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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순천만/이춘규 논설위원

    전라남도 동남쪽 끝자락 고흥반도와 여수반도 사이의 순천만은 수많은 문인들에게 문학적 상상력의 젖줄이다. 시인 곽재구는 산문집 ‘포구기행’에서 “저문 시간이면 순천만에 나간다. 눈앞에 펼쳐지는 너른 개펄이 좋고 개펄 냄새를 이리저리 싣고 다니는 바람의 흔적이 좋다. 키 넘게 훌쩍 자란 갈대숲·갈대들의 목은 꺾여져 있다. 모두 같은 방향이다. 바람은 가끔씩 갈대숲 사이로 들어온다.”고 추억했다. 시인 나희덕은 순천만 와온마을의 낙조를 “와온 사람들아, /저 해를 오늘은 내가 훔쳐간다”고 읊었다. 그런 순천만이 용케도 개발폭풍을 피했다. 개발바람이 남해안 지역을 강타했을 때 접근성이 좋고, 드넓은 순천만도 홍역을 앓았다. 개펄을 매립해 공업단지를 유치하면 지역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며 개발론자들의 기세가 등등했다고 한다. 우여곡절을 겪은 뒤 순천만은 거기 그대로 있게 됐다. 순결함을 지켜냈다. 그래서 더 값지다고 지역주민들은 안도한다. 지금도 너른 개펄은 갈대, 철새를 품고 생명을 노래한다. 세계 5대 연안습지로 지정돼 더욱 주목받게 되었다. 등 굽은 소나무가 고향 선산을 지켜주듯 개발바람의 열병을 치른 순천만은 순천시에 효자가 됐다. 한때 무분별한 생태관광으로 훼손의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민관이 일체가 되어 생태계가 더욱 자연친화적으로 가꾸어지고 있다. 습지 생태계의 보고로 입소문 나며 공단이 들어선 것 이상의 경제적 혜택도 주고 있다. 2007년 180만명에 이어 지난해는 260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 연간 경제효과만 적게 잡아 1000억원이란다. 공업단지 효과를 훨씬 능가한다고 순천시는 분석한다. 순천만을 내세워 순천시는 ‘대한민국의 생태 수도’라고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이달 초 서울에 상주하는 외국 특파원들이 순천만을 다녀갔다. 세계 각국 환경단체 회원들이나 외국인 관광객들도 속속 방문한다. 세계적인 생태관광지라는 명성에 손색이 없다. 하지만 국내외 관광객의 급증은 순천만의 평화를 다시 심각하게 위협할 수도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세심하고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만이 순천만을 온전히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서혜정 “스컬리 목소리로 코믹영상 더 돋보인다네요”

    서혜정 “스컬리 목소리로 코믹영상 더 돋보인다네요”

    “영화 보기 전 화장실엔 다녀오셨죠? 남자는 대부분 소변을 보다 쉬야가 튀면 슥슥 비벼 닦고 손에 물을 대충 묻혀 머리를 넘기고 그냥 나가요. 여자는 대부분 휴지를 뜯어 변기에 깔고 기마자세로 볼 일을 보고 발 끝으로 레버를 내리고 손을 닦아요. 그런 남자는 순결한 손으로 김밥이나 팝콘을 건네요. 오. 마이. 갓. 대참사가 일어났어요. 혹시 지금 남친이 손으로 팝콘을 먹여주고 있지는 않나요?” 케이블 채널 tvN의 비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롤러코스터’가 인기다. 특히 남자와 여자의 행동과 사고의 차이를 다룬 콩트 ‘남녀탐구생활’이 그 중심에 있다. 그동안 기록한 최고 시청률이 2.5%. 지상파 시청률로 치면 20~30%에 달하는 수치다. 지상파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이 식상해진 상황에서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 일상 생활에서 남자와 여자의 생각과 행동의 차이를 비교해 보는 것은 어찌 보면 단순한 아이디어일 수 있지만 시청자들로부터 100%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있다. 작가들의 디테일하면서도 재기발랄한 대본, 몸을 사리지 않는 정형돈과 정가은의 연기도 인기에 한몫하고 있다. 무엇보다 ‘남녀탐구생활’의 인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는 내레이션이다. 등장인물의 행동과 대사까지 대부분 내레이션으로 처리해 무성영화의 변사를 연상케 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감정을 뺀 멀쩡한 목소리로 해설한다는 것. 코믹한 영상과 기계적인 내레이션이 묘한 조화를 이루며 인기 상승 요인이 되고 있다. ●최고 시청률 2.5%…지상파로 치면 20~30% 미국 드라마 ‘X파일’ 한국어 더빙 버전에서 스컬리 목소리를 맡아 잘 알려진 성우 서혜정(47)이 이 내레이션을 맡고 있다. 최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그녀는 “예능 프로그램은 처음”이라면서 “스컬리를 통해 지적이고 이지적인 목소리 이미지가 있었는데, 그래서 캐스팅된 것 같아요. 재미있는 영상에 이 같은 목소리가 보태지며 즐거움을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녀의 톡특한 내레이션을 담은 ‘남녀탐구생활’은 확실한 아우라를 구축했다. 네티즌의 패러디 동영상을 물론, 지상파 TV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도 패러디 코너가 봇물을 이루고 있고, 서혜정에게도 광고 제의가 밀려들고 있다. 색다른 제작 방식이 내레이션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대개 성우들은 영상을 보며 녹음하지만, ‘남녀탐구생활’은 정반대다. 먼저 내레이션을 녹음하고, 여기에 맞춰 연기자들이 연기를 한다. 생경한 작업 방식이 처음에는 너무 어색했다고 한다. 막연하게 감독의 설명만 듣고 목소리 연기를 했고 모니터링을 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감을 잡았다고. 처음에는 한 회 내용을 녹음하는 데 2~3시간 걸리고 2~3차례 다시 녹음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머릿속에 장면이 그려지기 때문에 대개 1시간 안에 끝낸다고 한다. “연기자들이 대사 없이 몸으로만 연기하니까 녹화장이 유별나게 조용하다고 해요. 성우로서 제 개성을 다 살려놓고, 연기자가 그것을 바탕으로 연기를 하니까 내레이션이 돋보이는 것 같습니다. 사실 어떻게 저렇게 만들 생각을 했을까 감탄스럽죠. 참신한 아이디어를 낸 감독과 맛깔스러운 글을 쓰는 작가 덕분에 저는 거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셈이지요.” ‘이런 된장’, ‘제기랄’ 정도는 애교. 욕을 은근히 비튼 ‘우라질레이션’, ‘스리랑카 십장생’ 등 오랜 성우 생활 동안 처음 입에 올리는 단어들도 많다. 서혜정은 “무슨 말인지 몰라서 주변에 물어보고 배우기도 했어요.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실생활에서 ‘킹왕짱’이라든가 ‘개념을 밥말아 먹어요’ 등을 사용하기도 해요.”라고 말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요즘은 아들과 밤늦게 홍대 앞을 산책하기도 한다고 했다. 트렌디를 놓치지 않고, 감각에 있어서 앞서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젊은 친구들이 나누는 대화를 직접 들어보고 익히기 위해서다. 정가은 목소리를 이전에 맡았던 애니메이션 ‘세일러문’의 마스 목소리로 낸다거나 정형돈 목소리를 최대한 펑퍼짐하고 게을러 터진 이미지를 줄 수 있게 목소리를 변화시켜 내레이션을 하는 부분은 서혜정의 창작물. 그녀는 “계속 같은 톤으로 내레이션을 하다 보니 변화를 주고 싶어 시도했는데, 시청자들이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성우라는 직업으로 옮겨졌다. 예전과는 달리 요즘에는 라디오 드라마도 거의 없어지고, 외화 더빙 작업도 줄어들며 성우의 활동 영역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 “이제 터닝 포인트를 잡는 게 성우들의 과제죠. 성우라는 울타리의 중심에 있는 선배로서 후배들을 위해서 활동 영역을 넓혀 나가야 한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이 많아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제 옷이 아닌 것 같은 작업이 있더라도 더 열심히 하게 되죠.” 그래서인지 서혜정의 목소리를 여기저기서 들을 수 있다. 루브르박물관의 한국말 서비스가 그녀의 목소리다. 타이완 국립박물관에서도 조만간 서혜정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국립묘지 안장식 과정에서 나오는 시낭송과 114에서 전화번호를 말해주는 목소리, 국세청 ARS, 삼성·현대·롯데그룹 등의 ARS 목소리도 서혜정이다. MBC ‘별이 빛나는 밤에’ 등 라디오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기도 하고, 교통방송 주말 음악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한다. ●신경숙 소설 ‘엄마를 부탁해’ 오디오북 참여 최근에는 신경숙 소설 ‘엄마를 부탁해’의 오디오북 보이스 디렉터를 맡기도 했다. “원래 저 혼자 글을 읽는 방식이었는데, 대화 부분에서 동료들의 참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출판사에 요청해 함께 작업하기도 했어요. 사실 7~8년 전에 한국 단편소설 100편을 오디오북으로 만드는 사업을 했다가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의욕만 넘친 탓에 성과가 좋지 않았어요. 하지만 오디오북 같은 분야도 개척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또 성우들이 꾸리는 스피치 아카데미 등 해보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요.” 서울예대 1학년 때 시험삼아 응시한 KBS 성우 시험에 덜컥 붙고난 뒤 벌써 27년이나 목소리 연기자의 길을 걸어온 그녀는 “엄마의 팔, 다리를 베고 함께 라디오 드라마를 듣던 어린 시절부터 성우를 꿈꿨죠. 꿈을 이룬 뒤 후회하거나 힘들었던 적이 없어요. 항상 행복합니다. 다시 태어나도 성우를 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서혜정은 뼛속까지 천생 성우였다. 글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낭만적인 사랑의 원형 찾아가기

