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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지민 첫 소설집 ‘그 남자는… ‘

    이지민 첫 소설집 ‘그 남자는… ‘

    2000년 제5회 문학동네작가상으로 등단한 여성작가 이지민(34)씨. 장편소설 ‘좌절금지’를 낸 지 4년 만에, 그동안 틈틈이 써온 단편들을 묶은 첫 소설집 ‘그 남자는 나에게 바래다 달라고 한다’(문학동네)를 펴냈다. 표제작 등 아홉편이 실린 이 소설집은 자신의 삶이 세상의 기준보다 떨어진다고 여기는 서울 30대 부부들의 삶의 절망과 고독을 주조음(主調音)으로 삼는다.“내 또래인 서울 30대 중산층 부부들이 현실에서 느끼는 상실감과 좌절감, 박탈감을 가감없이 그리고 싶었어요.” 이런 맥락에서 주제의식이 잘 드러난 ‘키티 부인‘‘오늘의 커피’‘서른 살이 된 롤리타’에 작가는 특히 애착을 보였다. “소설의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속물적이고 물질적이며, 세속 기준에 맞추려고 노력하다 보니 상실감과 박탈감이 점점 깊어지는 것이죠.” ‘키티 부인’에서 헬로키티에 집착하는 아내는 언제부턴가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증에 시달린다. 그런가 하면 ‘오늘의 커피’에서 주인공은 동업으로 차린 카페가 크림색 조명이 있는 예쁜 카페’가 아닌 무례한 단골손님의 술자리나 불륜의 현장으로 변해버린 것을 보고 절망한다. “자기 기준을 만들면 얼마든지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어요. 그런데 세상의 기준에 못미친다고만 생각하다 보니 좌절하고 실망하고 허무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호락호락 무너지지도 않지요.” 작품 속에서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그는 이런 문제들을 수동적으로 바라보지만 말고 당당히 맞서면 새 길이 열릴 수 있다는, 삶의 작은 기술 같은 것을 제시하고 싶었다고 밝힌다. 이태준·장용학 등 지난 세기 작가들의 작품이나 소설 ‘소립자’의 작가 미셸 우엘벡을 좋아한다는 작가는 현실적이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한다.“다음 작품은 현실을 바꾸고 싶어 하지만 그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의 좌충우돌 이야기가 될 겁니다.” 1만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구청·경찰 간부 술자리 ‘주먹다짐’

    부산의 한 구청과 경찰서의 고위 간부들이 저녁 술자리를 갖다 말다툼 끝에 주먹다짐까지 벌인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부산 강서구청 강모 구청장은 지난달 21일 오후 자신의 집에 강서경찰서 박모 서장 등 경찰 간부 4명과 구청 고위 간부들을 초청해 ‘기관간 유대강화’ 명목으로 저녁 식사를 했다. 식사 자리에서 폭탄주가 돌면서 경찰 간부가 “구청장님 평이 안좋으니 직원들이 잘 모셔라.”고 말했고 구청 간부직원들이 이 발언에 발끈해 양측이 몸싸움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한 경찰관이 구청 고위 간부에게 얼굴을 맞아 5일간 입원치료를 받았다. 피해 경찰관은 “언쟁 끝에 몸싸움을 벌이다 구청 간부가 내 멱살을 잡고 흔들어 넘어지면서 얼굴을 다쳤다.”고 말했다. 구청 측도 “사건 당일엔 경황이 없어 어떻게 된 일인지 몰랐고 다음날 한 경찰관이 다쳤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양측 모두 처음엔 피해 경찰관이 스스로 넘어져 다쳤다고 했다가 나중에 폭행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등 말바꾸기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경찰청은 이 사건에 대한 감찰에 들어갔다.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누드 브리핑] 광진구, 건배 구호 ‘고구려’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원조 문화시장’타이틀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양보했다고 하는군요. 술자리에서 ‘고구려’를 외치는 광진구 직원들의 사연이 재미납니다. 칠순의 만학도 김충용 종로구청장의 이야기도 들어보시죠.●‘고구려’를 위하여 건배… “역사와 민족을 위하고 광진의 발전과 안정을 위하구, 우리의 행복과 사랑, 건강을 위하여(려)” ”고, 구, 려…‘쨍’”요즘 광진구 직원들이 회식 자리에서 건배를 제의하며 외치는 구호 중 하나입니다. 그럴싸한 덕담의 마지막 운(韻)을 ‘고, 구, 려’로 맞췄습니다. 건배를 제의하는 사람이 나름대로 구호를 외치면 나머지 사람들이 고구려를 외치며 술잔을 부딪치는 식입니다. 구호를 만든 사람은 다름 아닌 최광식 (고려대 교수) 국립박물관장입니다. 최 관장은 광진구가 추진 중인 ‘고구려 사업’의 자문역을 맡고 있는데 고구려의 유물과 유적을 보기 위해 지난해 중국 지린성, 북한의 평양 등을 정송학 구청장 등과 함께 다녀오기도 했답니다. 광진구는 고구려 전성기 때 남쪽의 국경이던 아차산에 고구려 역사공원을 만드는 데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고구려 구호는 하위직 직원들 회식 자리에서도 많이 회자된다고 합니다. 직원들은 “잔소리 심한 마누라를 위하고, 힘 빠진 나를 불쌍하게 여기구, 그래도 예쁜 우리 새끼를 위하여…”라고 외친다고 하네요. ●문화시장 원조는 이명박 서울의 경쟁력은 문화에서 나온다며 평소 문화를 강조해 온 오세훈 서울시장이 “문화 시장의 원조는 이명박 대통령”이라며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문화시장’ 타이틀을 이 대통령에게 양보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에겐 왠지 2% 부족한 듯 보이는 문화마인드를 오 시장이 부여한 셈인데요. 오 시장은 지난달 31일 김태환 제주지사와 서울·제주 간 관광분야협정을 맺은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 하면 ‘불도저’,‘건설의 달인’이란 이미지인데 사실은 전혀 다르다.”면서 “시장 재임기간 침체돼 있던 세종문화회관을 되살리고 서울시향에 정명훈씨를 스카우트했다.”고 업적을 나열했습니다. 더해서 “이 대통령은 새벽 1∼2시 퇴근을 해도 클래식 음악으로 피로를 푸는 분”이라고 치켜세웠습니다.●구청장은 만학도 칠순 김충용 종로구청장이 지난달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땄답니다. 한양대학교 지방자치대학원 사회복지학과를 2년 6개월 만에 졸업한 결과라고 합니다. 지금도 같은 대학 일반대학원 행정학과에서 박사과정을 공부 중이라는데요. 그러나 직원들은 가랑이가 찢어지는 모양입니다. 공부를 하라는 엄명(?)이 떨어져 각과 단위로 학습 동아리를 만들어 현안에 대한 토론과 해결방안을 만들어 발표한답니다. 또 일과가 끝난 후 문화유산해설사 등 강의를 듣느라 바쁩니다. 매일같이 야반퇴근을 밥먹듯 하는 직원들은 “더 이상 못살겠다.”고 아우성치지만 막상 호랑이 청장님 앞에선 꿀 먹은 벙어리랍니다.시청팀
  • [길섶에서] 0시의 이별

    저녁 어스름 퇴근길에 흔히 오가는 얘기가 있다.“출출하지 않아?”라고 운을 떼면 ”그래, 그냥 갈 수는 없잖아.”라고 맞장구친다. 언제나 “딱 밥만 먹고 가자.”로 시작되지만 자연스레 술자리로 바뀐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다들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흘낏흘낏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지만 약속한 시간은 무너져내리기 십상이다. 집단적으로 작용하는 보이지 않는 힘에 끌려가게 된다. ‘버스, 지하철 타고 들어가기’란 약속이 가장 많은 듯하다.‘열시 반 이후 새 이닝 안 들어가기’란 약속도 있다. 그러나 이는 시간을 늘리려고 어느 술꾼이 짜낸 잔꾀가 아닌가 싶다. 야구 용어에서 따왔는데, 술판 차수를 바꾸지 않는다는 다짐일 뿐 실제론 시간제한이 없어서다.한 선배는 술자리 끝에 노래방엘 가면 꼭 ‘0시의 이별’을 목청껏 뽑는다. 집단최면에 당했지만 그제라도 귀가를 선언하는 셈이다. 노래에 얽힌 사연 또한 기막히다. 연인끼리 헤어지는 슬픔이 그득한데, 옛날 정권은 ‘통금’에 반대한 것이라며 금지곡으로 묶었다고 한다.송한수 국제부 차장 onekor@seoul.co.kr
  • [씨줄날줄] 러브샷과 러브콜/구본영 논설위원

    대법원은 얼마 전 술자리에서 여성에게 ‘러브샷’을 강요하면 강제추행죄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지난 2005년 한 골프장 내 식당에서 여 종업원이 명백한 거부의사를 밝혔는데도 폭탄주 러브샷을 강행한 모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것이다. 사실 러브샷(love shot)은 국적불명의 조어다. 전형적인 러브샷은 ‘술잔을 든 팔을 상대방의 목 뒤로 돌려 감은 채 동시에 술을 마시는 방식’이다. 그런 음주법은 영어권 국가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옥스퍼드나 웹스터 영어 대사전에도 없는 이른바 ‘콩글리시’(한국형 엉터리 영어)인 셈이다. 대법원 재판부는 “러브샷은 필연적으로 얼굴이나 상체가 밀착돼 신체접촉이 있게 된다.”면서 상대의 거부시 성추행으로 이어질 개연성을 지적했다. 설령 동의하에 하더라도 한순간 친밀감이 높아질진 모르나, 영원한 사랑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게 또한 러브샷의 미학일 듯싶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러브샷이란 신(新)음주풍속도가 그려지고 있다. 선거철이 되면서 여의도에서도 러브샷을 외치는 목소리가 잦아질 참이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가 그제 총선후 ‘친박연대’와 친박근혜계 무소속과의 연대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박 전 대표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그는 “러브콜이라는 소리는 기분이 좋지 않다.”고 했지만, 러브샷과 달리 러브콜(love call)은 영어권에서 쓰는 관용어다. 본래 백화점 등에서 단골을 상대로 하는 세일기법을 가리켰다. 방송기자토론에서 이 총재는 총선후 친박연대 등의 한나라당 복귀 가능성을 짐짓 낮게 본 뒤 “필요하다면 양심적 세력과 손을 잡을 것”이라며 박 전 대표 측과의 제휴에 애착을 보였다. 그의 러브콜이 희망사항에 그칠지, 총선후 양측의 러브샷으로 이어질 것인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설령 그런 러브샷이 이뤄진다 한들 ‘영원한 정치적 동반자 관계’로 정착될 것으로 장담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 2002년 대선 직전 극적으로 후보단일화에 합의한 노무현·정몽준 두 후보는 여의도 포장마차에서 팔짱낀 채 러브샷을 외쳤다. 그러나 이는 결국 결별의 전주곡이었을 뿐이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씨줄날줄] 알몸 초밥/황성기 논설위원

    10년 전 일본 청년 단체가 홋카이도에서 전국 대회를 끝내고 마련한 뒤풀이.16세 소녀 도우미의 알몸에 초밥을 올려 놓고 참석자들은 여흥을 즐겼다. 깜쪽같았던 이 일은 몇개월 뒤 주간지에 사진이 실려 일본 열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관련자 4명이 체포됐다. 미성년자에게 ‘알몸 초밥’을 시킨 죄목인데 홋카이도의 청소년보호육성조례를 위반한 것이었다. 일본의 관능소설이나 성인물은 물론 심야 TV를 보면 종종 등장하는 게 뇨타이모리(女體盛り·알몸 초밥)이다. 젊은 여자의 알몸에 음식물을 놓고 먹으면 건강해진다는 속설 때문인지는 몰라도 일본의 온천지 여관에서 손님끌기로 시작했다는 설이 있지만 정확한 기원은 분명치 않다. 생선초밥이 에도(江戶) 시대 이후의 음식이란 점을 감안해도 그리 역사는 길지 않은 것 같다. 보통사람들이 흔히 접할 수 없는 고가라 경험자들은 술자리에서 안주 삼듯이 한다. 일본인 지인이 들려준 얘기. 세무 공무원이 모 회사의 연회에 초대 받아 갔더니 알몸 초밥 접대였다고 한다. 그 공무원 왈 “눈으로 즐기고, 입으로 즐겼다.” 먹는 사람은 그렇다 치지만 자신의 알몸이 초밥을 올려 놓는 그릇이 되는 여성의 입장은 괴롭기 짝이 없다. 혹독한 훈련을 받는데 반듯이 누워 알몸의 6곳에 달걀을 하나씩 올려놓고 몇시간을 달걀이 떨어지지 않도록 참아야 한다. 이런 훈련이 끝나 손님 앞에 나서기 전에는 초밥의 맛을 해치지 않도록 다시 몇시간씩 몸을 씻는 고행까지 견뎌야 한다. 얼마 전 미국 미니애폴리스의 일식당에서 1인당 150달러짜리 알몸 초밥(body sushi)이 등장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힌트를 얻었는지 한 케이블방송이 여배우가 직접 젓가락으로 알몸 초밥을 시식하는 장면을 내보냈다.“대한민국 상위 1% 부자들의 생활을 알아본다.”는 취지라는데 알몸 초밥이 부자들의 애호물도 아니겠지만 인권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방송 선정주의의 극치에 지나지 않는다. 생선 초밥을 알몸에 올려놓으면 체온때문에 선도가 떨어져 맛이 없어진다. 게다가 알몸 초밥이란 게 야쿠자들이 즐기는 방식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식욕이 생겨날지 의문이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20&30]경찰 체포전담반 추진… 다시 떠오르는 ‘백골단의 추억’

