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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노란리본을 단 장군…그의 백의종군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노란리본을 단 장군…그의 백의종군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 침몰한 세월호가 3년 만에 처참한 모습으로 수면 위에 다시 떠올랐다. 3년 전 침몰하는 배를 보며 발을 동동 구르던 국민들의 슬픔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분노로 바뀌었다. 참사의 원인이 하나둘씩 밝혀지고 당시 초기 대응이 제대로 이루어졌더라면 희생자를 좀 더 줄일 수 있었던 정황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분노한 국민들은 노란색 리본을 달고 촛불을 들었다. 사고 진상규명과 초기 대응에 실패한 관련자 처벌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요구는 거세어졌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물어 해양경찰을 해체하고 관계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사법처리에 나섰다. 이 같은 불똥은 참사 당시 사고 해역에서 해경을 보조해 구조작전에 나섰던 해군에게도 튀었다. 최신형 구조함인 통영함이 방산비리 때문에 구조작전에 투입되지 못했다는 발표가 난 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다수의 전·현직 장교들이 무더기로 입건됐다. 그렇게 대한민국 해군은 방산비리의 온상으로 낙인찍히며 현직 참모총장이 강제 전역 및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끝없는 추락이 시작된 것이다. 구조 총력전…통영함은 왜 안왔나? 참사 당일 서서히 침몰해가는 세월호를 TV 생중계로 지켜보며 발을 동동 굴렀던 많은 국민들은 도대체 그 많은 해군과 해경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기에 아이들이 산 채로 수장되고 있는데도 속수무책 보고만 있었냐며 분개하기 시작했다. 국민들은 해군과 해경이 가라앉아 가는 배 안에 들어가 아이들을 구조해 나오는 모습을 기대했지만, TV를 통해 생중계되는 현장에서 그런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일각에서는 해군과 해경이 적극적인 구조 의지가 없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는가 하면, 정치적 이유 때문에 고의로 구조작업을 게을리 했다는 주장도 나오기 시작했다. 해군이 통영함과 같은 최신 구조 자산들을 모두 투입하지 않았고, 인근 해역에 훈련 차 들어와 있던 미 해군의 대형 강습상륙함 본 험 리처드함의 현장 투입을 해군에서 막았다는 억측 보도도 쏟아졌다. 과연 해군은 세월호 참사 때 구조작업에 손을 놓고 있었을까? 해군은 해경으로부터 세월호가 침수 중이라는 상황 전파를 받은 직후 즉각 이를 지휘 라인을 통해 전 부대에 전파했다. 보고를 받은 황기철 당시 해군참모총장은 작전사령부에 “모든 가용 전력을 동원해 구조 작전에 총력을 다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한편, 사고 해역에서 가장 가까운 해군 함정을 수배했다. 마침 약 40마일 거리에 유도탄고속함인 ‘한문식함’이 있었고, 전속력으로 사고 해역으로 출동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이밖에 경계 작전에 투입되지 않고 출동 가능한 모든 함정에 출동 명령이 내려졌다. 한국형 구축함(DDH) 1척, 호위함(FF) 2척, 초계함(PCC) 1척, 고속정(PKM) 5개 편대, 구조함 2척, 항만지원정 등 20여 척의 함정이 즉각 사고 해역으로 출동했다. 해군 특수전전단(UDT/SEAL)과 해난구조대(SSU) 대원들도 최초 신고 접수 약 1시간 30여 분 후에 헬기 편으로 사고 해역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사고해역에 도착한 한문식함은 기본적으로 전투함이었기 때문에 해난사고에 대비한 구조용 장비를 갖추고 있지 못했다. 하지만 배가 침몰할 때에 대비해 가지고 있는 구명정과 구명조끼 50여 개를 던져 물 위로 나온 생존자들을 구조하는데 온힘을 다했다. 황 총장은 해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장에게 “현재 인수 준비 중인 통영함이 사고 해역에 투입될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해 놓으라”는 지시를 내리고 사고 현장으로 날아갔다. 당시 통영함은 음파탐지기 성능 미달 문제로 인해 해군이 방사청에 문제를 제기해 놓고 있던 상태였고, 방사청은 이를 근거로 통영함 인수를 거부하고 있었다. 즉, 이때까지만 해도 통영함의 소유권은 해군이 아닌 대우조선해양에 있었기 때문에 해군이 마음대로 배를 출항시킬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특히 해군은 이미 3척의 구조함을 보유하고 있었고, 이 보유 척수는 법으로 정해져 있었다. 배에 탑승하는 승조원 숫자 역시 법으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만약 통영함을 보내게 된다면 광양함이나 평택함 등 이미 출동한 구조함이 퇴역해야 한다는 법적 문제도 걸림돌이 됐다. 당시 기획관리참모부장이던 박 모 제독 등 일부 참모진은 이러한 법적 문제와 구조작전의 효율성 저하 등 여러 이유를 들어 통영함 투입을 반대했다. 하지만 황 총장은 “잠수사들을 위한 감압 챔버가 1대라도 더 있어야 할 것 아니냐”며 즉각 투입 준비를 지시했다. 이에 따라 해군은 급히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들과 만나 통영함 출동을 위한 합의각서를 체결했다. 사고 당일 밤 11시 30분의 일이었다. 그동안 통영함은 엄청난 방산비리의 종합선물세트로 알려져 있었지만, 문제가 된 것은 음파탐지기뿐이었다. 이 음파탐지기는 수중에 무엇이 있는지 그 위치를 파악하기 위한 장비인데, 세월호 구조작전의 경우에는 조난 선박의 위치를 구조당국이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음파탐지기가 사용될 일이 없었다. 사고 현장에 통영함이 투입될 경우 통영함이 가진 장비 가운데 활용될만한 것은 잠수사들을 위한 감압챔버 정도였다. 그러나 이미 사고 해역에는 수중 구조작업을 전문으로 하는 잠수함 구난함 ‘청해진함’을 비롯해 평택함과 다도해함 등 감압챔버를 갖춘 함정들이 다수 출동해 있던 상태였다. 동시에 투입될 수 있는 잠수사들의 숫자는 제한되어 있었고, 이들이 필요로 하는 감압챔버의 숫자 역시 충분했기 때문에 통영함은 결국 사고 현장에 투입되지 않았다. 통영함이 아직 제대로 된 항해조차 해본 적이 없어 출동 중 고장이나 기타 사고 발생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통영함이 사고 현장에 투입되지 못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통영함은 사고 해역에 출동했어야 했다. 이 배가 사고 현장에 투입되지 않았던 것이 빌미가 되어 해군에 ‘숙청’에 가까운 광풍이 불었기 때문이다. 희생양이 된 군인 세월호 참사 당시 해군참모총장이었던 황기철 제독은 군복을 입었던 40여 년 동안 상급자는 물론 부하들로부터 신망이 두터웠던 덕장(德將)으로 유명했다. 휘하에 있었던 장교와 병사들은 그를 “얇은 지갑을 탈탈 털어 부하들을 챙기는 인정 넘치는 상관”으로 기억한다. 그는 “나랏돈 함부로 쓸 수 없다”면서 업무 목적 외에는 관용차나 군 시설을 일절 쓰지 않았고, 주말에 타지에 살던 부인이 부대를 방문할 때도 버스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했다. 40여 년 동안 군 생활을 하면서 해군 최고계급까지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집 한 칸 겨우 마련했을 정도로 청빈한 삶을 살았다. 평소 병사들에게 “우리 해군에 와서 바다를 지켜줘서 고맙고 사랑한다”는 표현을 자주할 정도로 인간적인 정이 많았던 그에게 수백여 명의 어린 아이들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는 그야말로 악몽이었다. 그는 사고 보고를 받고 즉각 사고 해역으로 날아갔다. 