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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儒林(44)-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儒林(44)-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자신들을 ‘엎질러진 물’이요,‘떨어진 꽃잎’으로 비유한 김식의 생각은 정확한 것이었다.바로 그 순간 중종은 승정원,홍문관,대간,한림을 다 교체하고 새로 승지가 된 성운에게 다음과 같은 교지를 내린 것이다.이 교지의 내용이 실록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조정의 큰일이 이미 다 결정되었으니 시간을 지체하여 아이들의 장난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빨리 조광조를 처형하라는 전지를 내리라.조광조의 처형을 서둘러 확정하라고 두세번 독촉하였는데도 밤이 새도록 결정하지 못하는 것은 매우 옳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광조는 여전히 자신을 신임하였던 중종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조광조가 자신이 마침내 ‘엎질러진 물’이 되었음을 실감한 것은 능주로 유배를 떠난 후였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능성에서 유배 중에 지은 시(綾城謫中詩)’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으므로. “누가 활 맞은 새와 같다고 가련히 여기는가.내 마음은 말 잃은 마부 같다고 쓴 웃음을 짓네.벗이 된 원숭이와 학이 돌아가라 재잘거려도 나는 돌아가지 않으리.엎어진 독 안에 들어 있어 빠져 나오기가 어려운 줄을 어찌 누가 알리오.” 유배 중에 자신의 심경을 노래한 이 시에서 조광조는 유가에서 군자를 비유하는 ‘원숭이와 학’이 되어 돌아가고 싶어도 ‘엎어진 독(覆盆)’,즉 자신에게 씌어진 누명과 형벌 때문에 돌아갈 수 없음을 한탄하고 있었던 것이다.이는 달 밝은 의금부 뜨락에서 술을 나눠마셨던 김식이 비유하였던 강태공의 고사성어의 의미를 뒤늦게 깨달은 때문은 아니었을까. 어쨌든 모든 상황이 끝나 날이 밝았을 때부터 이들에 대한 신문이 시작되었다. 죄인을 신문하기 위해서 임시로 설치한 국청에는 이들 8인을 국문하기 위해서 병조판서 이장곤과 홍숙(洪叔)이 자리잡고 있었다.그리고 국문의 책임자로 판중추부사인 김정이 있었다.그러나 이 국문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었다.왜냐하면 지난밤 의금부에 갇혔던 8인들은 모두 같이 술을 마셔서 만취해 있었으며,특히 조광조는 인사불성에 가깝도록 대취해 있었기 때문이다.특히 문초담당관인 이장곤과 홍숙은 어제까지만 해도 조광조와 절친한 사이였다.이장곤은 조광조에 대해 호의를 가진 중도파였는데 거사에 참여한 것은 자의가 아니라,병조판서로 군사를 통솔하는 수장이었으므로 심정과 남곤의 필요에 의해서 강제로 참석하게 된 것이었다.그러므로 조광조의 신문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이었다. 이장곤이 문초하면 조광조는 ‘희강아 희강아 그대가 어찌하여 나를 죄인으로 취급할 수 있단 말인가.’하고 불평하고 있었고,기록에 의하면 이장곤을 향해 ‘이 못난아,용가(龍哥)야.어리석은 용가야.’하고 놀리기까지 하였다는 것이다.특히 홍숙이 심문할 때에는 한층 더 엉망이었다. 홍숙은 어제까지만 해도 한성부판윤이었는데,전고(典故)에 밝아 정치를 함에 균형을 잃지 않고 스스로 몸가짐에 임해서도 엄정하고 관후하였으며 효성이 지극한 선비였는데 비록 조광조를 숙청하는 데 앞장서기는 하였으나 내심으로는 조광조에게 일말의 동정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제까지만 하여도 홍대감은 한성부판윤이었는데 어찌하여 나를 신문할 수 있단 말이오.” 홍숙이 하루아침에 형조판서가 되었음을 비웃는 말로 어젯밤까지만 해도 형조판서는 이정이었으나 이정이 조광조와 함께 체포되었으므로 파직되고 홍숙이 대신 형조판서에 올라 자신을 문초하고 있음을 빈정거리고 있는 말이었던 것이다.
  • 儒林(44)-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자신들을 ‘엎질러진 물’이요,‘떨어진 꽃잎’으로 비유한 김식의 생각은 정확한 것이었다.바로 그 순간 중종은 승정원,홍문관,대간,한림을 다 교체하고 새로 승지가 된 성운에게 다음과 같은 교지를 내린 것이다.이 교지의 내용이 실록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조정의 큰일이 이미 다 결정되었으니 시간을 지체하여 아이들의 장난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빨리 조광조를 처형하라는 전지를 내리라.조광조의 처형을 서둘러 확정하라고 두세번 독촉하였는데도 밤이 새도록 결정하지 못하는 것은 매우 옳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광조는 여전히 자신을 신임하였던 중종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조광조가 자신이 마침내 ‘엎질러진 물’이 되었음을 실감한 것은 능주로 유배를 떠난 후였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능성에서 유배 중에 지은 시(綾城謫中詩)’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으므로. “누가 활 맞은 새와 같다고 가련히 여기는가.내 마음은 말 잃은 마부 같다고 쓴 웃음을 짓네.벗이 된 원숭이와 학이 돌아가라 재잘거려도 나는 돌아가지 않으리.엎어진 독 안에 들어 있어 빠져 나오기가 어려운 줄을 어찌 누가 알리오.” 유배 중에 자신의 심경을 노래한 이 시에서 조광조는 유가에서 군자를 비유하는 ‘원숭이와 학’이 되어 돌아가고 싶어도 ‘엎어진 독(覆盆)’,즉 자신에게 씌어진 누명과 형벌 때문에 돌아갈 수 없음을 한탄하고 있었던 것이다.이는 달 밝은 의금부 뜨락에서 술을 나눠마셨던 김식이 비유하였던 강태공의 고사성어의 의미를 뒤늦게 깨달은 때문은 아니었을까. 어쨌든 모든 상황이 끝나 날이 밝았을 때부터 이들에 대한 신문이 시작되었다. 죄인을 신문하기 위해서 임시로 설치한 국청에는 이들 8인을 국문하기 위해서 병조판서 이장곤과 홍숙(洪叔)이 자리잡고 있었다.그리고 국문의 책임자로 판중추부사인 김정이 있었다.그러나 이 국문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었다.왜냐하면 지난밤 의금부에 갇혔던 8인들은 모두 같이 술을 마셔서 만취해 있었으며,특히 조광조는 인사불성에 가깝도록 대취해 있었기 때문이다.특히 문초담당관인 이장곤과 홍숙은 어제까지만 해도 조광조와 절친한 사이였다.이장곤은 조광조에 대해 호의를 가진 중도파였는데 거사에 참여한 것은 자의가 아니라,병조판서로 군사를 통솔하는 수장이었으므로 심정과 남곤의 필요에 의해서 강제로 참석하게 된 것이었다.그러므로 조광조의 신문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이었다. 이장곤이 문초하면 조광조는 ‘희강아 희강아 그대가 어찌하여 나를 죄인으로 취급할 수 있단 말인가.’하고 불평하고 있었고,기록에 의하면 이장곤을 향해 ‘이 못난아,용가(龍哥)야.어리석은 용가야.’하고 놀리기까지 하였다는 것이다.특히 홍숙이 심문할 때에는 한층 더 엉망이었다. 홍숙은 어제까지만 해도 한성부판윤이었는데,전고(典故)에 밝아 정치를 함에 균형을 잃지 않고 스스로 몸가짐에 임해서도 엄정하고 관후하였으며 효성이 지극한 선비였는데 비록 조광조를 숙청하는 데 앞장서기는 하였으나 내심으로는 조광조에게 일말의 동정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제까지만 하여도 홍대감은 한성부판윤이었는데 어찌하여 나를 신문할 수 있단 말이오.” 홍숙이 하루아침에 형조판서가 되었음을 비웃는 말로 어젯밤까지만 해도 형조판서는 이정이었으나 이정이 조광조와 함께 체포되었으므로 파직되고 홍숙이 대신 형조판서에 올라 자신을 문초하고 있음을 빈정거리고 있는 말이었던 것이다.˝
  • [기고] ‘친일 규명법’ 왜 머뭇거리나/박유철 전 독립기념관 관장

    3·1절 85돌을 맞은 지금 우리가 가장 부끄러워할 일은,과거 일본의 식민지였기 때문이라기보다 광복 반세기를 훌쩍 넘긴 지금까지 잘못된 과거사에 책임을 물은 일도,물을 수도 없다는 점이다.당시 일제에 빌붙었던 당사자들에 대한 처벌은 고사하고,그들 스스로가 반성도 사죄도 없고,부끄러워할 줄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오만과 뻔뻔스러움을 대물림까지 하는 현실에 분노를 느끼게 된다.우리나라 꼴이 이 모양이니 잘못된 한·일 관계의 과거사야 들춰내 무엇하겠는가.친일파가 득세하는 세태에서 과거사가 청산될 리 없다.이 과거사를 정리하지 않고 어찌 이 나라에 건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할 수 있겠는가.과거사를 반드시 정리하고 청산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과거의 채권·채무 관계를 정리하지 않고 어찌 새로운 거래가 이루어지겠는가. 일본이 툭하면 제기하는 식민지 시혜론과 신사참배,교과서 왜곡 등의 행위도 따지고 보면 우리가 과거사를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한·일 관계와 비슷한 독·불 관계를 보면 독일의 적극적인 사죄와 반성으로 과거사를 깨끗하게 청산해 어느때보다 원만한 관계가 정립되었다.프랑스는 종전 60년이 가까운 지금도 나치 부역행위를 가차없이 처벌한다.부역행위를 숨기고 경찰국장과 장관까지 지낸 자가 90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법정에 끌려나와 10년 징역형을 받은 기사를 보았다.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프랑스 사회가 그것을 지극히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역사에 대해 경외심을 요구하는 프랑스의 사회적 환경이다.역사에 대해 경외심이 없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한다.나치 부역자에 대한 철저한 숙청이 오늘날 프랑스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프랑스에서는 진정한 과거 청산이 있었기에 그 바탕 위에 국가의 진로를 바르게 설정하고,건전하고 정의가 살아 있는 국가로 국제사회에서 떳떳하게 행세하고 있지 않는가. 16대 국회에서 과거청산 관련 4대 법안의 발의는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 역사의 진보를 확인하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비록 불법 정치자금 수사에 묻혀 일반은 물론 언론에서조차 큰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이 법안이야말로 엄청난 역사의 변화요,사회환경의 변화였다.그런데 이 4대 법안 중 친일관련법과 6·25 전쟁 휴전 이전 민간인 희생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등에 관한 법률(안),이른바 6·25 통합 특별법은 국회 본회의에 상정하기가 어렵다고 한다.