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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철순 전 국회의원 별세

    임철순 전 국회의원 별세

    제11·12대 국회의원을 지낸 임철순 전 의원이 12일 낮 12시 숙환으로 별세했다. 80세. 서울 출신의 임 전 의원은 고모였던 설립자 임영신 박사의 뒤를 이어 20여년 동안 중앙대 총장과 이사장을 역임했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국회에 입성했고, 1985년 재선에 성공했다. 1987년 5월 민주정의당 정책위의장에 임명됐지만, 같은 해 여름 대주상호신용금고 횡령 사건에 연루돼 국회의원직에서 물러났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의영씨와 아들 성빈(코오롱인더스트리 전무)·수빈(IBS인더스트리 부사장)·수현·지현씨가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이고, 발인은 14일 오전 10시다. 장지는 문막 온누리 동산이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남상수 남영비비안 명예회장 별세

    남상수 남영비비안 명예회장 별세

    남상수 남영비비안 명예회장이 9일 새벽 숙환으로 별세했다. 92세.남 명예회장은 1925년 경북 영양에서 태어나 1957년 남영비비안을 설립했다. 고쟁이나 광목으로 된 속옷을 착용하던 당시 여성들에게 브래지어, 거들 등 현재와 같은 서양식 속옷을 소개하면서 국내 여성 속옷 시장을 개척했다. 앞서 1954년 무역회사인 남영산업을 설립해 미국·유럽·일본 등지에 속옷과 스타킹을 수출하며 우리나라 무역산업의 초석을 마련한 무역 1세대로 꼽히기도 한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1973~1997년 25년간 한국무역협회 부회장으로 재임하며 상공의 날 대통령 표창 및 금탑, 은탑, 동탑 산업 훈장, 수출의 날 산업 포장을 받았다. 한·일 경제협의회 부회장, 대한상공회의소 상임위원 등도 역임했다. 1976년에는 재단법인 연암장학회를 설립해 장학 사업도 꾸준히 이어 왔다. 남 명예회장의 호를 딴 연암장학회는 우수한 학생이나 경제적인 이유로 학업수행이 어려운 학생을 위해 매년 2회씩 정기적으로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현재까지 6000여명의 학생에게 모두 약 48억원의 장학금을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영순 여사와 아들 남석우 남영비비안 회장 등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7호실이다. (02)3410-6917. 발인은 11일 오전 8시 30분, 장지는 경기도 화성 선산이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인도주의·남북 화합 정신 남기고 떠난 ‘큰어른’

    인도주의·남북 화합 정신 남기고 떠난 ‘큰어른’

    서영훈 전 대한적십자사(한적) 총재가 지난 4일 오전 9시쯤 입원 중이던 서울적십자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94세.1923년 평남 덕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남북적십자회담 대표와 흥사단 이사장, 민주평통 정책심의분과위원장, KBS 사장, 정의사회구현협의회 상임공동대표, 시민의신문 대표이사, 김대중 대통령 통일 고문, 새천년민주당 대표 최고위원과 16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했다. 고인은 1953년 한적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청소년국장으로 부임한 그는 청소년 적십자를 설립해 중고생들에게 해외 연수 기회를 제공하는 등 인재 양성에 힘썼다. 1972년에는 한적 사무총장에 올라 10년간 한적의 살림을 돌봤다. 이후 언론과 정계 등 다양한 곳에서 활약한 뒤 2001년 제22대 한적 총재 자리에 올랐다. 한적은 “고인은 5·18민주화운동 당시에는 직접 앰뷸런스에 탑승해 광주 시민들을 구호하는 생명 구호 활동에도 앞장섰다”면서 “인도주의 발전에 큰 업적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고인은 남북 교류·화합 등에도 힘을 쏟았다. 1972년 8월 평양에서 열린 제1차 남북적십자회담을 비롯해 수차례 회담에 남측 대표로 참석해 남북 화해와 협력에 애썼다. 당시 외부 강연에서 “북한을 통해 배울 건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1996년에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를 맡아 대북 지원 활동을 벌였다. 국내에 매혈 대신 헌혈이 자리잡게 한 공로도 인정받았다.이날 오후 2시쯤 빈소를 찾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1962년 제가 적십자 대표로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을 만나러 미국에 갔을 때 서 전 총재가 청소년부장이셨다. 친아버지처럼 지도해 주셨다”며 “적십자 덕택에 유엔 사무총장까지 할 수 있었다”고 말한 뒤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다. 부인 어귀선씨와의 사이에 아들 홍석·유석·경석씨, 딸 희경씨 등 3남 1녀를 두고 있다. 발인은 7일 오전 9시, 빈소는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3호실. (02)3410-6903.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서영훈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 별세

