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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생에서 ‘사랑’ 나누던 여성, 사자에게 그만…

    야생에서 ‘사랑’ 나누던 여성, 사자에게 그만…

    야생에서 남자친구와 ‘사랑’을 나누던 여자가 갑자기 나타난 사자의 공격에 목숨을 잃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사건은 지난 5일(현지시간) 아프리카 짐바브웨 카리바시 인근 숲에서 벌어졌다. 이날 희생된 사래 마웨바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남자친구와 야생 속 ‘사랑’을 나누다 갑자기 나타난 사자에게 공격받았다. 사자의 공격 직후 남자친구는 알몸 상태로 재빨리 도망쳐 목숨을 건졌으나 마웨바는 속수무책으로 당해 현장에서 즉사했다. 남자친구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목등을 물려 피투성이가 된 마웨바의 시체를 수습했으나 사자를 사살하는데는 실패했다. 현지 경찰은 “현장에 도착했을 때 마웨바는 이미 사망한 후 였다.” 면서 “사자가 배가 불렀는지 희생자를 먹잇감으로 삼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특히 경찰은 최근 인근 강가에서 사체로 발견된 남자도 이 사자의 소행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살해된 남성은 술자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다 변을 당했다.” 면서 “시신이 크게 훼손된 것으로 미루어 사자의 먹잇감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 살인 사자가 잡힐 때 까지 주민들은 함부로 집 밖으로 다니지 말라.”고 당부했다.   사진=자료사진 인터넷뉴스팀 
  • [깔깔깔]

    ●식생활에 관한 입장 차이 2 남이 각자 음식값을 내자고 제안하는 것은 이기적인 사고방식이고, 내가 각자 음식값을 내자고 제안하는 것은 합리적인 사고방식이다. 남이 외국산 담배를 피우는 것은 기본적인 애국심조차 없는 파렴치한 행위이고, 내가 외국산 담배를 피우는 것은 담배를 맛없게 만드는 전매청에 대한 근엄한 경고이다. 남이 술자리에 자주 가는 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고, 내가 술자리에 자주 가는 것은 인생을 즐기기 위한 것이다. 남이 술잔을 돌리는 것은 위생관념이 전혀 없는 것이고, 내가 술잔을 돌리는 것은 다정다감한 정을 나누자는 것이다. ●난센스 퀴즈 ▶화장실에 들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문을 잠근다.
  • 꿈 대신 술 푸는 대학 새내기에게 고함

    꿈 대신 술 푸는 대학 새내기에게 고함

    해마다 입학 시즌이면 대학가에서 술로 인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자신의 주량을 초과해 술을 마시면 호흡과 맥박이 느려지고, 주의력과 운동능력이 떨어지는 급성 알코올 중독에 빠진다. 흔히 ‘취했다’라고 말하는 증상이다. 폭행·추락·교통사고 등 음주사고는 주로 이 단계에서 발생한다. 본래 신입생 환영회는 얼굴을 익히고 다양한 정보를 나누기 위해 마련됐으나 언제부터인지 음주파티로 성격이 변질됐다. 이 때문에 체질적으로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은 새로운 집단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어려움도 겪는다. 이른바 ‘사발식’이나 ‘의리게임’ 등 술을 강요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이런 분위기에서 홀로 술을 거절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바람직한 음주문화가 더욱 절실하며, 같은 술이라도 지혜롭게 마셔야 사고도 막고 건강도 지킬 수 있다. ■음주 전에 식사부터 술을 마시기 전에 배를 채워 두는 게 좋다. 음식을 받아들임으로써 위장도 알코올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되며, 술로 인해 상하는 것도 최소화할 수 있다. 공복에 술을 마시면 그만큼 빨리 취해 급성 알코올중독에 이르기 쉽다. 술을 마시는 중에 틈틈이 안주를 먹으면 도움이 된다. 안주는 자극적이지 않고 알코올 분해에 도움을 주는 생선류나 두부, 과일, 채소 등이 좋다. ■‘원샷’은 음주사고 주범 신입생을 맞는 선배들은 들뜬 기분에 ‘원샷’을 외치지만 이런 행태가 음주사고의 주범임을 알아야 한다. 주는대로 마실 수밖에 없는 새내기들은 한순간 자신도 모르게 정신을 잃기 쉽다. 같은 양의 술이라도 빨리 마시면 알코올 흡수량이 늘어나 더 취하는데 특히 자신의 주량을 잘 모르는 새내기들은 원샷 바람에 주량을 훌쩍 넘겨 유익하고 흥겨워야 할 환영회가 엉망이 되고 만다. ■폭탄주 좋아하다간 ‘큰코’ 통상 맥주와 소주를 섞는 ‘폭탄주’는 보통 알코올 10∼15도 정도로, 체내 흡수가 잘 될 뿐 아니라 목넘김이 좋고 빨리 취해 선호도가 높다. 특히 대학 새내기나 젊은 층에서는 폭탄주 대신 술에 탄산음료나 드링크류를 섞어 마시지만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다른 음료와 술이 섞일 경우 느낌과 달리 흡수가 빨라 쉽게 주량을 넘기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노스켄터키대학 연구팀은 술과 탄산음료를 같이 마시면 술에 더 취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나의 주량은 얼마나 될까 체중을 이용해 혈중 알코올 농도를 계산하는 ‘위드마크 공식’[(섭취한 술의 양×알코올 농도×알코올 비중)÷(체중×남녀 성별계수)]이 있지만 실제로는 개인별 컨디션이나 건강상태, 체질 등에 따라 알코올 분해 속도는 제각각이다. 하지만 자신의 정확한 주량을 모른다면 이 공식을 통해 대강의 주량을 어림할 수 있다. 체중이 70㎏인 남성이 소주 1병을 마실 경우 알코올 분해 시간은 약 4시간, 체중 60㎏인 여성은 6시간이 걸린다. 막걸리 1병은 각각 3시간, 4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술 알레르기도 있다 체질적으로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면 ‘술 알레르기’일 가능성이 높다. 알코올 분해 능력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며 알레르기도 마찬가지다. 술을 마신 뒤 전신이 붉어지거나 혀가 꼬이는 등의 증상이 있다면 술 알레르기에 해당한다. 이런 사람은 몸이 알코올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미리 주위에 알리고 정중하게 술을 사양하는 게 현명하다. 알레르기는 아니라도 술에 약하다면 미리 물을 준비해 음주량을 조절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대화가 술 깨는 약 신입생 환영회는 선후배가 서로를 알아 가는 자리인 만큼 음주보다 많은 대화를 하는 게 친화감도 높이고 술도 빨리 깰 수 있는 방법이다. 체내에 흡수된 알코올의 약 10%는 호흡을 통해 배출되기 때문에 말을 많이 하면 그만큼 술의 지배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다. 단, 취한 김에 내지르는 고성방가는 금물. 그래도 부족하다면 회식 장소에서만이라도 몸을 많이 움직이는 게 좋다. 술자리 잔심부름을 자청하면 선배들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술도 훨씬 빨리 깬다. 심재억 전문기자 jeshim@seoul.co.kr ■도움말 보건복지부 지정 알코올 전문 다사랑중앙병원 허성태 원장
  • [길섶에서] 말고기의 추억/오승호 논설위원

    어렸을 적 말고기를 먹었던 기억을 떠올려 본다. 요즘처럼 샤부샤부나 갈비찜, 육회 등 다양한 메뉴가 개발되기 이전이었다. 고기를 썰어 프라이팬으로 구워 먹었다. 말고기 스테이크인 셈. 그 당시 육질이 좀 퍽퍽하고 담백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말고기의 지방 함량이 소고기의 3분의1 수준으로 적기 때문일 것이리라. 오래전 술자리에 동석했던 제주 출신이 서울지역 호텔에서 말고기 전문 식당을 해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일본 관광객들과 국내 부유층을 공략하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사업이 성공해 돈을 잘 벌고 있는지 수소문해봐야겠다. 유럽의 말고기 파문이 가라앉질 않는다. 독일에선 여당인 기독교민주당 간부가 수거한 문제의 ‘말고기 섞인, 다진 소고기’를 거둬 빈곤층에 제공하자고 제안해 찬반 논란이 벌어지고 있단다. 우리는 2011년 9월부터 말산업육성법을 시행하고 있다. 말고기 소비와 수출을 촉진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말고기 스캔들이 국내 마육(馬肉)산업에 타격을 주는 일은 없겠으면 좋겠다. 오승호 논설위원 osh@seoul.co.kr
  • 인증샷만 찍는 당신, 껍질만 들고 왔군요

