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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델라 前부인·인권운동가 ‘흑인 마마’ 위니 만델라 별세

    만델라 前부인·인권운동가 ‘흑인 마마’ 위니 만델라 별세

    남아프리카공화국 민주화의 상징인 고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전 부인이자 정치적 동지인 위니 마디키젤라 만델라가 2일(현지시간) 숙환으로 별세했다. 81세. AFP통신은 이날 위니가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의 한 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고 전했다. 위니는 지병으로 이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해 있었다. 그는 만델라 전 대통령의 두 번째 부인으로, 1958년부터 38년간 결혼 생활을 이어 갔다. 결혼한 지 5년 만에 만델라 전 대통령이 수감되면서 27년 동안 두 딸을 홀로 키우며 옥바라지를 했다.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당원으로서 남편을 대신해 ‘아파르트헤이트’(흑인 차별 정책)에 맞서 싸워 흑인들로부터 ‘마마’(엄마)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2011년 남아공판 노벨평화상인 ‘우분투상’을 받았다. 하지만 오명도 만만치 않다. 위니는 ‘비폭력운동’을 지향하던 만델라 전 대통령과 달리 타협 없는 급진주의적 성향을 보였다. 그는 자신의 경호대로 활동했던 만델라연합축구클럽(MFC)이 1988년 경찰 정보원이라는 의심을 받은 14세 소년을 살해하는 데 관여한 혐의를 받았다. 1994년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자 그는 예술문화교육기술 차관에 임명됐지만 이듬해 명령불복종을 이유로 해임됐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부고] 학생 독립운동 조직 ‘태극단’ 결성 서상교 선생

    [부고] 학생 독립운동 조직 ‘태극단’ 결성 서상교 선생

    일제강점기에 학생 조직을 만들어 독립운동을 한 애국지사 서상교 선생이 별세했다. 95세. 광복회는 14일 서상교 선생이 전날 오후 4시 59분쯤 숙환으로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선생은 대구상업학교에 재학 중이던 1942년 당시 학생조직 ‘태극단’을 결성해 동료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벌였다. 태극단은 일제에 항거하는 유인물을 뿌리는 등 활발한 독립운동을 벌이다 일제에 발각됐으며, 당시 선생은 모진 고문을 당하고 옥고를 치르던 중 광복을 맞았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유가족으로는 배우자 이휘 여사와 아들 보혁(전 경북대 전자공학과 교수), 보현(정보통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씨, 딸 명주, 보아, 보희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1호실이며 발인은 16일 오전 8시, 장지는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이다.
  • ‘채권총론’ 펴낸 민법학 거목 곽윤직 서울대 명예교수 별세

    ‘채권총론’ 펴낸 민법학 거목 곽윤직 서울대 명예교수 별세

    민법학 거목인 곽윤직 서울대 법과대학 명예교수가 22일 오전 1시 숙환으로 별세했다. 93세. 평생을 강의와 연구에만 전념한 고인은 민법총칙과 물권법, 채권총론 등 국내 민법학의 근간이 된 다양한 민법 교과서를 편찬해 국내 민법학의 초석을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충남 연기 태생인 고인은 한국전쟁 기간인 1951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해 1953년부터 모교에서 강사 생활을 시작했다.1956년 전임강사로 승격된 후 1960년 조교수로 임용됐다. 경성제대가 아닌 서울대를 졸업한 첫 서울대 법대 교수였다. 1977년에는 민법학 연구에 뛰어난 실력을 보인 제자들을 모아 민사판례연구회를 창립했다. 1987년 한국법률문화상과 1995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유족은 부인 박동옥씨와 기영·정혜·경혜·소영씨 등 1남 3녀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25일, 장지는 충남 천안공원묘원이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역대 美대통령의 영적 조언자…그레이엄 목사 별세

