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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안에 숨겨온 코미디 유전자 마음껏 발산”

    “내 안에 숨겨온 코미디 유전자 마음껏 발산”

    가볍지 않으면서도 배를 잡고 웃을 수 있는 연극 한 편이 보고 싶다면 ‘대학살의 신’을 강력 추천한다. ‘대학살’은 두 소년의 다툼이 부모 싸움으로 번져 가는 과정에서 부르주아 계층의 허례허식을 풍자한 블랙 코미디다. 변호사, 작가 등의 직업을 지닌 양측 부모가 교양과 예절이라는 가식으로 자신을 포장하지만 결국은 서로 헐뜯고 싸우기 바쁜 인간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프랑스 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탄탄한 원작에 자타가 공인하는 한태숙의 연출력, 여기에 배우들의 열연이 가미돼 흥행에도 성공했다. 이에 힘입어 앙코르 공연에 들어갔다. 가해자 학생의 부모를 연기한 중견 연기자 박지일, 서주희씨를 만나봤다. →두 사람 모두 작품 선정을 까다롭게 하기로 유명하다. 앙코르 공연까지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 -서주희(이하 서) 처음에 제작사에서 ‘한태숙 연출에 상대 배우는 박지일이다’라고 하길래, 진저리난다며 단박에 거절했다. 한태숙 연출가는 진지한 작품을 많이 만들었고, 저와 박지일씨도 주제의식이 강한 작품에 많이 출연하지 않았나. 그런데 이 세 명이 한 작품에 모인다고 생각해 봐라. 관객들이 보고 싶겠나(웃음). 그런데 제작사에서 ‘코미디’라고 했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박지일(이하 박) 나도 마찬가지다(웃음). 연출가가 한태숙 선생님이고 제목도 ‘대학살의 신’이라길래 처음엔 멈칫했다. 전적으로 코미디여서 선택한 거다. 서주희씨랑 나는 몸 속에 코미디 유전자가 있음에도 그동안 코미디를 많이 못 만난 측면이 있다. →코믹 연기가 왜 좋은가. -서 일단 유쾌하고 즐겁지 않은가. 진지한 작품에서 심각한 역할을 하면 실제 일상에서도 많이 고통스럽고 우울하다. 코미디 작품은 일종의 보너스 같은 선물이다. 작년 초연 때 김방옥 평론가가 공연을 보고 그런 글을 썼다. ‘박지일, 서주희 같은 배우가 코미디 작품에 출연한 것만으로도 시너지 효과가 있었다’라고.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코믹 연기를 관객에게 마음껏 보여줄 수 있어 즐겁다. -박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동안 고통과 사색의 두께가 만만치 않은 역할을 많이 맡아 실제 생활에서도 짓눌리는 경향이 많았다. 그런데 코미디는 정극 작품과 달리 대중과 만나 소통하기에 좋다. 그래서 연기를 하면서도 유쾌하고 즐겁다. 개인적인 일상도 더 즐거워졌다. 코미디는 배우와 관객을 모두 즐겁게 해주는 매력이 있다. 물론 마냥 웃을 수 만은 없는 블랙 코미디이긴 하지만…. →부부 호흡은 만족하나. -서 남들이 찰떡궁합이란다. 박지일씨가 워낙 상대 배우에 대한 배려가 많은 분이다. 이전에도 부부 역할을 한 적이 있다. 다른 작품에서 다른 배우와 부부 역할을 한 적이 있었는데 호흡이 안 맞아 아주 힘들었다. 그래서 박지일씨에게 최근 고백했다. ‘내 남편 맡아줘서 너무 감사해요’라고. 하하. -박 주희씨가 워낙 연기 내공이 있고 눈치도 빠른 데다 포인트를 놓치지 않고 물고 넘어지는 프로근성이 있어 함께 연기하는 게 행복하다. →피해자 학생의 부모 등 네 명의 배우가 참 능청스럽게들 연기한다. -박 요즘엔 무대 아래서도 다들 극 중 배역처럼 행동한다. 서로 ‘재수 없지만 웃긴다’며 놀린다. →소통 부재로 인한 두 부부의 갈등과 인간의 속물 근성에 관객들이 많이 공감하는 것 같다. -서 맞다. 그걸 웃음 코드 속에서 풀어내니까 관객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박 싸움의 기술을 보여주는 측면에서도 관객들이 즐거워한다. ‘이렇게 싸워선 안 된다’라는 타산지석 말이다. →관객들이 왜 그렇게 좋아하는 것 같은가. -서 누구나 살면서 본심과 다른 행동들을 하지 않나. 각자의 위치에서 고상한 척하다가 인간의 본성이 나타날 때 통쾌함을 느끼게 마련이다. 특히 예상치 못한 반응이 튀어나올 때와 등장인물의 위선이 까발려질 때 객석에서 가장 빵 하고 터진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대학살의 신 내년 2월 12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다. 3만 5000~5만원. (02)577-1987.
  • 한명숙 “이명박 정권 반드시 심판” 문성근 “시민과 손잡고 총선 승리”

    한명숙 “이명박 정권 반드시 심판” 문성근 “시민과 손잡고 총선 승리”

    한명숙(왼쪽) 전 국무총리와 문성근(오른쪽) 전 ‘국민의명령’ 대표가 19일 민주통합당 당권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두 사람의 출마 선언으로 민주통합당 지도부 경선 레이스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한명숙 전 총리는 이날 서울 영등포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권 교체는 한명숙의 마지막 소임”이라면서 “반드시 빼앗긴 민주정부의 꿈을 되찾고 싶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당 대표 출마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2년여간 갇혀 있던 검찰의 덫에서 벗어난 한 전 총리의 정치적 재활이자 ‘정치인 한명숙’의 마무리 행보이기도 하다. 특히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겨냥해 “대권주자가 비대위원장으로 나서 혁신한다는 것은 자신의 권력 강화를 목표로 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고, 이 나라를 또다시 과거로 퇴행시킬 박 비대위원장과 맞서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다짐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에 조의를 표하며 “정부도 조의 문제에 인도주의적 관점을 가질 것을 당부한다.”고 촉구했다. 한 전 총리는 이날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찾은 데 이어 20일엔 봉하마을을 방문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한 뒤 부산에서 검찰개혁을 주제로 한 북 콘서트를 연다. 민주진보 진영을 아우르는 ‘대표 선수’임을 강조하려는 의중이다. 문성근 국민의명령 대표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출마 기자회견을 갖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망연자실한 채 주저앉아 있었지만 언제까지 뒤돌아보기만 할 수 없다.”면서 “시민과 함께 총선 승리와 정권 교체를 이룰 것”이라고 다짐했다. 문 대표 역시 김 국방위원장 사망에 조의를 전하며 “김 국방위원장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 한반도의 평화공존과 상호번영을 위해 6·15선언과 10·4선언을 발표했다. 이 정신은 이후에도 존중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 대표는 기자회견에 앞서 영등포당사에 들러 당직자들과 상견례를 가진 뒤 마석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에 참배하는 것으로 출마 행보를 이어 갔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박근혜 비대위’ 첫날부터 안보 시험대에

    ‘박근혜 비대위’ 첫날부터 안보 시험대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19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이라는 비상 시국에서 집권당의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한나라당은 이날 오후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제14차 전국위원회를 열어 비대위 구성 및 ‘대선 출마자의 대선 1년 6개월 전 당직 사퇴’ 예외 규정에 관한 당헌 개정안을 의결했다. 참석 전국위원 527명이 만장일치로 박 전 대표를 비대위원장으로 선출했다. 박 위원장은 당장 ‘한반도 평화 관리’라는 중차대한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박 위원장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소식에 약식으로 치러지다시피 한 전국위원회 직후 국가비상대책회의를 곧바로 소집했다. 그는 2006년 10월 당시 대선 지지도 1위를 달리다 북한의 핵실험 발표 이후 당내 경쟁자였던 이명박 후보에게 역전된 만큼 이번에는 안보위기 관리능력을 국민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국민만 바라보는 새 정치 시작해야” 박 위원장은 이날 오후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을 국회 당 대표실로 불러 청와대와 정부가 수집한 김정일 사망 관련 정보를 자세히 들었으며, 향후 대책을 숙의했다. 앞서 열린 국가비상대책회의에서 박 위원장 등 참석자들은 “당은 국민이 안심할 수 있도록 정부와 긴밀히 협조할 것”이라면서 “정부는 모든 시나리오에 대비해 0.1%의 허점도 없도록 철저히 대비해야 하며, 안정적인 남북관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주변국 및 동맹국 간 공조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박 위원장은 비대위원장 수락연설을 통해 정책·인적쇄신 구상의 얼개를 드러냈다. 연설에서 그는 “국민만 바라보는 새로운 정치를 시작해야 한다.”며 ▲중산층 복원과 불평등 구조의 혁파 등 민생 챙기기 ▲외연 확대를 통한 획기적 인적 쇄신 ▲‘디도스 사태’에 대한 적극적 대처 등을 약속했다. ●“쇄신 위해 누구와도 함께 가야” 민생 문제와 관련해 박 위원장은 “정치를 위한 정치라는 구시대 정치의 폐습을 혁파하고 국민만 바라보는 새로운 정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여야 정쟁 때문에 잠자는 민생법안과 예산을 챙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박 위원장이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양극화가 심화했다. 무너진 중산층을 복원하겠다.”고 언급한 만큼 현 정부의 성장위주 경제정책에서 전환해 성장의 성과가 중산층과 서민들에게까지 전달될 수 있도록 정책 차별화에도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적 쇄신과 관련해서 박 위원장은 ‘외연 확대’를 키워드로 제시했다. 그는 “쇄신을 위해 누구와도 함께 가야 한다. 사회 상식을 대변하는 분들을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모셔오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비대위에 모시는 분들로부터 시작해 외연을 넓히겠다.”고 밝혔다. 진보·중도 인사가 비대위에 포함될지에 대해서도 “영입되는 분들을 보면 대개 방향을 보실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해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한편 박 위원장은 디도스 사태에 대해 “헌법기관에 대한 공격이고,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며 철저한 수사와 관계자 엄벌을 촉구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김정일의 삶, 통치, 그리고 권력