이로써 제16대 국회는 불법 정치자금 수수란 수치보다 더 부끄러운 모습을 민족과 역사 앞에 노출한 것이다. 더구나 친일규명 관련법은 국회 법사위에서 당초 법안에 수정을 거듭하여 친일행위의 죄상을 규명하고 단죄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있으나마나 한 법으로 변질되고 말았다.그것조차 본회의 상정이 보류된다니 민족정기와 사회정의가 통째로 사라지는 느낌이다.그런다고 친일행위를 한 그들의 과거가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결국 이를 계속 감춰 국민을 기만하고 역사를 경시하는 행위는 그 자신들을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친일행위자들은 과거의 잘못된 역사에 대한 심판을 면했을는지 모르나 용서받을 기회까지 잃은 셈이다.우리는 민족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또 한번 꺾이게 되었다.진정한 의미에서의 국민화합은 철저한 과거 청산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항일했던 사람,친일했던 사람,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었던 사람들 사이에 맺혀 있는 갈등,…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안목으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지혜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밝힌 것은 전적으로 옳다.국회의원들은 역사적 안목을 가져야 한다.그래야 16대 국회도 살고 우리 민족도 자존심을 찾게 될 것이다. 박유철 전 독립기념관 관장˝
  • [3·1절 기획] 리인섭은 누구

    ‘리인섭’은 러시아 지역 한인 독립운동사 연구자에게는 잘 알려져 있다.러시아에서 출간한 최초의 한국인 사회주의자 알렉산드라 김의 전기 등을 썼다.이 책은 1990년대 초반 국내에 소개됐다. 그러나 리인섭 자신이 누구인지는 자세히 밝혀져 있지 않다.1990년 역사비평사에서 출판한 재러 한인 마트베이 김의 ‘일제하 극동 시베리아의 한인 사회주의자들’에 실린 2장 분량의 약전이 유일하다. 책에 따르면 리인섭은 1888년 11월 평양에서 태어나 1907년부터 국내와 만주 일대에서 의병활동을 하다 1917년 시베리아의 옴스크로 가 이듬해 최초의 한국인 사회주의 단체인 한인사회당 결성에 참여했던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다.러시아 내전기에는 시베리아에서 적군(赤軍)과 함께 일본 및 백군에 맞서 싸웠다. 그도 30년대 후반 스탈린이 독립운동가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킬 때 큰 고난을 겪었다.1956년 흐루시초프가 스탈린 격하운동을 통해 30년대 ‘대숙청’된 사람들을 복권시키자,이 때부터 중앙아시아에 흩어진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1910∼20년대의 자료와 증언을 모아 러시아 한인 독립운동사를 복원했다.이번에 발굴된 노트는 당시 노력의 결실물 중 하나로 보인다. 이세영기자˝
  • 사회주의 독립운동 ‘햇빛’

    1910년대 말에서 1920년대 초에 이르는 러시아 내전기에 만주와 연해주,시베리아 지역에서 활동했던 독립군 부대와 이들의 활동과정을 보여주는 육필 자료가 국내 첫 발굴됐다.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리인섭이 남긴 이 자료에는 안중근 의사의 사촌 안홍근 등 당시 이 지역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 수십명의 명단과 러시아 한인마을 양허지(루키야노부카)에 한인들이 세운 사관학교가 존재했다는 사실 등 그 동안 국내 학계에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적 사실이 다수 수록돼 있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최근 독립기념관 자료실에서 이 자료를 발굴한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의 반병률(48·독립운동사 전공) 교수는 29일 “최초의 한인 사회주의 단체인 한인사회당의 결성과정과 이와 관련된 독립운동단체와 지도자들,이들이 펼친 독립전쟁의 경과와 내용 등 새로운 사실들이 상세히 담겨 있다.”고 밝혔다. 반 교수는 “이들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일본이나 비사회주의 계열 단체들의 자료에 의존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의미가 과소 평가된 측면이 없지 않다.”면서 “이번에 발견된 자료는 당시 독립전쟁에 직접 참여했던 내부인의 시각에서 참여단체와 인물,복잡한 내부 역학관계 등을 기술하고 있어 향후 한국 독립운동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자료는 ‘한인사회당 참고자료’ 6권과 ‘우랄 노동자 동맹’ 1권,‘원동 인민위원 소비에트 외교위원 김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에 관한 회상기’ 1권 등 대학노트 8권으로 이루어져 있다.이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한인들의 독립 무장투쟁과 관련된 ‘한인사회당 참고자료’다.여기에는 이동휘,김립,이한영 등 한인 사회당과 김좌진,이청천,홍범도 등 무장 독립군 부대 대표자뿐 아니라 안홍근,허회,김광택,백수산,임기학 등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무장조직 지도자 수십명이 대거 등장한다. A4용지 160장 분량인 이 자료는 ▲한국적위군에 대하여 ▲적의군 조직에 관하여 ▲김 알렉산드라의 최후 ▲수청 고려 의병대 ▲올긴항 전쟁 ▲철혈 강북단과 지방대 사실 ▲자유시 고려군대,무장 ▲독립단 군대 ▲니항 군대 ▲중령에서 공작하던 독립군들 ▲국민회 군대 ▲독립군 군대 ▲군정서 군대 ▲연해주 솔벽관 고려혁명군 ▲이만의병군동에 대하여 ▲이만 전투와 볼로차예프 전투 등 18개의 소단락으로 구성돼 있다. ‘우랄 노동자 동맹’은 모두 34장의 분량으로,1차세계대전 당시 우랄 지역으로 이주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리인섭과 김 알렉산드라가 결성한 한국 사상 최초의 노동조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노트가 씌어진 것은 소련에서 스탈린 격하운동이 한창이던 50년대 말이다.반 교수는 “러시아 지역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상당수가 30년대 스탈린의 대숙청기에 ‘반혁명분자’,‘일본의 스파이’라는 명목으로 처형됐다.”면서 “스탈린 격하운동으로 가능해진 유화국면 속에서 대숙청기에 살아남은 리인섭이 자신의 기억과 주변 동료들의 진술을 모아 기록을 남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세영 박지윤기자 sylee@˝
  • 儒林(35)-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儒林(35)-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그 정적은 폭풍이 오기 전의 고요와 같은 것이었다.중종이 과연 어느 편의 손을 들어줄까 판가름이 나는 것을 기다리는 무시무시한 순간이었다. 중종이 심정을 비롯한 훈구파의 손을 들어준다면 그 순간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파들은 역적 죄인으로 처벌을 받아 숙청될 것이고,윤자임과 공서린의 승지들은 그 자리에서 체포될 것이다.그러나 만약 중종이 조광조의 손을 들어준다면 한밤중에 승지의 허락 없이 불법으로 대궐 안으로 들어서 시위를 하고 있는 훈구파 대신들은 대역죄로 참형을 받게 되는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절체절명의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던 것이다.그러나 심정은 초조해하는 다른 대신들과는 달리 중종이 이미 왼쪽 어깨를 벗어 자신들의 편을 들어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윤자임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몇 년간 조광조를 중심으로 하는 사림파에 대한 중종의 총애는 남다른 것이었기 때문이었다.각별한 총애가 없었다면 조광조의 정치개혁은 애당초 불가능했을 것이 아닌가. 마침내 새로이 가승지로 임명된 성운이 합문 밖으로 나와 근정전 위에 올라섰다.성운은 소매 속에서 종이쪽지를 꺼내어 읽기 시작하였다. “상감마마께오서 전지를 내리셨소.형조판서는 나와서 상감의 전지를 받으시오.” 이장곤이 나서서 두 손으로 교지를 받아 읽기 시작하였다.내용을 읽던 이장곤의 얼굴이 순간 창백하게 질리기 시작하였다.교지 속에는 어명으로 의금부에 갇힐 죄인의 명단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명단은 다음과 같았다. ―우참찬 이자(李),형조판서 이정(李淨),도승지 유인숙(柳仁淑),우부승지 홍언필(洪彦弼),좌부승지 박세희(朴世熹),동부승지 박훈(朴薰),부제학 김구(金絿),대사성 김식(金湜)…. 그리고 맨 마지막에는 다음과 같은 이름이 적혀 있었다. ―대사헌 조광조. 중종은 마침내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파들을 의금부에 가둘 것을 명함으로써 훈구파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내용을 확인한 이장곤은 납덩어리와 같은 침묵을 지키고 있는 대신들 앞에서 소리쳐 말하였다. “군사들은 우선 이곳에 있는 승지들을 체포하여 하옥시키도록 하라.” 순간 촛불을 밝히고 경연청에 앉아 있던 훈구파 대신들의 입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흐르고 희색이 만면하였다.동시에 한 가닥 기대를 갖고 기다리던 윤자임 일행은 그 자리에 맥없이 쓰러졌다.군사들이 즉시 윤자임을 비롯하여 공서린,이구,기준,심달원(沈達源)을 체포하여 옥에 가두는 한편 교지에 쓰인 죄인들을 체포하기 위해 군사가 총출동하였다. 특히 조광조를 체포하기 위해 동원된 사람은 선전관(宣傳官)이었던 금오랑(金吾郞)이었다. 금오랑에게 군사를 주어 즉시 체포토록 명을 내리면서 이장곤이 말하였다. “시간을 지체해서는 절대 아니 된다.즉시 출발하여 조광조를 포박하여 의금부에 가두도록 하여라.알겠느냐.” “알겠습니다.나으리.” 금오랑은 대답하였다.사안의 중요성을 간파한 이장곤이 다시 다짐하여 말하였다. “절대로 이 밤이 새기 전에 조광조를 체포하지 않으면 안 된다.날이 새거나 조광조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아 즉시 체포하지 못하면 반드시 문책하여 그대를 군명으로 엄히 다스릴 터이니 명심토록 하여라.” “알겠습니다.나으리.” 금오랑은 즉시 군사를 끌고 사라졌다. 이 때가 자시(子時)의 한가운데 정확히 자정 무렵이었다.이제 막 새날이 시작되려는 밤 12시에 친위 쿠데타는 이처럼 끝이 나 버린 것이다.
