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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10대들에게 갈 곳을

    인천 호프집 참사를 지켜보면서 10대들의 해방구,10대만의 아지트가 왜 하필 술집인가 하는 자탄을 금할 수 없다.한창 발랄하고 건강하게 뛰어놀아야할 청소년들이 술 파는 거리에서 악덕 상술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자체가 민망스럽고 안타깝다. 이번 대형 사고를 불러일으킨 동인천역 인현동 일대만해도 전통적인 청소년집결지로서 노래방, 비디오방,당구장과 게임방 등 청소년 상대 업소 300여개가 빽빽이 들어서 있으며 생일파티나 모임이 있을 때마다 지하상가의 공중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청소년들이 유흥가에 드나들었다는 것이다.두 눈을말짱하게 뜬 채 교복 차림의 학생을 출입시킨 업소가 있는가 하면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 2시간에 한번씩 손님을 갈아치우는 등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10대를 상대로 돈을 벌어들인 것은 청소년들의 탈선을 부추긴 중대한 범죄행위가 아닐 수 없다. 청소년에게 술·담배 판매 금지를 목적으로 하는 청소년보호법이 있으나 법을 우습게 아는 이런 악덕업자들이 있는 한 우리 청소년들의 미래는 암담하다.대형참사가 날 때마다 안전불감증과 예고된 인재(人災)를 문제삼기 전에폐쇄명령을 받고도 버젓이 영업을 계속하는 기세등등한 업소와 경찰·구청등 단속반 간의 검은 연결고리를 뿌리째 뽑는 일이 중요하다. 청소년도 즐길 자유가 있고 인격을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그러나 90년대 중반 들어 성인들의 술자리문화가 청소년에까지 퍼지면서 갈 곳 없는 10대들이입시로 인한 중압감을 술집에서 풀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뭔가 단단히잘못가고 있다는 증거다. 일그러진 청소년의 놀이문화를 바로잡기 위해서는그들만의 공간을 마련해주는 일과 청소년프로그램 개발이 시급하다.대학가와다른 번화가의 축제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최근 각 극장들이 벌이는 옥외축제와 구청의 구민문화회관,공원 등을 청소년 놀이공간으로 개방하는 문제를 검토해볼 만하다.장기적으로는 정부 예산으로 각 지역별 청소년 레포츠센터를 건립토록 촉구한다. 비단 이번 인천뿐 아니라 전국의 곳곳이 멍들고 방치되어 10대들에게 점령된 지역은 바이러스 감염에 비유될 만큼 위험 수준이다.돈을 쓸어담을 듯이벌어들 일때는 즐거운 비명을 질렀을지 모르지만 청소년들에게 마약이나 다름없는 술을 팔아 돈을 번 것은 윤락행위 이상으로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뼈저리게 느낄 수 있도록 관련자들을 엄벌하고 10대들에게 한 잔이라도 술을판 업소는 당장 영업을 취소시켜야 할 것이다. 청소년들도 이번 대형참사를교훈삼아 유흥업소 등에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본분을 지키도록 당부한다.
  • [의열 독립투쟁] (9)장진홍 의사

    1927년 10월18일 11시20분경 대구시 중앙통에 위치한 조선은행 대구지점에허름한 옷차림의 한 청년이 나타났다.청년은 곧바로 창구 앞으로 다가가 들고온 보자기를 풀어 네개의 상자 가운데 한 개를 창구로 내밀면서 창구의 직원에게 “이것은 벌꿀인데 우리 여관에 든 손님이 지점장님께 전해달라고 한선물입니다”고 디밀었다. 군대에서 포병대 근무경력이 있는 창구직원 요시무라(吉村)는 상자에서 화약냄새가 나는 것을 느끼고 급히 상자를 열었다.아니나 다를까!상자 안에는도화선에 불이 붙은 폭탄이 들어있었다.깜짝놀란 요시무라는 도화선을 끊고청년으로부터 보자기를 빼앗아 다급하게 나머지 상자를 열었다. 연락을 받고 황급히 달려온 10여명의 순사들이 도화선을 끊으려고 하였으나이미 때는 늦었다. 곧이어 폭탄 하나가 터짐과 동시에 뒤이어 두개의 폭탄이 연속적으로 굉음을 내면서 폭발하며 천지를 뒤흔들었다.이것이 저 유명한장진홍(張鎭弘)의사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사건이다.폭탄을 전한 청년은장의사가 심부름을 보낸 덕흥여관 종업원 박노선(朴魯宣)으로 이 사건과 별다른 관련은 없다. 장의사는 1895년 6월6일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 문림리에서 아버지 장성욱(張聖旭)과 어머니 순천(順天) 김씨 사이에서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본관은인동(仁同),호는 창려(滄旅).장의사는 어려서부터 담력이 크고 의협심이 강했다.칠곡소재 인명학교(仁明學校)를 졸업하고 1914년 조선보병대에 입대해군사지식을 배운 장의사는 1916년 고향에서 대한광복회에 가입했으나 일경의감시가 심해 1918년 만주로 망명했다. 동지인 이국필(李國弼)과 함께 러시아의 하바로프스크로 건너가 조선인 청년 100여명을 규합해 군사훈련을 실시했으나 1917년 러시아혁명의 여파와 일본군의 시베리아출병으로 뜻을 이루지 못한 채 귀국하였다.1919년 3·1 의거가 일어나자 장의사는 일제의 만행을 세계 여론에 호소하기 위하여 동생 진환(鎭煥)으로부터 600원을 받아 전국 각지를 돌며 일제의 만행사실들을 조사,수집하였다.이 해 7월 미국 군함이 인천항에 입항하자 장의사는 경북출신조선인 하사관 김상철(金相哲)에게 이를 영문으로 번역,세계 각국에 배포해줄 것을 부탁했다. 한편 장의사는 일제 통치기관에 폭탄을 투척,일제의 만행을 응징키로 결심하고 대한광복회에서 함께 활동했던 동지 이내성에게서 일본인 무정부주의자이자 폭탄제조 전문가인 호리키리 시게미쯔로(堀切茂三郞)를 소개받아 폭탄제조법을 배웠다. 1927년 8월에 직접 제조한 폭탄의 성능실험을 마친 장의사는 동지들과 경북도청·경북 경찰부·조선은행 대구지점·식산은행 등에 폭탄을 투척하기로하고 10월16일 폭탄 여섯개를 제조했다.이튿날 6개의 폭탄 가운데 5개를 가지고 대구로 향한 장의사는 조선은행에서 가까운 덕흥여관에 숙소를 정하였다.18일 오전 10시40분 장의사는 여관의 사환을 불러 “이것은 조선꿀인데조선은행·도청·식산은행·경찰부 순서로 배달해달라”고 부탁하였던 것이다. 이어 11시40분경 조선은행 대구지점에서 굉음과 함께 폭탄이 터져 일본인순사 4명과 은행원 1명,행인 1명 등 모두 6명이 부상을 입고 조선은행 대구지점 유리창 60여장이 깨졌다.그 순간 두루마기 차림에 파나마모자를쓰고네 대의 금니를 한 모습으로 변장하고 있던 장의사는 말쑥한 양복 차림에 흰 운동화로 갈아신고 상주에서 안동으로 가는 갈림길이 있는 다부원고개를 넘고 있었다. 사건 직후 일본경찰은 철저한 보도통제 속에 범인색출에 나섰으나 단서조차 잡지 못하였다.일본경찰의 포위망이 좁혀지자 장의사는 일본으로 건너가 막내동생 의환(義煥)에게 몸을 의탁하고 도쿄(東京) 오사카(大阪) 히로시마(廣島)등을 왕래하며 1년반 동안을 지냈다. 한편 이 사건의 수사가 미궁으로 빠져들 무렵 엿장수로 변장,장의사 고향집 부근에서 탐문수사를 벌이던 한 형사가 장의사가 오사카에서 안경공장을 경영하는 동생집에 숨어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일본경찰은 조선인 여자첩자를 오사카로 파견,장의사 동생부부에게 접근하여 마침내 장의사가 2층에 숨어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1929년 2월14일 밤 동생 장의환의 안경공장에서는 술자리가 벌어졌다.일본경찰에 매수된 한 조선인 첩자가 안경 1만5,000개를 산다며 계약금조로 30원을 내놓은 것이었다.오랜만에 목돈이 생긴 장의환이 벌인 술자리에는 조선인첩자를 포함해 김해중으로 이름을 바꾸고 활동하던 장의사도 참석하였다. 술이 몇 순배 돌면서 취기가 무르익자 갑자기 일본경찰이 들이닥쳤다.장의사는 순간적으로 일어나면서 전등을 손으로 쳐서 깨뜨리고 창문으로 뛰어내렸으나 아래층에서 대기하고 있던 형사들마저 피할 수는 없었다. 현장에서 체포돼 대구형무소에 수감된 장의사는 단독범행을 주장하며 심문하는 일경에게 “일본이 조선을 해방시켜주지 않으면,너희 일본도 망할 날이멀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취조하던 조선인경찰에게는 “나의 죽은 혼이라도 용서치 않을 것이다”라고 호통을 쳤다. 대구고등법원에서 사형언도가 확정된 장의사는 사형이 집행되기 전날인 1930년 7월31일 옥중에서 자결 순국하였다.장의사의 순국소식이 옥중에 퍼지자재소자들은 ‘조선독립만세’,‘장진홍만세’를 외쳤고 이에 당황한 교도소측은 서둘러 장 의사의 사인이 뇌일혈이라고 발표하였다. [김순석 독립기념관 전시부 연구원] *장진홍 의사 후손들 근황 장진홍 의사는 후손으로아들,딸 각각 3형제를 두었는데 아들은 모두 어려운 형편 속에 살고 있다.세아들 가운데 장남만 보통학교 4년 중퇴를 했을 뿐나머지 두 아들은 모두 무학자이다. 96년 83세로 작고한 장남 형옥(衡玉)씨는 생전에 부친 장의사의 기념사업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나 경제사정이 허락하지 않아 별다른 성과는 남기지 못했다고 한다.차남 형술(衡述·81)씨는 구미시 옥계동에 살고 있는데 연로해서 현재 거동이 불편한 상황이다.또 대구에 살고 있는 3남 형태(衡泰·73)씨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행상 이발소를 하며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장남 형옥씨는 7남3녀를 두었는데 현재 8명이 생존해 있다.장손 상규(相圭·63)씨는 칠곡에서 전자제품 하청업체를 운영하고 있는데 IMF 사태 후 모기업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연쇄부도를 맞아서 살고 있는 집마저 근저당이 설정된 상태. 장의사의 후손 가운데 그나마 그럭저럭 살고 있는 사람은 세 딸이 고작이다.세 딸 가운데 위로 두 딸은 모두 작고하였고 현재 막내딸 형필(衡必·70)씨만 구미에서 살고 있다. 현재 장의사 추모단체나 기념사업회는 특별히 구성된 것이 없고 낙동강 기슭에 서있는 추모비 하나가 고작이다.장의사는 62년 건국훈장 독립장(3등급)을 추서받았으며 묘소는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128번)에 마련돼 있다. 정운현기자 jwh59@
  • [박정희 전대통령 서거 20주년] (하) 인물평가의 두 시각

