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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광장] 루비콘 앞에 선 김정은 비서에게/박홍환 논설위원

    [서울광장] 루비콘 앞에 선 김정은 비서에게/박홍환 논설위원

    김정은 제1비서, 이 공개 편지가 제대로 전달될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입길로라도 김 비서의 귓가에 닿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노트북PC를 켰습니다. 모쪼록 거슬리는 표현이나 듣고 싶지 않은 충고가 있어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루비콘강 앞에 서 있는 위태로운 모습이 안타까워 몇 글자 두서없이 적어 봅니다. 이번 4차 핵실험, 그쪽 주장으로 수소탄 시험을 승인하는 최종 명령서의 오른쪽으로 45도 정도 기운 글씨는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의 서체를 쏙 빼닮았더군요. 이쪽의 한 필적 전문가는 도전적 성향이 강해 보인다고도 분석했습니다. 김 주석의 모든 것을 닮고 싶어 하는 김 비서의 무한 욕망이 느껴졌습니다. 하긴 어릴 때부터 얼마나 많이 김 주석의 영웅적 무용담을 듣고 무소불위의 통치 기록을 봐 왔겠습니까. 외모조차 흡사하니 스스로 김 주석의 최고 권위가 자신에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착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합니다. 그럼으로써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이은 3대 세습의 당위성도 부여하겠지요. 그러고 보니 베이징 특파원으로 근무할 때인 2010년의 일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해 8월 아버지와 함께 중국을 방문하지 않았습니까. 여전히 공식적으로는 김 비서의 방중은 없었던 것으로 돼 있지만 당시 김 위원장이 후계 수업을 받던 김 비서를 대동했을 것이라는 확신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천안함 폭침이 있었던 그해 김 위원장은 두 차례 방중했는데 베이징이 아닌 동북 지방에서만 맴돈 8월의 두 번째 방중이 특이했지요. 특별열차의 첫 기착지인 지린(吉林)성 지린에서는 위원(毓文)중학과 베이산(北山)공원의 약왕(藥王)묘를 찾았습니다. 김 주석은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위원중학 재학 당시인 10대 청소년기에 약왕묘에서 비밀리에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 결성을 주도했다고 적었지요. 김 위원장이 후진타오 주석과 정상회담을 한 지린성 창춘(長春)에는 20대 청년 김 주석이 주체사상을 처음으로 설파했다는 카룬마을이 있는데 지린에서 창춘으로 이동하면서 할아버지가 주재했던 ‘카룬회의’ 현장을 차창 너머로 유심히 살펴보지 않았는지요. 헤이룽장(黑龍江)성의 하얼빈(哈爾濱)이나 무단장(牡丹江)에서도 동북항일연군 관련 시설물을 참배하는 등 김 주석 흔적 찾기에 여념이 없지 않았습니까. 그때 방중을 통해 후계체제를 인정받는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혁명혈통 계승의 정당성을 각인시키는 효과를 노렸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번 핵 도발로 국제사회는 더욱 견고하고도 엄혹한 제재에 나설 것입니다. 초등학교 건물에 금이 가는 등의 직접적 피해에 화들짝 놀란 중국도 격앙하고 있어 속도를 내던 양국 경협이 중단될 가능성도 크다고 합니다. 제7차 당대회를 앞둔 수소폭탄 실적 과시, 미국을 상대로 한 대화압박 등 대내외 ‘노림수’의 대가는 상상 이상으로 혹독할 것입니다. 과연 무슨 생각으로 루비콘강 앞에 서 있는지 김 비서에게 묻고 싶습니다. 지린과 창춘, 하얼빈 등의 할아버지 유적을 순례하며 배운 게 고작 장난처럼 핵실험 버튼을 누르는 것이었습니까. 그토록 사랑한다는 북한 인민의 운명을 이렇게 한순간 내동댕이칠 수 있는 것인가요. 진실 여부를 떠나 김 주석은 그래도 혁명과 항일에 대한 열의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좌충우돌하는 김 비서에게서는 한 조각 진지함조차 엿보이지 않는군요. 핵무기 개발과 경제발전,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요? 그만 혹세무민하기 바랍니다. 그동안 핵과 미사일 개발에 쏟아부은 30억 달러 넘는 돈을 식량 구입에 사용했다면 적어도 북한 인민들이 3년 동안은 굶주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김 비서의 잘못된 주사위 선택은 곧 북한 인민들에게 쓰나미 같은 재앙으로 닥칠 것입니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인민들을 속여 가며 ‘고난의 행군’을 독려할 생각인가요. 하지만 인간의 인내심은 화수분 같은 게 아닙니다. 언젠가는 인내심이 바닥을 칠 수밖에 없고, 분노는 끓어오르게 마련입니다. 경제봉쇄로 또다시 수백만명의 아사자, 수만명의 탈북자가 속출한다면 안팎으로 레짐체인지의 욕구가 임계점에 이르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또 다른 도발로 루비콘강을 건널 생각은 이쯤에서 접기 바랍니다. stinger@seoul.co.kr
  • 사우디·이란, 군사충돌로 가나

    사우디·이란, 군사충돌로 가나

    중동 최대의 맞수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갈등이 군사 충돌 일보 직전의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외교관계 단절에 이어 항공·교역 단절, 성지순례 일시 금지 등 정치·외교·경제에 걸쳐 파열음을 내고 있는 양국의 전선이 어디까지 확대될지 국제사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AP와 AFP 등 외신들은 사우디 공군이 6일 밤(현지시간) 예멘 수도 사나의 이란 대사관 건물을 고의로 폭격했다는 이란 정부의 주장을 7일 보도했다. 이슬람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은 지난해 3월 말 시아파 후티 반군이 장악한 사나에서 대부분의 외교 공관이 철수하는 가운데서도 대사관 문을 닫지 않았다. 아미르 압돌라히안 이란 외무차관은 이날 “유엔에 대사관 폭격 건에 대한 보고서를 내겠다”며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지난 3일 이슬람 수니파의 맹주인 사우디가 이란 주재 사우디 대사관과 총영사관에 대한 이란 시위대의 방화를 빌미로 국교를 단절하는 등 이란에 불리한 여론을 조성하자 맞불을 놓은 셈이다. 사우디는 “사실이 아니다”면서 진화에 나섰다. 사우디가 주도하는 아랍 동맹군도 성명을 통해 “이란의 주장은 허위”라고 반박했다. AP와 AFP는 현장 목격자들의 말을 인용해 대사관 건물에 폭격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고 전했으나 이란 언론들은 일제히 벽 일부가 무너지고 직원들이 다쳤다고 보도했다. 이란 정부는 현재 대사관 폭격과 관련해 “대사관 인근이 폭격당했다”며 한발 물러선 상태다. 이런 가운데 이날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선 지난 2일 사우디에서 처형된 시아파 지도자 셰이크 님르 바크르 알님르에 대한 추모식이 열렸다. 이곳에선 “알사우드 사우디 왕가에 죽음을”이란 외침이 들렸다고 AP는 전했다. 이란 정부는 같은 날 사우디에서 생산된 물품과 사우디를 통해 들어오는 물품의 수입을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사우디의 항공·교역 중단에 대한 조치다. 사우디 국민도 트위터를 통해 대대적인 이란 제품 불매 운동에 들어갔다. 하지만 사우디와 이란의 직접적 교전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 왕위 계승 서열 2위인 무함마드 빈살만 알사우드 국방장관은 “(전쟁은) 우리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말했다. 사우디와 이란은 이미 수니파와 시아파 간 전쟁이 불붙은 시리아와 예멘 등지에서 대리전을 치르고 있는 상황이다. 이곳의 종파 간 전쟁은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 호세인 살라미 이란혁명수비대 부사령관은 이날 “중동에서 사우디가 현재 펼치는 정책을 수정하지 않으면 사우디 정권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과학이 말해 주는 궁금한 세상사

    과학이 말해 주는 궁금한 세상사

    만물과학/마커스 초운 지음/김소정 옮김/교양인/486쪽/1만 8000원 우리는 왜 이 모습으로 존재하게 됐을까? 왜 숨을 쉬는 거지? 어떻게 아무것도 없는 데서 우주가 생겨났을까? 시간은 언제 시작됐을까? 이런 종류의 질문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만물과학’은 우리가 지금 여기에 이 모습으로 존재하는 이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의 근원과 작동 원리에 대해 과학이 밝혀낸 모든 것을 명쾌하게 설명해 준다. 영국 런던대에서 물리학을, 캘리포니아공과대에서 천체물리학을 공부한 과학저술가 마커스 초운이 썼다. 스스로 ‘딱딱하고 어려운 물리학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재주가 있다’고 자부하는 그는 문학과 역사, 과학을 넘나드는 지적 모험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원자보다 작은 미시 세계부터 빅뱅이 일어나는 순간으로, 은하계 중심에 있는 거대 질량 블랙홀을 넘어 홀로그램 우주까지 무한 공간을 여행할 수 있다. 전체 5부 22장으로 이뤄져 있는 책에서 저자는 지구 생명체의 기원인 세포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오랜 진화의 단계를 거쳐 살아남은 생물로서 인간의 특징을 진화론과 유전학에 기대 입체적으로 살펴본다. 이어 인간이 만들고 향유해 온 문명의 역사를 개관한 다음 우리가 사는 지구의 땅과 물, 대기의 움직임을 따라간다. 인간을 둘러싼 세상에 대한 흥미진진한 과학적 순례는 가장 작은 세계, 즉 원자 이하 소미립자들의 세계와 가장 거대한 세계인 우주로 우리를 이끈다. 그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세포가 깨어나는 순간이나 DNA가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과정, 인류 진화의 첫 발자국이 찍힌 자리가 눈에 보이는 듯하다. 위대한 과학적 발견과 이론들은 저절로 다가온다. 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병인박해 150주년’ 전국서 순교자들 기린다

    ‘병인박해 150주년’ 전국서 순교자들 기린다

    1866년 병인년은 한국 천주교사상 가장 많은 순교자를 낳은 해로 전해진다. 이른바 ‘병인박해’ 150주년을 맞아 전국 천주교 교구와 성지들이 순교자들의 신앙을 기억하고 본받기 위한 다채로운 현양사업을 펼친다. 올해를 ‘병인년 순교 150주년 기념의 해’로 정한 서울대교구는 병인박해 때 순교한 조선교구 교구장 성 베르뇌(1814~1866) 주교가 체포되고 병인박해 포고령이 내린 2월 23일 명동성당에서 개막 미사를 봉헌한다. 같은 날 병인박해의 성지인 서소문·새남터·절두산성지에서는 자비의 문이 열린다. 자비의 문이란 자비의 특별희년 기간 중 각 교구에서 지정한 순례지성당에 설정한 성문이다. 절두산 순교성지에서는 11월까지 특별 전시회가 열리고, 서울 명동 ‘갤러리 1898’에서도 9월부터 ‘병인박해기 이후 서울의 도시 변천과 명동’ 주제의 특별전이 열린다. 이에 앞서 지난해 11월 병인박해의 이해를 돕는 안내서 ‘순교자의 꽃을 피워라’를 펴낸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는 절두산순교성지와 공동으로 9월 25일 절두산성지에서 순교자현양대회를 연다. 현양위는 안내서에 병인박해 관련 강의록과 논문, 기념행사 일정 등을 담아 교구 사제들에게 배포했었다. 한국교회사연구소도 9월 관련 심포지엄을 연다. 대구대교구도 병인순교 100주년 기념으로 설립된 복자성당을 자비의 희년 순례성당으로 지정, 순교자들에 대한 관심을 높여가고 있다. 인천교구는 9월 20일 인천 화수동성당에서 150주년 기념 순교자현양대회를 열며 의정부교구는 순교자 5명이 처형된 양주순교성지에서 5월중 ‘성지 표지석 제막 및 성지 선포식’을 열 예정이다. 전국 성지의 움직임도 활발한 편이다. 절두산순교성지는 올해 평일 미사 봉헌금을 모아 교황청국제가톨릭사목원조기구(ACN) 한국지부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옛날 박해를 받았던 한국교회가 같은 처지의 교회들을 기억, 연대하는 행사로 시리아 등지의 교회를 위한 나눔활동을 벌인다고 한다. 오는 10일에는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주례로 하느님의 종 이벽과 동료 132위 중 절두산에서 순교한 13위의 순교자화를 축성·봉헌한다. 새남터순교성지는 2월 19일 용산구청에서 ‘순교지 새남터의 종합적 연구’ 등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을 연다. 수원교구 손골성지는 병인년 순교 150주년 겸 성지 조성 50주년을 기념해 5월 6일 순교자 현양대회를 열고 다음날 새 성당을 봉헌할 예정이다. 한편 연풍·요당리·배론·신리·갈매못성지는 3월중 심포지엄을 열고 순교자들의 삶과 영성을 공유할 예정이어서 눈길을 끈다. 이 성지들은 병인년 3월 30일 한날 순교한 다블뤼 주교, 위앵·오메트르 신부와 장주기·황석두 성인과 관련된 곳들로 지난 3월 이후 매달 모임을 갖고 병인박해 150주기를 공동 준비해왔다. 한편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은 프랑스 선교사 등 순교자 유품, 박해 배경의 이해를 돕는 궁중유물 소개 특별전을 7월 전시 목표로 준비 중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2016년 변화를 원한다면 도전하라] 들어봐! 강북문화 이야기꾼

