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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론] 지구촌 의미 일깨운 재앙/박종삼 월드비전 회장

    [시론] 지구촌 의미 일깨운 재앙/박종삼 월드비전 회장

    2004년 12월26일 아침 7시에 수마트라 해안에서 160마일 떨어진 해저에서 발생한 지진해일로 인류는 지구촌이 하나가 되는 구체적인 가능성을 탐험하고 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전쟁도 마다하지 않는 냉혹한 국제관계 속에서 미증유의 대재앙은 지구촌 모두에 나눔과 협력이라는 새로운 시험의 장을 제공했다. 각국 정부가 약속한 42억 6000만달러와 전 세계 일반 시민들이 국제구호NGO에 기부한 8억 6000만달러. 이것은 돈의 액수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더 많은 돈이 국제사회에서의 더 많은 영향력을 의미하고, 그래서 군비경쟁처럼 구호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빈정거림도 있지만) 전 세계의 애도의 마음과 지원의 손길은 이제 인류의 역사가 다른 차원에서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국민에게도 이 재앙은 우리를 성숙한 세계인으로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우리’의 영역을 인류로 확장시켰다. 뜨거운 관심과 사랑은 바로 세계인으로 자부심을 가질 만한 것이었다. 영어를 한마디도 못해도, 해외여행을 한 번도 못했어도, 죽은 아이의 손을 붙들고 통곡하는 스리랑카의 어머니를 보며 함께 마음 아파하는 사람이 바로 세계인이다. 내가 받은 세뱃돈으로 10명의 인도네시아 어린이에게 깨끗한 물을 주려는 우리 아이들의 마음이 존경받는 세계속의 한국을 만든다. 세계 13위의 무역 대국, 가장 큰 PDP를 만들 수 있는 대단한 나라라는 부러움이 커갈수록 우리가 가져야 하는 것은 지구촌 인류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다. 이번 대재앙에서 우리는 세계를 껴안을 수 있는 큰 마음을 가진 우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국제적인 나눔의 물결이 제대로 열매를 맺기 위해선 어려운 숙제가 남아있다. 우선 첫째는 각국 정부가 약속한 지원이 이행되도록 세계의 언론과 시민이 함께 지켜봐야 한다. 2003년 12월26일 일어난 이란 밤시의 대지진 이후 각국 정부는 10억달러의 지원을 약속했으나 실제 지원된 금액은 200만달러도 안 됐다. 둘째는 국제적인 긴급구호 시스템의 구축이다. 지난 6일,19개국 정상급 대표와 7개 국제기구 대표들이 함께한 아세안특별정상회의가 있었다. 이 회의 결과 이번 대재앙에서는 유엔이 구호활동을 주도하게 되었지만,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 비정부기구들의 역할 분담과 긴밀한 협조를 바탕으로 하는 효율적인 긴급구호 시스템 구축은 난제로 남아있다. 유엔이 종합 통제센터 등을 통한 구호체계의 틀을 갖추고, 전반적인 계획을 세워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면, 각국 정부는 유엔과 긴밀하게 협조해서 수송과 복구 등 보다 넓은 차원에서 구호활동을 실행하고, 전문적인 기술과 경험을 가지고 있는 월드비전과 같은 국제 NGO들은 신속하고, 긴급하게 피해지역 주민들과 직접 대면해서 구석구석 구호·개발활동이 미칠 수 있게 해야 한다. 월드비전은 피해지역이 완전히 복구되기까지는 3∼5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보고 현재 3700명의 구호요원과 5000만달러의 자금을 투입해 식량, 식수, 의료지원을 하고 있으며, 긴급구호 대응 이후 지역사회 재건과 경제회복 등 총 4단계 계획을 가지고 구호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자금에 있어서도 장기적으로는 1억달러 이상의 복구비가 필요할 것으로 자체 판단하고 있다. 재난의 회복이 1∼2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닌 만큼 우리의 남은 숙제는 명백해진다. 해일처럼 밀려오는 나눔의 물결이 피해지역에 고루 미치고, 완전한 복구가 가능해질 때까지 우리의 관심이 지속되는 것, 그것이 우리의 가장 큰 숙제가 될 것이다. 박종삼 월드비전 회장
  • [사설] ‘박근혜黨’보다 개혁이 먼저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어제 발표한 당직개편은 개혁쪽으로 방향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박 대표와 가까운 인사들을 전진배치하는 데 그쳤다. 친정체제 강화로는 국민들의 지지폭을 넓히기 힘들다. 준비중인 당 선진화 프로그램과 주요 정책에서는 중도개혁 색채를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새해 들어 노무현 대통령은 통합·실용 노선을 택하고 있다. 집토끼와 산토끼를 함께 잡으려는 것이다. 한나라당도 개혁적 중도보수를 내세워 지지층 확산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당직인선으로는 중도개혁층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 박세일 정책위의장 등 일부 초선을 중용한 것 이외에 개혁을 주도할 팀이 꾸려졌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국가보안법 협상 과정에서 박 대표의 보수회귀를 비판했던 소장파 의원들이 오히려 당직에서 배제되었다. 이들의 목소리를 살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모름지기 정당은 활력이 있어야 한다. 행정조직이 아니다. 특히 대권 예비후보들이 공정한 토대에서 국가경영 능력을 놓고 경쟁한다면 국민 시선을 집중시키고 당 지지도를 높일 수 있다. 박 대표가 마음에 맞는 인사들로 당직을 채우면 당장의 당운영은 편할지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는 곪아터져 치유하기 어려운 분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당은 이번 당직개편에서 신선한 면모를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더 큰 숙제를 안게 됐다. 박 대표가 주변의 보수파들에 의해 계속 좌우된다면 한나라당의 미래는 없다. 당명 개정이 중요한 게 아니다. 당쇄신 내용이 중요하다. 당내부 구조를 획기적으로 민주화하는 동시에 정강·정책에서 개혁성을 드러내야 한다.“한나라당이 저렇게까지 하나.”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가 되어야 한다.2월 임시국회에서 한나라당의 바뀐 면모를 보길 기대한다.
  • [좋은도시 만들기] (9)’뉴어버니즘’ 운동

    [좋은도시 만들기] (9)’뉴어버니즘’ 운동

    1800년대 중반 미국 서부지역에서 금을 채취하기 위한 ‘골드 러시’ 현상이 빚어진 이래로 미국의 도시들은 양적 팽창을 거듭해 왔다. 그러나 ‘밖으로’확장해온 미국의 도시에서 1990년대 이후 변화의 조짐이 드러나고 있다. 도시 내부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온갖 도시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한국은 미국의 시행착오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유펜) 조너선 바넷(Jonathan Barnett) 교수와 성균관대 김도년 교수의 미국 필라델피아 현지대담을 통해 현대 도시가 안고 있는 문제와 풀어야 할 숙제 등을 짚어봤다. 바넷 교수는 뉴욕시를 비롯한 각종 도시계획에 참여하고 있으며, 새로운 도시 운동인 ‘뉴어버니즘’(New Urbanism)의 대표주자이다. ●김도년 교수 뉴어버니즘 운동은 도시 공간을 재편성해 토지 이용의 효율을 높이자는 기치를 내걸었는데. ●조너선 바넷 교수 국토 규모가 비슷한 미국과 중국을 비교해 보자. 미국의 인구는 중국의 4분의1 수준이지만, 미국에서 개발이 이뤄지지 않은 땅은 중국의 2배에 불과하다. 이는 미국이 돈을 흥청망청 쓰는 졸부처럼 땅을 부주의하게 다뤘다는 증거다. 결국 땅을 낭비한 셈이다. 이 때문에 교외지역은 값싼 토지와 새로운 기반시설을 활용, 빠르게 성장했다. 반면 기존의 도시 공간은 방치되다시피해 슬럼화 등의 문제에 봉착하게 됐다. ●김 교수 뉴어버니즘 운동에서 가장 중요하게 간주하는 것은 무엇인가. ●바넷 교수 이웃 관계 회복을 통한 커뮤니티(지역공동체) 활성화다. 대표적 도시문제 중 하나인 범죄율 상승은 주민간 결집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다. 하지만 도시가 익명성이 보장되기 어려운 구조로 바뀌면 범죄율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주민들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배치가 이뤄지면 지역사회는 더이상 익명성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김 교수 커뮤니티 활성화는 주민들의 몫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다양한 계층이 함께 사는 것을 꺼리는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저소득층은 상대적 박탈감을 이유로, 부유층은 집값 하락이라는 현실 논리를 들고 있어 타협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바넷 교수 미국에서 가난한 사람들만 모여 사는 곳은 정부가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한 임대주택이 거의 유일하다. 부유층은 저소득층이 스스로 얻지 못하는 각종 혜택을 나눠줄 수 있다. 이를 통해 부유층은 저소득층과의 계층 갈등을 줄여나갈 수 있다. 즉 더불어 사는 삶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인 셈이다. 박탈감 또는 우월감은 주민의식의 성숙 문제이다. ●김 교수 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이기 위해서는 쾌적한 환경이 우선돼야 한다. 친환경적 생태도시 건설이 필요한 이유다. ●바넷 교수 도시 재편성의 방향은 생태도시라고 할 수 있다. 생태도시는 미래 세대를 위해 자원 사용을 최소화하는 ‘지속가능한 개발’과 자연친화적 주거환경 조성 등 두가지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여기에는 에너지 효율을 높인 ‘그린 빌딩’(친환경건물)이나 자동차가 아닌 사람 중심의 도로, 바람의 효과와 오염의 영향을 고려한 건물 배치 등이 필요하다. 자연의 조화로운 상태를 이해하고 이를 따르려고 노력하면 자연 이상의 도시를 만들 수 있다. ●김 교수 서울을 비롯한 한국의 도시들은 재개발을 수익사업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부동산개발업자들은 사람들의 수요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 도시 전체 환경을 고려한 새로운 시도는 게을리한다. 때문에 건물에 대한 고층화 바람이 불고 있지만, 이는 도시계획과 건축의 다양성을 제약하는 요인이 된다. 그럼에도 수익률을 고려한 개발논리가 앞서는 상황이다. ●바넷 교수 지구단위계획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흔히 도시환경 향상에 기여한다기보다 난개발을 막는 것으로 잘못 이해된다. 지구단위계획이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형태의 도시로 만들기 위한 각종 바람을 세부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강한 규제와 제한이 필요할 수도 있다. 지구단위계획에서는 사람들이 그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우선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지구단위계획은 사람들의 다양한 생활패턴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고 필요한 것을 고르는 일은 바로 주민들의 몫이다. 도시계획은 이처럼 주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다양성을 강화해야 한다. ●김 교수 고층화는 고밀화와 필연적으로 연결된다. 주거와 업무, 상업기능이 혼합된 즉 ‘근린주구’를 실현한 곳에서는 고밀개발이 일정부분 필요하다. ●바넷 교수 고밀화가 삶의 질을 급격히 하락시키는 수준으로 진전되지 않은 상태에서 특정 용도만을 갖춘 신도시나 위성도시를 개발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김 교수 한국의 도시들은 선택가능한 도로의 수는 적은 반면 지나치게 넓은 대로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교통신호에 의해 통제되는 도로는 사람이 아닌 자동차를 위한 공간으로 변질됐다. 이는 원활한 교통소통에도 지장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발길을 줄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바넷 교수 블록(건물구획·Block) 단위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뉴욕의 경우 1900년대에 형성된 좁지만, 촘촘히 얽혀 있는 도로가 지금도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더 넓은 도로를 원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모두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도로의 크기보다 수에 관심을 갖는다. 건물 1층을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상점으로 채우고, 사람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걸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좋은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정리 필라델피아 장세훈 특파원 shjang@seoul.co.kr ■ 김도년 교수 ▲성균관대 건축학과 졸업 ▲미국 뉴욕 프랫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 건축대학원 도시설계학 석사 ▲서울대 건축학과 박사 ▲서울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 위원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DMC) 실무 및 지구단위계획위원회 위원 ▲건설교통부 신도시포럼 위원 ▲한국 초고층건축포럼 운영위원 ▲한국 도시설계학회 이사 ■ 조너선 바넷 교수 ▲예일대 졸업 ▲캠브리지대 석사 ▲예일대 박사 ▲펜실베이니아대학(유펜) 도시계획학 교수 ▲미국 건축가협회 회원 ▲미국 도시계획가협회 회원 ▲뉴어버니즘학회 회원 ▲미 연방정부를 비롯, 뉴욕시 등 10여개 도시 도시계획 고문 ▲‘WRT’(도시계획 및 디자인 전문회사) 도시계획(Urban Design) 책임자 ■ ‘뉴어버니즘’ 운동은 ‘볼품없게 변해버린 서울 도심지역을 되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서울 강남지역의 재건축을 규제해야 하나 허용해야 하나.’‘수도권의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 신도시를 추가로 건설해야 하나.’‘지나친 고밀화를 막으려면 건물 높이를 몇 층까지 제한해야 하나.’ 이처럼 얽히고 설킨 도시 문제에 대한 답변을 찾다보면 ‘벙어리 냉가슴’을 앓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후반 미국에서 본격화된 ‘뉴어버니즘’(New Urbanism) 운동에서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뉴어버니즘은 도시 문제를 진단한 뒤 새로운 도시적 삶을 위한 대안을 모색해보자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우선 뉴어버니스트들은 도시 문제의 원인으로 무질서한 시가지 확산과 교통량 증가, 경직된 토지이용, 녹지공간의 단절 등을 꼽고 있다. 자동차가 등장한 이후 미국에서는 시가지가 교외로 빠르게 확장됐다. 이에 따라 상가나 학교 등 생활 기반 시설이 미처 들어서기 전에 주택만 빽빽하게 지어진 것이다. 한마디로 자동차가 없으면 쇼핑도 학교도 가기 어려워졌다. 자동차가 필수품이 되면서 자원낭비, 공해 증가 등의 문제를 초래했다. 산업화 이후 토지의 용도를 주거·상업·공업지역 등으로 구분하면서 도심지역은 공동화 현상이, 교외지역에서는 경제적 계층 분리가 심화됐다. 뉴어버니스트들은 이런 문제점과 함께 도시 팽창은 자연녹지 잠식과 무리한 공공투자를 유도하고, 결과적으로 토지 손실과 공동체의식 상실로 이어진다고 역설한다. 그 대안으로 뉴어버니스트들은 대도시의 경우 주변 확장보다 내부 재개발에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거·상업·업무기능 등을 한곳에서 해결할 수 있는 ‘근린주구(近隣住區)’ 또는 ‘직주(職住)균형’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다양한 계층이 소통할 수 있는 ‘열린 공간’(Open Space)을 곳곳에 마련해야 한다고 뒷받침했다. 교통수단을 다양화하고 보행자 중심의 도시설계가 이뤄지면 도시구조 자체를 바꿀 수 있다고 뉴어버니스트들은 말한다. 즉 버스정거장에서 반경 400m, 지하철역은 반경 500∼800m 범위 내에서는 사람들의 이동이 원활한 만큼 고밀개발을 통한 토지이용 효율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결국 뉴어버니즘은 기존 도시에 대한 반성을 통해 도시를 재구성, 인간과 환경 중심의 공간으로 되살리는 새로운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이같은 뉴어버니즘의 가치는 현재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뉴타운사업 등에도 도입, 실천되고 있다. 장세훈 특파원 shjang@seoul.co.kr
  • 중도파 중심 ‘朴 친정체제’ 강화