    -유신시절 고초 설훈의원 유신 시절 여러 고초를 겪으며 민주화운동을 했던 국민회의 설훈(薛勳)의원은 아무래도 박정희(朴正熙)전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이다.‘박통(朴統)’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독재자의 이미지’라고 말했다.다음은 설 의원과의 일문일답. ?박정희 전 대통령이 우리 사회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민주주의 개념의 부재(不在)를 들 수있다.유신독재는 우리의 민주주의 성장을 가로막았다.민주주의는 경제·문화 등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연계되어있다.막대한 악영향이 아닐 수 없다. ?고도 경제성장을 가져온 대통령으로서의 평가도 많은데 공은 인정한다.그러나 IMF국난의 뿌리인 재벌경제 성장의 주인공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약자나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정책으로 성장에만 집중,‘IMF국난’을 잉태시켰다.‘IMF국난’이 재벌경제의 폐해가 극치에 달해 발생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 않는가.분배의 원칙에도 귀를 기울였더라면 오늘의 경제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최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일고 있다.그본질은 과(過)는 작아지고 공(功)은 커진 느낌이 짙다.이는 두 가지 이유에서다.70년대 이후 세대들은 민주주의 교육을 받지 못했고 50·60대들은 교육 자체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독재를 비판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또 그 뒤를 이은 전두환(全斗煥)전 대통령 등의 독재 횡포가 더 극심했다.결국 단점은 약하게 인식되어지고,공로는 돋보이게 됐다.박 전 대통령이 우리 사회의 근대화를 착근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민주주의를 억압했다는 부분도 객관적이고공정하게 평가되어야 한다.추모사업도 같은 맥락에서 추진돼야 한다. ?박 전 대통령에게 긍정적 면이 있다면 한국전쟁 이후 우리 국민은 자기 비하와 무력감에 쌓여 있었다.‘엽전 의식’이 팽배했던 당시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우리나라 국민에게 자신감을불어넣어 주었다.수출 증진과 새마을운동 등으로 우리나라 근대화에 크게 기여한 것도 인정할 만하다.주현진기자 jhj@ -맏딸 박근혜의원 고(故) 박정희(朴正熙) 전대통령의 맏딸인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의원은25일 “아버지는 가난의유산을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고 잘사는 나라를 만들고,공산주의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밤낮으로 생각하신 분이다”고 강조했다.다음은 박 의원과의 일문일답. ?10·26 20주기를 맞은 소감은 돌아가신 아버지 시대를 국민이 긍정적으로 평가·재조명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기념관이 건립되는 시점에 20주기를 맞아 감회가 깊다. ?10·26을 평가해달라 10·26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선진국 대열에 진입할 문턱에서 꿈이 좌절됐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어떻게 보나 장기 집권을 위해 권력을 휘두르고 나라를 망쳤다는 시각은 옳지 않다.장기 집권은 생각지도 않았고 물러날 계획에 대해서 많이 얘기했다.독재라는 용어는 부정부패와 연결되고 권력을 개인의 이익과 부의 축적을 위해 썼다는뜻인데 아버지의 경우 개인을 위해서 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박 전 대통령의 퇴임 이후 계획은 무엇이었나 아담한 산을 마련,나무를 가꾸면서 조용히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가장 큰 업적을 든다면 어려운 시기에 나라를 지킨 것과 가난을물리친 것이다.또 국민의 잠재력을 끌어내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을 들고 싶다. ?현정권 들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바뀌고 있다고 보는지 과거 정권의 매도가 심했다.정권적인 차원에서 권력 장악을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차단했다.국민이 IMF 과정 등을 지켜보면서 스스로 재평가한 것이다.정부도 국민이 원하는 것을 거스를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여권의 박 전 대통령 기념사업 지원을 어찌 보나 정치적 차원에서 총선을 겨냥해서는 안된다.국민이 원하는 일을 하는 차원이어야 한다.잘하는 일이지만 한편에서 선친을 깎아내리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최광숙기자 bori@ -3共 주요인사 현주소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제3공화국 당시 각료와 집권당의 핵심 인사들은 대부분 타계했거나 일선에서 은퇴했다. 총리와 국회의장을 지낸 정일권(丁一權)씨는 94년 임파선암으로 사망했다. ‘피스톨 박’으로 불렸던 박종규(朴鐘圭) 당시 청와대경호실장도 85년 고인이 됐다.한때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세를 자랑했던 이후락(李厚洛)전 중앙정보부장은 경기도 광주의 농장에서 지내다 최근 서울에 올라와 칩거하고 있다.이씨는 민족중흥회 고문을 맡고 있지만 건강이 나빠져 바깥 나들이는 거의 안하고 있다. 신현확(申鉉碻)전 경제부총리는 현재 한·일협력위원회 회장과 ‘박정희 대통령기념사업회’ 회장이다.신씨는 광화문의 한·일협력위원회와 무교동의박정희 기념사업회 사무실에 일주일에 3∼4차례 들리는 것 외에는 특별한 활동을 안하고 있다.79년 10월27일 오전 박 전 대통령의 서거 사실을 눈물을쏟으며 처음 공식 발표했던 김성진(金聖鎭) 당시 문공장관은 박정희 기념사업회 이사를 맡고 있다.김씨는 5년 전 ‘박정희시대’라는 추모집도 발간했다. 69년부터 무려 9년3개월간 박 전 대통령을 지척에서 보좌했던 김정렴(金正濂) 당시 비서실장도 현재 박정희 기념사업회 이사다. 남덕우(南悳祐) 당시 경제부총리는 산학재단 이사장직을 맡아 거의 매일 서초동 사무실로 출근한다.공화당 의장을 지낸 4선 의원 출신의 백남억(白南檍)씨는 자동차보험 회장을 거쳐 지금은 민족중흥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3공에서 공화당 원내총무·대변인을 지낸 김재순(金在淳)전 국회의장은 지금은 월간 ‘샘터’ 발행인이다.61년 5·16때 민간인으로 참여,5선 의원을 지낸 김용태(金龍泰)씨는 동서문화교류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데 최근 건강이 악화돼 병원에 입원중이다. 대통령공보수석,문공장관을 거친 윤주영(尹胄榮)씨는 20년 넘게 전문사진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윤씨는 공화당 사무국 출신 모임인 은행나무동우회 회장직도 맡고 있다.검찰총장,법무장관,중정부장,대통령 법률담당특보를 지낸신직수(申直秀)씨는 81년 변호사로 개업했지만 최근에는 거의 활동을 안한다. 이밖에 김재춘(金在春)전 중정부장은 5·16민족상 이사장,길전식(吉典植)전 공화당 사무총장은 민족중흥회 상임부회장이다.10·26 당시 궁정동 술자리의 유일한 생존자인 김계원(金桂元)전 비서실장은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있다. 김성수기자 sskim@-기념사업과 10·26행사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것처럼 ‘박정희기념관’ 건립을 둘러싸고도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가난을 퇴치한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는 찬성론이 있는 반면 비민주적인 권력자의 일방적인 업적 위주 홍보가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기념관 건립은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회장 申鉉碻)에서 추진하고 있다.정부와 여당은 내년 예산에 기념사업비 지원을 위한 100억원을 책정,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기념관 후보지로는 서울 근교와 구미가 거론되고 있지만 아직 건립 기본계획이 결정되지 않았다.정부 예산안이 확정된 뒤 내년 초쯤 국내외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기념관 건립에 본격 착수할 계획이다. 기념회측은 “기념관 건립에 대해 부정적 시각이 많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있는 그대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애와 업적을 보여줘 후손들을 위한 역사교육의 장(場)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박 전 대통령 서거 20주년을 맞아 각종 추모행사도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다.25일 저녁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전 어록을 담은서적 ‘우리도 할 수 있다’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국민회의 이만섭(李萬燮)총재권한대행,자민련 박태준(朴泰俊)총재,한나라당이회창(李會昌)총재를 비롯해 여야 정치권과 구여권 인사,그리고 일반시민등 1,000여명이 참석했다.김종필(金鍾泌)총리는 국회 대정부 질문 일정 때문에 불참했다. 26일 오전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민족중흥회(회장 白南檍) 주도로 열리는박정희 전 대통령 20주기 추도식에도 많은 참배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김성수기자 sskim@ - 재조사 전망@ 박정희 전 대통령의 3공 및 유신체제하에서 수많은 의혹사건들이 발생했다. 아직도 대부분의 사건들이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은 채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다. 지난 75년 발생한 장준하씨 의문사는 유신체제에서 일어난 대표적 의혹사건이다.그후 ‘민주당 장준하 선생 사인규명조사위원회’가 구성되는 등 진상규명을 위한 움직임이 있었지만 이렇다 할 실적은 올리지 못하고 있다.당시유신독재 반대투쟁에 앞장선 재야 지도자였던 장씨는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약사봉 등산길에서 하산도중 사망했다.그러나 검찰은 사건발생 3일 만에 단순변사로 처리,사건을 조기 매듭지었다.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받다가 투신자살한 것으로 처리된 최종길 서울법대교수사건도 진상규명이 필요하다.인혁당사건은 민주화운동을 탄압하기 위한 이념조작사건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지난 74년 ‘유신독재’가 절정으로치닫던 때 공산혁명을 꾀했다는 이유로 관련자 8명을 사형시킨 사건으로 사법관행상 이례적으로 판결 다음날 사형이 집행됐다.지난 98년 ‘인민혁명당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을 위한 대책위’가 구성됐지만 진상규명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60년대 말 고(故) 이응로 화백 등 많은 지식인과 예술가가 연루된 것으로 발표된 동백림사건도 재조명이 요구된다. 경우는 다르지만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사건도 대표적 미제사건이다. 김씨는 지난 79년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됐다. 지금까지 이런 의혹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이 어려웠던 가장 큰 이유는 역대정부의 미온적 태도 때문이었다.그러나 지난해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의혹사건에 대한진상규명 활동이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특히 여당은 지난 8월 대통령 소속하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두도록 하는 ‘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을 국회에 제출했다.이번 정기국회에서 무난히 처리될 것으로 보여 과거 의혹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의 길이 열리게 됐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안’도 국회에 제출돼 있어 3공과 유신 시절 의혹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은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박준석기자 pjs@
  • 북한 위성 TV방송 시청허용 문답으로 본 시청방법