  • 儒林(35)-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그 정적은 폭풍이 오기 전의 고요와 같은 것이었다.중종이 과연 어느 편의 손을 들어줄까 판가름이 나는 것을 기다리는 무시무시한 순간이었다. 중종이 심정을 비롯한 훈구파의 손을 들어준다면 그 순간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파들은 역적 죄인으로 처벌을 받아 숙청될 것이고,윤자임과 공서린의 승지들은 그 자리에서 체포될 것이다.그러나 만약 중종이 조광조의 손을 들어준다면 한밤중에 승지의 허락 없이 불법으로 대궐 안으로 들어서 시위를 하고 있는 훈구파 대신들은 대역죄로 참형을 받게 되는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절체절명의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던 것이다.그러나 심정은 초조해하는 다른 대신들과는 달리 중종이 이미 왼쪽 어깨를 벗어 자신들의 편을 들어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윤자임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몇 년간 조광조를 중심으로 하는 사림파에 대한 중종의 총애는 남다른 것이었기 때문이었다.각별한 총애가 없었다면 조광조의 정치개혁은 애당초 불가능했을 것이 아닌가. 마침내 새로이 가승지로 임명된 성운이 합문 밖으로 나와 근정전 위에 올라섰다.성운은 소매 속에서 종이쪽지를 꺼내어 읽기 시작하였다. “상감마마께오서 전지를 내리셨소.형조판서는 나와서 상감의 전지를 받으시오.” 이장곤이 나서서 두 손으로 교지를 받아 읽기 시작하였다.내용을 읽던 이장곤의 얼굴이 순간 창백하게 질리기 시작하였다.교지 속에는 어명으로 의금부에 갇힐 죄인의 명단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명단은 다음과 같았다. ―우참찬 이자(李),형조판서 이정(李淨),도승지 유인숙(柳仁淑),우부승지 홍언필(洪彦弼),좌부승지 박세희(朴世熹),동부승지 박훈(朴薰),부제학 김구(金絿),대사성 김식(金湜)…. 그리고 맨 마지막에는 다음과 같은 이름이 적혀 있었다. ―대사헌 조광조. 중종은 마침내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파들을 의금부에 가둘 것을 명함으로써 훈구파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내용을 확인한 이장곤은 납덩어리와 같은 침묵을 지키고 있는 대신들 앞에서 소리쳐 말하였다. “군사들은 우선 이곳에 있는 승지들을 체포하여 하옥시키도록 하라.” 순간 촛불을 밝히고 경연청에 앉아 있던 훈구파 대신들의 입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흐르고 희색이 만면하였다.동시에 한 가닥 기대를 갖고 기다리던 윤자임 일행은 그 자리에 맥없이 쓰러졌다.군사들이 즉시 윤자임을 비롯하여 공서린,이구,기준,심달원(沈達源)을 체포하여 옥에 가두는 한편 교지에 쓰인 죄인들을 체포하기 위해 군사가 총출동하였다. 특히 조광조를 체포하기 위해 동원된 사람은 선전관(宣傳官)이었던 금오랑(金吾郞)이었다. 금오랑에게 군사를 주어 즉시 체포토록 명을 내리면서 이장곤이 말하였다. “시간을 지체해서는 절대 아니 된다.즉시 출발하여 조광조를 포박하여 의금부에 가두도록 하여라.알겠느냐.” “알겠습니다.나으리.” 금오랑은 대답하였다.사안의 중요성을 간파한 이장곤이 다시 다짐하여 말하였다. “절대로 이 밤이 새기 전에 조광조를 체포하지 않으면 안 된다.날이 새거나 조광조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아 즉시 체포하지 못하면 반드시 문책하여 그대를 군명으로 엄히 다스릴 터이니 명심토록 하여라.” “알겠습니다.나으리.” 금오랑은 즉시 군사를 끌고 사라졌다. 이 때가 자시(子時)의 한가운데 정확히 자정 무렵이었다.이제 막 새날이 시작되려는 밤 12시에 친위 쿠데타는 이처럼 끝이 나 버린 것이다.˝
  • 儒林(28)-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儒林(28)-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남곤의 질문에 정광필이 대답하였다. “어찌 내가 감히 남 대감을 향원과 같은 소인이라고 비웃을 수 있겠소이까.하오나 일찍이 맹자께오서도 ‘내가 향원을 미워하는 것은 그가 덕을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다.’라고 말하지 않으셨나이까.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조광조를 숙청하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일이 아니라 어쩌면 벽을 뚫고 담을 넘는 도적의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나이다.” 정광필의 대답 속에는 진심이 깃들어 있었다.일찍이 맹자에게 제자 만장(萬章)이 다음과 같이 물은 적이 있다. “많은 마을 사람들이 다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찬한다면 그런 사람은 어디를 가도 훌륭한 사람이 아닐까요.그런데 공자께서는 왜 향원을 가리켜 ‘향원은 덕을 해치는 도둑(鄕愿德之賊)’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이 질문에 맹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들을 비난하려 해도 딱 들어서 비난할 길이 없고 공격하려 해도 공격할 구실이 없으니 세속에 아첨하고 더러운 세상에 합류한다.집에 있으면 충심과 신의가 있는 척하고 나아가 행하면 청렴결백한 척한다.그래서 사람들이 다 좋아하고 스스로도 옳다고 생각하지만 그들과 더불어 ‘요순의 도(유교에서 이상으로 그리는 정치)’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인 것이다.그래서 공자께서는 ‘나는 사이비를 미워한다.말 잘하는 것을 미워하는 것은 정의를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고,말 많은 것을 미워하는 것은 신의를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고,향원을 미워하는 것은 그들이 덕을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다.’라고 하신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남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말하였다. “대감께오서는 그러하면 신을 사이비라 칭하고 있는 것이오이까.” 벌떡 일어선 남곤은 걸쳐 입고 있던 천복을 벗기 시작하였다.초립과 베옷을 벗자 안에 받쳐 입고 있던 복장이 드러났다. “어쨌든 신은 주상의 밀지를 전하고 이제 물러가오니 나으리께오서는 주상의 뜻을 받들어 조정을 안정되게 하시오.” 남곤은 소매를 떨치고 황망히 사라졌다.살기마저 느껴지는 남곤의 태도에 차마 만류하지 못하고 떠나보낸 정광필은 마음이 착잡하여 그가 벗어 버리고 간 변복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생각하였다. ―이를 어찌할 것인가. 온 조정은 또다시 피의 숙청으로 얼룩질 것이다.홍경주와 남곤,심정을 중심으로 하는 훈구파와 조광조를 중심으로 하는 신진 사림파간 죽느냐 사느냐의 혈전이 시작될 것이다.문제는 밀서의 내용대로라면 주상의 마음이 이미 조광조에게서 떠나 있다는 점이다. 주상은 밀지에서 분명하게 단언하고 있지 않은가. “…요즘은 무엇을 먹어도 맛을 모르고 잠을 자도 편안치 않으니,경들이 그들을 처치하고 나에게 알려라.” 정광필은 무거운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게 누구 있느냐.” 그러자 문밖에서 노인이 대답하였다. “쇤네 대령하고 있사옵니다.” 정광필은 남곤이 벗어두고 간 옷들을 집어 들어 문밖으로 나아가 뜨락에 내던지며 말하였다. “이것들을 모두 태우거라.댓돌 위에 있는 짚신도 함께 태우거라.다시 한번 말해 두거니와 새벽에 남 대감이 집으로 찾아왔었다는 것이 절대로 밖에 알려져서는 안 되느니라.알겠느냐.” 눈치 빠른 하인은 재빠르게 옷가지를 들고 사라졌다.정광필의 불길한 예감은 그대로 적중된다. 바로 그날 밤. 