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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일동포의 뜨거운 민주통일 염원/이명영 성대교수·정치학

    ◎도쿄 평화통일촉진대회 참관기 재일동포들 속에서 통일운동단체인 재일본 한국인·조선인 민주통일연맹이라는 새로운 조직이 생겼다는 기사를 본 것이 작년 가을이었다. 금년 3월 하순에 그들의 기관지인 「통일연맹」 창간호 및 제2호와 접할 기회를 가진 필자는 당장에 그 단체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는 그 기관지에 「조총련의 지식인 및 청년학생에게 고함」이란 장문의 글을 투고했다. 이 글은 그 제3호에 전문이 실렸다. 나와 그들과의 관계는 이렇게 하여 시작됐다. ○평양 개방·개혁 요구 그 민주통일연맹이 지난 9일에 도쿄의 한복판에 있는 풍도송회당이란 곳에서 「조국의 평화통일촉진 전국결기대회」란 것을 열었다. 나도 초청되어 대회를 참관할 수 있었다. 검소하고 질박한 대회였다. 해외에서 살면서도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는 그들 자세의 진지함과 통일을 실현하는 데 있어 무엇이 결정적인 장애요소인가 하는 데 대한 그들 인식의 투철함이 나로 하금 머리를 숙이게 하는 그러한 대회였다. 이 단체는 명칭 그대로 국적을 한국으로 하고 있는 사람들과 국적을 조선으로 하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합쳐서 만든 단체이다. 말하자면 민단계와 조총련계 사람들의 합작조직이다. 그들에게는 공동의 목표와 인식이 있다. 그것이 조국의 민주통일이며 민주통일을 방해하는 자에 대한 준엄한 분노이다. 무엇이 민주통일을 방해하는가. 북한의 폐쇄정책이다. 그래서 그들은 북한의 개방과 개혁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들은 김일성 정권이 버티고 있는 한 결코 북한은 개방될 수도 없고 개혁될 수도 없음을 뼈저린 과거의 체험으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김일성 정권의 퇴진 없이는 조국의 민주통일은 결코 성사될 수 없다고 확고하게 믿고 있는 것이다. 그 단체의 대표자인 이광이란 사람만 하더라도 부모형제와 숙부모가 몽땅 북한으로 간 사람이다. 가서는 소식불통이 되었다. 그의 숙부는 종전 직후에 일본 공산당이 재건되었을 때 그 중앙위원 후보였던 유명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자 송성철이며 그의 숙모는 여운형의 장녀 여난구이다. 난구의 동생 연구는 지금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이다. 그 단체의 부대표자인 임성굉이란 사람은 또 동지사대학 입명관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철학자이다. 그의 저서 「배신 당한 혁명」은 유명하다. 조선의 사회주의혁명이 김일성에 이르러 완벽하게 배신 당했음을 밝힌 책이다. 그러나 그 저자는 조선적을 버리지 않고 있다. 풍도 공회당의 대회에서는 멀리 모스크바에서 재소고려인협회의 허진 부회장이 참석했다. 그는 의미심장하 축사를 했다. 하나의 민족인 우리에게 세 종류의 명칭이 있음을 그는 환기시켰다. 한국인 조선인 그리고 고려인. 이것이 다 조국이 통일되지 못한 데서 오는 비극이라고 그는 통탄했다. 그래서 통일은 우리 세대의 최대의 과업이라고 그는 역설했다. 어떤 통일을 이룩하느냐. 그것은 단연코 민주통일이어야 한다고 그는 결론지었다. 7천만이 다 주인이 되는 민주통일이어야 하지 특정인·특정집단이 주인이 되는 통일은 민족과 역사에 대한 반역이므로 재소고려인도 모두가 민주통일을 염원한다고 하면서 그는 재일민주통일연맹과의 깊은 유대를 표명했던 것이다. 이 대회에 참석한 일본인 중엔 아주 이색적인 사람이 한 분 있었다. 기곡계차란 84세의 노인이다. 그는 「나의 청춘 조선」 「좋은 날이여 어서 오라­북조선 민주화에의 나의 유서」란 책으로 유명하다. 일제시대에 그는 함경남도의 흥남 비료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면서 조선사람들과 같이 공산주의운동을 하다가 잡혀서 10년이나 옥살이를 했다. 그는 일본인이면서도 조선인민의 해방을 위해 투쟁했던 사람이다. 그는 그와 같이 투쟁했던 옛 동지들이 김일성에게 다 숙청 당하고 만 것에 비애를 금치 못하며 조선인민이 아직도 해방되지 못한 채 일인독재에 시달리고 있음에 분노를 금치 못하는 사람이다. 북한이 개방되고 민주화되기를 갈망하는 그의 간절한 염원이 두 권의 책임을 낳았고 그 대회에도 참석하게 만든 것이다. 나는 오래도록 그의 손을 잡고 그에게 최대의 경의와 감사를 표했다. 민단의 간부들은 테러의 위협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민주통일연맹의 간부들은 테러와 모략 중상의 어려운 시련 속에 있음을 내 눈으로 보았다. 조총련의 기관지 조선신보는 이광씨를 전과2범의 사기꾼이며 안기부의 앞잡이라고 중상했다. 명예훼손죄로 고소되었음은 물론이다. 「통일연맹」의 편집위원장인 김원봉씨는 자기가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방해하는 파렴치한으로 매도된 비라를 내보이면서 그것이 자기집 주변의 주민들에게 숱하게 살포되었다고 하면서 쓴 웃음을 지었다. 모든 간부들이 전화협박 때문에 아예 수화기를 내려놓고 있는 실정이라 했다. 내가 그들 본부사무실에 앉아 있는 사이에도 괴전화는 수없이 걸려왔다. 조총련 쪽의 사람들이 민주통일연맹이 발족한 이래로 크게 동요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증해주는 현상들이었다. 동요는 왜 오는가. 기관지 「통일연맹」 때문이다. 북한 당국이나 조총련으로서는 도저히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문제와 사실 폭로가 쏟아져나오고 있는 것이다. ○간부들에 협박전화 남북한 당국이나 국내의 각 사회단체들은 물론 재일민단이나 조총련도 다 통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국내의 재야세력은 결사적으로 통일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후세의 역사는 증언하리라. 재일본 한국인·조선인민통일연맹의 통일노선과 그 운동방향이야말로 가장 과학적이며 애국적인 운동이었다고. 그들은 향후 5년 동안 그 운동을 지탱해나갈 재원을 자체적으로 마련해놓고 싸우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5년까지 필요없다. 2년이면 승부가 난다』고. 민주통일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는 것이다.
  • 잠재운 「보수파반동」… 높아진 「고르비위상」/소 공산당중앙위 결산

    ◎“서기장 자퇴” 선수로 재신임 획득/「평가보고」 요구도 측근동원 봉쇄/“당운영방식 여전히 정치국 중심” 확인 25일 끝난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당내 보수파들이 보여준 고르바초프 당 서기장에 대한 「숙청」 기도는 결국 고르바초프의 정치적 입지를 더욱 강화시켜준 결과가 됐다. 고르바초프 당 서기장은 서기장직 사의표명,중앙위 반려의 절차를 거치면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앞으로 개혁을 더욱 자신있게 추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24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고르바초프는 두 차례에 걸쳐 강경보수세력으로부터 표대결을 요청받았다. 하나는 개회 직후 열린 의제상정과정에서 보수파는 고르바초프의 지난 2년간에 걸친 「평가보고」를 의제로 상정할 것을 요구했다. 또 하나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25일 상오에 선제공격을 편 사임의사 표명이다. 이들 두 사건은 모두 고르바초프가 여전히 공산당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음은 물론 공산당내에 그를 대신할 대안이 없음을 확인시키는,말하자면 「공산당=고르바초프」의 등식을 재확인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끝났다. 보수파가 시도한 평가보고의 의제상정제안은 그 속성상 의제로 상정될 경우 퇴임으로까진 이르지 않더라도 정치적으로 상당한 부담을 안길 수 있는 사안이다. 대체적으로 평가보고는 자아비판의 성격을 띠게 된다.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그것이 비록 부분적이라 하더라도 과오를 인정해야 하는 결과를 낳는다. 과오의 인정은 또다른 시비를 낳게 마련이고 보수파가 주장해온 부분들을 합리화시켜주는 역할을 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고르바초프측은 압도적으로 보수파의 의제 상정제안을 제외시킴으로써 일찌감치 고르바초프의 승리를 확인시켰다. 의제상정과정에서 나타난 중앙위의 형태는 여전히 당운영방식이 정치국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정치국이 사전에 의제를 국내정세 및 국제정세에 대한 현안논의로 확정지었고 이후 중앙위 일부 세력이 의제에 평가보고를 넣을 것을 요구했지만 전체 중앙위는 정치국 결정 존중의 선례를 지킨 것이다. 서기장 사임의사표명과 반려는 고르비의 계산된 도박으로 분석되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이어 개회연설을 통해 『많은 당원들이 갈피를 못잡고 있으며 많은 당지도자들은 히스테리적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지금의 상황은 레닌이 신경제정책(NEP)를 폈을 때와 비슷하다. 그때 개혁이 실시되지 못한 것이 유감이고 우린 지금 다시 그 시도를 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이 자리(당 서기장)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누가 하든 대통령과 서기장의 겸직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는 토론자로 나선 보수파들이 자신에 대한 비판을 강화하자 25일 상오 정회에 들어가기 직전 사임의사를 표명,중앙위원들의 의사를 물어줄 것을 요구했다. 그 결과 4백명에 가까운 전체위원 중 단지 13명의 위원만이 사임문제를 다룰 것에 찬성하는 압도적인 재신임을 획득한 것이다. 오전회의가 끝난 뒤 회의 결과를 발표한 자소호프 당서기는 『근본의제는 국가의 위기탈출방안과 당의 역할에 관한 것이었으며 9개 공화국리더들과 체결한 성명이 회의참가자들에게 큰 파문을 일으켰다』고 말해 성명을 둘러싼 보수파들의 공세가 치열했음을 시사했다. 그는 극히 비판적인 토론이 시작되었으며 현실위기에 대한 책임이 고르비에 있다는 토론이 많았으나 극단적인 주장들은 소수였다고 공식적으로 고르비 사임에 대한 문제가 이미 종결되었음을 밝혔다. 뒤이어 국영 TV가 인터뷰한 의원들은 『대회에서 날카로운 비판이 잇따르자 고르비는 정회 직전 사임의사를 발표했다』고 전하고 『그러나 고르비에게 있어서는 사임이 더 유익할지 모르지만 당으로서는 비극적인 결과가 예상되기 때문에 이를 다룰 것인가 하는 논의에서 13명이 찬성,14명이 기권하고 나머지는 다룰 필요조차 없다는 반대를 표시했다』고 전했다. 이날 회의에서 보수파들은 특히 9개 공화국 지도자들과 체결한 공동성명이 원칙없는 지나친 절충의 결과라고 지적하면서 사임을 요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소유즈대회와 레닌그라드에서 있었던 골수 막스 레닌주의자들의 궐기대회,여러 지방 공산당위원회에서 있었던 고르비 사임요구 등을 고려한다면 중앙위의 진행은 오히려 뜻밖일 정도였다. 그러나 소유즈 등 사임을 요구했던 그룹이 주로 하위 노멘클라투라(공산당내 특권계층)에서 일어났던 점이 특이했다. 즉 최상위 노멘클라투라로 구성된 중앙위원회는 이들과는 생각이 달랐고 그래서 예상보다 훨씬 큰 일방적인 고르바초프의 승리를 가져온 것이 아닌가 분석되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지난 24일 9개 공화국과의 공동성명을 통해 개혁 및 민족주의세력과의 공존의 길을 열었다. 이를 실천하는데 가장 큰 변수로 여겨졌던 당내 보수파의 반동을 이번 중앙위를 통해 잠재움으로써 어느 때보다 안정적인 정치적 입지를 확보했다고 할 수 있다. 당내 보수파의 반발이라는 중대한 고비를 무난히 넘겼지만 소련의 장래는 여전히 불안하다.
  • 잇단 「고르비 축출설」 언저리/크렘린에 「궁정쿠데타」 가능할까

