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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중 박철언의원/북한 리종옥 만나

    【북경 연합】 한국의 박철언 의원과 북한 부주석 리종옥이 북경에서 세차례나 비밀리에 회동한 것으로 27일 알려졌다. 이곳의 믿을 만한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개인적인 업무」를 내세워 지난 21일 북경에 온 박철언의원은 숙소와 아시안게임 선수촌 등에서 비밀리에 리종옥과 세차례 만나 남북 현안을 광범위하게 협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 북한 “3차회담서 수교 논의” 제안/방북 가네마루 기자회견

    ◎평양태도 예상보다 상당히 진전/김일성,간절히 독대 요청… 국제정세 토론 북한 김일성주석과 2차례에 걸친 단독회담을 가진 가네마루 신(금환신) 전 부총리는 묘향산으로부터 평양에 돌아와 27일 하오 9시35분부터 고려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회담내용을 설명했다. 어제(26일) 김주석으로부터 『어떻게해서라도 당신과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다』는 전달이 있었다. 그때 나는 『혼자서는 곤란하다. 지금까지 같이 행동해 온 다나베(전변) 사회당 부위원장도 동석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으나 「제발」이라는 바람에 만나게 됐다. 그날밤 김주석은 내 숙소를 찾아와 『세계정세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회담에서는 지난번 김주석의 중국방문 및 이라크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이라크문제에서 무력사용은 절대로 안된다고 말했더니 김주석은 『당신 생각에 찬성한다. 대화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보상문제에 대해 김주석은 돈문제에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당신의 성의는 잘 알겠다』고만 말했다. 이런 지도자가있어 오늘의 공화국이 있다고 절실히 느꼈다. 공동성명도 북한방문을 사전조정한 선발대에 맡겼다. 3당의 대화로 여러가지를 타결했다. 어느 신문사로부터 김주석에게 지국설치에 대해 진정해 달라는 말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도 했다. 이에 대해 김주석은 『공평한 보도를 해준다면,국교가 된다면 그런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 ­어제부터 오늘에 걸쳐 국교정상화 및 후지산마루(부사산환)문제가 논의됐는가. ▲부탁은 했다. (이때는 석정일의원이 각론은 다나베 부위원장에게 부탁한다고 말했다) ▲다나베=각론이 아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이시이=나의 표현이 잘못됐다. 서론이 끝났기 때문에 총론의 계속을 부탁한다. ▲다나베=3자회담에서 국교수립을 서두르자는 제안이 북한측에서 있었다. 여기에는 2개의 측면이 있다. 첫째는 국제정세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둘째는 일본정부의 일부에 국교수립전에 보상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의견을 고려한 것이다. 공동성명에 국교정상화를 위한 정부간 교섭을 오는 11월부터 시작하자는 것을 정부에 권고하는 내용을 포함시키자고 주장했다. ­북한의 태도가 상당히 변화했다고 생각하는가. ▲다나베=정확한 판단이다.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진전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정상화의 전망은. ▲다나베=없다. 그런 것은 나오지 않았다. ­국교수립제안에 대한 자민당의 평가는. ▲이시이=논리적으로 옳은 것이다. 가네마루 선생은 그런 인식을 갖고 있다. ­자주적 평화통일에의 협력은. ▲이시이=자민당도 그런 기분을 갖고 있다. 자주적 통일을 했으면 한다. 분담에 가담하지 않는다는 것이 당의 기본적인 인식이다(이날 하오의 기자브리핑은 김일성주석­가네마루 전 부총리의 단독회담 내용을 듣는 것이 주목적이었으나 가네마루 전 부총리는 서두에서만 잠시 언급했을 뿐이다. 「대물정치인 가네마루」는 무엇인가 절제하는 빛이 역력했다).
  • 북의 계산 “일본을 대 서방 접근창구로”/묘향산회담… 도쿄의 시각

    ◎「김환루트」 통한 돈줄 확보 타진/연락사무소는 한소수교 버금 북한의 김일성 주석과 일본 집권 자민당의 최고실력자 가네마루 신(김환신) 전 부총리의 2·3차에 걸친 파격적인 단독회담은 북한측 자세에 중대한 변화를 예고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도쿄의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김일성 주석은 26일 하오 6시30분 자민·사회 양당 북한방문단 일행과 떨어져 묘향산 초대소에 혼자 남은 가네마루 전 부총리를 숙소로 방문,1시간 동안 세계정세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이 회담에서는 남북통일방안,남북한 유엔가입 문제,남북대화 및 교류촉진 문제 등도 폭넓게 논의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네마루 전 부총리는 지난 20일 북한방문을 앞두고 한국특파원들과 가진 기자회견에서 『김일성 주석과 만나는 자리에서 하루라도 빨리 남북 두 나라가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대화를 하라고 말하고 싶다』고 밝히고 『정치는 국민과 민족을 위해 하는 것이므로 남북대화를 촉진토록 하는 것이 이번 북한방문의 최대 바람』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같은 의욕을 가진가네마루 전 부총리와 45년간 북한을 이끌어 온 김일성 주석과의 한반도정세논의는 아시아·태평양지역 긴장완화를 위해 큰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동구의 사회주의 제국이 급격한 변혁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 가운데 유일하게 개방정책에 등을 돌려 온 북한측이 일본의 정치 지도자와 처음으로 세계정세를 논했다는 사실 자체가 태도변화를 보인 것이라고 지적한다. 다나베 마코도(전변성) 사회당부위원장을 포함한 26일의 수뇌급 3자회담이 북한·일본간의 새로운 우호관계수립을 위한 선언이며,쌍방의 현안 해결을 위한 방향 제시라고 본다면 26일과 27일의 2차에 걸친 단독회담은 북한의 입지를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하는 구체적 「전략」의 일환이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이번 단독회담은 북한측의 돌연한 요청에 의해 이루어졌다. 가네마루 전 부총리의 묘향산체재 하루 연장은 대표단을 태우고 평양에 돌아오는 특별열차가 출발하기 직전,조선로동당 김용순 서기를 통해 김 주석으로부터 『가네마루씨와 꼭 둘이서만 이야기하고 싶다』는뜻을 전해왔기 때문이었다. 김일성 주석은 26일 수뇌급 3자회담에서 일본을 지나칠 정도로 추켜올리는 발언을 해 일본 정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나는 지금 일본의 현상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일본은 경제대국이지만 정치대국도 되어 있다. 여기까지 이른 것은 일본의 정책이 옳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채권국이며,미국은 채무국이다…』라는 취지의 발언의 저의가 무엇인지에 관해 북한관계 전문가들은 분석에 골몰하고 있다. 이것은 한마디로 북한이 자존심을 꺾고 일본에 접근함으로써 경제협력이라는 실리를 취하고,동시에 고립화를 면해보자는 계산에서 나온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동맹국인 중국·소련으로부터도 「다루기 어려운 상대」로 불릴만큼 폐쇄적 자존심이 강했던 북한이 이처럼 「대일추파」를 던지는 동기는 명백히 돈 때문이라고 27일자 산케이(산경)신문은 지적했다. 또 김일성 주석이 일본과의 우호친선을 꾀하겠다는 결단을 내리게 한 것은 김일성체제 유지 및 북한의 당면 최대과제인 김정일 서기에의 세습을 어떤형태로든 굳히려는 의도에서 과감한 대일접근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이 신문은 분석했다. 평양정권은 지금 자본 기술은 물론 식량 에너지조차 부족,피폐상태에 있는 경제를 이대로 끌고 가다가는 김일성 주석 사후 후계체제를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불안에 휩싸여 있다고 보아도 좋은 상황이다. 따라서 그 돌파구로서 일본의 협조를 받지 않으면 안된다는 판단이 섰을 것이다. 이번 김­김(환)단독회담이 내포하는 중요한 의미의 또 하나는 대일본 접근 파이프라인을 종전의 일본사회당에서 집권자민당으로 바꾸려 한다는 점이다. 26일 하오 4시를 조금 지나 묘향산에서 평양으로 돌아가는 특별열차내의 사회당 대표단 단장 다나베 부위원장의 표정은 착잡했다고 동행보도진이 전해왔다. 김일성 주석의 요청에 따라 자민당측 단장인 가네마루 전 부총리는 단독회담을 위해 묘향산에 그대로 남게되고 오래 전부터 대북한 파이프역을 자임해 온 사회당측 단장은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로 북한·일본의 외교주도권이 사회당으로부터 자민당으로 옮겨진 것을 상징한다. 이것은 또한 북한측이 자민당내에서 큰 영향력을 갖는 가네마루 전 부총리의 실력을 제대로 평가했다는 증거로도 볼 수 있다. 가네마루 루트를 조준한 것이다. 이제는 북한·일본관계는 배상·경제협력 등 보상문제 등의 구체적인 타결책을 마련하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번 대표단과 동행한 일본정부의 외무·통상·운수·우정성 등 실무자들은 사상 최초로 북한당국 실무자들과 접촉을 개시했으며,이와 병행해 자민당대표단도 북한조선로동당 관계자들과 개별회담에 들어갔다. 북한의 대일접근 의욕은 로동당기관지 로동신문의 보도태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27일자 로동신문은 1면 톱기사로 「위대한 김일성 주석이 가네마루 다나베 씨를 접견」이라는 제목아래 1면 거의 전부를 할애했다. 사진도 1면에는 김 주석을 둘러싼 가네마루 다나베 단장의 사진 및 대표단 전원과 김 주석과의 기념사진을 게재했으며,2면에는 동행기자단과의 기념촬영사진을 실었다. 이번 가네마루 대북한외교가 가져온 일련의 변화에 대해서는 일본의 학자들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와다나베 아키오(도변소부) 동경대교수는 이렇게 지적했다. 『가네마루 전 부총리의 이번 북한방문은 외교스타일로서는 위화감을 느끼게 한다. 당차원에서의 협의를 거쳐 정부레벨로 이행시키는 교량역으로서는 상당히 깊은 부분까지 협의한 것으로 보인다. 외교로서는 이례적인 것이다. 한국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의 한­소정상회담을 성공으로 이끌어 외교면에서 북한보다 앞서있기 때문에 전에 비해 여유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북한·일본 사이에 연락사무소가 개설되면 그 의미는 크다. 한국도 침묵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어쨌든 북한에 서방측과의 파이프가 생겨 인적 정보교류가 가능해지면 북한도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 기본적으로 한반도 문제는 당사자간의 문제이지만,전유럽안보협력회의(CSCE)처럼 동서체제를 넘은 안전보장기구를 아시아에도 설치,한반도의 군사 정치 문제에 대해 무릎을 맞대고 협의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 북한의 대일 접근은 개방정책에로의 전환의 조짐일 수도 있다는 전제하에 나온 견해이다.〈도쿄=강수웅 특파원〉
  • 북,일에 11월 수교교섭 제의/김일성,가네마루에… 배상규모 협의

