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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사·학부모 ‘수업시간’ 신경전

    주 5일 수업을 한달에 두 번 실시할 경우 수업시간과 방학기간은 어떻게 될까? 25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대강당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상반된 의견이 쏟아졌다. 교육인적자원부는 현재 한 달에 한 번 실시중인 주 5일 수업을 내년부터는 월 2회로 늘린다는 입장이다. 학부모·교사 모두 주 5일 수업제를 단계적으로 늘리는 방안에 대해서는 한목소리였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박순경 연구위원은 내년부터 월 2회 주 5일 수업제를 실시하는 것에 대해 교사 68.9%, 학부모 61.9%가 찬성했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박 연구위원은 “주 5일 수업제를 월 2회로 확대 시행하려면 수업일수를 현행 220일에서 205일로 15일 줄이고, 수업시간은 주당 1시간씩 감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같은 세부계획에 대한 교사·학부모들의 반응은 달랐다. 학부모들은 월 2회 주 5일 수업을 해도 수업시간을 줄여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 강했다. 반면 교사들은 수업시간 감축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었다. 박 연구위원 조사에 따르면 수업시간 감축에 대해 학부모들은 21.1(초등학교)∼37.0%(중학교)만이 찬성했다. 반면 교사들의 경우,73.6(고교)∼81.3%(초·중)로 나와 대조를 이뤘다. 학부모들은 학력저하를 우려, 수업시간 감축을 반대했다. 이같은 의견은 방학기간 조정에서도 그대로 반영됐다. 방학기간을 줄이지 말고 그대로 두자는 의견은 학부모(70∼73%)보다 교사(78∼82%)가 높게 나왔다. 교육부는 이날 공청회 내용을 토대로 학교교육 과정 편성·운영에 관한 구체적 지침을 11월에 시·도교육청에 내려 보내기로 했다.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60년선배·햇병아리 경관의 만남

    60년선배·햇병아리 경관의 만남

    “든든한 후배 모습을 보니 이렇게 귀엽고 자랑스러울 수가 없네.” “경찰의 산 역사라고 할 수 있는 선배님을 이렇게 뵙게 돼 영광입니다.” 경찰의 날(21일)을 이틀 앞둔 19일 오전 서울 중구 신당동 대한민국참전경찰유공자회 사무실에서는 60년 경찰 선후배의 ‘특별한 만남’이 있었다.1945년 창설 때부터 경찰에 몸담았던 유공자회 문학동(83) 회장과 올 7월 임용된 새내기 나영삼(29·남부경찰서 독산지구대) 순경. 할아버지와 손자뻘인 두 사람은 다정하게 마주앉아 1시간 이상 경찰의 과거와 미래를 이야기했다. 햇병아리 후배를 본 소감을 묻자 문 회장은 44년 일제 학도병으로 끌려갔다 해방 직후 벅찬 가슴을 안고 부산에 돌아왔던 기억을 떠올렸다. 문 회장은 “나는 나 순경보다도 어린 스물셋 나이에 왜정의 순사가 아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경찰이 되겠다는 포부로 경찰에 자원했다.”고 했다. “6·25 전쟁 때 화랑부대에 뽑혀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했지. 하지만 일부 군인과 경찰이 월북을 한다며 미군이 한국사람에게는 무기도 안 주더라고. 결국 수통 하나 없이 척후병으로 뛰어야 했어.” “경찰 역사를 배웠어도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는 전혀 몰랐습니다. 생생한 경험담을 들으니 초기 선배님들이 겪었던 어려움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문 회장이 “요즘 가장 힘든 게 무엇이냐.”고 묻자 나 순경은 “지구대 근무를 하다 보면 경찰에게 욕을 하며 난동 피우는 취객들을 안정시키느라 치안능력이 낭비돼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문 회장은 “6·25 때 지리산에서는 유엔군, 중공군은 전혀 없이 북한과 남한 군경끼리만 서로 죽이는 상잔의 참상이 벌어졌다.”면서 “요즘 집회 현장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 때가 떠올라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에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문 회장은 대화를 마치며 “경찰에 대한 국민 인식이 아직도 좋지만은 않기 때문에 심적 부담이 있겠지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민중의 지팡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60년 후배를 다독였다. 나 순경은 “후배들이 노력해 큰 결실을 거두는 과정을 지켜 보시고 잘못하는 일이 있으면 따끔하게 충고해 달라.”고 말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20&30] 2030 주당들의 음주철학

    일선 경찰서에서 일하는 박모(38) 경사와 김모(29) 순경은 수사에서도 콤비지만 술을 마실 때도 항상 함께 한다. 이들의 철칙은 소주가 아닌 술은 쳐다 보지도 않는 것. 심지어 양주를 선물로 받으면 그냥 단골술집에 주고 소주로 바꿔 먹을 정도다. 박 경사는 “주로 첩보원들을 만나는 술자리가 많은데 고상하게 양주나 맥주를 먹으며 무슨 진솔한 이야기가 나오겠느냐.”면서 “쓴 소주 한 잔씩 주고 받으며 속깊은 이야기를 나눠야 서민들 등쳐먹는 사기꾼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힘든 사람들을 울리는 조폭에 대해서도 듣게 되는 것”이라고 ‘소주예찬론’을 편다. 서울 K대 부교수 이모(38)씨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주당으로 소문이 나 있다. 적어도 2주에 한 차례는 강의가 끝난 뒤 학생들과 저녁 술자리를 갖는다. 하지만 이 교수의 술자리에 참석하려면 ‘회비’가 필요하다. 현안으로 떠오르는 이슈에 대한 토론거리를 준비해 오지 않으면 여지 없이 술자리에서 ‘아웃’이다. 정 토론거리가 없다면 좌중을 감동시킬 시(詩)라도 한 편 외워와야 한다. 이 교수는 “사제지간에는 술자리도 생산적이어야 한다.”면서 “아무 목적 없이 마시고 취하는 술자리는 소모적일 뿐 아니라 괜한 뒷말을 남기기 십상”이라고 주장한다. 학생들 역시 이 자리를 ‘음주수업’이라고 부를 정도로 반응이 좋다. 이번 취재를 통해 만난 주당들은 자신들이 술을 마셔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다양한 논거를 내놓았다. 풍류를 즐기려면 술을 마셔야 한다는 전통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자기 스타일과 필요에 따라 음주 문화를 스스로 개척하고 있었다. 자동차 영업사원 이모(31)씨는 점심시간에만 술을 마신다. 오후 일과가 부담스럽지만 저녁에는 집에서 아이와 가사를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영업사원이지만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자리를 피하면서 나름대로 술도 즐길 수 있어 어느새 ‘낮술 전도사’가 됐다. 김씨는 “아내와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집을 비우기 어렵다.”면서 “낮술을 하면 술과 가정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어 오히려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한국IBM에 다니는 정훈(36)씨는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팬. 정씨는 평소에는 술을 자제하지만 롯데가 이기는 날에는 축하주를 거나하게 마신다. 정씨는 “안 좋은 일로 술을 마시면 사고가 나기 쉽다.”면서 “술은 즐거울 때 마셔야 기쁨을 더할 수 있다는 게 개인적인 음주 철학”이라고 주장했다. 이유종 유지혜기자 bell@seoul.co.kr
  • 둥글둥글 통통한 여인네들 정겨워라

    동화처럼 순수하고 천진한 세계가 넘치는 그림을 그리는 고 장욱진 화백의 15주기 기념전이 장 화백이 살던 경기도 용인시 고택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회의 주제는 ‘장욱진이 그린 여인상’. 그의 여인들은 섹슈얼한 분위기의 ‘여성’이 아니다. 아내와 어머니, 딸 등 자신의 삶에서 가장 귀중한 존재들을 택했다. 그림 전체를 차지하는 여인의 당당한 구도와 녹색주조의 화면은 여인들의 강렬한 눈매와 함께 우리를 긴장시킨다. 힘차고 건강한 생명력이 꿈틀댄다. 생전에 그는 10여점의 여인상을 그렸는데 이번 전시에는 그가운데 8점의 유화가 선보이고 있다. 커다란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며 두손을 마치 불자들의 수인(手印)형태를 하고 있는 ‘여인상’은 부인 이순경(87)여사를 그린 작품. 커다란 다리가 붉은 황토를 굳게 밟고 서 있는 모습이 어려움 속에서도 자식을 지키고자 하는 염원이 느껴진다. 특히 이번 전시회에는 처음 공개되는 ‘나무와 여인’‘어머니상’등 2점이 눈길을 끈다. 까치 한마리를 머리에 얹고 있는 큰 나무아래 강아지와 함께 서 있는 여인을 그린 ‘나무와 여인’은 고향같은 존재로 생각했던 화백의 어머니 모습. 실존의 차원을 넘어 민화와 같은 전통미술의 맥이 연결된 작품이다. 또 둥글둥글하면서도 통통한 여인의 살짝 올라간 손가락이 돋보이는 ‘어머니상’은 다소 성스러운 분위기의 다른 작품과 달리 부인의 애교가 느껴지는 화사한 그림. 불명(佛名)이 진진묘인 부인의 기도하는 모습을 부드러운 선으로 묘사한 ‘진진묘’ 등에서는 불심이 가득한 부인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다. 고 장 화백의 둘째딸 희순씨는 “그림과 가족이 생활의 전부였던 아버지는 생활을 책임졌던 저의 어머니에 대해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 계셔서 이런 애틋한 마음을 화폭에 담으신것 같다.”고 말했다.23일까지.(031)283-1911.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한 무명개그맨 아들, 감동의 ‘아빠 힘내세요’

    한 무명개그맨 아들, 감동의 ‘아빠 힘내세요’