    김정일의 삶, 통치, 그리고 권력

    17일 사망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정권을 세운 아버지 김일성 전 국가주석의 사망으로 권력을 승계받은 뒤 17년간 봉건시대를 능가하는 절대 군주로 군림했다. 김정일 정권이 공식 출범한 것은 1998년으로 그가 국방위원장에 재추대된 뒤부터지만 실질적으로 북한을 통치한 것은 그가 1974년 후계자로 공식 내정된 이후부터다. 불우했던 유년 북한 당국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1942년 2월 16일 양강도 백두산의 항일빨치산 밀영(密營)의 귀틀집에서 김일성과 그의 전처인 김정숙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그러나 출생연도와 출생지는 북한의 발표와 다르다는 것이 정설이다. 실제 출생연도는 1941년으로 알려진다. 북한 당국은 김 위원장이 김일성의 후계자로 내정된 1974년부터 주민들에게 그의 출생연도를 1941년으로 홍보하다가 후계자로 공식 추대된 2년 뒤인 1982년 김일성의 70회 생일 때부터 1942년으로 선전했다. 출생지에 대해서도 북한은 1980년부터 백두산이라고 선전하면서 대대적인 성역화 작업에 나섰다. 그 이전에는 김일성이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항일투쟁을 했다는 경력 때문에 러시아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의 아명도 러시아식으로 ‘유라’로 불렸다. 김 위원장은 북한 최고지도자의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유년시절은 불행했다. 그는 김일성이 평양으로 입성한 지 2개월여 지난 1945년 11월 생모인 김정숙과 그의 빨치산 동료와 함께 소련 함정을 타고 함경북도 웅기항을 통해 북한에 처음 발을 디뎠다. 그러나 남동생 슈라가 익사한 데 이어 7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이듬해 6·25 전쟁으로 중국으로 피란살이를 가야만 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계모 김성애의 손에서 성장한 유년시절은 김 위원장의 모성애 결핍을 낳았고 계모와 이복형제에 대한 반감은 후에 후계자를 둘러싼 치열한 권력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냉혹함을 보이게 했다. 휴전 이후 김 위원장은 평양으로 돌아와 삼석인민학교와 제4인민학교 등을 거쳐 남산고급중학교를 졸업하고 1960년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해 이듬해 7월 노동당에 입당했다. 1964년 6월 대학을 졸업하고 노동당 조직지도부에서 지도자로서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후계자 발돋움 김 위원장은 1967년부터 당의 핵심 부서인 조직지도부 과장을 거쳐 1971년 부부장으로 승진했고 1973년 중앙당 문화예술부장을 거쳐 당 조직 및 선동선전담당비서라는 막강한 지위에 올랐다. 그는 김일성의 장남이라는 유리한 신분을 이용해 김일성 정권에 불만을 느끼거나 권위에 도전하는 인물들을 적발해 김일성에게 보고하고 숙청하는 데 앞장섰다. 김일성의 신뢰를 얻은 김 위원장은 생모의 항일빨치산 동료인 원로 간부의 후원을 등에 업고 권력 2인자인 삼촌 김영주 당시 당 조직지도부장, 정치적 힘을 과시하던 계모 김성애, 김일성의 남다른 사랑을 받았던 이복동생 김평일을 물리치고 1973년 후계자 자리인 당 조직 및 선전비서에 올랐다. 이어 다음해 2월 제5기 8차 당 전원회의에서 김 주석의 공식 후계자로 내정됐다. 이 때부터 ‘지도자 동지’ ‘당 중앙’이라고 호칭됐으며 1975년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다. 후계자 내정을 앞둔 1972년 12월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제5기 1차회의에서 주석제를 핵심으로 하는 헌법 개정과 국가기구 개편을 단행했다. 또 주체사상탑과 김일성 동상, 혁명사적지 등 북한 각지에 두 부자와 그 가계를 선전하는 시설물 건설과 외국에서의 주체사상 홍보 등에 막대한 재원을 쏟아 부었다. 김 위원장은 당과 군부 등 국정을 전반적으로 장악하도록 체제를 정비한 뒤 1980년 10월 제6차 당대회를 통해 정치국 위원, 정치국 상무위원, 당 중앙군사위원으로 선출되면서 후계자로서의 자리를 굳혔다. 호칭은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로 변경됐다. 이후 1990년 5월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1991년 12월 최고사령관, 1992년 공화국 원수에 추대된 데 이어 1993년 김일성으로부터 국방위원장직을 공식 승계함으로써 권력 승계에 따른 절차를 모두 마무리했다. 17년 1인 독재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이 사망하면서 본격적인 김정일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3년상을 빌미로 ‘유훈통치’에 전념했다. 당시 북한의 상황이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북한 스스로 ‘고난의 행군’이라고 명명한 이 시기에 국가경제와 식량배급제가 붕괴해 수백만명의 아사자가 발생하면서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통제기능은 마비된 무정부 상태와 같았다. 김 위원장은 김일성 3주기를 마친 뒤 1997년 9월 추대형식으로 당 총비서에 올랐고 이듬해 10월 제10기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최고 권력기관으로 자리매김한 국방위원회의 수장으로 재추대되면서 김정일 시대가 공식 출범했다. 김정일 시대의 군부통치는 ‘선군정치’로 명명됐고 이는 강력한 통치구호로 자리했다. 1998년 10기 최고인민회의는 사회주의 헌법 개정을 통해 경제난 속에서 변화된 사회상을 반영했으며 세대교체를 통해 젊은 기술관료를 내각에 등용했다. 2002년에는 7·1 경제관리개선조치를 통해 시장을 확대하고 임금과 물가를 현실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강성대국론·신(新)사고론·실리주의 등 미래를 향한 새로운 비전을 내놓기도 했다. 그의 외교적 행보는 파격적이라고 평가받는다. 1994년 미국과 담판을 통해 북·미 기본합의를 이끌어낸 김 위원장은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 금강산 관광사업 등 남북교류를 추진했다. 2000년 6월 13일에는 반세기 만의 남북 정상회담을 열어 6·15 공동선언에 직접 서명했다. 동시에 미국과도 적극적인 관계 개선에 나섰다. 2000년 10월에는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을 특사로 미국에 파견하고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 국무장관과 클린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도 추진했다. 2002년에는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를 평양으로 불러들여 일본인 납치 피해자 문제를 시인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고백외교’를 통해 북·일수교에 이어지는 일본의 경제적 지원을 겨냥하기도 했다. 한동안 소원했던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방문외교를 재개하고 개혁개방을 통해 경제적 성장을 이룬 이들 국가의 노하우를 받아들이려는 노력도 이어갔다. 그러나 북한의 대서방 관계개선 노력은 ‘자위적 억제력을 보유해야만 체제를 보위할 수 있다.’는 선군정치 논리에 묻혀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 문제를 풀지 못한 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2006년 10월에는 핵실험을 통해 군사적 위력을 과시했지만 국제적으로는 고립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그는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부터 국정운영에 초조감을 드러냈다. 2009년 1월 셋째 아들인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정하고 2010년 9월에는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을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선임하면서 후계체제 구축에 속도를 냈다. 경제적으로는 2009년 11월 화폐개혁이라는 무리수를 강행해 경제적 어려움을 격화시켰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동안에도 김 위원장은 지난해 5월과 8월, 지난 5월 등 1년여 동안 세차례나 중국을 방문해 황금평과 나진 특구 건설에 뜻을 모았으며 지난 8월에는 러시아 극동지역을 방문해 남·북·러 3국을 관통하는 가스관 연결사업 등에 합의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풋풋한 文靑, 희망버스 오르기까지

    ‘시위자’.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이다. 중동부터 유럽, 미국을 장악했던 시위대가 역사의 물줄기를 바꿨고, 미래 또한 그러하리란 점을 높이 샀다. 올해 한국에서도 특이한 형태의 시위를 볼 수 있었다. ‘희망버스’다. ‘김진숙의 고공 크레인 농성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한진중공업으로 향한다.’는 게 희망버스의 요체다. 이 같은 특이한 방법의 시위를 고안한 이는 송경동 시인이다. 그는 지금 갇힌 신세다. ‘문제의’ 희망버스를 기획한 혐의다. 영어의 몸이 된 시인이 산문집을 냈다. ‘꿈꾸는 자 잡혀간다’(실천문학사 펴냄)이다. 시인의 출생과 성장, 그리고 가족사 등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담았다. 송경동은 흔히 미군기지 확장을 반대하던 평택 대추리, 비정규직 투쟁을 위한 기륭전자 등 수많은 시위 현장에서 만났던 열혈 투쟁가의 모습으로만 기억된다. 그러나 아무리 노동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그라 한들, 살아 낸 세월 속에 ‘애정이 꽃피던 시절’ 한 자락 없을까. 그도 한때는 시와 노래를, 풋풋한 사랑을 꿈꾸던 푸른 시절이 있었다. 시인은 읍내 장터의 진창길, 악다구니를 쓰며 사는 사람들, 장터 둘레로 술 팔고 몸 파는 집들이 즐비한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의 잦은 도박과 가정불화로 집안은 늘 어두웠다. 하지만 중학교 1학년 때 미술과 문학을 좋아하던 여선생님의 영향으로 문학책을 읽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문예반 시절엔 시화전을 앞두고 ‘광주천 물을 붉다고 표현한 죄’로 교감에게 불려가 난생 처음 검열과 체벌을 받기도 했다. 팬시용품 공장 지하 창고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시절엔 풋사랑에 가슴 저미기도 했다. 시인은 청년 시절, 밤낮없이 일했다. 하지만 돈이라는 녀석은 결국 아무것도 남겨 주지 않는 허상이라는 잔인한 현실만 깨닫게 된다. 이후 그는 구로노동자문학회와 전국노동자문학연대에서 활동하며 노동문학운동에 대한 꿈을 키우기 시작한다. 책은 모두 5부로 구성됐다. 1부 ‘꿈꾸는 청춘’과 2부 ‘가난한 마음들’은 어린 송경동에서 청년, 중년을 살아오는 동안 목수 조공이나 배관공, 혹은 용접공 등으로 살며 시인과 노동문학의 꿈을 키워간 이야기를 담고 있다. 3부 ‘이상한 나라’와 4부 ‘잃어버린 신발’에서는 산재 사망자,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해 거대 자본과 권력에 짓밟힌 사람들의 이야기, 5부 ‘CT85호와 희망버스’에서는 한진중공업 김진숙과 희망버스에 대한 이야기를 그렸다. 1만 2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귀염둥이 김자옥(金慈玉)의 핑크빛 소문