    역대 美대통령의 영적 조언자…그레이엄 목사 별세

    미국의 저명한 침례교 목회자이자 세계적 부흥전도사인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21일(현지시간)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99세.1918년 노스캐롤라이나 샬롯테 부근 농촌에서 태어난 그레이엄 목사는 플로리다 성서신학교에 입학해 신학을 공부했다. 그레이엄 목사는 평생 185개국에 복음을 전파하며 전도에 힘썼고,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설교한 목회자로 꼽힌다. 그레이엄 목사의 생애 동안 라디오와 TV를 통해 그의 설교를 들은 청중은 모두 22억명에 달한다. 그레이엄 목사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을 비롯한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영적 조언자로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그는 1958년에는 이승만 당시 대통령 등이 참관한 가운데 서울운동장(동대문운동장)에서 집회를 개최했다. 1984년에도 한국 선교 100주년 기념 부흥집회를 맞아 여의도에서 설교하기도 했다. 1992년과 1994년에는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에게 미국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며,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류가 없음을 주장하는 등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의 권위를 강조했다. 그레이엄 목사는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밋 롬니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롬니가 신봉하던 모르몬교가 이단이 아니라고 표명해 미국 보수 기독교계의 강력한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원로 시인 이승훈 교수 별세

    원로 시인 이승훈 교수 별세

    원로 시인 이승훈 한양대 명예교수가 지난 16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76세. 고인은 1942년 강원 춘천에서 태어나 한양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 연세대에서 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춘천교대 부교수를 거쳐 1980년부터 한양대 국어국문학과에서 28년간 교육에 헌신했다. 1962년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고인은 이상과 김춘수를 잇는 모더니즘 시인으로 ‘모더니즘시론’, ‘포스트모더니즘시론’, ‘해체시론’, ‘선과 하이데거’ 등 이론서를 통해 한국 시의 현대성을 밝혔다. 시집 ‘아름다운 A’, ‘당신의 방’, ‘너라는 환상’ 등을 발표했다. 현대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백남학술상, 이상시문학상, 김준오 시학상을 받고 2008년에는 홍조근정훈장을 수훈했다. 빈소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2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19일. (02)2227-7500.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사제 아동 성추문 은폐’ 버나드 로 추기경 선종

    ‘사제 아동 성추문 은폐’ 버나드 로 추기경 선종

    범죄자에 면죄부… 불명예 퇴진미국 가톨릭 교회를 뒤흔든 성추문 사건을 소재로 한 미국 영화 ‘스포트라이트’에서 중심 인물로 그려진 버나드 로 추기경이 20일(현지시간) 선종했다. 86세. 교황청은 이날 성명을 내고 “로 추기경이 숙환 끝에 오늘 아침 선종했다”고 밝혔다. 로 추기경은 당뇨병 합병증 등으로 투병해 오다 이날 이탈리아 로마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로 추기경은 2002년 보스턴글로브 탐사보도팀의 보도로 세상에 처음 알려진 사제들의 아동 성학대 사건의 책임자다. 그는 아동 성학대를 저지른 휘하 사제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고, 단순히 다른 교구로 옮기게 함으로써 이들에게 면죄부를 줬다. 또 이들이 옮긴 교구에 범죄 사실에 대한 통보도 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성추문을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사건을 영화로 옮긴 ‘스포트라이트’는 2015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다. 로 추기경은 아동 성학대 추문에 대한 책임을 지고 2002년 보스턴 대교구장에서 물러난 뒤 2004년 로마로 이주해 지금까지 로마에서 생활해 왔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윤성민 전 국방부 장관 별세…향년 92세

    윤성민 전 국방부 장관 별세…향년 92세

    윤성민 전 국방부 장관이 6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92세.제17대 합참의장(1981.5∼1982.5)과 제23대 국방부 장관(1982.5∼1986.1)을 지낸 윤성민 예비역 육군대장은 1926년 전남 무안군에서 출생했다. 1950년 1월 육군 소위로 임관(육사 9기)해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참전했으며, 5사단장·3군단장·제1야전군사령관 등 주요 직책을 역임했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2사단 25연대 소대장으로 임무를 수행하면서 생사를 넘나드는 수많은 전장에서 많은 전공을 세우는 등 조국수호를 위해 헌신했다. 베트남전쟁 중이던 1968년에는 주월 한국군사령부 참모장으로 참전하기도 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을지·화랑무공훈장,보국훈장 통일장,미국 은성훈장,월남국가 3등훈장 등 다수의 훈장을 수훈했다. 합동참모본부는 “합참의장 재직 중에는 야전군 전력보강과 수도권 방위전력을 크게 발전시키는 등 탁월한 업무능력으로 수많은 업적을 쌓았다”면서 “후배들에 대한 배려와 부하 사랑을 실천하면서 우리 군과 국방분야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전했다. 12·12 때는 육군참모차장으로 있었다. 유족으로는 부인 우정해씨와 두 딸이 있다. 합참은 영결식을 9일 오전 9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합참장으로 거행할 예정이다. 빈소 서울삼성의료원 장례식장 9호실 02-3410-3151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美 로큰롤 선구자 패츠 도미노 별세

