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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0년 신군부 쿠데타 주역의 한 명, 이학봉 전 안기부 제2차장 별세

    1980년 신군부 쿠데타 주역의 한 명, 이학봉 전 안기부 제2차장 별세

    1980년 신군부 쿠데타 주역 중 한 명 이학봉 전 국가안전기획부 제2차장이 24일 오전 0시30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76세. 부산에서 태어난 이 차장은 1979년 12·12 군사 반란 당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해 수사하는 등 신군부 핵심세력 중 한명으로 쿠데타 성공에 기여했다. 이듬해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조치 당시 보안사 대공처장으로 정치인과 학생들에 대한 체포와 조사를 총지휘, 제5공화국 탄생에 큰 역할을 했다. 더욱이 5·18 광주 민주화항쟁을 촉발시켰다. 당시 신군부는 시국 수습 명분으로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정당·정치활동 금지, 국회 해산,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설치 등을 단행했다. 당시 김대중 전 신민당 의원과 김종필 전 총리를 비롯한 정치인과 학생, 재야인사 2천699명을 구금했다. 김영삼 신민당 총재도 가택 연금했다. 1980년 육군 준장으로 예편해 청와대 민정수석과 안기부 제2차장을 지내며 정권과 체제 안정에 핵심적 역할을 했고, 민주정의당 국책조정위 상임위원을 거쳐 제13대 국회의원(경남 김해·민주정의당/민주자유당)을 역임했다. 1997년 4월 12·12 내란 음모 사건과 5·18 폭력 진압 사건 관련 재판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았지만, 이듬해 건국 50주년을 맞아 단행된 8.15 특사에서 사면 복권됐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이설혜 씨와 장남 일형, 차남 세형 씨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5호실(02-3410-6915), 발인은 27일 08시30분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고] ‘마포 터줏대감’ 노승환 前 국회부의장

    [부고] ‘마포 터줏대감’ 노승환 前 국회부의장

    5선 의원을 지낸 노승환 전 국회부의장이 지난 24일 오후 7시 10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87세. 고인은 1951년 서울 마포구 신공덕동 지역에서 민선 동회장으로 당선되고 건국대 재학 중이던 1958년 초대 서울시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진출했다. 이후 신민당·민주당·평민당 등의 소속으로 당의 중역을 두루 맡았으며 1988년에는 국회 부의장으로 선출됐다. 고인은 1995∼2002년 서울 마포구청장을 지내며 지역에서 1만 4000차례가 넘는 결혼식의 주례를 맡아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마포의 터줏대감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유족으로는 아들 광래(미국 거주), 웅래(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현래(대한태권도협회 전무), 충래(삼성애니카서비스 상무), 장래(개인사업)씨가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특1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7일 오전 7시. (02)2227-7550.
  • [부고] ‘12·12쿠데타’ 이학봉 前 안기부 차장

    [부고] ‘12·12쿠데타’ 이학봉 前 안기부 차장

    신군부 쿠데타 주역 중 한 명인 이학봉 전 국가안전기획부 제2차장이 지난 24일 0시 30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76세. 고인은 1979년 12·12 군사 쿠데타 때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을 수사하는 등 신군부의 실세 중 하나로 쿠데타 성공에 일조했다. 1980년 5월 보안사 대공처장으로 5·17 쿠데타 당시 정치인과 학생들에 대한 체포 조사를 총지휘한 제5공화국의 실세였다. 1980년 육군 준장으로 예편해 청와대 민정수석과 안기부 제2차장을 지냈고 민정당 국책조정위 상임위원을 거쳐 13대 국회의원(경남 김해)을 역임했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이설혜씨와 장남 일형, 차남 세형씨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5호실, 발인은 27일 오전 8시 30분. (02)3410-6915.
  • [부고] 한동원 본지 前 편집국장대우

