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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고] 오정명 경희학원 명예이사장 별세

    [부고] 오정명 경희학원 명예이사장 별세

    오정명(吳貞明) 학교법인 경희학원 명예 이사장이 26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87세. 오 명예 이사장은 학교법인 경희학원 설립자인 조영식 박사의 부인으로 그동안 사단법인 서울오페라단 이사, 재단법인 국제밝은사회재단 이사, 학교법인 경희학원 이사 등으로 활동해 왔다. 고인은 평양이 고향으로, 일본 도쿄 나카노구 호리고시고등학교 가정과를 졸업한후 중국 문화학원 명예철학박사 학위와 호쿠리쿠대학 명예약학박사 학위 등을 받았다. 지난 1961년에는 재단법인 고황재단 이사를 시작으로 1963년 고황재단 이사장,1965년 동양의과대학 행림학원 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장례는 학교법인 경희학원 학원장으로 치러지며, 빈소 및 분향소는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 평화의 전당, 국제캠퍼스 중앙도서관 3층 대회의실, 광릉캠퍼스 모의국무회의실에 마련됐다. 영결식은 30일 오전 9시. 장지는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삼봉리 선영. 유족으로는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WTF) 총재, 조인원 경희대학교 총장 등 2남과 조여원 경희대학교 동서의학대학원장, 조미연씨 등 2녀, 사위 독고윤 아주대 경영학부 교수, 구자명 LS 니코동제련 대표이사 부회장이 있다. 문의 (02)961-0002∼3.
  • [김달진 문학상] 김달진의 생애와 작품세계

    [김달진 문학상] 김달진의 생애와 작품세계

    월하(月下) 김달진 시인은 생전 평생을 한결같이 세속에서 벗어나 세상을 관조하며 인간이 지향해야 할 숭고한 정신 세계를 추구한 시인이요 한학자다. 세속의 명리를 깃털보다 가볍게 여긴 시인의 삶은 천민자본주의가 팽배한 이 시대 사표(師表)가 되기에 충분하다. 1907년 2월 경남 창원군 웅동(현 진해시 소사동)에서 태어난 월하는 항일 민족 기독학교인 계광보통학교를 졸업했다.1926년 서울 경신중학 재학중 일본인 영어교사 추방운동을 주도하다 퇴학을 당하는 고초를 겪었다. ●인간이 지향해야 할 숭고한 정신세계 추구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모교 계광보통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바쁜 생활 속에서도 1929년 순수 문예지 ‘문예공론’에 시 ‘잡영수곡(雜詠數曲)’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이후 시인은 ‘시원’‘시인부락’‘죽순’의 동인으로 참여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당시 ‘유점사를 찾는 길에’‘나의 뜰’‘샘물’ 등을 잇달아 발표했다. 그러나 항일교육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계광보통학교가 폐교되자 민족 현실에 절망한 시인은 1934년 금강산 유점사에 들어가 수도생활에 매진했다. 시인은 1936년 동국대학교 전신인 중앙불교전문학교에 입학, 불경 연구의 길을 걸었다. 불교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1940년 시집 ‘청시(靑枾)’를 발표했다. 유점사로 돌아간 시인은 1941년 ‘불령선인’이라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던 일제 경찰을 때려 눕히고 중국 용정으로 건너갔다. 이곳에서 소설가 안수길을 만나 그가 발간하던 잡지 ‘싹’에 ‘향수’ 등 시를 게재하기도 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서울로 돌아온 그는 이듬해 서울을 떠나 창원 남면중학교 교장, 해군사관학교 교관 등을 거쳐 1973년 동국대학교 역경원 역경위원을 지냈다. 이 기간에 ‘한국선시’‘법구경’‘금강삼매경론’ 등 불교서적도 번역했고 ‘장자’‘한산시’ 등 동양고전을 우리말로 옮겼다. 이러다 보니 자연히 시작 활동은 뜸해져 문단에서 서서히 잊혀졌다. 역경 작업에 몰두하던 시인은 1967년 ‘임의 모습’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재개한 이후 ‘벌레’‘속삭임’‘낙엽’‘포만’ 등을 발표했다.1983년 불교정신문화원에 의해 한국고승석덕(碩德)으로 추대된 시인은 시전집 ‘올빼미의 노래’와 장편 서사시집 ‘큰 연꽃 한 송이 피기까지’ 등을 펴냈다.1989년 6월 ‘한국 한시’(전 3권)의 완간을 앞두고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김달진 시인은 일제시대부터 제도권 문단의 편입을 거부하고 고고한 삶을 살았다. 그런 삶이 시 속에도 오롯이 녹아들어 그만의 순수한 시적 영토를 지켰다. 시인은 그 어떤 이데올로기나 관념에도 편벽되지 않고 자연 본연의 모습을 질박한 언어로 담아냈다.“여기 한 자연아(自然兒)가/그대로 와서/그대로 살다가/자연으로 돌아갔다./ 물은 푸르라/해는 빛나라/자연 그대로./이승의 나뭇가지에서 우는 새여./빛나는 바람을 노래하라.”(‘비명(碑銘)’) ●동양고전·한시·불교서적 번역에도 힘써 시인의 시어는 평이하다. 하지만 청아한 정신주의적 세계관을 표방하는 시인의 도저한 시적 상상력은 끝간 데가 없다. 시인의 작품은 물질만능주의에 휘둘리는 이 시대에 인간 본연의 순정한 본성을 일깨워 주는 마력의 힘을 발휘한다. 시인의 작품은 자연에 대한 관조와 종교적 초월의 경계 속에서 태어난다. 그것은 곧 우리 시사(詩史)에 면면히 이어져온 순수 서정시와 동양적 미학을 접목,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려는 몸짓이다. 노장사상과 불교사상으로 대표되는 동양적 사유의 전개, 그것이 바로 월하 시의 요체다. 김달진문학상 운영위원인 오세영(서울대 명예교수) 시인은 “월하의 시세계는 서구의 이미지스트적 감각과 한국의 토속적인 자연, 동양사상의 합일로 요약된다.”면서 “시인의 작품들이 은둔생활에 가까운 생활로 대부분 묻혀 있는 만큼 그의 문학사적 위치를 제대로 찾아주려면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부고] 이영창 전 의원 별세

