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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인환·이봉구·천상병 ‘명동 샹송’… 서늘한 세월 품은 예술혼의 해방구 [김별아의 도시 기행문-서울을 걷는 시간]

    박인환·이봉구·천상병 ‘명동 샹송’… 서늘한 세월 품은 예술혼의 해방구 [김별아의 도시 기행문-서울을 걷는 시간]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박인환, ‘세월이 가면‘ 박인희의 목소리로 듣는다. 조용필, 최백호, 양하영, 이동원, 적우, 임태경의 목소리로 듣는다. 현인 그리고 나애심의 목소리로 듣는다. 박인환의 시(詩)를 가사로 이진섭이 작곡한 노래 ‘세월이 가면’을 들으며 명동을 걷는다. 부르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 편곡과 음색에 따라 노래는 다르게 들린다. 세월이 흐르는 이치를 아직 모르는 목소리의 낭만적인 떨림, 휙휙 쌩쌩 곁을 스쳐 지나는 세월을 온몸으로 느끼는 목소리의 흔들림, 지난 세월을 회한으로 돌이키는 젖은 목소리, 그 미련마저도 모두 지워져버린 듯 아련한 회상과 망각의 목소리. 1956년 시를 쓰고 곡을 붙이고 노래하던 처음의 그때, 그들에게 세월은 어떤 의미였을까?2009년 EBS에서 방영된 문화사 드라마 ‘명동 백작’은 1951년 3월 이봉구(박철호)가 폭격으로 폐허가 된 명동 거리를 걷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화려했던 명동,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였던 명동이 전쟁으로 초토화된 것을 목격한 이봉구는 끝내 설움이 북받쳐 엎드려 오열한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명동 또한 전쟁 아닌 전쟁으로 폐허의 분위기다. 인파로 북적대던 거리는 한산하다 못해 썰렁하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땅값을 자랑하는 건물들이 텅텅 비어 있다. 말마따나 인파(人波), 사람의 물결에 휩쓸린 채 멋쟁이들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쏙 빠졌던 예전의 명동은 온데간데없다.그곳도 마찬가지다. 명동 한복판, 명동성당에서 을지로 입구로 가는 큰길에 눈에 잘 띄던 화장품 가게도 역병의 폭격을 이기지 못했다. 유리창에 붙은 ‘임대’라는 글자가 가슴에 슥, 붉은 빗금을 긋는다. 빈 가게 귀퉁이에 보도를 향해 돌 하나가 덩그러니 섰다. ‘문화예술인이 찾았던 은성 주점 터: 이곳에서 약 10m 앞에는 1960년대 소설가이자 언론인 이봉구(1915~1983)와 변영로, 박인환, 전혜린, 임만섭 등 문화예술인들이 모였던 주점 터이다. 특히 이봉구 선생은 명동을 좋아하여 명동 시장(市長)·명동 백작이란 애칭으로 불렸다.’ 낭만의 시대였다. 야만의 시대이기도 했다. 모든 것을 폐허로 만든 전쟁이 끝나고 설움과 불안과 울화가 가슴 밑바닥에서 스멀대던 때였다. 너나없이 가난했다.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는 암흑 세상을 하루하루 버텼다. 육신과 영혼의 허기가 는개처럼 자욱했던 그 시절의 명동 그리고 은성은 갈 곳 없는 예술가들의 은신처, 찢긴 깃발처럼 펄럭이는 예술혼의 해방구였다.은성도 그 자리에 있던 화장품 가게도 없는 거리에 멀거니 섰다가 길을 건넜다. 명동파출소 옆 골목 안쪽 지하에 ‘명동백작5060’이라는 밥집 겸 술집이 옛 은성을 재현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피크 타임을 막 지나서인지 점심 장사를 한 흔적만 남아 있고 가게 안에는 아무도 없다. 객쩍은 낮술일지나 음복하는 심정으로 빈대떡에 막걸리 한잔 하려 했더니, 불러도 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며 빈 입을 쩍 다신다. 어두침침한 조명, 낮은 천장, 삐걱거리는 나무 의자. 쓸쓸하고도 아련하다. 그 시절의 은성이 이런 모습이었을까? 1956년 봄밤, 일군의 예술가들이 어김없이 은성에서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자욱한 담배 연기 속 열변과 췌담이 왁자지껄한 가운데 상고머리의 젊은 시인이 있었다. 그 시절의 평균키를 훌쩍 뛰어넘는 장신에 조니 워커와 카멜 담배를 좋아하는 멋쟁이였지만, 21살에 등단해 10년을 시인으로 사노라니 빈한한 살림살이에 세탁소에 맡긴 스프링코트를 찾을 돈이 없어 봄에도 두꺼운 겨울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은성 주점을 운영하던 사람은 탤런트 최불암의 어머니 이명숙(1986년 작고)씨였다. 영화 제작자였던 남편이 과로로 숨지자 외아들을 키우고 생계를 잇기 위해 가게를 열었다. 그런 연고로 은성은 자연스럽게 문인들을 비롯한 영화인, 음악가, 화가 등 예술가들이 드나드는 사랑방이 됐다. 박인환을 비롯해 김수영, 변영로, 전혜린, 오상순, 입구 쪽에 서서 막걸리 한 잔 사줄 사람을 기다리던 천상병 등이 단골이었다고 한다. 작가라는 작자들은 가난했다. 그럼에도 밥을 못 먹는 주제에 술은 잘도 먹었다. 예나 제나 쥐꼬리 같은 고료를 받으면 탈탈 털어 사먹고, 택택한 물주가 나타나면 얻어먹고, 뻔뻔하게 외상도 줄창 대고 먹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술을 주문하는 박인환 일행에게 은성의 주인이 밀린 외상값부터 갚으라고 지청구했다. 그러자 박인환이 품에서 만년필을 꺼내어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그것을 가사 삼아 작곡가 이진섭이 노래를 만들었다. 3년 전 ‘밤의 탱고’를 발표해 가수 활동을 시작한 연극배우 나애심이 노래를 했다. 노래를 들은 은성의 주인, 이명숙씨는 눈물을 훔치며 술을 내주었다. 그 곡이 명동의 노래, 명동 샹송, ‘세월이 가면’이었다. 얼핏 듣기에 사랑 노래였다. 아니, 그 사랑이 시들고 난 뒤 여전히 남은 기억에 대한 노래였다. 시간은 흐르고 모든 것을 잃어도 잊지 못하는 것, 그것은 들끓는 가슴이 아니라 ‘서늘한 가슴’에 놓일 수밖에 없다.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갔다. 가족을 잃은 사람, 연인을 잃은 사람, 영이별이 아니더라도 생이별로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사람들이 허깨비처럼 허정거리며 살았다. 잊고 싶은 기억에는 시간이 약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우고 싶은 기억 속에도 사금파리처럼 반짝이는 기억이 섞여 있어, 이름은 잊어도 눈동자와 입술은 잊을 수 없었다. 아무도 승리하지 못한 전쟁처럼 시간 앞에 승자는 아무도 없었다. ‘세월이 가면’은 그들을 위한 노래였다.어느덧 등단한 지 30년이 돼 버린 나는 꼬꼬마 때 까마득한 선배들로부터 ‘명동 시대’의 일화를 귀동냥했다. ‘영혼의 양식을 공급해 준 곡창’으로서 명동은 분야와 장르를 구분 짓지 않고 예술가와 문화 종사자들이 어울리는 장소였다. 음악과 미술과 문학과 무용은 물론 대중문화와 비평과 언론까지 경계가 없었다. 그 시절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나고 지금은 문화사 속에 이름으로 남았다. 그 말단에 앉아 함께 술잔을 기울이지 못한 아쉬움을 명동 시대의 에피소드들을 사(私)소설로 기록한 ‘명동 백작’ 이봉구 선생의 사진 한 장으로 대신한다. 은성에서 소주를 마시는 말년의 이봉구를 김일주 선생이 찍었는데, 신인 시절 나도 문인들의 사진을 찍어 기록하던 그의 피사체가 됐던 적이 있다. 아, 그런데 김일주 선생도 지난해 여름 작고했다는 부고를 뒤늦게 읽었다. 이제 술 마시는 작가들, 침 튀기며 토론하는 작가들, 싸우는 작가들, 술상에서 조는 작가들의 모습을 기록할 사람도 더이상 없다…. 나애심의 목소리로 다시 듣는다. 안개 같은 담배 연기 속에 울려 퍼지는 깔깔한 목소리, ‘나는 천 년의 세월을 지나온 것보다 더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는 보들레르의 시구가 떠오른다. 은성은 1973년에 영업을 종료했고 그 자리에 2004년 서울문화재 기념표석이 설치됐다. 세월을 따라 사람들이, 사랑이 그렇게 가버렸다.(㉻에서 계속) 소설가
  • [길섶에서] 나관남까/박록삼 논설위원

    [길섶에서] 나관남까/박록삼 논설위원

    최근 얘기다. 대부분 술자리가 그러하듯 정치 얘기, 세상 얘기가 안줏거리로 어지러이 오르내렸다. 한 선배가 “이 놈의 ‘나관남까’ 세상”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줄임말 신조어가 난무한다고 하지만 듣도 보도 못한 말이다. 다들 의아한 표정 속에 의기양양하게 “나한테는 관대하고 남한테는 까칠한 세상 아니냐”는 설명을 덧붙였다. 피식거리며 초록병 비트는 소리, 술잔 부딪치는 소리가 대답처럼 돌아갔던 듯하다. 비슷한 의미의 ‘내로남불’이 너무 흔하게 쓰이다 보니, 또 그러한 행태가 가시지 않으니 추가로 만들어진 말이었을 테다. 중앙권력과 지방권력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더욱 체감도가 높다. 사람은 그대로이고 처한 위치가 달라졌을 뿐이지만 이중 잣대는 숙명과도 같나 보다.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자기에게는 가을 서리와 같게 하라는 뜻의 춘풍추상(春風秋霜)은 수백 년 묵은 가르침이다. 춘풍추상의 실천은 없고 ‘나관남까’ 같은 역설의 말만 어지럽다.
  • ‘미우새’ 녹화 중 결별 소식 고백...모두 탄식