    【도쿄=강수웅 특파원】 북한 조선노동당의 김용순 서기(국제부장)는 27일 평양에서 개최된 조선노동당과 일본의 자민·사회 양당 대표단과의 3당대표 정치회담 석상에서 배상·경제협력 등 보상 문제는 일단 제쳐두고 『오는 11월부터 전제조건 없이 국교정상화를 위한 정부간 교섭을 개시하자』고 일본측에 공식 제의했다.〈관련기사 3·4면〉 또 자민·사회 양당 대표단 소식통에 따르면 이날 별도로 개최된 북한·일본간의 사상 첫 정부간 교섭인 외교당국실무자 협의석상에서도 북한측은 『오는 11월 상순 평양에서 전제조건 없이 국교정상화교섭을 하면 어떠한가』라고 제의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일본 외무성도 확인했다. 북한측의 국교정상화 제안은 26일과 27일 열린 묘향산에서의 김일성 주석­가네마루 신(김환신) 전 부총리 등과의 회담에서도 나왔다고 일본의 대표단원들이 밝혔다. 북한은 지금까지 한국과 이미 국교를 맺고 있는 일본과의 수교는 「2개의 조선을 고착화시키는 것」이라며 반대의 입장을 표명해 왔다. 그러나 이번 북한측이예상을 뒤엎고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제안해온 것은 북한 외교방침의 일대 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나아가 한반도정세에 영향력을 갖고 있는 미국·소련·중국 등에도 큰 파문을 불러 일이킬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북한의 국교정상화 제안은 28일 발표될 공동성명에도 포함될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조선노동당 김용순 서기는 이날 저녁 평양 만수대 의사당에서 개최된 노동당과 자민·사회 3당 정치회담에서 현안인 제18 후지산마루(당사산환)사건으로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베니코 이사무(홍분용) 선장과 구리우라 요시오(율포호웅) 기관장을 10월 중에 석방한다고 밝혔다. 한편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26일 하오와 27일 상오 2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중인 일본 자민당의 가네마루 신(김환신) 전 부총리와 단독회담을 갖고 한반도 문제를 비롯한 세계정세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이 자리에서는 남북통일방안·유엔가입 문제 등에 관한 북한측 입장의 설명이 있었으며,가네마루 전 부총리는 「남북이 하루라도 빨리 통일될수 있도록 대화를 넓혀나가도록」 김 주석에게 권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회담은 김 주석의 돌연한 요청에 따라 가네마루 전 부총리가 묘향산 초대소에서 1박을 더하며 이루어졌다. 1차회담은 26일 하오 6시30분 김 주석이 가네마루 전 부총리를 숙소로 방문,1시간여에 걸쳐 진행됐으며 2차회담은 가네마루 전 부총리가 27일 상오 9시 김 주석에 대한 답방형식으로 개최됐다. 이로써 가네마루 전 부총리는 북한방문에서 모두 3번에 걸쳐 김 주석과 회담했다. 이번 2차례에 걸친 단독회담에서는 과거 일본의 식민지지배에 대한 보상방법과 규모 등에 관한 구체적이고 깊이있는 협의가 있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는 별도로 자민·사회 양당대표단과 함께 동행한 일본의 외무·통상·운수·우정성 등 정부실무자들은 27일 상오 9시30분 사상 처음으로 북한당국의 실무자들과 정부간 접촉을 개시해 쌍방의 연락사무소 설치,일본 여권상의 북한 적용제외조항 삭제,직행편 개설,북한­일본간의 무역채무 문제,통신위성 이용 등 현안 문제에 대해 협의했다.
  • 한국투기꾼 중국서 설친다/아시아드 계기 북경­상해등에 발길 잦아

    ◎현지인과 손잡고 부동산 매입에 열올려/선수촌아파트 1동 사려다 퇴짜 맞기도 【북경=본사합동취재단】 한국과 중국의 국교가 수립되면 값이 폭등할 것을 노려 북경에 아파트나 땅을 사려는 한국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이같은 조짐은 북경뿐아니라 상해 천진 연길 등지까지도 번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아파트 등 부동산의 개인소유는 물론 거래까지 엄격히 금지돼 있었으나 지난해부터 개인의 부동산매입을 허용하면서 값도 하루가 다르게 뛰어오르고 있다. 현재 북경의 아파트값은 10평짜리가 5만원(한화 7백50만원)정도로 86년 1만원(한화 1백50만원)정도에서 무려 5배나 올랐다. 그나마 매물이 없어 보통 3∼4개월을 기다려야 살 수 있다. 부동산매입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은 주로 한국기업들로 지사 주재원숙소란 명목으로 아파트 등을 사들이고 있다. 현재 아파트를 갖고 있는 대기업은 SㆍH사 등 4∼5개사에 이르고 있으며 중소기업이나 개인이 북경시민의 명의를 빌려 아파트를 사들인 경우도 상당수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H그룹의 경우 50평짜리 아파트를 홍콩화교명의로 23만7천달러(한화 1억4천만원)에 사들여 주재원숙소로 사용하고있다. 이곳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한 한국인이 아시안게임 선수촌으로 쓰고 있는 아파트 한동을 몽땅 사려고 시제보다 휠씬 비싼 값에 조직위원회측과 가계약을 맺었으나 국교가 수립되지 않아 최종 단계에서 성사가 되지않고 있다는 것이다. G사의 북경 지사관계자는 『선수촌아파트를 살들인 한국인 10여명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서울에 북경의 부동산을 소개하는 전문업자까지 있다고 말했다. 선수촌아파트값은 현재 30평짜리가 15년 임대조건에 한화 8천3백만원정도이나 값이 계속 오르고 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북경에서는 아파트를 일단 임대하면 명의변경이 가능해 얼마든지 팔수있다. 땅에 대한 매입붐은 아직 아파트만큼 두드러지지는 않으나 곧 열기가 번질 것으로 보인다. 이곳 부동산 업자들에 따르면 서울에서 부동산업을 하는 C모씨는 북경사람과 합작으로 법인을 설립,현재 시내중심가의 상업지역에 사들일 땅을 물색중에 있다는것. 중국에서 아파트는 개인이 1인당 3평이상을 소유하지 못하고 자녀수도 1명으로 제한하고 있어 결국 개인명의의 주거면적은 10평이상을 넘지 못하지만 믿을만한 현지주민을 앞세워 2∼3채씩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 관심 모으는 박철언의원 「북경행보」

