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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호모 리터니즈/진보경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호모 리터니즈/진보경

    나는 빈 칸에 그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한다.‘해당 정보와 일치하는 아이디는 다음과 같습니다.jeonghyuns**’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끝 두 자리는 별표로 표시한다는 설명이 붙지만 나머지 철자는 뻔하다.정현수.그러니까 숨겨진 두 글자는 알파벳 ‘oo’인 셈이다.화면 상단의 비밀번호 찾기로 들어간다.아이디와 이름,주민등록번호,휴대전화 인증번호를 차례로 채운다.마지막으로 새 비밀번호를 입력하라는 창이 뜬다.정현수의 보안장치는 너무 허술했다.현실과 가상으로 나누어진 그의 공간.탐사 삼 일째,잠입은 성공적이다. 첫째 날은 집 안을 둘러보고 청소하는 일로 시간을 보냈다.불청객을 가장 먼저 맞이한 건 냄새였다.숙성이라고 해야 할까,부패라고 해야 할까.여러 소(素)들이 섞여 오랜 시간 묵은 냄새.증발된 삶의 흔적들이 좁은 공간을 빠져나가지 못한 채 고여 있었다.음식 냄새,담배 냄새,가구 냄새,하수구 냄새…….그리고 그의 체취.좀 더 강한 냄새부터 잔향까지.모두가 뒤섞여 도무지 구분되지 않는,냄새들의 저장소.금세 두통이 도졌다.발코니로 다가가 창을 열었다.앞 동은 층고가 낮고 뒤쪽은 야트막한 산이 배경인 아파트의 21층.벌거벗고 집안을 활보해도 될 만큼 자유로운 높이에 그는 살고 있었다.발밑으로 솜뭉치 같은 먼지들이 풀풀거렸다.청소기를 돌리고 썩은 음식들을 내다 버렸다.자정이 넘은 시각,음식물 쓰레기통 뚜껑을 여는 남자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둘째 날은 늦잠을 잤다.퀴퀴한 냄새가 배어 있는 그의 침구 속에서,나는 배가 고파 눈을 떴다.냉장고 안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곤 생수 두 통뿐이었다.주방 수납장에서 라면 몇 봉지를 발견했다.계란도 단무지도 김치도 없이,끓인 라면을 뚜껑에 덜어 두 끼를 때웠다.정현수의 휴대전화를 충전해 전원을 켰다.다행히 잠금 설정은 되어있지 않았다.전화번호 저장함은 텅 비어 있었다.통화목록도 모두 지워져 아무런 기록도 남아있지 않았다. 수신함에 읽지 않은 메일 수백여 통이 쌓여 있다.나는 잠깐 망설인다.메일들을 클릭하는 순간 벌어질 수 있는 일에 대해.스팸메일이야 그렇다 쳐도,수신 확인은 그의 실존을 증명할 수 있는 단서가 되지 않겠는가.어쩌면 나에겐 그것이 더 나은 일인지도 모른다.우선 광고메일들을 체크해 휴지통으로 보낸다.발신자가 백화점이나 은행,식당,웹사이트 등의 상호로 표시되거나 제목에 ‘대출’,‘오빠’,‘신제품’ 같은 키워드가 포함되어 있으면 무조건 삭제한다.그러고 나니 순수한 의도와 목적을 가진 듯한 메일 여섯 통이 남는다.지난달에 수신된 두 통은 결혼식과 돌잔치 안내가 제목으로 올라와 있고,한 통은 ‘형 잘 지내요?’로 안부를 전하는 메시지다.네 번째 메일의 제목은 ‘수정 관련사항입니다’,발신인은 ‘한강병원’이다.언뜻 봐선 그의 사적인 일에 관한 내용인 듯싶다.정현수는 유부남이었을까.내용을 살펴본다.안녕하세요.한강병원 원무과 김 대리입니다.제작해 주신 홈페이지에 오류가 발생하여 문의 드립니다.추가로 수정을 원하는 부분도 상세하게 적어두었으니 첨부파일을 참고하세요.비용 관련 협의는 전화로 했으면 합니다.연락 기다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발신인이 ‘리쉬케쉬’인 메일 두 통을 놓고 고민한다.리쉬케쉬는 실명일까,닉네임일까.‘제목 없음’이 제목인 이 메일은 광고일까,아닐까.얼핏 대부업체 상호 같은 느낌도 든다.인터넷 새 창을 열어 검색어를 입력한다. 요가와 명상의 도시 리쉬케쉬.갠지스 강의 상류에 위치한 히말라야의 관문이다.힌두교인의 성지이므로 이곳에서 푸자를 하고 꽃접시를 띄워 보내며 소원을 빌기도 한다.요가의 본고장이라 수많은 아쉬람과 요가선생들이 있고,비틀스가 구루(guru) ‘마하리쉬 마헤쉬’를 찾아와 머무르면서 더욱 유명해진 도시.장기간 요가와 명상을 즐기고 싶은 여행자에게 최적의 장소이며 금주와 채식의 고장.술은 어디서도 구할 수 없고 100% 채식을 하므로 이곳에서는 달걀조차 먹을 수 없다……. 수행자의 도시에서 온 메일.역시 판단하기가 어렵다.어쩌면 그가 가입한 인터넷 카페나 동호회의 이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가입한 카페 목록을 열어본다.삼십대 중반의 남자라면 대부분 가입했음직한 성격의 카페들이 주르륵,여섯 개가 뜬다.등산,음악,사진,재테크,여행 그리고 마지막으로 CEO클럽.정현수의 직함은 대표이사였다.회사명은 ‘펨토테크놀로지’.첫째 날,그의 명함에 찍힌 회사 전화번호를 눌러보았다.결번이었다.명함 우측 상단엔 ‘네트워크 솔루션’이라는 단어가 인쇄돼 있었다.회사 도메인을 주소창에 입력했다.웹페이지를 표시할 수 없다는 메시지가 떴다.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문을 닫게 된 그 회사의 CEO가 정현수였다.한강병원에서 발주를 받은 건 회사를 폐업하기 전이었을까,아니면 이후일까.그가 되기 위해선 그를 완벽히 알아내야 한다.나는 리쉬케쉬에서 온 메일을 열어보기로 결심한다. 수신날짜가 8월 5일인 첫 번째 메일은 사진 한 장과 두 줄의 메시지가 전부였다. 내가 지금 이곳에 머무는 이유에 대해 잊으려고 노력 중이야.마음이 편안해지고 있어.요즘 사귄 새 친구를 소개할게. 허름한 골목길,얼룩소 한 마리가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마시는 사진.소의 턱을 타고 흘러내리는 게 물인지 침인지 모르겠다. 두 번째 메일은 내용 없이 인물 사진만 첨부돼 있다.통통한 체형에 단발머리인 여자는 무표정하다.그렇지만 딱딱하게 굳지 않은,오히려 편안해 보이는 모습이다.아마도 발신인의 사진 같다.두 통의 메일로는 아무것도 추측할 수가 없다.그녀는 정현수와 어떤 관계일까.수신된 날짜는 10월 17일.내가 그를 발견하기 하루 전에 도착한 것이다. 마른 낙엽을 수북이 덮고 그는 얌전히 엎드려 있었다. 평일 오후의 등산로는 한산했다.매표소 앞 매점에서 김밥과 라면을 사먹고 네 시쯤 오르기 시작한 산행이었다.중년부부 두 쌍과 젊은 여자 한 명,대학생으로 보이는 일행 대여섯 명 정도가 그날 마주친 사람 전부였다.어디서 넘어왔는지 모르지만 그들은 모두 하산 길이었다.조용한 산길에서 서로 말없이 길을 터주며 걸음을 재촉했다.깔딱고개를 지날 땐 평소보다 심하게 헉헉거렸다.지난밤 과도하게 마신 술과 담배 때문이었다.계곡을 치고 올라온 지 한 시간이 지났다.정상이 눈앞에 보였다.숨이 턱까지 차올랐다.마지막에 사람을 가장 고통스럽게 담금질하는 건 산행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조금 있으면 해가 질 시간이었다.산속의 어둠은 모든 것을 까마득하게 지워버린다.주변은 물론,시야에서 사라진 길 위에 서있는 내 모습 까지도.검은 하늘과 더 짙은 능선의 경계만 구분할 수 있을 뿐이다.야간산행을 준비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당혹감을 넘어 두려움으로 온몸을 굳게 만드는 어둠.나는 산속의 어둠쯤 두렵지 않았다.거의 매일 오르내린 덕분에 눈 감고도 헤칠 수 있는 길이었다.호흡은 가빠도 마음은 더없이 고요했다.등산객 이외의 어떤 것으로도 나를 판단하지 않는 산.그곳에 있을 때 나는 가장 자유롭고 평등했다. 물든 단풍은 정상 근처에서만 볼 수 있었다.발밑에선 낙엽들이 사각,소리를 내며 부서졌다.가을은 아직 오지 않고 가뭄이 세상을 바짝바짝 말리고 있었다.나는 용변 볼 장소를 찾아 길을 등졌다.널찍한 바위 뒤편에 쭈그리고 앉아보았다.굽이진 길 위로 하산하는 일행이 보였다.소변이야 대충 돌아서서 금방 끝낼 수 있지만 엉덩이를 까고 앉아야 하는 일은 더 은밀한 장소여야 했다.아래쪽은 급경사였다.다른 길을 찾아볼 여유는 없었다.나는 내리막 경사를 따라 미끄러지듯 뛰었다.이 정도면 됐다 싶은 곳에 바지를 내리고 앉았다.어느새 파리들이 다가와 윙윙거렸다. 발끝으로 낙엽을 모아 용변을 덮었다.역시 어제 마신 술 때문인지 냄새가 심했다.시큼하고 들큼하고 구렸다.손가락으로 코를 싸쥐고 발로 계속 낙엽을 찼다.사위는 이미 어둑해지고 있었다.대충 정리를 끝내고 비탈길을 오르던 나는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누가 불러 세운 것 같기도,알 수 없는 신호를 받은 것 같기도 했다.내가 앉아있던 주변을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내려다봤다.불룩하게 솟은 무언가가 보였다.바위도 아니고 흙도 아니었다.나는 슬금슬금 내려가 다시 그 자리에 섰다.그리고 가까이 다가가 그것을 유심히 살폈다.수북한 낙엽 사이로 푸른 옷자락이 보였다.손바닥으로 낙엽을 헤쳤다.역한 냄새가 훅 끼쳤다.푸른 상의에 검은 바지 차림의 누군가가 엎드려 있었다.그의 등에 손바닥을 댔다.차가웠다.이봐요.나는 푸른 옷의 오른팔을 들춰보았다.표피가 터질듯 부풀어 오른 파리 유충들과 딱정벌레 무리가 굼실거리고 있었다. 요동치는 마음과 달리 나는 한 발짝도 뗄 수 없었다.불현듯 오한이 들고 온몸이 떨려왔다.나는 망설였다.그냥 모른 척 되돌아가고 싶었다.후들거리는 발이 붙박인 듯 움직이지 않았다.휴대전화를 꺼내 ‘119’를 눌렀다.깊은 계곡 안이라 통화불능이었다.조금 높은 곳으로 올라가 통화를 시도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조금만 기다려요.그 말은 오히려 나를 안심시키는 효과가 있었다.천천히 몸을 움직여 일을 진행했다.구조대원들이 발견하기 쉽도록 그를 덮은 흙과 나뭇가지,낙엽들을 옆으로 치웠다.벌레들이 놀란 듯 꼬물거렸다.파리들이 머리 위를 맴돌았다.냄새 때문에라도 더는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현장 정리를 마치고 돌아서려던 그때,또다시 무언가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그의 바지 뒷주머니 위로 반쯤 삐어져 나온 지갑. 나는 침착하게 등산장갑을 손에 꼈다. 어차피 이 사람에겐 소용없는 물건 아닌가.발견한 구조대원이 유족들을 수소문해 돌려줄 수도 있겠지.하지만 나와 같은 누군가가 이것을 먼저 발견한다면…….장갑 낀 손으로 지갑을 빼냈다.몇 장의 카드와 신분증,현금은 십만 원도 채 안 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내 의도와 상관없이 유예된 삶에서 벗어날 방도를 궁리 중이었다.좀 더 잘살기 위해 선택한 길인데 어쩌다 보니 한가운데 갇혀버린 채 덜컥 문이 닫혔다.세상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았고 사람들 또한 그랬다.서른 살 넘은 무직자인 나와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은 어릴 적 친구들뿐.누구도 나를 달가워하지 않았다.나는 이제껏 그 흔한 연애조차 못 해봤다.더 나은 모습으로 더 좋은 상대를 골라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었다.현재의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수식어는 없었고 그런 내가 적응할 수 있는 집단이나 장소 역시 없었다.하지만 그건 명백히 내 잘못이 아니다.나는 열심히 노력해 왔다.단 한 번도 샛길로 빠져보지 않은 그야말로 모범생이었다.그렇다 해도 나를 그럴듯하게 돋보일 수식어가 없는 한,내 삶은 유예 중인 거였다.이제 와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전면적인 궤도 수정을 하기엔 너무 늦었다.벌써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내집마련을 목전에 두고 있는 또래들을 보면 더욱 극심한 절망감에 빠졌다.그렇다면 어떻게 바꿀 것인가.오던 길 계속 가는 것도 불안하고 새 길을 찾아내는 것 역시 자신 없다.나는 내 인생의 판을 새로 짜고 싶었다.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갑에서 현금 대신 신분증을 꺼냈다.아이 손바닥만 한 작은 플라스틱 판 안에 그의 정보가 고스란히 들어있었다.이름은 정현수.나와 동성(同性)이고 나보다 한 살이 많다.뿔테 안경에 회색 스웨터 차림의 증명사진 속 그는 나이보다 조금 더 늙어 보였다.주소지는 서울의 남쪽 신도시에 위치한 아파트……. 순간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이제껏 한 번도 품어보지 못한 생각이,그야말로 섬광처럼 떠올랐다.나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어댔다.아니다.그것은 전부를 버려야 가능해지는 일이다.지금까지의 나,나의 생활,인간관계,과거 행적까지 모두. 그럴 수 있겠는가. 모든 일은 순식간에 처리됐다.‘그럴 수 있겠는가’에 대한 결단은 내리지 못한 채였다.나는 내 지갑의 신분증을 꺼내 그의 것과 맞바꿨다.신용카드 한 장과 그의 명함도 몇 장 챙겼다.현금은 건드리지 않았다.주머니에 지갑을 원래대로 꽂아두었다.오른쪽 앞주머니를 더듬어 휴대전화와 열쇠꾸러미까지 갈취했다.딱딱한 그의 골격이 손가락에 닿았다.헤친 낙엽과 흙을 다시 그의 몸 위에 덮었다.더 이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깜깜한 그곳을 어떻게 등지고 하산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가을밤,산중의 바람은 차가웠다.땀에 젖은 바지가 다리에 자꾸 휘감겼다.어지러워 더 이상 걸을 수 없어 주저앉았다.멀리서 매점 불빛이 반짝였다.내 삶을 최초로 이탈하는 순간이었다. 두 통의 메일로 봐선 정현수와의 관계를 가늠하기가 어렵다.현재 인도에 머물고 있는 여자는 두 달 간격으로 소식을 전해왔다.그것도 너무나 간략하게.여자의 이전 소식을 알 수 있을까 싶어 메일 보관함을 뒤졌다.정현수가 따로 보관 중인 메일은 없었다.휴지통마저 텅 비어 있었다.그는 관리가 철저하고 주변정리가 깔끔한 사람이었다. 컴퓨터에 저장된 자료들은 폴더 별로 분리되어 탐사하기가 수월했다.‘사진방’ 폴더를 클릭한다.날짜 및 장소별로 지정된 폴더 안에 인물 사진은 그의 독사진 몇 장뿐이다.나머지는 모두 풍경사진.내친김에 앨범을 찾아보기로 한다.서랍과 책꽂이,장식장,심지어 다용도실까지 뒤졌지만 그 흔한 졸업앨범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그는 누구일까.나는 갑자기 불안해진다.그를 빌리기로 결심한 이후 가장 걱정되는 점이 그의 인간관계였다.휴대전화에 저장된 이름과 통화목록이 하나도 없다는 것에 용기를 내지 않았던가.그러니 오히려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그래도 설마 했지만 관계를 가늠할 수 있는 단서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최소한의 관계인 가족조차도.모든 인연에 무관한 그의 삶이 어쩌면 의도에 의한 것은 아닐까,궁금해진다. 사흘간의 탐사 끝에 비로소 나는 그가 되어 사는 일에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아파트 정문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뽑아 상가 식당에서 백반을 사먹었다.식사 후엔 동네 주변을 산책했다.나는 정현수 대신,아니 정현수가 되어 거리를 쏘다녔다.그의 옷은 내게 헐렁했다.살을 좀 찌워야 하지 않을까,나는 잠시 고민했다.키는 더 늘일 수 없으니 소매와 바짓단을 줄여야 할 것이다.거대한 체구와는 다르게 정현수는 심플한 취향을 가졌다.살림살이 역시 단출했다.옷장,침대,컴퓨터 책상,주방가구.거실엔 한쪽 벽을 책장으로 채웠을 뿐 마땅히 갖춰야 할 티브이와 소파가 없다.드문드문 꽂혀 있는 책들은 대부분 IT와 경영관련 서적이고 간간이 ‘줄리아나의 리더쉽’,‘협상의 원포인트 레슨’ 같은 처세 관련 책들이 눈에 띈다.옷장 서랍 밑바닥에 통장 대여섯 개가 나란히 깔려 있었다.모든 공과금은 정해진 날짜에 자동이체로 빠져나갔다.그는 통장마다 맨 앞 장 귀퉁이에 연필로 비밀번호 네 자리를 적어두었다.잔고는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관계없음’으로 인한 정현수의 삶은 외로웠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익숙한 내게는 무척 다행한 일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는 혼자가 되었다.아버지는 내가 중학생이던 때 엄마와 이혼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엄마는 늘 내게 말했다.명심해라.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걸.아버지와 결혼할 당시 엄마는 항공사 승무원 시험 최종합격을 앞두고 있었다.사랑에 빠져있던 엄마는 결혼을 선택했고 그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어긋난 거라고.그때 내가 승무원의 길을 택했더라면…….평생을 잊지 못할 아쉬운 선택에 엄마는 탄식했다.그건 모르는 일이죠.그 길에서 또 어떤 일이 엄마를 어긋나게 했을지.어쩌면 지금보다 더 참혹했을 수도 있어요.나는 혼자 중얼거렸다.알밤을 맞을 일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잘못된 선택으로 자신의 고귀한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믿는 일이,원래 주어진 참혹한 삶을 인정하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아서였다. 졸업 후 여기저기서 취업 제의가 들어왔다.금융권의 계약직 사원으로 취직한 동기들이 앞다퉈 나를 데려가려고 나섰다.나는 공인회계사 시험에 이년째 낙방 중이었다.마음만 먹으면 중소기업 정규직 자리도 널려 있었다.서른이 넘도록 용돈을 타 쓰는 일이 괴로웠던 나는 솔깃했다.하지만 엄마가 고집을 부렸다.