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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핵잼 라이프] 시진핑 ‘먹방 힘’… 만두가게 139억 투자 유치

    [핵잼 라이프] 시진핑 ‘먹방 힘’… 만두가게 139억 투자 유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깜짝 방문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온 한 만두 체인점이 현지 대기업과 국유기업으로부터 거액의 투자를 확보한 사실이 알려져 놀라움을 주고 있다. 시 주석의 ‘먹방의 힘’을 보여준 화제의 가게인 ‘칭펑’(慶豊)은 2013년 말, 시 주석이 직접 줄을 서 먹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듬해인 2014년 국경절 연휴기간(10월 1~7일)에는 칭펑 만두가 무려 1200만개나 팔리면서 화제를 모았고, 몇 년이 지난 최근까지도 이 만두가게는 베이징을 찾는 중국인들의 ‘성지순례’ 코스로 꼽혀 왔다. 체인점 형태로 운영되는 이 만두가게는 이후 가맹점 신청이 밀려드는 등 여전한 ‘시진핑 특수’를 누렸고, 최근에는 대기업으로부터 수천만 위안에 달하는 거액을 투자받기에 이르렀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칭펑의 모기업인 베이징 화톈 레스토랑 그룹은 중국 포선 그룹 계열의 상하이 포선 하이테크놀로지로부터 3500만 위안(약 57억 1500만원)을 투자받았다. 뿐만 아니라 중국 국유투자사로부터 5000만 위안(약 81억 6000만원)을 추가로 투자받으면서, 투자금액은 총 8500만 위안(약 139억 원)을 기록했다. 포선은 부동산과 자산관리, 관광산업 등에 포괄적으로 투자하는 그룹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칭펑은 중국 전역에 345개의 체인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해 매출은 4억 700만 위안(약 665억원)을 기록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사설]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국민연금 개혁할 수 있다

    국민연금 개편안을 둘러싼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제 “국민의 동의와 사회적 합의 없는 정부의 일방적인 국민연금 개편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성난 민심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번 논란을 불러일으킨 책임은 절반 이상이 정부에 있다. 보험료 인상과 보험료 의무 납부연령 연장 등 휘발성이 높은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의 방안이 여과 없이 언론에 공개됐기 때문이다. 그렇잖아도 곱지 않은 국민연금에 대한 여론이 추가로 악화된 것이다. 게다가 국민연금의 올해 투자 성과가 나쁜 것으로 드러나 ‘국민연금 고갈’이라는 국민의 불신감을 키우고 있다. 김순례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5월 말 기준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 수익률이 마이너스 1.18%라고 밝혔다. 5개월간 원금을 1조 5570억원 까먹은 것이다. 이는 올해 국내 주식시장의 불황에 따라 어느 정도 예견됐지만,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외압 논란을 빚으면서 1년 넘게 공석인 점이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그나마 다행은 올해를 제외한 국민연금의 누적 수익률은 5%대로 여타 연금보다 높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6~2007년 1차 개혁이 이뤄졌다. 당시에는 현 세대의 부담을 미래 세대에게 과도하게 떠넘기지 말자는 사회적 합의가 쉽게 된 덕분에 더 내고 늦게 받는 개혁이 받아들여졌다. 다시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나오는 것은 현행 ‘덜 내고 더 받는’ 구조를 더 개혁하자는 것이다. 국민연금 고갈 시점이 2057년으로 3년 앞당겨진 탓이다. 게다가 현 국민연금의 실질 소득 대체율은 지난해 기준 24.2%에 불과해 ‘연금 용돈’ 수준이다. 그렇다고 해도 보험료 인상과 소득 대체율 조정, 가입 상한연령 연장, 수령 개시연령 연장 등의 여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정해야 한다.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사회적으로 합의하는 과정을 밟아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제안한 “국회가 주도하는 연금 개편을 위해 사회적 논의기구”는 적극 고려해야 한다. ‘중부담 중급여’ 체제로의 전환도 검토할 시점이다. 퇴직 후 연금을 많이 받으려면 지난 20년간 9%(직장인 4.5%)로 유지된 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하다. 국가가 연간 조 단위의 손실을 보전하고 있는 공무원과 군인, 사학 등 특수직역 연금도 함께 개혁해야 국민연금과의 형평성을 맞출 수 있다. 공무원연금은 그나마 2010년과 2015년 두 차례나 개혁이 시도됐지만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
  • 中 시진핑이 사랑한 ‘만두가게’, 140억 거액 투자받아

    中 시진핑이 사랑한 ‘만두가게’, 140억 거액 투자받아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깜짝 방문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온 한 만두 체인점이 현지 대기업과 국유기업으로부터 거액의 투자를 확보한 사실이 알려져 놀라움을 주고 있다. 시진핑 주석의 ‘먹방의 힘’을 보여준 화제의 가게인 ‘칭펑’((慶豊)은 2013년 말, 시 주석이 직접 줄을 서 사 먹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듬해인 2014년 국경절 연휴기간(10월 1~7일)에는 칭펑 만두가 무려 1200만개나 팔리면서 화제를 모았고, 몇 년이 지난 최근까지다 이 만두가게는 베이징을 찾는 중국인들의 ‘성지순례’ 코스로 꼽혀 왔다. 체인점 형태로 운영되는 이 만두 가게는 이후 가맹점 신청이 밀려드는 등 ‘시진핑 특수’를 누렸고, 최근에는 대기업으로부터 수 천 위안에 달하는 거액을 투자받기에 이르렀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의 10일 보도에 따르면 칭펑의 모기업인 베이징 화톈 레스토랑 그룹은 중국 포선 그룹 계열의 상하이 포선 하이테크놀로지로부터 3500만 위안(한화 약 57억 5300만원)을 투자받았다. 뿐만 아니라 중국 국유투자사로부터 5000위안을 추가로 투자받으면서, 투자금액은 총 8500만 위안(한화 약 140억 원)을 기록했다. 포선은 부동산과 자산관리, 관광산업 등에 포괄적으로 투자하는 그룹으로 알려져 있으며, 2014년 말레이시아 카페 체인에 3500만 달러를 투자하면서 식음료 사업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칭펑에 대대적인 투자를 행해진 것은 국유기업의 효율화를 위한 민간 기업 참여를 독려하는 당국의 방침에 따른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한편 칭펑은 중국 전역에 345개의 체인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해 매출은 4억700만 위안(약 658억 1000만원)을 기록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흥미진진 견문기] 아날로그 감성 충만한 한여름 밤의 ‘소확행’

    [흥미진진 견문기] 아날로그 감성 충만한 한여름 밤의 ‘소확행’

    ‘극장순례’는 종로에서 충무로까지 연결되는 서울의 10대 영화관을 배경으로 한 문화, 영화, 예술을 아우르는 역사탐방 현장이었다. 참가자들은 저마다의 추억을 나누고픈 마음에 무더위를 잠시 잊은 듯했고, 살랑살랑 부는 저녁 바람이 더해져 일제강점기부터 1960~70년대를 거쳐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자연스럽게 타임 슬립 되고 있었다.우미관 터를 거쳐 일제강점기 시절 사설극장이던 ‘조선극장’ 옛터로 발걸음을 옮겼으나 포장마차 골목 한구석에 덩그러니 공터로 남아 있었다. 역사의 한 공간이 술집 골목 끝의 빈 공간으로 바뀌어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허리우드 극장 야외 공연장에서 휴식을 취하며 심흥식 해설사가 소환한 1970년대의 추억에 빠져들었다. 극장 매표소에 ‘55세 이상 경로 2000원’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고 학창시절 유행했던 ‘사랑과 영혼’이나 엘비스 프레슬리 영화도 상영하는 실버영화관이었다. 영화는 세대를 넘어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가장 영향력이 큰 대중매체라는 것을 실감케 했다. 낙원동에서 일행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추억더하기’라는 간판 앞이었다. 여든 살이 넘은 디제이(DJ)가 엘피판(LP판)으로 음악을 틀어주는 곳이다.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자극할 만한 곳이 이렇게 남았구나 하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했다. 서울의 대표 극장 중 하나였던 단성사는 귀금속 매장으로 바뀌어 영화를 직접 볼 순 없지만 내년 10월 27일 최초의 한국영화 ‘의리적 구토’(1919) 상영 100주년에 맞춰 새롭게 개관 및 영화박물관을 추진한다고 한다. 사라지는 역사와 문화에 대해 씁쓸했던 마음이 살짝 위로받았다. 지하철 충무로역 안에는 영화의 메카답게 ‘오! 재미동’이라는 영상센터가 있어 2000편이 넘는 디지털비디오디스크(DVD)를 직접 골라 볼 수 있는 공간이 설치돼 있었다. 인터넷 회원가입 후 월요일에서 토요일 오후 8시까지 누구나 영화 및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극장순례는 연령과 추억이 다른 참가자들에게 하나의 공통 기억과 추억으로 자리하게 될 것이다. 이날 탐방은 추억과 문화를 소환하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기에 충분했다. 김미선 서울도시문화지도사
  • [미래유산 톡톡] 표석도 없이 옛 터만 남은 극장들

