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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목받는 일반고] 서울 경기여고

    [주목받는 일반고] 서울 경기여고

    1908년 4월 순종의 명에 따라 우리나라 최초의 관립 여성교육기관인 한성고등여학교에서 출발한 경기여고는 누적 졸업생이 4만 300여명에 이르는 전통 있는 학교다. 탤런트 김혜자씨를 비롯해 이경숙 전 숙명여대 총장,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김영란 전 대법관 등이 이곳 출신이다. 1988년 서울 중구 정동에서 ‘강남의 노른자’로 불리는 개포동으로 이전하면서 대학 진학률도 향상됐다. 하지만 외국어고와 같은 특목고와 자립형사립고 열풍이 거세지면서 경기여고 역시 어려움을 겪었다. 개교 100년을 앞둔 2007년에는 서울대 수시전형에서 합격자가 1명도 안 나오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최근 대학들이 수시전형 비중을 높이고 있는 가운데 경기여고는 대학입시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올해 543명의 졸업생과 재수생 중 수시에서 193명, 정시에서 265명이 합격했다. 서울대의 경우 수시 11명 등 모두 16명이 합격했다. 또 고려대 26명, 연세대 22명, 이화여대 47명이 입학했다. 미국 윌리엄스대와 일본 와세다대, 게이오대, 메이지대 등 해외 대학 입학도 8명이었다. 외고나 자사고가 아닌 일반고에서 이 정도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다. 수시전형에서 눈에 띄는 성적을 거둔 데 대해 이옥란 교장은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인성교육을 꼽았다. 이 교장은 4일 “아무리 공부 잘하는 학생이라도 인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차세대 리더가 될 수 없다”며 “우리만의 독특한 인성교육이 대학에서도 인정받아 수시전형에서 유리한 요소로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여고는 1학년에 입학하면 모든 학생이 가정시간에 한 반씩 돌아가며 다도와 예절을 배우고 마지막에는 교사에게 절을 하는 ‘속수례’(束修禮)를 반드시 거치도록 하고 있다. 속수례는 원래 조선시대 왕세자가 성균관 대성전을 찾아 공자와 맹자에게 술잔을 올린 뒤 명륜당 대문에서 스승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예식으로, 낮은 몸가짐과 겸손한 마음을 갖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런 의식을 통해 학생들이 공동체 의식을 기르고 이를 바탕으로 여성리더로서의 성품을 길러 나간다는 것이다. 홍경민 교감은 “학생회를 중심으로 연말에 동네 어르신을 상대로 봉사활동을 하는데 형식적인 봉사가 아닌 진심 어린 모습으로 임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3학년 학생회장 손현지 양도 “봉사활동 중에 우연히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게 돼 수요집회에도 참석한 적이 있다”며 “학교에서 학생 자치활동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해줘서 이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대학 입학과도 연결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기여고에서도 다른 학교와 마찬가지로 동아리 활동과 소논문 쓰기 등을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어 2학년 학생이 1학년 학생 영어를 가르치는 또래영어교사 프로그램인 ‘더 패스’(The PASS)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 이는 영어 과목 부진 학생을 영어 교과 우수 학생이 가르치는 것으로 주로 장래희망이 교사로 사범대 진학을 노리는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다. 의대와 간호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을 위해 이화여대 목동병원과 손잡고 진로체험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한 번에 10명씩 50명 안팎의 학생을 대상으로 매년 4차례 토요일에 수술실을 견학하고 병원에서 심폐소생술 전문과정 시뮬레이션을 살펴본다. 의대나 간호대 진학을 원하는 학생이 자신의 능력이나 흥미를 조기에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 때문인지 경기여고는 2014년 주요 대학 의예과에 21명을 진학시켰다. 방과후 수업의 질적 향상과 함께 제2외국어의 선택폭을 넓힌 것도 수시 합격생이 늘어난 요인으로 학교는 보고 있다. 3학년 진학담당 조내희 교사는 “학원가가 번성한 이곳에서 경기여고는 강남에서 가장 많은 방과후 교실을 운영하고 있을 것”이라며 “성과가 좋다 보니 재작년의 경우 100% 가까운 학생이 참여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수준 높은 방과후 교실을 통해 교사가 학생과 가까이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학생을 소개하는 자기소개서에서 강점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스페인어와 프랑스어 원어민 교사가 있을 정도로 제2외국어 선택폭도 넓은 편”이라면서 “토요일마다 대학전공과 연관된 진로탐색 프로그램을 하기에 학생들이 5~6월만 돼도 자기 전공에 확신을 갖게 돼 입시에서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여고는 2008년부터 ‘비전 2020’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개교 100주년을 맞아 ‘인류의 행복한 삶을 위해 헌신하는 글로벌 인재 양성’을 내걸고 만들었다. 이를 통해 사이버 상담을 확대하고 국내 및 해외 대학의 입시자료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해 한국의 차세대 리더십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대박 장근석 여진구 임지연, ‘능청-냉정-매혹’ 3인3색 매력 ‘시청률 1위’ 지켜

    대박 장근석 여진구 임지연, ‘능청-냉정-매혹’ 3인3색 매력 ‘시청률 1위’ 지켜

    ‘대박’ 장근석 여진구 임지연이 본격 등장하며 활약을 예고했다. 4일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대박’ 3회에서는 젊은 3인방의 본격적인 등장이 그려졌다. 많은 관심 속에 출격한 장근석, 여진구, 임지연은 강한 에너지와 개성 강한 연기를 선보였다.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운명의 개똥은 등장부터 특별했다. 장터 이곳저곳을 휘저으며 나타난 개똥의 모습은 장근석이 기존에 보여줬던 꽃미남 이미지를 180도 반전시키는 것이었다. 굵직한 목소리, 맛깔스러운 사투리 연기는 물론이거니와 시종일관 능청스러움을 탑재한 장근석의 모습은 노름꾼 아버지와 함께 내기를 전전하며 살아가는 ‘개똥’ 캐릭터를 완벽하게 살려냈다. 야생의 날것처럼 살아온 개똥. 그에게 한양에서 큰 투전판이 열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개똥은 특유의 능청으로 산적들의 쌈짓돈 100냥을 훔쳐내 한양으로 향했다. 이 과정에서 개똥은 다리가 아프다고 엄살 부려 말을 빌리고, 배 위에서 장난을 치다가 뱃사공을 물에 빠뜨려 돈은 물어줬다. 바닥을 구르고 뛰어다닌 장근석의 열연은 사고뭉치여도 밉지 않은 개똥이 그 자체였다. 장근석이 능청이었다면 여진구는 차가운 미소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여진구가 연기하는 연잉군은 복순이 개똥을 떠나 보낸 뒤 낳은 아들. 왕자의 신분인 연잉군의 등장은 궁이 아닌 투전방이었다. 연잉군은 투전방에서 큰돈을 딴 뒤 기뻐했다. ‘대박’은 올해로 스무 살이 된 여진구의 첫 번째 작품이다. ‘대박’으로 여진구의 본격적인 성인 연기가 시작된 것이다. 실제로 여진구는 본격 등장 첫 장면부터 투전방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그의 주변에는 많은 기생이 앉아 있었으며, 기생들과의 입맞춤에도 거침이 없었다. 날카로운 눈빛과 함께 살짝 보여준 살인미소는 여진구의 색다른 연기 변신을 기대하게 했다. 마지막으로 왕의 두 아들, 그사이에 서는 여인 담서도 등장했다. 담서 역의 임지연은 첫 등장부터 무명(지일주)과 검을 겨뤘다. 임지연은 감정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는 얼굴, 날렵한 움직임 등으로 담서 캐릭터를 표현했다. 방송 말미 공개된 예고에서 검을 쥔 모습이 아닌, 매혹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날아오를 담서를 예고했다. 이날 ‘대박’은 시청률 11.6%(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로 월화극 1위를 지켰다. KBS2 ‘동네변호사 조들호’는 시청률 10.9%로 ‘대박’을 바짝 추격했고 MBC ‘몬스터’는 9.5%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사진=SBS ‘대박’ 캡처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SBS 스페셜 ‘도도맘’ 옹호 논란… “구설수 해명 방송?” 비판 쏟아져

    SBS 스페셜 ‘도도맘’ 옹호 논란… “구설수 해명 방송?” 비판 쏟아져

    유명 블로거로 지난해 강용석 변호사와의 불륜설이 불거져 논란을 빚었던 ‘도도맘’ 김미나(34)씨가 출연한 SBS 스페셜을 두고 비판이 나오고 있다. 27일 방송된 SBS 스페셜에서는 ‘두 여자의 고백-럭셔리 블로거의 그림자’라는 주제로 김미나 씨와 이른바 ‘판교대첩’의 당사자인 조주리 씨가 출연했다. 화려해 보이는 유명 ‘럭셔리 블로거’들의 삶의 이면을 다룬다는 것이 방송 취지라고 프로그램 측은 밝혔다. 그러나 이날 방송을 통해 김씨가 강 변호사와의 불륜설과 남편과의 이혼 과정 등과 관련, “정신없이 맞은 기분이다. 때리는 손들을 잡고 내 얘기 좀 들어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기존에 알던 사람들이 나를 왜곡해서 보지 않고 계속 (관계를) 유지하고 격려해 준다는 것만으로 심리적인 위로를 받는다. 내가 잘못하지 않았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는 등 자신의 입장을 강조하는 모습이 연달아 그려졌다. 또 극단적인 생각을 떠올릴 만큼 힘들었다는 김씨의 심경을 강조하는 듯한 내용이 이어지자 김씨가 자신과 관련된 구설수를 해명하기 위한 방송이냐는 논란이 불거졌다. 특히 김씨가 남자 지인들과 ‘친한 친구 사이’라며 어울려 함께 술잔을 기울이거나 악성 댓글로 고소했던 네티즌들을 ‘선처’해줬다는 내용을 내보내는 등 당초 기획 의도와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SBS 스페셜 시청자 게시판에는 28일에도 항의성 글이 쏟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 SBS 관계자는 “김씨의 입장을 대변하거나 옹호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방송을 끝까지 보시면 아실 수 있을 것”이라면서 “제작진은 기획 의도를 충실히 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국내여행 | 남쪽바다가 건네는 말②통영이 진하다