    ‘단역이지만 자랑스러운 내 아버지’ 한 무명 개그맨의 사연이 그의 아들을 통해 인터넷에 알려지며 누리꾼 사이에 화제와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주인공은 현재 MBC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 시즌3에 단역으로 출연하고 있는 한상진(51)씨와 아들 재성(27)씨. 한씨는 ‘안녕, 프란체스카’1회엔 순경,2회엔 의사,3회엔 형사,4회엔 손님 등 그때그때 역할을 달리해 얼굴을 비쳤던 ‘진짜’ 단역이다. 현재 대학 편입을 준비하고 있는 재성씨는 지난 11일 한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아버지의 생신(10월13일)을 맞이하여 조금 색다른 선물을 하고자 이렇게 글을 올려봅니다.”며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1980년대 사우디아라비아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시절부터, 수차례 개그맨 시험에 낙방한 끝에 1991년 KBS 공채 8기로 합격한 일, 그러나 빚보증을 잘못 서 가족 모두 미국으로 도망치듯 떠나게 된 일, 개그에 대한 꿈을 잊지 못한 한씨가 한국으로 돌아와 고생 끝에 봉숭아학당 배역을 따냈지만, 채권자들 때문에 다시 방송을 접어야 했고, 그 와중에 아내를 교통사고로 잃어야 했던 일 등 눈물겨운 사연들이 네티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재성씨는 “지금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 아버지”라면서 “TV엔 못나가도 교도소나 여러 사회복지시설 등에서 공연하시며 재기를 노렸고, 하늘이 준 마지막 기회인 프란체스카 출연이 찾아왔다.”고 전했다. 아들이 생각한 선물은 아버지에게 팬을 만들어 주는 것. 재성씨는 인터넷 글을 통해 “아버지가 한번도 가지지 못한 게 팬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아버지를 알아보는 사람들의 방명록이 담긴 미니홈피를 선물하려고 한다. 목표는 100명”이라고 밝혔다. 또 “언제 어디서라도 아버지를 보게 되면 개그맨 한상진이라고 말해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한씨는 1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오늘 영등포교도소에서 위문공연을 하다가 처음 이야기를 듣게 됐다. 무슨 일인지 얼떨떨하다.”면서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뿐”이라고 말했다.12일 오후 5시 현재 아들이 마련해 준 한씨의 미니홈피를 방문, 방명록에 격려와 축하 글을 남긴 네티즌은 벌써 3000명을 훌쩍 넘어 버렸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부고]

    ●김영구(전 정무장관·전 국회의원)씨 모친상 태섭(신광테크 대표)정섭(한일카페트 〃)씨 조모상 정평섭(성담 회장)씨 빙모상 8일 서울대병원, 발인 12일 오전 8시 (02)2072-2011●조영래(변호사)성래(TEE-KOREA 이사)중래(명지대 교수)순경(이화여대 〃)씨 모친상 이달근(사업)박수문(포항공대 교수)박정부(부싯돌 대표)씨 빙모상 이옥경(내일신문 편집국장)씨 시모상 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1일 오전 7시30분 (02)3410-6916●박종식(전 경영섬유공업 회장)씨 별세 흔택(경영산업 대표)하수(하선데코 〃)씨 부친상 이수신(서울중앙지법 파산부 관리위원장)조상연(한국세큐리트 대표)씨 빙부상 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3일 오전 9시 (02)3410-6914●오윤배(캠프코리아 대표)씨 부친상 김용집(전 코트라 본부장)조태억(재미 의사)최희성(일본삼성 상무)씨 빙부상 8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1일 오전 8시 (02)3410-6918●김유철(관동대 피아노과 교수)유강(한국외대 영어학부 교수)씨 모친상 김동수(미국 나약대 신학과 교수)씨 빙모상 8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1일 오전 6시 (02)3410-6919●이명노(건설교통부 익산지방국토관리청장)덕노(독일약국 대표)준노(남양당한의원장)광노(세종한의원장)은노(용산경찰서 경장)씨 부친상 박광우(자영업)조원일(전주공대 교수)임철수(원광여고 교사)씨 빙부상 8일 전북 원광대병원, 발인 11일 오전 7시 (063)842-5237●강부부(동신상선 대표)씨 모친상 상우(세성항운)민석(동신상선)씨 조모상 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1일 오전 9시 (02)3410-6912●이병직(전주이씨 수도군파 종친회 고문)병도(중앙공사 대표)병주(전 철도청)병준(재미 사업)병춘(한불에너지 관리주)병화(미국다이몬 연초 직원)씨 모친상 9일 강북삼성병원, 발인 11일 오전 9시 (02)2001-1093●양문호(경희대 의대 교수)씨 부친상 8일 경희의료원, 발인 10일 오전 9시 (02)958-9549●박종택(전 경상남도 부지사)씨 별세 성원(SBS PD)씨 부친상 김재민(현대중공업 경영기획팀 부장)천국진(사업)하정희(미국 거주)장호현(재정경제부 과장)씨 빙부상 9일 마산삼성병원, 발인 12일 오전 9시 (055)290-5651●유재수(케이디미디어 경영지원부장)씨 부친상 9일 국립의료원, 발인 11일 오전 9시 (02)2262-4811●김점남(오현초등학교 교사)씨 별세 학권(세중코리아 대표) 학규(자영업) 학래(서울지하철공사 대리)씨 형님상 9일 고려대 안암병원, 발인 11일 오전 5시 (02)929-1099●한성간(연합뉴스 기획위원)성웅(개인사업)규희씨 모친상 9일 오전 9시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영안실 지하1층 2호, 발인 11일 오전 9시,(02)392-0499●홍신희(전 서원대 총장)씨 별세 기윤(KT 인재경영실 근무)기엽(음악가)씨 부친상 장항진(치과의사)씨 빙부상 9일 오후 3시 30분 청주 참사랑병원 영안실, 발인 11일 오전 8시 (043)298-9200
  • 74세의 국민학교 졸업

    74세의 국민학교 졸업

      강원도 삼척군 장성읍의 철암국민학교 6학년 담임이었던 김용태(23)선생은 요즘 학교의 먼 변소에 가서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좋게 되었다. 동교 6년생이던 홍순식(洪淳植)(74)노인이 졸업을 했기 때문이다. 국어공부 제일 좋아 손자 복습시키고, 산수공부에는 끙끙 앓아 만학(晩學)이라는 말이 숫제 미안해진다. 68세로 국민하교 1학년에 입학을 해서 6년간을 개근하고 졸업을 했으니 말이다. 한국 교육사상 가장 나이 많은 국교졸업생이 홍노인이다. 바로 주요광산지대로 알려져 있는 머리보다 육체노동이 판을 치는 고장에서 있었던 이야기이다. 홍노인은 2월 10일 제24회 졸업식에서 손자 성덕(13)군과 함께 정든 교실을 떠났다. 제3312호의 졸업장과 6년 개근상과 그리고 군 교육장의 공로표창장과 상품을 한아름 안고 눈길을 걸어 나오는 노인의 얼굴엔 착잡한 감정이 어리고 있었다. 이날 꼬마졸업생 334명에 끼여 홍노인은 남자자리 앞 셋째줄 의자에 손자와 나란히 앉아 귀빈과 학부형들의 눈을 모았다. 재학생 대표 이정아양의 송사(送辭)와 졸업생 답사가 낭독될 때 노인은 두툼한 돋보기 안경을 벗고 노란 손수건을 온통 주름투성이인 얼굴에 연상 갖다 대며 학교를 떠나는 아쉬움에 눈물을 적시었다. 「70줄을 넘어선 놈」이 손자뻘 되는 꼬마들과 6년간 학교에 다니는 사이에는 홍노인을 중심으로 흥미진진한 반응들이 나타났다. 그는 처음 손자가 입학한 68년 3월 7일 병에 앓아 누운 애를 업어 갔고 8일 동안을 내처 그렇게 했다. 이때였다. 못 배운 한을 풀자는 소원이 솟구쳐 손자 보호 겸 자기 공부를 위한 입학수속을 취했다. 1, 2학년 때는 학교서 배운 ㄱ, ㄴ, ㄷ이나「참새 한 마리」같은 것이 재미가 있어 집에 돌아와서는 꼬마놈에게 복습을 시키는 등 열심이었다. 그것이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사과 반쪽을 칠판에 그려놓고 1/2 혹은 1/3 하는 산수공부가 시작되자 어찌나 어려운지 집에 가서도 손자 앞에 큰 소리 한번 못치고 끙끙 앓아야 하기도 했다. 등교길에 손자와 간판 읽기 경쟁, 학교선 청소하고 불피워 1, 2학년 때까지만 해도 노인이 손자를 앞세우고 집을 나서면 동네 사람들의 손가락짓이 대단했다. 그렇지만 노인은 즐거웠다. 학교에 가는 길가에 광부모집광고나 영화선전「포스터」가 나붙어 있으면 으레 손자와 알아맞히기 내기를 걸었고 판가름을 담임선생에게 부탁했다. 노인은 이 내기에서 이기면 이긴대로 지면 진대로 신이 났었다. 학교에 도착하면 교실을 청소하고 난로불을 피워놓고 담임선생을 교무실에 가서 모셔왔다. 공부가 끝나면 손자 또래를 모두 집으로 보내고 교실 복도 유리창 변소청소를 도맡았다. 이러한 생활이 계속됐다. 6년 동안 한 책상에서 할아버지와 나란히 공부한 손자 성덕군에게도 여러가지 감상이 없을 리 없다. 성덕군은 졸업생 중의 가장 친한「클라스·메이트」나 길동무로는 할아버지 한 사람밖에 가지지 않는다. 『4학년 때부터는 할아버지가 내 책가방을 들고 가면 창피해서 할아버지 것도 내가 들고 다녔어요. 공부시간에는 할아버지한테서 담배냄새가 자꾸 나서 참는데 혼나기도 했구요. 그렇지만 이제는 그것도 구수해졌어요』라고 말한다. - 할아버지는 어떤 공부를 제일 많이 했니? 『참 우스워요. 할아버진 집에서 국어공부만 자꾸 하자고 조르거든요. 과학 산수 미술 음악 공부는 전혀 하려고 하지를 않아요. 그래서 시험 때는 내가 할아버지를 도로 가르치느라고 혼이 나기도 했죠』 공부시간에 가끔 담배생각 나는지, 라이터 뚜껑을 잘칵잘칵 - 공부시간에 할아버지가 장난도 쳤니? 『그럼요, 이따금 뚜껑이 떨어져 나간「라이터」를 꺼내 가지고 잘칵잘칵 켜보곤 해요. 담배생각이 나서 그러는 지도 모르겠어요』 체육시간에 손자 또래들이 공차기 시합을 하면 홍노인은 옆에서 지켜 서있는다. 그러다가 애들이 넘어지면 얼른 뛰어가서 일으켜준다. 이 때문에 시합이 잠깐 중단되곤 한다. 노소(老少)가 동락하는 6년이었다. 6학년 담임 김용태 교사는 노인을 깍듯이 모셨다. 맨 처음 담임을 맡아 교실에 쓱 들어섰을 때가 제일 거북했다. 출석부를 부르는데 할아버지뻘 되는 홍노인의 이름을 감히 입에 올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익힌 수법은 눈으로 슬그머니 노인의 모습을 확인하면 그대로 출석란에 도장을 찍었다. 선생님은 출석점호 이름 못부르고 담배도 노인 안보는 곳서 그래서 홍노인은 6년 동안 한 번도 출석부로 호명받지 않으면서도 개근상을 타는 우리나라 유일의 국민학교생도가 되기도 했다. 또 하나 담임선생이 거북했던 것은 담배 피우는 장소. 꽤 먼 변소에 가서 피워야 했으니 말이다. 그런가 하면 학급운영, 아이들 싸움, 시설물 유지 같은 까다로운 일은 담임이 나서지 않아도 홍노인이 도맡아 처리했다. 더욱이 할아버지가 열심히 공부를 하는 통에 덕을 본 사람이 김선생이다. 이 학교에 있는 6학년 6개반 중 김선생의 반이 제일 좋은 성적을 올렸다. 이유는 노인이 열심히 공부하는 통에 꼬마들도 덩달아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김교사는『노인이 우리반에 계셨기 때문에 교과서대로의 공부를 가르치기는 했지만 내가 인생을 배운 것은 가르친 것보다 더 많다』고 말한다. 노인은 잘못하면 졸업장을 못탈 뻔도 했다. 교직원 중에서 주자는 파는 김준한 교장 단 한 사람뿐이고 나머지 45명은 반대파였다. 1주일 동안이나 옥신각신이 벌어졌다. 교직원들은 의무교육법상 칠순 노인에게 졸업장을 줄 수 없다는 유권적 해석(?)을 내세웠고 김교장은 배움에 무슨 나이냐고 주장, 끝내 교장의 교육관이 이겨 졸업대장명부에 3312번으로 등록되고 졸업장이 나갔다. 학교에서 3km나 떨어진 곳에서 매일 등교할 때면 3곳의 철도 건널목을 지켜 꼬마들의 안전통학을 보장한 임시교통순경도 홍노인이었다고. 학교의 시설보수, 학풍조성, 문제아동선도 등에 나서 교사들보다 더 열심히 일한 사람이 또 홍노인이었다. 소원을 푼 노인은 글을 익힌 눈으로 죽을 때까지「소설책」을 많이 읽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날 졸업식을 끝낸 노인은 교문까지 따라 나온 담임선생과 허리를 굽혀 깍듯이 인사를 나누었다. 손자 같은 교사에게 노인이 마지막으로 남긴 인사는『선생님 감사합니다』였다. <삼척 = 송병훈 기자> [ 선데이서울 69년 2/23 제2권 제8호 통권 제22호 ]
  • 교장선생님의 연탄배달

