디드라마 퇴조

    ◎신세대 인기스타 얼굴·패션 의존에 한계/갈등구조 통한 인간탐구극 서서히 부상 이른바 「X세대」 취향에 의존,감각적인 영상기법 등으로 한동안 방송 드라마계를 주도했던 트렌디드라마가 최근 급격히 퇴조하고 있다. 지난해 폭발적 인기를 얻었던 MBC의 「질투」(연출 이승렬)이후 「파일럿」「느낌」「마지막 승부」등으로 이어지면서 인기스타의 「얼굴」과 감각적 대사,「패션」등에 치우쳐 급조된 「트렌디 거품현상」이 걷히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KBS·MBC·SBS등 3개 방송사가 방영하고 있거나 기획하고 있는 드라마는 대부분 갈등구조를 통한 인간탐구라는 드라마 본연의 모습으로 복귀하고 있다.또 이 드라마들의 시청자군이 20∼50대층의 다양한 분포를 나타내고 있는 점도 10대후반 위주이던 트렌디드라마가 사라지고 있음을 반영한다. KBS에선 지난달 평균시청률 5위이상을 기록하며 꾸준히 상승행진하고 있는 일일연속극 「바람은 불어도」(1TV·연출 이영희)가 대표적인 드라마.신세대의 톡톡튀는 연기자를 포진한 것도,감각적인 대사로 일관하는 것도 아니다.잔잔한 흐름으로 부권회복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채 농익은 연기자들의 개성과 연기력,사람사는 데서 나오는 누구나 겪을 법한 갈등구조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모으고 있다.탄광출신 젊은이들의 사랑과 야망을 그린 주말극 「젊은이의 양지」(2TV·연출 전산)와 여고동창생·모녀간 우정,갈등,사랑을 담고있는 아침드라마 「길」또한 마찬가지다. SBS는 지난달부터 계동할머니라는 한 집안의 가장과 그 자녀들을 둘러싼 가족사를 그린 아침드라마 「그대목소리」와 60년대 경상도 시골을 배경으로 한 「옥이이모」로 주부층과 40대 성인남자층등 다양한 시청자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SBS가 92년 「유심초」이후 3년만에 일일연속극을 부활,무너져버린 현대가정에서의 「아버지의 자리」를 재조명하고 부모의 숭고한 사랑을 그린 「사랑의 찬가」(연출 주일청)를 준비하는 것도 일련의 전통드라마 복귀분위기에 힘입었기 때문이다. MBC는 수목드라마 「숙희」와 함께 베스트극장과 특집극등 기획드라마에서 이러한 전통드라마로의 변화를 추구하고있다. 이같은 추세에 대해 KBS 최상식 주간은 『트렌디 드라마 선풍은 영상세대가 주 시청자군으로 급부상하면서 생긴 현상』이라면서 최근 드라마의 복귀현상은 방송 수용자,생산자 모두 그간의 흐름에 대해 매너리즘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우리나라보다 2∼3년 앞서 트렌디드라마 붐을 일으켰던 일본에서는 아직도 이 유행이 지속되고 있는 것에 비해 국내드라마계의 흐름이 비교적 빨리 전환된 것은 그나마 다행라는 것이 방송관계자들의 시각이다.
  • “강군만이 이땅에 평화 보장”/김 대통령 군부대 방문 스케치

    ◎“6·25 전몰장병 숭고한 희생이 번영 밑거름”/미 「오그래디 구출작전」 예로 들며 해병 격려/비상벨 직접 눌러 공군 비상출동태세 점검 김영삼 대통령은 6·25발발 45주년을 앞두고 15일 육·해·공군 각급 부대를 순시,훈련과 경계 임무에 전념하고 있는 장병들을 격려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새벽 중부전선 육군 ○○부대에 도착,연병장에서 장병들과 20여분 동안 구보로 아침운동을 한 뒤 사병식당에서 조찬을 함께 하면서 투철한 군인정신으로 국토방위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 김대통령은 『6·25는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지켜낸 전쟁이며 수많은 전몰장병과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이처럼 자유와 번영을 누릴 수 있게 됐다』고 강조한 뒤 『우리가 힘이 있을 때만이 북한 및 주변국가가 우리를 넘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여러분들의 사기넘친 행동은 내 자신 학도의용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하고 『장병들의 구릿빛 얼굴을 보면 거제 바다에서 뛰놀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보는 것같아 정다움을 느낀다』고 회고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부대 하사관 관사를 둘러보고 자녀교육 등 전방지역 군인가족들의 생활에 각별한 관심을 표시한 뒤 『장병들의 복지향상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김대통령은 또 전차부대 훈련장을 방문,훈련상황을 지켜본 뒤 『정예강군만이 이땅에 진정한 평화를 보장할 수 있다』고 강도높은 훈련,고도의 전술연마를 당부했으며 훈련후 환호하는 장병들과 일일이 악수. ○…김대통령은 이어 헬기편으로 공군○○부대에 도착,직접 비상벨을 눌러 비상출동태세를 점검하고 기동시범을 참관한 뒤 『완벽한 영공방위태세를 확립하라』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공군부대를 출발,경기 남부지역으로 이전한 해병대사령부를 처음으로 방문,현황을 보고받고 장병들과 오찬. 김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최근 미 해병특공대가 보스니아에서 피격된 미공군 F­16 전투기 조종사 스콧 오그라디대위 구출작전을 벌인 것을 예로 들면서 국경을 초월,「귀신잡는 해병」의 전통계승을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오찬에 배석한 해병 영웅 고 이인호 소령(월남전에서 전사)의 아들 현역 해병 이제욱 대위에게 각별한 관심을 표시하기도.
  • “6·25승리 정당평가 받아야”/참전용사 값진희생 누구도 훼손못해