    “북한산 선열묘역길 해설을 맡았는데 사람들이 너무 즐거워했어요. 무심코 지나치던 무덤 앞에서 그 의미를 알게 되니 엄마도 아이도 더 흥미를 갖는 것을 보고 보람을 느꼈습니다.” 이정애(51) 강북구 문화관광 해설사는 7일 “지역 역사를 잘 알게 되니 우리 동네가 자랑스러울 뿐 아니라 해설을 위해 계속 공부를 하게 되니 나 자신도 발전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강북구의 근현대 역사문화자원들을 소개해 주는 ‘문화관광 해설사’ 프로그램이 인기다. 문화관광 해설사는 다양한 역사문화관광 명소를 함께 찾아 그곳에 얽힌 역사 등을 설명하는 자원봉사 프로그램이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문화관광 해설사는 모두 18명. 이들은 자원봉사자지만 서류와 면접심사를 거쳐 국제교류문화진흥원에서 실시하는 고대사~근현대사, 강북구 지역 문화유산부터 문화관광 개념의 이해, 해설안내기법, 자원봉사자로서의 역할, 현장 탐방 등 총 70시간의 이론과 실습교육을 이수하고 수료평가까지 통과해 해설 자격을 갖췄다. 북한산 자락 주변으로 봉황각, 국립4·19민주묘지,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16위 묘역을 비롯해 소나무 1000여 그루가 울창하게 늘어선 솔밭근린공원 등 강북구에는 다양한 역사와 문화·자연자원이 자리하고 있다. 문화관광 해설사가 참여하는 코스는 세 가지다. 1코스는 ‘독립으로서의 열망이 가득한 순례길’로, 솔밭공원에서 북한산 둘레길 중 순례길로 들어서 4·19전망대와 광복군 합동묘역 등을 돌아보는 약 2시간 30분 코스다. 2코스는 ‘민주화의 발자취를 담은 길’로 서울시 미래유산 1호인 동요 ‘반달’ 작곡가 윤극영 선생의 가옥과 국립4·19민주묘지 등을 둘러볼 수 있다. 3코스는 ‘북한산 소나무의 짙은 솔향기 가득한 길’이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해외여행 | 라싸, 돌아서면 그리운