    [부고] 한동원 본지 前 편집국장대우

    한동원 전 서울신문 편집국장대우가 지난 3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81세. 고인은 서울대 법학대학을 졸업하고 1959년 부산일보에 입사했다. 1967년부터 서울신문 정치부장대우, 경제부장대우, 외신부장, 북한부장, 편집국장대우 등을 지냈다. 1981년 언론중재위원회를 설립하며 초대 사무총장을 맡았고 한국언론연구원장, 공연윤리위원회·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대한언론인회 이사 및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하귀선씨와 아들 승윤(삼성엔지니어링 수석), 준열(사업)씨가 있다. 빈소는 일산 백병원, 발인은 9일 오전 7시. (031)910-7444.
  • [부고] 지역구 9선 최다 박준규 前국회의장

    [부고] 지역구 9선 최다 박준규 前국회의장

    국회의장을 세 차례나 지내고 지역구로만 국회의원 9선이라는 기록을 세웠던 박준규 전 국회의장이 3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 89세. 고인은 최근 혈관계 지병으로 입원 치료를 받아 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1948년 유엔주재 한국대표부 창설 당시 외무부 사무관으로 조병옥 박사를 도운 인연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3, 4대를 낙선하고 5대에 야당이던 민주당 소속으로 국회에 진출한 뒤 2000년 정계 은퇴까지 40년 가까이 굴곡의 정치에 몸담았다. 고인은 5~10대, 13~15대 국회의원을 지낸 9선 의원 출신으로 헌정 사상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등과 함께 최다선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대구 달성과 서울 성동을 등 지역구에서만 9선을 했다. 지역구 9선은 우리 헌정사상 유일한 기록으로 기네스북 한국판에도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1988년 민정당 대표위원과 1990년 민자당 상임고문을 지냈으며 13, 14, 15대 국회에서 내리 세 번이나 국회의장을 역임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5·16 후 공화당으로 당적을 이적, 공화당 정책위의장과 당의장서리 등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10·26 직후 정계에서 은퇴하기도 했다. 이후 1987년 13대 대통령선거 때 경북고 후배인 노태우 후보의 요청을 받고 민정당에 참여, 정계에 복귀해 13대와 14대 총선 대구 동구에서 당선했다. 1989년 말에는 민정당 대표위원직에서 물러나기도 했으나 5개월 만에 국회의장으로 복귀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8년 15대 국회 후반기 의장으로 선출된 후 2000년 스스로 당적을 이탈하는 첫 사례를 남겼으며 16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정계 은퇴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동원 여사와 1남 3녀가 있다. 김상연 기자 carlos@seoul.co.kr
  • 박준규 전 국회의장 숙환으로 별세

    박준규 전 국회의장 숙환으로 별세

    박준규 전 국회의장 숙환으로 별세 박준규(朴浚圭) 전 국회의장이 3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 89세. 고인은 최근 혈관계 지병으로 입원 치료를 받아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1948년 유엔주재 한국대표부 창설 당시 외무부 사무관으로 유석(維石) 조병옥 박사를 도운 인연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3,4대를 낙선하고 5대에 야당이던 민주당 소속으로 국회에 진출한 뒤 2000년 정계 은퇴까지 40년 가까이 굴곡의 정치에 몸담았다. 고인은 5~10대, 13~15대 국회의원을 지낸 9선 의원 출신으로 헌정 사상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등과 함께 최다선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1988년 민정당 대표위원과 1990년 민자당 상임고문을 지냈으며, 13대, 14대, 15대 국회에서 내리 3번이나 국회의장을 역임했다. 5·16 후 공화당으로 당적을 이적, 공화당 정책위의장과 당의장서리 등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10·26 직후 정계에서 은퇴하기도 했다. 이후 1987년 13대 대통령선거 때 경북고 후배인 노태우 후보의 요청을 받고 민정당에 참여, 정계에 복귀해 13대와 14대 총선에서 대구 동구에서 당선했다. 1989년 말에는 정계개편 구도를 발설, 민정당 대표위원직을 물러나기도 했으나 5개월 만에 국회의장으로 복귀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8년 15대 국회 후반기 의장으로 선출된 후 2000년 스스로 당적을 이탈하는 첫 사례를 남겼으며 16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스스로 정계 은퇴를 선택했다. 고인은 소탈하고 검소한 성격에 정치적으로는 감각이 뛰어나고 합리주의와 ‘상생의 정치’를 강조해온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구 달성 출신으로 ‘TK(대구·경북) 원로격’이지만 계보정치를 싫어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빈소는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장례식장(VIP실)에 차려졌으며, 발인은 오는 7일 오전 8시다. 장지는 대전국립현충원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고] 강주성 前 3·15의거기념사업회장