    인증샷만 찍는 당신, 껍질만 들고 왔군요

    “정말?” “진짜로 봤다니깐!” 밥자리에서, 술자리에서 늘 하는 얘기다. ‘봤다’는 시각적 우위는 목소리만 키운다고 되는 게 아니다. 이러쿵저러쿵 세부적 묘사가 따라붙어야 한다. 그런데 정확하고 세밀한 묘사를 한다 해도 진짜 봤다는 증명이 될 수 있을까. 이거 좀 골치 아프다. 3월 20일까지 서울 종로구 팔판동 갤러리인에서 ‘디지로그 풍경’(Digilog Landscape)전을 여는 한운성(67) 작가. 작가는 매듭, 과일 그림으로 유명하다. 실물을 눈앞에 두고 어루만지듯 정밀하게 그린 그림들이다. 정밀한 붓놀림이 감탄스럽다. 지난해 2월 서울대를 정년 퇴임한 뒤 여유로운 마음으로 지난 6~7년간의 유럽 여행 경험을 그림으로 정리했다. “새벽 3~4시에 작업하다 문득 눈 돌려보면 동이 트고” 있는 경험을 여러 번 했다. 작업할 때 처음으로 실물이 아닌 사진을 앞에다 두고 그렸다. “저야 르네상스 이래 오랜 회화의 전통, 사물을 눈앞에 보고 그리는 그림을 배웠고 그렸고 가르쳤지요. 그래서 이해를 못 했어요. 요즘 아이들은 뭘 그리라고 하면 노트북에서 검색하고 이미지를 출력해 그리더라고요. 다른 사람은 그래도 화가는 그러는 게 아니라고 말리고 야단도 많이 치고 그랬는데….” 말리고 야단쳤던 ‘그 짓’을 자기가 하게 된 사연은 이렇다. “몇 해 전 영국 남부 브라이턴대를 잠시 갔을 때 대학 측에서 올드십 호텔을 잡아 줬는데, 그게 너무 안 좋은 거예요. 삐걱대고 아귀도 안 맞고. 그래도 공식적인 대학 간 교류 행사였는데 이렇게 푸대접을 하나 싶어 언짢았었지요. 그런데 나중에 돌아와서 얘길 들어 보니 200년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엄청 대단한 호텔이었던 거예요. 그쪽으로선 최선을 다한 칙사 대접이었던 거죠. 제대로 본다는 게 뭔가 싶더군요.” 그 전부터 정년이 임박하면서 방학 때면 늘 유럽을 헤집고 다녔다. 자유로운 유럽 여행, 일반인도 군침 흘릴 법하지만 서양 미술 하는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호사다. 안 가본 곳 없이 구석구석 다니려다 보니 비용이 만만찮았다. 결국 이용할 수 있는 건 패키지 여행이었다. “값이 싸고요. 그 다음 재빠르게 보여줄 곳은 다 보여 줘요. 그래서 좋긴 한데, 그러고 나니까 사진밖에 남는 게 없어요.” 그래서 그림을 그렇게 그렸다. “사실 어떤 기념비적인 공간을 잘 감상할 수 있는 포인트는 뒤편이에요. 뒤편에서 전체를 보면 되거든요. 그런데 무얼 봤다는 것은 보통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 거지요. 우르르 가서 찍는데 그 공간이 어떤 깊이와 색깔과 냄새를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는 거죠.” 무대세트처럼 파사드만 살아 있을 뿐 나머지는 모두 가설물로 지지된 공간으로 묘사된 그림은 그렇게 나왔다. 건물이 사각 프레임에 맞춰 딱딱 끊어진 것도 사진 프레임을 고스란히 가져와서다. 봤다지만 우리가 본 것은 딱 그 프레임뿐이지 않으냐는 얘기다. “어디 어디 유명하다는 곳을 가면 가이드는 몇분 시간을 준다, 사진 찍으라 하곤 휙 가버려요. 그렇게 보고 사진 찍어 오면, 그게 우리가 가 본 것일까요? 아니면 그냥 패턴화된 껍질만 주워 들고 오는 것일까요.” 미니홈피니 블로그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니 하는 곳에서 넘쳐 나는 온갖 인증샷들. “거의 모든 것이 그냥 하나의 무대가 돼 버린 우리 세상”에 대한 얘기를 건네보고 싶었다고 한다. 작가가 롯데월드, 여주 아울렛, 에버랜드처럼 철저히 상업적으로 기획된 공간을 함께 그린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질문은 남는다. 아주 세부적으로 정밀하게 묘사하고 설명할 수 있다고 해서 우리는 과연 가 본 것인가. (02)732-4677.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美부대서 성폭행 당했다” 30대 여성 경찰에 신고

    30대 한국 여성이 미군부대 안에서 미군 병사에게 성폭행당했다는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경기 동두천경찰서는 19일 오전 4시쯤 동두천 시내 미군부대 안 숙소에서 한국 여성인 A(32)씨가 술을 함께 마신 미군 병사(상병)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112에 신고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전날 오후 8시쯤 평소 친하게 지내던 미군 병사 한 명과 부대 안으로 들어가 이 미군의 동료인 B(21) 상병과 함께 숙소에서 술을 마셨으며, 술자리는 19일 새벽까지 계속됐다. A씨는 경찰에서 “친한 미군이 잠든 사이 B상병이 만취한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A씨를 부대 밖으로 데리고 나와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으나 B상병은 미군 자체 조사에서 ‘서로 합의하에 성관계한 것’이라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배우 박시후, 성폭행 혐의 피소

    배우 박시후, 성폭행 혐의 피소

    배우 박시후(35·본명 박평호)씨가 20대 여성 연예인 지망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피소됐다. 서울 서부경찰서는 박씨가 자신을 성폭행했다는 연예인 지망생 A(22)씨의 고소장이 접수돼 조사 중이라고 18일 밝혔다. A씨는 “지난 15일 지인의 소개로 박씨와 술자리를 함께했으며 술에 취한 상태에서 성폭행을 당했다”며 박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경찰 관계자는 “15일 고소장이 접수됐으며 이번 주 중 피고소인을 소환해 조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씨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고소 내용은 전혀 사실과 다르며 주변 지인들과 논의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씨는 최근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 TV드라마 ‘청담동 앨리스’ 등으로 인기를 끌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중국통신] 바이주 먹고 ‘쇼크’ 빠진 男

    [중국통신] 바이주 먹고 ‘쇼크’ 빠진 男

    얼마 전 발암물질 검출로 바이주가 한바탕 몸살을 겪은 가운데 이번에는 바이주를 마신 한 남성이 쇼크에 빠져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우한천바오(武漢晨報) 23일 보도에 따르면 올해 20살의 후(胡)씨는 춘제(春節, 구정)를 맞아 고향에서 지인들과 함께 저녁 6시부터 10시까지 술자리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바이주 2병(500ml)을 마신 리씨는 갑자기 구토를 하기 시작했고, 친구의 도움으로 우창(武昌)병원으로 옮겨지는 도중에는 대량의 피를 쏟아냈다. 병원에 도착한 뒤에도 후씨의 토혈은 한동안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나온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후씨의 증상원인은 급성 위출혈로, 토혈로 체내 혈액의 3분의 1이 빠져나갔다는 것. 많은 피를 토한 후씨는 현재 쇼크상태다. 우창병원 소화기내과 왕밍린(王明林) 주임은 “후씨의 쇼크는 바이주 성분 때문이라기 보다 과도한 음주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며 “모임이 많은 연말연시, 과음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한편 지난 해 말 바이주에서 발암물질인 플라스티사이저(plasticiser)가 검출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소비자들은 충격에 빠졌고, 바이주 매출량이 급감했다. 중국통신원 홍진형 agatha_hong@aol.com
  • 이동흡 고법 부장 시절 그 룸살롱서 무슨 일이…

    이동흡 고법 부장 시절 그 룸살롱서 무슨 일이…

    이동흡(62)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2002~2003년쯤 차관급 대우를 받는 서울고법 부장 판사 시절 동료 판사들과 룸살롱에 출입해 후배 판사들에게 “검사들은 일상이니 ‘2차’(성매매)를 나가라”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위장 전입, 증여세 탈루 등 여러 비위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법관의 마지막 보루인 도덕성마저 치명타를 입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동료 판사였던 A 변호사는 15일 “법원은 보통 2월 인사 이동을 앞두고 1월부터 재판부 해단식을 하는데 이 후보자가 고법 부장으로 인사가 난 뒤 해단식 때 동료 판사들과 룸살롱에 갔다”면서 “그날 이 후보자는 후배들을 붙잡고 ‘2차 가고 싶지 않으냐. 검사들은 일상적으로 그런다던데 솔직히 말해 봐라. 그러려고 출세하고 돈 모으는 거 아니냐’고 했다”고 털어놨다. 당시 술자리에 동석했던 판사 출신 B 변호사도 “그날 술자리에서 이 후보자가 후배들에게 ‘2차 나가 보고 싶지 않으냐. 하고 싶으면 시켜 주겠다’고 했다”면서 “당시 이 후보자가 했던 말들은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한 이 후보자의 해명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전화 통화를 시도했으나 이 후보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 후보자가 2005년 수원지법원장 재직 당시 법원 송년회를 준비하면서 지역 기업체에서 물품 협찬을 받으라고 지시한 것도 법조계에선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헌재 고위 관계자는 “협찬 이야기는 이미 유명한 일화”라며 “당시 밖으로도 소문이 다 났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자신의 발언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파문이 커지자 “협찬 문제를 신문에서 봤다는 얘기였을 뿐 유명한 일화라는 취지로 말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퇴임을 앞둔 이강국(68) 헌재소장은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현재 대통령이 지명하게 돼 있는 헌재소장 선출 방식을 개헌을 통해 국회 선출 또는 재판관 호선으로 바꿔야 한다”면서 “국민의 박수 속에서 선출돼야 하는데 이런 논란이 벌어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우려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1.바람의 시인, 예술과 삶을 말하다(하)

    [명사가 걸어온 길] 1.바람의 시인, 예술과 삶을 말하다(하)