    교장선생님의 연탄배달

      「크리스마스」의 흥분이 절정에 이른 지난해 12월 24일. 한 시골중학교 교장선생님은 학교를 떠나지 말라고 소매를 붙잡고 울먹이는 1백여명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이들의 만류를 진정시키느라고 함께 목이 메어 흐느꼈다. 방세·밥값을 빼고난 하루 수입, 천원씩 날마다 모아놓고 학생들은 교장선생님의 서울행을 한사코 반대했고 교장선생님은 꼭 가야 한다면서 고집을 피웠다. 간다거니 못간다거니 하는 사이에 한 시간이 지체돼 먼동이 틀 무렵에야 교장선생님은 드디어 학생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딸따리(경운기)차를 몰고 서울 5백리 길을 향해 떠났다. 교장선생님은 겨울방학 동안 연탄을 배달, 교실 한 간을 마련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했다. 충남 서천군 마산면 신장리 마산재건학교 교장 양종래(梁鐘來)(36)씨는 1월 25일로 꼭 한 달째 한성연탄공장(사장 구성회·50·서울 성북구 석관동 21-1)에서 연탄배달을 하고 있다. 이재익(24), 이정대(26) 두 교사는 양교장을 도와 한 사람은 서울시내 곳곳의 연탄직매소로 주문을 맡으려 다니며 또 한 교사는 딸따리차에 부지런히 연탄을 실어 나른다. 연탄 1개 운임은 1원. 딸따리차에 모두 4백개가 실려 하루 평균 4, 5회를 나르면 1천 5, 6백원에서 2천원의 수입을 올린다. 세 식구가 방세와 밥값 5백원을 빼고 나면 매일 평균 1천원 이상이 저축된다는 것. - 교장선생님이 서울에서 연탄배달을 한다니 놀라운 일이군요. 『서울에 오기 전까지는 참말 밤잠을 못자고 걱정을 했었습니다. 올해 새학기에 40명의 학생을 받아들이게 됐는데 교실 한 간이 부족했습니다. 밭에서 인분도 져 날라 뿌리는데 뭐 어떻습니까』 - 하고 많은 일 중에 하필이면 연탄을 배달하게 된 동기라도. 『이나마 고향친구인 이성하(35)씨의 소개로 왔습니다. 겨울방학동안 놀리고 있는 학교 경운기를 이용, 연탄을 배달하면 어떠냐는 것이었죠. 서울에 있는 동안 10만원만 벌면 곧 내려갑니다. 그러나 개학날인 3월 1일까지 10만원이 될지…』 양교장은 10만원에서 말끝을 흐렸다. 하루 배달능력은 7, 8회가 가능하지만 배달꾼이 많아졌고 석유난로가 퍼져 예년보다 연탄 수요량이 훨씬 적어졌다는 것. 아침 7시부터 밤 9시까지 일하다보니 제법 배달기술도 늘어 양교장의 작업은 매일 아침 7시부터 밤 9시까지 계속된다. 하루 14시간의 중노동이다. 서울에 온지 한 달이 됐건만 서천에서 5백리 길을 시속 20km로 딸딸거리며 오느라고 멍든 궁둥이 살이 아직도 펴지지 않아 아프단다. 지난해 12월 24일 새벽 서천을 출발한 딸따리는 밤 10시가 넘어 천안에 도착, 천안에서 하룻밤 쉬고 25일 밤 8시에 서울에 도착. 열차편으로 서울에 먼저 온 두 교사가 자리잡은 한성연탄공장 앞 하숙집에 몸을 풀었다. 한성연탄공장의 산더미처럼 쌓인 연탄 사이를 교묘히 경운기를 운전, 제법 기술에 익숙해진 양교장은 방한모를 깊숙이 눌러쓴 시커먼 얼굴에서 자신마저 감돈다. 피땀흘린 학교농장 가뭄으로 망쳐 새 교실 지을 수 없는 형편 - 마산재건학교의 소개를 해주었으면. 『지난 61년 12월 초에 개교, 현재 128명의 남녀학생들이 있습니다. 졸업생도 350명쯤 되죠. 중학교에 진학할 수 없는 농촌학생들에게 중학과정을 가르치고 농사교육을 시켜 뭔가 조금이라도 배운 농사꾼을 만들어 내겠다는 게 제 욕심입니다』 처음 학교가 세워졌을 때 그나마 풍족하지 못한 집안 살림은 아주 기울어졌단다. 학생들은 집집을 방문, 모집했지만 워낙 재정이 빈약한 학교에 교사들은 석 달을 넘기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학교와 농장 사이 2km의 거리를 거름을 져 나르느라고 교사들과 학생들은 모두 손이 부르텄다. - 지금의 학교 재정은. 『이제는 많이 기틀이 잡혔습니다. 서울에서 학사출신의 선생님들 5명이 내려오셔서 뜻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6, 7년 동안 2만 5천 평의 농장을 맨손으로 개간, 이중 5천 평에 복숭아(5백 그루), 포도(3백 그루), 사과(20 그루), 자도(30그루)를 심고 따로 딸기밭 1천 평과 밤나무 4천 5백 그루와 특용작물 1만 평을 가꾸어 지난 해부터 복숭아, 포도, 딸기를 추수했습니다』 그러나 가뭄으로 예정수확량에 미달, 교실을 마련하겠다는 당초의 계획이 틀어졌다. 신입생 모집을 눈앞에 두고 양교장의 초조한 마음은 더욱 커졌다. 신원 알게되자 한성연탄 사장님이 성금내고 자매결연도 서울에 온 양교장은 첫날 파출소에서 3시간 동안 운행을 금지당해 할 수없이 파출소 소장에게 학교의 얘기를 한 후 풀려났다고 했다. 어느 때는 미리 파출소에 들어가 전후 사정 이야기를 하여 통행의 양해를 얻었고 어느 때는 정말로 파출소 앞을 지나기가 미안해 문방구점에서 사무용품을 사서 파출소에 선물했더니 오히려 순경이 나무라면서 열심히 일이나 하라고 격려를 해주더라고 말했다. 이날 기자의 취재로 양교장의 신원이 밝혀지자 이를 본 한성연탄의 구성회 사장은 양교장의 뜻이 장하다면서 교실 신축에 보태 쓰라고 장영춘 업무과장을 시켜 선뜻 2만원을 내놓았다. 그리고 양교장이 서울을 떠나기에 앞서 마산재건학교와 한성연탄공장이 자매결연, 계속 마산재건학교를 돕겠다고 격려했다. 이 자리에서 양교장은『정말 학생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올 때는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저희들 때문에 교장선생님이 고생을 한다는 것이었지요.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이때 양교장은「흑」- 하고 말문이 막혔고 이를 듣던 주위의 사람들도 침묵해졌다. <홍종기(洪宗基) 기자> [ 선데이서울 69년 2/9 제2권 제6호 통권 제20호 ]
  • 아비규환의 그 현장

