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숙식
    2026-07-04
    검색기록 지우기
  • 순조
    2026-07-04
    검색기록 지우기
  • 하천
    2026-07-0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867
  • 이언주 “총선전 한국당과 함께”…원유철 “꽃가마 언제 태워드릴지”

    이언주 “총선전 한국당과 함께”…원유철 “꽃가마 언제 태워드릴지”

    바른미래당 의원총회에서 문전박대를 당했던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이 19일 “총선 전 자유한국당과 함께 한다”며 내년 4월 총선 이전에 한국당에 입당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의원은 이날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자유우파 필승대전략’ 출판기념회 대담에서 저자인 정치평론가 고성국 씨가 한국당 입당 가능성을 묻자 “확실한 것은 우리는 결국 총선 전에 함께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한국당에서 오라고 해야 내가 가는 것”이라면서 “저는 가능하면 (바른미래당의) 다른 사람들도 같이 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동석한 원유철 한국당 의원은 “이 의원은 한국당에 꼭 필요할 뿐 아니라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분”이라면서 “그런 차원에서 꽃가마를 언제 태워드릴지 고민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앞서 이 의원은 지난달 20일 유튜브 채널 ‘고성국TV’에 출연해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에게 “창원에서 숙식하는 것을 보면 정말 찌질하다”면서 “창원은 문재인 정부 심판선거를 해야 해서 거기에 힘을 보태야 하는데 몇 퍼센트 받으려고 후보를 내고 그렇게 하는 것은 훼방 놓는 것 밖에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후 당 윤리위원회에서 지난 5일 ‘당원권 1년 정지’ 징계를 받고 탈당설이 제기됐다. 당원권 정지는 ‘제명’ 다음으로 높은 수위의 징계에 해당된다. 당원권이 1년간 정지되면서 이 의원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당내 공천을 받기 어려워졌다. 이 의원은 현재 바른미래당 경기 광명을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다.이 의원은 지난 18일 당원권이 정지돼 의결권이 없다는 이유로 바른미래당의 의원총회에 참석하는 과정에서 당직자들부터 제지를 당하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 이날 의총은 선거제 개편안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법안의 패스트트랙 지정 여부를 놓고 열린 자리였다. 한편 이날 이 의원의 ‘한국당에 다른 사람들도 같이 가자’는 발언에 대해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페이스북 글에서 “이제는 이 의원을 바른미래당에서 내보낼 시간이 된 것 같다”면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갔으면 좋겠다고 하셨지만 그럴 사람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시효 지났다고 빼고 장애 있다고 깎고…법원서 반 토막 난 ‘장애인 체불임금’

    15년 노예처럼 착취당한 지적장애 모자 10년치 임금만 인정… 그마저 40% 깎여 “장기간 학대당한 피해자 권리 제한당해” “기회는 평등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던 대통령의 말도 장애인에게는 해당하지 않나 봅니다.” 영업주에게서 학대를 받으며 임금체불을 당한 피해 장애인들과 관련 단체들이 18일 민법 임금체불 소멸시효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2014년 전남 신안 염전노예 사건 이후 장애인 노동력 착취 사건이 잇따라 불거지며 큰 논란이 됐다. 하지만 장기간 사각지대에 놓였던 많은 장애인들은 법적 소멸시효 때문에 체불임금을 다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적장애 2급 황모(65)씨는 남편과 사별한 뒤 친척들에 의해 지적장애 아들과 함께 공장에 맡겨졌다. 이들 모자는 충남 당진의 한 과자 공장에서 2001년부터 2016년까지 15년간 일했지만 임금 한 푼 받지 못했다. 공장주가 숙식을 제공한다는 이유로 임금을 착취하고, 모자의 장애인 연금도 빼돌렸다. 장애인 단체들의 개입으로 이 사건이 수면 위에 드러난 이후 영업주는 2017년 재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밀린 임금을 돌려받지 못한 모자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지난 3월 법원은 모자가 받았어야 하는 15년치 임금 각각 3억 8000여만원, 3억 5000여만원(도시일용노동 시중노임 기준) 중에서 소송을 제기한 2018년 기준으로 최근 10년(2008~2016년)치만 인정했다. 가해자 보호를 위해 체불임금 보전을 최대 10년까지만 인정하는 민법의 소멸시효 조항 때문이다. 게다가 법원은 “지적 장애인 근로자임을 감안해 배상해야 하는 노동임금을 줄여 달라”는 공장주 측 주장을 받아들여 이 중에서도 60%만 인정했다. 결국 모자의 15년 노동 대가는 원래 임금의 3분의1 수준인 각각 1억 5000여만원, 1억 4000여만원으로 결론 났다. 이날 황씨 모자와 관련 단체들은 “소멸시효를 다루는 민법 제162조 제1항, 제166조 제1항, 근로기준법 제49조가 장애인 학대 사건으로 인한 청구에도 적용된다면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청구서를 제출했다. 황씨 모자의 민사 소송을 함께한 유승희 변호사는 헌재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가해자 보호를 위해 예외적으로 피해자 권리를 제한하는 조항인 소멸시효 제도가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인 장애인 학대 사건에도 적용돼 피해자들의 권리구제를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정규 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소장(변호사)은 “장기간 장애인 학대 사건에까지 적용되는 소멸시효에 대한 헌법적 검토가 없다면 이런 끔찍한 사건이 되풀이될 것”이라면서 “또 다른 장애인 착취가 이뤄지지 않도록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수십년간 노예처럼 착취당했는데 임금은 10년치 뿐”

    “수십년간 노예처럼 착취당했는데 임금은 10년치 뿐”

    노동착취 사건 피해자, 헌법소원민법상 체불임금은 최대 10년만 보존“기회는 평등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던 대통령의 말도 장애인에게는 해당하지 않나 봅니다.” 영업주에게서 학대를 받으며 임금체불을 당한 피해 장애인들과 관련 단체들이 18일 민법 임금체불 소멸시효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2014년 전남 신안 염전노예 사건 이후 장애인 노동력 착취 사건이 잇따라 불거지며 큰 논란이 됐다. 하지만 장기간 사각지대에 놓였던 많은 장애인들은 법적 소멸시효 때문에 체불임금을 다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적장애 2급 황모(65)씨는 남편과 사별한 뒤 친척들에 의해 지적장애 아들과 함께 공장에 맡겨졌다. 이들 모자는 충남 당진의 한 과자 공장에서 2001년부터 2016년까지 15년간 일했지만 임금 한 푼 받지 못했다. 공장주가 숙식을 제공한다는 이유로 임금을 착취하고, 모자의 장애인 연금도 빼돌렸다. 장애인 단체들의 개입으로 이 사건이 수면 위에 드러난 이후 영업주는 2017년 재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밀린 임금을 돌려받지 못한 모자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지난 3월 법원은 모자가 받았어야 하는 15년치 임금 각각 3억 8000여만원, 3억 5000여만원(도시일용노동 시중노임 기준) 중에서 소송을 제기한 2018년 기준으로 최근 10년(2008~2016년)치만 인정했다. 가해자 보호를 위해 체불임금 보전을 최대 10년까지만 인정하는 민법의 소멸시효 조항 때문이다. 게다가 법원은 “지적 장애인 근로자임을 감안해 배상해야 하는 노동임금을 줄여 달라”는 공장주 측 주장을 받아들여 이 중에서도 60%만 인정했다. 결국 모자의 15년 노동 대가는 원래 임금의 3분의1 수준인 각각 1억 5000여만원, 1억 4000여만원으로 결론 났다. 이날 황씨 모자와 관련 단체들은 “소멸시효를 다루는 민법 제162조 제1항, 제166조 제1항, 근로기준법 제49조가 장애인 학대 사건으로 인한 청구에도 적용된다면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청구서를 제출했다. 황씨 모자의 민사 소송을 함께한 유승희 변호사는 헌재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가해자 보호를 위해 예외적으로 피해자 권리를 제한하는 조항인 소멸시효 제도가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인 장애인 학대 사건에도 적용돼 피해자들의 권리구제를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정규 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소장(변호사)은 “장기간 장애인 학대 사건에까지 적용되는 소멸시효에 대한 헌법적 검토가 없다면 이런 끔찍한 사건이 되풀이될 것”이라면서 “또 다른 장애인 착취가 이뤄지지 않도록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성남시 다문화가족 친정 부모님 초청 사업 편다

    성남지역에 다문화가정을 꾸린 결혼이민자들이 모국의 부모님을 오는 9월 한국으로 오게 해 2박 3일을 함께 보낼 수 있게 된다. 경기 성남시는 사업비 1750만원을 들여 ‘다문화가족 친정 부모님 초청 사업’을 편다고 13일 밝혔다. 다섯가족을 선정해 부모님의 왕복 항공료 최대 150만원과 성남지역 관광, 2박 3일간 숙식을 지원하며 오는 24일까지 대상자의 신청을 받는다. 결혼 기간과 성남시 거주 기간이 3년 이상(3월 31일 기준)이면서 이 기간에 모국 또는 해외에 간 적이 없는 결혼이민자가 신청할 수 있다. 각 동 행정복지센터나 성남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성남시외국인주민복지지원센터에 신청서, 자기소개서, 가족관계등록부 등을 내면 된다. 시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오랫동안 모국 부모를 만나지 못한 결혼이민자를 우선 선정해 오는 5월 19일 지구촌 어울림 축제 때 초청 증서를 준다. 초청받은 부모는 오는 9월 6일부터 8일까지 성남시가 지원하는 숙소에 머물면서 사위 또는 며느리가 된 가족과 일정별 지역 관광, 환영식 등 한국문화 체험을 하게 된다. 성남시가 짠 일정을 마친 뒤 귀국은 각 가족이 희망하는 날에 이뤄진다. 시는 최근 10년간 결혼이민자의 모국 방문 지원 사업(62가족, 236명)을 펴다가 올해 처음 부모를 성남에 초청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이 두 가지 방식은 격년으로 번갈아 시행된다. 성남지역에 정착해 다문화가정을 이룬 결혼이민자는 5702명이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이언주, 징계 내린 바른미래 향해 또 “찌질” “뒤끝작렬”

