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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6정치인 5·18전야제 ‘술판’

    민주당 김민석(金民錫·서울 영등포을)의원과 송영길(宋永吉·인천 계양)·정범구(鄭範九·경기 고양 일산갑)당선자 등 ‘386 세대’ 정치인들이 지난17일 광주도청 앞에서 열린 광주민주화운동 기념 전야제에 참석한 뒤 광주시내 술집에서 여자 종업원들과 어울려 술판을 벌인 것으로 25일 확인됐다. 이 술자리에는 장성민(張誠珉·서울 금천)·김성호(金成鎬·서울 강서을)·이종걸(李鍾杰·경기 안양 만안)·김태홍(金泰弘·광주 북을)당선자와 3선의이상수(李相洙·서울 중랑갑)의원, 우상호(禹相虎·서울 서대문갑)지구당위원장,시인 박노해 씨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이날 술자리는 김태홍 당선자가 주선했으며 술값은 김당선자와 지난 23일의 총무경선을 앞두고 있었던이상수 의원이 함께 부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386세대 당선자들은 당초 밤 10시30분부터 광주 시내 한 여관에서 ‘정치개혁-초선의원이 해야 할 일’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할 예정이었으나 술자리가 길어져 약식토론으로 대체됐다. 술자리를 목격하고 ‘제3의 힘’이라는 인터넷 사이트에 비난하는 글을 띄운 운동권출신 386인사 임수경씨는 “17일 밤부터 18일 새벽까지 의원과 당선자들이 술집 여종업원을 옆에 끼고 술에 취한 채 흐느적거리고 있었다”면서 “어느 사람은 아가씨를 꼭 껴안고 춤을 추고 있었고 어느 의원은 양쪽에두 명의 아가씨를 끼고 있었다”고 전했다. 임씨는 “17일부터 19일까지 광주에서는 시끄러운 음악도 삼간다”면서 “386 정치인은 ‘위선의 탈’을 벗어버리라”고 질타했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민주당과 언론사 홈페이지 및 술자리에 참석했던의원·당선자 사이트에는 이에 항의하는 네티즌들의 성난 의견이 빗발쳤으며시민단체는 비난논평을 잇따라 발표했다. 정치개혁시민연대는 논평에서 “국민은 물론 5·18영령 앞에 용서받지 못할 행동”이라면서 “당사자들은 진실을 밝힌 뒤 국민앞에 사죄해야 하며 말로만 사과하고 어물쩍 넘어갈 일이아니다”고 강조했다. 주현진기자 jhj@. *386 정치인 당사자들 해명. 5·18 전날 술자리에 참석했던 386정치인들은 25일 공동해명서을 통해 어쨌든잘못된 일이라고 사과했다. 김민석 의원은 “알려진 사실이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다”면서“가볍게 맥주 한잔 하자는 이야기를 듣고 갔으며,나올 때도 술취한 상태가 아니었고 (숙소에 돌아와) 2개팀으로 나눠 이야기(토론회)도 3∼4시간 했다”고해명했다. 김성호 당선자는 “저녁을 먹으면서 재야인사 15명 안팎과 함께 3시간 가까이 토론도 했으며,전야제를 보러 갔다가 잠시 술자리에 갔다”면서 “나는일찍 숙소로 돌아와 자세한 사정을 모르겠으나,내가 숙소에 온 뒤 참석자들이 하나 둘 들어와 3∼4명씩 이야기를 새벽까지 했다”고 밝혔다. 장성민 당선자 측근은 “술자리에 참석했지만 20분쯤 뒤 바로 나와 자세한사정을 모른다”고 말했다.이종걸 당선자 측근은 “사실과 다르게 알려진 것도 많지만,그시기에(5.17) 술을 마신 것 자체가 잘못이며,참석을 했다는 것이 유감스럽고 안타깝다고 당선자가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 남북정상회담 D-18/ 준비접촉 뒷얘기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18일까지 5차례 열린 남북정상회담 판문점 준비접촉에서 북측 대표단은 예상보다 훨씬 호의적이고 적극적 태도를 보였다고 준비접촉 우리측 수석대표인 양영식(梁榮植)통일부차관이 24일 밝혔다.양차관이전한 회담 뒷얘기를 소개한다. ■우호적 분위기 양차관은 “준비접촉 분위기만으로 정상회담은 ‘되는 회담’이란 걸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과거 남북간 접촉에서는 서로가 상대방의 얘기를 묵살하거나 반박해 대화가 막히기 일쑤였는데,이번 준비접촉에서는 북측도 우리의 얘기를 진지하게 받아주면서 어떻게든 되는 쪽으로 끌고가려는 자세가 뚜렷했다는 것. 예컨대 우리가 이산가족 문제를 주제로 삼기 위해 어버이날 얘기를 우회적으로 꺼내면 북측에서 알아채고 이산가족을 먼저 거론하는 식이다.또 우리는북한식 언어사용법을 배려해 왕래를 ‘래왕’으로 발음하고 북측도 이심전심으로 ‘왕래’라고 발음하는 등 서로 상대방의 언어관습으로 회담이 진행될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다. ■한때 해프닝 북측 발언의 진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착오를 빚는 등 분단 장기화로 인한 언어 이질화의 문제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00일에 만나자”는 북측의 주장에 우리측이 다른 날짜를 제시했는데 북측이 선뜻 “그렇게 합시다”라고 해 우리는 그대로 받아들였는줄 알고 일어섰다고 한다.그런데 확인과정에서 북측의 말뜻이 ‘자신들의 뜻대로 하자’는말을 강하게 권유한 표현이었던 것으로 판명돼 양 대표단이 부랴부랴 다시자리에 앉는 해프닝이 있었다. ■긴장된 상황 양측 대표단은 폐쇄회로 TV로 회담 실황이 양 정상에게 보여지고 있다는 점을 의식,단어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하는 등 회담 내내 긴장을풀지 못했다.특히 북측 대표단은 테이블에 꽂힌 담배에 전혀 손을 대지 않는 등 상부의 시선을 의식하는 태도를 보였다. 서울과 평양에서 회담상황에 따라 수시로 메모지를 대표단에 전달했기 때문에 양 대표단은 준비접촉을 예비 정상회담이나 다름없게 여길 정도였다. 김상연기자 carlos@. *정상회담 선발대. 남북정상회담 선발대에 정부와 청와대 1급직 공무원들이 여럿 포함돼 통일부 ‘1급’이 청와대와 타부처 ‘1급들’을 지휘하며 평양에서 사전 준비업무를 진행하게 됐다. 24일 정부 당국자에 따르면 선발대에 포함된 1급직으론 손상하(孫相賀)외교통상부 의전장,청와대 구영태(具永太)경호처장,정병용(鄭炳鏞)통신처장 등이포함돼 있다. 외교부측은 당초 “대통령 외국방문행사의 선발대 단장은 외교부 의전장이맡는 게 관례였다”며 단장몫을 요구,통일부와 맞섰었다.북한에서 이뤄지는대통령 행사란 점에서 단장으로 한때 청와대 관계자가 검토되기도 했다. 그러나 6개 부처 장관으로 구성된 정상회담추진위원회는 지난 23일 “북한을 잘 알고 종합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통일부 관계자가 지휘·조정업무를맡는 게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냈다는 후문이다. 선발대의 의전부문은 외교부 내에서 제1의 의전전문가로 알려진 백영선(白暎善)의전심의관과 청와대 의전담당자 5명,경호는 청와대 경호실 관계자 8명으로 구성돼 있고 통신·보도부문은 각각 2명으로 한국통신 기술요원이 포함돼 있다.생방송문제 협의를 위해 민간방송 기술진 3명도 함께 방북대열에 끼게 됐다.평양에 도착하면 남측 숙소인 백화원초대소에 상황실을 설치,운영하게 될 통일부·국방부 운영요원 10명도 선발대 30명안에 들어있다. 정부는 회담전에 12일동안 체류하게 되는 선발대 인원을 6월6일과 9일쯤 두차례 교대시키면서 준비의 효율을 높일 계획이어서 사실상의 선발대 인원은30명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손인교 단장은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와 대통령의 정상회담 수행에 한점의 차질이 없도록 현지에서 사전에 준비·점검하는 일이 선발대 역할”이라면서 “선발대는 분야별 해당부처의 실무 전문가들로 짜여졌다”고 설명했다. 이석우기자 swlee@
  • “남쪽 친구들 만나 너무 좋아요”

