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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 북한 반체제 인사·재소 교포 18명 어제 서울에

    강상호 전북한내무성차관 등 북한에서 고위층인사였던 재소교포 18명이 18일 하오4시55분 대한항공 703편으로 우리나라를 찾아왔다. 이들은 모두 북한에서 고위층인사로 지내다 숙청된뒤 소련으로 망명한 반체제 인사들로 8박9일동안 우리나라에 머물면서 철원일대의 격전지와 포항제철 등 주요산업시설을 돌아본뒤 오는 26일 모스크바로 돌아갈 계획이다. 문화방송의 초청으로 온이들 일행은 앞으로 강영훈국무총리 등 정부관계자를 예방하고 「MBC시사토론」 「통일전망대」 등 TV방송에 출연,6·25때의 숨은 비화 등을 공개증언할 예정이다. 이들 가운데는 전 인민군장성 심수철(69),전북한문화성차관 정상건(73),전북한 「새조선」잡지주필이자 전북한문화성국장 송진파(76),전북한내무성소장 박병윤(82)씨 등이 포함돼 있다. 또 현재 타슈켄트 농대교수로 있는 니콜라이(78),전소련모스크바건축대학부총장 김니콜라이(78),타슈켄트문화대학총장 한세르게이 미하일로비치(57)씨 등 재소한인사회의 유력인사들도 함께왔다. 강전내무성차관은 이날 공항에서 『6·25가 남침이라는 역사적사실을 증언하기 위해 왔다』면서 『이곳을 찾은 일행대부분은 지난 59년 스탈린격하운동당시 소련으로 정치적 망명을 한 사람들』이라고 밝혔다. 빨치산훈련소였던 전강동학원원장 박병윤씨도 이날 『김일성이 도발한 6·25의 역사적사실 대부분이 북한에서 날조,왜곡되고 있다』면서 『이번 방한기간동안 숨겨진 사실이 많이 폭로,증언될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대부분은 『한·소 정상회담이 통일의 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 『현재 소련에서는 각종 매스컴에 남한에 관해 자세히 보도되고 있다』고 전했다.
  • 알바니아 마저 변하는데… /서병철 외교안보연구원 교수(세평)

    외부세계의 숨가쁜 변화가 국민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지구상에서 가장 고립되고 폐쇄적인 나라는 알바니아와 북한이다. 그런데 최근 알바니아에서 과거의 완고하던 태도를 바꾸어 개혁정책을 채택하고 변화가 나타나고 있어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기대하는 마음에서 그 내용이 더욱 우리의 흥미를 끈다. ○고립정책 탈피 서둘러 공산당 제1서기 알리아는 지난 4월 중순 당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알바니아가 유럽공동체와 외교관계를 수립함으로써 경제ㆍ정치 이익을 얻고자 한다고 선언한 바 있으며 이어 5월8일에는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에 참가하기를 희망한다고 공식발표하였다. 알바니아가 고집해온 고립정책중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여러나라가 참여하는 국제기구 특히 경제정책을 공동으로 추구하는 다국 모임을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었다. 유럽공동체는 물론이고 공산주의 상호원조회의(코메콘)와의 공식접촉을 회피하고 심지어 주변국 모임인 발칸국가회의와 유럽안보협력회의 참여까지 거부해 왔다. 그 이유는 강대국들이 국제기구에서 지역문제에 간섭할 기반을 굳히며 강대국의 조작에 따라 회의가 운영되어 실효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같이 완강했던 알바니아가 국제기구와 관계를 맺기로 한 일이 북한으로 하여금 세계의 모든 나라가 참여한 기구에서 대화를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유엔에 가입하도록 정책변화를 유도할 자극을 줄 것으로 기대해 본다. 알바니아의 국부 호사에 이어 1985년 집권한 알리아는 정책 기본골격을 변화시키지 않는 범위 안에서 외교 노선을 수정하여 모든 나라와 국교를 수립하겠다고 선언하면서도 오직 미국과 소련 두 초강대국과는 결코 타협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미국과 소련은 지구상의 모든 지역에서 패권 경쟁을 벌이며 군사력 뿐만 아니라 차관과 기술독점을 동원하여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물가를 조작하기 때문에 상종못할 대상이라는 것이다. 특히 소련이 인구 3백만의 조그만 이단국 알바니아에 경제 제재조치를 취하게 되자 이는 정치적 관계악화로 상승하였다. 그후 사회주의권의 결속을 이루고자 소련이 수차에 결쳐화해를 시도하였으나 알바니아는 『인간에게 고뇌를 가져오고 원자무기로 세계를 파멸시키려는 나라와 우호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이를 단호히 거부해 왔다. 동서진영을 막론하고 어디서나 높이 평가받는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정책까지도 유독 알바니아에서만은 『흐루시초프의 수정주의를 발전시킨 것』으로 평가절하되었다. 고르바초프의 「신사고」는 레닌과 스탈린의 이념을 해치는 반사회주의적 발상이며 글라스노스트(개방)도 부르주아 이념을 완성하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알바니아는 최근 동서진영 강대국간에 성공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군비축소와 긴장완화 추세도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고 보는 데 그 이유는 초강대국들이 패권주의와 군비경쟁이라는 못된 버릇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고집스럽던 알바니아가 주변 공산국가들이 앞을 다투어 채택하는 개방정책에 영향을 받아 변화하게 되었다. 알리아는 지난 4월19일 공산당중앙위원회 연설에서 동유럽공산국가에서 일어나고있는 사태를 고려할 때 미국및 소련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문제가 긴급한 의제라고 백기를 든 것이다. ○인권존중,종교도 허용 알바니아는 서방측 국가들과 관계를 수립하고 유럽안보협력회의에 참여하려면 자연히 문제가 될 인권존중에 관한 조치를 5월9일 미리 취하는 선수를 썼다. 알바니아 의회는 국민들에게 보다 많은 권한을 부여하기 위하여 형법규정을 완화시켰으며 폐지되었던 법무부를 복원하고 피의자가 법원에서 변호사와 상의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사형죄에 속하는 항목을 대폭 축소하였으며 연약한 여성에게는 사형이 적용되지 못하도록 배려하였다. 국민들은 해외여행을 위한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종교의 자유도 허용되었다. 종교를 설파하는 서적이나 유인물을 배포하는 죄에 대한 항목이 형법에서 제외되었다. 알바니아는 1967년 예배와 종교모임이 법으로 금지외어 마르크스의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는 경고를 가장 충실히 받아들인 무종교 국가가 되어 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30%인 회교도,10%인 기독교는비공식적으로 계속 명맥을 유지하여 왔다. 폴란드와 헝가리등 동유럽국가에서와 같이 레닌의 동상이 녹여져 교회의 종으로 둔갑하는 일이 가까운 장래에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지만 오랫동안 금지되어 온 종교가 활기를 띠게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개혁이 자리를 굳힌 일부 사회주의국가에서는 교회의 종 만드는 데 필요한 쇳물은 충분하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사람의 모양을 본떠 만든 동상은 불상이 가장 많고 다음이 레닌상이라고 하는데 동의 양으로 따지면 김일성의 것도 크게 뒤지지는 않을 것이다. 알바니아의 고립정책은 수백년에 걸친 이웃국가들의 위협과 침략에 시달린 역사적 교훈의 결과이며 특히 1912년에는 외세에 의하여 나라자체가 붕괴된 경험까지 갖고 있어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1944년이래 공산주의자들은 민족주의와 스탈린주의를 결속시켜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근본적으로 단절시킨다는 명목으로 국민을 누르는 고유의 이데올로기를 형성한 것은 북한의 주체사상과도 일맥상통한다. 알리아가 호사에 이어 집권한 후에도 전임자의 노선을답습하고 그의 업적을 높이 찬양하였는데 이는 새로운 집권자가 정치기반을 굳히고 자신의 위치를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과거의 잘못을 무자비하게 파헤치거나 추종자들을 숙청하는 공산세계의 일반적 경향과는 다른 특징이었다. ○북한의 태도 주목거리 알리아는 호사와 같이 고립주의및 스탈린주의의 대표적인 이론가로 알려져 왔으며 이에 곁들여 실용주의자로도 평가받아 왔다. 이제 알리아는 고립주의를 버리고 연간 1인당 국민총생산이 1천달러 미만에 조랑말과 자전거가 주 교통수단인 중세풍의 뒤떨어진 국민경제를 개발하기 위하여 실용주의를 선택하였다.
  • 소 공산당 내분 심각/당 중앙위­청년동맹 상호비난 가열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소련 공산당기관지 프라우다가 당중앙위공개장에 지지를 표명하며 급진개혁파들을 신랄히 공격한데 맞서 콤소몰(공산청년동맹)이 17일 당중앙위의 입장을 비난하고 나섬으로써 다시 한번 당의 분열상이 노출되고 있다. 한편 최근의 당내분과 관련해 비관영 통신사 포스트팩텀은 정치국원 바딤 메드베데프의 말을 인용,당중앙위는 공개장 발표에서 한걸음 더나아가 숙청을 요구하는 「비밀 결의안」도 채택했다고 보도함으로써 일대 숙청의 가능성도 엿보이고 있다. 프라우다지는 16일 1면 사설을 통해 당중앙위가 지난주 발표한 공개장은 당대회를 앞두고 당의 건전한 세력을 공고히 해 당을 단결시키는 강력한 조치를 취하려는데 있다고 말하고 급진개혁파들에게 차라리 당을 떠나라고 경고했었다. 이에 대해 미래의 핵심당원을 양성하는 콤소몰은 현재 진행중인 21차 대의원 대회에서 이 문제를 둘러싼 열연 논란을 벌인 끝에 17일 당중앙위의 공개장과 관련한 결의안을 채택하고 이 공개장을 『당내의 논의를 억압하려는 기도』라고 규탄했다. 한편 비관영 통신사 포스트팩텀은 정치국원 바딤 메드베데프가 콤소몰 대의원들에게 숙청을 요구하는 「비밀결의안」을 채택했음을 밝히며 이 결의안에서 『당을 분열시키는 분파운동 지도자』들에 대한 제재를 경고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했다.
  • 소 리가초프,개혁파 숙청 촉구

