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숙청
    2026-02-12
    검색기록 지우기
  • 주방
    2026-02-12
    검색기록 지우기
  • 부업
    2026-02-12
    검색기록 지우기
  • 대입
    2026-02-12
    검색기록 지우기
  • 지도
    2026-02-1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603
  • “TV상납 거부 부친 숙청에 환멸”/망명 이창수씨

    ◎한국선수 만나 북 거짓선전 실감/“귀국→은퇴→탄광노역 뻔해/체육인 형제도 팀서 축출… 온갖 고초” 4일 상오 김포공항에 도착,대한민국의 따뜻한 품에 안긴 북한의 유도 대표선수 이창수씨(24)는 『아버지가 상부의 뇌물요구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온가족들이 엄청난 불이익을 받은데다 그동안 국제대회에 참가하면서 대한민국의 자유로운 실상을 알고 북한이야말로 허위에 가득찬 사회라는 것을 깨닫고 망명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4일 공항에서 80여명의 내외신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회견을 갖고 『이번 바르셀로나대회를 끝으로 귀국하면 은퇴를 강요 당하고 탄광에 보내져 사상교육을 받을것이 뻔해 앞으로의 생활에 대한 불안감으로 고민해 왔다』고 말했다. 이씨는 교포총국의 지도원으로 근무하던 아버지가 최근 상부로부터 텔레비전 수상기를 선물하라는 요구를 받고 거절했다가 직장을 빼앗기고 「혁명화사업」이라는 이름아래 화물자동차 사업소에서 무임으로 강제노역을 해왔으며 유도 및 축구선수로 활약하던 형과 동생도 팀에서 축출됐다고가족들이 북한에서 겪고 있는 고초를 설명했다. 이씨는 87년 서독에서 열린 세계유도선수권대회이후 여러차례 국제대회에 참가하면서 북한이 궁핍하고 허위에 가득찬 사회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며 해외파견선수들 뿐만 아니라 주민들을 철저히 탄압하는 통치제제에 염증을 느껴왔다고 털어 놓았다. 그는 특히 「북조선이 제일 살기 좋은 곳」이라는 교육을 받아왔으나 남한의 유도선수들이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속에서 풍족한 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남북한을 비교해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의 체육인들은 비교적 해외에 자주 나가 많은 것을 보기 때문에 북한의 현 체제에 대해 서로 은연중에 불만을 내비치기도 한다』고 전하고 『이번 망명으로 지금쯤 부모형제가 평양에서 행방도 모른채 없어졌을 것』이라고 가슴아파 하기도 했다. 그는 유럽에서 타고온 대한항공기내에선 상당히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김포공항에 내려 사진기자들의 플래시세례를 받자 비로소 자유의 품에 안긴 안도감과 기쁨을 실감하는듯 오른손을 번쩍들어 흔들어 보였다.하늘색 상의와 검은색 바지차림의 이씨는 곧 국제선 신청사 3층 귀빈실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으로 안내되자 밝은 표정으로 기자들의 질문에 또박또박 답변하는 여유를 보였다. 이씨가 타고온 대한항공 승무원 심모양(22)에 따르면 그는 10여시간의 탑승시간중 잠시도 눈을 부치지 못하고 긴장감을 가라앉히려는듯 잇따라 캔맥주를 주문해 마셨다. 이씨가 탄 비행기가 김포공항에 안착할 때까지 승객들은 물론 기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승무원들도 그가 망명자인줄 전혀 눈치채지 못할 만큼 당국의 안내는 보안을 위해 극비속에 진행됐다. 그가 앉았던 비즈니스클래스 10­A석에 기내식과 음료수를 날라준 여승무원들은 『그의 행동이 다른 승객들과 조금 달라 보이긴 했지만 망명선수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면서 다소 놀라는 모습이었다.
  • “조만식선생,50년 평양서 총살당했다”

    ◎소 거주 전 북한 고위인사들 증언/유엔군 입성 하루전 5백여명과 함께/북한군,대동강변에 집단 매장후 도주 6·25이후 생사를 알길없던 민족주의자 고당 조만식선생은 전쟁중 북한당국에 의해 총살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중앙일보가 당시 북한에서 당·정고위직을 지내다 그후 숙청돼 소련 등 해외로 탈출·망명한 인사들의 증언을 인용,19일 보도함에 따라 40여년만에 드러났다. 조만식선생은 6·25전쟁중 북한인민군이 유엔군에 밀려 평양에서 후퇴하기 전날인 50년 10월18일 공산정권에 반대하던 미족계열인사및 치안사범등 5백여명과함께 총살당해 대동강변에 가매장됐었다고 이들은 증언했다.이제까지는 조만식선생이 신탁통치 반대 등을 이유로 46년 1월부터 연금생활에 들어간 뒤 행방이 묘연해져 고령으로 자연사했거나 6·25전쟁을 전후해 북한정권에 의해 처형됐을 것으로 막연히 추측돼왔을 뿐 그의 사망시기 및 방법,동기와 배경 등이 명확히 밝혀지지않고 있었다. 북한에서 조소문화협회부위원장,주동독·체코 초대대사 외무성부상 등을 지내다 지난 59년 소련으로 망명한 박길용박사(71·소련과학아카데미 동방학연구소 선임연구위원)등에 따르면 북한은 50년 6·25전쟁을 일으킨 뒤 남진을 계속하다가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고 한국군과 유엔군의 평양입성이 임박하자 50년 10월 중순쯤 주요 정부기관을 평북(현재 자강도)강계로 이동시키기로 최종결정한 직후 형무소 등에 수감한 정치범 및 치안사범들을 그곳까지 끌고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이에 따라 유엔군이 평양에 입성하기 하루전인 10월18일 「특수가옥」에 연금시켜온 조만식선생(당시 68세)을 비롯,내무성 구치소(형무소)등에 가뒀던 지식인 기독교인 등 민족주의 계열인사와 치안사범 등 5백여명을 집단총살시킨 뒤 시체를 가매장하거나 일부는 그대로 둔채 후퇴했었다. 북한은 중국군의 참전으로 50년 12월초 다시 평양을 탈환하자마자 조만식선생 등의 시체를 파내 『전쟁을 도발한 이승만괴뢰군이 평양을 쳐들어오면서 조만식선생 등 수많은 민족지도자급 인사들을 죽여 구덩이에 파묻고 퇴각했다』고 선전했고 그후 북한주민들은 조만식선생 등이 한국군과 유엔군에 의해 처형된 것처럼 알고 있다고 박씨 등은 전했다. 북한 내무성부상까지 지내다 숙청돼 현재 레닌그라드에 사는 당시 북한노동당 강원도당 부위원장이었던 강상호씨(82)는『평양이북지역으로 후퇴하던 날밤 조만식 등 반동분자들이 총살됐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고당의 3남인 조연흥씨(51·조선일보 총무국장)는 『60년대 중반 한 귀순자가 자료를 통해 자신의 부하로부터 45년 10월15일쯤 아버지를 총살했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으나 명확치 않아 그동안 아버지의 기일을 정하지못한 채 해마다 아버지의 생신일(2월1일)을 맞아 추모하고 있다』면서 『이번처럼 아버지를 비롯한 민족계열인사 등 5백여명이 북한당국에 의해 학살된 시기 방법 동기와 배경 등이 당시 북한의 고위관리에 의해 명확히 밝혀지기는 처음으로 매우 신뢰가 간다』고 말했다. 북한문제전문가인 이정식교수(미 펜실베니아대)는 『고당은 소련군정의 엄정한 감시하에 평양의 고려호텔에 연금된 이후 행방불명돼 한국전쟁중에 공산정권에 의해 살해됐다는 소문이 있으나 확실한 증거가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1882년 평남 강서군 반석면에서 출생한 고당 조만식선생은 3·1운동과 물산장려운동에 앞장서는 등 일제때부터 해방정국에 이르기까지 민족주의자로 일관해왔으며 6·25전쟁이 나고 부터는 생사를 알길이 없었다.
  • 군장성 대거 숙청/후세인,쿠데타 우려