    정부의 북한 위성TV 시청허용은 국민들에게 북한의 실상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북한 위성 TV방송 시청허용과 관련한 궁금증을 문답으로 풀어본다. ■국민들이 특수시설에서 북한 위성TV를 볼 수 있다는데 서울 수유동의 통일교육원이나 광화문우체국 6층에 위치한 북한자료센터 등에 설치된 시청시설에서 볼 수 있다.주민등록증을 제시한 뒤 신청서를 작성하면 누구나 가능하다. ■언제 시청할 수 있나 북한 위성TV 방송이 오후 4시30분부터 방영되기 때문에 낮시간에 오면 전날내용을 녹화해 볼 수 있다.생방송은 통일교육원 등에서 시청 가능하다. ■시청을 위해서 필요한 장비와 구입 가격은 접시 안테나와 변환기(컨버터)가 필요하다.판매업체 관계자들에 따르면 단독주택에서 보려면 지름 1.8m짜리의 안테나면 된다.가격은 변환기를 포함해100만∼150만원 정도다.케이블 가격은 별도다.고층건물이나 아파트에선 2.4∼3m 규격의 안테나가 필요하다.200만원이상이다.아파트나 고층건물에서 보려면 케이블 가격이 많이든다.20층짜리 고층빌딩의 경우 전체비용은 500만원정도 될것으로 예상된다. ■공동 시청 안테나를 설치해 여러가구가 함께 볼 수 있나 사법당국이 판단할 일이지만 두세 가구가 공청안테나로 보는 것은 국가보안법상 이적성을 띤 전파·유포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전파개념이 있으면 위법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관광호텔에서 유선방송으로 각 방에 보여주는 것은 가능한가 전파개념에 속하기때문에 안된다.하지만 앞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입증되면범위가 확대될 수 있을 것이다. ■대학교 총학생회에선 설치가 가능한가 단순시청의 범위에 들어간다.개인이나 단체의 단순 시청은 가능하다는게 원칙이다.물론 어떤 목적에 따라 이용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가정이나 사무실에서 ‘단순 시청’은 가능하다고 했는데 ‘단순 시청’의한계는 북한의 보도매체 특성이 체제선전,대남비방,사회질서 혼란 등의 내용이 들어있다.이 내용을 국내 사회질서 혼란 등의 목적으로 전파·유포하지 않으면된다. ■개인이 술자리에서 전에 시청했던 내용을 이야기한다면 이야기의 내용이 고무·찬양에 해당되지 않고 이적의 목적을 띠지 않으면괜찮다는 게 당국자의 해석이다. [이석우기자]
  • 서울대 ‘東西화합 장학금’ 생긴다

    “지금의 대학생들이 우리나라를 짊어질 새 천년에는 지역감정은 더 이상없을 겁니다” 2000년 서울대에는 지역감정을 극복하기 위한 ‘동서화합 장학금’이 생긴다.전주고와 서울대 경영학과 69학번인 상영무역주식회사 이종기(李鍾基·50)사장은 지난 1일 서울대 동창회에 ‘경제학부와 경영학과에 재학중인 영·호남 학생들에게 반반씩 지급한다’는 조건으로 1억원의 장학기금을 기탁했다. 장학금 명칭은 ‘이종기 특지(特志) 장학금’으로 정해졌다.서울대 동창회는 13일 “이씨와 같은 취지로 장학금을 내놓는 사람이 나오면 기탁자의 의견을 물어 ‘동서화합 장학회’를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서울대는 새해 1학기부터 이 장학금을 주기로 하고 구체적인 운영계획을 짜고 있다. 이씨의 고향인 전북 장수에서 육십령재만 넘으면 바로 경남 거창이다.하지만 이씨가 50년 동안 느낀 영·호남간 거리는 너무나도 멀었다.“평소엔 허물없이 지내던 사람들도 술자리에서 정치 얘기만 나오면 동서로 갈라지더군요” 이씨는 지역감정을 허물 사람들은 젊은이들밖에 없다고 판단했다.그래서 궁리해낸 것이 지역감정 해소를 위한 장학금 기탁이었다.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 지역감정을 극복하는 데 앞장섰으면 좋겠다”는이씨는 “사정이 닿는 대로 장학기금을 더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지구촌시대에 젊은이들이 지역감정의 굴레에서 벗어나 넓은 눈으로 세상을 봤으면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상영산업 이사로 있다가 지난 87년 이 회사의 가발 부문만 인수해 상영무역주식회사를 차렸다.백인을 겨냥한 패션 가발을 미국과 유럽으로 수출하는 회사로,연간 매출액은 900만달러에 이른다. 이씨는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곳에 그동안 번 돈을 쓰고 싶다”며 마음 한켠에 자리했던 지역감정의 씁쓸함을 털어내려는 것 같았다. 전영우기자 ywchun@
  • 「국감 이모저모」국감현장 표정