수난구호법에 따라 현장 통제는 해경이 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당시 해경의 수장은 바다에서 근무해 본 경험이 부족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황 총장은 해군특수전전단(UDT) 출신으로 군 내에서 구조작전 전문가로 정평이 나 있던 김판규 제독(당시 해군본부 인사참모부장)을 비롯한 구조작전 전문가 11명을 해경에 보내 해경청장을 보좌하게 했다. 현행법과 지휘체계 구조상 해군참모총장이 구조작전에 직접 지시를 내릴 수 있는 권한은 없었지만, 그는 23일간 현장에서 구조요원들과 함께하며 그들을 격려하고, 현장의 요구를 그때그때 받아들여 해군이 필요한 지원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도왔다. 사고 해역은 유속이 빠르고 시야가 대단히 나쁜 곳이었다. 지원 나온 미군 구조대원들조차 “이렇게 위험한 곳에서는 추가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규정상 구조작업에 나설 수 없다”며 돌아갈 정도였다. 해군 해난구조대 대원들이 아무리 베테랑이라 하더라도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물속에 들어가 실종자를 건져오는 작업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작업이었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공포를 이겨내야 하는 일이었다. 10cm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오로지 손의 감각에 의지해 선체 안에 들어가 촉각만으로 실종자를 찾아 그 시신을 안고 물 밖으로 나와야 했기 때문이었다. 구조대원들은 실종자를 발견하면 한 손으로 시신을 안고 “그동안 차가운 물 속에서 얼마나 힘들었니? 형이 왔으니 형만 믿고 여기서 같이 나가자”는 말을 시신에게 걸면서 공포를 이겨야 했다. 황 총장은 사고 해역에 3주 넘게 머무르면서 구조대원들을 격려하고 보살폈다. 시신을 데리고 뭍으로 나온 뒤 넋이 나가 있는 구조대원들, 그리고 유족들을 안고 펑펑 울기도 했다. 그는 팽목항에 머무르는 동안 슬픔과 애도의 표시로 군복에 노란 리본을 달았다. 군복에는 규정된 약장이나 훈장 등을 제외하면 다른 부착물을 달 수 없었지만, 군인으로서 국민을 더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 그리고 희생자와 유가족들에 대한 애도와 슬픔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노란 리본뿐이었다. 일부 참모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는 군 통수권자의 팽목항 방문 때도 이 노란 리본을 달고 있었다. 하지만 이 노란 리본은 통영함 출동 문제와 더불어 어떤 위정자들에게 밉보이는 빌미가 된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참사 대응과 수습 과정에서 국민들의 질타를 받던 어떤 위정자들은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돌릴 방법을 찾고 있었다. 이들은 통영함이 투입되지 못했던 것에 착안해 “해군이 천문학적인 비리를 저질러 구조함이 제때 현장에 투입되지 못했다”는 주장을 만들어냈다. 아이들의 희생에 슬퍼하던 국민들은 격분했고, 관계자 처벌을 요구하는 여론이 확산됐다. 그렇게 별도의 수사단이 꾸려지고 해군에 ‘숙청’의 광풍이 불기 시작했다. 2014년 말 출범한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은 약 7개월여 기간의 수사를 통해 약 9809억원의 방산비리를 적발했다며 이 가운데 8402억원은 해군의 비리라고 발표했다. 해군은 28명이 구속 또는 기소되었는데 이 가운데는 황 해군참모총장을 비롯, 2명의 참모총장과 고위 장교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무리한 수사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사정당국은 해군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먼지털기’에 나섰다. 전투전단장 임무를 수행하며 최일선 지휘관으로 근무하던 대령급 장교를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수갑을 채워 연행하는가 하면, 정상적인 임무 수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해군의 관련 기관을 이 잡듯이 뒤지고 다녔다. 하지만 영관급 장교 몇 명 잡아넣는다고 해서 국민적 분노를 쉽게 잠재울 수는 없었다. ‘거물’이 필요했고, 그 희생양은 해군의 최고수장이었던 참모총장이었다. 현역 참모총장이 검찰에 소환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강제 전역됐다. 그는 출국금지 조치를 당하고 얼마 뒤 구속 수감됐다. 권력자들은 대한민국 해군 최고 수장이었던 4성 장군을 잡아다가 계급장을 떼어내고 일반 ‘잡범’들과 함께 구치소에 가뒀다. 1년 반이 넘는 법정 다툼에서 그는 유일한 재산인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그의 딸 역시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그 퇴직금으로 아버지의 변호사 비용을 대야 했다. 한평생 나라를 위해 헌신한 노장(老將)에게 기나긴 법정 투쟁은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으로 너무도 가혹했다. 그러나 진실이 밝혀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심과 2심, 그리고 대법원에서 그는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1~3심 재판부는 모두 황 총장에게 범행 동기도, 범행을 증명할 증거도 없다“고 판결했다. 8000억원이 넘는다는 해군의 방산비리 사건들은 그 규모가 수십 배로 부풀려졌거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것이 많았다. 황 총장이 연루된 통영함 사건의 경우 정치적 이유로 ‘거물’을 낚기 위해 중령급 장교가 저지른 비리를 해군총장에게 뒤집어 씌웠다는 법조계와 여론의 질타가 쏟아졌다. 해군작전사령관으로 몇날 며칠 밤을 새며 ‘아덴만 여명’ 작전을 지휘해 우리 국민을 구해내고, 해군참모총장으로서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유가족과 구조대원들의 곁을 지키며 함께 눈물 흘렸던 한 장군과 군인들은 누군가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모든 것을 잃은 희생양이 되어야 했다. 400여 년 전, 왜적이 침입하자 백성을 버리고 도망치던 선조는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의 군복을 벗기고 백의종군(白衣從軍)하게 했다. 조선수군의 수장으로 바다를 호령하며 휘하 장졸과 백성들의 신망을 한 몸에 받던 이순신은 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린 선조의 희생양이 됐던 역사가 오버랩된다. 대통령이 ‘세월호 7시간 행적 의혹’ 등으로 국민적 질타를 받으며 정치적 수세에 몰렸던 시기에 뜬금없이 통영함과 방산비리 이슈가 떠올랐고 평생을 위국헌신(爲國獻身)하며 살아온 한 장수와 장병들이 비리집단으로 몰려 명예가 짓밟혔다. 마치 400년 전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을 보는 듯 한 장면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것이다. 군인은 명예를 먹고산다. 그리고 그 명예는 국민들이 지켜주어야 한다. 3년 만에 뭍으로 떠오른 세월호를 통해 그동안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었던 진실들이 하나씩 밝혀질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도대체 누가 한 장수와 장병들의 명예를 짓밟고 군의 사기를 바닥까지 떨어뜨렸는지 이제는 국민들이 나서서 그 진실 규명을 요구할 때이다. 이일우 군사 전문 칼럼니스트(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finmil@nate.com
  • 北부모, ‘김정은’ 때문에 자식 직업으로 과학자 선호