    【니코시아 AP 연합】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은 자신을 제거하려는 군사쿠데타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는 소문을 불러일으키면서 또 다시 부하 장성들을 대거 숙청하고 있는것으로 29일 알려졌다. 믿을만한 아랍 소식통들에 따르면 후세인 대통령은 최근 수일 동안 1천5백여명의 군장교들과 1백80여명의 경찰 책임자를 해고하거나 강등시켰으며 일부 장교는 처형했다. 바그다드 주재 외교관들과 다른 소식통들은 후세인 대통령이 불과 1주전에 비서실장과 군사정보 책임자를 경질시켰다고 밝혔는데 그의 이같은 조치는 걸프전 패배후 자신의 정치적 생존을 보장하고 분열된 군을 재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가운데 취해진 것이다.
  • 개혁바람에 고심하는 중국공산당/창당 70돌… 오늘의 위상

    ◎경제비능률 심화·제도적 부패등 만연/체제고수 속 “정치개혁” 국민욕구 외면 7월1일로 창당 70주년을 맞은 중국공산당이 나라 안팎에서 불어오는 심한 역풍에 시달리고 있다. 밖에서는 소련·동구의 탈공산주의 바람이 5천만 당원들의 사기를 꺾고 있는 데다 안에서도 6·4 천안문사태의 망령 때문에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고희를 기념하는 학술대회나 각종 집회에서 예외없이 「당의 위대함」을 애써 강조하고 있으나 뜨거운 호응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차가운 시선을 보내거나 아니면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게 일반 주민들의 표정이다. 중국공산당이 오늘날 이처럼 사면초가에 빠진 것은 물론 마르크스·레닌주의 사상의 비현실성에서 찾을 수 있다. 볼셰비키혁명 이래 지금까지 세계 수십개국에서 실험해본 결과 이 사상은 인간의 자유를 억압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경제의 비능률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등소평을 정점으로 한 현 집권층이 경제에 관한 한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면서도 정치개혁에는 극구 반대하고 있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등은 지난 79년부터 이른바 4개의 현대화(농업·공업·국방·과학기술)를 캐치플레이즈로 내세운 후 경제분야의 개혁·개방에 박차를 가해왔다. 그래서 지난 10년간 1인당 국민소득을 2배로 끌어올려 이제는 먹는 문제와 입는 문제는 거의 해결했다고 자랑하고 있다. 이붕 총리도 최근 중국은 최빈곤상태는 벗어났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정치개혁이다. 정치에 관한 한 4개 항의 원칙(사회주의·프롤레타리아 독재·공산당지도·마르크스 레닌주의와 모택동 사상 견지)을 굳게 고수,전혀 양보의 기색이 없다. 동구에서처럼 다당제를 채택,서로 다른 이념을 가진 정당 중에서 주민들이 원하는 정당을 고를 수 있는 선택의 자유란 현재로선 상상할 수도 없다. 그보다는 강도가 훨씬 낮은 공산당내의 개혁을 촉구할 권한도 없다. 고위 당관료가 어떤 부정부패를 저지르든 이를 제지하고 규탄할 통로가 마련돼 있지 않다. 그래서 옳든 그르든 당의 지시에 순종할 수밖에 없다. 지난 89년의 6·4 천안문사태도 이같은 정치제도의개혁욕구 때문에 발생했었다. 당시 학생과 시민들은 좀더 많은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보다 성숙된 시장경제체제를 요구했던 것이다. 이 당시 좌절을 맛보았던 세력은 이제 지하에서 숨을 죽인 채 등소평 사후를 기다리고 있다. 또 다른 욕구분출을 기다리는 휴화산인 셈이다. 이같은 휴화산이 활화산으로 폭발하는 걸 막기 위해서는 정치분야의 개혁이 필요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동구와 같은 다당제까지는 못 가더라도 최소한 당관리의 부정부패나 과오 정도는 인민의 힘으로 시정해 나갈 수 있는 하의상달의 의사전달체계가 마련돼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같은 개혁 역시 현정치체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한도내에서만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등의 사후 급진개혁파가 집권했을 경우 좀더 달라질 수는 있을 것이다. 1949년 공산당 집권 이후 통치형태는 누가 실권을 장악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져 왔다. 모택동을 비롯한 주은래 임표 등을 거쳐 양상곤 진운 이붕에 이르기까지 이념 중시의 정파가 집권했을 경우와 유소기 등소평 호요방 조자양등 실용주의자들이 집권했을 경우 통치양상은 크게 달랐다. 이념파 집권시대는 대약진운동(58∼60년)으로 수백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했고 문화대혁명(66∼70년) 때에는 실용주의파의 대거숙청은 물론 1천6백만명에 달하는 청년 학생과 지식인들을 시골로 내려보내(상산하향운동) 대학기능을 마비시키기도 했었다. 그러나 관용주의자들이 집권해서는 착실한 경제성장을 통해 인민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보다 많은 자유를 허용해왔다. 그러나 실용주의자일지라도 자기들이 권좌에서 쫓겨날지도 모르는 동구와 같은 혁명적 사태는 원치 않고 있다. 동구화의 단계에 접어들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의식이 좀더 깨우쳐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좀더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중국 공산당은 1921년 7월 어느날 50여 명의 당원들이 모여 창당했으며 정확한 날짜를 몰라 7월1일을 창당일로 정해 기념해오고 있다.
  • “김일성,소와 한달간 6·25남침 계획”