    ◎64년 흐루시초프 실각 때와 상황 비슷/군·당이 변수… 일부선 후임자까지 거론 고르바초프를 축출시키려는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루머가 꼬리를 물고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이러한 음모설은 경제난·민족문제 등으로 페레스트로이카가 비틀거리기 시작한 2∼3년 전부터 간간이 외신을 타고 들어왔으나 그때마다 「읽을 거리」 이상의 관심을 끌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러시아공화국 의회가 독자 대통령을 선출키로 결정한 이달초부터 소련내 정세가 극도로 악화되자 「음모설」에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어떤 분석가들은 인민대표회의 의장인 아나톨리 루키야노프,부통령 겐나디 야나예프가 그의 후임자가 될 것이라는 성급한 추리를 내놓기도 한다. 10일 일본 지지(시사)통신 보도는 음모의 결행 시기·방법까지 적시하고 있다. 공산당내 보수파들이 고르바초프의 일본·한국순방 끝날인 19일 긴급 당중앙위 총회를 소집해 그를 축출하려는 거사가 추진중이라는 것이다. 지난 7일에는 리처드 체니 미 국방장관이 ABC­TV와의 회견을 통해음모가 사실일 수 있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고르바초프는 과연 실각할 것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는 쪽의 견해가 아직은 우세하다. 하지만 연방공화국들의 독립요구·파업·경제난 등 정국상황을 감안한다면 시기적으로는 지금이 음모를 결행하기에 최적기라는 지적도 있다. 소련에서 당 최고지도자 부재중 중앙위 총회가 열린 것은 지난 1964년 흐루시초프 당시 제1서기가 요양지에서 불려와 해임된 경우가 있다. 지금 고르바초프가 처한 입장이 불행히도 그때와 유사한 점이 많다. 소련에서 궁정쿠데타의 음모를 꾸밀 수 있는 세력은 역시 군부·당·보안세력으로 대변되는 보수세력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들이 처한 상황이 그때와 지금 아주 흡사하다. 1956년 20차 당대회에서 흐루시초프가 스탈린 비난연설을 한 이래 소련에서는 대대적인 스탈린격하운동이 벌어졌다. 보안조직의 총수 베리야가 숙청되고 스탈린의 학정에 연루된 당·보안조직 세력들은 모두 된서리를 맞고 공산당에는 탈당사태가 벌어졌다. 탈스탈린화가 진행되면서 동구위성국들에도민주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1956년 헝가리 민주화운동 등이 그 실례이다. 고르바초프는 이보다 한술 더 떠 동구를 모두 잃고 독일을 통일시켜주었다. 대외정책도 유사한 점이 많다. 흐루시초프는 사회주의 해방전쟁 지원과 혁명수출 포기를 선언하고 제국주의 세력과의 평화공존을 주장하며 전쟁불가피론을 부정했다. 고르바초프가 추진해온 개혁 개방,신사고 외교정책과 흡사한 「모험」들이 당시에 시도된 것이다. 경제면에서도 흐루시초프는 1956년 경제분권화계획을 발표하면서 군비삭감과 소비재 생산확충을 추진해 기득권층으로부터 반발을 샀다. 1964년 10월 긴급당중앙위가 소집돼 그의 실각을 통보하기 전까지 흐루시초프는 자신이 당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당조직은 스탈린을 비난하며 당의 권위에 손상을 입힌 그를 버렸다. 보안조직과 군부도 그의 몰락을 외면했다. 스탈린시대를 청산한다는 이름하에 자신들의 「피묻은」 과거를 들추어 단죄한 그를 구해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지난해말을 고비로 그 동안소원했던 군·KGB·당과 다시 손을 잡으려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페레스트로이카 6년간 소외되고 공공연히 비난받아온 이들이 만약의 사태가 발생할 경우 그를 「살리려고」 나설지는 아무래도 미지수이다. 『고르바초프 물러나라』고 외치는 거리의 외침 못지 않게 크렘린궁내의 「소리없는」 음모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
  • 중국에 「이붕 사임촉구 시」 파문/인민일보 해외판특집에 게재

    ◎겉으론 고국 그리는 유학생의 심정 표현/대각선으로 읽으면 “총리퇴진 압력” 명백 중국공산당기관지 인민일보에 최근 반이봉시가 게재된 사실이 밝혀져 파문이 일고 있다. 지난 89년 천안문사태 이후 처음으로 천안문 시위의 강경진압론자 이봉총리의 사임을 촉구한 이 시는 지난 20일자 인민일보 해외판에 실렸으며 이 시에는 『이봉이 물러나야 평민들의 분이 풀리고,중국대륙에도 봄이 올 것』이라는 내용이 감춰져 있다. 이같은 사실은 홍콩의 대만계 신문인 성도일보에 의해 처음 밝혀졌다. 24일 성도일보는 1면 머리기사에서 『지난 20일자 인민일보 해외판은 「유학생 페이지」라는 특집속에 주해홍이라는 이름의 미국유학생의 한시 「원소(대보름)」를 게재했으며 이 시속에는 「이봉하태평민분,차대신주변지춘」이라는 글귀가 감추어져 있었다』고 보도했다. 문제가 된 한시 「원소」는 한 행이 7자인 모두 8행의 7언률시로 겉보기에는 고국을 그리워하는 유학생의 심정을 묘사한 것처럼 돼있으나 제1행부터 제7행까지를 대각선으로 읽으면 「이봉하태평민분」이라는 구절이 되어 『이봉이 물러나야 평민들의 분이 풀리고』라는 뜻이 드러나고 이 구절은 다시 제8행의 「차대신주변지춘」이라는 구절로 연결되어 『중국대륙에도 봄이 올 것』이라는 내용을 이루게 된다. 성도일보는 이같은 사실을 폭로하면서 『이 시가 실수로 게재된 것인지,아니면 의도적으로 게재된 것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중국당 고위층이 현재 인민일보가 실은 이같은 「이봉사임촉구시」를 인지하고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또 『만일 이같은 사실이 중국공산당 고위층에 알려지면 인민일보는 대규모 숙청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패전 이라크,이번엔 내란위기/「백기 든 이후」의 바그다드

    ◎학정에 시달린 시아파,정권탈환 노려/쿠르드족도 반감고조… 반정봉기 태세 걸프전 종전뒤 이라크는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 것인가. 이에대한 답변은 사담 후세인의 장래와 연결지어서 풀어나가야 한다. 후세인의 앞날에 대해서는 갖가지 설과 가정이 소개되고 있는게 사실이지만 유럽언론들은 전쟁의 진행상황으로 미루어 그의 실각은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전쟁은 당초의 예상대로 후세인의 완패로 결말이 지어졌으며 후세인이 권좌를 계속 유지하기가 어렵게 됐다. 이라크 국민들에게 후세인의 제거를 공개적으로 부추겨온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지난해 8월2일 이후 많은 사람들은 이라크인들 스스로 후세인을 쫓아내길 고대해 왔었다. 종전후 이라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가지 변화를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군부 쿠데타이다. 어떤 전문가들은 후세인의 장기독재에 따른 몸서리 쳐지는 학정을 자각한 군장성들이 특히 패전에 대한 책임으로 후세인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그러나 군부쿠데타자체가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도 만만치않다. 왜냐하면 이라크 군지휘부는 후세인이 엄선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후세인의 충복중의 충복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후세인은 집권이래 군고위층에 대해서는 의심스러운 부분이 한치만 보여도 숙청의 칼날을 뽑아 왔었다. 집권 초기에는 나세르주의를 지향하는 좌파장교들을 무더기로 숙청했고 그뒤 얼마 안가서는 바트당 당원이 아닌 장교들이 당했다. 정권유지를 위한 무자비한 숙청은 걸프사태 이후에도 계속되어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쿠웨이트 침공 작전개시일 결정에 대한 의견 제시를 미루었다는 이유만으로 군지휘관 10여명이 처형됐으며 다국적군의 공습이 개시된 바로 다음날 방공포대 지휘관들이 공습을 효과적으로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총살됐다는 것이다. 또 며칠 뒤에는 공군 지휘관들도 같은 이유로 처형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같이 군부는 솎아내고 걸러낸 친위조직으로 구성됐기 때문에 쿠데타를 일으키기는 어렵다는게 이에대한 신중론의 근거이다. 또한가지 가능성은 민간쿠데타 즉 시민혁명이다. 30여년간 줄곧 핏물 튀는 군부독재가 계속 되어온 탓에 이라크에는 언뜻 손꼽히는 정치엘리트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몇몇 지도자들은 오래전부터 영국 독일 또는 미국등지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들 중에도 널리 알려진 인물은 드물다. 게다가 이라크에는 후세인의 바트당이 일당독재 지배체제를 확립하고 있으며 「3인1조」식으로 구성된 세포조직은 지역·기업 및 군대까지 파고 들어 반대정치 세력의 출현을 원천 봉쇄하고 있다. 유럽의 전문가들은 바트당내의 지도층에 의한 쿠데타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내다보기도 한다. 제2인자인 이자 이브라힘 알 듀리 제3인자인 타하 야신 알 지즈라위 부총리인 사돈 하마디 소장층의 대표주자인 하산 압둘 마지드 등의 당지도층을 대상으로 모반을 가정해 보지만 그동안의 후세인 통치스타일로 미루어 역시 가능성은 미지수일 수밖에 없다. 그 보다는 오히려 종족간 대립이나 이슬람교내의 갈등이 이번 기회에 표면화되어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관심을 끌고있다. 이교간의 갈등 이상으로 집권층인 이슬람교도 수니파와 심한 대립현상을 보이고 있는 시아파가 관심의 대상이다. 8백만명인 시아파는 대부분 사우디아라비아쪽을 연고로 두고 있는 사람들이며 집권 수니파에 눌려 오랫동안 학정에 시달려왔다. 이 때문에 시아파는 항상 폭발직전의 불만에 싸여 살아오고 있으며 77년 2월 및 79년 6월 등에는 걷잡을수 없는 폭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중앙정계에서 활약하는 정치지도자는 한명도 없으나 나자프 또는 게르발라와 같은 도시의 종교지도자들은 반정부 행동을 위한 군중동원 능력은 뛰어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종교조직을 바로 정치조직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짜놓고 있다. 후세인에게 가장 도전적인 세력은 바로 쿠르드족이다. 이라크 북부지방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쿠르드족은 항상 바그다드 정부에 적대적인 자세를 보여오고 있다. 그들은 특히 지난 87년 화학무기로 쿠르드 양민을 무차별 살상한 후세인을 증오,기회만 있으면 봉기의 횃불을 올릴 자세를 갖추고 있다. 5백만명의인구를 포용하고 있는 쿠르드족의 지도자들은 이미 몇주일전에 이라크 북부지방에서 대대적인 반후세인 봉기에 착수할 준비가 다 되어있다고 워싱턴에 알리기도 했다. 시아파나 쿠르드족은 그동안 뚜렷한 활동은 못했지만 나름대로의 정치조직을 가지고 있다. 시아파는 이라크 이슬람전선,이라크 이슬람교 혁명최고위원회,이라크 무자헤딘운동 등의 조직이 있으며 쿠르드족은 이라크 쿠르디스탄전선,쿠르디스탄 민주당,쿠르디스탄 애국연합,쿠르디스탄 인민민주사회주의 등이 있다. 후세인 이후의 이라크에 중앙집권 형태가 사라지고 수니파 시아파 및 쿠르드족 등 3개파가 조화있게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자는게 전쟁에 참여했던 주요 국가들의 바람인 것 같다.
  • 전후 이라크·쿠웨이트 어떻게 될까

