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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사 「김구 특무대」 해체 성명서 발굴

    ◎항일투쟁하다 광복후 정치라이벌 제거 해방정국에서 테러는 하나의 정치수단으로 악용됐다.애국애족을 외친 숱한 청년단체들이 실제로는 온갖 명분을 내세워 반대파 또는 정치적 라이벌들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같은 테러단체의 뿌리는 일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독립운동의 한 방법으로 일본인·친일파를 제거하는 데 앞장선 테러단체는 해방 이후 좌우 대결에 그대로 이용된다.그러나 테러단체가 비밀결사 조직으로 유지돼온 특성 때문에 이들의 실체를 알려줄만한 기록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시피한 실정이다.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이같은 상황에서 해방 직후 크게 활약한 한 테러단체의 성격·구성들을 분석할만한 자료를 최근 발굴했다. 워싱턴의 미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NARA) 슈트랜드분소에 보관된 「주한미군 군사실 문서」더미에서 찾아낸 이 자료는 「김구특무대」의 성명서이다.「김구특무대」는 광복 직후부터 악명을 떨치다가 45년 11월29일 김구의 지시로 해체하면서 이 성명서만을 남겼다. 「김구특무대」는 성명서에서『민족 천년의 운명을 좀먹으려는 역적의 무리들에게 향하여 단연코 일도양단 할 숙청의 칼을 뽑은 것』이라고 활동목적을 밝혔다.이어 회원숫자를 수백명이라고 내세운 뒤 『회고하면 조국광복 일념에서 중명을 띠고 내지에 파견됐다(중국의 임시정부에서 한반도로 파견됐다는 뜻)』고 해 일제 때 조직됐음을 분명히 했다. 마지막으로 『자주독립의 절대적 명제를 완수하기 위해 질풍신뢰(질풍신뢰)적 숙청과 응징으로 우리 특무대의 빛나는 임무의 막을 내릴 것』이며 『도적 일군의 시산혈하속에서만 피흘린 선배의 원혼은 비로소 고이 잠들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 좌우익 대립 극심(새로쓰는 한국현대사:9)

    ◎반탁대회 성공하자 김구 “과도정부 추진”/좌익 찬탁 급선회후 전국 암살·테러 잇따라/반탁운동 격렬… 서울 철시·군정종사원 파업/좌우 4개정당 “임정 세워 국난 수습… 대단결” 추구 모스크바삼상회의가 결정한 「민주주의 임시정부 수립」과 「5년이내 신탁통치」는 이 땅에 남긴 것이 없다.그런 뜻에서 회의 자체가 우리에게 대단한 역사적 의미를 던져주지 못했다.다만 이를 기화로 남북의 각 정치세력은 주도권잡기에 혈안이 돼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만다.일제 유산 처리는 뒷전으로 밀린채 좌우익 대결구도만이 전면에 떠올랐던 것이다. ○군정청 “가두시위 훌륭” 1945년 12월27일 「모스크바 결정」이 전해지자 38선 이남지역의 세밑 정국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었다.가장 강력하게 반발한 쪽은 김구를 중심으로 한 중칭(중경)임시정부 세력이었다.중칭임정측은 28일 「신탁통치반대 국민총동원위원회」를 결성,4대국 결정에 대항해 시위와 파업을 벌이라고 백성에게 직접 촉구했다.이날 밤부터 서울시내에는 「반탁」벽보가 곳곳에 나붙고 산발적인 시위가 벌어졌다.가두연설을 한 몇몇 인사는 미 헌병에 의해 연행되기 시작했다. 김구는 「신탁통치에 대한 비협조」를 선언하고 나섰다.그는 선언문에서 『한반도는 유엔이 규정한 신탁통치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4대국 신탁통치는 ▲민족자결을 바라는 민족 염원에 어긋나며 ▲제2차세계대전 중 영국이 되풀이 약속한 내용과 다른데다 ▲끝내는 극동 평화를 깨뜨릴 것이라는 주장이었다.김구는 이 내용을 4개국 원수들에게 전달하라고 미군정청에 요구했다. 29일에는 각 정당·사회단체 대표자회의가 열려 중칭임시정부와 청년단체들이 긴밀하게 협조,조직적인 반탁국민운동을 벌이기로 결정한다.좌파인 조선인민공화국(인공)중앙인민위원회와 조선인민당도 이날 「신탁통치 배격」담화를 발표해 반탁 입장을 표명했다. 이날부터 서울거리는 철시했고 미 군정청에 근무하는 한국인들도 총파업을 선언,집단결근하고 따로 반탁 가두시위를 벌였다.이같은 분위기에 놀란 미군정청은 이날 하오8시부터 헌병을 제외한 미군 병사와 민간인의 외출을제한하는 일종의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30일에는 국민총동원위가 「국민행동강령」발표를 통해 「중칭임시정부 절대 수호」와 「외국군정의 철폐」를 호소한다.이날 한국민주당 수석총무 송진우가 암살된 것도 그가 모스크바삼상회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국민총동원위는 곧이어 31일 하오2시 서울시민반탁대회를 열었다.당시 중앙신문(좌익지로 뒤에 찬탁으로 선회,46년 9월 미군정에 의해 폐간됨)은 대회상황을 「수만명의 남녀노소가 구름같이 모여들어 탁치반대 깃발을 들고 만세를 부르며 질서정연하게 걸어갔다」고 보도하고 『기미만세(3·1운동)때를 연상케 하는 우리 민족의 항쟁표시』라고 평했다.하오4시30분쯤 끝난 이 대회는 질서정연했고 비폭력적이었다. 미군정청 보고서도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격렬한 모습이었다.그러나 호스로 물을 뿌리는 미군장교나 미국인들에게 이상하리 만큼 적의를 보이지 않았다.폭력이 없었다는 점에서 그 시위는 훌륭했다』고 기록하고 있다.군정청이 추산한 시위 참가자는 5만∼7만5천명이었다. 대회 성공에 고무돼서인지 김구는 46년 1월4일 중칭임시정부를 강화해 과도정권을 수립한다고까지 선언한다.국민총동원위가 주최한 대규모 반탁집회가 1월12일 한차례 더 열린데 이어 학생들의 반탁시위가 줄을 지었다.반탁운동은 전국적 범위의 저항운동으로 전개돼 가고 있었다. ○북은 소 지령따라 찬탁 우익세력이 반탁운동의 주도권을 잡고 민심을 이끌자 남쪽의 조선공산당도 1월3일 서울운동장에서 「탁치반대민족통일촉성시민대회」를 연다.그러나 이 대회는 도중에 찬탁으로 성격이 변질됐다.조선공산당의 태도 급변은 물론 소련의 지령에 의한 것이었다.소련군 민정사령관 로마넨코는 45년 12월28일 박헌영을 평양으로 불러 모스크바 결정을 따르라고 직접 지시한다.5일만에 서울로 돌아온 박헌영은 이 대회를 「모스크바 결정 지지대회」로 둔갑시킨다.이어 인공 중앙인민위원회도 모스크바 결정을 지지하고 나섰다. 엄밀한 의미에서 당시의 대립은 「반탁」대 「찬탁」이 아니라 「반탁」대 「모스크바 결정 지지」였다.즉 「찬탁」으로 분류된 세력은 「신탁통치를 기꺼이 받아들인다」기 보다 모스크바 결정에 포함된 「민주주의 임시정부 수립」에 더 비중을 뒀다.어쨌든 조선공산당이 「찬탁(모스크바 결정 지지)」으로 급선회하면서 남쪽의 정국은 아수라장이 됐다.「찬탁은 좌익,반탁은 우익」이란 등식은 모든 가치 평가기준을 압도했다. 좌익이 찬탁으로 돌자 전국에서 테러행위가 잇따랐다.1월12일 서울에서 찬탁 유인물을 돌린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회원 3명이 납치됐다.또 전북 전주에서는 2월8일 아침 인민위원회 회원이 죽음을 당했는데 곁에는 「신탁통치를 찬성하거나 우리 한국의 독립을 방해하는 반역자는 한국의 독립을 위하여 죽음을 당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경고문이 놓여 있었다. ○좌우 중간파 태동 계기 이 와중에서 정국을 주도하는 좌우익 4개 정당이 뜻을 합쳐 민족단합을 추구하는 움직임을 보여 그나마 한가닥 희망을 던져줬다.한민당·국민당·조선공산당·조선인민당의 대표들이 1월7일 회담을 열어 공동성명을 낸 것이다.이 자리에는 중칭임정과 인공측에서도 옵서버로 나왔다.4당은 『자주독립과 민주발전을 원조한다는 모스크바삼상회의의 정신을 전적으로 지지하며 신탁통치 문제는 장차 수립될 임시정부에서 해결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이어 『암살과 테러활동은 민족단결을 파괴하며 국가독립을 방해하는 자멸행동』이라고 비난하고 이를 중지할 것을 호소했다.중칭임시정부가 다음날 「4당 합의」를 공식지지하자 민족의 기대는 더욱 커졌다. 그러나 희망은 곧 무산됐다.이승만이 7일 전에 없이 강경한 반탁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한민당과 국민당이 8일 당대표들이 서명한 4당합의를 전면 부정하고 나섰다.비록 4당합의는 우익정당들의 번복으로 깨졌지만 이 때 합의한 「선 임시정부 수립,후 신탁통치 해결」원칙은 좌우합작과 통일정부수립을 목표로 한 제3세력,곧 「중간파」를 태동시켰다. 그나마 좌우연합의 기대를 걸게 한 4당합의가 깨진 뒤 좌우익은 각각 자체 기반 확보에 열을 올렸다.이는 2월1일 중칭임정의 「비상정치회의주비회」와 이승만 계열인 「독립촉성중앙협의회」가 합쳐 「비상국민회의」를 결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비상국민회의는 뒤에 미군정청의 행정자문기관 성격을 띤 「남조선국민대표민주위원」으로 변모한다.이어 조선공산당을 비롯한 좌파 29개 정당·사회단체들이 이달 15∼16일 민주주의민족전선 결성대회를 열어 우파와 맞섰다. ○“반탁” 조만식 연금당해 한편 북쪽에서는 김일성주도 아래 일사불란하게 모스크바 결정을 지지하는 분위기를 조성해 나갔다.46년 1월3일 평양에서 대규모 지지결의대회를 여는 등 주민여론을 유도하는 동시에 한쪽에선 반대파들을 어김없이 숙청했다.평남인민정치위원회 조만식의장이 1월5일 열린 긴급회의에서 「신탁통치 반대」발언을 하자 그를 고려호텔에 연금시켰다.반탁을 외치는 시민·학생들에 대한 시베리아 유형이 시작됐다. 모스크바 결정을 실행하기 위한 실무회담인 미소공동위원회 1차회담은 46년 3월20일 덕수궁에서 열렸다.모스크바 결정이 내려지고 미소공동위 개최까지의 석달동안 이땅의 정치세력들은 뭉치지 못했다.민족의 통일·독립을 4대국에 강력히 요구하기는 커녕 사분오열돼 정파 이익찾기에 급급했던 것이다.결국 미소공동위는 결렬되고 남북에 주둔한 미·소군은 단독정부 수립 계획을 구체화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 오진우는 누구/항일유격대 출신 혁명 1세대