    【모스크바 AFP 연합 특약】 소련의 보수강경파인 예고르 리가초프는 당내에서 수정주의자와 분리주의자를 제거해야 한다며 당내숙청을 촉구했다고 공산당기관지 프라우다가 8일 보도했다. 프라우다는 리가초프가 『매우 위험스럽게도 우리는 지금 당의 약화를 용납하고 있으며 이는 지도부의 중대한 과오』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리가초프는 당의 쇄신을 민주화나 대중과의 유대강화에 달린 게 아니라 수정주의나 분리주의ㆍ사회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자들은 당에서 제거하는 일,즉 숙청하는 데 달려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동구의 정치개혁에 대해 평화공존과 국가간 협력에 동의하지만 그것이 사회주의를 약화시키고 자본주의를 강화하는 대가를 치러야한다는 데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 베트남,개혁파 숙청/사회주의 고수 다짐

    【방콕 AP UPI 연합】 베트남 공산당은 동유럽의 정치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를 고수하기로 재확인하고 민주개혁을 주장해온 당고위간부 트란 수안 바크(65)를 숙청했다고 관영 하노이 방송이 28일 보도했다.
  • 베트남 당 전체회의 개막/개혁 다룰 전당대회 조기 개최 논의

    【하노이 AFP 연합】 베트남에서 동구 민주화사태에 발맞춘 고위당간부의 숙청요구가 대대적으로 일고 있는 가운데 공산당 전체회의가 12일 개막된다. 3주간여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 이번 전체회의는 「당지도부 쇄신」 문제논의를 공식 소집목적으로 하고 있으나 동구사태에 따른 대응책으로서 당초 내년말로 예정되어 있는 제7차 당대회의 조기개최 문제등도 토의대상에 오를 것으로 외교소식통들은 내다봤다. 현지 외교소식통들은 7차 당대회가 베트남공산당의 대대적인 민주화를 향한 이정표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베트남공산당은 지난해 11월 소련과 동구의 정세변화를 분석하기 위해 정치국회의를 소집하는 등 최근 공산권의 변화가 베트남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하는 한편으로 이 변화에 입각해 베트남의 점진적인 민주화도 희망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다당제도입과 관련,구엔 반 린 베트남공산당서기장은 지난달 3일 창당60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야당 결성에 대한 객관적 필요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 아프간쿠데타 배경과 전망/보수파,나지불라 개혁정책에 반기

    ◎권력암투 심화… 내전 장기화 가능성 아프간군부의 실력자인 샤 나와즈 타나이 국방장관이 주도한 6일의 쿠데타로 나지불라정권은 회교반군과의 전투와 함께 집권인민민주당내 반대파와 싸워야 하는 본격적인 내우외환에 직면하게 됐다. 타나이장관은 지난해 12월의 쿠데타를 포함,이번까지 모두 세차례의 쿠테타와 관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의 군부내 위치로 국방장관ㆍ정치국원 등의 요직을 지켜왔다. 그는 지난 78년 군사쿠데타를 성공시킨 주요인물로,1백만명이 희생된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한 나지불라의 반군에 대한 평화적인 접근에 반대,무력진압을 주장해왔다. 타나이장관은 강경보수노선을 추구하는 인민민주당의 할크(인민)파 지도자로 그동안 파르캄(깃발)파 총수인 나지불라와 노선상의 갈등을 빚어 왔다. 나지불라는 지난 79년 12월 소련군이 아프간을 침공,9년여만인 지난해 2월15일 완전 철수한 뒤 일반의 예상을 뒤엎고 아프간반군의 분열에 편승,저항을 막는 「선전」을 해왔다. 중산층의 지지를 받는 그는 아프간반군에 대한 화합조치로 세계의 여론을 호전시켜 왔으며 최근에는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의 영향을 받아 개혁정책을 표방해 왔다. 이달에는 인민민주당 전당대회를 개최,자신이 구상해온 회교주의에 바탕을 둔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새로운 강령을 채택할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타나이등 강경파는 이에 반발해왔다. 이번 쿠데타는 이같은 집권당내 분열이 수면위로 떠오른 결과이다. 여기에다 나지불라는 지난해 12월의 쿠데타와 관련,할크파 강경보수당원 및 군장성등 1백24명을 체포해 5일 이들에 대한 재판을 시작했으며 이에 타나이파가 위협을 느낀것이 거사의 지접적인 원인이 됐던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이번 쿠데타로 아프간사태는 한결 복잡해질 전망이다. 쿠데타가 집권당내의 분열에 그치지 않고 일부반군과 연계돼 가고 있기 때문. 현재 아프간 망명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또다른 일부 반군은 이번 쿠데타를 집권당내 분열로 간주,쿠데타에 동조치 않고 있으나 이들도 쿠데타로 인해 크게 고무될 가능성이 많아 내전이 다시 한번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점쳐지고있다. 아프간 정부는 타나이가 급진강경파 회교반군인 헤즈비 이슬라미의 지도자인 굴부딘 헤크마티야르와 공모,쿠데타를 일으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헤크마티야르파는 파키스탄에 근거를 두고있는 아프간 수니파 7개 회교반군 가운데 가장 과격하다. 일부 관측통은 나지불라가 이번의 쿠데타를 성공적으로 진압할 경우 집권 인민민주당내의 정치적 반대파들을 숙청하는 기회로 삼아 정국안정을 가져올 것으로 보고 있으나 쿠데타의 진압에 관계없이 나지불라의 지위는 위협을 받게 될 것 같다. 나지불라를 추종하는 비밀경찰 및 대통령수비대와 타나이의 영향권에 있는 군과의 대립,군내부의 분열 등으로 아프간정부의 단결이 현저히 약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 이러한 사실은 반대로 분열을 보이고 있는 아프간 반군들을 고무시켜 소강상태에 있는 아프간 내전을 한층격화시키는 하나의 동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 미 국무부 인권보고서 「남북한 부문」