    동화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서 용감한 왕자들은 공주의 입술에 키스를 하기 위해 불을 뿜어대는 무서운 용을 물리치려고 애쓴다. 이 동화를 잠자리에 들기 전에 거듭 읽은 어린 소녀들은 어떤 난관도 돌파하고 자신에게 돌진해올 낭만적인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며 성장한다. 왕자의 열정에 자신마저도 활활 타오를 각오와 준비를 하는 그런 낭만적이고, 열정적인 사랑을 꿈꾸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랑은 서양에서도 17세기 후반에 창조돼 확산된 사회적 체계라는 점을 아시는지. ●봉건제 붕괴로 미모·순결 등 가치 강조 ‘열정으로서의 사랑’(정성훈 외 2인 옮김, 새물결 펴냄)은 21세기 현대인들이 품고 있는 남녀 간의 환상적인 사랑의 원형을 찾아 17~18세기로 여행을 떠난 니클라스 루만 독일 빌레펠트 대학 사회학과 교수의 대단히 난해하고 복잡한 사랑에 관한 탐구이다. 사회학자답게 루만 교수는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이자 소통도구, 사회적 체계라고 주장한다. 현대인이 사랑이라고 알고 있는 사랑의 의미와 형식은, 17세기부터 ‘사랑이란 이런 것’이라고 소설 등 문학을 통해 소개된 방식을 개개인들이 서로 익히고 비공식적으로 사회가 용인해 왔다는 것이다. 사랑이야말로 가장 개인적이고 사적이고 비밀스런 감정이라고 알아온 사람들로선 매우 어이없는 주장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가 서술한 난해한 체계를 견디고 참으며 한장 한장 책을 정복해 나가다보면 ‘유레카’가 느껴질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봉건제가 붕괴되고 계층분화가 일어나는 등 사회가 복잡해지자, 혼인 체계도 바뀌어야 했다. 봉건제에서야 귀족 아버지가 딸과 아들의 결혼상대를 결정하고, 자신이 소속된 신분계층 사이에서만 결혼이 허락됐다. 중세의 결혼이란 사회적 연대이자 체제유지적 성격을 띤 것이다. 그러나 사회가 더이상 봉건주의적 결혼을 고집할 수 없게 됐다. 그리하여 문학은 사랑으로서 사랑을 찾고, 사랑받는 자의 미덕을 강조하며 사랑하는 법을 대중들에게 전파하기 시작한다. 사랑받는 자의 미덕이란 부와 젊음, 미모와 순결 등 희소한 가치다. 16세기 말에 나온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하면 되겠다. 사랑이 영원한 것이고, 치유되지 않는 열병과 같은 열정에 시달려야 하며, 난관을 극복해 어렵게 얻어야 가치 있다는 식의 프레임이 형성되고, 사람들에게 각인된다. 그러나 자원의 배분이라는 측면에서 부와 젊음, 미모와 순결, 권력을 가진 신사와 숙녀가 드물었다. 문학은 18세기에 다시 한번 사랑의 모습을 탈바꿈시킨다. 사랑받거나 사랑하기 위해 필요한 미덕을 사소한 것으로 전환하고, 가치중립적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1774년 발표된 괴테의 서간체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는 편지에서 로테는 ‘춤추지 않고 흑빵을 잘랐다.’고 썼다. 로테가 아름답거나 돈이 많고 젊다고 쓴 것이 아니라 흑빵을 잘랐는데 이것이 베르테르의 민감한 영혼을 충족시켰다고 쓴 것이다. 이런 경험은 적지 않을 것이다. 사랑했던 연인의 아주 사소한 행동이나 버릇을 눈여겨보면서 온 가슴이 찌르르하는 전율을 느꼈던 아주 특별한 경험들 말이다. 18세기 말에 접어들면 연애결혼과 부부 간의 사랑이 통일되는 원리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18세기 후반부터 프랑스 소설을 중심으로 섹슈얼리티와 사랑이 일체를 이루면서 사회적으로 혼전 관계를 허용하는 단초가 마련된다. ●18세기 후반부터 섹슈얼리티 부각 저자는 이런 사랑의 코드가 사회적으로 재생산돼 현대에 이르는데 이것은 17세기 이후 활성화된 서적 인쇄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지적한다. 17~18세기에는 유혹의 기술에 속하는 상투어나 제스처에 관한 책들도 현대의 처세술책만큼이나 많이 출판되고 인쇄된 모양이다. 자유연애라고 말해야 할 사랑은 17세기 사회제도로서의 결혼과 맞서기 위해 탄생해, 21세기 청춘남녀들에게도 열정에 몸을 맡기라고 권해 왔다. 아니 사회가 복잡해져 점차 비인격적으로 진화해 감에 따라 더 친밀하고 인격적인 관계를 권하는 사회로 변해, 사랑타령이 늘어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1982년에 출간된 루만 교수의 책은 앤서니 기든슨의 ‘현대사회의 성·사랑·에로티시즘’과 크리스티안 슐트의 ‘낭만적이고 전략적인 사라의 코드’ 등 현대인의 사랑과 관련한 서적에 주요하게 인용되는 책이라고 한다. 이 책은 연예전략서가 아니므로, 쉽게 읽기 시작하면 큰코 다칠 수 있다. 3명이나 참여했는데도 번역은 매끄럽지 못한 것 같다. 2만 2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나를 비워 세상 담고 천년 깨워 만년 잇고

    나를 비워 세상 담고 천년 깨워 만년 잇고

    다완(茶碗)이라고 부르는 그릇의 정겨운 다른 이름은 찻사발(沙鉢)이다. 한국인에겐 다완보다 사발이 더 익숙하다. 우리나라 전통 도자기에는 아름다운 순수 한글 이름도 있다. 남자 밥그릇은 사발이라고 불렀지만 뚜껑이 달린 여자 밥그릇은 ‘옴파리’라고 불렀다. 김치를 담거나 찬그릇으로 사용하는 사발보다 조금 작은 그릇은 ‘보시기’라고 하고, 간장 등 장종류를 담는 그릇은 ‘종지’라고 한다. 목이 긴 호리병으로 못생긴 술병의 이름은 ‘멍텅구리’다. 생김새보다 술이나 물이 많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기그릇의 깨진 조각은 ‘사금파리’. ●조선사발 선구자 故 신정희 선생 장남 사기장 신한균(49)은 이렇게 한국 도자기와 관련된 아름다운 이름들이 생명력을 잃고 사라져가고 있다고 한탄한다. 한국의 도자기가 과거의 영광을 찾지 못하고 사양길에 올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흔히 도자기 만드는 사람을 예술가라는 의미로, 격조를 높여 도예가라고 부르지만 신 사기장은 그런 명칭을 사양한다. 전통 조선사발의 선구자인 고(故) 신정희 선생의 장남인 그는 “나는 장인의 아들로 태어나 사기 장인으로 살아왔고, 죽을 때도 장인으로 죽을 것”이라고 다부지게 말한다. 신정희 선생은 전통의 맥이 끊어지고 있던 조선의 사발을 완전히 재현해 낸 최초의 사기장이다. 어려서 흙을 조물락거리고 15살에 물레질을 시작한 신 사기장은 젊어서는 명지대에서 무역학을 전공하고 연세대에서 MBA를 마친 뒤 28살부터 본격적으로 그릇을 만들기 시작했다. 신 사기장이 오는 10월6~18일 서울 충무로 신세계백화점 본점 신세계갤러리에서 ‘천년을 이어온 그릇’전을 연다. 우리 그릇의 원류를 복원·계승한 명품 다기와 사발을 전시한다. 한국인의 인식 속에 한국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도자기의 나라’다. 고려 때는 비색의 청자로, 조선시대 때는 순결한 백자로 이름을 날렸고 일본은 두 차례의 왜란을 통해 조선의 도공들을 납치해야 할 만큼, 지금으로 치면 반도체 기술만큼이나 중요한 세라믹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한다. 신 사기장이 거듭 강조하듯 16세기 이전에 섭씨 1200도 이상의 고온에서 유약을 바른 표면이 매끄러운 자기를 만들어낸 나라는 중국과 한국이 거의 유일했다. 그러나 요즘 한국의 주부들은 생활 도자기나 명품 도자기로 서구의 브랜드인 포트메리온·로열덜튼(영국)이나 로열 코펜하겐(덴마크), 빌레로이앤보흐·마이센(독일), 리모지 하빌랜드(프랑스) 등을 사랑한다. 토기를 만들던 그들이 중국 본차이나에 자극을 받아 18세기에 이르러서야 자기를 굽는 법을 익혀 현재는 세계를 주름잡게 됐다.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로 알려진 일본의 노리야케의 탄생도, 막부에서 정책적으로 도자기를 국부의 원천으로 삼아 수출을 주도해 나가면서 일본 도자기가 한국 도자기를 추월해 나간 흔적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러나 현재 한국 도자기의 현실은 신 사기장이 우려하고 걱정할 정도로 초라하지 않나 싶다. 국내 대기업에서 나오는 생활 도자기의 디자인은 독창적이고 한국적이라기보다는 어디서 본 듯한 디자인이 적지 않다. 반면 경기 이천과 광주 등 전통가마에서 나오는 전통 도자기는 현대적 해석 없이 답습한 경우가 적지 않다. 전통적인 도자기 기법을 복원한다는 차원에서 신 사기장도 답습이란 비판을 비껴가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는 청자의 비색을 재현하거나 조선의 달항아리를 베껴내는 데만 애쓰지는 않는다. 전통을 복원하는 가운데, 자신의 예술적 감성과 새로운 발견을 고스란히 작품으로 담아보려고 노력한다. 이번 전시에 나타나는 달항아리는 유약과 불의 사용을 통해 빚는 일반적인 달항아리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일본 국보급 도자기 원류는 모두 한국” 비오는 날 산에 가서 발자국을 남기고, 그 발자국이 또렷하게 남아 있는 흙을 파서 그릇을 만든다든지, 유약으로 억새풀 재를 발굴해 낸다든지, 그릇의 굽에 유약을 바르지 않고 굽는 함경도식 도자기 제작법을 발굴하는 등은 그의 몫이었다. 우리가 흔히 일본식 자기 제작기법이라고 평가하는, 유약을 흘러내리게 하는 방식도 조선 도공들이 흔히 쓰던 제작기법이라고 한다. 신 사기장은 “일본 국보 기자에몽 이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바쳤다는 일화가 있는 일본 중요 문화재 쓰쓰이쓰쓰 이도 등의 원산지가 모두 한국”이라면서 “그러나 한국에서 이도는 그저 막사발로 불리며 제대로 된 이름조차 없어 안타깝다.”고 말한다. 그는 최근 ‘사발, 자신을 비워 세상을 담는다’(아우라 펴냄)는 책도 펴냈다. 이 책은 조선사발의 가치와 아름다움, 쓰임새, 종류, 일화를 담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이도다완을 ‘황도사발’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한다. 일본 다도문화학회장 다니 아키라가 함께 썼는데, 다니는 이 책에서 “일본에서 쓰이는 조선사발은 조선 사기장들이 만들었으나 일본 사기장들의 미의식이 덧대어진 결과물”이라는 평가도 했다. (02)310-1921 문소영 홍지민기자 symun@seoul.co.kr
  • 그때의 ‘깨소금’들 지금 다시 만나봐도…