    ◎세습체제 구축 「절대적 후원자」 25일 새벽 사망한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은 북한 군부를 장악해 온 권력서열 2위의 핵심인물이다.그는 김일성의 항일유격대원 출신 혁명 1세대로 김정일 후계체제를 확립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담당한 「절대적 후원자」였다. 오진우는 1917년 함경남도 북청에서 태어났다.어린 시절을 만주 간도에서 보낸 그는 33년부터 김일성을 따라 항일 빨치산 투쟁에 나섰으며 옛 소련 보병학교와 육군대학에서 군사학을 배우기도 했다.6·25전쟁 때는 특수부대인 766유격부대장으로 참전했고 61년 당 중앙위원,62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올랐다.67년 3월에는 김정일이 박금철 등 갑산파를 숙청하는데 돌격대로 나서 대장승진과 함께 인민군 총정치국장으로 영전했다.오는 이때부터 책략가로서 김정일의 반대파 숙청에 앞장서면서 출세가도를 달렸다.67년1월 군당 제4기4차 확대회의에서 민족보위상인 김창봉과 대남사업총책 허봉학·총참모장 최광 등 군수뇌부 대숙청을 진두지휘한 뒤 군참모장으로 승진했고 76년5월 인민무력부장 최현을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격상시키면서 인민무력부장을 맡았다.이후 오는 김일성과 김정일로 이어지는 북한 권력 구조에서 20년이 넘게 자리를 유지했다.92년 4월에는 원수에,93년 4월에는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에 올라 실질적인 3인자 지위에 있던 그는 김일성 사망후 권력서열 2위로 뛰어올랐다.특히 김일성 장례식에 김정일과 함께 나타남으로써 북한의 권력 승계작업이 그의 전폭적인 지지속에 진행되고 있음을 과시했다.그러나 그는 지난해 7월 16일 평양 금수산의사당에서 거행된 김일성사망 1백일 중앙추모회에 참석했을 때 한쪽 다리를 저는등 부쩍 건강이 악화된 모습을 보였다.
  • 옐친은 말보다 행동을(해외사설)

    옐친 대통령이 연두교서를 발표하면서 비교적 건강하고 확신에 찬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준 것은 다행이다.그는 최근 상당기간 브레즈네프 말기때 같은 처신을 해온 게 사실이다.장기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더니 얼마전 CIS정상회담에서는 비틀거리며 주위사람들에게 부축받는 모습을 보여주었다.그의 건강에 대해 갖가지 억측들이 제기됐다.국가권력이 대통령 1인에게 집중된 나라에서 대통령의 건강에 이상이 있다면 보통일이 아니다. 이런 뜻에서 이번 연설에서 그가 건강한 모습을 보여준 것은 의미가 있다.하지만 지난 수개월간 그를 둘러싼 억측들을 불식시키고 국가의 앞날에 건설적인 청사진을 제시하기에 이번 연설은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다.연설 전에 대통령의 개혁파 보좌관들은 그가 체첸사태에 대해 비판적인 평가를 내리고 나아가 인플레 억제와 경제안정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할 것이라고 예고했다.그러나 실제 연설내용은 그렇지 못했다. 물론 군의 개혁필요성과 체첸침공시 작전상의 문제점등을 지적한 것은 의미가있다.그는 몇몇 사람들이 자기를 속였다는 말도 했다.하지만 연설을 전후해 그가 실제로 취한 조치는 자기를 속인 사람 가운데 한명인 매파 올레그 소스코베츠 제1부총리를 체첸특사로 임명한 것뿐이다.국민들을 진정으로 설득하려면 대통령은 무엇보다도 군에 대한 숙청을 실시해야한다.그리고 그 첫번째 과제는 파벨 그라초프국방장관을 내쫓는 일이다. 따라서 이번 연설에서 그라초프 경질에 대해 언급치 않은 것은 유감이다. 경제분야에서도 구체적인 청사진이 없다.개혁과 사회보장 확충을 동시에 약속해 국민들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그는 최근 사유화추진위원장같은 중책에 보수파인사를 앉혔다가 국내외의 반응이 좋지않자 금방 갈아치우는등 갈팡질팡하고 있다.IMF관리들도 러시아정부에 대해 이제는 말뿐인 시장개혁 약속이 아니라 가시적인 정책으로 보여줄 것을 주문한다. 국내 개혁세력들도 마찬가지 주문을 한다. 이제 말보다 행동이 필요한 때다.
  • 옐친,군내 반대세력 제거 박차/러군개편 의도와 방향

    ◎「체첸 책임」 빌미 그라초프체제 강화/전투력 향상보다 「충성심 고양」 포석 옐친 대통령이 16일 연두교서에서 체첸작전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 군대개편을 공언함에 따라 러시아군의 대규모 조직 및 인사개편이 뒤따를 전망이다.그러나 이 군개편은 전투력향상을 목표로한 순수한 의도에서라기보다는 옐친대통령­그라초프국방장관 라인을 보다 공고히하기 위해 군내 반대세력을 숙청하는 계기로 이용될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우선 지난주 단행된 국방차관 3명에 대한 예편(러시아의 국방장·차관은 소련건국이래 모두 현역장성),보직해임 예가 이 범주에 든다.그라초프 장관과 불화가 심한 보리스 그로모프 차관이 한직인 외무부의 독립국가연합(CIS) 협력국장으로 전보된데 이어 게오르기 콘드라티예프차관,마트베이 부를라코프차관이 모두 해임된 것. 발레리 미로노프차관도 조만간 다른 한직으로 밀려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콘드라티예프,미로노프 두 차관도 장관과 사이가 좋지 못했다. 재미있는 것은 여기에 그라초프의 심복으로 분류되는 부를라코프를 「끼워넣은」것.그는 동독주둔 러시아 서부군사령관때 탱크등 각종 화기를 마구 팔아치워 착복한 혐의로 체첸사태 발발직전 여론의 주표적이 됐던 인물이다.반대파만 골라낼 경우의 군내 반발을 감안해 동반퇴임시켰다는 분석들이다. 반면 그라초프의 측근으로 분류된 미하일 칼레슈니코프 참모총장은 상당히 중용될 인물로 분류되고있다.군개혁의 핵심사항중 하나인 총참모부의 국방부로부터의 분리가 실행에 옮겨질 경우 그라초프·옐친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는 인물인 그가 그대로 옮겨앉을 것이란 전망이 유력하다. 군개혁계획에서 핵심추진사항중 또하나는 공수부대 「길들이기」.현재 러시아군에서 제일 정예부대중 하나가 바로 이 공수부대인데 그라초프장관에게 잘 순종하지 않은 것도 바로 이들이다.체첸사태 초기 이 정애부대를 투입시키지 않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게 정설이다.체첸침공이 결정된 뒤 예브게니 포드콜진 공수부대 사령관이 소수정예 공정여단을 투입할 경우 4∼7시간이면 큰희생 없이 작전을 끝낼 수 있다고 보고했으나 묵살당한 것으로 알려져있다.결과적으로 작전은 소모전 양상이 돼 엄청난 민간인 희생까지 내게된 것이다.이로 인한 앙금으로 포드콜진장군은 한 모임에서 그라초프와 악수를 거절했다는 설까지 있다.이러한 공수부대의 화력을 대폭 줄여 일반육군사단의 예하부대로 편입시키는 내용이 포함돼있다는 것이다.그나마 전투력을 제대로 갖춘 정애부대 하나가 해체되는 셈이다. 결국 체첸작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라초프 장관의 입지는 더 강화된다는 결론이다.그라초프는 언론,지식인등 이곳 여론에서 가장 인기 없는 인물로 꼽히는 한명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옐친대통령이 계속 그를 버리지 않는 것은 결국 향후 정국방향과 무관치 않을 것이란 분석들이다.그리고 그 방향은 2년여전까지 추진됐던 개혁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인다.
  • 러군,체첸수도 무차별 폭격/폭탄 분당 3발투하… 20여명 사망