    美 로큰롤 선구자 패츠 도미노 별세

    1950년대 미국 로큰롤의 선구자로 엘비스 프레슬리에 앞서 대중을 사로잡았던 전설적 가수 패츠 도미노가 25일(현지시간) 숙환으로 별세했다고 롤링스톤 등 할리우드 주요 매체들이 전했다. 89세.도미노는 고향인 루이지애나주에서 눈을 감았다. 도미노는 프레슬리, 척 베리, 제리 리 루이스 등과 같은 시대 뮤지션으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가장 먼저 헌액된 일원 중 한 명이다. 1955~1960년 10개 히트곡을 발매하며 로큰롤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앨범 판매고를 올린 로큰롤 가수로 기록됐다. 대표곡으로는 ‘블루베리 힐’과 ‘에인트 댓 어 셰임’ 등이 있다. 도미노의 음악은 이후 많은 대중음악가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화학업계 거목’ 이수영 OCI그룹 회장 별세

    ‘화학업계 거목’ 이수영 OCI그룹 회장 별세

    화학업계의 거목 이수영 OCI그룹 회장이 지난 21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75세.이 회장은 1942년 9월 ‘마지막 개성상인’으로 불리는 고 이회림 OCI그룹 창업주의 장남으로 태어나 경기고와 연세대를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수학했다. 이후 1970년 경영 위기에 빠진 동양화학(OCI의 전신)에 전무이사로 입사해 다각적인 경영 정상화 노력으로 위기를 극복한 이후 1979년 사장, 1996년 회장에 올랐다. 최근까지도 회사 경영을 총괄하며 OCI를 재계 24위의 기업으로 키웠다. 이 회장은 다른 분야에 한눈팔지 않고 오직 화학 분야에서 글로벌 제휴 등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신사업을 발굴하는 데 집중했다. 프랑스 롱프랑사와 화이트카본 사업을 하는 한불화학(1975)을 시작으로 여러 합작회사를 설립해 1970년대 한국 수출산업에 원료를 공급했다. 2001년 제철화학과 제철유화를 인수해 동양제철화학으로 사명을 바꾸고 석유, 석탄화학 부문으로 영역을 확대했다. 2006년에는 태양전지의 핵심 소재인 폴리실리콘의 사업화를 결정하고 2008년부터 상업 생산을 시작해 3년 만에 ‘글로벌 톱3’로 도약시켰다. 이 회장은 2009년 OCI로 사명을 바꾼 뒤 ‘그린에너지와 화학산업의 세계적 리더 기업’이라는 비전을 통해 화학 기업에서 에너지 기업으로의 변신을 선언했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을 세 차례 연임하며 ‘노조법 개정안’의 합의를 이끌었으며 회사 경영에서도 노사 화합을 최우선으로 강조했다. 경총은 22일 별도의 자료를 통해 “이 회장은 경총 회장을 역임할 당시 늘 기업이 투명·윤리 경영을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 노사관계 안정과 산업평화 정착을 위해 헌신했다”면서 “경영계는 노사 화합을 통해 국가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고인의 뜻을 새겨 산업평화 정착과 국민경제 발전에 더욱 매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경자씨와 장남 이우현(OCI 사장), 차남 이우정(넥솔론 관리인), 장녀 이지현(OCI미술관 부관장)씨가 있다. 이복영 삼광글라스 회장과 이화영 유니드 회장이 동생이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오는 25일 오전 8시 영결식 후 경기 동두천 예래원 공원묘지에 안장된다. (02)2227-7550.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부산 달동네의 성자’ 하안토니오 몬시뇰 선종