    ‘깨소금과 옥떨메’-1970년대 후반 양갈래 머리 땋아 늘인 십대 여학생들이라면 때로는 키득거리며, 때로는 제 얘기인 양 심각하게 봤던 소설이다. ‘여학생’ 잡지에 연재한 뒤 1980년 녹색문고에서 정가 1500원의 단행본으로 내놓았다. 박범신이 작가를 전업으로 삼기 직전 여자중학교 교사로 있던 시기에 쓴 마지막 소설로 작가적 명망과 함께 경제적 자유로움에 대한 자신감을 안겨준 베스트셀러이기도 하다. 꼬박 30년이 흐른 2009년 ‘깨소금과 옥떨메’(이룸 펴냄)가 다시 나왔다. 이제는 5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 당시의 ‘깨소금들’과 ‘옥떨메들’은 자신을 닮은 ‘깨소금들’과 ‘옥떨메들’을 낳아 기르고 있는 어머니가 됐다. 숱한 대화가 오가며 서술하는 식이라 통통 튀며 가볍다. ‘죽음보다 깊은 잠’, ‘고산자’, ‘촐라체’ 등 묵직한 주제를 다루던 박범신만을 알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다소 낯선 느낌을 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박범신은 당시 여학생들의 은어와 생활상, 고민 등을 완벽히 재현한다는 점에서 ‘다르지만 같은 박범신’임을 알 수 있다. 주인공은 고등학교 1학년으로 주근깨가 많아 ‘깨소금’이라는 별명을 가진 ‘복주리’와 같은 반 친구로 이름만 공주이지 짜리몽땅 못생겼다 해서 붙은 ‘옥떨메’라는 별명을 가진 ‘안공주’다. 이 천방지축 말썽꾸러기들의 사랑과 우정, 갈등, 고민 등이 복고(復古)의 흐름과 변치 않을 청춘의 반짝거림을 무기로 종횡무진 풀어진다. 만원버스에서 부대끼다가 손잡이만 남기고 사라져버린 책가방(그 당시 가방은 왜 그리 손잡이를 부실하게 만들었는지!)과 새로 부임한 총각 미술 선생님 골탕먹이기, 교장선생님 조회시간에 쓰러지기 등 당시 학교에서 흔히 있었던 풍경들이 등장한다. 여기에 선생님 별명 붙여주기 등 요즘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30년 전 십대들의 모습 역시 나타난다. 소설 중간중간 옥떨메, 오떨메, 아더메치유, 룸나인(방구) 등 지금의 어머니들이 추억 저편으로 묻어두었을 옛 십대 시절의 흘러간 은어들이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박범신은 “그 시절 담임했던 아이들이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십대가 간직한 영혼의 순결성과 그 맑고 환한 빛은 여전하다고 믿는다.”고 30년 만에 다시 책을 펴내는 감회를 밝혔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독도에서 보내는 한 시인의 편지] 독도여! 한반도의 뜨거운 첫 문장이여!

    [독도에서 보내는 한 시인의 편지] 독도여! 한반도의 뜨거운 첫 문장이여!

    슬픔은 참으면 詩가 되고 / 눈물은 참으면 노래가 되느니 // 조국의 詩가 되고 / 국토의 노래가 되는 // 그대 조국의 막내가 아니라 / 잠들지 않는 첨병이려니 // 그대 국토의 끝이 아니라 / 위정척사의 새로운 시작이려니 // 내 눈을 뽑아 너에게 주마 / 내 심장을 꺼내 너에게 주마 // 오늘은 詩가 되지 말고 뜨겁게 분노하라 / 오늘은 노래가 되지 말고 활화산처럼 포효하라 // 독도여 / 한반도의 영원한 첫 문장이여 - 정일근 시 <독도> 전문 포항에서 울릉도까지 217km, 울릉도에서 다시 87.4km의 멀고 험난한 뱃길 끝에 독도를 만났습니다. ‘아! 독도!’, 그 한마디 중얼거려 보는데도 심장이 뜨거워져 그냥 그대로 터져버릴 것만 같습니다. 멀리 보이는 독도의 모습에 벌써부터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망망대해, 광활한 동해에서 독도를 마주하고 서면 대한민국 독도는 더 이상 섬이 아닙니다. 섬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시(詩)이며 목이 터져라 불러보는 노래입니다. 오천 년 역사이며 그 역사의 순결한 첫 문장입니다. 당신도 독도 앞에 서면 여기가 한반도의 첫 문장이 시작되는 성스러운 성도(聖島)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호흡하게 될 것입니다. 저 역시 독도 앞에서 가슴이 뛰고 또한 한없이 경건해지는 것도 이곳이 국토의 동쪽 끝이 아니라 그 위대한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독도는 국토의 동쪽 끝이 아니라 시작인 것입니다. 시작이며 처음입니다. 여기서 바다는 다만 짙푸르게 보일 뿐입니다. 지난 6월 말에 진수한 울릉군의 ‘독도평화호’(177t급)가 독도에 가까워질 때 바다는 태고의 신비한, 맑디맑은 옥빛 속살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하늘 아래 바다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바다 속에 하늘이 들어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독도는 바다에 떠 있는 섬이 아니라 하늘에 떠 있는 천상의 섬입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섬입니다. 그렇다고 독도는 하나의 섬이 아닙니다. 동도와 서도를 비롯하여 별처럼 뿌려진 89개의 부속도서를 가진, 전체 면적 187,453㎡(56,704평)의 작은 군도(群島) 같습니다. 절해고도 독도는 이름처럼 외로운 섬도 아닙니다. 모두 91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서로서로 어깨를 낀 단단한 하나가 되어 세찬 파도에도 금강(金剛)처럼 흔들리지 않고 서 있습니다. 나는 이 군도를 평화의 군도라고 이름하고 싶습니다. 더 이상 분쟁의 섬이 아니라 평화를 노래하는 상징이었으면 합니다. 1905년 1월 내각회의에서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키로 결정하고 그해 2월 ‘시마네현(縣) 고시’로 독도 침탈의 야욕을 드러낸 일본은, 그 후 100년이 지났는데도 독도에 대한 욕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두 눈이 충혈된 한 마리 굶주린 승냥이를 보는 것 같습니다. 그 승냥이는 먹어도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는 모양입니다. 36년간 그렇게 배불리 먹고도 우리의 섬 독도까지 먹으려 합니다. 지난해 7월에는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표기)는 일본 영토라는 내용을 교과서에 수록해 우리를 분노하게 한 일본은, 지난 7월 27일에는 제1야당인 민주당이 중의원선거 정책공약에서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밝히는 등 독도에 대한 망언망발을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일본은 지금도 3~4일 간격으로 순시선을 보내 독도 12해리 밖에서 벌건 감시의 눈으로 독도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일본의 독도 망언이 터져 나올 때마다 우리는 쉽게 분노하지만 독도는 그 스스로 의연하고 그 스스로 준엄합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한낱 망언에 흔들리지 말라고 가르쳐줍니다. 한민족이 존재하는 한 독도는 대한민국의 영토입니다. 이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지리적, 현실적 사실 앞에 한 치도 흔들리지 말라고 독도는 침묵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독도 문제에도 한국인의 ‘냄비근성’이 드러날 때가 많습니다. 일본의 망언에 우르르 일어섰다가는 시간이 지나가면 독도를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독도는 언제나 제 모습으로 제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독도는 우리가 기억하는 시간에도 기억하지 않는 시간에도 이곳에서 자신의 이름을 지키고 있습니다. 독도 동도 부두에 갈매기들의 환영을 받으며 첫발을 디딥니다. 20년 전 독도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만 다시 독도를 찾는데 어쩌면 제가 너무 늦었는지 모르겠습니다. 2005년 독도는 공개제한지역에서 해제되어, 울릉군청 독도관리사무소(054-790-6645)에 입도신청을 하면 동도 부두에 한해서만 상륙할 수 있습니다. 울릉도 도동항에서는 하루 2차례 독도로 가는 관광선이 출항합니다. 아름다운 섬 독도는 천연기념물 제336호이기도 합니다. 독도가 개방된 2005년 21,558명이 독도를 다녀간 이후 독도 방문객이 해마다 급증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10만 2천여 명이 독도 땅을 밟고 갔다고 합니다. 울릉도에서 왕복 5시간 이상이 걸리는 힘든 뱃길이지만, 파도가 높아 대부분 심한 배 멀미에 시달리지만, 그래도 독도로 가는 이유는 그곳에 유토피아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독도는 지켜야 할 ‘동해 성지(聖地)’이기 때문입니다. 독도의 바다는 난류의 영향을 많이 받는 전형적인 해양성 기후입니다. 연평균 기온이 12도이며 1월 평균 영상 1도, 8월 평균 23도로 비교적 온난합니다. 그러나 바람이 많이 불고 안개가 잦고 연중 흐린 날이 160일 이상이 됩니다. 연평균 강수량은 1,240mm며 강우일수도 150일이나 되는 사람이 살기에는 힘든 곳입니다. 하지만 독도에는 독도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동도에는 독도경비대(43명), 독도등대(3명), 울릉군독도관리사무소(2명)가 있고, 서도에는 독도 이장인 김성도 씨 부부와 편부경 시인이 주민등록을 두고 있습니다. 또한 범국민 독도 호적 옮기기 운동으로 많은 국민들이 독도에 호적을 두고 있습니다. 비록 호적과 주민등록을 독도에 두지 않았다고 해도 독도에 마음을 묻은 한국인은 또 얼마이겠습니까? 특히 지난 1997년부터 2001년까지의 조사로 독도로부터 남서쪽 약 90km 떨어진 울릉분지에서는 미래에너지 자원인 메탄수화물(Gas-Hydrate)로 추정되는 퇴적층을 발견, 독도는 동해의 ‘보물섬’이 되고 있습니다. 동도(해발 98.6m)에 올라 우리 바다 동해를 둘러봅니다. 이 바다를 ‘일본해’라 이름 하는 일본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만, 모든 것을 다 받아주기에 바다가 된 바다는 용서하며 살아라 합니다. 용서는 하지만 결코 잊지는 말아라 합니다. 이제 더 이상 독도가 영토 분쟁의 섬이 아니길 기도합니다. 독도는 해가 뜨는 처음이기에 아시아, 아니 유라시아 대륙이 경건히 바라보는 신화며 희망이며 평화이길 기도합니다. 8월입니다. 8·15 광복절이 있는 8월입니다. 뜨거운 8월에 독도는 참으로 든든합니다. 독도에서 당신에게 독도의 안부를 전합니다. 독도는 여전히 건강하고 여전히 늠름합니다. 글_ 정일근 기획위원·사진_ 울릉군청
  • 9·11 後 8년 9·11 前 무슬림을 쫓다