    ◎전 북한군 작전국장 유성철 증언/대독 전쟁경험 풍부한 소 장성들 고문단에 참여/“서울 전격 점령하면 상황 끝”… 예비병력 안갖춰 북한의 김일성은 지난 50년 3월 모스크바를 비밀리에 방문,스탈린으로부터 남침에 대한 동의를 받아낸 후 약 한달간의 구체적인 작전계획작성에 들어갔으며 이 작업에 전쟁경험이 풍부한 소련 장군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전쟁 전후 북한군 작전국장이었던 유성철씨는 지난 5일까지 재소 교민신문 고려일보에 연재한 자신의 회상록 「피바다의 비화」에서 김일성의 소련 방문 직후 민족보위성 작전국의 한 방에서 약 1개월간 극비리에 작전계획이 작성됐으며 소련군의 많은 군사전문가들이 이 작업에 적극 참여했다고 증언했다. 한편 전쟁 발발 직전까지 모두 3천여 명의 공작대를 남파시킨 전 강동학원 원장 박병률씨(86)는 16일 유씨의 6·25증언이 가장 정확한 진실이라고 확인했다. 다음은 6·25전쟁에 관한 유씨 회상록의 요약이다. 『6·25 전쟁 작전계획은 민족보위성 작전국의 한 방에서 약 1개월에걸쳐 극비밀리에 진행됐다. 이 작전계획에는 총참모장 강건,포병사령관 김봉률,포병참모장 정학준,공병국장 박길남,동신국장 이용인,공군사령관 한일무,해군 참모장 김원무,병기국장 서용선,후방국장 정목,정찰국장 최원,작전국장 유성철(필자),작전부국장 유상렬 등이 참여했다. 소련 고문단에서는 바실리예프 중장,포스트니코프 소장 및 기타 장군들과 영관급이 작전계획 작성에 주동 역할을 했다. 이 작전계획 작성을 위해 독소전쟁 등 경험이 풍부한 소련 고문단이 필요했기 때문에 바실리예프 중장 등이 구 고문단과 신속히 교체된 것이다. 작전계획의 실천을 앞두고 비밀을 보장할 목적으로 훈련형식을 취하면서 병력을 38선에 집결시켰다. 집결이 완료된 후 기동연습에 관한 명령서를 무전으로 공개적으로 전파했는데 국방군 참모본부는 아마도 이 같은 북의 기만에 떨어졌으리라고 믿어진다. 이 작전계획의 기본 약점은 미국이 손쓸 사이없이 불의의 공격으로 서울을 점령하면 전쟁이 끝날 것으로 예상하고 예비 병력을 준비하지 않은 데 있다. 또한 서울함락 후 박헌영의 지도하에 있는 남로당원 10만명이 무장봉기를 일으키고 지리산 후격대들이 후방에서 세찬 공격작전을 펼 것을 기초로 해 작성된 것이다. 서울은 전쟁개시 3일 만에 함락됐으나 기대했던 인민봉기는 일어나지 않았으며 지리산 유격대의 활동도 없었다. 인민군은 한 달 동안에 남한의 90%를 점령하고 남한인구의 92%를 장악했으나 미군을 위시한 유엔군의 참전으로 후퇴를 거듭하게 됐다. 전황이 극도로 불리해지자 김일성의 지시로 박헌영과 함께 북경을 방문,원조를 요청하게 됐다. 우리 일행을 접견한 모택동은 조선에 지원군을 파견키로 결정했음을 알리고 팽덕희 장군이 전선을 지휘하고 후방은 중국 동북정부 주석 고강이 책임지게 됐다는 것과 이들 두 동지가 손을 잡으면 조선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모는 최종발언에서 전쟁은 지금처럼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다섯 손가락을 앞으로 펼쳐 보이면서 미군과 괴뢰군(국군을 지칭)을 각각 분리하여 격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모는 이때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한 다리를미군이라고 가정하고 다른 다리를 괴뢰군이라고 하자. 먼저 괴뢰군을 포위 섬멸하고 다음에 미군을 포위 섬멸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미군이 맥을 추지 못할 것』이라면서 한 다리를 들고 다른 다리로 툭툭 뛰면서 설명했다. 모의 이러한 말에는 김일성을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모가 김을 비판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50년 10월19일 저녁 8시쯤 중국 지원군이 압록강을 건너 여러 지점을 통과,조선 전쟁에 참전하기 시작했다. 피아간에 일진일퇴를 거듭한 끝에 어느 쪽에서도 승리자도 패배자도 없이 전쟁은 끝이 나 1953년 7월27일 비로소 남북 인민들이 그처럼 고대하던 휴전을 맞게 됐다. 전쟁이 끝난 후 김일성은 악명높은 소위 「사상검토」를 통해 민간인을 휩쓸고 뒤어어 군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작업에 착수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김일성에게는 세 가지 「흑색」 명단이 작성되어 있었다. 첫 명단에 든 사람은 죽어도 좋다는 부류였고 제2명단에는 무기징역을 받을 사람들이 들어 있었으며 제3 명단에는 소련으로 가기를 원하면 보내도 좋다는 사람들이 포함돼 있었는데 필자는 제3명단에 들어 있어서 소련으로 나올 수 있었다. 김일성은 6·25전쟁에 참가한 장군들 중 남일·이권무·김창봉·김광협 대장,무정 중장 등 모두 44명을 처형하거나 숙청했으며 이 가운데 필자를 비롯한 이상조·강상호 중장 등 16명의 장군이 탄압을 받고 소련을 위시한 외국으로 망명했다』
  • 알바니아,첫 비공산연정/총리엔 공산온건파 부피 임명

    【티라나 로이터 AP 연합】 지난 47년간 알바니아를 일당 통치해온 알바니아 공산당(노동당)이 11일 원로급 강경파를 숙청하고 있는 가운데 공산당과 야당 협상대표들은 1주일간의 협상 끝에 1944년 이래 최초의 비공산 연립정부 구성에 합의했다. 공식소식통은 내년 5월이나 6월에 실시될 새 총선거 때까지의 과도정부가 될 이 연립정부가 25명의 각료로 구성될 것이며 라미즈 알리아 대통령이 지난주 총리로 임명한 공산당 온건파이며 전 정부의 식량장관을 지낸 일리 부피가 총리직을 맡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소식통은 새 연립정부의 각료는 5개 주요정당 출신이 맡게 되는 데 공산당이 11개 부서,최대 야당이던 민주당이 8개 부서를 각각 맡게 되며 나머지 6개 부서는 공화당,사회민주당,농민당이 맡게 된다고 전했다.
  • 알바니아 공산당,강경파 숙청/정치국원등 16명

    ◎보수파 반발… 분당 가능성/당대회,국부호자 실정 비난 【티라나 AP AFP 로이터 연합 특약】 알바니아의 집권 노동당(공산당)은 전당대회를 통해 11일 강경파 정치국원 및 중앙위원 등을 축출했다. 알바니아 공산당은 이날 9명의 정치국원 및 7명의 중앙위원 등에 대해 중대한 과오를 범했다고 비난하며 축출했다. 축출된 정치국원 가운데는 스테파니 전 내무장관이 포함되어 있으며 대부분 강경통치를 해온 호자시대의 정치인들이다. 공산당의 이같은 조치는 공산당이 개혁을 할 것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대회가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지난 10일 개막된 공산당전당대회에서는 개혁파와 보수파간의 설전이 난무,분당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개혁파인 알바니아작가연맹의장인 드리테로 아골리는 『호자는 지난 40년의 독재 동안 경제를 파멸로 이끌었다』고 알바니아의 국부로 통하는 호자를 비난,강경파들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강경파들은 아골리가 연설하는 동안 『엔베르호자』 『우리는 싸울 준비가 되어있다』는 등의 구호를 연호했다. 알리아 대통령은 호자가 일부 잘못한 것이 있다고 역시 호자를 비난했으며 당은 지난일에 대한 과오를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알리아의 사임으로 공석으로 있는 공산당서기장은 12일 선출할 것으로 알려졌으며 과도내각도 이날 공식출범할 것으로 소식통들은 밝혔다.
  • 알바니아,곧 숙청선풍/당중앙위등 지도부 95% 바꿀듯

    【티라나 AFP 연합 특약】 알바니아 집권 공산당은 10일 개막되는 제10차 당대회에서 지도부의 95%를 교체하고 당명을 현재의 노동당에서 알바니아 사회당으로 바꿔 과거의 강경노선으로부터 절연할 것이라고 티라나시 당 제1서기 할릴 랄라즈가 9일 AFP통신과의 회견에서 밝혔다. 그는 『정치국원 누구도 재임명되지 않을 것이며 중앙위원회도 95%가 새 인물로 충원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대미문의 숙청에는 창당지도자이자 강경고립주의자였던 호자의 미망인과 중앙위 서기 젤릴 조니도 포함된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로 알려진 스피로 데데 중앙 위서기는 재임명될 것이라고 랄라즈는 전했다.
  • 허정숙은 누구인가/북 여성계 대모로 허헌의 딸

    북한 여성계를 대표해온 허정숙이 5일 83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사망한 허는 북한 여성 정치인 중 가장 고위직에,가장 오랫동안,가장 활동적으로 정치일선에 있었던 북한 여성계의 대모였다. 1908년 서울에서 출생,해방 전 서울의 배화여자보통학교(현 배화여고)를 졸업한 허는 이후 일본·중국·미국 등지에 유학한 북한 최고의 인텔리여성. 허는 특히 남로당위원장과 제1기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지낸 허헌의 장녀로서 부수상으로 있다가 57년 숙청된 연안파의 거두 최창익과 37년 결혼했으나 50년대초 이혼했다. 6선으로 최다선 최고인민회의 의원의 경력을 지닌 허는 사망 전까지 조평통 부위원장,조국전선중앙위 의장,해외동포원로위원장 등의 직함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89년 이후 공식 석상에 나타나지 않아 노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추측됐다.
  • “조자양 전 총서기/개혁 최고 기술자”/등,공식 찬양