출발점이 어디냐에 따라 네 인생이 달라지는 법이야.지금 그렇게 아무 곳에나 들어가면 너는 평생 그 좁은 바닥에서 푸드덕거리다 끝날 게다.어려워도 더 넓고 깊은 물에 뛰어들어야 해.나중에 후회 없으려면 엄마 말 잘 들어라.그렇게 삼 년이 더 흘렀다.취업문은 좁아졌고 동기들은 제 밥줄 잡고 있기도 힘겨워했다.엄마는 내가 큰 물에 몸을 던지는 일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그리고 나는 지금 첫 단추를 새것으로 갈아치웠다. 받은 편지에 대한 답신을 보낸다.기쁜 날 참석 못해 미안하다.개인적인 사정이 생겨 당분간 메일로만 연락이 가능할 것 같다.안부를 물어온 정현수의 후배에게도 마찬가지 내용이다.리쉬케쉬의 여자에게는 답장을 보내지 않는다.마지막으로 한강병원 김 대리에게 짧은 메시지를 적는다.보내주신 수정안 잘 받았습니다.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 마감이 겹쳐 당장은 진행이 어렵습니다.조금만 말미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며칠 후에 전화 드릴게요. H은행 통장정리기 앞에서 한참을 기다린다.입출금 명세를 기록하는 기계음이 찌익 찍,지루하게 이어진다.다른 은행에 비해 시간이 길다.인쇄되는 내용이 많은 걸로 보아 이곳이 정현수의 주거래은행인 모양이다.답신을 보낸 다음날 전화가 걸려왔다.정현수의 휴대전화가 울리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받아야 하나,말아야 하나.벨소리는 길게 이어졌고 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잠시 후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한강병원 김 대리입니다.유지보수비 외에 수정비용을 따로 지불해드려야 할까요.도통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응답을 하지 않으면 또 전화가 걸려올지도 몰랐다.나는 간단히 답신을 보냈다.그건 알아서 처리해 주세요.투입구에서 빠져나온 통장을 받아 살핀다.한강병원으로부터 매달 일정금액이 입금되고 있었다.김 대리가 말한 유지보수비,프로그램에 대한 사후관리비쯤 되는 것인가.그러잖아도 잔고가 떨어져 걱정하던 참이었다. 전화벨이 울린다.발신번호를 확인하고 수신버튼을 누른다.네,정현수입니다.나는 또박또박,이름을 밝혔다.웹마스터 P가 인사말도 없이 웅얼거린다. “요청하신 작업은 사흘이면 마무리될 것 같습니다.” “아,예.그렇게 처리해 주세요.” “결제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지갑에서 정현수의 신용카드를 꺼내 일련번호 열여섯 자리를 불러준다. 홈페이지 수정작업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정현수의 실력까지 덮어쓸 순 없었으니까.김 대리에게 답신을 보낸 후 컴퓨터에서 ‘한강병원’ 폴더를 찾아냈다.나로서는 알 수 없는 파일들만 수두룩했다.집에서 가까운 홈페이지 제작업체를 찾아가 기존 프로그램의 수정과 보완이 가능한지를 물었다.담당자는 원본 파일들을 가져오라고 했다.집으로 돌아와 저장장치에 파일을 복사했다.그리고 어제 그것들을 P에게 건네주고 왔다. 지하철 역 입구에 서서 잠시 고민한다.오늘 저녁으론 무얼 먹을까.내가 살던 집 근처엔 할머니 혼자 삼십 년 넘게 꾸려온 순댓국집이 있다.좁은 공간에 테이블 여섯 개가 전부여도 끼니때가 되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맛 소문이 났다.요즘 자꾸 그 맛이 당긴다.정현수의 집으로 가는 길과 순댓국집으로 가는 길은 서로 반대 방향이다.어떻게 할까.주변을 무심히 둘러본다.길 건너 환한 불빛,‘병천○○순대’ 체인점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횡단보도 쪽으로 몸을 돌려 걷는다.어쩌면 할머니 순대를 다시 먹을 수 없을 거라 생각하니 조금 우울해진다.내 안에 축적된 기호와 습성들을 완전히 지울 방법은 없을까.나는,정현수니까. 온라인 원격교육 사이트에 로그인한다.첨삭해야 할 리포트가 다섯 개 올라와 있다.통신교육업체의 수강생들이 문제지를 풀어 올리면 그것을 채점하는 일이 나의 몫이다.각 과정별로 교재는 무료로 제공된다.나는 그 교재를 읽고 함께 제공된 답안지를 참고삼아 점수를 매긴다.의뢰일로부터 일주일 이내에 완료하면 되는 일이다.딱히 어렵거나 촉박하지도 않다.외부활동 없이 집에서 책을 읽고 인터넷에 접속만 하면 된다.대신 보수는 적다.리포트 한 건당 삼천 원.그럭저럭 웬만큼만 하면 먹고사는 데 지장은 없을 것 같다. 며칠 동안 인터넷 취업사이트를 돌며 일을 찾았다.남은 잔고와 한강병원에서 입금되는 유지보수비로는 관리비와 공과금 납부도 빠듯했기 때문이다.앞으로 생존에 관한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정현수의 떡고물을 축내려고 이곳에 온 것은 아니니까.결과물을 보고 김 대리는 아주 만족해했다.이번에는 그의 전화를 피하지 않았다.윗선에서 따로 비용지불은 어렵다고 합니다.대신 제가 술 한 잔 사도록 하죠. 수강생의 이름을 클릭하고 점수 칸을 채운다.참고가 될 만한 사항은 교재에서 발췌해 따로 코멘트를 달기도 한다.객관식과 주관식 문항에 꼼꼼히 답을 단 사람들에게서 성실한 삶의 태도가 느껴진다.대부분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에 근무하는 사람들이다.교재 내용은 직장 내 소통과 개인적인 성공에 관한 것들이 주를 이룬다.회사 내에서 상사가 지켜야 할 점,동료들끼리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설득과 대화의 심리학…….틈틈이 다른 일자리를 더 알아봐야겠다.언제까지나 방구석에 처박혀 지낼 수만은 없다.정현수의 전공과 이력이라면 부족함은 없을 것이다.그러기 위해선 공부도 많이 해야 하겠지.새로운 영역을 배우는 일,마음이 설렌다.그리고 상황이 된다면,아니 무엇보다 먼저,연애를 하고 싶다. “선배님,오랜만입니다.” 몸집이 작고 다부진 체구의 남자가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나는 한강병원 로비의 회전문을 등지고 서 있었다.김 대리와 만나기로 약속을 정해놓고 전전긍긍했다.지난번 빚진 거 갚아야죠.정 선배님 얼굴도 보고 싶고,한 잔 사겠습니다.처음엔 핑계를 대며 몇 번 거절했다.서슴없이 ‘선배’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그가 정현수의 어느 시절 후배인지,그저 의례적으로 사용하는 호칭일 뿐인지,알아낼 방법이 없었다.하지만 무작정 미루고 있는 것도 불안했다.세 번째 전화를 받았을 때 어쩔 수 없이 수락을 한 거였다.나는 최대한 정현수처럼 보이도록 치장했다.사진 속 그의 것과 비슷한 뿔테안경을 구입했다.옷장에서 가장 낡은 옷을 골랐다.낡은 것은 오래 묵었다는 증거 외에 그만큼 애용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두툼한 회색 니트를 꺼내 입었다.키높이 구두를 신었더니 바짓단을 접지 않아도 되었다. “작년 봄 제작 회의 때 뵙고 이번이 두 번째네요.살이 좀 빠지신 것 같습니다.제가 기억하는 선배님 첫 인상은 꽤나 듬직한 체격이었는데요.허허.” 당혹스런 속내와 달리,나는 머쓱하게 웃었다.불판 위에서 고기가 지글거리며 익어간다.김 대리가 잔을 든다. “과묵한 건 여전하시네요.” 선후배 사이긴 해도 두 번째 만남이라고 하니 저쪽도 어색한 건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취기가 오르면서 분위기는 조금 부드러워졌다.티브이에서 저녁뉴스가 방영되고 있지만 취객들의 소음에 뒤섞여 내용은 알아들을 수 없다.화면과 자막을 흘끔거린다.불콰해진 김 대리는 말이 많아졌다.이 나라 국민치고 내일이 불안하지 않은 사람 없습니다.침체의 늪에 이제 막 첫발이 빠졌을 뿐인데요,자신이 어떤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요.저희 병원도 감원의 칼바람이 언제 휘몰아칠지 몰라 매일 살얼음판입니다.나는 간간이 고개를 끄덕이고 그에게 동조와 연민이 담긴 눈길을 보냈다.따끈한 온돌 방바닥에 엉덩이를 지지며 우리는 조금씩 노곤해졌다. “그런데,신 선배는 아직 연락 없어요?” 우물거리던 입놀림을 멈추고 그를 건너다본다.기어이 우려하고 있던 일이 일어난 것이다.그는 정현수와 사적인 관계였다.둘의 공통분모,신 선배라니. “아직…….” “참,세상 일 알 수 없고 믿을 놈 아무리 없다 해도 어떻게 신 선배가 그럴 수 있어요?” 나는 고개를 숙였다.이쯤에서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서야 할까.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면 곤란한데. “정 선배님이야,회사 일로 알게 됐지만 신 선배하고 저는 수업도 같이 듣고 꽤 가까웠거든요.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고요.” 그가 고기와 술을 추가로 주문하고 담배연기를 후,뱉으며 말을 잇는다. “선배님 많이 드세요.형수님 소식도 들었습니다.지난여름 동문 모임에서요.어딘가로 떠나셨다면서요…….혼자서 얼마나 힘드세요.” 나는 점점 궁금해진다.신 선배라는 사람은 정현수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정현수의 아내는 누구이며 어떤 이유로 그에게서 떠난 걸까.혹시 리쉬케쉬의 여자일까.이대로 묵묵히 김 대리의 말을 듣고 있어도 괜찮으리라.아마 정현수였더라도,지금의 분위기에선 그랬을 것이다.그의 몸이 시계추처럼 좌우로 흔들린다. “이게 다 신 선배 때문 아닌가요?그 사람 절대 용서하지 마세요.동업자이기 전에 둘도 없는 친구였다고 들었습니다.자기 혼자 잘살자고 그런 짓을 하다니요.결국 경쟁사만 좋은 일 시키고,회사 문 닫고,자기는 도망쳐버리고,친구도 잃고,이게 뭐예요.어떻게 정 선배한테 그럴 수 있냐고요…….” 풀썩,김 대리가 옆으로 쓰러진다.불판 위에선 까맣게 눌어붙은 고기조각이 오그라들고 있다. 김 대리의 말을 정리해 보면 신 아무개와 정현수는 절친한 친구이며 동업자였다.그런데 신씨가 정현수를 배신하고 회사를 닫게 만들었다.이후 정현수의 아내가 그의 곁을 떠났다. 만취해 그대로 잠이 든 그를 힘겹게 깨워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선배님 잘살아요.김 대리가 눈을 꿈뻑이며 중얼거렸다.나는 그의 등을 두어 번 다독이고 택시를 잡았다. 메일함을 연다.리쉬케쉬에서 메일이 도착했다.‘회귀’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삶의 의미를,내가 사는 이유를 찾아내고 싶어 떠나온 지 벌써 이 년이 지났어.나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지만 그것이 내가 찾아낸 정답이라면 당신은 아마 웃을 테지?아무것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살아야겠어.다시 나로 돌아가 내 삶을 찾는 것이 방법일 거야.이곳에서의 삶도 그곳과 별반 다르지 않더라.사람 사는 모습은 엇비슷하고 어디에 머물든,어떻게 살든,나는 그저 나일 뿐이더라고…….당신 많이 보고 싶다. 여자의 도착 예정일은 11월 28일이라고 했다.앞으로 일주일 후면 그녀는 정현수를 찾아 이곳에 올 것이다.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사연은 무엇일까.나는 그녀를 맞이해야 할까,피해야 할까.그렇게 되면 나의 일생일대 프로젝트는…….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내가 다른 삶을 원했던 이유는 현실에 대한 불만족 때문이었다.나는 무능한 사회부적응자였으니까.새로운 길을 찾아볼 수도 있었지만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기가 어려웠다.그동안 쌓아온 것들을 모두 접고 다른 일을 시작하기에 나는 너무 많이 와버렸기 때문에.한 번만 더,이번엔 되겠지.미련을 쉽게 접을 수 없었다.모든 것을 내 손으로 허물어야 하는 일이 아직은 자신 없다.그곳으로 돌아가 다시 내가 된다면 똑같은 고민과 패배감에 휩싸여 매일 산에 오르는 일만 반복할지 모른다.나는,나로 사는 것이 두렵다. 서가에 꽂힌 책들을 멍하니 바라본다.우측 선반 맨 위,낯익은 제목이 시야에 들어온다.만년수험생으로 타 분야 서적을 읽을 시간이 없던 내게 친구 녀석이 선물해줬던 책.‘잠깐 머문 곳도 내게는 고향’이라는 인상적인 구절이 떠오른다.의자를 놓고 올라가 그것을 꺼내든다.툭.발밑으로 무언가 떨어져 내린다.누런 서류봉투가 반으로 접혀 있다.도톰하다.책을 내려놓고 봉투 안의 내용물을 꺼낸다. 모두 같은 장소에서 찍힌 수십 장의 사진이다.리쉬케쉬의 여자와 정현수.새하얀 예복을 입은 그들은 행복해 보인다.그와 그녀가 공유했던 삶의 윤곽…….봉투와 책을 원래 있던 자리에 꽂아두고 쫓기듯 도망치듯 나는 밖으로 뛰쳐나온다.정현수 당신,고작 이런 거였어?그를 빌리기로 작정했던 순간 내가 바라던 상황은 이런 게 아니었다.적어도 나보다 나은 인생일 거라 믿었는데…….이런 삶을 나더러 어떻게 살아내라고.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뒷산을 오르고,다시 내려와 걷는다.인도를 따라 무작정 뛰고 헉헉대며 걷다가 호흡이 잦아들면 다시 뛴다.어느 방향이든 상관없다.지극히 외롭고 무거운 그의 삶을 벗어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라도. 정현수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을지 모르겠다.그의 죽음은 우연한 사고였을까.어쨌든 그는 실족하지 말았어야 했다.그렇게 마침표를 찍은 삶을 내가 이어 사는 일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이것은 무늬만 다른 삶 외에 어떤 뜻이 있는가.지금의 삶이 차곡차곡 쌓여 미래가 되고 어느 지점쯤에 다다르면 나는 또 새 판을 짜고 싶어질까. 리쉬케쉬의 여자처럼 나도,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옷장 안 깊숙이 넣어두었던 등산복을 꺼내 입는다.두꺼워진 허리에 바지 지퍼가 올라가지 않는다.허리띠 버클을 조정해 간신히 채운다.배낭을 메고 그의 신분증과 휴대전화,신용카드와 명함,열쇠꾸러미를 주머니에 넣는다.현금카드,통장,그동안 사용하던 물품들은 모두 제자리에 돌려놓았다.마지막으로 현관에 서서 집안을 둘러본다.돌아온 그의 여자가 낯선 흔적을 발견할 수 없길 바라며. 어둑해진 산길을 천천히 오른다.사각거리던 낙엽들이 어느덧 수북이 쌓여 발목을 푹신하게 감싼다.오랜만의 산행이라서일까,무거워진 몸 때문일까.걸음이 쉽지 않다.리쉬케쉬의 편지 내용이 떠오른다.다시 나로 돌아가 내 삶을 찾는 것이 방법일 거야.나는 그저 나일 뿐이더라고.새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남의 인생을 덮어쓰는 일,그것은 결국 누구의 삶도 아니었다.과거를 버려둔 채 현재의 나를 바꿀 수는 없는 거였다.그런데 길이 낯설다.그날 내려왔던 그대로 마른 계곡을 따라 길을 잡았는데 이쯤 나타나야 할 바위가 보이지 않는다.하산 길 이정표를 지나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였는데. 이정표 지점부터 다시 시작한다.부쩍 떨어진 기온에 으슬으슬 한기가 든다.그를 다시 만나야 하는 일이 내키진 않지만 내 자리로 돌아가려면 이곳을 꼭 거쳐야 한다.빌린 물건을 돌려주고 맡긴 내 물건도 되찾아야 하니까.이제 회계사 시험공부 따윈 하지 않을 것이다.다시 나로 돌아가 모든 것을 엎고 새 삶을 시작할 것이다.조만간 납골당의 엄마에게 인사드리러 가야겠다.발걸음이 빨라진다.계곡 깊이 내려앉은 어둠에 더 이상 앞을 분간하기가 힘들다.랜턴을 켠다.십여 미터 전방에 그날의 바위가 보인다.나도 모르게 진저리를 친다. 바위 뒤를 돌아 내려선다.낙엽더미에 무릎이 푹,빠진다.벌레도 냄새도 거의 사라졌다.춥고 건조한 초겨울의 바람 덕분이리라.발견 당시 유충들의 먹잇감이나 다름없었던 정현수.죽음 이후의 삶은 이곳에서 더 의미 있고 유용했을지 모르겠다.장갑을 끼고 낙엽을 헤집는다.정확한 지점이 어딘지 헷갈린다.앉아 있던 자리 주변을 몇 군데 파헤친다.다시 몇 걸음 옮겨본다.일어서서 발로 바닥을 굴러본다.어느 지점쯤,돌출된 나무뿌리를 밟은 듯 딱딱한 느낌.자리에 앉는다.장갑 낀 손으로 그곳을 더듬어 굴곡을 살핀다.머리끝까지 소름이 돋는다.잘 있었어요…….나도 모르게 울컥,감정이 솟는다. 수분이 빠져나간 그의 둔부는 아래로 쑥 꺼져 있다.지갑이 꽂힌 자리만 조금 도드라질 뿐.나는 챙겨온 정현수의 물건들을 하나씩 꺼낸다.먼저 휴대전화와 열쇠꾸러미를 그의 바지 앞주머니에 밀어 넣는다.어쩐지 이전보다 헐렁해진 느낌이다.뒷주머니에서 지갑을 빼낸다.휴대전화의 감촉이 손끝에 와 닿는다.채우고 흐르던 내용물이 사라지고 지지대만 남은 그의 몸.갑자기 누군가 머리칼을 잡아챈 듯 정수리에 극심한 통증이 인다.떨리는 손으로 지갑을 펼쳐 신분증을 교환한다.꽂혀있던 내 것을 꺼내고 가져온 그의 것을 쑤셔 넣는다.그리고 재빨리 지갑을 원래 있던 자리에 꽂아둔다. 모든 것은 끝났다.이제 나는 돌아가 내 삶의 새 판을 짤 것이다.그럼,잘 있어요.인사를 마치고 신분증을 내 지갑에 꽂는다.그런데 뭔가 이상하다.손끝에서 느껴지는 낯선 이물감.신분증을 다시 꺼낸다.바닥에 두었던 랜턴을 집어 그것을 비추어 본다.경련으로 요동치는 내 손바닥 위의 이것은……,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그의 주머니에 있던,내가 꺼낸 신분증에 기록된 낯선 사진과 정보.이름 한재우.주민등록번호 690125……. 무릎이 꺾인 듯 나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그의 지갑에 넣어두었던 내 신분증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정현수가 보관하고 있어야 마땅할 내 물건.대체 누가 나와 똑같은 짓거리를 한 걸까.여기 이렇게 얌전히 엎드려 있는 이 사람은……,누구인가!나는 거칠게 그를 뒤집어 가슴팍을 움켜 일으킨다. 손에 들린 파란 등산복 밑으로 우수수,무언가 떨어져 내린다.
  • 최영훈 기자의 ‘댓바람’ 자선냄비 체험기