    지난 4일 극장순례 답사코스 중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극장은 서울극장과 허리우드 극장, 명보극장 등 3곳이다. 1953년에 지어진 스카라극장은 2005년 문화재청이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 예고하자 소유자가 재산권 침해라며 반발, 극장의 상징인 반원형 현관을 허물고 새 빌딩을 건축하면서 사라졌다. ‘극장의 성지’인 단성사 터에는 문화유산 표석이 서 있고 바닥에는 단성사의 역사를 알리는 동판이 박혀 있었다. ‘1907년 단성사 창립’, ‘1919년 한국 최초의 영화 의리적 구토 개봉’, ‘1926년 나운규의 아리랑 상영’, ‘1935년 한국 최초의 발성영화 춘향전 개봉’ 같은 제목만 보아도 가슴이 마구 떨린다. 단성사 건물 지하에 상영관과 단성사 영화역사관이 내년에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종로3가는 단성사, 피카디리, 서울 등 세 개의 개봉관이 몰려 있어서 ‘골든 트라이앵글’이라고 불렸다. 1990년대 이후 직배사와 복합상영관이 영화배급과 극장을 접수하기 전 영화의 고향 서울 사대문 안에는 국도, 단성사, 대한, 명보, 서울, 스카라, 아세아, 중앙, 피카디리, 허리우드 등 10대 상영관이 건재했다. 그러나 현재 개봉관은 대한과 서울 2곳밖에 남지 않았고, 허리우드는 노인실버극장으로, 1957년 개관한 명보극장은 2008년 폐관하면서 명보아트홀로 이름을 바꿔 뮤지컬 및 연극 전용 극장으로 각각 용도를 바꿨다. 1969년 개관한 허리우드극장은 한때 개봉관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주변 상권이 죽고, 노인들이 탑골공원과 낙원상가 일대에 몰리면서 지난 2009년 노인실버관으로 재개관했다. 1979년 개관한 서울극장은 1990년대까지 서울 시내 10대 개봉관 중 하나로 종로와 충무로 일대 영화의 역사를 대변하는 장소로서 보존 가치를 인정받았다. 1920~30년대 우미관, 단성사와 함께 ‘경성 3대 극장’으로 손꼽히던 옛 조선극장의 쇠락이 아쉽다. 2003년에 종로구 인사동 130 인사문화마당에 설치됐던 ‘조선극장 터’ 표석조차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젠 이곳이 옛 조선극장 터였다는 징표도 없는 것이다. 서울미래유산연구팀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영원한 ‘별들의 고향’… 경성의 낭만을 소환하다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영원한 ‘별들의 고향’… 경성의 낭만을 소환하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3회 극장순례(영화의 고향) 편이 지난 4일 서울 종로와 충무로 일대에서 진행됐다. 여름 야행 두 번째 행사를 맞아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답사단 일행 30여명은 모자와 부채, 손풍선 등으로 완전 무장했지만 쏟아지는 폭염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안전사고를 막고자 도보 코스를 줄이고, 서울신문사에서 때마침 제공한 ‘아이스 쿨 스카프’에 의지해 답사를 마쳤다. 참가자들은 이날 오후 6시 지하철 종각역 3번 출구 앞 종로타워빌딩(옛 화신백화점) 앞에서 집결, 우미관 옛터~인사동 조선극장 옛 터~허리우드극장~단성사 옛터~서울극장~충무로 영상센터 순으로 2시간짜리 극장순례를 다녀왔다. 서울극장에서 충무로 영상센터까지는 지하철로 이동했다. 지난해와 올해를 통틀어 답사 중 첫 대중교통 이용사례다. 해설을 맡은 심흥식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흘러간 추억의 영화는 물론 자신이 경험한 70~80년대 영화의 주제가를 직접 부르면서 영화와 극장 분위기를 전달해 공감과 호평을 얻었다.서울은 극장의 도시이다. 한국영화의 고향이기도 하다. 근대화의 산물이자 대중문화의 상징인 영화는 일제강점기의 수도 경성에서 화려하게 꽃피었다. 1920년대 전후 ‘문화로써 생활의 중심으로 삼는 사상’ 즉 문화주의와 문화운동이 전개되었고, 그 중심에 영화가 있었다. 일제의 통치방식이 ‘무단통치’에서 ‘문화정치’로 색깔을 바꾼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일제의 문화정치는 진정한 의미의 문화주의 정치가 아니라 식민지의 ‘문명개화’(文明開化) 혹은 ‘문치교화’(文治敎化)의 흉내에 불과했지만 500년 봉건왕조의 지배에서 막 깨어난 대중을 유혹하기엔 충분했다. 영화로 대표되는 서울의 대중문화는 양반 선비문화, 고급 엘리트문화에 대항한 문화적 민주주의의 시발점이었다.1930년대 접어들면서 신파극, 뽕짝가요, 영화 등 3대 장르가 주도하는 ‘조선식 대중문화’가 경성에서 폭발했다. 근대화와 식민지 정서가 뒤섞인 독특한 문화양식이었다. 당대 경성의 신인류를 지칭하는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이 낭만주의적 퇴행성을 대표하는 식민지 근대성의 표식이라면, ‘장한몽’(이수일과 심순애),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홍도야 울지 마라) 같은 신파극은 이율배반적 비극미의 표출이었다. 3대 장르에서 짜내는 부조리한 눈물은 대중에게 위안을 제공했다. 체제 순응이라는 자학적 죄의식을 외면하는 핑곗거리를 제공했다. 대중문화는 정치 이데올로기 전파의 수단으로 사용됐다. 특히 영화(Screen)는 성(Sex), 스포츠(Sports)와 함께 ‘3S’의 대명사였다. 1919년 제작돼 한국영화의 기원으로 간주하는 ‘의리적 구토’는 과도기 성격의 영화이다. 연극 무대에서 구현이 어려운 장면이나 풍경을 활동사진으로 찍어서 중간에 끼워 보여주는 연쇄극이었다. 단성사 사장 박승필은 명월관, 청량리, 홍릉, 장충단, 한강철교 등 경성의 명소를 찍어 단성사에서 공연하는 연극의 중간에 삽입했다. 한국영화의 전성기는 1926년 나운규의 ‘아리랑’과 함께 막을 올렸고, 1937년 나운규의 죽음과 함께 막을 내렸다. 최초의 무성영화이자 흥행 대작이었다. 식민지 조선의 암울한 현실과 대중의 민족 정서를 반영한 이 영화는 상영 첫해에 110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아리랑이라는 걸출한 영화 한 편이 영화를 대중문화의 간판산업으로 밀어 올렸다. 1935년 최초의 발성영화 ‘춘향전’이 히트를 한 이후 1938년 경성 시내에서 영화와 연극관객이 하루 평균 1만명에 이르렀고, 1942년에는 연인원 2000만명이 영화와 연극을 관람했다고 한다. ‘영화 경성시대’였다.한국영화는 1950~60년대 르네상스를 맞았다. 1955년 한형모 감독의 ‘자유부인’은 정비석이 서울신문에 연재한 동명 소설을 영화화해 영화 부흥의 기틀을 마련했다. 교수 부인의 바람은 전통적 가부장제를 밑바닥에서 흔드는 발칙한 소재였다. 1961년 한국영화사상 최대의 문제작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을 시작으로 신상옥, 김기영 감독의 작품이 뒤이었다. 1970년대 유신 시절 침체기에 접어든 한국영화는 이장호 감독의 ‘별들의 고향’ 등 호스티스 영화로 명맥을 유지하다가 사회성 짙은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 등으로 되살아났다.극장은 신파극, 뽕짝가요, 영화 등 오락문화를 쓸어 담는 그릇이었다. 본래 연극 공연장이던 극장은 무용·음악·예능 등 무대예술 공연장으로 영역이 확대됐다. 19세기 말 영화의 발명 이후 극장과 영화관이 구별됐다. 무대와 조명을 갖춘 국내 최초의 실내극장은 1902년 서대문밖에 세워진 협률사였다. 로마 원형극장을 본뜬 협률사가 최초의 관립극장이자 서양식 극장이었다면 1908년 신문로에 설립된 이인직의 원각사는 최초의 사설극장이었다. 활동사진 상설극장으로 가장 먼저 개관한 곳은 1910년 종로구 관철동 경성고등연예관이다.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뀐 뒤 1915년 수용인원 1000명 규모의 상설영화관 우미관으로 거듭났다. 판소리와 창극을 공연하던 단성사는 1918년 활동사진 전용관이 되기 전까지 경성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유일한 극장이었다. 무성영화 시절 유명한 변사는 대부분 우미관 출신이었다. 찰리 채플린이 제작·감독·각본·주연을 맡은 무성영화 ‘황금광시대’도 우미관에서 상영했다. 우미관은 단순한 극장이라기보다 종로상권을 넘보는 청계천 이남 남촌에 근거지를 둔 일본 야쿠자의 북촌 진출을 막는 방어선이었다. 종로 주먹 김두한의 사무실이 우미관에 있었다. 영화 ‘장군의 아들’, 드라마 ‘야인시대’의 주 무대이다. 종로2가 길가 화단에 표석이 남아 있다. 답사단이 찾은 종로타워 뒷골목 우미관은 1959년 관철동 우미관이 불타 없어진 뒤 화신백화점 뒤로 옮긴 곳이다. 이전 후에는 이류 재개봉관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다가 1982년 폐업, 지금은 우미관 주차장이 됐다. 1907년에 개업한 단성사는 1919년 ‘의리적 구토’를 시작으로 ‘장화홍련전’과 ‘아리랑’을 상영하면서 장안의 영화 중심가로 떠올랐다. 이후 ‘서편제’ ‘태백산맥’ ‘장군의 아들’ 등을 개봉했다. 1913년 황금연예관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한 국도극장은 일본인 거주지역인 을지로를 대표하는 극장 황금좌로 운영되다가 1948년 개칭했다. 지금은 국도호텔로 변신했다. ‘미워도 다시 한번’ ‘별들의 고향’ ‘겨울여자’를 각각 개봉했다. 1922년에 건립된 인사동의 터줏대감 조선극장은 영화상영과 판소리, 가무곡 공연 겸용관이었다. 김기진 등이 신파극에 대항해 근대 신극운동을 펼친 토월회의 창립공연을 비롯해 명창대회가 열린 유서 깊은 장소이다. 1936년 방화로 소실된 뒤 이런저런 장소로 떠돌다가 포장마차 골목으로 쓰이고 있다. 뒷면 대나무 숲 앞에 조선극장 터 표석이 서 있었으나 훼손돼 사라졌다. 황금좌, 우미관, 단성사, 조선극장이 경성의 4대 극장으로 군림했다. 1935년 설립된 연극전용 동양극장은 1976년 폐관될 때까지 서대문을 대중연극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문희일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서울의 문학1(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일시: 8월11일 토요일 오후 6~8시 ●집결장소: 청계광장(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5번 출구, 1.2호선 시청역 4번 출구)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http://futureheritage.seoul.go.kr)
  • “남북 공동 DMZ 세계유산 등재, 꼭 해보고 싶습니다”

    “남북 공동 DMZ 세계유산 등재, 꼭 해보고 싶습니다”