    이언주, 징계 내린 바른미래 향해 또 “찌질” “뒤끝작렬”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이 7일 자신에게 ‘1년 당원권 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린 소속당을 향해 “좌파 2중대”, “찌질”이라는 단어를 쓰며 강경한 대응을 보였다. 그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보수야당으로 분류되는 바른미래당이 자꾸 좌파2중대 정당으로 전락해 민심과 정치지형을 왜곡하는 것이 안타깝다”면서 비난을 이어갔다.“응원을 보내주신 소상공인연합회 분들께 감사드린다”며 글을 시작한 그는 “어찌 소상공인들이 정권의 탄압을 받는 지경까지 왔나 분통이 터지지만 잘 견뎌냈지 않습니까? 모두들 힘내십시오”라며 소상공인을 응원하는 듯한 내용으로 운을 뗐다. 이어 “바른미래당 대표를 비롯한 문재인정권 2중대 파들이 헌법기관이자 공인인 제가 공적 이유로 공인을 비판하는 걸 견디지 못하고 있다”며 “기득권에 연연하지 말고 나라를 위해 창원 선거(4·3보궐선거)에서 단일대오로 싸워야 하는데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 등을 위해 보수표를 분열시키고, 국고보조금까지 펑펑쓰며 숙식하는 손학규 대표의 행태가 찌질하다고 했는데 문제가 있습니까”라고 꼬집었다. “최초 창당시 통합을 주도하고 선언문을 기안할 때 관여한 사람으로서 이 당은 분명 보수정당으로 출범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다른 얘기가 나온다“면서 ”심지어는 반대파숙청법(공수처)과 좌파연대 선거법의 패스트트랙까지 야합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 목소리가 제거될 때 이 당이 과연 어디로 가겠는가, 그래서 나라가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도 했다. 이 의원은 “산자위 법안소위위원장 자리에서 밀어내는 것도 결국 문재인정권의 반시장·반기업 사회주의정책 반대에 앞장서온 저를 밀어내고 적당한 2중대 협상을 하기 위함인 듯해서 걱정”이라며 “결과적으로 제 의결권을 박탈하고 소위원장에서 밀어내는 것은 문재인정권의 폭주에 대한 견제를 방해하는데 일시적으로 도움이 되긴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상임위를 원내대표 마음대로 변경할수 있어도 해당의원에게 의사를 묻는 것이 관례”라며 “상임위까지 멋대로 바꾸는 걸 보니 그 찌질함의 끝이 어딘지 참으로 한심하다. 뒤끝작렬”이라고 비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언주, 당원권 정지에 “손발 묶어도 옳은 길 가겠다”

    이언주, 당원권 정지에 “손발 묶어도 옳은 길 가겠다”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은 5일 윤리위원회로부터 당원권 1년 정지 징계를 받은 사실과 관련해 “옳은 길을 가겠다”고 밝혔다. 당이 사실상 ‘해당행위’ 판단을 내렸음에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겠다는 뜻으로 비춰진다. 이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것이 바른미래당의 현실”이라며 “국민이 보내는 실망과 준엄한 경고를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입을 막고 손발을 묶어도 저는 제가 생각하는 국민을 위한 옳은 길을 가겠다”고 썼다. 바른미래당 윤리위원회는 이날 손학규 대표에게 “찌질하다”, “벽창호다”라는 비하 발언을 한 이 의원에게 당원권 정지 1년이라는 징계처분을 내렸다. 중앙당 윤리위는 이날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3시간 걸친 회의 끝에 이같이 결정했다. 당원권 정지는 ‘제명’ 다음으로 높은 수위의 징계로, 윤리위는 오는 8일 열리는 최고위원회에 이런 결정을 통보할 예정이다. 당원권이 1년간 정지되면서 이 의원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바른미래당으로부터 공천을 받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 의원은 현재 바른미래당 경기 광명을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다. 송태호 바른미래당 윤리위원장은 회의가 끝난 후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이 의원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고 한 적이 없다”며 “당과 당지도부, 당원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발언들을 해당 행위로 봤다”고 설명했다. 앞서 이 의원은 지난달 20일 유튜브 채널 ‘고성국TV’에 출연해 경남 창원에서 숙식하며 4·3 국회의원 보궐선거 지원에 진력한 손 대표를 향해 “정말 찌질하다”, “완전히 벽창호다”라는 독설을 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이언주 “패스트트랙 막을 때까지 탈당 없어”

    이언주 “패스트트랙 막을 때까지 탈당 없어”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이 2일 자신과 관련한 ‘탈당설’에 대해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막아낼 때까지 저는 끝까지 안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의원은 이날 BBS 라디오 ‘이상휘의 아침저널’과 인터뷰에서 “저를 포함해서 일부 의원들이 (패스트트랙 당론 추인을) 강경하게 막아서고 있는데 여기서 제가 빠지면 사실상 지도부가 강행 처리해서 통과 될지도 모른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의원은 “지금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법과 선거법을 묶어서 강행 처리하겠다는건데 이 때문에 당내에 굉장히 큰 분란이 있는 상태”라며 “원래 당 지도부도 반대를 강하게 하다가 선거법 때문에 허물어져서 이제는 이걸 같이 하자고 하는데 우리가 (더불어민주당) 2중대 자격으로 어떻게 정치를 하겠나”라고 강조했다. 최근 창원에 머물며 4·3 보궐선거 유세에 집중하고 있는 손학규 대표를 향해 ‘찌질하다’고 했던 이 의원은 이날도 수위 높은 발언을 쏟아냈다. 이 의원은 “사실 제가 볼 때 (이재환 후보 지지율이) 10%는 고사하고 5%도 쉽지 않다고 보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손 대표는) 누굴 위해서 후보를 냈고 또 거기서 그렇게 숙식을 하며 뛸 짓인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의원은 “손 대표는 10%를 얻는다고 했는데 만약 그 정도도 얻지 못하고 (지지율이) 희미하게 나온다면 이건 국민적 명령에 역행한 것이기 때문에 본인이 정치적 징계를 받아야 한다”며 “물러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근홍 기자 lkh2011@seoul.co.kr
  • 장미사진관, 백세건강원… 시간이 멈춘 마을