    아비규환의 그 현장

      1월 31일 상오 11시 57분, 천안역 남쪽 861m 지점 일봉산 기슭에서 빚어진 참극은 한 말로 목불인견(目不忍見). 『저주받은 가난이여!』 사고직후 현장에 나와 시종 핏발선 눈을 부라리며 시체 인양작업을 지켜보고 있던 노신사 정길식(57·천안시 사직동)씨는 북받치는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하늘도 무심하다』고 뇌까렸다. 이날 처절하게 숨져간 희생자들은 대부분 찢어질 듯 가난한 사람들. 2등간이 3등을 덮친 모습을『숫말이 암말을 덮쳤다』고들 비꼬았다. 『청룡호 기관사를 능지처참하라!』는 아우성이 곳곳에서 일기도 했으나 정길식씨의 분노의 향방은 달랐다.「왜 사고가 나야했을까? 왜 불쌍한 사람만 죽었을까?」그래서 하늘을 원망했다. 「디젤」기관차가 석탄기관차를 내쫓고「칙칙폭」이 회상의 유물로 사라졌을 때, 모두들『이젠 사고없는 여행을 할 수 있게 됐다』고 좋아했다. 그래서 비행기 다음으로 기차를 가장 안전한 여행수단으로 꼽던 여객들. 불과 1개월 전 수동식「포인트」가 자동식으로 바뀌었을 때 여객들은 기차의 안전도를 한층 더 신뢰해보려 했었다. 그러나 참사현장에서는『석탄으로 달릴 땐 도리어 사고가 적었다』고들 투덜댔다. 정원 70명도 안되는 객차 안에 140여명을 고리짝처럼 구겨 넣은 얌체당국, 좌석마다 3명씩 앉고도 입석승객들 때문에 변소길도 드나들 수 없었던 사고직전.『이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을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눈보라 속에 피맺힌 울부짖음은 일봉산에 3시간 동안이나 메아리쳤다. 사고 10분 후 현장에 달려간 천안역원들과 1백여 경찰관들도 이 비극 앞에 넋을 잃고 어쩔 줄을 몰랐다. 무거운 차체와 의자선반 등에 짓눌린 10여명의 목숨이 눈앞에서 숨져가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던 현장. 전상진(35·천안시 영성동 109)씨는 박살이 난 객차에 끼인 팔과 다리를 자신의 손으로 잘라내고 살아났다. 2등객차와 3등객차 난간에 서있던 전씨는 왼쪽 난간으로 내리려는 순간 바로 뒤에서 청룡호가 달려드는 것을 보았다. 다시 난간으로 오르려는 순간「쾅」하며 왼쪽 팔과 오른쪽 다리가 두 객차 사이에 끼었다.『사람살려달라』고 고함을 쳤다. 옆에 있던 승객이 손칼을 건네주었다. 전씨는 왼쪽 팔과 오른쪽 다리를 자기 손으로 잘라낸 뒤 정신을 잃었다. 의식을 되찾은 전씨는『가난한 가족들에게 행상으로 모은 돈을 전해주려고 죽을 힘을 다했었다』고 했다. 이 아수라장 속에서도 도둑은 들끓었다. 부상자 중에는 시계와 보따리를 날치기 당한 사람이 부지기수. 그러나 사고현장을 지나다 뛰어들어 12명을 구해낸 장동순(42·천안경찰서 수사과) 순경은 왼쪽 팔이 끊긴 채 차창에 바른 발이 걸려『살려달라』고 외치는 정상진(45·천안시 사직동·미곡상)씨를 극적으로 끌어내 입원시키고 정씨가 가지고 있던 24만원을 은행에 예금시켜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이날 응급치료에 나선 의사들을 가장 울린 사연은 어느 여교사의 죽음. 5명의 의사들이 이 여교사를 살리기 위해 수술을 준비하는 동안 유길자(31) 교사는 숨져갔다. 부상자들의 틈에 끼어「물」만 찾던 유교사의 유품은 경남도위가 발행한 15138 국민학교 교사증 뿐, 유교사는『제자들이 보고싶다』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다. 밀양국민교 교사인 유교사는 1월 25일 전주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린 지 1주일 만에 참변을 당한 것. 이날 같은 좌석에 앉았던 신랑 이규진(37·김제금성여중교사)씨도 함께 숨졌다. 이들 부부는 부인 유교사가 서울시 교육위원회에서 실시한 중등교사임용시험에 합격했다는 통지를 받고 신원조회겸 상경길에 올랐던 것이다. <박상곤(朴尙琨) 기자> [ 선데이서울 69년 2/9 제2권 제6호 통권 제20호 ]
  • [클릭이슈] 승진차별불만 경찰대 존폐문제로 확산

    [클릭이슈] 승진차별불만 경찰대 존폐문제로 확산

    경사 이하 일반 경찰관들의 승진 차별에 대한 불만이 ‘경찰대 존폐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결국 13일 여당 의원이 경찰대 폐지안을 국회에 상정하겠다고 나서면서 1980년 개교 이후 25년간 경찰 엘리트 조직으로 자리매김한 경찰대가 문을 닫을 수도 있는 상황에 다다랐다. ●“경찰대는 내부 차별과 갈등의 요인, 폐지 후 대학원으로” 최근 순경으로 시작한 경찰관들이 경위 이상의 간부로 승진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다며 단체행동을 시작했다. 하위직·비간부 출신 경찰관 1200명은 지난 11일 ‘대한민국 무궁화 클럽’이라는 단체를 결성하고 경감까지 근속 승진할 수 있게 법을 바꿔달라는 청원서를 국회의원들에게 발송했다. 불똥은 곧바로 경찰대로 튀었다. 승진 차별의 주원인으로 경찰대가 지목됐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 최규식 의원은 13일 경찰대를 폐지하는 내용의 ‘경찰대학 설치법 폐지 법률안’을 이번 정기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찰대 출신들의 고속 승진에 따른 경찰 내부의 위화감이 이미 도를 넘어섰고, 교육비나 병역 혜택까지 받는 재학생들이 곧바로 경위로 임용되는 것은 지나친 특혜라는 것이 폐지법안의 핵심 내용이다. 최 의원측은 “경찰 간부급이 경찰대 출신자로 대부분 충당돼 조직의 유연성을 해치고 조직 내 갈등과 사기 저하를 가져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안으로 ‘경찰 전문대학원제’를 제시했다. 최 의원의 박정서 보좌관은 “경찰 지원자 중 대졸자가 90%를 넘는 상황에서 일정 기간 경찰 생활을 한 이들을 위해 일반수사와 사이버·과학수사 등 전문대학원을 만들면 경찰대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면서 “이를 통해 경찰대와 비경찰대 출신의 차별 문제와 경찰의 전문성 확보를 모두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최 의원은 이미 지난주 법안을 완성하고 발의를 위한 의원 서명을 준비 중이다. 현행법은 근속승진의 기간을 순경에서 경장은 7년, 경장에서 경사는 8년으로 정해놓고 있다. 경위 이상으로의 승진은 특별승진, 시험승진, 심사승진 등을 거치게 돼 경위급 이상에 오르기는 하늘의 별따기라고 하위직 경찰관들은 말한다. 이에 한나라당 권오을 의원은 경사로 10년을 근무하면 경위로 근속 승진할 수 있도록 경찰공무원법 개정안을 발의해 놓았다. ●경찰 수뇌부 “폐지불가”, 일부선 음모론도 제기 최 의원의 입법 소식이 알려지자 경찰청은 진의를 파악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지난 12일 국회에서 있었던 ‘경찰대 폐지 찬반토론회’ 전날부터 경찰 수뇌부는 폐지론에 반박하고 나섰다. 그동안 말을 아껴왔던 허준영 경찰청장은 12일 기자 간담회를 통해 경찰대 출산 간부들을 코어(핵심)그룹으로 칭하면서 경찰대 폐지론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경찰대는 폐해보다 경찰 발전과 국민을 위해 실익이 많다는 것. 허 청장은 “어느 조직이 최일선에서 정책을 이끌어갈 핵심 조직은 필요하고 경찰대 출신들의 조직 기여도는 상상 이상으로 높다.”면서 “경찰대와 비경찰대 출신 사이에 승진 등에서 차별이 있다면 승진쿼터제 등 제도 개선을 통해 줄여나가면 된다.”고 말했다. 경찰대 존속론자들은 경찰대 출신은 고시 출신과 함께 엘리트 그룹으로 ‘경찰의 자질 논쟁’을 종식시키고 조직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일등공신이라고 주장한다. 일각에선 경찰대 폐지론을 두고 수사권 조정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며 일부 세력의 음모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내부 문제를 부각시켜 내분을 유도하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숙명여대 법학과 이영란 교수는 “경찰대의 공과는 치안서비스 수요자인 전체 국민의 입장에서 평가될 일이지, 내부의 불만이나 일반대학 경찰관련학과의 이해타산으로 판단될 문제가 아니다.”면서 “경찰대는 차별화된 전문교육으로 경찰학 발전을 주도하며 제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허청장 “경찰대폐지 고려 안해”