    북한의 민간 소년 예술공연단인 평양 학생소년예술단이 24일 전세기인 중국국제항공 133편으로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최휘 단장을 비롯한 지원단 24명과 어린이 단원 78명 등 총 102명으로 구성된 평양 학생소년예술단은 공항에 도착한 뒤 (주)평화자동차 박상권(朴相權)사장 등 초청자의 환영의 꽃다발을 받았다. 박 사장과 최단장은 “어서 오십시요.환영합니다”,“반갑습니다”라며 반갑게 악수를 나눴다. 공항 청사에는 리틀엔젤스 단원과 대원여고 고적대가 나와 합창과 연주를했다.감청색 정장 차림에 붉은색 목도리를 한 예술단원들도 리틀엔젤스 단원과 공항에 나온 시민들과 함께 ‘통일의 노래’ 등을 불렀다. 최 단장은 “따뜻하게 맞아 준 남녘 동포들에게 동포애적 인사를 보낸다”면서 “이번 공연은 반세기 동안 쌓여온 불신을 없애고 7,000만 동포의 염원인 통일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술단원 임수림양(10·여)도 “친구들과 만나 기분이 좋습니다”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예술단원들은 대형버스 3대에 나눠 타고 공항을 빠져 나와 숙소인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 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평양 학생소년예술단은 26∼28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모두 5차례에 걸쳐 ‘반갑습니다’‘통일무지개’등의 합창과 ‘명절의 아침’ 등의무용을 선보인다.29일에는 서울 경복초등학교와 선화예술학교,어린이대공원등을 방문하며 30일 6박7일의 일정을 마치고 북한으로 돌아간다. 김경운기자 kkwoon@
  • 전북도 영빈관 23억에 처분키로

    군사정권 당시 ‘지방청와대’로 불리면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전북도영빈관이 건립된 지 20년만에 일반에 매각된다. 전북도는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 2가 167-291번지 도 영빈관을 매각하기 위해 지난 23일 도의회에 도유재산관리계획 의결안을 제출했다. 매각 가격은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토지 21억7,800만원,건물 1억 1,500만원등 모두 22억9,40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의회는 25일 행정자치위원회를 열어 매각을 승인할 것으로 예상된다. 영빈관은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의 지시로 79년 공사에 들어가 80년 7월 1,800여평 부지에 연건평 398평 단층 건물로 지어졌다.당시 규모가 큰데다 내부를 수입 대리석과 이태리가구 등으로 꾸며 호화주택이라는 비난이 거셌다. 더구나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대통령이 전북을 방문해 숙소로 사용할 때에는 인근 주택가까지 며칠씩 삼엄하게 경비해 주민들이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 취임 직후인 93년 지방청와대 폐쇄 방침에 따라 같은해 3월부터 95년 10월까지 예술회관 분관으로 활용됐으나 시민들로부터 호응을 받지 못했다. 도는 의회 의결 및 재산감정 절차 등을 거쳐 공개 경쟁입찰에 부칠 예정이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
  • 남북정상회담 D-19/ 대표단 방북비용

    “고맙긴 한데,미안해서…” 다음달 남북정상회담차 방북하는 우리 대표단의 숙식 비용 등 일체를 북측이 지불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북한당국의 부담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지난 18일 타결된 정상회담 실무절차합의서에는 ‘북측은 남측 인원의 숙식,교통,통신,의료 등 기타 필요한 모든 편의를 제공한다’고 명시돼 있는데,여기서 ‘편의’란 비용을 포함하는 것이라고 23일 정부 당국자는 밝혔다. 수행원과 취재기자단을 포함하는 우리 대표단 180명은 다음달 12일부터 14일까지 2박3일동안 북한에 머물고,이에앞서 선발대 30명이 이달말부터 정상회담 전까지 보름동안 북한에 먼저 파견돼 정상회담 준비작업을 한다.이처럼대규모 인원이 상당기간 먹고 자고 이동하고 일하면서 쓰는 비용은 상당히큰 금액일 수밖에 없다. 북한당국이 백화원초대소 등 국가기관을 숙소로 제공하고 물가수준도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비용을 정확하게 추산키는 어렵지만,서방 세계의 기준으로보면 수십억원대는 쓰는 셈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계산이다. 보통 국가간 정상회담의경우 정상 과 공식수행원 등 핵심 초청인사만 제외하고 나머지 수행원은 방문하는 나라에서 부담하는 게 관례다. 우리나라만 해도 외국 정상이 방한할 경우 ‘VIP(정상)+10’원칙을 적용하고있다. 정상 등 핵심인사 11명의 체류비용만 제공하고 나머지 수행원의 경우는 방문국에서 부담하는 식이다.당연히 선발대 체류비용도 방문국이 부담한다. 다른 나라의 경우도 대체로 10∼20명선까지만 초청국이 부담하는 게 보통이다.따라서 이번에 북측이 180명이나 되는 대규모 대표단과 선발대의 체류비용 일체를 부담하는 것은 국제 관례상 매우 이례적인 결정이다. 그렇다고 북측의 호의를 무시하고 우리측이 돈을 지불하기도 어려운 일이다.따라서 정부는 대표단 방북 두번째 날 만찬이라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초청하는 형식으로 치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경우 사정상 음식 등행사준비 일체는 북측이 하고 우리는 비용만 부담할 공산이 크다. 김상연기자 carlos@
  • 김대통령등 남북정상회담 대표단 체류일정 미리보기

    김대중(金大中)대통령 등 남북정상회담 대표단의 6월12∼14일의 2박3일동안일정은 어떻게 짜여질까. 초청자인 북측이 큰 행사위주로 장소와 시간단위 일정안을 통보하면 남북이이를 근거로 협의,5분단위로 세분화해 구체안을 마련하게 된다. 북측은 6월2일 일정안을 남측에 통보할 계획이며 31일 평양에 들어가는 선발대가 현장상황을 고려해 북측과 협의,일정을 확정한다. ◆정상회담 도착일인 6월 12일 오후 첫 정상회담개최가 예상된다.“55년만의첫 정상회담의 의의와 상징성과 2박3일의 일정상 첫날 회담개최가 거의 확실하다”고 정부 의전담당자들은 말한다. 서울공항을 출발,순안공항을 거쳐 오전중에 숙소인 평양시내 백화원초대소에도착한다. 13일 오후에 2차 정상회담개최가 예상된다.장소는 만수대의사당이유력하다. 정상회담의 시간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두 지도자의 대화가 길어질것에 대비해 회담직후 일정을 가능한 한 늦춰 잡아놓게 된다. 필요에 따라한차례 더 회담을 하게 된다면 14일 오전중 가능하다. ◆만찬 및 오찬 첫 회담직후인 12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 주최 공식만찬이 예상된다.외교관례상 정상회담이 열린 날 저녁 주최측 정상이 주재하는만찬이 열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러날을 묵더라도 정상주최 공식만찬은 한차례가 일상적인 통례다.둘째날에는 통상적으로 북한을 대표하고 외빈을 맞는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주최 오찬이 예상된다. 최고정상외에 공식만찬의 주최는 하지 않는 것이 외교 통례지만 남북관계를고려할 때 김 위원장 주최 둘째날 만찬도 생각해볼 수 있는 일정이다. ◆야외활동 정부 당국자들은 “이번 방문은 정상회담을 위한 것이며 불필요한 기타행사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한다.그러나 북측이 문화재 참관 등을 제의할 경우 주최측의 입장을 참작해 고려해 볼 수 있다는 자세다. 이석우기자 swlee@
  • 남북정상회담 D-20/ 선발대 입북 활동