    [20&30]경찰 체포전담반 추진… 다시 떠오르는 ‘백골단의 추억’

    봄 기운이 완연한 요즘,30대 직장인들의 술자리에는 ‘벚꽃 구경’과 함께 ‘백골단’이 단골 메뉴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경찰이 불법 시위 엄단 조치의 하나로 발표한 ‘체포 전담반’이 90년대 중반까지 시위 현장에서 흰색 헬멧을 쓰고 대학생들을 잡아들이던 ‘백골단’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봄과 함께 시작되곤 했던 대학가 시위와 ‘백골단’을 둘러싼 30대들의 추억을 들어봤다. 90학번인 조모(37)씨는 봄만 되면 등줄기가 욱신거린다. 실제 상처가 남아 있다기보단 그저 화인처럼 남아 있는 곤봉 폭행의 상흔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 1학년이던 90년은 수업에 들어갈 시간조차 없었다. 매일 현장 노동자들이 파업 진압에 픽픽 쓰러지고, 농민들은 시장 개방에 비쩍 말라갔다. 책을 든다는 게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 시절 조씨에게 ‘백골단(白骨團)’은 공포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1991년 봄.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학과 동료를 위해 법원 마당에서 침묵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시위대 앞에 전·의경들이 서 있었고, 경찰 기동대장은 해산을 요구했다.“평화시위를 해산할 이유가 없다.”고 호소한 지 10여분 뒤. 청재킷과 흰 운동화, 몽둥이를 든 백골단이 전·의경 머리 위로 날아오르듯 확 튀어나오더니 시위대를 마구 팼다.“몸집이 참 큰 사람들이었죠. 그저 공포였습니다. 철거예정지에 가면 가끔 조폭들과 연계해 나타나기도 했죠. 대학생들이 왜 정치적인 사건에 개입하냐고 말들 많지만, 배우는 학생들이 주변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일정한 역할을 하는 게 21세기가 원하는 협동심과 리더십을 공유한 사람이 되는 길이죠.” 직장인 이모(36)씨도 봄만 되면 가슴이 울렁거린다. 벚꽃놀이 갈 생각에 설레는 게 아니라 대학 새내기 시절인 91년 봄이 자꾸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해 4월 초 명지대생 강경대씨가 학교 앞 집회에서 백골단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숨졌다. “매일 집회가 계속 됐죠. 쩌렁쩌렁 울리는 스피커 굉음과 강의실까지 스며드는 최루가스가 절 그냥 놔두지 않았어요. 집회가 시작되면 친구들이 하나둘씩 강의실을 빠져나갔습니다. 그 힘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강씨 사망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성균관대생 김귀정씨도 을지로 골목에서 백골단의 ‘토끼몰이식’ 진압에 숨졌다. 이후 대학생들의 분신이 이어졌고, 매일 대규모 집회가 서울시청 주변에서 열렸다.“서울시청 광장을 놓고 백골단·전경과 매일 싸웠죠. 지금 생각하면 다른 장소도 많은데 왜 꼭 서울시청 광장만 고집했는지 모르겠어요.” 이씨는 91년 봄부터 초여름까지 청바지·청재킷에 하얀 헬멧을 쓴 백골단과 명동, 시청, 종로, 을지로 거리에서 숨바꼭질을 계속했다.“백골단은 전·의경과는 상대가 되지 않는 ‘전투력’을 보유했죠. 한마디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날아다니는 경찰이 바로 백골단이었습니다. 두꺼운 진압복을 입은 전·의경은 그저 특정 장소를 지키는 일에 주력했지만, 백골단은 검거가 목적이었죠. 백골단에 잡히지 않으려고 얼마나 뛰었던지….” 최근 경찰이 체포 전담반을 꾸린다고 하자 이씨는 가슴이 벌렁거린다.“지금이 대체 어떤 때입니까. 진짜 과거의 백골단을 다시 만든다는 얘기는 아니겠죠?” ● 일반 시민들에게도 ‘공포의 대상´ 통일운동가 황선(34·여)씨도 씁쓸한 추억담을 털어놨다.92학번인 황씨는 같이 집회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백골단에 의해 숨지거나 다치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참 많이 닦아냈다고 돌아본다.“87년 민주화 이후에 집회시위는 어느 정도 안정적이고 평화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백골단의 모습은 변한 게 없었죠. 당연히 집회 참가자들은 더욱 분개했고 갈등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민운동가 안진걸(37)씨도 백골단에 대한 ‘추억’ 아닌 ‘추억’을 생각하면 아직도 한숨이 나온다. 안씨는 백골단이 단순히 시위대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공포의 존재’였다고 말한다.“무작정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달려드는 백골단이 누가 시위대고 누가 시민인지 어떻게 알겠어요. 그냥 몽둥이를 휘두르는 거죠. 이유도 모른 채 다치는 시민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어디 한군데 하소연할 때도 없었습니다.” 96학번인 대학생 황모(31)씨는 백골단의 끝물을 맛봤다.97년 노동절 집회 때 한양대 근처에서 당한 토끼몰이식 폭행을 아직 잊지 못한다. 당시 집회는 80년대와는 달리 선배의 강압 없이, 자기 생각대로 나가든 말든 결정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경찰은 96년 있었던 한총련 집회 뒤 또다시 강경 진압을 남발했다. 집회에 갔다가 여자 후배 한 명과 함께 백골단에 쫓겼고 여자 후배를 멀리 피신시킨 뒤 자신만 집중 폭행을 당했다.“백골단은 시위대를 공격하기 위해서 생겼던 조직입니다. 해외에도 시위대를 곤봉으로 때리는 경찰들이 있지만 이들은 최소한의 방어선을 유지하다 시위대가 흥분해 주변 시민을 위협하면 그제서야 곤봉을 듭니다. 무조건적인 체포와 폭력진압을 위주로 하는 백골단과는 성격이 다르죠.” 중학교 교사가 된 96학번 이모(31·여)씨는 같은 대학, 같은 학번 노수석씨를 기억한다.96년 초 새내기였던 이씨는 선배들의 권유로 등록금 투쟁에 나섰다. 이씨는 “당시에도 등록금은 치솟고 있었고, 신입생 때는 무엇이든 참여하고픈 생각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남대문에 다다르자 ‘등록금 투쟁’ 구호는 ‘정권 타도’로 바뀌었다. 무언가 이상하다 느낄 무렵 최루탄이 터졌다. 이씨는 남자 동기의 손을 잡고 서울역 방향으로 무조건 뛰었다. 갑자기 사람들이 “백골단이다. 남대문엔 골목이 많다. 큰길로 뛰어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아비규환이었다.“대부분 서울역으로 뛰었죠. 하지만 나중에 들으니 노수석씨를 비롯한 몇몇이 골목으로 뛰었다는 거예요. 골목은 목격자도 없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모르는데….”결국 노씨는 백골단에 폭행당해 숨진 채 발견됐다. 학원강사를 하고 있는 유모(32)씨는 백골단하면 촌스러운 청재킷이 떠오른다.96년 여름, 신분증 검사도 떠오른단다. 하지만 오히려 그들이 측은했다고 말했다.“연세대에서 8월 사태가 있었죠. 그리고 교문을 들어갈 때면 신분증 검사를 해야 했어요. 당시에는 정말 무서웠죠.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위에서 시킨다고 폭력까지 휘둘렀던 백골단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백골단으로 불리는게 너무 싫었어요” 90년대 초반 광주에서 ‘백골단’으로 경찰 생활을 시작했던 전남지방청 소속 한모(44) 경사에게도 그 시절의 기억은 아픔으로 남아 있다.“누가 하고 싶어서 했겠습니까. 당시엔 초임 경찰관 가운데 덩치가 좋고 날렵한 사람들이 대거 검거전담반으로 차출됐죠. 백골단으로 불리는 게 너무 싫었는데…. 진압복도 입지 않은 채 대학생들이 휘두르는 쇠파이를 막느라 생명의 위협까지 느꼈습니다. 더이상 그런 아픔은 없어야 겠죠.” 회사원 이모(32)씨는 98년 말부터 2001년 초까지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의경으로 복무했다. 그가 기억하는 백골단은 시위를 진압하는 ‘최후의 수단’이다.“의경 입장에서는 하얀 헬멧과 청재킷만 봐도 힘이 났죠. 각목과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대학생들 앞에서 ‘이젠 죽었구나.’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백골단이 얼마나 고마웠던지….” 이씨에게 대학 시절 백골단은 무섭고 혐오스러운 존재였지만, 전·의경 복무 시절 시위 현장에서는 구세주와 같은 존재였다.“갑자기 시위와 관련된 모든 이론이 싫어졌어요. 어떤 생각도 뛰어넘은 평화주의자가 되고 싶었죠.” 사건팀 nomad@seoul.co.kr ■ 백골단을 아시나요? “백골단이요? 알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백골부대를 모르는 사람 있나요.” 백골단이 한창 활동하던 80년대와 90년대 초반.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코흘리개 시절을 보낸 아이들은 벌써 어엿한 대학생과 직장인이 됐다. 그들에게 백골단은 그저 생소한 이름이었다. 갓 대학을 졸업한 회사원 김모(25·여)씨는 백골단을 백골부대의 다른 이름으로 알았다.“백골단, 유명한 부대잖아요. 여자인 저도 아는 걸요. 해골 부대 마크 있고…. 철원에 있잖아요. 백마부대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부대 중 하나 아닌가요.” 백골단은 80∼90년대 활동했던 사복 시위 진압대라고 알려주자 김씨는 몹시 당황했다.“그런 진압대가 있었나요. 처음 들어봅니다. 아무리 그 당시 유치원생이었지만 우리 근대사의 일부분을 모르고 있었다는 게 너무 부끄럽네요. 인터넷에서 좀 찾아봐야겠어요.” 새내기 대학생 정모(19)씨도 백골단을 부대 이름으로 알고 있었다.“글쎄요. 왠지 군대쪽에 관련된 거 같긴 한데…. 학교 다닐 때 백골단에 대해 배운 적이 없고, 아직 대학 입학한 지 얼마 안돼 잘 모르겠네요.” 정씨는 기자로부터 백골단의 의미를 알게 되자 되레 의아해했다.“정말 그런게 있었나요. 진짜 조선시대 이야기 같습니다. 당당하게 경찰복을 입고 진압하지 왜 치사하게 사복을 입고 진압을 했는지 이해가 안 가네요.” 직장인 최모(26)씨도 백골단은 금시초문이었다. 최씨는 광주 5·18민주화운동의 모습을 담았던 영화 ‘화려한휴가’를 본 뒤 관련 책 등을 읽어봤지만 백골단은 난생 처음 듣는 단어였다. “사복경찰이 있었다는 말은 들어봤는데 그들이 백골단이란 이름으로 움직인 조직원들인지는 몰랐습니다. 고작 20여년밖에 안 된 일인데 정부가 교묘히 국민을 탄압했다는 사실에 그저 화가 나네요.”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여성&남성] ‘유리천장’ 좌절 그리고 희망