    15국회 마지막 국정감사 사흘째인 1일에도 11개 상임위별로 화젯거리가 만발했다. 문화관광위의 문화재청 국감에서는 문화재 발굴 및 보호를 위한 정책대안이 잇따라 제시돼 관심을 끌었다. 국민회의 신기남(辛基南)의원은 “발굴 문화재의 일괄 국가귀속을 위해 문화재보호법 시행령에 특례조치를 신설,발굴보고서가 제출되지 않은 경우라도 유물신고를 해 출토 유물대장에 등록토록 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주장.같은 당 정동채(鄭東采)의원도 “매장문화재를 발굴하면 현장에서 전문가들과 협의,발굴유물을 등급별로 구분해 직접보존(A등급),위탁관리(B등급),출토지에 집단매몰(C등급) 등의 방법을 선택하면 효율적일 것”이라고 주장. 역시 같은 당의 길승흠(吉昇欽)의원은 ‘매장문화재 센터’ 설립을 각각 제안. 정무위의 국가보훈처 국감에서는 자민련 김용환(金龍煥)의원이 기능직 인원의 20%를 국가유공자로 채용해야 하는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과 관련,청와대와 총리실을 강도높게 비난해 눈길. 김의원은 “이 법에 따르면 대통령 비서실은 기능직공무원 175명 중 35명을 국가 유공자로 뽑아야 하지만 단 2명에 불과하고 그나마 총리실은 단 한명도 국가유공자를 채용하지 않았다”고 힐난.김의원의 이같은 비난을 두고 국감장 안팎에서는 김종필(金鍾泌) 총리와의 불편한 관계 때문으로 해석하는분위기. 재경위의 서울·부산·인천지방조달청과 중앙보급창에 대한 국감은 지방2반 의원들의 ‘호화 여흥’이 일부 언론에 크게 보도된 탓인지 무거운 분위기에서 진행. 저녁자리를 주선한 자민련 지대섭(池大燮)의원은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의사진행발언을 신청,“고향인 광주에 온 동료 의원과 선배들을 대접하려 했는데 도리어 부담을 드려 대단히 송구스럽다”면서 “식사자리와 술자리를 구분하지 않고 곧바로 술을 마셨으며 그러다 보니 2시간 다 돼 끝났다”고 해명한 데 이어 한나라당 나오연(羅午淵)의원이 “동료 의원간 친목을 도모하자는 뜻에서 마련한 자리가 결과적으로 오해를 사게 돼 유감”이라고 언급하고는 회의를 시작. 박찬구 김성수기자 ckpark@
  • 나태주 신작시집 ‘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

    충남 공주에서 금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32번 국도를 타고 20분쯤 달리면 매운탕으로 유명한 마암리가 나온다.여기서 대전가는 길을 버리고 계룡산 갑사(甲寺)쪽으로 접어들어 다시 10분쯤 산길을 오르다 보면 오른쪽에 작은 학교가 하나 눈에 들어온다. 나태주(羅泰柱)시인의 일터인 왕흥(旺興)초등학교다.교사는 불과 다섯명.때문에 1학년과 3학년이 같은 교실에서 배워야 한다.지난 9월1일 교장으로 승진한 그의 첫 부임지다.그는 교장이 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고 한다.물론 직함이 탐나서가 아니다. 몇해전 겨울 어느날,날씨가 심하게 얼어붙자 교감이던 그는 아이들이 안쓰러워 교장에게 보일러를 좀 더 켜자고 건의했다.그런데 그 교장은 “당신이교장되면 판공비 떼어 펑펑 때시오”라며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자신의 지위가 한스러웠다는 얘기다. 그의 교직관(觀)은 이처럼 거창하지 않다.아이들에게는 실내화신고 밖에 나가지 말라고 호령하면서,본인은 실내화 바람으로 운동장을 종횡무진 누비는교장만 아니면 된다는 것이다. 그 교장선생님이 시집을 새로 냈다.‘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혜화당)라는 제목을 달았다.흔한 선생님들의 교육시집일까.그는 서울신문(현 대한매일) 신춘문예 출신으로 시집을 20여권이나 낸 중견시인이지만 그렇게 읽어도 좋을 것이다.‘님’은 언제나 존경과 사랑의 대상이니까. 그는 애주가다.술자리에서 ‘한곡조’를 요청받고 부르는 노래는 이 시집에도 실린 ‘산뻐찌나무 아래서’다. 산뻐찌나무 아래서 두 눈이 마주쳤다네/산뻐찌나무 아래서 두 손을 잡았었다네/지금은 어른된 나무 옛날의 키 작은 아기 산뻐찌,산뻐찌나무 아래서 우리는 울면서 헤어졌다네. 그는 이 노래를 ‘동요’라고 주장한다.가락도 동요스럽다.그런데 이 시집을 다 읽고 나면 이 작은 노래는 처음 읽을 때의 소박한 느낌 대신 절절한이별노래로 다가온다. 이처럼 ‘사랑하는 마음…’은 한마디로 사랑노래집이다.그는 평생 한눈 팔지 않고 시골에 살면서 자연을 노래한 서정시인이다.그런데 이 시집으로 그를 이제는 뛰어난 ‘사랑노래꾼’으로 불러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는실제로 20대 때 ‘여자가 뒤박을 놓은’ 경험이 있다고 한다.그러고나니 세상이 다시 보이고,인간사와 사물이 훤해지더라는 것이다.이 시집에실린 시들을 그의 이런 경험과 연결짓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 같다. 그는 세상이 어지럽던 시절에도 현실참여적인 시를 쓰지 않았다.오죽하면지난해 대학 국문과에 들어간 딸이 “아버지의 시 갖고는 세상을 휘어잡을수 없다”고 했을까.그러나 시골에서 서정시를 써온 사람으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한다. 그는 이미 성공한 교육자이다.그가 성공한 시인으로도 발돋움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는 이제 문단의 평가에는 초연한 것 같다.대신 “교장선생님,새 시집에 오자(誤字)가 하나 있는 것 같은데유”라고 전화를 걸어오는 시골독자들의 ‘반응’에 기쁨을 느낀다.55살이 된 이제 세간의 왈가왈부에는 관심이 없다는 교장선생님 시인이다. 공주 서동철기자 dcsuh@
  • 중국 厚黑學 다룬 ‘후흑열전’ 출간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두꺼운 얼굴과 시커먼 뱃속’이다”.중국의 격변기인 1911년 신해혁명 시기에 이종오가 쓴 후흑학(厚黑學)의 한 대목이다.‘후흑열전’이란 제목으로 최근 국내에서 출간됐다. 저자는 왕정(王政)이 공화정으로 교체되는 예민한 시점에 기존사상과 체제의 모순을 역설로 해부하고 있다.중국의 역대 영웅과 성인을 해학적으로 조롱함으로써 자유로운 연구 풍토와 공평한 정치상황의 조성을 촉구한다. 공자와 맹자 등 중국의 성인도 어김없이 비판의 대상이다.그는 “공자자신은 우리에게 다른 학설을 발명하지 말라고 한적이 없는데 후세사람들이 자기지위를 유지하려고 공자를 치켜세워 모든 것을 억압하고 학자의 마음을 점령했다”고 지적한다.그는 이어 “마르크스가 공자 대신 성인의 자리에 올랐다”면서 “자기와 다른 것은 모두 이단으로 모는 풍토에선 사상의 독립과 진리의 연구가 어렵다”고 강조한다. 후흑학은 ‘관직을 구하는 여섯가지 요령’에서 절정에 이른다.자리를 구하려면 다른 일은 다 접어두고 그 일에만 몇 년이라도 매달려야 하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권력자에 다가서야 한다고 말한다.또 말과 글로 허풍을 떨면서권세가를 치켜올리고,협박하는 가운데 치켜세우는 아첨의 미묘함을 터득해야 한다고 조언한다.마지막으로 저녁이나 술자리를 자주 갖거나 뇌물을 주어야 한다고 덧붙인다.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끈 이 책은 일본에서는 경영 및 처세술에 관한 비조(鼻祖)로 떠받들여진다.그러나 이 책은 통속적인 처세술을 다룬다기보다 사회의 변혁을 꾀하려는 중국 격변기 지식인의 고뇌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1934년 처음 단행본으로 나왔으며 이번 것은 지난 89년 중국 경제출판사가 펴낸 ‘후흑학대전’을 바탕으로 유학생 김수연이 번역했다.도서출판 아침,7,000원. 박재범기자
  • [외언내언] 전쟁과 평화의 카오스

    “다가오는 2000년대의 적응전략을 찾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을 보면 된다”고 미국의 문화비평가 더글러스 러시코프는 말한다.우리는 매일 새로운 단어와 관념과 사건들로 폭격을 당하다시피 하는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우리에게 익숙하고 우리가 사랑했던 문화는몰락하고 있으며 기존의 선형적(線形的) 사고로는 변화가 상수(常數)인 오늘의 사회에서 살아가기 어렵다.그러나 급격한 변화에 당황해 하는 어른들과달리 아이들은 카오스(혼돈)의 불연속성을 파도타기하거나 스노보딩하듯 넘나든다.TV와 컴퓨터로 매개되는 문화속에서 태어난 스크린세대(보기세대)는읽기세대와 다른 방식으로 이 세계와 상호작용한다.읽기세대가 집중력을 중요시한다면 보기세대는 한꺼번에 여러가지 일을 한다.21세기에 중요한 것은집중시간의 장단이 아니라 여러가지를 한꺼번에 잘 할 수 있는 멀티 태스킹(multi-tasking) 능력이고 그 능력은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더 뛰어나다는 것이 러시코프의 주장이다. 바로 그 멀티 태스킹 능력을 지금우리는 시험받고 있는 듯싶다.서해에서는 남북 해군간에 총격이 오가고 동해에선 금강산 관광선이 오가는 상황은 기존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카오스다.서해 교전(交戰)에서 부상당한 용감한 군인 이야기와 북한에 비료를 건네주고 북측 인사와 술자리를 같이했다는 적십자사 대북비료인도단장의 이야기가 신문 사회면에 함께 실리는상황을 예전에는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는가.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평양 발언만으로도 당장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공포속에 생필품 사재기 바람이 불었던 것이 사실 우리에겐 더 익숙한 모습이다. 서해에서의 총격전에도 불구하고 금강산 관광선의 승선율이 평소와 다름없고 주식시장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은 것을 위기불감증이라고만 보는 것은 너무 선형적인 사고방식이 아닐까.오랜 남북 대치상태에서 온 긴장해이요소가 없지 않겠지만 예측불가능한 북한에 대한 예측가능성,즉 불연속성에대한 파도타기를 우리 국민들이 어느 사이엔가 터득한 측면도 있다고 보면어떨까.북한의 선제공격에 대한 우리 해군의단호한 반격도 러시코프가 말하는 멀티 태스킹 능력인 셈이다.전면전도 마다 않겠다는 냉전구도로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면 햇볕정책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고 카오스 그 자체인북한을 껴안으려면 우리는 서로 모순되는 것 같은 상황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좋든 싫든 그것이 바로 변화된 우리 현실이기 때문이다.변화된 현실을수용하기 어려운 국민들과 도발·대화의 양동작전을 구사하는 북한을 감안해 햇볕정책에도 강약 조절이라는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임영숙 논설위원
  • [박강문코너] 폭탄주 권하는 사회