    ◎중국ㆍ북한 거물급 잇단 접촉… “중대임무” 추측/일정도 베일에… 본인은 “개인자격” 거듭 강조 북방정책을 주도했고 정무장관직을 떠난 뒤에도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민자당의 박철언의원이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북경에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중국내에서의 그의 거취와 역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3일 숙소인 베이징호텔에서 잠깐 기자와 만난 그는 『북경은 순전히 개인자격으로 방문한 것인만큼 특별한 해석은 하지 말아달라』며 북방외교 차원에서 자신의 활동을 결부시켜주지 말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박 의원은 지난 21일 북경에 도착한 직후 중국당국의 안내를 받아 모처로 직행,고위층 관리와 비밀접촉을 가진 것을 시발로 중국 및 북한 고위관계자와 잇단 접촉을 가진 것으로 전해져 북경을 무대로 북방외교활동을 재개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 의원이 북경에 와서 공식석상에서 만난 거물급 인사로는 북한의 이종옥부주석과 중국의 이서환 정치국 상무위원이다. 이 부주석과의 만남은 21일 밤 인민대회전야제 공연장에서 박 의원이 그의 좌석으로 찾아가 인사를 나눔으로써 이뤄졌고 이 상무위원과는 전야제공연에 앞서 있었던 리셉션에서 인사를 겸해 접촉했다. 박 의원의 일정은 공식행사외에는 일체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중국의 각계각층 인사와 만나고 있으며 그가 북한의 이 부주석에게 적극 접근하고 나선 것으로 봐 북한측 인사와의 막후접촉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이곳 외교소식통의 분석이다. 요컨대 정부간 교섭통로가 아닌 비공식 채널을 통해 수교관계수립이 임박한 소련과는 달리 소극적인 경제교류차원을 넘지 못하고 있는 한중관계와 관련,중국 당국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고 중국의 대한접근을 어렵게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확인키 위해 박철언카드가 활용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 이곳의 해석이다. 다음은 박 의원과의 일문일답 내용. ­최근 북한과 중국관계가 다소 소원해졌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곳에 와서 재삼 확인한 것은 중국정부가 우리와의 관계에 있어 엄격히 「정경분리원칙」을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중국과 북한간의 관계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앞으로 한중간의 관계개선 전망은. 『남북한 및 한중관계는 따로 떼어 놓아서는 안되며 총체적으로 추진돼야 할 것이다. 따라서 중국과의 수교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 또 중국정부가 우리에 대해 정경분리원칙을 고수한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 나름대로 지혜롭게 대처해 나가면 될 것이다』 ­무역사무소 개설 등 민간차원의 한중교류문제에 대해서는 중국도 그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 같은데. 『무역사무소 개설문제는 중국 정부가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조만간 가능할 것으로 본다』 ­향후 북경에서의 일정은. 『1주일 정도 예정하고 왔는데 이곳에 와보니 옛날부터 아는 친구도 만나고 이곳저곳 바쁘게 다니다 보니 체류일정이 좀더 길어질 것 같다』
  • 한ㆍ소 외무,30일 수교일정 발표/유엔서 첫 회담 확정

    ◎양국 정상 교환방문도 논의/노대통령,최 외무에 지침 시달 노태우대통령은 21일 하오 청와대에서 최호중외무장관으로부터 오는 30일 뉴욕에서 한소외무장관회담을 가질 예정이라고 보고를 받고 『한소 양국관계에 외교적 발전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 지침』을 시달했다고 이수정청와대대변인이 발표했다. 노 대통령이 시달한 「지침」내용에 대해 이 대변인은 『외교정책에 관한 최고 결정권자의 결단이 담긴 것』이라고만 말하고 더이상의 언급을 회피했으나 한소 수교시기 및 한국의 대소 경협규모ㆍ양국정상의 교환방문추진시기 등에 대한 노 대통령의 결심이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대소 경협은 소비재를 중심으로 한 상품차관형식이 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그 규모는 30억달러선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정부의 한 고위소식통은 이와 관련,『이번 최 외무장관과 셰바르드나제 소련외무장관간의 사상 첫 한소 외무장관회담에서는 그동안 양국간의 협의를 바탕으로 양국수교 일정이 공동성명 형식으로 발표될 것으로 본다』고 말하고 『오는 11월쯤 한소 수교의정서가 정식 서명되는 것을 계기로 노 대통령이 연말이나 내년초 모스크바를 먼저 방문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방한은 내년 봄 일본을 방문하는 일정에 곁들여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한 당국자는 노 대통령의 지침과 관련,『한소 양국이 그동안 공동관심사에 대한 협의를 원만히 진행해왔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말하고 『양국간의 경제협력ㆍ수교시기ㆍ양국정상의 교환방문 등을 비롯한 모든 분야에 걸쳐 지침이 내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외무부의 고위 당국자는 이날 한소외무장관회담 날짜에 대해 『소련측에서 최근 양국장관간 회담을 26일에 갖는 것은 셰바르드나제장관의 일정상 불가능하다는 뜻을 주소 영사처를 통해 우리측에 알려왔다』고 밝히고 『이에 따라 양국은 셰바르드나제장관이 다소 시간적 여유가 있는 30일에 역사적인 양국 외무장관회담을 갖기로 의견일치를 보았다』고 말했다. 당국자는 또 양국 외무장관회담 장소와 관련,『양국은아직까지 회담장소를 구체적으로 결정하지 못했다』면서 『최 장관이 뉴욕체류중 이 문제는 확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당국자는 그러나 회담장소가 최 장관의 숙소인 「월도프 아스토리아」는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말해 제3의 장소를 물색중에 있음을 시사했다. 한편 최 외무장관은 유엔총회 참석과 함께 한소외무장관회담을 위해 오는 23일 뉴욕으로 떠날 예정이다.
  • 미,현대에 사우디공사 요청/4억불규모 군숙소 신축… 계약조건 협의

    미국 국방부측이 현대건설에 4억달러 규모의 대규모 군숙소를 사우디아라비아에 건설해줄 것을 요청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사우디에 계속 미군을 증파하고 있는 미국의 대 이라크 전략과 관련,장기주둔 채비를 갖추기 시작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현대그룹의 한 관계자는 11일 미국측으로부터 최근 24시간 철야작업으로 6개월내에 사우디주둔 미군이 쓸 군숙소를 지어달라는 요청을 받고 현재 미국방부측과 계약조건 등 실무협의를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 공사의 규모는 약 4억달러 내외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며 조건이 맞을 경우 사우디의 현대건설인력 및 장비를 투입,조만간 공사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와 함께 내달부터 중국 연변 교포 3백여명을 소련 스베틀라야지역에 투입,원목생산에 본격 착수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이를 위해 현재 연해주 현지에 이들이 기거할 임시숙소를 건설하고 있다고 말했다.
  • 50대 여관종업원/새벽 숙소서 피살

    9일 상오4시쯤 서울 강남구 역삼동 707 동보장여관 5층종업원 숙소에서 종업원 한순규씨(58ㆍ여)가 칼에 찔린채 숨져있는 것을 함께 일하는 이정우씨(33ㆍ여)가 발견했다.
  • 소 공산당,대 군부 입김 아직도 막강/페레스트로이카 이후의 통제실