    장미사진관, 백세건강원… 시간이 멈춘 마을

    속수무책으로 빠른 세상에 현기증이 날 때가 있습니다. 며칠 전에 넘긴 것 같은데 달력 한 장을 또 넘겨야 할 때, 하루만 뉴스를 안 봐도 대화에 끼기 힘들 때, 1년 전 유행가를 듣는 것도 겸연쩍을 때. 그럴 때는 빠름과 정반대에 있는 어딘가로 떠나보는 게 어떨까요. 충남 서천의 판교마을은 모든 것이 느린 마을입니다. 마을의 또 다른 이름이 ‘시간이 멈춘 마을’이니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겠지요. 마을은 1970년대 어디쯤 머물러 있는 듯합니다. 오래된 골목 따라 녹슨 철문, 빛바랜 간판, 간판 속 예스러운 글씨가 이어집니다. 간판은 마을에 극장, 사진관, 주조장이 있었음을 일러 줍니다. 해묵은 간판이 말합니다. 모든 것이 변하는 세상에서 아직 변하지 않은 것도 이렇게나 많다고요.키 낮은 집들, 미용실 아랫목에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할머니들, 낡은 자전거를 탄 어르신 등 마을의 첫인상은 여느 시골 마을과 다르지 않다. 정겹고 소박하지만 낡고 허름하다. 하나 이곳은 서천에서 손꼽히게 잘나가던 마을이었다. ●1930년대엔 인구 8000명 넘었던 큰 마을 1930년, 마을 남쪽에 장항선 판교역이 들어섰고 큰 우시장이 열리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마을 인구는 8000명을 넘었다. 우시장이 열리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어깨가 부딪힐 정도였다고. 판교마을의 시곗바늘이 느려진 건 일대가 철도시설공단 부지로 묶이며 건축 제한에 걸리면서부터다. 쑥쑥 크던 마을은 개발이 어려워졌고 1980년대에는 우시장마저 사라졌다. 지금 마을에 남은 이들은 480명 남짓.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나고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젊은이가 떠난 곳에 카메라를 들고 찾아오는 젊은이가 는다. 개발되지 못한 마을은 옛 모습을 간직했다는 이유로 주목받는다. 마을이 입소문을 타는 건 예스러운 분위기 때문이다. 마을 곳곳에 남은 수십 년 된 간판은 과거로 순간 이동을 한 듯, 1970년대를 재현한 영화 세트장을 걷는 듯 특별한 감흥을 선사한다.판교마을 여행은 마을의 옛이야기를 읽어 가는 일이다. 간판에 깃든 이야기를 꺼내어 먼지를 털고 그때를 되짚어 보는 일이다. 수십 년 전 세월을 헤아리느라, 간판에 얽힌 사연을 상상하느라 걸음이 느려지는 것도 당연하다. 마을은 1시간이면 둘러볼 정도로 아담하다. 관광지가 아닌지라 이정표는 없지만, 오성초등학교를 기점으로 마을 중앙에 난 도로를 따라가면 이 골목과도 저 골목과도 이어진다. 판교역이나 판교면행정복지센터에서 스탬프 투어 지도를 챙기는 것도 방법이다. 지도에 가볼 만한 곳이 잘 정리돼 있다. 마을 어귀에 있는 농협 창고는 출발지로 적당하다. 때밀이로 벽을 박박 문지른 듯 외벽은 군데군데 페인트칠이 벗겨졌다. 빨간 철문 위에는 ‘협동으로 생산하고 공동으로 판매하자’는 표어가 남아 있다. 표어는 마을 농민들끼리 힘을 모아 잘살아 보자는 의지의 표명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지금쯤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젊은이 핫플레이스 된 옛 풍경 간직한 동네 마을 오른쪽 끄트머리, 판교철공소 맞은편 건물은 ‘공관’으로 불리던 극장이다. 새마을운동 당시에 세워졌으니 50세를 바라보는 극장이다. 극장이 드물던 시절 부여, 보령, 서천 등 인근 주민들도 영화를 보러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어둑한 건물에 영사기가 돌아가고, 관객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극장 문을 열었으리라. 낡은 건물이 극장이었음을 알려주는 단서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같은 1960~70년대 흥행작 포스터와 매표소 창구다. 창구에 새겨진 영화 관람료는 일반 500원, 청소년 200원. 지금의 20분의1 가격이다.공관 건너편, 판교농협하나로마트 옆 골목에 담벼락 벽화가 있다. 사람 반, 소 반, 판교마을에서 열린 우시장을 그린 것이다. 벽화에서 북서쪽 길을 따라가면 파란색 슬레이트 지붕을 인 적산가옥이 나온다. 장미사진관,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자 카메라를 든 젊은이들이 인증샷을 많이 남기는 곳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동면(판교면의 당시 이름) 주민 5500여명을 쥐락펴락한 일본 부호 11명이 살았다. 광복 후에는 우시장에 온 사람들이 묵는 여관이었다가 그 후 반쪽은 쌀가게, 반쪽은 사진관이 됐다. 간판에 ‘쌀, 잡곡 일절’, ‘사진관’ 글씨가 또렷하다. 드르륵, 미닫이문을 수시로 여닫았을 마을 사람들을 상상해 본다. 쌀 한 됫박을 사서 밥을 안치고 기억하고 싶은 날을 사진으로 남겼을 순한 사람들을 말이다.장미사진관 맞은편의 백세건강원은 낡고 빛바랜 것으로 가득한 마을에서도 으뜸이다. 지붕 슬레이트는 일부가 떨어져 나갔고 벽에 덧댄 나무판자 역시 성한 데가 없다. 건강원 건물은 한때 통닭집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왼쪽 창에 붕어즙, 흑염소 중탕 등 각종 건강식품을, 오른쪽 창에 ‘백숙, 통닭’ 글씨와 ‘근육질’의 닭을 그려 넣었다. 판교마을 여정의 종착지는 마을 북쪽의 주조장이다. ‘동일주조장’ 간판 아래 재미난 숫자가 있다. ‘TEL 45.’ 서천 지역 번호가 041이 아니라 45이던 시절, 그러니까 1996년에 지역 번호가 세 자리로 바뀌기 전에 생긴 주조장이다. 자료에 따르면 건물은 1974년 이전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3대째 가업을 이은 주조장은 주민들에게 술을 공급하며 팍팍한 일상을 달래줬다. 쌀이 귀하던 1970년대에 주조장은 밀가루로 막걸리를 빚었다. 덕분에 주민들은 술 마시는 낙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주조장의 시간은 20여년 전에 멈춰 있다. 열린 창 사이로 보이는 달력은 2000년 12월. 주조장은 2000년에 문을 닫았다. 문을 닫았다고 과거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창 사이로 달력 날짜를 짚어볼 때, 마을 사람들이 주조장 앞을 지날 때, 막걸리에 하루의 고단함을 털어버리던 날이 되살아날 때, 주조장은 모두에게 확실한 기억이자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 ‘변치 않음’이 판교마을을 지킨다. 1590년대 세워진 문헌서원…4000번을 매만진 한산모시●가정 이곡·목은 이색 정신 깃든 서원 문헌서원은 고려의 대학자 가정 이곡 선생과 목은 이색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는 사원이다. 서원이 세워진 건 1590년대, 조선 선조 때다. 19세기에는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됐으나 100여년 뒤 유림들에 의해 지금 자리에 복원됐다. 문헌서원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잡아채는 건 서원을 둘러싼 언덕의 솔숲이다. 대나무처럼 꼿꼿한 소나무 군락이 서원을 에워싸 청신한 기운이 감돈다. 서원은 크게 사당, 강당, 재로 나뉜다. 사당은 선현에 제사 지내는 곳, 강당은 원생들이 공부하는 곳, 재는 원생들이 숙식하는 곳이다.●유생들 모여 학문 논하고 수양하던 진수당 홍살문과 진수문을 지나 마주하는 진수당은 강당에 속한다. 유생들이 모여 학문을 논하고 자신을 수양하던 강당이다. 훌륭한 건물은 머무는 사람을 담아야 하는 법. 진수당의 건축 양식은 선비 정신을 반영했다. 복잡한 포나 장식을 피하고 단청 색을 줄여 독서하고 사유하기 마침한 공간이 됐다. 진수당을 마주한 방향에서 서쪽으로 가면 이색 신도비, 북으로 몇 걸음만 더 오르면 목은이색선생영당이다. 영당은 목은 이색 선생의 초상(보물 제1215호)을 모신다. 바로 옆 아름드리 배롱나무는 영당의 상징이라 할 만하다. 늦여름 배롱나무에 진분홍 꽃이 환히 피면 한옥과 꽃의 어울림이 아름답겠다.●1500년 역사 자랑하는 대표 공예품 ‘모시’ 모시 풀이 처음 발견된 서천군 한산면 건지산 기슭에 한산모시관이 있다. 한산모시관은 한산모시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전통의 맥을 잇는 공간이다. 한산모시는 1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산의 대표 공예품. 한산모시의 또 다른 이름은 ‘가늘 세(細)’ 자를 써서 한산 세모시, 올이 가늘고 촘촘해 붙은 이름이다. 얼마나 가늘면 ‘밥그릇에 모시 한 필이 다 들어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모시짜기 역사부터 제작까지… 한산모시관 한산모시관은 한산모시 전시관, 전통공방, 한산모시 홍보관 등으로 나뉜다. 가장 먼저 들러야 할 곳은 ㄱ자 모양의 전통공방이다. 공방에는 한산모시짜기 기능보유자 방연옥 장인 외 여러 장인이 머물며 모시 짜기 시연을 한다. 눈앞에서 장인이 개량 베틀을 돌리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다. 베틀 주변에 가습기를 몇 대씩 놓고 비닐 천막을 친 건 건조하면 날실이 벌어져 끊어지기 때문이란다. 전시관은 한산모시의 역사, 제작 과정과 사용 도구, 모시로 만든 옷 등 한산모시에 관한 모든 것을 보여 준다. 한산모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모시 한 필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고에 절로 감탄하게 된다. 수확한 모시풀로 모시의 원재료인 태모시 만들기, 이로 태모시를 쪼개 일정한 굵기로 만들기, 모시 올의 머리와 꼬리를 이어 모시실 만들기 등 베틀로 모시를 짜기 전의 과정만 일곱 가지에 이른다. 한국의 전통 여름 옷감 정도로만 여겼던 모시가, 4000번의 손길 끝에 태어나는 귀한 옷감으로 다시 보이는 순간이다. 글 이수린(유니에스 여행작가) 사진 권대홍(사진작가) ■여행수첩(지역번호 041) →가는 길 : 서울에서 자동차로 갈 경우 경부고속도로와 천안논산고속도로를 지나 서천공주고속도로를 이용한다. 서천공주고속도로 서부여IC교차로에서 ‘군산, 서천’ 방면으로 우회전한 뒤 대백제로를 따라간다. 수성교차로에서 ‘판교, 현암리’ 방면 좌회전 후 종판로를 따라가면 판교마을이다. →맛집 : 옛 판교역이 있던 자리에 판교음식특화촌이 들어서 식당이 모여 있다. 판교마을 내 삼성식당(951-5578)은 50년 가까이 된 냉면집이다. 메뉴는 단 세 가지로 물냉면, 비빔냉면, 왕만두다. 메밀면을 써서 쫄깃한 식감과 상큼한 육수의 궁합이 좋다. 서천특화시장 맞은편에 자리한 두레분식(953-4305)은 해물칼국수를 잘한다. 바로 앞 수산시장에서 사 온 생바지락이 푸짐하게 들어간다. →잘 곳 : 문헌전통호텔(953-5896)은 문헌서원 안에 자리한 한옥 호텔이다. 8개의 객실이 있으며 호텔 내 식당에서 정갈한 한정식 메뉴를 차려낸다. 휴모텔(952-0077)은 전 객실에서 서해가 보인다. 창밖 경치가 아름다울뿐더러 갯벌 체험이나 바다낚시도 즐길 수 있다.
  • “길고 긴 군악대 생활… 어머니는 함포탄에, 동생은 총탄에 목숨 잃어”

    “길고 긴 군악대 생활… 어머니는 함포탄에, 동생은 총탄에 목숨 잃어”