    北부모, ‘김정은’ 때문에 자식 직업으로 과학자 선호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공포 정치’에 북한 부모들이 자식의 직업으로 ‘과학자’를 선호한다고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이 22일 보도했다. 과학자는 당 간부 등에 비교해 숙청될 가능성이 작기 때문이다. RFA는 양강도의 한 소식통을 인용해 “김정일 시대만 해도 북한의 학부모들은 자식이 군사복무를 마치고 당 기관이나 사법기관, 무역기관에 들어가 출세하기를 원했지만 김정은 시대에는 과학자로 키우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식통도 “자식을 과학자로 키우려는 학부모들의 욕심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라며 “정치계는 숙청될 위험이 크나 과학기술은 정치의 영향을 적게 받고 어느 제도 아래서든 가진 재능을 다 써먹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에서 간부는 노동당원으로 출신 성분이 좋은 이들 중에서 선발한다. 반면 과학자는 당원 여부나 출신 성분과는 무관하게 학업 성적이 좋은 기술대학 졸업생도 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은 ‘따라서 북한 학부모들은 자식을 과학자로 키우고자 영재 교육기관인 제1고급중학교에 보내려고 최선을 다한다’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태영호 “북한 간부들은 모두 기회주의자”

    태영호 “북한 간부들은 모두 기회주의자”

    “김정은, 원로 간부 두려워해… 5년간 300여명 공포 숙청 中이 北 포기 못 한다고 여겨… 北주민 무장혁명 시간문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북한 엘리트층 사이에서는 “태양에 가까이 가면 타 죽고 멀어지면 얼어 죽는다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며 “북한 간부들은 모두 기회주의자”라고 밝혔다.19일 홍콩 주간지 아주주간에 따르면 태 전 공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최대 차이점에 대해 “김정은은 원로 간부를 두려워한다”면서 이런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최근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 아주주간의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나는 북한 외무성에서 일했지만 2009년 초 이전까지 김정은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면서 “김정은은 북한 내에서 믿을 수 있는 친척이나 가까이 지낼 수 있는 학교 친구 등이 없어 불안감이 매우 강하다”고 설명했다. 태 전 공사는 “이것이 김정은이 끊임없이 원로 간부를 숙청하고 고모부인 장성택과 이복형인 김정남까지 암살한 근본 원인”이라며 “김정은은 지난 5년간 300여명의 간부를 숙청했다”고 덧붙였다. 중국에 대한 북한의 태도 변화가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김정은은 중국이 미국과 한국의 영향력 확대를 막을 수 있는 완충지대이며 중국은 절대로 김정은 정권을 버릴 수 없을 것으로 여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태 전 공사는 “김정일 시대에도 북한이 핵무기 연구를 했지만 당시에는 미국과의 협상을 위한 것이었다”면서 “그러나 김정은은 공개적으로 핵무기를 연구 발전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김정은이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목표는 간단하다”면서 “미국과 한국, 중국과의 전략적 관계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고 김씨 일가의 장기 집권을 유지하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태 전 공사는 한반도 문제 해결에 대한 중국의 역할을 묻자 “그 어떤 능력도 한반도 통일을 막을 수 없다”면서 “지구상에서 공포 통치를 일삼는 독재정권은 지속할 수 없으며 북한 주민의 무장혁명은 시간문제”라고 주장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日언론 “김정남, 중국에 있으면 살해될 일 없었다”

    日언론 “김정남, 중국에 있으면 살해될 일 없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이복형 김정남이 마카오에 머물렀다면 살해되지 않았을 거라는 관측이 나왔다. 1일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북한 정보 소식통의 견해를 인용해 김정남 암살 범행자들이 중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말레이시아에서 살해계획을 세웠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 소식통은 “김정남이 중국에 있으면 살해될 일은 없었다”면서 “김정남은 삼엄한 경비가 성격에 맞지 않아 언제나 필요 없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어 “김정남 살해를 김정은에게 말했던 것은 측근인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과 최룡해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정남 살해가 장성택 숙청의 연장선에 있으며 “김정은은 최룡해와 황병서의 꼭두각시 인형처럼 돼 자신의 판단능력은 사실상 없다”고 설명했다. 이 소식통은 “최룡해는 김정은을 어떤 형태로든 배제해 자신이 국가 지도자 자리에 앉으려고 하고 있다. 주변국의 위협이 된 김정은을 자신이 중심이 돼 배제하면 지도자가 돼도 국제사회가 받아들일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다”고 신문에 말했다. 한편 일본 산케이신문은 김정남이 암살되기 열하루 전 일본의 이시이 하지메 전 자치상과 면담 계획을 확정했었다고 보도했다. 이시이 전 자치상은 이 신문에 “김정남은 국제감각도 있고 고향에 대해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북한 인민의 행복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고도 들었다”면서 김정남 암살사건에 대해 충격적이고 유감이라고 표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열린세상] 자충수를 둔 북한, 차선책은 준비되어 있는가/이호령 한국국방연구원 북한연구실장

    [열린세상] 자충수를 둔 북한, 차선책은 준비되어 있는가/이호령 한국국방연구원 북한연구실장

    신경작용제 VX를 이용한 김정남 암살은 북한 당국에 자승자박의 결과가 됐다. 백두혈통과 애민주의의 강조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김정은 우상화의 허구를 폭로하는 결과를 초래했을 뿐만 아니라, 김정은이 준비한 김정일 생일 75주년 경축 선물인 북극성 2형 발사의 선전을 반감시켰다. 반면 국제사회가 금지한 북한의 화학무기 보유 및 능력, 공항과 같은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북한의 화학테러 위협 등에 대한 관심도를 높였고, 김정은 체제의 공고화에 대한 의구심을 증대시켰다.이처럼 김정남 암살은 여러 각도에서 볼 때 최악의 비합리적 결정이었다. 첫째, 김정남은 소위 북한의 실세 혹은 2인자로 간주됐던 장성택, 최룡해, 김원홍 등과 비교해 볼 때 김정은에게 잠재적 도전 세력이나 위협이 될 만큼 북한 사회에 대한 영향력이 크지 않다. 김정남은 장성택 처형 이후 더욱 숨죽이며 언론을 피하며 지냈다. 그럼에도 이복형을 암살한 것은 김정은 스스로 체제 공고화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하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잠재적 위협과 2인자로 부각되는 인물에 대한 지나친 견제와 제거는 김정은 체제를 공고화시키기보다는 대체 인물을 성장시키는 환경을 조성한다. 둘째, 최악의 독재자 이미지를 국제사회에 각인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김정은은 이미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로 지역 안정과 국제 규범에 맞서는 무모함과 비합리성을 보인 데다 감시, 통제, 숙청 등 고질적인 인권 탄압으로 유엔총회 대북인권결의안에 3년 연속 국제사법재판소(ICC) 회부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고모부 장성택 처형에 이어 이복형 암살로 반인륜적인 면모까지 더해져 김정은이 대내외로 선전하는 ‘애민주의’와 ‘최고의 존엄’ 이미지는 독재자의 잔인성과 폭력성을 덮기 위한 조작된 이미지였음을 스스로 폭로하는 셈이 됐다. 셋째, 비교적 북한에 온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와의 외교적 관계를 훼손시킴으로써 국제사회로부터 더욱 고립되는 결과를 자초했다. 말레이시아는 북한과 1973년 외교관계 수립 이후 상호 무비자 입국을 허용할 만큼 북한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 왔다. 특히 쿠알라룸푸르는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에도 비공식 미·북 간 회담 장소로 자주 사용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당국은 말레이시아 경찰과 의료진의 전문성과 신뢰성을 무시한 북한 강철 대사의 외교적 결례와 조선중앙통신을 통한 북한 당국의 거짓 주장을 겪으면서 북한에 매우 원칙적이고 강경한 태도를 취하며, 외교적 관계의 재검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더욱이 이번 암살로 북한은 말레이시아를 비롯해 베트남, 인도네시아, 중국 등 북한과 우호적 관계에 있는 국가들에 직간접적인 부정적 효과를 초래했다는 점에서 큰 외교적 오점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북한 당국의 화학테러 가능성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아흐메트 위쥠쥐 화학무기금지기구(OPCW) 사무총장은 화학무기금지협약(CWC)을 조인하지 않은 북한, 남수단, 이스라엘, 이집트 중 북한을 제외한 3개국의 합류는 긍정적으로 내다봤지만, 북한은 대화를 일절 거부하고 있어서 가장 큰 도전 과제로 보고 있다. 더욱이 이번 사건에서 김정남이 독성이 강한 VX로 20여분 만에 사망에 이르렀지만, VX에 직접 노출된 2명의 여성은 그렇지 않은 점을 볼 때, 북한의 화학무기 보유량과 더불어 연구 수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에 화학무기 및 화학테러 문제까지 더해짐으로써 북한 문제는 한층 더 복잡해지는 가운데, 미국 조야에서는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재지정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결국 김정은은 실질적으로 위협이 되지 않은 이복형을 죽임으로써 득보다 비용을 증대시켰다. 앞으로 권력 유지에 대한 더 큰 불안감과 의심을 증대시킬 것이고, 이는 다시 사찰 및 통제기구에 대한 의존성을 높이며 공포통치의 악순환에 빠져들 것이다. 또한 국제사회의 더 큰 제재와 압박을 초래하며 김정은의 스트레스 지수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이제 궤도 수정을 할 때다. 현 정책을 고집하고 시간을 보낼수록 북한 당국의 선택폭은 더욱 좁아진다. 최선이 부담스럽다면 차선책이라도 찾아 정책 수정을 해야 할 것이다.
  • “北 김원홍 前 보위부장 허위보고로 연금 상태”

