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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이산상봉/ 북한 문화계인사의 바람

    이산가족 교환방문을 계기로 남북 문화교류가 활발해질 전망이다.정부도 분단 50년의 간극(間隙)을 좁히기 위해 적극 뒷받침할 방침이어서 조만간 첫 ‘물꼬’를 틀 것 같다.이번 방문단에 끼여 남쪽에 온국어학자 류렬,노력영웅 시인 오영재,화가 정창모,공훈배우 리래성씨의 바람과 향후 전망을 짚어본다. ◆국어학자 류렬씨. 각각 남북한 국어운동의 상징으로 통하는 한글학회 허웅 이사장과북측 방문단의 류렬씨가 50년만에 만났다.두 원로 국어학자는 17일오후 7시 서울 남산 햐얏트 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이산가족 상봉단 환송회 자리에서 만나 남북 국어학계의 학자 및 학술교류를 논의했다. 각각 부산,경남 출신인 허 이사장과 류렬씨는 1918년생,올해 82세동갑내기인 데다 일제 식민치하를 거쳐 6·25가 발발하기 전까지 일제가 말살한 국어 보급에 헌신적인 활동을 했다.해방 직후 류씨는 부산에서 강습소를 개설해 국어 보급에 주력했고,허 이사장은 주로 서울에서 활동을 했으며 1947년쯤을 기점으로 이들 둘의 주 활동 무대는 공교롭게도 정반대가됐다. 허 이사장이 이후 활동 근거지를 부산으로 옮긴 반면 류씨는 서울로옮겼다가 한국전쟁 와중에 월북했다.허 이사장은 “강습소나 한글학회 강연 등지에서 잠깐 잠깐 류렬 선생과 인사를 나누곤 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류씨는 이날 외증손녀에게 이름을 선물했다.딸 인자씨(60·부산 연제구 연산4동)를 만나기 위해 서울에 온 류씨는 그동안 두차례 상봉하면서 딸이 지난 4일 손녀를 얻었다는 얘기를 듣고는 이름을 지어주겠노라고 약속,‘임여울’이라고 외증손녀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인민화가 정창모씨. ‘한강의 저녁 노을을 그리고 싶어’ 북쪽의 인민화가 정창모씨(68)는 17일 오전 숙소인 서울 워커힐호텔1603호실에서 남쪽의 여동생 춘희(60),남희씨(53),매제 김병태씨(72)를 다시 만나 “서울의 경치 중 제일은 역시 한강인 것 같다”며 “나는 정서적인 그림을 주로 그리는데 한강의 저녁 노을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북쪽에 있으면서도 판문점 가까이 와서 그림을 많이 그렸고,특히 600리 분계선이 드리워진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곳도 자주 찾았다”면서 “분계선 근처 옛 집터를 그린 그림도 평양국립미술관에 소장돼 있다”고 소개했다. 정씨는 자신이 그림을 그리는 데 큰 영향을 끼친 외조부 이광열 화백을 떠올리며 “국화를 그리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며 “평양미술대에서 그림 공부할 때 그 분 생각을 하며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회고했다. 춘희씨는 “오빠가 자신의 호 ‘효산’은 할아버지의 호 ‘효원(曉園)’의 효(曉)에 산(山)자를 붙인 것이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노력영웅시인 오영재씨. 북한의 ‘계관시인’ 겸 ‘노력영웅시인’ 오영재(吳映在·64)씨가자신의 어린 시절과 시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어머니(곽앵순씨)에 대한 그리움 등을 적은 글이 17일 공개됐다.오 시인은 이번 서울 방문에서 이전에 쓴 시를 공개하고 직접 다시 시를 쓰기도 했다. 남북 시 교류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6·25 전쟁 중에도틈틈이 시를 썼다는 오씨는 “군 제대 뒤 평양시 서성구역 건설현장에서 평범한 노동자로 일하다 틈틈이 시를 지어 동료들로부터 ‘노동자 시인’으로 불리다 조선작가동맹에 발탁됐다”면서 “조선작가동맹은 나를 작가학원에 입학시켜 전문 시인으로 양성했다”고 시인이되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하게 밝혔다. 오씨는 지난 89년 3월 판문점에서 열렸던 남북 작가회의에 북측 대표로 참가하기도 했다.그의 글과 ‘아,나의 어머니’라는 연시(連詩)는 남한의 출판사 ‘살림터’가 지난 93년 펴낸 북한의 우수단편선집 ‘쇠찌르레기’에도 부록으로 실려 있다. ◆공훈배우 리래성씨. “남쪽에서 영화를 찍고 싶습니다.” 북측 상봉단의 일원으로 서울을 찾은 ‘공훈 배우’ 리래성씨(68)는 17일 오전 개별상봉장인 워커힐 호텔을 찾은 여동생 아나운서 이지연씨(52)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약속했다. 리씨는 “북에서는 추운 겨울에 여름 장면을 찍기가 어렵고 남에서는여름에 겨울 장면을 찍기가 어려우니 서로 상반되는 계절 장면을 촬영할 때 서로 오가며 찍으면 좋을 것”이라면서 “2∼3년 안에 다시남에 와 영화를 찍고 싶다”고 말했다. 오빠의 위로에 이씨가 “그런 희망이 든다”고 하자 리씨는 “희망이아니다.그건 확신이다”면서 이씨를 다독거렸다. 리씨는 동생이 걱정되는 듯 “6·15선언에서 앞으로 쉽게 가깝게 할수 있는 것부터 교류한다고 한 만큼 문화교류가 빨리 이루어질 것”이라면서 “몇 년 전 영화 ‘민비’를 찍으려다가 그만뒀는데 기왕이면 남북 배우들이 함께 통일된 경복궁에서 찍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특별취재단
  • 이산상봉 비용 총 30억 추산

    8·15이산가족 상봉과 관련,정부가 부담하게 될 총경비는 30억원 정도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정부는 이 비용의 대부분을 남북교류협력기금에서 충당할 예정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17일 “정부가 3박4일의 이산가족 교환 방문에소요된 비용을 사후 정산하기 때문에 아직 정확한 집계를 할 수는 없지만 모든 비용을 합쳐 추산할 때 30억원 정도가 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비용의 구체적 내역은 ▲북측 방문단의 숙소인 쉐라톤 워커힐 호텔숙식료 ▲남측 가족 숙소인 올림픽 파크텔 숙식료 ▲상봉행사와 공식 오찬 및 만찬 비용 ▲항공 및 전세버스의 임대료와 운임 등이다. 30억원의 비용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은 호텔 숙식료.워커힐 호텔만 하더라도 3박4일 동안 북측 방문단이 100여개를 사용했고 정부 관계자들도 상황실 요원 투숙 등을 위해 100여개를 따로빌려 사용했다. 그러나 단체할인 요금이 적용될 경우 정규요금보다는 쌀 것으로 보여정확한 비용은 행사가 끝난 뒤 집계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별취재단
  • 남북이산상봉/ 서울 상봉 이모저모