    시인 고은(80)을 이야기하면서 그의 예술과 문학론, 사랑과 술을 빼놓을 수 없다. 한 30대 문학평론가는 고은에 대해 “선생은 지리산 자락 깊은 곳에 핀 이름 모를 꽃의 존재에 대해서도 경남의 꽃, 대한민국의 꽃, 아시아의 꽃, 지구의 꽃, 태양계의 꽃, 우주계의 꽃으로 인식하고 들여다보는 확장된 시각을 이미 1960~70년대부터 드러낸 것이 특징”이라고 평했다. 지금이야 당연한 시각인 것 같은데 당시에 일반적인 것은 아니었다. 시에 대한 고은의 욕망은 이런 것이다. “이 세상이 끝나야 끝나는 시. 아니 모든 멸망 뒤에 다시 이어지는 시. 우주 허공계의 시. 나라는 존재 따위 다 사라져 버린 영구 부재의 시. 시. 시.시. 미치겠다.” (1974년 9월 24일 일기) 고은이 유신체제에 저항하는 활동을 강화할 때 그의 문우이자 술친구인 민음사 박맹호 사장과 문학과지성사 김병익 사장은 ‘문학을 지켜라. 정치의 자승자박은 안 된다’라며 찬성하지 않았지만, 고은은 자신의 방식대로 문학을 끌어안았다. “시대에 지지 말자./ 시대를 팽개치지 말자./ 시대는 가고 문학은 남는다./ 문학은 그가 태어난 시대를 떠난다.”(1974년 12월 23일 일기) 세상이 흰 눈으로 뒤덮인 지난 연말, 경기도 안성 자택 서재에서 고은은 “내 운명은 시다. 평론도 소설도 써봤지만, 시로서 내 삶을 완결해야 한다. 이제 막 새로운 시 세계가 열리기 시작했다. 다른 시들이 들어오고 있다. 시인으로서 끝 무렵이 아니라 시작 무렵이다. 나에게는 종결이 없다”라고 말하며 얼굴에 홍조를 띠었다. 1958년 등단한 고은은 첫 시집 ‘피안감성’(彼岸感性, 1960년)을 시작으로 41살까지 6권의 책을 냈다. 그의 저작활동은 1980년대에 폭발적으로 왕성해져, 1986년 1권을 시작으로 2010년까지 24년 동안 만인보 시집만 30권을 냈다. 외국에 고은이 ‘만인보’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이유다. 만인보 외에 시집과 소설, 평론집, 산문집, 시선집, 여행서, 동화집, 동시집, 전기, 자서전, 편집한 책까지 합치면 150여권이 된다. 2013년 새해 벽두에는 1973~1976년까지 일기를 묶은 ‘바람의 사상’과 평론가 김형수와 대담한 ‘두 세기의 달빛’을 한길사에서 펴냈다. 대담집은 앞으로 7~8권 더 나올 예정이어서 고은이 낸 책은 조만간 160여권을 훌쩍 넘을 것이다. 시인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고은은 “모국어로 시인이 되어야 할 운명인 사람인데, 소학교에 입학하니 조선어 사용이 금지됐다. 모국어를 상실함으로써 배움을 시작했다”고 토로한다. 식민지 시대에 태어난 죄다. 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우고 밤이면 머슴 대길에게 비밀리에 한글을 배웠다. 그렇게 배운 한글 덕에 해방되자 3학년에서 4학년으로 월반했다. ‘국문을 아는 사람 손들어’라고 했을 때 고은이 유일했단다. 흔히 그의 프로필에 종교는 불교로 나와 있다. 20대에 10년을 승려로 살았으니, 으레 그리 짐작한다. 그러나 흰 종이에 육필로 시를 적어나가는 고은은 “나에겐 백지가 종교다. 다른 종교가 들어올 여지가 없다. 완벽한 백지가 있으니까, 다른 완벽함이 필요없다”고 말했다. 삶은 힘들어지고, 문학하는 사람들은 늘고 있다. 고은은 “한국전쟁 당시 사람들 속에 진짜 시적인 것이 있었다. 그 시대를 견뎌온 힘은 강력한 정서, 시적인 품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때 시가 더 풍부했다. 시단의 시적인 성취나 완성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 사람들은 시와 함께 있고 싶어했다. 지금은 시와 함께하는 사람들은 줄었는데, 오히려 시인들은 늘어나고 있다. 그 시인들이 시적인 품성이 갖춰져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역설적이다”고 현상을 분석했다. 그는 오히려 예비 작가나 기성 작가들에게 조언했다. “자아의 골짜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작가들이 많다. 산 너머 이웃마을의 소식이 전혀 들리지 않는 자아의 골짜기에서만 머물지 말고 나와서, 세상을 돌아보고, 바라보고 해야 한다. 현대인의 특징은 시력이 약해져, 먼 곳을 보지 못한다. 인류가 짐승일 때는 멀리까지 바라봤다. 문명 속에서 익숙해진 시야라서, 아파트 단지의 건너편 창문을 바라본다. 시야가 연장되지 않고 누에고치처럼 내면에 둥지를 튼다. 그러면 어떤 때는 자신에 충실하지만, 자칫 자폐가 된다. 예술은 끊임없이 열려 있어야 한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삐걱삐걱’ 소리가 들려야 하고, 뜨거운 숨결이 밖으로 나가고 밖의 차가운 공기가 들어와야 한다. 안 그러면 사막이 돼 양쪽이 다 죽어버린다.”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대표간사를 맡아 ‘참여파’는 물론이고 ‘순수파’까지 101명을 그러모아 ‘101 선언’을 추진한 저항시인다운 문학론이다. 그렇다고 그가 정치적이었느냐? 1974년 12월 27일의 일기를 보자. “문학은 비겁한 것인가. 문학은 현실에 대해, 힘에 대해, 이렇게밖에 존속될 수 없는 것인가. (중략) 절대로 권력에 굴복하지 않아야 한다. 만약 그런 일이 있게 되면 우리는 팔 하나씩 잘라버려야 한다. 자유실천문협은 한국문협, 자유문협, 그리고 한국문인협회의 그것일 수 없기 때문에 현대 한국문학사를 새로 쓰는 문학의 운동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문학이 정치의 도구로 전락하는 일도 경계할 것이다. 문학은 문학으로 끝난다.” 지금은 하회탈 같이 속탈한 웃음을 짓는 고은이지만 1951년 교사시절이나 승려로 지낸 시절의 사진은 자의식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여간 부담스러운 얼굴이 아니다. 고은은 “고비와 극한을 많이 경험해서 그렇다. 마음의 평화는 인생의 후반기, 지금부터 한 20여년 전에서야 얻었다”고 했다. “내 마그마는 마음의 지하에서 여전히 타고 있는데, 지층까지 올라오지 않도록 달래놓고 유보시키고 하는 것이다. 어느덧 내 무의식의 일상이 지하의 마그마를 노출시키지 않도록 조절하고 달래주고 있다. 나는 본능의 신성성을 인정한다. 본능은 천하고 나쁜 것이 아니라 아주 신성한 것이다. 그것을 내 규범에 의해 억압하면 내가 싫어한다. 그것이 나의 자연이다. 불이 나의 친구다. 그러니까 ‘얘가 덜 필요한가보다’ 하면 자기가 물러나주고, 필요한 듯싶으면 기꺼이 다가오고 그래준다.” 본능의 신성성을 높이 평가한 덕분인지 고은의 여성편력은 화려했었다는 것이 문단의 평가다. 그러나 그는 1974년 9월 5일에 만난, 당시 덕성여대 강의를 나가던 15세 연하의 이상화(66·중앙대 영문과 교수)를 만난 뒤로 사랑에 빠졌다. 이 즈음 고은은 “한 달도 안 됐는데 결혼을 생각해야 할 처지가 되어가고 있다”고 일기에 써놓았다. 결혼식은 만난 지 약 10년 만인 1983년에야 했다. 고은의 나이 50살 때다. ‘생활은 문학의 무덤’이라던 고은의 부인 사랑은 지극하다. 2008년 고은이 그림 전시를 한 뒤로는 생일이 되면 고은 부부는 그림을 그려 생일선물을 대신한다. 문학평론가 권영민은 “결혼 이후 성실한 가장으로 살았고, 특히 딸을 얻은 뒤로 우주를 얻은 듯 기뻐했다”고 회고했다. 올해 정년을 맞는 부인 이상화 교수는 고은의 통역을 자청해 왔다. 흔히 전문통역사들이 외국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고은의 발언을 풀어 설명한다면, 이 교수는 그러지 않는다. 이 교수는 “고은 시인은 발언 자체가 시다. 시를 산문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고은과 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친구’이다. 고은은 “사람들이 그렇게 술 마시며 언제 시를 쓰느냐고 묻지만, 나는 일을 다 털고 난 뒤에 술을 마신다. 일을 했으니 나를 방임하고, 해방시켜줘야 한다”고 변명 비슷하게 말했다. 그는 젊은 시절 황홀했던 주막을 사랑했다. 그렇다면 주량은? “어리석은 질문이다. 주량은 내가 측정한 적이 없다. 가장 오래 마신 기록은 이틀을 잠 안자고 계속 마신 적이 있다. 서너 명이 마시다 다 떨어지고, 최종적으로 둘이 대작했는데 내가 졌다. 고은을 이긴 사람이 누구냐고? 다들 죽었다”라며 쓸쓸한 표정으로 입을 꽉 다물었다. 고은에게 술은 대부분 “대취”와 “뻗었다” 사이에 있었다. 맑은 소주를 좋아했다. ‘대취’ 무렵의 그의 술친구를 직함을 생략하고 순서 없이 대충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박맹호, 박성룡, 김현, 이청준, 이어령, 남재희, 한승헌, 김병익, 황석영, 손소희, 이시영, 김승옥, 조해일, 백낙청, 김동리, 이문구, 서정주, 최순우, 조세형, 김현종, 최인호, 김기영, 신경림, 염무웅, 권영민, 민음사 여직원 3명 등등. ‘황홀한 주막’은 서울 종로구 청진동 가락지와 열차집, 신촌 역전 술집, 낭만, 서린동 술집 등등으로 무교동과 청진동, 광화문 언저리다. 그가 기억하는 최고의 술자리는 1960년대 어느 날 새벽 1~2시에 혼자 마시던 술이다. 잠든 세상에서 비장한 비극성을 즐기며 “나는 세상을 숙직하는 자다. 세상을 지키는 취기다”라며 마셔댄 것이다. 연세도 있는데 술을 끊을 것인가? “술을 끊으면, 수사자에게 수염이 없는 것 같다, 원숭이에게 꼬리가 없는 것 같다, 조가비에게 진주가 없는 것 같다. 이별하지 말고 작별을 했다가 다시 만나야지. 옛날 삼거리 주막집에서 나그네들이 만나서 술 마신 뒤 언젠가 다시 만납시다 하면서 손을 흔들면서 헤어지듯이 그래야지. 술에게 가혹하게 굴면 안 된다. 얼마나 헌신적으로 잘해줬느냐. 술이 운다. ” 글 사진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빈자의 등불’로 33년… 뉴질랜드 출신 안광훈 신부