    【홍콩 AFP 연합】 중국 최고의 실권자 등소평은 지난 89년 천안문사건 때 숙청된 조자양 전 공산당 총서기가 개혁정책 추진과정에서 행한 역할을 찬양했다고 홍콩의 중국문제 전문월간지 「90년대」가 이날 보도했다. 이 잡지는 이날 발간된 최신호에서 등소평의 말을 인용,『내가 개방개혁정책의 최고 설계자라고 불린다면 조자양은 이 정책을 추진하는 최고 기술자로 평가되어야 하며 아무도 그의 역할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했다. 이 잡지는 등소평의 이같은 발언은 지난해말 한 공산당 대회가 열리기에 앞서 정치국원들과 몇몇 신원이 파악되지 않은 당 원로들에게 행한 것이라고 북경의 한 소식통을 인용,보도했다.
  • 조자양 측근 3명 복권/호계립·예행문·염명복등 요직 중용

    【북경 AP AFP 연합】 지난 89년 6월 천안문사태에 대한 문책으로 중국 공산당 총서기직에서 해임되었던 조자양의 측근 3명이 최근 국무원의 차관급 직책을 받아 복권됐다고 중국관영 신화통신이 1일 보도했다. 신화통신은 조가 당총서기로 있을 때 정치국의 이념담당 상무위원이었던 그의 최근 측근 호계립을 기계전자 공업부 부부장,중앙위원회 서기였던 예행문을 국가계획위원회 부주임,통일전선공작부 부장이었던 염명복을 내정부 부부장에 각각 임명했다고 전했으나 조 자신의 복권여부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 통신은 그러나 호 등 3인이 지난 89년 당했던 정치적 숙청사실 및 이들의 복권이유 등은 밝히지 않았는데 홍콩언론들은 막후에서 아직도 중국 최고의 실권을 행사중인 올해 86세의 등소평이 중국의 권력구조내에 보수파와 개혁파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이들의 복권을 원했다고 보도했다. 현상황에서 중국 공산당은 조자양이 반대했던 천안문의 군투입을 「잘못된 것」으로 인정치 않는 한 조의 복권은 단행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 재일동포의 뜨거운 민주통일 염원/이명영 성대교수·정치학

    ◎도쿄 평화통일촉진대회 참관기 재일동포들 속에서 통일운동단체인 재일본 한국인·조선인 민주통일연맹이라는 새로운 조직이 생겼다는 기사를 본 것이 작년 가을이었다. 금년 3월 하순에 그들의 기관지인 「통일연맹」 창간호 및 제2호와 접할 기회를 가진 필자는 당장에 그 단체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는 그 기관지에 「조총련의 지식인 및 청년학생에게 고함」이란 장문의 글을 투고했다. 이 글은 그 제3호에 전문이 실렸다. 나와 그들과의 관계는 이렇게 하여 시작됐다. ○평양 개방·개혁 요구 그 민주통일연맹이 지난 9일에 도쿄의 한복판에 있는 풍도송회당이란 곳에서 「조국의 평화통일촉진 전국결기대회」란 것을 열었다. 나도 초청되어 대회를 참관할 수 있었다. 검소하고 질박한 대회였다. 해외에서 살면서도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는 그들 자세의 진지함과 통일을 실현하는 데 있어 무엇이 결정적인 장애요소인가 하는 데 대한 그들 인식의 투철함이 나로 하금 머리를 숙이게 하는 그러한 대회였다. 이 단체는 명칭 그대로 국적을 한국으로 하고 있는 사람들과 국적을 조선으로 하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합쳐서 만든 단체이다. 말하자면 민단계와 조총련계 사람들의 합작조직이다. 그들에게는 공동의 목표와 인식이 있다. 그것이 조국의 민주통일이며 민주통일을 방해하는 자에 대한 준엄한 분노이다. 무엇이 민주통일을 방해하는가. 북한의 폐쇄정책이다. 그래서 그들은 북한의 개방과 개혁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들은 김일성 정권이 버티고 있는 한 결코 북한은 개방될 수도 없고 개혁될 수도 없음을 뼈저린 과거의 체험으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김일성 정권의 퇴진 없이는 조국의 민주통일은 결코 성사될 수 없다고 확고하게 믿고 있는 것이다. 그 단체의 대표자인 이광이란 사람만 하더라도 부모형제와 숙부모가 몽땅 북한으로 간 사람이다. 가서는 소식불통이 되었다. 그의 숙부는 종전 직후에 일본 공산당이 재건되었을 때 그 중앙위원 후보였던 유명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자 송성철이며 그의 숙모는 여운형의 장녀 여난구이다. 난구의 동생 연구는 지금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이다. 그 단체의 부대표자인 임성굉이란 사람은 또 동지사대학 입명관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철학자이다. 그의 저서 「배신 당한 혁명」은 유명하다. 조선의 사회주의혁명이 김일성에 이르러 완벽하게 배신 당했음을 밝힌 책이다. 그러나 그 저자는 조선적을 버리지 않고 있다. 풍도 공회당의 대회에서는 멀리 모스크바에서 재소고려인협회의 허진 부회장이 참석했다. 그는 의미심장하 축사를 했다. 하나의 민족인 우리에게 세 종류의 명칭이 있음을 그는 환기시켰다. 한국인 조선인 그리고 고려인. 이것이 다 조국이 통일되지 못한 데서 오는 비극이라고 그는 통탄했다. 그래서 통일은 우리 세대의 최대의 과업이라고 그는 역설했다. 어떤 통일을 이룩하느냐. 그것은 단연코 민주통일이어야 한다고 그는 결론지었다. 7천만이 다 주인이 되는 민주통일이어야 하지 특정인·특정집단이 주인이 되는 통일은 민족과 역사에 대한 반역이므로 재소고려인도 모두가 민주통일을 염원한다고 하면서 그는 재일민주통일연맹과의 깊은 유대를 표명했던 것이다. 이 대회에 참석한 일본인 중엔 아주 이색적인 사람이 한 분 있었다. 기곡계차란 84세의 노인이다. 그는 「나의 청춘 조선」 「좋은 날이여 어서 오라­북조선 민주화에의 나의 유서」란 책으로 유명하다. 일제시대에 그는 함경남도의 흥남 비료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면서 조선사람들과 같이 공산주의운동을 하다가 잡혀서 10년이나 옥살이를 했다. 그는 일본인이면서도 조선인민의 해방을 위해 투쟁했던 사람이다. 그는 그와 같이 투쟁했던 옛 동지들이 김일성에게 다 숙청 당하고 만 것에 비애를 금치 못하며 조선인민이 아직도 해방되지 못한 채 일인독재에 시달리고 있음에 분노를 금치 못하는 사람이다. 북한이 개방되고 민주화되기를 갈망하는 그의 간절한 염원이 두 권의 책임을 낳았고 그 대회에도 참석하게 만든 것이다. 나는 오래도록 그의 손을 잡고 그에게 최대의 경의와 감사를 표했다. 민단의 간부들은 테러의 위협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민주통일연맹의 간부들은 테러와 모략 중상의 어려운 시련 속에 있음을 내 눈으로 보았다. 조총련의 기관지 조선신보는 이광씨를 전과2범의 사기꾼이며 안기부의 앞잡이라고 중상했다. 명예훼손죄로 고소되었음은 물론이다. 「통일연맹」의 편집위원장인 김원봉씨는 자기가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방해하는 파렴치한으로 매도된 비라를 내보이면서 그것이 자기집 주변의 주민들에게 숱하게 살포되었다고 하면서 쓴 웃음을 지었다. 모든 간부들이 전화협박 때문에 아예 수화기를 내려놓고 있는 실정이라 했다. 내가 그들 본부사무실에 앉아 있는 사이에도 괴전화는 수없이 걸려왔다. 조총련 쪽의 사람들이 민주통일연맹이 발족한 이래로 크게 동요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증해주는 현상들이었다. 동요는 왜 오는가. 기관지 「통일연맹」 때문이다. 북한 당국이나 조총련으로서는 도저히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문제와 사실 폭로가 쏟아져나오고 있는 것이다. ○간부들에 협박전화 남북한 당국이나 국내의 각 사회단체들은 물론 재일민단이나 조총련도 다 통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국내의 재야세력은 결사적으로 통일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후세의 역사는 증언하리라. 재일본 한국인·조선인민통일연맹의 통일노선과 그 운동방향이야말로 가장 과학적이며 애국적인 운동이었다고. 그들은 향후 5년 동안 그 운동을 지탱해나갈 재원을 자체적으로 마련해놓고 싸우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5년까지 필요없다. 2년이면 승부가 난다』고. 민주통일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는 것이다.
  • 잠재운 「보수파반동」… 높아진 「고르비위상」/소 공산당중앙위 결산

