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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독립운동 기념탑 새달 1일 제막

    3·1독립운동기념탑건립위원회(위원장 李壽成)는 9일 오전 서울 중구 장충동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제1회의장에서 회의를 열어 현황보고를 듣고 현안을 논의했다.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인 李위원장은 인사말에서 “지금처럼 나라가 총체적으로 어려운 시기에는 민족정신을 하나로 모으는 힘의 결집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3·1독립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는 기념탑의 건립으로 민족의지를 결집시키자”고 강조했다. 회의에는 李위원장과 부위원장인 車一錫대한매일사장,집행위원장인 吳榮祐한국마사회장,全哲煥한국은행총재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吳 山조계종총무원장,尹慶彬광복회장,辛格浩롯데그룹회장 등 3명은 고문으로 추대됐다. 李景載기업은행장,金勝猷하나은행장,元喆喜농협중앙회장,朴鍾植수협중앙회장,金在烘한국담배인삼공사사장,朴定求금호그룹회장,李康煥생명보험협회회장,밀운 봉선사주지,趙容直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이사장,全啓烋국민연금관리공단이사장,玄明官삼성물산 부회장,李錫龍손해보험협회회장,裵昶模증권협회회장,金순경 새한텅스텐사장,尹成泰의료보험연합회회장 등 15명은 집행위원으로 추대됐다. 장충동 국립극장 옆에 세워진 기념탑과 동상을 조각한 홍익대 미대 金永元교수는 “3단의 원형계단은 우주를 상징하며 가운데의 세 기둥은 3·1운동을의미한다”면서 “탑신 위의 3괘는 천·지·인 사상을 나타내며 그 위에 있는 동서남북을 상징하는 4괘의 조형물과 함께 민족웅비를 상징하고 있다”고설명했다. 기념탑 제막식은 3월1일에 열린다.
  • 외언내언-병원서비스

    미국 존스홉킨스병원은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가 7년 연속 미국 최고의 병원으로 뽑은 곳이다.이 병원이 ‘최고’인 것은 최고의 의료기술뿐만 아니라 환자를 위해 최상의 조건을 갖추려 애쓰는 병원관계자의 마인드와 환자에 대한 의사들의 무조건적인 헌신 때문이다. 문턱이 높고 불친절한 우리의 병원현실은 어떤가. 먼저 진료예약부터 생각해보자.‘3시간 대기∼3분 진료’가 고질적인 사회의 병폐로 떠오르면서 병원친절은 전보다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환자는의사의 비는 시간에 맞춰 진료시간을 배당받고 있다.그러나 10여명이나 같은 시간에 예약을 받기 때문에 9명이 먼저 와 있을 경우 1시간가량 기다리는것이 예사다.진료를 받기 위해 급하게 병원에 갔을때도 신용카드 결제는 일절 사절이다.반드시 현금을 내야하고 일요일에는 퇴원을 허락하지 않는 예가 비일비재다.담당직원이 출근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다.고객의 편의는 뒷전이고 병원위주가 당연하다는 식이다. 서울 YMCA 시민중계실에 따르면 서울소재 종합병원 69개를 대상으로 병원비 실태조사 결과 전체의 67%인 46개 병원이 신용카드를 전혀 취급하지 않는다고 했다.카드는 우리 사회에 급속히 보편화되어 신용의 상징으로 통한지 오래다.더구나 오는 4월부터는 ‘신용카드 공동가맹점제’가 실시되어 본격적인 ‘원-카드(One card)’시대가 열릴 전망이다.카드결제를 거부하는 것은결국 고객의 신용을 의심하고 무시하는 처사다.복잡한 저간의 사정은 일일이 따져볼수 없지만 개인의 신용과 함께 현금으로 사용되는 카드거부는 설득력이 없어보인다.병원측은 현행 보험수가가 비현실적이어서 적자보전을 위해서는 편법징수가 불가피하다고 하지만 ‘편법징수’를 인정하는 자체가 카드결제에 흑막이 있음을 암시하는 일일 것이다. 병원운영이나 관리는 병원자체가 해결할 일이지 환자가 그 사정에 휘둘려불이익을 당할 수는 없다.병원은 이익단체가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병고를 해소하는 숭고한 기능을 지닌 곳이다. 환자를 위한 최상의 환경과 서비스를 조성하고 실천하는 것이 먼저다.국민건강을 책임진다는 투철한 사명감으로‘환자에게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히포크라스의 정신을 살려주기 바란다.
  • 제2건국위 한마음대회…金大中대통령 치사 요지

    우리는 오늘,나라의 근본을 다시 세운다는 숭고한 결의와 사명감을 가슴에담고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지난 정권 말기에 시작된 외환위기로 인한 경제적 파탄은 이 나라를 6·25이후 최대의 국난으로 몰아넣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결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무너져 내린 경제를 반석위에 다시 올려놓기 위해 우리는 폐허위에 벽돌을 한장한장 새로 쌓아올리는 심정으로 개혁을통한 구국의 길에 나섰던 것입니다.바로 오늘 우리가 하고 있는 ‘제2의 건국’운동의 시작이었습니다. ‘제2의 건국’운동의 첫번째 목표는 대한민국 건국이래 50년 동안의 적폐를 청산하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본철학 아래 국정을 총체적으로 개혁하는 것입니다.두번째 목표는 인류 역사상 최대의 격변기인 21세기에 적응하기 위해 지식정보·문화관광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경제발전을 이룩하기 위한 것입니다. 총체적 개혁의 시작은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으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나라 전체를 병들게 한 정경유착과 관치금융,부정부패를 비롯한 비민주적인관행과 사회부조리,그리고 이를 당연시해왔던 의식을 바꾸지 않고서는 단 한걸음도 전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남북관계에 대한 개혁도 마찬가지입니다.소모적인 대결로 일관해 온 남북관계를 바로 세우지 않고는 한반도에서의 평화와 남북간의 협력을 실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난 1년동안 외환보유고 500억달러,무역수지 흑자 400억달러,그리고 외자유치 실적 89억달러라는 사상최대,사상최고의 성과를 일구어 냈습니다.우리 모두는 또한 고질화된 고비용 저효율의 경제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 각고의 고통을 나누어 왔습니다.금융·기업·노동·공공부문 등 4대개혁을 추진해왔고 이제 그 가닥을 잡았습니다. 작년이 하드웨어를 중심으로 한 개혁이었다면 올해는 개혁의 소프트웨어를발전시켜야 합니다.이제부터가 중요한 고비입니다.잘못하면 사태는 얼마든지 다시 역전될 수 있습니다.올해는 한편으로 4대개혁의 내실을 다져서 우리경제를 완전히 되살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천년을 예비하기 위한 튼튼한 지식기반 확충에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이런 국가적 과제를 앞두고 ‘제2의 건국’운동은 우선 의식개혁에 힘을 기울여야합니다.‘참여하자’ ‘바르게 살자’ 그리고 ‘다시 뛰자’라는 기치 아래 국민 모두가 국정개혁의 주체이자 경제재건의 주역이 되어야 합니다. 의식개혁은 공무원의 적극적인 참여없이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공무원은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개혁의 주체인 것입니다. 우리는 ‘제2의 건국’운동을 추진함에 있어 무엇보다 의식개혁운동을 통해 국민적 화합을 이룩해야 합니다.민족의 운명이 좌우되는 국가적 과제를 눈앞에 두고 지역갈등을 부추기는 행위는 나라를 다시 파멸의 위기로 몰아넣는 것입니다.우리는 지역감정을 부추기거나 이를 이기적인 목적으로 악용하는자들을 국민의 공적으로 규탄해야 합니다.저는 수십년동안 계속된 지역감정의 큰 희생자였습니다.저의 비원은 지역감정을 이땅에서 완전히 뿌리 뽑는것입니다.인사와 지역발전을 공정히 하고 모든 지역주민들을 똑같이 존경하고 사랑함으로써 이 목적을 달성할 것입니다.지역간에,계층간에,그리고 노사간에 ‘제2의 건국’을 위한 화합과협력의 시대를 이룩해 주시기를 기대해마지 않습니다. ‘제2의 건국’운동이 중점추진해야 할 두번째는 전국민이 21세기형 한국인이라 할 수 있는 신지식인화하는 시대를 앞당기는 것입니다.이제는 학벌이나 지연이나 인맥이 아니라 누가 고부가가치와 고효율을 창출하는 지적 생산을 해내느냐가 중요합니다.모든 사람이 신지식인이 되어야 합니다. ‘제2의 건국’운동이 성과있게 추진되기 위한 세번째 방향은 민과 관이 다같이 참여하는 민관일체의 체제를 갖추는 것입니다. 저는 대통령으로서 정부는 지금이나 앞으로도 ‘제2의 건국’운동을 정치에 이용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는 것을 국민앞에 다시 한번 확실히 선언하는 바입니다.국민 모두가 정치적 입장을 떠나서 의식개혁운동에 적극 참여하며 나라를 바로세우는 ‘제2의 건국’운동에 기꺼이 동참하도록 우리 모두 손잡고 나갑시다.
  • 굄돌-교사의 체벌

    얼마전 고등학교 선생님이 불성실한 학습태도를 보인 학생의 뺨을 몇차례때리자 학생이 선생님을 경찰에 신고한 일이 있었다.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세상에 알려지면서 체벌에 저항한 학생 사건이 사회문제화됐다.사회여론 재판은 교권에 대한 부당한 저항이라는 ‘판결’을 내렸다.교육당국은 교권수호를 위하여 교사들의 적당한 체벌행위를 합법화시키겠다고 발표했다. 교사들의 학생체벌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다.초·중·고등학교에서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일이다.교사와 학무모간에 학생체벌로 인한 갈등이 여러번 사회문제화돼 왔다.그 때마다 선생님의 교권을 옹호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왔다. 우리는 지금 자유와 평화를 이념으로 하는 민주사회에서 개개인의 인권을가장 소중한 가치로 믿고 살고 있다.그런데 학생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아직도 학교 교실에서 잘못한 학생의 뺨을 때리거나 주먹으로 구타하고 심지어는 야구방망이와 같은 몽둥이로 때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여학생의 경우 머리채를 잡기도 한다고 한다.폭력적 체벌과 인격 모욕,폭언등으로 마음의 상처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이러한 폭력행위들은 설사 숭고한 교육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정당화될 수 없다.이것은 교육이전의 문제라고생각한다. 필자도 체벌에 의한 교육적 효과를 전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는다.그러나 모든 세상이 변하고 발전한 만큼 교육방법도 발전적으로 변해야 한다. 무조건적 복종심을 강요하는 권위적인 교육방법에서 스승의 사랑과 학생의존경심을 바탕으로 하는 대화와 이해를 통한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물리적 체벌에 의존하는 전근대적 교육방법에서 과학적이고 보다 합리적인 민주교육방법으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 외언내언-IOC 뇌물파문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만큼 명예로운 자리도 없다.세계 어느 나라든비자없이 들어갈 수 있고 투숙한 호텔에는 국기가 게양되며 방문국 원수와의 면담도 허용된다.어디서든 국가원수에 버금가는 국빈대우를 받는다.4년마다 열리는 인류의 스포츠 제전 올림픽 개최지를 결정하는 막강한 권한도 전적으로 IOC 위원이 행사한다.현재 IOC에 가입한 나라는 모두 198개국.이중 84개국의 114명이 IOC 위원이다. 이처럼 명예롭고 화려한 IOC 위원들이 뇌물과 섹스 스캔들에 휩싸여 곤욕을 치르고 있다.2002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미국의 솔트레이크 시티를 선정하면서 아프리카와 남미 출신의 일부 위원들에게 거액의 뇌물이 건네진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미 연방수사국(FBI)이 공식 수사를 벌이고 있으며 IOC와 미국올림픽위원회(USOC)도 진상조사에 나섰다.현재까지 일부 위원들에게 5,000∼7만달러의 뇌물이 제공됐고 사마란치 IOC위원장도 엽총 2자루를 선물로 받았다고 시인했다.솔트레이크 시티 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과 부위원장이 사임하고 섹스 접대설까지 나오는등 파문은 자꾸만 확대되고 있다.19년동안 IOC의 제왕으로 군림해온 사마란치위원장의 자리마저 흔들리는 판이다. 올림픽 개최지 선정을 싸고 거액의 뇌물과 선물이 오간다는 소문은 오래전부터 계속 나왔었다.올림픽이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것은 물론 경제적으로도 큰 이익을 남길 수 있게 되면서부터 유치경쟁이 치열해진 결과이다.현금이나 값비싼 보석을 선물하고 호화관광 초청과 각종 이권제공 등으로 IOC 위원들의 표를 산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처럼 돼 있었다.특히 일부 후진국 위원들에게는 스포츠지원비 등의 명목으로 거액이 제공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흑자 올림픽도 중요하지만 아마추어리즘이 존중되어야 할 올림픽이 지나치게 상업주의에 빠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페어플레이 정신과 명예를 중시해야 할 국제 스포츠계에 뇌물과 비리가 판을 친다는 것은 인류의 수치이며스포츠 발전을 위해서도 불행이라 하겠다. IOC는 뇌물혐의가 확인되는 위원들은 IOC로부터 과감히 축출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이번 사건이 국제 스포츠계를 깨끗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스포츠를 통해 인류의 화합과 국제평화에 기여한다는 숭고한 올림픽정신을 지켜나가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일이다.
  • ‘99학년도 고려대 논술고사 문제