    [김문이 만난사람] ‘빈자의 등불’로 33년… 뉴질랜드 출신 안광훈 신부

    희망찬 새해가 밝아도 한파는 계속되고 있다. 거리의 노숙인들은 얼마나 추울까. 쪽방촌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달동네 가족들은 따스한 온기라도 제대로 느끼며 살아갈까. 대체적으로 빈민은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지킬 수 없으며 사법 체제에 권리를 요구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가 자포자기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이 때문에 올바른 사회적 장치와 주위의 도움이 절실하다. 알다시피 도시 빈민은 경제 성장정책의 희생양으로 양산됐다. 주거권을 비롯해 고용, 의료, 교육 및 환경 등 여러 가지 구조적 모순에서 생겨났다. 가난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경제적 가난, 정신적 가난, 자발적 가난이다. 경제적 가난은 강요된 가난으로서 빈민, 또는 빈곤이라 한다. 정신적 가난은 청빈이라고 하고, 자발적 가난은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기 위한 투신이다. ‘빈민사목’이다. ‘빈민을 위한 우선적 선택’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 이는 가톨릭 사회 교리의 핵심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천주교의 사회 빈민운동은 1980년대 초 서울 목동 철거민 사태로 본격화됐다고 할 수 있다. 뉴질랜드 출신 안광훈(72·본명 브레넌 로버트 존) 신부는 우리나라에서 33년째 빈민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자발적 가난자’로서 도시 빈민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의 권리와 주장을 열심히 도와주고 있다. 25살 때 한국에 와 청춘을 바쳤고 세월이 지나 70대의 할아버지가 됐다. 본격적인 빈민운동은 33년째이지만 한국에서의 47년 삶은 오롯이 가난한 자와 함께해 오고 있다. 지난 3일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에 있는 성골롬반 외방선교회 사무실에서 안 신부를 만났다. 그는 강북구 삼양동 달동네에 살면서 일주일에 두 차례 이곳에 나와 재정 담당 일을 보고 있다. 그 외에는 삼양동 재개발 지역 주민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통을 같이 나누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정진석 추기경의 허락으로 삼양동에 머무르면서 보좌 신부 노릇도 하고 있다. 그의 대표적인 직함은 ‘삼양 주민연대 대표’이지만 강북구 실업자사업단 주거복지센터 운영위원, 서울대교구 빈목사목위원 등 10여 가지 직함을 가지고 빈민을 위한 여러 가지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이러한 ‘빈자의 등불’로 지난 보신각 제야의 타종 행사 때 시민대표 중 한 사람으로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하여 먼저 제야의 타종 행사와 관련된 얘기부터 나왔다. 오랫동안 한국에 살아서인지 한국말은 비교적 능숙한 편이었다. 말쑥한 사제복이 아닌 편안한 평상복 차림이다. 나이보다 훨씬 젊게 보였다. “뉴질랜드에는 종이 없습니다. 처음 종을 쳤습니다. 종 치는 행사에 참석해 보니 아주 재미있더군요.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있는 절에 여러 번 가보았습니다. 고요하면서도 깊은 느낌이 있어 좋습니다. 제가 정선에 있을 때 스님들과 많은 대화도 가졌지요. 불교는 좋은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님 오신날에는 제가 절에 가고 성탄일에는 스님들이 교회에 찾아오곤 하지요.” 틈틈이 시간 날 때 불국사 등 큰 절을 찾는 즐거움 또한 각별하다고 말한다. 이어 빈민운동으로 화제를 돌렸다. 그가 달동네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81년 서울 목동 성당 주임신부를 맡으면서였다. 목동 신시가지 계획이 발표되고 안양천변에 살던 사람들이 용역 깡패들에게 쫓겨나는 모습을 생생하게 지켜보면서 매우 가슴 아파했다. 그래서 아무런 보상도 없이 쫓겨나는 철거민들을 위한 철거반대운동을 시작했다. 철거민들에게 본당 건물 사용과 함께 물적·심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000만원을 선뜻 기부해 100가구 정도의 목동 철거민들이 시흥시 목화마을을 구성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러한 정신적 배경에는 자신의 첫 부임지인 강원도 삼척 사직동 성당에 있을 때 지학순 주교와의 만남이 있다. 그는 1966년 한국에서 뜻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처음 입국했다. 2년 뒤 당시 원주교구장이었던 지 주교는 안 신부를 가난한 탄광지대인 사직동 성당으로 파견했고 안 신부는 1년 동안 빈자들과 함께 생활했다. 그러면서 한 달에 한 번꼴로 지 주교와 만나 정신적 유대관계를 형성했다. 이후 정선 본당으로 옮겨 11년 동안 주임신부로 지내면서도 자주 만났다. 군사정권 시절 원주 시내의 주교좌 성당인 원동 성당 등에서 신변의 위협을 느껴 가며 열었던 시국 관련 기도회며, 미사 중 주교회의 선언문 발표 때면 어김없이 지 주교가 옆에 있었다. 정선 본당 시절을 잠시 회고하던 그는 30명이 100원씩 출연한 3000원으로 1973년 정선신협을 설립했고 지금은 400억원이 넘는 규모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농협이 있었지만 가난한 농민들이 대출을 받지 못해 치료비, 전기료, 아이들 교육비가 없어 고통받는 것을 보고 정선신협 설립을 결심했던 것이다. 이와 함께 1975년 정선 주민들을 위한 성프란치스코 의원을 건립했다. 정선 본당도 그가 세운 성당이다. 초대 춘천교구장 구(具)토마스 주교가 미8군에서 얻어 쓰던 철근 콘크리트 건물을 헐고 교인 바자회와 교구청, 뉴질랜드 주교들의 도움을 받아 성당을 세웠다. 당시 그는 “교회는 세상 사람과 지역 주민 전체를 위한 도구나 제도, 조직이어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그렇게 강원도 산골에서 청년 시절을 보냈다. 이후 그가 본격적으로 빈민운동에 눈을 돌린 것은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1981년 안양천변의 목동 철거민 투쟁 때부터였다. 당시 목동 성당 앞은 거의 논밭이었다. 구로공단에서 흘러드는 폐수에 오염된 물로 길러낸 곡식으로 연명하는 철거민이 대다수였다. “철거민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주거권이란 말도, 보상이란 말도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지요. 저로서는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돈을 모금하고 종잣돈을 털어 그들이 살 만한 임시 시설이라도 준비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시흥에 목화마을을 마련하게 됐습니다. 5년 동안 목동 성당 주임신부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입니다.” 이후 그는 성신여대 입구 부근의 골롬반 신학원 원장을 6년간 맡는다. 이때 김수환 추기경을 만나 “빈민 사목에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뜻을 전했고 그의 진심이 받아들여져 곧바로 미아6동 달동네에 전셋방을 얻어 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빈민운동은 순조롭지 않았다. 개발 바람이 불어 세 번이나 집에서 쫓겨났다. 미아7동, 정릉4동, 삼양동 등으로 집을 옮겨야 했다. 이때마다 달동네 주민들과 함께 살면서 철거반대 운동, 실직자 대책 마련 등에 앞장섰다. 또한 주거복지센터를 만들어 소액대출 운동을 함께 벌여 나갔다. 2000년에는 독거 노인과 새터민을 위한 봉사단체 ‘강북 자활센터’를 만들었다. “철거할 때면 대부분 용역 깡패들이 등장합니다. 그때마다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뭐하는 거냐,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등의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심지어는 제가 집에 없을 때 우리 집에 불을 지른 적도 있었습니다.” 그는 지난해 9월 서울시 복지대상을 수상했고 10월에는 명예시민권을 얻었다. 내친김에 영주권을 신청해 놓은 상태다. 빈자의 등불로 한국에서 47년 동안 살아오는 동안 늦게나마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 것 같다며 쓴웃음을 짓는다. 그는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전화 기술자 아버지와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3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집으로 배달되는 골롬반 선교지를 보며 자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자연스럽게 성골롬반 외방선교회에 입회했고 신학교를 졸업한 1966년 한국으로 온 그는 서울에서 2년 동안 한국어를 배운 다음 정선으로 향했다. 그에게 처음 입국 당시와 지금의 변화상을 물었다. “제가 한국에 처음 올 때에는 나라 전체가 가난했습니다. 서울 인구가 300만명에 불과하고 도시 전체가 전쟁의 후유증을 겪고 있었습니다. 1970년대부터 생활 수준이 올라갔지만 오히려 빈부격차는 심화됐습니다. 재벌은 성장하고 맨 밑바닥에 사는 사람들은 더욱 소외됐습니다. 재개발한다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쫓아내고 그런 일이 아주 많았지요. 세상은 다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는데 말이죠.” 세월이 지나 10년 전부터는 복지의 중요성이 정책적으로 강조되고 있지만 아직도 복지시설이 취약하고 특히 노인을 위한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교육제도 또한 고쳐야 할 것들이 많다고 지적한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더니 “41년생 뱀띠”라고 웃으면서 올해는 더 많은 활동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대답이 돌아온다. 또한 “빈자들은 나의 친구다. 함께 기쁨을 누리고 더 좋은 생활을 찾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왜 안광훈이라는 한국 이름을 지었느냐고 물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서울대 다니는 친구들을 사귀고 지냈는데 술자리에서 그들이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저보다 먼저 한국에서 활동한 선배가 ‘브레넌’이라는 성을 썼는데 그분이 ‘안’이라는 한국 성을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안(安), 이름은 광훈(光薰)이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가끔 당시 친구들과 만납니다.(웃음)” 뉴질랜드에는 93살 된 노모가 요양원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며 잠시 고향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새해에는 빈자들을 향한 따스한 손길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안광훈 신부는 1941년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태어났다. 1959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골롬반 외방선교회에 들어갔다. 1965년 시드니 신학대를 졸업하고 사제직을 받았다. 1966년 한국에 와 2년 동안 서울에서 한국어를 배웠다. 1968년 원주교구 삼척 사직동 주임신부가 됐다. 1969~79년 정선 본당 주임신부로 활동했다. 1981년 서울 목동 성당 주임신부가 되면서 철거민들과 함께 투쟁했다. 1985~91년 골롬반 신학원 원장을 지냈다. 1992년 서울 강북구 미아5동 성당에 부임하면서 달동네 생활을 시작했다. 지난해 보신각 제야의 타종 행사 때 시민대표로 참석했다. 현재 삼양동 다세대 주택 전셋방에 살면서 도시 빈민을 위한 운동을 펼치고 있다. 삼양 주민연대 대표, 강북 주거복지센터 운영위원, 빈민사목위원 등의 직함을 가지고 있다.
  • 홍준표 지사 “골프 금지·선물 조심·술자리 자제를”