    태◎정치장교 8만명… 인사ㆍ복지문제도 간여/“군 체질개선” 등 일부선 개혁도입 움직임 레닌그라드와 핀란드 국경사이에 있는 공산청년동맹의 훈련기지에는 『당의 요구대로,레닌의 가르침대로 봉사하자』라고 쓴 포스터가 아직도 붙어있다. 소련에서 5개월전 야당이 합법화된 이후 군에 대한 공산당의 통제가 완화되기 시작했으나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다. 정치장교인 레오니드 아크수이타대령은 『현 단계에서 군은 다당제가 먹혀들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4백만의 소련군 가운데 약 8만명에 달하는 정치장교들은 지난 수십년간 군에서 당의 명령을 수행해 왔다. 정치장교 출신 가운데 이름난 인물로는 니키타 흐루시초프와 레오니드 브레즈네프가 있다. 한 정치장교는 지난 3월 공산당의 권력독점을 보장하는 헌법조항이 폐기된 이후 공산당이 공식적으로는 군인사문제에 대한 통제를 자제하고 있으나 그 영향력은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고 시인했다. 그러나 변화는 분명히 일어나고 있으며 정치장교들은 심리학과 홍보와 같은 분야에서 새로운 역할을찾고 있다. 아직도 모든 부대에는 공산당 위원회가 그대로 존재하고 있으며 이 위원회가 전투훈련에서부터 장교숙소문제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에 관여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7월에 열린 공산당대회에서 개혁주의자들이 이 위원회의 철페를 시도했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외에도 각 부대의 부사령관은 정치장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당내 개혁주의자들은 이 자리도 없애려고 시도했으나 결국 정치장교들이 정치 교육보다는 군의 사기ㆍ규율및 여가와 같은 보다 실질적인 문제를 전담하도록 한다는 선에서 주저앉았다. 소련지상군 사령관이자 공산당 고위간부인 발렌틴 발겐니코프 장군에게도 정치장교가 배속돼 있는 실정이다. 폴란드 국경지대에 있는 한 공수부대 장교의 부인은 『남편이 공산당원이 아니면 부대사령관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군에 대한 공산당의 통제는 워낙 광범위한 분야에 미치고 있기 때문에 다당제 민주주의의 이점이 군에 도입되기까지는 수년간의 기간이 걸리게 될 것이라고 취재중에 만난 소련장교들과 사병들은 털어놓았다. 소련 국방부 홍보국의 이반 스크릴니크는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 모두가 똑같은 가치관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3개 공화국의 4개 군사기지에서 만났던 소련군 병사들은 소련군에 비공산 정당이 생겨날 가능성을 한마디로 일축했다. 레닌그라드 지역군 부사령관 블라디슬라프 리소프스키장군은 『98%의 하사관들과 장교들이 공산당원이기 때문에 10년안에 군부내의 비공산 정당결성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모든 정치장교들이 공산주의자들이기 때문에 정치장교들의 역할을 당을 대표하는 것으로부터 정부를 대표하는 것으로 바꾼다 해도 당장에 별다른 차이는 생겨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레닌그라드 기지의 장치장교 파벨 일라리오노프대령은 『사람들이 3년전과는 다르며 정치 논쟁의 길도 열려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7월에 열린 당대회가 정치장교들에 대한 당노선교육을 중지하고 그들의 임무를 일반적인 병사들의 복지문제에만 전념시키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정치장교들의 임무가 앞으로 더 크게 변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군관계자들은 현재 많은 정치장교들이 심리학과 사회학 학위를 받기 위해 대학에 다니고 있고 또 일부는 공보장교로서 새로운 임무를 맡아 일하고 있다고 전했다.
  • 헤프고 품위없는 한국인(사설)

    씀씀이만 헤프고 품위는 없는 한국인. 지금 국제사회에 우리는 그렇게 비치고 있다. 올여름방학에 유럽연수여행을 다녀온 대학생들이 직접 겪은 일이 있다. 유럽의 한 나라에서 급히 숙소를 바꿔 정할 일이 생겼던 그들은 전화로 한 호스텔에 문의를 했더니 방이 있다고 곧 오라고 했다. 허겁지겁 달려가 투숙수속을 하려니까 현관에서 방이 없다고 들여놓아주지 않았다. 전화로 「있다」고 할 때에는 「한국인」임을 밝히기 전이었다. 이 나라는 『한국학생들이 함께 묵는 다른나라 사람들을 너무 불편하게 하고,이방저방 몰려다니며 시끄럽게 하고,시설을 함부로 사용하여 곤란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는 나라라고 한다. 금년 여름 동남아의 한 나라 비행기는 비행시간 6시간에 1시간반이나 쉬게되는 중간 경유지에서 승객을 비행기안에 묶어둔 채 내려주지 않는 일을 예사로 했다. 90%이상이 한국관광객인 승객들을,찌는 더위속에 비행기안에 앉혀놓은 채 청소를 하게 하고 승객의 보세구역이용권을 박탈해 버린 것이다. 아무데서나 닥치는 대로 쇼핑을 하고,시간이 되어도 무신경하게 비행기로 돌아올 줄을 몰라서 출발시간을 지체시키기를 예사로 하는 것이 한국관광객이므로 아예 밀폐된 비행기안에 붙잡아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든다. 이런 항공회사의 횡포가 괘씸하지만 한국관광객이 오죽 성가시게 굴었으면 그렇게 함부로 했을까,반성을 해보게 한다. 동남아의 선물가게는 물론 중국의 잡상인까지도 「사세요,안비싸!」따위 조각난 한국말을 외칠 지경이니 한국관광객은 「시끄러운 쇼핑광」으로 굳어져버릴 것 같다. 금년들어 지난달 말까지 출국한 한국사람 해외여행자 수는 88만1천명이나 되었다(서울신문 8일자). 연말까지는 가볍게 1백6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이 사용한 1인당 외화액수는 평균 2천달러. 외국인이 한국에서 떨어뜨리는 외화는 1인당 1천1백달러니까 거의 배나 더 쓰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따져보아도 우리가 그렇게 헤프게 써야 할 나라가 아니다. 상품수준으로 보아도 그렇게 외화를 주고 마구잡이로 사들여올 처지에 있지 않다. 전혀 손색이 없는 국산품이 국내에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이상한 약이니 괴상한 식품,아니면 허영스런 사치품 같은 것들이 쇼핑품목이 되고 있다. 한국인이 천박한 졸부의 「추악한 동양인」 노릇으로 일인들을 계승하는 것같은 이런 현상은 너무 잘못된 일이다. 그나마도 일인들보다 더욱 나쁜 인상을 심으며 다니고 있는 것이 실상이다. 아무런 단계적 대비없이 해외여행의 둑이 무너진데서 오는 심각한 부작용일 것이다. 여행사·항공회사·사회교육기관,그리고 당국이 연대해서 본격적인 「교육」의 기회를 상설 운영하는 방법을 모색한다든가,질좋은 텍스트를 만들어 보급하는 방법 등을 개발하는 일들을 해야 할 것이다. 하루에 수천명씩 공산권여행자가 늘어가는 판인데 제대로 된 안내책자도 없는 우리의 실정이 「부끄러운 한국인」의 양산을 예방하지 못하는 것이다. 손 쓸 수 없이 잘못되고 난 뒤에야 「바로잡겠다」고 나서는 우리식의 나태함이 「해외여행자유화」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나고 있는 일이 서글프기만 하다.
  • “정들자 이별”… 연총리,아쉬움 표시/북녘손님들 서울 떠나던 날

    ◎“수고많았다” 호텔직원들에 사의/방북구속인사들에 위문품 간접전달도/연도에 나온 시민들 손흔들어 환송 ○…역사적인 남북고위급회담에 참석했던 연형묵정무원총리 등 북쪽 대표단 일행이 3박4일의 서울체류를 마치고 판문점의 군사분계선을 넘어간 것은 7일 상오11시35분. 일행은 이날 상오11시15분쯤 홍성철통일원장관 등 우리쪽 환송대표 6명과 함께 승용차편으로 판문점 우리쪽 지역의 「평화의 집」에 도착했다. 이들은 「평화의 집」대회의실에서 우리쪽 인사들과 15분남짓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3박4일간의 서울체류일정에 관해 환담했다. 홍장관은 이 자리에서 『과거에도 여러차례 남북회담을 했지만 이번처럼 진지한 자세로 문제를 풀려고 노력했던 적은 없었다』면서 『이번에 돌아가시면 부디 건강하시고 오는 10월16일 평양에서 열릴 2차회담을 잘 준비해달라』고 연총리에게 부탁했고,연총리는 『이번 회담이 별다른 성과는 없었지만 서로 얼굴을 익히고 상대방의 입장과 주장을 알게돼 앞으로의 대화에 큰 기초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정들자 이별』이라고 아쉬워했다. 홍장관은 또 지난4일 접촉사고로 허리를 다친 백남준대표에게 『허리가 아프면 언제든지 다시 오라』면서 『모든 치료를 다 해 주겠다』고 위로했다. 백대표는 이에대해 『저녁마다 호텔에서 치료해줘 고맙다』면서 『집에 돌아가면 깨끗이 나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연총리는 특히 홍장관에게 『선생의 책임이 크다』면서 『통일사업을 전담하는 분 아니냐』고 덧붙였다. 이에 홍장관이 『서울에서 오는동안 승용차안에서 1시간30분동안 연총리와 많은 얘기를 주고 받았다』고 밝혔고 좌중에서는 『2차회담을 했구만. 평양회담은 3차가 되겠다』는 재담과 함께 폭소가 터지기도. ○…북쪽 대표단은 이날 상오9시35분쯤 숙소인 인터콘티넨탈호텔 1층 로비로 내려와 우리쪽 대표들과 악수로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강영훈총리와 연형묵총리는 현관앞에 대기시켜둔 승용차를 타기에 앞서 사진기자들을 위해 한동안 악수를 하며 포즈를 취해주기도 했다. 강총리는 『만나뵈서 반가웠습니다. 이런 만남을 자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평양에서 다시 만나지요』라고 인사했고 연총리도 『감사합니다』라며 환한 미소를 띠었다. 북쪽 기자들과 수행원들은 호텔앞에 배웅나온 우리쪽 행사요원 및 호텔직원 1백여명이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하자 『그동안 수고많았다』면서 손을 흔들어 답례했다. 상오9시38분. 연총리와 홍성철국토통일원장관이 함께 탄 승용차와 북쪽 대표단일행이 탄 버스와 호텔을 빠져나가자 연도에 나온 2천여명의 시민들은 손을 흔들며 이들을 환송. ○…북쪽대표단은 서울을 떠나기에 앞서 문익환목사와 문규현신부,임수경양,유원호목사 등 방북했다가 구속된 인사들에게 위문품을 간접적으로 전달. 안병수대변인은 이날 상오9시10분쯤 호텔 3306호실에서 통일원 직원 박종선씨에게 위문품 5점과 위문품 명세서를 전달하면서 『이 선물을 가족들에게 전달하는 사진을 보내달라』고 주문하기도. ○…이날 판문점에는 북쪽에서 기자 및 관계자 등 30여명이 마중나와 취재 등에 열중하는 모습. 중앙통신의 김명길기자(36)는 이번 회담의 성과에 대해 『양쪽이 만난 자체에커다란 의미가 있다』면서도 『그러나 기본적으로 초보적인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것을 하지 못해 다소 실망』이라고 말했다.
  • “아쉬운 서울의 4일 평양서 또 만납시다”