    몰로토프 칵테일은 술이 아니라 폭탄이다.우리가 화염병이라고 부르는 이것으로 전시에는 탱크도 잡았다.폭탄주는 마시는 술인데,때로는 이것도 폭탄이다.법무부 장관과 대검찰청 공안부장을 일시에 물러나게 했을 만큼 위력이대단하다.몰로토프 칵테일에 댈 바 아니다. 우리나라에 폭탄주 마시기가 언제 생겼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군에서 시작돼 군사통치 시절에 일반 사회에 퍼진 것으로 보이지만,본디 서양 땅에서 들어왔을 것이다.미국 영화‘흐르는 강물처럼’을 보면 맥주 가득 부은 잔에 버번 위스키가 든 잔을 빠뜨려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미국 공군 조종사들이 흔히 폭탄주를 마셨다고 하는데 이들도 원조는 아니고 이보다 훨씬 앞서서 영국 탄광부와 뱃사람들이 시작했다는 말이 있다. 주머니 가벼운 서민이 적은 돈 들여 많이 취하려고,또는 심리적으로 쫓기는 공군 조종사가 빨리 취하려고 마셨을 폭탄주는,우리 술판의 술잔 돌리기와결합하면서 거의 토착 풍습처럼 되어 가고 있다.위스키가 없으면 소주로라도 심을 박아 잔을 돌려야 직성이 풀리는 부류가 꽤 많다. 폭탄주 술판을 보자.두 가지 술로 폭탄주를 만들고,그 잔을 돌리고,마신 사람은 빈 잔들이 딸랑딸랑 소리가 나도록 머리 위로 흔든다.의식(儀式)과도같다.개인을 집단에 함몰시키려는 의식이다.머리 잘 쓰는 술 제조업자들이폭탄주 완제품을 만들어내지 않는 이유를 알 만하다.술자리에서 즉석 혼합주를 만드는 것부터가 의식이기 때문이다. 뭐든지 우리 땅에 들어오면 대체로 제바닥보다 맹렬해지는데 폭탄주 풍속도 그렇다.술 강권하기와 겹쳐져 무자비한 폭력성까지 띤다.주량만큼 개인차가 큰 것이 드문데도 우리 사회의 폭탄주 돌리기는 개인차를 인정하지 않는다. 술이 약한 사람에게는 집단 가혹행위나 다를 바 없다.술이 센 호걸들의 호언과 과시가 질펀해지는 동안 술이 약한 사람은 초주검이 되어 간다. 폭탄주 하면 소설 ‘멋진 신세계’에 나오는 ‘소마’가 연상되는데 둘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신세계에서는 인간 정서를 획일화하는 소마라는 약을 모든 사람이 먹어야 한다.소마는 근심과 불안,자아 성찰,창의적 사고,반항심,의심 등이의식 속에 자리잡을 틈을 없앤다.불평 없는 복종심만 남긴다.소마를 거부하는 것은 반역이다.주석에서 폭탄주 피하기는 반역처럼 어렵다. 사람 사귐에 술이 확실히 좋은 윤활제 구실을 하기는 하지만,술에 취해 정신이 몽롱해지면 바른 것을 굽히고 맑은 것을 흐리기 쉽다.술은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양심의 갈등을 잊게도 한다.이래서 술이 선용되기도 하고 악용되기도 한다.불합리에 부딪혀 절망하고도 술이요,합리를 불합리로 덮어야하거나 덮고 싶을 때도 술이다. 일제강점기 때 나온 문학작품에‘술 권하는 사회’라는 것도 있었고‘취한들의 배’라는 것도 있었는데,여전히 이 사회는 술 권하는 사회고 취한들의배인 듯하다.술 접대를 전담하는 이른바‘술 상무’가 딴 나라에도 있는지모르겠다.깊은 밤 길거리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고 토악질하는 취한이 우리처럼 많은 나라가 달리 있는 것 같지 않다. 일찍이 먼 옛날 중국 임금이 처음 술을 맛보고는 술로 망하는 사람이 나오겠구나 걱정했다고 한다.‘십팔사략’(十八史略) 앞쪽 부분에 있는 기록인데 그 우려는 들어맞았다.취중 살인,취중 방화,취중 실언,취중 패싸움,취중 패륜이 얼마나 많은가. 술은 역사도 바꾼다.91년 8월 소련의 개혁 지도자 고르바초프가 변방 별장에 휴가 가 있는 동안 수구세력이 모스크바에서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며칠만에 실패로 끝났다.‘실패한 쿠데타’의 한 원인이 술이었다.쿠데타 수뇌부 인물들이 독한 보드카 마시고 곤드레만드레 취해서는 후속 조치를 서두르지 않고 있다가 어이없이 무너졌다. 도덕적으로 존경받아야 할 검사들이 대낮에 폭탄주 마신 뒤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벌이는 것을 우리는 최근 한 달 간격으로 연거푸 보았다.폭탄주 돌리기는 비인간적이며 부작용이 큰데도 속효성과 그에 따른 경제성을 찬양하는사람들이 쉽게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무리무리 술에 취해 돌아가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폭탄주 관습은 이제 없애거나 수출하는 것이 좋다.
  • “세무공무원은 골프도 안된다”

    안정남(安正男)신임 국세청장의 행보가 연일 화제를 뿌리고 있다. 안청장은 취임 첫날 1만6,000여 국세청공무원들에게 2가지 ‘특명’을 내렸다. 첫째는 폭탄주 금주령.모든 회식은 대중음식점을 이용하고 술자리에서 폭탄주를 금하라는 엄명이었다.화끈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국세청 사람들의‘술자리문화’에 대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또 한가지는 골프금지령이었다.안청장은 “대부분이 골프를 하지 않지만 극히 일부에서 ‘몰래골프’를 즐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서 “감찰을 보내 조사하지는 않겠지만 당장 그만두라”고 지시했다.골프장 부킹 등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무공무원이 골프에 맛을 들일 경우 업무에 지장을줄 뿐아니라 국민에 봉사하는 서비스기관으로 거듭나겠다는 국세행정대개혁의 화두에도 맞지 않는다는 것이 안청장의 판단이었다. 철저한 상명하복으로 움직이는 국세청조직의 생리상 청장의 한마디는 지엄하다.특히 사상최대 규모의 인사를 코앞에 두고 있기 때문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대한민국 금부(金府)’의 수장인국세청장의 폭탄주 및 골프금지령이국세청을 비롯 전체 공무원사회에 미칠 파장이 만만찮을 것같다. 노주석기자 joo@
  • 특별한 날 정해 담배 끊어라