    귀염둥이 김자옥(金慈玉)의 핑크빛 소문

    「데뷔」1년만에 일약「KBS의 얼굴」로 자란 인기「탤런트」김자옥(金慈玉·22)이 연애를 한다는「핑크」빛 소문이 방송가에 나돌고 있다. 앳되고 청순한「마스크」의 귀염둥이 김자옥(金慈玉)도 이제 한 여성으로서 성장해 가는 것일까? 인기가 오르면서 자연히 소문도 늘어가는 것이 연예가의 통례다. 김자옥(金慈玉)도 예외가 아닌듯.  71년 11월 매일극『심청전』의「히로인」으로 발탁되어 좋은 연기로 기반을 잡자 방송가에는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김자옥(金慈玉)이 가수 이상렬(李相烈)과 뜨거운 사이라는 소문이 번지기 시작했다.  다음『한중록』에서 혜경궁 홍(洪)씨 역을 맡아 폭 넓은 연기로「팬」을 확보해 가자 이번엔 같은 방송국의「탤런트」이(李)모군과 가까운 사이라는 소문이 났다.  그리고 그후『신부들』의 주역을 맡은 다음에는 또 그녀가 30대의 남자와 (서울 중구) 소공동 밤거리를 거닐더라는 소문이 번졌다.  결국 김자옥(金慈玉)이 일일극의 주연을 맡을 때마다 연문(戀聞)이 하나씩 늘어간 셈일까?  동료「탤런트」들은 이러한 소문을 두고 김자옥(金慈玉)이 예상보다 감쪽같이「데이트」를 잘하는 모양이라고 수군대기 시작했다.  『다 큰 계집애가 연애하는 것은 하나도 어색할 게 없잖아요? 그렇지만 하나 같이 사실과 다르기 때문에 화가 날뿐이죠』  소문의 진원을 묻는 기자에게 김자옥(金慈玉)은 이렇게 입을 열었다.  『그렇잖아도 아빠가「탤런트」생활 하는 것을 달갑게 생각하시지 않는데 이런 소문이라도 아신다면 당장 그만두라고 하실 거예요』  「아빠」의 얘기를 할 만큼 김자옥(金慈玉)은 아직도 어리고 순진한 편이긴 한데···.  『말이 많은 곳엔 그런 것이 다 화제가 되겠지만 너무 심해요. 그런 소릴 들을 때마다 집어치우고 싶은 생각밖엔···.』  억울해 죽겠다는 듯 예쁜 두눈에 눈물이 글썽해진다.  『해명을 하면 변명이라고 생각할 사람이 또 있겠지만 저로서야 사실을 말할 수밖에 없어요』 믿지 않아도 할 수 없다면서 김자옥(金慈玉)이 밝힌 해명은 다음과 같다.  『이상렬(李相烈)씨는 제 친한 친구 이상숙의 오빠예요. 상숙이는 고등학교 때부터 아주 가까운 친구였고. 그러니까 가끔 만났죠.「탤런트」가 되기 전부터「오빠」라고 따르던 사인데 무슨 연예예요. 그런 감정은 추호도 느껴본 적이 없고 그분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집에서는 다 알아요』  요즈음은 서로 바빠서 얼굴을 본 지도 아주 까마득하다고 말한다.  다음 동료「탤런트」이(李)모군은 언니의 서라벌예대(지금의 중앙대) 동창생이란다. 김자옥(金慈玉)이「탤런트」가 되기 전부터 가끔 집에 놀러 왔기 때문에 스스럼 없는 사이가 되었고 방송국에 들어오자 아는 사람이 없어 자연히 이(李)군과 방송국 근처의 다방에서「코피」를 들고 얘기를 나눈 정도로 만났을 뿐이라는 것.  이에 대해서는 이(李)군도 같은 얘기다.  『방송국에서 선배로 또 오빠로서 대했을 뿐인데 연애라니 어림도 없는 얘기지요』  결국 두 사람은 다 남매처럼 대했다는 것으로 해명이 끝난 셈. 이런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데이트」로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만하다.  다음 소공동을 같이 거닐던 사람은 누구일까? 이에 대해 김자옥(金慈玉)은 형부의 친구라고 말한다.  『재일교포인데 형부와 아주 절친한 친구예요. 형부를 통해 알게 되어 같이「볼링」을 하러 가 본 적이 있지만 그런 사이는 아니에요』  김자옥(金慈玉)의 말을 빌면 그건「데이트」가 아니고 그저 한번 만난 것뿐 그 사람이 일본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그 뒤에는 다시 못만났다고.  혹시 맞선을 본 것이 아니냐고 묻자 자신이나 집에서나 아직 시집을 보낼 생각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어림도 없는 얘기라고 펄쩍 뛴다.  『25살 넘어서 결혼을 하겠다는 방침을 세웠기 때문에』지금은「데이트」는 해도 결혼 상대를 찾고 있지는 않다고 잘라 말했다.  『이제야 연기가 무언인지 알아가는 햇병아리예요. 도와 주지는 못할 망정 헛소문을 진실처럼 험구하진 말아 줬으면 좋겠어요』  이러다간 아빠와 외출을 해도「핸섬」한 중년 신사와「데이트」하더라고 소문이 나겠다며 웃는다.  연예계 신입생인 그녀가 뒷공론 때문에 신경을 쓰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의 인기생활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리라고는 결코 생각지 않는 눈치.  『「탤런트」생활을 생업으로 삼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저도 여자니까 때가 되면 시집을 가서 가정을 꾸미는 것이 자연스런 일 아니겠어요. 꼭 맘에 드는 작품 하나만 흡족하게 하고 미련없이 떠날 생각이에요』  꼭 맘에 든 작품의 배역이 언제 주어질 지 알 수 없지만 일단 주어지면 심혈을 기울여 조용히 연기자 생활을 마무리 짓겠단다.  『연기자는 건강해아 하는데 전 몸이 좀 약해요. 부모님이 반대하시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어요』  지난 여름『한중록』을 마치고 집에서 빈혈로 쓰러진 것을 봐도 연기자로서 치러야 할 중노동을 이겨내기에는 몸이 약한 것 같단다.  단시간내에 인기의 정상에 오른 김자옥(金慈玉)은 시인이자 무용 평론가인 김(金)모씨의 2남5녀 중 세째 딸. 국민학교 4학년 때부터 아동극을 시작했으니 연기 경험은 퍽 많은 셈이다.  배화여중 1년 때부터 배화여고 2년 때까지 TBC-TV에 아역 배우로 출연,『우리집 5남매』등 많은「프로」에 나갔다.  성인으로「탤런트」가 된 것은 여고 졸업 후, 70년 2월 MBC-TV 「탤런트」2기생으로 들어가면서···. 그러나 MBC에서 6개월간 교육을 받다가 그만두고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입학,「브라운」관을 떠났었다. 그러다가 1년 뒤인 71년 11월 KBS-TV의『심청전』에「스카우트」되면서 본격적인「탤런트」로「데뷔」, 1년만에 정상급에 오르게 된 것이다.  붙임성이 있고 상냥해서 동료「탤런트」들간에 귀염둥이로 통하고 있는 김자옥(金慈玉). 이제 그녀도 사랑할 나이가 된 것만은 사실이다. <오(五)> [선데이서울 73년 2월11일 제6권 5호 통권 제226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8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기사 내용과 광고 카피 등 당시의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한권에 얼마냐고요? 50원이었습니다.  
  • 朴, 전권 쥐기도 전에 분당 위기

    한나라당의 쇄신 흐름을 주도했던 정태근 의원이 탈당을 선언하고, 김성식 의원도 재창당 요구가 전국위원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탈당하겠다고 밝히면서 박근혜 전 대표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나서 당을 이끌기도 전에 당이 쪼개질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친박계 반응은 엇갈려 특히 쇄신파는 그동안 친박(친박근혜)계와 당 개혁에 공동보조를 맞춰 왔다. 하지만 홍준표 대표 사임 이후 쇄신파는 재창당을 주장했고, 친박계는 박 전 대표가 비대위원장직을 맡아 내년 총선 때까지 전권을 행사하는 것을 원했다. 이날 두 의원의 탈당 선언으로 박 전 대표는 쇄신의 동력을 잃게 될 위기에 놓인 셈이다. 사안의 심각성을 느낀 친박계는 이날 밤 분주하게 움직였다. 6선인 홍사덕 의원은 두 의원의 탈당 선언이 나오자 곧바로 박 전 대표를 찾아가 향후 대책을 숙의했다. 황우여 원내대표도 소장파 의원들의 요구를 전달하기 위해 박 전 대표를 찾았다. 황 원내대표는 “새로운 모습을 원하는 젊은 의원들의 뜻이 받아들여지고 공감대가 형성되느냐가 관건”이라면서 “박 전 대표가 쇄신파와 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박 전 대표가 재창당 요구를 수용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쇄신파의 연쇄 탈당에 대해 친박계의 반응은 엇갈렸다. 영남권의 한 중진의원은 “재창당 요구가 쇄신파의 ‘박근혜 흔들기’ 의도였던 만큼 우리가 영향받을 이유가 없다.”면서 “왜 둘만 탈당하느냐.”고 비판했다. 그러나 다른 친박 의원은 “우리 내부에서 먼저 ‘박 전 대표가 공천권을 쥐고 총선을 치러야 한다.’고 자꾸 얘기하니까 쇄신파가 격앙된 것”이라면서 “이 상황에서 박 전 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는다 해도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와 쇄신파가 다시 연대할 가능성도 낮다. 불신의 골이 워낙 깊기 때문이다. 쇄신파를 이끌어 왔던 정두언 의원은 “문제의 본질은 비대위도, 재창당도 아닌 박근혜 그 자체”라면서 “청와대의 오더(명령)를 따르다가 당이 망하게 됐는데, 지금은 또 다른 오더를 따르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원희룡 의원은 “쇄신파가 1주일 전에 친박계 핵심 의원에게 재창당 등이 담긴 쇄신 로드맵 문건을 작성해 박 전 대표에게 전달하려 했고, 직접 면담도 요청했지만 모두 중간에서 거부당했다.”면서 “이렇게 높은 차단벽 자체가 쇄신 대상”이라고 말했다. 정태근 의원도 “박 전 대표는 당이 어렵게 된 데 책임을 져야 할 지도자이고, 국민에게 희망을 줘야 할 지도자인데, 여러 의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의총장에도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직접면담 요청 거부당해” 한편 탈당 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지 박 전 대표는 쇄신파의 ‘재창당’ 요구를 분명히 거부하는 한편 최고위원회의 인사권과 공천권을 넘겨받는 비상대책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 ‘1인 체제’로 당을 이끌 생각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기류를 반영해 황 원내대표와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비대위가 최고위원회의 권한이었던 인사권과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당헌·당규 개정안을 마련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비대위원장은 비대위원들을 임명할 수 있는데, 이는 박 전 대표 중심의 단일지도체제를 뜻한다. 이창구·이재연기자 window2@seoul.co.kr
  • CHINA HUNAN-펑황고성鳳凰古城에서의 밤과 낮 짧거나 긴 머무름