    서영훈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 별세

    서영훈 전 대한적십자사(한적) 총재가 지난 4일 오전 9시쯤 입원 중이던 서울적십자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94세. 1923년 평남 덕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남북적십자회담 대표와 흥사단 이사장, 민주평통 정책심의분과위원장, KBS 사장, 정의사회구현협의회 상임공동대표, 시민의신문 대표이사,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 김대중 대통령 통일 고문, 새천년민주당 대표 최고위원과 16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했다. 또 적십자사 명예총재와 신사회공동선운동연합 이사장 겸 상임대표, 미래사회와종교성연구원 이사장, 세계선린회 이사장 등을 맡아 시민사회운동의 원로 역할을 해왔다. 서 전 총재는 1953년 한적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청소년국장으로 부임한 그는 청소년 적십자를 설립해 중·고교생들에게 해외연수 기회를 제공하는 등 인재 양성에 힘썼다. 1972년에는 한적 사무총장에 올랐고 그후 10년간 같은 자리에서 한적의 살림을 돌봤다. 이후 언론과 정계 등 다양한 곳에서 활약한 그는 2001년 제 22대 한적 총재 자리에 올랐다. 한적은 “고인은 5·18민주화운동 당시에는 직접 앰뷸런스에 탑승해 광주 시민들을 구호하는 생명구호 활동에도 앞장섰다”면서 “인도주의 발전에 큰 업적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고인은 또 남북 교류·화합 등에도 힘을 쏟았다. 1972년 8월 평양에서 열린 제1차 남북적십자회담을 시작으로 수차례 열린 회담에서 남측 대표로 참석해 남북화해와 협력을 위해 애썼다. 당시 외부 강연에서 “북한을 통해 배울 건 배워야 한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1996년에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를 맡아 대북지원 활동을 벌였다. 아울러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국내에서 매혈 대신 헌혈이 자리잡게 한 공로도 큰 것으로 평가받는다. 부인 어귀선씨와 사이에 아들 홍석·유석·경석, 딸 희경씨 등 3남 1녀를 두고 있다. 발인은 7일 오전 9시, 빈소는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3호실. (02)3410-6903.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부고] 대한민국예술원 김윤성 시인 별세

    [부고] 대한민국예술원 김윤성 시인 별세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김윤성 시인이 13일 오전 3시 45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91세. 1926년 서울에서 태어난 시인은 1945년 광복 직후 정한모·구경서·윤호영 등과 동인지 ‘백맥’을, 이듬해 ‘시탑’을 창간하며 해방 문단에 뛰어들었다. 계성보통학교 6학년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시인은 홀로 문학책을 탐독하며 시심을 키웠다. 그의 작품들은 섬세한 서정성과 함께 생의 근원적 의미를 묻는 철학적 사색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인은 서울신문·경향신문 등에서 기자로도 활동했고 1980년대에는 현대문학·문학정신 등 문예지 주간으로 일하며 신진 시인들을 발굴하는 데 애썼다. 한국문인협회와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에서 각각 부회장을 맡았다. ‘바다가 보이는 산길’(1957), ‘예감’(1970), ‘애가’(1972), ‘자화상’(1978) 등의 시집을 냈고 대한민국예술원상·월탄문학상·민족문학상·청마문학상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영신(62)씨와 딸 영림(58)씨가 있다. 빈소는 일산백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고 발인은 15일 오전 6시 30분. (031)910-7444.
  • [현장 행정] 꽃밭 가꾸고 공방 만들고… 성북, 同行해서 ‘同幸’해요