    ◎“서기장 자퇴” 선수로 재신임 획득/「평가보고」 요구도 측근동원 봉쇄/“당운영방식 여전히 정치국 중심” 확인 25일 끝난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당내 보수파들이 보여준 고르바초프 당 서기장에 대한 「숙청」 기도는 결국 고르바초프의 정치적 입지를 더욱 강화시켜준 결과가 됐다. 고르바초프 당 서기장은 서기장직 사의표명,중앙위 반려의 절차를 거치면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앞으로 개혁을 더욱 자신있게 추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24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고르바초프는 두 차례에 걸쳐 강경보수세력으로부터 표대결을 요청받았다. 하나는 개회 직후 열린 의제상정과정에서 보수파는 고르바초프의 지난 2년간에 걸친 「평가보고」를 의제로 상정할 것을 요구했다. 또 하나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25일 상오에 선제공격을 편 사임의사 표명이다. 이들 두 사건은 모두 고르바초프가 여전히 공산당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음은 물론 공산당내에 그를 대신할 대안이 없음을 확인시키는,말하자면 「공산당=고르바초프」의 등식을 재확인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끝났다. 보수파가 시도한 평가보고의 의제상정제안은 그 속성상 의제로 상정될 경우 퇴임으로까진 이르지 않더라도 정치적으로 상당한 부담을 안길 수 있는 사안이다. 대체적으로 평가보고는 자아비판의 성격을 띠게 된다.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그것이 비록 부분적이라 하더라도 과오를 인정해야 하는 결과를 낳는다. 과오의 인정은 또다른 시비를 낳게 마련이고 보수파가 주장해온 부분들을 합리화시켜주는 역할을 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고르바초프측은 압도적으로 보수파의 의제 상정제안을 제외시킴으로써 일찌감치 고르바초프의 승리를 확인시켰다. 의제상정과정에서 나타난 중앙위의 형태는 여전히 당운영방식이 정치국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정치국이 사전에 의제를 국내정세 및 국제정세에 대한 현안논의로 확정지었고 이후 중앙위 일부 세력이 의제에 평가보고를 넣을 것을 요구했지만 전체 중앙위는 정치국 결정 존중의 선례를 지킨 것이다. 서기장 사임의사표명과 반려는 고르비의 계산된 도박으로 분석되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이어 개회연설을 통해 『많은 당원들이 갈피를 못잡고 있으며 많은 당지도자들은 히스테리적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지금의 상황은 레닌이 신경제정책(NEP)를 폈을 때와 비슷하다. 그때 개혁이 실시되지 못한 것이 유감이고 우린 지금 다시 그 시도를 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이 자리(당 서기장)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누가 하든 대통령과 서기장의 겸직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는 토론자로 나선 보수파들이 자신에 대한 비판을 강화하자 25일 상오 정회에 들어가기 직전 사임의사를 표명,중앙위원들의 의사를 물어줄 것을 요구했다. 그 결과 4백명에 가까운 전체위원 중 단지 13명의 위원만이 사임문제를 다룰 것에 찬성하는 압도적인 재신임을 획득한 것이다. 오전회의가 끝난 뒤 회의 결과를 발표한 자소호프 당서기는 『근본의제는 국가의 위기탈출방안과 당의 역할에 관한 것이었으며 9개 공화국리더들과 체결한 성명이 회의참가자들에게 큰 파문을 일으켰다』고 말해 성명을 둘러싼 보수파들의 공세가 치열했음을 시사했다. 그는 극히 비판적인 토론이 시작되었으며 현실위기에 대한 책임이 고르비에 있다는 토론이 많았으나 극단적인 주장들은 소수였다고 공식적으로 고르비 사임에 대한 문제가 이미 종결되었음을 밝혔다. 뒤이어 국영 TV가 인터뷰한 의원들은 『대회에서 날카로운 비판이 잇따르자 고르비는 정회 직전 사임의사를 발표했다』고 전하고 『그러나 고르비에게 있어서는 사임이 더 유익할지 모르지만 당으로서는 비극적인 결과가 예상되기 때문에 이를 다룰 것인가 하는 논의에서 13명이 찬성,14명이 기권하고 나머지는 다룰 필요조차 없다는 반대를 표시했다』고 전했다. 이날 회의에서 보수파들은 특히 9개 공화국 지도자들과 체결한 공동성명이 원칙없는 지나친 절충의 결과라고 지적하면서 사임을 요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소유즈대회와 레닌그라드에서 있었던 골수 막스 레닌주의자들의 궐기대회,여러 지방 공산당위원회에서 있었던 고르비 사임요구 등을 고려한다면 중앙위의 진행은 오히려 뜻밖일 정도였다. 그러나 소유즈 등 사임을 요구했던 그룹이 주로 하위 노멘클라투라(공산당내 특권계층)에서 일어났던 점이 특이했다. 즉 최상위 노멘클라투라로 구성된 중앙위원회는 이들과는 생각이 달랐고 그래서 예상보다 훨씬 큰 일방적인 고르바초프의 승리를 가져온 것이 아닌가 분석되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지난 24일 9개 공화국과의 공동성명을 통해 개혁 및 민족주의세력과의 공존의 길을 열었다. 이를 실천하는데 가장 큰 변수로 여겨졌던 당내 보수파의 반동을 이번 중앙위를 통해 잠재움으로써 어느 때보다 안정적인 정치적 입지를 확보했다고 할 수 있다. 당내 보수파의 반발이라는 중대한 고비를 무난히 넘겼지만 소련의 장래는 여전히 불안하다.
  • 잇단 「고르비 축출설」 언저리/크렘린에 「궁정쿠데타」 가능할까

