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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가 고종석씨 산문집 ‘언문세설’ 펴내

    “ㄹ은 액체성의 자음이다.‘흐르다’와 ‘따르다’에도 이미 이 ㄹ이 있다.…고려속요 ‘청산별곡’은 ㄹ을 타고 흐른다:살어리 살어리랏다/청산에 살어리랏다/멀위랑 다래랑 먹고/청산에 살어리랏다/얄리얄리 얄라성 얄라리 얄라….그야말로 ㄹ의 향연이라고 할 만하다.유랑민의 이 서글픈 노래는 ㄹ소리로 가멸차다.소리가 의미를 압도한다.‘청산별곡’은 흐르고 흐른다”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인 고종석씨(41)가 ‘언문세설(諺文細說)’이란 산문집을펴냈다.도서출판 열림원. 그는 한때 국어사전 편찬자가 되기를 꿈꿨다.한국의 웹스터나 라루스가 되겠다는 퍽 야무진 것이었다.그러나 그 꿈은 현실의 몸을 얻지 못했다.이 책은 저자의 좌절된 꿈에 대한 일종의 ‘자위’로 씌어진 한글자모(字母) ‘사전’이다.한국어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보여온 그의 언어관 혹은 한국어관은 어떤 것일까.“모든 순결주의가 그렇듯 언어순결주의도 파시즘에 정서의 탯줄을 대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모든 언어는 혼혈이며,순수한 언어는없다는 것이다.그에 논법에 따르면 외래어나 일본제 한자어,북한의 이질적인 언어 등이 뒤섞여 한국어는 더욱 풍부해진다. 한편 고종석은 소설가 복거일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민족어가 가까운 장래에 ‘박물관 언어’화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그러나 그는 대부분의 사회는 서구의 라틴어와 동아시아의 한문이 그랬듯이 민족어와 영어가 함께 공용어로 사용되는 ‘이중언어 사회’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한글 자모라는 한 주제를 놓고 치열하게 써내려간 ‘언문세설’은 민족어로서의 한국어를 보다 정확하고 아름답게 사용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ㄱ’에서 ‘ㅎ’,‘ㅏ’에서 ‘ㅣ’에 이르는 한글 자모 스물네 자는 그의 붓끝을 따라 새 이미지와 생명을 얻어 파닥거린다.이 책은 한글 자모가 생겨나 변해온 과정,각각의 모양과 소리,고유한 법칙들을 꼼꼼히 살핀다.하지만 국문법 책처럼 딱딱하지는 않다.하나의 글자가 주는 어감을 풍부한 어휘와 시구를 통해 손에 잡힐 듯이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그 한 예로 그는 ㄴ이라는 자음이 얼마나 가볍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가를 김수영과 레미 드 구르몽,황인숙의 시 ‘진눈깨비’를 통해 보여준다. 고종석은 이미 ‘사랑의 말,말들의 사랑’‘감염된 언어’ 등의 에세이집을 통해 국어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사랑을 보여줬다.그는 “나는 어떤 의미에서도 민족주의자가 되고 싶지 않다.그러나 모국어를 사랑하는 것이 민족주의자의 한 징표라면,나는 민족주의자의 인력권 바깥에 있지도 못하다”고 고백한다.그러나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는 한국어는 그에게 또 다른 감옥으로 다가온다.“모국어는 내 감옥이다.오래도록 나는 그 감옥 속을 어슬렁거렸다. 행복한 산책이었다.‘언문세설’은 그 산책의 기록이다”김종면기자 jmkim@
  • [대한광장] 붕괴되는 틀

    외국여행에서 젊은 남녀의 키스 장면을 목격하게 되면 웬 횡재인가싶어 동공이 벌어지고 심장이 컹컹 뛰었었다.공항의 출영구에서 헤어지기 기막혀 상체를 부르르떨며 격정적으로 나누는 키스장면은 아무리 못본 척 고개를 돌리려해도 의지만 그러할 뿐 시선은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영화에서만 볼수 있었던 진한 애무장면을 바로 코 앞에서 향유할 수 있음에 머리 몸 함께어지럼을 탔지만 그러나 흥미로운 기분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로부터 불과 10여년이 경과한 지금,전철 안이나 공원,해변 등에서 우리는 드물지 않게 우리 청춘남녀의 애정표현을 목격하게 된다.주위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그들의 적극적인 포옹이며,입맞춤이며 얼켜드는 서로의 몸짓을 슬금슬금 훔쳐보면서 아슬아슬 위태롭고 심히 민망스런 기분이 된다.10여년 전 외국 젊은이들의 행위에서 느끼던 흥미로운 기분은 결코 아니다. 이런 모순적인 감정의 변화는 눈 앞의 그들이 남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자녀들이라는 점과 아직은 뭔가 시기상조일 것같은 느낌,혼전의 남녀가 만인중시리에 저래선 안된다는 뿌리깊은 고정관념탓으로 스스로 분석도 해보지만민망스런 기분은 가셔지지 않았다.소설에서 가상의 세계를 창작할 때 충분히 다룰 수 있는 무한한 포용의 척도가 실생활에서 납덩이처럼 굳어질 때 느끼던 괴리감처럼 혼란을 겪으면서도 그들을 향한 민망스러움은 가셔지지 않았던 것이다. 얼마전 TV에서 미혼남녀의 동거에 대한 주제를 아침시간에 방영하는 것을시청했다.주목할 사실은,혼전남녀 동거자가 적지 않은 숫자이고 그들의 동거경험이 1회 이상이면서 동거자와 결혼으로 이르는 숫자보다 그렇지 않은 비율이 높고 이별을 하면서도 아기를 낳아 기르기도 하는,그러면서도 피차가상처를 받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동거의 목적이 좋은 결혼상대자를 탐색하기 위해서,너무나 사랑해서,한 순간이라도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아서,또는 부모의 틀을 따르지 않고 자기식 삶의 방식을 실천하기 위해서라고 출연한 동거자들은 말했다. 필자의 귀를 세우게 한 것은,한국의 전통적 가치관을 냉소하면서 과감히 그 고정관념의 틀을 당당하리만큼 거침없이 깨트리고 있는 일부 동거자들의 주장이었다.고정가치관이 틀 속에 갇혀있는 한 혼전동거는 부정한 행위일 수밖에 없다는 서두로 시작하여 동거를 하는 목적 등을 자기나름대로 논리를 전개하는 그들에게서 세상의 변화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혼전남녀의 육체적인 순결을 중시하던 시대는 이미 아닌 줄은 모두 알고있지만 이토록 급속도로 변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아는 사람들은 실제 많지 않으리라 혼자 바보처럼 중얼거려도 보았다. 전철속 젊은 남녀의 거침없는 애무행위가 사랑스럽기보다 그토록 민망스러웠던 것은 그들이 남이 아닌 우리의 자녀들이고 역시 틀 속에 갇혀사는 기성인들의 경직된 고정관념 탓이라 하더라도 두손놓고 구경만 하고있어야 될 입장인지 새삼 가슴이 답답해졌다. 최근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고 젊은이들이 오기부리듯 그 책을 찾고 있다고 서점종업원이 전했다.이 땅의 독서인구는 20대로 거의 한정돼있는데 이들의 심증기저에 도사린 유교적인 고정관념·고정가치관 즉 ‘틀’속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가 책의 제목만 보고 무작정 그 책을 구입케 한다는 말도 그 종업원은 덧붙였다. 장년 이후의 기성세대에게는 진정 어리둥절한 시대이다.인성을 잃지 않으면서,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발전적인 창조의 기쁨을 누리면서 한 생을구사하는 데는 분명한 기둥철학(틀·질서)이 서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즈음의 세태는 경악,그 자체이기 때문이다.그러나 변화의 물살이막을 수 없는 대세로 세상에 범람한다 쳐도 이 난제의 해결사는 역시 씨를뿌려놓은 기성인일 수밖에 없다. 모두가 머리 싸매고 젊은이들이 그럴 수 있도록 모판을 만들어 조성해준 우리의 과거를 되짚어보면서 해결점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金芝娟 작가
  • 각료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姜基遠 여성특위 위원장

    얼마 전 어느 여성보호시설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원래는 소위 ‘윤락’여성을 수용할 목적으로 세워진 곳이라기에 그 곳에 있는 여성들 전부가 소위 ‘윤락’하다가 검거되어 왔는가 했더니 일부는 가정폭력의 피해자들이라고 했다.만약 이러한 보호 시설은 나이,직업,사회·경제적 지위 등이 비슷한사람들을 한데 수용하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입장에서 본다면 이렇게 처지가다른 여성들을 한 곳에서 같이 지내게 한다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이 곳에는 위의 두 부류 외에 미혼모(현재 임신 중이거나 해산한)여성도 있었다.이들이야말로 정말 이런 공공복지기관에,그것도 위에서 말한다른 부류의 여성들과 한 데 머물게 한다는 것이 적절한가 하는 생각이 들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이 미혼모가 되는가.혹시 남성들은 어린 여성이 결혼도하기 전에 경솔하게 순결을 버리고,그 벌로써 임신상태가 된 것이라고 생각해 이들에 대해 별다른 느낌이 없을지 모르겠다.그러나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그런 식의 관점은 무지하고 무감각할 뿐 아니라 가혹하리 만큼 불공정한것이다. 그 여성들이 미혼모가 된 계기도 스스로 사랑에 빠져 임신을 자초한 경우부터 강간 피해자가 된 경우까지 천태만상일 수가 있다.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들이 어떤 이유로 임신을 했던지 간에 이들이 이런 입장에 처하게 된 것은,남성과 똑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똑같은 행동(자의든,강제로 당했든)을 했는데,오직 그 결과만 남성과 다른 상태가 되도록 한 신체구조의 차이가 그 원인이다.이것이 미혼모 여성 모두가 가진 공통 분모인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여성이라면 언제라도 미혼모가 될 수 있고,미래의 여성들도다 그럴 것이다. 위에서 본 세 입장의 여성들을 잘 들여다 보면 사람에 따라서는 한 데 머무는 것에 저항감을 가질 수도 있겠으나 같이 지내지 못할 이유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여성’이라는 입장과 상황에서 공통점이 있고,각자 자기 문제의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세우도록 (예컨대 복지기관의 상담자 등이)도와 준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문제의 공통점 같은 것에대한 이해도 할 수 있을 것이고 또 남의 문제를 가까이 봄으로써 나의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그들 여성,특히 젊은 여성들을 볼 때 나는 그들이 앞으로 백번,천번 새롭게 거듭 날 수 있는 재목으로 보이고 그렇게 되기위해서는 주위에 단 한 마디의 격려와 위로와 의식화의 말을 해 줄 수 있는사람들이 있으면 될텐데 싶다.
  • KTV 새미니시리즈‘초대’로 컴백하는 이승연