    중도파 중심 ‘朴 친정체제’ 강화

    ‘중도 실용주의 노선과 집안 단속’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11일 단행한 대규모 당직개편의 성격을 요약할 수 있는 말이다. 박 대표의 ‘2기 체제’는 당의 이미지를 ‘정책 정당’으로 쇄신하고 이를 위해 중도파 인사들을 중심으로 당내 계파간 갈등도 중재할 전망이다. 먼저 박세일 여의도연구소장을 정책위의장으로 내정한 것은 박 대표가 정체성과 이념경쟁에 비중을 둔 1기 체제에서 벗어나 실용주의적 정책 대결로 선회하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박 대표는 이날 “정책 정당으로 가기 위한 체제 정비”라면서 “국민들은 정당이 정책으로 경쟁하기를 원하기에 정책 정비가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박세일 내정자도 기자간담회에서 “민생·교육 등 경제난이 심각한 상태에서 여권의 책임만을 묻는 게 아니라 ‘협력적 정책 파트너’ 관계를 정립할 것”이라고 밝혀 한나라당의 정책 방향의 청사진을 보여주었다. ●중도 실용노선 표방 정책정당 지향 이런 맥락에서 당내 정책통인 박재완 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을 제3정조위원장으로 포진시킨 것을 비롯, 경제전문가 이혜훈 제4정조위원장, 교육전문가 이주호 제5정조위원장 등 분야별 정책통들로 정책위의장단을 구성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무성 사무총장 기용은 그의 통합 중재력과 당 살림 관리능력을 높이 샀다는 관측이다. 당내 다양한 계파의 목소리를 중재하면서 박 대표를 중심으로 구심점을 높이기에 김 신임 총장 특유의 친화력이 적절하다는 차원이다. 김 사무총장도 이날 “당내 세대간, 제 세력간에 중간에 서서 사심없이 정권 창출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혀 세대와 계파를 아우르는 징검다리 역할을 자임했다. 또 취임 일성으로 “가능한 한 여의도 가까이 가도록 하겠다.”며 당사 이전을 공식 거론했다. ●비주류·소장파 반발 무마도 숙제 신임 비서실장으로 현안마다 순발력 있는 전략적 대응을 해온 유승민 의원이 기용됨으로써 비서실의 실질적 기능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진영 전 실장의 ‘그림자 수행’ 스타일에서 벗어나 시의적절한 대응책 마련 등 정무 기능을 강화하려는 포석으로 이해된다. 당 관계자는 “박 대표는 정책위의장단을 중심으로 한 정책 경쟁과 유 실장의 정무 능력을 겸비, 앞으로 보폭을 대폭 넓힐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향후 가시화될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지사 등과의 대권 경쟁에 대비, 대권 후보로서의 콘텐츠를 강화하려는 포석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박 대표는 인선에서 제외된 비주류 그룹과 중진 의원들의 불만을 안고 가게 됐다. 한 소장파 의원은 “개개인에 대한 불만은 없지만 친위체제 구축 성격이 강하다.”고 꼬집었다. 비주류의 김용갑 의원은 “박근혜 대표의 치마폭이 보이지 않는다.”며 “반대하고 질책하는 목소리에 더 귀를 열고 그들까지 치마폭에 싸안는 진정한 지도자로 변화하라.”고 ‘쓴소리’로 주문했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서울광장] 시장경제는 도덕경제다/육철수 논설위원

    [서울광장] 시장경제는 도덕경제다/육철수 논설위원

    시장경제의 요체로는 사유재산의 인정, 이윤의 극대화, 경제활동의 자유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가치들은 나라가 긴박한 경우를 제외하고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고 우리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국민경제를 위해 국가가 시장의 지배 및 경제력의 남용을 막는 등 규제와 조정력을 발동할 수 있도록 제동장치를 걸어 놓은 것을 보면 헌법은 제대로 만들어진 것 같다. 완전한 시장경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 그 돈을 어떻게 쓰든 간섭받지 말아야 정상이다. 그러나 세계 어느 나라도 이런 시장경제를 추구하지도 용납하지도 않는다. 시장이 아무리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율적인 조절기능을 갖췄다지만 거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참여정부 들어 정치권과 정부·재계로부터 ‘시장경제’란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4대 입법 가운데 신문법 논란이 그랬고 사학법 논쟁이 그랬다. 반(反)시장 논란이 어디 이뿐이겠는가. 지난 연말에 벌어진 LG카드 사태는 정부와 채권단,LG카드 대주주들이 합작한 반시장 사례의 결정체다. 대기업연구소의 K씨는 LG카드 문제가 다시 불거졌을 때 시장경제를 압축한 미국 속담 하나를 들려주었다.‘Deal is deal is deal.’ 이다. 계약은 계약이라는 뜻으로 시장경제의 냉혹함이 담긴 것 같아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다. K씨를 포함한 시장경제론자들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는 책임질 일이 없던 LG그룹이 채권단의 무리한 요구를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간단하다.2003년 11월 LG카드 문제가 처음 터지기 전에 일부 대주주들이 이 회사 주식을 팔아치운 ‘원죄’ 때문이다. 채권단도 반시장적이긴 마찬가지였다. 계약을 휴지처럼 버리고 떼를 써서 추가 증자를 얻어낸 행태가 그렇다. 정부도 총선 정국을 앞두고 이 문제에 과도하게 끼어들어 일을 그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다. 높은 도덕성을 바탕으로 공익을 먼저 생각하는 기업과 기업인이 존경받는 사회를 진정한 시장경제라고 정의한다면 무리는 아닐 것이다. 피땀 흘려 돈을 버는 데서 나아가 돈을 쓰는 전 과정이 정의로워야 대접받는 시대이기 때문이다.‘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기’는 이미 구시대의 덕목이며, 이제 우리 사회는 ‘정승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기’를 요구하고 있다.‘상인 정신’이 돈 버는 것을 최상으로 여기는 것이라면,‘기업가 정신’은 여기에 높은 도덕성이 더 붙는다. 기업가가 장터의 상인들과 다른 이유를 나는 여기서 찾는다. 기업인들이 오래 전부터 도덕·윤리경영을 부르짖어온 것을 보면 도덕성이 결여된 시장경제는 힘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그들이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새해 벽두부터 대통령이 경제살리기에 팔을 걷어붙였고, 대기업들도 신년사를 통해 경쟁적으로 화답하고 있다. 말만 들어도 우리 경제는 금방 살아날 것 같다. 지난 이태동안 주변 나라들의 경제는 쑥쑥 잘만 성장했는데 우리만 죽을 쑤어 허송한 세월이 너무 아까웠다. 늦었지만 경제주체의 핵심인 정부와 재계가 발벗고 나선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이왕 경제살리기에 합심했으니 재계는 시장경제에 안 맞는 정부 규제의 위헌을 따지기에 앞서 도덕재무장과 함께 내부의 반시장적 행태부터 제거해야 할 것이다. 정부도 과도한 규제를 풀어 기업의 이윤창출과 사회공헌을 유도하는 자세의 변화가 필요하다. 반기업 정서를 누그러뜨리는 것은 재계와 정부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다. 시장경제를 보는 눈이 정부 다르고 기업 달라서는 곤란하다. 올해는 정부와 재계가 시장경제의 깊은 의미를 헤아렸으면 한다. 이를 바탕으로 살려낸 경제야말로 더 빛나지 않겠는가.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서울시 “열린공부방 30곳 설치”

    저소득층이 밀집한 서울시내 임대아파트에 ‘열린 공부방’이 문을 연다. 서울시·SH공사·각 지역의 주민자치회 등이 연계된 공부방은 2006년까지 시내 재개발 임대아파트 30곳에 설치된다. 서울시는 오는 11일 관악구 봉천본동 두산임대아파트 단지에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공부방을 여는데 이어 올해 15곳, 내년 14곳에 공부방을 추가 설치할 방침이라고 9일 밝혔다. 이번에 문을 여는 공부방은 SH공사가 제공한 단지내 상가건물에 62평 규모로 조성됐다. 조리실과 식당, 집단지도실, 교사실 등이 마련돼 있다. 공부방에서는 만 18세 미만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방과 후에 대학생 교사의 지도아래 숙제와 놀이 등을 하게 된다. 시설운영은 아파트 주민자치회에서 담당하며,‘관악구주민연대 공부방네트워크’가 시에서 운영비를 보조받아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대학생 교사들을 지원한다. 또 서울문화재단은 공부방 지원 문화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시 관계자는 “맞벌이 가정이 대부분인 저소득층 밀집지역의 열린 공부방은 어린이와 청소년에게는 방과후 학습공간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지금 대전청사에선…] 철도 산별노조 출발부터 난항 예상

    ○…지난해 12월30일 산별 노조로 출발한 한국철도산업노동조합 한국철도공사본부가 시작부터 희비가 교차. 지난달 31일 철도청 공직협 등이 제기했던 ‘직종통합에 관한 특별단체교섭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대전지법이 각하 결정을 내리자 노조는 운영위원회에서 항고 방침을 정했으나 1심 결과에 다소 의기소침. 이런 가운데 지난 6일 헌법재판소로부터 공무원 연금 가입기간을 20년 등으로 한정한 철도공사법 부칙 8조의 위헌 확인에 대한 심판 회부 통지를 받자 크게 고무된 분위기. 공사 노조는 철도청 체제 6급 이하 일반직을 대상으로 하며 현재 5000여명 중 2200여명이 가입. 노조는 오는 19일 창립대회를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갈 계획이나 철도노조와의 복수노조 논란 등 풀어야 할 숙제도 산적. 무엇보다 오는 4월 예정된 단협에 참가할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 ○…지난 1998년 중소기업청의 대전 이전에도 불구하고 과천청사에 남아 있던 중소기업정책국이 새해 들어 마침내 ‘합방’. 정책국은 당시 중소기업특별위원회 사무국 역할 겸임 및 관계 부처와의 원활한 협의 필요성 등의 이유로 본가와 원치 않은 ‘별거’에 돌입. 그러나 사무국 역할이 사라지고 중기청 업무 시스템이 구축되면서 별거에 따른 비효율성 문제가 부각되면서 합방의 필요성이 대두. 중기청 관계자는 “가족이 모처럼 한집에 살 수 있게 됐다.”며 “주거 문제 등 부담이 있음에도 직원들이 혼쾌히 대전행을 선택해 이뤄질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표시.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새 드라마 ‘슬픈연가’ 연정훈

    새 드라마 ‘슬픈연가’ 연정훈

    요즘 연정훈(27)은 ‘차선(次善)이 최선(最善)을 뛰어넘는 짜릿함’을 톡톡히 실감하고 있다. 그는 얼마 전까지 그저 ‘송승헌 대타’에 불과했다. 드라마 ‘슬픈연가’가 안방극장에 선보이기 전까지 그 꼬리표는 떼어내기 힘든 숙제로 보였다. 하지만 5일 브라운관을 통해 비쳐진 드라마속 주인공 이건우의 모습에서는 송승헌의 잔상이 단 한 조각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오직 ‘연정훈식 이건우’만 화면을 휘저었다. #“이제 대타는 아니야” “우여곡절 끝에 드라마에 합류했지만, 제 나름대로 예전부터 이런 캐릭터를 연기해야겠다고 늘 생각해왔어요. 몇 가지 계산도 있었고요. 다만 이렇게 빨리 시기가 올 줄은 예상 못했지만요.” 지난 3일 저녁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MBC 드라마 ‘슬픈연가’ 시사회에서 만난 연정훈은 그동안 ‘송승헌 대타’라는 주위의 시선에 꽤나 맘고생을 한 듯 보였다. 그는 “송승헌의 카리스마를 잇기엔 조금 이미지가 약한 것 아니냐.”는 우려섞인 시선에 대해 이같이 대답했다. 사실 그는 그동안 ‘범생이’부터 바람기 많은 ‘선수’ 역할까지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하지만 대중에게 풍기는 냄새는 순수하고 착하고 순한 이미지였다. 이 때문에 ‘슬픈연가’에 긴급 투입되고 난 뒤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 당초 송승헌이 적임자라고 여겨진 것도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보스기질과 카리스마가 주인공 이건우의 캐릭터에 딱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제가 여지껏 생각해 왔던 새로운 캐릭터가 바로 주인공 이건우 같이 터프한 바람둥이에요. 그동안 부각이 안돼서 그렇지 비슷한 역할을 연기한 경험도 있고요.” 그는 처음엔 부담이 컸지만, 나름대로 자신감을 갖고 드라마 촬영에 임하고 있다며 미소지었다.“처음엔 송승헌의 강한 이미지를 뛰어 넘어 또 다른 면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있었죠. 이제는 내 분위기와 색깔에 맞는 이건우를 만들어 가고 있어요.” #“연정훈은 송승헌보다 진화된 주인공” ‘슬픈연가’ 제작진과 동료 연기자들은 송승헌의 도중 하차 후 새로 투입된 연정훈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표시했다.“사실 이건우는 송승헌을 모델로 한 배역이었어요. 병역비리 사건이 터지고 연정훈이 캐스팅됐을 때는 개인적으로도 걱정이 많았지요. 하지만 그의 얼굴을 보니 아이를 입양할 때와 같은 애정이 느껴지더라고요.” 시트콤 등에서 지난 10년간 송승헌과 함께 일을 해 온 이성은 작가는 “초기 우려와 달리 ‘진화된 또 다른 건우가 탄생했다.’고 할 정도로 송승헌의 건우보다 안정된 ‘연정훈의 건우’를 잘 소화해 내고 있다.”며 연정훈의 연기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어 “송승헌이 ‘강한 카리스마’인 데 반해, 연정훈은 거기에 부드러움이 더해진 ‘폭넓은 카리스마’를 가졌기 때문에 오히려 활용도 면에서 장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유철용 프로듀서도 “연정훈의 ‘외유내강적’ 이미지가 연기에 반영돼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흡족해했다. 함께 출연한 홍석천은 “한때 ‘송승헌이 아니면 그 누구도 건우 역을 맡을 수 없을 것’이라고 모두가 생각했지만, 곧 건우 역할 속에서 연정훈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믿음직스러워했다. #드라마·영화에 결혼까지,“바쁘다 바뻐” 요즘 연정훈만큼 바쁜 배우가 또 있을까. 그는 얼마전 영화 ‘키다리 아저씨’ 촬영을 마치고 홍보활동을 벌이면서도 5일 첫 전파를 탄 드라마 ‘슬픈연가’ 중반 이후 촬영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또 지난해 12월1일 촬영에 들어간 영화 ‘연애술사’ 촬영에도 혼신을 다하고 있다.‘키다리 아저씨’에서는 하지원과 동화적 사랑을 나누는 부드러운 남자로, 박진희와 함께 출연하는 ‘연애술사’에서는 바람둥이 마술사 역을 맡았다. 그는 “몸이 두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지만, 다양한 색깔의 연기로 변신하는 연기의 맛에 취해 피곤한 줄도 모르고 촬영에 임하고 있다.”며 미소지었다. 한편 연정훈은 지난 4일 평소 공인된 연인 사이인 한가인(23)과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고 있으며, 빠르면 군입대를 앞두고 올해 안에 결혼할 것이라는 계획이 전해지면서 대중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美·유럽서 韓·中·日 국보전 추진”