    국내여행 | 남쪽바다가 건네는 말②통영이 진하다

    통영은 진하다. 색이 진하고, 향이 진하고, 맛이 진하다.역사가 그러하고, 문화가 그러하고, 사람이 그러하다.좁은 골목에도 음악가와 화가의 삶이 얽혀 있고, 낡은 가옥에도 소설가와 시인의 인생이 묻어 있다. 얽히고 묻은 것들은 하나같이 묵직하다. 참 농밀하기도 하다. 그래서 통영의 여운은 오래도록 맴돈다.강구안. 멀리 동피랑과 나폴리 모텔이 보인다세병관의 서쪽 망루인 서포루동피랑의 상징인 벽화세병관 마루에 앉아 회상하다 통영 앞에는 어김없이 비경, 예향, 미항이라는 수식어가 달라붙는다. 수식어 대신 ‘동양의 나폴리’만으로도 불린다. 그러나 통영이 나폴리가 되기 이전에 통영은 이순신의 고장이다. 임진왜란 이후 왜군에 치가 떨린 조정은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의 5개 수영을 아우르는 삼도수군통제영을 마련한다. 뼈아픈 치욕은 무너진 궁궐의 재건보다 먼저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하도록 했다.1604년에 설치된 삼도수군통제영은 300여 년간 경상, 전라, 충청의 삼도 수군을 지휘하던 본영이었다. 초대 통제사는 임진왜란 당시 초대 통제사인 이순신. 그의 한산도 진영이 최초의 통제영이었다. 이후 6대 통제사가 지금의 통영으로 통제영을 옮겼다.삼도수군통제영을 거닐어 본다. 차곡차곡 쌓인 시간이 발끝에서 단단하게 전해진다. 400년 넘게 닳은 돌층계 위로 겨울비가 흩날린다. 층계 끝의 문에는 지과문止戈問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그칠 지止, 창 과戈, 즉 창을 거둔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칠 ‘지’자를 창 ‘과’자 밑으로 가져와 두 글자를 합치면 싸울 무武 가 된다. 이것은 평상시에는 창을 거두지만, 유사시에는 싸우기를 주저하지 않겠다는 무장의 기상이다.무장의 다짐은 지과문을 지나 세병관에도 고스란하다. 세병관이라는 이름은 두보의 시구 ‘만하세병挽河洗兵’에서 가져왔다. ‘하늘의 은하수로 피 묻은 병기를 씻는다挽河洗兵挽河洗兵挽河洗兵挽河洗兵挽河洗兵.’ 즉, 전쟁이 그치고 평화를 갈망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씻을 세洗의 삼수변을 제거하면 먼저 선先이 된다. 평상시에는 세병이나, 유사시에는 선병. 평화를 바라는 마음 중에도 전투를 유념한다. 세병관의 현판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단다. 목이 아프도록 현판을 올려다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세병과 선병 모두 결국은 백성과 조국을 지극히 아끼는 마음인 것을.삼도수군통제영과 어우러진 통영 시내의 모습이 통영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 주는 듯하다 국보 305호 세병관은 정면 9칸, 측켠 5칸의 단층 팔작지붕으로 된 목조건물이다. 이는 우리나라 단일 면적의 목조건물로서는 가장 큰 규모이다. 세병관은 삼도수군통제영의 의전과 연회를 행했던 객사건물이었으나 일제시대에는 기둥 사이에 벽을 세우고 초등학교로 사용됐다. 긴 세월 동안 몇 차례의 보수는 있었을지언정 삼도수군통제영의 다른 건물들이 소실될 때에도 세병관은 당당하게 세월을 견뎌냈다.세병관의 마루로 올라선다. 동쪽 망루인 동포루와 서쪽 망루인 서포루, 북쪽 망루인 북포루가 좌청룡과 우백호, 북현무로서 세병관을 감싼다. 정면으로는 멀리 미륵산 자락이 너울대고, 세병관 뒤로는 여황산이다. 마루가 맑고 서늘하다. 세병관 마루에서 바라보는 통영시내는 겨울비로 흠뻑 젖었다. 삼도수군통제영의 기와 너머로 통영의 땅과 바다가 들어온다.통영이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을 숱하게 잉태한 이유를 파헤치다 보니 삼도수군통제영이라는 답이 나온다. 무슨 말인고 하니, 삼도수군통제영으로부터 파생된 것들로 인해 통영의 문화가 풍부해졌기 때문이란 말이다. 통제영의 12공방은 임진왜란 당시 군수품을 자체 조달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조선시대 한양을 제외한 지방에서는 통영 12공방 장인의 수가 가장 많아서 1895년 폐영 당시 250명에 달했다고 한다. 숫자만 많은 것이 아니라 생산품 역시 최상품이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통영소반 위에 안주를 차리는 것으로 부를 과시했다고 한다. 통영에서는 버선 한 켤레, 빗 하나, 갓 끈 하나조차 허술하지 않으니 그 안목들이 오죽했을까.한편, 통제영 300년이라 함은, 통제사가 300년 동안 부임했다는 이야기다. 통제사는 조선시대 정2품의 벼슬이었다. 정2품의 양반이 통제사로 부임하면 통영으로 홀로 오는 것이 아니라 식솔들과 노비들을 모두 끌고 온다. 일년 반마다 새롭게 부임하는 통제사는 한양의 최신식 유행을 퍼트렸고, 이는 통영의 복색을 세련되게 만들었다.뿐만 아니라, 세병관에서 의전과 연회 때마다 연주되는 예악을 들음으로써 통영의 음악도 풍부해졌다. 예악은 궁궐이 있는 한양이 아니고서는 듣기 힘든 고급 음악이었다. ‘전라도 가서는 소리하지 말고, 경상도 가서는 춤추지 말라’고 했다. ‘통영 가서는 춤도 소리도 하지 말라’가 되겠다. 충청, 경상, 전라 수군이 모여 저마다 춤 한 사위, 노래 한 가락 읊조리는 곳이 삼도수군통제영이었기 때문이다. 춤과 소리를 잘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것들은 오랜 시간을 들여 축적되고 융합되었고, 순간마다 땅은 비옥해졌다. 이후 이 땅은 윤이상, 박경리, 유치환, 김춘수, 전혁림 등과 같은 근사한 꽃들을 피워냈다.서호시장은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다강구안 골목의 대표적인 조형물 ‘이중섭 물고기’강구안 골목의 오래된 가게 사이로 세련된 감각의 가게들이 함께 공존한다히히히 강구안, 정겨운 서호시장‘어, 나폴리 모텔이다.’ 통영의 강구안 해안가를 거닐다 중얼거렸다. 나폴리 모텔은 2009년 개봉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 <하하하>에서 남여 주인공이 우연히 만나는 장소다. <하하하>는 63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받은 영화로, 영화의 배경인 통영의 매력이 가득 담긴 영화다. 강구안에서 나폴리 모텔을 보니 ‘하하하’가 아니라 ‘히히히’ 하는 웃음이 새어 나온다.이제 강구안은 늘상 웃음소리로 소란하다. 물론 영화 때문은 아니다. 오래된 강구안 골목에 사람이 몰리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 강구안은 바다가 육지로 들어온 항구를 일컫는다. 통영에서는 중앙동, 항남동 등의 일부 해안을 옛날부터 강구안이라고 불렀다.통영의 명동으로 불릴 정도로 번화했던 강구안이 통영여객선터미널의 이전으로 쇠락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사람들은 골목재생사업을 시작했다. 덕분에 지금 강구안 골목에는 통영에서 가장 오래된 여관, 70년간 이어 온 돼지국밥집, 55년 동안 풀무소리 끊긴 적 없는 대장간, 30년 넘은 목욕탕들이 여전히 소곤댄다. 그 사이로 게스트하우스와 작은 카페들도 함께 살 비비며 공존한다. 골목 어딘가에는 화가 이중섭과 유치환 시인이 술잔을 기울이던 곳이 있을 것이다. 지금 강구안은 새벽 1시에 후루룩 먹는 우짜우동과 짜장을 섞은 요리 맛처럼 달큰하고 뜨뜻하다, 히히히.서호시장은 통영항 여객선터미널 건너편에 위치한다. 예전 서호만 터를 매립해 만든 새 땅에 자리한 시장이라 새터시장으로도 불린다. 이른 아침부터 서호시장은 활기가 넘친다. 굴이 좋은 계절이라 그런지 통통하고 뽀얀 굴이 곳곳에서 보인다. 볼락과 학꽁치가 지천이다. 시장 한 켠 방앗간에서는 아침부터 고소한 기름 짜는 냄새가 번지고, 과일이며 나물이며 바구니마다 수북하다. 부지런한 상인들은 새벽부터 좌판을 벌였을 것이다. 알뜰한 사람들은 조금 더 싱싱하고 조금 더 저렴한 물건을 찾아 시장 골목 여기저기를 누빈다. 새벽 조업을 마친 어부들은 뜨끈한 해장국으로 거친 속을 푼다.서호시장에는 시래기를 뭉근하게 끓인 시락국, 국물이 시원하고 맑은 물메기탕, 해장에 최고라는 졸복국 등 다양한 해장국 가게가 많다. 시장의 활기가 궁금하다면 아침에 갈 것. 오후가 되면 비교적 한산해진다.▶travel info 욕지도·통영FERRY욕지도 여행의 출발은 통영이다. 통영의 통영여객선터미널과 삼덕여객선터미널에서 여객선과 카페리가 운항한다. 소요시간은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출발할 경우, 1시간 30분, 삼덕여객선터미널에서 출발할 경우 45분이다. 삼덕여객선터미널의 경우 통영 시내에서 차로 15분 거리 떨어져 있으므로 교통편에 따라서 터미널을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통영→연화도→욕지도 하루 5회 왕복운항 여객운임 편도 9,700원, 승용차 차량운임 편도 1만5,000~2만6,000원 삼덕→욕지도 하루 8회 왕복운항 여객운임 편도 7,600원, 승용차 차량운임 편도 1만8,000~2만4,000원FESTIVAL 욕지섬문화축제 욕지섬문화축제는 욕지도의 대표적인 축제다. 1992년부터 10월 중순경에 개최되는 이 축제는 120여 년 전 처음으로 사람들이 욕지도에 살기 시작한 것을 기념하는 축제다. 욕지도 특산물인 고구마와 고등어를 주제로 한 ‘GO(구마)GO(등어)페스티벌’과, 과거 어민들의 어선인 전마선을 체험할 수 있는 ‘전마선노젓기대회’와 같이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마련된다.STAY욕지도 옵타티오펜션 전 객실이 바다 전망이다. 일반형 객실 외에도 가족단위 여행객이 머물면 좋을 복층형 객실이 마련되어 있다. 복층형 객실의 2층 천장의 창을 통해 욕지도의 밤하늘을 감상할 수 있다. www.optatio.co.krrestaurant욕지도 늘푸른횟집 욕지도의 싱싱한 고등어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 고등어회를 주문하면 어떻게 먹어야 맛있는지 친절히 설명해 준다. 고등어회뿐만 아니라 욕지도 고등어로 만든 고등어조림도 일품이다. 칼칼한 양념이 밥도둑이 따로 없다. 055 642 6777통영 통굴가 제철 굴을 코스로 즐길 수 있다. 가격에 따라 코스에 나오는 메뉴가 조금씩 다르다. 통통하고 맛이 진한 굴을 다양한 요리로 즐겨 보자. 055 645 2088통영 분소식당 겨울이면 제철 물메기탕이, 봄이면 도다리쑥국을 맛볼 수 있다. 시원한 국물과 씹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보드라운 물메기살을 호로록 맛보다 보면 어느새 속이 뻥 뚫린다. 졸복으로 만든 졸복해장국도 인기. 055 644 0495MUSEUM박경리 기념관 한국 현대문학의 거장. 박경리 선생은 통영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기념관 내부에는 선생의 친필 원고를 비롯하여 유품, 사진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기념관 뒤쪽으로는 선생의 묘소가 자리한다.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 산양중앙로 173 09:00~18:00, 매주 월요일, 법정공휴일 다음날 휴관 무료 055 650 2541~3 pkn.tongyeong.go.kr윤이상 기념공원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을 기리기 위한 공원. 전시실과 카페 및 기념품숍, 각종 공연과 세미나와 같은 실내행사를 위한 메모리홀, 야외행사장인 경사광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시실에는 윤이상의 생애와 함께 생전 사용하던 악기 및 친필 악보를 비롯하여 생전의 유품을 전시하고 있다. 경상남도 통영시 중앙로 27 도천테마공원 09:00~ 18:00 1월1일, 설날 및 추석연휴, 매주 목요일, 공휴일 다음날 휴관 무료(단, 공연 및 세미나는 별도) 055 644 1210 www.isangyunmemorial.com통영옻칠미술관 옻칠과 회화를 접목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옻나무에서 채취한 수액을 정제하고 안료를 배합하여 옻칠을 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각도에 따라 다르게 빛나는 광채가 신비롭다.경상남도 통영시 용남면 용남해안로 36 10:00~18:00,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다음날), 설날, 추석 휴관 어른 3,000원, 어린이 1,000원 055 649 5257 www.otchil.org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이윤정 취재협조 한국해양소년단 경남남부연맹 www.hanbada.or.kr,통영시 www.tongyeong.go.kr
  • [씨줄날줄] 삼청각(三淸閣)/임창용 논설위원

    [씨줄날줄] 삼청각(三淸閣)/임창용 논설위원

    서울시가 삼청각(三淸閣)에서 ‘공짜밥’을 얻어먹은 세종문화회관 임원을 면직 처분하겠다고 한다. 이 임원은 여섯 차례에 걸쳐 가족, 친구 모임을 하면서 700여만원어치의 음식을 먹고 105만원만 낸 것으로 밝혀졌다. 삼청터널 옆에 자리 잡은 삼청각은 서울시 산하기관인 세종문화회관이 위탁 운영하는 복합 전통문화 공간이다. 북악산 풍광을 마주하고 소나무숲을 병풍 삼아 공연을 관람하면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1970년대 ‘밀실정치’가 이루어지던 고급 요정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삼청각에 처음 들어서는 사람은 먼저 그 화려함과 요새 같은 위용에 놀란다. 오색단청을 입힌 솟을삼문을 지나 걸어가면 위풍당당한 4층 한옥이 나온다. 건평 3230㎡의 일화당(一?堂)이다. 주변 숲 속엔 165~330㎡ 규모의 한옥인 유하정, 동백헌, 취한당, 천추당, 청천당이 자리 잡고 있다. 삼청각은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이 체결되고 남북 협상이 시작되면서 급하게 지어졌다. 건축주는 서울의 한 유명 요정 주인으로 알려졌는데, 당시 1만 9800여㎡의 산자락을 다지기 위해 군 공병대가 투입됐다고 한다. 보안 유지를 위해 중앙정보부의 지원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작고한 건축가 정재원씨가 모든 건물을 설계하고 대목장 정대기, 박광석씨 등이 한옥 건물을, 현대건설이 콘크리트 건물을 시공했다. 창호, 화초담 등 각 분야 소목 20~30명이 동원돼 1973년 6월 가까스로 개관해 북 대표들의 환영 만찬을 치를 수 있었다. 삼청각은 남북회담 이후에도 정부 차원의 국빈급 외국인 접대 장소로 이용됐지만, 그보다는 최고급 요정으로 명성을 떨쳤다. 특히 정·재계 인사들의 은밀한 사교 장소로 사랑받았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일본 관광객 상대의 기생파티장으로 추락했다가 ‘예향’이라는 이름의 전통 혼례식장 겸 음식점으로 바뀌었다. 이후 건설회사에 팔려 고급빌라 건설이 추진되기도 했다. 문화계에서 보존에 나서자 서울시가 2001년 이를 사들여 지금의 전통 공연시설로 개보수했다. 당시 ‘요정’의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 이름을 바꾸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지만,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삼청’(三淸)의 의미를 되살려야 한다고 해 그대로 유지됐다. 삼청은 도교에서 신선이 사는 집을 의미하는 태청(太淸), 옥청(玉淸), 상청(上淸)을 아우르는 말이다. 주연회장과 공연장으로 쓰이는 일화당은 ‘풍류로 하나가 된다’는 뜻을 지녔다. 남북이 하나로 화합하려 했던 만찬 장소에 어울린다. ‘공짜밥’ 소동의 진원지인 삼청각은 이처럼 남북 화합을 향한 염원이 서려 있는 곳이다. 4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남북의 관계는 당시보다 더 살풍경하다. 남북 대표들이 삼청각 일화당에서 손을 맞잡고 술잔을 나눌 때가 다시 올지 모르겠다. 임창용 논설위원 sdragon@seoul.co.kr
  • 이른 봄 먼저 봄

    이른 봄 먼저 봄

    초봄이다. 바람결에 촉촉한 습기가 묻어난다. 너른 바다를 헤엄쳐 온 봄바람은 벌써 동해안을 거쳐 내륙으로 내달릴 기세다. 봄바람이 스친 자리마다 꽃망울이 맺히고, 봄 내음도 곰실거린다. 어디 처녀 가슴만 그럴까. 숱한 장삼이사의 가슴도 봄의 향훈에 울렁댄다. 겨울을 정리하고 봄을 맞기 위해 동해안으로 떠났다. 진부령 넘어 강원 고성에서 속초, 양양을 지나 강릉까지 간 뒤 영동고속도로를 거쳐 돌아오는 여정이다. 나라 동쪽의 해토머리(언 땅이 녹기 시작할 때) 풍경은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호수 너머로 잉크빛 바다가 넘실대고, 어민들은 그 바다에서 싱싱한 봄의 맛을 길어 올렸다. 글 사진 속초·강릉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늦겨울은 진부령까지다. 고개를 넘어서면 풍경은 초봄으로 바뀐다. 계절의 순환은 이렇듯 늘 어김이 없다. 고성으로 먼저 간다. 맛이면 맛, 풍경이면 풍경으로 이방인을 실망시키는 법이 없는 곳이다. 사실 고성은 이름난 여행지가 있는 곳은 아니다. 속초시 옆에 옹색하게 붙어 있는 시골 소도시 정도로만 인식되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곰곰이 살펴보면 고성은 산과 바다 그리고 호수의 정취를 한꺼번에 느낄 수 있는 드문 여행지다. 화진포와 송지호 등 아름다운 호수, 제철 먹거리가 풍성한 거진항 등 이곳저곳 부지런히 노닐다 보면 하루해가 짧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길… 고성 화진포와 송지호 해안도로를 달리는 드라이브도 고성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다. 거진항에서 화진포로 이어지는 구간이 그렇다. 거리는 다소 짧아도 파도 넘실대는 해안가를 따라 달리는 맛이 각별하다. 고성과 속초 사이엔 석호(潟湖)가 발달했다. 석호는 강과 바다가 만나는 기수역에 형성된 호수를 뜻한다. 거진항 인근의 화진포가 대표적이다. 호수 주변의 너른 갈대밭 위로 철새가 부지런히 오가고, 이승만과 김일성 등 남북의 권력자들이 사용하던 별장 등의 볼거리도 풍성하다. 7번 국도변의 송지호도 뒤질 것이 없다. 이름처럼 해송 등에 둘러싸인 호수로 둘레가 약 4㎞(20만평)에 달한다. 오후보다는 바람이 잠을 덜 깬 이른 아침에 방문하길 권한다. 잔잔한 수면 위로 설악산이 통째 잠기는 모습과 마주할 수 있다. 송지호 뒤는 왕곡마을이다. 북방식 전통가옥의 원형이 잘 보전돼 있는 마을이다. 송지호에서 멀지 않은 만큼 오가는 길에 꼭 찾길 권한다. 시리도록 빛나는 속초의 두 눈동자 영랑호와 청초호 속초에도 석호가 있다. 영랑호와 청초호다. 맑은 날이면 두 호수는 시리도록 파란빛으로 빛난다. 한 시인이 읊조렸다. “속초가 속초일 수 있는 것은 청초와 영랑, 두 개의 맑은 눈동자가 빛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 모습, 두고두고 가슴에 담아 둔다. 영랑호 둘레는 7.8㎞다. 호숫가를 따라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속초 8경 가운데 하나인 범바위, 영랑정 등 볼거리도 제법 알차다. 청초호는 좁고 긴 사주(砂洲)에 의해 동해와 격리됐다. 둘레는 5㎞ 정도. 잘록한 항아리 형태다. 호수 오른쪽은 바다로 나가는 길목이다. 이 수로를 따라 수많은 어선이 드나든다. 청초호 끝은 ‘아바이마을’이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 피란민들이 터를 잡으며 형성된 실향민 정착촌이다. 적수공권으로 남하한 주민들이 황량한 바닷가에 판잣집을 짓고 산 지도 어느덧 60여년이다. 아바이마을에선 ‘갯배’를 타야 한다. 갯배는 뗏목처럼 사람 힘으로 움직이는 배다. 아바이마을과 속초를 잇는 설악대교가 생기기 전에는 마을에 들어가기 위해 갯배를 타야 했다. 지금도 중앙동 갯배나루(오구도선장)와 아바이마을 사이로 갯배가 오간다. 설악대교 위에 서면 아바이마을과 청초호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조선 기상 넘실대는 바위 절벽 양양 하조대·홍련암 양양에 들면 반드시 하조대를 찾을 일이다. 조선의 개국공신 하륜과 조권의 성을 따 명명된 바위절벽이다. 하조대 정자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해안 절벽 위에 조성된 전망대가 나온다. 예서 굽어보는 하조대해변이 빼어나다. 양양엔 바닷가 절집이 특히 많다. 홍련암은 대가람 낙산사에 속한 암자다. 절벽 위에 세워진 암자 옆으로 바다가 맞닿아 있다. 죽도암은 동산항과 인구항 사이의 작은 섬 죽도에 깃든 절집이다. 문만 열만 동해의 만경창파가 멍석처럼 말려 온다. 휴휴암(休休庵)은 죽도암에서 7번 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1㎞쯤 내려가면 만난다. 연화법당이라 불리는 바닷가 너럭바위가 볼거리다. 매끈하게 뻗은 해안선 따라 정동진에서 차 한잔을 다시 길을 나서 강릉 정동진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아름다운 경포호는 잊지 않고 찾는다. 하늘의 달, 호수에 비친 달, 파도에 어른거리는 달, 술잔 속의 달 그리고 연인의 눈동자에 비친 달 등 다섯 개의 달이 뜬다는 호수다. 너른 바다가 보고 싶다면 안곡해변으로 들어간다.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해안선이 인상적이다. 커피 한 잔 홀짝대고 싶다면 영진해변을 찾아간다. 과장 좀 보태 한 집 건너 커피숍이다. 마을 안쪽에 재일 교포 출신의 바리스타가 운영하는 카페가 그중 명성이 자자하다. 강릉항으로 이름이 바뀐 옛 안목항 주변도 온통 카페촌이다. 정동진이야 더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관광명소다. 하지만 빨리 가겠다고 고속도로에 오르는 건 ‘비추’다. 안인진을 거쳐 정동진에 이르는 해안길을 따라가야 제맛이다. 드라이브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이 해안길은 놓쳐서는 안 될 예쁜 길로 꼽힌다. 정동진 주변에 볼거리가 많다. 정동진역을 나서면 작은 소나무가 이방인을 반긴다. TV 드라마 ‘모래시계’로 유명해진 소나무다. 모래시계공원도 조성돼 있다. 공원 가운데에 세워진 모래시계는 지름 8.06m, 폭 3.2m, 무게 40t, 모래무게 8t으로 세계 최대 규모다. 시계 속 모래가 모두 아래로 떨어지는 데 꼬박 1년이 걸린다고 한다. 시간박물관은 동서양의 진귀한 시계가 전시된 과학관 등 시간과 관련된 여러 테마의 전시관으로 이뤄졌다. 하슬라 아트월드는 다양한 설치미술 작품들이 전시된 곳이다. 동해를 굽어보는 괘방산 자락에 있다. 정동진 역에서 버스로 두 정거장 떨어져 있다. 식사도 할 수 있다. 하슬라(何瑟羅)는 강릉의 옛 이름이다. ■여행수첩(지역번호 033) →맛집: 고성 쪽에선 도치 등 제철 생선을 맛봐야 한다. 입 안에 톡톡 터지는 도치알찜 등 별난 먹거리가 많다. 거진항 초입의 성진회관(682-1040)이 널리 알려졌다. 주의보가 내려져 어선들이 오래 출어하지 못하면 도치요리를 맛보지 못할 수도 있으니 미리 확인하고 가는 게 좋겠다. 거진항 안쪽으로도 이름난 맛집들이 몇 곳 있다. 소영횟집(682-1929)은 생대구맑은탕, 어전(681-5014)은 김치 넣고 끓인 곰치국으로 유명하다. 거진항 위쪽의 대진항에선 물미역을 맛볼 수 있다. 바위에 붙어 자생하는 미역인데, 이 마을 해녀들이 매일 아침 채취한다고 한다. 속초 동명항(속초항) 쪽엔 해물뚝배기집들이 늘어서 있다. 동명항전복해물뚝배기(636-1637~8)가 그중 이름났다. 설악산 국립공원 초입의 이목리막국수(638-3579)는 동치미 국물로 맛을 낸 막국수를 잘한다. 학사평 일대엔 김영애할머니순두부(635-9520) 등 순두부집들이 몰려 있다. 아바이마을에선 다양한 순대를 맛볼 수 있다. 아바이마을 건너 시내 방향으로는 물횟집들이 밀집돼 있다. 봉포머구리집(631-2021)이 그중 알려진 편. 양양에선 ‘섭’(홍합을 이르는 현지 표현)을 넣고 조리한 전골, 칼국수 등이 별미다. 수라상(671-5857)이 유명하다. 양양군청 인근에 있다. 서면 송천리 떡마을(673-7020)은 전통 떡으로 이름난 곳이다. 장작불로 떡쌀을 삶고 떡메로 쳐 만든다. 강릉 쪽에선 꾹저구탕을 맛보는 게 좋겠다. 오대산 자락의 진고개에서 강릉 방향으로 흐르는 연곡천 주변 마을에서 맛볼 수 있다. 꾹저구는 한국 특산 어류로, 저구새가 부리로 꾹 찍어 잡아먹는 모습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송강 정철이 명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연곡꾹저구탕(661-1494)이 알려졌다. 사천항 쪽에 물회 전문집들이 몰려 있다. 오징어와 가자미가 주재료인데, 전복이나 해삼 등을 추가하기도 한다. 황토전복물회(641-8210), 장안횟집(644-1136) 등이 이름났다.
  • ‘인간 잔인함의 끝은?’ 칼집 낸 살아있는 물고기에 술 먹이는 남성