    젊은 이상주의자는 신의 임무를 가슴에 품고 왕국으로 돌아왔다. 죽음의 위험도 감수했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미숙한 무슬림 전사로 떠났지만 돌아올 때는 아랍 아프간의 지도자였다. 자신감이 넘쳐 흘렀지만 본능적인 겸양 때문에 더욱 매력적이었다. 사우디인들이 현대 세계와 동질감을 느끼지 못하던 때, 빈 라덴은 순수결백의 원형이었다(본문 216쪽). ●알 카에다·CIA요원 등 600여명 증언 사람들이 아는 것은 귀납적 결과인 ‘9·11’뿐이다. 9·11이라는 역사적 사건만을 기억하는 많은 이들에게 또 다른 역사인 “9·11 이전에 그들의 세계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나.”를 아는 건 역사의 단절 혹은 단편적인 ‘불구의 역사’를 극복하는 유일한 통로이자 힘이다. 왜냐하면 역사, 그 중에서도 우리 시대에 빚어져 아직도 생생하게 펄떡거리는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실체에 대한 다양한 조감과 함께 그 역사를 만든 진실하고도 유효한 가치를 함께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역사학자도 아닌 보통의 사람들이 귀납적 결과 하나를 두고 역사를 만든 가치를 복원해 읽어낸다는 것은 난망한 일이다. 우선은 모든 것이 숨겨지고 가려진 상황을 극복하기 어렵고, 어렵사리 그런 장애물을 넘어 실체에 근접한 역사를 복원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읽고 받아들일 것인가는 시각에 따라 제각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날 역사의 정체를 논하는 ‘변(辯)’과 ‘논(論)’이 백가쟁명을 이루는 것도 역사의 이런 가변성, 불가측성 때문은 아닐까. 이런 점에 주목해 납치한 민간항공기를 뉴욕의 월드트레이드센터에 내리꽂아 수천 명의 희생을 부른 9·11사건의 배경을 파헤친 작가 로렌스 라이트의 ‘문명전쟁-알 카에다에서 9·11까지’(하정임 옮김, 다른 펴냄)는 “9·11은 막을 수 있었다.”고 전제하고, 그 배경을 마치 명제를 논증하듯 기전체적으로 추적하고 있다. 퓰리처상을 안을 만큼 집요한 작가의 천착이 곳곳에서 빛난다. 라이트는 5년간 12개국을 뒤지며 만난 알 카에다와 미국 정보부서 요원 등 600여명의 증언을 근거로 알 카에다의 역사와 현재성을 거대한 서사적 로망으로 복원하고 있다. 그의 시각에서 보면 사전에 포착된 9·11의 징후를 CIA나 FBI가 방기하거나 묵살했다는 지적은 오히려 식상하다. 빈 라덴의 알 카에다가 미국을 아프가니스탄으로 유인하기 위한 전략적 판단으로 9·11을 유발했으며, 이는 단순한 테러의 차원을 넘어 문명전쟁 기도라는 점이 주장의 핵심이다. 라이트가 9·11을 문명전쟁으로 보는 견해의 중심에는 1996년 나세르에 의해 처형됨으로써 ‘반체제 인사’에서 ‘이슬람 순교자’로 전위(轉位)된 이집트의 반정부 학자 사이드 쿠트브가 있다. 쿠트브는 1940년대에 미국에서 체류하면서 미국 사회에 만연한 무절제한 향락과 세속적인 취향을 경험한 뒤 이슬람 성전(聖戰)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세워나간다. 성전이 아니면 거대한 미국의 문화전파력으로부터 이슬람의 순결성을 지킬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런 쿠트브의 논리는 빈 라덴과 알 카에다의 사상적 토대가 되었으며, 미국을 적대시하는 이론적 준거가 되었다. 쿠트브가 틀을 잡고 빈 라덴이 실천적으로 재정립한 이슬람 근본주의의 새로운 이념이야말로 사회주의나 아랍민족주의가 껴안지 못한 그들의 상처를 치유해줄 수 있다고 믿었고, 이 때문에 반미의 기치 아래 모인 이슬람 전사들은 스스로를 ‘정의를 위해 죽을 수 있는 혁명가’로 인식했다. ●쿠트브·자와히리 등 이슬람 이론가 탐구 사실, 처음부터 미국이 성전의 목표는 아니었다. 1988년 파키스탄에서 알 카에다가 처음 발족했을 때만 해도 빈 라덴은 반공주의자였다. 이때 그가 겨냥한 곳은 중앙아시아의 소련이었다. 하지만 소련이 아프간에서 패퇴하면서 그의 전사들이 맞설 상대가 없어지고 말았다. 이런 가운데 자와히리는 이집트 정부 전복을 꾀하다 조직이 붕괴돼 활동 근거를 잃자 둘은 미국을 타격하자는 타협안에 전격 합의했다. 9·11의 비극은 이렇게 예비됐다. 이런 알 카에다의 활동, 특히 자살테러의 배경에는 자와히리의 논리가 짙게 배어 있다. 코란이 자살을 금지하고 있으며, 이슬람 예언자의 언행록인 ‘하디스’도 자살을 비난하는 모하메드의 어록을 전하고 있지만 자와히리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초기 이슬람의 무슬림들이 우상숭배자들에게 잡혀 개종할 것인가, 죽음을 맞을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서 기꺼이 순교를 택한 사례를 들며 “참된 믿음을 추구하다 목숨을 버린 것은 자살이 아니라 영생을 얻는 일”이라고 설파했다. 라이트는 9·11의 배경을 파헤치면서 지금까지 어떤 논의에서도 곁가지 정도로 인식된 자와히리의 중요성을 심도있게 조감했다. 그는 “빈 라덴과 자와히리의 연계는 9·11의 배경을 읽는 핵심”이라며 “둘 중 하나만 없었더라도 알 카에다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처럼 9·11이라는 전대미문의 역사를 이해하는 마스터 키로 자와히리를 내세워 결국 묻혀질 것 같았던 전모를 상당 부분 복원하고 있다. 이 책을 읽은 누군가가 “그래도 의문이 남는다.”고 말한다면 “그것이 역사라는 퍼즐”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2만 9000원.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해프닝으로 끝난 2009년 9월 9일 ‘지구 멸망설’

    해프닝으로 끝난 2009년 9월 9일 ‘지구 멸망설’

    2009년 9월 9일이 인류 마지막 날이라고 일부 비관론자들이 퍼뜨린 지구 멸망설은 터무니 없는 거짓으로 판명됐다. 한국은 별 탈 없이 예견된 날짜를 넘겼고 영국과 미국에서도 9일을 단 몇시간 남긴 현재까지 별 다른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지구 멸망설은 올 초 인터넷을 강타했다. 블로그와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9일이 인류 역사 마지막 날이라고 주장하는 글들이 끊임 없이 올라왔다. 멸망 시나리오는 크게 두가지였다. 스위스에 있는 대형 강입자 충돌기에서 만든 블랙홀이 지구를 삼킨다는 것과 신종 인플루엔자가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전세계인이 사망한다는 예견이었다. 미스터리 현상을 소개하는 웹사이트 ‘에이리언-어스’(alien-earth.org)는 “09.09.09란 숫자를 뒤집으면 사탄을 뜻하는 06.06.06“이라며 종말설에 힘을 실었다. 9일이 되자마자 인터넷 채팅 사이트에는 지구 멸망을 걱정하는 네티즌이 모였으며 구글에는 한 때 ‘2009년 9월 9일’이라는 검색어가 검색순위 100위 안에 올랐다. 심지어 며칠 앞서서는 미국 10대 소녀가 지구 멸망 전 성경험을 하고 죽고 싶다며 순결을 바칠 남성을 찾는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려 파문이 일기도 했다. 러나 예견된 날짜에 아무일도 일어날 조짐이 보이지 않았고, 텔레그래프와 메트로 등 영국 신문은 인터넷에서 근거없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비관론자들을 비판했다. 미신 회의론자인 런던 대학 크리스 프렌치 교수는 “13일의 금요일처럼 사람들은 무작위에서 패턴과 의미를 찾아내는 걸 즐긴다.”면서 “이것이 인류가 다양한 동물 중에서 성공한 이유라는 건 인정하나, 수비학을 맹신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멸망설 덕분에 뜻밖의 호재를 누린 곳도 있었다. 애플사는 이날 뉴 아이팟을 출시, 인터넷에서 날짜와 함께 검색순위가 폭등했으며, 인류 종말을 그린 SF 만화영화 ‘나인’은 미국에서 상영해 인기를 끌었다. 사진=제임스 유스투스의 유화 ‘더 엔젤 프로클레이밍 디 엔드 오브 타임’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클래식과 권력, 오랜 애증 엿보기