    탤런트 이승연이 KBS 새 미니시리즈 ‘초대’(최윤정 극본 윤석호 연출)에출연할 예정이다.지난해 운전면허 불법취득으로 인해 물의를 빚었던 그녀는13개월의 자숙기간을 거쳐 TV에 복귀하게 된다. 8월9일 첫방송을 앞둔 이 드라마는 신세대의 다양한 결혼풍속도를 그리는데 이승연은 혼전순결은 지켜야한다고 생각하는 조신한 여성을 맡았다.그동안추락한 이미지를 단번에 씻을 수 있는 역할을 찾아 배역의 성격에도 신경을썼다는 후문이다. 법적으로 이승연의 활동재개에는 문제가 없다.그동안 광고와 패션잡지 촬영 등의 활동도 해왔다.하지만 그녀의 TV출연은 조심스럽게 성사됐다.지난 1월 SBS ‘청춘의 덫’에 캐스팅되자마자 여론의 매몰찬 반응에 부딪혀 결국 그녀 스스로 출연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경험 때문이었다. 이승연의 TV복귀는 사회봉사프로부터 시작됐다.드라마 촬영을 앞둔 빡빡한스케줄에도 불구하고 지난 20일 경기도 여주에 있는 ‘천사들의 집’에서 KBS1 ‘사랑의 리퀘스트’를 녹화,방송활동에 시동을 걸었다.6세 미만 중증장애아동100여명이 살고 있는 곳에서 하루를 봉사한 이승연은 24일 오후 7시생방송 프로그램 스튜디오에도 출연할 예정이다.이번 생방송은 이승연의 TV복귀 첫번째 시험무대인 셈이다.그러나 이 봉사활동이 드라마 출연에 앞서의도적인 봉사란 비판을 이승연이나 KBS나 어떻게 비켜갈지 두고볼 일이다. 허남주기자
  • [김삼웅 칼럼] 김대중·장면정부의 멍에

    김대중정부와 장면정부는 38년의 시차를 두고 있다.한국현대사에서 두 정권은 출범과정과 성격 그리고 시대상황에 있어서 공통점이 매우 많다. 우선 정통성에서 일치한다.장면정부는 이승만 독재를 붕괴시킨 4월혁명의결과로 태어났으며 김대중정부는 32년 군사정권과 여기에 뿌리를 둔 문민정권의 적폐를 청산하는 명예혁명적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 장면정부가 4·19혁명의 결과라면 김대중정부는 광주항쟁과 6월항쟁으로 이어지는 시민혁명의 산물이랄 수 있다.‘민주주의의 상징’이라는 지도자를중심으로 정통성과 합법성의 강고한 기반 위에서 출범한 두 정권이 쉽게 반대세력의 도전에 취약성을 드러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혁명 또는 명예혁명적 과정을 거쳐 합법적으로 집권했지만 상층부 일부만 바뀌었을 뿐 구정권의 인물과 관행이 그대로인 앙시앵 레짐의 ‘허리부문’을 개편하지 못했다. 둘째,독재를 부정하는 안티에서 출발한 새정부는 구체제의 억압구조와 규제를 풀게 되고 따라서 ‘당근과 채찍’을 놓아버린,일종의 무장해제한 권력체이다.여기에 국민은 무한대의 자유를 요구하고 정부에는 청교도적 순결성을바라면서 국민과 정부 사이에 단층현상을 드러낸다. 셋째,‘단군 이래의 자유’가 허용된 상황에서 야당과 사회단체 그리고 독재정권에 협력했던 사람들까지 자신들의 정체성회복의 심리에서 정부공격에앞장서고 일반시민들의 무책임한 시위와 권리의 남용이 나타난다.또한 정권의 시혜로 주어진 자유가 정권을 옭죄는 부메랑으로 돌아오면서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된다. 넷째,내각제의 권력분산구조에서 효과적으로 시국에 대처하지 못하고(장면정부)내각제에 발목이 잡혀(김대중정부)권력누수의 조짐을 보인다. 다섯째,독재와 부패를 청산하고 새국정모델을 제시하는 개혁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고 희생도 따른다. 그런데 총론적 개혁은 지지하면서 각론의 피해 당사자들은 저항하게 되고다수 국민은 조급하게 개혁의 과실을 요구한다. 여섯째,장면정부는 3·15부정선거원흉·부정축재원흉의 처단이라는 ‘혁명과업’의 해결이 당면과제로 주어졌고,김대중정부는 IMF체제의 국난극복 과제에 매달렸다.그러다보니 국민대중이 요구하는 개혁과 구체제청산작업이 더디게 되었다. 기득층의 저항 소외층의 비판 일곱째,기득층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서 개혁을 거부하거나 외면하고 소외층은 기대심리에서 개혁이 지지부진하다고 비판한다.이렇게 하여 개혁과 기대치에 대한 괴리가 증폭되면서 민심이반현상이 나타난다. 여덟째,‘동지적 적대세력’과의 동거를 들 수 있다.장면정부는 같은 뿌리에서 분당한 신민당의 극심한 도전에 시달리고 김대중정부는 다른 뿌리의 공동정권인 자민련의 ‘우호적 적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개혁세력이 결집되지 못한 것이다. 아홉째,진보·보수 지식인의 협공이다.기회주의적인 언론·지식인그룹은 그렇다치지만 진보·정론지를 자처하는 언론과 지식인들까지 ‘정권때리기’에 앞장선다.이승만 정권에서 심한 탄압을 받아온 혁신계와 진보언론이 장면정부공간에서 가장 심한 반정부 비판세력이 되었다.김대중정부를 보수·진보지식인과 언론이 피아 구분없이 비판하는 것도 장면시대와 비슷하다는 지적이다.현정부에 의해 합법성을 인정받게 된 전교조나 민주노총 등이 정부에더욱 과격하다거나 이념적·생태적으로 우호적이어야할 언론과 지식인이 더공격적인 것도 비슷한 현상이다. 지식인 그룹의 역사의식 결론적으로 기득세력과 개혁세력으로부터 동시다발의 공격을 받으면서 ‘민주주의와 경제개발’(장면정부)이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김대중정부)를 추진하기란 쉽지 않다.기득세력의 두터운 장벽과 저항 그리고 분별잃은 혁신세력의 협공으로 장면정부는 쿠데타세력에 빌미를 주게 되고 김대중정부는 개혁정책이 흔들린다. 5·16 이후 지식인과 언론인,진보진영이 당한 시련과 고통을 생각하고 국가발전의 퇴영을 돌이키면서 비판활동의 본질을 되새겨봐야 하겠다.비판은 지식인의 본령이고 존재가치다.그러나 사사로움과 선정성과 하이에나식의 교활함이 겹칠 때 ‘이론적으로 수술은 성공했는데 환자는 죽게 되는’현상을 초래한다.언론인·지식인과 진보 그룹의 역사의식이 필요하다. 주필 kimsu@
  • [굄돌] 교육세와 교육이념 사이

    잘 알려진대로 현행 교육세는 술값이나 담배값 등에 얹혀서 걷고 있다.그런데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학부모의 약 70%가 이런 방법의 교육세 폐지를 반대했다고 한다.교육세란 신성한 교육이념을 실현시키자는 목적세다.따라서이 수치는 단지 교육세의 부과 방식에 대한 반응이라기보다는 도리어 교육공간의 불결한 풍경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다.이른바 주당과골초가 우리 교육을 책임지고 있다는 세간의 진실을 새삼 확인시켜 주었기때문이다. 사실 몽롱한 정신 상태가 아니라면,술취한 사람이 뿜어대는 담배불 연기가하필이면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순결한 목적에 꼭 필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아니,불가피한 일이었다는 변명도 뻔뻔하게만 들릴 것이다. 그러나 이 방식을 옹호하는 여론은 결국 교육이념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된것인지 모른다.교육이념이란 당대의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합의한 교육의 입헌성,즉 교육지표의 원천이다.그런 만큼 당연히 종교적 차원의 높은 도덕성을 전제하지 않으면 안된다.간디의 말대로 모든 가정은 학교요 모든 부모는교사라는 조건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때문에 교육세 부담자의 의지를 의심케하는 불건전한 조건은 곧 교육이념의 도덕성 상실을 말하거나 아니면 그 비현실성을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분명 교육세 없이 교육이념의 실현은 불가능하며,교육이념도 없이 교육세를 강요할 수도 없는 법이다.게다가 학교란 이 두 요소에 의해서 지탱되는 신성한 공간이다.그럴수록 술값과 담배값 등에 의존하는 교육재정보다 더 불건전한 학교 교육의 조건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런 조건을 두둔하는 학부모가 있는 한,학교는 달라지려고 해도달라질 수가 없을 것이다.동시에 그런 현실을 그대로 허용하는 교육이념이되었다면 이미 그 이념의 현실적 기능과 순결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치석 서울용두초등학교 교사
  • 「오늘 ‘4·19’ 39돌」마산 3·15의거 기념탑