    허준영 경찰청장은 12일 최근 경찰 등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경찰대 폐지론과 관련,“정책적인 분야에선 조직의 ‘코어(핵심)그룹’이 필요한 만큼 현재로써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단 일부에서 지적을 하는 순경 출신과 경찰대 출신의 격차 문제는 순경 출신에게 승진 기회를 할당하는 쿼터제나 특진제 등을 통해 점차 차이를 줄이는 노력을 하는 한편 경찰대 개선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6개월새 ‘순경→경장→경사’

    “민생치안의 기본을 지킨 게 저를 진급시킨 일등 공신이죠. 고생하고도 오랫동안 승진하지 못한 선배님들이 많은데 어깨가 한층 무거워집니다.” 6개월 만에 계급장을 두 단계나 올려 단 경찰관이 나왔다. 서울 마포경찰서 용강지구대 공대식(33) 경사는 올 3월 순경에서 경장이 된 지 6개월 만인 지난 6일 경사로 승진했다. 경장 진급은 순경 생활 8년 만에 이뤄진 근속 승진이지만 경사 승진은 중요 범인을 검거한 공로로 받은 특진이다. 경찰은 특진 사유가 발생해도 2년 정도의 최소 승진소요 연수를 채우도록 해 왔다. 그러다 지난 7월 최소 승진소요 연수가 없어도 진급할 수 있도록 ‘경찰공무원 승진임용 규정’을 바꿨다. 공 경사는 바뀐 규정의 첫 수혜자다. 더구나 특진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일선 지구대에서 이뤄낸 것이어서 그 가치가 더욱 높다. 특진의 계기는 지난 7월24일 일어났던 서울 송파구 여대생 납치사건이었다. 이튿날인 25일 ‘달리는 차 안에서 남자가 여자를 차 밖으로 떠밀었다.’는 제보를 접한 그는 여대생 납치범일 가능성을 떠올렸다. 문제의 차가 마포대교를 건넜다는 정보를 듣고 이화여대 로터리에서 기다렸다가 1㎞가량 추적한 끝에 범인을 붙잡았다.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이런 결혼식은 어떻습니까

      세상에는 보통 결혼식 같은 것은 도무지 싱거워서 재미가 있어야지- 이렇게 생각하는 남녀가 언제 어느 곳에서나 있는 법. 그래서 공중결혼식에서 수중결혼식까지 벌어지는가 하면 신랑신부가 알몸으로 식을 올리는 등 기발한 취향의 결혼식「언·퍼레이드」가 펼쳐진다. 곡예사 신랑 신부는 로프 위에 무릎 꿇고 주례는 소방차(消防車) 사다리서 ★ 공중곡예 결혼식 「프랑스」의「뜨루즈」시에 있는 널따란 공원에서 가장「드릴」있는 결혼식이 베풀어졌다. 지상 18m의 공중에 둥실 떠올라서 곡예사인 신랑 신부가 식을 올리는 동안 이 가관을 구경하려고 도시락을 싸 들고 모여든 관중 2만명도 숨을 죽인 채 하늘을 응시했다. 신랑 신부는 두 사람이 모두 대담무쌍한 공중 그네타기 곡예사였다. 신랑은 정식 예복차림이고 신부는 펄럭이는「가운」을 걸쳤었다. 두 삶은 그 옷차림으로 두 줄기의 강철제「로프」에 무릎을 꿇고 엄숙한 선서를 했다. 주례도 함께 허공에 올라갔었다. 그는 소방차의 사닥다리를 하늘 높이 뽑아 올려서 그 꼭대기에서 두 남녀의 앞날을 축하해 주었다. 이 주례는「파리」에서 용명을 떨친 목사였다. 그는 일찍이「파리」의 교회부흥기금모금에 도움이 되도록 사람을 모으기 위해「세느」강에 뛰어든 빛나는 경력의 소유자. ★ 알몸 결혼식 「플로리다」의「마이애미비치」근방에 있는「누디스트」촌에서 결혼식이 있었다. 신랑 신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2백명의 하객 앞에 섰었다. 옷을 입은 사람이 한 사람 있긴 있었다. 주례를 맡은 변호사. ★ 수중 결혼식 자연주의자들이 일부러 햇빛 찬란한 태양 아래서 자연상태 그대로의 모습으로 식을 올렸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물속에서 지낸 신랑 신부도 나타났다. 그러고 보니 수중결혼식은 한국의 어느 남녀의 독점물은 아니었다. 미국「필라델피아」수심 5m의「풀」속에서 식을 올린 것이다. 신랑 신부는 주례를 보는 목사에게 접속된「마이크로폰」을 단 잠수모자를 쓰고 풍덩 뛰어 들어갔다. 점잖은 목사는 차마 그렇게 할 수는 없어서「풀」의 조약대에서 십자를 긋고 의식을 거행했었다. 목사까지 물속으로 끌어들인 열성적인「커플」도 없는 것은 아니다.「로스앤질리스」의 한「커플」의 경우. 수영광인 목사를 설득해서「풀」밑바닥에서 주례를 맡아보게 하는데 성공했다. 세 사람은 해수욕복에 잠수모자를 쓰고「이어폰」에 접속된 긴 선을 쥐고 결혼 행진곡의「리듬」에 맞추어 사이 좋게「풀」속으로 뛰어들어 갔었다. 이때 신부의 해수욕복은 물론 초(超)「비키니·스타일」. ★「파라슈트」결혼식 미국사람 중에는 비행기상에서 하늘을 날면서 결혼식을 올린「커플」도 있다. 이전에「뉴요크」의 한 신랑 신부는 비행기가 꼭 고도 640m에 이르렀을 때 선서를 하고「파라슈트」로 나란히 뛰어내렸는데… 흥분한 신부는 3백m나 내려와서「파라슈트」를 여는 끈을 잡아당겼단다. 기구(氣球)결혼식 올리다가 무서웠는지 뛰어내린 신부도 죽을 뻔 그런가 하면 기구 결혼식을 올린 남녀도 있었다. 이때는 매력적이면서도 흥분하기 쉬웠던 신부가 불과 152m 상공에서 식을 끝내자 말자 갑자기 무서웠는지「테네시」강에 뛰어내려 한때 소란을 피웠다. 다행히 신부는 지나가던 배에 구조되는 아슬아슬한 장면도 있었다. 신랑쪽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고 예정대로 유유히 457m 상공까지 올라갔다가 무사히 내려와서 응급치료를 받은 신부를 데리고 갔다. ★「제트·코스터」결혼식 「뉴요크」유원지의「제트·코스터」를 타는 동안에 사랑에 빠진「힐다」라는「브론드」의 처녀와「데이비드」라는 청년은 숨막히는 결혼식을 거행했다. 「제트·코스터」가 맹렬한「스피드」로 급상승하고 혹은 급강하하면서 선로를 달리는 사이에「데이비드」군과「힐다」양은 무사히 식을 올렸다. 주례를 맡은 목사의 머리카락과「가운」은「제트·코스터」가 일으키는 바람 때문에 크게 뒤로 휘날리고 사진사는 문자 그대로 눈알이 뱅뱅도는 의식을「카메라」에 담아야 했다. ★ 회전통 결혼식 「제트·코스터」만이 멋이냐.「포·터라이드」라는 시속 72km의「스피드」로 회전하는 회전통 속에서 결혼식을 올린「커플」도 출연하는 판이다. 1956년 1월 미국「아이오와」주「데모인」시에서「아이오와」주 축산물경진대회가 열렸을 때의 경사다. 회전통 속에서 원심력 하나로 벽쪽에 붙어 서 있을 수 있는「커플」은 선서의 말을 큰 소리로 마치 싸움하듯 외쳐야 했다. 더욱이 놀란 것은 이 결혼식의 중매와 주례를 맡은 사람은「아이오와」주지사. ★ 전화 결혼식 1933년 대서양을 횡단하는 세계 최초의 국제전화 결혼식이 있었을 때 세계는 정말 놀랐었다. 미국「디트로이트」에 사는 신랑과「스톡홀름」에 사는 신부의 목소리는「뉴요크」「메인」해안,「그라스고」「런던」경유로 상대방에게 전달되었다. 전화 결혼식이었기 때문에 신부는「웨덴든」에서 남편이 사는 미국으로 향해 출항하기 전에 일찌감치 미국시민의 아내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전화 결혼식은 7분간이 걸렸지만 그 중 3분간은 신랑이 전화가 멀어져 들리지 않는다고 신부에게 소리소리 지르는데 쓰여 신랑은 4분간의 통화료(당시 돈으로 9「파운드」10「실링」)만 냈다. 평소에 원수 진 사람들만 골라 화해(和解)겸 식(式)올린 괴짜도 ★ 박애(博愛) 결혼식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곱게 실천한 신랑 신부가 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 신랑의 들러리는 신랑을「스피드」위반으로 잡아 무거운 벌금을 빼앗아 간 교통순경이었고 신부의 들러리는 신부와 재판 중인 여성복 양재사. 또 주례를 맡은 목사는 신랑의 새 사업인「나이트·클럽」개점에 반대해서「데모」까지 한 목사였다. 귀한 손님으로는 이「나이트·클럽」논쟁에서 목사쪽을 두둔하는 기사를 쓴 신문기자까지 끼여 있어 실로 다양스러웠다. 식이 끝난 뒤 이들이 모두 다정한 친구가 된 것은 물론이다. <KHS합동 = 본지독점> [ 선데이서울 69년 1/26 제2권 제4호 통권18호 ]
  • ‘극장 간판장이’서 몽타주 전문수사관 1호로 박만수 경위