    [부고] 강주성 前 3·15의거기념사업회장

    강주성 3·15의거기념사업회 명예회장이 지난 22일 오후 3시 30분쯤 숙환으로 별세했다. 75세. 강 명예회장은 마산상고(현 용마고교)를 졸업하고 웅변학원 강사로 일하던 1960년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를 맞았다. 그해 4월 11일 마산중앙부두에 최루탄에 맞아 숨진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떠오르자 13일까지 시민들을 모아 의거를 주도했다. 그는 “왜 우리가 싸워야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연설한 뒤 불종거리, 오동동파출소, 월남다리를 거쳐 시내 중심가를 지나 마산경찰서까지 진출해 경찰과 맞섰다. 이후 1966년 3·15의거 정신계승 전국남녀웅변대회를 창설해 3·15의거 정신 계승에 헌신했다. 1994~2005년 사업회장으로 국립 3·15민주묘지 준공, 3·15의거 경남도 기념일 제정 등의 성과를 이끌어냈다. 2010년엔 4·19혁명 공로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영결식은 24일 오전 10시 국립 3·15민주묘지에서 열린다. 빈소는 마산연세병원. (055)240-7444, 223-1044.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부고] 민주화 운동 앞장선 이문영 고려대 명예교수

    [부고] 민주화 운동 앞장선 이문영 고려대 명예교수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이문영 고려대 명예교수가 지난 16일 오후 6시 숙환으로 별세했다. 88세. 고인은 1927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에서 석사 학위, 고려대 법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인은 유신헌법이 민주헌법이 아님을 밝히는 3·1민주구국선언에 참여했다가 구속됐으며 이후에도 YH 사건,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등으로 고려대 교수직에서 세 차례 해직당하고 수차례에 걸쳐 4년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65년 한·일회담 반대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군인들이 교정에 난입했을 때 항의문을 작성해 낭독한 일화도 유명하다. 1992년 고려대 명예교수로 은퇴한 뒤 경기대 대학원장,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 함석헌 기념사업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3·1운동에서 본 행정학’, ‘논어’, ‘맹자와 행정학’, ‘인간 종교 국가’, ‘협력형 통치’, 회고록 ‘겁 많은 자의 용기’ 등이 있다. 유족으로는 딸 현아, 아들 선표, 딸 선아, 며느리 김성은, 사위 장이권·이영석 등이 있으며,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301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20일 오전 6시다. (02)923-4442.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부고] ‘5·16세력’ 강상욱 前의원

    [부고] ‘5·16세력’ 강상욱 前의원

    5·16쿠데타 세력의 한 명인 강상욱 전 국회의원이 숙환으로 12일 오전 별세했다. 87세. 1950년 육사 9기로 임관한 고인은 1961년 5·16 당시 육군작전참모 보좌관으로 당시 박정희 소장을 도왔고 국가재건최고회의 최고위원, 공화당 창당준비위원, 6·9대 국회의원, 청와대 공보수석 등을 역임했다. 1973년 정계를 떠나 사업가로 변신,한국물류센터 대표이사와 코스카상역 회장, 공관프로테크 회장 등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세영씨, 딸 명순·종희·혜순씨, 아들 종승·종헌(㈜씨엘엠엔에스 대표이사)씨가 있다. 빈소는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호실, 발인은 16일 오전. (031)787-1500.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부고] 국민고충처리위원장 지낸 이원형 前의원