    국가정보원은 27일 북한 김원홍 전 국가안전보위부장이 허위보고로 숙청된 뒤 연금 상태에 놓여 있으며 국가안전보위성(우리나라 국정원에 해당) 부상급(차관급) 간부 5명 이상이 고사총으로 총살됐다고 밝혔다. 이병호 국정원장은 이날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국가보위상(장관급)에서 해임된 김원홍이 지난달 말까지 노동당 조직 지도부의 조사를 받고 현재 연금 상태에 있다”고 밝혔다고 정보위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병기 의원이 전했다. 보위성 간부들에 대한 검열이 지속되고 있어 실무진에 대한 추가 처형 가능성이 있다고 국정원은 전망했다. 다만 김원홍의 허위보고가 김정남 암살과 관련이 있는지는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다. 김 의원은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김 전 부장이) 당 간부를 조사하면서 고문을 하다 말썽이 나서 허위보고를 했는데 발각된 것 같다”면서 “최고존엄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대로해서 모두 조사하고 처형한 것”이라고 했다. 정보위 국민의당 간사인 이태규 의원은 “김원홍이 없는 죄를 뒤집어씌워 당 간부를 고문하는 등 월권을 했고, 보위성에 대한 북한 인민들의 원성이 자자했다고 한다”면서 “나쁜 짓을 많이 해서 이번 기회에 숙청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분노의 표시로 보위성에 놓여진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동상을 치워버린 것으로도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보위원장인 자유한국당 이철우 의원은 “보위성이 김정일 동상을 섬길 정도가 안 된다는 뜻으로, 그만큼 보위성에 대한 처벌을 강화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규 의원도 “이번 기회에 조직을 숙청하면서 김 위원장이 부장을 겸직하는 노동당 조직부가 최고 실권부서로 떠올랐다”고 해석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국정원 “북한 국가보위성 김정남 암살 주도…명백한 국가 주도 테러”

    국정원 “북한 국가보위성 김정남 암살 주도…명백한 국가 주도 테러”

    국가정보원이 김정남 암살이 이복동생인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에 의해 조직적으로 전개된 “명백한 테러”라고 밝혔다. 국가정보원은 이병호 원장이 출석한 가운데 27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 전체회의에서 이와 같이 보고했다고 자유한국당 소속 이철우 정보위원장과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병기 의원, 국민의당 간사인 이태규 의원 등이 전했다. 이 위원장과 야당 간사들에 따르면 국정원은 이번 사건을 우리의 국가정보원에 해당하는 국가보위성과 외무성이 직접 주도한 테러사건이라고 밝혔다. 즉, 국가(북한)가 주도한 테러사건이라는 것이다. 국정원은 피살된 인물이 100% 김정남이 맞다면서 “김정남의 신원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들은 굉장히 많다”고 보고했다고 이태규 의원은 전했다. 국정원은 용의자 8명 가운데 4명이 보위성 출신, 실제 독살에 나선 2명은 외무성 소속이라면서 고려항공과 내각 직속 신광무역 소속도 포함됐다고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2개의 암살조직과 지원조로 구성됐으며, 1조는 보위성 소속 리재남과 외무성 소속 리지현으로 구성돼 베트남 여성 도안 티 흐엉을 포섭했고, 2조는 보위성 소속 오종길과 외무성 소속 홍송학으로 구성돼 인도네시아 여성 시티 아이샤를 포섭했다고 국정원은 보고했다. 이들 2개 암살조는 별도로 활동하다가 말레이시아에서 합류해 지난 13일 암살을 감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원조는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관에 파견된 보위성 주재관 현광성 등 4명으로 구성돼 암살조 구성과 김정남 동향 추적 등의 역할을 했다고 이 위원장과 야당 간사들은 전했다. 그러나 국정원은 이철우 위원장의 브리핑 이후 “정확한 보고내용은 김정남 암살에 보위성 요원이 많이 가담했다는 것이며, 어느 기관에서 주도했는지 여부는 추적 중에 있다”고 해명했다. 국정원은 북한 내부에서 김정남 피살에 대한 소식에 대해 함구하고 있지만 해외 요원과 일부 간부들 사이에서 확산하는 추세이며, 김정남의 존재를 잘 몰랐는데 상류층에 흘러들어 가면서 대단히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김정남이 장남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사람들도 있다고 전했다. 또 김정남의 존재를 처음 알아서 충격이라는 반응에서부터 ‘최고존엄이 단 몇백 달러에 암살돼 땅바닥에 구겨졌다’는 반응까지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정원은 북한 내 김정남 피살 소식 확산은 체제 약화 요인이 될 것으로 분석했다. 해임된 김원홍 국가보위상은 당 간부를 고문하고 김정은에 허위보고한 것이 들통났으며, 당 조직지도부의 보고를 받은 김정은이 격노해서 강등과 함께 연금시켰다고 국정원은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태규 의원은 “김원홍이 없는 죄를 뒤집어씌워 당 간부를 고문하는 등 월권을 했고, 보위성에 대한 북한 인민들의 원성이 자자했다고 한다”면서 “나쁜 짓을 많이 해서 이번 기회에 숙청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은 국가보위상 바로 밑의 차관급인 부상 등 간부 5명을 고사총으로 총살했으며 조사를 계속하고 있어 실무진에 대한 추가 처형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국정원은 보위성에 대해 “김정일 동상을 섬길 정도(자격)가 안된다”면서 김정은 지시로 동상을 다른 데로 옮겼다면서 “그만큼 보위성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숙청설 돌던 북한 최룡해, 3주만에 공개석상에 모습

    숙청설 돌던 북한 최룡해, 3주만에 공개석상에 모습

    북한 권력서열 2인자로 꼽히는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이 3주 만에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3일 “공훈국가합창단 창립 70돌 기념공연이 22일 인민극장에서 성대히 진행되였다”고 보도하며 참석자 가운데 한 명으로 ‘최룡해 동지’를 언급했다. 행사에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비롯해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김기남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참석했다고 중앙통신은 밝혔다. 최룡해는 지난 2일 보도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평양초등학원 시찰 수행을 마지막으로 3주째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특히 최룡해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의 피살 사건을 전후로 공식 행사에 나오지 않아 거취에 대한 의문은 더 커졌다. 최룡해는 지난 15일 북한 지도부가 총출동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75돌 생일 광명성절 중앙보고대회와 이튿날 금수산태양궁전 참배,연회 등에도 잇따라 불참하면서 방중설과 와병설, 실각설, 숙청설까지 제기됐다. 모종의 역할을 수행한 뒤 복귀했을 수도 있다. 최룡해의 거취에 관심이 쏠렸던 이유는 북한 권력서열 2인자이자 북·중 관계의 상징적 인물이어서다. 김정남 피살 사건은 북·중 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최룡해는 북한 노동신문이 23일 1면에 실은 공훈국가합창단 창립 70돌 기념공연 참석자들의 기념사진 맨 앞줄에 앉았다. 김정은의 오른편 두번째에 자리해 건재함을 나타냈다. 한국 언론에서 과거 수년동안 최룡해에 대한 이상설이 제기됐으나 그때마다 최룡해가 다시 등장해 건재함으로 과시했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북한 김정은, 5년간 간부 140여명 숙청…김정일은 3년간 2000명”