    ◎64년 흐루시초프 실각 때와 상황 비슷/군·당이 변수… 일부선 후임자까지 거론 고르바초프를 축출시키려는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루머가 꼬리를 물고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이러한 음모설은 경제난·민족문제 등으로 페레스트로이카가 비틀거리기 시작한 2∼3년 전부터 간간이 외신을 타고 들어왔으나 그때마다 「읽을 거리」 이상의 관심을 끌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러시아공화국 의회가 독자 대통령을 선출키로 결정한 이달초부터 소련내 정세가 극도로 악화되자 「음모설」에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어떤 분석가들은 인민대표회의 의장인 아나톨리 루키야노프,부통령 겐나디 야나예프가 그의 후임자가 될 것이라는 성급한 추리를 내놓기도 한다. 10일 일본 지지(시사)통신 보도는 음모의 결행 시기·방법까지 적시하고 있다. 공산당내 보수파들이 고르바초프의 일본·한국순방 끝날인 19일 긴급 당중앙위 총회를 소집해 그를 축출하려는 거사가 추진중이라는 것이다. 지난 7일에는 리처드 체니 미 국방장관이 ABC­TV와의 회견을 통해음모가 사실일 수 있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고르바초프는 과연 실각할 것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는 쪽의 견해가 아직은 우세하다. 하지만 연방공화국들의 독립요구·파업·경제난 등 정국상황을 감안한다면 시기적으로는 지금이 음모를 결행하기에 최적기라는 지적도 있다. 소련에서 당 최고지도자 부재중 중앙위 총회가 열린 것은 지난 1964년 흐루시초프 당시 제1서기가 요양지에서 불려와 해임된 경우가 있다. 지금 고르바초프가 처한 입장이 불행히도 그때와 유사한 점이 많다. 소련에서 궁정쿠데타의 음모를 꾸밀 수 있는 세력은 역시 군부·당·보안세력으로 대변되는 보수세력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들이 처한 상황이 그때와 지금 아주 흡사하다. 1956년 20차 당대회에서 흐루시초프가 스탈린 비난연설을 한 이래 소련에서는 대대적인 스탈린격하운동이 벌어졌다. 보안조직의 총수 베리야가 숙청되고 스탈린의 학정에 연루된 당·보안조직 세력들은 모두 된서리를 맞고 공산당에는 탈당사태가 벌어졌다. 탈스탈린화가 진행되면서 동구위성국들에도민주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1956년 헝가리 민주화운동 등이 그 실례이다. 고르바초프는 이보다 한술 더 떠 동구를 모두 잃고 독일을 통일시켜주었다. 대외정책도 유사한 점이 많다. 흐루시초프는 사회주의 해방전쟁 지원과 혁명수출 포기를 선언하고 제국주의 세력과의 평화공존을 주장하며 전쟁불가피론을 부정했다. 고르바초프가 추진해온 개혁 개방,신사고 외교정책과 흡사한 「모험」들이 당시에 시도된 것이다. 경제면에서도 흐루시초프는 1956년 경제분권화계획을 발표하면서 군비삭감과 소비재 생산확충을 추진해 기득권층으로부터 반발을 샀다. 1964년 10월 긴급당중앙위가 소집돼 그의 실각을 통보하기 전까지 흐루시초프는 자신이 당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당조직은 스탈린을 비난하며 당의 권위에 손상을 입힌 그를 버렸다. 보안조직과 군부도 그의 몰락을 외면했다. 스탈린시대를 청산한다는 이름하에 자신들의 「피묻은」 과거를 들추어 단죄한 그를 구해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지난해말을 고비로 그 동안소원했던 군·KGB·당과 다시 손을 잡으려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페레스트로이카 6년간 소외되고 공공연히 비난받아온 이들이 만약의 사태가 발생할 경우 그를 「살리려고」 나설지는 아무래도 미지수이다. 『고르바초프 물러나라』고 외치는 거리의 외침 못지 않게 크렘린궁내의 「소리없는」 음모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
  • 중국에 「이붕 사임촉구 시」 파문/인민일보 해외판특집에 게재

    ◎겉으론 고국 그리는 유학생의 심정 표현/대각선으로 읽으면 “총리퇴진 압력” 명백 중국공산당기관지 인민일보에 최근 반이봉시가 게재된 사실이 밝혀져 파문이 일고 있다. 지난 89년 천안문사태 이후 처음으로 천안문 시위의 강경진압론자 이봉총리의 사임을 촉구한 이 시는 지난 20일자 인민일보 해외판에 실렸으며 이 시에는 『이봉이 물러나야 평민들의 분이 풀리고,중국대륙에도 봄이 올 것』이라는 내용이 감춰져 있다. 이같은 사실은 홍콩의 대만계 신문인 성도일보에 의해 처음 밝혀졌다. 24일 성도일보는 1면 머리기사에서 『지난 20일자 인민일보 해외판은 「유학생 페이지」라는 특집속에 주해홍이라는 이름의 미국유학생의 한시 「원소(대보름)」를 게재했으며 이 시속에는 「이봉하태평민분,차대신주변지춘」이라는 글귀가 감추어져 있었다』고 보도했다. 문제가 된 한시 「원소」는 한 행이 7자인 모두 8행의 7언률시로 겉보기에는 고국을 그리워하는 유학생의 심정을 묘사한 것처럼 돼있으나 제1행부터 제7행까지를 대각선으로 읽으면 「이봉하태평민분」이라는 구절이 되어 『이봉이 물러나야 평민들의 분이 풀리고』라는 뜻이 드러나고 이 구절은 다시 제8행의 「차대신주변지춘」이라는 구절로 연결되어 『중국대륙에도 봄이 올 것』이라는 내용을 이루게 된다. 성도일보는 이같은 사실을 폭로하면서 『이 시가 실수로 게재된 것인지,아니면 의도적으로 게재된 것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중국당 고위층이 현재 인민일보가 실은 이같은 「이봉사임촉구시」를 인지하고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또 『만일 이같은 사실이 중국공산당 고위층에 알려지면 인민일보는 대규모 숙청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패전 이라크,이번엔 내란위기/「백기 든 이후」의 바그다드

    ◎학정에 시달린 시아파,정권탈환 노려/쿠르드족도 반감고조… 반정봉기 태세 걸프전 종전뒤 이라크는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 것인가. 이에대한 답변은 사담 후세인의 장래와 연결지어서 풀어나가야 한다. 후세인의 앞날에 대해서는 갖가지 설과 가정이 소개되고 있는게 사실이지만 유럽언론들은 전쟁의 진행상황으로 미루어 그의 실각은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전쟁은 당초의 예상대로 후세인의 완패로 결말이 지어졌으며 후세인이 권좌를 계속 유지하기가 어렵게 됐다. 이라크 국민들에게 후세인의 제거를 공개적으로 부추겨온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지난해 8월2일 이후 많은 사람들은 이라크인들 스스로 후세인을 쫓아내길 고대해 왔었다. 종전후 이라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가지 변화를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군부 쿠데타이다. 어떤 전문가들은 후세인의 장기독재에 따른 몸서리 쳐지는 학정을 자각한 군장성들이 특히 패전에 대한 책임으로 후세인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그러나 군부쿠데타자체가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도 만만치않다. 왜냐하면 이라크 군지휘부는 후세인이 엄선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후세인의 충복중의 충복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후세인은 집권이래 군고위층에 대해서는 의심스러운 부분이 한치만 보여도 숙청의 칼날을 뽑아 왔었다. 집권 초기에는 나세르주의를 지향하는 좌파장교들을 무더기로 숙청했고 그뒤 얼마 안가서는 바트당 당원이 아닌 장교들이 당했다. 정권유지를 위한 무자비한 숙청은 걸프사태 이후에도 계속되어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쿠웨이트 침공 작전개시일 결정에 대한 의견 제시를 미루었다는 이유만으로 군지휘관 10여명이 처형됐으며 다국적군의 공습이 개시된 바로 다음날 방공포대 지휘관들이 공습을 효과적으로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총살됐다는 것이다. 또 며칠 뒤에는 공군 지휘관들도 같은 이유로 처형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같이 군부는 솎아내고 걸러낸 친위조직으로 구성됐기 때문에 쿠데타를 일으키기는 어렵다는게 이에대한 신중론의 근거이다. 또한가지 가능성은 민간쿠데타 즉 시민혁명이다. 30여년간 줄곧 핏물 튀는 군부독재가 계속 되어온 탓에 이라크에는 언뜻 손꼽히는 정치엘리트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몇몇 지도자들은 오래전부터 영국 독일 또는 미국등지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들 중에도 널리 알려진 인물은 드물다. 게다가 이라크에는 후세인의 바트당이 일당독재 지배체제를 확립하고 있으며 「3인1조」식으로 구성된 세포조직은 지역·기업 및 군대까지 파고 들어 반대정치 세력의 출현을 원천 봉쇄하고 있다. 유럽의 전문가들은 바트당내의 지도층에 의한 쿠데타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내다보기도 한다. 제2인자인 이자 이브라힘 알 듀리 제3인자인 타하 야신 알 지즈라위 부총리인 사돈 하마디 소장층의 대표주자인 하산 압둘 마지드 등의 당지도층을 대상으로 모반을 가정해 보지만 그동안의 후세인 통치스타일로 미루어 역시 가능성은 미지수일 수밖에 없다. 그 보다는 오히려 종족간 대립이나 이슬람교내의 갈등이 이번 기회에 표면화되어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관심을 끌고있다. 이교간의 갈등 이상으로 집권층인 이슬람교도 수니파와 심한 대립현상을 보이고 있는 시아파가 관심의 대상이다. 8백만명인 시아파는 대부분 사우디아라비아쪽을 연고로 두고 있는 사람들이며 집권 수니파에 눌려 오랫동안 학정에 시달려왔다. 이 때문에 시아파는 항상 폭발직전의 불만에 싸여 살아오고 있으며 77년 2월 및 79년 6월 등에는 걷잡을수 없는 폭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중앙정계에서 활약하는 정치지도자는 한명도 없으나 나자프 또는 게르발라와 같은 도시의 종교지도자들은 반정부 행동을 위한 군중동원 능력은 뛰어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종교조직을 바로 정치조직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짜놓고 있다. 후세인에게 가장 도전적인 세력은 바로 쿠르드족이다. 이라크 북부지방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쿠르드족은 항상 바그다드 정부에 적대적인 자세를 보여오고 있다. 그들은 특히 지난 87년 화학무기로 쿠르드 양민을 무차별 살상한 후세인을 증오,기회만 있으면 봉기의 횃불을 올릴 자세를 갖추고 있다. 5백만명의인구를 포용하고 있는 쿠르드족의 지도자들은 이미 몇주일전에 이라크 북부지방에서 대대적인 반후세인 봉기에 착수할 준비가 다 되어있다고 워싱턴에 알리기도 했다. 시아파나 쿠르드족은 그동안 뚜렷한 활동은 못했지만 나름대로의 정치조직을 가지고 있다. 시아파는 이라크 이슬람전선,이라크 이슬람교 혁명최고위원회,이라크 무자헤딘운동 등의 조직이 있으며 쿠르드족은 이라크 쿠르디스탄전선,쿠르디스탄 민주당,쿠르디스탄 애국연합,쿠르디스탄 인민민주사회주의 등이 있다. 후세인 이후의 이라크에 중앙집권 형태가 사라지고 수니파 시아파 및 쿠르드족 등 3개파가 조화있게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자는게 전쟁에 참여했던 주요 국가들의 바람인 것 같다.
  • 전후 이라크·쿠웨이트 어떻게 될까