    서울과 평양에서의 3박4일은 반세기 동안의 ‘긴 이별’에 비해 너무나 ‘짧은 만남’이었다.남과 북으로의 출발을 하루 앞둔 17일 이산가족들은 하룻밤만 자고 나면 또 다시 ‘생이별’을 해야하는 기막힌 현실에 울고 또 울었다.남북이 각각 주최한 환송 만찬에 참석했다숙소로 돌아온 이들은 회한과 상념에 젖어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다시피 했다. ◆박재규 통일부장관이 17일 저녁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마련한 만찬에는 여야 정치인을 포함,300여명이 참석,성황을 이뤘다. 박 장관은 만찬사에서 “짧은 시간이었던 만큼 헤어짐은 더욱 애틋해 잡았던 손을 차마 놓치 못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접고 다시 만날그 날을 기약하자”며 북측 상봉단과 남측 참석자들에게 건배를 제의했다. 남한의 막내딸 최순애씨(48)씨가 선물한 한복을 입고 나온 류미영북측 단장도 답사에서 “서울에서 보낸 며칠은 격정 속에 흘러간 나날이었다”고 회고한 뒤 “남측의 배려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만찬장에는 정계 뿐 아니라 지난 6월 남북 정상회담 때 방북했던강성모 린나이코리아 회장 등 재계 인사와 문화·체육·언론계 대표들이 참석했다.경기대 교수인 전 방송인 차인태씨,전 영화배우 김보애씨,그룹 ‘코리아나’의 여성멤버 홍화자씨 등 낯익은 인사들도 포함됐다. 미국 국적의 인요한(41·본명 존 린튼)연세대 외국인진료소장도 눈길을 끌었다.인씨는 형 세반씨(50·스티브 린튼)와 함께 북한의 결핵 퇴치사업을 펼치고 있는 유진벨 재단 활동으로 북한에도 잘 알려져있다. ◆하얏트호텔측은 북측 상봉단이 고령임을 감안,북어와 더덕구이,갈비와 전복구이,수정과 등 부드러운 음식들로 상을 차렸다. 또 한 테이블에 한명씩 배치하던 서비스 요원을 3명씩 배치해 몸이불편한 상봉단들을 부축하는 등 세심하게 배려했다. ◆약 2시간 동안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만찬은 북측 상봉단과 남측 참석자들간의 뜨거운 악수와 함께 “또 만납시다”“건강하십시오”라는 등의 덕담으로 끝맺었다. ◆서울 체류 3일째인 이날 남북 이산가족들은 “마지막이라는 말은하지 말자”며 짧은 재회의 아쉬움 속에 다시 만날 희망의 날을 기약했다. 상봉 마지막 날인 탓에 “한 번이라도 더,1분이라도 더 만나게 해 달라” “부모님 산소라도 찾게 해 달라” “어머니와 하룻밤이라도 자게 해 달라”는 안타까운 주문도 잇따랐다. ◆북에서 온 김용호씨(72)는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다”면서 “면회소가 생기면 아직 못본 조카들도 만날 것”이라며 다시 만날 날을 확신했다. 김씨를 비롯한 이산가족들은 “연락사무소 설치나 이산가족의 정례적인 만남도 중요하지만 우선 전화 통화와 편지의 상시 교환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덕씨(64)는 “형님과 얘기를 해도 해도 끝이 없다”면서 “하룻밤이라도 같이 자면서 밤 새도록 얘기하고,부모님 묘소에 성묘라도한 번 같이 갔어야 하는데…”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북한 평양무용대학 교수이자 최초의 여성박사 김옥배씨(68·여)는“어머니 품에서 잠들고 싶어 제대로 자지도 못했다”면서 “어머니께 밥을 해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북측 이산가족 김인수씨(68)는 이날 대한적십자사측에 요청,6·25때 헤어졌던 선린상업중학교 시절단짝 김학모(70·서울 중랑구 망우동)·이창영씨(70·서울 은평구 응암동)를 50년만에 극적으로 만났다.까까머리 중·고교시절의 삼총사가 허연 백발이 돼 재회한 것이다. 김학모씨는 16일 오후 고교 총동창회로부터 50년 전 행방불명된 뒤로 ‘죽었다’는 소문만 나돌았던 친구 인수가 북에서 내려와 자신을애타게 보고 싶어 한다는 뜻밖의 소식을 전해 듣고 깜짝 놀랐다. 김학모씨는 중학교 5학년 동안 내내 같은 반이었던 삼총사 중 나머지 한명인 이창영씨에게 연락,이날 오전 김인수씨가 머물고 있는 서울 워커힐호텔을 찾았다. ◆신정현씨(86·서울 은평구 불광동)는 이날 창경궁 관람을 마치고나오던 북한의 ‘계관시인’ 오영재씨(64)에게 북한에서 문인으로 활약했다는 오빠 구현씨(89)의 생사를 물었으나 타계했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망연자실,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신씨는 46년 충북으로 시집간 뒤 고교 교사였던 오빠와 소식이 끊겼으며 10년전 우연히 오빠가 김일성대 언어문학연구부 교수 등을 역임한 문인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특별취재단
  • 남북이산상봉/ 李善行·李松子부부‘따로상봉’

    북에 각각 처자식과 아들을 두고 내려온 뒤 남한에서 결합해 살아오다 이번에 함께 방북단에 선정된 이선행(李善行·81) 이송자(李松子·82)씨 부부의 가족간 만남은 16일에도 이뤄지지 않았다. 숙소인 고려호텔 객실에서 가족별 개별상봉을 가진 이날 이선행씨는“오늘은 가족끼리 더 시간을 갖고 17일 마지막 개별상봉때 두 가족을 인사시키겠다”고 말했다.이씨 부부의 방은 같은 층이지만 각자의가족끼리만 별도의 상봉이 진행됐다.흩어진 가족간의 혈육의 정을 나누기에도 시간이 너무나 짧았던 까닭이다. 이송자씨는 오전 10시쯤 객실에 찾아온 큰아들 박위석씨(61)를 반갑게 맞이했다.전날 첫 상봉때는 반세기만에 처음 보는 얼굴이라 다소서먹했지만 두번째 상봉은 한결 달랐다. 박씨가 “어머니 앞에서 생전 처음 담배를 피우고 싶다”고 말하자이씨는 “건강에 안좋은 걸 뭐하러 피우니”라며 야단쳐 반세기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보통의 모자지간으로 되돌아간 모습이었다.박씨는자신의 외손자(13)가 공부를 잘해 인민학교 단위원장(학생회장)을 하고 있다는 자랑도 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증손자 얘기를 들으며 이씨는 아들의 어렸을 적 모습을 찾아내려 애썼다.‘50년의 무정한 세월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두 사람의 눈망울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선행씨는 옆방에서 북쪽 아내 홍경옥씨(76)와 장남 진일(56),3남진성씨(51)를 만났다.이씨는 커다란 백지를 펼쳐놓고 북의 두 아들손자와 친척들의 이름을 도표처럼 그려가며 일일이 확인했다.이씨는“이게 우리집 새 족보”라며 50년만에 함박웃음을 터뜨렸다.남쪽 부부의 ‘따로 상봉’은 이렇게 지나갔다. 평양 공동취재단
  • 남북이산상봉/ 朴鍾九씨의 北큰형 ‘상봉일기’

    15일 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집단 상봉을 마치고 숙소인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파크텔로 돌아온 이산 가족들은 좀처럼 흥분을가라앉히지 못하고 가족, 친지들과 이야기 꽃을 피웠다.그 순간만은그간 겪은 이산의 아픔도 봄눈 녹듯 사라지는듯 했다.1950년 8월 의용군으로 끌려갔던 큰 형 박종석(朴鍾錫·68)씨를 꼭 50년만에 만난종구(鍾九·54·충북 청주시 사직동)씨가 상봉의 기쁨과 그간의 아픈사연, 이별의 두려움 등을 적은 일기를 소개한다. 상봉장에 앉아서 4살 때 헤어진 형을 기다리면서도 형의 얼굴을 모르는 게 너무나 답답했다.초조해 하는 나에게 둘째 형님과 누님은 자신들이 형을 알아볼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반가운 북쪽의 손님들이 하나 둘 상봉장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반백의 노인이 우리 테이블을 보고 웃음을 지었다. 아!종석 형님이구나.핏줄이라는 게 이렇게 무섭구나.큰형의 얼굴은아버님의 얼굴이기도 했고,둘째 형의 얼굴이기도 했고 바로 내 얼굴이기도 했다.형과 얼싸안는 순간 어릴적 코트 속에 묻어 있던 형의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둘째 형이 “형과 함께 끌려갔던 사람들이 ‘종석이는 사리원에서총에 맞아 죽었다’고 해 우리 가족들은 형이 죽은 줄만 알고 사망신고까지 냈어요”라며 흐느꼈다. 큰형은 둘째형에게 “죽은 줄 알았던 우리가 살아서 만나니 오래 살겠구나”며 웃으셨다. 누님은 형의 품에 안겨 “오빠는 나쁜 사람이야,이제서야 가족이 보고 싶어서 내려오다니 너무 야속해”라며 투정을 부렸다. 형은 흐느끼며 “네 말이 맞다.미안하다”며 누님의 등을 두드렸다. 북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해 딸 셋을 두고 행복하게 살고있다는 형의 말이 그저 반가웠다. 밤이 깊어 간다.조금전 헤어진 형의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몇시간만지나면 형을 다시 만나는데 시간이 너무 더디다. 3일 뒤면 형과 또기약없는 이별을 해야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두려움이 앞선다.짧지만함께 하는 모든 순간을 소중히 간직해야겠다. 16일 아침 종석씨와의 개별 상봉을 위해 워커힐호텔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 종구씨 형제들의 손에는 선물꾸러미가 가득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남북이산상봉/ 휴대전화로 오빠 극적상봉