    최영훈 기자의 ‘댓바람’ 자선냄비 체험기

    한해가 저무는 지난 19일,기자는 구세군측의 협조로 지하철 강남역 메리츠화재 앞에서 거의 한나절을 일일 자선냄비 활동에 나섰다.독자들에게 연말 나눔의 체험 현장을 조금이라도 더 생생하게 전달해보자는 생각에서 였다.대로변에 서서 목청을 높여본 아주 소중한 체험이었다.이곳을 지났던 시민들은 기자의 엇박자 자선냄비 종소리에 고개를 갸웃했을지도 모르겠다.처음 체험하는 것도 그렇지만 최소한의 연습마저도 하지않고 댓바람에 나갔기에 자선냄비의 종소리는 아주 어설펐을 것도 같다.  ●구세군과 자선냄비에 대한 3가지 기대  자선냄비 체험 시작 전 기자는 무척 긴장되고 들떠 있었다. “자선냄비에 정을 담는 사람들은 뭔가 다르겠지?”,“돈을 넣는 사람들의 표정은 얼마나 따스하고 아름다울까.”,“온화한 미소의 중년 부인이 기부를 하면 이것저것 물어봐야지.”, “이왕이면 스님이나 노숙인의 기부도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저런 생각을 품에 안은 채 아침 일찍 경기도 과천에 있는 구세군 사관학교로 향했다.구세군 사관학교는 구세군에서 운영하는 신학교다.군대와 비슷한 곳이라 들었기에 출발 전 열과 오를 맞춘 후 힘찬 구령과 함께 거수경례를 하는 ‘행사’를 치를 것이라 예상했으나,그런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실망을 뒤로 한채 한참 수다를 떨다가 수고하라는 말을 끝으로 각자 팀대로 길을 나섰다.명동 삼성 등 목적지로 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차이가 나서 동시에 출발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란다.   응당 펼쳐질 거라고 생각한 장면이 없어 아쉬워하는 기자의 뒤로 출발을 알리는 소리가 들린다.‘부르릉~’ 차 속에서 무슨 대화를 나누는 가에 귀를 기울였다.평소에도 영혼이나 삶 등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를 나눌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하지만 이 예상도 보기 좋게 무너졌다.자식 얘기,유류환급금 얘기부터 “오늘은 좀 잘 돼야 할 텐데….”라는 소망까지 보통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는 대화였다.점심으론 순대국밥을 먹고,칼칼한 목에 귤 하나,추운 날씨에 차 한잔에 고마워 하는 장삼이사들이다.  벌써 구세군 측에 대한 기대가 두 개나 깨졌다. 군대식 사열과 형이상학적인 대화가 없다니….  ●자선냄비 종소리는 ‘딸랑 딸랑’ 아니었다! “불우이웃을 도웁시다.” 딸랑딸랑 ‘솔’음의 경쾌한 종소리가 강남역에 울려 퍼진 건 이날 낮 12시부터. “좋아.기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해 글로 옮겨주겠어.”그러나 현실은 기대처럼 되지 않았다.‘떨렁떨렁’ 내게 맡겨진 구세군 종을 제대로 울리게 하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래 처음 할 때는 다들 어려워 해요.” 옆에서 지켜보던 사관학생 임정환 팀장은 종 하나 제대로 딱딱 못 맞추는 기자가 안쓰러웠는지 조금 더 가벼운 종으로 바꿔줬다.‘딸랑 딸랑’ 조금은 가벼워 약간 더 높은 음을 내는 종도 어렵긴 매한가지.쩔쩔 매는 기자에게 한 수 지도가 이어진다.“속으로 어떤 음악이나 노래를 부르면서 리듬을 타 보세요.그리고 조금 더 부드럽게 하면서 음의 여운을 살려내는 게 포인트입니다.”  기자 손에서 ‘딸랑 딸락 떨그럭’ 소리만 내던 종이 그의 손으로 옮겨지자 청아한 소리를 낸다.‘딸랑 딸라라랑~’,‘딸랑 딸라라랑~’ 처음 알았다.바로 옆에서 듣는 구세군 종소리에는 여운이 있다는 것을.이제부턴 ‘딸랑 딸랑’이라고 쓰지 않을 테다.  그렇게 한동안 종과 씨름하다보니 벌써 교대시간이 됐다.원래 2시간 간격으로 휴식을 하던 것을 ‘초보’인 기자를 생각해서 이날만 1시간 간격으로 교대를 하기로 했다. “어~전 괜찮은데 그냥 하던 대로 하시죠.”시작 전 내뱉은 이 말이 무색하게 기자는 교대를 원하고 있었다.  ●기부는 종소리를 춤추게 만든다 한 시간을 조금 넘게 쉰 뒤 다시 잡은 종.아까보다 리듬을 타서 종을 치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좋아.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어.” 그러나 또 헛된 바람이었다.점심시간이 지난 후라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았을 뿐더러,겨우 30분도 채 되지 않아 종을 치던 오른 팔과 손목,날갯죽지가 아파오기 시작한 것이다. “교대 시간 언제지.”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단다. “원래 종치는 게 그래요.처음엔 장단 맞추기가 어렵고 조금 더 지나면 팔이 아프고….저야 이제 익숙해져서 요령이 생겼죠.”  임 팀장이 알려준 요령은 손목을 사용하다가 아프면 팔 전체로 흔들고,그것마저 여의치 않으면 손가락을 움직여 소리를 내라는 것이었다.이처럼 종치는 방법을 달리 하니 훨씬 수월해지면서 기자가 내는 종소리도 왠지 한결 청량해진 듯 하다.  그런데 이번엔 거리에 사람이 너무 적다. “원래 점심때랑 저녁때 사람이 많고 오후 2~5시까지는 사람이 좀 드물죠.” 사람이 적어지니 경쾌하던 종소리도 풀이 죽는다. “이렇게 활동을 하다보면 저도 모르게 지치고 힘들 때가 있어요.사람들 호응도 없고 기부도 잘 안 되면 원망스럽기도 하구요.그러다가도 동전 하나라도 주시는 분이 있으면 바로 기운이 납니다.종소리도 다시 커지고요.”  기부가 별로 없자 기운이 빠진다.리듬도 흐트러진다.청아하던 종소리가 풀이 죽는다.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이 야속하고 원망스럽기도 하다.“관심 좀 가져주지.”  그런 찰나 ‘작대기 두개’를 단 군인이 다가와 지갑에서 돈을 꺼내 양손에 파지한 후 조심스레 냄비 속으로 투척한다.‘딸랑 딸라라랑~’ 풀 죽은 종소리에 다시 힘이 솟는다. “그래 이 맛이야.” 저렇게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할 맛 난다.  ●난 기자가 아닌가봐~ 오후 4시엔 새침한 발걸음으로 다가와 고운 손을 보인 젊은 아가씨로 인해 흥이 났고,4시 40분엔 무가지를 배포하는 아줌마가 생긋 인사를 한다.5시가 넘자 바로 앞에서 양말을 파는 아저씨가 와 슬쩍 기부를 하고 간다.거의 매일 장사에 앞서 기부를 하는 ‘단골’이란다.  사람이 한껏 많아진 오후 7시에는 중학생 꼬마 숙녀 둘이 와 종을 쳐보겠단다.호기심이 발동했나 보다. “그냥요~저는요….재미있어 보여서 한건데요….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하는 이 꼬마 숙녀의 목소리가 참 낭랑하다.  약 10분 후 중년 남성이 덜렁이며 걸어오더니 냄비 속으로 무언가를 집어 넣으려고 낑낑거린다.자세히보니 ‘지퍼백’에 한껏 담은 동전 수십개였다.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진다. “정말 감사합니다.복 많이 받으세요.” 종소리가 한층 더 빛난다.그런데 아차 싶다.저 동전들에 무슨 사연이 있는지 미처 물어보지 못한 것이다.이날 기자 신분으로 체험을 하고는 있었으나 어느새 나도 모르게 구세군 일원이 돼 본분을 망각한 듯 싶다. “에이 뭐 글로 못 옮기면 좀 어때.그냥 고마우면 된 거지.”  ●’딸랑 딸라라랑’ 그리고 영원히… 이날 많은 사람들이 강남역에 출동한 ‘자선냄비 1-48호’에 따뜻한 온정을 베풀고 갔다.그런데 또 예상이 틀렸다.기자는 ‘기부하는 사람들이 온화한 인상으로 정중히 다가와 수고많으십니다란 인사와 함께 돈을 넣고는 뿌듯한 미소를 보이며 돌아설 것’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하지만 이것은 책상 앞에서 상상하던 모습에 불과했다.이날 자선냄비를 보듬어 주고 간 사람들은 한결같이 느린 발걸음으로 주저주저하며 왔다가 돈을 넣고는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번개같이 사라졌다.  “아마 다들 쑥스러우셔 그런 것 같아요.기부가 대단한 사람들만 하는 게 아닌데도 말이죠.그냥 저희도 그렇고 자선냄비도 그렇고 편안하게 대해주셨으면 좋겠어요.꼭 지폐가 아니더라도 주머니 속 10원짜리 100원짜리 동전도 소중하게 쓰일 곳이 많거든요.아니면 저희에게 눈인사 정도만 하고 가셔도 아주 큰 힘이 되죠.”  이날 기자는 집에 돌아온 후에도 ‘딸랑 딸라라랑’ 소리가 귀에 맴돌아 한참동안 잠을 청하지 못했다.새벽 3시까지 이불 속에서 뒤척이다가 결국 생각해 낸 마지막 문장.  ‘김장훈·문근영만 기부를 하는 게 아니다.’   글 사진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동영상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
  • [이용원 칼럼] 경쟁없는 교육,그 유토피아