    다음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곡 「갈릴레이의 생애」에서 뽑은 글이다.이글을 읽고 논제에 답하시오.논제:예시문에 나타난 사제와 갈릴레이의 견해를 밝히고,이러한 견해가 현대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논술하시오.작성요령 1)논제와 성명은 쓰지 말 것. 2)분량은 띄어쓰기를 포함하여 1,600자 안팎(321100자)이 되게 할 것. (갈릴레이와 사제는 교황청의 지원 아래 천문학을 함께 연구하는 사람들이다.목성의 위성과 금성의 위상에 관한 새로운 지식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당시의 통념을 깨뜨리는 것이었다)사제:갈릴레이 선생님,사흘밤 동안 저는 한잠도 잘 수가 없었습니다.제가 읽어온 교황청의 법령과 제 눈으로 본 목성의 위성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 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오늘 아침 일찍 미사를 드리고 선생님을 방문하기로 결심했지요.갈릴레이:목성에는 위성이 없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인가요?사제:아닙니다.저는 법령의 지혜를 알아내는데 성공했습니다.법령은 억제를모르는 지나친 연구 안에 도사린,인류에 대한위험을 드러내 보여주었지요.그래서 저는 천문학을 그만두기로 결심했습니다.그러나 한 천문학자로 하여금 특정한 이론을 확장하는 일에서 등을 돌리게 만든 동기만은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갈릴레이:그런 동기야 나도 익히 알고 있다고 말씀드려야겠소.사제:선생님의 노여움은 이해합니다.교회의 저 엄청난 권력수단을 염두에 두고 계시는 것이겠죠.갈릴레이:맘 놓고 고문기구라고 말하시오.사제:그렇지만 저는 다른 이유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죄송하지만 제 개인 얘기를 해야겠습니다.저는 캄파냐에 있는 농부의 아들로 자라났지요.그 곳농부들은 소박한 사람들입니다.그들은 올리브 나무에 관해서는 모르는 게 없지만 그 밖에는 아는 게 별로 없지요.금성의 위성을 관측하면서 저는 누이동생들이랑 난롯가에 앉아 치즈 요리를 먹는 저의 부모님을 눈앞에 떠올렸습니다.수백년 동안 연기로 새까맣게 그을린 그들 머리 위의 대들보며 밭일로 쭈글쭈글해진 그들의 손,그 손에 쥐어진 숟가락까지 똑똑히 그릴 수 있습니다.그들이 비록 복된 삶을 누리진 못하지만,그들의 불행 속에도 일정한 질서가감추어져 있습니다.땀방울을 떨어뜨리며 바구니를 끌고 돌길을 올라가는 힘,어린애를 낳는 힘,그리고 먹는 기운까지,그들은 어디서 그런 힘을 길러내는지 아십니까?땅을 볼때 해마다 새로이 푸르러지는 나무들과 작은 교회를 볼때 성경 말씀에 귀기울일 때,그들은 이 세계가 영원하고 필연적임을 느끼면서 힘을 얻습니다.배려하면서 걱정스러운 듯 보살피는 하나님의 시선이 머리 위에 머물러 있다는 확신이 그들에게 있는 겁니다.또한 그들은 세계극장이그들을 중심으로 세워져 있어서 크든작든 맡을 수 있는 역할이 보장되어 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만일 제가 그들이 서 있는 곳은 허공에서 다른 별 주위를 끊임없이 돌고 있는 한낱 작은 돌덩위 위라고,수많은 별들 중의 하나,실로 아무 것도 아닌 별 위라고 말한다면,저의 가족들은 뭐라고 할까요? ‘그러니까 우리를 굽어보는 눈길은 없구나’하고 그들은 말하겠지요.‘우리는 무식하고 늙고 착취당한,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인가! 주위를 도는 별을 갖지도 못하고 전혀 홀로 서 있지 못한 작은 별 위에서 비참하고 세속적인 일 외에는 아무도 우리에게 어떤 역할을 부과하지 않았단 말인가! 우리의 곤궁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이렇게 말하겠지요? 제가 교황청의 법령에서 일종의 어머니 같은 고귀한 긍휼을,위대한 자비심을 읽어낸연유를 이제 아시겠습니까?갈릴레이:자비심이라! 보아하니 당신은,‘그들이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포도주는 떨어졌고 그들의 입술은 말랐다’ 그런데도 그들더러는 ‘신부의법의에 입맞춤이나 해라’ 이런 생각이시군요.그렇다면 도대체 왜 그들에겐아무 것도 없습니까? 왜 이 땅의 질서는 텅 빈 금고(金庫)의 질서 뿐이며,이 땅의 필연성은 죽도록 일하는 것 뿐이오? 무성한 포도원 사이에서,밀밭을바로 옆에 두고서! 자비심 깊은 예수님의 대리인이 스페인과 독일에서 벌이고 있는 전쟁비용은 당신의 캄파냐 농부들이 치르고 있습니다.왜 그 대리인이 지구를 우주의 중심점에다 갖다놓을까요? 베드로의 교권이 지구의 중심에 있도록 하기 위해서죠.문제는 베드로의 교권이오.역시 당신 말도 옳아요.문제는 별들이 아니라 캄파냐의 농부들이니까.그런데 당신은 시대가 모금해 놓은 그럴 듯한 현상을 들고 내게 온 것이오.진주조개가 어떻게 진주를 만드는지 아시오? 목숨을 위협하는 병을 앓으면서 참을 수 없는 이물질,이를테면모래알 같은 것을 점액낭 속에 품고 있으면서 진주를 만드는 것이라오.진주가 형성되는 동안 진주조개는 거의 죽어간단 말입니다.빌어먹을 놈의 진주같으니라구.나는 차라리 건강한 굴조개를 택하겠어요.이것 보시오.미덕이란곤궁과 묶여있는 게 아니오.당신의 농부들이 유복하고 행복하다면,유복과 행복의 미덕을 펼칠 수 있을 것이오.피폐한 자들의 이러한 미덕은 바로 황폐한 밭에서 나오는 것이지요.나는 그런 미덕을 사양하겠소.보시오,내가 만들어낸 새로운 양수기가 농부들의 우스꽝스럽고 초인적인 고통보다는 더 많은 기적을 행할 수있단 말이오.내가 당신의 농부들을 속여야 하겠소?사제:(매우 흥분하며) 우리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더 없이 숭고한 동기가 있습니다.그것은 불행한 자들의 영혼의 평안이지요.갈릴레이:벨라르민 추기경의 마부가 오늘 아침 선물로 여기에 갖다놓은 첼리니의 시계를 좀 보시겠소? 여보시오,예를 들어 내가 당신의 선량한 부모님께 영혼의 평안을 드리는 값으로 교황청에서는 내게 포도주를 제공하고 있어요.그것은 당신의 부모님이,잘 아시다시피 하나님과 같은 형상대로 만들어진그 얼굴에 땀을 흘리며 짜낸 바로 그 포도주란 말이오.혹시나 내가 침묵할각오가 되어 있다면,그것은 확실히 천박한 동기 때문일거요.나 자신의 안락한 생활,박해를 받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 말이오.사제:갈릴레이 선생님,저는 성직자입니다.갈릴레이:과학자이기도 하지요.
  • 정직한 역사 되찾기-민주열사 열전(20회)