    ◎북한,정치범 10만5천명 격리 수용/기본권 박탈… 동창회등 「비정치」 모임도 금지/한국은 보안사범 증가… 전반적으론 개선 추세 미 국무부는 세계 각국별 인권상황에 관한 연례보고서를 21일 의회에 제출했다. 다음은 미 국무부 인권보고서 가운데 한국과 북한에 관련된 내용의 요약이다. ▷북한◁ 북한 정권은 주민들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그들은 주민 개개인에게 보안 등급을 매겨서 이에 따라 직업교육 의료시설 상점 등에 대한 접근과 노동당 입당 허용여부를 결정한다. 89년에도 여전히 북한은 주민들의 가장 기초적인 인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모든 종교조직은 당에 의해 통제되고 있고 신뢰받는 간부에게만 외국 접촉이 허용됐다. 북한정부가 테러리즘의 사용을 포기했다는 증거는 없다. 탈출자들에 의하면 북한 정권은 일부 정치범들을 즉결 처형했고 김일성과 김정일의 정치적 반대자들은 살해됐다. 인권단체인 아시아워치와 미네소타 법률가 국제인권위원회 보고서에 의하면 북한내 많은 수감자들이 고문ㆍ질병ㆍ기아ㆍ유기 등으로 인해 죽었다. 89년에 한국으로 넘어온 북한 사람들 추산에 따르면 최소한 10만5천명의 정치범과 그 가족들이 집단수용소에 억류돼 있다. 이들은 결혼이 금지돼 있으며 식량을 자급해야 한다. 북한이 오지의 수용소에 억류중인 정치범과 그 가족의 숫자를 한국정부는 약 15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북한에는 12개의 집단 수용소가 있는 것으로 믿어진다. 이 가운데 4개소는 김정일 반대세력에 대해 숙청 작업을 벌였던 82년에 세워진 것으로 당시 6천∼1만5천명의 새로운 정치범이 이곳에 수용됐다. 북한의 정치범은 재판없이 구금되며 면회나 통신은 한때 허용했었으나 다시 금지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여행은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 개인여행은 가까운 친지의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국한된다. 정치적으로 믿을수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강제이주 조치를 취하며 평양거주나 출입은 철저히 통제되고 있다. 해외여행은 관리,믿을수 있는 예술인,체육인,학자등에 국한되고 이민은 허용되지 않는다. 89년에 북한은 일본에서 열린 단기 세미나에 학생들을 파견했다. 이것 이외에북한이 학생들에게 공산권 밖 국가에서의 연수를 허가한 예는 없다. 지난해 동구 유학생 6명이 망명한후 북한은 해외유학생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지난 59∼82년 사이 북송된 재일교포 9만3천명에 포함된 일본인아내 6천6백37명 가운데 일본으로 귀환한 사람은 1명도 없으며 대부분이 소식불명이다. 대부분의 북송교포들은 북한에서 「주체성 없는 계급」으로 분류돼 곤궁한 의식주 속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리며 경멸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입법기관인 최고인민회의는 1년에 단 며칠만 열리며 지도부에 의해 제안된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는 것외에는 하는 일이 없다. 북한에 자유선거란 존재하지 않는다. 신체장애자들의 평양거주는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한국은 권위주의 시대를 떠나 민주화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전진중이며 민주제도와 관행을 강화하는 절차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 강력한 공안기관의 활동은 88년에 뚜렷이 둔화됐었으나 89년 들어 다시 증대됐다. 공안합수부가 활동한 4월부터 6월 사이에 보안법 위반혐의로수백명이 체포됐다. 합수부가 해체된 후에도 체포는 계속됐다. 88년 2월 노태우정부 출범후 89년 8월말까지 공안관계 사범으로 2천94명이 체포됐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인 1천3백15명이 89년도에 체포된 것이다. 일부 보안법이나 노동법 위반 구속자에 대해서는 변호사 면회가 금지됐다. 믿을만한 고문 주장도 일부 있었다. 국회는 사회안전법을 폐지했으나 논란의 대상인 국가보안법과 안기부법 개정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모든것을 고려해 보면 한국은 과거에 비해 훨씬 관대하고 개방된 사회가 되었다. 인권관계자들은 89년말의 소위 정치범 숫자를 약 8백명으로 추산했다. 이 숫자는 정부시설을 화염병으로 공격한 폭력행위 관련자들도 포함하고 있다.
  • “김일성에 권좌 이양이란 없다” 북한문제 전문가들,「은퇴설」 분석

    ◎김정일의 호칭변경은 정치적 위상 부각조치/김일성 생존하는 한 일부승계는 큰 의미 없어 김일성의 은퇴설이 올들어 심심찮게 나도는 가운데 지난 16일 홍콩의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지가 또다시 김일성의 조기퇴진설을 들고 나왔으나 대부분의 국내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올해 안에 또는 가까운 시일내에 북한에서의 공식적인 권력승계가 가시화되리라고 전망하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최근 급변하는 국제정세에도 불구하고 폐쇄의 담을 더 높이 쌓아가고 있는 북한체제에 대한 비판여론이 고조되고 있고 개방압력 또한 날로 점증하고 있다는 점에서 김일성이 죽기 전에 스스로 일선에서 물러나고 아들 김정일에게 주석자리를 넘겨줌으로써 비판의 화살을 피하는 동시에 김정일의 권력관리 능력을 키워 궁극적으로는 세습체계를 더욱 확실히 다질 것이라는 가능성은 점칠 수 있으나 그 과정이 그렇게 빨리 이뤄지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 국내전문가들의 일치된 시각이다. 김창순씨(북한문제연구소 이사장)는 『건강이 유지되는 한 김일성은 종신군주로서 남을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이는 김일성 본인이 원하지 않는다 해도 체제유지의 필요성 때문에 북한의 원로그룹 등 측근들이 허용치 않을 것이며 또 신진세력 또한 김정일보다는 김일성체제 아래서 개혁정책을 펴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김정일의 호칭중 「경애하는」 또는 「친애하는」이라는 접두어를 「위대한」이라고 바꾼 것은 그의 정치적 인격을 격상시키기 위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으나 「지도자」를 「수령」으로 지칭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사실과 다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성철교수(경희대)는 『북한정권이 권력이양문제를 신중히 고려하고 있을 가능성은 있으나 김정일의 생일에 맞춰 이같은 조짐을 외부에 시사한 것은 외부적인 압력과 내부불만을 다른 방향으로 호도하기 위한 선전전략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하고 『등소평의 은퇴에 비유해 김일성의 퇴진을 예측하는 주장 또한 등이 지난해 군사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공식적으로 포기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나를 간과한 성급한생각』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또 김일성이 국가주석ㆍ정무원총서기ㆍ당총비서ㆍ당군사위위원장 등 현재 누리고 있는 최고직위중 하나 정도를 조만간 김정일에게 승계할 수는 있지만 이 문제 또한 김일성이 살아있는 한 큰 의미가 없으며 북한권력 내부에 큰 변화가 오리라고 기대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김갑철교수(건국대)는 『현재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방향제시,김정일의 정책수행 형태가 보편화되어 있기 때문에 김일성이 후계체제를 바꾸려 해도 마음대로 바꿀 수 없을 정도로 김정일의 후계체제가 구축되어 있으나 김일성이 자신의 생일인 오는 4월15일 또는 가까운 시일내에 권력승계를 공식화할 조짐을 찾아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교수는 경제정책의 실패 등 내부적인 문제로 인해 올해안에 노동당 전당대회가 열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지적하고 김일성이 나이가 80세가 되고 제3차 경제7개년계획이 끝나는 오는 92년쯤 제7차 당대회가 열릴 것이며 이때 가서야 김일성의 은퇴문제가 보다 구체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김일성의 사망 또는 건강악화라는 우발적인 상황발생에 따른 김정일의 전면등장 ▲김일성의 개인숭배에 대한 외부의 비난을 모면하기 위한 등소평식의 2선후퇴 등 김일성의 조기퇴진 가능성을 점칠 수 있는 몇가지 예외가 있겠지만 김일성이 살아있으면서 실권을 이양하는 모습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본사 논평위원인 서병철교수(외교안보연구원)도 『김일성 사후 소련이나 중국 등 공산국가의 권력승계 때 일어났었던 전임자의 격하,주변인물에 대한 숙청 등의 혼란이 야기되는 것을 막고 시대적인 흐름인 개혁과 개방정책을 추진해나갈 수 있도록 김일성 스스로 은퇴하는 방안이 제시될 수 있으나 이 문제가 단시일내에 급격히 진행되리라는 기대는 성급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일에 대한 호칭변화 ▲73년 9월 당중앙 ▲75년 6월 유일한 지도자 ▲83년 2월 영도자 경애하는 지도자 ▲83년 5월 최고사령관 ▲86년 2월 인민의 어버이 ▲87년 5월 위대한 영도자 ▲90년 2월 위대한 지도자
  • 박성철 공석에/북한 중앙통신 보도