    5월31일 상오 9시.판문점 남측 지역을 떠난 몇대의 트럭이 중립국감독위 건물옆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지역으로 들어갔다.남북정상회담 준비 선발대가평양에 체류하며 이용하게될 사무기기와 통신장비를 실은 트럭들이다. 한시간뒤.기다리던 북측 판문점 연락관들은 이들을 반갑게 맞은 뒤 미리 전달된 명단과 사진을 실물과 대조했다.간단한 확인절차후 선발대원들은 북측이 마련한 차량을 나눠 타고 개성을 거쳐 고속도로로 평양으로 달렸다. 정부가 31일 파견하는 정상회담 선발대가 북한에 들어서는 모습을 미리 구성해본 것이다. 선발대가 여장을 푼 곳은 국빈급 외국손님을 모시는 백화원초대소.세 동의건물로 이어진 초대소 구조를 도면과 실물을 대조하며 점검해 나갔다. 회담장인 만수대의사당,연회및 식사장소인 인민문화궁전 등도 같은 방법으로 점검했다.선발대는 북측이 건네준 건물설계도와 지도를 실제현장과 비교해가며 행사를 준비했다.행사장에 들어갈 사람들의 숫자와 입실 순서,좌석위치….대통령이 앉을 의자높이는 물론 푹신함과 딱딱함의정도까지도 점검 내용이다.대통령의 걸음걸이를 감안한 이동시간과 안내자,배석자,양 정상간의인사방법의 고려는 기본이다. 순안공항도착에서 숙소까지의 도로및 주변상황,회담장 및 연회 등 방문장소의 위치를 익히고 현장상황에 맞게 일정을 짜나간다.경호팀은 특히 돌발사황에 대비한 여러가지 대처 시나리오도 만든다.평양시내의 각국 외교공관들의위치파악과 각 행사장에서 이동거리의 파악도 이같은 돌발상황을 염두에 둔것이라고 한 관계자는 전한다. 선발대는 현지에서 대통령일정을 5분단위로 세분화,북측과 협의해 나간다. 선발대는 남북직통전화를 통해 서울 삼청동 남북대화사무국에 마련된 상황실에 관련사항을 보고하고 지시를 받는다. 이석우기자 sw
  • 만수대의사당, 주요정치행사 단골 개최

    오는 6월 남북한 정상이 만나 한반도 현안 전반을 논의하는 회담장으론 만수대의사당이 될 것으로 보인다.숙소는 외국 귀빈들을 맞는 영빈관격인 백화원초대소,주 연회장은 인민문화궁전이 유력시 되고 있다. □만수대의사당 평양시 중심부에 위치한 국회의사당격인 최고인민회의의 건물.84년 10월 건립됐다.지하 1층,지상 4층의 석조건물로 주요 정치행사와 외국국빈의 영접 등에 쓰인다.지난 98년 9월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 추대도이곳에서 이뤄졌다. 연회장시설도 갖추고 있어 회담직후 이곳에서 연회가 열릴 가능성도 있다. □백화원초대소 평양시 외곽인 대성구역 임흥동의 대동강변에 위치해 있는국빈급 외국손님의 영빈관.김일성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의 경내에 있어 일반인들의 접근은 불가능하다.통로로 연결된 3개의 건물이 울창한 숲을 배경으로 전면에 호수를 바라보고 있다.대리석 복도와 기둥이 웅장함과 호화스러움을 더한다.지난 98년 경협논의를 위해 이곳에 묵고 있던 정주영(鄭周永)현대그룹 명예회장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전격 방문하기도 했다.90∼92년 남북고위급회담때 남측 숙소로 이용된 일도 있다.83년에 건립. □인민문화궁전 74년에 완공된뒤 국제회의 및 정치집회장으로 주로 이용되고 있다.지상 4층의 3개 건물에 3,000석규모의 대회의실과 700석규모의 연회장 등 500개의 다용도 방이 있다.85년 남북적십자회담과 90∼92년 남북고위급회담때 회담장소로 쓰였다.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주 집무실인 노동당 본청사 건물에서 인접한 평양시내 중심부인 천리마거리 부근에 위치해 있다. 이석우기자 swlee@
  • 남북정상회담 통신은 어떻게

    남북정상회담 대표단이 오는 6월 북한방문 기간중에 서울과 연락을 취하는방법은 4가지 정도다.서울∼평양간의 직통 및 위성전화,인편을 이용한 행낭수송 등이다.판문점 적십자연락사무소 직통전화를 이용하는 방안도 있다. 특히 위성전화를 휴대,대통령은 북한의 어느 방문지에서라도 서울 등 외부와 ‘핫라인’을 통해 즉각적인 연락을 취할 수 있게 된다.대통령 일행이 머물게 되는 숙소,회담장 등에는 유선을 이용한 서울과의 직통전화가 개설된다.‘핫라인’을 통해 청와대는 물론,대통령 방북기간 동안 국정을 대행할 총리를 비롯해 서울에 남아있는 국방·안보관련 관계자와도 언제든 통화할 수있는 체제를 갖추게 된다. 직통전화는 평양∼판문점∼서울을 잇는 라인.과거 설치됐던 서울∼평양간의직통전화를 다시 연결하는 것이다.복원가능한 서울∼평양간의 전화회선은 적십자 중앙기관간의 직통전화 2회선을 비롯해 24회선.현재 판문점 남측과 북측엔 적십자연락사무소 직통전화 2회선,대구∼평양 관제소 2회선 등 모두 4회선이 연락수단으로 가동되고 있다. 남북한은 이를 위해 지난 18일 실무절차합의서에서 “남측이 서울∼평양간직통전화 회선과 예비통신으로 위성통신망을 이용한다”고 합의했다. 전화외에도 인편을 통한 행낭의 전달을 통해 구체적인 지시사항과 결재문서등을 보낼 수 있다. 대표단은 체류기간동안 하루에 2회가량 행낭을 인편으로판문점까지 가지고 와서 이를 서울로 전달하게 된다. 이석우기자
  • 남북정상회담 D-23/ 참고할 전례·자료없어 고민