    민주열사열전 시리즈가 20회로 막을 내린다.어두웠던 시대에 조국 민주화를 위해 치열하고 고단한 싸움을 벌이다 생을 마감한 이들의 진실은 무엇이었을 까.그들은 굴절된 현대사에서 희망의 빛이었고 그들의 희생적 투쟁이 밀알이 되어 오늘의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그들의 진실 밝히기가 현재와 미래를 더 욱 의미있게 하기 위한 과거의 재창조 행위라는 인식에서 시리즈를 이어갔다 .그동안 독재정권에 의해 역사의 변방으로 밀려났던 이들을 제자리로 돌려야 한다는 작은 소망의 표현이기도 했다.시리즈를 마무리하며 그 의미와 성과 를 짚어보는 좌담을 마련한다.가톨릭대 安秉旭교수와 李相勳변호사,전국민족 민주열사·희생자추모단체연대회의 金學喆사무국장,대한매일 金三雄주필이 자리를 같이했다. 金三雄주필:8월7일 장준하선생편을 첫 회로 시작된 시리즈가 5개월만에 마 무리하게 됐습니다.제도언론 매체로서는 처음으로 반독재투쟁에 몸을 불사른 인물들의 행적과 사상,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역사적 의미,유족과 동지들의 근황 등을 총체적으로 담는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습니다. 安秉旭교수:언론뿐만이 아니라 유관단체를 포함해서도 처음이라고 봅니다. 민주화투쟁을 하다 희생된 분들의 증거로 그분들의 업적은 중요합니다.이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뒤늦은 감은 있지만 대한매일이 어려운 여건 에서 이러한 작업을 한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金學喆국장:이번 시리즈는 하나의 사변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진실이 뒤집어진 상태에서 ‘이것이 진실이다’라고 과감히 밝힌 것이 언론 계의 ‘사변적 사건’이란 의미입니다. 李相勳변호사:한 건의 의문사를 해결한 것만큼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시리즈는 과거 군사독재에 의해 저질러진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법 률 제정 등에 가장 강력한 압력수단의 역할을 했습니다. 安교수:더 이상 잘못된 50년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 중요합 니다.과거역사를 청산하고 정리해 새로운 역사를 위한 디딤돌의 의미가 깊다 고 봅니다. 金주필:‘항일운동을 하다 산화한 이들에게 붙였던 ‘열사’라는호칭이 부 적절하다,과거지향적인 것을 꺼내어 국민분열을 부추기는 행위다’라는 지적 이 있었습니다.하지만 민주화를 위해 몸을 불사른 사람들은 열사로 불리는 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고 봅니다.또 역사적으로도 두번 다시 잘못됨을 되 풀이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에 연재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金국장:보훈처 관계자의 열사호칭에 문제가 있다는 기고를 보고 제가 반론 을 제기한 적이 있습니다.항일정신이나 반독재의 민주화 정신은 구국의 의미 에서 맥을 같이합니다.과거를 덮어두고 어떻게 제대로된 미래가 나오겠습니 까.밝은 미래와 진정한 화해를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올바른 청산이 꼭 필요 합니다. 安교수:민주화 정신은 항일정신만큼 높이를 같이한다고 봅니다.아직 민주화 에 대한 인식이 덜 보편화되어 있어 항일정신과 민주화정신을 구분하려는 것 같습니다.더이상 희생자가 나오지 않는 사회가 된다면 이러한 논란이 나오 지 않을 것입니다.과거에 대한 진실이 허심탄회하게 밝혀졌을 때 미래지향적 인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金주필:우리 역사를 보면 가장 투철했던 시대정신이 있습니다.신라의 화랑, 조선시대의 의병·승병,한말의 의병,일제시대의 독립운동가들이 그 정신을 주도했습니다.해방 후 그 대를 잇는 것이 바로 민주화투쟁과 통일운동이라고 봅니다.그들이 있었기에 이 나라가 지탱될 수 있었습니다.하지만 아직 그들 에 대해 의미부여가 덜 되어 있습니다.현 정부도 그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세 워졌는데 그들을 홀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李변호사:민주열사 예우와 보상 관련 법안 작성에 민족민주운동의 개념문제 가 불거졌습니다.보상과 명예회복을 전제로 한 민족민주운동 개념의 실례가 부족하고 사회적 일치점도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金주필:해방후 반민족행위자 규정처럼 민주화운동 유공·희생자들과 관련해 역사·사회학계 등의 주도로 전 국민적인 토론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또 활발한 학술토론을 거쳐야 할 것입니다. 安교수:민족민주운동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는 밀렸던 숙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입니다.개념 설정과 인물의 구체적 선정과정에서 큰 논란이뒤따를 것입 니다.하지만 우리 민주화에는 큰 희생이 있었다는 큰 틀에서 볼 때 그러한 논란은 지엽적인 문제일 뿐입니다.공개적인 논의과정에서 문제를 하나씩 충 분히 풀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金국장:열사들이 유공자 대우를 바라고 민주화투쟁을 한 것은 아닐 겁니다.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결국 그 혜택이 돌아가는 것입니다.중요한 것은 독재정 권에 맞섰던 민주화투쟁의 정당성 획득의 의미입니다.폭압적 공안기구와 정 권의 부도덕성이 낱낱이 파헤쳐져 그러한 행태가 줄어들고,장기적으로 없어 져서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데 법 제정의 의미가 있습니다. 金주필:나치 치하에서 함께 저항하던 사람들과 함께 죽지 않고 살아남은 죄 를 야스퍼스는 ‘형이상학적 죄’라고 했습니다.군사독재 치하에서 살아남은 우리들도 야스퍼스가 말한 ‘형이상학적 죄인’에 해당될 것입니다.마땅히 희생된 이들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봅니다.관련 법률안을 만 들어 그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진실을 규명해야 합니다.기념관을 세워 그들의 뜻을 기려야 하고 묘역을 조성해 민주성지로 만들어야겠지요.또 어렵게 살 고 있는 그 유족들을 국가가 책임져야 합니다.조선왕조시대에도 병자·정묘 호란 희생자들의 자손들을 7·8대까지 돌봐준 예가 있습니다. 安교수:민주열사 관련 법안은 다음 세 가지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첫째,더이상 독재하에서 저질러진 반민주적 행태가 되풀이되지 않게 하는 징 계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둘째는 그들의 행적을 조사·정리해 기념관 등을 조성해 모아놓고 학교와 국민교육에 적절히 활용하게 하는 것입니다.셋째는 그 유족들에 대한 적절한 배상과 보상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李변호사:현재 국민회의가 내놓은 최종 법률안인 ‘민주유공자에 대한 명예 회복과 예우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 법사위에 상정돼 있습니다.이 법안이 통과되면 가해자 측면에서는 진상규명,피해자 측면에선 명예회복과 예우 및 보상에 직접 당사자가 될 것입니다.하지만 시기와 적용대상이 처음 작성할 당시의 원안에서 많이 축소됐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安교수:정당별로 이해관계에 따라 이견을 보이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항력 적인 면이 있습니다.보훈대상자 선정이 아직도 계속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민 주유공자 선정문제도 장기적으로 해결해나가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봅니다.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흔적도 없이 역사속으로 사라져간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장차는 이런 분들까지 발굴해 숭고한 정신을 기릴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金주필:이승만정권 이후 최근까지를 포괄하는 법률안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이번 기회에 촉구해야하지 않을까요. 金국장:처음엔 1945년 이후로 잡아 법안 작성을 추진했습니다.하지만 집권 여당에서도 부담을 갖고 반대했습니다.보수 기득권층의 반발을 감당하기 힘 들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그래서 절충한 것이 3선 개헌을 기준으로 잡은 6 9년 8월7일 이후입니다.하지만 이 문제는 법안 개정을 통해 장기적으로 개선 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安교수:전거가 없어 법률안을 만드는 데 어려움이 컸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법률안이 다른 나라에도중요한 선례로 작용할 수 있는,자랑이 될 수도 있습니다.국회의원들도 자신이 국회의원일 때 역사적인 법률을 만들 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눈앞의 위기 탈출에만 급급하지 말고 한달이 아닌 1 0년 앞을 내다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金주필:일각에서는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로 생각하고 위기감을 갖는 사람들 이 많은 것 같습니다.하지만 진실규명 차원에서 참여기회를 주고 적절한 배 상과 보상을 통해 화해의 바탕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金국장:유가족도 진상규명을 원합니다.처벌이 아니라 진상규명을 통해 진정 한 고백과 사과를 받으면 용서한다는 입장이지요. 李변호사:예우·보상은 진상규명의 전제 위에서 가능합니다.결코 떨어질 수 없는 문젭니다.진상규명이야말로 문제 해결의 출발점입니다. 金국장:국회에 상정된 법안은 늦었지만 의미 있습니다.‘형이상학적 죄’를 짓고 있는 우리들이 열사들의 뜻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대한매일은 이 러한 것이 가능하도록 물꼬를 트는 역할을 했습니다. 安교수:민주열사들에 대한 공적인 자리매김을 대한매일이 했습니다.시리즈 에서 다룬 인물들은 우리 자랑스런 역사의 출발점이고 굴절된 50년 역사를 그나마 빛나게 한 분들입니다. 金주필:필리핀의 호세 리잘은 스페인 침략시절에 ‘나는 조국의 밝은 새벽 을 보지 못하고 죽는다.그러나 밝은 세상의 사람들은 밤사이 스러져간 사람 들을 잊지 말라’라고 했습니다.우리는 바로 밤사이 스러져간 열사들의 희생 위에 지금의 민주화를 누리고 있습니다.그들의 뜻을 기리고 희생을 생각하 는 것은 우리 전부의 의무입니다. 金在暎·任昌龍 kjykjy@daehanmaeil.com [金在暎·任昌龍 kjykjy@daehanmaeil.com] **끝** (대 한 매 일 구 독 신 청 721-5544)
  • 열두살 천사의 선물/李世基 논설위원(外言內言)

    “내가 죽거든 쓸만한 장기는 모두 기증하고 남은 신체도 해부용으로 제공하라”. 이는 국내 최초의 안과의사이자 세벌식 한글타자기의 기수였던 공병우 박사의 지난 89년 유언이다. 그 유언이 센세이셔널한 충격을 불러일으킨 것은 한사람의 사회인이 자신의 삶의 결과를 어떻게 책임지고 마무리짓는가에 대한 답안지였기 때문이다. 이번 12살짜리 김지원군의 장기기증 소식은 이와는 다르다. 이 소년은 아직 인생을 시작하지도 않은 새싹같은 존재다. 한창 뛰어놀면서 꿈과 희망에 부풀어야 할 어린 소년의 죽음이란 그 부모의 입장이 아니더라도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듯한 안타까움이 아닐수 없다. 그러나 소년은 성탄 전야에 뇌사판정을 받고 심장과 신장등 자기가 못다한 삶의 부분들을 남에게 나눠주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어진 인생을 살고난 후 기름이 모자란 등불처럼 허무하게 사라져버리기 마련이다. 삶에 대한 보람도, 인생의 목적의 성취도 확인할 수 없이 그저 먹고 살기에 급급한 나머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지도, 그래서 준비하지도 못한채 무의미하게 종말을 맞고 만다. 그래선지 꺼져가는 생명에 또 하나의 생명을 주고, 자신도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아름다운 죽음을 보면 부끄러워질때가 많다.타인에게 나의 신체의 일부를 떼어주는 일은 아직 일반화되지 않아서 장기이식은 인공장기 공급이 충분치 못한 형편에서 그 중요성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다. 더구나 아직 살아있는 사람의 몸에서 장기를 떼어내야 한다는 어려움때문에 필요한 사람은 많은데 장기기증이 부족한 현실에서 이를 악용한 사기 매매사건 등이 문제로 떠오르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서 소년의 죽음과 장기기증은 무엇보다 값지고 숭고하다. 실제로 영혼이 떠난 육체란 생텍쥐페리의 말에 의하면 ‘훌륭한 연장’에 지나지 않을수도 있다. 셰익스피어도 ‘죽을 것인가, 살것인가’라는 유명한 대사에서 “죽는 것은 잠자는 것, 그래서 잠들면 꿈을 꾸게 되며 그 꿈속에서 어떤 꿈을 꿀것인가가 문제”라고 외치고 있다. 12살 소년은 7명에게 그가 못다한 삶을 나눠주었고 그의 싱싱한 심장박동소리는 언제까지나 힘차게 울리게 될것이다. 그리고 7배로 늘어난 그의 꿈은 이 세상에서 그가 되고 싶었던 모든 꿈을 고루 성취하게 될 것이다.
  • 인권법 시안에 관하여/한충목 열사범추위 집행위원장(굄돌)

    예술적 상상력이 아무리 넘쳐흘러도 도화지가 구겨져있다면 화가는 꿈을 이룰 수 없다.사람과 시대의 관계도 이와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생의 아름다움을 갈구하는 그 마음으로 바른세상을 위해 힘을 기울였고 그에 따라 인류역사는 조금씩,그러나 쉼없이 민주주의를 향해 흐르고 또 흘렀다.우리역사도 예외는 아닌데, 분단을 악용하여 인권을 해치는 독재정권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심하게 비틀었고 이를 바로잡으려는 마음들이 모이고모여 50년만의 정권교체에 마침내 당도했다. 그러니 제대로된 인권법을 향한 국민의 요구가 높은 것은 당연하다.그런데 법무부가 주장하는 인권법 시안은 실망스럽다.인권위원회 상근위원을 세명으로 제한하자며 경제위기 상황을 그 이유로 들었다.그러나 사람의 인권은 그 자체로 숭고한 ‘목적’이며 경제는 다만 사람을 위해 사용되는 ‘수단’ 일 뿐이다.경제위기의 진정한 원인이 독재권력의 전횡이었다는 점을 그새 잊었는지 묻고 싶다.법무부 장관이 제청하는 사람을 인권의원으로 삼는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인권위원회는 법무부 소속 각급기들을 살피는 일도 그 업무로 삼으므로 그러한 주장은 인권위원회의 독립성을 해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또 있다.법무부가 말하는 시정권고권은 말 그대로 ‘권고’일뿐 강제력이 없다.인권위원회를 새로 세우는 취지가 무색해지는 것이다.최근 국제사면위원회는 법무부의 인권법 시안을 분석하고 ●충분한 독립성과 조사권을 보장받지 못하며 ●권고의 효력을 높일 수 있는 권한도 없어 ●현재 안대로 법이 정해지면 그 인권위원회는 정부의 통제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국가기관이 인권침해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그러한 위험을 방지할 목적으로 만드는 인권위원회라면 마땅히 국가기관으로부터 독립성을 지녀야 한다.
  • 장애 남편 돌보는 여인들/李春鎬(대한광장)

    중증 장애 남편의 고통과 절망을 조용히 가슴에 담으며 헌신과 봉사로 긴 세월을 벗삼아 살아온 따스한 여인네들….몸도 마음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남편을 정성스레 돌보는 이들의 감동적인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한국을 지켜온 여인들의 정신이 아닌가 생각한다. 통계에 의하면 현재 우리나라엔 450만명의 장애인이 있으며 또한 매년 교통사고와 산업재해 그리고 나라를 지키다 10만명 이상이 갑자기 장애인이 되는 고통과 슬픔을 당하고 있다고 한다.이러한 현상은 현대산업사회에서 문명의 이기로부터 오는 인간의 예기치 못한 불행일 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장애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해주고 있는 것이다. ○인내·희생으로 사랑 실천 장애인이 계속 늘어나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장애 남편을 돌보는 여인네들의 모습은 아름답다. 그 여인들에게 한없는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IMF관리체제 이후 경제적 고통으로 아내들의 가출뿐만 아니라 이미 10만명의 청소년이 가출했고 매일 255쌍이 이혼하는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장애 남편과 아이들을위해 인내와 희생으로 가정을 훌륭히 지킨 이들이야말로 인간승리요 아름다운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가장 숭고한 여인네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국가와 정부가 책임져야할 국가적 차원의 장애인 복지문제까지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다.그러나 그러한 현실은 잘못된 것이며 정부를 직무유기로 고발해야 마땅하다는 생각까지 든다.왜냐하면 이들은 한 국민으로서 자유로운 삶의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인간의 신성함을 박탈당했을 뿐만 아니라 장애인에 대한 몰지각한 일반인들의 멸시와 배타,그리고 소외정책은 그들의 마음까지 병들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더 이상 정책적 대안 없이 이들을 훌륭한 아내와 자랑스런 어머니로 미화시켜 일방적인 희생과 삶의 포기를 강요해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가난을 극복할 수 있는 일자리와 따뜻한 사랑일 것이다.정부와 사회 그리고 국민들은 이들이 다시 세상 속으로 들어와 진정한 인간으로 살 수 있도록 먼저 배려하는 정책을 실시해야 할 것이다. 장애인 복지는 지금까지 법과 제도는 있으되 실천이 없었고,말은 무성하되 열매없는 정책으로 그들을 기만해왔다고 본다.실효성 있는 정책의 실현을 촉구하기 위해 중증 장애인 남편과 인고의 세월을 운명으로 생각하며 살아온 순박한 여인네들의 간절한 소망을 전하고자 한다. ○실효성 있는 복지정책 첫째,떳떳한 사회구성원으로 살 수 있도록 일자리를 주세요.둘째,아무도 장애인에게 전세도 월세도 주지 않기 때문에 주택지원을 확대해 주세요.셋째,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편의시설을 확충해 주세요.넷째,소득이 적어 의료비 부담이 크므로 의료비 지원대상과 범위를 확대해 주세요.다섯째,학비지원을 보다 확대하여 자녀교육문제를 해결해 주세요.그 누구보다도 장애인 자신들의 문제를 잘 아는 이들의 요구에 정책입안자들은 진실로 귀기울여 주기 바란다. 지금 우리는 수채화처럼 깨끗하고 꿋꿋하게 살아온 이 여인들에게 새로운 삶의 향기를 느낄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관심과 사랑을 나누어줘야 할 것이다.
  • ‘한국 현대사 스포츠의 역할’ 특강 요지/金雲龍 IOC 집행위원