    ◎“후세인 축출” 군부 쿠데타 가능성 고조/독재정권 붕괴로 정정불안 가속/이라크/일단 왕정복귀… 민주화 진통 예상/쿠웨이트 걸프전 이후 이라크의 새로운 지도자는 누가 될까. 쿠웨이트는 왕정체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까. ▷이라크◁ 걸프전쟁이 이라크의 수세속에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어감에 따라 후세인의 운명과 집권대체 세력의 향방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후세인의 운명은 이번 전쟁이 마무리 되는 모양새에 따라 아직도 여러가지 가능성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굴욕적인 항복을 요구하는 미국의 자세로 볼 때 후세인이 종전후까지 권력을 유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후세인은 계산착오와 무모함 때문에 이라크 군부내로부터도 반발을 사고 있으며 이라크 국민들의 반정부 시위도 간간히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상황에서 이라크의 정권교체 가능성은 군부내 쿠데타,다국적군의 후세인 제거 등 몇가지로 나눠 예상해 볼 수 있다. 이라크 군부내의 쿠데타는 이번 전쟁이 당초 의도대로 쿠웨이트합병이나 아랍의 단결을 성취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수많은 이라크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피해,아랍의 분열만 초래했기 때문에 후세인이 그 책임을 져야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있음직하다. 후세인이 일선 부대와 연락하기도 힘들정도로 감시체제가 느슨해져 군부내 불만세력의 행동이 자유로워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있다. 종전후 후세인의 입지강화를 위해 당연히 뒤따를 대규모 군부 숙청 대상에 포함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쿠데타 가능성을 더해주는 요인이다. 다국적군의 공격에 의해 후세인이 제거될 경우 우선 당장에는 집권층 내부에서 권력승계가 이뤄지겠지만 결국은 쿠데타의 악순환 등 정정불안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미국·소련·시리아 등 중동지역에서의 패권을 노리는 강대국들이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되는 꼭두각시 정권을 세우기 위한 각축전도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이라크내에는 20년 이상 지속된 철권통치 때문에 겉으로 드러난 반정부 세력이 존재하지 않고 있다. 회교 원리주의파,공산주의파,후세인에 의해 축출된 군장교단파,왕정파 등 수십종류의 반정부 단체가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기는 하지만 국내기반이나 영향력면에서 미미한 실정이다. 17개 반정부 단체가 지난해 12월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에 모여 반후세인 연합전선을 결성하고 시리아·사우디아라비아·미국 등과 접촉을 활발히 하고는 있으나 큰 기대를 받지는 못하고 있다. ▷쿠웨이트◁ 6개월여만의 쿠웨이트 해방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옴에 따라 쿠웨이트 왕정체제의 변화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자진 철수하든,쫓겨나든 간에 일단 이라크군이 쿠웨이트에서 물러나면 지난해 8월2일 사우디아라비아로 피신해 갔던 알 사바왕가의 망명정부가 당연히 복귀하겠지만 사바왕정이 앞으로 얼마만큼의 민주화 조치를 실천에 옮길 것인지,궁극적으로 왕정체제 자체가 붕괴되지는 않을 것인지가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사바왕은 일단 정부가 회복되면 쿠웨이트를 보다 민주화 시키겠다는 입장을 망명기간 동안 거듭 강조해 왔다. 그러나 사바왕이 최근 한 인터뷰에서구체적인 계획은 제시하지 않은채 민주화를 실시하겠다고 말하면서 의회제도만은 계속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으로 미뤄볼때 앞으로 쿠웨이트의 정치상황이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지난 62년 제정된 헌법에 명시된 의회가 지난 86년 정정불안을 이유로 해산돼 상당수 국민들의 원성을 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의회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은 본질적인 변화는 거부한채 피상적인 변화만을 추구하겠다는 의도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이라크군이 침공에 앞서 국경지대에 병력을 증강할때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았다는 비판과 침공개시 수시간전 파드 사우디국왕으로부터 사전연락을 받고 도주했다는 구설수에까지 올라있는 사바왕으로서는 의회를 통해 이같은 불만이 공개적으로 여론화될 것을 우려하겠지만 의회가 없다고 해서 국민들의 불만이 사그러들지는 미지수다. 미국의 입장에서도 향후 중동안보구조를 의식,다루기 쉬운 왕정형태를 최소한 유지하되 민중봉기를 통한 정부전복을 예방할 수 있도록 민주화압력을 가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쿠웨이트는 이번 전쟁으로 유전의 25%가 파괴되는 등 국가전체가 만신창이가 돼 복구하는데만도 총 6백억달러의 투자와 수년의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천∼5천명의 사망자와 생존자들의 비참한 생활은 보상받지도 못할 형편이다. 쿠웨이트 국민들은 이제 전후복구의 부담과 함께 새로운 정치체제 개척의 소임마저 짊어지게 된 것이다.
  • 미·소 이해에 걸린 「후세인의 앞날」

    ◎완전거세로 「친미 중동구도」 추진/미/전후영향력 노려 체제유지 희망/소/지상전서 참패하면 피살·쿠데타 가능성도 개전 한달을 넘긴 걸프전은 정치적 해결이냐 아니면 지상전 돌입이냐의 마지막 고비에 들어섰다. 최근 프랑스는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에게 결단의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고 경고한 바 있다. 후세인의 결정이 어떤 것이 될지는 현재로선 예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후세인의 운명은 전후 중동정세와 깊은 함수관계를 가지고 있어 화전 어느 쪽이든 그가 내릴 결정에 지금 세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소련이 후세인의 운명에 대해 큰 시각차를 보이는 것도 그의 존재가 중동정세의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소련은 걸프전쟁을 정치적으로 종결시키기 위한 막바지 중재안에 후세인 체제 유지를 포함시키고 있다. 소련은 만약 이라크가 다국적군과의 전쟁으로 「군사적 황무지」가 도고 후세인마저 축출된다면 중동에서의 영향력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에 후세인 체제의 유지를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미국은 후세인의 제거를 희망하고 있다. 부시 미 대통령은 이라크군과 국민들에게 후세인 대통령을 축출하라고 공개적으로 촉구하고 있다. 미국은 전후 친미국가중심의 새 중동질서의 구축을 구상하고 있다. 다국적군에 참여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시리아 등 회교국가들도 차제에 후세인이 제거되기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 후세인이 계속 권좌에 남아있게 되면 이들 국가들에게 큰 위협이 될뿐만 아니라 후세인을 지지하는 민중들의 저항으로 그들의 집권체제마저 위협받을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각국이 그들의 입장에 따라 「희망사항」이 다른 후세인의 운명은 어떻게 결말지어질 것인가. 일부 중동문제 전문가들은 후세인이 현 단계에서 쿠웨이트 철수를 선언한다든가 지상전에서 한달이상 성공적인 전투를 벌일 경우 이라크는 물론 아랍권내에서 영웅으로 추앙받으면서 현 집권체제를 흔들림없이 지켜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쿠웨이트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이라크군과 국민들의 희생만을 남긴채 철수할 경우 그는국내로부터의 큰 반발에 직면할 것이다. 미 하버드대의 로리 밀로이교수도 『후세인이 쿠웨이트로부터 빈손으로 돌아온다면 그의 정치기반은 위협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의 한 고위관리는 후세인은 스스로를 보호할 충분한 「안전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후세인은 자신의 친위부대를 가지고 있으며 그를 대신할만한 정치세력이 이라크에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후세인이 지상전에서도 참패하고 많은 인명피해만 입은채 이라크로 쫓겨간다면 그의 정치적 운명은 위기를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의 중동문제 전문가인 프레드 홀리데이는 후세인이 참패할 경우 그는 정치권이나 자신의 측근 혹은 계속돼온 숙청에서 살아남은 군장성에 의해 축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고 있다. 일부 중동문제 전문가들은 철권정치에 겁을 집어먹고 겉으로는 표현하고 있지 않지만 내면적으로는 후세인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적지않아 전쟁후 이들의 저항이 표면화될 경우 후세인이 위기를 맞을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물론 후세인이 다국적군의 공급으로 사망할 가능성도 없지않다. 후세인이 미국의 희망대로 축출될지 아니면 아랍의 영웅으로 등장할지를 점치기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후세인의 조재는 앞으로도 중동문제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점이다. 후세인이 축출되면 향후 중동정세는 미국 구도대로 그림이 그려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후세인이 살아 남는다면 중동문제는 더욱 복잡해지고 미국과 이라크의 갈등역시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걸프전쟁은 시작도 그랬듯이 마지막도 후세인문제에 모아지고 있는 느낌이다.
  • 「반 김정일세력」 존재 인정/평양방송 보도의 언저리