    CHINA HUNAN-펑황고성鳳凰古城에서의 밤과 낮 짧거나 긴 머무름

    펑황고성鳳凰古城에서의 밤과 낮 짧거나 긴 머무름 펑황고성 출신의 대표적인 작가 심종문(SHEN CONGWEN). 그는 펑황고성을 떠올리게 하는 전원 소설 <변경>으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른 바 있으며, 중국 역사유물학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저서들 방대한 영토 안에 한 국가로 부대끼며 살고 있는 다양한 소수민족들. 그들이 보여주는 문화가 지방마다 다르기에 중국은 여행을 거듭해도 언제나 처음처럼 신선한 느낌이다. 전통가옥과 풍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고성古城’ 혹은 ‘고진古鎭’이 처음은 아니지만 후난성의 고성을 방문했을 때, 그 시간들은 여전히 이색적이었다. 그 고즈넉한 여행을 소개한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이지혜 취재협조 중국국가여유국 02-773-0393 자연이 만들고 지킨 고성마을 고성은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가진 곳이므로 배경을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하다. 펑황고성은 행정구역상으로 상서토가족묘족자치주湘西土家族苗族自治州의 펑황현에 속한다. 1957년에 지정된 상서토가족묘족자치주는, 자치주 청사소재지인 지소우시吉首市와 루시현瀘溪, 구장현古丈, 후아위엔현花垣, 바오징현保靖, 용순현永順, 롱산현龍山 등으로 이뤄져 있다. 앞에 상서가 붙은 이유는 상강湘江이 흐르는 후난을 한자로 ‘상湘’으로 표시하기 때문이다. 상서 지역은 후난성 서부에 위치한다. 외국인이 소수민족의 문화를 구별하기는 쉽지 않으나, 다른 지역의 소수민족은 묘족, 강족, 장족 등이 주류를 이루는 데 반해, 이곳은 토가족 문화가 강하다. 2006년 기준으로 276만명이 거주하는데, 이 가운데 약 71%가 토가족과 묘족이다. 펑황현이라는 지금의 이름은 청나라 때부터 부르던 것. 현존하는 성곽 터 등은 대부분 원명 시대에 기초를 형성했고, 청나라 때 보수하고 개축했다. 산이 겹겹이 둘러싸인 지형 때문에 파괴되지 않고 특유의 문화를 간직할 수 있었다. 펑황고성은 타강?江을 끼고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강을 따라 수상가옥이 쭉 이어지는데, 목조로 된 가옥을 떠받치기 위해 세워놓은 얇고 길쭉한 나무들이 인상적으로 보였다. 강을 넘어 침범해 오는 적을 방어하고 홍수를 막기 위해 성곽은 강을 따라 세워졌다. 평지가 많은 중국 강남에는 성곽이 드문 편인데 펑황고성은 이런 지형적 조건 때문에 독특한 형태의 고성 마을을 형성하게 되었다. 아직 옛 건물의 겉모양은 그대로지만 내부는 호텔, 상점, 카페, 바BAR 등으로 개조해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신시가지에 위치한 일반 호텔에 묵을 수도 있지만, 다소 불편함이 있어도 타강을 따라 형성된 옛 거리에 묵으면 오래된 도시의 매력을 더 깊게 느낄 수 있다. 펑황고성에는 타강을 따라 수상가옥이 늘어서 있다. 수심이 낮고 해초가 많아 동력배는 이용할 수 없고, 여전히 나룻배와 돛단배가 교통수단으로 유용하다. 이런 유유자적한 모습이야말로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를 떠나온 이방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부분이다 도시인을 사로잡는 거리 산책 이제 본격적으로 펑황고성 산책을 시작해 보자. 타강을 따라 성 밖으로는 수상가옥이 늘어서 있고, 그 반대편인 성 안쪽에는 주거지가 형성돼 있다. 북문인 벽휘문에는 수심이 낮을 때에도 효과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나룻배와 돛단배 여러 척이 자리하고 있다. 보기보다 민첩한 배들은 관광객을 태우고 일주를 하기도 하고, 주민들의 이동수단이 되기도 한다. 홍교는 청나라 강희제 때 보수한 후 지금까지 당시의 형태를 잘 보존하고 있다. 홍교에는 내부에 전망대가 있고, 부근으로 바와 카페들이 즐비하다. 반면, 홍교 건너편에 위치한 승항문쪽에는 소소한 전통 공예품과 먹거리를 파는 상점들이 이어지고 있다. 펑황고성은 특별히 사진 촬영을 위한 여행지로도 유명하다. 거리에서 고가의 카메라와 삼각대를 짊어진 이들을 만나기가 어렵지 않다. 하지만 풍경 자체가 멋져서 (똑딱이라고 하는) 소형 카메라만으로도 괜찮은 여행사진을 담아낼 수 있다.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촬영의 적시는 해질 무렵이다. 혹은 해 뜨기 직전의 물안개 낀 모습도 특별하다. 펑황고성의 밤과 낮 풍경은 상당히 대조적이다. 낮의 펑황고성이 손님들로 분주한 상가와 여행객들의 상기된 표정으로 들썩인다면, 밤은 차분한 가운데 화려한 불빛이 타강 전체를 타고 흐른다. 그렇다고 무분별하게 전광판을 내걸지는 않았다. 어두운 강이 반사판이 되어 불빛이 저 홀로 2배, 3배로 환하게 반짝일 뿐이다. 기념품이야 어느 곳에나 있는 것이지만, 토가족과 묘족은 전통 수공예품을 만드는 기술이 유난히 빼어나다. 베틀로 직접 짠 천과 그것을 다시 한 땀 한 땀 꿰매 만든 망토와 숄이 예쁘게 걸려 있다. 몇 대에 걸쳐 염색 기술을 전승해 온 공방도 있다. 묘족은 결혼 예물로도 은장식을 준비할 정도로 은 세공품 제작기술이 뛰어나다. 길가에 앉아 바느질을 하거나 액세서리 제작에 열중하고 있는 아낙들의 정성 때문에라도 기념품들을 한 번 더 쳐다보게 된다.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 만든다고 촌스러울 거라고 생각은 틀렸다. 자연에서 배운 그들의 예술 감각은 도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펑황의 골목을 산책하다 보면 간식거리도 다양하다. 중국의 음식은 향이 강하고 또 기름져서 샹차이(고수풀)가 들어가지 않는 경우에도 입맛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펑황에서라면 도전해 볼 만하다. 잎사귀에 싸서 찐 찰밥, 쌀로 만들었다는 두부와 짭쪼롬하고 매운 소스를 뿌린 각종 먹을 것들이 보는 즐거움뿐 아니라 먹는 재미까지 더해 준다. 후난성 펑황현 사람 심종문 ‘심종문, 22세, 학생, 후난성 펑황현 사람.’ 글은 심종문이 문인생활을 위해 베이징으로 갔을 때 처음으로 머물었던 여인숙의 숙박부에 기록했던 자신의 인적 사항이다. 심종문은 1902년에 펑황현에서 태어났다. 펑황고성 여행에 있어 심종문 생가는 주요한 방문지 가운데 하나다. 국내에도 번역서가 출간돼 있는 <변성邊城>은 심종문의 대표작이다. 소설에서는 펑황이라는 지명이 언급되지 않지만 소설에 묘사된 장소들을 그려 보면 쉽게 작가의 고향을 떠올릴 수 있다. ”쓰촨에서 후난으로 가는 길에 관가에서 닦은 도로 하나가 동쪽으로 나 있다. 이 길을 따라 가노라면 후난 서쪽 경계 부근에 차동茶洞이라 불리는 작은 산성이 나타난다. 거기에 작은 강이 하나 흘러 지나가는데 강가에는 작은 흰 탑이 세워져 있고 그 탑 밑으로 외딴 인가가 한 채 보인다. 이 집에 한 노인과 여자애 그리고 누렁개 한 마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 정재서 역/ 황소자리 노인은 단오절에 성 안에서 열리는 용주 시합에 취취를 데려가고, 부두를 관리하는 순순順의 두 아들 천보天保와 나송儺送이 동시에 취취를 좋아하게 된다. 취취도 둘째인 나송에게 끌리지만 정작 중매쟁이를 내세워 청혼한 것은 첫째 천보였다. 뱃사공은 뱃사공대로 외손녀의 사랑이 결실을 맺도록 도와주려 애쓰고, 천보 또한 두 번에 걸쳐 청혼하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간다. 그후 천보는 사고로 죽고, 충격을 받은 나송 또한 마을을 떠난다. 얼마 안가 뱃사공 노인이 죽고 취취는 할아버지에 이어 처녀 뱃사공이 된다. 취취는 “어쩌면 그 사람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또 어쩌면 바로 ‘내일’ 돌아올지도 모른다”며 나송을 기다린다. <변성>을 읽고 있으면 펑황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소설 속에는 다음과 같은 묘사도 있다. ” 누런 흙벽이며 검은 기와며 알맞게 자리잡은 집터며, 모든 것이 주변 경치와 한데 어우러져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즐겁게 했다. 시를 좀 읊을 줄 알고 그림 좀 그릴 줄 아는 여행객이라면 누구나 이 강에 작은 배 하나를 띄우고 그 위에서 한 달여를 노닌다 해도 싫증나지 않을 풍경이었다. 눈에 들어오는 것마다 신기하고 아름다우니 자연의 거대하고 정교한 모습 하나하나가 보는 이를 황홀경에 빠지게 했다. “ - 정재서 역/ 황소자리 고성 한 켠에서 묘족이 전통 혼례를 선보이고 있다. 묘족 아가씨가 혼례에 참가한 하객들에게 전통 미주米酒를 권한다. 미주는 쌀로 만든 술로 우리 막걸리보다 달콤하고 도수가 약해 음료수처럼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다 소설보다 극적인 작가의 삶 심종문은 삶 자체가 마치 소설 같은 사람이다. 심종문 생가에는 이러한 그의 일대기와 작품,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심종문의 집안은 할아버지가 구이저우 총독을 지낼 정도로 권력과 재산을 동시에 지녔었다. 그러나 심종문의 어머니는 묘족 여자였고, 또 아버지는 신해혁명 등에 가담해 점차 가세가 기울게 된다. 심종문은 소학교마저 마치지 못했지만, 상서군벌 진거진의 비서로 지내는 동안 송명대의 그림과 고서, 고전문학을 접할 수 있었다. 학력 때문에 대학에 갈 수 없었지만 베이징대에서 수업을 청강하며 호적, 서지마, 호야빈과 같은 문인사상가들과 교류했다. 그 중 호적이 교장으로 있는 오송중국공학에 교사로 재직하게 되었고 학교 학생이었던 장조화에게 반해 끊임없는 구애와 무수한 러브레터 끝에 결혼에 성공했다. 좌익사상은 물론이고 문인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에 반대한 심종문은 중국 공산당 정부 수립 후 적응하지 못하고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후에 중국역사박물관에 배속돼 활발한 문화유물학자로 성과를 남겼다. 심종문은 <변성> 외에도 여러 작품에서 펑황과 상서, 그리고 후난 지역의 풍경과 사람을 묘사했다. 아내 장조화에게 보냈던 러브레터와 <상서산행湘西散行>, <상서湘西> 등이 대표적이다. 심종문뿐 아니라 펑황의 아름다움에 주목한 예술가로 황영옥黃永玉이 유명하다. 실제로 후난성의 장자지에를 방문해 보면, 동양의 수묵화가 눈앞에 펼쳐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데, 그 펑황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아 전세계적으로 알린 화가가 황영옥이다. 타강 강변에 자리잡은 그의 화실 ‘탈취루’ 역시 펑황의 명물인데, 심종문과 그는 친척관계다. 이 밖에 중화민국 초대 내각총리를 지낸 인물인 웅희령熊希齡은 어려서부터 ‘후난성의 신동’으로 그 천재성을 널리 알렸었다. Travel to Hunan ▶펑황고성 찾아가기 펑황고성은 후난성 서부에 위치한다. 장자지에와 이웃해 있어 차량으로 2~3시간여 거리다. 후난성의 성도인 창사長沙와 인천 사이에 직항편이 운항되고 있으며 비행시간은 약 3시30분여 정도 소요된다. 창사국제공항은 최근 신축을 통해 수용 규모가 크게 확대됐으며, 내부 시설 등이 업그레이드 됐다. 후난성은 아직 곳곳에 교통 인프라 개선이 진행 중으로, 고속도로가 개통된 창사-장자지에는 4시간이면 이동 가능하며, 창사에서 펑황고성까지는 총 5~6시간이 소요된다. 차량 이동 시간은 향후 더욱 단축될 것으로 기대된다. ▶<아바타> 촬영지 장자지에와 펑황고성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여행지 장자지에가 속한 곳이 바로 후난성이다. 통상 ‘장가계’로 불리며, 장자지에 국가삼림공원, 삭계욕, 천자산, 양자지지에 등이 함께 ‘무릉원武陵源’으로 묶여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돼 있다. 천자산과 원자지에, 보봉호, 황룡동굴 등도 함께 관람하려면 이곳에서 최소 2박 이상 머무르는 일정을 잡는 것이 좋다. 케이블카와 친환경 차량 등을 이용하기 때문에 장거리를 걷지 않고 등산코스도 험하지 않아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기에 좋다. 또 영화 <아바타>에서도 그 모습을 빌려갈 정도로 독특한 기암괴석의 풍경이 함께 어우러져 중국의 산 가운데서도 가장 대중적인 관광지로 자리잡았다. 장자지에와 펑황고성은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로 함께 여행해도 좋겠지만 두 곳을 함께 관광할 경우 5~6일의 일정을 잡아야 한다. 그런 이유로 현재 판매 중인 패키지여행 상품에서는 두 곳을 동시에 방문하는 일정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자유여행을 계획한다면 고려해 볼 만한 일정이다. ▶또 하나의 후난성 고성 베이징 후통을 닮은 간저우고성乾州古城 상서토가족묘족자치주의 청사소재지인 지서우시에도 주목할 만한 고성이 있다. 바로 간저우고성이다. 펑황고성과 달리 시내에 위치해서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입구인 북성문은 새로 지은 세트장 같은 인상을 줘서 첫인상에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만 안으로 걸으면 금세 베이징의 후통과 비슷한 고즈넉한 옛 건물과 정겨운 골목이 기다리고 있다. 간저우고성은 만용강萬溶江과 천성하天星河, 두 개의 물줄기가 흐르는 곳에 위치한다. 간저우라는 이름이 뜻하는 바로 그것이다. 북성문을 빠르게 지나쳐 오른쪽으로 조금만 거닐면 호가당이 나온다. 한 채의 집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연못 주위로 10여 가구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실제로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여름이면 호가당이 끼고 있는 넓은 연못에 연꽂이 가득 찬다. 펑황고성이 들썩이고 활기에 찬 모습이라면, 호가당은 도시에 위치하면서도 마치 다른 세계에 온 것처럼 한가롭다. 연못가에 잠시 앉아 연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이 든다. 청나라 옹정제 때 지어진 간저우 건주문묘는 호남 지역에서 보존이 가장 잘 돼 있는 문묘(공자를 모시는 사당) 가운데 하나다. 가이드의 설명을 통해 알게 된 것인데, 건주문묘는 중국 문화대혁명 때 건물을 보호하기 위해 모택동 사상이 적힌 현판을 건물 외벽 곳곳에 덧붙여놨었다고 한다. ‘낡은 사상’을 몰아내자고 불교와 유교 유적들을 대거 훼손했던 문화대혁명의 폭풍을 그렇게 피해갈 수 있었다. 창사에서 펑황으로 가는 길은 지서우를 거쳐야 한다. 특히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에는 지서우를 거쳐야 펑황으로 가는 차량을 이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서우에 방문하게 된다면 간저우 고성을 함께 방문해도 좋을 것이다. 1 전통가옥을 보존하고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후난성 지서우시에 위치한 간저우 고성 2 관광객들에 아랑곳없이 마을 구석구석은 어린이들의 놀이터다 3 후난 지역에서 가장 잘 보존돼 있다는 간저우 문묘, 오래된 멋이 느껴져 좋다
  • “한글 수집품 국내 최다… 청소년 교육의 장으로”