    홍준표 지사 “골프 금지·선물 조심·술자리 자제를”

    “업자와 골프 치는 것은 절대 안 된다. 설 전후 선물 조심하라. 저녁 술자리도 자제하라.” 취임과 동시에 부패척결을 강조해 온 홍준표 경남지사가 31일 도청 간부들과의 첫 간담회에서 간부와 직원들의 처신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 라인을 제시했다. 주요 정무직 간부들의 인사도 단행, 새해 업무 추진에 박차를 가했다. 홍 지사는 골프에 대해 “운동 자체는 상관하지 않겠다”면서도 “다만 누구와 치느냐가 중요하며 업자와의 골프는 절대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술에 관해서도 자신은 공직생활 30년간 가능하면 저녁엔 자리를 피해왔고 지사 취임 후에도 지켜왔다고 소개했다. 홍 지사는 취임 후 부패를 청산하려면 토착세력들과 유착을 근절해야 하고 자신부터 저녁 자리를 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연말연시에다 설이 다가오고 있는 만큼 과도한 선물 수수로 구설수가 생기지 않도록 사전 단속한 것이다. 그는 또 “업무는 평일에 열심히 하고 휴일에는 출근하지 말고 쉬라”며 충분한 휴식도 권했다. 이와 함께 행정부지사에 윤한홍(51) 대통령실 행정자치비서관을 발령했다. 또 정무 업무를 보좌할 정무부지사에 선거캠프에서 상황실장을 맡았던 조진래(48) 전 국회의원을 내정했다. 이 밖에도 홍 지사는 선거캠프에서 실무를 책임졌던 오태완(47)씨를 정책단장(보좌관), 캠프에서 대변인을 맡았던 정장수(47)씨는 정무특보로 각각 내정, 오는 10일쯤 임용할 예정이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놀줄 몰라서…” 50대 아버지들 은퇴뒤 못논다

    “놀줄 몰라서…” 50대 아버지들 은퇴뒤 못논다

    직장생활 25년차인 박모(50)씨는 주말이면 파김치가 된다. 잦은 야근에 업무상 술자리가 잦아 휴일이면 널브러져 자는 게 최고다. 컨디션이 좋을 땐 집 부근 야산을 오르거나 안양천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게 유일한 야외활동이다. 박씨는 “지금까지 벌어먹고 사는 데만 신경을 쓰다 보니 여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모르는 편”이라면서 “자기만의 레저생활을 즐기는 요즈음 후배들을 보면 부러울 때도 있다.”고 말한다. 1962년생인 박씨는 6·25 전쟁 직후인 1955년에서 1963년까지 출산율이 급증한 시기에 태어난 베이비부머다. 산업화 초기 허리띠를 졸라매며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달성하는 데 기여한 산업화 세대이면서 민주화를 몸으로 실천하기도 ‘넥타이 부대’이기도 하다. 어른이 되어서도 부모봉양하고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자기만의 삶의 질을 챙기지 못한 특징을 갖고 있다. 이런 성장배경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50대 베이비부머 대부분이 친목모임 참여와 같은 단조로운 여가생활을 하고 있으며, 운동이나 여행, 사회봉사 등 적극적인 여가활동 참여율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26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도시지역 50대 장년층의 여가생활 실태와 정책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만 50~59세 장년층 453명 중 49.7%는 한 달에 1~2번 하는 여가활동으로 종교모임을, 34.5%는 동창회나 계모임 등 친목모임을 꼽았다. 반면 스포츠·야외활동(24.9%), 문화활동(19.4%), 여행(7.5%) 등 비교적 활동적인 여가생활에 참여하는 경우는 각종 모임 참석에 비해 적었다. 또 한 달에 1~2번 참가하는 여가활동 중 사회봉사활동은 6.6%, 자기계발은 11%, 단체활동은 5.5%에 그쳤다. 이는 삼성생명 은퇴연구소가 지난 1월 서울 및 5대 광역시에 거주하는 만 25~65세의 비은퇴자 및 만 55~75세 은퇴자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만 50~59세 453명을 분석한 결과다. 박지숭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수석연구원은 “50대 장년층은 6·25 전쟁 이후 어려운 환경 속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면서 여가시간이 주어져도 잘 놀고 즐길 줄 몰랐다.”면서 “유년시절부터 여가경력(leisure career)이 부족했기 때문에 노후에 여가시간이 주어져도 적극적이고 다채로운 여가생활을 즐기는 데 한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또 “스포츠나 단체활동, 봉사활동 등의 여가에 대한 정보와 이해가 부족해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낮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독자의 소리] 연말 출근길 음주운전 주의/춘천경찰서 소양로지구대 경장 장은미

    연말을 맞아 회식과 모임이 잦다. 밤늦게까지 술자리를 갖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직도 상당수 운전자들은 야간에만 음주운전을 하지 않으면 된다는 의식이 적잖다. 알코올이 다 분해되지 않은 상태인데도 아침 운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다. 때문에 경찰의 아침 음주운전 단속 때 대놓고 항의하지만 음주운전이 분명하다. 혈중알코올이 분해되는 시간은 체질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성인을 보면 시간당 0.008~0.015%가 감소한다. 혈중알코올 농도 0.1% 정도에 해당하는 소주 1병 이상을 마시고 새벽에 귀가, 잠을 잤더라도 출근길 운전 때에는 알코올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아침 음주운전 역시 적발되거나 교통사고를 내면 면허 취소, 벌금 등의 개인적 손실뿐만 아니라 다른 운전자의 생명까지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불행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음주 후 반드시 충분하게 휴식하고, 카풀 등의 방법을 찾아 음주운전 및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다. 춘천경찰서 소양로지구대 경장 장은미
  • 성희롱 73% “직장생활 중 당해”

    성희롱 73% “직장생활 중 당해”

    외국계 회사의 신입 여직원 A씨는 최근 남성 지사장 B씨로부터 노골적인 성희롱을 당했다. “가슴이 작아 보이니 큰 브래지어를 사 입으라.”며 신용카드를 준다든지 다짜고짜 “뽀뽀해 달라.”고 하는 식이었다. 견디다 못한 A씨는 2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둔 뒤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었다. 인권위는 B씨의 언행이 성적 혐오감을 줬다며 인권교육 수강을 권고했다. 국내 성희롱 사건의 절반은 A씨의 경우처럼 직장 안에서 벌어진다. 피해자 4명 중 3명은 20~30대 여성이다. 인권위는 12일 성희롱 진정사건 백서를 발간했다. 2001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들어온 성희롱 진정사건 1209건에 대한 분석과 성희롱 성립요건, 판단기준 등이 실렸다. 성희롱 발생 장소는 사업장이 50.3%(644건)로 가장 많았다. 이어 회식장소 19.6%(251건), 출장지 3.2%(41건) 순이었다. 회사에서 중간관리자 이상 간부가 평직원을 성희롱한 사례가 전체의 80.2%나 됐다. 한 공단의 남성 주차관리부장이 부하 여직원에게 “사위는 잘 있어? 장모가 젊으니 끌어안고 자면 되겠네.”라고 말하는 등의 사례가 여기에 속한다. 스트립쇼를 하는 술집에서 회식하면서 여성에게 쇼를 본 소감과 성관계 경험 여부를 묻는 등 심각한 성적 농담을 한 사례도 있었다. 피해자의 나이는 20대 36.3%(418건), 30대 25.3%(292건), 40대 12.6%(145명) 순이었다. 사회생활 경험이 적어 성희롱 대처 능력이 약한 젊은 여성이 주로 피해를 봤다. 성희롱의 종류로는 성적농담 등 언어적 성희롱이 36.4%(419건), 원치 않는 신체 접촉 등 육체적 성희롱이 33.8%(389건)였다. 두 가지가 함께 발생한 경우도 20.7%(238건)였다. 학교에서 교사 등에 의해 이뤄진 성희롱 관련 진정도 123건으로 전체의 10.7%를 차지했다. 한 초등학교 교장은 교직원 워크숍을 가는 버스 안에서 3시간 동안 미리 종이에 써온 음담패설을 낭독했다가 진정을 당했다. 한 중학교에서 남자 교사가 학교폭력 피해 학생의 어머니를 불러 “첫 성경험은 언제 했느냐.”, “지금 성관계를 하고 싶다.” 등 언어적 성희롱을 했다는 진정도 접수됐다. 인권위 관계자는 “연말 술자리에서 분위기를 띄우겠다며 음탕한 말을 하거나 타인이 원치 않는데 자신의 성적 경험을 늘어놓아도 성희롱에 해당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착한 음주문화로 건강 지키고 밝은 사회를”

    “착한 음주문화로 건강 지키고 밝은 사회를”