    【도쿄 AFP 연합】 북한의 박성철부주석은 북한의 개방정책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숙청됐을 것이라는 외국 추측들을 일축,건재한 것으로 8일 공식 보도되었다. 박성철은 8일 평양에서 열린 김일성이 제안한 「생산증가와 관리개선을 위한 대중동원」 30주년 기념 모임에서 보고연설을 했다고 북한관영 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이 집회에는 오진우인민무력부부장,연형묵총리,몇몇 당정치국원들이 참석했다고 도쿄에서 수신된 중앙통신이 말했다. 중앙통신은 박성철이 아직 정치국원과 부주석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확인했다.
  • 「크렘린 변혁」에 북경은 불안하다/소 개혁 대응책 마련에 부심

    ◎강ㆍ온 양면공세… 국민불만 무마 안간힘 공산주의의 큰 형 격인 소련의 정치개혁에 대해 중국은 강ㆍ온 양면의 불안한 움직임으로 대응하고 있다. 중국당국은 지난 7일 소의 변신에 대한 강렬한 반발의 신호로 자국 공산당 영도체제의 고수를 천명했지만 아울러 다당합작에 관한 정책방향을 소상하게 제시함으로써 한가닥 변화의 가능성을 비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것 같다. 또 구태여 중국이 현시점에서 공산당 영도를 강조하고 나선 것은 중국 지도층 내부가 모스크바로부터의 충격으로 갈등을 겪고 있음을 반증하는 알레르기성 반응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이 7일 밝힌 「공산당 영도의 다당 합작과 정치협상에 관한 의견」이란 제목의 당 문서 내용은 중국이 결코 공산당 지도체제를 포기하지 않으리란 점을 골자로 하고 있다. 다당제 정치도 서방국가나 다른 사회주의 국가와 다르게 공산당 영도에 의한 것과 중국통치 4개 원칙 및 헌법준수를 선행조건으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다당합작이 이뤄지더라도 다른 당은 공산당의 들러리 밖에 될수 없도록돼 있다. 합작 대상은 과거부터 중국에 존재하고 있는 ▲중국 국민당 혁명위원회(민혁) ▲민주동맹 ▲민주건국회 ▲민주촉진회 ▲농공민주당 ▲치공당 ▲민주 과학사 ▲대만 민주자치동맹 등 이른바 8개 민주당파로 형식상의 야당일뿐 현재 전혀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당원은 모두 30만명에 이른다. 4개 원칙은 사회주의 노선 견지ㆍ프롤레타리아 전제ㆍ당지도 준수ㆍ마르크스 레닌 모택동 사상 견지로 돼 있고 헌법 제2조에는 「중국 공산당은 모든 인민의 지도적 중핵」이라고 명시돼 있다. 따라서 서구적인 시각으로는 중국정치 체제엔 어떠한 변화가 있을수 없을뿐 아니라 오히려 공산당 일당독재체제가 공고히 될 것으로 이해되는 것 같다. 게다가 중국에서 다당합작이란 말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므로 현 지도층이 소련의 변혁에 의한 국내의 충격파를 흡수하고 대외적으로 민주화 의사가 있는 것처럼 눈가림을 하기 위해 또다시 다당제를 들고 나온것으로 보는 견해가 대부분이다. 다당합작은 당초 모택동이 1941년 다른 지식인 그룹을 포섭키 위해 주창했고 지난 56년엔 실제로 민주당파 인사를 적잖이 영입,정치활동을 보장했다. 그러나 공산당에 대한 이들의 비판이 거세지자 반우파 운동을 벌여 숙청했고 그후 문화혁명 기간을 거치면서 이들은 또한번 큰 곤욕을 치른뒤 사실상 활동을 중지했던 것이다. 지난 89년초 등소평도 개방ㆍ개혁에 따른 주민들의 정치참여 욕구를 달래기 위해 다당제 실시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는 중국 공산당이 위급하면 꺼내드는 전가의 보도로 여겨지는 것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또 중국의 문맹률이 20%에 이를 정도로 민도가 낮고 소련과 달리 혁명 원로들에 의한 가부장적 통치구조를 갖추고 있는 점,중국 공산당의 투쟁 경력이나 생성과정이 다른 국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험난했고 오랜 기간을 거쳐 뿌리가 깊다는 사실등을 들어 이들 체제의 불변을 예언하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비록 제한적인 형태나마 다당합작이 실시된다면 중국정치체제도 변화의 문턱에 한걸음 다가서는 효과를 얻게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최근 8개 민주당파 인사 가운데 처음으로 정부 고위직 관리가 된 사람은 민주건국회 부주석인 빙제운으로 89년초 국무원감찰부 부부장(차관)에 임명됐다. 그렇지만 앞으로 보다많은 민주당파 또는 무소속 인사들이 정계나 관계에 들어갈 경우 비록 공산당 영도체제이긴 하지만 이들 인사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게 됨으로써 정치적 민주화의 물꼬가 트여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중국은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서방 국가들과의 합작 강화 등 개방ㆍ개혁을 지속하지 않을수 없는 입장인데다 정치적으로 강경보수세력인 혁명원로들이 타계할 경우 공산당 일색의 권력 구조에 변화가 없으리란 보장은 없는 것이다.
  • 소,다당제 도입 진통/중앙위 전체회의