    [여성&남성] ‘유리천장’ 좌절 그리고 희망

    ‘유리천장’은 본래 여성들의 머리 위에 있는 ‘보이지 않는 승진 장벽’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최근 남성이 소수인 직업이 등장하면서 유리천장의 존재를 실감하는 남성들도 늘고 있다. 여성들에게 유리천장은 남성이었다. 반면 남성들에게 유리천장은 여성이기도 하다.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이성의 정보 유통 방식과 동성끼리 뭉치는 문화는 서로에게 유리천장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유리천장을 깨뜨리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머리 위 열린 세상을 꿈꾸는 남성과 여성의 ‘좌절과 희망의 이중주’를 들어봤다. ●승진 힘들고 사내정보에서도 소외 서울 강남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신모(28)씨는 대학시절부터 학과 내 몇 안 되는 남성으로 주목받았다. 뛰어난 성적으로 대학 병원에 취직하게 된 신씨는 생각보다 남성 간호사가 많다는 사실에 안도의 안숨을 쉬었다. 하지만 소수인 남성 간호사는 여성에 비해 승진도 힘들고 사내정보 공유에도 너무 취약했다. 신씨는 몇 달 전 군기를 잡겠다는 사소한 이유로 신규 여간호사를 괴롭히는 여성 선배에게 그러지 말아달라고 정중하게 사정을 했다. 하지만 여성 선배들 모두로부터 ‘싸가지(?) 없는 남자 후배´로 낙인 찍혔다. 그는 내심 수간호사가 정당하게 상황을 판단해 주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신씨는 수간호사로부터 지적받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주변의 여성 동료들도 신씨가 새내기 간호사를 좋아해 감싸고 돈다는 등 말도 안 되는 소문들을 내기 시작했다. 신씨는 “남성들은 보통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면서 승진, 회사 분위기 등의 정보를 주고 받는데 여성들은 어떤 방식인지 모르겠다.”면서 “해명을 하고 싶어도 방법을 알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후 그는 일명 ‘왕따´ 대열에 들어섰고, 여성 선배들은 그에게 이유 없는 짜증을 내곤 했다. 그는 대화로 풀어보려고 했지만 아무도 그에게 여성들만의 ‘대화 기술´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또한 남성간호사가 수간호사를 꿈꾸는 것은 현재로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승진에 대한 정보도 부족하거니와 기본적으로 환자들에게 신뢰를 받아야 하는데 환자들에게는 실력과 상관없이 남성간호사가 기피 대상이다. “동료들 사이에서는 남성이라고 끼워주지 않으니 인사고과가 잘 나올 리 없고, 환자들도 피하니 승진은 먼나라 이야기예요. 친구들을 만나면 승진 전략이라면서 술자리 에피소드나 로비 사례 등을 얘기하는데 낄 얘기도 없고 관심도 안 가요.” 향수제조업체에 근무하는 윤모(30)씨는 최근 심각하게 부서이동을 검토하고 있다. 지금 있는 부서에서는 승진이 거의 힘들다는 판단 때문이다. 여성을 위한 향수 회사여서 여성을 더 선호하기도 하지만, 여성의 마음을 읽고 그에 맞는 향기를 찾는 일이 남성에게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가 처음 조향(향수 제조)을 배운 것은 4년전. 당시만 해도 남성 조향사에 대한 전망은 좋았다. 하지만 회사에 취직해 보니 사정은 달랐다. 여성 팀장은 윤씨 앞에서는 좀더 노력해야겠다면서 격려해 주었지만, 사석에서는 남성에게는 맞지 않는 일이라고 말하곤 했다. “부서 전체가 회식을 할 때면 핵심적인 대화가 빠진 기분입니다.2차도 따라가는데 내가 있어서인지 떠도는 소문조차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려 합니다.” 부서에서 겉돌던 윤씨는 자연스럽게 마케팅부서 남성직원들과 친해졌다. 윤씨는 “마케팅은 그래도 남성들하고 잘맞더라고요. 여성의 심리를 파악하는 것은 비슷하지만 불분명한 감성으로 향기를 찾는 것보다 명확한 매출신장 방법을 찾는 것이니까요.” ●남자만의 성공모델도 전무 “그래도 희망은 있다” 그런가 하면 영어교재를 만드는 회사에 다니는 이모(31)씨는 남성들은 성공모델이 없어 승진이 어렵다고 전했다. 이씨는 “부서원 15명 중에 남성은 3명뿐입니다. 역대 팀장은 모두 여성이었는데 이유는 남성들이 회사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부서에서 유능하다고 평가받던 이씨의 남성 선배는 2년전 회사를 그만두었다. 이유는 ‘몇 시간씩 한자리에 앉아서 책 교정을 보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씨는 영어문제를 만들고 편집하고 교정을 보는 과정이 상당히 정적이어서 남성들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회사를 그만두는 남성 선배들 때문에 능력있는 후배들의 승진이 힘들어지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다. “저 같은 경우는 내가 낸 영어문제로 한 권의 책이 나오는 것을 보면 희열을 느낍니다. 하지만 주위에서는 언제 나갈지 모르는 놈으로 취급해 답답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주류가 될 수 없는 유리천장 밑에 있는 기분이에요.” 여성 속옷회사에 근무하는 오모(30)씨는 여성에 관한 일이라고 남성이 출세하지 못하라는 법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란제리 회사라고 하면 여성이 대다수라고 생각하는 편견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낡은 사고입니다. 우리 회사는 중소기업이기는 하지만 남성들이 대부분이에요. 디자인실을 제외하고 상관도 대부분 남성입니다.” 여성의 마음을 읽고 기획을 하는 것 역시 남성들의 몫이다. 상품을 만드는 것도 여성디자이너와 남성개발팀이 협력한다. 제작 역시 남성이 한다. 오씨는 남성이 강세를 보이는 비결에 대해 “선배들이 여성을 위한 속옷이 아닌 기능성 속옷에 중점을 두고 회사를 이끌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결과 디자인팀보다 남성들이 중심인 기능성 소재 개발 연구팀이 힘을 얻게 됐다. 오씨는 “남성에게 불리한 직업도 여성에게 불리한 직업도 없다고 생각한다. 유리천장이라는 말은 안 보이는 벽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면 결국 깨진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웃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굵직한 프로젝트는 남자 직원에게만 박모(28·여)씨가 다니는 건설회사는 야근도 많고 업무 강도도 높다. 남성이 대부분이다. 여자라서 체력이 달린다는 말을 듣기 싫었던 그는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하고 싶었던 프로젝트는 번번이 남자 동기나 남자 후배에게 넘어갔다. 남자 팀장은 박씨의 불평에 “다음에는 꼭 참여할 수 있도록 신경 쓰겠다.”는 대답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매번 물(?)을 먹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남자 선배가 안쓰럽다는 듯이 “새 부장은 굵직한 프로젝트는 추진력과 체력이 있는 남자에게 맡긴다.”고 귀띔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명문대 출신인 새 부장은 대학 후배를 끌어주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새 부장 밑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성도 아니고 명문대 출신도 아닌 쓸모없는(?) 부원이 돼 버렸다. “프로젝트를 못 맡으니 인사고과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고, 남자 후배에게 추월당하는 수모만 당했죠. 공부를 더 할까 심각하게 고려하기도 했는데, 그런다고 여자가 남자 되는 것도 아니고, 비명문대가 명문대 되는 것도 아니니까 답답하죠, 뭐.” 이후 박씨는 핸드백에 늘 사직서를 넣고 다닌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김모(26·여)씨는 다른 직원보다 빨리 승진하기 위해 해외 법인 주재원을 꿈꾸었다. 대학시절 어학연수도 남들보다 오래 다녀온 터라 현지 적응에도 자신 있었다. 해외에서는 한국과 다르게 여성의 능력을 인정해 주는 문화가 있어 실력만 펼치면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김씨는 입사 1년 만에 여성 해외주재원은 무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생산 공정을 점검하기 위해 태국으로 출장 간 김씨는 ‘여자라서 치안에 너무 신경이 쓰인다.´는 현지 법인의 불평을 들어야 했다. 그가 바깥에 나갈 때면 현지 법인에서는 전용 기사를 붙여 주었다. 대부분 치안이 불안한 지역에 현지 공장이 위치해 있어 여자 혼자 공장에 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본사가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김씨는 상관없다고 수차례 말했지만 본부장은 들은 체도 않고 “다음에는 남자를 보내라.”고 당부했다. 김씨는 출장을 다녀온 뒤 해외주재원 선발 과정에서 여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사내 문화를 이해하게 됐다. 그는 “전에는 이런 사내 문화가 단순한 편견인 줄 알고 바꿀 수 있다고 믿었는데 요즘에는 어쩔 수 없는 ‘유리천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능력도 아닌 치안 문제 같은 이유로 해외주재원 선발에 여성이 불리하다는 현실이 너무 화나요. 하지만 그 현실을 나도 모르게 인정하게 된다는 것이 더 슬프죠.” ●“남성이 하면 로비, 여성이 하면 이상한 행태” 경기도 한 중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박모(31·여)씨는 학교에 여성 간부가 없다는 점이 늘 불만이다. 여성 교사의 비율은 남성에 비해 훨씬 높지만 주요 직책은 대개 남성의 몫이다. 여성 교사가 80%를 차지하지만 모든 부서의 장은 남성이 맡고 있고, 그 아래 차장 자리가 여성의 몫이다.1, 2학년은 교사 10명 가운데 남성은 고작 2명씩이다.3학년도 남성은 3명뿐이다. 박씨는 남성 교사들이 서로 끌어주면서 여성에게 주무부서 자리를 내어 주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교감이 되려면 현재 교감에게 점수를 잘 받아야 하고 교장이 되려면 교장에게 점수를 잘 받아야 하는 인사구조 때문에 여성 교장은 나오기 힘든 것 같다.”고 말했다. 박씨는 ‘교직에 여풍(女風)이 분다.´고 언론에서 보도하지만 단지 하부구조에만 여성이 많을 뿐이라고도 지적했다. 또 남성 교사들에게 익숙한 ‘승진 로비´도 여성이 하면 이상한 소문만 돈다고 말했다. “남성이 하면 로비고, 여성이 하면 이상한 행태인가요?정말 어이가 없어요.” 직장생활 3년차인 최모(29·여)씨는 직장 여성이 임신하면 능력 없는 직원으로 낙인 찍히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직장내 여성 간부가 없기 때문이다. 최씨의 별명은 ‘슈퍼우먼´, ‘술상무´, ‘억척 어멈´ 등이다. 그만큼 열심히 일했고, 중요한 프로젝트는 그의 차지였다. 업무와 관련한 자격증도 5개나 취득했고, 특진 대상 1순위로 평가받았다.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 ‘유리천장´은 실력없는 여성이 만들어낸 용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의사인 남편과 결혼한 뒤 상황은 달라졌다. 일은 예전과 같았지만 동료나 상관은 일이 아닌 ‘의사 사모님´으로 그를 평가했다. 회사에는 그가 언제 관둘지 모른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그리고 임신을 하자 이제는 최씨를 배려한다는 핑계로 남자 후배에게 중요한 프로젝트를 넘기기 시작했다. 상관은 오래 쉬어야 하니 후배 가르치는 일에 열중해 달라는 주문까지 했다. 그리고 지난달 특진 대상을 올리라는 회사의 지시에 상관은 인사고과점수가 평균 이하인 남자 동기를 대상자로 올렸다. 게다가 ‘승진 로비´까지 도맡아서 해주고 있었다. “회사에는 이왕이면 여성보다는 남성을 밀어주는 게 상책이란 소문까지 있어요. 한명이라도 여성 간부가 있다면 우리도 희망을 가질 텐데…. 그래도 제가 이 악물고 버텨서 첫번째 여성 간부가 될 겁니다. 그리고 여성 후배들도 ‘유리천장´을 부수도록 도와줘야죠.”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용어클릭] ●유리천장(Glass Ceiling)은 미국의 경제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이 1970년에 만들어낸 신조어로 본래 여성들의 고위직 진출을 가로막는 회사 내 보이지 않는 장벽을 뜻한다. 미국 정부는 1991년 유리천장 위원회(Glass Ceiling Commission)를 구성해 여성이나 흑인 또는 소수민족 등이 승진에서 차별 대우 받는 일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남성들이 소수인 직업이 생기면서 남성 직장인들의 승진을 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의미하기도 한다.
  • [열린세상] 시간강사는 투명인간인가요?/이성형 중남미 정치학 전문가