    [현장 행정] 꽃밭 가꾸고 공방 만들고… 성북, 同行해서 ‘同幸’해요

    서울 성북구에는 주민들이 직접 만든 ‘함께 행복하자’란 뜻의 ‘동행’(同幸)이란 브랜드가 있다. ‘동행’은 아파트 주민들의 횡포에 가까운 ‘갑질’에 시달리던 경비원이 분신자살을 시도하고, 관리비 절감을 위해 경비원 숫자를 줄이는 게 사회문제로 떠오르자 성북구 주민들이 먼저 만들어 낸 것이다. 주민들이 가로등을 발광다이오드(LED)등으로 교체해 줄인 전기료로 경비원의 임금을 올리고, 한 아파트는 투표를 통해 용역업체 대신 경비원 직접고용을 선택했다. 아파트 동대표들이 지위를 남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윤리강령을 만들기도 했다. 20일 성북구청에서는 2014년부터 시작된 ‘동행’ 문화의 확산을 위해 지난 일 년간 구의 여러 아파트에서 이뤄진 공동체 활성화 사업 사례발표회가 벌어졌다. 김영배 성북구청장은 “대한민국 최초로 동행 문화를 만든 우리 성북구는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며 “우리 스스로 자랑스러운 이 동행 문화를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 나가야겠다”고 말했다. 김 구청장은 주민들이 만든 상생 문화에 ‘동행’이란 이름을 붙이고, 구 행정 전반으로 확대했다. 모든 행정 계약서에는 상하 관계를 상징하는 ‘갑·을’을 빼고 대신 ‘동·행’이란 용어로 바꿨다. 이날 성북구에 있는 161개의 아파트는 지난 한 해 다양한 사업을 통해 아파트에서 마을을 가꾼 이야기를 서로 나눴다. 동소문의 20년 된 한 임대아파트는 공터에 입주민이 함께 텃밭과 꽃길을 만들었다. 임차인 대표회의를 아파트 탄생 20년 만에 처음으로 구성하고 임대아파트에는 취약계층이 산다는 부정적 인식을 떨쳐 내고자 나섰다. 김숙환 관리소장은 “함께 가꾼 화단에서 매일 피어나는 꽃을 보면서 임대아파트에서도 주인 의식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정릉에쉐르아파트는 여름이면 고무풀장을 만들어 아이들이 함께 놀고 엄마들은 케이크를 구웠으며 노인들은 고추장을 만들었다. 김정예 부녀회 총무는 “마음이 모여 마을이 되는 성북구의 ‘동행하는 우리’ 공동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작은 행복이 모여 큰 즐거움이 됐다”고 귀띔했다. 종암삼성은 직접 가구를 만드는 공방교실, 사진 동아리, 부녀회의 녹색 알뜰장터, 공구 대여 등으로 살기 좋은 아파트를 만들었다. 길음뉴타운 4단지 대림은 영어, 중국어, 한국사, 한자, 우쿨렐레 강좌와 수세미 뜨기 등으로 이웃끼리 정을 나누는 곳으로 변했다. 이날 사례발표회에서는 일 년 동안 주민들이 함께 배운 우쿨렐레를 공연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 성북구에서는 빈방이 있는 노인과 대학생이 함께 집을 쓰는 한지붕 세대공감(룸셰어링) ‘동행’도 진행 중이다. 60세 이상 노인은 방 한 개에 100만원 이내 환경개선 공사비를 지원받고, 대학생들은 보증금 없는 안전한 방을 구할 수 있다. 대학생과 함께 살면서 우울증을 극복했다는 참여자도 있다. 김 구청장은 “그동안 대한민국의 아파트는 단절과 고립, 분열과 대결의 상징이었는데, ‘동행’을 시작하면서 시멘트 숲에 친구와 이웃이 생겨났다”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부고] 한양원 민족종교협의회장 별세