    해외여행 | 라싸, 돌아서면 그리운

    숨이 막혔다. 비행기는 아직 티베트 고원 위를 선회하고 있는데, 들이마시는 숨이 평소의 절반 수준이었다. 고산증 예방을 위해 하늘이 취하는 조치가 아닐까 싶었다. 하늘에서 느꼈던 호흡 곤란은 망상이 아니었다. 말과 행동이 자연스럽게 느려지고 머리가 띵하게 저려 온다. 세계의 지붕, 티베트 고원에 들어왔다는 증거다.포탈라궁에서 만난 기도하는 티베트 할머니. 이 모습이야말로 티베트의 마음을 설명하는 완벽한 장면이었다고원지대에 위치한 라싸는 처음 찾아가는 여행객에게 가파른 호흡과 작열하는 태양을 선물한다 티베트는 중국어로 시짱西藏이라 불린다. 지리적으로는 중국의 서남부로 분류되며 티베트족이라 불리는 장족의 지역이다. 과거 투르판 혹은 토번吐蕃이라 불리던 민족이 바로 티베트족이다. 일설에 의하면 서구지역에 티베트가 알려지는 과정에서 영국인들이 투르판을 티베트라 표기했고, 그 후 이 명칭이 공식화됐다고 한다. 티베트 고원지대는 중국 당국의 소수민족 정책에 의해 자치구로 분류된다. 그래서 티베트 지역을 티베트자치구, 시짱자치구라고 부른다.가파른 호흡, 작열하는 태양 잘 알려져 있는 대로, 티베트로 들어가는 길은 엄격하다. 이것은 티베트와 중국 사이의 관계에서 기인한다. 티베트는 달라이 라마가 정치 수반의 역할을 하는 제정일치 사회였지만 1950년 중국에 의해 병합됐다. 이후 티베트 지도부는 인도 다람살라로 망명했고, 지금까지도 중국 당국과 미묘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독립과 자치 보장, 두 해법을 둘러싸고 아직도 신경전이 펼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이유로 중국 땅을 밟기 위한 비자를 받고도 외국인 여행객에게는 별도의 허가증이 필요하다. 도장 세 개가 깊이 새겨진 허가증은 쓰촨성 청두에서 비로소 손에 들어왔다. 청두는 티베트로 향하는 길목이다. 외국인이 티베트자치구에 오르기 위해서는 일단 이곳을 거쳐야 한다.라싸는 해발 3,670m의 고지대다. 최고 높이가 8,000m가 넘는다는 히말라야 고원에 비하면 별것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만한 고도는 아니다. 고도가 높아서 깨닫게 되는 것은 또 있다.땅이 높다는 것은 하늘과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 더없이 아름답다. 그 하늘빛을 가르고 강렬한 태양이 쏟아진다. 검게 탄 얼굴을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멀리서 순례를 위해 찾아온 사람들은 대부분 선글라스와 천으로 얼굴을 몽땅 가렸다. 그들이 손에 들고 뱅뱅 돌리는 최고르(다라니 경전을 통에 넣고 추를 매달아 돌리는 성물. ‘마니차’라고도 부른다. 기도를 통해 손에 잡히지 않는 깨달음의 세계로 더 빨리 다가가기 위한 티베트인들의 물건이다)를 보니 다시 한 번 온몸으로 느껴진다, 이곳이 라싸라는 사실을.포탈라궁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한 왕궁이다라싸에서는 마니차를 돌리며 기도하는 티베트인들은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포탈라는 왕궁이지만, 티베트인들의 신앙심을 엿볼 수 있는 순례지이기도 하다강렬한 태양만큼이나 화려한 티베트의 색이 있는 곳이 포탈라궁이다티베트인들은 조캉과 함께 포탈라궁을 순례하기 위해 라싸로 향한다. 그들의 미소는 더없이 순수했다붉은 산 ‘포탈라’라싸의 태양은 게으르다. 일출이 늦다. 8시쯤이나 돼야 푸르스름하게 동이 튼다. 일몰 시간도 늦다. 저녁 8시 반에서 9시쯤 빠르게 저문다. 아마도 이것은 광활한 중국대륙의 동서를 표준시로 묶어둔 탓이리라. 몸으로 체감컨대, 라싸는 중국의 표준시에서 두 시간쯤 늦춰야 비로소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이 얼추 맞아진다.라싸를 대표하는 명소는 역시 포탈라궁이다. 달라이 라마의 겨울궁전이자 과거 티베트의 정치 중심지이기도 했던 곳이다. 포탈라궁은 사진에서 보던 것보다도 훨씬 웅장하다. 궁성, 궁전, 뒷산의 조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남북의 길이가 200m, 동서 길이가 320m에 달한다. 가이드로 나선 티베트인 링첸 왕부에 따르면 ‘포탈라’라는 이름은 본디 산의 이름이다. ‘포탈’은 ‘붉은’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고 ‘라’는 산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본래 투르판 왕국의 전설적인 왕, 송첸캄포가 처음 사원으로 건립했다. 1645년 5대 달라이 라마 때 본격적으로 증축되어 종교·정치의 중심지가 됐다. 포탈라궁의 가운데 붉은색 건물 홍궁이 바로 그때 지어진 부분이다. 이후 수세기에 걸쳐 증축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1994년에는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이른 아침부터 쏟아지는 태양을 뚫고 포탈라 궁전 곁의 광장으로 향했다. 이미 수많은 티베트인들이 모여 있고, 음악에 맞춰 전통 춤을 춘다.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함이 아니라 스스로가 즐기기 위한 춤이다. 티베트족, 그들은 본디 이처럼 화사한 민족이었으리라. 강렬한 태양 아래 어울렁더울렁 어울리며 술과 음악과 춤을 사랑하던 민족이었음을, 그들의 아침이 충분히 보여 주고 있었다. 광장을 넘어 포탈라궁 쪽으로 다가가면, 성스러운 느낌이 물씬 배어난다. 곳곳에서 입으로 관세음보살의 진언인 “옴 마니 파드메 훔”을 외며 최고르를 돌리는 순례자들을 만날 수 있다.포탈라궁의 규모는 상당하다. 궁 안에만 1,000여 개의 방들이 있다. 그 방들은 법당, 침궁, 영탑전, 독경실, 요사채 등의 기능을 한다. 한정된 건축공간이 수많은 작은 공간으로 분화했다는 것은 ‘복잡하다’는 의미와도 상통한다. 내부는 미로와도 같다. 이 많은 공간들 중 관람객이나 순례객에게 허락된 공간은 20여 개소에 불과하다. 어쩌면 이처럼 폐쇄적인 관람정책이 ‘포탈라궁의 지하에는 샹그리라로 이어지는 비밀통로가 있다더라’ 같은 말을 생기게 했는지도 모른다.관람이 허용되는 공간들은 주로 역대 달라이 라마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들이다. 포탈라궁의 가장 큰 특징이 여기에 있다. 일반적으로 ‘왕궁’이라는 공간은 왕위와 함께 후대의 왕들에게 물려 내려간다. 왕마다 별도의 왕궁을 마련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포탈라궁에는 역대 달라이 라마의 공간들이 모두 별도로 마련돼 있다. 5대 달라이 라마가 생활하고 기도하던 공간 그 너머에는 7대 달라이 라마의 공간이 존재한다. 그 다음은 8대 달라이 라마의 공간이다. 수많은 왕궁들이 포탈라궁 내부에 존재한다.아무리 웅장한 건축물이어도, 그 속에 역대 왕들의 왕궁이 각각 존재하려면 공간의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역대 달라이 라마가 생활하던 공간들은 그리 넓지 않다. 도리어 다른 나라의 왕궁들과 비교하면 초라해 보일 정도로 작고 좁다. 그러나 비록 공간은 작더라도 내부에서 느껴지는 장엄한 기운은 그 어느 나라의 왕궁과 비교해도 우위에 있다.포탈라궁의 또 다른 특징은 건축물 내부에 스투파를 지어 놓았다는 점이다. 스투파는 부처님이나 고승들의 사리를 모셔 놓은 사리탑으로 보통 사리탑은 건축물 외부의 특정 공간에 세운다. 그러나 포탈라궁은 궁전 내부에 스투파를 지어 놓았다. 그 양식은 인도나 스리랑카, 동남아권과 다를 바 없지만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특징이다. 내부에는 역대 달라이 라마의 스투파가 여럿 있지만, 규모 면에서나 화려함에서나 5대 달라이 라마의 것이 가장 눈길을 끈다. 5대 달라이 라마의 스투파는 높이만 12m에 너비가 7.65m에 달한다. 황금 3,721kg과 보석 1만여 개로 외부를 치장했으며, 희귀 보석 명주가 이 스투파를 치장하는 데 사용됐다.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 준다. 5대 달라이 라마를 향한 티베트인들의 존경심을 엿볼 수 있는 유물이기도 하다.조캉에 들어서는 초입부터 순례자들을 만날 수 있다사원 입구에 매달린 타르초가 인상적이다오체투지 순례자들의 성지 외국인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 하는 명소가 포탈라궁이라면 티베트인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곳은 조캉이다. 이곳은 티베트 불교를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성지가 된다. 무슬림들이 메카를 향해 가듯, 수많은 티베트인들이 수천 킬로미터의 길을 따라 오체투지를 하며 라싸로 향하는 이유도 바로 조캉 때문이다.우리는 흔히 동남아로 전해진 남방 불교, 중국으로 전해진 대승 불교라고 배워 왔지만, 실제로는 또 하나의 흐름이 있었다. 바로 파드마삼바바가 히말라야 고원을 넘어가며 전한 밀교다. 8세기경, 당시 투르판 왕국의 33대 왕이었던 송첸캄포는 불교를 받아들여 통일왕국을 굳건히 다진다. 그는 군소 유목민들을 투르판이라는 왕국으로 통일한 최초의 군주였으며 히말라야 지역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왕권을 구축한 왕이었다.송첸캄포는 통일왕국의 위업을 달성한 후 당 태종의 조카인 문성공주를 후궁으로 받아들인다. 송첸캄포가 투르판 왕국을 세우고 수도를 라싸로 옮긴 후, 온갖 재앙이 끊이지 않았는데 주역과 천문에 밝았던 문성공주는 이것이 라싸의 지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라싸의 지형이 나찰녀의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송첸캄포는 문성공주의 조언에 따라 만다라의 형상에 맞춰 방사형으로 사찰들을 건립한다. 특히 나찰녀의 심장에 해당하는 연못을 메우고 그 자리에 사원을 세웠는데, 이 사원이 바로 조캉이다.조캉이 중요한 이유는 이곳에 문성공주가 당나라에서부터 모셔 온 석가모니 불상이 봉안돼 있기 때문이다. 이 불상을 티베트인들은 조오jowo라고 불렀다. 조오를 모신 사원캉, khang이기에 이곳을 일컬어 ‘조캉’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또한 이곳에는 티베트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쫑카파의 상이 모셔져 있기도 하다. 쫑카파는 14세기에 존재했던, 당대 최고의 지성이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그는 타락해 가던 티베트 불교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티베트 불교의 밀교 수행 체계와 핵심을 알기 쉽게 정리해 대중에게 뿌리내리도록 했던 장본인이다. 여기에 송첸캄포 왕까지, 조캉에는 티베트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들이 모두 모여 있다.조캉에서는 눈돌리는 모든 것에 티베트인들의 신앙이 깃들어 있다조캉의 이미지는 황금색이다. 그 찬란한 색감에는 여타의 국가에서 볼 수 있는 황금색과는 다른 깊이가 있다벽 속에 숨겨져 있던 ‘조오’조캉은 라싸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인 바코르 마켓 뒤편에 위치해 있다. 조캉 정문에는 수많은 순례자들이 모인다고 했지만, 그날따라 순례자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다만 소문처럼 티베트인들은 사원 앞에 온몸을 던져 오체투지를 올리고 있었다. 남녀노소, 너와 나의 구별이 없었다. 티베트인이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는 것처럼 합장한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가 이내 두 팔과 이마, 다리를 땅 위에 길게 눕혔다. 이 모습은 종교를 불문하고 종교인이 몸으로 보여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예경이다.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많지만 순례자들이 읊조리는 “옴 마니 파드메 훔” 구절 외에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성스러움은 모두의 입에서 쓸데없는 말을 지웠다.사원 입구에 들어서서 짧은 회랑을 가로지르면 또 다른 문이 자리한다. 그 뒤로 돌아나가야 비로소 조캉의 진면목을 마주하게 된다. 황금빛 지붕이 찬란한 사원의 모습. 회랑의 벽은 온통 벽화로 치장되어 있고, 야크버터가 황홀하게 타오른다. 사원 내부는 티베트 사원 특유의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었다. 어둑한 실내를 밝히는 촛불과 비릿한 야크버터 냄새, 그리고 매캐한 향냄새가 정신을 아득하게 만든다. 어두운 사원의 내부로 발길을 옮기며 기대감이 커지기 시작한다. 조캉이 티베트 불교 최고의 성지인 만큼 법당에는 라마 승려들이 가득 앉아 경을 읽고 있으리라. 낮고 느린 오묘한 소리가 끊이지 않으리라. 그러나 기대는 적잖게 무너져 내렸다. 승려들이 앉아 있어야 하는 자리에는 진보라빛 가사 무더기만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조캉의 내부를 돌다 보면 가이드가 하얀 벽 앞에서 발길을 멈춘다. 지금의 조캉 사원은 그 벽이 있었기에 최고의 성지가 될 수 있었다. 1960년대 문화대혁명 당시, 중국은 우상숭배를 금지하며 전국의 사원과 불상들을 파괴했다. 당시 조캉의 고승 중 한 명이 문성공주의 석가모니 불상을 지키기 위해 사원의 어딘가에 숨겨 놓고 그 위치를 단 한 명의 승려에게만 전해 주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불상의 위치를 알고 있던 그 승려는 결국 불상을 다시 꺼내지 못하고 입적해 버린다. 수많은 사람들이 불상을 찾았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한 승려의 꿈에 벽 안에 숨겨진 불상이 등장한다. 그 다음날 사원 관계자들은 그 꿈대로 벽 뒤에서 꽤 오랫동안 숨겨져 있었던 불상을 발견하게 됐다. 티베트 불교의 신비로움을 더하는 이야기다.사원의 3층은 라싸 최고의 전망대다. 동서남북으로 뻗은 라싸의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저 멀리에 보이는 포탈라궁의 위용도 함께 볼 수 있다. 눈에 들어오는 조캉의 모습은 어디를 둘러봐도 황금빛이다. 가히 티베트 최고의 성지다운 화려함이다. 조캉의 테라스에서 보이는 건물들은 지붕마다 타르초(경전이 쓰여진 오색 깃발)가 휘날리고 있다. 가만히 그 깃발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푸드득’거리는 소리가 난다. 바람에 깃발이 흔들리는 소리다. 티베트인들은 이를 두고 “바람이 경전을 읽고 갔다”고 말했다. 빛바랜 타르초 뒤로 어느덧 해그림자가 길어진 것이 보였다. 이렇게 라싸의 하루도 저물어가고 있었다.라싸 곳곳에서 순례자들을 만나게 된다. 마치 도시 전체가 순례지인 듯하다라싸의 하늘은 더없이 푸르다. 그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보는 사람의 마음도 파랗게 순수로 돌아갈 것만 같다10년의 기다림, 이틀간의 짧은 꿈 티베트를 알게 된 것은 10년 전의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땅을 밟고 돌아와 그네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텔레비전과 인쇄매체에서는 수시로 달라이 라마가 등장했으며, 서구에서는 ‘신비한 땅, 티베트’의 이미지를 끝없이 쏟아냈다. 한 번은 그 땅을 밟고 서서 그네들의 이야기를 톺아 보고 싶었지만, 두 발로 그 땅을 디디기까지 정확히 1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나마도 그 땅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이틀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긴 기다림, 짧은 꿈’이라는 문구가 실감날 수밖에 없었다.기다림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에는 괴로움도 함께 찾아왔다. 호흡의 어려움과 편두통이라는 고산증세다. 아침이면 간밤의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고산증이 심한 사람들은 산소통의 힘을 빌어야 했다. 그 모든 난관에도 불구하고 진정 시리도록 파란 하늘과 순박한 티베트인들의 미소에는 누구든 감탄이 터졌고, 그래서 견딜 만했다. ‘스트레스’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들. 낯선 이를 경계하지 않으며, 민족의 아픔에 대해서도 오래 전 수많은 피를 불렀던 폭력의 업보라고 받아들인다는 그들. 빠르고 치열한 경쟁의 세상에 익숙한 도시인에게는 경외심마저 들게 하는 곳이 라싸였다.라싸 공항을 다시 찾았을 때는 숨쉬기 편한 곳으로 돌아간다는 안도감이 찾아왔다. 마치 다시는 그 땅을 찾지 않을 것만 같았지만, 그 생각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비행기에 오르자 이내 다시 그 땅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순박한 그 미소 때문일까. 아니면 강렬하게 찔러 오던 태양 때문일까. 딱 부러지는 이유는 찾기 어렵다. 그러나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꼭 다시 그 땅을 찾겠다는 마음을 다지게 되는 묘한 땅. 그래, 그래서 그 많은 사람들이 히말라야의 바람소리를 그리워하나 보다. 라싸는 그런 땅이었다. 돌아서면 그리워지는.포탈라궁▶travel infoAIRLINE인천에서 쓰촨성 청두까지 2시간, 그리고 다시 라싸까지 3시간 반이 걸린다. 쓰촨성 청두까지는 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해 국제항공, 사천항공, 동방항공 등의 중국 민항기들이 있다. 청두에서 외국인 출입 허가증을 받은 후 다시 국내선을 이용해 라싸로 들어갈 수 있다.TRANSPORTATION오프로드를 즐겨라 티베트 자치구로 향하는 여러 방법 중 험준한 비포장길을 따라 자동차로 이동하는 오프로드 여행이 인기다. 이동하는 구간의 자연경관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다고 현지인들은 말한다. 주로 베이징, 칭하이성, 쓰촨성, 윈난성 등에서 출발하며, 라싸까지 들어가는데에 짧으면 3일, 길게는 5일에서 일주일 정도 걸린다. 크게 세 가지 루트 중 쓰촨성에서 넘어가는 구간이 가장 위험하지만 가장 아름답다. 외국인들은 이동 시 진행 방향이나 동선을 파악하기가 어려운 관계로, 운전기사를 별도로 고용하는 것을 권장한다.FOOD당신의 입맛을 저격하다 티베트 음식은 대체로 한국인들에게 아주 잘 맞는다. 그만큼 한국 음식과 간도 비슷하고 맛도 익숙하다. 대표적인 음식은 뚝바, 텐뚝이다. 뚝바는 티베트식 칼국수, 텐뚝은 티베트식 수제비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외에도 초우민, 탈라 누들 같은 음식들도 권할 만하다. 다만 야크 특유의 냄새를 싫어한다면, 사전에 쇠고기나 양고기로 바꿔 달라고 주문할 것. 물론, 고기를 아예 빼고 조리하는 것도 가능하다. 라싸에서 꼭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은 또 있다. 티베트의 술 ‘창chang’이다. 곡주로, 그 맛은 마치 예전 우리가 집집마다 담가 먹었던 가양주와 닮아 있다.INFORMATION티베트의 깃발타르초는 불교경전을 새긴 오색 기도깃발들을 만국기처럼 줄에 매달아 놓은 것이다. 룽다는 하나씩 세워 다는 큰 깃발로 ‘바람의 말’이라고도 불린다. 타르초는 빨강, 파랑, 노랑, 초록, 하양으로 구성되는데, 각각 불, 우주, 땅, 공기, 물을 상징한다. 티베트인들은 타르초를 바람이 잘 부는 곳에 설치한다. 타르초가 바람에 휘날리는 만큼 그들의 불심도 멀리 퍼져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일반 가정집의 옥상이나 마당에서도 타르초와 룽다를 쉽게 볼 수 있으며, 티베트의 설날인 매년 1월3일 새 타르초와 룽다로 바꿔단다고 한다.마니차PRAYER WHEEL티베트인들이 가장 많이 애용하는 기도물품이다. 티베트인들은 ‘최고르’라고 부르는데 국내에서는 마니차라고 알려져 있다. 손안에 들어오는 작은 사이즈부터 높이만 수십 미터에 달하는 것까지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주로 원통에 추가 달려 있어 뱅뱅 돌리면서 들고 다니거나, 벽에 설치된 것을 돌리면서 지나간다. 내부에는 ‘다라니’라 불리는 경전이 들어 있다.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공부와 수행을 해야 하는데, 일반인들은 그 과정을 따라가기 어렵다. 그래서 일반인들도 쉽게 수행의 공덕을 쌓고자 만들어진 도구다. 마니차를 한 번 돌리면 다라니를 3,000번 읽은 공덕이 쌓인다고 알려져 있다. 불교의 종파 중 하나인 밀교 문화권에서 주로 볼 수 있다.에디터 손고은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정태겸 취재협조 중국국가여유국 서울지국 www.visitchina.or.kr
  • 해외여행 | 세 가지 빛깔 네팔 여행