    올해 상반기에는 유독 문화재와 관련한 굵직한 사안들이 쏟아졌다. 지난 6월 경북 안동 봉정사 등 한국 산사 7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되는가 하면 전북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 20년 간의 복원을 마치고 제 모습을 드러냈다. 2012년 소유권을 되찾은 주미대한제국공사관 건물도 복원 공사를 마치고 지난 5월 113년 만에 태극기를 게양했다.지난해 8월 취임한 김종진(62) 문화재청장은 국내외를 오가며 문화재 역사상 중요한 순간으로 기록된 현장에서 정신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취임 1년을 하루 앞둔 6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만난 김 청장은 최근 문화재청이 이룬 성과에 대해 “최대한 국민과 현장의 의견을 반영한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노력했다”면서 “문화재청 직원들과 매 사안마다 협력해 준 관계자들 덕분에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소회를 전했다. 김 청장은 최근 국내 전통 사찰 7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에 큰 의미를 뒀다. 세계유산 등재 시 관광 자원으로 큰 주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맺은 결실이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바레인에서 열린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에 참석했던 김 청장은 “앞서 ‘한국의 서원’과 ‘한양도성’이 세계유산 등재에 실패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긴장이 됐지만 현장에 가기 전에 왠지 등재될 것만 같은 좋은 느낌이 들었다”면서 “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한 스페인을 비롯해 중국 등이 지지 발언을 해 준 데다 외교부의 협력이 뒷받침되면서 등재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스님들이 종교 활동을 하는 동시에 일반인들의 휴양 공간으로도 이용되는 복합 승원의 의미를 짚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국내외적으로 가치를 알릴 예정”이라면서 “(한국의 산사가) 장차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좋은 경관과 마음이 차분해지는 분위기를 동시에 선사하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남북 간 화해 분위기 덕분에 자연스럽게 남북 문화재 교류에 대한 안팎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향후 북한과의 교류·협력 사업을 통한 한반도의 문화유산 보호 및 관리에 있어 문화재청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는 시점이다. “지난 5월 우리나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협약 가입 30주년 기념 국제세미나’ 참석차 방한했던 유네스코 관계자들이 강원 철원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했었어요. 궁예도성 등 문화유산과 더불어 자연유산까지 두루 갖춘 DMZ를 보면서 남북이 향후 공동으로 세계유산에 등재하면 유네스코 정신에도 부합하고 여러모로 의미가 클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해당 지역을 발굴하기 위해서는 지뢰 제거 등의 사전 준비 과정이 필요한데, 그 행위 자체가 평화를 상징하는 데다 역사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저희로서도 상당히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남북 관계가 진전되면 꼭 해 보고 싶은 일이기도 합니다.” 문화재청은 안동 임청각이나 경복궁 흥복전, 덕수궁 광명문 등 일제가 훼손한 문화재의 원형을 복원하는 한편 항일 독립 문화유산을 지속적으로 문화재로 등록하고 있다. ‘일제 주요 감시 대상 인물 카드’가 그중 하나다. 일제강점기에 사상이나 보안과 관련해 감시해야 할 인물 4858명에 대해 작성한 신상 카드다. 안창호, 이봉창, 윤봉길, 유관순 등 독립운동가와 민족주의자였다가 후일 친일 활동을 한 이광수, 주요한, 최남선 등이 포함됐다. 문화재청은 이를 조만간 문화재로 등록할 방침이다.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이자 독립운동의 산실인 안동 임청각(보물 제182호)은 1942년 일제가 마당에 철도를 놓으면서 가옥과 주변 경관이 심각하게 훼손됐습니다. 2023년까지 일제강점기 철도 부설 이전 시점을 기준으로 임청각과 주변 환경을 복구할 예정입니다. 특히 내년이 3·1 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인 만큼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항일 독립 유산을 지속적으로 발굴할 예정입니다.” 문화재는 어렵고 딱딱하다는 인식을 바꾸기 위해 국민들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도 이어 가고 있다. 우선 문화재 안내판에 담긴 용어를 알기 쉽게 바꾸기 위해 정비 대상을 선정하고 내년까지 작업을 마칠 계획이다. 올 연말에는 가족들이 함께 가 볼 만한 전국의 역사 여행지 정보를 담은 ‘아이와 함께 하는 문화유산 가이드북’(가칭)도 출간한다. “그간 문화재 안내판이 다소 어렵고 전문적인 용어가 사용되었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올해는 관람객이 많이 찾는 서울 소재 고궁과 조선 왕릉, 경주·부여 등 고도(古都)에 있는 안내판을 중심으로 새로 정비할 계획입니다. 특히 문화재에 관심 있는 시민자문단이 직접 정비에 참여하도록 하는 등 국민과의 소통을 통해 현장의 생생한 의견을 반영할 예정입니다.” 김 청장은 임기 동안 이루고 싶은 목표에 대해 “문화재가 국민들 삶 속에서 친근하게 살아 숨쉴 수 있도록 다양한 접점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문화재가 있기 때문에 국민에게도, 지역에도, 국가에도 도움이 된다는 공감대를 높이고 싶습니다. 한옥마을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전주처럼 역사와 경관이 어우러진 각 지역의 특정 공간은 문화 자원으로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문화재 활용 프로그램을 늘리고 지역 주민과의 협력이 잘 이뤄진다면 그 지역의 경쟁력 있는 공간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겁니다. 새로운 문화 자원을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의 공간을 가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문화재청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봅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원조 사대문’ 풍납토성 내려보며…한성백제의 밤에 빠지다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원조 사대문’ 풍납토성 내려보며…한성백제의 밤에 빠지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2회 강남야행(청담동에서 압구정동까지) 편이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과 압구정동 일대에서 진행됐다. 무더위를 피해 야간에 진행하는 첫날이었다. 낮에 한 차례 비가 쏟아지고 갠 뒤라 안심했으나 출발 시각인 오후 6시쯤 비가 다시 뿌리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비’라는 일기예보를 믿고 일단 첫 목적지인 청담동배수지공원을 향해 출발했다. 이동하는 10여분 동안 신발과 옷이 다 젖었지만 공원에 도착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한강의 여름 저녁 풍경을 맞았다. 강남의 야경을 구경하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참가자들은 이날 지하철 7호선 청담역 1번 출구에서 만나 청담배수지공원~한강공원~청담동 명품거리~K스타거리~압구정로데오거리~한일관 순으로 한강변과 밤거리를 누볐다. 무더위가 가신 쾌적한 거리를 걸으면서 오디오가이드시스템을 통해 강남의 어제와 오늘 이야기를 들었다. 해설을 맡은 청담동 토박이 이기훈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정감 있는 목소리로 강남의 속살을 조곤조곤 들려줬다.우리는 흔히 ‘조선’이라는 시대적 프레임에 갇히곤 한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조선시대의 전유물이 아니라 백제의 유산이라는 사실을 잊는 것이다. ‘원조 서울’은 강북 사대문 안이 아니라 강남이었다. 강남 중에서도 한성백제의 왕궁과 왕릉이 있던 송파구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석촌동이 강남 사대문이었다. 서울 2000년 역사 중 1400년을 훌쩍 건너뛴 뒤 조선 건국 이후 600년 역사만 기억하면서 역사의 땅 강남지역을 조선시대 강북 사대문 주민용 초식(草食)재배지로 전락시킨 셈이다. 기원전 18년 고구려의 왕자 온조가 한강을 건너 오늘의 강남땅에 십제(백제)를 세운 이유는 한강을 방어선 삼아 북방의 강국 고구려의 남하를 저지하고자 했다. 475년 웅진(공주)으로 퇴각한 뒤 다시 깨어나기 전까지 ‘망각의 왕국’으로 버려졌다.답사단이 찾은 삼성동 청담배수지공원과 경기고 터는 한성백제의 옛 땅이었다. 고고학계에서 ‘삼성동 토성’이라고 불리는 이 공원은 한성백제시대 쌓은 토성의 흔적이 1980년대 초반까지 남아 있었다. 성 안에 흰 바윗돌이 우뚝 솟아 있었는지 조선 후기 문인 삼연 김창흡이 ‘백석성’(白石城)이라고 노래한 곳이다. 지금은 서울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단지가 옛 토성 터를 둘러싸고 더 높이 솟아 ‘아파트 산성’을 형성하고 있다. 봉은초등학교에서 청담배수지공원의 서북 경사면을 올려다보면 옛 산성의 윤곽이 흐릿하게나마 드러나는 듯하다.청담배수지공원 정자에 오르면 한성백제의 옛 터가 한눈에 들어온다. 정면 청담대교를 중심으로 동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면 잠실주경기장 너머 123층 롯데월드타워에 이르는 넓은 벌이 펼쳐진다. 바로 백제의 왕성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그리고 왕릉인 석촌리 고분 영역이다. 강 건너 강북 아차산을 마주 보고 고구려 군사와 대치하는 형국이다. 한강 서쪽 남산에서부터 동쪽 광나루까지 탁 트인 조망은 삼성동토성이 포기할 수 없는 백제의 군사요충지였음을 실감케 한다. 삼성동토성은 풍납토성, 몽촌토성과 함께 한성백제의 3대 토성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작성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는 ‘삼성리 산성은 광주군 언주면 삼성리 봉은사 동북쪽에 있다. 총길이는 170간, 높이 1간의 토루(土壘)가 산허리를 에워싸고 한강에 접하고 있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여기서 1간은 180㎝이니 성 둘레는 500m쯤 된다. 청담역 2번 출구에서 삼성역 방향으로 가다가 경기고 동쪽 영동대로 언덕길에 ‘삼성동토성’ 표지석이 서 있다. 표지석에는 ‘건국 초 한산에 도읍을 정하였던 백제는 고구려 및 신라에 대항하여 한강유역을 확보하기 위하여 이곳 옛 삼성리 일대에서 뚝섬 맞은편까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구릉을 따라 토성을 쌓았다. 토성의 유적이 최근까지 남아있었으나, 강남 개발로 인해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라고 적혀 있다. 삼성동토성은 탄천이 한강으로 합류하는 서쪽 구릉인 현재의 경기고에서 청담배수지공원까지 이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경기고에서 청담동배수지공원을 잇는 산성구간은 영동대로를 놓으면서 도로 아래에 묻혔다.향토사학자들은 지대가 가장 높은 경기고 화동관이 옛 삼성동토성 본성 터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문화유적총람에 따르면 이 성의 길이는 약 350m에서 500m에 이르는 테뫼식 산성(산 정상을 파내 축성하는 형식)이다. 1871년 작 광주부읍지에 보면 대모산 뒤쪽이 대왕면, 탄천 오른쪽이 중대면, 양재천 아래쪽이 언주면이라고 적혀 있다. 오늘날 강남 중심부를 이루는 옛 광주의 3개 면이다. 또 언주면 관내에 선릉과 정릉 그리고 양재역과 무동도 등 4개의 지명이 등장한다. 유감스럽게도 삼성리토성은 등장하지 않는다.삼성리라는 지명은 1914년 언주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봉은사, 저자도, 무동도의 ‘세(三) 땅을 합쳤다(成)’고 하여 만들어진 합성지명이다. 한강에 접한 언주면은 뚝섬으로 건너가는 청숫골 나루가 있던 곳이다. 조선시대 왕의 행차나 충청·경상·전라 삼남지방과의 연결은 주로 송파나루나 광나루를 통했지만 양재역이 번성했던 점으로 미뤄 선·정릉과 봉은사를 오가는 행렬도 만만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삼성동을 이룬 세 곳 중 저자도와 무동도는 압구정동 공유수면 매립공사 때 해체돼 지금의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단지 아래로 사라졌다. 압구정동이라는 지명을 남긴 한명회의 압구정 정자는 현대아파트 72동과 74동 사이 언덕에 있다. 봉은사는 조선시대 강남지역의 압도적인 랜드마크였다. 왕릉을 넘어서는 존재감을 보였다. 본래 성종을 모신 선릉 자리가 절집이었다. 1495년 선릉이 조성될 때 이곳에 견성암이라는 암자가 있었기에, 왕릉 안에서 능을 수호하는 능침사(陵寢寺)의 역할을 맡기면서 견성사로 승격시켰다. 그러나 왕릉 안에 절집이 있는 것을 반대하는 유생들의 상소가 이어지자 선릉의 동쪽으로 이전했다. 1562년 중종을 모신 정릉이 견성사 자리로 옮겨오면서 자리를 비워주고 지금의 수도산 아래로 옮겼다. 이때 80결(1결은 볏단 1000개)의 토지와 200명의 노비를 보유한 대찰로 발돋움했다. 1970년대 강남개발과정에서 봉은사 소유 10만평의 금싸라기 땅이 한 평당 5300원씩 총 5억 3000만원에 정부 수중으로 넘어갔다. 오늘의 삼성동 코엑스와 한전 부지이다. 1974년 서울에 고교평준화가 시행돼 경기고가 강남으로 이전, 학교를 짓는 와중에 한성백제시대 삼성동토성도 덩달아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역사는 그렇게 햇볕과 달빛을 번갈아 쬐는 법이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문희일 연구위원 ●다음 일정 : 극장순례(영화의 고향) ●일시 : 8월 4일(토) 오후 6~8시 ●집결 장소 : 지하철 1호선 종각역 3번 출구 앞 ●무료 신청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 (futureheritage.seoul.go.kr)
  • [주민 물음에 단체장 답하다] “광주 예산 10%만 절감해도 1000억… 교육·농업 알뜰히 챙길 것”