    [이용원 칼럼] 경쟁없는 교육,그 유토피아

    또다시 입시철이다.오늘부터 대부분의 대학이 정시모집에 들어가므로 수험생과 그 부모,진학지도 교사는 아이 성적에 맞춰 들어갈 수 있는 가장 나은 대학을 찾느라 골머리를 싸매고 있을 터이다.하지만 수능시험 자체를 거부한 학생들도 있다. 대입 수학능력시험을 일제히 치른 지난달 13일 새벽 고3인 김모양은 수험장에 가는 대신 교육과학기술부가 있는 세종로 정부중앙청사로 발길을 돌렸다.그곳에서 김양은 기자회견을 갖고 ‘경쟁교육 반대’‘대학입시 폐지’를 외쳤다.김양은 “청소년은 태엽을 감으면 공부만 하는 인형의 삶을 산다.”고 주장했다.같은 날 역시 고3인 허그루군도 중앙청사 후문에서 수능과 입시제도 폐지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허군 곁에는 입시폐지·대학평준화 국민운동본부가 함께해 힘을 보탰다. 김양과 허군의 주장은 최근 핫이슈가 된 ‘일제고사 거부’의 논리와 맥을 같이한다.서울시교육청이 일제고사를 보지 않는 대신 그 시간에 체험학습을 하도록 허락한 교사 7명을 지난 10일 파면·해임한 것이 지나친 징계임에는 틀림없다.하지만 이와 별개로 일제고사를 거부한 논리 자체가 옳은지는 판단해야 한다.그것은,일제고사가 아이들을 성적순대로 서열화·줄세우기를 하고 그 과정에서 경쟁이 심해지므로 정당하지 않다는 주장으로 귀결된다. 교육에서 경쟁을 없애면 시험을 볼 이유가 없어진다.그 결과가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하는데 굳이 시간과 노력·경비를 들여 아이들이 싫어하는 시험을 치를 까닭이 없다.그뿐인가.아이들은 아마 자기가 좋아하는 과목만 배우고 싫어하는 과목은 멀리할 것이다.시험이 없다면 결과는 묻지 않고 과정을 중시한다는 뜻인데,배우기 싫다는 걸 억지로 가르칠 필요는 없다. 그래서 아이들은 제가 원하는 시간에 학교 가서 원하는 수업만 듣고 나머지 시간은 (본인이 원하는) 인간적인 삶을 사는 데 보낼 것이다.참으로 동화 속 나라 같은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지리라.아이들이 행복하다면 어른들 또한 행복할 테니 아무도 반대하지 않을 일이다.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교육에서 경쟁을 없앤다면 수능을 거부한 김양·허군의 주장처럼 대학입시부터 폐지해야 한다.대학 진학을 원하는 아이와 그 부모는 거의가 ‘스카이’(서울대·고려대·연세대)에 들어가고자 한다.그러나 세 대학의 신입생 정원은 정해져 있다.그러므로 ‘스카이’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성적을 평가하는 시험은 불가피해진다.따라서 ‘스카이’를 없애고 모든 대학을 동등하게 만들어야 경쟁 폐지는 실효를 거둔다.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대학평준화를 강제한다고 치자.그 다음 단계는 어찌할 텐가.대학을 졸업하면서 입사시험을 치르면 그 또한 서열화·줄세우기이다.그러므로 많은 취업준비생이 원하는 삼성전자·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과 각종 공무원·공공기관 입사시험도 없애야 한다.그럼 그 다음에는? 삼성전자가 만든 반도체,현대자동차의 승용차를 해외에 팔면서 “우리는 평등하게 사원을 뽑는 바람에 제품의 질은 떨어지지만 여러분은 우리것을 사줘야 한다.”고 요구해야 한다. 경쟁 없는 교육은 유토피아이다.이상적이기는 해도 그 어원처럼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경쟁을 없애라는 주장을 하기 전에 공정한 경쟁체제를 찾아야 한다.그것이 이 사회 어른들이 할 일이다.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 [송년모임 신풍속 2題] 전남,모임·가족외식 권장

    “연말·연시 모임도 많이 갖고 가족들과 외식도 즐기세요.” 전북도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대대적인 소비촉진 운동을 펼치기로 해 눈길을 끌고 있다.근검·절약을 강조하던 공직자들이 소비촉진의 첨병으로 나선 것이다. 도는 우선 재래시장을 돕기 위해 전체 공무원들이 재래시장 공동상품권을 구입,전통시장에서 장을 보도록 했다.연말·연시에 도내 농특산물을 선물로 주고 받는 운동도 전개한다.예전에는 선물 안주고 안받기 운동을 펼쳤지만 이번에는 이를 적극 권장하고 나선 것.또 도청 각 부서와 향우회,동문회별로 송년 모임을 적극적으로 갖도록 했다. 이에 따라 도청 각 실·국은 물론 과와 계 단위까지 송년 모임을 가질 예정이다.모임 장소도 도청 근처를 벗어나 구도심,재래시장,시외곽 지역 등을 선택해 파급효과를 극대화시킨다는 복안이다. 지역경제업무를 맡고 있는 투자유치국은 9일 국 전체 송년회를 전북대 앞 해물탕집에서 가졌다.민생경제과는 내년도 업무계획 연찬회를 오는 19일 구 도청에서 열고 송년회를 겸한 저녘 식사는 전주 남부시장 순대국밥집에서 가질 예정이다.복지여성국도 30일 손님들이 적은 구도심이나 시외곽 음식점에서 송년 모임을 갖고 선물로 재래시장 상품권을 전달할 계획이다. 특히 도는 1500여명의 직원들이 매주 수요일에 가족들과 함께 외식을 하도록 적극 권장했다.수요일은 가능하면 오후 6시 정각에 퇴근해 가족 동반 외식을 하도록 함으로써 지역경제도 활성화시키고 가족간의 화합도 도모해 일의 능률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이와 함께 도민을 상대로 ‘도내에서 주말·연휴 보내기 실천운동’을 펼치고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위문활동도 강화하기로 했다. 도 관계자는 “건전한 소비를 촉진해 침체의 늪에 빠진 지역경제가 회생하는 데에 도움을 주자는 뜻에서 이 운동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서울법대 출신 ‘성골’ 비법대생은 ‘진골’

    서울법대 출신 ‘성골’ 비법대생은 ‘진골’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최종 합격자 발표(5일)를 앞두고 강남·신림동 등 로스쿨 수험가에는 난데없이 ‘성골’ ‘진골’이 화두로 떠올랐다. 3일 고시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로스쿨 예비 합격자들 사이에서 교수나 학교의 선호 순대로 이같은 용어에 빗대 자신들의 우열을 우스갯소리처럼 가리는 것으로 알려졌다.성골,진골은 6두품과 함께 신라시대의 신분제를 뜻하는 말이다. 특히 일반전형의 50% 이내에서 우선선발 대상자 60여명을 뽑은 서울대의 경우 합격자들간에 이러한 ‘신분 가르기’ 현상이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고시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대 법대를 졸업해 법대 대학원에 있는 합격자는 직계 혈통 왕족을 가리키는 ‘성골’,서울대 비법대 출신은 방계 왕족인 ‘진골’,카이스트나 해외 유학파 출신들은 ‘6두품’으로 불린다는 것.이 관계자는 “서울대뿐만 아니라 연세·고려대 등 소위 사법시험 명문대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덧붙였다.이는 자기 소속 대학을 우대하는 교수들의 인식이 예비 합격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다.더욱이 법대 교수들의 ‘우리 애들 챙기기’는 다른 학교 지원자들의 원망을 사는 정도라고.복수의 입시학원 관계자들은 “법대 교수들이 내놓고 ‘우리 애들’이란 표현을 쓴다.”면서 “본교 법대 출신은 따로 불러 학습방법을 지도해주거나 ‘네가 앞으로 우리 학교의 얼굴’이라는 얘기를 수험생에게 직접적으로 한다.”고 강조했다. 합격일을 기다리는 지방대 로스쿨 지원자 이모(29)씨는 “공정한 판정을 내려야 하는 법조인을 길러낼 로스쿨이 시작도 하기 전에 합격자간에 위화감을 조성하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한국 순채무국 전락

    한국 순채무국 전락

     외국인들의 ‘셀코리아’가 우리나라를 8년여 만에 순(純)채무국으로 만들었다..  한국은행이 28일 발표한 ‘9월 말 국제투자대조표(잠정)’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해외에서 받을 돈(대외채권)은 3999억 9000만달러다.6월 말보다 223억 5000만달러 줄어들었다.반면 외국에 갚아야 할 돈(대외채무)은 4250억 9000만달러로 같은 기간 44억 4000만달러 늘었다.받을 돈은 줄고 갚을 돈은 늘면서 순대외채권(대외채권-대외채무)이 마이너스(-) 251억달러로 떨어졌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휘청대는 실물경제] 한국 순채무국 전락 엇갈린 시각

    [휘청대는 실물경제] 한국 순채무국 전락 엇갈린 시각

     우리나라의 순채무국 전락은 ‘예고된 상황’이기는 하지만 금융시장이 살얼음판을 걷고 있어 또 하나의 악재임은 분명해 보인다.그러나 파괴력을 놓고는 해석이 갈린다.정부와 한국은행은 “외국인의 대량 주식 매도에 따른 통계상의 착시에 불과하다.”며 시장에 별 힘을 쓰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동조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그러나 일각에서는 “실탄(외환보유액) 소진에 따른 당국의 외환시장 개입 한계로 시장이 연말에 또 한번 출렁거릴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순채무국 전락 왜?  외국인들의 주식 매도가 결정타였다.외국인들은 올 6월부터 9월까지 석 달새 주식과 파생금융상품 등(지분성 투자자산)을 280억 4000만달러어치 팔아 치웠다.이 돈은 달러로 환전돼 우리나라를 빠져 나갔다.이 규모는 우리나라가 해외서 받을 돈(대외채무)과 갚을 돈(대외채권)의 차액인 순대외채권(-251억달러)과 비슷하다.  문제는 외국인들의 이같은 지분성 투자는 통계상 빚으로 잡히지 않는다는 데 있다.빚으로 잡히면 한국에서 빠져 나간 돈만큼 국내 외화 자산이 감소하는 동시에 빚(대외채무)도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그러나 애초 빚에 들어가 있지 않아 외화자산만 축낼 뿐,차입금 상환 효과는 없다.정부와 한은이 순채무국 전환을 별 일 아니라고 평가 절하하는 근거도 여기에 있다.양재룡 한은 국제수지팀장은 “통계상의 착시 효과를 차치하더라도 선박 선수금 등 사실상 상환 부담이 없는 빚을 제외하면 여전히 순채권국(861억달러)”이라고 강조했다. 양 팀장은 “외채의 질(質)도 단순 차입금 비중이 높았던 1980~90년대와 달리,미래 수입에 바탕을 둬 상환 부담이 적은 외채가 전체 외채의 26%나 된다.”며 주요 선진국들도 순채무국임을 상기시켰다. 지난해 말 현재 미국(-5조 4981억달러),영국(-1조 1224억달러) 등은 순채무국,일본(2조 4622억달러),독일(3550억달러) 등은 순채권국이다. ●경상수지 흑자 유지 절실  그러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불안한 요소가 눈에 띈다.유동외채(만기 1년 이내 단기외채+1년 안에 만기가 돌아 오는 장기외채)가 9월 말 현재 2271억 2000만달러로 같은 시점의 외환보유액(2396억 7000만달러)과 거의 맞먹는다.극단적인 전제이기는 하지만 전액 상환 요구가 들어왔을 경우 빚을 갚고 나면 외환보유액이 125억 5000만달러밖에 남지 않는다.한은측은 “1년 안에 자동 소멸되는 선물환 관련 환헤지용 해외차입분 496억달러를 제외하면 유동외채 비율이 (94.8%에서)74.1%로 낮아진다.”고 해명했다.전체 대외채무에서 단기외채가 차지하는 비중도 44.6%로,영국(74.6%),홍콩(74.6%),일본(61.8%)보다는 낮지만 미국(39.4%),독일(36.3%)보다는 높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경상수지 적자로 순채무국으로 전락했다면 문제가 심각하지만 그보다는 외국인의 주식 매도 여파가 큰 만큼 크게 우려할 사안은 아니다.”라면서 “다만 순채무국 전환 사실 자체가 대외적으로 불안 심리를 자극할 소지는 있다.”고 지적했다.  김상훈 현대증권 연구원은 “연말 자금 수요가 몰려 있는 상황에서 순채무국으로 전환했다는 것은 외환당국이 시장에 개입할 실탄이 별로 없다는 의미이기도 해 시장참가자들의 (달러 매수)쏠림 현상이 재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따라서 당국의 개입 능력이 충분하다는 점을 시장에 확실하게 알릴 필요가 있고 경상수지 흑자 기조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추위 덕분에…할인점 난방제품 매출↑

    겨울 상품 매출이 ‘쑥쑥’ 오르고 있다. 평년보다 따뜻한 날씨로 고전했으나 지난 주말부터 수은주가 가파르게 하강하면서 매출이 뛰고 있다. 27일 롯데마트에 따르면 최저 기온이 10도 이하로 내려간 지난 24일부터 26일까지 겨울 상품 매출을 조사한 결과 전주 같은 기간보다 히터기 제품의 매출이 542.5% 증가했다. 이어 호빵 88.9%, 전기장판 87.9%, 머플러 78.5%, 장갑 35.4%, 침구류 24.1% 등의 순으로 매출이 증가했다. 이에 따라 11월부터 대형 난방가전 행사를 벌일 계획도 잡았다. 편의점도 마찬가지다. GS25측은 “24~25일 전국 GS25 3200개 편의점 매출을 분석한 결과 호빵 매출이 전주 같은 기간보다 두 배, 캔커피 등 따듯한 음료 매출도 22.9% 늘었다.”며 “다음달 1일부터는 어묵, 순대, 왕만두 등 겨울 먹거리를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세븐일레븐도 겨울 간식 강화 방침을 밝혔다. 세븐일레븐의 경우 같은 기간동안 찐빵(45.1%), 마스크(40.5%), 어묵(39.9%) 등의 매출이 수직상승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서울의 풍경] 사람 情이 디자인보다 아름답다

    [서울의 풍경] 사람 情이 디자인보다 아름답다

    24일 오전 서울 관악구 행운동(옛 봉천6동)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3번 출구앞. 요즘 경기를 반영하듯 기온마저 곤두박질쳐 버린 거리 한쪽에선 사진전이 한창이다. 액자 속 사진들의 주인공은 거리에서 떡볶이와 순대를 파는 아주머니나 액세서리를 파는 아저씨, 토끼를 팔러 지하철역으로 나온 할아버지 등 서울 거리에서 흔히 만나는 노점상이다. 사진은 일상을 갈무리했다. 붕어빵을 파는 아저씨는 손님에게 잔돈과 검은 비닐봉지를 건네며 덤으로 미소를 담아준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철판 위 곱창을 볶아내는 젊은 사장의 얼굴에는 진지함이, 손님 없어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조는 할머니 얼굴에는 고단함이 묻어난다. 카메라는 그렇게 영세상인들의 기쁨과 슬픔, 고단한 일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고스란히 담아냈다. ●소외층 내모는 거리정비 반대 ‘문화시위´ 사진을 찍은 이들은 진보신당 아마추어 사진동아리인 ‘진상’ 회원들이다. 지난여름 회원들은 서울 강남과 동대문, 신천 등에서 노점 상인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았고, 결과물을 ‘거리사진전-아름다운 노점’이란 이름으로 풀어놓았다. 종로1가 등 서울의 거리 곳곳에서 진행된 사진전은 서울시가 현재 추진 중인 디자인거리 조성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한 일종의 문화적 시위다. 시가 나서 세금 들여 보행자의 보행환경을 개선하고 깨끗한 거리를 만든다는데 왜 딴죽을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시가 외치는 디자인 거리 사업 속엔 사회적 약자를 보듬는 따뜻한 시선도, 배려도 없다는 생각에서다. 동아리 회장인 심효섭(39)씨는 “도시 디자인은 단순히 도시를 보기 좋고, 곱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을 넘어 그 중심에 사람을 놓아야 한다.”면서 “하지만, 서울시의 디자인 거리 속엔 생활의 터전에서 밀려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공간도, 배려도 배제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시의 디자인 거리 프로젝트가 과거 가로정비 사업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진보신당에 따르면 실제 일부 구는 디자인거리 사업예산 중 80% 정도를 노점철거를 위한 용역계약비로 할애했다.‘디자인 거리조성=노점철거’냐는 비아냥과 노점상들의 한숨이 교차하는 이유다. ●삶을 파괴하는 디자인은 폭력이다 거리에서 만난 사진들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삶을 파괴하는 디자인은 폭력이다’라고 외친다. 과장도, 호소도, 강요도 없다. 사진전을 기획한 문화연대 관계자는 “과거 노점상의 모습을 담은 사진전이 가로 정비의 폭력성을 부각해 폭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사진전은 노점도 도시의 일부이며 우리의 일상이라는 것을 그대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이들은 이달 말까지 잠실에서 진행 중인 ‘서울 디자인올림픽’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스무하루 동안의 디자인 올림픽을 위해 책정된 93억원의 예산은 장애인을 위한 저층버스나 시민을 위한 문화예술교육 또는 뉴타운 지역 개발계획의 디자인 기준을 만드는 데 이용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란 입장이다. 진보신당 서울시당 김상철(34)씨는 “거리는 걷기위한 교통로임과 동시에 영세 상인들의 생존을 이끌어가는 삶의 터전”이라면서 “이런 복합적인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보여주기에 급급한 도시디자인은 약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폭력일 뿐.”이라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고시원 범죄로 본 中동포들의 애환