    [담배가 건강에 나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금연에 실패한다.지난달 31일은 금연의 날.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유태우교수가 고안한 ‘7주 금연법’을 소개한다.유교수는 금연 희망자의 60%가 이 방법으로 담배끊기에 성공했다고 말한다.]●금연준비기(2주) 술자리나 여행 등이 예정돼 있거나 주요 결정을 내려야하는 등 생활의 큰 변화가 있는 시기에 금연을 시도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스트레스 또는 생활의 변화가 있으면 흡연욕구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시기가 정해졌으면 저니코틴 담배로 바꾸고 라이터를 갖고 다니지 말자.왼손으로만 담배를 피우고 ‘담배 끊는 날:X월X일’을 집과 직장의 잘 보이는 곳에 써 붙이자.은단,껌,사탕 등을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니자. ●금연일 금연을 시작하는 날은 자신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금연의 날 등특별한 날로 정하는 것이 좋다.갖고 있던 담배,성냥,라이터,재떨이 등을 모두 버리고,담배 냄새가 나지 않는 새 옷을 입는다.일을 끝낸 저녁에는 영화나 음악회 등에 가는 특별한 날을만든다. ●금단 증상기(2주)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고 술좌석을 피한다.저녁식사가 끝나면 산책 등 규칙적인 운동을 한다.수분은 가급적 커피,콜라 등 카페인음료는 피하고 과일이나 주스 등을 통해 섭취한다.입이 심심하면 이쑤시개를 물고 있거나,은단,껌 등을 사용한다.식후 바로 담배를 피우던 사람은 흡연 대신 양치질을 한다.그래도 흡연 충동이 나면 냉수를 한잔 들이키거나,심호흡을 10회 정도 하면 견디기가 쉬워진다.손목에 고무줄을 차고 있다가 충동이오면 한번씩 튕기는 것도 한 방법이다.‘한대는 괜찮겠지’하는 유혹이 너무나도 강한 시기이다. ●금연유지기(3주) 흡연갈망은 줄어들지만 여러가지 사소한 상황(스트레스,동료의 흡연,음주) 등으로 다시 흡연하기가 쉬운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단 한대의 담배라도 원래의 흡연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따라서 이 시기에는 금연에 따른 건강 회복 효과를 음미하고 흡연의 지배에서 벗어났다는 자신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사교상 주는 담배를 거절하고,오히려 동료의 흡연을 만류하는새 습관을 익히는 적극적인 태도가 요구된다.
  • ‘99 자랑스런 공무원-金鎭星 용인시 기흥읍장

    경기도 용인시 기흥읍장 김진성(金鎭星·53)씨는 동료들 사이에서 ‘원칙주의자’이면서도 ‘연구하는 공무원’으로 통한다.업무에 대해서는 맺고 끊음이 분명하면서 국민의 혈세를 아끼기 위해서는 연구를 거듭하기 때문이다. 지난 97년 7월 용인시 청소과장 재직 시절 김씨는 3만5,264t의 축산 분뇨침전물 쓰레기를 처리하면서 고심하게 됐다.냄새나고 질척거리는 이 쓰레기를 김포매립지로 운반해 처리하려면 80억원 이상의 비용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소각,용역업체 하청 등 여러 방법을 강구한 끝에 용인시 매립장에묻기로 결정했다.문제는 어떤 비율로 분뇨와 흙을 섞어야 질척거리지도 않고 흙은 적게 들어 경제성도 있는 복토(覆土)용 토사를 만들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김씨는 환경전문업체의 자문을 받아 수십 차례 배합실험을 거친 끝에분뇨 침전물과 흙을 1:8로 섞으면 경제성과 실용성을 가진 최적의 복토용 토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분뇨가 주위로 흐르지 않도록 고무판을깔고 위는 비닐으로 덮는 등 오염 방지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방법은 찾았지만 정작 직원들을 설득하는 것은 더 어려웠다.비용을 줄이기위해 청소차를 작업에 동원하기로 했지만 직원들은 아침에 청소작업을 하고다시 분뇨 쓰레기 처리 작업에 동원되는데 강력히 반발했다.김씨는 아침 저녁으로 직장과 술자리에서 직원들을 설득,마침내 직원들도 ‘해야 할 일’이라고 받아들이고 마음을 돌리게 됐다.“마음을 바꾼 뒤엔 불평없이 묵묵히일해 준 직원들이 고맙습니다”면서 김씨는 공을 직원들에게 돌렸다.자신도공사기간 동안 매립장에 살다시피하는 바람에 가족들까지 냄새 난다고 슬슬피했다면서 김씨는 웃음을 지었다. 지난 74년 용인시 9급 공무원으로 공직을 시작한 뒤 25년간 교통·감찰 등다양한 공직에서 일해 온 김씨는 그 동안 공무원의 업무환경이 많이 어려워졌다고 말한다.김씨는 “지난 97년에 쓰레기 매립장과 소각장을 건설하면서반대하는 주민들이 몽둥이를 들고 쫓아올 때는 그만두고 싶었다”고 토로했다.그렇지만 힘들고 어려워도 김씨는 소박한 꿈을 지켜나가고 있다.“명예하나 바라보고 사는 직업아닙니까.그만두는 날까지 원칙을 지키며 최선을다하겠습니다.”장택동기자 taecks@
  • 신임 국정원장등 장관급·청와대 수석·차관급 프로필

    ◇ 千容宅 국가정보원장 정책·전략,군사교리 등 국방 전분야에 걸쳐 해박한 식견을 가진,자타가 공인하는 안보통. 93년 중장으로 전역한뒤 비상기획위원장을 거쳐 국민회의 전국구의원으로 15대 국회에 진출했다.국방위원 시절에는 율곡비리 폭로 등으로 이름을 날렸다.지난 대선 과정에서 ‘북풍’을 잠재우는 등 안보분야에서 김대중(金大中)후보의 핵심참모로 활약했다.그 공로로 국민의 정부 초대 국방장관에 발탁됐으나 잠수정 침투,미사일 오발사건 등 한때 어려움도 겪었다. 부인 김아미(金雅美·55)씨와 3녀. ◇ 朴舜用 검찰총장 빠른 판단력과 친화력으로 사시 8회 출신 가운데 일찌감치 ‘총장감’으로꼽혀 왔다.법무부 교정국장 시절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 두 전직대통령 수감 업무를 무난히 처리했고 대검 중수부장때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비자금 사건을 무리없이 처리해 신임을 얻었다.지난 2월 검사 항명파동때에는 밤늦도록 평검사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불만을 추슬러 신망을 얻었다.김태정(金泰政) 법무장관과는 총장-중수부장,총장-서울지검장으로 호흡을 맞추면서 ‘환상의 콤비’라는 평을 들었다.취미는 테니스.부인 김혜정(金惠貞·52)씨와 2남. ◇ 安炳禹 중소기업 특별위원회 위원장 경제기획원 예산정책과장과 예산총괄과장,예산심의관을 거치는 등 자타가공인하는 예산전문가.국민의 정부 출범후 초대 예산청장을 맡아 IMF사태 극복을 위한 본예산 편성을 무난히 처리해 능력을 인정받았다. 부하직원들에게 좀처럼 얼굴을 붉히는 일이 없다.부인 유인숙(柳寅淑·49)씨와 1남1녀. ◇ 李起浩 경제수석비서관 깔끔한 외모에 정연한 논리와 빈틈없는 일처리로 사무관 시절부터 윗사람의 신망이 두텁다.지난 김영삼(金泳三)정부에 이어 현 정부에서도 노동장관 자리를 지켜 화제가 됐다.IMF체제 하에서 노사정위원회의 필요성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보고해 관철시키는 등 실업대책과 노사관계를 무난히 이끌었다는 평을 듣고 있다.부인 양인순(梁仁順·47)씨와 1남1녀. ◇ 黃源卓 외교안보수석비서관 육사 18기 대표화랑 출신으로 합리적이고 온화하지만 업무 추진력도 만만치 않다는 평.91년 한국군 장성으로는 처음으로 군사정전위원회 유엔군측 수석대표에 임명됐으나 북한이 인정하지 않아 군정위가 열리지 않는 등 파동을겪기도 했다.12·12 당시 정승화(鄭昇和)육군참모총장의 수석부관을 지냈다는 이유로 5·6공때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기도 했다.부인 음성원(陰聖媛·54)씨와 1남1녀◇ 朴晙瑩 공보수석비서관 언론학박사 학위를 갖고 있는 해직기자 출신의 언론인.지난 80년 5·18 이후 언론검열에 항의해 강제 해직됐으나 87년 민주화바람에 중앙일보에 복직,뉴욕특파원 등을 지냈다. 신사풍으로 부드러우나 논리적인 원칙주의자.뉴욕특파원 시절 박지원(朴智元)문화부장관과 친분을 쌓았다.취미는 속기바둑이며,골프가 싱글수준이다. 부인 최수복씨(崔秀福·49)와 3녀. ◇ 嚴洛鎔 재정경제부차관 신임 엄차관은 행정고시 8회로 30년 경력의 정통 재무관료.금융,관세,경제협력국 업무를 거쳐 국장때 세제실로 옮겼다.2차관보 재직때 경제협력기구(OECD) 가입을 담당했다.성격이 온화하고 차분하며 일처리가 합리적이다.부인홍영신(洪榮信·46)씨와 1남1녀. ▲51·서울 ▲경기고 서울법대 ▲재무부 세제심의관,국세심판소장,2차관보◇ 梁榮植 통일부차관 제주 출신으로 72년 이래 통일부의 요직을 두루 거친 통일전문가. 역대 정권의 통일정책을 비교한 통일정책론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여러권의 저서도 낸 학구파.TV 대담 프로그램에 자주 얼굴을 내미는 등 개방적인 성격이라는 평.부인 권영례(權寧禮·53)씨와 1남1녀.▲58·제주 ▲통일부대변인 ▲통일정책실장 ▲통일연구원장◇ 朴庸玉 국방부차관 75년 하와이대에서 정치학박사를 받은 ‘국제신사형’ 정책전문가.92년 남북고위급회담때 남북군사분과위원장으로서 ‘불가침 부속합의서’와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탄생시켰으며,북한 핵문제가 절정에 달한 94년에는 주미 국방무관으로 대미협상을 주도했다.부인 유승애(劉承愛·52)씨와 3녀. ▲57·평남 평원 ▲경기고 육사21기 ▲국방부 정책기획차장,군비통제관,정책실장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 金興來 행자부차관 작은 체구임에도 추진력이 강하면서 부하들로부터 사랑받는 행자부의 맏형. 경찰관으로 근무하다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옛 내무부에서 잔뼈가 굵은 지방행정 전문가다. 박지원(朴智元)문화관광부장관의 진도 군내초등학교 1년 후배.부인 위영자(魏英子·57)씨와 1남2녀. ▲58·전남 진도 ▲목포해양고 단국대법대 행시 10회 ▲목포시장 ▲재정국장 ▲지방행정연수원장 ▲기획관리실장◇ 羅承布 소청심사위원회위원장 행정고시 10회로 전남도 내무국 지방과에서 시작한 정통 내무관료.온화한성품으로 대인관계가 원만하지만 업무에 관한한 치밀하고 추진력이 탁월하다는 평.옛 내무부 주요 부서와 시장,군수 등을 두루 거치면서 폭넓은 행정경험을 쌓아 ‘행정 9단’으로 불린다.▲57·전남 함평 ▲한양대 행정대학원▲전남 여수,목포시장.내무부 공보관,지역경제및 지방재정국장,전남 행정부지사. ◇ 李元雨 교육부차관 온화한 성품으로 강단이 있는 전형적인 외유내강형.법무부 보도직(5급)으로 출발해 77년 문교부 편수과로 옮겼다.서울시 부교육감을 역임해 일선 교단의 사정에 밝다.술자리에도 자주 어울리는 등 소탈한 성격으로 따르는 후배들이 많다.단국대 국악과 교수인 부인 서원숙(徐元淑)씨와 1남1녀. ▲57·충북 청주 ▲서울대 사대 ▲교육부 교육기획정책관 ▲서울시부교육감 ▲청와대 교육비서관◇ 趙健鎬 과학기술부차관 상공부와 재무부,총리실,청와대를 두루 거친 경제관료.일처리가 꼼꼼하지만 성격은 활달하고 솔직하다.대학시절 조정선수로 활약한 경험 때문에 조정협회 이사직도 맡고 있으며 연극,영화 등 문화에도 관심이 많다.재무부 공보관 시절에는 ‘명대변인’으로 꼽혔다.박찬혜(朴贊蕙·49)씨와 2녀. ▲55·경기 김포 ▲서울대 법대 ▲재무부 국제금융국장 ▲청와대 기획조정관◇ 金順珪 문화관광부차관 행시 출신으로 문화 분야에서만 28년 동안 근무해 온 문화부 터줏대감.정책기획력이 뛰어나고 합리적이다.그러나 고집이 세다 할 정도로 소신도 있고뚝심도 있다는 평이다.‘일본이 앞서고 있다’는 영문번역서를 낼 정도로 학구적.취미는 등산이며 자주 실력발휘를 하지 않지만 주량도 상당한 편이다. 노모를 모시고 살며 부인 김혜성씨와 1남2녀.▲52세▲경북 의성▲경기고▲국민대 무역학과▲행시 10회(71년)▲문화부 공보관▲문화부 청소년정책실장
  • [오늘의 눈] 공무원과 돈