    ‘부산 달동네의 성자’ 하안토니오 몬시뇰 선종

    천주교 부산교구 원로 사제인 하안토니오(안톤 트라우너) 몬시뇰이 14일 새벽 숙환으로 선종했다. 이날은 그가 독일 남부 베르팅겐에서 태어난 지 95년째 되는 날이다.운동선수를 꿈꾸던 하안토니오 몬시뇰은 36세 때 사제 서품을 받은 지 3개월 만인 1958년 7월 5일 일본에서 화물선을 타고 한국으로 건너왔다. 그는 화물선에 가득 실린 비료를 보며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한반도에서 비료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4년간 포로 생활 경험이 있던 그는 북한에서 선교활동하고 돌아온 독일인 신부로부터 한반도 실정을 전해 듣고 한국행을 결심했다. ‘적기’라고 불리던 남구 우암동 동항성당 1대 신부로 부임해 부산 판자촌에 정착한 그는 결심대로 평생을 57년간 빈민 구제와 교육사업에 헌신했다. 개인 재산을 털어 밀가루와 옷을 사들여 피난민에게 나눠 주고 전쟁고아를 돌보고 가르쳐 ‘달동네의 성자’로 불렸다. 가난한 학생 자립을 위해 1965년 기술학원을 설립하기도 했다. 이 학원은 한독여자실업학교 모태로, 지금은 부산문화여자고등학교로 남아 있다. 1977년 그가 세운 조산원은 인근에 병원이 들어서면서 1992년 폐업했지만 신생아 2만 6000여명의 요람이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05년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가톨릭교회의 명예 고위 성직자(Prelate of Honour)인 ‘몬시뇰’에 임명됐다. 동항성당 주임 신부로 있던 1964년에는 가톨릭교회 국제단체인 ‘파티마의 세계사도직’(푸른 군대) 한국 본부를 창설했다. 2015년 임진각에서 1.2㎞ 떨어진 곳에 남북통일과 평화를 기원하는 ‘파티마 평화의 성당’을 완공하고 세계 평화와 남북한 평화통일을 위한 미사를 매년 봉헌해 왔다. 당시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강력한 무기와 막대한 군사력이 필요한 게 아니라 기도에 의한 정신적인 무장이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한다”며 “세계가 평화롭게 살아가는 데 우리 성당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2011년 부산 명예시민이 된 그는 2015년 국민추천으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장례미사는 16일 오전 10시 부산 남천성당에서 열린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삼성 ‘반도체 신화 주역’ 강진구 前회장 별세

    삼성 ‘반도체 신화 주역’ 강진구 前회장 별세

    “오늘의 삼성전자를 있게 한 최대 공로자다. 세계 전자업계에서 그를 한국 전자산업의 대표적 전문경영인으로 평가하고 있다.”(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우리나라 전자산업의 선구자로, 삼성의 ‘반도체 신화’ 주역인 강진구 전 삼성전자 회장이 19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90세. 경북 영주에서 태어난 강 전 회장은 대구사범학교, 서울대 전자과를 졸업한 후 중앙일보와 동양방송 이사를 거쳐 1973년 삼성전자에 왔다. 창업주 이병철 전 회장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았던 강 전 회장은 이후 삼성전자·삼성전관·삼성전기 회장, 삼성그룹 구조조정위원 등을 거치며 삼성 ‘반도체 신화’의 초석을 깔았다. 1995년 6월 ‘삼성 명예의 전당’ 설립과 동시에 첫 번째로 헌액된 것은 이 때문이었다. 강 전 회장은 삼성전자에 오자마자 기업을 흑자로 돌려놓은 데 이어 세계적인 종합 반도체 기업으로 육성했다. 상무로 처음 온 지 3개월 만에 대표이사 전무로, 전무가 된 지 9개월 만에 다시 사장으로 발탁되는 초고속 승진의 신화를 썼다. 그는 삼성반도체통신 사장이던 1983년 마이크론에서 반도체 기술을 이전받아 64KD램을 세계 세 번째로 출시하며 글로벌 도약의 기틀을 마련했다. 1985년 반도체 수출 1억 달러 달성, 1986년 256KD램 양산도 그의 재임 때 일이었다. 그의 삼성 합류는 이병철 전 회장의 직접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1960년 동양방송 개국 멤버로 참여할 당시 “전자산업의 뿌리를 내려 모든 방송장비를 우리 기술로 만들겠다”고 했는데, 이를 이 전 회장이 눈여겨봤다고 한다. 두 사람은 위성중계되던 권투 중계를 함께 보던 사이였다고 한다. 유족으로 강병창 서강대 교수, 강선미 서경대 교수와 강선영씨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23일 오전이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반도체 신화’ 강진구 전 삼성전자 회장 별세