    자유당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4·19가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출발점이라면마산 3·15의거는 이를 가능하게 한 불씨로서 궤를 같이한다. 60년 3월15일 실시된 정·부통령 부정선거에 항의하던 시위대를 향해 경찰이 무차별 발포했다.이같은 발포로 마산에선 김주열(金朱烈·당시 마산상고1년)군을 비롯해 12명이 사망하고 27명이 부상했다. 이들 희생자의 뜻을 기리기 위해 마산에서는 4·19혁명 2년 후인 62년 합포구 서성동 대로변에 기념탑을 세웠다.청년 조각가 김찬식씨(97년 1월 작고)가 제작한 기념탑은 젊은 작가의 힘과 열정이 넘치는 조형미를 지녔다.‘저마다 뜨거운 가슴으로 깃발을 올리던 그날 1960년 3월15일.더러는 독재의 총알에 꽃이슬이 되고 더러는 불구의 몸이 되었으나 우리들은 다하여 싸웠고,또한 싸워서 이겼다…’로 시작되는 탑문은 시인 이광석(李光碩·64)씨가 지었다.탑문은 그 날의 처절했던 상황을 자세히 묘사한 뒤 ‘이 고장 3월에 빗발친 자유와 민권의 존엄이 여기 영글었도다’로 끝을 맺는다. 또 남해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용두산공원에는 ‘4월 민주혁명 희생자위령탑’이 우뚝 서 있다. 높이 11m,둘레 27.8m에 화강암 탑신에는 청마(靑馬) 유치환(柳致環)선생이지어 바친 헌정시가 새겨져 있다.‘지순한 자는 마침내 말이 없나니.눈을 들어 바라보라.…(중략)…진실로 젊어 귀천(歸天)하였으매 애석하고 거룩한 이마 맑은 넋들이여 고이 마음놓을진저.마음놓아 뉘우침이 없을진저’ 이 위령탑은 혁명 발발 다음해인 61년 7월 국제신문의 전신인 국제신보사가 부산과경남시민들로부터 모금한 1,800여만원으로 건립했다. 광주시 남구 구동 광주공원 광장에는 시인 조지훈의 추모시를 아로새긴 4·19추모비가 자리잡고 있다.‘자유여 영원한 소망이여.피흘리지 않곤 거둘 수없는 고귀한 열매여…(중략)…잊지말자 사람들아.뜨거운 손을 잡고 맹세하던 아 그날 4월19일을’ 이 추모비는 전남도민들의 성금으로 지난 62년 세워졌다.광주의 4·19시위는 광주고를 비롯해 조대부고,광주사범 등 고교생들이 앞장섰다.이 과정에서 학생 등 7명이 경찰의 총격으로 숨지고 100여명이 부상했다. 4·19를 이끌어낸 김주열 열사의 유해는 고향인 전북 남원시 금지면 용정리의 야산에 묻혀 있다.남원 시내에서 17번 국도를 따라 전남 곡성쪽으로 약 8㎞쯤 떨어진 곳이다.김 열사의 묘소는 군사정부가 종막을 고하면서 참배객들이 늘어 진입로가 개설되고,추모각을 세우는 등 손질이 가해졌다.‘순결하고 고귀한 피를 4월혁명의 제단에 뿌리고…’로 시작되는 묘비 뒷면의 비문은당시 지역 예총지부장을 맡고 있던 윤영근씨(60·남원시 한의사회 회장)가썼다. [전국종합]
  • 야생의 싱싱함화폭에 가득…박상수 꽃그림전

    미술에 있어서 꽃은 예술적 영감과 상징의 보고다.붉은 장미는 ‘예수의 수난’을,중세의 필사본 삽화에서 마리아의 손에 쥐어진 카네이션은 동정녀의순결을 상징한다.또 해바라기는 아폴로를 향한 사랑을 이루지 못한 처녀가죽어 피어난 꽃이란 신화적 의미를 지닌다.이처럼 인간 정신의 극치를 드러내는 강력한 상징으로 사용돼온 것이 바로 꽃이요 꽃그림이다.그러나 ‘꽃의 화가’ 박상수(54)는 꽃그림에 어떤 형이상학적 의미나 상징성을 부여하기를 거부한다.꽃을 자연 그대로의 꽃으로 보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고답적인 사실주의 작가라는 평을 듣는 박씨가 21일부터 27일까지 서울 종로갤러리에서 6년만에 두번째 꽃그림전을 연다.그의 작품 밑바닥에 흐르는 기본 정조(情調)는 자연에 대한 사랑이다.이번 전시에서는 싱그러운 자연의 향기를느낄 수 있는 30여점의 작품이 선보인다.‘고향의 7월’‘파꽃’‘능소화’‘범부채꽃’‘산함박꽃’‘산초롱꽃’‘목백나무꽃’‘쑥부쟁이꽃’‘식물원 하모니’ 등이 대표적인 작품들.철저한 현장 스케치를 통해 야생의 싱싱함을 화폭에 담았다.빛과 색의 감응을 중요시하는 그의 작품의 미덕은 무엇보다 시각적인 순수성에 있다.그것은 물론 늘 깨어있는 감성으로 자연을 관찰하는 화가의 정직한 작업태도에서 비롯된다. 김종면기자
  • [김삼웅 칼럼] 대한민국 임시정부 80돌

    오늘(13일)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상하이(上海)에서 출범하면서 독립전쟁을 선포한지 80주년이다. “백산(白山)에 이는 바람 천지도 시름짓고 푸른파도 구비치는 곳 구룡(龜龍)이 일어나 춤을 추는구나. 어두운 이밤은 언제나 새이려나.모진 비바람만 휘몰아치는 것을….” 임시정부 국무총리를 지내고 임정에 내분이 생기자 25일간 단식끝에 목숨을 끊은 申圭植선생이 망명지에서 쓴 ‘한국혼’의 서두다. ‘모진 비바람만 휘몰아친’절망의 시대에 애국지사들이 이국땅 상하이에모여 임정을 세우고 나라찾기 전쟁을 벌인지 80성상이 흘렀다. 상하이에 임정이 세워졌다는 소식에 고국의 동포들은 노래불렀다. 자유민아 소리쳐서 만세불러라 임시정부 만세불러라 대통령 국무총리 각부처 장관 국제연맹 여러 특사 만세불러라 우리 이미 이민족의 노예 아니오 또한 전제정치하의 백성 아니라 독립국 민주정치 자유민이니 동포여 소리쳐서 만세불러라 대한민국 임시정부 만세. 망국 9년만에 3·1항쟁의 뜻을 담아 임정을 세우니 ‘일제 36년’은 국권상실의 측면에서 임정이전의 9년일 뿐이다. 임정은 물론 국제법상 통치권이 미치는 국토와 국민이 있어야 하는 일반 정부와는 성격이 다르다. 그렇다고 대한제국과는 시간적 연속성이 없고 주체세력과 이념이 달라 ‘망명정부’일수는 없다. 임정은 한민족의 정신적 구심체가 되면서 향후 27년 동안 줄기차게 독립전쟁을 벌였다. 무장·의열·외교등 모든 방법을 동원한 전쟁이었다. 식민지역사상 우리 임정처럼 일체의 타협을 배격하면서 완전독립을 추구한 사례는없다. 자치론이나 위임통치론 따위를 철저히 배격하면서 ‘완전독립’만을추구했다. 임정의 지도자들이 왕조시대 인물들인데도 복벽(復 )을 거부하고 민주공화체제를 지향한 것은 대단히 선각적이다. 임시헌장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제1조),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빈부 및 계급없이 일체평등으로 함”(제3조) 등 ‘헌법’정신과 조항이 민주공화제를 지향했다. 일제강점기 동안 국내외 독립운동단체 460개 중 민주공화제 국가의 건설을추구하는 민주지향형이 244개(53%)인데 비해 계급투쟁형은156개(34%), 왕정복고형은 37개(8%), 군정추구형은 23개(5%)로 나타났다. 한민족의 민주지향성을 살피게 한다. 임정은 욱일승천하는 일제로부터 탄압과 회유, 국제열강의 외면과 냉대, 극심한 생활고와 재정난, 그치지 않는 노선 시비와 사상갈등 속에서도 민주공화제의 정통성을 지키면서 항일투쟁의 구심체 역할을 맡았다. 국민의 정신적 지주 역할도 했다. 예컨대 李東輝중심의 좌파계열과 金元鳳중심의 의열단세력까지 포용, 거국적 항일투쟁 전선을 형성한 것은 임정의 정통성과 대표성을 뒷받침한다. ‘한국독립’의 계기가 된 카이로선언이 가능한 것은 임정의 존재때문이다. 尹奉吉·李奉昌의사의 의열투쟁과 항일전선에 몸을 사른 지사들의 희생이중국을 움직이고 중국정부가 미·영 수뇌를 움직여 ‘적당한 시기’에 한국을 독립시키기로 한 것이다. 임정의 최대 성과라 할 것이다. 해방후 국민사이에 이런 노래가 불려졌다. “따따따 따따따 나팔소리 들린다/쿵 쿵 쿵 북소리 들린다/남대문을 열어라 동대문을 열어라/임시정부 들어온다 광복군이 들어온다.” 그러나 임정은 귀환하지 못했다. 임정의 귀국이 거부되면서 한국현대사는이념대결과 친일파가 득세하는 분단과 왜곡의 시대가 되었다. 임정수립 80주년, 해방 54년이 되는 20세기 마지막 임정 기념일에 독립지사들의 순결한 애국정신이 그립다. 남북이 갈리고 지역을 토막쳐서 이념과 이해로 대립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애국지사들의 영령앞에 부끄러워하면서, 임정정신이 국민통합과 환난극복, 남북화해의 바탕이 되었으면 한다.
  • [대한광장] 부활절에 부침-광주는 과거인가