    해외여행 | 세 가지 빛깔 네팔 여행

    히말라야를 품은 순백의 나라, 설산만큼 순수한 사람들이 사는 대지, 가난해도 행복지수가 높은 무욕의 삶….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네팔의 표정은 훨씬 다채로웠다. 카트만두, 포카라, 치트완으로 떠난 백, 청, 홍 세 빛깔 네팔 여행기. ●白 포카라Pokhara히말라야 미니 트레킹 포카라에 머문 사흘 내내 찌푸렸다. 네팔의 우기(6~9월)는 9월 중순 끝자락으로 몰려서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하늘은 잿빛에서 먹색으로, 다시 희붐하게 변색하며 비를 흩뿌리다 거두길 거듭했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Annapurna는 그 너머에서 아득했다. 짙고 자욱한 흰 벽 뒤로 안나푸르나안나푸르나 지역은 에베레스트Everest 지역과 함께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산맥을 구성하는 산군이다. 만년설로 새하얀 안나푸르나 주봉8,091m을 비롯해 안나푸르나Ⅱ7,939m, 안나푸르나 남봉7,219m, 마차푸차르Machhapuchhre 6,998m 같은 고봉준령이 불쑥 잇따르며 수직의 위용을 과시한다. 산 좀 탄다 싶으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4,130m나 마차푸차르 베이스캠프MBC 3,700m로 방향을 잡는다. 시간, 체력, 경험 모두 충분치 않을지라도 사랑코트Sarangkot 1,592m나 푼힐Poonhill 3,210m 같은 전망대가 있으니 안나푸르나 조망은 어렵지 않다. 관건은 언제나 날씨다. 안나푸르나로 향할 때 그 전초기지는 네팔 제2의 도시 포카라다. 네팔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페와 호수Phewa Lake 덕분에 호반 휴양도시의 정취가 물씬하다. 맑은 날이면 안나푸르나 연봉이 호수 표면에 그대로 내려앉는데 그 환상 같은 풍경을 쫓아 노 젖는 배들로 호수는 복작댄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부질없을 줄 알면서도 작은 나무배에 올랐다. 거무튀튀한 구름에 막힌 빛이 호수 물빛을 괴이할 정도로 짙은 옥빛으로 만들었을 뿐 안나푸르나의 반영은 없었다. 날씨 흐린 게 제 탓도 아닌데 여자 뱃사공은 기회 날 때마다 탁한 허공을 가리키며 저 즈음에 안나푸르나가 있다는 둥 어쨌다는 둥 졸지에 죗값을 치렀다. 끝내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꼭 보고야 말겠다는 헛된 욕심만 부풀렸다. 안나푸르나 미니 트레킹은 그래서 더 비장했다. 오스트레일리안 캠프Australian Camp 1,920m를 목적지로 삼았다. 푼힐 전망대나 사랑코트 같은 대중적 코스에 비하면 생소하지만 그만큼 덜 북적이고 더 호젓하다. 포카라에서 차량으로 40~50분쯤 굽이진 산길을 오르면 칸데Kande 1,750m라는 마을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오스트레일리안 캠프까지는 한 시간 반 정도 산행거리다.그저 산을 좋아할 뿐이라는 원로급 산악인 여럿도 동행했다. 소싯적부터 히말라야를 숱하게 오르내린 산악인의 아우라는 숨길 수 없었다. 꼬박 이틀을 걸어 올랐던 길을 이제는 차로 단박에 오르니 그 감회도 남달랐으리라! 초행 초보 트레커의 기운을 북돋기 위함이었을까, 일순 안나푸르나가 구름 커튼을 젖히고 빼꼼히 내려봤다. 푸른 다랑이 논 위로 드러난 은빛 자태가 눈부셨다. 극적인 등장에 우왕좌왕 헤매다가 금세라도 숨을까 조마조마했다. 저 위에 오르면 더 가까이에서 더 웅장하게 맞이할 수 있겠지, 숨이 헉헉대는 가파른 길이었지만 흥이 났다.그 비탈길을 오르내리며 등하교하는 산간 마을 꼬마들과 마주칠 때면 밭은 숨이 창피했다. 나마스테! 이방인과 현지인의 길이 교차했다. 구름이 몰려오니 서둘러라, 하산길의 이방인이 조언했을 때 이미 때는 늦었었나 보다. 안개인지 구름인지 모를 흰 벽은 아무리 기다려도 걷힐 성싶지 않을 만큼 짙고 자욱했다. 아랫마을 담푸스Dampus로 옮겨 다시 기회를 엿봤지만 아예 비가 내렸다. 더 이상 욕심 부릴 수 없으니 차라리 후련했다. 빗속에서 노래가 퍼졌다. 인생을 읊조렸고 사랑을 갈구했다. 산사람들의 노래는 처연했다. 4년 전 9월 중순, 안나푸르나 남벽 등정을 위해 떠났다가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는 박영석 대장과 대원을 위한 조가였다. 조가는 비와 안개를 뚫고 더 다가갈 수 없는 아득한 산에 스몄다. 서로들 촉촉해진 눈을 피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靑 치트완Chitwan네팔 정글 사파리 네팔의 단편만 알았던 덕에 치트완은 흥미로웠다. 위로 솟은 수직의 히말라야 대신 수평의 평야와 밀림이 드넓었고, 카트만두의 소음과 번잡함은 찾을 길 없이 고요하고 평온했다. 코끼리, 코뿔소, 호랑이 노니는 그곳에서, 아련한 향수에 젖었다. 수평의 푸른 대지에서 향수에 젖다새로운 네팔을 만나는 데는 카트만두에서 소형 비행기로 30분이면 족했다. 치트완 바라트푸르공항Bharatpur Airport에 내리자마자 덥고 습한 기운이 턱 몰려왔다. 네팔 남부 지역이니 당연했지만 히말라야 설산의 차가운 기운만 떠올렸던지라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드넓게 펼쳐진 초원과 평야도 생경했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의 나라에서 해발 60m에 불과한 수평의 대지가 이토록 광활했다니…. 뒤통수를 맞은 듯 얼얼했다. 타루Tharu족이 살고 있는 치트완 사우하라Sauraha 마을은 아련한 향수를 불렀다. 영락없이 30~40년 전 우리네 시골마을이었다. 저녁밥 짓는 연기가 피어올랐고, 하릴없는 아낙들은 삼삼오오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너른 풀밭을 운동장 삼은 천진난만한 동네 꼬마들 사이로 물소가 풀을 뜯었다. 호박잎 줄기를 벗기는 처자는 수줍은 미소로 이방인을 바라봤다. 흙벽과 나무로 지은 집은 초라하다기보다 따스함으로 정감 어렸다. 조무래기들은 자기들이 찍힌 사진을 보며 까르르르 웃고는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다시 찍어 달라 카메라 앞에 섰다. 잊었던 어린 시절 해질 무렵의 풍경이 떠올라 아련했다. 그 마을에서 치트완 정글 탐험에 나섰다. 치트완은 1973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됐고 유네스코는 1984년 세계자연유산 목록에 올렸다. 희귀종인 외뿔코뿔소와 멸종위기종인 벵골호랑이 등 40종 이상의 포유동물과 450종 가량의 조류가 서식하고 있단다. 마을에 호랑이와 코뿔소 조형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카누에 정글 트레킹 그리고 코끼리 등에 업혀서까지 치트완 정글 곳곳을 누볐는데, 932km2에 달하는 전체 면적을 생각하면 진면목에 다가서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투어용’으로는 탁월했다.나무 카누에 올라 마을과 정글을 가르는 라프티강Rapti River의 흐름을 따랐다. 땅 속과 위, 그리고 물 속에서 각각 1,000년씩 총 3,000년을 살 정도로 단단하다는 살Sal나무로 만든 카누였지만 야생 악어와 맞닥뜨렸을 때의 긴장감은 어쩔 수 없었다.물 속에 손을 넣지 말라는 정글 길잡이의 지시에 충실할 수밖에…. 강 양쪽 둑으로 공작새며 이름 모를 야생조류들도 출몰했는데 악어와 달리 평온함을 선사했다. 탐험객의 긴장이 느슨해졌다고 판단한 건지, 길잡이는 카누에서 내려 정글 트레킹에 나서기 전 잔뜩 겁을 줬다. 코뿔소와 곰은 물론 호랑이와도 마주칠 수 있으니 반드시 뭉쳐서 다녀야 한다는 둥, 코뿔소가 달려들 때는 지그재그로 도망쳐야 한다는 둥, 얼마 전 마을의 한 소녀가 호랑이에게 공격당했다는 둥 진지했다.정작 정글에서 만난 것은 순하고 겁 많은 사슴과 들소뿐이어서 맥이 풀렸다. 호랑이와는 마주치지 않은 게 오히려 다행 아니냐며 스스로 다독였다. 다음날, 코끼리를 타고 정글 투어에 나섰다가 강가 진흙에 선명하게 찍힌 호랑이 발자국을 보니 더욱 그랬다.조련사까지 포함해 5명을 등에 업고 물살 센 강을 건너고 빽빽한 숲을 비집는 코끼리의 수고스러움에 대한 연민만 극복한다면 코끼리 정글 트레킹은 이곳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정글 탐험법이다.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코끼리 걸음 특유의 리듬에 몸을 맡기고 정글의 정취를 느긋하게 누렸다.호랑이쯤 못 보면 어때, 일찌감치 욕심을 버렸는데 풀숲에서 뭔가 바스락거렸다. 기연가미연가 시선을 집중하려들자 쑤욱 육중한 몸을 드러내는 코뿔소! 코끼리에게 덤벼들면 어쩌나 걱정도 잠시, 녀석은 관심 없는 듯 느릿느릿 제 갈 길 가며 제 볼일을 봤다. 무사의 철갑을 두른 듯 빈 틈 없는 그 투박한 외양이 맘에 들었다. ●紅 카트만두Kathmandu세계문화유산 순례 4월 네팔을 흔든 강진은 수도 카트만두에도 상처를 남겼다. 생명과 문명이 스러졌다. 5개월이 흘렀어도 상흔은 있었다. 다행히 흐릿했다. 삶은 일상을 되찾았고 흔들린 건물은 다시 섰다. 카트만두의 세계문화유산도 변함없이 여행자를 반겼다. 카트만두 첫 여행자들이 대개 그러하듯 타멜 시장Tamel Market에서 일정을 시작했다. 카트만두의 대표적 전통시장이다. 이어지다 갈라지고 다시 합류하기를 반복하는 골목 길목마다 삶의 활기가 펄떡였고, 골동품이며 과일이며 옷가지며 삶을 지탱하는 물품으로 빼곡했다. 크고 작은 불탑과 힌두교 건축물도 가세해 티베트불교와 힌두교가 혼재된 네팔의 색채를 더했다. 네팔의 옛 왕국들은 카트만두 밸리Kathmandu Valley로 불렸던 카트만두 분지 일대를 본거지로 삼았다. 카트만두, 박타푸르Bhaktapur, 파탄Patan 왕국이다. 왕궁과 함께 네팔 전통 건축물이 보존돼 있어 가치가 높다. 유네스코도 일찌감치 그 가치를 인정했다. 네팔의 8개 세계문화유산 중 석가모니의 탄생지인 룸비니Lumbini를 제외하고 모두 카트만두 밸리에 있다. 이러니 카트만두 여행은 곧 세계문화유산과의 동행일 수밖에 없다. 타멜 시장의 인파에 밀리다 더르바르 광장Durbar Square에 다다랐다. 왕궁이라는 뜻을 지닌 더르바르는 이곳이 옛 왕궁이었음을 알려 줬다. 힌두교의 원숭이 수호신인 하누만에서 이름이 유래된 하누만 도카Hanuman Dhoka 왕궁이 중심이다. 자간나트 사원Jaganath Temple에 서서 광장을 둘러보니 어떤 건축물은 나무 버팀목에 의지한 채 위태롭게 서 있었다. 가시지 않은 지진의 상흔이었다. 자간나트 사원 처마 받침목의 ‘에로틱 조각Erotic Carving’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 무거운 마음이 조금 가셨다. 다산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남녀의 성애 장면을 조각했다고 하는데 노골적이어서 살짝 민망했다. ‘살아 있는 신’ 쿠마리가 살고 있는 쿠마리 사원Kumari Ghar에도 들렀지만 만나지는 못했다. 힌두교의 여신을 대신하는 살아 있는 신으로, 3~8살 소녀 중에서 선택해 이곳에 모시고 초경 때까지 섬긴다는데, 종교적 행사가 아닌 이상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 채 갇혀 지내는 셈이니 외지인의 시각에서는 측은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3대 고도 중 파탄을 만나지 못해 아쉬웠지만 붉은 기운이 감도는 박타푸르가 이를 달랬다. 옛 정취가 고스란하고 규모도 컸다.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초에 세워진 옛 건축물들이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중세 도시에 현대인이 거주하는 풍경은 압권이었다. 세계적 문화재 속에 일반인의 주거지가 함께 있다니, 놀라웠다. 광장과 골목마다 가게가 즐비했고 사원이나 왕궁 앞에서도 아무 거리낌 없이 무리 지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다. 타우마디Taumadhi 광장의 위용이 가장 높았는데, 하늘로 솟은 5층 규모의 냐타폴라Nyatapola 사원 덕택이었다. 그 사원에 올라 내려다보니 박타푸르가 한눈에 들어오며 마치 중세시대로 거슬러 간 듯했다. 옛 왕국이 아니더라도 세계문화유산은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보드나트Bodhnath는 네팔에서 가장 큰 불탑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티베트 불교 순례자들과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순례자들은 거대한 스투파를 시계 방향으로 돌며 의식을 치렀고, 한 번 돌릴 때마다 불교 경전을 한 번 읽은 것과 같다는 ‘마니차’는 멈출 틈이 없었다. ‘네팔 속의 작은 티베트’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았다. 원숭이가 많아 원숭이 사원으로도 불리는 스와얌부나트Swayambhunath 역시 마찬가지였다. 2,000년 역사를 지닌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 사원인데, 힌두교 양식도 보태져 독특한 분위기를 풍겼다. 300여 개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하얀 돔과 황금빛 첨탑이 눈부신 스투파가 압도했다. 스투파에 새겨진 ‘부처의 눈’은 신성한 눈빛으로 아래를 내려다봤다.네팔 힌두교 사원을 대표하는 파슈파티나트 사원Pashupatinath Temple도 지나칠 수 없었다. 네팔 최대의 힌두교 사원이자 성지인데, 외지인에게는 네팔 힌두교인의 장례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장소로 더 의미가 있다. 사원 앞으로는 인도 갠지스Ganges강으로 연결된다는 바그마티Baghmati강이 흐른다. 살아서는 여기에서 몸을 씻고 죽어서는 이곳에 뿌려지는 게 힌두교도의 종교적 소망이라고 한다. 강둑에 늘어선 화장시설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장작불이 꺼지면 바그마티강에 뿌려지겠지, 누군가의 마지막 소망이 이뤄지고 있는 그 순간, 어린 소녀는 그 강에서 머리를 감았다. ▶travel infotravel TIP지진 이후 네팔여행2015년 4월25일 지진 발생 이후 우리 정부는 네팔 여행 안전정보를 상향 조정했다. 에베레스트, 안나푸르나, 랑탕 3개 등반지역에 대해서는 ‘철수권고’를, 그 외 지역에 대해서는 ‘여행자제’ 조치를 취했다. 이번 취재는 지진 후 5개월 뒤인 9월 중순에 이뤄졌다. 전문 산악인과 미디어로 구성된 답사팀이 직접 네팔의 주요 여행지를 경험했으며 답사결과를 토대로 여행에 무리가 없다는 점을 주네팔한국대사관 등에 전했다. 대한항공도 지진 여파로 주 1회로 감편했던 인천-카트만두 노선을 10월2일부터 주 2회로 정상화했다. 주네팔한국대사관측은 우기(6~9월) 이후 여행안전정보 단계 재조정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11월10일 현재까지 기존 단계가 유지되고 있다. 네팔 여행 적기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우기(6~9월)가 아닌 10월부터 5월까지가 적기다. 네팔 남부 치트완은 고온다습해 한여름에는 무리가 따를 수 있다. 안나푸르나로 향하는 관문도시인 포카라는 상대적으로 덜 덥고 덜 추운 편이다. 고도에 따른 기온차가 심한 만큼 겨울철 트레킹에는 특히 방한에 신경 써야 한다. 히말라야 트레킹과 문화탐방3대 주요 등반 지역 중 안나푸르나 지역을 중심으로 트레킹이 서서히 이뤄지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안 캠프’는 중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기존의 푼힐 전망대 등을 대신해 트레킹 전문여행사인 혜초여행사가 새롭게 개발한 미니 트레킹 코스다. 하산까지 6시간 가량의 트레킹으로 안나푸르나를 조망할 수 있다. 혜초여행사는 우리네 둘레길처럼 히말라야 주변을 걷는 ‘히말라야 라운드’ 상품, 네팔 문화탐방 상품 등도 운영하고 있다. 혜초여행사 www.hyecho.com 02 6263 2000 히말라야 산악 비행기Mountain Flight국내선에 투입되는 소형 항공기를 이용해서 카트만두에서 히말라야 설산을 한 바퀴 돈다. 손쉽게 히말라야 연봉을 만날 수 있는 방법. 왕복 1시간 가량 소요되며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까지 볼 수 있다. 조종석도 잠깐 구경할 수 있다. 비수기에는 170달러선이지만 성수기에는 230달러 수준까지 오른다. 물론 날씨가 좋아야 가능하다.글·사진 김선주 기자 취재협조 혜초여행사 www.hyecho.com, 대한항공 kr.koreanair.com
  • 강북의 태극기 사랑 전국서 인정받았다