    “한글 수집품 국내 최다… 청소년 교육의 장으로”

    드라마 촬영지로 이름 난 전남 순천의 낙안읍성을 꼭 찾아야 할 이유가 하나 늘었다. 한글과 전통 문화를 고집스럽게도 지켜내려 했던 고(故) 한창기 선생이 평생 모은 유물들을 한자리에 모은 뿌리깊은나무박물관이 지난달 21일 읍성 들머리에서 100m 떨어진 곳에 문을 열었다. 순천시에서 21억원을 지원받아 시립 간판이 붙여졌지만 1736㎡의 터에 들어선 전시관과 8채의 한옥을 오롯이 채운 것은 고인의 열정과 집념이었다. 단원 김홍도의 낙관이 찍힌 ‘창해낭구도’, 신사임당의 것으로 보이는 ‘초충도’를 비롯해 진귀한 문화재와 민속품 등 6500여점 가운데 800여점을 우선 선보이고 앞으로 수장고에 보관된 것들과 번갈아 전시된다. 박물관 건립에 헌신해 온 차정금(59) 뿌리깊은나무재단 이사장을 만났다. 그는 1997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한창기 선생의 제수로, 형의 유지를 이으려 재단을 설립한 남편 상훈씨마저 이듬해 역시 간암으로 떠나자 재단 일을 도맡아 왔다. →박물관을 세우겠다는 뜻을 14년 동안 꺾지 않은 이유는. -유언집행인 한 분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모두 기증하고 받는 20억원의 보상금으로 다른 기념사업을 하자고 했다. 그런데 시숙의 유물들이 중앙박물관에 가면 국보급 유물들에 가려 햇빛 한 번 보지 못한 채 수장고에 묵히게 된다. 그러면 한창기 선생은 없어지는 것인데 그분의 존재가 없어지는 일을 가족으로서 할 수 없었다. →지난달 개관식 뒤 곧바로 시숙(媤叔)의 묘소를 찾았다는데. -힘들게 완공하고 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시숙님, (생전에 원하시던 일) 다 해놨어요.’라고 말했어요. 이렇게 어려운 일을 맡겨 놓고 가셨는데 해낸 것을 보고 장한 일 했다고 하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기뻤다. →영화 ‘서편제’를 촬영한 한옥이 눈에 띈다. -90년 전 구례 산적리에 백경 김무규 선생의 부친이 지은 것이다. 80년대 초에 시숙이 사고 싶어 했는데 형편이 되지 않았다. 2001년에 처음 보러 갔는데 다 허물어져 있어 김홍남 전 국립박물관장 등이 너무 안타까워했다. 구례군수를 찾아가 “보존해야 한다.”고 했더니 ‘사유재산이고 경주 다음으로 문화재가 많아 관리할 수가 없다.’는 답을 들었다. 그래서 터를 잡아 박물관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민숙 가구박물관장이 옮겨 오는 아이디어를 내 그렇게 했다. →생전에 선생의 고집이 대단했다. -잡지 ‘뿌리 깊은 나무’를 창간할 때 영어나 한문을 한 글자도 넣지 않고 편집했다. 브리태니커백과사전을 팔아 돈을 벌 정도로 영어를 잘했는데 그랬다. ‘삼국지’ ‘옥련몽’ 등 한글소설과 조선후기 목판 등 한글 관련 수집품으로선 국내에서 가장 많다. 유물들도 돈되는 것보다 민속품을 주로 모았다. 신발도 짚신, 아녀자들의 꽃신, 궁중에서 신던 것까지 시리즈로 죄다 모았다. 재물의 가치로 보지 않고 우리 문화의 맥을 짚는 물건으로 보았으면 좋겠다. →관람객들의 반응은. -시골 박물관이라고 우습게 여겼다가 규모 면에서나 수집된 물품들의 가치를 보며 많이 감탄한다. →앞으로의 꿈은. -선생의 소중한 뜻과 이룬 것들을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가르치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됐으면 좋겠다. 고인보다 더 큰 이상을 좇으며 성장했으면 한다. 또 안경이나 회중시계 등 개인 유품을 순천의 아파트에 보관 중인데 따로 전시할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글 사진 순천 문성호 PD sungho@seoul.co.kr ■9일 밤 7시 30분 케이블 채널 서울신문STV ‘TV 쏙 서울신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열린세상] 대선에서 숙의할 교육·양극화/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열린세상] 대선에서 숙의할 교육·양극화/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어느새 2011년도 저물어 가고 있다. 세상은 안정과 평화, 희망보다는 불안과 불투명, 음울함으로 색칠해져 있다. 경제는 유럽발 금융위기 우려로 불안하다. 정치는 여야 가릴 것 없이 제도권 정당정치가 흔들리며 분열과 합종연횡의 조짐마저 보인다. 사회는 이념적 분열도 모자라 세대 간 갈등 현상까지 보이며 양극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문화는 볼 만한 텔레비전 드라마나 공연, 좋은 책들이 가끔은 사는 맛을 주지만, 전반적인 사회적 가치와 품격은 얼마나 고양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다소 위험마저도 느끼게 만드는 세밑 불안정 사회는 뭐가 됐든 국가적 리더십의 부재 또는 빈곤을 떠올리게 한다. 가까운 미래조차 불투명한 이 순간, 사람들은 기댈 수 있는 누구(리더), 기댈 수 있는 무엇(가치)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여느 때처럼 송년모임을 하고 성탄절이 지나고 나면 훌쩍 2012년 내년이 되어 버릴 것이다. 내년은 누가 뭐래도 대선의 해. 새로운 국가 리더를 뽑는 중요한 해이다. 우리는 어떤 대통령을 뽑아야 할까. 정치판은 이미 누구누구를 중심으로 떼를 이루며 술렁거리고 있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국정이슈가 실종되고 있다. 대통령 선거는 지금 그리고 장단기 미래에 중요한 국정과제는 무엇인지 시민들이 숙의하고, 그러한 국정 난제들을 잘 풀어갈 적합한 지도자를 선출하는 과정이다. 대선은 그래야 한다. 그러나 선거판은 어떤 후보가 되느냐에 몰두한 나머지 어떤 후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할 수 있는가를 망각하기 십상이다. 사람에 가려 정작 문제를 못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선거 판세에만 치중하다 보면 후보들은 심사숙고한 공약 대신 빈 공약(空約)의 나열에 그치고 만다. 그 결과 대선을 치르고 새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까지 국가의 중요한 문제들은 이렇다 하게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교육정책이다. 대선 후보들은 선거 때마다 고만고만한 교육 공약을 내걸지만 정작 우리 사회가 직면한 진정한 교육 문제를 해결할 교육개혁에까지 이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기 일쑤다. 이번 정부만 해도 결국은 사교육 억제를 위해 교육방송 강의에서 수능문제의 70% 출제, 학원 야간 수업 단속 등 다소 기이한 궁여지책만 내놓고 있다. 그러는 사이 초등학교에서부터 학생이 통제가 안 돼 큰일이라는 소리 없는 아우성만 커져가고 있다. 학교에서 큰일이 나고 있는데, 정치에는 큰 정책도 없고 진정한 고민과 책임도 없다. 이러다가는 우리 교육의 국제경쟁력은커녕 학교 교육 자체가 무너지게 생겼다. 양극화 문제도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본격적으로 건드려서 득볼 것 없다는 이유로 시늉만 하고 넘어가는 바람에 고질적이고 위험한 국가 문제가 된 경우다. 지난 10·26 재·보선 결과에서 세대 간 양극화 문제가 드러나면서 젊은 세대 마음 사로잡기 정치 프로젝트를 해보지만 구조적인 경제사회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까지 미칠지는 의문이다. 알다시피 양극화는 수출 위주의 대기업 중심 한국경제 구조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향후 경제정책뿐만 아니라 사회복지, 사회정책, 심지어 급증하는 대졸실업에서 보듯 교육정책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내년 대선에서는 무엇보다 교육과 양극화가 주요 국정의제로 부상할 것이다. 아니, 그럴 필요가 있다. 경제 살리기 공약은 불가항력으로 움직이는 국내외 경기 흐름을 감안하면 애당초 허위일 가능성이 높고, 대북·대미 정책은 상대방이 있어 쉽게 움직이지 못하고, 정치개혁이나 사회문화 정책은 중요하지만 ‘대박’ 이슈가 되기 어렵다. 내년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교육문제와 양극화 문제에 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아니, 지금부터라도 교육과 양극화 문제를 준비하는 진정성을 가진 후보가 그것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당선돼 그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바란다. 세 싸움의 현실정치를 모르는 일장춘몽일까.
  • [사설] SNS 역기능 줄일 여과장치 필요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공적 책임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한 정치적 주장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면서다. 사회 구성원 간 소통을 촉진하는 SNS의 순기능은 살리되 근거 없는 괴담으로 공동체의 안정을 해치는 역기능을 최소화하도록 중지를 모을 때다. SNS는 자신의 정보와 의견을 타인과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게 하는 모바일 미디어다. 잘만 운용되면 더할 나위 없이 편리한 소통의 도구다. 다만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게 마련이다. SNS는 올해 ‘아랍의 봄’을 연 재스민 혁명에 불을 지피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난 7월 영국에서 약탈과 방화로 얼룩진 시위 당시 청년 2명이 페이스북을 통해 허위 정보로 폭동을 부추기다 중형을 받았다. 그렇잖아도 이념적 양극화가 두드러진 우리 사회에서 문제는 더 심각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해 “의료 민영화로 맹장수술에 900만원이 든다.”는 괴담이 인터넷과 SNS를 통해 퍼지고 있는 현실을 보라. 특히 트위터에 여당 대표의 집주소를 올려 “오물을 투척하라.”고 선동하는 데까지 이를 정도니, 혀를 찰 일이다. SNS는 자칫 묻히기 쉬운 소수의 목소리도 공론화하는 강점이 있다. 이런 순기능은 당연히 활성화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규제가 능사는 아니다. 국민 다수가 SNS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오히려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 세대 간·계층 간 디지털 격차를 줄여야 치우치지 않는 공론의 장으로 기능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얼마 전 인천지법의 한 부장판사가 “뼛속 깊이 친미…” 운운하며 한·미 FTA를 추진하는 이명박 대통령을 감정적으로 비난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결과를 보라. FTA를 지지하는 진영으로부터 “뼛속 깊이 반미”라는 반발을 샀을 뿐 생산적 논의로 이어지진 않았다. SNS가 괴소문이나 일방적 주장으로 증오와 갈등을 키워 공동체의 평화를 깨는 부작용을 낳지 않고 합리적 절충과 타협을 이끄는 숙의민주주의의 공간이 되게 해야 한다. SNS가 허위와 사실을 걸러낼 여과장치를 갖춰 1인 미디어로 공적인 책임을 다하도록 법원·행정부 등 공직사회에서부터 활용 가이드라인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 민간 영역의 각종 괴담에 대해선 정부가 적시에 정확한 정보 공개로 대응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 [여자프로농구] 신한은행, 신세계 대파