    고시원 범죄로 본 中동포들의 애환

    “살인적인 인내로 버텨 왔습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한 고시원에서 발생한 무차별 살인으로 고시원의 생활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말이 고시원이지 고시생은 거의 없고, 거주자의 대부분은 주변의 영동시장에서 일하는 중국동포 여성들이다. 중국동포 여성들은 낮에는 식당에서 일하고 밤에는 고시원 쪽방에서 잠을 잤던 것으로 알려졌다. 1982년 지어진 D고시원은 현대판 ‘쪽방’이다. 건물 외벽은 색이 바랬고, 내부 비품이나 시설도 낡았다. 방은 가로 2m, 세로 2m 정도로 한 사람이 누우면 꽉 찰 정도로 비좁다. 인근 S고시원 이모(36) 총무는 “강남 일대 고시원들은 임대료 등을 고려해 적어도 38만원에서 70만원은 받는데, 이런 곳에는 중국동포들이 없다. D고시원은 10년이 넘도록 리모델링을 하지 않아 시설이 아주 열악하지만 비용이 싸 중국동포들이 많이 살았다.”고 전했다. 고시원 생활비는 한 달에 17만~25만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A순대국집에서 일하는 중국동포 최모(42·여)씨는 병든 남편과 아들 두 명을 중국에 남겨 두고 3년 전 서울에 왔다. 이씨는 “요즘 불법입국은 거의 없지만 합법적으로 들어오려 해도 1500만원 정도 든다.”면서 “1000만원은 서류작성, 직업소개 등의 명목으로 브로커에게 주는 원금이고,500만원은 브로커 조직에게 빌린 1000만원의 이자다. 그 돈부터 갚아야 하기 때문에 한국에 온 뒤 2년간은 살인적인 인내로 버텼다.”고 말했다.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식당에서 일했다. 한 달에 3일 쉬며 월 150만원씩 받았다.100만원은 브로커에게,25만원은 중국 가족들에게 송금했다.17만원을 고시원비로 지불하고 나면 수중에 8만원이 남는다. 이 돈으로 한 달을 살았다고 했다. 최씨는 사건이 일어난 D고시원에서 살았다. 4년 전 입국해 B숯불갈비에서 일하는 이모(31·여)씨는 “월 140만원 받아 중국 가족들에게 보내고, 고시원비 내고 나면 20만원 정도 남는다.”면서 “밥은 식당에서 해결하고, 생필품 구입 외에는 돈을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씨는 “중국동포들이 고시원에 많이 사는 것은 보증금이 필요 없고 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고시원만큼 만만한 공간이 없다.”고 덧붙였다. 인근의 직업소개소 관계자는 “영동시장 일대 고시원에서 생활하면서 새벽에 일을 나가는 일용직 조선족을 자주 본다.”면서 고시원 생활은 노숙자보다 조금 나은 편이라고 전했다. 이들은 한 푼이라도 아껴 쓰려고 영동시장에서 가까운 고시원을 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동포들이 겪는 가장 어려운 것은 한국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3년 전 입국해 C구이 식당에서 일하는 박모(45·여)씨는 “한국 사람들은 중국인에 대한 편견을 바탕으로 동포조차 무시한다.”면서 “중국에서는 한국인이고, 한국에서는 중국인이다. 어딜 가나 이방인”이라고 말했다. 전북대 사회학과 설동훈 교수는 “중국동포들은 일자리를 찾아 번화가로 나가지만 저소득층이어서 고시원 같은 열악한 공간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갖고 최소한의 삶의 질이 유지될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승훈기자 hunnam@seoul.co.kr
  • [단독 숙소공개] 웰컴 투 브아걸’s 월드! (인터뷰①)

    [단독 숙소공개] 웰컴 투 브아걸’s 월드! (인터뷰①)

    4인조 여성 보컬그룹 ‘브라운 아이드 걸스’(Brown Eyed Girls, 이하 ‘브아걸’) 숙소를 습격했다. 지난 달 타이틀 곡 ‘어쩌다’를 발표하고 가요계 정상가도를 달리고 있는 ‘브아걸’은 새 앨범 활동 시작과 더불어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한 아파트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문을 열자 알록달록한 신발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큼지막한 꽃무늬 벽지, 모던한 느낌의 블랙톤 타일바닥, 아늑한 조명 아래 환하게 웃고 있는 멤버들 사진까지…. 어딜봐도 ‘브아걸’ 멤버들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 곳이 없다. 살짝 열린 베란다 창 사이로 아파트 옆 산자락의 풀내음이 폴폴 들어온다.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네는 ‘브아걸’ (제아, 나르샤, 미료, 가인) 멤버들은 한층 밝아진 노래만큼이나 생기 가득한 얼굴이었다. ● “ Welcome To Brown Eyed Girls’ World! “ - 숙소 공개가 처음이죠? (제아) 네. 처음이에요. 멤버들끼리 함께 지낸지는 1년이 넘었지만 이곳에 이사한지는 한달정도 됐어요. 지난 달 ‘어쩌다’ 활동을 시작하면서 오게 된 아파트에요. 팬 여러분께 저희 사는 모습이 공개된다고 생각하니 설레요.(웃음) - 이사한 후 이웃들의 반응은 어땠어요? (나르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보셨어요. 조용한 아파트에 수상한(?) 아이들이 나타난거죠. 아파트 보안이 철저해서 한적하고 고요한 편이거든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새벽에 시끌법적한 음악소리를 몰고와서 살금살금 돌아다니는 수상한 아가씨들이 나타난거죠. 한번은 새벽에 배드민턴을 치다가 혼난적도 있어요. 지금은 저희를 알아봐주시고 밝게 인사도 건네주셔요. 너무 좋아요! - 브아걸에게 있어 숙소란 어떤 곳이죠? (미료) 충전을 얻는 곳이에요.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외로움을 서로를 통해 채워갈 수 있거든요. 요즘은 바쁜 스케줄로 숙소가 자는 곳으로 변했지만…. 늘 돌아올 때면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이에요. 그래서 아무데나 쓰러져 잘때도 있어요. 거실 바닥, 쇼파에서 등등~ 다들 누우면 자요. (웃음) - 방은 어떻게 쓰고 있나요? (나르샤) 방이 3개여서 입주 순대로 방을 택했어요. 먼저 입주한 가인이와 제아가 방을 고를 수 있었고요, 내부 리모델링 기간으로 입주가 늦었던 저와 미료는 한방을 쓰고 있어요. 흑흑~ 농담이고요. 저희는 같이 있어서 행복해요! 닮은 점이 많아서 재밌는 일도 많고요. - 이사한 집의 첫 느낌은 어땠나요? (미료) 조금 무서웠어요. 마지막 입주자셨던 노부부께서 한지와 부적을 집 곳곳에…. 하지만 전통적 느낌의 인테리어가 독특했어요. 블랙톤 타일 거실바닥은 깔끔했였고 전통한지로 된 둥근 갓 조명은 마치 주점에 온 것 같은(?) 묘한 매력이 있더라고요. 여기에 꽃무늬 벽지를 도배하고 부엌도 리모델링해서 브아걸만의 감각을 입혔어요. 이제 정말 ‘우리 집’ 같은 느낌이에요! ● 브아걸 패밀리, 역할분담도 척척! - 한 가족으로서 역할 분담도 나눴나요? (제아) 그럼요. 역할 분담도 척척이랍니다. 주로 저는 설거지를 전담하고 가인이는 집안 청소를 도맡고요. 미료는 청소기 돌리기, 나르샤는 쓰레기 분리수거 및 처리를 담당하고 있어요. 함께 쓰는 욕실 청소 등은 번갈아가며 하며 있고요. 하지만 이제 브아걸도 점점 바빠지고 있으니 집 정리 해주시는 분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다른 팀은 있던데… (매니저 눈치 보는 제아) (매니저) 다른 팀은 어리잖아요! (미료) 그럼, 그 돈을 제게 주세요. 청소 제가 다 할게요! (폭소) - 집이 상당히 깨끗한데요? (나르샤) 깨끗하죠? 그래도 첫 공개인데 급하게 정리 좀 했어요. 실망시켜드리지 않으려고요. 거실을 깨끗하지만…, 사실 저와 미료 방은 (짐을 몰아 넣어서) 문이 안열리는 상태에요. 호호. - 멤버 중 가장 ‘깔끔쟁이’는 누구죠? (일동) 가인이요! 가인이는 일명 ‘숙소 관리인’으로 통해요. (제아) 가인이는 깔끔 자체에요. 가인스 월드(가인’s world, 가인 방)를 들어가 보시면 알거예요. 절대 지저분 하거나 더러운 걸 못봐요. 새벽에 숙소에 도착해서 아무니 피곤해도 빨래하고 청소기 돌리고… 숙소 관리를 시작해요. 제일 어린 동생이 어머니 같아요. - 가인씨, 원래 깔끔한 성격인가요? (가인) 네, 그런 편이에요. 저는 스케줄이 아무리 늦어도 방을 안치우고 나오면 하루 종일 마음에 걸려요. 왜 그런 느낌 있잖아요. 집에 맛있는 것 두고 오면 종일 생각나는…. 저도 그래요. 무대에 있을 때 조차 어쩔 땐 ‘아, 지저분한 내 방!’ 한다니깐요. 피곤한 삶이죠. (웃음) (제아) 가인이는 청소 뿐만 아니라 숙소관리 차원에서 ‘언니들 관리’까지 해요. 새벽에 누가누가 통화를 하고 있나, 혹시 누가 나가지는 않나 등등, 가인 순찰대가 돌아요. 조용히 통화하고 있을 때면 가인이가 와서 문을 열고 “누구야~?” 하고 씨익 웃는데 소름이 사악~끼치는 그 느낌 모르실거예요, 완전 깜짝 놀란다니깐요! (폭소) ㅡ> ② 편에 계속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초가·요강·물지게… ‘과거로의 초대’

    사라져 가는 우리 전통문화를 느낄 수 있는 흥겨운 축제가 3일 강서구 방화그린공원에서 열린다. 축제는 치현초등학교(방화3동)∼방화근린공원간 가장행렬 퍼레이드를 시작으로 개막식, 축하공연, 마당별 전통놀이 및 전통공예 체험행사 등 다양한 즐길거리와 먹을거리로 채웠다. 가장행렬 퍼레이드는 생(출산), 혼례, 인생(삶), 죽음(사)을 담았다.1t트럭을 초가집 모양으로 꾸미고 그 안에서 산모가 산통을 하는 소리와 아기 울음소리, 금줄을 다는 모습이 펼쳐진다. 이어 청사초롱을 앞세우고 신랑이 말 타고, 신부가 가마타고 가는 모습 등으로 연출한다. 또 요강에 소변보는 모습, 시장 가는 모습, 물지게 지고 가는 모습 등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연출된다. 전통놀이와 전통공예 체험행사 등도 펼쳐진다.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다문화 가족이 실제 결혼식과 전통혼례를 체험할 수 있는 ‘결혼마당’, 사물놀이·북청사자춤·봉산탈춤 등을 즐길 수 있는 ‘춤마당’이 자리한다. 또 굴렁쇠 굴리기, 팽이 돌리기 등의 ‘전통놀이 마당’과 새끼 꼬기, 짚신, 제기, 계란꾸러미, 삼태기 등을 만들어 볼 수 있는 ‘전통공예품 마당’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이밖에 순대국과 파전 등을 먹을 수 있는 전통음식 먹을거리 장터도 열린다. 김재현 구청장은 “이번 축제는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우리 전통 놀이와 음식 등을 직접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면서 “주민들 삶이 여유롭고 흥겨워질 수 있도록 다양한 축제를 기획하겠다.”고 말했다.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Seoul In]

    강남구(구청장 맹정주) 2일 오전 11시 신사동 소재 장천아트홀에서 브런치 콘서트를 개최한다. 비발디의 사계중 ‘가을’, 드보르자크의 ‘슬라브 무곡 제8번’,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 등 가을의 정취를 흠뻑 느끼게 하는 6곡이 연주된다. 관람료는 1만원으로 티켓링크 홈페이지와 현장에서 구매할 수 있다. 문화체육과 2104-1262. 관악구(구청장 김효겸) 10∼11일 서원동(옛 신림본동) 도림천변에서 ‘2008 순대축제 ’가 열린다. 비보이 공연과 순대 OX퀴즈, 커플 순대 빨리먹기 대회, 즉석 노래자랑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된다. 가수 김수희를 비롯해 배일호, 박상철 등이 출연해 분위기를 띄운다. 생활경제과 880-3386. 금천구(구청장 한인수) 보건소는 생활이 어려운 주민들을 대상으로 인플루엔자 무료 예방접종을 실시한다. 접종대상은 ▲지역내 거주 만 65세 이상 주민 ▲기초생활 보장수급자 중 만50세 이상 주민 ▲사회복지시설 수용자 및 국가유공자(본인) 등이다. 동별로 일정을 확인해 6일부터 신분증을 지참하고 보건소를 방문하면 된다. 보건소 의약과 890-2423. 강서구(구청장 김재현) 김재현 구청장은 30일 ‘여성 명예구청장’ 130명에게 위촉장을 수여했다. 구는 여성들의 행정 참여를 통해 개방성, 투명성, 서비스 품질 향상 등을 이룰 방침이다. 이 자리에서 김 구청장은 여성명예구청장 운영의 취지를 설명하고, 활성화를 당부했다. 서대문구(구청장 현동훈) 안전하고 적절한 먹거리 문화를 만들기 위해 6일부터 ‘3·3운동’을 펼친다.3·3운동은 손님과 음식점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원칙으로, 손님의 원칙은 ▲먹을 만큼 주문하기 ▲먹지 않을 음식 미리 사양하기 ▲남은 음식은 기분 좋게 싸가기이다. 음식점은 ▲고객 취향과 식사량에 맞춘 메뉴 공급 ▲간소하고 다양한 메뉴 준비 ▲남은 음식은 절대로 재활용하지 않기 등을 지킨다. 구는 지역내 업소에 3·3운동 스티커와 홍보포스터를 나누어줄 예정이다. 보건위생과 330-8707. 중랑구(구청장 문병권) 이달부터 지역내 22개 초등학교 주변 식품판매업소의 안전 전수조사를 하고 모니터링과 점검을 6회 이상 진행한다. 어린이 먹거리 안전관리 대책의 일환으로 식품판매업소뿐 아니라 문방구, 분식점 등도 포함해 103곳이 대상이다. 어린이식품안전지킴이(2인1조) 11개조를 학교별로 지정해 해로운 식품을 집중 감시하고 건전한 식품판매를 유도할 예정이다. 보건위생과 490-3360.
  •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충주호 재발견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충주호 재발견