    ‘인간 잔인함의 끝은?’ 칼집 낸 살아있는 물고기에 술 먹이는 남성

    인간의 잔인함은 어디까지 일까? 22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은 최근 중국의 한 식당에서 요리된 채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잉어에게 술을 먹이는 남성의 충격적인 영상을 기사와 함께 보도했다. 영상에는 테이블 위에 놓인 여러 가지 음식과 함께 몸에 칼집 낸 후 요리된 잉어의 모습이 보인다. 잉어는 놀랍게도 머리 부위만 온전한 채로 살아 있다. 남성이 술잔으로 잉어 입속에 술을 부어주자 잉어가 입을 벙긋하며 술을 들이켠다. 해당 영상은 인터넷상에 퍼지면서 인간의 잔인함에 대해 논쟁을 촉발했으며 인간의 과도한 잔혹성에 대해 동물보호운동가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한편 이 영상을 접한 네티즌들은 “음식을 먹기 전 생물을 반드시 죽여야 한다”, “인간의 무의미한 잔인함을 비판한다”, “물고기는 이미 죽은 상태며 신경이 반응할 뿐이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사진·영상= VideoLoL youtube 영상팀 seoultv@seoul.co.kr
  • [김동률 교수의 1980’s 청춘의 재발견] 情에 취하고 추억에 취했던 인사동 거리

    [김동률 교수의 1980’s 청춘의 재발견] 情에 취하고 추억에 취했던 인사동 거리

    헌책방 ‘통문관’엔 천명이 한 자씩 쓴 천자문…화장실이 급해 들렀다가 붓 잡고 휘이 탁자 서너개·촛불 뿐인 허름한 술집은 주머니 얇은 청춘·문인들 마음의 고향 한옥 뜰앞에 핀 과꽃에 비라도 내리면 저항의 불덩이 품은 가슴도 촉촉해졌네 “한 글자만 써 주고 가시게.” 붓 한 자루를 건네주며 글자 한 자 써주기를 부탁해 왔다. 그는 통문관(通文官) 주인 고 이겸로(1909~2006)옹이었다. 나는 그가 제시한 글자 중 귀할 귀(貴) 한 자를 진땀 흘려 쓰고 빠져나왔다. 1980년대 초 화장실이 급해 들렀던 인사동 고서점에서 일어난 일이다. 당시 이옹은 자신의 손자를 위해 천인천자문을 제작하고 있었다. 집안에 아이가 태어나면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천 명의 지인들에게 일일이 찾아가 한 글자씩 받아 만든 책이다. 그러다 보니 글자마다 필체가 다르다. 이렇게 천 명의 정성으로 완성된 천자문은 첫돌 때 선물로 전해진다. 후손을 사랑하는 지극한 마음이 담겨져 있다.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나는 내공이 경지에 이른 이옹의 기대에 부응하는 그런 쟁쟁한 인사가 전혀 아니었다. “단지 쉬가 급해 들어왔노라”며 서너 차례 거절하는 나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던 이옹은 끝끝내 손에 붓을 쥐여 주었다. 쉬 한번 하러 갔다가 졸지에 선생의 손자를 위한 천자문 한 글자를 메우게 된 것이다. 그 천자문을 받은 손자가 지금의 통문관 주인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나는 그 당시 통문관을 단순한 헌책방으로 알았다. 고 이겸로 선생이 일제 강점기인 1934년 문을 연 이래 고서 관련 문화유산 발굴의 중심에 있다는 거룩한 명성은 먼 훗날 알았다. 80년대 서울 인사동은 그런 거리였다. 조악한 기념품 가게와 호떡 장사가 판치고 있는 지금과는 많이도 달랐다. 백만 년 전 그 시절 나는 황당한 꿈이나 꾸는 몽상가였다. 나는 당시 군대를 다녀와 놀고 있었다. 스몰이라 불리는 검은 물을 들인 미제 군복 바지를 입고 복학 일까지 허구한 날 주색잡기로 시간을 죽이고 있는 신세. 신촌과 종로통을 오가며 술 마시는 것이 전부였다. 과외로 주머니가 얼마간 채워지면 여자를 만나 영화로 시간을 보냈다. 밤이 오면 신촌이나 이태원의 히피들이 모이는 바에 가서 술을 마시고 노래를 듣는 데카당한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정신이 허해지면 인사동에 들렀다. 그 시절 인사동은 고풍스러웠다. 요샛말로는 빈티지나는 동네였다. 신촌은 술집만 즐비해 무언가 허전했고 명동은 시골 출신인 내가 나다니기에는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인사동은 묵향이 넘치던, 스물 몇 살의 청년이 보기에도 뭔가 있어 보였다. 거리 분위기가 유가풍에서 자란 고향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얄팍한 주머니 사정에도 부담 없는 동네였던 것이다. 그중 승동교회 안쪽 골목에 있던 티롤은 나의 단골 술집. 서너 개의 탁자가 전부이고 탁자마다 작은 촛불이 켜져 있던 소박한 술집이었다. 티롤이 모차르트가 사랑했던 오스트리아의 지방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먼 훗날이고 무식하게도 그 시절 난 그저 티눈의 사촌쯤으로 생각했다. 80년대는 험악했다. 폭력과 야만이 넘치던 시대이자 어둠의 시대였다. 단언컨대 최루가스가 공기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였던 시대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에 불덩이를 서너 개씩 달고 다녔으며 감내하기 어려운 순간순간을 술로 버텼다. 그 중심에 티롤, 시인학교, 평화 만들기, 소설 같은 술집과 선천, 사천, 토방 등 밥집, 절 음식집 산촌, 천상병 시인의 부인이 꾸려 가던 귀천 등등이 있었다. 술집은 초라했고 밥집은 대개 네모꼴의 낡은 한옥이었다. 남루한 한옥에서 밥을 먹다가 뜰앞 과꽃에 비라도 내리면 마음까지 촉촉해지곤 했다. 꽃이 피면 꽃밭에서 아주 살았다던 고향의 꽃이 아니던가. 술집 밥집만 아니다. 당시 인사동에는 학고재 등 수많은 고미술 가게와 화랑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내게는 술집과 밥집만 기억에 남아 있다. 그 시절 술꾼들이란 대개 종로 관철동 ‘낭만’ 같은 술집에서 입가심으로 생고구마 조각을 곁들여 1차로 맥주 한잔 걸치고 인사동으로 옮겨 밤늦도록 술잔을 주고받았다. 사실 한국 사회의 모든 모임은 술과 엮여 있다. 같은 학교 졸업자들이 모여서 술 먹는 모임이 동문회이고 산에 올랐다가 하산 후 술 먹는 모임이 산악회다. 새벽에 모여 공을 찬 뒤 해장술 한잔 걸치는 것이 조기 축구회이고 고향 사람끼리 모여 술 먹는 모임이 향우회가 아니던가. 초상집에서도 술을 같이 마셔야 성이 풀리는 사회가 한국사회다. 많고 많은 술집 중 카페 ‘평화 만들기’도 떠오른다. 이십대 초반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하던 이십대 후반까지 단골로 다녔다. 사실 인사동에 꽤 멋진 술집이 많았는데 유독 이 집만 유명했었다. 아마 일간지 기자들이 많이 출입하는 데서 연유하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문학 하는 사람들이 뒤풀이 단골로 가는 곳인데, 나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작업 중인 여자 친구에게 뭔가 있어 보이게 하기엔 딱인 술집이기 때문이다. 창가 말석에 앉아 저명 시인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아 문인들, 예술가들은 원래 낙천적인가 생각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시인 고 기형도(1960~1989)가 있었다. 인간관계는 전혀 없었고 가끔 단골 술집에서 낯이 익어 눈인사만 나눌 정도였다. 80년대 후반 이미 그는 이름을 날리던 문화부 기자였다. 알려진 대로 그는 노래를 무척 잘 불렀다. ‘평화 만들기’의 계단을 오를 때 맑고 고운 노래가 들리면 그가 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 고운 테너의 목소리로 ‘왓 이즈 어 유스, 임페추어스 파이어’(What is a youth, Impetuous fire)를 부르면 술집 안은 순간 고요해진다. 영화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아닌, 그 옛날 긴 생머리의 올리비아 허시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인사동 인근 안국동 로터리의 전설적인 술집도 추억해야 한다. 카페 ‘브람스’다. 75년 문을 연 신촌 미네르바, 동숭동 학림과 나란히 30년 넘게 로터리 귀퉁이 이층에 자리하고 있다. 이 집은 내가 서울에 온 갓 스물부터 지금까지 잊혀질 만하면 들르는 카페다. 바닥과 벽이 모두 나무로 치장되어 있다. 걸을 때마다 삐걱대는 소리가 유년 시절 초등학교 목재교실 같은 느낌이다. 주말에도 손님은 많지 않다. 도대체 어떻게 꾸려가는지 나와 같이 늙어가는 여주인에게 노하우라도 한 수 배우고 싶다. 살고 있는 곳이 멀고 또 지금 일하는 공장이 신촌이라 그저 1년에 한두 번 찾을까 말까 하는 카페다. 어쩌다가 지나는 길, 긴 구레나룻의 브람스 얼굴 간판이 차창 너머로 눈에 띄면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언젠가 들렀다가 “꼭 1년 만에 오셨네요”라며 아는 체하는 여주인의 인사말에 만감이 교차했다. 그 집에 가게 되면 베냐미노 질리의 노래를 청해 듣는다. 조르주 비제의 조개잡이 중에 나오는 ‘귀에 익은 그대 음성’(1925년 레코딩)이다. 모노로 듣는 질리의 음성은 애절하다 못해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질 것 같다. 당장 한번 들어 보시라. 언제 들어도 심쿵이다. 우리들의 이십대는 이처럼 수많은 거리의 술집과 함께 갔다. 인사동 골목은 그 시절 내 인생의 ‘아타락시아’였다. 지금의 중년들이 그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으며 취해 돌아다녔던 추억의 거리다. 인사동은 아주 오래된 거리였고 그때 우리는 너무 젊었으며 세상은 그 무엇도 만만한 게 없었다. 그리고 우리들의 잔치는 오래전에 끝났다. 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언론학·매체경영) yule21@empas.com
  • 꽃구름의 남쪽 윈난雲南