    6·25 한국전쟁 당시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이경종(85) 씨는 6·25 전쟁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500㎞를 매일 25㎞씩 20일간 걸어갔다.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도착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가 불허됐다. 결국 실종 군인의 군번을 부여받아 편법으로 입대했고 4년 동안 참전한 후 1954년 12월 5일 만기 제대했다. 1996년 7월 15일 이경종 씨는 큰아들 이규원 치과 원장과 함께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하 6·25 편찬위)를 창립해 199명의 참전 학생과 참전 스승(신봉순 대위)의 육성을 녹음하고, 흑백 참전 사진과 참전 관련 공문 등을 수집했다. 20년간 노력해 마침내 이규원 치과 원장(이경종 큰아들)은 인천 중구 용동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오른쪽 사진)을 세웠다. 6·25 편찬위(위원장 이규원 치과 원장)는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한 인천 학생 약 2500명과 참전 스승의 애국심을 기억하고, 전사한 인천 학생 208명과 스승 1명(심선택·1926년 10월 25일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졸업하고 해병 소위로 참전하여 1950년 11월 12일 24세 때 전사)을 추모하기 위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를 시리즈로 본지에 기고한다. 편집자 주■ 김탁수 인터뷰 일시 1997년 8월 11일 장소 인천학생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이규원치과 3층) 대담 김탁수(인천학도의용대 군악대 대원) 이경종(6·25 참전사 편찬위원) 이규원 치과원장(이경종 큰아들)6·25 사변과 어머니의 죽음 1950년 5월 3일 6년제 공립 인천상업중학교를 졸업하였던 그해, 6월 25일 사변이 터졌다. 내가 당시 살던 곳은 금곡동이었으며 10남매의 장남인 나는 부모님을 모시고 동생들과 같이 살았다. 1950년 9월 15일 UN군 전함들은 인천 시내를 향해 포격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그 함포탄은 우리 집 근방에도 날아왔으며 급기야는 우리 집에도 함포탄이 떨어져 그때 피란을 안 가시고 홀로 집을 지키시던 어머니께서 그 함포탄 파편 때문에 돌아가셨다. 인천학도의용대 군악대 창설 이때 나는 중학교를 졸업했지만, 나의 모교 인천상업중학교 밴드부가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조직된 인천학도의용대의 군악대로 창설되어서 나는 인천학도의용대 군악대원으로 9월 말일부터 활동하게 되었다. 그때 군악대는 인천학도의용대 지대 창립식에 동원되었으며 위문행사와 선무공작 등으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통일이 되는 줄 알았던 우리나라가 갑작스런 중공군의 한국전쟁 개입으로 또다시 시국은 술렁이기 시작하였다. 그때 들리는 소식은 중공군의 인해전술(人海戰術)과 겨울철로 접어들어 우리 국군의 전투력 부족으로 인하여 국군과 UN군은 날마다 밀리고 있다는 뉴스만 들리는 것이었다. 1950년 12월 18일 드디어 인천학도의용대가 부산을 향해 남하(南下)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군악대원들, 윈자호 수송선 타고 남하 1950년 12월 24일, 전황은 더 급박(急迫)하게 움직여 군에서 마련해준 윈자호라는 수송선으로 우리 군악대 25명과 인천학도의용대 여학생 대원 150여명은 같이 지금 인천역에 있는 파라다이스(오림포스)호텔에서 가까운 부두에서 부산을 향해 출항하였다. 3박 4일을 배 안에서만 지낸 우리들은 1950년 12월 27일 부산항 부두에 도착했다. 이날 축 늘어진 모습으로 부산부두에 올라선 우리들은 부산극장 옆에 있는 어느 큰 창고에 여학생들과 같이 묵고 있다가 동대신동에 있는 육군통신학교 부속 건물에 입주하게 되었다. 이렇게 잠자리는 해결이 되었는데 며칠 동안은 각자 가지고 간 돈으로 먹는 것은 해결하였지만 그 돈이 떨어지니까, 이제는 끼니를 때우는 것이 큰 문제가 되었다. 1951년 1월 초 그렇게 고생스럽게 부산 생활을 하던 중에 고향 인천은 또다시 북한 공산군에게 점령(占領)당하게 되었다.군악대원 모두 육군종합학교 군악병 입대 오갈 데가 없게 된 우리들에게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그는 당시 부산 동래에 있던 육군종합학교 심유권 소위였다. 그때 심유권 소위가 말하기를 “지금 육군종합학교에는 군악대가 없어서, 군악대가 필요한데 너희들 인천학도의용대 군악대는 갈 곳이 없으니까 숙식(宿食)이 해결되는 육군종합학교 군악대로 입대하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날이 1951년 1월 12일이었다. 그때쯤은 이미 고향 인천은 인민군에게 또다시 점령당해 돌아갈 수도 없어 군에 들어갈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육군종합학교에 입대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때 인천에서 수송선을 타고 같이 남하했던 여학생 대원 150여명은 육군통신학교에 계셨던 인천상업중학교 은사님이신 신봉순 교육대장님 배려로 부산육군통신학교에 그대로 남아 있게 되었다. 동래 육군종합학교에서의 군악대 생활 육군종합학교로 간 우리들은 10여일 간 간단한 제식훈련만 받고 1951년 1월 23일 자로 군번을 받았다. 정식으로 군번을 받고 군인이 되어 바로 육군종합학교 행사에 동원되어 군악대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때의 행사는 주로 장교후보생을 졸업시켜 소위로 임관시키는 임관식과 간부후보생 입교 행사였다. 당시는 전방에 장교가 부족해서였는지 매주 월요일에는 입교식이 있었으며 임관식은 토요일마다 있었다. 1951년 12월 육군종합학교는 전 부대가 부산에서 수송선을 타고 목포로 갔으며, 목포 송정리 후락산에 새터를 잡아 학교 명칭도 육군보병학교로 바뀌어 불리게 되었다. 광주 상무대에서 군악대 군악병 생활 목포 송정리 후락산에는 육군보병학교, 육군통신학교, 육군포병학교, 육군기갑학교, 77육군병원 등이 집단으로 주둔하였으며 이 5개 부대를 통틀어 상무대(尙武臺)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렇게 상무대는 육군의 교육을 총괄하는 기관으로 육군 교육총감부 직속하에 들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군악대의 명칭도 상무대 군악대로 바뀌었으며, 행사 범위가 커지면서 상무대 군악대의 바쁜 군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후 1955년 2월에 나는 상무대에서 서울 태릉에 있는 육군사관학교로 전속되었다. 그곳에서 2년 가까이 군악대 생활을 하다가 길고 긴 6년 8개월의 군 생활을 육사에서 마치게 되었다. 동생 김윤수, 무전기 찾아 나오다 전사 내 동생 김윤수(金潤洙·큰 사진 빨간 원안)는 1934년 5월 11일 용동에서 태어나서, 인천창영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 때 부산까지 걸어가서 1951년 1월 10일 육군통신병(군번 0240856)으로 자원입대하였다. 무선통신병으로 강원도 전투지역인 5사단 35연대에 배치되었다. 그때 오대산 누그미 전투에서 609무전기를 등에 지고 전투하며 전진하던 중에 적의 기습으로 갑작스런 후퇴로 잠깐 땅에 내려놓았던 무전기를 미처 간수하지 못하고 후퇴하여 후방에 와서 보니까 지휘관이 큰 소리로 “군에서 전투 중 통신병이 통신기재를 분실하면 즉결처분으로 총살이다!”라고 고함치니까 내 동생 김윤수는 다시 그 지역으로 가서 그 무전기를 찾아가지고 나오다가 적의 총탄에 맞고 전사했고, 유해는 그만 찾지 못하고, 무덤도 없이 동작동 국립 현충원 봉안관에 위패(6-7-118)로만 봉안되어 있다. 감사의 말과 남기고 싶은 말 이상이 내가 걸어온 중요한 줄거리이다. 중학생으로 자원입대하여 채 피지도 못하고 강원도 산골에서 외롭게 하늘나라로 간 내 동생 김윤수의 넋이 편안하게 잠들기를 빌 뿐이다. 무덤도 없는 동생의 행적을 글로나마 남기게 해주어 무겁던 내 마음을 다소나마 덜어 준 이경종규원 2부자(父子)에게 고마울 뿐이다. 글 사진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참전기 21회를 마치며 69년 전, 인천에 형과 아우가 살았었습니다. 해방이 된 지는 5년 만에, 정부 수립 3년 만에 국가 멸망의 위기가 닥쳐서 2형제는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형은 하인천부두에서 배를 타고, 동생은 인천축현국민학교를 출발하여 부산까지 20일간 걸어서 남하하여, 2형제는 부산에서 자원입대하였습니다. 동생은 중학교 3학년 16살로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는 어린 나이였지만 자원입대하여, 전사하였습니다. 중학교 3학년생으로 나라를 위하여 죽은 동생에 대한 형의 슬픔을 어찌 글로 표현할 수 가 있겠습니까? 조국과 고향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쳤던 김윤수는 이제 고향 인천에서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지만,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에 전사(戰死) 학생(學生)으로 기록합니다. 이규원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장
  • 바른미래 ‘손학규 비하’ 이언주 징계 내홍

    윤리위 내일 징계논의 전체회의 개최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의 손학규 대표 ‘비하 발언’을 놓고 당 내부에서 질타가 쏟아지는 등 내홍이 격화되는 모양새다. 바른미래당 정찬택 서울 영등포갑 지역위원장 등 7명은 27일 국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손 대표에 대한 이 의원의 반복되는 인격 모독과 비하 발언, 그리고 바른미래당에 대한 음해는 그동안의 당원 동지로서의 배려와 포용심의 한계를 넘어서게 한다”며 “모든 당원의 자존감에 깊은 상처를 내고 심지어 당의 존립을 뒤흔들었다”고 비판했다. 당 윤리위원회는 이들의 제소를 받아들여 29일 당사에서 이 의원 징계 논의를 위한 전체회의를 가질 예정이다. 이 의원은 지난 20일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손 대표가 창원에 숙식하는 것도 내가 보면 찌질하다”, “손 대표가 완전히 벽창호”라고 주장했다. 일부에서는 이 의원의 이 같은 행위가 사실상 당에서 자신을 제명해 주기를 바라는 의도로 보고 있다. 그간 이 의원이 사실상 자유한국당과 행보를 같이한 점을 미뤄 볼 때 제명은 한국당행을 앞당길 수 있는 명분이 되기 때문이다. 손 대표는 이날 오전 창원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를 마치고 기자들이 이 의원의 발언에 대해 묻자 “개인적 견해는 없다”면서도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또 이 의원의 제명 여부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바른미래당 지도부로서는 이 의원에 대해 제명 등 징계를 하면 그만큼 의석수가 줄어드는 데다 4·3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앞두고 당의 분열상을 보여 주는 것이기에 분을 참을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다. 이 의원 측 관계자는 윤리위 소집에 대해 “평소 소신을 말했던 것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이언주 “손학규 찌질하다” 발언에 바른미래당 징계 논의 착수