    ◎보수파 강경 반발… 새 강령 표결연기/리가초프는 개혁정책 지지나서 【모스크바 외신 종합 연합 특약】 6일 폐막될 예정이던 소련 공산당 중앙위 전체회의가 다당제 도입을 둘러싼 격렬한 찬반논쟁으로 인해 하루 연장됐다고 소비에트 라디오방송이 6일 보도했다. 중앙위는 이날 표결을 통해 새 당강령 채택여부를 결정할 예정이었으나 보수파들의 반발이 예상외로 거세 회기가 하루 연장됐다. 그러나 대다수의 소련 관측통들은 보수파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7일 실시될 표결에서 당강령이 무난히 채택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앞서 보수파의 대표격으로 알려진 예고르 리가초프가 예상을 뒤엎고 당의 권력독점을 규정한 헌법 제6조의 폐지를 지지하는 연설을 함으로써 소련에 다당제시대의 새 역사가 열릴 게 확실하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한편 겐나디 게라시모프 소련외무부대변인은 소련의 정치적 다원주의 부상에 대해 『이를 말살시킬 수 없다면 여기에 동참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르바초프의 새 강령제안으로 불붙은 격렬한 찬반논쟁은 6일 블라디미르 브로비코프 폴란드주재 소 대사가 고르바초프의 사임을 요구하는 등 보수파로부터 최후의 저항을 유도하기도 했으나 보수파의 전위로 여겨지는 레오니드 보비킨 스베르드로프스크시 당제1서기의 사임 등 보수파 인물들의 사임에 이어 리가초프 마저 고르바초프의 제안을 지지하는 연설을 함으로써 개혁파가 승리를 거둘 것임을 예고했다. 한편 5ㆍ6일 이틀로 예정된 중앙위 전체회의는 보수파 정치국원들에 대한 숙청발표로 그 정점을 이룰 것으로 예상되는 데 보리스 옐친의 후임으로 모스크바시 당제1서기에 오른 레프 자이코프와 고르바초프 취임이전부터 정치국원으로 재임한 유일한 인물인 비탈리 보로트니코프 두사람이 정치국에서 축출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소련 공산당 고위지도층에 정통한 소련의 한 기자는 보수파 축출이 지연될 가능성도 많다고 덧붙였다.
  • 고르바초프,당에 최후 통첩/중앙위 전체회의 맞춰

    ◎“개혁 안하면 정치일선 물러나야”/“다당제 이미 사실상 실시/개막연설/「쇄신 당 대회」 당겨 6월 열자”/고르바초프 퇴진문제는 거론안돼/당 숙청 진행중 프라우다 시사 【모스크바 UPI 로이터 연합】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은 5일 당중앙위 전체회의를 개막하면서 당지도자들에게 헌법상 보장된 당의 정치적 권력독점을 포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또 당의 숙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르바초프는 1시간 동안에 걸친 개막연설을 통해 소련이 이미 사실상의 다당제하에 있다고 말하면서 당구조 쇄신을 위해 오는 10월 개막될 예정인 28차 당대회를 6월말이나 7월초로 앞당겨 열 것을 촉구하는 한편 당서기장직을 당의장으로 대체하자는 구상을 내놓았다고 회의 참석 위원들이 전했다. 소련 과학아카데미의 부위원장인 올렉네표도프는 고르바초프가 최근 등장한 다양한 정치단체들을 예로 들며 이는 소련에 이미 사실상의 다당제가 존재함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공산당은 이같은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했다. 당중앙위 위원은 아니나 문화 과학계 저명인사로 이번 회의에 초청된 네표도프는 그러나 고르바초프가 비공산 정당들의 합법화 방안이나 조건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제안을 내놓지 않았다고 전하면서 아울러 고르바초프의 당 지도자직 사퇴문제도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회의 참석자들은 이날 회의 개막 후 고르바초프가 1시간 동안 연설을 한 뒤 보리스 옐친,얀 바그리스 라트비아 공화국 당 제1서기,유리프로코피예프 모스크바시 당 제1서기 등 13명의 연사가 차례로 연설을 했다고 전하면서 회의 분위기는 매우 활발했으나 고르바초프의 제안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은 중앙위 전체회의 개막에 때맞춰 당기관지 프라우다를 통해 『당은 반드시 개혁을 단행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정치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당에 최후통첩을 내렸다고 당기관지 프라우다가 5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고르바초프서기장이 지난 2일 광산노동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또 당정치국과 중앙위원회는 새로운 얼굴들이 필요하다고 말함으로써 곧 고위층 인사개편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고 보도했다. 프라우다도 논평기사를 통해 당 간부를 쇄신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지적함으로써 당 숙청이 진행중임을 시사했다. 고르바초프는 이어 『공산당은 권력독점을 고집하지 않고 있으며 사회주의체제의 개혁을 지지하는 모든 이와 대화를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히고 『그리고 다당제가 모든 문제의 만병통치약은 결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거론되고 있는 자신의 서기장직 사임문제에 대해 한 사람이 두가지 직위를 갖고 있는 문제는 최고회의가 결정할 것이라면서 『전환기에는 권력의 양분이 바람직하지 않으나 결국에는 나눠맡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고르바초프의 정치개혁(사설)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에 박차가 가해질 전망이다. 5일 저녁 개막된 소련공산당 중앙위 전체회의에선 공산당의 권력독점 포기및 다당제도입 등 1917년 볼셰비키혁명 이후 처음이 될 공산당 통치권력구조의 혁명적 개혁문제가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모스크바에선 4일 20여만명의 시민이 고르바초프의 개혁지지및 가속화를 촉구하는 대대적인 시위를 전개했다. 그리고 관영매체들은 고르바초프의 개혁노선에 반발해온 보수세력에 대한 숙청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고를 하고 있다. 모스크바의 이같은 일련의 움직임은 개혁파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보수ㆍ개혁 양쪽으로부터 불만의 압력을 받아온 고르바초프의 개혁이 이제는 모종의 결단을 내려야 할 중대 고비를 맞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특별히 주목된다. 새해에 접어들면서 소련은 고르바초프의 개방과 개혁으로 고무된 민족문제로 심각한 위기를 겪었으며 아직도 겪고 있다.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공화국간의 인종및 종교유혈분쟁은 무력에 의해 일단 진정되었으나 언제 재발하지 모르는 휴화산 상태이며 리투아니아등 발트3국의 분리 독립요구는 고르바초프의 만류설득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격화되고 있다. 4년간에 걸친 개혁정책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경제상태는 개선은커녕 현상유지도 어려운 형편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생필품 부족은 심화되고,석탄ㆍ석유산업 분야의 파업소동 등으로 에너지공급의 차질까지 야기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소련에서는 지금 국가적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국원 리가초프를 비롯한 보수파들은 이같은 위기상황의 책임을 개혁정책 탓으로 돌리면서 실각설을 퍼뜨리는등 고르바초프를 견제하고 있으며 급진개혁파의 당중앙위원 옐친 등은 4년간의 개혁정책이 「미봉책」과 「타협」밖에 달성한 것이 없다고 비판하면서 그것은 개혁다운 개혁이 추진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고르바초프를 공격하고 있다. 이같은 급진 보수ㆍ개혁의 중간에서 공산당 주도의 점진적이고 질서있는 온건 개혁을 추구해온 것이 고르바초프서기장의 그동안의 노선이었다.객관적으로 볼 때 그의 이 노선은 이제 한계에 도달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의 실각설이 빈번히 전파를 타고 세계 증시를 뒤흔드는 것도 세계의 그러한 시각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고르바초프는 개혁의 심화와 가속화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몰린 것이 분명하다. 이번 일련의 움직임에서 특별히 주목되는 것은 「당의 페레스트로이카」,즉 정치개혁에 큰 비중이 두어지고 있는 점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정치개혁을 전제로 하거나 적어도 병행하지 않는 이상 경제 기타의 개혁이 어렵다는 판단을 보여주는 중요한 변화라 할 수 있다. 모스크바의 이례적인 대규모 시위도 정치적 개혁을 선행시킨 동구방식의 역수입 현상으로 주목되는 변화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보수파의 반발에 대한 효과적인 견제수단으로서 위력을 증명하고 있다. 아무튼 보수파의 반발을 어떻게 극복 혹은 무마하면서 개혁을 강화시켜 나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그 귀추는 고르바초프 개혁의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이 틀림없다.
  • 북한 권력서열 큰 변동/개방 건의한 군 실력자등 대거 좌천