    ◎북한/「세습」 싸고 권력투쟁 표면화/수구­개혁파간 알력 심화된듯/반발하는 일부 젊은장교 숙청도 시사 북한이 최근 김일성­김정일부자 세습체제에 반대하는 세력이 실재하고 있음을 방송보도를 통해 최초로 시인한 것으로 19일 밝혀졌다. 이날 통일원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15일 평양방송을 통해 발표한 「김정일에 대한 조선인민군 제525부대 장병들의 맹세문」에서 『오늘,현대수정주의자들과 기회주의자들이 미제를 비롯한 제국주의자들의 부추김을 받아 혁명의 원칙을 버리고 수령의 지휘와 당의 영도적 역할을 부인해 나서며 군대에 대한 당의 영도를 떼어내려고 책동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즉 이는 소련의 개혁노선을 추종하는 현대수정주의자들과 반체제세력들이 미국을 비롯한 외부세력의 책동을 받아 북한의 지도이념인 주체사상을 부정하고 김일성과 김정일의 지휘와 지도를 부인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군에 대한 김정일의 지배를 거부하는 움직임이 군내부에서 빚어지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 볼수 있다. 북한방송의 이같은 보도는 북한이 이제까지의 반당­반체제세력의 책동을 제때에 폭로·분쇄하겠다는 사실을 방송할 때 통상적으로 사용해 왔던 「과거형」의 기술이 아니라 「오늘」이라든지 「현정세」라든지 하는 「현재형」의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에서,다시말해 반체제세력 및 반김부자세력의 존재와 그들이 저항움직임이 후계체제가 완료됐다고 대내외에 천명하고 있는 오늘 이 시점에 벌어지고 있음을 시사했다는 점에서 북한의 복잡한 내부사정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또한 김정일의 권력세습과 관련,군부장악이 앞으로 세습체제의 안정성을 가장할 가능 중요한 변수로 꼽히고 있음을 감안할때 군부내에 김의 군지도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있다는 사실 역시 주목할만 하다. 이와 관련,통일원의 한 당국자는 『북한내부의 권력투쟁 움직임이 구체적으로,그리고 현재 진행형으로 보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는 북한의 내부사정이 최근들어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고 있음을 시사하는 동시에 제4차 남북 고위급회담의 중단에서 알수 있듯 현재의 남북대화도 이같은 북한사정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또 여기서 말하는 반체제·반김부자 세력의 움직임이란 주체사상파와 개혁파의 갈등,또는 김일성파와 김정일파의 대립,김정일의 군부장악에 대한 젊은 장교들의 반발 등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조선인민군 제525부대 장병들의 맹세문」에는 군장병들이 김정일을 미래의 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모실 것을 맹세하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또한 처음인 일로서 이같은 충성의 맹세는 북한인민군 전부대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맹세문은 현재의 인민군 최고사령관은 김일성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데 이는 지난 13일 판문점에서 열렸던 제459차 군사정전위원회에 참석했던 한 북한측 장교가 김정일을 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지칭했다는 일부 외신 보도들이 잘못됐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 외언내언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보통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그렇다고 정신이상자는 아닙니다. 우리가 보기에 그런 증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상한 구석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이 사람은 1940년 소련땅 오케얀스카야에서 「슈라」란 소련이름으로 태어났는 데도 1942년 백두산기슭에서 태어난 것으로 자신의 출생을 조작했습니다. 이것부터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 사람은 일도 열심히 하지만 놀기도 좋아합니다. 매주 주말이면 호화 파티를 밤새열어 자신이 겉으로는 경멸해 마지않는 자본주의식 방탕놀음을 즐기곤 합니다. 경음악밴드에 맞춰 트롯,디스코 등을 추는가 하면 블랙잭·마작같은 도박도 즐깁니다. 술은 물론 수입 위스키나 코냑이지요. 「하숙생」 「동백아가씨」 등 우리의 유행가를 즐겨 부르기도 합니다. 거짓말같은 얘기지만 이 파티에 직접 참석했었던 한 영화인 부부의 증언이니까 믿어야겠지요. ◆이 사람의 과대망상은 알아줄만 합니다. 88 서울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에 심사가뒤틀렸던지 그 이듬해 7월 평양에서 제13차 세계학생 청소년축전을 벌였는데 이 잔치판에 46억달러라는 엄청난 외화를 낭비했다고 합니다. 그뿐 아니지요. 인구 2백만명 남짓한 평양에 15만명을 수용하는 동양 최대의 경기장을 건설했고 1백5층이라는 세계 최고의 호텔도 짓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경제는 빈사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이 사람이 북녘 동포들에게 베푸는 시혜도 없지 않습니다. 2월16일 생일 때이지요. 이날 한가구당 쌀 7백g,닭고기나 돼지고기 1천g,생선 5백g,3홉들이 소주 한병씩이 특별배급 되니까요. 또 생일날과 그 이튿날인 17일은 공휴일입니다. ◆이 사람이 최근 자신의 세습을 반대하는 반혁명분자들을 숙청했다고 합니다. 여러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만 50세가 되는 92년에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북한의 권력을 완전히 장악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리가 간여할 것은 아니지만 북녘 동포들을 생각하면 가슴 아픈 일 입니다. 이래도 이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겠습니까.
  • 심상치 않은 북한 동정(사설)

    우리는 최근 북한에 관한 두가지의 어두운 소식에 접했다. 하나는 극심한 식량난 때문에 쌀을 구걸하기 위한 외교행각에 나섰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김정일이 권력세습을 반대하는 「반당·반혁명분자」들을 적발,숙청했다는 소식이다. 북한의 내부사정이 지금 얼마나 심각한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들이다. 식량난으로 곤경을 겪고 있는 북한은 1월30일부터 지난 7일까지 연형묵 정무원총리를 태국·인도네시아·밀레이시아 등 동남아 3개국에 파견,싼값으로 쌀을 사들이기 위한 순방외교에 나섰으며 태국에서 올해안에 50만t,2∼3년안에 1백만t을 수입할 것을 제의했다고 한다. 수입대금은 바닥이 난 외환사정 때문에 강철과 시멘트로 지불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태국도 이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연총리의 순방외교와 때를 같이해서 북한은 제3국상사를 통해 한국산 쌀 10만t을 국제가격의 3분의 1에도 못미치는 t당 1백달러로 수입하겠다고 타진해 왔는데 우리 정부는 「직접적인 교섭」이 아니란 이유로 이를 일단 거부했으나북한당국이 직접 요청해올 경우 무상원조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김정일이 반당·반혁명 분자들을 숙청했다는 것은 그것이 어떤 정치적인 의미를 갖는 것인지,누가 관련이 됐는지,또 숙청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를 지금으로서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북한의 권력층 내부에 균열의 조짐이 일고 있다는 것을 강력히 시사해 주고 있다. 북한에서는 요즘 「하루 두끼먹기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한다. 최근 북한을 다녀온 한재외동포는 그곳에 체류하는 동안 「하루 두끼먹기운동」을 알리는 선전포스터와 플래카드를 직접 목격했으며 그나마 배급이 제대로 안돼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고 전했다. 소련의 경제관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북한의 식량난에 대해 우려를 표명해 왔으며 북한당국이 주민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올해안에 기아사태나 식량폭동이 발생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해 왔다. 「반당·반혁명분자 숙청사건」도 북한의 반체제세력이 주민들의 고조된 불만에 편승한 것이 아닌가하는 느낌을 갖게한다.북한은 반혁명 음모를 분쇄했다고 하지만 식량난이 가중될 경우 민중봉기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어느 누가 북한이 루마니아의 재판이 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사정이 이처럼 절박한데도 북한이 제3국을 통해 식량난을 해결해 보겠다고 나선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같은 민족끼리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가까운 길을 두고 제3국이라는 먼길을 굳이 고집하는 이유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제 그같은 폐쇄적이고 편협한 자세는 버려야 할 때가 온것 같다. 북한이 현재 풀어야할 초미의 급선무가 식량난임을 인정한다면 허심탄회하게 우리 정부의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오는 25일 평양에서 열리는 제4차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이 문제를 의논해도 좋겠지만 고위급회담에서 논의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되면 적십자회담이나 경제회담을 재개하는 방법도 있다. 북한은 84년 남쪽이 수재로 큰 피해를 입었을때 5만섬의 쌀을 조건없이 보냈고 우리정부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인바 있다. 이번에는 그쪽에서 도움을 받는 것이 형평을 위해서도 좋을 것이다. 남북간에 이런 정신을 살려간다면 민족화해에도 유익한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생각된다. 폐쇄적인 체제논리 때문에 주민들의 먹는 문제를 더이상 외면하지 말았으면 한다.
  • “세습체제 건재”… 평양의 연막전술/“반혁명세력 분쇄” 발표 안팎

    ◎식량난등 내정위기 타개 겨냥/긴장감 고취,개혁바람 차단 목적도 『반당·반혁명 종파분자들과 반당 추종주의 분자들의 책동을 제때에 폭로·분쇄했다』는 북한 중앙방송의 7일 보도는,일부에서 추측하듯 김일성­김정일부자 세습체제에 반대하는 저항세력이 북한사회에 실재하고 있으며 북한정권이 최근 이를 적발·숙청했다는 시사라기보다는,일부의 관측과 달리 김부자 세습체제가 건재하다는 사실을 내외에 보이기 위한 하나의 선언(?)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북한 전문가들의 일반적 관측이다. 북한정세에 정통한 많은 관측통들은 이와관련,이같은 내용의 보도는 지난 80년 김정일 후계체제가 공식화된 이후 수차에 걸쳐 북한언론에 보도됐으며 이번 중앙방송 등의 보도 또한 과거의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북한의 평양방송은 지난 89년 8월17일에도 「당의 혈통을 혼탁하게 만들려는 이단적 사상조류」와의 투쟁을 전당적 규모로 수행했으며 김정일이 이 투쟁을 조직,「주체혈통의 순결성」을 지켜냈다는 논설을 보도했었다. 또지난해 9월21일과 10월4일에도 중앙방송은 당기관지 「근로자」에 실린 「조선노동당은 우리 인민의 모든 승리의 조직자이며 향도자이다」라는 김정일의 논문을 인용,인민대중의 이익을 좀 먹고 침해하는 불순분자들과 적대분자들을 반대하는 치열한 계급투쟁을 벌여 후계문제를 완전히 해결했음을 밝힌 바 있다. 따라서 북한방송들의 이번 보도는 『북한이 현재 정치·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여러가지 소요의 움직임이 빚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으나 현재로서는 반체제·반김일성의 움직임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바 없다』는 정부의 한 당국자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내외적인 위기상황에 몰려있는 북한정권이 그들 체제의 공고함을 재확인하기 위해 취한 제스처로 볼 수 있다. 다만 북한이 왜 이 시점에서 그러한 내용을 보도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는 다음 몇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최근 「하루 두끼먹기 운동」이 벌어지고 군인들이 협동농장을 습격,곡몰과 소 돼지 등을 약탈할 정도로 심각한식량난을 겪는 등 북한이 경제적·사회적으로 심각한 위기국면을 맞고 있다는 점이다. 즉 체제불안이 야기될 소지가 점차 증대함에 따라 북한은 이번 보도에서처럼 사회주의의 우월성과 김부자 세습체제의 당위성을 재차 강조하고 불만분자에 대한 단호한 척결의지를 밝힘으로써 체제위기를 극복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지적이다. 두번째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김정일의 49회 생일(2월16일)을 앞두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북한에서는 김정일의 생일을 앞두고 「백두산강」 체육경기대회가 개최되는가 하면 「정일봉에로의 눈길행군」이 시작되는 등 예년과 마찬가지로 대대적인 김정일 우상화작업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에 발맞춰 북한은 김부자 세습체제의 당위성을 재확인,김일성은 물론 김정일에 대한 주민들의 충성심을 북돋우는 한편 내부적인 결속을 더욱 다지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세번째는 북한이 최근 걸프전쟁과 팀스피리트 훈련을 계기로 그 어느때보다도 대내적인 긴장의식 고취에 주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최근 80년 이후 처음으로 방공훈련을 계속해서 실시하는 등 팀스피리트 훈련을 걸프전쟁과 연계해 한·미측의 「북침전쟁」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켜 오고 있는데 이와 더불어 「반당·반혁명적 종파분자들과 반당 수정주의자들의 책동」을 결코 허용치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함으로써 사회주의권의 개혁과 개방물결에 따른 외부사조의 유입을 철저히 방지하는 한편 대내적 위기의식의 고취를 통해 주민노력 동원의 극대화를 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최근 대외적으로 김정일 후계자 체제가 문제가 있는듯한 보도와 북한권력층 사이에 반체제 움직임이 싹트고 있다는 서방세계의 관측이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는데 북한은 『김정일동지의 현명한 영도에 의해서 혈통계승문제가 빛나게 해결되었다』는 말로써 서방세계의 이같은 추측을 불식하려 하고 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이밖에,가능성은 매우 낮으나 김정일이 주도하고 김일성이 후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대일수교 교섭과 관련,일본이 북한의 교섭상대자인 김정일의 북한내 위상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암시함에 따라 이에 대한 확실한 입장을 밝히기 위해 이같은 논평이 나왔다는 추측과 함께,북한의 대일수교 교섭이 북한의 기존 정책에 대한 대전환이라는 점에서 북한권력층 내부에서 제기될 수 있는 「회의」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도 고려해볼 수 있다.
  • 북한,“세습 반대세력 일소”/평양방송

    ◎“반당음모 분쇄… 「혈통계승」 해결” 【도쿄연합】 북한은 7일 평양방송을 통해 당내 반란분자를 일소하고 주체의 혈통승계가 해결됐다고 밝힘으로써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세습정치에 반대하는 체제저항 세력이 상당수 존재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일본 교도(공동)통신에 따르면 평양방송은 이날 「주체의 혈통을 계승,발전시켜 나가는 우리 당의 불멸의 업적」이라는 제하의 논평을 통해 『김정일 노동당정치국 상무위원겸 서기의 지도하에 주체의 혈통을 순수하게 계승하는 문제가 해결됐다』고 강조했다. 평양방송은 특히 『우리당은 당내에 숨어있는 반당·반혁명 섹트 분자나 반당 수정주의 분자들의 책동을 적시에 폭로,분쇄함으로써 혈통의 혼란을 초래하려 했던 일체의 이색적인 사상풍조를 극복,청산하고 주체 혈통의 순결성을 철저하게 보증했다』고 언급함으로써 당내에 체제반대 세력이 상당수 존재,숙청됐음을 암시했다.
  • 「팔」문제 연계시킨 “후세인의 심복”/이라크측 협상주역/아지즈