    ◎“후세인 축출” 군부 쿠데타 가능성 고조/독재정권 붕괴로 정정불안 가속/이라크/일단 왕정복귀… 민주화 진통 예상/쿠웨이트 걸프전 이후 이라크의 새로운 지도자는 누가 될까. 쿠웨이트는 왕정체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까. ▷이라크◁ 걸프전쟁이 이라크의 수세속에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어감에 따라 후세인의 운명과 집권대체 세력의 향방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후세인의 운명은 이번 전쟁이 마무리 되는 모양새에 따라 아직도 여러가지 가능성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굴욕적인 항복을 요구하는 미국의 자세로 볼 때 후세인이 종전후까지 권력을 유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후세인은 계산착오와 무모함 때문에 이라크 군부내로부터도 반발을 사고 있으며 이라크 국민들의 반정부 시위도 간간히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상황에서 이라크의 정권교체 가능성은 군부내 쿠데타,다국적군의 후세인 제거 등 몇가지로 나눠 예상해 볼 수 있다. 이라크 군부내의 쿠데타는 이번 전쟁이 당초 의도대로 쿠웨이트합병이나 아랍의 단결을 성취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수많은 이라크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피해,아랍의 분열만 초래했기 때문에 후세인이 그 책임을 져야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있음직하다. 후세인이 일선 부대와 연락하기도 힘들정도로 감시체제가 느슨해져 군부내 불만세력의 행동이 자유로워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있다. 종전후 후세인의 입지강화를 위해 당연히 뒤따를 대규모 군부 숙청 대상에 포함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쿠데타 가능성을 더해주는 요인이다. 다국적군의 공격에 의해 후세인이 제거될 경우 우선 당장에는 집권층 내부에서 권력승계가 이뤄지겠지만 결국은 쿠데타의 악순환 등 정정불안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미국·소련·시리아 등 중동지역에서의 패권을 노리는 강대국들이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되는 꼭두각시 정권을 세우기 위한 각축전도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이라크내에는 20년 이상 지속된 철권통치 때문에 겉으로 드러난 반정부 세력이 존재하지 않고 있다. 회교 원리주의파,공산주의파,후세인에 의해 축출된 군장교단파,왕정파 등 수십종류의 반정부 단체가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기는 하지만 국내기반이나 영향력면에서 미미한 실정이다. 17개 반정부 단체가 지난해 12월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에 모여 반후세인 연합전선을 결성하고 시리아·사우디아라비아·미국 등과 접촉을 활발히 하고는 있으나 큰 기대를 받지는 못하고 있다. ▷쿠웨이트◁ 6개월여만의 쿠웨이트 해방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옴에 따라 쿠웨이트 왕정체제의 변화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자진 철수하든,쫓겨나든 간에 일단 이라크군이 쿠웨이트에서 물러나면 지난해 8월2일 사우디아라비아로 피신해 갔던 알 사바왕가의 망명정부가 당연히 복귀하겠지만 사바왕정이 앞으로 얼마만큼의 민주화 조치를 실천에 옮길 것인지,궁극적으로 왕정체제 자체가 붕괴되지는 않을 것인지가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사바왕은 일단 정부가 회복되면 쿠웨이트를 보다 민주화 시키겠다는 입장을 망명기간 동안 거듭 강조해 왔다. 그러나 사바왕이 최근 한 인터뷰에서구체적인 계획은 제시하지 않은채 민주화를 실시하겠다고 말하면서 의회제도만은 계속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으로 미뤄볼때 앞으로 쿠웨이트의 정치상황이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지난 62년 제정된 헌법에 명시된 의회가 지난 86년 정정불안을 이유로 해산돼 상당수 국민들의 원성을 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의회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은 본질적인 변화는 거부한채 피상적인 변화만을 추구하겠다는 의도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이라크군이 침공에 앞서 국경지대에 병력을 증강할때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았다는 비판과 침공개시 수시간전 파드 사우디국왕으로부터 사전연락을 받고 도주했다는 구설수에까지 올라있는 사바왕으로서는 의회를 통해 이같은 불만이 공개적으로 여론화될 것을 우려하겠지만 의회가 없다고 해서 국민들의 불만이 사그러들지는 미지수다. 미국의 입장에서도 향후 중동안보구조를 의식,다루기 쉬운 왕정형태를 최소한 유지하되 민중봉기를 통한 정부전복을 예방할 수 있도록 민주화압력을 가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쿠웨이트는 이번 전쟁으로 유전의 25%가 파괴되는 등 국가전체가 만신창이가 돼 복구하는데만도 총 6백억달러의 투자와 수년의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천∼5천명의 사망자와 생존자들의 비참한 생활은 보상받지도 못할 형편이다. 쿠웨이트 국민들은 이제 전후복구의 부담과 함께 새로운 정치체제 개척의 소임마저 짊어지게 된 것이다.
  • 미·소 이해에 걸린 「후세인의 앞날」