    4일은 부활절이다.부활절은 2000년 전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던 팔레스타인의 어떤 종교 창시자의 생애를 기억하는 축일만은 아니다.부활절은 기독교교리를 넘어 인류가 자신의 삶에 대해 숙고할 만한 그 무엇인가를 제공해 준다.그것은 죄 없이 순결하게 죽어간 한 영혼의 고통과 승리를 기억하는 축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순결한 영혼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살아남은 자들의 역사적 책무에 대해 다시 질문하는 축제이기도 하다.나,죄 없는 죽음 뒤에 살아남은 나,죄 없이 죽은 자와 함께 못박히지 못했던 나,방관했던 나,순결한 자를 변호하지 못했던 나,세번씩이나 그를 모른다고 발뺌했던 나는 아무런 내적인 제의 없이 무상으로 부활의 기쁨에 동참할 수 있을까. 부활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수난’과 ‘참회’라는 자기정화의 긴 터널을 통과하지 않는 자는 존재의 소생이라는 열매를 입에 댈 수없다.그 열매는 사람의 입에 닿기도 전에 썩어버린다.그의 손에 피가 묻어있기 때문이다. 예수는 팔레스타인에서만 십자가에 달린 것이 아니다.그는 도처에서 십자가에 달린다.우리는 죄 없는 자들을 여전히 죽음으로 몰아넣는다.예수는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에서,4·3의 동굴 속에서,광주의 광장 앞에서 십자가에 달린다.그가 십자가에 달릴 때 우리는 어디 있었던가.술집에? 도서관에? 안방에? 그리고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 걸까? 김대중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이후 광주문제는 슬그머니 물 밑으로 가라앉은 것처럼 보인다.발포명령자도 밝혀진 바 없고,당시 상황의 책임자들도 다시햇빛 속으로 나와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다.그들은 전혀 아무런 공식적 참회도 한 바 없다.검은 돈을 끌어모아 한 재산 불려서 어딘가에 숨겨놓은뒤 나라를 거지꼴로 만들어 놓고도 추징금 징수에 ‘나 돈 없어’‘배째’하고 버틴다. 어디 그뿐인가.마치 자신들이 희생양인 양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아무도 미워하지 말자’고 도사 같은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늘어놓는다.도대체 누가 누구를 미워하지 말자는 말인가.더 가관인 것은 과거에 어떤 짓을했건 아무 상관도 하지 않는 패거리주의자들과 함께 광주의 책임자들이 정치판으로 다시 슬금슬금 복귀할 생각마저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건 한 판의 거창한 코미디다.규모에다 플롯까지 세계 최고 수준이다.한국은 역사적 코미디의 대국이다.‘망각’을 신경안정제처럼 복용하는 이 나라의 국민이 코미디의 단골 관객이다.광주는 이제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깡그리 지워진 것처럼 보인다.아이고,이제는 다 잊었소,덮어둡시다.좋은 게 좋은 거니까.말이야 바른 말이지 내 손엔 피 안 묻혔소,어쨌든 호남 출신 대통령이 당선 됐으니까 그 걸로 됐소. 정말 그런가.망월동이 화려하게 단장되고,호남 출신 대통령이 죽은자들 앞에 헌화하며 눈물을 흘리고,호남 차별이 완화돼 호남 출신 인물들이 정계 요직에 포진하고,그런 걸로 광주는 망각 속으로 사라져도 좋은가.광주의 신음은 이제 과거의 일이 되어버린 걸까.그러므로 이제,랄랄라,부활의 계절인가. 다시 광주에 대해 말해야 한다.꼼꼼하고 철저하게 말해야 한다.대통령 자신부터 정치적 문제에 발목 잡혀 유야무야하는 모습이 안타깝기 그지없다.자신과 소신을 가지고 다시 광주를 거론하기 바란다.얼토당토않은 비극의 책임자들을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그리고 국민 각자는 그 비극의 역사적 의미를 마음 깊은 곳에서 내면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광주의 신음은 사라지지 않았다.그것은 팔레스타인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예수의 죄 없는 죽음의 의미를 내면화하지 못할 때 그의 신음이 우리 영혼을 떠나지 않는 것이나 똑 같은 이치다.그 신음을 잠재우지 못할 때 우리손은 여전히 검은 피로 물들어 있다.그 손으로 ‘부활’의 희디흰 열매를 만질 수 없다.역사라는 우리의 살이 썩어 문드러질 것이다. 金正蘭 시인
  • 종교 단신

    ◇원불교 교정원(원장 조정근)은 남자교무 제복을 제정하고 4월28일 대각개교절부터 일제히 착용하기로 했다.제복은 양복과 한복 두 가지로 순결을 나타내는 흰색과 조화를 뜻하는 회색을 기본 색상으로 했다. 양복을 입을 때는 검정과 회색의 기존 양복 안에 둥근 깃을 단 와이셔츠를받쳐입도록 했으며 한복은 전통한복의 동정을 살리되 옷고름을 단추로 대체한 생활한복으로 만들었다.의식을 집례할 때는 제복위에 법복을 입는다. 지금까지 여자교무는 검정치마에 흰색이나 검정색 저고리를 입어왔으나 남자교무는 통일된 제복이 없었다. ◇제3시대 그리스도연구소(대표 김진호목사)는 30일부터 오는 5월4일까지매주 화요일 오후7시 서울 서대문구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강당에서 신학아카데미를 연다.‘여성신학과 교회’를 주제로 한 아카데미 강좌내용은 기독교여성운동,여성신학과 교회개혁,여성교회론,대안공동체 등이다.강사 양미강정신대대책협의회 총무.(02)3141-9190. ◇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최근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http//www.catholic.or.kr)에 인권상담소 사이트를 개설,인권상담에 들어갔다.이 사이트에는 인권상담소 소개 및 자료실,상담실,자유게시판 등 코너가 마련돼있다. ◇다음달 1일 소천(召天) 1주기를 맞는 김동익목사(전 새문안교회 담임) 의설교집이 출간됐다(쿰란출판사펴냄).김목사의 설교집은 8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총 9권이 나왔으며 이번에 52편의 설교문을 10·11권으로 나누어 수록했다.
  • 石吾 李東寧선생 오늘 59주기 일대기