    꽃구름의 남쪽 윈난雲南

    진작 왔어야 할 곳인데 많이 늦었구나. 리장麗江에서 샹그릴라香格裏拉로 가는 길 위에서 느낀 소회다. 겨우 3박 4일이란 짧은 시간이 아쉬웠다. 윈난雲南, 즉 구름 남쪽이란 이름은 ‘꽃구름의 남쪽彩云之南’이란 말에서 유래했다. 우리에게는 차마고도茶馬高道로 유명하지만 쿤밍昆明-다리大理-리장-샹그릴라로 이어지는 윈난 여행코스는 중국인들에게 가장 낭만적인 여행지로 꼽힌다. 구름의 남쪽에서 잠시 머물다 여정은 쿤밍에서 시작됐다. 쿤밍은 얼핏 중국의 여느 대도시처럼 보이지만 사실 해발고도 1,890m, 고원지대에 불쑥 솟아난 도시다. 쿤밍은 여름에 덥지 않고 겨울에 춥지 않다. 사계절이 봄과 같은 사계여춘四季如春의 도시다. 중국의 피서 관광지 중 일등으로 꼽히는 곳이 바로 쿤밍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작년 한 해 쿤밍을 찾은 관광객은 무려 6,000만명에 달한다. 한편, 쿤밍에서 기차나 버스를 타고 베트남, 라오스, 태국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중국인들에게 쿤밍은 동남아 여행의 허브 거점이다. 쿤밍에서 비행기를 타고 다리해발 2,000m로 갔고, 다리에서 다시 리장해발 2,400m으로 달려 해발 5,596m의 ‘위룽설산玉龍雪山’과 차마고도의 주요 거점인 샤시沙溪 마을을 만났다. 위룽설산은 빙하가 서린 백옥 같은 산이다. 새파란 하늘 때문일까. 위룽설산의 만년설이 푸르게 빛났다. 리장을 떠나 다시 길을 나서 장족티베트족 자치주인 샹그릴라해발 3,500m로 갔다. 쿤밍에서 샹그릴라까지 총 650여 킬로미터. 여정은 거기까지였고 돌아서야 했지만 다시 오리라는 다짐은 계속 나아가는 중이다. ▶윈난성 윈난은 여행자의 천국이자 대자연의 보고다. 윈난의 고산지대는 전체 면적의 94%를 차지한다. 고원호수가 40여 개나 있고 호수면적은 1,100km2에 달한다. 아열대, 온대, 고원기후까지 지역에 따라 다양한 기후를 보여 준다. 이를 반증하듯 3만여 종이 서식하는 ‘식물의 왕국’이자 ‘꽃의 왕국’이 바로 윈난이다. 윈난에 사는 소수민족 인구는 1,533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33%에 달한다. 중국의 25개 소수민족 중 15개 소수민족이 8개 자치주를 이루고 윈난성에서 살아간다. ‘땐’은 윈난성의 약칭이다. ●다리大理 바람, 꽃, 눈, 달 본격적인 여정은 윈난 서북부, 다리에서 시작된다. 다리는 리장과 더불어 윈난을 대표하는 고대도시다. 칭짱고원靑藏高原의 동남부 언저리에 위치한다. 예로부터 중국인들은 다리의 풍광을 ‘풍화설월風花雪月’이라 표현했다. 바람과 꽃, 눈과 달이 한데 어우러지는 곳이 다리라는 말이다. 다리는 해발 4,122m의 창산苍山을 뒤로하고, 앞으론 해발 1,972m의 고원호수인 얼하이洱海, 이해를 굽어본다.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도시다. 창산과 얼하이라는 두 개의 보석이 다리를 만든 셈이다. 다리의 소수민족은 바이족白族, 백족이다. 이름대로 흰옷을 즐겨 입고, 흰벽으로 지은 집에서 산다. 다리는 바이족 자치주의 수도이고, 중국 정부가 지정한 24개 역사문화 도시 중 하나다. 다리의 주인이었던 바이족은 중국의 여러 소수민족 중 하나로 여겨지지만 13세기 몽고의 침략을 받기 전까지 남조와 다리국으로 존재하며 독특한 문화를 꽃피웠다. 한족의 당나라, 송나라의 맹렬한 기세에 굴하지 않고 독립국의 지위를 당당하게 지켜냈었다. 이름大理에서 짐작할 수 있듯 좋은 돌의 표본으로 여겨지는 대리석이 유래한 곳도 바로 다리다. 다리에서는 제일 먼저 숭성사崇聖寺 삼탑을 찾았다. 중원의 권력과 맞섰던 다리국의 위엄을 상징하는 유산이다. 삼탑 중 가운데 탑의 높이는 60m, 16층 건물의 높이다. 시간이 없어 오르지 못했지만 중앙탑 맨 위층까지 올라갈 수 있다. 지진 때문에 기울어졌다는 양편의 탑의 높이는 40m다. 삼탑 옆 취영지聚影池에서 연못에 비친 삼탑을 보는 것도 즐겁다. 당대에 지어진 삼탑은 다리고성에서 서북쪽으로 1km 떨어진 창산 잉러봉 기슭에 위치한다. 중국의 4대 명탑 중 하나이자 중국 남방에서 가장 웅장하고 아름다운 탑이라고 불린다. 삼탑 뒤 금빛 찬란한 숭성사는 중국에서 불교 사원 중 가장 큰 건축물로 웅장한 기세를 자랑하나 1980년대를 전후해 새로 지은 건물이다. 숭성사에 내려와 케이블카를 타고 창산에 올랐다. 3,500m가 넘는 봉우리를 열아홉 개나 갖고 있으니 산의 위용을 짐작할 만하다. 최고봉은 해발 4,122m의 마룽馬龍봉인데 산꼭대기에는 항상 눈이 쌓여 있다. 아쉽게도 케이블카는 2,900m 지점에서 멈췄다. 바람이 너무 센 탓이다. 케이블이 흔들려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 2,900m 지점에서 정상까지 운행하는 케이블카는 이미 운행을 멈춘 채 케이블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열아홉 개의 산봉우리 아래 창산 계곡물은 다리고성을 거쳐 얼하이 호수로 흘러간다. 창산 아래 다리고성은 1,000년 역사를 가진 고성이라지만 새로 지은 게 많다. 몽골에 함락된 안타까운 역사를 갖고 있는 탓이다. 고성의 높이는 8m 정도, 성 안의 집들은 작고 예쁘고, 지붕을 잇대고 있다. 다리의 역사에 대한 다리 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다리고성의 성문 현판에 쓰여 있듯 다리는 예로부터 ‘문헌명방文獻名邦’으로 불렸다.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자부심의 표현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문헌명방을 느끼기엔 관광객이 너무 많다. 한 블록만 거리를 벗어나면 또 다른 다리를 만나겠지만 시간이 없다. 결국 다리에 갔지만 다리의 진면목을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룹 투어로 다리를 보자니 아쉬움이 진하다. 상하이에서 게임회사를 다니다 그만두고 배낭여행을 하다 다리에 정착해 객잔(客棧, 중국의 여관)을 운영한다는 가이드 이설영씨 말대로 다리의 가장 상업적인 거리를 한두 시간 둘러보았을 뿐이다. 그곳에는 오랜 시간 그려 온 다리는 없었다. 다시 다리에 가야 할 이유다. 다음에 다리에 온다면 풍화설월의 다리를 떠올리며 얼하이 호수에서 보름달을 보고 싶다. ●샤시沙溪 차마고도 카라반이 쉬어 가던 곳 다리를 떠나 리장으로 가는 길, 차가 고속도로를 벗어나 좁은 산길로 접어든다. 한 시간쯤 달렸을까? 윈난 산속의 마을, 샤시에 도착했다. 샤시는 깊은 산속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마을을 쉬엄쉬엄 둘러보아도 한 시간이면 족할 듯싶다. 내게 이번 여행에서 발견한 윈난의 보석을 하나 꼽으라면 나는 주저 않고 샤시를 꼽겠다. 샤시는 고대 무역로인 차마고도茶馬高道를 오가던 상인들 행렬인 마방馬幇이 쉬어 가던 작은 마을이다. 높은 산을 쉴 새 없이 넘어가기에 차마고도를 ‘하늘에 난 길’이라 부른다면 마방은 ‘하늘 길을 걷는 사람’이다. 마방들은 푸얼차(普洱茶, 보이차)를 싣고 달그락달그락, 떨거덩떨거덩 말방울 소리를 울리며 다리와 리장을 지나 진샤강金沙江을 건너 라싸로 갔다.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라싸에서 한숨을 돌린 마방들은 라싸를 떠나 시가체를 지나 시킴과 네팔, 인도로 향했다. 윈난에서 생산된 차와 티베트 초원에서 자란 말이 차마고도를 통해 교환되었다. 하지만 그 길을 오가기란 쉽지 않았다. 과거의 차마고도는 세상에서 제일 높은 길, 어쩌면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길이었다. 차마고도의 카라반隊商들은 산을 넘고 넘어 중국과 인도, 네팔, 서남아시아를 오갔다. 그 험한 길을 어찌 조랑말 하나에 의지해 넘었을까? 이제와 생각해 봐도 경이롭기 그지없다. 과거에 샤시는 차마고도의 요충지로 때로 큰 장이 섰지만 지금은 산간의 작은 마을에 불과하다. 샤시 마을의 시간은 왠지 차마고도의 조랑말이 걷는 것처럼 천천히 흘러간다. 간혹 마주치는 마을 사람들의 꼬질꼬질한 모습마저 정겹다. 다리나 리장과 달리 다행히 이곳엔 관광객이 적다. 진입도로가 좁은 데다가 그마저 구불구불한 산길이기 때문이다. 중국 대륙 전역에 걸친 대대적인 개발 열풍에서 빗겨난 중국 서남부의 모래알 같은 샤시 마을은 개발이 더디기에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다. 이곳을 잠시 스쳐 지나는 여행자의 감상일 뿐이지만 도로가 확장되지 않기를 빌 뿐이다. 세월이 흘러 이제 마방 대신 여러 나라의 여행자들이 샤시를 찾고 차마고도 여관, 민트 카페 등 여행자를 위한 객잔, 게스트하우스, 호스텔, 카페가 문을 열었다. 카페에서는 피자도 팔고 스파게티도 판다. 깊은 산속 여행자의 천국이다. 샤시 마을은 2002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1950년대 중국에서 티베트로 가는 고속도로가 뚫렸다. 차마고도와 마방의 존재의미가 사라졌다. 그런데 차마고도와 고속도로 구간이 일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마방은 진작부터 중국에서 티베트로 가는 가장 짧은 길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리장에서 샤시를 가기 위해선 일단 젠촨剑川까지 가야 한다. 버스로 두 시간이 걸린다. 요금은 20위안. 새로 난 고속도로로 달리면 요금은 25위안이고, 한 시간이 걸린다. 젠촨에서 미니버스를 타고 다시 45분 정도 달리면 샤시에 도착한다. 쿤밍에서는 버스로 대략 10시간 거리다. 샤시에도 게스트하우스는 있다. 오픈 예정인 어느 게스트하우스 이름은 등풍, ‘바람을 기다리며’다. 샤시의 마을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리장麗江 산과 눈의 도시 깊은 산속 마을 샤시를 떠나 리장으로 왔다. 종종 ‘산과 눈의 도시’라 불리는 리장은 샹그릴라香格裏拉의 입구이자 히말라야 산맥의 시작점인 위룽설산에 둘러싸였다. 리장의 이곳저곳을 오가며 눈을 돌릴 때마다 종종 위룽설산을 보았다. 리장 사람들에게는 어머니 같은 산이다. 언제나 만년설의 풍광과 함께하는 도시, 이렇게 높은 산이 늘 옆에 있다면 살아가는 데 좀 더 겸손해질 것 같다. 혹자는 리장을 보고 ‘동양의 베니스’라고 말한다. 이런 말은 적절하지 않다. 리장은 리장 그 자체일 뿐 유럽의 한 도시와 비할 바가 아니다. 외형만 봐도 리장과 베니스는 전혀 닮지 않았다. 다리가 바이족의 나라였다면 리장은 나시족納西族의 홈타운이다. 나시족의 홈타운이라곤 했지만 그렇다고 리장의 한족 인구가 적은 건 아니다. 리장에서 한족과 소수민족의 비율은 6:4 정도이고, 나시족은 전체의 23% 정도에 불과하다. 과거에 나시족 거주지이자 고원의 옛마을이었던 리장은 쓰촨四川성의 야안雅安과 더불어 차마고도의 근거지이자 무역 중심지였다. 리장에서 생산된 가죽 제품은 차와 말과 함께 티베트 라싸, 인도 등지로 팔려 나갔다. 리장고성은 남송 말기에 지어져 8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고성 안에선 100여 채의 전통가옥을 볼 수 있는데 다리고성과 다르게 성벽은 없다. 리장고성은 좁은 골목과 수로가 어우러져 낭만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명청 시대의 거리 모습도 잘 간직하고 있다. 밀려드는 관광객만 아니라면 리장고성의 운치는 2015년이 아닌 몇 백 년 전의 거리 같다. 세계문화유산인 리장고성보다 더 강하게 나를 리장으로 이끈 건 한 친구의 사연이다. 그녀는 10년 전 이곳에 여행을 왔다가 호주 남자를 만났고, 그와 결혼했다. 당시 남자는 적지 않은 나이였고, 내 짐작에 그는 아마 결혼 같은 건 별반 생각해 보지 않은 여행자였다. 하지만 인생은 알 수 없다. 결국 두 사람은 운명처럼 리장에서 맺어졌고, 딸을 낳고, 한국과 호주를 오가며 살고 있다. 이런 사연 때문에 내게 리장은 아주 로맨틱한 여행지로 여겨졌지만 실제 마주한 리장은 수많은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리장에는 수로와 함께 미로처럼 얽힌 골목길이 많다. 사실 관광객만 바글대지 않는다면 리장은 매우 낭만적인 분위기를 선보인다. 가히 연인들의 여행지다. 한데 화장이 너무 진하다. 화장을 전혀 하지 않아도 예쁜 얼굴에 과하게 화장을 한 것 같다. 좋건 싫건 밀려드는 관광객의 영향이다. 지난해 인구 100만의 도시, 리장에 2,000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왔다. 매달 리장 전체 인구보다 거의 두 배 많은 관광객이 리장을 휘젓고 다닌 셈이다. 윈난을 여행하며 관광객이 북적이는 다리고성이나 리장고성보다 고산지대의 설산을 바라보며 달렸던 길 위의 시간이 더 좋았던 이유다. 한편, 1996년 리장에 규모 7.0의 지진이 있었다. 모든 게 무너져 내렸다. 304명이 숨지고, 1만6,000명이 다쳤다. 중국 역사상 최악의 지진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나시족의 거주지인 구시가지는 무사했다. 그때부터 나시족의 목조주택은 사람들의 관심을 새롭게 받기 시작했다. 1996년 지진이 아니더라도 윈난에는 지진이 잦다. 작년에도 지진이 발생했다. 윈난은 쓰촨성과 함께 칭짱고원 지진대에 자리 잡고 있고, 활발하게 활동 중인 유라시아판 대륙과 인도판 대륙이 충돌하는 지반 사이에 위치한 탓이다. 윈난을 여행하고자 할 때 한 번쯤 고민해 봐야 할 문제다. 리장고성에서 나와 잠시 황룡담 공원에 들렀다. 황룡담에서 단풍진 가을을 맞는다. 연못 넘어 위룽설산이 아름답다. ●위룽설산玉龍雪山 당신은 옥색의 용을 볼 수 있을까 리장고성의 북쪽, 위룽설산은 리장시 위룽현에 위치한다. 해발고도는 5,596m로 한라산보다 대략 세 배 높다. 거대한 백옥 같은 용의 형상옥룡을 하고 있다고 해 옥룡산이라 부른다. 위룽설산은 나시족이 믿는 씨족신 ‘싼둬’의 화신이라고 전해진다. 이곳 사람들은 위룽설산에 나시족의 ‘사랑의 신’이 산다고 믿는다. 버스와 케이블카를 타고 위룽설산의 4,500m 지점까지 올랐다. 여기까지는 쉽다. 하지만 아직 목적지에 다다른 게 아니다. 여기서부터 계단을 따라 두 발로 걸어 180m 더 높은 4,680m 지점까지 올라가야 한다. 지대만 낮다면 이 정도쯤 오르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사람들은 손에 제각각 휴대용 산소통을 들고 헉헉거리며 산을 오르거나, 몇 걸음을 떼지 않고 종종 걸음을 멈춘다. 나도 채 몇 걸음을 오르지도 않았는데 바로 숨이 벅차다. 가이드가 준 산소통이 배낭에 있었지만 아직은 쓰고 싶지 않다. 가능하다면 온전히 내 힘으로 올라 보고 싶다. 마음은 빨리 오르고 싶지만 몸은 느리다. 숨을 헉헉거리다 문득 고개를 돌리니 하얀 빙하가 보인다. 위룽설산은 빙하가 서린 백옥 같은 산이다. 새파란 하늘 때문에 하얀 눈이 푸르게 빛난다. 30~40분쯤 올랐을까. 마침내 4,680m 지점에 올랐다. 어제 창산에서 강풍 때문에 2,900m 지점에서 멈춰 선 아쉬움을 여기 와서 말끔히 씻어 낸다. 위룽설산의 정상을 올려다본다. 이름 그대로 옥색의 용이 춤을 춘다. 위룽설산을 내려와 샹그릴라로 출발하기 전 장강長江의 상류지역인 호도협虎跳峽에 들렀다. 이름 그대로 호랑이가 건너뛴 협곡이란 말인데 위룽설산과 하바설산哈巴雪山 사이의 협곡이다. 중국 대륙을 서에서 동으로 가로지르는 총길이 6,380km의 장강은 그 길이가 워낙 큰 탓에 지역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데 윈난의 400km 구간에선 황금모래강이란 의미의 진샤강金沙江이라 불린다. 이 물줄기를 거슬러 오르면 티베트의 만년설에 이를 것이다. 멀리서 호도협 물줄기를 보았을 때는 큰 감흥이 없었다. 그러나 진샤강가로 점점 다가가자 물줄기가 포효하듯 거세다. 거대한 호랑이가 쩌렁쩌렁 산을 울리며 포효하는 것 같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호도협이란 이름은 허명무실하지 않다. 지구의 지각운동이 만든 호도협의 길이는 30km에 달한다. ●인상리장印象麗江 설산 아래서 꾼 한낮의 꿈 “우리는 농민입니다. 우리는 빛나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이 작품에 마음을 바쳤습니다.” 위룽설산을 뒤로하고 출연자들이 관객을 향해 외쳤다. 드디어 <인상리장印象麗江> 공연이 시작되었다. <인상리장>은 리장의 소수민족이 만든 공연으로 공연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전문 배우가 아니다. 열 개의 소수민족, 500여 명의 농부들이 공연을 펼친다. 출연자 수가 워낙 많은 탓에 때로는 관객보다 출연자가 더 많은 것 같다. <인상리장>은 하늘과 땅, 아직 누구도 오르지 못한 해발 5,100m, 위룽설산의 영기를 느껴 보는 공연이자 설산의 영웅들 그리고 농부들 자기 자신에게 바치는 헌사다. 원형의 거대한 노천극장은 위룽설산의 12개 봉우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풍광 아래 만들어졌다. 해발 3,100m의 <인상리장> 공연장은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공연장이다. 공연은 360도 방향에서 이루어진다. 출연자들은 때때로 말을 타고 공연장의 이곳저곳을 달린다. 윈난의 말은 조랑말이라 크진 않다. 빨리 달리지는 못하지만 가파른 산길은 잘 다닌다. 덩치는 작아도 좁고 험한 오솔길을 쉽게 오른다. 차마고도의 마방은 조랑말 없이 일할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다. 이곳 사람들이 말을 숭배하는 이유다. 둥근 객석을 휘몰아치는 말발굽 소리에 붉은 색의 대형무대는 더욱 뜨거워진다. <인상리장>은 총 6개의 무대로 나뉜다. 간단히 내용을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1장은 ‘고도마방’. 차마고도는 하늘 위를 걸어 다니는 길이다. 100여 명의 마방이 길을 나서는 모습과 홀로 남은 나시족 여인들 모습을 통해 고생을 견디고 원망하지 않는 아내와 모성의 감정을 표현한다. 2장은 ‘술잔을 들고 설산을 향한다’. 윈난의 소수민족 사람들은, 친구가 오면 술을 마시고, 친구가 가면 또 술을 마신다고 할 만큼 친구를 아끼고, 가무를 즐긴다. 3장은 ‘천상인간’. 여기는 연인들의 극락세계인 위룽설산이다. 순정의 산, 위룽설산은 윈난의 연인들이 숭배하는 산이며 위룽설산에서 청춘은 영원히 지속되고 세상의 고통은 사라진다. 4장은 ‘북을 치고 춤을 추며 노래를’. 북을 치듯 두드리는 건 리장 사람들의 오락이다. 사람들은 둥글게 서서 손을 잡고 즐겁게 춤을 춘다. 나시족 사람들은 ‘아리리’, ‘다로리’라는 춤을 추기 좋아하고, 청춘남녀는 춤과 노래로 감정을 교류한다. 5장은 ‘북을 치며 춤추며 하늘에 제사를’. 하늘에 대한 나시인들의 경배를 보여 준다. 나시족은 하늘의 아들, 자연의 형제라고 선언한다. 6장은 ‘기도의식’. <인상리장>의 대미는 출연자와 관람객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위룽설산을 향해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장면이다. 이 순간만큼은 모두가 숙연해진다. “위대한 위룽설산 앞에 선 우리들은 하늘에서 보내 주는 염원을 경건하게 받아들여 우리 모두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출연자들의 의상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윈난 여유국의 슬로건인 ‘컬러풀 윈난’은 공연한 말이 아니다. <인상리장>은 중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인 장예모 감독, 왕차오거, 판웨 세 사람이 만들었다. 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박준 취재협조 중국국가여유국 서울지국 www.visitchina.or.k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평창이 뛴다, 심장이 뛴다] 세계적인 멋, 한국적인 맛… 관광한류 새 길 연다