    [부고] 한양원 민족종교협의회장 별세

    한양원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이 11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 94세. 전북 남원 태생인 한 회장은 국내 민족종교를 이끌어 온 민족종교의 대부다. 지리산에서 입산수도하고 민족종교 갱정유도에 입도해 갱정유도 총무와 도무원장·도정을 지냈으며 1985년 한국민족종교협의회를 창립해 31년간 회장을 맡아 왔다. 특히 상생과 평화, 도덕을 중시하는 동양문화가 세상을 주도하게 될 것이라 여겨 평생 민족정기와 겨레얼살리기 운동에 앞장서 온 종교 지도자로 유명하다. 유족은 부인 최영임씨와 재홍·재훈·재우 3남과 재희·재정 2녀. 발인은 15일 오전 5시 서울 용산구 한남동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장례식장 4층. (02)798-1411.
  • [부고] ‘한국 기하추상 선구자’ 한묵 화백 별세

    [부고] ‘한국 기하추상 선구자’ 한묵 화백 별세

    “그림, 보이지 않는 힘에 도전” 한국 기하추상의 선구자로 최고령 화가였던 한묵(본명 한백유) 화백이 1일 오전(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생앙투안 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102세. 고인은 한국 추상미술 1세대 화가로 이중섭·김환기·유영국·장욱진·이응노 등과 교류하며 한국 현대미술의 초석을 마련했다. 1914년 서울에서 태어난 한 화백은 일본 가와바타 미술학교를 졸업했다. 6·25 때 종군화가로 활동하면서 전쟁의 참혹함을 예술로 표현하기도 했으며 절친했던 이중섭을 청량리 병원에 입원시키고 사후에 시신을 수습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950년대 모던아트협회에서 활동한 그는 1955년 홍익대 미대 학부장이던 김환기의 추천으로 홍익대 교수가 됐다. 안정된 자리를 마다하고 1961년 ‘예술의 이상향’ 파리로 떠나 김환기, 남관 등 먼저 도착한 화우들과 교류하며 예술에 전념했다. 그에게 결정적인 사고전환의 계기가 된 것은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착륙이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예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3년간의 고민 끝에 역동적인 기하추상적 구성세계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그 어떤 ‘힘’에 대한 도전”이라고 말했던 한 화백은 한평생 예술에 매진하느라 부인 이충석씨와 결혼도 환갑이 지나서 했다. 반평생 넘게 타지 생활을 하면서 재불 한인사회가 자리잡는데에도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초대~4대 한인회장을 맡았고 파리한글학교를 만들어 초대 이사장을 지냈다. 대한민국 국민훈장 동백장(1972), 대한민국 문화예술상(1992), 제2회 해외동포상(1994), 은관문화훈장(2008), 대한민국 예술원상(2011) 등을 받았다. 2003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올해의작가전을, 2012년에는 갤러리현대 강남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베트남 반전시위 ‘꽃을 든 여인’ 사진작가 마르크 리부 별세

    베트남 반전시위 ‘꽃을 든 여인’ 사진작가 마르크 리부 별세

     베트남 반전평화시위에서 군인에게 꽃을 들고 평화를 호소하는 ‘꽃을 든 여인’과 에펠탑에 페인트칠하는 페인트공의 모습을 담은 ‘에펠탑의 페인트공’.  세계인의 가슴에 영원히 남을 이와 같은 사진을 남긴 프랑스 사진작가 마르크 리부가 30일(현지시간) 별세했다. 93세.  리부의 유족은 그가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AFP통신에 31일(현지시간) 밝혔다.  1923년 프랑스 리옹 부근 명문가에서 태어난 리부는 14살에 아버지로부터 선물 받은 코닥 카메라로 사진에 첫발을 디뎠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저항한 레지스탕스로 활약한 그는 1952년 파리에서 보도사진작가그룹 매그넘의 두 창립자인 앙리-카르티에 브레송과 로버트 카파를 만나 이듬해 매그넘에 합류했다.  리부는 ‘파리 마치’와 ‘룩’,‘라이프’ 등 당대 최고 잡지에 사진이 실리며 사진계에 이름을 알렸다.  그의 작품 중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것으로는 ‘에펠탑의 페인트공’과 ‘꽃을 든 여인’을 꼽을 수 있다.  리부는 1953년 안전장치 하나 없이 곡예 하듯 에펠탑에 페인트칠하는 페인트공의 모습을 담은 ‘에펠탑의 페인트공’을 ‘라이프’ 잡지에 실으면서 세계적 사진작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꽃을 든 여인’은 1967년 베트남 반전평화시위가 벌어지던 미국 워싱턴 거리에서 한 여성이 총검을 겨눈 군인들 앞에서 꽃 한 송이를 들고 있는 사진으로 당시 미국과 세계를 뒤흔든 반전 메시지를 포착하고 있다.  역사적 현장을 사진에 담아온 그는 유럽 사진작가로는 처음으로 1957년 ‘죽의 장막’으로 불리던 중국에 들어가 마오쩌둥(毛澤東) 통치 하의 중국 사회상을 담아냈다.  또 2차 대전 패전 후 산업화와 서구화로 급변하는 일본의 경제부흥기 모습도 그의 사진 안에 담겼다.  리부는 1974년부터 1976년까지 매그넘 회장을 지냈으나 1979년 “영광을 위해 경쟁하고 싶지 않다”면서 매그넘을 떠났다.  리부에게는 6명의 형제가 있었으며 그 중 한 명은 프랑스 대형 식품 회사인 다농의 창업자로 2002년 숨진 앙투안이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부고] 박준병 前민정당 사무총장 별세