    ‘극장 간판장이’서 몽타주 전문수사관 1호로 박만수 경위

    중학교만 졸업한 극장 간판공 출신 경찰관이 한국을 대표하는 몽타주 전문 수사관이 됐다. 충북경찰청 과학수사계 박만수(49) 경위는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몽타주 전문가다. 지난달 31일 외국대학의 석·박사 등 내로라는 학력의 후배 경찰들을 제치고 ‘몽타주 전문수사관’으로 발탁됐다. 올해 처음 도입된 전문수사관은 10만 경찰 중 단 92명만이 가질 수 있는 베테랑의 영예다. 그는 충북 청주에서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고등학교를 포기하고 생업 현장에 뛰어들었다. 배움보다는 당장 입에 풀칠하는 게 더 급했다. 이일 저일 닥치는대로 하다 스물이 거의 다 돼 잡은 일이 청주 시내 극장에서 영화간판을 그리는 일이었다. “미술공부 한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지만 손재주 하나는 타고 났던 모양입니다. 박노식씨나 문희씨 등 당대 스타들의 얼굴이 그려진 간판을 극장에 올리면 관객이건 지나는 사람들이건 모두 입을 벌리고 쳐다봤죠.” 돈벌이도 쏠쏠했다. 남들이 ‘뼁끼꾼’이라고 불러도 별로 싫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러기를 6년.20대 중반 청년의 마음 속에는 푸른 경찰제복에 대한 동경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었다. 1980년은 그에게 새 인생의 출발점이었다. 난생 처음 해본 밤샘공부 덕에 당당히 순경 공채에 합격했다.82년 인천에서 근무하던 그에게 색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치안본부(현 경찰청)에서 몽타주 전문요원을 찾고 있었다. 주저없이 응시했다. 당시 장안의 화제였던 MBC 드라마 ‘수사반장’의 주인공 최불암씨의 얼굴을 그리는 게 시험문제였다. 수많은 스타들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그의 손은 거침없이 수사반장의 얼굴을 그려냈다. 몽타주 요원으로서 생활은 생각만큼 녹록지는 않았다. 사진을 보며 똑같이만 그리면 되는 영화간판 일과 목격자 진술을 통해 그림을 구체화시켜나가는 몽타주 작업은 완전히 달랐다. 한국인의 얼굴 특성을 좇아 그리고 지우기를 수만장을 반복했다. 목격자들의 기억이 정확하면 30분만에도 몽타주를 완성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3∼4시간이 걸릴 때도 있다. 그의 업무철칙 하나. 목격자가 진술을 자주 번복한다든지 기억이 흐리면 몽타주 그리는 걸 중단한다.‘무리한 몽타주 작성은 결과적으로 수사에 혼선을 준다.’는 믿음 때문이다. 덕분에 범인 검거 후 사람들은 하나같이 “너무 똑같다.”며 놀라워한다. 25년의 경찰생활 동안 그의 몽타주가 결정적인 역할을 해 검거된 범인이 얼추 45명에 이른다. 모두 살인, 강도, 연쇄강간 등 강력사범들이었다. 박 경위는 “99년에 몽타주 제작이 컴퓨터그래픽 작업으로 바뀌었지만 최종 마무리는 손으로 해야 한다.”며 수작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몽타주도 음식처럼 ‘손맛’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박 경위는 후배경찰들에게 “다들 과학수사의 중요성을 외치지만 실제 경찰 안에서는 과학수사부서가 인기가 없어 안타깝다.”면서 “자기 일을 즐기며 최선을 다할 때 전문성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문화마당] 너나 잘해?/방현석 소설가

    독일에서 열린 문학행사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인터넷을 이용하기 어려워 애를 먹었다. 가격이 결코 만만치 않은 고급호텔에서도 객실에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았다. 전화요금은 짐작했던 것보다도 훨씬 비쌌다. ‘앞으로 3년 안에 독일의 IT산업이 한국 수준을 따라잡도록 하겠다.’ 독일 총리가 공식석상에서 한 발언이라고, 독일의 작가가 우리에게 전해준 말이다. 한국에서는 여관에도 초고속인터넷이 깔려있다며 투덜거리던 우리 일행은 그 말을 듣고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콧대 센 유럽에서 그런 말을 듣기 쉬운 일인가. 한국 기업이 생산한 휴대전화 단말기는 유럽에서도 최고급품으로 인기를 얻고 있었다. 국제무대에서 한국이 확보한 자리의 상당부분은 한국기업들이 마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 시장에서 인정을 받은 기업들은 할 말이 많다. 일개 기업만도 못한 시스템과 역량을 지닌 정부에 대해서. 기업의 공로를 폄하하는 시민단체와 국민들에 대해서. 선진강국의 틈바구니를 헤치고 한국기업이 세계수준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해준 일이 뭐냐? 국민들이 도와준 것은 또 뭐 있느냐? “니들이나 잘해.” 지금 여론의 표적이 되고 있는 기업집단도 아마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을까. 정부라고 할 말이 없을까. 지난달 평양-백두산-묘향산에서 열린 민족문학작가대회의 실무를 맡아 북에 머무는 동안 북쪽 사람들의 남쪽에 대한 분위기를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적어도 남쪽의 정부와 국민 다수가 북쪽의 불행을 바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불바다로 만들 대상이 남쪽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였다.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에 이은 백두산관광에 대한 기대가 아주 컸다. 아무것도 없다며 사찰을 받겠다고 했던 ‘이라크’가 겪고 있는 비극적인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핵’이 있다고 선언한 북을 안고 있는 한반도가 지금 누리고 있는 평화는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니다. 평화를 잃는 순간 경제와 자유, 그 모든 것을 잃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형편에서 보면 정부는 가장 중요한 역할에 성공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동네북이다. 아마 나라가 만들어지고 나서 지금처럼 권력이 시세가 떨어진 적은 없을 것이다. 대통령의 아들이라고 해도 교통순경이 신호위반 하나 봐 줄 것 같지 않은 분위기다. 국회의원이라고 해서 위세 떨다가는 동사무소에서조차 망신당하기 ‘딱’이다. 대통령과 정부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언론은 연일 정치권력과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 사이에서 벌어진 ‘부도덕’에 대한 기사로 도배를 하고 있다. 국민들은 다시 한 번 정치집단과 기업에 대한 염증과 분노를 느끼고 있다. 당연하다. 그러나 나는 다르게 생각하고 싶다. 이제 한국 사회는 여기까지 온 것이다. 과거에 권력의 불법행위가 지금보다 적었고, 기업의 부정한 거래가 덜했는가.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고 덮어질 수 있었던 일이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지금, 여기서 한국의 사회문화를 한 단계 더 높이는 일이다. 집권세력과 기업인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일은 한국사회가 현재 도달한 문화의 수준을 이해하는 일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결과만능주의는 더 이상 한국의 문화적 수준일 수 없다. 절차의 정당성, 과정의 투명성은 우리 기업과 정부가 진정한 세계 일류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필수조건들이다. 정부와 기업이 “너나 잘해.”라고 말할 때는 아니다. 국민들도 우리 정부와 기업들을 단순히 혐오하거나 우리 자신의 능력을 비하할 일도 아니다. 다만 우리는 새로운 과제 앞에 섰을 뿐이다. 한국사회는 이제 과거가 아닌 미래와 경쟁해야 할 단계에 진입했다. 힘의 논리가 아닌 문화적 설득력을 요구받고 있다. 정치와 경제, 사회전반의 문화적 차원이 높아져야 할 때다. 방현석 소설가
  • [깔깔깔]

    ●이상한 가족 교통순경이 신호 위반한 차를 세운 뒤 운전자에게 말했다. “아저씨, 신호 위반하셨습니다. 안전운전하셔야지요?” “아, 죄송합니다. 앞으로 조심할게요. 제가 아까부터 시속 200㎞로 달려오다 보니… 객기 좀 부렸나봅니다.” “네? 그럼 과속을?” 옆좌석에 앉은 부인이 말했다. “아휴, 순경아저씨 좀 봐주세요. 이이가 술을 좀 마셔서 그러니. 거봐요, 내가 그렇게 술마시고 운전하지말랬잖아요?” “네? 그럼 음주운전?” 뒷좌석에 앉은 아이가 말했다. “거봐요. 아빠! 제가 운전은 면허 따고 하시랬잖아요? 뭘 벌써 운전하신다고 그러세요?” “네? 아니 그럼 무면허 운전? 이봐요 아저씨! 차에서 내려보세요.” 뒷자석에 앉은 할머니가 말했다. “거봐라, 얘들아. 내가 그랬지? 훔친 차로 멀리 못 갈 거라고….”
  • 儒林(416)-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41)

    儒林(416)-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41)