    ◎완전거세로 「친미 중동구도」 추진/미/전후영향력 노려 체제유지 희망/소/지상전서 참패하면 피살·쿠데타 가능성도 개전 한달을 넘긴 걸프전은 정치적 해결이냐 아니면 지상전 돌입이냐의 마지막 고비에 들어섰다. 최근 프랑스는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에게 결단의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고 경고한 바 있다. 후세인의 결정이 어떤 것이 될지는 현재로선 예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후세인의 운명은 전후 중동정세와 깊은 함수관계를 가지고 있어 화전 어느 쪽이든 그가 내릴 결정에 지금 세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소련이 후세인의 운명에 대해 큰 시각차를 보이는 것도 그의 존재가 중동정세의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소련은 걸프전쟁을 정치적으로 종결시키기 위한 막바지 중재안에 후세인 체제 유지를 포함시키고 있다. 소련은 만약 이라크가 다국적군과의 전쟁으로 「군사적 황무지」가 도고 후세인마저 축출된다면 중동에서의 영향력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에 후세인 체제의 유지를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미국은 후세인의 제거를 희망하고 있다. 부시 미 대통령은 이라크군과 국민들에게 후세인 대통령을 축출하라고 공개적으로 촉구하고 있다. 미국은 전후 친미국가중심의 새 중동질서의 구축을 구상하고 있다. 다국적군에 참여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시리아 등 회교국가들도 차제에 후세인이 제거되기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 후세인이 계속 권좌에 남아있게 되면 이들 국가들에게 큰 위협이 될뿐만 아니라 후세인을 지지하는 민중들의 저항으로 그들의 집권체제마저 위협받을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각국이 그들의 입장에 따라 「희망사항」이 다른 후세인의 운명은 어떻게 결말지어질 것인가. 일부 중동문제 전문가들은 후세인이 현 단계에서 쿠웨이트 철수를 선언한다든가 지상전에서 한달이상 성공적인 전투를 벌일 경우 이라크는 물론 아랍권내에서 영웅으로 추앙받으면서 현 집권체제를 흔들림없이 지켜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쿠웨이트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이라크군과 국민들의 희생만을 남긴채 철수할 경우 그는국내로부터의 큰 반발에 직면할 것이다. 미 하버드대의 로리 밀로이교수도 『후세인이 쿠웨이트로부터 빈손으로 돌아온다면 그의 정치기반은 위협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의 한 고위관리는 후세인은 스스로를 보호할 충분한 「안전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후세인은 자신의 친위부대를 가지고 있으며 그를 대신할만한 정치세력이 이라크에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후세인이 지상전에서도 참패하고 많은 인명피해만 입은채 이라크로 쫓겨간다면 그의 정치적 운명은 위기를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의 중동문제 전문가인 프레드 홀리데이는 후세인이 참패할 경우 그는 정치권이나 자신의 측근 혹은 계속돼온 숙청에서 살아남은 군장성에 의해 축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고 있다. 일부 중동문제 전문가들은 철권정치에 겁을 집어먹고 겉으로는 표현하고 있지 않지만 내면적으로는 후세인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적지않아 전쟁후 이들의 저항이 표면화될 경우 후세인이 위기를 맞을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물론 후세인이 다국적군의 공급으로 사망할 가능성도 없지않다. 후세인이 미국의 희망대로 축출될지 아니면 아랍의 영웅으로 등장할지를 점치기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후세인의 조재는 앞으로도 중동문제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점이다. 후세인이 축출되면 향후 중동정세는 미국 구도대로 그림이 그려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후세인이 살아 남는다면 중동문제는 더욱 복잡해지고 미국과 이라크의 갈등역시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걸프전쟁은 시작도 그랬듯이 마지막도 후세인문제에 모아지고 있는 느낌이다.
  • 「반 김정일세력」 존재 인정/평양방송 보도의 언저리

    ◎북한/「세습」 싸고 권력투쟁 표면화/수구­개혁파간 알력 심화된듯/반발하는 일부 젊은장교 숙청도 시사 북한이 최근 김일성­김정일부자 세습체제에 반대하는 세력이 실재하고 있음을 방송보도를 통해 최초로 시인한 것으로 19일 밝혀졌다. 이날 통일원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15일 평양방송을 통해 발표한 「김정일에 대한 조선인민군 제525부대 장병들의 맹세문」에서 『오늘,현대수정주의자들과 기회주의자들이 미제를 비롯한 제국주의자들의 부추김을 받아 혁명의 원칙을 버리고 수령의 지휘와 당의 영도적 역할을 부인해 나서며 군대에 대한 당의 영도를 떼어내려고 책동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즉 이는 소련의 개혁노선을 추종하는 현대수정주의자들과 반체제세력들이 미국을 비롯한 외부세력의 책동을 받아 북한의 지도이념인 주체사상을 부정하고 김일성과 김정일의 지휘와 지도를 부인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군에 대한 김정일의 지배를 거부하는 움직임이 군내부에서 빚어지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 볼수 있다. 북한방송의 이같은 보도는 북한이 이제까지의 반당­반체제세력의 책동을 제때에 폭로·분쇄하겠다는 사실을 방송할 때 통상적으로 사용해 왔던 「과거형」의 기술이 아니라 「오늘」이라든지 「현정세」라든지 하는 「현재형」의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에서,다시말해 반체제세력 및 반김부자세력의 존재와 그들이 저항움직임이 후계체제가 완료됐다고 대내외에 천명하고 있는 오늘 이 시점에 벌어지고 있음을 시사했다는 점에서 북한의 복잡한 내부사정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또한 김정일의 권력세습과 관련,군부장악이 앞으로 세습체제의 안정성을 가장할 가능 중요한 변수로 꼽히고 있음을 감안할때 군부내에 김의 군지도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있다는 사실 역시 주목할만 하다. 이와 관련,통일원의 한 당국자는 『북한내부의 권력투쟁 움직임이 구체적으로,그리고 현재 진행형으로 보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는 북한의 내부사정이 최근들어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고 있음을 시사하는 동시에 제4차 남북 고위급회담의 중단에서 알수 있듯 현재의 남북대화도 이같은 북한사정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또 여기서 말하는 반체제·반김부자 세력의 움직임이란 주체사상파와 개혁파의 갈등,또는 김일성파와 김정일파의 대립,김정일의 군부장악에 대한 젊은 장교들의 반발 등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조선인민군 제525부대 장병들의 맹세문」에는 군장병들이 김정일을 미래의 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모실 것을 맹세하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또한 처음인 일로서 이같은 충성의 맹세는 북한인민군 전부대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맹세문은 현재의 인민군 최고사령관은 김일성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데 이는 지난 13일 판문점에서 열렸던 제459차 군사정전위원회에 참석했던 한 북한측 장교가 김정일을 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지칭했다는 일부 외신 보도들이 잘못됐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 외언내언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보통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그렇다고 정신이상자는 아닙니다. 우리가 보기에 그런 증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상한 구석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이 사람은 1940년 소련땅 오케얀스카야에서 「슈라」란 소련이름으로 태어났는 데도 1942년 백두산기슭에서 태어난 것으로 자신의 출생을 조작했습니다. 이것부터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 사람은 일도 열심히 하지만 놀기도 좋아합니다. 매주 주말이면 호화 파티를 밤새열어 자신이 겉으로는 경멸해 마지않는 자본주의식 방탕놀음을 즐기곤 합니다. 경음악밴드에 맞춰 트롯,디스코 등을 추는가 하면 블랙잭·마작같은 도박도 즐깁니다. 술은 물론 수입 위스키나 코냑이지요. 「하숙생」 「동백아가씨」 등 우리의 유행가를 즐겨 부르기도 합니다. 거짓말같은 얘기지만 이 파티에 직접 참석했었던 한 영화인 부부의 증언이니까 믿어야겠지요. ◆이 사람의 과대망상은 알아줄만 합니다. 88 서울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에 심사가뒤틀렸던지 그 이듬해 7월 평양에서 제13차 세계학생 청소년축전을 벌였는데 이 잔치판에 46억달러라는 엄청난 외화를 낭비했다고 합니다. 그뿐 아니지요. 인구 2백만명 남짓한 평양에 15만명을 수용하는 동양 최대의 경기장을 건설했고 1백5층이라는 세계 최고의 호텔도 짓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경제는 빈사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이 사람이 북녘 동포들에게 베푸는 시혜도 없지 않습니다. 2월16일 생일 때이지요. 이날 한가구당 쌀 7백g,닭고기나 돼지고기 1천g,생선 5백g,3홉들이 소주 한병씩이 특별배급 되니까요. 또 생일날과 그 이튿날인 17일은 공휴일입니다. ◆이 사람이 최근 자신의 세습을 반대하는 반혁명분자들을 숙청했다고 합니다. 여러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만 50세가 되는 92년에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북한의 권력을 완전히 장악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리가 간여할 것은 아니지만 북녘 동포들을 생각하면 가슴 아픈 일 입니다. 이래도 이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겠습니까.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