    [열린세상] 시간강사는 투명인간인가요?/이성형 중남미 정치학 전문가

    그들은 투명인간입니다.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간혹 한 명이 자살하면 언론이 측은한 듯 그들의 실체를 드러내 보입니다. 최근 들어 벌써 세 명의 투명인간이 자살했다고 합니다.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 외국 또는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대학교육의 40%가량을 담당한다는 시간강사들 말입니다. 우리나라의 투명인간 숫자는 5만∼6만명 정도랍니다. 전임 교원 숫자가 6만 6000명 수준이니 비슷하다고 하겠지요. 사회는 그들이 이슬만 먹고 사는 천사들로 대접합니다. 시간당 평균임금이 3만∼4만원꼴이니 주당 3학점 과목 4개,12시간을 강의하면 한달에 120만원 정도 벌 수 있겠지요. 하지만 네과목을 강의하자면 서울의 경계를 넘어 인천, 수원 등지로 원정경기를 나가야 합니다. 당연히 기름 값과 점심 값을 빼야겠지요. 그러니 넉넉잡아서 월소득 100만원이라고 보면 됩니다. 게다가 연중 넉 달은 계절적 실업자로 분류됩니다.3인 가구 최저생계비가 월 150만원이라지요. 가정을 꾸린 남성이라면 일단 아내 보기가 민망합니다. 아이도 쑥쑥 커가는데 한숨만 쉬는 자신을 바라봅니다. 애꿎은 담배만 푹푹 피워댑니다.“여보!이 일 집어치우고 학원으로 나갈까?”“에이, 공부가 다 뭐야!” 학위를 받은 지 5년 정도는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자신에게는 틀림없이 구원의 밧줄이 내려올 것이라고 믿지요. 열심히 학계의 모임에도 나가고, 선배와 동료들의 술자리에도 얼굴을 내밉니다. 궂은 일도 도맡아 처리하지요.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구원의 손길이 멀어져 감을 느낍니다. 슬그머니 화가 치밉니다. 우울증이 도집니다. 맨 정신으로 살아가자면 교회에 나가든지 아니면 참선 수행을 해야 합니다. 아니, 왜 똑같이 대학에서 강의하는데, 우리가 받는 임금은 기아임금 수준이야. 하루종일 이 대학 저 대학 이동하면서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소주잔을 기울이다 집에 들어오면 아이 학원비 타령하는 아내가 기다립니다. 잦은 부부 싸움은 정해진 코스입니다. 이혼한 커플도 많습니다. 이들에겐 올라가서 시위할 골리앗 크레인도 없습니다. 집단행동을 한다면 틀림없이 손가락질을 받을 것입니다. 한국 사회에 부르주아 통과증이라 불리는 박사학위가 있는 학자님이기에 집단행동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강의와 연구 활동에서 선배나 동료교수들에게 어떤 불이익을 당해도 조용히 삼킵니다. 체면을 중시하는 학인 사회이기에 배는 고파도 말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가벼운 우울증이 점차 중증으로 발전할 수밖에요. 주변에 자주 화를 내고, 말도 거칠어집니다. 내성적인 사람은 점점 안으로 움츠러듭니다. 학문에 뜻을 세운 20∼30대에 꿈꾸었던 자신의 모습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나가 버린 현실에 화들짝 놀라기도 합니다. 이 불쌍한 투명인간들의 오랜 민생고를 조금이나마 완화하기 위해, 뜻있는 국회의원들이 ‘고등교육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만들었습니다.‘계절적 일용잡급직’에게 최소한의 자존심과 생계유지가 가능하도록 ‘강사’에게 법적 지위를 부여하고, 전업 강사의 임금을 국공립대 전임강사 임금의 절반 수준 정도라도 보장하자는 취지입니다. 사립대학교도 매칭펀드 형식으로 동참하게끔 국고에서 인건비의 절반 정도를 지원하자는 제안도 있더군요. 저는 이 대목에서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하지만 존경의 염이 곧 실망으로 변하려고 합니다. 이 안을 발의한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은 청와대로 들어가고, 국회는 공천 홍역에서 선거정국으로 이행하면서 법안이 공중 분해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존경하는 국회 교육위원회 위원 여러분들, 제발 이번 회기 내에 법안의 심사를 종결시켜 주십시오. 투명인간들의 애꿎은 희생이 더 나오지 않도록 말입니다. 이성형 중남미 정치학 전문가
  •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공약公約이 아니라 공약空約이라 합니다. 구체적인 정책, 실시 기한, 계량화된 목표 등은 여기엔 없습니다. 상투적인 구호나 비현실적인 정책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거리에서, 시장에서, 회사에서, 학교에서, 집에서 그리고 술자리에서 제 목소리를 내보지 못한 우리 이웃들의 갈증과 소박한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잘 가려듣고 누구를 찍을지 한번 생각해보시겠습니까?취재, 글 강성봉, 표세현, 박은애 기자 | 일러스트 홍원표 자연을 보호하고 경제도 살리는 비방이 있다 무엇을 하겠다는 것보다는 무엇을 하지 않을까를 먼저 고민하겠다. 다른 것은 몰라도 바다를 메워 땅을 만드는 일 따위는 하지 않겠다. 간척지로 땅을 조금 버는 것은 그보다 더 큰 해안선을 잃어버린다는 뜻이다. 자연이 만든 해안에는 땅 이상의 의미가 있다. 개펄은 생태계가 숨 쉬는 곳이고, 바다는 인간 정서를 순화시키는 관광자원이기 때문이다. 간척지에 카지노를 세워 돈 중독 환자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 어떻게 건강한 지역경제에 보탬이 되나? 내가 대통령이라면 동해, 서해, 남해 인근에 버려진 한옥 마을을 보수하거나 신설해 100퍼센트 한국적인 관광자원으로 가꾸겠다. 참신한 마음을 가진 의욕적인 사람들이 그곳에 이주해 관광사업을 할 수 있도록 국가적 차원에서 재정을 지원해주겠다. 지방경제에도 도움이 되고, 청년실업과 인구분산에 상당한 기여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남해의 시골 마을은 전직 대통령만이 낙향하는 곳은 아닐 테니까. (천종태, 생물학자, 49세) 분유 값을 확 내리겠다 출산 장려를 위해 분유와 기저귀에 부과되고 있는 부가세를 감면하겠습니다. 정말 기저귀, 분유 값 비싸서 어디 아이를 키우겠어요? 제조회사는 프리미엄 운운하면서 비싼 제품만 선보입니다. 부모 입장에서 좋은 거 먹이고 싶어서, 별 효과 없다는 거 알면서도 비싼 제품을 사게 됩니다. 성분 표시를 정확히 하고 품질관리도 엄격하게 해서 가격을 내려야 육아비 부담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김효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차장, 38세) 나이가 뭔 죄냐 각종 시험, 자격증 나이 제한을 폐지한다. 또 방송이나 신문 기사에 나이 표기를 강력하게 금지하여 출연자나 취재원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것이다. 특히 전국노래자랑 같은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일본에서는 이런 경우가 없다. (유영주, 주부, X세) 북한산을 응급실로 긴급 이송하겠다 2007년 국립공원 입장료를 폐지하고 나서 도봉산 탐방객 수가 455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전년도에 비해 2.5배 이상 늘어났고 1983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최고의 증가율을 보였죠. 다시 말해 숲 속 등산로에 왕복 8차선 고속도로가 생기고 있다는 이야긴데, 34년 동안 도봉산 밑에서 걸인 생활을 해온 이봉철 씨가 “산을 아주 죽일 셈이냐”고 말한 것도 이해가 갑니다. 휴식년제 구간을 확대하고 등산객의 동선을 자연 친화적 등산로 쪽으로 유도해야 합니다.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북한산을 응급실로 보낼 것입니다. 한동안 편히 쉴 수 있도록~! (이진기, 거벽등반가, 38세) 우리나라에도 문화대통령 나올 때가 됐다 나는 문화대통령이 되겠다. 한 해를 시작하거나 끝맺을 때 음악회에 참석하여 문화를 향유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많이 보여주고 싶다. 만날 싸우는 모습만 보여주면 지겹지 않겠는가. 또한 청소년 문화지원정책을 추진하겠다. 요즘 아이들이 놀 만한 공간이 너무 없다. 아이들이 공짜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열린 공간을 각 도시마다 만들어야 한다. 더불어 디자인 작품집이나 문집 같은 문화활동 실적을 공증을 거쳐 제출하면 대학 입시에 도움이 되는 제도도 마련하겠다. (최봉희, 파주공업고등학교 교사, 44세) 고양이 밥통을 설치하라 분리수거장에 있는 음식물 수거통 옆에, 길고양이를 위한 밥통을 따로 마련하여 수거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밤새 고양이들이 쓰레기봉투를 물어뜯는 일도 사라질 것으로 봅니다. (김진학, 경비원, 62세) 풍경과 가옥만큼은 지방색이 필요하다 어느 정도 재정에 손실이 있더라도 농촌 지역의 보기 흉한 아파트들을 허물고 지역 특색에 맞는 주거단지를 개발할 것이다. 디자인의 지역적 특성화를 점진적으로 유도해서 경기도스러운 건물, 강원도스러운 건물, 충청도스러운 건물, 전라도스러운 건물, 경상도스러운 건물, 제주도스러운 건물을 지어 우리나라를 여행할 때도 다른 지역에 왔다는 느낌이 들 수 있게 만들겠다. (오영욱, 건축가, 32세) 재래시장으로 다시 오시라! 내가 여기서만 15년을 장사했는데 이렇게 힘든 적이 없어요. 이제 막바지까지 온 거 같아요. 딸 셋 키우느라고 집 융자까지 다 뺐어요. 남편은 지금 일을 못 구해서 집에 있는데 일자리 창출, 창출 그러면서 젊은 사람들 위주로 뽑을 게 아니고, 한 우물 파온 사람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해요. 어려운 사람들을 기술적으로 양성하는 제도도 있어야 하고요. 지금 제 남편은 한 이틀 일 나가고 회사가 망해버려 월급 못 받고 쫓겨났어요. 노동청에 이야기하려 해도 시일이 너무 오래 걸립니다. 그 사람들도 돈 못 주니까 망한 거 아니겠어요. 이젠 자신감과 의욕도 상실하고 일하기가 무서운 거죠. 보수가 제대로 나와야 일할 의욕도 생기는 건데…. 내가 대통령이 되면 근방에 마을버스 돌도록 정류장도 만들고 주차할 수 있는 공간도 만들 거예요. 손님이 잘 다니도록 지붕으로 마무리하고, 시장 정리도 좀 하고요. 젊은 엄마가 유모차 끌고 나오면 편하게 장 볼 수 있게 말이죠. 친절해야 하고 물건이 좋아야 하는 건 우리 상인들의 몫이고요. (이화선, 재래시장 상인, 48세) 둘이 잘 맞으니까 같이 살아라 결혼 적령기의 젊은이들에게 아예 나라에서 짝을 정해주겠어요. (강승정, 대학원생, 26세) 먼저 노인들의 호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워드리겠다 정치인들은 선거 때만 노인들의 표를 몰아가는 선심성 공략만 내세웁니다. 그리고 선거가 끝나면 형편이 어려워 제대로 말도 못 하는 노인들을 소홀히 대합니다. 아마 70퍼센트 가량의 노인들이 연금혜택을 못 받을 겁니다. 지역이나 계층 간의 소득 재분배보다 더욱 절실한 것은 세대 간의 재분배입니다. 오늘날 풍요로운 사회를 일군 이들이 바로 노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주머니 털어 아이들을 교육시켰건만 지금은 젊은이들의 호주머니만 풍요롭습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노인 연금을 대폭 확대하겠습니다. (박재간, 저술가, 85세) 학교엔 기숙사를, 청소년에겐 자유를! 모든 고등학교에 무료 기숙사를 만들어 학생들이 자유롭게 머물도록 만들겠어요. 청소년들도 부모님 품에서 벗어나 우리들만의 세상을 누릴 권리가 있거든요. 당연히 B사감은 없어야죠! 자율 규칙으로. 귀찮게 하는 동생도, 컴퓨터 끄고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는 엄마도 없는 세상에서, 친구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고민도 이야기하고 스트레스도 팍팍 풀고 싶어요. 물론 같이 공부도 하면서 말이죠. (박종헌, 고등학생, 17세) 돈 안 되는 예술이라 홀대하면 쓰나 실험극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실험극을 해서 먹고살 수 있도록 순수예술 분야에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하고 싶은 공연보다는 ‘돈이 되는’ 공연을 해야 하는 실정이다.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예술성을 추구하는 소수를 위한 정책을 마련하겠다. (변희철, 연극배우, 30세) 서울에서 부산까지 ‘한반도 대경사 사업’ 실시하겠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한반도 대경사大傾斜 사업’을 시행할 것이다. 서울과 부산에 각각 높이 1킬로미터 정도의 탑을 쌓은 뒤 경사면으로 이을 것이다. 그 경사면으로 컨테이너를 밀어 떨어뜨려 물류를 수송하면 물류비가 엄청나게 줄어들 것이다. 문제는 나중에 어떻게 컨테이너를 멈추는가인데 이것도 다 방법이 있다. 운동에너지는 마찰면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감소한다는 법칙이 있기 때문이다. 즉 다시 말해 그냥 놔두면 된다는 것이다. 한반도 대운하 사업보다 이게 더 현실적이고 실현가능성이 높다. 현해탄이나 서해 너머로도 설치해서 일본과 중국 간의 물류 소통도 원활하게 하자. 아, 그리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노동수용소를 만드는 것은 어떨까? 노동수용소라는 말이 좀 험하긴 한데, 별다른 곳은 아니고 일하고 싶은 사람들만 들어가서 일하는 곳이다. 허드렛일이라도. 또 학교에서 아이들 공부 안 한다고 때려잡는 것보다 진로 교육을 많이 시키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중점적으로 시키자. (김종대, 취업준비생, 30세) 누구나 평온하게 잠들 수 있는 나라가 좋은 나라다 나는 우리나라가 누구나 최소한의 잠자리를 가질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빈집이나 오래된 연립주택을 싸게 사서 장기간 노숙자에게 저가로 제공하는 공공임대주택 정책을 실시하거나, 정부에서 직접 개방형 노숙자 쉼터를 마련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쉼터는 빡빡하고 권위적이다. 공공성이 담보된 쉼터를 운영하면 노숙자들이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노숙자들이 집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다. 알코올 중독이나 도박 등 사회적 질병을 무상 치료하는 국가적인 시스템 마련이 더욱 중요하다. 한 가지 더 얘기하고 싶은 게 있다. 초·중·고등학교 독서 교육을 강화했으면 한다. 고전은 기본으로 읽고, 자기 분야별 관심사에 따라 별도로 읽는 것이다. 그리고 독서 능력을 테스트하는 프랑스의 바칼로레아와 같은 논술시험이나 에세이로 대학 입시를 대체하는 것은 어떨까. 아이들의 기본적인 인문 교육이 잘됐으면 좋겠다. (최준영, 성프란시스코대학 교수, 41세) 난 대통령 절대 안 해 영부인 시켜주면 모를까. (김현진, 대학 강사, 32세) 이런 공약도 있습니다 햇빛이 잘 들어오는 곳에만 집을 짓는 법을 시행하겠습니다. _최병준 핀란드 노키아 부사장이 오토바이를 몰다가 과속으로 걸려서 낸 벌금이 3억! 벌금에도 누진세를 적용한다. _한민영 승용차 위주가 아니라 화물 위주의 고속도로를 만들겠다. _이무림 철도역이나 버스 터미널에 관광안내소를 대폭 늘리고 거리엔 휴지통을 더 많이 마련하겠다! 5미터 당 한 개씩 배치할 거야. _임재영 전용면적 얼마 이상의 건물에 탁아소 설치를 의무화하여 엄마랑 아기랑 함께 출퇴근하는 명랑사회 이룩한다. _임수정 2~3년 근속자에게 반년 무급 휴가 제공, 단 세계일주 프리티켓 지급하여 근무의지 고취! _이재호 국민건강진흥을 위한 다이어트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은 어떨까? _강혜림(가명) 세금 내는 만큼 투표수 차등 배분, 방송국 드라마 편성 상한제 실시, 유명무실해진 공공질서 법률 강화하고 고속도로에서 고장 난 차량 주인에게 과태료를 물린다. 너무 파격적인가? _신원 밝힐 수 없음 * 취재와 사진 촬영에 협조해주신 시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 [서울광장] 검찰 더 겸손해져야 한다/오풍연 논설위원