    ‘미우새’ 녹화 중 결별 소식 고백...모두 탄식

    배우 정석용이 결별 사실을 고백했다. 지난 29일 방송된 SBS 예능 ‘미운 우리 새끼‘에서 정석용은 배우 임원희, 최진혁과 함께 경북 영덕에서 트레킹을 즐겼다. 이후 숙소에 돌아온 세 사람은 술잔을 기울였다. 최진혁은 “얼마 전에 박군한테 연락이 왔다. 준호 형도 얼마 전에 기사가 났더라”라면서 “형들은 뭐… 좋은 소식 없냐”고 물었다. 정석용과 임원희는 잠시 침묵했다. 임원희는 정석용에게 “잘 만나고 있는 거냐. 안 좋은 거냐. 헤어졌냐”고 물었다. 정석용은 “응 뭐”라고 답하며 결별했다고 밝혔다. 정석용은 지난해 12월 ‘미운 우리 새끼’ 방송에서 깜짝 열애 사실을 알린 바 있다. 서장훈은 “지난번에 어려움이 있다라고 했는데…”라며 탄식했다. 최진혁, 임원희는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정석용은 “왜 또 분위기 이상하게 만드냐”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왜 동시에 한숨을 쉬냐. 이럴까 봐 내가 말 안 하려고 한 거다”라며 좌절했다.
  • [포착] “건배!” 봉쇄 중 술판 벌인 英총리…파티게이트 증거 사진 공개

    [포착] “건배!” 봉쇄 중 술판 벌인 英총리…파티게이트 증거 사진 공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봉쇄령이 내려진 2020년 6~12월, 총리실에서 술 파티를 벌인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파티게이트’에 대한 보고서가 공개됐다. 가디언 등 현지 언론의 25일(이하 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이번에 공개된 37쪽 분량의 파티게이트 조사 보고서에는 국민들은 코로나19 봉쇄로 꼼짝하지 못하며 가족·지인과의 만남도 거의 불가능하던 당시, 존슨 총리와 보좌진이 사무실에서 술판을 즐긴 모습이 적나라하게 담겼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6월 18일, 당시 총리실 내각 회의실에서는 한 직원의 송별회가 열렸다. 이 송별회는 옆 건물에 있는 내각부로 옮겨져 새벽 3시까지 이어졌다. 다음 날인 6월 19일 존슨 총리의 생일에는 역시 총리실에서 존슨을 위한 깜짝 파티가 열렸다. 직원들이 모여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슈퍼에서 사온 음식을 나눠 먹은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해 4월 16일에는 총리실에서 또 다른 송별행사가 2건이나 개최됐다. 참석자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나 인원제한도 없이, 한데 모여 술을 마셨다. 관리실 관계자가 총리실을 닫을 시간이라고 말하자, 이들은 술병을 들고 총리실 정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자리는 사람들이 모두 취한 새벽 4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그리고 2020년 12월 18일, 총리실 공보실에서 연 송년 파티는 난장판의 끝이었다. 봉쇄령 중 열린 파티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방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옆 방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다 알 정도로 시끌벅적했다. 보고서와 함께 여러 장의 사진이 공개됐는데,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존슨 총리가 파티에 참석해 술잔을 높게 든 모습을 담은 사진이었다. 해당 사진은 2020년 11월 13일, 존슨 총리가 공보국장 송별 파티에 참석했을 당시에 찍은 것이며, 총 8명이 사회적 거리두기 없이 가까이 서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영국 ITV는 “의회에 출석한 존슨 총리는 총리실에서 규정을 준수했고, 본인은 법 위반 파티에 관해 몰랐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여전히 파티게이트와 관련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이번 보고서는 영국 내각부 공직자 윤리 담당 부처에서 경찰 조사 결과 등을 토대로 작성된다. 보고서를 발표한 윤리 담당 고위 공무원 수 그레이는 “정부 핵심부에서 이런 규모로 이런 일을 벌였다는 데 많은 사람이 충격받았을 것“이라며 ”국민은 가장 높은 기준이 적용되길 바랄 텐데 이번에 벌어진 일들은 이에 미달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파티게이트 수사를 벌여 온 경찰은 올해 초부터 파티 12건을 조사하는 데 수사관 12명이 투입돼 이메일, 출입 기록, 증언 등 기록 345건, 사진과 CCTV 이미지 510건, 서면 답변지 204건을 분석했으며, 비용은 46만 파운드(한화 약 7억 3000만원)가 들었다고 밝혔다. 지난주 경찰은 존슨 총리 부부와 리시 수낙 재무부 장관 등 총 83명에게 범칙금 126건을 부과하고 수사를 종결했다. 이로써 존슨 총리는 재임 중 법 위반으로 제재를 받은 첫 영국 총리라는 역사를 쓰게 됐다.
  • 김건희 여사, 尹 대통령에 ‘레이저 눈빛’?…“독한 술 없었다”

    김건희 여사, 尹 대통령에 ‘레이저 눈빛’?…“독한 술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일 취임 기념 만찬에서 술잔을 들었다가 부인 김건희 여사가 쳐다보자 서둘러 잔을 내려놓는 듯한 모습이 화제가 된 바 있다. 이에 대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우연히 잡힌 시선이 걱정하는 모습으로 보인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방송된 MBN ‘판도라’에서 이 대표는 “리셉션장에서 있었던 일 같은데, 그렇게 강한 술이 없었다”며 “김 여사가 그걸(음주) 걱정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앞서 진행자가 “윤 대통령이 와인을 마시자 옆에 있던 김 여사가 눈빛으로 레이저를 쏘고, 그러자 얼른 내려놓는 장면이 굉장히 화제가 됐다”고 질문한 것에 대한 답변이었다. 이 대표는 “원래 우리 대통령께서는 그것보다 훨씬 도수 높은 술을 즐기신다. 리셉션장에 있던 건 거의 알코올 도수가 없던 술이었다”며 “우연히 그냥 (김 여사의) 시선이 그쪽으로 잡힌 게 음주를 걱정하는 모습으로 비쳐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김 여사와 대화하며 환하게 웃는 장면이 포착된 것에 대해서는 “제가 이전에 영부인이 대외활동을 했을 때 마이너스가 아닐 거로 생각한다는 얘기를 한 적 있다”고 과거 자신의 발언을 상기시켰다.
  • [포착] 김건희 여사 ‘애주가’ 尹대통령 술잔 들자 ‘찌릿’

    [포착] 김건희 여사 ‘애주가’ 尹대통령 술잔 들자 ‘찌릿’

    지난 10일 제20대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부부 동반으로는 처음 공식 석상에 등장한 김건희 여사. 김건희 여사는 현재 대표를 맡고 있는 해외 미술품 전시·기획사인 코바나컨텐츠를 조만간 폐업 또는 휴업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조용히 내조에 전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김 여사는 취임식이나 주민 환영 행사 등 공개 일정에 모두 동행했지만, ‘조용한 내조’ 차원에서 시종일관 한 발짝 물러선 채 윤 대통령 뒤를 따랐다. 윤 대통령의 첫 출근 때는 연두색 셔츠와 흰 치마를 입은 반려견 두 마리와 함께 배웅했다. 13일 온라인커뮤니티에는 김 여사가 눈빛으로 윤 대통령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주는 듯한 영상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윤 대통령은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기념 만찬장에서 술잔을 들고 한모금 마시려고 했고, 김 여사는 강렬한 눈빛을 보냈다. 윤 대통령은 황급히 술잔을 내려놓는 모습이다. 윤 대통령은 검사 시절부터 애주가로 유명했다. 가장 좋아하는 술은 ‘소맥’(소주+맥주)으로, 지방 근무 시절에는 1주일에 소맥 100잔을 마신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애처가로 알려진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기간 한 예능 프로그램이나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서 아내를 위한 베이컨 김치찌개나 계란말이로 요리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만찬장 영상을 접한 네티즌들은 “아내 레이저에 술잔 내려놓는 대통령이 귀엽다” “아내 눈치 보는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며 내조에 호의적인 반응과 “김 여사가 상왕이 될 것 같다” “아내에게 꽉 잡혀 사나 보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냈다. ‘나꼼수’를 진행했던 김용민씨는 이 모습을 올리며 “취임은 윤석열이 하지만 집권은 김건희가 할 듯”이라고 썼다.
  • 역경 속 ‘카페의 여인’ 운명 바꾼 여인 [이호섭의 트로트 숨결]

    역경 속 ‘카페의 여인’ 운명 바꾼 여인 [이호섭의 트로트 숨결]