    남측 가족의 실수로 상봉자 명단에서 누락된 막내 여동생이 휴대전화로 계속 통화를 한 끝에 북에서 온 큰오빠를 50년 만에 극적으로만났다. 최상화씨(56·경기도 광주군)는 16일 북측 이산가족 숙소인 워커힐호텔 로비에서 이제나 저제나 큰오빠 상길씨(68)가 호텔 밖으로 나오기만을 학수고대했다. 상화씨는 전날 상길씨에게 “오빠,내일 내가 호텔로 가서 기다리고있을게.밖으로 나갈 때 잠깐이라도 볼 수 있게”라고 전화를 했고,이날도 호텔 1층에서 “오빠,나 지금 호텔 1층이야”라고 상길씨가 있는 객실로 전화를 했다. 상길씨는 “상화야,이따 오후에 버스 타고 밖으로 나갈 때 내가 너를 알아볼 수 있게 네 이름을 크게 써서 버스 앞에 서 있거라.내 너에게 손을 한껏 흔들어 주마”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 때까지 가만히 기다릴 수 없었던 누이는 호텔 지하 1층엘리베이터 앞에서 초조한 마음으로 오빠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1시간 가까이 지났을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물 밀듯이 밀려나오는 가족들 사이에서둘째 오빠와 언니들의 손을 잡고내려오는 오빠의 얼굴을 발견했다. “오빠…” “네가 상화냐” 6살 때 고향인 경기도 여주군 동네 뒷산에서 어깨동무를 해주며 “대장부 살림살이 이 정도면…”으로 시작되는 노래를 흥얼거리던 10대 미소년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지만,두 남매는 서로를 부둥켜 안은 채 눈물을 쏟아냈다. 그러나 반세기를 뛰어넘은 재회의 기쁨도 잠시.오는 18일 오빠가 떠나기 직전 공항에서 잠깐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을 빼고는 언제 또 있을지 모르는 후일의 만남을 기약하며 상화씨는 다른 형제들과 함께만찬장으로 들어가는 오빠의 모습을 뒤로 한 채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특별취재단
  • 남북이산상봉/ 서울방문단 개별상봉 백태

    남북 이산가족 상봉 이틀째인 16일 북측 가족들은 숙소인 워커힐호텔에서 남측 가족들과 2시간 동안 개별적인 만남을 가졌다.남북의 자식들은 돌아가신 부모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올리거나,북에서 온형님의 생일잔치를 열었다.만남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사진과 비디오카메라 등으로 가족들의 모습을 담는 이들도 있었다. ■전날 치매에 걸린 100세 노모 조원호씨를 만났던 이종필씨(69)는호텔 객실에 동생 종국씨(53)가 가져 온 아버지의 영정과 술·건포·과일·향 등 제수용품을 놓고 그 동안 지내지 못했던 제사를 지냈다. 북에서 내려와 두 형을 만난 김인수씨(68)도 “형제가 함께 모여 부모님 제사를 모시는 것이 소원이었다”면서 호텔 객실에서 형님 가족들과 함께 제사를 올렸다. ■위암 2기로 서울중앙병원에 입원 중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50년전 헤어진 장남 안순환씨(65)를 만났던 이덕만(87·경기도 하남시 초일동)할머니는 순환씨가 묵고 있는 워커힐호텔에서 생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장남의 생일잔치를 열었다. 이 할머니는 전날 아들을만나고 숙소인 올림픽파크텔로 돌아온 자리에서 자식들에게 “19일이 네 맏형의 음력 생일”이라면서 “상봉기간 중 맏형의 생일잔치를 열어주자”고 말했고,가족들은 케이크를준비해 조촐한 생일잔치를 마련했다.19일은 3남 문환씨(56) 생일도겹쳐 가족들은 합동 생일잔치를 벌였다. ■전날 노모를 만나지 못해 주위의 안타까움을 샀던 안인택씨(66)는앰뷸런스를 타고 워커힐호텔로 찾아온 병석의 어머니 모숙자씨(89)를극적으로 만났다. 안씨의 딱한 사정을 접한 대한적십자사는 모씨의 막내아들 안인석씨(58)에게 연락해 “16일 기회를 갖자”고 요청했고,결국 모씨는 이날오전 며느리 임영순씨(50)의 손을 잡고 앰뷸런스 편으로 워커힐호텔을 찾아 반세기 동안 헤어졌던 장남과 만났다. ■치매 때문에 상봉자 명단에서 제외됐던 김점희씨(79·경기도 연천군 전곡읍)는 아들 주준형씨(48)로부터 ”북에서 온 삼촌이 찾는다”는 말을 듣고 기적처럼 정신을 차린 뒤 동생 영기씨(67)를 만나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워커힐호텔로 달려왔다. 만찬에 참석하기 위해 호텔을 나서던 영기씨는 로비에서 무작정 기다리고 있던 누나를 발견하고 “누님” 하며 와락 끌어안았으며,점희씨는 아무 말 없이 눈물만 흘리며 동생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평양음악무용대학 교수 김옥배씨(62)는 15일 첫 상봉에 이어 하루만에 숙소인 워커힐호텔 1409호실을 들어서는 어머니 홍길순씨(87)를보자 다시 눈물을 터뜨렸다. 옥색 한복을 입은 김씨는 어머니께 큰절을 올린 뒤 교수증과 박사증을 꺼내 놓고 “장군님께서 이렇게 키워주셨고 행복하게 살았다”고‘응석’을 부렸고,어머니 홍씨는 “시집갈 때 끼워주려고 했다”면서 옥배씨의 혼기가 차 40년 전 마련해 고이 간직해 오던 백금반지를옥배씨 손에 끼워주었다. ■류미영 단장을 비롯한 북측 가족들은 개별상봉이 끝난 뒤 오전과오후 2개 조로 나뉘어 잠실 롯데월드 민속관의 선사시대,고구려 유적지 전시관 등을 둘러봤다.북측 가족들은 민속관을 관람한 뒤 ‘저자거리’에서 롯데월드측이 제공한 식혜를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롯데월드측은 ‘환영 남북 이산가족 상봉 서울방문단’이라는 대형현수막을 내걸었으며,26명으로 구성된 롯데월드 마칭밴드(marching band)는 ‘고향의 봄’ ‘우리의 소원은 통일’ 등을 연주하며 환영했다. 특별취재단
  • 남북이산상봉/ 北아내 만난 李桓溢·崔成祿씨

    이환일(李桓溢·82)씨는 16일 전날에 이어 숙소인 고려호텔에서 헤어졌던 아내 최옥견씨(80),아들 웅섭(54),딸 경숙(61)씨를 만나 네가족만의 오붓한 시간을 가졌다. 51년 1·4후퇴때 혈혈단신 월남한 이씨는 남쪽에서 재혼한 아내 한정오씨(73)가 북에 가면 가족들에게 끼워주라며 자신의 목걸이를 녹여 마련해 준 금반지 3개를 아내와 아들,딸에게 차례로 끼워주며 진한 가족애를 나눴다.하지만 노환으로 귀가 먹고 말도 못하는 아내 앞에선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이씨는 “반갑긴 한데 무슨 말을해야 할지.말 못하는 게 너무 안타까워”라며 아내 손을 꼭 잡았다. 최성록(崔成祿·79)씨도 “니 어쩌다 손이 이리 쭈글쭈글됐나”라고장탄식을 하며 아내 유봉녀씨(75)에게 금가락지를 끼워줬다. 그리고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최씨는 “내가 죄인”이라고 연신 흐느꼈다.최씨는 아내에게 목걸이를 걸어주고 “이건 며느리 줄라고 준비한건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1·4후퇴때 핏덩이였던 외아들은 이미‘저 세상’ 사람이었다. 최씨와 유씨는 헤어진 후각각 남과 북에서재혼했지만 둘 다 지금은 배우자와 사별한 상태.두 사람은 “오래 살아 다시 만나자”며 작별의 정을 나눴다. 평양 공동취재단
  • 남북이산상봉/ 평양방문단 개별상봉 백태