    “북한 김정은, 5년간 간부 140여명 숙청…김정일은 3년간 2000명”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집권 이후 5년 동안 140여명의 간부를 숙청했다는 전문가의 주장이 나왔다. 김정은 위원장의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경우 집권 초기에 약 2000명을 숙청한 것으로 추산됐다. 기존에 알려진 것과 달리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 후 숙청한 간부의 숫자가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집권 초기보다 적다는 것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22일 고려대 SSK사업단이 주최하는 ‘제2회 동북아 정세와 북한 문제 - 김정은 정권 5년 평가와 전망’ 세미나에서 ‘김정은의 리더십 특징과 평가’를 주제로 이와 같은 내용을 발표한다. 정 실장은 미리 배포한 발표문에서 “다수의 전문가는 김정은의 ‘즉흥적’ 결정에 의해 김정일 시대보다 더 많은 간부가 숙청되고 있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김정은 집권 이후 지난해까지 약 5년간 140여 명의 간부가 숙청된 것으로 알려진 반면 김일성 사망(1994년 7월) 후인 1997년부터 1999년까지 약 3년간 ‘심화조사건’을 통해 숙청된 간부는 2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는 것이다. 심화조사건은 당시 김정일 위원장의 지시로 실시된 한국전쟁 당시 북한 간부들에 대한 행적 조사 과정에서 문성술 당 중앙위 조직지도부 본부당 책임비서 등 많은 고위간부가 간첩죄로 숙청된 일을 가리킨다. 앞서 우리 정보당국 등은 김정일 집권 초기 4년간 처형자가 약 10명에 불과하다며 김정은의 ‘공포통치’를 상대적으로 부각시켰으나 김정일이 집권 초기 훨씬 더 간부들을 가혹하게 대했다는 게 정 실장의 주장이다. 정 실장은 또 “김정은의 통치행태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공포통치나 애민정치 등 어느 한 측면만 가지고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 실장은 또 “김정일 사망 직후 국내외 다수의 전문가는 김정은 체제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예상과는 반대로 김정은은 대내적으로 최고지도자로서 권위를 확립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김정은 숙부 김평일, 김정남과 유사…다음 암살표적 가능성”

    “김정은 숙부 김평일, 김정남과 유사…다음 암살표적 가능성”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숙부인 김평일(63) 체코 주재 북한 대사가 다음 암살 표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평일은 한때 김일성의 후계자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이복형인 김정일과의 권력 다툼에서 밀려나 1979년 이후 38년간 동유럽에서 장기간 외교적 망명생활을 하고 있다. 21일 홍콩 인터넷매체 홍콩01에 따르면 시사평론가 리여우치는 김평일이 김정남과 유사한 점이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평일은 김일성의 후처 김성애의 소생이고 김정남 또한 김정일과 정식 결혼하지 않은 성혜림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다. 사망한 김정남이 중국의 직간접적 지원을 받아온 반면 김평일은 구소련과 러시아의 암묵적 지원을 받는다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즉 김정남이 중국 측에 의해 김정은 대안으로 꼽히자 제거됐고, 김평일은 러시아 쪽에 의해 북한 정권 교체의 대안으로 부각될수록 암살대상 첫 순위에 꼽힌다는 것이다. 리여우치 평론가는 현재 김평일은 탈북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의사를 밝힌 적 없고 행동을 조심하고 있지만, 세계탈북자대회에서 김평일을 망명정부 지도자로 추대했다는 설이 나온 만큼 다음 표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유럽의 탈북자 단체가 북한 망명정부 수립을 추진하면서 김평일 대사와 접촉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국제탈북민연대 김주일 사무총장은 20일(현지시간) “지난해 10월 체코에 거주하는 탈북민을 통해 현지에서 열린 한 외교행사에 참석한 김평일 대사에게 ‘국제탈북민연대가 망명정부 수립을 위해 당신과 접촉을 원한다’는 메시지를 구두로 직접 전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에 김평일 대사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탈북자 단체들은 최소한 지난해부터 ’북한 망명정부‘ 구성을 추진해 왔으며, 망명정부 지도자로 김평일을 적임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김평일은 암살 조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2중, 3중의 조직을 만들어 둔데다 사고 방식이 동유럽 스타일인 그는 러시아의 호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의 숙청과 김정남의 암살로 김평일이 인식을 바꿔 공격이 최선의 방어로 나설 수도 있다는 시각도 있다. 또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이 부친의 복수를 하거나 공개적으로 북한을 비판할 경우 이 또한 김정은 정권으로부터 제거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남 암살사건와 관련해 “김정남의 죽음이 결국 김정은과 직간접적으로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과거 김정은이 2인자였던 고모부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돌연 처형한 것처럼 이번에도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사설] 국제 협력 강화해 김정남 암살한 北 고립시켜야

    김정남 암살이 북한 정권 소행으로 굳어져 가고 있다. 제3국이 관련된 만큼 조심스러웠던 정부도 어제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나서 “사건 배후에 북한 정권이 있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고 밝혔다. 실제로 말레이시아 당국의 수사 상황을 보면 북한을 주범으로 지목하는 데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현지 경찰은 리정철을 체포한 데 이어 다른 북한 국적 용의자 4명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한다. 현지 언론은 리정철이 북한의 대표 정보기관인 정찰총국 소속이라고 전하고 있다. 사건 당일 말레이시아에서 출국한 용의자들의 귀국 루트도 사건과 관련돼 있음을 증명할 뿐이다. 이들은 쿠알라룸푸르에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사흘 만에 평양에 도착했다. 말레이시아 경찰의 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는 만큼 사건의 전모는 조만간 드러날 것이다. 그럴수록 북한 정권이 아니라면 누구도 김정남을 암살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상식이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인 김정남을 암살한다는 것은 북한의 속성상 최고 지도자의 직접적인 지시 없이는 생각조차 가능하지 않다. 막무가내식 핵·미사일 개발로 김정은에 대한 국제사회의 따돌림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더구나 최근 ‘북극성 2형’ 중거리 탄도미사일의 시험 발사 이후 ‘김정은 정권을 더 두고 봐야 하느냐’는 목소리가 크게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결국 김정남 암살 사건의 본질은 ‘김정은을 대신할 지도자’를 사전에 제거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세계 최악의 인권 부재(不在) 국가’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핵심 간부를 잇달아 숙청한 것도 모자라 고모부인 장성택을 고사총으로 잔인하게 처형하는 공포 통치를 자행해 왔다. 이미 유엔은 안보리가 북한 인권 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도록 총회 결의안까지 통과시켰지만, 중국 등 일부 상임이사국의 반대로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북한 정권이 김정남을 암살했다는 결론이 내려진다면 누구도 ‘북한 인권의 ICC 회부’를 반대할 수도 없고, 반대해서도 안 된다고 본다. 정부는 국제사회와 합심 협력해 지구촌의 안정을 해치는 북한 정권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국제사회에 핵과 미사일 개발에 필요한 ‘돈줄’이 열려 있고, 무슨 일을 저질러도 감싸고 도는 ‘비호세력’이 존재하는 한 북한 정권은 변하지 않는다. 북한 근로자를 수입하는 나라들도 스스로 북한 공작원을 불러들이는 것과 다름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말레이시아도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짐작도 못 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김정은은 국제사회의 ‘북한 정권 교체’ 분위기에 김정남을 암살했지만, 역설적으로 ‘북한 정권 교체’를 가속화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음을 깨닫고 깊이 반성하라.
  • 홍용표 “김정남 암살 배후, 북한 정권임이 밝혀지고 있다”