    아무도 거들떠봐 주지 않는 ‘미운 오리 새끼’ 신세였다가 운명이 바뀌어 일약 ‘백조’로 화려하게 부활한 가요가 적지 않다. 필자가 작곡하고 김병걸이 작사한 ‘찬찬찬’도 그 가운데 하나다.1993년 발표되자마자 삽시간에 열풍을 일으킨 ‘찬찬찬’의 인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이 노래가 대중에게 선보이기까지 지나온 역경의 터널을 아는 이는 적다.‘찬찬찬’으로 하루아침에 가요계의 총아가 된 훈남 가수 편승엽은 이 노래를 발표하기 전인 1991년 1집 앨범 ‘서울 민들레’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렇다 할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을 무렵, 어디서든지 돌파구를 찾아야 했던 편승엽은 목포 난영가요제에 출전한다. 아쉽게도 난영가요제에서 큰 상을 수상하지는 못했지만, 편승엽은 이 가요제 심사위원이던 필자와 인연을 맺게 된다. 뒤풀이 자리에서 편승엽은 원래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으나 가세가 기울어 많은 고생을 했고, 그러면서도 가수로서의 꿈을 접지 않은 내력을 들려준다. 필자는 “언젠가 곡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시라”는 말을 남기고 헤어졌다.●편승엽 목소리에 홀린 듯 내준 곡 1993년 어느 날, 당시 다섯 손가락 안에 들던 유명 가수에게 주기 위해 필자는 ‘찬찬찬’ 데모 테이프를 만들고 있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저 편승엽이라고 하는데요. 혹시 기억나실까요.” 그러고는 곡이 필요하다고 했다. 편승엽의 목소리에 호감이 있던 필자는 그 즉시 ‘찬찬찬’을 편승엽에게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명 가수에게 곡을 주면 준히트 정도는 떼어 놓은 당상이지만, 신인에게 주면 사장될 확률이 90% 이상이기 때문에 이례적인 결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편승엽 1집을 냈던 오아시스 레코드사에서는 곡이 좋지 않다면서 음반을 내주지 않았다. 그렇게 1년 이상 버려져 ‘찬밥’이 돼 있던 곡을 우연히 인기 가수 김수희가 듣게 된다. 음반이 나오지 못하는 상황을 들은 김수희는 “무슨 소리예요? 이 노래는 나오면 바로 대박 칠 노랜데. 내가 음반 내 줄게요”라며 1993년 자신의 희 레코드사를 통해 음반을 발표했다. ‘찬찬찬’의 본래 곡명은 ‘카페의 연가’였지만 “가사 속 ‘찬찬찬’이 귀에 쏙 들어오니 제목을 바꾸자”는 김수희의 제안에 문패도 새로 걸었다. ‘차디찬 그라스에 빨간 립스틱/ 음악에 묻혀 굳어버린 밤깊은 카페의 여인/ 가녀린 어깨 위로 슬픔이/ 연기처럼 피어오를 때/ 사랑을 느끼면서 다가선 나를 향해/ 웃음을 던지면서 술잔을 부딪치며/ 찬! 찬! 찬!’ 돌이켜 보면 1970년대는 샹송이나 칸초네, 라틴 뮤직도 우리나라에 많이 소개돼 사랑받던 시절이었다. 여기에 트로트와 포크송 및 솔(soul)과 그룹사운드 뮤직 등도 골고루 사랑받았다. 가창 가요뿐만 아니라 경음악 분야에서도 폴 모리아(Paul Mauriat) 악단, 만토바니(Mantovani) 악단, 프랑크 푸르셀(Frank Pourcel) 악단 등이 전성시대를 구가했다. 특히 폴 모리아 악단이 연주해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던 페루 민요 ‘철새는 날아가고’(El Condor Pasa)는 트로트 리듬으로 편곡돼 한국인의 정서에 매우 친화적으로 스며들기도 했다. ●1980년대 이후 바뀐 대중가요 그러나 이후 1980년대 초·중반은 언더그라운드 음악과 트로트 메들리, 1980년대 중·후반은 트로트와 댄스뮤직, 1990년대 초부터는 서태지와 아이들을 필두로 한 힙합 등 특정 장르가 득세했다. 필자는 트로트 장르의 다양한 물결을 만들어야겠다는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첫 시도는 쿠바의 민속 리듬 차차차를 변형한 설운도의 ‘다함께 차차차’(1991)였고, 두 번째가 쿠바의 춤곡 룸바를 채용한 ‘찬찬찬’이었다. 내친김에 미국의 록앤드롤 리듬을 트로트에 접목한 이자연의 ‘찰랑찰랑’(1995)을 발표해 또 한 번의 흥행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들 노래가 처음부터 대중의 귀를 사로잡은 것은 아니었다. ‘다함께 차차차’ 역시 처음엔 인기곡이 되지 못하다가, 1년이 지난 뒤 갑자기 인기가 불붙어 히트곡이 됐다. 우여곡절 끝에 인기를 얻었지만 당시 우리 사회 유행어였던 ‘고개 숙인 남자’들에게 원기와 희망을 북돋워 주면서 시대적 사명을 다한 작품이라 필자는 생각한다.●사람처럼 다양한 노래의 팔자 ‘하늘이 장차 큰 임무를 사람에게 내리려 하면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힘들게 하고 힘줄과 뼈를 괴롭게 한다’(天將降大任於斯人也 必先勞其心志 苦其筋骨)라고 맹자는 말했다. 그만큼 세상을 밝힐 인물은 많은 시련 끝에 나오는 법이다. 세상에는 팔자(八字)라는 것이 있다. 조폐공사에서 막 찍혀 나온 신권 화폐도 어떤 돈은 긴급 구제자금으로 들어가 기업을 살리는 보람을 가지는 반면 어떤 돈은 도박자금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노래도 마찬가지로 발매도 되기 전에 입도선매(立稻先賣)돼 대히트를 기록하는 노래도 있고, ‘찬찬찬’처럼 갖은 설움 끝에 기사회생하는 팔자의 노래도 있다. 이 노래의 히트를 계기로 편승엽은 갑자기 귀한 몸이 됐다. 그러나 한창 전성기를 누리던 때 세 번에 걸친 결혼과 이혼으로 인기를 이어 가지 못하는 비운을 맞기도 했다. 1996년 3집 ‘초대받고 싶은 남자’, 1998년 4집 ‘사랑을 위해’, 2002년 5집 ‘그대와 함께’, 2006년 ‘용서’, 2018년 ‘사내라서’ 등을 꾸준히 발표했지만 ‘찬찬찬’만큼의 인기를 회복하지는 못했다. 지난 2일을 기해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해제됐다. 소상공인들은 지난 2년여간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고 만 곳이 상당수다. 이 외에도 많은 국민들이 저마다의 직종에서 필설로는 다 못할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실낱같은 희망이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쓰러지지 않는다. 이 고통을 당당히 맞서 막아섰으니 맹자의 말처럼 큰일을 할 기회가 곧 나타날지 모른다. 희망을 안고 살면 외면과 설움의 세월을 견딘 ‘찬찬찬’이 말해 주듯 ‘화려한 백조’로 비상할 날도 올 것이기 때문이다. 작곡가·문학박사
  • “누나를 아가씨로…” 앱 번역기 오류가 부른 살인 참극

    “누나를 아가씨로…” 앱 번역기 오류가 부른 살인 참극

    전북 정읍의 한 주차장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이 중국인과 한국인의 소통을 위해 사용된 휴대전화 앱 번역기의 오류에서 비롯된 것으로 드러났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중국인 A(35)씨는 2021년 5월 같은 국적의 직장 여성 동료 B씨와 가까워졌다. 친분이 두터워질수록 A씨는 B씨에게 호감을 느꼈다.  B씨의 한국인 남편인 C씨는 자연스레 A씨에게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이 됐다. 시간이 지나 B씨가 자신의 남편을 A씨에게 소개했고, 이들은 술자리도 함께 할 만큼 가까운 사이가 됐다.  사건은 술자리에서 벌어졌다. 같은해 9월 6일 오후 10시쯤 이들은 정읍시의 한 주점에 모였다. 중국인 지인 2명도 함께 어울렸다. 이들은 술잔을 나누며 유일하게 국적이 다른 C씨와 휴대전화 앱 번역기로 대화했다. 그러던 중 A씨가 앱을 통해 중국어로 “오늘 재미있었으니 다음에도 누나(B씨)랑 같이 놀자”고 했다. 그러나 앱 번역기는 “우리 다음에 아가씨랑 같이 놀자”고 한국어 오역을 했다. ‘아가씨’를 노래방 접대부로 오인한 C씨는 “왜 아가씨를 찾느냐. 나 와이프 있다”며 A씨에게 욕설했다. 격분한 A씨도 욕설로 응수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고, 이 과정에서 C씨에게 주먹으로 얼굴을 맞았다. A씨는 평소 호감이 있던 B씨 앞에서 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에 분을 삭이지 못했다.  이에 A씨는 인근 마트에서 흉기를 구입했고, 몇 시간 뒤 홀로 귀가하는 C씨를 주차장으로 유인했다. 대면한 상황에서도 C씨가 미안함을 표현하지 않자, A씨는 C씨의 목과 복부 등을 13차례 흉기로 찔렀다. 결국 C씨는 숨을 거뒀고, A씨는 인근 지구대로 가 자수했다. 살인죄로 기소된 A씨는 전주지법 정읍지원 제1형사부로부터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의 신체를 13차례 흉기로 찌르는 등 매우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했다”며 “피해자는 극심한 고통을 겪다가 사망한 것으로 보이고, 유족은 충격과 고통을 호소하면서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런데도 피고인은 유족으로부터 용서받지 못했고 합의를 위한 별다른 노력도 하지 않았다”며 “행위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판시했다. 항소심은 광주고법 전주재판부가 맡고 있다.
  • ‘트위터 대통령’ 소설가 이외수 영면