    이달 들어 과천 관가의 화두는 두가지였다.하나는 현직 조달청장을 비롯해옛 재무부 고위관료를 지낸 보험감독원장 및 전 은행감독원장의 수뢰혐의구속.다른 하나는 줄지은 젊은 관리들의 관가이탈 현상이다.예산청 과장이언론사 논설위원으로,금감원의 한 과장은 학계나 기업진출을 위해 사표를 냈고,재정경제부의 한 서기관은 기업으로의 전직을 고려중이다. ‘자의’건 ‘타의’건 관직을 떠나는 사건(?)들이 잇따르자 한 관료는 “‘철옹성’으로 여겨지던 재경부를 비롯한 엘리트 경제관료들의 이미지가 실추하는 반증”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물론 10년 이상의 고참 서기관과 과장이 보따리를 싸는 배경은 단적으로 말하기 힘들 정도로 복합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다만 이들 사건들은 적지 않이 돈 문제라는 공통 분모를 갖고 있다. 관리들은 돈의 유혹에 끌릴 정도의 박봉에 시달리며 유혹의 대상이 될 만큼 권한은 여전히 강하다.그리고 유혹에 넘어가는지를 지켜보는 눈은 그 어느때보다 날카롭다.아차하면 망신살을 사기 십상이다.한 경제부처 고위 관리는 “여전히 동창이나 동향 인연으로 기업사람들이 돈봉투를 가져와 처리에 고심한다”고 토로할 정도이다. 사표를 낸 젊은 관리가 금융감독원 출신의 자기 부하보다 연봉 1,000여만원이 적은 데 불만을 토로한 것은 들어둘 만한 대목이다.30년 이상 관직생활을 한 1급(차관보)이 5,100만원,국장이 연간 4,700만원의 월급만으로 살기는어렵다.부유한 출신 또는 약사와 의사 부인을 얻거나 조건없이 자금을 후원해 주는 든든한 동창생이 있어야만 관리생활을 순탄하게 한다는 이야기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산하기관에서 알아서 식사대금을 치러주던 과거의 관행도 줄고 있다.반면지위가 높아질수록 늘어나는 각종 부조금과 술자리 등 판공비 수요가 커지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선배 고위관리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현실에서 젊은 관리들이 고민한다고 정부가 공무원 월급을 현실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공무원사회의 사기진작을 위해서는 잡무축소 등으로 일하는 환경을 개선하고 야간식당 운영,각종 부조금 안받기 운동 등 비업무용 자금수요를 줄이는조치들을 마련하면어떨까 싶다. 이상일bruce@
  • [朴康文코너]그럴 수는 없다

    우리 사회는 이상하게도 관대한 일면이 있다.술 취한 사람에게 너그럽다.취중의 흐트러진 행실에는 취해서 그랬노라고 변명하기 일쑤고 또 실제로 웬만한 것은 받아들여지는 수가 많다.남성의 여성 희롱이나 학대를 보는 눈도 꽤 너그럽다.남자가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한다.여성이 좀 거센 거부반응을 보이면 그까짓 일에 뭐 그러느냐고 도리어 나무라기도 한다. ‘웬만한’이나 ‘그럴 수도’나 ‘그까짓’의 한계는,눈금처럼 확연하지않을 뿐 아니라 무한한 확장성까지 있다.규범과 질서의 영역을 심하게 망가뜨리기 예사다.어정쩡한 관용이 통하는 분위기를 틈타 때로 야수적 망동까지 어물쩍 감행하는 인간도 있다.이제 우리 사회가 성숙한 꼴을 갖추자면,적어도 위의 두 가지 비뚤어진 관용은 없애야 한다. 마땅하지 않은 술자리 벌이기와 취중 망동을 용납하면,공과 사의 경계가 무너진다.불성실과 무책임의 난장판을 막기 어렵다.깡패를 잡아야 할 사람과깡패가 술판을 벌이면 어떻게 되겠는가.인권을 지켜야 할 사람이 술에 취해인권을 유린하면 어찌되겠는가.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근무가 끝난 뒤가 아닌 점심시간에 폭탄주를 돌리고 고주망태가 되도록 취한다는 것은,공직자건 공직자가 아니건 있어서는 안될 일인데,이것을 마치호연지기의 발산이나 되는 것처럼 여긴다면 유치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기강이 바로선 세상에서는 그럴 수 없는 일이다. 술에 취해 성폭력을 저질러 놓고 나서,피해자에게 “술 먹어 그러니까 이해하라”고 요구한다면,비열하기 짝이 없다.술이 무슨 면죄부라도 된단 말인가.속으로는 술김에 장난으로 한 것이라고 대단치 않게 생각할는지는 모르지만,여성에게 참을 수 없는 수치감을 주는 일이 술 취한 남성의 심심풀이가 될수 없다. 이럴 때 흔히 남성들 사이에서는,피해자도 원인의 일부를 제공하지 않았겠느냐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이것이야말로 피해 여성에게 가장 고약한 모함이다.쌍방과실로 덮어 씌워 가해자의 과실을 경감하려는 남성들의 이런 음험한 동료애는 여성을 또 한번 짓밟는 것이다. 젊은 여성이 귀여우니까 친애의 표시로 그럴 수도 있는 일 아니냐고 주장할지도 모른다.그러면,제 딸,제 누이의 가슴과 허벅지를 무뢰한이 마구 주물러대도 귀여워서 그러는 것이라고 허허 웃겠는가. 겁탈당한 것도 아닌데 왜 그리 떠드느냐고 할 것인가.성희롱 또는 성폭력에 대한 관용은 여성을 인격체로 대하기를 부정하는 것이다.이러고서는 인권법이 스무 권이라도 인권 존중은 공염불이다. 해괴한 일이 있다.여자 기자가 기자실에서 사회지도적 인사에게 성추행당하는 것을 동료 남자 기자 여럿이 보았는데도 피해자 소속사를 빼고는 보도하는 곳이 거의 없었다.남이 고발한 성 관련 사건 보도에는 도에 넘치게 열을올리던 신문들이 이번에는 어찌 그리 신중해졌는지 참말로 모를 일이다.20세기 한국 언론 역사의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이랬을 때 예상되는 일은 뻔하다.기성 언론 매체들이 침묵하면,각종 대안(代案)매체들이 그 구실을 떠맡는다.그 틈새에 유언비어가 풍선처럼 부풀려져 떠돈다.시민단체가 들고 나온다.쌓이는 것은 국민의 불신감이다. 뒤틀린 너그러움은 사라져야 할 때가 왔다.‘웬만한’이나 ‘그럴 수도’나 ‘그까짓’이란 말 뒤에 숨긴 음침한 공범의식을 깨어 없애야 할 때다.곧그리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그래야만 사회가,국가가,바로 서고 남성과여성이 다같이 인간으로서 바로 대접받을 수 있다. 박강문[편집국 부국장]
  • 칭찬해요-선천성 장애 극복 금호초등학교 김안식군