    [주민 물음에 단체장 답하다] “광주 예산 10%만 절감해도 1000억… 교육·농업 알뜰히 챙길 것”

    “오직 시민만 바라보고 모든 것을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장애인과 노인 등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는 광주를 만들겠습니다.” 방송PD 출신 신동헌(66) 경기 광주시장은 시장선거에 두 차례 도전했으나 모두 고배를 마시고 이번에 2전 3기의 주인공이 됐다. 신 시장은 1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젊은 부부 증가로 광주가 젊어지고 똑똑해지고 있으며 이는 좋은 기회”라며 “살고 싶은 도시, 공정한 사회, 꿈이 실현되는 광주를 함께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는 취임 일성으로 “시 예산 10%만 절감하면 1000억원이다. 이것으로 교육, 농업 분야 등 꼭 필요한 곳에 알뜰하게 챙기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2전 3기 끝에 시장이 됐다. ―믿고 선택해 주신 광주시민들께 감사드린다. 선거 과정에 시민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저를 선택해 주신 한 분 한 분의 마음을 소중히 간직하겠다고 다짐했다. 2000년 방송PD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2002년부터 정치를 시작했다. 3번 만에 어렵게 시장이 됐다. 18년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왔다. ‘오직 광주’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시민들이 왜 신동헌을 선택했을까. ―오랜 세월 광주에서 시장이 되기 위해 준비해 왔다. ‘깨끗한 월급쟁이 시장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깨끗한 정치, 깨끗한 행정을 펼쳐보고 싶었다. 시민들이 정직하고 바른 행정을 희망했다. 그리고 PD출신인 저의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사고가 역동적인 광주를 만드는 데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겠다. →행정경험이 없다는 우려가 있다. ―광주시에는 1300명이라는 행정 전문가들이 있다. 공무원들의 사기를 진작시켜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연출가가 필요한 것이다. 행정 전문가보단 오케스트라 지휘자 같은 시장이 필요하다. PD 출신으로 다른 분들보다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높다. 도시양봉, 도시농업박람회 등 많은 아이디어를 냈다. 이러한 아이디어들을 행정에 접목시킬 것이다. 그리고 2007년 총리실 산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촌문화정보센터 소장으로 2년여 근무한 경험도 있다.→광주시의 최대 현안은 무엇인가. ―교통과 교육 문제가 우선이다. 지난 10여년간 계획성 없는 난개발로 광주 구석구석이 후유증을 앓고 있다. 출퇴근 때마다 교통 정체로 아우성이다. 도로는 울퉁불퉁하고 아이들의 통학마저 위협받고 있다. 학생들이 공부할 공간도 없다. 학급당 인원이 30명이 넘어섰고 이대로 가면 40명에 육박한다. 광명초등학교는 학생 수가 1508명으로 최근 몇년 사이 337명이 늘었다. 초과밀학급 문제가 심각하다. 신현초등학교 신설이 늦어짐에 따라 광명초 초과밀학급 문제가 계속될 전망이다. 아이들의 교육환경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담당 공무원에게 신현초 개교가 더 늦어지지 않도록 태스크포스(TF)를 만드는 등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기업 유치와 일자리 만들기도 큰 숙제다. ―광주에는 6000여개의 기업이 있다. 기업인들이 많이 어려워하고 있고 실제로 떠나는 기업도 있다. 세일즈맨 시장이 돼 국내와 해외시장 확보에 발 벗고 나서겠다. 기업과 행정이 한 팀이 돼 기업 활동을 한다는 생각으로 지원하고 시장개척과 제품홍보 전도사가 되겠다. 행정력을 총동원해서 ‘기업애로 제로’ 도시로 만들겠다. 그리고 지역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광주지역에서 우선 소비할 수 있도록 하겠다. 시에서 주관하는 새해 해돋이와 줄다리기 행사에 가니 지역의 우수한 막걸리를 두고 공무원들이 서울지역 막걸리를 쓰는 것을 보고 실망했다. 공공기관부터 앞장서겠다. 아울러 가구산업을 특화산업으로 발전시키겠다. 가구거리 조성과 특구 지정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세계가구박람회를 추진하는 한편, 지역 우수기업에 대한 지원과 육성에 필요한 제도를 마련해 기업을 하기 좋은 광주를 만들어 나가겠다. 이와 함께 팔당호, 남한산성, 조선백자 도요지 등 광주가 가진 천혜의 자연환경과 천년고도의 역사문화자원을 연계하고 지역농업과 지역음식까지 융합된 문화관광산업을 육성하여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힘쓰겠다. →교육예산 200억원을 공약했다. ―중·고생 무상교복, 친환경 무상급식 확대, 안전한 통학로 확보 등을 위해 교육예산 200억원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학교 밖 아이들과 대안학교 아이들의 급식문제까지 챙길 것이다. 올해 교육예산은 81억원에 불과하다. 200억원도 많은 게 아니다. 점진적으로 확대하겠다. 시장은 무한책임이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인데 교육청만의 책임이 아니다. 예산이 부족하면 이재정 도교육감을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할 것이다. 국회의원·도의원과 소통해서 국가예산·도예산을 유치하도록 하겠다. 향후 건립 예정인 체육관·주차장 등 학교시설의 복합화 추진으로 학생들에게는 쾌적하고 다양한 교육활동 공간을 제공하고 지역주민들이 편리한 공공시설로 활용할 수 있게 하겠다. 기획예산담당관에게 첫 업무 지시로 광주시 1조원 예산 중에서 10% 절감 방안을 내놓으라고 했다. 10%면 1000억원이다. 이것으로 꼭 필요한 곳에 써 보자고 했다. 외진 마을에서는 수돗물 공급을 받지 못하는 곳도 있다. 교육·농업분야 등 꼭 필요한 곳에 알뜰하게 지원할 계획이다. →임기 중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광주에는 마땅한 장애인 복지시설이 없다. 전국 최고의 복지시설을 짓고 창조적인 콘텐츠를 기획해서 오직 광주에서만 누릴 수 있는 세계적인 장애인 복지시설을 구상하고 있다. 지역주민들의 동의가 필요하겠지만 일등 광주를 대표하는 장애인 복지시설을 기대해도 좋다. →시정철학과 시민 의견이 충돌하면 어떻게 풀 것인가. ―소통이 우선이다. 어떤 악성 민원도 대화로 풀겠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면 대화가 안 된다. 대표를 만나고 현장에 직접 찾아가겠다. 광주지역 순례를 하면서 민원에 귀를 기울이겠다. 민원이라는 것은 억울한 사람들의 목소리다. 행정조직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해결해야 한다. 억울함과 불편함이 없도록 하겠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신동헌 시장은 ‘농어촌 지금’ PD 출신답게 농촌 전도사…‘꿈틀학교’도 그의 작품 독립운동가이자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헌신한 해공 신익희 선생 후손인 신동헌(66) 광주시장은 경기 광주시 쌍령동 출생으로 광주초, 광주중, 광주종고(현 광주중앙고)와 한영고를 거쳐 한양대 법학과와 언론정보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광주농고에 수석으로 입학해 도비 장학금으로 공부했고 당시 광주 출신으로는 드물게 언론인의 길을 걸었다. 중앙일보, 동양방송을 거쳐 KBS PD로 20여년간 활동했다. ‘농어촌 지금’, ‘맛따라 길따라’, ‘문화가 산책’ 등을 연출했다. 그는 광주시장 후보로 두 차례 출마했으나 모두 고배를 마셨다. 중앙무대에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실무위원, 전국농민단체협의회 사무총장, 국무총리실 산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촌문화정보센터 소장, 도시농업포럼 대표 등을 역임하면서 농업농촌의 다원적 가치를 전파하는 데 노력했다. 정세균 전 국회의장을 비롯해 여야 의원 50명이 참여하는 ‘국회생생텃밭’과 어린이들이 텃밭활동을 통해 생명존중과 인성을 함양하기 위해 만든 ‘꿈틀학교’도 그의 작품이다.
  • 배우 ‘구하라’ 순천만세계동물영화제 홍보대사 위촉

    배우 ‘구하라’ 순천만세계동물영화제 홍보대사 위촉

    배우 겸 가수인 구하라 씨가 제6회 순천만세계동물영화제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순천만세계동물영화제는 “Happy Animals ‘함께’ 행복한 세상”이라는 슬로건으로 다음달 17일부터 21일까지 순천문화예술회관 등 순천시 일원에서 다채롭게 열린다. 17일 순천문화예술회관에서 개최되는 개막행사는 아프리카댄스의 오프닝 공연을 시작으로 홍보대사 구하라 씨와 윤도현밴드의 축하공연이 펼쳐진다. 개막작으로 아일랜드에서 동물과 인간의 사랑을 아름답게 담아낸 ‘동물원 Z00’이 상영된다. 영화제 기간 동안 19개국 50여편의 다양한 동물영화가 선보인다. 문화예술회관, 순천CGV, 청춘창고, 조례호수공원 등 6개관에서 섹션별 영화가 개봉한다. 리틀포레스트 감독인 임순례 감독의 씨네토크, 동물복지 관련 다큐 감독인 황윤 감독의 특별전도 만날수 있다. 어린이를 타겟으로 한 영화 읽어주는 변사, 반려 동물과 문제 행동 강연회, 동물 사진전, 동물 미술체험, 야외 콘서트 등의 프로그램들이 동시에 진행된다.허석 순천시장은 “동물과 사람이 함께하는 축제로 색다른 즐거움과 특별한 경험을 느낄수 있을것이다”며 “시민과 관람객이 함께 즐기고 나누는 영화제가 될 수 있도록 가치를 높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구하라 씨는 “평소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순천만 세계동물영화제를 널리 홍보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시 관계자는 “영화제 다운 행사가 되기 위해 질적인 면에서 수준을 높이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며 “시민, 관람객과 더 가까이 호흡하는 영화제로 거듭 나도록 힘쓸것이다”고 말했다.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열린세상] 일본 도호쿠 지방에서 새로운 백 년의 평화를 상상한다/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부교수

    [열린세상] 일본 도호쿠 지방에서 새로운 백 년의 평화를 상상한다/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부교수