왕,중종을 중심으로 하는 친위 쿠데타가 궁궐 안에서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 儒林(28)-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남곤의 질문에 정광필이 대답하였다. “어찌 내가 감히 남 대감을 향원과 같은 소인이라고 비웃을 수 있겠소이까.하오나 일찍이 맹자께오서도 ‘내가 향원을 미워하는 것은 그가 덕을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다.’라고 말하지 않으셨나이까.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조광조를 숙청하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일이 아니라 어쩌면 벽을 뚫고 담을 넘는 도적의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나이다.” 정광필의 대답 속에는 진심이 깃들어 있었다.일찍이 맹자에게 제자 만장(萬章)이 다음과 같이 물은 적이 있다. “많은 마을 사람들이 다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찬한다면 그런 사람은 어디를 가도 훌륭한 사람이 아닐까요.그런데 공자께서는 왜 향원을 가리켜 ‘향원은 덕을 해치는 도둑(鄕愿德之賊)’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이 질문에 맹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들을 비난하려 해도 딱 들어서 비난할 길이 없고 공격하려 해도 공격할 구실이 없으니 세속에 아첨하고 더러운 세상에 합류한다.집에 있으면 충심과 신의가 있는 척하고 나아가 행하면 청렴결백한 척한다.그래서 사람들이 다 좋아하고 스스로도 옳다고 생각하지만 그들과 더불어 ‘요순의 도(유교에서 이상으로 그리는 정치)’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인 것이다.그래서 공자께서는 ‘나는 사이비를 미워한다.말 잘하는 것을 미워하는 것은 정의를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고,말 많은 것을 미워하는 것은 신의를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고,향원을 미워하는 것은 그들이 덕을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다.’라고 하신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남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말하였다. “대감께오서는 그러하면 신을 사이비라 칭하고 있는 것이오이까.” 벌떡 일어선 남곤은 걸쳐 입고 있던 천복을 벗기 시작하였다.초립과 베옷을 벗자 안에 받쳐 입고 있던 복장이 드러났다. “어쨌든 신은 주상의 밀지를 전하고 이제 물러가오니 나으리께오서는 주상의 뜻을 받들어 조정을 안정되게 하시오.” 남곤은 소매를 떨치고 황망히 사라졌다.살기마저 느껴지는 남곤의 태도에 차마 만류하지 못하고 떠나보낸 정광필은 마음이 착잡하여 그가 벗어 버리고 간 변복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생각하였다. ―이를 어찌할 것인가. 온 조정은 또다시 피의 숙청으로 얼룩질 것이다.홍경주와 남곤,심정을 중심으로 하는 훈구파와 조광조를 중심으로 하는 신진 사림파간 죽느냐 사느냐의 혈전이 시작될 것이다.문제는 밀서의 내용대로라면 주상의 마음이 이미 조광조에게서 떠나 있다는 점이다. 주상은 밀지에서 분명하게 단언하고 있지 않은가. “…요즘은 무엇을 먹어도 맛을 모르고 잠을 자도 편안치 않으니,경들이 그들을 처치하고 나에게 알려라.” 정광필은 무거운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게 누구 있느냐.” 그러자 문밖에서 노인이 대답하였다. “쇤네 대령하고 있사옵니다.” 정광필은 남곤이 벗어두고 간 옷들을 집어 들어 문밖으로 나아가 뜨락에 내던지며 말하였다. “이것들을 모두 태우거라.댓돌 위에 있는 짚신도 함께 태우거라.다시 한번 말해 두거니와 새벽에 남 대감이 집으로 찾아왔었다는 것이 절대로 밖에 알려져서는 안 되느니라.알겠느냐.” 눈치 빠른 하인은 재빠르게 옷가지를 들고 사라졌다.정광필의 불길한 예감은 그대로 적중된다. 바로 그날 밤. 왕,중종을 중심으로 하는 친위 쿠데타가 궁궐 안에서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 儒林(27)-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준엄한 남곤의 질문에 정광필이 대답하였다. “신하된 도리로서 어찌 감히 주상의 뜻을 거역할 수 있단 말이오.하오나” 정광필은 물끄러미 남곤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공께오서는 일찍이 조광조를 천거하여 부교리에서 응교로 승진시키지 않았나이까.” 정광필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조광조를 2품이나 건너뛰어 정4품의 관직인 응교(應敎)로 승진시킨 것은 바로 남곤이 주상께 ‘조광조는 과거 유생으로 천거를 받을 만큼 뛰어난 학행이 있고,많은 신진들의 추종을 받고 있으니 자격을 따질 것 없이 마땅한 자리에 앉히는 것이 좋겠나이다.’하고 추천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그뿐인가.조광조를 경연의 시강관(侍講官)과 춘추관의 편수관(編修官),그리고 승문원의 교감(校勘)도 겸직하게 만들어 당대 최고의 실력자로 만든 것도 바로 남곤이 아니었던가.그것이 2년 전의 일.불과 2년 사이에 조광조를 파격적으로 승진시켜 권력의 중심에 서도록 강력하게 천거하였던 남곤이 이번에는 이처럼 조광조를 숙청하려고 모의를 꾸미고 있는 것이 아닌가.무릇 정치란 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이해가 걸렸을 때에는 이처럼 손바닥을 뒤집듯이 쉽게 변하는 속성을 갖고 있는 것일까. “하오나 지금의 조광조는 변했나이다.주상의 밀지처럼 조광조는 자신의 세력을 확보하여 조정을 장악하고 심지어는 주상마저 허수아비로 만들려 하지 않소이까.” 남곤의 말에 정광필이 대답하였다. “나는 다만 자주색이 붉은 색을 빼앗을까 그것을 두려워할 따름이오.” 정광필은 수수께끼와 같은 말을 던진 후 방 한 구석에 있는 종이를 꺼내 붓에 먹을 듬뿍 묻혀 다음과 같이 써내렸다. “色而內荏 譬諸小人 其猶穿踰之盜也與” 남곤은 정광필이 쓴 문장을 읽어보았다.그 문장의 뜻은 다음과 같았다. “얼굴빛이 위엄이 있으면서 마음이 유약한 것을 소인에 비유하면 벽을 뚫고 담을 넘는 도적과 같은 것이다.” 최후의 통첩과 같은 남곤의 질문에 정광필은 두 줄의 문장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 보인 것이었다. 잠시 붓을 멈췄던 정광필은 다시 문장을 써내려갔다. “惡紫之奪朱也 惡利口之覆邦家者” 마지막 문장을 읽어본 남곤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하였다.그 말의 뜻은 다음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자주색이 붉은색을 빼앗는 것을 미워하며,말 잘하는 입이 나라를 전복시키는 것을 미워한다.” 당대의 문장가였던 남곤이 정광필이 쓴 그 문장의 내용을 모를 리 없었다.그 말은 논어의 양화(陽貨)편에 나오는 문장으로 ‘작은 지방의 토호였던 향원(鄕愿)을 덕을 해치는 도적’이라고 말하고 있는 공자는 ‘진짜 같은 가짜’,즉 사이비(似而非)에 대해서 경계하는 가르침을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즉 자주색은 붉은색에 가깝기는 하지만 붉은색은 아니다.따라서 자주색은 진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가짜인 것이다.마찬가지로 얼굴은 위엄이 있으면서도 마음속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은 벽을 뚫고,담을 넘는 도적의 행위이며,말 잘하는 입으로 나라를 전복시키는 행위 역시 도적의 행위인 것이다. 사이비. ‘비슷하지만 실은 아님’이란 뜻을 가진 사이비. 공자가 가장 미워하였던 것은 정치가들이 갖고 있던,이처럼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이었던 것이다. “하오면” 남곤이 붉게 상기된 얼굴로 따져 물었다. “대감께오서는 신을 향원이라고 비웃고 계시나이까.”˝