    강북의 태극기 사랑 전국서 인정받았다

    ‘태극기 달기는 강북구가 전국 최고.’ 강북구가 지난해에 이어 2015년에도 태극기 달기 운동으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지난해 12월 강북구가 행정자치부 주관 국가상징 선양 유공 태극기 분야에서 기관표창을 받은 데 이어, 올해엔 지난 22일 태극기 선양사업 주관부서장인 정주영 자치행정과장이 대통령상을 받았다. 강북구는 시민이 애국을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첫걸음이 태극기 사랑이라고 보고 지난해 1월부터 태극기 달기 추진 특별팀을 만들어 태극기 달기 운동을 펼쳤다. 특히 삼일절과 광복절에는 동주민센터 직원을 중심으로 전 강북구 직원이 나서는 열의를 보고 주민들도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민간에서 기증한 태극기만 2만 2358개, 태극기 꽂이가 1만 7890개였고 13개 동별로 태극기 꽂이 설치 자율봉사단을 조직하는 등 지역 주민들의 자원봉사와 참여가 이어졌다. 유치원, 어린이집, 초·중·고교 등에서는 태극기 게양 인증 사진 과제, 태극기 그리기 수업 등을 했고, 수유사거리 교통섬에는 800㎡ 규모의 태극기 광장을 조성하는 등 각종 태극기 사랑 운동도 같이 펼쳤다. 이런 노력으로 2013년 한글날에는 14.9%에 불과했던 주민 태극기 게양률이 올해 삼일절에는 67.6%로 많이 늘어난 데 이어, 지난 8월 15일 70주년 광복절에는 71.1%를 기록했다. 국경일이면 강북 주민 10명 가운데 7명은 집에 태극기를 건다. 또 강북구의 태극기 운동은 전국 자치단체 우수 사례로 소개돼 지난 광복절엔 범국가 차원의 운동으로 발전했다. 박겸수 구청장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태극기를 다는 작은 행동에서 시작된다”며 “앞으로 4·19 기념제와 북한산 순례길에 태극기 달기 등을 통해 강북구를 애국의 고장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을밀대 냉면 형제 ‘육수전쟁’ 둘 다 졌다

    을밀대 냉면 형제 ‘육수전쟁’ 둘 다 졌다

    서울 마포구 염리동에 있는 냉면집 ‘을밀대’는 유명한 평양냉면집 중 하나로 꼽힌다. 1970년 영업을 시작한 이곳은 냉면 마니아의 필수 ‘순례지’로 명성이 높았다. 언론에도 자주 등장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창업주 김모씨가 2005년 작고하면서 아들들이 가업을 이었다. 마포 본점을 장남과 차남이 공동으로 운영했다. 하지만 동생이 2010년 4월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분점을 차리면서 형제간에 ‘육수 전쟁’이 시작됐다. 동생은 8년 전 선친이 경기 김포시에 세운 육수공장에서 생산 원가로 육수를 공급받기로 했지만 육수 가격을 산정하는 과정에서 형과 다툼이 빚어진 것이다. 결국 2013년 10월부터는 같은 공장에서 따로 육수를 만들었다. 한달 뒤 모친은 동생에게 육수공장의 소유권을 넘겼다. 일단락되는 듯했던 육수 전쟁은 지난 1월 형이 “육수공장 냉장고와 솥 등의 집기와 받지 못한 육수값, 전기요금 등 3600여만원을 달라”며 동생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법정으로 번졌다. 차남 역시 “과거에 과도하게 지불했던 육수값 9700만원을 돌려달라”며 맞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형제의 육수 전쟁에서 어느 한쪽의 손을 완벽하게 들어 주지는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8부(부장 정은영)는 지난 15일 형이 동생을 상대로 낸 육수공장 집기 및 설비에 대한 소유권 확인 소송에서 형의 청구를 기각했다. 반면 동생이 형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에서는 “동생에게 과다하게 받은 육수 대금 3000만원을 돌려주고 동생도 그동안 지급하지 않은 육수 대금 1024만원을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육수공장 내부의 집기를 형의 소유로 볼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육수공장을 세운 것은 김씨 형제의 부모로 형이 을밀대의 운영 자금으로 설비를 구입했다 하더라도 당시 운영 자금이나 운영 수익을 모두 형의 소유로 볼 만한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또 동생이 육수공장을 물려받기 전에 지불된 육수 가격에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형은 2010년 6월부터 2013년 8월까지 계산 실수로 동생에게 3000만원을 과다 청구했다”고 밝혔다. 반면 동생에게는 공장을 증여받기 전까지 형에게 내지 않은 육수값 1024만원을 돌려주라고 주문했다. 형이 반환을 요구한 공장 공과금에 대해서는 “동생이 육수공장의 소유권을 보유한 뒤에도 형에게 공장 사용료를 요구하지 않는 대신 공과금은 형이 납부하기로 약속했다고 볼 만하다”며 동생의 지급 의무가 없다고 결론 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천주교 ‘자비의 희년’ 13일 개막 미사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폐막 50주년을 기념해 지정된 ‘자비의 희년’을 맞아 오는 13일 교구별로 개막 미사를 거행한다. 이와 함께 교구별로 ‘자비의 문’과 특별 희년 전대사 순례지를 지정, 순례를 통해 참회와 성찰의 시간을 갖고 기도할 수 있도록 돕는 데 나설 방침이다. 우선 서울대교구는 이날 낮 12시 명동주교좌성당 서문 앞에서 성년 선포 및 성문을 여는 예식을 거행한다. 서울대교구는 2016년 병인박해 150주년을 겸해 박해 관련 대표 성지인 절두산·새남터·서소문 순교성지 문을 ‘자비의 문’으로 지정한 바 있다. 이 성문들은 병인박해 포고령의 날인 2016년 2월 23일 연다. 대구대교구는 13일 계산주교좌성당, 광주대교구는 임동주교좌성당과 북동주교좌성당에서 ‘자비의 문’을 개방한다. 한편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홈페이지에 자비의 희년 소개 페이지를 개설해 희년 관련 교황 문헌과 교황청 안내서의 한글번역본, 주교회의와 교구 기관들이 펴낸 연구자료, 순례 지정 성당 지도 등을 제공할 예정이다. 각 교구와 지역 차원의 상설 고해소도 적극 운영하기로 했다. 본당 공동체를 중심으로 기도문을 배포하고 공동으로 봉헌하면서 피정, 묵상 프로그램을 비롯해 희년 관련 행사들도 다채롭게 펼칠 예정이다. 특히 교구별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희년의 날을 지내고 신자들이 보다 구체적으로 동참할 수 있는 나눔 사업 등을 다양하게 실시한다. ‘자비의 희년’은 지난 3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포한 특별 희년으로 지난 8일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의 성문을 여는 미사로 시작됐으며 내년 ‘그리스도 왕 대축일’인 11월 20일까지 계속된다. 김성호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스타워즈’ 주인공 살던 ‘타투인’ 50년 후 현재 모습은?