    [부고] 박준병 前민정당 사무총장 별세

    박준병 전 민주정의당 사무총장이 3일 오전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3세. 충북 옥천 출신인 박 전 사무총장은 육사 12기로 제20사단장과 보안사령관 등을 지낸 80년대 ‘신군부’의 핵심으로 꼽힌다. 육군 대장으로 예편한 이듬해인 1985년 12대 총선(충북 보은·옥천·영동)에서 민정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뒤 14대까지 3선에 성공했다. 민정당·민주자유당·자유민주연합 사무총장을 역임했고, 자민련에서는 부총재까지 올랐다. 앞서 박 전 사무총장은 1979년 12·12 사태와 1980년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 등을 주도한 신군부의 핵심 사조직인 ‘하나회’의 일원으로 제5공화국 수립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특히 박 전 사무총장은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진압 작전에 투입된 20사단장을 맡아 김영삼 정부 당시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의 청산 대상에 올랐지만, 사법부로부터 무혐의 처리를 받기도 했다. 박 전 사무총장은 또 1982년 9월부터 1984년 11월까지 진행된 신군부의 ‘녹화사업’을 전 전 대통령의 지시로 수행하기도 했다. 이는 당시 군부독재 정권에 저항하던 운동권 학생들을 강제 입영시켜 특별 정훈교육을 시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혜정씨와 아들 영권(사업), 딸 영애씨가 있다. 빈소는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0호실, 발인은 5일 오전 8시, 장지는 대전 국립현충원이다. (031)787-1500.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부고] ‘고려독립청년당’ 독립운동가 이상문 선생 별세

    [부고] ‘고려독립청년당’ 독립운동가 이상문 선생 별세

    인도네시아에서 독립운동을 한 애국지사 이상문 선생이 숙환으로 별세했다고 광복회가 12일 밝혔다. 97세. 이상문 선생은 일본군 군무원으로 인도네시아 자바에서 연합군 포로감시원으로 근무하던 1944년 한인 동료들과 항일운동 단체인 고려독립청년당을 결성했다. 고려독립청년당은 1945년 1월 자바에서 일본군과 군무원 등을 사살하는 등의 활동을 했지만 일본군 탈취 계획이 발각되면서 그 실체가 드러났고, 선생도 체포돼 1945년 5월 군사법원에 넘겨졌다. 이후 군사재판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르다 해방 뒤인 1945년 9월 4일 석방됐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2011년 건국포장을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임보엽씨와 자형(국토개발기술사)·신형(전국경제인연합회 경영자문위원)·길형(홍익대 광고디자인과 교수) 3남이 있다. 빈소는 서울중앙보훈병원 장례식장(8호실), 발인은 14일 오전 7시. (010)6416-5111.
  • 조선일보 성장 이끈 방우영 상임고문 별세