    프로스포츠 사상 전무후무한 통합 5연패를 달성한 신한은행의 위용은 올해도 변함없다. 신한은행은 13일 안산와동체육관에서 신세계를 91-70으로 대파했다. 7승(2패)째를 거둔 신한은행은 2위 KDB생명(6승3패)과의 승차를 한 경기로 벌리고 선두를 굳건히 지켰다. 개막전에서 당했던 패배를 설욕한 데다 올 시즌 처음 전 구단을 상대로 승리를 기록해 기쁨을 더했다. 반면 9일 KB국민은행을 꺾고 5연패에서 탈출했던 신세계는 상승세를 잇지 못하고 5위(2승6패)에 머물렀다. 신한은행이 초반부터 압도했다. 초반부터 강영숙의 포스트 공격과 김단비의 외곽공격이 절묘한 조화를 이뤘고, 1·2쿼터를 12점 차(47-35)로 앞선 채 마쳐 승리를 예감했다. 26점 7리바운드로 맹활약한 강영숙은 2000득점(총 2002점)을 돌파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마이클 잭슨 주치의 머리 과실치사 유죄

    팝 황제 마이클 잭슨은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 주치의의 잘못으로 사망에 이른 것으로 미국 법정이 판결했다. 로스앤젤레스 형사법원 배심원단은 7일(현지시간)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팝스타 잭슨의 주치의 콘래드 머리(58)에게 유죄 평결을 내렸다. 형량을 결정하는 선고 공판은 오는 29일 열린다. 12명의 배심원단은 이틀에 걸쳐 8시간 30분 동안 숙의한 결과 머리가 잭슨의 사망에 책임이 있다는 검찰의 기소가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지난 6주간의 재판 끝에 최고 형량이 징역 4년에 이르는 과실치사 혐의에 대해 유죄 평결이 내려지면서 머리는 법정에서 바로 수갑이 채워진 뒤 구치소에 수감됐다. 2009년 6월 25일 컴백 공연을 준비하던 잭슨이 자택에서 숨지자 검찰은 불면증을 앓던 잭슨에게 강력한 마취제인 프로포폴을 과다하게 주사한 뒤 중요한 순간에 잭슨을 돌보지 않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이유로 머리를 기소했다. 반면 변호인단은 잭슨이 약물 중독 상태에서 주치의의 처방 없이 자의적으로 약물을 추가로 복용해 사망에 이르렀다고 반박해 왔다. 배심원들은 그동안 증인 49명의 증언을 청취했다. 이날 법정 밖에 운집해 있던 잭슨 팬들은 유죄 평결이 내려지자 환호성과 함께 눈물을 쏟았다. 법정에서는 잭슨의 아버지 조와 어머니 캐서린, 형 저메인, 누나 라토야 등 가족들이 평결 장면을 지켜봤으며 유죄 평결이 내려지자 검사를 부둥켜안고 기뻐했다. 그러나 일부 시민들은 머리가 희생양이란 반응도 보였다. 변호인단은 살인범도 아닌 과실치사범에게 법정에서 뒷짐을 진 채 수갑을 채운 것은 여론을 의식한 과도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의정비 6% 올리고 연수 빙자 나들이까지… ‘비리얼룩’ 여수시의회 뻔뻔하네

    비리로 의원들이 무더기 퇴출된 여수시의회가 제주도로 의정 연수를 빙자한 나들이를 다녀와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여수시의회는 최근 대법원으로부터 의원 4명이 비리 혐의로 퇴출된 상황에서 감사와 예산 심사 기법 등을 배운다는 명분으로 지난 2일부터 사흘간의 일정으로 제주도에 다녀왔다. 이들 의원 중에는 공직선거법 위반과 뇌물수수혐의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고 현재 대법원 최종 선고를 기다리는 2명의 시의원도 포함돼 있다. 이 때문에 시민들은 “의원직을 잃은 아픔을 함께하지는 못할망정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벌써 관광성 연수를 다니냐며 동료 의식도 없는 여수시의회”라고 싸잡아 비난하고 있다. 이번 연수에는 2000여만원이 들었으며 시의원 18명과 직원17명이 동행했다. 더욱이 여수시의회는 의정비를 6.17% 인상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수시 의정비심의위원회는 의원들이 요구한 의정비인상과 관련, 6.17% 인상안을 잠정 결정했다고 지난 4일 밝혔다. 인상안이 최종 결정되면 여수시의원들은 연간 기존 3324만원에서 205만원 오른 3529만원을 지급받게 된다. 지역 시민단체들이 그동안 꾸준히 요구해 온 대시민 사과와 비리 연루 의원 자진사퇴 요구는 외면하면서 의정비 인상 결의나 외지 연수 일정 챙기기 등 자기 몫을 포기하지 않는 시의회로 각인되면서 시민들의 실망감은 커지고 있다. 시민 김모(47·여서동)씨는 “여수시를 비리로 얼룩지게 만든 시의원들이 자숙의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며 “지역 시민단체들이 정치 개혁을 줄기차게 외치고 있지만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수 최종필기자 choijp@seoul.co.kr
  • 다시 고개 든 연예계 ‘11월 괴담’

    다시 고개 든 연예계 ‘11월 괴담’