    올해 54살의 타라크 아지즈 외무장관은 서방국들로부터 「말이 통하는 인물」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탁월한 외교감각의 소지자이다. 페르시아만 사태 해결의 마지막 기회로 지적되는 이번 제네바 회담에서 이라크측 협상주역의 소임을 맡은 그는 이미 지난해 8월 페르시아만 사태 발발직후 케야르 유엔 사무총장과 회담한 것을 비롯해 지금까지 줄곧 이라크의 대서방 외교창구로서의 역할을 담당해 왔다.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의 열렬한 추종자로 「바트당의 골수분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는 아지즈장관은 그러나 지난해 8월2일이후 이라크 정부의 대외선전 정책을 주도하며 페르시아만 사태에 팔레스타인 문제를 연계시켜 미국을 곤혹스럽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후세인대통령 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25명의 각료 가운데 유일하게 기독교도인 그는 바그다드대서 영문학을 전공,영어가 유창하고 국제외교계에서는 꽤 많은 사람과 친분을 맺고 있다. 지난 50년 말 새로 출현한 바트당에 입당하면서 후세인과 인연을 맺었던 그는 68년 바트당이 쿠데타로 정권을장악하고 후세인이 부통령으로서 막후실력을 행사할 때 당기관지 「알타우라」의 편집인을 역임했으며 그후 74년 공보장관을 거쳐 83년 이란과의 전쟁 와중에서 현재의 외무장관직을 맡았다. 지난해 한때 경질설이 나돌기도 했으나 사실무근으로 판명될 정도로 정치적 수완도 좋은 그는 79년 후세인이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지금까지 수십차례 단행한 숙청을 용케 피하며 수니파 회교도들이 지배하는 이라크정부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히고 있는 인물이다.
  • 페레스트로이카의 과제/조지 캐넌 진단(해외논단)

    ◎“「오도된 평등주의」가 소개혁 막고 있다”/70년 독재로 자유경쟁원리 완전 망각/민족분규는 자율협조로 해결 바람직 소련은 지금 극도의 혼란에 빠져있다. 경제적 혼란도 문제지만 연방체제마저 와해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1947년 소련에 대한 봉쇄정책을 주창,세계적 명성을 얻었던 조지 캐넌교수는 이제 「슈퍼 스테이트」,소련의 붕괴를 우려하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외교문제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91∼91년 겨울호에 실린 그의 논문을 요약,소개한다. 러시아는 과거 수세기동안 지리·정치적으로 서구문명과 단절돼 있었으며 그만큼 현대화 과정도 뒤졌다. 그러나 18∼19세기에 들어 러시아사회는 이러한 단절을 극복하고 현대화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의욕적인 교육개혁과 농업개혁이 추진됐고 사회전반에 의욕이 엿보였다. 물론 이를 가로막는 체제내 갈등과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절대왕정,의회제도의 부재,민족문제 등 고질적인 문제들이 이 현대화 작업의 장애요소로 작용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유혈혁명까지 필요하지는 않았다. 1917년 초에는 의회제도의 토대가 마련됐고 왕정폐지는 무혈로도 가능했다. 1917년 혁명은 이 평화적 변화가능성을 하루 아침에 뒤엎어 버렸다. 19세기말과 20세기초 러시아의 반체제 세력중엔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변화를 반대하는 급진 과격세력이 들어 있었다. 이들은 차르왕정과 러시아 사회를 완전히 파괴시키기를 원했다. 파괴 후의 계획은 극히 모호하고 유토피아적이었다. 이들은 러시아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함으로써 예상외의 호기를 얻었다. 1917년 여름 임시정부는 왕정이 붕괴된 어수선함 속에서 이 전쟁을 계속키로 결정,큰 실수를 저질렀다. 레닌파의 권력장악을 가능케한 것은 2년반에 걸친 전쟁과 1917년초 국내정치의 혼란이었다. 그러면 공산정권 수립이 러시아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레닌은 일차적으로 부르주아 인텔리층을 몰아냈다. 그리고 그후 스탈린은 마르크스주의 인텔리층까지 모조리 제거했다. 이 결과 러시아는 문화적으로 과거와 단절됐고 이 단절은 지금까지 회복되지 않고 있다. 스탈린은 자신의 개인통치에 장애가 되는 지식층과 레닌의 잔재세력을 모두 몰아내기 위해 무자비한 숙청을 단행했다. 1937년과 38년에 이 숙청은 절정에 달했고 수백만명의 무고한 시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사회전체가 히스테리 속으로 빠져들었다. 1940년대에 들어 러시아 국민들은 설상가상으로 숙청보다 더 무서운 2차 대전의 공포를 맞게 된다. 소련은 1941년 6월 정식으로 참전했다. 하지만 이 전쟁은 소련국민들 사이에 외부의 적에 대항하는 원초적 민족주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스탈린은 자신을 이 감정과 교묘히 결합시켰다. 정부와 국민은 힘을 모아 나치에 저항했고 국민들은 정부에 대해 새로운 희망을 가졌다. 전쟁이 끝나면 정부의 통치방법에도 변화가 올 것이라는 기대였다. 하지만 스탈린은 이 변화를 단호히 거부하고 예전의 통치방식을 그대로 고수했다. 무서운 전쟁의 공포에서 살아남은 국민들의 간절한 희망을 스탈린은 철저히 무시했다. 국민들은 엄청난 좌절을 맛보았다. 1953년 스탈린의 사망으로 급격한 체제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지배이념으로서스탈린주의에 대한 조직적인 대안도 반대도 러시아사회엔 존재하지 않았다.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의 잔재세력을 지도부에서 모두 몰아내는데 4년이 걸렸다. 그러나 흐루시초프 자신도 곧이어 밀려나고 말았다. 그후 80년대 중반까지 오면서 소련에는 계속해서 그렇고 그런 지도자들만 번갈아 등장했다. 물론 유리 안드로포프는 예외였다. 고르바초프가 시작한 체제변혁은 이들의 상상 범위를 넘는 것이었다. 전자통신 시대를 맞아 소련내 젊은 지식층들의 체제불만은 점점 더 높아져갔다. 여행과 표현의 자유는 제한돼 있고 경제기술 수준은 19세기 수준에 머물러 국제경쟁력이 크게 떨어져 있었다. 레닌이 물려준 이데올로기로는 더이상 체제유지가 힘들게 됐다. 국민들 가슴속에선 이미 죽어 없어진 이데올로기에 소련 지도자들은 계속 매달려 있었다. 이 체제위기를 감지하고 최후의 일격을 가한 것이 고르바초프였다.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공산주의 이후 러시아의 앞날에는 힘든 3가지의 과제가 놓여있다. 첫째,공산당에 집중돼 있던 권력중심을 선거에의해 선출된 민주정부 체제로 이전하는 것. 둘째,중앙집중적인 경제체제를 자유기업 체제로 전환하는 것. 셋째,지난 3세기동안 지속돼온 다민족체제를 보다 자유로운 관계로 전환시키는 것. 이 3가지 변화들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러시아 국민들의 생활은 분명 크게 도약될 것이다. 그러나 어려움은 상상 밖으로 심각하다. 70여년의 공산독재로 러시아 국민들은 민주통치 원리에 대한 이해를 모두 잊어버렸다. 그 이해수준은 1910년대보다도 더 뒤떨어진다. 경제현실도 마찬가지이다. 개인의 창의적 영역이 철저히 억압당해왔기 때문에 국민들 스스로가 자신을 체제의 한 수동적인 일부분으로 간주한다. 과장된 평등주의가 만연돼 누구도 선두에 나서려 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생활수준을 남보다 앞세우려는 노력을 포기했다. 이러한 고질적인 병폐들로 인해 고르바초프가 추진하는 체제변화는 신속한 진전을 보이기가 상당히 어럽게 돼있다. 이런 태도들을 고치려면 오랫동안 꾸준한 교육적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이를 담당할 마땅한 교사들도 없다.한편 소련방을 구성하고 있는 제민족간 관계 재조정도 필수적이다. 현재 강력한 추세에 있는 민족주의로 인해 지난 세기의 다민족·다언어 제국 유지는 이제 용납이 안된다. 발트해 3국은 분명 독립할 자격이 있고 결국은 독립할 것이다. 그러나 공화국마다 차이가 있어 일괄적으로 단일모델이 제시되기는 힘들다. 현재 소련인구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러시아 공화국의 주권요구에도 상당한 근거가 있다. 러시아 민족은 전통적으로 여타 소수민족에 대한 배타적 감정을 갖고 있다. 그것은 전통·문화·종교에 뿌리박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인정이 돼야 한다. 하지만 러시아 공화국까지 주권을 내세우면 소련방의 존재 이유가 의문시된다. 그리고 중앙정부와 연방공화국과의 관계도 깊은 역사적 뿌리가 있어 이것이 갑자기 끊어지면 엄청난 혼란이 불가피하다. 경제적 혼란도 클 것이다. 보다 심각한 것은 연방공화국 몇몇은 서로 전쟁을 일으키거나 공화국내에서 끔찍한 내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현재 연방 수중에 있는 핵무기에 대한 관리책임이 분담됨으로 인해 생겨날 문제도 끔찍하다. 여기에 덧붙여 세계무대에서 강대국으로 막대한 발언권을 행사하던 소련이라는 단일 국가가 갑자기 무대에서 사라진다는 것도 아무래도 불길하다. 현재 소련의 민족문제는 연방과 공화국 모두 양극단만 고집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래선 안된다. 타협이 마련돼야 하고 절제와 인내가 양쪽 모두에게 지켜져야 한다. 완전한 독립도 아니고 과거의 연방체제도 아닌 새로운 관계가 모색돼야 한다. 그것이 소련 자신뿐 아니라 세계의 평화에도 유익하다.
  • 1백여 이민족 연방/오늘의 소련 국세