    ◎사상사업 명목,숙청작업 계속 【도쿄=강수웅특파원】 북한의 부수상을 지낸 정치국위원 박성철이 지난해 10월 모스크바를 방문,극비리에 소련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와 면담했으며 『북한도 개방정책을 취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고르바초프의 충고를 김일성에게 그대로 전달했다가 권력서열 상위랭킹에서 급전직하,밀려났다고 도쿄(동경)의 북한문제 전문소식통들이 23일 밝혔다.〈관련기사5면〉 소식통들에 따르면 당시 고르바초프­박성철의 면담은 김일성의 지령에 따른 것으로 경제협력요청이 주목적이었는데 박이 귀국후 보고석상에서 『개방과 개혁정책을 취하지 않는 한 석유를 비롯한 필요물자를 공급받을 수 없다』고 주장,북한권력층 내부에 개방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박을 비롯,무역담당 책임자였던 계응태등 경제담당자들과 소련과의 관계개선을 주장했던 최광참모총장등 군부실력자들이 좌천됐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이후 북한에서는 소위 「사상사업」이라는 명목아래 지난해 10월부터 오는 2월14일까지 북한내의 불평ㆍ불만분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적발ㆍ숙청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 북한 “개혁바람 재우기”대숙청 작업/권력서열 대변동의 저변

    ◎참모총장 최광등 군부친소파 몰락/김부자체제 견고히… 무명 김윤혁 6위 부상/페레스트로이카에 호응,박성철도 밀려나 북한 권력서열의 대폭적인 변화는 폐쇄ㆍ고립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북한내부에서도 개혁과 개방을 둘러싼 논쟁이 얼마나 치열했었는가를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이다. 현재 개방ㆍ개혁의 주창론자들은 권력서열에서 하위로 밀려났거나 완전히 배제되어 있으나 개방욕구의 확산은 외부세계와 완전히 단절되어 있는 북한에 변혁을 가져올 수 있는 잠재력이 되고 있다고 도쿄(동경)의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변혁의 불씨」남아 「북한 권력서열 변동표」가 보여주는 바와같이 북한의 권력서열은 상층부 30여명 가운데 김일성ㆍ김정일ㆍ오진우 3명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최근 1년 사이 전부 바뀌었다. 전혀 미지의 인물인 김윤혁이 6위로 급부상했는가 하면 11위를 고수하던 전병호는 명단에서 아예 빠져 버렸다. 외교담당 박성철은 88년 12월이래 4∼6위를 지켜왔으나 지난해 11월 18위로 급전직하했다. 박은 지난해 10월 김일성의 지령을 받고 모스크바를 방문,극비리에 고르바초프와 면담한 사실이 있다고 일본의 북한문제전문가들이 밝혔다. 이때 박은 귀국후 보고석상에서 『고르바초프의 개방ㆍ개혁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는한 석유공급을 비롯한 경제협력을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북한에서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다는 것이다. 박의 보고는 이후 북한 내부에서 개혁을 둘러싼 여러가지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도화선이 됐으나 결과적으로 박은 패배,서열 18위로 밀려나고 말았다. 알바니아와 더불어 세계에 유례가 없는 골수 사회주의체제와 부자세습제를 유지하려는 북한에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같은 개혁정책 건의는 받아들여질 수가 없었다. 지난해 연말 시거 전미국무차관보가 평양을 방문했을때 박은 이미 권력서열 하위로 밀려나 박대신 이종옥이 시거전 차관보를 접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의 패배는 그 자신뿐만 아니라 경제관계 담당자 거의 전부에 영향을 미쳤다. 나아가 소련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면서 소련과의 관계개선을 주장해 오던 군부에도 몰락을 가져왔다. ○이근모 강제수용소에 참모총장 최광은 김일성과 빨치산활동을 같이하던 동년배로서 최근 군수뇌로 기용된 인물이다. 14∼15위의 서열에 놓여있던 최도 개혁논쟁의 여파로 27위로 후퇴했다. 다만 서철은 자신의 지병 때문에 7위에서 10위로 밀려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남북적십자회담때 북한측 대표였던 윤기복은 한때 권력서열랭킹에서 밀려나 있었으나 지난해 11월을 기해 20위로 복위했다. 북한에서의 이같은 대폭적인 권력변화는 70년이래 최대의 것이라고 일본의 소식통들은 밝혔다. 조총련이 발행한 1월18일자 「조선시보」에도 지난 5일부터 9일까지 김일성주재로 평양에서 개최된 「조선노동당중앙위원회 제6기 17차총회」관련 중앙통신기사가 전재됐으나 권력서열의 변화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았다. 이 보도는 윤기복을 당중앙위원회 서기로 선출했으며 허극성을 당중앙위원후보로부터 위원에,주선성 김성규 이원재 김봉을 최기룡 주영훈 이대세 이학섭 등을 당중앙위원후보로 보선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또 김일성주석이 90년 새해를 맞아각국의 당ㆍ국가지도자들과 연하장을 교환한 명단을 발표,북한과 소련과의 불편한 관계를 점칠 수 있게 했다. 발표된 명단에 따르면 소련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의 이름은 중국의 최고지도자 등소평을 비롯한 강택민총서기ㆍ양상곤국가주석ㆍ이붕총리ㆍ진운주임ㆍ만리전인대위원장ㆍ교석서기ㆍ요의림부총리ㆍ송평ㆍ이서환서기ㆍ이선염주석ㆍ왕진부주석ㆍ송임궁부주임ㆍ팽진 전 전인대위원장ㆍ등영초전주석 다음으로 16번째 기재되어 있다. 이같은 사실에 비추어 볼때 현재의 북한은 중국에 완전히 기울어져 있으며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정책에는 심한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불평불만분자 색출 이런 상황속에서의 박성철을 비롯한 경제담당자들의 개방건의,최광등 군부내 친소파의 관계개선주장은 김일성부자의 눈에 「가시같은 존재」로 여겨져 권력서열에서 밀려난 것이라고 도쿄의 소식통들은 분석했다. 이근모전수상 등은 이미 88년 11월이전에 숙청돼 강제수용소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이들은 말했다. 현재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평불만자들에 대한 대규모 색출작업,소위 「사상사업」도 북한내부에 또하나의 정치적 회오리를 예고하는 것이라고 도쿄의 북한문제전문가들은 주시하고 있다. □북한 권력서열 변동표 88년 89년 간부명 12월 4월 5월 9월 11월 비 고 o김일성 1 1 1 1 1 정치국상무위원 o김정일 2 2 2 2 2 〃 오진우 3 3 3 3 3 〃 연형훈 4 4 6 5 5 정치국위원 김윤혁 ­ ­ ­ ­ 6 박성철 5 5 4 6 18 정치국위원 이종옥 6 6 5 4 4 〃 서 철 7 7 7 7 10 〃 김영남 8 8 8 8 7 〃 o계응태 9 9 9 9 28 〃 o허 담 10 10 10 10 8 〃 o전병호 11 11 11 11 ­ 서윤석 12 12 12 12 22 정치국위원 강성산 13 13 13 13 26 〃 홍성남 14 17 17 17 19후 보 최 광 15 14 14 14 27 〃 o한성룡 16 15 15 15 21 〃 현무광 17 16 16 16 14 〃 김복신 18 18 18 18 12 〃 조세웅 19 19 19 19 24 〃 정준기 20 20 20 20 13 〃 강희원 21 21 21 21 16 〃 홍시학 22 22 22 22 25 〃 최태복 23 23 23 23 11 전종 비서 박남기 24 24 24 24 23 〃 서관희 25 25 25 25 25 〃 황장화 26 26 26 26 9 〃 허정숙 27 27 27 27 17 〃 김중린 28 28 28 28 15 〃 윤기복 ­ ­ ­ ­ 20 김 환 ­ ­ ­ ­ 23 (o표시는 당비서)
  • 「김정일 후계」 반대자 대거 수용/북한 정치범 왜 늘어났나