    이언주 “손학규 찌질하다” 발언에 바른미래당 징계 논의 착수

    경남 창원성산 4·3 국회의원 보궐선거 지원에 나선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를 향해 “찌질하다”고 말한 이언주 의원에 대해 당이 징계 논의에 착수했다. 이언주 의원은 원외 지역위원장과 당원들로부터 해당 행위로 제소를 당했다. 송태호 당 윤리위원장은 27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당에서 여론이 비등하니까 (징계) 논의를 해보려고 한다”면서 “그 동안 누적된 여러 가지 문제들도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이언주 의원은 지난 20일 유튜브 채널 ‘고성국TV’에 출연해 “손학규 대표가 창원에서 숙식하는 것을 보면 정말 찌질하다”, “완전히 벽창호다” 등 험담을 쏟아냈다. 또 창원성산 선거에 당력을 집중하는 것에 대해서도 “창원 같은 경우는 심판 선거를 해야 해서 거기에 힘을 보태야 하는데 몇 퍼센트 받으려고 그렇게 하는 것은 훼방 놓는 것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전날 당 소속 일부 의원들은 이언주 의원의 독설을 “해당 행위”라고 규정하며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임재훈 의원은 원내대책회의에서 “대표가 온 몸을 던져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찌질이’나 ‘벽창호’ 같은 발언을 하는 데 대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당 역시 이례적으로 공식 논평을 내고 이언주 의원의 발언을 비판했다. 김정화 대변인은 ‘이언주 의원을 위한 헌정 시’라는 제목의 서면 논평에서 “사람아/입이 꽃처럼 고아라/그래야 말도/꽃같이 하리라/사람아…”라는 시구를 인용한 뒤 “인격도, 품위도 없는 오물 투척꾼으로 전락했나. 보기 드문 캐릭터를 지켜보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비판했다. 바른미래당 원외 지역위원장 및 당원들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언주 의원이 당과 당원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언행을 일삼고 있다”면서 “‘찌질하다’, ‘벽창호’ 등 금기어를 부모님 연배의 분에게 거리낌 없이 내뱉는 이언주 의원은 패륜적 행위로 대한민국 정치를 흙탕물로 만드는 미꾸라지 같은 존재”라고 비판했다. 이어 “인간의 덕목을 잊어버린 철면피와 파렴치는 금수와 다를 바 없다. 손학규 대표에 대한 이언주 의원의 반복되는 인격 모독과 비하 발언, 당에 대한 음해는 배려와 포용심의 한계를 넘어서게 한다”면서 “이언주 의원은 손학규 대표와 당원, 국민 앞에 백배사죄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또 “바른미래당 가치와 부합할 수 없는 자신의 행위에 합당한 책임을 지고 의원직 사퇴를 비롯한 거취를 스스로 결정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회견 후 “해당 행위를 한 이언주 의원을 어제 저녁 윤리위에 제소했다”면서 “이언주 의원이 적진에 나간 장수(손학규 대표)에게 뒤에서 칼을 꽂는 행위를 했는데 아주 비열한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또 “이언주 의원이 정계를 떠나야 한다는 게 원외 지역위원장 대다수의 의견으로, 윤리위에서 강력한 처벌을 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에도 이언주 의원은 자유한국당 행사 참석 논란에 대해 손학규 대표가 ‘정체성을 분명히 하라’고 경고하자, 오히려 손학규 대표에게 “정체성이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따져 물으며 공개적으로 공방을 벌였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이언주 “손학규 창원 숙식 찌질”...바른미래당 ‘분노’

    임재훈 바른미래당 의원이 26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같은 당 이언주 의원의 손학규 대표에 대한 비난 발언을 소개하며 공개비판했다. 이 의원은 한 온라인 방송에서 손 대표의 4·3 창원 성산 보궐 선거 유세를 놓고 ‘찌질’, ‘벽창호’라고 깎아내렸다. 임 의원은 “특정 의원이 모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해당행위적이고 인신공격성 발언을 했다”며 이 의원의 발언을 소개했다. 이 의원은 지난 20일 ‘고성국티비’에서 “(손 대표가) 창원에서 숙식하는 것도 정말 제가 보면 찌질하다. 명분이 있을 때 절박하게 하면 국민 마음이 동하는데, 아무것도 없이 나 살려주세요 하면 짜증난다”고 말했다. 또 “손 대표가 완전히 벽창호고 (선거를) 잘못하면 오히려 아니네만 못한다. 선거 결과에 따라 손 대표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특히 이 의원은 “창원은 (정권에 대한) 심판 선거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작지만 우리가 몇 프로 받으려고 훼방 놓는 것밖에 안 된다”고 했다. 바른미래당의 창원 성산 후보 공천과 선거운동 전략에 대해 비판한 것이다. 손 대표는 창원 성산 지역에 출마한 이재환 바른미래당 후보를 돕기 위해 이달 초부터 창원 시내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바른미래당 부대변인으로 활동한 이 후보는 지난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나와 득표율 8.3%를 기록했다. 임 의원은 이 의원의 발언에 대해 “현안에 대해 소신과 철학을 가지고 발언하는 것은 좋지만 기본적 예의가 있어야 한다”며 “당대표가 숙식까지 하며 최선을 다하는데 ‘찌질이’니 ‘벽창호’니 이런 인식공격성 발언에 대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최선을 다해 뛰는 이 후보가 현 정부 심판 선거를 훼방 놓는 후보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며 “그러면 특정 정당을 위해 후보직을 사퇴해야 하나”고 반박했다. 김정화 바른미래당 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인격도, 품위도 없는 ‘오물 투척꾼’으로 전락했냐”며 “보기 드문 캐릭터를 지켜보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이 의원을 비판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채팅 앱으로 알게된 여성 130명에게 9000만원 뜯어

    채팅 앱으로 알게된 여성 130명에게 9000만원 뜯어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만난 여성들에게 돈을 빌려 잠적하는 수법으로 수천만원을 가로챈 20대가 검거됐다. 청주 상당경찰서는 사기·협박 등의 혐의로 김모(22)씨를 구속했다고 26일 밝혔다.경찰에 따르면 2015년 가출한 A씨는 채팅 애플리케이션으로 여성들에게 접근해 돈을 빌린 뒤 연락을 끊는 방법으로 130여명에게 총 9000여만원을 받아 챙겼다. 상당수 여성은 A씨와 한번도 만나지 않은 상태에서 돈을 보냈다가 피해를 봤다. 한 여성은 혼자서 1000만원을 뜯겼다. A씨는 학생이나 연예인 연습생 등을 사칭했다. 한동안 채팅을 주고받으며 자신을 믿게 한 뒤 “갑자기 돈이 필요한데, 돈을 빌려주면 이자까지 주겠다” 며 돈을 빌렸다. A씨는 20대 여성 B씨에게 “돈을 주지 않으면 성관계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혐의도 받고 있다. 다행히 B씨는 돈을 주지는 않았다. 2017년 경찰 조사를 받은 A씨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지 않고 최근까지 도피 생활을 해왔다. 도피 중에도 사기행각은 계속됐다. 경찰은 지난 24일 대구에서 A씨를 체포했다. A씨는 경찰 추적을 피하기위해 휴대폰을 쓰지 않았다. 돈은 다른 사람 계좌를 통해 받았다. 숙식은 모텔을 옮겨 다니며 해결했다. 경찰에서 A씨는 “돈을 생활비로 썼다”고 진술했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국외연수 추태 예천군의회 항공권 위조 ‘꼼수’…3명 입건

    공무국외 연수 중 가이드 폭행 등 물의를 빚은 경북 예천군의회 국외 연수 전자항공권 발행 확인서에 항공 운임이 변조된 데 대해 수사를 벌인 경찰이 공무원과 여행사 대표 2명 등 모두 3명을 검찰에 넘겨졌다. 예천경찰서는 26일 예천군의회 직원 A(41)씨와 예천에 있는 여행사 대표 B(49)씨, 대구 모 여행사 대표 C(46)씨를 업무상 배임과 사문서위조,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로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12월 20일 군의회 국외 공무연수 계획을 짜며 B씨가 제시한 숙식비가 공무원여비 규정을 넘어 개인 부담금이 발생하자 이를 내지 않기 위해 실비로 지급하는 항공료를 부풀려 경비로 청구하는 방식으로 1300만원을 부정하게 지출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 등은 상당한 지방재정을 손실하게 했다”고 밝혔다. 예천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방’ 잡고 창원 잡기 나선 야3당

    총선 전초전 4·3보선에 사활 경남 창원·성산과 통영 등 2곳의 의석이 걸린 4·3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앞두고 자유한국당 황교안, 바른미래당 손학규,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선거구인 경남 창원에서 아예 방을 얻어 숙식하며 지원유세에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선거 때 당 대표가 지방을 돌며 지원유세를 하는 건 다반사이지만, 숙소까지 임대해 머물며 선거를 치르는 것은 전례가 드문 일이다. 선거구가 두 곳뿐인 데다 거리가 인접해 있어 선거기간 한자리에서 숙식하며 선거운동을 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판단 때문으로 해석된다. 여기에 각당 대표에게 이번 선거가 반드시 이겨야 하는 절박함이 있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창원·성산은 후보 간 박빙을 이루는 데다 황 대표로서는 처음으로 지도력을 시험받고 이 대표는 노회찬 전 의원 지역구 사수라는 의미가 있어 당대표들이 사활을 걸고 뛰고 있다. 황 대표는 부인과 함께 묵을 16.5㎡(5평) 크기의 원룸을 마련해 공식 선거 기간이 시작하는 21일부터 창원에 머물 예정이다. 한국당 관계자는 “재보선을 이기려면 당 대표가 책임을 지고 진두지휘해야 한다고 생각한 결과”라고 했다. 손 대표도 지난 1일 창원에서 82.5㎡(25평) 크기의 아파트를 단기 임대한 뒤 서울에서 최고위원회가 열리는 날에만 잠시 비행기로 이동하며 부대변인 출신인 이재환 후보의 선거를 지원하고 있다. 바른미래당 당직자 6명도 손 대표와 함께 상주하며 선거 운동을 돕고 있다. 당 관계자는 “제3 정당으로서 의미 있는 지지율이 나오면 내년 총선에서 또 해볼 만한 환경을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에 대표가 직접 나선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당대표 중 가장 먼저 창원에 오피스텔을 빌려 지난달 21일부터 그곳에서 숙식하며 보궐선거에 모든 걸 쏟고 있다. 이 대표뿐 아니라 당직자 30여명도 모두 창원으로 내려와 선거가 끝날 때까지 고시텔 등에 머물며 돕고 있다. 정의당 관계자는 “당 재정이 넉넉지 않기 때문에 숙식은 모두 사비로 해결하고 있다”며 “그만큼 보궐선거가 우리에겐 절박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방을 얻지 않고 서울에서 지원유세를 내려가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대표가 지원에 나선 뒤 다른 당 후보로 단일화되면 모양새가 좋지 않아 단일화 이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와 황 대표는 이날 나란히 통영을 방문해 자기 당 후보 지원유세를 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여야 4·3 재보궐 대진표 완성