    방북 이틀째인 16일 남측 이산가족 방문단은 오전 10시20분부터 각자의 호텔 방에서 비공개로 아무런 방해 없이 북측 가족들과 오붓한시간을 갖고 혈육의 정을 나눴다. ■개별상봉에서 남측 가족들은 나름대로 정성스럽게 준비한 편지와녹음 내용들을 소개해 북측 가족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뜻하지 않은 동생까지 만나 상봉의 기쁨이 더한 김준섭씨(67·서울강동구)는 두 딸인 성희씨와 인숙씨가 북에 있는 삼촌과 고모에게 보내는 편지를 소개했다.동생 경숙씨는 ‘태어나 한번도 본적이 없는삼촌과 고모,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의 친형제가 살아 있다는 게 정말실감나지 않습니다. 부디 통일이 되어 다시 만나는 날까지 몸 건강히잘 계십시오’라는 내용의 조카들의 편지를 떨리는 목소리로 읽다가끝내 목이 메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선물”이라며 흐느꼈다.김씨는 동생 창섭(62),경숙씨(54)를 만나러 왔는데 예정에 없던여동생 영숙씨(41)까지 만났다. 채성신씨(73·경기 하남시 덕풍동)도 9세때 헤어진 여동생 정열씨(62)를 만나 자신의 아내가 ‘아가씨,남편으로부터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고향생각에 슬퍼할 때마다 아가씨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통일이되면 만날 수 있길 바래요’라는 내용의 육성 녹음과 함께 다른 가족들이 전하는 안부 녹음도 함께 들려주기도 했다. ■개별상봉에서는 뜻밖의 만남도 있었다.경기 개풍군이 고향인 상환식씨(74·경기 부천시 원미구)는 지난번 북측으로부터 사망했다는 통보를 받은 동생 복식씨(60)를 만나 믿어지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척추질환 때문에 의사의 여행금지 권고에도 불구하고 휠체어에 의지한 채 오빠와 사촌동생을 만나러 먼길을 온 김금자씨(69·여·서울 강동구 둔촌동)는 첫날 오빠는 못만나고 사촌언니들만 만난뒤 이날 언니들로부터 “어젯밤 고향 친지들을 수소문해보니 오빠는2년 전 고혈압으로 사망했다더라”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들었다. 김씨는 “오빠가 죽은 줄 진작 알았더라면 이렇게 아픈 몸을 이끌고오지 않았을 걸…”이라며 통곡했다. ■가족 상봉의 충격 때문에 첫날밤 심한 고열과 기침에 시달리는 등폐렴 증세를 보인 이근하씨(71·경기 시흥시 신천동)는 이날 아침 팔에 링거주사를 꽂은 채 식당에 등장,식사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평양친선병원으로 실려가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기도.이씨는 그러나치료를 받은 뒤 오전 10시30분쯤 숙소에 돌아와 가족들을 만난 뒤 대동강을 유람하는 등 건강을 회복했다. ■이번 상봉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딸을 한꺼번에 만난 이환일씨(82·경기 안산시 선부3동)는 남한에 있는 현재의 아내가 애지중지하던 자신의 금목걸이를 녹여 만든 금반지 세 개를 북측 가족들에게 일일이 끼워주고 난 뒤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가족사진을 찍어보는 감격의 순간을 맛보았다. 아들 응섭씨는 “반갑기도 하지만 다 늙어서 이렇게 만나게 되니 서럽고 안타까운 점도 많다”면서 “한 조국인 우리가 이제는 통일의염원을 안고 살아야 합니다.저는 농사꾼이므로 이제 나라의 쌀독을채우는 조국 통일의 역군이 되갔습니다”고 말했다. ■평양이 고향인 강성덕씨(72·여·대구 달서구 진천동)는 언니를 만나 남측에서 준비해간 금목걸이 금반지 시계 밍크목도리등과 함께조카사위들에게 줄 와이셔츠 넥타이 속옷 등을 아예 여행가방째 건넸다. 강씨는 “어머니는 1·4후퇴때 9남매 중 유일하게 언니만 평양에 남겨두고 내려와 평생을 죄책감을 안고 살아왔다”며 어머니의 유품인털옷을 전해줘 주위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1951년 인민군 입대 통지서를 받고 이별한 아내 박택용씨(71)를 만난 최태헌씨(69)는 “내가 (가족들을) 다 버리고 남으로 갔지만 혼자살며 애들 잘 키웠소. 내가 못한 짓 조금이라도 보답될까 해서 준비했소”라며 서돈짜리 금가락지 2개를 아내 손에 끼워줬지만 박씨는아무 말도 없었다.최씨는 헤어질 때 겨우 네살이던 아들 희영씨(53)와 남동생 태화씨(67)에게도 반지와 시계를 끼워주며 “나를 용서하라”는 말을 계속했다. 아내에게서 스무살의 꽃다운 얼굴을 찾아볼 수 없다는 최씨는 “그때는 밭일도 같이 하고 일하다 새참도 함께 먹고 그랬는데 지금은 말도 잘 못한다”며 아쉬워했다. ■오후 8시30분쯤 고려호텔‘매대’(매점)에 설치된 텔레비전을 통해서울에서 북측 방문단이 남측 가족들을 상봉하는 장면이 방영되자 순식간에 판매 여직원 10여명이 몰려들어 큰 관심을 보였다. 이들은 가족들이 얼싸안고 통곡하는 장면이 이어지자 너나 할 것없이 눈물을 훔쳤다. 평양 공동취재단
  • 恨은 풀고… 情은 잇고…

    “하루 빨리 통일의 그 날이 와서 서로 이웃집 다니듯 다니며 정을나누도록 하자”(북측 방문단 류열씨) “우리 오래오래 살아 꼭 다시만나자우요”(남측 방문단 최성록씨). 정든 고향 땅에서 뜬 눈으로 설레는 밤을 보낸 남북 이산가족들은 16일 서울과 평양에서 다시 만나 2시간여에 걸쳐 못 다한 얘기를 주고받았다.분단 50년 만에 이뤄진 전날 상봉의 흥분과 감격,맺힌 한이채 가시지 않은 듯 숙소 곳곳에서 오열의 소리도 들렸으나 첫날의 단체상봉 때보다는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 상봉의 기쁨을 나눴다. 남과 북은 이날 가족단위의 개별상봉에서 안내원을 배석시키지 않아이산가족들이 반세기 동안 쌓이고 쌓인 얘기를 거침없이 털어놓으며오붓하고 단란한 시간을 보냈다. 또 각자 준비해 온 때묻은 사진과앨범을 꺼내 놓고 지난 시간을 되새기는가 하면 정성껏 마련한 선물도 주고받았다. 류미영(柳美英) 천도교 청우당 중앙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북측 방문단 100명은 두 팀으로 나눠 이날 오전 10시,오후 3시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남측 가족들과 이틀째 상봉했다. 이들은 워커힐 호텔과 잠실 롯데호텔에서 남측 가족들과 50년만에처음으로 한자리에 앉아 점심식사를 했으며 식사도중 웃고 울기를 되풀이하며 오랜 세월 가슴 속에 묻어둔 한을 풀고 얘기꽃을 피웠다.방문단은 상봉이 없는 시간에는 롯데월드 민속관을 둘러봤다. 류 단장은 이날 오후 서울에 살고 있는 차남 인국(53)·맏딸 근애(62)·막내딸 순애(48)씨와 비공개리에 상봉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충식(張忠植)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단장으로 한 남측 방문단도 두팀으로 나눠 오전과 오후 번갈아 호텔에서 북측 가족들과 개별상봉을 갖거나 대동강 유람선 관광 및 단군릉 참관 행사를 가졌다. 경남 산청이 고향인 북한 원로 국어학자 류열씨(82)는 전날에 이어여동생 인자씨(59·부산) 등 4명과 쉐라톤워커힐 호텔에서 만나 남쪽가족들의 안부를 일일이 물으며 지난 세월을 되새겼다. 1·4 후퇴 때 생이별한 아내를 50년 만에 만난 남측 방문단 최성록(崔成祿·79)씨는 이날 평양 고려호텔 숙소로 찾아온 아내 유봉녀씨(75)의 손가락에 금가락지를끼워 주며 다시 한번 울음을 터뜨렸다.한편 전날 밤 단체상봉에서 과도한 감격과 흥분 때문에 이근하씨(71·경기 시흥시 신천동)가 급성폐렴증세를 보여 16일 아침 병원치료를받고 오후 일정에 참가했으며,정명희씨(71·강원 동해시)는 발목을삐기도 했다. 특별취재단
  • 남북이산상봉/ 어머니 못만나는 양한상씨

    “서울까지 왔는데도 어머니를 만날 수 없다니요…” 북측상봉단 양한상씨(69)는 16일 오전 숙소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동생들과 다시 만난 기쁨보다 병석에 누운 어머니를 뵐 수 없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노환으로 전혀 거동을 하지 못하는 한상씨의 어머니 김애란씨(88)는꿈에도 그리던 아들이 50년만에 찾아왔는지 모르고 현재 서울 서교동 자택에 누워 있다.이 때문에 한상씨는 어머니를 눈 앞에 두고도만나지 못하고 있다. 한상씨는 “50년만에 만나 기쁘기도 하지만 또 헤어질 것을 생각하니 기쁜 만큼 슬프다”면서 동생들을 향해 “너희들은 형 심정을 모른다,어머니를 꼭 만나게 해달라”고 울먹이며 몸부림쳤다. 전영우기자
  • 남북이산상봉/ 서울만남 이모저모