    [부고] 이영창 전 의원 별세

    이영창 전 국회의원이 13일 밤 11시35분 숙환으로 별세했다.76세. 고인은 14대 의원을 지냈으며 서울·부산 경찰국장, 치안본부장, 주택공사 이사장을 역임했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장원춘 여사와 딸 은주, 연실(사위 오홍석 금융감독원 홍콩주재 사무관), 은정(사위 김창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장)씨 등 3녀가 있다. 빈소 삼성서울병원 17호실 발인 16일 오전 6시 장지 경북 청도군 매전면 선영.(02)3410-6917.
  • [부고] 최광석 OB축구회 명예회장

    1954년 한국대표팀을 스위스월드컵 본선에 올려놓은 데 기여한 최광석 한국OB축구회 명예회장이 6일 숙환으로 별세했다.77세.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를 다닌 최 명예회장은 1954년 3월 도쿄에서 열린 스위스월드컵 아시아예선 일본과의 원정경기에서 최연소 대표선수로 출전해 1골을 기록,5-1 대승을 이끌었다. 일주일 뒤 2차전에선 2-2로 비겼지만 한국은 사상 첫 월드컵 본선행에 성공했다. 최 명예회장은 은퇴 이후 한양대, 외환은행 감독을 역임했고 대한축구협회 심판위원장, 서울시축구협회 부회장, 한국OB축구회 회장을 지냈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고 장례는 축구인장으로 거행된다. 발인은 8일 오전 8시.(02)921-1099.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죽음의 키스’ 美 명배우 리처드 위드마크 타계