    “선생은 재덕(才德)이 출중하나, 일생을 자기만 못한 동지를 도와서 선두에 내세우고, 스스로는 남의 부족을 보충하고 고쳐 인도하는 일이 일생의 미덕이었다. 최후의 한순간까지 선생의 애호를 받은 사람은 오직 나 한사람이었다.”김구선생이 ‘백범일지’에서 石吾 李東寧선생을 기리며 쓴 내용이다. 한국독립운동사에서 석오만큼 폭넓고 헌신적이며 종시일관 독립운동에 생애를 바친 분도 흔치 않다. 그에 비해 평가와 관심이 크게 뒤진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실제로 임시정부는 석오의 애국심과 포용력으로 유지된 바 크다고 하겠다. 8·15해방까지 임정이 유지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한 것은 석오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후계자’백범은 석오에 의해 발탁되고 지도되었다. 두사람은 7년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혈맹의 義’관계에서 항상 석오가 백범을 발탁하고 지도하는 입장이었다. 석오가 아니었다면 백범의 존재는 나타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1904년 석오는 항일청년단을 만들면서 무명청년 백범을 상동교회 청년회에 가입시켰다. 이때부터 두 사람은 혈맹의 동지가 되었다. 1919년 4월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된지 며칠후 백범은 임정의 문지기라도 하겠다고 석오를 찾았고 그의 노력으로 당시 내무총장이던 안창호 밑에서 경무국장으로 일하게 되었다. “이(利)를 보면 겸양을 생각하고 의(義)를 보면 위험을 무릅쓰는” 석오의 인품을흠모해온 백범은 항상 그와 함께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이런 인연으로 해방후 백범은 아들 信을 시켜 중국땅에 외롭게 묻힌 석오의 유해를 고국으로봉환하여 서울 효창공원에 안치하였다. 석오의 생애는 국내에서 선각적 개화운동의 전기와 임정을 이끌면서 망명생활로 생애를 마친 후기로 나눌 수 있다. 만민공동회의 연사로 나서 잘못된정치를 탄핵하다가 이준·이승만과 함께 옥고를 치루고, ‘제국신문’논설위원, YMCA운동, 을사조약 반대 결사대로 대한문 앞에서 연좌시위, 안창호·양기탁등과 신민회조직, 안창호·이회영과 전국에 교육단을 조직하고 ‘대한매일신보’발행 지원, 상동학교 설립 등 37세때까지 국내에서 구국운동에 앞장섰다. 한일합병 뒤 만주로 망명,서간도에서 이회영·이시영 등과 한국인 자치기관인 경학사(耕學社)와 신흥학교를 설립한데 이어 한국군관학교를 세우다가투옥되는 등 만주지역의 항일투쟁을 주도하다가 3·1항쟁후 임시의정원 초대의장으로 상해임시정부 수립에 핵심적 역할을 하였다. 석오는 망명길에 나서면서 자식들에게“우리가 이제 합병의 참변을 당하였으니 왜놈들은 우리를 금수와 같이 다룰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도 아버지를따라 중국으로 망명의 길을 떠나자. 나라없는 백성은 어디를 가나 서럽고 비참한 것이다. 만리타향 객지에서 고생할 각오를 한 몸, 그러나 내가 죽기 전에 조국이 광복되는 것을 볼 수만 있다면 나는 그 이상의 더 큰 소망이 없겠다.”고 당부하면서 다시 못올 고국을 떠났다. 석오는 임정의 내무총장, 대통령직무대행, 국무령, 주석 등 요직을 지내고 백범과 함께 임정을 이끌었다. 1935년에는 한국국민당을 조직, 당수로 추대되어 항일 구국투쟁을 지도하였다. 1940년 3월 13일 중국 사천성 기강현 임시정부 청사의 초라한 이층방에서한 많은 생애를 접을 때그의 나이 72세였다. 임정은 간소한 국장으로 그의장례를 치렀다. 해방은 그러고도 5년 뒤에야 찾아왔고 석오의 유해는 3년 뒤에야 그리던 고국에 안장되었다. 뒤늦게나마 석오선생의 독립정신과 애국혼이 선양되어 정직한 역사가 쓰였으면 한다. 김삼웅주필kimsu@- 李東寧선생 연표 ●1869년 충남 천안서 출생●1892년 국가고시 응제진사에 합격●1897년 독립협회 활동으로 7개월간 옥고 치름●1905년 ‘을사조약’ 체결에 항의,연좌데모로 2개월 옥고치름●1907년 신민회 조직에 참여●1910년 만주서 신흥학교 설립,초대소장 취임●1919년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장,국무총리,내무총장 ●1926년 임시정부 국무령●1929년 한국독립당 이사장·의정원 의장●1935년 임시정부 세번째 주석 취임●1939년 임시정부 네번째 주석 취임,전시내각 구성●1940년 급성폐렴으로 치장서 타계,임시정부 첫 국장(國葬)지냄●1948년 유해봉환,사회장으로 효창원에 안장 - 손자 李奭熙씨 및 후손 근황 “어릴 때부터 조부님께서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치셨다는 얘기를듣고 자랐습니다만 그동안 기업경영에 전념하느라고 손자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못해죄스럽습니다.이제는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으니 조부님의 기념·현창사업에 여생을 바칠 생각입니다.” 석오 이동녕 선생의 손자인 李奭熙(67)(주)대우 상담역은 석오 선생 기념사업에 관한 포부로 말문을 열었다.경기고·서울대 법대를 졸업(55년)후 중소기업체에 근무하다가 68년 대우실업에 입사한 그는 대우개발 사장·대우자동차 회장·대우 부회장·경총 부회장·대우증권 회장·대우통신 회장·대우일본법인 회장 등 대우그룹 주요계열사의 최고경영자를 두루 거친 ‘대우맨’이다. 그의 부친,즉 석오 선생의 아들 李義植씨(1900년생)는 유명한 내과전문의였다.일제때 보성전문학교의 교의(校醫)를 지낸 그의 부친은 미군정 당시 민주의원·한독당 조직부장 등 정계에서 활동하기도 했다.또 반민특위의 특별검찰관으로도 활동했으며 이듬해 6·25 와중에 납북됐다. 2남3녀의 형제 가운데 그는 차남이다.그의 형 喆熙씨(75년 작고)는 경기고·보성전문 출신으로 보사부장관비서관,문교부 편수국장·기획관리실장,서울교대 학장 등을 지냈다. 그동안 그는 석오 선생의 독립운동 공적을 널리 알리기위해 소리없이 많은일을 해왔다.우선 그는 ‘이동녕연구’의 일어판(94년)·중국어판(98년)을사재로 출간했다.89년에는 ‘백범일지’의 필사본을 책으로 출간,앞서 출간된 ‘백범일지’가 원본의 상당부분을 누락시킨 사실도 밝혀냈다.또 작년에는 석오 선생이 상해임시정부 임시의정원의 초대의장(현 국회의장격)을 지낸 사실을 토대로 국회의사당 내에 석오선생의 흉상을 건립하였는데 그는 이를 큰 보람으로 여기고 있다. 정운현- '臨政 의 거인' 李東寧 석오(石吾) 李東寧(1869∼1940) 선생은 임시정부 탄생의 주역이자 임정의‘기둥’이었다.임시정부가 공식출범하기 직전인 1919년 4월 10일 임시의정원의 초대의장으로 선출된 선생은 국호(國號)와 임시헌법·관제(官制)를 제정,3일후인 4월 13일 임시정부 수립을 만천하에 선포하였다.선생은 임시의정원 초대의장을 비롯해 의정원 의장 3회,주석(主席) 4회 등 무려 일곱 차례나 임정의요직을 역임하였는데 이는 임시정부사를 통털어 선생만이 유일한 기록이다. 석오 선생이 임정내 이념·계파간의 갈등 속에서도 별다른 ‘잡음’없이 요직을 중임한 것은 선생이 공명정대한 업무처리와 온후한 인품으로 존경을 한 몸에 받은 때문이다.이 때문에 선생은 임정이 내부갈등이나 일제의 탄압으로 난국을 맞을 때마다 중책을 맡아 임정을 위기에서 구하곤 했다.일제는 이러한 선생을 회유,이용하기 위해 조선인 관리 洪承均을 시켜 선생에게 추파를 던졌으나 이를 즉석에서 일축,이 일로 선생의 부친이 원산에서 일경에 체포돼 옥고를 치뤘다. 합리주의자였던 선생은 출신지역·계급을 초월하여 인재를 등용하였다.기호(畿湖)지방의 양반출신들이 주축을 이루던 신민회(新民會)에 황해도 출신의‘무명인사’ 백범 金九를 추천하여 가입시킨 것이 대표적 사례다.이 일로두 사람은 남다른 ‘관계’를 맺게 되었다.백범은 ‘백범일지’ 곳곳에 선생의 행적과 개인적인 친분에 대해 언급해놓고 있는데 이는 평소 백범이 선생을 독립운동계의 선배 이상으로 예우한 것으로 보인다.48년 ‘남북협상’차북한을 다녀온 백범이 아들 信을 시켜 모친(곽낙원)과 처자(최준례·김인)의 유해를 봉환해오면서 이 때 같이 봉환해온 분이 바로 석오 선생과 임정 국무위원겸 비서장 출신 車利錫 선생이었다.62년 선생은 건국훈장 대통령장(2등급)을 추서받았는데 이를 두고 적절치 못하다는 지적이 많다.임정 정부수반급은 대개 1등급을 받았으며 심지어 李承晩의 비서 출신 임병직씨도 1등급을 받았다. 임정요인 출신 趙擎韓 선생은 생전에 “선생은 지위나 돈 따위를 탐내지 않는 순결무구한 분으로 모든 독립운동가들의 으뜸이었다”고 회고했다. 정운현- 李東寧 선생 효창공원 묘소서 오늘 추모식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80주년을 맞아 임시정부 주석과 임시의정원 초대의장을 지낸 石吾 李東寧 선생의 ‘제59주기 추모식’이 13일 오전 11시 서울용산구 효창공원 석오선생 묘소에서 열린다. 석오선생 기념사업회(회장 姜英勳)가 주최하는 이 추모식은 추모기도와 석오선생 약사보고,추모사·추념사,추모가 제창,헌화분향의 순으로 진행된다. 행사 진행을 맡은 석오기념사업회 金錫營 부회장(69)은 “3·1독립만세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80주년을 맞아 거행하는 올해의 추모식은 감회가남다르다”고 말했다.60주기인 내년에는 추모 학술세미나를 개최하고 재정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장학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다. 추모식에는 崔圭鶴 국가보훈처장, 高建 서울시장,尹慶彬 광복회장,朴維徹독립기념관장,국민회의 張在植·李錫玄·鄭漢溶의원,자민련 李東馥의원,한나라당 李漢東·吳世應·徐廷和·朴明煥의원,李奭熙 석오선생 유족회장,李元範 3·1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李榮載 대종교 총전교,金信 백범선생기념사업회고문을 비롯한 각계 인사 3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상록
  • 굄돌-성의 평등한 관계를 향한 ‘다카선언’

    최근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막을 내린 세계여성대회에서 ‘매춘은 직업,오락,경제의 한 분야로 규정할 수 없다.(매춘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며 인권침해다’라는 ‘다카선언’을 채택했다.섹스관광이나 성상품화 금지 등을 권고한 이 선언은 21세기를 향한 여성들의 메시지다.그러나 인류사회의 이상이 되어야할 ‘성의 평등한 관계’는 결코 쉬운 과제는 아니다. 오래전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하던 시절,매춘문제를 놓고 토론을 벌이면 남자들은 매춘이 ‘필요악’이라는 논리를 폈다.그러나 다카에 모인 여성들은 매춘은 직업이 될 수 없으며 여성폭력이라고 단호하게 선언했다.매춘은필요악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폭력이자 나쁜 것,근절되어야 하는 사회악이라는 것이다.다카선언이 당장 매춘이나 성상품화를 근절할 수는 없다해도 그선언의 의미는 크다. 최근 ‘남녀차별금지 및 규제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모든분야의 성차별이나 성희롱에 규제가 가해지게 됐다.그러나 이를 받아들이는대다수 남성들의 이해수준은 매우 낮고 더욱이 문제의 핵심을 벗어나는 것같아 아쉽기 그지없다. 성희롱으로 신고되면 처벌받을까 두려워진 남성들이 ‘이런 것도 성희롱에포함되느냐’ 여직원을 목석으로 보는 훈련이라도 해야하는 거야’는 문의가 쇄도한다는 현실은 성희롱 규제가 지닌 참뜻을 이해하지 못해 벌어지는 해프닝이다.또 어느 대학에서는 올해부터 ‘순결학과’를 신설한다고 하고,‘생식을 위한 성’이 성교육의 전부인 것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순결학과는 무너진 성도덕을 바로 세워보겠다는 뜻일 것이다.하지만 성도덕은 여성만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이중적 잣대로 보아서는 안된다. 여성의 몸과 성에 대한 가부장적 사회가 가해 온 통제의 역사는 길다.남녀간에 널리 적용되는 이중적 성규범과 ‘왜곡된’ 성관계·성문화는 종교·도덕·이념적 포장을 하더라도 불평등한 남녀관계의 거울일 뿐이다.최근 통관된 법으로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에 성희롱을 포함한 각종 성차별 조사,시정 권고권이 부여된 것은 ‘성의 평등한 관계’를 위한 필요한 조치다.
  • ‘민중의 시인’ 김남주 추모 작업 다채