    [서울광장] 검찰 더 겸손해져야 한다/오풍연 논설위원

    #장면1 1987년 늦가을. 전두환 정권 말기 몇몇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들과 자리를 함께한 적이 있다. 공안정국이 위세를 떨치던 때라 그들의 기세 또한 대단했다. 심지어 자기네끼리 의기만 투합하면 나라를 흔들(?) 수 있다는 생각도 은연중 내비쳤다. 당시 ‘공안검사’는 출세코스로 통했다. 그래서 많은 검사들이 줄을 대기 위해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그러나 20여년이 지난 지금 그들 대부분은 검찰을 떠났다. #장면2 1992년 경제부처를 잠시 출입할 때다. 한 서기관이 아침에 나와 씩씩대며 분을 삭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전날 저녁 국내 최고명문인 K고 출신 동기들이 몇명 모였단다. 검사 출신 1명에 나머지는 대부분 행시 출신이었다고 했다. 일은 2차 술자리에서 벌어졌다. 검사 친구가 하도 오만불손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다고 했다. 다른 동기들도 기분이 잔뜩 상해 다들 밤잠을 설쳤다고 전했다. #장면3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임 초기 검사들과 자리를 함께했던 게 기억난다. 공중파로 방영돼 많은 사람들이 이를 지켜보았다. 전국에서 차출된 검사들은 현직 대통령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정제되지 않은 말들도 거침없이 쏟아냈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은 “이제 막 가자는 것이죠.”라며 흥분하기도 했다. 검찰의 발전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가 모두에게 실망만 안겨준 채 끝나 전파낭비라는 지적을 받았다. 그 뒤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검찰에 대한 대국민 이미지는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검찰을 수년간 출입한 터라 이런 얘기들을 들으면 마음이 편치 않다. 이는 아직도 국민위에 군림하려는 검사가 적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검사란 어떤 자리인가. 법과 절차에 따라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고 억울한 사람을 구제해 주는 것을 주임무로 삼아야 한다. 그런데도 실상은 그렇지 않아 유감이다. 참고인 조사차 검찰을 방문한 사람들 대다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들의 오만함과 불손 때문이다. 이제는 검찰도 변화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던진 화두도 변화와 섬김의 정치다. 특히 섬기는 자세를 체득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을 섬겨 나라를 편안하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해 12월 대통령 당선 이후 줄곧 주창해온 슬로건이다. 왜 국민을 섬겨야 하는지의 이유는 간단하다. 자세를 낮춰 국민을 받들어야 사랑받는 대통령이 된다는 확신이 선 까닭이다. 노 전 대통령이 검찰개혁을 이루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한 대목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앞으로 검찰이 해야 할 일도 보다 분명해졌다.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해 겸양(謙讓)의 미덕부터 길러야 한다. 얼마 전 류우익 대통령실장이 청와대 직원들에게 당부했던 세가지 덕목을 벤치마킹해도 좋을 듯싶다. 힘과 욕망, 감정표출의 절제가 그것이다. 이를 검찰에 그대로 대입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권부(權府)의 사람들’이 지켜야 할 것을 정확히 짚었기 때문이다. 최근 물러난 검찰 고위인사도 “국민에게 겸손하고 절제된 자세를 보일 때 진정한 존경을 받을 수 있다.”고 되돌아봤다. 검찰은 지난 주말 검사장급 이상 인사를 단행했다. 진통을 겪은 탓인지 뒷말도 무성하다. 검찰의 변화된 모습을 다듬는 것은 김경한 법무장관과 임채진 검찰총장의 몫이다. 오풍연 논설위원 poongynn@seoul.co.kr
  • [깔깔깔]

    ●백수가 열받을 때 1. 나보다 먼저 새로운 비디오를 빌려간 사람이 있을 때. 2. 직장에 다니는 친구가 할 일이 많아서 미치겠다고 할 때. 3. 날이 갈수록 혈색이 좋아진다는 소리를 들을 때. 4. 오늘의 운세에 재물운이 좋다고 해서 비상금 털어 복권 샀는데 어제 신문일 때. 5. 개미와 베짱이 우화에서 베짱이의 최후가 불쌍하게 표현된 것을 볼 때. 6. 공짜 술자리에서 한잔만 먹어도 취하는 희한하고 억울한 일이 생겼을 때. 7. 통장님이 전기세를 받으러 와 달콤한 낮잠을 깨울 때.●못쓰는 물건 토요일 밤이 지나고 일요일 아침, 아파트 관리실에서 방송을 했다.“집에 못쓰는 물건 있으시면 관리실 앞으로 갖고 나오세요.” 한참 뒤에 관리실 앞 마당에는 마누라들에게 끌려 온 풀 죽은 남편들이 한 무더기 있었다.
  • [한국경제 재도약의 길](3)서비스 산업 경쟁력 키우자

    [한국경제 재도약의 길](3)서비스 산업 경쟁력 키우자

    ‘세계 13위 경제대국, 반도체·LCD 모니터 등 IT 산업 주도국, 외환보유고 세계 5위’. 선진국 진입을 앞두고 있는 한국의 수식어들이다. 그러나 낙후된 서비스업이 발목을 잡고 있다. 서비스업은 도소매업 등 유통서비스 비중이 과도하면서 생산성이 터무니없이 떨어지고, 이는 결국 막대한 서비스수지 적자로 연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개방을 통해 서비스업종의 생산성을 끌어올리고, 제조업과 서비스업종이 함께 시너지 효과를 올릴 수 있도록 국가 시스템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고도화된 제조업의 숙명은 ‘고용 없는 성장’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필요한 노동력 역시 줄어든다. 반면 서비스업은 대면 접촉을 통해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일어나는 특성 때문에 끊임없이 일자리가 창출된다. 실제로 2000∼2006년 전체 취업자 중 제조업 종사자는 12만 6000명이 줄었지만 서비스업은 231만명이 늘었다. 서비스산업 고용 규모 역시 2005년 현재 1079만 9000여명으로 전 산업고용의 71.3%, 매출액은 58.8%에 이른다. 그러나 서비스업의 노동생산성은 2004년 기준으로 제조업의 절반(49.5%) 수준이다. 국내 서비스업의 노동생산성을 100으로 봤을 때 미국(379.1)의 4분의 1, 타이완(184.7)과 싱가포르(260.3)의 절반에 불과하다. ●서비스업 노동생산성 미국의 25%에 불과 서비스업 생산성 감소는 비정규직 저임금의 ‘나쁜 일자리’ 양산에 따른 내수 침체와 사회 양극화로 연결된다.‘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위해서는 서비스업종의 생산성 제고는 필수조건이다. 서비스산업이 전반적으로 낙후된 원인은 금융, 소프트웨어, 회계, 법률 등 생산자 서비스 부문의 비중은 선진국에 비해 낮은 반면 도소매 등 유통서비스의 비중은 크기 때문. 의료, 사회복지 등 사회 서비스 역시 고용 비중은 늘고 있지만 각종 규제 정책 등으로 부가가치 비중은 오히려 감소, 생산성이 떨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서비스산업 정책의 핵심은 개방을 통한 생산자서비스 분야의 육성에 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제조업은 제휴, 해외 연구개발센터 등으로 기술을 흡수할 수 있지만 서비스업은 같이 일하면서 배우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이 서비스이기 때문에 금방 따라잡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KDI 김주훈 산업기업연구부장은 “한국방송광고공사의 광고 독점, 대기업의 케이블 진출 금지, 법률·의료서비스 미개방 등이 생산자 서비스 분야의 발전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규제”라면서 “공급 확대와 개방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는 게 시급하고, 이익집단의 반발을 조율할 수 있는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매뉴얼만 있으면 되는 제조업과 달리 서비스업은 고객의 욕구에 따른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만큼 지식 훈련 강화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익집단 반발 누르고 의사·변호사등 공급 확대해야 LG경제연구원 송태정 연구위원은 “미국 등 선진국은 서비스업의 IT와 더불어 컨설팅, 법률, 물류 등 사업지원 서비스를 확충하면서 생산성을 높여왔다.”면서 “우리 역시 규제 개혁과 시장 개방을 통해 시스템통합(SI) 업체와 같은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을 육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경제학과 이근 교수는 “지식산업 서비스는 제조업 등 다른 산업의 중간요소로 투입되기 때문에 다른 산업과의 조화가 중요하다.”면서 “정책의 초점도 특정 산업의 경쟁력 제고가 아닌 국가혁신시스템 전체의 개선을 통한 서비스산업 육성에 맞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국내 부킹 별따기에 ‘밖으로’ 여행수지 적자 확대의 주범 P증권사 A부장(50)은 올 1월 대학 동창 8명과 중국 하이난으로 3박4일 골프여행을 떠났다.5라운드 90홀을 돌았고, 경비는 1인당 150만원이 들었다. 숙식비와 비행기 삯을 더해도 국내에서 골프를 치는 비용과 비슷하다. 그런데 그는 왜 골프를 치러 외국으로 갔을까. 한 부장은 “한국에서도 1라운드에 30만원 정도면 골프를 칠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일단 부킹(예약)이 잘 안 된다는 것이 문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친구들끼리 2∼3팀을 만들어서 며칠 동안 편안하게 골프를 즐길 수 없다는 것이다. 회사원 B모(47)씨는 지난해 5월 중국 칭다오로 친구들과 2박3일 주말 골프여행을 다녀왔다. 왕복 비행기삯 20여만원에 1일 숙박비 6만원,3회 54홀 라운딩을 포함한 기본 비용은 60여만원이 들었다. 김씨는 “숙박업소도 깔끔했고, 음식 맛도 만족스러웠으며 가격이 쌌다.”고 말했다. 골프 이후 이어진 저녁 술자리 비용도 한국의 몇분의 1수준이어서 큰 부담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지난해 서비스 수지가 사상 처음으로 200억달러를 넘는 적자를 기록한 것은 이런 상황 탓이다. 서비스 수지 중에서 여행수지에서만 150억 9000만달러의 적자를 냈다. 그중에서도 상당부분이 골프여행의 적자일 것이다. 전체 통계는 없지만 H여행사를 통해 출국한 골퍼들의 추이를 보면 2004년 8780명에서 2005년 1만 4112명,2006년 2만 4983명,2007년 4만 1644명으로 급증했다. 다른 골프전문 여행사 관계자도 “중국과 필리핀 등 동남아로 해외 골프를 즐기는 여행객이 매년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골프여행객이 증가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골퍼들이 크게 증가했지만 대중골프장 건설이 이를 따르지 못해 수요를 충족시켜주지 못한 탓이 제일 크다. 중국 산둥성과 하이난섬행 비행기 삯이 낮아진 것도 이유다. 또 중국 지방 정부들이 2006년 이후 골프장과 호텔 등을 대규모로 건설해 국내 골퍼들을 유인하고 있는 것도 주요 원인이다. 그러나 국내 골프장들은 가격을 낮추지 않아 경쟁력에서 뒤처지고 있다.2월 기준 중국 칭다오와 하이난 전문 골프여행사들의 주말 골프여행 가격은 54홀 기준으로 65만원부터 시작된다. 주중에는 50만원짜리도 있다. 반면 제주도 골프여행은 36홀 기준으로 주말 60만원, 주중 44만원부터 시작된다. 제주도 호텔들은 저녁식사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추가 비용이 들어간다.H여행사측은 “국내 한정된 골프장으로는 골퍼들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골퍼들의 발길을 되돌릴 대책은 없을까. 우선 골프장을 많이 지어야 한다. 환경단체의 반대가 있지만 정부가 추진중인 유휴농지를 이용한 반값 골프장 건설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외국에 비해 턱없이 비싼 그린피도 낮추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골프장의 코스나 친절도 등 서비스는 아무래도 한국이 더 낫기 때문에 골프여행객이 유턴할 수 있다.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 김현정 차장은 “숙박업소나 음식점들을 규격화하고 품질인증시스템 등을 도입해 합리적인 가격과 좋은 품질을 내세운다면 해외여행객을 국내로 돌릴 수 있을 미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주목받는 문화콘텐츠 산업 배우 배용준씨는 일본 여성들을 매료시켜 한국과 일본에 23억달러의 경제효과를 창출했다. 욘사마 바람을 타고 일본에서 한국 드라마를 정기적으로 방영하는 방송국만 2005년 65개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듬해 8월 29개로 줄어들었다. 한때 ‘겨울연가’와 ‘대장금’을 무기로 일본과 중국 등을 달궜던 한류의 열기가 식고 있다. 문화콘텐츠산업은 ‘공식적’으로는 ‘21세기 한국 경제의 성장을 이끌 고부가가치 성장산업’이다. 그러나 이는 바람일 뿐이다. 우리의 세계 문화콘텐츠 시장 점유율(2005년 기준)은 2.3%. 미국(39.9%) 일본(9.2%)은 물론 이탈리아(3.3%)보다 낮다. 취약한 창작분야 경쟁력과 광범위한 불법복제, 협소한 국내 시장과 관련 업체들의 영세성 등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는 실적에도 나타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음향·영상 서비스의 해외 수출액은 1억 5690만달러로 전년 1억 6950만달러보다 7.4% 감소했다.4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한류가 일종의 성장통을 겪고 있다고 본다. 삼성경제연구소 고정민 수석연구원은 “최근 일본, 미국 등의 드라마가 대거 유입되면서 ‘이런 주제와 형식이 가능하구나.’라는 인식이 문화계에 퍼지고 있다.”면서 “이는 한류가 ‘식상한 주제’라는 지금까지의 벽을 넘어 조만간 신선한 문화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종자 돈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어 “최근 게임, 영화, 드라마 등 문화산업계는 비좁은 국내 시장 중심에서 탈피, 해외 수출 시도는 늘어나고 있다.”면서 “이를 통해 커진 파이를 바탕으로 문화산업이 다시 뛰어난 콘텐츠를 만들어내며 발전하는 선순환 과정을 거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류의 지속을 위해서는 한국 문화와 세계 문화가 서로 공감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이동연 교수는 ‘한류의 정체성과 세계 속의 한류’라는 논문을 통해 “한류의 미래에는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홍콩의 예와, 아시아 문화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일본의 예가 놓여 있다.”면서 “일본의 길을 따르기 위해서는 한국의 문화, 한국적 문화에 대한 국제적 소통과 감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서울광장] 모두가 MB일 수는 없다/이목희 논설위원