    영화 ‘죽음의 키스(Kiss of Death)’에서 냉정한 킬러로 명성을 얻었던 미국 왕년의 명배우 리처드 위드마크가 타계했다.93세. 할리우드 스타 또 한 명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셈이다. BBC,CNN 등 외신들은 26일(이하 현지시간) 그의 아내 수전의 말을 인용해 “수많은 영화에서 악당역을 주로 맡았던 위드마크가 지난 24일 미국 코네티컷주 블루베리 자택에서 오랜 숙환으로 눈을 감았다.”고 전했다. 1914년 미네소타주 선라이즈에서 장사꾼의 아들로 태어난 위드마크는 라디오와 연극으로 경력을 쌓은 뒤 1947년 ‘죽음의 키스’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잔혹한 살인마인 토미 우도로 출연해 실감나는 연기로 단숨에 스타급으로 부상했다. 골든글로브 최고신인상을 수상했고 아카데미상 후보로도 지명됐다. 데뷔작에서 할리우드 샛별로 떠오른 그는 1991년까지 44년 동안 무려 7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다. 지적인 서민형 연기자라는 평을 듣는 그의 대표작엔 존 웨인과 열연한 ’알라모(The Alamo)’와 커크 더글러스와 출연한 ‘서부로 가는 길(The Way West)’ 등이 있다.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부고] ‘진보당 사건’ 최후 생존자 정태영씨

    ‘진보당 조봉암 사건’의 마지막 생존자인 정태영씨가 지난 21일 숙환으로 별세했다.77세. 1931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문리대를 졸업한 그는 26살에 독립운동가 죽산 조봉암을 만나 진보당에 가입했다.진보당에서 청년 조직 확대를 담당했던 그는 1958년 1월 ‘북한에서 교육받은 당 이론가’로 몰려 국가변란 혐의로 조봉암 등과 함께 전격 체포됐다.3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출소한 그는 4·19 직후 혁신계 및 3선 개헌 반대특위 등에 참여하는 등 평생 진보정당에 대한 신념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고려대 정책과학대학원과 건국대 정치외교학과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한 고인의 저서로는 ‘조봉암과 진보당’(1991),‘한국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역사적 기원’(2006)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 강남성모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4일 오전 8시다.(02)590-2538.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부고] 강길수 서울대 명예교수 별세

    강길수(康吉秀) 서울대 명예교수가 21일 오전 9시 숙환으로 별세했다.87세. 교육행정학자인 고인은 연세대와 서울대에서 교수를 지냈고 한국교육행정학회 초대회장을 역임했다. 유족으로는 11대,13대 국회의원을 지낸 부인 이윤자(전국주부교실중앙회장)씨와 딸 용진·용선·용미씨, 사위 김원정(미국 피츠버그대 의대 교수)·이상일(한양금속 대표)씨가 있다. 장례는 한국교육행정학회장으로 치러지며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에 마련됐다.발인은 24일 오전 8시. 장례미사는 오전 9시 서울 청담동 성당에서 열린다. 장지는 천안 공원묘지(02)3010-22 92.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부고]동성제약 창업주 이선규 회장 별세

    [부고]동성제약 창업주 이선규 회장 별세

    염색약 훼미닌과 정장소화제인 정로환으로 유명한 동성제약의 창업주인 송음(松陰) 이선규 회장이 17일 오전 서울아산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84세. 일제시대 궁부약국 직원으로 의약품과 인연을 맺은 고(故) 이 회장은 지난 1957년 동성제약을 창업했다.1960년대 패션염모제 훼미닌을 개발해 동성제약을 헤어컬러 업체로 성장시켰다.1972년에는 대표 배탈·설사약으로 자리잡은 정로환을 국내에 처음으로 보급했다. 동성제약은 고 이 회장의 장례를 회사장으로 치른다.19일 오전 10시30분 충남 아산공장에서 영결식을 가질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남복희씨와 3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19일 오전 5시.(02)3010-2230.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부고] 이해성 한양대 명예총장 별세