    지난 칼럼에 센다이에서 김기림의 평화주의를 생각하자고 제언했다. 이에 관심을 가져 주는 사람들이 늘어 올 하반기에 센다이에서 행사를 개최할 가능성이 생겼다. 센다이에 유학을 가거나 여행 가는 사람들이 어쩌다 센다이가 루쉰의 유학지라는 사실을 알고 그의 시비나 흉상 앞에서 사진을 찍는 일은 있어도 김기림을 아는 사람이 없어 안타까웠던 터였다. 그를 기리는 작은 시비라도 건립돼 센다이를 거쳐가는 우리 국민이 그의 시비 앞에서 아픈 기억을 새로운 미래의 희망으로 되새길 수 있다면 기쁜 일이다. 센다이와 그 주변에는 한국인이 꼭 찾아봐야 할 곳이 몇 군데 있다. 우선 센다이에서 동북쪽으로 약 50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이시노마키시(石?市)의 후세 다쓰지(布施辰治) 현창비(顯彰碑)다. 영화 ‘박열’을 본 사람이면 그 이름에 익숙할 것이다. 후세는 1880년생으로 조선 침략의 부당성과 독립운동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일제에 저항했던 조선 청년들을 변론한 사람이다. 그가 조선인 사건과 관련해 처음 변론에 나선 것은 1919년 2·8독립선언 관련 출판법 위반 사건이었다. 한때 이시노마키시 문화센터에는 그에 관한 상설 전시 코너가 있었다. 그러나 3·11 동일본대지진으로 문화센터가 침수한 뒤 복합문화시설 구상이 마련돼 새로운 전시실 등이 세워지고 있으나 후세 다쓰지의 상설 전시 코너는 따로 마련돼 있지 않다. 우리 정부는 그에게 200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으나, 이후 그를 기리는 어떤 행사가 열렸는지 들어 본 바가 없다. 이시노마키 시민들이 후세 다쓰지를 기리는 운동을 시작한 게 1986년이었다. 그들의 노력으로 이시노마키시의 한 공원에 현창비가 세워졌다. 그러나 3·11 쓰나미 이후에 들어선 가설 주택에 가려 ‘민중과 함께 살고, 민중을 위해 죽겠다’는 그의 의지가 잊혀지고 있다. 그가 사회주의자였던 탓에 한국 사회가 그에게 무관심하다면 이념으로 역사를 지우는 과보가 두렵다. 이시노마키시에서 서쪽으로 35킬로미터, 센다이에서 북쪽으로 35킬로미터 거리에 후루카와(古川)라는 곳이 있다. 1920년대 일본의 다이쇼 민주주의를 이끈 요시노 사쿠조(吉野作造)의 고향으로 기념관이 있다. 그가 천황주의를 긍정하고, 민본주의에 입각해 식민지의 합리적 지배를 원했던 관대한 제국주의자였다는 비판은 타당하다. 그럼에도 당대 일본의 최고 지식인들 가운데 드물게도 조선 문제에 관심을 갖고, 3·1운동에 이해를 표시하며 독립을 주장하는 조선의 청년에게 다가가려 했다. 특히 그가 여운형의 식견과 인품을 높이 평가해 그가 가진 정의를 일본이 포용하지 못하면 일본에 장래가 없다고 경고한 것은 그가 기독교를 받아들인 자로서 보편적 정의에 서고자 한 노력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요시노 사쿠조 기념관에서 간혹 그와 조선의 관계를 주제로 한 특별전이 열리지만, 방문하는 한국인들이 얼마나 되는지 잘 모르겠다. 후루카와에서 다시 북쪽으로 약 17킬로미터, 센다이로부터는 약 52킬로미터 올라가면 구리하라시가 나온다. 여기에 다이린지(大林寺)라는 절이 있다.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이라는 안중근 의사의 글귀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여기에 이 글이 새겨진 비석이 있다. 안 의사가 뤼순 감옥에서 사형당하기 직전 간수였던 지바 도시치(千葉十七)에게 써 준 글이다. 안중근의 인격에 감복한 지바가 제대 후에 고향에 돌아가 안중근의 유묵을 소중히 간직하다가 1980년 도쿄 한국연구원의 최서면 원장을 통해 한국에 기증했다고 한다. 다이린지에는 지바의 유패가 봉인돼 있으며, 안중근의 유묵이 기증된 뒤 비석이 세워졌다. 안중근이 태어난 9월 2일 해마다 추도 법요가 열린다. 일본 사회가 우경화하던 2013년 말 다이린지의 안중근 위령제와 현창비를 문제 삼아 일본 우익 시민단체가 미야기현에 항의서를 보낸 적이 있다. 미야기현은 ‘민간단체’가 추진한 것이라고 하여 항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시노마키와 후루카와, 구리하라가 모두 조선 독립 운동의 역사와 얽혀 있다. 이 세 도시를 엮어 도호쿠 평화 순례의 길을 열어 한ㆍ일의 시민들이 함께 걸어 보는 것은 어떨까? 3·1운동 100주년이 내년이다. 도호쿠 평화 순례의 길에서 새로운 백 년의 평화를 상상해 보자.
  • JTBC 측 “god 완전체 예능 논의 中...스페인 산티아고 순례여행 콘셉트”

    JTBC 측 “god 완전체 예능 논의 中...스페인 산티아고 순례여행 콘셉트”

    그룹 지오디(god) 멤버 박준형, 데니안, 윤계상, 손호영, 김태우가 한자리에 모일 예정이다. 12일 JTBC 측에 따르면 그룹 god 완전체가 출연하는 여행 예능이 준비 중이다. JTBC 예능국 측은 이날 다수 매체에 “god 5인과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 콘셉트로 예능을 기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긍정적으로 제작을 논의 중이며, 구체적 일정과 편성 시기 등은 정해진 바 없다”고 입장을 전했다. 해당 소식이 전해지자, god 멤버 다섯 명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을지 팬들 기대가 커지고 있다. 지난 1999년 데뷔한 god는 내년에 데뷔 20주년을 맞이한다. god는 앞서 2000~2001년 MBC 예능 ‘목표달성 토요일-GOD의 육아일기’에 다 함께 출연한 바 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한국당 비대위원장 거론 이문열 “생각해 본 적 없다” 하마평 난색

    자유한국당의 혁신 비대위원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외부 영입 대상 인물 가운데 대다수가 난색을 표하고 있다. 비대위원장 후보로 거론된 이문열 작가는 4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죽음이 있어야 사실은 새로운 것이 태어나는데 죽어야 할 것이 남아 엉겨서 모색을 도모하는 것이 답답하고, 아무런 대책 없이 죽는 것도 답답한 일”이라며 “평범한 구경꾼으로 궁금해하면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역시 후보로 거론된 ‘보수 논객’ 전원책 변호사도 “비대위를 만드는 순간에 한국당은 더 망할 수 있다”며 “총선이 1년 10개월 남은 마당에 외부 비대위원장이 온다고 해도 의원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김종인 전 의원은 “그쪽(한국당)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연락을 받은 적도 없다”고 했다. 혁신 비대위원회 구성을 위한 준비위원장을 맡은 안상수 의원은 “(위원장 후보로 언급됐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이정미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 측이 명단에서 이름을 빼 달라고 연락해 왔다”고 말했다. 후보군 중 몇몇은 직접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이다. 이 전 총재는 비대위원장 후보로 언급된 데 대해 불쾌감을 나타내면서 맡을 의사가 없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사전에 동의를 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신의 이름이 거론된 데 대해 불편한 심기를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반 전 총장 측도 “한국당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이 전 재판관은 준비위에서 다양한 후보를 내자는 아이디어 차원으로 언급됐지만 정식으로 명단에 오르지는 않았다. 비대위원장 인선 혼란에 당내 비판도 제기됐다. 친박계 김진태 의원은 “위원장으로 이 전 재판관과 김용옥 교수가 거론되는 것은 당을 희화화하는 것을 넘어 모욕·자해 수준에 이른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안 의원은 “다음주까지 후보를 5~6명으로 압축해 나갈 것”이라며 “오히려 유력한 분들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친박계 김태흠 의원은 이날 “(김무성 의원이) 비박계 수장 역할을 해 온 것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국민이 다 안다”며 “탈당으로 논란의 불씨를 제거하는 결단을 해야 한다”고 말해 계파 갈등이 심화하는 양상이다. 김규환, 김순례, 성일종, 윤상직, 이종명, 이은권, 정종섭 등 초선 의원 7명도 성명서를 통해 “책임져야 할 분들의 결단을 촉구한다”며 사실상 김무성 의원의 탈당을 요구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한국당 집안싸움 점입가경… 김무성 거취 둘러싸고 ‘으르렁’

    한국당 집안싸움 점입가경… 김무성 거취 둘러싸고 ‘으르렁’

    자유한국당 초선 의원 7명은 4일 20대 총선 공천 파동과 탄핵, 대선 패배, 6·13 지방선거 참패 등 현 상황에 책임을 져야 한다며 당내 일부 인사들의 결단을 요구했다. 김규환·김순례·성일종·윤상직·이종명·이은권·정종섭 의원은 성명을 통해 “구시대의 매듭을 짓고 새 인물들이 미래의 창을 열 수 있도록 책임져야 할 분들의 아름다운 결단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한국당은 진정한 참회의 눈물과 근본적인 내부 개혁을 통해 국민께 겸손히 다가선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상징적 인적 쇄신 요구조차 ‘내부 총질’이니 ‘계파싸움’이니 하는 말로 왜곡하며 묻으려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성명에서 ‘아름다운 결단’을 해야 할 인사들의 실명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다만 “공천권 문제를 거론하기 전에 책임부터 져야 한다”는 부분은 사실상 복당파의 좌장격인 김무성 의원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김 의원은 최근 페이스북과 소속 의원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에서 ‘20대 총선에서 당대표였는데도 한 명도 (공천에) 추천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성명에 이름을 올린 성일종 의원은 최근 의원총회에서 김 의원에게 “한국당에 남아 있는 마지막 계파를 없애야 한다”며 김 의원의 탈당을 요구한 바 있다. 한편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보수의 미래 포럼’에서도 김 의원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정용기 의원은 “김무성 의원 본인은 계보를 만들지 않았다고 하는데, 김 의원은 대표 시절 본인 가까운 사람들로 당직을 인선했고 그분들이 그대로 탈당했다가 복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성중 메모’ 때 모였던 사람들도 그들(복당파)이다. 이게 계보가 아니면 무엇이 계보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진태 의원은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이정미·도올이 거론되는 것은 당을 희화화한 것을 넘어 모욕·자해하는 수준까지 이른 것”이라며 “당 기강이 이렇게 된 것은 결국 김성태 원내대표에게 책임이 있다“며 ”중심을 잡지 못하니 우리당을 놀려먹으려는 사람들이 비대위원장으로 거론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계문화유산 한국 산사] 봉정사·마곡사·선암사 ‘막판 등재’ 뒤엔 한국 정부 총력전… 20개 위원국 입 모아 “7곳 다 돼야”