    북에서 온 아들은 “오마니”를 외치며 품에 안겨 눈물을 쏟았고,남쪽의 어머니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오열했다.기약이 없는 것처럼 보였던 만남은 뜨거운 포옹과 눈물이 되어 분출했다. ◇ 상봉 ■안순환씨(65)는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상봉 장소인 서울 삼성동코엑스에 나온 어머니 이덕만씨(87·경기도 하남시 초일동)와 동생들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쏟아냈다.50년 동안 소식도 없던 아들을 만난 어머니 이씨도 아들의 뺨과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씨는 “며느리에게 갖다 주라”며 미리 준비한 금목걸이를 아들의목에 걸어 준 뒤 연신 아들의 등을 두드렸다.안씨는 “북쪽에 가족이있느냐”는 동생들의 질문에 북한에 있는 가족사진을 꺼내 아내와 자식들을 소개했고, 어머니 이씨는 “며느리가 예뻐 합격”이라며 대견스러워했다. ■북한에서 축산 및 채소 생산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둬 ‘노력영웅’칭호를 받은 백기택씨(68)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딸 신금옥씨(50)를보고 숨이 멎는 듯했다. 옆에 서 있는 낯선 얼굴이 궁금했던 백씨는 여동생 문옥씨(67)로부터 “오빠,오빠가 의용군에 입대한 뒤 태어난 오빠 딸이야.오빠 딸”이라는 말을 듣고 한동안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듯 움직이지 못했다. 유복자라는 이유로 외가에 입적돼 호적상으로는 백씨의 조카로 돼있는 딸 금옥씨가 “아버지,저 금옥이에요.아버지 딸”이라며 아버지품으로 달려들자 주변은 울음바다가 됐다. ■만주에서 갖은 고생을 하다 전북 임실로 건너 온 뒤 전쟁 때 전주북중 입학증까지 받았지만 행방불명됐던 정춘모씨(63)는 계모 최순래씨(78)를 붙잡고 눈물을 쏟았다. 최씨는 “교복 입은 사진만 달랑 남겨 놓고 사라져 꿈같이 살아 왔다”며 울먹였고,여동생 정영자씨(54)는 “김대중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마치고 북한에서 돌아올 때 하얀 비둘기가 집 안으로 날아든 뒤꼭 한 달 만에 오빠를 만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19일 북쪽의 형 문병칠씨(68)의 생존 소식을 전해 들은 뒤사흘 만에 치매를 앓던 어머니 황봉순씨(90)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낸동생 병호씨(64·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인정리)는“어머니는 형님이살아서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치매 환자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기력을 회복했는데 사흘 뒤 ‘병칠이가 보고 싶다’고 손을 내저은뒤 갑자기 숨을 거두셨다”며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여동생 정자씨(59)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큰오빠의 손을 꼭 잡고는“오빠가 죽은 줄 알고 절에 위패까지 모셔 놓고 매년 제사를 지내왔다”면서 ”어머니가 한 달만 더 사셨어도 오빠를 만날 수 있었을텐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서울신문 논설위원을 거쳐 국회의원을 지낸 주영관씨(72)는 지난 50년 동국대 정치경제학부에 다니다 의용군에 입대한 동생 영훈씨(69)를 만나자 “어머니는 7년 전 지병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너를 찾으셨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영관씨는 “헤어진 이듬해 나도 바로 국군 연락장교로 입대해 너를만날 수 있을까 찾아 헤맸단다.서로 적군으로 총부리를 맞대더라도혹시 전쟁터에서라도 만나기를 고대했었는데 이제야 이렇게 만나게됐구나”라며 동생의 얼굴을 몇 번이나 쓰다듬었다. ■인민군이 서울에진입한 바로 그날 중학생으로 의용군에 징집됐던임재혁씨(66)는 휠체어와 지팡이에 의지한 채 치매로 듣지도 못하고말도 할 수 없는 아버지 임휘경씨(90·서울 양천구 목동)를 보고 목이 메었다. 재혁씨는 형 창혁씨(71)에게 “어머님,어머님은…”하고 감정을 억누르며 물었지만 “15년전 돌아가셨어.늘 네 얘기만 하시곤 했는데…”는 말을 듣곤 할 말을 잃었다.. ■박노창씨(69)는 조카들로부터 큰형 원길씨(89·서울 은평구 신사동)가 상봉을 이틀 앞두고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듣고 맥이 풀렸다. 노창씨는 지난달만 해도 6남매 중 유일하게 생존해 있다고 통보된큰형의 운구가 이날 오전 8시30분 장지인 경기 파주시 금촌면으로 향했다는 말에 “믿을 수 없다”며 망연자실했다. ■죽은 줄만 알았던 큰아들 조진용씨(69)를 만나 기쁨의 눈물을 흘리던 어머니 정선화씨(95)는 갑자기 호흡이 가빠지면서 쓰러져 들것에실려 아들을 만났다.정씨는 고령에다 아들을 만난다는 설렘 때문에아침은 물론 며칠 동안 식사를 제대로 못해 기력이 쇠약해진 것으로알려졌다.■상봉 가족수를 제한해 코엑스에 가지 못하고 8남매 중 맏이인 오빠 김용환씨(68)를 만나러 무작정 쉐라톤워커힐 호텔로 찾아온 용순(50)·용란(43)씨 자매는 오빠 용환씨가 코엑스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오르기 전 ‘기적’같이 자기 이름이 적힌 피켓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자 “오빠,오빠”를 연호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김정태씨(72)를 만나러 온 매부 신현묵(75)씨와 형수 박정우(70),계수 연종술(63)씨도 워커힐호텔 로비에서 ‘환영 김정태’라고 적은종이를 들고 이름을 연호하다 버스에 오르는 이산가족들의 줄이 끝날무렵 김씨를 잠깐 만날 수 있었다. ■남측 이산가족들은 오후 3시쯤 버스 편으로 컨벤션센터 동문에 도착,3시30분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행사장에 들어와 정해진 탁자에앉았으며,4시10분쯤 숙소인 워커힐호텔을 출발한 북측 가족들은 태진아의 ‘어머니’ 노래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4시40분쯤 홀에 들어와눈물의 상봉을 했다. 북측 가족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번호표를 들고 홀 입구의 상황판에서 자기 번호와 같은 번호가 적힌 탁자를 확인한 뒤 탁자를 찾아가남측 가족들을 만났다. ◇ 김포공항 ■북측 가족 151명을 태우고 공항에 도착한 북한 고려항공 승무원들은 공개된 자리에서 남측 승무원들과 악수를 나누었다.고려항공 승무원들은 오전 11시30분쯤 북측 가족들이 국제선 2청사 17번 게이트를통해 빠져나간 뒤 게이트 앞에서 10분 간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대한항공 김홍정 사무장(52)과 유은아씨(27) 등 스튜어디스 5명은게이트 앞으로 나온 박승남 기장(46) 등 10여명의 고려항공 승무원들에게 꽃다발과 기념시계를 선물했다. ◇ 워커힐호텔 ■밤 10시쯤 숙소인 워커힐호텔에 돌아온 북측 방문단들은 대부분 상봉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상기된 얼굴로 “내일 다시 만나도 울음을 참을 수 없을 것 같다.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오전 10시57분 김포공항에 도착한 북측 이산가족들은 숙소인 워커힐호텔로 이동,방 배정을 받은 뒤 여장을 풀고 호텔 식당에서 서울에서의 첫 식사를 했다. 점심은 갈비찜,은행죽,인삼야채무침,민어삼색전 등이 곁들여진 한정식으로,호텔 관계자는 “상봉단이 대부분 노령층이어서 먹기 좋고 소화가 잘되는 음식으로 준비했다”고 밝혔다.대부분의 북측 이산가족들은 “김치가 제일 맛있다”면서 “같은 조선 사람들인데 달리 맛을느끼겠느냐”며 남북 동포들이 한 입맛임을 강조했다. 북측 가족들의 가슴에는 김일성배지와 함께 인공기와 적십자 표시가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배지가 달려 있어 눈길을 끌었다. 북측 가족들은 신원을 증명하는 명찰도 휴대하고 있었다. ◇ 올림픽파크텔 ■밤 10시30분쯤 올림픽파크텔에 도착한 남쪽 가족들도 북한 방문단과의 상봉의 순간을 다시 되새기며 16∼17일의 개별 상봉시간은 어떻게 보람있게 보낼까 의논했다. 이날 아침 남측 가족들 중에는 잠을 설친데다 50년 만에 가족들을만난다는 기대 때문에 올림피아홀에 마련된 아침 식사를 제대로 들지못하고 남기는 사람이 많았다. 한편 남쪽 가족들은 기자들이 객실로 몰려와 취재 경쟁을 벌이자 가족간 대화 등에 방해가 된다며 기자들의 객실 출입을 막아달라고 요청했다.호텔측은 송파경찰서의 지원으로 이산가족들이 머무는 각 층마다 의경 2명씩을 투입해 객실 접근을 막았다. ◇ 한국종합전시장■북측 방문단과 남측 이산가족은 이날 저녁 대한적십자사가 강남구삼성동 한국종합전시장(COEX) 그랜드볼룸에서 주최한 환영만찬에 나란히 참석,재회의 기쁨을 함께 했다. 만찬은 상봉 시간이 지연되는 바람에 예정보다 1시간여 늦은 오후 7시40분께 시작됐으며 남북 상봉자 600여명과 한적 관계자 100여명 등이 참석했다. 한적 봉두완(奉斗玩) 부총재는 환영사에서 “만나면 이렇게 좋은 것을 왜 50여년동안이나 미뤄왔는가”라면서 “반세기 동안 간직했던회포를 이 자리에서 맘껏 푸시길 바란다”고 축원했다. 특별취재단
  • 남북이산상봉/ 평양만남 이모저모