    클래식과 권력, 오랜 애증 엿보기

    대부분 태교음악은 클래식이다. 아름다운 선율은 순수하기 그지없고, 마음을 안정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클래식의 역사는 마냥 우아하거나 순결하지 않았다. 클래식은 어떻게 정치와 권력으로부터 자유와 고고함을 지켜냈을까. ●권력자에게 매력적이던 음악 위대한 작곡가 베토벤의 교향곡 3번은 많이 알려져 있듯 나폴레옹을 위한 것이었다. 민중의 권리와 자유 정신을 옹호하며 프랑스 혁명에 관심을 가진 베토벤은 이 작품에 ‘보나파르트’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그러나 그가 황제가 됐다는 소식에 “그도 속된 사람이었어. 그 역시 자기의 야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민중을 짓밟고 누구보다도 심한 폭군이 될 거야.”라고 한탄하며 이름을 지워버렸다. 교향곡 3번에 ‘영웅’이라는 제목이 붙은 배경이다. 아돌프 히틀러는 “음악은 본질적으로 대중적 효과가 있으며…사람들을 고무시키고 격앙시키며 최면을 걸 수 있다.”는 사상을 펼쳤다. 괴벨스와 함께 음악을 선전술로 철저히 이용하고, 순수 아리아인들로 제국음악회의소를 세워 국민을 선동할 음악을 만들었다. 그의 말대로, 음악은 원하는 것을 이끌어내기 위한, 또는 마음을 전달하기 위한 최적의 수단이다. 과격한 선동 없이도 사람들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키고 움직일 수 있어 권력자들에게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음악은 권력에 아부하고, 권력은 음악을 이용했다.”는 말은 어찌보면 식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전제로 한 ‘음악과 권력’(베로니카 베치 지음, 노승림 옮김, 컬처북스 펴냄)이 끌리는 것은 음악가들의 치열하고 처절하며, 한편으로는 권력에 저항한 삶을 저자의 풍부한 지식으로 제대로 버무렸기 때문이다. 독일의 음악학자인 베치는 이 책에서 기원전 3000년 수메르 시대부터 21세기에 이르는 시기를 거슬러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만, 멘델스존, 글루크, 그레트리, 로르칭, 알레비 등 유명작곡가에서부터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이들까지 방대하게 아우르며 음악가와 권력의 관계를 조망한다. 음악과 정치의 관계는 태초부터 함께였다. 수메르 시대에는 국왕보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성직자가 연주가요 작곡가였다. 페르시아와 이집트를 평정한 알렉산더 대왕은 스승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음악을 배웠다. 중세에는 귀족계급이 성장하면서 음악가와 교류를 확대했다. 신성로마제국의 프리드리히 2세처럼 권력자는 궁정에 당대 영향력있는 작가와 작곡가들이 음악으로 자신을 찬양하길 바랐다. 궁정의 녹을 먹으면서 안정과 권세를 누리고자 했던 음악가들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국왕(영주)과 음악가(궁정악장)의 관계는 점차 끈끈해졌다. 강력한 국가와 현명한 국왕을 찬미하는 모테트(르네상스 시대의 성악곡), 오페라, 발레 등이 권력자의 지지 아래 번성하게 된다. ●저항정신이 창작의 기반 되기도 음악가가 권력에 순응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저항정신을 창작의 기반으로 삼기도 한다. 아름다움과 선량함, 목가적 정서를 작품에 녹인 슈베르트가 대표적이다. 그는 진보주의자 빌헬름 뮐러를 비롯해 괴테, 클로프슈토크, 하이네 등 시대 고발에 적극적인 작가의 글을 가사로 썼다. “힘과 행동의 시대가 묘사된 작품 속에서 커다란 고통은 미약하나마 위안을 얻는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유대인 음악가들은 반유대주의의 편견이 자신의 작품을 평가절하시킬 것을 우려하며 이름을 바꾸거나 개종했다. 부르노 발터는 흔한 유대계 이름인 슐레징어란 이름을 포기했고, 야콥 오펜바흐는 파리로 피신하면서 프랑스식 이름인 자크로 불렸다. 멘델스존은 기독교로, 말러는 가톨릭으로 각각 개종해 활동을 이어나갔다. 자크 프로망탈 알레비는 엘리아스 레비라는 이름을 버렸지만, 종교적 신념을 지키느라 고통받는 여주인공 라헬을 찬양한 ‘유대인 여자’를 만들어 정체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여성음악가들의 수난사도 인상적이다. 요제프 요아힘의 아내 아말리에 요아힘의 말대로 “훌륭한 여성 예술가이자 완벽한 가정의 안주인이 되기란 매우 어렵다.”는 것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슈만의 아내 클라라는 “내 피아노 연주는 뒷전으로 밀려났고…이대로 퇴물만 되지 않으면 좋으련만.”이라고 한탄했다. 말러는 아내 알마 말러가 다시 작곡을 시작하자 “나를 남편으로 둔 대가로 당신이 음악을 포기한다면 당신은 나와 똑같은 명예를 누릴 수 있다.”며 만류했다고 전한다. ●거장 40여명의 유착과 긴장 생생히 전달 많은 이야기 가운데 한국의 작곡가 윤이상을 다룬 대목이 특히 흥미롭다. 저자는 윤이상을 일제시대에는 한국어 노래를 부르고 싶어했고, 1945년 이후에는 끊임없이 인권을 무시하는 정권에 대항한 ‘위대한 거장’으로 소개하고 있다. 18가지 주제에, 얼핏 세어봐도 40여명에 이르는 작곡가의 삶과 대작의 탄생 이야기, 당대 정권과 유착관계, 정권에 저항한 활동 등을 생생하게 전달해 600쪽에 육박하는 분량에도 지루함이 덜하다. 작품의 초연 당시 악기 편성이나 청중의 반응도 전하는 대목은 마치 한편의 공연 리뷰를 읽는 듯한 재미도 있다. 2만 8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씨줄날줄] 사제의 순결/김성호 논설위원

    천주교에서 부제(副祭) 이상 서품을 받은 성직자는 평생 독신으로 살겠다는 굳은 약속을 한다. 하느님만을 추종하며 하느님을 위해 몸·마음을 온전하게 바친다는 독신서약. 정결과 청빈·순명의 서약인 이 종신서원은 사람 앞의 약속이 아닌 하느님과 교회에 대한 철저한 다짐이다. 이 맹세와 약속을 깨는 죄악에는 모든 성사(聖事)의 자격박탈, 심하게는 파문의 중벌이 따른다. 로마 가톨릭에서 이 종신과 독신의 서약은 변치 않는 철칙으로 통해 왔다. 성직자에게 정결과 청빈, 순명을 요구함은 비단 천주교만의 원칙만은 아닐 것이다. 불교에선 간음하지 말라는 불사음(不邪淫)을 으뜸 오계(五戒)중 큰 덕목으로 새겨 수행자세를 다짐한다. 원불교에서도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수위단의 자격으로 독신자격인 정남(貞男)·정녀(貞女)의 몸가짐을 요구한다. 그 중에서도 천주교가 엄하게 독신·정결의 원칙을 지키는 것은 성욕·물질적 탐욕이 빚을 공동체의 붕괴를 경계하기 위함이다. 천주교의 사제는 예수의 부활을 증거한 12사도의 후예로 인정받는 신의 대리인. 종신의 독신서약을 한 신의 대리인이라지만 태생의 기본욕구에 흔들리는 인간의 일탈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사제시절 여성편력 탓에 뒤늦게 툭툭 불거지는 친자확인 소송과 비난을 톡톡히 치르는 페르난도 루고 파라과이 대통령. 한국여성 성마리아와 결혼해 바티칸으로부터 파문당할 위기에 놓였던 벨링고 주교. 어디 이뿐일까. 빈발하는 사제들의 소년 추행과 동성애 등 성적 탈선 때문에 세계의 천주교가 골머리를 심하게 앓고 있는 실정이다. 로마 교황청이 여성과의 동거며 자녀출산을 사제들에게 허용할 조짐이다. 곳곳에서 벌어지는 성(性)문제로 인한 친부(親父)소송과 비용을 피하고 줄이기 위한 움직임이라는 르몽드지의 폭로기사다. 바티칸은 펄쩍 뛰며 사실을 부인했지만 천주교계에선 이미 감지됐던 사실. 피임, 낙태금지 등 천부의 인권존엄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종교적 잣대를 세상에 들이대 왔던 로마 가톨릭. 신 앞의 절대약속도 인간의 기본욕구 앞에선 무너지는 것일까. 종신서원, 독신서약이란 단어의 운명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두고 볼 일이다.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김환태평론문학상에 김용희씨

    문학평론가 김용희(46) 평택대 교수가 제20회 김환태평론문학상을 수상했다. 수상작은 ‘한국 현대 시어의 탄생’. 김 교수는 1992년 ‘문학과 사회’에 ‘생명을 기다리는 공격성의 언어:김기택론’으로 등단한 이후 ‘천국에 가다’, ‘순결과 숨결’ 등 평론집과 장편소설 ‘란제리 소녀시대’ 외에 여러 권의 연구서를 썼다. 상금 500만원. 시상식은 11월 초 예정.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청산행/이기철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청산행/이기철