    ‘트위터 대통령’ 소설가 이외수 영면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소설가 이외수 씨가 영면에 들었다. 지난 25일 별세한 이씨의 발인식이 29일 오전 강원 춘천 호반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발인식에는 부인 전영자 씨, 아들 한얼·진을 씨와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고인의 유해는 춘천안식원 내 봉안당에 안치될 예정이다. 고인은 지난 1972년 단편소설 ‘견습 어린이들’로 문단에 데뷔했고, 이후 장편소설 ‘들개’ ‘칼’ ‘장수하늘소’ ‘벽오금학도’와 시집 ‘풀꽃 술잔 나비’ ‘그리움도 화석이 된다’ 등을 펴내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170만명이 넘는 트위터 팔로워를 거느리며 강경한 정치적 발언을 쏟아내 ‘트위터 대통령’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2020년 3월 뇌출혈로 쓰러졌고, 지난 3월 코로나19 후유증으로 폐렴을 앓다가 지난 25일 오후 7시 38분쯤 한림대 춘천성심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 [장인주의 춤추는 세상] 예순 살 국립무용단의 초심과 혁신/무용평론가

    [장인주의 춤추는 세상] 예순 살 국립무용단의 초심과 혁신/무용평론가

    쪼그려 앉은 몸을 펼쳤다가 다시 쪼그리니 굽이굽이 빼어난 산세가 그려진다. 한 명인 듯 여럿인 그림자가 줄을 이어 확장하니, 낮은 듯 깊은 산맥이 몸 하나로 그려진다. 몸이 곧 붓이다. 무용수의 실루엣이 무대 뒷면에 영사되는 미디어아트와 어우러져 입체적으로 펼쳐지면서 마술처럼 눈앞에서 수묵화 한 편이 만들어졌다.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봤던 복숭아밭의 아름다운 풍경을 잊지 못하고 그리게 했다는 조선의 화가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춤으로 탄생했다. 제목은 ‘몽유도원무’. 현실과 꿈이 공존하는 낙원이 춤으로 만들어지니 산수화 속에 등장하는 무용수는 인화초와 다름없었다. 지난 21~24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에 오른 ‘몽유도원무’는 현대무용가 차진엽이 국립무용단의 안무를 맡아 탄생한 작품이다. 국립무용단은 춤 중에서도 한국무용이 주된 언어다 보니 현대무용가와의 협업이라는 점에서 일찍이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막상 막이 오르자 한국무용, 현대무용 등 춤의 세부 장르에 대한 경계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9명의 남녀 무용수가 수묵화에 생명을 불어넣으면서 그림과 춤의 경계마저 허물어 버렸기 때문이다. 일렉트로닉 뮤지션 하임과 심은용 거문고 연주가가 함께 음악감독을 맡아 들려준 몽환적인 음악은 춤에 세련미를 더하는 데 큰 몫을 했다. 만약 안평대군이 환생해 이 공연을 봤다면 얼마나 감탄하며 즐거워했을까. 자신의 꿈이 수세기를 지나 별천지로 재현됐으니. ‘몽유도원무’와 함께 무대에 오른 ‘신선’ 또한 색다른 묘미를 뽐냈다. 춤과 술과 풍류를 하나의 연장선에 놓고 마치 영화 ‘취권’의 한 장면을 보는 듯 중심 잃은 비대칭 움직임의 나열이 재미를 더했다. 여러 명이 공동 안무를 맡아 완성도를 더하는 것으로 알려진 안무가그룹 고블린파티는 현대판 신선놀음을 풀어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을 것 같은 계산된 움직임을 숨 가쁘게 짜 맞춰 가는가 하면 일순간 이 모든 것이 술김에 벌어진 우연이었음을 주장하기도 한다. 술의 힘을 빌려 본능을 강조하고 일순간 관습에서 벗어나는 시도를 반복하면서 8명의 무용수 모두가 서서히 신선이 돼 간다. 술잔이 붙어 있는 술상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 굴신을 반복하는 모습이 흥겹다. 전통의상인 듯 아닌 듯 그 경계가 모호한 한현민의 의상 디자인이 이 시대 신선의 모습을 상상하게 했다. 국립무용단은 ‘더블 빌’이라는 제목으로 이 두 작품을 묶었다. 우리는 늘 새로운 예술에 목말라 있고 새 레퍼토리 개발만이 그 해결 방법일 텐데, 그런 점에서 국립무용단의 이번 기획은 창작이 나아갈 방향을 앞서서 보여 줬다고 하겠다. 처음부터 대작을 올리기보다 소극장에서 다양한 시도를 통해 그 가능성을 가늠하는 단계별 기획이 훨씬 믿음직스럽다. 더욱이 한국무용과 현대무용이라는 표현 기법에 따른 경계를 과감하게 허물고 안무가와 무용수가 긴밀하게 교류하며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 냈으니 그 과정에서 탄생한 두 레퍼토리가 더욱 값져 보인다. 국립무용단이 올해로 창단 60주년을 맞았다. ‘전통춤의 현대적 재창조’라는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 숨 가쁘게 달려온 시간이다. 전통춤을 복원하거나 고전 작품을 재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늘 새로운 창작품을 만들어야 하니 그 과업의 무게가 녹록지 않았다. 그럼에도 무대 위에서 춤으로 관객과 만나는 즐거움 하나로 혼신의 힘을 다해 온 단원들과 이들을 이끌어 온 예술가들이 있어 한국춤의 맥을 굳건히 이어 올 수 있었다. 이제 성대한 환갑잔치를 준비할 때다. 초심을 잃지 않되 새로운 예술에 대한 열망을 담은 혜안을 갖기 위해 더욱 다양한 시도와 노력이 있기를 기대한다. “환갑잔치에 풍악을 울려 주시오. 춤 한바탕 멋지게 추어 보리다.”
  • 메간 폭스, 약혼자와 피 나눠마셔… “의식 위해 몇 방울만”

    메간 폭스, 약혼자와 피 나눠마셔… “의식 위해 몇 방울만”

    할리우드 배우 메간 폭스(36)가 약혼자 머신 건 켈리(32)과 피를 나눠 마셨던 것에 대해 해명했다. 영국 패션 잡지 글래머 UK는 26일(현지시간) 메간 폭스와의 인터뷰를 공개했다. 메간 폭스는 “우리가 서로의 피를 마셨다는 말이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처럼 술잔에 서로의 피를 따라 마셨다고 오해하게 만든 것 같다”고 밝혔다. 앞서 메간 폭스는 지난 1월 4살 연하 연인인 록스타 머신 건 켈리에게 프러포즈를 받았다. 그는 당시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폭스에게 무릎을 꿇고 청혼하는 켈리의 로맨틱한 모습이 담긴 영상을 게재했다. 메간 폭스는 “우리는 2020년 7월 이 반얀 나무 아래에 앉아 우리는 마법을 부렸다. 우리는 그토록 짧고 정신없는 시간 안에 우리가 함께 직면하게 될 고통을 잊었다. 우리 관계가 필요로 할 일과 희생을 알지 못하고 사랑에 취해버렸다”며 ”1년 반이 지나며 함께 지옥을 걸어왔고,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웃은 그는 나에게 청혼했다”고 기쁨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전생,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모든 생애에서 난 승낙했다. 그리고 서로의 피를 나눠 마셨다”라고 덧붙여 화제를 모았다. 메간폭스는 “단지 몇 방울 뿐이었다”며 “오로지 의식을 위한 목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나는 ‘몇 방울만 떨어뜨려 마시자’고 말했지만, 켈리는 무계획적이고 혼란스러운 사람이라 ‘내 영혼을 가져가’라고 하면서 깨진 유리 조각으로 가슴을 그으려고 하더라”며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나진 않았지만 비슷한 일들이 여러 번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메간 폭스는 배우 브라이언 오스틴 그린과 2010년 결혼해 아들 세 명을 낳았지만, 2020년 5월 이혼 소식을 전했다. 이후 그는 머신 건 켈리와 2020년 영화 ‘미드나잇 인 더 스위치그래스’(Midnight in The Swithchgrass)에 함께 출연하며 연인으로 발전했다.
  • 별들과 속닥이러 하늘로 간 ‘감성마을 촌장’

    별들과 속닥이러 하늘로 간 ‘감성마을 촌장’