    ◎북녘손님들,한아름 선물안고 돌아가 국토분단 45년만에 서울에서 처음열린 남북고위급회담에 참석했던 북쪽 대표단일행은 7일상오 3박4일동안의 회담일정을 모두 마치고 북한으로 돌아갔다. 이들은 지난4일 남쪽땅에 첫발을 디딜때와는 전혀달리 친숙한 표정으로 『이번 회담에서 얻어진 조그만 진전이 오는 10월16일 평양에서 열릴 제2차 회담에서 큰 성과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기약했다. 북쪽 대표단은 이날 상오7시쯤 숙소인 서울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아침식사를 마친뒤 상오8시30분쯤부터 귀환버스에 올랐다. 북쪽 대표단장인 연형묵정무원총리는 상오9시35분쯤 마지막으로 객실에서 나와 현관에서 기다리던 강영훈국무총리와 굳은 악수를 나눈뒤 홍성철통일원장관과 함께 1호차에 탔다. 대표단의 짐은 올때와 마찬가지로 8.5t 컨테이너로 날랐다. 화물수송담당자는 『북쪽에서 가져온 과일과 기념품 등을 모두 소비했음에도 선물이 많아 올때보다 오히려 짐이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예정보다 30여분이나 늦은 상오9시38분 숙소를 떠난 차량행렬은 올때와 마찬가지로 올림픽대로와 마포ㆍ무악재를 거쳐 통일로를 따라 판문점으로 갔다.
  • 올림픽공원 둘러보며 “부러운 눈길”/북녘손님

    ◎박물관등 견학한뒤 서울의 마지막밤/신라유물앞선 조상슬기에 감탄/만나는 사람마다 “수고하십네다”/호텔만찬선 정치적발언에 한때 분위기 “침울ㆍ 남북고위급회담 북쪽대표단 일행은 서울방문 사흘째인 6일 주요행사일정을 대체로 마치고 아쉬움속에 서울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일행은 이날 국립중앙박물관과 올림픽공원 등을 돌아보고 신문사를 방문하는 한편 시내 대중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행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등 취재에도 열을 올렸다. 북쪽대표단일행은 처음 올때의 굳은 표정과는 달리 마주치는 행사요원 및 취재진들에게 『수고합네다』라는 인사말을 건네는 등 자못 친근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북쪽대표들은 이날 하오7시30분 박준규국회의장이 송파구 잠실동 롯데호텔에서 배푼 만찬에 참석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 나온 사람들이 대부분 여ㆍ야 정치지도자 및 국회의원들이라는 점을 인식한 탓인지 정치적질문과 발언을 거듭해 만찬장의 분위기를 다소 무겁게 만들었다. 특히 연형묵총리는 「외국군대ㆍ핵무기철수」 등을 서슴없이 거론하기도 했다. 북쪽대표들은 약2시간동안의 만찬을 끝내고 하오9시50분쯤 숙소인 인터콘티넨탈호텔로 돌아온뒤 외출을 삼간채 끼리끼리 모여앉아 얘기를 나누거나 다시 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며 서울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이들은 이날 하오7시부터 20여분동안 차에 탄채 올림픽공원을 돌아봤다. 승용차 3대와 버스 4대에 나눠타고 인터콘티넨탈호텔을 떠난 이들 일행은 잠실종합운동장∼롯데월드∼올림픽회관을 지나 올림픽공원 북2분을 통해 공원안으로 들어섰다. 차량이 올림픽수영경기장,체조경기장,사이클경기장,몽천토성 및 유명조각가들의 조각품들이 있는 곳을 지나는 동안 북한의 사진기자들은 차창밖으로 펼쳐지는 공원안 모습을 촬영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북쪽대표들은 올림픽기념 평화의 문을 비롯한 각종 시설물과 공원내부를 돌아보며 『아주 잘 가꾸어 놓았다』 『올림픽을 치르느라 수고 많았겠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을 태운 차량행렬이 연도를 지날때는 연도의 시민들이 손을 흔들며 반가움을 나타냈고 이들도손을 흔들어 답례했다. 북쪽수행원과 기자 등 70여명은 이에앞서 이날 하오2시40분 버스편으로 중앙박물관에 도착,김진무사무국장의 영접을 받으며 1층강당으로 들어가 한병삼관장의 인사말을 들은 뒤 박물관소개영화를 20분동안 관람했다. 일행은 이어 이건무고고부장과 강우방미술부장의 설명을 들으며 2ㆍ3ㆍ4층 전시실을 차례로 돌아보았고 특히 선사시대와 신라시대 유물을 유심히 살폈으며 유물진열장의 온ㆍ습도 자동조절장치,문화재의 개인소장문제 등에 관심을 나타냈다. 북쪽기자단의 김천일단장은 『남쪽에는 신라ㆍ백제유물은 풍부하나 고구려의 유물이 적고 북쪽에는 그 반대이니 「남북유물합동전시회」를 열었으면 좋겠다』는 우리기자의 물음에 『그래서 이렇게 회담을 갖는게 아니냐』면서 『다 합의해서 하자』고 답변했다. 일행은 이에앞서 하오1시쯤에는 강남구 신사동 삼원가든에서 숯불갈비와 냉면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 두 얼굴 지닌 「보도 일꾼」/이목희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사흘간 북측 손님들을 지켜보면서 북한사람들은 두얼굴을 가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표리부동이라는 나쁜 의미가 아니다. 얼핏 순박한 외모에 무엇인가 정이 통할 것 같다가도 막상 대화를 시작하면 독선적인 「논리꾼」으로 변하며 표정도 투쟁적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러한 「두 얼굴」현상은 남북 회담대표등 고위인사 보다는 「보도 일꾼」(기자)들에게서 더욱 두드러졌다. 북한사회에서 충분한 기득권을 향유하며 그 체제의 속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북측 고위인사들은 좀더 부드러운 태도로 통일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물론 통일의 방법ㆍ전제 등에 있어서 그들나름의 원칙을 철저히 고수하고 있었으나 미소와 수사로서 그를 은폐할 다소의 여유는 있는 것 같아 북한도 변하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TV에 비치는 북측 연형묵 총리의 유연한 태도는 자칫 일반인들에게 북한이 극도로 폐쇄된 사회란 인식을 흐리게 할 수도 있는 일종의 「유혹」이었다. 그러나 북측 기자들을 접촉해 보면 아직 북한사회의 개방이 멀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게 된다.북한에서 기자들은 상당한 정도의 권리를 누리는 계층으로 분류되고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북측 대표단 만큼은 덜 「훈련」되어졌다고 보여지며 이 때문에 자주 허점을 드러내곤 했다. 본능적으로 끌리게 되어 있는 자본주의 생활방식에 대한 동경과 자신들이 속한 제도적 틀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이 엿보였으며 이 고민이 단순한 이념갈등이 아니라 「생활」과 관련된 것이라는 느낌을 주어 삭막한 감정마저 일게 했다. 지난 85년 남북 적십자회담 북측 수행취재기자중 한 사람이 숙소인 호텔 이발소에서 「자본주의적」 서비스를 받았다는게 알려지자 평양에 돌아가 해직등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다는 소문은 북측 기자들이 고민하는 표정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해 주고 있다. 우리측 보도진이 극성인 탓도 있겠지만 북측 기자들이 「타지」에 왔다는 이유 이상으로 긴장하고 외부인들에 대한 자신들의 기자실 출입금지,공식인터뷰거절 등 폐쇄적 자세로 일관하고 있는 까닭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가 간다. 북측 기자들은 공식회담 대표보다 북한측 입장을 더욱 소리높여 옹호하고 있으나 역으로 「생활」에 대한 보장만 된다면 이런 완강한 태도가 하루아침에 바뀔 수도 있다는 느낌마저 주고 있다.
  • 통일까지 상호체제 인정 강 총리/단일의석으로 유엔 가입 연 총리