    ‘스타워즈’ 주인공 살던 ‘타투인’ 50년 후 현재 모습은?

    지난 1977년 영화사에 길이남은 기념적비적인 영화 한 편이 개봉됐다. 바로 조지 루카스 감독의 할리우드 SF 영화 ‘스타워즈4’다. 특히 영화에는 태양이 두 개 뜨는 외계행성이 등장하는데 바로 주인공 루크 스카이워커가 살던 ‘타투인’(Tatooine)이다. 루카스 감독이 창조해낸 가상의 공간이다. 최근 포브스, 데일리메일등 해외언론이 타투인의 현재 모습을 보도해 관심을 끌고있다. 실제 외계행성이라고 착각이 들만큼 황량했던 이곳은 아프리카 튀니지 사막 한복판에 위치해있다. 당시 스타워즈 제작진은 이곳에 세트장을 설치하고 여러 명장면을 촬영해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후 이 장소는 스타워즈 팬들에게 있어 일종의 ‘성지순례’ 장소로 각광받았으나 점점 잊혀져 한동안 영화 제작자도 모르는 장소가 됐다. 그렇다면 현재 타투인은 어떤 모습일까? 영화가 촬영된 지 거의 50년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타투인은 그 곳 그 자리에 남아있다. 안타까운 점은 '잊혀진 도시', '버려진 도시' 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사막의 모래바람에 덮혀 '멸망'할 위기에 놓여있다는 사실. 실제로 이는 과학적인 연구로도 증명됐다. 2년 전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 물리학과 랄프 로젠즈 박사는 "초승달 모양의 사구(砂丘)가 매년 15m씩 이곳 세트장으로 확장 중” 이라면서 “몇 년 안에 이곳을 완전히 삼켜버릴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처럼 은하계 저멀리 기억으로 사라진 타투인이 최근들어 다시 조명되는 이유는 오는 17일 개봉 예정인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Star Wars:The Force Awakens)와 맞물려 있다. 이에 전세계 스타워즈 광팬들은 영화 개봉을 기념해 이곳 타투인에 다시 모이는 계획도 추진 중이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LA 총격’ 부부 집에 폭탄 12개… 계획적 테러 무게

    ‘LA 총격’ 부부 집에 폭탄 12개… 계획적 테러 무게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동부 샌버너디노시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의 용의자 부부 집에서 폭탄과 실탄 수천여 발, 폭발물 장치 등이 발견되면서 계획적 테러 가능성에 무게가 쏠리고 있다. 연방수사국(FBI)은 용의자 남편이 최근 사우디아라비아를 여행했으며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FBI의 용의 선상에 있는 테러리즘 관련 인사들과 접촉했다는 것에 주목하며 범행 동기 파악에 주력하고 있다. 3일 FBI에 따르면 총격 용의자 사이드 파룩(28)과 부인 타시핀 말리크(27)의 집에서 파이프 폭탄 12개와 실탄 3000여 발, 폭발물 장치 수백여 개가 발견됐다. 이들이 총기 난사 후 도주하는 데 이용한 검은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서도 자동소총 2정과 권총 2정, 실탄 1600여 발이 나왔다. 이들이 그동안 범행을 계획했다는 점과 14명이 사망하고 21명이 다친 이번 사건보다 더 큰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아직까지 이들의 범행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문제는 ‘이슬람국가’(IS)의 프랑스 파리 연쇄 테러 이후 미 본토를 겨냥한 테러 위협이 이어져 온 상황에서 이들이 IS 등 테러리스트와 연계가 된 것인지 또는 ‘자생적 테러리스트’로 변해 파리 테러 이후 처음으로 미 본토에서 테러를 감행했는지 여부다. 데이비드 보디치 FBI LA지국 부국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미국 시민권자인 파룩은 2003년 성지순례 기간에 수 주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체류했으며 지난해 7월에도 사우디아라비아에 여행 갔다가 파키스탄 출신인 아내 말리크와 입국했다”고 밝혔다. CNN 등 미 언론은 복수의 경찰 관계자 말을 인용해 독실한 무슬림인 파룩이 명백히 급진화돼 왔으며 특히 당국의 대테러 수사를 받아 온 1명 이상과 전화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경찰 관계자는 이들이 연락을 주고받은 것은 몇 개월 전 일이며 빈번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약한 연계”라고 설명한 뒤 “이들의 의사소통이 이번 총기 난사 사건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파악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국가안보팀과의 회의 직후 “현재로서는 범행 동기가 불분명하다”면서도 “테러와 관련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물론 일각에서는 파룩이 송년 행사에서 동료와 다툰 뒤 자리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 잘 알려지지 않은 복지시설을 공격한 점, IS 등 이슬람 테러단체가 이번 사건에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테러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이슬람국가(IS), 어린이 겨냥한 ‘인형 폭탄’ 제작 충격

    이슬람국가(IS), 어린이 겨냥한 ‘인형 폭탄’ 제작 충격

    얼마전 프랑스 파리에서 동시다발 테러를 일으킨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또다른 증거물이 발견됐다. 최근 영국 데일리메일등 서구언론은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인형으로 위장한 급조 폭발물(IEDs) 18개가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이라크 정부군이 발견해 해체한 이 폭발물은 놀랍게도 여자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보통의 인형으로 만들어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영락없는 인형이지만 그 안에는 사람을 살상 할 수 있는 폭탄이 숨어있는 것. 이 인형들은 IS와 적대관계에 있는 시아파를 노린 것으로 매년 이들이 이용하는 순례길에 놓여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충격적인 것은 당연히 인형이라는 특성상 아이들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된다는 점이다. 보도에 따르면 수많은 시아파들은 마호메트의 손자이자 살해당한 이맘 후세인의 순교를 기리기 위해 카르발라시를 찾아가는데 이 인형 폭탄들은 바그다드와 카르발라를 잇는 도로에서 발견됐다. 중동언론은 "지난해 카르발라 순례길에 나선 시아파가 1750만명에 달했다" 면서 "순진한 어린이들에게 예쁜 인형이 폭탄으로 보이지는 않았을 것" 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라크 정부군이 인형을 먼저 발견해 해체했으며 피해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민변 설립한 ‘1세대 인권변호사’ 조준희 前사법개혁위원장 별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초대 대표를 맡았던 ‘1세대 인권변호사’ 조준희 전 사법개혁위원장이 18일 오후 6시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7세.  19일 민변 등에 따르면 경북 상주 출신으로 1963년 서울지법 판사에 임용된 그는 1971년 법복을 벗고 변호사의 길로 뛰어들었다. 그는 3·1 민주구국선언사건, 리영희·백낙청 교수 반공법 위반 사건, 동일방직·원풍모방시위 사건 등 굵직한 시국사건을 맡으며 부당한 공권력과 인권 침해에 맞섰다.  1980년대 이후에도 부천서 성고문 사건, 김근태 고문 사건,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등의 변론과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특별조사단, 수서개발비리사건 진상조사단 활동도 했다. 이돈명, 홍성우, 황인철 변호사와 함께 ‘인권 변호사 4인’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1986년 조영래 변호사 등과 함께 정의실천법조인회(정법회)를 결성했고, 이는 1988년 민변의 모태가 됐다. 민변 초대 대표를 맡은 그는 1994년 인권변호사로서는 최초로 국민훈장 모란상을 수상했다.  2003∼2004년에는 사법개혁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법학전문대학원 도입과 국선변호 범위 확대, 국민참여재판 도입 등 법조개혁의 밑그림을 그렸다. 2005∼2008년엔 언론중재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대법관과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감사원장 후보 등으로 여러 차례 물망에 올랐다.  부인 함옥경씨와 사이에 용석(법무법인 천우 변호사)·용욱(영국 런던 닛산자동차)·혜진(미국 조지아주 순례자의신학대학 교수)씨를 뒀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9호다. 발인은 21일 오전 7시이며 장지는 경북 상주시 헌신동 선영이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하나 되어 기리는 만해 한용운의 삶

    하나 되어 기리는 만해 한용운의 삶

    서울 성북구·서대문구, 충남 홍성군, 강원 인제군·속초시 등 전국 5개 지방자치단체가 ‘만해 한용운’으로 하나가 되었다. 이들 지자체는 모두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이며 승려였던 한용운과 관련한 유적을 보유한 지역으로 그동안 추모제, 축제 등 각각의 방식으로 만해를 기렸다. 지난 16일 성북구청에서 모인 지자체들은 ‘만해 한용운 선양사업 지방정부행정협의회’를 구성하고 앞으로 협력을 다짐했다. 성북구에는 한용운 선생이 직접 지어 말년을 보낸 자택인 심우장이, 서대문구에는 만해가 3·1운동 때 갇힌 서대문형무소가 있다. 홍성군에는 만해의 생가가 있으며 인제군과 속초시에는 만해가 수계한 백담사와 승려로 원적을 둔 신흥사가 각각 있다. 각 지자체는 이번 협의회 구성을 계기로 인적·문화적 교류를 통해 상호발전 방안을 모색하고 ‘만해 한용운 순례길’ 등 관련 사업의 개발과 운영, 문화행사에서 협력할 예정이다. 특히 만해의 삶과 사상이 종교와 시대의 차이를 초월한 교육적 가치가 있다는 데 뜻을 모은 5개 지자체는 각 교육지원청의 협력까지 끌어냈다. 여기에 만해와 관련한 다양한 학술적 자료를 보유한 동국대 만해연구소와도 협조체계를 구축했다. 성북구와 홍성군, 인제군, 속초시 등 4개 지자체는 지난 8월 만해 한용운 순례길을 시범적으로 운영했다. 서대문구는 이번 협약식을 계기로 순례길 운영에 참여할 계획이다. 김영배 성북구청장은 “만해 한용운의 삶과 관련이 있는 지방정부들이 뜻을 모은 만큼 만해의 사상을 청소년들에게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서울광장] 골목길에 묻힌 신화와 전설을 찾아내자/이동구 논설위원