    ◇ 평양 단체상봉■평양 방문단은 15일 오후 5시 숙소인 고려호텔에서 북녘의 가족·친지들과 50여년 만의 감격스런 ‘단체상봉’을 가졌다. 호텔 2·3층에 마련된 상봉장은 남북 가족이 만나는 순간 울음바다를 이뤘다.서로 부둥켜안고 떨어질 줄 몰랐다.2층의 상봉장에는 방북단 60명이,그리고 3층 상봉장에는 40명이 자리했다. ■20년 전 당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휠체어를 타고 상봉장에 나온김금자(金今子·69·서울 강동구 둔촌동)씨는 사촌 김금도(72)·금년(69)씨를 만났다.금자씨가 “허리는 아프지만 이를 악물고 만나러 왔어”라고 말하자 이들은 “이렇게 아픈데 여기까지 오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냐”며 함께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그러나 그렇게 만나고 싶었던 오빠 어후씨(71)가 고혈압 때문에 나오지 못했다는 말을듣고 다시 오열을 터뜨렸다. ■한때 고혈압으로 여행불가 판정을 받았다가 우여곡절 끝에 방문단에 포함된 김상현씨(62·서울 송파구 마천2동)는 누나 상월씨(70)와조카 이예숙씨(50)를 만나 50년 응어리진 한을 풀었다.2남2녀의막내로 태어나 누나들에게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는 김씨는 “누님에게 안겨보는 것이 희망이었는데 이제야 소원을 풀었다”고 기뻐했다. ■남한에서 올라온 아버지 이재경씨(80·경기 부천시 원미구)를 만난딸 경애씨(52)는 “결혼식을 앞두고 왼쪽 뺨에 난 점을 빼려고도 했지만 아버지가 내 얼굴을 몰라볼까 점을 빼지 못했다”며 울먹였다. 개성 출신의 이윤용씨(82·경기 성남시)는 처남 김홍규씨(63)를 왈칵 껴안으며 “다 컸네.걱정 안해도 되겠네”라고 말했다.홍규씨는“돌아가신 어머니와 다른 가족들은 다들 매형이 폭격을 맞아 죽은줄 알았는데 이렇게 살아계시다니 기쁘다”고 매형을 얼싸안고 흐느꼈다. ■남동생 후열씨를 만난 황해 사리원 출신의 양영애씨(70·강원 동해시 부곡동)는 “엄마가 어떻게 돌아가신 줄 아느냐.평생 너를 가슴에묻고 한에 사무쳐 돌아가셨다”며 울부짖다 땅에 쓰러져 주위 안내원들의 부축을 받고 가까스로 몸을 추슬렀다. 또 평양방문단 가운데 최고령자인 김정호씨(91·서울 강서구 가양동)는 1·4후퇴 때 눈보라때문에두고 와 평생 한이 됐던 외동아들 덕순씨를 만나 기쁨의 눈물을흘렸다. ■평북 박천 출신의 김사용씨(74·서울 문래동)는 지난 51년 헤어진아내 이옥녀씨(72)와 당시 1년 6개월 된 딸 현실씨(51)를 보자 왈칵껴안으며 “살아줘서 고맙다”고 울음을 터뜨렸다.김씨는 지난 51년평양에서 징집돼 전쟁포로가 되면서 헤어지게 된 상황을 되뇌며 “당신이 애(현실) 고사리 손을 쥐어 올리며 ‘잘 다녀오세요’라고 말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이번 상봉에는 북측 기자들이 치열한 취재 경쟁을 벌여 관심을 모았다.노동신문,조선중앙TV,조선중앙통신,민주조선,평양신문,통일신보,청년전위,조선기록영화촬영소,내나라 비디오,중앙방송,금성청년출판사 등 20여개사 100여명의 기자들이 몰려들었다.중국의 신화사,인민일보와 러시아의 이타르타스 등 외신들도 취재팀을 파견했다. ◇ 인민문화궁전 만찬■오후 8시부터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조선적십자회 초청 만찬은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방북단 일행은 조금전 북쪽 가족들과의 해후에대한 흥분과 감격으로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그러나 가족들이 빠지고 북측 안내원들이 함께 자리에 앉게 되자 못내 아쉬워하기도했다.저녁식사로는 고기종합보쌈,생선묵과 감자무침,김치,쉬움떡(술떡),메추리알국,볶음밥,닭강냉이즙,칠색송이구이,버섯완자볶음,수박,과줄,인삼차 등이 나왔다. ■1층 만찬장에는 헤드테이블 1개와 30개의 원탁테이블이 놓였다.식사가 계속되는 동안 만찬장에는 ‘반갑습니다’‘아리랑’‘나의 살던 고향은’ 등 우리 귀에 익은 음악들이 연주됐다. ■장재언(張在彦)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장은 환영사를 통해 “우리모두는 오늘의 이 뜻깊은 자리가 가족적 범위를 벗어나 분열의 비극을 끝장내고 화해와 통일의 새 전기를 마련하는 민족사적 대업을 성취해 나가는 데 기여하게 되도록 뜻과 마음을 합쳐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방북단장인 장충식(張忠植)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답사에서 “우리적십자 성원들은 더 늦기 전에 한명의 이산가족들이라도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고 편지를 교환하며 다시 만나 함께 여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고려항공 기내표정■이날 낮 12시쯤 남측의 평양 방문단이 탑승을 시작한 북한 국적 고려항공 비행기 내부는 장식이나 시설이 다소 떨어지는 수준이었으나스피커에서 귀에 익은 민요가락이 흘러나오는 등 친근한 느낌을 주었다.비행기내 모든 표지는 우리말과 영어가 함께 기재돼 있었는데 이중 ‘안전벨트’를 ‘박띠’로 표기하는 등 재미있는 우리말 표현도눈에 띄었다. 비행기 이륙후에는 “이제부터 청량제를 봉사하겠습니다”란 안내방송과 함께 6명의 승무원들이 룡성맥주,오미자단물,금강산 샘물 등을제공했다.‘가공물고기’란 이름의 명태포도 인기를 끌었다. ◇ 순안공항 도착■방북단 일행을 태운 고려항공 IL62기는 예정보다 5분 빠른 오후 1시45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비행기가 도착하자 마중나온 30여명의 환영객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고 손을 흔들며 환영했다. 순안공항에는 소나기가 내린 듯 활주로 곳곳이 젖어있었고,일행이평양 시내로 이동하는 도중에도 간간이 소나기가 내렸다. ■장재언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장과 최윤식 평양시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조춘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국장,허해룡 조선적십자회사무총장, 허혁필 민화협 부회장 등이 영접을 나왔다.장충식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북측 장 위원장에게 “반갑습니다.좋은 날 이렇게 공항까지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말을 건넸다.북측 장 위원장은 “잘 오셨습니다.보고 싶었습니다”라고 답했다. ◇ 고려호텔 도착■광복절 휴일을 맞은 평양거리는 차분했다.이산가족 방북을 환영하는 현수막이나 지난 정상회담 때의 시민들의 열광적 환영은 찾아보기힘들었다. 다만 간간이 지나는 시민들이 멈춰서서 손을 흔들거나 박수를 치면서 이들을 환영했다. 방북단은 지난 6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방문 당시 취재단이 지나온 길을 따라 평양 시내를 거쳐 오후 3시5분쯤 상봉장소인 고려호텔에 도착했다.고려호텔 정문에는 곱게 단장한 한복과 유니폼을 입은 호텔 여직원들이 양쪽에 늘어서 ‘환영합니다’라며 박수로 반갑게맞았다. ■호텔에 도착한 이산가족들은 1층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들었다.점심메뉴로는 녹두지짐,평양냉면,김치 등이 나왔고 후식으로 얼음보숭이와 신덕샘물이 마련됐다.식당 중앙뒤편에 마련된 대형TV에서는 왕재산경음악단의 ‘기쁨만을 드리고 싶어라’등 각종 경쾌한 음악이연주됐다. ◇ 서울 출발■이산가족 100명과 수행원,취재기자단 등 151명으로 이뤄진 우리측평양 방문단은 오전 9시30분 버스 10대에 나눠 타고 숙소인 쉐라톤워커힐 호텔을 출발,역사적인 평양 방문길에 올랐다. 10시30분 김포공항 국제선 2청사에 도착한 방북단은 대합실에서 배웅나온 가족과 친지들의 환송 속에 출국장으로 들어섰다.여객라운지에 모인 방북단 일행은 준비한 선물꾸러미를 거듭 살피며 탑승시간을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잠시 뒤 만날 북녘 가족들의 옛 얼굴을 더듬기도 했다. 고려항공기는 당초 예정시간보다 1시간 늦은 오후 1시 활주로를 이륙,반세기의 세월을 거슬러 평양으로 힘차게 날아 올랐다. 특별취재단
  • 남북이산상봉/ 상봉 첫날 쏟아진 말 말 말