    ◎DMZ 평화이용 동시 제의/남북총리,기조연설 이견 못좁혀 분단 45년만에 최초로 남북한 총리를 수석대표로 한 역사적인 남북 고위급회담 제1차회담이 5일 상오 10시 서울 인터콘티넨탈호텔 그랜드샐라돈볼룸 국제회의장에서 개최됐다. 강영훈국무총리는 이날 기조연설에서 『남북이 더이상 대결적대 하는 상대가 아니라 공동번영을 향해 협력하는 동반자관계로 발전시켜 나가야 하며 남북간 사회개방과 교류협력을 넓혀 민족공동체의 사회ㆍ문화ㆍ경제적 기반구축을 강화해 나가자』고 강조하고 남북 관계개선을 위한 8개항의 기본합의서안ㆍ다각적인 교류협력실시방안ㆍ정치ㆍ군사적 신뢰구축방안 등을 제시,이에 합의할 것을 제안했다. 북한측 연형묵정무원총리는 기조연설을 통해 『통일문제는 먹고 먹히는 문제로 보거나 자기의 것을 남에게 강요한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면 북과 남의 대결은 더욱 조장되고 통일문제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히고 정치적 대결상태해소방안 6개항과 외군철수 및 군축방안 4개항 등을 제시했다. 본회담 기조연설에서 남북총리가 제시한 방안 중에서는 군사훈련 상호통보ㆍ고위군사당국자간의 직통전화설치ㆍ단계별병력감축에 상응하는 군사장비축소폐기ㆍ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ㆍ불가침선언 등의 내용이 공통적이었다. 강총리가 제안한 남북 관계개선을 위한 합의서안은 남과 북이 통일을 이룰 때까지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존중하고 ▲상호비방 중지및 내정불간섭 ▲의견대립과 분쟁의 당국간 대화ㆍ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결 ▲상대방 파괴ㆍ전복행위 포기 ▲자유왕래ㆍ사회개방 및 민족적 유대를 회복하기 위한 공동노력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비감축 ▲국제무대에서의 경쟁ㆍ대결중지 ▲휴전체제의 평화체제전환 등으로 돼 있다. 강총리는 정치적 신뢰구축조치의 일환으로는 ▲상대방에 대한 지명공격ㆍ비방ㆍ중상ㆍ전단살포 및 휴전선 일대의 확성기 방송중지 ▲남북간 신문ㆍ라디오ㆍTV 및 출판물의 상호개방 ▲서울과 평양에 상주연락대표부를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강총리는 또 군사적 신뢰구축 방안으로 ▲군인사의 상호방문및 교류실시 ▲군사정보의 상호공개ㆍ교환 ▲특정규모이상 군부대의 이동및 기동훈련사전통보,상대방 초청ㆍ참관(91년1월1일을 기해 여단급이상 기동부대및 기동훈련에 대해 45일전 통보) ▲남한 국방장관과 북한 인민무력부장간의 직통전화 설치ㆍ운영 ▲비무장지대의 비무장화 등을 제시했다. 강총리는 이같은 신뢰구축을 바탕으로 남북 불가침선언의 채택을 제의했다. 이어 연총리는 기조연설을 통해 유엔가입문제,문익환목사ㆍ임수경양 등 방북구속인사의 석방,팀스피리트훈련의 중지 등은 긴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주장했다. 연총리는 또 정치적 대결상태 해소를 위한 방안으로 ▲상호비방 중지 ▲통일에 배치되는 모든 법률적ㆍ제도적 장치의 제거 ▲남과 북을 갈라놓고 있는 물리적 장벽의 제거(콘크리트장벽) ▲각 정당ㆍ단체들과 각계각층 인민들의 자유로운 왕래와 접촉 실현 등 6개항을 제시했다. 강총리와 연총리는 이날 하오 숙소인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민속공연 관람을 위해 워커힐호텔로 이동하는 승용차에 동승,20여분 동안 단독요담을 가졌다. ○주요제의 내용 서울측 ①남북상호체제 인정ㆍ비방 중지 ②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 ③이산 자유방문ㆍ대교류 실현 ④남북한 직교역ㆍ자원 공동개발 ⑤신문ㆍ라디오ㆍTV 상호 개방 ⑥서울ㆍ평양 연락대표부 설치 ⑦남북 국방장관 직통전화 설치 ⑧비무장지대 평화적 목적 이용 ⑨남북군사력 동수로 균형감축 ⑩남북한 불가침선언 채택 ⑪남북 정상회담 개최 추진 평양측 ①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 ③북남 단일의석 유엔공동가입 ③정당ㆍ단체ㆍ각계 자유래왕 실현 ④방북인사 조속 석방 ⑤팀스피리트군사훈련 중지 ⑥비무장지대 평화지대로 전환 ⑦고위군사당국 직통전화 설치 ⑧30만→20만→10만 3단계 감군 ⑨미군철수ㆍ한반도 비핵지대화 ⑩북남 군사공동위 운영 ⑪불가침선언ㆍ평화협정 체결
  • 남북 총리 1차회담ㆍ만찬장 이모저모