    ◎러 부사령관 작전지시 거부 “파문” 【그로즈니 AFP 로이터 AP 연합】 체첸공화국의 수도 그로즈니시에 대한 러시아군의 대대적인 포격및 공습이 감행되고 있는 가운데 22일 그로즈니에서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최소한 20명이 사망했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 그로즈니에 머물고 있는 한 서방기자는 러시아 공군기들이 시내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폭탄을 투하하고 있다고 전하고 미사일 수기가 시내 레닌스키 구역에서 청소작업을 하던 시민들에게 그대로 떨어지기도 했다고 전했다. 목격자들은 그로즈니 중심가와 주거지역에 분당 3발의 폭탄이 떨어지고 있다고 전하고 러시아측의 이같은 무차별 포격및 공습으로 적어도 20여명이 숨졌다고 전했다. 목격자들은 또 러시아 공군기 1대가 그로즈니 중심가인 크라스니 프론토비코프거리에 적어도 2발의 폭탄을 투하,차량 3대가 불에 타고 적어도 5명이 희생자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슈메이코 러시아 연방회의(상원) 의장은 이날 그루지야내 압하스 자치공화국이 체첸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있다고 비난하고 정부에 대해 압하스 지역에 배치한 3천명의 병력을 철수시키라고 촉구했다. 슈메이코 의장은 압하스 동부 코도르 지역에 체첸 전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한 2개 훈련기지가 세워졌다고 덧붙였다. 한편 파벨 그라초프 러시아 국방장관은 체첸공화국 작전을 책임지고 있는 알렉세이 미튜힌 북파프카스 군구사령관,블라디미르 치린딘 부사령관및 블라디미르 포타포프 참모장을 해임했다고 이타르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타스통신은 게오르기 콘트라티에프 국방차관및 체첸공화국 작전권을 맡으라는 그라초프 장관의 지시를 거부한뒤 사퇴서를 제출한 에두라르트 보로보프 지상군 부상령관의 사임도 수락할 것이라고 전했다. 고위 지휘관들에 대한 이번 해임조치는 지난 92년 구소련 붕괴에 따른 러시아의 독자적인 군편성 이래 최대규모의 군지휘관 숙청으로 체첸에 대한 군사작전을 둘러싸고 군부내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
  • 북서 유행하는 은어·신조어/고려대 박영순교수 연구논문 발표

    ◎번지없는 주막=주석궁/개꼬리표=당원증/빠닥새=당간부/가두녀성=전업주부/천리마체=고딕체 해방이후 체제와 이념을 달리해온 남과 북의 언어도 상당히 바뀌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북한에서 최근 유행하는 말은 어떤 것이며 똑같았던 말이 어떻게 변해있을까.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가 서울 타워호텔에서 최근 개최한 「김일성사후의 북한」주제의 국제세미나에서 고려대 박영순교수가 발표한 「남북한 언어분화와 그 극복방안에 대하여」라는 논문은 이같은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고 있다.박교수의 논문에서 밝혀진 내용중 눈길을 끄는 부분을 간추린다. 남한의 선술집에서 곧잘 불리는 유행가 제목인 「번지없는 주막」은 북한에서는 번지가 있는 일반 주민들의 집과는 달리 번지가 없는 「김일성이 살고 있는 궁전」을 가리킨다.「가축돈사」는 멧돼지처럼 살찐 김일성을 빗대 김일성별장을 일컫는 말이며 「1호 대상자」는 김일성이 양민을 괴롭힌 죄인이기에 숙청대상 1호라는 뜻이다.「김인백 동무」는 김일성이 수많은 정적과 양민을 처형,학살한 것을 비유해 「인간백정」을 뜻하는 말이다. 또 때와 장소를 가리지않고 아무데서나 인용되는 김일성 교시를 비꼬는 말이 「약방의 감초」,「개꼬리표」는 당원들의 목에 걸고 다니는 당원증,「까투리새끼들」은 김일성을 싸고 도는 핵심분자를 지칭했으나 최근에는 김정일과 그 추종세력들을 일컫는 말이 됐다.당간부나 행정간부들을 멸시하는 말로서 「빠닥새」가 쓰인다. 생활고를 비관하는 은어도 상당히 많다.「3백g 벌었다」는 아기를 낳을 경우 3백g의 식량배급을 받을 수 있다는데서 연유한 것으로 산모에게 사용하는 축하 인사말이다.북한 주민들이 식량부족으로 거의 죽을 쒀 먹어 죽을 먹을 때 나는 소리를 빗댄말이 「철럭철럭」이고 「철럭철럭했어」하면 식사했다는 의미로 사용된다.「국수추렴하자」는 말은 결혼식이 있는 집에 가서 회식하자는 말로 주로 농촌에서 쓰이고 있으며 「대용쌀」은 배추·무·시래기를 의미한다.「신선주」는 인삼주가 값이 비쌀뿐아니라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다는데서 나온 말이며 「대패밥 고기」는 1년에 한두번주는 고기를 그나마 양을 줄이기 위해 대패밥처럼 얇게 썰어주는 것을 비꼰 것이다. 북한은 신조어도 많이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직장에 다니지않고 가정에 있는 여성을 가리켜 「가두녀성」이라하고 인민들의 혁명적 기상을 의미하는 말은 「천리마」이다.카네이션 꽃은 「향패랭이꽃」,헬리콥터는 「직승기」,평야지방은 「벌벙」 고딕체는 「천리마체」「경제 깡빠니아」는 당면하여 제기된 경제파업을 짧은 시일안에 수행하기 위한 투쟁이란 말이다.혁명실천과 동떨어진 글공부를 하는 사람은 「글뒤주」이고 공부를 하고도 그것을 써먹지 못해 일할줄 모르는 사람을 일컬어 「글바보」라고 한다.우리 사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생소한 말도 많은데 아둥바둥이란 뜻의 「아글타글」 쉬엄쉬엄은 「씨엉씨엉」등이 있다.
  • 정상진 전북한 문화선전성 부상(인터뷰)

    ◎“북한엔 「인권」이란 말이 없어요”/성분불량자 3백만 국경서 감옥생활/김일성사후 반김정일집단 결속 조짐 전북한 문화선전성 부상 정상진씨(정상진·76·카자흐 알마아타 거주)는 『북한에는 「인권」이라는 말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라고 북한의 인권상황을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28일의 「북한민주화와 인권회복을 위한 서울대회」에 참석,「대통령에게 드리는 메시지」를 낭독한 정씨는 이번 대회를 공동주최한 「조선민주통일 구국전선」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다. 한·일합병이후 구소련으로 망명한 부모를 따라 간 연해주에서 태어나 45년 8월 소련군 태평양함대 해병대 특무소좌로서 북한 웅기·나진·어대진 해방전투에 참전했다가 「소련군으로서 조선인은 북조선에 남아 김일성을 도우라」는 지시를 받고 북한에 남았다. 이후 평양문학예술총동맹 부위원장을 지내고 한국전쟁이 있기전까지 김일성대 노문학부 부장으로 있었다.전쟁때 인민군 병기총국 부국장(상대좌)을 지냈으며 52년부터 문화선전성 부상으로 있다가 55년 숙청당해 구소련으로57년 망명하면서부터 반김일성체제 타도에 주력하고 있다. ­언제 숙청당했나. ▲55년 12월 월북한 남한의 문학예술인들을 비호했다는 이유때문이었다.당시 단편문학의 대가 이태준·김남천·임화,그리고 작곡가 김순남씨,무용가 최승희씨 등이 그런 사람들이었다.당에서는 이들을 「퇴폐 부르조아 문학예술가」라며 신랄하게 비판하는 터였으나 나는 휼륭한 사람들이라 생각,이들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었다.작곡가 김씨가 65년 숙청당한 것을 비롯,모두 숨졌으나 나는 지금도 그들을 사랑한다. ­북한의 인권상황은. ▲정확한 실상은 김정일을 비롯한 북한집권층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른다.그러나 여행허가증 없이는 마음대로 다닐 수가 없어 친척집 방문은 물론 딸 결혼식에도 참석못할 정도다. 작업장,학교 등 어느 곳을 막론하고 매일 일을 끝낸 뒤에는 반드시 「주체사상 연구시간」을 한시간씩 갖도록 하고 있다. 지난번 김일성 장례식때 모든 인민들이 대성통곡하는 모습을 봤을 것이다.이것은 사실 울지않으면 의심받기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우는 것으로 봐야한다. ­강제수용소는 얼마나 되는가. ▲20여만명에 달하는 민주인사들이 함경북도 온성·회령·경성군,함경남도 요덕·정평·덕성군,평안남도의 개천·북창군,평안북도의 용천·영변군,자강도의 희천·동신군 등의 특별독재대상구역이라는 수십 곳의 강제노동수용소에 갇혀있다. 이와함께 사회성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북한인구의 7분의 1에 해당하는 3백여만명의 주민들이 압록강,두만강 일대의 집단농장에 수용돼 감옥생활을 하고 있다. ­상황이 이토록 어렵다면 투쟁을 왜 하지 않는가. ▲공개적으로 김정일을 비난한다든지 반김정일투쟁을 하다 적발되면 강제수용소 수감 등 죽음으로 연결되기때문에 겉으로는 「위대한 동지」하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다. ­북한에도 김정일체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고 본다.실제로 지난93년 10월에 김정일체제에반대하는 세력이 보낸 것으로 보이는 발신인이 표시안된 한통의 호소문을 받았다. 북한의 인민들이 탄압받고 있으나 김일성·김정일부자 세습제도를 없애지않고는 민주·자유를 말할 수 없으니 해외에 나가있는 사람들이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최근에는 김정일에 반대하는 그룹들이 활동하고 있다고 들었다. 정씨는 『김일성이 죽음으로써 북한체제는 붕괴되기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국민과 정부가 한 뜻으로 북한의 열악한 인권상황을 널리 세계에 알려 통일을 촉진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을 맺었다.
  • 강상호 전북한 내무성 부상(인터뷰)