    역사적인 남북 이산가족 상봉 첫날인 15일 북쪽의 이산가족들은 50여년 동안 쌓여 있던 응어리진 한(恨)을 담은 말들을 쏟아냈다. ●이 가까운 길을 50년 동안 기다려 이렇게 멀리 왔다. 리래성씨가김포공항 도착 직후 소감을 밝히면서. ●식사 중에서는 갈비찜이 가장 맛있었다.조선사람인데 달리 맛을 느끼겠느냐. 전덕찬씨가 숙소인 쉐라톤 워커힐호텔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뒤. ●우리 장군님(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고마움에 대해 절절이 느낀다. 남측땅이라고 해서 북측땅과 다를 바 없다. 김규설씨가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소감을 묻자. ●보름만에 서울에 왔는데 올 때마다 통일의 열기가 높아지는 것이느껴진다 12번째 서울에 온 북측 수행기자 최영화씨가 방문 소감을묻는 남측 기자들의 질문에. ●남한 음식은 약간 달다.다음에는 달지 않게 해달라. 북측 방문단단장인 류미영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이 워커힐호텔에서 점심식사를 한뒤. ●감개무량하다.선물은 비밀이다. 북측 방문단 수행원으로 서울에 온장윤철씨가 서울 방문 소감을 묻자. ●살아계신다고 할 때가 언젠데 이제는 돌아가셨다고 하니 어느 말을 믿어야 하느냐.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 남측 방문단의 장이윤씨,방북 출발에 앞서 최근 사망했다는 노모에 대한 기억을떠올리며. ●길 막히는데도 흐뭇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상봉단과 취재진 때문에 교통이 혼잡한 쉐라톤워커힐호텔 앞에서 택시기사가.
  • “오마니… 어머니…” 남북이 눈물바다

    “오마니!…제가 왔습니다” “오빠…” “언니…” “여보…” “죽기 전에 못볼 줄 알았었는데…” 오열(嗚咽) 또 오열….서울도 울고 평양도 울었다.그리고 온 겨레가울었다. 50년 세월,분단 반세기 만에 마침내 서울과 평양에서 꿈결에서 그리던 혈육을 만난 이산가족들은 서로 핏줄의 정을 확인하며 부둥켜안고 통곡했다. 분단의 벽이 허물어진 순간이었다.억눌러왔던 단장(斷腸)의 한과 그리움에 지친 설움과 눈물이 뒤범벅돼 남과 북의 이념과 체제를 가르고,가슴마다 얼어붙었던 모진 세월을 훌쩍 뛰어넘었다. 광복 55주년인 2000년 8월15일 남과 북으로 흩어져 살던 이산가족 200명(남북 100명씩)은 분단 50년 만에 서울과 평양을 방문,가족들과극적인 상봉을 통해 서로 껴안고 오열하며 질기고 진한 혈육의 정을주고 받았다.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은 지난 85년 이후 15년 만에 처음이다. 북측 방문단은 오후 4시40분부터 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센터 3층에서,남측 방문단은 이보다 늦은 시각 평양 고려호텔에서 꿈에 그리던 부모,형제,아들 딸,친척과 재회의 기쁨을 나눴다.서울과 평양의상봉장은 방문단 100명과 방문자 1명당 가족 5명 등 모두 600명의 이산가족들이 뒤엉켜 눈물바다를 이뤘다.이날 노환으로 서울 상봉장에나오지 못한 노모 민명옥(95)·박성녀(91)씨는 밤늦게 쉐라톤워커힐호텔로 앰뷸런스를 타고 와 북의 아들인 박상원(65)·려운봉(66)씨와 각각 눈물의 상봉을 했다.이산가족이 아닌 남측의 국민들도 TV생중계를 통해 ‘반세기 만의 포옹’을 지켜보며 한민족의 아픔을 함께느끼고 함께 울었다. 앞서 류미영(柳美英·78) 천도교 청우당 중앙위원장을 단장으로 한북측 방문단 151명은 이날 오전 10시5분 북측 고려항공 IL-62편으로평양 순안공항을 떠나 서해 남북직항로를 이용,11시 김포공항에 도착했다.고려항공이 민간인을 태우고 남측 땅에 착륙한 것은 분단 50년만에 처음이다.북측은 도착성명을 통해 “방문단 교환사업은 북남 공동선언을 이행하는 데 활력을 더해 줄 것”이라며 “민족단합과 통일을 위한 훌륭한 계기가 되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장충식(張忠植·68)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단장으로 한 남측 방문단151명도 이들이 타고 온 고려항공 편에 탑승,오후 1시 김포공항을 떠나 2시쯤 순안공항에 도착했다.남측도 성명에서 “남녘의 1,000만 이산가족의 소망과 기대를 안고 평양에 왔다”면서 “방문이 앞으로도계속 이어져 멀지않은 장래에 남북으로 흩어진 이산가족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날이 올 것을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양측 방문단은 이날 2시간여에 걸친 단체 상봉을 마치고 대한적십자사와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가 코엑스와 인민문화궁전에서 각각 베푼 만찬에 참석했으며,남측 가족들만 만찬에 동석했다.방문단은 만찬뒤 숙소인 서울 쉐라톤워커힐 호텔과 평양 고려호텔로 옮겨 남과 북에서의 설레는 첫날 밤을 보냈다. 단장과 이산가족 100명,수행원 30명,기자단 20명으로 구성된 양측방문단은 이날 집단상봉에 이어 18일까지 3박4일간 서울과 평양에서체류하며 숙소에서의 개별상봉 2차례,오찬 2차례,만찬 1차례씩 더 만나 이산의 한과 아픔을 달랜다.18일 북측 방문단을 태운 대한항공 여객기가 김포공항을출발,순안공항에 이들을 내려준 뒤 남측 방문단을태우고 귀환한다. 특별취재단
  • 남북이산상봉/ 北 최영화씨 12번째 방문

    7월말 서울에서 열린 남북 장관급회담에 이어 보름만에 북측 이산가족 방문단과 함께 다시 서울을 찾은 북측 수행기자가 있어 화제다. 주인공은 조선기록영화 촬영소 소속 최영화(62)기자.그는 이번 이산가족 교환방문단 공식 수행기자로 서울을 방문함으로써 12번째 방한기록을 갖게 됐다.최 기자는 15일 서울 도착뒤 숙소인 쉐라톤 워커힐호텔에서 남측 취재진에게 손을 흔들며 안면이 있는 기자와는 악수를하기도 하는 등 시종 여유를 보였다. 72년 9월 남북 적십자회담부터 지난 6월 평양교예단 방문 때까지 서울 최다 방문 기록을 가진 남북회담의 산증인인 최씨는 6월 13∼15일역사적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평양 방문 때에도 김 대통령의 일거수 일투족을 카메라에 담은 것으로 유명하다. 환갑을 넘긴 최씨는이번 이산가족 교환방문 기간에도 손때가 잔뜩 묻은 35㎜촬영기를 어깨에 메고 종횡무진 회담장을 누빌 것으로 예상된다. 남측 기자들 사이에서는 북측 카메라가 내는 소리 때문에 ‘드르륵아저씨’로 통한다는 그는 남북 회담이 열리는 때면 특별대우를 받아비공개 회의에도 출입을 허락 받고 있다는 것. 평양영화연극학교를 졸업하고 조선기록영화촬영소에 들어가 지금까지 김일성 전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현지 지도 모습을 영상에담아 왔다. 오일만기자 oilman@
  • 85년 이산상봉때도 북한측 숙소로 이용…쉐라톤 워커힐호텔

    북측 이산가족 방문단이 묵는 쉐라톤 워커힐호텔은 공교롭게도 한국전쟁과 인연이 닿아 있다. 지난 63년 준공된 이 호텔은 한국전쟁 당시 미 8군사령관 겸 유엔군총사령관이었던 월톤 워커 장군을 기리기 위해 설립됐다. 워커 장군은 1950년 낙동강전선 방어에 중추적 역할을 한 명장으로 같은해 12월23일 북진 도중 서울 도봉구 창동 부근에서 지프가 전복되는 바람에 전사한 인물. 전쟁이 끝난 뒤 지금의 워커힐호텔이 위치한 광장동 일대 강변은 미군들의 휴양지로 애용됐고 호텔이 들어선 뒤 지난 87년에는 산책로에워커 장군의 동상을 세웠다. 85년 이산가족 상봉시 북측 방문단 숙소로 이용됐던 워커힐호텔은지난해 통일농구 경기때도 북한 농구팀이 묵는 등 남북 교류 창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지난 91년 제5차 남북 고위급회담 장소로 선정됐을 때는 북측의 심기를 고려해 이름을 바꿀까도 검토했었다. 특별취재단
  • 남북離散 상봉/ 北혈육 맞는 南가족들