    “의전(儀典)에는 나름대로 베테랑이라고 자부해왔는데 이번엔 정말 긴장됩니다.잠이 잘 안옵니다” 남북 정상회담 실무절차 합의서가 타결되고 회담 준비가 본격화하면서 일선에서 행사를 준비할 의전 담당자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의전팀의 고민은 참고할 전례가 없다는 데서 출발한다.북한과의 특수성을감안할 때 통상적인 정상회담의 예를 그대로 적용할 수도 없다.게다가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외국 정상과 공개리에 회담한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참고자료라곤 딱히 없는 실정. 외국의 경우 현지 공관과 주재원들이 행사의 대부분을 준비하고 선발대는가서 점검만 하면 되는데,이번엔 그야말로 ‘밥 지어 상차리고 설거지까지도맡아 하는’ 격이다.이처럼 열악한 상황인데도 선발대 30명은 불과 북한파견 12일 동안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끝내야 한다. 의전팀은 특히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공항 도착과 김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만찬행사 등 방송으로 생중계되는 장면에 신경을 쓰고 있다.한 관계자는 “남북관계의 민감성을 감안하면 사소한 실수 하나가 정상의 권위에 심각한 손상을 입힐 수 있기 때문에 100%의 완벽을 추구한다는 각오”라고 강조했다. 공항 도착은 북한에서의 첫 행사라는 점에서 국내외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예포발사와 국가연주 등 의례적인 의전이 생략될 가능성이 높아 의전팀은 북한이 어떤 ‘대체 행사’를 내놓을지 예상하느라 여념이 없다. 행사 도중 실무진들의 손발이 안맞아 대통령이 머뭇거리기라도 하는 날엔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김 대통령과 김 국방위원장의 대면은 가장 부담스런 장면이다.두 사람이 악수하는 위치와 걸음걸이 숫자,카메라 각도에 이르기까지 세세하게 신경을 써야 한다.두 정상이 마주보고 앉을지,나란히 앞을 보고 앉을지도 미리 정해놓아야 한다. 한 관계자는 “북측이 자리배치와 표지물을 당초의 약속과 다르게 할 경우에 대비해 최소 2명의 우리측 요원을 1시간전부터 행사장에 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만찬 행사에선 복장과 메뉴는 물론,건배 제의와 연설 순서 등도 체크해야할 항목이다.선발대는 평양 체류중 가급적 김 대통령이 묵을 숙소에서 직접숙식을 하며 불편한 점을 샅샅이 사전 체크한다는 방침이다. 김상연기자 carlos@. *대표단 누가 포함되나. 누가 정상회담 수행원으로 평양에 들어가나. 실무절차 합의서 타결에 따라 정부는 선발대를 비롯한 수행원 인선에 착수했다.수행원 130명 가운데 경호요원 50명을 제외한 빈자리는 80명.각 부처장관과 재계,사회단체의 평양행 티켓 확보경쟁이 뜨겁다. ◆정부측 수행원 공식수행원은 10명선.청와대에서 황원탁(黃源卓) 외교안보·이기호(李起浩) 경제수석,정부에선 박재규(朴在圭)통일·박지원(朴智元)문화관광부 장관 등은 확고부동한 0순위다.이들중 2∼3명은 정상회담 보좌요원으로 회담장에 들어간다.박 통일장관은 현장진행을 위한 실무 사령탑을 맡는다.박 문화장관은 ‘4·8 베이징(北京) 정상회담 합의서’ 타결 주역이란 점이 고려됐다.박준영(朴晙瑩) 청와대 공보수석,한광옥(韓光玉) 비서실장도 ‘대통령 행사’에 빼놓을 수 없다. ◆민간 수행원 신청자가 너무 많아 선정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정원식(鄭元植)대한적십자사 총재,실향민을 대표한 이북도민회 중앙연합회 송병준(宋秉俊) 대표의장,장치혁(張致赫) 전경련 대북경협위원장,강원룡(姜元龍) 통일고문회의 의장은 최우선 순위로 꼽힌다.경제단체장 등 경제계인사들은 대략 10명선으로 가장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선발대 선발대 단장은 양영식(梁榮植) 통일부 차관이 유력하다.기획단장과준비접촉 수석대표를 맡은 경험을 살려 일관성있게 준비절차를 마무리할 수있기 때문이다.실무진으론 의전 협의에는 양봉렬(梁峰烈) 청와대 의전국장,백영선(白暎善) 외교통상부 의전심의관,경호협의에는 구영태(具永太) 청와대경호처장 등이 먼저 평양땅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통신 분야에는 청와대·한국통신 관계자들이 참가한다. ◈수행이 확실한 인사. ◆청와대 황원탁 외교안보수석,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박준영 공보수석. ◆정부 박재규 통일부장관,박지원 문화부장관,손상하 외교통상부 의전장(특1급). ◆관련 단체 정원식 대한적십자사 총재,강원룡 대통령 통일고문회의 의장,송병준 이북도민회 중앙연합회 대표의장. ◆재계 장치혁 전경련 대북경협위원회 위원장. 이석우기자 swlee@
  • 남북정상회담 D-24/ 선발대 평양서 뭘 할까

    정상회담 실무절차합의서가 18일 타결됨에 따라 남북 양측은 이제 회담 장소인 평양에서 본격적인 준비작업에 들어간다. 이를 위해 우리측 실무진 30명이 이달말쯤 선발대로 평양에 들어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올 때까지 북측 실무진과 보도·통신·경호·의전 분야의세부사항을 확정짓는다. 보도·통신과 관련 양측은 어떤 장면을 생중계할지와 우리측 위성생중계장비(SNG)의 반입여부 등을 최종협의한다.특히 양 정상을 카메라에 담는 횟수와 카메라 각도까지 세세하게 의논한다. 의전 문제의 경우 정상회담 장소와 김 대통령의 숙소,방문지 등을 최종 확정한다.방문지와 관련,우리 정부는 김일성묘나 단군릉 등 이념적 색채가 있는 방문지는 찾지 않는다는 내부방침을 정해놓고 있다. 평양 순안공항(항공로로 방북할 경우)에서 김 대통령을 영접할 북측 인사들도 결정한다.실무진들은 특히 회담장 등에서 양 정상의 걸음걸이 수까지 일일이 재가며 행사를 준비할 계획이다. 경호의 경우 우리측 반입 총기 등 경호관련 물품의 종류와 개수는 물론,양측 경호팀간의 역할분담까지 일일이 논의한다. 정부 관계자들은 그러나 북한과의 정상회담이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바짝긴장하는 눈치다.한번의 실수로 정상의 권위에 큰 손상을 입히는 불상사가일어날 수 있기 때문.한 당국자는 “북한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외무부의 의전규정을 그대로 원용할 수도 없다”고 털어놨다. 선발대의 준비과정에서 마찰이 있을 수도 있다.회담장소가 될 것으로 보이는 금수산의사당에 대한 우리측의 현장답사 요구가 북측의 보안 이해와 상충될 경우 제대로 이뤄질 지 미지수다.또 김 대통령이 묵게 될 것으로 보이는백화원초대소 등에 대한 설계도면이 경호상 필요할 수 있는데 북한이 이를순순히 내줄지도 관심이다. 김상연기자
  • 남북정상회담 D-24/ 남북 실무절차 합의서 全文

    남과 북은 2000년 4월 8일 합의서에 따라 4월 22일부터 5월 18일까지 판문점에서 5차례의 준비접촉을 가지고 실무절차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1.대표단 구성과 규모. 1) 남측 대표단 수행원은 130명으로 한다. 2) 남측 대표단 취재기자는 50명으로 한다. 2.상봉 및 회담 형식과 횟수.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이에 역사적인 상봉이 있게 되며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된다. 상봉과 회담은 최소한 2∼3회 하며 필요에 따라 더 할 수 있다. 3.상봉 및 회담 의제. 상봉 및 회담 의제는 ‘역사적인 7·4 남북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조국통일 3대원칙을 재확인하고 민족의 화해와 단합,교류와 협력,평화와 통일을 실현하는 문제’로 한다. 4.체류일정. 1)남측 대표단의 북측 지역 체류기간은 2000년 6월 12일부터 6월 14일까지2박 3일로 하며,필요에 따라 더 연장할 수 있다. 2)북측은 남측 대표단의 구체적인 체류일정을 방문 10일 전에 남측에 통지하며,쌍방이 협의하여 이를 확정한다. 5.선발대 파견. 1)남측은 30명으로 구성된 선발대를 대표단 방문 12일 전에 북측지역에 파견한다. 남측 선발대는 필요에 따라 판문점을 통하여 왕래할 수 있다. 2)남측 선발대의 체류일정과 구체적인 실무절차 문제는 남측 선발대의 북측지역 도착 직후 쌍방이 협의하여 결정한다. 6.왕래절차. 1)남측 대표단의 왕래는 항공로 또는 육로로 하되 항공로로 하는 경우에는남측 비행기로 하며 육로로 하는 경우에는 북측 자동차로 한다. 2)남측 선발대는 북측 자동차를 이용하며 통과지점은 판문점으로 한다. 3)남측은 정상일행의 명단을 방문 7일전에 북측에 넘겨주며 선발대의 경우에는 방문 4일전에 북측에 넘겨준다. 명단에는 성명,성별,직위,소속을 밝히며 사진을 첨부한다. 명단을 넘겨준 후 변동되는 사항은 판문점을 통하여 먼저 전화로 통지하며그 다음에 문서로 전달한다. 7.편의보장. 1)북측은 자기측 지역에 체류하는 남측 인원들의 숙식,교통,통신,의료 등기타 필요한 모든 편의를 제공한다. 2)남측 대표단은 북측 지역에 체류하는 동안 북측의 안내와 질서에 따른다. 3)북측은 남측 대표단의 북측 지역 체류기간 판문점을 통하여 1일 2회의행낭운반을 보장한다. 8.신변안전보장. 1)북측은 자기측 지역을 방문하는 남측 인원들의 신변안전을 보장하는 총리 명의의 신변안전보장각서를 방문 3일전에 판문점을 통하여 남측에 넘겨준다. 2)북측은 남측이 이번 방문의 성격에 맞게 휴대품을 소지하는 조건에서그에 대한 불가침을 원칙적으로 보장한다. 9.수행원,기자의 표지 및 증명서. 1)쌍방은 자기측 수행원들을 표시할 수 있는 표지를 각기 편리한 대로 한다. 2)기자는 기자완장을 착용한다. 3)남측 수행원과 기자는 자기측 총리가 발행한 신분증명서를 휴대한다. 10.상봉 및 회담장 표지 및 시설. 1)상봉 및 회담장과 행사장(숙소 포함)에는 어떠한 표지도 하지 않는다. 2)상봉 및 회담장에는 회담에 필요한 시설외 다른 시설들을 설치하지 않는다. 3)북측은 상봉 및 회담장과 행사장(숙소 포함)에서 남측이 연락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통신시설을 설치·제공한다. 11.상봉 및 회담 기록. 쌍방은 상봉 및 회담 기록을 속기,녹음,녹화 등 각기 편리한 대로 한다. 12.상봉 및 회담 보도. 1)상봉 및 회담 보도는 각기 편리한대로 하되 필요에 따라 공동보도문을작성·발표할 수 있다. 2)북측은 남측에 실황중계가 가능하도록 필요한 설비와 인원을 최우선적으로 보장하며 텔레비전 영상 송출을 위한 전송로 및 위성중계를 위한 편의를 제공한다. 3)북측은 남측에 실황중계를 위하여 남측 인원이 직접 촬영,제작할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과 편의를 보장한다. 13.기자의 취재활동. 1)북측은 남측 기자들의 체류기간 중 취재활동을 보장한다. 2)쌍방은 보도의 정확성과 공정성을 기하기로 한다. 14.기타 실무절차 문제. 1)남측 대표단은 북측 지역 체류기간 이미 가설된 서울∼평양간 직통전화회선과 함께 예비통신으로 위성통신망을 이용한다. 2)그밖에 제기되는 실무절차 문제는 남북고위급회담 관례에 따른다. 15.합의서 발효. 이 합의서는 쌍방이 서명하고 교환한 날부터 효력을 발생한다. 2000년 5월 18일 남북합의서 이행을 위한 준비접촉 남측대표단 수석대표 대한민국 통일부 차관 양영식 북남합의서 리행을 위한 준비접촉 북측대표단 단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참사 김령성
  • 남북 5차준비접촉 합의 안팎