    한양대학교 제7대 총장을 지낸 이해성 교수가 11일 숙환으로 별세했다.80세. 고인은 1957년 한양대학교 공대 건축과 전임강사를 시작으로 공대학장,1989년 한양대 총장을 거쳐 명예총장으로 재직해왔다. 한국건축가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서울특별시 남산 시립도서관’,‘한양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 등의 건축물을 남겼다. 유족으로는 부인 최옥선씨와 아들 이상훈(영국 유학중)씨. 빈소는 한양대 병원 영안실 8호실, 발인 15일 오전 9시.(02)2290-9442.
  • [부고] 김동권 전 의원 별세

    [부고] 김동권 전 의원 별세

    김동권 전 의원이 7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64세. 고인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쌍마섬유 대표이사 등을 역임한 뒤 92년 경북 의성에서 민자당 후보로 당선돼 14대 의원을 지냈다. 김녕김씨 종친회장도 역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최영희(의사)씨를 비롯해 아들 정욱(삼성전자 과장)씨, 딸 효정, 지현씨 등 1남2녀와 사위 서형일(부산대의대 교수), 최종윤(대성운수 사장)씨가 있다. 7일 오전 11시40분 삼성서울병원, 발인 10일 오전 5시 (02)3410-6915.
  • [부고] 엄기표 전 의원 별세

    [부고] 엄기표 전 의원 별세

    제8대 국회의원을 지낸 엄기표 전 의원이 1일 숙환으로 별세했다.85세. 육군 소장으로 예편한 엄 전 의원은 국정교과서 상무를 거쳐 1971년 제 8대 총선에서 민주공화당 소속으로 경남 하동에서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화랑무공·충무·광복 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엄욱진 울산방송 편성팀장 등 2남3녀. 발인은 4일 오전 11시. 빈소는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02)3410-6903.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부고] ‘마지막 제헌의원’ 김인식옹

    유일한 생존 제헌국회의원이던 김인식옹이 지난 25일 숙환으로 별세했다.95세. 고인은 16세 때인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해주고보에서 퇴학을 당하고, 중국의 고교 과정을 거쳐 일본 와세다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1945년 광복 이후 고향인 해주가 공산당 치하로 들어가자 남하해 대동청년단 서북사무처장 등을 역임했다.1948년 제헌 국회의원 당선 후에는 친일파 숙청을 위한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으며, 국가보안법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1990년대에는 대한민국건국회 회장, 이북 출신 국회의원회 회장, 대한민국 제헌국회의원 동지회 회장 등을 지냈다. 매년 제헌절 행사 때마다 기념사 낭독을 도맡았다. 빈소는 서울대학병원. 영결식은 28일 오전 10시 국회헌정기념관 대강당.(02)2072-2022.
  • [부고] 박경원 전의원 별세

    박경원 전 국회의원이 20일 숙환으로 별세했다.85세. 박 전 의원은 제2군 사령관, 내무부·체신부·교통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10대 민주공화당 소속으로 마포·용산 지역구 의원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아들 종호·종완·종찬씨 등 3남.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으로 발인은 22일 오전 8시. 장지는 대전국립현충원.(02)3010-2230.
  • [부고] 홍병철 전 국회의원 타계

    [부고] 홍병철 전 국회의원 타계

    홍병철 전 국회의원이 18일 숙환으로 별세했다.79세. 육군 중령 출신인 홍 전 의원은 5·16 군사 쿠데타 이후 최고회의 의장경호실 기획과장, 대통령경호실 기획과장과 기획처장을 지냈다.8대 민주공화당 소속으로,9대 무소속으로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성훈(호남대 교수)·세훈씨, 딸 채란·혜정씨 등 2남2녀. 빈소 제주시 한마음병원 제1분향소, 발인 21일 오전 7시. 장지 제주시 한림읍 금앙리 선영.(064)723-3040.
  • [부고] 장지수 前해군참모총장 별세