    북측 상봉단을 맞을 남측 이산가족과 평양에서 친척들을 만나게 될남측 방북단은 50년만의 상봉을 하루 앞둔 14일 각기 숙소인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과 광진구 쉐라톤워커힐 호텔에서 설레는 마음에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을 하얗게 새웠다. 북에서 올 가족들을 기다리는 남측 이산가족들이 묵고 있는 올림픽파크텔의 5∼17층 객실은 밤새 불이 꺼지지 않았다.실향민들은 같은고향 사람이나 옆방 사람들과 삼삼오오 모여 흥분속에서 이야기 꽃을 피웠으며 준비한 선물을 꼼꼼히 챙겨보기도 했다. 채성신(蔡誠信·73)씨는 “긴장이 돼 잠이 오지 않는다”면서 “첫방북단인 100명이 잘해야 이산가족 상봉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다는생각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객실 복도를 서성였다.채씨는 “방북단에 같은 고향인 영변 출신이 7명이나 된다”면서 “평양으로출발하기 전에 함께 모여 사진을 찍고 앞으로도 계속 모임을 갖기로했다”고 덧붙였다. 김원찬(金元燦·77)씨는 “1·4후퇴 때 흥남 부두에서 같이 가자고울며 매달렸던 두 여동생이 떠오른다”면서 휘영청 밝은 보름달에 눈시울을 붉혔다. 북한 상봉단을 맞을 남쪽 가족들은 투숙 시간인 오후 3시 이전에 대부분 올림픽파크텔에 도착했다.지방에서 119구급차에 실려온 노인들도 눈에 띄었다. 남측 상봉자중 최고령인 조원호씨(100·여)는 북에서 내려올 둘째아들 리종필씨(70)를 만나기 위해 충남 아산시 탕정면 자택에서 119구급차를 타고 오후 1시30분 호텔에 도착했다.조씨는 피곤한 기색이었지만 연신 “죽기 전에 종필이를 꼭 만나야 한다”는 말을 되뇌였다. 충북 청주에서 119구급차로 올라온 박성녀씨(88·여)도 큰 아들 여운봉씨(68)의 얼굴을 알아보겠느냐는 질문에 “50년을 기다려온 자식인데 어떻게 얼굴을 잊을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김일성대 교수로 인민과학자 칭호를 받은 아들 조주경(趙周璥·68)박사를 만날 어머니 신재순씨(89)는 “부처님에게 감사 드릴 뿐”이라면서 “곱던 아들의 얼굴에 주름이 가득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며 계속염주를 만졌다. 이창구 전영우기자 window2@[본사 남북이산가족 교환방문 특별취재단 명단]◆단장 최홍운 편집국 부국장◆부단장 정종석 정치팀장,배성국 사회팀장◆정치팀 이목희·한종태·황성기·강동형·이석우차장,진경호·오일만·김상연·주현진기자◆경제팀 조현석기자◆디지털팀 육철수차장,김재천기자◆사회팀 황진선·오승호차장,전영우·이창구·안동환·이송하·조태성·윤창수기자◆전국팀 김인철차장,김용수·심재억기자◆국제팀 강충식기자◆문화팀 황수정·이순녀기자◆특집기획팀 정운현차장,최광숙·장택동기자◆체육팀 곽영완차장,류길상기자◆행정뉴스팀 박록삼기자◆사진팀 이종원차장,남상인·김명국·이호정·이영표기자◆뉴스피플팀 이춘규·김환용·이진아기자◆대표 e-mail jshwang@ 또는 mhlee@
  • 남북離散 상봉/ 오늘 서울·평양은‘눈물의 도시’

    15일은 남북한 모두 ‘눈물 바다’가 될 것 같다.서울과 평양에서 50년 만에 상봉하는 이산가족 당사자들은 물론 이를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이 눈시울을 붉힐 것이다. 남북당국이 ‘항공기 1대 순차이용’으로 방침을 정함에 따라 북측이산가족이 먼저 서울에 도착하고,우리측 이산가족은 그보다 2시간쯤 뒤에 평양 땅을 밟게 됐다. ◆15일 서울 방문단은 김포공항에서 간단한 환영행사에 참석한 뒤 숙소인 쉐라톤 워커힐호텔로 이동,여장을 풀고 오찬과 간단한 휴식을취한다.이어 오후 4시 단체상봉 장소인 서울 삼성동 코엑스 3층 컨벤션홀에서 꿈에 그리던 남쪽 가족들과 감격의 상봉을 한다.2시간30분여 상봉행사가 끝나면 같은 건물 1층으로 자리를 옮겨 가족들과 밤 9시 정도까지 저녁식사를 한다.첫날 상봉시간이 총 5시간이 넘는 셈이다. 평양방문단은 당초 일정보다 2시간쯤 늦게 도착한 관계로 숙소인 고려호텔에서 짧은 휴식을 가진 뒤 인민문화궁전이나 평양체육관에서북의 가족들과 집체상봉(단체상봉)을 한다.2시간여 상봉행사가 끝나면 가족들과 헤어져 조선적십자회 주최 공식만찬에 참석한다. ◆16일 서울방문단은 A,B 2개조로 나뉘어 오전과 오후 개별상봉과 롯데월드민속관 참관 행사를 갖는다.개별상봉은 숙소인 워커힐호텔 객실에서 가족별로 진행되는데,남북 당국자가 입회하지 않기 때문에 가족끼리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점심식사도 워커힐호텔과 롯데호텔에서 가족과 함께 한다.저녁에는 가족들과 헤어져 신사동 삼원가든에서 열리는 대한적십자사 주최 만찬에 참석한다. 평양방문단은 오전 숙소인 고려호텔에서 개별상봉을 한 뒤 가족들과점심을 함께 한다.오후에는 가족들과 헤어져 세계 최고 수준의 평양교예단 공연을 관람한다. ◆17일 서울방문단은 전날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개별상봉을 한다.시내관광으로는 창덕궁 참관이 예정돼 있다.저녁에는 박재규(朴在圭)통일부장관 주최 환송만찬(한남동 그랜드 하얏트호텔)에 참석한다. 평양방문단은 오전 개별상봉에 이어 오후에는 가족들과 헤어져 을밀대나 동명왕릉 등의 유적지를 참관한다.저녁에는 냉면으로 유명한 옥류관에서 열리는 평양시인민위원회 주최 만찬에 참석한다.마지막날인 18일 정식 상봉행사가 없기 때문에 이날 개별상봉이 사실상의 마지막 상봉이라 할 수 있다. ◆18일 남북 방문단은 가족들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서울과 평양으로 각각 귀환길에 오른다.방문단이 공항에 가기 위해 호텔을 나설 때 가족들은 현관 등에서 손을 흔들거나 부둥켜 안는 등 잠시 석별의 정을 나눌 시간은 있을 것 같다. 김상연기자 carlos@
  • 남북혈육 오늘 눈물의 상봉

    남북한 이산가족 교환방문단이 15일 서울과 평양에서 헤어진 지 50년 만에 마침내 가족들을 만난다. 장충식(張忠植) 대한적십자사 총재와 류미영(柳美英) 천도교 청우당 중앙위원장을 각각의 단장으로 하는 남과 북의 고향방문단은 이날항공기편으로 평양과 서울을 교차 방문,3박4일간의 일정을 시작한다. 방문단은 이산가족 100명,수행원 30명,기자단 20명 등 151명씩으로각각 구성됐다.방문기간 동안 이산가족들은 숙소에서 개별상봉 2차례 등 6차례씩의 가족·친지 상봉을 갖고 서울과 평양 시내 관광을 한뒤 18일 귀환한다. 이산가족 교환방문은 지난 85년 9월 이후 15년 만으로 ‘6·15 공동선언’의 합의에 따른 것이다. 북측 방문단은 이날 평양 순안공항에서 고려항공 비행기로 출발,서해 직항로로 오전 11시쯤 김포공항에 도착,광장동 쉐라톤워커힐 호텔에 묵는다.남측 방문단은 북측이 이용한 비행기를 타고 평양으로 가고려호텔에 여장을 푼다. 이산가족들은 이날 오후 4시 서울과 평양에서 단체·공개상봉을 갖는다.행사는 서울에서는 삼성동 코엑스(COEX) 컨벤션 홀에서,평양에선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다. 이어 방문단은 16·17일 이틀간 숙소에서 각각 개별상봉을 갖고 시내관광을 갖는다. 이석우 김상연기자 sw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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