    폭음, 강권으로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잘못된 음주문화를 바로잡고 서로 배려하는 ‘착한 음주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서울신문사와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이 11일 손을 잡았다. 세 기관은 송파구청 3층 기획상황실에서 ‘착한 음주문화 확산을 위한 업무협약식’을 하고 착한 음주문화 정착을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착한 음주문화는 건강을 해치는 폭음이 아니라 건전한 분위기에서 지나치지 않게 술을 마시는 것을 뜻한다. 구체적인 실천 방안은 ▲일주일에 남자는 4잔, 여자는 2잔 이상 마시지 말 것 ▲음주운전을 하지 않을 것 ▲술을 강요하지 말 것 ▲음주의 폐해를 주변에 알릴 것 ▲술잔을 돌리지 말 것 ▲술자리는 1차로 끝낼 것 ▲하루 술을 마시면 3일은 마시지 말 것 등이다. 송파구는 최근 지역 내 음주율이 서울시 평균을 넘는 등 과도한 음주가 주민 건강과 조직문화를 해친다고 보고 착한 음주문화 정착을 위해 서울신문사와 서울아산병원에 업무협약을 제안했다. 협약에 따라 송파구는 기관 간 중재자 역할을 하며 절주 정책을 수립하고 각종 착한 음주 전파 사업을 진행한다. 서울신문사는 송파구와 서울아산병원이 제공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착한 음주문화를 널리 알리고 국민들의 음주 의식이 전환될 수 있도록 돕는다. 서울아산병원은 음주 예방 교육 등을 위한 전문 지식, 상담 인력을 지원하고 필요 시 치료 지원을 한다. 세 기관은 오는 14일 잠실사거리 롯데백화점 앞에서 착한 음주문화 정착을 위한 캠페인을 개최할 예정이다. 또 건전한 음주문화 정착을 위해 착한 음주문화 홍보, 문제 음주자 연계 치료를 비롯해 세 기관이 합의한 사업을 적극 펼쳐 갈 계획이다. 한편 협약식은 이철휘 서울신문사 사장, 박춘희 송파구청장, 박성욱 서울아산병원 원장 등 각 기관 관계자와 주민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여기서 이 사장은 “우리 사회의 과다 음주는 단순히 개인 건강, 사회 문제를 넘어 향후 국가 전력과 관련된 문제”라고 지적한 뒤 “신문사가 이러한 사회 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송파구 등과 함께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술문화를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박 구청장은 기념사에서 “음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20조원이 넘는데 이는 신도시 하나를 건설할 수 있는 비용”이라며 “글로벌 문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잘못된 음주문화를 개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 원장은 “과도한 음주로 인한 폐해를 줄여 주취 폭력, 가정 파탄, 건강 악영향 등을 최소화하는 데 동참하겠다.”고 말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씨줄날줄] 에너지 폭탄주/오승호 논설위원

    한 주류기업이 올해 1~2월 공식 블로그를 통해 폭탄주인 ‘소맥’(소주+맥주) 제조법을 공모한 적이 있다. 참가자들의 비밀 레시피는 다양했다. 안주를 먹지 않는 주당들에게 적합한 소맥도 있단다. 날계란 노른자를 맥주잔에 먼저 넣은 뒤 소주와 맥주를 연달아 부어 만드는 방법이다. 주당들의 속을 보호해 주는 게 특징으로, ‘계(鷄)소맥’이라고 한다. 소맥에 계란 노른자를 첨가하는 것은 콜레스테롤이 알코올을 분해시키는 효과에 착안한 것으로 보인다. 맥주잔 바닥에 얇게 썬 레몬을 넣은 다음 소주와 흑맥주를 부어 만드는 ‘흑소맥’, 일반 소맥에 탄산음료를 첨가한 ‘탄소맥’도 등장한다. 폭탄주의 대중화를 실감케 한다. 위스키 폭탄주는 1980년대 알려지기 시작했다. 베트남전 때 군인들이 철모에 맥주를 가득 붓고 위스키를 병째 담아 마신 걸 본뜬 것이란 설(說)도 있다. 군인들이 맥주 컵에 물 따르듯 양주를 채워 돌리는 데 질린 민간인 기관장이 맥주와 양주를 섞어 마시자고 제안한 것이 출발점이란 얘기도 있다. 백과사전에는 1960~1970년대 미국에 유학 간 군인들이 들여왔다고 소개한다. 1980년대 초 정치에 나선 군인들이 각계 인사들과의 술자리에서 만들어 마시면서 음주문화로 자리잡았다는 것. 양주나 소주에 고(高)카페인 음료를 섞어 마시는 신종 폭탄주가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란다. ‘파워 칵테일’, ‘○○밤’(bomb·폭탄)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에너지 폭탄주’다. 20대가 30~60대에 비해 폭탄주를 더 즐겨 마신다고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지난 6, 10월 전국 15세 이상 남녀 2066명을 조사한 결과, 최근 1년 사이 폭탄주를 한 번 이상 마신 적이 있다고 밝힌 연령층은 20대가 49.2%로 가장 높았다. 에너지 폭탄주를 경험한 사람도 20대가 9.6%로 가장 많았다. 미국에서는 2009년 1만 3000여명의 대학생이 에너지 음료를 마셨다가 응급실 신세를 졌다는 조사도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지난 8월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두 번째 에세이집 출간 기자회견에서 “우리 시대의 특징적 문제가 15~20세 사춘기 때 겪어야 할 과정들이 대학입시에 치이면서 발생한 측면이 크다.”고 진단했다. 20대가 왜 폭탄주를 찾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다.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에 비해 부드러워 짧은 시간에 많이 마실 수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정도다. 혹여 기성세대들이 젊은이들의 성장통(痛)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한다. 오승호 논설위원 osh@seoul.co.kr
  • [CEO 칼럼] 뿌릴 때와 거둘 때/최흥집 강원랜드 사장

    [CEO 칼럼] 뿌릴 때와 거둘 때/최흥집 강원랜드 사장

    2012년, 임진년도 이제 20여일밖에 남지 않았다. ‘흑룡의 해’라며 커다란 희망을 안고 힘차게 출발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을 마무리할 시점이 되었다. 1년을 마무리하는 때, 누구나 지난 일을 돌아본다. 누군가는 자신의 계획이 이뤄진 것에 만족하고, 누군가는 처음의 생각과는 다른 결과에 아쉬워한다. 또 누군가는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기도 할 것이다. 성경에 ‘뿌린 대로 거두리라’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의 결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시작이 중요하다는 뜻도 함께 들어 있다. 씨를 뿌릴 때의 마음가짐, 어떤 일을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이 초심(初心)이다. 초심의 한자 ‘초’(初)는 옷을 짓는 일이 칼로 옷감을 마름질하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뜻에서 시작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됐다. 치수대로 재단되지 못한 옷감으로 만든 옷은 몸에 맞지 않거나, 아예 옷으로 완성되지 못한 채 버려지기도 한다. 그래서 시작이 중요하며 시작이 좋아야 끝도 좋다는 말도 나오는 것이다. 사람들은 씨를 뿌리면서 항상 거둘 때를 염두에 둔다. 농부가 씨를 뿌리면서 풍성한 가을을 바라는 것과 같다. 희망이고 기대이다. 그러나 어떤 일이 제대로 된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때맞춰 씨를 뿌리고 물을 대며, 풀을 뽑는 등 결코 중요하지 않은 과정이 없다. 이런 농부의 마음이 초심이다. 그래서 초심은 겸허하다. 겸허는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이다. 또 겸허는 배려와 소통과도 통한다. 이렇게 하여 초심은 배려와 소통의 의미까지도 아우른다. 640년(정관 14년), 고창국을 정벌한 당 태종은 신하들과 함께 승전을 축하하는 연회를 가졌다. 이때 태종이 작은 나라와의 전쟁에서 이긴 것에 도취하여 자만하는 모습을 보이자, 당대의 명신인 위징은 춘추시대 제나라 환공의 예를 들어 초심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어느 날 환공은 제나라의 중신인 관중과 포숙아, 영척과 함께 술자리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환공은 대신들에게 자신의 성공을 자랑하며 장수를 빌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포숙아는 환공에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나라 밖을 떠돌아다니던 때를 잊지 말 것을 충고했다. 관중은 노나라와의 전투에서 패한 후, 포로로 잡혀 죽을 뻔했던 일을 잊지 말라고 했다. 영척은 벼슬에 오르기 전, 소에게 여물을 주던 때를 잊지 말 것을 당부했다. 모두 제 환공에게 초심을 잃지 말 것을 말했다. 이들의 말을 듣고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제 환공은 더욱 분발해 마침내 춘추오패(春秋五覇)의 하나가 되었다. 위징의 이야기를 듣고 깨달은 당 태종은 신하들 앞에서 황제가 되기 전에 가졌던 초심을 잘 지킬 것을 약속했다. 당나라 태종이 천하를 다스리던 시대가 정관의 치(貞觀之治)라 불리며, 중국 역사에 있어서 가장 빛나는 시대의 하나로 기록된다. 제18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선거철만 되면 우리는 초심을 말하며 자신을 믿어주고 선택해 달라는 정치인들을 만난다. 초심을 말하는 만큼 초심이 중요하고 또 초심을 지켜가는 일이 어렵다. 그리고 초심을 잃어버릴 때 혼란이 오고 초심이 변할 때 갈등이 생긴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적으로나 경험으로나 잘 알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의 초심을 끝까지 지켜갈 수 있는 지도자를 선택하는 일이라 할 것이다. ‘행백리자 반어구십’(行百里者 半於九十)이라는 말이 있다. 백리를 가는 사람은 구십리를 절반으로 생각한다는 말이다. 어떤 일이 끝날 때까지 처음의 마음을 놓치지 말고,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뜻이다. 한 해의 마무리가 가까워지는 지금, 초심을 돌아본다. 그리고 초심에 비춰 무엇을 거두고, 또 무엇을 버릴 것인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 [선택! 역사를 갈랐다] 시리즈를 끝내며…기획·필자 5인 좌담