    전 해군 참모총장 장지수 예비역 대장이 25일 오후 6시쯤 숙환으로 별세했다.80세.6·25당시 공주함장으로 참전한 고인은 해군사관학교장, 국가 재건최고회의 최고위원, 한국함대사령관 등을 역임했다.1969년에는 제 9대 해군 참모총장직을 맡아 초창기 해군 발전에 기여했다. 을지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미국동성훈장 등을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1972년 전역 후에는 산업포장, 대통령표창 등을 수여받았다. 유족으로 부인 김우정씨와 아들 재윤·재호씨, 딸 재희씨 등 2남1녀가 있다. 빈소는 분당 서울대병원 영안실(031-787-1510)에 마련됐다. 영결식은 28일 오전 11시 분당 서울대병원 영결식장에서 치러진다.
  • [부고] 최고령 애국지사 김종호 선생 별세

    [부고] 최고령 애국지사 김종호 선생 별세

    전국 최고령 애국지사인 김종호 선생이 21일 오전 1시쯤 경북 경산시 진량읍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101세. 경산시 봉회교회(옛 진량 제일교회)의 장로였던 고인은 일제의 신사참배 요구를 거부하며 항일운동을 펼치다 1943년 11월17일 체포돼 1년 동안 옥고를 겪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7년 건국 포장을 수여했다. 유족으로 아들 병영·대영·일영씨와 딸 애영·순자·영자씨 등 3남3녀가 있다. 빈소는 경산시 중방동 경산대경병원 영안실(053-812-4004)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3일 오전 7시.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3묘역이다. 광복회에 따르면 지금까지 작고한 애국지사 중 최고령은 2003년 11월 향년 100세를 일기로 타계한 고 이강훈 선생이었다. 경산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부고] 애국지사 조병의 선생 별세

    일제 강점기 독립을 위해 학생운동을 벌였던 애국지사 조병의 선생이 14일 숙환으로 별세했다.98세. 조 선생은 광주농업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9년 11월 광주학생독립운동에서 학생 대표로 활동하다가 일제에 체포돼 퇴학당했다. 또 재학시절 동료들과 독서회를 조직했던 것과 관련해 조사를 받았으나 30년 7월 광주지법 예심에서 면소 판결을 받고 석방, 고향인 전남 화순으로 돌아가 농촌 문맹퇴치를 위해 힘썼다. 유족은 아들 창삼씨 등 3남1녀. 빈소는 서울 일원동 삼성의료원 영안실 9호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6일.(02)3410-6909.
  • [부고] 구자경 LG명예회장 부인 하정임 여사 별세

    [부고] 구자경 LG명예회장 부인 하정임 여사 별세

    LG가(家)의 어머니가 9일 세상을 떠났다. 열여덟살에 LG가의 종부(宗婦)로 들어와 평생을 100명이 넘는 대가족을 보살피며 구씨와 허씨 집안의 화목을 이끌었다.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병원에는 구씨 일가는 물론 ‘분가’한 허씨 일가(GS그룹)의 조문 발길도 끊이지 않았다. 정·재계 등 각계 인사들도 속속 모여들었다. 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장, 이헌재·권오규 전·현 경제부총리, 최태원 SK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 이구택 포스코 회장 등이 빈소를 찾았다. 구자경(84) LG그룹 명예회장의 부인인 하정임 여사가 이날 오전 6시39분 서울대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85세. 고인은 1924년 경남 진양군 대곡면 단목리에서 대지주(하순봉)의 맏딸로 태어났다. 만 18세가 되던 해인 1942년 5월, 이웃마을(지수면 승산리) 학생과 결혼했다. 이 때 구 명예회장은 진주공립중학교 4학년이었다. 당시 구 명예회장의 조부모가 “선비 집안의 장녀이자 한문에 뛰어난 소양을 갖춘” 하 여사를 종부로 찍었다고 한다. 슬하에 4남2녀를 뒀다. 장남인 구본무 LG그룹 회장을 비롯해 구훤미(고 김화중 희성금속 사장 부인)씨,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구본준 LG상사 부회장, 구미정(최병민 대한펄프 회장 부인)씨, 구본식 희성전자 사장이다. 시부모에 6명의 아들딸,8명의 시동생을 보살피고, 동업자 허씨 집안까지 두루두루 신경써야 하는 삶이었지만 집 울타리 바깥으로 잡음이 새어나온 적이 없었다. 유교적 가풍 탓에 제사가 많았지만 그 많은 제사를 단 한번도 남에게 맡기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제수용품과 제례음식을 일일이 직접 준비했다. 이를 두고 2001년 구 명예회장은 희수(77회 생일)연에서 “60년동안 일생의 반려로서 묵묵히 내조해준 집사람에게 정말 고맙고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말해 주위를 뭉클하게 했다. 이듬해에는 결혼 60주년 회혼례를 올리기도 했다. 상주인 구본무 회장은 “엄격한 가르침과 따뜻한 사랑으로 자식을 바르게 키우는 부모의 모습을 엄부자모(嚴父慈母)라 하는데, 바로 우리 어머님께서 그런 가정교육으로 여섯 남매를 길러주셨다.”고 말했다. 발인은 12일 오전 7시. 장지는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해월리.(02)2072-2016.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부고] 한양대 설립 백남 김연준 박사 별세