    문화재 및 유물 관련 중심기관인 문화재청과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의 오랜 숙제였던 각 기관간 학예직 인사교류가 이루어지게 됐다. 또 광복 60주년을 맞아 한·중·일 국보전과 남북한화합민속축제 등 대형 문화프로젝트도 추진된다. 유홍준 문화재청장과 이건무 국립중앙박물관장, 김홍남 국립민속박물관장은 5일 서울 필동 한국의 집에서 만나 세 기관의 학예직 인사교류를 중심으로 한 합동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번 인사교류에 따라 소재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이 문화재청 산하 궁중유물전시관장에, 송의장 국립광주박물관 학예실장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장에 각각 보임됐다. 또 신창수 국립문화재연구소 유적조사실장은 국립공주박물관장에, 정종수 국립민속박물관 유물과학과장은 국립춘천박물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밖에 5급 상당 학예관 중 중앙박물관 김연수씨가 문화재청 궁중유물전시관으로 자리를 옮기는 등 총 12명이 이번 인사교류의 대상이 됐다. 교류는 기관간 1대1 원칙에 따라 1년 파견형식으로 이루어지며, 필요시 1년을 연장할 수 있다. 유홍준 청장은 “기관 사이의 폐쇄적 인력운영 시스템을 깸으로써 상호협력체제를 강화하는 한편 조직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인사교류를 단행했다.”고 설명했다. 용산가족공원에 건립 중인 새 국립중앙박물관 개관일은 오는 10월28일로 잠정 결정됐다. 이건무 관장은 “새 박물관은 전시 기능에 다양한 문화접촉과 휴식기능을 더한 명실상부한 복합문화공간으로 태어날 것”이라며 개관행사는 “기소르망 등 외국 문화계 석학과 국내외 박물관장, 각계 인사 등 2000여명을 초청한 가운데 범국민적 축제로 개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과 중국, 일본이 각각 국보 100점씩을 선정하여 한 자리에 모으는 한·중·일 국보전 ‘동아시아 문명전’ 개최도 추진된다. 서울과 도쿄, 베이징, 뉴욕, 파리, 런던 등 한·중·일 3국과 유럽 주요 도시에서 개최할 계획이다. 유 청장은 “지난해 일본 문화재청에 제의해 적극적인 찬성의사를 확인했다.”며 “중국과의 협의를 거쳐 최종 확정돼 전시가 성사되면 중국·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문화적 지명도가 낮은 한국의 문화적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속박물관측은 광복 60주년을 계기로 남북한화합민속축제를 추진하기로 했다. 남북 주민 각 1만명씩 총 2만명이 참가하여 화합의 줄다리기 행사 등 민속축제를 진행한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관계부처와의 협의를 통해 가능성을 적극 타진 중이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지괴소설 ‘부여 현감 귀신 체포기’ 펴낸 김탁환 씨

    지괴소설 ‘부여 현감 귀신 체포기’ 펴낸 김탁환 씨

    ‘불멸의 이순신’의 저자 김탁환(37)씨가 본격 지괴(志怪)소설을 냈다. 새 소설의 제목은 ‘부여 현감 귀신 체포기’(이가서 펴냄). 지괴소설이란 말 그대로 괴이한 일들을 기록하는 형태의 소설. 국내에서는 익숙하지 않지만 중국 육조시대(3∼6세기)에 크게 유행한 소설의 한 갈래다. 황당하고 괴이한 이야기 소재로 서사의 즐거움을 안기는 청나라 초기 포송령의 소설집 ‘요재지이(聊齋志異)’를 떠올리면 이해가 빠를 듯하다. 김씨는 “장르를 확실히 규정해주는 것이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란 판단에서 ‘지괴소설’이란 낯선 장르를 책 표지에 명기했다.”고 말했다. 정확한 장르구분 자체가 훌륭한 독서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부여 현감 귀신 체포기’는 모두 10편의 이야기로 묶인 연작소설이다. 주인공은 부여 현감 ‘아신’.800여년 동안 낙화암에서 자살한 사람이 없던 부여에서 갑자기 하루에 한 명씩 투신 자살자가 생기고,2월 보름이 돌아올 때마다 열살 남짓한 사내아이가 백마강에 빠져 죽지만 시신을 찾을 길이 없다는 풍문이 돌고, 열흘 만에 소 서른마리와 말 열세마리가 감쪽같이 사라지거나…. 이런 괴이한 일들이 일어나고 부여 현감이 사건해결에 나선다는 줄거리 형식을 띤다. 조선 중종때의 실존인물 전우치도 등장한다. 그가 현감을 돕는 사건해결의 주체로 등장하는가 하면, 현감이 연모하는 여스님 ‘미미’가 위기상황에서 또 그를 구해주기도 한다. 지괴소설 장르를 빌린, 김탁환식 ‘팩션’인 셈이다. “역사추리와 팬터지 소설, 두가지 장르를 개척하는 것을 평생의 글쓰기 숙제로 정했습니다. 이번 소설은 쓰고 싶었지만 능력이 모자라 오랫동안 주저했던 건데…. 하지만 이젠 ‘지괴’란 장르에서는 어느 정도 자신이 붙었다고 할까요.” 새 소설을 완성하기까지 그는 우리 구비설화나 민담들을 모조리 섭렵하다시피 했다. 예컨대 2권에 실린 9번째 단편 ‘내 고운 인형에게’는 구미호 이야기에서 소재를 빌렸다. 아이디어 많기로 소문난 작가답게 재기발랄한 장치들이 책속에는 많다.“글자를 꼭 가로로만 배치할 필요가 없다.”는 그의 주장대로, 간간이 그림처럼 무정형으로 흘려진 글자배열도 재미있다. “작중 배경이 모두 부여에 실재하는 장소들이어서 책을 들고 역사여행을 떠나도 좋을 것”이라는 그는 “심각할 것 없이 낄낄거리며 읽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장편 ‘열두마리 고래의 사랑이야기’(1996년) 이후 ‘나, 황진이’(2002년) ‘방각본 살인사건’ 등 역사소재 소설을 꾸준히 써온 그에게 새 소설은 10번째 전작장편. 한남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예비아빠 이승엽 국내서 담금질

    예비아빠 이승엽 국내서 담금질

    ‘올 여름 태어나는 2세에게 명예를 걸겠다.’ ‘아시아 홈런킹’ 이승엽(29·일본 롯데 마린스)의 을유년 첫날은 헬스클럽에서 바가지 땀을 쏟아내는 체력훈련으로 시작됐다. 지난해 아쉽게 시즌을 마치고 11월 입국한 뒤 타격 교정훈련과 함께 시작한 ‘몸만들기’. 지난 연말부터는 추위 탓에 야외 배팅훈련은 일단 접고 지금은 대부분의 훈련시간을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메운다. 이승엽의 체력훈련은 하루 5시간. 주로 하체와 복부 근력을 강화시키는 데 주력한다. 당초 보비 밸런타인 감독의 ‘특별주문’이 있긴 했지만 이승엽은 “숙제로 받아온 양보다 훨씬 더 많은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승엽의 훈련을 1대1로 지도하고 있는 오창훈 세진헬스 대표도 “이승엽의 의지가 대단하다.”면서 “이미 지난달 중순 팀이 제시한 훈련 목표량을 넘어섰다.”고 말했다. 올시즌을 앞둔 이승엽의 각오가 남다른 것은 지난해 성적 부진 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오는 8월 결혼 3년만에 첫 아이를 보기 때문이다.8월은 이승엽이 국내에서 ‘여름 사나이’로 불릴 만큼 타격감이 절정에 달할 때였다. 지난해 첫 일본무대에서 당한 쓰라림을 올해는 반드시 털어내고 ‘주니어’가 태어나는 시기에 맞춰 구겨진 명예를 회복한다는 각오다. 이승엽은 올 목표를 나름대로 정해뒀지만 공표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목표치는 있지만 내 입으로 말하진 않겠다.”면서 “다만 명예회복이라는 가장 큰 목표를 위해 한 타석 한 타석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일본 첫 시즌을 시작하면서 홈런 30개와 타율 .280을 목표로 잡은 그는 14홈런,2할4푼대의 저조한 성적에 그쳤다. 타격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망가질 대로 망가진 타격폼을 바로 잡는 것이 급선무. 이를 위해 이승엽은 지난해 11월 말∼12월 초에 걸쳐 박흥식 삼성 코치와 교정훈련에 들어갔고, 오는 10일 2차 훈련에 돌입할 예정이다. 4일 미국에서 돌아온 박 코치는 “승엽이가 지난해 일본 투수들의 정교한 투구에 대응하다 보니 상체에 지나치게 의존해 제 스윙을 잃어버렸다.”면서 “하체를 중심으로 한 원활한 허리회전 등 타격 밸런스를 바로잡는 훈련에 중점을 둘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내 전성기 때의 타격자세로 되돌리겠다는 뜻. 이승엽은 오는 20일 전후 국내훈련을 마치고 일본으로 복귀한다. 새달 초 가고시마 스프링캠프에 이어 3월2일 시작되는 15차례의 시범경기가 새로운 모습의 이승엽을 기다리고 있다. 3월26일 개막전 이후부터는 메이저리거 발렌티노 파스쿠치(전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합류로 주전 좌익수 경쟁도 벌여야 하고, 인터리그 도입으로 새로운 적수도 대폭 늘어날 전망. 그러나 한겨울 국내에서 흘린 땀방울 만큼이나 굵고 자신에 찬 스윙을 되찾을 때 자신의 2세를 위한 ‘명예회복’은 완성될 것으로 보인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25년 농군 ‘제2김두관’ 박홍수 신임 농림 인터뷰

    25년 농군 ‘제2김두관’ 박홍수 신임 농림 인터뷰

    1월1일 새벽, 파행의 끝에서 간신히 정상화된 국회 본회의장에서 표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박홍수 의원은 경남 진주에서 농사짓던 후배가 농약을 마시고 자살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 후배는 나이가 이제 겨우 45살, 장년이었다. 그에게 딸린 처자식을 떠올리며 가슴 아파했다. 그 박의원이 ‘1·4개각’에서 농림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ROTC로 군대를 다녀온 뒤 26살부터 지난해까지 25년 농사를 지어온 그의 경험에 따르면 생명을 길러내는 농사꾼이 자살을 결심할 때는 빚이 감당할 수 없이 많아서가 아니다.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299명 중 2번째로 가난한 그는 지난해 부채 2억 402만원이었고, 논밭을 팔아 1억원 정도를 정리했다. ●남해서 이장 지낸 ‘현장 농민운동가’ 박 신임장관의 취임을 ‘현장 농민운동가’ 출신이 농민을 대표하는 장관이 됐다는 것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는 창선중·창천고를 거쳐 경상대 농대를 나온 뒤 81년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마을 이장을 시작으로 새마을 지도자, 면·군·도단위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련)에 소속해 일해 왔다. 박 신임장관은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과 고향이 같은 경남 남해다. 박 장관이 남해군 창선면 장포마을에서 이장을 할 때, 김 전 장관도 고현면에서 이장을 지냈다. 특히 그는 한농련 회장을 지내던 2000년 ‘농가부채특별법’을 개정하라는 압력을 넣기 위해 농민운동 최초로 고속도로 점거투쟁을 벌였고, 국회 본회의장에서 농성투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회 경위 책임자의 목까지 날렸다. 어찌보면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후보에 오른 것도 그같은 농민을 대표하는 투쟁 경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론적인 무장도 만만찮다. 초선이면서 그는 국회 농림해양수산위 야당 동료로부터 ‘동료의원이 뽑은 최우수 국감의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국회의원 8개월 만에 10권의 농업정책자료집을 냈다. ●“이제 도시사람이 농촌 도와줘야” 박 장관은 “농촌에, 농민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농촌 발전’이 아니라 ‘농촌 회생’을 말하는 상황”이라면서 “자식들 뒷바라지에 온몸이 무너진 시골 어머니를 보살피듯이 이제 도시의 사람들, 비농업계가 농촌을 도와줘야 한다.”고 밝혔다. 그래서 농림부 장관으로서의 첫 약속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의 회동으로 잡은 것도 그의 이같은 소신 때문이다. 박 장관은 농업계에서 자유무역협정(FTA)과 도하개발어젠다(DDA)에 반발할 때 그는 “농촌의 오래된 숙제를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장관은 “‘아는 놈이 더 한다.’ 싶을 만큼 독하게 할지도 모르겠다. 농촌이 이제 변해야 한다.”고 각오를 피력했다. 그는 노 대통령과는 대통령 후보시절부터 인연이 깊다. 세계무역기구(WTO) 쌀협상 등과 관련해 노 대통령의 비공식 자문역을 수행해 왔다는 후문이다. 부인 최호숙(49)씨와 1남3녀.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청진기/박만호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청진기/박만호