    범진보 단일화 변수 창원 성산 7대1… 공감대는 형성 한국당 공천 휴유증 통영·고성 3대1… 탈락자 거센 반발 약 보름 앞으로 다가온 4·3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의 여야 대진표가 완성됐다. 최근 정당 지지율이 요동치는 상황에서 내년 총선 전초전이 될 이번 선거에 각 당 지도부도 사활을 걸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16일 후보 등록을 마감한 결과 경남 창원 성산과 통영·고성 2곳에서 치러지는 이번 재보선에 총 10명이 출마했다고 밝혔다. 창원 성산에는 권민호(더불어민주당)·강기윤(자유한국당)·이재환(바른미래당)·여영국(정의당)·손석형(민중당)·진순정(대한애국당)·김종서(무소속) 후보 등 7명, 통영·고성에는 양문석(민주당)·정점식(한국당)·박청정(대한애국당) 후보 등 3명이 입후보했다. 창원 성산에서는 민주당, 정의당, 민중당 등 범진보 후보 단일화가 최대 변수로 꼽힌다. 현재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지만 진보 진영이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단일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 돼 있다. 민주당과 정의당은 투표용지 인쇄 시작 하루 전인 오는 25일까지 단일화 논의를 마무리 짓기로 했다. 통영·고성은 한국당이 공천 후유증을 어떻게 극복할지가 관건이다. 대검찰청 공안부장 출신으로 황교안 대표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정 후보가 한국당 후보로 낙점되자 경선에서 탈락한 김동진 전 통영시장과 서필언 전 행정안전부 1차관 등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당 한 재선 의원은 17일 “통영·고성에선 한국당 후보가 강세지만 당 지도부가 탈락자들의 반발을 잠재우고 그들의 지지세를 흡수하지 못한다면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여야 지도부는 선거 지역구에 임시거처를 마련하는 등 총력전에 돌입했다. 이해찬 대표는 18일 통영에서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연다. 황 대표는 아예 창원에 원룸을 임대해 숙식하며 선거 지휘에 나섰다. 황 대표는 18일 통영에서 현장 최고위회의를 연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아파트를,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오피스텔을 빌려 기거하며 선거를 지휘하고 있다. 이근홍 기자 lkh2011@seoul.co.kr
  • “대표팀 합숙 없애고 선수촌 개방하기 쉽지 않다”

    “대표팀 합숙 없애고 선수촌 개방하기 쉽지 않다”

    “실망스러운 도쿄올림픽이 되지 않도록 좋은 성적으로 잃어버린 자존심 찾을 것”“잃어버린 자존심을 되살리는 선수촌이 되겠습니다.” 지난달 취임한 신치용 선수촌장이 처음 맞이한 출입기자 간담회는 다소 무거운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의 폭행·성폭력 사태로 촉발된 ‘체육계 미투’의 여파가 여전이 남아 있는 분위기였다. 2020 도쿄올림픽을 500여일 앞두고 선수촌장으로서 어떤 성적을 이끌어 내겠다는 당찬 각오를 밝히기보다는 ‘미투 사태’로 인해 던져진 화두인 ‘합숙 폐지’, ‘선수촌 개방’ 등에 초점이 맞춰졌다. 신 선수촌장은 14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진행된 기자 간담회에서 “와 보니 선수들이 상당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에 (폭행·성폭력 근절 방안으로) 선수촌 합숙이 폐지되면 어디 가서 훈련해야 하냐’고 묻는 선수가 있었다. ‘초가삼간 다 태우면 어떻게 하냐’고 말하는 지도자도 있다”며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위축된 것이 우려된다. 선수들이 훈련에만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좋은 신체조건을 가진 지방 초중고 학생들이 운동할 곳이 없으면 도시에 가서 해야 하는데 그럴 때 숙식이 간단치 않다. 합숙이 긍정적인 면도 있다”며 “대표팀 합숙을 없애고 선수촌을 (일반인에게) 개방하는 것은 하기가 쉽지 않다. 53년간 배구만 했지만 어쩔 수 없는 게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신 선수촌장은 “솔직하게 말하면 도쿄올림픽 준비를 제대로 못 했다. 상당히 힘들고, 고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그래도 실망스러운 올림픽이 되지 않도록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의 위기는) 극복해 나가야 할 문제이고, 잘해서 신뢰받고 좋은 성적을 만드는 것 이외에 보답할 길이 없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정성숙 부촌장은 “한 달에 한 번씩 여성 지도자와 여성 주장들을 상대로 간담회를 하고 있다. 미투 사태와 관련해 선수들이 ‘너는 별일 없느냐’는 질문을 받는 일이 잦았고, 또한 선수들이 유니폼을 입고 주말에 밖에서 맥주 한잔 마시면 선수촌으로 항의 전화가 올 때도 있었다고 한다”며 “선수촌이 침체된 분위기였는데 그래도 요즘은 다소 나아졌다. 이제는 (올림픽을 앞두고) 훈련에도 집중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진천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최저임금 못받았다” 고시원서 숙식한 총무의 최저임금 소송

    “최저임금 못받았다” 고시원서 숙식한 총무의 최저임금 소송

    #원고 vs 피고: 고시원 총무로 일한 A씨 vs 고시원 운영자 B씨 서울 노량진의 한 고시원에서 2015년 2월부터 2016년 4월까지 ‘총무’로 일한 A씨. 고시원 7층 옥탑방에서 생활하며 매일 오후 4시부터 10시까지 저녁식사 시간 1시간을 제외하고 5시간 동안 다른 고시원 입실자들의 애로사항을 해결해주고 입실 희망자들에게 안내를 해주는 등의 일을 했습니다. 추가로 30분간 분리수거를 해서 A씨가 매일 일한 시간은 5.5시간입니다. 한 달에 두 번 일요일은 쉬었고요. 이렇게해서 A씨는 매달 35만원을 받았고, 일을 그만둘 때는 퇴직금으로 40만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A씨는 2017년 5월 그동안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급여를 받았다며 최저임금에 맞게 지급받았어야 할 급여와 퇴직금 총 1292만여원을 달라고 소송을 냈습니다. ●1심 “현금 35만원+고시원 방 사용료가 총무 월급” A씨는 1·2심 모두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아들었지만 금액이 달라졌습니다. 지난해 2월 1심인 서울중앙지법 민사6단독 재판부는 “B씨가 A씨에게 360만여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1·2심 법원 모두 매일 5.5시간씩 월 평균 156.29시간을 일한 A씨가 매달 받았어야 할 최저임금액이 2015년 87만여원(최저임금 5580원X156.29시간), 2016년 94만여원(6030원X156.29시간)이라고 계산한 것은 같습니다. 1년 2개월 28일간 일한 A씨가 받았어야 할 법정 퇴직금이 총 115만원여원인데 이 중 40만원을 이미 받았으니 미지금 퇴직금 75만여원을 다시 받아야 한다는 것도 같았고요. 1·2심에서 판단이 갈린 것은 A씨가 머문 고시원 7층 옥탑방의 사용료 35만원을 임금으로 볼 수 있느냐였습니다. 1심은 A씨의 ‘월급’이 현금 35만원과 고시원 방실료 35만원을 합친 70만원이었다고 보고 실제 지급된 임금과의 차액(미지급 임금)이 총 285만여원이라고 판단했습니다. ●2심 “고시원 방 사용료는 ‘숙식 제공’일 뿐” 그러나 항소심인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6부(부장 김행순)는 고시원 방실료 35만원은 급여로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최저임금법 시행규칙 2조에 “가족수당·급식수당·주택수당·통근수당 등 근로자의 생활을 보조하는 수당 또는 식사, 기숙사·주택 제공, 통근차 운행 등 근로자의 복리후생을 위한 것”은 최저임금 산입대상이 아니라고 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B씨는 A씨에게 쌀과 라면 등 부식비용 3만원과 명절에 지급한 5만원도 최저임금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 역시 복리후생을 위한 것이거나 근로의 대가로 제공된 게 아니라 최저임금 대상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B씨가 A씨에게 미지급한 임금과 퇴직금은 총 882만여원”이라면서 “1심에서 인용된 360만여원에 추가로 522만여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국내 일제잔재 및 독립운동 유적지 탐방’ 캠페인…서경덕 “시작은 군산과 목포”