    충북 충주와 제천, 단양 등에 걸쳐 있는 충주호는 국내 두 번째로 큰 인공호수다. 저수용량 27억 5000만㎥. 가늠조차 어려운 크기다. 이처럼 거대한 호수를 즐기기 위해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선택한 방법은 자동차 드라이브다. 충주호 조성 당시 기대됐던 ‘충주호 물길 100리 르네상스’는 빛바랜 느낌이 없지 않지만,‘한국 최고의 호안(湖岸)’이라 평가받는 드라이브 길은 건재하기 때문이다. 이제 90리 남짓한 비포장길을 새로 추가해야 할 것 같다. 소수의 여행자들만 찾던 그 길이 알려지면서 그간 꼭꼭 숨겨져 있던 충주호의 비경들도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흙길 곳곳에서 만나는 고즈넉한 시골마을과 문화유적들은 풍경의 덤. 이제 얼마 뒤면 호수는 가을옷으로 갈아입을 게다. 충주호에서 드라이브를 즐기며 자동차 한가득 가을의 정취를 담아오는 것도 좋겠다. ●비포장길에서 만난 그림 같은 호수 충주호는 도는 방향에 따라 각기 다른 풍경을 펼쳐 보인다. 충주댐을 기준으로 왼쪽으로 돌면 비포장길을 따라 오밀조밀하고 섬세한 여성적인 풍경을, 오른쪽으로 돌면 잘 포장된 도로를 따라 우람하고 선 굵은 남성적인 풍경과 만날 수 있다. 우선 왼쪽길. 충주 시내에서 목행대교를 건넌 뒤 용교삼거리를 끼고 우회전하면 532번 지방도로와 만난다. 동량면 하천리를 거쳐 제천시 금성면까지 이어진 길이다. 쉬 보기 어려운 충주호의 풍경들과 만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단, 이 길의 대부분은 비포장이란 점을 잊지 말 것. 자동차의 ‘안위’가 염려돼 그림 같은 호수 풍경을 기꺼이 포기하겠다면 하천리 하천대교쯤에서 돌아 나오시라. 동량초등학교를 지나 하천리 방향으로 가다 보면 빨간 사과들의 유혹에 절로 차가 멈춰진다. 장선마을이다. 충주에서 가장 맛있는 사과를 생산한다는 곳. 사과가 탐스럽게 열려 있는 나무마다 아래에 은박 코팅 비닐을 깔아 놓았다. 햇빛을 반사시켜 속속들이 붉어지라는 뜻에서다. 박선예(53) 충주시 문화관광해설사에 따르면 “충주호의 물안개가 밤사이 사과 표면을 차갑게 식힌 뒤 해가 뜨면서 온도가 오르는 현상이 반복돼 당도가 높아진다.”고 하니, 호수는 세세한 곳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넉넉함을 나눠 주는 모양이다. 하천리 하천대교에 이르면 비로소 남한강의 장중한 물줄기와 마주하게 된다. 호수 위로 쏟아져 내린 햇살을 받아 은빛 물비늘들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다. 충주호는 이처럼 물이 가득 찼을 때와 갈수기 풍경이 사뭇 다르다. 호수 아래의 온갖 것들이 드러나 다소 황량한 풍경을 그려내는 갈수기에 비해 물이 가득 찬 요즘은 풍만하고 여성스런 곡선미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사람들이 충주호를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안을 가진 곳이라고 치켜세우는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게다. ‘하늘 향한 희망의 안테나’ 솟대들이 늘어선 솟대마을을 지나면 비포장길이 시작된다. 제천시 금성면까지 대략 37㎞ 거리. 비포장이라고는 하나 승용차가 다니기에 큰 어려움은 없다. 흙길에 들어서면 리아스식 호안을 따라 마을 가장자리까지 마중나온 호수의 푸른 물과 만난다. 골자리마다 수상 좌대가 들어차 있고, 숲과 물이 어우러지며 그림 같은 풍경을 그려낸다. 호수와 나란히 달리는 길이 아니라면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풍경이다. 이 나무 저 나무 꾸밈없이 섞여 있는 에움길을 몇 굽이 돌면 제천시 오산리다. 낚시터로 많이 알려진 곳. 이곳을 먼저 찾은 이들은 낚시인들이었지만, 아름다운 풍경은 모두의 것일 터다. 밤송이들이 폭죽처럼 터지는 밤나무 아래로 파란 하늘을 가득 담은 호수가 ‘명경지수란 이런 것’이라며 말을 건네는 듯하다. 호수에 얼굴을 비추며 나르시시즘 놀이를 즐겨 본다. 하늘도 호수도, 나도 모두 한 곳으로 갈무리되는 느낌이다. 부산리, 사오리 등을 줄줄이 지나고 나면 황석리다. 이곳부터 방우리에 이르는 구간에서 호수는 절정의 아름다움을 펼쳐 보인다. 박선예 해설사의 ‘강추’ 구간이기도 하다. 물에 잠기기 전에는 봉우리였을 산자락들이 다도해의 섬처럼 두둥실 떠 있고, 멀리 뒤로는 소백산맥의 준봉들이 주름살같이 마루금을 좁히고 있다. 이런 길이라면 풍찬노숙도 마다 않고 찾을 만하다. ●내륙의 바다를 만끽하다 이번엔 오른쪽길. 충주댐에서 36번국도를 따라 마즈막재를 지나 단양의 장회나루까지 이어져 있다.‘내륙의 바다’로 일컬어지는 충주호의 장대함과 선 굵은 암릉들에서 남성적인 매력이 물씬 풍겨 나오는 코스다. 장회나루 가기 전 제천시 수산면에서 청풍방면 82번 지방도로로 내려서는 게 좋다. 청풍대교에서 직진해 597번 도로를 타고 제천시 금성면으로 향할 수도 있고, 우회전해 능강 등을 거쳐 장회리 인근에서 36번국도와 다시 만날 수도 있다. 익히 알려진 충주호의 정통 드라이브 코스가 바로 옥순대교를 건너 능강까지 이어진 597번 지방도로다. 기왕 나선 길, 장회나루까지는 가야 한다. 예사롭지 않은 바위산들이 호수 주변으로 이어져 있어 충주호 최고의 선상 유람 코스로 꼽힌다. 장회나루에서 단양으로 향하는 장회재 구간도 빼놓을 수 없다. 건설교통부(현 국토해양부)는 이 길을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올려놓았다. ●전 세계 무술고수들을 만난다 ‘무술로 세계가 하나로’라는 슬로건을 내건 충주세계무술축제(www.martialarts.or.kr)가 한국을 비롯해 28개국의 무술고수들이 참가한 가운데 다음달 2∼8일 충주 유엔평화공원 터에서 개최된다. 사바테(프랑스), 펜칵실라트(인도네시아), 아르니스(필리핀), 크라슈(우즈베키스탄), 불가리안캠포(불가리아) 등 각국의 대표 무술이 총집합하는 진귀한 축제다. 대회 참가 무술인들로부터 여러 나라의 전통무술을 배우는 체험도 할 수 있어 흥미를 더한다. 글·사진 충주·제천·단양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 (043)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충주 나들목→충주호. 충주시 관광과 850-6723. ▶잘 곳 온천을 겸해 수안보에서 하루를 묵어도 좋겠다. 수안보상록호텔은 일요일 투숙객에 한해 숙박+식사 2회(조·석식)+온천사우나 이용권(2인 기준 2회) 등을 8만 3000원에 판매하고 있다.845-3500. ▶맛집 가금면 중앙탑 인근 중앙탑오리집은 담백하고 연한 오리탕(3만 5000원)을 2대째 가업으로 잇고 있는 집.857-5292. 전통 꿩요리의 진수는 대장군식당에서 확인할 수 있다.846-1757. ▶둘러볼 곳 충주시는 매주 일요일 문화유적투어를 운영한다. 중앙탑, 탄금대 등을 돌아볼 수 있다. 참가비는 없고, 도시락을 지참해야 한다.11월 말까지.850-7468. 호암지 인근 택견전수관은 전통무예 택견의 모든 것을 담아둔 곳.847-7044. 와인 애호가라면 박달재와 충주댐 사이에 있는 묵은지·와인터널을 놓쳐선 안 된다.851-3630.
  • [심재억 기자의 짧은 몽골 체류기](하편)

    [심재억 기자의 짧은 몽골 체류기](하편)