    (무대) 원룸 아파트 아래 위층,301호와 401호 (등장인물) 남:소리감별사 여:빨간 구두의 여인 의뢰인1:50대 초반 의뢰인2:30대 중반 의뢰인3:30대 초반 할머니:꿈속의 환영 딸:중학생 (소리에 대해) 소리는 하나의 등장인물처럼 연기한다. 극의 흐름을 이끌고 가는 극적 요소로 기능하는 것이다. 이 소리를 측정하는 청진기는 ‘호른’의 유려한 곡선 음관을 부착한 특별한 도구이다. ●제1장 어둠 속에서 “영호야- 영호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원룸 아파트 아래 위층인 301호와 401호가 서서히 드러난다. 스탠드만 침침하게 켜져 있는 아래층 301호는 실내가구들이 어렴풋이 보인다. 그 위층 401호는 아직 어둠 속에 싸여있다. “우웅 우웅-”하는 진동음이 들리자, 침대에서 부스스 일어나 귀마개를 벗고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남자.“새로운 메시지가 없습니다.”라는 안내음이 들린다. 이어 아파트의 여러 생활소음들이 와글와글 들려온다. 다시 귀마개를 하고 눕는 남자. 이때 다급한 뾰족구두 소리. 쫓기듯 달려와 위층 401호로 올라간다. 문을 닫고 구두를 벗고 룸으로 들어서는 여자. 외투를 벗고 침대 위로 무너지듯 쓰러진다. 아래층 침대에 누웠던 남자가 슬며시 몸을 일으킨다. 플래시를 켜서 천장을 비춰본다. 위층 여인의 숨소리가 평정을 되찾는다.“끼리리리-”하며 냉장고 가동 소음이 시작된다. 냉장고를 비추는 플래시. 새벽 4시를 알리는 괘종시계 소리와 함께 암전된다. 무대 밝아지면, 아래층 301호의 실내가 드러난다. 침대와 평범한 실내가구들. 구석 쓰레기통에는 호른 나팔과 야구방망이가 처박혀 있다. 탁자에서 남자에게 소리 감별을 받고 있는 의뢰인들. 호른을 닮은 청진기로 손목시계들을 검진하던 남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소리:(손목시계) “째각 째각 째각 째각-” 남자:이게 불량입니다. 태엽이 긁히는 소리가 나는군요. 의뢰인1:계측기로는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남자:0.5데시벨의 소음이군요. 계측기는 보통 플러스 마이너스 1데시벨의 오차를 가지고 있지요. 다음 분. 의뢰인2:(믹서기 3개를 탁자에 놓고) 동방가전에서 출시한 신제품입니다. 모델별 소음의 차이를 알고 싶습니다. 소비자에게 주는 청각적 영향 말이죠.(뚜껑을 살피는 남자에게) 저... 뚜껑이 아니라 작동시의 소음만 분석해 주시면. 남자:모든 소리를 다 분석해야죠. 의뢰인2:우리가 필요한 건. 남자:다시 말하지만, 소리는 복합적입니다. 의뢰인1:감별사님을 믿고 따르세요. 남자:G-1800, Q-300, A-7, 이 세가지 모델의 소리 중에서 A-7이 가장 우수합니다. 의뢰인2:그럴리가요.A-7이 가장 구형인데. 남자:신제품이 G-1800이죠? 이건 실패작입니다.110데시벨의 고주파 파동 현상이 발생합니다. 여기에 무방비로 노출되면 고객만족도가 어찌 될까요? 다음 분이오. 의뢰인3:역시 탁월한 분석이십니다.(포도주 2병을 내밀며) 적포도주와 백포도주입니다. 소리:(뾰족구두) “또각 또각 또각 또각-” (포도주 병을 살펴보다가, 뾰족구두 소리에 눈길을 돌리는 남자. 초인종 소리. 남자가 청진기를 벗고 문을 연다. 복숭아 접시를 들고 들어오는 이층 여자) 여자:안녕하세요? 저는…. 남자:위층 401호 분이시죠? 여자:어머나, 어떻게 아셨죠? 남자:(여인의 빨간색 뾰족구두를 보며) 내 추측이 맞았군요. 빨간색일 거라 생각했죠. 어젯밤에 구두 소리를 들었어요. 여자:어머나, 새벽 4시가 넘어 들어왔는데. 남자:새벽엔 더 잘 들리죠. 여자:한데 색깔까지 어떻게 아셨나요? 남자:검은색 구두였다면 소리가 더 낮게 깔리거든요. 낡은 가죽이라 세월의 나이가 느껴지던데요.15년 된 캥거루 가죽입니다! 여자:호호호- 점쟁이신가봐! 어제 이사왔어요. 인사도 드릴 겸 복숭아 좀 드시라고요.(남자에게 복숭아 접시를 건네며) 어머나, 손님들이 많이 계시군요. 남자:제 의뢰인들입니다. 여자:무얼 의뢰 받으시는데요? 남자:소리요. 의뢰인1:제품의 소리를 감별해 주시는 거죠. 의뢰인2:그 느낌까지요. 의뢰인3:감별사님은 기계보다 정확하시죠. 여자:우리 아파트에 대단한 명인이 살고 계시는군요. 저…이것도 감별이 되나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소리가 잘 안 들리거든요. 남자:(휴대전화를 검진하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소리가 작게 설정된 거 외엔.(진동음을 조정하고) 들어보세요. 소리:(휴대전화 진동음) “우웅 우웅 우웅…” 남자:커졌죠? (휴대전화를 여자에게 주며) 이웃사촌이니 감별비는 받지 않겠습니다. 여자:아유, 고마워요. 남자:소리를 놓치면 후회가 크답니다. 여자:맞아요. 일년 전에 정말 중요한 연락을 놓친 적이 있어요. 샤워 중이었거든요. 제 인생이 걸린 중요한 기회였는데….30분 늦게 연락하는 바람에 바이 바이! 근데 감별사님은 소리를 어떻게 분석하시나요? 남자:기억되어 있는 소리들 때문에 분석이 되는 겁니다. 여자:이 세상 소리를 전부 기억하고 계세요? 남자:한 번 들으면. 의뢰인2:스리쿠션 때린 당구공처럼요? 의뢰인3:구구 팔십일 구구단처럼요? 여자: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처럼? 남자:망각이 안돼요. 모두:오!…. (다시 포도주 병을 검진하는 남자. 가만히 주시하는 사람들) 소리:(포도주) “출렁 출렁 출렁 출렁-” 남자:아르마냑 17년산이군요. 의뢰인3:네! 맞습니다. 남자:색깔도 소리를 냅니다. 적포도주는 백포도주보다 0.3데시벨 정도 고음을 지닙니다. 잔에 따를 때, 잔을 부딪칠 때, 적포도주는 유혹의 소리를 발산하지요. 좋은 술은 좋은 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우와!…. 의뢰인2:선생님. 그 차이를 일반인도 인식할 수 있나요? 남자:그들도 분명 듣습니다. 말로는 표현하진 않지만, 마켓에서 돈으로 표현하죠. 의뢰인들:(박수치며)니즈는 욕망이다! 여자:전 들을 수 없거든요! 색깔이 소리를 낸다고요? 그런 황당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는 거죠? 왜들 무조건 믿는다고만 하시죠? 남자:이걸 쓰고 한번 들어보세요. (여자에게 청진기를 건네는 남자) 여자:이건 호른의 음관이잖아요! 남자:제가 특별히 제작한 청진기입니다. 여자:(쓰레기통에 처박힌 호른의 나팔부분을 발견하고) 저기서 떼어내 만드셨나요? 남자:네. 난 새로운 악기가 필요하거든요. 여자:이 청진기가 악기라고요? 남자:그럼요. 혼자만 들을 수 있는 악기죠. 여자:혼자만 듣는 게 어떻게 악기가 되죠? (청진기를 던지며) 이건 장난감에 불과해요. 남자:진정하세요. 이 세상은 소리로 가득차 있습니다. 소리를 외면하지 마세요. 제발…. 이리 오셔서 들어보세요. 호른 소리를 음미할 수 있어야 진정한 호른 주자가 될 수 있듯이, 이 청진기는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듣게 해 줍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수많은 소리로 가득 차 있는가를 가르쳐 주는 거죠.(청진기를 여자에게 씌워주고 백포도주를 흔든다.) 들리나요? 눈을 감고 들어 보세요. 소리:(백포도주) “출렁 출렁 출렁 출렁-” 여자:들려요. 남자:이번엔 적포도주입니다. 소리:(적포도주) “출렁 출렁 출렁 출렁-” 남자:안단테 칸타빌레로 사라지는 아련한 고음의 잔상이 왼쪽 귓전을 스치죠? 여자:(청진기를 벗으며) 들려요…. 하지만 차이는 모르겠어요. 의뢰인1:허허허- 소리 감별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지요. 의뢰인2:그래서 우린 의뢰를 하러 오고요. 의뢰인3:기계보다 정확하시니까요. 여자:흥, 정말로 듣지 못하는 소리가 하나도 없어요? 남자:듣지 못하는 소리라…. 있죠. 잠들었을 때. 여자:밤에도 안 자고 전부 듣는다면서요. 새벽 4시에 제 구두소리도 듣고. 남자:낮에 자나보죠? 여자:농담하세요? 어째 좋은 이웃이 되기는 힘들 것 같군요. (휭하니 나가버리는 여자. 의뢰인들도 일어선다.) 의뢰인1:허허허. 성질도 급하시네. 오늘도 좋은 감별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의뢰인2,3:최상의 분석이었어요.(박수치며) 엑설런트! (모두 나가면 하품하는 남자. 위층 402호로 들어서는 여자. 소리를 읊조린다.) 여자:“우리 아기 예쁜 배, 할미 손은 약손, 쓱쓱 만져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우리 아기 동그란 배, 할미 손은 약손. 궁글궁글 쓸어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남자, 위층의 소리를 의식하며 침대 밑에서 박스 하나를 꺼낸다. 박스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꺼내 물끄러미 바라보는 남자. 스케이트 신발의 줄을 풀렀다가 다시 매더니 하품하며 드러눕는다. 조명 분위기가 바뀐다.) (탁자 위에서 남자의 휴대전화가 진동한다. 코를 고는 남자. 이어 부르는 소리) 소리:“우웅 우웅 우웅- 영호야. 영호야-” 남자:(몸을 뒤채며) 순이니…. 인라인 스케이트 사놨다. 어여 신어봐….(부스스 얼굴을 들고) 엥! 내가 자고 있었나. 순이니? 순이 왔니? 날 저물었는데 얘는 뭐하고 안 들어오나. 어휴, 말을 말아야지. 세상 좋아졌다. 맨땅에서 스케이트를 다 타고.(보호장구와 헬멧을 착용해보며) 돈 쓰게 만드는 기술도 가지가지여. 앉아서 이런 거만 연구하는 놈들 천지니. 어뗘. 순이야. 아빠도 멋져 보이냐? 아빠도 소싯적에 얼음지치기 한가닥 했다. 외날 썰매 모르지? 우선 중심을 잘 잡고…. 긴 꼬챙이 하나를 다리 사이로 넣고 얼음을 팍팍 찍으면서 달리는 거여. 대가미 방죽에선 아빠가 일등했다. 니 이렇게 차려입고 씽씽 달리면 동네 남학생들이 줄줄 따르것다. 순이야, 얼른 들어온나. 인제 호른을 필요로 하는 나이트클럽은 없다. 그러니 아빠는 내일이면 배 타러 가야헌다. 한동안 못 보니까 얼른 와. (시계를 흘낏 보다) 아니 근데 이누무 지지배가 아직도 들어올 생각을 안 하고 어딜 싸돌아 다니는 거여. 내 이년을….(휴대전화 메시지를 발견하고) 얼래, 이게 뭐여.“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그려 근데.“아빠. 로데오광장 빨리….” 20분전에 온 거네. 로데오 광장? 하하- 요것이 눈치 하난 빨라요. 거기서 스케이트 타고 싶다 이거지? 다른 애들처럼. 오냐. 아빠가 가마. 근데 얘가 스케이트 사논 걸 어떻게 알았지? 돈 없다고 등짝을 후려패서 학교 보내 놨더니…. 하여튼 귀신이여 귀신. (박스를 옆구리에 끼고 달려 나가는 남자. 그 열린 문으로 여자가 은밀하게 들어와, 가구들 뒤에 무엇인가를 붙여 놓는다. 감별사의 청진기를 보고 자기 심장에 대본다.) 소리:(심장박동) “쿵 쿵 쿵 쿵-” (남자가 돌아오는 기척. 얼른 복숭아 가져왔던 접시를 드는 여자. 남자가 힘없이 들어선다.) 여자:어머! 오셨네요. 문이 열려 있기에 접시를 가져가려고요. 아깐 제가 너무 흥분했었나 봐요. 어디 산책 다녀오세요? 남자:근처 로데오 광장에 갔었습니다. 아이들이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있더군요.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나도 즐거워지거든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지요. 웬 처녀가 글쎄 나한테 “아빠”라고 부르는 겁니다. 여자:어머나, 그래서요. 남자:후후후. 당황스러워 혼났습니다. 여자:그 아가씨 아빠가 감별사님과 비슷한가 보죠. 남자:하긴…. 그 아가씨도 우리 딸애와 비슷하긴 했어요. 여자:따님이 있으세요? 남자:……. 여자:참, 그거 잘 타세요? 스케이트요. 남자:내 스케이트가 아닙니다. 여자:누구한테 선물하시려나 보죠? 남자:……. 여자:호호- 말씀하기 싫으신가 봐요.(문으로 가며) 그럼 또 뵙겠습니다. 남자:일년 전, 휴대전화 소리 때문에 인생이 달라졌다고 했죠? 소리는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금방 사라지거든요. 여자:감별사님. 좋은 이웃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여자 나가면, 남자는 박스를 옆에 낀 채 홀로 서성인다. 조명 분위기 다시 바뀐다.) 남자:어휴! 몇 분 차이로 이게 뭐여. 속 터져. 쬐금만 더 기다리지 않고선.(박스를 놓고 휴대전화 메시지를 확인하며) 이누무 기지배는 대체 어딜 간 거여. 소리:“삐- 삐- 새 메시지는 없습니다.” 남자:아! 눈부시다. 눈부셔. 왜 이리 눈이 부시지? 불을 끌 수도 없고. 순이야, 어여 연락 좀 해라. 아빠 이러다가 죽는다잉. 일주일째 이러고 잠 한숨 못 잤다.(침대에 드러누우며) 이러다 아빠 죽겠다. 순이야. 순이야…. 소리:(진동소음) “우웅 우웅 우웅 우웅-” 남자:(벌떡 일어나 휴대전화 확인하며) 아니잖아. 어디지? 아래층 201호여! 죽겠네. (문을 열고 아래층으로 뛰어가는 남자. 문을 다급히 두드리는 소리) 남자(E):여보세요,201호 아저씨! 전화 왔어요- 얼른 휴대전화 좀 받아 봐요. 201호(E):돌겠네! 안 받으려던 건데. 알았다니까- (휴대전화 진동소리 겨우 멈춘다. 다시 들어오는 남자) 남자:싸가지 없는 놈. 끝까지 안 받네. 매너들 없어. 소리:(TV 끝나는 소리)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치이-” 남자:302호 미친놈. 오늘도 저 모양이야. 꺼라. 제발 좀 꺼라. 바로 옆방에서 이러면 어떡하냐.(앞쪽 베란다로 나와서) 302호- 텔레비전 좀 끄쇼. 시끄러워 살 수가 있나. 이웃들(E):조용히 좀 해요. 남자:302호, 조용히 하라잖아요∼ 이웃들(E):301호, 당신이 조용히 해∼ 당신 때문에 못자. 아저씨 날마다 이게 뭐예요. 남자:이런 우라질. 귓구멍이 거꾸로 뚫렸나. 나는 니들 때문에 못자- 아! 눈이 터질 것 같네. 그래도 안 끈다 이거지. 니기미! 대한사람 살아야 길이 보전도 된다. (야구방망이 들고 나가는 남자.302호 문 부서지는 소리. 비명소리. 순찰차 사이렌 소리) (위층 401호 여자는 나지막이 뭔가를 읊조린다.) 여자:“쓱쓱 만져 주면…뭐든지 다 낫는다…궁글궁글 쓸어 주면…뭐든지 다 낫는다….” 무대 서서히 어두워진다. 암전. ●제2장 무대 밝아지면, 아래층 301호 침대에 우울하게 앉아있는 남자. 얼굴에 수건을 두르고 귀마개를 하고 있다. 말씨가 점차로 사투리 운율로 변해간다. 남자:백두산이 다 닳기 전에, 대한사람 살고 보자는데 웬 말들이 많은 겨.(수건을 풀며) 돌아와 보니 문은 닫혀있고 불은 꺼져 컴컴하고…. 아무도 없는 거여. 그냥 빈집이여. 빈집.(귀마개를 벗으며) 기껏해야 한 삼일이면 됐지. 왜 삼일이 열흘 되고 달포 되고 한달 되느냔 말이여. 왜 삼일이 석달 되고 석삼년 되느냔 말이지. 이상타. 참말 이상한 일이다. 어무이는 금가락지 끼워주면 훨훨 날아간다 허지, 딸년은 스케이트 있어야 씽씽 달려간다 하지. 아! 나도 편지 한 장 달랑 써 놓고 부산으로 가서 외항선 탔다 했지? 석달 열흘만 꾹 참고 다녀오자. 어무이도 없지. 딸자식도 없지. 여편네도 없지∼ 허참, 귀신이 곡할 노릇인 거여, 시방 이것이. 태평양 넘어 동지나해 건너 알류산 열도 거쳐 부산항에 도착, 광복동 시장에서 딸년 인라인스케이트하고 어무이 서돈짜리 금가락지 서둘러 해가지고 와보이, 종적이 묘연한 것이여. 여편네 줄려고 야들야들한 속곳 둘둘 말아 끼고 왔는디, 입을 사람이 없는 거여. 세상 참 얄궂네. 인생 허망타. 어무이도 없지, 딸자식도 없지. 여편네도 없지∼ 소리:(진동음) “우웅 우웅 우웅 우웅-” (얼른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남자.“새로운 메시지가 없습니다.”라는 안내음. 실망하는 남자. 이때 문을 노크하는 소리. 남자가 문을 여니 의뢰인들이 의뢰품들을 들고 들어온다.) 의뢰인들:좋은 아침입니다. 의뢰인1:(전자레인지를 탁자에 놓고) 부품 교체를 해야 할 것 같은데요. 남자:(청진기로 검진하다 고개를 갸웃거린다.) 흠…흠… 소리:(전자레인지) “위이이잉-” 남자 : 모터가 낡았으니 교체하세요. 다음. 의뢰인2:(책들을 놓으며) 신나라출판사의 기획 시리즈 견본품인데요. 남자:(책장 넘기며) 책도 소리를 가집니다. 종이 지질에 따라서 소리는 천차만별입니다. 소리:(종이) “펄렁 펄렁… 팔랑 팔랑… 풀렁 풀렁…” 남자:이건 모조지, 이건 아트지, 이건 하드보드에 코팅까지. 아트지는 반짝 반짝! 모조지는 서글 서글! 3데시벨의 편차가 있네요.(표지를 보며) “세계의 미스터리”라…. 이 제목에는 모조지보단 아트지가 어울립니다. 미스터리는 반짝반짝해야죠. (여자가 문을 살짝 열고 들어와 몰래 엿본다.) 의뢰인3:(돌멩이 2개를 놓으며) 심산인테리어에서 의뢰한 겁니다. 남자:(돌을 살피며) 흥미 있는 소재이군요. 돌의 소리는 가장 심원한 소리입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재질이니까요. 돌의 소리는 음악의 근본입니다. 돌로 만든 악기인 편경의 소리는 국악의 표준 음정이죠.(돌을 부딪쳐 본다.) 오만년의 역사를 간직한 소리입니다. 소리:(돌) “딱 딱 딱 딱-” 의뢰인들:정말 탁견이십니다. 남자:저 전자레인지는 전에도 감별해 드린 건데요. 저를 시험하시나요? 의뢰인1:예? 오해십니다. 남자:칠일 전에도 해드렸고, 한 달 전에도 했습니다. 의뢰인1:청진기가 착오를 일으킬 수도 있지 않습니까? 남자:기계든 인간이든 자기만의 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리는 살아있는 생명체죠. 청진기는 거짓을 모릅니다. 여자:(앞으로 나서며) 감별사님의 판단을 믿지 못하시나요? 의뢰인1:음…. 출고담당 직원의 미스인가 봅니다. 확인해 보죠. 여자:(모두 자신을 쳐다보자) 어머나! 안녕하세요. 호호호- 문이 열려있지 뭐예요. 의뢰인1:소리 감별은 회사의 일급 기밀입니다. 여자:한심한 출고담당 재교육도 중요하죠. 의뢰인1:(전자레인지 들고 나가며) 성질도 급하시고 변덕도 심하시군요. 흠, 흠. 여자:오늘의 분석은 어땠나요? 의뢰인2:출판사가 관심을 가질 것 같습니다. (의뢰인2,3도 나간다. 남자가 문을 잠그더니, 얼른 여자를 데리고 구석으로 간다.) 남자:혹시 이 아파트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 못하셨나요? 여자:글쎄요? 남자:이사 온 뒤로 다른 주민들 보신 적 있나요? 여자:네… 봤죠. 남자:이상하지 않던가요? 여자:네. 남자:언제부터인가 이 아파트 주민들이 잠만 자고 있어요. 모든 활동이 중지된 겁니다.201호는 휴대전화를 안 받는 버릇이 있고,302호는 지가 무슨 애국시민이라고 날마다 애국가를 시청하더니 모두 조용해 진 겁니다. 여자:에이, 고급 아파트는 원래 조용하잖아요. 남자:(눈치를 보더니 말소리를 죽이며) 나는 저 의뢰인들을 믿지 않습니다. 여자:(놀라며) 네? 무슨 말씀이세요? 남자:뭔가 수상쩍은 음모가 있어요. 의뢰 물품이 변하지 않고 있어요. 여자:날마다 똑같아요? 남자:일주일 주기로 반복되고 있어요. 예전엔 한달 주기였죠. 점점 짧아지고 있어요. 나는 새로운 소리를 원합니다. 여자:좋아하는 음악은 자꾸 듣기도 하잖아요. 가령 호른 연주는 어때요? 남자:모차르트 호른협주곡 3번 2악장 로만자… 호른은 같은 곡을 연주하더라도 날마다 다릅니다.(청진기 곡선음관을 어루만지며) 호른을 통해서 들어야 세상은 아름다워집니다. 하지만 누가 날마다 같은 구름을 보고 싶겠소. 누가 날마다 같은 바람을 맞고 싶겠소. 출고담당 직원의 미스라고 둘러대지만 실수가 아닙니다. 