    ◎2천만㎢ 면적에 인구 2억9천만명/12국과 접경… 한인 50만명 거주 추정/개혁추진속 침체경제·민족분규 몸살 한때는 붉은 곰·철의 장막·동토의 나라를 먼저 연상케했던 소련이 노대통령의 방소를 계기로 우리에게 성큼 다가오고 있다. 15개 공화국과 1백개 이상의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연방국가 소련은 유라시아대륙의 북부에 위치,세계 육지면적의 6분의 1이나 되는 2천2백40만㎢의 광활한 땅덩어리를 차지하고 있는 대국이다. 동유럽에서 북아시아 및 중앙아시아에 걸쳐 동서로는 1만1천㎞,남북으로는 5천㎞에 달하는 광대한 이 나라는 세계 최장의 국경선을 가지고 있으며 유럽과 아시아지역에서 모두 12개국과 접경하고 있다. 인구는 90년 현재 2억8천9백만명으로 중국과 인도 다음의 세계 제3위이며 인구밀도는 1㎢당 13명을 약간 웃돈다. 정식명칭인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 연방이라는 국호가 공식채택된 것은 1917년 11월 혁명으로 제정이 무너진후 22년 12월30일에 개최된 제1차 전소련 소비에트대회에서 였다. 처음에는 러시아연방,자카프카즈연방,우크라이나공화국,백러시아공화국 등 4개 사회주의국가 연방으로서 성립했다. 그뒤 일부 연방의 해체에 따른 새 공화국의 탄생,그밖의 공화국의 가입과 통합 등을 거쳐 지금은 15개의 공화국(러시아 우크라이나 백러시아 우즈베크 카자흐 그루지야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몰다비아 키르기스 타지크 투르크멘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이 소비에트 연방을 구성하고 있다. 이들 15개 공화국의 통치구역내에는 각기 상이한 소수민족들이 자치권을 인정받아 20개의 자치국,8개의 자치주,10개의 민족관구를 형성하고 있기도 하다. 민족구성은 러시아인(51%)·우크라이나인(15%)·우즈베크인(6%) 등 12대민족이 전체 인구의 89%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개는 유럽계이지만 아시아계도 상당수 혼재해 있다. 현재 소련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의 수는 50여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는 1백여개 이상의 소수민족 가운데 수적으로 29위를 차지한다. 소련의 공용어는 러시아어이지만 민족수와 거의 같은 숫자의 언어가 민족어로 사용되고 있다. 소련은 1917년 11월7일의 혁명으로 로마노프왕조를 무너뜨리고 탄생한 최초의 사회주의국가이다. 24년 레닌이 죽자 대권을 잡은 스탈린은 28년부터 2차대전까지 3차례의 5개년 계획을 실시,국민경제의 사회주의화와 공업화를 이룩했으며 농업을 집단화 했다. 오늘날 소련이 가진 강대한 군사력과 경제력은 이때 형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4년말부터 38년까지 대숙청을 단행한 스탈린은 2차대전 이후 동유럽과 아시아에서 태동한 사회주의국가들의 대부가 됐다. 그후 흐루시초프(53∼64년),브레즈네프(64∼82년),안드로포프(82∼84년),체르넨코(84∼85년) 등을 거치며 가쁜 숨을 몰아쉬던 세계 공산권의 종주국 소련은 85년 3월 현 대통령 고르바초프의 시대를 맞으면서 개혁과 개방의 탈바꿈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헌법개정을 통해 공산당 일당독재를 포기하고 사유재산권을 인정하는 등 일련의 대개혁조치를 추진한 것이다. 그러나 소련은 지금 이같은 개혁조치에도 불구하고 침체된 경제문제와 각 공화국의 분리 독립요구,민족문제등 소 연방체제의 운명을 좌우할 양대난제에 직면해 있는 실정이다. 동구 대변혁의 기적을 만들었던 고르바초프는 민족분규의 확산과 군부의 동요로 정치적 입지가 크게 흔들리고 있으며 고르비의 개혁을 지원하려는 EC 등 서방측은 소련의 취약한 경제구조와 예측할 수 없는 정치적 불확실성 때문에 구체적 지원을 망설이고 있다. 특히 심각한 생필품 부족현상은 국민들의 불만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는 실정이며 70년대 이후 계속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는 경제성장률,노동생산성의 저하,낮은 투자효율 등은 86년부터 시작된 제12차 5개년경제계획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기도 하다.
  • 「혁명적 사회주의」 건설 기도/안기부 발표문에 나타난 「사노맹」

    ◎노학 연대투쟁 주력… 재야단체에 침투/암호ㆍ가명 사용… 폭발물ㆍ무기탈취 계획/「노동문학사」ㆍ「사회주의 과학원」 두고 점조직망 구축 국가안전기획부가 30일 전모를 발표한 「남한 사회주의 노동자동맹」(사노맹)은 레닌의 혁명전략에 따라 1천만 노동자를 주축으로 한 사회주의(공산주의) 국가의 건설을 목표로 국가전복을 기도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안전기획부에 따르면 「사노맹」은 지금까지 구속된 40명을 비롯,공개수배된 핵심조직원 1백50명에 1천6백여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전국 규모의 거대한 지하조직망을 구축해 활동을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김영수 안기부 제1차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면서 수사진전에 따라서는 이 조직이 건국 이후의 최대의 지하조직이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내다봤다. 「사노맹」은 중앙조직과 지방조직을 통해 전국적인 지하망을 구축하고 학원ㆍ노동ㆍ문화ㆍ출판ㆍ재야 등 각 분야 및 주요단체의 핵심부서에 조직원을 침투시켜 조직의 실세를 장악한뒤자유민주체제를 타도하는데 궁극적인 목표를 두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다시 말해 정통 마르크스ㆍ레닌주의의 혁명론에 따라 조직원들이 노동현장에 직접 침투,근로자들에게 계급투쟁 의식을 고취시켜 과격ㆍ폭력시위를 자행하는 등의 방법으로 「노동자 계급중심의 사회주의 사회건설」을 꾀하는게 이들의 최종 목표라는 얘기다. 이를 위해 「사노맹」은 레닌의 연속 2단계 혁명전략을 본받아 1단계로 반정부 세력규합,민중통일전선 형성→노동자계급의 전위당결성→무장봉기로 민족민주 혁명달성 임시민주정부 구성→민주공화국을 수립하고 2단계로는 반동관료 숙청,자본주의 제도철폐,사회주의 혁명완수→완전한 사회주의 국가건설을 기도하고 있다. ▷결성경위◁ 사노맹은 지난해 11월12일 서울대에서 열린 「지역ㆍ업종별 노조전국회의」때 『노동자계급의 혁명전위당 건설로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하겠다』는 내용의 「남한 사회주의 노동자동맹 출범선언문」을 통해 처음으로 그 정체를 드러냈다. 이 조직은 86년 5월 최민(당시 29ㆍ서울대졸),윤성구(당시 26ㆍ서울대 제적),민병두(당시 29ㆍ성균관대 제적) 등이 조직한 반국가단체인 「제헌의회 그룹」(CA)으로부터 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제헌의회 그룹이 86년 11월 핵심조직원의 검거로 와해되자 87년 4월 이 그룹의 나머지 일부세력이 「노동자계급 해방투쟁동맹」을 결성했고 이 조직마저 88년 4월 해체되면서 박기평(32ㆍ수배중) 백태웅(27ㆍ〃) 남진현(27ㆍ구속) 등이 「사노맹 출범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지난해 11월12일 「사노맹」을 결성하게 된 것이다. 결성에 즈음하여 발표된 「남한 사회주의 노동자동맹 출범선언문」은 『40여년동안 허공을 떠돌던 「붉은 악령」이 마침내 남한땅에 출현하였다! 파업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에게 퍼부어지던 「계급혁명세력」,생존권을 요구하는 농민과 도시빈민에게 붙여지던 「좌경세력」,민족ㆍ민주운동과 모든 진보적운동에 낙인 찍혀온 「공산폭력분자」,적의 입을 통해서만 쉴새없이 전민중에게 선전되어온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마침내 이땅위에 실체로 등장하였다』고 밝혀 그 성격을 드러냈다. 이 선언은 노동자ㆍ농민ㆍ도시빈민 등 무산계급이 중심이 된 사회주의 국가의 건설이 눈앞에 다가왔음을 강조한 것이다. 「사노맹」은 그뒤 전국 각 기업체의 노동현장과 대학가 등지에서 사회주의 혁명투쟁을 선전선동하는 책자와 유인물 등을 만들어 살포하고 노동투쟁ㆍ폭력시위를 배후조종하는 등 불순활동을 자행해 왔으나 그 조직의 실체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 안기부 수사관계자들의 말이다. ▷조직◁ 「사노맹」의 조직을 살펴보면 레닌의 「당조직 전술원칙」을 그대로 모방,백을 위원장으로 한 중앙위원회에 박기평 남진현 김진주(35ㆍ여ㆍ수배중) 김형기 등 4명의 중앙위원이 있고 조직위,편집위,각 시도 지방위원회와 함께 「노동문학사」「남한 사회주의 과학원」「사회주의 학생운동연구소」「민주주의 학생연맹」 등 산하조직을 두고 있다. 이들 단위조직은 또 지방위원회와 소조지도책으로 구분,철저한 비밀원칙아래 점조직으로 체계화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연락국」은 무장봉기를 위한 폭발물개발 및 무기탈취계획과 독극물개발,조직을 보호하기 위한 수사동향 등 정보수집을 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안기부는 이같은 조직체계를 토대로 조직원 1천6백여명에 대한 신상을 파악한 결과,노동계 2백30여명,학원 1천30여명,종교계ㆍ청년운동단체 90여명,민중당 30명,기타 농민ㆍ청년운동그룹 2백30여명 등인 것으로 추정했다. ▷활동상◁ 사노맹의 활동은 매우 치밀하고 조직적이어서 대공수사에만 20∼30여년동안 매달려온 안기부 수사관들조차 혀를 차게 했다는 후문이다. 간첩조직과 같이 치밀한 조직관리와 비밀활동을 벌이는가 하면 난수ㆍ모르스부호 등 암호를 사용하고 비밀안전가옥을 운영했으며 검거에 대비해 자살용 독극물의 개발을 추진하고 피검투쟁ㆍ신문투쟁ㆍ법정투쟁 실천방안 등을 마련하는가 하면 활동자금의 조성을 위해 완벽한 실행계획을 세워놓은 것 등이 그것이다. 이들의 행동강령에는 수사요원에게 체포될 것에 대비,항상 가스총과 대검ㆍ쇠파이프 등을 소지하게 하고 여자조직원이 체포될 경우에는 『인신매매범이다』 또는 『민주시민 ×××가 연행된다』는등의 소리를 질러 수사관들을 따돌리게 하고 있다. 강령은 이와 함께 혁명운동의 순결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전향서와 반성문 작성을 거부함은 물론 심지어 수사관의 집요한 추궁을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자해ㆍ자살을 해서라도 조직을 굳건히 지킬 것을 강요하고 있다. 실제로 연락국장 현정덕(27ㆍ구속)은 조사도중 숟가락으로 목을 찌르고 안경을 쓴채 머리를 책상에 받고 혀를 깨무는 등 6차례에 걸쳐 자해를 기도하고 4일동안 단식과 함께 묵비권을 행사하는 등 이 강령에 따른 극력한 신문투쟁을 벌였다는 것이다. 이들은 인쇄소시설과 아지트를 확보하기 위해 1차적으로 2억7천만원의 조직결성자금을 책정,조직원 한사람앞에 3백만∼1천만원씩을 할당,모금하는 방법으로 지난 8월말까지 1억여원을 모금한 것으로 밝혀졌다. 발표된 내용 가운데 가장 섬뜩한 것은 무장봉기 및 무기탈취,폭발물 개발계획의 수립 등이다. 지난해 12월 중앙위원 남진현은 연락국장 현에게 『광주사태가 전국적인 무장봉기로 발전하지 못한 것은 민중이 무장력을 갖추지 못한데 있었으므로 자체적으로 폭발물을 개발,무장력을 확보하고 무장봉기시의 무기고 탈취계획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이 지시에 따라 광운공대 출신의 신하송(22ㆍ가명 양태규ㆍ수배중)이 질산칼륨(KNO3),유황(S),탄소(C) 등을 이용한 폭발물을 6개월∼1년안에 제조하겠다는 연구보고서를 중앙위원회에 제출하기도 했었다. 이번 수사결과 「사노맹」은 「11월 총궐기」 투쟁계획도 세워 지난 22일에는 총책 백태웅의 지시로 산하조직인 「민주주의 학생연맹」 중앙위원장 이수한(23ㆍ구속)등 8명이 안기부를 공격하기로 모의하고 안기부 앞에서 시너를 뿌리고 화염병을 던지며 기습투쟁을 벌이다 전원검거돼 구속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수사과정에서 일부강제ㆍ불법연행 등의 논란이 있었으며 재야에서는 이에 대해 강력히 이의를 제기하고 있어 앞으로의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 이같은 문제들이 재론될 소지도 없지 않다. ◎노동해방문학/반자본주의 혁명이념 고취/학생등 고정독자 10만 확보 「사노맹」사건의 핵심총책인 백태웅과 박기평이 「이정로」와 「박노해」라는 가명으로 필명을 떨쳐온 「노동해방문학」이란 어떤 잡지인가. 안기부조사에 따르면 이 잡지는 지난해 1월 제호를 「노동해방문학」으로 「노동문학사」가 문공부에 정식등록을 마친 월간지다. 「노동해방문학」의 편집인은 집필력과 사회주의 혁명이론에 탁월하고 대부분 국가보안법위반 전과가 있는 김사인씨(34ㆍ서울대 국문학과졸)등 6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15만부씩 발행해 오다가 그 내용이 문제가 돼 정간을 당했으며 지난 6월 다시 복간호를 냈으나 현재는 발행이 중단된 상태다. 「노동해방문학」은 그동안 노동자ㆍ학생 등 10만명 이상의 고정독자층을 확보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총책 백과 박은 이 잡지에 기고문 형식으로 「노동해방과 민족민주변혁단계」「식민지 반자본주의론에 대한 파산선고」 등을 게재,그들의 혁명이념인 「NDR론」(민족민주혁명론)을 확산시켜 온 것으로 이번 수사결과 밝혀졌다.
  • 불가리아 사회당수/사임 하룻만에 재선