    ◎스포츠는 단결의 구심체/88서울올림픽 한국 저력 세계에 과시/지속적 국제대회 통해 세계화 이룩/방콕 아시안게임 힘과 용기 주는 대회로 金雲龍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집행위원 겸 대한체육회 회장은 25일 오후 춘천 한림대에서 ‘한국 현대사에 있어서 스포츠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했다.金회장의 특강 요지를 정리한다. 경제발전과 더불어 의식주가 해결되면서 스포츠,레크리에이션,문화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고 비중이 높아졌다.스포츠는 인류의 문화발전과 삶의 질 개선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특히 올림픽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매스미디어 등 각 분야에 걸쳐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사회운동이다. 근대 올림픽을 창설한 쿠베르탕은 올림픽의 목적은 문화 교육 스포츠가 어울어진 전인교육을 지향하는데 있다면서 올림픽이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는 더 잘사는 사회,더 평화롭고 우호스런 사회 건설에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1896년 시작된 근대 올림픽이 100년 만에 온 인류가 참가하는 종합 축제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올림픽이 추구하는 숭고한 이상과 이념이 바탕이 됐기 때문이다.‘보다 빨리,보다 높이,보다 힘차게’라는 올림픽 운동의 기본 정신은 스포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정치 사회 등 전분야에 걸쳐 더 나은 삶에 대한 인류의 분발을 촉구하는 윤리적,정신적 개념인 것이다. 물론 올림픽도 100년 역사 속에 수난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36년 베를린대회 때는 정치적 색채가 농후했고 68년 멕시코대회는 학생소요로 얼룩졌다.뮌헨올림픽 때는 검은 9월단의 테러로,몬트리올올림픽 때는 인종갈등이,그리고 80년 모스크바올림픽과 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에서는 동서 이데올로기로 인해 올림픽의 위기가 초래됐었다.그러나 88올림픽에서 인류는 다시 하나가 되었고 올림픽을 평화와 화합의 장으로 승화시켰다. 88서울올림픽은 우리 민족을 단결시키는 구심체가 됐을뿐 아니라 한국의 저력을 세계에 과시하고 우리나라 스포츠의 국제경쟁력을 크게 높이는 계기를 마련했다.이 대회를 기점으로 우리나라는 최근 동·하계 올림픽 7연속 10위권 진입을 이룩했고 IOC 200여 회원국 가운데 10위권 이내의 위상을 확립할 수 있게 됐다.그러나 88서울올림픽이 우리나라 스포츠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이후 우리는 97무주­전주 동계유니버시아드,부산 동아시아대회,99강원동계아시안게임,2002부산 아시안게임 등 굵직굵직한 국제종합대회를 국내로 이끌었고 OCA 총회,GAISF 총회,IOC 집행위원회,그리고 내년 IOC 총회를 한국에 유치함으로써 세계 올림픽 운동의 중심을 향해 힘차게 전진하고 있다.이러한 종합적인 국내외 올림픽 활동이 우리나라를 세계 스포츠계의 선진국으로 발돋움시키고 세계화를 이룩하는 원천이다. 앞으로 우리나라 스포츠는 학교체육 강화,선진국형 실업팀 육성,고도의 엘리트체육 육성,스포츠 마케팅을 통한 재정자립이라는 과제를 풀어나가야 할 것이며 각종 국제대회와 국제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해 후손에 남겨줄 값진 유산을 확보하고 인력 개발에도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스포츠는 어렵고 힘든 지금의 상황 속에서도 국민에게 힘과 용기를 심어주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이번 방콕아시안게임에서도 우리 스포츠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성적으로 국민의 힘을 결집시키는데 한몫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
  • 각계서 보내온 격려 메시지(대한매일에 바란다:Ⅰ)

    11일자로 서울신문에서 제호를 바꿔 대한매일로 재창간하는 본지에 각계에서 축하와 격려의 말씀을 전해 왔다.(가나다순) ◎金美蓮 이화여대 국문과 2년/소외된 사람들의 아픔 함께 대한매일로 재창간을 하면서 제호 뿐 아니라 신문내용도 더욱 참신해지기를 바란다. 소시민의 일상과 소외된 사람들의 어려움이나 아픔을 함께 해주는 신문이면 좋겠다. 요즘 신문들이 독자의 관심 사항을 고려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기사의 가치를 정하는 경향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읽고 함께 대화를 만한 소재를 많이 싣기를 기대한다. 독자와 함께 하는 신문이 되기 위해 독자의 소리에 많은 신경을 써주기 바란다. 일부 신문은 광고가 너무 많다. 광고 게재를 절제있게 해서 독자 각 계층이 꼭 필요한 내용이 빠지지 않도록 해주면 좋겠다.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림이 없고,어느 정권이나 잘못했을 때는 비판할 수 있는 참 언론의 모습을 기대한다. 대한매일로 재창간을 하면서 제호 뿐 아니라 신문내용도 더욱 참신해지기를 바란다. 소시민의 일상과 소외된 사람들의어려움이나 아픔을 함께 해주는 신문이면 좋겠다. ◎金範鎰 행정자치부 기획관리실장/책임있는 비판과 대안 제시 그동안 대중적인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정부와 국민을 잇는 가교역할을 하며 사회적 공기(公器)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온 서울신문이 대한매일로 다시 탄생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어려운 때에 우리 민족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었던 대한매일신보처럼 당면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국력을 결집하고 지혜를 모으는 구심체 역할을 다하리라 믿는다. 앞으로도 국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특히,정부와 공무원이 일하는 모습을 올곧게 알리는 한편,책임있는 비판과 대안제시로 하는 신문이 되기를 기원한다. ◎金宇中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대우그룹 회장)/위기극복 국민단합에 앞장 구한말 수난기에 정론을 통해 국난극복의 의지를 북돋웠던 ‘대한매일’이 경제위기 극복과 21세기 선도언론의 기치를 내걸고 재탄생하게 된 것을 반갑게 생각한다. 옛 대한매일은 국채보상운동의 주도적 추진체로서 국민의 구국의지를 하나로 모은 바 있으며,일제 식민의 참상을 세계에 소상히 알리는 일에 앞장선 언론이었다. 올 초 우리 국민들은 제2의 국채보상운동으로 일컬어지는 금모으기 운동에 대대적으로 참여해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과시하고 세계인의 감동을 일으킨 바 있다. 대한매일의 재탄생이 위기극복을 위한 국민들의 이러한 열의와 단합을 이끌어내는 또 하나의 전기가 되기를 바란다. ◎朴鍾雄 의원(한나라당)/독립언론으로 거듭 나기를 권력과 자본에게서 독립된 언론으로 거듭 태어나 21세기를 선도하는 신문이 되길 바란다. 그동안 언론이 과도한 양적·상업적 경쟁이나 소유의 집중으로 인해 여론을 독점·왜곡하고 국민 불신과 우려를 자아낸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언론사 소유와 경영의 분리,무가지(無價紙)살포 등 불공정거래행위 금지,과당경쟁중단 등 과감한 언론개혁 조치는 언론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언론계가 당면한 극심한 경영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조속히 실천되어야 한다. 서울신문이 대한매일로 제호를 변경하면서 경영과 편집을 획기적으로 개선,언론개혁을선도하는 시대적 역할을 다해 주길 기대한다. ◎白京男 교수(동국대)/왜곡되지 않은 民意 전달을 수송과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혁명적 변화로 국경을 넘는 인간들의 상호작용과 상호의존이 증대되는 문명사적 대변혁 앞에서 서울신문의 거듭남을 축하한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세계화’의 거친 파고 앞에서 ‘이대로는 안된다’,‘변해야 산다’는 우리 사회의 요구에 대한 회답으로 보고 싶다. 왜곡되지 않는 민의를 모으고,올바른 여론 주도층을 고르게 형성하여 우리 사회의 막힌 곳을 뚫고,어두운 곳이 있으면 비추고,또 국민의 참다운 비판을 수용하여 사람이 대접받고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정부의 성숙하고 단단한 역할과 기능을 수행토록 해 우리 나라를 용기있고 성실한 사람들의 고향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辛格浩 롯데그룹 회장/21세기 문화 밝히는 횃불로 대한매일신보가 어려운 시절 민족의 기상을 바로 세우는 데 크게 기여했듯이 그 전통과 정신을 계승한 대한매일 또한 지금의 어려운 우리나라 현실을 극복하는 데 큰 힘을 보탤 것이라고 확신한다. 특히 좋은 언론 하나가 나라를 살린다고 했다. 대한매일이 재탄생을 선언하는 것은 이러한 역할을 기꺼이 짊어지고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나라를 살리는 신문으로,21세기 문화를 밝히는 신문으로 거듭 태어나게 된 대한매일에 기대와 성원을 보낸다. ◎申東爀 한일은행장 직무대행/정보화시대 첨병 역할해야 서울신문이 뿌리를 찾아 대한매일로 재창간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서울신문의 전신이며 구한말 민족지로서 국권수호의 기치를 드높였던 ‘대한매일신보’의 구국정신을 계승하여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건국 이후의 최대 경제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도록 국민의 지혜를 모아 여론을 선도하기를 바란다. 특히 대한매일이 정보화시대의 첨병으로서 많은 분야의 정보를 신속·정확하게 전달하여 모든 국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국가경쟁력을 드높이는 데 앞장서 줄 것을 기대한다. 나아가 독자들로부터 폭넓은 지지와 사랑을 받는 신문으로 크게 발전하기를 바란다. ◎安德均 태평양종합산업 해외영업팀 대리/경제난 풀고 평화통일 기여 IMF한파로 전국민이 고통받는 어려운 시기에 재창간을 하게 되는 대한매일은 경제난을 풀어 나가고 조국 통일에 기여하는 민족정론지가 되기를 바란다. 특히 암울했던 일제치하에서 민족을 계몽하고 항일 구국운동에 앞장섰던 민족지의 역할을 이어받아 서민들의 고통을 대변하는 신문이 됐으면 한다. 제호를 바꾸는 것은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만큼 과거 권력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구태에서 벗어나 독자적이고 신선한 목소리로 다가 올 줄 믿는다. 경제난 극복에 앞장서는 직장인 독자들에게 가장 올바른 시각에서 믿음을 주고 정보를 주는 가장 유익한 신문으로 다가왔으면 좋겠다. 대한매일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신문으로 거듭나길 기원한다. ◎柳鍾星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총장/구국항일 민족지 전통 계승 대한매일의 제2창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구한말 암울했던 시기에 구국항일의 민족지로서 출범한 대한매일신보의 전통을 계승해 21세기 민주시민사회를 이끌어 나가고 통일된 민족의 앞날을 개척해 나갈 정론지로서 확고한 위상을 정립하기 바란다. 지금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개발독재의 유산을 청산하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한 총체적 개혁을 요구받고 있다. 이러한 개혁에 성공하는냐의 여부에 따라 21세기 한국과 한반도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롭게 탄생하는 대한매일이 이러한 역사적 사명을 감당하는 언론매체로서 훌륭한 역할을 수행해주길 기대한다. 소외된 계층을 대변하고 시민단체와 연대하는 ‘개혁언론’으로 거듭나길 바라면서 다시한번 축하와 격려를 보낸다. ◎李浩哲 소설가/천편일률적 제작행태 쇄신 서울신문이 창간 때의 본래의 이름인 ‘대한매일’로 되돌아간다고 한다. 그야말로 고육지책(苦肉之策)의 결단이었을 터이다. 그러나 이름을 바꾸는 것으로만 새 지평은 열리지 않는다. 명실공히 새로운 발상법과 새로운 창조성이 뒷받침됨으로써만 새길은 열릴 것이다. 오늘 우리 신문독자들은 천편일률적인 제작행태들에 대해 지겨워 하고 있고 거의 진저리를 치고 있다. 발상법의 대담한 전환,이 길 밖에는달리 없어 보인다. 고육지책 끝에 기왕에 이름도 바뀌었으니,한번 독자들이 왕창 놀라며 당황할 만한,우리 신문의 천편일률적인 구태에서 확 벗어난 그런 물건이 나와 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趙東子 주부(서울 성동구 금호3가동)/증면보다 알찬내용이 중요 주부에게 가사,육아,여가 등 생활정보는 중요하다. 대한매일도 주부들을 위해 생활정보를 많이 실어 줬으면 한다. 다른 신문과 비교해 볼 때 과거 서울신문은 이런 면에서 부족했다. 일반적인 사고기사는 모든 신문이 비슷하다. 그러나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기사면에서는 차이가 나고 독자들은 이런 신문을 선택하게 된다. 또 선정적인 기사나 광고를 싣지 않았으면 한다. 자녀와 함께 신문을 보다 보면 낯뜨거울 때가 많다. 또 하나 지면의 증면보다는 내용을 알차게 담았으면 한다. ◎崔在昇 의원(국민회의)/정론지로 자리매김할 계기 21세기를 눈 앞에 둔 역사상 중요한 시기에 서울신문이 대한매일로 거듭 태어나는 것은 그 의의가 매우 크다. 93년전 암울했던 시기에 민족의 등불이 되고자 밀려오는 외세에 굴하지 않고 나라를 지키려 했던 梁起鐸 張志淵 선생 등 위대한 선열의 숭고한 정신과 대한매일신보의 역사적 전통을 이어받아 새시대의 정론지로 자리매김할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대한매일신보가 재창간하면서 밝힌 ‘공공이익을 위한,국리민복에 앞장서는,민족화합을 앞당기는,2000년대를 앞서가는 신문’이라는 다짐이 반드시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대한매일신보의 전통과 정신이 신문 곳곳에 살아 숨쉴 수 있도록 정론직필(正論直筆)의 사명을 다해 줄 것을 기원한다.
  • 親日의 군상:10/前 홍익대 총장 李恒寧씨(정직한 역사 되찾기)