    [서울광장] 골목길에 묻힌 신화와 전설을 찾아내자/이동구 논설위원

    골목길에 묻혀 있는 역사와 민초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찾는 데 관심을 쏟는 자치단체들이 늘고 있다. 아직은 초기 단계로 보이나 잘 다듬으면 새로운 수입원이자 지역을 세계인들에게 알릴 수 있는 관광 아이템을 찾을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인천 남구가 지역의 전설과 구전돼 온 이야기들을 담은 8종의 이야기책을 발간한 것은 이런 연유로 눈길이 간다. 지역에 있는 문학산의 전설, 숭의동 우각로 주민들의 사연, 동네 바위에 얽힌 설화 등을 주민들이 직접 찾아내고 책으로 이야기를 완성해 냈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경인선 기공식을 이곳에서 개최한 사연을 비롯해 향락의 거리로 유명했던 옐로하우스와 독갑다리 이야기 등도 수록했다. 2018년까지 지역의 역사 등을 담은 책 4권을 더 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서울 중구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유성룡 선생의 생가터를 활용해 ‘서애길’과 ‘충무공 생가 복원’을 준비하고 있다. 조선시대 활자를 주조해 서적을 발간하던 ‘주자소 터’의 복원도 꿈꾸고 있다. 특히 한국 천주교 순교의 역사를 간직한 서소문공원 일대를 순례길 등 역사 유적지로 조성할 계획도 갖고 있다. 도심 속 골목길에 묻혀 있는 역사를 바탕으로 이야기보따리를 찾아내려는 것이다. 지방의 도시들은 한 발 더 앞서 있다. 지역과 관련된 신화와 전설들을 바탕으로 축제를 만들어 관광객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을 뿐 아니라 연고권 찾기에 행정기관 간의 마찰도 불사하고 있다. 전남 곡성군이 심청의 이야기를 토대로 축제를 만들었고, 전북 완주군과 김제시는 콩쥐팥쥐 이야기에 대한 연고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남원시는 흥부와 놀부의 고향임을, 전남 장성군은 홍길동의 연고권을 주장하며 생가복원, 축제 등으로 관광자원을 만들어 내고 있다. 냉철하게 보면 우리의 자연경관과 역사, 문화유적은 관광 대국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그랜드캐니언이나 나이아가라폭포와 같은 거대하고 신비로운 자연경관을 갖지는 못했다. 중국의 자금성이나 만리장성, 인도의 타지마할과 같은 유적지와 비교하면 우리의 역사, 문화 유적들은 규모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오죽했으면 세계경제포럼(WEF)은 2015년 관광경쟁력 보고서를 통해 우리의 자연자원 경쟁력에 세계 107위라는 순위를 매겼을까 싶다. 이런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고 세계인이 찾고 싶어 하는 매력적인 관광지가 되려면 좀 더 흥미로운 소재 거리가 필요하다. 케이팝과 드라마 등 문화 한류가 그동안 그 역할을 해 왔다. 단시간 내에 외국인들을 끌어들이는 데 한류가 가장 큰 영향을 발휘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남이섬이 드라마 ‘겨울연가’로 알려지면서 한 해 수만 명의 내외국인이 찾는 명소가 됐고,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로 서울을 찾거나 찾고 싶어 하는 외국인들이 많이 늘어났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서울시가 시민들의 불편을 감수하고 할리우드 대작 영화(어벤져스2, 미션임파서블 등)의 도심 촬영을 유치했던 것도 이 같은 효과를 기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아시아권에서조차 8위에 머물고 있는 관광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면 한류를 한 단계 더 성숙시켜야만 한다. 케이팝과 드라마 위주의 한류에 안주해 있을 수는 없다. 팔만대장경, 조선왕조실록 등 유네스코가 인정한 지적 유산들을 활용하든, 도심의 골목마다 숨어 있을 아름다운 신화와 전설들을 찾아내든 한층 더 풍부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찾아내야 한다. 중국, 일본 관광객 위주의 쏠림 현상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서양의 신데렐라 못지않은 재미있고 교훈이 담긴 이야기들이 많은데 잘 알려지지 않아 책을 만들게 됐다”는 지방 공무원의 설명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랑겔리니 해안바위에 설치된 1.25m짜리 작은 인어상이 세계인들이 찾는 관광 명소가 된 데는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가 있었다. 뉴욕 5번가를 세계인들이 찾고 싶어 하는 거리로 만든 것은 오드리 헵번이 주연한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란 영화 한 편이었다. 이보다 더 멋진 이야기보따리가 우리의 골목길에 묻혀 있을지 모를 일이다. yidonggu@seoul.co.kr
  • [김동률 교수의 1980’s 청춘의 재발견] (3) 한국영화와 극장가

    [김동률 교수의 1980’s 청춘의 재발견] (3) 한국영화와 극장가

    “안인숙 예쁜 젖꼭지 본 사람, 손들어 봐.” 까까머리 십대 시절 국어 시간, 선생님이 느닷없이 던진 질문이었다. 순간 교실안은 와 웃음이 터졌다. 잠시 후 선생님이 “아니 ‘별들의 고향’ 정도는 형님 옷이라도 입고 봐야지” 하고 넘어갔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그랬다.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를 보러 갔다가 학생 주임 선생에게 귓바퀴를 잡힌 채 끌려 나오던 그 시절 선생님의 충격적인 말씀에 여주인공 안인숙의 중요 부위는 보질 못했지만 어쨌든 그 영화가 대단한 영화라는 것은 확실하게 알았다. 그러나 정작 영화는 극장에선 보지 못하고 스무 살이 넘어 어찌어찌해서 비디오로 본 기억만 남아 있다. 1970~80년대 비록 초라했지만 한국 영화가 우리 곁에 있었다. 그때는 한국 영화를 방화라고 했다. 할리우드에 비해 변방에 있다는 의미로 유추된다. 한국 영화에 대해 자존감이 없음을 상징하는 말쯤으로 보면 되겠다. 그래서 영화인들은 언제쯤 한국 영화도 방화가 아닌 영화가 되는 날이 올까 하는 자괴감 속에 살았다. 하지만 그런 방화도 80년대 청춘에게는 단연 인기였다. 컴퓨터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 해외여행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던 곤고했던 시절, 영화는 당연히 그 시절 청춘들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우리는 극장에 입장하려고 일부러 부모님의 옷을 입거나 세탁소에서 빌려 입은 옷으로 극장을 찾았다. 그 시절 선생님은 시도 때도 없이 하필이면 애꿎은 귓바퀴를 잡고 끌어당겼을까. 지금도 의문이다. 70년대를 상징하는 영화가 앞서 예를 든 ‘별들의 고향’이라면 80년대를 관통하는 영화로는 ‘겨울 나그네’가 있다. 슈베르트 연가곡 ‘겨울 나그네’를 연상케 하는 이 영화는 대중작가 최인호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 아직은 젊었던 안성기, 풋사과 같았던 강석우, 이미숙이 주인공이다. 자학하던 80년대 청춘들은 영화에 열광했으며 시국 상황을 잊고 잠시나마 달콤한 연애를 꿈꾸기도 한다. 그렇고 그런 주제이지만 잘 버무려진 영화였다. 개봉 당시 ‘겨울 나그네’는 시대를 반영하는 아이콘으로 일약 부상했고, 80년대 서울 거리에는 ‘겨울 나그네’와 ‘보리수’란 이름의 다방과 빵집이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났다. ‘겨울 나그네’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보리수’ 같은 독일 리트(가곡)들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그뿐인가. 영화 속에서 첼로를 들고 가던 이미숙이 강석우와 부딪쳤던 연세대 교정과 강석우가 바래다주고 쓸쓸하게 돌아가던 세브란스병원 언덕 위의 하얀 대리석 돌집은 그 시절 청춘들이 한 번쯤 찾아보던 명소가 된다. 70, 80년대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끈 영화는 대개 신문 연재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신문이 배달되면 연재소설부터 일단 읽은 뒤 1면, 사회면을 펼쳐 보곤 했다. ‘겨울 나그네’ 역시 신문 연재소설이 바탕이다. 이십대 내가 가장 떨리는 가슴으로 읽은 소설이었다. 1984년 어느 일간지에 연재된 소설은 당시 대학에 다니던 나와 주인공들의 세대가 맞물리면서 묘한 동질감을 안겨 주었다. 우울했던 80년대 중반 늦은 밤 하숙집 길목 가판에 있던 신문을 사들고 읽노라면 나의 고통이 소설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아 흠뻑 빠져들었다. 살벌했던 시대 휘둘린 청춘 남녀의 사랑을 그린 소설은 보도블록을 깨어 던지거나, 겁에 질린 눈빛으로 주위을 둘러보던 그 시대와는 정말 무관한 얘기들이었다. 사회면을 장식했던 핏빛 활자들을 보란 듯이 무시한 소설은 나를 현실과 전혀 다른 달콤한 세계로 밀어 넣었다. ‘오직 한 가닥 타는 가슴 속 / 목마름의 기억으로 / 남몰래 고민하던 민주주의에 대한 간절함’도 소설을 읽는 순간만큼은 잊었다. 실제로 최인호의 소설에서 시대정신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험악했던 80년대 현실의 모순을 문학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점도 이해가 가지만 시대의 아픔을 찾아보기 어려운 그의 글들이 몹시 서운했다. 그의 글을 열정적으로 읽으면서도 그 시절 청년이었던 나는 점차 불편해져 갔다. 그럼에도 그는 80년대 청춘의 상징이 됐고 소설로, 영화로, 우리 기쁜 젊은 날을 사로잡았던 작가임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처럼 80년대의 가난했던 청춘들은 가장 싸게 치이는 극장 데이트와 함께했다. 종로 3가 단성사와 피카디리, 광화문 네거리의 국제극장, 명동 입구의 중앙극장과 충무로 명보극장, 스카라극장, 퇴계로의 대한극장, 낙원상가 허리우드 극장, 을지로의 국도극장은 그 시절 젊음들이 순례하듯 찾던 공간이었다. 그 공간에서 닥터 지바고를, 벤허를,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며 저마다의 사랑을 꿈꿨다. 소피 마르소, 브룩 실즈, 피비 케이츠 책받침이 등장하는 시기도 이때쯤이다. 이제는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재개봉관이 도심 구석구석에 있었고, 낡은 필름이 돌아가는 스크린에는 맑은 날에도 늘 비가 내리곤 했다. 강의 없는 날을 이용해 단골로 들락거렸던, 시인 기형도가 숨진 종로의 파고다극장, YMCA 뒤편의 우미관 등등이 그 주인공이다. 아, 그러고 보니 생각난다. ‘단단한 조가비’란 의미심장한 영화 제목이 내걸린 이대 입구 인근 대흥극장도 단골이었다. 지금은 상상조차 어렵지만 80년대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담배 연기가 자욱한 극장은 낯설지 않았다. 비까지 내리는 스크린은 뿌연 담배 연기로 인해 더욱 흐릿하게 보였다. 지금은 역사가 돼 버렸지만 본영화 상영 전에 꼭 봐야만 했던 대한뉴스도 빼놓을 수 없다. 재개봉관의 경우 술을 마신 관객들 덕분에 코고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추운 겨울날 난방이 잘 되지 않은 극장에서 시린 발을 동동 구르며 영화를 보고 또 옆자리의 여자 친구 손을 가만히 훔쳐 잡았다. 난방과 냉방도 제대로 되지 않았던 극장. 그런데도 영화 팬들은 그러려니 하고 극장을 찾았다. 요즘에는 복합 영화관이 대세다. 한 극장에서 다양한 장르의 영화가 상영된다. 그러나 80년대만 해도 한 극장에서 딱 한 영화만 상영됐다. 유명 영화는 긴 줄이 기본이다. 대박 난 극장에서는 먼저 온 남학생들이 긴 줄 속에서 구운 땅콩 봉지를 들고 여자 친구를 기다리는 풍경도 낯설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대한뉴스도, 그 많던 정들었던 극장들도 더이상 우리 곁에 없다. 80년대 젊음은 극장과 함께 사라졌다. 그런 80년대의 풍경이 지금의 윤제균, 박찬욱, 봉준호와 같은 세계 정상급의 작가가 탄생하는 자양분이 되지 않았을까. 80년대 청춘의 표상이었던 영화 ‘겨울 나그네’의 곽지균 감독은 4년 전 연탄불을 피워 놓고 자살했다. 영화를 보고 열광했던 80년대 젊음을 보낸 지금의 중년들은 그의 자살로 한 시대가 완전히 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특히 생활고로 인해 저세상으로 떠났다는 소식에 우리는 동병상련의 망연자실한 심정이 된다. 그는 “자기 전에 가야 할 먼 길이 있다”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구절을 유서에 남겼다고 한다. 힘들고 지친 나머지 아름답고 아늑한 숲에서 쉬고 싶어도 지켜야 할 약속과 잠들기 전에 가야 할 먼 길이 있다고 강조한 프로스트의 시, 풍운의 정치인 김종필(JP)이 자주 인용해 널리 알려진 구절이다. 그가 지켜야 할 약속은 무엇이고 아직 남아 있는 길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11월 여기저기에서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김동률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 교수
  • “옛사람도 다양한 예술작품 만든 것 알려주고파”