    ◎김 대통령,국가유공자 초청·다과 김영삼 대통령은 2일 『6·25 한국전쟁은 침략자들로부터 자유와 민주주의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지켜낸 값진 전쟁,승리한 전쟁으로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이날 하오 윤재철 상이군경회장을 비롯한 국가유공자단체 간부 3백여명을 청와대로 초청,다과를 함께 하는 자리에서 『다음달 미국을 방문해 클린턴 대통령과 함께 한국전 참전 기념 조형물을 제막할 때 한국전쟁의 의미를 다시한번 미국과 전 세계에 알리겠다』고 밝혔다. 김 대통령은 『한때 국내외에서 6·25전쟁의 실상을 왜곡하고 참전용사들을 욕되게 하는 일이 있었다』고 지적하고 『그러나 진실이 있는 한 여러분의 명예를 누구도 함부로 훼손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자유와 민주주의는 전쟁을 잊지 않은 국민만이 누릴수 있는 특권이며 평화는 그것을 지키려는 강한 의지와 힘이 있어야만 누릴수 있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라고 전제,『국가안보야말로 모든 것에 앞서는 최우선의 가치요 과제임을 국민 모두가 더욱 확고히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또 『광복 50주년,6·25전쟁 45주년이 되는 올해 우리나라는 GDP(국내총생산) 세계 11위,수출 1천억달러,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의 선진경제권에 들어서게 되고 6·25전쟁때 유엔군 파견을 결의했던 바로 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당당히 이사국으로 진출하게 될 것』이라면서 『전몰 호국용사를 비롯한 국가유공자들의 숭고한 희생은 이처럼 보람찬 열매를 맺고 있다』고 말했다.
  • 문신 그리고 마산(외언내언)

    『나는 아마 백제 석공의 후손이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다』던 조형예술의 거장 문신씨가 갔다.예술작업의 고통과 가난한 예술가의 타향살이의 고달픔 때문인지 늘 수척하고 쇠약해 보이던 그의 모습을 이제는 잊어야 하려나 보다. 아프리카 흑단으로 빚은 한마리 작은 생물체 같은 「의식하지 않은채」 빚은 그의 조각을 보고 사람들은 『개미가 연상된다』고 했다.그래서 그의 조각 「개미」는 탄생했다.그러나 그것은 개미는 아니었다.콩나물이 두쪽의 머리를 들고 똑같이 자라지만 햇빛의 방향이라든가 영양의 흡수에 따라 똑같지는 않듯이 「똑같은 것」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추상에 대한 개념이다.그런 그의 예술을 두고 프랑스 평론가 자크 도판은 『추상이란 말의 가장 절대적인 의미에서 추상예술』이라고 말했다. 작업이 너무 힘들어 오른 팔만 길어지고 오른쪽 귀가 「당해서」 잘 안들리는 통에 말씨도 어눌했던 그가 스스로를 「백제 석공의 후손」인가 보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가난한 만학의 미술학도로 생계를 위해 프랑스의고성수리를 할때 그 돌을 주무르는 일에서 깨달은 자신의 조형적 재능과 흥미 때문이었다. 고향 마산에 대한 애착이 유난해서 그곳에 미술관을 마련했고 그것이 억울한 일로 훼손되는 설움도 당했었다.그래도 미술관이 잘 보존되기를 바라는 마음만은,「영원의 길」을 떠나는 그를 잘 놓아주지 않았던 듯하다.「마산시민과 민족전체의 문화적 자산」인 미술관을 『남은 사람들이 모두 힘을 합해 국제미술관으로 가꾸어 줄 것』을 간곡히 당부했다고 한다. 온갖 고난의 길로 살다간 그의 숭고한 예술인생은 이제 소중한 우리의 자산으로 남았다.그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미술관과 작품들을 그가 한만큼 사랑하며 가꾸는 일은 유언이 아니라도 남은 사람의 몫이다.특히 그로해서 더욱 향기가 높아진 고향 마산의 더 큰 몫이다.
  • 부처님오신날,「참나」를 찾자(사설)