    [부고] 국민고충처리위원장 지낸 이원형 前의원

    제11대와 14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원형 전 의원이 10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81세. 경찰로 공직에 입문한 이 전 의원은 1962년 제15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서울지검 부장검사와 충북 제천지청장 등을 지내며 법조인의 길을 걷다가 1981년 제11대 총선 전남 영광·함평·장성에서 신정당 소속으로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1992년 제14대 총선 서울 은평을에 평화민주당 소속으로 출마, 재선에 성공했고 김대중 정부 시절이던 2001년 3월 장관급인 국민고충처리위원장에 임명돼 3년간 재임했다. 유족으로는 법무법인 수목 이석웅 대표변호사와 이석주 엠텔로 상무이사, 이윤봉 한얼테마박물관장 등 2남1녀와 사위 김영 한국식품개발연구원 책임연구원 등이 있다. 발인은 12일 오전 6시.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02)3410-6917.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서울극장 곽정환 회장 별세

    서울극장 곽정환 회장 별세

    영화 배급계의 대부이자 영화제작자였던 서울극장 곽정환 회장이 8일 오전 0시 3분께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 서울극장 측은 고인이 지병을 앓다가 이날 자정께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고인은 서울극장을 운영하며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생기기 전인 2000년대 초반까지 국내 영화 배급의 중심에 있었다. 또 1964년 합동영화사를 만들어 영화 제작에도 뛰어들었다. ‘청춘극장’ ‘쥐띠부인’ ‘어머니’ ‘사람의 아들’ 등 300여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발인은 11일 오전 8시.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 1호.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고] 숭례문 복원 기와제작 ‘제와장’ 한형준씨

    [부고] 숭례문 복원 기와제작 ‘제와장’ 한형준씨

    국보 1호 숭례문 복원 공사에 참여한 ‘제와장’(製瓦匠) 한형준씨가 20일 오전 10시 숙환으로 별세했다. 84세. 고인은 중요무형문화재 제91호 제와장으로 2008년 화재로 소실된 숭례문 복원 공사에 참여했다. 제와장이란 기와를 전문으로 만드는 사람을 일컫는다. 새롭게 숭례문 지붕으로 쓰인 전통 기와 2만 3000장이 고인의 손을 거쳐 갔다. 거동이 쉽지 않은 몸인데도 올해 초까지 한시도 가마 곁을 떠나지 않고 숭례문 기와 제작에 매진해 왔다. 숭례문을 빛내는 기와는 고인의 생애 마지막 작품으로 남게 됐다. 고인은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전통적인 제와 시설과 기법으로 조선 기와를 만들어 온 장인이었다. 빈소는 전남 장흥군 장흥읍 장흥중앙장례식장, 발인은 22일 오전 6시. (061)863-4444.
  • [부고] 전통주 개척자 배상면 국순당 창업주

    [부고] 전통주 개척자 배상면 국순당 창업주

    우리나라 전통주의 시장을 개척한 배상면(裵商冕) 국순당 창업자가 7일 오후 5시 10분 숙환으로 타계했다. 89세. 고인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진 우리 술을 복원하고 세계에 자랑스럽게 내놓을 우리 술 개발에 평생을 바쳤다. 1924년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북대 농예화학과 시절 누룩 연구를 시작한 이래 60년간 전통주 외길을 걸었다. 1952년 대구에 기린 주조장을 경영하며 쌀을 원료로 한 ‘기린소주’를 만들어 대성공을 거뒀다. 고인은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 때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에게 내세울 만한 우리 술이 없다는 현실을 아쉬워하며 본격적인 전통주 제조에 뛰어들었다. 1982년 옛 문헌에서 찾아낸 ‘생쌀발효법에 의한 전통술 제조특허’를 취득하고 이듬해 국순당의 전신인 배한산업을 창립해 1991년 ‘백세주’를 개발, 출시해 기존 주류시장에 돌풍을 일으키며 전통주 시장을 열었다. 우리 술 연구를 천명으로 삼았던 고인의 가업을 자녀들도 이어받아 장남 중호씨가 ‘국순당’을, 장녀 혜정씨가 ‘배혜정도가’, 차남 영호씨가 ‘배상면주가’ 등을 각각 경영하고 있다. 유족은 부인 한상은씨와 아들 중호·영호, 딸 혜정씨 등 2남 1녀. 빈소는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10일 오전 8시. (02) 3010-2000.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부고]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 수사 지휘 김일두