    70,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중심에 섰던 시인 김남주.오는 13일은 그가 48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한 지 5년째 되는 날이다.김남주 시인의 사망 5주기를맞아 다채로운 추모작업이 펼쳐지고 있다. 김씨의 서간집 ‘편지’(이룸)와 미망인 박광숙씨의 수상집 ‘빈 들에 나무를 심다’(푸른숲)가 나온 데 이어 문학동네에서는 김씨의 서정시집 ‘낮달’을 12일에 펴낸다.또 시비(詩碑) 건립이 추진중이며 그를 기리는 문학기행도 예정돼 있다. ‘시인’이라기 보다는 ‘전사’를 자처한 광야의 선지자,비인간적인 이데올로기에 혁명의 순결성으로 맞선 민족주의자,분단시대의 철조망을 걷어차던 선봉대장…. 그에게 시는 단순한 문자놀음이 아니다.그것은 민족현실을 타개하는 변혁의 무기요,시대정신의 광맥을 더듬는 유용한 연장이다.그런 만큼 그에게는 과격한 투사의 이미지가 따라다녔다.그러나 그의 서정 시편들을읽다보면 그가 왜 ‘한국의 하이네’로 불리는가를 대번에 알 수 있다.그는때로 사랑을 노래하는 음유시인으로 민중 앞에 선다. “내가 손을 내밀면/내손에와서 고와지는 햇살/내가 볼을 내밀면/내볼에와서 다스워지는 햇살/깊어가는 가을과 함께/자꾸자꾸 자라나/다람쥐 꼬리만큼은 자라나/내 볼에 와서 감기면/누이가 짜준 목도리가 되고/내 입술에와서 닿으면/그녀와 주고 받고는 했던/옛 추억의 사랑이 되기도 한다”(‘창살에 햇살이’ 전문) 시의 행간에는 소월이 어른거리고 영랑이 얼비친다. 시집 ‘낮달’에는 ‘창살에 햇살이’‘물 따라 나도 가면서’‘고뇌의 무덤’‘황소 뒷다리에 붙은 진드기 같은 세상’‘솔연(率然)’등 60여편의 작품이 실렸다. ‘편지’는 79년 남민전 사건으로 15년을 선고받은 김씨가 투옥생활중 아내에게 보낸 100여통의 편지를 묶은 것.시시각각 옥죄 오는 삶의 벼랑에서도희망을 갈무리하는 시인의 마음이 담겼다. ‘빈 들에 나무를 심다’는 암으로 남편을 저 세상에 보낸 미망인 박씨가사부곡(思夫曲)삼아 쓴 산문집이다.강화도에서 외아들 토일군과 함께 살아온 5년간의 삶을 들려준다. 한편 민족문학작가회의(02-313-1486)는 오는 20,21일 김남주 문학기행을 떠난다.문학기행은 서울을 출발해 전남 해남의 김남주 생가를 방문한 뒤 광주망월동 묘역에 안장된 김씨 묘지를 참배하는 순서로 진행된다.5월엔 그의 묘지 곁에 시비를 세울 예정이다.金鍾冕 jmkim@
  • ‘역사’ 두렵거든 바른 길을/金三雄 주필(특별시론)

    수명의 사형수중에는 16세 소년도 떨며 옆에 서 있었다.“아플까요?”라고 소년이 묻자 “아니야,전혀 아프지 않아”라고 말하면서 부드럽게 소년을 감싸주며 ‘프랑스만세’를 외친 마르크 블로흐는 맨 먼저 쓰러졌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역사가이며 소르본대학 교수를 지낸 58세의 블로흐는 나치병사들에 의해 이렇게 처형되었다.“아빠, 도대체 역사란 무엇에 쓰느 것인가요?”란 첫마디로 시작되어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린 ‘역사를 위한 변명’의 저자는 독일패망을 목전에 두고 리옹 근처의 벌판에서 행동하는 지식인의 삶을 접었다. 역사란 무엇에 쓰는가,역사를 우습게 아는 사람들에게 역사의 효용가치란 자장면 한그릇보다 못할지 모른다.블로흐는 그 명제를 완성하지 못한채 비명에 갔지만 역사에 대한 질문은 많은 사람들에게 의문을 남긴다. 이와 관련,‘시간은 세계사의 심판관’(헤겔)이란 말은 명언이다.시간이 축적되면 역사가 되고 역사를 쪼개면 시간이 된다.신을 믿지않고 종교를 부정하더라도 시간과 역사만은 믿지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시간과 역사만큼 진실과 거짓,정의와 불의를 공정하게 판별해주는 심판관은 다시없기 때문이다. 사마천의 통곡도, 백이숙제의 원망도 시간이라는 역사가 모두 해결해주었다.단종의 절규와 사육신의 분노도 시간이 모두 들어주었다.천도(天道)마저 침묵한 사마천의 아픔,백이숙제의 억울함, 단종과 사육신의 피맺힌 한을 천도를 대신하여 시간이 풀어주고 역사가 옳게 평가했다. ○당대사를 보라 당장 우리시대의 당대사를 살펴보자.나라를 판 대가로 부귀영화를 누리던 매국노와 변절자들이 ‘친일파’로 지탄받아 후손들이 조상을 원망하면서 살고 쿠데타와 양민학살을 일삼던 살인자들은 떳떳하게 사회활동을 하기 어려운 반면 그들에 저항하여 몸을 던졌던 분들은 ‘민주열사’로 대접받는다. 어찌 천도가 무심하며 역사가 눈멀었다고 하겠는가.아직 친일파와 양민학살 세력이 활개치고 있지만,그들은 명분과 국민의 눈총에서 점차 설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시간은 한국사의 심판관이기도 하다. ○대한매일의 역사관 ‘生의 권력의지’를 필생의 중심개념으로설정한 니체가 시간의 가치를 탐구한 것은 당연하다.그는 인간의 삶의 시간성을 동물의 무시간성과 구별하여 “그대곁을 지나가는 가축을 보라.저들은 내일이 무엇이고 오늘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다만 고락에만 매달려 있으니 곧 그들의 순간의 일편(一片)에만 매달려 있기때문에 우수도 권태도 알지 못한다”고 개탄했다.그러면서 니체는 인간의 숙명적 기능을 ‘어제를 기억하고 내일을 아는 것’이란 명쾌한 해답을 제시했다. 시간과 역사의 가치를 잊고 사는 사람이 너무 많다.권력을 탐하거나 물욕에 빠지는 사람,퇴폐행각을 즐기는 부류,곡필아세를 명예로 착각하는 지식인이 너무 많다.이런 현상은 시간 역사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고 순간의 쾌락과 동물적 포만을 즐기려는 반시간 반역사적인 ‘인간모독’이다. 1세기전 국운이 바람앞의 촛불과 같았을 때 양기탁 박은식 신채호 장도빈 등 대한매일신보 주필을 맡았던 선각자들은 국권수호에 온몸을 던졌다.이들은 지사적 순결주의, 도덕주의, 순교주의까지 지닌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거룩한 언론인들이었다.이들의 한결같음은 항일구국운동가,정론언론인,바른 역사학자라는 일체성이다.아마 이들이 믿었던 신이 있었다면 ‘역사’또는 ‘역사법칙’이 아니었을까. 당시 많은 권력자,지식인들이 시류를 좇아 매국의 대열에 설때 이들 선각들은 고난을 마다하지 않고 역사의 대열에 섰던 것이다.白凡의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정도(正道)냐 사도(邪道)냐가 생명이라는 것”도 바로 이런 역사법칙의 준거라 할 것이다. 역사를 흔히 대하장강(大河長江)에 비유하지만,역사는 모든 오물을 받아들여 스스로 썩는 강물과는 다르다.역사란 받아들일 것은 받고 배척할 것은 배척하면서 종국에는 반드시 바르고 옳게 회귀하는 것이 역사,그 대하장강의 법칙이고 엄숙성이다. ‘역사’가,그 평가가 두렵거든 진실과 정도를 걸으라.이는 바로 ‘대한매일’이 추구하는 역사관이며 마르크 블로흐가 꿈꾸었던 ‘역사의 쓰임새’이기도 하다.
  • 윤대녕씨 장편 ‘달의 지평선’/감옥간 친구의 애인과 결혼­이혼…