  • 儒林(27)-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儒林(27)-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준엄한 남곤의 질문에 정광필이 대답하였다. “신하된 도리로서 어찌 감히 주상의 뜻을 거역할 수 있단 말이오.하오나” 정광필은 물끄러미 남곤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공께오서는 일찍이 조광조를 천거하여 부교리에서 응교로 승진시키지 않았나이까.” 정광필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조광조를 2품이나 건너뛰어 정4품의 관직인 응교(應敎)로 승진시킨 것은 바로 남곤이 주상께 ‘조광조는 과거 유생으로 천거를 받을 만큼 뛰어난 학행이 있고,많은 신진들의 추종을 받고 있으니 자격을 따질 것 없이 마땅한 자리에 앉히는 것이 좋겠나이다.’하고 추천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그뿐인가.조광조를 경연의 시강관(侍講官)과 춘추관의 편수관(編修官),그리고 승문원의 교감(校勘)도 겸직하게 만들어 당대 최고의 실력자로 만든 것도 바로 남곤이 아니었던가.그것이 2년 전의 일.불과 2년 사이에 조광조를 파격적으로 승진시켜 권력의 중심에 서도록 강력하게 천거하였던 남곤이 이번에는 이처럼 조광조를 숙청하려고 모의를 꾸미고 있는 것이 아닌가.무릇 정치란 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이해가 걸렸을 때에는 이처럼 손바닥을 뒤집듯이 쉽게 변하는 속성을 갖고 있는 것일까. “하오나 지금의 조광조는 변했나이다.주상의 밀지처럼 조광조는 자신의 세력을 확보하여 조정을 장악하고 심지어는 주상마저 허수아비로 만들려 하지 않소이까.” 남곤의 말에 정광필이 대답하였다. “나는 다만 자주색이 붉은 색을 빼앗을까 그것을 두려워할 따름이오.” 정광필은 수수께끼와 같은 말을 던진 후 방 한 구석에 있는 종이를 꺼내 붓에 먹을 듬뿍 묻혀 다음과 같이 써내렸다. “色而內荏 譬諸小人 其猶穿踰之盜也與” 남곤은 정광필이 쓴 문장을 읽어보았다.그 문장의 뜻은 다음과 같았다. “얼굴빛이 위엄이 있으면서 마음이 유약한 것을 소인에 비유하면 벽을 뚫고 담을 넘는 도적과 같은 것이다.” 최후의 통첩과 같은 남곤의 질문에 정광필은 두 줄의 문장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 보인 것이었다. 잠시 붓을 멈췄던 정광필은 다시 문장을 써내려갔다. “惡紫之奪朱也 惡利口之覆邦家者” 마지막 문장을 읽어본 남곤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하였다.그 말의 뜻은 다음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자주색이 붉은색을 빼앗는 것을 미워하며,말 잘하는 입이 나라를 전복시키는 것을 미워한다.” 당대의 문장가였던 남곤이 정광필이 쓴 그 문장의 내용을 모를 리 없었다.그 말은 논어의 양화(陽貨)편에 나오는 문장으로 ‘작은 지방의 토호였던 향원(鄕愿)을 덕을 해치는 도적’이라고 말하고 있는 공자는 ‘진짜 같은 가짜’,즉 사이비(似而非)에 대해서 경계하는 가르침을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즉 자주색은 붉은색에 가깝기는 하지만 붉은색은 아니다.따라서 자주색은 진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가짜인 것이다.마찬가지로 얼굴은 위엄이 있으면서도 마음속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은 벽을 뚫고,담을 넘는 도적의 행위이며,말 잘하는 입으로 나라를 전복시키는 행위 역시 도적의 행위인 것이다. 사이비. ‘비슷하지만 실은 아님’이란 뜻을 가진 사이비. 공자가 가장 미워하였던 것은 정치가들이 갖고 있던,이처럼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이었던 것이다. “하오면” 남곤이 붉게 상기된 얼굴로 따져 물었다. “대감께오서는 신을 향원이라고 비웃고 계시나이까.”
  • 儒林(26)-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儒林(26)-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영의정이었던 정광필도 그 소문을 들었지만 그냥 웃어버리고 말았었다.근거 없이 떠도는 유언비어(流言蜚語)임에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밀서의 내용대로라면 주상은 오히려 이를 ‘주초의 술수’라 하여서 크게 문제 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정광필은 모골이 송연하였다.그는 다시 밀지를 읽어 내렸다. “…내가 지금 그들의 죄를 벌하려 하여도 대간들과 홍문관 6조 유생들이 모두 이를 반대해 어찌할 수 없으니,요즘은 음식을 먹어도 맛을 모르고 잠을 자도 편안하지 않으니 경들이 합심하여서 그들을 처치하고 나에게 알리라.” 그것이 밀지의 전문이었다.밀지를 모두 읽고나서 정광필은 묵묵히 앉아있었다.눈치를 살피던 남곤이 먼저 입을 열어 물었다. “다 읽으셨소이까.” “읽었소이다.” 정광필은 짧게 대답하였다.그러고 나서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주상께오서 음식을 먹어도 맛을 모르고 잠을 주무셔도 편안하지 않으시다는 말씀도 읽으셨소이까.” “그렇소이다.” “하오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남곤이 물었다. “어찌 하시겠습니까,대감 나으리께오서는.” 정광필은 조광조를 향한 남곤의 증오심을 잘 알고 있었다.남곤 역시 엿새 전 78명의 삭훈된 공신의 명단 속에 포함되어 있지만 그 이전에 이미 뿌리 깊은 원한이 있었다.남곤은 원래 문명을 떨치던 문장파로 도학을 숭상하는 조광조의 무리들과 체질적으로 맞지 않았지만 특히 지난해 명나라에 주청사(奏請使)로 갔을 때의 실수로 조광조 일파의 집중적인 성토를 받은 쓰라린 과거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명나라에서는 종계(宗系)의 일을 잘못 기술하고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 태조 이성계가 고려 말에 권신 이인임(李仁任)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고,태조가 고려 말의 네 왕,즉 공민왕과 우왕,창왕,공양왕을 모두 죽였다고 기록하고 있는데,이를 제대로 변무(辨誣)하지 못하고 귀국한뒤 예조판서가 되었다. 이에 대해 조광조의 무리들은 3년이고,4년이고 기필코 북경에 머물면서 이를 바로잡고 돌아와야지 어떻게 그대로 돌아왔느냐고 남곤을 질책하여 탄핵하는 상소를 수차례 올렸던 것이다. 그러므로 남곤이 조광조를 숙청하는데 앞장서서 이처럼 꼭두새벽에 천민의 복장을 하고 찾아온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대감 나으리” 남곤이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을 뱉었다. “주상께오서는 조광조의 무리를 처치하고 싶어 하십니다.조광조 무리를 한 사람이라도 남기면 그 해가 무궁할 것인즉 대감 나으리께오서는 이를 어찌하실 것입니까.” 남곤은 넌지시 정광필의 의향을 떠보며 때로는 좋은 말로 달래고,때로는 위협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기록은 전해오고 있다. “주상께오서는 오늘밤 반드시 나으리를 불러 의논할 것이니 나으리께오서는 주상의 뜻을 받들어 주초의 무리들을 남김없이 제거하여 나라를 안정되게 하시오.만약에 그렇지 못하면.” 남곤은 잠시 말을 끊었다.그리고 짧은 침묵 끝에 정광필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반드시 후회할 일이 많을 것이오.” 남곤의 위협적인 말을 들으며 정광필은 정색을 하여 꾸짖었다. “공은 재상의 몸으로 이처럼 천민의 복장을 하고 장안을 돌아다니면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것이오.사림(士林)을 해치는 일에 나보고 앞장서라는 것이오.이는 나로서 차마 할 수 없는 일이오.” 그러자 남곤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오면 대감께오서 주상의 뜻을 거역하시겠다는 말씀이시오.”