    【소피아 UPI 연합】 불가리아의 알렉산데르 릴로프 사회당 당수는 과거 공산당 지도부의 숙청을 요구하는 당내 자유주의적인 인사들의 요구에 따라 사임한지 하룻만인 25일 당수에 재선됐다. 불가리아 집권 사회당은 소피아에서 개최된 제39차 심야 당대회를 종결하면서 표결을 통해 릴로프를 당수에 재선했다.
  • 사담 후세인 압정내막 낱낱이 폭로(세계의 사회면)

    ◎「공포의 공화국」 유럽서 불티/“사담,범아랍권 지배를 갈망… 전쟁이 필요한 인물”/사찰ㆍ처형 밥먹듯… 정적은 아예 씨말려/자치요구 소수족 6천명 독가스 살해 「겁없는 사내」로 통하는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겁나게 하는 책이 있다. 「공포의 공화국」이 바로 그책. 런던에 체류하고 있는 이라크의 망명학자 사미르 알 할리가 지어 미국에서 출판된 이 책은 후세인의 집권과정과 폭정의 내막을 낱낱이 폭로,바그다드로부터 저자에 대한 암살지령이 내려져 있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저자는 보복이 두려워 공개석상에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책의 출판도 전화와 우편연락만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름도 물론 가명을 사용했다. 페르시아만 사태 이후 유럽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이 책속에 나타난 후세인과 그의 압정의 실상을 간추려 소개한다. 바그다드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포와 유혈속에서 생을 마친다. 소위 「인민의 적」을 처단하기 위해서는 모든 수단이 동원되고 합리화 된다. 주요건물의 옥내외 기념물,큰 거리 교차로 등지에는요소요소 비밀감시 카메라가 장치되어 있다. 탄압의 집행자는 비밀경찰이다. 후세인은 집권후인 73년 비밀경찰 조직을 재정비,확대 개편했다. 이라크의 정보조직은 암,에스티크 바라트,무카바라트 등 3개 기구로 나뉘어진다. 그중 암은 종전의 비밀경찰을 현대화한 기구로 국내 사찰을 전담하고 있다. 소련 KGB와 협력협정을 맺고 있는 암은 KGB의 조언에 따라 비밀 탐지기 도청장치 등을 설치 관장하며 KGB등 소련 정보기관 파견요원 교육,소련과 국교가 없는 나라에 대한 첩보활동을 맡고 있다. 에스티크 바라트는 망명 이라크인의 추적 감시,외국군사 정보탐지,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지중해 연안국가들에 대한 정보수집 등 대외적인 첩보활동을 담당하고 있다. 무카 바라트는 정치사찰 담당기구이다. 이라크에서는 이들 정보사찰기구들에 의한 고문이 긴급사태에 대한 대책으로 설명되고 있다. 직장에서 혹은 밤중에 자택에서 연행되어 간 사람이 몇주 또는 몇달뒤에서야 가족에게 사망사실이 전달되기도 한다. 그런 경우 시신은 육안으로 분간하기조차힘들다. 「소사」또는 「익사」라는 간단한 공의의 사망진단서가 첨부되어 있을 뿐이다. 밀고는 나라 어느 구석에서나 의무처럼 행하여지고 있으며 정보원은 자기 친구나 동료들에 대한 보고서를 내기도 한다. 정부를 비판하거나 집권층을 욕하는 말은 반드시 수집,보고되게 마련이다. 국제사면위원회는 이라크에서 3백50명의 사상범이 사형당했다고 보고하고 있으며 또다른 기구에서는 7백89명이라고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숫자를 확인할 길은 없다. 얼마전에는 40명의 쿠르드족 지도자들이 「식중독」으로 떼죽음을 당했다. 이는 식중독이 아니고 생선속에 투입된 극약에 의해 독살된 것이다. 이것이 비밀경찰의 수법이다. 사담 후세인. 대통령,총리,군사령관,혁명위원회 위원장,집권 바트당 제1서기,문맹퇴치위원회 의장 등 그에게 붙여진 직함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라디오에서는 한시간에 30분 이상,그러니까 2분에 한차례 꼴로 그의 이름이 직함과 함께 흘러나오곤 한다. 그는 「암흑속에 빛나는 큰 별」이며 「위대한 인민의 영도자」로 추앙된다. 그의 생일은 국경일로 정해져 온 국민이 경축토록 강요당한다. 젊은 나이에 정치적 암살극의 주동인물로 등장한 후세인은 68년 바트당의 쿠데타에 참여,혁명위 부위원장이 됐으며 79년 아메드 하산 알 바크르 대통령을 사임시키고 최고의 실권자가 됐다. 그의 잔혹성은 이란과의 전쟁때 코람샤 전투에서의 패배를 이유로 군장교 3백여명을 처형한데서 잘 나타나고 있으며 스스로 사형집행의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집권과정에서도 숱한 고문과 숙청을 자행했으며 정적으로 떠오르는 인물은 어떤 이유를 붙여서건 제거하고야 만다. 특히 쿠르드족에 대한 그의 학대는 도가 지나칠 정도이다. 이란과의 전쟁이 끝난 다음날 이라크는 쿠르드족 거주지역인 쿠르디스탄지방에 독가스 폭격을 가해 사흘만에 6천명을 살해했다. 이같은 공격은 석달동안이나 지속됐고 그로인한 사상자는 숫자조차 밝혀지지 않고 있다. 쿠르드족에 대한 이라크의 탄압은 후세인의 영원한 명령이다. 74년에는 인구 2만5천명의 자코마을과 2만명의 칼라 알 디자마을을 없애버렸다. 살아남은 주민들은 산으로 도망했고 그들의 도피생활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그의 지도이념 즉 바트당의 노선은 스탈린주의와 국가사회주의를 혼합한 것이며 절대지배를 지향하고 있다. 그는 역사마저도 사실대로가 아니라 「우리의 시각」에서 기술되어져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는 바트당의 범아랍권 지배를 갈망하고 있으며 이같은 그의 오랜 꿈은 실현되어 가고 있는 듯하다. 이를 위해 그에게는 전쟁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전쟁이든 간에.
  • 동북아 새 질서 태동 진단(서울신문 광복45주년 특집)