    고(故)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 수사를 지휘했던 김일두 변호사가 28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90세. 경남 남해 출신인 김 변호사는 1948년 제2회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하며 법조인의 길에 들어섰다. 1950년 대전지검 검사를 시작으로 서울지방검찰청 차장,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지검장, 대검찰청 차장 등 1977년까지 27년간 검사 생활을 했다. 특히 1974년 서울지검장 재직 당시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이 발생하자 수사본부장을 맡아 일선에서 직접 수사를 진두지휘했다. 김 변호사는 당시 “범인인 문세광은 검거 초기 ‘전투하여 승리한다’는 북한식 문구를 사용하며 범행을 부인했지만 사형이 집행되기 전에는 ‘육 여사의 사죄를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고 전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최지엽씨와 아들 상수(두원실업 대표)·상영(대한정밀 대표)·상국(자영업)씨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30일 오전 9시, 천안 공원묘지에 안치된다. (02)3410-6917.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부고] ‘화장품 산업 1세대’ 임광정 한국화장품 창업주

    한국화장품과 한불화장품 창업주인 임광정 회장이 26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95세. 고인은 2003년 작고한 아모레퍼시픽 창업주인 서성환 회장과 더불어 국내 화장품 산업의 1세대 경영인으로 꼽힌다. 임 회장은 1919년 황해도 개성에서 태어나 1936년 개성공립상업학교를 졸업했으며 1961년 한국화장품, 1989년 한불화장품을 세웠다. 창업 직후 남성용 화장품 ‘단학포마드’를 앞세운 브랜드 ‘쥬단학’으로 1960∼1970년대 화장품 시장을 선도했고 1990년대 브랜드 ‘템테이션’을 론칭하면서 탁구 선수 현정화를 모델로 기용하는 등 혁신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임 회장은 국내 체육 발전에도 기여했다. 실업 야구단(1974년), 여자 농구단(1975년), 여자 실업 탁구단(1987년)을 창단했고 대한야구협회 회장, 아시아 야구연맹 회장, 대한올림픽위원회 감사 등을 역임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임충헌 한국화장품 회장, 임현철 한불화장품 부회장, 임병철 한불화장품 대표이사 사장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1호실. 발인은 29일 오전 8시다. (02)2072-2020.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부고] 진폐증 석탄광부 돌본, 예방의학 권위자 조규상 교수

    예방의학 분야의 권위자인 조규상 가톨릭대 명예교수가 14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87세. 서울대 의과대학을 나온 고인은 1958년 가톨릭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를 시작으로 가톨릭중앙의료원 의무원장, 가톨릭대 의과대학장을 거쳤다. 진폐증으로 고통받는 석탄광부들을 위해 우리나라 최초의 산업재해병원을 건립, 산업의학의 기초를 세웠다. 대한의학협회 예방의학회장, 국제산업의학협회 한국대표, 세계보건기구(WHO) 산업보건 자문위원, 아세아 산업보건협회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대통령 표창, 국무총리 표창,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국제 키비탄 한국지부 총재, 가톨릭 맹인선교회 후원회장 등으로 활동해 로마교황청 그레고리오 은성 대훈장을 받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하윤자 여사와 아들 용현(여의도성모병원 비뇨기과 교수), 딸 영자·미자·혜자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영결식은 16일 오전 9시 가톨릭대 의생명산업연구원에서 가톨릭대 의과대학장으로 열린다. (02)2258-5940.
  • [부고] 의료계 ‘거목’ 박영하 을지재단 설립자