    ■몽골에서 우리의 옛 모습을 보다 ‘문명의 충돌’이라는 오고바흐타의 진단은 몽골에 체류하는 동안 분명하게 확인되었다. 몽골 입성 4일째 되는 날,의료봉사를 마친 일행은 초원으로 야유를 나섰다.말이 야유지 그것은 또다른 고행의 체험이었다.워낙 햇볕이 따가워 일행들은 함부로 초원에 나서기를 꺼려했다.그냥 차안에서 너른 초원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겠다는 투였다.그래도 몽골이라는 나라가 그리 쉽게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아니지 않은가.필자는 작심하고 시원한 차량을 나섰다.더운 바람이 턱 하고 숨길을 막았고,발바닥에 밟히는 초원의 감촉은 뜨겁고 푹신했다.뜨거움은 태양에 달궈진 대지의 체온이고,푹신한 것은 빠삭하게 마른 모래흙이 밟히는 감촉이었다.걸음을 뗄 때마다 풀풀 먼지가 일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가 몽골과 역사·문화적 뿌리를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흔적을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어워’였다.초원을 가로 질러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이어진 길(나중에 지도를 보고 그 길이 러시아령 바이칼 호수 쪽으로 이어지는 간선 국도임을 알았다.)을 따라가자니 길가에 익숙한 돌무더기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바로 어워였다.우리 식으로 보자면 성황당이다.모양도 성황당과 너무 닮았다.몽골인들은 길을 오가다 어워를 만나면 돌을 세개 쌓거나 주위를 세번 돈 뒤 기원을 하고 지나간다.의례까지도 우리의 성황당 의식과 너무 비슷해 놀랐다.요즘엔 차량 이용자가 많아지면서 예전처럼 돌이 많이 쌓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직 몽골에는 토템이나 샤먼적 요소가 우리보다 훨씬 많이 남아 있다.예컨대 차량 운전자도 아워 앞을 지나칠 때면 경적을 세번 울리거나 아예 차로 아워 주변을 세번 돌고 지나가는 식이다.우리에게 익숙한 ‘삼세번 문화’와 흡사한 의식의 발현이다. 우리와 다른 점도 있었다.종교든 생활 관습이든 주어진 환경 조건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일정 부분의 원형 이탈은 불가피한 것이다.우리의 경우 큰 나무에 영성(靈性)이 깃들었다고 보고 그걸 성황당으로 삼는 데 비해 그들은 그냥 평지에 돌무더기를 쌓아 어워로 삼았다.삼림지대가 아닌 망망대해 같은 초원지대에는 나무가 거의 없어 우리처럼 노거수를 토템의 대상으로 삼기가 쉽지 않은 탓일 것이다.이 때문에 우리는 나무 등걸에 색색의 천을 걸거나 금줄과 유사한 기능의 새끼줄을 걸쳐 공간의 신성성을 표시하는데 몽골에서는 돌무더기 가운데 통나무를 박아 장소성을 나타냈다.그들은 이 나무에 예외없이 파란 천을 친친 두른다.물론 다른 색의 천도 걸려있지만 주종은 파란색 천이다. 파란 색 천은 옛적부터 몽골인들이 외경의 대상으로 삼았던 하늘을 뜻한다.그러고 보니 우리가 탄 버스의 운전석 위에도 씨름 샅바처럼 만 파란 천이 가로로 걸쳐져 있다.이런 습속은 일반인의 생활에도 깊숙히 자리잡아 게르나 현대식 주택엘 들어서도 거의 예외없이 출입문 위에 가로로 걸쳐 놓은 파란 천을 볼 수 있다. 생각해 보면 그들이 하늘을 외경의 대상으로 삼는 것도 충분히 이해됐다.그들의 삶을 지배하는 태양이 터를 잡은 곳이 하늘이고,철궁으로도 뚫지 못하고,천마를 달려도 다다를 수 없으니 어찌 그들이 하늘을 경외하지 않았겠는가.비록 지상에서는 동과 서,남과 북 천하에 대적할 사람이 없는 대제국을 일궜을지라도 하늘 만큼은 그들의 발아래 꿇릴 수 없었을테니…. 그들이 하늘을 외경의 대상으로 삼은 흔적은 까마귀를 신성시하는 것에서도 확인됐다.그들도 우리처럼 까마귀를 ‘태양의 사자’라고 믿는다.그래서 사냥에 나설 때도 까마귀는 건드리지 않는다.만약 누군가가 까마귀를 해쳤다면 전쟁터로 가는 길이든,결혼식장으로 가는 길이든 모두 포기하고 돌아온다고 한다.까마귀의 영성을 대하는 이들의 시각은 이 정도다. 이런 의식은 우리와도 닮았다.지금이야 까치는 길조이고,까마귀를 그냥 기분 나쁜 새로 여기지만 이는 근대 이후 우리나라에 이입된 서구적 의식의 영향 탓일 뿐 예전 우리 조상들은 까마귀를 영물(靈物)로 여겼다.몽골과 마찬가지로 우리 조상들도 까마귀를 ‘하늘의 사자’라고 여겼으며,이는 우리 신화 속에 깃든 삼족오(三足烏)의 전설이 입증해 준다.혹 어렸을 적에 할머니로부터 이런 얘기 들을 기억이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아,글씨 이 망할 구미호(여우)가 어찌나 신통방통한 둔갑술을 가졌는지 도저히 어찌 해볼 요량이 없는게야.그래 그 사람이 이젠 죽었구나 하고 아예 땅바닥에 다릴 풀고 퍼질러 앉았지.그러고는 조상께 하직인사를 올렸지 뭐야.‘인자 죽게 돼 조상님들께 제사도 못 올리게 되었다고….’그랬더니 눈앞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타나 이렇게 말하는 게야.‘이 눔아,게서 죽으면 못써.얼렁 내가 일러준 주문을 외워봐.그러면 삼족오허고 삼족구가 와서 널 구해줄게다.’ 그래 정신이 퍼뜩 든 이 사람이 그대로 주문을 외았드니 금시 삼족오허고 삼족구가 와서 그 구미홀 쫓아내는거야.” 여기서 삼족오는 다리가 셋인 바로 그 까마귀이고,삼족구는 다리가 셋인 개를 말한다.이처럼 우리 의식 속에서는 둘 다 잡귀를 물리치고 주인을 지켜주는 신성한 영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삼족오를 일본이 잽싸게 건져내 자국의 축구 국가대표팀 문장으로 만들었다.사실 우리 축구대표팀의 문장에 넣은 호랑이는 애당초 우리 의식 속에 늘 있었던 것이어서 놀랄 일이 아니었으나 일본이 삼족오를 내미는 데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그 때 내 속으로는 “저들이 언제 우리 할머니 이바구까지 훔쳐 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무척 아까웠었다.생각은 그렇더라도 까마귀에 대한 이런 의식이 동양문화의 중추를 관통하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이로써 대륙의 문명이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갔음을 확인하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또 다른 문화의 유사성은 씨름에도 있었다.아워도 그렇지만 씨름도 우리 민족이 중국의 한족과 전혀 다른 문화적 혈통을 가졌음을 확인시키는 결정적 근거가 아닐까.씨름의 민속 벨트가 몽골-러시아 극동지역-한국-일본으로 이어져 중국이 배제되고 있다.인류문화사적으로도 중국은 우리와 전혀 다른 언어 및 인종적 경로를 갖고 있다. 몽골에서 ‘부흐’라고 부르는 씨름은 샅바를 이용하는 우리의 것과 형식적으로는 약간 차이가 있다.그러나 두 사내가 서로 맞붙어 힘과 기술을 겨룬다는 점에서는 똑같다.승패를 가르는 방식,즉 넘어뜨리면 이기는 승패 규칙도 매우 흡사하다.해마다 7월 11∼13일에 몽골 최대의 나담축제가 열리는데,이 축제의 3대 행사가 바로 부흐와 말타기,마상 활쏘기이다.여기에서 그들에게 부흐가 생활의 일부임을 알 수 있다.몽골 역사상 올림픽 첫 금메달리스트가 된 유도의 투브신바야르 나이단도 원래는 부흐 선수였다.현지에서 듣기로는,그가 부흐를 배우다가 ‘세상이 바뀌어 이제는 부흐로 먹고 살기 어려우니 유도를 하라.’는 아버지의 권유로 유도선수가 되었단다.하기야 유도나 씨름이나 근본적인 역동의 원리는 그다지 달라보이지 않는다. 몽골 체류 중 일행은 울란바토르 시내에서 가장 큰 곳 중 하나라는 재래시장을 찾았다.소액(50토그르기)이지만 입장료도 내야 했다.뙤약볕 아래 제법 널찍하게 펼쳐진 재래시장은 예의 인파로 북적였다.갖가지 물건을 파는 노점상들이 보도를 점령한 것도 우리에겐 익숙한 광경이었다.특히 냉차를 파는 노점은 옛날의 우리 모습을 다시 보는 듯 했다.온갖 잡화가 진열된 그곳은 생각과 달리 잘 정리되어 있었고,풍성했고,사람들의 표정도 밝아 보였다.이 시장은 울란바토르에서도 중산층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또다른 익숙한 광경도 눈에 띄었다.식료품 가게에는 감자와 마늘,양파가 즐비했다.현지 안내원에게 물으니 몽골인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식품들이라고 했다.우리와 다른 점은 어물전이 없다는 거였다.하기야 고비사막을 깔고 앉은 내륙도시 울란바토르에 신선한 생선이 있을리 만무했다.일행중 누군가가 우스개소릴 던졌다.“어디 가서 싱싱한 회나 한 접시 했으면 좋겠구만.” 이 시장이 매력적인 것은 몽골인들의 삶을 가감없이 드러낸다는 점이었다.시장 입구에 들어서니 ‘거리의 악사’가 눈길을 끌었다.초로의 여인이 짙은 화장을 하고 뙤약볕 아래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아들인 듯 싶은 젊은이는 반주가 담긴 카세트를 켜들고 그 뒤에 물끄러니 서있었다.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우리의 옛날들이 스쳐 지나갔다.일제에 의해 전통적인 우리의 권번이 해체되면서 수많은 기생들이 거리로 내몰렸다.이를테면 그 이전의 관기(官妓)가 중심이었던 ‘공창 시스템’을 자본주의식 ‘사창 시스템’으로 전환시킨 조치였다.하루 아침에 일자리에서 내몰린 기생들이,그것도 ‘애기기생’들을 모두 떠나보내야 하는 늙수그레한 노털 기생들은 천상 길거리에 나앉을 수밖에 없었다.그들은 전국을 떠돌며 잔치집을 전전하거나 노상에서 술과 웃음을 파는 들병이로 전락했다.이 몽골 여인의 삶의 내력을 알 수는 없었으나 길거리에서 기예를 파는 처지가 딱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양 한마리를 해치우는데 고작 20여분. 몽골을 떠나기 이틀 전,몽골 현지 ACC 책임자가 아주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몽골의 자연형 국립공원인 테일지 초원의 게르로 나가 양고기 오찬을 대접하겠다는 것이었다.정중한 초청이었기에 거절할 수는 없었지만 일행 대부분은 이미 여러번의 현지식에서 양고기의 누린 맛에 적잖이 질린 터라 서로 마주보고 눈만 꿈벅거렸다.그때 일행중 한 명이 나섰다.“너무 양고기에 기죽은 표정들 하지 맙시다.이미 초청을 받았는데 안 간다는 것도 결례이고 하니 그냥 가볍게 초원으로 산책 나간다는 생각으로 갔다 옵시다.” 그렇게 해서 울란바토르에서 차로 1시간 쯤을 달려 테일지 자연공원에 도착했다.그곳은 아름드리 삼림이 있고 바이칼호수에서 발원했다는 맑은 강물이 흐르는 천국 같은 곳이었다.산의 능선을 타고 펼쳐진 바위가 마치 금강산의 풍광 한 폭을 뚝 떼어다 옮겨놓은 듯 아름다웠다.안타까운 것은 거기에도 개발 바람이 불어 그 울창한 원시의 수림대가 차차 망가지고 훼손된다는 사실이었다.테일지로 가는 길목 곳곳에 베어넘긴 거목의 시체들이 즐비했다.그곳에서 말등에 올라타고 두개의 야트막한 하천을 건너 한참을 가니 광활한 초원지대가 모습을 드러냈다.상상해 보라.인공이 가해지지 않은 원시의 초원을 눈앞에 두고 선 나그네의 가슴 울렁거리는 희열을. 말인 즉 인공이 가해지지 않았다고 했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그곳에는 양과 말,야크떼를 거느린 유목민들이 살고 있었다.양털과 젖이 그들의 주수입원이었지만 가끔 게르에서 하루,이틀 묵으며 초원을 체험하려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제법 짭짤한 수입을 올리기도 하는 그런 곳이었다.그곳 유목민들은 땟국에 절은 입성 말고는 어떤 문명의 티도 내지 않았다.예약된 게르에 들어서자 주인 사내가 딱딱하게 말린 양젖 버터를 권했다.마치 고구마 절편처럼 딱딱했다.맛을 보려고 입으로 가져가니 예의 누린내가 확 끼쳐 슬그머니 내려놓고 말았다. 게르 뒷편에서는 젊은 유목민 사내가 때맞춰 능숙한 솜씨로 양을 잡고 있었다.그걸 지켜보자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살아있는 양의 네 다리를 잡고 땅바닥에 누인 뒤 고작 연필만 한 주머니칼을 꺼내 명치 부위에 10㎝ 가량의 칼집을 냈다.그때까지 양은 멀쩡하게 살아 맴맴거리고 있었다.이윽고 사내는 칼집으로 손을 쑥 집어넣더니 검지를 대동맥에 걸어 뚝 하고 잡아뗐다.그걸로 끝이었다.양은 이내 목을 축 늘어뜨렸다.양의 숨이 끊어지자 사내는 손바닥을 밀어 익숙하게 가죽과 몸통을 분리했다.칼은 발목과 목을 분리할 때만 썼다.다음은 배를 갈라 내장을 들어내는 일.가슴을 갈라 내장을 들어내고,흉곽에 그득한 피를 준비한 그릇에 담아 선지 순대를 만들었다.그의 아내인 듯 보이는 여성이 들어낸 내장을 익은 솜씨로 손봐냈다.순대와 내장,적당한 크기로 나뉜 몸통은 그대로 통속으로 들어가 삶겼다.양 한마리를 잡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20여분 정도,그러는 동안 땅바닥엔 피 한방울이 흐르지 않았다.일을 마친 사내는 풀섶에 쓱쓱 문대 손의 피를 닦았다.양 한마리를 그렇게 잡도리했다. 일행이 담소하는 동안 삶은 양고기가 가득 든 통을 든 사내가 게르로 들어섰다.건장한 사내는 순박하게 웃어보이며 통 속에서 막 삶긴 뜨거운 양고기를 꺼내 칼질을 시작했다.익숙한 솜씨였다.통속에는 양고기와 함께 돌과 감자도 들어있었다.게르에 차려진 간이 식탁위에는 금세 맛있게(?) 삶긴 양고기가 그득했다.다릿살이며 내장에 양의 선지를 채운 양순대가 모락모락 김을 피워올리고 있었다.술도 나왔다.말젖을 발효시킨 마유주였다.맛을 보니 시금털털해 아무래도 비위가 얇고 술에도 약한 필자가 감당하기엔 무리였다.일행 중 한 명이 “내 이럴 줄 알고 준비했지.”라며 술 한병을 꺼내 식탁에 올려놨다.몽골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칭키즈칸 보드카였다.독한 술이 돌자 처음엔 양고기 누린내에 고개를 모로 꺾던 사람들이 하나,둘 달려들어 안주 삼아 양고기를 맛보기 시작했다.더러는 “생각보다 먹을만 한데….”라는 후평을 내놓기도 했으나 준비해 간 고추장 맛으로 몇 점 먹어본 것이 고작이었다.30여명이 먹은 양고기가 너댓근에 불과해 보였다.남은 고기가 먹은 것보다 훨씬 많았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맞았다.벌써 며칠째 밥 다운 밥 꼴을 못 본 필자는 그걸로라도 면허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해 고기덩이 속에서 삶은 감자를 골라냈다.그러나 양고기와 같이 삶긴 터라 감자든 고기든 누리기는 매 한가지였다.양고기와 양순대,간 등이 있었지만 누린내 때문에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옆에 있던 누군가가 그런 필자의 옆구릴 쿡,찌르며 귀엣말을 건넸다.“아직 배가 덜 고팠구만….” ■애들아,말 달리자.저 땅 끝까지. 오찬을 마친 일행은 초원으로 나섰다.초원에서 몽골 말을 타볼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말을 타려니 연전 터키의 한 시골에서 말을 타다가 엉덩이 꼬리뼈 부위가 벗겨져 곪는 바람에 며칠 혼쭐이 났던 기억이 되살아났다.말안장에 쓸린 상처 부위가 덧나 나중에는 차를 타건 비행기를 타건 한시도 의자에 바로 앉지 못했던 그 끔찍한 여행의 기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을 터였다.그걸 아는 필자로서는 말등에 올라서도 말이 제 멋대로 달리게 할 수가 없었다.말은 과천 경마장에서 내달리는 유럽형 경주마처럼 크지 않았다.키가 작달막해 보였는데 그래도 가까이 다가가니 등이 어른 키높이만 했다.바로 이 말이 옛날 몽골 전사들이 타고 세계를 아우른 그 말이라고 했다.순식간에 내달리는 속도는 유럽산 경주마에 뒤지지만 지구력이 좋아 오래 달린다고 했다.또 먹성도 까탈스럽지 않고 병에도 잘 견딘다니 전쟁터에 타고 나갈 기마용으로는 그만인 듯 했다.그러니 유난히 말을 사랑했다는 당태종이 이곳에서 명마를 골라 준마도,백마도(百馬圖)를 그리고 그 유명한 당삼채로 완성해내지 않았을까. 그렇든 말았든 꼬리뼈의 추억 때문에 고삐를 바짝 당겨쥐어 말이 뛰지 못하게 한 뒤 게르 주변을 한바퀴 도는 것으로 끝냈다.그렇게 조심했는데도 나중에 보니 엉덩이 가운데 꼬리뼈 끝이 빨갛게 쓸려 있었지만 예전처럼 곪지는 않았다. 농사 유전자를 가진 한국인에게 말을 타는 일이 썩 어울려 보이지는 않았다.거북하고 어색한 몸짓이 우스꽝스러웠는지 그곳 아이들이 바라보며 키득거렸다.태어나 걸음을 떼면서부터 말등을 떠나지 않은 그곳 아이들 아닌가.아닌게 아니라 고작 예닐곱쯤 되어 보이는 꼬마가 잽싸게 말등으로 뛰어오르더니 ”츄∼츄∼”하는 입소리를 내며 가죽 고삐로 뱃골을 치자 말은 순식간에 초원 저편으로 질풍처럼 내달려 금세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때 누군가가 한가지 제안을 했다.“저 꼬마녀석들에게 뭔가 선물을 줘야 할텐데 그냥 주기도 뭐하니 말타는 모습을 좀 보여달라면 어떨까?” 그런 뜻을 게르 주인에게 전했더니 주인 사내는 한 술 더 떴다.“이 마을(마을이라야 게르 서넛이 멀찍이 자리잡은 것에 불과했다.)에 저 또래 아이들이 모두 여섯인데 그들에게 목표를 정해 말타기 경주를 시켜보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모두가 동의했다.하는 김에 5달러씩 걸어 이긴 사람이 본전을 제하고 나머지를 애들 시상금으로 주자고 제안했다.주인이 제안한 터라 딱히 그 사람들이 기분 나쁘게 여길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자고 동의하자 주인이 초원을 향해 높은 톤으로 소릴 질렀다.멀리 있는 아이들을 부르는 소리였다.잠시 후 여기저기서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모여들었다.그들 뿐이 아니었다.아낙들,젖먹이들도 모두 눈을 반짝이며 게르 앞으로 모여 들었다.꼬마들은 제각각 아끼는 말을 골라타고는 고삐를 바투잡고 나란히들 섰다.그들은 말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듯 했다.우리야 한번 말등에 오르내리려면 기를 써야했지만 걔들은 가볍게 말등을 오르락거렸다.말에 올라탄 꼬마들은 뭐라고 주문을 외며 우리가 든 게르 주변을 천천히 열바퀴 돌았다.몽골의 전통적인 출정의식이라고 했다.이윽고 목표가 정해지고 모두 출발선에 섰다.목측으로 2000m쯤 되는 거리였다.사내가 신호를 하자 고삐를 꼬나쥔 꼬마들이 초원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마치 옛날의 몽골 전사들이 저렇게 내달려 도버해협과 북해의 거친 해안까지 다다랐던 것은 아닐까.그들의 모습에서 영화로웠던 칭키즈칸과 그의 아들 오고타이,손자인 쿠빌라이칸의 시대를 보는 것 같았다.그 모습은 시공을 초월해 그들이 말(馬)을 매개로 엮어진 불가분의 의식공동체임을 확인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애들이 말을 몰아 목표를 돌아오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얼굴이 발그레 상기된 아이들은 사내의 지시에 따라 마상에서 뭐라고 몇 번 고함을 지른뒤 훌쩍,훌쩍 뛰어내렸다.그들이 마상에서 내지른 소리 역시 무사히 말을 타게 해 줘 감사하다는 일종의 주문이라고 했다.논의 결과 아무리 애들이 수고는 했지만 직접 돈을 주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여겨 사내에게 모은 돈을 한꺼번에 건넸다.그렇게 모은 돈이 한 40 달러쯤 됐다.사내는 한 켠으로 아이들을 불러모은 뒤 뭐라고 얘기를 나눴다.아이들이 깔깔대는 소리가 들렸다.잠깐 말 타는 것을 보여줬을 뿐인데 돈은 무슨 돈이냐는 투였다.거기까진 우리가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황무지 제국에도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구름 한점 없는 하늘 한 켠이 마치 불길이라도 이는 듯 선홍빛으로 타들었다.대륙의 장엄한 노을이었다.타드는 것이 하늘 뿐만은 아니었다.하늘과 맞닿은 대지도 붉게 달아올랐다.그 노을 속으로 누군가가 말등에 지친 몸을 싣고는 하염없이 길을 걷고 있었다.그의 뒤를 키 작은 양떼들이 따랐다.유목의 사내일 것이다.그 모습에서 문득 몽골의 전사들을 이끌고 천하를 휘저을 때 남긴 칭키즈칸의 말이 떠올랐다.“성벽을 쌓는 자는 망하고 이동하는 자는 살아남을 것이다.” 그랬다.비록 그 말이 옛적 유목의 부정형 삶을 두둔하고 옹호하는 의미였을지라도 우리는 지금 그 의미를 결코 백안시할 수도,도외시할 수 없다.오늘날에도 그 교조는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몽골의 거친 황무지,그 황무지와 하늘을 가장 단순하게 구획하는 일획의 지평선 위로 비장하게 물드는 노을.뜨겁게 달아 올랐다가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순식간에 스러져 가는 그 노을에서 장대했던 몽골의 옛 제국을 보았다.참으로 비장했던 제국의 영화와 끝.그 노을을 응시하던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말문을 닫았다.자연이 연출한 그 무위의 파노라마 앞에서 온몸으로 느끼는 전율 말고 무슨 영탄이 필요할 것인가.몇몇은 풀섶에 가만히 주저앉아 술병을 땄다.보드카였다.독한 술이 목줄기를 타고 넘어가 순식간에 흉금을 적셨다.노을에 함뿍 적신 얼굴 위로 서서히 술기운이 돌았다.노을과 사람이 함께 익어드는 것 같았다. 이윽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작한 노래가 거친 풀섶으로 나즈막히 흘렀다.“천등사안 바악딸째를 울고넘는 우리 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 비에 젖는구려…”노래는 다시 이어졌다.“아아∼∼ 신라의 바아암이이이여 불국사의 종소리가 들리어온다 지∼나가는 나아그네에에여어 거∼얼음을 머어엄추어라 고오오요오하안 다아알빛아래….” 그 노래가 그 시각,그 자리에서 어울리는지 아닌지는 아무도 따지지 않았고,또 생각하지도 않았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장대한 자연의 섭리를 앞에 두고 터져나온 노래야말로 가장 진솔한 정서의 토로 아니었겠는가. 이윽고 맞은 저녁.몽골의 밤하늘은 별들의 천국이었다.장관이었다.요요한 풀섶에서 쳐다보는 밤하늘에는 별들이 촘촘하게 박혀 형용할 수 없는 자태의 빛을 발하고 있었다.휘∼ 손을 내저으면 우수수 떨어질 것만 같았다.어린 시절 고향에서 보았던 그 광경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그 모습이 고스란히 몽골의 초원에서 재현되고 있었다.아주 오랫동안 뒤로 고개를 꺾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가슴이 울렁거렸다.기대하지 않았던 만남이 주는 설레임 때문이었다. 그 싱싱하고 영롱한 별들이 어느 새 술병 속에 떨어져 잠겼는지 몇 잔을 마신 보드카가 이내 목에 턱턱 걸렸다.그렇게 술과 함께 삼킨 초원의 별들이 훗날 내 속에서 어떻게 되살아날까. 봉사단원들은 모처럼 가진 초원에서의 휴식에 모두 흡족해 했다.ACC 김종구 총재가 일행과 함께 하며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꽃향기는 황홀해 보여도 산 하나를 넘지 못하지만 남에게 베푸는 봉사의 향기는 국경도 넘는다.” 사실 일상에 쫓기며 살아야 하는 갑남을녀가 ‘봉사’를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그러나 김 총재의 말마따나 “봉사는 마약”인지도 모를 일이다.그렇지 않고서야 선뜻 사재를 털어 빈민에게 새 게르를 지어주기는 쉬울 것이며,자신의 직장일을 뒤로 하고 1년에 몇 차례씩 해외 봉사활동을 나서기는 또 쉬울 것인가.봉사활동 말미에 가진 한·몽 ACC 자평모임에서 김 총재는 이런 말을 했다.“재산이 많아 하는 봉사는 자선일 수는 있어도 엄밀한 의미의 봉사는 아니다.봉사는 자신의 여건을 초월해 나서는 것이다.세상에 아무 것도 잃지 않고서 할 수 있는 봉사란 없다.” 일행을 이끈 아시아 사랑나눔의 배용민씨는 현지에서 정을 나눈 안내원들과 따로 어울리며 아쉬운 석별의 정을 나눴다.그가 대뜸 이런 말을 꺼냈다.“고생할 때는 두번 다시 몽골엔 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초원에서 밤을 맞으니 그 생각이 틀린 것 같습니다.이걸 보고 몽골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그랬다.사실 몽골에서의 체험은 매우 특이했다.그러나 누린 먹을거리에 곤죽이 되고,태양에 주눅이 들었어도 그것이 잘 사는 나라에서 항용 겪는 무관심이나 비하와 모욕의 체험은 아니었다.사람들은 순박했고,지혜로웠다.손님을 대하는 태도도 정성스러웠다.그런 정성이 양고기의 역겨운 노린내를 지우고도 남았다. 애당초 봉사하자고 나선 길에 무슨 호의호식을 바라겠는가.그런 생각이 봉사의 취지를 훼손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해지며 더 많은 땀을 쏟지 못한 아쉬움이 가슴으로 잔잔하게 배어들었다.밤이 지나면 다시 저 망망한 대지 위로 태양이 떠오를 것이다.그리고 그 태양의 순환처럼 이 황무지에도 연대와 공유의 찬란한 세상이 다시 열릴 것이다.그렇게 기원했다. 글·사진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사설] 순채무국 전락 가볍게 볼 일 아니다