  • 儒林(26)-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영의정이었던 정광필도 그 소문을 들었지만 그냥 웃어버리고 말았었다.근거 없이 떠도는 유언비어(流言蜚語)임에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밀서의 내용대로라면 주상은 오히려 이를 ‘주초의 술수’라 하여서 크게 문제 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정광필은 모골이 송연하였다.그는 다시 밀지를 읽어 내렸다. “…내가 지금 그들의 죄를 벌하려 하여도 대간들과 홍문관 6조 유생들이 모두 이를 반대해 어찌할 수 없으니,요즘은 음식을 먹어도 맛을 모르고 잠을 자도 편안하지 않으니 경들이 합심하여서 그들을 처치하고 나에게 알리라.” 그것이 밀지의 전문이었다.밀지를 모두 읽고나서 정광필은 묵묵히 앉아있었다.눈치를 살피던 남곤이 먼저 입을 열어 물었다. “다 읽으셨소이까.” “읽었소이다.” 정광필은 짧게 대답하였다.그러고 나서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주상께오서 음식을 먹어도 맛을 모르고 잠을 주무셔도 편안하지 않으시다는 말씀도 읽으셨소이까.” “그렇소이다.” “하오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남곤이 물었다. “어찌 하시겠습니까,대감 나으리께오서는.” 정광필은 조광조를 향한 남곤의 증오심을 잘 알고 있었다.남곤 역시 엿새 전 78명의 삭훈된 공신의 명단 속에 포함되어 있지만 그 이전에 이미 뿌리 깊은 원한이 있었다.남곤은 원래 문명을 떨치던 문장파로 도학을 숭상하는 조광조의 무리들과 체질적으로 맞지 않았지만 특히 지난해 명나라에 주청사(奏請使)로 갔을 때의 실수로 조광조 일파의 집중적인 성토를 받은 쓰라린 과거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명나라에서는 종계(宗系)의 일을 잘못 기술하고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 태조 이성계가 고려 말에 권신 이인임(李仁任)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고,태조가 고려 말의 네 왕,즉 공민왕과 우왕,창왕,공양왕을 모두 죽였다고 기록하고 있는데,이를 제대로 변무(辨誣)하지 못하고 귀국한뒤 예조판서가 되었다. 이에 대해 조광조의 무리들은 3년이고,4년이고 기필코 북경에 머물면서 이를 바로잡고 돌아와야지 어떻게 그대로 돌아왔느냐고 남곤을 질책하여 탄핵하는 상소를 수차례 올렸던 것이다. 그러므로 남곤이 조광조를 숙청하는데 앞장서서 이처럼 꼭두새벽에 천민의 복장을 하고 찾아온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대감 나으리” 남곤이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을 뱉었다. “주상께오서는 조광조의 무리를 처치하고 싶어 하십니다.조광조 무리를 한 사람이라도 남기면 그 해가 무궁할 것인즉 대감 나으리께오서는 이를 어찌하실 것입니까.” 남곤은 넌지시 정광필의 의향을 떠보며 때로는 좋은 말로 달래고,때로는 위협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기록은 전해오고 있다. “주상께오서는 오늘밤 반드시 나으리를 불러 의논할 것이니 나으리께오서는 주상의 뜻을 받들어 주초의 무리들을 남김없이 제거하여 나라를 안정되게 하시오.만약에 그렇지 못하면.” 남곤은 잠시 말을 끊었다.그리고 짧은 침묵 끝에 정광필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반드시 후회할 일이 많을 것이오.” 남곤의 위협적인 말을 들으며 정광필은 정색을 하여 꾸짖었다. “공은 재상의 몸으로 이처럼 천민의 복장을 하고 장안을 돌아다니면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것이오.사림(士林)을 해치는 일에 나보고 앞장서라는 것이오.이는 나로서 차마 할 수 없는 일이오.” 그러자 남곤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오면 대감께오서 주상의 뜻을 거역하시겠다는 말씀이시오.”˝
  • 儒林(25)-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떨리는 마음으로 밀지를 읽어 내리던 정광필은 ‘내가 그들을 제거하려는 뜻을 딴 사람에게 알리지 말고 남곤과 심정에게는 알리는 것이 어떠하겠느냐.’는 문장에 이르러 잠시 멈추었다. 내용대로라면 주상은 이 밀지를 남곤에게 직접 전교한 것이 아닌 것이다.지금껏 정광필은 남곤이 직접 주상으로부터 밀지를 전해 받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그렇지 않고서야 남곤이 이처럼 천복을 하고 꼭두새벽에 자신의 집을 찾아올 일이 없지 않은가.그런데 밀서의 내용대로라면 주상의 밀지는 다른 사람에게 은밀히 건네진 것이며,남곤은 다만 이를 정광필에게 전해주기 위한 하수인으로 찾아온 것이다. “하오면” 조심스럽게 밀지를 읽던 정광필은 정색을 한 얼굴로 물었다. “주상께오서 내리신 밀지를 직접 하교 받은 사람은 누구시오.남공은 아니지 않소이까.” “그것은 차차 알게 되실 것이나이다.” 남곤은 싸늘한 표정으로 대답하였다. 그러나 정광필은 마음속으로 짐작되는 바가 있었다.밀서의 내용대로라면 주상은 조광조 일파의 신진세력들을 숙청하려는 것이다.이는 국기를 뒤흔드는 무시무시한 변란인 것이다.이미 과거에 있었던 수많은 사화(士禍)로 얼마나 많은 인재들이 피를 흘리면서 죽어갔던가.특히 선조인 연산군대에 있었던 두 차례의 사화,즉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로 이미 아까운 인재들이 수없이 희생되었다.그런데 그 일이 있은 뒤 불과 15년도 채 되지 않아 또다시 무시무시한 사화가 벌어지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왕께서 이 밀지를 준 사람이 누구인가는 자명해지는 것이다. 홍경주(洪景舟). 그는 엿새 전인 11월9일 전국공신 103명 가운데 그 삼분지 이에 해당하는 78명을 삭훈(削勳)할 때 마지막으로 포함된 인물이었다.자신의 딸이 대왕의 후궁이었던 희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삭훈되자 희빈을 시켜 중종에게 다음의 말을 하였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지 않은가. “나라의 인심이 모두 조씨에게 돌아갔습니다.지금 조광조 일파가 삭훈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의 중신(重臣)들을 모두 제거한 후 조광조 마음대로 하려 함이요,또 현량과를 만들어 그들의 세력을 공고히 하고 구신들 중에서 조금이라도 못마땅한 사람들이 있으면 곧 이를 배척하여 가히 입을 열지 못하게 하려 함입니다.만약에 지금 그들을 처치하지 않으면 이겨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잠시 밀서읽기를 멈춘 정광필은 내심 마음속으로 짚이는 것이 있었다. 이 밀지를 주상으로부터 직접 받은 사람이 누구인지가 분명해지는 것이다.바로 홍경주인 것이다. 정광필은 다시 밀지를 읽기 시작하였다. “…특히 유용근(柳庸謹),한충(韓忠),박세희(朴世熹),윤자임(尹自任) 등은 모두 무예가 있어 두려우니 이들을 제거하면 비록 죽어도 걱정이 없겠노라.전에 경연(經筵)에서 기준(奇遵)이 조광조가 재상이 될 인물이라 하였거늘 벼슬이 모두 그들에게서 나가니 나는 군왕이 아니라 다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조광조는 말이 공손하고 온순하여 쓸 만한 사람이기에 특별히 발탁하였지만 지금에 나는 주초의 술수에 빠져버렸다.” ‘주초(走肖)의 술수’ 정광필도 그 말의 뜻을 알고 있었다.며칠 전부터 해괴한 소문이 온 장안에 퍼지고 있었던 것이다.즉 대궐 안 동산에서 궁녀하나가 우연히 나뭇잎 하나를 땄는데 그 나뭇잎에는 다음과 같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는 것이다. ‘주초위왕(走肖爲王)’ 우연히 나뭇잎을 파먹은 벌레들이 새긴 글자는 주초,즉 조(趙)씨가 왕이 되려 한다는 천기로 바로 조광조를 가리킨다는 소문이었던 것이다.˝
  • 儒林(25)-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儒林(25)-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떨리는 마음으로 밀지를 읽어 내리던 정광필은 ‘내가 그들을 제거하려는 뜻을 딴 사람에게 알리지 말고 남곤과 심정에게는 알리는 것이 어떠하겠느냐.’는 문장에 이르러 잠시 멈추었다. 내용대로라면 주상은 이 밀지를 남곤에게 직접 전교한 것이 아닌 것이다.지금껏 정광필은 남곤이 직접 주상으로부터 밀지를 전해 받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그렇지 않고서야 남곤이 이처럼 천복을 하고 꼭두새벽에 자신의 집을 찾아올 일이 없지 않은가.그런데 밀서의 내용대로라면 주상의 밀지는 다른 사람에게 은밀히 건네진 것이며,남곤은 다만 이를 정광필에게 전해주기 위한 하수인으로 찾아온 것이다. “하오면” 조심스럽게 밀지를 읽던 정광필은 정색을 한 얼굴로 물었다. “주상께오서 내리신 밀지를 직접 하교 받은 사람은 누구시오.남공은 아니지 않소이까.” “그것은 차차 알게 되실 것이나이다.” 남곤은 싸늘한 표정으로 대답하였다. 그러나 정광필은 마음속으로 짐작되는 바가 있었다.밀서의 내용대로라면 주상은 조광조 일파의 신진세력들을 숙청하려는 것이다.이는 국기를 뒤흔드는 무시무시한 변란인 것이다.이미 과거에 있었던 수많은 사화(士禍)로 얼마나 많은 인재들이 피를 흘리면서 죽어갔던가.특히 선조인 연산군대에 있었던 두 차례의 사화,즉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로 이미 아까운 인재들이 수없이 희생되었다.그런데 그 일이 있은 뒤 불과 15년도 채 되지 않아 또다시 무시무시한 사화가 벌어지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왕께서 이 밀지를 준 사람이 누구인가는 자명해지는 것이다. 홍경주(洪景舟). 그는 엿새 전인 11월9일 전국공신 103명 가운데 그 삼분지 이에 해당하는 78명을 삭훈(削勳)할 때 마지막으로 포함된 인물이었다.자신의 딸이 대왕의 후궁이었던 희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삭훈되자 희빈을 시켜 중종에게 다음의 말을 하였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지 않은가. “나라의 인심이 모두 조씨에게 돌아갔습니다.지금 조광조 일파가 삭훈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의 중신(重臣)들을 모두 제거한 후 조광조 마음대로 하려 함이요,또 현량과를 만들어 그들의 세력을 공고히 하고 구신들 중에서 조금이라도 못마땅한 사람들이 있으면 곧 이를 배척하여 가히 입을 열지 못하게 하려 함입니다.만약에 지금 그들을 처치하지 않으면 이겨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잠시 밀서읽기를 멈춘 정광필은 내심 마음속으로 짚이는 것이 있었다. 이 밀지를 주상으로부터 직접 받은 사람이 누구인지가 분명해지는 것이다.바로 홍경주인 것이다. 정광필은 다시 밀지를 읽기 시작하였다. “…특히 유용근(柳庸謹),한충(韓忠),박세희(朴世熹),윤자임(尹自任) 등은 모두 무예가 있어 두려우니 이들을 제거하면 비록 죽어도 걱정이 없겠노라.전에 경연(經筵)에서 기준(奇遵)이 조광조가 재상이 될 인물이라 하였거늘 벼슬이 모두 그들에게서 나가니 나는 군왕이 아니라 다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조광조는 말이 공손하고 온순하여 쓸 만한 사람이기에 특별히 발탁하였지만 지금에 나는 주초의 술수에 빠져버렸다.” ‘주초(走肖)의 술수’ 정광필도 그 말의 뜻을 알고 있었다.며칠 전부터 해괴한 소문이 온 장안에 퍼지고 있었던 것이다.즉 대궐 안 동산에서 궁녀하나가 우연히 나뭇잎 하나를 땄는데 그 나뭇잎에는 다음과 같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는 것이다. ‘주초위왕(走肖爲王)’ 우연히 나뭇잎을 파먹은 벌레들이 새긴 글자는 주초,즉 조(趙)씨가 왕이 되려 한다는 천기로 바로 조광조를 가리킨다는 소문이었던 것이다.