    홍용표 “김정남 암살 배후, 북한 정권임이 밝혀지고 있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20일 김정남(46) 암살과 관련 “앞으로 수사결과 등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번 사건의 배후가 북한 정권임이 밝혀지고 있다”고 밝혔다. 홍 장관은 이날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서울외신기자클럽 초청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하며 “김정남 피살로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홍 장관은 이에 대한 근거로 “말레이시아 정부에서 발표했듯이 5명의 용의자가 북한 국적 가지고 있고, 추가로 3명의 북한 국적자가 이번 사건에 연루된 것이 공식적으로 확인됐다”며 “말레이시아 정부가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는데 그렇게 발표한 것은 그 의미가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홍 장관은 북한 정권의 김정남 암살 배경에 대해서는 “김정은 정권의 특징은 공포정치에 입각한 권력 유지”라며 “대내적으로는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서 권력기반을 흔들 수 있는 사람을 제거하고 숙청하는 공포정치를 활용하고, 대외적으로 핵·미사일 실험으로 노골적으로 위협을 가하는 것”이라며 이번 김정남 암살사건이 김정은 공포정치의 일환임을 시사했다. 그는 ‘북한 인권 문제를 공론화할 계획이 있느냐’는 취지의 질문에 “작년 12월에도 (유엔은 북한 인권 범죄를) ICC에 회부하도록 만장일치로 결의했다”며 “그런 차원에서 이번 사건이 다시 한 번 북한 정권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북한이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국제기준과 가치를 지키는 그런 방향으로 변화를 끌어내는 데 국제사회의 힘을 모으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남북대화 재개 필요성에 대해서는 “현 상황에서 대화는 북한의 비핵화에 기여하는 것이어야 한다”며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논의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성급한 대화는 북한의 핵보유국 주장을 정당화할 우려가 크다”며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시론] 특검팀 ‘성역 없는 수사’ 끝까지 경주해야/김현 대한변협회장 당선자

    [시론] 특검팀 ‘성역 없는 수사’ 끝까지 경주해야/김현 대한변협회장 당선자

    지난해 11월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 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이에 따라 박영수 특별검사가 임명되고, 12월 21일 70일간의 공식 수사를 개시했다. 이후 특검팀은 과감하면서도 속도감 있는 수사를 펼치고 있다. 특검의 목적은 대통령과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수사와 공소 제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임명한 법무부 장관이나 검찰총장의 주도권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수사를 행할 수 있는 특별검사를 두어 공정성을 높이려는 것이다. 1999년 ‘옷로비 사건’ 때 처음 특검 제도를 실시한 뒤 2014년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면서 상설 특별검사 제도를 도입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에서는 여야 합의로 별도의 법률을 제정해 특검의 자율에 따라 수사 대상이 관련 사건으로 확대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두고 수사 기간과 규모도 확대했다. 박영수 특검팀은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한 현 정부 장·차관급 인사들과 이화여대 입시·학사 비리 관련자들을 구속했다. 삼성을 중심으로 한 뇌물죄 관련 수사에도 거침없는 속도를 내고 박 대통령 대면 조사도 추진하고 있다. 두 차례 시도한 청와대 압수수색은 비록 모두 불승인됐지만 과감한 시도만으로도 역사적인 선례를 남긴 것으로 의미를 인정할 수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특검팀은 행정법원에 행정소송과 집행정지 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으로 법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박영수 특검팀은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제정한 특검법에 따라 출범했고 국민의 뜻에 따라 수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국민들은 그동안의 수사 성과를 지켜보면서 특검팀을 성원하고 있다. 특검팀이 공정하게 성역 없는 수사를 하는 모습을 계속 보일 때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 보면 편파적인 수사, 봐주기 수사, 정치적 반대자를 숙청하는 수사, 상부의 부당한 압력이 개입된 수사가 종종 나타나기도 했다. 그 결과 국민은 수사기관에 실망하고 직접적인 의사 표현을 하기에 이르렀으며, 이로 인한 촛불 집회는 모범적인 평화 집회로 광장 민주정치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았고 그 결과 박영수 특검팀이 탄생하게 됐다. 이 때문에 특검팀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의 적극적인 지지가 필요하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해 독립적인 지위를 가지는 특별검사의 임명과 직무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는 목적으로 특검법이 제정됐다. 특검법 제5조에서 밝힌 바와 같이 정치적 중립과 독립적인 직무수행 원칙을 견지하고, 출범 당시 천명한 대로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를 진행해 용두사미에 그치지 않도록 철저히 진상을 규명하는 것만이 역사 앞에 당당할 수 있는 길이다. 사법부의 최종 판단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특검팀의 1차 수사 기간은 2월 말로 종료되며, 특검법에 따라 추가 수사 기간 연장을 요청할 수 있다. 특검의 목적을 달성하기에 시간이 부족하다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이를 승인해 특검팀에 힘을 실어 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역대 특검에 비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만큼 특검팀은 남은 기간 혼신의 힘을 다해 성역 없는 수사로 성과를 거두어 국민의 높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기를 바란다. 국정을 농단하고 권력을 사유화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국민에게 실망과 부끄러움을 안겨 준 이번 사건에 대해 전 국민이 특검팀을 주목하고 있다. 특검팀은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살신성인의 자세로 명명백백하고도 차질 없이 엄정한 수사를 진행해 하루빨리 국정 공백을 종결짓고 희망의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 최근 우리는 지도자를 잘못 선택한 결과가 얼마나 치명적인지 알게 됐다. 뿌리 깊은 정경유착의 고리를 기필코 깨야겠다는 굳센 결의도 다지게 됐다. 특검팀이 소기의 성과를 거둔다면 대한민국은 고통의 시간을 딛고 보다 투명하고 합리적인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는 나라로 한 걸음 나아갈 것이다.
  • [北 김정남 피살] “김정남, 말레이서 IT사업… 클럽도 다녔다”

    말레이서도 보디가드와 동행 CCTV에 흔적 안 남기기도 암살 예견한 듯 “내 삶은 덤” 김정남은 말레이시아를 중심으로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기업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등을 제공하는 정보기술(IT) 사업에 종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 과정에서 쿠알라룸푸르의 고급 쇼핑몰 등에서 식사를 하거나 클럽에도 다닌 것으로 전해졌다. 말레이시아 더스타온라인은 16일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김정남이 IT 사업에 관련돼 있었던 것 같다”면서 “그는 자신의 생명을 노리는 시도가 있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쿠알라룸푸르 번화가인 창킷 부킷 빈탕에 있는 펍이나 클럽에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말레이시아에 한번 올 때마다 부촌으로 꼽히는 동네인 창킷 다만사라의 2층짜리 집에 10~15일가량 머물렀다. 종종 마카오에 있는 가족을 데려와 함께 지냈다. 때로는 5성급 호텔에 머물렀다. 가끔 부인이나 싱가포르 여자 친구를 데려오기도 했다. 김정남은 시내에 있는 여러 쇼핑몰 중에서도 특히 스타힐 갤러리를 선호했다. 스타힐 갤러리는 쿠알라룸푸르 상류층이 주로 이용하는 프리미엄 쇼핑센터로 보안이 철저하기로 유명했다. 말레이시아에 자주 드나들던 김정남이 발길을 끊은 것은 2013년 장영철 전 주말레이시아 북한 대사가 평양으로 소환된 이후부터다. 장 전 대사는 김정남의 고모부 장성택의 조카로 그해 12월 장성택과 함께 북한에서 숙청됐다. 한동안 말레이시아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김정남은 2015년부터 다시 말레이시아에 오기 시작했다. 장 전 대사 재임 기간인 2010~13년만 해도 대사관을 정기적으로 찾아 재정 지원을 받았으나 장성택 처형 이후로는 다른 곳에서 재정적인 도움을 받았다. 김정남은 말레이시아에서도 늘 보디가드와 동행했다. 폐쇄회로(CC)TV에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휴대장치를 갖고 다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를 잘 아는 한국 교민은 “그가 다녀간 뒤 CCTV를 확인해 보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면서 “그래서 촬영을 막는 무슨 장치를 소지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했었다”고 말했다. 한국 방문 제의도 거절했다. 마카오에서 김정남은 때때로 경호원 없이 자유롭게 지냈다. 다만 한국 교민과는 최근 교류하지 않았다. 마카오에서 10년 넘게 가깝게 지낸 지인 A씨에게 “지금 내 삶은 빌린 시간”이라며 “덤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말해 죽음을 예견하는 듯한 말을 하기도 했다. 마카오 친구들은 김정남을 ‘존’(John)이라고 불렀다. 그를 아는 교민은 “김정남이 한국 음식과 소주를 좋아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음식점을 방문하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김정남은 사망 당일 A씨를 비롯한 친구들과 마카오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 하기로 약속했었다. 그러나 A씨는 이상하게 그날 점심 때까지 김정남으로부터 연락을 받지 못해 걱정을 했다. 그날 저녁에서야 A씨는 김정남이 피살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쿠알라룸푸르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서울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北 김정남 피살] “김정남, 피살 전 北요원들과 접촉… ‘자진 귀국’ 종용받아”