    작곡가이자 한양대 설립자인 백남(白南) 김연준(金連俊) 전 한양학원 이사장이 7일 0시30분 숙환으로 한양대 병원에서 별세했다.94세. 1914년 2월20일 함경북도 명천에서 태어난 김 전 이사장은 1939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한양대의 전신인 동아공과학원을 설립했다. 김 전 이사장은 이후 한양대, 한양여대, 한양대 사범대학 부속 중·고교, 한양초등학교, 한양여대 부속 유치원, 한양대 의료원, 한양사이버대 등을 설립했고 한양증권주식회사, 백남관광주식회사, 한양개발주식회사, 대한출판주식회사 등을 운영했다. 그는 지난해 1월 고령에 따른 건강 악화로 한양학원 이사장직을 최선근(86) 현 이사장에게 넘겼다. 음악가로서 김 전 이사장은 연희전문학교 시절 현제명 교수를 사사한 뒤 ‘청산에 살리라’,‘비가’,‘시인의 죽음’ 등 가곡 1600여곡을 작곡했으며 한국음악협회 명예이사장과 한국작곡가협회 상임고문을 지냈다. 또 김 전 이사장은 대한일보와 기독교신문을 창간했으며 국제신문인협회(IPI) 이사, 기독교신문 발행인, 대한체육연맹 회장, 우정의 사절단 한국본부 총재 등을 역임했다. 김 전 이사장은 평생을 교육과 음악 등에 매진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1년 교육공로 봉황장을 비롯해 1991년 이탈리아 문화공로훈장,1996년 국민훈장 무궁화장,1998년 금관 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백경순(82) 여사와 김명서(60·여) 한양대 음대 교수, 김종량(58) 한양대 총장, 김명희(55·여) 한양대 사범대 교수, 김종식(51) 백남관광 부회장 등 2남2녀가 있다. 한편 학교측은 “유족들이 ‘외부에 알리지 말고 조용하게 (상을) 치르라.’는 김 전 이사장의 유지를 받들기로 했다.”며 언론사 등에 협조를 당부했다. 빈소는 한양대 한양종합기술관 6층에 마련됐고, 발인은 11일 오전 10시.(02)2220-0030.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부고] 김기수 前 예장통합 총회장 별세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 총회장을 지낸 김기수 목사가 24일 오전 3시15분 숙환으로 별세했다.74세.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김 목사는 장로회신학대와 일본 도쿄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경안성서신학원 교수와 원장을 지냈다. 안동교회 담임목사를 역임했고 1994년 예장통합 총회장을 거쳐 기독교TV 대표회장, 예장통합 유지재단 이사장, 서울여대 이사장, 실로암복지재단 이사장,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등을 지냈다.‘새롭게 하소서’‘사도행전강해’‘봉사의 기념비’ 등의 저서를 남겼다. 유족은 부인 박정규씨와 1남2녀. 장례는 27일 오전 11시 경북 안동교회당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으로 치러진다.(054)858-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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