  • 儒林(23)-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노인으로부터 난데없이 ‘대감마님’으로 불려진 정체불명의 사내는 그 말을 들은 순간 입에다 손을 대어 쉬잇 하고 주의를 주고는 낮은 소리로 말하였다. “어서 가서 대감 나으리께 남산골 사는 남 서방이 뵈러 찾아왔다고 여쭈어라.” 남산골 사는 남 서방.단순히 남 서방이라고 자신을 지칭한 사내의 목소리에는 위엄이 깃들어 있었다.그러나 노인은 그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비록 정승 댁의 하인이긴 하지만 오랫동안 눈썰미로 그 남루한 차림의 손님이 누구인지 단박에 알아보았기 때문이었다. 남 서방. 자신을 홀대하여 벼슬 없는 서민의 이름으로 서방이라 하였지만 그것이 될 법한 호칭인가.그 사람은 예조판서 남곤(南袞)이 아닌가.예조라면 정2품의 고위대신으로서 예악과 제사·과거 등의 일을 맡아하였던 육조 중의 하나인 것이다.그러한 재상 나으리가 이처럼 광대들이나 입을 수 있는 천복을 입고 아직 어둑어둑한 새벽에 남의 눈을 피해 찾아오다니. “나으리” 노인은 황급히 허리를 굽혀 말하였다. “어서 안으로 드시옵소서.” 노인은 앞서 길을 연후 머뭇거리는 종놈을 향해 꾸짖어 말하였다. “어서 대문을 활짝 열고 맞아들이지 못하겠느냐.” 이윽고 대문이 활짝 열리자 노인이 안내하여 남 서방,아니 남곤은 집안으로 들어섰다. ―사생결단이다. 남곤은 집안으로 들어서면서 속마음으로 중얼거렸다. ―어차피 죽느냐 사느냐의 끝장을 봐야하는 순간이 다가 온 것이다. 남곤은 손을 빼어 품속에 들어 있는 단도를 가만히 만져보았다.여차하면 비수를 빼 정광필의 목숨을 단칼에 빼앗아야 할 위기의 순간이 다가올지도 모른다. “나으리” 앞장서서 걷던 노인이 남곤을 사랑채로 안내한 후 허리 굽혀 말하였다. “이곳에 잠시만 계시옵소서.대감마님께 여쭙고 오겠나이다.” “그리 알겠네.” 남곤은 다 떨어진 짚신을 벗고 방으로 들어가 앉았다.아직 날이 밝지 않아 어둠이 깃들어 있었으나 어디선가 새벽을 알리는 닭 울음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오고 있었다.이미 죽음을 각오한 남곤이었으므로 차라리 마음이 편하였다.남곤으로서는 오직 이 길만이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이었던 것이다.거사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어차피 의정부(議政府)를 설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의정이라면 백관을 통솔하고 정사를 도맡던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을 가리키는 말로 다행히 얼마 전 좌의정 신용개는 사망하였다.남은 사람은 영의정 정광필과 우의정 안당 뿐이다.그러나 안당은 난공불락의 난적.조정의 신진세력들과 가까운 사이로 그를 우군으로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에 비하면 영의정 정광필,그는 57세의 노 대신으로 대왕마마 뿐 아니라 모든 대신으로부터 신망이 높았으므로 만일 그의 지지를 얻는다면 이는 호랑이의 날개를 얻는 일과 마찬가지일 것이다.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정좌하여 앉은 자세로 남곤은 생각하였다. 그가 거절하여 음모가 발각될 위험에 처할 시에는. 남곤은 품속의 단도를 가만히 어루만지면서 이를 악물고 맹세하였다. 단칼에 그의 목을 찔러 목숨을 빼앗을 것이다. 어차피 오늘밤이면 모든 것이 판가름날 것이다.오늘밤이면 죽느냐 사느냐의 피의 숙청이 시작될 것이다. 그들을 죽이지 않는다면 반드시 내가 죽을 것이다.거사직전에 이처럼 위험을 무릅쓰고 정광필을 찾아온 것은 그만큼 정광필의 존재가 이번 거사에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인 것이다. 이윽고 바깥에서 헛기침 소리가 났다.정광필의 인기척이었다. 글 최인호˝
  • 儒林(23)-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노인으로부터 난데없이 ‘대감마님’으로 불려진 정체불명의 사내는 그 말을 들은 순간 입에다 손을 대어 쉬잇 하고 주의를 주고는 낮은 소리로 말하였다. “어서 가서 대감 나으리께 남산골 사는 남 서방이 뵈러 찾아왔다고 여쭈어라.” 남산골 사는 남 서방.단순히 남 서방이라고 자신을 지칭한 사내의 목소리에는 위엄이 깃들어 있었다.그러나 노인은 그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비록 정승 댁의 하인이긴 하지만 오랫동안 눈썰미로 그 남루한 차림의 손님이 누구인지 단박에 알아보았기 때문이었다. 남 서방. 자신을 홀대하여 벼슬 없는 서민의 이름으로 서방이라 하였지만 그것이 될 법한 호칭인가.그 사람은 예조판서 남곤(南袞)이 아닌가.예조라면 정2품의 고위대신으로서 예악과 제사·과거 등의 일을 맡아하였던 육조 중의 하나인 것이다.그러한 재상 나으리가 이처럼 광대들이나 입을 수 있는 천복을 입고 아직 어둑어둑한 새벽에 남의 눈을 피해 찾아오다니. “나으리” 노인은 황급히 허리를 굽혀 말하였다. “어서 안으로 드시옵소서.” 노인은 앞서 길을 연후 머뭇거리는 종놈을 향해 꾸짖어 말하였다. “어서 대문을 활짝 열고 맞아들이지 못하겠느냐.” 이윽고 대문이 활짝 열리자 노인이 안내하여 남 서방,아니 남곤은 집안으로 들어섰다. ―사생결단이다. 남곤은 집안으로 들어서면서 속마음으로 중얼거렸다. ―어차피 죽느냐 사느냐의 끝장을 봐야하는 순간이 다가 온 것이다. 남곤은 손을 빼어 품속에 들어 있는 단도를 가만히 만져보았다.여차하면 비수를 빼 정광필의 목숨을 단칼에 빼앗아야 할 위기의 순간이 다가올지도 모른다. “나으리” 앞장서서 걷던 노인이 남곤을 사랑채로 안내한 후 허리 굽혀 말하였다. “이곳에 잠시만 계시옵소서.대감마님께 여쭙고 오겠나이다.” “그리 알겠네.” 남곤은 다 떨어진 짚신을 벗고 방으로 들어가 앉았다.아직 날이 밝지 않아 어둠이 깃들어 있었으나 어디선가 새벽을 알리는 닭 울음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오고 있었다.이미 죽음을 각오한 남곤이었으므로 차라리 마음이 편하였다.남곤으로서는 오직 이 길만이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이었던 것이다.거사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어차피 의정부(議政府)를 설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의정이라면 백관을 통솔하고 정사를 도맡던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을 가리키는 말로 다행히 얼마 전 좌의정 신용개는 사망하였다.남은 사람은 영의정 정광필과 우의정 안당 뿐이다.그러나 안당은 난공불락의 난적.조정의 신진세력들과 가까운 사이로 그를 우군으로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에 비하면 영의정 정광필,그는 57세의 노 대신으로 대왕마마 뿐 아니라 모든 대신으로부터 신망이 높았으므로 만일 그의 지지를 얻는다면 이는 호랑이의 날개를 얻는 일과 마찬가지일 것이다.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정좌하여 앉은 자세로 남곤은 생각하였다. 그가 거절하여 음모가 발각될 위험에 처할 시에는. 남곤은 품속의 단도를 가만히 어루만지면서 이를 악물고 맹세하였다. 단칼에 그의 목을 찔러 목숨을 빼앗을 것이다. 어차피 오늘밤이면 모든 것이 판가름날 것이다.오늘밤이면 죽느냐 사느냐의 피의 숙청이 시작될 것이다. 그들을 죽이지 않는다면 반드시 내가 죽을 것이다.거사직전에 이처럼 위험을 무릅쓰고 정광필을 찾아온 것은 그만큼 정광필의 존재가 이번 거사에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인 것이다. 이윽고 바깥에서 헛기침 소리가 났다.정광필의 인기척이었다. 글 최인호
  • 외교장관 반기문씨 임명/외국언론 반응