    [평창이 뛴다, 심장이 뛴다] 세계적인 멋, 한국적인 맛… 관광한류 새 길 연다

    환골탈태, 강원도 평창·강릉·정선 등 2018 동계올림픽 개최 도시들이 변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관광객들이 몰려올 것에 대비해 관광 인프라를 구축하고 전통문화를 새롭게 다듬는 등 분주하다. 올림픽이라는 중요한 이벤트를 계기로 산골마을을 세계 속의 도시로 각인시키려는 의도다. 서울과 인천공항에서 1시간대의 복선 전철이 놓인다. 동해와 백두대간 등 청정 자연자원을 활용하면 올림픽 이후 세계 속의 휴양과 관광· 레저도시로 각광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강릉시 통일신라 천년의 문화 품고 백두대간 청정의 자연 즐겨 통일신라 때 ‘명주군’에서 시작된 강릉은 천년의 문화가 살아 숨 쉬고 청정 자연자원, 풍성한 먹거리가 어우러진 고장이다. 동쪽으로는 푸른 동해를 끼고 서쪽으로는 장엄한 백두대간을 병풍처럼 둘러 관동팔경의 중심지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를 비롯해 김시습, 허균, 허난설헌 등 뛰어난 문인 등 인재 배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아흔아홉 구비의 전설이 깃든 대관령과 대한민국 명승 1호인 소금강,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의 오죽헌, 관동팔경의 으뜸인 경포대, 바다에서 가장 가까운 기차역을 가진 정동진역,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재인 강릉단오제를 간직한 유서 깊은 곳이다. 경포호와 경포대 경포대 누각에 앉으면 낮에는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과 물새들의 오가는 모습이 호수에 비쳐 신선들의 세계를 맛보게 하고 밤에는 달빛이 하늘과 바다, 호수, 술잔, 임의 눈동자를 비추며 시심(詩心)을 자극한다. 오죽헌과 선교장 율곡 이이 선생이 살았던 오죽헌(보물 제165호)은 바깥채, 안채, 어제각 등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조선 초기 한옥의 특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주변에는 강릉예술창작인촌이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전통 기와집 집성촌이 만들어진다. 오죽헌과 지척에는 효녕대군 11세손이 지은 18세기 만석꾼의 한옥인 선교장이 잘 보존돼 있다. 강릉대도호부관아와 강릉향교 고려 때 창건한 강릉대도호부관아(임영관)는 중앙 관료들이 내려오면 머물던 객사(客舍)가 유명하다. 현존하는 목조 건축물로는 가장 크고 배흘림 기둥양식을 간직하고 있다. 국보(51호)로 보존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강릉향교(보물 제214호)도 가 볼만하다. 정동진역과 모래시계 해돋이 명소, 드라마 ‘모래시계’ 촬영지로 유명하다.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를 배경으로 이국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모래시계 공원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모래시계를 만날 수 있다. 해마다 새해 첫날 일출과 함께 열리는 모래시계 회전행사도 빼놓을 수 없는 구경거리다. 최명희 강릉시장은 “감자가루를 밀가루와 섞어 새알 모양으로 빚어 끓여 낸 감자옹심이와 바닷물로 간수를 해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인 초당두부, 쌀과 조청 등으로 만들어 내는 100년 전통의 사천과즐(유과) 등이 유명하다”며 발달된 강릉 음식문화를 자랑했다. #평창군 대관령 양떼목장의 낭만 한 컷…태고의 신비 석회암 동굴 탐험 ‘해피 700!’ 해발 700m인 백두대간 고원지대에 있는 평창군은 대한민국 최고의 청정 고장이다. 동으로는 급하게 동해를 지척에 두고 서쪽으로는 완만한 경사를 두며 서울로 이어져 있다. 석회암 지대에는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동굴이 있고 대관령 초지에는 소와 양떼가 거니는 목장이 있다. 자연자원과 어울려 오대산을 중심으로 한 불교성지 순례와 평창의 맑고 푸른 전경을 하늘에서 굽어보며 즐길 수 있는 패러글라이딩,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계곡에서 즐기는 래프팅, 해마다 열리는 효석문화제와 해피 700 평창페스티벌, 평창 송어축제, 대관령 눈꽃잔치 등도 유명하다. 오대산 선재길 사계절 변화가 뚜렷해 인기 있는 명산으로 손꼽히는 오대산의 매력은 월정사 일주문에서 상원사에 이르는 6.2㎞ 구간의 선재길이다. 완만한 경사길은 트레킹을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이다. 완주까지는 3시간이 걸린다. 백룡동굴 5억년 전 태고의 신비와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자연 그대로의 동굴 모습을 경험할 수 있다. 한 번에 20명까지 입장해 단체관람이 가능하며 하루 6~12차례 입장할 수 있다. 효석문화마을 장돌뱅이들의 고단하면서도 낭만적인 삶을 유려한 필체로 그려낸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실제 배경이 된 마을이다. 해마다 9월이면 굵은 소금을 흩뿌린 듯 흰 메밀꽃이 지천으로 피어 효석문화제를 더욱 빛낸다. 대관령 목장 아름다운 대관령 구릉지대에 펼쳐진 목장들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대관령 양떼목장, 에코 그린캠퍼스, 대관령 하늘목장 등 관광형 목장이 밀집되어 있다. 대관령 양떼목장은 양들에게 먹이 주는 체험이 인기이다. 에코 그린캠퍼스는 서울 여의도 면적의 7.5배에 이르는 광활한 초원이다. 대관령 하늘목장은 트랙터 마차를 타고 덜컹거리는 흙길을 지나가며 주변을 관람하는 이색적인 추억을 선사한다. 주변의 풍력발전 풍차들이 이국적인 느낌을 물씬 자아낸다. 심재국 평창군수는 “건강에 좋은 메밀 배추전를 비롯해 메밀 막국수, 메밀 전병, 메밀묵 등 다양한 메밀 음식들을 맛볼 수 있고 부드럽고 쫄깃해 씹히는 맛이 일품인 평창 송어회와 대관령에서 생산하는 황태가 미식가들의 입맛을 돋운다”고 말했다. #정선군 행복 두 바퀴 레일바이크 따라 시골장터로 떠나는 추억여행 산골의 특색을 살려 ‘연중 관광객 1000만명 시대’를 활짝 열어 세계적인 관광지로 부상하는 고장이다. 도시인들에게 향수를 불러 내는 정선 5일장과 산간계곡을 활용한 레일바이크, 폐광지역의 아픔을 극복한 강원랜드, 자연자원과 어우러진 스카이워크와 짚와이어 등 전국 최고의 명품 관광지에 이어 삼탄아트마인, 지역명을 붙여 운행하는 첫 관광열차인 정선아리랑열차 등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토속적인 자원들이 어우러져 지속적인 관광 인프라가 만들어지고 있다. 정선토속음식축제, 곤드레산나물축제, 함백산 야생화축제, 정선아리랑제, 민둥산억제꽃축제, 고드름축제 등 다양한 테마축제도 끊이지 않는다. 정선5일장 맛·멋·흥이 어우러진 옛 시골장터의 모습을 그래도 간직하고 있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특산물 곤드레 등 산나물과 수수부꾸미, 메밀 전병, 콧등치기 등의 다양한 먹거리를 맛볼 수 있어 1960~70년대 시골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정선아리랑열차 관광전용 열차로 개방형 창문과 넓은 전망 창이 설치돼 어느 좌석에서든 정선의 빼어난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선평역과 나전역에서는 아름다운 간이역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고 아우라 지역에서는 정선의 토속음식을 맛볼 수 있다. 정선 레일바이크 페달을 밟아 정선선 구절리역~ 아우라 지역까지 7.2㎞ 구간을 달리는 오픈 열차다. 송천 계곡의 맑은 물, 푸른 숲, 강을 따라 난 철길 양쪽의 기암절벽, 한가로운 농촌 풍경 등 정선의 사계절 천혜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삼탄아트마인 광부들이 석탄을 캐던 탄광의 모습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어 석탄을 나르던 컨베이어 벨트, 갱도, 석탄차 등을 직접 살펴보고 체험할 수 있다. 화암동굴 ‘금과 대자연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가지고 환상적으로 꾸며 놓은 국내 유일의 테마형 동굴이다. 2800㎡에 달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석회석 광장에는 동양 최대 규모인 황종유벽, 마리아상, 부처상, 장군석, 석화 등 크고 작은 종유석이 있다. 전정환 정선군수는 “정선 5일장, 레일바이크 등 대한민국 최고의 명품관광지를 지속적으로 개발해 세계 속의 고장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강릉· 평창·정선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2월, 페브러리(February)에 관한 사실 10가지

    2월, 페브러리(February)에 관한 사실 10가지

    1년 중 가장 짧은 달인 2월이 시작됐다. 2월이 시작됐다. 1년 중 가장 짧은 이 한 달이 영어로 ‘페브러리’(February)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그 말의 유래 등은 잘 모를 것이다. 다음은 영국 일간지 익스프레스가 1일(현지시간) 2월 이른바 페브러리에 얽힌 사실 10가지를 꼽아 소개한 것이다. 2월을 맞이한 기념으로 재미삼아 읽어보자. 1. 2월을 뜻하는 페브러리는 고대 로마 시절, 2월 15일에 거행된 것으로 알려진 청정 예식 ‘페브롸’(Februa)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2. 고대 영어(1150년쯤)에서 2월은 페브러리가 아니라 흙(또는 진흙)의 달(Mud month)를 뜻하는 ‘솔마나스’(Solmonath)나 케일(또는 양배추)의 달(Kale or cabbage month)을 뜻하는 ‘케일-마나스’(Kale-monath)로 불렸다. 3. 페브러리(February)는 영어에서 ‘가장 틀리기 쉬운 단어 목록’에 자주 등장한다. 4. 미국인 역시 단어 페브러리 때문에 고생한다. 실제로 지난해 미국 백악관이 공개한 한 보도자료에는 페브러리(February)의 철자를 지속해서 ‘페뷰러리’(Feburary)로 잘못 표기했을 정도다. 5.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헛소동’(원제: Much Ado About Nothing)은 유일하게 2월(페브러리)을 언급했다. 거기에는 “왜, 무슨 일 있어? 얼굴이 마치 2월처럼 근심과 수심으로 가득 차있어”(Why, what‘s the matter, That you have such a February face, So full of frost, of storm and cloudiness?)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2월 같은 어두운 얼굴은 이 작품에서 유래됐다. 6. 기원전(BC) 45년, 줄리어스 시저 황제가 달력을 개량하기 전에는 2월이 짝수 날짜를 가진 유일한 달이었다. 나머지 모든 달은 29일이나 31일이었다. 7. 2월은 열두 달 중 보름달 없이 지날 수 있는 유일한 달이다. 물론 올해는 보름달이 있다. 보름달 없는 2월은 오는 2018년에 다시 온다. 8. 2월은 미국에서 국가 반려동물 구강 보건의 달(National Pet Dental Health month)이며, 따뜻한 아침 식사의 달(Hot Breakfast month)이기도 하다. 여기서 따뜻한 아침 식사는 차가운 우유에 시리얼을 말아먹는 것이 아니라 달걀부침이나 베이컨 등 따뜻하게 조리한 음식을 아침으로 먹는 것을 말한다. 9. 2월의 탄생화는 제비꽃(바이올렛)이나 붓꽃(아이리스)이라고 한다. 제비꽃의 꽃말은 겸손, 성실, 충실, 덕행이며, 붓꽃의 꽃말은 충실, 지혜, 희망이다. 10. 2월의 탄생석은 자수정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자수정으로 만든 술잔이 취기를 없애준다고 믿었다. 사진=ⓒ포토리아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32] 오늘 당신이 암 선고를 받는다면