    ‘반도체 신화’ 강진구 전 삼성전자 회장 별세

    강진구 전 삼성전자 회장이 19일 오후 별세했다.유족은 20일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강 전 회장이 어제 오후 숙환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경북 영주에서 출생한 강 전 회장은 대구사범학교와 서울대 전자과를 졸업했으며, KBS와 미8군 방송국에 근무한 데 이어 중앙일보와 동양방송 이사를 거쳐 1973년부터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창업주인 이병철 전 회장의 신뢰를 받았던 강 전 회장은 이후 삼성전자 전무·사장, 삼성전자부품·삼성전자 사장, 삼성반도체통신 사장, 삼성전자 부회장, 삼성전기 대표이사, 삼성전자 회장, 삼성전관·삼성전관·삼성전기 회장 등을 거치며 삼성 ‘반도체 신화’의 초석을 깔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지난 1995년 6월 ‘삼성 명예의 전당’ 설립과 동시에 첫번째로 헌액된 인물로도 유명하다. 특히 전자공업진흥회장, 전자산업진흥회장, 전자부품연구원 이사장 등을 지내며 국내 전자업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꼽혔고, 2006년에는 서울대와 한국공학한림원이 선정한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에 오르기도 했다. 2000년 12월 31일 건강 문제와 후진 양성을 이유로 삼성전기 회장직을 사임하면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유족으로는 강병창 서강대 교수, 강선미 서경대 교수와 강선영 씨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오는 23일 오전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반독재·민주화 운동’ 손주항 前 의원 별세

    ‘반독재·민주화 운동’ 손주항 前 의원 별세

    반독재·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3선의 손주항 전 국회의원이 11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84세.전라북도 도의원 출신인 손 전 의원은 1978년 무소속 9대 국회의원으로 총선을 치르면서 유신 체제를 비판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으나 10대 국회의원으로 옥중 당선됐다. 이후 손 전 의원은 1983년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손 전 의원은 광주민주화운동에 관여한 혐의를 받아 피선거권이 박탈되기도 했다. 13대 총선에서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창당한 평민당에서 공천을 받아 이철승 전 신민당 대표를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3선에 성공했다. 그렇지만 손 전 의원은 김 전 대통령과 결별하며 급격히 세가 위축됐다. 14대 총선 당시 지역구였던 전주 완산에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손 전 의원은 지난해 3월 유승민 의원 사태를 놓고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지난날 DJ에게 숙청당한 자신이 생각난다”고 말하기도 했다. 손 전 의원은 중앙대 정치과를 졸업하고, 민주화추진협의회 창립 운영위원 등을 지냈다. 유족은 아들 손성(제4통신컨소시엄 대표)·손권(청담투쳐스 대표)씨와 딸 손난(손스마켄메이커스 대표)·손정(쇼팅갤러리 대표)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4호실, 발인 13일 오전 8시, 장지는 광주 5·18 국립묘지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부고] 박영석 전 국사편찬위원장 별세