    [北 김정남 피살] “김정남, 피살 전 北요원들과 접촉… ‘자진 귀국’ 종용받아”

    올 1~2월초 동남아서 3번 “소란 피우지 말고 들어와” 김정은, 北외교관 통해 서신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의 피살 배경에 대해 다양한 관측이 제기되는 가운데, 김정남이 올해 들어 동남아 지역에서 북한 외교관들과 세 차례 접촉했다는 주장이 16일 나왔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북한의 한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 외교관들이 김정남에게 김정은의 서신을 직접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RFA에 따르면 국가안전보위성(국가정보원 격)은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지난달 20일쯤 마카오에서 김정남과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은 “김정은이 해외에 머물고 있는 김정남을 입국시키라고 보위성에 지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소란을 피우지 말고 본인 스스로 귀국하도록 설득하라는 것이 지시내용이었다”고 밝혔다. 또 다른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이 지난 연말과 올해 초 해외에 파견된 외교관들에게 두 차례나 김정남을 만나도록 지시했다”면서 “라오스에 있는 외교관이 직접 김정남을 만나 김정은의 서신을 전달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RFA에 밝혔다. 하지만 김정남은 이들의 귀국 권고에 “생각할 기회를 달라. 시간이 필요하다”고 답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때문에 신변의 위협을 느낀 김정남이 미국이나 한국으로 망명할 가능성을 우려해 김정은이 암살을 지시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이와 함께 중국 베이징에서 김정남의 편의를 봐주던 북한 관리들이 김 위원장의 권력 승계 직후인 2011년 처형당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북한 고위급 관리 출신의 한 탈북자는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2003년부터 2010년 초까지 베이징에 주재하던 곽정철 전 북한대사관 당 비서가 김정남과 접촉한 혐의로 2011년 처형당했다”고 밝혔다. 북한 무역성(대외경제성) 당비서를 역임한 뒤 노동당 부부장급으로 중국에 주재하던 곽 비서는 당시 김정남을 3차례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탈북자는 “같은 해 고려항공 베이징지사 대표와 부대표 등 3~4명의 직원들이 처형되고 가족들은 수용소에 수감됐다”면서 “김정남의 여행과 탁송물 운반 등을 돕던 실무자들까지 숙청됐다”고 주장했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北외교관들, 김정은 지시로 김정남 ‘자진 귀국’ 설득”

    “北외교관들, 김정은 지시로 김정남 ‘자진 귀국’ 설득”

    북한 외교관들이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된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을 접촉하며 ‘자진 귀국’을 설득했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은 16일 북한의 한 간부를 인용해 “김정은이 해외에 머무는 김정남을 국내로 불러오라고 국가보위성에 지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소란을 피우지 말고 본인 스스로 귀국하도록 설득하라는 것이 김정은의 지시내용”이라고 보도했다. 이 간부는 “보위성은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지난 1월 20일 마카오에서 김정남과 만났다”며 “김정남은 북한으로 귀국하라는 김정은의 권고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달라. 시간이 필요하다’는 답변을 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정은은 송환지시를 받은 김정남이 신변에 위험을 느껴 미국이나 한국으로 망명할 수 있음을 우려했을 것”이라며 “김정은은 김정남이 해외에서 망명할 경우를 염려해 사전에 암살을 지시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이 지난 연말과 올해 초 해외에 파견된 외교관들에게 두 차례나 김정남을 만나도록 했다”며 “라오스에 있는 외교관이 직접 김정남을 만나 김정은의 서신을 전달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김정은이 김정남에게 북한으로 귀국을 회유한 것으로 짐작되지만, 김정남이 확답을 주지 않은 것이 김정은에게 살해를 지시하도록 만든 동기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2011년 김정은이 북한에서 최고 권력을 승계한 직후인 김정남의 주변 인물로 분류된 베이징 주재 북한 관리들이 처형·숙청됐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북한 고위관리 출신 탈북자가 “2003년부터 2010년 초까지 베이징에 주재하던 곽정철 전 북한대사관 당비서가 김정남과 접촉한 혐의로 다음 해 처형당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 탈북자에 따르면 북한 무역성(대외경제성) 당비서를 역임한 뒤 노동당 부부장급으로 중국에 주재하던 곽 전 비서는 당시 김정남을 세 차례 만났다는 이유로 처형됐다. 그의 가족들은 모두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다. 또 베이징에서 김정남을 보좌하던 노동당 대외연락부(225국) 소속 요원들과 고려항공 베이징지사 대표·부대표·실무자들까지 숙청됐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日 “北 체제 불안정”… 美 “김정은 리더십 큰 압박”

    日 “北 체제 불안정”… 美 “김정은 리더십 큰 압박”

    日, 합동정보회의 열어 美 “김정남 제거 시나리오 김정은이 만들어 이행한 것”中 “한반도에서 중대한 일 발생할 수 있다는 징조” 일본을 비롯한 각국 정부는 김정남의 피살 관련 정보를 얻고자 정보망을 모두 가동해 배경과 추이 등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15일 “(김정남 피살이) 일본의 안보에 직접 영향을 주는 특이 현상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오늘 스기타 가즈히로 관방 부장관을 의장으로 하는 합동정보회의를 열고 관련국과 연대해 정보 수집 및 분석에 나섰다”고 말했다.김정남과 주고받은 이메일과 인터뷰 내용을 모아 2012년 초 ‘아버지 김정일과 나’를 출간한 도쿄신문의 고미 요지 편집위원은 이날 “김정은 체제가 안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북한 최고지도부 내 숙청이 지속되고 있는 등 내부 불안정성이 알려진 것 이상”이라고 평가하면서 “김정남은 북한체제를 흔들어 댈 수 있는 위협요소였다”고 지적했다. 미국 국무부 대변인실은 언론의 논평 요청에 구체적 대응을 삼간 채 “그 보도를 봐서 알고 있다”며 “말레이시아 당국에 물어보길 바란다”고만 밝혔다.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전 국무부 한국과장은 “김정은의 리더십이 얼마나 심리적으로 큰 압박 아래 있는지를 확인시켜 준다”고 말했다. 또 “미국이 북한과 협상을 해야 한다는 일부 제안이 결국 실패할 것임을 확인시켜 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북한 내부에 얼마나 많은 저항이 있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라며 “집권 5년차를 맞은 김정은 정권이 안정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워싱턴 외교소식통은 “김정은의 성격상 김정남 제거는 이미 시나리오에 포함돼 이행한 것”이라며 “향후 북·중 관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것인지 등에 대해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관영 언론은 김정남 피살 사건 보도를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한국과 말레이시아 언론을 인용한 사실보도 외에 분석이나 해설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당국이 보도를 통제하고 있다는 추측이 나온다. 관영 중앙텔레비전(CCTV) 뉴스채널(13번)은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에서 병원 이송 도중 숨졌다”며 단신으로 처리했다. 관영 환구시보의 ‘김정남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엄청난 추측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라는 제목의 논평은 접속이 차단되기도 했다. 청샤오허 인민대 교수는 “매우 복잡한 일이며 앞으로 한반도에서 중대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징조”라면서 “북·중 관계도 긴장감이 높아지겠지만 남북 관계에 더 큰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2인자 경쟁’ 최룡해·황병서 극도 불안감 느낄 듯