    우리나라가 8년 만에 순채무국으로 전락할 위기를 맞고 있어 외채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은행이 엊그제 발표한 ‘6월말 국제투자대조표’에 따르면 대외 채권에서 대외 채무를 뺀 순대외채권은 27억 1000만달러로 1999년 말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6월 이후 대규모 외환시장 개입 등을 감안할 때 이미 순채무국이 됐을 가능성도 있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외환보유액에 비해 1년 이내에 갚아야 할 외채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단기 외채와 잔여 만기 1년 이내의 장기 외채를 합한 유동 외채는 2223억 2000만달러로 3개월새 61억 9000만달러 늘어났다. 이를 갚고 나면 외환 보유액은 350여억달러밖에 남지 않게 된다. 외환 당국은 선박 수출 선수금 등 상환 부담이 없는 외채가 많기 때문에 외환 위기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외채는 국가 신인도와 직결되기 때문에 안이하게 대처해선 안 된다. 국제통화기금(IMF) 서울사무소도 외채 규모가 늘어나는 것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S&P 등 해외 신용평가기관들도 우리의 외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외채 비중이 40%대 초반으로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 비해 훨씬 낮은 수준인 점을 들어 방심하는 것도 금물이다. 선진국들은 국제 통화를 사용하기 때문에 외채 걱정이 우리에 비해서는 훨씬 덜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우리는 더욱이 경상수지 적자로 달러화가 모자라는 상황이다. 해외 차입을 억제하면 환율이 상승하는 등 외채 관리가 쉽지 않다. 해외 차입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면서 외채의 만기 구조를 정밀 분석해 단계별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 환율 방어를 위한 잦은 외환시장 개입으로 외환보유액이 계속 줄어들게 해서도 안 된다.
  • 순채무국 전락 ‘코앞’

    순채무국 전락 ‘코앞’

    한국의 순대외채권이 대폭 줄어들면서 3분기 중 순채무국으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국제 금융시장 불안으로 한국이 해외 주식투자에 나섰다가 손해본 액수가 전체 투자액의 30%인 약 30조원 규모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이 28일 발표한 ‘6월말 국제투자대조표(잠정)’에 따르면 순대외채권(대외채권-대외채무)은 27억 1000만달러로 지난 3월말의 131억 6000만달러에 비해 104억 5000만달러가 줄었다. 이는 1999년말의 -68억 달러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순대외채권은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말에 -680억 8000만달러에 이르렀으나 2000년 플러스로 전환했고 2005년 말에는 1207억달러까지 늘었다. 그러나 2006년 말 1066억달러, 지난해 말 355억달러로 감소한데 이어 6월말에는 두자릿 수로 뚝 떨어졌다. 순대외채권이 줄어든 이유는 대외채권은 4224억 8000만달러로 3월말보다 44억 8000만달러 감소한 반면, 대외채무는 4197억 6000만달러로 3월말보다 59억 5000만달러 증가했기 때문이다. 유병훈 한은 국제수지팀 차장은 “외국인들의 국내투자는 대외채무로 확정되는 채권 위주였고, 내국인들의 해외투자는 채권에 들어가지 않는 주식투자나 직접투자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순대외채권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임지원 JP모건 수석애널리스트도 “3분기 중 순대외채무국으로 전환된다고 해도, 단기채무(1757억달러)보다 단기채권(3357억달러)이 이보다 2배가 많이 있기 때문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의 재정상태가 위험하다고 보지 않는다.”면서 “따라서 한국의 국가신인도가 하락하거나, 해외채권을 발행할 때 프리미엄이 더 붙는다든지 하는 불이익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도 “경상수지 적자로 빚을 끌어다 쓴 것이 아니라 회계 처리 상 나빠진 것인 만큼 큰 의미를 두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한편 한국은 상반기 해외 기업에 대한 지분 투자 및 증권투자로 1분기 186억달러,2분기 122억 8000만달러 등 상반기 중 모두 309억 8000만달러(약 31조원)의 평가손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말 증권투자액 1061억 1000만 달러의 30%가 평가손이 나타난 것이다. 한은은 “상반기 중 한국기업 등의 최대 투자처인 중국의 주식이 56%가 하락했고, 베트남은 67%, 인도도 34% 하락한 것을 감안하면 평가손이 오히려 적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깔깔깔]

    ●재미난 약어 모음 졸업식:졸지에 실업자가 되는 식 인형:인간성이 형편없는 사람 돌격대:돌로 격파해도 깨지지 않는 대가리 호박:호탕하고 박력있는 여자 예술가:예비 술집 아가씨 제비:재수없게 비아냥거리는 남자 순대:순진한 대학생 치약:치사하고 약삭빠른 사람 신사:신이 포기한 사기꾼 비만증:비비고 만지려는 병적인 증세 미남:미련한 남자●신의 뜻이라면 어떤 할아버지가 버스를 탔다. 그런데 차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웬 할머니가 할아버지 앞으로 쓰러졌다.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신이시여 저를 시험하시나이까?” 잠시 후 또다시 차가 급정거했다. 이번에는 아리따운 아가씨가 할아버지 앞으로 쓰러졌다. 할아버지는 아까보다 더욱 큰 소리로 외쳤다. “신의 뜻이라면 따르겠나이다.”
  • 김래원이 밝힌 ‘식객’의 인기비결과 뒷이야기

    김래원이 밝힌 ‘식객’의 인기비결과 뒷이야기

    ‘식객’의 주인공 성찬 김래원이 식객의 인기비결과 제작과정에 생긴 비화를 밝혔다. 허영만 화백의 동명원작을 기반으로 새롭게 각색된 드라마 ‘식객’은 만화 원작은 물론, 김강우, 김원희 주연의 영화 ‘식객’과도 판이하게 다른 구성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김래원은 17일 오전 전남 완도군 노화읍 북고리에 위치한 한 양식장에서 열린 SBS 월화드라마 ‘식객’(극본 박후정ㆍ연출 최종수)의 현장공개에서 취재진을 만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이 생각하는 식객의 인기비결과 제작 뒷 이야기를 전했다. #드라마 ‘식객’을 위한 연기자의 끝없는 노력 드라마 ‘식객’의 주인공들은 만화 원작과는 무척 다른 개성과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름만 그대로 가져 왔을 뿐 새롭게 재창조된 캐릭터라 봐도 무방하다. 이런 새로운 캐릭터에 대해 김래원은 “성찬이라는 캐릭터가 어떤 사람인가를 보기 위해 만화 원작을 봤을 뿐이다. ‘아하!’라는 생각이 들어서 책을 놓으려고 했는데 재미가 있어서 생각했던 분량보다 두 배 이상을 봐버렸다.”고 자신만의 성찬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전했다. 이와 함께 요리사라는 전문적인 직업을 위한 연습 또한 현실적인 연기와 캐릭터 몰입에 한몫을 했다. 자신의 손을 베여가면서 요리 연습을 해 왔다는 김래원은 “처음엔 내가 칼질을 제일 잘했다. 혼자 살면서 요리하는데 익숙해서 당연했는데 이제는 (권)오중이형이 따라오고 있어 걱정”이라고 말하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전국을 돌며 빡빡하게 진행된 현지 촬영 탓에 김래원의 피부는 까맣게 타 있었다. “많이 탄 것 같다.”는 취재진의 질문에 김래원은 “정말 힘들다. 시청률이 안 나왔으면 어떻게 촬영 했을지 걱정이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포도당에 응급실 투혼까지 이날 김래원은 “촬영 스태프 한 명이 일사병으로 쓰러져서 인근 병원 응급실로 가기도 했다. 연기자 보다는 스태프들이 걱정”이라며 촬영현장의 어려움을 전했다. 실제로 연기자들은 자신의 촬영 분량이 없으면 선풍기 바람을 쐬거나 차량으로 이동해 에어컨을 켜고 쉬었지만 스태프들은 7월의 폭염 속에 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김래원은 “정말 지쳐서 요즘은 PD님이 사준 식염 포도당을 먹으면서 촬영하고 있다.”며 “요즘은 너무 지쳐서 아무 생각 없이 촬영한다. 처음보다 5배 빨리 말하게 되고 5배 빨리 지치는 것 같다.”고 드라마 촬영에 대한 고충을 전했다. 하지만 김래원은 “다 같이 노력하고 있다. 지칠 법한 타이밍에 다들 너무 열심히 해서 감사하다.”고 스태프들에게 공을 돌리는 한편 “연기를 해 오면서 지금처럼 한마음으로 연기한 것이 처음”이라고 제작진 전체의 단결력을 자랑하기도 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영덕대게’, ‘민어부레 순대’는 먹을 수 없는 음식 김래원은 지금까지 촬영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소재를 6회에 방송된 ‘영덕대게’로 꼽았다. 김래원은 “정말 맛있게 먹었고 즐겁게 촬영했다.”고 영덕대게를 ‘식객’ 촬영 중 백미로 꼽았다. 이번 촬영을 위해 전남 완도에 도착한 김래원은 “전복 3마리를 배에서 바로 먹었다. 배도 몰아보고 아침에는 더덕까지 캐먹었다.”고 전국을 돌면서 촬영하는 즐거움 중 하나를 ‘현지의 특산물’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김래원은 2회에서 성찬이 운암정의 후계자 자리를 잇기 위한 1차 경합에서 선보인 ‘민어부레 순대’에 대해 ‘먹을 수 없는 음식’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김래원은 “화면으로 보면 정말 맛있어 보이는데 사실 먹을 수 없는 음식”이라며 “그렇게 큰 민어부레를 구할 수가 없어서 곱창으로 대신한 음식이고 향초와 성게알을 넣어서 만들었는데 써서 먹을 수가 없었다.”고 제작에 얽힌 비화를 전했다. 이날 김래원은 새벽부터 일어나 7월의 뜨거운 태양아래 촬영을 한 탓에 지칠법도 했지만 웃음을 잃지 않았다. 취재진과의 이야기가 끝난 후 인근에 위치한 밥차(드라마 제작진을 위해 준비된 식사 차량)로 향해 스태프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는 등 시종일관 활기찬 모습을 보였다. ‘식객’은 성찬과 봉주(권오중 분)와의 대립구도가 심화되는 한편, 성찬을 둘러싼 진수와 주희(김소연 분)의 삼각관계가 드러나면서 그 재미를 더할 예정이다. SBS 월화드라마 ‘식객’은 매주 월, 화 오후 9시 55분 방송된다. 사진제공=SBS 서울신문NTN(완도 전남) 김경민 기자 star@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위기의 한국경제 탈출구를 찾아라] (상) 제2의 외환위기 오나

    [위기의 한국경제 탈출구를 찾아라] (상) 제2의 외환위기 오나

    한국경제에 비상등이 켜지고 있다. 경기침체와 고물가가 동시에 진행되는 스태그플레이션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국제유가는 연일 사상최고치를 경신하고 있고 미국의 금융위기도 재발하는 분위기다. 이런 악조건 속에 경상수지 적자와 국가채무가 늘어나자 ‘제2의 외환위기’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우리 경제의 상황이 얼마나 나쁜지, 난국을 어떻게 견뎌낼지에 대해 세 차례에 걸쳐 시리즈로 진단한다. 지난 7일 정부와 한국은행이 ‘고환율 정책’을 포기하고, 역으로 ‘환율과의 전쟁’을 선언했다. 많은 국민들은 외환보유고를 털어 원화 가치를 방어하다가 외환위기를 맞았던 뼈아픈 1997년 가을을 떠올렸다. 국제금융계의 속설 중 하나인 ‘외환위기 10년 주기설’을 떠올리며 불안해 했다. 최근 인터넷을 중심으로 퍼지는 ‘9월 위기설’이나 ‘3분기 순채무국 전환’ 등 각종 위기설의 근원은 ‘한국에 달러는 충분한가?’로 귀결된다. ●경상수지 누적 적자 규모 줄어들까 1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까지 누적 경상수지 적자는 65억달러로 추정된다. 하반기는 25억달러 적자로 합쳐서,90억달러 적자를 예상하고 있다. 희소식은 1분기(1∼3월)까지 누적 경상수지 적자가 52억달러지만,2분기(4∼6월)에는 13억달러로 4분의1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6월에는 7억달러 정도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반기 경상수지 적자규모도 25억달러로 상반기의 38% 정도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상반기에는 3∼4월 중 외국인 배당금 송금이 55억달러가 있기 때문에 경상수지 적자요인이 컸지만, 하반기에 국제유가가 하반기 평균 128달러 수준으로 수렴할 경우 적자규모가 크게 축소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1조 달러의 1%인 100억달러 규모의 경상수지 적자는 균형수준이라고 봐도 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국제유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해 하반기 평균이 150달러까지 치솟을 경우 경상수지 적자가 걷잡을 수 없이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 6위의 외환보유고는 튼튼한가 경상수지 적자란 곧바로 외환보유고가 줄어든다는 의미가 된다.6월 말 현재 2581억달러의 외환보유고가 줄어들 가능성은 산재해 있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내년까지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환율전쟁’도 외환보유고를 줄이는 요인이다. 지난 5월 말부터 7월 초까지 정부가 원·달러 환율 상승을 막기 위해 퍼부은 자금의 규모가 90억∼100억달러로 추정되고 있다. 여기에 지난 7월7일부터 10일까지 환율 하락을 위해 약 60억∼80억달러 규모의 외환보유고를 추가로 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두 달 사이에 150억∼170억달러(한화로 15조∼17조원)를 사용한 것이다. 임지원 JP모건체이스 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국제유가가 상승하고 있고 내년까지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될 정망이며 국제금융시장의 경색이 지속되고 있어 우호적인 환경이 아니다.”면서 “그나마 역외 환투기 세력이 주춤한 것은 외환보유고가 넉넉한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외채 급증, 위험은 없나 외채규모는 2005년 말 1879억달러에서 2008년 3월 4125억달러로 2배 이상 급증했다. 때문에 순대외채권 규모는 2005년 1207억달러에서 2008년 3월 150억달러로 급속히 줄어들었다.3분기 중 순채무국으로 전환될 전망이다. 만기 1년 미만의 단기외채도 2005년 659억달러에서 2008년 3월 1765억달러로 3배 가까이 급증했다. 임 수석애널리스트는 “해외투자자들은 단기외채 성격이 10년 전과 다른 만큼 증가속도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면서 “다만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크게 나빠졌다고 판단될 경우 복합적인 위기가 발생할 수는 있다.”고 지적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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