    잊을 수 없는 친구 얘기부터 할까 합니다. 그냥 만나면 좋고, 못 만나면 그만인 사람이 아니라 나중에 일 할만큼 한 뒤에는 어디로든 함께 떠나 허름한 초막이라도 엮어 함께 노후를 보내자고, 그러다가 눈을 감으면 남은 사람이 뒷처리를 해주는 장례부조 약속까지 한 터이니, 살붙이 같은 친구였지요. 그 친구는 술을 좋아했습니다. 저와 만나면 계산이나 잇속을 따져 한 자락 깔거나 그딴 짓 하지 않고 술잔을 건넬 수 있어 참 좋다고 말해 쌓던 그 친구는 자기 삶에 대한 열정이 넘쳐 세상 일에 자주 분개했고, 콧물을 훌쩍이며 뭔가에 대한 연민에 가슴 아려하기도 했었지요. 그러던 친구가 어느 날 술이나 한 잔 하자며 연락을 해왔습니다. 흔한 일이니 이상할 것도 없이 만나 소줏잔을 비우다가 일어났는데, 갈림길에 다다르자 그가 제 어깨를 감싸더니 귀에 대고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야, 나 암이래. 두경부암” 순간, 귀를 의심했습니다. ‘이게 벌써 취했나’ 싶어 다그치니 사실이었습니다. 씩씩한 척 말은 했지만 눈시울이 젖어 있었습니다. “며칠 됐는데, 아직 식구들한테 말도 못 했어”라면서 껴안는데, 눈앞이 캄캄해지더군요. 그게 벌써 십 수년 전, 나이 마흔도 되기 전에 그가 받은 암 진단이 얼마나 두렵고 막막한 ‘선고’였겠습니까. 할 수 있는 것 다 했지만, 끝내 그 친구를 살려내지 못 했습니다. 늦은 결혼 탓에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 하나 달랑 남겨두고 그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그 상처가 깊었습니다. 오랫동안 그 친구의 얼굴을 지우지 못했습니다. 상실의 공허를 감당하지 못해 한동안 세상을 겉돌기도 했습니다. 다른 일로도 몇몇 친구를 잃었지만, 내게는 그만한 아픔이 없었던, 어제일 같은 기억입니다. 그 때부터 ‘암’은 내게 막연하나마 불가항력의 두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는 세포입니다. 이 세포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정상 세포이고, 다른 하나는 유전자의 비정상적인 변이에 의해 생기는 세포입니다. 후자를 우리는 암이라고 말합니다. 정상적으로 세포는 세포 자체의 조절기능에 의해 분열하고, 성장하며, 나중에는 죽어 없어져 일정한 세포 수를 유지합니다. 이런 경우라면 어떤 원인으로 세포가 손상을 받아도 치료를 통해 회복해 정상 세포로서의 역할을 하거나 아니면 아예 사멸해 없어지므로 문제가 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무슨 연유에선지 세포의 유전자에 변화가 일어나면 비정상적으로 세포가 변이하면서 불완전하게 성숙하고, 과다하게 증식하는데, 이것이 바로 암(cancer)입니다. 정상 세포와 암세포는 다른 특성을 보입니다. 암세포는 정상 세포가 드러내지 않는 능력, 이를테면 주변의 조직이나 장기에 침입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정상 세포를 파괴하고, 이로 인해 신체 기능을 극한까지 떨어뜨리는 특징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암세포는 증식을 억제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점입니다. 이는 치료가 어렵다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증식을 억제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상 세포를 파괴하거나 장기와 조직을 망가뜨리는 ‘짓거리’를 막기 어려운 것이지요. 그러니 암이 두렵다고 여길 밖에요. 지금도 그런 인식이 완전히 불식된 것은 아니지만, 20년전, 아니 불과 10년 전만 해도 암 진단을 받으면 세상이 끝났다고 여겼던 사람이 많았습니다. 절박한 심정에 전국의 병원과 의사를 다 찾아 다니고, 한방에 민간요법까지 아는 대로 다 해보고, 그것도 모자라 무당을 불러 푸닥거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웃지 못할 일들이지요. 정황이 이러니 환자가 차분하게 치료 계획을 세우고, 자신의 삶을 정리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환자는 낙담 천만인데, 주변에서 더 호들갑을 떨어대고, 마치 환자가 죽을 날이라도 받아든 듯 야단법석들이었지요. 암은 불치병이 아니며, 그러니 환자가 최적의 치료를 받아 완치해야 하며, 그러려면 환자의 심리를 파악해 이성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은 그 후의 일이었습니다. 이 단계에 들어서 비로소 ‘환자의 단계별 심리’라는 그럴듯 한 반응체계가 제시됐습니다. ●‘충격’과 ‘현실인식’ 그리고 ‘달관’ 의사로부터 최종적으로 암이라는 진단을 받은 환자가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감정은 충격과 불안 그리고 그런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부정 의식입니다. 이걸 심리반응 1단계라고 합니다. 암이라는 사실을 안 환자의 첫 반응은 대부분 “내가 그럴 리가 없다”, “믿어지지 않는다”라는 식입니다. 환자는 이런 부정 의식을 통해 내면의 불안감을 소멸시키려고 하는데, 이는 일종의 심리방어 기전에 해당합니다. 사람들이 갖는 불안감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생성되지만 기본적으로는 이유나 방향성이 뚜렷하지 않고, 실체를 모르는 현상이나 대상과 마주칠 때 발현된다는 특성을 갖습니다. 따라서 환자가 느끼는 불안을 해소하거나 줄이기 위해서는 불안의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것만으로도 불안의 상당 부분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게 심리 전문가들의 견해이고 보면, 가족이나 의료진이 환자를 위해 1차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은 나와있는 셈이지요. 환자가 느끼는 막연하지만 강한 불안을 구체적인 불안으로 환치시킨 뒤 이를 해소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환자가 ‘나의 병은 고칠 수 없다’고 믿는다면 ‘아니다. 고칠 수 있다’,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도록 해야 하고, ‘나는 곧 죽겠지’라고 자포자기한다면 ‘그렇지 않다. 넌 죽지 않는다’는 믿음을 갖도록 하는 것이지요.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두려움에 대처하는 방식은 모두가 다릅니다. 누군가는 ‘그래. 여기까지야’라고 생각하는 반면 다른 누군가는 ‘이런 것 쯤이야’라며 맞서는 자세를 보이기도 하지요. 여기서 두려움을 좀 더 구체적으로 특정해 볼까요. 불안의 실체를 알면 대응책을 찾기가 쉽습니다. 그러면 환자를 좀 더 효율적으로 안정시킬 수 있고, 그래야 긍정적으로 치료를 수용해 완치에 더 쉽고 빠르게 다가서니까요. 흔히 환자들이 느끼는 불안은 ▲미지에 대한 두려움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 ▲가족과 친구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 ▲자기조절능력 상실에 대한 두려움 ▲육체의 상실과 무력감에 대한 두려움 ▲고통과 괴로움에 대한 두려움 ▲정체성 상실에 대한 두려움 ▲슬픔에 대한 두려움 ▲퇴행에 대한 두려움 ▲절단과 부패, 매장에 대한 두려움 등이 있으며, ▲치료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 ▲경제적 부담에 대한 두려움 ▲가족들의 고통에 대한 두려움 ▲자기 병에 대한 가족들의 대응과 반응에 대한 두려움 ▲잊혀지거나 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들도 여기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 단계를 거치면 반응성 우울기가 찾아옵니다. 2기 반응입니다. 이 때는 불면증과 식욕상실, 의욕감퇴, 슬픔과 일상적인 생활 패턴의 붕괴 양상을 보이며, 더러는 “왜 하필 나에게…” 하는 식의 분노감이 섞여 나타나기도 하고, “그래, 이번엔 나구나”라며 자포자기하는 양상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이런 심리는 우울한 정서나 감정으로 이어지기 쉬운데, 만약, 암 진단을 받고 우울 증세를 보인다면 이 단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울은 예기치 않게 힘겨운 상황과 마주치거나 죽음 등 극단적인 상황에 직면했다고 믿을 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정서적 반응이지만, 환자가 적극적인 치료를 필요로 한다는 암시이기도 합니다. 전문의들은 “이 단계에서는 환자에게 지지를 보내고,치료에 대한 확신과 용기를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그럴 경우 우울과 슬픔의 정서가 의외로 쉽게 치료에 대한 순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반응 3기는 흔히 낙관기라고 말하는 단계입니다. 의사가 최선을 다해 치료할 것이며, 치료 결과가 좋으리라는 희망이 커져 이전까지 모든 상황을 비관적으로 받아들이던 환자 중 상당수가 자신의 처지나 상황을 낙관적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또, 실질적인 치료가 시작되어 병세가 호전되면 암과의 싸움에서 기선을 제압했다는 믿음 때문에 희망적 자세가 한층 견고해지기도 합니다. 4기는 자신의 상황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거나, 종교 등을 통해 절대자와 교접하려는 특성을 보이는 단계입니다. 이 때는 환자들이 특정 종교를 찾기도 하고,철학적 명제에 집착하는 등 나름대로의 인생관이나 생사관이 성숙해집니다. ●암을 치료하는 두가지 방법 암을 치료하는 방법은 무척 다양합니다. 암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큰 병원에서 제시하는 루틴한 치료법도 있고, 한의학적 접근도 있으며, 대체의학적 치료나 민간요법에 의존하는 환자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단계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치료책은 병원을 찾아 정확하게 상태를 파악한 뒤 여기에 어울리는 치료를 받는 것입니다. 물론 한의학 분야에서도 부분적으로 치료책이 제시되고 있지만, 아직 일반화하기에는 이른 감이 없지 않습니다. 의료계에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넥시아’도 여기에 해당될 것입니다. 이 문제는 아직 검증이나 논란이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았으므로 치료 효과를 속단하기는 어려운 문제이며, 따라서 이후의 검증 과정을 좀 더 지켜보는 것이 현명할 듯 합니다. 유럽 등지에서는 대체의학을 활용하는 추이도 뚜렷하지만, 인종과 섭생 등 생활 환경이 전혀 다른 우리가 확신 없이 그런 방식을 받아들이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치료 효과에서 일관성을 구할 수 없는 민간요법은 더욱 위험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민간요법으로 암을 치료했다는 황당한 얘기들이 더러 떠돌기도 합니다만, 대부분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환자들의 심리를 이용해 돈 좀 벌어보려는 얄팍한 상술이 개입됐을 가능성이 큰만큼 물색없이 현혹되지 말기 바랍니다. 동서양 의학계가 지금도 암을 잘 치료하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하고 있고, 그런만큼 또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제시한 두 가지 암 치료법은 ▲병원에서 충분히 검증된 방법을 적용해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는 방법과 ▲완화의료입니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한 가지 방법만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 두 가지 방법을 같이 적용하는 사례도 많습니다. 적극적인 암치료란, 몸안에 자리잡은 암 덩어리를 인위적으로 없애거나 줄이는 치료를 말합니다. 이를 위해 동원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수술과 항암화학요법, 그리고 방사선치료입니다. 이 세 가지가 대표적이지만, 치료적 접근이 이것 뿐인 것은 아닙니다. 국소치료, 호르몬요법, 광역학치료, 레이저치료에 최근에는 면역요법이나 유전자요법까지도 적용하고 있으며, 간암 등에 흔히 적용하는 색전술이나 동위원소치료 등도 모두 이 범주에 포함됩니다. 이에 비해 완화의료는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증상을 조절하는데 초점을 맞춘 치료로, 최근 들어 그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완화의료는 환자의 삶의 질에 집중하며, 앞서 거론한 적극적인 치료처럼 완치를 겨냥해서 접근하지 않습니다. 일련의 의료적 조치가 치료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말기암이나 달리 적극적인 치료를 할 수 없을만큼 병약한 환자가 주요 대상입니다.  ●암 치료 방법의 선택 기준 사실, 쉽게 치료라고 말하지만, 모든 치료가 모든 환자들에게 이득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약이라도 잘 듣는 환자와 안 듣는 환자가 있을 수 있고, 또 모든 환자에게 이득을 주는 치료라도 반드시 빼앗아 가는 게 있습니다. 따라서 의료진이 치료 방식을 선택할 때는 환자가 얻을 ‘이득’과 ‘손해’를 따져서 결정하게 됩니다. 수술도 그렇고, 항암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술은 암 병변을 제거하는 근치적 접근이지만 불가피하게 정상 조직을 일정 부분 훼손할 수밖에 없고, 항암제도 당연히 정상 조직에 영향을 끼치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의료진과 환자는 쉽지 않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기준은 간단합니다. 오로지 좋기만 하거나 나쁘기만 한 치료라는 건 어치피 없으므로 그 치료를 통해 얻는 것과 잃는 것은 면밀하게 따져서 가장 이상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무슨 치료가 종합적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보장하는가를 따지고 고민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만약 어떤 환자가 치료효과가 분명한데도 부작용이 두려워 특정 방식의 치료를 거부한다면 이는 현명한 결정이 아니겠지요. 어떤 치료든 일정 부분의 부작용이나 후유증은 감수해야 하니까요. 일부 말기암의 경우 치료로 얻는 손실이 이득보다 클 경우 적극적인 치료 대신 완화의료에 집중해 환자가 심신의 안정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닐 것입니다. 또 일반적이지만, 암은 말기에 가까울수록 치료를 통해 얻는 이득보다 손해가 커진다는 점도 함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암 생존율에 대해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합니다. 암의 경우 보편적으로 ‘5년 생존율을 적용하는데, 이는 ‘치료를 시작한 날부터 5년 이내에 해당 암으로 사망한 환자를 제외한 환자의 비율’입니다. 이 경우 재발하거나 암이 진행중이더라도 현재 생존해 있으면 생존율에 포함됩니다. 일부에서는 보다 정확한 통게를 위해 ‘암의 징후가 없는 생존율’, ‘암의 진행이 없는 생존율’ 등으로 구분해 사용하기도 합니다.  ●“자녀들을 꼬옥 안아주세요” 서울아산병원이 최근 ‘암환자 자녀 마음건강 클리닉’을 개설했습니다. 환자가 아니라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 클리닉이라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암은 환자 자신은 물론 가족 모두에게 엄청난 스트레스인데, 특히 어린 자녀들에게는 무엇보다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인들이야 스스로를 추스를 수 있지만 성장기 자녀들은 어른들보다 훨씬 강한 충격을 받게 되고, 이런 고통을 감당하는 일에 미숙해 자칫 큰 상처로 남을 수도 있으니까요. 암 때문에 돌연 부모와 떨어져 생활해야 하며, 부모가 암을 치료하면서 경험하는 수많은 스트레스에 직접·간접적으로 노출되어 혼란·불안·걱정·두려움 등 부정적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당연히 자녀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심하면 학교생활에 문제가 생기기도 하지요. 그뿐이 아닙니다. 환자는 치료 과정에서 겪는 스트레스에 더해 부모 역할을 못한다는 죄책감과 양육 스트레스 때문에 극심한 불안,우울감에 빠지는 사례도 허다합니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상태를 자녀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전문의들은 조언합니다. 만약, 아이들이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암 투병 기간이 길어져 아이들이 너무 오래 스트레스에 노출되고 있다면 아이를 데리고 전문의를 찾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서울아산병원 소아정신건강의학과 김효원 교수는 “암을 치료 중인 부모가 보이는 태도가 아이들의 적응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환자 자신과 아이 모두의 마음을 꼼꼼하게 살피고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참고로, 이 병원에서 마련한 ‘암 환자 자녀의 마음건강 지키기 십계명’을 한번 살펴보지요. 1.환자 자신의 마음을 돌봐라. 2.암에 걸렸고, 치료를 받는다는 사실을 솔직히 말하라. 3.아이들은 암에 대처하는 부모의 자세를 배운다는 점을 명심하라. 4.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줘라. 5.아이의 불안이나 걱정, 반항적인 행동을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여겨라. 6.아이의 잘못으로 암에 걸린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말하라. 7.많이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해 줘라. 8.평상시와 똑같이 학습과 훈육을 지속하라. 9.배우자나 가족, 친구들에게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라. 10.가족들이 힘을 모아 어려움을 이겨내자고 말하라.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 자신이다 암으로 진단된 경우 많은 사람들이 ‘선고’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암이 주는 두려움이 짙게 배어있는 말입니다. 감기든 암이든 그냥 진단이라면 될 일인데 이런 식으로 암에 주눅이 든다면 환자에게 좋을 일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암, 너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떤 의사들은 암까지도 자신이 가진 것 중의 일부라고 여기고 살살 달래면서 동행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게까지는 못 하더라도 지금의 의학 수준이라면 충분히 희망을 가져도 됩니다. 요즘처럼 사람의 수명이 긴 세상이라면 평생 암에 한번이라도 노출될 가능성이 30∼40%쯤 됩니다. 10명 중 3∼4명이 걸리는 암이라면 일상적인 건강 수칙, 즉, 정기적인 검진과 건강한 생활을 하더라도 피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고, 그러니 지나치게 “암, 암”하면서 살 필요가 없다는 뜻이지요. 국가암정보센터의 집계에 따르면, 2009∼2013년 국내 암 발생자의 5년 생존율은 69.4%에 이릅니다. 환자 10명 중 7명 가량이 5년 이상 생존한다는 뜻이지요. 성별 5년 생존율은 여자가 77.7%, 남자 61.0% 정도인데, 이는 성별 특성 때문이라기보다 여자의 경우 생존율이 높은 갑상선암과 유방암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됩니다. 앞서 말한 필자의 친구는 애써 의연한 척 했지만 치료가 진행되면서 희망보다 절망을 더 자주 생각했던 듯 합니다. 그래선지 의사를 만나면 “생각보다 병증 개선이 더디다”고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는데, 아쉬운 것은 제가 그를 좀 더 사려 깊게 돕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가 낙담하면 같이 풀이 죽었고, 그가 힘들어 하면 저도 힘든 척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친구에게 저는 어떤 희망도 주지 못했고, 아픈 그를 더 아프게 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새삼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그래설까요. 지금 제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그 때와는 다르게 대처하고 대응할 것 같습니다. 우선, 좋은 병원, 좋은 의사를 선택해 그를 믿고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슬플 땐 슬퍼하고, 울고 싶다면 울게 하겠지만 음울한 기운에 휩싸여서 살지 않도록 돕겠습니다. 여생을 정리하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여지껏 해보지 못했던 일들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가족들과 맛난 것도 먹고, 여행도 다니라고 떠밀고 싶고, 운동도 어거지가 아니라 하고 싶은 걸 골라서 재밌고 신나게 하도록 이끌겠습니다. 가끔은 전시장이나 공연장에서 감흥을 느끼는 일상, 가볍게 영화를 보면서 울고 웃게 하는 일도 그 때는 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만약 이런 일들을 주저없이 했더라면, 어쩌면 많은 것이 달라졌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똑같은 기간을 살았더라도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무거운 회한을 남기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 친구도 길지는 않았지만 잘 살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덧붙여, 그 친구가 생의 마지막에서 그토록 힘들어 했던 그런 유의 연명치료는 받지 말도록 권하고 싶습니다. 의학적으로 어떤 기대도 가질 수 없는 치료를 이미 가냘퍼진 그에게 강제하고, 강요한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암이 다른 질환에 비해 치료가 어려운 건 맞지만 감당 못할 병은 아니고, 또 병원에 가보면 암 말고도 어려운 치료는 많습니다. 그럼에도 암을 아주 특별하게 생각해 당장 내 몸에 없는데도 겁을 먹고, 진단 후에는 절망부터 먼저 하는 어이없는 시행착오를 겪지 마시기 바랍니다. 남의 일이라고 여겨 이렇게 말하는 건 아닙니다. 제게 그런 일이 닥친다면 저는 심호흡을 하고 심장을 안정시킨 뒤, 시간을 갖고 천천히 제 삶의 계획을 조금 수정하겠습니다. 예기치 않았던 변수가 생긴 탓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하니까요. 하지만 ‘끝’이라고 여기지는 않겠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는 게, 우리가 일군 의학이 그렇게 하찮지 않거든요. 그런 의학에다 저의 의지와 각오를 녹여 넣는다면 누가 뭐래도 희망의 여지가 훨씬 큽니다. 이제는 암도 희망인 그런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jeshim@seoul.co.kr
  • [마리아나 원정대] Night Life 사이판, 로맨틱, 성공적