    ◎“부일의 과오 민족앞에 눈물로 참회”/1939년 ‘고교’ 합격… 일제말 하동·창녕군수 4년 역임/군청 직원들 앞세워 죽창으로 농민 위협하며 쌀 공출/해방 후 35년간 교육계서 근신… 기회있을 때마다 사죄 “일제말 27세의 젊은 나이로 하동(河東)군수를 지내면서 저 자신의 출세와 보신(保身)에 눈이 어두워 (군민들을) 죽창(竹槍)으로 위협까지 했던 저를 너그럽고 따뜻하게 맞아주신 하동 군민들에게 진심으로 사죄(謝罪)드립니다” ‘참회’는 아름답다.진솔한 참회는 숭고하기조차 하다.왜냐하면 보통사람들로서는 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일제하에서 고관대작을 지냈거나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한,소위 ‘친일파’로 불리는 사람 중에서도 더러는 자신의 친일전력을 참회한 바 있다.민족대표 33인중 1인으로 나중에 변절한 崔麟은 반민특위 재판에서 법정을 온통 울음바다로 만들었다.“민족의 이름으로 이 최린을 광화문 네거리에서 처단해 주십시오”.그의 진실한 참회 한 마디가 사람들을 울린 것이다.파인 金東煥은 반민족행위를 뉘우치며 반민특위에 자수하였고,玄錫虎(일제때 충남 광공부장,2공화국에서 국방장관 지냄,88년 작고)는 회고록 ‘한 삶의 고백’을 통해 자신의 친일행적을 고백한 바 있다.친일행적을 한번만이 아니라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참회·사죄한 인사도 있다.홍익대 총장을 지낸 李恒寧(84·학술원 회원)씨가 그 주인공이다.그는 다소 껄끄러운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기자의 인터뷰 요청을 의외로 단번에 허락했다.가을빛이 완연한 정릉 자택으로 그를 찾아가 두어 시간 얘기를 나눴다. ­하동군민들에게 사죄한 것은 언제,어디서 하신 말씀입니까? ▲91년 7월10일 바르게살기운동 하동군협의회 초청 강연회에서 인사말로 한 것인데 여러 신문에 보도가 됐더군요. ­주최측에서 그런 얘기를 해달라고 주문을 하던가요? ▲아닙니다.제 스스로 한 얘깁니다.그 자리에 서니까 50년전의 일이 생각도 나고 군민들을 직접 뵈니까 저 자신도 모르게 그런 얘기가 저절로 나옵디다. ­처음 주최측으로부터 강연요청을 받고서 어떤 감회가 있었습니까? ▲‘하동’이라고 하니까 저로서는 감회가없을 수야 없지요.거기서 군수를 지냈으니까요.해방후에도 더러 하동을 지나친 적이 있었습니다만 ‘죄의식’때문에 (군민들을) 찾아볼 용기가 없었습니다. ○일제 앞잡이로 군민 괴롭혀 ­‘죄’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씀하십니까? ▲일제말기 하동·창녕군수로 재직하면서 일제의 앞잡이가 돼 군민들을 괴롭힌 행위를 말합니다. 李씨는 1934년 경성(京城)제국대학(서울대학교의 전신)에 입학한 후 예과 3년,본과 3년의 6년 과정을 마치고 40년 졸업했다.본과 3학년 때인 39년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한 李씨는 대학 졸업후 1년간 시보(試補)생활을 거쳐 1941년 6월 하동 군수로 첫 발령을 받았다.1년 뒤인 42년 7월 그는 창녕(昌寧)군수로 전보돼 그곳에서 3년간 근무하다가 해방을 맞았다. ­군수는 어떤 경로로 됐습니까? ▲당시 대학을 나와도 마땅한 취직자리도 없고 해서 재학중에 고시(考試)공부를 해서 (군수가)됐습니다. ­당시 고시공부는 주로 직장을 얻기 위한 방편이었습니까? ▲그런 면도 있지만 입신출세를 위해서 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시보 생활은 어디서 했습니까? ▲조선총독부 학무국에서 했습니다.국회 부의장을 지낸 尹吉重씨가 저와는 고시 동기생인데 尹씨는 총독부 농림국에서 시보생활을 했습니다. ­군수의 대우는 어땠습니까? ▲당시로선 비교적 많은 봉급을 받았습니다.일제말기에는 일본인에게만 주던 가봉(加俸)을 조선인들에게도 지급해 봉급차이도 없어졌습니다. ­하동군수 시절 식량공출(供出)문제로 고생을 하신 것 같은데… ▲제가 군수로 부임한 이듬해인 1942년부터 ‘공출제도’가 시행됐습니다.그런데 하동에선 생산량보다 할당량이 많아서 무리가 있었습니다. ○1942년부터 공출제 시행 ­공출미 할당은 어디서,누가 결정하였습니까? ▲당시 경상남도 산업부장으로 있던 金大羽씨가 군수회의를 소집한 후 각 군수에게 강제로 할당해 주었습니다. ­하동군에 할당된 공출량은 얼마나 됐습니까? ▲군 양곡담당 기수(技手)에게 물어보니 재고가 6,000석이라고 하더군요.그 내용을 金大羽씨에게 보고했더니 ‘기수 말은 못 믿겠다’며 재고량의 무려 5배인 3만석을 할당하더군요. ­최종 공출량은 얼마나 됐습니까? ▲할당량의 1할 정도인 3,000석 가량을 공출했습니다. ­다른 군의 사정은 어땠습니까? ▲대개 할당량의 절반 정도는 달성했었습니다.그 때 제가 있던 하동군이 꼴찌를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죽창’ 얘기는 왜 나온 겁니까? ▲당시 군민들이 집안 곳곳에 쌀을 감추어 두니까 군청직원들이 죽창을 들고 다니며 창고나 벽 같은 쌀을 숨겨둘만한 곳을 쿡쿡 찔러본 것을 두고 한 얘깁니다. ­죽창으로 사람을 해친 사례도 있습니까? ▲그런 적은 없습니다.그러나 ‘공출독려반’들이 죽창을 들고다니니까 군민들에게 위협은 됐을 겁니다. ­하동군수에서 1년만에 창녕군수로 자리를 옮기셨는데 승진은 아니지요? ▲예,군세(郡勢)로 보면 오히려 좌천인 셈이지요.부진한 공출성적이 문제가 됐을 것으로 봅니다. ­본인의 ‘친일’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말합니까? ▲식량공출이나 노무자 징용,학병권유,징병제 독려 등에 대한 방침이 도의 군수회의에서 결정이 되면 군수는 다시 면장회의를 소집하여 그 내용을 하달,독려했습니다.결국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한 셈이지요. ­그같은 일은 당시 군수의 기본적인 직무가 아닙니까? ▲그야 물론이지요.그러나 그같은 직무를 수행하는 군수자리를 직업으로 택했다는 자체가 ‘친일’입니다. ○고등관리 이상 관리는 친일파 ­항간에는 일제말기에 군수 노릇 몇 년 한 사람을 ‘친일파’로 보는 것은 지나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도덕적 평가 이전에 지식인의 민족의식 문제라고 봅니다.아무 생각없이 상부기관의 결정사항을 집행한 것도 그렇지만 더러는 출세목적으로 부풀려 집행한 사례도 있었습니다.당시 군수는 일선 행정기관의 실질적 책임자로 지금보다 훨씬 권한과 재량이 많았습니다.어려운 시험을 거쳐 자발적으로 그런 자리에 앉았다면 이는 재임기간이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적어도 고등관 이상의 관리는 친일파로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인 관리들과의 차별대우는 어땠습니까? ▲고급관리는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일제말기에는 임금차이도 거의 없었습니다.총독부 내에 ‘계림구락부’라는 고등문관시험 출신 고등관들의 모임이 있었는데 저도 시보 시절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해방후 그는 45년 10월까지 창녕군수로 계속 근무하다가 미 군정청으로부터 경남도청 사회과장으로 발령을 받고는 한 달만에 사표를 썼다.이유는 자신은 일제때 관리를 지낸 몸이라는 것.이후 그가 자리를 옮긴 곳은 부산 동래구 범어사 입구 청룡초등학교였다.“해방후 민족앞에 속죄해야겠다는 생각에 승려가 되려했습니다.그러나 이미 딸린 아이가 다섯이나 돼 혼자 이 문제를 결정할 수가 없었습니다.그래서 낮에는 교사로 근무하면서 밤에는 범어사 河東山 스님 밑에서 수행생활을 했습니다”.지난 81년 홍익대 총장을 그만둘때까지 그는 35년간 교육계에만 몸담았었다.그 나름의 ‘근신’이었다. 60년대초 그는 수필과 신문에 연재한 자전적 소설을 통해 자신의 친일행적을 참회했었다.또 80년 봄에는 조선일보에 ‘나를 손가락질 해다오’라는 글을 발표,지식인 사회에 파문을 던졌다.거듭된 ‘참회’를 두고 일각에서는 ‘상습적 양심선언가’라고 비아냥거렸다.그러나그의 ‘참회’는 앞뒤,체면안가리고 솔직하다.사실왜곡이나 자신을 미화한 구석도 없다. “사죄를 하고나니 마음이 이렇게 후련할 수가 없습니다”. 인터뷰 내내 그는 밝은 모습이었다.묻는 말에 뭘 대답해야 할지 망설이는 법도 없었다.그의 얼굴 가득히 ‘뉘우친 자’의 평화감과 여유가 넘쳐 흘렀다. ◎日帝下 군수는 어떤 자리였나/군행정 최고 실권 가진 실력자/고등 문관시험 합격자 임용/1년간 시보 거쳐 군수부인/면장·군청직원 인사권 가져/초임은 초등교사의 약 3배 일제하 공직자 관등(官等)은 네 종류였다.최상급은 일황이 ‘친히’ 임명하는 친임관(親任官)으로 조선내에서는 조선총독·정무총감 두 사람뿐.그 다음이 칙임관(勅任官)·주임관(奏任官)·판임관(判任官)순.주임관 이상을 고등관(高等官)으로 쳤는데 현 사무관(5급) 이상에 해당하는 직위다. 군수는 판임관에서 승진하거나 고등문관시험 행정과(현 행정고시)합격자가 임용됐다.고문(高文)출신자의 경우 1년간 시보 시절에는 판임관 6급(군청 과장급)대우를 받다가 군수로 정식 임용되면 주임관 7등급 대우를 받았다.초임 연봉은 1940년 7월1일 기준 1,650원.(당시 초등학교 교사 초봉은 월 45원) 군수는 면장 이하 군청직원에 대한 인사권을 가진 군행정의 최고책임자로 ‘영감(令監)님’으로 불렸고 부인은 ‘마님’소리를 들었다.‘각하(閣下)’라는 용어는 도지사급의 칙임관들에게 붙였다. 李恒寧씨는 “사법과 출신의 법관들은 판결문 작성 등 잡무가 많았으나 군수는 도장찍는 일 밖에 없어 편했다”고 회고했다.
  • 어떤 신문이었나(다시 태어난 ‘대한매일’:1)