    ‘국내 일제잔재 및 독립운동 유적지 탐방’ 캠페인…서경덕 “시작은 군산과 목포”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자유여행기술연구소 ‘투리스타’와 성신여대 서경덕 교수팀이 함께 ‘국내 일제잔재 및 독립운동 유적지 탐방’ 캠페인을 펼친다고 7일 밝혔다. 서경덕 교수는 “역사적인 현장을 직접 탐방하는 것만큼 중요한 교육은 없다는 생각에 이번 일을 시작하게 됐다”며 “첫 시작 도시는 군산과 목포다. 일제강점기 때 국내 최대 강제징용 지역인 옥매광산, 목포 근대역사관,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히로쓰가옥 등을 직접 탐방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번 탐방은 오는 23일~24일까지 1박 2일간 진행될 예정이며, 투리스타 홈페이지(https://hoy.kr/T4SIX)를 통해 신청하면 된다. 참가자들은 숙식비 등 최소한의 실비만을 내고, 서 교수는 재능기부로 양일간 모든 일정을 함께 하며 독립운동 유적지에 관한 설명을 도맡아 진행할 예정이다. 이에 서 교수는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 항일운동 유적지 보존이 다 잘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참가자들과 SNS를 통해 각 지자체에 제보하여 유적지 보존이 잘 될 수 있도록 힘을 모으겠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요즘은 전 세계적으로 ‘다크 투어리즘’이 대세이다. 어두웠던 역사를 다시금 교훈으로 삼자는 취지”라며 “향후 ‘전국 독립운동 역사투어 코스’를 온라인으로 제작해 공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서 교수와 투리스타는 현재 ‘해외 독립운동 유적지 탐방’을 상하이, 도쿄에 이어 오는 4월에는 군함도를 준비 중이다. 이처럼 짝수달에는 해외 유적지를, 홀수달에는 국내 유적지를 지속적으로 탐방할 예정이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북한 전쟁고아 기록정리가 남은 일…더 늦기 전에 끝내야”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북한 전쟁고아 기록정리가 남은 일…더 늦기 전에 끝내야”