    손 흔들고 떠나갈 미련은 없다 며칠째 청산(靑山)에 와 발을 푸니 흐리던 산길이 잘 보인다. 상수리 열매를 주우며 인가(人家)를 내려다보고 쓰다 둔 편지 구절과 버린 칫솔을 생각한다. 남방(南方)으로 가다 길을 놓치고 두어번 허우적거리는 여울물 산 아래는 때까치들이 몰려와 모든 야성(野性)을 버리고 들 가운데 순결해진다. 길을 가다가 자주 뒤를 돌아보게 하는 서른 번 다져 두고 서른 번 포기했던 관습들 서쪽 마을을 바라보면 나무들의 잔숨결처럼 가늘게 흩어지는 저녁 연기가 한 가정의 고민의 양식으로 피어 오르고 생목(生木) 울타리엔 들거미줄 맨살 비비는 돌들과 함께 누워 실로 이 세상을 앓아 보지 않은 것들과 함께 잠들고 싶다.
  • 순결경매 여성 모국 정부 “우리가 도와주마”

    어머니의 치료비와 학비 마련을 위해 순결을 경매에 부친 여성이 모국인 에콰도르 정부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게 될 전망이다. 스페인에 살고 있는 28세 에콰도르 여성 에벨린 두에냐스는 최근 생활고 끝에 결단을 내렸다는 사연과 함께 자신의 순결을 온라인 경매에 내놨다. 최고 320만 달러를 주고 그의 순결을 사겠다는 제안이 나왔지만 조건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녀가 거절, 경매는 낙찰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그녀를 돕겠다고 나선 건 모국인 에콰도르 정부. 스페인 주재 에콰도르 영사부 관계자는 “우리 국민인 두에냐스가 순결을 경매에 부쳤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와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며 “경매를 중지하라고 종용할 뜻은 없지만 다양한 대안이 있음을 알려주려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아직은 두에냐스로부터 답을 들은 건 없으나 에콰도르 정부는 재외국민의 형편에 따라 경제적인 지원을 할 용의가 있다.”며 “(자국민인) 그가 계속 순결을 경매에 부친 걸 에콰도르 정부는 크게 우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받아들인다면) 그의 형편을 검토한 후 필요한 지원을 해주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에콰도르 현지 언론 ‘엘 코메르시오’는 28일 “두에냐스의 부모가 소식을 접하고 경악했다.”며 “부모가 딸에게 순결경매를 중단하라고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까지 두에냐스의 순결을 사겠다고 나선 사람은 약 6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손영식 voniss@naver.com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스페인 의대 여대생, 순결 경매 논란

    순결을 판다는 여성이 또 나왔다. 스페인에서 의과대학에 다니는 20대 여대생이 알츠하이머를 앓는 어머니 치료비를 마련하려고 처녀성을 경매에 부쳐 논란이 되고 있다. 에콰도르인 에벨린 두에노스(28·Evelyn Duenos)는 최근 온라인 경매사이트에 순결을 내놨다. 이 같은 결정을 한 이유는 알츠하이머를 앓는 어머니 때문이라고 그녀는 덧붙였다. 그녀는 “수업이 없는 날은 바로셀로나의 한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지만 어머니 병원비로는 턱 없이 부족하다.”면서 “치료비와 등록금을 한번에 마련할 방법은 이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10대 루마니아인이 생계비를 마련한다며 순결을 경매사이트에 올려 최고가를 제시한 남성과 첫날밤을 치렀다고 밝혀 논란이 된 바 있다. 두에노스는 “그 소녀의 사연을 봤다.”면서 “처음 본 남성과 첫날밤을 치른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으나,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용기를 얻어 결정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경매 사이트에서 그녀는 “바르게 자랐으며 신앙심도 깊다.”고 소개한 뒤 “구매를 할 남성에게는 처녀성을 증명하는 의학 소견서를 보여주겠다.”며 성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최고 입찰가격이 한화 약 41억원(200만 파운드)까지 치솟았지만, 두에노스는 구매자를 까다롭게 고르겠다고 밝혔다. 그녀는 “첫날밤을 치르기 전, 남성은 각종 성병이 없다는 의학 소견서를 제출해야하며, 반드시 피임기구를 사용해야한다. 뿐만 아니라 키스와 같은 신체 접촉은 절대 안된다.”고 못박았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길섶에서] 명예 살인/김성호 논설위원

    1937년 세계를 감동시킨 ‘세기의 결혼식’이 있었다. 영국왕 에드워드 8세와 미국 유부녀 심슨의 결혼. 사랑을 위해 왕좌를 박찬 왕, 그리고 왕관까지 버리게 만든 이혼녀. 보통사람 눈에 그 결혼은 분명 ‘일탈의 맺음’이었다. 그 맺음의 고리는 초월적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숨겨진 각별한 사연이 있었을까. 사우디아라비아 공주님이 망명을 했단다. 런던여행길에 만난 영국인과의 사랑서 얻은 아기를 영국으로 건너가 몰래 낳았다는데. 그것도 함께 사는 사우디왕족 남편을 속인 채 영국으로 대동해서. 아랍 부국의 공주자리도 버릴 만큼 영국남자가 그리 좋았을까. 영국 법원은 망명신청을 받아들였단다. 공주의 튀는 로맨스만으로 보기엔 전하는 사연이 조금 슬프다. 명예살인. 순결을 잃거나 혼외정사한 여인을 아버지 아니면 오빠가 죽여 없애는 이슬람 율법상의 잔혹 처벌. 공주는 혼외정사가 발각돼 가족에게 명예살인을 당할 운명이었다는데. 사랑일까, 견딜 수 없는 악법세상으로부터의 목숨 건 탈출일까. 공주님 속을 어찌 알랴.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국보유물 詩로 되살아나다

    ‘국보사랑’을 위한 시인들의 발걸음이 이제 막바지에 달했다. 한국시인협회는 오는 25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마지막 ‘국보순례 시낭송회’를 가진다. 마무리를 기념해 새달 12~13일에는 강원도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관련 세미나 및 시낭송회도 가진다. 올해 처음 시작된 ‘국보순례 시낭송회’는 우리 국보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노래하자는 취지로 지난 5월부터 시작됐다. 백제문화권(공주박물관)을 거쳐, 6월에는 신라문화권(경주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겨 각 지역 출신 시인들이 그 지역 주요 국보들을 하나씩 맡아 시로 써냈다. ●지난 5월 백제 문화권서 시작 이번 서울에서 열리는 낭송회는 국립중앙박물관의 ‘박물관 가는 날’ 행사의 일환으로 진행된다. 그동안의 행사가 지역 대표 국보들을 주로 노래했다면 이번 행사는 종합적인 성격을 갖는다. 김남조, 김종길, 신달자, 성찬경 등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 30여명이 ‘숭례문’, ‘종묘’ 등 서울 지역 국보 외에도 ‘다보탑’, ‘금산사미륵전’ 등 각 지역 주요 국보들을 함께 노래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재 유물 중에는 ‘금동미륵보살반가상’(국보83호)이 시로 쓰였다. 시인 김종길의 ‘금동반가사유상’이란 작품에서 ‘인간의 업고여, 생로병사여, / 그러나 그것들로부터는 아득히 벗어난 / 오히려 앳되고 예쁜 젊은 그 얼굴!’이라고 반가사유상의 모습을 노래한다. 또 이 행사의 계기가 되기도 했던 불타 버린 ‘숭례문’(국보1호)은 김남조 시인이 시로 재탄생시켰다. 그는 ‘숭례문’이란 작품에서 ‘순결한 큰 가슴이여 / 불과 재를 털고 일어서는 새 새명의 영험으로 / (중략) / 시작은 있으나 끝은 없는 / 신의 수명이시옵소서’라고 숭례문의 불멸을 노래했다. ●대표시인 100인 참석 국보사랑 뜻 기려 이날 행사는 개인 시낭송 외에 시인 여럿이 돌아가며 시를 읽는 ‘입체 시낭송’이라는 이채로운 행사도 준비된다. 총 30여편의 시가 낭송되며, 낭송자 외에도 한국의 대표시인 100인이 참석해 국보 사랑을 위한 뜻을 함께 기린다. 한편 새달 열리는 세미나는 3개월 간 진행된 시낭송회의 성과를 점검해 보는 자리로 마련된다. 전 문화재위원장인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의 기조강연으로 진행되며 ‘현대시와 불교문화재’, ‘현대시에 나타난 국보의 이미지’ 등을 주제로 시인 오세영 서울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최동호 고려대 교수 등이 논문을 발표하고 토론을 한다. 한국시인협회 회장 오탁번 시인은 “우리는 해외문화재의 아름다움을 자주 노래하면서도 정작 우리 문화재에 대한 소중함을 너무 모르고 있다.”면서 “우리 국보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한 활동을 앞으로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무형문화재나 역사 속 위인들을 시로 써서 그 정신을 되새기는 방법도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3개월 간 시인 160여명이 쓴 160여편의 국보창작시는 올 11월 책으로 묶여 나올 예정이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아프리카 빈곤은 내부의 흡혈귀 탓”