치밀하게 반복되는 순환시스템이죠. 소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이 세상이 죽어가는 것처럼. 저들이 소리를 뺐어가는 겁니다. 아…. 이러다가는 당신의 잠꼬대마저 뺐어갈지도 몰라요. 여자:어젯밤에 제가 잠꼬대했나요? 남자:(흉내 낸다.) “쓱쓱 만져 주면… 궁글궁글 쓸어 주면…” 여자:어머, 어머! 저를 너무 속속들이 아시네. 호호호- 내 정신 좀 봐. 가야겠어요. 남자:어젯밤에 당신의 잠꼬대 소리를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아세요? 제발 가지 마세요. 여자:네? 남자:잠꼬대 소린 정말 너무 오랜만에 들어 봤어요. 지금 이 아파트에서 당신만이 유일하게 살아있는 사람이에요. 지금 가버린다면 당신도 잃어버릴 것만 같아요. 여기 계세요. 여긴 안전하니까. 여자:(남자를 경계하며)감별사님은 소리를 정말 좋아하시나 봐요. 남자:사실은 소리가 무서워요. 여자:왜요? 남자:너무 진실하니까. (이때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온다. 점점 고조되는 온갖 소리들. 서로 뒤섞여 아비규환의 아우성처럼 난무한다.) 소리:“찌르르르… 출렁출렁… 저벅저벅… 쿵쾅쿵쾅… 우웅우웅… 영호야∼영호야∼” 여자:이게 뭐야? 어디서 들리는 소리지? 남자:(귀를 막으며) 아! 아! 저리가. 듣기 싫어. 씨끄러. 듣기 싫어. 아아악- (남자 귀를 막으며 고통스러워한다. 나가려 하지만 열리지 않는 문. 야구방망이로 치고 머리로 들이받으며 발광하다가 쓰러진다. 여자는 놀라서 남자를 부둥켜안는다. 소리들이 그친다.) 여자:여보… 여보! (병원 가운을 입은 의뢰인들이 나타난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남자를 침대에 뉘고 벨트로 사지를 결박한다. 남자를 청진기로 진단하는 의뢰인1) 여자:아… 어떻게 된 거죠. 무서워요. 무슨 소리였죠? 그이는 괜찮은가요? 의뢰인2:안심하세요. 본 특병동의 소리치료 시스템입니다. 일종의 충격요법이죠. 의뢰인1:상태가 좋지 않아.2단계 프로그램도 실패야. 발작 증세가 멎지를 않네. 더 이상 늦출 수 없어. 내일 수술 일정 잡도록 해. 의뢰인3:근데 보호자께서 동의서에 아직 서명을…. 의뢰인1:그깟 동의서 하나를 여태 못 받아? (여자에게) 똑바로 들으세요. 내일도 서명하지 않으면 조치를 취할 겁니다.(의뢰인2에게) 자네 수련의가 왜 그 모양이야. 그럴 거면 딴 병원으로 가. 내가 이젠 환자한테 훈계까지 받아야 돼? 내가 저를 시험한다고? 미친놈이 입만 살아서. 한데… 어떻게 알았지? 의뢰인2:환자는 지각능력이 있는 게 확실합니다. 자신에게 의미있는 것에만 몰두하는 주의력 증가 기제가 너무 왕성해서 그렇습니다. 환자의 소리 분석은 정상입니다. 의뢰인1:믹서기 회사에선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했잖아. 의뢰인2:그건 생산부장의 말이고요. 오늘 아침에 마케팅팀장과 통화했는데 좋은 지적이라고 반기더군요.2차 분석도 의뢰하겠답니다. 일시적인 “해리성 황홀경”입니다. 의뢰인1:속단하지 말라고 했지? 자네의 진단은 정서적인 판단이 앞서고 있어. 의뢰인2:“뇌손상에 의한 퇴행성 기억장애”란 과장님의 진단은 측두엽의 손상만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 거 아닙니까? (쓰레기통에서 부서진 호른 나팔을 꺼내서 안고 있던 여자가 나선다.) 여자:선생님, 우리 그이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의뢰인1:미치겠네 정말. 아까 발작하는 거 못 봤어요? 가족도 몰라보잖아요. 여자:예전에 연주하던 곡 이름을 정확히 기억해 냈단 말이에요. 의뢰인1:단편적인 기억 정도는 모든 환자들이 다 가지고 있어요.(부적뭉치를 던지며) 이게 뭡니까? 이런 식으로 맘대로 행동하면 퇴거조치시킬 겁니다. 여자:이 부적에 어떤 힘이 있다고 믿으세요? 미신에 불과하다면서요? 의뢰인1:그게 아니고…. 의사의 치료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 아닙니까. 협조요. 협조! 여자:협조했잖아요. 가구며 소지품들 가져다가 집안처럼 꾸며놓고… 순이더러 로데오 광장에서 아빠를 기다리라고 해서 그렇게 했잖아요. 근데 별 이상도 없는 이가 왜 딸을 몰라보나요? 왜 아내도 몰라보나요? 그저 지쳐서 그런 걸 거예요. 집에 가서 잘 요양하면… 고요한 호숫가를 찾아서 호른도 불면서 푹 쉬면 나아질 거예요. 의뢰인1:흥, 호른 분다고 치료가 되면 병원이 뭐하러 있어요! 도대체 의사를 뭘로 보는 거요? 기물을 파손하고 상해를 입힌 환자는 완치되기 전엔 퇴원할 수 없습니다. 내일까지 수술 동의서에 서명하세요.(의뢰인3에게) 진정제 5밀리그램…. 아니 7밀리그램 준비하고, 면회는 금지시켜. (의뢰인1,3 나간다. 흐느끼며 부적을 줍는 여자. 창문으로 복도에서 담배 피우는 의뢰인1이 보인다.) 여자:흑흑흑…. 날더러 어떡하라고요. 기다려라. 기다려라…. 벌써 세 달이 됐어요. 의뢰인2:왜 그토록 소리에 집착하는지 그 압제의 요인을 찾아야 하는데…. 기억 과잉이 문제입니다. 뇌의 측두엽에 너무 많은 소리의 기억들이 축적되어서, 컴퓨터가 다운되듯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주치의께선 손상된 부위를 제거하지 않으면 발작이 계속된다고 보십니다. 삭제키를 눌러야 리소스 부족에서 해방되니까요. 여자:그러면 과거의 모든 기억이 사라진다면서요. 의뢰인2:대신 새 기억은 지킬 수 있습니다. 여자:그토록 찾던 딸이 눈앞에 나타나도 못 알아보는데, 앞으론 영원히 그렇게 되겠죠? 이 빨간 구두요… 15년 된 캥거루가죽 맞아요. 저이가 나이트밴드 아르바이트 뛰어서 첫 월급으로 사준 우리 결혼 선물이죠. 이거 신고 난생 처음 비행기 타고 제주도로 신혼여행 갔어요. 이 호른은 방직공장 월급 일년을 꼬박 모아서 제가 사준 거예요.(호른을 쓰다듬는 여자. 창가에서 귀 기울이는 의뢰인1) 서귀포 밤바다는 그날 따라 왜 그렇게 고요했는지, 저이가 부는 호른 소리가 수평선 끝까지 울려 퍼졌어요. 모차르트 호른 협주곡 3번 2악장 알레그로. 그게 저이가 아는 유일한 연주곡이죠. 순이를 낳게 되어서 사범대학을 그만뒀으니… 이 모든 걸 다 잊어버리겠죠? 의뢰인2:아마 그렇게 되겠죠. 여자:그렇게 되면, 우린 이 세상 안 산 거나 같네요. 시골 고등학교 밴드부 남학생이 부는 호른 소리에 바람나 쫓아다니다가…. 외아들 사범학교 나와 선상님이 평생소원이던 홀어머니 가슴에 못질하고, 남자 앞길 망쳤다고 원망들은 촌년이… 저승 가서 어머니까지 못 알아보는 산송장 만들어 놨다는 소린 죽어두 들을 순 없네유. 차라리 청진기 쓰고 세상의 소리에 미쳐서 사는 게 나아요. 저인 소리를 사랑했으니까. 저이 어머니도 소리를 벗삼아 사셨으니 하늘나라에선 서로 알아보겠지요. 의뢰인2:사모님…. 여자:선생님도 저이가 미쳤다고 보세요? 의뢰인2:의사가 해서는 안 되는 말이 하나 있지요. 알 수 없습니다…. (의뢰인3이 주사기 가지고 들어온다. 의뢰인2가 여자를 부축해 나간다. 의뢰인3이 주사할 준비를 하는데, 창문에서 지켜보던 의뢰인1이 들어와서 부서진 호른을 들어본다.) 의뢰인1:아까 몇 밀리그램이라 했지? (쳐다보는 의뢰인3) 3밀리그램만 투여해. 의뢰인3:3밀리요? 네…. (주사기 용량을 조절해서 남자의 팔에 주사 놓고 나가는 의뢰인3) 의뢰인1:길영호씨. 지금 혼자서 호숫가를 거닐고 있소? (입으로 모차르트 호른협주곡 3번을 불며 빠져든다.) 빠밤 빠바바밤 바밤바 빠바밤- 빠밤 빠바바밤 바밤바 빠바밤- (이층 401호로 힘없이 들어서는 여자. 부적 뭉치를 탁자에 놓다가 세어본다.) 여자:하나, 둘, 셋, 넷…. 분명 다섯장을 붙였는데. 한 장이 살아있어! (암전) (무대 밝아지면, 병실 분위기가 나는 아래층 301호. 환자복이 입혀진 남자가 침대 벨트에 묶여있고, 의뢰인2를 따라 여자와 딸이 들어선다.) 의뢰인2:휴, 제가 미친 거 같네요. 주치의가 회진오시기 전에 끝내셔야 합니다. 여자:고맙습니다. 순이야, 어서. 딸:아빠! 제가 왔어요. 어째 잠만 자는 거야. 흑흑흑…. 아빠 일어나세요. 눈떠- 아빠- 여자:여보! 순이가 돌아왔어요. 이제 일어나세요. 다 잘되었어요. 저도 직장 잡아 돈벌이해요. 지난 일은 잊고, 정신 좀 차리세요. (여자와 딸이 벨트를 풀고, 사력을 다해 남자를 일으켜 세운다. 아무리 흔들어도 눈을 뜨지 못하고 무너져 태아처럼 웅크리는 남자) 딸:흑흑흑…. 엄만 대체 무얼 한 거야! 아빠가 저리 되도록. 여자:엄만 안 해본 거 없다. 귀신 쫓는다는 복숭아도 들이고, 부적도 붙여보고, 약손으로 아픈 데 쓸어주시던 할머니 소리도 해보고…. 너는 뭘 하고 있었어. 이년아, 니 아빠 이리된 것 다 너 때문이다. 나가버릴 거면 그냥 나가지 메시지는 왜 남겨! 딸:난 그냥…. 아빠가 기다릴 것 같아서…. 여자:그걸 아는 년이 세 달이나 안 들어와! 니 메시지 못 들었다고, 또 올지도 모르니까 지켜봐야 한다고, 휴대전화에서 눈도 못 떼고 일주일을 뜬눈으로 지새우셨다. 그러다 결국 쓰러지신 겨. 산송장 되신 겨. 집으로 가요, 여보. (남자의 환자복 윗도리를 벗기고 몸을 쓸어주며 사복으로 갈아입히는 여자와 딸. 자연스럽게 할머니의 소리를 하게 된다.) 여자:“우리 아기 예쁜 배, 할미 손은 약손, 쓱쓱 만져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할머니:“우리 아기 동그란 배, 할미 손은 약손. 궁글궁글 쓸어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소리를 받아 부르는 할머니의 환영. 문으로 들어와 부엌에서 요리를 한다.) 할머니:어여 일어나거라. 영호야. 된장찌개에 밥 말아먹고 어여 핵교 가야지. 온나 온나. 어여…(미소 짓는 남자) 우리 외동이, 온나 온나. 딸:엄마! 아빠가 웃어. 여자:어디? 정말! 여보, 어디 좋은 곳 유람이라두 하는 게유? 할머니:아유, 찌린내. 요 녀석 바짝 섰네. 쯧쯧쯧. 이부자리는 한강이구. 늦게까지 숙제하더니 곤했던 게여. 그려 됐다. 옷 갈아입자. 아부지 모르시게 저리 치워놨다. 인나렴. (여자와 딸이 남자의 아랫도리도 사복으로 갈아입힌다. 할머니는 싱크대로 가서 도마를 꺼내 칼자루 끝동으로 마늘을 다진다.) 소리:(마늘 다지는) “쫑 쫑 쫑 쫑-” 여자:여보,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눈을 떠요. 딸:아빠. 눈 떠. 제가 잘못했어요. 흑흑흑. 아빠. 제발! 남자:불…. 불이여…. 딸:뭔 불이 나? 남자:집에 불났다. 어쪄 어무이. 할머니:간밤에 어매가 호롱불 꺼놨다. 걱정 말그라, 불 안 났으니. 밥 다됐다. 소리:(찌개 끓는) “보글 보글 보글 보글….” (마침내 힘없이 눈 뜨는 남자) 할머니:됐다. 눈 떴다! 딸:아빠! 여자:여보! 할머니:어매는 좀 쉴란다. (이젠 할머니가 기력이 다한 듯 눕는다. 중얼거리며 그 옆으로 다시 무너지는 남자) 남자:왜 이리 자꾸 졸리지. 어무이 괜찮으셔유? 주무시는가베. 순이야, 엄마는 일 나갔니? 밥은 먹었니? 그래 아빠 잠깐 눈 좀 붙였다 일어날 테니 뭔 일 있으면 깨우렴. 아주 잠깐이다…. 아빠가 일어나서 떡볶이 해줄게. 설탕도 넣고 달달하게…. (모로 쓰러진 남자 어느새 코를 곤다. 할머니가 부스스 일어나 아들과 손녀를 보더니 천천히 문으로 걸어 나가며 아들을 부른다.) 할머니:애비야…. 영호야! 영호야…. (놀라서 벌떡 일어나는 남자) 남자:어무이! 딸:아빠. 꿈에 할머니 봤어? 남자:순이야. 혹시 할머니가 뭐라 하셨니? 딸:언제요? 남자:돌아가시기 전에. 딸:(할머니 목소리로) “애비야…. 영호야! 영호야….” 남자:그래… 맞았어. 어무이가 날 부르는 소리였어.(딸을 안으며) 순이야. 할머니가 아빠를 불러주셨구나. 아빠는 할머니가 한마디도 안 하고 그냥 가신 줄 알았다. 여보, 어무이가 나를 불러 주셨대. 날 용서하신 거여. 여자:여보, 흑흑흑…. 딸:내가 아빠를 얼마나 깨웠는 줄 알어? 남자:기특한 것. 아빠가 잘못했다. 어무이, 지가 죽일 놈입니다. 여자:아니에요. 지가 죽일 년이에요. 남자:어무이 손은 약손이여. 암…. 그렇구 말구. 딸:할머니 손이 약손? 남자:니 여섯 살 때, 맹장염을 앓았단다. 할머니가 밤새 순이 배를 문질러 주셨대. 할머니 약손으로. 니가 잠이 들어서 새벽이 됐는데, 아빠가 나이트 일 마치고 와보니 이미 혼수상태인 거라. 그래 아빠가 들쳐 업고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은 거여. 딸:애게, 약손이면 맹장도 고쳐야지. 남자:아픈 걸 잊게 해주셨잖니. 그러니 약손이지. 이렇게 배를 쓸어주시면서…. (약손 소리를 함께 부르는 가족. 할머니가 밖에서 창문을 열고 함께 부른다.) 가족:“우리 아기 예쁜 배, 엄마 손은 약손, 쓱쓱 만져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할머니:“우리 아기 동그란 배” 가족:“엄마 손은 약손” 할머니:“궁글 궁글 쓸어 주면…” (노래하다가 침울하게 그치는 할머니) 할머니:인자 이 손 약발도 다 떨어졌는가부다. 이 손으로 아범 뺐어가려던 저승사자들 다 쫓아 버렸는데 이젠 안 되는가부다. 내 다시는 약손 안 할란다. 남자:어무이, 이참에 그 달랑무 소리도 그만 두세요. 동네 애들이 벌써 순이를 놀린대요. 할머니:내 그리하마…. 달랑무 소리두 안 할란다. (창문을 닫는 할머니. 의뢰인1이 방으로 들어선다. 긴장하는 의뢰인2) 의뢰인2:선생님, 환자가 깨어났습니다. 어제 2단계 프로그램의 효과인 것 같습니다. 옷은 환자가 갈아입고 싶다고 해서…. 의뢰인1:음…. 잘했구만. 길영호씨. 이제 환청이 들리지 않습니까? 남자:네, 사라졌습니다. 의뢰인님. 의뢰인1:허허허…. 잊으세요. 불필요한 소리들을. 불필요한 기억들을. (의뢰인3이 호른 케이스를 하나 들고 들어온다.) 의뢰인3:지금 도착했습니다. 의뢰인1:(케이스를 남자에게 주며) 퇴원하게 되면 이게 필요하실 겁니다. 여자:호른이잖아요? 의뢰인1:제가 30년간 가지고 있던 겁니다. 주인을 잘못 만나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었죠. 한적한 호숫가를 찾게 되거든 연락 한번 주세요.(나가며) 한번 들으러 가고 싶군요. 의뢰인2:선생님! 의뢰인1:자네가 “알 수 없습니다.” 하는 순간, 나도 알 수 없어 졌다네. 의사는 신이 아니지 않은가. 남자:선생님. 신은 이 수많은 세상의 소리를 어찌 다 들을까요. 의뢰인1:허허허- 다 듣다간 신도 입원해야지요. (마주보고 씩 웃는 그들. 의뢰인들 나간다.) 남자:어머니더러 달랑무 못 파시게 한 그것이 내내 걸리는 거여. 바깥출입도 안 하시구 말수도 적어지더니 그냥 가신 거여. 여자:제 잘못이에요. 동네 푼수들 말만 듣고…. 남자:어무이는 소리 힘으로 사신 겨. 그게 어무이 약손이여. (문이 열린 채다. 그 문으로 겨울바람이 불어온다. 어머니가 다시 들어와 서성이며 누군가를 기다린다. 뭔가 바람에 날려 쿵- 엎어지는 소리) 할머니:영호니? 영호야- 야가 삼일씩이나 어딜 간 거여. 저게 누구여. 영호지. 어여 어여 온나. 세상에! 야가 못 먹어서 눈이 십리는 들어갔네. 집 놔두구 어딜 갔다 이제 오는 겨. 들어가 밥 묵자. 엄매가 된장국 끓여놨다.(흰 고무신을 주며) 봐라. 흰 고무신 사놨다. 따습지? 어여 신어봐. (흰 고무신을 받아 침대 머리맡에 놓았다가, 가슴에 끌어안고 웅크리는 남자) 소리:(소년) 흰 고무신 때 타면 어쩐대유. 소리:(할머니) 영호야 자니? 엄매는 그깟 금가락지 없어도 된다. 영호만 있으면 된다. 소리:(소년) 어무이. 흰 고무신… 내 눈 내리면 신을란다. 소리:(눈 밟는) “뽀작 뽀작 뽀작 뽀작” 할머니:멋지다. 헌헌장부 났다. 남자:남학생들이 줄줄 따르것다잉. 손이 얼은 것 좀 봐. 요리로 들어와. 어여. (어느새 인라인 스케이트 신고 헬멧 쓰고 서있는 딸. 아빠 엄마 있는 침대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간다. 문가에서 고개 끄덕이던 할머니, 달랑무 팔러 가신다.) 할머니:달랑무∼ 있어. 푸성귀나∼ 달랑무∼ 있어. 무대 서서히 어두워지며 암전. ■ 희곡 당선소감 게으른 며느리에게 시켜야 할 일은 두부 만드는 일이랍니다. 느긋하게 일해야 맛있는 두부가 만들어진다죠. 군대 지휘관도 게으른 사람이 좋답니다. 게으른 천재여야지 괜히 아랫사람 생고생 시키지 않는다는 건데…. 요건 사실 게으른 아랫사람들의 소망이죠. 부지런한 천재 즉 이순신 같은 양반 만났다간 그저 죽었구나 하고 뛰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는 없지요. 안 뛰면 바로 곤장 맞지요. 난중일기 쬐금 보니까, 임진왜란 발발 전에 이 어른 매일 하는 일이 순찰 나가서 하급지휘관 곤장 치는 게 주업무이시더군요.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다 하셨으니 백전백승의 신화를 창조하셨던 게죠. 선친께서 제 원래 이름자에 늦을 만(晩)자 하나를 넣어주신 덕택에 이렇게 느즈막히 입문하게 되었나 봅니다. 작은 상 하나를 펴놓으시고 늘 만년필로 원고지에 글을 쓰셨던 아버님께서는 교단 은퇴 후에 스스로 책 몇 권을 출간하셨죠. 그러곤 집안잔치가 있으면 친구 분들께 그 책을 선물하던 낙으로 사셨습니다. 평생 글을 쓰시던 열정은 정말 프로작가 못지않으셨지요. 이제부턴 저도 작심하고 자세 가다듬어 열심히 쓰겠습니다. 작은 상 앞이 아니라 PC 앞이 되겠네요. 축하해주는 벗님들, 사랑하는 영두와 영소, 그리고 가족들. 더불어 삶의 위안과 기쁨을 원하는 이들을 위해서. 아울러 미흡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약력 1959년 충북 제천 출생 중앙대 교육대학원 무용 석사과정 ■ 심사평 세상이 어수선한 탓인지 응모작들 중에서도 투신자살, 노숙자, 입시부정, 로또복권 등 세상살이의 고달픔을 담은 작품들이 유난히 많았다. 인터넷과 휴대전화의 문자메시지, 그리고 각종 드라마 매체에 많이 노출된 탓인지 대화체의 이야기 구사에는 능숙해졌으나 막상 연극이라는 무대예술의 특성을 이해하고 있는 작품은 드물었다. 최종적으로 심사자들의 손에 남은 희곡들은 박만호의 ‘청진기’, 김성제의 ‘바다로 가는 성북행’, 그리고 류세균의 ‘달 속의 그늘’이었다. 공사판의 살인사건을 그린 ‘달 속의 그늘’은 밑바닥 인생들의 성격설정이나 대사구사에 능숙했으나 극 구성이 너무 평이하고 결말 부분을 배영감의 감상적인 인생고백으로 가져간 점이 지적되었다. 지하철 승강장을 배경으로 해서 사회적으로, 성적으로 상처받고 억압된 두 모자의 아픈 일상을 포착해낸 ‘바다로 가는 성북행’은 살아있는 독특한 정서가 심사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남편에게 맞고 사는 식당 파출부인 엄마와, 성전환 수술을 위해 일본으로 돈벌러 가는 여성적 아들의 아픔을 과장되지 않은 일상적 대사 속에 담아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극적 상황과 행동을 충분히 연극적으로 객관화시키지 못했고 극이 아직 작가의 주관적인 관점 안에 갇혀있다는 느낌이 있다. 현대생활을 지배하는 각종 소음과 어린 날에 듣던 정겨운 소리들을 대비시킨 ‘청진기’는 ‘소리’를 극적으로 전경화시킨다는 아이디어나, 신경증환자인 남편을 아내가 의료진과 공모해서 연극적으로 치유한다는 설정 등이 충분히 연극적이며 대사나 극 전개 기법도 상당히 감각적이었다. 그러나 ‘문명의 비인간성/어린 시절의 순수함’이라는 대비가 도식적이며, 극전개의 생략과 비약이 과도한 점에서 어느 기성작가를 연상시킨다는 점이 다소 걸렸다. 결국 각각 장단점을 갖춘 ‘청진기’와 ‘바다‘를 두고 고심을 거듭하다가 그 나름의 완성도와 무대적 상상력을 높이 사 ‘청진기’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김철리(연출가)·김방옥(평론가)
  • [의회] 의원보좌 전문인력 늘려야