    ◎“북 세습체제 무너뜨려야 통일 가능”/매스컴통해 국제적인 반북여론 형상 긴요/식량 등 경제원조땐 군비확장 악용 소지 『김정일 북한체제의 실상을 소상히 파헤쳐 한민족이 단결해야 통일도 앞당겨질 수 있습니다』 북한정권 수립후 김일성에게 숙청당해 러시아로 망명했던 전 북한 내무성 부상 강상호씨(85)는 28일 열린 「북한민주화와 인권회복을 위한 94서울대회」에 앞서 김정일체제 붕괴를 위해 모든 국민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서 열리는 이번 대회의 성격은. ▲서울대회는 북한체제에 반대해 탈출한 망명인사들로 구성된 「구국전선」의 미국·일본·러시아 등의 지부회원 3백여명이 지난해 10월 워싱턴에서 「북한민주화와 인권회복을 위한 대회」를 가진데 이어 2번째 대회이다.서울에서 대회를 갖는 것은 김일성사후 변화하는 북한 정세에 맞춰 북한에 민주화바람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해외 인사들 뿐만 아니라 한국내 여러 사회단체들의 참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북한에서의 김정일 위치는. ▲그는 머리가 둔하고 영도력이 없다.김정일에 반대하는 삐라가 김일성 장례식이후 평양중앙거리에 뿌려졌다는 점은 인민들이 김정일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의 한 단면이다. ­남북통일의 방향은. ▲김일성이 유언으로 남긴 적화통일을 김정일도 그대로 지상목표로 삼고 있는 만큼 김정일 체제의 실상을 폭로,세습왕조체제를 무너뜨리고 인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제도를 세운뒤라야 통일이 될 수 있다.이를 위해 한국인들은 출판·방송등을 이용,국제적인 반왕조세습체제 및 개인숭배 반대여론을 형성하는게 중요하다. ­북한에도 반체제 활동이 있는가. ▲정확한 수와 규모는 파악되지 않지만 반체제 활동을 하는 단체들이 있다.또 이들 단체는 해외의 반북단체들과 극비리에 연락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김일성사후 북한의 변화는. ▲러시아 하바로프스크등지에서 일하는 북한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볼 때 김정일이 정권을 잡은 후에도 북한은 김일성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나 주민들은 김정일에 강한 불만을 갖고 있다.그를 영도자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김정일정권은 어느 정도로 안정적인가.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처 김성애와 아들 김평일을 지지하는 세력과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있으나 이들은 아직 김정일세력에 대항할 힘을 모으지 못하고 있다.따라서 당분간은 김정일 체제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핵개발 정도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는 않으나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원료는 이미 갖고 있다는 추측과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추측이 2가지로 나누어진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북한이 핵무기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은 높아진다. ­남북통일을 위한 한국정부의 역할은. ▲북한에 식량 등 경제원조를 할 경우 북한이 이를 군비확장에 이용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을 지원하거나 자극하는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 강씨는 자신이 상임공동의장으로 있는 「조선민주통일 구국전선」과 「북한민주화추진협의회」(회장 이연길)가 공동주최하는 이날 대회에서 북한사회의 개방과 주민들의 인권회복을 요구하는 대회사를 하기 위해 지난 26일 입국했다. 러시아에서 태어난 강씨는 45년 구 소련군에 입대,북한에 진입한 소련군이 철수하면서 북한에 남아 조선노동당 당원으로 공산당 생활을 시작,54년 북한 내무성 부상겸 정치국장에 올랐다. 강씨는 그러나 「개인숭배는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공통점이 없다」는 내용의 논문을 내무성 신문인 「내무원」에 게재,혹독한 사상검토를 당한뒤 59년 11월 소련으로 다시 돌아가 김일성부자체제 타도 활동에 앞장서왔다.
  • 러 망명 전북고위간부 20명 내한/북인권회복촉구대회 참가

    해방뒤 북한 김일성에게 숙청당해 옛소련으로 망명했던 북한 전직 고위간부들이 서울에서 열리는 「북한민주화와 인권회복을 위한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26일 내한했다. 이날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한 망명인사들은 북한 내무성 부상을 지냈던 강상호씨,전 김책군관학교장 장학봉씨,전 문화선전성 부상 정상진씨,전 김일성대학 부총장 박일씨 등 20명이다. 이들은 오는 28일 강동구 올핌픽파크텔에서 「조국통일민주구국전선」과 「북한민주화촉진협의회」가 공동주최하는 「북한민주화와 인권회복을 위한 서울대회」에 참석,북한사회의 개방과 주민들의 인권회복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할 예정이다. 이날 공항에는 전 남로당 정치국원이었으며 현재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김정일체제를 비판하는 활동을 펴고 있는 「조선민주통일구국전선」 박갑동공동대표등이 나와 이들을 맞았다.
  • 「자본주의 갑부」 등장(최두삼 귀국리포트:7)

    ◎1천억원대의 「10억원호」까지/경제개방 여파… 자가용차도 1백만대 돌파 북경의 어느 술집 뒷마당에서는 귀공자티가 나는 한 중국인과 뚱뚱한 사장타입의 일본인이 각기 차례로 술병을 내던져 깨부수는 괴이한 시합을 벌이고 있었다.수십명의 손님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내 던지는 술병은 대부분 한병에 몇백달러씩 하는 프랑스산 헤네시,나폴레옹 코냑들로 아직 뚜껑도 열지않은 신품들이었다. 이처럼 값비싼 술을 깨버리는 모습을 모두가 안타깝게 지켜보는 가운데 두사람이 각기 75병씩 1백50번째 술병을 내던지고 난후 일본인 뚱보가 『내가 졌다.이제 그만하자』고 손을 들었다. 이 시합은 이곳 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일본인 한패가 돈이 많은듯 거드름을 피우자 이 꼴을 보다 못한 옆자리의 중국인이 『당신이 그렇게 돈이 많다면 나하고 술병깨기 시합을 벌여보자』고 제의해 성사됐다는 것이다. 이 얘기는 액면 그대로 믿기가 어렵다.하지만 요즘 부자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일부 북경사람들중에는 전설같은 이 얘기를 예로 드는경우가 있다. 중국에 부자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새삼스런 얘기가 아니다.최고지도자 등소평이 개혁개방을 추진해오면서 80년대 중반쯤부터 『중국인들을 모두 동시에 부자로 만들수는 없다.우선 능력 있는 사람부터 부자가 되라(선부기래)』는 지시를 내린후부터 부자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들 부자를 만원호라 불렀다.1년에 1만원(원·한화약 1백만원)씩이나 수입을 올리는 세대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그후 만원호는 소득개념이 아닌 재산보유로 바뀌면서 곧 십만원호가 생겨났고 지금은 백만원호(백만원호·약 1억원)라해야 부자 취급을 받는다. 중국에서 제일가는 갑부가 누구인지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중국부자들은 예부터 티를 잘 내지 않으려는 전통을 갖고 있는데다 사회주의를 겪으면서 돈가진 사람들이 천시되고 인민의 적으로까지 규탄받던 때가 바로 엊그제 일이기 때문일 듯하다.그렇지만 경제개발이 가장 앞서가고 있는 광동성 일대 심천 광주 주해등지에서는 최근 1∼2년전부터 억원호는 물론 10억원호(1천억원)까지 생겨났다는 보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중국에서 가장 잘 알려져있는 갑부로는 「붉은 자본가」라는 별명을 가진 영의인국가부주석을 들수 있다.그는 북경에 52층 경성빌딩을 비롯,국내외에 수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 국제투자신탁공사의 소유주다.그는 과거 같으면 숙청 제 1호가 됐을 터이지만 93년 3월에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는 국가부주석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런가하면 천진부근의 대구장이란 마을을 중국내 최고 부자마을로 가꿔낸 우작민은 지금 20년형을 받아 차가운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그는 이 마을에서 공동으로 경영하는 여러 업체의 총수로 연급만도 1백만원이 넘었으나 살인사건을 방조한데다 이 사건을 수사하러온 경찰관마저 감금해버릴 정도로 만행을 부려 체포되고 말았다.하지만 인구 4천명의 이 농촌마을에는 벤츠 볼보등 고급 승용차들만도 3백여대나 굴러 다니고 있어서 『이 정도면 아시아농촌들중에서는 최고부자마을이 아니겠느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부자마을로 가꿔놓은 전설적인 인물이다. 중국에는 이런 부자들 말고도 보통 사람들 중에도 그들 월급과 비교해서는 도저히 이해할수 없을 정도로 돈이 많은 사람들이 많다.한번은 한 한국인 기업가가 중국인 한사람을 고용했는데 며칠후 이 사람이 술 한잔 사겠다해서 따라가 봤더니 술값이 이 사람 월급 6개월분과 같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한국인들중에는 아직도 중국인은 모두 가난하다고 생각했다가 크게 당하는 일이 종종 있다.그 예로 한 한국인 졸부는 101대머리 치료약을 개발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조장광옹을 찾아가 『내가 도와 줄 일이 없겠느냐?』고 거드름을 피웠다가 『당신이 나를 도와주겠다고요? 아니 내가 당신을 도와줄테니 소원을 말해 보시오』라는 면박을 당했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 중국에는 자동차 구입가격이 유난히도 비싸다.한국의 쏘나타급을 사자면 4만∼5만달러가 들고 외국기업과 합작으로 중국에서 제조해낸 차량들도 2만∼3만달러나 한다.이렇게 차량값이 비싼데도 지난 92년말 현재로 자가용이 이미 1백만대를 넘었다고 한다.
  • 중국,보수이론가 숙청 재개/좌파잡지 간부 조사