    “장애를 부끄러워하거나 감추기 보다는 남들에게 떳떳하게 드러내 보였어요” 서울 금호초등학교 3학년 김안식(金安植·9)군.선천성 심장병과 ‘언청이’라 불리는 구순구개열을 앓아 왔지만 장애를 극복,전국 규모의 컴퓨터와 그림대회를 휩쓸었다.지난해 전국 어린이 컴퓨터 그림그리기 대회에서 대상을받은 것을 비롯,LG소프트사 주최 전국 어린이 예쁜 문서 공모전에서 금상을수상하는 등 크고 작은 대회에서 5차례나 입상했다. 안식이가 정상인보다 뛰어난 소질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김현복(金賢福)씨와 선생님들의 보살핌 덕이 컸다.안식이는 생후 10개월 만에 폐동맥협착증과 심실중격결손 수술을 받았다.말을 하고 알아들을 수 있게 된 4살 때부터는 구순구개열 수술을 매년 2∼3차례 받아야 했다.입술이 입 속으로감겨 들어가 수술자리가 찢어져 재수술을 받는 아픔이 거듭됐다. 그래도 어머니는 아들을 강하게 키우려 애썼다.동정의 눈길에 위축될까봐매도 자주 들었다.아들과 함께 외출도 자주 했다.야쿠르트회사에 다니던 어머니는 직장 야유회나 모임 때마다 아들을 동반해 남들과 자주 어울리게 했다. 안식이가 컴퓨터에 관심을 갖게 된 때는 언어치료실에서 컴퓨터로 발음장애교정을 받던 4살 때였다.제대로 발음할 때 컴퓨터 화면에서 동물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컴퓨터에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동네 컴퓨터학원에도 다니고어머니의 도움도 받았다.이제는 PC통신과 인터넷 검색은 물론 홈페이지를 만들 정도로 컴퓨터박사가 됐다. 고비도 있었다.97년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알아듣을 수 없는 발음으로 책을읽자 친구들이 놀려댔다.입술 교정장치까지 착용한 안식이 모습에 아이들은킥킥댔다. 그런 안식이를 보고 담임 이매자(李梅子)교사가 열성적으로 보살폈다.차별없는 대우를 해줬고 책을 다 읽으면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급우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안식이가 글을 읽고 나면 박수도 쳐주었다. 김군은 4일 정부에서 주는 모범어린이 표창을 받았다.어린이날인 5일에는청와대를 방문한다.솜씨를 살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자신과 대통령을컴퓨터로 합성한 사진을 선물로 드린다.컴퓨터 프로그래머나 화가가 되고 싶다는 김군은 “나도 친구들과 똑같은 어린이예요”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종락기자 jr
  • [대한매일을 읽고] ‘체포동의안 부결’ 면죄부로 호도 말아야

    한나라당 서상목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되자 8일자 대한매일에는 한나라당 총재와 의원의 포옹장면,술자리 모습 등이 실렸다.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것은 검찰의 구속수사에 대한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이발동된 것이지 결코 죄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따라서 ‘세풍’에 대한 유·무죄 판단은 사법부에 달려 있다. 이런 사법부의 판단을 뒤로 하고 체포동의안 부결이 바로 무죄라도 입증된양 국민들을 호도하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국세청을 통한 선거자금 모금에 대한 개연성 하나만으로도 국민 앞에 반성해야 할 정치권 인사들이 그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곤란하다.나라의 앞날이 걱정스럽다.정치권 인사들의 각성과 반성을 기대한다. 정경내[지방공무원·부산시 동래구 낙민동]
  • [공직탐험]세무공무원의 꽃 일선 세무서장(4)

    朴守甲의정부세무서장은 아침 7시30분이면 어김없이 집을 나선다.서울 서교동 자택에서 의정부까지 가려면 한시간은 걸리기 때문이다. 8시30분쯤에 도착하면 우선 TIS(국세 데이터 베이스)와 이메일(전자우편)을 살핀다.이메일을 보면서 상부로부터의 공문이나 직원들의 건의사항을 챙긴다. 9시부터는 과장들을 중심으로 한 간부회의를 주재한다.이 시간은 대략 15분.간부회의가 끝나면 바로 각 부서에서 올라온 결재와 씨름한다. 점심은 거의 구내식당에 주문,서장실에서 해결한다.직접 내려가면 직원들이 불편해하기 때문이다.주위에 있는 일반 식당은 얼굴을 알아보기 때문에 불편하고 먼 식당은 시간의 제약으로 피하게 된다. 오후의 업무는 간부회의만 빼고 오전과 비슷하게 진행된다.특별한 일이 없으면 퇴근시간은 지킨다.“서장이 앉아 있으면 직원들이 눈치를 보지 않겠냐”는게 이유. 집에 돌아오면 대략 저녁 9시에서 9시30분.이것이 朴서장의 하루다. 물론 저녁에 기관장 모임과 같은 일이 있으면 달라질 수 있다.세무서장이지역 기관장 모임에 얼굴을 내미는 것은 필수다.세원 관리와 세원 발굴 등에 있어서 다른 기관장의 의견은 아주 중요하게 작용한다. 수도권에 있는 세무서장들은 朴서장과 일상이 거의 비슷하다.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 세무서장들 대부분은 관사에서 생활한다.관사는 숙식엔 별로 어려움이 없게 갖춰져 있다. 許章旭 경남 밀양세무서장은 가족들을 서울에 남겨놓고 혼자 내려와 관사에서 생활하고 있다.사택과 세무서의 거리가 걸어서 10분 정도라 도보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 소설가이기도 한 許서장은 저녁엔 독서로 소일한다.기관장 모임 외엔 술자리도 별로 갖지 않는다. 서울 남산세무서의 金浩業서장은 “세무서장이야말로 외로운 직업”이라고말한다.일부 일선 직원의 탈선 때문에 전(全)세무공무원이 같은 ‘통속’으로 매도당할 때가 가장 마음이 아프다고 말한다. 李源淑 전북 김제세무서장은 “세무서장이라고 해서 다른 지역 기관장과 특별하게 다른 점은 없다”면서 “오히려 술좌석이나 회식은 덜한 편”이라고말한다.오해를 살 수 있어 일부러 피할 때도 많다는 것이다. 朴 勳 서울 서초세무서장은 “세무서장이 죽어서 화장을 하면 사리가 많이나올 것”이라고 말을 건넨다.그만큼 절제된 생활을 한다는 주장이다.
  • 崔銀亨씨 “뇌성마비 딛고 당당한 학사모”

    “미생물을 이용해 오염된 토양을 정화하는 분야를 계속 연구해 토양정화전문가가 되고 싶습니다” 선천성 뇌성마비를 불굴의 의지로 극복,오는 26일 99학년도 서울대 학위수여식에서 값진 학사모를 쓰게 된 농업생명과학대 산림자원학과 崔銀亨씨(22·경기 시흥시 정왕동). 崔씨는 뇌성마비로 팔,다리가 불편하고 언어장애도 있지만 자신있는 태도로 졸업 소감을 또박또박 얘기했다. 지난 95년 부천고를 졸업,산림자원학과에 입학한 崔씨는 4년 내내 수원캠퍼스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공부에 몰두했다.특히 언어장애 때문에 말이 느리고 발음이 불분명해 어려움을 겪었지만 성격이 워낙 활달하고 낙천적이어서 대학 4년간 다른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잘 어울릴 수 있었다. 군에서 전역한 뒤 학교 생활을 함께해온 같은 과 선배 朴炳培씨(27)는 崔씨가 “술자리에서 동료들과 공부 및 삶에 관해 대화하는 것을 즐긴다”면서“자신이 장애인임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감있게 사는 모습이 아름답다”며崔씨의 등을 두드렸다. ‘대기오염 피해를 받은 오리나무류에서 채취한 종자의 발아’라는 崔씨의졸업논문을 지도한 李敦求교수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경기도 여천 공단과수원을 오가며 졸업논문을 준비하는 열정에 감탄했다”면서 “앞으로 훌륭한 학자가 될 재목”이라고 학문적 재능과 성실함을 칭찬했다. 全永祐 ywc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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