    ◎한반도에도 데탕트 기류 가속화/하야시 다케히코 일본 동해대교수/「4강 역학」 어떻게 변화될까/평화공존 10여년 거쳐 통일정부 수립 가능성/GNP 1만불 육박땐 「5극체제」 출현 예상 지금 세계는 동·서 이데올로기 대립의 시대를 지양,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시대로 이행하려 하고 있다. 런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담에서의 선언과 미 휴스턴의 선진 7개국(G7)정상회담의 선언은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및 그것과 표리일체를 이루는 공산주의의 좌절선언에 지나지 않았다(프랜시스후쿠야마 「세계를 말한다」 산경신문 7월31일). 38도선의 북쪽에 「아웃 사이더 국가」 즉 북한이 존재하고 있는 한반도도 그같은 세계변화의 큰 격랑속에 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아웃 사이더 국가를 포기한다는 것은,대외적으로는 국제사회의 룰을 받아들이는 국가로 되는 것이며,대내적으로는 「남반부 해방에 의한 통일」이라는 혁명노선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다. 이상 세계정치의 본류를 우선 확인한 연후에 10년후 21세기초의 동북아시아 정세를 전망할 경우,가장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시점에서의 남북 분단의 극복 상황이다. 거기에는 3가지 케이스를 상정해 볼 수 있다. 제1은 북한이 언젠가는 닥쳐올 김일성주석의 죽음을 계기로 분단의 현상을 받아들여 평양정권의 존속을 꾀하기 위해 남북한 교차승인과 공존체제를 인정하고 그 결과로써 「1민족 2정부」의 상태가 도입되어 꽤 장기에 걸쳐 지속하는 케이스이다. 제2는 노태우대통령의 「한민족공동체통일안」에 따라 과도적으로는 남북 국가연합의 단계를 거쳐 통일국가의 형성을 지향하는 경우이다. 제3은 과도적 단계를 생략,동·서독일처럼 통일총선거를 선행시켜 일거에 통일정부를 발족시키려 하는 경우이다. 제1의 케이스는 72년 12월 국가간의 기본조약을 맺고 「1민족 2국가」의 체제를 작년 11월의 베를린장벽 붕괴로 연결시킨 동·서독일형의 전철을 밟게 되는 것이다. 동서독일형은 3월 실시된 동독의 총선거에서 대부분의 예상을 깨고 동독시민이 과도적인 국가연합단계를 생략,「독일의 재통일」을 희구하는 중도우파연합을 압도적으로 지지한결과였다. 다시 한번 3가지 경우를 앞으로 예상되는 10년간의 한반도의 내외 정세추이에 맞춰볼 때 남북한도 다시 동서독 같이 남북공존체제의 제1의 케이스를 거친 뒤 점차 실현성을 갖게 되는 통일에 대한 남북시민의 실현의지의 강도가 동서독같이 「국가연합」의 단계를 생략시켜 제3의 케이스를 지향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보여진다. 남북 공존체제를 통해 북한의 주민·민중들이 곧 알게되는 것은 남북 양체제의 우열이다. 그 우열은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시대를 가속화하는 세계의 흐름에 합치하는 것으로써 북한민중들도 동독시민들이 베를린의 벽을 「시대의 흐름」으로 붕괴시켰던 것처럼 군사분계선을 무너뜨리기 위해 움직이는 것은 자연의 추세일 것이다. 여기서 좀더 대담한 예측을 해 본다면 앞으로 10년을 거쳐 21세기의 초장을 맞는 한반도에는 수도를 서울로 하는 통일국가,통일정부를 수립해 문자 그대로 선진국에 들어서려는 국가가 출현할 것이라고 보지 않으면 안된다. 즉 인구 7천만,국민 1인당 GNP 1만달러에 육박하는 국가의 출현이다. 인구 7천만이라고 한다면 정말로 재통일을 이루려는 90년대 초의 동서독인구 7천7백만명에 필적하는 것이며 인구 규모로서는 선진 7개국중의 프랑스 이탈리아(양쪽 5천만명대)를 능가한다. 90년 현재 한국의 국민 1인당 GNP는 5천달러,북한은 1천달러(추정) 수준이다. 한국의 경우 연간 7.2%의 성장률을 10년간 계속 확보한다면 1만달러 수준의 달성은 가능하다. 남북 공존체제는 북한경제의 개방체제를 더욱 촉진시켜 한국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남북 경제교류기금 2천∼3천억원의 운용과 북한합영법에 의한 남북 경제교류의 신장과 확대로 결국 남북통일에 앞서 북한경제의 한국형 경제에로의 수렴을 불가피하게 한다. 남북통일의 상징은 한국의 현대그룹이 계획하고 있는 시베리아의 천연가스 수송을 위한 파이프 라인이다. 야크츠크로부터 하바로프스크 블라디보스토크,나아가 평양을 거쳐 서울·부산까지 이어지는 4천㎞의 에너지 동맥이야말로 남북을 직결시키는 원동력이다. 파이프 라인 부설이 가져오는 주변의 경제개발이라는 파급효과도 시베리아·남북한을 통해 막대하다. 세계적 명산 금강산의 본격적인 관광개발사업도 남북 공동으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며,그 공동사업이 초래하는 남북일체감 조성의 효과도 간과할 수 없다. 나아가 한국·일본·소련 사이에 최근들어 각광을 받기 시작한 「일본해=동해신시대」(조일신문 7월6∼14일 연재)는 남북공존시대의 시작과 더불어 북한이 참가하고 북한경유 「일본해=동해」를 연결하는 중국 동북부가 참여하게 됨으로써 21세기와 함께 동북아시아에 성립하게 되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경제적 측면을 대표하는 신경제권으로 될 것은 확실하다. 인구 7천만,국민 1인당소득 1만달러국가의 출현은 경제적으로는 중·소를 압도하는 경제국가의 출현을 의미한다. 그것은 단적으로 말해 기존의 미·소·중·일의 주변 4대국에 남북통일 한국을 첨가시켜 동북아시아에 5대국에 의한 오극구조시대가 대두한다는 것과 직결된다. 오극구조를 갖는 국제관계에 있어서 세력균형의 이상적 체제와 위치를 부여한 것은 키신저박사(전미국무장관)의 연구성과였다. 물론 21세기 초엽 동북아시아지역에 통일한국을 축으로 오극구조가 성립된다는 것은 현단계에서 거대한 가설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무조건 오극체제의 성립을 보증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극의 한귀퉁이를 중·소가 각각 맡기 위해서는 중·소 자신이 더욱 개방체제를 추진하는 가운데 국가적 안정과 발전을 꾀해야 한다. 이 지역에 역사적으로도 가장 활발한 이해관계를 갖는 중·소 양국의 안정적 발전없이는 동북아시아의 오극체제는 그림의 떡이다. 이것은 남북 통일국가의 출현없이는 있을 수 없는 신국제질서이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평가되어야 하는 것은 남북을 통한 한민족의 역량이며 영지이다. 제2차 세계대전후 45년,세계 격변의 시점에서 정말로 타의에 의하지 않는 민족자신의 의지와 능력으로 통일국가 실현의 지평을 여는 것이야말로 주변 4대국의 전면적인 협조와 협력체제를 가능케 하는 것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동북아시아의 오극체제에 의한 안정적 신질서의 도래는 모든 것이 그 한가지 사실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윤병익 통일연수원 교수/「통일시나리오」를 엮어보면…/체제공존→동질성 회복→총선이 합리적 수순/「4강 지렛대」로 북녘 개방 적극 유도 바람직 해방 45돌을 맞았다. 우리의 민족해방은 국제정치적 희생물로서 강요된 45년의 민족분단사로 이어져 우리 민족은 남북한체제의 갈등 속에서 끝없는 고통과 국가발전의 제약을 강요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광복절은 국제적으로는 동·서 체제간의 긴장완화 추세,공산권전반의 개혁·개방정책,목전에 이른 독일통일,그리고 민족 내부적으로는 변화된 국제정세의 파장을 한반도에로 끌어들이려는 양국및 국민의 노력이 상승작용을 하여 통일을 앞당기려는 민족의 열망으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의 통일」은 어떻게 이루어 질 것인가,또 「국제정세와 남북한 체제발전추세의 맥락에서 한반도 평화통일의 예상모형을 어떻게 상정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은 민족통일운동의 방향모색을 위해서도,민족의 발전과 번영을 보장할 수 있는 올바른 통일실현을 위해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분단국문제의 해결방안을 생각해 본다면 분단쌍방체제간의 평화공존,교류·협력관계의 정착화를 통한 민족동질성의 회복 그리고 총선거를 통하여 국민이 선택하는 통일국가의 수립만이 합리적이며 현실적인 통일방안임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이 합리적이며 현실적인 통일방안을 북한당국이 체제적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한사코 거부함으로써 한반도 통일문제 해결의 어려움이 있다. 북한당국은 통일로 가는 불가피한 과정인 남북한체제의 상호개방을 「사회주의 지상낙원」이란 북한통치명분을 위협하는 것으로 판단하여 이른바 「조선노동당시대의 기념비적 건조물」로 꾸며진 평양은 개방할 수는 있으나 「미제의 식민지」아니면 「거지소굴」로 선전되어 온 「남조선」을 북한주민에게 개방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당국은 서독체제로 흡수·통합되는 독일통일 과정에서 남북한 체제개방의 결과를 예견하고 전율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은 이른바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을 내세우면서 『남북의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그대로 두고연방제로 최종의 통일정부를 수립하자』고 내세우고 있지만 이것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간의 연방구성안이 아니며,「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이란 「선남조선혁명,후통일」전략의 일환이다. 따라서 진정한 통일방안이라기보다 전 한반도의 공산화 방안임이 분명하다. 남북한 체제공존을 북한체제 전복의 한 과정으로 생각하고 있는 북한당국으로서는 「연방제 통일」의 주장과 함께 대남통일전선전술을 구사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체제수렴론」이 한반도의 통일방안으로 수용되지 않고 있는 현상황하에서는 결국 국민에 의한 「체제선택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북한은 공산권 전반의 개혁·개방정책을 「사회주의 초급단계론」 「인간적인 민주적 사회주의」 등으로 위장을 하고 있으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체제적 한계성을 자인한 것임에 틀림없으며,따라서 우리는 아집이 아닌 인류문명사적 시각에서 민족통일을 위한 북한체제의 변화를 당당히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자유와 안정과 행복을 보장하는 통일국가의 수립을 표방하고 있으며 우리는 비록 마지막이 될지언정 공산권의 개혁·개방의 물결이 북한에도 와 닿을 것을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숙청으로 점철된 북한정치사 속에서 반김일성·김정일 세력이 완전히 제거되었을 뿐만 아니라,이른바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투쟁사」와 「주체사상」으로 세뇌된 신정체제하에서 조직적인 저항세력도 거의 전무하기 때문에 루마니아에서와 같은 인민봉기에 의한 체제변화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북한의 변화는 「위로부터의 변화」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북한당국은 남북한 경제발전의 격차를 의식한 나머지 1984년 합영법을 제정하여 대외개방경제정책을 제한적으로 시도하고,「경공업혁명」을 추진할 뿐만 아니라 비록 대남전략적 의도가 강할망정 종교활동을 선전하는등 제한적인 변화의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공산권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내경제체제와 정치체제의 개혁을 완강히 거부하면서 오히려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표방,체제수호를 위하여 역사의 흐름을 거역하고 있다. 따라서 민족통일을 위한 당면과업은 공산권 전반의 개혁개방의 물결을 어떻게 북한체제에 불어넣느냐의 문제로 압축된다. 우선 국제정치적 영향력을 활용하는 방법이 시도되고 있다. 미소등 한반도 주변강대국은 동·서 냉전체제의 마지막 유산인 한반도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남북대화를 강력히 종용하고 있으며 특히 미국은 북경 등지에서의 접촉과정을 통해 미국과 북한만의 평화협정 체결을 고집하는 북한에 분명히 거부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한국과의 경제교류·협력을 강력히 바라고 있는 소련은 남북한 평화공존관계를 위한 「두개의 한국정책」 추진을 위해 「김일성의 항일빨치산투쟁」의 허구성과 김일성·스탈린의 「한국전쟁」 유발책임을 폭로하고,한소수교를 가시화시킴으로써 대남혁명전략에 따라 「하나의 조선정책」을 고집하는 김일성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소수교는 궁색한 「정경분리원칙」을 고수하지 않을 수 없는 중국의 대한반도정책에도 정책선택의진폭을 넓혀주고 있다. 이런 배경때문에라도 북한은 「남북 고위급회담」등 남북대화의 마당에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체제공존을 지향하는 남북대화를 수용할 수 없기 때문에 대화의 자리에 나온다 하더라도 대남전략적 발상의 주한미군 철수,군축,한반도의 비핵·중립화 등 상투적인 군사문제 선결입장을 계속 제기하면서 당국,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를 통한 「고려연방제통일방안」의 관철을 주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한반도 상황은 남북한의 체제공존을 지향하면서 민족통일로 접근하려는 우리의 통일정책과 「남조선」의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을 지향하는 북한통일정책의 막판 승부의 장으로 급히 줄달음치고 있는 형국이다. 긴장완화와 공산권 전반의 개혁·개방정책으로 기울어진 인류문명사의 대세와 신정체제로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북한체제간의 간격이 벌어지면 벌어질수록,또 북한체제가 고립화되면 될수록 북한당국은 더욱더 「남조선」 민중과의 「통일전선」 형성에서 탈출구를 찾으려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민족의 통일은 「남조선 혁명」 전략에 따른 북한의 대남 제의를 우리가 능동적으로 수용하여 오히려 북한사회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시점이 언제냐에 따라 가까워질 수도 있고 늦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 48년 단신 월북뒤 소망명 청년/전자계측권위자돼 금의환향(조약돌)

    ○…16살의 어린나이에 사회주의이념을 동경,지난48년 혼자 월북했다가 소련으로 망명해 수리학 전자측정분야에서 세계적 권위자가 된 장학수박사(58ㆍ레닌그라드거주)가 27일 하오1시40분 소련 아에로플로트항공편으로 42년만에 그리던 고국땅을 밟았다. 장박사의 이번 방문은 자신의 젊은 시절 한 이념에 대한 맹목적 추종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보여줄 자서전출간을 위해 문학사상사가 초청해 이뤄졌다. 현재 소련에서 「환경보전연구 및 생산합동체」의 화학담당부총장으로 있는 장씨는 공항에서 『환영속에만 간직해오던 조국땅을 다시 찾아 여한이 없다』고 말하고 『나의 인생역정을 남한의 젊은이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만인의 평등사회」를 좇아 북한을 택했던 장씨는 그곳에서 중학교를 다니다 전국교원대회에 손수만든 무선조정선을 출품하면서 그의 과학적 두뇌가 북한사회에 널리 알려지자 당시 교육부 부부장이던 남일의 추천으로 소련 유학길에 올랐다. 56년 모스크바대학 무선공학부를 졸업하고 북한으로 되돌아 간 장씨는체신성중앙연구소에서 일하다 당시 북한에서 대숙청과정을 지켜보면서 이 체제에 환멸을 느껴 61년 두만강을 헤엄쳐 건너 소련으로 망명했었다. 이날 공항에는 장씨의 큰형이며 독립유공자인 낙수씨(77)부부가 조카 등 10여명이 나와 장씨를 맞았다. 5남4녀의 형제가운데 생존해 있는 세째형 득수씨(67ㆍ의사ㆍ미국거주)와 누나 정자씨(70ㆍ일본거주) 등 4남매와는 지난86년 한 언론사의 도움으로 일본에서 극적으로 상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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