    [마리아나 원정대] Night Life 사이판, 로맨틱, 성공적

    ●Night Life 글 정연주, 배주한, 임지원 사진 배주한 사이판, 로맨틱, 성공적 저녁이면 적도의 섬에도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분다. 작은 섬을 달구던 태양이 자취를 감추면 비로소 사이판의 뜨거운 나이트 라이프가 시작된다. 반짝반짝 켜지는 조명을 신호로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들이 삼삼오오 가라판 시내로 몰려든다. 마주치는 술잔에는 진한 추억이 녹아든다. 오늘을 즐길 준비가 끝났다면 물놀이의 피로는 시원한 맥주 한 잔에 씻어 보내자. 샌드 캐슬 매직 쇼Sand Castle Magic Show“We bring Las Vegas to you.” 홍보 문구대로 라스베이거스의 매직 쇼를 사이판에서 볼 수 있다. 2002년부터 사이판의 가장 화려한 엔터테인먼트로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마술쇼. 신비한 음악과 화려한 빛이 가득 찬 무대에 마술사와 두 명의 미녀가 등장하면서 마술은 시작된다.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기도 하고, 신체의 일부가 절단되었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가 하면, 링과 카드와 지폐가 등장하는 고전적인 마술이 연이어 펼쳐진다. 텅 빈 무대에 갑자기 하얀 호랑이가 등장하는 장면은 쇼의 하이라이트. TV에서 보았을 법한 마술들이 실제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뿐 아니라 관객을 초대해 마술에 참여시키기도 하고, 풍선을 이용한 퍼포먼스로 어린이 관객을 즐겁게 하기도 한다. 마술만 있는 것도 아니다. 테마가 바뀔 때마다 미녀들의 아크로바틱한 공연으로 서커스적인 느낌도 가미되어 약 1시간 가량의 쇼타임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공연은 가라판의 중심에 위치한 하얏트 호텔의 샌드캐슬 쇼룸에서 월요일과 목요일을 제외한 매일 저녁 진행되며, 한국어를 포함한 4개 국어로 안내방송을 한다. 예약은 ‘샌드캐슬 사이판’ 홈페이지와 전화 팩스, 이메일 등으로 할 수 있다. 예약시 생일, 결혼기념일 등등의 정보를 미리 알려주면 공연장 모니터에 축하 멘트가 올라가는 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다. 사진 및 동영상 촬영이 금지되어 있으며, 호텔 왕복 픽업 서비스가 포함된다. 디너쇼(식사 제공) 19:00~20:15, 칵테일쇼(음료 한 잔 제공) 19:00~20:15, 20:30~21:30 좌석에 따라 칵테일쇼 성인 $80, $94, $125 / 아동 $30, $35, $55. 디너쇼 성인 $94(3코스), $125(4코스), $185(4코스) / 아동 $35(3코스), $55(4코스), $80(4코스) 아동 요금은 별도 문의 www.saipan-sandcastle.com/kr 하얏트 호텔 1층 SAND CASTLE +1 671 649 7263 , 070 7838 0166 (한국에서) 북마리아나 유일의 카지노, 베스트 선샤인 라이브 사이판 최초의 럭셔리 카지노인 베스트 선샤인 라이브Best Sunshine Live가 최근 오픈했다. 사이판 시내 중심 가라판에 위치한 면세점 T 갤러리아에 들어선 베스트 선샤인 라이브는 총 45개의 게임 테이블과 106개의 최신 슬롯머신 등을 갖춘 사이판 최초의 카지노 업장이다. 대표적인 게임으로는 타이세이, 블랙 잭, 바카라 등의 테이블 게임을 포함, 대형 모니터로 즐길 수 있는 룰렛, 아시아의 인기 게임인 파파파 등 다양한 슬롯 게임들도 갖추고 있다. T-Galleria, Beach Road, Garapan Saipan +1 670 237 9199 조니스 바 & 그릴Jony’s Bar & Grill연인과 소곤소곤 비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면 조니스 바 & 그릴을 추천한다. 다트, 당구, 게임기를 갖추고 있어 간단한 오락을 즐길 수 있으며 매주 금·토요일 저녁에는 로컬 밴드의 공연도 준비되어 있다. 무엇보다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활짝 오픈된 테라스석. 포근한 바람이 목덜미를 스치면 절로 미소가 피어오른다. 왠지 가슴이 뛰는 건 착각이 아니다. 10:00~02:00 주스, 소다, 와인, 샴페인, 위스키를 비롯한 각종 주류와 간단한 식사happy hour 16:00~19:00, 주류 $1 할인 | 무료 Wifi 가능 | 추천메뉴 original mojito +1 670 233 9019 갓파더스 바Godfather’s Bar시끌벅적한 현지의 밤 문화를 즐기고 싶다면 단연코 갓파더스 바에 가야 한다. 이곳에는 다양한 국적의 여행자가 모인다. 영화 <대부>의 얼굴이 프린트된 포스터부터 내부를 장식한 개성 넘치는 아이템들까지! 문을 들어서자마자 심상치 않은 활기가 전해진다. 커다란 앰프를 타고 흘러나오는 흥겨운 음악에 어느새 어깨를 들썩이게 될 것이다. 일요일 17:00~24:00, 월·화요일 16:00~24:00, 수·목·금요일 16:00~01:00, 토요일17:00~01:00 | 매일 밤 21:00~24:00 라이브 공연 맥주, 보드카, 데킬라, 진, 럼, 꼬냑, 위스키 등 다양한 주류와 간단한 식사 | 선불 계산 +1 670 233 2333 에디터 천소현·손고은 기자 취재 트래비 마리아나 원정대 취재협조 마리아나 관광청 www.mymarianas.co.k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최고의 칵테일 맛은 얼음 녹기 전 10분

    최고의 칵테일 맛은 얼음 녹기 전 10분

    그 흔한 안내 표지판도 없다. 대리석 벽 사이로 툭 튀어나온 문고리를 잡아 돌리면 꽁꽁 숨겨져 있던 고급스러운 바(Bar)가 모습을 드러낸다. 지난해 10월 문을 연 특급호텔 포시즌스 호텔 서울의 유명 바 ‘찰스 H’다. 찰스 H는 문을 연 지 3개월 정도밖에 안 됐지만 서울 강북 지역 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바다. 미국 작가이자 칵테일 애호가인 찰스 H 베이커의 이름을 딴 이 바의 콘셉트는 뉴욕 금주법 시대의 바다. 숨겨진 입구를 통해 내부로 들어가면 고풍스러우면서도 화려한 인테리어와 함께 금빛 테이블에 새겨진 한국 민속화 등이 묘하게 어우러진다. 80석 자리는 언제나 가득 찬다. 유명세를 탄 찰스 H는 칵테일을 중심으로 판매하는 바임에도 불구하고 오후 7시 반이 되면 자리가 거의 찬다. ●칵테일 빨리 마시고… 맥주·위스키는 천천히 찰스 H의 주종목은 30여 종류나 되는 독창적인 칵테일이다. 개성 강한 찰스 H의 칵테일을 만드는 주인공은 이곳의 헤드 바텐더 크리스토퍼 라우더(28)다. 지난 15일 만난 라우더는 바텐더가 되기 전 미국 델라웨어대에서 동아시아학을 전공하고 중국 베이징어언대에서 만다린어를 공부한 뒤 통역사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중국에서 다양한 술의 세계를 접하고 매력을 느껴 바텐더의 길에 들어섰다. 미국 최고의 칵테일 경연대회인 2014 제임스 베어드 어워드를 수상했다. 지난해 포시즌스 호텔 서울 개관 때부터 합류했다. 라우더가 말하는 칵테일을 즐기는 방법은 ‘10분 안에 마시기’다. 다양한 술과 얼음, 음료와 과일 등이 조화를 이뤄 만들어지는 게 칵테일이다. 얼음이 녹는 동안 바텐더가 구상한 최상의 조합이 깨지기 시작한다. 라우더는 “바텐더가 맛과 향, 술의 온도 등을 최적으로 계산해 제공했을 때 빨리 마시고 다음에 맥주나 위스키 등 천천히 즐겨도 되는 술을 마시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칵테일의 매력은 다양한 칵테일을 마시면서 자신의 취향을 찾아간다는 데 있다. 라우더는 “맨해튼, 마티니 등 여러 칵테일들이 유행하긴 했지만 칵테일 문화가 확산되면서 사람들이 자신만의 개성을 살린 칵테일을 찾게 돼 칵테일의 수준도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라우더가 추천하는 찰스 H의 칵테일로는 ‘사우스 사이드 피즈’, ‘레이 펑’, ‘리멤버 더 메인’ 등 3가지다. 사우스 사이드 피즈는 모히토를 연상시키는 시원하고 상큼한 맛의 칵테일이다. 드라이진과 레몬 주스, 탄산수, 클럽 소다, 심플 시럽 등을 이용해 만든다. 레이 펑은 영롱하게 빛나는 호박색이 매력적이다. 스카치 위스키, 칼바도스, 코키 아메리카노 등을 한데 섞어 만든다. 스카치 위스키 특유의 쌉싸름한 맛이 옅어지고 은은하게 향을 즐길 수 있다. 라우더가 이달의 칵테일로 추천하는 건 리멤버 더 메인. 라이 위스키, 이탈리안 베르무트, 체리 브랜디, 압생트, 비터스 등을 이용해 만든 칵테일로 새빨간 루비 빛깔이 인상적이다. 라우더는 “레드 와인과 같은 느낌을 주는 칵테일이라 마셨을 때 몸이 따뜻해지는 특징이 있어 추운 겨울에 마시기 좋은 술”이라고 추천했다. 레드 와인이 육류와 잘 어울리는 것처럼 이 칵테일을 마실 때 어울리는 안주로는 육회가 꼽힌다. 리멤버 더 메인의 개성은 칵테일을 만들기 전 라우더가 칵테일 잔 안에 분무기로 6차례 뿌리는 ‘압생트’에 있다.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즐긴 것으로 유명한 압생트의 도수는 65도 정도로 매우 높은 편이다. 이런 부담스러움을 줄이고 압생트 특유의 향을 살리기 위해 라우더는 술을 섞는 대신 분무기로 술잔에 뿌려 향을 낸다. 이로써 리멤버 더 메인을 마실 때 향과 맛, 시각적 즐거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한라봉·소주 섞은 ‘제주쿨러’ 도전장 라우더가 새롭게 도전하려는 칵테일은 소주와 막걸리 등 우리나라의 전통 술을 이용해 만드는 칵테일이다. 포시즌스 호텔 서울 라운지 카페인 ‘마루’에서 판매하는 ‘제주쿨러’라는 칵테일은 한라봉과 소주를 이용해 만들었다. 화려한 손 기술과 다양한 술이 조화를 이뤄 만들어지는 칵테일은 고급 바에서만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라우더는 “클래식 칵테일인 맨해튼과 모히토, 마티니는 셰이커 등 칵테일 도구를 가지고 얼마든지 자유롭게 집에서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5300년 된 냉동미라는 헬리코박터 보균자 (사이언스紙)

    5300년 된 냉동미라는 헬리코박터 보균자 (사이언스紙)

    1991년 알프스 빙하지대에서 온몸이 꽁꽁 언 채로 발견된 ‘아이스맨’은 세상을 한동안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바로 5300여 년 전인 석기시대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미라 외치(Ötzi)다. 최근 이탈리아 볼자노에 위치한 ‘유럽아카데미 미라 및 아이스맨 연구소’(EURAC)는 외치의 위에서 위염 등을 일으키는 박테리아를 발견했다는 연구결과를 세계적인 과학지 사이언스(science) 최신호에 발표했다. 국내에서도 큰 화제를 일으킨 외치는 150cm 키에 40대 후반의 남자로, 왼쪽 어깨 부근에 화살을 맞고 피를 많이 흘려 죽은 것으로 추정돼왔다. 그러나 지난 2013년 EURAC측은 외치의 뇌 조직에서 추출된 단백질과 혈액 세포를 현미경으로 조사한 결과, 외치가 죽기 직전 머리에 타박상을 입어 사망했다는 결론를 내렸다. 여전히 외치의 사인은 명확치 않지만 ‘유럽 최초의 피살자’란 별명은 외치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고 있다. 이번에 EURAC측은 유전자 분석을 통해 외치의 위에서 헬리코박터 파일로리(Helicobacter pylori)라는 세균을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일반적으로 헬리코박터균으로 불리는 이 세균은 위염, 위궤양 등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한국인의 경우 50% 이상이 보균자로 알려져있다. 이번 발견이 의미가 있는 것은 수천 년 전 인류의 발병 경로를 추적할 수 있는 작은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헬리코박터균은 사람의 구강을 통해 전염된다. 함께 음식을 나눠 먹거나 입맞춤 등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감염되기 때문에 특유의 찌개문화와 술잔돌리기에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헬리코박터균 보균자가 많다. EURAC측은 크게 아시아와 아프리카 두 줄기에서 생겨난 초기 헬리코박터균이 인류와 수천 년 이상 함께 해왔으며 이 둘이 합쳐져 진화한 헬리코박터균이 현재 유럽인들 위 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연구를 이끈 프랭크 맥시너 박사는 "외치를 완벽하게 해동한 후 위 샘플 조직을 얻어낼 수 있었다"면서 "외치가 죽었던 시기에는 이미 헬리코박터균을 가진 아프리카인들이 유럽에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편 유럽에서는 외치의 발견과 더불어 ‘아이스맨의 저주설’도 회자되는데 이는 외치를 처음 발견한 등산가 헬무트 시몬이 2004년 등반 도중 사망하고 이후 발굴과 연구에 참여했던 6명이 사고나 질병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5300년 전 냉동미라, 알고보니 헬리코박터 보균자 (연구)

    5300년 전 냉동미라, 알고보니 헬리코박터 보균자 (연구)