    올해도 연예계는 ‘11월 괴담’을 피해가지 못했다. 11월 괴담이란 1985년 11월 29일 ‘하얀나비’를 히트시킨 가수 김정호(본명 조용호)가 24살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1987년 11월 1일 ‘사랑하기 때문에’의 가수 유재하가 역시 20대에 교통사고로 요절하면서 생겨난 말이다. 이때부터 연예계는 해마다 11월이면 안 좋은 일이 생긴다는 징크스에 시달렸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2일 ‘그땐 그땐 그땐’ 등의 히트곡을 낸 힙합듀오 슈프림팀의 래퍼 이센스(본명 강민호)가 기자회견을 자청해 “지난 1년여간 대마초를 흡연했으며 최근 경찰조사를 받았다.”고 고백했다. 같은 날 저녁에는 아이돌 그룹 1세대인 젝스키스의 멤버 이재진(32)이 혈중 알코올농도 0.087%로 자신의 BMW 승용차를 몰다 다른 사람의 차를 들이받는 교통사고를 냈다. 젝스키스의 또 다른 멤버 강성훈(31)은 자신의 소유가 아닌 외제차를 담보로 5억원을 빌린 뒤 갚지 않아 피소됐다. 현재 검찰에 송치된 상태다. 그런가 하면 가수 박혜경(37)은 자신이 운영하는 피부관리숍을 건물주 동의 없이 제3자에게 양도, 영업권리금 등 2억 8500만원을 가로챈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쯤 되자 ‘11월 괴담’이 다시 고개를 든 것. 말 만들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의 입방아도 작용했지만 11월에 유난히 연예인들의 사고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가수 김현식이 간경화로 세상을 뜬 것은 1990년 11월 1일이다. 댄스듀오 듀스의 김성재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것도 11월(1995년 11월 20일)이었다. 1996년 11월에는 배우 신은경이 무면허 음주 뺑소니사고를 냈고, 1999년 11월 7일에는 탤런트 김성찬이 KBS 2TV ‘도전 지구탐험대’ 촬영차 라오스로 갔다가 말라리아로 사망했다. 2000년대 들어서도 사정은 마찬가지. 2000년 11월 1일에는 탤런트 송영창이 원조교제로 구속됐고, 2일에는 톱스타 김승우와 이미연이 이혼했다. 9일에는 클론의 강원래가 오토바이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불운을 겪었다. 가수 김현정도 같은 날 교통사고를 당했다. 19일에는 주병진이 성폭행 혐의로 구속됐고, 같은 날 가수 백지영의 ‘비디오 사건’도 터졌다. 20일엔 당시 최고 아이돌 그룹이었던 H.O.T.의 멤버 강타가 음주운전에 걸려 활동을 중단했다. 이듬해 11월 13일에는 단아한 이미지로 사랑받던 배우 황수정이 마약투약 혐의로 구속됐다. 이틀 뒤에는 가수 싸이가 대마초 흡입 혐의로 체포됐고, 23일에는 개그맨 양종철이 사망했다. 2003년 11월에는 탤런트 박원숙의 외아들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삼성가 며느리’였던 배우 고현정이 이혼했다. 2005년에는 영화배우 송강호와 가수 전진이 각각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빚었다(11월 1일). 그 해 11월 4일에는 은방울 자매의 박애경이 위암으로 사망했다. 신정환이 불법 카지노바에 있다가 경찰에 연행된 사실이 알려진 것도 11월이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연예계 ‘11월 괴담’, 올해도 역시?

    연예계 ‘11월 괴담’, 올해도 역시?

    올해도 연예계는 ‘11월 괴담’을 피해가지 못했다. 11월 괴담이란 1985년 11월 29일 ‘하얀나비’를 히트시킨 가수 김정호(본명 조용호)가 24살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1987년 11월 1일 ‘사랑하기 때문에’의 가수 유재하가 역시 20대에 교통사고로 요절하면서 생겨난 말이다. 이때부터 연예계는 해마다 11월이면 안 좋은 일이 생긴다는 징크스에 시달렸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2일 ‘그땐 그땐 그땐’ 등의 히트곡을 낸 힙합듀오 슈프림팀의 래퍼 이센스(본명 강민호)가 기자회견을 자청해 “지난 1년여간 대마초를 흡연했으며 최근 경찰조사를 받았다.”고 고백했다. 같은 날 저녁에는 아이돌 그룹 1세대인 젝스키스의 멤버 이재진(32)이 혈중 알코올농도 0.087%로 자신의 BMW 승용차를 몰다 다른 사람의 차를 들이받는 교통사고를 냈다. 젝스키스의 또 다른 멤버 강성훈(31)은 자신의 소유가 아닌 외제차를 담보로 5억원을 빌린 뒤 갚지 않아 피소됐다. 현재 검찰에 송치된 상태다. 그런가 하면 가수 박혜경(37)은 자신이 운영하는 피부관리숍을 건물주 동의 없이 제3자에게 양도, 영업권리금 등 2억 8500만원을 가로챈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쯤 되자 ‘11월 괴담’이 다시 고개를 든 것. 말 만들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의 입방아도 작용했지만 11월에 유난히 연예인들의 사고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가수 김현식이 간경화로 세상을 뜬 것은 1990년 11월 1일이다. 댄스듀오 듀스의 김성재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것도 11월(1995년 11월 20일)이었다. 1996년 11월에는 배우 신은경이 무면허 음주 뺑소니사고를 냈고, 1999년 11월 7일에는 탤런트 김성찬이 KBS 2TV ‘도전 지구탐험대’ 촬영차 라오스로 갔다가 말라리아로 사망했다. 2000년대 들어서도 사정은 마찬가지. 2000년 11월 1일에는 탤런트 송영창이 원조교제로 구속됐고, 2일에는 톱스타 김승우와 이미연이 이혼했다. 9일에는 클론의 강원래가 오토바이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불운을 겪었다. 가수 김현정도 같은 날 교통사고를 당했다. 19일에는 주병진이 성폭행 혐의로 구속됐고, 같은 날 가수 백지영의 ‘비디오 사건’도 터졌다. 20일엔 당시 최고 아이돌 그룹이었던 H.O.T.의 멤버 강타가 음주운전에 걸려 활동을 중단했다. 이듬해 11월 13일에는 단아한 이미지로 사랑받던 배우 황수정이 마약투약 혐의로 구속됐다. 이틀 뒤에는 가수 싸이가 대마초 흡입 혐의로 체포됐고, 23일에는 개그맨 양종철이 사망했다. 2003년 11월에는 탤런트 박원숙의 외아들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삼성가 며느리’였던 배우 고현정이 이혼했다. 2005년에는 영화배우 송강호와 가수 전진이 각각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빚었다(11월 1일). 그 해 11월 4일에는 은방울 자매의 박애경이 위암으로 사망했다. 신정환이 불법 카지노바에 있다가 경찰에 연행된 사실이 알려진 것도 11월이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전수일감독 “드러날 듯 말듯한 아픔에 더 큰 울림 있다오”

    전수일감독 “드러날 듯 말듯한 아픔에 더 큰 울림 있다오”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대표적인 작가주의 감독으로 인정받고 있는 전수일(52). 영화철학자로 불리는 그가 신작 ‘핑크’(27일 개봉)로 돌아왔다. ‘핑크’는 가족에 의해 파괴된 삶을 살던 여자가 ‘핑크’라는 선술집에 살게 되면서 자기 방식대로 버텨내고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린 수작이다. 지난 21일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신문 사옥에서 전 감독을 만났다. →‘핑크’라는 발랄한 제목과 달리 영화가 전반적으로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다. -원래는 한 여자가 남도를 전전하면서 자신이 받은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는데,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우연히 군산 쪽에서 ‘핑크’의 배경이 되는 해운 노조 사무실을 발견했다. 지금은 쓰이지 않는 곳이지만, 공간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주변의 회색 갯벌과 산동네 분위기도 소외되고 버려진 사람들의 정서를 표현하기에 적격이었다. 영화는 아픔과 상처의 정서를 쭉 따라가면서 공간과 리듬, 소리 등이 어우러진 영상시에 가깝다. →영화는 어릴 적 아버지에게 당했던 성폭력 기억 때문에 정신적 외상에 시달리는 수진(이승연)이 ‘핑크’에 머물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원래는 역사의 상처로 인한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지만, 가족의 상처로 바꿨다. 수진은 본인의 상처와 억압을 스스로 드러내지 못하는 인물이다. 자료를 조사하면서 근친 성폭력을 당한 사람은 조바심과 두려움으로 인해 30대에 들어서 어린아이처럼 퇴행적인 증세를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픔이 치유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회적인 문제와 결부시키기보다는 아픔을 지닌 수진이 ‘핑크’라는 공간과 사람들을 통해 조금씩 변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다. →수진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선술집 ‘핑크’의 여주인 옥련(서갑숙)이다. 수진과 대조적인 캐릭터로 극의 또 다른 중심축인데. -옥련은 자신이 사는 산동네가 철거 대상이 되자 고장을 지키기 위해 당당하게 요구도 하고 공권력에 맞서 투쟁하기도 하는 인물이다. 물론 옥련은 사회적 권력 앞에 나약한 소시민의 체념을 대변하고 있지만, 수진은 자기 의지가 강한 옥련의 모습을 보고 조금씩 닮아가면서 현실에서 도망치지 않고 스스로를 치유하게 된다. →11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서갑숙의 전라 노출신 등이 화제다. 상당히 사실적으로 표현했는데. -섹슈얼리티를 강조하기보다는 일상의 한 부분으로 그리고자 했다. 옥련이 산동네 사람들의 삶에 잘 녹아들게끔 하는 장면이었다. 서갑숙씨도 노출에 대한 거부감보다는 영화에 필요한 부분이라는 데 생각이 일치해 오히려 자유로웠다. 해외 영화제에서 처음 만났는데, 서갑숙씨가 내 영화에 관심이 많아 출연하게 됐다. →자유로운 방랑객 역으로 가수 강산에가 등장한다. -원래는 음악감독만 맡으려고 하다가 출연까지 하게 됐다. 방랑객은 음악으로 인물의 아픔을 달래주는 인물이다. 생생함을 주기 위해 강산에씨가 직접 노래하는 모습을 화면에 담았다. 사람들의 아픔을 관조하고, 바라보는 제3의 눈이다. 다시 말해 관객의 시선과 일치한다. →인물들의 연기가 과장되지 않고 상당히 사실적이다. -감정을 내면에 억누르고 오히려 겉으로 드러날 듯 말듯 하는 연기가 더 울림이 있다고 본다. 희로애락은 쉽게 표현할 수 있지만, 그 아픔을 감추는 것이 더 큰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것을 표현할 때 연기를 하려고 하거나 뭔가 해 보려고 하는 배우들이 많다. 하지만 이번에는 감정을 폭발하기보다는 억누르면서 마치 연기가 아닌 것처럼 사실적으로 표현하도록 주문했다. →롱테이크(길게 찍기)가 자주 쓰이고, 미장센(화면구도)이 강조돼 마치 사진첩을 보는 것 같다. -빛에 대한 컨트롤을 많이 했다. 조명을 쓰기보다는 은은한 역광을 사용해 인물과 공간이 입체적으로 보이게 했다. 대신 조명의 색감은 자제해 영화가 전반적으로 무채색에 가깝게 표현되도록 했다. 음악도 과장된 것을 자제했다. 평소에 사진과 그림을 좋아하고 관찰하는 것을 즐긴다. 혹자는 내 영화가 너무 미적으로 흐른다고 말하지만, 나는 구체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간도 하나의 이미지라고 보기 때문에 공간을 파헤치고 해부하면서 해석하는 것이다. →영화 제목인 ‘핑크’가 의미하는 바는. -핑크라는 색은 화려함을 갖고 있지만, 빛바랜 핑크는 우수, 상실 등의 가치가 공존한다. 흔히 여성들의 꿈을 ‘핑크빛’이라고 많이 표현하는데 상처라는 양면성도 담고 있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데 아쉽지 않나. -영화제용 영화를 만들었다기보다는 보편적인 정서에 나의 색깔을 얹었다. 해외에서는 작가로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시공간을 해석한 것에 대해 평가를 해주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요즘 충무로에는 다양한 색깔의 영화들이 잘 나오지 않는 것 같다. -비슷한 유형, 비슷한 이야기가 너무 많다. 영화를 표현 매체로 본다면 사회의 한 모습이나 삶의 태도를 반영한 것이고 세계관을 투영한 것인데, 재미를 위한 액션이나 과장된 멜로로 이야기를 인위적으로 만드는 등 너무 상업적으로 흘러가는 점이 아쉽다. →구상 중인 작품은.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는 것을 좋아해서 그런지 로드무비를 좋아한다. 다음 작품은 사랑에 관한 멜로드라마다. 남미 페루에서 작업을 하게 될 것 같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2011 노벨문학상 발표] 고은 시인, 자택서 두문불출