    ◎강택민,개혁비판에 제동 【홍콩 연합】 중국은 북경의 7대 좌파 잡지들중 최근 국내외적으로 가장 주목받아 왔고 보수색채가 가장 짙은 것으로 평가돼온 「진리적 추구」지 간부들에 대해 숙청을 단행중인 것으로 확인돼 등소평 사망을 전후한 보·혁 대결과 관련,크게 주목된다고 홍콩의 명보와 연합보가 12일 보도했다. 이같은 움직임은 강택민 당총서기가 올해 두번째로 좌파세력들에 대해 대수술의 칼을 들이대는 것으로 강이 상해에서 발탁해온 중국사회과학원 유길 부원장이 「진리적 추구」지에 대한 조사원 조장을 맡아 조사와 숙청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이들 신문은 말했다. 보수세력은 이로써 중앙당사연구실 부주임겸 국사관 부주임 사건손이 등소평 이론을 비판하고 등 지지 원로인 박일파의 「사회주의신관념」을 공격하고 개혁·개방을 비난하다 부주임직에서 지난 5월 전격 해임된 후 올해 두번째로 심각한 타격을 입게됐다고 이들 신문은 말했다.
  • “모택동 주변인물은 모두 아첨꾼”/21년간 주치의 치수이박사회고록

    ◎강청·주은래 마치 하인처럼 복종/모는 호색한… 부하애인 뺏기도 모택동이 실제로는 호색광이자 이기주의적인 폭군이었으며 주은래,강청등 주변 인물들은 모두 아첨꾼이었다고 모를 가까이서 지켜봤던 주치의가 폭로했다. 지난 76년 모택동이 숨질때까지 21년간 주치의였던 리 치수이 박사(74)가 쓰고 미 랜덤하우스 출판사가 곧 발행할 「모주석의 사생활」이라는 회고록의 일부 내용이 2일 뉴욕 타임스에 소개됐다. 리 박사는 그의 책에서 『모는 친구가 없었으며 모든 사람들을 자신에게 복종하는 노예와 같은 대상으로 생각했다』고 주장했다.모와 동등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가차없이 숙청됐다는 것이다. 모의 세번째 부인이었던 강청은 말할 것도 없고 세련된 책략가라는 평판을 받고있는 주은래도 모앞에서는 마치 하인처럼 절대 복종했다고 리 박사는 주장했다. 이 책에 따르면 모는 세가지 이유에서 색을 탐했다는것.첫째는 물론 쾌락때문.모는 자신의 거처인 중남해와 시찰명목의 방문지에서마다 댄스파티를 열었다.파티에는 예술공연단이나 공산당서기국에서 뽑힌 미인들이 참가했으며 모는 이들중 마음에 드는 상대를 한명 또는 여러명씩 침실로 불러들였다. 둘째는 정치적 이유.모의 애인중 한명의 남편은 정치 라이벌인 임표의 부하였다.모는 애인의 입을 통해 임표가 자신을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워놓고있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는 것이다. 그가 색을 탐한것은 이밖에도 섹스가 장수의 비결이라는 도교 믿음에 따른것이라고 주치의는 밝혔다. 모는 또한 성병에 걸려있었으나 자신과 관계한 여성에게 병이 옮겨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주치의가 항생제를 먹을것을 권유하자 자신만 괜찮으면 된다면서 거부했다는 것이다.
  • 김정일 체제 확립 어떤 문제 있나/전문가들의 진단