    뇌출혈 투병중 코로나로 폐렴 앓아문학·예능 등 문화계 활발한 활동졸혼·존버·정치적 발언 주목받아강원 화천군 감성마을 촌장으로 활동하던 ‘기인 문학가’ 이외수 작가가 25일 별세했다. 76세. 유족들은 이 작가가 이날 오후 8시쯤 한림대 춘천성심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운명했다고 밝혔다. 이 작가는 2014년 위암 2기 판정으로 수술을 받은 뒤 회복했지만 재작년 3월 뇌출혈로 쓰러진 뒤 최근까지 재활 치료를 받아 왔다. 올해 3월 초 코로나19 후유증으로 폐렴을 앓아 중환자실에 입원해 투병 중이었다. 1946년 경남 함양에서 출생한 이 작가는 1965년 춘천교대에 입학한 뒤 8년간 다녔으나 1972년 중퇴하고 같은 해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견습 어린이들’이 당선돼 문인으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1975년에는 중편소설 ‘훈장’으로 ‘세대’지 신인문학상을 받아 문단에 정식 등단했다. 이후 그는 섬세한 감수성과 환상적 수법이 돋보이는 작품을 꾸준히 발표했다. 기발한 상상력과 특유의 언어유희로 비틀어진 세상 속에서 고뇌하는 인간 존재의 구원을 탐구했다는 평을 받는다. 장편소설 ‘들개’·‘칼’·‘장수하늘소’·‘벽오금학도’ 등을 비롯해 시집 ‘풀꽃 술잔 나비’·‘그리움도 화석이 된다’, 에세이 ‘내 잠 속에 비 내리는데’·‘하악하악’·‘청춘불패’ 등 왕성한 집필 활동을 이어 갔다. 어린 시절 화가를 꿈꾸며 춘천교대 시절 미전에 입상한 경력이 있던 그는 1990년 ‘4인의 에로틱 아트전’과 1994년 선화(仙畵) 개인전을 열었다. 이 밖에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과 시트콤, 케이블TV, 광고계를 넘나들며 문화계 전반에서 활동을 펼쳤다. 특히 170여만명의 트위터 팔로어를 거느리며 강경한 정치적 발언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쏟아내 ‘트위터 대통령’으로도 불렸다. 2008년 뉴라이트 교과서 문제를 비롯해 김진태 전 의원의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 발언,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 발언 등에 대해 SNS로 비판을 가감 없이 쏟아냈다. 2012년에는 요즘 힘들게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로 “존버(힘들어도 버틴다는 뜻) 정신을 잃지 않으면 된다”고 답해 ‘존버 정신의 창시자’로 불리기도 했다. 거침없는 소신과 입담으로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 원로 작가라는 평을 받은 그는 2015년에는 한국 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 작가는 강원도와 인연이 깊다. 경남 함양 외가에서 태어난 뒤 강원 인제군 본가에서 성장한 그는 춘천에서 30여년간 지내며 집필 활동을 이어 가다 2006년 이후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의 감성마을로 이주해 투병 전까지 지냈다. 2018년에는 아내와 각자의 인생을 갖자며 졸혼(卒婚)을 선언해 화제가 됐지만, 부인 전영자씨는 고인의 뇌출혈 소식에 “남편이 불쌍하다”며 졸혼 종료를 선언하기도 했다. 동료 문인들의 추모도 이어졌다. 이호준 시인은 “모든 꽃이 약속하고 진 듯, 느닷없이 세상이 텅 비어 버리고 말았다. 꽃들이 떠난 자리에 어둠이 가득하다. 어찌하나. 어찌하나. 다시는 손잡을 수 없겠구나”라며 스승이자 오랜 친구였던 선생을 떠나보내는 슬픔을 페이스북에 남겼다. 이 작가와 각별한 사이였던 류근 시인도 페이스북에 “애통하고 비통하다”며 “문학으로도 인간으로도 참 많은 것을 주고 가셨다. 선생님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과 슬픔을 함께한다”고 썼다. 류 시인은 이 작가에게 ‘격식을 버리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늙은이’란 뜻의 ‘격외옹’(格外翁)이란 호를 지어 준 사람이기도 하다. 앞서 2020년 10월 이 작가의 아들 이한얼 영화감독은 투병 중이던 아버지를 위해 트위터에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아버지와의 추억을 제게 다시 공유해 달라”는 글을 남겼다. 이 감독은 당시 “보내 주신 글들을 아버지께 읽어 드렸는데, 그때마다 눈물을 흘리시더라고요. 행복하시기 때문이었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 작가는 올해 1월 1일 회복을 위해 여러 재활 게임을 진행하는 모습으로 새해 인사를 한 바 있다. 이 감독은 당시 “아버지께선 근력이 많이 붙고 있다”며 “‘존버’의 창시자답게 몸소 존버를 실천하고 계신 모습을 보여 준다”고 밝은 모습을 전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전씨와 장남 이 감독, 차남 이진얼씨 등이 있다. 빈소는 강원 춘천시 호반병원장례식장에 마련됐다. (033)252-0046.
  • [길섶에서] 단심가/이동구 에디터

    [길섶에서] 단심가/이동구 에디터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첫날 선배·동료 다섯이 저녁 술자리를 가졌다. 코로나19 이전엔 매월 한 차례씩 모임을 가졌지만 그동안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한자리에 다 모일 수 없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최대 모임 인원을 네 명으로 제한한 탓이다. 한 명이라도 빠지면 섭섭하니 그럴 바엔 다 모일 수 있을 때까지 모임을 늦추자고 해 왔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회원에 대한 배려심을 끝까지 지켜 낸 모임인 것이다. 어림잡아 1년여 넘게 한자리에 모이지 못했던 터라 다들 반기며 즐거워했다. 그동안 쌓였던 갖가지 사연들이 술잔이 거듭될수록 재미나게 풀려 나왔다. 물론 화제의 중심은 코로나 무용담일 수밖에. 회원 중엔 감염된 분도 있었다.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났으니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더구나 회원이나 주변의 선후배들을 향한 애정도 변함 없음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팬데믹에도 변하지 않는 굳은 마음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그분들이 늘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 [단독] ‘尹 광주절친’ 주기환 인수위원, 오늘 광주시장 후보 등록한다 [6·1 지방선거 핫 이슈]

    [단독] ‘尹 광주절친’ 주기환 인수위원, 오늘 광주시장 후보 등록한다 [6·1 지방선거 핫 이슈]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 광주시장과 전남지사 후보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광주시장 후보의 경우 윤석열 당선인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주기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전문위원이 6일 중앙당에 후보등록 서류를 접수할 것으로 확인됐다. 주기환 전문위원은 5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광주시장 후보등록에 필요한 서류를 6일 국민의힘 중앙당에 제출할 예정”이라며 “부담이 많이 되지만 광주시민과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광주지검 수사과장 출신인 주 위원은 호남대 경찰학과 초빙교수로, 현재 인수위 정무사법행정분과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윤 당선인이 광주지검 특수부 검사로 있을 당시 인연을 맺었으며, 윤 당선인이 평소 광주를 찾을 때면 허심탄회하게 술잔을 기울일 정도로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주 위원의 출마 결심 과정에도 윤 당선인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전해졌다. 지역 정치권에서는 주 위원이 이번 시장 출마를 통해 정치적 체급을 올리고 이를 통해 새 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앞서 전남에서는 지난 4일 이정현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대표가 전남지사 출마를 공식화했다. 이 전 대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전남을 변화시키기 위해 전남지사에 출마한다”며 “전남 서부권과 동부권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융합시켜서 전남을 4차 산업 수도로 자리잡게 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그동안 보수의 불모지였던 호남에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 ‘서진정책’을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 나갈 것”이라며 “호남의 마음을 얻기 위해 광주시장과 전남지사 선거에도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라고 밝혔다.
  • [단독] 윤 당선인 최측근 주기환 인수위원, 6일 국힘 광주시장 후보 등록

    [단독] 윤 당선인 최측근 주기환 인수위원, 6일 국힘 광주시장 후보 등록

    주 위원 “부담 많이 되지만 국가와 광주위해 최선 다할 것” 국민의힘 시장 후보 물색 난항 속 당선인 의중 반영된 듯 이정현 전 의원 전남지사 출마로 광주·전남 여야 대진표 구체화 6·1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 광주시장과 전남지사 후보가 구체적인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광주시장 후보의 경우 윤석열 당선인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주기환 대통령직 인수위 전문위원이 6일 중앙당에 서류를 접수할 것으로 확인되면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주기환 전문위원은 5일 통화에서 “광주시장 후보등록에 필요한 서류를 6일 국민의힘 중앙당에 제출할 예정”이라며 “부담이 많이 되지만 광주시민과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광주지검 수사과장 출신인 주 위원은 호남대 경찰학과 초빙교수로, 현재 대통령직 인수위 정무사법행정분과 전문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윤 당선인이 광주지검 특수부 검사로 있을 당시 인연을 맺었으며, 윤 당선인이 평소 광주를 찾을 때면 허심탄회하게 술잔을 기울일 정도로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주 위원의 이번 광주시장 출마 과정에도 윤 당선인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전해졌다. 지역 정치권에서는 주 위원이 이번 시장 출마를 통해 정치적 체급을 올리고 이를 통해 새 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앞서 전남에서는 지난 4일 이정현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대표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전남지사 출마를 공식화했다. 이 전 대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전남을 변화시키기 위해 전남지사에 출마한다”며 “전남 서부권의 잠재력과 전남 동부권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 올리고 융합시켜서 전남을 4차 산업 수도(首都)로 자리매김 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제가 도지사가 되면 너무나 정치적인 전남을 ‘삶의 전남’으로 바꾸어 놓겠다”며 “사실 전남에서 탈정치보다 더 시급한 것은 탈이념”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그동안 보수의 불모지인 호남에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 당에서 추진해왔던 ‘서진정책’을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나갈 것“이라며 ”호남의 마음을 얻기 위해 광주시장과 전남지사 선거에도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라고 말했다.
  • 소주 마신 이효리 “가슴 B컵 이하 접어” 손병호 게임…보아 반응이