    ◎日帝 총칼에 맞선 ‘자유언론 표상’/애국지사 논객 총결집/日 침략­관료 무능 질타/국채보상운동 등 이끌어/항일투쟁·국권수호 선봉 ‘不允’(불윤).1905년 11월18일 아침.러일전쟁의 포연이 가시지 않은 서울 장안 거리의 화두는 “허락지 않으심”을 의미하는 이 한 마디였다. “韓皇陛下게옵셔 韓國獨立을 重念하시와 正大한 義理로 拒絶하신즉 伊藤 대사가 再三强請하되 强경 하신 勅語로 不允하셨다더라”(한국황제폐하께서는 한국의 독립을 중요하게 생각하시어 정대한 도리로서 거절하시자,이토 대사가 재삼 강청하였으나 강경한 말씀으로 허락지 않으셨다 한다) 이날자 대한매일신보에 보도된 ‘勅語嚴正’(칙어엄정) 제목하의 잡보(보도기사) 첫 기사 중에 있는 이 말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국민들은 일제 앞에서 “No”라고 당당히 말한 황제에 박수를 보냈다.전날 이토 일본대사가 고종 황제를 알현,소위 을사조약으로 알려진 외교권 박탈을 요청한 4가지 내용을 보도하고 이에 대한 황제의 강력한 반대를 전한 것이었다. 이는 일제의 총칼이번득이는 상황하에서 상상할 수 없는 것으로 당시 신문중 대한매일신보만 유일하게 보도했다.특히 본문활자로 된 기사내용에서 유독 ‘不允’ 두 글자만 가장 큰 2호활자로 두드러지게 인쇄한 것은 고종의 반대 강도에 대한 표현이자 대한매일 입장의 대외적 천명이기도 했다. 1904년 7월18일 영국인 배설(裵說)을 발행인으로 내세워 총무 양기탁(梁起鐸)등 우국지사들이 모여 창간한 대한매일신보는 동아시아의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하던 일본의 한반도 침략 야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던 상황에서 자유언론을 통한 항일투쟁으로 조국의 국권수호를 위해 태어났다. 이후 한일합방 다음날인 1910년 8월29일 종간될 때까지 6년 1개월여간 대한매일신보는 우리민족의 국운이 백척간두에 선 역사상 가장 위급한 시기에 굳건한 자세로 항일의지를 불태웠고 국민의 든든한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했다. 대한매일신보가 이같이 민족정론지로서의 소임을 다할 수 있었던 것은 발행인이 영국인 배설로 돼있어 치외법권적이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총무 양기탁과 주필 박은식을 비롯,필진 신채호 장도빈 안창호 등의 투철한 애국심과 자주의식에 따른 것이었다.그들은 일제 침략과정의 부당성을 낱낱이 공개하고 당시 무능한 대신 및 관리들의 실정과 부패상을 질타했다. 반대로 전국 방방곡곡에서 벌어지고 있던 의인들의 애국적 활동상에 대해서는 대서특필을 아끼지 않았다.국채 1,300만원을 갚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던 국채보상운동 캠페인을 주관했고,그 활동상 소개와 함께 매일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참가자 명단을 2∼3개 면에 걸쳐 상세히 게재함으로써 전국적인 참여의 불을 지폈다. 또 을사조약과 고종 퇴위 및 군대 해산 직후에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의병활동을 적극적으로 보도,항일 투쟁의식을 고취해 나갔다.산발적인 보도가 아니고 ‘처처의병’ 등 고정란을 만들어 매일 소개했고 13도 창의군의 서울진격 때는 격문을 게재,의병지원자가 구름같이 모이게 하기도 했다. 또한 ‘한국의 실업’‘동양척식회사 설립문제’등 논설로 일제의 경제적 침투 반대와 우리민족의 자주적 산업 건설의 필요성을 일깨우기도 했다.교육의 중요성을 강조,민족교육자들의 학교설립취지서를 적극 지면에 게재,1907년 말 공사립 보통학교가 전국에 4,000개에 달하게 하는 등 교육운동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밖에도 대한매일신보가 순한글판 발행을 통한 국어 발전,연재소설 게재를 통한 국문학 발전,또 여성교육 필요성 제기로 여권 신장 등에 미친 영향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능한 정부와 역적무리들의 매국은 대한매일신보의 노력을 미완(未完)에 그치게 하고 말았다.그러나 그 불굴의 자유언론 정신과 국난극복의 의지는 우리 언론사에 금자탑으로 남아있다.그리고 이제 그 숭고한 정신과 의지의 완성을 위해 ‘대한매일’의 첫걸음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대한매일신보 연표 ▲1904년 7월18일 창간.(영문판 4면,국문판 2면) ▲1905년 8월11일 영문판(The Korea Daily News) 분리 발행. ▲ 〃 11월18일 을사조약 다음날.고종의 조약거부 기사 ‘칙어엄정’게재. ▲1907년 1월16일 을사조약이 무효임을 선언하는 고종의 칙서공개.(영문판에도 번역 게재) ▲ 〃 2월21일 국채 1,300만원 보상운동 제창. ▲ 〃 5월23일 국문판 대한매일신보 별도 발간. ▲ 〃 11월말 전국 지사수 32곳. ▲1908년 3월6일 관보 전재 폐지. ▲ 〃 4월29일 신문지법 개정.외국인 발행 신문도 발매 금지 및 압수 가능. ▲ 〃 5월27일 발행인 만함(Alfred W. Marnham)으로 변경. ▲ 〃 5월말 현재 부수 1만3,400부. ▲ 〃 7월12일 통감부, 양기탁을 국채보상의연금 횡령으로 몰아 구속케 함 ▲1909년 5월 1일 배설 사망.영문판 중단. ▲1910년 5월21일 통감부,만함에게 7,000엔(700파운드) 주고 대한매일신보사 인수. ▲ 〃 8월29일 한일합방으로 대한매일신보 종간. (국한문판 1,461호,국문판 938호)
  • 재일 학도의용군/崔弘運 논설위원(外言內言)

    30일 상오 인천시 남구에 있는 수봉공원에서는 조촐하지만 뜻깊은 행사가 있었다. 재일학도의용군 참전기념비 앞에서 金義在 보훈처장과 辛容祥 재일대한민국 민단본부장,생존한 회원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있은 ‘재일학도의용군 6·25참전 48주년 기념식’이었다. 산책로와 각종 체육시설,어린이 놀이터도 있어 평소에는 많은 시민들이 찾는 공원이지만 이날은 때마침 내린 비로 이들 참석 인사 외에는 관심을 갖는 사람조차 없었다. 그러나 그날의 뜻을 기리는 행사장 분위기는 반세기 전,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던 조국을 구하기 위해 학업을 중단한 채 현해탄을 건너온 재일 학도의용군들의 뜨거운 열기를 그대로 전하고 있었다. 이들은 병역의무가 없었으나 죽음을 각오하고 자진 참전한 교포 청년·학생들이었다. 중동전에 참전했던 이스라엘 유학생들보다 17년이나 앞선 근세 최초의 자진참전이다. 이스라엘이 그들 유학생들의 참전정신을 민족이념으로 정해 생활의 좌표로 삼고 있듯이 이들보다 훨씬 빨리 달려와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 재일 학도의용군의 정신은 훨씬 값진 것으로 재평가돼 계승되어야 마땅하다. 이들의 참전정신은 바로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조국을 구하기 위한 애국정신이요 멸사봉공(滅私奉公)정신이며 민족을 구하기 위해 생명을 바친 살신성인(殺身成仁)정신이다. ‘6·25전쟁 이후 최대 위기’로 표현되는 지금,‘제2의 건국’을 선언한 우리로서는 이들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아 나라를 일으켜 세우고 지탱할 수 있는 기둥 정신으로 삼아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들이 해외에서 전화(戰火)에 휩싸인 조국으로 달려오는 순간,유학 등 갖은 명목으로 조국을 떠났던 사람들이 있었듯이 오늘도 병역기피,뇌물수수,사치스런 생활로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무리들이 많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청소년들은 나약할대로 나약해져 전쟁이 일어나면 해외로 달아나겠다고 하고,걸핏하면 가출이요 자살이다. 이들에게 재일 학도의용군들의 호국·애족정신은 분명 귀감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한미우호협회가 주는 ‘제 3회 한미 우호상’을 수상하기 위해 내한한 레이먼드 데이비스 미국 예비역 해병대장은 6·25전쟁에 참전해 큰 공을 세운 역전의 용사다. 그는 “한국전과 2차 세계대전,월남전 등 모든 전쟁은 준비하지 않아 당했으나 철저히 준비한 걸프전에서는 큰 피해가 없었다”면서 유비무환(有備無患)을 강조했다. 대비하지 않아 처참한 동족상잔의 비극을 맞았던 우리로선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그리고 재일 학도의용군의 정신을 되새기며 위기의 오늘,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야겠다.
  • 민주열사 추모주간 토론회 주제발표/韓忠穆 열사 범추위 집행위원장

    ◎독재가 씌운 범법자 굴레 벗겨야 민족민주열사 추모주간을 맞아 韓忠穆 민족민주열사 명예회복과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범국민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은 14일 강연을 통해 열사·희생자의 호칭 구분과 명예회복의 구체적 방향을 제시했다. 60년대 이래 지금까지 4·19,5·18 열사를 제외하고 331분이 민주화투쟁을 위해 몸을 바쳤다.이 분들은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동료와 조직,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숭고한 죽음을 맞았다. 우리는 이 분들을 통칭하여 열사·희생자로 불러왔으나 이 호칭이 너무나 포괄적이어서 민족민주운동 내에서나 국민들에게 설득력을 갖지 못했다. 일제 강점기의 선조들을 살펴볼 때 열사와 의사를 구분하는 기준이 죽음의 형태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해방 이후 열사라는 호칭을 통용하게 된 계기는 4·19였다.그로부터 10년후 청계천에서 분신한 전태일 열사의 죽음은 1970년부터 지금까지 큰 흐름을 만들어 내면서 열사의 호칭이 사회 저변에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이어 朴正熙,全斗煥,盧泰愚로 이어지는 군사독재 정권과 金泳三 정권에 이르기까지 가장 치열한 항거인 분신·할복 등의 투쟁이 잇따르면서 열사라는 호칭이 일반화되었다.이와 함께 호칭상의 문제가 발생했는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중심으로 호칭 구분을 시도할 수 있다. ▲열사(烈士)=동료와 조직,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분신·투신·할복 등으로 자살하거나 투쟁 과정에 운명한 경우.또 민족민주운동 과정에서서 독재와 자본 등에 의해 살해된 것이 명백한 경우. ○죽음의 과정으로 호칭 구분 ▲지사(志士)=스스로 목숨을 끊지는 않았지만 한 평생 운동에 매진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던 분이 병이나 사고로 운명한 경우. ▲투사(鬪士)=스스로 목숨을 끊지는 않았지만 병이나 불의의 사고로 운명할 때까지 운동에 매진하다가 젊은 나이에 죽은 경우. ▲의사(疑士)=운동 과정 중에 안기부,대공분실,기무사 등 독재정권의 공권력기관이나 자본에 의해 살해된 뒤 자살이나 사고사,병사로 은폐되어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의문의 죽음을 당한 경우. 민족민주 열사·희생자들의 명예회복 방향은 다음 네가지 축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첫째,열사·희생자들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여 목숨을 바쳐가며 이루고자했던 염원들을 살아남은 우리들이 실현하는 일로서,명예회복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둘째,지난 시기에 외세와 독재정권,악덕 자본가 등과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그들이 씌워 놓은 범법자의 굴레를 벗겨 내고 국민들에게 숭앙받도록 해야 한다. ○국가차원 기념사업 펼때 셋째,독재 정권의 공안기관과 악덕 자본가들에 의해서 살해된 뒤 자살이나 사고사로 은폐된 의문의 죽음들에 대한 진상 규명이 이뤄져야 한다. 넷째,열사·희생자들의 숭고한 삶과 죽음을 길이 후손에게 전하는 국가 차원의 기념 사업을 전개해야 한다. 현재의 보훈 법령인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과 국가유공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서 볼 때도,독재정권에 항거하면서 온몸을 던져 이 땅의 민주주의와 자주통일을 위해 몸을 바친 민주열사들의 명예회복과 이에 어울리는 예우는 마땅하다.
  • 한국경제의 수호신 되소서/故 崔鍾賢 회장 영전에