    ◎“북 이상징후 불구 「승계」는 무난”/10월까지 후계발표 안될땐 “심각한 상태”/김정일 건강·리더쉽 문제… 혼란요인 상존/“「얼굴마담」역 주석직 맡을자 없어 권력구조 관련 진통”/“체제붕괴 위기” 관측은 무리… 냉철히 사태 주시해야 김정일체제가 출범하는데 별 이상이 없을 것으로 정부당국은 보고있지만 북한사태는 여전히 불투명하고 유동적인 측면들이 많다.그동안 포착된 여러가지 이상한 징후들이 사그러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김일성이 사망한지 50일이 넘도록 권력공백상태가 장기화하고 있는 이유는 권력암투 때문일까,아니면 김정일의 건강 때문일까.북한문제전문가들의 분석을 통해 북한의 이상기류를 진단해본다. ○강인덕 극동문제연구소장 권력승계가 늦어지고 있는 이유는 두가지로 나눠 분석해볼 수 있다.그 하나는 권력이양의 미완성단계에서 완성단계로 가는 과정에서의 진통이 뒤따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이다.김일성은 창업주인데다 카리스마가 있어 원로들이 끔쩍하지 못했으나 김일성이 죽은마당에 그 대를 잇는 김정일한테 고분고분하지는 않을 것이다.이같은 징후는 김일성 사망직후 김일성이 남겨 놓은 위대한 업적이 「후계문제의 완결」이라고 선전하다가 최근엔 후계자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해야한다면서 그 당위성을 뒤늦게 강조하고 있는 점에서 감지된다.그동안 외교단지에서 김정일타도전단이 발견됐다든가,중국의 전기침외교부장이 북한의 권력승계지연과 관련,「이상한 일」이라고 언급한 점등 북한의 이상기류를 내비치는 여러가지 징후들이 나왔지만 이런 것들은 크게 의미를 부여할 만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이런 것들 보다는 오히려 뒤늦게 김정일의 승계당위성을 강조하고 나오는 북한언론들의 보도자세를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그러나 김정일체제가 흔들리면 전체가 흔들려 기득권층이 설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에 지도체제는 김정일을 외형적인 수령으로 내세우고 실질적으로는 원로들이 참여하는 집단지도체제의 성격을 띨 가능성이 많다.앞으로 김정일의 입지와 관련해서 주목할 점은 그가 어떤 지위로 권력을 장악하느냐하는 점이다.가령 당을 거느리는데도당총서기에 선출되는 경우와 당제1서기로 선출되는 경우는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 이유는 김정일의 건강에 이상이 있지않나 생각된다.김정일의 건강상태가 어느정도인지는 알 수 없으나 문제가 생긴 것만은 거의 확실한 것 같다. ○김창순 북한연구소이사장 공식적인 권력승계가 늦어지는 걸 보면 당장 승계를 하지못할 이유가 있음이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우선 승계가 늦어지는 이유는 건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관측된다.이달초 중국에 갔을 때 북한사정을 잘 아는 사람으로부터도 김정일의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이 사람은 김정일이 언어신경의 장애로 말도 제대로 못한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또 한가지 승계를 늦추고 있는 요인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아버지 김일성의 탈상문제이다.보통 국상은 3년탈상인데 약식으로 1년을 1개월로 치더라도 10월이 돼야 탈상을 치를 수 있기 때문에 승계시기를 탈상이후로 미루고있지않나 생각된다.이미 오래전부터 반대파를 숙청하는등 권력승계를 위한 준비를 착실히 해온만큼 아버지가 죽었다해서 권력승계를 그렇게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그러나 10월이 지나서도 당총서기나 주석직에 취임하지 않는다면 승계구도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최근 북한에 이상기류가 형성되고 있는듯한 여러가지 보도와 얘기들이 나오고 있는데 대부분 확인이 되지않는 것들이다.이런 것들을 기초로 북한사태를 속단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유완식 통일원자문위원 여러가지 이상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고는 하나 북한 신문이나 방송들의 보도로 봐서 김정일의 권력승계에 이상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정확한 정보가 없어서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여러가지 정황으로 보아 김정일의 건강이 나빠 공식승계가 늦어지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그의 건강이 그런대로 괜찮다면 정권창건일인 9월9일에는 모습을 나타낼 것이다. 그러나 이때도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가 중병에 걸려있거나 심각한 문제에 봉착해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평양 외교단지에서 김정일타도 전단이 발견되고 북한상황이 어려운 시기를 맞고있다는 노동신문의 보도에 대해 상당한 비중을 두는 견해들도 있으나 이것들만 가지고 북한에 이상기류가 형성되고 있다고 보는 것은 무리이다.전단문제의 경우 북한에서도 10∼20명규모의 비밀집회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는만큽 특수지역에서 전단이 뿌려질 가능성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또 노동신문의 보도에도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최평길 연세대교수 김일성이 죽은지 50일이 넘도록 당총비서 취임 등 권력승계를 마무리짓지 못하고 있다는 것는 김정일의 리더십에 중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북한 하부 관료계층도 누구에게 충성을 해야 할지 모르는 혼돈상태에 빠져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과거 5.16혁명이 일어난 뒤 우리 관료들이 한동안 박정희라는 새지도자를 믿지 않았던 것과 유사한 현상이다.말하자면 북한식 「복지부동」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는 얘기이다.이는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이 아직 김의 유업을 잇자는 말만 하고 있을 뿐 대남관계를 포함한 대내외 정책상 아무런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다.제네바 미북 3단계회담에서 핵문제와 관련한 일부 합의가 나온 것은 미국과의 관계개선 만큼은 북한내 어느 정파의 이해관계에도 어긋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그러나 평양 외교단지에서 반금 전단이 살포됐다는 것은 모종의 권력암투 가능성을 사사한다.일부에선 김정일세력이 반대세력을 솎아내기 위해 벌인 자작극이라고 분석하고 있는 모양이나 별로 현실성이 없는 추측이다.김정일이 심각한 건강문제 등으로 제 앞가림도 힘겨운 마당에 그런 데까지 머리를 쓸 여력이 없는 까닭이다.경비가 철저한 외교단지에서 전단이 발견됐다는 사실로 미뤄볼 때 북한의 공안계통이나 외교분야에 있는 인사들이 뿌렸을 가능성이 크다.때문에 김정일이 과연 당총비서나 국가주석직에 오를 수 있을 지는 북한정권 창건 기념일인 오는 9월9일까지 일단 지켜봐야 할 것 같다.설령 김이 이들 직책을 일단 차지한다 하더라도 북한이 처한 대내외적 어려움을 감안할 경우 궁극적으로 김정일체제의 좌절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본다.따라서 북한정권의 불안전성으로 인한 예기치 않은 상황전개에 대비해야 한다.만시지탄이지만 북한이 갑작스럽게 붕괴하는 상황에 실질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종합적인 통일정책이 절실히 요구된다. ○전현준 민족통일연연구위원 반금전단은 북한내부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긴 하나 관련 정보가 너무 불명확하기 때문에 북한권력의 향방과 연관시키에는 무리가 있다.우발적니 사건인지,조직적인 권력암투의 산물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얘기이다.당총비서 취임 등 김정일의 권력승계 공식화 절차가 늦어지고 있는 것은 몇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우선 김정일의 권력장악에는 별문제가 없으나 그의 건강이나 김일성에 대한 추모기간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승계절차를 늦추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만일 도전세력이 등장할 낌새를 보였다면 비상사태를 선포한다든가 해서 권력승계 절차를 빨리 마무리지었을 것이다.그렇게 하지 않는 걸 보면 김이 20여년에 걸친 후계수업과 실무지도를 해온 연장선상에서 이미 권력장악을 한 만큼 굳이 절차적 문제를 서두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또 그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면 초췌한 모습으로 전면에 나타나느니 건강회복후에 등장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고 있을 수도 있다.다른 한편 김이 외부에 나서기 싫어하는 성격이나 건강상의 문제를 감안해 어차피 「얼굴마담」역에 그칠 국가주석직은 혁명1세대나 테크노크라트가운데 한 사람에게 넘겨주려고 하나 정작 이를 맡을 사람이 모두 고사하는 바람에 승계절차가 늦어지고 있을 수도 있다.누가 국가주석직을 맡든 경제난 등 당면한 대내외적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할 경우 속죄양이 될 게 뻔하다는 것을 오진우인민무력부장이나 박성철부주석 등 북한내 핵심인물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김정일이 당총비서를 맡는 것을 전제로 국가주석직과 당총비서직의 분리 등 권력구조에 대한 논의로 후계구도의 정착 시점이 늦어지고 있을 개연성이 크다.김정일이 설령 국가주석을 제3의 인물에게 주더라도 수령의 권위에 크게 금이 가지 않을 뿐더러 주석직은 대외적으로 바쁜 직책이므로 건강이 회복될 때까지안맡는게 낫다고 여기고 있을 수도 있다. 북한체제가 마치 붕괴 일보직전의 불안정한 상태라고 보는 관측에는 우리의 희망사항이 상당부분 개재되어 있는 것 같다.좀더 냉철히 북한내부를 분석해야 한다.
  • “김정일,9∼10월께 전면등장”/일전문가 10인의 북한진단

    ◎“건국일∼창당일에 맞춰 나타날듯”/권력투쟁·건강이상설엔 견해 갈려 북한주석 김일성이 죽은지 2달이 돼가는 데도 김정일의 권력승계 발표는 커녕 오히려 중병설,실각설 등 이상징후와 관련된 소문만 흘러나오고 있다.최근에는 평양외교가에 김정일타도 유인물이 나돌아 한국은 물론 관계당사국들이 북한 권력구조안에 상당한 투쟁이 벌어진 것이 아닌가 촉각을 곤두세우게 하고 있다. 김정일이 중국의 방문초청도 거절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가운데 도쿄신문은 26일 일본의 북한전문가 10인의 견해를 실었다. 다음은 이들 전문가들 견해의 주요 내용. ▲변진일(코리아리포트 편집장)=내가 입수한 정보로는 김정일이 9월9일 북한의 건국기념일까지는 모습을 보이도록 돼있다.노동당총서기 취임은 확실하다.만일 국가주석이 되지 않는다면 몸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된다.권력투쟁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고마키 데루오(소목휘부·아시아경제연구소 동향분석부장)=정치적 이변이 일어났다고는 생각지 않는다.김정일의 등장은 9월9일보다 당창립 기념일인 10월10일이 더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 ▲다케사다 히데시(무정수사·방위청 방위연구소 연구실장)=김일성 사망후 북한군 경비는 강화되지 않고 있으며 평양에 이변이 있다는 징후도 없다.김정일은 1백일간의 거상기간 뒤 가능한한 화려하게 TV 등을 활용해 세계에 데뷔하려 할 것이다.95년 신년사가 그 무대가 될 가능성도 있다. ▲사토 가쓰미(좌등승사·현대코리아연구소장)=추도대회의 보도를 보면 조선중앙TV와 당기관지의 톤이 달랐다.권력내부의 의견대립이 있음은 분명하다.현재 김정일이 북한 최고권력의 자리에 취임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며 권력 내부의 대립은 쿠데타로 발전할 것이다. ▲다마키 모토이(옥성소·현대코리아연구소 이사장)=김정일의 건강상태가 나쁜 것은 틀림없으나 어떻든 건강문제가 운위되고 있는 것은 권력이양이 순조롭게 되지 못했을 때 구실로 삼기 위한 것이 아닐까. ▲오코노기 마사오(소차목정부·게이오대교수)=일본과 한국 등 외부가 소란을 떨고 있으나 북한내부의 분위기는 다른 것이 아닐까.북·미교섭이 순조롭게진행되는 것도 이변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영화(간사이대 강사)=김정일에 대신하는 후계자가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다소 진통이 있어도 권력 이양에 위협을 줄 만큼 위기에 빠지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9월9일의 건국기념일을 앞두고 권력 굳히기가 최종 단계를 맞을 것이다. 평양외교가에 김정일타도 전단이 살포됐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나는 현장에 가본 일이 있다.각국 공관 앞에는 자동소총을 든 군인이 엄중히 경비하고 있어 반체제집단이 행동을 일으키는 것은 불가능하다.오히려 체제유지측이 불만분자 숙청 구실을 잡기 위해 일을 꾸몄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마쓰이 시게루(송정무·군사 평론가)=이미 김정일은 장군이라고 호칭되고 있으며 실질적 최고책임자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국가주석이나 당총비서직에 서둘러 취임하지 않을 것이다.김정일이 무대 표면에 나서지 않거나 건강이 좋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위대한 수령」의 죽음을 애도,상을 철저히 하는 「효자 김정일」의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마에다 야스히로(전전강박·기타규슈대)=북한에서는 1백일동안 거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이 점을 고려한다면 김정일이 무대전면에 나서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김정일은 최소한 10월 중순까지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 「반김정일세력」 조직화 될까/「전단 살포」로 궁금증 증폭