    ◎“한배 탄 두사공”에 “산으론 안가야죠”/“통일시간표 정해 기대 부응하자”/「방북인사」 거론할땐 껄끄러운 듯/북기자,인터뷰 요청에 테이프 뺏으며 신경질 ▷1차회담◁ 분단 45년만에 남북 총리가 처음으로 대좌한 1차회담은 5일 싱오 10시부터 인터콘티넨탈호텔 2층 샐라돈볼룸에서 1시간55분여에 걸쳐 순조롭게 진행. 이날 양측 대표단은 상오 10시 정각 회담장으로 들어섰으며 수행원들은 미리 입장해 뒷좌석에 착석. 강영훈 국무총리는 양측 대표가 모두 좌정하자 『제1차 남북 고위급회담을 개최합니다』고 개회를 선언했고 이어 홍성철 차석대표ㆍ정호근ㆍ이진설ㆍ김종휘ㆍ이병용ㆍ임동원 대표 순으로 우리측 회담대표를 소개 북측의 연형묵 총리도 김광진 부단장ㆍ안병수ㆍ백남준ㆍ김정우ㆍ최우진ㆍ김영철 대표 순으로 소개한뒤 『내 이름은 소개하지 않아도 다 알지요』라고 말해 장내에 웃음. 강ㆍ연 두 총리는 이어 올해의 집중호우등 날씨에 관해 얘기하면서 관개ㆍ수리시설 등을 서로 소개하며 은근히 과시하는 듯한 인상. 연총리는 『올해는 평양에 1천7백㎜의 비가 내려 예년의 1천㎜에 비해 비가 많이 내렸다』고 하자 강총리는 『태풍이나 집중호우 등을 남한에서 많이 막아주니 고맙게 여겨야 할 것』이라고 조크. 연총리가 『최근 대동강 덕천에 갑문을 만들고 댐을 건설,대동강물이 마르지 않으면 농사에 지장이 없다』고 자랑하자 강총리는 『우리도 한강 상류에 댐을 많이 만들어 홍수피해가 적어졌다』고 응수. 연총리가 남포 서해갑문등 북한측의 수리ㆍ관개시설을 계속해서 소개하자 강총리는 『우리는 현재 창고에 1천6백만섬의 쌀이 쌓여있는데 금년에도 평년작은 될 것 같아 창고가 부족할 것 같다』고 설명. 두 총리는 이어 이번 회담전망에 대해 담소했으며 연총리는 『서울에 오면서 유심히 살펴보니 연도시민들이 열렬히 환영,회담에 대한 기대가 높은 것 같은데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잘 해나가자』고 제의. 연총리는 『우리는 고위급 회담이라는 한 배에 탄 두 사공같다』고 비유했고 강총리는 『한 배에 탔으니 꼼짝할 수도 없다』고 대답. 연총리는 『한 배에 탔는데 하나는 이리 가자고 하고 다른 사람은 저리 가자고 하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고 비유했으며 강총리는 『덤비면 배가 뒤집힌다』고 차분한 진행을 강조. ○계속 「수석대표 선생」 ○…가벼운 화제로 회의 분위기를 돋운 두 총리는 공식의제에 들어가 서로 인사말에 이어 기조연설. 강총리는 인사말에서 『쌍방 당국이 자기 책무를 소홀히 하고 구태의연한 태도를 그대로 견지한다면 평화통일은 물론 남북관계개선도 기대할 수 없게될 것』이라고 북한측의 전향적 태도를 촉구. 연총리는 『쌍방 대표단은 이 회담에서 90년대 통일시간표를 확정해 민족의 기대에 부응하자』고 피력. 이어 양측 대표의 기조연설이 시작됐으며 강총리가 20여분만에 연설을 끝낸 반면 연총리는 55분간에 걸쳐 연설을 해 대조. 강총리는 연설문을 차분히 잃어가다 남북 관계개선을 위한 기본합의서안에 이르러서는 또박또박 낭독을 했으며 합의문이 대한민국 국무총리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정무원 총리간에 체결되어야 한다고 밝힘으로써 남북이 서로 상대정부를 공식인정해야 한다는입장을 강조. 반면 연총리는 강총리를 「수석대표선생」이라 호칭하면서 「두개 조선」으로 나가는 정책은 수용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거듭 밝히자 우리 대표단은 다소 실망한 듯한 표정. 연총리는 문익환 목사등 방북 인사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히면서 우리측에 껄끄러운 대목임을 인식한 듯 한차례 목을 축이며 분위기를 낮추기도. ○문장 부호까지 읽어 연총리는 또 기조연설문을 낭독하며 「반괄호」「쌍괄호」「삼각」 등 문장부호까지 일일이 잃어 눈길. 연총리의 기조연설이 끝나자 강총리는 『쌍방의 기조연설을 통해 양측 입장이 충분히 반영됐다고 보여지며 시작이 반이란 속담처럼 이번 회담이 분단의 민족사를 청산,통일로 나가는 전기가 되길 바란다』면서 회의종결을 선언. 이어 연총리는 『내일 2차회의에서 좋은 안을 가지고 나오십시오』라고 말했고 강총리는 『연선생께서 좋은 안을 더 많이 가지고 오셔야 할텐데…』라고 응수했으며 양측대표단은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교환한뒤 산회. ○「십장생 병풍」 장식 ○…이날 1차회담은 오프닝 10여분간만 보도진들에게 공개됐고 나머지 부분은 프레스센터에 마련된 케이블 TV로 중계됐으며 일반에 대한 TV생중계는 합의에 따라 하지 않았다. 도착 첫날 시종 숙소에 머물러있던 북측 기자들도 회담직전인 이날 상호 9시30분쯤 프레스센터에 내려와 본격적 취재활동을 시작. 한편 우리측은 이날 회담장에 입장하는 대표단 수행원수를 최대한 줄이려했으나 북측이 반대,쌍방 30명씩 수행원좌석이 마련됐으며 회담장 양측에는 십장생이 그려진 병풍을 장식. 이날 강총리의 기조연설문은 송한호 통일원차관을 단장으로 청와대ㆍ통일원ㆍ안기부 관계자들로 구성된 전략기획단에서 주로 작성했으나 막바지에 강총리 자신이 수차레 숙독하며 상당부분을 고쳤다는 후문. ○기자들 한때 실랑이 ▷북측기자◁ ○…북측 기자들은 이날 하오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오다 인터뷰를 요청하는 우리측 기자들과 잠시 실랑이. 이날 하오 1시44분쯤 호텔 1층에 있는 중국식당 에머럴드씨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동료 5∼6명과 함께 나오던 40대 초반의 한 북측기자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MBC 뉴스진행자 백지연양이 가까이 다가가 인터뷰를 요청하고 카메라맨이 플래시를 켜면서 카메라를 작동하자 화를 벌컥 내며 카메라 테이프를 빼앗는등 한때 소동을 빚기도. 이에 대해 우리측 관계자들은 『MBC 기자들이 완장을 차지않고 취재하는 것을 북측기자가 기관원으로 오해한 것 같다』고 설명. 또 북측 기자들은 이날 상ㆍ하오에 걸쳐 전대협소속 대학생들이 호텔주변에서 유인물을 뿌리고 플래카드를 펼쳐드는 해프닝을 벌이자 20∼30명씩 한꺼번에 몰려들어 사진을 찍고 녹음기를 들이대며 열띤 취재.
  • 흥겨운 민속공연에 “한마음의 박수”/북녘손님들 서울서 이틀밤

    ◎만찬ㆍ영화 즐기며 허물없는 대화/북측기자,시민들에 질문공세/“저기가 어디냐” 창밖 서울모습에 큰 관심/호텔서 끼리끼리 모여 밤늦도록 얘기꽃 연형묵정무원총리 등 북쪽대표단 일행은 서울체류 이틀째인 5일 강영훈국무총리 등 우리쪽 대표들과 역사적인 첫 남북총리회담을 가진것을 비롯,오찬ㆍ만찬과 함께 예술공연과 영화를 관람하는 등 민족의 동질성을 되새기는 갖가지 행사에 참가했다. 남과 북은 이같은 잇단 접촉을 통해 상호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애쓰면서 통일에의 디딤돌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그리고 북쪽대표들은 이번 만남의 성공을 가름지을 6일의 두번째 총리회담을 준비하며 서울에서의 이틀째 밤을 편안히 보냈다. 북쪽대표들은 이날 저녁7시 고건서울시장이 신라호텔에서 베푼 만찬에 참석,정성이 가득담긴 갖가지 우리음식을 맛있게 들며 우리쪽 참석인사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만찬을 마친 북측대표들은 하오9시쯤부터 호텔옆 한국종합전시장 4층 영사실에서 극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관람했는데 특히 북한기자들은 「기억에남을만한 영화」라며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이들은 하오11시30분쯤 호텔로 돌아온뒤 다소 지친듯 곧장 잠자리에 들었으나 일부는 잠이오지 않는듯 끼리끼리 모여 방에서 맥주와 음료수 등을 마시며 자정이 훨씬넘도록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했다. 북측대표들은 이에앞서 이날 낮 숙소에서 자유시간과 함께 점심을 먹은 뒤 하오2시40분부터 4시10분까지 쉐라톤 워커힐호텔 가야금식당에서 민속공연을 관람했다. 이날하오 쉐라톤워커힐에서의 민속공연에서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그속에서 놀던때가 그립습니다」라는 고향의 봄 노래가 울려퍼질때는 뭉클함이 서로의 가슴속에서 솟구쳤으며 올림픽행사 가요로 쓰였던 「손에 손잡고」가 이어질때는 남북의 강영훈총리와 연형묵총리뿐 아니라 대표단 모두가 한마음으로 박수를 치며 장단을 맞췄다. 이날의 민속공연은 차량을 함께 타고온 남북의 두총리가 무대앞에 마련된 자리에 앉으면서 70여명의 악사들이 아악 「장춘불로지곡」을 연주하면서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가야금병창과 갖가지 민속무용이 잇따라 계속되면서 흥에 겨운 북한대표단들은 지그시 눈을 감으며 손가락으로 장단을 맞추는 모습도 곳곳에서 보였다. 연형묵총리 등 북쪽대표와 수행원ㆍ기자 등 북측대표단 일행은 이날 하오2시20분쯤 승용차 10대와 버스 6대에 나누어 타고 호텔을 출발,테헤란로∼강남운전면허시험장∼올림픽공원 앞을 지나 올림픽대교를 타고 16분만에 성동구 광장동의 쉐라톤 워커힐호텔에 도착했다. 특히 수행원들은 안내양이 버스에 설치된 비디오를 통해 상영하는 「국립공원 한라산」이라는 다큐드라마를 시청하기 보다 올림픽공원과 백제유적인 몽촌토성,올림픽대교를 지날때마다 안내양과 우리측 수행원에게 지명을 물어보곤 했다. 서울도착 이후 좀처럼 호텔을 벗어나지 않던 북측기자들도 이날 상오10시30분쯤 6명이 호텔앞 연도로 나와 지나던 김흥배씨(72ㆍ서울 강남구 삼성동) 등 시민 3명과 인터뷰를 하는 등 적극성을 보이기도 했다. 이들은 『이번 회담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미군이 통일에 방해가 되지 않느냐』 『육친적으로 곤란한점은 없는가』라며 질문공세를 폈으나 김씨가 『회담결과가 좋아야겠지만 우선 사람부터 오고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하자 내키지 않는듯 이내 다른 시민에게로 다가갔다. 또 이날 하오6시30분쯤 북한기자 5∼6명은 마침 이웃 현대백화점 7층 영어학원에서 강의를 듣고 귀가하던 이근보군(12ㆍ일원국교5년)에게 다가가 집주소,부모님의 직업 등을 물었다. 이들은 이군에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함께 부르자고 해 이군이 노래를 시작하자 따라 불렀으며 다른 기자는 이 장면을 처음부터 비디오카메라에 담고 녹음하는 등 취재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북측기자들은 취재를 위해 끈질기게 쫓아다니는 우리측 기자들에게 『기자가 무슨 기자를 취재하느냐』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 북대표 차량 4중 충돌/2대 크게 부서져