    한국이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한 산사 7곳이 모두 가치를 인정받게 된 데는 외교부와 문화재청 등 담당 부처의 다각적인 노력이 큰 역할을 했다. 이들 사찰의 특징은 각기 다르지만, 각각 7~9세기에 창건돼 1000년 넘게 불교문화를 지켜온 역사성을 함께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당초 세계문화유산 후보지를 사전 심사하는 이코모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는 7개 산사 가운데 통도사, 부석사, 법주사, 대흥사 등 4개만 등재할 것을 세계유산위원회에 권고했지만 막판 결과가 뒤집혔다. 이코모스는 앞서 봉정사, 마곡사, 선암사의 경우 역사적 중요성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고 보고 세계유산 등재를 권고하지 않았다. 특히 봉정사는 ‘종합승원’으로 보기에 상대적으로 다른 사찰에 비해 규모가 작다고도 판단했다. 하지만 문화재청과 주유네스코 대한민국대표부, 외교부로 이루어진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 대한민국 대표단은 이코모스가 제외한 3곳을 포함해 7개 사찰 모두 등재할 수 있도록 자료를 보완하고 위원국을 상대로 설득 작업에 들어갔다. 유네스코 집행이사회 의장인 이병현 주유네스코 대사와 김종진 문화재청장은 함께 수석대표를 맡아 위원국들에 대한 지지교섭 활동을 총괄했다. 대표단은 7개 산사가 모두 불교문화의 전통을 계승해 왔고, 그 전형을 지켜 왔다는 점에서 함께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자격이 충분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 지난달 30일 등재 논의에서는 세계유산위원국인 중국이 7개 산사 모두 등재할 것을 제안했고, 21개 위원국 중 17개국이 공동 서명했다. 20개 위원국의 지지발언도 이어졌다. 등재 논의에서 첫 발언자로 나선 스페인 대표단은 “한국의 산사는 7곳을 모두 합해야 등재 기준을 충족한다”면서 “스페인이 보유한 세계유산인 산티아고 순례길, 안토니 가우디 건축이 한국의 산사와 같은 연속 유산인데, 각각 다른 가치를 합친 덕분에 세계유산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국 대표단도 “이코모스가 권고 대상에서 제외한 사찰도 한국 불교의 대표적 모습을 보여 준다”며 “7곳을 모두 등재해야 한국 불교가 살아 있는 유산으로서 무형적 가치가 온전히 전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짐바브웨 대표단은 “봉정사는 통도사와 같은 가치를 지녔고, 마곡사와 선암사도 대흥사처럼 9세기 무렵에 창건됐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주장에 위원국들의 동의가 잇따르자 이코모스도 입장을 바꿨다. 이코모스 관계자는 “한국의 산사 7곳을 모두 등재해야 한다는 세계유산위원회 분위기에 역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해당 사찰의 보편적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결과이자 유관부처와 민간 전문가 간 긴밀한 협업이 일궈낸 성과”라고 강조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현대百 ‘K푸드 시장’ 진출 본격화

    해외 유통사와 수출계약 첫 체결 현대백화점이 자체브랜드(PB)를 앞세워 ‘K푸드 시장’ 진출을 본격화한다. 현대백화점은 한국무역협회와 손잡고 일본 유통사인 ‘이온그룹’의 홍콩 법인인 ‘홍콩이온백화유한공사’와 식품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고 26일 밝혔다. 현대백화점이 해외 유통사와 수출 계약을 체결한 것은 처음이다. 이번 계약에 따라 두 회사는 현대백화점의 프리미엄 가정간편식 브랜드 ‘원테이블’과 협력사인 디저트 브랜드 ‘한입원바이트’의 상품을 홍콩에 있는 이온백화점 11개 전 점포에서 판매하기로 협의했다. 고객 반응을 살핀 후 이온그룹이 운영하는 다른 유통채널 진출을 위한 추가 계약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우선 원테이블의 화식한우 ‘사골곰국’, ‘오발탄 양볶음밥’ 등과 한입원바이트의 ‘로코케이크’, ‘블루베리 치즈케이크’ 등 17개 품목 약 1만 5000개 물량을 판매한다. 향후 라미수(비스테카)와 닭강정(김순례 닭강정) 등도 추가로 판매할 예정이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한류 열풍이 이어지면서 한국 식품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면서 “이번 수출을 시작으로 다음달부터 한류에 관심이 많은 홍콩·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 현지 유통사와 구매 상담회를 진행하는 등 한국의 맛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수출은 현대백화점 제품뿐 아니라 협력사 제품까지 모두 매입해 수출하는 것으로 협력사의 판로 확보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온그룹은 아시아 최대 규모의 유통채널 기업으로, 일본은 물론 중국, 홍콩,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10여개 국가에서 백화점, 슈퍼마켓, 편의점 등을 운영하고 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민선7기 단체장에 듣는다] “강북구 발전의 기틀 ‘북한산 역사문화관광벨트’ 매듭 짓겠다”

    [민선7기 단체장에 듣는다] “강북구 발전의 기틀 ‘북한산 역사문화관광벨트’ 매듭 짓겠다”

    박겸수 서울 강북구청장 당선자는 25일 3선 당선 일성으로 ‘북한산 역사문화관광벨트 사업을 마무리 짓겠다’고 강조했다. 박 당선자는 이날 강북구청장실에서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북한산 자락 순례길을 따라 우이동과 수유동 일대(약 18만㎡)에 가족캠핑장, 숲도서관, 다목적 잔디마당 등을 갖추고 근현대 역사·문화유산들을 엮어 1박 2일 스토리텔링 관광코스로 만들어 지역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3선 구청장으로서 각오가 남다를 것 같다. 당선 소감은. -당선의 기쁨보다는 어깨가 무겁다. 평화에 대한 갈망이 어느 때보다 강하게 표출된 선거였다. 구민들이 저를 세 번이나 선택해 줬고 성원에 보답하려 한다. 선거 기간 동안 주민들의 요구는 다양했으나 상충되는 것들도 있었다. 구의 발전이라는 지향점은 같지만 의견 차이가 있는 것을 보고 소통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민선 7기에는 구와 구민의 소통 그리고 구민 간 소통의 기회를 늘려 나가겠다. ‘사인여천’(事人如天·사람 섬기기를 하늘같이 하라)을 구정 운영의 핵심철학으로 삼겠다. →구정 운영 방향은. -구는 새로운 변화의 전환점에 놓여 있다. 민선 7기에는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정책들을 마련할 예정이다. 강북구에 지난해 우이신설 도시철도가 들어섰는데 이에 발맞춰 역세권 개발을 위한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한 게 한 예다. 앞으로는 청년인구 유입을 적극 유도할 계획이다. 일자리 문제, 육아 문제 등 청년의 삶과 직결된 사안들을 논의하고 해결방안을 함께 모색하기 위한 청년허브 구축도 추진한다. 신설된 청년 태스크포스(TF) 운영의 내실화에도 신경 쓰겠다. 이를 통해 생기 넘치는 강북으로 가기 위한 기반을 다져 나가겠다. 앞으로 4년간 구의 발전구상은 지금까지 정책의 ‘완료’이자 ‘마침표’라고 할 수 있다. 지역의 변화를 위한 정책들이 완성됨으로써 강북구는 구민이 살기 좋은 또 살고 싶은 서울 동북권의 중심도시로 거듭날 수 있을 거다. →중점 추진 과제 한 가지만 설명해 달라. -역사문화관광도시의 모습을 성과로 보여 줄 때다. 북한산 자락 순례길을 따라 우이동과 수유동 일대에 가족캠핑장, 숲도서관, 다목적 잔디마당 등을 갖추고 근현대 역사·문화유산들을 엮어 1박 2일 스토리텔링 관광코스로 만들 것이다. 새로운 코스도 준비하고 있다. 통일교육원~근현대사기념관~국립 4·19민주묘지~문익환 통일의 집~한신대~화계사를 연결하는 코스다. 특히 통일운동가인 문익환 목사의 기념관을 지난 1일 개관했는데 지금까지는 남북 대결국면에서 문 목사에 대해 평가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이제는 남북화해 분위기를 통해 많은 주민들이 기념관을 방문하고 그의 삶을 새롭게 평가했으면 한다. →가장 시급한 문제와 개선책은. -대한민국 사회의 큰 화두는 저출산 문제다. 우리만의 문제가 아닌 해결이 가장 시급한 사회문제다. 구는 저출산 현상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이다. 다음달 1일부터 확대 추진되는 ‘산모·신생아 건강관리 지원 사업’이 대표적이다. 기존에는 산후도우미 서비스 대상이 기준중위소득 80%(직장가입자 건강보험료 4인 가구 기준 11만 2792원) 이하의 가정으로 제한됐다. 이제는 80% 초과 가정에도 적용된다. 지원 신청을 하면 출산일부터 60일 이내에 산후도우미가 가정을 찾아 건강관리를 돕는다. 이와 함께 발달장애인 문제도 민선 7기에 집중하고 싶다. 현재 발달장애인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직장을 구하기 힘들고 집에만 머무른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공간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중앙정부와 함께 해결해 나갈 문제다. →구민들에게 어떤 구청장으로 남고 싶나. -구민들이 믿을 수 있는 구청장으로 남고 싶다. 강북구가 민선 5기와 6기를 통틀어 가장 크게 변화된 부분은 ‘믿을 수 있는 행정’, ‘투명하고 깨끗한 행정’ 실천으로 구민들의 신뢰를 얻었다는 점이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의 기초단체장 공약이행 및 정보공개 평가에서 3년 연속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로부터 최고등급인 SA 등급을 받았다. 2016년 열린 ‘전국 기초단체장 매니페스토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는 강북구의 청렴 사례가 최우수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신뢰와 청렴이 밑바탕이 된 구정운영을 해야 주민들도 관심을 갖고 참여한다. 자치구도 구정을 이끌고 갈 힘이 생기는 것이다. 앞으로도 저와 강북구 공직자들은 평가를 떠나 ‘청렴은 공직자의 기본자세, 약속실천은 구정운영의 핵심 원칙’이라는 생각으로 주민의 신뢰를 얻기 위한 노력들을 꾸준히 해 나가겠다.→앞으로 지방자치의 방향은. -지방분권 개헌의 필요성은 많은 부분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를 뒷받침할 개헌 추진이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개정안이 결국 국회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번 민선 7기 지방선거 승리를 계기로 최대한 빨리 개헌 동력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지역 특색에 맞는 정책, 지역 실정을 반영한 복지 시스템은 지방자치가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루빨리 실질적인 권한 부여를 전제로 한 체계적인 법령 정비와 재원확보 방안이 뒤따라야 하는 이유다. 앞으로 이뤄질 개헌에선 현행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위상을 격상하고, 지방정부의 권한과 책임을 헌법에 명확히 규정하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구민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한반도에 온 국민이 염원했던 평화의 빛이 깃들고 있다. 우리는 빠르게 퍼지고 있는 한반도 평화의 기운에 발맞춰 자치구의 본분에 더욱 충실히 임할 것이다. 주민의 민생을 살피는 일에서부터 상생을 통한 지역개발 사업, 친환경 청결도시 조성, 으뜸교육 도시 조성 등 현안 사업들의 내실을 다져 나가며 완성도를 높여 가겠다. 민선 7기에도 흔들림 없는 구정을 이어 가며 구민의 신뢰에 보답하겠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박겸수 당선자는 민추협·시의원 경력… ‘청렴·약속·소통’의 3선 박겸수 서울 강북구청장은 2010년 6월 지방선거에 출마해 59.31%라는 높은 득표율로 당선됐다. 민주당 서울시당 공교육정상화특별위원장, 제4~5대 서울시의원, 시의회 교통위원회 위원장 등을 거쳤다. 평소 소통, 청렴, 약속 실천을 강조하는 그는 “구정 운영의 핵심 동력은 주민의 신뢰”라고 되뇌며 매일 하루 오후 2~4시 구청장 문을 열어 놓고 2시간씩 주민들을 직접 만났다. 사무실 한쪽 벽에도 ‘사인여천’(事人如天·사람 섬기기를 하늘같이 하라)이라고 적힌 큼지막한 액자를 걸어 놨을 정도다. 청렴 1등 구 강북 실현, 공약 실천 최우수 구 달성 등 주민의 신뢰를 얻기 위한 노력들도 이어 왔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는 과반 득표율인 52.34%를 달성했다. 특히 강북구를 역사문화관광도시로 발돋움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박 구청장은 2016년 대한민국 근현대 역사를 망라한 근현대사 기념관을 개관했고, 지난해 4·19혁명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대상으로 선정되는 데 일조했다. 4·19혁명기록물은 내년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의 심사를 거쳐 최종 결정된다. 그는 또 1980년대 군사정권에 맞서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와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를 주축으로 결성돼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민주화추진협의회에서 활동했다. 198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을 따라 평화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뒤 당적을 한 차례도 바꾸지 않아 주민들로부터 우직하다는 평을 듣는다. 이후 2002년 노무현 대통령 후보 강북갑 선대위원장을 지냈다. 1995년 서울 강북구 서울시의원으로 지방자치를 시작했고 20여년 동안 꾸준히 구정을 챙겨 왔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민선7기 단체장에 듣는다] “강북구 발전의 기틀 ‘북한산 역사문화관광벨트’ 매듭 짓겠다”