    [부고] 박영석 전 국사편찬위원장 별세

    독립운동사 연구에 평생을 매진한 박영석 전 국사편찬위원장이 15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 85세.고려대 문리대를 졸업하고 경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고인은 1970년 영남대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해 이듬해 건국대로 옮겨 1997년까지 학생들을 가르쳤다. 1984년부터 10년간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냈고 건국대박물관장, 한국사학회장, 한국민족운동사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고인은 윤병석 인하대 명예교수, 조동걸 국민대 명예교수,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 등과 함께 1970∼80년대 독립운동사 연구를 이끌었다. 특히 만주 지역 독립운동사 연구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만보산 사건 연구’, ‘한민족 독립운동사 연구’ 등의 저서를 집필했고 학문적 공로를 인정받아 치암학술상과 보훈문화상, 의암대상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딸 주(대구가톨릭대 박물관장)·옥(서양화가)씨, 아들 환(수원대 사학과 교수)·단(서강대 사학과 교수)·강(부산외국어대 역사관광학과 교수)씨, 사위 임문혁(계명대 기계자동차공학부 교수)·황종환(한남대 철학과 교수)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7일 오전 7시다. 장지는 경북 청도. (02)2019-4000. 연합뉴스
  • [부고] 한국 첫 장편 애니 ‘홍길동’ 신동헌 감독 별세

    [부고] 한국 첫 장편 애니 ‘홍길동’ 신동헌 감독 별세

    한국 애니메이션계의 대부 신동헌 감독이 6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 90세.고인은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의 산증인이다. 1967년 국내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인 ‘홍길동’과 이듬해 그 속편 격인 ‘호피와 차돌바위’를 만들어 한국 극장판 애니메이션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당시 열악한 제작 환경에서 선(先) 녹음 기법으로 인물의 소리와 동작을 일치시키는 자연스러운 연출로 큰 호응을 얻었다. 1995년에는 현대적인 감각의 ‘돌아온 홍길동’을 만들기도 했다. 함경북도 회령 출신인 고인은 서울대 건축학과 재학 중 아르바이트로 초상화를 그리다가 ‘코주부’로 유명한 만화가 김용환을 만나 만화계에 입문했다. 데뷔작은 1947년 ‘스티브의 모험’이다. 서울신문에 ‘너털주사’를 연재하는 등 여러 일간지를 통해 시사 만화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1960년대 중반에는 프러덕션을 만들어 친동생인 신동우(1936~94) 화백이 어린이 일간지에 연재한 ‘풍운아 홍길동’을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옮겼다. 유족으로는 경섭(애니메이션 사업)·인섭(전 광고제작자)·양섭(영화학자) 3남이 있다. 장례는 한국애니메이션예술인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9일 오전 7시, 장지는 대전공원묘원. (02)2258-5940.
  • [부고] 정호권 전 건국대 총장 별세

    [부고] 정호권 전 건국대 총장 별세

    미생물공학자로 국내 바이오 분야의 산업화를 이끌었던 정호권 전 건국대 총장이 22일 오전 2시 숙환으로 별세했다. 85세. 경남 하동 출신으로 서울대 농화학과를 졸업한 정 전 총장은 1991년 건국대 공대 학장, 1993년 13대 건국대 총장 등을 지낸 뒤 1997년 건국대 명예교수로 위촉됐다. 미생물공학과 발효·식품공학 분야의 산업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족은 재원·재욱(헤럴드경제 논설위원 겸 심의실장)씨와 혜경씨 등 2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 건국대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4일 오전 9시. (02)2030-7901.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계룡건설 창업자 이인구 명예회장 별세

    계룡건설 창업자 이인구 명예회장 별세

    충청 지역 대표적 건설업체 계룡건설의 창업자 이인구 명예회장이 15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 87세. 1931년 대전 동구 효평동에서 태어난 이 명예회장은 대전고와 충남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한국전쟁 때는 학도병으로 참전했다. 제13·15대 국회의원(대전 대덕)을 지냈다. 이 명예회장은 1970년 계룡건설을 창립, 현재 전국 시공능력 평가 17위의 1등급 건설회사로 성장시켰다. 1992년에는 계룡장학재단을 설립, 1만 4000여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이 명예회장은 광개토대왕비 복제비 건립과 일본 백제문화유적 탐사, 백야 김좌진 장군 추모사업 등을 진행했다. 유족으로 이승찬 계룡건설 사장 등 1남 8녀가 있다. 장례는 회사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건양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17일. (042)600-6660.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이인구 계룡건설 명예회장 15일 오전 별세