    ◎해외파 등 지식인층서 주도 가능성/북 자체분석도 “주민 27% 적대계층” 평양 외교단지에서 「김정일타도」전단이 대량살포됨으로써 북한내 반금정일세력 형성유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사회에서 김일성세습체제에 반대하는 기류는 과거에도 감지된 바 있다.귀순자들과 교포방북자들은 북한주민들이 아주 은밀히 전단과 벽보를 통해 산발적으로 김부자체제를 비방하는 사례들이 여러번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물론 이번 사건은 치밀하게 계획된 감을 주고 있어 간헐·우발적으로 터져나온 과거의 경우와는 양상이 다르다.그래서 조직화된 반금세력의 「작품」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손쉽게 상정할 수 있는 반금세력은 2천2백여만명의 북한주민 가운데 북한당국이 「적대계층」으로 분류,경계하고 있는 27%의 주민이나 「동요계층」으로 분류하고 있는 45%의 주민 가운데 일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지주·자본가출신이나 월남자가족 및 반혁명사건 연루자가족 등을 포함한 반기득권층이 아직 세력화하기에는 시기상조여서 이번 사건에 연루되었을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관측된다.이들은 북한당국에 의해 이미 평양시 밖으로 강제이주되었거나 산간오지에 집단거주하고 있다. 반면 이번 사건이 당성이나 성분면에서 선택된 주민만 거주하는 평양에서,그것도 감시가 삼엄한 외교단지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전단살포의 주역은 의외로 특권층내부에 있을 공산이 크다. 그러나 당과 군에 포진하고 있는 「혁명1세대」등 핵심권력층이 개입했다는 흔적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또 이들이 김정일에게 있어서 잠재적으로 가장 위협적인 인물들이긴 하나 김일성사후 단기간내에 저항세력으로 조직화됐다고 보기는 아직 어렵다.김이 20년간 후계수업과정에서 지난 76년 김동규부주석일파를 숙청한데 이어 83년 김병하국가보위부장을 제거하는 등 반금세력의 「싹」부터 철저히 잘라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외부사조에 밝은 테크노크라트와 외국유학경험이 있는 인텔리계층이 이번 전단사건을 주도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다수 북한전문가들의 관측이다.이들도 나름대로 기득권을 향유했으나 해외경험 등을 통해 북한체제의 허구성을 누구보다 절감하고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 개연성은 높아진다. 지난 91년 남북고위급회담에 나온 북측 수행원 가운데 김일성종합대 출신 인사가 우리측 관계자에게 자기의 전공과 경력을 알려주며 『북조선체제는 오래 못간다.통일이 되면 내가 서울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나』라고 은밀히 타진해왔다는 비화가 이를 뒷바침해준다.실제로 이 인텔리층들이 비밀리에 10∼20명씩 모임을 갖고 김부자체제에 불만을 토로한다든가 낙서나 전단을 뿌리는 활동을 했다는 귀순자들의 증언도 있었다. 만일 이번 전단살포가 이 세력들에 의해 이뤄진 게 사실이라면 김정일체제가 당장 붕괴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서서히 가라앉을 수밖에 없음을 시사하는 조짐일 수도 있다 ◎평양의 「외교공관단지」는 어떤곳/개방바람 우려 한곳모아 특별관리 「김정일타도」 전단이 발견돼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평양의 외교공관단지는 평양의 남동쪽 변두리인 문수동에 자리잡고 있는 치외법권지역.평양에 주재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한 외국공관및 외교관들 숙소가 입주해 있다. 북한이 지난 70년대초 이곳에 외교공관단지를 조성한 것은 외교관들에 의한 개방바람의 확산을 우려해 이들을 한곳에 모아 관리하기 위해서였다.이곳의 면적이 얼마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식당·극장·수영장·테니스장등 각종 편의및 체육시설이 들어서 있으며 각국 외교관들은 이들 시설을 실비로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북한당국은 외국인 거주지역이란 특수성을 고려,이곳의 시설과 관리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은 당초 이곳에 옛소련(현재는 러시아)과 중국대사관도 끌어넣으려 했으나 양국이 특별대우를 요청하며 거부하는 바람에 평양중심부에 따로 공관을 두게 하는 특혜를 주었다. 북한당국은 외교관들을 보호한다는 구실아래 이곳에 일반인들이 접근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고 기타 출입자들에 대해서도 검문검색을 매우 엄격하게 실시하고 있다.따라서 이곳에서 김정일타도 전단이 발견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받아들여지고 있다.
  • 평양에 “김정일 타도” 전단/서방외교 소식통

    ◎지난 19·20일 외국공관단지내 대량살포/북,초긴장… 다음날 “음모·야심가 배신” 방송 김일성이 사망한 뒤 김정일의 세습 및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평양시내에 김정일을 타도하자는 전단이 대량으로 뿌려진 것으로 확인돼 주목되고 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23일 하오 지난 19일 밤부터 20일 새벽사이 외국공관이 밀집해 있는 평양의 외교단지를 중심으로 「김정일을 타도하자」는 내용의 한글전단이 대량으로 살포되었다고 밝혔다. 이같은 사실은 평양주재 독일이익대표부가 본국 정부에 전문으로 보고해옴으로써 알려졌다고 서울주재 독일대사관 관계자가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 당국자는 『전단 내용에는 「김정일이 김일성의 죽음에 관여했든지 또는 방관했다」고 김일성의 사망이 자연사가 아닐 것으로 의심하는 주장도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김정일에 대한 북한주민들의 적개심을 고취하려 한 것으로 분석된다』면서 『북한당국은 전단 살포후 초긴장 상태에 들어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이와 관련,다른 소식통은 『평양소재 외교단지는 북한주민들 가운데 특수한 자격을 가진 사람들만 출입할 수 있는 통제구역이라는 점에서 전단을 살포한 사람은 김정일에 반대하는 특정계층의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고 『이번의 유인물 살포는 김정일의 권력승계를 북한주민들이 모두 바라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외국에 알리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평양의 외교단지에 있는 일부 외국공관들은 이같은 사실을 본국정부에 긴급보고한 것으로 안다』면서 『북한 중앙방송이 지난 21일 논설을 통해 「수령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할 후계자 문제를 바로 해결하지 못하면 야심가·음모가들의 배신행위로 당과 혁명이 농락당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역사적 경험」이라면서 김정일의 유일적 영도보장을 촉구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고 풀이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번 전단살포가 김정일이 반대세력을 숙청하려는 빌미를 만들려고 꾸민 자작극일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 “북집권층 치열한 권력암투” 추측/심상찮은 “김정일 타도” 전단

    ◎살포주체 김후계구도 반대 고위층 가능성/“잠재정적 대거 숙청 노린 자작극” 분석도 북한 김정일의 권력승계를 둘러싼 갖가지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평양소재 외교단지에 「김정일타도」전단이 대량 살포됐다는 정보가 입수됨으로써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19일밤에서 20일 사이에 평양시의 외국공관이 밀집해 있는 지역에서 일어났다는 이 사건에 대해 정부당국은 상당히 신빙성있는 정보로 받아들이고 있다.이는 북한문제에 정통한 서울의 서방외교소식통으로부터 확인했기 때문이다. 김의 권력승계 공식화 절차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 가운데 이같은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은 일단 물밑 권력암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추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선 전단 살포지역이 평양의 외교단지라는 점이 이같은 심증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이 지역은 북한당국이 「혁명의 수도」라고 부르는 평양시에서도 특권층만 출입이 가능한 통제구역이라는 점에서 전단살포의 주체도 김을 반대하는 고위계층일 가능성이 크다는 추론이다. 다시 말해 이들반김세력들이 상당한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 외교단지에 전단을 뿌린 것은 중국이나 미국 등 주변국에 북한주민들이 김정일 후계구도에 반대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시위용」일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이 전단에는 「김정일이 김일성의 죽음에 관여했든지 아니면 방관했다」는 등 김일성의 사망이 자연사가 아닐 것이라고 의심하는 주장이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는 김정일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시키려는 의도라는 것이 정부당국의 해석이다.실제로 이 때문에 북한당국이 초긴장상태에 들어갔다는 첩보도 나오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은 북한 중앙방송이 지난 21일 김정일의 「유일적 영도」를 강조한 직후에 터져나왔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후계자문제를 바로 해결치 못하면 야심가·음모가들의 배신행위로 당과 혁명이 농락된다』는 경고가 나온 것은 북한당국,구체적으로 말해 김정일 진영이 이 사건을 인지했다는 반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이번 사건은 김정일측이 권력승계 마무리에 앞서 잠재적인 반대세력을 대거 숙청하기 위한 자작극일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김이 지난 20여년간 후계수업 과정에서 반김세력이 조직화되지 못하도록 철저히 싹을 잘라왔다는 점에서 아직 북한기득권 내부에 목숨을 걸고 반기를 들만한 세력이 없다는 관측인 셈이다. 따라서 이번 전단 살포가 김정일체제붕괴를 알리는 전주곡인지의 여부는 좀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듯하다. 다만 최근 북한 탈출인사나 교포 방문객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에서 반정부 전단 살포 사건은 과거에도 간헐적으로 있었다.정상적인 집회·결사와 시위를 통한 의사표시가 원천봉쇄된 북한에서 주민들의 불만표출이 벽보 또는 전단 등 음성적인 형태로만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 북 권력승계 정말 문제없나(사설)