    1991년 알프스 빙하지대에서 온몸이 꽁꽁 언 채로 발견된 ‘아이스맨’은 세상을 한동안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바로 5300여 년 전인 석기시대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미라 외치(Ötzi)다. 최근 이탈리아 볼자노에 위치한 ‘유럽아카데미 미라 및 아이스맨 연구소’(EURAC)는 외치의 위에서 위염 등을 일으키는 박테리아를 발견했다는 연구결과를 세계적인 과학지 사이언스(science) 최신호에 발표했다. 국내에서도 큰 화제를 일으킨 외치는 150cm 키에 40대 후반의 남자로, 왼쪽 어깨 부근에 화살을 맞고 피를 많이 흘려 죽은 것으로 추정돼왔다. 그러나 지난 2013년 EURAC측은 외치의 뇌 조직에서 추출된 단백질과 혈액 세포를 현미경으로 조사한 결과, 외치가 죽기 직전 머리에 타박상을 입어 사망했다는 결론를 내렸다. 여전히 외치의 사인은 명확치 않지만 ‘유럽 최초의 피살자’란 별명은 외치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고 있다. 이번에 EURAC측은 유전자 분석을 통해 외치의 위에서 헬리코박터 파일로리(Helicobacter pylori)라는 세균을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일반적으로 헬리코박터균으로 불리는 이 세균은 위염, 위궤양 등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한국인의 경우 50% 이상이 보균자로 알려져있다. 이번 발견이 의미가 있는 것은 수천 년 전 인류의 발병 경로를 추적할 수 있는 작은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헬리코박터균은 사람의 구강을 통해 전염된다. 함께 음식을 나눠 먹거나 입맞춤 등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감염되기 때문에 특유의 찌개문화와 술잔돌리기에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헬리코박터균 보균자가 많다. EURAC측은 크게 아시아와 아프리카 두 줄기에서 생겨난 초기 헬리코박터균이 인류와 수천 년 이상 함께 해왔으며 이 둘이 합쳐져 진화한 헬리코박터균이 현재 유럽인들 위 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연구를 이끈 프랭크 맥시너 박사는 "외치를 완벽하게 해동한 후 위 샘플 조직을 얻어낼 수 있었다"면서 "외치가 죽었던 시기에는 이미 헬리코박터균을 가진 아프리카인들이 유럽에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편 유럽에서는 외치의 발견과 더불어 ‘아이스맨의 저주설’도 회자되는데 이는 외치를 처음 발견한 등산가 헬무트 시몬이 2004년 등반 도중 사망하고 이후 발굴과 연구에 참여했던 6명이 사고나 질병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현장 행정] 술잔 대신 주걱, 정을 나눠요

    [현장 행정] 술잔 대신 주걱, 정을 나눠요

    “날도 추운데 밥 좀 많이 잡수세요. 그래야 건강하시죠.”(김영종 종로구청장) 30일 오전 11시 종로구 직원 송년회가 이화동의 ‘종로노인종합복지관’에서 열렸다. 그런데 송년회에 등장하는 주류와 노래 등은 없었다. 조용하지만 특별한 송년회였다. 구 간부들은 마이크 대신 주걱을 들고, 술잔을 기울이는 대신 밥을 펐다. 지역 노인들을 위한 자원봉사로 한 해를 마무리하기로 한 것이다. 김 구청장을 비롯한 구청 간부 7명과 동장 8명 등은 오전 11시부터 배식과 주방보조 봉사에 나섰다. 배식팀은 갈색 앞치마와 위생장갑을, 설거지팀은 분홍색 앞치마에 고무장갑을 꼈다. 정장 위에 걸친 앞치마가 어색할 법도 했지만 노인들을 대하는 얼굴에는 웃음이 넘쳤다. 김 구청장도 노인들과 인사를 나누며 배식 봉사에 구슬땀을 흘렸다. 밥을 조금만 달라는 노인들에게는 “많이 좀 잡수시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게는 간부들이 어디로 앉으실 거냐고 물어보며 손을 잡고 직접 자리를 안내했다. 배식이 끝난 후 노인들은 김 구청장과 간부들의 손을 꼭 잡으며 “잘 먹었다. 오늘따라 더 맛있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종로 구·동 간부 자원봉사 송년회’는 김 구청장의 제안으로 2013년부터 시작됐다. 술 마시고 떠드는 송년 회식 분위기를 검소하고 의미 있는 봉사활동으로 대체하려는 취지다. 특히 지역 노인 9000여명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는 노인종합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취약계층과 노인들의 생활을 살피고 온정을 나누는 계기가 됐다. 이날 그릇 닦기와 식기 정리 등 주방 일을 도운 서홍석 구 일자리경제과장은 “작년에 이어 올해 송년회에서도 같은 보직(설거지)을 맡았다”며 웃었다. 그는 “평소 자원봉사를 하고 싶어도 못했는데 다 같이 의미 있는 송년회를 보낼 수 있어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정관 복지관 관장은 “간부들이 나서 어르신들에게 봉사하며 송년회를 진행한다는 것에서 순수함과 청렴함을 느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간부들은 배식이 끝난 후 깨끗이 상을 치우고 마무리한 뒤 인근 식당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이 자리에서도 김 구청장은 직원들이 함께하는 자원봉사를 정기적으로 하자며 청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구청장은 “들뜨기 쉬운 시기에 간부들이 먼저 나서서 조용하고 검소한 연말연시 보내기에 모범을 보인 것”이라고 평가하며 “내년에도 청렴을 바탕으로 주민들과 더 많이 소통하는 한 해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대한보건협회, 전국적인 음주폐해예방의 달 캠페인 실시

    대한보건협회, 전국적인 음주폐해예방의 달 캠페인 실시

    대한보건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알코올성 간질환 사망자는 최근 10년 새 7.25배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의 월간폭음률은 53%, 고위험음주율은 20.7%에 달하는 등 음주폐해인식과 절주문화확산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술자리가 많아지는 연말연시는 음주운전, 폭행시비 등 각종 위험에 노출되기도 쉬워 음주문화개선 을 위한 인식 제고가 요구된다. 이에 보건복지부와 대한보건협회는 음주폐해의 심각성을 널리 알리고 사회 전반에 바람직한 음주문화 형성을 목적으로 지난 11월 한 달간 ‘음주폐해 예방의 달’ 행사를 진행했다. 올해는 ‘술잔은 가볍게, 귀가는 빨리, 음주도 스마트시대’라는 슬로건 아래 음주강권, 폭탄주, 원샷, 벌주, 사발주 등 5가지를 음주 오적(五賊)으로 정하고, 이를 없애기 위한 다양한 온오프라인 설문이벤트와 서약운동을 전개했다. 먼저 11월 1일(일)부터 한달간 서울, 부산, 대전, 대구, 광주, 원주 등 전국 6개 도시에서 대학생절주동아리가 주축이 되어 ‘술자리 문화 내가 먼저 바꾸겠습니다’ 캠페인을 동시에 시작했다. 이들은 11월 한 달 동안 전국에서 50여회에 걸쳐 릴레이 캠페인을 전개하며, 온라인 이벤트 및 오프라인 서약 운동을 펼쳤다. 이어서 11월 10일(화)에는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음주폐해 예방의 달 기념식을 갖고, 홍보대사위촉식, 감사패 전달식 등 기념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장에서는 음주문화개선에 이바지해 온 공로로 삼성그룹과 네이버에 보건복지부 장관의 감사패가 전달됐다. 삼성그룹은 전 계열사를 대상으로 직장 내 바람직한 회식문화 만들기 캠페인과 임직원 대상의 교육활동을 전개한 바 있으며, 네이버는 인터넷 포털에서 주류광고의 방송 시간을 자율적으로 규제해 청소년의 주류광고 접촉을 줄이는 활동에 앞장서왔다. 아울러 절주홍보대사로 위촉된 KBS 2TV 개그콘서트의 ‘말해 Yes or No’팀의 개그맨 김기리, 서태훈, 송필근, 김성원 씨가 기념공연을 진행해 호평을 받았다. 이번 음주폐해예방의 달 행사와 관련, 대한보건협회는 “이번 행사를 통해 알코올중독예방 등 음주문화개선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기대한다”면서 “잘못된 음주문화로 국민건강과 안전이 위협받고 있는 만큼 음주폐해 감소 및 예방을 위한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19대 국회 여야 합의문 전수 분석] 전문가들 “상임위 중심 정책정당으로 ‘립서비스’ 정치 청산해야”

    [19대 국회 여야 합의문 전수 분석] 전문가들 “상임위 중심 정책정당으로 ‘립서비스’ 정치 청산해야”

    19대 국회의 저조한 ‘여야 합의’ 이행에 대해 전문가들은 22일 “상임위원회가 중심이 되고 대화·타협이 바탕이 되는 의회 정치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유권자들 역시 지역·당파를 초월해 국회의원 개인의 자질을 걸러낼 줄 아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여야 원내대표들이 국회 운영에 대한 책임은 과거 제왕적 당 대표시절보다 훨씬 늘어난 반면 권한은 제한되어 있어 여러 군데의 눈치를 봐야 하는 구조”라면서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내 강경파에 자꾸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당시스템이 원내 위주로 변화되어야 타협의 정치가 설 공간이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립 서비스’ 정치가 판치는 원인으로 고질적인 계파정치도 꼽혔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 계파가 합의한 것을 다른 계파는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원내 지도부 흔들기가 사라지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19대 국회에서 유난히 두드러졌던 수직적인 당·청 관계, 야당의 계파 싸움으로 인해 원내 지도부의 운신의 폭이 더욱 좁아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청와대는 여당에 법안 재량권을 인정하지 않고 여당 지도부는 사실상 청와대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면서 “이런 구조에서는 여야 간 타협이 나오기 힘들다”고 했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출신인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상대적 우위에 있는 집권 여당의 경우 의회주의에 기반한 통합의 정신이 절실하다”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이 교수는 청와대가 쟁점 법안의 직권 상정을 국회에 요청한 것을 겨냥해 “청와대가 의회를 존중하지 않고서는 의회도 소통 불능에 빠진다”고 말했다. 여야 소통·협상 문화가 업그레이드되려면 결국 정당·정책, 개별 국회의원이 중시되는 의회 민주주의 문화가 몸에 배어야 한다는 주문이 많았다. 미국·영국처럼 국회 운영을 상임위 위주로 하는 원내정당으로 가고, 쟁점법안은 크로스보팅을 하는 정책정당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보스·특정 계파 위주의 구시대적 정당문화를 청산하는 게 과제로 남는다. 여야의 합의 파기는 국민과의 약속 파기지만 이를 법적으로 제재할 수는 없다. 신 교수는 “국회선진화법을 도입한 국회가 제도만능주의에 빠져 있다”면서 “국회 안의 물리적인 폭력은 사라졌지만 갈등은 더욱 심화됐다. 제도로 해결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19대 국회에서 선진화법이 제대로 작동된 것은 예산안 처리 정도”라면서 “크로스보팅이 보장되지 않고 의원들의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선진화법은 시기상조”라고 단언했다. 대표성을 가진 원내지도부에 힘을 실어 주려면 ‘소수 밀실 회동’ 관행을 없애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원내대표·원내수석부대표끼리만 모여서 결정할 요량이면 국회의원 10여명만 뽑으면 된다”며 “끼리끼리 합의를 하고 나서 대통령이 발끈하고 의원총회에서 두드려 맞으니 모호한 합의 문구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노력한다, 합의 처리한다, 최선을 다한다’ 등 모호한 문구가 남발하는 여야 합의문에 대해 신 교수는 “협상 과정에서 불가피한 부분도 있다”면서도 “법안 맞바꾸기·나눠 먹기는 명백히 유권자를 우롱하는 행태”라고 꼬집었다. 선거구 획정을 이와 직접 상관없는 선거연령 하향과 연계하거나, 세월호특별법 시행령·공무원연금법 등 전혀 상관없는 법들을 맞바꿔온 여야의 행태를 지적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국회 운영을 여야의 정략적 논리가 아닌 입법 논리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불가피한 상황에 따른 합의문 파기까지 책임을 물을 순 없지만, 여야가 서로 협상 파트너에 대해 ‘국민의 권한을 위임받은 의정 상대’라는 중압감을 가져야 한다는 주문이다. 김 전 의장은 “여야의 지나친 정략적 협상은 지지층 결집엔 도움이 될지 몰라도 결국 전체 유권자들의 손해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박원호 교수는 비공식적인 소통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예전 국회에선 여야가 공식 석상에선 몸싸움을 해도 목욕탕에서 풀고 술잔을 기울이며 머리를 맞댔다”면서 “지금은 그런 풍경이 사라졌지만 복원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국가대표급 5대 해장국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국가대표급 5대 해장국

    연말이 다가오면 술자리가 많아진다. 거나하게 회식한 이튿날에는 속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독한 술 탓이라기보다 고열량의 안주를 너무 많이 먹은 게 탈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쓰린 속을 달래주고 입맛을 돌게 할 5대 해장국이 있다. 호남의 콩나물 해장국과 영남을 대표하는 재첩 해장국, 충북의 다슬기와 선지 해장국 그리고 강원의 황태 해장국이다. 그 외에도 전국에 많은 해장 음식이 있지만, 5대 해장국은 국가대표급이다. 해장국이라는 말을 해장(解腸) 국으로 오해할 수 있으나 조선 양반가의 해정갱(解?羹)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숙취를 푸는 국이라는 한자어 해정갱이 민가에서 해장국으로 와전된 듯하다. 콩나물 해장국은 우선 멸치와 다시마로 감칠맛을 낸 육수에 콩 대가리를 딴 나물과 송송 썬 신김치를 넣어 아삭하게 씹힐 정도만 끓인다. 적당한 때에 대파와 풋고추 등을 넣고 새우젓으로 짭조름하게 간을 한 뒤 다시 한소끔 끓인다. 해장국 뚝배기에 노란색 계란과 녹색의 청양고추를 조금 넣으면 금상첨화다. ●콩나물국 멸치·다시마 육수… 알코올 잘 분해 해장국으로서 명성을 얻으려면 양질의 단백질과 알코올 분해 효소를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알코올은 몸속 단백질 합성을 저해하기 때문에 술안주나 해장 음식에는 단백질의 보충이 중요하다. 그런데 콩은 식물성 단백질의 으뜸이다. 더불어 콩나물의 가는 뿌리에는 알코올 분해 능력이 탁월한 아미노산인 아스파라긴이 함유돼 있다. 콩나물은 물이 맑은 전주의 것이 유명하고, 덕분에 식객들은 이곳의 콩나물 해장국을 손가락으로 꼽는다. 몇 해 전 부산 자갈치 시장 근처에서 전날 함께 술잔을 기울였던 지인들에게 콩나물 해장국 집을 묻자 펄쩍 뛰면서 “해장하려면 재첩국을 먹어야지, 무슨 콩나물을 찾느냐”는 농담 섞인 핀잔을 들었다. 부산과 경남에선 무조건 재첩 해장국인 모양이다. ●재첩국은 단백질·무기질 많아 간 보호에 좋아 재첩은 바닷물이 교차하는 강 하구의 바닥에서 사는 민물조개다. 크기가 바지락보다도 작고 껍데기가 반질반질해 앙증맞은데, 조그마한 조개들이 내뿜는 국물은 거의 곰탕 육수 수준이다. 은은한 바다 향도 난다. 재첩은 예부터 전국의 강에 흔했지만 지금은 물 맑은 섬진강에 주로 서식한다고 한다. 섬진강을 끼고 있는 전남 광양과 경남 하동에서도 맛있는 ‘갱조갯국’(재첩국)을 맛볼 수 있다. 재첩 해장국은 재첩을 소금물로 해감해 속에 머금고 있는 모래나 진흙을 빼내면서 조리가 시작된다. 재첩을 끓이며 냄비 위에 뜨는 거품은 걷어낸 뒤 재첩 살과 국물을 분리했다가 나중에 다시 함께 넣고 살짝 끓인다. 간은 소금으로 하고 부추나 실파 등만 넣을 뿐이다. 양념이 적은 것은 재첩의 고유한 향을 살리기 위해서다. 재첩 해장국에는 양질의 단백질과 철 등 각종 무기질, B1 등 비타민이 풍부하다. 숙취 제거와 간 보호, 빈혈 등에 좋을 수밖에 없다. 전통 의학에서는 황달, 위장, 배뇨에도 좋고 몸의 열을 내리며 기를 북돋운다고 전한다. 작은 재첩이 참 많은 재주를 지녔다. 콩나물 해장국과 재첩 해장국은 각자 호남과 영남을 대표했으나 근세기 이전까지는 한양(서울)을 향해 북상하지 못했다. 본래 맛있고 몸에 좋은 음식은 전국으로 퍼지기 마련인데, 여의치 않았던 것이다. 북상하는 길목에 또 다른 맛의 막강한 해장국들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kkwo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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