    6일 오후 8시 경기 안성시 공도읍 마정리. 고은(78) 시인의 자택 앞에 모여 있던 마을 주민들은 고 시인이 노벨 문학상 수상에 실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주민 양기철(53)씨는 “수상 결과가 나오기 1시간 전에 (고은) 선생님 집에 들렀는데 차분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계셨다.”면서 “올해는 꼭 좋은 소식을 기대했는데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고 시인은 언론의 취재 요청을 모두 거절한 채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고 시인은 2005년부터 해마다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돼 왔다. 하지만 올해 문학상이 스웨덴에 돌아가면서 한국 문학은 또다시 내년을 기약하게 됐다. 문단 안팎에서는 한국 문학 세계화의 고질적인 걸림돌인 번역 문제에 국가가 좀 더 체계적으로 신경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주연 한국문학번역원장은 “번역원이 올해 겨우 출범 10주년을 맞는 등 한국 문학은 이제야 세계 문학 시장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며 “이런 형편에서 고은 선생이 노벨상 후보로 거론된다는 점만으로도 사실 대단한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문학번역원은 지금까지 28개 언어권에서 486종의 출간을 지원했다. 1945년 무렵부터 2만여종의 작품을 해외에 출간한 일본에 비하면 걸음마 단계다. 김종회 한국문학평론가협회장은 최근 해외에서 큰 화제를 모은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에서 노벨상 수상 가능성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외국에서 우리 소설의 우수성을 인정받으려면 한국적인 부분과 함께 인류의 보편적 정서를 동시에 담아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효환 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은 “한국 문학이 세계 문학의 일원으로 위상이 높아진 데는 고은 시인의 역할이 컸다.”면서도 “앞으로 고 시인만을 바라볼 게 아니라 깊이 있는 텍스트의 생산, 더욱 체계적인 번역, 세계문학과의 면밀한 교류 등 저변 확대 노력이 절실하다.”고 주문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박명재 세상 추임새] “그는 내 우상이었다”

    [박명재 세상 추임새] “그는 내 우상이었다”

    한국 야구계의 전설 최동원 투수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 젊은 나이라 참 애석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그런데 최동원 선수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나에게 퍽 감동을 주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최동원 투수와 쌍벽을 이루며 라이벌로 불렸던 선동열 전 감독이 “최동원 선배는 라이벌이 아니라 존경했던 나의 우상이었다.”고 한 회고의 말이었다. 영웅이 영웅을 알아본다더니, 선동열 전 감독의 그 말은 선 전 감독을 참으로 돋보이게 하는 성숙된 인간미와 함께 최동원 선수에 대한 더 이상의 평가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다. 최동원 투수가 한국 야구사상 불멸의 뛰어난 투수 운운하는 그 누구의 백 마디 말이나 평가보다 선 전 감독의 이 한마디만큼 최동원 투수를 더 높이 평가할 수 없다. 비록, 두 사람의 영웅은 나란히 있을 수 없다(Two heroes can not stand together)는 영국 속담이 있지만, 우리는 선 전 감독의 한마디로 한국 야구사에 아름다운 두 영웅을 지니게 되었다. 우리 언론들은 최 선수가 살아 있을 때, 최 선수와 선 선수 중 누가 더 뛰어나고 최고의 선수인가를 흥미진진하게 비교하고 분석·보도하여 나 자신도 과연 두 선수 중 어느 선수가 좀 더 우수한지 하는 궁금증과 호기심이 없지 않았고, 많은 국민들 또한 그러하였으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평생의 라이벌이자 비교의 대상이 되었던 최 선수의 죽음 앞에서 과연 선동열 전 감독이 어떻게 그를 평가할 것인가 하는 것이 적지 않은 나의 관심 대상이었다. 그런데 선 전 감독의 “그는 내 라이벌이 아닌 우상이며 롤모델이었다.”는 고백을 보면서 참으로 아름답고 감동에 젖어 가슴이 찡하였다. 서로를 헐뜯고 비난하고 깎아내리는 이 각박한 세상에, 치열한 경쟁 속에 승자만이 살아남는 스포츠 세계에 이처럼 상대에 대한 가식 없는 존경과 평가를 한 성숙된 모습이 너무 돋보이고 가상스러웠다. 선 전 감독의 말에 이처럼 감동하고 감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주위에, 특히 정치판에 경쟁자로 살아왔던 사람이 유명을 달리하는 경우, 선 전 감독처럼 고인을 우상과 존경의 대상이었다고 술회한 사람을 일찍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죽음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죽음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죽음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도 정치의 라이벌이었던 사람들의 정치적 수사가 있었을지언정 어느 누구도 선 전 감독같이 “그는 나의 존경하는 우상이었고 롤모델이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왜 일까. 첫째는 죽은 자가 존경과 모델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자기 흠결이 가장 큰 원인일 수 있고, 둘째는 죽음 앞에서도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덜 성숙한 오만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한국 정치의 불행과 미성숙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후세 정치인과 국민들에게 결코 존경받는 우상이 되지 못하는 앞서간 정치지도자들, 그리고 그들의 순기능과 긍정적인 면에 대하여 애써 외면하고 폄하하려는 속 좁은 정치인들, 이러한 악순환 속에 꼭 있어야 할, 꼭 필요한 우리의 정치적 우상들은 모두 동굴 속으로 유폐되고 만다. 오늘날 스포츠계와 연예계에 아이돌 같은 일부 우상이 존재하나 학계와 정치계, 경제·사회·문화 분야에는 선뜻 본받고 싶고 따르며 존경하는 우상과 롤모델이 잘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영웅이나 우상을 필요로 하지 않는 세상이라 하지만 적어도 내가 가는 길에, 내가 전공하는 분야에 존경하는 롤모델만큼은 꼭 필요한 세상이다. 우리 각자가 자기 분야에 존경받는 롤모델과 우상이 되고, 뒤따르는 사람들 또한 진정 닮고 싶고 본받고 싶은 사람이었다고 고백하는 겸양과 성숙의 아름다운 사회, 건강한 사회가 아쉽고 절실하다는 이야기다. 죽은 최동원과 살아 있는 선동열을 통하여 우리는 이 두 가지 표본을 동시에 볼 수 있었다. 스포츠 세계의 두 우상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고인이여 영면하라, 산자여 더욱 빛나라. CHA의과학대 총장
  • ‘2011 아시아 편집자 펠로십’ 출판 한류 말하다

    ‘2011 아시아 편집자 펠로십’ 출판 한류 말하다

    “태국 사람들은 한 해에 고작 9줄을 읽는다는 통계가 있는데 해리포터와 한류가 태국을 바꿔놓았다. 6년 전부터 한국에서 수입된 학습만화 ‘살아남기’(아이세움 펴냄) 시리즈는 해리포터 이후 태국 출판계의 두 번째 혁명이라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난미북스의 킴 콘자팃와타나) “중국도 여성 독자의 비중이 큰데 남인숙의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는 100만부 넘게 팔렸다. 한국 책의 표지 디자인과 인쇄, 색깔 등이 예뻐 중국 독자들이 매력을 느낀다.”(차이나 사우스 부키 컬처 미디어의 얄란 왕) ●패션·라이프스타일 책 인기 19~23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서교호텔과 경기 파주출판도시 등에서 열린 ‘2011 아시아 편집자 펠로십’에 참가한 10개국의 출판인 14명은 “책을 통해 한국의 문화를 알 수 있게 됐고, 한국에는 뛰어나고 좋은 책이 많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출판인회의가 연 이번 행사는 ‘한류 시대의 출판:도전과 기회’란 주제로 이루어졌다. 아시아 각국에서 인기있는 한국 출판물은 학습만화, 패션, 라이프스타일, 교육 관련 책이었다. 일본 다이아몬드 출판사의 에이지 미타치는 “한국 가수나 영화배우들이 낸 책과 영화 관련 책, 그리고 정다연씨의 ‘몸짱 다이어트’가 큰 인기를 끌었다.”고 전했다. 인도네시아 PT 엘렉스 미디어의 이다 바구스도 “화장법을 설명한 만화인 ‘판타스틱 코스메틱’(학산문화사 펴냄)이 무척 인기가 높아 2권이 언제 나오느냐는 요구가 빗발치는데, 2권은 남성 화장법에 대한 책이라 수입을 미루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예림당의 ‘WHY’ 시리즈와 아이세움의 ‘살아남기’ 시리즈는 출판 한류를 주도하고 있는 학습만화다. ‘살아남기’ 시리즈는 과학상식을 담은 만화로 2001년 ‘무인도에서 살아남기’가 최초 출간된 이래 29개국에 수출되어 국내에서 1000만부, 해외에서 1000만부가 팔렸다. 두 학습만화는 국내뿐 아니라 아시아 시장에서 막상막하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중국 광서문화미디어그룹의 클레어 멍은 “‘WHY’ 시리즈를 출간했는데 지식 설명과 만화가 그렇게 잘 어우러질 수가 없다.”며 “중국 작가들은 따라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또 어린 소녀들에게 화장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마이 워너비 메이크업’(조선앤북 펴냄)이란 책도 인기가 높다며, 이런 책이 중국인들이 원하는 책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예쁘고 보기 좋은 데다 따라하기 쉬운 책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중국에서는 알지 못했다.”며 “문화적 시각에 공통점이 있어 한국의 라이프스타일 책이 중국에서 더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교육열 높은 타이완서 교재 불티 타이완의 유라시안 출판그룹의 필 첸은 “한국과 타이완은 유교란 공통점이 있는 데다 부모의 교육열이 높은 것도 비슷해서 한국의 교육 관련 도서가 인기를 끌고 있다.”며 “지금은 한류가 독특함과 차별성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앞으로는 문화적 공통점으로 한류를 지속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제·경영서 수출은 어려워 한계 만화나 실용서적과 비교하면 번역이 어려워 수출에 어려움을 겪는 문학은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계기로 새롭게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 한국 출판사들은 해외 유명 작가들에게 고액의 선인세를 지불하지만, 외국에서는 국내 작가에게 선인세 지불을 꺼리는 경우가 많은 것도 판권 계약에 애로사항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아시아 편집자들은 김영하, 한강 등 젊은 소설가의 동시대 문학에 대한 시장 반응이 좋다며 낙관했다. 특히 아시아 독자들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삶을 사는지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필 첸은 “10년 전 김정현의 ‘아버지’를 출간하고 이어 신경숙 작품을 냈는데 공통으로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이 있으면 인기를 얻는다.”고 말했다. 출판 한류가 주로 실용서적 위주로 이뤄지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웅진리더스북의 박희연 편집장은 “지식의 흐름은 위에서 아래로 이뤄지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지는 않는다.”며 “특히 경제나 경영관련 서적은 수출이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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