    “옛사람도 다양한 예술작품 만든 것 알려주고파”

    “미술 강의는 시각 자료를 많이 만들어야 해서 힘들긴 하지만, 춤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이 이 시간에 이 자리에 와 있다는 자체가 놀라워요.” 1994년 출간된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50만부 이상의 판매 부수를 기록하며 열풍을 일으켰던 최영미(54) 시인이 서울 관악구의 미술 전도사로 나섰다. 1997년 유럽미술관 순례 산문집인 ‘시대의 우울’을 낸 최 시인은 9일 관악구 평생학습관에서 세계의 명화를 주제로 ‘인문학 특강’을 시작했다. 그는 8개월 전 관악구로 이사 와 관악구민이기도 하다. 최 시인은 “1회로 끝나는 특강이 아니라 한 달 반 가까이 강의를 하니 관악구민이란 정체성을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최 시인의 ‘관악구살이’는 처음이 아니라 이번이 세 번째다.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다닐 때 관악구에서 자취했고, 20여년 전엔 관악구 고시원에서 머물며 첫 시집을 완성했다. 각 지역에서 유명 문인을 유치하려고 집필실 등을 제공하지만, 서울 출신인 최 시인은 50세가 넘어서도 아직 월세 신세를 지고 있다. 관악구로의 이사도 단지 방세가 싸서 결정했다. 20여년 만에 돌아온 관악구는 거리는 깨끗해졌지만 시인에게는 거의 그대로다. 언덕이 많아 겨울이 되면 눈이 오는 걸 걱정해야 하고 벌써 온풍기를 끼고 살아야만 하는 등 집 난방도 허술하다. 마을버스를 이용해야 할 정도로 교통도 불편하다. 대학에서 미술사 강의를 한 적은 있지만 대중을 상대로 하는 강의라 걱정이 많았다. 서양미술은 누드 작품도 많아 도판을 고를 때도 조심스럽다. 외국 여행을 다녀온 수강생들이 시인은 가본 적이 없는 곳에 대해 질문을 할 때는 당황이 된다. 하지만 생업에 종사해야 할 귀중한 낮에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미술 강의를 들으려 시간을 낸 수강생들이 시인에겐 무엇보다 소중하다. “요즘 역사가 화두잖아요? 옛날 사람들은 이렇게 살았고 다양한 양식의 예술 작품을 만들었다는 걸 시민들에게 알려 드리고 싶어요.” 최 시인은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승리의 여신 니케의 조각상 사진을 칠판에 크게 띄우며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조각한 것 같지 않나요?”라고 열띤 질문을 던졌다. 흰머리의 노신사부터 젊은 여성까지 다양한 연령의 수강생들은 일제히 “네~”라고 착하게 답했다. 글 사진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해외여행 | 미처 몰랐던 이탈리아 풀리아 Puglia②Monte Sant’Angelo, Polignano a Mare

    해외여행 | 미처 몰랐던 이탈리아 풀리아 Puglia②Monte Sant’Angelo, Polignano a Mare

    ●Monte Sant’Angelo 동굴 예배당에서 평온을…성당의 재발견 카스텔 델 몬테에서 더 위로 차를 달리면 풀리아주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몬테 산탄젤로Monte Sant’Angelo가 있다. 북부로 올라가는 차장 밖 풍경은 단조롭다. 바닷물을 수차례 걸러 양질의 소금을 만드는 염전과 머지않아 신의 물방울이 될 포도나무, 올리브가 넉넉하게 펼쳐진다. 바다가 있고 너른 평야가 있으니 과거부터 의식주는 풍요했으리라.가벼운 상념에서 깨어나면 차는 꼬불꼬불 가파른 언덕을 쉼 없이 올라간다. 굳이 이 험한 비탈길을 오르는 가장 큰 이유는 성 미카엘San Michaele 성당 때문이다. 성 미카엘 성당은 흔히 생각하는 유럽의 성당과는 여러모로 다르다. 웅장한 규모로 기를 죽이지도 않고 화려한 장식으로 시선을 분산시키지도 않는다. 가르가노산에 기대 세워진 성당 예배당은 동굴을 이용한 독특한 구조가 종교에 상관없이 보는 이를 숙연하게 만든다. 그리스도교 일곱 수호천사 중 하나인 성 미카엘이 3차례 출현한 곳으로도 유명해 순례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성당 안에는 역대 교황의 방문 사진과 성당의 역사가 소박하게 전시돼 있다. 성당에서 나와 언덕을 오르면 노르만노 성이 든든히 버티고 있다. 몬테 산탄젤로는 독특한 수공예품과 빵으로 유명한데 성당과 성을 오가는 언덕길에 상점이 많다. ●Vieste→Mattinata 아드리아해를 만나는 시간 풀리아주는 해안선만 800km다. 산에서 하루를 보냈다면 바다로 나갈 시간이다. 주말이면 사람들은 요트를 타거나 개인 보트를 타고 나가 비치에 누워 휴식을 취한다. 젊은이들은 다이빙을 하고 연인들은 해변에서 키스를 나눈다. 샴페인 한잔의 여유를 어찌 거부하겠는가. 풀리아주의 끄트머리 비에스테Vieste에서 시작해 맛티나타Mattinata까지 3시간 가량의 보트투어는 아드리아해를 느끼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땅에서 보는 바다와 바다에서 보는 땅은 확실히 다르다. 햇빛에 따라 바람에 따라 바다는 검푸르기도 에메랄드빛으로도 변하는데 이곳의 풍광이 여느 바다와 다른 것은 해안 절벽의 색 덕분이다. 흰색을 기본으로 다양한 색이 층층이 쌓인 석회암 절벽은 세월에 순응하며 자연스레 주름진 민낯으로 사람들을 맞는다. 항구를 떠나 강렬한 태양을 온몸으로 받으며 바다를 떠다니면 이탈리아 특유의 강렬한 색감이 어디서 나오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시시각각 그 빛을 달리하는 망망한 바다에서 마주하는 사방은 온통 원색으로 가득하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티 없이 파란 하늘과 바다와 맞닿은 하얀 석회암 절벽이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아침 일찍 해가 들면 바닷물과 어우러져 동굴 벽의 색이 파랑, 빨강 등 다양한 색으로 물든다고 해서 ‘화가의 팔레트’라고 이름 붙은 해상동굴도 있다. 어려서부터 이 같은 풍광을 매일 보고 자라면 제일 먼저 짧아지는 크레파스의 색깔도 우리와는 확실히 다를 수밖에 없겠다. 내용 자체만 치면 아드리아 보트투어도 다도해 선상 유람과 큰 차이가 없다. 선장은 사자를 닮은 바위 아래로 데려가 조물주의 놀라운 솜씨를 보여 주고 하트 모양의 전설을 설명한다. 약간의 차이점이라면 배가 훨씬 날렵하고 플라스틱 잔에 샴페인이 나온다는 점과 선장을 보조하는 가이드가 잡지에서 막 튀어나온 모델같다는 점 정도다. 아, 선장의 운전 솜씨도 아찔하다. 평평한 도로에서 주차를 해도 어려울 것 같은 좁디 좁은 해안가 동굴 속도 자기 집 주차장처럼 여유롭게 들락거린다. 금액도 3시간 코스에 1인당 13유로 정도니까 확실히 싸다. 바다가 고요해서 멀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Polignano a Mare 달력에 나올 법한 예쁜 비치 바리에서 아래로 방향을 틀면 나오는 폴리냐노 아 마레Polignano a Mare라는 그림처럼 예쁜 동네를 놓치지 말자. 이미 언급한 것처럼 풀리아주의 고속도로는 황량하다. 너른 평원에는 올리브와 포도, 수풀이 무리지어 있을 뿐이다. 그런 고속도로 중간중간 휴게소처럼 세워져 있는 마을은 종종 놀랄 만한 경험을 선사한다. 사전 정보나 큰 기대 없이 폴리냐노를 찾는다면 단언컨대 남녀노소 탄성을 내지를 것이다. 폴리냐노의 보물은 작고 예쁜 비치다. 바다를 끌어들이기 위해 일부러 길을 낸 것처럼 마을 안으로 쑥 들어온 해변은 한적하고 아기자기한데 그 바다가 맑고 맑고 맑다. 위에서 본 바다는 수미터가 넘는 수심에도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파도를 막아 주는 독특한 지형 덕에 파도는 호수처럼 잔잔하다. 골목에는 발길을 붙잡는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가득해 여성과 동행했다면 10m 전진을 위해 수많은 인고의 시간을 각오해야 한다. 여기에 국제적으로 유명한 다이빙 포인트도 있으니 1박을 계획해도 좋다. 폴리냐노에 있는 그로타 팔라체세Grotta Palazzese는 세계 10대 경관을 자랑하는 레스토랑 중 하나로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다. 해안가 석회암 동굴 절벽 안에 자리를 잡아 파도소리와 바다 전망이 압권이다. 레스토랑 안에서는 아침에 해가 뜨는 장관도 볼 수 있다. 예약도 예약이지만 점심 식사라도 1인 평균 300유로 정도를 예상해야 하니 예산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TIP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그곳 폴리냐노와 가까운 카스텔라나 그로테Castellana Grotte에 가면 비교적 최근에 탐사를 마친 카스텔라나 동굴Castellana Caves이 있다. 석회암 동굴에서는 시간이 다르게 흘러간다. 석순 1cm가 자라는 데 80년이 필요하고 좀 크다 싶으면 20만년이 기본이다. 아래 위에서 자라 서로 만나기 일보 직전인 석순도 볼 수 있는데 닿을 듯 말 듯한 두 인연이 만나기까지 앞으로도 200년이 필요하다고. 3,000m 길이의 동굴 입구에 있는 지름 60m의 구멍에서 쏟아지는 햇빛이 근사한 장관을 만든다. 안내를 받아 단체로 이동해야 하며 3시간 코스가 기본이다. 1시간짜리 짧은 코스도 선택할 수 있다. 동굴 안은 추우니 바람막이는 필수. www.grottedicastellana.it 글·사진 김기남 기자 취재협조 이탈리아관광청(ENIT) www.enit.it / www.italia.it 풀리아주관광청(PUGLIA PROMOZIONE) www.viaggiareinpuglia.it
  • [길섶에서] 솔뫼 단상/서동철 수석논설위원

    주말, 당진 솔뫼성지를 찾았다. 김대건 신부의 생가를 성역화한 곳이다. 한옥 생가를 중심으로 다양한 시설이 들어서 있었다. 널찍하게 터를 잡은 주차장에는 버스가 줄지어 들고 났다. 전국 성당의 성지 순례단이 많았지만 신자가 아닌 사람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솔뫼성지에는 김대건 신부의 체취만큼이나 지난해 이곳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었다. 성지의 입구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상징물이 세워진 것은 물론 생가 앞마당도 그랬다.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의 방문 직후 안동 봉정사의 모습과 흡사하다고나 할까. 1999년 찾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흔적은 최근에야 조금씩 봉정사에서 지워져 간다. 한국 가톨릭은 척박한 토양에서 기적적으로 고개를 내민 장미꽃과 다름없다. 가톨릭 신앙이 용인되지 않은 나라의 첫 번째 사제인 김대건 신부는 증조할아버지에 이어 순교의 길을 갔다. 그가 바티칸이 공인한 성인의 반열에 오른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친 김대건 신부보다 살아 있는 교황에 오히려 초점이 맞춰진 듯한 솔뫼성지의 모습은 낯설었다. 가톨릭을 너무 모르는 탓인가…. 서동철 수석논설위원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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