    4일 상오11시40분쯤 연형묵정무원총리 등 북한측대표단이 탄 차량행렬 가운데 4대가 마포대교북쪽 강변도로진입로 입구에서 연쇄추돌사고를 일으켜 대표단 3호차와 4호차가 크게 부서졌다. 이 차에 탔던 대표단은 곧 예비차에 옮겨타고 숙소로 향했다. 사고는 80∼90㎞로 8차선의 마포대로를 달리던 차량행렬이 2차선의 강변도로 진입로로 들어서는 순간 취재차 1대가 사진을 찍기 위해 갑자기 끼어드는 바람에 대표단차량들이 급브레이크를 밟아 일어났다. 또 이 사고를 취재하기 위해 달려오던 KBS차량과 경찰사이카가 충돌,한때 혼잡을 빚기도 했다.
  • 남ㆍ북이 “얘기꽃”… 화기넘친 만찬/북녘손님 맞던날

    ◎「손에손잡고」 선율속 문배주 축배/“어서오세요”연도엔 환영인파/“통일전기 마련됐으면”… 국민들 큰관심/회담장주변엔 외신기자등 몰려 법석 분단 45년만에 남과 북의 국무총리가 처음으로 만난 4일 7천만 겨레는 조국의 통일을 바라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남북고위급회담의 성공을 빌었다. 때마침 맑게 갠 서울의 가을하늘도 남북총리의 역사적 만남을 축복하는듯 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되새기며 연형묵총리 등 북측대표단 일행의 입경을 지켜본 국민들은 회담장인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강영훈총리가 일행을 따뜻히 영접하는 장면을 보곤 다시한번 같은 겨레의 정을 실감했다. 이날 북측 대표단 일행이 판문점을 넘어 서울에 들어오는 중요한 길목마다에는 많은 시민들이 나와 환한 웃음으로 손을 흔들어 일행을 환영했다. 환영인파 가운데는 특히 월남한 실향민들이 대부분을 차지했고 이들은 저마다 이번 회담이 좋은 결실을 거둬 조국의 통일을 앞당기는 것은 물론 하루라도 빨리 흩어진 혈육들이 다시 만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했다.그러나 일부에서는 성급한 기대는 금물이며 끈기를 가지고 차근차근 통일의 길을 열어야 할 것이라는 신중론을 펴기도 했다. 북측 대표단 일행은 이날저녁 강총리가 힐튼호텔에서 주최한 만찬회에 참석한뒤 무역회관에서 우리영화를 감상하고는 모두 숙소에 돌아가 서울에서의 첫날 밤을 보냈다. ▷만찬 및 영화관람◁ 우리측 수석대표인 강영훈국무총리는 이날 하오7시쯤 힐튼호텔에서 북한대표단에게 만찬을 베풀고 이들의 서울 방문을 환영했다. 이날 만찬에는 북측인사외에 우리측 관계ㆍ재계ㆍ언론계인사 등 2백20여명이 참석,통일을 기원하는 축배를 들면서 남과 북이 화기애애한 얘기꽃을 피웠다. 이날 칵테일장에는 국산양주와 맥주 외에 인간문화재 이경찬옹이 특별히 빚은 문배주가 준비되어 있어 눈길을 끌었으며 만찬음식은 7가지 코스의 양식. 이날 만찬 참석자들은 모두 27개 테이블에 나눠앉았으며 헤드테이블에는 강ㆍ연 두 총리를 비롯,김상협 적십자사총재ㆍ민관식 평통수석부의장ㆍ김용식 통일고문회의의장ㆍ홍성철 통일원장관ㆍ김윤환 정무1장관ㆍ최호중 외무장관ㆍ유창순 전경련회장 등과 북한측의 김광진 인민무력부부부장 등이 참석. 만찬장에는 7인조 실내악단이 서울올림픽 지정곡인 「손에 손잡고」를 비롯,선구자ㆍ고향의 봄ㆍ아리랑 등 우리가곡ㆍ민요를 연주해 분위기를 돋웠고 강총리는 연총리에게 해강 유근형씨가 제작한 청자화병을,회담대표들에겐 고급양복지,북측 수행원들과 기자들에게는 손목시계 및 탁상시계를 각각 선물. 북측 대표단은 원하는 사람들만 만찬이 끝난뒤 하오8시부터 40분동안 한국종합전시실(KOEX) 4층에서 문화영화인 한국의 전통문화유산을 관람하고 숙소로 돌아가 서울의 첫밤을 보냈다. 영화를 관람하고 숙소로 돌아온 뒤 북측 기자들은 『영화가 재미있었느냐』고 묻자 『역사성이 결여된 듯하다』 『졸음이 와 제대로 못봤다』고 짤막하게 답변하곤 서둘러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판문점◁ 이날 상오10시쯤 북측 대표단장인 연형묵총리가 판문점의 군사분계선을 넘어 우리측 「평화의 집」 입구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홍성철 통일원장관이 『진심으로환영합니다』라며 손을 내밀어 영접했고 연총리는 『감사합니다』고 답했다. 연총리는 이어 『우리 대표단은 큰 기대를 갖고 왔다』고 말한뒤 홍장관의 안내로 「평화의 집」안으로 들어섰다. 이에앞서 북측 대표단의 수행원 33명과 기자단 50명은 상오9시50분쯤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신분증이나 「보도」라고 쓰인 완장으로 간단한 신원확인절차를 거친뒤 우리측 지역으로 들어왔다. ▷연도◁ 북측대표단들이 통과하는 통일로 등 연도 곳곳에는 통일에의 염원을 안고 미리 나와 기다리던 시민들과 길가던 시민들이 함께 어울려 차량행렬이 지나갈 때마다 손을 흔들고 박수를 치며 일행을 환영했다. 또 빌딩이나 아파트단지 등에서는 시민들이 창가에 나와 일행이 지나는 광경을 지켜봤다. 환영인파 가운데는 특히 월남한 실향민들이 많아 흩어진 혈육의 재회를 애타게 갈구하는 그들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줬다. 북측대표단 일행들도 이따금 차창을 열고 환영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하기도 했다. ▷회담장주변◁ 북측대표단 일행이 낮12시5분쯤 회담장이자 숙소인 인터콘티넨탈호텔에 도착하자 이들을 보려는 많은 시민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한때 큰 혼잡을 빚기도 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호텔주변은 평소와 크게 다름없는 평온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북측대표단 일행은 기자들의 열띤 취재경쟁 속에 카메라 플래시가 잇따라 터지자 사뭇 긴장하기도 했으나 차츰 여유를 되찾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보였다. 강영훈총리의 영접을 받고 호텔에 들어선 연총리 등 북측대표단 일행은 호텔직원들의 안내로 30∼33층에 마련된 숙소에 여장을 푼뒤 불고기와 된장찌개 등으로 점심식사를 마치고 한동안 휴식을 가졌다. 한편 대부분의 북한기자들은 우리측 취재진과의 접촉을 꺼렸으나 로동신문의 이광진기자를 비롯한 3∼4명의 기자들은 취재진이 모여있는 1층 로비로 자주 내려와 기자들의 질문에 일일이 대답해주는 등 적극성을 보였다. 이기자는 하오5시40분쯤에도 1층 커피숍으로 내려와 판문점에서 얼굴을 익힌 몇몇 기자와 환담을 나누다 기자들이 40∼50명으로 늘어나자 10분남짓 즉석기자회견을 갖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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