    [서울광장] 모두가 MB일 수는 없다/이목희 논설위원

    청와대 수석을 제의받았던 인사가 속내를 털어놓았다.“고민을 하다가 새 정부 첫 청와대 참모로 들어가서 의미있는 역할을 하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수석직을 고사했음을 밝혔다. 이유는 두가지. 이명박(MB) 대통령 당선인의 의욕을 따라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것. 또 하나는 핵심측근 장막이 만만치 않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는 “취임하고 한두해 지나면 ‘의욕만 갖고는 안 되는 일이 많구나.’라는 자각을 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대건설에서 이 당선인과 승진 경쟁을 벌였던 이의 회고담.“업무능력에서 MB에게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도저히 따라가기 힘든 부분은 그의 부지런함”이라고 말했다. 한번은 회식자리가 있었는데 MB가 술을 많이 마셨다.“내일은 내가 더 일찍 출근해야지.”라는 경쟁심에 일부러 음주량을 줄이고 새벽같이 회사로 나갔다.MB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출근해 있어 놀랐다고 했다. 이 당선인은 새벽형 인간이다. 그렇다고 퇴근도 일찍하지 않는다. 얼마 전 장관후보자 및 수석내정자와 워크숍이 한밤중까지 이어졌다.“분초 계획을 세워라. 술자리 등 사생활을 잊어라.”라는 독려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새 정부 청와대가 ‘노예선’이 되리라는 우스갯소리가 돌고 있다. 이 당선인에게 부지런함은 장점이다. 그러나 그것을 모든 참모에게 강요할 때 좋은 결과가 나올지는 따져 봐야 한다. 밤늦게까지 워크숍을 한 뒤 참석자들을 새벽에 집합시켜 운동장을 십수바퀴 달리도록 하는 게 옳은 방법인가. 달리기에서 낙오하면 업무의욕이 떨어지는 참모가 되는 것인가. 이 당선인의 주변 분위기는 김영삼(YS) 정권 초기와 닮아 있다. 수행실장 김기수씨는 어느날 깜짝 놀란다. 느닷없이 YS가 “나 대통령 정말 열심히 할끼다.”라고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다.YS의 의욕과 서슬에 어느 누구도 느긋하게 가자고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특히 잘못된 듯싶어도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었다. 지난해부터 이 당선인을 최측근에서 보좌한 이의 경험담을 귀담아들을 만하다.“처음에 이 당선인 페이스에 맞추려고 무리를 했다. 입술이 부르트고, 하루종일 정신이 멍 하더라. 창조적인 사고를 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느슨해지려고 시도했다고 한다. 조금 늦게 출근해 보고, 딱딱한 분위기를 바꾸려 농담을 자주 하고…. 이 당선인에게 성실하다는 인상을 주면서도 ‘느림의 미학’을 나름대로 개발하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다. 지금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다음 국회가 개원할 때까지 이명박 정부는 원내 소수파고, 국제경제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행동에 앞서 꼼꼼히 살필 일이 많은 것이다. 대통령이 부지런하고, 돌파의지가 강하다고 참모들 전원이 보조를 맞추다가는 여기저기서 그릇 깨지는 소리가 난다. 새 정부 출범 전 벌써 정부개편, 각료와 청와대 참모 인선, 대통령직인수위 활동을 놓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당선인에게 게을러지라고 할 수는 없다. 천성을 바꾸기 어려울 것이며,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몇몇 참모에게는 여유를 주었으면 한다.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르지 않은가. 좀더 좌우를 살펴 당선인에게 진언할 참모들을 만들어야 한다. 집단조깅에 동참치 못하더라도, 그 시간 차분히 앉아 국가발전에 도움을 줄 아이디어를 내는 참모가 있는 게 이 당선인에게 힘이 될 것이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단독]“김원장 비밀방북… 3차장 거센 항의”

    [단독]“김원장 비밀방북… 3차장 거센 항의”

    김만복 전 국정원장이 사퇴하기 직전 그를 퇴출하기 위한 연판장이 돌 뻔 했을 정도로 국정원 내부 불만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원장은 본인의 거듭된 부인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1월 국정원 간부들에게 오는 4월 총선에 출마할 뜻을 밝혔던 것으로 전해졌다. ●연판장 움직임까지 익명을 요구한 국정원 핵심 관계자는 18일 “잇따른 김 전 원장의 돌출행동으로 국정원 내부의 불만이 극에 이르렀었다.”면서 “심지어 김 전 원장의 방북 논란이 불거진 뒤엔 그를 퇴출하기 위해 연판장을 돌리려는 움직임까지 국정원 내부에서 벌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김 전 원장은 북한 담당인 서훈 3차장에게도 방북계획을 알리지 않았고, 이를 뒤늦게 안 서 차장이 김 전 원장을 찾아가 거세게 항의했다는 말을들었다.”고 했다. 이어 “김 전 원장 방북 직후 1·2·3차장과 기획조정실장이 긴급 회동을 갖고 ‘더이상 김 전 원장은 우리의 리더가 될 수 없다.’는 데 뜻을 같이 했었다는 얘기도 있었다고 한다.”면서 “그의 사퇴가 조금만 늦춰졌어도 국정원 내부에서 연판장이 돌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사건 때 김 전 원장이 사진 촬영과 기내 인터뷰 등을 통해 과잉 노출된 데 대해서도 “김 전 원장 때문에 앞으로 50년 동안은 내부인사가 원장에 앉기는 틀렸다.”는 자조의 목소리가 내부에서 터져 나왔다고 그는 소개했다. ●1·2·3차장 “더이상 리더 아니다” 이 관계자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국정원을 방문해 ‘내가 김 원장에게 조금만 튀라고 했는데 이번엔 좀 너무 튄 것 같다.’며 별 일 아니라는 듯 농담조로 말해 참석자들이 아연실색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김 전 원장의 총선 출마설에 대해서는 “지난해 11월 김 전 원장이 간부들에게 부산 기장 출마를 선언한 바 있다.”면서 “지역 주민들을 버스로 불러들이고, 휴대전화번호가 적힌 명함을 돌리는 등 그의 엉터리 처신에 많은 직원들이 골치 아파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김 전 원장은 재임 기간 부산 출신 청와대 모 비서관과 호형호제하며 수시로 술자리를 갖고, 술값을 대납할 정도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면서 청와대 부산인맥이 그의 권력 배경이었음을 시사했다. 이 관계자는 “국정원의 개혁은 무엇보다 우수인재 확보가 핵심”이라면서 “7급 공무원으로 시작하는 공채제도를 개선, 다른 정부기관처럼 5급 사무관 공채를 통해 우수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희경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20&30] 입사 후 내가 변했다?!

    [20&30] 입사 후 내가 변했다?!