    |워싱턴 백문일특파원·서울 김균미기자|주요 외신들은 16일 노무현 대통령이 윤영관 외교부장관의 경질 하루 만에 후임에 반기문 청와대 외교보좌관을 임명한 사실을 긴급 뉴스로 일제히 타전하며 관심을 보였다. AP통신과 AFP통신,BBC방송 등은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의 성명 내용을 자세히 전하면서 특히 반 신임 장관이 30년 경력의 전문 외교관으로 미국통이라는 점과,노무현 정부 출범 때부터 청와대 외교보좌관으로 노 대통령을 측근에서 보좌해 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영리단체인 아시아재단의 스콧 스나이더 서울 대표는 “반 신임 장관은 미국 관료들 사이에 잘 알려진 전문 외교관이고 1993∼94년 제1차 북한 핵위기 때 주미 대사관 정무공사로 일한 경험이 있고 노 대통령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한·미 동맹관계의 균열 가속화에 대한 미국 내 우려를 어느 정도는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앞으로 노 대통령의 반 신임 장관에 대한 신뢰 정도와 반 신임 장관이 대미 관계,이라크 파병 등 산적한 현안들을 어떻게 처리해 나가느냐가최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미국은 윤 장관의 사임 이후 한국의 대미정책과 관련,“노무현 대통령이 연두회견에서 한·미 협력을 칭찬하고 한·미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 데 주목한다.”고 강조했다. 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대변인은 15일 정례 브리핑에서 윤 장관의 사임에도 “(협력적인) 한·미관계가 유지되고 강화하기를 고대한다.”며 “과거에도 그랬듯이 한국은 아주 가까운 동맹국으로 계속 남아 여러 현안에서 함께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윤 장관의 사임은 한·미 관계나 한국의 외교정책을 변화시킬 만한 이슈가 결코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미 국무부의 원론적 언급과는 대조적으로 미국의 일부 언론은 한·미 관계의 장래에 대해 상당한 우려를 표시했다. LA타임스는 윤 장관은 내부 정치적 갈등으로 사임했으며 한·미 관계를 더 어렵게 하는 ‘전조’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뉴욕타임스는 윤 장관의 사임은 역내 외교정책에서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는 노 대통령의 승리로 평가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수 성향의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에서의 숙청’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노 대통령이 윤 장관 경질 기조를 이어 나간다면 미국 정부의 인내심이 머잖아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보도했다. mip@
  • 한나라 공천토론회 ‘혹붙인 격’

    ‘밀실에서 광장으로’ 한나라당이 9일 오후 시민·사회단체 인사들과 함께 마련한 ‘개혁공천 국민 대토론회’의 표어이자,화두였다.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김상희 여성민우회 대표,김영래 한국 NGO학회장,박인제 변호사,서경석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공동대표,소설가 이문열씨 등 참석자들은 토론회 개최 취지에는 저마다 높은 점수를 줬다. 하지만 “한나라당 같은 당이 이런 공개 토론회를 개최한 것 자체가 진일보”라는 냉소적 시각에서 비롯된 평이어서,당 관계자들을 떨떠름하게 했다.이들은 작심한 듯,정치개혁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한 책임을 한나라당에 돌리며 비판을 쏟아냈다. 서경석 대표는 “정치개혁은 미뤄놓고 개혁공천을 하겠다는 건 순서가 뒤바뀐 것으로 국민앞에 설득력이 없다.”고 지적했다.김상희 대표는 “한나라당이 개혁공천을 말할 자격이 있나 의구심이 든다.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닌가.정치개혁 의지 없이 국민의 시선을 다른 데 돌리고 개혁하는 체하는 모습 보이려는 게 아닌가.”라며 강한 불신감을 내비쳤다.박인제 변호사는 한나라당이 시민단체의 당선운동에 반발한 것과 관련,“한나라당은 ‘당선운동 대상이 될 만한 사람을 내놓겠다.’고 하면 될 일이지 도리어 피해망상적 반응을 보였다.”면서 “상품 불매운동이 펼쳐지면 상품자체를 불신하지 운동하는 사람을 불신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다만 김기식 처장은 지난 2000년 낙선운동 당시를 반성하기도 하면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다.그는 “당시 부패·인권·선거법 위반 등 의정활동외 부분만 갖고 낙선의원을 선정했던 한계가 있었다.”면서 “사고치지 않고 4년간 지역만 돌아다닌 의원을 배제하려면 반드시 의정활동을 평가내용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또한 “텃밭인 영남에서 물갈이를 하지 않을 경우 이번 공천은 개혁공천이 아닌 반대파를 숙청하기 위한 공천으로 비쳐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당 공천심사위원인 이문열씨는 “한나라당은 우리 현대사에 오래된 큰 배와 같다.많은 짐을 실어날랐지만,시대의 모순과 부조리도 함께 실려있어 침몰하지 않을까 위기의식도 든다.”면서 “모순과부조리를 들어내고,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건전한 보수,건전한 대안이 되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공천에 임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지운기자 jj@
  • 후세인 생포/사담 후세인 영욕의 일생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은 서방국가에는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사탄 후세인’이었지만 아랍권에서만큼은 미국을 위시한 서방 제국주의에 유일하게 ‘맞서는 자’(아랍어로 사담의 의미)로 영웅 대접을 받았다. 군 장교이던 외삼촌의 영향으로 10대 때부터 반외세·반제국주의 사상에 깊이 빠져 있던 후세인은 대학생이던 1957년 범아랍민족주의를 표방한 바트당에 가입한 뒤 이듬해 영국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던 압델 카림 카셈 총리 암살을 꾀하면서 파란만장한 정치 역정을 시작했다.1968년 바트당의 쿠데타 성공으로 부통령 자리에 오르면서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79년 대통령에 취임한 후세인은 근대화 정책과 정치적 소수파인 시아파와 쿠르드족 탄압 등을 통해 입지를 굳힌 뒤 외부로 눈을 돌렸다.아랍의 맹주가 되려는 야욕으로 80년 이란을 침공,8년간 전쟁을 벌였고 90년 쿠웨이트를 공격,‘전쟁광’이란 딱지를 달았다.두 번의 전쟁과 국제사회의 봉쇄조치는 이라크 경제를 파탄나게 하고 민초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후세인이 24년간독재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데는 지속적인 정적 제거와 대국민 기만전술이 주효했다.후세인은 공포에 기초한 스탈린식 통치술을 숭배했고 이를 실행,‘바그다드의 도살자’로 불렸다.그의 집권 3년간 3000명에 달하는 정적이 목숨을 잃었다.자신의 비리를 폭로한 사위들도 처형,권력 유지를 위해서라면 친·소 관계도 따지지 않았다. 그의 지속적인 숙청 작업은 끊임없는 암살 위협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그는 거처를 수시로 옮겨 다니며,외부 노출을 극도로 꺼려 공개 행사에 자신과 꼭 닮은 ‘가짜 후세인’을 내보낸다는 소문도 있었다. 후세인이 독재자이긴 했으나 처음부터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깡패국가’의 지도자는 아니었다.미국은 이슬람 혁명으로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린 이란의 호메이니 정권을 견제할 요량으로 후세인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미국이 이라크 침공의 구실로 삼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도 미국의 지원 아래 제조·보유된 것이다.화학·세균무기 제조 비법도 미국으로부터 전수받았다.그러나 1986년 이란-콘트라 게이트가 터지면서관계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이라크는 석유 과잉 생산으로 국제유가를 떨어뜨리는 쿠웨이트에 앙심을 품고 90년 쿠웨이트를 침공,91년의 걸프전 발발을 불렀다.한 달 뒤 미군 특수부대가 쿠웨이트에 진입,걸프전은 막을 내렸지만 후세인은 건재했다. 걸프전 이후 인권 탄압 자행과 더불어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한다는 비난을 받아온 후세인은 유엔 사찰을 거부,방해했다.2001년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이라크를 이란·북한과 더불어 ‘악의 축’으로 규정했고 후세인은 세계평화를 위해 제거되어야 할 제1 목표로 낙인찍혔다.그는 2003년 3월 이라크전쟁이 발발하면서 무소불위의 독재자에서 도망자 신세로 전락했다. 박상숙기자 al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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