    너무도 갑작스런 비보 앞에 참담한 심경을 가눌 길 없습니다. 崔鍾賢 회장님 모두가 언젠가는 가야할 길이라지만 이 무슨 벽력과 같은 떠남이십니까? 나라 경제의 중흥을 위해 하실 일이 태산같은데 그 무엇이 급해 이리도 황망히 가십니까?저희들만의 힘으로 풀어가기에는 너무도 벅찬 난제가 산적한 이때에 이처럼 홀연히 떠나가시다니 아득한 심정 형언할 수 없어 새삼 하늘이 야속해집니다. 전문경영인의 첫 세대로서 지난 개발연대 우리 경제의 도약을 이끌어오신 회장님께서는 30여 성상의 기업경영을 통해 시장경제와 경영의 세계화에 남다른 열정을 쏟아 오셨습니다.또한 회장님께서 미래를 대비하자는 높은 철학으로 인재양성에 누구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이시는 모습을 보며 우리 후배들은 한편 든든함을 느끼며 존경해 마지 않아 왔습니다. 특히 회장님께서는 6년전 전경련 회장으로 취임하신 이래 거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때로는 과중한 사회적 기대와 요구에도 묵묵히 우리경제의 진운을 개척해 나가는 용기와 혜안을 보여주셨습니다.회장님께서추진하셨던 자유시장경제의 창달과 세계화 확산작업은 전환기 우리 경제의 확고한 진로를 제시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남다른 애정으로 추진해 왔던 국가경쟁력 강화사업은 우리 경제현실을 바로 보고 모든 경제주체의 역량을 결집시킨 탁월한 처방이기도 했습니다.선진국과 후진국을 오가며 경제를 통해 민간외교의 영역을 넓혀오신 회장님의 공로는 그 누구도 닮기 힘든 위대한 업적이셨습니다. 최종현 회장님 회장님은 이제 저희들의 가슴에 큰 자취를 남기신 채 영원한 안식의 길로 떠나셨습니다.이나라 이 민족을 위해 못다 베푸신 경륜과 숭고한 이상은 이제 우리 후배 경제인들의 몫으로 남았습니다.일생을 경제발전을 위해 헌신해 오신 회장님의 거룩한 유지를 받들어 나라 경제를 다시 반석위에 올려 놓도록 후배들 모두 노력하고 또 노력해 나가겠습니다. 부디 영면하시옵소서. 1998.8.26 김우중 대우회장
  • 민주열사 열전:1­1(정직한 역사 되찾기)

    ◎재조명의 의미/이제 ‘민족대통합의 빛’으로/60년대이후 319명 희생/진상규명·바른 평가 과제 한국의 민주화 과정은 처절한 투쟁의 역사였다.질식할 듯한 독재체제의 폭압과 최루탄 연기 속에서도 민주주의를 위한 많은 사람들의 투쟁은 끊이지 않았다.그들의 희생적 투쟁이 밀알이 되어 오늘의 민주화가 이루어졌다. 그들은 굴절된 현대사에서 희망의 빛이었던 민주열사들이다. 그들은 거리에서,노동현장에서,학원에서 또는 감옥에서 민주화와 인권이 보장되는 인간다운 삶을 위해 싸웠다.때로는 분신과 투신으로,단식투쟁으로, 시위로 독재정권과 악덕 기업주들에 항거했다.그들의 위대함은 독재정권에 굴복하지 않고 물질적 풍요와 세속적 이익이 최고의 가치처럼 여겨지던 사회풍토 속에서도 개인의 이익이 아닌 사회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점이다. 민주열사들은 비겁의 사회에서 진정한 용기를,억압의 구조에서 영원한 자유를 실천한 사람들이었다. 김상진 열사는 “무릎꿇고 사느니 차라리 서서 죽겠다”며 할복했다.대학생이던 그는 “숭고한 피를흩뿌려 이땅에 영원한 민주주의의 푸른 잎사귀가 번성하도록 하겠다”는 유언을 남기고 젊은 생을 마감했다.‘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열사는 “지금은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처럼 살지만 우리도 깨우쳐서 바보로 남지말자”며 노동운동에 나섰다.그리고 거대한 구조악 앞에 번민을 거듭하다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때에 한방울 이슬이 되기 위하여”란 말을 남기고 몸에 석유를 끼얹고 불을 당겼다. 많은 목숨들이 이렇게 스러져 갔다.그러나 어디서 어떻게 숨졌는지 알 수없는 의문사와 고문사도 적지않았다.주위의 외면 속에 죽어간 ‘이름없는 민주열사’들도 많았다.그들은 비록 이름없이 죽어 갔지만 그들의 고귀한 희생은 오늘의 민주주의로 부활됐다. 전국민족민주열사·희생자 추모단체 연대회의(상임의장 李昌馥)가 집계한 60년대 이후의 민족민주열사는 319명.분신·투신·할복의 방법으로 목숨을 바치는가 하면 고문과 사건 조작으로 목숨을 잃기도 했다.또 오랜 운동과정에서 병을 얻거나 고문 후유증,불의의 사고 등으로 숨진 열사들도 있다.노동운동 와중에 92명,학생운동 과정에 60명이 숨졌고,처형이나 옥중사망,출옥후 사망자도 103명에 이른다. 5·18 광주민중항쟁에서 희생된 열사들은 제외하고 그렇다. 그러나 이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조치는 여전히 미미하고 의문사에 대한 진상규명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金三雄 친일문제연구회 회장(서울신문 주필)은 “민주열사들에 대한 법적·도덕적 예우와 진상규명이야말로 가장 먼저 서둘렀어야할 역사적 과제”라고 지적하고 있다.그는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희생당한 열사와 유족들에게 정부가 그동안 무엇으로 보답했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朴元淳 변호사(참여연대 사무처장)도 “민주열사 의문사에 대한 망각은 정의의 망각”이라며 반드시 진상규명 노력이 있어야한다고 강조했다. 독재정권에 의해 역사의 변방으로 밀려났던 그들은 이제 역사의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민족의 화합과 통합을 위해서도 그들은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전 독일 대통령은 “과거를 기억하지 않고는 진정한 화해란 없다”고 강조했다. ◎李富榮 의원 인터뷰/“전과기록 없애 명예회복부터”/피살자 진상조사위 구성… 특별검사 둬야/과거·현재·미래 묶어 민족정통성 확고히 여야 정치권의 개혁그룹과 초·재선 의원을 중심으로 민주인사 명예회복과 의문사 진상규명 특별법제정이 추진되고 있다.그런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는 李富榮 의원(한나라당)에게 특별법 추진의 의미와 전망을 들어 보았다. 李의원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수차례 투옥당한 경험이 있는 대표적 재야출신 인사다.부인 孫守珦씨는 고(故) 張俊河 선생의 비서였다. ­민주열사 명예회복의 의미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정치적으로 폭력,독재가 횡행했을 때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나라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자 했던 사람들의 값어치를 제대로 평가하는 것은 일제시대 때 독립을 되찾고자 했던 선열들을 받드는 것과 같은 연장선상에 있습니다.대한민국이 민족사의 유구한 전통을 잇고 통일된 조국의 주체가 되려면 독립정신과 민주주의 확립,그리고 경제발전이라는 세가지 시대적가치를 고양시켜야 된다고 봅니다.그런 의미에서 민주열사에 대한 재평가와 명예회복은 이 시대에 당연히 논의되어야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명예회복의 구체적 방안으로 어떤 조치가 필요합니까. ▲전과기록을 우선 없애야 합니다.또 민주화에 공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훈포상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더 중요한 것은 고문에 의했건,암살당했건 민주화운동과정에서 피살된 사람들이 있는데 그 진상을 밝히는 것입니다.특별법에 의한 진상조사위를 만들고 특별검사가 임명되어야 합니다.심지어 10여년전에 의문사한 사람의 사인규명이 되지않아 가족들이 유골을 묻지 못하고 집에 보존하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가족들의 노력으로 진상이 밝혀진 사례도 있는데 국가공권력이 외면하고 있습니다.민주주의를 앞세우는 정부라면 당연히 진상규명에 나서야 합니다. ­특별법은 언제쯤 제정되리라 예상하십니까. ▲연내에 마무리지어야 한다고 봅니다.올 정기국회에서는 특별법을 만들어야지요.이는 새 정부의 의지에 달린 것입니다.이런 일부터 여야의 벽을 깨야 합니다.실제로 여야 의원들 사이에 얘기가 되고 있습니다.여당에도,야당에도 이런 일에 소극적이거나 반대하는 분들이 있게 마련이지만 대화로써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과거보다는 미래를 지향하자는 의견도 있는데요. ▲우리 현대사는 아직도 독립운동 흐름과 친일파 흐름의 대결이 계속되고 있습니다.민족 정통성을 세우느냐,못세우느냐 그리고 우리 자식들에게 어떤 가치관을 물려줄 것이냐를 우선 고려해야 합니다.민주열사 명예회복이 지금의 세계화 추진과 맞부딪치는 것도 아닙니다.자기 정체성 확립없이 바깥으로 나갈 수 있겠습니까.과거와 현재,미래를 함께 묶어 생각해야할 것입니다. ◎기고/고난·희생은 위대한 유산/張琪杓 신문명정책硏 원장 한평생 민족독립을 위해 투쟁하다 남의 나라 땅에서 옥사하신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는 애국심의 원천이다.그래서 사필(史筆)이 강해야 민족이 강해진다”고 설파하셨다.훌륭한 역사를 가진 민족이라야 찬란한 문화를 꽃피울 수 있으며,자기 민족의 역사를 아는국민이라야 참된 번영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민족정체성 확립 시급 지금 우리는 IMF사태라는 경제위기를 맞아 경제적인 어려움을 가장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그러나 따지고 보면 정신적 빈곤 때문에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오늘의 이 시기는 경제만이 아니라 정치·사회·문화·윤리 등 사회의 전 부문에 걸친 총체적 위기이다. 왜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가? 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경제성장 위주의 서구 근대화에 몰두한 나머지 민족의 정체성(正體性)을 제대로 확립하지 못한 데 가장 큰 원인이 있을 것이다.8·15해방 후 민족반역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함으로써 민족정기를 세우지 못한 일은 두고두고 민족적 수치이자 민족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그러나 우리는 해방후 친일파를 제거하지 못한 일만을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군사독재시절 민주화와 민족통일과 민중해방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해온 살아 있는 역사를 외면하고 있는 것 또한 크게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한국의 현대사는 더 없이 아픈 역사이기도 하지만 자랑스러운 역사이기도 하다.제1차 세계대전 후 전세계 약소민족 해방투쟁의 선구자 역할을 한 3·1 운동을 비롯하여,4·19혁명,군사독재 반대투쟁,민주노동운동,부마항쟁,광주항쟁,6월 민주항쟁 등은 민족의 위대한 전통이 아닐 수 없다.이러한 민족적 전통속에는 수많은 사람의 희생과 고난이 담겨 있기에 우리는 이 전통을 더욱더 값진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특히 한국 현대사에서 잊을 수 없는 것은 분신자결과 고문사가 특별히 많았다는 사실이다.1970년대 이후 분신자결한 사람이 69명이나 되며 할복자결, 투신자결,고문사 등을 합하면 무려 226명이나 된다.전세계 어떤나라의 민족해방운동이나 민주화운동에서도 이런 예를 찾을 수 없다.수십년간 1,000여명의 ‘양심수’가 계속되어온 나라도 유례를 찾을 수 없거니와,특히 이념 문제 때문에 43년간이나 감옥생활을 한 나라도 없다.한없이 가슴아프고 수치스러운 일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민족의 위대한 유산이 아닐 수 없다.그동안의 투쟁이 얼마나 치열하고 고난에 찬 것이었는가를 알 수 있다.이 소중한 유산을 어떻게 민족도약의 밑거름이 되게 하는가는 후세 사람의 몫이다. ○왜곡 현대사 논의 물꼬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E.H.카)라는 말이 있다.역사란 과거의 단순한 서술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보다 더 의미있게 하기 위해 과거를 재창조해 내는 인간의 합목적적인 행위이다.그러기에 역사를 서술하는 사람이 어떠한 세계관과 역사관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역사서술자의 세계관과 역사관에 따라 역사는 전혀 다른 내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역사적 소명감을 가져야 바른 역사를 쓸 수 있다.특히 민족정기가 훼손될 만큼 무시되고 왜곡되어온 한국현대사를 ‘역사의 장’에 올리는 일은 그 역사적 의미가 큰 만큼 책임도 클 것이다.
  • 행자부 상훈과 李殷九씨의 ‘붓과 15년’