    ◎전 부수상 박금철ㆍ이근모 등 포함/군 고위층ㆍ북송교포까지 대상에/하루 5시간 잠자며 “종신 강제노역” 북한의 정치범 집단수용소는 1956년에서 58년에 걸친 「8월종파」 사건 연루자와 가족들을 특정지역에 집단수용함으로써 시작됐다. 이후 1958년에서 60년에 걸쳐 실시된 중앙당 집중지도와 1966년에서 70년에 걸쳐 계속된 주민등록사업 과정에서 반혁명 적대분자로 「위해하다고 지목되는 자」들을 색출,수용함으로써 본격화 됐다. 이에 따라 처음에는 1개리 정도의 지역에 설치됐던 정치범 집단수용소의 규모는 점차 확대,수개 리를 합친 1개군 절반정도의 크기로 늘어났으며 그 수도 크게 증가했다. 특히 1973년부터 김정일 후계체제의 구축을 위한 정치투쟁조직인 3대혁명 소조활동이 시작되면서부터는 그 수용인원이 크게 늘어났고 규모도 더욱 확대됐다. 80년 10월 노동당 6차대회 이후에는 김정일이 당권을 장악,반대자 또는 방해자들을 「반당종파」라는 딱지를 붙여 계속 숙청했고 이 결과 82년 현재 8개지역에 약 10만5천여명이 사상개조사업이라는 명분아래 사회와 격리된 채 종신강제노역에 처해진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확인된 바에 의하면 북한의 정치범 집단수용소는 1월 현재 지난 82년 보다 그 수와 수용인원에서 각각 50%씩 늘어난 12개지역 15만2천명인 것으로 밝혀졌다. 또 북한당국은 이들 12개지역 수용소에 대해 비밀번호를 부여,관리하고 있음도 새롭게 확인됐다. 이번에 확인된 북한의 정치범 집단수용소 12개지역(지도와 별표참조)중 함경북도 온성군과 회령군 경성군에 있는 것은 전 부수상 박금철을 비롯,전 당비서 김도만ㆍ김광협,전 당정치국후보위원 유장식 등 주로 김일성ㆍ김정일 체제에 반대 또는 비판적 입장을 보였던 반당ㆍ반혁명분자를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자강도의 희천시ㆍ동신군등에는 전 국가보위부장 김병하,전 제7집단군사령관 김양춘,전 제3집단군사령관 정병갑 등 군부와 권력기관내의 불평ㆍ불만분자 등을 주로 수용하고 있으며 함경남도 요덕군,정평군 덕성군에는 대부분 휴전선에 인접한 황해도 강원도 주민을 비롯해 친일ㆍ반동분자로 분류된 자들을 집단이주시켜 사회와 격리해 놓고 있다. 이밖에 평안북도와 평안남도에 있는 집단수용소에는 유사시 평양에 대한 위협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주로 부화범등 잡범과 경미한 사상범을 수용하고 있다. 정치범 집단수용소의 수용대상 및 수용생활 관리실태 등은 다음과 같다. ▷수용대상◁ 처음에는 주로 반당ㆍ종파분자 또는 반혁명분자ㆍ악질지주ㆍ친일파ㆍ종교인 등과 그 가족들이었으나 점차 노동당의 간부나 당원으로 있다가 권력에서 밀려난 정치인과 그 가족들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70년대에 들어와서는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과정에서 희생된 정치적 피해자들이 수용인원의 주류가 되었으며 일본에서 귀국한 북송교포 가운데 북한체제를 비판한 사람들도 상당수 수용되어 있다. ▷수용소생활◁ 수용소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새벽 4시에 기상,6시까지 아침식사를 마치고 작업장에 들어가 작업량을 부여받고 7시부터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한 하오 8시까지 작업을 계속한다. 이들이 하는 작업은 주로 석탄과 광물을 캐는 갱도작업과 벌목,개간 등 중노동이며 저녁식사를 마친 후 하오 11시까지 2시간에 걸쳐 자기비판을 위주로 한 학습시간을 갖고 난뒤 취침에 들어간다. 이같은 일과는 휴일도 없이 연중 계속된다. 이들이 주거하는 주택은 통나무로 엮어 만든 귀틀집(4평정도)이나 토굴을 파서 살고 있으며 가족이 없는 사람들은 통나무로 만든 집단주택에 합숙토록 하고 있다. ▷관리 및 운영실태◁ 국가보위부가 수용소의 모든 업무를 총괄 관장,조정 통제하고 있으나 경비업무는 사회안전부 산하 인민경비대에서 맡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김정일 체제강화를 위해 김정일이 직접 실질적인 모든 권한행사를 총괄하고 있다. 정치범과 그 가족이 일단 수용되면 국민으로서의 자격을 인정하는 공민증을 우선 압류하고 모든 기본권의 박탈은 물론 친지의 면회,외부와의 서신연락 등은 완전히 차단한다. 집단수용소는 표준시설로 외곽철책선,경계초소,내부철책선으로 탈주의 방지와 외부와의 격리를 목적으로 한 방호구조물을 갖추고 있으며 내부에는 관리소ㆍ수용막사ㆍ집단농장ㆍ사상학습소를두어 자급자족체계와 사상개조를 위한 기본적 요소만을 구비하고 있으며 처형장도 설치되어 있다. □수용중인 주요인사 ●성명:김도만 숙청 연월:1967.3 당시의직책:당비서 숙청 이유:당정책에 불만 ●성명:박금철 숙청 연월:1967.4 당시의직책:당정치위원,부수상 숙청 이유:당정책에 불만 ●성명:김창봉 숙청 연월:1969.1 당시의직책:부수상,민족보위부장 숙청 이유:종파,유일사상 체계문란 ●성명:김양춘 숙청 연월:1969.1 당시의직책:7집단군 사령관 숙청 이유:종파,유일사상 체계문란 ●성명:정병갑 숙청 연월:1969.1 당시의직책:3집단군 사령관 숙청 이유:종파,유일사상 체계문란 ●성명:허봉학 숙청 연월:1969.1 당시의직책:대남사업총국장 숙청 이유:종파,유일사상 체계문란 ●성명:김광협 숙청 연월:1970.11 당시의직책:당비서 숙청 이유:반당ㆍ종파분자 ●성명:유장식 숙청 연월:1975.9 당시의직책:당정치국후보위원비서 숙청 이유:김정일후계 반대 ●성명:김동규 숙청 연월:1977.10 당시의직책:부주석 숙청 이유:김정일후계 반대 ●성명:김병하 숙청 연월:1982.1 당시의직책:국가보위부장 숙청 이유:김정일후계 반대 ●성명:김경련 숙청 연월:1982.1 당시의직책:부총리 숙청 이유:김정일후계 반대 ●성명:홍성룡 숙청 연월:1986.2 당시의직책:부총리 숙청 이유:김정일후계 반대 ●성명:이근모(?) 숙청 연월:1988.12 당시의직책:총리 숙청 이유:김정일후계 반대
  • 일본의 북한전문가가 포착한 「새 기류」