    “아프리카 빈곤은 내부의 흡혈귀 탓”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했던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 광산의 지배를 둘러싼 시에라 리온의 내전을 다뤘다. 하늘이 내려준 축복이 아프리카에서는 어떻게 재앙으로 돌변하는지 절규하며 보여줬다. 영화 ‘호텔 르완다’는 같은 르완다 국민인 후투족이 그들의 이웃친구인 투치족을 대학살하는 르완다의 종족분쟁을 그렸다. 사실 이런 부족, 종족간의 갈등은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쉽게 발견되는 비극이다. 정치인들이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 지속하기 위해 다른 종족에 대한 공포심과 증오심을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니콜 키드먼이 주연을 맡았던 영화 ‘인터프리터’는 서방의 제국주의에 맞서 부족의 독립을 위해 싸운 순결한 전사가 수십년 뒤에 부패한 독재자로 변질되는 아프리카의 암울하고 서글픈 현실을 똑똑히 보여줬다. 게릴라 군대의 사령관이었던 그는 국민들을 사병으로 간주하고, 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도록 요구하며, 저항하면 제거해야 할 적으로 간주해 탄압했다. ●英 이코노미스트 기자의 아프리카 관찰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기자인 로버트 게스트가 쓴 ‘아프리카, 무지개와 뱀파이어의 땅’(김은수 옮김, 지식의 날개 펴냄)은 이미 영화로도 다뤄진 아프리카의 암울한 현실을 좀더 세부적으로 다뤘다. 아프리카에서 7년간 특파원으로 일했던 게스트는 대통령은 물론 반군, 기업가, 농민, 상인들을 만나 직접 취재하면서 “아프리카는 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하는 그의 의문을 풀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눈에 아프리카는 서방 국가들이 유례없는 부를 쌓아가던 지난 30년간 유일하게 가난해진 대륙이다. 왜? 왜 그런가. ●잘못된 정치가 국민삶 피폐하게 만들어 일반적으로 아프리카의 가난을 식민의 역사, 열대기후, 전쟁, 에이즈와 같은 전염병, 황열병 등 풍토병, 문맹 등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그러나 게스트는 “무엇보다도 부패한 정치인, 무능한 정치인, 독재자들이 아프리카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식민지의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이나, 서방국가의 식민지가 될 위기를 19세기 국가개조를 통해 극복한 일본, 12개의 부족으로 구성된 국가지만 종족간 갈등을 부채질하지 않는 탄자니아, 새로운 기술혁신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마다가스카르와 스와질란드 등의 사례를 들면서 ‘제대로 된 정치 리더십’을 강조했다. 제목은 가나 학자 조이 아이테이가 ‘국민의 고혈을 착취하는 전형적인 탈식민지 시대의 아프리카 정부를 뱀파이어 나라’라고 비판한 것과 노벨평화상을 받은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무지개의 나라’라고 칭송한 것에서 땄다. 뱀파이어의 나라로 남을지, 무지개의 아름다운 나라가 될지는 아프리카 정치인들의 ‘좋은 정치’에 달렸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없으면 경제발전도 없다는 것을, 민주주의는 피를 마시며 발전하고, 그 피가 경제발전의 토대가 됐다는 간명한 진리가 책을 관통하고 있다. 1만 5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야생초 이야기⑥] 방울꽃

    [야생초 이야기⑥] 방울꽃

    5월이면 은방울꽃이 피기 시작한다. 날이 풀리고 4월이면 땅을 뚫고 뾰족뾰족 붉은 막에 싸인 은방울 싹이 돋는다. 끝이 날렵한 한 장의 계란형 잎이 또 다른 한 장의 잎 밑 부분을 감싼 채, 모두 두 장의 잎이 다 자라면 그 사이에서 작은 망울이 맺힌 꽃대가 나온다. 드물게 석 장의 잎을 가진 개체가 없진 않으나 대개가 두 장의 잎을 가진다. 은방울은 숲 가장자리의 반그늘을 좋아한다. 낙엽이 두껍게 쌓여 썩은 부엽토 층에 아주 넓게 퍼져 군락을 이루어 자란다. 세간에 제비꽃, 민들레만큼 그 이름이 널리 흔하게 알려진 야생화 가운데 하나가 은방울꽃이 아닐까? 그 꽃을 보기 전에도 그 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형상이 어떠할지 짐작하게 해주는 꽃 이름이다. ‘아마 은백색의 빛깔로 꽃모양은 방울을 닮았겠지’하고 상상이 되지 않은가? 그렇다. 말 그대로 은으로 만든 작은 방울 같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그 향기 또한 아름다우리라 짐작을 한다. 야생화의 아름다움을 대변하는 대명사로 흔히 쓰이는 이름이 이 은방울 아닌가 한다. 신석정 시인이 쓴 <은방울꽃>이라는 시가 있다. 나는 / 그때 외롭게 / 산길을 걷고 있었다. …(중략)… 숲길에선 / 은방울꽃 내음이 솔곳이 / 바람결에 풍겨오고 있었다. 너희들의 / 그 맑은 눈망울을 / 은방울꽃 속에서 난 역력히 보았다. 그것은 / 나의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 너희 가슴 속에 핀 꽃이었는지도 모른다. <은방울꽃> 부분, 신석정 그 향기로 먼저 다가오는 꽃, 그리운, 간절하게 그리운 “너희들의 그 맑은 눈망울”을 닮은 꽃, 얼마나 맑으면 얼마나 향기로우면 그리운 “너희들을” 그 꽃에서 떠올렸을까? 시인이 외롭게 산길을 걸으며 떠올렸을 그리운 “너희들의 가슴 속에서 핀 꽃”이니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우며 향기로운 꽃일까? 5월과 6월의 숲에 짙은 향기를 뿜어대는 풀꽃이 있다면 이 은방울꽃이라 생각하면 된다. 반원을 그리며 잎보다 낮은 위치에서 땅을 향하며 휘어진 꽃대, 거기에 송알송알 10개 정도의 앙증맞은 꽃이 피어난다. 순백색이다. 모두들 수줍은 듯 땅을 향하여 피어나기 때문에 좀처럼 그 안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 순백의 빛깔에 걸맞게 그 향기 또한 맑고도 그윽하다. 시인이 노래했던 대로 아련한 그리움을 불러오는 향기다. 그 싱그러움은 언설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렇다. 이 꽃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5월의 숲을 찾아보라. 5월만큼 아름다운 계절이 있을까? 그 5월이 아름답다면 분명 우리 곁에 숲이 있어서일 것이고 5월의 숲은 이 은방울꽃의 빛깔과 향기로 완성된다. 고급 향수의 재료로 쓰인다니 그럴 만도 하다. 작아서 고개 숙이고 앉아야 오롯이 그 모습을 보여주는 꽃, 좀처럼 제 속을 보여주지 않고 향기로 말하는 꽃, 그 꽃말대로 “기쁜 소식”을 줄 것 같은 즐거운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꽃이다. 또 다른 꽃말이 “다시 찾은 행복”이라는데 그럴 것도 같다. 그 순결한 빛깔과 향기 앞에서는 지난 고통들은 싹 가시고 다시 행복이 찾아올 것 같이 가슴이 두근거린다. 바람이 살짝 불어준다면 그 작은 은방울들이 찰랑찰랑 맑고 청아한 방울 소리를 낼 것 같지 않은가? 전설에 의하면 5월의 은밀한 숲엔 하늘의 천사들이 밤이면 무도회를 연단다. 달빛을 타고 내려온 천사들은 목에 달았던 작은 방울을 풀잎에 걸어두고 노래 부르며 춤추며 날이 밝도록 놀다가 새벽이 되면 하늘로 올라간다. 그런데 어느 날은 날이 훤하게 밝은 줄도 모르고 무도에 취했다가 서둘러 하늘로 올라가는 바람에 벗어두었던 방울을 잊고 갔단다. 우리가 보는 이 은방울꽃이 바로 천사의 목에 걸렸던 그 은방울이었던 것이다. 그 말고도 다른 전설이 있다. 대개 죽은 자의 영혼이 꽃으로 태어나거나 그의 피가 꽃으로 태어난다는. 그리스에 전해오는 전설이다. 세인트 레오나르도는 의협심이 강한 청년인데 사람들을 괴롭히는 독사와 맞서 싸우다가 독사를 죽이게 되지만 그 자신 또한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된다. 그의 상처에서 떨어지는 핏방울이 땅에 떨어져 꽃을 피우게 되는데 그것이 은방울꽃이라고 한다. 꽃의 빛깔과 어울리지 않는 얘긴데 그런 의심에 대한 답이라도 되는 듯 처음 은방울의 싹이 돋을 때 보면 붉은 색의 막에 싸여 있다. 전설이란 게 믿거나 말거나 얘기지만 아무래도 천사의 목걸이 쪽을 믿고 싶다. 있다면 말이다. 없다해도 은방울꽃을 보면서 그와 같이 아름다운 세상, 천국, 그리고 천사를 상상해보는 게 더 즐겁지 않을까? 가슴 속에 천국의 모습 하나 그려보지 않은 사람도 가난한 사람 아닐까 한다. 천국의 모습을 그려보라 하면 은방울꽃들이 가득 피어 있는 그런 나라를 떠올려본다. 요즘은 관상용으로 그리 어렵지 않게 은방울꽃을 만날 수 있다. 화분에 담아서 팔기도 한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야생화는 야생에서 만났을 때 온전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두고두고 잘 기를 수 있다면 집에서 길러 보는 것도 나쁘진 않으리라. 이 은방울꽃은 약재로도 쓰인다. 강심제와 이뇨제로 쓰인다 하나 이 야생초 역시나 독이 있어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고 한다. 조심할 일이다. 마음의 상처엔 특효가 있으나 몸이 아프다면 역시 병원이나 약국을 찾아야 할 것이다. 아니다. 5월엔 숲에 가서 이 은방울꽃을 만나고 나면 몸도 마음도 쇄락해질지도 모른다. 복효근·1962년 전북 남원 출생. 1991년 계간 《시와시학》 등단. 시집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버마재비 사랑》 《새에 대한 반성문》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 등. 1995년 편운문학상 신인상, 2000년 시와시학 젊은 시인상 수상. 글 복효근 시인
  • [도시와 산] (10) 포천 국망봉