    [민선7기 단체장에 듣는다] “강북구 발전의 기틀 ‘북한산 역사문화관광벨트’ 매듭 짓겠다”

    박겸수 서울 강북구청장 당선자는 25일 3선 당선 일성으로 ‘북한산 역사문화관광벨트 사업을 마무리 짓겠다’고 강조했다. 박 당선자는 이날 강북구청장실에서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북한산 자락 순례길을 따라 우이동과 수유동 일대(약 18만㎡)에 가족캠핑장, 숲도서관, 다목적 잔디마당 등을 갖추고 근현대 역사·문화유산들을 엮어 1박 2일 스토리텔링 관광코스로 만들어 지역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3선 구청장으로서 각오가 남다를 것 같다. 당선 소감은. -당선의 기쁨보다는 어깨가 무겁다. 평화에 대한 갈망이 어느 때보다 강하게 표출된 선거였다. 구민들이 저를 세 번이나 선택해 줬고 성원에 보답하려 한다. 선거 기간 동안 주민들의 요구는 다양했으나 상충되는 것들도 있었다. 구의 발전이라는 지향점은 같지만 의견 차이가 있는 것을 보고 소통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민선 7기에는 구와 구민의 소통 그리고 구민 간 소통의 기회를 늘려 나가겠다. ‘사인여천’(事人如天·사람 섬기기를 하늘같이 하라)을 구정 운영의 핵심철학으로 삼겠다. →구정 운영 방향은. -구는 새로운 변화의 전환점에 놓여 있다. 민선 7기에는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정책들을 마련할 예정이다. 강북구에 지난해 우이신설 도시철도가 들어섰는데 이에 발맞춰 역세권 개발을 위한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한 게 한 예다. 앞으로는 청년인구 유입을 적극 유도할 계획이다. 일자리 문제, 육아 문제 등 청년의 삶과 직결된 사안들을 논의하고 해결방안을 함께 모색하기 위한 청년허브 구축도 추진한다. 신설된 청년 태스크포스(TF) 운영의 내실화에도 신경 쓰겠다. 이를 통해 생기 넘치는 강북으로 가기 위한 기반을 다져 나가겠다. 앞으로 4년간 구의 발전구상은 지금까지 정책의 ‘완료’이자 ‘마침표’라고 할 수 있다. 지역의 변화를 위한 정책들이 완성됨으로써 강북구는 구민이 살기 좋은 또 살고 싶은 서울 동북권의 중심도시로 거듭날 수 있을 거다. →중점 추진 과제 한 가지만 설명해 달라. -역사문화관광도시의 모습을 성과로 보여 줄 때다. 북한산 자락 순례길을 따라 우이동과 수유동 일대에 가족캠핑장, 숲도서관, 다목적 잔디마당 등을 갖추고 근현대 역사·문화유산들을 엮어 1박 2일 스토리텔링 관광코스로 만들 것이다. 새로운 코스도 준비하고 있다. 통일교육원~근현대사기념관~국립 4·19민주묘지~문익환 통일의 집~한신대~화계사를 연결하는 코스다. 특히 통일운동가인 문익환 목사의 기념관을 지난 1일 개관했는데 지금까지는 남북 대결국면에서 문 목사에 대해 평가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이제는 남북화해 분위기를 통해 많은 주민들이 기념관을 방문하고 그의 삶을 새롭게 평가했으면 한다. →가장 시급한 문제와 개선책은. -대한민국 사회의 큰 화두는 저출산 문제다. 우리만의 문제가 아닌 해결이 가장 시급한 사회문제다. 구는 저출산 현상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이다. 다음달 1일부터 확대 추진되는 ‘산모·신생아 건강관리 지원 사업’이 대표적이다. 기존에는 산후도우미 서비스 대상이 기준중위소득 80%(직장가입자 건강보험료 4인 가구 기준 11만 2792원) 이하의 가정으로 제한됐다. 이제는 80% 초과 가정에도 적용된다. 지원 신청을 하면 출산일부터 60일 이내에 산후도우미가 가정을 찾아 건강관리를 돕는다. 이와 함께 발달장애인 문제도 민선 7기에 집중하고 싶다. 현재 발달장애인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직장을 구하기 힘들고 집에만 머무른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공간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중앙정부와 함께 해결해 나갈 문제다. →구민들에게 어떤 구청장으로 남고 싶나. -구민들이 믿을 수 있는 구청장으로 남고 싶다. 강북구가 민선 5기와 6기를 통틀어 가장 크게 변화된 부분은 ‘믿을 수 있는 행정’, ‘투명하고 깨끗한 행정’ 실천으로 구민들의 신뢰를 얻었다는 점이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의 기초단체장 공약이행 및 정보공개 평가에서 3년 연속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로부터 최고등급인 SA 등급을 받았다. 2016년 열린 ‘전국 기초단체장 매니페스토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는 강북구의 청렴 사례가 최우수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신뢰와 청렴이 밑바탕이 된 구정운영을 해야 주민들도 관심을 갖고 참여한다. 자치구도 구정을 이끌고 갈 힘이 생기는 것이다. 앞으로도 저와 강북구 공직자들은 평가를 떠나 ‘청렴은 공직자의 기본자세, 약속실천은 구정운영의 핵심 원칙’이라는 생각으로 주민의 신뢰를 얻기 위한 노력들을 꾸준히 해 나가겠다.→앞으로 지방자치의 방향은. -지방분권 개헌의 필요성은 많은 부분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를 뒷받침할 개헌 추진이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개정안이 결국 국회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번 민선 7기 지방선거 승리를 계기로 최대한 빨리 개헌 동력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지역 특색에 맞는 정책, 지역 실정을 반영한 복지 시스템은 지방자치가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루빨리 실질적인 권한 부여를 전제로 한 체계적인 법령 정비와 재원확보 방안이 뒤따라야 하는 이유다. 앞으로 이뤄질 개헌에선 현행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위상을 격상하고, 지방정부의 권한과 책임을 헌법에 명확히 규정하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구민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한반도에 온 국민이 염원했던 평화의 빛이 깃들고 있다. 우리는 빠르게 퍼지고 있는 한반도 평화의 기운에 발맞춰 자치구의 본분에 더욱 충실히 임할 것이다. 주민의 민생을 살피는 일에서부터 상생을 통한 지역개발 사업, 친환경 청결도시 조성, 으뜸교육 도시 조성 등 현안 사업들의 내실을 다져 나가며 완성도를 높여 가겠다. 민선 7기에도 흔들림 없는 구정을 이어 가며 구민의 신뢰에 보답하겠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박겸수 당선자는 민추협·시의원 경력… ‘청렴·약속·소통’의 3선 박겸수 서울 강북구청장은 2010년 6월 지방선거에 출마해 59.31%라는 높은 득표율로 당선됐다. 민주당 서울시당 공교육정상화특별위원장, 제4~5대 서울시의원, 시의회 교통위원회 위원장 등을 거쳤다. 평소 소통, 청렴, 약속 실천을 강조하는 그는 “구정 운영의 핵심 동력은 주민의 신뢰”라고 되뇌며 매일 하루 오후 2~4시 구청장 문을 열어 놓고 2시간씩 주민들을 직접 만났다. 사무실 한쪽 벽에도 ‘사인여천’(事人如天·사람 섬기기를 하늘같이 하라)이라고 적힌 큼지막한 액자를 걸어 놨을 정도다. 청렴 1등 구 강북 실현, 공약 실천 최우수 구 달성 등 주민의 신뢰를 얻기 위한 노력들도 이어 왔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는 과반 득표율인 52.34%를 달성했다. 특히 강북구를 역사문화관광도시로 발돋움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박 구청장은 2016년 대한민국 근현대 역사를 망라한 근현대사 기념관을 개관했고, 지난해 4·19혁명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대상으로 선정되는 데 일조했다. 4·19혁명기록물은 내년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의 심사를 거쳐 최종 결정된다. 그는 또 1980년대 군사정권에 맞서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와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를 주축으로 결성돼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민주화추진협의회에서 활동했다. 198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을 따라 평화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뒤 당적을 한 차례도 바꾸지 않아 주민들로부터 우직하다는 평을 듣는다. 이후 2002년 노무현 대통령 후보 강북갑 선대위원장을 지냈다. 1995년 서울 강북구 서울시의원으로 지방자치를 시작했고 20여년 동안 꾸준히 구정을 챙겨 왔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러시아의 아침 우뜨라 라시야] 거대 조각상의 칼 내리칠 것 같은 볼고그라드 아레나