    [부고] 의료계 ‘거목’ 박영하 을지재단 설립자

    우리나라 의료 인재양성에 헌신한 범석(凡石) 박영하 을지재단 명예회장이 7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87세. 평양 제3중학을 거쳐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고인은 1956년 서울 을지로에 ‘박영하 산부인과의원’을 개원하면서 을지의료재단의 초석을 놓았다. 1967년 ‘재단법인 을지병원 유지재단’을 세워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병원의 공익화를 이끌었다. 1994년엔 일본에서 투병 중이던 프로레슬러 김일 선생을 모셔 2006년 임종 때까지 무료로 진료하기도 했다. 또 1997년 사재 10억원을 털어 장학재단을 설립, 매년 소년소녀가장을 돕고 학술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을지의료원은 4개 병원(을지병원·을지대학병원·금산을지병원·강남을지병원)과 2곳의 대학캠퍼스를 가진 교육·의료 재단으로 성장했다. 1999년 국민훈장 모란장, 2008년 무궁화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전증희 여사와 아들 준영(을지대 총장), 딸 준숙(범석학술장학재단 이사장)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노원구 하계동 을지병원에, 분향소는 대전 을지대병원에 마련됐으며, 8일 오후부터 조문을 받는다. 발인은 10일 오전 8시다. 장의집행위 (02)970-8400.
  • [부고] 동교동계 거목 ‘사무라이’ 김영배 전 국회부의장

    동교동계 원로로 6선 의원을 지낸 김영배 전 국회 부의장이 27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81세. 고인은 군사정부와 여당에 대한 의연한 태도와 짙은 눈썹 등으로 ‘사무라이’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1987년 당시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이 통일민주당을 창당할 무렵 신민당에서 당론에 반대하는 내각제 개헌을 주장한 이철승·이택희 두 사람의 제명을 앞장서 끌어낸 것으로 유명하다. 고인은 1932년 충남 논산 출생으로 영등포공고 졸업이 최종학력이다. 연합신문 기자로 활동하다가 1979년 10대 국회에 당선된 뒤 11대를 제외하고 서울에서만 6선을 기록하면서 입지전적인 정치인으로 불렸다. 1970년 신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 김대중 후보 진영에 합류하면서부터 동교동계 거목으로 성장했다. 15대 국회에서 국회 부의장을 역임했고, 2002년에는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선거관리위원장으로서 대선 승리에 기여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후보 확정 이후 탄탄대로였던 그의 정치인생도 내리막길을 걸었다. 대선 과정에서 후보단일화협회 소속으로 탈당했으며, 국민경선을 사기극이라고 폄하하면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2003년 1월 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할 위기에 처하자, 그해 3월 의원직을 사퇴했다. 고인은 정계에서 은퇴한 뒤에는 일석장학재단 이사장으로서 장학사업에 힘써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창례 씨와 장남 종수(재현인텍스 소장), 장녀 혜경(주식회사 설악 대표이사), 사위 팽헌수(한국마리나협회 수석자문위원) 씨 등이 있다. 빈소는 이대 목동병원 3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30일 오전 6시30분. 6·25전쟁 참전용사이기도 한 고인은 국립이천호국원에 안장된다. (02)2650-2743.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부고] 前 중기중앙회장 이석주씨

    이석주 전 중소기업중앙회장이 지난 9일 오후 5시 숙환으로 별세했다. 77세. 고인은 1988년 중기중앙회 15대 회장으로 취임한 후 중소기업의 기술 개발과 정보화를 지원하기 위해 ‘중소기업의 경영 안정 및 구조조정 촉진에 관한 특별 조치법’ 제정을 주도해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에 기여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최미란씨와 2남 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발인은 11일 낮 12시. (02) 2072-2091.
  • [부고] ‘철강산업 원로’ 손열호 TCC동양 명예회장

    [부고] ‘철강산업 원로’ 손열호 TCC동양 명예회장

    손열호 TCC동양 명예회장이 지난 27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93세. 손 회장은 1921년 경북 영주 출생으로 1959년 강판 업체인 TCC동양의 전신인 동양석판공업을 설립해 본격적인 강판 사업에 나섰다. 국내 최초로 현대화된 연속 전기석도금, 아연도금강판, 전기동도금강판 기술 국산화에 성공해 산업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76년에는 우석문화재단을 설립해 소외계층 학생들에게 학자금을 지원하는 등 활발한 사회공헌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손봉락 TCC동양 회장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층 1호실. 발인은 29일 오전 5시 30분. (02)2072-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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