    북한의 기류가 심상치 않다.김일성사망이후 김정일체제로의 권력승계가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듯했으나 최근들어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듯한 몇가지 이상한 조짐들이 드러나고 있다.특히 오는 10월 건국45주년기념일을 맞아 북경을 방문해달라는 중국정부의 초청을 거부했다는 외신보도,평양의 중앙방송이 21일 『수령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할 후계자문제를 바로 해결하지 못하면 야심가,음모가들의 배신행위로 당과 혁명이 농락당하는 결과를 가져올것』이라고 경고한 점등은 주목된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장 예단하기는 어렵다.김정일의 건강악화설,북한권력층의 내부갈등설,김정일의 후계체제를 보다 확고히 하려는 정치조작설등 갖가지 추측만 무성하다.우리의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특수한 정치및 사회구조를 지닌 북한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북한정세에 관한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는데도 우리 정부가 정확한 정보수집은 물론 분석에 있어 너무 안이한 것같은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아닐 수 없다. 정부는 「북한의 이상설」에 대해 대책수립에 부심하면서도 그 기조는 대체적으로 큰 변화가 없다고 보는 것 같다.『김정일의 후계문제를 중앙방송이 거론하고 나선 것은 김일성에 대한 추도기간이 끝났기 때문에 김정일추대분위기로 전환하려는 시도같다』는 한 고위당국자의 분석이 그것을 대변하고 있다.그러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며 우리는 그런 어떤 돌발사태의 가능성에 흔들림없이 대처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영삼대통령의 「갑작스런 통일」에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경고를 우리는 의미심장하게 받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김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혔듯이 우리정부는 스스로 흡수통일을 원하지 않는다.그러나 통일은 우리 의지와는 무관하게 예기치 않은 순간에 갑자기 닥쳐 올수도 있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일부 정부당국자와 학자들중에는 북한체제를 실제이상으로 과대평가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주는 경우가 있다.경제는 파탄상태에 놓여있지만 그들만이 지니고있는 특수한 정치구조 때문에 체제자체는 예상외로 견고하며 안정되어 있다는 논리이다.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그렇게 보지는 않는다.쿠바도 흔들리고 있고 북한이라고 해서 특별한 존재일 수는 없다.동구공산권국가들처럼 하루아침에 붕괴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과소평가해도 안되겠지만 과대평가도 금물이다.북을 과대망상증에 빠지게하는 등 오도할 가능성이 많다.중앙방송보도는 권력승계변고뿐 아니라 반대파숙청예고일 수도 있다.정보수집이 어려우면 해석이라도 정확하고 예리해야 한다.우리의 모든 정보능력과 촉각을 범세계적 차원에서 북에 집중시켜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 “반대파 숙청 신호”­“노선 갈등”/심상찮은 「김정일의 북한」

    ◎92년 승계거론때도 “야심가 책동” 경고/후계체제 마무리에 이상 있을지도 김정일의 건강이상설이 꼬리를 물고 있는 가운데 북한 중앙방송이 느닷없이 「야심가·음모가들의 배신행위」를 경고하고 나오는 등 심상찮은 북한의 내부 동향이 외부로 불거져 나와 귀추가 주목된다. 이같은 조짐은 김이 오는 10월1일 중국측의 건국행사에 참석요청을 받고도 거절했다는 일부 외신 보도와 맞물리면서 김정일체제의 이상설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이상징후들은 아직 정부당국도 그 진위를 검증하지 못하고 있는 첩보단계에 불과하다.예컨대 중국측이 건국 45주년 행사에 김을 초청했는지의 여부도 확인이 필요한 보도라는 것이다. 또 『후계자 문제를 바로 해결하지 못하면 야심가·음모가들의 배신행위로 당과 혁명이 농락당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22일자 중앙방송 보도도 반김정일세력이 부상하고 있는 징후로만 받아들이기는 무리라는 지적이다. 일부 북한전문가들은 오히려 주석이나 당총비서 취임 등 김의 권력승계 공식화를 위한 마무리 정지작업이 임박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야심가 운운하는 보도는 권력투쟁이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게 아니라 김정일체제 구축에 소극적인 인사들을 숙청하기 위한 전주곡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도 『김이 지난 92년 10월10일 당창당 47돌을 기념해 승계문제를 거론하며 음모가와 야심가들에 대한 책동에 경고를 보내는 등 최근의 중앙방송 보도내용과 같은 내용의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그래서 『김정일체제에 이상이 생겼다기 보다는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사태에 대한 일종의 경고이자 대비인 것으로 분석된다』는 설명이다.요컨대 김일성에 대한 추도분위기를 김정일에 대한 추대분위기로 전환하기 위한 신호일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그러나 정부내에서 조차 이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독재국가일수록 언론매체가 물밑 권력이동의 흐름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므로 좀더 지켜봐야 김정일체제의 순항여부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통일원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북한의 공식선전매체들은 김정일의 핵심측근인 당선전담당비서 김기남이 진두지휘하고 있다』고 전제,『이 때문에 북한의 방송·신문들이 김정일 우상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후계체제가 안착됐다고 볼 수 없다』고 분석했다. 김기남은 『우리식대로 살자』,『우리 당중앙 목숨으로 사수하자』 등 북한의 유명한 구호를 만든 장본인으로 김의 심복중의 심복이다.하지만 폐쇄사회의 권력교체기에는 역시 무력을 장악하는 군부나 공안 쪽이 힘을 쓰게 마련이다.따라서 후계체제의 마무리 여부도 김이 군부 등을 제대로 장악했느냐에 따라 검증되겠으나 아직 이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김일성만한 장악력도,카리스마도 없는 김이 일단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후계자로 기정사실화 됐으나 내부 권력서열 재조정과 핵문제 등 대내외 노선을 둘러싼 내부 갈등에 직면해 있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이같은 양 갈래 분석을 염두에 둔다면 김정일체제의 이상설에 대한 정확한 진상은 오는 9월9일 북한정권 창건일이나 10월10일 노동당 창당일을 전후한 시점에 윤곽이드러날 것으로 보인다.이 때까지도 김이 승계절차를 마무리짓지 못한다면 김정일체제에 분명한 적신호가 켜진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정일 이상설」 정치권 촉각/김사망 연루·건강에 문제 가능성/민자/“권력구조 이상”·“문제없다” 양론/민주 정치권은 여와 야를 막론하고 김정일의 신상및 권력승계작업과 관련한 여러 가설들을 제시하면서 최근 다양한 갈래로 나타나고 있는 이상 징후들이 북한의 권력구도 재편과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민자당◁ ○…오래 전부터 김일성의 사망원인에 대해 의문을 표시해온 이세기정책위의장은 『지금 나타나고 있는 북한의 이상기류들은 바로 김일성의 사인문제에서 비롯되고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이의장은 특히 김일성의 사고사 가능설이 미국 정보기관으로부터 흘러나오고 있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김일성의 사인에 대한 김정일의 연루문제로 후계작업의 매듭이 늦어지는 것 같다』고 피력. 이의장은 『김정일은 북한주민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만약 김일성의 사인에 대한 의혹이 북한내부에서 확산되면 김정일은 궁지에 몰릴 것이며 탈출수단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김정일체제의 확립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전망했다. 이달초 한­이란의회친선협회장으로 이란을 방문,과거 김정일과 단독면담을 몇차례 가졌던 이란의 북한담당 고위관리와 의회지도자들을 만나고 돌아온 김정남의원은 『김정일의 정신건강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하던 그들의 말을 최근의 북쪽소식과 비교해보니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고 전하고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그의 건강상태에 문제가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조부영경제담당정조실장은 『과거 중국이나 소련의 예를 보더라도 1인 독재정권이 와해되면 과두체제 또는 집단지도체제가 등장하는 것이 역사의 법칙』이라고 전제,『북한 역시 시차는 있을지 몰라도 과두체제의 등장이 필연이며 현재의 불투명한 상황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고 말했다. ▷민주당◁ ○…자세한 내용이 알려지지 않은 탓에 당의 공식적인 판단은 유보하고있다.의원들도 북한의 권력구조에 이상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측과 예상대로 김정일 단일체제가 구축될 것으로 전망하는 측으로 나뉘고 있다.정보부족인 탓이다.다만 우리 정부가 보다 확실한 정보를 입수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전제 아래 불확실한 정보를 바탕으로 지나치게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회 외무통일위의 이부영의원은 『비단 김정일의 중국방문 거부사실을 들지 않더라도 사회주의 국가가 국가원수를 한달 이상 공석으로 두는 일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북한 권력구조에 이상이 있는 것으로 관측. 이의원은 『뭔가 북한의 지도체제에 대단히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염려된다』면서 『이런 때일 수록 정부는 북한에 대해 포용적인 자세를 보여 그들의 안정을 간접적으로나마 도와야 할 것』이라고 주장. 반면 김원기최고위원은 정보부족을 전제하면서도 김정일의 권력승계에는 이상이 없을 것으로 전망. 김최고위원은 『어떤 형태는 김정일의 권력장악은 기정사실화된 것 아니냐』면서 『문제는 김일성이 누리던 권력을 얼마만큼 승계하느냐일 뿐 정변등의 기미는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피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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