    남북한이 18일 5차 준비접촉을 갖기로 합의한 것은 기자단 수 등 그동안 막판 쟁점에 대한 조율을 끝마쳤음을 뜻한다. 따라서 5차 접촉에선 16개 항으로 구성된 합의서의 최종 타결이 이뤄질 전망이다.이로써 정상회담을 위한 준비절차의 틀이 마련되게 됨에 따라 이를바탕으로 의전·경호,통신·보도 등 세부 실무준비가 급진전되게 됐다. 남측 수석대표인 양영식(梁榮植)통일부차관도 4차 접촉 이후 여러차례 “5차 접촉에선 합의서를 타결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남북 양측은 지난 9일 판문점 연락관사무소의 전화통지문을 통해 이견을 조정하면서 의견을 좁혀왔다.월요일인 15일 북측은 기자단 수를 비롯한 합의서절차 전반에 대한 입장을 보내왔다.범부처적으로 구성된 정상회담 준비기획단은 15일 남북대화사무국에서 북측이 보내온 입장을 면밀하게 검토,최종입장을 정리해 북측에 이를 통보한 뒤 16일 다시 최종입장을 통보받은 것으로알려졌다. 쟁점이 됐던 기자단 규모는 남측이 제시했던 80명에서 후퇴한 60명선에서결정된 것으로 알려지고있다.정부의 한 관계자는 “기타 사안은 4차까지의합의사항을 따르기로 했다”고 밝혔다.이에 따라 대표단은 130명,회담형식은단독회담으로 두 차례 이상 갖고 보좌요원은 2∼3명씩으로 하기로 했다. 왕래절차는 항공과 육로를 다 이용할 수 있으며 경호·의전,통신·보도 부문의 논의를 위한 선발대 파견 및 평양체류 일정과 규모 등도 명기된다.의제는 지난 4월8일 베이징(北京)정상회담 합의서 정신을 존중,7·4남북공동성명과 조국통일 3대 원칙 등 포괄적으로 정했다.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답방문제는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논의한다는 선에서 의견을 모았다. 이밖에 체류기간중 서울∼평양간의 행낭운반 등 편의보장,총리명의의 신변안전보장서 사전 전달,회담장 시설·회담 보도 및 기록관련 사항도 명기하기로 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사실상 17일 2차 통신·보도 실무자접촉 이후 준비업무는 실무전문가들의 방북을 통한 현장답사 단계로 넘어가게 됐다”고 말했다. 이석우기자 swlee@. *경호·의전 대강의 실무접촉 마쳐. 남북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현장답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판문점 실무자 접촉이 마무리되면 평양의 회담현장에 대한 남측 실무자들의 답사와 실무절차에 대한 현지 조율이 이어진다. 시기는 이르면 다음주 중에도 가능하다.앞서 남북한은 16일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의전·경호부문 실무자 접촉을 마쳤다.정부 당국자도 “의전·경호의 후속 접촉은 없고 현장에서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17일 통신·보도부문의 2차 실무자 접촉과 18일 5차 준비접촉을 마치면 곧바로 회담장과 숙소,만찬장,평양의 주요 거리 등 현장 답사체제로 들어가는것이다. 회담장 위치,출입구와 계단,시설물의 배치,이동 거리와 소요 시간 등을 분단위로 면밀하게 계산하고 의전과 경호문제를 구체적으로 협의하게 된다.회담장은 평양 시내 중심부에 있는 만수대의사당이 유력하다.국회의사당 격으로 중구역 만수동에 있다.94년 당시 정상회담장으로 예정됐던 주석궁은 김일성의 시신을 안치한 금수산기념궁전으로 바뀐 상태다. 숙소는 국빈들을 모시는 백화원초대소가 될 가능성이 높다.국빈급 영빈관으로는 흥부초대소도 이용된다.만찬장은 목란관·인민문화궁전 등도 거론된다. 체류기간에 청류관과 옥류관 등 평양의 대표적인 식당도 이용될 가능성도 있다.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은 대부분 중구역에 있는 조선노동당 본청사에서집무를 보고 숙소는 대동강구역의 85호 관저로 알려져 있다. 이석우기자
  • 남북 통신·경호 실무접촉 뭘 논의하나