    이인구 계룡건설 명예회장 15일 오전 별세

    계룡건설의 창업자 이인구 명예회장이 15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7세. 계룡건설은 충청권의 대표적 건설업체다. 이 명예회장은 1931년 대전시 동구에서 태어나 대전고와 충남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계룡건설을 창립해 현재 전국 시공능력 평가 17위의 1등급 건설회사로 키웠다는 평가를 받았다.제13·15대 국회의원을 지내며 국정에도 참여했다. 1992년에는 계룡장학재단을 설립해 26년간 1만 4000여명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줬다. 광개토대왕비 복제비 건립, 삼학사비 중건, 일본 백제문화유적 탐사, 백야 김좌진 장군 추모사업, 독도 우리 땅 밟기 운동, 유림경로효친대상 제정, 유림공원 사생대회 등을 통해 국가와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했다. 특히 사재 100억원을 출연해 유성구 봉명동에 5만 7400㎡ 규모의 ‘유림공원’을 조성, 대전시에 기부했다. 태안 기름유출 사고 복구활동, 대전시티즌 프로축구단 창단, 나라 사랑 보금자리사업 후원, 희망나눔캠페인 후원 등 사회공헌 활동에도 힘써 왔다. 유족으로 이승찬 계룡건설 사장 등 1남 8녀가 있으며, 장례는 회사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건양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5월 17일, 장지는 세종시 금남면 국곡리 선영. ☎ 042-600-6660, 070-4470-7110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산수유 붉은 알알이…” 원로 시인 김종길 별세

    “산수유 붉은 알알이…” 원로 시인 김종길 별세

    ‘옛 것이라곤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아버지를 향한 사랑과 그리움을 담은 시 ‘성탄제’로 유명한 원로 시인 김종길(본명 김치규) 고려대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가 1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91세. 고인은 지난달 21일 부인 강신향씨를 먼저 떠나보낸 충격으로 힘들어 했다고 유족이 전했다. 1926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고인은 스물한 살에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입선하며 등단했다. 서구의 이미지즘을 받아들이면서도 고전적 품격을 지닌 시 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표작은 1969년 펴낸 첫 시집의 표제인 ‘성탄제’다. 시집으로는 ‘성탄제’를 비롯해 ‘하회에서’(1977), ‘황사현상’(19 86), ‘천지현황’(1991), ‘달맞이 꽃’(1998), ‘해가 많이 짧아졌다’(2004), ‘그것들’(2011) 등이 있다. 국시인협회와 한국현대영미시학회, 한국 T.S.엘리어트학회 회장 등을 지냈다. 목월문학상·인촌상·청마문학상·육사시문학상·이설주문학상을 수상했다. 국민훈장 동백장과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 선국(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민(숙명여대 일본학과 교수)·선경·선형·선숙씨 등 2남 3녀가 있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4일 오전 8시 30분, 장지는 마석 모란공원. (02)923-4442.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비운의 中 개혁가 후야오방 미망인 별세

    정치 개혁을 주장하다 실각한 비운의 지도자 후야오방(胡耀邦·1915~1989)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부인 리자오가 사망했다. 96세. 12일 홍콩 명보 등에 따르면 리자오는 지난 10일 오후 베이징의 한 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안후이성 출신인 리자오는 1939년 옌안대학에서 후 전 총서기를 처음 만났다. 리자오는 문화혁명 이후 베이징시 방직공업국 서기를 지냈다. 특히 문화혁명 당시 고통받은 수많은 인사를 당 중앙 조직부장이던 남편에게 소개해 복권될 수 있도록 도와줬다. 리자오의 방직공업국 사무실은 ‘탄원 사무실’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후야오방은 1987년대 후반 민주화 시위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이유로 총서기직을 박탈당했다. 1989년 4월 갑작스러운 사망은 그해 6·4 톈안먼 사태의 도화선이 됐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2015년 11월 후야오방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를 “역사책에 길이 빛날 총서기”로 규정하고 완전히 복권시켰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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