    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41) 맹자가 순우곤의 힐난에 공자의 제육이야기로 답변하였던 것은 공자의 위대함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사람들은 공자가 제육을 나누어 주지 않자 떠난 것은 ‘한갓 고기 때문에 화를 냈기 때문’이라고 비웃었으며, 학식이 많은 학자들은 한갓 고기 때문에 고국을 버리고 떠나는 공자를 임금에 대한 무례(無禮) 때문이라고 비난하였지만 맹자는 공자가 ‘진리를 실현할 수 없는 상황에서 떠나는데 자기 나라 임금과 대부의 약점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것은 고국의 잘못을 외국에 널리 알리는 것이 되므로 제육이라는 작은 허물을 핑계거리로 삼아서 떠난 것’이라고 답변하였던 것이다. 맹자의 이 말은 한갓 소인배나 조무래기들은 감히 큰 인물의 원대한 이상을 알지 못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음인 것이다. 즉 공자가 제육을 핑계 삼아서 고국을 떠난 것에 대해서 ‘공자가 고기에 눈이 멀었다.’라고 비난하거나 ‘공자가 임금에 대해서 무례하였다.’고 비난하는 것은 ‘제비나 참새는 큰 기러기나 백조의 뜻을 알 수 없다.’는 뜻의 ‘연작부지홍곡지지(燕雀不知鴻鵠之志)’와 다름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맹자는 다음과 같이 일갈한다. “군자가 하는 것을 중인들은 원래 알지 못한다(君子之所爲 衆人固不識也).” 졸지에 중인이 되어버린 순우곤. 초라하게 쫓겨나듯 출국하는 맹자를 멀리서 찾아와 먼젓번의 패배를 씻고 복수를 꾀했던 순우곤은 이로써 삽시간에 소인배로 전락함으로써 또다시 비참한 패배를 맛보게 되는 것이다. 혹을 떼러 왔다가 또 하나의 혹을 붙이고 돌아가는 신세가 되었던 순우곤은 유가의 투장 맹자에게 이처럼 초개처럼 베어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리게 되는 것이다. 순우곤이 돌아간 뒤 맹자는 마침내 제나라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끊어 버린다. 마지막 환상이 깨지자마자 맹자는 두 차례에 걸쳐 오랫동안 빈객으로 지낸 제나라를 떠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맹자의 모습을 사마천은 사기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제나라의 선왕을 섬기려 하였으나 들어주지 않았으므로 양나라로 갔다. 양혜왕도 맹자의 말을 믿지 않았다. 맹자를 친견해보니 하는 말들의 의미가 너무 멀어서 현실사정에 어둡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중략)…또 제나라의 선왕은 손자(孫子), 전기(田忌) 등을 등용하여 제후를 동으로 향하여 제나라에 조공을 바치게 하는 등 천하는 바야흐로 합종연횡에 미쳐 날뛰어 싸움하고 공격하는 것을 현명한 일로 생각하고 있던 혼돈의 시대였다. 그런데 맹자는 오로지 요순과 삼대(夏,殷,周)의 제왕의 덕을 부르짖어 시세의 요구와 멀었기 때문에 어디에 가서 말을 하여도 용납되지 않았던 것이다.…” 사마천은 이러한 맹자의 모습을 ‘맹자순경열전’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중니(仲尼:공자)는 진나라와 채나라에서 굶주려 배추 잎새와 같은 얼굴이 되었으며, 맹자는 제나라와 양나라에서 지극히 곤궁하였다.” 사마천의 기록처럼 지극히 곤궁하였던 맹자는 마침내 제나라를 떠난다. 이때가 BC312년, 맹자의 나이 60세 때의 일이었다.
  • 儒林(405)-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31)

    儒林(405)-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31)

    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31) 사기에는 순우곤이 자기와 유유상종하였던 신도, 환연, 접자, 추연들의 무리들과 직문학파(稷門學派)를 설립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직문학파는 선왕이 만들었던 직하학궁에 머무는 선비들이 결성한 학파였다. 그러나 이들은 사상적으로나 이념적으로 결집된 학파가 아니라 다만 벼슬을 하기 위한 일종의 사적 이익단체인 학벌에 지나지 않았다. 사기에도 이들의 특징을 다만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직문학파였던 이들은 다 책을 저술하여 치란(治亂), 나라의 흥망을 얘기하고 세상의 임금들에게 벼슬을 청했는데, 여기에서 낱낱이 다 언급할 수는 없다.” 따라서 직문학파의 선비들은 본능적으로 맹자와 각을 세우며 대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더욱이 이들은 대부분 황로(黃老)의 도덕을 배운 사람들이었다. 황로란 노자를 말하는 것으로 사기에는 이들이 도가의 추종자임을 다음과 같이 암시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황로의 도덕을 배우고 그로 말미암아 터득한 것이 있어 그 주요한 뜻을 저술하였다.” 그중에서도 순우곤은 이 직문학파의 수장이었다. 선왕은 자기로서는 지키기 어려운 왕도정치를 설법하는 맹자보다는 노자의 도가를 숭상하며 자신의 비위를 좀처럼 거스르지 아니하고 재치 있는 세치의 혀로 즐겁게 하는 순우곤의 무리들을 더 애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사마천도 선왕의 이러한 속마음을 ‘맹자순경열전’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음이다. “…그러므로 선왕은 그들을 칭찬하여 순우곤을 비롯하여 이 모든 선비들을 열대부(列大夫)라고 칭하게 하고, 저택을 번화한 거리에 세워 그들을 높은 문, 큰 집에 들어서 존경하고 천하 제후의 빈객들에게 보여서 제나라가 천하의 어진 선비들을 불러 우대하고 있음을 자랑하게 하였다.” 사마천도 순우곤의 세치의 혓바닥에는 감탄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순우곤을 ‘상대방의 마음을 살펴 그 얼굴빛을 보기를 힘썼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 말은 결국 순우곤은 상대방의 얼굴빛을 보고 남의 마음이나 일의 낌새를 재빠르게 알아챌 수 있는 당대 최고의 눈치꾼임을 암시하고 있음인 것이다. 사마천은 순우곤의 탁월한 눈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재미난 일화를 전하고 있다. “어떤 빈객이 순우곤에게 양나라의 혜왕을 뵙도록 하였다. 순우곤의 소문을 들은 혜왕도 흥미를 느껴서 두 번이나 친견하였다. 그러나 순우곤은 끝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순우곤이 돌아가자 혜왕은 자신에게 추천했던 빈객을 불러 꾸짖으며 말하였다. ‘그대는 순우 선생을 추천하며 옛날의 관중과 안영도 이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하였는데, 순우는 과인을 만나고도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과인은 그와 말할 상대가 못된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어찌된 까닭인가.’ 혜왕의 꾸지람을 들은 빈객은 어이가 없어 순우곤을 만나서 혜왕의 말을 전하고 물으니 순우곤은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과연 그렇소. 나는 과연 임금을 뵈었으나 한 마디도 하지 않았소이다.’”
  • 儒林(386)-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12)

    儒林(386)-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12)

    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12) 맹자가 태어난 것은 명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기원전 372년경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372년은 공자가 죽은 107년 후. 맹자의 고향은 사기에 기록된 대로 추(鄒). 오늘날 산둥성 퉈저우부( 州府) 쩌우현(鄒縣)이란 곳이다. 맹자의 생애는 공자와 달리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사마천도 사기에서 공자에 대해서는 ‘공자세가’를 통해 비교적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지만, 왠지 맹자에 대해서는 ‘맹자순경열전(孟子荀卿列傳)’에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기술하고 있을 뿐이다. “태사공은 말한다. 나는 맹자의 저서를 읽고 양 혜왕이 맹자에게 ‘어떤 수단으로 우리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겠소.’하고 물은 대답에 접할 때마다 무심코 책을 놓고 ‘아, 그렇구나. 이득이란 실로 난(亂)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하고 탄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부자(夫子:공자)가 거의 ‘이(利:이득)’에 관하여 말하지 않은 것도 항상 난의 근원을 막으려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한다. ‘이득을 보이려 일을 하면 원한이 많다.’ 위는 천자에서 아래는 서민에 이르기까지 이득을 좋아하는 폐단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 사마천의 기록은 바로 맹자의 첫 장에 나오는 ‘양혜왕장구상(梁惠王章句上)’의 내용을 인용한 말 . 예로부터 이를 얻기보다는 먼저 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공자의 가르침을 자신의 저서 첫 장에 올려놓은 맹자의 태도에 대해 사마천은 이처럼 탄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사마천은 맹자에 대해 다만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기술하고 있을 뿐이다. “맹가는 추나라 사람.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의 문인에 나아가 배웠다. 제 선왕(齊宣王)을 섬기려 하였으나 들어주지 않았으므로 양나라로 갔다. 양 혜왕은 맹가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를 친견해 보니 하는 말들이 의미가 너무 멀어서 현실사정에 어둡다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당시에 진(秦)나라는 상군(商君)을 등용하여 부국강병에 힘쓰고, 초(楚)와 위(魏)나라는 오기(吳起)를 등용하여 싸움에 이기어 적을 꺾고, 또 제 선왕은 손자(孫子)와 전기(田忌) 등을 등용하여 제후를 동으로 하여 제나라에 조공을 바치게 하는 등 천하는 바야흐로 합종연횡(合從連衡)에 미쳐 날뛰어 전쟁하고 공격하는 것을 현명한 일로 생각하던 난세였다. 그런데 맹가는 오로지 요순의 태평시대와 삼대(夏,殷,周)의 제왕의 덕을 부르짖어 시세의 요구와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어디에 가서 말을 하여도 용납되지 않았다. 물러와서 제자 만장(萬章) 등과 함께 시경(詩經), 서경(書經) 등을 강술하고 중니(仲尼:공자)의 뜻한 것을 펴서 맹자(孟子) 7편을 저술하였다.” 이상이 사마천이 기록한 맹자에 대한 전문의 내용이다.‘공자세가’에 기록된 공자의 생애에 비하면 형편없이 짧은 단편적인 내용만을 담고 있음인 것이다. 그러나 이 기록을 통해 유추해 보면 맹자 역시 공자와 매우 비슷한 생애를 보냈음을 알 수가 있다.
  • 어? 여기가 난곡 맞아?

    어? 여기가 난곡 맞아?