    판문점에서 13일부터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별도 실무자 접촉에선 회담진행을 위한 구체적인 절차가 결정된다.성격상 통신·보도(13일),의전·경호(16일) 두 분야로 나뉘어 논의된다. 행사진행을 위해 세세한 부분까지 협의해야 하기 때문에 해당분야의 전문실무자들이 맡는다.13일 통신·보도부문 접촉엔 김성진(金成珍) 공보비서관,정병용(鄭炳鏞) 통신처장 등 청와대 관계자 4명이 대표로 나선다. 양측은 판문점에서 몇차례의 접촉을 가진 뒤 5월중으로 남측 선발대 30명을북측에 보내 현장상황을 보아가면서 결정하게 된다. 정상회담을 위한 경호·의전분야의 접촉은 처음이다.그러나 통신·보도분야에선 지난 90년 7월 고위급회담의 전례를 따를 것으로 보인다. ■통신·보도/ 생방송문제와 대통령의 평양체류시 연락방법 등이 중점 논의사항이다.생방송의 실현을 위해 TV 위성중계와 장비반입 및 운용 등에 대한 협의가 진행될 전망이다.특히 위성TV 중계장치인 SNG의 운용방식에 대한 반입가능성 여부는 쟁점중 하나다.대통령의 평양체류동안 지휘통신의 단절이 없도록 위성전화의 확보 및 서울∼평양간의 직통전화 재개도 합의될 전망이다. ■경호·의전/ 국빈방문을 전제로 논의를 진행하게 된다.양측은 ‘국가간 관계가 아닌 민족내부의 특수관계’란 관점에서 국기게양,국가연주 등은 생략할 것으로 알려졌다.우리측은 숙소와 행사장 등의 근접경비는 남측이 맡고,외곽경비는 북측이 진행하는 공동경비방식을 추진중이다. 이동중 경호문제,경호 관련 물품의 종류·수량에 대한 여부 및 통보·확인절차 등도 구체적인 합의가 있어야 한다.유적지 및 명승지 참관 등 야외행사는 생략,경호범위를 최소화하고 논란거리가 될 수 있는 장소에 대한 방문시비를 아예 없앤다는 입장이다.북측이 제시하는 각종 행사와 관련해서는 그성격에 대한 정치성 여부를 검토하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정상간의 호칭,인사방법,평양도착 및 회담장 도착시 영접인사 등 절차,회담시 배석자 문제,참가자 등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결정돼야 한다.다른 대표단의 일정도 구체적 논의가 필요하다.정상회담장 뿐아니라 숙소,차량지원,만찬행사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정부의 한 관계자는 “서로 다른의미의 호칭과 용어에 대한 조율이 필요할 것”이라며 “두 정상의 만남을자연스럽게 진행해 나간다는 원칙에서 일을 풀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석우기자 swlee@
  • [역사를 바꾼 정상회담] (5)브란트 슈토프 회담

    *70년 동·서독 정상회담. “직접 회담을 통해 양쪽의 심각한 견해차를 확인했다.에르푸르트는 시작일뿐이며 2차회담을 갖는 것 이상의 목표는 세우지 않았다” 1970년 3월19일 동독의 접경도시 에르푸르트에서 역사적인 동서독 정상회담을 가진 뒤 빌리 브란트 서독 수상이 서독으로 돌아와 가진 기자회견에서 던진 첫마디다.그는 이 자리에서 통일에 대한 환상없이 침착하게 긴장을 제거하고 협력의 가능성을 모색해 나가겠다며 ‘거짓된 희망’을 경고했다. 1945년 종전이후 25년만에 열린 정상회담은 긴장완화를 위한 대외적 여건변화를 동서독이 적극 활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1969년은 2차대전 종전후지속돼온 동서간 냉전구조에 처음으로 변화가 일어난 해였다.미국과 소련간전략무기감축조약(SALT I) 협상이 시작됐고 나토도 바르샤바조약기구에 상호균형감군협정을 제안했다.3월 동서화해를 추구해왔던 하이네만의 서독 대통령 취임,4월 서독의 ‘동독 국가승인’ 방침이 발표됐다.10월 ‘동방정책’을 제창한 빌리 브란트 총리의 사민당 연립정부가 출범했다.브란트 총리는취임연설에서 “서독 정부에 의한 동독의 국제법상 승인은 고려될 수 없지만독일에는 두개의 국가가 존재하며 둘은 외국이 아니라 특수한 관계에 있을뿐”이라고 밝혔다. ‘두개의 독일 인정 발언’은 동독을 소련의 위성국가로,‘비합법적’국가로 간주 동독을 승인하는 국가와는 외교관계 단절까지 불사하는 ‘할슈타인원칙’에 정면 배치되는 것이었다.야당은 즉각 반(反)통일노선,분단고착화,심지어 ‘매국행위’라며 비난했다.반면 동독은 두달 뒤인 12월 서독에 무력사용·위협 포기,외교관계 수립 등을 요구,정상회담의 계기를 마련했다. 브란트는 동독이 국제법상 승인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어떤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직접 동독총리를 만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판단, 70년 1월 빌리 슈토프 동독총리 앞으로 정상회담을 제의하는 서한을 전달했다.슈토프도 이에 즉각 합의했다.양측은 곧바로 실무접촉에 들어갔고 4차례의 실무접촉과정에서의제가 아닌 회담장소가 최대의 난제로 떠올랐다.서독은 브란트 총리가 서베를린을 거쳐 동베를린으로 가길 원했고 동독은 서독 정상의 베를린 장벽통과라는 상징성 때문에 이를 거부했다.결국 제3의 장소인 동독의 에르푸르트로합의했다. 3월19일 브란트가 탄 기차가 에르푸르트 역에 도착했을 때 수많은 동독 국민들이 열광적으로 그를 환영했다.숙소인 ‘에르푸르트 호프 호텔’까지 몰려와 환호하는 군중앞에 나서 이들을 진정시키던 브란트의 모습을 지켜보는수행원들 눈엔 눈물이 고였다. 회담장 밖의 분위기와는 달리 회담장안은 냉랭했다.동독은 군비감축, 유엔동시가입,국제법상 동등한 관계수립 등 7개항을 요구했다.서독은 동·서독은서로 외국이 아니며 양측의 선린우호관계의 제도화를 위해 노력한다등 6개항을 제시했다.양쪽은 각자의 입장만 확인한 뒤 5월21일 서독의 카셀에서 2차회담을 재개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만 발표하고 헤어졌다.두달뒤 카셀 2차회담도 양쪽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1차때처럼공동성명도 발표하지 못했다. 가시적인 성과는 거두지 못했지만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쪽은 공존의 필요성을 공감했다.실무접촉은 계속 돼 기본조약이 체결된 72년 12월21일까지 70여차례나 열렸다.73년 9월 유엔동시가입,74년 3월 상호대표부개설로 이어졌다. 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90년 10월 통일때까지 양독은 9차례의 정상회담을 가졌다.‘조금씩 가까워짐으로써 변화를 촉발한다’는 브란트의 접근이 결실을 맺었다. 김균미기자 kmkim@. . *브란트 당시 서독총리. 인류평화·공존 철학속에 동방정책을 싹틔운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는옛 동서독인을 막론하고 ‘통일의 아버지’로 불리운다. 1913년 12월18일 북부 독일의 소도시 뤼베크의 노동자 가정에서 소비조합여점원의 사생아로 태어났다.사회당원인 외할아버지를 ‘아빠’라 부르며 성장한 그는 17세때 독일사회민주당 당원이 돼 반나치 청년운동에 가담했다. 히틀러 집권후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자 노르웨이로 망명,종전때까지 그곳에서 활동했다. 49년 연방의회 베를린 시의원으로 독일 정계에 입문한 뒤 15년만인 64년 당수로 선출된다.69년 자민당과 제휴,전후 최초의 사민당 정권을 창출하고 총리에 올라 ‘동방정책’을 밀고 나갔다.동서독 정상회담 개최등 공로로 71년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보좌관이 동독 스파이로 밝혀지면서 74년 총리직에서 물러났다.87년 사민당 당수직 사임으로 정계에서 물러난 그는 사회주의인터내셔널(SI) 의장직을 6회 연임하면서 국제정의 실현과 인권신장에 앞장섰다.92년 10월8일 운명했다. *슈토프 당시 동독총리. 빌리 브란트의 상대였던 빌리 슈토프 동독 총리는 1989년 거세게 전개됐던반정부 시위에 밀려 사임할 때까지 에리히 호네커 동독 공산당 서기장 치하의 마지막 총리로 일했다. 1914년 7월9일 베를린 출생인 그는 벽돌공과 기술자,건축설계사 등으로 일했다.그는 동독의 내무·국방장관 등을 비롯해 공산당과 행정부에서 요직을두루 역임했다.70년 1차 정상회담직후 브란트 서독 총리로부터 ‘확고하고경직된 견해를 가진 정치가로 다루기 매우 어려운 회담 상대’로 불리웠다. 89년 10월18일 호네커 실각으로 함께 사임했다.사임하고 이틀 뒤 여행규제가 풀리면서 동독인들의 대탈출극이 벌어졌다.독일이 통일된지 1년만인 91년 60년대 베를린 장벽과 국경을 넘어 서독으로 탈출하는 동독민들에 대한 사살명령을 내린 것과 관련된 혐의로 구속됐다.92년 이와 관련 재판을 받고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석방됐다. 독일 정부는 99년 4월19일 그의 사망소식을 발표했다.사망 원인은 공표되지 않았다. 김균미기자
  • 뉴욕대교구 존 오코너 추기경 사망