    [러시아의 아침 우뜨라 라시야] 거대 조각상의 칼 내리칠 것 같은 볼고그라드 아레나

    23일 새벽(한국시간) 나이지리아가 아이슬란드를 2-0으로 격파한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D조 2차전이 열린 도시가 볼고그라드라고 소개하면 고개를 갸웃거리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유명한 스탈린그라드입니다.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의 엄청난 스탈린그라드 공세를 견뎌냈던 도시입니다. 거대한 ‘마더 러시아’ 조각상의 커다란 칼이 금방이라도 내리칠 것 같은 언덕 아래에 볼고그라드 아레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기자가 멕시코와의 조별리그 2차전 취재를 위해 머무르고 있는 로스토프나도누가 돈강 하류와 아조프해가 맞닿는 항구인데 볼고그라드는 볼가강 하류와 돈강 하류가 관통하는 곳입니다. 사실 로스토프나도누에도 이것보다 작지만 커다란 조각상이 로스토프 아레나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더군요. 스파이 독살 사건으로 영국과 러시아가 외교적으로 갈등을 빚는 국면에 18일 잉글랜드 대표팀은 이곳에서 튀니지와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G조 1차전을 치렀습니다. 잉글랜드 서포터들에게 BBC는 이 도시와 영국이 갖고 있는 각별한 관계에 대해 알려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던 모양입니다. 지난 5일 방송이 보도한 내용을 뒤늦게 옮겨봅니다.2차 세계대전 때만 해도 러시아와 영국은 동맹으로 나치에 맞서 함께 싸웠다. 그런데 지금은 러시아 스파이 독살 사건으로 첨예한 외교적 갈등을 빚고 있다. 하지만 이곳 볼고그라드 주민들은 잠시 정치를 옆으로 밀어두고 잉글랜드 팬들을 맞을 준비에 열중하고 있다. BBC 기자가 찾았을 때 이곳 주민들은 전승 기념관을 마치 성지 순례하듯 찾고 있었는데 셔츠에 마더 러시아가 미국 자유의여신 머리를 잘라내는 그림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채 긴 계단을 오르는 한 청년을 만났다. 셔츠 아래쪽에는 “스탈린그라드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새겨져 있었다. 이반이란 이름의 전직 역사 교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서방은 러시아의 적이기 때문에 이 옷을 입었다. 그들은 우리를 모두 죽이려 한다. 그들이 우리를 미워하고 수백년 동안 그렇게 해온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적대적인 감정은 정치인이나 국영매체들에서 다반사가 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를 글로벌 열강 대열로 되돌리려 하자 서방이 러시아를 가둬두려고만 한다는 식이다. 지난달 볼고그라드 시내에서 전승기념일을 맞아 장병들과 탱크들의 행진을 바라보던 이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메시지가 나왔다. 군 제복을 입은 고령 은퇴자들이 “잉글랜드는 결코 우리 우방이 아니었다. 누구도 강하고 힘에 넘치는 러시아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월드컵 개최권을 따낸 2010년만 해도 두 나라 관계는 따듯했다. 그러나 그 뒤 2014년 크림 반도 점령, 우크라이나 동부 내전, 러시아의 시리아 내전 개입, 조금 더 최근에는 전직 스파이 세르게이 스크리팔과 딸을 군사용 신경가스로 살해하려 한 일 때문에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이에 따라 영국 왕실과 정부 장관 중 누구도 푸틴 대통령이 거들먹거릴 월드컵 개회식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방관리들은 정치와 스포츠는 별개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안드레이 코솔라포프 볼고그라드 시장은 “여기 사람들은 친절하고 미소가 훌륭해요. 난 여기 오겠다고 용기를 낸 이들이 깜짝 놀라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몇몇은 우리 조국을 나쁜 나라로 만들려고 하는데 월드컵은 커다란 축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새로 지어진 경기장은 대전 격전지 중 하나였다. 두 구의 시신과 수백개의 탄환이 발견돼 이를 발굴한 뒤 공사가 착공됐다. 러시안컵 결승을 치러 사실상 러시아월드컵 사전 테스트를 마쳤는데 한 소녀는 서투른 영어로 “모든 사람은 함께 살아야 해요. 평화, 정치 말고, 러시아에서 연인과 함께”라고 말했다. 로스토프나도누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구석구석 찾는 재미…떠나볼까 시간여행

    구석구석 찾는 재미…떠나볼까 시간여행

    1905년 경부선 개통, 1914년 호남선 개통으로 ‘한밭’은 철도를 중심으로 한 사통팔달의 교통 중심지인 대전(大田)으로 급성장한다. 교통의 발달은 자연스럽게 행정 수요가 이곳으로 몰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대전 원도심에는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건축물이 14개에 이른다. 그만큼 대전이 근현대사의 교통·행정의 중심 도시로 성장해 왔음을 보여 주는 사례라고도 볼 수 있다. 대전 원도심 여행은 대전근현대사전시관에서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 지하철 중구청역에서 내리면 바로 전시관을 찾을 수 있다. 대전역과 두 정거장 거리여서 외지인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전시관을 둘러본 뒤 중앙로를 따라 대전역으로 가는 길 곳곳에서 근현대사 건물과 빵집 ‘성심당’ 등 원도심 맛집을 만날 수 있다. 도시 곳곳에 숨은 근현대사 건물들을 하나하나 찾는 1920~1930년대로의 시간여행을 떠나 보자.①웅장한 유럽식 건축양식 ‘근현대사전시관’ 대전을 오랜만에 찾는 사람이라면 대전근현대사전시관보다는 충남도청이라는 명칭이 더 익숙할 수도 있다. 등록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된 옛 충남도청은 내포신도시로 도청이 이전된 후 현재 근현대사 전시관으로 탈바꿈해 시민들의 소중한 역사 공부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웅장한 유럽식 건축양식이 돋보이며 일본 시즈오카현 청사 본관과 비슷해 1930년대 관공서 건축양식을 보여 주는 자료로도 평가된다.건물 벽돌에 새겨진 일본의 상징인 벚꽃 모양을 본 이들은 다소 불쾌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또한 역사가 남긴 유산이다. 일제 잔재라는 이유로 벽돌을 제거하려 했지만, 너무 단단해서 결국 그대로 놔둘 수밖에 없었을 만큼 웬만한 현대 건축물보다도 튼튼한 내구성을 자랑하는 건물이기도 하다. 본관 1층은 구한말 이후 대전에 대한 다양한 자료가 전시돼 있고, 대전형무소에서 출옥하는 안창호 선생의 사진도 볼 수 있다. 영화 ‘변호인’ 등의 촬영 장소이기도 했던 고풍스러운 계단을 걸어 올라간 2층에는 역대 도지사들의 옛 물품과 1920년대 제작된 무게 1t짜리 금고 등이 전시돼 있다.②일제시대 건축 보고 싶다면 ‘관사촌거리’로 대전근현대사전시관에서 10분 남짓 거리에는 관사촌이 있다. 옛 충남도지사 공관과 부지사 관사, 국장급 관사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관사들이 이처럼 함께 모여 마을을 이룬 사례는 전국에서 유일하다. 조성 당시에는 일제 고위 관료들이 머물렀고, 6·25 전쟁 때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임시 거처로도 활용됐다. 서양식과 일본식이 혼합된 1930년대 건축양식을 보여 주는 건물로, 옛 충남도청과 함께 드라마, 영화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현재는 대전시가 충남도에서 공관을 매입해 도시재생 사업에 따라 ‘테미오래’라는 이름의 문화 공간으로 새로운 탄생을 준비 중이다. 올해 말쯤 시민과 관광객에게 공개된다.③도심 속 퍼지는 청아한 종소리 ‘대흥동성당’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형상을 한 대흥동성당은 고딕 양식의 적벽돌 구조가 대부분인 여느 성당 건축물과 달리 시멘트 벽돌로 마감해 기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서울 명동성당보다 큰 성당을 지으려고 했지만 완공하고 난 뒤 명동성당의 실제 크기를 잘못 측정한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명동성당보다 작게 지어졌지만, 개발이 더뎠던 주변 원도심과는 오히려 잘 어울려 보인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 당시는 대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기도 했다. 대전 원도심 투어를 하는 이들은 낮 12시나 오후 7시 대흥동성당의 종소리를 듣기 위해 일부러 이곳을 찾기도 한다. 1969년부터 매일 같은 시간에 종을 치며 50년째 성당의 종지기로 살아온 조정형(71)씨는 이 동네에서 이미 유명인사다. 한번은 성당 종소리가 달라졌다며 주민들의 항의가 들어왔는데, 알고 보니 그가 성지순례로 자리를 비운 사이 ‘대타’가 종을 쳤던 것이다. 소리가 달라졌음을 금방 알 수 있을 만큼 그의 종소리는 주민들에게 친숙하고도 독특하다. 대흥동성당은 등록문화재 643호로 지정돼 있다.④예술 공간으로 재탄생 ‘옛 대전여중 강당’ 대흥동성당의 종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위로를 얻은 이들은 인근 대전갤러리로 가보자. 무엇보다 한국 고유의 초가지붕을 연상케 하는 대전갤러리의 지붕은 부드러운 곡선미로 보는 이의 마음을 잔잔하게 한다. 이곳은 원래 1937년 대전여중 강당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2003년 리모델링을 거쳐 현재는 지역 예술가를 위한 문화전시관인 대전갤러리로 재탄생했다. 대전갤러리는 근대건축물이라는 역사적 의미와 함께 시대의 변화 속에서 문화 공간으로 새롭게 창조됐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⑤슬픈 역사 홀로 지켜본 ‘옛 대전형무소 망루’ 대전 중촌동 옛 대전형무소 자리의 망루는 ‘왜 빨리 철거하지 않지’라는 생각이 들 만큼 흉측한 외관을 하고 있다. 이곳은 일제시대 때 우리 독립투사들이 목숨을 잃었고, 6·25 전쟁 때는 좌익과 우익이 번갈아가며 교도소를 장악해 서로를 죽인 학살의 장소였다. 슬픈 역사를 지켜봐 왔던 망루는 원래 동서남북에 1개씩 모두 4개가 있었지만 현재는 대전 자유회관 옆에 1개만 남아 있다. 시신을 생매장했던 망루 인근의 우물 자리도 참혹했던 역사의 증인이다. 옛 대전형무소 자리의 역사적 의미는 인근 아파트 주민들의 모임인 ‘중촌마을 역사탐험대 그루터기’에 의해 재조명됐다. 대전시가 옛 대전형무소 관광자원화 조성공사를 올해 말까지 진행하고 있다. 대전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사진 한국관광공사 대전충남지사 제공 ■여행수첩(지역번호 042) →맛집:대흥동성당 인근 원조진로집(226-0914)은 두부 두루치기의 원조로 알려진 식당으로 매콤한 두부 두루치기와 오징어 두루치기가 주메뉴다. 원래 가락국수를 팔던 조그만 포장마차에서 술안주로 두부 요리를 만들던 것이 시작이었다고 한다. 귀빈돌솥밥(255-9198)은 전주식 돌솥비빔밥 전문점으로 정갈한 맛이 일품이다. ‘모든 나물은 리필이 되니 많이 많이 드세요’라고 적힌 수저통 메모에서 식당의 인심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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