    오늘은 음력으로 4월초파일이자 2천5백39번째 맞는 부처님오신날.부처님께서 사바고해속에서 헤매는 무변의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뜻깊은 날이다.이날 전국 2만여 사암에서는 일제히 봉축법요식을 갖고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펼친다.그러나 이날 하루 1천3백만 불자들은 연등을 바쳐 기복이나 하고 불자가 아닌 사람들은 그저 「편안히 쉬는날」로 지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1천6백여년전 이 땅에 뿌리를 내린 불교는 우리겨레의 문화와 전통사상을 형성하는데 뼈대구실을 해 왔다.그런 의미에서라도 우리 모두는 부처님오신날의 참뜻을 경건하게 되새기고 자신을 조용히 성찰해 보아야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수없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참나」를 찾는 일이다.부처님은 자신을 유아독존이라고 했다.그러나 여기서의 「나」는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나」가 아니라 세상의 온갖 허상에 마음을 뺏기지 않는 「참나」,깨달음의 바탕인 본래적 「나」를 가리키고 있으며 그것이 가장 존귀함을 설파한 것이다.고도산업사회에 살고있는 우리들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채 「참나」를 상실하고 있다.헛된 욕망의 그림자를 쫓거나 미망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한국불교는 지금부터라도 「참나」를 찾는 일과 자비의 등불을 밝히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하지만 오늘날 불교는 본질적인 면에서 현실과 유리되어 있다.불교도 사회의 한 구성요소인 이상 사회를 건전하게 지키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계도해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이타행과 자비의 숭고함을 되새기고 일깨워야 한다. 또 종파를 초월해서 화합해야 한다는 원효의 화쟁정신을 실천해야 한다.불교의 생활화·대중화는 신앙의 본질과 일치되며 사회를 바르게 이끌수 있는 이정표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이제 한국불교는 기복의 차원에서 벗어나 현대인의 정신구제를 위해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할 시점에 서 있다.
  • 우직한 경관의 숭고한 “직업정신”/사고현장서 숨진 두 경찰의 사연

    ◎아내만류 뿌리치고 구조나서다 참변/10부제로 버스출근길 정류장서 횡액 『여보,위험해요.가지 말아요』 사고현장 이웃에서 1차 폭발음을 듣고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현장으로 달려가다 2차 폭발과 함께 쓰러진 박창용(33·대구 수성경찰서 소속)경장. 「하루쯤 어때」하는 마음을 떨치고 10부제를 지키며 버스를 기다리다 변을 당한 김종철(52)경사. 대구시민들은 이번 가스폭발 참사로 우직한 모범경찰관 두명을 잃었다. 28일 상오 7시50분쯤,박 경장은 맞벌이를 하고 있는 부인 김종순씨(32·달서구 월배5동사무소 직원)와 딸 미나(4)·현나양(1)을 태우고 사고지점 바로 옆을 지나고 있었다.순간 앞에서 「꽝」하는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일었고 박 경장은 본능처럼 차밖으로 뛰어나가 소리가 난 쪽으로 달려갔다. 아내 김씨는 아이들을 껴안고 소리치며 만류했지만 박 경장은 어느새 사고현장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불과 몇초사이였다.아내 김씨는 두번째 굉음과 함께 남편의 몸이 공중으로 치솟는,평생 잊지못할 장면을 목격하는 아픔을 견뎌야만 했다. 구조반이 도착해서 박 경장의 시신을 수습하는 동안 아내 김씨는 이미 차안에서 혼절했다.깨어난 뒤 남편을 찾아 4시간이 넘게 헤매다닌 끝에 영남대병원 영안실에서 남편의 주검을 찾은 김씨는 『꿈이지예,당신 아니지예』를 연발하며 또한번 쓰러지고 말았다. 박 경장은 경찰투신 4년만에 9차례의 표창을 받은 모범 경찰관이었다. 김 경사도 그의 우직함만 아니었다면 화를 면할 수 있었다.28일은 그의 승용차가 10부제에 걸리는 날이었다.달서구 상인동에 사는 그는 평소 10부제에 걸리면 같은 동네에 사는 동료 경찰관의 차를 이용했지만 마침 이날은 동료마저 지난밤 당직근무를 하는 바람에 출근하지 않았다. 김 경사는 주저없이 121번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바로 그 밑에 98명의 목숨을 앗아갈 LP가스가 차오르고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르고서­. 자가용을 탔더라면 사고현장을 지나지 않는 순환도로를 달리고 있었을 시간,그는 날벼락같은 폭발음 속에서 지하로 추락했다. 서울대 의대 본과 3학년에 다니는 아들 주형군(25)과 경북대와 계명대생인 딸 소희(23)·민지양(21) 등 3남매의 창창한 앞날을 지켜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상인동으로 이사온지 꼭 1주일 만의 횡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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