    [선택! 역사를 갈랐다] 시리즈를 끝내며…기획·필자 5인 좌담

    ‘선택! 역사를 갈랐다’ 연중시리즈가 2월 20일자 제1회 ‘선덕여왕과 김춘추’를 시작해 고대국가와 고려, 조선, 일제강점기 등을 거쳐 제37회 ‘이승만과 박용만’을 마지막으로 12월 3일자로 막을 내렸다. 역사의 라이벌을 내세워 당시 이들의 주장과 선택이 이후 한반도 역사에 미친 영향들을 평가하는 기획으로, 인물비교라는 신선한 접근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번 시리즈의 공동기획에 참여한 박혜숙 푸른역사 대표와 집필자로 참여한 주진오(55)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임기환(54) 서울교대 교수, 계승범(52) 서강대 사학과 교수, 한명기(50) 명지대 사학과 교수는 지난 6일 서울신문에서 문소영 문화부 차장 사회로 시리즈의 의미와 성과, 오는 19일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사회적 발전에 도움이 되는 올바른 선택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좌담을 가졌다. 사회자 임기환 교수가 ‘선덕여왕과 김춘추’를 써주셨고, 주진오 교수가 마지막회에 실렸던 ‘이승만과 박용만’을 비롯해 4회 집필을 맡아주셨다. 계승범 교수는 정조 때의 ‘김종수와 채제공’, 한명기 교수는 인조 때의 ‘최명길과 김상헌’을 써주셨다. 참여한 학자로 이 시리즈를 평가해 달라. 임기환(이하 임) 올 2월 약간 쌀쌀할 때 글을 쓴 기억이 나는데 벌써 12월 대선을 코앞에 두고 있다. 이 시리즈는 애초에 한국사회에 굉장히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기획된 것이었다. 유권자들이 다음 주 대선 후보를 선택할 때 조금이나마 기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명기(이하 한) 무거운 주제를 갖고 장기간 독자들과 호흡하는 게 사실 어려운데, 잘 마무리된 것 같다. 독자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글들이었다. 신문사에서 좀처럼 하기 힘든 기획이었다고 본다. 기획의 성패를 떠나 사람들이 잘 몰랐던 지식을 자세히 전달했고, 자연스럽게 역사적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었다. 계승범(이하 계) 그동안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얘기들을 특정 주제로 엮어냈다. 단순히 과거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현재 한국의 역사와 관련지어 대중이 반면교사 할 수 있게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주진오(이하 주) 사람은 늘 선택을 하며 사는데, 어떤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나을지 알고 선택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데 이런 걸 역사 속에서 알아봄으로써 독자들이 내 인생에서 어떤 선택을 할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상해 볼 수 있다. 시리즈를 읽은 독자라면 앞으로 선택해야 할 때 도움을 얻지 않았을까 싶다. 계 이 기획시리즈에 영감을 얻어서, 한국 근현대사 과목을 듣는 학생들에게 과제를 냈다. 학생들의 부모나 조부모의 개인적 선택을 당시 역사환경 등을 연결시켜서 인터뷰하고 리포트를 쓰라는 것이었는데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박혜숙 대선이라는 가장 큰 정치적 선택이 화두가 될 것이고, 역사학자의 발언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공동기획을 하게 됐다. 사회적 이슈에서 역사학계 목소리가 약해지고 있는데, 이런 방식의 작업이 그 대안이 되지 않겠나. 여성 대통령이 나올지도 모르니까, 선덕여왕을 1번으로 하자고 했다. 사회자 역사라고 하면, 사람들이 고리타분하게 생각한다. 왜 그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나. 역사는 왜 중요한가. 주 세상 살기 힘들고 바쁠 때 ‘500년 전, 1000년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굳이 알아서 뭐할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역사를 공부하고 안다는 것이 결코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아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미래를 위해서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 계 과거에 일어난 어떤 현상이나 사건이 현재의 나와는 무관하고, 그 사건을 나의 삶과 연관시키지 못하니 재미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역사는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 완료 진행형’으로서의 역사이고 개인의 삶과 모두 연결돼 있다. 20세기는 세계사적으로 볼 때 파란만장한 시대다. 그런데 20세기 역사학이라는 것이 ‘이념의 시녀’로 전략해 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한 신입사원에게 역사의식의 중요성을 묻는 설문조사를 하면, 25%는 대학 교양강의 듣는 걸로 충분하다고 하고, 25%는 사극 보는 걸로 공부를 대신한다, 25%는 책을 사볼 정도로 관심 있고, 나머지 25%는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다라고 답한다. 고리타분한 교과서 중심의 역사교육은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 이걸 반성해야 할 시점이다. 역사교육이 문제다. 또 한국 근현대사는 성공하지 못한 역사이기 때문에 역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낮을 수 있다. ‘역사가 정치에 복무했다.’라는 비판도 있다. 임 해방 이후 1960~1980년대 역사 얘기할 때, 평가하기 이르다고 미룬다. 그런데 불과 10년 전의 노무현 정권에 대한 평가는 신랄하게 이뤄지고 있다. 말이 안 된다. 역사라는 것은 언제나 지금의 맥락 속에서 평가가 가능하다. 꼭 시간이 지나야 평가 가능하다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 가까운 시대에 대한 평가를 역사의 범주에서 제외시키는 게 지금까지 우리의 역사 교육이었다. 시간 속 단절, 즉 화석화시키다 보니 고리타분한 것으로 인식되어온 거다. 입맛대로 역사적 진실을 사용하기도 한다. 주 이념이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될 땐 곤란하지만, 현실에서 역사인식이 넘칠 땐 학자들이 이런 세태를 올바른 역사 접근 방식을 통해 풀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1980년대와 비교해 요즘은 아무래도 정치적 인식, 소명의식 이런 게 사라지지 않았나 싶다. 임 요즘 고등학생 등의 역사의식이나 각성은 국민교육 시스템 때문에 불가능하다. 교과서대로 가르치고 있는 것이 국민교육 시스템이다. 국가에서 용인한 교과서대로 가르쳤는지 감시하고, 시험을 통해 평가하려는 상황에서는 불가능하다. 교육의 목표나 시험제도나 교과서의 발간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주 이를테면, 국사편찬위원회가 천재교육에서 나온 중등교과서 검정심사를 한 뒤 ‘이한열 사망 사진’을 저자(주진오 등)의 허락도 받지 않고 삭제할 것을 요구해 올 가을에 파동이 일었다. 사실 내년부터 교과서가 바뀌기 때문에 검정심사를 내년에 해야 하는 것인데 정부가 조급하게 앞당긴 것이다. 계 미국은 교과서라는 것이 아예 없다. 텍스트북이라 부르지만 교과서가 단순히 읽을 자료일 뿐이다. 사회자 한반도 역사에서 여러 차례 중요한 선택이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고, 왜 그렇게 생각하나. 임 고대를 다룬 4편 중 2편이 7세기를 다뤘다. 초점은 신라는 어떻게 생존하고 살아남았느냐. 백제와 고구려는 왜 패망했는가가 중요했다. 한 삼국통일 이후 대륙 쪽으로 나아가는 것을 포기했거나 봉쇄됐다. 연암 박지원(1737~1805)은 “우리 민족이 한반도에서 중앙으로 진출하는 것을 포기하면서 진취적 기상이 사라졌지만, 덕분에 그나마 정체성을 갖고 살아남았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중국 조선족 교수에게 배운 한족 학생들이 “왜 중국이 한반도를 삼키지 않았느냐.”고 질문해 곤혹스러웠다고 한다. 청나라, 몽골, 만주, 여진, 거란 등이 중원을 차지했다가 소수민족으로 전락하거나 사라져버린 걸 보면 한국민족이 살아남을 수 있는 계기가 뭐였는지 찾는 게 중요하다. 임 그것은 고려시대 때로 돌아가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신라가 삼국통일 했을 때 당나라 중심의 질서를 수용하겠단 의미였다. 한 허목(1595~1682)은 조선인들이 기국(器局)이 작다고 말했다. 영토의 크기는 생각의 크기를 결정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계 제국의 질서를 수용하는 대신 왕조의 안녕을 인정받았다. 조선은 16세기 말 왜란과 17세기 초 호란을 겪고서도 자구책을 만들었다기보다 오히려 과거의 기억에 묶여 있었다. 18세기 실학자나 양반 어느 누구도 그러지 않았다. 아무리 청나라가 싫어도 몽골제국 때부터 중화질서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거다. 국가 경영자로서 중요한 기로인데 자구책조차 마련하지 않고, 자기 기득권에 매달렸던 선택이 한국 문명사 차원에서 볼 때 잘못되지 않았나. 결국 근대라는 쓰나미가 밀려올 때 쓸려 갔다. 주 우리 역사에서 식민지 역사는 아주 중요한 갈림길이다. 후발국가가 살아남으려면 끊임없는 내부 개혁과 열강 사이에서 살아남도록 적극적인 외교 정책이 필요했다. 고종의 책임이 크지만 동시에 근대개혁론자들의 태도에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너무 쉽게 일본의 프레임에 갇혀 일본의 눈으로 세계를 보고 조선 문제를 봤다. 일본의 모델을 통해 근대화를 앞당길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군사, 정치, 그리고 사상적으로까지 무장해제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무저항적으로 쉽게 일본 식민통치를 받아들였다. 이런 것들이 일제 하 독립운동이 구심점 없이 많은 조직과 방식으로 흩어질 수밖에 없었던 원인일 것이다. 임 개화 이후 지식인들은 사실 일본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겉으로는 식민사관과 민족사관이 대비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변형일 뿐이다. 우리만의 시각, 프레임을 갖지 못한 게 아쉽다. 해방 이후 이게 더 큰 문제가 된 게 아닌가. 계 개화파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바꾸자 했던 건 사실인데, 이 사람들 중엔 정말 주권이 위기에 닥쳤을때 총칼 들고 저항한 사람이 없다. 주된 핑계는 이미 늦었다는 것인데, 위정척사파들 때문이었다. 그런데 비판받아야 할 사람들이 애국자로 칭송돼 왔다. 여기서부터 한국 근대사가 꼬이기 시작했다. 주 사실 위정척사파들 중 의병활동한 사람도 별로 없다고 한다. 당시 유학자들의 대응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가 자결이다. 둘째가 의병인데 얼마 안 된다. 세 번째는 더러운 땅 떠나서 자기 뜻 지키기 위해 섬으로 들어가는 것을 저항인 것처럼 여겼다. 우리 역사에서 의병들의 모습 을 볼 때마다 울컥한다. 의병 사진을 보면 하나같이 좀 그렇다. 안타깝고 초라하기 그지없다. 저 사람들은 도대체 조선왕조로부터 받은 게 뭐가 있다고 저러고 있었을까. 양반과 지식인 등은 의병을 화적떼라고 손가락질하는데 말이다. 사회자 최근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유튜브에 ‘백년전쟁’이란 동영상을 무료로 공개했다. 이승만이 미국에서 한 독립운동의 실상과 무장독립운동가인 박용만을 음해한 내용, 박정희 정권의 경제발전 배경에 미국이 있었다는 내용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것을 보고 ‘멘붕’이라는 사람들도 있다. 주 이승만이 어떻게 임시정부의 대통령이 될 수 있었나 싶다. 특정 논리, 지역적 기반에 입각한 사람들 덕분이었다. 외세를 등에 없고 실질적 지도자가 되다 보니까. 지도력에 대한 인정 여부가 약화되는 거다. 또한 이승만은 일제 말기에 VOA(미국의 소리) 전파를 탔고, 미국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다. 이승만은 프로파간다의 귀재로, 한국 최초의 마키아벨리적 정치 인물로 볼 수 있다. 계 중요한 자료들이 공개된 것 같은데, 지금껏 공개하지 못한 것이 문제다. 역사를 볼 때 국내 시각에서만 보지 말고 미국이 깔아놓은 동아시아 무대 위의 이승만·박정희의 위상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대학교 수업 자료로 써야겠다. 한 현대사뿐 아니라 교과서도 자료가 굉장히 제한돼 있다. 역사적 평가는 사실만 알려줘도 바뀐다. 알려져 있는 제한된 사실 자체를 넘어서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예컨대 대통령기념관 만들 때 잘한 일, 잘못한 일을 모두 포함하면 문제는 없다. 근데 나쁜 건 다 빼버리니까 문제다. 사회자 대선 후보들의 역사인식에 대해 논란이 많았는데 이게 정책에 어떻게 반영될까. 임 유신시대가 자기가 살아온 시대였기 때문에, “그 시대가 문제가 없다.” 라고 한다면 그가 집권한 뒤에 언제든 그 시대가 재현될 가능성이 있는 것 아닌가. 그 시대의 공과를 얘기해줘야 하는데, 역사적 평가로 미뤄버리는 것은 과거의 과실도 재현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계 최고통수권자의 철학에 유동적인 역사인식, 즉 현재진행형으로서의 역사인식이 없고, 내 생각만 옳고 다른 생각은 틀렸다고 한다면 문제가 있다. 이것은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의식에 매몰되는 것이다. 한 최고 권력자의 역사인식을 본인이 아니면 누가 교정할 수 있겠나. 조선시대처럼 경연을 통해 국왕을 계속 개혁시키고 그렇다면 모를까 어렵다. 무엇보다 겸손이 중요하다. 인간의 삶 자체가 굉장히 다양한데 하나의 틀 안에서 다른 삶의 형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은 겸손이 없는 것이다. 한 의사가 “불치병을 고치려면 7년 묵은 쑥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고 치자. 그 환자는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일단 쑥을 뜯어 말리고 묵혀야 1년이 되고 7년도 되는 거 아니냐.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 나로호 문제만 봐도 그렇다. 러시아에 돈을 지불하고 의존할 텐가. 지금 좀 늦었더라도 독자적으로 로켓 개발을 해야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주 과거에 대한 인식이 곧 현재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의 역사인식이 중요한 거다. 아버지를 부정하는 것은, 본인의 정치적 자산인데 어려울 거다. 아버지를 잃었을 때 박근혜 나이 스물여덟이었다. 소녀가장이라는 식으로 변호하면 안 된다. 아무리 아버지더라도 반성할 일은 반성해야 새로운 정치적 비전이 생긴다. 한 겸허의 문제다. 정권의 수준이 국민의 수준이 아닌가 싶다. 5년 전 한 대통령 후보가 “부자됩시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는데 얼마나 천박했나. 사회의식이 두텁고 겸허해야 하는데 한국사회가 아직 그렇지 못하다. 주 박정희가 언제나 선거에서 이겼고, 분명 그 시대에 박정희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대한민국의 정치적 선택이 이런 지도자를 정치적 지도자로 뽑을 만큼의 수준밖에 안 되는가 싶다. 계 1960, 1970년대를 절대진리로 생각하고, 시대와 역사적 환경의 변화와 무관하게 절대진리를 적용하면 안된다. 사회자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우리가 역사 속에서 반복하면서 실수했다면 무엇이 있을까. 계 역사교육의 부재, 기록 문헌을 남기지 않고 비공개했던 건 문제다. 해외 파병을 놓고 찬반이 갈렸다면 토론하고 그 결과를 남겨야 그 다음번에 파병문제를 논의할 때 한 단계 높아진 단계에서 토론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 안 되기 때문에 반면교사의 기회를 제공받지 못한다. 한 망각이다. 오랜 기간 동안 험악한 역사를 겪다보니까 빨리 잊어버리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일본인이 한국인들에게 “옛날보다 냄비가 두꺼워졌다.”고 비아냥거리고 있다. 정권에 불리한 어떤 이슈도 두 달만 되면 덮여진다. 음모론이 나오는 이유다. 박경리 작가는 사망 후 유고집에 ‘해방 직후 일제에 강제 징용됐다가 고생한 사람들이 집 근처에 서서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이어 말하길 ‘저렇게 안 웃으면 어떻게 남은 인생을 살 것인가’. 어떤 화두를 잡았을 때 진지하게 이끌고 나가야 하는데 언론, 지식인들의 이런 역할이 부족하다. 제주 강정마을이 논란인데 해군기지를 세우자 말자는 논의만 있고, 기지에 과연 배치할 군함은 있는 것인지는 논의하지 않는다. 제대로 된 주제를 선정하고, 망각의 속도를 늦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임 부정적인 것, 바뀌어야 하는 것들이 살아 있다. 반복된다는 건 개선이 안 됐다는 얘기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결국엔 개선의 의지나,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 목표 등이 없어서다. 대선이나 뭔가 이슈화되는 과정에서 누구의 정책이 옳은가 하고 소극적인 선택들을 하는데, 바꿔야 될 것들을 바꾸는 데 유권자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하지 않나. 주 시대적 환경에 따라 비슷한 형태로 드러나지만, 완전한 반복은 아니다. 오늘날 한반도의 국제정세가 19세기와 비슷하다고 한다. 그런데 100년 전 국제정세와 어떻게 비슷한지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단편적이고 주먹구구식이다. 반복적 현상에 대한 치열한 비판과 탐구가 필요하다. 이 정부 들어 역사 교육 비중을 약화시키고, 수업 시수도 형편없이 줄었다. 이 상태에서 어떻게 올바른 방향을 찾아나갈 수 있을지 답답하다. 사회자 오는 19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유권자들에게 역사적으로 올바른 선택이 있다면. 임 선거 목표중 하나는 민주주의와 시민사회로의 이행이다. 사실 모든 선거에서 그랬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선거들이 있다. 민주적 사회 질서를 확장해가는 그런 기준을 가진 후보를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한 통시대적 관점에서 얘기하자면 훌륭한 나라라는 개념은 일반 국민들이 정치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나라다. 의병이 될 필요가 없는 나라를 만들어주고, 정치를 술자리의 안주로 안 올릴 수 있게끔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계 유권자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본다. 한국 역사가 어떻게 굴러왔고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선 후보에 대해 정확하고 적극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니까, 민주공화국은 어떤 사람이 어떻게 운영하는지에 대한 공부도 필요하다. 우린 그 총수를 뽑는 것이다. 주 최근 정치인들 모습을 보면서 구시대가 부활할 위기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시대에 다양한 변화와 그 변화와 발전이 확대되는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한국은 산업화는 뒤늦었지만, 정보화 시대는 앞서갔다. 이 흐름이 민주정치 리더십과 맞물린다고 생각한다. 재벌 위주의 경제 틀이 아니라 중소기업들이 공존하는 사회, 민주정치가 기민하게 작동해 상상력을 가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또다시 재벌, 기득권 위주에 갇히면, 5년 후 어떻게 될지 모른다. 계 올해 제대로 선택을 못하면 5년 뒤에 대통령 선거 못할지도 모른다(웃음). 정리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폭탄주 젊을수록 많이 마신다