    [의회] 의원보좌 전문인력 늘려야

    ‘전문위원 활용으로 지방의회의 전문성을 높인다.’ 지방의회가 재출범한지 내년이면 벌써 15년째를 맞게 되지만 ‘의회 및 의원의 전문성’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정부와 지방의회는 지금까지 이를 보완하기 위한 방법으로 지방의원의 유급화, 전문성 교육 등 여러가지 제도개선을 마련해 추진해왔다. 하지만 ‘전문성’은 하루 아침에 쌓이는 것이 아니다. 법적·제도적 뒷받침과 구성원 개개인의 노력, 유권자들의 관심과 감시 등이 한데 어우러질 때 가능한 것이다. ●기초의회는 행정직 공무원이 맡아 지방의회는 광역이나 기초의회 모두 상임위원회별로 전문위원실을 갖추고 있다. 의원들이 처리하는 각종 조례안, 예산안, 청원 등에 대해 검토작업을 대신 맡고 있다. 각종 의안을 비롯해 위원회별 소관사항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조사·연구 후 소속위원에 제공한다. 위원회 주관의 공청회, 세미나, 간담회와 행정사무감사, 조사계획 및 결과보고서도 이들에 의해 작성되고 의원들에 의해 심의, 의결 과정을 거치게 된다. 한마디로 의원들이 충실한 의정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손발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의회 및 의원의 전문성을 높이는 데 한 몫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이청수 서울시의회 전문위원은 “의원들이 전문위원을 잘 활용할 수 있어도 의정활동이 좀 더 충실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각 시·도의회 등 광역의회뿐 아니라 기초의회의 전문위원실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전국 16개 시·도 광역의회 682명의 의원들을 지원하는 전문위원은 고작 93명에 불과하다. 전체 광역의회의 89개 위원회에 단 1명씩의 전문위원을 두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일반 직원은 평균 4∼5명에 불과하다. 다만 분야별 전문성을 갖춘 외부 전문가들이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점이 기초의회와 다르다. 전체 3496명의 의원이 활동하는 232개 기초의회에는 477명의 전문위원이 있다. 이들은 분야별 전문가가 아닌 일반 행정직 공무원(대부분 5급 사무관)이 맡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시의회가 모델 100여건의 조례안을 비롯해 한해 300여건에 달하는 서울시의 각종 의안을 심의, 처리하는 서울시의회는 내년에 전문위원실의 기능을 대폭 보강한다. 현재 서울시의회에는 10개의 전문위원실을 운영하고 있다. 위원실마다 1명씩의 전문위원과 함께 6∼13명씩 모두 68명의 일반직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의원들은 한해 14조원이 넘는 예산을 심의하는 등 방대한 서울시의 업무를 감시하고 각종 조례안을 처리하는 일을 힘겨워 하고 있다. 기회있을 때마다 의원을 도울 수 있는 보좌인력을 요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나온 것이 의회사무처내의 ‘전문인력 보강’이다. 이에 따라 서울시의회는 내년부터 10명이 활동중인 전문위원과 별도로 상임위원회별로 1∼2명의 전문인력을 배치키로 하고 현재 공개채용을 실시하고 있다. 가급적 석·박사급 전문가들로 채운다는 방침이다. 서울시의회는 앞으로 상임위원회별 현안이나 안건을 검토·분석토록 해 의원들의 전문성을 보강하는 데 이들을 적극 활용한다는 복안을 세워놓았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안방극장 ‘울려야 산다’