    최근 온라인 채용업체 잡코리아와 비즈몬이 주5일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는 회사의 정규직 1273명을 조사한 결과 이들의 하루 평균 근무 시간이 10시간을 넘었다. 회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직장의 조직문화와 근무환경이 구성원의 사소한 습관과 태도, 심지어 신념까지 바꿔놓기도 한다. 부당한 지시나 대우에도 입을 다물거나 조직문화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성격을 개조(?)하는 부정적인 측면이 있는 반면,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하고 뒤늦게 재테크에 눈을 뜨기도 한다. 입사 후 나는 얼마나, 어떻게 변했을까? 20∼30대 직장인의 속마음을 들어봤다. ● 통장에 돈을 쏙쏙 vs 자기계발 욕심 쑥쑥 가전제품 제조업체에서 근무하는 최모(28·여)씨는 이른바 ‘돈치’에서 재테크 달인’으로 변했다며 즐거워했다. 입사 3년차인 최씨는 처음 1년간은 대학 시절 처럼 쓰고 남은 돈을 저금하는 주먹구구식 재테크를 했다. 하지만 선배들은 돈에 무식한(?) 최씨를 가만두지 않았다. 이런 저런 펀드를 추천하고 돈을 쌓는 노하우를 얻는 비법 등을 전수했다. “선배들이 추천한 인터넷 재테크 카페에도 가입하고 관련 책을 읽어 나갔어요. 저녁이면 금융권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밥을 사면서 어떤 펀드가 좋은지 묻고 다녔죠.” 그 결과 입사 이후 일에는 별다른 재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돈은 1억원 정도를 모았다.“동료들은 저를 ‘최부자’라고 불러요. 노하우를 묻곤 하지만 알려줄 수 있나요.2∼3년 바짝 모아 결혼한 뒤 회사는 그만두고 예쁜 옷가게를 내려고요.” 가전제품 판매업체에서 근무하는 김모(30)씨는 입사한 뒤 자기계발 욕구가 샘솟는 슈퍼맨(?)으로 변신했다. 물론 자기계발이 성과나 승진 등에도 도움이 되지만 이처럼 즐겁게 공부하는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놀란다고 했다.“아침 6시에 일어나 토익 학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신나요. 공부는 결과 만큼이나 과정을 즐기는 것이라는 말이 새삼 떠오릅니다.” 김씨는 올해 경영대학원에 들어갈 생각이다. 직장을 다녀야 하는 경제적 형편 때문에 외국 MBA까지는 꿈꾸지 못하지만 낮에는 실전 수업, 밤에는 이론 수업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솔직히 대학원생은 현실을 도피하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요즘에는 회사일에 구애 받지 않고 공부만 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공부만 하다보면 다시 공부가 지겨워질 수도 있겠죠.” ● 패션이 달라졌어요 vs 외모지상주의 버렸어요 철강회사에 근무하는 김모(27)씨는 대학 시절 군대가 좋아 1학년 1학기만 마치고 입대를 자원할 정도로 남자들의 세계를 동경했다. 교통비가 모자라도 친구들과 마신 술 값을 계산해야 직성이 풀렸고 친구들을 하숙집에 ‘무료로’ 묵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당시 유행하던 무스, 젤은 물론이고 한 겨울에 로션도 바르지 않았어요. 옷은 계절당 많아야 두 세벌 이었죠. 여자친구요?씩씩한 솔로부대였는데요.” 하지만 김씨는 영업직 사원으로 회사에 입사하면서 패션과 외모가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김씨는 얼굴 피부 상태, 양복의 질, 머리 모양까지 고객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털어놨다. 그는 사내 여직원들에게 패션과 피부마사지 방법 등을 열심히 문의하고 실천에 옮겼다. 그리고 만 3년, 그는 달라졌다. 요즘에는 검정 벨벳 슈트에 회색 바지, 청색 와이셔츠를 주로 입는다.“지난해 사귄 애인은 제가 멋스럽고 깔끔하대요. 솔직히 예전에는 내면의 자신감만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외모의 자신감이 받쳐줄 때 실력도 더 잘 발휘되는 것 같아요.” 반면 패션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양모(27·여)씨는 직장에 다니면서 내면의 아름다움을 중요시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대학 시절 그는 소개팅을 할 때 남성의 외모나 패션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곧바로 일어날 정도로 외모지상주의자였다. “당시에는 외모는 그 사람의 내면이 드러난다고 믿었죠. 세련된 내면, 패셔너블한 내면이 존재한다고 믿었어요.” 하지만 지난 2년간의 직장 생활을 통해 남자를 보는 눈이 바뀌었다. 외모와 스타일이 마음에 쏙 드는 남자 동료가 관심을 보였지만, 그 동료는 남에게 상처되는 말을 너무 쉽게 뱉었다. 또 다른 미남 동료는 일을 책임감 있게 처리하지 못했다.“남자를 보는 시야가 넓어졌어요. 대학 때는 몰랐던 것이죠.” 현재 그는 사내 커플이 됐다. 대학 동창들에게 애인을 소개했을 때 친구들은 “외모만 보더니 의외다.”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그는 그냥 웃기만 한다. “지금도 멋진 남자에게 가끔 눈이 가지만,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느끼면서 스스로 변했다며 웃곤 해요.” ● 점심시간마다 맛집 찾는 재미 “나도 이젠 미식가” 3년차 회사원 전모(26·여)씨는 점심 시간마다 맛집을 찾아다니면서 삶이 싱싱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어릴때부터 입이 까탈스러워 식사를 즐기지 않았다. 어머니는 “까다로운 식성 때문에 신경이 예민하고 만사에 짜증을 부린다.”고 충고하곤 했다. 전씨는 식도락의 즐거움에 빠진 뒤로 어머니의 말 뜻을 깨달았다고 한다. “광화문에는 맛집이 무궁무진해요. 고르는 재미와 먹는 재미에 하루가 즐겁고, 그러다 보니 다른 이에게도 웃음이 전달되더군요.” 그는 저마다 다른 이유로 점심을 거르는 동료들에게 때때로 작은 도시락을 사다주곤 한다.“내 삶을 생기있게 변하도록 한 음식의 마법이 다른 이에게도 전염되었으면 좋겠어요.”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꼬박꼬박 말대답 하던 나… 이젠 고분고분 3년차 회사원 최현정(27·여)씨는 할 말은 다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었다. 부서에 배치 받고 한달 쯤 지난 어느 날, 상사가 바로 옆에 복사기를 두고도 ‘현정씨 복사좀 해줘.´라며 서류를 건넸다. “이건 아니다 싶었죠. 그래서 ‘대리님 옆에 복사기가 있는데 꼭 저를 시키셔야 해요. 이건 아니죠.´라고 속에 있는 말을 다 했죠.” 그 상사는 예상하지 못한 후배의 반응에 당황했는지 얼굴이 빨개지더니 그대로 자리를 떴다. 문제는 그 뒤였다. 아예 말도 건네지 않는 것은 물론, 다른 동료와 얘기를 하다가도 최씨가 다가가면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등 철저하게 무시했다. 상사의 무관심도 힘들었지만 회사 분위기도 최씨의 행동을 좋게 보지는 않는 듯 했다. “그 뒤부터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속에 담아두고 절대 하지 않아요. 한번은 상사가 커피를 타오라고 시켰어요.‘전 커피타러 들어온 게 아니라고요.´라고 말했을 지도 모른지만 이제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배웠죠.” 회사원 김민정(31·여)씨는 입사 초까지만 해도 ‘골수 페미(니스트)´로 통했다. 하지만 입사 초의 한 사건이 그를 바꿔 놓았다. 동기 가운데 한 명이 회식 자리에서 간부에게 성희롱을 당한 것. 김씨를 비롯한 동기들은 간부를 찾아가 사과를 요구했지만 그는 끝내 발뺌했다. 김씨 등은 이 문제를 공론화하려고 갖은 애를 썼지만 소용 없었다. 회사측에선 “그럴 분이 아닌데 한 번 실수한 것 가지고 이러면 곤란하다. 외부로 알려지면 회사 망신이고 당신도 1∼2년 다니다 그만둘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덮어둘 것을 요구했다. 회사측의 각개격파 전략에 동기들은 하나, 둘 물러섰고 결국 끝까지 버틴 김씨만 한동안 상사들의 따가운 시선에 시달려야 했다. “얼마전 술자리에서 주사가 심한 상사가 ‘나랑 키스 할래, 같이 잘래.´라며 수작을 부리더라고요. 예전 같으면 술자리를 뒤짚고, 이후 공론화시켜서 회사에 발도 못 붙이게 했겠죠. 하지만 그냥 넘어가게 되더라고요. 확실한 증거도 없는데 또 나만 당하는 것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죠.” IT업계에서 일하는 김정현(26)씨는 입사 전에는 돈을 벌지 못해도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다면 그만이라는 생각이었다. 선배들이 ‘나는 연봉 얼마 밑으로는 절대 안 간다.´고 얘기하면 속물이라고 생각했다. 지난해 1월 김씨는 연봉 2000만원대 초반으로 돈은 좀 적게 받지만, 마음껏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중소 IT업체에서 사회 생활의 첫 발을 딛었다. “점점 돈만 중시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죠. 일은 별로 하지 않고도 연봉을 많이 받는 이들을 보면 짜증이 나고 굳이 야근까지 해야 될 상황도 아닌데 야근비를 챙기려고 회사에 남게 되고요.1년 만에 만난 친구에게 고작 ‘넌 연봉 얼마 받냐.´고 하는 내 모습에 흠칫 놀라기도 해요.” ●‘분위기남(男)´, 회식계의 별이 되다. 건설회사 3년차 조모(32)씨는 조용한 성격에 클래식과 와인을 즐기는 우아한(?) 남자였다. 하지만 이젠 더이상 클래식을 들으며 독서에 빠져드는 ‘분위기남´이 아니다. 부단한 체력관리로 언제나 3∼4차까지 함께하는 ‘회식계의 신성´이 됐다. 건설회사의 특성상 과도한 남자다움을 요구한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지만 첫 부서 회식에서 겪은 충격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아무렇지 않은 듯 소주를 맥주잔에 부어 단박에 들이키는 모습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 많은 술이 다 어디로 들어가는지.2∼3차 쯤이면 배가 부를 법도 하건만 노래방에서도 선배들은 끝없이 ‘양폭´(양주와 맥주를 섞은 술)을 들이부었다. 그렇게 마신 다음 날에도 멀쩡하게 출근하는 선배들의 모습은 경의의 대상이었다. 그때부터 조씨도 체력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오로지 회식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셨더라도 다음날 새벽이면 피트니스 클럽에서 열심히 땀을 뺀다. 술 앞에 무너지는 약한 조대리가 되지 않기 위해. 공기업 2년차인 신모(27·여)씨는 대학 때만 해도 활달한 성격에 넘치는 장난기를 주체하지 못해 ‘똘´이란 별명으로 불렸다. 하지만 엄격하고 보수적인 분위기로 정평이 난 회사에 입사한지 2년 만에 신씨는 확 달라졌다. 늘 재치있고 웃음이 많아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며 인기를 누려온 그였지만 어느날 부터인가 회사 안에서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게 됐다. 발단은 입사 직후 다른 부서에서 교육 받던 동기와 수다를 떨다가 선배에게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이 난 것이었다. 그 뒤 출근 인사와 동시에 퇴근 때까지 침묵의 시간을 보냈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 얼마나 입을 꾹 다물고 있었는지 입냄새가 날 정도. 회사에서의 사정을 하소연했더니 묵묵히 듣던 아버지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말했다. 보수적이기로 소문난 회사 분위기에 맞추다 보니 이제는 주변 사람이 신씨를 ‘맏며느리´로 부를 정도라고 한다.“새로 들어온 후배들의 군기 반장 역할을 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보면 깜짝깜짝 놀라기도 해요.” 임일영 신혜원기자 argus@seoul.co.kr
  • 대전지검, 국감향응 무혐의 처분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소속 일부 국회의원들의 국감 향응수수 의혹사건을 수사 중인 대전지검은 11일 사건에 연루된 임인배·김태환·류근찬 등 국회의원 3명을 무혐의 처분했다. 검찰은 이날 “2차 유흥주점 술자리에 동석한 피감 기관장들과 주점 종업원 등을 조사하고 숙소인 R호텔 CCTV 녹화 내용을 분석한 결과 국회의원들이 여종업원을 데리고 나간 사실이 없고 당시 계산한 금액이 68만원으로 여종업원 접대 비용이 포함되지 않은 점 등을 종합해볼 때 성접대는 없었다.”고 밝혔다. 검찰은 저녁 식사 및 술 제공에 대한 뇌물성 여부에 대해서도 국회의원들과 피감기관간 식사는 관행적으로 이뤄진 것이고 식사비를 포함, 감사비용 충당을 위해 국회 과기정통위에서 312만 8000원을 사후 정산한 데다 1인당 3만원 상당의 식사를 하면서 술을 곁들인 점을 감안할 때 뇌물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또 2차 유흥주점 술자리는 식사 후에 “맥주 한잔 더하자.”는 피감 기관장들의 제의로 일부 국회의원만 참석했고 체류 시간이 짧은 점, 먼저 자리를 떠난 점, 음주량이 얼마 되지 않는 점을 고려해 뇌물로 보지 않았다.한편 검경은 임인배 의원과 유흥업소 주인 등이 성접대 의혹을 보도, 피해를 봤다며 D언론사를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고소사건을 수사 중이다.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길섶에서] 시인 황구/우득정 논설위원

    대학시절 세상의 자그마한 뒤틀림에도 비명을 지른다 하여 ‘황구’로 불렸던 친구. 술자리에서 목청을 높일라치면 ‘황구의 비명’이라고 놀림을 받았던 그가 첫 시집을 냈다고 알려왔다.“문화 쓰레기는 만들지 않겠다고 했잖아.”라고 놀리자 “네가 좋아할끼다.”라며 단언한다.‘지상에 남겨진 신발’-제목부터가 황구의 비명을 연상케 한다. 황구는 사슴 눈망울을 가졌다. 오십줄을 벌써 넘긴 나이에도 그 눈망울엔 핏빛 한줄기도 없다. 몸 속으로 배어드는 알코올 양만큼 눈빛이 흐려질 뿐, 아직도 무지갯빛이 눈망울에 그대로 투사된다. 그래서 황구의 눈망울은 쉽게 상처받는다. 가식의 망막 뒤로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 망가진 몸을 추스르기 위해 술을 끊겠다면서도 아직도 술과 담배를 끊지 못하는 이유다. 황구는 서문에서 ‘눈을 감기 전 동공에 담아갈 마지막 그림을 구하듯 사물을 노려보아라.’라고 설파한다. 무엇을 눈망울에 담기 위해 시집까지 낸 것일까. 너무나 쉽게 속기만 했던 자신의 눈이 혐오스러워진 것일까.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정윤수의 오버헤드킥] 대표팀 군기잡기 언제까지