    헬기에서 내려다본 난곡 재개발 공사현장(사진 위)에서 우리가 기억하던 난곡은 보이지 않는다. 허리를 펴면 머리가 닿을 만큼 낮은 천장, 태풍이라도 불면 날아갈 것만 같았던 낡은 판잣집(사진 아래)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난곡은 2000년대 초반까지 도시 빈민들이 주로 거주하던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 가운데 한 곳이었다. 본디 난초가 많이 자라 은은한 난초향기가 골짜기를 가득 메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하지만 산이 깊어 일제시대까지만 해도 공동묘지로 사용되기도 했다. 1960년대 서울로 대거 유입된 농촌인구와 도심 재개발로 밀려난 철거민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면서 난곡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한 때는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기도 했다. 아시안게임·올림픽을 앞두고 상계동 철거를 시작으로 서울 시내 빈민촌은 하나둘씩 자취를 감춰갔다. 난곡 역시 1990년대 중반부터 재개발 사업이 추진됐지만 외환위기의 역풍으로 지금까지 미뤄졌었다. 지난 2003년 철거를 완료, 지난해부터 착공에 들어간 재개발 현장은 외부공정 대부분이 완료된 상태였다. 내년 하반기 입주를 위해 현재 마무리 공정이 한창이다. 주변지역에 부동산 중개업소들이 들어서는 것을 시작으로 주변지역 상권도 점점 변해가고 있다. 야학에 투신하겠다던 젊은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시민운동계와 학계 등으로로부터의 관심도 끊이지 않았던 마지막 달동네 난곡은 그렇게 중산층이 사는 지역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글 고금석기자 사진 남상인기자 ■ 판잣집 달동네가 마천루 아파트 숲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무색지 않았다. 난곡(蘭谷), 신림역에서 101-1번 콩나물시루 같은 만원버스를 20여분이나 타야 다다를 수 있었던 하늘아래 첫동네. 누추하기 이를데 없었지만 오갈데 없던 사람들에게는 그 어느 곳보다 아늑했던 곳. 한곳 빈틈없이 산등성이 가득 메웠던 판잣집들은 이제 간데없고 번듯한 아파트들만 난곡을 지키고 서 있었다. ●들어선 아파트 장맛비가 내리던 지난 27일 난곡을 찾았다. 난곡 사람들의 발이었던 101-1번 버스는 이제 5521번이라는 새 이름을 달고 있었다. 종점에 다다를 무렵 우뚝 솟은 아파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난곡의 새모습이었다. 난곡은 원래 서울 관악구 신림7동 산101일대를 지칭하는 말이다.1960년대 말 도심미관 정화사업이 추진되면서 도심 불량주택에 거주하던 빈민들이 몰려든 곳이 바로 난곡이었다. 한때는 1만 3000명이 넘게 살던 이곳 판잣집들은 거의 모두 헐리고 이제 ‘신림 제1구역 재개발지역’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도로변 일부에 남은 낡은 무허가주택들 역시 머지않아 재개발 열풍 속으로 빠져들 운명에 처해있다. 재개발사업은 대한주택공사와 대우건설이 맡아 진행하고 있다. 주택공사는 모두 3322가구, 대우건설은 모두 499가구의 아파트를 공급할 예정이다. 지난해 초 착공해 벌써 외부공정은 거의 마친 상태이며 현재 내부공정이 한창 진행 중이다. 관악구청 성순경 주택개량2팀장은 “공정이 순조롭게 진행돼 내년 9∼10월로 예정된 입주예정일이 6∼7월로 앞당겨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늘어선 부동산 여느 재개발 지역에서처럼 난곡에도 부동산 중개업소들이 하나둘 몰려들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현재 아파트 진입로와 보성운수 종점 주변으로 50∼60개의 업소가 성업 중이다. 대부분의 중개업소는 지난해 아파트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우후죽순격으로 생기기 시작했다. 이는 새로 조성될 아파트가 3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자연환경이 좋고 4000 가구에 이르는 대단지로 실입주자들과 투자자들로부터 지속적인 관심을 끌기 때문이다. R공인중개사 김모(60)씨는 “전화 및 방문상담이 하루 수십건이 넘는다.”면서 “재개발되는 지역의 아파트가 이처럼 대단지가 없어 지난해부터 많은 관심을 끌어왔다.”고 말했다. 최근 지상경전철(GRT) 도입이 가시화돼 취약했던 교통문제가 해결될 기미를 보이자 한달새 3000만∼4000만원의 프리미엄이 추가로 붙었다.H공인중개사 이모(49·여)씨는 “현재 24평형은 1억원,34평형은 1억 5000만원∼2억원,44평형은 2억원 이상의 프리미엄이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기대 부푼 관악구 관악구는 한층 기대에 부푼 상태다. 명절이나 세밑만 되면 달동네 많은 지역으로 주목받던 부담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관악구는 난곡지역 재개발을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원래 95년 무렵부터 진행되던 민간업자 위주의 재개발사업이 97년 외환위기로 차질을 빚자 김희철 구청장이 직접 주공을 찾기도 했다. 구는 내년 입주에 맞춰 난곡사거리부터 난곡에 이르는 진입로를 현재 4차선에서 6차선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이후 2008년까지는 GRT를 가운데 2개 차선에 만들어 신대방역까지 연결할 계획이다. 여기에 단지 인근에 추진되는 강남도시순환 고속도로가 착공된다면 관악구로서는 더이상 바랄 게 없게 된다. 구청 관계자는 “아파트 내·외부에 공원·산책로 등이 잘 꾸며져 있고 강남·도심 진입도 빨라지면 자연히 서울 서남권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흥주거단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근 지역 주택소유자들 사이에서도 아파트 입주 뒤 지가상승을 기대하는 분위기도 형성돼 있다. 이 지역에 연립주택을 소유하고 있다는 강모(55)씨는 “아파트 입주 뒤 주거환경이 좋아지면 집값도 좀 오르지 않겠냐.”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계층갈등 소지도 있어 하지만 내년 입주 뒤 입주자들과 기존 주민들 사이의 정서적 괴리가 생길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곳은 큰 물리적 충돌 없이 무난히 철거가 진행돼 현재 주민갈등은 심각하지 않은 편이었다. 이는 주공측에서 공식이주비 외에 비공식적으로 이주비 등을 지원해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많지 않았던 기존 주민들은 대부분 근처 연립주택의 반지하방이나 봉천동 등 영구임대아파트 등으로 옮겨가 살고 있다. 입주권 역시 68년 이전 거주자들에게만 부여돼 대부분 혜택을 얻지 못했다. 이에 대해 신림종합사회복지관 김춘근 사회복지사는 “판잣집에 살던 대부분이 무연고 노인들이며 주민이 자주 바뀌어 지역성이 잘 형성되지 않았던 곳이라 주민간 갈등의 소지는 적은 편”이라면서도 “주민들 사이에 경제적 박탈감·괴리감 등을 이유로 보이지 않는 갈등은 일부 상존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예전 상계동 등에서 추진된 재개발 사업에서 보면 임대아파트 거주자와 일반아파트 거주자 사이에 담을 쌓고 서로 무시하는 등 보이지 않는 ‘계층갈등’이 생겼다.”면서 “난곡 지역에서도 동사무소와 주민자치센터, 사회복지관 등을 중심으로 혹시 생길지 모르는 주민갈등을 조정하거나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경전철 건설 등 교통·문화 환경 혁신 “난곡의 변화는 관악구 전체의 이미지를 쾌적한 주거환경지역으로 바꿔놓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김희철 관악구청장은 난곡 개발과 동시에 이에 필요한 도시 인프라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그는 “난곡이 단순히 달동네에서 아파트 단지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면서 “교통·환경·문화·복지가 어우러진 복합기능의 신도시처럼 꾸밀 계획”이라고 말했다. 난곡개발이 완료되면 이 일대는 인구 10만명이 넘는 작은 신도시가 형성된다. 교육·문화복지·환경분야에 차근차근 대비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난곡 일대 경전철 건설도 이같은 맥락에서 5년 전부터 추진돼 왔다. 이곳에 건설될 경전철은 고무바퀴형 차량에 전기공급을 받는 철도시스템으로 자기궤도가 설치돼 있고 첨단유도장치를 갖춰 무인운행도 가능한 것으로 국내에서 처음 선보인다. 현재 2차선 또는 4차선에 불과한 난곡길을 왕복 6차선인 30m도로로 확장하고 중앙차로를 일반차로와 분리, 경전철 전용차로를 확보해야 한다. 김 구청장은 이를 위해 지하철의 정시성과 버스의 접근성을 겸비한 도로 건설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고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그는 “내년 5월까지 설계를 완료하고 보상이 실시되는데 이때 주민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김 구청장은 “이 일대의 교육·문화·복지환경 조성을 위해 ▲특목고 유치 ▲대형병원과 할인점 유치 ▲신림체육관(수영장) 건립 ▲신림 빗물펌프장 건립 등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있는자와 없는사람 차별없는 터전돼야 “토박이 주민들이 난곡의 새 주인들과 함께 ‘난곡 공동체’를 이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31년 동안 난곡에서 살며 빈민 운동을 이끈 민주노동당 김혜경 대표는 “난곡은 빈민들이 오랫동안 끈끈한 공동체 생활을 해온 곳”이라면서 “이들은 개발 과정에서 흩어졌지만 공동체 문화는 이어져 가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난곡이 서울의 수많은 ‘달동네’ 중 유독 관심을 받는 이유를 김 대표는 ‘자발적인 공동체문화’라고 진단했다.1970년대 초, 도심 재개발 과정에서 쫓겨나 난곡으로 모여든 3만여명의 사람들은 이곳에서 그들만의 문화를 형성했다는 설명이다. ●빈민들이 ‘없어도 서로 도우며’ 살던 곳 “난곡으로 이사해 동네 아주머니 15명과 ‘국수 모임’을 만들었어요. 한 명당 100원씩 모아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점심을 제대로 먹어보자는 ‘계’였죠.” 이러한 자발적 주민 모임은 점차 늘어 1976년에는 주민 118가구가 참여한 ‘난곡희망의료협동조합’이 생겼다. 김 대표는 “3만여명의 사람들이 공동수도 10개를 함께 사용할 정도로 환경이 열악하다보니 하루에도 수십명씩 죽어나갔다.”면서 “주민들이 자기 자신과 이웃의 목숨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서울대 의대생과 자매결연을 맺고 협동 진료 시스템을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이들이 난곡 재개발 과정에서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들의 공동체의식을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새로 생긴 아파트의 ‘있는 자’와 인근에 남은 ‘없는 자’가 차별없이 함께 교육받고 생활할 수 있는 지역사회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문이다. ●토박이와 새주인이 어울리는 공동체 그는 이어 더불어 사는 것은 비단 난곡이라는 지역에 국한된 사안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서울 전 지역에 걸쳐 재개발·재건축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지역 개발은 사람들이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든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면서 “돈 없는 사람들이 부자들과 더불어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어야 하며 난곡이 그 효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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