    [도시와 산] (10) 포천 국망봉

    산은 찾을 때마다 모습이 전혀 새롭다. 높고 큰 산일수록 더욱 그렇다. 경기도에서 세 번째로 높은 국망봉(國望峰·1168m)은 그런 산이다. 매번 찾아갈 때마다 모습을 달리했다. 화악산, 명지산, 광덕산, 각흘산, 명성산 등 주변 산에 올라서 봐도 산으로서의 품격이 높았다. 궁예와 관련된 역사성도 있고, 개성도 독특하다. 그런데도 국망봉은 자신을 낮추어 산이 아닌 ‘봉’이 되어서일까. 서울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도시의 산꾼들에게는 광덕고개에서 백운산~도마치봉~신로봉~국망봉~개이빨산(견치봉)~도성고개~강씨봉으로 이어지는 당일치기 종주산행 코스가 이름있다. ●천상의 화원, 영혼까지 맑게 한다 경기·강원 경계인 광덕고개(664m)에서 시작해 국망봉을 거쳐 강씨봉까지 이어지는 9시간 이상의 종주코스는 체력만 허락되면 당일치기로는 최고이다. 힘이 부치면 신로령, 국망봉, 도성고개 등 중간중간서 단축, 이동 쪽으로 하산하면 그만이다. 도성고개에서 이동 쪽 하산길 끝 부분에 낙태나 유산으로 고통받는 불자들과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하고 사라져간 생명을 위한 참회기도 도량 구담사가 눈길을 끈다. 부근이 불당(佛堂)골로 예전에 큰 절이 있었던 흔적이 있다. 울창한 참나무와 물푸레나무 숲이 계속되는 해발 1000m 안팎의 능선은 환상적인 천상의 화원이다. 백운산 일원에서는 멸종위기 식물인 천연기념물 히어리가 보호되고 있다. 이후 끝없는 산상·천상 화원이 펼쳐진다. 도시에서 찾아간 산꾼들의 넋을 빼앗고, 영혼까지 맑게 한다. 긴 종주능선에서 5월 초에는 얼레지가 지천이다. 음지는 물론 방화대 여기저기 외롭게 혹은 집단으로 서식한다. 가냘프면서도 우아하다. 꽃말이 ‘질투’이듯 시샘이 날 정도로 미려하다. 홀아비꽃대는 투박하다. 각시현호색은 수줍어 보인다. 산괴불주머니, 노랑매미꽃, 애기똥풀, 각시붓꽃, 아욱제비꽃, 애기나리 등은 꽃도, 이름도 정겹다. 민드기산 정상의 할미꽃들은 처연하다. 5월 말 천상의 화원은 주인공이 바뀐다. 보름 전 소수이던 애기나리, 둥글레, 용둥글레가 거의 전 능선을 점령해 버린다. 앙증맞으면서도 순결해 보이는 은방울꽃은 잊을만하면 깊고 그윽한 향기를 뿜어낸다. 국망봉 정상 가까운 능선 고산지역서만 보이는 큰앵초 군락은 지친 발걸음에 힘을 불어넣는다. 천상의 화원은 가을까지 주인공이 쉼 없이 바뀐다. 동자꽃이 한철을 풍미하고 가을에는 천남성이 인상적이다. 구절초, 쑥부쟁이가 흐드러진다. ●1100년 전 전쟁터 지금도 상흔이… 국망봉 주변은 궁예가 고려 왕건과 패권을 다툰 치열한 전쟁터였다. 국망봉에서는 궁예가 세웠던 태봉의 도읍 철원이 보인다. 궁예는 자신에게 쓴소리를 하던 부인 강씨를 인근 강씨봉 자락에 유폐시켰다. 왕건에게 패한 뒤 강씨를 찾아나섰다가 죽었다는 소식에 이 산에 올라 철원 쪽을 바라보며 탄식해 국망봉이라 했다는 전설이 있다. 조선시대 말까지 망국산(望國山)으로 불리다가 봉으로 격하돼 국망봉이 됐다는 기록도 있다. 국망봉에는 현재도 분단의 상처가 깊다. 국망봉 바로 남쪽이 38선으로 해방 이후 수년간 북한 땅이었다. 한겨울 영하 20도 이하로 내려가는 전방고지 화악산이 지척이다. 대성산 등 수많은 최전방 고지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군부대나 군시설도 주변에 많다. 그래서인지 이동이나 광덕고개까지 가는 사창리행 버스에는 군인이나 면회객들이 등산객들보다 많다. 동서울터미널에서는 오전 9시까지 3편의 사창리행 버스를 이용, 이동이나 광덕고개(1시간40분 소요)에서 내려 국망봉에 오를 수 있다. 상봉터미널에서 사창리까지 운행하는 강원고속 운전기사 안복수씨는 “토요일에는 많은 등산객이 오전 8시20분 버스로 광덕고개까지 간다.”고 소개했다. ●방심하면 큰일 난다 국망봉 주능선은 부드럽지만 하산길은 거칠다. 가평 쪽으로 내려갈 수 있지만 교통여건 상 서울 등산객들은 거의 포천 이동 쪽으로 하산, 귀경한다. 이동 쪽 하산길은 국망봉 쪽에서 급경사를 통해 내려가야 한다. 봄~가을에도 여기저기 밧줄을 잡고 내려가다가 미끄러지고 추락할 수 있다. 체력이 떨어진 상태라 30분 정도는 긴장해야 한다. 동절기 국망봉은 더 거칠다. 4월 말까지는 눈길이다. 2003년 2월에는 설날을 맞아 국망봉에 올랐던 6명이 조난을 당해 그 중 4명이나 숨지는 참사가 있었다. 이후에도 실족·추락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유명한 눈길 산행지인 국망봉은 동절기엔 위험이 2배 이상 증가한다. 반드시 장비를 갖추고 일몰 전에 하산해야 한다.”고 포천소방서 장서익 구조대장은 당부한다. 하나 있는 도마치봉 아래 샘은 갈수기엔 말라 버려 식수를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백운산에서 국망봉으로 갈 때는 자칫 흥룡사 쪽으로 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삼각봉 안내판 방향으로 길을 잡아야 한다. 김재완 포천시 공보팀장은 “등산 안내판과 등산로의 안전시설 입찰을 끝내고 보강하는 작업을 순차적으로 진행한다.”고 전했다. 가평군·산림청도 최근 시설보완을 했다. 국망봉 능선은 9시간 이상 걸어도 만나는 일행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한적하다. 가끔 등산객을 만나면 음식 인심이 눈물 나게 후하다. 사람이 적기 때문에 위험을 당하면 더 당황하기 쉽다. 그러나 어디서도 잘 터지는 휴대전화를 이용, 119에 구원을 요청하면 된다. 이춘규 편집국 부국장 ● 힘든 산행길 보너스 푹신푹신 방화대 능선길 국망봉 남북으로는 폭 10~20m의 나무를 베어 없앤 방화대(防火帶, 혹은 방화선)가 능선을 타고 길게 이어져 있다. 북쪽에서는 도마봉에서 국망봉 지척까지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국망봉에서 10리 정도 없다가 다시 푸른 카펫 길처럼 수십리 이어진다. 방화대는 능선을 따라 설치된다. 나무들이 울창한 가운데에 설치되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길게 카펫을 깔아놓은 것처럼 아름답다. 봄~가을은 나무들이 없는 방화대에 잡초가 우거지기 때문에 푹신푹신하다. 가을에는 잡초들이 말라 불에 타기 쉬워진다. 경기도 산림환경연구소 박봉섭씨는 “매년 10월 말~11월 초 예초기 등 장비를 동원해 방화대의 잡초와 잡목들을 제거, 혹시 모를 산불에 대비한다.”고 설명했다. 눈이 왔을 때 방화대는 등산객들이 편하게 걸을 수 있는 통행로가 된다. 방화대 설치를 “탁상행정이다.”며 복원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봄철 강풍 땐 방화대가 무기력할 수도 있지만 바람이 없을 땐 산불 번짐을 차단한다. 아울러 진화인력과 장비의 투입로로 활용된다고 산림청 산불방지과 정철호 주무관이 밝혔다. 방화대는 일본 강점기인 1929년부터 전국적으로 1764㎞ 설치됐다. 흐지부지됐다가 1차 산림녹화기(1972~78년)에 685㎞가 재차 조성됐다. 가평 명지산~연인산, 석룡산, 남양주 축령산과 천마산 그리고 포천 각흘산 등에도 방화대가 있다. 미국과 일본은 최대 폭 50m의 방화대를 다수 설치, 관리 중이다. 이춘규 편집국 부국장 taein@seoul.co.kr
  • 伊총리, 스캔들 확산 곤혹

    │파리 이종수특파원│18세 모델 지망생 노에미 레티치아와의 스캔들로 부인에게 이혼 요구를 받고 있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레티치아와의 관계를 해명하면서 거짓말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이탈리아 좌파 성향 일간 라 레푸블리카는 24일(현지시간) 레티치아의 전 남자친구인 지노 플라미니오와의 인터뷰 기사에서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레티치아의 부모를 전혀 알지 못하고 레티치아의 사진을 본 뒤 그녀에게 접근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베를루스코니는 레티치아가 수십년 동안 친하게 지낸 동료의 딸이어서 생일파티에 참가했다고 밝힌 바 있다.플라미니오는 “베를루스코니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방송사 ‘레테4(Rete4)’의 사장이 자신을 찾아왔다 책상에 두고 간 모델 지망생들 사진 파일에서 레티치아를 처음 봤다.”며 “베를루스코니는 비서를 통하지 않고 직접 레티치아에게 전화를 걸어 ‘사진으로 당신을 봤는데 천사같은 얼굴과 순결함에 반했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플리미니오는 또 “레티치아가 사르데냐에 있는 베를루스코니의 화려한 별장을 방문한 것을 보고 지난 1월 헤어졌다.”고 설명했다. 그의 증언이 보도되자 이탈리아 야당은 “베를루스코니가 레티치아와의 관계에 대해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압박했다. 이에 대해 베를루스코니 총리측은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가십으로 발목을 잡으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vie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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