    안방극장 ‘울려야 산다’

    겨울 안방극장이 눈물로 흥건하다.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지독한 멜로나 비극적인 러브스토리가 브라운관에 넘쳐나고 있다. 곧 전파를 탈 드라마들 가운데 상당수도 ‘최루 코드’로 무장하고 있다. 계절적 요인으로 늘상 이맘 때면 한동안 유행하던 상큼발랄한 ‘해피엔딩’이 사그라지는 대신 ‘비극’이 주류를 이루기 마련. 하지만 최근 쏟아져 나오는 ‘눈물 드라마’들은 과거와 달리 시대감각에 뒤처진 노골적인 신파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진한 여운을 남기는 주인공들의 눈물 연기와 함께 젊은 세대의 눈높이를 고려한 세련된 영상미를 갖춘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불치병과 시한부 인생으로 주인공이 죽는 천편일률적인 결말 등 한국 드라마의 고질이 되풀이되는 퇴행은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 가운데 시청자들의 손에 휴지를 쥐게 만드는 선두주자격인 드라마는 KBS 월·화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소지섭과 임수정의 안타까운 눈물 연기에 뮤직비디오를 방불케 하는 아름다운 화면이 자연스레 덧씌워지면서,30%에 가까운 시청률을 보이는 등 만만찮은 흡인력을 과시하고 있다. MBC 수·목미니시리즈 ‘12월의 열대야’도 10년 동안 남편에게서 외면당한 아내 엄정화와 악성 뇌종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사는 김남진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로 23일 종영 때까지 내내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SBS 주말 드라마 ‘마지막 춤을 나와 함께’도 기억상실증이라는 아픈 상처를 지닌 지성이 유진과의 눈물겨운 사랑을 일궈 나간다. 거장 김수현 작가가 집필하는 KBS2TV 주말극 ‘부모님 전상서’는 자폐아의 어머니로 강인한 모성애를 보여주는 김희애의 눈물 연기를 통해 시청자들의 가슴 속을 한없이 파고든다. SBS 수·목미니시리즈 ‘유리화’와 SBS 월·화미니시리즈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도 각각 이동건·김성수와 김하늘, 김래원과 김태희의 안타까운 사랑을 그리고 있다. 새해 벽두부터 선보일 드라마들은 안방극장을 더욱더 눈물바다로 만들 것으로 보인다.1월8일 방영 예정인 SBS 주말 드라마 ‘봄날’은 이번 겨울 시즌에 선보이는 멜로물 가운데 최고로 최루성이 강한 작품. 실어증에 걸린 여자주인공(고현정)이 사랑의 상처를 딛고 만난 남자(지진희)와 그의 이복동생(조인성)과의 슬픈 사랑이야기를 통해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한없이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1월5일 방영예정인 MBC 미니시리즈 ‘슬픈연가’도 권상우·김희선·연정훈이 구구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만드는 독한 멜로물이다. 이같은 드라마 속 ‘눈물 코드’는 사회내 분위기와 밀접하게 연관된다는 분석이다. 경기침체는 물론 사회 전반에 배어 있는 ‘복고풍’과도 맥을 같이한다는 것.SBS 드라마 관계자는 “계절적인 요인과 함께 최근 경제 불황이 닥치면서 당분간 ‘눈물 코드’가 인기를 끌 것”이라면서도 “주인공이 죽음에 이르는 드라마가 넘치는 것은 과거 유사한 설정으로 성공했던 드라마를 본떠서 기획한 작품들이 이제 막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영화 ‘여고생 시집가기’ 임은경

    영화 ‘여고생 시집가기’ 임은경

    조막만한 얼굴에 큰 눈망울. 왠지 톡 건들리면 신기루가 되어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져버릴 것만 같은 그녀는, 그 이미지에 하나둘 피와 살을 붙이고 숨결까지 훅 불어넣었다. 사람이 되기를 꿈꿨던 인형의 소원이 이루어진 날, 그녀는 하늘을 날았고 힘껏 발을 찼으며 몸을 신나게 흔들어댔다. 마치 크리스마스의 꿈처럼 ‘인형 같은 신비소녀’에서 ‘왈가닥 터프 걸’로 변신한 배우 임은경(21). #신비소녀, 왈가닥 ‘쌈짱’으로 변신하다 23일 개봉하는 ‘여고생 시집가기’(제작 더존필름)에서 임은경은 와이어에 몸을 매단 채 발길질을 해대며 불량배 몇 명쯤은 거뜬히 해치우는 여고생 ‘쌈짱’인 평강이 됐다. 평강은 평강공주 귀신이 붙어 16세가 되기 전에 온달을 만나 결혼해 1년 안에 애를 낳지 않으면 죽을 운명이란다. 어느날 온달(은지원)이란 이름의 남학생이 전학을 오고 적극적인 구애작전이 시작된다. 목욕타월만 걸친 채 장미꽃을 입에 물고 온달을 유혹하질 않나, 시집 보내달라고 부모를 협박하질 않나… “갑작스러운 이미지 변신이어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팬들도 많은 것 같아요.” 잘 모르는 사람들은 ‘왜 이미 많이 나온 캐릭터로 느닷없는 변신을 하느냐.’고 떠들지 모르지만 사정을 들어보니 이해가 갔다. 영화의 시나리오를 받은 건 지난해 10월쯤.“평강공주와 바보 온달이라는 만화 같은 이야기가 재미있었고, 주변 캐릭터들도 귀여운데다, 활발하고 사람다운 평강 역이 끌려서” 선택했던 영화가 제작에 난항을 겪으면서 1년여를 질질 끌었다. 그 사이 ‘인형사’와 ‘시실리 2㎞’에 출연하면서 인형 같은 이미지는 더 굳어졌고,‘어린신부’‘내사랑 싸가지’ 등 비슷한 소재의 영화들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면서 캐릭터의 독창성마저 위협받게 됐다. 하지만 임은경이 이 영화에서 바랐던 건 ‘변신’만은 아니었다.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배우로서 인정을 받는 것”이었다. 배우로서 확고한 자리를 잡는다면 다시 인형이 되든 신비소녀가 되든 문제가 될 건 없었다.CF를 통해 남들이 부여한 이미지의 알을 깨고 배우의 모습으로 거듭나기 위해 변신이 필요했을 뿐. #“연기는 ‘나’를 찾아가는 긴 여정” 임은경은 올 한해 3편의 영화를 촬영하면서 훌쩍 컸다.1999년 TTL 광고로 뜬 여고생 스타에게 그동안 연예계는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힘든 곳이었다.“제게 갑자기 CF 모델 제의가 들어왔던 것도 알고 보면 행운의 선물이었어요. 하지만 선물을 이용할 줄 몰랐죠. 그냥 내내 힘들다는 생각만 했어요.‘내가 뭐 하고 있지?’란 생각만 했죠.” 어딘지 모르게 주눅이 든 아이처럼 고개만 푹 숙인 채 말없이 앉아 있던 소녀는, 이제 자신의 생각을 똑똑히 말하는 성숙한 성인이 됐다.“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게 됐다.”면서 “나를 잃지 않고 중심을 잡으면서 살고 싶다.”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한결 여유있는 진심이 담겼다. 이제 스물하나. 조급해하지 않고 긴 호흡으로 걸음걸이를 떼기에 딱 좋은 나이니까. 임은경은 ‘끼’보다는 ‘노력’이 앞선 배우다. 많은 노력으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때마다 희열과 자신감이 생긴단다. 다음 작품부터는 캐릭터를 많이 생각하고 즐기면서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그녀에게 가장 하고 싶은 역할을 물었다.“나를 찾을 수 있는 역할요. 앞으론 휴먼 드라마에서 나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인형 같은 모습에서 사람의 향기를 품은 배우로 거듭나려는 그녀의 의지는, 막 날아오른 나비의 날갯짓처럼 아름다웠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꿈꾸는 소녀 임은경의 부모는 알려진대로 청각 장애인이다. 하지만 장애인 부모 밑에서 자란 그녀도 어린시절 다른 장애인들을 보면서 두려움을 느꼈다.“아무도 장애인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았고, 관심 자체가 없었어요. 장애인에 대해 뭔가를 깨달았을 때에도 그 감정은 불쌍하다는 동정에 지나지 않았죠.” 그래서 그녀는 오랜 고민 끝에 동화책 ‘소녀의 꿈’에 자신의 경험담을 녹여내기로 했다. 어린시절 장애인 부모와 함께 살면서 상처를 받고 힘들었던 점을 그녀의 눈으로 솔직히 그려냈고, 장애를 소재로 한 동화를 써온 고정욱 작가가 집필을 했다. 책은 내년 4월쯤 나올 예정이다. 하지만 돈 때문에 책을 낸다는 일부의 비난에 적잖이 힘들기도 했다는 그녀. 지난 1년 내내 가장 큰 숙제였단다.“제겐 정말로 의미있는 일임을 깨달았어요. 엄마와 같이 보면서 함께 느끼고 얘기를 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희망을 주는 저만의 새해 선물입니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재계 인사이드] MK 외아들, 유럽 공략 전면에

    [재계 인사이드] MK 외아들, 유럽 공략 전면에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의 외아들인 정의선(34) 부사장이 서서히 행동반경을 넓히고 있다. 공식직함은 현대·기아차 기획총괄본부 부본부장 겸 기아차 기획실장. 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와 1999년 현대차에 부장으로 입사한 그는 그동안 “배운다.”는 자세로 거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양상이 다소 달라질 듯싶다. 기아차는 내년도 수출 목표를 올해(70억달러)보다 40% 이상 늘어난 100억달러로 책정했다.‘100억달러 수출탑 수상’을 위한 전담팀도 만든다. 이 전담팀은 정 부사장이 실장으로 있는 기획실과 해외영업본부 산하에 차려진다. 정 부사장이 직접 세부전략을 세우고 목표달성 진척상황을 챙길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해외영업본부장인 김용환 부사장의 ‘조력’이 필수적이다. 기아차측은 “전략 담당 기획실장이 수출전략을 챙기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정 부사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단계적인 후계구도 구축작업의 일환이라는 관측이다. 그러나 정 부사장의 ‘숙제’가 녹록지만은 않아 보인다. 내년에도 수출이 호조를 띠기는 하겠지만 올해 워낙 좋았던 만큼 큰 폭의 증가세 둔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기아차는 내수 목표도 올해 26만대에서 내년에 33만대 안팎으로 크게 늘려 잡았다. 내수 회복시점이 불투명하다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사뭇 공격적이다. 기아차측은 “내수목표는 아직 확정된 수치가 아니다.”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내수시장이 유동적인 만큼 기아차는 수출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정 부사장이 직접 나선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기아차는 새해가 시작되는 대로 스포티지를 유럽과 북미시장에 본격 투입한다. 내년 출시 예정인 리오 후속모델(프로젝트명 JB)과 카니발 후속모델(VQ), 옵티마 후속모델(MG) 등의 신차도 잇따라 투입해 최근 급상승세를 타고 있는 ‘유럽 돌풍’을 이어간다는 전략이다. 겸허하면서도 자기 견해가 분명한 정 부사장이 어떻게 숙제를 풀어나갈지 주목된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세계 일류에서 배운다] 日 강소기업의 힘

    [세계 일류에서 배운다] 日 강소기업의 힘

    “세계 1위 수준인 일본 대기업의 기술력은 강력한 중소기업이 없으면 불가능하다.”고들 한다.‘기술의 나라 일본’은 수많은 중소기업인들이 만들어 간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중소기업인이라기보다는 ‘강소(强小)기업인’이라는 표현이 생겼을 정도다. 업계에 따르면 2002년 현재 종업원 299명 이하의 일본 중소 제조업체 28만 7514개(일본 경제산업성 통계)중 10% 이상을 강소기업인이 이끌고 있다. 강소기업인들은 심각한 불황기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기술력으로 무장, 무한경쟁에서 일본을 버텨내게 하는 일등공신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경제산업성의 공업통계표에 따르면 일본의 제조업체수는 2002년 기준으로 29만 725개다. 그 중 300인 이상의 대기업은 3211개에 불과하고,4인 이상 299인 이하의 중소기업이 28만 7514개이다.99% 가까운 수치다. 이들 중소기업의 종업원 수가 전체 종업원의 72.4%를 차지할 정도로 일본사회의 고용에 대한 공헌도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중소기업의 부가가치 창출 비율은 57.0%이고, 제조업 전체 출하액 중 51.1%가 중소기업의 몫이다. 이처럼 일본 중소기업은 수치상으로도 강함이 입증된다. ●끝없는 도전 오타구중소기업공단 도쿄의 옛 구로공단격인 남부 오타구는 강소기업을 포함한 중소기업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이 공단은 강소기업의 힘을 실감케 하는 지역이다.13일 겉으로 보기에는 초라한 건물에서 업체별로 4∼6명의 종업원들이 기름때 묻은 기계를 움직이고 있었지만 세계적인 특허를 갖고 있는 회사가 수두룩했다. 많은 자본이 필요한 금형은 공동의 금형틀을 이용, 작업했다. 세계최고의 항공기 부품을 수작업해내는 사출금형업체도 이름이 자자하다. 일본의 대표적인 중소기업 공단인 오타구 지역에는 이날 현재 5000여개의 중소기업들이 조업 중이다. 이 가운데 10% 정도인 500여개 기업들이 ‘경기가 나빠져도 살아남을 수 있는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추고 있는’ 기업이라고 하마구치 가즈히코 ‘오타구산업진흥협회’ 기획홍보팀장이 소개했다. 이 공단에는 거품붕괴가 최고조이던 2000년 전후 ‘줄도산’이 이어져 6000여개의 기업이 통계상으로는 명맥을 유지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5000여개 업체가 조업 중이다. 이들 대부분은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고 일반기계, 금속제품, 전기기계기구, 정밀기계, 출판·인쇄 등의 업체들로 장기불황을 이겨내고 ‘기술 일본’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하마구치 팀장은 “최악은 벗어났고, 앞으로 좋아질 것이란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고 공단의 분위기를 전한다. 작업물량은 늘어났지만 이익증가로는 잘 연결되지 않는다고 한다. 종업원 9인 이하의 기업이 전체의 80%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영세하지만 ‘세계일류’정신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중소기업이 아니라 ‘강소기업’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기술력은 모험정신이 넘치는 강소기업인들이 선도하고 있다는 것이 일본 재계의 평가다. 이같은 사실은 대기업 단체인 일본 게이단렌도 인정하는 내용이다. 일본 경제홍보센터 사쿠와 도루 차장은 “일본에는 강한 중소기업들이 많다. 강력한 기술력을 가진 중소기업들이 일본 전체 기업의 기술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수준의 기술력을 가진, 강소기업인들이 기술 일본을 선도한다는 얘기다. LG경제연구원 등 한국의 경제연구소들은 일본이 10년 불황의 수렁에서 견뎌낼 수 있었던 저력이 혁신적인 중소기업을 육성한 정부·지방자치단체의 노력, 그리고 모험정신이 넘치는 강소기업인들이 있어 가능했다고 평가한다. 일본 강소기업인들의 기술력이 장기불황을 견뎌낸 일본경제의 최대 공헌자라는 얘기다. 실제로 일본 강소기업들은 1999년 이후 정보통신 기기와 반도체 제조 장치용 기계부품, 프린트기판, 광학렌즈 등에 투자하며 디지털카메라 및 디지털 TV분야에서 대기업의 활성화를 이끌었다는 분석이다. 주일 한국대사관 서가람 상무관보는 “일본에는 세계 수준의 독자기술과 장비를 갖고 활동하는 종업원 10∼20명의 중소기업들이 매우 많다. 저변이 튼튼하다.”면서 “허름한 공장인데도 사장이 직접 일하면서 세계 최고의 제품을 생산해내고 있다.”고 말했다. ●중대 전환기 맞은 강소기업인들 하지만 과제도 적지 않다. 강소기업 경영자들의 고령화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또 다른 숙제다. 전문가들은 ‘중대 전환기’라고도 한다. 고령의 경영자들이 급사하거나, 과거와는 달리 2세들이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며 가업 계승을 꺼리는 분위기가 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소기업의 기술 전수가 무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일본 중소기업청 백서는 분석했다. 중소기업청을 중심으로 2세 중심이 아닌, 종업원 등 제3자 가운데서 후계자를 선정하도록 노력하고 있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사업을 계승하고, 기술력을 보전하면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도록 ‘세대교체’를 이루게 한다는 것이다. 기술력에 의한 대출 전환도 난제중의 난제다. 일본 정부는 중소기업 생존전략의 하나로 해외진출을 적극 돕고 있다. 중소기업청은 해외 자회사 설치 등 직접투자를 돕고 있다. 특히 자금력이 약한 중소기업이나 해외생산의 위험도가 높은 경우 해외기업과의 업무제휴를 권장하고 있다. 물론 내수부진 탈출을 위해 강소기업 중심으로, 기업 자체의 노력에 의한 해외 진출도 적지 않다. taein@seoul.co.kr
  • [인간시대] “나는 오팔(OPAL)세대”