    ‘2인자 경쟁’ 최룡해·황병서 극도 불안감 느낄 듯

    김여정과 김정은 받드는 ‘삼각축’ “北에 김정은 제외한 실세 없다” 2011년 말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이후 북한 핵심 인물들이 줄줄이 숙청되거나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살아남은 실세들’에게 관심이 쏠린다.먼저 ‘김정은의 양팔’, 즉 2인자로는 최룡해(왼쪽)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과 황병서(오른쪽) 총정치국장이 거론된다. 최룡해는 김정은 집권 초기 ‘핵심 실세’로 불렸지만 2015년 말 지방 협동농장에서 혁명화 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좌천됐다는 설(說)이 나왔다. 이후 숱한 권력의 부침을 겪다 지난해 5월 제7차 당대회를 계기로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과 정치국 상무위원에 이름을 올리며 당내 2인자 자리를 굳혔다. 북한군 서열 1위인 황병서는 지난해 40여 차례 넘게 김정은의 시찰을 동행하며 ‘오른팔’로서의 위상을 과시했다. 또 김정은을 수행할 때마다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최측근 중에서도 최측근으로 통한다. 또 자신보다 30여 살이나 어린 김정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무릎을 꿇고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포착돼 공포정치의 단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최룡해는 당 권력의 핵심 역할을, 황병서는 군에서 김정은 체제를 떠받들고 있는 인물”이라면서 “김정은의 친동생인 김여정을 포함해 최룡해, 황병서 등 세 사람이 김정은을 떠받들고 있는 삼각축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외부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조연준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조용원 노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 등도 떠오르는 실세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북한에서 영원한 2인자는 없다는 게 중론이다. 김정은의 심기를 건드리거나, 권위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언제 어디에서 처형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리 실세로 지목되는 최룡해와 황병서라도 잇단 숙청과 김정남의 피살 소식 등을 접하며 극도의 불안감을 느낄 것으로 보인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2인자를 허용하는 체제가 아닌 만큼 김정은을 제외한 실세는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북한 김정남 여동생 김설송은 감금”…아들 김한솔은 어디로?

    “북한 김정남 여동생 김설송은 감금”…아들 김한솔은 어디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이 독살된 가운데 이복 여동생 김설송이 감금됐다는 주장이 이 제기돼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정남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성혜림 사이에 태어났으며, 김설송은 김정일과 둘째부인 김영숙 사이에서 태어나 두 사람은 이복 남매지간이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15일 “김정남 여동생인 김설송이 높은 지위는 아니지만 (노동당 서기실에서) 힘을 쓰는 위치에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면서 “(김정남 암살사건과) 연관이 있어 모처에 감금됐다는 제보가 들어왔다”고 밝혔다. 김설송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았고 정보기술(IT) 사업을 총괄하는 업무를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의 행방도 현재 묘연한 상태다. 프랑스에서 대학을 다니던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은 지난해 학교를 졸업해 마카오 또는 중국 등지로 돌아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자세한 행적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마카오행 비행기를 타려다 피살된 것과 관련, 마카오에 머물고 있는 아들을 만나려 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김한솔은 2012년 10월 핀란드 yle-TV와 인터뷰에서 김정은을 ‘독재자’로 표현했다. 그는 2012년 영어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삼촌 김정은에 대해선 “아버지(김정남)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이는 할아버지(김정일)와 삼촌 간의 문제였고, 두 사람 모두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그(김정은)가 어떻게 독재자(dictator)가 됐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한솔은 2013년 12월쯤 프랑스의 명문 르아브르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에서 포착된 것이 마지막이다. 당시는 김정남을 지원해왔던 장성택 전 북한 노동당 행정부장이 숙청된 직후였다.그는 대학은 졸업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그가 취업했다는 소식은 들려지 않았다. 그와 함께 공부한 현지 학생들은 “한솔씨가 ‘대학 졸업 후 영국의 한 대학으로 진학할 계획’이라는 얘기를 했는데 영국으로는 가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한솔씨는 당시 친구들에게 “마카오나 싱가포르에 들르게 되면 연락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한솔씨의 거처를 추정할 단서지만 이후 한솔씨가 포착된 적은 없다.김한솔은 김정일의 장손이다. 평양에서 태어나 아버지 김정남을 따라 마카오에서 자랐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국제학교 ‘유나이티드 월드 칼리지(UWC)’ 모스타르 분교를 거쳐 파리정치대학에 입학했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설] 김정남 피살, 극에 이른 김정은 공포 정치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그제 오전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집권 후 김정남이 북한의 권력 세습을 강도 높게 비판해 왔다는 점에서 김정은이 자신의 권력 안정을 위해 이복형을 암살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김정남이 현지에서 여성 간첩 2명의 독침으로 살해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북한 전문가들은 최고 권력자인 김정은의 직접 지시나 승인 없이 이복형의 제거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은의 소환 명령에 불응에 살해됐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해외 암살을 전문으로 하는 북한군 내 정찰총국이나 보위부가 관여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나야 하지만 김정남의 죽음은 김정은 정권의 공포정치와 숙청 통치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김정남은 처형된 장성택 등과 함께 북한의 개혁·개방을 지지했던 인물로서 김정은 체제에 비판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아 해외에서 여러 차례 암살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김정남 제거가 중국을 향한 메시지라는 분석도 있다. 중국은 그동안 ‘백두혈통’으로 개혁·개방 정책에 우호적인 김정남을 음으로 양으로 돌보면서 북한 권력 내부의 변고에 대비해 왔다. 대표적인 친중파였던 장성택을 전격 처형할 당시에도 김정남과의 연계설이 끊이지 않았다. 김정남은 김정일과 본처 성혜림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오랫동안 권력 승계 수업을 받았던 인물이다. 1990년 조선컴퓨터센터(KCC) 설립을 주도하면서 정보기술(IT) 분야와 군사 분야의 주요 직책을 맡았다. 하지만 자유분방한 성격과 돌출 행동 때문에 김정일 눈 밖에 났고 2001년 5월 도미니카 가짜 여권을 소지한 채 일본에 입국하려다 체포·추방된 이후 권력에서 밀려났다. 김정은의 공포정치는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이후 자신의 3대 세습정권에 걸림돌이 되는 인물들은 가차없이 제거해 왔다. 군부 실세로 꼽히던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을 시작으로 김정일 장례식 때 영구차를 호위했던 김정각 등 ‘군부 4인방’도 숙청됐다. 권력 2인자이자 자신의 고모부인 장성택을 2013년 12월에 전격 처형해 국제적인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후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재판 절차도 없이 고사총으로 공개 처형했고 김용진 내각 부총리 역시 불량한 자세로 앉았다는 이유로 처형해 공포정치를 이어 가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북한이 최근 신형 중거리탄도미사일 도발이나 김정남 암살처럼 앞으로도 가공할 모험주의적 도발을 집요하게 펼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당장 지난해 망명한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 등 고위급 탈북자들에 대한 신변보호를 강화하는 것도 급선무다. 북한의 호전적인 도발에 대해 정부 당국은 국제사회와 긴밀한 공조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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