    [뉴욕 연합] 가톨릭 뉴욕대교구를 이끌며 보수계 신도들의 정신적 지주가돼온 존 오코너 추기경이 3일(현지시간) 성(聖) 패트릭성당의 숙소에서 사망했다.향년 80세. 오코너 추기경은 작년 8월 뇌종양 제거수술을 받은 뒤 합병증에 시달려왔으며 최근 병세가 악화되면서 지난 3월초부터 미사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조지프 즈윌링 뉴욕대교구 대변인은 “그가 임종을 앞두고 신에 대한 큰 믿음을 갖고 기도로 시간을 보냈으며 가족과 친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매우평온하게 죽음을 맞았다”고 발표했다. 1920년 필라델피아에서 출생한 그는 45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한국전당시인 52년 해군에 입대해 27년간 지도신부를 맡아 한국과 베트남 등지에서 근무하며 해군 소장까지 진급한 뒤 79년 교황청에 의해 미군 주교에 서품됐다. 이후 필라델피아 스크랜튼의 주교를 거쳐 84년에 신도 240만명의 뉴욕대교구대주교에 임명됐으며 이듬해에 추기경에 올랐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최측근 역할을 해온 그는 미국내에서 낙태와 피임,동성애에 반대하는 교황청의 입장을 강력히 대변하며 가톨릭내 진보세력들과자주 충돌을 해왔다. 각종 사회문제에 대한 보수적 입장을 보인 그는 90년 낙태를 지지하는 가톨릭 정치인에 대한 파문을 권고해 논란을 초래하기도 했으며,특정 록 음악을듣는 것은 악마를 돕는 것이라고 주장해 신문의 1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오코너 추기경이 지난 50년간 예사롭지 않은 인내를갖고 미 가톨릭의 필요에 이바지해 왔다”고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 [역사를 바꾼 정상회담](4)사다트 베긴 회담

    *77년 이집트·이스라엘 정상회담. “20세기 가장 위대한 외교적 승리의 하나이자 역사적 이벤트였다.우리는전혀 새로운 평화에의 여정을 창조했다” 1977년 11월19일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에 외무장관으로 동행한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 전 UN사무총장은 당시를 이같이 회상했다. 사다트의 이스라엘 방문 및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와의 만남으로 촉발된 화해 기류는 누구도 녹일 수 없을 듯하던 중동의 얼음장 하나를 쩍 갈랐다.양국 정상간 대면은 최초의 평화조약 체결로 이어져 중동평화 여정에 거대한 초석을 놓게 됐다. 애초에 사정은 결코 좋지 않았다.4차례 전쟁을 통해 국토를 강탈해간 이스라엘에 아랍권은 유혈투쟁을 불사해왔다.이집트 역시 67년 전투에서 이스라엘에 시나이반도를 뺏겼고 73년 이를 둘러싸고 또한차례 격전에 휘말리는 동안 감정이 상할대로 상해 있었다.설상가상으로 이스라엘에선 초강경 테러리스트 출신 베긴 정권의 탄생으로 세계가 경악했다. 그러나 한편 피비린내 가시지 않는 30년 무력충돌에 대한 넌더리가 중동 민중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었다.국제사회의 압력도 날로 거세갔다.이스라엘은무력점령한 땅을 반환하라는 UN 결의안 242조를 마냥 무시할수 만은 없었으며 극도의 민생 피폐상에 시달려온 이집트에는 미국이 ‘평화분담금’ 명목으로 제시해온 경제원조가 절실했다.이 시점에서 사다트는 결단을 내렸다.77년 자국 의회에서 “중동평화를 위해서는 어디든 간다.이스라엘 의회까지라도”라고 연설,강한 평화의지를 피력한 것.여기에 이스라엘이 즉각 초청장을 보내 화답했다.그리고 사다트가 무조건 이를 수락함으로써 아랍지도자 최초의 역사적인 이스라엘 방문은 이뤄졌다. 이 자리에서 양국 정상은 3차례 회담에도 불구,평화조약이 아닌 “평화를원하며 대화를 계속하자” 정도의 원론적 합의성명서 한장을 달랑 내는데 그쳤다.30년간 반대편을 보고 달려온 양국간 입장 차는 클 수 밖에 없었다.베긴 총리는 평화보장을 전제로 한 시나이반도 반환은 받아들였으나 요르단강서안 등 팔레스타인 지위와 관련된 사항에는 한치도 양보할수 없다고 버텼다.양국은 향후 1년여를 무수한 중재회담으로 소모하고서도 접점을 찾지 못해미국의 개입을 불러들여야 했다.78년 9월 카터 미 대통령은 양국 정상을 캠프 데이비드로 불러 배수의 진을 친 상태에서 협상조율에 들어갔다.2주만인17일 천신만고 끝에 역사적인 합의문이 엮어져나왔다.골격은 ▲시나이 반도의 이집트 반환 및 이스라엘-이집트 수교 ▲5년내 요르단강 서안 및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자치 보장 원칙 등 크게 두가지였다.협정이 체결되기까지는 그후로도 반년이 흘러야 했다. 어렵사리 싹튼 중동평화였지만 부작용 역시 상상 이상이었다.양국 모두 국내의 거센 반발에 맞닥뜨렸으며 사다트는 동포를 버린 배신자로 아랍권에 낙인찍혀 리비아,시리아 등으로부터 단교당하기도 했다.미국을 불러들인 반쪽정상회담의 한계 등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의 실제 자치권 회복까지는 문서에약속된 몇배의 세월이 흘러야 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점들이 이스라엘-이집트 협정의 의미 자체를 희석할 수는없다.미국이 중도개입했으나 협상의 촉발점이 된 사다트의 예루살렘 방문이상당히 독자적 행보였다는 점에서 이는 중동문제를 자력으로 인식한 최초의사례가 아닐 수 없다.유대-아랍간 30년 적대관계를 청산한 이 회담이 없었다면 93년 오슬로협정,98년 와이리버협정 등 향후 중동평화의 모든 괄목할 만한 성과들도 나올 수 없었다.78년 사다트와 베긴은 그 공로로 나란히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그러나 81년 사다트는 과격파 총탄에 희생돼 중동평화의 첫 순교자가 됐다. 손정숙기자 jssohn@. *사다트 당시 이집트 대통령. 반식민,반봉건주의자에서 중동평화 개척자로.사다트 전 이집트 대통령의 일생은 드라마틱하기까지 하다. 1918년 영국 통치하 이집트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카이로 사관학교에 입교,정치 역정을 시작한다.영국 통치에 저항한 자란,터키 오토만 왕정을 무너뜨린 케멜 아타투르크,비폭력운동의 간디,그리고 히틀러로부터 영향을받았다. 38년 졸업과 함께 배치된 후방에서 후일 이집트 초대대통령이 된 아브델 나세르를 만나 정치적 동지가 된다.52년 나세르가 이끄는 비밀조직이 왕정을무너뜨리고 집권하자 그 밑에서 18년간 홍보장관,집권당 사무총장,국회의장,총리 등을 지내다 70년 나세르 사망으로 대통령직을 물려받았다. 72년 소련군 추방,73년 대 이스라엘 반격 등으로 외교적 성과를 쌓아가던중 77년 이스라엘과의 평화계획을 제시,전세계의 관심권 안으로 부상했다.그러나 이에 대한 내부 반발을 철권통치로 억누르다 81년 자국군 내부 회교원리주의자 총탄에 숨졌다. * 베긴 당시 이스라엘 총리. 중동평화의 또다른 축 메나헴 베긴 전 이스라엘 총리는 한때 시오니스트 무장단체를 이끌며 테러를 자행,목에 현상금이 걸렸던 인물. 1913년 옛 소련(지금의 벨라루시) 브레스트-리토브스크에서 목재상의 아들로 태어나 바르샤바 법대를 졸업했다.2차대전 홀로코스트에 부모형제를 잃은 뒤 과격분자로 변신,예루살렘의 영국군 사령부 숙소였던 한 호텔을 폭격,100여명을 사망케 해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혔다. 이스라엘 건국 이후 원내투쟁으로 선회,20여년간 극우 야당을 이끌다가 73년 리쿠드당을 창당했으며 77년 만인의 예상을 뒤엎고 총리로당선됐다. 그는 78년 캠프 데이비드 평화협정 체결로 중동에 평화를 부른 주역으로 각광을 받았지만 81년 이라크 핵수로 폭격,82년 레바논 침략 등으로 강경 이미지를 재확인시키며 국제사회에서 또다시 비난을 사기도 했다.그러나 83년 자진 은퇴한 뒤에는 92년 사망 때까지 정치를 등지고 칩거했다. 손정숙기자
  • 한국·일본,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26일 오후 7시 잠실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질 한·일 축구 국가대표팀 친선경기를 하루 앞둔 25일 양국 대표팀은 비장한 각오 속에 마무리 훈련을 하면서 필승 결의를 다졌다. 이번 대결이 비록 친선경기지만 벼랑 끝 승부를 예고하는 요인은 곳곳에서발견된다. 우선 경기 결과가 두나라 대표팀 감독의 위상에 결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보인다. 특히 허정무 감독으로서는 이번에 또 지면 일본 트루시에 감독과의 맞대결3연패라는 불명예를 감수해야 한다.허 감독은 지난해 9월 올림픽대표팀간 교환경기에서 트루시에 감독에게 두번 연속 졌다. 각각 올림픽대표와 국가대표를 총괄하고 있는 두 사람은 지금까지 모두 3차례 맞붙었다.98방콕아시안게임 때 이뤄진 첫 대결에서는 허 감독이 2-0으로이겼다.그러나 이 때 한국은 국가대표팀을 내보낸 반면 일본은 23세 이하 올림픽대표팀을 출전시켰기 때문에 정상적인 맞대결로 보기 어려운 면이 있다. 따라서 오는 12월 일본과의 원정 경기를 앞둔 허 감독에게는 홈에서 이뤄지는 이번경기가 3연패냐,정당한 맞대결 첫 승이냐의 고비인 셈이다. 위기에 있기로 치면 트루시에 감독이 더하다.일본축구협회가 경기 하루전한·일전 결과가 감독의 재신임 여부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애써 강조했지만 이번에 지면 최근 대표팀 성적 부진과 맞물려 입지가 불안해질 것은 불문가지다. 트루시에 감독은 또 협회와의 갈등 속에 오는 6월 임기를 마치게 돼 이번 한·일전 결과에 따라 희비가 갈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밖에 한·일전은 자국의 축구 열기에 지대한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점에서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자존심 대결로 불리는 한·일 축구의 속성상 승패에따라 관중수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탓이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올시즌 들어 그렇지 않아도 지난해보다 20% 가량 줄어든 관중수가 한·일전 패배로 더욱 줄어들지 않을까 우려하는 눈치다. 이같은 중요성을 의식한 듯 허 감독은 “지난달부터 일본 공략법을 강구해왔다”면서 “후회 없는 경기를 펼치겠다”는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25일 낮 일본 대표단을 이끌고 입국한트루시에 감독 역시 공항회견을 거부한 채 숙소로 직행,짐을 푼 뒤 잠실종합운동장으로 달려가 마무리 전력점검에 전념했다. 박해옥기자 hop@. *김병지 부상 '골문 비상'. 한·일 축구 친선경기를 하루 앞둔 25일 주전 골키퍼 김병지가 갑작스런 요통을 호소해 한국대표팀에 비상이 걸렸다. 김병지는 이날 연습경기를 마친 뒤 갑자기 허리 통증을 호소,현대중앙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정확한 원인을 밝히지 못한 채 숙소로 돌아갔다. 대표팀 주치의 진단에 따르면 김병지는 요추 1번과 2번 사이에서 통증을 느끼고 있으며 한·일전 출전 여부는 경기 당일 아침 이후에나 판명될 전망이다. 허정무 감독은 김병지의 결장에 대비,대한축구협회에 성남 일화 김해운을추가선발해 줄 것을 요청했다.
  • 女축구대표 ‘고교얄개 3인방’ 떴다