    [인간시대] “나는 오팔(OPAL)세대”

    색소폰 연주, 영어·일어회화, 마라톤 풀코스 완주, 정치학 석사과정…. ‘열혈노인’ 이종인(62·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씨에게 나이는 그야말로 숫자에 불과하다.1999년 퇴직한 뒤 너무 바빠 살이 5㎏이나 빠졌다. 자칭 ‘58세대’(OPAL·Old People with Active Life)인 이씨는 나이들어 더 활발한 생활을 하고 있다.‘오팔보석’처럼 빛나는 하루를 보내는 이씨의 비결은 뭘까. 이씨도 처음에는 여느 퇴직자들과 다름없었다. 시간이 많아 며칠간은 행복했지만, 어느새부턴가 공허감이 밀려왔다. 퇴직하니 알아주는 사람 아무도 없는 것은 10대 기업의 중견간부였던 예전 모습과는 달랐다.‘헛되이 세월을 보내는 게 아닐까. 아침에는 어떻게 기나긴 하루를 보내야 할까….’ 마침 동사무소 주민자치센터가 영어회화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전단이 눈에 띄었다. 젊은 시절 시간과 돈을 투자해도 도무지 실력이 늘지 않아 한맺힌 외국어를 정복해보겠다는 오기가 솟았다.“환갑에 공부는 무슨 공부? 체면이 있지….”라는 아내의 농담섞인 면박을 뒤로 하고 그길로 수강등록했다. ●색소폰 부는 로맨스 그레이 “노년은 허물을 벗어던진 매미와도 같아요. 매미는 땅속에서 수년동안 갇혔다가 여름에 맴∼맴 울며 다시 태어나잖아요. 사람도 인생 대부분을 일하다가, 노년에 새롭게 태어납니다. 이 아름다운 순간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많은 것에 도전해보고 싶었죠.” 이후 이씨의 하루는 달라졌다. 일단 마라톤을 시작한 게 큰 성과. 지금도 오전 7시30분이면 한강고수부지의 여의도∼가양대교 구간(왕복 21㎞)을 달린다.42.195㎞의 풀코스 마라톤도 어느새 6번 완주했다. 최근 기록은 3시간37분 3초. 상위 20%안에 드는 우수한 성적이었다. 색소폰 학원에 가는 것도 중요한 일과다. 수십년전 군악대 행렬에서 눈여겨 보았던 색소폰도 기어이 배우고 싶었기 때문. 아직은 ‘초짜’지만 색소폰을 향한 열정은 젊은이 못지 않다.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130곡이나 배운 것을 보고 강사가 혀를 내두를 정도다.“젊은 사람들은 직장에 치어서 오히려 꾸준하게 배우기는 힘들죠. 아내 앞에서 나훈아의 ‘사랑’이나 노사연의 ‘만남’을 불어주는 것은 대단한 보람입니다.” ●오팔처럼 빛나고 싶다 때로는 국회도서관을 찾기도 한다. 지난해부터 동국대학교에서 ‘정치 이론 및 사상 전공’ 석사과정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학기에는 싱가포르와 한국의 정치를 비교하는 논문을 써보려 한다. ‘배우는 게 지겹지 않으냐.’는 질문에 이씨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배우고 익히니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없도다)라고 대답했다. 인터뷰가 끝나자 “Anything else?”(더 할 게 있나요?)라고 묻는 이씨. 영어수업을 들으러 가야 한다며 자리를 뜨면서 그가 남긴 말.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평생동안 미뤄왔던 숙제들을 이제서야 시작하는 기분이에요. 이쯤되면 오팔세대 맞죠?” 글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 [정인학 교육대기자 실전논술] ③ 줄기세포와 생명윤리

    [정인학 교육대기자 실전논술] ③ 줄기세포와 생명윤리

    서울신문의 실전논술 세번째 지상강의는 ‘배아 줄기세포와 생명윤리’를 논제로 예고했다. 생명체 복제 그리고 요즘의 배아 줄기세포 배양의 문제를 생명 윤리적 관점에서 비판하는 전형적인 ‘찬반 논의형’ 논제다. 이 글에서는 복제 내지 배아 줄기세포의 활용에 대해 생명윤리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지지한다거나 또는 생명윤리 입장에 대한 비판을 객관적으로 논증하게 된다. 찬반 논의에 그치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가 자기 논지를 뒷받침하는 대안이나 제언을 곁들여 준다면 설득력이 높아지게 된다. 여기에서는 생명과학의 연구를 수용하되 인간생명의 존엄성과 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한편의 논술문을 작성하려 한다. 생명과학의 이해 1997년 영국에서 체세포의 유전정보를 난자에 이식하는 방법으로 복제 양 ‘돌리’가 탄생한 이래 생명과학은 줄곧 윤리적 이슈가 되어 왔다. 현대 의술로써 치유가 불가능한 불치병을 치료하기 위해 생명과학을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과 초자연의 영역인 생명의 존엄성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 충돌해왔다. 특히 복제 양 ‘돌리’가 조로증상을 보이다 12년을 사는 보통 양과 달리 6년 만에 단명함으로써 생명윤리 논쟁을 증폭시켰다. 돌리뿐이 아니었다. 이후 쥐, 소, 염소, 돼지, 고양이 등이 차례로 복제되었지만 하나같이 비정상적이었고 단명이었다. 기형적인 생명체로 이어지는 복제술을 인간에게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또 있었다. 돌리를 복제하느라 무려 277번의 실험을 해야 했다. 생명의 씨앗이 아무렇지도 않게 버려진 셈이다. 복제가 상대적으로 쉬운 소의 경우도 성공률이 5%미만이다. 생명의 건강을 위해 다른 생명을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생명공학은 윤리논쟁의 딜레마를 피해 배아 줄기세포로 눈길을 돌렸다. 생명체로 성장하지 못할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해 난치병 치유에 필요한 기관으로 배양하려 했다. 세계 곳곳에서 시도했고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배아 줄기세포도 생명 윤리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 연구용 줄기세포를 얻으려면 배아의 파괴가 불가피하고, 배아도 엄연한 생명체라는 관점에서 윤리적 흠결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자 과학자들은 생명의 시작인 수정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줄기세포를 얻으려는 노력을 시도했다. 난자에 정자가 아닌 체세포의 핵을 이식해 세포분열을 유도하여 배아 줄기세포를 만들어 낸다면 생명을 파괴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던 지난 2월 서울대의 황우석 교수팀이 최초로 생명 과학자들의 숙제를 풀었다. 체세포와 난자를 활용해 배아 줄기세포를 얻는 데 성공했다. 노벨상 후보에 거론되는 등 세계의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복제와 생명윤리의 논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수정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지만 체세포를 통한 배아도 역시 자궁에 착상시키면 생명체로 성장한다는 점에도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비판을 온전히 피하지 못했다. 또 체세포 배아를 얻는 과정에서도 적지않은 난자들이 실험용으로 소모된다는 사실 또한 생명윤리와 충돌을 면할 수 없다. 그럼에도 지구촌에서는 알게 모르게 배아 줄기세포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제시문 독해 제시문 글(가)는 2002년 9월 논란 끝에 입법 예고된 정부의 ‘생명윤리 안전에 관한 법률’에 대한 서울신문의 해설 기사다. 생명윤리 논쟁의 핵심을 알기 쉽게 정리했기에 제시문으로 택했다. 실전논술의 지문이면서 한편으론 시험에 출제될 만한 시사 쟁점을 요약해주는 의미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마련한 이른바 생명윤리법은 정자 대신에 체세포 핵을 이용해 특정인과 유전자가 똑같은 복제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체세포 복제는 생식을 목적으로 하면서 생명과학의 명분이 되고 있는 불치병 치료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까닭이다. 난자가 생명체로서 세포분열을 시작한 배아에 관해서는 임신에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전면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체세포 줄기세포 연구는 허용해 생명과학에 일정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글(나)는 생명과학을 연구하고 있는 마리아병원 생명공학연구소의 박세필 소장이 서울신문에 기고했던 칼럼이다. 생명 과학자가 보는 생명과학의 한계를 잘 지적했다는 생각에서 역시 제시문으로 골랐다. 이 제시문은 생명 과학의 문제를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윤리 차원 이외에 과학적으로 접근했을 때의 위험성을 새로운 지식으로 제공한다. 필자는 생명과학은 인류의 불치병의 치료에 한해서만 연구되어야 한다는 점을 전제로 삼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똑같은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데 불과한 체세포 복제는 엄격히 금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동물의 사례를 보면 복제수준이 일천해 복제 동물들이 기형적이라서 반생명적인 재앙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반면 배아 줄기세포를 이용한 생명과학은 질병 치료를 위해 불가피한 연구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줄기세포를 활용한 생명과학이 복제 과학과 혼동된 나머지 생명윤리 논쟁에 휘말려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배아에 대한 생명 논쟁은 외면하고 있다. 배아도 생명체로 실험대상이 돼선 안 된다는 공박에 대답을 못한다. 글(다)는 생명과학의 개가로 칭송된 서울대 황우석 교수의 체세포 배아 줄기세포를 보도한 서울신문 기사다. 수정을 거치지 않고 체세포 핵을 이식해 세포분열을 유도해 배아를 만드는 업적을 보도하고 있다. 체세포 배아는 생명과학에 수정이라는 과정을 건너뜀으로써 생명윤리의 비판을 피할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배아를 얻는 과정에서 희생되는 난자에 대한 윤리적 설명이 필요해 생명윤리의 벽을 완전히 뛰어 넘었다고는 볼 수 없다. 논술문 얼개짜기 논술문은 설득하려는 글로 외형적인 틀도 물론 갖춰야 하지만 내재적인 논리의 틀을 갖춰야 한다. 외형적으로 서론, 본론, 결론과 같은 체계적 틀이 있어야 하지만 논술문 전체적인 흐름은 물론 논점을 다루는 문단 그리고 논지를 내세우는 결론에서도 각각의 논리적 상관관계가 있어야 한다. 자칫 외형적인 틀에 함몰된 나머지 문단과 문단, 그리고 논술문 전체적인 논리관계를 소홀히해선 안 된다. ●서론 서론은 생명체 복제와 생명윤리라는 논제를 도입하고 복제와 생명윤리가 충돌하는 의미를 종합 평가한다. 그리고 생명윤리의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과제로 제시함으로써 본론에서 본격적인 논의 발판을 마련한다. ‘과학의 발달은 끝내 생명의 창조 영역까지 미쳤다. 생명과학의 이름으로 동물을 복제하고 급기야 인간을 연구 대상에 편입시키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과학적 실험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윤리문제를 낳았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보편적 가치와 바로 인류의 존엄과 가치를 강화하려는 과학의 주장의 충돌한 것이다.’ ●본론 서론에서 넘겨받은 논제 즉 생명윤리와 생명과학의 서로 다른 입장이나 주장을 하나하나 검토하여 자기의 논지를 끌어내야 한다. 외형적인 틀은 서론→본론→결론 순서이지만 내재적인 논리의 틀은 논지→논증→논거→논점→문제제기 순이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생명과학을 제한적으로 수용하자고 논지를 세웠기 때문에 논지에 맞는 논증방법을 생각하면서 논점을 잡아야 한다. #논점 1 생명과학을 활용해야 하는 정당성을 논한다. 제시문에 살펴 본 대로 인간은 불치병을 치유하여 생명의 존엄과 가치를 누릴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생명과학의 활용이 불가피하다. 단순히 생식의 일부분으로 활용되는 체세포 복제와는 다르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더구나 체세포를 이용한 배아 줄기세포를 활용한다면 생명윤리의 직접적인 예봉은 피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논점 2 생명과학의 위험과 생명체를 실험대상으로 삼게 되는 반윤리성을 피력한다. 동물의 체세포 복제에서 보듯 생명과학은 안정성이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반생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또 배아 줄기세포를 활용한다 하더라도 배아는 언제나 생명으로 발전할 수 있는 명백한 생명체인 까닭에 생명윤리의 논쟁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대목을 짚는다. ●결론 본론에서 상정한 논지를 지지하는 입장을 먼저 피력했다. 생명 윤리적 논거를 내세워 생명과학을 반대하는 입장을 먼저 강조하고 나중에 찬성하는 주장을 펴더라도 물론 문제는 없다. 다만 ‘논점 1’에서 생명과학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논점 2’에서 반론을 제기했다가 결론에서 반론의 반론으로 종합하는 방식이 설득력이 높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논점 2’에서 생명과학에 대한 우려와 지적에도 불구하고 동물실험을 통해 안정성을 충분히 확보한 뒤에 제한적으로 배아 줄기세포를 이용한 연구를 허용하면 생명윤리를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는 점을 부각시킨다. 여기에 생명과학의 유용성을 보태 당초 논지를 마무리지으면 좋을 것이다. ●실전논술 지상강의 4회 실전논술 지상강의 마지막은 ‘한류(韓流)와 우리의 문화적 자세’라는 논제를 정해 보았다. 최근 다시 일고 있는 한류 열풍을 점검하면서 우리 문화 발전의 기폭제로 승화시키는 방안을 함께 생각해보려 한다. 제시문으로 활용한 글은 서울신문 홈페이지 ‘2005 실전논술 지상강의’에 올려 놓았다. 이번에도 논술문의 분량은 1200자 정도로 전형적인 문제해결형의 논술문을 습작해 보는 기회를 가지려 한다. 독자 수험생들의 알뜰한 활용을 기대한다. 서울신문 독자 수험생들이 올 대입시 논술시험에서 고득점하여 지원한 대학에 좋은 결과있기를 기원한다. chu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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