    ◎“정성 담긴 글씨 PC론 할수없지요” 전자 정부를 추진하는 정부 세종로 청사에 컴퓨터를 부팅하는 대신 벼루와 먹을 가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공무원이 있다.행정자치부 의정국 상훈과의 李殷九 기록담당(56·5급 상당).대통령이 수여하는 훈·포장증과 대통령 및 국무총리 표창장 등을 붓글씨로 쓰는 게 李씨의 일이다. 李씨는 83년부터 15년째 이 일을 맡고 있다.한 해에 8,000여장 안팎의 훈·포장 증서를 쓴다.건국훈장 대한민국장 등 훈장 이름과 포장이름,공적내용,수여권자인 대통령과 국무총리 이름과 수여날짜 등을 모두 기록한다.훈·포장증에 적는 글씨는 모두 한글.중국인을 제외하고는 주한 외국대사 등 외국인 이름도 한글로 표기한다.지난 5·6월에는 퇴직 공무원들이 8,000여명에 이르러 이름을 적는 데만 한달이 걸렸다. “全斗煥 盧泰愚 金泳三 전 대통령 이름을 많이 썼다”는 李씨는 지난 2월 25일 金大中 대통령 취임식 때 金대통령과 李姬鎬 여사에게 수여되는 무궁화대훈장증을 만들 때 수십번 글씨 쓰는 연습을 했었다.50년만의 정권교체를 이룬 대통령의 이름을 적는다는 심적 부담감 때문이었다고 한다. 정작 본인의 이름은 한번도 써본 적이 없는 李씨는 “글씨는 최소한 20년 정도는 써야 남 앞에 내놓을 수 있다”면서 “능률로 보면 PC가 제격이나 훈·포장의 품위 등을 감안하면 숭고한 아름다움이 결집된 글씨로 쓰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 制憲 50돌을 돌아본다:5·끝(정직한 역사 되찾기)

    ◎거듭나야할 법조/“권력이익이 우선” 탈법 방조/악법운용에 직간접 연관 고문 등 양심수주장 외면/최근에 검은돈에도 연루 ‘최후의 인권보루’ 요원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법을 순진하게 잘 지키는 사람만 손해본다” 우리사회에 그동안 유행돼온 법에 대한 불신을 나타내는 말들이다.이는 법이 결코 대다수 국민들 자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경험적 인식의 결과이다. 이런 법치문화의 위기는 법을 악용하고 조작한 독재권력에 근본 원인이 있다. 그러나 법조인 또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수많은 악법과 법 운용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사법부와 검찰은 왜곡된 과거를 반성하고 국민의 법조로 거듭나고 있는 것일까. “사법부에 대한 신뢰의 상실과 그 역할에 대한 회의적 분위기를 더 이상 방치해 둘 수 없는 상태입니다. 특히 1987년 이래 폭발적으로 분출해온 온 국민의 민주화열기 와중에서도 사법부가 자기반성의 몸짓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에 오늘날 사법부가 직면한 위기의 원천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지난 88년 6월15일 서울지역의 판사 59명이 발표한 ‘새로운 대법원 구성에 즈음한 우리의 견해’란 성명서 내용의 일부다. 이 성명사태는 전국 법원으로 확산됐고,마침내 金容喆 대법원장의 퇴임과 李一珪 대법원장 취임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근본적인 변화와 움직임은 없었다. 수많은 양심수를 양산해내고 고문 주장에 얼굴을 돌렸던 부당한 재판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사람도,사죄 한마디도 없었다. 수색영장 남발,고문주장 사건의 증거 인용 등 탈법적인 수사활동을 조장·방조하는 일이 이어졌다. 검찰은 행정부에 소속된 검사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검사들은 업무의 특성상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받도록 준사법관으로서 법관에 준하는 대우를 받고 있다. 따라서 검찰이 성역없는 법 적용을 통해 추상같은 검찰권을 세워야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이 무색할 정도로 우리 검찰은 그동안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왔다. 지난 88년 金淇春 검찰총장의 취임사는 국민들이 검찰의 변신에 대한 기대를 갖기에 충분했다. “국민에 준법을 선도하고 요구하기 위해서는 우리 검찰부터 수사상의 적법절차를 엄히 지키고…,우리 검찰권이 중립성과 독립성이 존중되어야하는 국가공권력임을 잠시라도 잊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취임사로 끝났다. 사법부와 검찰의 부끄러운 자화상은 아직도 씻겨지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올들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온 법조인들의 돈과 관련된 비리사건들은 우리 법과 법조인의 왜곡됨이 그 한계에 다다른 느낌마져 주고 있다. 법치주의는 국민들이 법을 집행하고 결정하는 법조인들을 신뢰하고 존경할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미국 연방대법관들은 수백만달러의 연봉이 보장된 변호사를 포기하고,수십만달러를 받는 봉급장이 공무원이 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그들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미국 국민들이 있고,이를 바탕으로 대통령의 결정도 무효화시킬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다. 우리 법조인들이 깊이 되새겨보아야할 점이다. ◎시국사건판결 50년명암/권력에 맞선 소신 판사 줄줄이 해임/반공법사범 석방하자 뇌물사건 엮어 보복/대법원장이 “현실을 직시하라” 훈시하기도 격동의 반세기 속에서 많은 판사들이 권력의 편에 섰다. 굴욕을 거부하고 용기있게 권력에 맞선 법조인들도 물론 있었다. 그러나 굴욕을 감수하면 살아남고,이에 맞서면 옷을 벗어야 했다. 정의의 실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법조계의 반세기도 이같이 굴절된 어두운 역사로 얼룩져 있다. 1958년 7월 서울지법 유병진(재판장)·이병용·배기호 판사는 진보당 사건으로 기소된 조봉암 진보당위원장에게 국가보안법 일부 위반사실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정적제거를 위해 사건을 조작한 이승만정권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러나 같은 달 조용순 대법원장은 사법감독관회의를 열어 “법관이라 하여 국가목적을 위한 숭고한 정신을 망각하고 주관적인 견해만을 고집한다면 국가이념에 배치됨이 이보다 심함이 없을 것”이라고 훈시했다. 사법부의 수장 스스로 정치권력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이어 서울고법 김용진(재판장)·최보현·조규대 판사는 항소심에서 조봉암에 사형을 선고했고,다음해 2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돼 7월 사형이 집행됐다.1심 재판장이었던 유병진판사는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법관 연임이 거부됐다. 판사가 권력에 맞서 소신판결을 내리면 즉각 권력의 반격이 뒤따랐다. 대법원은 71년 국가재정 형편을 이유로 군인과 군속이 손해배상청구권을 제한하는 국가배상법 제2조 1항에 대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때 판결에 참여한 대법원판사 9명은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2년후 모두 의원면직됐다. 또 비슷한 시기에 신민당사에 들어간 서울대생들과 월간 ‘다리’지 사건에 연관돼 반공법 위반으로 기소된 임중빈씨 등에 대한 무죄가 선고됐다. 이는 사법부에 대한 보복을 불러,반공법 위반 사건과 관련해 판사들이 제주도에 출장가면서 항공료 등 9만3,000원의 뇌물을 받았다며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영장 기각과 재청구,재기각 사태가 벌어졌고,급기야 전체 법관의 3분의 1인 153명이 사표를 내는 사법파동으로 이어졌다. 유신시대는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던 때이었다. 대법원은 긴급조치가 위헌이라는 주장에 대해 합헌이라고 판결,독재정권의 손을 들어줬다. 국민들의 저항권 자체도 부인하는 판결을 내렸다. 민복기 대법원장은 75년 법원장회의에서 “현실을 직시하라. 무엇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최선이고 사법부의 권위를 앙양시키는 길인가를 생각하라”고 훈시했다. 이때 판사들은 대다수의 긴급조치 위반자들에게 징역 1년 이상의 중형을 선고했다. ◎朴禹東 변호사 인터뷰/“법조인들 나약해 법치주의 위협받아”/통치권자 사면권도 남용되면 곤란/오판위험 줄이게 피고·원고 모두 연구를 “법조 50년에 대한 평가요? 법조인치고 우리 법과 법조인이 제역량을 해냈다고 평가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朴禹東 변호사(64)의 우리 법조에 대한 평가는 이렇게 인색하다. 그 자신 33년간 판사생활을 했고 지금도 재야법조인으로 일하고 있지만 그의 비판은 사정이 없다. 법치가 외면받고 위협받아온 가장 중요한 원인중 하나가 법조인들의 나약함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군사독재정권에 과감히 맞서 싸운 법조인이 많았다면 독재정권이 오래가지는 못했을 겁니다. 물론 그런 생각을 품고만 있어도 자리를 보전하기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그게 면죄부가 될 수는 없지요. 법치주의가 서려면 지금이라도 법조인들이 똑바로 정신을 차려야합니다.” 대법관,법원행정처장 등에 임명될 때 마다 ‘학구파’,‘선비형’등의 수식어가 따라붙었던 朴변호사. 그는 후배 판사들이 존경하는 선배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 몇 안되는 법조인 중의 한사람이기도 하다. 그래도 지금은 판사시절을 돌이켜보며 “왜 좀더 깊이 검토하지 못했을까. 변호사로서 의뢰인을 위해 일하는 만큼,원고와 피고 양쪽에 대한 연구를 충분히 했던 것일까”라고 반문해보곤 한다. 그리고 항상 후배들에게 “50%가 아닌 100%의 연구와 검토를 양쪽 모두에게 쏟으라고 주문한다고. 그래야만 오판의 위험을 막을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법조가 일부 판사와 변호사들의 비리로 국민들의 지탄을 받는 것에 대해 朴변호사는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99.9%의 판사는 깨끗하고,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확신한다. 변호사들의 수임 관련 비리도 대한변협의 적극적인 자체정화 노력으로 점차 자취를 감출 것으로 내다 봤다. 사법연수원을 갓 졸업한 새내기 변호사들은 수임이 어려워 비리의 유혹을 받기 쉬운 만큼 개업보다는 법인에 취업하기를 권했다. 사법개혁 차원에서 사법시험 합격자를 양산하는 것에 대해 그는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법조인 수를 늘리는 것은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교육과 사법시험 체제에서 합격자만 늘리는 것은 법조인의 질을 떨어뜨릴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그전에 외국의 로스쿨 같은 폭넓은 시각을 갖춘 법조인을 양성할 수 있는 전문교육기관을 설립해 정착시켜야 한다고 했다. 朴변호사는 법치문화 정착을 위해서는 통치권자의 사면권 남용도 지양돼야 한다고 본다. 全斗煥·盧泰愚 전 대통령이 무기징역과 17년 형을 대법원에서 확정받고,해도 넘기기 전에 풀려나는것을 보면서 국민들이 무엇을 생각했겠느냐고 했다. 그는 “앞으로 대통령은 과거와 같은 ‘고유권한적·자의적 사면권 행사’라는 의혹을 받지 않도록 자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특집기획팀 ▲李昌淳 팀장 ▲許南周·李穆熙 차장 ▲金聖昊·任昌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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