    ◎“「냉전의 고도」 평양에도 지각변동 조짐”/「빨치산 3세대」인 젊은층서 개방 건의설/“변화는 불가피”… 북측 사회학자들도 시인/「체제모순」 언급 시작… 50년대 소 변신과정과 흡사 북한의 박성철을 비롯한 몇몇 당간부들이 최근 김일성에게 개방정책을 건의했다가 좌천됐거나 숙청된 것으로 보인다고 10일 도쿄의 북한문제 전문가들이 분석했다. 외부세계와 완전히 단절되어 있는 북한에는 동구의 급격한 변화가 전달되지 못하고 있으며 독재체제 수호를 위한 사상통제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의 이같은 움직임은 90년대의 북한을 주목하도록 하기에 족한 것이라고 이들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복수의 북한문제 전문가에 따르면 개방정책의 건의는 빨치산 제3세대에 속하는 젊은층에 의해 주도됐으며 한때 북한의 권력서열 상위에 들었던 박성철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또 지난 88년 11월 조선노동당 정치국원 후보에서 정치국원으로 승진했던 전병호와 86년 4월 정치국원후보로 등장했던 이선실은 해임보도도 없이 숙청됐을 가능성이 크다고이들 전문가들은 말했다. 이들 가운데 박성철은 자신이 담당했던 「사업」이 계속 실패,평가절하가 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지난 11월19일 실시된 도ㆍ시ㆍ군 인민회의 대의원선거 때에는 당서열 제19위로 처져 있었으며 최근에는 이보다 더 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지난해 선거당시 당서열은 김일성ㆍ김정일에 이어 정치국 상무위원이며 인민무력부장인 오진우가 제3위였으며 그 뒤를 이종옥 연형묵 김윤혁 김영남 허담 황장엽 서철 김복신 정준기 최태복 현무광 김중린 김창주 강희원 허정숙 박성철 홍성남 윤기복 한성용 서윤석 박남기 김환 조세웅 서관희 홍시학 강성산 최광 주응태가 잇고 있다. 이 가운데 김정일의 동정이 보도된 것은 지난해 7월8일 평양에서의 세계청년학생축전 폐막식에 참석한 이래 4개월만이며 서철노동당 정치국원은 88년 6월24일 이래 1년5개월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지난 연말 동구권에서의 변혁의 와중에서도 북한은 충격을 감춘채 침묵하고 있으면서도 격동의 여파가미치지 않게끔 각종 조치를 취해 왔다. 세계 34개국 주재대사 및 동구권 유학생들의 긴급소환,자체내의 사상통제를 강화한 것 등이 그것이다. 루마니아 사태에 관해서는 12월24일 조선중앙통신에 영문으로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아제르프레스통신에 의하면 12월16일과 17일 루마니아의 티미시와라시에서 정치불안이 계속되고 있으며 21일 부쿠레슈티에서 반정부 집회와 데모가 행해졌다. 이같은 데모는 루마니아의 다른 지역에서도 일어났다. 지금 약간의 폭력사태마저 보도되고 있다. 이 사태는 사회질서를 심히 혼란시키고 있다』고 이 통신은 말했다. 조선중앙통신의 이같은 보도는 대외선전용이어서 북한의 일반 대중들에게는 알려지지 않기는 하지만 그나마 루마니아의 정치적 대변혁이 된 군중데모에 관해 북한측이 처음으로 보도한 것이다. 이보다 앞서 22일에는 평양방송이 루마니아에 관해 다음과 같은 내용의 보도를 내보낸 바 있다. 『아제르프레스통신에 의하면 21일 루마니아 공산당서기장 차우셰스쿠동지 사회아래 행해진 당중앙정치집행위원회의 회의에서는 인민의 생활향상을 위한 일련의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했다. 회의는 차우셰스쿠동지의 제의에 따라 1백50만 이상의 근로자에게 은혜를 베푸는 조치로써 1990년 2월1일부터 최저임금을 2천레이로부터 2천2백레이로 인상키로 결정했다. 중앙통신은 25일 전날에 이어 루마니아정세의 제2보를 보도,구국전선평의회의 설치를 처음으로 전했다. 이 통신은 외국의 신문보도를 인용,소란이 돌발한 후 수도 부쿠레슈티에서는 긴장이 계속되고 23,24일 이틀간 각지에서 격렬한 포화가 교차되었다고 전하고 대부분의 가로가 봉쇄되고 공장은 조업을 정지했으며 상점은 문을 닫은 채 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앙통신은 차우셰스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처럼 북한은 외부세계로부터 완전히 단절되어 있으며 또한 내부의 반대세력도 없으므로 동구권과 같은 변화발전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보아왔다. 이러한 상황속에서의 김일성체제에 대한 개방압력의 움직임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최근 북한을방문했던 「저지 인 모스크바」(JUDGE IN MOSCOW)지의 소피 퀸 기자가 11일자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에 게재한 기사에 따르면 북한의 사회과학자들은 잠재적인 변화조짐이 북한내에 있다고 시인하고 그 사회에도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며 결국 변화는 회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특히 예전에는 사회주의에 모순이 있을 수 있다는 식의 발언은 허용되지 않았으나 최근에는 그에 대한 언급이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사태발전은 소련의 과정과 비슷한 것으로서 소련에서는 1955년부터 처음으로 소련내에 사회주의의 모순이 언급되기 시작했다고 소피기자는 지적했다. 이같은 상황들 또한 올해의 북한을 주목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 북한 박성철 숙청설/“김일성에 개방 건의 문책”/일 소식통

    【도쿄=강수웅특파원】 북한의 박성철을 비롯한 일부 당간부들이 최근 김일성에게 개방정책을 건의했다가 좌천 혹은 숙청된 것으로 보인다고 10일 도쿄의 북한 전문가들이 밝혔다. 동구의 변혁으로 사상통제등 체제수호 노력이 경주되고 있는 북한 내부에서 이같은 움직임이 일어난 것은 90년대의 북한을 주목하도록 하기에 충분한 것이라고 이들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이들 전문가에 따르면 개방정책은 「빨치산 제3세대」에 속하는 젊은층에 의해 건의됐다는데 그중엔 북한 권력서열 상위권에 속했던 박성철이 포함됐으며 88년 11월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에서 정위원으로 승진했던 전병호와 86년 4월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등장했던 이희실은 숙청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이 전문가들은 전했다. 북한은 동구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외부세계로부터 완전히 단절돼 있으며 내부에 반대세력도 없어 동구권과 같은 변화는 불가능한 것으로 평가돼 왔다.
  • 중국 공산당 숙청조치 재개/당원 재등록 추진

    【북경 UPI 연합】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지난해 6월의 민주화 시위에 가담했거나 이를 지지한 당원들을 숙청하기 위한 조치로서 수도 북경의 다수의 당원들에 대해 당원자격의 재신청을 명령한 것으로 중국관영 언론들이 3일 보도했다. 북경의 91만 당원 가운데 상당수를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이번 조치는 중국 공산당 중앙위와 북경시당에서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관영 북경일보에도 이날자로 북경시당위원회 조직부 첸광웬 부장의 논평기사와 함께 보도됐다. 중국 당지도부가 당원자격의 재신청을 하달한 것은 지난해 여름에 시도했다가 당원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받은 바 있는 숙청작업의 재개로 보이며 이 과정에서 문제되는 당원들에 대해서는 정치와 이념의 재교육이 요구될 것이 예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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