    소주 마신 이효리 “가슴 B컵 이하 접어” 손병호 게임…보아 반응이

    가수 이효리, 김완선, 엄정화, 보아, 마마무 화사가 한 자리에 모여 팬들과 소통했다. 지난 27일 엄정화 유튜브 채널 ‘Umaizing 엄정화TV’에는 여성 솔로 가수 이효리, 엄정화, 김완선, 보아, 마마무 화사가 출연했다. 이들은 김태호 PD가 연출하는 티빙 예능물 ‘서울체크인’ 촬영 차 가수 김완선 집에 모였다고 밝혔다. 김완선은 “우리 집에서 굉장히 훌륭한 가수들과 모임을 가지면서 얘기하다가 라이브 방송까지 하게 됐다. 여러분들 반갑다”고 인사했다. 이효리는 “지금 소주 마시고 있었다”며 “(엄정화는) 지금 취했다”고 설명했다. 엄정화는 아니라고 했지만, 화사 역시 “너무 취했다”며 웃었다. 라이브 방송을 하던 중 주량에 대한 질문이 나왔고 화사는 “나는 객기로 짝으로 마신 적이 있다. 그 중에 내가 3~4병 마셨다”고 밝혀 모두 놀라워 했다. 보아는 “소주 여자 둘이서”라고 말을 시작하자 “이효리 “얼마 전에 인스타 스토리에에 둘이서 열 몇 병을 마셨더라”고 말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효리 “다섯 병 이상은 못 마신다. 세 병 이후에는 필름이 끊긴 채로 마신다”고 했고 엄정화 “나는 주량을 모른다. 와인을 두 병 마신다”고 했다. ‘손병호 게임’도 진행했다. 다섯 손가락을 펴고 자신이 해당하는 경우 손가락을 하나씩 접는 게임이다. 이날 이효리는 노란색 티셔츠를 입어 ‘이소룡’이라고 불렸다. 이효리는 “이소룡 접어” “결혼한 사람 접어” “금귀걸이 접어” “강아지 다섯마리 이상 접어” 등의 조건에 해당 돼 손가락 네 개를 접었다. 이효리는 자신의 차례가 되자 “가슴 B컵 이하 접어”라고 외쳐 웃음을 줬다. 보아는 “B컵이냐 D컵이냐, B? 그 정도는 아니야”라며 손가락을 접지 않았다. 화사는 “그런 건 그냥 드세요”라며 인정한 뒤 술잔을 비웠다. 이뿐 아니라 “단 하루만 나머지 네 명 중 한명으로 살 수 있다면?”이라는 질문에 김완선은 “나는 이효리. 자연과 동물이 가득한 곳에서 사고 싶다. 막상 실천하기가 힘든데 하루만 경험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이효리는 “나는 보아다. 나는 파워풀한 춤을 추고 싶다. 일본말 유창하게 해서 일본 아무 곳에 들어가서 막 시키고 싶다. 보아 초창기 일본 활동할 때 일본말 잘 하는지 몰랐을 때 리허설 하려고 앉아있었는데 매니저랑 일본말을 하는데 유창하게 해서 놀랐다”고 전했다. 엄정화는 “김완선이다. 같은 연배지만 선배니까. 무대에서 발이 안닿는 것처럼 날아 다녔을 때 그런 무대를 해보고 싶다. 옛날 김완선으로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화사는 “나는 다 한 번씩 살아보고 싶다. 그 중 엄정화다”고 말했고, 보아는 “화사의 가터벨트가 그거 한 번 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한편 서울체크인은 서울에서 스케줄을 마친 ‘이효리는 어디서 자고 누구를 만나고 어디를 갈까?’라는 호기심에서 출발한 콘텐츠다. 1월 말 파일럿으로 공개된 후 큰 호응을 얻어 다음 달 8일 정규 편성으로 돌아온다.
  • [길섶에서] 오래된 인연/김성수 논설위원

    [길섶에서] 오래된 인연/김성수 논설위원

    20여년 전 과천청사 출입 때 만난 정부 부처 공보관과 당시 출입기자 몇 명이 지난주 저녁식사를 했다. 공보관 출신인 지인은 공기업 사장을 지내고 요즘엔 한 특허법률사무소의 상임고문으로 일한다고 했다. 일흔을 넘기고도 건강하게 일하는 모습이 보기에 참 좋았다. 70학번인 그분은 대학 시절 밴드를 결성해 대학가요제에도 참가할 만큼 기타를 아주 잘 쳤다. 술이 거나해지면 기타를 직접 치며 노래하는 모습이 너무 멋져 보였다. 거기에 감동받아 기타를 한번 배워 보려 했지만 재주가 없어 포기했던 기억도 있다. 술잔이 여러 차례 돌며 밴드 결성 50주년을 맞아 작년에 행사를 가지려다 코로나 때문에 취소했던 일이며 몇 해 전 차사고로 안타깝게 숨진 후배 공무원의 사연까지 나오면서 금세 밤 9시가 됐다. 코로나를 물리치면 일본이나 이탈리아로 여행을 꼭 함께 가자고 약속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과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다는 말은 역시 진리였다. “국장님! 꼭 건강하세요.”
  • 아파트·소음벽 넘어 볼 수 있을까, 태종·세종의 눈길 닿던 한강

    아파트·소음벽 넘어 볼 수 있을까, 태종·세종의 눈길 닿던 한강

    ■조선 태종이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머물렀던 이궁(離宮) ■서울 광진구 뚝섬로 58길 101 자양현대3차아파트 301동 앞 울타리의 펜스형 표석(복원한 낙천정은 인근 현대강변아파트 102동 옆)‘신선의 풍경, 사람의 소음’ 광나루는 강폭이 넓어 시야가 시원하게 열린 곳이다. 광나루, 광진의 다른 이름이 양진(楊津)이었으니 물가에 버드나무가 낭창낭창 휘늘어져 있었을 테다. 팔당에서 들어오는 물은 잘 보이고 동호로 빠져나가는 물은 보이지 않으니 명당이랬다. 뚝섬은 예부터 장안에서 인심이 가장 좋은 동네로 일컬어졌다. 저녁 무렵 굴뚝에서 연기가 나지 않는 집이 있으면 너나없이 각추렴해 굶는 사람이 없었다. 자연의 풍광이 아름답고 사람의 풍경 또한 아름다웠던 그곳, 광나루와 뚝섬 사이에 낙천정이 있었다. 하지만 앵돌아 한강을 등진 ‘낙천정 터’ 표석 자리에서는 물결 한 자락 보이지 않는다. 가지치기한 겨울나무 아래 울타리에 걸린 표석이 휑뎅그렁하다.낙천정에 맑은 가을이 다시 오고 훌륭한 임금 머무르시는 곳에 상서로운 기운이 피어오르네 부슬비 속에 흰 갈매기는 마포 어귀를 날고 지는 노을 속으로 외로운 오리 한 마리 북한산 위로 날아가네 임금의 호탕하고 어진 덕에 바람 앞의 풀처럼 백성들이 감화되어 엎드리고, 성스러운 은혜와 덕택이 강물과 함께 흐르네 정무 바쁘신 와중에 짬을 내어 풍광을 감상하니 인간 세상에 이곳을 빼면 어디가 신선의 풍경이란 말인가? 변계량이 노래한 낙천정을 깜냥껏 풀어 보다가 문득 어줍은 꾀가 떠올랐다. 낙천정 자리로 추정되는 곳에 지어진 301동 아파트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자유 출입이 가능한 현관이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는 일은 어렵지 않다. 잡상인은 아니지만 외부인은 분명하니 지은 죄도 없이 뒤통수가 찌릿하지만 어쩔 수 없다. 갈매기와 오리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강 귀퉁이 한 조각쯤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한데 그조차 욕심인가? 집 안 베란다를 통해서만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구조라 23층 꼭대기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뒤편 쪽창을 통한 주차장뷰뿐이다. 잠긴 옥상 문 앞에서 맥없이 돌아 쪽창 너머 생뚱맞은 곳에 걸린 표석을 사진으로 담는다. 허탈하고 아쉽다. 일상적으로 완상할 수 있는 수려한 경치는 옛적에 권력이라면 지금은 금력으로 표상되는 힘의 전유물인가 보다. 그래서 다들 그토록 그 무서운 호랑이를 잡아타고 싶어 안달하는 걸까? 호랑이라는 이름이 통용된 것은 18세기 숙종 때쯤으로 알려져 있다. 이전까지 북쪽에서는 범, 남쪽에서는 호랑이라 불렀다. ‘문제적 인간’ 이방원은 달리는 호랑이를 잡아탔다. 포수들은 호랑이 사냥을 나갈 때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호랑이 뼈와 고기로 끓인 국을 먹었단다. 이방원이 호랑이의 주인이 된 것은 호랑이를 갈아 마실 정도로 호랑이를 잘 알았기 때문이다. 이씨 왕가를 통틀어 과거 급제자는 이성계의 5남 방원과 6남 방연뿐이다. 방연은 건국 전에 죽었으니 조선 왕실의 급제자는 이방원이 유일하다. 타고난 명석함에다 아버지 이성계를 도와 고려 왕조를 끝장내고 조선을 창업한 경험이 더해져 그는 한층 강해졌다. 곰의 앞발은 철퇴요 발톱을 세운 호랑이 앞발은 칼이랬다. 젊은 역사 마니아들이 붙인 이방원의 별명은 ‘킬(Kill)방원’. 정몽주와 정도전부터 이복형제 방석·방번까지, 이방원은 호랑이의 앞발로 거치적거리는 정적을 모두 베었다. 방원이 피도 눈물도 없는 권력욕의 화신, 역사학자 임용한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치 9단 술수 9단’의 이미지로 후대에 기억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그런데 아버지 태종은 정안군 이방원과 다른 면모를 보인다. 18년 동안 호랑이를 타고 거침없이 달린 태종은, 권력은 부자지간에도 나눠 갖지 못하는 것이라는 공식을 깨고 아들 세종에게 호랑이를 양도한다. 스스로 “말과 사람을 보는 눈은 내가 옛사람에게 양보하지 않는다”고 자신했던 태종은 호랑이를 제대로 다룰 사람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아보았고, 호랑이의 다음 주인에게 꽃길을 깔아 주기로 결심한다. 처가인 민씨가를 숙청했던 실력으로 세종의 처가, 즉 사돈인 심씨가를 단칼에 제거한다. 외척이라는 내부의 위험을 없앤 후에는 바깥으로 눈을 돌려 왜구의 소굴이자 전진기지였던 대마도 정벌을 바로 이곳 낙천정에서 실행한다. 정벌을 마치고 보무당당히 돌아온 원정군이 승리의 술잔을 드는 모습이 눈에 삼삼하다. 태종은 껄껄껄 호탕하게 웃으며 흠뻑 취했을 것이다. 조선 창업 성공과 성군 세종 만들기 프로젝트, 그에게는 다 계획이 있었다. 2009년 정비 사업 전까지 ‘낙천정 터’ 표석은 엉뚱한 자리에 있었다. 102동 표시만 보고 가다가 뒤늦게 현대강변아파트가 반대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재미있는 일은 돌아가는 길에 또 다른 ‘낙천정’을 발견한 것이다. 숯불갈비를 파는 식당 낙천정. 최소한 식당 주인은 가게 이름을 지을 때 동네의 역사적 의미를 참고했을 테니 표석 자체보다 이 같은 기억의 작은 징표가 더 반가울 때가 있다. 고기가 없으면 밥을 먹지 않는 편식쟁이 아들이 행여 건강을 해칠까 봐 자기가 죽은 뒤 상중일지라도 세종에게는 고기를 먹이라던 태종이 아니었던가? 그토록 애틋한 부자가 함께 거둥했던 낙천정을 기리는 데는 숯불갈비집이라도 무색지 않으리라!현대강변아파트 102동 옆구리에 있는 낙천정 아닌 낙천정은 1993년에 서울특별시기념물 제12호로 지정되었다가 2009년 해제되었다. 몇몇 인터넷 자료에는 아직 이 정자가 낙천정 터 이미지에 올라 있다. 1991년 현대강변아파트를 건축할 때 땅을 기부채납 받아 건축한 듯한데, 후일 사료와 항공사진 등을 통해 원위치에서 200m 이상 차이가 나고 정자의 원형 또한 조선 전기 양식이 아님을 확인하면서 기념물의 가치를 상실하게 되었다. 사료 발굴에 따라 역사도 변한다. 개발과 보존 사이의 갈등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주먹구구로 기념물을 지정했던 시절을 지나 유물·유적에 접근하는 방식이 정교해져 간다는 사실은 의미 있다. 건축물의 경우 도면과 설계도가 없으면 경주 황룡사지처럼 폐허로 남겨 두는 것도 한 방법이다. 텅 빈 자리를 상상력으로 채울 수만 있다면 폐허라도 더없이 충만할 것이다.다만 복원물이 의미를 잃으니 고스란히 흉물이다. 주차된 차에 가로막히고 입구가 쇠사슬로 폐쇄된 낙천정 아닌 낙천정에서 보이는 것은 소음벽과 고가차도뿐이다. 방치된 정자를 대신해 조망대를 설치하면 어떨까? 그렇게라도 태종과 세종의 눈길이 닿았던 너르고 푸른 한강을 보면 좋지 않을까? 현재의 호랑이가 과연 허락할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호랑이인지 고양이인지도 모르면서 잡아타겠다는 것은 욕심이요, 호랑이 등에서 내려오지 않으려는 것은 탐욕이요, 호랑이가 영원히 멈추지 않고 달리리라 믿는 것은 어리석음이다. 높다란 소음벽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차량들의 소음이 내내 사위에 웅웅거린다. 호랑이에 오르는 것은 절경을 취하고 소음을 견디는 일일 테다. 한 블록만 물러나면 한강뷰는 없을지나 사방이 고요하고 평화롭다. 오는 길에 지났던 자양전통시장에 들렀다 귀가하련다. 세상은 하 수상해도 호랑이 따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빚어내는 일상의 소음은 진진하다. 충청도식 무시루떡과 매운 닭강정이 인심 좋은 자양시장의 별미랬다.(끝)
  • [열린세상] 내일을 위한 시간/김하늘 라이스앤컴퍼니 대표