    조선일보 성장 이끈 방우영 상임고문 별세

    조선일보의 성장기를 주도한 방우영 상임고문이 8일 오전 11시 7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88세. 1928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일제 강점기에 제9대 조선일보 사장을 지낸 방응모 선생의 손자이자 방일영 전 회장의 동생이다. 방응모 선생의 친형 방응곤씨의 차남이었던 아버지(방재윤)가 숙부의 양자로 가며 형과 함께 방응모 선생의 양손자가 됐다. 경성 경신고보, 연희전문 상과를 나온 고인은 1952년 조선일보에 입사해 사회부, 경제부 기자 등으로 일했다. 6·25전쟁 당시 조부가 납북되고 사옥마저 불타버리자 형과 함께 회사 재건에 주력한 고인은 1964년 형이 회장에 임명될 때 대표이사로 취임했으며 1970년 사장직을 맡아 1993년 조카 방상훈 현 대표이사 사장에게 자리를 물려줄 때까지 조선일보의 성장을 주도했다. 이 밖에 한국언론연구원(현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 중앙문화학원(중앙대) 이사장, 연세대 이사장, 대한골프협회 회장, 연세대 동문회장 등을 역임했다. 고인은 조선일보를 국내 신문업계 1위로 끌어올렸으며 편집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편집이 좋은 신문’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6년 9월에는 조부의 22주기 추모 행사를 마치고 귀가하다가 조선일보의 정치적 성향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로 추정되는 괴한 두 명에게 피습당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조선일보와 45년’, ‘나는 아침이 두려웠다’, 미수(米壽) 문집 ‘신문인 방우영’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발인은 12일 오전 8시. 장지는 경기 의정부 가영동 선영.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방우영 조선일보 상임고문 별세, 조선일보 이끌어 온 ‘신문 인생’

    방우영 조선일보 상임고문 별세, 조선일보 이끌어 온 ‘신문 인생’

    방우영 조선일보 상임고문이 8일 오전 11시 7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88세. 방 상임고문은 고 방일영 전 조선일보 회장의 동생으로 1970년 조선일보 신임 사장으로 임명됐다. 국제언론인협회(IPI) 한국위원회 이사, 중앙문화학원(중앙대) 이사장, 한·독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고 1993년에 조카인 방상훈 현 대표이사 사장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조선일보 대표이사 회장이 됐다. 이후 지난 2010년부터 현재까지 조선일보 상임고문을 지내왔고, 지난해부턴 연세대제단 명예이사장을 맡았다. 고인은 일제강점기 조선일보 사장을 지낸 방응모 선생의 친형 방응곤 씨의 손자로, 1928년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태어났다. 경성 경신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연희전문학교 전문부 상과(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1952년 조선일보 기자로 입사해 경제부 기자 등으로 일했다. 저서로는 ‘조선일보와 45년’, ‘나는 아침이 두려웠다’, 미수문집 ‘신문인 방우영’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차려질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LG그룹 창업 1세대’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 잠 들다

    ‘LG그룹 창업 1세대’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 잠 들다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이 7일 새벽 향년 93세에 숙환으로 별세했다. 구 명예회장은 LG그룹 창업 1세대 6형제 중 넷째다. 고(故)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동생이다. 경남 진양 출생으로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자유당 시절인 1958년 정계에 입문해 제4대 민의원을 역임했다. 이후 6~10대 국회의원을 내리 지내며 6선 경력을 쌓았다. 정계 은퇴 후에는 럭키금성그룹 고문, LG그룹 창업고문 등을 지냈다. 구 명예회장은 고 구평회 E1 명예회장, 고 구두회 예스코 명예회장과 함께 LG그룹에서 분리해 LS그룹을 세웠다. LS그룹은 전선, 비철금속, 산업기계, 에너지 중심의 기업으로 탄탄히 기반을 쌓아왔다. LS그룹 1세대 뜻을 따라 2세대 사촌형제 간에는 경영권 분쟁 없이 계열사를 나눠 운영 중이다. 유족으로는 장남 구자홍(전 LS그룹 회장) LS니꼬동제련 회장, 구자엽 LS 전선사업부문 회장, 구자철 예스코 회장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11일 오전이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부고] 애국지사 유흥수 선생 별세