    여자축구 대표팀에 ‘얄개 3인방’이 떴다. 이진숙(18·167㎝)과 김결실(18·164㎝·이상 장호원상고),김숙경(17·168㎝·강일여고) 등 아직 여드름이 채 가시지 않은 여고생들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19일 막을 내린 제8회 여왕기 여자종별축구선수권대회에서 종횡무진활약을 펼치며 팀을 이끌었다. 이진숙은 100m 12초대로 웬만한 남자선수 뺨치는 ‘총알 스피드’를 자랑한다.큰 키는 아니지만 여왕기에서 4골을 터트려 고등부 득점왕에 오른 스트라이커로서 대표팀 새 식구에 끼게 됐다.준결승 상대였던 라이벌 강일에 0-3으로 진 뒤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울부짖었을 정도로 ‘못 말리는’ 승부욕도장점으로 통한다. 여왕기에서 정확한 볼 배급을 통해 금쪽 같은 어시스트 2개로 동급생 이진숙의 득점왕 등극을 합작한 김결실은 파워가 뛰어난데다 움직이는 폭이 넓어‘여자 이영무’로 불린다.능한 몸싸움과 스크린플레이로 ‘허리’ 역할을톡톡히 해낸다. 대표팀 ‘막내’인 수비수 김숙경은 점프력이 좋아 헤딩으로 상대 공격진을따돌리는 데 명수. 킥의정확도도 높은 편이어서 보통 볼을 걷어내기에 바쁜실점위기 가운데서도 자로 잰듯한 패스로 역습 기회를 만들어내는 재주를 지녔다. 강일의 여왕기 첫 우승에 보이지 않게 큰 몫을 했다는 평가를 받으며이상백 감독의 귀여움을 샀다. 이들 여고3총사는 20일 경기도 이천 설봉호텔 숙소에서 재개된 대표팀 훈련에 합류해 3-5-2 시스템 적응력과 팀워크를 다지고 있다.다음달 1일 유기흥감독(53)과 함께 미국으로 출국해 4개국 친선경기대회에서 강호인 미국,캐나다,멕시코와 기량을 겨룬다. 송한수기자 onekor@
  • 국방부 독신군인 숙소 짓기로

    국방부에 근무하는 독신 군인들이 숙소 근심을 덜 전망이다. 국방부는 14일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는 국방부 파견 독신 군인들을 위해 100억원을 들여 용산구 한강로 1가 167의2 옛 테니스터 1,187평에 지하2층,지상13층 규모의 현대식 독신자 숙소(BOQ)를 내년 말까지 짓기로 했다. 현재 강서구 신월동과 국방부 청사 등 3곳에 흩어져 있는 BOQ는 모두 72개에 122명이 묵을 수 있는 규모.입주를 위해 대기중인 296명은 국방부 부근여관이나 하숙집을 전전하는 실정이다.일부 간부들은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하기도 한다.BOQ에 입주하려면 통상 4∼6개월은 기다려야 한다. 새로 짓는 숙소는 장군 및 대령용 10평형 60실과 중령급 이하 7평형 240실등 모두 300실이다.1인1실을 원칙으로 원룸 형태로 꾸며진다. 그러나 단층주택이 밀집해 있는 한강로1가 주민들이 조망권 및 일조권 침해가 예상된다며공사 착공에 반대,일정에 일부 차질이 예상된다. 주민들은 ▲이 지역을 국방부와 주민이 공동개발하거나 ▲신축부지 인접토지를 국방부가 매입하거나 ▲신축부지를민간인에게 매각하라고 요구하고 있다.국방부는 난색을 표하면서 주민들을 설득중이다. 노주석기자 j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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