    폭탄주 젊을수록 많이 마신다

    30~40대보다 20대가 이른바 ‘폭탄주’(섞어 만든 술)를 더 많이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대들도 5명 중 1명꼴로 폭탄주를 마신 경험이 있다. 한번에 소주를 5잔 이상 마시는 ‘고위험 음주군’ 여성도 늘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전국의 만 15세 이상 남녀 2066명을 대상으로 주류 소비 및 섭취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이렇게 나타났다고 7일 밝혔다. 지난 1년간 한번 이상 폭탄주를 마신 사람은 626명(30.3%)으로 10명 중 3명꼴이었다. 20대가 49.2%로 가장 많고 30대(34.9%), 40대(32.%), 50대(21.2%) 순이었다. 10대 중에서도 22.7%가 폭탄주를 마셨다고 응답했다. 폭탄주의 가장 흔한 주종은 소주와 맥주를 섞은 ‘소폭’으로, 폭탄주 경험자의 97.0%가 ‘소폭’을 1회 평균 4.1잔 마신 것으로 조사됐다. 고카페인 에너지 음료를 소주 등과 섞은 ‘에너지폭탄주’도 20대의 9.6%, 10대의 1.1%가 마신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건강을 해칠 정도로 술을 마시는 여성도 증가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한 번의 술자리에서 남성의 경우 소주 8잔, 여성의 경우 소주 5잔 이상을 마시는 경우를 고위험 음주군으로 정의하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주 1회 이상 고위험 음주를 하는 여성은 지난해 14.3%에서 올해 18.1%로, 주 2회 이상은 7.7%에서 11.1%로 늘었다. 식약청 관계자는 “하루 적정 알코올 섭취량을 넘지 않도록 하되 만일 과음했다면 2~3일의 회복기를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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