    ‘독일서 韓문화재 발굴’ 김영자 박사가 말하는 ‘북한 전쟁고아’“한반도 현대사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아픔, 잊혀진 이들이 있다. 바로 북한의 전쟁고아야. 남편이 먼저 시작한 일인데 요즘은 그게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6·25 한국전쟁에서 남한뿐 아니라 북한에서도 전쟁고아가 많이 발생했지. 이들이 동유럽에서 위탁교육을 받다가 어느 날 하룻밤 새 갑자기 싹 사라졌거든. 이들에 대한 기록 정리가 여생의 일이 됐어.” 독일에 반출된 한국 문화재 발굴과 보존의 중심에 섰던 베커스 김영자(80) 박사가 한국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인터뷰를 청했더니 경복궁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만나자고 했다. 김 박사는 “서울 지리를 잘 몰라 다른 곳은 잘 찾아갈 수 없어. 그런데 민속박물관은 찾아갈 수 있어.”라며 “1층 안쪽 커피숍에서 만나자.”라고 했다. 독일에서 50년째 사는 그가 박물관 1층에 커피숍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의 이력대로 문화재에 조예가 깊어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민속박물관을 찾나 생각하고 설날 연휴인 지난 2일 약속 장소로 갔다.(※독일로 먼저 돌아간 남편이 북한 전쟁고아 사진을 보내주기까지 기사 발행이 미뤄졌다.) “체코의 北전쟁고아, 남편이 먼저 발굴60여명 작은 궁전서 5년간 위탁교육한국 모르는 남편 탓에 이 일에 빠져”‘요즘 어떻게 지내시느냐.’라고 인사를 건넸더니 김 박사는 “나이가 이제 80인데 쉬어야지.”라며 잠시 뜸을 들였다. “남편(베커스 크리스토퍼·76)이 2015년 봄 어느 날 신문을 보다가 체코의 어느 제후 궁전에서 북한 고아들이 1953~1958년까지 살았다는 기사를 읽은 거야. 아내의 조국 ‘코리아’라는 단어가 등장하니 솔깃했던 가봐. 남편이 당장에 차를 몰고 달려가 그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봤대. 60년이 훌쩍 지났으니 동네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는데, 어렵사리 수소문해서 기숙사 사감을 지냈다는 여성을 만났다고 해. 요양병원에 있는 그 여성이 나이가 많아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기도 힘들 정도였고, 정신이 오락가락했는데, 남편이 그 여성이 돌보고 교육했던 북한 고아들의 사진과 앨범, 이들이 돌아가서 그녀에게 보낸 엽서 등을 전달받았거든. 이 여성이 돌아가신다면 북한 전쟁고아들에 대한 귀중한 자료도 그냥 재로 사라질뻔한 것이지. 그런데 남편이 한국말과 한국 사정을 잘 몰라 한계가 있으니, 내가 이 일에 끌려들어 간 거지.” “北전쟁고아 1958년 하룻밤에 귀국가서 ‘보고싶어’ ‘그곳이 천국’ 편지도1962년 이후엔 서신 왕래도 뚝 끊겨” 팔순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발음은 또랑또랑했고, 말은 박력이 있었고 빨랐다. 기억은 엊그제 한 일처럼 생생했다. 그러더니 대뜸 김 박사가 “남한에선 북한 전쟁고아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었다. “한국에선 북한 전쟁고아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고, 잘 모르고 있다.”라고 답했다. 사실 기자도 수년 전 여자배우 추상미가 감독한 ‘폴란드로 간 아이들’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북한 전쟁고아들을 다뤘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한국 기자들이 우리 집에 많이 왔었어. 그때마다 남편이 북한 고아들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설명하면 기자들이 ‘네, 네.’라고 대답했지. 그런데 기사는 한 줄도 나오지 않아 남편도 거의 포기했어. 북한과의 적대적 관계도 있고 해서인지 한국에선 도통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까웠지. 북한 고아 문제는 외국에서 더 관심이 있었어. 폴란드에서 북한 전쟁고아를 다룬 다큐 영화 ‘김귀덕(Kim Ki Dok)’이 2006년도에 먼저 제작됐거든.” 영화 ‘김귀덕’은 폴란드에서 무덤이 하나 있는데 이걸 파버릴까 하다 동양인 무덤이 여기에 왜 있지 하고 조사를 하다 보니 북한 전쟁고아였다는 이야기다. ‘김귀덕’은 유튜브로 검색하니 나왔지만, 한글이나 영어 자막이 달려있지 않아 보기가 쉽지 않았다.체코에 있던 북한 전쟁고아 이야기를 더 들려달라고 했다. “체코의 작고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의 궁전인 발리치(Valec Valech)에 북한 고아 60여명이 위탁 교육을 받았어. 이 궁전이 사회주의 체제에서 공공건물로, 보육원으로 쓰였거든. 전쟁고아를 남쪽 한국에선 나쁘게 말하면 선진국에 팔았지만, 북한에선 우방인 동유럽 국가에 위탁교육을 했던 거야. 최근에 한국 PD 한 사람이 취재차 왔었어. 이 궁전에 전쟁고아들이 있었다는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어. 궁전 정원 한쪽 구석에 세워진 오벨리스크에 전쟁고아들이 위험하게도 올라가 영문으로 자신들의 이름을 새긴 게 있거든. 글자가 많이 부식되고 상하고 있어 언제 없어질지 모르니 빨리 보존 조치를 취해야 해.” “北전쟁고아, 내 또래여서 더 동질감이들 북한서 어떻게 됐는지 문득 생각위탁 부모도 고령, 구술 정리도 시급” 김 박사의 설명은 계속됐다. 전쟁 직후 여력이 없던 북한은 1951년부터 전쟁고아들은 체코를 비롯해 구동독,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으로 위탁교육 명목으로 보냈다. 정확한 조사가 나오지 않았지만 이런 북한 전쟁고아는 몇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1958년 어느 날 김일성의 명령에 의해 북한 고아들이 어느 날 싹 귀국했어. 주위 사람들도 모르게 밤새 다 데려갔다고 해. 정성 들여 애들을 교육하고 돌본 엄마들은 ‘지금도 보고 싶어서 운다.’라고 해. 그리고 그 아이들이 북한으로 돌아가서 ‘엄마, 보고 싶어요.’, ‘그곳이 천국이었어요.’라는 내용의 엽서를 보냈지. 1962년 이후 편지 왕래마저 끊겼고, 그리곤 사라진 거지. 북한 전쟁고아들을 돌봤던 이들이 아주 고령이지. 더 늦기 전에 이들로부터 구술받지 않으면 전쟁고아의 기록은 사라질 수 있어.”북한으로 돌아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이들이 대개 6~12살쯤 되어 동유럽에 와서 몇 년 살았어. 돌아갈 때 나이가 많은 아이는 스무 살가량 됐고, 유럽 문화를 알고, 한창 정이 들 무렵이었지. 그때 동유럽이 사회주의 체제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북한보다는 자유스럽고, 풍족했지. 북한으로 돌아간 아이들이 수용소로 끌려가서 자유스럽지도 못하고 혹사를 당한 것으로 추정돼. 북한에서 적응을 잘한 아이들은 동유럽 언어가 되니 고급 인력으로, 외교관으로 살아남았을 거야. 북한 전쟁고아들의 나이가 내 또래여서 더 동질감이랄까 연민이 느껴져.” “발리치 궁박물관장이 전시실 한 두 개를 내줄 테니 한국관 전시실로 꾸미라고 우리한테 제안했어. 이 궁전이 1976년 화재로 불탔는데, 문화유산이어서 EU가 겉모습은 복원해 줬거든. 내부는 아직 텅텅 비어 있어서 주로 콘서트나 미술관으로 이용해. 여기에 ‘당시 아이들이 입었던 옷, 당시 영상물, 동요 등을 전시하면 좋겠다.’라고 나랑 남편이 이야기하지. 전시관 기획 잘해서 신청하면 (발리치궁이) 자국 문화재청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해보겠다고도 하더라.” 김 박사 부부의 집에서 발리치까지는 차로 3~4시간 거리여서 체코 문화와 맥주를 좋아하는 남편이 종종 놀러 간다고 했다.“1968년 장학금 받는다는 말에 獨유학레겐스부르크大 한국어문화 강좌 맡아직접 쓴 문법책 기초한국어 인기 여전” 베커스 김영자 박사는 어떻게 독일과 인연을 맺게 되었을까. 1939년 전남 구례에서 태어난 그는 꽃다운 25살 때인 1965년 독일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1년 장학금을 받게 해주겠다는 신부님의 말에 “아무것도 모르고” 비행기에 올랐다. “그땐 외국 나간다는 말에 무조건 좋았거든. 처음 수녀원에 도착해서 어학연수를 받는 동안 말이 안 통하니 많이 울었지. 뮌헨대학에 서양사와 독문학을 전공하고, 레겐스부르크대학에 입학해 서양사를 전공했지. 건축사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애를 키우다 1975년에 이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지. 1979년부터 레겐스부르크 시립박물관의 학예사로 근무하면서 인맥이 넓어졌고, 그때부터 한국과의 인연이 깊어졌지. 그러다 모교에 한국어문화 강좌가 개설되면서 교수가 된 거야. 1987년부터 정년퇴직한 2005년 9월까지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쳤지. 자매결연을 한 동국대에 독일 학생들을 보내 문화교류도 시키고 했어. 동국대가 독일 대학과 자매결연을 한 첫 한국의 대학일 거야.” 그가 사는 레겐스부르크는 뭔헨에서 동북쪽으로 자동차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다. “대학에서 한국어 강좌를 맡을 사람으로 내가 뽑힐 때 독일어와 한국어가 되니, 한국사람이 한국어 가르치는 것을 처음엔 아주 쉽게 생각했어. 그런데 말은 잘해도 한국 문법을 모르니, 독일 학생들은 문법적으로 명확하게 설명이 안 되면 이해는커녕 공부하려고도 하지 않아. 얼마나 깐깐하고, 황당한 질문이 많이 날아들었는지. 한국에 들어와 시중의 문법책을 다 보고, 한국어학당을 다 가봤지만, 마음에 드는 게 없었어. 오죽 답답했으면 교육부에 들어가 ‘제대로 된 문법책 하나 내 놓으라.’라고 닦달했을까. 나중에 고등학교 국어 문법책을 하나 구해, 문법을 연구하면서 ‘기초한국어’를 썼어. 여전히 인기 좋아 지금도 잘 팔리고 있어. 한국으로 발령나서 가는 독일 외교관들이 ‘이 책을 들고가면 걱정이 없다.’라고 할 정도야. 한국어의 심화 과정과 한국 문화까지 소개하는 ‘한국어 플러스’도 냈어.” ‘삼국유사’ 독일어 번역…도서전서 호평“韓정체성 보여주는 역사책 내고파 번역” ‘삼국유사(국보 306호)를 독일어로 번역한 계기가 무엇이냐?’고 묻자 김 박사는 그 뒷이야기부터 꺼냈다. “2005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이 ‘한국의 해’여서 삼국유사를 번역해 내겠다고 했더니 한국문학번역원이 글쎄, ‘삼국유사는 문학이 아닌 역사’여서 지원금 지원이 안 된다고 했거든요. 이런 소식을 들었던 당시 경북 군위군의 인각사 주지가 백방으로 뛰고 해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통하니 지원금이 나왔지. 당시 문학 100선이었는데 삼국유사가 더 들어가는 바람에 101선이 됐지. 출판기념회를 도서전에서 했는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문학번역원조차도 ‘선생님 번역 책이 최고.’라고 했지. 유럽에선 한국이 일본이나 중국보다 덜 알려진 게 아쉬웠는데, 한국 고유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역사책을 유럽에 내보이고 싶었거든. 그게 번역에 나서게 된 계기였어.” 국립민속박물관이 약속 장소로 정한 이유도 나왔다. 김 박사가 한국에서 가장 자신 있게 잘 아는 곳이기에 그렇다. 1906년 한국을 방문해 기록 사진을 남긴 독일군 장교 헤르만 구스타프 테오도르 산더 대위의 사진 기증전시회가 2006년 4월 여기서 열렸다. 당시 김 박사가 사진과 함께 전시된 문서와 관련 자료를 한국어로 번역해 줬다. 또 2008년 상트 오틸리엔수도원의 선교박물관이 소장한 유물 전시회가 민속박물관에서 열릴 때도 김 박사가 깊이 관여했다. 그가 유럽에서 수십년간 수집한 근대조선 사료를 고스란히 민속박물관에 기증했고, 베를린 등 유럽 골동품 가게나 벼룩시장 등에서 취미로 사모았던 인형 600여점을 2009년 기탁하기도 했다. 물론 그가 독일 문화재를 발굴해 정리할 때 민속박물관 학예사들의 도움도 컸다. “겸재 금강산 화첩 발견도 드라마틱수도원 ‘한국에 귀한 것…팔 수 없어’왜관수도원에 영구임대 형식 반환돼”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그녀가 1999년 번역한 ‘수도사와 금강산’(노르베르트 베버 지음)을 꼽았다. “이 책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이 조선시대 미술사를 다시 쓰게 했거든.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장을 지낸 노르베르트 베버(1870~1956년)는 1925년부터 4개월간 선교차 방한해 금강산을 돌아보고 가면서 ‘금강산을 잘 그린 그림을 하나 사고 싶은데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금강산 등정에 동행한 독일인 헹켈이 나한테 선물을 했다. 수도원 박물관에 두었다.’라는 기록만 남겼지. 어디에서 어떻게 샀다는 말은 남기지 않았어. 어쩌면 이 선물이 금강산 화첩이었는지도 몰라. 그리곤 아프리카 선교를 가서, 그곳에서 선종하셨거든. 그러면서 그림이 책에 실렸어. 원서에 실린 이 그림을 본 한국의 한 미술사학자가 수도원에 편지를 써서 ‘이 책에 나와 있는 그림이 있느냐.’라고 하니 당시 수도원장은 ‘모른다.’라고 딱 잡아뗐다는 이야기 전해. 수년이 흘러, 그런데도 아주 이상하니 국립박물관 학예관 한 명이 직접 가서 보겠다며 수도원을 방문한 거야. 그리고 갔더니 직사광선을 받는 곳에서 그림이 빛바랜 채 다 죽어가고 있는 걸 본거야. 이 학예관이 깜짝 놀라는 것을 본 박물관 신부님이 ‘우리 이런 것 또 있어’하면서 두 폭의 그림을 더 갖고 나왔던 거야. 또다시 놀라자 이번에는 소장한 그림을 모두 갖고 보여준 거야. 이게 모두 21첩, 겸재 정선의 금강산 화첩이 된 거지. 발견 과정이 드라마틱해.” “이 그림들이 우여곡절을 겪다가 2005년 한국으로 돌아와. 국보급 문화재 반환의 모범 사례지. 이 그림의 존재와 가치가 알려지면서 소더비 등 영국과 미국의 경매 회사들이 수도원에 그림을 팔라고, 그 비용으로 선교사업에 쓰라고 했어. 그렇지만, 예레미아스 슈뢰더 수도원 대원장이 ‘한국에 그렇게 귀한 것이라면 팔 수 없어. 돌려줄 거야.’라고 결심하고 자매관계인 경북 칠곡군에 있는 왜관수도원에 ‘국가에는 주지 마라.’는 단서로 영구임대하지. 난 반환된 겸재 화첩을 한국에서 보려고 겨우 날짜를 잡고 방문하기 1주일 전, 왜관수도원에 큰 불이 났어. 그 소식에 가슴이 철렁하고 얼마나 놀랐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아찔하지. 수도원이 거의 몽땅 다 불타버렸지. 다행히도 화첩은 다른 곳에 보관해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었던 거야. 이런 보관의 이유로 반환된 겸재 정선의 금강산 화첩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진 거지.” “韓근대복식 300벌 한꺼번에 나와불상·곤여전도 등 1200여점 보관유럽 최대 한국 유물 소장 박물관”김 박사는 한국과 인연이 깊은 오틸리엔수도원 선교박물관에는 대학을 정년한 2005년부터 10년간 자원봉사직 학예사로 근무했다. “오틸리엔 수도원장이 한국 유물을 정리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합디다. 박물관에 가보니 조선시대 갑옷에 일본 사무라이 투구를 씌워 전시해 일본 유물로 착각하게 된 게 많았어. 설명도 엉터리가 부지기수였고. 동양관에는 한국·일본·중국 유물이 뒤섞여 있었던 거지. 선교박물관의 전시품 80%는 아프리카 것이었고, 나머지는 동양 3국의 유물로 먼지를 뒤집어쓰고 뒤섞여 있는 거야. 나 혼자 어찌할 수도 없고 해서 민속박물관에 요청하니 학예사 4명이 3주간 파견 나왔지. 우리 다섯이 먼지 속에서 정리했지. 전시실을 정리하니 한국 유물 540점이 나왔지. 다음해에는 지하실 창고를 뒤지니 먼지가 두텁게 쌓이고 거미줄이 쳐진 곳에서 한국 유물이 수두룩하게 나왔어. 17세기 불상과 1869년의 곤여전도(坤輿全圖·세계지도) 등 모두 1200여 점이나 됐지.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2016년 한국관을 별도로 재개관한 거야.” “하루는 수사님이 불러서 수도원에 갔더니 함을 하나 보여주는 거야. 열어보니 좀벌레가 휙 하고 지나가. 신랑 저고리, 신부 치마를 비롯한 근대 복식 300여벌이 나왔어. 전문가도 아니고, 정리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가 알고 지내던 조우현 교수(성균관대 복식과)에 연락해 사정을 설명했어. ‘비행기 비용도, 작업비도 못 준다. 그래도 숙식은 제공해 줄 테니 와서 도와다오.’라고 부탁했지. 그가 조교 두 명을 데리고 와서 2주 동안 수도원에서 먹고 자면서 정리해 주고 갔지. 이게 1920년대 복식인데 보기보다 귀한 거야. 우리 한국에선 사람이 죽으면 옷을 불태우는 관습이 있어서 근대 복식이 예상외로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거야. 문화재에 대한 전문지식을 가진 국립민속박물관·서울시립역사박물관의 학예사들과 국외소재문화재단, 문화유산회복재단, 재정 지원을 해준 문화재청 등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야. 감사할 따름이죠.”“내 나이 팔순, 사명감 있는 후배 나서야” “무보수로 선교박물관에서 일할 때 힘들었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사명감이 있었어. 훼손되는 귀중한 한국 유물을 복원하려고 독일과 한국의 정부 지원금을 받아내기 위해 정말 동분서주했거든. 이젠 후배들이 나서서 해야 하는데…. 한독 문화교류의 지식과 기반이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자기 분야가 아니면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없어서….” 김 박사의 백발이 더욱 선명해 보였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