    [부고] 애국지사 유흥수 선생 별세

    일제강점기 비밀결사 모임을 결성하고 항일운동을 벌였던 애국지사 유흥수 선생이 지난 12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95세. 충남 서산에서 태어난 유 선생은 대구사범학교 재학 시절인 1939년 윤독회(輪讀會)를 조직했다. 1940년 1월 민족의식과 항일정신을 고취하는 작품을 모은 책자 ‘반딧불’을 발간했다. 같은 해 11월 항일 학생결사 모임인 ‘대구사범학교 문예부’를 조직했고, 다음해 3월까지 아홉 차례에 걸쳐 회합하며 항일의식을 다졌다. 기관지 ‘학생’도 이때 발간했다. 일제에 체포된 유 선생은 미결수 상태로 2년여 동안 혹독한 고문을 당하다 1943년 11월 대전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옥고를 치르던 유 선생은 1945년 8·15 광복으로 출옥했다. 1964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유족은 부인 박현이씨와 3남 2녀. 빈소는 서울 강동구 중앙보훈병원 장례식장이며, 발인 15일 오전 9시, 장지는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이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김명윤 고문 민주사회장으로

    김명윤 고문 민주사회장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 최고 원로인 새누리당 김명윤 상임고문의 장례가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진다고 김 고문 측이 2일 밝혔다. 장례위원장은 김수한 전 국회의장이 맡는다. 김 고문은 전날 숙환으로 별세했다. 92세. 김 고문은 일제 말기인 1944년 만주고등고시에 합격해 변호사로 활동하던 중 1948년부터 춘천지검 강릉지청과 서울지검 검사를 지낸 뒤 제5대 민의원(민주당), 제9대 국회의원(신민당), 제15대 국회의원(신한국당·한나라당) 등 3선 의원을 지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4일 오전 8시. (02)3410-6917.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상도동계 최고 원로 새누리당 김명윤 상임고문 별세

    상도동계 최고 원로 새누리당 김명윤 상임고문 별세

     고(故)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이끌던 ‘상도동계’의 최고 원로로 꼽히는 새누리당 김명윤 상임고문이 1일 오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고인은 일제 말기인 1944년 만주고등고시에 합격, 변호사로 활동하던 중 1948년부터 춘천지검 강릉지청과 서울지검 검사를 역임한 뒤 제5대 민의원(민주당), 제9대 국회의원(신민당), 제15대 국회의원(신한국당·한나라당) 등 3선 의원을 지냈다.  연하인 YS를 따라 민주화추진협의회에 투신, 민주화 운동에 나서면서 민주산악회 2대 회장과 민주당 총재 직무대행 등을 역임했다. 민주산악회 초대 회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3당 합당’ 이후 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 상임고문을 거쳐 새누리당 상임고문 가운데 가장 연장자였다.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이사장과 한국불교단체총연합회 회장도 맡은 바 있다.  김 상임고문 측은 “상도동계의 최고 원로이며, 5대 의원 시절 YS를 만나 평생 YS를 모신 분”이라며 “국회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방안을 국회의장 측과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슬하에 김경호 전 주택금융공사 사장 등 1남2녀를 뒀으며, 사위는 김권희 고려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와 추무진 대한의사협회 회장이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지는 경기도 양평공원묘지다. 발인은 오는 4일이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이만섭 前국회의장 별세(1932~2015 )…소신의 Mr. 쓴소리 한국 정치의 산증인