    며칠 전, 어느 문화단체의 워크숍을 다녀왔다. 지난 2002년 이후 우리 사회에서 축구대표팀에 관해 이야기하는 건 다반사였지만 특히 그날은 대한축구협회가 특별히 마련하고 허정무 감독도 적극적으로 동의한 ‘생활 수칙’이 뜨거운 화제가 됐다. ‘문화 단체’ 구성원들이기 때문인지 ‘구시대적인 발상’이라는 의견이 대세였다. 국제대회 중에 고참 선수들이 음주를 하거나 몇몇 선수가 술자리 폭행 시비로 논란을 야기한 건 문제이지만 이 때문에 규정을 정하고 대표팀 숙소의 각 방마다 붙여 놓는 건 의미도 없고 실효도 없다는 주장이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최고 영예인 성인 대표팀에까지 이르렀는데 그 정도의 수칙 준수는 이미 몸에 배어 있을 것이며, 규정에 어긋나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그때 가서 징계를 할 일이지 ‘성인’ 선수들에게 그와 같은 상징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어떤 점에서는 모욕적인 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물론 반대 의견도 없지 않았다. 밤낮으로 축구 소식을 검색하는 즐거움을 가진 어떤 이는 “마치 유럽은 매우 자유롭게 선수들이 다 알아서 생활하는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면서 “유럽 각 구단은 선수와 계약할 때 ‘스키를 타지 않는다.’ ‘오토매틱 차량만 운전한다.’ 등의 조항을 반드시 넣는 등 규율과 기강을 매우 중요시 여긴다.”고 반박했다. 이런 저런 얘기 끝에 누군가 “술 좀 마시면 어때.”라고 한 마디를 툭 던졌다. 그러고 단호한 표정으로 덧붙이기를,“프로 선수가 계약을 할 때 사전에 아주 세세한 사항까지 약속하고 이에 도장을 찍는 것이라면 모를까, 왜 ‘군기 수칙’ 같은 것을 만들어서 선수 개인의 방에 액자로 만들어 걸어야만 하는지에 대해 도무지 찬성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이의 말인즉슨 어떤 종류의 인간이든 기본적으로 ‘위반의 상상력’을 갖고 있으며 이 기묘한 감정이야말로 그 사람을 발전시키는 내면의 에너지라는 것이다. 익숙한 관습을 벗어나려는 욕망, 금기를 뛰어 넘으려는 상상이야말로 개인이나 인류에게 매우 아름다운 에너지가 되는 것인데,‘수칙 액자’ 같은 장치는 오히려 자생의 에너지를 가로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액자를 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군기 확립’식 합숙 문화를 예고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대개의 워크숍이 그렇듯 곧 이 논쟁은 다른 주제와 뒤섞이며 혼잡해지고 말았지만, 내게는 각별한 공부가 됐다. 화장실에 가서 나는 이 ‘수칙 액자’의 상징성과 무게를 생각했다. 축구 선수가 군인이나 성직자도 아닐진대 ‘애국심이나 투지’뿐만 아니라 내면의 개인적 에너지를 극대화한 아름다운 상상력도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퍼뜩 든 것이다. 세면대 거울 위에 콘도 측에서 내건 액자가 보였다.‘수건 등 시설물을 가져 가시면 원상회복 및 배상을…’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순간, 난 마음에도 없이 수건을 슬쩍하고 싶어졌다.축구평론가 prague@naver.com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2) 엿보기와 남성의 성적 시선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2) 엿보기와 남성의 성적 시선

    그림 두 폭이다. 먼저 성협의 그림 ‘길거리에서 기생을 엿보다’를 보자. 길을 가는 두 여인이 쓰고 있는 누런 모자는 전모다. 요사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기생이 전모를 쓰고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조선시대에는 기생이나 첩 등 신분이 천한 여자는 햇빛을 가리기 위한 유옥교, 즉 뚜껑이 있는 가마를 타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에 전모를 썼던 것이다. 왼쪽 여자가 전모 아래 쓰고 있는 흰 방한구 역시 내력 미상이다. 아얌이 아닌가 하지만, 그러기에는 폭이 너무 넓다. 오른쪽 여자가 전모 아래 쓰고 있는 것들은, 추측컨대 두꺼운 방한용 모피 위에 가리마를 쓴 것이 아닌가 한다. 가리마는 원래 의녀들이 쓰는 것이지만, 조선후기에 와서 관기들이 의녀로 발령이 났기 때문에 쓰게 된 것이다. 이 그림에 적힌 시를 보아서도 알겠지만(시는 뒤에 소개한다), 이 두 여성은 기생으로 보인다. ●점잖은 선비의 여성을 향한 성적 욕망 왼쪽의 남자는 도포를 입은 점잖은 선비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차면(遮面), 혹은 사선(紗扇)이라는 것이다. 내외를 해야 할 때, 예컨대 상주가 나다닐 때 얼굴을 가리는 것이다. 이 남자가 상중에 있었는지는 미상이지만, 꽤나 내외를 엄격히 따지는 인간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한데, 어떤가. 이 자는 차면 위로 눈을 내밀고 두 기생을 곁눈질하고 있지 않은가. 그의 오른쪽에 서 있는 기생은 남자의 눈길에 불쾌했는지 고개를 돌리고 있다. 곁눈질하던 점잖은 남자의 속내는 어떠했을까. 그림에 쓰인 시를 번역하면 이런 뜻이다.“사람을 대하고는 한 마디 말도 없이 고개를 바삐 돌리더니, 화장 짙은 얼굴로 살짝 웃다 찌푸리네. 한밤중 강가 누각에서 춘정이 바다같아, 휘장을 내린 뒤에 스스럼없이 귀고리를 푸는구나”(對人無語轉頭忙,淺笑輕嚬滿面粧.午夜江樓春似海,低不惜解明) 남자가 여자의 얼굴을 보니 여자가 얼굴을 획 돌린다. 그러다가 온통 다 화장을 한 그 얼굴로 살짝 웃더니 또 살짝 찌푸린다.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자, 강가의 기생집에 봄이 완전히 깃들었다. 휘장을 내리고 여자가 스스럼없이 귀고리를 푼다. 말하자면 이 시는 기생과의 하룻밤을 간절히 원하는 남자의 속내를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그림과 시는 보다시피 남성의 여성을 향한 성적 욕망을 그리고 있다. 여기서 너무나 흥미로운 것은 앞에서 말한 바 있는 차면이다. 차면은 곧 도덕적 장치다. 눈길을 주어서는 안 될 것이 시선에 들어오지 않게 막는 장치다. 하지만 성적 욕망은 차면을 넘어 여성을 향하고 있다. 길 가던 남성이 여성을 계속해서 곁눈질하는 것이 큰 실례가 되는 것은 예나 오늘이나 같다. 더욱이 이 남자는 점잖은 양반이 아닌가. 또 상대방 여성은, 양반으로서는 길거리에서 눈길을 주거나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대상이 아니다. 길거리에서 여성에게 눈길을 주는 것조차 비례이거니와, 상대는 사대부들이 언필칭 더럽다고 하던 직업(기생)의 여성이 아닌가. 조선시대 기생에 대한 도덕적 눈길이 어떠했는지 적절한 사례가 있다. 율곡 선생의 친구였던 성혼에 얽힌 이야기를 하나 해 보자. 정철의 아들 정홍명은 이런 이야기를 전한다. 율곡, 정철, 성혼이 이희삼이란 사람의 집에서 술자리를 베풀고 당대의 명창 기생 석개를 불러 노래를 시켰더니, 성혼이 벌떡 일어나 자리를 떴고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는 것이다(째째하기는!). 성혼의 행동은, 성리학의 윤리도덕을 따른 것이다. 그 윤리에 의하면, 남성과 여성은 동일한 공간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내 외의 모든 여성과의 접촉은 금지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조선시대 양반들의 윤리교과서였던 ‘소학’을 보자. 저 유명한 ‘남자와 여자는 일곱 살이 되면 같은 자리에 앉을 수 없다.’는 뜻의 남녀칠세부동석은 다름 아닌 ‘소학’에서 나온 말이다.‘소학’은 남성과 여성의 접촉 자체를 엄금한다. 몇 부분을 보자.“남자는 가정 안의 일을 말하지 않고 여자는 바깥의 일을 말하지 않는다. 제사나 상사가 아니면 그릇을 주고받지 않는다. 그릇을 주고받아야 할 때면, 여자는 광주리에 그릇을 받고, 광주리가 없을 경우 남자와 여자가 모두 앉은 뒤 남자가 땅에 그릇을 놓은 뒤에 여자가 가져간다.” 어떤가. 남자와 여자는 결코 물건을 직접 건네서는 안 된다. 이런 조항도 있다.“안과 밖은 우물을 같이 사용할 수 없고, 욕실을 같이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남자와 여자는 같은 우물을 사용할 수 없고, 욕실도 공동 사용불가다. 철저한 남녀 분리다. ●인간의 욕망은 바닥 없는 독 이 분리는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근원적으로 성적인 관계라는 데 바탕을 둔 것이다. 그것은 남자와 여자의 접촉은 합법적 관계, 곧 결혼에 의한 성관계 이외의 성관계가 맺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내포한다. 이 우려는 과도한 것이지만, 일면의 진실은 없지 않다. 성욕은 인간의 기본적 욕망이다. 동물과 달리 인간의 욕망은 바닥이 없는 독이다.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다. 성욕 역시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다. 성욕은 자신의 충족됨을 위해 자신의 숙주-인간 자체까지 파멸로 몰아넣는다. 절대권력을 보유한 군주들이 성욕의 충족을 끊임없이 추구하다가 결국 자기 권력의 기반인 국가를 붕괴시켰던 경우를 허다하게 볼 수 있다. 따라서 성욕은 감시와 억압의 대상이 된다. 그것은 보통은 윤리도덕이란 이름으로 감시되거나 억압된다. 한데 이 윤리도덕은 또다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윤리도덕은 모든 인간에게 초월적 진리가 아니다. 그것은 권력적 속성을 내포한다. 즉, 윤리도덕은 그 윤리도덕을 제작하는 주체의 이익을 감추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은 가부장제 사회였다. 가부장제는 남성의 여성 지배를 기초로 출발한다. 그것은 남성에게 여성은 성적으로 종속되어야 한다는 것, 달리 말해 남성-여성의 관계에서 남성의 성적 이익이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관철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의 성욕은 여성에 비해 확실히 자유롭다. 다만 가부장제의 권력 이면에는 기묘하게도 그늘진 구석이 있었다. 가부장제가 진리화한 사회에서 남성은 먼저 자신을 윤리와 도덕으로 의식화해야 했다. 즉, 윤리도덕의 실천자임을 먼저 보여주어야 했던 것이다. 성혼이 기생을 초청한 것을 보고 벌떡 일어선 것은 바로 남성 스스로가 윤리도덕의 실천자임을 과시하는 행위다. 한데 그 실천은 성혼이나 조광조처럼 소수의 별스러운 사람들만이 가능한 것이었다. 대다수의 인간은 도덕이 가하는 압력과 욕망의 아우성 사이에서 시달리기 마련이었다. 곧 도덕을 사이에 두고 자신의 성적 욕망이 외부로 드러나는 것을 차단하려 하지만, 성적 욕망은 어느 사이에 그 차단선을 넘어 여성으로 향한다. 도덕의 감시로 욕망을 잠재우는 것은 근원적으로 불가능하다. 아니, 도덕의 감시는 욕망의 분출을 동반한다. ●남의 아내까지 엿보는 남성의 은밀한 욕망 이것을 김홍도의 그림 ‘길거리에서 남의 아내를 훔쳐보다’로 다시 확인해 보자. 한 젊은 여인이 아이를 안고 소를 타고 있고, 그 뒤에 복색을 보아하니 양반으로 보이는 젊은 사내가 아이를 업고 따르고 있다. 문제는 길 건너편의 말을 타고 가는 남자다. 역시 부채로 얼굴을 살짝 가린 채 남의 여자를 엿보고 있지 않은가. 성협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은 기생이었다. 조선시대 말로 하자면, 노류장화다. 길거리의 버들이요, 담장의 꽃이다. 누구나 보고 꺾어도 된다. 하지만 이 경우는 남의 아내다. 남의 아내까지 엿보는 것이 남성의 저 내면의 욕망이다. 단원의 그림은 그 깊은 곳에 감추어져 있는 은밀한 욕망을 드러내는 중이다. 길거리의 곁눈질이 사랑이 된 경우도 있다. 이옥의 소설 ‘심생’에서 심생은 우연히 길에서 본 젊은 처녀를 잊지 못한다. 수소문하여 처녀의 집을 찾아가 곡절을 겪은 끝에 처녀와 사랑에 빠져 잠자리를 같이 한다. 여자가 심생의 존재를 부모에게 알리자, 부모는 결혼을 허락한다. 하지만 심생의 집에서는 심생을 과거공부를 하라고 절로 올려 보낸다. 연락이 끊어진 얼마 뒤 여자는 심생에게 유서를 보내고 자살한다. 길에서 만나 이루어진 사랑이었으되, 비극적 결말의 사랑이었다. 길거리에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성욕의 시선이다. 그 시선의 합의가 이루어질 경우,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란 거룩한 이름으로 부른다. 성협과 단원의 그림이 보여주는 남성의 엿보기는, 무언가 부도덕한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그것은 절절했던 심생의 사랑의 단초일 것이다. 아니 그런가?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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