    [열린세상] 내일을 위한 시간/김하늘 라이스앤컴퍼니 대표

    이 글은 아픔을 직면하고 추스르고 나아가고자 하는 나와, 나와 같이 강제추행으로 고통스러워하는 피해자들 그리고 그들 곁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글이다. 즉 우리를 향한 글이다. 그날 종로의 한 식당에서 남편의 오랜 지인인 A와 저녁 만남을 가졌다. A는 그 자리에 그의 지인 두 명을 동석시켰다. 썩 내키지 않았지만, 남편과도 일면식이 있던 사이라고 하여 거절하지 않았다. 일행들과 잔을 돌리며 이야기를 나눴다. 자연스럽게 건너편에 앉아 있던 B와도 주거니 받거니 술잔이 오갔다. 대화 중 B의 한마디가 내 귀에 꽂혔다. “아오, 형수님만 아니면 진짜!” 잘못 들었나 싶었다. 그의 비상식적인 언행에 꽤나 불쾌했지만 ‘다음에 안 보면 되지’ 하고 무던히 넘겼다. “형님, 포장마차에 가고 싶어요.” B가 남편에게 말했다. 근처 포장마차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내 왼쪽엔 B가, 오른쪽엔 남편이 앉고 건너편에 A와 C가 앉았다. 술이 약한 A는 테이블 위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평소 친분이 있던 B와 C의 대화가 주를 이뤘다. 남편이 화장실 때문에 자리를 떴다. 그렇게 네 사람만 남았다. 공허한 시간이 흐르던 중 어느 순간 내 왼쪽 겨드랑이 사이로 손이 들어왔다. B의 손이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그를 봤다. 날 보고 씨익 웃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건너편의 C를 봤다. 취한 C는 이 상황을 보지 못한 듯했다. 그사이 B는 내 왼쪽 가슴을 두 번 더 만졌다. 방어할 새도 없었다. 남편을 기다리며 모바일로 택시를 잡으려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B의 만행은 계속됐다. 그는 내 두 볼을 꼬집듯 부여잡았다. 그리고 입맞춤을 시도했다. 내 얼굴을 자신 쪽으로 잡아당기며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고 말했다. “뽀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마침 화장실에 다녀온 남편이 추행을 목격했다. 남편은 B의 어깨를 잡아당기며 그의 추행을 저지했다. 순간 큰 몸싸움으로 번질 것 같아 덜컥 겁이 났다. 도망치듯 남편을 데리고 포장마차를 나와 택시를 잡아 탔다. 내 몸은 힘없이 굳어 떨렸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얼굴과 몸을 씻었다. 그리고 비처럼 내리는 샤워기물 아래에서 울며 기도했다. 부디 자고 나면 사라질 악몽이길 바라며.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별일 아니라 여기며 일상을 지속하려 노력했지만 잘 안 됐다. 몰아세울수록 기울어져 갔다. 작은 소음도 폭발음처럼 크게 들렸다. 심장이 귀에 달린 것처럼 종일 심장 박동소리가 들렸다. 앉으나 누우나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말도 나오지 않았다. 왜 그때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을까. 왜 그때 무례하다고 불쾌함을 표현하지 못했을까. 왜 그런 사람과 같이 자릴 했을까…. 수많은 ‘If’들을 늘어놓으며 시계를 반대로 돌릴수록 무력감과 좌절감은 깊어져 갔다. 고소장을 접수시켰다. 가까운 지인 한둘에게 사건에 대해 토로했지만 돌아오는 말들은 처참했다. ‘네가 매력적이긴 하지’, ‘그러니까 술좀 그만 마셔’, ‘그런 자리엔 왜 갔니?’ 소리 없는 좌절은 분노로 모습을 돌변하기 시작했다. 적극적으로 나를 구원하고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성폭력 여성 및 아동 지원 시스템인 ‘해바라기센터’를 경유해 의료 지원을 받기로 하고 정신건강의학과 외래 예약을 했다. 이어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도움을 청했다. 더듬더듬 말을 텄다. 상담사는 이름 대신 자신을 ‘0909’로 소개했다. 그녀는 어떤 절차 없이 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 줬다. 그리고 말했다. “당신은 최선을 다해 아픔을 직면하고 관통하고 있으니, 절대 자신을 비난하지 마세요. 혹시나 누군가 2차 가해를 한다 하여도, 그들이 강제추행을 보는 시각이 그 정도다 생각하세요. 절대 그들을 미워 말며 일시적으로 관계를 차단하세요. 무엇보다 주체적으로 적극적으로 이 사건을 처리하세요. 그게 오늘을 살고 내일의 상처로 남기지 않는 방법입니다.” 사건 발생일 11월 15일, 고소일 25일,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크리스마스. 원형탈모, 불안과 불면, 대인공포와 공황, 온갖 염증과 종양까지 실컷 괴로워했다. 아직 가해자 소환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아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가지만, 이제 그만 자학을 멈추고 나를 용서하기로 한다. 괴로워하던 나를, 몰아세우던 나를, 허우적대던 나를 용서한다. 그리고 고한다. 해피 뉴 이어.
  • [강남순의 낮꿈꾸기] ‘술의 정치’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넘어서