    ◎세기말적 사랑과 시대의 상처 그려 90년대 감수성의 상징적 작가로 꼽히는 윤대녕씨(36)가 ‘추억의 아주 먼 곳’에 이어 2년 6개월만에 새 장편소설 ‘달의 지평선’(전2권,해냄)을 내놓았다. 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살아온 불특정 다수에 해당하는 한 개인의 세기말적인 사랑과 시대의 상처를 그린 작품. 10년의 기간을 시간배경으로 한 이소설은 한편의 긴 여행기록으로,시대의 경계에 선 인간들의 불안한 존재의식을 더듬는다. 이를 위해 작가는 80년대 상처에 대한 90년대식 문답풀이라는 소설적 장치를 동원한다. 주인공은 80년대의 상처를 간직하고 있는 남창우. 그는 87년 6·29선언뒤 감옥에 간 친구의 애인과 결혼하나 이내 이혼한다. 새로운 여자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녀 역시 곁을 떠난다. 이같은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그는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가 파탄에 이른 원인을 자기 안에서 발견한다. 그리고 자신 뿐 아니라 타인의 삶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9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차라리 상처 투성이의 80년대로 돌아가 순결한 사랑과 참된 인간성을 회복할 것을 당부한다. 기울고 차면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달의 영휴(盈虧) 이미지는 시대에 따라 바뀌는 사랑의 양상에 관한 은유. 소설 제목 ‘달의 지평선’은 바로 이를 시사하는 것이다.
  • 白堊館 포르노(林春雄 칼럼)

    70년대 후반,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이다.카터 대통령의 결혼한 아들과 며느리가 백악관에서 얼마동안 함께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문제가 됐다. 대통령과 부인,미혼 자녀들의 백악관 생활비는 정부가 지불할 수 있으나 결혼한 자녀의 생활비까지 국민의 세금으로 낼 수는 없지 않느냐는 의문의 제기였다.이 문제가 언론의 시빗거리가 되자 대통령이 기자들 앞에 나와 아들 가족의 생활비는 개인적으로 지불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한 식탁에서 밥을 먹은 대통령과 아들의 식비를 어떻게 나누어 냈는지 후문은 전해듣지 못했으나 백악관은 그러고야 무사했다.석유파동때는 겨울을 앞두고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에너지 절약을 호소한 바 있었다.공교롭게도 그해 겨울 백악관 난방비가 전년에 비해 더 많이 지출됐다는 사실이 다음해 봄에 밝혀졌다.대통령은 이 문제에도 공개적으로 사과를 해야했다. ○사생활과 대통령직 수행 백악관이란 그런 곳이다.수백명의 기자들이 24시간 초롱초롱 눈망울을 굴리고 있고 세계의 촉각이 모아져 있는 매우 특별한 곳이다.이런 백악관에서 대통령이 백주,그것도 근무시간에 젊은 여직원과 일을 벌였다.대통령의 도덕성이 문제인 것은 무론(無論)이거니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판단력이다.그런 일을 하고도 무사하리라고 생각했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다수 미국민들은 아직도 대통령의 사생활은 사생활이고 대통령직 수행은 별개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이런 점은 항상 점잖은 한국 사람들로서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일면이다.미국사람들이 얼마나 실용적인가를 보여주는 실례라 할 것이다.미국의 이같은 실용주의가 과연 언제까지 유효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이번 사건을 보고 어떤 칼럼니스트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종말”이라고 우려했다.미국의 상업주의가 사태를 이토록 키워놓았다는 것이다.백악관의 그 순결한 이미지는 어떻게 할 것이며 미국의 지도력은 또 얼마나 손상됐는가. 프랑스의 르몽드지는 ‘미국식 지옥’이란 사설에서 클린턴 대통령의 위증을 입증하기 위해 그토록 수치스럽고 혐오스런 성행위 내용을 세밀하게 묘사해야 하느냐고 반문하고 있다.케네스 스타 검사는 이같은 ‘백악관 포르노’를 제작해 내기 위해 물경 400만달러의 국민세금을 추가해 소진(消盡)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악역을 한 것은 역시 언론이다.음란한 용어가 무려 5,000자나 포함된 보고서 내용을 그대로 보도한 것이다.공개하지 않기로 했던 클린턴의 대배심증언마저 끝내는 방송되고 말았다.이런 저런 변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언론의 추악한 상업성이다. ○위험 천만한 언론 상업성 평소 어느 신문이 이런 유의 내용을 활자화했다면 “비열한 선정주의”라고 필시 펄펄 뛰었을 미국의 권위지들도 대통령의 일이란 이름으로 아무런 죄의식 없이 모든 것을 활자화했다.음란성 표현을 삼가야 한다는 것은 공익 언론의 기초적인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일반의 것은 안되고 백악관의 것은 괜찮을 성질의 일이 아니다. 한국언론도 마찬가지다.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신문윤리 규정을 갖고 있는 한국의 신문들은 한국의 문화적 현실을 고려해 적절치 못한 용어는 다소 완화해 소개한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결국 쓸 것은 다 썼다. 이번 사건이 세계에 전하는 메시지가 적지 않다.특히 상업언론에 주는 경고를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 사간동 갤러리현대서 ‘우연의 만남’展

    ◎3인의 젊은 작가 3색깔의 작품세계 3개층서 전시회/노상균­밤무대 의상 스팡클로 순결함을 표현/도윤희­새벽녘 안개의 숲 연상시키는 추상화/서정국­대나무와 철의 조화와 反조화 눈길 국내 화단에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노상균 도윤희 서정국 등 3명의 젊은 작가가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 현대(734­8215)에서 ‘우연의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동시에 전시회를 갖는다(9월2일까지). 이들은 남이 관심을 갖지 않는 특이한 대상과 재료에 주목,독특한 조형세계를 구축하는데 비교적 성공한 작가들로 각각 한 층의 별도의 공간에서 자신의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노씨는 재료의 특이함과 끈질긴 장인정신으로 주목을 받아온 작가.그는 밤무대 의상에서 볼수 있는 스팡클을 재료로 환상적인 입체와 평면작품을 선보인다. 푸르른 바다를 연상시키는 미니멀 회화,하얀 스타킹을 신은 듯한 하반신, ‘시퀸’이라 불리는 반짝이는 재료 자체로는 유치한 느낌이 들지만 노씨의 손에서 예술품으로 완성되는 순간 재료적인 속성과는 정반대의 순결함과 그윽함을뿜어낸다. 빛의 반사각에 따라 동심원을 그려내기도 하고 오목,볼록 등 입체감과 함께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것도 이 작업의 매력이다.실로 연결된 수천개의 시퀸을 한개씩 풀로 붙여나가는 수공과정에서 장인정신이 느껴진다.노씨는 서울대 미대 회화과를 졸업했으며 미국 뉴욕의 플랫 인스티튜트에서 수학했다. 한국미술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작고작가 도상봉씨의 손녀인 화가 도윤희씨는 올해초 처음 참가한 마이애미 아트페어에서 예상외의 돌풍을 일으켜 화제를 모았던 주인공. 이번 전시에는 현미경을 통해 본 세포분열과정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추상화가 선보인다.연필과 유채로 그린 작품은 그러나 세포 분열과정과는 아무 연관성이 느껴지지 않는다.그보다는 새벽녘 뽀얀 안개에 뒤덮인 숲을 연상시킨다. 도씨는 성신여대 미대 서양화과를 나와 92년부터 2년동안 미국 일리노이주립대학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일했다.오는 9월 뉴욕 아트페어 참가 예정.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활동해온 서정국씨는 나무 철 산업폐기물 사진 비디오 등을 소재로 창작열을 과시해온 작가.이번 전시에는 철을 소재로 대나무 형상의 작품이 선보인다.대나무는 그에게 고향과 유년시절을 상징한다. 철을 토막내 용접과정을 거친 뒤 연결한 이 작품에서 휘어는지지만 꺾이지는 않는 대나무의 강인함이 철의 속성과 조화를 이룬다.홍익대 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후 독일 쿤스트아카데미에서 수학했다.현재 계원예술대학 조형과교수로 재직중이다.
  • 베르디 오페라 ‘팔스타프’(명반과 함께하는 음악여행:8)