    이만섭 前국회의장 별세(1932~2015 )…소신의 Mr. 쓴소리 한국 정치의 산증인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14일 오후 4시 35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83세. 대구 출신인 이 전 의장은 1951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1959년 동아일보에 입사, 정치부 기자를 거쳐 1963년 제6대 총선에서 31세의 나이(최연소 국회의원)로 국회에 입문했다. 이 전 의장은 7·10·11·12·14·15·16대 의원을 지내며 8선을 기록하고 14대와 16대 두 차례 국회의장을 지낸 대표적인 정치원로다. 이 전 의장은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발탁돼 정계에 입문했다. 하지만 정치적 굴곡도 상당했다. 7대 의원 시절인 1969년에는 3선 개헌 반대투쟁에 앞장서 공화당 의원총회에서 이후락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의 해임을 요구했다가 약 8년간 정치활동의 공백기를 맞았다. 14대 때 민주자유당 전국구로 다시 원내로 돌아온 이 전 의장은 국회의장의 자리에 올랐다. 93년 당시 박준규 국회의장이 재산 공개 파동으로 낙마하자 그 뒤를 이어 입법부 수장에 오른 것이다. 또 그해 12월 통합선거법 등의 날치기 사회를 거부해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가 되기도 했다. 97년 신한국당 대표서리였던 이 전 의장은 당내 대선후보 경선 결과에 불복하고 탈당한 이인제 후보를 지원하며 국민신당에 합류했다. 이후 이 후보의 대선 패배 뒤 98년 9월 6명의 국민신당 의원을 거느리고 여당인 국민회의에 입당했다. 99년에는 새천년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 창당준비위원장을 지냈고 그 다음해 전국구 의원으로 당선된 뒤 16대 국회에서 두 번째 국회의장을 지냈다. 5공 당시 국민당 총재와 97년 대선 이후 국민신당 총재 시절을 제외하고 줄곧 여당생활만 했다. 하지만 ‘꼿꼿하고 바른말 잘하는’ 원로 정치인이라는 평가가 앞선다. 2004년 16대 국회의원을 끝으로 정계에서 은퇴한 이후에도 새천년민주당 상임고문 등을 맡아 정계 원로 역할을 다했다. 여야는 이날 일제히 애도를 표했다. 새누리당은 “고인은 소신과 뚝심이 강한 강골의 정치인으로 명성이 높았다”고 평가했고 새정치민주연합도 “국회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한 의회주의자였다”고 기렸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평생 의회주의의 한 길을 걸으신 한국정치의 거목을 잃었다”고 애도했다. 영결식은 오는 18일 국회장으로 치러질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으로는 부인 한윤복씨와 장남 승욱, 딸 승희·승인씨 등 1남2녀가 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부고] “붉은 신호면 선다” 이헌조 前 LG전자 회장 별세

    [부고] “붉은 신호면 선다” 이헌조 前 LG전자 회장 별세

    이헌조 전 LG전자 회장이 7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83세. 1932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7년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해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에 입사했다. 이듬해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에 창립멤버로 참여한 뒤 금성사 사장, LG전자 회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 전자산업의 발전을 이끌었다. 고인은 금성사 사장 재임 당시 “붉은 신호면 선다”는 원칙 우선과, “빈대를 잡기 위해서라면 초가삼간이라도 태운다”는 품질 우선의 경영철학을 추구했다. 또 ‘노사’(使)라는 대립적이고 수직적인 용어 대신, LG전자만의 고유용어인 ‘노경(經) 관계’를 만들어 근로자와 경영진 간의 상호 존중과 상생을 강조했다. 2010년과 2012년 두 차례에 걸쳐 사재 80여억원을 한국 실학 연구 단체인 실시학사에 기부했으며, 실시학사는 2011년부터 고인의 호(號)를 딴 ‘모하(慕何)실학논문상’을 제정해 시상해오고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 권병현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9일 오전 7시, 장지는 경기 광주 시안가족추모공원이다. (02)2072-2091, 2092.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부고] ‘동서학원 설립’ 장성만 前국회부의장 별세

    [부고] ‘동서학원 설립’ 장성만 前국회부의장 별세

    학교법인 동서학원을 설립한 장성만 전 국회부의장이 6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83세. 고인은 민주정의당 11, 12대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1985년 정책위의장과 1987년에는 국회부의장을 역임했다. 고인은 일본 오사카 성서신학교와 미국 신시내티신학 대학원을 졸업한 뒤 국내에서 목회활동을 하다 “기술인을 양성해 경제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뜻 아래 1965년 동서기독교실업학교(현 경남정보대학교)를 설립했다. 1991년 4년제 대학인 동서공과대학(현 동서대학교), 2001년 동서사이버대학교(현 부산디지털대학교)를 설립하는 등 교육사업에 매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동순 학교법인 동서학원 이사장과 아들 장제국 동서대학교 총장, 장제원 새누리당 전 국회의원 등 2남1녀다. 빈소는 해운대백병원 장례식장 105호, 발인은 9일 오전 7시, 장지는 실로암 공원묘원이다. (051)711-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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