    [강남순의 낮꿈꾸기] ‘술의 정치’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넘어서

    최근 신문들을 살펴보다가 내 눈을 의심하게 되는 표제들을 보았다. ‘술의 정치’라는 개념을 마치 창의적인 개념으로 소개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신문에 등장하는 한 대선 후보에 관한 기사가 나올 때마다, 많은 경우 ‘술’과 연결돼 있다는 것이 많은 이들에게 참으로 의아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 ‘술의 정치’라는 개념이 일반인들의 사적 대화가 아니라 신문에 등장하기까지 한다. ‘술의 정치’와 연계돼 언론에 소개되는 그 대선 후보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처음 열고서 ‘소주 1~2병’이 주량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그는 왜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나 비전이 아니라 ‘주량’이 사람들의 관심 영역이라고 생각했는지 의아스럽다. ●‘술의 정치’ 무비판… 사회정치적 후진성 보여 한국이라는 한 나라의 대선 후보가 자신의 정책이나 비전이 아니라 “‘매력 발산’을 통해 자기 사람을 만드는 매개체”로 술을 이용한다는 것은 한 개인을 넘어 국가적 수치다. ‘술의 정치’에 대한 비판적 분석이 부재한 채 그 행보를 통해 특정 대선 후보를 홍보하는 것 같은 ‘홍보물’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대부분의 한국 언론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런 언론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한국 사회의 사회정치적 후진성을 드러낸다. 21세기 한국을 이끌어 갈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한 대선 후보의 행보에 바늘과 실처럼 언제나 따라다니는 이 ‘술의 정치’는 이제 2021년부터 세계 지형에서 선진국의 범주에 들어간 한국이, 정치적 후진성을 고스란히 담보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그런데 ‘술의 정치’는 왜 심각한 문제인가. 한 대선 후보의 행보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술자리’ 사진은 여러 측면에서 중요한 분석 텍스트다. 첫째, ‘벌건 얼굴’이라는 표현과 함께 등장하는 ‘술의 정치’는 한국 정치가 여전히 ‘인맥 정치’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해 준다. 한 정치가의 한국 사회에 대한 비전과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정치적 역량과 상관없이 ‘인맥’으로 뭉쳐야 한다는 메시지다. 흔한 말로 ‘우리가 남이가’의 정치를 하겠다는 노골적인 제스처이다.둘째, ‘술의 정치’를 보여 주는 사진들은 한국 정치계의 폐쇄성과 반민주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한국 문화에서 매우 중요하게 간주되는 ‘나이 차이’를 넘어서서 함께 ‘어깨동무’까지 할 정도의 ‘결속력’을 다지는 ‘술의 정치’ 사진에 누가 포함되고 누가 배제되는가. 전두환씨에 대한 정치적 ‘찬사’ 이후 쏟아지는 비판을 막기 위해 광주시민에게 사과하러 갔다는 광주에서도, 그는 소위 ‘원로 정치인’과 술자리를 갖고 사진을 찍었다. ‘술의 정치’ 사진은 ‘생략에 의한 차별’의 전형을 드러낸다. 주요 정당을 대표하는 한 대선 후보의 행보에 등장하는 이 술과 연결된 사진에 들어가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빠진 사람이 누구인가까지 보아야 한다. 대선 후보의 행보는 그의 사회적 가치관과 정치적 비전을 담아내는 다층적인 검증자료이다. 술의 정치 사진은 정치의 중심부를 차지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남성, 비장애인, 이성애자라는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강화하고 있다. 셋째, 술의 정치 사진은 합리적이고 창의적인 토론을 통해 대선 후보의 정치적 능력을 검증하는 것은 ‘불필요한 것’이며 오로지 집단적 패거리 문화에 토대를 둔 ‘의리’를 다지고 대중을 선동하는 것만이 중요하다는 지극히 위험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 한국에서는 자연스러운 회식이나 술자리 모임을 통해 끈끈한 동맹 관계를 다지는 술의 정치는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또한 언론도 비판적 분석 없이 그러한 수치스러운 행보를 특정 대선 후보의 장점인 양 부각시키는 일은 결코 없다. 대선 후보의 행보에 모든 촉각이 집중되는 이 시기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사진들에는 치맥을 하거나 소주잔을 기울이고, 벌게진 얼굴을 하고서 선거전략팀과 ‘의리’나 ‘전의’를 다지는 모습이 주로 들어 있다. 언론은 그 후보의 ‘장점’인 양 “정치적 고비 때마다 돌파구를 마련하는 자리”에 반드시 등장하는 것이 “술”이라고 전한다. 입당 문제를 두고 당대표와 신경전을 벌이다가 ‘어색함’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전이된 것도, 대선 후보가 500cc 맥주 6잔을 그리고 당대표가 3잔을 마시면서부터라고 언론은 전한다. ‘얼굴이 벌게진 두 사람’은 정치적 선후배로서의 끈을 다지며 “걱정 말라. 정권교체 하겠다”며 주먹 쥔 손을 치켜올렸다고 한다. ‘대선 소주’라는 별명이 붙기까지 한 부산의 소주를 들이켜는 모습, 대선 승리를 기원하며 ‘짠’ 하고 술잔을 마주쳤다는 보도도 나왔다. ●상대 입장을 진정 이해하는 경청 능력도 중요 ‘요정 정치’로 시작된 ‘룸살롱 정치’ 또는 ‘회식 정치’의 폐단은 정치계는 물론 교육계와 경제계, 법조계, 문화계 등 사회 전반에서 한국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이러한 ‘술의 정치’는 선후배의 위계주의, 남자들만의 ‘의리’에 근거하는 남성동종주의, ‘정상의 육체’를 내세우는 ‘비장애 중심주의’, 사회적 중심부의 자리를 확고하게 강화하는 ‘이성애 중심주의’ 등 갖가지 반민주적 폐단을 암묵적으로 자연화하고, 강화하고, 지속시킨다. 한국은 2021년 7월 ‘유엔무역개발국’(UNCTAD)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의 범주로 올라서게 됐다. 한 나라를 ‘배’라고 한 플라톤의 비유를 따르자면, 대통령은 이제 선진국으로 인정받은 한국이라는 하나의 커다란 배를 운항할 선장과 같다. 그 배를 운항하는 데 요구되는 복합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정치인들의 정치적 역량은 참으로 중요하다. 선장 역할을 하는 대통령 후보가 갖추어야 할 역량을 구성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첫째, 한국은 물론 세계 정세와 위기 문제에 대한 복합적 이해를 갖추어야 한다. 한국의 위기와 문제는 세계적 위기와 언제나 연결돼 있다. 각계의 전문가들이 분석하는 21세기 세계적 위기에 대해 복합적으로 이해해야 한국 사회가 지닌 다층적 문제들과 위기들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정치적 비전을 지닐 수 있다. 둘째, 소통의 기술(arts)을 지닌 사람이어야 한다. 이는 ‘사상적 다중언어 구사자’라는 은유로 담아낼 수 있다. 대통령과 같은 정치인은 언어로 하는 소통을 통해 대화 상대자나 청중을 이해시킬 수 있는 ‘설득의 예술가’가 돼야 한다. 소통은 단순한 기술(skill)이 아니다. 자신의 사상과 가치관이 분명하게 수립돼야 진정한 소통이 가능하다. 소통은 다양한 계층의 한국 국민들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장에서 자신이 생각하고 이해하는 바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참모진이 써 준 것을 보고 읽는 것은 ‘소통’이 아닌 것이다. 마치 다양한 언어를 말할 수 있는 ‘다중언어 구사자’처럼, 청중이 누군가에 따라서 그에 맞는 언어를 구사하는 ‘사상적 다중언어 구사자’가 돼야 한다. 셋째, 분석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분석적 사고란 하나의 현상을 볼 때, 그 현상에 대한 복합적인 연계점들을 합리적으로 분석해 내는 것이다. 이러한 복합적인 연계점들을 볼 수 있는 시각은 그 사람이 지닌 인간관, 가치관, 정치관 또는 세계관을 드러낸다. 넷째, 분명하게 생각하고 거시적 차원과 미시적 차원을 볼 수 있는 눈을 지닌 사람이어야 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스스로 분석하면서 명증성 있는 정책을 제시하고, 그 정책은 언제나 미시적 차원과 거시적 차원을 동시적으로 들여다보면서 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미시와 거시적 차원은 분리불가하기에, 이 두 축을 오가면서 적절한 정책과 대안을 제시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다섯째, 적극적인 경청 능력이 있어야 한다. ‘경청’이란 소리를 듣기만 하는 형식적 ‘듣기’가 아니다. 말하는 이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그 사람의 입장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는 물론 국제적인 장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면서 이러한 경청의 능력은 대통령이 지닌 개혁적 역할에 지지를 보내도록 하는 힘을 지닌다. ●지도자 가능성·역량 검증은 투표권자의 과제 여섯째, 논리와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능력을 겸비해야 한다.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반응이나 두서 없는 단편적 코멘트로만 자신에게 던져진 질문에 대응하는 사람은 논리와 합리적 추론 능력이 결여돼 있는 사람이다. 한국에서는 물론 국제적인 장에서 한국이라는 커다란 배가 항해하도록 지휘하는 역량을 지닌 사람으로서의 자질은 이러한 논리와 합리적 추론 능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내가 생각하는 이러한 정치가의 역량이란 물론 여섯 가지로 제한될 수 없다. 또한 사람마다 생각하는 정치적 역량의 내용은 다를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러한 역량이 대통령이라는 정치가의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그것을 구성하는 ‘필요조건’이라는 것이다. 이미 만들어진 지도자란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이러한 ‘돼야 할 지도자’의 가능성과 역량을 지니고 있는가 아닌가를 엄밀히 검증하는 것은 바로 투표권을 행사하게 될 사회구성원의 책임적 과제이다. 글 텍사스크리스천대 브라이트신학대학원 교수 그림 김혜주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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