    ◎주세페 베르디/희극,일상과 노년의 과정/호색한 팔스타프卿 계교에 빠져 망신살/세익스피어 원전으로 비극 극복의 오페라화/더 우월한 삶의 亂場 일상스민 죽음의 미소/83세 토스카니니 지휘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1.여인숙 술집. 응축한 음악이 웃음을 폭발시킨다. 그리고 ‘응축과 폭발’이 시작부터 의인화(擬人化),따아,따아,딴,단 세 음(音)으로 딴전을 핀 후 씩씩하게 돌아다닌다. 뚱보에다 배불뚝이,모주꾼에 호색한인 팔스타프가 그렇게 소개된다. 소개는 반복되고 장면이 진행된다. 정작 팔스타프는 술에 쩐 상태. 게으르게 퍼져있다. “팔스타프!” 박사가 문을 박차고 들어오며 그렇게 눈을 부라리지만 그는 대꾸가 없다. “팔스타프경!” 박사가 그렇게 고함을 질러도 소용이 없다. “왜 내 하인들을 두들겨 패고 그러나.” 그렇게 다그치는 박사를 그는 아예 무시해버린다. “주인장! 세리주 한 병 더!” 음악은 팔스타프 대신 돌아다니고…. 희극 오페라(오페라 부파) ‘팔스타프’는 그렇게 시작된다. 가장 빠른 시간에 가장 적절한 웃음 의 축제를 위한 무대가 그렇게 마련된다. 팔스타프는 유부녀를 꼬셔 재미도 보고 재정문제도 풀어보려 한다. 그러나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는 오히려 그 여자와 자기 주변사람들이 꾸민 계교에 빠져 지독하게 골탕먹고 호되게 망신당한다. 그것도 두 번 씩이나. 팔스타프는 실의에 빠지지만 끝내는 술과 웃음으로 낙천적이다. 해피엔딩도 있다. 젊은 딸이 ‘완고한’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젊은 연인과 결합에 성공한다. 2.오페라 ‘팔스타프’의 이야기장(場)은 이렇듯 매우 평범하다. 대본 자체가 셰익스피어 희극 ‘윈저의 유쾌한 아낙네들’과 사극 ‘헨리 4세’를 원전으로 하고 있다. 음악의 장은? 다르다. 의인화한 음악=웃음이 오페라가 진행되는 동안 내내 응축,폭발과정을 심화­확대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두 장의 관계 속에서 ‘과정’이 결론을 극복하는 광경. 일상을 매개로 웃음이 성(性)의 온습(溫濕)과 음탕을 포괄한다. 그리고 바로 그 과정속에 다시 젊고 청아한 사랑이 탄생한다. “내 황홀의 노래가 내 입을 떠나 깊은 밤멀리 여행한 후 다른 사람의 입술을 만나고 그 입술이 단 한마디 대답해준다면 음악은 더 이상 홀로 있지 않고 은밀한 조화의 기쁨에 떨고 동틀 무렵 사랑으로 온 공기를 채우며 원래 입술로,다른 목소리와 함께 돌아오리니 돌아와 다시 소리를 얻고 그러나 노래의 목적은 자신을 가르는 것을 통합시키는 것 뿐 그렇게 나는 연인의 입술에 입맞추었네…” 그(가사와 선율의 겹침이 자아내는) 청아함은,낭만주의와 달리,문명의 나이를 아는 청아함이다. 그것은 비비꼬이지만 비비꼬임 자체를 순정성(純正性)의 자양분으로 전화한다. 그리고 육체의 순정­순결성보다 우월한 역사적 순정성을 일상 속에 창조한다. 이것은 상부구조의 반영인 비극을 하부구조의 반영인 희극이 극복하는 ‘과정’ 그 자체의 음악­오페라화에 다름아니다. 3.고대 그리스비극에서 일상인은 전령,보초 등 미미한 역할 뿐이었다. 그들의 우스갯소리가 하부구조의 유일한 반영이었다.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에서 웃음은 ‘음탕을 동원한’ 정치 풍자였다. 그렇게 시작된 연극에서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극복하는데는 2천년 이상이 걸렸다. 오페라 부파는 연극의 극복과 더불어,특히 이탈리아 희극과 춤에서 탄생한다. 그리고 다시 200년 이상의 발전 과정을 거쳐 베르디의 ‘팔스타프’에 달한다. 그토록 허랑방탕했던 웃음이 음악을 매개로 총체보다 더 우월한 삶의 난장(亂場)을 펼친다. 아니,난장으로 펼쳐진다.동시에 난장을 포괄하는 새로운 총체가 예감된다. 매우 강력하게. 이때,무엇이 보이는가. 아,음악이 죽음을 매개한다. 일상에 스며든 죽음. 그 죽음이 음악의 모습을 띠면서 모종의 미소를 흘린다. 마침내 검은 가면도 없이. 삶과 죽음이 살을 섞는 성(性)과 성(聖). 세속의 종교화. 그 속에 바리톤과 테너가,남자와 여자가,선율과 가사가,아리아와 레시타티브가 각각 완벽하면서도 더 큰 총체를 구성한다. 페르골레시­로시니를 계승한 오페라부파 테너 청아성(淸雅聲)의 경지가 절정에 달하면서 그 모태(母胎)인 바리톤 영역과 완벽하게 한 몸으로 겹쳐진다. 아니 그것은 이미,새로운 총체의 음악화이다. ‘팔스타프’에는 여느 오페라작품을 능가하는 아리아와 중창이 수두룩하지만 따로 분리되어 불리는 경우는 드믈다. 비극은 일상을 끝내지만 희극은 죽음을 일상속으로 ‘연장’시킨다. 희극이 낭만적일 수는 있어도 낭만주의적일 수는 없는 까닭이다. 이탈리아 부파 음악은 독일­프랑스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것은 그날그날의 이름없는 일상으로 존재하면서 모차르트­바그너를 비롯한 오페라 대가들에게 ‘열등감의 교과서’로 작용했다. ‘팔스타프’는 그 과정을 역전시킨다.베르디로 하여 이탈리아는 대망하던 일상의 이름을 갖게 된다. 4.베르디는 1893년,즉 80세 때 ‘팔스타프’를 무대에 올렸다. 출세작 ‘나부코’(1841),대 히트작 ‘리골레토’ ‘라트라비아타’등을 거쳐 ‘아이다’(1870)를 끝으로 무대 은퇴를 선언한지 장장 23년 만의 일이었다. 아 그랬던가. 체념과 노년의 과정조차 이 작품은 요했던 것인가. 대본작가 보이토는 베르디와 예술적으로 대립했던 사람. 그렇다. 이 작품은 화해의 과정조차 요했다. 그 모든 과정들이 ‘팔스타프’의 과정으로 응축­폭발,수천년 문명의 나이를 먹은 웃음을 노년화하면서 동시에 일상 속에 낯익은 죽음의 모습을,웃음으로 형상화 한다. 그렇게 과정이 과정화하고 그 총체를 능가하고 죽음은,허망한 채로,위안에 가깝다. 이 위대한 ‘과정의 미학’을 전설적인 지휘자 토스카니니가 83세의 나이로 연주한다. 그는 27세 때,즉 ‘팔스타프’ 초연 1년 후 이 작품을 직접 지휘했다. 그후 둘 사이에 깊은 예술적 교감이 오간다. 그렇다. ‘팔스타프’는 토스카니니의 과정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팔스타프’를 통해 토스카니니의 뿌리 깊은 바그너 취향이 극복된다. 그런 그의 83세 노년 연주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1950.4&8 녹음. 1990. BMG60251­2­RG 바리톤 주세페 발뎅고 외(外) 로버트 쇼 합창단(지휘:로버트 쇼)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아르투로 토스카니니
  • IMF시대 여성象/李春鎬 여성유권자연맹 회장(서울광장)

    한국인을 고개숙이게 한 IMF 한파의 위력은 밉지만 우리 사회의 남녀 역할관을 변화시키는데는 큰 공헌을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게도 단단히 닫혔던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이 아침 햇살에 서리 걷히듯 아스라이 녹아 내리면서 여성상에 대한 변화의 문을 열고 있기 때문이다. 몇 달전까지만 해도 가냘프고 늘씬한 서구적 외모와,귀엽고 사랑스러우면서도 순결함을 지닌 다소곳한 현모양처형이 여성을 평가하는 가치기준이 되어 왔다. 그로 인해,여성들은 아름다워지려는 욕망에 거의 모든 것을 투자하고 낭비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IMF시대의 경제적 고통이 이제 겨우 7개월을 넘기고 있는 시점에서 남성들이 원하는 여성상이 급속도로 바뀌고 있다. 요사이 영화나 만화,그리고 광고 속에서까지 푼수스럽더라도 돈 잘 벌고 억척스러운 여성이 각광을 받고 있다. 영화 ‘GI제인’의 데미 무어같은 독립적이며 강한 투사형의 여성,가정경제를 잘 꾸리고 남편 기살리는 사랑스런 여성,이 두 역할을 완벽하게 해 낼 수 있는 여성을 이 사회와 남성들은 당장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돈 잘버는 억척여성 각광 하지만 IMF시대가 끝나고 우리 사회의 힘든 상황이 모두 끝난 뒤에도 남성들은 진정으로 당당하고 능력있는 전문직 여성과 투사적인 여성 해방군과 같은 억순이를 이상형의 여성으로 생각할 것인지에는 의문이 간다. 남성들의 편의와 요구에 여성이 맞춰지는 한시적인 사회현상보다는 여성 스스로 변화돼야 한다.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변화하느냐는 것이다. 이에 해답을 주 듯,바버라 마코프가 쓴 ‘딸,이렇게 키워라’와,저넷 게이트버그의 ‘강한 딸 만들기’등에서 여성이 강하고 행복한 존재로 새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책들은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시몬 드 보봐르의 실존주의 철학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지금 이 시대에 가장 필요로 하는 여성상의 방향타를 설정하는데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남성 역시 변화해야 한다.근육질의 표정없는 포커 페이스에 가족의 짐을 혼자 짊어지고 끙끙대는 미련한 남성이 아니라 부드러움과 융통성을 갖고 가정적 역할을 공유하는 그런 남성을 이 시대는 원하고 있다. 지금은 남녀 모두가 열린 사회를 위해 새롭게 변해야 한다. ○열린사회 남녀 모두 변해야 이제는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남성과 그 사회문화의 잣대에 의해서 재단되지 말고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전 생애에 걸쳐 노력할 때 자율적인 민주시민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다.즉 자율적인 인간으로서 살아가겠다는 깊은 깨달음이 내면으로부터 솟구칠 때 자신의 가치를 공평하게 배분받을 수 있는 과정에 참여하게 될 뿐만 아니라 스스로 행복을 느끼게 된다. IMF시대를 통해서 한국 여성상의 변화 뿐만 아니라 정치판까지 깨끗하게 개혁되길 희망한다. 개혁은 언제나 할 수 있는게 아니다. 때가 있는 법이다. 정부가 개혁하고자 하는 의지가 확고하더라도 국민의 기대가 고조된 시기를 놓치고 나면 다시 기회를 얻기는 어렵다. 남녀평등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진 金大中 대통령과 여성운동 1세대인 李姬鎬 여사의 깊은 배려가 정부의 개혁 뿐 아니라 평등사회를 만드는데 반드시모아지기를 바란다. 이 모아짐을 갖고 남녀가 역사발전의 추진력이 되어 IMF 한파의 긴 터널을 지나 들꽃 만발한 평야를 모두 함께 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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